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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소식2022-3/ 05.04 인구 70만의 섬나라, 어떻게 미중 패권경쟁 무대가 되었나 - 05.31 코로나와 중국 모식(模式)

상림은내고향 2022. 6. 2. 20:14

지구촌 소식2022-3/

05.04  인구 70만의 섬나라, 어떻게 미중 패권경쟁 무대가 되었나

솔로몬제도의 제일 큰 섬 과달카날에 무슨 일이

과달카날 전투는 수없이 펼쳐진 2차 대전 전투 중에서도 가장 격렬하고 처절했던 전투의 하나로 꼽힌다. 미드웨이 해전 직후인 1942년 8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남태평양의 과달카날 섬에서 육해공을 망라해 펼쳐진 이 싸움으로 2차 대전의 전세가 바뀌었고, 결과적으로 세계사의 물줄기가 방향을 틀었다. 미국은 이 전투로 태평양의 제해권을 잡았고, 일본은 미국의 서진(西進)을 막아내지 못하고 고전하다 항복했다. 2만명 넘는 일본군 전사자 중에는 고립 상황에서 보급이 끊겨 아사한 병사가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은 왜 막대한 희생을 무릅쓰고 이 작은 섬을 지키려 옥쇄(玉碎)작전까지 펼친 것일까. 지도를 보면 과달카날 섬이 갖는 전략적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호주 동북쪽 2000㎞에 위치한 이 섬은 미국과 호주를 잇는 항로상에 있다. 이 섬을 장악하면 미군의 보급로를 끊고 서진을 봉쇄해 승기를 잡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2차 대전의 미·일 격전장에서 80년만에 미·중 격돌장으로
미국-호주 항로에 위치, 괌 배후상에 입지한 전략적 요충지
중국이 차이나 머니 앞세워 미국 관심 소홀한 틈 파고 들어
제3 도련 구축하고 태평양 양분지계 본격화 위한 교두보 마련

▲마나세 소가바레 솔로몬제도 총리가 지난 2019년 10월 베이징을 방문해 리커창 중국 총리와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로부터 꼭 80년 만에 이 섬이 다시 세계 패권 경쟁의 무대로 떠올랐다. 건곤일척의 공방전을 벌였던 미국과 일본이 한편에 서서 뒤늦게 남태평양에 뛰어든 중국과 싸우는 것이 달라진 점이다. 과달카날은 영국령에서 독립국이 된 솔로몬제도에서 가장 큰 섬이고 수도 호니아라도 과달카날에 속한다. 인구 70만에 못 미치는 소국이지만 솔로몬제도의 전략적 중요성은 8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불변의 지리적 위치 때문이다. 그 가치에 주목한 중국이 솔로몬제도를 태평양 진출의 교두보로 삼기 위한 공세에 나섰다.

 

지난 3월 하순 온라인 SNS를 통해 중국과 솔로몬제도가 합의했다는 안전보장협장(Security Pact)의 내용 일부가 공개돼 서방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질서와 중국 교민 안전 유지라는 전제조건이 붙긴 했지만 중국이 군대와 무장경찰을 파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솔로몬 항구에 중국 함정을 정박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오랫동안 남태평양 도서국들을 자국 세력권으로 생각해 왔던 미국과 호주의 허를 찌르는 내용들이었다.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솔로몬 내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고 항공모함을 기항지로 사용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중국의 항공모함이 솔로몬제도로 나오는 건 근해방어의 작전 개념에서 벗어나 원양(遠洋)해군으로 변신함을 의미한다.

 

부랴부랴 미국과 호주는 솔로몬 정부에 협정 체결을 보류하라는 압박을 가했다. 호주 태평양장관이 솔로몬으로 급파됐다. 미국은 ‘아시아 차르’라 불리는 커트 캠벨 백악관 인도태평양 조정관을 파견한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29년 전 철수한 주(駐)솔로몬 대사관을 재개설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일본이 가세했다. 일본은 태평양 도서국가들에 대한 최대 원조공여국이다. 이와 별도로 미·호·일과 뉴질랜드 등 4개국은 따로 하와이에서 고위급 회담을 열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처럼 안보협정 저지를 위한 전방위적 외교전에도 불구하고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마넬레 솔로몬 외무장관은 지난달 19일 협정을 체결했다. 캠벨 출발 하루 전 기습적으로 서명일자를 앞당긴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솔로몬제도.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솔로몬은 군대가 없는 나라다. 자국 경찰력만으로 막기 힘든 소요사태나 대형 재난이 일어나면 호주 군대의 힘을 빌렸는데 이제 그 대상을 중국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솔로몬은 주권 사항이라 설명하며, 중국은 “제3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하지만 외부 세계는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다. 치안·재난 대응을 위한 것이면 멀리 있는 중국이 아니라 호주·뉴질랜드 등 역내 국가의 도움을 받는 게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안보협정 체결로 전통적 친미, 친호 노선에서 친중 국가로 변모했다.

 

어떻게 이런 반전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3년 전 촬영된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와 마나세 소가바레 솔로몬 총리의 사진이 그 내막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소가바레는 2019년 10월 베이징을 방문했다. 총리직을 오르락내리락 하던 정객 소가바레가 네번째 총리에 취임한 뒤 대만과의 국교를 끊고 중국과 수교한 직후였다.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두둑한 원조를 약속했다. 솔로몬은 인구 70만에 국토가 여러 개의 섬으로 나뉘어져 있어 1차 산업 이외에 이렇다 할 산업기반이 없어 국가 경제는 외국 원조에 의지해 왔다. 이런 점을 파고든 중국의 외교적 성과였지만, 중국의 대만고립 작전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어서 당시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 배경에 태평양 교두보를 마련하려는 포석이 깔려 있었음을 미국 등 외부 세계가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더구나 이 모든 일들은 미국이 남태평양에서 잠시 관심을 소홀히 한 사이에 일어났다.

 

태평양 진출은 중국의 오랜 숙원이자 당면한 국가전략 목표이기도 하다. 중국은 그 꿈을 숨기지 않는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집권 초 미국을 방문해 “태평양은 미·중 양국을 모두 포용할 만큼 충분히 넓은 공간”이라고 말했다. 티모시 키팅 전 미 해군 태평양사령관은 “하와이를 경계로 미국이 동쪽, 중국이 서쪽을 관리하자”는 중국 해군 간부의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의회에서 증언하기도 했다.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와 다를 게 없는 ‘아태양분지계(亞太兩分之計)’다. 솔로몬과의 안보협정이 그 원대한 꿈의 서막이라고 하면 침소봉대일까.

 

▲윤석준

 

중국 해군 전략과 전력을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윤석준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의 입장에서 신의 한 수를 둔 것”이라 표현했다. 윤 위원은 해군 함장 재직 때 솔로몬제도에 입항한 경험이 있다.

 

▶중국이 솔로몬에 군사 기지를 갖게 되면 군사전략적으로 어떤 이점이 있나.

“이는 다분히 중국의 태평양 진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남태평양에 상주군이 없는데 중국이 거점을 확보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호주에 근접한 곳이고, 미군 기지가 있는 괌의 배후이기도 하다. 특히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대만과 일본, 한국에 집중되는 틈새를 파고 든 모양새다.”

 

▶중국이 어떻게 그 틈새를 파고들었을까.

“10여년 전 해군 함장 때 수도 호니아라에 입항한 적이 있다. 현지인들은 과달카날 해전의 영향으로 미국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었고, 당시 침몰된 함정때문에 산호초가 자라지 못해 관광이 안된다는 불만도 있었다. 또 호주가 기득권을 지키려고 다른 나라의 투자를 막고 있다며 한국의 투자를 기대하기도 했다. 이런 틈을 비집고 중국이 접근한 것으로 본다.”

 

▶중국 해군 전략은 ‘접근거부’를 축으로 하여 제1, 제2 도련(島鏈·Island Chain)을 방어선으로 설정하고 있다. 솔로몬제도는 그 선 밖에 있는데 기존의 해군 전략을 수정한 것인가.

“1989년에 나온 중국 해군 책자는 제1, 제2도련만 언급하였으나, 2014년 림팩(환태평양) 훈련 이후부터 비공식적으로 제3도련을 설정한 것으로 안다. 해군력이 원해로 나가 장기작전을 펼치는 체제다. 제3도련 구축을 위한 전초점이 남태평양이라고 본다. 중국은 이미 미국에게 태평양을 반반씩 관리하자고 제안했다.”

 

▶미국의 반발을 무릅쓰고 중국이 정말 군대를 보내려고 할까. 충돌 위험까지 불사하면서….

“중국은 이미 솔로몬제도에 치안지원을 명목으로 무장경찰과 해경을 보내 대테러 진압 등 훈련을 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와 있다. 미국·호주와 뉴질랜드가 반발을 하겠으나 현재로선 뾰족한 방안이 나오기가 쉽지 않다. 얼마 전에는 중국이 원해 해군기동전단을 감시하던 호주 공군 해상초계기 조종사에 레이저빔을 투사하는 공격성을 보인 일도 있었다.”

 

중국의 팽창전략이 가속화할수록 태평양의 파고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솔로몬은 한국과는 6300㎞ 떨어진 먼 나라다. 지금 이 나라를 둘러싼 합종연횡의 세력싸움이 과연 남의 일로만 끝나는 것일까.

 

이달 하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국·일본 순방이 예정되어 있다. 이에 맞춰 호주·영국·미국의 안보협의체인 오커스(AUKUS) 확대 등 중국의 태평양 진출에 대응하는 협력방안을 논의할 것이란 보도가 나왔다. 태평양 연안국 한국에도 쉼 없이 파고가 밀려든다는 이야기다. 우크라니아 사태에서 보듯 지구촌의 모든 일들이 한국의 국익과 얽히고 국가 위상과 관련되는 시대를 맞고 있다. 한국도 솔로몬에서 개발원조(ODA) 사업을 펼치고 있는 만큼 적극적 의지와 관심을 갖고 국제사회에서 제 역할을 찾을 필요가 있다.

예영준 논설위원  -  중앙일보

 

05.07  “中이 방역 최고라 하겠죠”

 2020년 1월 코로나가 처음 확인된 중국 우한(武漢)의 풍경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오전 10시부터 폐쇄된다는 버스 터미널의 안내 방송, 소독차만 다니는 텅 빈 거리, 우한을 빠져나가는 차량의 전조등 행렬은 공상과학 영화 같았다. 한커우(漢口) 기차역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의 불안한 얼굴도 잊을 수 없다.

 

▲중국식 코로나방역;저장성 하이닝시에서 지난 4월 7일 불법적으로 외출했다는 이유로 방역요원과 인민해방군 병사들이 노인을 길바닥에 쓰러뜨리고 간판대로 짖누르고 있는 모습이 SNS를 통해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었다./트위터

 

당시 우한에 취재를 갔던 기자는 4시간 차를 달려 후베이성 이창을 거쳐 비행기로 베이징에 돌아왔다. 묵던 호텔이 폐쇄될 예정이라 우한에 더 머물기 어려웠다. 베이징에 돌아온 후 곧장 귀가해 중국 외교부 외국기자센터 등에 신고하고 2주간 자가 격리를 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한국의 ‘미디어 전문가’와 일부 ‘진보 매체’는 “수퍼 전파자가 되려 하느냐”고 비난했다. 그들 중 한 명이라도 기자에게 확인 취재를 했다면 방역 수칙을 어떻게 지켰는지 알려 줬을 텐데, 누구도 그러지 않았다.

 

2년 4개월이 지났다. 전 세계는 바이러스의 공포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지만 중국은 예외다. 공포의 성격도 달라졌다. 바이러스뿐 아니라 봉쇄와 격리라는 공포가 더해졌다. 한 달 이상 도시가 봉쇄된 상하이뿐 아니라 베이징도 현재 500동 이상의 건물이 봉쇄돼 주민들의 외출이 금지돼 있다. 가로·세로 800m 공간에 감염자와 10분 이상 함께 있었던 사람은 ‘시공동반자[時空伴隨者]’로 분류된다. 한밤중 “시공동반자이니 자가 격리하라”는 전화를 받았다는 사람도 많다.베이징은 지난 1일부터 모든 식당의 실내 영업을 금지하고 있다. 헬스장·영화관도 운영이 중단됐다. 이런 모든 조치가 시행 하루 전날 발표된다. 어디서 코로나 환자가 나올 줄 모르고 중국 국내선 항공편은 취소되기가 다반사다. 한 중국인 친구는 탄식했다. “뭔가 계획한다는 게 무의미해졌어.”

 

도시를 봉쇄하고 감염자를 시설에 격리하지만 올해 1월 이후 현재까지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 확진자는 11만6000여 명으로 2020년 전체(8만7000여 명)보다 많다. 중국 대도시 가운데 선전·창춘·상하이·베이징·정저우에서 주민 이동 통제령이 내려졌다. 이 도시들이 마지막이라고 장담하지도 못한다. 중국만큼은 아니지만 정부 주도의 강력한 방역 정책을 폈던 한국, 싱가포르, 홍콩, 대만이 코로나와 함께 사는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이제 전 세계에서 중국만 남았다.외르크 부트케 중국 유럽상공회의소장은 최근 스위스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 지도부가 자기 내러티브에 갇힌 죄수가 됐다”고 했다. 코로나 방역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업적과 연결하는 바람에 ‘비극’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중국은 코로나가 처음 대유행한 국가이자 마지막으로 벗어나는 나라가 될 겁니다. 그러면서 전 세계에 우리가 최고라고 말하겠죠.” 중국에 있는 많은 외국인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

조선일보  베이징=박수찬 특파원

 

05.10  [우크라 전쟁 A~Z] 세계 최초 'SNS 전쟁' 총정리

그래서 러시아가 불리한거야?
우크라 전쟁, 판세 이렇습니다

중앙일보 

 

05.11  러가 자랑한 ‘63억’ 최첨단 탱크… 2800만원짜리 포 한방에 날아갔다

▲러시아군 T-90M 탱크가 우크라이나 로켓포 공격에 폭발하는 장면. 오른쪽은 파손된 탱크 모습. /우크라이나 국방부 트위터, 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군이 쏜 2800만원짜리 로켓포 한 방에 63억원대 러시아 최첨단 탱크가 폭발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10일(현지 시각) 트위터 등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에 15초짜리 짧은 영상을 공개하고 “하르키우 북쪽 스타리 살티우 인근에서 러시아 탱크 T-90M을 제거했다”며 “탱크 산업에 대한 러시아의 자부심이 스웨덴제 로켓 발사기 칼 구스타프(Carl Gustaf)에 의해 파괴됐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트위터

 

 ▲/@maria_avdv 트위터

드론으로 촬영된 영상에는 공격당한 러시아군 탱크가 순식간에 폭발해 화염에 휩싸이는 모습이 나온다. 이후 공개된 탱크 모습을 보면, 새카맣게 타버린 본체 주변으로 잔해가 흩어져 있다. 영국 데일리메일 등 외신도 이날 “우크라이나가 1만8000파운드(약 2800만원)짜리 로켓포로 러시아의 400만파운드(약 63억원) 탱크를 폭파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보도했다.

 

T-90M 탱크는 러시아가 보유한 가장 최신형의 주력 탱크다. 125㎜ 활강포를 장착했고, 외부 공격을 받으면 미리 터지면서 공격 미사일의 관통력을 약화시키는 반응 장갑(裝甲)을 장착하고 있다. 또 적 미사일의 레이저 조준이 감지되면, 자동으로 연막탄을 터뜨리는 자동방어체계를 갖췄다. 러시아도 이번 전쟁에 쓰인 것을 포함해 100대 정도 밖에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크라이나 병사가 스웨덴제 칼 구스타프를 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런 T-90M 탱크를 산산조각 낸 무기는 스웨덴 사브(SAAB)사가 만드는 칼 구스타프 무반동총이다. 발사 시 포신이 후퇴하지 않고 반동이 없는 소형포이며 구경 106㎜, 90㎜, 75㎜, 57㎜ 포탄을 사용한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이번 게시물에서 “스웨덴 국민과 국왕에게 감사를 표한다”는 글을 덧붙이기도 했다.

 

앞서 우크라이나는 지난 5일에도 T-90M 탱크의 파괴를 확인하는 영상을 공개하고 “하르키우 지역을 드론 정찰하다가 적의 중(重)무기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해 타격 목표를 정하고, 특수전사령부 소속 저항군이 포병 여단과 공조해 타격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25일 러시아 정부가 전쟁 투입을 발표한 지 수 일 만이며, 실전에서 이 탱크가 파괴된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조선일보  문지연 기자

 

월간조선 05월 호

■ 우크라이나 사태와 일본 외교의 급변

 “우크라이나 사태는 戰後 최대의 위기”(기시다 총리)

⊙ 日, 종래의 ‘애매한 일본’에서 벗어나 對러 제재, 비축석유 방출,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 등에 적극적
⊙ 젤렌스키의 畵像 국회 연설에 일본은 500여 명, 한국은 50여 명 참석
⊙ 日, 미국-러시아 핵전쟁까지 염두에 두고 歐美와 共助 외교
⊙ 임기 6개월째인 기시다 총리 지지율 63.2%… 長壽 총리 될 가능성 높아
⊙ 한국, 點을 넘어 線/面/입체 외교 전개하는 일본 배워야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3월 24일 샤를 미셸 유럽이사회 의장과 만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일본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외교 지평을 넓히고 있다. 사진=AP/뉴시스

 

4월 초 벚꽃 축제가 끝났다. 벚꽃 만개(滿開)가 놀이 차원을 넘어서 ‘축제’라고 불리면서 봄의 출발점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아마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접어들면서부터일 듯하다. 반세기 전 진해 해군통제부에서 근무한 부친 덕분에 매년 관내 벚꽃을 독점하면서 보냈다. 당시 축제는 고사하고, 벚꽃 놀이 자체가 없었다. 먹고살기에도 바쁜 시대였기도 하지만, 벚꽃이라고 하면 일제의 상징이자 처분 대상으로 여겨질 뿐이었다.

가족이나 친구와 더불어, ‘매년 되풀이되는 추억이자 놀이’로서의 벚꽃 축제는 약 400년 전 일본 에도(江戶) 시대 때부터 본격화됐다. 일본 전역에서 이뤄지는 벚꽃 축제는 크게 4가지 배경하에서 이루어진다.

 

첫째, 벚나무를 집단 식목(植木)한다.
둘째, 벚나무 바깥을 따라 음식점을 비롯한 각종 풍물 상가가 축제 기간 중 들어선다.
셋째, 벚꽃 만개일 카운트다운과 함께, 관람객을 집단화해서 맞이한다.
넷째, 작은 이벤트들과 함께 야간에도 개장해 벚꽃 관람을 도와준다.


이러한 기준으로 일본 밖에서 펼쳐지는 벚꽃 축제를 관찰해보면 많이 다르다. 예를 들어 벚나무 가지의 위치다. 한국 벚꽃 축제에 가보면 나뭇가지 대부분이 허공 위에 ‘높이’ 떠 있다. 머리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드리워져 있다는 말이다. 일본의 경우 사람 키보다 조금 높은 2m 정도 높이의 가지가 많다. 팔을 뻗으면 닿을 높이다. 벚꽃 나무 아래를 스치듯 지나가면서 즐기는 식이다. 당연히 벚꽃 향과 벌들의 윙윙거리는 소리도 즐길 수 있다. 가지치기를 정교하게 해서, 아주 밀착해서 관찰할 수 있다. 한국 벚꽃은 시각(視覺)에만 의존할 뿐, 후각(嗅覺)이나 청각(聽覺)을 고려한 조경(造景)에는 무심(無心)하다. 가지치기도 거의 없고, 있더라도 눈높이 위치를 고려하지 않는다.


戰後 최대의 위기

벚꽃 축제를 대하는 일본의 자세를 보면 세계무대에서 펼쳐지고 있는 일본 외교의 오늘과 내일을 이해할 수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일본 외교는 현재 점(點)에서 벗어나 선(線)과 면(面) 나아가 3차원 입체화(立體化)를 향해 전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것이 최근 진행되고 있는 일본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읽을 수 있는 키워드다. 3월 10일 일본 미디어를 통해 처음으로 등장한 이 말의 출처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다. 2월 24일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지 14일 후, 공명당(公明黨) 당수와 시국 관련 회담을 끝낸 뒤 발표한 회견문 속에 이 말이 들어 있었다. 3월 27일 방위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기시다 총리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인해 국제질서의 근본이 위협받고 있다. 세계는 물론 일본도 전후 최대의 위기에 들어서게 됐다”고 말하면서 이 말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흔히 ‘전후 위기’의 사례로 1970년대 석유 위기와 닉슨 쇼크(닉슨 미국 대통령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 1990년대 이라크 전쟁과 버블 붕괴, 21세기 초 테러와의 전쟁과 리먼브라더스 사태, 2011년의 동일본 대지진 등을 꼽아왔다.

기시다 총리의 말대로라면, 금년 2월에 터진 우크라이나 사태는 앞의 모든 위기를 뛰어넘는, 1945년 이후 지난 77년 사이 가장 큰 위기라는 것이다. 한국인이 보기에는 뭔가 과장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한국에서는 문재인 정권이나 언론 모두 우크라이나 사태를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다. 전황(戰況)과 관련된 단발성 보도나 러시아의 전쟁범죄에 관한 뉴스가 거의 전부다. 우크라이나와 세계의 내일에 관한 분석이나 방향, 특히 한국이 향후 어떤 상황에 접어들지에 대한 질적(質的) 차원에서의 논의는 거의 보기 어렵다.


일본 외교의 급변

‘전후 최대의 위기’를 맞아 과연 일본은 어떤 식의 대응에 나서고 있을까? 서방세계와의 연대(連帶)다. 3월 말부터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일본이 보여준 모습은 너무도 놀랍다. 미국·유럽이 주도하고 있는 러시아의 금융·무역·에너지 올리가르히(특권 재벌)에 대한 각종 제재에 일본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더 나아가 푸틴 대통령 이름까지 직접 거론하면서 전쟁 책임을 추궁하고 있다.

사실 가능하다면 막후 교섭이나 윈윈(win-win)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과거 일본 외교의 특징이었다. 아무리 정당하고 분명하더라도 상대를 코너로 몰지는 않았다. 당장은 이길지 몰라도 결국에는 양날의 칼로 되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2018년 영국에서 발생한 러시아의 독극물 노비촉 암살 사건으로 촉발된 유럽과 러시아 간의 외교관 추방전이나 2014년 러시아의 크름반도 합병 당시, 일본은 유럽과 보조를 같이하지 않았다. 이는 일본 사회의 근간인 ‘와(和)의 정신’이 외교에 투영된 것이기도 하지만, 과거 한국·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을 침략했었고, 미국·유럽국가들을 상대로 태평양전쟁을 벌였다는 과거사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태도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180도 급회전했다. 일본은 난민(難民) 수용에 인색한 나라로 유명했는데, 놀랍게도 전쟁 발발과 함께 우크라이나 난민을 적극 받겠다고 공언했다. 4월 9일 기준으로 421명의 우크라이나 난민이 일본에 들어왔다.

일본은 에너지 가격 안정을 위한 비축(備蓄)석유 방출에도 적극적이다. 미국이 6000만 배럴을 내놓았는데, 일본도 1500만 배럴을 풀었다. 영국·독일·프랑스보다 많은, 세계 2위 규모다.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기시다 일본 총리가 8명의 주일 러시아 외교관 추방을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본은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과 관련, 러시아를 ‘전쟁범죄국’이라고 공식 비난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전쟁범죄 조사를 요청하고 있다”는 기시다 총리의 결의가 전 세계에 공표됐다.


韓, G10임을 자랑하지만…
 

▲4월 11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화상 연설에는 고작 50여 명의 국회의원이 참석했다. 사진=조선DB

 

지난해 12월 21일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 대응에 이어, 경제력·소프트파워·군사력 등 종합적인 국력에서 G10(주요 10개국) 국가가 되면서 외교적 수요가 늘었다”고 자랑했다. 초등학교 반장에도 적용되는 말이지만, 뭔가 잘하고 타인(他人)의 모범이 된다는 말은 책임으로 이어진다. 문재인 정권의 자랑대로 대한민국이 G10 반열에 올랐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뒤따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고, 푸틴 대통령이 핵(核)공격까지 거론하는 상황인데도 자칭 G10으로서의 책임감은 보이지 않는다.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연설은 좋은 본보기다. 44세 대통령은 전쟁이 일어난 후 국제기구나 20여 개 나라 의회를 상대로 한 화상(畵像) 연설을 통해 러시아의 침략을 고발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호소해왔다.

그런데 ‘민주진보정부’를 자랑해온 더불어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대한민국 국회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화상 연설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왔다. 이에 대한 비판이 나오자 대한민국 국회도 4월 11일 젤렌스키 대통령의 화상 연설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한국도 1950년대에 6·25전쟁을 겪고 수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지만,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이겨냈다”며 연대를 요청했다. 연설 말미에는 “러시아의 탱크·배·미사일을 막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목숨을 살릴 군사 장비가 대한민국에 있다”며 무기 지원도 요청했다.

 

민망했던 젤렌스키의 국회 연설

 ▲3일 23일 젤렌스키 대통령의 일본 의회 화상 연설에는 710명의 중·참의원 의원 중 500여 명이 참석했다. 사진=AP/뉴시스

 

필자는 이 화상 연설을 보면서 세 가지 이유에서 놀랐다.

첫째, 행사의 격(格)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라는 국가를 대표하는 지도자다. 마땅히 국회의장이 행사를 주관하는 국회 차원의 행사를 열었어야 했다. 하지만 행사를 주관한 것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였다. 행사장도 국회 본회의장이 아니라 국회도서관 대강당이었다.

둘째, 행사에 참석한 국회의원의 수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국회의원은 총 300명 가운데 20% 정도인 50여 명 정도였다. 언필칭 왕년의 민주화 투사 출신 국회의원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민망할 정도로 빈자리가 많이 보였다. 와중 스마트폰을 보는 등 딴짓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젤렌스키의 일본 의회 연설 때에는 710명의 중·참의원 의원 가운데 500여 명이 참석했다.

셋째, 한국 정부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무기 지원 요청을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거부 자체도 놀랍지만, 연설이 끝나자마자 그렇게 ‘공개 거부’했다는 사실이 참담하기만 하다.

국회뿐이 아니다. 한국 정부는 푸틴 대통령을 정면으로 거론하기는커녕, 러시아를 비판하는 목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않고 있다. 서방 모두가 참여하는 대(對)러시아 제재에도 마지못해 끌려가는 느낌이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부차에서 저지른 민간인 학살이 세계의 공분(公憤)을 불러일으킨 직후인 4월 5일, 한국 외교부가 내놓은 세 줄짜리 성명서를 보자.

1. 우리 정부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발표한 민간인 학살 정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
2. 전시(戰時) 민간인 학살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3. 아울러 독립적인 조사를 통한 효과적인 책임 규명이 중요하다는 유엔 사무총장의 4·3 성명을 지지한다.

학살의 주어(主語)도 없고, 그나마 ‘우려’가 전부다. 푸틴과 러시아에 대한 비난 자체가 없다. 필자는 외교부 성명 내용을 들으면서 분노와 한숨이 동시에 솟구쳤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대하는 무지(無知)와 무관심, 나아가 고집과 자만은 왜 100년 전에 우리가 나라를 잃고 35년간 남의 나라 식민지로 전락했었는지, 왜 70여 년 전에 동족상잔을 겪어야 했는지를 새삼 깨닫게 해준다. 일본 총리가 ‘전후 최대의 위기’를 외치고, 서방 주요 국가들이 급변하면서 ‘신냉전(新冷戰)’의 도래를 경고하고 있다. 그런 흐름과 시대정신을 이해한다면, ‘자칭 G10 한국’의 방관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무모한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G7의 최후통첩

잠시 일본 벚꽃 축제 얘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벚꽃 축제가 열리는 동안 노점상이 들어설 경우 기존의 정규 상점의 장사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서로 갈등이 생기기 쉽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까? 노점상과 정규 상점은 평소에도 자주 어울리면서, 동네의 다른 축제에도 협력하면서 마찰을 피한다. 노점상 허가증은 정부가 행하는 추첨을 통해 발급하지만, 평소 동네 축제를 위한 인적·물적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만이 노점상 허가증을 얻을 수 있다. 대(代)를 이어가며 이어지는 장기적 협력체계가 매년 개최되는 벚꽃 축제의 원동력인 것이다.

일본 외교도 마찬가지다. 일본 외교가 최우선시하는 것 중 하나가 국제 공조(共助)다. 아무리 강해도, 절대로 일본 혼자 가지 않는다.

4월 7일 유럽 브뤼셀에서 G7 수뇌 회의의 결과가 발표됐다. 핵심은 “러시아가 생물·화학·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심각한 결과를 낳을 것”이란 결의문이다. 언뜻 보면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매번 반복되어온 경고로 보이지만, 지난 3월 24일 G7 수뇌 회의의 결의문과 비교해보면 변화의 정도를 이해할 수 있다. 그때는 “생물·화학·핵무기 사용에 반대한다는 경고를 보낸다”였다. 14일 만에 ‘구두(口頭) 경고’에서 ‘직접 행동’으로 변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러시아가 생물·화학·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나토(NATO)가 전쟁에 뛰어든다는, 푸틴에 대한 최후통첩이다. 누구도 입 밖에 내기를 꺼리지만, 이는 곧 제3차 세계대전을 의미한다고 봐도 될 것이다.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이 결의문에 참가한 일본의 역할이다. 일본은 G7이기는 하지만, 나토 회원국은 아니다. 러시아가 마지노선을 넘을 경우, 일본은 과연 어느 선(線)까지 나토와 보조를 같이할 수 있을까? 이는 현재 일본 국민 전체가 지켜보는 사안이기도 하다.

어떤 식으로든 일본은 나토의 움직임에 상응하는 군사적 행동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당장 일본 특유의 ‘정보·보급·정찰·소해(掃海·기뢰 제거)에 관한 군사작전’이 떠오른다. 전투 현장 참전이 아니라 측면·후방지원을 통한 군사행동이다.

G7 수뇌 회의의 이러한 결의문은 같은 기간 열렸던 나토 회원국 회담을 통해서도 재삼 확인됐다. 서울에서는 소홀히 다뤘지만, 나토 회원국 회담에는 한국 외교부 장관도 일본·호주 외교부 장관과 함께 옵서버 자격으로 참석했다. 하지만 한국은 G7 일본의 발언력에 못 미치는 한정적인 역할에 그쳤을 것이다. 한국은 G7과 나토의 최후통첩성 결의를 수용할지 여부도 정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지지율 63.2%

 ▲기시다 일본 총리는 2월 25일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사진=AP/뉴시스

 

나토의 현안에 일본이 개입하는 문제는 앞으로 펼쳐질 동아시아 안보 구도의 대변화를 가늠하는 상수(常數)가 될 것이다. 쿼드(Quad)를 통한 미국·인도·호주와의 연대만이 아니라, 나토를 통한 국제공조는 일본 외교의 새로운 과제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는 한국·중국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주는 만큼 받고, 얻는 만큼 보답하는 것이 국제무대에서의 기본 상식이다. 공짜는 없다. 도쿄(東京) 국회의사당 근처에는 ‘북방영토가 반환되는 날, 평화의날(北方の領土歸る日, 平和の日)’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돌이 놓여 있다. 북방영토 회복은 정치인들을 포함한 일본 국민들의 염원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일본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적극 동참하자 러시아는 그동안 이어져온 북방영토 관련 회담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2022년 4월 일본 외교는 그 중요한 북방영토 문제조차 뒷전으로 넘길 만큼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4월 4일은 기시다가 총리에 오른 지 6개월째 되는 날이다. 일본 후지 텔레비전(FNN)이 행한 여론 조사에서 일본 국민의 63.2%가 기시다 총리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크라이나 문제와 코로나19 대처에 대한 신뢰도가 특히 높다. 집권 6개월째에 지지율이 50% 이상 나왔다는 것은 장수(長壽) 총리가 될 것이라고 보장하는 신호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경우에서 보듯, 지도자의 리더십과 국민의 강력한 지지는 시련 극복의 기본 바탕이다. 기시다 총리는 국민적 지지를 기반으로 국방비 증액과 드론경항공모함 같은 첨단 무기 개발을 구체화하고 있다.


‘臺灣 有事’

일본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발등의 불’로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북방영토 주변이 미국과 러시아 간 핵전쟁 무대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 핵잠수함이 비밀리에 움직이는 최전선이 바로 사할린 아래 바다다. 미국 본토와도 가깝고 러시아에 대한 공격도 가능한 지역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확대될 경우 결국 미국-러시아 핵전쟁이 고려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일본 내 미군기지와 도쿄가 러시아의 공격권에 들어갈 수 있다. 한국에서는 ‘설마’라고 생각할 것이다. 일본은 위기 시에 이러한 상황이 실제 터질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의 협력에 적극 나서지 않을 경우 핵전쟁 발발 시 일본을 도와줄 우방도 사라질 것이다. 일본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준비라는 차원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적극 대응하게 된 것이다.

둘째, 대만(臺灣) 유사(有事)다. 주의할 부분은 ‘대만’과 ‘대만 해협’ 사이의 미묘한 차이다. 미국은 대만이 아닌 ‘대만 해협’이 보호 대상이라 말한다. 일본은 ‘대만 유사’라는 표현에서 보듯, 대만과 대만인의 안전과 자유 그 자체에 주목하고 있다. 대만 해협의 자유로운 항해는 물론, 대만 자체의 자유와 평화가 일본의 주된 관심이라는 얘기다.

중국이 무력(武力)으로 대만을 공격할 경우, 일본은 자동 개입할 전망이다. 대만만이 아니라, 센카쿠(尖閣) 열도는 물론 오키나와(沖縄)까지 전쟁터로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틈만 나면 ‘센카쿠와 일본의 영토에 대한 공격=미일동맹의 영역’이란 워싱턴의 약속을 받아내고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문제에 적극 개입하는 상황에서 일본이 거리를 둘 경우 ‘대만 유사’ 시 똑같은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일본의 자세=대만 유사시 미국의 대응’이다. 때문에 일본은 앞으로 한층 더 나토에 깊이 관여할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친(親)푸틴 정책을 펴고 있는 중국을 공식 비판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은 티베트 인권 문제나 홍콩 점령 때도 중국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을 피했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에 직면해서는 중국을 맹렬히 공격하고 있다. ‘애매한 일본(曖昧な日本)’에다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은 20세기 과거의 모습이다. 대만 유사가 눈앞에 닥치면서 일본은 반푸틴·반러시아·반중(反中)을 전 세계에 분명히 공표하고 있다.

 

韓日 협력 없이 韓美 협력 없다

4월 5일 윤석열(尹錫悅) 대통령 당선인이 파견한 ‘한미 정책협의단’이 워싱턴을 방문했다. 한미(韓美) 동맹 강화가 목적으로, 양국 간 조기 정상회담과 외교·국방 2+2회의를 제안했다고 한다.

추측건대 한미 정책협의단이 워싱턴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 중 하나가 ‘한일(韓日) 협력 강화’였을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남긴 부정적 유산이지만, 한일 협력 없이는 한미 협력 강화도 어려운 구도로 변해버렸다. 문 정권이 ‘한반도 운전자론’에 매달리는 동안 일본은 동맹국 미국과의 군사협력과 상호신뢰에 매진했다.

한국은 한미 동맹이라는 ‘점(點)’을 통한 안보 확보를 우선시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중립국인 스위스·스웨덴·핀란드조차 나토 가입을 검토하고 있는 판국이다. 흩어진 점만이 아니라, 점을 이어주고 보강할 수 있는 선(線)과 면(面)이 필요하다.

일본은 미일 동맹이란 점뿐 아니라, 쿼드 나아가 나토와 동남아시아와의 안보 협력 강화를 적극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정신이 없는 상황인데도 3월 20일 기시다 총리는 인도와 캄보디아를 공식 방문했다. 4월 8일에는 필리핀 외무장관과 국방장관이 일본에 들러 양국의 대중(對中) 정책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점을 넘어서 선/면/입체로 향하는 일본 외교는 글로벌 안보무대의 기둥으로 자리 잡아 갈 것이다. 워싱턴은 같은 동아시아권 동맹인 한국도 점에서 탈피해, 선/면의 무대로 나가길 바라고 있다. 북한 핵무기는 이미 글로벌 이슈로 부상(浮上)했다. 중국의 대만 공격은 일본만이 아닌 한국의 에너지 공급 해상선(Sea Lane)에 대한 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은 물론, 만약 중국이 대만을 점령할 경우에 중동(中東)석유와 한국 무역품의 수출 해상선도 전부 차단되게 된다. 중국에 머리를 숙이지 않는 한 자유롭게 통과할 수도 없는 상황이 닥칠 수 있다.


點을 넘어 線/面/입체로

BTS 착시(錯視)현상이라고나 할까? 자칭 G10에다 전 세계가 BTS에 열광하는 듯하지만, 실상으로 들어가면 뭔가 허전하다. 자기만족 자화자찬(自畵自讚), 나아가 무책임한 립서비스만 넘쳐난다.

한반도 위기 시 적극적으로 도와줄 나라가 과연 얼마나 될까? 우크라이나에 대한 방관적 자세가 증명하듯, 한국이 남을 돕는 일에 직접 나서지 않는데 그 어떤 나라가 한국을 진짜 친구로 받아들일까?

일본의 발 빠른 행보는 신임 대통령이 펼칠 외교의 길라잡이가 될 수 있다. 일본과 똑같이 가거나 행동할 필요는 없다고 하더라도 워싱턴이 강조하는 것처럼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보조를 맞출 필요는 있다. 쿼드만이 아니라 나토와의 관계도 신임 대통령의 외교·군사 현안이 될 것이다.

이미 G7과 나토가 경고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가 점쳐지고 있다. 경제제재로 인한 피해는 러시아만이 아닌 서방으로도 확산될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을 별개의 세계로 대하는 디커플링도 고착화될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전후 최대의 위기’로 대하는 현실 인식이 있다면 그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다. 점에서 탈피해 선/면/입체로 진화될 한국의 새로운 안보구도를 기대해본다.⊙

 

■ 러시아 총참모대 출신 전문가가 본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 “나폴레옹·히틀러·김일성이 벌인 실수, 푸틴이 반복했다”

⊙ “푸틴, 수도 키이우 장악 후 東進했어야”
⊙ “戰車 탄생과 함께 등장한 ‘無用論’… “전차는 사라지지 않는다”
⊙ “美國 전쟁 방관… 우크라이나에 美軍 배치했으면 전쟁 안 났다”
⊙ “최대 수혜국은 中國, 최대 피해국은 러시아 · 우크라이나, 그리고 서방”
⊙ “우리 軍도 교육훈련 강화하고 對전차 무기 대응 수단 마련해야”

 

▲우크라이나군이 영국제 NLAW 대전차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AP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고투(苦鬪) 중이다. 우크라이나가 침략군을 몰아내기 위해 총력전(總力戰)으로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의 전차(戰車·탱크)는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대전차 미사일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이다. 미국산 대전차 미사일 FGM-148 재블린(Javelin), 영국제 NLAW에 무력화된 탱크의 모습이 외신으로 전해지고 있다.

 

▲러시아군 탱크 T-72가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러시아 국방부

 

언론은 한 발에 1억원(약 7만8000 달러)짜리 ‘미제(美製) 미사일’이 대당 40억원이 넘는 탱크를 잡고 있다며 러시아군의 고전(苦戰)과 함께 ‘전차 무용론(無用論)’을 재등장시켰다. NLAW는 미사일 한 발에 우리 돈 3000만원 수준이다. 첨단 대전차 무기의 등장으로 현대전에서 전차는 더는 효용이 없는 것일까.


“푸틴이 실수했다”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 부소장.

 

제1기갑여단장을 지낸 주은식(한국전략문제연구소 부소장) 예비역 육군 준장(准將)을 만나 우크라이나 전쟁과 ‘전차무용론’에 대해 물었다. 주 장군은 1976년 육사 36기로 임관해 기갑병과 장교출신이다. 2001년부터 2년간 러시아 총참모대학(우리나라의 국방대에 해당)에서 수학했고 2012년 예편했다. 지금은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에 출강해 후배 장교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 4월 7일 한국전략문제연구소(서울 용산구)에서 주 부소장을 만났다. 인터뷰는 4시간가량 진행했다. ‘전차가 앞으로도 계속 필요한가’를 물으러 갔는데, 앞선 2시간은 제1·2차 세계대전사 강의를 들어야만 했다.

10년 차 이상 영관급 장교를 대상으로 하는 강의 자료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영어, 독일어, 일본어로 된 책을 책장에서 수시로 꺼내와 설명했다.

주 부소장은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를 한다. 육군사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한 그는 생도 시절 어학에 몰두했는데 그 이유는 전쟁사(戰爭史)를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장교가 돼선 전쟁사에 매진했다. 인류의 흥망성쇠, 국가의 존망(存亡)을 기록한 전쟁사에 모든 전략전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주은식 부소장은 “약자에 대한 동정심만으로 푸틴을 악마화하거나 러시아를 적대시해선 안 된다”며 “국익의 관점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푸틴이 실수했다”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추진이 침공을 초래했다’는 주장에 대해 주 부소장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러시아의 사활적 이익(vital interest)을 침해하기에 러시아 입장에선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며 “미국이 전쟁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음에도 우크라이나에 각종 무기를 지원하는 등 전쟁을 부추긴 면도 있다”고 주장했다.


루스키 미르

주 부소장은 ‘루스키 미르’와 전쟁사 관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루스키 미르(Russkiy mir)’는 ‘러시아 세계(Russian World)’를 말한다. 러시아 정교회를 정신적 기반으로 한 범(汎)슬라브 국가를 건설해 서방의 도덕적 부패로부터 문명을 구원한다는 사상이다. 과거 ‘팍스 로마나(Pax Romana)’, 중국의 중화(中華)사상, 지금의 ‘중국몽(中國夢)’과 유사한 관념이다. 러시아는 ‘루스키 미르’에 입각해 자신들이 우크라이나를 타락한 서구 문명으로부터 구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 부소장은 “푸틴은 냉전 이후 무너진 국가적 자존심을 부활시켜 ‘소련 시절의 영광을 회복하겠다’는 마초적인 성향이 있다”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자신들의 일부로 생각하지만 다민족으로 구성된 우크라이나 국민은 푸틴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벌이는 민간인 학살 등 전쟁이 부산(副産)한 비극은 논외로 하더라도 러시아의 군사 조치는 여러모로 이상하다. 세계 2위 군사 대국이 군사력 20위권인 나라를 상대로 제대로 된 폭격도 하지 않고 있다.
 

— 일반적인 전쟁 양상은 공자(攻者)가 상대국의 발전소나 핵심 지휘부 등을 타격하기 위한 대규모 공습으로 시작합니다. 이번 전쟁에선 이러한 장면이 없었습니다.
“러시아가 스스로 제한된 군사 작전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 왜 그렇습니까.
“‘루스키 미르’, 즉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문화적 동질성을 가진 집단으로 봅니다. 이에 피해를 막대하게 주지 않겠다는 입장이었죠. 러시아군 지휘관들도 이 때문에 군사작전 수행에 ‘제한’이 있습니다. 러시아가 항공력을 동원해 대규모 공습을 퍼부었다면 러시아 지상군도 지금과 같은 피해를 당하지는 않았겠죠.”

당초 푸틴은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전쟁 시작 3일 내로 점령한 뒤 친러 괴뢰정부를 수립할 계획이었다.

— 우크라이나를 만만하게 봤기 때문은 아닙니까.
“그런 점도 일부 있습니다만 러시아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기습’과 ‘집중’이라는 전쟁의 원칙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2014년 이후 도입한 ‘대대전술단(BTG·Battalion Tactical Group)’에 기반한 작전에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러시아는 검증이나 예행연습도 없이 BTG를 섣불리 전선에 투입했어요. 마치 이번 우크라이나전을 계기로 실험을 해보는 것 같습니다. 앞뒤가 뒤바뀐 거죠.”


대대전술단(BTG)

BTG는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전쟁을 치르며 고안한 새로운 부대 편제(編制)다. 특징은 대대급(600~800명) 부대가 현장 지휘관(대대장·중령)의 재량권을 바탕으로 기동성 있게 운용된다는 점이다. 언론은 이번 전쟁이 일어나기 전만 해도 러시아군 현대화의 상징처럼 BTG를 평가했다.

1개 대대전술단은 전차중대(전차 10대), 3개 기계화보병중대(전체 장갑차 40대)를 전투부대, 대(對)전차중대 2~3개, 포병중대 2개, 방공(防空)중대, 소규모 정보·공병·통신·의무부대를 전투지원부대로 둔다. 평시에는 여단(旅團·brigade) 규모로 주둔하다가 분쟁 지역으로 출동 명령을 하달받으면 여단은 ‘대대전술단’으로 부대를 재편성해 현지에 투입한다. 일종의 태스크포스와 성격이 유사하다.

러시아 국방부에 따르면 2021년 8월 기준 러시아군에는 170개의 BTG가 있다. 러시아는 이번 침공에 BTG 120여 개를 투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여단(병력 약 3000명)에 바탕을 둔 대대전술단이 규모와 병과 구성(다양성)의 한계로 합동작전(타군과 연계)과 협동작전(동일 군 내 다른 병과와 연계)에서 제약을 받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단(약 1만 명)이나 군단(5만 명)은 각종 병과가 한데 모여 전투를 치른다. 이 때문에 상승 효과(synergy effect)와 집중(mass concentration) 효과를 낼 수 있지만 대대전술단은 그렇지 않다.

 

란체스터 (제곱) 법칙

— 왜 러시아군은 기습에 실패했습니까.
“베이징동계올림픽 때문이죠. 시진핑이 푸틴에게 ‘집안 잔치를 고려해달라’고 했잖아요. 푸틴도 중국을 배려하느라 시간을 끌며 전쟁을 미뤄왔죠. 하지만 이게 결정적인 패착 중 하나가 됐죠.”

— 우크라이나가 대비할 시간을 준 겁니까.
“《손자병법》에서 ‘전쟁은 교지불여졸속(巧遲不如拙速)’이라고 합니다. 정교함을 추구하며 지체하기보다는 엉성하더라도 빠른 행동을 취하는 게 낫다는 의미입니다. 전쟁을 실제로 할 생각이었다면 올림픽이 열리기 전인 1~2월경에 예고 없이 행동했어야 합니다. 푸틴은 시기를 놓친 겁니다.”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3면을 공격하는데 비효율적으로 보입니다.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기습의 원칙이 깨졌고 집중의 원칙도 사라졌습니다. 광활한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데 고작 병력 15만 명을 동원했습니다. 문제는 이 병력이 키이우(북부), 돈바스(동부), 크름반도(남부) 등으로 분산돼 투입됐고 병력은 대대 단위로 따로 움직였습니다.”

집중의 효과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공식으로 ‘란체스터 (제곱) 법칙’이 있다. 수준이 비슷한 군대끼리 맞붙을 경우 피해를 예측하는 방법이다. A국 전차 10대와 B국 전차 6대가 맞붙으면 A국 전차 4대가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란체스터 법칙을 적용하면 B국 전차가 모두 격파될 때 A국 전차는 2대만 피해를 입고 8대가 생존한다. A국 전력의 제곱을 한 값(10²=√100)에 B국 전력의 제곱(6²=√36)을 한 값을 빼면 8(√100-√36=√64)이 나오기 때문이다.

단 상대보다 빠른 판단과 결심으로 작전 효율을 극대화하면 이 란체스터 법칙을 극복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기동력과 화력을 갖춘 기갑부대 병력을 한데 모아 기습 공격하는 방식으로 싸워 ‘집중의 위력’을 발휘했다.


■ 히틀러의 실수 되풀이한 푸틴

— 푸틴이 침공 이후를 제대로 계획하지 못한 것은 아닙니까.
“푸틴이 대국민 연설에서 러시아군의 목표는 우크라이나 영토를 점령하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즉 전략적 목표가 무엇인지 모호하게 밝히는 바람에 군 지휘부도 우왕좌왕하고 있죠. 히틀러의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어요.”

— 히틀러의 실수가 무엇입니까.
“독소(獨蘇)전쟁 당시 히틀러는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수도 모스크바, 스탈린그라드(현 볼고그라드)로 병력을 나눠 투입했어요. 병력을 분산시키는 바람에 소련을 점령하는 데 실패하고 결국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죠.”

— 왜 히틀러는 병력을 분산시킨 겁니까.
“공산주의를 창시한 레닌, 그 레닌이 탄생한 이념의 도시 레닌그라드(북부)를 장악하겠다는 욕심, 수도 모스크바(중부)를 점령하겠다는 욕심, 공업도시이자 원유와 식량이 풍부한 스탈린그라드(남부)를 손에 넣어 군수 물자와 자원을 확보하겠다는 욕심, 이 욕심들 때문에 ‘집중의 원칙’을 깼죠. 그래서 독일군 북부집단군, 중부집단군, 남부집단군이 따로 움직였어요. 힘을 한데 모아도 부족할 판에 있는 힘을 분산시켰죠. 무엇이 주공(主攻)이고 무엇이 조공(助攻)인지 분명치 않았죠. 지금 푸틴도 마찬가지예요.”

— 당시 히틀러는 어떻게 해야 했습니까.
“모스크바로 곧장 진격했어야 합니다. 수도를 장악하면 전쟁은 끝나기 때문입니다.”

— 푸틴도 병력을 나누지 말고 키이우로 갔어야 합니까.
“병력을 키이우 인근인 북부(벨라루스)에 한데 모은 뒤 수도를 장악했어야 합니다. 키이우가 목적이 아니었다면 동부나 남부 지역에 병력을 집중해 이곳을 확실히 장악했어야죠.”


기습과 집중에 실패한 푸틴, 패착에 빠져
 

 ▲위성영상 제공 업체 맥사(Maxar)가 지난 2월 28일 공개한 러시아군의 행렬. 한눈에 봐도 공격에 취약해 보인다. 사진=뉴시스

 

— 키이우를 장악한 뒤에는 어떻게 했어야 합니까.
“수도를 장악한 후 동부 지역으로 진격했으면 유리했을 겁니다. ‘망치와 모루(hammer and anvil)’의 원리를 적용하면 이해하기 쉽죠. 우크라이나 동부·남부는 이미 친러 세력이 장악했기에 굳이 이곳에서 힘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강력한 망치로 키이우(북부)를 힘 있게 내려치고 돈바스(동부)로 진출한다고 생각했어야죠.”

6·25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북한의 병참선을 끊어내고는 전세를 역전시켜 북진했다. 인천상륙작전에는 ‘망치와 모루’의 원리가 담겼다. ‘망치’는 상륙작전(기습전), ‘모루’는 각 방어선이 해당된다. 대장장이가 쇠질을 하기 위해선 망치와 모루가 모두 튼튼해야 하다. 러시아에 있어 이미 충분히 장악된 우크라이나 동부·남부 지역은 ‘쓸모 있는 모루’와 같다. 문제는 망치질을 제대로 못 한 것이다.

— 6·25 때 김일성이 한 실수와 비슷한 점도 있어 보입니다.
“김일성이 소련제 T-34 전차를 바탕으로 기습에는 성공했죠. 문산-의정부 방면으로 내려온 북한군 주공(主攻)이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 국군 6사단이 춘천-홍천 부근에서 북한군 조공(助攻)의 진출을 이틀 동안 지연시켰어요. 당초 북한군 조공은 수원 방면으로 진출해 주공과 조공이 국군을 포위할 셈이었죠.

하지만 한강 철교가 폭파되는 바람에 북한군은 도하를 준비하느라 3일을 허비했어요. 우리는 춘천에서 이틀, 서울에서 사흘 총 5일을 벌어 다행히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김일성은 기습에는 성공했으나 힘을 한곳에는 집중하지 못했죠. 김일성이 저지른 실수를 이번에는 푸틴이 범한 것이죠.”

당시 김일성은 한강 도하를 위한 준비를 하지 않은 채 서울로 내려왔다. 이는 소련군이나 북한군 편제가 국군이나 미군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국군은 사단, 군단 단위로 작전을 수행하기에 협동 작전을 위한 각종 병과 부대(공병, 포병, 수송, 정비 등)가 배속돼 있다. 하지만 소련이나 북한은 도하부대가 필요할 경우 상급 부대에서 파견하는 형식으로 부대를 운용했다.

현재 러시아군도 대대전술단으로 전투를 치르다 보니 작전을 지속해서 수행하기 위한 역량이 부족한 실정이다. 보급 부족으로 우크라이나에 길게 늘어선 러시아군 전차 행렬은 우크라이나 드론의 손 쉬운 표적이 됐다.


라스푸티차

 ▲라스푸티차 때문에 행군에 어려움을 겪은 독일군. 사진=독일연방기록보관소

 

주은식 부소장은 러시아군이 고전하는 또 다른 이유로 ‘라스푸티차’를 들었다. 라스푸티차란 러시아어로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 등지에서 봄가을에 땅이 진흙탕으로 변해 통행이 어려워지는 시기를 말한다. 해빙기가 되면 동토(凍土)가 녹아 진창으로 변한다. 봄(3~5월)에는 얼었던 땅이 녹고, 가을(10~11월)에는 해양성 기후로 인해 가을비가 내려 늪지대로 바뀐다. 라스푸티차를 피하려면 푸틴은 침공 시기를 앞당겨야 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이 라스푸티차의 혜택을 본 것은 러시아였다. 독소전쟁 당시 독일 기갑부대의 모스크바 진격을 저지한 게 가을철의 진흙탕이었다. 탱크의 무한궤도는 진흙에 빠져 헛돌았다. 그사이 소련은 방어선을 구축한 뒤 독일군에 반격했다.

프랑스 나폴레옹도 러시아 원정 당시 라스푸티차 때문에 고생했다. 당시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내려던 나폴레옹은 진흙탕에 빠져 생각만큼 속도를 낼 수 없었다. 결국 프랑스는 패전했다. 이런 러시아를 외세로부터 구원한 진흙탕이 지금은 푸틴을 수렁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 푸틴도 답답하지 않겠습니까.
“단기간에 전쟁을 끝내지 못하면 러시아에도 유리하지 않죠. 라스푸티차가 다가오는 시점이었기에 당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들 전망해왔죠.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범한 과오를 푸틴이 한 격입니다. 푸틴은 동부 돈바스를 장악할 것인가, 수도 키이우를 장악할 것인가를 헷갈린 거 같아요. 이래서 전쟁사를 통해 배워야 합니다.”

— 히틀러는 라스푸티차를 몰라서 소련에 당한 겁니까.
“히틀러도 최적의 침공 시기를 놓친 거죠. 당시 독일은 소련으로 진격하기 위해 배후를 확실히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이유도 청나라가 명나라를 공격하기에 앞서 조선(朝鮮)이라는 청의 배후를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었죠.

히틀러는 독일군의 배후를 확실히 하기 위해 연합국이 장악한 발칸반도를 정리해야 했습니다. 발칸반도를 손에 넣느라 모스크바로 갈 시기를 3개월이나 늦췄고 동계작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가을에 라스푸티차를 만났죠.”

— 이번 전쟁에서 탱크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운용을 제대로 못 했을 뿐입니다."

 

러시아, 戰車 제대로 운용 못 해

— 왜 러시아는 전차 운용을 제대로 못 한 겁니까.
“앞서 말한 대로 전쟁을 지휘하는 지도부부터 일선에서 전투를 수행하는 대대전술단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푸틴은 명확한 전략적 개념도 없이 전쟁을 시작했고 전쟁을 치러야 할 BTG는 제대로 된 훈련도 하지 않은 채 보급도 준비하지 못한 상태로 우크라이나에 들어갔습니다.

전차(기갑)부대는 혼자 움직일 수 없습니다. 제병협동(諸兵協同), 즉 항공부터 정비, 포병, 공병, 수색, 군수 등 각종 병과와 함께 움직여야만 합니다. 기갑부대가 기동할 경로에 수색부대를 미리 파견해 지형지물이나 위험 요소를 파악하고 이를 제거해야죠. 전투기나 헬리콥터 등 항공력은 상대 지역에 대한 제공권을 장악해가며 전차의 기동 환경을 보장해야 합니다. 방공부대는 드론이나 상대 항공 전력이 기갑부대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고요. 이때 아군의 항공 전력이 상대방의 방공 무기에 공격받을 것을 대비해 포병 전력으로 상대 방공망을 포격해 무력화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대전술단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러시아군은 이런 제병협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죠.”

우크라이나는 4월 7일 기준 러시아 전차 700대를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지상군의 준비 부족이 확연히 드러난 모습이 도로에 일렬 종대로 정지한 러시아 기갑부대 장면이다. 마치 중세 시대 원정군의 행렬을 보는 듯했다. 이러한 장면을 본 주은식 부소장은 “부득이하게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연막탄을 사용해 적이 관측할 수 없도록 해 부대를 재배치하거나 공격 방향을 수정해나갔어야 했는데 그렇게 안 했다”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의 무장 수준을 구 소련 시절 수준으로 오판했다”고 했다.

— 서방이 제공한 무기에 대한 이해도 없어 보였습니다.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무기(재블린, 스팅어 등)에 대한 분석 및 훈련도 없이 부대를 투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재블린 등 대전차 무기의 유효 사거리는 대부분 1km 이내입니다. 반면 전차포의 사거리는 2~3km입니다. 그런데도 우크라이나 대전차 미사일 사거리 내로 들어가 피격당하는 사례가 속출했습니다. 정찰대와 주력 부대가 상호 협조해 작전을 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죠.”

러시아는 세계 2위 군사 강국임에도 77년 전인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국가 차원의 명운을 건 총력전을 치른 경험이 없다. 그간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체첸 침공 등을 벌였으나 국지전 수준이었다.

—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차무용론이 재등장했습니다.
“현대전이라 전차가 쓸모 없어진 게 아니라 무용론은 전차의 탄생과 함께 시작됐습니다. 지상전의 교리가 변하지 않는 한 무용론은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戰車는 지상전의 王者

— 전차는 어떤 존재입니까.
“지상전의 왕자입니다. 지상군 무기는 ▲화력 ▲기동 ▲방어(장갑)를 축으로 발전해왔습니다. 화력의 정점(頂點)에 있는 무기가 대포(大砲), 기동의 정점은 차량, 장갑의 정점은 벙커(bunker)와 같은 진지(陣地)죠. 탱크는 이 세 가지 요소를 한데 집약한 무기입니다.”

— 지상군 ‘최정점’ 무기라고 보면 되겠습니까.
“그런 차원을 뛰어넘습니다. 실제 전쟁은 ‘준비된 진지’에서만 할 수 없어요. 전장(戰場) 환경은 수시로 변합니다. 우리가 계획한 대로 싸울 수 없을 때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전차가 필요해요. 보병은 진지를 바탕으로 참호를 구축하고 싸웁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죠. 그런데 탱크는 기동력, 방호력, 화력을 갖췄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계획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때 신속한 공수(攻守) 전환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무기죠.”

보병은 목표 지점에 접근하기 위해서 선형(線型) 대형을 갖추고 45도의 각을 유지하며 거리를 줄여나간다. 문제는 목표에 가까워질수록 병력 간 대형이 좁아져 적의 포위 공습에 취약해진다. 하지만 전차는 선형은 물론 기동력과 방호력, 화력을 바탕으로 비선형 방식으로 전장을 장악한다. 즉 적진 후방의 깊숙한 종심(縱深)까지 자유자재로 드나들며 적을 당황하게 만들어 마비시킨다. 이를 두고 “탱크는 ‘물리적 타격을 주는 수단’이 아닌 ‘정신적 타격을 주는 수단’ “전쟁 승리의 결정적 수단만이 아닌 ‘결정적 여건’을 조성하는 수단”이라고 한다.

— 미 해병대는 오는 2030년까지 전차대대를 모두 해체한다고 합니다.
“굉장한 실수를 하는 겁니다. 이른바 ‘첨단 화력 우위의 사고’인데…. 미 해병대는 철저한 준비와 대규모 공습을 바탕으로 적진(敵陣)에 상륙합니다. 미군 특유의 압도적 화력을 바탕으로 상륙에 성공했다고 칩시다. 이후 남아 있는 적들을 소탕해야 하는데 기갑부대가 아닌 보병 중심으로만 대응하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겁니다. 이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방호력을 갖춘 무기가 필요하죠. 적이 기습할 때 어떻게 신속한 공세 전환을 할 겁니까. 미군처럼 압도적 공습을 갖추지 못한 나라에는 적용할 수도 없는 이야기죠.”

미군이 최근 치른 아프가니스탄전과 이라크전의 전개도 첨단 화력 우위 사고에 기반했다. 미국은 정밀타격 등으로 전쟁 초기 기선을 잡는 듯했으나 결국 상대 영토에 대한 장악을 유지하지 못한 채 인명 피해를 거듭했다. ‘첨단 화력 중심 전략’에 대해 ‘화력만으로 무혈(無血)입성할 수 없다’는 반박이 나왔다. 또 첨단 무기를 도입하는 데 따르는 비용 증가도 따른다.


젤렌스키, “우리도 탱크 달라”

주 부소장은 “전차는 아군이 상대방에 대한 포격 등 화력을 유도하는 기능을 한다. 일부에서는 보병이나 적진 후방에 침투한 특수부대(공수부대)가 화력을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하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이번에 러시아도 키이우나 하르키우 일대에 병력을 침투시켜 우크라이나군을 염탐하려 했으나 초기에 제거됐다”고 했다.

또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은 러시아의 기갑부대 운용이 실패했다는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고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현대전은 비밀리에 사용되는 화학 및 생물학 무기에 대비해야 합니다. 이러한 오염 지대를 탐지하고 회피하기 위해서는 보호 장치가 설비된 기갑부대가 우선 진입해 작전해야 뒤따르는 인명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제한된 전장 환경에서는 물론 전차가 불필요할 경우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 이외의 대부분의 상황에선 탱크 없이 지상전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이나 유럽에 왜 전차를 달라고 아우성치는지 알아야 합니다.”

전차와 대전차 무기(미사일)는 창과 방패의 관계이다. 영국은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10년대 오늘날 장갑차와 유사한 탱크를 개발해 1916년 ‘솜므’ 전투에 투입했다. 1년 뒤에는 이 탱크를 잡기 위해 대전차 무기가 등장했다. 전쟁이 끝나자 탱크를 경험한 여러 나라에서는 전차를 발전시켰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에서 전차를 바탕으로 전격전(電擊戰)을 펼쳐 유럽을 장악했다. 독일군이 제2차 대전 초기에 주도권을 쥔 배경에는 전차를 바탕으로 한 전쟁 수행 개념 차별화가 있었다. 한편 이러한 독일 전차군단을 막기 위해 대전차 무기도 함께 발달했다.

6·25전쟁에선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군이 소련제 T-34 탱크를 앞세워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장악했다. 한반도에 급파된 미군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한 무기(2.36인치 로켓, 75밀리 무반동총)로 저항했지만 북한군 전차는 끄떡없었다.

결국 ‘슈퍼 바주카포’라는 별칭의 M20 3.5인치 대전차 로켓을 미 본토에서 들여온 후에야 T-34의 남진을 저지할 수 있었다.


“전차에서 제일 취약 부위는 상판”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대전차 미사일 재블린. 사진=우크라이나 국방부

 

전차무용론은 1973년 이스라엘과 아랍연합국이 벌인 4차 중동전쟁에서 또 나왔다. 앞선 세 차례의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기갑전력을 바탕으로 모두 승리했다. 하지만 당시 4차 전쟁에 나선 이스라엘 기갑부대는 대전차 무기의 공격으로 약 1000대가 피해를 당했다. 그럼에도 4차 중동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데는 이스라엘 기갑부대의 역할이 컸다. 대전차 무기에 맞서 전차의 방호력은 크게 ▲탱크의 장갑을 두껍게 하거나 장갑 재질을 강화하는 방식 ▲탱크 장갑 표면에 이른바 네모난 블록 모양의 ‘반응장갑’을 덧대는 방식 ▲전파유도형 대전차 무기에 방해전파를 발사하는 방식 ▲대응탄을 쏘아 대전차 무기를 직접 파괴하는 방식 등으로 발전해왔다.

— 재블린이 탱크를 잡는 대명사가 됐습니다.
“전차는 전면부의 장갑이 가장 두꺼워요. 그다음이 옆구리 부분입니다. 제일 취약한 부위는 상판이죠. 재블린이 무서운 이유는 바로 전차 상판에 내리꽂기 때문입니다.”


재블린 대응 기술, 이스라엘만 보유

 ▲라파엘사가 개발한 APS ‘트로피’가 대전차 미사일(오른쪽)이 날아오자 요격탄을 발사하고 있다. 사진=라파엘사

 

— 재블린에 대응할 방법은 있습니까.
“이스라엘 방산업체 라파엘이 개발한 능동방호체계(APS·능동방어체계) 트로피가 유일합니다. 트로피는 전차 옆면뿐 아니라 전방위에서 날아오는 적탄이나 미사일을 사드처럼 요격하죠. 실전에 배치돼 성능을 입증했습니다. 이런 능동방어체계는 이스라엘 이외에도 한국, 미국, 독일, 러시아 등이 보유하고 있습니다만 이들 나라가 개발한 APS는 전차 전면과 측면에 대한 방어만 할 수 있습니다.”

독일은 자국 방산업체가 APS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트로피를 도입했다. 2021년 언론 보도에 따르면 독일은 트로피 세트 23개와 요격 미사일 586개를 도입하는 데 4800만 달러(약 600억원)를 썼다.

— 러시아 전차에는 이 능동방어체계가 없습니까.
“러시아군도 신형 전차에는 능동방어체계가 설계돼 있습니다. 다만 능동방어체계를 전차에 탑재했는데 실전에서 작동하지 않은 것인지, 비용 문제로 설계에만 반영하고 실제로 설치는 하지 않은 것인지 확인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 우리나라 전차에는 APS가 탑재돼 있습니까.
“우리나라의 주력 전차인 K-1 전차에는 APS 탑재 설계가 빠져 있습니다만 복합장갑을 덧대 보호하고 있죠.”

— 최신형인 K-2 흑표는 어떻습니까.
“설계에는 반영돼 있으나 비용 문제로 실제 설치돼 있지는 않습니다. 흑표에 APS가 달려 있어도 재블린을 막을 순 없죠. 사실상 국군 전차는 대전차 미사일을 방어할 수단이 제한됩니다. 우리나라도 대전차 무기에 대응할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우리 군이 보유한 APS는 러시아 기술에 기반한다.


“푸틴 체면 세워주고 전쟁 끝내야”

— 이번 전쟁이 어떻게 전개되리라 보십니까.
“푸틴의 체면을 세워주는 선에서 전쟁을 하루빨리 마무리지어야 합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푸틴이 내건 조건을 수용하겠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잖아요. 전쟁이 오래갈수록 가장 큰 수혜를 입는 국가는 중국입니다. 가장 큰 피해는 서방 국가들이 입습니다. 서방이 러시아를 상대로 각종 제재를 벌이지만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고난에 대한 내핍성(耐乏性)이 강합니다. 러시아 국민은 빵과 우유만으로도 버틸 수 있어요. 여기에 원자재와 원유 부국이죠.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인 중국·인도를 ‘우회 시장’으로 두고 있습니다. 절박한 곳은 러시아가 아닙니다.”

주은식 부소장은 “바이든 행정부가 전략적 실수를 했다”면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지 않았다면 우크라이나는 싸울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미국이 전쟁을 부추겼다. 전쟁을 막으려면 오히려 미군을 우크라이나에 배치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주 부소장은 ‘재블린’으로 상징되는 서방의 각종 무기 지원은 과대 평가됐다고 했다. 러시아의 고전은 대전차 미사일 때문만이 아니라 러시아 지도부의 전략적 실수, 러시아군의 훈련 부족, 러시아군 개혁 실패, 우크라이나 특유의 지형, 우크라이나 국민의 저항, 드론의 활약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사태가 한반도 비핵화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1994년 우크라이나가 핵을 포기할 때 미국과 영국은 우크라이나가 침략당하면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고작 무기만 지원해주고 책임은 회피하지 않습니까. 피는 결국 우크라이나 국민이 흘리고 있습니다.

국제사회가 북한 김정은에게 ‘비핵화’를 요구하며 체제 보장을 약속하겠다고 합니다만 김정은이 이번 전쟁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우크라이나 사태는 김정은이 오판할 빌미를 준 꼴입니다.”


‘우리 군도 교훈 찾아야’

 ▲제1기갑여단장 시절 경기 포천 승진훈련장에서 사격 훈련을 앞두고 부대원을 교육하는 주은식 예비역 장군. 사진=주은식 제공

 

주은식 예비역 준장은 “우리 군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를 객관적으로 분석해 교훈을 도출해야 한다”며 “대전차 무기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전 세계적 차원에서 군사용 드론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또 우리 군은 어떻게 드론을 활용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주 부소장은 “결국 전쟁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며 “부단한 교육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쟁은 어떠한 무기를 사용하는지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사람에서 출발해 사람으로 끝나기에 사람이 제일 중요합니다. 현재 우리가 추진하는 국방개혁은 교육훈련을 소홀히 하는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개혁한다는 이유로 병력 규모를 줄이고 부대를 해편(解編)하고 있지만 이 해편된 인력을 재교육해 전문화·정예화할 생각은 없고 빈 자리에 돌려막기식으로 배치할 뿐입니다.

국방개혁에 ‘교리개혁’과 ‘군 간부 전문화 교육’이 필요합니다. 교육훈련을 강화할수록 우리 군의 전쟁억제력도 강해지는 겁니다.”

인터뷰 후 5일이 지났다. 우크라이나 전황이 달라졌다. 주 부소장은 4월 13일 오후 아래와 같은 의견을 보냈다.

“전쟁의 승패를 현시점에선 단정하기 어렵기에 상황을 객관적으로 관찰해야 합니다. 우크라이나에 우호적인 외신 보도를 비판적으로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러시아는 4월 초부터 우크라이나 북부에서 병력을 철수시켰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원격 지휘를 해오던 러시아가 지난 4월 9일 처음으로 현장 지휘를 총괄할 총사령관으로 러시아 남부군 사령관 알렉산드로 드보르니코프 장군을 임명했습니다. 이는 전략전술의 변화입니다. 새로운 사령관을 임명해 지휘 체계를 통일하고 그간 분산된 병력을 집중하겠다는 의도로 보이죠. 수도 키이우를 포기하는 대신 분산된 병력을 집중해 우크라이나 남부나 동부 중 하나를 장악하는 게 현재로서는 현실적인 대책이 됐습니다. 푸틴은 오는 5월 9일 제2차세계대전 전승기념일을 앞두고 늦어도 4월 말까지는 결정적 전과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4월 말을 기점으로 전쟁의 성격과 양상이 바뀔 수 있습니다.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피해를 당하는 나라는 중국을 제외한 러시아·우크라이나·미국 그리고 유럽이 될 겁니다.”⊙

글 :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liberty@chosun.com

 

■ 푸틴의 유라시아주의는 ‘나치즘 2.0’이다 

⊙ 푸틴과 알렉산드르 두긴의 유라시아주의의 ‘제3제국론’ ‘위대한 러시아’ ‘反자유주의’는 히틀러와 흡사
⊙ 알렉산드르 두긴, 1997년 《地政學의 기초》에서 러시아의 覇權 회복 방안으로 ‘유라시아주의’ 제안
⊙ 문재인, 유라시아주의자 구밀료프 인용해 푸틴의 ‘新동방정책’ 찬양
⊙ 두긴의 ‘제4의 정치이론’은 사회주의와 파시즘을 버무려 자유주의 공격하는 것

이강호
1963년생.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 前 대통령비서실 공보행정관, 《미래한국》 편집위원 역임 / 現 한국자유회의 간사,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 저서 《박정희가 옳았다》

 

▲지난 4월 10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벌어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규탄 시위에는 푸틴과 히틀러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이 등장했다. 사진=AP/뉴시스

 

 어느 시대 어떤 문명이든 그 나름의 ‘이념적(理念的) 가치’를 갖지 않는 경우는 없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치와 이념적 가치는 언제나 함께 간다. 하지만 ‘이념과 가치’는 인기는 없다. 인기를 끄는 건 ‘탈(脫)이념’이다. 현대로 접어들수록 그리고 선진부국(先進富國)일수록 더 그렇다. 풍요(豊饒)의 역습(逆襲)이다. 마치 배부름 뒤의 졸음과도 같은 이완(弛緩)이다.

한편 현대의 인문사회과학도 그렇다. 학문방법론상으로는 이념도 가치판단도 배제돼야 한다. 하지만 인문사회과학이 다루는 문제들은 이념적 가치와 무관한 게 본질적으로 있을 수가 없다. 특히 정치학은 더욱이 그렇다. 국제정치학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념과 가치의 문제는 분석대상은 물론 분석을 위한 이론의 틀에서도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정치적 사태가 명백히 이념적 명분과 관련된 것일 때도 그런 식이면 곤란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분명 그런 경우다. ‘유라시아주의’라는 이념적 배경이 있다. 푸틴은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차례 유라시아주의를 언명해왔다. 공식적 최고 통치자의 언명이다. 명백한 의미를 갖는다. 그 이념적 함의를 당연히 살피고 따져봐야 한다. 대표적 이데올로그로는 알렉산드르 두긴(Alexandr Dugin·1962~)이 있다.


두긴의 《地政學의 기초》

알렉산드르 두긴. 사진=AP/뉴시스

 

두긴의 대표적인 저작은 《지정학(地政學)의 기초: 러시아의 지정학적 미래》(1997)와 《제4의 정치이론》(2009)이다.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선 일차적으로는 《지정학의 기초》가 주목된다. 두긴은 이 책에서 러시아가 소련 붕괴 이후 국제무대에서 잃어버린 패권(覇權)을 되찾을 방안을 제시한다. 조지아 침공, 우크라이나 병합,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미국의 인종·종교적 분열을 부추기고 고립주의 성향을 촉진하는 것 등의 주장이다. 이미 그런 일들이 나타나고 있으니 적나라한 예견적 주장이었다.

두긴의 이 같은 유라시아주의 구상은 소련 붕괴 이후 사상적 공백과 옐친 시대의 정치권력의 무능·부패에 진절머리를 내던 러시아 엘리트들을 사로잡았다. 러시아 군부(軍部)와 외교 인사들에게 열렬히 읽혔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군 총참모학교(General Staff Academy)’의 장교 교육 과정의 교과서로도 채택됐다. 유라시아주의가 러시아에 이념적으로 자리를 굳혀가는 듯한 양상이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그런 가운데 감행됐다.
 

유라시아주의는 그 이전부터의 간단치 않은 뿌리도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슬라브주의가 있고 볼셰비키 혁명에 반발해 망명한 일군(一群)의 지식인들이 있다. 그 같은 지식인들 가운데 하나가 레프 구밀료프(1912~1992년)다. 구밀료프를 대표적으로 살피는 것은 그 위상도 있지만 하필이면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이 그의 말을 인용한 바 있기 때문이다.


구밀료프의 《상상의 왕국을 찾아서》

구밀료프는 생전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유라시아 국가로서만, 유라시아주의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2018년 6월 21일 문재인 대통령은 러시아를 방문하여 러시아 의회 두마에서 구밀료프의 그 말을 그대로 인용하며 유라시아주의를 찬양하는 연설을 했다.

“(…)라고 러시아의 역사지리학자 레프 구밀료프는 말했습니다. 유라시아의 광활한 대륙은 …희망을 키우는 공간입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님의 ‘신(新)동방정책’은 평화와 공동번영의 꿈을 담은 유라시아 시대의 선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 같은 연설은 서구(西歐)의 입장에선 도발적 언사다. 구밀료프의 대표 저작은 《상상의 왕국을 찾아서》(1970, 2009 영어판, 2016년 한국판)이다. 모티브는 12세기 전후 유럽이 이슬람과 치열한 쟁패에 돌입해 있던 시절 “아시아 한가운데 기독교 사제-왕이 다스리는 왕국이 존재한다”는 소문, 이른바 ‘프레스터 요한(Prester John)의 전설’이다. 동방에서 이슬람을 물리치는 원군(援軍)이 나타날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프레스터 요한의 실체는 사실은 몽골이었다. 나중에 서구가 맞닥뜨린 몽골제국은 ‘상상했던 구원자’가 전혀 아니었다. 전례 없는 재앙을 야기한 침공 세력이었다.

구밀료프의 저작은 직접적인 정치적 저작은 아니다. 하지만 유라시아주의의 이념적 기반으로 활용되면 문제가 된다. ‘프레스터 요한’이 결국에는 서구를 침공한 몽골이었다는 데서 유라시아주의 러시아가 서구를 제압하는 상황에 대한 이념적 암시가 읽힌다. 그런데 문재인은 구밀료프를 인용하며 유라시아주의를 찬양했다. 무지일까 고의일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 국제정치란 본래 국익(國益)의 충돌의 장(場)이며 국가들의 힘의 추구는 본질인 만큼 ‘섣부른 가치판단’을 배제한 ‘현실적’ 대응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정당성에 대한 가치판단’을 놓아버리면서 선택하는 ‘현실적’이라는 건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가?

국제정치에 있어 국제(inter-national)란 개별 국가(nation)들의 존재가 전제될 때 형성되는 개념이다. ‘nation’ 없이 ‘international’은 없다. 실제로 근대적 국제관계 국제정치의 발생 자체가 그렇다. 유럽 세계는 물론 동아시아 세계도 마찬가지다. 크리스텐돔(Christendom·기독교 단일 세계)이나 중화주의(中華主義) 세계 모두 마찬가지다. 국제관계 국제정치라는 건 개별 국민국가(nation state)가 등장하면서부터다.

쉬이 자리 잡게 된 것은 당연히 아니다. 국민국가들의 탄생부터가 전쟁이었다. 국민국가들이 등장한 이후부터는 국가들 간의 충돌이 거듭됐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까지 겪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 국제정치도 성장했다. 국제법이 등장하고 국제기구들이 자리 잡아 갔다. 물론 완벽하거나 이상적이지 않다. 지금 유엔은 비난받아 마땅할 만큼 허약한 꼴이다. 그러나 어떤 영역이든 이상적(理想的) 완벽함은 없다. 개별 국가든 국제정치든 다 마찬가지다.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몰가치적 격돌을 불가피한 현실로 체념하는 것은 국제정치는 물론 문명적 성취 자체의 포기다. 그래도 되는 것인가? 감상적 이상주의에서의 얘기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그랬다. 제2차 세계대전이 그런 기로(岐路)에 직면했던 경우였다.


英·美가 히틀러와 맞서지 않았다면?

만약 가치판단을 버리고 현실적 힘만을 기준으로 선택을 해야 한다면 제2차 세계대전은 결코 그런 식으로 전개될 이유가 없었다. 히틀러가 프랑스를 점령한 뒤 영국에 대해 먼저 추구한 것은 휴전이었다. 처칠은 히틀러의 그 같은 시도를 받아들여 전란(戰亂)이 확대되는 걸 막아야 했을까? 스탈린은 독소(獨蘇)불가침조약을 맺고 그것을 믿었다. 그리고 히틀러와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끼리 전쟁이 벌어져 공멸(攻滅)해가기를 기대했다. 그 판단이 맞았나?

처칠은 히틀러와 대결하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곧이어 미국도 참전했다.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나치 독일이 동서(東西) 두 개의 전선에서 허덕이게 만들었다. 만약 영국과 미국이 나치 독일과 맞서지 않았다면 소련은 히틀러의 침공을 물리칠 수 있었을까? 다시 말해 영국과 미국이 공산주의의 세계적 확산을 꿈꾸고 있는 소련을 나치 독일의 손으로 무너뜨려버리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현실주의적 선택을 했다면 세계는 어떻게 변모했을까?

아마도 인명피해가 적었을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렇게 됐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민주문명의 서구세계는 없을 것이다. 그때 소련이 사라졌다 해도 그 대신 유럽 대륙에서 러시아까지 아우르는 나치즘의 세계가 군림하는 시대를 맞았을 것이다.

뜬금없는 공상(空想)이 아니다. 영국의 작가 로버트 해리스가 1992년 발표한 《당신들의 조국(Fatherland)》이 바로 그런 문제의식의 작품이다. 대체역사소설이다. “히틀러와 나치가 패망하지 않고 승리하였다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가정(假定)을 세우고 그에 따른 세계의 양상을 묘사하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소설 속의 나치 독일은 소련을 패퇴시켜 우랄산맥 너머로 쫓아내고 영국도 항복시킨 것으로 묘사된다. 그리하여 모스크바에서부터 동유럽 전역을 직접적으로 지배할 뿐 아니라 명목상 독립을 유지하고 있는 나머지 유럽 전역에 대해서도 실질적으로 정치적 지배를 하는 패권자가 돼 있다. 남은 것은 일본을 패배시킨 미국뿐이다. 유럽은 나치 독일이 지배하고 미국은 아메리카에서 버티며 미국과 독일 간에 냉전(冷戰)이 진행되고 있는 세계다.


히틀러와 푸틴

지금 푸틴의 행태는 어떤가? ‘히틀러의 부활’이라 하면 과한가? 그런데 푸틴의 행태와 그 이념적 배경인 유라시아주의는 나치즘의 판박이다. 푸틴이 2014년 크름(크림)반도를 점령하고 2022년 다시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며 내세운 논리는 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인 1938~1939년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해갈 때의 레벤스라움(Lebensraum·생존공간) 논리와 복사한 듯 닮았다. 둘 모두가 그 주민들이 자신들의 동족(同族)이라 주장했다.

히틀러가 그렇게 체코슬로바키아 점령을 밀어붙여도 당시 유럽 열강들은 충돌을 어떻게든 피하고자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국 히틀러와 타협했다. 영국 수상 체임벌린은 1938년 9월 30일 히틀러와 뮌헨협정을 체결했다. 히틀러의 요구대로 주데텐란트를 독일로 넘기는 것이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이로써 전체 국토의 30%를 잃고, 500만 명의 인구를 잃게 됐다. 그럼에도 영국에 돌아온 체임벌린은 런던 시민들 앞에서 히틀러와의 협정으로 ‘우리 시대를 위한 평화(peace for our time)’를 지켜냈다고 연설했다.
 

체임벌린의 평화 운운이 헛소리였음이 증명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6개월 뒤 독일은 체코슬로바키아를 완전 병합했을 뿐 아니라 1939년 9월에는 폴란드까지 침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이었다. 지금의 우크라이나 사태의 경우는 어떨 것인가?

푸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그냥 힘의 추구가 아니다. 그것만으로도 위태롭기 짝이 없지만 그 차원이기만 하면 일단은 멈춤이 있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물리치든 아니면 불행히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패배해 점령되든 일단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裏面)에는 히틀러의 멈추지 않은 진격과 같은 이념적 충동이 도사리고 있다.


‘제4의 정치이론’

《지정학의 기초》와 함께 짝을 이루는 두긴의 또 하나의 저서 《제4의 정치이론》은 그 점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두긴은 20세기의 3대 정치 이데올로기였던 자유주의·마르크스주의·파시즘을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이론이라는 뜻에서 ‘제4의 정치이론’이라고 칭했다. 하지만 사회주의와 파시즘을 버무리고 있으며 핵심적 공격대상은 자유주의다. 두긴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인류를 타락으로 이끌고 있다고 본다. 근본적으로 서방기독교문명의 한계에서 비롯된 잘못된 길이었다고 주장한다. 지정학적 논리로 표현되는 유라시아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서구 근대문명의 이념적 가치에 대한 총체적 거부를 주창한다.

그러면서 두긴은 그 서구적 타락의 대안(代案)으로 동로마제국 동방정교회 문명을 상속한 러시아 문명을 내세운다. 러시아는 단순히 일개 국가가 아니라 국가세계(a state-world)이며 그 자체로 하나의 문명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러시아정교는 그 문명의 영혼이라고 한다. 그래서 유라시아주의는 지정학적 차원만이 아닌 서구의 한계와 타락을 넘어서는 ‘제4의 정치이론’이라는 구원적 정치이념으로 이어진다. 러시아 자신을 프레스터 요한이라는 ‘상상의 왕국’ 마냥 구원자처럼 설정하는 이념적 상상이다. 푸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런 이념적 상상의 연장에 있다.

 

히틀러의 전쟁은 이념전쟁이었다

아돌프 히틀러

 

이것은 히틀러의 나치독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1941년 스탈린은 히틀러가 소련 침공을 시작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러 차례 침공 징후 보고가 있었지만 스탈린은 무시했다. 장기적으로는 몰라도 적어도 당분간은 독소불가침협정이 유효할 것임을 믿었다. 그런 만큼 히틀러가 소련을 쳐들어가지 않고 멈추었다면 기왕에 장악한 지배권을 굳혀가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히틀러의 소련 침공은 이념적으로 예정된 것이었다. 히틀러는 정권을 잡기 전부터 동쪽으로의 팽창을 계속 주장했다. 히틀러는 이미 1925년 출간한 《나의 투쟁》에서 동쪽으로 독일 민족의 레벤스라움(생존공간)을 확장해야 한다고 언명한 바 있었다. 이 구상은 나치가 내세우는 대(大)게르만제국이라는 제3제국의 이념적 기치였다. 더욱이 히틀러는 공산주의를 유대인과 ‘한 몸의 적(敵)’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따라서 지리적으로 독일의 동쪽 레벤스라움과 맞닥뜨려 있으면서 공산주의인 소련은 결국에는 대결해야 하는 절대적 적일 수밖에 없었다. 히틀러는 소련 공격 개시 전 군(軍) 장교들에게 소련과의 전쟁은 “인종과 이데올로기적 섬멸전”이라고 연설했다. 그 말대로였다.


두긴과 히틀러

두긴은 자신의 주장을 종합적으로 ‘페레스트로이카 2.0’이라 칭한다. 소련과 공산주의를 개혁하려다 그냥 서구 변방의 일원으로 초라하게 주저앉게 된 고르바초프의 실패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두긴(과 푸틴)의 이념은 ‘나치즘 2.0’이라 하는 게 더 어울린다. 히틀러의 나치즘을 러시아판으로 번안한 것으로 보아도 될 만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러시아, 위대한 대(大)유라시아’는 ‘위대한 게르만, 위대한 아리안’의 종족만 바뀐 번안이다. ‘제3제국론’도 그렇다. 나치 독일의 제3제국론은 1923년 독일의 극우(極右) 사상가 아르투르 묄러 판 덴 브루크(1876~1925년)가 저술한 《제3제국론》에서 차용한 것이다. 브루크는 ‘신성로마제국’과 ‘독일제국’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제3의 제국’의 창설을 주창했다. 러시아의 유라시아주의는 러시아가 ‘동로마제국’의 전통을 이은 ‘차르 러시아제국’에 이어 ‘새로운 제3의 제국 유라시아제국’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맥락만 바뀐 반복이다.

두긴은 모스크바가 로마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이은 ‘제3의 로마’가 되었다고 여긴다. 하지만 동로마제국 상속은 갈망에 입각한 조작된 기억이다. 러시아의 직접적 뿌리인 모스크바 공국은 1283~1480년까지 200여 년간 몽골제국 4칸국 중 하나인 킵차크칸국의 속국(屬國)이었다. 이른바 ‘타라르의 멍에’ 시대였다. 때문에 차르 러시아는 몽골적 유습이 매우 강했다. 17~18세기 표트르 대제가 서구화를 강력히 추진했던 것은 그 같은 상태를 후진성(後進性)으로 여기며 서구세계처럼 근대화를 하고자 하는 열망에서였다.

두긴 등은 그 같은 서구화 추진을 잘못된 것으로 본다. 반면 유라시아주의 개념 안에 몽골의 활약상과 전통을 중시하는 내용은 중요하게 자리매김시킨다. 이렇게 되면 동로마의 상속인지 몽골의 상속인지를 되물을 수밖에 없다. 물론 그들은 그 모든 것의 융합이라는 답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제3의 로마 운운은 강변일 수밖에 없게 된다. 로마는 서로마든 동로마든 몽골과의 짬뽕은 아니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나치즘이 그랬듯 작금 러시아의 유라시아 이념도 소설적 강변이다. 그런 만큼 러시아의 유라시아주의 판타지도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그랬듯 결국 실패할 것이다. 우선 러시아는 당장의 우크라이나 전쟁 자체에도 실패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스스로의 성장·발전도 실패할 것이다. 그 판타지적 이념의 한계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유라시아주의와 그 뿌리인 슬라브주의에는 서구적 근대화를 적대시할 뿐 그 경과가 가졌던 강점에 대한 통찰이 전혀 없다. 두긴이 슬라브주의의 전통을 이은 것으로 찬양하는 나로드니키는 러시아 농민에 대한 맹목적 애정을 기조로 ‘인민 속으로(브나로드)’ 들어가 농민을 계몽시켜 공동체적 정치를 구현하고자 했다. 두긴은 그 논지를 얘기만 좀 더 보태어 반복한다. 두긴은 “만인(萬人)이 자유롭고 만인이 평등한 사회가 만능(萬能)이 아니다”라고 한다. 그러면서 ‘종교적 영성(靈性)과 인격의 추구에 바탕한 공동체’를 대안으로 강조한다. 나로드니키가 몰두했던 러시아 봉건시대 농민공동체 전통의 ‘미르(평화 또는 세계)’ 공동체의 반복이다.

그런데 정치 구상뿐이다. 거기에는 근대문명 성취의 핵심적 동력인 과학과 산업의 자리가 없다. 그런 식으로는 종합적인 성장·발전의 힘이 나올 수가 없다. 하지만 두긴 등은 그에 대한 문제의식이 아예 없다. 그러나 그들이 적대시하는 서구 근대문명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뉴턴의 國葬

아이작 뉴턴

 

영국의 아이작 뉴턴(1643~1727년)의 경우는 그런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상징이다. 뉴턴의 이름은 과학도가 아니라도 웬만하면 알 만큼 지울 수 없는 업적을 남겼다. 뉴턴은 그 같은 업적을 남기고 1727년 3월 31일 유명(幽明)을 달리했다. 며칠 뒤인 4월 4일 그의 장례식이 있었다. 국장(國葬)으로 치러졌다. 당시 영국 런던에 와 있던 한 외국인이 그것을 지켜보고 인상기를 남겼다.

“세상을 떠난 왕립학회 회장은 4월 4일의 장례식에 앞서 웨스트민스터사원에 며칠간 안치되었고, 그 장례에서 두 사람의 공작과 세 사람의 백작 그리고 대법관이 그의 관(棺)을 운구(運柩)했다. 그는 선정(善政)을 베푼 왕과 같이 신하들에 의해서 매장되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프랑스인 망명객 볼테르(1694~1778년)였다. 어느 귀족과의 시비 끝에 영국으로 망명해 있던 볼테르는 국장으로 치러진 뉴턴의 장례식을 지켜보고 인상기를 남겼다. 감명의 토로였다. 그럴 만했다.

뉴턴은 경(卿·Sir)이라 칭해졌지만 귀족 출신이 아니었다. 젠트리(gentry)보다도 아래인 요먼(Yeoman) 계층 농부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출신의 인물이 놀라운 성취를 이룩했다. 1687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rincipia)》라는 과학사에 획을 긋는 저술을 내놓았다. 1689년 국회의원으로 추대되고 1696년에는 왕립 조폐국(造幣局) 국장을 맡게 됐다. 1703년에는 영국 왕립학회(The Royal Society) 회장이 됐다. 1705년 그간의 업적으로 기사(騎士·Knight) 작위(爵位)를 받았다. 과학자로서 나이트 작위를 받은 건 뉴턴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사망했을 때는 나라 전체가 애도하며 왕족·귀족과 같은 예우로 웨스트민스터에 안장됐다.

볼테르의 고국 프랑스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영국 근대문명의 힘이었다. 볼테르의 그 경험은 프랑스 앙시앵레짐에 대한 그의 비판사상을 다지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영국과 프랑스의 간극은 뉴턴의 국장이 보여주는 것 이상이었다.

뉴턴이 회장을 지낸 영국 왕립학회는 명칭의 인상과는 달리 영국 왕실이 만든 조직은 아니었다. 시작은 1660년 11월 런던의 한 식당에 모인 10여 명의 과학자들에 의해 결성된 자발적 모임이었다. 특별한 자격 요건도 없었다. 일정한 액수의 회비를 내고 자연과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창립된 학회가 1662년 7월 국왕 찰스 2세의 칙허(勅許)를 받음으로써 ‘왕립(Royal)’이라는 칭호를 갖게 됐다.

1666년 프랑스에서도 왕립과학아카데미가 설립됐다. 영국의 왕립학회에 자극을 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프랑스 왕립과학아카데미의 설립 주체는 왕실이었다. 회원들은 모두 직업적 과학자였고, 회원수도 제한돼 있었다. 소속 과학자들은 왕으로부터 급여를 받았다. 그래서 왕실과 아카데미 대표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운영됐다.

영국 왕립학회는 달랐다. 호칭은 왕립이었지만 문턱이 없었다. 신분은 물론 학벌도 따지지 않았다. 요건은 딱 하나, 재능이었다.


발명특허 보유자인 대통령

미국에도 특이한 사례가 있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이자 제3대 대통령인 제퍼슨과 남북전쟁을 지휘한 16대 대통령 링컨에겐 공통점이 있다. 둘 다 개인적으로 발명특허를 갖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미국 특허청은 영국의 특허보호제도를 그대로 본받아 건국 14년 만인 1790년 설립되었다. 그 초대(初代) 청장을 당시 국무장관인 토머스 제퍼슨이 겸임했다. 링컨은 그 특허청을 강력한 연방기구로 만들었다. 그리고 링컨은 특허의 의의에 대한 명언을 남겼다.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위치한 미국 특허청 건물에 그 말이 새겨져 있다.

“The patent system added the fuel of interest to the fire of genius.(특허제도는 천재라는 불꽃에 이익이라는 기름을 붓는 것이다.)”

최고 통치자급의 정치인이 이런 면모를 갖추고 있는 경우는 찾기 쉽지 않다. 그런데 이런 게 미국의 힘이었다. 미국에서 발명왕 에디슨이 나오고 그 뒤로도 발명가들이 줄을 이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런 힘이 미국의 과학기술과 산업발전의 바탕이 되었다.

옛 러시아에도 과학사에 지울 수 없는 발자취를 남긴 과학자가 있다. ‘원소 주기율표’를 정립한 멘델레예프(1834~1907년)다. 멘델레예프의 업적은 슬라브주의나 유라시아주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사실 러시아의 미래를 위해선 ‘그런저런 주의’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그 같은 위대한 과학자들이 계속 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었다. 당시도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러시아의 유라시아주의 논리 속에는 그런 성찰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허세적 이데올로기의 한계

진짜 실력이 있고 자신감이 있는 인간은 과시성 허세(虛勢)가 없다. 열등감이 허세를 낳는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콤플렉스가 허세의 이데올로기를 작화(作話)한다. 전체주의 체제는 특히 더 그렇다. 그 이념 자체가 본래 그런 식이다. 그런 이념은 대외정책화할 때면 거의 언제나 과시성 도발(挑發)의 양상을 보인다. 중공의 중국몽, 러시아의 유라시아주의 구상 모두 그렇다.

물론 그 같은 과시성 도발의 정책 추구는 결국 실패한다. 실질성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 이념과 체제의 허위성에서 비롯되는 한계다. 그러나 경계를 늦추어선 안 된다. 전체주의 권력의 과시성 도발은 계속 반복된다. 그렇게 반복되면서도 제압되지 않는 도발은 폭주(暴走)로 이어지다 대란(大亂)으로 번질 수도 있다. 세계는 지금 그런 위험의 조짐이 이미 어른거리는 상태다. 과장된 비관론에 빠질 필요는 없지만 세력균형 등에 미룰 문제가 아니다. 자유민주문명의 가치 수호 차원의 문제다. 자유민주문명세계는 지금 그 결기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자유민주문명 가치의 구현 자체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그 힘으로 태어났고 지켜지고 성장해왔다. 지금의 국제적인 이념적 격돌은 한국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내적인 문제였다. 정권 교체로 고비는 넘었지만 도발적 저항이 만만치 않다. 압박은 ‘외부’에서도 엄습해 올 것이다. 당연히 그 모두에 강건하게 맞서야 한다.⊙

 

05.31  코로나와 중국 모식(模式)

코로나19 확산으로 48일째 봉쇄 중인 중국 상하이시의 창닝구와 민항구의 경계에 차량과 사람이 오갈 수 없도록 장애물이 설치돼 있다. 현재 상하이의 주요 간선도로에는 수백 미터마다 공안이 배치돼 허가받지 않은 사람과 차량의 이동을 강력히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 상하이에 살고 있는 교민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대륙의 웅혼함에 매료돼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중국에서 살았지만 요즘처럼 중국 생활, 아니 중국 자체에 대해 회의를 느껴본 적은 없다고 했다. 코로나 확진자가 늘면서 시작된 상하이 봉쇄는 두 달을 훌쩍 넘겼다.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얼마나 봉쇄가 철저한지 모를 것이라며 두 달 동안 2500만 인구의 상하이가 교통사고 제로, 이혼율 제로를 기록했다는 수치를 댔다. 그의 가족들은 봉쇄 이튿날부터 지금까지 하루 두 끼로 식사를 줄였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비축해 둔 식량만으로 지금까지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배고픔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게 정신적 고통이다. 족불출문(足不出門), 아파트 현관문 밖으로 아예 발을 내밀지 말라는 당국의 포고문이 봉쇄 첫날 내려왔다. 단지 입구에는 첩첩이 바리케이드가 쳐졌고, 삼엄하게 경찰이 출입을 막았다. 그가 간간이 SNS로 보내온 소식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나 진배없었다. 

확진율 0.17% 자유 저당잡힌 대가
한때 대안 떠올랐던 중국 모델
미·중 패권경쟁하며 취약점 드러내

 한국에서 이런 봉쇄가 시행됐더라면 폭동이 나고도 남을 상황이지만, 엄연히 21세기 글로벌 국제도시인 상하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중국인이라고 불만이 없으랴만 집단행동을 통한 의사 표현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이 중국의 현실이다. 하지만 SNS에 철통 봉쇄를 풍자하는 동영상을 올리며 스트레스를 푸는 정도가 유일한 탈출구다. 상하이동물원이 시 전체로 확대됐다며 바리케이드에 갇힌 신세를 한탄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당국을 비판하는 직설적 표현이 들어가면 1초 만에 삭제된다. 인공지능(AI)이 걸러내기 때문이다.

 

중국의 인구 대비 누적 확진자 비율은 0.17%다. 덴마크 54%, 프랑스 45%, 독일 31%, 미국 25%로 대부분의 자유민주 국가들은 20%를 훌쩍 넘는다. K방역을 자랑하던 한국은 35%다. 숫자만으로 보면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은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누구나 알듯이 13억 인구의 자유를 저당 잡힌 대가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건 감염병과의 싸움은 개인의 자유를 희생하거나 유보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문제는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개인이 얼마만큼 자유를 희생할 수 있느냐의 정도에 있고, 궁극적으로는 사회 구성원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균형점으로 수렴하기 마련이다. 국가 공권력으로 국민에게 전면적인 자유의 희생을 강요하는 제로 코로나 정책을 모범으로 삼을 나라는 없다. 얼마 전 방역의 둑이 터지자 국가 최고지도자가 중국의 사례를 본받으라고 지시한 북한이 유일한 예외일 것이다.

 

코로나19가 발생해 팬데믹으로 확산되고 전 세계가 이를 극복하는 시기는 공교롭게도 미·중 패권 경쟁이 첨예화되는 시기와 겹친다. 코로나 발생 이전 관세전쟁의 영역에 머물렀던 미·중 대립은 그 사이 경제 울타리를 넘어 국제정치의 전 분야로 번졌다. 우리가 바라건 바라지 않건, 또 그것이 바람직하건 바람직하지 않건 미·중 패권경쟁은 진영 대립으로 굳어져 가는 양상이 뚜렷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개최하고 곧바로 한국·일본을 찾아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를 출범시키는 바로 그 시간에 중국은 왕이 외교부장을 보내 그동안 공들여 온 남태평양 도서 국가들을 챙겼다. 진영 대립의 국제정치는 필연적으로 가치·이념 경쟁으로 이어진다. 한때 ‘중국 모식(模式)’이란 용어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격심한 정쟁에 휘말리거나 포퓰리즘에 휘둘리면서 취약성을 드러낸 서구 민주주의를 대신하는 새로운 대안적 발전 모델을 중국에서 찾는 흐름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흐름이 싹 사라지고 중국 모델은 중국의 약점이 됐다. 중국의 체제가 지향하는 가치와 이념이 자유민주 체제의 그것과 융화하기 어려운 것이란 사실을 외부 세계가 깨닫게 된 결과일 것이다. 두 달 이상 이어지고 있는 상하이 봉쇄가 그 대표적 사례다.◎

중앙일보  예영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