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소리 2022-05/
05.02(월) 퇴임하는 문재인 대통령 최후의 책무
문재인 대통령은 “길은 멀고 날은 저물었다”고 토로했다. JTBC ‘대담-문재인 5년’에서 임기 내 추진한 종전선언이 무산된 데 대해 안타까워하면서 남긴 말이다. 어디 종전선언뿐일까. 지난 5년의 국정 운영을 돌이켜보면 회한(悔恨)으로 가슴을 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못한 일을 윤석열 당선인이 용기있게 잘 해달라”며 축복해야 했다. 평생의 라이벌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도 정권교체기에는 매주 만나 흉금을 털어놓고 통합의 모범을 보였다.
그러나 퇴임을 앞둔 문 대통령은 작심한 듯 분열의 언어를 토해내고 있다. 새 정부의 집무실 용산 이전(移轉)에 대해 “청와대라는 공간이 의식을 지배해서 소통을 못하게 된다? 그게 잘 납득이 되겠는가”라고 비판했다. 후보 시절 “조선총독부 관저, 경무대에서 이어진 청와대는 지난 우리 역사에서 독재와 권위주의 권력의 상징”이라며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설령 추진 과정이 매끄럽지 않더라도 내가 못 지킨 공약을 어려움을 무릅쓰고 이행하려는 후임자에게 경의(敬意)를 표시하고 협조했어야 했다. 하지만 스스로 내뱉었던 과거 발언을 부정하는 정반대의 기이한 논리를 펼치고 있다.
‘길은 멀고 날은 저물었다’면서
위기 감당할 후임자 축복은 없고
자화자찬·편가르기로 불화 초래
위헌적 검수완박 거부권 행사를
“부동산 가격 상승은 전 세계적 현상이었다. 우리 상승 폭이 가장 작은 것에 속한다”는 현실 부정의 궤변은 또 무엇인가. 문 정부의 부동산 실정(失政)은 민심이반·정권교체의 결정타였다. 그런데도 반성과 사과가 아닌 자화자찬에 나선 것이다. 윤 당선인의 선제타격 발언,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도 부적절하다. 경제·안보의 아슬아슬한 복합 위기를 빈틈없이 대처해야 하는 차기 대통령의 리더십을 이렇게 흔들어도 되는 것인가. 대선 직후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무엇보다 지금은 통합의 시간이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러니 “남은 임기 동안 국민께 예의를 지켜 달라”는 반격이 나오는 것이다.
검수완박 입법은 국가형사사법체계를 송두리째 뒤흔들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반부패기구도 부패·뇌물범죄 수사 역량 약화를 우려했다. 문 대통령 자신이 원인 제공자다. 그가 시동을 걸자 171석의 민주당 국회 권력은 민심을 거역하고 폭주했다. 문 대통령은 사실상 자신을 보호하는 장치인 위헌적 검수완박 법안의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그것이 헌법 수호자인 현직 대통령으로서 양심을 지키는 최후의 책무다.
세계 최초의 대통령 워싱턴이 보여준 저 무욕(無慾)의 자제력이 아쉽다. 그는 월급도 제대로 못 받는 오합지졸의 식민지 군대를 지휘해 세계 최강 영국군과 8년 간의 사투 끝에 승리한 총사령관이고, 압도적 카리스마를 가진 미국 독립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합중국의 왕이 돼 달라”는 쿠데타 요청을 단호히 뿌리쳤다. 대륙회의를 찾아가 권력의 상징인 칼을 반납하고 한 사람의 농부가 돼 고향 마운트버넌으로 돌아갔다.
기원전 5세기 고대 로마의 전설적인 장군 킨키나투스가 걸었던 길을 선택한 것이다. 킨키나투스는 강력한 외적의 침입으로 로마가 위기에 처하자 6개월 임기의 독재관으로 임명됐다. 나라를 구한 뒤 임기가 5개월여 남았지만 즉시 초라한 오두막의 농부로 돌아갔다. 고대 로마의 영웅 카이사르, 영국 청교도혁명의 주역 크롬웰은 스스로 절대권력이 돼 공화정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워싱턴은 18세기의 킨키나투스가 돼 미숙아였던 신생 미합중국을 민주공화국으로 거듭나게 했다. ‘반란군의 수괴’ 워싱턴과 싸웠던 영국 국왕 조지 3세도 “그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인간”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워싱턴은 1798년 만인의 열망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내키지 않아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범죄자”라고까지 했다. 종신 대통령이 돼 달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임기 종료 6개월 전에 기습적으로 고별사(Farewell Address)를 발표해 스스로 독재자가 될 가능성을 차단했다. 그가 두 번째 임기를 마치고 낙향해 농장주가 됐을 때 같은 시대 유럽의 풍운아 나폴레옹은 “후손들은 그를 위대한 제국의 창설자로 숭배하며 그에 관해 말할 것이다. 그때 내 이름은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잊힐 것이다”고 예언했다.
워싱턴은 국왕도, 종신(終身) 대통령도 될 수 있었지만 농부가 돼 공생애(公生涯)를 마감했다. 법도, 선례도 없었던 시절 초인적인 절제로 ‘2선 후 퇴임’이라는 불문율을 세워 건강한 미국 대통령제의 신화를 창조했다. 종신 집권을 꿈꿨던 한국의 독재자 대통령들, 5년 내내 국가를 분열시키더니 임기 말에 차기 대통령과 불화하는 문 대통령과는 달랐다.
문 대통령의 임기는 일주일 남았다. 어느새 길은 멀고 날은 저문 황혼(黃昏)의 순간을 맞았다. 무한책임을 짊어진 그를 괴롭혔을 불면(不眠)의 밤도 이제는 차기 대통령의 것이다. 그는 “퇴임 후에 잊힌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진심이라면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닌 열망을 모두 내려놓고 정치와 무관한 범부(凡夫)의 일상으로 조속히 귀환하기 바란다. 곡절 많은 한국의 대통령제를 그나마 진일보시키는 길이다.
중앙일보 이하경 주필·부사장
05-02 대통령 아닌 ‘半통령’으로 기억될 文
떠날 때 ‘성공’ 외치는 文 안쓰러워
대통령 직함 어울리지 않았던 분
대놓고 ‘우리 편’만 든 첫 집권자
오히려 우리가 잊고 싶지만…

박제균 논설주간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9일까지이니 재임 중 쓰는 마지막 칼럼이다. 본 칼럼이 격주로 나가기 때문이다. 일주일 뒤 청와대를 나오는 대통령을 비판하려니 마음이 불편하다. 하지만 떠나는 대통령도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다. 문 대통령은 그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주 청와대 기자간담회와 jtbc 인터뷰에 많은 말을 쏟아냈다. 주말엔 청와대 국민청원의 마지막 답변자로 나서 같은 주장을 늘어놓기도 했다. 5년 임기 중 정상회담 때를 빼고 기자회견과 ‘국민과의 대화’를 합쳐 고작 10번 정도 언론 앞에 섰던 대통령이다. 임기 중에 자주 등장했으면 좋았으련만 ‘떠날 때는 말없이’는커녕 떠날 때 왜 그리 할 말이 많은가. 그것도 퇴임 후엔 ‘잊히고 싶다’던 분이.
말의 내용은 더 기막히다. 거의 다 자화자찬 내로남불 궤변이거나 아니면 후임자 깎아내리기였다. 국정(國政) 실패를 조금이라도 시인하고 후임자를 배려했다면 떠나는 뒷모습이 조금은 더 크게 보였을 터. 더불어민주당은 ‘검수완박’으로 폭주하는 사이, 홀로 여기저기서 ‘문재인 정부는 성공했어요’를 외치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참여정부는 절반의 성공도 못 했다. 지금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실패와 좌절의 기억”이라고 토로했다. 잘못을 솔직하게 시인한 노무현의 인간적 면모가 그를 더 추억하게 만드는 것 아닌가. 하지만 문 대통령은 경남 양산에 내려가서도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를 것 같다. 오히려 성공한 대통령이었다는 ‘대안 세계’에 살지는 않을까. 인간 문재인의 행복이고, 많은 국민의 불행이다.
대한민국 역사를 돌아볼 때 권한대행 같은 임시직을 빼고 대통령이라는 직함이 가장 어울리지 않았던 한 분을 꼽으라면 단연 문 대통령일 것이다. 그는 5년이 되도록 국가와 국민이라는 큰 크림을 보지 못했다. 오로지 ‘우리 편’을 주류세력으로 교체하겠다는 ‘세상 바꾸기 게임’에 몰두했다.
그는 집권자가 돼서도 대놓고 우리 편만 든 사상 첫 대통령이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은연중에 지지층을 의식한 정책을 편 사람은 있어도 문 대통령처럼 노골적으로 상대편에 적의를 표시한 분은 없었다. 임기 말인 지난주까지도 상대편은 ‘저쪽’, 우리 편은 ‘이쪽’ ‘우리 편’으로 부르며 금을 그었다.
그럼에도 문재인의 세상 바꾸기 게임은 실패했다. 성공했다면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됐겠나. 남은 건 두 동강 난 대한민국이다. 우리 편을 열광케 한 대통령은 비교적 높은 지지율로 물러날지 몰라도, 그 자신은 반쪽만의 대통령인 ‘반(半)통령’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그가 우리 편의 지지를 잃지 않기 위해 구사한 언어는 ‘유체이탈 화법’이란 신조어를 남겼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는 자세로 임해야 할 대통령이 해서는 안 될 비겁한 언어로 대통령사(史)에 남을 만하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6일에도 ‘세월호 진상 규명’을 주장했다. 5년간이나 ‘진상 규명’이란 걸 해온 정권의 수장이 할 말인가. 무려 7년간 9번이나 조사를 하고도 진상이 나오지 않았다면 더 나올 진상이 없다는 뜻 아니겠는가. 국정 최고책임자라면 아픈 진실도 솔직하게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조국 사태 때 뜬금없이 ‘대입제도 개선’을 말하거나 윤석열 징계 파동 때 ‘인사권자로서 사과’ 운운한 것도 본질을 회피한 ‘문재인 어록’으로 남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원래 정치를 할 의사가 없던 분이었다. 그런 사람을 친노(親盧) 운동권 세력이 ‘기획상품’으로 내세워 대통령으로 만들었으나 의사는 물론 능력도 없음이 드러난 것이다. 그 결과가 참담한 국정 실패다. 무비판적 팬덤을 키워 정치를 병들게 하고 공정과 정의, 상식과 언어의 경계선을 허물어 사회의 건강을 좀먹은 건 보너스다.
이제 8일밖에 남지 않은 임기. 측근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 사면이라도 자제해 마지막이라도 대통령다움을 보였으면 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에 관한 한 ‘불안한 상상은 항상 현실이 되고’ ‘뭘 상상해도 그 이상’이었으니 별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는 퇴임 후 “잊힌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지만, 도리어 잊고 싶은 사람은 우리다. 하지만 어쩐지 그러지 못할 거란 불안한 예감이 든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05.02(월) 이대로 두면 90년생부터는 줄 돈 없게 된다는 국민연금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연금 개혁을 논의할 사회적 대타협기구인 ‘공적연금개혁위원회’(가칭)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안 위원장은 “1990년 이후 태어난 세대는 평생 국민연금을 내더라도 65세가 되는 2055년이 되면 국가에서 지급할 돈이 없는 상황을 맞게 된다”면서 “이렇게 지속가능하지 않은 상황을 그대로 둘 순 없다”고 했다.
현재의 국민연금은 적게 내고 많이 받아가는 구조로 설계됐다. 그 결과 국민연금은 현재 수준이 유지될 경우 2042년 적자로 돌아서고 2055년경에는 기금이 바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대로 간다면 2088년에 국민연금 누적 적자가 무려 1경7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 비관적 수치조차 합계출산율을 1.32~1.38명 정도로 가정했을 때의 낙관적 수치다. 지금처럼 0.8명으로 뚝 떨어진 초저출산율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국민연금 고갈 시점은 훨씬 더 앞당겨질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연금개혁처럼 인기 없는 정책은 아예 손을 안 대고 차기, 차차기 정부에 떠넘겨놨다. 되레 정부 부담만 왕창 늘렸다. 만성 적자 상태인 공무원·군인 연금의 경우, 작년에도 각각 3조2400억원, 1조6100억원가량 세금으로 적자를 메워줘야 했다. 문 정부에서 공무원 숫자를 13만명이나 늘리는 바람에 정부가 향후 부담해야 할 연금 충당 부채는 5년 새 400조원 불어 1138조원이 된 상태다. 이런 속도로 국가부채가 계속 늘어나면 지금 태어난 신생아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1인당 1억원 넘는 나랏빚을 떠안게 된다는 비관적 전망도 있다. 세대 착취나 다름없다.
연금개혁은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새 정부 출범 직후부터 연금 제도 전반에 대한 개혁 논의에 착수해 구체적인 개혁 방안을 내놔야 한다. 아울러 각종 선거 때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현금 복지와 중복 복지도 근본적인 대수술이 필요하다. 윤석열 당선인 역시 대선 공약으로 65세 이상 고령층 70%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을 월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단계적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노인 빈곤 해소를 위해 기초연금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선거 치를 때마다 기초연금이 10만원씩 올라가서는 재정이 감당이 안 된다. 기초연금 상향 지급의 대상자와 속도를 조절해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5월 02일 선거범죄 김경수와 ‘조국 재판’ 정경심 사면 가당찮다
퇴임을 1주일 앞둔 문재인 대통령이 마지막 특별사면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지난해 성탄절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했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 등은 제외됐다. 이 때문에 퇴임 전날인 부처님오신날을 계기로 추가 사면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면권은 남용돼선 안되며, 국민 통합과 국가 발전 기여 등 명분이 선명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경제인 사면은 검토할 만하다. 2일 발표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여론조사에서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서는 사면 찬성 68%, 반대 23%로 나타났다.
문제는, 경제인 사면에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등의 사면을 끼워 넣기 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김경수·정경심 사면은 가당찮다. 김 전 지사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선거 부정에 연루돼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1년도 안 된 만큼 사면 대상이 되기 어렵다. 무엇보다 김 전 지사가 처벌된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과 관련, 문 대통령은 스스로 수혜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 전 교수도 사면 대상으론 부적절하다. 자녀 입시비리 등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4년 확정판결이 나온 지 3개월밖에 지나지 않았고, 무엇보다 조 전 장관이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권 남용으로 멸문지화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조 전 장관 측 행태는 별개로 하더라도, 재판 중에 ‘공범’을 풀어주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다시 법정으로 간 딸 조민 씨의 입학 및 의사면허 취소 등을 다투는 쟁송과도 연결돼 있다.
같은 KSOI 여론조사에서 김 전 지사의 경우, 찬성 28% 반대 56%였고, 정 전 교수 역시 찬성 30% 반대 57%였다. 청와대는 여야 의견을 수렴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음습한 뒷골목 거래 식의 사면은 더욱 있어선 안 된다.
문화일보 사설
05월 02일 재정적자 이어 만성적 무역적자도 떠넘긴 文 5년 失政(실정)
흔히 대한민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라고 한다. 천연자원이 상대적으로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말기에 무역수지 적자가 만성화할 조짐이다. 에너지 가격 등 물가 급등에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 약세)까지 겹쳐 수입이 크게 증가하고 있어서다. 1일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4월 수출액은 576억9000만 달러로 12.6%(전년 동월 기준) 늘어 4월 기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수입액이 603억5000만 달러로 18.6% 증가하며 수출액을 크게 상회했다. 이에 따라 무역수지는 지난 2월 반짝 흑자였다가 다시 두 달 연속 적자다. 적자 폭이 26억6000만 달러로 전달보다 훨씬 커졌다.
무역수지는 경상수지에서 비중이 가장 크다. 경상수지가 지난 2월까지 22개월 연속 흑자지만, 흑자 폭이 갈수록 줄고 있어 윤석열 새 정부 출범(이달 10일) 전에 발표될 3월 분부터는 적자 전환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가 천문학적인 재정적자에 이어 경상수지 적자까지 ‘쌍둥이 적자’를 윤 정부에 떠넘길 판이다. 쌍둥이 적자는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 번도 없었다.
무역수지 적자는 과거 외환위기나 국제 금융위기 때에도 있었지만 일시적이었고, 원인도 분명했다. 그런데 이제 고착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진다. 게다가 국민의 실질 구매력을 보여주는 국내총소득(GDI)은 올 1분기 0.1% 증가에 그쳐 2020년 2분기(-1.8%) 이후 가장 낮았다. 내수 시장 위축에 해외 자금 이탈 등 악순환이 더 심해질 것이다. 모두 문 정부 5년의 경제 실정(失政) 탓이라고 할 순 없지만, 탈원전과 현금 살포 포퓰리즘, 친(親)노조·반(反)기업 정책 등이 상황을 크게 악화시킨 것만은 분명하다. 윤 정부에 큰 부담을 떠넘긴 ‘먹튀 정부’로 남게 됐다.
문화일보 사설
05.03 ‘성남FC 의혹’ 4년 만에 압수수색, 文 정권이 덮어온 불법 이뿐인가

▲경찰이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전 경기지사의 '성남FC 후원금 의혹' 수사를 위해 2일 성남시청 5개 과를 압수수색했다. 사진은 압수품을 가지고 나오는 경찰. /연합뉴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전 경기지사)의 ‘성남FC 후원금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2일 성남시청을 압수수색했다. 이 사건으로 이 전 지사가 고발된 지 4년이 흘렀지만 성남시청 압수수색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례를 찾기 힘든 늑장 수사다. 성남FC 의혹은 이 전 지사가 성남시장이던 2015~2017년에 있었던 일이다. 이 전 지사는 당시 성남시가 운영하는 프로축구단인 성남FC 구단주이기도 했다. 이때 기업들에서 160억원을 후원금과 광고비 명목으로 받고 특혜를 줬다는 것이다.
이 전 지사가 2018년 6월 뇌물 혐의로 고발되자 경찰과 검찰이 돌아가며 수사를 뭉갰다. 경찰은 3년 3개월이나 사건을 붙잡고 있다가 작년 9월 무혐의 처리했다. ‘기업 6곳이 성남FC에 광고비를 지급한 사실, 기업들의 현안 민원이 있었다는 사실이 모두 인정된다’면서도 관련자들이 부인하고 있다며 무혐의라고 했다. 그 직후 이 전 지사는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검찰도 수사에 들어갔지만 김오수 검찰총장이 직접 무마했다는 의혹이 터졌다. 성남지청 수사팀이 수상한 자금 흐름을 추적해달라고 요청하자 김 총장이 성남지청장에게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수사하지 말라는 요구다. 의혹이 불거져 수사를 더 뭉개기 힘들게 되자 검찰은 사건을 일선 경찰서로 다시 떠넘겼다. 어떻게든 사건을 덮으려 ‘폭탄 돌리기’ 한 것이다. 기업 후원금 일부가 성남FC에 전달되지 않았고 성남FC에 입금된 후원금의 상당 부분이 어딘가로 흘러갔다는 의혹이 풀리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많은 불법 혐의가 ‘미제 사건’이 돼 있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은 문 대통령의 ‘30년 친구’를 당선시키려 청와대 비서실 여덟 조직이 군사작전식으로 저지른 선거 범죄다. 대통령이 탄핵될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검찰은 임종석 전 비서실장과 조국 전 민정수석이 “범행에 가담했다는 강한 의심이 든다”면서도 두 사람을 기소하지 않았다.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대통령 가족이 연관된 이상직 비리, 블랙리스트 사건 등도 제대로 된 수사가 없었다. 이 전 지사가 연관된 대장동 비리, 대법원 재판 거래 의혹 등도 수사가 본질에 접근조차 못했다. 검찰의 수사권을 모두 없애겠다며 입법 폭주를 하고 있는 민주당에서 “문재인 청와대 20명이 감옥 갈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 대체 얼마나 많은 불법을 저지른 건가.
조선일보 사설
05.04 미래 세대 이익에 철저히 무관심했던 정부
MB를 토목 정권이라더니
바다 메꿔 활주로 만드는 가덕신공항 국무회의 의결
탄소중립 선언해놓고는 탄소 덩어리 사업
국가가 벌인 ‘녹색 세탁’

▲국토부가 공개한 가덕신공항 조감도. 공항 윗쪽으로 해발 264m 국수봉이 있는데 그걸 발파해 거기서 나온 토사로 바다를 메꿔 활주로를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포퓰리즘에는 소수에게 거둬 다수에게 뿌리는 ‘2% 털기’, 다수에게 조금씩 긁어 모아 소수에게 몰아주는 ‘깃털 빼기’, 미래 세대 몫을 당겨와 현 세대가 나눠 갖는 ‘손주 약탈’의 세 유형이 있다. 셋 다 표를 노린 것이다. ‘2% 털기’ 경우 98% 다수의 지지를 끌어내자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세제가 대표적이다.
‘깃털 빼기’는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경제수석이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 살짝 빼내기’라고 설명했다. 깃털 뽑히는 개인으로는 미미한 액수라 별 고통이 없지만, 국민 다수로부터 긁으면 상당한 재원이 된다. 그걸로 특정 집단에 이익을 몰아줘 그들을 우호 세력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재명 전 경기지사가 추진했던 일산대교 통행료 무료화가 비슷한 시도였다. 일산대교는 국민연금 소유여서 전 국민이 주인이라고 할 수 있다. 통행 무료화가 연금 가입자 개개인에게 끼치는 손해는 무시할 수준이다. 반면 일산대교 주변 김포·고양·파주 시민에겐 적지 않은 혜택이 된다. 지역 표를 모으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손주 약탈’에서 손주는 청소년·어린이일 수도 있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일 수도 있다. 손주 세대엔 투표권이 없다. 그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할 능력도 부족하다. 피해를 보고도 반발하거나 저항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당연히 했어야 할 국민연금 개혁을 외면한 것은 손주 약탈의 대표 사례였다. 국민연금은 기성세대에게 과도한 이익이 가도록 설계돼 있다. 그로 인해 1990년 이후 태어난 세대는 보험금을 열심히 내더라도 나중에 연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연금 개혁안을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면했다. 문 대통령에겐 기성 세대 유권자가 중요하지 투표권 없는 손주 세대 이익 보호는 관심 밖이다.
임기 동안 늘려 놓은 국가 부채 400조원도, 이익은 현 세대가 보고 뒷감당은 미래 세대에 떠넘긴 것이다. 사실 세 유형 포퓰리즘 중에서 손주 약탈이 제일 비윤리적이다. 미래 세대는 자기 이익을 방어할 수단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 정부 국무회의가 지난주 가덕도 신공항 추진을 최종 결정했다. 가덕신공항은 깃털 빼기와 손주 약탈이 결합한 포퓰리즘이다. 공항 건설엔 13조7500억원이 드는데, 편익은 그것의 겨우 절반을 넘는다. 그에 따른 부담을 전 국민에게 분산시키면 각자에게 결정적 액수는 아닐 것이다. 고통은 미약하거나 못 느낄 수준이다. 반면 부산·경남에 집중되는 이익은 무시 못한다. 곧 있을 지방선거에서 여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국민 돈을 긁어 모아 선거 운동을 하는 셈이다.
사업의 비용 대비 편익이 1보다 작으면 하지 않는 게 정상이다. 가덕신공항은 0.51~0.58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지방 활성화를 명분으로 추진하고 있다.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부터 사업 기본 방향을 ‘국토 균형 발전’으로 명시했다. 그런데 국토부가 배포한 타당성 검토 보고서를 들여다 보면 균형 발전 논리의 앞뒤가 안 맞는다. 보고서는 16개 시·도별로 인구 증가율, 재정 자립도, 제조업 비율, 도로율, 인구당 의사수 등 8개 지표를 따져 ‘지역 낙후도’를 파악했다. 그 결과 경남은 발전도에서 8위, 부산은 9위의 중위권이었다. 수도권과 울산 등이 상위권이었고 경북(13위), 강원(14위), 전북(15위), 전남(16위)이 제일 낙후했다는 평가였다. 이렇게 되면 하위 지역에서 낸 세금의 일부까지 그들보다 형편이 나은 중위권 지역 사업에 투입되는 셈이다. 그게 어떻게 균형 발전의 모색이 되는지 납득하기 힘들다.
가덕신공항은 미래 세대 이익 역시 침해하는 사업이다. 해수면 아래 33m를 매립하고 해수면 위로 15m를 성토해 473만㎡(143만평)의 인공섬 활주로를 만들자는 것이다. 가덕도 남단의 해발 264m 국수봉을 발파해 거기서 나온 토사 2억1500만㎥로 바다를 메꾸게 된다. 어마어마한 철과 시멘트, 무지막지한 양의 화석연료가 소모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를 ‘4대강 토목 정권’이라 비판했던 사람들이 이런 일을 저지른다. 영국에선 런던 히스로 공항의 세 번째 활주로 건설 계획을 놓고 8년째 논쟁을 벌이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 때문이다. 프랑스에선 국내 단거리 비행 노선은 운항을 금지시키는 법률까지 만들었다. 항공 여행을 억제해 미래 세대를 기후 붕괴 피해로부터 보호하자는 취지다.
문 대통령은 국제 사회에 탄소중립을 선언해 찬사를 받았다. 그러고선 미래 세대에 부담을 주는 가덕신공항 탄소 덩어리 프로젝트의 발동을 걸었다. 기업이 말로는 환경을 위하는 척하면서 실제론 환경파괴적 행동을 할 때 ‘녹색 세탁(Green Wash)’이란 비판을 받는다. 문 정부의 탄소중립 선언은 국가 단위의 녹색 세탁이었다.
조선일보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05월 04일 ‘尹정부’ 벌써 위태위태해 보인다

이미숙 논설위원
취임 경축보다 뒤숭숭 분위기
문재인·김정은도 尹 공격 태세
6·1선거 압승 못하면 식물정부
첫 인선부터 新내로남불 논란
‘위대한 팀’커녕 정실인사 조짐
대통합으로 국정동력 키워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취임이 6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안팎으로 뒤숭숭한 탓에 경축 분위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더불어민주당은 온갖 편법을 동원해 위헌이 분명한 ‘검수완박’ 법을 강행했고, 북한 김정은은 선제 핵 공격 협박에 핵실험을 자행할 태세다. 떠나는 문재인 대통령은 국론 분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골수 지지층만 바라보며 몽니를 부린다. 신구 권력 갈등은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욱 증폭될 조짐이다. 신임 대통령은 취임 허니문도 없이 지방선거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셈인데, 국민의힘 패배 시 곧바로 레임덕에 빠져들 수도 있다.
정치 경험이 없는 윤 당선인이 성공적으로 국정을 이끌 가능성은 크지 않다. 대선 슬로건으로 ‘국민이 키운 윤석열, 내일을 바꾸는 대통령’을 내세웠듯 그는 권력 의지가 있어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아니다. 문 정권의 밀어내기 덕분에 대선에 당선된 우발적(accidental) 대통령이다. 그런 행운은 대선까지일 뿐, 취임 후엔 상황이 달라진다. 초보 정치인이 핵으로 협박하는 북한을 상대하며 세계 10위 경제 대국을 성공적으로 이끌 것이란 기대는 요행을 바라는 일과 같다. 168석의 공룡 민주당이 범민주당 출신 무소속 6명까지 동원해 국회 태업을 일삼으면 순식간에 식물 정부가 된다.
3·9 대선 때 윤 당선인이 얻은 ‘정치 자산’은 0.73%포인트다. 그나마 대통령실 이전을 여론 반대에도 밀어붙이느라 절반은 까먹은 상태다. 윤 당선인은 초대 내각·대통령실에 대광초·충암고·서울대의 학연과 검찰 인연이 얽힌 지인을 중용했다. “99가지가 달라도 정권 교체 뜻 하나만 같다면 힘을 합쳐야 한다”던 대통합 메시지는 잊힌 지 오래다. 또 공정과 거리가 먼 장관 후보자들을 두둔해 ‘신(新)내로남불’이란 지적까지 받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를 ‘대통령이 된 검사’로 표현했는데,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도 검사 때의 내 사람 챙기기 관행과 ‘직진’ 습성을 못 버린 탓이다.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직업 : 미국 대통령(The Hardest Job in the World : the American Presidency)’이란 책이 있다. 미국 CBS 존 디커슨 기자가 도널드 트럼프 4년을 겪으며 미국 대통령제가 회복불능에 빠진 것을 자각하고 개선 방안을 탐색한 책이다. 한국의 대통령제는 미국 대통령제와 흡사한 데다 윤 당선인은 트럼프와 같은 정치 초보라는 점에서 저자의 분석은 유용한 부분이 많다. 저자는 책에서 “미국 대통령은 국정 최고 책임자이자 국가 최고경영자, 군 통수권자, 제1의 대외협상가 역할을 해야 하는데 아무리 뛰어난 인사도 이런 일을 두루 잘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통령들은 필연적으로 실패한다”고 분석했다.
디커슨은 ‘탈(脫)실패’ 해법으로 첫째, 대통령직에 대한 과부하를 줄이고 역할을 분담할 것, 둘째, 대통령이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전문가 자문 구조를 만들 것, 셋째, 최고의 팀플레이를 할 것을 제언했다. 그는 “만기친람식 국정은 필연적으로 제왕적 대통령으로 귀결된다”면서 팀플레이 국정의 표본으로 에이브러햄 링컨과 조지 H W 부시를 꼽았다. 부시는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해선 위대한 팀이 필요하다”며 최고의 적임자로 내각을 짰고 그의 팀은 냉전 해체기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링컨 역시 ‘팀 오브 라이벌’ 정신에 입각한 내각 인선으로 미국의 분열을 막았다.
윤 당선인이 국정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선 부시와 링컨의 리더십을 본받아야 한다. 우선, 좌파 운동권 출신 문 정권이 망친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성장 동력을 회복한다는 위대한 목표를 재확인하고 부시처럼 위대한 팀을 짜야 한다. 인사청문회에 오르지도 못할 결격 인사를 포기하고 참신한 인사를 삼고초려를 통해 발탁해야 한다. 나아가 링컨의 통합 정신에 따라 586 운동권 좌파 이외의 모든 세력과 연대하겠다고 선언하고 실행해야 한다. 검찰 때의 의리 우선 형님 리더십은 잊어야 한다.
앞으로 5년, 대한민국의 전진이냐 후퇴냐가 판가름난다. 윤 정부가 실패할 경우, 대통령의 개인적 불행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가 좌파 운동권이 판치는 중국 같은 독재국으로 전락하게 된다. 윤 당선인이 통합 정신에 입각한 위대한 팀플레이로 성공해야 국가적 불행을 막을 수 있다.
문화일보
05월 04일 尹정부에 떠넘겨진 온갖 경제 악재들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곧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한다. 빅 스텝(0.5%포인트 인상)이 예상된다. 최근 발표된 미국의 3월 개인소비지출(PCE) 지표는 전년 동월 대비 6.6% 올랐는데, 이는 1982년 1월(6.9%) 이후 40년 2개월 만의 최고치라고 한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더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또 다른 지표가 분기별 고용비용지수(ECI)이다. 지난해 4분기의 고용비용지수가 전분기 대비 1.0% 증가한 데 이어 지난 1분기에는 1.4% 올랐다. ‘임금·인플레이션의 연속상승’ 징후가 뚜렷해지고 있다.
미국의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다음달 FOMC에서는 ‘빅 스텝’ 이상인 ‘자이언트 스텝’(0.75% 포인트 인상)으로 인상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미국 기준금리가 이달 0.75∼1.00%로 높아지고 다음 달에 자이언트 스텝이 이뤄질 경우, 국내 기준금리(1.5%)를 뛰어넘는 1.5∼1.75%까지 갈 수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현실화한다면 우리나라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까? 당장 금리와 환율이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국내 금리에 대한 인상 압력은 이미 서울의 채권시장에 반영되고 있다. 지난 2일 국고채 3년물 금리는 12.8bp(1bp=0.01%포인트) 오른 3.086%로 마감했다. 3년물 금리가 3%를 다시 돌파한 것은 지난달 13일(3.001%) 이후 처음이다. 5년물 금리는 13.9bp 오른 3.311%로, 2014년 1월 3일(3.323%) 이후 8년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Fed의 선제적 금리 인상은 환율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은 미 달러를 더 매력적인 안전자산으로 만드는 조치가 되므로 미국을 제외한 역외시장의 투자자금은 다시 미국으로 환류할 것이다. 그러면 국내 외환시장에서도 달러 품귀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달러당 원화 환율은 지난 2일 1255.9원에서 3일에는 9.2원 더 오른(원화 가치 하락) 1265.1원으로 마감됐다. 이 같은 원화 가치 하락 압력은 최근 우리나라의 무역수지가 에너지 수입 가격 상승에 따라 2개월 연속 적자로 나타나면서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여기에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4.8%로 치솟았다. 국내 기준금리가 추가 인상될 것이란 전망이 현실화하고 있다. 이제 출범 1주일도 남지 않은 윤석열 새 정부는 문재인 정부로부터 부동산 문제, 검수완박 등 악재만을 상속받았다. 이를 의식했는지 윤 당선인도 인플레이션 압력을 수속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것이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라고 여러 차례 천명했다.
인플레이션 대책을 어떻게 수립하고 집행해 나갈지는 오는 10일 출범할 새 내각의 과제다. 정부가 이달 14조5000억 원 규모의 국고채 발행에 나서야 하는 코로나 지원금의 유산도 물가·금리 관리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여소야대의 국회 상황은 새 정부의 정책 전개에 커다란 질곡으로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어떠한 형태로든 협치의 정치경제 상황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인플레이션을 수속하고 민생경제를 회복하는 데마저 검수완박 같은 분열이 계속된다면 한국 경제의 앞날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발된 국제 안보 상황만큼 암울해질 수 있다.
문화일보
05.05 대장동 “4000억 도둑질” 수사권 어떻게 조정되든 진상 밝혀야

▲대장동 의혹의 핵심 인물인 남욱 변호사가 작년 말 서울 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 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대장동 특혜·비리로 기소된 남욱 변호사가 대장동 사업을 두고 “4000억원짜리 도둑질”이라고 직접 말한 녹음 파일이 법정에서 재생됐다. 육성으로 “(문제가 되면) 게이트 수준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도배할 것”이라고도 했다. 2014년 11월 남 변호사가 다른 대장동 일당과 나눈 대화 내용이다. 성남시가 대장동 민관 개발을 선언한 것은 남 변호사가 이 말을 한 지 한 달 뒤인 2014년 12월이고, 대장동 사업자 선정 절차는 2015년 2월 진행됐다. 4000억원은 실제 대장동 일당이 거둔 배당 수익이다. ‘4000억 도둑질’은 사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챙길 불법 이익을 정확히 알았다는 의미다. 사업 전반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성남시 측과 공모하지 않고 이런 일이 가능한가.
대장동 사건은 수천억 원 특혜를 받는 대가로 뇌물 수백억 원을 건네는 희대의 부패 범죄 사건이다. 문제의 핵심은 개발 이익이 아무리 커져도 성남시 몫은 1822억원으로 줄여버리고 나머지 배당과 분양 수익은 대장동 일당이 모두 가져갈 수 있도록 한 특혜 구조다. 그 구조를 누가, 왜 만들었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수사의 핵심이다. 남 변호사는 최근 녹음 파일에서 “이 모든 각을 유동규(전 성남도개공 본부장), 이재명(당시 성남시장), 최윤길(전 성남시의회 의장) 세 사람이 처음부터 각본을 짜서 진행한 것이라고 하더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의 검찰 수사는 유동규·최윤길 앞에서 멈췄다. 비리 ‘몸통’과 윗선은 하나도 밝혀진 게 없다.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이 시행되면 단군 이래 최대 비리라는 대장동 수사가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민간 특혜로 성남도개공에 손해를 끼친 배임(경제)과 뇌물(부패) 혐의는 검찰의 계속 수사 대상이다. 그러나 공무원의 직권남용 혐의는 경찰로 넘겨야 한다. 같은 피의자를 두고 검·경이 다른 수사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혼선을 빚으면 피의자가 빠져나갈 구멍도 커질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국정 과제로 ‘범죄 대응 공백 방지’를 약속했다. 검·경 수사권이 어떻게 되든 대장동 특혜·비리의 진상은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법치 국가에서 극소수 일당이 4000억원을 도둑질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조선일보 사설
05.05 지지율 45% 대통령의 졸렬한 퇴장

이정민 논설실장
한국갤럽의 지난 주말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45%였다.(4월 26~28일 1003명 조사) 퇴임을 코앞에 둔 대통령으로선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수치다. 곧 취임할 새 대통령(윤석열 당선인 43%)보다도 높다. 집권 연장엔 실패했지만 최후의 순간까지도 콘크리트 지지를 견인해냈으니 신의 경지가 무색할 지경이다. 하지만 이런 든든한 원군의 뒷배에도 원초적 근심을 떨쳐내지 못했던 것일까. 요 며칠새 JTBC 대담, 청와대 청원 답변 이벤트를 통해 ‘없는 치적’을 부풀리고, 어거지 논리로 팩트를 전복했다. 혹평과 비난을 퍼부으며 후임자를 깎아내렸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에 대해 문 대통령은 “별로 마땅치 않다”며 각을 세웠다. “많은 비용을 들여 광화문 아닌 다른 곳으로 꼭 이전해야 하는 것이냐. 국가의 백년대계를 토론없이 밀어붙이면서 소통을 위한 것이라고 하니 무척 모순적으로 느낀다”고 수위를 높였다. “위험하다”는 말도 했다. 집무실 용산 이전을 두고 세간에 찬반 논란이 있는 건 사실이나 앞선 국무회의에서 이전 공사에 드는 예비비 승인까지 한 마당에, 떠나는 대통령이 드러내놓고 반대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새 정부의 민정수석실 폐지 방침을 두고 문 대통령은 “걱정된다”고 직격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어법대로 하면 “이쯤되면 막가자는 거 아닌가” 싶다.
문 대통령, 용산 이전 “마땅찮다”
도 넘은 윤 당선인 비난·깎아내리기
후임에 덕담없는 건 협량 때문일까
퇴임 6일전 검수완박…국민은 심란
문 대통령은 윤석열 당선인을 향해 ‘대통령 모드로 돌아오라’고 훈수했다. 대선 때 북한에 대해 강경발언을 한 게 “북한하고 상대해본 경험이 없어서”라고 나무랐고, 여가부 폐지 방침엔 “잘 알지도 못하고 하면 안 된다”고 비난했다. 상식과 금도의 레드 라인을 넘나드는 발언인데, 자신의 뒤를 이어 나라를 통치할 대통령직(presidency)에 대한 존중이 있다면 이처럼 절제되지 않은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입밖에 낼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자신은 ‘대통령 모드’의 레일을 탈선해놓고, 후임자에겐 ‘모드’ 타령하는 건 또 무슨 경우인가. 블랙 코미디가 따로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신구 권력의 교체가 매끄럽게만 넘어갈 수 없다는 게 그간의 경험칙이다. 심지어 같은 당으로의 정권 재창출이 이뤄진 경우에도 적잖은 잡음이 나곤 했다. 노무현 당선인 시절 김대중(DJ) 대통령은 당시 박지원 비서실장을 통해 민주당에 동교동계 해체를 지시하고 아예 ‘동교동’이란 말을 못 쓰게 했다. DJ는 “국내 정치에는 간여하지 않고 퇴임하면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이자, 노무현 정부에 짐이 돼선 안 된다는 의지”였다고 회고했는데, 나라 장래를 걱정하는 지도자의 원모심려(遠謀深慮)의 지혜가 담겼다.
대통령제를 발명한 나라 미국은 전임자가 백악관을 떠나면서 후임자에게 손편지를 남기는 전통이 자리잡았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전임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비판받고 힘든 순간이 있겠지만 용기를 잃거나 정도에서 벗어나지 말라. 당신을 지지한다’는 편지를 받고 가슴 뭉클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심지어 표를 도둑 맞았다며 대중을 선동한 트럼프조차도 전통에 따라 바이든 대통령에게 손편지를 남겼다고 해 화제가 됐다. 덕담은 대개의 경우 받는 사람보다 화자의 인격과 도량의 크기를 가늠케 한다. 정치인이라고 다를까. 그래서 더 궁금해진다. 후임자의 성공 기원 덕담에 그리 인색한 게 문 대통령의 협량에 기인한 것일까, 아니면 다른 연유가 있는 것일까.
의문이 꼬리를 문다. 차기 정부에 책임 떠넘기기, 공적 부풀려 선수치기가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지난달과 이달 사이 집중돼서다. 새 정부가 5월 10일부터 청와대를 전면 개방해 시민에게 돌려주겠다고 예고한 며칠 후 청와대 뒤편 북악산 ‘김신조 루트’(4월6일)가 열렸다. 야외 마스크 해제 조치(5월2일)는 인수위의 ‘ 5월말 해제’ 발표 직후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오비이락일 수 있겠으나 왠지 좀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문 정부는 퇴임 한 달도 안 남은 시점(4월15일)에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같은 큰 일을 결정했다. 생색은 문 정부가, 협상·비준의 궂은 일은 새 정부의 몫이 됐다. 171석 거여 의석을 갖고도 농·어민 눈치보며 시간을 질질 끌던 민주당과 문 대통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을 처리하는 데는 비상한 솜씨를 보였다. 위장 탈당, 회기 쪼개기, 꼼수 사보임에 편법 국무회의까지 막장 드라마가 완성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45일이다. 만약 이재명 후보가 당선돼 정권이 연장됐더라도 D-6일의 막장극이 벌어졌을까. 별안간 청와대 뒷산이 열리고, 확진자가 급증하는데도 실외 마스크 벗기가 가능해졌을까. 임기 종료가 가까워오면서부터 더 급박하게 돌아가는 ‘청와대 시계’를 보면서 드는 의문들이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 ‘나라다운 나라’의 약속은 물거품이 됐다. 0.73%포인트 차이의 대선 패배가 그 증거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저는 한 번도 링 위에 올라가지 못했다. 입도 뻥긋 못했는데 선거에 졌다고 말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강변한다. 마지막까지 ‘대안적 진실’이란 허위의식에 안주하려는 정신승리법이 아니고는 이해할 수 없는 궤변이다. 촛불 대통령의 졸렬한 퇴장을 보는 국민은 심란하다.
중앙일보 이정민 논설실장
05.05 조선시대 사또보다 못했던 文정권

▲남한산성에 있는 선정비들. /박종인 기자
다른 건 몰라도 조선왕국은 법체계는 완벽했다. 백성과 공무원을 그물처럼 관리하고 감시하고 보살필 수 있는 각종 성문법이 완비돼 있었다. 법대로만 운영했다면 조선은 낙원이 됐을 텐데, 실천은 다른 문제였다.
‘대전통편’에는 ‘고과(考課)’라는 항목이 있다. 사또들 인사평점을 매기는 기준이 여기 제시돼 있다. 이름해서 ‘수령칠사(守令七事)’다. 수령이 해야 할 일곱 가지 업무 고과 체크리스트다. 내용은 이렇다.
‘매년 말 관찰사는 수령칠사(守令七事) 실적을 왕에게 보고한다. 논밭과 뽕밭을 성하게 하고(農桑盛·농상성), 인구를 늘리고(戶口增·호구증), 학교를 일으키고(學校興·학교흥), 군정을 바르게 하고(軍政修·군정수), 부역을 고르게 하고(賦役均·부역균), 송사를 간명하게 하고(詞訟簡·사송간), 간사하고 교활한 풍속을 그치게 하는 것(奸猾息·간활식)이다.’
며칠 남지 않은 문재인 정부를 본다. 훌륭한 사또였는가?
먼저 논밭과 뽕밭을 성하게 했나? 성하게 하지 않았다. 서울 명동과 종로 상가에 가보면 안다. ‘임대’라는 안내문을 유리창에 붙여 놓고 세 집 건너 하나씩 비어 있는 상가를 보면 된다.
인구를 늘렸나? 못 늘렸다. 2017년 합계출산율은 1.05명이었는데 2020년에는 0.84명이었다. 저출산 대책에 목숨을 걸겠다는 정권이었다.
학교를 일으켰나? 무너뜨렸다. 자사고와 외고에 가한 행위를 기억하는가. 학생과 학부모와 여론이 일치단결해서 반대했지만 문재인 정권은 폐지를 밀어붙였다. 코로나 대책이 난장판이 되면서 2년 동안 정상 수업은 사라졌다. 이런 사례가 너무 많아서 굳이 나열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면 군정을 바르게 했나? 더럽혔다. 현역 군인 그 누구에게든 물어보라. 북한이 미사일을 날려댈 때 문재인 정부는 꼬박꼬박 ‘불상’을 날렸다고 주장하고 한반도에 평화가 왔다고 외쳤다.
부역, 그러니까 세금을 고르게 했는가? 구한말에 버금가는 무명잡세 시대였다. 좌파 정권의 특징인 ‘부동산 가격 앙등’ 현상은 문재인 정권에도 재발했고, 온갖 명목으로 세금을 늘려서 시민들을 허망하게 만들었다.
송사를 간명히 했는가? 복잡하게 만들었다. 대통령 부인 외유를 비판한 기자에게 ‘가짜뉴스’라면서 소송을 걸었고, 패했다. 청와대는 대통령을 비난하는 전단을 뿌렸던 시민 또한 고소했다가 여론에 밀려 취하했다. 취임 직후 “그 어떤 조롱도 감수한다”고 했던 대통령이었다.
마지막으로, 간사하고 교활한 풍속을 그치게 했는가? ‘짤짤이’ 논쟁으로 대미를 장식한 정권인데 무슨 고과가 필요한가. 정권 자체가 성추행과 부패로 점철됐는데. 수령칠사 가운데 이 간사하고 교활한 풍속 부문에 관해서 이 정권은 역사에 길이 남을 낙제생이다.
수령칠사 고과에 합격한 수령은 더 기름진 마을로 영전하거나 포상을 받았다. 주민은 선정비를 세워 그들을 기렸다. 선정비 이름은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영세불망비’, 떠나도 생각하겠다는 ‘거사비(去思碑)’, 자기네를 아끼고 사랑해줬다는 ‘애휼비(愛恤碑)’ 등이다. 웃음보따리가 터진다. 조정에서 ‘선정비 금지령’을 내릴 정도로 선정비가 전국팔도에 널렸다. 그 가운데 많은 돌덩이들 뒤에는 ‘선정비까지 강요한’ 악정(惡政)과 원한밖에 없다.
나흘 남은 이 정권은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검수완박 법을 통과시키고 바로 대통령 훈장 수여를 의결했다.
“역대 대통령들 관행인데 뭐가 문제냐”라면서 금과 은과 루비와 자수정을 박아 넣은 억대 무궁화대훈장을 스스로 결재했다. 나라 꼬라지가 이 모양이 됐는데 관행이라면서 받기로 했다니, 할 말이 많지만 관두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찬양해 마지않는 군주가 있다. 정조다. 정조는 말년에 스스로를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고 불렀다. ‘만 갈래 강을 비추는 밝은 달의 주인 되는 늙은이’라는 뜻이다. 국정 장악에 대한 자신감이기도 하지만 귀를 닫고 눈을 닫고 본인만이 길이며 진리라는 오만과 자만이기도 하다. 이제 나흘 남았다. 이 나흘 동안 꼭 자문해보라. 내가 수령칠사를 이행했는가. 내가 만천명월주인옹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았는가. 선정비를 세울 자격이 있는가. 꼭.
조선일보 박종인 선임기자
05.06 ‘文정권 방탄법’ 시행돼도 권력 불법 반드시 단죄해야
대통령 당선인 측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에 대응하는 수사 효율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검찰 내 합동수사단을 설치해 주요 범죄에 강력 대응하고 검찰·경찰 협의체를 적극 활용해 수사와 기소를 유기적으로 연계하겠다고 한다. 거대 민주당이 강행한 이른바 ‘문재인 정권 방탄법’이 시행되더라도 수사력이 약화되는 것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법이 시행되는 오는 9월 이후엔 부패·경제 범죄를 제외한 사건들에서 손을 떼야 하고, 선거 사건도 연말까지만 수사가 가능하다. 문 정권 고위 공직자들이 직권남용 혐의를 받는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 등은 지금까지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지 못했다.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관여한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도 검찰은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이 “범행에 가담했다는 강한 의심이 든다”면서도 기소하지 않았다. 윤 당선인 측 구상대로 분야별 수사 전문가인 검사와 수사관이 다수 참여하는 합동수사단이 가동되면 검찰의 중대 범죄 수사 노하우를 관련 기관들과 공유할 수 있어 진실 규명에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검찰이 과거 국세청·금감원 등과 협업했던 증권범죄합동수사단도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며 경제 교란 범죄를 잇따라 척결하는 실적을 냈었다.
검찰·경찰 협의체도 수사 자료 협조와 법률 의견 교환을 통해 수사기관 간의 유기적 협업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장동 비리는 혐의에 따라 수사가 검찰과 경찰로 나눠져 ‘칸막이 수사’가 되면서 사건 전모가 종합적으로 밝혀지기 힘든 구조가 돼 있다. 앞으로 검경 협의체가 제대로 가동돼 지금까지 수사 성과를 공유하고 협력 수사를 한다면 대장동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민주당은 문 대통령 임기가 끝난 뒤에도 172석 의석의 힘으로 문 정권 방탄법을 계속 밀어붙이겠다고 한다. 1년 6개월 안에 중대범죄수사청을 만들어 검찰은 아예 수사를 못 하게 만들겠다고 한다. 대장동 일당끼리 대장동 사업을 “4000억원짜리 도둑질”이라고 말한 녹음이 법정에서 재생됐다. 아무리 거대 민주당이 가로막더라도 ‘도둑’은 반드시 잡아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5.06 尹 정부가 무는 文 정부 불법 소송비

▲강규형 전 KBS 이사가 문재인 대통령을 상대로 낸 해임 무효 소송에서 이긴 데 이어 소송비를 물어내라는 재판에서도 이겼다. /고운호기자
강규형 전 KBS 이사가 문재인 대통령을 상대로 낸 해임 무효 소송에서 승소한 데 이어 소송 비용을 물어내라는 재판에서도 이겼다. 문 대통령이 강 전 이사에게 변호사 비용 일부 등 1214만여 원을 지급하라는 서울행정법원 결정이 나왔다. 문 정부가 그를 KBS 이사회에서 쫓아내려 한 것이 완전히 잘못됐음을 법원이 재차 확인한 것이다.
강 전 이사가 겪은 고통에 비하면 1214만원은 소액에 불과하다. 문 정권은 야당 추천인인 그의 흠을 잡아내려 집단적 폭력을 가했다. 친정권 노조의 감사 요구에 감사원은 ‘2500원 김밥집’ 법인 카드 내역까지 뒤졌다. 방통위는 사용액이 더 큰 이사는 놔두고 강 전 이사 해임 건의안만 올렸고 문 대통령은 바로 재가했다. 노조는 그가 재직하는 대학을 찾아가 고성능 스피커로 난장판을 만들고, 이웃 주민에게 ‘가족이 법인 카드를 쓰지 않았느냐’고 묻기까지 했다. 정권이 방송을 장악하려고 한 개인을 떼 지어 짓밟은 것이다.
강 전 이사는 20건의 고소·고발에 시달렸다. 해임이 무효라는 판결은 재판장이 세 번 바뀌고 그의 임기가 끝난 뒤에야 나왔다. 1·2심 모두 문 대통령의 해임이 부당하다며 “재량을 일탈하거나 남용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까지 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이를 대법원으로 끌고 갔다.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대법원은 본안 심리조차 하지 않고 문 대통령의 상고를 기각했다. 문 대통령 주장은 살펴볼 필요도 없었다는 의미다. 강 전 이사는 소송 과정에서 “심신은 황폐화되고 일상적 삶은 허물어졌다”고 토로했다.
그는 소송비 재판에서 이겼지만 문 대통령 임기 내 받아내기는 어렵다고 한다. 문 대통령의 불복으로 해임 취소 재판이 장기화된 데다 소송비 신청 재판도 7개월이 걸리면서 퇴임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소송비 신청은 ‘대통령 직무’를 이유로 한 소송이어서 문 대통령 개인이 퇴임 후 물어내지도 않는다. 윤석열 당선인이 국가 예산으로 줘야 할 상황이다. 문 대통령의 부당 행위 청구서인데 새 대통령 이름으로 물어야 한다. 또 어디서 문 정권의 청구서가 날아들지 모른다.
조선일보 사설
05.06 윤석열 당선인에게 고함
윤석열 정부의 시작은 창대하지 않다. 창대하기는커녕 역대 어느 정부도 겪은 바 없는 적대적 환경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법치주의를 희롱한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 입법 독재 앞에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은 무력하기만 하다. 대선에서 분패한 민주당은 공격적 비토크라시(Vetocracy·상대 정파의 모든 정책을 거부하는 극단적 파당 정치)로 무장해 정권 탈환을 노린다. 지난 주말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의하면 며칠 후 취임할 대통령 지지율(43%)이 정권 교체를 당해 퇴임하는 대통령(45%)보다 낮다. 공정과 상식과는 거리가 먼 첫 내각 인사로 국민적 실망을 안긴 윤 당선인의 자업자득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일 오후 경기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중앙시장을 찾아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2022.5.2/인수위사진기자단
출범도 하지 않은 윤석열 정부를 연일 공격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존재는 새 정부 앞길의 어두운 그림자다. 문 대통령은 퇴임 후 ‘잊힌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지만 요즘 그의 행동은 정반대다. 상대 정파를 악의 세력으로 규정해 적대시하고 자신을 정의와 무오류의 화신으로 자화자찬하는 유사(類似) 파시스트적 행태를 임기 마지막까지 반복한다. 5년 내내 적과 동지의 이분법과 미증유의 무능으로 민생을 파탄 낸 대통령이 퇴임 이후에도 맹목적 정치 팬덤을 누리는 현실은 한국 민주주의의 타락을 증언한다.
윤석열 정부는 110개나 되는 국정 과제를 나열했지만 가장 중요한 국정 철학이 총체적 실종 상태다. 국민을 감동시킬 기회인 첫 내각 인사를 실패하고 대통령실 이전 문제로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하고 말았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과 의회 다수당의 정당이 다른 상태가 분점정부(分占政府·Divided Government)다. 게다가 윤 정부는 절반을 훌쩍 넘는 민주당의 입법 독재를 차기 총선까지 2년간 더 견뎌야만 하는 열악한 처지다. 그럼에도 “상식이 회복된 반듯한 나라”라는 식상한 구호를 국정 목표로 앞세울 정도로 위기 의식이 없다. 87년 체제 통틀어 최악의 적대적 환경에서 출범한다는 인식 자체를 결여한 것이야말로 윤석열 정부의 최대 위기다.
결과는 초박빙이었지만 20대 대선 민심에선 정권 교체 여론이 정권 유지 여론을 줄곧 압도했다. 민주당 집권 연장을 거부한 민심이 윤 정부에 바란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문재인 정부의 대중 독재로 궤도 이탈한 대한민국을 제 자리에 돌려놓으라는 요구다. 문 정부는 촛불 정부를 자임하며 민주주의를 부르짖었지만 민주 제도를 악용해 민주주의를 해체하는 것이 현대 독재자다. 민주공화정을 지탱하는 법치주의와 의회주의를 무력화시킨 민주당의 검수완박 폭주도 ‘합법적 다수결’의 형식을 충족한다. ‘대중 민주주의에서 파시즘이 자라난다’는 역사적 교훈을 절감하게 된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민주당의 폭거에 침묵하는 지식인들은 선거 패배로 정권을 내놓는 정권이 어떻게 유사 파시스트일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문재인 체제에서는 정권 교체 가능성이 남아 있었고 비판적 공론장이 잔존했기 때문에 부드러운 파시즘이자 연성 독재였던 것이다. 부동산 정책과 소득 주도 성장의 총체적 실패로 민생이 파탄 났어도 민주당은 재집권에 거의 성공할 뻔했다. 대한민국이 용인하기 어려운 후보를 내세운 것이 민주당에겐 ‘천려일실(千慮一失)’이었고 나라엔 ‘천행(天幸)’이었을 뿐이다.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법의 지배(rule of law)’는 권력자가 법을 통치 수단으로 악용하는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를 거부한다. 검수완박 법안은 힘센 자들이 결탁해 ‘법에 의한 지배’를 노린 반민주적 악법의 결정판이다. 문 정부가 합법적 다수결로 민주주의를 무너트린 출발점이 이른바 ‘적폐 청산’이었고 중간 지점이 조국 사태와 언론중재법이었으며 그 종착점이 바로 검수완박이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검수완박으로 법 위의 성역(聖域)인 ‘사회적 특수 계급’을 창설함으로써 대한민국 헌정 질서를 통째로 부인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선 21세기 공화 혁명의 시대 정신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 철학으로 승화되어야만 한다. 공화 혁명의 지상 명제인 협치와 공존은 이념·세대·지역·진영·성별로 쪼개진 한국 사회를 치유할 처방전이다. 그러나 협치와 공존을 내세워 민주주의 파괴 범죄에 눈감아야 한다는 주장은 정치적 선동에 불과하다. 오늘의 시대정신이 거악을 벤 검객 출신 정치 신인(新人)을 대통령으로 불러 올렸다. 공화정의 적(敵)을 혁파하라는 준엄한 시대의 부름에 윤 대통령이 침묵한다면 역사의 소명을 배반하는 것이다.
조선일보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정치철학
05.07 총리 장관 없이 새 정부 출범할 판, 한국 정치 어디까지 추락하나
더불어민주당이 한덕수 총리 후보자 인준을 계속 거부하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은 “총리 없이 새 정부 내각을 출범시키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그동안 한 후보자가 인준을 받으려면 한동훈 법무,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등을 먼저 사퇴시키라고 요구하며 임명 동의안 표결을 거부했다. 자신들이 반대하는 장관 후보자를 막으려고 총리를 인질 삼은 것이다. 새 정부가 총리와 주요 장관 없이 출범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게 됐다.
윤 당선인 측은 장관 임명이 미뤄질 경우 문재인 정부의 장관을 유임시키는 대신 차관 체제로 갈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차관들로는 국무회의를 열 수 없다. 일상적 행정 이외의 주요 정책 결정과 집행이 사실상 마비된다. 경제 세계 10위권 민주국가에서 정당 간 분쟁 때문에 이런 국정 공백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법사위원장을 넘기기로 한 합의도 뒤집고 있다. 민주당은 2020년 총선에서 압승하자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던 관행을 깨고 위원장 자리를 빼앗아갔다. 여론이 악화되자 올해 6월부터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에 넘기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대선에서 패하자 “법사위원장은 야당(민주당)이 해야 한다”고 약속을 뒤집으려 한다. 여당일 때는 여당이 해야 하고, 야당일 때는 야당이 해야 한다고 한다. 법사위원장 자리를 이용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처럼 다른 법안들도 마음대로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들이 주축이 된 정당이다. 그런데 집권 뒤에는 반민주 행태로 일관하고 있다. 게임의 룰인 선거법 변경은 여야 합의로 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정치 도의다. 민주당은 이 도의를 팽개쳤다. 공수처법을 통과시킨다고 소수 정당과 야합하면서 선거법을 누더기로 만들었다. 북한이 요구하는 법까지 만들어 줬다.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검수완박’법을 온갖 편법을 동원해 강행 처리했다. 문 정권과 이재명 전 경기지사, 민주당 인사들의 비리 수사를 막기 위한 방탄법이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이 자기 방탄법을 공포했다. 바로 그 국무회의에서 자신에게 훈장을 주는 안도 의결했다. 우리 헌정사에 이런 대통령이 있었나. 이 전 지사는 현재 대장동 의혹 사건 피의자인데도 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이 됐다. 그래도 국민 절반이 지지한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러니 못 할 일이 없는 것 같다.
아무리 여야가 경쟁하고 싸운다고 해도 일단 정부가 출범하게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해서는 안 될 일들을 마구 하고서 그 때문에 생기는 역풍은 압도적 의석수로 다 막겠다고 한다. 한국 정치는 어디까지 추락해야 하나.
조선일보 사설
05.07 이 정권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는다
대통령 집무실 내줘도 여의도 저항 더 험악해질 것
선거는 끝나도 선거운동은 끝나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은 현재의 정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었다. ‘안개 정국(政局)’이란 1980년대 유령(幽靈)이 스멀스멀 다시 피어나고 있다. 대선 전에도 이 정권이 선거에 패배하면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떠돌긴 했다. 다들 그런 이야기를 지나친 강박증(强迫症)이라며 귓전으로 흘리며 물리쳤다. 이제와 보니 ‘그럴 리가…’ 하던 사람만 순진한 사람이 돼버렸다.
1987년 헌법 체제가 들어선 이후 최초로 퇴임 대통령과 그의 정당이 선거 결과에 사실상 불복(不服)하며 조직적 저항을 벌이고 있다. 되돌아보면 수상쩍은 발자국이 여럿 찍혔다. 대통령은 선거가 끝난 후 기회 있을 때마다 ‘역대 가장 적은 표차(票差)로 당락이 결정됐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순진한 측은 이번에도 ‘그래서 통합과 포용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뒷부분을 강조하기 위해서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문재인 대통령이 ‘통합과 포용’이란 단어를 들먹이는 것은 면구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그게 복선(伏線)이었던 모양이다.
‘근소한 표차’라는 말은 선거 결과의 법적 효력과 아무 관계가 없다. 선거 결과에 담긴 정치적 의미를 새겨보라고 주문할 때 끌어다 쓰는 표현이다. ‘표차’와 ‘법적 효력’을 연결시키면 세상의 모든 민주주의가 무너진다. 미국 대선 경우만 해도 1960년 케네디-닉슨의 표차는 11만표였고 2000년 부시-고어, 2016년 트럼프-힐러리 대결에선 오히려 패자인 고어와 힐러리가 직접 투표에서 각각 53만표·290만표를 앞섰다. 그래도 미국식 선거 제도에 승복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언론에 직접 브리핑하겠다. 광화문 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다’ 했지만 언론을 가장 기피했던 대통령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중 150번 언론 앞에 섰던 데 비해 문 대통령은 10번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던 대통령이 대선 이후 부쩍 얼굴을 자주 나타냈다. 마음에 드는 TV앵커를 불러 몇 시간씩 녹화(錄畫)를 하기도 했다. 자신에 대한 국민 평가와 역사의 평가가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짐승도 마지막 울음은 선(善)하다고 한다. 중소기업 과장도 후임자에게 유익한 교훈을 남겨주고 싶어 한다. 기운을 북돋는 덕담 한마디라도 건네려고 한다. 자신의 업적을 낮춰야 훗날 평가가 올라가는 행운도 누릴 수 있다. 대선 후 대통령의 언행(言行)은 이런 상식을 모조리 뒤집었다.
대통령은 후임자를 향해 ‘위험하다’ ‘걱정된다’ ' 마땅치 않다’ ‘잘 알지도 못하고 한다’는 표현을 예사로 날렸다. 역대 대통령 어느 누구도 이런 뒷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얼굴은 화장해도 뒤태는 꾸밀 수 없다. 이게 화장하지 않은 대통령 본래 얼굴인 듯하다.
대통령은 정권의 업적을 자랑하는 자료를 모으는 국정백서(白書) 편찬위원들 앞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훗날 역사가 알아줄 것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실제는 그 말대로 됐다(평가가 높아졌다)’고 했다.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평가도 그런 전례(前例)를 쫓을 것으로 기대한다면 접는 게 낫다. 노 대통령은 ‘우리 정권은 실패했다’고 했던 대통령이다. 자기 입으로 풍선을 불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자신과 부하들을 지키기 위한 바리케이드 설치 작업에 몰두했다. 대통령과 민주당은 위장 탈당·국회 본회의 시간 당기기·국무회의 미루기 등 동원 가능한 모든 사술(詐術)을 동원해 ‘문재인 법원’이 돼버린 대법원까지 ‘위헌 가능성이 크다’했던 검수완박법을 의결·선포했다. 감옥행(行)이 내다보이던 군부 출신 대통령들이 자존심 때문에 차마 손대지 못했던 일이다.
이 정권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는다. 대통령 집무실을 내줘도 여의도에서 저항은 계속된다. 정부군은 저항군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劣勢)다. 시가전(市街戰) 양상으로 진행되는 인사청문회는 예고편(豫告篇)이다.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서는 이보다 더 한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 2024년 4월 총선까지 이런 상태가 이어질 수도 있다. 한국은 선거는 끝나도 선거 운동은 끝나지 않는 나라가 돼버렸다.
여의도에 당선인 편이 늘어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국민 가운데서 편을 늘려야 한다. 당선인의 인사(人事) 방식과 내용이 마뜩지 않아도 당선된 것만으로도 첫 공(功)은 세운 거라며 입을 닫고 있는 국민들 말이다. 겸손해져야 한다. 국민에게 더 겸손하게 비치는 쪽이 최종 승자(勝者)다.
조선일보 강천석 고문
05.07 한번도 경험 못한 대통령… 그를 기억해야 하는 6가지 이유
조국 사태부터 ‘검수완박’까지
무능하지만 ‘착한’ 문통의 실체

▲일러스트=유현호
‘무능해서 그렇지 사람은 좋다.’ 지난 5년간 우리나라를 통치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제법 있었다. 높은 지위에 있는 분이 무능하면 그거야말로 나쁜 것 아니냐고 반문해 보지만, 그렇게 따지면 좋은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는 반론에 부딪히곤 했다. 내 평가가 너무 박한 것일까 고민하던 차에, 문 대통령이 손석희씨와 나눈 TV 대담을 봤다. 문통 스스로는 퇴임 후 잊힌 사람이 되겠다며 겸손해하셨지만, 이런 분은 우리가 오래 기억해드려야 한다는 뜻에서 대담을 통해 드러난 문통의 실체를 정리해 본다.
1. 나는 절대선이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다 그만둘 때면,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잘한 일도 있을 것이고, 아쉬운 대목도 있기 마련이지만, 물러나는 이들은 대개 후자를 더 강조한다. 자기 업적을 스스로 칭찬하는 건 민망한 일인 데다, 자신이 못 한 일들을 후임자가 해주기 바라서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통은 그 어떤 잘못도 인정하지 않았다. 예컨대 남북 관계는 자신의 재임 기간에 충돌이 한 건도 없었으니 잘한 것이란다. 박근혜 정부 때의 목함지뢰 사건은 ‘충돌’로 치면서 바다에 표류 중이던 공무원이 북한 경비병에 의해 사살된 것은 ‘충돌’이 아니라는 것도 희한하지만, 북한이 우리 재산인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은 대체 뭐란 말인가? 손석희가 이에 대해 묻자 문통은 이렇게 답한다. “그건 비판할 문제가 아니죠. 왜 비판합니까?” 자신이 어떤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는 “위기를 겪었는데 가장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선도 국가로 이끈 대통령”이라고 답한 걸 보면,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 코로나, 미안하고 고맙다
코로나19는 많은 이에게 고통을 준 전염병이었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손석희와의 대담에서 문통은 코로나를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다. 부동산 폭등은 코로나로 인해 유동성이 늘어난 탓이고, 대선 공약이던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지 못한 것도 갑자기 코로나가 터진 탓이다. 기자회견 횟수가 적은 것은 “기자들과 만나려 할 때마다 코로나 상황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이것 말고도 코로나는 조국 사태 이후 지지율 하락을 겪던 민주당에 총선 압승을 안겨줬고,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원천 봉쇄해 주기까지 했으니, 이쯤 되면 문통이 코로나 덕을 봤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3. 핑계의 제왕
물론 문통이 모든 걸 코로나 탓만 할 정도로 편협한 분은 아니다. 한·일 관계가 악화된 것은 “우리 정부는 달라진 게 없는데 일본이 우경화됐기 때문”이며, 정권 초기부터 스스로 약속했던 공직자 임명 시 5대 불가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지금 눈높이와 다른 시대를 산 분들에 대한 망신 주기”라며 오히려 야당의 검증을 문제 삼았다. 가장 참신한 핑계는 민주당이 대선에서 패배해 정권을 내주게 된 것에 대한 소회를 물었을 때 나왔다. 대선 기간 내내 정권 교체 여론은 늘 60%를 상회했으며, 이는 문 정권의 실패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오죽하면 이재명 후보가 문통을 비판하며 거리 두기를 했을까? 그런데 문통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억울한 점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한 번도 링 위에 올라가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마치 (대통령보고) 선거에 졌다고 하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어 보인다.”
4. 불리한 질문은 패스한다
손석희는 민주당이 검수완박을 너무 급하게 밀어붙이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 지난 5년간 뭘 하다가 퇴임 한 달을 앞두고 이러느냐는 말도 덧붙였다. 문통의 대답은 이랬다. “의견을 말하지 않겠습니다.” 손석희가 말한다. “그래도 다시 한번 여쭈어본다면?” “마찬가지입니다.” 신기한 건 자신의 의견도 내놓지 못하는 분이, “검수완박은 저지되어야 한다”는 한동훈 법무장관 후보자의 견해에 대해 비판했다는 점이다. “‘반드시 저지하겠다’ 이런 식의 표현을 쓰는 건 부적절하다.” 실제 한 후보자가 했던 말은 “저지돼야 한다”였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문통이 검수완박을 찬성하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집무실을 옮기는 건 백년대계인데 윤석열 당선인이 여론 수렴도 안 하고 추진한다고 비판해 놓고, 국가의 사법 체계를 뒤흔들 검수완박의 졸속 추진에는 찬성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내로남불 아닐까?
5. 어려운 말은 못 알아듣는다
손석희는 “이 정부의 검찰총장 출신을 유력한 야당 후보로 만든 것도 모두 민주당 정권이 자초한 일이다”라는 심상정의 말을 인용하며 “듣기에는 아픈 지적인 것 같다”고 말한다. 문통이 답한다. “그러면 다른 출신이면 괜찮은 건가요?” 검찰총장을 탄압해 오히려 대선 후보로 키워줬지 않느냐는 질문에 출신을 이야기하다니, 손석희는 당황한다. “그 뜻으로 말씀드린 게 아니라.” “그러니까 지금까지 검찰총장 출신이 없었기 때문에 검찰총장이라는 게 별로 좋은 조건은 아니죠.” 손석희가 다시 설명하지만, 문통은 여전히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다. “통합의 정치를 하라고 하면서 우리 정부에 몸담았던 사람은 상대 당으로 가서는 안 되는 것도 아닐 테고.” 손석희는 더 묻는 것을 포기하지만, 문통은 동문서답의 쐐기를 박는다. “검찰총장이 임기가 보장돼 있는데, 중도에 관두고 간 것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6. 만만한 윤석열, 두려운 김정은
대담을 하는 동안 문통은 여러 차례 윤 당선인을 비판했다. 손석희는 이로 인해 신구(新舊) 권력 간에 갈등이 유발되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 “새 당선인 측이 발언하니까 그냥 입 닫고 가만히 있는다, 그래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반대 의견을 밝히는 것이 갈등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문통이 김정은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평가하지 않겠다. 지금은 평가하기에 적절한 국면이 아니다.” 탁현민에 따르면 문통은 대담 후 무척 만족해했단다. 여기서 문통의 또 다른 특징을 알 수 있다. 다른 이를 열 받게 함으로써 자신은 행복해한다는 것. 결국 그는 검수완박법을 통과시켰다
조선일보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05.09 잊히고 싶다지만, 잊기 힘든 文대통령
정권 내내 통계 논란
끝까지 성과 분칠
잘한 건 내 덕, 못한 건 남탓
5년 요약판 보여준 마지막 2주
문재인 대통령이 오늘 청와대를 떠난다. 임기 마지막 날 비판 글을 쓸 생각은 없었다. 마음을 바꾼 건 끝났는데 끝내지 않는 문 대통령의 ‘뒤끝’ 발언 때문이었다. 문 정부는 역대 최대 분량의 국정 백서를 냈다. 22권, 1만1944쪽이라고 한다. 유독 통계 왜곡 논란이 많았던 정부라 방대한 백서에 또 얼마나 통계 분칠이 많을까 싶었다. 문 대통령이 2주 전 방영된 손석희 전 앵커와 인터뷰에서 “경제 성과에 대해 온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며 제시한 경제 지표부터 그랬다. 떠나는 건 떠나는 거고 팩트(사실)는 짚어야겠다.
① “공정 정의 평등을 가늠할 지표는 객관적으로 좋아졌다”=문 대통령이 손석희씨에게 이 말을 하는 동안 화면에 그래프가 떴다. 소득 5분위 배율(상위 20%와 하위 20%의 소득 비율)이 2017년 6.96배에서 2020년 5.85배로 낮아진 그래프였다. 이를 근거로 문 대통령은 5년 긴 시기로 분배가 개선됐는데 처음에 잠깐 일자리 줄고 분배지표 악화됐던 고정관념 때문에 내내 잘못 평가받았다고 했다. 정말 그럴까.
통계청은 분배지표를 두 가지 소득으로 집계한다. 자기 힘으로 벌어들인 시장소득, 정부에 세금 냈거나 세금 지원 받은 후의 가처분소득, 두 가지다. 문 대통령이 띄운 건 가처분소득의 분배지표였다. 문 정부에서 시장소득의 분배지표는 악화됐다. 시장소득 5분위 배율은 2015년 10.41배에서 2020년 11.37배로, 상대적 빈곤율은 19.5%에서 21.3%로 높아졌다. 소득 주도 성장을 하겠다며 정권 초반에 최저임금 인상 등에서 폭주했다. 약자를 더 힘들게 만든다고 정책 부작용을 우려하는 경제단체 임원을 향해 대통령이 “사회적 양극화를 만든 주요 당사자”라고 좌표를 찍었고 친여 성향 언론들이 일제히 그를 공격했다. 하지만 진짜로 분배 지표가 나빠지자 통계청장 바꾸고 통계 집계 방식까지 바꿔 논란을 키웠다. 5년간 시장소득의 분배지표는 개선되지 않았다. 대통령은 세금 지원으로 개선된 가처분소득의 분배지표만 보여줬다. 당연히 정부가 세금으로 어려운 사람 돕고 분배를 개선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정책 실패로 인한 타격을 없던 걸로 만들지는 못했다.
② “부동산 가격 상승은 세계적 현상, 우리나라는 상승이 작은 편이다”= “부동산 문제는 여러 번 죄송하다고 말한 적 있다”면서도 문 대통령은 집값 폭등을 코로나로 늘어난 유동성 탓, 1인 가구 증가 탓으로 돌렸다.
2021년 3분기 집값 상승률이 OECD 평균의 절반도 안 되는 그래프를 근거로 제시했다. 비슷한 시기에 정반대 국제 통계가 존재한다. 글로벌 부동산업체가 발표한 2021년 3분기 주택가격 지수에서 한국은 1년 만에 23.9% 상승으로 조사 대상 56개국 가운데 1위였다. 문 정부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 못한 부동산 공식 통계만 고집하다가 부동산 실책을 더 키웠다. 국토부 장관은 “집이 부족하지 않다” “집값이 별로 안 올랐다”고 했는데 집값 상승이 전국 곳곳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허겁지겁 공급 대책을 내놨다. 그건 코로나 이전 상황이다. 이후로는 늘어난 유동성 때문에 집값 상승이 멈추질 않았다.
5년 내내 이런 공방이 반복됐다. 통계를 객관적으로 읽고, 통계에 반영 안 되는 현실도 발 빠르게 파악해 정책 눈높이를 맞추라고 경제 전문가들의 고언이 쏟아졌지만 문 정권에는 ‘소 귀에 경 읽기’였다. 마지막 인터뷰에서까지 문 대통령은 ‘고정관념’ ‘프레임’ ‘저쪽’ 같은 단어를 썼다. 정치적 공격으로 자신의 경제 치적이 저평가 받는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랏빚 1000조원 돌파’ 같은 나쁜 성과 말고 좋은 경제 지표도 있다. 문 대통령은 1인당 국민소득 3만5000만달러, 세계 10위 경제 규모를 달성했다고 자랑했다. 환율 효과가 꽤 있었다거나 우리보다 더 잘한 대만에 1인당 국민소득이 19년 만에 밀렸다든가 하는 등의 ‘팩트 폭격’으로 그 성적표에 흠집 낼 생각은 없다. 다만 세계 12위에서 10위로 두어 단계 올라간 성과, 3만불 문턱에서 3만5000불까지 치고 올라간 5년 성과를 인정받고 싶다면 그에 앞서 문 대통령이 먼저 인정해야 할 것이 있다. 문 대통령 이전, 최빈국 대열에서 소득 3만불, 세계 12위 경제 대국에 도달하기까지 대한민국의 빛나는 70년 역사부터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것이다. 그 초석을 놓은 이승만, 박정희 등 역대 대통령들의 공로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 놀라운 성취와 정통성을 문 대통령 진영은 왜 그토록 납득 못하게 깎아내렸는지도 설명해야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퇴임 후 잊힌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마지막 보름 새, 5년을 압축해 보여준 놀라운 언행들은 그를 잊고 싶어도 잊기 힘든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조선일보 강경희 논설위원
05월 09일 과거 부정하고 현재 탕진하고 미래 발목 잡은 文 5년
문재인 제19대 대통령의 임기가 9일 밤 12시 종료되고, 문 대통령은 자연인으로 돌아간다. 문 대통령은 5년 동안 국정의 무거운 짐을 지고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심초사했을 것이다. 따라서 떠나는 대통령에게 그간의 노고에 대한 위로와 덕담을 건네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의례적 인사로 마무리하기에는 경제·안보·법치·국민통합 등 전방위 국정 실패가 너무 심각하다.
문 대통령은 5년 전 취임사에서 “2017년 5월 10일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된 날로 기록될 것”이라며 그런 통합 위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위대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정반대였다. 행정·사법부에 걸친 무분별한 코드·지역 인사 등으로 임기 막판까지 국민을 극도로 분열시킨 것을 비롯해, 시장경제를 왜곡한 소득주도성장, 매국적이라고 할 만큼 국익을 훼손한 탈원전, 대다수 국민을 괴롭힌 주택정책, 무차별 현금 살포와 국가 부채 급증, 대북 굴종 정책으로 안보 위기 조장, 권력 연루 범죄 수사를 막기 위한 법치 시스템 파괴 등 비근한 것만 모아도 ‘칠대지악(七大之惡)’이라고 할 만하다.
이런데도 문 대통령은 9일 퇴임 연설을 통해 자화자찬과 변명으로 일관했다. 문 대통령은 “탄핵이라는 적법 절차에 따라 정부를 교체하고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고 했지만, 지난 5년은 ‘내로남불’과 ‘검수완박’만으로도 알 수 있을 만큼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는 퇴보했다. 문 대통령은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한반도 시대에 대한 희망을 키웠다”고 했다. 그러나 김정은은 문 대통령의 대북 굴종적 행태를 이용하면서 핵무기 개발을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고, 그로 인한 안보 위기가 고스란히 윤석열 정부로 넘어가게 됐다는 점만 봐도 거짓말이다. 코로나 위기에도 대한민국이 이 정도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과거에 이룩한 성취와 위대한 국민의 노력 덕분인데도 마치 문 정부의 공(功)처럼 생색을 냈다.
현 정권은 이승만·박정희 정권이 마치 친일 잔재인 것처럼 주장하며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국과 한강의 기적 같은 과거 성취를 부정하고, 북한에 더 정통성이 있는 것 같은 주장을 서슴지 않았다. 시급한 노동·연금·공공 개혁은 회피하면서 현금 살포와 연금·기금 낭비 등으로 현재를 탕진했다. 엄청난 국가부채는 청년세대로 떠넘기면서 친노조·반기업 정책으로 번듯한 청년 일자리를 없애 미래의 발목을 잡았다. 건국 이후 지금까지 정통성이 취약한 정권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나라를 퇴행시킨 정권은 없었다.
문화일보 사설
05월 09일 권력형 비리 수사, 예외 없어야 한다

서정욱 변호사
前 영남대 로스쿨 교수
문재인 정권의 퇴장과 함께 또다시 ‘적폐청산’과 ‘정치보복’ 프레임으로 신구 권력 간 전면전이 벌어진다.
먼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후보 시절 “문재인 정권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법에 따라,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법무장관 후보자로 ‘조선 제일검(劍)’으로 평가되는 최고 특수통 검사 한동훈을 지명했다. 이에 수사의 칼바람이 휘몰아칠 것이란 공포를 느낀 구 권력은 임기 종료 6일을 남겨 놓고 74년 국가 형사사법체계를 뒤집는 ‘검수완박’을 국회 표결, 국무회의 의결, 공포까지 단 4시간 만에 해치웠다. 법제사법위원장을 국민의힘에 넘겨주겠다는 약속도 헌신짝처럼 뒤집었다. 국정 파행과 법치 파괴의 화룡점정이다.
‘적폐청산’과 ‘정치보복’, 두 개념은 종이 한 장 차이로 흔히 내가 하면 적폐청산, 남이 하면 정치보복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내로남불 프레임) 이 두 개념은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미래지향적인 시스템 개혁 과정에 우연히 범죄가 발각돼 외과수술처럼 신속하고 정확하게 환부만 도려내면 적폐청산이다. 반면, 미리 결론을 내려놓고 역으로 꿰맞추기, 먼지털이, 별건 수사를 통해 정당화시키면 정치보복이다. 살아 있는 권력 눈의 대들보는 보지 않고 죽은 권력 눈의 티만 보는 것도 정치보복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정의·공정·상식이 지배하는 법치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이미 명백히 드러난 범죄에 대해서는 미래의 시스템 개혁 차원에서 철저한 수사와 엄정한 처벌이 필요하다. 협치와 통합이라는 미명으로 썩은 환부를 도려내지 않고 방치하면 결국 ‘부패완판’(부패가 완전 판친다)으로 나라 전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공소장에 35번 언급되는 송철호 울산시장 부정선거 사건에 대한 정확한 진상 규명과 엄정한 처벌 없이 어떻게 청와대 등 공직자의 선거 중립을 확보하겠는가. 또한, 국가 곳간을 좀먹은 이재명 부부의 국고 손실 혐의를 철저히 조사하지 않고 어떻게 국가 재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겠는가.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각 부처 블랙리스트, 타이 이스타항공, 대장동 의혹, 성남FC 후원금 등 산적한 정권 비리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거악이 척결되지 않고 암장된다면 어떻게 나라가 바로 서겠는가.
문 정권은 그동안 초유의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와 수사, 마구잡이로 휘두른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수사팀의 공중분해 등 법치국가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수단들을 동원해 자신들의 적폐를 덮어 왔고 급기야 입법 쿠데타, 입법 테러를 통해 검수완박 입법까지 자행했다. 이러한 법치 파괴 상태를 바로잡지 않고 어떻게 국민 전체가 하나 돼 미래로 일로 매진(一路邁進)하겠는가.
독일의 법철학자 루돌프 폰 예링은 “저울이 없는 칼은 사실 그대로 폭력이고, 칼이 없는 저울은 법의 무기력”이라고 갈파했다. 부디, 새 정권이 한 치의 자의도 없는 엄정한 저울과 정의의 칼로 권력형 비리를 발본색원해 실질적인 법치를 굳건히 세워 주기를 기대한다. ‘영원히 강한 나라도, 영원히 약한 나라도 없다. 법을 받드는 사람이 강해지면 나라가 강해지고, 법을 받드는 사람이 약해지면 나라가 약해진다’는 한비자의 경구를 깊이 새겨야 할 때다.
문화일보
05.10 최악 정치·경제·안보 상황서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역대 당선인 신분으로서는 처음으로 6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내 새로 마련된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안보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당선인 대변인실 제공/뉴스1
윤석열 정부가 10일 대통령 취임식을 갖고 공식 출범한다. 윤 정부는 문재인 정권의 실정(失政)에 대한 실망감과 정권교체의 열망으로 탄생했다. 지난 5년간 상식과 정도를 벗어난 내로남불 국정 운영을 바로잡아 달라는 국민들의 기대가 그만큼 높다. 하지만 지금 새 정부가 직면한 정치·경제·안보 상황은 1998년 외환위기 속에 출범한 김대중 정부 이후 최악이라는 평가가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미국의 급격한 긴축 정책과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세계 경제 전체가 침체 국면으로 빠지고 있다. 물가와 환율, 유가가 동시 급등하는 ‘신(新) 3고’도 뚜렷하다. 국가 부채는 지난 5년간 415조원이나 늘었고, 가계부채도 급증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도 다시 들썩인다. 김정은은 육성으로 ‘선제 핵 타격’을 위협했다. 잇단 미사일 도발에 이어 전술핵 실험(7차)도 이어질 조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퇴임사에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북핵 위협에 시달리고 부채 늪에 빠져 경제 삼각 파도에 흔들리는 게 현실이다.
거야(巨野)인 민주당은 한덕수 총리 후보자 인준과 내각 출범을 사실상 막고 있다. 새 정부의 정책도 일일이 제동을 걸 태세다. 코로나 거리 두기는 해제됐지만 언제 변이가 재창궐할지 모른다. 사방이 난제다.
윤석열 정부는 ‘3고’에 맞서 물가를 잡고 금융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 규제 완화와 민간 기업 중심의 혁신 성장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는 것도 큰 과제다. 민간에 부동산을 원활히 공급하고 과도한 세금은 낮추되 집값이 다시 오르는 것은 막아야 한다. 탈원전으로 망가진 원전 산업을 되살리고 국가 에너지 계획도 다시 짜야 한다.
코로나 피해 구제와 일자리 대책이 시급하지만 나라 곳간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지키기 힘든 공약과 정책은 욕 먹을 각오로 국민에게 솔직하게 이해를 구했으면 한다. 고갈 위기를 맞은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심각한 저출산 고령화의 해법도 찾아 나가야 한다. 모두가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어려운 과제들이다.
북한은 새 대통령 취임 때마다 어김 없이 핵·미사일 도발을 해 왔다. 핵 위협이 현실화하면 우리 혼자 힘으론 막을 방법이 없다. 핵은 핵으로만 막을 수 있다. 미국과 북핵을 막을 실질적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문 정부 5년간 형식화돼버린 한미 동맹을 복구하고 역대 최악인 한일 관계, ‘3불’ 저자세로 일관한 한중 관계도 모두 정상화해야 한다.
이 모든 일을 제대로 하려면 끊임 없이 국민의 뜻을 살피고 소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국민의 지지와 동의 없이는 어떤 정책도 펴기 힘들다. 청와대를 떠나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긴 취지가 바로 그것일 것이다. 윤 대통령은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해야 할 책무를 지고 있다. 대선에서 0.73%포인트, 24만7000표 차 승리의 의미를 항상 되새겨야 한다. 내 편만 챙기는 국정을 해선 안 된다. 내로남불이 아니라 공정과 상식, 원칙을 지키는 모습을 국민은 바라고 있다.
야당이 횡포를 부리고 발목을 잡아도 계속 대화하고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 길을 가겠다’는 오기의 정치는 갈 길을 스스로 막을 수 있다. “야당의 양식 있고 합리적인 의원들과 멋진 협치를 하겠다”던 약속을 제대로 실천한다면 야당도 바뀔 수 있고 국민도 박수 칠 것이다. 성과를 내기 위해 조바심을 내면 낭패를 볼 수 있다. 쇠고기 협상을 서두르다 ‘광우병 파동’을 부른 전철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당선 후 “항상 소통하고 언론 앞에 자주 서겠다”고 한 초심도 잊지 말아야 한다. ‘불통의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만 듣지 않아도 큰 성과일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5.10 새 정부로 넘어온 매년 17조원 사회보험 적자 폭탄

▲사회보험 적자보전금 추이
올해 건강·고용보험 등 4대 사회보험과 공무원·군인 연금 적자를 메우는 데 들어가는 세금이 17조원이 넘는다는 국회 예산정책처 추계가 나왔다. 연 3조원대에 달하는 공무원 연금 적자는 과거부터 있던 문제지만, 사회보험 적자는 문재인 정부 들어 급격히 불어났다. 문 정부가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 범위 확대, 실업급여 지급액 인상, 치매 국가책임제 같은 선심 정책을 과도하게 남발했기 때문이다.
국민의 보험료 부담도 크게 늘었다. 사회보험료가 연 138조원(2020년 기준)으로 문 정부 출범 전보다 34조원(32%)이나 불어났다. 이렇게 보험료를 올렸는데도 국회 예산정책처는 현재 17조원 정도 남아 있는 건보 적립금이 2024년엔 바닥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고용보험 재정은 이미 거덜이 났다. 문 정부 출범 전엔 고용보험 적립액이 10조원 이상 쌓여 있었는데 5년 만에 바닥이 났고,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7조원 빌려와 적자를 메우는 실정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사회보험료를 대폭 올리지 않으면 적자 보전액이 매년 12%씩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성장률이 2~3%에 불과한 한국 경제가 이를 어떻게 감당하나. 문 정부는 지속 불가능한 사회보험 지출 구조를 만들어 놓고 뒷감당은 다음 정부로 떠넘겼다. 미래 세대를 약탈하지 않으려면 국민에게 사회보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알리고, 만성적인 적자 구조를 하루빨리 수술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5.10 문재인의 무책임, 윤석열의 책임
前 정부 무책임한 개혁 남발
국민만 피곤하게 만들어
새 정부는 거창한 개혁보다
작은 일부터 책임지는 정치를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을 하루 앞둔 9일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될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 대한민국 대통령의 상징인 봉황(鳳凰)과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 현수막이 설치되어 있다./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오늘부터 1826일의 임기를 시작한다. 새 정부는 뭔가를 ‘개혁’하려 애쓰기보다 뭐든지 ‘책임’지는 자세를 먼저 보여줬으면 한다.
문재인 정부 5년은 ‘무책임한 개혁의 시대’였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문 전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개혁을 거론한 자리가 137회 검색된다. 한 달에 두 번꼴이 넘는다. 취임식 땐 ‘재벌 개혁’만 언급했다. 이후 검찰 개혁, 경찰 개혁, 국정원 개혁, 사법부 개혁, 이 모두를 아우르는 권력기관 개혁이 뒤따랐다. 국방 개혁, 교육 개혁, 언론 개혁이 이어졌고 경제 분야에서 규제 개혁, 재정 개혁, 세제 개혁, 부동산 개혁, 공정경제 개혁, 농정 개혁, 일자리 개혁이 언급됐다. ‘한국판 뉴딜 법·제도 개혁’이란 것도 추진했고, G20 정상회의에 가서는 ‘WTO 개혁’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촛불혁명’이 진짜 혁명이 아니었듯, 문재인 정부의 개혁도 개혁의 외피를 두른 정치 투쟁에 불과했다고 본다. 국민은 개혁 때문에 피곤해졌고,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개혁은 주체와 대상이 다르다. 주체의 시선이 대상을 겨눈다. 개혁을 빌미로 정적을 공격하거나 자신에게 불리 또는 불편한 제도와 기구를 뜯어고친다.
우리 헌법에 대통령이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 대통령의 ‘책무’로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 수호를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국가기관이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것은 국민 주권의 당연한 결과다.
책임은 시선을 내부로 돌린다는 점에서 개혁과 대척점에 있다. 내가 법을 어기고 있지 않은지, 행동이 도덕적으로 옳은지, 이렇게 해도 정치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등을 살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많은 경우 책임을 외면하고 회피했다. 매일 2000억원씩 빚을 내 국가 채무 1000조원 시대를 열어놓고 다음 정부는 재정 지출 증가율을 5% 이내로 억제하라는 준칙을 만들었다. 탈원전 때문에 한전 적자가 늘어도 전기 요금 인상을 막고 대선 후 새 정부가 올려 받으라고 했다. 꼭 필요했지만 표가 안 되는 연금 개혁, 노동 개혁은 쳐다도 안 봤다. 서해 피살 공무원 유족에게 정보 공개 약속을 지키지 않아 고3 학생으로부터 “무책임하고 비겁하다”는 말까지 들었다.
문재인 정부는 책임에 관해 ‘최저기준의 원칙’을 적용했다. 정치·도의적 책임은 무시했다. 합법이냐 불법이냐만 따졌다. 불법이 드러날 것 같으면 개혁의 이름으로 법을 바꿨다. ‘검수완박’이 한 예다.
요즘 민주당은 무책임한 정치가 어떤 모습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대선에 패한 지 2달 만에 대통령 후보는 국회의원에, 당 대표는 서울시장에 출마했다. 이재명 전 경기지사는 책임이란 말을 아예 다른 뜻으로 쓰는 듯하다. 자기가 시장을 지낸 분당을 버리고 민주당 지지세가 강해 출마가 곧 당선이라는 지역으로 가면서, ‘나의 패배로 당이 어려워졌으니 그 책임을 지기 위해 출마한다’는 논리를 폈다. 이 전 지사가 당선돼 불체포특권을 누리고, 문 전 대통령이 경남 양산에 내려가 새 정부 발목을 잡을 때 민주당식 무책임 정치는 완결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런 행태가 상식에 목 타는 국민을 자극해 윤 대통령이 오늘 취임식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보수 정치의 핵심은 국가 존립과 국민 안위에 대한 책임감이다. 윤 대통령은 불필요한 개혁을 내세워 국민을 피곤하게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그저 자신의 직무 수행에 대한 모든 법적·정치적·도덕적 책임을 온전히 지겠다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그것이 상식과 공정의 시작이며 전임 대통령의 무책임이 훼손한 헌법 가치를 바로 세우는 헌법 수호의 출발점이다.
조선일보 황대진 기자
05.10 尹대통령, 묵묵히 한국 빛낸 20人과 취임식 무대 오른다
오늘 尹대통령 취임식… 국민 희망대표 손잡고 소통 메시지
대구 키다리 아저씨, 깐부 할아버지, 13남매 엄마, 청년사업가…
2030세대와 사회 통합·발전, 공동체 헌신한 각계 인물들 선정

윤석열(尹錫悅) 대통령이 10일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회 앞마당에서 진행되는 취임식에서 시민들 사이로 걸어서 입장한 뒤 ‘국민 희망 대표’ 20명과 손을 잡고 함께 단상에 오른다. 윤 대통령 측은 “국민 속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 소통하려는 윤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했다.
‘국민 희망 대표’에는 교통사고로 왼팔을 잃었지만 피트니스 선수로 재기에 성공한 김나윤(29)씨, 10년간 익명으로 매년 1억원씩 기부해 ‘키다리 아저씨’로 불린 박무근(73)씨, 13남매(5남 8녀)의 엄마 엄계숙(58)씨, 60여 년 연기 외길을 걸어온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오영수(77)씨 등이 포함됐다. 박주선 대통령취임준비위원장은 “제20대 대통령의 의미를 담아 20명을 선정했다”며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대한민국을 빛내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들은 ‘2030′ ‘사회 통합’ ‘공동체 헌신’ ‘사회 발전’ 등의 각 범주에서 추천된 인물들 가운데 선정됐다. 디지털 성폭력 가해 ‘박사방’ 주범을 일망타진한 경찰 남궁선(44)씨, 코로나로 격리된 할머니와 방호복 차림으로 화투를 친 간호사 송주연(47)씨, 국내외에 농업 스타트업을 전수하는 사업가 김혜연(37)씨 등도 포함됐다. 탈북자 이은영(47)씨, 귀화인 인대위(데이비드 린튼·50)씨, 캄보디아 결혼 이민자 박채은(35)씨도 윤 대통령과 함께 연단에 오른다.
윤 대통령 임기는 10일 0시 서울 보신각에서 20명의 ‘국민 대표’가 33번 타종을 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타종 행사에 참여한 ‘국민 대표’ 20인도 독립운동가 손자 엄일용(43)씨, 청년 창업가 김도혜(26)씨, 파독 광부 출신 권이종(82)씨 등 각 지역, 성별, 계층을 대표하는 인물로 선정됐다.
같은 시각 윤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 집무실 지하에 마련된 국가위기관리센터 상황실에서 합참 지휘통제실로부터 전화 보고를 받으면서 대통령으로서의 첫 업무를 시작했다. 윤 대통령은 10일 취임식에 참석하기에 앞서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한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는 자유와 인권, 공정의 가치를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김동하 기자
05.10 윤석열 정부 출범, 국민 통합과 상생의 새 역사 쓰길

▲윤석열 대통령. 뉴스1
무역적자, 고물가 등 ‘퍼펙트 스톰’ 우려
여소야대 속 성과 내려면 협치 필수적
야당 만나고 탕평 필요, 실용의 길 가야
윤석열 정부가 오늘 닻을 올린다. 20대 대통령 취임식이 국회에서 열리고 ‘윤석열 대통령의 시간’이 시작된다. 대한민국호는 전쟁의 참화를 딛고 산업화와 민주화의 여정을 지나왔다. 이제 직선제 개헌 이후 국회 경험이 없는 첫 ‘0선’ 대통령의 등장이라는 새로운 변화의 길에 접어들었다. 윤석열 정부가 한국 정치에 어떤 의미와 파장을 던질 것인지 주목된다.
대내외 경제 여건은 심상치 않다. 외환위기 극복 과제를 안았던 김대중 정부 못지않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 등 3중 악재가 진행형이고, 미·중 갈등과 미국의 고강도 긴축 행보가 경기 둔화로 이어질 조짐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여파로 전 세계 공급망에 차질을 빚고, 에너지 가격이 뛰면서 무역수지 적자가 커지는 등 여러 악재가 동시에 발생하는 ‘퍼펙트 스톰’이 몰려오고 있다.
상황이 엄중한 만큼 새 정부는 경제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국가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수도권 민심 이반을 부른 부동산 문제도 시한폭탄이다. 임대차법 시행으로 2년 전 계약을 갱신한 세입자들이 올여름부터 새로 계약하면서 전셋값 급등에 맞닥뜨릴 조짐이다. 아파트 ‘영끌족’도 고금리의 직격탄을 맞을 처지인 만큼 선제 대책이 필요하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서 국내 기업 300여 곳은 성장동력 회복을 새 정부의 우선 과제로 꼽았다. 윤 대통령은 시장과 민간을 중시하고 규제를 혁파하겠다는 공약을 실천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성과를 내야 한다.
민생 문제 해결은 새 정부의 의지만으로 달성하기 어렵다. 과반을 훨씬 넘는 압도적 의석을 가진 야당 더불어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법안 하나 국회 문턱을 넘기 어렵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처리와 1기 내각 인사청문회 정국에서 보듯 여야가 극렬하게 대립하면 국민 통합은 요원해진다. 특히 코앞으로 다가온 6·1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로 갈등이 첨예해질 우려가 있다.
진영과 세대·젠더·지역 등으로 갈라진 민심을 한데 모아 통합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윤 대통령이 특단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스스로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꼽은 ‘링컨의 리더십’에 답이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을 비판하던 인물을 요직에 앉히고, 개헌안 통과를 위해 밤늦게까지 야당 의원 집을 찾아가 소통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여야 원내대표 협의체에서 국회 현안을 결정토록 한 것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DJP 연합’으로 집권한 뒤 보수 인사에게 경제와 통일부 장관 등을 맡긴 탕평 인사도 시사점을 준다.
윤 대통령은 0시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지하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합동참모본부의 보고를 받는 것으로 첫 직무를 시작했다. 탄도미사일 발사에 이어 북한이 오는 21일 한·미 정상회담에 맞춰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한·미 간 신뢰를 한층 공고히 다져야 한다. 윤 대통령은 말로는 상생과 협치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자기 진영만을 위한 정치로 국민을 절망케 한 문재인 정부의 과오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편 가르기를 통해 세를 유지해 온 구태 정치를 끊어내야 한다. 국민 삶을 나아지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실용과 상생의 여정에 나서기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
05.10 윤석열 대통령의 하루...“국민이 주인인 나라, 국민과 함께 만들어 나갈 것”
윤석열 대통령이 오늘(10일) 0시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국가위기관리센터(지하벙커) 상황실에서 국군통수권을 이양받는 것으로 제20대 대통령 임기를 시작했다. 윤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와 함께 국립현충원 참배 후 국회로 이동, 오전 11시 취임식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자유, 인권, 공정, 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하고 존경받는 나라를 위대한 국민 여러분과 함께 반드시 만들어 나갈 것” 이라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 취임식 하루를 라이브로 업데이트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시민들과 인사하며 이동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10일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배웅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취임식을 마친 뒤 문재인 전 대통령을 배웅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청와대 개방 행사 현장 중계...청와대 74년만에 국민에 개방

▲국민대표 74인을 비롯한 시민들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에 들어서고 있다. 청와대 개방은 74년 만에 처음이다. 인수위사진기자단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고 있다. 김성룡 기자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750만 재외동포 여러분 그리고 자유를 사랑하는 세계 시민 여러분.
저는 이 나라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고, 국제사회에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나라로 만들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을 갖고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역사적인 자리에 함께 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문재인, 박근혜 전 대통령, 그리고 할리마 야콥 싱가포르 대통령, 포스탱 아르샹쥬 투아데라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왕치산 중국 국가부주석,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인도네시아 전 대통령, 더글러스 엠호프 해리스 미국 부통령 부군, 조지 퓨리 캐나다 상원의장,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경축 사절과 내외 귀빈 여러분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자리를 빌려 지난 2년간 코로나 펜데믹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큰 고통을 감내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헌신해주신 의료진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세계 시민 여러분
지금 전 세계는 팬데믹 위기, 교역 질서의 변화와 공급망의 재편, 기후 변화, 식량과 에너지 위기, 분쟁의 평화적 해결의 후퇴 등 어느 한 나라가 독자적으로, 또는 몇몇 나라만 참여해서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들에 직면해 있습니다. 다양한 위기가 복합적으로 인류 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국내적으로 초저성장과 대규모 실업, 양극화의 심화와 다양한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 공동체의 결속력이 흔들리고 와해되고 있습니다.
한편,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정치는 이른바 민주주의 위기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반지성주의입니다.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합리주의와 지성주의입니다.
국가 간, 국가 내부의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우리가 처해있는 문제의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우리 국민은 많은 위기에 처했지만 그럴 때마다 국민 모두 힘을 합쳐 지혜롭게, 또 용기있게 극복해 왔습니다. 저는 이 순간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책임을 부여받게 된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우리 위대한 국민과 함께 당당하게 헤쳐 나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또 세계 시민과 힘을 합쳐 국내외적인 위기와 난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세계 시민 여러분
저는 이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 우리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자유’입니다. 우리는 자유의 가치를 제대로, 그리고 정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자유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합니다.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자유로운 정치적 권리, 자유로운 시장이 숨 쉬고 있던 곳은 언제나 번영과 풍요가 꽃 피었습니다. 번영과 풍요, 경제적 성장은 바로 자유의 확대입니다.
자유는 보편적 가치입니다.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이 자유 시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이 방치된다면 우리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자유마저 위협받게 됩니다.
자유는 결코 승자독식이 아닙니다. 자유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준의 경제적 기초, 그리고 공정한 교육과 문화의 접근 기회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런 것 없이 자유 시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의 자유가 유린되거나 자유 시민이 되는데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모든 자유 시민은 연대해서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개별 국가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기아와 빈곤, 공권력과 군사력에 의한 불법 행위로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고 자유 시민으로서의 존엄한 삶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모든 세계 시민이 자유 시민으로서 연대하여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자유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공정한 규칙을 지켜야 하고, 연대와 박애의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내 문제로 눈을 돌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향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나친 양극화와 사회 갈등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할 뿐 아니라 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도약과 빠른 성장을 이룩하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빠른 성장 과정에서 많은 국민이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고, 사회 이동성을 제고함으로써 양극화와 갈등의 근원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도약과 빠른 성장은 오로지 과학과 기술, 그리고 혁신에 의해서만 이뤄낼 수 있는 것입니다. 과학과 기술, 그리고 혁신은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우리의 자유를 확대하며 우리의 존엄한 삶을 지속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과학과 기술, 그리고 혁신은 우리나라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달성하기 어렵습니다.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으로써 과학 기술의 진보와 혁신을 이뤄낸 많은 나라들과 협력하고 연대해야만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세계 시민 여러분
자유민주주의는 평화를 만들어내고, 평화는 자유를 지켜줍니다. 그리고 평화는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는 국제사회와의 연대에 의해 보장이 됩니다. 일시적으로 전쟁을 회피하는 취약한 평화가 아니라 자유와 번영을 꽃피우는 지속 가능한 평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전 세계 어떤 곳도 자유와 평화에 대한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지금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한반도뿐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서도 그 평화적 해결을 위해 대화의 문을 열어놓겠습니다.
그리고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북한 경제와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계획을 준비하겠습니다.
북한의 비핵화는 한반도에 지속 가능한 평화를 가져올 뿐 아니라 아시아와 전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도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지금 우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 그룹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와 인권의 가치에 기반한 보편적 국제 규범을 적극 지지하고 수호하는데 글로벌 리더 국가로서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시민 모두의 자유와 인권을 지키고 확대하는데 더욱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국제사회도 대한민국에 더욱 큰 역할을 기대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국내 문제와 국제 문제를 분리할 수 없습니다. 국제사회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주도적으로 수행할 때 국내 문제도 올바른 해결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자유, 인권, 공정, 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하고 존경받는 나라를 위대한 국민 여러분과 함께 반드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에서 참석 내빈과 함께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05월 10일 빠른 성장’ ‘지속 가능한 평화’ 강조한 尹대통령 취임사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국회에서 취임식을 갖고 청와대가 아닌 국방부 청사에 마련한 새 대통령실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74년 만에 북악산 자락의 청와대를 나와 ‘용산 시대’를 개막한 윤 대통령은 이날 0시 집무실 지하벙커에 마련된 국가위기관리센터 상황실에서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로부터 군 통수권을 이양받는 것으로 5년 임기를 시작했다.
취임사는 구체적 정책보다 정치철학과 국정철학을 밝히는 데 역점을 두었다. 국민과 750만 재외동포뿐만 아니라 ‘자유를 사랑하는 세계 시민’을 함께 지칭함으로써 글로벌 인식과 역할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표시했다. 취임사 모두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고 국제사회에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나라로 만들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을 가지고 이 자리에 섰다’고 밝혔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대한민국 헌법 정신의 회복과 수호에 진력할 것임을 밝힌 것으로, 지난 5년 동안 대한민국 정체성과 정통성이 위협 받았음을 고려할 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윤 대통령은 국정 방향으로 경제 분야에서는 ‘도약과 빠른 성장’, 안보 분야에서는 일시적 거짓 평화가 아닌 ‘지속 가능한 평화’를 특별히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부동산 폭등, 코로나 장기화로 인한 민생회복을 위해선 ‘과학과 기술, 그리고 혁신에 의해서만 이뤄낼 수 있다’며 빠른 성장을 위한 역점 분야도 제시했다. 재정을 통한 세금 일자리, 포퓰리즘식 퍼주기라는 문 정권 정책과 달리 실질적 성장을 이뤄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달성하는 성장만이 ‘자유를 확대하고 존엄한 삶을 지속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윤 대통령의 시각은 옳다.
또, 북한의 비핵화 말만 믿고 남북·미북 협상을 벌였지만 실질적인 성과가 없었던 전 정권의 대북 정책과는 달리 ‘국제사회와의 연대’를 강조한 것은 올바른 접근법이다. 취임 직후 오는 2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구체화해야 할 것이다. 윤 대통령 앞에는 선거보다 더 힘든 과제들이 첩첩 쌓여 있다. 거대 야당은 사실상 대선 불복이라고 할 정도로 윤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물가와 환율, 유가가 동시에 급등하는 ‘신 3고 현상’이 뚜렷하고, 국가부채·가계부채 급증은 서민의 삶을 위협한다. 정교한 대책으로 난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길 기대한다.
문화일보 사설
05월 10일 윤석열의 ‘과감한 리더십’ 기대한다

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헌법학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헌법 제1조 제1항) 여기서 민주는 자유민주주의다. 공화국을 이루는 통합의 정치질서가 자유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 일성이 ‘국민 통합’이었음은 아주 적절했다. 통합은 물론 110개 국정과제는 다 이룩해야 할 과제다. 다만, 그 전체를 아우르며 대한민국을 어디로 이끌지 선견(先見), 즉 비전이 안 보여 아쉽다. 이승만 대통령은 갖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비전을 가지고 민주공화국의 토대를 세웠고, 이를 ‘인민공화국화 통일’의 시련(6·25전쟁)에서 확실히 지켜냈다. 박정희 대통령도 그 토대 위에서 민주공화국의 물질적 기초인 산업화를 확실히 일궈냈다.
그러면 386 주사파 운동권 출신을 정부·공공기관 곳곳에 포진시킨 좌파 민주당 문재인 전 대통령의 비전이나 업적은 어떤가? 민주주의로 포장됐지만, 좌파 정권의 특징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역대 정부 중 가장 무능·무책임함을 노출했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이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이념·세대·지역·성별 양극화에 더해, 다수독재로도 표현되는 민주공화국의 위기를 조성했다. 좌파는 목표 달성, 즉 권력 획득을 위해서는 자본가·지주 등 타도할 적을 적재적소에 적절히 잘 만들고, 그 타도를 위해 합법·불법·비법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잘 활용하는 특징이 있다. 표(票)가 된다면 나라 전체의 이익이 되는지는 따지지 않으며, 못 하는 일이 없다.(정치과잉: vortex of politics) 노무현 대통령 때 세종시로의 수도 이전, 문 정권의 대북전단금지법 통과, 가덕도 신공항 건설 예산 배정 등이 그 사례다.
또 있다. 문 정권 초기의 적폐청산, 정의당 등을 이용해 더불어민주당이 선거법 개정을 강행한 일, 공공개발에서 출발한 대장동 의혹, 청와대의 울산시장선거 개입,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법무장관을 앞세운 검찰 수사 지시, 절차상·실체상 헌법적 정당성을 결한 검수완박 법안 처리 등이다. 그 결과, 민주공화국의 토대인 정의와 평등에 기초한 법의 지배(rule of law) 대신 북한·중국 등 공산국가를 포함하는 독재국가에서처럼 법치는 통치의 수단(rule by law)으로 바뀌었다. 구중궁궐 청와대에 숨어서, 언론도 시민도 멀리한 전임 문 정부는 무책임한 제왕이라 할 만하다.
우리나라는 제2차 대전 후 분단된 세계 최빈국에서 지금 1인당 국민소득 3만5000달러인 선진국이 됐다. 그것은 대한민국헌법이 정치·경제·사회·문화 여러 분야에 걸쳐 국민 각인에게 기회균등과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고 전체를 아울러 이룩할 수 있었다. 나아가, 강대국에 둘러싸인 대한민국을 법 지배의 통일된 강대국으로 일궈 문화·학문·과학으로 세계 평화와 인류 공영을 이끄는 나라로 일굴 것을 헌법은 요청한다. 이 요청을 충족시키는 것은 결국, 중국어처럼 알파베트화하지 않고 인터넷에 바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한 세종대왕의 한글 발명 같은 제왕적 신임 대통령의 비전·설득력·리더십의 문제가 된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제왕적이었다지만, 그의 노예해방·남북통일은 비전과 과감한 리더십 발휘의 문제이지, 근래에 많이 논의되는 개헌의 문제는 아니다. 내 헌법 강의 때의 웅성거림을 한마디로 제압하던 그런 윤석열의 리더십 발휘같이 말이다.
문화일보
05월 10일 尹정부 출범, 때는 겨울이다

허민 전임기자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를 줄이고 줄이면 통합, 경제, 안보로 축약될 수 있다. 다양성 존중과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한 정치적 통합, 자유·창의·혁신의 초격차 과학기술을 토대로 한 경제 발전,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안보 확립이다.
하지만 새 정부가 출범하는 5월 10일은 한겨울이다. ‘날은 추워지고, 나도 추워/눈길을 정처 없이 걷고 있어/불이라도 지필 작은 낙원이 있다면/불빛은 언제 찾을 수 있을까/겨울이 오고 있고 밖은 추워’.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이 노랫말은 특히 젊은층에서 삶의 고됨을 나타내는 표현법으로 사용되곤 한다. 대한민국은 정치적, 경제적, 안보적 차원에서 겨울과 마주하고 있다. ‘겨울이 온다’를 넘어 ‘겨울의 한가운데에 있다’.
먼저 정치의 겨울이다. 거야(巨野)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폭주, 대선 불복 심리가 정치적 겨울을 생산했다. 증오를 조직화한 민주당은 ‘다수의 힘’으로 대의기관을 주무르고 새 정부 내각 구성을 방해하며 형사사법체계를 좌지우지하려 한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서 보듯 적법절차를 무시하고 ‘법에 의한 지배’로 새 정권 무력화를 노린다. 진영 논리와 ‘0.73%P의 저주’가 폭정의 동인이다. 성찰 없는 거대 야당의 횡포가 새 정부에 정치의 겨울을 안겨주며 협치와 통합을 방해하는 것이다.
새 정부가 마주한 경제 현실 또한 차디차다. 고물가·환율·금리의 삼중고에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무역 환경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무역수지 적자는 올 들어 4월까지 66억 달러에 이른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14년 만의 최악이다. 환율은 코로나 사태 이후 가장 높고, 금리도 8년여 만에 최고치다. IMF 외환위기 이후 최대의 위기가 덮칠 것이란 경고가 나온다.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 ‘S의 공포’가 몰아닥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런 것들이 경제의 겨울을 만들어냈다.
안보의 겨울 역시 엄중하다. 미·중 간 전략경쟁을 넘는 패권경쟁은 한국을 더 이상 ‘전략적 모호성’이란 외딴 섬에 남겨놓기를 거부한다. 전임 문재인 정권의 대중(對中) 눈치 보기와 대북 저자세는 한·미 동맹의 전진은커녕 동맹의 전이를 걱정하는 상황을 초래했다. 문재인이 퇴임 전 여러 경로로 김정은에 대한 연모의 감정을 드러낸 것과는 대조적으로 북한 정권은 올해 들어 열흘이 멀다 하고 미사일 도발을 벌였다. 그것도 부족해 7번째 핵실험까지 예고됐다. 군사안보에 더해 경제안보라는 변수까지 생겨나는 현실은 새 정부의 안보 환경을 혹한의 상황에 몰아넣었다.
윤석열 정부는 꽃 피는 5월에 한겨울 같은 국정 환경을 떠안고 출범했다. 하지만 우리 현대사의 역대 정부는 대부분 시대의 질곡을 짊어지고 국정을 시작했다. 이승만은 독립과 건국이라는 절체절명의 임무를 감당해야 했다. 박정희는 세계 최빈국 탈출과 경제 강국으로의 도약을 위한 산업화 과제를 수행했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극단적 분열정치에 종지부를 찍고 국민통합을 이루라는 민주화의 명령을 받들었다. 힘들지만 가야 할 길이 있고 이뤄야 할 꿈이 있다. 그게 윤 대통령이 선택했고 감당해야 할 운명이다.
문화일보
05.11 윤 대통령 ‘자유’와 ‘도약적 성장’ 선언, 협치와 소통에 달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후 용산 집무실로 향하며 시민들을 향해 손들어 인사하고 있다. 2022.5.10/뉴스1 ⓒ News1 국회사진취재단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국회에서 취임식을 갖고 5년 임기의 국정 운영을 시작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머물던 청와대를 떠나 용산 국방부 청사의 집무실로 옮긴 것만으로도 국정의 큰 변화를 예고한 것이다. 첫 업무로 이날 0시 용산 집무실 지하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합참의 보고를 받고 군 통수권을 넘겨받았다. 윤 대통령은 국회에서 시민들과 일일이 손을 맞잡고 인사를 나누며 “국민과 함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와 ‘도약적 성장’을 국정의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윤 대통령은 “자유로운 정치적 권리, 자유로운 시장이 숨 쉬고 있던 곳은 언제나 번영과 풍요가 꽃피었다”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겠다”고 했다. 자유를 35번이나 언급했다. 또 “양극화와 사회 갈등은 빠른 성장을 이루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 가치를 앞세워 재도약과 성장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5년간 민간이 아닌 국가가 돈을 뿌려 일자리를 만들고 성장을 이끈다는 소득 주도 성장을 밀어붙였다. 개인과 기업의 자유·창의는 무시한 채 세금 뿌리기와 주 52시간제, 최저임금 인상에 매달렸다. 그 결과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고, 세금 알바와 노인 일자리만 양산됐다. 각종 규제와 이념 정책으로 창의적 사업들은 싹을 틔우지 못했다. 세계 최고 경쟁력의 원전 산업은 무너졌다. 부동산도 시장의 수급을 막은 채 각종 규제만 쏟아냈다. 집값·전셋값은 폭등하고 서민들은 살던 집에서 밀려났다. 집 가진 사람도 세금 폭탄에 신음했다.
윤 대통령이 자유와 민간 주도 성장을 강조한 것은 문 정부의 이런 잘못된 정책들을 하나하나 바로잡겠다는 선언이다. 개인과 기업에 최대한 자유를 주고 이에 따른 창의적 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성장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고유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합리와 지성, 과학과 기술의 역할도 강조했다. 그는 “각자 보고 싶은 사실만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를 억압하는 반(反)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면서 “서로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선 과학과 지성이 전제돼야 한다”고 했다. 전 정부는 낡은 이념에 사로잡혀 잘못된 정책, 실패한 정책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민주당은 국회 다수 의석을 앞세워 선거법·공수처법·임대차3법·대북전단금지법·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 등을 줄줄이 강행 처리했다.
윤 대통령은 이런 불합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지성과 과학적 진실에 기반한 국정 운영을 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책화하고 실현해 나가느냐는 점이다. 우선 윤 정부는 인수위에서 마련한 국정 과제 110건의 실현 가능성을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국민이 이에 공감하고 동의하는지도 살펴야 한다.
자유와 성장뿐 아니라 평등과 분배를 중시하는 국민도 적지 않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두르지 말고 국민 소통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 용산 집무실 이전을 서두르다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했던 일을 되돌아봐야 한다.
정책을 추진하려면 입법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현재 국회 다수를 점한 민주당이 문 정부의 정책을 바로잡는 윤 정부의 정책을 받아줄 가능성은 별로 없다. 대부분 가로막을 것이다. 그때마다 가장 앞장서서 야당을 만나고 설득해야 하는 이가 바로 윤 대통령이다. 야당이 반대한다고 화를 내거나 싸워선 안 된다. 윤 대통령은 대선 때 “야당과 멋진 협치를 하겠다”고 했다. 수시로 야당 지도부와 의원들을 만나 식사하면서 공감대를 넓혀야 한다. ‘자유’와 ‘성장’은 규제 개혁의 다른 말이다. 규제를 없애려면 수많은 이익 집단의 저항을 뚫어야 한다. 이 역시 소통하는 수밖에 없다. 진심이면 통한다. 진심인데도 통하지 않는다면 국민이 나선다. 어렵고 힘들겠지만 이게 국민 통합의 길이다.
윤 대통령은 북한 핵 문제에 관해 대화의 문을 열어놓겠다고 했다. 북한이 비핵화로 전환할 경우 북한 경제와 주민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계획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북한과 협상은 불가피하다. 다만 국방은 상대의 선의를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악의를 전제로 준비하는 것이 안보다. 북한은 순전히 우리를 겨냥해 핵 탑재가 가능한 미사일을 연달아 쏘고 전술 핵실험도 준비하고 있다. 핵을 핵이 아닌 것으로 막는다는 것은 다 거짓말일 뿐이다. 오는 20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이 그 실질적 해법을 찾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5월 11일 최악 경제 물려받은 秋경제팀, 시장 신뢰부터 회복하라
윤석열 새 정부가 임기 시작 이틀째인 11일 국민의힘과 당·정 협의를 갖고 코로나 사태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소상공인 370여만 명에게 최소 600만 원을 지원키로 하는 등 발 빠른 행보에 나섰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경제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어서, 이런 조치는 최소한의 응급 처방일 뿐이다. 출범 당일의 금융시장 불안은 상징적이다. 물가·환율·금리가 동반 급등하는 신(新)3고 국면이다. 재정·무역 수지는 ‘쌍둥이 적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 중국 경기 둔화, 미국의 물가·금리 급등 등 대외 여건도 어렵기만 하다. 물가 급등 속 저성장인 ‘스태그플레이션’ 공포도 커간다. 외환위기를 겪었던 김대중 정부 때보다 더 심각한 사면초가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10일 취임사에서 ‘빠른 성장’을 다짐하면서 과학기술과 혁신을 강조했다. 문 정부의 정부·재정 주도 정책을 버리고, 민간·시장 중심 성장으로 가는 것은 옳다. 기업이 뛰도록 정부가 규제 완화 등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그러나 규제 완화부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를 통해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것은 더 요원하다. 전문가들은 족히 2년은 잡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중심으로 새 경제팀이 꾸려지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경제엔 타이밍이 중요한데, 성장·물가 수정 전망치도 이달 늦게야 제시할 것이라고 한다. 추 경제팀은 비장한 각오로 경제난을 돌파할 것이라는 확신부터 시장에 심어주어야 한다. ‘홍두사미’ 별명이 말해주듯 전임 홍남기 경제팀은 부동산·국가부채·일자리 등에서 전혀 신뢰를 주지 못했기에 더욱 그렇다. 윤 대통령은 내각에 정책의 실질적 권한을 부여한다고 한다. 범정부 차원의 비상경제TF 구성만으로는 부족하다. 추 경제팀은 긴급 상황에 대응하면서 중·장기 발전 계획도 수립하는 등 분초를 아껴 총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5월 11일 민주주의 위기와 ‘자유의 가치

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
새 시대를 여는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이 10일 오전, 높고 푸른 한강 상공에 아름다운 무지개가 상서롭게 뜬 가운데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열렸다. 그는 열정적인 취임사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주축으로 위기에 처해 있는 대한민국을 되찾겠다는 결의를 다짐했다. 그의 취임사는 화려한 레토릭 없이 짧고 간결했으며,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자유’라는 키워드 중심으로 짜여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새 시대를 여는 그의 정치철학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어 자유에 대해 무감각했던 많은 국민에게 깊은 충격을 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윤 대통령이 말한 ‘자유의 가치를 제대로, 그리고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것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이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시점에서 위기를 극복하는 데 근본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무지와 반(反)지성주의가 자유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넣은 일이 없지 않았다. 우리는 지난 5년을 보내면서 문재인 정부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독재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어둠을 보았다. 법치주의가 무너지고 집단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해 공동체 전체를 흔들리게 하는 일을 경험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인류의 위기 극복과 문명의 발전은 창의적인 인간의 잠재적 능력 발휘의 결과로 이뤄졌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독재권력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해 인간 개인의 재능이 죽임당할 때 인류 공동체는 마침내 공멸에 이르렀다. 윤 대통령이 시장경제를 주장한 것 역시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는 문제와 깊은 관계가 있다. 우리가 다양한 종류의 물건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으면 소비자들은 그중에서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이뤄지는 경쟁이 더 좋은 상품을 만들 수 있게 하고, 그것이 사회 발전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게 자유주의자들의 논리다. 그래서 인간의 순수한 자유를 억압한다면 그것은 곧 빈곤과 권태, 노역의 늪에 빠지게 한다.
인간이 존엄성을 지키며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제적 문제 해결이 필수다. 그래서 윤 대통령은, 국내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초저성장과 대규모 실업, 그것으로 인한 양극화의 심화와 다양한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 공동체의 결속력이 무너지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급속한 성장과 과학기술 발전을 가능케 할 수 있는 것 또한 천부적인 인간의 재능을 자유롭게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기술의 혁신과 진보를 위해 이념과 정파를 초월한 개체 간은 물론 국가 간의 협력·연대를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국가 운영에 민간 인재들의 아이디어를 초대하는 제도를 마련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자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자유는 빈곤으로부터의 자유, 불안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포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정부와 기업이 이들 공동의 목적을 위해 함께 일함으로써 이들의 자유가 가장 잘 확보되리라 확신한다.”
‘자유’의 문제는 경제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정치와 사회·문화 분야의 발전 과정에서도 똑같은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겠다. “자유는 불멸의 이념으로, 그것은 시대정신과 함께 진부하거나 사멸하지 않는다”라고 토마스 만은 말했다.
문화일보
05.11 ‘자유’ 강조한 윤 대통령, 통합도 잊지 말아야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제20대 대통령의 취임식에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3450자 취임사 자유 35번, 통합 0번
자유 강조 인상적 … 세심한 접근 필요
북핵 해결 대화 문 열어둔 건 환영
윤석열 대통령은 어제 많은 약속을 하지 않았다. 대신 지향점을 분명히 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하에서 ‘자유·인권·공정·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하고 존경받는 나라’다. 그러곤 “국민과 함께 반드시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전임자들이 수십 개의 약속을 담아 취임 연설을 했던 것과의 차이다.
통치 언어도 달랐다. 3450자의 취임사에서 ‘자유’가 35차례 등장했다. 역대 대통령의 사전엔 없었던 ‘자유 시민’, 그게 국경 밖으로 확장된 ‘세계 시민’도 등장했다. 윤 대통령이 10개월여 전 정치 참여를 선언하며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다”고 했던 가치관이 오롯이 담겼다.
윤 대통령은 먼저 팬데믹 위기부터 초저성장과 대규모 실업,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 등 복합 위기를 언급하고 “이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정치는 이른바 민주주의의 위기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가장 큰 원인으로 ‘반(反)지성주의’를 꼽았다. 그는 “국가 내부의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고 했다. 정확한 인식이라고 본다. 진영 사고가 합의의 여지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대통령으로서 공감과 합의의 기반을 넓힐 책무를 언급하지 않은 건 아쉽다. 통합은 취임사에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았다. 0.73%포인트 차의 신승에다 엄청난 여소야대 국회는 윤 대통령이 먼저 다른 진영에 손을 내밀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자유론은 인상적이었다. 그는 “번영과 풍요, 경제적 성장은 바로 자유의 확대”라며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이 자유 시민이 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곤 “승자 독식이 아닌 일정 수준의 경제적 기초, 공정한 교육과 문화의 접근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거나 “모두가 자유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공정한 규칙을 지켜야 하고 연대와 박애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적극적이고 진취적 개념의 자유다. 윤 대통령으로선 하지만 대선 과정에서 선택의 자유를 강조하는 차원에서 인용했던 ‘120시간 노동’ ‘부정식품’이 거센 논란을 불렀던 걸 잊어선 안 된다. 당장 진보 진영에선 “시장의 자유를 의미한 게 아니냐”고 반발하고 있다.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윤 대통령이 국내 문제에선 ‘빠른 성장’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과학과 기술, 그리고 혁신에 의해서만 이뤄낼 수 있다고 한 건 당위론이었다. 구체적 정책이나 방법론이 보이지 않은 건 아쉽다. 윤 대통령이 ‘일시적으로 전쟁을 회피하는 취약한 평화’가 아니라 ‘자유와 번영을 꽃 피우는 지속가능한 평화’를 말하면서도 북한과의 대화에 문을 열어둔 건 환영할 만하다.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으로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국제사회와 협력해 북한 경제와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계획을 준비하겠다”고 했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 때의 대북 정책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차별화를 기대한다.
중앙일보 사설
05.12 초현실적 ‘상X들 시대’ 온 줄 몰랐으니
지난 수년간 벌어진
안 믿기는 일들
염치없는 사람은
못 할 일이 없다는데
염치 포기 정치는
혐오 넘어 두려움까지
지난 수년간 우리 정치에서 벌어진 일들은 초현실적이다. 도저히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지면 제 몸을 꼬집어 본다고 한다. 그게 초현실이다. 정치 세계에선 별일이 다 일어나고, 필자도 30년 가까이 온갖 일을 보았다. 그런데 대통령이 자신의 불법 혐의를 수사하는 검찰 수사팀을 인사권을 이용해 뿔뿔이 흩어지게 해 수사를 중단시키는 것은 처음 보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울산시장 선거 공작 등 정권 의혹 수사팀을 공중 분해시킬 것이란 소문이 돌았을 때 필자는 ‘말도 안 된다’고 했다. 외국 체류 중 문 대통령의 ‘결행’ 소식을 듣고 초현실적이란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은 길에 떨어진 돈을 잘 줍지 못한다. 잘못이 드러나면 얼굴이 붉어진다. 염치(부끄러워 하는 마음)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염치 없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대통령은 염치가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대통령 권력으로 할 수는 있어도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스스로 멈추게 하는 것이 염치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염치가 없으면 권력 전체가 염치가 없고, 세상이 염치가 없어진다.
민주당이 압승한 지난 2020년 국회의원 총선거도 실로 초현실적이었다. 울산 선거 공작의 피의자 중 한 명이 출마한다고 했을 때 민주당 공천 경선에서 떨어질 것이라 보았다. 국민에게 회초리를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경선에서 이기더니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이겼다. 필자 예상은 다 틀렸다.
그는 이번에 문재인, 이재명 그리고 자신의 안전 보장을 위한 검찰 수사권 박탈법 추진에 앞장섰다. 피의자가 수사기관을 없앴다. 한 정당이 선거법도 마음대로 바꾸더니 수사기관도 마음대로 만들고 없앤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주위 사람들에게 ‘결국 안 될 것’이라고 했는데 다 틀렸다. 초현실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가짜 증명서를 써 준 혐의로 기소된 청와대 비서관도 국회의원이 됐다. 대통령, 청와대, 여당에 염치가 있었으면 공천을 받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 사람은 국회의원이 되더니 재판을 받다가 판사에게 ‘다른 일 있으니 그만 하자’고 했다. 이 사람과 짝을 이룬 듯한 다른 국회의원은 성(性) 얘기를 심하게 하는 유튜브 방송에 계속 출연한 사람이다. 이 의원도 요즘 민주당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라고 한다. 이 둘 중 한 명이 다른 한 사람에게 “XXX 치러 갔느냐”고 상스러운 소리를 했다. 문제가 되자 ‘짤짤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자신도 알고 세상도 다 아는데 거리낌 없이 한다. 어찌 이토록 상스러운가. 국회의원 배지를 단 그의 언행을 보면 그 자체가 초현실이다.
문 전 대통령이 국회의장을 총리로 임명할지도 모른다는 뉴스에 필자는 ‘아닐 것’이라고 했다. 입법부 수장이 행정부 수장의 부하가 된다는 것은 필자의 상상력이 미치는 범위 밖이었다. 이 예상도 틀렸다. 원래 민주당은 이런 정당이 아니었다. 초현실적 사태는 지난 수년간 집중적으로 벌어졌다. 민주당의 제대로 된 정치인들은 이 초현실의 마법에 걸렸는지 그저 숨을 죽이고 있다.
필자는 민주당의 검수완박 법 추진에 대해 ‘문 대통령이 마지막 순간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랬더니 여러 분이 ‘아직도 문재인을 모르느냐’고 핀잔을 줬다. 아무리 그래도 대통령인데 자기 안전을 위해 검찰을 없애는 일을 하겠느냐고 했지만 ‘염치가 없는 사람은 못하는 일이 없다’는 반박만 들었다. 결국 필자가 틀렸다. 도둑이 포졸을 없앤 이 현실은 아직도 초현실 같다.
지난 대통령 선거는 역대 최악이었다지만 진짜 최악은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에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이 총리 인준을 막더라도 대통령 취임 직전에는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상식이기 때문이다. 이 예상도 틀렸다. 총리, 장관 없이 대통령이 취임하는 초현실이 벌어졌다. 지금 민주당은 여론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선거 지면 죽는다’던 자기 말의 죄수가 돼 이 골목이 막히면 저 골목으로 그저 내달린다. 염치를 포기한 정치는 혐오를 넘어 두려움을 준다.
이재명 전 대선 후보가 국회의원 선거에 나올지도 모른다는 놀라운 뉴스에 ‘설마’라고 했다. 이번에도 사람들이 ‘아직도 이재명을 모르느냐’고 했다. 대선 후보가 대선 두 달 만에 국회의원에 나오면 사람들이 혀를 찰 텐데 그런 일을 왜 하겠느냐고 했지만 이번에도 ‘염치가 없는 사람은 못하는 일이 없다’는 반박이 나왔다. 필자가 또 틀리고 말았다. 그의 출마 선언을 보면서 한국 정치는 초현실주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염치없고 상스러운 사람들이 못 하는 게 없고 안 되는 게 없다. 그걸 몰랐으니 하는 예측마다 다 틀린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라는 초현실주의 화가의 그림에서 사람이 거울을 보는데 거울에 그 사람 얼굴이 아니라 뒷모습이 나타난다. 자기 얼굴을 못 보니 남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이 얼마나 상스러운지도 알 수 없다. 요즈음 한국 정치와 그 정치를 지배하는 민주당을 풍자한 그림 같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
05월 12일 기재부의 뒤늦은 자백 ‘文정부 일자리 통계 문제 많다’
신임 추경호 부총리가 이끄는 기획재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고용통계 자료에 대해 “노인과 세금 일자리 비중이 너무 높다”면서 “재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틀째인 11일 발표된 통계청의 ‘4월 고용동향’에 대한 평가다. 지난 5년 간 월별 통계가 나올 때마다 “고용률이 1999년 이후 최고 수준” “○○개월째 회복세” “코로나 발생 이전의 99.9%” 등으로 자화자찬하던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추 부총리 취임에 맞춘 돌변을 바라보는 국민은 씁쓸하지만, 그나마 이제라도 고용 실상을 자백한 셈이어서 다행이다.
문 정부는 정부 주도 일자리 창출이라는 공약에 집착한 나머지 온갖 무리수를 남발했다. 주 1시간 이상 일하면 ‘고용’으로 잡힌다는 점을 악용해 휴지 줍기, 강의실 불 끄기, 새똥 닦기 등 세금으로 만든 공공 알바 자리를 대거 고용통계에 산입하면서 고용이 회복됐다고 자랑해왔다. 공식 통계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통계청장을 갈아치우기까지 했다. 하지만 실체는 초라하기만 했다. 지난 5년간 무려 120조 원의 예산을 퍼부었음에도 주 40시간 이상 풀타임 일자리가 209만 개나 사라졌고, 비정규직은 806만 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문 정부의 마지막 월별 통계인 4월 고용동향을 봐도, 취업자 수가 전년 동기 대비 86만 명 증가했다고 강조했으나, 60세 이상 고령층이 절반 가량을 차지했다. 이마저 보건사회복지 서비스와 공공행정 등 세금 투입의 관제 일자리가 대부분이었다.
통계가 정확하고 객관적이어야만 올바른 고용정책이 나올 수 있다. 오죽하면 감사원이 문 정부의 통계 왜곡 의혹에 대해 특별감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겠는가. 추 부총리 역시 11일 취임식에서 “아픈 부분까지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지기 바란다”며 “진단은 정확하게, 공개는 솔직하게, 판단은 균형 있게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문화일보 사설
05월 13일 활개 치는 이재명, 고개 숙인 이재용

이신우 논설고문
욕설 파문과 비리 의혹투성이
이번엔 갈채 받으며 의원 도전
정치인의 기준 무너뜨릴 정도
기업인에 대해선 가혹한 잣대
묵시적 청탁에다 선택적 혐의
국민 생각 바꿔야 나라가 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직업을 차별하면 안 되겠지만, 대한민국에서만은 절대로 기업인을 꿈꾸면 안 된다. “보이스 비 앰비셔스.” 정치인이 돼야 한다. 그래야 보람찬 인생이 펼쳐진다.
이 고문은 누가 봐도 매우 불투명한 과거 경력을 갖고 있다. 형수에 대한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이나, 친족의 모녀 살해 사건을 변호하고 이를 합리화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 더 심각한 것은 개인의 도덕적 흠결을 넘어 지방자치단체장 시절과 연루된 비리·부정 의혹이다. 성남시 대장동과 백현동 판교 아파트 개발을 둘러싼 자금 의혹과 성남FC 후원금 사건 등은 이미 감사원의 수사 요청과 경찰의 압수수색까지 이뤄지고 있다. 부인의 법인카드 플레이는 넷플릭스를 뛰어넘는 대박 드라마였다. 다른 나라에서 이런 정도의 비리나 도덕적 의혹을 받는 당사자라면 일찌감치 정치 생명이 끊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는 끄떡없다. 심지어 대통령 선거에 나가 수많은 국민의 지지와 갈채까지 받았다. 이번에는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도 도전한다. 도대체 한국민이 정치인에게 요구하는 도덕과 법의 수용 기준은 뭘까.
반면, 한국인의 윤리적 감성이 유별나게 작동하는 분야가 있다. 기업인에 대한 가혹한 태도다. 아무리 작은 잘못인들 용서가 없다. ‘기업인 책임 만물설’인 셈이다. 최근에는 불행히도 이재용 부회장이 그 희생양이 되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부당합병 의혹 관련 재판은 끝이 어딘지 모를 지경이다. 무려 5년이 지난 2020년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불기소를 권고했음에도 검찰은 기소를 강행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심리도 계속되는 중이다. ‘묵시적 청탁’이라는 국정농단 사건도 있다. 이 때문에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가 가석방 중이다.
먹는 것 갖고 뭐라 하면 안 된다지만 삼성 직원 식사를 책임지는 삼성웰스토리 부당 지원 혐의도 심상치 않다. 이를 통해 가업 승계용 실탄을 확보하려 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는 ‘선택적 혐의’를 적용했다. 구체적 증거는 물론이고 행위들 간의 상당인과관계를 입증할 만한 정황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이런저런 명분으로 이 부회장은 지난 5년간 120번 이상 법원을 들락거렸다. 재판은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6∼7시까지 이어지는 날이 대부분이다. 말이 120번이지, 이 정도라면 기업 경영에서 손을 떼라는 묵시적 압박과 다를 바 없다.
한국 사회, 아니 정치권이 이토록 기업인들을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가려는 복심은 무엇일까. 이런 궁금증 때문일까. 2018년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했던 “삼성의 지난해 순이익이 60조 원인데 이 중 20조 원만 풀면 200만 명한테 1000만 원을 더 줄 수 있다”는 발언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과잉 반응이라고 치부할지 모르나 나름의 이유가 있다. 2006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 증여 문제 등으로 논란이 일자 사죄의 의미로 8000억 원을 조건 없이 ‘사회’에 헌납하겠다고 했다. 지금 돈으로 1조 원을 훌쩍 넘는다. 하긴 사회라고 했지, 어떤 사회라고 특정하지는 않았다. 당연히 자기네만이 사회를 구성한다고 주장하는 집단도 있을 것이다.
우리 국민은 지금 그 돈과 조직이 어떻게 쓰이고 운영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재단 이사장이 한명숙 전 총리와 인연이 있으며, 이사 중 한 명은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으로 복역했다는 정도다. 정작 삼성 측의 입장은?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다”는 것뿐이다. 대한민국 정치권이 이런 식으로 기업과 기업인을 다루니, 보고 배우는 북한 정치일꾼이야 오죽하겠나. 2018년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이라는 이름으로 끌려간 기업인들에게 빈손으로 왔냐는 투로 빈정거렸다. “지금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
기업인은 21세기 국운을 건 경제전쟁의 전사라는 말을 백번 외친들 뭐하겠는가. 중국의 마윈(馬雲)과 알리바바를 그냥 남의 일로 치부할 처지가 아니다. 그래 맞다. 우리는 지금 ‘중국몽’을 함께하고 있다.
문화일보
05.13 윤 대통령의 독특했던 취임사

고정애 논설위원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사 골격은 엇비슷했다. 민족사는 상찬하고 대통령 자신은 새 시대를 여는 인물로 묘사하며 국정 전반에 걸쳐 수많은 약속을 했다. 전임 대통령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가 한 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달랐다. 3450자 분량 중 ‘자유’를 35차례 언급하고 '통합'은 한 번도 안 했다는 것 이상이다.
우선 청자(聽者)가 세계로 확대됐다. 민족주의·국가주의적 색채는 대단히 희석됐다. 대표적인 게 ‘민족’의 부재다. “민족주의적 감성과 집단 무의식은 한국인에게 마음의 습관”(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이다. 윤 대통령은 이를 동원하지 않았다. 정말이다. YS(김영삼)는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선 언급하지 않았으나 평양에서 “남쪽 대통령”이라며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고 했다. 당시 “대통령부터 자신이 민족의 지도자인지, 대한민국 군 통수권자인지 분간을 못한다”(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는 질타가 있었다.
대신 ‘시민’이 자리했다. 원래 “민주주의는 정부와 시민이라는 개념이 상응하는 정치체제”(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 등)다. 불행히도 우리는 시민을 쓸 자리에 ‘국민’을 써 왔다. 대통령들도 그래서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의 취임사엔 시민이 전무했다. 문 전 대통령의 경우 한 번 등장하는데 (서울)시민 뉘앙스다. “퇴근길에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다”고 했다. 헌법이 국민 일색이어서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제헌 때부터 “국민은 국가 우월의 냄새를 풍겨 국가라 할지라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의 주체로서의 사람을 표현하기엔 반드시 적절하지 못하다”(유진오)는 시각이 있었다.
윤 대통령은 '시민'을 15차례 썼다. 시민의 부활이라고 할 만했다. 민주주의의 보편 가치인 자유, 더 나아가 인권·연대·박애까지 말했다. 역대 대통령 중 자유에 대해 기술한 건 YS 정도로 “우리의 자유는 공동체를 위한 자유여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자유는 더 확장됐다. 영국 정치인인 윌리엄 베버리지 식(“자유는 정부의 자의적인 권력에서 벗어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결핍과 누추함, 다른 사회적 악에 매이는 경제적 예속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다. 굶주리는 사람은 자유롭지 못하다”)이다. 윤 대통령은 시선을 밖으로도 돌려, 세계를 연대의 대상으로 삼았다. “국내 문제와 국제 문제를 분리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 또는 한반도 중심의 일국주의 사고에서 벗어나려는 듯했다.
독특했다. 대통령실 사람들의 말을 종합하면 여러 의견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기존 취임사와 달리 국정 운영 철학과 비전을 설명하고 국민만이 아닌 세계에 보내는 메시지여야 한다고 말이다. 한 참모와는 이런 대화를 나눴다.
-세계 시민에게 말한 건 처음이다.“우리가 이미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나라들에 우리가 어떤 길을 갈 거라고 말해준 거다. 가치를 공유한 선진 동맹국과 연대하고 협력하겠다는 의미다.”
-대체로 서구민주주의 개념이다.“우리가 서구 수준의 정신, 이성과 합리성에 기반한 국가가 될 것이란 도전장을 내민 것이기도 하다.”
-민족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민족은 헌법적 개념이 아니다. 윤 대통령이 북한을 언급한 건, 헌법에서 대통령에게 평화통일에 대한 의무를 주어서다. 대통령은 헌법이 담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 이런 걸 하겠다고 한 거다.”
실제 헌법 66조 3항에 대통령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규정했다. 정치를 취재해 온 입장에선 민주주의의 언어라 반가웠다. 그러나 의문이 든다. 윤 대통령은 과연 자신이 말한 수준의 민주주의형 지도자인가. 가치관은 알겠다. 실천할 의지와 실력이 있을까. 주권자인 시민이 위임한 인사권 행사를 보면 쉽게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
중앙일보 고정애 논설위원
05.15 금배지 방패 삼아 숨지 못하게... 나라의 주인들이 회초리 들어야
[아무튼, 주말] [노정태의 시사哲]
성경 속 ‘불의한 청지기’ 비유와대한민국 최악의 대리인들
옛날에 어떤 부자가 있었다. 부자는 집사를 두고 살림을 맡겼다. 그런데 집사가 부자의 재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부자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집사를 불러 해고하겠노라고 통보했다. 당장 쫓겨나게 생긴 집사는 고민에 빠졌다. 다른 곳에서 집사 노릇을 할 수도 없게 된 처지에, 험한 육체노동을 해서 입에 풀칠을 할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집사는 엉뚱한 결론에 도달했다. 주인댁 바깥에서 자신을 반겨줄 사람들을 만들어 놓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호감을 사려고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불렀다. 그러고는 기름 백 항아리는 쉰 항아리로, 밀 백 섬은 여든 섬으로 깎아주었다. 낭비를 한다는 이유로 쫓겨나게 생긴 집사가 주인의 재산을 불리기는커녕 도리어 더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일러스트=유현호
그러자 주인은 집사를 불렀다. 내쫓지 않았다. 오히려 영리하게 대처했다며 칭찬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분들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법한 이야기다. 옛날 말로 집사를 청지기라고 한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다.
성경에 나오는 여러 비유가 그렇지만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는 특히 혼란스럽다. 논란의 여지도 많다.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낭비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통보받았다. 그런데 어째서 주인에게 다른 사람들이 진 빚을 제 맘대로 깎아주고는 도리어 칭찬을 듣는다는 말인가? 성경에는 저 집사 혹은 청지기가 의롭지 못하다고 분명히 적혀 있다. 그런데 왜 예수는 나무라지 않는 걸까?
세속의 학문을 통해 성경의 비유를 이해해 보자. 1976년,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젠슨과 로체스터 대학교의 윌리엄 메클링은 본인-대리인 문제, 혹은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를 제시했다. 일을 맡기는 사람과 맡아서 하는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경영학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사람은 모든 일을 자기 손으로 할 수 없다. 계약을 맺어 다른 사람을 고용하고 일을 시켜야 한다. 일을 맡긴 사람이 일의 주인이다. 하지만 일을 더 잘 아는 것은 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 즉 대리인이다. 주인보다 대리인이 정보 면에서 우위를 차지하면서, 주인에게 불리하고 대리인에게 유리한 정보 비대칭이 발생하게 된다는 뜻이다.
남에게 일을 맡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24시간 감시하고 있지 않은 다음에야 주인은 대리인이 자신을 위해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지 100% 확신할 수 없다. 대리인이 하는 일이 자신에게 이로운지 아닌지, 심지어 대리인이 유능한지 여부마저도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 수 있다. 업무 파악, 지시, 평가 등에 있어서 대리인은 주인보다 늘 우위를 차지한다.
주인-대리인 문제는 고용 관계, 업무상 계약 관계를 넘어 세상의 모든 영역에서 늘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엄마가 심부름을 보내면 아이는 그 돈으로 과자를 사 먹고 싶어진다. 선거철만 되면 굽실거리는 정치인들은 투표 다음 날부터 국민 위에 군림하려 든다. 다수의 선량한 사람은 양심에 따라 맡은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지만, 주인-대리인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요즘 우리 사회는 대리인 문제로 홍역을 앓는 중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온갖 사건들만 놓고 봐도 그렇다. 오스템임플란트에서 2000억원, 우리은행에서 600억원, 돈이 돈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막대한 액수의 횡령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아직 수사 중인 사안이지만 밝혀진 사실만 놓고 보더라도 이는 전형적인 대리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경영진이 제대로 감시할 수 없거나 감시하지 않는 틈을 타, 대리인이 주인의 재산을 털고 있는 것이다.
온 나라에 대리인 문제가 심각해진 이유는 분명하다. 윗물이 썩었기 때문에 아랫물이 혼탁해진 것이다. 지난 5년, 문재인 정권이 벌인 일을 되짚어 보자. 세계로 수출되는 우리 원전 산업을 누구 한 사람의 고집으로 발목 잡고 주저앉히더니, 멀쩡한 숲을 밀고 중국산 태양광 패널을 도배했다. 우량 기업이던 한국전력을 빚더미에 올려놓고, 지방대가 문을 닫는 이 시점에 한전공대를 새로 만들기까지 했다. 마음껏 낭비하고 그 청구서를 주인에게 넘긴 채 떠나버리는 최악의 대리인이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역시 마찬가지다. 재개발 사업에서 건설 회사는 최대한 많은 이익을 남기려 한다. 정부의 역할은 그런 사적 이익의 추구를 적절히 통제하고 공적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재명의 성남시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공공 개발을 막고 영리 개발을 허용하며 그 이익을 소수가 독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주었다. 성남 시민과 대장동 입주민들의 대리인이어야 할 이재명은, 화천대유 일당 중 한 사람인 변호사 남욱의 말을 빌리자면, ‘4천억원짜리 도둑질’의 현장에서 시장 직인을 찍어주고 있었다.
대리인 문제를 원천 봉쇄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문제가 불거졌을 때 행동해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주인이 고삐를 다잡는 것이다. 스스로 나서서 대리인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해야 한다. 주인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이 벌어졌을 때, 확실히 적발하고 따끔하게 혼을 내야 대리인 문제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으로 돌아가 보자. 주인은 집사가 자기 재산으로 폭리를 취하는 대신 다른 이들에게 베풀기를 원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집사가 돈놀이를 하고 낭비하는 것은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사람들이 진 큰 빚을 깎아준 것은 어여삐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온 세상의 주인인 예수는 방황하는 어린 양들을 향해, 물질적 손해를 보더라도 영혼의 풍요를 얻으라는 가르침을 주고 싶었던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이재명은 대장동을 알았다면 공범이고 몰랐다면 무능이다. 어떤 면에서건 심각한 주인-대리인 문제다. 실패한 정치인, 행정가로서 자숙하며 수사에 협조해도 모자랄 판에, 그는 대선에서 패배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연고도 없는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고 있다. ‘윤석열이 대장동 몸통’이라는 기상천외한 레퍼토리를 다시 꺼내든 것은 물론이다. 현실의 대리인 문제는 성경 말씀처럼 선하게 해결되지 않는 것 같다. 국회의원 금배지를 방패 삼아 숨지 못하도록,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이 단호하게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조선일보
05.17 “더는 못 미뤄” 연금·노동·교육개혁에 尹 정부와 여야 명운 걸어야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코로나19 손실보상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에 대해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국회 연설에서 연금·노동·교육 개혁을 새 정부 국정 과제로 제시하고 국회의 초당적 협력을 요청했다. 윤 대통령은 “(세 가지 개혁이) 지금 추진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게 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했다. 전임 정권의 무책임한 포퓰리즘 국정을 끝내고 ‘도약적 성장’을 이루겠다는 윤석열 정부가 연금·노동·교육 개혁을 내세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세 가지야말로 가장 중대하고 시급하지만 역대 정권이 ‘폭탄 돌리기’ 하듯 미뤄온 최대의 국가 현안이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경직적이라는 노동 시장은 국가 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규직만 과보호하는 노동 제도, 기득권 노조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노동 법규가 일자리 창출을 방해하고 경제 활력을 위축시키고 있다. 민노총으로 상징되는 귀족 노조는 폭력과 불법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기득권 적폐 세력이 돼 버렸다. 연구소에까지 강제 적용하는 경직적 주52시간제, 노조가 파업해도 대체 인력 투입이 불가능한 노동법을 놓아두고 어떻게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나.
낡은 교육 시스템은 21세기형 창의적 인재 양성을 가로막고 있다. 신기술 4차 산업혁명이 모든 것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세상에서 한국 교육은 이·문과 분리제, 6·3·3학제처럼 70년 된 시스템을 끌어안고 획일적 교육에 갇혀 있다. 반도체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대학 정원 규제 때문에 반도체 관련 학과 졸업생이 매년 수천 명씩 모자라는 부조리극 같은 일이 벌어진다. 이공계는 구인난, 인문계는 구직난을 겪는데 교수들의 기득권 반발 때문에 학과 구조조정은 철벽에 막혀 있다. 이런 교육으로 어떻게 미래를 열어나갈 수 있나.
연금 제도는 세대 착취를 조장하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지금처럼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시스템이 계속되면 2055년 기금 적립금이 바닥나고 현재 32세인 1990년생 부터는 국민 세금으로 연금을 줘야 된다. 그것이 가능할지, 가능하다고 해도 어떤 사회적 연쇄 사태를 부를지 알 수 없다. 기성 세대가 누릴 것을 다 누린 뒤 미래 세대의 ‘노후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이다. 청년들의 일자리 기회를 박탈하는 노동 제도, 미래 세대의 인재 경쟁력을 훼손하는 교육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연금·노동·교육의 ‘사다리 걷어차기’ 구조를 수술하지 않으면 청년들의 미래는 없다.
이 3대 개혁은 국가적으로 가장 시급하지만 기득권 집단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인기 없는’ 과제다. 그래도 역대 정권은 조금씩이라도 노력하면서 개혁의 시늉은 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안 하고 5년을 보냈다. 노동개혁은 커녕 박근혜 정부가 어렵게 이뤄낸 약간의 조치마저 백지화시킨 채 일방적인 노조 편향 정책으로 노동 개악만 해왔다. 연금 문제도 역대 정권이 보험료를 올리거나 지급 시기를 늦추며 손질을 해왔지만 문 전 대통령은 전문가들이 만든 연금 개편안이 인기 없다고 반려하고 오히려 복지부 공무원들을 탄압했다. 이렇게 무책임하고, 인기영합적이고, 필연적으로 다가올 문제에 나 몰라라 한 정권은 없었다.
윤 대통령 말대로 3대 과제는 ‘더 미룰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코 쉽진 않을 것이다. 부문별로 이해관계가 복잡한 데다 거대 노조와 교육 기득권 세력, 연금 수급 예정자 등의 반발이 거셀 것이 분명하다. 우리 사회가 익히 보아 온 폭력 집단 시위가 벌어질 가능성도 높다. 관건은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의 태도다. 민주당이 이익 집단의 저항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면 어떤 개혁도 할 수 없다. 그러지 않고 민주당이 이 심각한 국가적 개혁에 동참하면 나라에 새로운 길이 열린다. 윤 정부는 정부의 명운을 건다는 각오로 개혁에 임하고, 민주당도 이 문제만큼은 정파와 진영을 떠나 국가 미래를 위해 협조한다는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
조선일보 사설
05월 17일 중립성도 능력도 낙제점 공수처, 보완 아닌 폐지가 옳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이 16일 공수처 수사 개시 1주년 기자 간담회에서 “미숙한 모습”을 시인하면서도 검사·수사관 부족 탓으로 돌리며 인력 증원을 국회에 요청했다. 김 처장은 “수사 대상 고위 공직자가 7000명이 넘지만, 공수처 검사는 처장·차장 빼고 23명 수준으로 남양주지청과 비슷한 규모”라며 “세 자리 숫자, 그게 안 된다면 법무검찰개혁위원회 원안(검사 50명·수사관 70명)은 최소한 돼야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고 했다.
그동안 공수처는 정치적 중립성도, 수사 능력도 낙제점임을 스스로 드러냈다. 대선 국면이라는 민감한 시점에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를 동시다발적으로 벌였지만, 혐의 입증에 실패했다. 고발 사주 의혹 등 수사 감도 안 되는 사건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성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공수처장 관용차에 태워서 들어가 면담했던 ‘황제 조사’ 논란도 벌어졌는데, 들통나자 보안에 취약한 청사 때문이라고 구차한 핑계를 댔다. 공수처에 비판적 보도를 했던 기자 등에 대한 통신 조회를 남발, 보복성 수사 등 인권침해 실태도 드러냈다. 김 처장은 “공수처는 어느 정당 정파 진영의 산물이 아니다”고 했지만, 공수처법을 둘러싼 당시 야당의 강력한 반대와 대다수 전문가들의 문제점 지적을 고려하면 새빨간 거짓말이나 마찬가지다.
공수처는 대통령의 공수처장 임명에 따른 정치적 종속성, 입법·사법·행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대통령 직속기구로서의 위헌성 등이 출범 전부터 지적돼 왔다. 특히, 우월적 지위를 규정한 공수처법 제24조는 대표적 독소 조항으로 꼽힌다. 실제로 악용된 사례도 없지 않다. 코드 인사 논란도 심각하다. 코드 인사 논란에 더해 수사 능력도 없어, 공직자 범죄 도피처 또는 ‘윤석열수사처’ 조롱처럼 특정 정파 하수인이 될 우려도 크다. 수사 인력을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하루라도 빨리 없애는 게 옳다.
문화일보 사설
05.18 “洞사무소 민원인보다 공무원이 많아” 공공 개혁도 핵심 과제다
지난해 공기업·공공기관 350곳의 정규직 평균 연봉이 6976만원에 달했다. 중소기업(3100만원)의 두 배가 넘고 대기업 임직원 연봉(6348만원)도 웃돈다. 평균 연봉 1억2000만원인 울산과학기술원을 비롯해 산업·기업·수출입은행 등 1억원을 넘는 곳이 20곳에 달했다. 현대차(9600만원)·LG전자(9700만원) 등 굴지의 대기업보다 더 많이 받는다. 그만큼 경영을 악화시키고 있다.
공기업은 원래 ‘신(神)의 직장’으로 불리던 곳이었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이 될 만큼 경영이 방만해졌다. 역대 정부가 공공 부문 군살 빼기를 추진한 반면 문 정부는 “정부가 최대 고용주”라며 인력과 조직을 늘리는 역주행 정책을 폈다. 문 정부 5년간 공공 기관 숫자가 332개에서 350개로 늘고 인력도 35%(약 11만명)나 급증했다. 디지털화와 업무 자동화로 갈수록 사람 손은 덜 필요해지는데 도리어 직원 수는 늘어났다. 이 전체가 낭비고 국민 부담이다.
36개 사업형 공기업들이 2016년엔 합계 14조원의 순이익을 냈지만 2년 전부터 손손실로 돌아섰다. 한 해 7조원 이익을 올렸던 한전이 올 1분기에만 8조원 적자를 냈고, 인천공항공사·석유공사·철도공사·마사회 등도 재정난에 허우적대고 있다. 그런데도 경영 합리화는커녕 보너스 잔치까지 벌였다. 지난해 36개 공기업은 2000억원의 순손실을 냈지만 상근 임원 180명은 평균 4700만원의 성과급을 받았다. 부실 덩어리가 된 한전 사장과 코로나로 관광업이 초토화된 관광공사 사장도 1억원 안팎을 받았다.
문 정부는 중앙 정부 공무원 수도 5년간 13만명 늘려 인건비 지출이 30%나 불었다. 이명박 정부(1만2000명), 박근혜 정부(4만1500명)의 공무원 증가 폭을 합친 것보다 2배 이상 많다. 지방에선 거주 인구가 줄었는데 공무원만 늘어난 지자체가 부지기수다. “동·면사무소에 민원인보다 공무원이 더 많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들이 퇴직하면 지급해야 할 연금 충당 부채는 5년간 300조원이나 늘었다. 납세자 허리가 휠 판이다.
공공 부문이 비대해지면 나라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규제도 많아진다. 정부·지자체, 공기업·공공기관의 인력과 조직을 대폭 줄이고 비효율적 기능은 없애거나 대폭 민간에 넘겨야 한다. 엊그제 윤석열 대통령은 연금·노동·교육 개혁을 더이상 미루지 않고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여기에 공공 부문도 추가해 ‘4대 개혁’을 국정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5.18 누가 反지성주의에 맞설 건가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반(反)지성주의와 투쟁을 선포했다. 지성의 힘으로 거짓을 물리치자는 취지에는 누구나 동의할 듯하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날마다 일어나는 ‘가짜 뉴스’의 폭풍과 ‘허위정보’의 해일에 맞서 싸울 수 있는가? 팬데믹보다 더 무서운 인포데믹(infodemic·전염병처럼 번지는 잘못된 정보의 확산)과의 투쟁이다. 지난 10여 년 한국 정치사를 돌아보면 IT 강국 대한민국의 인포데믹은 참담한 상황이다.
2008년 공영방송의 엉터리 탐사 보도가 광우병 파동의 불을 질렀다. 2010년 합조단은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군사 테러였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했지만, 그해 9월까지 그 조사를 신뢰하는 국민은 32.5%에 그쳤다. 2016년 탄핵 정국에서 국회는 부정확한 언론 보도를 모아 소추안을 썼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이 특검의 청와대 압수 수색을 거부했다는 이유까지 들어 “헌법을 수호할 의지”가 없다며 대통령을 파면했는데, 상식적으로 직무 정지 상태의 대통령은 압수 수색을 거부할 권한이 없다. 헌재가 어떻게 그토록 기초적인 논리적 착오를 범할 수 있는가? 이 모두가 인포데믹이 한 사회의 ‘집단 지성’을 마비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대한 사례들이다.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늘날 호모 사피엔스는 ‘탈진실(脫眞實·post-truth)’의 시대를 살고 있다. ‘탈진실’이란 과학적 진리나 역사적 사실보다 가짜 뉴스와 허위 정보가 대중의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21세기적 상황을 이른다. 인터넷 알고리즘에 따라 개개인은 미리 걸러진 정보만을 편식한다. 모두가 ‘메아리 방(echo chamber)’에 들어앉아 ‘거름 방울(filter bubble)’ 속에 갇힌 채 살고 있다. 그 결과 ‘보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는 반지성주의’의 유혹에 빠져든다.
계몽주의 시대 이래 인류는 이성의 힘으로 모순과 부조리, 미신과 맹신을 타파하고 합리의 공화국을 건설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 자유주의 사상가 밀(J.S. Mill·1806~1873)은 인류의 지성을 믿고 표현의 자유를 제창했다. 미치광이의 궤변, 음모론자의 낭설, 불온한 자의 도발일지라도 그 모든 생각들이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어야만, 인류는 정교한 반박 논리를 만들어 진리에 근접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자유민주주의는 그렇게 초창기부터 과학적 방법과 전문 지식이 지배하는 ‘진실의 정권(regime of truth)’을 지향했다. 공화국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론의 포럼이 진실을 밝히고 전파하는 ‘상식(sensus communis)’의 보루였다. 21세기 인포데믹 속에서 바로 그 진실의 정권이 붕괴 조짐을 보인다. 표현의 자유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보장한다는 빅토리아 시대의 낙관이 무너지고 있다. 오늘날 누가 인간을 합리적 존재라 단언할 수 있는가?
2018년 1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가짜 뉴스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며 강력한 제재 법안을 예고했다. 4년 후인 2022년 1월, 재선을 3개월 앞두고 마크롱 대통령은 가짜 뉴스와 허위 정보에 대한 법적 조치를 강화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정부가 인포데믹을 통제할 수 있다는 발상은 순진하게 느껴진다. 열린 사회에서 정부에 의한 가짜 뉴스의 통제는 큰 효력이 없다. 일당독재의 국가 중국처럼 인터넷 관리원 100만명을 고용하고 1000만명의 자원자를 동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짜 뉴스의 생산 주체는 단순한 일탈자가 아니라 정치적 목적에 복무하는 신념 집단이라는 점도 이 싸움을 어렵게 한다.
윤 대통령은 반지성주의와의 투쟁을 강조했지만, 여론 시장을 법적 제재로 교정할 순 없다. 결국 시민사회가 나서서 거짓과 허위에 맞서는 견고한 논리의 방화벽을 세워야만 한다. 대통령 역시 한 명 시민으로서 법이 아니라 논리의 힘으로 반지성주의와의 투쟁을 이끌어야 한다. 대변인 뒤에 숨거나 ‘A4 원고’만 읽지 말고, 국민 앞에 서서 육성으로 국정 현안을 설명하고 정부 정책을 홍보해야 한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12년 임기 내내 총 881회, 월 평균 6회의 기자회견을 했다. 험난한 반지성주의와의 투쟁을 대통령이 매월 최소 1회 이상의 기자회견으로 이끌어 달라. 대통령의 머리는 시민사회의 지성이며, 대통령의 입은 초대형 스피커다. 머리가 둔해지고 스피커가 고장 나면, 가짜 뉴스와 허위 정보가 판친다. 지난 10여 년 한국의 인포데믹이 일깨우는 섬뜩한 교훈이다.
조선일보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역사학
05월 19일 검찰 인사 2년 반 만에 정상화, 권력범죄 수사 속도 내라
법무부는 18일 대검 차장에 이원석 제주지검장, 서울중앙지검장에 송경호 수원고검 검사, 법무부 검찰국장에 신자용 서울고검 송무부장 등 검사장급 이상 18명을 포함한 43명의 검찰 인사를 발표했다. 부활한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총괄하는 서울남부지검장에 양석조 대전고검 인권보호관, 수원지검장에 홍승욱 서울고검 검사를 임명하는 등 문재인 정권에서 권력비리 수사를 원칙대로 하려다 좌천당했던 검사들을 주요 보직에 발탁했다.
반면, 문 정권 당시 권력비리 수사를 뭉갰다는 의혹 등을 받는 이성윤·이정수·심재철·이정현 등은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됐다. 임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은 대구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 부장으로 전보됐다.
야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인사를 ‘윤석열 사단 복귀’ ‘검찰 공화국’ 등으로 주장하지만 억지다. 문 정권 관련 비리를 수사하다 추미애 법무장관 취임 직후인 2020년 1월 이뤄진 ‘학살 인사’로 지방·한직으로 좌천된 수사 전문가들의 복귀는 검찰이 제자리를 잡아가는 정상화로 보는 게 옳다. 조국 일가 수사가 본격화한 2019년 9월 말 이후 2년 반 이상 유무형 압박이 심각했다. 구정권 핵심들과 이념·학맥·지역 등으로 얽혀 발탁돼 검찰 수장 찍어내기와 권력비리 수사 덮기에 앞장섰다는 지적을 받아온 ‘친문 코드’ 검사들의 좌천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이런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검찰은 수사로 ‘법 앞의 평등’을 구현해야 한다. 윤 대통령 눈치를 봐서도, 반대로 이재명 등 야당의 공세에 휘둘려서도 안 된다. 당장 문 정권 압박으로 차질을 빚었던 울산시장선거 개입, 원전 경제성 조작, 산업부 블랙리스트, 대장동, 성남FC,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펀드 사기 등 주요 혐의 수사를 제대로 다시 해야 한다. 정치적 시비 소지가 큰 만큼 더욱 공정하고 정교한, 그러면서도 어떤 성역도 없는 수사가 중요하다.
문화일보 사설
05월 19일 ‘한동훈 라인’ 전진배치…대장동·靑기획사정 ‘재수사 태풍’ 부나

▲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8일 오전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 송정역에 도착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8일 검찰 고위 간부 인사로 서울중앙지검장과 산하 2∼4 차장검사, 서울남부지검장과 수원지검장 등에 ‘윤석열 사단’을 포진시킨 것은 문재인 정권에서 중단되거나 좌초된 권력 수사를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한 장관이 지난 17일 취임사에서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검찰을 두려워할 사람은 범죄자뿐”이라며 강력한 ‘사정 태풍’을 예고한 만큼 ‘정치 보복’ 프레임을 내건 야당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19일 문화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전날 검찰 고위 간부 인사가 발표되자 검찰 내부에선 “할 일을 하는 검사들이 복귀했다”는 평가와 함께 그동안 ‘친문’ 검찰 간부들에 의해 막혔던 권력수사들이 본격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을 지휘할 송경호(사법연수원 29기) 수원고검 검사가 선봉에 설 전망이다. 그는 한 장관이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시절 중앙지검 3차장으로 ‘조국(전 법무부 장관) 수사’를 지휘했다가 좌천됐다. 송 지검장 산하 차장들도 ‘윤 라인’으로 전면 배치됐다. 2019년 중앙지검 특수2부장으로 조국 수사를 맡았다 좌천됐던 고형곤(31기) 포항지청장은 반부패 수사를 지휘하는 4차장으로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연루된 대장동 특혜 개발·권순일 전 대법관의 재판 거래 의혹 수사를 지휘한다.

대장동 특혜 개발 의혹은 4차장이 직접 팀장으로 전담수사팀을 운용하는 만큼 특수통인 고 지청장이 수사 지휘·실무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해당 의혹은 이정수 중앙지검장·김태훈 4차장 시절 성남시청에 대한 늑장 압수수색, 이 전 후보의 황무성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사직 강요 의혹’ 무혐의 처분 등으로 ‘봐주기 수사’란 비판을 받았다. 박영진(31기) 의정부지검 부장검사는 2차장으로 우리들병원 불법 대출 위증 의혹을 지휘한다.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 부활로 주가조작 등 금융범죄 사건을 전담할 서울남부지검의 검사장으로 새로 임명된 양석조(29기) 대전고검 인권보호관은 라임자산운용 사기 의혹 수사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또 중앙지검에서 수사 중인 옵티머스 사모펀드 사기 의혹도 새로 출범한 합수단이 넘겨받아 재수사할 가능성이 크다. 두 사건은 각각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연루 의혹이 불거졌지만 모두 불입건·무혐의 처분을 내려 논란을 일으켰다. 유임된 심우정(26기) 동부지검장도 조만간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소환 조사하는 등 산업부 블랙리스트 수사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동부지검 차장검사로 ‘유재수(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사건’을 지휘한 홍승욱(28기) 서울고검 검사는 신임 수원지검장으로 이 전 후보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 수사를 하고 있고, 성남지청은 성남FC 불법 후원금 모집 의혹 수사를 총괄한다. 수원지검은 경찰이 수사 중인 이 전 후보 부부의 법인카드 사적유용 의혹 보완 수사 권한을 갖고 있다.
한편 문재인 정부의 권력 수사를 막았다는 비판을 받았던 친문 검사장들은 대부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되거나 기소돼 피고인 신분으로 전락했다. 이성윤(23기) 서울고검장과 이정수(26기) 중앙지검장, 이정현(27기) 대검 공공수사부장, 심재철(27기) 남부지검장은 모두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됐다.
문화일보 염유섭·장서우 기자
05월 20일 새 검찰, 거악(巨惡) 척결로 신뢰 쌓아야 한다

김종민 변호사 前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지난 18일 단행된 검찰 고위간부 인사는 정권교체 후 검찰 정상화를 위한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조국 사태 이후 대한민국 검찰은 정상이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권력형 비리 수사를 하려 하면 곧바로 수사검사를 팀에서 배제했고, 그 자리를 친정권 검사들로 채웠다. 대장동 개발 비리처럼 해야 할 수사는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수사는 혐의가 없는데도 집요하게 반복됐다. ‘채널A 검언유착’ 사건이 대표적이다.‘
친정권 검사 영전, 정권비리 수사검사 좌천’은 문재인 정권 5년간 부동의 인사 원칙이었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남발됐다. 추미애 장관은 취임 직후인 2020년 2월 신라젠 사건과 라임자산운용 사건을 수사 중이던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수단을 전격 해체해 버렸다. 지난 5년은 ‘조국의 시간’ ‘추미애의 깃발’과 함께 법치주의 파괴와 몰락의 시간이었고, ‘촛불혁명정부’의 위선적 뒷모습에 무너져 버린 공정과 정의의 길은 멀고 험난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최우선의 과제 중 하나가 검찰의 정상화다. ‘검찰공화국’ ‘검찰 수사를 통한 정치보복’이라는 주장은 부패와 비리 세력들이 처벌을 모면하려고 만든 허구의 프레임일 뿐이다. 엄정공평 불편부당의 검찰 정신은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말고 권력형 비리와 거악을 척결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다. 국가형벌권이라는 막중한 권한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아 행사하는 검찰이 공정하게 이를 행사하지 않을 때 그 정당성의 토대가 무너진다.
2013년 출범해 6년 반 동안 약 1000여 명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처벌하며 금융·증권 범죄 수사에 핵심적 역할을 해왔던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의 부활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1조5000억 원의 피해가 발생한 라임자산운용 사건이 보여주듯, 금융범죄의 규모와 양상이 바뀌었다. 해외 거래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고 첨단화·지능화돼 고도의 전문적 지식을 갖춘 전담 수사 조직이 없으면 그 적발과 처벌이 어렵다.
프랑스는 금융경제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전문화·광역화·중앙집중화를 추진 전략으로 1999년 ‘금융범죄 거점수사부’, 2004년 특별광역검찰(JIRS)을 도입해 오다가 역부족임을 실감하고 2013년에 전국을 관할하는 독립된 국가금융검찰(PNF)을 신설했다. 2021년 3월 판사 매수 혐의로 파리지방법원에서 3년 구금형을 선고받은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 사건과 2020년 1월 유럽 최대의 부패 스캔들로 밝혀진 에어버스 리베이트 사건도 국가금융검찰이 수사한 사건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의 인사권으로 검찰을 좌지우지했던 부적절한 과거가 되풀이돼선 안 된다. ‘윤석열 사단 중용’이라는 불필요한 오해가 없도록 특수·공안·기획·형사 등 각 분야의 인재들을 주요 보직에 균형 있게 배치하는 것도 중요하다. 검수완박법이 통과됐어도 검찰의 책무는 막중하다. 직접수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부패와 경제범죄는 물론 일반사법경찰인 검찰수사관을 지휘해 검사는 모든 수사를 할 수 있다.
역사는 성공과 실패를 반복한다. 신뢰에 기반한 사회제도가 부패하는 것을 막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 공정하고 책임 있는 권력으로서 검찰 스스로 존재 이유를 증명할 시간이 왔다.
문화일보
05.21 새 정부의 성패를 가늠할 네 개의 숫자
文 정부와 비교될 지표 4개나랏빚 415조, 출산율 0.81, 임명강행 장관 34, 기자회견 10이보다 못하면 또 실패한 정부
문재인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 “차기 정부가 우리 정부의 성과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다시피 출범하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 정부의 성과, 실적, 지표와 비교를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역대 정부 또는 다른 나라와 비교되는 것은 당연한 얘기이지만, 문 전 대통령이 이런 얘기를 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공정한 비교와 평가를 누구보다 완강하게 거부한 사람이 바로 문 전 대통령 본인과 그 정부이기 때문이다.
집권 초 급격한 최저임금으로 일자리 참사가 발생해 전 정부와 비교당하자 문재인 정부는 한파 탓, 인구구조 탓, 봄비 탓을 했다. 성장률이 전 정부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을 땐 노영민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 증가액’이라는 희한한 기준을 들고 나와 전 정부보다 낫다고 어거지를 썼다. 전 정부보다 분배가 악화됐을 땐 가계동향조사 집계 방식을 바꿨다. 빈부 격차를 측정하는 기본 통계의 시계열을 단절해 과거 정부와 아예 비교가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이 외에도 전 정부와 비교해 불리한 지표에는 눈감고, 유리한 지표는 과장하고, 숫자를 수사(修辭)로 대체하고, 그래도 어쩔 수 없을 땐 전 정부를 탓하는 행태가 거듭됐다. 학생으로 따지면 성적표를 조작하고, 채점 기준을 멋대로 바꾸고, 컨디션이 안 좋았다고 핑계 대며 줄곧 “내가 1등”을 외친 격이다.
이런 황당한 일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채점표를 미리 정해놓을 필요가 있다.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의 말대로, 무엇이든 측정되지 않으면 개선하거나 관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를 전 정부와 비교할 때 자주 언급될 숫자 중 하나는 415조원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증가한 국가 채무 규모다. 노무현 정부 때 143조2000억원, 이명박 정부 때 180조8000억원, 박근혜 정부 때 170조4000억원 증가한 국가 채무는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660조2000억원에서 올해 1075조7000억원(1차 추경 기준)까지 불었다. 윤석열 정부 역시 말로는 ‘작은 정부’를 외치지만, 병사 월급 200만원, 기초 연금 40만원, 부모 급여 100만원 같은 복지 공약에다 공항·철도·도로 등 인프라 공약을 합치면 수백조 원을 넘는다. 야당 대표 땐 “국가 채무 40%가 마지노선”이라고 했다가 집권 후 “40%가 마지노선이라는 근거가 뭐냐”고 말을 바꾼 전임자를 반면교사 삼지 않으면 윤석열 정부에서도 국가 채무가 브레이크 없이 증가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윤석열 정부를 평가할 때 기준이 될 또 다른 숫자는 0.81명, 지난해 합계출산율이다.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1.05명이었던 출산율은 한 번도 반등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떨어졌다. 올해는 0.7명대까지 하락할 전망이다. 저출산의 원인에는 일자리, 부동산, 코로나 팬데믹, 남녀 갈등 같은 여러 문제가 얽혀있지만, 출산율은 결국 한 사회가 아이를 낳고 살 만한 곳인가를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지표다. 국가가 존립 불가능한 수준까지 출산율이 떨어졌다는 건 뭔가 잘못됐다는 명백한 신호다.
인사와 소통을 평가할 때 자주 등장할 숫자는 34명과 10회다. 34명은 문 전 대통령이 야당 동의 없이 임명을 강행한 장관급 인사 숫자이고, 10회는 임기 중 기자회견 횟수다. 10회는 역대 가장 적은 편이고, 34명은 역대 단연 많다. 415조, 0.81명, 10회, 34명. 이 네 숫자를 모아놓고 보면 문재인 정부가 40% 넘는 지지율로 5년 만에 정권을 빼앗긴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이보다도 못하다면 윤석열 정부도 실패한 정부라는 평가를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 최규민 기자
05월 24일 尹정부 ‘종부세 인하’ 국민 혼선 없게 빨리 매듭지으라
윤석열 정부가 올해 1가구 1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부담을 2020년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종부세 및 재산세(주택)의 과세기준일(매년 6월 1일)이 다가오고, 공교롭게도 지방선거 날짜와 겹치면서 더 민감한 문제가 됐다. 이에 따라 그전에 구체적 방안을 제시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집값 급등에다 과세표준을 산정할 때 반영되는 공정시장가액비율까지 올라 이중삼중으로 부담이 가중되고, 징벌세 성격도 더 짙어졌다. 미봉책을 넘어 근본적 대책까지 필요한 이유다.
그렇지만 구체적 방안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기획재정부는 일단 올해 종부세 산정에는 지난해 공시가격을 적용하되, 공정가액비율을 대폭 낮춰 납세액을 2020년 수준으로 맞추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공정가액비율은 문재인 정부 로드맵에 따라 올해는 100%가 적용될 예정이었는데, 법 개정 없이도 시행령을 개정하면 이 비율을 60%까지 낮출 수 있다. 문 정부는 지난 3월 1주택자의 보유세(종부세·재산세) 산정에 지난해 공시가격을 적용하겠다고 발표했었다. 2020년 공시가격을 올해 적용하는 대안도 거론되지만, 이는 내년이 되면 3년 치 공시가 상승분이 한꺼번에 반영돼 종부세가 급등할 가능성이 크다.
종부세 인하는 윤 대통령 공약이다. 위헌 시비가 여전한 종부세를 재산세와 통합하는 방안도 국정과제로 설정돼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금이다. 특히 문 정부가 부유세라던 종부세를 1주택자까지 확대한 것은 국민 갈라치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양도소득세까지 포함한 부동산세제의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 당장 종부세 인하는 발등의 불이다. 더불어민주당도 6·1 지방선거를 의식해 1주택자는 물론 다주택자까지 종부세를 낮춰주는 법안을 발의했다. 과세기준일이 코앞인 만큼 혼선이 없도록 구체적인 방안을 가급적 빨리 확정해 매듭짓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화일보 사설
05월 25일 尹정부 ‘文 분식 털기’ 이제 시작이다

문희수 논설위원
추경호 기재부 정책 오류 시인
“고용·소득 개선 지속성 없다”
文정부 땐 ‘깜짝 실적’ 말 바꿔
산업부는 원전 부품 조기 발주
전력 환경 등 개입·조작 의혹
해당 부처 자발적 시정 최우선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꼭 보름이 됐다. 어수선한 분위기지만 주목할 변화도 보인다. 발단은 추경호 경제부총리를 맞은 기획재정부다. 같은 정책인데도 평가는 문재인 정부 때와 180도 달라졌다.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통계 분식·왜곡 평가를 스스로 시인하고 오류를 인정하고 나선 것이다.
통계청이 지난 11일 발표한 4월 고용동향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출발점이었다. 문 정부의 마지막 월간 일자리 성적표인 4월 고용은 수치로는 역대급 성과였다. 작년 4월보다 86만 명 넘게 늘어 4월 한 달 기준으로는 22년 만의 최대 증가였다. 문 정부 때였다면 홍남기의 기재부나 청와대 모두 ‘서프라이즈’라고 자화자찬하며 법석이었을 일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딴판이었다. 기재부 스스로 “고령층과 세금 일자리 비중이 너무 높다”며 “재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평가 절하했다. 물론 옳은 지적이다. 60대 이상 고령층 일자리 증가가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세금으로 만드는 직접 일자리와 의료 복지 등의 수요가 일시적으로 확대된 효과였다. 4월 이전의 고용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기재부의 반전은 정상으로의 복귀일 뿐이다.
올 1분기 가계소득에 대한 기재부의 평가도 정상화했다. 지표상으로는 소득 증가가 뚜렷하다. 가계소득은 전체적으로 작년 1분기보다 평균 10.1% 늘었고, 더구나 하위 20%인 1분위부터 상위 20%인 5분위까지 모두 증가했다. 특히, 1분위 소득 대비 5분위 소득 비율인 5분위 배율은 6.20배로 전년(6.30배)보다 낮아져 소득분배도 개선됐다. 그렇지만 기재부는 보도 참고자료까지 내서 이례적으로 소득분배 개선 지속 여부는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낙관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런 평가는 그동안의 소득 증가가 일해서 번 근로·사업소득이 아니라, 대부분 정부로부터 받은 이전소득 증가에 따른 결과라는 인식을 배경으로 한다.
정권이 바뀌자 벌어지는 이런 말 바꾸기는 당혹스러운 게 사실이다. 이제껏 고령층 일자리도 일자리라고 강변하면서 세금 일자리를 비판하는 지적에 매번 반박하던 기재부였기에 그렇다. 지난 5년간 다분히 의도적으로 잘못된 통계 해석과 평가는 곧 국민 기만이건만 반성도 없다. 그렇더라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오류를 시인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다. 추경호 장관의 ‘빅 배스(big bath)’가 문 정부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새 사장이 전임자의 손실과 잠재 부실을 일거에 털어내듯 그동안의 분식·과대 포장을 걷어 내 잘못된 정책을 폐기·수정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긍정적인 기류 변화는 다른 부처에도 서서히 확산하는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원전 부품을 조기에 발주하겠다고 나선 것도 그런 사례다. 탈원전 5년에 따른 일감 절벽에 더는 버티기 어렵다는 부품업체들의 하소연을 수용한 결과다. 신한울 3·4호기 착공도 최대한 신속히 재개하겠다고 공식화했다. 이를 위해 지난 2016년 환경영향평가를 받았을 때 썼던 자료를 활용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철옹성 같던 탈원전 정책의 대전환이 진행 중이다.
그렇지만 아직 멀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주택 등 부동산, 전력 수급, 4대강을 비롯한 환경 등 정부 통계조차 믿을 수 없는 분야가 곳곳에 즐비하다. 주택 공급물량 부풀리기는 물론이고, 탈원전으로 단기 전력 공급이 부족한 판에 근거가 미심쩍은 태양광과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중장기 전력 공급 계획이 만들어지고, 한강·낙동강 등의 보 개방·해체에 대한 경제성 분석은 제멋대로였다. 산업부·환경부 등 관련 부처가 의도적으로 개입·조작했다는 의혹이 숱하게 제기돼 왔다. 통계청이 가계소득 조사 기준을 바꾼 탓에 2019년 이전의 수십 년 통계와 이후 통계가 비교 불능이 돼 소득 불평등 개선 여부 판단이 엿장수 마음대로 식으로 돼 버렸다. 이런 정책·통계 오류를 시정하는 것은 새 정부의 당면 과제다. 그렇지 않고는 국정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당사자인 해당 부처가 가장 잘 알 것이다. 자발적으로 잘못을 시인하고 정상화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이미 감사원도 정책 감사 계획을 밝히고 있다. 치부를 감춘다고 해서 가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문화일보
05.26 한동훈은 조국이 아니다

안혜리 논설위원
지난 5년 동안 너무 당연한 걸 잊고 살았다. 무슨 일이든 제대로 굴러가려면 합당한 전문성과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그에 걸맞은 자리와 권한을 줘야 한다는 지극히 기본적인 상식 말이다. '인사가 만사'라는데 지난 5년의 문재인 정부에선 이런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공직자로서 지녀야 할 사명감이나 국민과 공유할 국정철학은커녕 이념적 동지라 발탁된 무능하고 자격 없는 사람들로 채워진 국무회의가 온갖 헛발질로 국민 삶을 점점 더 피폐하게 만드는 모습에 처음엔 분노하다가 부지불식간 마치 그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다 거기서 거기지, 뭐 정권 바뀐다고 뾰족한 수가 있으려나. 이런 끔찍한 세뇌 아닌 세뇌에서 벗어나도록 해준 게 바로 한동훈 신임 법무부 장관이다.
사실,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이 본인의 최측근인 그를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을 땐 매우 회의적이었다. 검사로서 한 장관 능력 뛰어난 거야 온 세상이 다 알지만 여러 정치적 고려가 필요한 새 정부 첫 내각 인사로는 파격적이다 못해 너무 오만한 행보로 느껴진 탓이다. 지명한 쪽도, 그 제안을 받은 쪽도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한 달여 지켜본 결과 조심스레 한번 기대를 걸어보는 쪽으로 마음이 바뀌었다. 비단 검수완박(검찰수사권완전박탈)을 언급할 필요도 없이 문 정부의 권력 수사 뭉개기로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지다시피 한 지금 필요한 건 어설픈 정치적 고려가 아니라 일 제대로 해서 국민 삶을 평안하게 할 진짜 실력자의 인선이라는 판단이 들어서다.
둘을 나란히 놓는다는 것부터가 어느 한쪽에 모욕적이긴 하지만 조국과 한동훈, 이 두 사람을 비교하면 딱 답이 나온다. 두 사람의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 발언, 그리고 장관 취임 직후 행보를 복기해보면 더욱 명확하다.
우선 조 전 장관. 딸 조민씨의 동양대 표창장 위조 등 이젠 너무나 명확한 조 전 장관 일가의 불법을 놓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정치적 공방을 벌인 탓에 묻혀버렸지만 사실 지난 2019년 조국 청문회는 장관직을 수행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조 전 장관의 실력이 여과 없이 드러난 자리였다. 사문서위조 등 도덕성만이 아니라 실력이 더 큰 문제였다는 얘기다. 어떻게든 편들어 주느라 민주당 의원들이 열심히 판을 깔아줘도 아무런 논리적 설명을 못 했으니 하는 말이다. "검찰개혁과 관련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말해달라"는 백혜련 의원의 질문에는 "감사하고 면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가 전부였다. 표창원 의원이 한 번 더 묻자 "글을 많이 썼고, 각종 위원회를 오래 경험한 게 장점"이라고 했다. 아마 적잖은 국민들이 장관은 아무나 하는 거구나, 싶었을 거다. 취임 후 행보도 이런 낮은 기대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퇴임까지 불과 한 달 동안 조 전 장관이 한 일은 그가 문 정부 첫 민정수석으로 있으면서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을 수사한다는 빌미로 자기 손으로 23명에서 무려 43명으로 크게 늘린 검찰 특수부를 폐지하겠다고 나선 게 전부였다. 아, 이 사이 조 전 장관 동생은 영장 실질심사에 불출석하고도 100% 구속 전례를 깨고 구속영장이 기각되기도 했다.
이번엔 한동훈. 한동훈 잡으려다 국민적 조롱거리로 전락한 최강욱·김남국·김용민·이수진 등 '처럼회' 소속 민주당 법사위 의원들의 활약상 탓에 덜 부각됐지만 지난 9일 법무부 장관 후보 인사청문회는 한 장관의 평소 소신을 유감없이 드러낸 자리였다. 한국 3M이나 이모 교수, 2만 시간 논란 같은 민주당 의원들의 저질·억지 질문에도 흔들리지 않는 침착함만큼 화제가 된 건 그의 논리정연한 발언이었다. 검찰의 74년 쌓인 수사 자산 언급을 비롯해 시종일관 검수완박의 문제를 조목조목 짚으며 드러낸 법 전문가로서의 자질 얘기만이 아니다. 그는 "없는 죄를 만들어 뒤집어씌우는 게 안 되는 것만큼 있는 죄를 덮어주는 것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지난 정권을 겪으며 국민들이 분노했던 지점을 정확히 짚었다. 그리고 실제로 취임하자마자 추미애 전 장관이 없애버린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부활시켰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검찰 인사 하루 만에 산업통산자원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정조준하는 등 지난 정권이 뭉갠 비리 의혹 수사가 활기를 띠고 있다.
코미디보다 더 웃겼던 인사청문회 동영상뿐만 아니라 과거 아무도 보지 않았던 장관 취임식 영상이 수백만 조회 수를 기록하는 등 한 장관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뜨거운 건 한 장관 발언처럼 '없는 죄 만들지 말고 있는 죄 덮지 않기'를 바라는 국민적 기대가 깔려있다고 본다. 그가 사실상 민정수석 역할까지 겸하게 되면서 권력의 집중에 따른 여러 우려가 나온다. 부디 그가 권력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초심을 지키기를 바랄 뿐이다.
중앙일보 안혜리 논설위원
05월 26일 소주성·탈원전 主役 국조실장 강행 땐 尹정권 자기부정
윤석열 정부의 초대 국무조정실장(장관급)에 문재인 정부 때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낸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이 유력하다고 한다. 윤 전 수석을 강력 추천했다는 한덕수 국무총리는 25일 “검증 과정이 ‘스무스’하게 끝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한 총리의 의중에는, 윤 전 수석의 능력에 대한 평가와 협치의 상징성 등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을 이해하더라도 부처 간 국정을 조정하는 국조실장으로는 매우 부적절하다.
우선, 윤 정권이 국민 앞에 내세운 정책 정체성에 대한 자기부정이다. 윤 전 수석은 2018년 6월 소득주도성장을 입안한 홍장표 전 수석 후임으로 임명돼 경제 전반은 물론 김수현 사회수석이 맡았던 에너지·부동산 분야까지 넘겨받았다. 소주성, 탈원전, 부동산 정책을 총괄한 주역(主役)의 한 사람으로서 ‘왕수석’ 별명도 얻었다. 윤 대통령은 이런 정책들이 실패했다고 비판하고 전면 시정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런 인사가 다시 국정을 조정하는 중책을 맡는다면, 국민과 공직 사회를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
둘째, 윤 전 수석은 경제 악화 등의 책임을 지고 1년 만에 경질된 이후 반년이 안 돼 IBK기업은행장에 임명됐다. 관치금융의 대표적 사례일 뿐 아니라, 장하성 전 정책실장 동생이 주도한 ‘디스커버리 펀드 사기’ 논란도 해소되지 않았다. 아무리 ‘영혼 없는’ 공무원일지라도 거액 연봉을 받는 국책은행장까지 하다가, 전혀 다른 정책 노선을 추구하는 정권으로 바뀌자마자 또 정책 조정의 요직을 맡게 된다면, 개인적으로도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한 총리는 국무조정실장도 맘대로 기용하지 못하면 책임 총리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도 난감할 것이다. 윤 전 수석 스스로 사양하는 것이 최선이고, 그렇지 않다면 한 총리가 고집을 접는 게 옳다.
문화일보 사설
05.30 ‘민주 대 반민주’ 아니라 ‘진실 대 탈진실’이다
말의 의미 뒤틀어 사실 바꾸려 했던 문 정부, 대선 패배로 귀결민주·반민주 구도였던 87년 체제는 끝나… 진실 지키는 게 시대정신
나라가 망하기 전에 말[言]이 먼저 망한다고 한다. 진(秦) 제국도 그런 사례이다. 중국 최초로 천하를 통일한 진은 불과 16년 만에 망했다. 황제 외의 누구도 생각하거나 말해서는 안 된다는 법가의 정치관이 문제였다. 생각을 담은 책을 불사르고, 말 많은 지식인을 생매장(분서갱유)했다. 환관 조고가 상황을 악화시켰다. 그는 2세 황제에게 사슴을 바치며 말[指鹿爲馬]이라고 했다. 사슴이라고 말한 신하들은 혹독한 댓가를 치렀다.
말이 망하는 것도 단계가 있다. 진시황은 단지 생각과 말을 막았을 뿐이다. 그런데 조고는 사실 자체를 바꾸었다. 푸코는 말을 사회의 기본 규범으로 본다. 즉, 말의 의미가 파괴되면 국가는 이미 안에서 무너진다. 무언가 느낌이 오지 않는가. 그렇다. 바로 오늘날 한국 정치에 만연한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 때 그 문이 활짝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8년 11월 2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3차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입장하고 있다. 앞은 조국 민정수석./연합뉴스
문 정부가 전체주의였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사실과 거짓이 모호해졌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이 “젊고, 매우 솔직하며, 공손하고, 웃어른을 공경한다”고 호평했다. “진실되고 경제개발을 위해 핵무기를 포기할 것으로 믿는다”고도 했다. 한국형 원전은 비싸고 위험한 흉물이며, 태양광이 대안이라고 말했다, 소득주도성장이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을 이룬다고 했다.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그래서 말은 의미를 상실했다.
압권은 조국 사태이다. 금년 1월 대법원은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에 대한 혐의를 유죄로 판결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조국 전 장관은 사법개혁의 십자가를 진 메시아이며, 그 가족은 고난받는 신성가족이다. 얼마 전 조국 사태를 다룬 다큐멘터리 ‘그대가 조국’이 방영되었다. 조국 전 장관은 “수사와 기소·재판을 통해 확인되었다고 하는 법률적 진실 뒤에 가려져 있고 숨겨져 있던, 나아가 왜곡돼 있던 진실들이 복구”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회찬, 안희정, 박원순은 순진했다. “죽을 죄를 지었다”며 얼굴을 가린 최순실 씨도 그렇다. 조 전 장관이 이렇게 당당한 이유는 “당시 사태에 대해서 다른 시각들이 있었고 다른 경험, 다른 증언이 있었음을 알아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 때문이다. 유시민 작가도 그렇게 생각했다. 진중권 전 교수는 그에게 동양대 표창장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그러자 유 작가는 바로 “‘대안적 사실’을 제작하여 현실에 등록하면, 그것이 곧 새로운 사실이 된다”고 하며, 오히려 진 교수를 안심시켰다고 한다.
조고의 수법이다. 그러나 최신식이다. 그 철학적 근거가 포스트모더니즘이며, 그 수단이 소셜미디어고, 그 정치가 팬덤정치이다. 이른바 포스트트루스(post-truth) 시대의 전형적 현상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적 진리, 객관적 진리를 철학이 만들어 낸 허구로 본다. 모두 대안적 사실일 뿐이다. 탈진실의 태도이다. 철학이나 과학이 아닌 정치와 사회에 이 관점을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사회적 상식은 물론 사법부의 판결조차 뿌리를 상실한다. 플라톤이 소피스트를 아테네의 정신적 파괴자로 여긴 것은 이 때문이었다.
탈진실 시대의 핵심 질문은 현실을 파악할 수 있는지, 처음부터 현실 자체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탈진실의 상황은 소셜미디어의 확산과 함께 2000년대 초부터 폭풍같이 등장했다. 소셜미디어에 집결한 진영의 창고(silo)에 갇혀 정치를 종교적 광신으로 바꾼 게 팬덤이다.
한국정치에서 포스트트루스 시대의 정치는 지난 대선에서 본격 개막되었다. 대장동 사건 혐의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씨가 여당 후보가 되었다. 진실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그와 대결한 윤석열 후보는 조국 사태와 정면 대결하면서 급부상했다. 정치 참여 8개월 만에 이겼다.
87년 체제는 끝났다. 이번 대선의 시대적 의미이다. 87년 체제의 프레임은 ‘민주 대 반민주’였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진실 대 탈진실’의 싸움이었다. 문 전 대통령과 민주당은 탈진실의 정치공간을 선점하고 한국정치를 지배했으나, 사실에 기초한 검찰의 법치주의에 막히고, 국민의 선택에 꺾였다. 그게 조국 사태의 원인이고, 대선에 진 이유이며, 검수완박 사태의 본질이다. 박지현 위원장은 그런 사실을 경고한 것이다.
한국정치의 시대적 어젠다가 탈진실의 문제로 변했다. 오웰은 빅 브라더를 우려했다. 하지만 지금 민주주의의 적은 팬덤이다. “전체주의 지배가 노리는 가장 이상적인 대상은 확신에 찬 나치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아니다. 사실과 허구 혹은 참과 거짓을 더 이상 분간하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이다.”(H. Arendt) 이제 진실을 말하는 것이 곧 혁명이며, 지성이 무기이다. 세계관이 시대적 과제라는 점에서, 대한민국은 새로운 1948년을 맞이하고 있다.
조선일보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05.30 “제3세계 대통령궁이냐?” 참을 수 없이 ‘올드’한 청와대
일반 개방에 앞서 지난 25일 언론에 공개된 청와대 본관 취재를 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화려해서가 아니다. 너무 ‘올드’해서였다. 방송과 사진을 통해 볼 때는 중후해 보였던 붉은 카펫과 샹들리에, 오크색 난간과 기둥은 ‘사진발’이었다. 집무실과 회의 공간에 놓인 책상과 의자도 현대적인 것과 거리가 멀었다. “제3세계 대통령궁 같네.” 기자들 입에서 탄식이 흘렀다. 낡은 인테리어야 이해할 수 있다. 청와대 본관은 노태우 전 대통령 때인 1991년 준공됐다. 요즘 젊은이들은 질색하는 ‘체리색 몰딩’을 떠올리게 하는 천장도, 번쩍이는 샹들리에도, 로코코 양식을 어설프게 따라한 화장실 수납장도 당시엔 고급 인테리어로 여겨졌을 것이다. 이후 청와대에 입성한 대통령들이 인테리어를 바꾸고 싶었더라도 국민 세금 들이는 일이라 쉽지 않았을지 모른다.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본관 무궁화실이 언론에 공개되고 있다. /뉴스1
참을 수 없이 올드하다고 느낀 건 따로 있었다. 영부인 집무실 겸 접견실로 사용되던 ‘무궁화실’에 이르러서였다. 이승만 전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부터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까지 역대 대통령 부인 11명의 초상 사진이 벽에 걸려 있었다. 왕의 아내가 ‘국모(國母)’로 불렸던 왕조시대도 아닌데 한 여성이 누군가의 아내라는 이유로 지위를 얻고, 그것이 사진으로 기록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는 사실이 기이하게 낡았다고 느껴졌다.
선대의 초상을 건다는 건 공과(功過)를 되새기기 위해서다. 사진 속 여성들의 업적을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민주화 운동가였던 이희호 여사의 생애마저도 ‘영부인’이라는 칭호에 가려 퇴색된 것 같았다. 그 공간 자체가 “여성의 가장 큰 덕목은 내조”라 웅변하고 있었다. 40대인 기자 눈에도 이런데 페미니즘의 가치를 더 중히 여기는 2030 여성들은 어떨지 궁금했다.
미셸 오바마는 회고록 ‘비커밍’에서 백악관에 처음 들어가던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렇게 썼다. “이 상황에서 중요한 진실은 나와 딸들이 조연일 뿐이라는 점이었다. 우리는 버락에게 주어지는 호화로운 혜택을 나눠 받는 수혜자에 불과했다. () 가끔은 집안의 모든 일이 남성 가장의 욕구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옛 시절로 회귀한 것 같은 느낌이었고, 딸들이 그런 상황을 정상으로 여기지 말아야 할 텐데 싶었다.” 미셸은 ‘오바마 부인’이라는 명칭에 커리어우먼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이 묻혀버렸다는 사실을 속상해 했다.
공간은 사고(思考)를 규정한다. 낡은 공간에 있으면 생각마저 낡아진다. 그런 면에서 청와대를 벗어나 영부인실을 없앤 새 정부의 결정은 ‘모던’하게 보인다. 대통령 부인이 집무를 보았다는 책상 앞에 푸른색 가죽 의자가 놓여있었다. 북유럽 유명 리클라이너 브랜드 제품이다. 이날 청와대에서 본 것 중 유일하게 ‘모던’했다. 기묘한 부조화였다.
조선일보 곽아람 기자
05월 30일 임금피크 根源(근원) 도외시한 대법원 판결

김정호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나이 60세 언저리에 있는 직장인들의 급여가 당분간 좀 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임금피크제에 대해 대법원이 부분적이지만 무효 판결을 했기 때문이다. 임금피크제란 일정 연령(예를 들어 55세) 이후부터 급여를 낮춰 지급하는 제도다. 이번 판결은 합리적 이유 없이 나이만을 이유로 급여를 삭감하는 것이 무효라고 했다. 합리적 이유가 애매하므로 기업으로선 난감하다. 특히, 여러 눈치를 봐야 하는 대기업들은 예전처럼 임금피크제를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판결로 인해 장기 근속자의 급여가 올라갈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퇴직 압력이 높아지고 기업은 신규 채용을 줄일 것이다. 청년 고용도 감소할 것이다. 해결하려면 판례를 변경하거나 국회가 입법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임금피크제는 근속 연수에 따라 급여가 자동으로 올라가는 연공형 급여 제도 때문에 도입됐다. 문제는, 급여는 올라도 근무 성과가 같이 오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40세 정도까지는 경력이 늘수록 대체로 일의 성과도 높아지지만, 그 후부터는 그러리란 보장이 없다. 특히, 50세가 넘어가면 나이와 성과는 오히려 반비례한다. 생물학적으로 몸과 마음이 늙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부를 게을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OECD가 수행한 성인역량조사(PIACC)의 연령별 문해력 점수 차는 그 현실을 잘 말해준다. 우리나라 청년층(16∼24세)의 문해력은 OECD 회원국 중 4위로 상당히 높다. 하지만 나이와 더불어 급격히 하락해 55∼65세는 조사 대상국 중 최하위권으로 떨어진다. 원인은 공부를 게을리하기 때문이고 결과는 낮은 생산성이다. 그런데도 급여는 높아지니 심각한 병리 현상이다.
회사는 자선단체가 아니다. 기여한 것보다 더 많이 받아가는 사람은 퇴직의 압력을 받기 마련이다. 개별적으로 그렇게 하기 어려웠기에 정년이란 제도가 생겨나 (예를 들어) 55세가 되면 무조건 회사를 나가야 했다. 그것도 부족해서 조기퇴직, 명예퇴직 같은 관행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대상자 중에는 돈 좀 덜 받더라도 오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많다. 정년을 늘리는 대신 급여는 줄이는 임금피크제는 타협책으로 나왔다.
급여가 일률적으로 삭감되니 개별적으로 부당한 경우가 생긴다. 생산성이 나이와 더불어 떨어지는 것은 평균적 현상이다. 절반은 평균보다 높고 절반은 낮을 테니 일 잘하는 절반은 억울하다. 대법원 판결은 그 문제를 지적한 셈이지만, 평균보다 생산성이 낮은 사람의 문제는 외면했다. 개별적인 예외를 모두 인정하면 임금피크제는 무의미해진다. 기업은 결국 어떻게든 조기퇴직을 추진할 것이고 고용을 줄일 것이다.
이상적으로만 하자면 모든 근로자가 나이와 무관하게 회사에 대한 기여만큼 급여를 받아야 한다. 신입 사원이라도 일 잘하면 30년 차 고참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획일적 정년도 필요 없어진다. 하지만 요원한 일이다. 어느 고참이 그런 일을 당하고 불만을 갖지 않겠는가. 불만이 고조되면 조직도 잘 안 돌아간다. 그래서 오랫동안 연공서열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정년을 연장하려면 임금피크제도 불가피하다. 법원도, 국회도 임금피크제가 생겨난 불가피한 이유를 살펴보기 바란다.
문화일보
05.31 괴담꾼 말 듣고 ‘천안함 재조사’ 지시한 사람은 바로 위원장
▲'천안함 폭침' 재조사 결정을 내렸던 이인람 전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장. /뉴스1
재작년 대통령 직속 군(軍)사망사고 진상규명위가 ‘천안함 폭침’은 재조사 대상이 아니라는 내부 판단을 하고도 이인람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재조사를 결정했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왔다. 당시 진상규명위 실무진은 ‘좌초설’ 등 온갖 괴담을 퍼뜨려온 신상철씨가 요구한 재조사 진정을 각하했다. 그러자 신씨가 항의했고 민변 출신인 이 위원장이 재조사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재조사에 대한 반발이 커지자 다시 없던 일로 했다. 천안함 생존 장병과 유족은 재조사 결정과 번복 과정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청구했었다.
원래 재조사 진정은 ‘사고 당사자나 친족, 특별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하게 돼 있다. 그런데 신씨는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다. 2010년 민주당 추천 민간위원으로 천안함 합동조사단 회의에 단 몇 시간 참석한 뒤 “(군이) 다 조작하고 있는 걸 알았다”며 합조단을 이탈했다. 이후 ‘미 군함 충돌설’ ‘국방장관이 증거를 인멸’ 등의 허위 사실을 퍼뜨렸다. “북 어뢰 ‘1번’ 글씨는 우리가 쓴 것 같다”는 말까지 했다. 이런 음모론에 대해 법원도 ‘허위’라고 판결했다. “신씨는 진정인 자격이 없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진상규명위는 ‘사망 사고의 원인이 명확하지 않을 때’ 재조사를 하게 돼 있다. 그런데 천안함 폭침은 5국 전문가 70여 명이 수많은 모의 실험 등 과학적 검증을 거쳐 ‘북 어뢰 공격’임을 증명한 사건이다. 우리 법원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무엇을 더 밝혀야 하나. 규명위는 재조사를 위해 ‘북 어뢰 공격’이 빠진 검토 보고서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규명위 상임위원과 신씨 괴담 사건 변호사도 모두 민변 출신이다. 천안함 괴담을 믿는 사람들이 벌이는 소동에 국가 기관이 동원된 것이다.
진상규명위가 천안함 재조사를 결정하자 생존 장병과 유족은 “나라가 미쳤다” “몸에 휘발유 뿌리고 청와대 앞에서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기막히고 참담했을 것이다. 천안함 장병과 유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은 이것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