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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여행/ 국가별27/ 불가리아 - 브라질

상림은내고향 2022. 5. 21. 22:31

지구촌 여행/ 국가별27/ 불가리아 - 브라질

■ 불가리아 Bulgaria

불가리아 공화국, Republic of Bulgaria

      ▲국기

 

유럽 남동부 발칸 반도에서 흑해를 끼고 있는 국가. 수도는 소피아이며, 화폐는 불가리아 레프이다. 기후는 대륙성기후이며, 국민은 대부분 불가리아인(84%), 터키인(9%)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불가리어가 공용어이고, 종교는 불가리아정교(83%), 이슬람교(12%)이다. 도시인구의 비율이 높으며, 8년제 기초교육이 무상의무교육으로 실시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비(非)불가리아인들의 출국이 크게 늘었다.

 

흑해(Black Sea)

 

중기 구석기시대부터 불가리아에 사람이 거주한 자취가 있으며, 신석기시대에는 농경부락들이 생겨났다.

역사시대에 들어선 후 최초의 거주인은 트라키아인이었다. 그들이 불가리아로 들어온 시기는 유라시아 스텝의 반유목민들이 남서쪽으로 이동하여 발칸 반도에 정착한 시기인 BC 3500년경으로 추적할 수 있다. 최초로 알려진 트라키아인 국가는 BC 5세기 중엽에 세워졌다. 트라키아 왕국은 마케도니아 및 페르시아와의 싸움으로 약화되었으며 기원초까지 계속된 150년간의 투쟁 끝에 마침내 로마 제국에 흡수되었다.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서 불가리아는 모이시아 속주와 트라키아 속주로 분할되었고, 서쪽으로부터 중동으로 가는 주요육로의 경유지가 되었다.

 

발칸 반도는 3세기경부터 계속된 고트족·훈족·불가르족·아바르족들의 침략으로 황폐해졌다. 6세기 중엽부터는 점차 농사를 짓는 슬라브족이 이 지역의 대부분에 다시 정착했다.

 

7세기에 불가르족은 아바르족에 대항했고, 도나우 강을 넘어 남쪽의 슬라브족 공동체들을 예속시켰다. 비잔틴 제국은 불가리아와의 전투에서 패한 후 681년에 불가리아인들이 발칸 반도와 도나우 강 사이의 지역을 지배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것이 불가르족 국가의 시발점으로 여겨진다. 통치자 보리스 1세는 864년에 동방정교를 국교로 채택했는데, 이로 인해 불가르족이 수적으로 우세한 슬라브족 주민들에 동화되는 경향이 촉진되었다.

 

그리하여 '불가리아'라는 이름은 남았지만 불가르족의 언어와 관습은 거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은 차르 시메온(893~927 재위)의 통치하에 번영을 누렸지만 1018년에 이르러서는 비잔틴의 지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센 형제가 주도한 반란이 성공하여 불가리아는 1185년에 독립을 되찾았다.

 

제2차 불가리아 제국은 수도를 투르노포에 두었으며, 내분과 외침으로 인해 무너질 때까지 발칸 반도의 상당 지역을 지배했다. 14세기 후반기에 불가리아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침입을 받았으며, 1396년에는 완전히 점령·귀속당했다. 5세기에 걸친 오스만 제국의 지배(1396~1878)하에서 불가리아의 귀족 계급은 분쇄되고 농민들은 투르크인 지주들의 농노가 되었다. 그러나 투르크인들은 그리스도교와 불가리아어를 말살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불가리아는 이웃한 세르비아나 그리스보다 늦게 독립운동을 시작했으나 러시아-투르크 전쟁(1877~78)이 벌어질 무렵에는 '민족부흥'으로 알려진 운동이 일어남으로써 불가리아의 주체의식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산스테파노 조약(1878)의 결과 사실상 독립국인 불가리아가 성립되었으며, 이 나라는 발칸 반도의 3/5가량을 차지했다. 이것은 대부분의 강대국이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그 결과 소집된 베를린 회의(1878)는 조그마한 자치공국의 성립만을 허용했다. 불가리아는 1885년 동(東)루멜리아를 합병하고 1908년에는 독립왕국임을 선포했다.

 

불가리아는 제1차 발칸 전쟁(1912. 10~1913. 5) 때 투르크에 대항해서 싸운 그리스·세르비아·몬테네그로와 함께 발칸 동맹을 결성했다. 제2차 발칸 전쟁(1913. 6~8) 때는 투르크와 루마니아, 그리고 예전 동맹국들을 상대로 싸워, 과거에 차지했던 영토의 대부분을 잃었다. 게다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패전국에 속하게 됨에 따라 1918년 페르디난드 1세가 폐위되고 그의 아들 보리스 3세가 즉위해 1943년 죽을 때까지 불가리아를 통치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 편에 섰다. 소련군의 침략과 동시에 1944년 9월 9일 좌익 연합세력이 정권을 잡았다. 1946년 국민투표에 따라 군주제가 폐지되고 불가리아 공산당이 통치하는 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산업체들은 국유화되었고 농업은 집단화되었으며, 공산당 지도자 토도르 지브코프의 통치하에서(1954~89) 불가리아는 점차 도시화·산업화된 사회를 이루었다.

 

소련 및 소련 진영의 국가들과 굳건한 동맹관계를 유지했다.

 

1989년 불가리아 역시 동유럽에 몰아닥친 민주화의 물결에 휩싸였다. 1989년 12월 지브코프가 사임한 뒤 젊고 개혁적인 지도자들이 뒤를 이었다. 지브코프의 후계자들은 개방정책·다원주의·준법을 지지하고 터키인들에 대한 억압을 중지했으며, 불가리아 공산당(Bulgarian Communist Party/BCP)의 1당 독재를 보장하던 헌법 제1조를 폐지했다.

 

페타르 믈라데노프가 대통령에, 안드레이 루카노프가 총리에, 알렉산두르 릴로프는 BCP 당수에 임명되었다. 1990년초 BCP는 정당조직에 의미심장한 변화를 가져올 임시의회를 열었으며, 과거의 억압적인 정책을 타파하기 위한 상징적 조치로 당명을 불가리아 사회당(Bulgarian Socialist Party/BSP)으로 바꾸었다. 과거 반체제 세력들이 만든 야당들이 젤류 젤레프가 주도하는 민주세력연합(Union of Democratic Forces/UDF)에 동참했다.

 

1990년 6월 새 헌법을 마련할 거국의회를 구성하는 자유선거가 실시되었으며, 1991년 7월 의회 민주주의에 기초한 새 헌법이 채택되었다. 그해 10월 실시된 총선에서 UDF는 근소한 차로 BSP를 따돌리고 의회 내 다수의석을 차지했다. 소수의석을 차지한 인권·자유운동의 지원을 받은 UDF는 필리프 디미트로프를 총리로 하는 정부를 출범시켰다. 1992년 1월 실시된 선거에서 젤레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다음백과

 

▲불가리아 흑해 수면이 50년만에 결빙

 

▲소피아의 알렉산더 네프스키 성당 주변을 정교회 신자들이 촛불을 들고 주변을 걷고 있다

 

▲소피아 알렉산더 네브스키 대성당

 

▲강물속에서 춤추는 불가리아 사람들 - 13.1.6. 주현절 행사

 

▲어린이들의 쥐불놀이 13. 3. 17. 로젠마을

 

▲호이트 브라더후드 라 불리는 국제종교단체 회원 수백명이 13. 8. 19.  릴라 산 정상에서 5개의 원을 그리며 집단 춤을 추고 있다

 

 

■ 브라질 Brazil

브라질 연방 공화국, Federative Republic of Brazil

▲국기

 

남쪽으로 우루과이, 남서쪽으로 아르헨티나·파라과이·볼리비아, 서쪽으로 페루, 북서쪽으로 콜롬비아, 북쪽으로는 베네수엘라·가이아나·수리남과 프랑스령 기아나에 면해 있다. 동쪽 경계선은 남아메리카의 대서양 쪽 해안선 7,400km 이상을 차지한다.

 

포르투갈 점령 이전의 브라질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원주민은 거의 투피과라니 인디언이었다. 각각 서부와 북서부에 제국을 세웠던 잉카인이나 아스텍인과 달리 이들은 제국을 형성하지 않았으며 곳곳에 흩어져 유목생활을 했다.

 

브라질은 포르투갈 해군 사령관이었던 페드루 알바레스 카브랄에게 발견되면서 처음으로 유럽인들에게 알려졌다. 1500년 카브랄이 인도로 가는 길에 서쪽으로 항해하여 발견된 이 땅은 처음에는 포르투갈인의 관심을 별로 끌지 못했다.

 

그러나 브라질(brasil)이라고 알려진 값진 붉은 염료를 함유한 수종이 발견되는 한편, 해안을 탐사하고 있던 프랑스와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적극적으로 식민지화에 나서게 되었다. 브라질이란 국명은 염료를 함유한 나무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식민사업은 1530년 마르팀 아폰수 데 소사의 지휘 아래 처음 시작되었다. 그는 1532년 상비센테를 세웠다. 거주지 기부제가 실시되어 봉건적 특색이 강한 대토지소유를 낳았다. 인디언들은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후에는 아프리카 흑인 노예가 인디언을 대신해서 농장노동에 투입되었다. 당시 예수회선교단은 인디언을 교화·교육시키고, 인디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등 적지 않은 자취를 남겼다. 내륙을 향한 팽창은 상파울루 시민인 반데이란테가 노예로 쓸 인디언을 납치하고 금을 비롯한 진귀한 귀금속을 찾아내려고 대규모 탐험대를 조직하여 서쪽으로 진출하면서 이루어졌다.

 

포르투갈 통치에 반항한 봉기는 1789년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독립은 독특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1808년 포르투갈 섭정궁(攝政宮) 돔 주앙은 나폴레옹의 침략을 두려워하여 브라질로 피해온 후 혁신적인 개혁들을 단행했다. 그후 1815년에는 포르투갈·브라질·알가르베스로 이루어진 통일왕국을 새로 설립하면서 수도를 리우데자네이루에 두고 브라질을 포르투갈과 동등한 왕국의 범주로 승격시켰다·(포르투갈·브라질·알가르베스 통일왕국). 그러나 주앙(나중에 주앙 6세)은 본국에서의 혁명운동 때문에 포르투갈로 귀환해야 했다.

 

포르투갈 의회는 브라질을 식민지 상태로 되돌리려 했으나 브라질인들이 격노하는 바람에 리우데자네이루에 머물러 있던 섭정 황태자 돔 페드루는 1822년 9월 7일 브라질의 독립을 선언했다.

 

처음 20년간은 많은 소요를 겪다가 페드루 2세가 오랫동안(1840∼89) 통치를 하면서 브라질 왕국은 성장·번영했고 안정을 이루었다. 1889년 군부 지도자가 혁명을 일으켜 페드루 2세는 왕위에서 물러났고 공화국이 시작되었다.

 

20세기에 들어 이민이 증가하면서 제조업도 성장했다.

 

그러나 군부 쿠데타가 자주 일어났고 인권이 억압되는 경우도 많았다. 1960년대 내륙지역을 발달시키기 위해 수도를 브라질리아로 새로 옮겼으나, 새 수도를 건설하는 동안 공채가 증가하고 인플레이션이 심해졌다.

 

1979년 이후 주앙 바티스타 데 올리베이라 피게이레두 대통령이 이끄는 군사정부는 민주화 정책을 단계적으로 실시했다. 1989년 29년 만에 처음으로 대통령 직접선거가 실시되어 페르난두 콜로르 데 멜루가 집권했으나, 1992년 부패혐의가 드러나 같은 해 12월 탄핵 절차가 시작되자 곧 사임했다.

 

부통령 이타마르 프랑쿠가 그를 이어 남은 임기를 채우다 그후 1994년 10월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페르난두 엔리케 카르도수가 54%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 다음백과

 

◆볼거리

◇풍경

▲사회 그린터널=브라질에서 70년전 조성된 500m의 나무숲 거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터널, 신비한 나무 터널 거리로 불린다

 

▲딱정벌레가 만든 아름다운 야경 -  에마스 국립공원 높이 쌓아올린 흙무더기는 흰개미 집이었으나 클릭 딱정벌레가 사는 집

 

▲벨렘

 

▲심장의 강 - 바리스 강

 

▲아름다운  해안 풍경

 

▲아마존 강 위의 붉은 구름이 몽환적 - 브라질 타바칭가

 

▲브라질 고이아스주 테라 롱카 주립공원에 있는 석회동굴

 

▲렌소이스 사막 - 북동쪽의 흰 모래 사막. 1981. 브라질 국립공원 지정

 

▲사막 아래 물이 투과하지 못하는 진흙층이있어 우기가 절정이면 사막은 온통 호수로 뒤덮인다

 

 

▲沙丘

 

▲아름다운 하얀색의 모래 언덕 - 렌소이스 마라넨지스 국립공원

 

▲이빠네바 해변

 

 

 

 

 

 

▲브라질 하트모양 호수

 

▲상 파울로호수(브라질 남자형의 길이140미)

 

▲세계 3대폭포 - 이과수 나이아가라 빅토리아

 

이과수 

 

 

 

 

 

 

 

 

 

 

 

 

https://www.youtube.com/watch?v=bAyw1AcFZ3I&feature=player_detailpage

 

◇물의 나라 이구아수 폭포로 여행

 

에콰도르의 적도로부터 아르헨티나의 남단 남극에 이르기까지 라틴아메리카 대륙은 강렬한 태양빛의 여름부터 얼음산으로 뒤덮인 겨울까지 동시에 모든 기후대를 가로 지르고 있다. 이 때문에 라틴아메리카의 자연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하느님이 천지창조를 할 때 유독 라틴아메리카에 갖은 정성과 많은 공을 들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정도다. 이토록 라틴아메리카는 정말 많은 걸 가졌고 그것 때문에 슬픈 역사를 지닌 대륙이기도 하다.

수많은 자연경관 중에서도 특히 세계인들로부터 가장 많은 찬사와 감탄을 받는 곳을 꼽으라면 두말없이 이구아수 폭포일 것이다. 연간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찾는 세계적 명소인 이구아수 폭포는 1541년 유럽의 탐험가 알바르 누녜스에 의해서 처음 유럽에 알려졌다. 1984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2011년에는 우리나라의 제주도와 더불어 세계 7대 경관 중 한 곳으로 뽑혔다. ‘이구아수’는 이 지역 원주민인 과라니족의 언어로 ‘큰물’을 의미한다. 물의 나라에 와 있다는 착각이 들 만큼 물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이구아수 폭포는 275개의 크고 작은 폭포로 이뤄져 있다. 너비가 4.5km, 평균낙차는 70m에 달한다. 북미의 나이아가라 폭포 그리고 아프리카의 빅토리아 폭포를 합친 것보다도 더 크다고 하니 그 규모가 상상이 갈 것이다. 이구아수 폭포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그리고 파라과이 등 3개국의 국경을 접하고 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가 폭포의 70% 그리고 브라질이 30%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파라과이 쪽에서는 폭포를 감상할 수 없다

 

 

아르헨티나쪽 폭포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한다. 275개나 되는 크고 작은 폭포수들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산책로를 따라 트레킹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브라질 쪽은 코스도 짧지만 멀리서 바라보기 때문에 잘 포장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되니 크게 힘이 들지 않지만, 아르헨티나 쪽은 폭포를 가까이서 보기 때문에 등산을 하듯 좁고 가파른 돌길을 오르고 비포장된 흙길을 걸어야 해 체력이 필요하다. 중간 중간 기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트레킹을 하기도 하지만 오프로드차를 타고 이구아수국립공원의 자연과 경치를 느끼는 방법도 있다. 이동하면서 만나는 꽃과 나무, 나비와 새들 그리고 원숭이와 코아티 등 공원 안의 자연과 생태계에 대한 설명도 이구아수 폭포 여행의 또 다른 재미다. 오프로드차를 타고 도착한 곳에서 보트를 타면 가장 가까운 곳에서 폭포를 볼 수 있으며 보트 운전수의 짓궂은 장난에 폭포수를 흠뻑 뒤집어쓰기도 한다. 브라질 쪽에서 맞은 폭포수가 가랑비라면 아르헨티나 쪽에서 맞은 폭포수는 장대비와도 같다. 승객의 박수와 호응 정도에 따라 두 번이고 세 번이고 폭포수를 맞을 수 있다. 보트를 타고 폭포 속으로 들어가면 멀리서 폭포를 눈으로만 감상할 때와는 전혀 다른 감동으로 폭포를 느낄 수 있다

손혜현 한국외국어대 중남미연구소 초빙연구원

 

◇이미지

▲배를 타고 폭포아래로

 

▲폭포 속으로 들어가기 직전

 

▲폭포맞기 손님들을 태운 배 

 

 

 

 

 

 

 

 

 

 

 

 

 

 

 

 

◆하늘에서 보는 브라질

http://www.youtube.com/watch?v=M5ZZtsYUobA&feature=player_embedded 

 

◆일상

▲오토바이 타는 브라질 원주민들

 

▲좀비 퍼래이드 -11.11.2.

 

▲여성들의 머드체험 - 13.2.18. 브라질리아

 

▲축구와 바다 - 13. 6. 24.포르달레사 해변

 

▲브라질 삐삭 마을주민들

 

 

▲인디오들의 분노 - 13. 5. 8 수력발전 댐 건설에 반대하는 인디오들

 

▲인디언들의 종교의식 춤 - 13. 6. 6.

 

▲소요 - 13. 6. 19. 브라질 월드컵 개최 반대와 대중교통 무료화를 요구하며

 

 

 

 

▲시위대 - 13. 6. 20. 상파울로

 

 

▲대중교통 요금 인상 철회 관리 부패에 대한 시위

 

▲시위대의 최류탄 되돌려 차기 13. 6. 26.

 

▲브라질리아 국회의사당앞 분수대에 시민단체가 월드컵 재정 지출을 항의하며 분수 안으로 축구공을 차 넣고있다 13. 6. 26.

 

▶브라질의 민낯 파벨라

https://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c3BRTlHFpBU

 

▲아찔한 사고 12. 9.22.

 

▲고가도로 붕괴 - 14.7.3 벨루오리존치에서 건설중이던 고가도로가 붕괴 2명이 사망 19명이 부생

 

 

 

 

 

▲폭우로 끊어진 고속도로

 

 

 

 

 

 

▲브라질 프로축구팀 샤페코엔시 선수 등 81명을 태운 전세 비행기가 16.11.29 콜롬비아 메데인 외곽에서 추락 최소 75명 사암

 

 

 

 

 

 

 

 

 

 

 

 

 

 

 

 

▲리우데자네이루 코르코바도산 해발 704m에 세워진 예수상에 14.1.16. 번개가 내리쳐 오른쪽 엄지 부분이 절단 - 1931년 세워짐

 

▲브라질리아에서 톱밥으로 만든 예수상 11.6.23.

 

▲크리스마스 트리

 

 

▲크리스마스 풍경

 

▲제20회 예수를 위한 행진 - 12.7.14.상파울로에 기독교인 200만이 참여

 

▲겨울인 브라질 해변의 인산인해 - 13. 7. 28.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교황의 미사에 참석한 수십만 명의 신도들

 

 

◆ 2016-07-29  정치가 망친 브라질, 남 일 같지 않다

리우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이 브라질에 도착한 27,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브라질 주재 사업가 A 씨와 장시간 통화를 했다. “올림픽 분위기가 안 뜬다고 하는데 어떠냐”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국민들이 관심도 없고 개막이 코앞인데 아직도 반대 여론이 절반을 넘는다. 올림픽 역사상 120년 만에 처음 남미에서 열리는 것이라고 떠들썩했지만 지금은 싸늘하다. 이곳 언론들은 경제는 100년 만에 최악이고 정치는 30년 만에 최악인 판국에 무슨 올림픽이냐는 보도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실제로 다음 달 5일 마라카낭 주경기장 개막식 입장권 판매율은 70%대에 불과하고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러시아 독일 스페인 등 주요 정상들도 대부분 참석하지 않을 예정이라 한다. A 씨는 “테러와 치안 불안, 지카 바이러스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분노가 누그러지지 않고 있는 게 가장 큰 요인”이라고 했다.


한국 언론에도 많이 보도된 대로 이 나라는 전현직 대통령이 모두 대규모 부정부패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전직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은 거대 국영 에너지 회사와 연결된 천문학적 규모의 부정부패 혐의로 체포됐고 현직 지우마 호세프도 국영은행 자금을 전용하고 재정회계를 분식한 혐의로 탄핵당해 5월 대통령궁에서 쫓겨났다. 임시로 권력을 승계한 부통령조차 부정부패 혐의를 받고 있다. 다시 A 씨 말이다.


“전직 대통령은 한때 90% 지지를 받았던 사람이고 현직은 최초 여성 대통령으로 기대가 컸던 사람이어서 국민들 배신감이 더 크다. 두 대통령을 규탄하는 시위는 올림픽 기간에도 계속될 것 같다. 현재 브라질 정권은 ‘식물정권’이다.

 

2006년 수도 리우데자네이루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국민들의 자신감이 대단해 매우 역동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자원도 많고 땅도 넓은 이 나라가 왜 당시 ‘브릭스(BRICs)’ 맨 앞줄에서 ‘남미 대륙의 중국’에 비견되는 잠재력을 가진 나라로 꼽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꼭 10년 만에 전해 듣는 국가 위기는 정치적 리더십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한다. 정치가 엉망이면 한때 잘나가던 나라도 속절없이 무너지는구나 하는 생각에 섬찟함마저 든다.


정치권과 국영기업 유착 비리는 우리와도 겹쳐진다. 우리 역시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대우조선해양의 낙하산 부대들이 저지른 대규모 ‘금융사기’로 나라가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최근 터져 나온 권력층 비리는 또 어떤가. 공직자의 사명감은커녕 돈에 대한 탐욕만 가득한 사람들을 바라보노라면 거리로 뛰쳐나간 브라질 국민들 심정이 이해가 간다.

 

브라질 같은 대국(大國)도 한순간에 무너지는데 우리는 정말 걱정이다. 자원도 없고 몇몇 대기업이 경제를 이끄는 취약한 성장 구조에 대통령 임기는 1년도 더 남았지만 힘을 못 쓰고 있다. 기업은 어렵고 민생은 힘겹다. 성장은 멈추고 빚만 늘어간다.


올림픽 분위기가 너무 안 뜬다 싶어 주위를 둘러보면 “먹고살기도 힘들어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고 이구동성이다. 선수들이 좋은 결과를 냈으면 하는 마음이야 간절하지만 한국 국민도 정치 리더십에 대한 환멸과 불신, 냉소와 분노로 하루하루 삶이 힘들고 올림픽을 즐길 마음의 여유가 없다.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브라질을 보며 ‘정치가 바로 서야 경제도 발전한다, 정치는 국민 신뢰가 생명이다’는 고전적 명제들이 새삼 떠오른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브라질 호세프 대통령 탄핵안을 찬성 61표 반대 20표로 16.8.31 상원을 통과

 

 

▲좌파정권의 몰락

 

 

 

◆ 리우데자네이루는 어떤 도시?

상파울루에 이은 브라질 제2의 도시. 1763년부터 1960년까지는 브라질의 수도였다. 나폴리, 시드니와 함께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히고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도시다. 구아나바라(Guanabara)만의 서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 해안을 따라 아름다운 해변들이 이어져 있다. 시가지 서쪽에는 해발 700m 이르는 산지가 있다


흔히 줄여서 부르는 '리우'라는 이름은 이곳에 1월에 온 포르투갈인들이 대서양으로 연결된 구아나바라 만을 강으로 착각하여 포르투갈어로 '1월의 강'이라는 뜻의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로 명명한 데서 유래한다.

 

휴양의 도시

 

5Km에 달하는 백사장이 이어져 있는 코파카바나 해안은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이 1년 내내 몰려드는 유명한 관광 휴양지이다. 배리 매닐로의 '코파카바나'라는 노래로 전 세계 연인들의 해변이 된 코파카바나는 프랑스 니스를 빼닮았다. 해변에는 매리어트 호텔, 코파카바나 팰리스 호텔 등 특급 호텔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휘황찬란한 고급 보석상들이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는 점도 니스와 똑같다.

 

▲코파카바나 해변 /블룸버그

 

 

브라질의 초여름 하늘은 푸르다. 세계 3대 미항 중 한곳인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를 방문하면 신의 은총을 받은 도시라는 사실을 금세 눈치챌 수 있다. ‘코르코도바’ 꼭대기의 거대한 예수 동상이 도시를 껴안고 있기 때문이다.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 곳곳에 점박이를 두르고 있는 흰 요트들, 리우를 굽이쳐 휘감고 있는 크고 작은 바닷가 동산들은 마치 신선(神仙)의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남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칠레를 돌아보고 온 최우석 기자의 남미 탐방기를 3회로 나누어 싣는다.


■코르코도바(Corcodova) 거대한 예수 동상이 있는 동산

리우의 상징인 예수상은 지난 1931년 완공됐을 당시 세계 최대의 조각품이었으며 브라질 국력의 상징이었다. 시내에서 코르코도바까지 오르는 데에는 1901년부터 운행된 전기 기차가 있다. 대개 관광 버스를 타고 코르코도바의 예수 동상까지 올라 갔다가 내려올 때 전기 기차를 탄다. 짜증나는 것은 코르코도바 주위를 맴도는 관광용 헬기들. 하루종일 예수상을 맴돌며 굉음을 내는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는 관광객들에게 기도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위에서 내려다본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항구. 푸른 물결 위에 유유자적하게 떠 있는 요트를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확 트인다.

 

■코파카바나 해변

배리 매닐로의 ‘코파카바나’라는 노래로 전세계 연인들의 해변이 된 코파카바나는 프랑스 니스를 빼닮았다. 4㎞에 달하는 해변가에는 매리어트 호텔, 코파카바나 팰리스 호텔 등 특급 호텔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휘황찬란한 고급 보석상들이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는 점도 니스와 똑같다. 관광객들은 무리지어 해변가를 거닐고 있고, 수영복 차림의 브라질 남녀들, 아슬아슬한 실 팬티와 실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조깅하는 여자, 긴 금발을 휘날리며 자전거를 타고 가는 미녀들….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남쪽으로 5~6㎞쯤 내려가면 이파네마 해변이 나온다. 코파카바나가 관광객을 위한 해변이라면 이파네마는 리우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눈이 부시도록 새파랗던 리우의 하늘은 오후가 되면서 매연 띠를 두르기 시작한다. 밤새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매연을 몰아가지만, 낮이 되면 자동차와 공장 매연이 리우의 하늘을 뿌옇게 만들어놓는 것이다. 그래도 해변가에 있어 공기는 맑은 편. 택시와 지하철 등 교통편이 제법 잘 발달돼 있어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에 좋다. 이파네마와 코파카바나 뒷길에는 쇼핑 몰이 빼곡히 들어 차 있어 윈도쇼핑에 딱 좋다
.

 

 

■상파울루

 

남미 최대의 도시인 상파울루는 표고 800m의 고원에 자리잡고 있다. 1554년에 세워진 인구 1000만명의 상파울루에는 특별한 명소나 유적은 없지만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용광로다. 상가와 이탈리아 구역, 한국인 밀집지역 등이 모여 문화가 혼재하는 브라질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상파울루의 매력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30개 이상의 공원이 시내 곳곳에 있다는 점이다.

 

■이과수 폭포

상파울루에서 비행기로 2시간쯤 가면 이과수 폭포가 나온다. 나이애가라·빅토리아와 함께 세계 3대 폭포로 손꼽힌다. 그중에서도 지축을 흔드는 물의 힘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은 바로 이과수 폭포이기에 감히 세계 최고라고 부르고 싶다. 2700m에 달하는 말발굽 모양의 이과수강() 270여 개의 작은 폭포로 갈라져 장관을 이룬다. 폭포는 파라나강, 이과수강의 합류점(브라질·아르헨티나·파라과이 3개국 국경)보다 23㎞쯤 상류에 있다.

이과수에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 지역의 젊은 용사가 신()의 애인과 사랑에 빠져 몰래 카누를 타고 이과수 강을 따라 도망쳤다. 이를 안 신이 격노해서 이과수 강을 들었다 놓았다고 한다. 평탄하던 강은 순식간에 낙폭 80m의 거대한 폭포로 변했고, 두 연인은 물에 빠져 죽었다는 것. 그러나 둘은 죽어서도 변치 않는 사랑의 전설로 남았다. 여인은 폭포에 걸린 소나무가 되었고, 젊은 용사는 폭포를 비집고 나와 소나무를 떠받치는 바위가 되었다. 둘은 영원토록 서로를 보살펴주며 영생했고, 이들이 흘린 눈물은 폭포수가 되어 바다로 흘러갔다고 한다. 폭포 바로 밑까지 돌진하는 고무 보트를 타고 ‘이과수의 눈물’을 맞아보면 이과수 전설의 한 자락을 집에 갖고 올 수 있다.

 

 

 

리우브랑코 대로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아타울포 데 파이바 거리에 내리면 보사노바의 명곡인 '이파네마의 처녀'로도 유명한 이파네마 해안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코파카바나가 관광객을 위한 해변이라면 이파네마는 리우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해양 스포츠를 즐기는 활기찬 코파카바나에 비해 이파네마는 조금 더 정적이면서 낭만이 가득하다.

 

▲이파네마 해변 /변희원 기자

 

이파네마의 소녀'라는 명곡이 탄생한 곳인 만큼 보사노바 음반과 서적을 전문적으로 파는 '토카 도 비니시우스(Toca do Vinicius)'가 있다. 10여 명밖에 못 들어갈 정도로 좁고, 허름해 보여도 리우에 있는 유명한 보사노바 연주자들이 헌정 공연을 펼치기도 하는 보사노바 명소다.

 

이파네마 해변 끝에 있는 바위 '아르포아도(Ponta do Arpoado)'는 리우의 최고의 석양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리우의 석양 사진은 거의 다 이곳에서 촬영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동차와 공장의 매연들로 오후의 리우 하늘은 뿌옇게 되는데 그래도 해변가의 공기는 꽤 맑은 편이다. 브라질에서 휴식을 취하기 가장 안성맞춤인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축제의 도시

 

해마다 2월이면 리우데자네이루는 축제의 도시가 된다. 1641년에 시작된 '리우 삼바 카니발'은 천주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부활절 51일 전 금요일부터 닷새 동안 진행되는 카니발은 원래 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의 '사순절 축제'에서 유래했다. 40일간 금욕하기 전 노래와 춤으로 한껏 즐기던 소규모 행사는 1930년경 거리 축제로 발전했고, 점차 퍼레이드, 삼바 콘테스트, 거리 무도회 등이 어우러지게 됐다

 

▲()삼바드로메(Sambadrome), 디자이너:오스카르 니에메예르(Oscar Niemeyer). 1984, 길이 700m, 수용 인원 9만명. () 살바도르의 블록 카니발은 아프리카의 분위기가 흠뻑 살아있다. 춤과 연주의 실력들이 보통이 아니다. /조선DB

리우는 브라질의 카니발을 대표하는 도시 중 하나다. 공식 축제 기간은 주말을 낀 4~5일 정도이지만 한 달 전부터 크고 작은 카니발 행진들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좀 더 엄밀히 말해 테마 선정부터 음악, 의상 같은 준비까지 포함하면 연중 내내 계속된다. 길에서는 커다란 스피커를 단 트럭들이 오가며 음악을 대포처럼 쏜다. 그 주위로 한껏 치장을 한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저마다 손에는 맥주 혹은 더 독한 브라질 술을 마시며 축제를 즐긴다.

 

축제 기간에는 도시 어딜 가나 비슷하다. 곳곳에서 비슷하면서 매번 다른 난장판들이 펼쳐진다. 지하철 안에서도 환호성을 지르며 지하철 안으로 몰려든 젊은이들이 객차 안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지하철 봉을 잡고 봉춤을 춰대는 사람도 있다. 도시 전체가 광란으로 뒤덮여도 아무도 신경쓰지도비난하지도 않는다.  

 

▲ 리우 데 자네이루의 삼바드로모의 모습. 공식 카니발이 열리기 한 달 전부터 매주말 리허설이 열린다. 리허설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브라질 하면 카니발을 빼놓을 수 있을까. 카니발이라면 대개 사람들은 반라의 무희를 맨 먼저 떠올린다. 나도 그랬다. 카니발의 본고장에 가면, 화려한 깃털 장식으로 가슴을 아슬아슬하게 가린 미녀들이 온종일 거리에서 춤을 출 거라고, 머리 속에 그렸다. 왜 거 있지 않나. 한국의 놀이공원들도 흉내 내는 퍼레이드 말이다. 적어도 그보다는 더 멋들어진 행렬을 보게 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브라질로 향할 때도 맨 먼저 삼바 축제의 도시 리우데자네이루로 갔다. 리우는 브라질의 카니발을 대표하는 도시 중 하나다. 카니발의 공식 축제 기간은 주말을 낀 4~5일 정도다. 하지만 한 달 전부터 크고 작은 카니발 행진들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좀 더 엄밀히 말해 테마 선정부터 음악, 의상 같은 준비까지 포함하면 연중 내내 계속된다.)

일요일 오후, 꽤나 큰 규모의 행진이 있을 예정이라는 얘기를 듣고 행사 장소인 리우의 중심가로 갔다.

 

맙소사. 한 마디로, 그날의 리우는 난장판이었다. 길에서는 커다란 스피커를 단 트럭들이 오가며 음악을 대포처럼 쏴댔다. 그 주위로 한껏 치장을 한 젊은이들이 무리를 지어 모여들었다. 저마다 손에는 맥주 혹은 더 독한 브라질 술을 들고 있었다. 웃통을 벗은 사내들은 아무데나 올라가 몸을 흔들어댔다. 길가 쓰레기통은 물론이고 남의 집 담벼락에도 기어 올라갔다.

도시 어딜 가나 비슷했다. 곳곳에서 비슷하면서 매번 다른 난장판들이 벌어졌다.


지하철 안에서도 난리가 났다. 문이 열리자 환호성을 지르며 지하철 안으로 몰려든 젊은이들이 객차 안에서 노래하고 춤췄다. 지하철 봉을 잡고 봉춤을 춰대는 녀석도 있다. 즉석 턱걸이 경연대회까지 벌어졌다.

 

 리우 데 자네이루의 이파네마 해변 블록 카니발. 트럭 규모는 작지만, 해질 무렵 시작하는 행렬에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이렇게 지역별로 열리는 카니발은 블록 카니발이라 불린다. 규모도 다양하다. 어린이를 위한 카니발부터 동네 주민들이 함께 연주하며 행진하는 카니발까지.

우리가 맞닥들인 일군의 아저씨 아줌마들은 드럼 연주에는 그다지 소질이 없어 보였다. 맨 앞에 흑인 청년이 지휘자로 나섰는데, 연신 맥주만 들이킨다. 도무지 악단이 마음에 안 든다는 기색이 완연하다.

우리는 북동부 살바도르로 이동했다. 브라질의 옛 수도였던 살바도르는 식민지 모국인 포르투갈 사람들이 아프리카 노예를 들여오던 항구다. 지금도 브라질 아프리카 문화의 중심이다. 카니발로도 브라질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축제 기간이 되면 도시의 거리 세 곳에 행진로가 건설된다. 길 양쪽에는 계단형 관람석도 짓고, 자릿값도 비싸게 받는다.

거리를 막고 행진을 하다 보니, 근처 대중교통은 아예 노선이 사라져 버린다. 낮에는 일하는 사람들이 특별운행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데 영락없이 피난민 신세다. 밤에는 축제 구경꾼들이 사방에서 몰려드는데 이건 또 좀비가 따로 없다. 골목에는 맥주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오늘 밤에 팔 맥주들이다.

 

▲ 리우의 거리에 쏟아져 나온 젊은이들은 광대로 왕으로 마녀로 혹은 괴물로 변장을 했다. 카니발은 질서를 뒤집는 며칠 동안의 축제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조심하라는 경고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정말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카니발 행렬에 다가갔다. 리우에서도 봤던 그 큰 트럭들이 드문드문 간격을 두고 지나간다. 무개차에는 브라질의 인기 가수들이 탔다. 거리를 가득 채운 사람들은 트럭에서 쏴대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든다. 트럭이 차츰 멀어지면, 관중석을 지어놓은 건물 주인이 알아서 또 음악을 튼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음악들이 뒤섞이다 보면 이내 소음이 된다.

카니발의 아침 풍경? 말할 것도 없다. (그전까지 내가 아는 ‘카니발의 아침’이란 영화 ‘흑인 오르페’에 나오는 루이즈 본파의 노래였고, 거기서 비롯한 막연한 환상 같은 게 있었다. 그런데) 눈 앞의 거리는 맥주 냄새와 지린내가 요동친다. 거기에 그냥 쓰러져 자는 사람도 있다. 일정에 쫓긴 우리는, 그 모든 걸 뒤로 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택시를 탔다. 뒷좌석이 눅눅했다. 기사 아저씨는 그래도 괜찮단다. 카니발이니까. 뭐가 괜찮은 거냐?

대체 TV에서 본 깃털 장식의 무희는 어디로 갔는가? 그시간, 그들은 다른 곳에 있었다. 리우의 ‘삼보드로모’라는 곳. 서울의 동대문 운동장 관중석을 일직선으로 만들어놓은 모양의 카니발 전용 퍼레이드장이다. 카니발 기간이면 이곳에서 최고의 대표 삼바 스쿨들이 이틀밤 경연을 벌인다. 한 시간 반에 한 팀씩 밤 9시부터 새벽 3시까지 화려한 행진이 이어진다. 편하게 앉아서 구경하기에는 최고다. 단, 고가의 입장권을 살 수만 있다면.

 

 살바도르의 옛 거리에서 블록 카니발 행렬이 지나가고 있다.

 

“그래도 난 거리에서 노는 게 더 좋아.” 브라질 젊은이들은 대수롭잖은 듯 얘기했다. 그럼, 물론이겠지.

카니발이란 게 뭔가? 예로부터 민중이 한바탕 어울려 놀면서 묵은 한을 털어내는 기회 아니던가. 이 때가 되면 광대는 왕 분장을 하고 남자는 여성으로 변장했다. 일상을 틀어쥐고 있던 제도와 질서를 전복시키는 놀이였다. 그러니, 그저 볼 만한 구경거리를 봐야겠다고 기대한 것은 애당초 나의 잘못이었는지도 모른다. 카니발이란 모름지기 직접 뛰어들어 함께 즐겨야 하는 것이다.

멋진 퍼레이드 행렬을 ‘구경’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나니, 비로소 브라질의 카니발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상파울루의 블록 카니발은 정말 흥겨웠다. ‘우리는 물이 아니라, 술을 원해.’ 노래의 후렴구를 모두 합창하며 골목을 행진했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다시 들른 상파울루에서도 카니발이 한창이었다. 사람들은 이 동네 카니발이 전통적인 모습이라고 했다. 거창한 트럭 대신 손수레에 앰프를 싣고 사람이 끄난가 하면, 그 주변으로 악대가 호위하듯 걸어가며 연주했다. 리우의 중후장대한 모형들 대신 아기자기한 인형들이 들것 위에 실려 이동했다.

이 동네 사람들뿐만이 아니었다. 상파울루 여기저기에서 저마다 기발한 분장을 한 사람들이 모여들더니, 함께 노래를 부르며 골목을 누볐다. 그 뒤로 맥주 파는 아저씨의 손수레가 따랐다. 내 발걸음도 어느새 그 뒤를 빨려들듯 따라가고 있었다. , 즐겁다. 그래, 즐겁다.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사람들이 가는 대로, 무작정 따라 걸었다. 드디어, 카니발의 시작이었다.
 

 

카니발은 여행자의 환상과, 현지인의 환상이 얽혀 드는 축제이다. 참여하는 사람과 구경하는 사람 모두의 오감을 자극하는 이 축제는 어차피 현실과는 대척점에 있는 환상의 풍경이다.

 

그래서인지 이 카니발에는 부유층보다는 빈곤층의 참여가 절대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다. 현실을 바꿀 힘이 없는 그들에게 카니발은 꼭 나흘 동안 눈뜨고 꾸는 황홀한 꿈이다. 카니발을 기다리며 일상의 누추함을 견디고, 카니발을 준비하며 환멸을 잊는다. 그리고 카니발이 끝나면 그 나흘 동안의 환희와 열정을 반추하며 다시 일상을 버텨나가는 것이다

 

예술가의 도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국제공항의 또 다른 이름은 '톰 조빔 공항'이다. '톰 조빔'은 포르투갈어로 '새로운 경향'이라는 뜻인 '보사노바(Bossanova)' 음악을 널리 유행시킨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의 애칭이다. 공항의 이름으로 붙일 만큼 그의 음악이 리우의 정서에 끼친 영향은 크다그는 '이파네마의 소녀'라는 노래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1962년 겨울, 이파네마 해변에서 뮤지컬 음악을 구상하고 있었던 조빔은 해변에서 15살 소녀 엘로이사(Heloísa)를 보고 노래를 만들었다. 꿈꾸듯 감미로운 이 곡은 1964년 미국 그래미상을 쥐었고, 엘라 피츠제럴드, 프랭크 시나트라 등 많은 스타가 불러 '보사노바 붐'에 불을 붙였다. 마이클 프랭스가 히트시킨 '안토니오즈 송'은 그런 조빔에게 바쳐진 노래다.

 

브라질 삼바와 재즈가 만난 '보사노바' 1950년대 말 리우데자네이루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나왔다. 격정과 열정을 가득 담은 삼바보다는 부드럽고 나른한 느낌의 보사노바는 달콤하면서도 강한 브라질 커피향과 닮았다. 브라질 상류층은 '서민들의 춤음악' 삼바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들은 삼바의 리듬을 부드럽게 만들고 선율과 노랫말에 우아함을 더한 보사노바를 더 좋아했다. 세련된 보사노바가 리우 최고 부촌이자 휴양지인 코파카바나 클럽가에서 움튼 배경이다.  

 

 

세라론 계단은 리우의 언덕을 가장 아름답게 오를 수 있다고 알려진 계단이다. 이곳의 215개의 계단은 브라질을 상징하는 초록, 노랑, 파란색으로 덮여있다. 전 세계 관광객들에 의해 기증된 다양하고 이색적인 타일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며 화려한 색감 때문에 1년 내내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본래 빈민가였던 이곳을 관광명소로 만든 사람은 조지 세라론(Jorge Selaron)이라고 하는 조각가이다. 칠레에서 태어나 이 도시에 터전을 마련한 예술가 세라론은 자기가 사랑하는 이 거리의 계단을 모자이크 타일로 장식하기 시작했다그의 이런 활동이 주위에 소문이 나면서 주변의 친구들과 봉사자들도 타일을 기부했다. 다양한 타일들이 많이 모이면서 계단은 훨씬 다채로운 모양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계단은 2005년엔 리우시의 랜드 마크로 지정될 정도로 관광명소로 사랑받는 공간이다.

 

축구의 도시

 

세계에서 가장 큰 축구 경기장인 '마라카낭 스타디움'의 정식 명칭은 포르투갈어로 '에스타디오 조르날리스타 마리오 필료 (Estadio Jornalista Mario Filho)'이나 동네 이름을 따 부르는 '마라카낭'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1950년도의 마라카낭 스타디움 /유튜브 FIFA TV 동영상 캡쳐 ()2013년도의 마라카낭 스타디움 /블룸버그

 

축구를 열광적으로 사랑하는 브라질 사람들에게 이 경기장이 갖는 의미도 남다르다. '마라카낭 경기장'에는 브라질 축구의 희비가 모두 담겨 있다. 축구 영웅 펠레가 대표팀과 클럽팀 유니폼을 입고 마라카낭에서 숱한 골을 터뜨렸다. 그의 1,000호 골도 이곳에서 나왔다. 또한 그가 마지막 경기를 치른 곳이기도 하다.

 

'비극의 역사'도 있다. 마라카낭은 세계 최초로 월드컵 결승을 2번 치렀으나 모두 남의 잔치로 끝났다. 1950년에는 브라질이 결승에서 우루과이에 1 2로 무릎을 꿇었다. 당시 경기장 수용인원의 두 배에 달하는 관중이 몰려든 이 경기는 지금도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관람한 경기로 기록된다. 2014년에는 브라질이 준결승에서 독일에 1 7로 대패하며 아예 결승에도 오르지 못했다.

 

또한 1992년에는 경기장 일부가 붕괴되면서 경기를 관람하던 5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 개조 공사를 거쳐 지금과 같은 규모로 확장되었다이번 올림픽 축구 결승도 마라카낭에서 열린다. 마라카낭은 브라질의 사상 첫 올림픽 축구 금메달과 올림픽 성공 개최의 꿈이 담겨 있는 곳이다

조선일보  뉴스큐레이션팀

 

▶리우가 불행한 5가지 이유

https://www.youtube.com/watch?v=CZOBTbjfIJQ&feature=player_embedded

 

https://www.youtube.com/watch?v=peDwDW84xJU&feature=player_embedded - 리우의 전경

 

▶이미지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나 경기장 - 2014 월드컵 개최지

 

▲썰렁한 관중석 - 13. 6. 17. 미네이랑 경기장의 타이티와 나이지리아 경기

 

▲해변에 부정부패를 쓸어버리자는 의미로 상원의원 정원인 81개의 빗자루를 꺼꾸로 꽂아둔 모습

 

 

▲리오데자네이루의 판자촌

 

▲화벨라스 - 부와 빈의 거리

 

▲빈민촌

 

 

▲빈민가의 산타 경찰관 12.12.20

 

▲리오항

 

 

 

 

▲리우의 그리스도 상

 

 

 

 

 

◆상파울루

▲상파울루의 상상 초월 지옥철 모습- 13. 5. 28. 세계 최악의 교통체증 도시중 하나

 

 

 

 

▲교도소 폭동 17.1.24 상파울루

 

 

 

 

◆코파카바나

▲그림같은 풍경 - 13. 5. 9. 리우 코파카바나 해변 동상 위의 새 한 마리

 

▲코피카바나 해변의 일출 11.8.18.

 

▲코파카바나 해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