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5
[141] 달님이란 이름은 하늘의 달에게 돌려주고

▲폴 오스터, ‘달의 궁전’.
두 건물 사이로 난 틈새가 ‘달의 궁전’이라는 글자가 적힌 분홍색과 파란색의 선명한 네온사인 불빛으로 채워져 있었다. 중국 음식점의 간판인 것을 알았지만 내게 느닷없이 달려든 그 글자들이 현실적인 판단과 생각을 모두 앗아가 버렸다. 그것은 마법의 글자들이었다. 그 글자들이 하늘에서 바로 내려온 메시지인 것처럼 어둠 속에 걸려 있었다. - 폴 오스터 ‘달의 궁전’ 중에서
달(moon)이라 불렸던 권력자와 함께하는 마지막 해, 2021년도 보름밖에 남지 않았다. 일자리 확대, 권력 개혁, 부정부패 척결, 한미 동맹과 자주 국방으로 안보 강화, 청년 고용 확대, 성 평등, 노인 복지, 자녀 키우기 좋은 환경,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사업하기 좋은 사회 그리고 청와대를 컨트롤타워로 하는 안전하고 건강한 나라. 현 정권의 10대 공약이었다.
인류가 달에 처음 착륙했던 해, 가난한 대학생 포그는 세 들어 살게 된 원룸 아파트 창밖으로 ‘달의 궁전’이란 중국 음식점의 네온사인을 보며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동안 학비를 보내주던 유일한 혈육, 삼촌을 잃고 하루 한 끼도 먹기 힘든 빈곤을 경험한 뒤 노숙자가 된다. 극적으로 발견되어 아사 위기를 모면할 때까지 쓰레기통을 뒤지며 살았다.
다시 자기 방을 갖게 되었을 때 포그는 달빛이 비추는 밤을 그린 그림을 보게 된다. 그에게 달은 남이 이룩한 성공,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환상, 이제는 사라져버린 그림 속 낭만이었을 뿐, 실체가 아니었다. 그는 또다시 빈털터리가 되지만 황량한 어둠 속에서 둥글고 밝은 진짜 보름달을 두려움 없이 마주한다. 새롭게 시작할 용기를 비로소 가슴에 품게 된 것이다.
이번 주에는 어떤 소설로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며 책장을 뒤지다 ‘달의 궁전’이란 제목 앞에서 멈췄다. 달님이라 불리던 정권의 수장이 만든 세상은 얼마나 밝아졌을까. 헛된 마법의 주문 같았던 달빛의 모래성은 아니었는지. 너무 늦은 게 아니라면 달의 이름은 하늘의 달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사람은 사람의 이름으로, 사람의 일을 할 수 있을 뿐이다.
[142] 추리소설보다 미스터리한 정치

▲대실 해밋 ‘유리 열쇠’
“사고였다고 생각해요?” 네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들이 재선을 방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제정신을 잃고 일을 저지른 것 같아요.” 재닛은 양손을 맞잡아 깍지를 끼고 힘겹게 질문했다. “아버지를 내버려 두었다면 정말 폴을 쐈을까요?” “그랬을 겁니다. 법이 심판할 수 없는 죽음을 위대한 노정치인이 대신 갚아주었다며 빠져나올 수 있었을 테니까요.” - 더실 해밋 ‘유리 열쇠’ 중에서
아들의 불법 도박, 불법 마사지 업소 출입 및 성매매 의혹, 그리고 배우자의 허위 경력 논란과 관련, 여야 대선 후보들이 해명과 사과를 하느라 정치권이 번잡하다. 국정 책임자가 되려면 검증을 받아야 하는 건 당연한 일, 그들은 가족에 대해 몰랐을까? 절대 드러날 리 없다고, 터져도 문제 되지 않는다고, 그런 것쯤 대충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을까?
폴은 선거를 앞두고 상원의원 헨리의 재선을 위해 자금과 조직을 동원하는 지역 거물이다. 그런데 의원의 아들이 시체로 발견되고 폴이 의심을 받는다. 그와 경쟁하던 조직의 협박을 받은 언론사도 폴에게 불리한 기사를 쏟아낸다. 하지만 호형호제하며 폴의 브레인 역할을 하던 네드가 사건을 조사하고 뜻밖에도 상원의원이 범인임을 알아낸다.
아들을 죽인 의원은, 선거에서 무조건 이겨야 한다며 사건 현장을 조작하고 용의자 선상에서 자신을 배제해준 폴마저 죽이려 했다. 진실을 알고 있는 그를 믿지 못했고 그 살인까지 이용해 정치적 이득을 보려 했던 것이다.
많은 사람이 새로운 정치를 기대한다. 그러나 길을 잃고 헤매다 산해진미가 차려진 오두막을 발견하고 잠긴 문을 열었으나 뱀들이 쏟아져 나왔고, 다시 문을 잠그려 했지만 열쇠가 깨져 결국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는 소설 속 꿈 이야기처럼, 눈앞에 보이는 희망이 더 끔찍한 재앙을 불러오는 유리 열쇠가 되기도 한다.
본인과 가족의 잘못을 책임지는 정치인을 보기 힘들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는 너무 낡은 교훈이라 하겠지만 정치가 추리소설보다 더 미스터리한 일들이 벌어지는 세계인 것은 분명하다.
[143] 희망보다 걱정이 앞서는 연말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아지즈 네신
- 여기에 다시는 오지 마십시오. 절대 나를 찾지 마시오. 왜냐하면 내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될 확률이 아주 높거든요. 부탁입니다. 만에 하나 길에서 만나도 모르는 척합시다. 인사도 건네지 맙시다. 없는 사실도 억지로 지어내는 때가 아닙니까? 그러니까 나는 당신과 만난 일도 없고 한 번도 본 적도 없으며, 당신도 날 만난 적이 없는 겁니다. - 아지즈 네신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 중에서
내란 선동죄로 8년간 복역해온 이석기 전 통진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가석방되었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실형을 살았던 한명숙 전 총리도 복권되었다. 5년 가까이 수감 생활을 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도 신년 특사로 석방된다. 임기 말에 이른 현 정권의 결정과 그에 따른 파장이 어떤 이익과 손해를 가져올지 계산하느라 정치권은 또 분주하다.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로 소개된 이 책은 국가 이익에 위배되는 출판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징역과 유배형을 살았던 터키 작가, 아지즈 네신의 자전적 소설이다. 유배 생활은 수감 시절보다 더 춥고 배고프고 외로운 것이었다. 정부가 내친 요주의 인물인 걸 알게 되면 사람들은 행여 불똥이 튈세라 그를 피했다.
교정하는 일이라도 얻으면 끼니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작가는 고픈 배를 안고 신문사를 찾아간다. 정부에 쓴소리도 하는 발행인에게 이해와 배려를 기대하는 마음이 컸다. 사장은 “당신의 용기 있는 행동과 투쟁 의지에 박수를 보냅니다”라고 말했지만 곧 국회의원이 되어야 하니 제발 아는 척하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하며 그를 내쫓아버린다.
일반인도 누굴 멀리하고 누구와 친하게 지낼지 계산하며 휴대폰 연락처에서 어떤 번호는 지우고 어떤 이름은 새로 입력한다. 하물며 정치다. 정부는 사상과 이념, 국가 안보의 양 극단에 있는 정치인들의 동시 석방과 복권이 ‘통합과 포용’을 위한 결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더 큰 혼란과 위기가 오는 건 아닐까, 희망보다 걱정이 앞서는 연말이다.
2022.01.05 수요일
[144] 불안과 단절의 시대, 호랑이 같은 본능으로

▲라이프 오브 파이/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나는 태평양 한가운데 고아가 되어 홀로 떠 있었다. 몸은 노에 매달려 있었고 앞에는 커다란 호랑이가 있고, 밑에는 상어가 다니고, 폭풍우가 몸 위로 쏟아졌다. 이성적으로 이런 상황을 본다면,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기 전에 물에 빠져 죽기를 바라리라. 하지만 나는 힘껏 노에 매달렸다. 무조건 매달렸다. 공포는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호랑이보다 태평양이 더 두려웠다. - 얀 마텔 ‘파이 이야기(라이프 오브 파이)’ 중에서
2022년 호랑이해가 시작되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정권이 곧 막을 내린다. 그렇다고 더 좋은 시대가 온다는 약속은 없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과 세상이 진화하고 진보하는 것 같아도 그것이 꼭 지성과 발전과 안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꼼꼼히 대비해도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미래,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많은 독자가 동명 영화로 먼저 만났을 소설의 주인공 파이는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가족과 함께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캐나다로 가던 중 폭풍우를 만난다. 배는 침몰하고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은 건 파이와 우리에서 빠져나온 리처드 파커란 이름의 호랑이뿐이다. 소년은 맹수와 함께 생사의 고비를 수없이 넘으며 망망대해를 표류하다 227일 만에 구조된다.
어떻게 작은 구명보트에서 맹수와 공존할 수 있었을까? 파이는 호랑이를 떼어놓을 수도 있었다. 혼자 살아남기도 버거운데 잡아먹힐지도 모르는 250㎏의 호랑이를 길들이고 먹이고 보살폈다. 그 선택은 옳았다. 야생의 본능을 잃지 않은 호랑이 덕분에 파이는 굶어 죽지 않았다. 호랑이 때문에 슬픔과 두려움, 절망과 외로움에 빠질 여유 따위는 없었다.
경제활동은 막으면서 세금과 물가만 올리는 불안의 시대, 사람과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단절의 시대다. 그래도 호랑이 같은 본능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절망’이라는 책 속의 한 문장처럼, 오늘이 더 나은 내일의 시작이라는 희망, 절망에 지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삶의 무거운 배낭을 추슬러 메고 다시 힘껏 일어서야 하는 1월의 아침이다.
[145] 프랑켄슈타인이 될 것인가?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
노예여. 전에 내가 알아듣게 설명해주었건만, 내가 겸손하게 대해 줄 필요가 없다는 걸 너 스스로 증명했구나. 내게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너는 네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네가 대낮의 햇빛조차 증오스러워할 만큼 비참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 너는 내 창조자지만, 내가 네 주인이다. 복종하라! -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중에서
여당 대선 후보의 지지율이 가장 높다고 한다. 굵직굵직한 추문과 의혹이 끊이지 않는데도 지지층이 확고한 모양이다. 높은 자리일수록, 혐의가 클수록 해당 정치인에 대한 수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침묵하거나 얼렁뚱땅 사과하는 것으로 끝이다. 그래도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지지 세력이 공격하고 매도한다. 그렇게 혐의는 묻히고 당사자는 대중 앞에 나와 연예인처럼 새로운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독자는 없겠지만 200여 년 전 18세 여성 작가가 쓴 소설이라는 사실을 알면 대부분 놀란다. 프랑켄슈타인이 괴물 이름이 아니라고 하면 또 한번 놀란다. 괴물을 만든 사람이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다. 그런데도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이 만든 괴물의 대명사가 되었다.
빅터는 생명을 창조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 흉측해서 무책임하게 도망쳤다.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은 데 분노한 괴물은 빅터를 찾아가 힘을 가진 자기가 주인이라며 노예처럼 시키는 대로 하라고 명령한다. 말을 듣지 않으면 고통을 주겠다고 협박한다. 결국 빅터는 사랑하는 사람을 괴물에게 모두 잃고 자신도 죽음에 이른다.
선거 전에는 국민의 종이라며 땅바닥에 엎드려 표를 구하지만 선출되고 나면 ‘네가 뽑았지만 내가 너의 주인이다. 복종하라’며 자유를 억압하고 괴롭히는 정치인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어떤 세상을 창조하고 싶은 것인가? 우리가 만들고 남긴 것들이 훗날 우리의 이름으로 기억될 것이다. 한번 결정되면 돌이킬 수 없다. 괴물을 만들고 고통 받은 프랑켄슈타인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 지난 5년,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던가.
[146]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

▲에드거 앨런 포 ‘어셔 가의 몰락’
균열은 바로 내 눈앞에서 순식간에 벌어졌다. 한줄기 회오리바람이 사납게 몰아쳤다. 꽉 찬 보름달이 눈앞에서 폭발하는 것 같았다. 거대한 벽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 머릿속이 핑핑 돌았다. 벼락처럼 길고도 사나운 굉음이 들려왔다. 저택을 둘러싸고 있던 깊고 검은 호수가 서서히, 그리고 조용히 어셔가의 잔해를 집어삼켰다. - 에드거 앨런 포 ‘어셔가의 몰락’ 중에서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나 됐다고 사건·사고의 연속이다. 지난 5일, 평택에서 발생한 냉동 창고 화재 진압 과정에서 세 명의 소방관이 안타깝게 순직했다. 14일엔 광주광역시의 아파트 건축 현장에서 외벽 붕괴 사고가 일어나 다수의 실종자와 사망자를 낳았다. 북한도 5일과 11일, 14일과 17일, 벌써 네 차례나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어셔가는 왜 몰락했을까? 유서 깊은 가문이었지만 낡고 음산한 저택에 남겨진 건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던 로드릭과 마들렌이라는 병약한 남매뿐이었다. 로드릭은 여동생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볼 용기조차 없어 가사 상태인 줄 알면서도 그녀를 관에 넣고 못을 박는다. 그 후 로드릭의 심장을 옥죈 죄책감과 공포심은 그와 어셔가를 서둘러 파국의 골짜기로 이끈다.
소방 현장에서 상황 판단을 제대로 못 한 지휘관의 무리한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건설 현장 사고도 부실 공사의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연속된 북한의 도발에도 군 통수권자는 언제나처럼 ‘주시하라’는 말만 남긴 채 중동으로 떠났다. 과도한 코로나 방역으로 평범한 일상이 무너져가는 와중에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고로 잃지 말아야 할 목숨을 잃는 사건들을 접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이 졸아든다.
11일에도 기억해야 할 사고가 있었다. 스물여덟 살의 심정민 공군 소령이 이륙 직후 기체 이상으로 추락, 순직했다. 탈출할 수 있었지만 민가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인근 야산까지 조종을 계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는 게 살얼음판이다. 그래도 작지만 소중한 것들,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내려 애쓰는 이들의 뜨거운 가슴이 있어서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147] 선물하고 뺨맞기

▲이솝우화/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여우가 두루미를 식사에 초대했다. 여우는 납작한 접시에 수프를 담아 내왔다. 부리가 긴 두루미는 수프를 한 모금도 먹을 수 없었다. 여우는 두루미가 먹지 못한 수프까지 싹싹 핥아 먹었다. 화가 난 두루미는 며칠 후, 여우를 초대했다. 두루미는 목이 긴 호리병에 고기를 담아 내왔고 여우는 먹을 수 없었다. 두루미는 여우의 고기까지 맛있게 먹어치웠다. - 이솝 우화 ‘여우와 두루미’ 중에서
주한 일본 대사가 청와대의 설 선물을 돌려보냈다. 선물 상자에 독도가 그려져 있는 게 불쾌하다는 이유였다. 그래도 선물을 반송하다니, 하고 생각했지만 몇 해 전 도쿄 한일 정상회담 때의 오찬이 떠올랐다. 아베 전 총리가 취임 1주년 축하 케이크를 선물하자 ‘단것을 잘 못 먹는다’며 면전에서 거절하지 않았던가.
여우는 왜 접시에 음식을 담았을까? 두루미의 부리가 길다는 걸 깜빡했을까? 그릇이 납작 접시밖에 없었을까? 단순한 실수인지 심술궂은 장난인지 알 수 없지만 손님에 대한 배려가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쫄쫄 굶고 돌아간 두루미가 여우를 초대했을 때 제대로 대접해줄 거라 기대했다면 어리석기 짝이 없다.
아이들끼리 오목을 두더라도 상대의 다음 수를 생각하며 돌을 놓기 마련이다. 설을 맞아 1만5000명에게 똑같이 보냈다지만 ‘여긴 우리 땅’이란 주장이 담긴 선물이 일본 대사관에 도착하리라는 걸 몰랐을 리 없다. 그러면 일본이 어떻게 반응하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혹시 언론 보도가 나가면 또 한번 국민의 반일 감정이 고조되길 바란 걸까?
얼마 전 소개했던 ‘라이프 오브 파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보았을 때 배가 침몰한 장소를 나타내는 지도 한쪽에 영어로 ‘일본해’라고 표기된 것을 발견하고 아쉬웠던 적 있다. 우리 것을 지키려면 더 강하고 더 현명해져야 한다. 청와대는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다시 한번 큰 소리로 주장할 기회를 선물한 셈이다. 정말 독도를 지킬 마음이 있는 것인가? 반일 정서를 부채질하면서도 청와대의 진심은 위일(爲日)이 아닐까, 종종 헷갈린다.
[148] 세금 도둑이 너무 많다

소설 '오베라는 남자' 표지
“정말 신기한 건, 관료들이 정한 법을 제일 먼저 어기는 사람들이 관료들 본인이라는 사실이에요.” 기자가 말했다. “지난 7년간의 입출금 내역도 확보했습니다.” 와이셔츠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헤매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과거를 진지하게 파기 시작하면, 대개는 그 사람 혼자만 간직하는 게 낫겠다 싶은 것들을 발견하게 되죠.” - 프레드릭 배크만 ‘오베라는 남자’ 중에서
경기도지사였던 대선 후보의 아내가 “남편이 좋아한다”며 한우와 샌드위치 등을 구입하는 데 법인 카드를 썼다고 한다. 그녀의 남편은 “나라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도둑이 너무 많다”고 말한 적 있다. 사익을 위해 국민의 세금을 쓰는 것이 엄연한 도둑질이라는 뜻이다.
청소년 방역 패스를 강요해온 질병청은 소속 공무원과 가족, 그들 자녀의 백신 접종 현황 자료를 공개하라는 국회의 요구를 두 차례나 거부했다. 솔선수범했다면 떳떳하게 내놓았을 것이다.
오베는 근면하게 일하고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해왔지만 국가의 도움을 받은 적은 없었다. 부모가 남겨준 집은 도시 개발이란 명목으로 빼앗겼고 하반신 마비가 된 아내를 위해 수없이 탄원했지만 아무런 배려도 받지 못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친구를 그의 아내가 반대하는데도 요양원에 강제 이송시키려 하자 오베는 사회복지과에 항의한다. 뜻을 같이한 지역 신문 기자는 요양원 사업으로 부당한 이익을 취해온 정황을 포착한다. 숨길 게 많은 담당자는 그제야 물러선다. 와이셔츠로 대변되는 권위적인 관료들, 나랏일 한다면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만 훔쳐온 자들에게서 오베가 얻어낸 작은 승리였다.
‘누구도 무언가를 제대로 해낼 능력이 없다는 사실에 나라 전체가 기립 박수를 보내고 있는 상황, 범속함을 거리낌 없이 찬양해대는 세상’이다. 자신과 가족만 위하면서 입으로는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사람들 대신, 원칙을 지키며 실천하는 사람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청렴과 정직과 헌신을 증명하는 사람들이 존중받고 성공하며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길 바라는 것은 이젠 너무 큰 꿈이 되었다.
[149] 마스크보다 소중한 것

▲작은 아씨들(Little Women).
조는 베스가 얼마나 아름답고 다정한 성품을 타고났는지, 모든 이의 마음 깊숙한 곳을 얼마나 다정하게 채워주었는지 깨달았다. 남을 위해 희생하고 누구에게나 있을지 모를 소박한 선함을 실천함으로써 행복하게 만들어준 베스의 이타적인 마음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 선함은 다른 모든 재능보다 더 사랑받고 귀하게 대접받아야 마땅했다. - 루이자 메이 올컷 ‘작은 아씨들’ 중에서
문구점에서 아르바이트 점원에게 혼이 났다. 필통을 고르는데 안경에 김이 서려서 마스크를 올렸다 내렸다 했기 때문이다. “마스크 똑바로 쓰세요!” 매장이 떠나갈 듯 몇 번이나 소리쳐서 누가 저렇게 무식하게 떠드나 했더니 나에게 치는 호통이었다. 호랑이 선생님에게 딱 걸린 아이처럼, 찍소리도 못 하고 냉큼 코를 덮었다.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 가까운 데 주차하고 급히 뛰어내려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부축했다. 안전하게 들어가시도록 출입문을 활짝 열었다. 한 여성이 어머니의 뒤를 따르기에 나는 밖에서 문을 잡고 서 있었다. 여자가 뭐라고 하는 것 같았는데 고맙다는 말인 줄 알고 싱긋 웃었다. 그녀는 화가 났는지 자기 마스크를 가리키며 크게 외쳤다. “마스크 쓰라고요!”
‘작은 아씨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진실하게 살아가는 네 자매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셋째 딸 베스는 일찍 세상을 떠난다. 가난한 이웃을 돌보다가 성홍열에 감염된 베스는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웃을 탓하고 책임지게 해야 한다는 원망은 소설 속에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코로나 방역은 어떤 이에게는 죽음의 공포를, 또 어떤 이에게는 지적하고 훈계하고 고발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일깨웠다. 9시 넘어 영업하는 가게를 이웃 가게 주인이 신고하는 사례도 부쩍 늘었다고 한다.
방역 지침 준수야말로 지상 최고의 덕목이며 서로 감시해야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걸 잊은 게 아닐까. 힘든 세상일수록 우리를 견디게 하는 건 ‘다정한 성품’과 ‘소박한 선함’이 건네는 작은 행복이라는 것을.
[150] 더 나은 내일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자, 기회가 왔으니 그동안 무엇이든 하자. 우리 같은 놈들을 필요로 하는 일이 항상 있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런 게 아니야. 문제는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뭘 해야 하는가를 따져보는 거란 말이다. 우린 다행히도 그걸 알고 있거든. 이 모든 혼돈 속에서도 단 하나 확실한 게 있지. 그건 고도가 오기를 우린 기다리고 있다는 거야.
- 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중에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벽보가 거리마다 나붙었다. 파라다이스를 약속하며 근사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 후보는 자그마치 14명이나 된다. 당선되리라는 확신보다 다른 무언가를 위해 대통령 후보였다는 이력이 필요해서 나선 이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래도 유권자는 그들 중 더 좋은 나라를 만들어줄 인물이 있으리라 믿고 싶어 한다.
2주 더! 3주 더! 꼬리에 꼬리를 물며 정부가 백신 접종을 강제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요한 지 2년이 넘었다. 하지만 확진자는 계속 증가했고 최근엔 10만명을 넘었다. 국민은 무엇을 기다리며 시키면 시키는 대로 그 까다로운 방역 지침을 지켜온 것일까?
두 남자가 고도를 기다린다. 고도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왜 기다려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가 꼭 온다는 보장도 없다. 그를 만나서 무엇을 할지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래도 날이면 날마다 고도를 기다린다. 많은 독자가 연극으로 접했을 이 허망한 작품은 하나 마나 한 소리,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행동을 반복할 뿐, 고도는 끝내 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늘 무언가를 기다린다. 누군가는 출세와 권력을, 어떤 이는 정권 재창출 또는 정권 교체를 기다린다. 사람들 대부분은 조금 더 좋은 사회를, 노력한 만큼 정당한 보상을 받는 세상을 바란다. 무엇보다 마스크 없이 공부하고 백신 없이 일하고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을 기다린다.
오늘과 다른 내일을 기다리는 것만이 살아갈 힘이 될 때가 있다. 선거를 앞두고 또 많은 사람이 신바람 나는 미래가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151] 전쟁, 우리는 안전한가?

▲루이지 피란델로 '전쟁' 등 작가 7명의 단편소설 모음집
국가가 존재하고 또 굶어죽지 않으려고 먹는 빵처럼 국가가 꼭 필요한 것이라면, 누군가 지키러 가야 합니다. 아이들은 스무 살이면 입대합니다. 그들은 부모의 눈물을 원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인생의 추함이나 삶의 씁쓸한 환멸을 겪지 않고 젊은 나이에 열정적으로 죽는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울음을 그쳐야 합니다. 웃어야 합니다. 저처럼 말입니다. - 루이지 피란델로 ‘전쟁’ 중에서
병장이 된 조카가 휴가를 나왔을 때였다. 좀 일찍 복귀할 수 없느냐고, 후배 병사가 전화로 진지하게 묻더란다. 북한이 연달아 미사일을 쏘아대서 비상이 걸렸는데 신참이라 아는 것은 없고 어지간히 답답했던 모양이다.
조카는 무사히 휴가를 마치고 귀대했지만 업무에 즉시 복귀할 수 없었다. 일정 기간 코로나 음성 판정을 기다려야 했고 해제될 즈음에는 확진자가 나왔다는 이유로 부대 전체에 격리 조치가 내려졌다. ‘그럼 나라는 누가 지켜?’ 했지만 공연한 걱정이었을 것이다. 우리 군사력은 세계 6위란다.
1934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탈리아 작가의 짧은 소설은 외아들을 최전선에 보낸 부모를 위로하는 어느 전사자의 아버지를 묘사한다. 자식이 때 묻지 않은 인생을 살다 국가를 위해 죽는다면 기쁜 일이라고 그는 호기롭게 말한다. 하지만 “아드님이 정말 죽었나요?”라는 질문을 받자 덩치 큰 이 남자는 새삼 아무 말도 못 하고 가슴이 찢어지도록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지난해에는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에 점령당하더니 이번엔 우크라이나가 전쟁 무대가 되었다. 경제, 군사, 외교 면에서 상호 보완적일 때 유지되는 것이 평화다.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동등한 이익을 주고받을 수 없을 때, 싸워서 얻는 게 더 많다는 계산이 나올 때 전쟁은 시작된다.
먼 나라 전쟁의 불똥이 물가 상승으로 번지고 있지만, 내전과도 같은 정치권의 혼란과 분열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국민의 안전과 우리 젊은이들의 목숨을 헛되이 잃지 않을 만큼 국방은 정말 튼튼한가? 복잡한 국제 관계 속에서 우리가 전쟁과 무관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152] 선거 개표의 밤을 앞두고

▲셰익스피어 '맥베스'
마녀들 - 맥베스 만세, 글램즈 영주 만세! 맥베스 만세, 코더 영주 만세! 맥베스 만세, 곧 왕이 되실 분 만세!
뱅쿠오 장군 - 만약 너희가 시간의 씨앗을 들여다볼 수 있어, 어떤 씨가 자라고 자라지 않을지를 안다면 내게도 말해다오.
마녀들 - 맥베스보다는 못하나 더 위대하도다. 맥베스보다는 못하나 더 행복하도다. 왕이 되지는 못하나 후손이 왕이 되리니.
- 셰익스피어 ‘맥베스’ 중에서
교차로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길을 물었다. 답을 하고 나란히 서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유튜브에서 여당 후보의 욕설을 들어봤냐고 내게 물었다. 그런 사람이 어찌 대통령이 될 수 있겠느냐는 거였다.
얼마 전에 만난 지인은 여당 지지자였는데 그의 고민은 좀 더 현실적이었다. 현 정부가 세금을 너무 올려서 정권 교체의 필요성은 절감하지만 1번을 버릴 정도로 2번 후보의 메리트가 크지 않다는 말이었다.
줄거리를 따로 소개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 ‘맥베스’는 아들을 얻기 위해 이혼과 참수와 재혼을 반복한 헨리8세의 사후, 피비린내 나는 왕위 계승전의 끝에서 완성된 희곡이다. 왕관은 아들에게서 생질녀의 딸로, 다시 장녀에게서 앤 불린의 딸, 엘리자베스에게 넘어갔다.
후손이 없던 여왕의 뒤를 이은 제임스1세는 권력 다툼에서 밀려나 폐위되고 목이 잘린 스코틀랜드 여왕의 아들이었다. 셰익스피어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치세에 태어나 작가로 살았지만 제임스1세 시절에 최고 전성기를 맞았다. 그중 ‘맥베스’는 강직한 뱅쿠오 장군의 후손임을 암시함으로써 왕의 정통성을 천명한 작품이기도 하다.
왕의 권위는 혈통에서 나오지만 대통령의 자격은 그동안 어떤 일을 해왔는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해낼 것인가에 달렸다. 맥베스가 실패한 것도, 마녀의 예언과 아내의 충동질 덕에 왕이 되긴 했으나 세상을 위한 비전을 스스로 갖지 못한 탓이었다.
부조리했던 5년을 견디고 다시금 부강한 나라, 잘사는 국민을 위해 일해 줄 리더를 기대하는 많은 유권자의 잠 못 드는 밤이 다가오고 있다.
[153] 청와대 터의 운명

▲푸시킨 ‘스페이드의 여왕’
게르만은 미끄러져 들어온 하얀 여인이 죽은 백작 부인임을 알아보았다. “나는 오고 싶지 않았는데.” 그녀가 말했다. “네 청을 들어주라는 명령을 받아서 왔어. 3, 7, 1을 차례로 걸면 이길 거야. 하루에 카드 한 장 이상은 걸지 않아야 하고 이후에는 일생 동안 도박을 해선 안 돼. 또 네가 내 양녀 리자베타와 결혼한다면 날 죽게 만든 걸 용서해주겠어.”
- 푸시킨 ‘스페이드의 여왕’ 중에서
윤석열 당선인이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집무실과 관사를 광화문으로 옮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광화문은 대규모 시위 공간이 된 지 오래다. 또한 경호나 비서진 실무 공간 확보 등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현 정부도 실행하지 못한 공약이었다.
게르만은 사교계의 늙은 백작 부인이 젊은 시절, 도박에서 연달아 세 판을 이겨 엄청난 돈을 딴 적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치밀한 계획 끝에 노부인 방에 숨어든다. 하지만 늦은 밤 갑자기 나타난 청년이 도박의 비밀을 말하라며 총을 들고 협박하자 놀란 노부인은 심장마비로 죽고 만다.
직접 살인한 건 아니었지만 꺼림칙했던 게르만 앞에 죽은 백작 부인이 환영(幻影)으로 나타나 돈 따는 비결을 알려준다. 반신반의했지만 그는 이틀 연속 큰돈을 딴다. 그러나 셋째 날, 돈과 인생, 모든 것을 잃는다. 부인의 지시대로 분명 1, 즉 에이스를 냈는데 테이블에 던져진 카드는 스페이드 퀸이었다. 너무 긴장한 탓에 저지른 실수였을까, 백작 부인의 저주였을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는 시를 남긴 푸시킨의 소설 속 주인공은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죽은 자의 말을 믿고 운명을 걸었다. 청와대 터가 험해서 국가 분란과 대통령들의 불운이 끊이지 않는다는 말을 믿는 사람이 많다. 현 정권도 “풍수상의 불길한 점을 생각해 옮겨야 하는데”라고 브리핑을 한 적 있다.
‘제왕적’ 권력의 상징을 청산하겠다며 이전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는 당선인의 공약이 이번엔 실현될까? 현직을 포함, 역대 대통령들의 말년 불행이 풍수 때문인지 아닌지 비교, 확인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154] 부패한 정치인이 가는 지옥

▲단테 알리기에리 ‘신곡’
단테는 자신의 직위를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운 탐관오리들을 본다. 그들은 펄펄 끓는 역청 속에 잠겨 벌 받으면서 무시무시한 악마들의 감시를 받는다. “이놈이 관리였어. 거기는 죄다 도둑놈들이지. ‘아니오’도 돈이면 금방 ‘네’로 바뀌거든.” 마귀는 죄인을 밑으로 던지고는 소리를 질렀다. “쇠갈퀴가 싫으면 역청 위로 대가릴 내밀지 마!” 그러더니 백 개도 넘는 쇠갈퀴로 그를 찔러댔다. - 단테 알리기에리 ‘신곡’ 중에서
청와대가 시켜 먹은 호텔 도시락이 얼마짜리인지, 배우자의 몸치장에 얼마나 많은 세금이 쓰였는지 알려줄 수 없단다. 현 정부가 특수활동비 등의 지출 내역을 공개하라는 법원 명령을 거부했다. 공익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라는데, 상대적 박탈감과 빈곤감, 그동안 속았구나 하는 배신감에 화병이 난 국민들이 폭동이라도 일으킬까 걱정된다는 뜻일까?
대통령이 되면 세금을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썼는지 아무도 모르게 유용할 수 있는 특권을 받는다. 월급 외 별도의 세금으로 배우자를 마음껏 먹이고 입히고 사치스럽게 꾸밀 수 있는 특혜도 누린다.
국회의원 300명도 그에 못지않은 특권을 갖는다. 오죽하면 저승에 간 국회의원이 생전에 누린 혜택을 늘어놓자 “그래도 나라가 안 망한단 말이냐. 나도 신 노릇 때려치우고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나 해야겠다”며 하느님이 노여워했다는 농담까지 생겼을까.
1320년에 완성된 단테의 ‘신곡’은 지옥과 연옥, 천국을 차례로 돌아본 저승 세계 여행기다. 지옥은 아홉 층으로 나뉘어 음욕, 식탐, 사기, 폭력 등의 죄를 지은 자들을 벌한다. 그중 국민의 고혈을 짠 부패한 정치인은 뜨거운 기름지옥에 떨어진다. 허우적거리다 고개라도 내밀면 악마가 쇠갈퀴로 갈기갈기 사지를 찢어버린다.
정치권의 부정부패에 분노해봐야 그들의 특권은 계속해서 늘어만 간다. 선거 때는 공익을 위해 일하겠다며 엎드리지만 선출되면 자신들만의 사익을 도모한다. 5년 전보다 세금을 40%나 더 내야 하는 국민은 사후 그들을 데려간다는 지옥이나 상상하며 한숨 쉴 수밖에.
[155] 경호원들의 활약이 빛난 순간

▲제임스 M 볼드윈 ‘50가지 재미있는 이야기’
“왕이시여! 제 친구 핀티아스 대신 저를 감옥에 가두시고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일들을 정리하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저는 핀티아스가 약속한 대로 돌아올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만약에 그가 제날짜에 이곳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때는 제가 그를 대신해 죽겠습니다.”
- 제임스 M 볼드윈 ‘50가지 재미있는 이야기’ 수록 ‘핀티아스와 다몬의 우정’ 중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구의 사저 앞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전하는 동안 소주병이 날아왔다. 범인의 이상행동을 먼저 알아차린 경호원이 “기습이다” 하고 소리쳤고 재빠른 방어에 나선 덕에 큰 피해 없이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 지켜야 할 대상의 안전만을 생각하며 매와 같은 눈으로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임무를 수행한 경호원들의 활약이 빛난 순간이었다.
부모님을 모두 총탄에 잃었고 자신 또한 커터 칼 테러를 당한 적 있어 본능적으로 놀라는 게 당연한데도 박 전 대통령은 소동이 벌어지는 동안 큰 동요 없이 기다렸다. 상황이 정리되자 여유 있는 웃음을 보이며 잠시 끊겼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오랜 정치 경험에서 축적된 담대함이었겠지만 경호원들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크고 단단했기 때문에 가능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디오니시우스왕은 핀티아스라는 청년을 오해하고 반역의 죄를 물어 사형을 언도했다. 핀티아스는 변명하지 않았지만 고향에 가서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했다. 친구 다몬도 핀티아스를 믿는다며 만일 그가 돌아오지 않을 때는 대신 죽겠노라 약속했다. 우여곡절 끝에 핀티아스는 돌아왔고 왕은 두 사람의 우정을 부러워하며 그들 모두를 풀어주었다.
어떤 이들은 세상을 탓하고 남을 원망하느라 인생을 소모하고 사회를 어지럽힌다. 어떤 불행에도 타인의 선한 마음을 믿고 자신을 성찰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다른 사람을 구하려고 자신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다. 사회를 지키는 힘은 묵묵히 자기 몫의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 한 아무리 큰 위험이 닥쳐도 세상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156] 죽음의 홍수, 누가 책임지나?

▲베로니크 뒤 뷔르 ‘체리토마토파이’
다음 차례는 누구일까? 어쩌면 나 아닐까? 남의 죽음은 필연적으로 우리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게 한다. 오늘 아침 내가 침대에 틀어박혀 골몰했던 생각도 그런 것이었다. 머리와 발치에 구리 창살이 있는 이 침대는 나의 임종 침상이 되리라. 나는 죽음보다는 장례식을 상상한다. 그 편이 기분이 좀 낫다. 적어도 고인에게 가장 힘든 순간은 이미 지나고 난 후다. - 베로니크 뒤 뷔르 ‘체리토마토파이’ 중에서
코로나 때문에 사망자가 급증, 화장터와 시신 보관 냉장 시설이 포화 상태다. 식품 냉동 탑차나 정육 보관용 냉동 창고를 이용하는 장례업체도 있다고 한다. 죽음의 밀물이 정점을 찍을 때 명이 다하면 고기를 보관하던 냉동실에서 다른 망자들과 섞여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니, 그마저도 없으면 상온에서 부패되어 악취를 풍길 수도 있다니 상상하기도 싫다.
일기 형식의 소설 속 주인공은 아흔 살의 할머니다. 자식들은 도시에서 살고 있고 남편은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다. 몸은 점차 쇠약해지고 정신도 깜빡깜빡할 때가 많지만 그녀는 혼자 장 보고 책 읽고 텃밭 가꾸는 조용한 생활이 좋다. 하지만 가까운 친구와 지인들의 부음이 하나둘 쌓여가고 친척의 장례식에 다녀온 뒤,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생각한다.
아흔한 번째 생일을 보내고 어느 봄날, 일기는 끝난다. 자신의 침대에서 평화로운 죽음을 맞았을 것이다. 그녀의 침실에서 자식과 손자들이 마지막 입맞춤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바람대로 꽃과 노래가 함께하는 소박한 장례식이 끝난 뒤 남편 옆에 묻혔을 것이다. 우리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그러나 누구라도 부러워할 만한 아름답고 평온한 인생의 종막이다.
잘사는 것도 복이지만 잘 죽고 잘 묻힐 수 있는 것도 큰 복이구나, 새삼 깨닫게 해주는 시절이다. 마스크 써라, 백신 맞아라, 만나지 마라, 임종하지 마라, 바로 화장해라! 얼마나 혹독한 방역이었나. 그런데 확진자 수, 사망자 수 세계 1위다. 국민은 정부를 믿고 방역 지침을 따랐다. 죽음의 홍수라는 참담한 결과에 대해 정책 시행자는 책임져야 한다.
[157] 절대 반지 그리고 송곳과 채칼

▲J.R.R.톨킨 ‘반지의 제왕’
이건 생각보다 훨씬 더 무서운 반지야. 그것을 소유한 사람은 완전히 압도당하게 된다네. 반지가 사람을 소유하게 되는 셈이지. 결국에는 반지를 지배하는 암흑의 권능이 감시하는 미명의 지대를 헤매게 된다네. 의지력이 강하거나 원래 선량한 사람이라면 그 순간이 다소 지연될 수도 있겠지만, 의지력이나 선량함도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는 법일세. 결국엔 암흑의 권능에 사로잡히고 마는 거지. - J.R.R. 톨킨 ‘반지의 제왕’ 중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의 대학, 의전원 경력이 삭제됐다. 입학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대법원 판결에 따른 후속 조치다. 의사 면허도 취소 절차에 들어갔다. 조국은 ‘송곳으로 심장을 찌르고 채칼로 살갗을 벗겨내는 것 같은 고통’이라며 괴로움을 호소했다.
아시안게임의 승마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고 대학에 특례 입학했으나 정치 싸움에 휘말린 결과 학력을 포함, 많은 것을 잃어야 했던 정유라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당시 조국은 자신의 딸아이 또래인 그녀를 얼마나 모질게 비난하고 매도했던가. 지금 그가 고통스럽다면, 아비로서가 아니라 분에 넘치는 힘을 휘둘렀던 시간에 대해 마땅히 치러야 하는 대가일 것이다.
마법의 반지는 지배하고 싶은 욕망을 일깨운다. 훔치고 빼앗아서라도 가지라고 다그친다. 속이고 때리고 죽여서라도 높이 오르라고 재촉한다. 악을 소탕하고 비뚤어진 사회를 바로잡는 데 그 힘을 쓰겠다고 맹세해도 반지는 착한 욕망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 속성을 아는 현자들은 반지를 두려워하여 만지려고도 하지 않는다.
소설에서는 반지를 파기하고 악을 물리치고 세상의 평화를 되찾는다. 하지만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죽지 않는다. 탐욕스러운 권력자들이 재촉하는 불행과 그 밑에서 신음하는 사람들로 세상은 하루도 평온할 날이 없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내가 적임자다, 이 사람이 유능하다, 저 사람을 밀어달라, 앞에 나선 이들과 뒤에서 미는 사람들, 정당마다 지역마다 후보 경쟁이 치열하다. 훗날 ‘송곳과 채칼’로 살을 저미는 고통을 느낀다며 울먹일 사람은 아닐까, 눈여겨보게 된다.
[158] 마기꾼, 마실감, 마르소나

▲로버트 스티븐슨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느낌이 이상했다. 뭔가 새로웠으며 그 새로움 때문인지 믿을 수 없을 만큼 상쾌했다. 몸이 더 젊고 더 가볍고 더 행복해진 느낌이었다. 그 안에 통제할 수 없이 무모해진 내가 있었다. 감각적인 이미지들이 마구 얽힌 채 머릿속을 급류처럼 흘러갔다. 의무감은 녹아내렸으며, 영혼은 낯설고 순수하지 않은 자유를 갈구했다. 마치 와인을 마실 때처럼 나는 쾌감을 느꼈다. - 로버트 스티븐슨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중에서
거리 두기가 해제되었지만 마스크 쓰기는 계속된다. 사실 한적한 실외에서 마스크가 의무였던 적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한산한 등산로나 산책길에서, 혼자 자전거를 타고 혼자 조깅하면서도 마스크를 벗지 못했다. 마스크 쓰고 꽃놀이 데이트를 하고 마스크 씌운 아기를 안고 가족 사진을 찍는다.
마스크가 좋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햇볕에 얼굴이 타지 않아서, 화장을 안 해도 되니까, 못생긴 얼굴이 가려지니까. 마스크 벗었을 때 못생겨 보이는 사람을 ‘마기꾼’이라고 한단다. 마스크와 사기꾼의 합성어다. 마스크 의무가 해제되면 마실감(상실감)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건강보다는 싫은 소리 듣기 싫어 썼던 마스크는 자신을 감추는 마르소나, 즉 또 다른 가면 페르소나가 아니었을까.
페르소나를 대표하는 소설의 지킬 박사는 선과 악을 분리하는 실험에 성공한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약을 먹고 악의 화신, 하이드가 된다. 억압해두었던 본성을 발현시킬 때의 쾌감은 굉장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선한 영혼은 하이드에게 점령당해 사라져간다.
혹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보면 화가 나지 않는지. 우월감을 느끼고 마스크를 쓰라며 혼내주고 싶지 않은지. 억눌렸던 인격이 마스크 안에서 자란 건 아닐까. 세 살부터 마스크를 쓴 아기들은 여든까지 벗지 못할 수도 있다. 어른들도 쇼윈도에 비친 자기 맨얼굴을 보면 화들짝 놀랄지도 모른다.
확진자가 매일 수십만씩 나온다면서도 제재를 푼다는 건 그만큼 위험성이 낮다는 뜻이다. 이제 가면을 벗어야 한다. 얼굴과 표정을 되찾아야 한다. 거리에서 만났을 때 웃으며 반겨주던 환하고 아름다운 당신의 미소를.
[159] 보험 살인과 검수완박

▲찰스 디킨스 ‘생명보험 사기 사건’
계산적인 범죄가 자신의 본모습을 잃었을 때, 온전한 인격과 완벽히 합치하지 않을 때 저질러진다고 가정하는 것만큼 큰 실수는 없다. 본디 흉악한 자가 살인을 저지른다. 대담하고도 뻔뻔하게 저지른다. 악명 높은 범죄자가 양심에 비추어보면서 흉악한 범죄를 담대하게 저질렀다면 놀랄 일이다. 범죄를 양심에 비춰볼 수 있다면, 혹은 비춰볼 양심이라도 있다면 범죄를 저지르겠는가? -찰스 디킨스 ‘생명보험 사기 사건’ 중에서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자마자 젊은 아내는 장례식장에서 웃고 떠들고 게임을 했다. 남편이 죽은 지 한 달, 그녀는 연인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녔다.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다면 남편의 죽음이 슬프지 않을 수는 있다. 남편 앞으로 들었던 보험금을 타서 애인과 새 인생을 시작할 꿈에 부풀 수도 있다. 그래도 양심이 있다면 속마음을 감추고 눈물을 보이기 마련이다.
보험금을 위한 살인은 드물지 않다. 찰스 디킨스도 유산 상속과 보험 수령을 목적으로 친지들을 죽인 연쇄 살인범의 실제 사건에 착안, 보험 사기 살인 사건을 소설로 쓴 적 있다. 슬링턴은 유산을 가로챌 목적으로 조카를 독살한다. 이웃집 남자를 속여 자신을 수령인으로 한 뒤 생명보험에 가입시킨다. 물론 그 또한 죽일 계획이다.
이은해의 남편 익사 사건은 석 달 만에 내사 종결되었다가 유가족 요청으로 재수사에 들어갔으나 흐지부지되었다. 잠자고 있던 사건이 깨어난 건 그로부터 2년 뒤, 인천지검이 재수사를 하면서였다. 용의자가 검거된 건 사건 발생 3년 만이다. 검찰의 수사권이 없었다면 영원히 묻혔을 것이다. 그랬다면 용의자에 의해 또 다른 희생자가 몇 명 더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현재 재논의에 들어간 ‘검수완박’이 실현되면 얼마나 많은 사건의 진실이 묻히게 될지 알 수 없다. 개혁은 검찰에만 필요한가. 경찰은 개혁이나 견제가 필요 없는 기관인가? 어떤 제도나 시스템도 완전하지 않다. 가장 위험한 것은 독점이다. 경찰만의 수사권은 선량한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다.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할 국회는 누구를 위해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결정하려 하는가?
2022.05.03
[160] 국민의 뜻이라는 입법 독재

▲베른하르트 슐링크 ‘책 읽어주는 남자’
“당신이 보고서를 썼습니까?” 재판장이 물었다. “너잖아!” 다른 피고인이 손가락으로 한나를 가리켰다. “아닙니다. 내가 쓰지 않았습니다.” 검사가 전문가에게 의뢰해서 보고서에 쓰인 필체와 한나의 필체를 비교해보자고 제안했다. “내 필체라고요?” 한나는 더욱더 불안한 태도를 보였다. 그녀가 말했다. “전문가까지 부를 필요 없습니다. 내가 그 보고서를 썼다는 사실을 시인합니다.” - 베른하르트 슐링크 ‘책 읽어주는 남자’ 중에서
얼마 전 대통령 당선인 진영은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논란을 국민투표로 끝내자고 제안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법적으로 불가하다고 했고, 여당은 국민투표란 히틀러가 좋아할 일이라며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부터 물어보라고 비아냥댔다. 이에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법을 바꾸자고 했다. 야당도 여당의 반대야말로 히틀러식 독재라며 비난했다.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니 지혜로운 국민이 결정해주소서, 하는 모양새는 얼핏 민주적이고 국민 존중의 뜻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치인 마음대로 발의한 사안마다 투표로 결정하자며 여론 몰이를 한다면 그 책임은 온전히 국민 몫이 된다. 히틀러 시대야말로 95.7%의 투표 참여, 88.1%의 찬성이라는 국민투표의 결과였다.
그 시절 독일인으로 살았던 소설 속 한나는 수용소의 가스실 살상에 일조했다는 혐의로 전범재판에 선다. 함께 기소된 다른 피고인들은 자신들의 죄를 가볍게 하기 위해 한나에게 모든 책임을 덮어씌운다. 한나는 읽고 쓸 줄 몰랐다. 보고서를 쓸 권한도 능력도 없었다. 하지만 문맹을 수치라고 여긴 그녀는 히틀러의 하수인이라는 비난을 선택하고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또 한 번의 국민투표는 필요 없었다. 여당이 국회에서 관련 법안들을 강행 처리, 모두 통과시켰다. 국민투표로 얻은 과반의 의석수 덕분이다. 검수완박은 다수당 마음대로 해도 돼, 하고 허락한 국민투표의 결과물인 셈이다. 시대의 불행은 통치자들의 권력욕과 오판 그리고 무책임으로 시작된다. 국민의 뜻이라는 명분으로 완성된 입법독재는 결국 한나처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의 희생으로 귀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