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여행/ 국가별16/ 미국4/ 국립공원을 가다 ① 요세미티 - ⑫ · 끝 그랜드 캐니언 외
■ 국립공원을 가다
① 요세미티
거대한 바위절벽 하프돔에 눈 번쩍, 파랑새 노래에 귀 쫑긋
요세미티(yosemite) 국립공원은 해마다 약 400만 명이 찾는 명소다. 지난해에는 미국 국립공원 중에서 그레이트스모키산·그랜드캐니언 다음으로 인기가 많았다. 4~10월에 방문자 대부분이 몰린다. 겨울에 가는 건 쉽지 않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이 들어선 시에라 네바다 산맥에 눈이 많이 내려 도로 곳곳이 폐쇄되기 일쑤여서다. 그러나 가장 극적인 풍광을 만나려면 겨울에 가야 한다. 인파도 적어 겨울 숲에서 안온한 휴식을 누리기에도 좋다. 100% 자연설에서 즐기는 스키도 놓칠 수 없다.
# 눈 천지 겨울 요세미티에 안기다
지난달 1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중남부의 프레스노에서 41번 도로를 타고 요세미티로 향했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어느새 뽀송뽀송한 눈으로 바뀌었다. 타닥타닥 나무에 쌓인 눈이 녹으며 땅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적막한 숲을 깨웠다. 해발 고도 2000m를 넘자 설경을 향한 경탄은 공포감으로 바뀌었다. 혹여 모를 안전사고 때문이었다. 공원 입구 상점으로 들어가 공원 안쪽 상황을 물었다. “글쎄, 눈이 더 올 수도 있으니 체인을 사가는 게 안전할 것 같은데요.” 절대 사용할 일이 없기를 바라며 65달러짜리 체인을 트렁크에 실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마리포사 숲이었다. 키가 100m에 달하는 자이언트세쿼이아 군락지다. 여기서 자라는 자이언트세콰이아의 수령은 3000년이 넘는다. 한데 나무 앞까지 이어진 도로가 폐쇄됐단다. 공원 안내원이 “눈을 헤치고 왕복 6마일(9.6㎞)은 걸어야 할 텐데 괜찮겠냐”며 걱정스런 눈길로 말했다. 겨울 요세미티는 매력적이지만 역시 만만치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차를 돌려 해발 고도가 낮은 요세미티 밸리 쪽으로 향했다.
꾸불꾸불 오르락내리락 1시간을 달려 터널을 통과하니 비로소 익숙했던 풍경이 펼쳐졌다. 돔(dome)을 반으로 잘라놓은 듯한 모양의 바위 하프돔, 표고차만 1095m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화강암 덩어리 산 앨캐피탄, 그리고 신부 면사포를 닮은 브라이들베일 폭포까지 웅장한 풍광이 한눈에 들어왔다. 수백만 년 전 빙하가 훑고 간 길이 고스란히 보이는 듯했다. 구름의 흐름과 빛의 각도에 따라 풍광이 달라졌다. 숨이 멎을 듯했다.
요세미티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한 사람, 존 뮤어(1838~1914, 작가ㆍ환경운동가)도 이 풍광에 반했을 것이다. 그래서 요세미티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의회에 청원했을 것이다. 공원 곳곳에서는 그가 살던 흔적, 그를 기념하는 유적도 볼 수 있었다. 벌목공 시절에 살던 집터,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함께 야영했던 자리 등이 대표적이다. 그를 기리기 위해 만든 ‘존 뮤어 트레일’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요세미티 밸리 목초지에서 젊은 커플이 하프돔을 보며 한가로이 휴식을 만끽하고 있다. 겨울에 공원을 찾은 사람들은 이렇게 느긋하게 시간을 보낸다.
#서울 5배 크기…트레일만 1350㎞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면적은 3026㎢다. 서울의 5배, 한국 국립공원 중 가장 큰 지리산 국립공원보다 약 7배 크다. 물론 대부분은 일반인이 쉽게 들어갈 수 없는 야생 보호 구역이다. 하나 걸을 수 있는 트레일만 해도 1350㎞에 달한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길은 세계 3대 트레일로 꼽히는 존 뮤어 트레일이다. 존 뮤어가 만든 환경보호단체 시에라 클럽이 1915년 뮤어를 기리기 위해 만든 트레일이다. 트레일 길이는 자그마치 340㎞. 요세미티·킹스 캐니언·세쿼이아 국립공원을 관통하고 휘트니 산(4418m)을 걷는다. 트레일을 종주하려면 약 20일간 짐을 짊어지고 야영을 해야하기에 아무나 도전할 수는 없다. 또 한 해 입장객을 500~60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허가증은 6개월 전부터 신청할 수 있는데 . 그럼에도 생애 한번은 이 길을 걷겠다며 전세계에서 사람이 몰린다.
하프돔 등반에 도전하는 사람도 많다. 해발 2695m의 암벽 꼭대기에 오르는 일은 만만치 않다. 요세미티 밸리에서 출발해 꼭대기까지 왕복 거리는 약 24㎞, 미스트 트레일을 거치면 약 12시간 걸린다. 하프돔 아래쪽에 있는 서브돔까지는 보통 등산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데 마지막 100m가 하이라이트다. 바위에 걸린 두가닥 쇠줄을 잡고 엉금엉금 올라가야 한다. 물론 정상에 서면 공원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이 펼쳐진다. 하프돔 등반은 5~10월에만 가능하고, 하루 입장객을 300명으로 제한한다. 그것도 추첨으로 등반자를 뽑으니 운에 맡겨야 한다.
눈이 쌓이는 계절이어서 존 뮤어 트레일 종주와 하프돔 등반에 도전할 수는 없었다. 대신 가벼운 하이킹과 겨울 스포츠를 즐겼다. 겨울에 걸을 만한 트레일은 해발 1200m, 요세미티 밸리에 많았다. 요세미티 밸리는 전체 공원 면적의 3%에 불과하지만, 박물관·갤러리 등 볼거리가 많고 숙소, 식당 등 편의시설이 몰려 있어 방문객이 많았다. 방문객 대부분은 머세드강 주변에서 산책을 즐기며 기념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1 밸리 안에는 겨울에도 걸을 만한 트레일이 많다. 특히 요세미티 폭포 주변으로 난 길이 아름답다. 2 요세미티에서는 야생동물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숙소 앞에 파랑새 ‘블루제이’가 나타났다. 3 이른 아침, 안개 낀 머세드강에 거대한 암산이 비친 모습.
# 야생동물과 함께하는 트레킹
낙차가 729m에 이르는 북미 최대의 폭포 ‘요세미티 폭포’를 따라 난 트레일을 걸었다. 완공을 앞둔 높이 555m의 롯데월드타워보다도 높은 곳에서 물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숲에는 쓰러진 고목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불에 탄 나무도 많았다. 가끔은 일부러 불을 지르기도 한단다. 불이 나야만 숲이 더 건강해져서란다. 죽은 나무는 장작으로 쓸 법도 한데 공원은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캐리 콥 요세미티 국립공원 홍보담당의 설명이다.
“쓰러진 나무가 땅에 영양분을 주고, 곤충의 먹이 공급처도 되지요. 무엇보다 곰이 숨어지낼 수 있는 공간도 되고요.” 곰이라고?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더니 지금은 다 겨울잠에 들었단다.
트레일에 사슴이 출몰했다. 녀석들은 사람을 경계하는 법이 없었다. 한 놈은 코앞까지 다가와 풀을 뜯어 먹었다. 어루만지고 싶었으나 공원 곳곳에 붙은 경고문 ‘Keep wildlife wild’ 문구가 생각나 손을 거뒀다. 야생동물이 야생성을 잃지 않도록 먹이를 주지도, 만지지도 말라는 경고였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요세미티에서 사슴은 개체 수를 파악하지도 않을 만큼 많단다. 동화에서나 봤던 파랑새 ‘블루제이’도 숙소 앞을 수시로 날아다녔다.
공원에서 유일하게 개체 수를 파악하는 야생동물은 원주민 말로 ‘요세미티’, 즉 흑곰이다. 그마저도 300~500마리로 추산하는 정도다. 인위적으로 번식하거나 보호 구역을 정하지 않는다. 그저 곰이 쓰레기통을 뒤지지 않도록 관리하고, 매년 약 20마리가 차에 치여 죽는다는 사실을 알리며 주의를 당부할 뿐이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이 자연을 보존하는 방식은 이런 식이다. 자연은 그대로 내버려두자면서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은근히 설득한다. 공원 내 숙소에서는 투숙객에게 1박에 1달러씩 기부금을 받는다. 강제적인 것 같지만 며칠간 공원에 머물고 나면 기꺼이 주머니를 열게 된다. 누구라도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이 잘 보존돼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다. 지난 해에는 자이언트 세쿼이아 나무를 살리기 위한 예산을 3600만 달러로 책정하고, 2000만 달러는 기부로 충당했다.
# 80년 묵은 스키장
▲국가 사적지로 등록된 아와니 호텔.
셋째 날에는 스키장 ‘뱃저패스’로 향했다. 처음엔 인공을 최대한 배제하는 요세미티에 웬 스키장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1932년 로스앤젤레스(LA)가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만든 것이란다. 한데 LA는 뉴욕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멀쩡한 스키장을 놀릴 수 없는 노릇이어서 공원 측은 도로를 정비하고 시설을 보강했다.
캘리포니아 최초의 스키장은 호황을 이뤘다. 이후 레이크타호, 맘모스 등지에 수준 높은 스키장이 생겼지만, 설질만큼은 뒤지지 않아 뱃저패스의 인기는 여전하다. 요세미티 밸리에서 32㎞, 다시 자동차를 몰고 해발 2200m까지 올랐다. 스키장은 크지 않았다. 리프트 5개, 슬로프는 10개가 전부였다. 초급 슬로프에서 몸을 풀었다. 한참을 타도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황제 스키였다. 다음은 중급 슬로프. 역시 사람이 없었다. 눈이 가루처럼 날리는 파우더 스노(Powder Snow)여서 조금만 힘 조절을 잘못하면 무릎까지 잠기거나 눈 바닥에 뒹굴었다. 그래도 즐거웠다. 특히 슬로프 사이로 난 샛길, 거대한 침염수를 끼고 도는 재미가 남달랐다
▲최고령 파크 레인저 줄리아 파커.
스키를 마치고 밸리로 내려오니 아와니 호텔에서 브레이스브릿지 행사가 열렸다. 중세 유럽풍 옷을 입은 수백 명이 라이브 음악을 즐기며 7가지 코스의 음식을 즐겼다. 국가 사적지로 등록된 호텔답게 1927년부터 이어온 행사란다. 요세미티는 자연뿐 아니라 행사도 ‘원형 그대로’를 강조했다. 국립공원 직원인 파크레인저가 진행하는 체험 프로그램도 그렇다. 사진 강습, 별 관측, 동식물 강의 같은 프로그램은 몇 년째 변치 않는 레퍼토리다. 박물관에서 최고령 파크 레인저 줄리아 파커(88)를 만났다. 아메리카 원주민인 그녀는 17세 때 공원 내 숙소에서 메이드로 일을 시작했고, 33세에 국립공원 정식 직원으로 채용돼 전통 바구니를 만들고 방문객에게 원주민 역사를 들려주는 일을 했다. 파커의 사연을 듣고 원주민의 아픈 역사와 미국 사회의 모순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정작 그녀는 “국립공원에서 일을 하는 덕분에 증손녀까지 바구니를 만들며 전통을 지킬 수 있다”며 만족해 했다.
글·사진=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여행정보=요세미티 국립공원을 비롯한 미국 국립공원 정보는 국립공원관리청 홈페이지(nps.gov)에서 구할 수 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 입장료는 개인 자동차로 입장하면 인원에 상관 없이 1대에 20달러만 내면 된다. 최대 7일까지 유효하다. 국립공원 안에는 무료 셔틀버스가 다닌다. 숙소는 수준에 맞춰 고르면 된다. 하루 최저 5달러인 캠핑장부터 럭셔리 호텔 아와니(1박 약 500달러)까지 다양하다.
week&은 요세미티 폭포 앞의 로지를 이용했다. 1박 약 100달러. 공원 숙소를 운영하는 DNC 홈페이지(yosemitepark.com)에서 예약할 수 있다. 뱃저패스 스키장 리프트권은 어른 종일 기준 48.5달러. 자세한 여행 정보는 미국관광청(discoveramerica.co.kr), 캘리포니아관광청(visitcalifornia.co.kr) 홈페이지 참고.
유나이티드항공(united.com)이 인천∼샌프란시스코 노선을 운행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요세미티까지는 자동차로 4시간 거리다. 요세미티 관문 도시 프레스노까지 국내선을 이용할 수도 있다. 유나이티드항공 한국사무소 02-751-0300. 렌터카는 알라모(alamo.co.kr)를 추천한다. 홈페이지에서 예약한 뒤 현장에서 직접 차를 고른다. 스탠더드 SUV 차량에 한국어 GPS와 보험이 포함된 골드패키지 1일 이용료 151달러, 5~7일 이용료는 587달러. 위급 상황이 발생하면 한국어 통역 서비스도 해준다. 알라모렌터카 한국사무소 02-739-3110.
② 데스밸리
지옥·천국을 한데 품은, 지독하게 낯선 땅
▲데스밸리에도 사하라 같은 모래사막 ‘메스키트 플랫’이 있다. 해 돋고 해 질 때, 붉은 모래 언덕이 춤추는 듯한 장관이 펼쳐진다.
데스밸리(Death Valley)는 최근 경제 뉴스에 많이 등장하는 용어다. 신생 벤처기업이 처음 맞는 도산 위기를 뜻한다. 그러나 미국에 있는 진짜 데스밸리는 아름답다.
척박한 땅이지만, 지구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비경을 품고 있다. 데스밸리는 북미에서 가장 덥고 건조하며, 해수면이 가장 낮다. 알래스카를 제외한 미국 본토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국립공원이기도 하다. 여름에는 너무 더워 가기 힘든 데스밸리를 다녀왔다. 할리우드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혹성에 불시착한 듯했다.
▲① 데스밸리 계곡을 굽어볼 수 있는 단테스뷰. 단테의『신곡』에 나오는 지옥을 연상시킨다. ② 북미 최저지대, 해발 -85.5m인 배드워터 분지는 하얀 소금으로 덮여 있다. 염전 같다. ③ 퍼니스크릭에는 숙소·식당 등이 몰려 있다. 날지 못하는 새 ‘로드러너’가 관광객에게 다가왔다.
골드러시 시대에 찾아낸 죽음의 계곡
1849년 크리스마스 이브. 한 무리의 금광꾼이 마차 20대를 몰고 황무지에 들어섰다.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금광이 있는 캘리포니아주 중부로 가려면 시에라 산맥을 넘어야 하는데, 지름길이랍시고 택한 길이 ‘죽음의 골짜기’였다. 수십 일을 유랑해도 계곡은 끝나지 않았다. 물과 식량도 다 떨어졌다. 하릴없이 마차를 부숴 땔감으로 썼고, 마차 끌던 소를 구워먹고 육포로 만들어 먹었다. 간신히 계곡을 빠져나간 뒤 그들은 외쳤다. “굿바이, 데스밸리.”
그때부터 계곡의 이름은 데스밸리가 됐다. 골드러시 이후에도 발길은 계속됐다. 금은 없었지만 붕사·활석 등 광물이 많아 광산 개발이 활기를 띠었다. 철로도 깔렸다. 그러나 호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1907년 금융위기가 덮치면서 광산업도 쇠락했다. 이때 광산업체가 주목한 게 관광업이었다. 작업장은 리조트와 관광형 목장으로 바뀌었다. 데스밸리는 33년 국립기념지로 지정됐고, 94년 캘리포니아 사막보호법이 제정되면서 국립공원으로 승격됐다.
데스밸리 남서쪽의 소도시 리지크레스트를 출발해 190번 도로를 타고 공원에 들어왔다. 길섶엔 키 작은 사막 식물, 정면에는 거대한 황토빛 산. 한참을 달려도 풍경은 그대로였다. 마차가 아니라 최신 4륜구동 자동차의 힘을 빌려도 데스밸리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국립공원 면적은 1만3400㎢로, 전라남도(1만2095㎢)보다 넓다. 이틀을 헤집고 다녀도 주요 포인트를 다 볼 수 없었다.먼저 ‘단테스뷰(Dante’s view)’로 향했다. 단테의 『신곡』에 묘사된 지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해발 1700m 높이에 올라서니 데스밸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계곡 바닥은 희끗희끗했다. 수백만 년 전, 바닷물이 빠져나가고 소금만 남은 흔적이다. 계곡 너머 파나민트 산맥은 봉우리마다 눈이 덮여 있었다. 금광꾼은 여기서 지옥을 봤을지 모르지만, 21세기 여행자는 우주에 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가장 덥고 건조한 극한의 환경
북미 최저지대, 해수면 -85.5m인 ‘배드워터 분지’로 향했다. 금광꾼이 오아시스를 만났다며 반가워 했다가 소금물인 것을 알고 붙인 이름이다. 데스밸리의 극한 환경을 알 수 있는 곳이다.
데스밸리의 연간 강수량은 60㎜에 불과하다. 40개월 동안 비가 16㎜만 내린 적도 있다. 7~8월 최고 기온은 45도를 넘는다. 1913년에는 57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니 툭하면 자동차가 고장 나고 여행자는 탈수 증세로 쓰러진다. 여름에는 데스벨리를 피해야 하는 이유다.
배드워터 분지에 난 1㎞ 길을 걸었다. 눈길을 걷는 듯했다. 소금 입자는 밀가루처럼 고왔고 결정은 눈처럼 예뻤다. 혀에 대보니 식용 소금보다 훨씬 짰다. 극도로 건조한 지역이라 염도가 보통 소금보다 4배 이상 높다.
190번 도로를 따라 북상했다. 길 왼편에 ‘악마의 골프코스’가 있었다. 진짜 골프장은 아니다. 악마가 아니고는 골프를 칠 수 없다는 울퉁불퉁한 벌판이다. 다음 코스는 ‘아티스트 드라이브’. 건조한 황토색이 전부인 공원에서 화려한 색의 향연을 볼 수 있는 드라이브 코스다. 일방통행의 도로가 9㎞ 이어지는데, 협곡의 단면이 초록·분홍·보라색 등으로 화려해 ‘아티스트의 팔레트’라 불리기도 한다.
핸들을 잡고 광활한 공원을 돌아다니는 게 슬슬 피곤했다. 걷고 싶었다. 마침 파크레인저(국립공원 직원)와 함께 ‘내추럴 브릿지’까지 걷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다국적 여행객 10여 명이 왕복 3㎞를 걸으며 지질 강의를 들었다. 협곡 안에 들어서니 자연이 만든 다리가 머리 위에 떠 있었고, 수억 년 전에 형성된 지층도 관찰할 수 있었다. 파크레인저 로잔 맥켄리(사진)는 “5억 년 전 지구의 기(氣)를 받고 싶은 사람은 돌을 쓰다듬어 보라”며 웃었다. 맥켄리는 설명하는 내내 숫자를 강조했다. 미국이 자연유산에 유독 애착을 갖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미국의 역사는 고작 240년이지만, 미국인이 사는 땅은 수억 년 전 흔적이 똑똑히 보였다.
▲협곡 색이 화려한 ‘아티스트의 팔레트’.
사막·분화구 온갖 기이한 풍광
데스밸리를 흔히 사막이라 한다. 하나 대부분은 황무지 또는 암석 사막지대다. 중동이나 몽골의 모래사막 같은 사구(沙丘), 즉 ‘샌드 듄(Sand dune)’은 공원 면적의 1%에 불과하다. 방문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메스키트 플랫(Mesquite flat) 샌드 듄’이다. 서쪽에 있는 코튼우드산(2729m)에서 날려온 모래가 쌓인 사구다.
극적인 풍광을 보고 싶어 해질 무렵 찾아갔다. 가장 높은 모래언덕까지 주차장에서 약 3.6㎞를 걸어가야 했다. 사막을 걷는 것은 쉽지 않았다. 발이 푹푹 빠져 체력 소모가 심했다. 웬만한 명당은 먼저 온 사람들이 차지했다. 발자국이 없는 곳을 찾아 허우적대며 한참을 걸었다. 뒤를 돌아보니 카메라 든 사람이 점으로 보였다. 출발지가 어디였는지 방향을 가늠할 수 없었다. 동물 발자국도 보였다. 사막여우 아니면 코요테가 지나간 흔적이다. 무서웠다. 너무 멀리 와버렸다. 하지만 사막이 선물한 풍광만큼은 압권이었다. 마침 해가 코튼우드산 뒤로 넘어가며 사막을 온갖 색으로 물들였다. 지구라는 별이 낯설게 느껴졌다. 한참을 모래 둔덕에 앉아 있었다.
소금 호수, 사막, 형형색색의 협곡…. 데스밸리의 기이한 풍광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수천 년 전 화산 폭발의 흔적을 보여주는 우베헤베 분화구가 있고, 바짝 마른 호수 위에서 움직이는 돌은 자연의 신비를 보여준다. 조약돌이 아니라 300㎏에 달하는 돌덩이가 움직인다. 최근에서야 신비가 풀렸다. 비가 내려 땅이 미끄러울 때 강한 바람이 불면 아주 조금씩 움직이는 거란다.
데스밸리는 별 관측 명소이기도 하다. 오후 9시 숙소에서 나와 허허벌판으로 향했다. 머리에 두른 헤드 랜턴 외에는 아무 빛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은 차라리 보랏빛에 가까웠다. 별이 워낙 많아서였다. 북서쪽 하늘에 은하수가 또렷했다. 난생 처음 별똥별도 봤다. 그것도 세 개나. 별들은 끊임없이 반짝이며 소곤거렸다. 죽음의 계곡에서 맞은 밤은 그렇게 포근했다.
데스밸리와 가까운 대도시는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라스베이거스다. 유나이티드항공(united.com)이 인천∼샌프란시스코~라스베이거스 노선을 운행한다. 환승 시간을 넉넉히 잡으면 샌프란시스코 여행을 덤으로 즐길 수 있다.
유나이티드항공 한국사무소 02-751-0300.
글·사진=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③ 채널 아일랜드
반갑다! 귀신고래 … 희귀 동식물 145종 ‘미국의 갈라파고스
캘리포니아 남쪽 바다에 떠 있는 제도 ‘채널 아일랜드(Channel islands)’는 미국의 갈라파고스로 불린다.
미국 국립공원관리청이 채널 아일랜드 5개 섬과 해양구역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이유는 생태적 가치 때문이다.
채널 아일랜드에는 지구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동식물 145종이 살고 있다. 한때는 돈벌이에 눈 먼 사람 때문에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던 귀한 생명들이다. 미국 정부가 사유지를 사들이고, 환경보호단체와 오랜 기간 힘을 합쳐 생태계를 복원시켰다.
하여 채널 아일랜드는 ‘보존(保存)과 보전(保全)’이라는 미국 국립공원의 철학을 가장 자명하게 보여주는 국립공원이다.
섬이 품은 풍경도 유명 국립공원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바다에서 번쩍 떠오른 귀신고래
미국의 해상 국립공원은 두 개뿐이다. 플로리다주 남쪽의 비스케인 국립공원과 채널 아일랜드다. 채널 아일랜드 국립공원은 샌타크루즈를 비롯한 섬 5개와 주변 바다를 포함한다.
채널 아일랜드는 로스앤젤레스(LA)에서 가깝다. 자동차를 타고 1시간 북쪽으로 달린 뒤 배를 타고 1시간만 들어가면 된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LA 가까이에 있는데,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아니, 미국에서도 찾는 이가 적다. 그래서 더 끌렸다. 어떤 가치가 있길래 태평양에 떠 있는 섬이 국립공원이 됐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섬 5개 중에서 겨울에 들어갈 수 있는 섬은 아나카파와 샌타크루즈뿐이었다. 이 중에서 샌타크루즈를 택했다. 샌타크루즈는 서울 면적의 약 40%로, 5개 섬 중 가장 큰 섬이다.
샌타크루즈로 들어가기 위해 항구 도시 벤투라로 향했다. 오전 8시 선착장은 한산했다. 하늘과 바다는 짙은 쪽빛을 닮아있었다. 150명까지 탈 수 있는 배에 약 50명이 탔다. 가벼운 산책 차림을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짐을 잔뜩 챙긴 캠핑족도 많았다. 어쿠스틱 기타를 매고 머리를 딴 히피 같은 청년이 눈에 띄었다.
배는 샌타바버라 해협을 가로질렀다. 출발 10분 뒤, 배가 갑자기 멈춰 섰다. 선장이 토크쇼 진행자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부표 위에서 일광욕을 하는 바다사자를 구경하란다. 다시 10분이 흘렀다. 이번에는 선장이 아주 차분한 목소리를 냈다.
“멀리 귀신고래(gray whale)가 보인다. 겨울을 나기 위해 지금 막 알래스카에서 내려왔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귀신고래는 1960년대까지 우리 동해안에서도 자주 발견됐으나 지금은 자취를 감췄다. 북태평양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귀하신 몸’이다. 배가 고래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대체 고래가 어디 있다는 거야?” 갑판으로 몰려나온 승객이 웅성거리던 찰나, 100m 앞 바다에서 물이 솟구쳤다. 그리고 따개비가 다닥다닥 붙은 고래 등이 물 밖으로 드러났다. 승객은 파도소리 같은 탄성을 질렀고, 선장은 엔진을 껐다. 고래 관찰 규정 때문에 더 다가갈 수 없단다. 고래가 배 쪽으로 다가오면 행운이지만 이날 귀신고래는 남쪽으로 멀리 멀리 헤엄쳐 나갔다. 다시 배는 샌타크루즈 섬을 향해 뱃머리를 돌렸다.
사람이 망가뜨리고 되살린 섬
주체할 수 없는 건 고래를 본 감격만은 아니었다. 멀미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날 태평양은 파도가 유독 심했다. 아침에 먹은 음식이 목구멍 바로 아래까지 차올랐을 즈음 배가 섬에 닿았다. 벤투라에서 샌타크루즈까지는 35㎞, 1시간이면 왔을 거리인데 고래 꽁무니를 쫓느라 한참을 돌았다. 흙을 밟으니 다행히도 현기증이 사라졌다.
샌타크루즈의 역사는 아주 깊다. 약 1만 년 전부터 추마시(Chumash) 족이 샌타크루즈와 주변 섬에 살았다. 평화롭던 섬에 변화가 찾아온 건 18세기 유럽인이 섬을 발견하면서다. 원주민 상당수가 감염병으로 죽었고, 남은 사람은 쫓기듯이 섬을 떠났다. 유럽인에게 채널 아일랜드는 해달 사냥의 천국이었다. 질 좋은 해달 모피가 대서양을 건너 비싼 값에 팔렸다.
19세기에는 섬 곳곳에 목장이 들어섰다. 목장 주인은 양모를 팔아 떼돈을 벌었다. 대신 섬 생태계는 파괴됐다. 섬을 들락거리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외지 식물이 섬을 뒤덮었다. 결국 섬 여우를 비롯해 토종 동식물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 지금은 국립공원인 된 샌미구엘 섬은 20세기 초 미군의 폭격 훈련장이었다.
미국 정부가 채널 아일랜드에 눈을 돌린 건 1930년대 들어서였다. 생태계 보호를 위해 채널 아일랜드와 주변 바다를 ‘국가기념지(National Monument)’로 지정했다. 78년 국제자연보호협회가 샌타크루즈의 75%를 사들였고, 국립공원관리청이 1287만 달러(약 130억원)를 주고 샌타크루즈 동부의 목장지대를 샀다. 80년 채널 아일랜드는 국립공원으로 승격됐다. 국가 기념지는 대통령이 지정하면 되지만, 국립공원은 의회 승인을 얻어야 한다.
이후에도 생태계 복원을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목장을 모두 철거했고, 외지 동식물도 제거했다. 섬은 옛 모습을 되찾아갔다. 100마리 밑으로 줄었던 여우가 2000년대 들어 1500마리까지 늘었고, 오래전 섬을 떠났던 대머리독수리가 섬에 내려와 알을 깠다.
배에서 만난 한 미국인 여성은 “본래 그대로(untouched)”라는 한 단어로 채널 아일랜드의 매력을 설명했다. 때 묻지 않은 자연에 반해 그녀는 수시로 섬에 들어온다고 했다. 하나 섬은 날 것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었다. 죽을 뻔했다가 회생한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이었다
벼랑 끄트머리 따라 이색 하이킹
자연해설사와 함께하는 하이킹에 합류했다. 약 4㎞를 걸으며 섬의 생태를 배우는 프로그램이었다. 항구가 있는 스콜피온 지역에 여행자 10명이 모였다. 스콜피온 지역은 유칼립투스·사이프러스·측백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깊고 진한 숲의 향이 폐로 스며들어 온몸으로 퍼졌다. 숲 속에 있는 캠핑장을 지났다. 섬에서 하루 이상 묵을 여행자들이 바쁜 손놀림으로 텐트를 치고 있었다. 난민촌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한국의 캠핑장과 달리 한가로운 풍경이었다.
얕은 오르막길을 걸어 오르니 금세 캐이번 포인트에 닿았다. 깎아지른 벼랑을 따라 트레일이 이어졌고, 며칠간 내린 비로 건조했던 땅에 초록 융단이 깔렸다. 전망대에 서니 해협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다 너머 캘리포니아도 보였다. 자연해설사 데이비드 슈라이너(75·사진)가 바다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빙하기, 그러니까 저 해협이 작은 호수였을 때 여우가 헤엄쳐서 넘어왔다. 지금은 수심이 아주 깊어 고래가 좋아하는 환경이 됐다.” 슈라이너는 채널 아일랜드의 생태적 가치를 쉬지 않고 설명했다. 가까이 날아든 벌새가 지저귀며 슈라이너의 말에 동의하는 것 같았다.
벼랑을 오른쪽에 끼고 서쪽으로 계속 걸었다. 그늘 한 점 없는 길에는 키 작은 겨자나무만 무성했다. 봄이 오면 이 길은 노란 겨자꽃으로 뒤덮인단다. 2㎞ 즈음을 걸어 포테이토 하버에 닿았다. 이름 그대로 감자 모양을 닮은 작은 만(灣)이었다. 가파른 벼랑 끝에 서서 넋 놓고 ‘감자만’의 극적인 풍광을 감상했다.
출항 시간이 다가왔다. 다시 항구 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다시 캠핑장을 지나는데 그냥 눌러앉고 싶었다. 야영을 준비하지 않은 것을 내내 후회했다. 캠핑장에는 말로만 듣던 여우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고양이처럼 작고 귀여운 모습이 섬 최고의 포식자답지 않았다. 배에 올랐다. 해가 기울면서 바다는 검붉게 녹슬어갔다.
벤투라 도착 10분 전 다시 귀신고래가 나타났다. 아침에 봤던 그 녀석일까? ‘잘 살아줘 고맙다. 계속 잘 살아줘라.’ 스쳐가는 여행자 신세였지만, 안부를 전하고 싶었다. 고래에게, 그리고 여우에게.
●여행정보=채널 아일랜드 국립공원(nps.gov/chis)은 입장료가 없다. 섬으로 가는 뱃삯만 내면 된다. 아일랜드 패커스(islandpackers.com) 여객선 요금은 벤투라~샌타크루즈 왕복 59달러. 섬에는 숙소·매점 등 편의시설이 없다. 식수는 구할 수 있지만 전기는 들어오지 않는다. 섬에서 하루 이상 머물려면 야영하는 수밖에 없다. 채널 아일랜드 국립공원 홈페이지에서 캠핑장을 예약할 수 있다. 1박 15달러. 카약·스노클링 등 해양 스포츠는 샌타바버라 어드벤처(kayaksb.com) 와 같은 업체를 이용하면 된다.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고래 관찰 크루즈가 운항한다. 자세한 정보는 미국관광청(discoveramerica.co.kr), 캘리포니아관광청(visitcalifornia.co.kr) 홈페이지 참조.
채널 아일랜드 가까이에 샌타바버라가 있다. 유나이티드항공(united.com) 인천∼샌프란시스코 직항편을 타고 간 뒤, 샌프란시스코~샌타바버라 국내선을 이용하면 편하다. 유나이티드항공 한국사무소 02-751-0300. 섬에 자동차를 가져갈 수 없어 렌터카를 벤투라 항구 주차장에 세워두고 다녀왔다. 렌터카는 알라모(alamo.co.kr)를 이용했다. 스탠더드 SUV 차량에 보험 등이 포함되고 기름을 가득 채워 빌려 반납시 연료를 채우지 않아도 되는 골드패키지 1일 102달러. 알라모 렌터카 한국사무소 02-739-3110.
글·사진=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⑤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
화산의 여신이 사는 ‘불의 집’ … 밤하늘에 붉은 꽃 피었네요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의 활화산 분화구 할레마우마우. 낮에는 시커먼 연기가, 밤에는 시뻘건 연기가 치솟는다. 하와이 원주민은 이 펄펄 끓는 분화구 안에 화산의 여신 펠레가 산다고 믿는다.
하와이 제도를 이루는 137개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이 하와이 아일랜드다. 우리에겐 ‘빅 아일랜드’로 더 익숙하지만, 하와이 주 정부가 하와이 아일랜드로 이름을 통일했다. 이 섬에 미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극적인 국립공원이 있다. 이름하여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이다. 분화구가 밤낮으로 펄펄 끓고 용암이 꾸역꾸역 흘러나오는 활화산이 해마다 25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을 불러모은다. 인류는 화산 앞에서 무력한 존재다. 화산 폭발은 인류에게 속수무책인 재앙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와이 아일랜드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들끓는 분화구는 흥미진진한 볼거리로 거듭나고, 용암이 덮은 대지는 트레킹 코스로 변신한다. 테마파크가 된 활화산,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을 소개한다.
세계 유일의 드라이브-인 화산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 푸우오오 분화구.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 안에는 큰 활화산 두 개가 있다. 하나가 해발 4169m의 마우나 로아(Mauna Loa) 화산이고, 다른 하나가 해발 1250m의 킬라우에아(Kilaua) 화산이다. 여전히 활동이 활발한 화산들 덕분에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은 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의 면적은 약 1348㎢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국립공원인 지리산 국립공원(438.9㎢)보다 세 배 이상 넓다. 하와이 아일랜드 중앙의 마우나 로아 정상에서 킬라우에아를 거쳐 남쪽 해안까지 국립공원에 포함된다. 국립공원 안에는 큰 활화산 두 개 말고도 수많은 분화구가 있다. 제주도에 오름이라 불리는 기생화산이 섬 곳곳에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넓은 국립공원 중에서 탐방 구역은 킬라우에아 화산 주변에 몰려 있다.
▲화염이 대지를 삼키고 있다. 헬기를 타고 내려다본 하와이 화산의 용암은 살아 있었다.
킬라우에아 화산의 분화구 이름이 할레마우마우(Halemaumau)다. 분화구를 에워싼 칼레라 지형의 지름만 4㎞에 달한다. 한라산은 죽은 화산이어서 백록담에 물이 고이지만, 킬라우에아는 살아있어서 할레마우마우가 밤낮으로 연기를 토해낸다. 83년 이후로 킬라우에아는 크고 작은 폭발을 거듭하고 있다.
할레마우마우는 하와이 원주민에게 성지와 같다. 화산의 여신 펠레(Pele)가 이 분화구 안에서 산다고 믿기 때문이다. 펠레가 태평양에 떠 있는 수많은 섬을 둘러본 뒤 분화구로 돌아올 때면 마중이라도 하듯이 화산이 폭발한다고 한다. 할레마우마우는 ‘불의 집’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관광객을 위한 쇼로 전락했지만, 애초의 훌라는 펠레를 떠받드는 의식이었다.
학자들은 펠레 신화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 아일랜드에 정착한 폴리네시안 부족 중에서 킬라우에아 화산 주변에 터를 잡은 부족이 섬을 장악했고, 훗날 부족의 역사를 펠레의 신화로 각색했다. 제법 설득력 있는 해석이지만, 본래의 신화가 더 끌린다.
▲한낮의 할레마우마우.
할레마우마우는 국립공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명소다. 할레마우마우 주변에 국립공원의 주요 시설이 모여 있다. 탐방센터는 물론이고, 로지 겸 레스토랑 ‘볼케이노 하우스’도 있다. 객실과 레스토랑에서 할레마우마우가 내다보인다. 이른바 ‘화산 뷰’인 셈이다. 볼케이노 하우스는 1846년 문을 연 명소로, 1년 전에는 예약해야 방을 구할 수 있다.
할레마우마우 주위를 한 바퀴 도는 17㎞ 길이의 순환도로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이색적인 드라이브 코스로 꼽히지만, 지금은 일부 구간이 통제돼 있어 분화구를 한 바퀴 돌아나올 수는 없다. 그래도 할레마우마우 주변 명소 대부분은 자동차로 접근이 가능하다.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이 세계 유일의 ‘드라이브-인(Drive-in)’ 화산으로 불리는 까닭이다.
할레마우마우는 밤에 가장 화려하다. 현지 여행사가 할레마우마우 야경 탐방상품을 판매할 정도다. 할레마우마우는 밤낮으로 관광객이 몰린다. 낮에는 뿌연 연기가, 밤에는 붉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할레마우마우 바로 앞의 ‘재거 박물관’이 야경 포인트다. 밤의 할레마우마우는 시뻘건 연기를 연방 내뱉었다. 붉은 연기가 붉은 구름이 되어 검은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활화산을 여행하는 방법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은 너무 넓었다. 사흘 내내 국립공원 안팎을 헤집고 다녔지만 시간이 모자랐다. 탐방 프로그램도 다양해 지루할 틈이 없었다. 다시 강조하지만,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은 놀거리 널린 테마파크다.
역시 헬기 투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헬기는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의 여러 분화구 중에서 푸우오오(Puoo) 분화구 상공을 주로 배회했다. 현재 화산 활동이 가장 활발한 분화구다. 시뻘건 용암이 흘러내리는 장관을 약 35m 위에서 내려다봤다. 발 아래에서 용암이 나무를 집어삼켰다. 촬영을 위해 헬기 옆문을 열었다. 매캐한 열기가 확 끼쳤다.
헬기는 섬의 남쪽 해안을 향했다. 3년 전 푸우오오 폭발 때 사라졌다는 마을 터가 보였다. 녹슨 물탱크가 화산암에 반쯤 갇혀 있었다. 옛 마을의 흔적이었다. 용암이 굳은 땅에서 사람들이 다시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마을 옆으로 해안 절벽이 서 있었다. 절벽 아래로 검푸른 태평양이 펼쳐졌다. 헬기 조종사가 하와이 아일랜드는 요즘도 바다에 흘러내리는 용암으로 매일 0.4㎡씩 넓어진다고 설명했다.
▲칼라우에아 이키 트레일을 걷는 가족의 모습이 정겹다.
온몸으로 화산을 부대끼는 여행도 있었다. 킬라우에아 화산 주변으로 다양한 코스의 트레일이 조성돼 이색 트레킹이 가능했다. 제시카 페라캐인 국립공원 홍보 직원이 추천한 트레일은 세 개였다.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르는 트레일도 좋았고 할레마우마우를 옆에 끼고 걷는 트레일도 좋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건 킬라우에아 이키 트레일이었다.
‘이키’는 하와이어로 ‘작은’이라는 뜻이다. 킬라우에아 이키 트레일은 할레마우마우 옆의 작은 분화구를 걷는 길이다. 분화구 북쪽 경계를 걷다가 분화구 안으로 내려와 분화구 중앙을 관통하는 6.4㎞ 길이의 코스다
▲오히아 레후아.
킬라우에아 화산지대는 열대우림에 속한다. 하여 용암이 지난 땅은 화산암이 덮었지만, 용암을 피한 지역은 울창한 숲이다. 트레일을 걸으면서 가장 자주 만난 하와이 토종식물이 ‘오히아 레후아(사진)’다. 오히아 레후아는 용암이 굳어 암석지대가 됐을 때 맨 처음 싹을 틔우는 식물이다.이 나무에도 화산의 여신 펠레에 얽힌 전설이 내려온다. 오히아라는 총각과 레후아라는 처녀가 서로 사랑을 했는데, 오히아에 반한 펠레가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오히아를 온몸이 배배 꼬인 못생긴 나무로 만들어 버렸다. 하늘의 신은 홀로 남은 레후아를 가엾이 여겨 레후아를 오히아의 꽃으로 태어나게 했다. 하여 오히아 레후아는 덩굴처럼 엉킨 줄기에 복스러운 붉은 꽃을 피운다. 마침 오히아 레후아 꽃이 만개한 계절이었다.
킬라우에아 이키 분화구 안을 걷는 경험은 특별했다. 이 화산은 59년 분화했고, 분화 이후 122m 깊이의 분화구가 생겼다. 분화구 곳곳에서 연기가 새 나왔다. 122m 아래로 꺼진 땅은 의외로 탄력이 있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아직 흙이 되지 못한 화산암이 바스라졌다. 문득 발 아래로 용암이 흐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땅바닥이 아니었다. 지구의 껍질이었다. 우리는 지구의 껍질에 매달려 살고 있었다.
◆여행정보=하와이 아일랜드에는 공항이 2개 있다. 힐로(Hilo) 공항과 코나(Kona) 공항이다. 화산 국립공원을 여행하려면 힐로 공항을 이용하는 게 낫다. 힐로 공항에서는 자동차로 45분 거리고, 코나 공항에서는 3시간 넘게 달려야 한다.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nps.gov/havo) 입장료 자동차 1대 10달러(7일 유효). 항공은 하와이안 항공(hawaiianairlines.co.kr).을 추천한다. 주 5회(월·목·금·토·일) 인천∼호놀룰루 노선을 운행한다. 한국에서 힐로 공항까지 바로 가는 항공편은 없다. 오하후에서 하와이 아일랜드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를 타야 한다. 이때도 하와이안 항공이 편리하다. 하와이안 항공이 하와이 제도의 6개 섬을 오고 가는 국내선을 매일 160편 운행한다. 한국에서 출발해 오하후에 머무르지 않고 바로 하와이 아일랜드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탈 경우, 국내선 항공 요금이 거의 들지 않는다.
미국 관광청 discoveramerica.co.kr, 하와이 관광청 www.gohawaii.com/kr.
글·사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gang.co.kr
⑥ 올림픽 국립공원
▲올림픽 국립공원에서 이끼가 가장 많은 ‘이끼의 전당’ 트레일 코스. 풍경이 으스스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끼가 빚어낸 독특한 풍경에 이내 압도당한다.
미국 서북부 워싱턴주의 올림픽(Olympic) 국립공원은 특이한 국립공원이다. 보통 국립공원은 산이면 산, 바다면 바다로 특징이 분명한데 올림픽 국립공원은 산과 바다를 동시에 아우른다. 올림픽 국립공원 최고봉인 올림푸스산(2432m)에서 태평양 해안까지 수십㎞ 떨어져 있지만 중간 지역을 빼고 하나의 국립공원으로 묶여 있다. 우리나라에 비유하면 지리산 국립공원과 한려해상 국립공원을 합치면서 중간의 경남 하동이나 남해는 뺀 것과 같다. 산과 바다를 아우르다 보니 올림픽 국립공원은 다양한 식생을 자랑한다. 올림푸스산은 백두산(2744m)보다 낮지만, 수만 년 된 빙하가 계곡 곳곳을 덮고 있다. 반면 산 아래에는 울창한 온대 우림이 펼쳐져 있다. 1938년 국립공원으로, 198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미국에 있는 산에 그리스 산 이름이 붙은 건 1778년 이 일대를 처음 탐험한 영국인 존 미어레스(John Meares)가 가장 높은 산을 ‘올림푸스’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온대 지역의 우림
우선 지리 공부부터 하고 시작하자. 우림(雨林), 즉 레인 포리스트(Rain Forest)는 비가 많이 와서 생긴 숲이다.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이나 호주 케언즈 등 강수량이 많은 열대 지역이나 아열대 지역에 우림이 몰려 있다.
그러나 올림픽 국립공원은 북위 47도에 위치한다. 서울의 위도가 37도다. 서울보다 한참 북쪽에 있는 도시에 우림이 형성돼 있다. 비가 아니라 눈이 더 많이 내려야 맞는 것 같은데, 무언가 이상하다.
올림픽 국립공원의 연간 강우량은 적은 곳이 1000㎜, 많은 곳은 6100㎜나 된다. 맑은 날보다는 안개 끼고 비 내리는 날이 훨씬 더 많다. 땅은 항상 습하고 축축하다. 미국에서 비의 도시(Rainy City)라 불리는 시애틀의 날씨가 이런 식이다. 올림픽 국립공원이 바로 시애틀 서쪽 올림픽 반도에 있다.
이 지역에 비가 많이 내리는 것은 편서풍의 영향 때문이다. 북위 30∼65도에 발달하는 편서풍은 태평양을 건너면서 엄청난 양의 습기를 머금는다. 이 구름이 올림픽 산맥과 부딪치면서 공원 서쪽에 많은 비를 뿌려 온대 우림이 형성됐다.
온대 우림은 열대 우림과 여러 차이가 있다. 우선 숲에 사는 나무가 다르다. 열대 우림에는 당연히 침엽수가 없다. 온대 우림에는 단풍나무·오리나무 등 활엽수도 있지만 가문비나무·삼나무 등 침엽수가 훨씬 더 많이 자란다. 열대 우림은 비가 그치면 엄청난 열기의 햇볕 때문에 땅이 빨리 마른다. 반면에 온대 우림은 햇볕이 약해서 늘 습하다. 숲에 짙은 이끼가 끼는 이유이다. 이 이끼가 바로 올림픽 국립공원의 상징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끼 숲 호(Hoh) 우림
▲‘나무 정령’ 이끼 숲 사이로 보이는 사슴
올림픽 산맥 아래 지역은 온통 이끼 천지이다. 모든 나무가 이끼로 덮여 있다. 호 우림(Hoh Rain Forest)이 이끼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호 우림 안에서도 ‘이끼의 전당(Hall of Mosses)’ 트레일이 최고의 경관을 자랑한다. 타원형인 이끼의 전당 트레일 코스는 1.3㎞밖에 되지 않는다. 30분이면 충분한 거리이지만, 막상 걷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이끼의 전당’ 입구부터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가문비나무가 쭉쭉 뻗어 있다. 높이 60m가 넘는 거목이 수두룩하다. 고개를 젖혀도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다. 땅바닥에 드러누워야만 높이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다. 트레일을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이끼가 만들어낸 독특한 세상이 펼쳐진다. 그동안 알고 있는 이끼와 관련된 상식은 여기에서 아무 소용이 없다. 이끼는 본래 ‘끼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덮다’ 또는 ‘매달리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1m가 넘게 자란 이끼가 흔하다.
나무에 이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은 기이하다. 처음 맞닥뜨린 순간에는 오싹한 기분이 들기도 하다. 숲은 햇볕이 잘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하고, 안개가 끼어 시야가 흐릿한데 이끼를 칭칭 두른 나무의 모습은 괴기영화의 한 장면처럼 으스스하다. 그러나 햇빛이 비치면 숲은 전혀 다른 세상으로 탈바꿈한다. 이끼가 빚어내는 풍광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기기묘묘하다. 할리우드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봤던 ‘나무 정령’이 눈앞에 나타난 듯하다.
이끼는 20m 높이 나무 위에서도 산다. 저 나무 위에 어떻게 올라갔을까. 알아보니 적당한 수분과 햇빛, 그리고 바람만 있으면 이끼는 어디에서나 살 수 있다고 한다. 공기에 미세한 영양분이 녹아 있어 공기를 먹고 자란다는 것이다.
허리케인 릿지의 전망
▲허리케인 릿지에서 바라본 올림픽 산맥의 고봉들
호 우림에서 자동차를 몰고 북쪽으로 2시간쯤 올라가면 올림픽 국립공원 최고 명소의 어귀에 도달한다. 허리케인 릿지(Hurricane Ridge,1598m)로 가는 입구다. 이 입구에서 왕복 2차선의 좁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30분 이상 달리면 허리케인 릿지에 다다른다. 올림픽 국립공원의 산맥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는 전망대 같은 능선이 허리케인 릿지다.
허리케인 릿지에 올라서면 시야가 뻥 뚫린다. 북쪽으로는 캐나다의 밴쿠버 섬까지, 남쪽으로는 올림픽 산맥까지 중간에서 시야를 가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 올림푸스산을 비롯해 매카트니피크(2051m), 클레이우드산(2084m), 센티넬피크(2009m), 캐리어산(2132m) 등 고봉 10여 개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고개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리기만 하면 이 고봉들을 한눈에 다 담을 수 있다.
5월의 올림푸스산과 근처의 봉우리들은 하나같이 흰 눈을 뒤집어 쓰고 있다. 고봉 사이 사이에 블루·화이트·휴메스·허버트 등 수만 년 전에 형성된 빙하 수십 개가 끼어 있다. 여기의 빙하도 유럽의 알프스 빙하처럼 서서히 녹고 있다고 한다. 전망대에 비치된 1900년대 초 사진과 비교해 보면 100년 전보다 빙하 면적이 확연히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언젠가는 이 빙하도 사라질 것 같다는 걱정이 들었다.
남북으로 트여있다 보니 허리케인 릿지는 바람이 거세다. 릿지 북쪽으로 나 있는 1.2㎞의 서크 림(Cirque Rim) 트레일을 걷다 보면 허리케인 릿지의 매서운 바람 맛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망무제의 전경만큼은 최고다. 6월에는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는 꽃길로 거듭난다.
루비 비치의 붉은 색
▲루비 비치에는 아름드리 통나무 수백 개가 쌓여있다
올림픽 국립공원은 앞서 설명했듯이 내륙 산간지역과 태평양을 접한 해안선 약 100㎞ 지역을 포함한다. 국립공원에 속한 해안은 북쪽 시시(ShiShi) 비치에서 남쪽 사우스 비치까지 이어진다. 해안선을 따라 범고래·바다사자·산호초 등 다양한 동물이 서식한다. 밀물과 썰물로 형성된 해안 지형도 독특하다.
‘루비(Ruby) 비치’를 보석처럼 아름다운 해변일 것으로 넘겨짚지 마시라. 실상은 다르다. 루비 비치는 태평양의 거센 파도가 들이치는, 아름답다기보다는 무서운 해변이다. 루비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가 궁금했다. 루비가 빨간색인데 바닷물이 빨간색일 리는 없기 때문이다.
에밀리 캔트렐 시애틀관광청 직원이 “해변과 호수 색깔이 해가 질 무렵 붉은 색을 띤다고 해서 루비라고 부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해변과 호수는 붉은 색보다는 짙은 갈색에 가깝다. 에밀리는 “항상 붉은 것이 아니라 석양 때문에 가끔 붉게 변한다. 그때 보면 마치 루비처럼 아름답게 빛난다”며 웃었다.
사실 루비 비치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통나무 더미다. 지름이 1m나 되는 썩은 통나무 수백 개가 해변에 쌓여있다. 저 멀리 올림픽 산맥에서 썩어 부러진 나무가 강을 따라 해안까지 떠내려 와 쌓인 것이다. 이런 통나무 더미는 해안 남쪽의 칼라록(Kalalock) 비치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칼라록 비치는 백사장이 멋진 해변이다. 썰물 때는 폭이 최소 100m, 길이가 최소 10㎞가 되는 거대한 백사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약간 검은 색을 띤 고운 모래는 콘크리트처럼 단단하다. 이 넓은 해변에서 사람들은 해수욕을 즐기지 않는다. 유모차를 밀며 산책을 한다.
●여행정보=올림픽 국립공원(nps.gov/olym)을 가기 위해서는 시애틀을 경유해야 한다. 대한항공(kr.koreanair.com)이 6월부터 인천~시애틀 노선을 주 5회 출발에서 매일 출발로 증편했다. 매일 오후 6시20분 인천에서 출발하며, 시애틀까지 약 10시간 걸린다. 1588-2001.
올림픽 국립공원은 개별 자유여행(FIT)으로 적합한 여행지다. 시애틀 공항에서 자동차로 2∼3시간이면 공원에 도착한다. 공항의 독일계 렌터카 업체 식스트(sixt.com)에서 SUV 기종인 BMW X5를 빌렸다. 1일 사용료 123.77달러. 올림픽 국립공원 안에는 숙소도 많다. 퀴놀트 호수 로지(6월 주중 기준 1박 161달러부터), 솔 덕 핫 스프링 리조트(같은 조건 216.61달러부터) 등 숙소의 등급과 종류도 다양하다. 국립공원 입장료는 자동차 1대 15달러. 올림픽 국립공원 숙소 예약 등 자세한 내용은 공원(olympicnationalparks.com)과 미국관광청(discoveramerica.co.kr)·시애틀관광청(visitseattle.co.kr) 홈페이지 참조.
글·사진=이석희 기자 seri1997@joongang.co.kr
⑦ 옐로스톤
“옐로스톤을 가보지 않고 미국 국립공원을 논하지 말라”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미국, 아니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인 만큼 week&도 진즉 옐로스톤에 가고 싶었다. 어쩌면 가장 먼저 소개했어야 했다. 그러나 눈 때문에 폐쇄된 도로가 많아 방문을 미루고 미뤘다. 6월이 돼서야 옐로스톤에 발을 들였다.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한 여행객의 감탄이 모든 걸 설명했다. “야생동물, 간헐천(間歇泉), 웅장한 산, 강과 호수…. 이 모든 게 사진 한 장에 담기는 곳은 옐로스톤뿐이다.” 사진을 수천 장 찍어도,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해도 풍광이 전해준 감격을 담을 수 없어 독자 여러분께 죄송할 따름이다.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
▲옐로스톤 국립공원 매디슨 지역, 초지에서 바이슨 떼가 풀을 뜯고 있고 뒤로는 간헐천이 솟구치고 있다. 오직 옐로스톤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지구가 살아 있음을 절감하는 순간은 자연의 대재앙 앞에서다. 땅에서 불이 솟고 산이 뒤틀리고, 바닷물이 육지를 뒤덮는 공포에 가까운 광경을 보면서 지구가 거대한 생명임을, 인간은 한낱 티끌에 불과함을 새삼 느낀다. 한데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가면, 느긋한 마음으로 살아 꿈틀대는 지구의 민낯을 만날 수 있다. 옐로스톤은 64만 년 전부터 7만 년 전까지 대형 화산 폭발이 일어났던 땅이다. 지금도 화산 활동이 진행 중인 뜨거운 땅이다. 시뻘건 용암이 터져나오지는 않지만, 지면 아래에 고인 물이 땅을 뚫고 솟구쳐 오르는 ‘얌전한 지각 활동’은 계속된다.
▲화려한 모양의 뿔이 달린 엘크
국립공원의 역사부터 살피자. 옐로스톤 일대에는 1만1000년 전부터 원주민이 살았다. 백인이 옐로스톤을 발견한 18세기 말부터 변화가 찾아왔다. 백인과 원주민 사이에 전쟁이 한창이었던 때여서 백인은 군화에 쓰일 좋은 가죽이 절실했다. 옐로스톤 지역에는 비버·버팔로·엘크 등 ‘고급 모피’를 가진 동물이 많았다. 가죽을 노린 밀렵꾼(Poacher)에게는 금맥이나 다름없었다. 하나 옐로스톤이 동부 백인사회의 관심을 끈 건 가죽 때문이 아니었다. 밀렵꾼들이 옐로스톤의 신비한 자연에 대해 필라델피아 지역신문에 쓴 글이 백인사회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급기야 대통령이 지질 탐사대를 파견했다.
지금은 공원의 지명과 도로명으로 제 이름을 남긴 탐사대장들이 청원활동에 앞장섰다. 돈에 눈 먼 밀렵꾼과 채굴업자가 옐로스톤을 망가뜨리지 못하게 해야 하며, 모든 국민이 이 신비한 자연을 즐기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침내 1872년 미국 의회가 ‘옐로스톤 보호법’을 통과시켜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1916년 연방정부 산하에 국립공원관리청을 만들기까지 미국 정부는 육군을 주둔시켜 공원을 관리했다.
그렇게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이 탄생했다.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은 거대하기까지 하다. 총 면적이 8900㎢에 이른다는데, 숫자로는 감이 오지 않는다. 국립공원 한 곳이 충청남도보다 크고 한국의 모든 국립공원을 합친 면적보다 크다. 그러나 공원을 여행하는 건 복잡하지 않다. 공원 안에 8자 모양으로 고속도로가 나 있어 내비게이션이 없이도 다닐 수 있다. 약 20마일(36㎞)마다 독특한 자연 풍광을 자랑하는 볼거리가 나타난다.
열 받은 지구가 만들어낸 비경
▲웨스트 썸에 있는 ‘블랙 풀’. 바다처럼 거대한 옐로스톤 호수가 가까이 있다.
지난달 8일 옐로스톤 남쪽 입구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웨스트 썸(West Thumb). 옐로스톤 호수의 서쪽 지역으로 온천과 간헐천이 몰려 있다. 온천이 ‘고인 물’이라면, 간헐천은 증기·가스 등을 분출하며 물이 솟구치는 걸 말한다. 옐로스톤 안에만 1만 개에 달하는 온천과 간헐천이 있다고 한다.
자동차에서 내리자마자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한국의 유황 온천에서 맡았던 것보다 몇 배는 진했다. 호수변으로 난 데크로드에 접어들자 곳곳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그리고 몰디브의 산호 바다 못지 않은 에메랄드빛, 지중해만큼 진득한 쪽빛 온천수가 펄펄 끓는 광경이 펼쳐졌다. 색깔이 곱다고 물에 몸을 담갔다가는 큰일 난다. 옐로스톤의 온천과 간헐천은 섭씨 100도에 육박하고, 박테리아가 우글거린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노리스(Norris)였다. 옐로스톤에서도 가장 최근에 생성된 화산지대다. 포설린 베이슨(Porcelain Basin) 지역에 트레일이 잘 나 있는데, 사방에서 연기가 피어나고 간헐천이 펑펑 솟구쳐 포화를 두들겨 맞은 전쟁터를 걷는 것 같았다.
▲약 90분마다 50m 높이로 물기둥이 솟구치는 ‘올드 페이스풀’
옐로스톤 간헐천의 하이라이트는 올드 페이스풀(Old Faithful) 지역에 있었다. 올드 페이스풀은 옐로스톤을 대표하는 간헐천의 이름이다. 19세기 탐사대가 물이 솟는 주기가 일정하다며 ‘오래된 믿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공원 측에서 분출 예상시간을 알려줘 약 90분마다 수천 명이 몰려든다. 30∼50m 높이의 물이 약 3분간 뿜어져 나오는 모습은 단연 압권이었다. 올드 페이스풀 일대는 그야말로 간헐천 밭이었다. 옐로스톤 간헐천의 절반, 전 세계 간헐천의 20%가 여기에 몰려 있단다.
공원 북서쪽 매머드 핫스프링스(Mammoth Hot Springs) 지역에는 계단식 온천이 있었다. 지금은 물이 거의 말라 있었다. 아이오와주에 왔다는 트로이 헨드릭슨(52)이 “35년 만에 다시 찾은 옐로스톤은 하나만 빼고 달라진 게 없다. 그때는 저 계단에 물이 철철 흘러 넘쳤다”며 아쉬워했다.
옐로스톤의 주인공은 야생동물
▲도로 위를 활보하는 바이슨. 함부로 접근했다가 화를 입을 수 있다.
‘물 구경’과 함께 사람들이 열광하는 건 ‘동물 구경’이다. 곰·바이슨·엘크 등 TV에서나 봤던 야생동물을 옐로스톤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옐로스톤에 가장 흔한 건 바이슨이다. 버팔로 또는 들소라고도 하는데, 이들과는 엄연히 다른 종이다. 현재 옐로스톤에만 약 5000마리가 살지만, 한때 멸종될 뻔했던 사연 많은 동물이다. 강준만의 『미국사산책3』에 따르면, 18세기만 해도 북미 대륙에 바이슨 4000만 마리가 살았다. 유럽에서 넘어온 백인이 닥치는 대로 바이슨을 쏴 죽였다. 고기와 가죽도 필요했지만, 원주민의 식량을 고갈시키기 위해서였다. 19세기 말에는 1000마리도 남지 않았다. 옐로스톤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뒤에야 사냥이 금지됐고, 보호정책에 따라 개체 수가 늘었다. 이제 바이슨은 자연보존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미국 국립공원의 상징이 됐다. 국립공원 로고에도 들어가 있을 정도다.
무심히 풀을 뜯는 녀석들이 괜히 짠해 보였다. 눈망울이 어찌나 큰지 우리네 시골 황소를 닮았다. 하나 함부로 바이슨에게 다가갔다가 화를 입는 수가 있단다. 국립공원 직원 스테판 베노잇은 “바이슨은 온순해 보이지만 성질이 난폭하다”며 “공원에서 발생한 안전사고 대부분이 바이슨에게 받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타워 루스벨트 지역에서는 승마 체험을 할 수 있다.
옐로스톤에는 멸종 위기종 그리즐리, 즉 회색곰도 산다. 약 700마리가 공원과 주변 지역에 있다. 이번에는 헤이든 밸리와 가드너 강 인근에서 2마리를 봤다. 100m 밖에 있었는데도, 심장이 쿵쾅거렸다. 공원 북쪽의 타워 루스벨트 지역에서 승마 체험 프로그램도 참여했다. 10여 명이 말을 타고 초원으로 나갔는데, 이따금 바이슨 떼가 출몰해 간담이 서늘해졌다. 1903년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이 지역에서 휴가를 보냈다고 한다. 대통령은 텐트에서 자고 말을 타고다니며 간헐천과 야생동물을 구경했다고 한다. 100년 뒤 이방(異邦)의 객이 옐로스톤을 즐긴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행정보=옐로스톤 국립공원(nps.gov/yell) 입장료는 자동차 1대에 30달러다. 50달러를 내면 그랜드 티턴 국립공원(nps.gov/grte)까지 최대 7일간 머물 수 있다. 보통 5월 말에서 9월 말 사이에 공원 안 모든 도로가 개방된다. 7~8월은 최대 성수기로, 공원 안팎의 숙소 가격이 급등한다. 공원 안에 있는 호텔·로지 등 숙소는 홈페이지(yellowstonenationalparklodges.com)에서 예약할 수 있다. 공원 밖에서 숙소를 잡는다면 서쪽 출구 주변이나 남쪽 휴양도시 잭슨을 추천한다. 힐튼 계열의 홈우드 스위트 잭슨 호텔(bit.ly/1K1rtJ0)이 괜찮다.
한국에서 옐로스톤까지 가려면 서부 대도시를 한 번은 거쳐야 한다. 이번에는 유나이티드항공(united.com)을 이용했다. 인천∼샌프란시스코 직항을 탄 뒤, 샌프란시스코에서 잭슨홀까지 국내선을 이용하면 편하다. 잭슨홀은 매년 여름 세계의 중앙은행 총재들이 모여 회의를 여는 곳으로 유명하다. 잭슨홀에서 옐로스톤까지는 110㎞. 02-751-0300. 렌터카는 허츠(hertz.co.kr)를 추천한다. 골드 플러스 리워드 회원이 되면 편하다. 영업소에 전용 카운터가 있고, 예약을 하면 카운터에 들르지 않고 바로 차를 받아갈 수 있다. 가입은 무료다. 세금·보험을 포함해 최신 SUV를 4일 526달러에 이용했다. 1600-2288.
글·사진=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⑧ 알래스카 디날리 국립공원
여름을 애타게 기다렸다. 저 멀리 북방, 알래스카에 가면 여름에만 허락된 풍경이 있어서다. 긴 겨울을 이겨낸 동토(凍土)의 생명은 다시 돌아올 긴 겨울을 살아내기 위해 짧은 여름을 바쁘게 보낸다. 알래스카에서 20년 이상 야생사진을 찍은 일본 사진작가 호시노 미치오(星野道夫)는 “알래스카에서 생명은 오직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 그 숭고함이 우리를 흥분시킨다”고 말했다. 지난달 초, 알래스카 중부에 있는 디날리 국립공원을 찾았다. 미국의 많은 국립공원이 ‘야생동물의 천국’으로 불린다. 그러나 디날리를 여행하고 나면, 다른 국립공원에서 이 수식어를 거둬야 할 것만 같다. 아니, 어떤 수식어도 거추장스럽다. 디날리는 그냥 야생이다.
온종일 환한 여름 알래스카
▲북미 최고봉 맥킨리봉(6194m)을 품은 알래스카 디날리 국립공원. 초록 융단을 덮어쓴 툰드라 대지 위로 맥킨리봉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페어뱅크스 공항에 착륙한 시간은 오후 11시 반. 야심한 시각인데 공항은 북새통이었다. 렌터카를 찾으러 공항 밖으로 나갔다. 순간 머릿속에 물음표와 느낌표가 교차했다. 대낮처럼 밝아서였다. 다시 시계를 보니 시침과 분침이 숫자 ‘12’에 겹치기 직전이었다. 여름 알래스카의 백야(白夜)에 대해서 들어는 봤지만 직접 겪으니 어리둥절했다. 공항에서 만난 페어뱅크스 관광청 직원의 말이 흥미로웠다. “알래스카의 짧고 화려한 여름을 마음껏 즐겨두라고. 하지(夏至) 이후로 하루에 6분씩 낮이 짧아지고 있으니까.” 숙소에 도착해 커튼을 꼭 닫고 잠을 청했다. 알래스카에 머문 일주일, 시차보다 적응하기 힘든 건 백야였다.
이튿날 차를 몰고 디날리(Denali)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1917년부터 80년까지 이곳의 이름은 ‘맥킨리 국립공원’이었다. 북미 최고봉 맥킨리봉(6194m) 일대가 국립공원이었다. 1980년 지금 규모로 공원이 확장되면서 디날리로 이름이 바뀌었다. 디날리는 ‘가장 높은 것’, 곧 맥킨리산을 일컫는 알래스카 원주민의 말이다. 긴긴 세월 불렸던 산의 이름을 되찾아 준 것이다. 미국 정부는 국립공원 이름을 원주민에게 양보했지만, 북미 최고봉의 이름은 25대 대통령(윌리엄 맥킨리)의 이름을 그대로 남겼다. 참고로 알래스카(Alaska)는 러시아어다. 알라샥(Alakshak)이라는 알래스카 원주민 말이 러시아어로 바뀐 것이다. 18세기부터 알래스카의 일부를 점령한 러시아는 1867년, 단돈 720만 달러에 알래스카를 미국에 팔았다. 저 산은 말 없이 수만 년을 살았는데 인간의 역사만 어지럽다.
오후 6시 즈음 공원 입구에 닿았다. 아무리 백야라지만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가기엔 무리였다. 버스 막차 시간이 이미 지났다. 대신 공원 밖에서는 다양한 레저를 즐길 수 있었다. 래프팅 업체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한데 비가 멈출 생각을 않는다. 국립공원을 가로지르는 네나나강 물살이 보통이 아니었다. 내심 겁이 났다. 상류로 올라가 미국 각지에서 온 관광객 5명과 함께 배를 탔다. 비바람 맞으며 거친 물살 속에서 균형을 잡느라 진이 다 빠졌다. 몰골을 보니 비 맞은 생쥐 꼴이다. 한국의 한탄강이나 내린천이었다면 배를 띄우지 않았을 것이다. 가이드는 “이 정도면 나쁜 날씨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과연 시작부터 ‘와일드’한 알래스카였다.
하루에 산딸기 2000개 따 먹는 곰
디날리의 속살을 만나는 날이다. 디날리는 미국의 여느 국립공원과 달리 차량 진입이 제한적이다. 입구에서 24㎞ 거리에 있는 새비지 체크 스테이션(Savage check station)까지 개인 차량이 들어갈 수 있고, 더 안으로 들어가려면 국립공원이 운영하는 관광버스나 셔틀버스를 타는 수밖에 없다. 1980년 제정된 법에 따라 엄격하게 자연을 보호하고 있어서다. 다시 공원의 정확한 이름을 살핀다. ‘디날리 국립공원&보존지구(Denali national park&preserve)’다.
버스는 공원을 동서로 가르는 단 하나의 도로를 오간다. 관광버스 4종류 중 왕복 8시간의 툰드라 윌더니스(Tundra wilderness)가 인기다. 알래스카 관광청에서도 이 프로그램을 추천했는데, 버스 탑승장에서 생각을 바꿨다. 약 20㎞ 더 안쪽으로 운행하는 셔틀 버스를 탔다. 이유는 단 하나. “깊이 들어갈수록 야생동물을 만날 확률이 높다”는 국립공원 직원의 설명이 있었다. 동물이 주로 출몰하는 저녁시간을 노려 오후 2시 버스를 탔다.
▲디날리는 말 그대로 동물의 왕국이다. 다람쥐 사냥에 성공한 붉은여우.
전문 해설사는 아니었지만 셔틀버스 기사도 공원의 역사와 생태에 대해 틈나는 대로 설명했고, 동물이 출현하면 어김없이 버스를 세웠다. 가장 먼저 만난 건 입에 다람쥐를 문 붉은여우였다. 사냥에 성공한 걸 재는 듯 녀석은 도도한 걸음으로 버스 주변을 어슬렁댔다
▲산딸기를 따먹고 있는 그리즐리 곰. 알래스카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이다.
디날리에 사는 포유류 39종 중 가장 무서운 녀석은 그리즐리 곰이다. 약 300마리가 공원 안에 사는데, 버스 종점인 아일슨 방문자 센터 근처에서 한 마리를 만났다. 다른 국립공원에서도 많이 봤지만 눈빛과 발톱까지 또렷할 정도로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다. 모든 관광객이 산딸기를 따 먹는 녀석을 숨죽이며 관찰했다. 침 넘어가는 소리까지 조심스러웠다. 버스기사는 “그리즐리는 하루에 산딸기 2000개를 따먹는다”고 설명했다.
▲디날리에서 하이킹을 하던 중 만난 무스 어미와 새끼. 사슴과 동물인데 덩치는 말만하다.
아일슨 방문자센터는 맥킨리봉을 볼 수 있는 명당이다. 그러나 안개가 잔뜩 끼어 10m 앞도 보이지 않았다. 아쉬움을 삼킨 채 버스에 올랐다. 공원 입구로 돌아가는 길에도 산양·무스(말코손바닥사슴) 등 여러 야생동물을 봤다. 오후 10시가 다 되어 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8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한시도 졸 틈을 허락하지 않은 자연의 힘이 놀라웠다.
북미 최고봉에 압도당하다
디날리 국립공원의 하이라이트는 야생동물을 보는 것 말고 하나 더 있다. 겨우내 얼었던 대지가 초록 융단을 덮어쓴 모습, 즉 툰드라(Tundra)를 감상하는 것이다. 툰드라는 북위 60도 이상에서만 볼 수 있는 지형으로, 여름철 서너 달을 빼고는 식물이 살 수 없어 ‘북방의 사막’이라고도 한다.
버스 투어로는 성이 차지 않아 이튿날 다시 디날리를 찾았다. 툰드라의 웅장함을 두 발로 느끼고 싶었다. 수많은 트레일 가운데 국립공원 직원이 추천한 새비지강 주변의 3.2㎞ 트레일을 걸었다. 오전 5시 30분인데도 환했다. 세차게 굽이치는 물소리와 새 지저귀는 소리가 적막한 대지를 가득 메웠다. 강가와 길섶에는 온갖 야생화가 햇볕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미물들도, 짧아서 소중한 여름을 요란스럽게 맞고 있었다.
공원 입구로 돌아오는 길, 멀리 지평선 위로 커다란 뭉게구름이 피어올랐다. 눈을 씻고 다시 쳐다봤다. 구름이 아니라 맥킨리다. 발치에는 분홍 야생화, 바로 앞에는 침엽수 우거진 숲, 뒤로는 융단 같은 툰드라, 그 너머에는 풀 한 포기 없는 돌산, 그리고 가장 멀리 하얀 가운을 덮어쓴 맥킨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한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
공원 입구 상점에는 ‘30% 클럽’이라 쓰인 기념품이 많았다. 디날리를 찾은 사람 중 30%만이 맥킨리를 본다는 뜻이다. 공원을 나가는 길, 기분 좋게 티셔츠 한 벌을 사 입었다.
▲만년설 덮인 맥킨리봉. 타키트나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봉우리 가까이 다가섰다.
맥킨리를 더 가까이 보기 위해 국립공원 남쪽 타키트나(Talkeetna)로 향했다. 타키트나는 맥킨리 등정에 도전하는 산악인의 베이스 캠프이자 경비행기 관광의 거점이다. 다국적 관광객 10명과 함께 비행기에 올라탔다. 출발 20분 뒤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산 속을 파고들었다. 거짓말 같은 풍광이 펼쳐졌다. 만년설 덮인 봉우리 수백 개가 저마다 위용을 뽐내고 있었고, 계곡에는 빙하가 쓸고 간 자리가 고속도로처럼 닦여 있었다. 비행기는 맥킨리 봉우리 주변을 빙빙 돌았다. 북미 최고봉은 과연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해발 1200m의 루스 빙하에 잠시 착륙했다. 맥킨리 정상에 비하면 낮은 곳이었지만, 새하얀 눈 천지였다. 빙하 위는 고요했다. 이렇게 완벽한 고요는 난생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가슴에 깊이 남은 건 북미 최고봉이나 야생동물보다 그 ‘새하얀 적막함’이다.
●여행정보=알래스카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여름에 인천∼앵커리지 전세기가 몇 차례 뜬다. 시애틀을 경유하는 게 가장 일반적이다. 디날리 국립공원은 앵커리지보다 페어뱅크스가 더 가깝다. 국립공원 버스는 이동거리에 따라 요금이 다르다.
셔틀버스는27.5~52.5달러, 가이드 해설과 간식이 포함된 관광버스는 80~175달러. 공원 안에 숙소는 없다. 캠프 사이트가 공원 내 6개 지역에있다. 이번에는 디날리 그리즐리 베어 리조트(denaligrizzlybear.com)에 묵었다. 공원 주변숙소는 5월에서 9월 사이에만 연다. 타키트나 경비행기(talkeetnaair.com)는 1인 205달러부터다. 빙하에 착륙하면 85달러가 추가된다.
디날리 국립공원(nps.gov/dena), 알래스카관광청(Alaska-Korea.com) 홈페이지 참조.
중앙일보·미국관광청 공동기획
⑨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을 대표하는 야생동물은 악어다. 작은 연못에 떠 있는 앨리게이터 악어.
플로리다주에 있는 에버글레이즈(Everglades) 국립공원은 희귀한 습지 국립공원이다. 미국 국립공원 대부분이 산악 지역에 있어서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플로리다는 미국 남동쪽에 툭 삐져나와 있는 반도다. 이 반도 끄트머리에 국립공원이 6104㎢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이 넓은 땅의 해발고도는 불과 0~2.5m. 완벽한 평지에 가까운 지형에 물이 잔뜩 고여 있다. 아열대 몬순 기후에 해수와 담수가 섞인 독특한 자연환경은 수많은 생물의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이제껏 소개했던 미국 국립공원과는 또 다른 야생동물의 천국이자 자연의 보고다.
유네스코와 람사르가 함께 지키는 습지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습지다.
자료 조사를 위해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그러나 어렵게 찾은 최신 안내책자가 2007년 겨울 버전이었다. 지난 8년간 이 공원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던 걸까? 국립공원의 모토가 ‘있는 그대로’인 건 알았지만, 그래도 8년이면 길도 내고 각종 편의시설을 늘리고도 남는 세월 아니던가. 설령 달라진 게 없어도, 숫자만이라도 ‘07’에서 ‘15’로 바꿀 수 있지 않나 싶었다.
안내책자에는 반갑지 않은 정보가 또 있었다. 우기인 5~10월에는 모기가 많으니 단단히 준비하라는 말이었다. 모기에 물리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려울 수 있다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였다. 안내에 따라 공원 앞 마트에 들러, 초강력 모기 기피제를 사들고 공원을 찾았다.
오래된 안내책자와 모기는 달갑지 않았지만, 국립공원의 역사와 생태는 충분히 흥미로웠다. 에버글레이즈가 국립공원이 된 것은 1947년이다. 당시 헨리 트루먼 33대 미국 대통령은 “이곳에는 우뚝 솟은 봉우리도 거대한 빙하도 없다. 단, 다른 곳에는 없는 습지의 적막한 아름다움과 독특한 동식물이 만들어낸 장관이 있다”고 소개했다.
▲멸종위기종 매너티도 공원 안에 많이 산다. 우리말로 ‘바다소’라 부른다.
▲플로리다 퓨마. 플로리다주에 약 160마리가 산다.
북미 최대 습지는 국제기구도 함께 지키고 있다. 76년 유네스코는 에버글레이즈를 생물권 보존지역으로 지정했고, 3년 뒤에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 87년에는 람사르 습지로 등재되기도 했다. 한국에도 람사르 습지인 우포늪이 있고, 넓은 갈대 숲을 품고 있는 순천만이 있지만 에버글레이즈는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단지 규모 때문이 아니다. 이 넓은 땅에 수백 종의 생물이 살고 있다. 매너티, 플로리다 퓨마 등 멸종위기종 38종은 더욱 각별하게 보호하고 있다.
에버글레이즈는 스펀지처럼 많은 물을 머금고 있다. 플로리다 중부의 수많은 강에서 흘러든 물과 우기에 내린 비가 습지를 만들고, 이 물이 멕시코만(灣)과 플로리다만으로 빠져나간다. 한데 최근 들어 플로리다주의 인구가 하루 800명 꼴로 급증하면서 습지로 들어오는 물이 줄고 있다고 한다. 플로리다주에는 올랜도·마이애미 등 관광객 수천만 명이 찾는 도시가 있어 물 사용량이 급증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까지 상승하고 있다. 국제기구와 시민단체가 에버글레이즈 습지 보호에 발 벗고 나서는 이유다.
악어를 보며 걷다
▲광활한 국립공원을 조망할 수 있는 샤크밸리 전망대.
국립공원은 크게 네 지역으로 나뉜다. 같은 습지이지만, 지역마다 미묘하게 다른 생태와 풍광을 품고 있다. 북동쪽 샤크 밸리(Shark Valley) 지역은 마이애미에서 자동차로 45분 거리로, 비교적 가까운 편에 속한다. 여기서는 차를 몰고 공원 안쪽으로 들어갈 수 없다. 방문자센터에서 11㎞ 남쪽에 있는 전망대까지 도로가 하나 있는데, 공원에서 운영하는 관광용 트램과 자전거만 다닐 수 있다. 20m 높이의 전망대에 오르면, 지평선 끝까지 뻗은 광활한 습지를 볼 수 있다. 습지를 가득 채운 건 억새과의 풀 ‘소그래스(Sawgrass)’다. 이따금 새가 날면 모르겠지만, 오브제(Objet)가 없는 평평한 습지여서 큰 감흥이 없다는 사람도 있다.
▲에버글레이즈에서 가장 인기 있는 레저는 카누다.
북서쪽의 걸프 코스트(Gulf Coast) 지역은 맹그로브 나무가 우거져 있고, 섬 1000개가 점점이 흩어져 있다. 하여 보트나 카약, 카누를 타고 맹그로브 숲과 섬을 누비며 다닌다. 흰머리독수리·펠리컨 등 새가 많고, 매너티도 자주 출몰한다.
국립공원 본부가 있는 어니스트 코(Ernest F. Coe) 방문자센터를 지나 남쪽의 플라밍고(Flamingo)까지는 도로가 잘 나 있고 볼거리가 많아 방문객에게 인기가 높다. 습지뿐 아니라 마호가니·측백나무 등이 우거진 숲이 있어 야생동물도 많다
▲공원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흰따오기.
공원 입구에서 6.4㎞ 거리에 있는 로열 팜(Royal Palm) 지역으로 들어섰다. 안내책자에서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라고 소개된 ‘앤힝거 트레일(Anhinga trail)’이 있어서였다. ‘앤힝거’는 가마우지과의 새 이름이다. 트레일과 주변 습지에서는 앤힝거 외에도 흰따오기·물수리·왜가리 등 다양한 새가 머리 위로 날아다녔다.
트레일은 작은 연못과 습지 주변을 걷는 1.2㎞ 남짓한 짧은 길이었다. 트레일에 들어서자마자 작은 연못에 시꺼먼 악어 한 마리가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었다. 손에 닿을 듯이 가까운 거리여서 흠칫 놀랐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연못 곳곳에서 매서운 눈동자가 끔뻑이고 있었다. 국립공원 직원은 “앨리게이터(Alligator) 악어는 공격성이 덜한 편이고, 최근 몇십 년간 사람을 공격한 일이 없었다”며 “안전거리 6m만 유념하라”고 말했다.
적막한 국립공원, 짜릿한 사파리 파크
▲플라밍고 지역에서 체험한 보트 투어. 맹그로브 숲에 난 수로로 다닌다.
국립공원 최남단의 플라밍고 쪽으로 차를 몰았다. 마침 보트투어가 시작할 시간이었다. 승객 10명을 태우고 배는 북쪽, 그러니까 육지 쪽으로 출발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에 조성한 수로를 따라 북상했다. 맹그로브 숲에 둘러싸인 수로는 좌우 폭이 약 20m였고, 물은 갈색 빛을 띠었다. 해설사를 겸한 선장은 “홍차를 생각하면 된다. 나무에서 떨어진 맹그로브 잎이 우려낸 색”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선장은 “크로커다일(Crocodile)이 오른편에 나타났다”고 알려줬다. 맹그로브 나무 밑동에 몸을 숨긴 녀석이 불편한 눈빛으로 보트 쪽을 응시했다.
악어는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의 얼굴이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앨리게이터와 크로커다일이 함께 사는 지역이 에버글레이즈라고 한다. 앨리게이터는 플로리다에만 수십만 마리가 서식할 정도로 흔하지만, 크로커다일은 멸종 위기종이다. 에버글레이즈 안에 약 300마리가 산다.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의 필수 코스로 꼽히는 게 있다. 에어보트 체험이다. 습지 위를 미끄러지듯이 질주하는 보트인데, 사실 국립공원 안쪽에서는 탈 수 없다. 보트가 습지를 파괴해서다. 이튿날 에어보트를 타기 위해 국립공원 밖 ‘에버글레이즈 사파리 파크’를 찾았다. 일종의 동물 테마파크인 사파리 파크는 앨리게이터 수백 마리를 사육하고 있었다.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시간에 악어에게 고깃덩어리를 던져주는 쇼가 펼쳐졌고, 공원 한쪽에는 갓 부화한 새끼 악어도 볼 수 있었다. 식당에서는 악어 고기를 넣은 햄버거도 팔았다. 에어보트는 예상대로 흥미로웠다. 거대한 팬(fan)이 일으키는 바람을 추진력으로 최대 시속 80㎞로 달리는 체험은 짜릿했다.
나중에 들은 말인데, 국립공원을 찾은 사람 대부분이 악어농장이나 사파리 파크만 들렀다가 돌아간단다. 자극적인 경험을 원하는 인간에게 에버글레이즈는 너무 거대하고 그저 적막한 대자연에 불과해서 일 것이다.
●여행정보=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nps.gov/ever은 4~10월이 우기, 11~3월이 건기다. 보트 투어 등 체험 프로그램은 우기보다 건기가 즐기기에 좋다. 비와 모기 때문이다. 입장료 자동차 1대 10달러. 국립공원과 가장 가까운 대도시는 마이애미다. 한국에서 마이애미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이번에는 유나이티드항공united.com을 타고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해 마이애미까지 갔다. 유나이티드항공 한국사무소 02-751-0300. 국립공원 안에 숙소는 없다. 공원 동쪽 입구에서 14㎞ 떨어진 플로리다시티에 묵었다. 트래블롯지·퀄리티인 등 저렴한 숙소가 많다.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을 여행하려면 자동차가 필수다. 허츠 렌터카hertz.co.kr를 추천한다. 예약 전에 ‘골드 플러스 리워드’ 회원에 가입하면 혜택이 많다. 영업소에 회원 전용 카운터가 있고, 예약해둔 차를 별도 수속 없이 바로 받아갈 수 있다. 가입은 무료다. 세금·보험 등을 포함해 최신 SUV를 3일 351달러에 이용했다. 1600-2288.
글=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사진=최승표 기자, 미국 국립공원관리청
⑩ 레이니어산
▲파란 하늘 아래 하얀 눈을 덮어쓰고 있는 레이니어산. 이처럼 구름 한 점 없는 ‘블루 스카이(Blue Sky)’를 볼 수 있는 날은 1년에 열흘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레이니어산(Mount Rainier) 국립공원은 미국 서북부 워싱턴주의 복판에 있다. 그래서 남한 영토(약 10만㎢)보다 두 배 가까이 넓은 워싱턴주(18만4000㎢) 어디에서도 레이니어산이 보인다고 한다. 해발 4392m의 레이니어산은 북미(알래스카 제외)에서 5번째로 높은 산이다. 레이니어산은 1890년대에 마지막 폭발을 일으킨 휴화산이다. 언제든지 다시 불을 뿜을 수 있다. 레이니어산은 전세계에서 가장 눈이 많이 오는 곳이기도 하다. 매년 10m쯤 내리는 것은 기본이라고 한다. 1800년대 초반, 영국 해군 제독 조지 밴쿠버가 친구인 피터 레이니어를 존경해서 불렀던 것이 지금의 이름으로 굳어졌다. 1899년 3월 2일 미국의 5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유서 깊은 곳이다.
시애틀서도 보이는 웅장한 산
▲레이니어산 니스퀄리 입구 인근의 침엽수림. 20m가 넘는 나무들이 도열해 있다.
워싱턴주에서 가장 큰 도시 시애틀의 전경을 담은 사진을 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맑은 날 다운타운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뒤편으로 웅장한 설산이 하나 자리하고 있다. 바로 레이니어산이다.
운 좋게도 사진으로만 봤던 장면을 시애틀에 도착한 날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흰 눈을 덮어쓴 레이니어산이 남쪽에서 떡 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사진에서처럼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 직선거리가 약 60마일(100㎞)이니까 서울시청에서 충남 천안시청까지 거리(약 96㎞)와 비슷한데, 서울시청에서 관악산을 바라보는 것처럼 지척에 있는 듯했다. 시애틀에서 레이니어산까지 뻥 뚫린 시야 덕분이었다.
레이니어산은 독특하게 생겼다. 바가지를 뒤엎은 것 같기도 하고, 종 같기도 하다. 해발고도 4000m가 넘으면 보통 산세가 칼날처럼 날카롭다. 레이니어산을 둘러싸고 있는 유니콘 피크(2108m)나 피나클 피크(2000m)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레이니어산은 뭉툭하다.
레이니어산이 둥근 모양인 것은 화산이어서다. 레이니어산은 수백만 년 전부터 용암을 수없이 뿜어낸 탓에 한라산처럼 정상부가 날아가 버렸다. 항공사진을 보면 정상부에 백록담 같은 분화구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질학자들은 레이니어산이 원래는 지금보다 300m쯤 더 높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에버그린 이스케이프 여행사의 트레비스 버크는 “레이니어산의 마지막 분화 기록은 1890년대에 있었다”며 “그 이후로 휴화산 상태”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레이니어산이 쉬고 있지만, 언제 다시 폭발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레이니어산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70㎞ 떨어진 세인트 헬렌스산의 경우 1980년 대규모 폭발을 일으켜 57명의 인명 피해를 기록한 적이 있다. 그 폭발로 세인트 헬렌스산의 정상 400m가 뭉개졌다.
이 일대의 원주민은 레이니어산을 ‘타호마(Tahoma)’라고 불렀다고 한다. 원주민 말로 ‘신들의 집’ 또는 ‘강력한 힘의 원천’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여름에는 야생화, 겨울에는 만년설
▲여름 시즌에만 활짝 피는 야생화 [워싱턴주 관광청]
레이니어산을 오르려면 대부분 국립공원 남서쪽의 니스퀄리(Nisqually·611m) 입구를 이용한다. 목적지는 설악산 중청대피소(1676m) 높이인 해발 1645m의 파라다이스 지역(Paradise Area)이다. 니스퀄리 입구에서 30㎞쯤 떨어져 있다. 자동차를 몰아 비좁은 산악 도로를 올라가는 동안 침엽수 사이로 레이니어산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40분이 지났을까. 빽빽하던 나무들이 사라지고 눈앞에 레이니어산이 나타났다. 파라다이스 지역이다. 1885년 탐험가 제임스 롱마이어의 며느리 마르타가 야생화 꽃밭을 보고 “천국(Paradise)에 온 것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곳이다. 레이니어산에서 야생화 꽃밭은 해발 1500~1800m에 있다. 1500m 이하에는 침엽수가 빼곡하고, 1800m 이상에서는 꽃도 자라지 못한다.
▲여름 시즌에는 만년설이 녹아서 만들어진 폭포가 100개나 된다.
아마도 마르타는 여름에 이곳을 왔던 것 같다. 7월 중순부터 두 달 정도만 야생화 밭이 되기 때문이다. 레이니어산은 보통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겨울이다. 6월 말에도 눈이 쌓여 있어 꽃을 보는 건 쉽지 않다.
여행자 대부분은 파라다이스 지역에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당일 여행으로 인기 있는 코스는 니스퀄리 비스타 트레일이다. 왕복 약 1.2마일(2㎞) 길이로, 쉬엄쉬엄 걸어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코스는 짧지만 경치는 감동적이다. 용설란·루핀·아네모네 등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레이니어산의 만년설과 어우러진 야생화 밭 앞에 서면 누구나 마르타처럼 천국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벤치 앤드 스노우 레이크 트레일도 인기다. 왕복 4㎞ 코스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재미가 있다. 이 코스에서는 눈이 녹으면서 만들어진 호수를 만날 수 있다. 길 초입에는 리플렉션 호수와 루이스 호수가 있고, 반환점에는 벤치호수와 스노 호수가 있다. 안내를 맡은 버크가 “레이니어산에는 눈이 녹아서 흘러내리는 폭포가 100개가 넘고 호수는 325개나 된다”고 자랑했다.
세상에서 가장 눈이 많이 내리는 산
▲5월쯤 되면 반바지 차림으로 산악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여름에는 야생화 천국인 파라다이스 지역이 겨울에는 눈 세상으로 변신한다. 미국 국립공원 자료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 파라다이스 지역이다. 1971년 7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무려 28.5m의 눈이 이 지역에 내렸는데, 이 강설량이 기네스북에 기재돼 있다. 설악산 중청대피소 정도의 높이인데도, 어마어마한 양의 눈이 내리는 것이다.
반면에 2014년 7월부터 올 6월까지는 6.7m밖에 내리지 않아 1920년 측정 이래 최소 적설량을 기록했다. 눈이 적게 내렸다고 하지만 5월에도 눈이 2m쯤은 쌓여 있다. 그래서 1917년 문을 연 레이니어산 국립공원의 유서 깊은 숙소 ‘파라다이스 인(Inn)’이 겨울에는 문을 닫는다. 보통 10월부터 이듬해 5월 중순까지 영업을 중단하는데, 올해는 10월 5일 문을 닫는다.
▲1917년 문을 연 파라다이스 인.
대신 파라다이스 인 근처에 있는 헨리 잭슨 메모리얼 방문자센터는 겨울 시즌에도 문을 연다. 주말(토·일요일)과 공휴일에만 문을 여는데, 버크가 “방문자 센터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통유리 너머로 보는 레이니어산의 설경이 압권”이라고 소개했다. “아마도 다시 ‘파라다이스’라고 감탄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레이니어산 입구 중에서 겨울에도 문을 여는 곳은 니스퀄리뿐이다. 니스퀄리 입구를 통해 올라갈 수 있는 곳은, 가장 눈이 많이 내리는 파라다이스 지역이 유일하다. 파라다이스 지역까지는 한겨울에도 자동차가 올라갈 수 있다. 산악 스키나 크로스컨트리 스키, 스노 슈잉 등 겨울 레포츠를 즐기려는 사람이 많이 찾는다. 이 중에서 스노 슈잉만 초보자가 할 수 있는 종목이다.
산악 스키를 타려면 패러다이스 주차장에서 스키를 신고 파노라마 포인트(2074m)나 존 뮤어 캠프(3105m)까지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버크는 “겨울 시즌이 끝나는 5월쯤에는 반바지 차림으로 스키를 타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여행정보=레이니어산 국립공원을 가기 위해서는 시애틀을 경유해야 한다. 대한항공(kr.koreanair.com)이 주 5회(월·목요일 제외) 인천~시애틀 직항편을 띄운다. 시애틀에서 레이니어산까지는 자동차로 2~3시간 거리다. 당일 버스투어 상품도 많다. 이 중에서 에버그린 이스케이프(evergreenescapes.com)의 밴 투어를 이용했다. 오전 8시 시애틀을 출발해 오후 6시 30분 돌아온다. 운전사 겸 가이드가 동식물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자랑한다. 1인 경비는 225달러(약 27만원). 교통비와 간단한 식사, 트레킹(여름 시즌), 스노슈잉(겨울 시즌) 등이 포함된 가격이다. 레이니어산 국립공원 입장료는 자동차 한 대 20달러(약 2만4000원). 겨울에도 국립공원 안에서 숙박할 수 있다. 니스퀄리 입구에서 10㎞ 들어가면 나오는 롱마이어 지역의 내셔널파크 인이 겨울에도 문을 연다. 요금 119~252달러(약 14만~30만원). 레이니어산 국립공원과 관련한 상세한 정보는 홈페이지 참조(nps.gov). 미국관광청discoveramerica.co.kr, 시애틀 관광청 visitseattle.co.kr.
글·사진=이석희 기자 seri1997@joongang.co.kr
⑪ 아카디아 국립공원
미국 국립공원은 대부분 서부에 몰려 있다. 59개 국립공원 중에서 39개가 미국 인구조사국에서 서부로 분류하는 13개 주에 몰려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서부는 자연, 동부는 도시’라는 말을 일종의 공식처럼 여긴다. 그렇다고 미국 동부지역에 국립공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가을이 되면 꼭 가봐야 할 동쪽의 국립공원이 있다.
미국 10대 인기 국립공원에 든다는 아카디아(Acadia) 국립공원이다. 대륙 북동쪽 끄트머리 메인(Maine)주에 있는 아카디아 국립공원은 미국 최고의 단풍 명소로 통한다. 산과 바다, 호수가 어우러진 풍경은 웅장한 서부와 달리 아기자기하면서도 우아하다. 단풍 절정기를 맞은 지난달 18일부터 사흘을 아카디아에서 머물렀다. 한낮에 불꽃놀이를 본 것처럼 두 눈이 황홀했다.
100년 역사의 국립공원
▲공원 안에는 호수와 계곡이 무수히 많다. 낙엽 쌓인 계곡은 가을에 가장 아름답다.
좌석이 56개 뿐인 델타항공 소형기가 뱅거(Bangor)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아카디아 국립공원과 가장 가까운 공항이다. 렌터카를 찾아 동쪽으로 차를 몰았다. 비행기 차창에서 내려다보며 감탄한 오색찬란한 가을 빛깔은 지상에서 더 아름다웠다. 특히 뉴잉글랜드 풍의 주택, 그러니까 영국 귀족 풍의 목조 건물과 단풍이 어우러진 모습은 동화 속 풍경 그대로였다. 미국이 아니라 유럽의 어느 시골길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아카디아 국립공원이 속한 메인주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메인을 포함해 미국 북동부 6개 주를 일컬어 뉴잉글랜드라 한다. 17세기 대서양을 건너온 영국인이 가장 먼저 정착한 땅이 이 일대다. 그러나 이 땅을 맨 먼저 밟은 건 프랑스인이었다. 훗날 식민지 전쟁에서 영국에 밀려났지만, 프랑스 이주민은 16세기부터 지금의 뉴잉글랜드 지역과 캐나다 퀘벡 등을 제 땅으로 삼고 살았다. 그리고 이 지역을 아카디아라 불렀다. ‘지상낙원’이라는 뜻이다. 지금도 아카디아 국립공원의 많은 지명이 프랑스어로 남아 있다.
▲쉬르 드 몽(Sieur de monts) 지역 산책로에 단풍이 화려한 융단처럼 깔렸다.
아카디아 국립공원은 마운트 데저트 섬(Mount Desert Island) 안에 있다. 면적 280㎢로, 메인주 3000여 개 섬 중 가장 크다. 우리의 경남 남해와 비슷한 크기다. 섬은 천혜의 비경을 품고 있다. 수많은 산이 솟아 있고, 깨끗한 호수와 백사장도 있다. 숲은 온갖 수목으로 빽빽하다. 메인주 본토와 다리가 놓여 접근도 쉬운 편이다. 휴양지의 모든 조건을 갖춘 셈이다.
마운트 데저트 섬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19세기 중반 들어서다. 화가들이 섬의 절경을 캔버스에 담았고, 기자들은 각종 매체에 섬을 소개했다. 뉴욕·필라델피아 등 동부 대도시에서 부호가 몰려왔다. 별장과 호텔이 속속 들어섰다. 급기야 난개발 문제가 불거졌고, 20세기 들어서는 환경보호론자의 개발 반대 청원이 잇따랐다. 환경보호운동에 동참한 일부 부호가 사유지를 연방정부에 기증하기도 했다. 마침내 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1916년 섬 일부를 국립 기념지(National Monument)로 지정했고, 3년 뒤 국립공원(National Park)의 지위를 부여했다. 그러니까 아카디아는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국립공원이다.
대서양 해안에서 가장 높은 산
▲캐딜락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프렌치만. 풍경이 우리의 다도해 국립공원과 닮았다.
국립공원에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캐딜락 산이었다. 국립공원 직원 존 켈리는 “미국 북동부 최고봉일 뿐 아니라, 캐나다에서 브라질까지 이어지는 대서양 해안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높이가 466m에 불과하다. 강화도 마니산(469m) 높이와 비슷하다. 미국 서부에 즐비한 4000m급 고봉을 생각하면 차라리 귀엽다. 그러나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 온통 바위투성이라 등산이 쉽지 않다. 정상까지 찻길이 난 덕분에 방문객 대부분이 차를 몰고 산을 오른다.
일출을 보러 새벽 같이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캐딜락 산 정상이 미국에서 가장 먼저 해를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설명에 끌렸다. 우리네 정동진처럼 새해 일출 명소로도 인기란다. 이미 많은 사람이 겹겹이 방한복을 입거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수평선 위로 해가 떠오르자 정상부 너럭바위가 온통 붉게 물들었다. 내내 어두웠던 바다에는 바둑 알처럼 둥근 모양의 섬들이 툭툭 피어올랐다. 일출 명소다운 아름다운 풍광이었다.
일출이 끝나자 산에서 내려왔다. 공원 일주도로(Park Loop Road)를 달리며 명소를 둘러볼 작정이었다. 산 중턱에 멈춰섰다. 길 왼편으로 거대한 호수 이글 레이크(Eagle lake)가 내려다보였다. 햇볕이 호수 위에서 잘게 부숴졌고, 호수를 에워싼 숲이 온갖 색깔로 화려했다.
섬 남동쪽의 샌드비치로 방향을 잡았다. 여름이면 해수욕 인파로 북적댄다고 했는데, 큰 개와 산책하는 사람 몇 명만 겨우 보였다. 여기에서 남쪽의 오터 포인트(Otter Point)까지 이어지는 4.8㎞ 길이의 ‘오션 트레일’은 공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트레일이어서 해변과 달리 사람이 많았다. 트레일 중간에 있는 썬더 홀(Thunder Hole)에서는 이름처럼 우레 같은 파도 소리가 들렸다.
해질 녘, 다시 차를 몰고 남서쪽 배스 항구(Bass Harbor)로 향했다. 섬에서 유일하게 등대가 있는 곳이다. 1858년 세웠다는 등대는 쓸쓸하게 바다를 비추고 있었다. 1974년 무인등대로 바뀌어 이제는 관광객이 기념사진이나 찍으러 오는 장소가 됐다.
마찻길에 얽힌 사연
아카디아에는 모두 200㎞ 길이의 트레일이 있다. 1㎞ 미만의 가벼운 산책길부터 사다리를 타고 아찔한 절벽을 올라가는 난코스도 있다. 국립공원 홈페이지에 나온 25개 트레일 중 2개를 골라 걸었다.
가장 먼저 걸은 길은 조던 연못(Jordan Pond) 트레일이었다. 연못이라기보다는 호수에 가까운 크기였다. 둘레가 5.1㎞나 돼서, 연못을 한 바퀴 도는데 2시간이 넘게 걸었다. 연못은 바닥의 자갈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았다. 평지여서 숨이 차지 않았다. 사탕단풍·적단풍·흑단풍 등 연못 주위의 단풍을 감상하기에 좋았다.
▲사우스 버블에서 내려다본 조던 연못.
이튿날은 산에 올랐다. 조던 연못 북쪽에 봉우리 두 개가 낙타 등처럼 다정하게 솟아 있다. 이름도 귀엽다. 버블(Bubble). 거품처럼 봉우리가 동그랗다는 뜻이렷다. 봉우리 두 개 중에서 사우스 버블(233m)에 올랐다. 주차장에서 정상까지 불과 1.6㎞ 거리여서 40분 만에 오를 수 있었다.
▲빙하가 실어다 놓은 흔들바위 ‘버블록’.
정상에 오르니 시야가 트였다. 조던 연못과 대서양, 울긋불긋한 숲이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했다. 정상 근처에는 버블 록(Bubble Rock)이 있었다. 한국에도 많은 흔들바위다. 수만 년 전 빙하에 실려 32㎞를 남하했다고 한다.
▲록펠러가 만든 코블스톤 브리지.
아카디아에는 미국 국립공원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색 길이 있다. 바로 마찻길(Carriage Road)이다. 길을 만든 주인공은 석유 재벌 존 록펠러의 아들 존 록펠러 주니어(1874∼1960)다. 섬 안에 별장이 있던 그는 자동차 여행객이 급증하자 자비로 일주도로를 깔았다. 차는 찻길로만 다니라는 뜻이었다. 대신 섬 안에 미로 같은 91㎞ 길이의 마찻길을 만들었다. 훼손을 최소화하며 자연을 즐길 수 있게 한 것이다. 지금도 아카디아를 찾은 사람은 이 길에서 마차를 타거나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탄다. 록펠러가 만든 모두 다른 모양의 돌다리를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다.
▲미국 59개 국립공원 중 아카디아에만 있는 마찻길의 안내판.
록펠러는 미국 국립공원 역사에서 중요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옐로스톤·요세미티 등 여러 국립공원에 자금을 지원했고, 공원 부지를 사서 정부에 기부했다. 앞마당만 잘 가꿔도 국립공원이 부럽지 않을 거부였던 그가 가장 애착을 가진 곳이 바로 이 아카디아였다고 한다.
●여행정보= 아카디아 국립공원(nps.gov/acad)은 5∼10월에만 입장료를 받는다. 자동차 1대에 25달러로 7일간 여행할 수 있다.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일주도로 대부분이 폐쇄된다. 공원 안에 숙소는 없다.
바 하버(Bar Harbor)에서 묵으면 된다. 한국에서 아카디아 국립공원으로 가려면 최소 두 번은 비행기를 타야 한다. 동부 대도시로 직항편을 타고 간 뒤, 국내선을 타고 뱅거나 포틀랜드로 이동한다. 보스턴에서 운전을 해서 오는 사람도 많다. 약 450㎞ 거리다. 기타 여행정보는 메인주 관광청(visitmaine.com), 미국관광청(discoveramerica.co.kr) 홈페이지 참조.
아카디아 국립공원을 여행하려면 직접 운전을 하는 게 편하다. 6월에서 10월까지 공원 안에 버스가 다니지만, 이동에 제약이 많다. 렌터카는 알라모(alamo.co.kr)를 추천한다. 위급 상황이 발생하면 한국어 통역 서비스도 해준다. 최신형 지프 체로키 차량을 ‘보험플러스 GPS’ 요금제로 3일 342달러에 이용했다. 02-739-3110.
글·사진=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⑫ · 끝] 그랜드 캐니언
▲그랜드 캐니언 사우스림 매더 포인트에 모인 관광객이 일출을 지켜보고 있다. 전망대 주변에는 눈이 소복이 쌓였지만, 협곡 안쪽은 15도 정도 기온이 높아 눈이 내리지 않았다.
“그랜드 캐니언을 무덤덤하게 맞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랜드 캐니언에 대해 얼마나 많이 들어보았든, 사진을 보았든, 막상 가보면 숨이 턱 막힌다.” 미국 작가 빌 브라이슨이 『발칙한 미국 횡단기』에 쓴 것처럼 그랜드 캐니언 앞에서는 누구든 속수무책이 된다. 자연 풍광에 별 감흥이 없는 사람, 제 아무리 무뚝뚝한 사람도 터져나오는 탄성을 억누를 수 없다.
지난달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에서 나흘을 머물렀다. 협곡 안으로 걸어 내려가기도 했고, 협곡 위를 헬기를 타고 내려다보기도 했다. 비가 내렸고, 눈도 쏟아졌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불리는 이 거대한 협곡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감동을 안겨줬다.
억겁의 세월이 빚은 협곡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은 미국 애리조나주 북부에 있는 거대 협곡이다. 협곡의 동서 길이가 400㎞가 넘는다. 평균 폭은 16㎞, 최대 깊이는 1.6㎞에 달한다. 협곡 아래로 콜로라도강이 흐른다. 협곡 아래에서 보면 롯데월드타워(555m) 3개를 쌓은 높이다. 역사도 장구하다. 의견이 분분한데, 멀리는 약 20억 년 전, 가까이는 600만 년 전부터 발생한 지각 활동으로 협곡이 생겼다고 한다. 억겁의 세월이 빚은 풍경 앞에서 인간은 먼지처럼 초라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거대한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에서도 관광객이 주로 찾는 곳은 노스 림(North Rim)과 사우스 림(South Rim)이다. 노스 림은 해발 2438m로, 사우스 림보다 400m 높다. 춥고 눈이 많이 내려 5~10월에만 개방한다. 반면 사우스 림은 지형이 평탄하고 날씨가 따뜻해 연중 관광객이 찾는다.
도무지 사람이 살 수 없을 듯한 협곡 안에 예부터 아메리카 원주민이 살았다. 하바수파이와 왈라파이 부족이 깊은 협곡 안 강가에 터를 잡고 살았다. 서양인이 처음 협곡을 찾은 건 1540년 즈음이었다. 스페인 탐험대가 금을 찾다가 협곡까지 이르렀다. 그랜드 캐니언이 관광지로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19세기 들어서였다. 지질학자 존 웨슬리 파월이 배를 타고 콜로라도강을 탐험한 뒤 계곡의 엄청난 규모에 놀라 ‘그랜드 캐니언’이라고 명명했다. 파월은 1871년 두 번째 탐험을 마친 뒤, 그랜드 캐니언을 적극적으로 세상에 알렸다. 1919년 그랜드 캐니언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그랜드 캐니언은 1979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BBC가 실시한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 50곳’ 설문조사에서도 1위에 올랐다. 한국인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미국 여행지이기도 하다. 해마다 440만 명 이상이 그랜드 캐니언을 찾는데, 거의 절반이 외국인이란다.
죽기 전에 꼭 가볼 곳을 찾아 또 한 명의 이방인인 기자가 라스베이거스 공항에 도착했다. 자동차를 몰고 동쪽으로 4시간 30분을 달렸다. 숙소가 몰려 있는 그랜드 캐니언 빌리지에 도착한 건 한밤 중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었고,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비와 눈이 만든 또 다른 비경
▲데저트 뷰 전망대.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는 명당이다.
오전 4시 30분. 일출을 보기 위해 매더 포인트(Mather Point) 전망대로 향했다. 이미 하늘은 진한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둠을 헤치며 함께 걸어가던 사람들이 연신 “오 마이 갓”을 외쳤다. 점점 붉어지는 하늘을 보니 두려운 마음마저 들었다. 자연의 힘과 색에 압도당해 말을 잊었다. 점차 하늘이 밝아지며 협곡 사이로 한두 줄기 햇살이 사선으로 비쳤다. 어둠 속에 숨죽이고 있던 바위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랜드 캐니언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일출은 처음이었다. 그랜드 캐니언은 일출과 일몰을 꼭 봐야 한다는 말을 이제야 이해했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는 그랜드 캐니언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반전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공원을 순환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타보기로 했다. 셔틀버스는 개인 차량으로 갈 수 없는 곳까지 다니는 만큼 색다른 풍광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허밋 휴게소(Hermits Rest)까지 가는 레드 루트(Red route) 버스를 탔다. 인상이 험악한 운전기사가 안내방송을 했다. “버스 안에서는 음식을 먹어도 안 되고, 장난쳐도 안 되고, 물도 마시면 안 됩니다.” 잠시 후 기사는 자신의 물통을 집어들더니 거만한 표정으로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마개가 있는 물통은 괜찮습니다. 허허허.” 기사의 농담에 관광객 모두 큰 웃음을 터트렸다.
버스는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마리코파·파월·호피·모하비 포인트에 차례대로 멈춰섰다. 먹구름이 비를 뿌리며 계곡으로 들어와 봉우리를 에워싼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안개가 피어올라 시선을 가렸다가, 바람이 불면 파란 하늘 밑으로 계곡이 드러났다. 구름 사이로 빛이 내리며 협곡을 비추기도 했다. 협곡에 무지개가 드리운 모습은 단연 압권이었다. 무지개를 세 개나 봤으니 횡재가 아닐 수 없었다. 맑은 날보다 훨씬 웅장하고 다이내믹한 풍광이었다. 비를 맞으며 레드 루트의 종점인 허밋 휴게소까지 온 보람이 있었다.
어느새 어두워졌다. 협곡은 구름과 안개로 가득 채워졌다. 밤새 기온이 내려가 비는 눈으로 바뀌었다. 다음날 사우스 림 주변은 하얀 눈 천지였다.
협곡 속으로 내려가다
▲브라이트 에인절 트레일
그랜드 캐니언에는 걸어서 협곡 밑으로 내려갈 수 있는 트레일이 여럿 있다. 개중에서 그랜드 캐니언 빌리지에서 출발하는 브라이트 에인절 트레일(Bright Angel Trail)이 가장 인기가 높다. 협곡 아래 야영장까지 15.3㎞ 길이로, 이 코스를 모두 걷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왕복 30㎞이니 하루 만에 다녀오기도 버겁거니와, 표고 차가 1300m를 넘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협곡 중턱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많은 사람이 간편한 복장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고 따라가 보기로 했다.
길은 생각보다 완만했다. 지그재그 모양의 트레일은 누구나 걷기 쉽게 잘 닦여 있었다. 위에서 내려보기만 했던 협곡 속을 걸으니 기분이 묘했다. 아래로 내려가는 사람, 밑에서 올라오는 사람 모두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걸었다. 협곡과 나무에 하얀 눈이 덮여 더 수려한 풍경을 선사했다. 20분만 내려가려 했는데 경치에 취해 걷다 보니 이미 45분이 지났다. 협곡 속에서 어떤 힘이 강하게 끌어당기는 듯했다. 협곡 밑에서 야영을 하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야영은 다음 기회로 남겨뒀다. 다음엔 철저하게 준비해 콜로라도강에 발을 담가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랜드 캐니언 사우스림 헬기투어
그랜드 캐니언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헬기나 경비행기를 타고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것이다. 그러나 기상 악화로 헬기 출발이 연거푸 연기됐다. 이틀을 기다린 뒤에야 헬기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국립공원 남쪽 관문인 투사얀(Tusayan)으로 향했다. 독일·중국·푸에르토리코에서 온 관광객과 함께 헬기에 올랐다.
설렘과 불안이 교차했다. 프로펠러가 굉음을 내며 돌더니 헬기가 땅을 차고 떠올랐다. 그랜드 캐니언 쪽으로 방향을 잡은 헬기가 엄청난 속도로 질주를 시작했다. 녹색의 고원지역을 지나자 발 밑으로 땅이 푹 꺼진 협곡이 나타났다. 오금이 저렸고, 저절로 눈이 감겼다. 헬기는 인간의 발길이 한 번도 닿지 않았을 협곡 위로 날아갔다. 비와 콜로라도강의 침식작용으로 드러난 협곡의 속살은 짙은 회색이었다. 지금까지 봤던 협곡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수만 년 전으로 돌아가, 사람도 문명도 없던 원시 시절의 지구를 보는 것 같았다.
●여행정보=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 입장료는 자동차 1대에 30달러다. 최대 7일 머물 수 있다. 길 상태, 하이킹, 셔틀버스 노선 등 자세한 정보는 공식 홈페이지(nps.gov/grca)에 잘 나와 있다. 국립공원에서 하루 이상 머문다면 빌리지 안에 있는 숙소를 잡는 게 좋다. 이번에는 야바파이 로지(visitgrandcanyon.com)에 묵었다. 로지에 식당과 슈퍼마켓이 있어 편했다.
그랜드 캐니언에 가까운 대도시는 라스베이거스다. 대한항공(kr.koreanair.com)이 인천∼라스베이거스 노선을 주 4회 운항한다. 아시아 유일의 라스베이거스 직항편이다. 1588-2001. 렌터카는 허츠(hertz.co.kr)를 이용했다. 허츠는 ‘골드 플러스 리워드’ 회원이 되면 편하다. 영업소에 전용 카운터가 있고, 예약해둔 차를 카운터에 들르지 않고 바로 받아갈 수 있다. 1600-2288. 헬기 투어는 시닉항공(vivalasvegas.kr)을 추천한다. 투사얀에서 출발해 30분 탑승하는 상품이 186달러(약 20만원)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출발하는 헬기와 경비행기 투어도 인기가 높다. 02-6242-9242.
글·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 미국 국립공원① 그랜드티턴 ② 옐로스톤 ③ 캐니언랜즈 ④ 아치스
그랜드 서클 안에 위치한 국립공원은 대부분 주된 경관이 협곡 아니면 바위다. '캐니언'이라는 말이 앞이나 뒤에 붙었다면 협곡이고, 이외 지역은 바위가 많은 산이나 기둥이다.
하지만 캐니언랜즈 국립공원에서 약 40㎞ 거리에 있는 아치스 국립공원은 특색이 조금 다르다. 암석덩어리 지형임에는 틀림없는데, 바위들이 허공에 떠 있다. 세게 건드리면 쓰러질 것 같은 아치 2천여 개가 모여 있다.
□ 아치스 국립공원
↑ (모압<미 유타주>=연합뉴스) 박창기 기자 = 미국 아치스 국립공원 초입에는 거대한 암석이 빌딩처럼 솟아 있다. 벌판 위에 우뚝한 암석이 눈길을 잡아끈다. changki@yna.co.kr
↑ (모압<미 유타주>=연합뉴스) 박창기 기자 = 미국 유타주 남부 아치스 국립공원의 더블 아치 아래로 갈색 바위기둥이 솟은 생경한 풍경이 보인다. 아치스 국립공원에는 자연적으로 생성된 아치 2천여 개가 있다. changki@yna.co.kr
↑ (모압<미 유타주>=연합뉴스) 박창기 기자 = 미국 아치스 국립공원의 매표소 앞에 차들이 길게 늘어섰다. 아치스 국립공원에는 이색적인 아치 2천여 개가 모여 있다. changki@yna.co.kr
↑ (모압<미 유타주>=연합뉴스) 박창기 기자 = 미국 아치스 국립공원의 데블스 가든에서 여행자들이 바위를 내려오고 있다. 랜드스케이프 아치에서 더블 오 아치까지는 난도가 높은 바윗길이 이어진다. changki@yna.co.kr
↑ (모압<미 유타주>=연합뉴스) 박창기 기자 = 황톳빛 흙과 관목으로 가득한 미국 아치스 국립공원에서 여행자가 사진을 찍고 있다. 멀리 기괴한 모양의 암석인 '밸런스드 록'이 보인다. changki@yna.co.kr
아치스 국립공원의 아치는 물과 얼음, 극한의 날씨가 만든 절경이다. 탄생 과정을 이해하려면 3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이곳은 바닷물이 들어찬 내해였다. 그런데 해수가 증발되고 흘러드는 과정이 수십 차례 일어나면서 염분이 많고 무른 지대가 생겨났다.
다시 수백만 년이 지나는 동안 홍수와 바람에 의한 퇴적물이 쌓이면서 바위처럼 단단한 지층이 염분 지대를 덮었다. 마치 엎드린 어린아이 위에 어른이 누워버린 형국이었다.
염분 지대는 단단한 지층의 압력을 이기지 못했다. 찌그러지거나 휘어지면서 상층부의 바위가 떨어지고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틈으로 들어간 물은 침식 작용을 일으켰고, 기온이 내려가면서 고체화된 얼음은 팽창하면서 균열을 가속화했다.
결국은 밀도가 높고 균형이 잡힌 부분만 살아남아 아치가 됐고, 나머지 바위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치의 생성과 확장, 소멸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1991년에는 높이 18.2m, 폭 3.4m, 두께 1.2m의 바윗덩어리가 아치에서 추락하기도 했다. 아치스 국립공원의 침식과 풍화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 아치가 만든 창으로 바깥을 보다
아치스 국립공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도록 경승지가 배치돼 있다. 일단 입구를 통과해 방문자 센터를 지나면 가파른 오르막이 펼쳐진다. 옆으로는 아찔한 절벽이 보이고, 반대편에는 깎아지른 듯한 바위가 늘어서 있다.
북쪽으로 난 길은 '악마의 정원'을 의미하는 '데블스 가든'(Devils Garden)까지 뻗어 있다. 일반 자동차가 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으로 아치스 국립공원에서 제일 긴 트레킹 코스와 가장 유명한 아치가 있다.
산책로 초반부는 나무가 거의 없어서 햇볕이 강하지만 힘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악마'를 떠올리게 하는 사물은 없고, 관목과 다육식물이 자라는 '정원'만 있다.
데블스 가든에는 볼만한 아치가 여럿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이목은 랜드스케이프 아치에 집중된다.
랜드스케이프 아치는 두 기둥 사이의 길이가 88.4m로 세계에서 가장 길지만, 얇은 부분은 두께가 1.8m에 불과하다. 아치가 당장 끊어지거나 무너져도 의아하지 않을 정도로 위태롭다.
랜드스케이프 아치부터는 경로가 트레킹이 아니라 난도가 높은 등산에 가깝다. 일부 구간은 바위에 붙어서 기어가야 할 만큼 경사가 심하다. 밧줄이나 난간이 없어서 노약자가 오르기에는 쉽지 않다.
산책로의 종착점에는 더블 오(Double O) 아치가 있는데, 아치 아래로 보이는 풍광이 수려하다.
랜드스케이프 아치와 함께 아치스 국립공원을 상징하는 아치는 델리커트 아치다. 델리커트 아치는 유타주 자동차 표지판에 배경으로 쓰이고, 미국 국립공원 소개 책자에도 단골로 등장한다.
델리커트 아치를 대면하기 위해서는 수고로움이 따른다. '울프 랜치'에 차를 세우고 약 2.5㎞의 오르막을 걸어야 한다. 땀을 흘려가며 발걸음을 떼야 도착하는 델리커트 아치는 명불허전이다.
랜드스케이프 아치가 워낙 커서 비현실적인 느낌이라면, 높이가 13.7m인 델리커트 아치는 아치의 전형을 보여준다.
2천여 개의 아치 중에 두세 개만 보고 돌아가기가 아쉽다면 윈도스 구역으로 향한다. 안경처럼 아치가 나란히 형성된 노스 윈도와 사우스 윈도, 아치가 'V'자 형태로 2개 있는 더블 아치가 모여 있다. 이곳은 길이 평탄해서 다니기에 좋다.
물론 아치스 국립공원에 아치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방문자 센터와 윈도스 구역 사이는 돌이 된 사구, 기괴한 흉상을 연상시키는 밸런스드 록 같은 볼거리가 있다.
고층빌딩이 즐비한 뉴욕 맨해튼의 거리 이름과 같은 파크 애비뉴 구역은 널찍한 바위들이 건물처럼 솟아 있다. 해가 질 무렵 파크 애비뉴의 좁은 길을 거닐면 몽환적인 기분에 사로잡힌다.
□ 캐니언랜즈 국립공원
옐로스톤 국립공원과 그랜드티턴 국립공원에서 800㎞ 남짓 떨어진 캐니언랜즈 국립공원은 건조한 바위의 땅이다.
날씨는 더 덥지만, 나무는 거의 없다. 맨몸을 드러낸 갈색 암석덩어리가 지표를 메우고 있다. 갑자기 거칠고 황량해진 풍경에 별세상에 도착한 듯한 기분이 든다.
캐니언랜즈 국립공원은 콜로라도 고원에 위치한다. 콜로라도 고원은 그랜드캐니언을 비롯해 브라이스 캐니언, 자이언 캐니언 같은 웅장한 협곡을 품고 있다.
↑ (모압<미 유타주>=연합뉴스) 박창기 기자 = 미국 유타주 남부는 건조하고 메마른 지역이다. 이곳을 흐르는 콜로라도 강은 오랫동안 침식 작용을 일으키며 땅을 깎았다. 사진은 캐니언랜즈 인근의 데드 호스 포인트 주립공원에서 내려다본 협곡이다. changki@yna.co.kr
↑ (모압<미 유타주>=연합뉴스) 박창기 기자 = 미국 캐니언랜즈 국립공원의 그랜드 뷰 포인트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협곡. 캐니언랜즈 국립공원은 원주민과 카우보이, 탐험가만이 들어왔던 거친 땅이다. changki@yna.co.kr
↑ (모압<미 유타주>=연합뉴스) 박창기 기자 = 미국 유타주 남부 캐니언랜즈 국립공원 인근은 황톳빛 바위와 모래로 뒤덮여 있다. 건조한 대지 위로 난 도로를 자동차가 지나고 있다. changki@yna.co.kr
↑ (모압<미 유타주>=연합뉴스) 박창기 기자 = 미국 데드 호스 포인트 주립공원 전망대에서 굽어보면 콜로라도 강이 180도 선회하는 지점이 보인다. 애리조나주 호스슈 벤드와 닮은꼴 지형으로 콜로라도 강이 만들어낸 장관에 감탄사가 터진다. changki@yna.co.kr
↑ (모압<미 유타주>=연합뉴스) 박창기 기자 = 미국 데드 호스 포인트 주립공원 전망대에서 여행자가 바위 위를 걷고 있다. 데드 호스 포인트 주립공원은 낭떠러지 아래서 말의 뼈가 많이 발견돼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changki@yna.co.kr
국립공원과 주립공원, 천연기념물이 매우 많아 고원 일대를 '그랜드 서클'(Grand Circle)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캐니언랜즈 국립공원은 그랜드 서클의 북동쪽,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은 남서쪽에 있다. 두 지역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콜로라도 강이 내부를 관통한다는 점은 같다.
콜로라도 강의 상류 지점에 해당하는 캐니언랜즈 국립공원에는 와이오밍주에서 발원한 그린 강도 흐른다. 두 강은 국립공원의 남쪽에서 'Y'자 모양으로 만난다.
강을 경계로 북쪽은 '아일랜드 인 더 스카이', 서쪽은 '메이즈', 동쪽은 '니들스'로 나뉜다. 그중 접근성이 좋고,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은 아일랜드 인 더 스카이다.
'하늘의 섬'이라는 뜻의 아일랜드 인 더 스카이에서는 자동차를 타고 전망대를 다니는 식으로 여행한다.
협곡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5곳 있는데, 백미는 해발 1천853m의 그랜드 뷰 포인트 전망대다. 수백m 높이의 절벽 아래에 거대한 공룡이 발자국을 찍어놓은 듯한 웅대한 협곡이 펼쳐진다. 절로 탄성이 터지고 숙연해지는 풍광이다.
이러한 걸작을 창조한 주인공은 강물이다. 100만 년 동안 유수(流水)와 중력이 흙과 바위를 할퀴고 깎아 골짜기를 파고, 외딴 언덕을 남겼다.
대협곡은 아일랜드 인 더 스카이의 그린 강 전망대와 벅 캐니언 전망대에서도 굽어볼 수 있다. 그린 강 전망대는 서쪽을 면하고 있어서 석양이 깔릴 무렵 가면 좋다.
'바늘'을 의미하는 니들스 구역의 경관은 아일랜드 인 더 스카이와는 사뭇 다르다. 뾰족한 사암 기둥이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찰흙을 덕지덕지 쌓아 올린 듯한 모양새다. 그래서 여행자의 시선은 아일랜드 인 더 스카이에서와는 반대로 위쪽을 향하게 된다.
캐니언랜즈 국립공원의 세 번째 구역인 '메이즈'는 일반 차량으로는 진입이 불가능한 오지다. 사륜구동 차로 이동해 원시의 길을 걸어야 한다. 신기한 모양의 바위뿐만 아니라 2천 년 전에 그려진 벽화도 볼 수 있다.
한편 데드 호스 포인트 주립공원은 캐니언랜즈 국립공원과 맞닿아 있다. 콜로라도 강이 180도 선회하는 지점으로 애리조나주 호스슈 벤드와 닮은꼴 지형이다.
들소를 절벽으로 몰아 떨어져 죽게 했다는 캐나다의 헤드 스매시드 버펄로 지대처럼 낭떠러지 아래서 말의 뼈가 많이 발견됐다고 한다.
주립공원의 끝에 휘도는 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가 있으며, 방문자 센터 주변에는 괜찮은 트레킹 코스가 있다.
□ 옐로스톤 국립공원
미국 중서부 와이오밍주, 몬태나주, 아이다호주에 걸쳐 있는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국립공원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1872년 3월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하면서 '첫 번째 국립공원'이란 영예를 얻었다. 지금도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 요세미티 국립공원과 함께 미국을 상징하는 3대 국립공원으로 일컬어진다.
↑ (옐로스톤 국립공원<미 와이오밍주>=연합뉴스) 박창기 기자 =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웨스트 섬 지역에 있는 온천수 연못이 영롱한 푸른빛을 띠고 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화산 지대에 있어서 간헐천과 온천수 연못이 많다. changki@yna.co.kr
↑ (옐로스톤 국립공원<미 와이오밍주>=연합뉴스) 박창기 기자 =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 노리스 지역의 포설린(Porcelain) 분지에서 사람들이 산책로를 걷고 있다. 포설린 분지에는 알록달록한 색깔의 온천수 연못이 많고, 유황 냄새가 진동해 지구의 역동적인 면모를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다. changki@yna.co.kr
↑ (옐로스톤 국립공원<미 와이오밍주>=연합뉴스) 박창기 기자 =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다양한 지형과 동식물을 함께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들소, 곰, 사슴, 엘크, 가지뿔영양, 여우 같은 동물을 볼 수 있다. changki@yna.co.kr
↑ (옐로스톤 국립공원<미 와이오밍주>=연합뉴스) 박창기 기자 =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인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올드 페이스풀 간헐천에서 관광객들이 하늘로 치솟는 열수를 바라보고 있다. 올드 페이스풀 간헐천에서는 약 1시간 30분마다 분출이 발생한다. changki@yna.co.kr
↑ (웨스트 옐로스톤<미 몬태나주>=연합뉴스) 박창기 기자 =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 서부에 위치한 웨스트 옐로스톤의 캠프장 KOA의 모습. 옐로스톤 국립공원에는 많은 로지와 캠프장이 있다. changki@yna.co.kr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지표 아래서 일어나는 지구의 활동을 눈앞에 펼쳐 보인다. 열수와 수증기가 일순간에 뿜어져 나오는 간헐천과 물이 끓어오르는 온천이 산재해 있다. 처처에서 부글거리는 소리와 매캐한 냄새가 귀와 코를 자극한다.
실제로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는 200만 년 전부터 세 차례 대규모 화산이 폭발했다고 한다. 지금도 분화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신비롭고 두려운 경관으로만 채워진 땅이 아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한없이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정경을 만끽할 수 있다. 그래서 '풍경의 종합선물세트'라는 표현을 써도 어색하지 않다.
미국 국립공원 여행은 방문자 센터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방문자 센터에서는 다양한 시각 자료를 통해 국립공원의 특징을 파악하고, 추천 명소를 확인할 수 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에는 방문자 센터 5곳이 있는데, 모두 박물관처럼 잘 꾸며져 있다. '지구를 들여다보는 창이자 대형 자연 실험실'인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는 방문자 센터에 들러 배경지식을 습득해야만 감흥의 진폭이 커진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면적이 약 9천㎢로 충청남도보다 넓다. 며칠 만에 둘러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립공원은 전체적으로 사각형 형태를 띠고 있으며, 중심부에 눈사람을 닮은 8자 모양의 그랜드 루프 로드가 있다.
보통 위쪽 원은 '어퍼(Upper) 루프', 아래쪽 원은 '로어(Lower) 루프'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옐로스톤 국립공원 여행은 어퍼 루프와 로어 루프를 다 돌면 마무리된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에는 10여 개의 기점이 있다. 이곳에는 대개 교차로나 편의시설, 명승지가 있다. 그중 매디슨과 레이크 빌리지는 옐로스톤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곳이다.
유유히 흐르는 강과 야생화가 핀 들판이 펼쳐져 있고, 평화로운 초원에는 야생동물들이 무리 지어 서식한다. 대표적인 동물이 국립공원 내에 약 4천600마리가 산다는 들소(Bison)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관찰할 수 있는 동물은 부지기수다. 사슴, 엘크는 쉽게 눈에 띄고 가지뿔영양이나 여우, 코요테도 이따금 발견된다. 잘 알려진 곳이 아닌데도 자동차가 멈춰 있다면 근처에 진귀한 동물이 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옐로스톤의 기점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관광객으로 붐비는 장소는 단연 '올드 페이스풀'(Old Faithful)이다.
숙박 시설인 로지(Lodge), 우체국, 진료소가 입지해 있고, 옐로스톤을 소개할 때면 언제나 첫머리를 장식하는 볼거리인 '올드 페이스풀 간헐천'이 있기 때문이다.
올드 페이스풀 간헐천은 영어 의미대로 '오랫동안 충실하게' 약속을 지켜온 명물이다. 열수와 수증기를 뿜어내는 시간과 간격이 규칙적이어서 예측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간헐천 앞에 자리한 방문자 센터에서는 직전의 분출 시간을 고려해 다음 예정 시각을 공지하는데, 앞뒤로 10분의 오차 내에서 정확히 들어맞는다.
사실 올드 페이스풀 근처에는 무시로 물을 내뿜는 간헐천이 많다. 그중에는 올드 페이스풀 간헐천보다 열수가 훨씬 더 높게 용솟음을 치는 간헐천도 있다.
간헐천을 구경하다 보면 물빛이 파란색을 띠는 온천수도 눈길을 잡아끈다. 미드웨이 간헐천 지대에서는 지름이 113m에 이르는 커다란 연못을 볼 수 있다.
또 다른 기점인 노리스와 매머드도 지구의 역동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곳이다. 노리스에는 알록달록한 색깔의 온천수 연못이 점재하는 포설린(Porcelain) 분지와 옐로스톤 최고의 간헐천이 위치한 백(Back) 분지가 있다.
특히 포설린 분지는 예쁜 풍광과 달리 지옥을 연상시킨다. 유황 냄새가 콧속을 파고들고 요란스럽게 거품이 솟아오르는 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노리스 북쪽의 매머드에서는 석회암이 계단을 이루고 있는 흥미로운 지형을 살펴볼 수 있다.
1주일간의 외유, 분명히 짧다. 하지만 낯선 땅에서 감동과 충격을 받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미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국립공원은 자연경관만 놓고 보자면 여행의 보증수표와 다름없다. 다만 여정을 어떻게 수립하는지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를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에 자리한 국립공원을 돌아보면 최단 시간에 최고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냉탕과 열탕처럼, 분위기와 풍경이 전혀 다른 국립공원들은 비교를 불허하는 매력을 발산한다.
□ 그랜드티턴 국립공원
↑ (그린리버<미 유타주>=연합뉴스) 박창기 기자 = 미국 유타주 남부에서 그랜드티턴 국립공원으로 향하는 길이 곧게 뻗어 있다.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 도로 주변의 풍광이 매우 아름답다. changki@yna.co.kr
↑ (모랜<미 와이오밍주>=연합뉴스) 박창기 기자 = 겨울잠에서 깨어난 회색곰(Grizzly) 두 마리가 미국 그랜드티턴 국립공원에서 도로 옆 초원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곰 구경'은 그랜드티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활동으로 꼽힌다. changki@yna.co.kr
↑ (모랜<미 와이오밍주>=연합뉴스) 박창기 기자 = 미국 그랜드티턴 국립공원의 초원 위에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도로가 나 있다. 그랜드티턴 국립공원에는 활엽수가 많아서 신록과 단풍을 감상할 수 있다. changki@yna.co.kr
↑ (모랜<미 와이오밍주>=연합뉴스) 박창기 기자 = 미국 그랜드티턴 국립공원의 리(Leigh) 호수에서 가족 여행자가 카누를 타고 있다. 그랜드티턴 국립공원에서는 트레킹, 사이클링, 카누잉 등 다양한 레저를 즐길 수 있다. changki@yna.co.kr
◇ 그랜드티턴 국립공원, 설봉이 비치는 호숫가에서의 휴식
알래스카와 하와이, 미국령 사모아를 포함해 미국 전역에는 국립공원 59개가 있다. 지난해 1월 캘리포니아주 피너클스(Pinnacles) 국립공원이 9년 만에 새롭게 추가됐다.
미국 국립공원은 자연의 아름다움, 지질학적 특이성, 독특한 생태계 등의 조건을 갖춰야만 지정된다. 그래서 국립공원은 볼거리가 다채로울 뿐만 아니라 학문적, 교육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지역이다.
와이오밍주 그랜드티턴 국립공원은 1929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장엄한 산세와 맑은 호수가 어우러진 풍광이 그림엽서처럼 아름다워 많은 사람이 찾는다.
그랜드티턴 국립공원에서는 어디서나 눈 덮인 봉우리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평평한 대지 위에 우뚝 솟은 티턴 산맥이다. 최고 높이가 4천197m이고, 모든 산봉이 3천100m를 넘는다.
미국에서는 '젊은 산지'에 속하는 로키산맥에서도 나중에 만들어진 산이다. 여전히 단층 작용과 빙하의 침식이 진행되고 있어서인지 산세가 가파르고 험준하다.
하지만 산에 오르지 않고, 멀리서 바라보기만 한다면 매우 고혹적이다. 콜로라도주의 로키 마운틴 국립공원보다 전망이 더 뛰어나다.
티턴 산맥 아래에는 호수와 강이 많다. 빙하에서 녹은 물이 곳곳에 호수를 탄생시켰다. 가장 넓은 잭슨 호수부터 리(Leigh) 호수, 제니 호수, 펠프스 호수가 산맥을 따라 자리한다.
또 호수에서 흘러든 물은 스네이크(Snake) 강을 형성해 뱀처럼 굽이돌며 남쪽으로 나아간다. 그랜드티턴 국립공원에서는 호수와 강에 다가가야 비로소 비경을 접할 수 있다.
티턴 파크 로드는 국립공원의 관광도로다. 잭슨 호수에서 스네이크 강으로 유입되는 물의 양을 조절하는 댐부터 크레이그 토머스 방문자 센터까지 이어진다. 중간중간에 설산을 조망할 수 있는 주차장이 조성돼 있고, 호숫가로 인도하는 샛길이 연결돼 있다.
그랜드티턴 국립공원의 작은 호수 주변에는 산책로가 마련돼 있다. 제니 호수와 펠프스 호수에서는 일주가 가능하고, 산중에 숨은 호수로는 산행을 겸해 다녀올 수 있다.
크레이그 토머스 방문자 센터 인근의 도넌스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거나 잭슨 호수 근처에서 승마 체험을 할 수도 있다.
그랜드티턴 국립공원은 야생동물의 천국이기도 하다. 많은 야생동물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종은 흑곰과 '그리즐리'(Grizzly)라 불리는 회색곰이다.
기다란 렌즈나 망원경을 든 사람이 운집한 장소에는 어김없이 곰이 있다. 곰은 겨울잠에서 깬 봄부터 활동하는데, 운이 좋다면 바로 앞에서 도로를 지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또 갈퀴처럼 생긴 뿔이 인상적인 무스도 만날 수 있다.
연합뉴스
■ Majestic Canyon
■ Bryce Canyon
유타주는. 나바호 인디안 들이 살고 있던 지역이다. 유타지역은 원래 맥시코 땅의 일부였는데 맥시코와 택사스 지역 분쟁으로 전쟁이 일어나 미국이 승리 함으로써 1896년 1월4일 미연방에 45번째 주로 가입하였다.
■ Antelops Canyon
미국 애리조나주에 위치한 '앤텔로프 캐니언'
"지구의 모습이 아닌 것 같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앤텔로프 캐니언 풍경 사진이 해외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다.
최근 해외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해 소개되면서, 눈길을 사로잡고 있는 '앤텔로프 캐니언'은 미국 애리조나주에 위치한 유명 관광지다. 상상하기 힘든 오랜 시간의 힘으로 생성된 이 곳은 '빛과 자연이 만들어 낸 예술 작품'이라 불리고도 있는데, 빛의 움직임에 따라 자연의 모습이 변한다는 것이 그 이유.
자연의 조명과 수억 년의 세월을 간직한 암석이 만들어 내는 신비로운 풍경 앞에 네티즌들은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는데, 이 곳은 전 세계의 사진 애호가들 사이에서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으로 꼽히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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