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이야기 2022-03/
03.02 선심 공약 무차별 난사 李, 제대로 기억이나 하는지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재건축·재개발 용적률을 500%까지 높이고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서울 부동산 공약을 내놓았다. 대출 규제를 완화하고 서울에 107만 호를 신속 공급하겠다는 말도 했다. 현재 서울 주택 수가 300여 만 호인데 어떻게 5년 안에 107만 호를 공급할 수 있나.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도 30만 호가 채 안 됐다. 법정 250%인 용적률을 500%까지 높일 경우 교통·교육·조망권 등 과밀 문제도 심각하게 제기될 것이다. 그가 앞서 발표한 ‘전국 311만 호 공급’ 공약만큼이나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 후보는 온갖 명목으로 돈 퍼주겠다는 선심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기본소득 100만원, 청년·농어민·문화예술인 기본소득 100만원, 기본 대출 1000만원, 역세권 기본주택, 다자녀 가정 50만원, 만 18세까지 아동수당, 일 못 할 때 상병(傷病) 수당, 탈모 치료제 지원, 소상공인 카드 수수료 인하, 농민 쌀값 부양, 대학생 학자금 대출 확대, 청년 면접 수당, 청소년 무료 생리대 지급 등 이루 헤아리기도 힘들다. 농어민에게 ‘햇빛·바람 연금’까지 주겠다고 했다. 포퓰리즘의 융단 폭격이라고 할 만하다. 소요 비용을 묻자 항목별 비용이나 재원 조달 계획은 제시하지도 않은 채 뭉뚱그려 ‘300조원’이라고 했다. 나랏빚은 어쩌냐고 하자 “기축 통화국이 될 가능성이 커서 부채를 늘려도 된다”고 했다.
이 후보는 소상공인·자영업자 빚을 세금으로 탕감해 주는 신용 대사면을 하겠다고 했다. 코로나 이후 빚만 따져도 150조원이 넘고 영업 손실까지 보전하려면 40조~50조원이 더 든다. 다른 직군과의 형평성 시비도 일 수 있다. 그런데도 일단 지르고 본다는 식이다. 그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과 기본소득을 밀어붙이다 여론이 나빠지자 “국민이 반대하면 안 하겠다”고 했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하겠다며 토지이득배당제를 하겠다더니 최근엔 양도세·취득세·종부세까지 깎아주겠다고 한다. 음식점 총량제, 주 4일 근무제를 꺼냈다가 슬그머니 뺐다. ‘화성행궁 공영주차장’ ‘기흥 호수 둘레길’ ‘여주 마을급식소’ 등 동네 민원과 아파트 단지별 공약까지 냈다. 그동안 무차별 난사한 공약들을 이 후보가 기억하고 있을지조차 의문스럽다.
조선일보 사설
03월 02일 갈등 부추기더니 선거 막판 내건 ‘통합정부’의 허구성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선거 막판에 연일 통합을 내세우고 있다. 1일에는 김동연 새로운물결 후보와 통합정부 구성에 합의하기도 했다. 누가 국민 통합에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이 후보가 보여온 계층·지역 등 갈등 부추기기 행태를 감안하면 허구에 가까운 얘기다. 이 후보는 지난해 11월 국토보유세를 공약하면서 “국민 90%는 내는 것보다 받는 것이 많다”고 했다. 노골적으로 국민을 많이 가진 10%와 덜 가진 90%로 갈라치기 하려는 의도다.
이 후보의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시기, 지역에 따라 수시로 달라진다. 2017년 대선 출마 때와 지난해 민주당 후보 경선 승리 이후 두 전직 대통령 묘소에 참배하지도 않았던 이 후보는 이번 대선 공식 선거운동 하루 전인 지난달 14일에야 처음 참배했다. 영남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산업화 업적을 평가하고, 호남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호남을 소외시켰다고 했다. 그러더니 고향 안동에 가서는 오히려 영남이 역차별당했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는 통합정부를 만들겠다며 분권형 대통령제와 책임총리 도입 등을 약속하는 개헌안까지 제시했다. 현 정권이 ‘1당 독재’ 비판까지 들을 정도로 입법·사법·행정 권력을 휘두르는 현실만 봐도 공허하게 들린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선거제도 개혁, 국회의원 3선 초과 연임금지 등도 제시했다. 국민은 2년 전 총선 때 민주당의 선거법 개악과 위성정당 창당을 잊지 않았다. 최근에도 송영길 대표가 3선 이상 불출마를 주장했으나 흐지부지됐다. 윤미향 의원 제명 약속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통합정부 주장이 반(反)윤석열 연대의 중심을 자임하며 안철수·심상정 지지표를 흡수하겠다는 얄팍한 전술로 비치는 이유다.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에게까지 손짓한 것을 봐도 그렇다.
문화일보 사설
03월 02일 남욱 “김만배, 李사건 뒤집히게 권순일에 부탁”…또 불거진 ‘재판거래’ 의혹

■ 檢, 지난해 10월 진술 확보
“權대법관에 50억 줘야한다 해”
녹취록 진위 규명·수사는 난항
‘대장동 특혜 개발 의혹’ 핵심 피의자인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경기지사 시절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무죄로 뒤집힐 수 있도록 대법관에게 부탁했다는 진술을 검찰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권순일 전 대법관의 ‘재판 거래’ 의혹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김 씨와 동업자인 정영학 회계사의 대화 녹취록에 권 전 대법관으로 추정되는 대법관에게 자문을 구하고 있다는 내용도 담겨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지만, 검찰은 녹취록 진위를 밝히는 데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해 10월 천화동인 4호 소유주인 남욱 변호사로부터 “이 후보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대법원에 들어가 권 전 대법관에게 부탁해 뒤집힐 수 있도록 역할을 했다고 (김만배 씨가) 말했다”
“(김 씨가) 2019년부터 권 전 대법관에게 50억 원을 줘야 한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영학 녹취록’에서도 김 씨는 정 씨와 2020년 3월 24일 판교의 한 커피숍에서 대장동 사업의 비용 정산 등을 논의하면서 “차등 배당은 나중에 시빗거리가 돼서 세무 정리를 해야 되겠지만, 내가 대법관한테랑 물어보니까 이것도 금액에 상한선이 없는 거고”라고 말했다. 이 녹취록에는 ‘대법관님’ 위에 자필로 ‘권순일’이라고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화가 오갔던 시기는 김 씨가 권 전 대법관을 만나기 위해 대법원을 드나들던 기간과 겹친다. 김 씨는 2020년 3월 5일부터 권 전 대법관이 퇴임한 그해 10월까지 7차례 ‘권순일 대법관실’을 방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권 전 대법관은 2020년 6월 이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의 무죄 파기 환송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재판 거래’ 의혹을 받고 있다. 아울러 대법관 임기를 마친 뒤 화천대유 고문으로 영입돼 고액의 고문료를 받아 ‘50억 클럽’ 중 한 명으로 거론됐다.
검찰은 남 변호사로부터 이 후보 사건이 무죄로 뒤집히도록 권 전 대법관에게 부탁했다는 중요한 진술을 확보하고도 권 전 대법관을 한 차례 조사하는 데 그쳤고, 이후 처리 방향도 내놓지 않고 있다. 특히, 녹취록에서 ‘그분’으로 언급되며 김 씨로부터 특혜를 받은 것으로 지목된 조재연 대법관이 이를 반박하는 구체적인 자료를 공개하면서 녹취록의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되는데도 수사는 여전히 답보 상태를 보이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진위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녹취록 내용으로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며 “검찰의 신속한 수사로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의혹이 불식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은지 기자 eun@munhwa.com
03.03 “김만배가 권순일에 李 무죄 부탁” 진술 듣고 5개월 뭉갠 검찰

▲권순일 전 대법관(왼쪽)과 김만배 화천대유 소유주. /조선일보 DB
대법원에서 이재명 재판의 판결이 뒤집힐 수 있도록 권순일 당시 대법관에게 부탁했다는 말을 장본인인 김만배씨에게서 들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김씨와 함께 대장동 사건의 주범으로 기소된 남욱씨가 작년 10월 서울중앙지검에서 진술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사법부의 신뢰와 존재 이유를 뿌리째 흔드는 내용이다. ‘정영학 녹취록’ 등 당시 김씨가 한 말 중엔 신뢰할 수 없는 내용도 많다. 하지만 다른 발언과 달리 남씨가 진술한 김씨의 발언은 이를 뒷받침하는 상당한 근거와 정황 증거가 나온 상태다. 그럼에도 5개월 동안 남씨의 이 중대한 진술은 공개되지 않았고 수사도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다.
김씨는 2019년 7월 16일부터 2020년 8월 21일까지 9차례 대법원을 방문했고 그중 8차례는 방문지를 ‘권순일 대법관실’로 적었다. 당시 김씨의 부동산 개발 회사 화천대유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주도한 대장동 사업에 참여해 수천억 원의 이익을 올리고 있었다. 이 지사 판결은 2020년 7월 16일 유죄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그 덕에 이 지사는 대선에 출마할 수 있었다. 이 무죄를 권 대법관이 주도했다는 언론 보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 유무죄 의견이 5대5로 갈린 상황에서 무죄 의견을 내 판결을 결정지은 대법관도 바로 그였다.
대법관을 퇴임한 권씨는 화천대유 고문으로 영입됐다. ‘정영학 녹취록’에는 김씨가 판결 문제만이 아니라 대장동 사업의 비용 정산과 수익 배분 방법 등 실무까지 권 대법관과 상의한 내용도 나온다고 한다. 대한민국 대법원에 대한 신뢰 전체가 무너질 판이다. 사법부 위신을 위해 앞장서 진상을 규명해야 할 김명수 대법원장은 침묵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은 법원 수뇌부가 판결에 간섭했다는 이유로 “사법 농단”이라며 대법원장을 비롯한 고위 법관 14명을 법정에 세우고 판사 66명을 비위 행위자로 낙인찍었다. 김만배, 권순일 사건이 전 정권에서 벌어졌다면 사법부를 뒤흔드는 거대 사건으로 비화했을 것이다. 이 의혹은 대장동 개발 비리보다 훨씬 중대한 사안이다. 돈 문제가 아니라 국기를 흔드는 사건이다. 그럼에도 진술이 나온 뒤 검찰은 작년 12월 권 전 대법관 소환 조사를 끝으로 이 사안에 대해선 수사하는 흉내조차 내지 않고 있다. 무서운 진실을 알기 때문인가.
조선일보 사설
03.03 安 “윤석열 지지” 尹 “그 뜻 받아 반드시 승리…성공적 국민통합정부 만들 것”
대선 후 합당 즉시 추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단일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손을 맞잡고 있다. 2022.3.3/뉴스1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3일 오전 후보 단일화를 선언했다. 이날 새벽 회동이 전격 성사되면서 단일화 합의에 이르렀다.
두 후보는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드는 시작으로서의 정권교체, 즉 ‘더 좋은 정권교체’를 위해 뜻을 모으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오늘 단일화 선언으로 완벽한 정권교체가 실현될 것임을 추호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뤄, 오직 국민의 뜻에 따라, 대한민국의 변화와 혁신을 위한 대전환의 시대를 준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또 “저희 두 사람은 원팀”이라며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꾸어주며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루고, 상호보완적으로 유능하고 준비된 행정부를 통해 반드시 성공한 정권을 만들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3일 오전 8시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조선일보
안 후보는 “대한민국의 미래와 국민통합정부의 성공을 위해, 두 사람은 국민들께 겸허하게 약속한다”면서 “저 안철수는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기로 했다”고 했다.
이에 안 후보에 옆에 서 있던 윤 후보는 “저 윤석열은 안철수 후보의 뜻을 받아 반드시 승리하여 함께 성공적인 국민통합정부를 반드시 만들고 성공시키겠다”고 했다.
이들은 대선 뒤 즉시 합당도 추진키로 했다.
03월 03일 ‘윗선 배임’ ‘재판 거래’ 수사 급하다

한석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란 법언이 있듯이, 수사의 신속성은 공정성과 함께 정의를 구현하는 두 날개다. ‘대장동 게이트’는, 지난해 9월 언론이 의혹을 제기하고 야당이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때부터, 성남시가 대장동 아파트지구 개발사업을 설계하면서 소수의 민간 업자에게 천문학적 이득을 챙겨준 시정농단 의혹을 철저히 수사하라는 것이다. 이 사업은 저위험 고수익 구조로 된 특혜사업이었다. 그 결과 성남 도시개발공사는 25억 원을 투자하고도 1822억 원만 배당받았고, 화천대유 등 민간 업자들은 3억5000만 원만 투자하고도 4000억 원 넘게 배당받았다.
따라서 사업 인·허가권자로서 사업설계에 관여한 성남시의 이재명 당시 시장 등의 공모 여부,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가 이재명의 대선 후보 출마에 기여하기 위해 권순일 전 대법관에게 이재명에 대한 경기도지사 선거법 위반사건이 2020년 7월 무죄 선고되도록 재판 거래한 커넥션 의혹 규명이 핵심 쟁점이었다. 그런데도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1월까지 유동규 전 도시개발공사 사장직무대리와 김만배,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변호사) 등 민간업자들만 배임죄 및 뇌물죄로 구속기소했을 뿐, 그 윗선의 공모 여부 등 핵심 쟁점에 대해서는 5개월이 넘도록 적극적 수사도 없고 수사 결론도 내리지 않고 있다.
그런데 최근 공개된 검찰의 수사 기록과 녹취록에 따르면, 남욱은 지난해 10월 검찰 조사에서 김만배가 ‘대법원에 들어가 권 대법관에게 부탁해 위 선거법 위반 사건이 뒤집힐 수 있도록 역할을 했다’고 말했고, 2019년부터 ‘권 대법관에게 50억 원을 줘야 한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김만배가 2020년 3월 동업자인 정영학과 대화하면서 ‘대법관에게 자문받고 있다’는 취지로 진술한 녹취록이나, 김만배가 위 선거법 위반 사건 선고 4개월여 전부터 7차례나 대법원을 방문했다는 법원 기록도 이에 부합하는 정황이다.
또한, 남욱은 지난해 10월 검찰에서 ‘제가 한국에 일찍 들어왔으면 (대선)후보가 바뀌었을 수도 있겠네요’라고 진술했고, 2014년 11월 녹취록에는 ‘4000억짜리 도둑질…이거 문제 되면 게이트 수준이 아니라 대한민국 도배할 것’이라고 말한 기록도 나온다. 도시개발공사 사장이었던 황무성은 민간업자들 방식과 달리 공사가 출자 비율에 따른 수익을 낼 수 있는 방안 등을 추진했는데, 성남시장이 공사의 고 유한기 본부장을 통해 자신의 사임을 종용했고, 그 사임으로 사장직무대리를 맡게 된 유동규는 민간업자들이 원하는 사업 방식으로 일사천리 진행했다고 진술하는 점도 이에 부합하는 정황이다.
복잡한 특검 수사도 통상 3개월 정도면 마무리되는데, 검찰이 이 정도 수사 자료가 확보됐는데도 5개월이 넘도록 당시 성남시 정책실장과 권 전 대법관을 한 차례씩 조사했을 뿐, 유동규 윗선의 배임공모 혐의와 권 씨의 재판 거래 혐의 수사에 적극 나서지 않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비록 전 성남시장이 여당 후보로 대선을 치르고 있어 그 조사는 대선 후로 미루더라도, 수사기관은 지금이라도 성남시나 법원 관계자 등에 대한 조사, 관련자에 대한 계좌추적 등 나머지 수사에 적극 나서서 국민의 의혹을 해소해 줘야 할 임무가 있다.
문화일보
03.04 尹 결단과 安 용단으로 단일화, 정권 교체 여론 따른 순리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단일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손을 맞잡고 있다./남강호 기자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사전 투표 시작을 하루 앞둔 3일 단일화에 합의했다. 윤 후보가 지난달 27일 “안 후보에게 결렬 통보를 받았다”고 공개하면서 사실상 단일화는 성사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는데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두 후보는 2일 마지막 TV 토론을 마친 후 심야 회동을 해 협상을 타결 지었다. 두 후보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드는 시작으로서의 정권 교체, 즉 더 좋은 정권 교체를 위해 뜻을 모으기로 했다”고 했다. “함께 정권을 준비하고 정부를 구성하며 선거 후 즉시 합당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윤, 안 두 후보는 모두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의 실정을 바로잡기 위한 정권 교체를 대선 출마의 가장 큰 명분으로 삼았다. 정책도 핵심 분야에서 공통점이 많다. 탈원전을 비롯해 마차가 말을 끈다는 지적을 받아온 소득 주도 성장, 규제 일변도로 집값 폭등을 가져온 부동산 정책 등 문 정부의 실정을 제자리로 돌려 놓겠다는 입장이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한 단호한 대처, 한미 동맹 다시 강화, 중국에 군사 주권을 내준 ‘3불 정책’ 폐기 등 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시각도 거의 일치했다. 수시 모집을 폐지하거나 줄이고 정시 모집을 확대해 ‘공정 입시’를 실현하겠다는 교육 공약도 비슷했다. 디지털 플랫폼 정부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한 공약도 큰 틀에서 차이가 없었다.
이번 대선에서 가장 확고한 흐름은 정권 교체를 바라는 여론이 언제나 50%를 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대선 운동이 시작된 작년 하반기 이후 지금까지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정권 교체론은 정권 유지론 보다 10%포인트 이상 앞섰다. 후보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유권자들의 대세가 정권 교체라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모두 정권 교체를 최우선으로 내세운 윤, 안 두 후보가 끝까지 따로 출마한다면 정권 교체가 아니라 그 반대로 정권 유지를 돕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통합 공동 정부 운영의 의지를 밝힌 윤 후보의 결단과 정권 교체를 위해 후보직을 사퇴한 안 후보의 용단 모두가 순리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윤 후보가 승리해 정권 교체가 이뤄진다면 두 사람이 국민 앞에 약속한 통합 공동 정부의 정신을 지켜 갈라지고 쪼개진 국민을 통합하고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아 국정을 정상화해야 한다. 그것이 정권 교체를 바라는 유권자들의 뜻이다.
조선일보 사설
03.04 대장동 일당들이 주고받은 “청와대” 운운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왼쪽)과 화천대유 소유주 김만배씨.
대장동 특혜·비리로 기소된 김만배씨가 공범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에게 “이재명이 대통령 돼도 너는 청와대나 권력기관 가지 말고 LH(한국토지주택공사)나 인천공항공사, 강원랜드 사장 가라”고 했다고 한다. 김씨가 자신이 유씨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대장동 일당인 정영학 회계사에게 전했는데 그 내용이 정 회계사의 녹취록에서 확인된 것이다.
김씨가 ‘이재명 대통령’을 언급한 녹취록은 2020년 7월 6일 자인데, 이날은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가 대법원에서 선거법 위반 무죄 판결을 받기 무려 열흘 전이다. 그런데도 김씨는 이 후보가 무죄를 받을 것을 미리 안 것처럼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처럼 말하고 있다. 당시 이 후보는 TV 토론에서 거짓말을 해 항소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이대로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지사직을 잃는 것은 물론 대선에도 나올 수 없었다.
대법원은 사실관계는 하급심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법률 적용에 문제가 없는지만 살피기 때문에 이 후보 사건이 무죄로 뒤집힌다고 예상하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대법원이 무죄로 뒤집었고 한국에서는 TV 토론에서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기막힌 판례를 만들었다. 이 기이한 일은 김씨가 오랜 지인인 권순일 당시 대법관과 ‘거래’를 한 결과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김씨가 어떻게 대법원 판결 결과를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할 수 있었겠나. 재판 거래 의혹을 뒷받침하는 근거나 정황은 잇달아 나오고 있다.
김씨가 ‘이재명 대통령’ 당선을 전제로 유씨에게 토지주택공사 사장 자리를 권한 것도 놀랍다. 토지주택공사는 신도시 개발 등 대형 부동산 사업을 추진하는 공기업이다. 작년 소속 직원들이 내부 정보를 빼돌려 집단 투기를 했다가 적발돼 ‘LH 사태’를 일으킨 곳이다. 이런 곳에 유씨 같은 사람이 사장으로 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후보는 “윤석열 후보가 몸통”이라고 얼토당토않은 덮어씌우기를 한다. 국민을 어떻게 보는 건가. 이 후보는 “대선 후에도 특검을 하고 대통령이 돼서도 책임지자”라고도 한다. 특검을 못 하게 막다가 특검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지나자 그때부터 “특검하자”고 해온 사람들이 누군가.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이 사건 전모를 밝히고 책임자를 엄벌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3.04 우리가 바로 그 국민입니다
정의 참칭한 문 정권 5년… ‘진보 귀족’이 국민 갈라치기
상처입은 마음 치유는 상식과 공정 회복이 첫걸음
자신과 후세를 위한 역사의 결정적 순간이 왔다
‘문재인 정권 5년’은 배반의 계절이었습니다. 정의를 참칭한 ‘진보 귀족들’의 불의(不義)가 국민을 괴롭혔습니다. 2017년 5월 10일의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는 빼어난 미문(美文)입니다. 하지만 20대 대선을 앞두고 그 취임사를 다시 읽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대통령의 말과 행동이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문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지만 5년 내내 ‘분열과 갈등의 정치’로 일관했습니다. 집권 세력의 국민 갈라치기가 한국 사회를 심리적 내전 상태에 빠트렸습니다.
문 대통령은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고 권력기관은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다”고 공언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 권력은 더 커졌습니다. 권력기관이 청와대에 완전히 종속되자 초법적(超法的) 특권층이 발호했습니다. 조국 사태와 울산 시장 부정선거는 빙산의 일각입니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하겠다”는 공약은 극단적 편향(偏向) 인사로 타락했습니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고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다”는 약속은 허공에 증발했습니다. 집권 세력은 잘못을 인정하는 법이 없었고 불리한 여론은 거짓으로 덮었습니다. 국민의 마음을 의심암귀(疑心暗鬼)의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권력의 위선과 무능에 국민은 질리고 말았습니다. 천문학적인 돈을 뿌려도 민생은 파탄 상태입니다. 어용 언론과 시민단체의 ‘프로파간다 머신’(선전선동 기관)이 총출동했어도 여론은 냉담합니다. 집권 세력은 이번 대선을 최악의 진흙탕 싸움으로 만들어 정치 혐오를 부추깁니다. ‘민나 도로보데스’(모두가 도둑놈!)의 환멸 심리를 키워 ‘대장동 도둑 정치’의 설계자이자 인허가권자인 여당 후보를 엄호하고 정권 심판론을 희석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럼에도 정권 교체 여론이 정권 유지 여론을 압도합니다. 한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권력의 위선과 오만방자함이기 때문입니다. 분노한 민심에 놀란 대통령이 자기 스스로 성역화(聖域化)한 탈원전을 공개 부인하고 입법 독재를 일삼던 여당은 만장일치로 국민통합정부를 결의합니다. 성난 민심 앞에 권력이 엎드렸습니다. 그러나 5년 난정(亂政)에 지친 국민은 집권 세력의 개과천선 시늉을 믿지 않습니다. 정치인들의 상습적 거짓말을 ‘종이 짱돌’(투표용지)로 징벌하려는 결의를 다집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빚은 세계사적 위기는 모래성 같은 문 정권 외교안보의 실체를 폭로합니다. ‘동북아 평화 구조를 정착시켜 한반도 긴장 완화의 전기를 마련하겠다’며 중국과 북한에 굽신거린 대가는 참담합니다. 북한은 핵 장착 가능한 미사일을 수시로 발사해 한국을 핵 인질 취급합니다. 신(新)중화주의 패권국 중국은 ‘한국의 핀란드화’를 유도해 우리를 속방(屬邦)으로 길들입니다. 정권의 굴종 외교로 후진적 전체주의 국가 중국과 북한이 선진국 한국을 능멸할 때 국민은 분노합니다.
유라시아 대륙 맹주로서 서양과 겨루려는 푸틴은 대(大)유라시아주의를 앞세워 ‘동족’ 우크라이나를 침략했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영웅적 저항에 부딪히자 반인륜적 대량 살상 무기를 난사하고 서방을 핵무기로 위협합니다. 2021년 노동당 규약에 ‘국방력을 통한 조국 통일’을 명기한 김정은은 푸틴의 핵 협박이 먹히는지 응시합니다. ‘한반도는 원래 중국 역사의 일부였다’며 한국인을 모욕한 시진핑은 우크라이나 침략을 미국이 용인하는지 주시하고 있습니다. 신중화주의와 유라시아주의, 주체사상을 믿는 과대망상 독재자들의 핵무기가 포위하고 있는 한반도는 집권 세력이 맹신하는 당위적 평화주의의 허구성을 증언합니다. 누구도 얕보지 못할 강력한 국방력과 굳건한 동맹 관계로 조국(patria)을 지키는 자유 시민들은 ‘전쟁광’이기는커녕 진짜 평화의 수호자입니다. 난세(亂世)의 평화는 무장 평화입니다.
천하 대란을 뚫고 대한민국이 미래로 나아가려면 상처 입은 국민의 마음을 치유해야 합니다. 사회적 신뢰와 상식을 회복하고 정의와 공정을 되살리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국정 실패 세력을 국민이 응징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평적 정권 교체로 썩은 물을 갈아줘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적 책임 정치의 척도입니다. 오늘은 20대 대선 사전투표일입니다. 우리 자신과 후세(後世)를 위해 준엄한 ‘종이 짱돌’을 던지는 날입니다. 역사의 결정적 순간입니다. 투표는 주권자인 국민의 장엄한 존재 증명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정치철학
03월 04일 安에 러브콜 하더니 돌변하고 ‘식물대통령’ 겁박한 與
윤석열·안철수 후보 단일화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공당이라면 최소한의 일관성과 품격을 갖춰야 한다. 민주당은 중도층 지지세가 강한 안 후보와의 협력을 염두에 두고 정치개혁안을 내고, 심야 의원총회까지 했다. 단일화 하루 전인 지난 2일 마지막 TV토론에서도 이재명 후보는 안 후보에게 함께하고 싶다며 러브콜을 보냈다. 그러더니 단일화 합의가 발표되자마자 “자리 나눠먹기 야합”이라며 비난하고 “안철수는 단군 이래 최악의 거짓말쟁이”라는 저주까지 퍼부었다.
이런 돌변도 문제지만, 내가 하면 통합이고 남이 하면 야합이라는 이중 잣대도 국민의 정치 혐오를 부추긴다. 이 후보도 김동연 새로운물결 후보와 단일화를 했다. 이에 대해선 “이·김은 가치와 철학을 공유했고, 윤·안은 이익에 따랐다”고 주장한다. 김 후보야 문 정권 소속이었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이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조원진 후보에게도 함께하자고 직접 요청했다. 거기에 무슨 가치와 철학이 있나. 민주당은 다당제가 정치개혁의 요체라고 했지만 열린민주당과 합쳤다. 기득권 타파를 내세웠지만 586 중진 정치인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용퇴하지 않았고, 윤미향 의원 제명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윤·안 단일화 직후 “지금 국민의힘은 105석(실제론 106석+국민의당 3석)에 불과하고 민주당은 172석”이라면서 “(윤 후보가 당선돼도) 식물대통령”이라고 했다. 같은 날 이 후보는 “정치는 정치인이 아닌 국민이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송 대표는 대선에서 패하면 민의에 불복하겠다는 대국민 협박까지 하는 셈이다.
문화일보 사설
03.05 “무능한 시민단체 출신에 중책 맡겨 실패 자초” 與 내부서도 자성론
“우리가 적폐청산 대상으로 전락한 현실이 통탄스럽다”

▲정국교 전 의원. /정국교 페이스북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국민들께 사죄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자성론이 나왔다.
김부겸계로 분류되는 정국교 전 민주당 의원은 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권력 욕심, 돈 욕심 많은 무능한 시민단체 출신 선생들에게 국가의 중책을 맡겨 정책 실패를 자초하였고, 이들을 가리켜 ‘사슴을 말’ 이라 두둔하여 신망을 잃었다”고 했다. 정국교 전 의원은 현재 민주당 선대위 미래경제단 단장을 맡고 있다.
정 전 의원은 “세 번의 선거 승리에 도취하여, 내 편에는 춘풍(春風)이었고 다른 편에는 (추상)秋霜이었던 내로남불로 국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라며 “(검찰총장 청문회 당시) 윤석열 후보와 가족들의 의혹을 감싸며 ‘우리 총장님’ 이라 칭송하여 스스로 발등을 찍었다”라고 했다.
이어 “20여년 권력을 누린 무능한 586들은 국민을 갈라쳐서 기득권 세력이 되었으며, 기대했던 신인 정치인들은 시고 떫었다”라며 “53% 넘는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 헌정사 최초로 국회와 국민의 탄핵을 받은 무능하거나 부패했던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주역들에게 정권교체의 명분을 만들어 주고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전락한 현실이 통탄스럽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 전 의원은 “염치를 불구하고, 국민들께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실 것을 호소드린다”라고 했다.
정 전 의원은 지난달에는 이재명 후보가 TV 토론회에서 ‘우리가 곧 기축통화국으로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고 발언한 것과 관련 “사실을 잘못 알고 말을 했으면 인정하고 사과하면 된다. 굳이 억지와 강변으로 국민을 현혹하려 하면 반감만 키우게 된다”라고 소신 발언을 했었다.
정 전 의원은 기축통화국 발언을 옹호하는 자당 인사들을 향해 “여야를 막론하고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답하지 않으면 배신자가 되는 시절”이라며 “손학규 (전) 대표, 김부겸 총리, 정세균 (전) 총리 님 등 경륜과 지식, 도덕성, 인품을 모두 갖추신 고매한 선배님들에게 정치를 배운 저는 오늘 이런 정치의 계절이 참으로 허무하고 답답하다”라고 했다.
조선일보 김명일 기자
03.06 “왜 내가 투표함 못넣나” “1번 찍힌 용지 뭐냐” 확진자 투표 항의 빗발
기표한 투표지, 밀봉도 하지않고 보조원 받아서 운반
쇼핑백, 골판지 상자, 플라스틱 바구니로 운반한 곳도
온라인선 ‘투표혼란상 인증샷’ 쏟아져
선관위 “확진자 투표 인원 많아 혼란 있었다”
김웅 “선관위 사무총장, 시민 항의를 ‘난동‘이라 불렀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둘째 날인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주민센터 사전투표소 내 임시기표소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사전투표지를 전달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미리 찍어놓은 이 투표용지는 도대체 뭐냐고요!” (40대 여성 유권자)
”저도 잘 모르겠어요.” (30대 남성 투표 보조원)
“모른다고? 그게 말이예요? 내 투표용지는 내가 직접 들고 들어가서 투표함에 넣어야겠어요.” (유권자)
“안됩니다. 저한테 맡기시고 돌아가셔야 합니다.” (보조원)
“안되긴 뭐가 안돼요. 제가 뭘 믿고 그쪽에게 제 표를 맡겨요, 봉투 밀봉도 안해서 뻔히 열고 다니면서…” (유권자)
“선관위 직원 나오라해요!” (다른 남성 유권자)
5일 오후 5시30분쯤 서울 은평구 신사1동 주민센터 코로나 확진자·격리자 투표소에서는 이런 고성이 오간 끝에 대기 행렬에서 기다리던 유권자 열댓명이 투표를 거부하고 귀가했다. 이 투표소에서는 확진자의 경우 야외 임시 기표소에서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한 뒤, 빈 봉투에 담아 보조원에게 전달하면, 보조원이 혼자 이를 들고 실내로 들어가 투표함에 넣기로 했는데, 한 40대 여성 유권자가 자신의 투표용지를 넣을 봉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기표된 용지 1장이 이미 들어있는 것을 발견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5일 오후 서울 은평구 신사1동 투표소 확진자 임시기표소에서 40대 유권자가 자신의 투표용지(맨밑장)를 담을 봉투(가운데) 속에서 '1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기표된 투표용지(맨윗장)를 발견했다. 이 일로 기다리던 유권자 열댓명이 항의 끝에 투표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봉투를 들고온 보조원은 "나는 모른다"는 말만 반복했다. /독자제공
이처럼 이날 진행된 제 20대 대통령 선거 코로나 확진자 사전투표가 전국 곳곳의 현장에서 대혼란을 빚었다. 신사1동에서는 ‘봉투’를 이용했지만, 어떤 투표소에서는 종이쇼핑백이, 어떤 투표소에서는 골판지 상자가 등장했다. 봉투에 유권자 이름을 적어서 걷어간 투표소도 있었다. 여기저기서 고성을 동반한 항의가 발생했고, 인천 등에서는 투표가 중단되는 상황까지 빚어졌다.
◇기표한 투표지, 열린 봉투나 바구니, 쇼핑백으로 날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번 선거를 앞두고 발표한 ‘제20대 대선 투표관리 특별대책’에 따르면 확진·격리 유권자들은 투표 현장에서 선거사무보조원에게 신분을 확인받은 뒤 투표용지 1장과 임시기표소 봉투 1장을 배부 받는다. 이후 전용 임시 기표소에 들어가 기표한 뒤, 용지를 미리 받은 빈 봉투에 넣어 보조원에게 전달한다. 보조원은 참관인 입회 하에 봉투에서 투표지가 공개되지 않도록 꺼내 투표함에 넣어야한다.
그러나 실제 현장은 이런 매뉴얼과는 전혀 달랐다. 은평구 신사1동을 비롯한 여러 기표소에서 보조원이 참관인 없이 혼자 돌아다니며 투표용지를 건냈고, 기표된 표를 들고 다녔다. 다른 지역에서는 여러 명의 봉투를 한꺼번에 수거하거나, 종이봉투에 담아 야외에 방치하는 등의 주먹구구식 진행이 발생했다.
‘봉투’도 현장에선 ‘쇼핑백’, ‘구멍뚫은 골판지 상자’ ‘플라스틱 바구니‘ 등으로 제멋대로 운용됐다. 전주 덕진구 농촌진흥청 등 일부 투표소에선 봉투에 유권자 이름을 적어서 표를 담았다. 곳곳에서 유권자들이 “투표함을 가지고 오면 직접 넣겠다” “봉투를 봉할 수 있는 풀이나 스테이플러를 가져다 달라”고 소리쳤다. 보조원들은 “우리는 선관위가 하라는 대로 절차에 따라 한다”며 거부했다.

▲온라인커뮤니티 이용자들이 확진자 투표 부실 실태를 고발하며 온라인에 올린 사진들. 선관위도 "각 투표소에 유권자가 기표한 투표용지를 봉투나 상자, 바구니에 담아 옮기도록 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온라인에 쏟아진 부실 투표 인증샷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에는 이런 사태를 고발하는 ‘인증샷’이 넘쳐나고 있다. “부정투표” 주장도 수없이 올라온다. 한 네티즌은 투표함이 있는 공간은 CCTV조차 없었다며 “내 표가 어떻게 될지 알고 맡기느냐”고 주장했다. 선관위는 ‘참관인 입회 하에 투표함에 용지를 넣는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거법은 ‘선거인은 기표한 후 그 자리에서 기표내용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게 접어 투표참관인 앞에서 투표함에 넣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유권자들 증언대로라면 투표소 여러 곳에서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는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기표하지 않은 투표용지가 야외에 방치돼 바람에 날아다니는 모습도 찍혔다. 이를 선관위 고위 관계자는 “확진자들이 직접 투표함에 넣겠다고 ‘난동’을 부리다 인쇄된 투표용지를 두고 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전북 전주 덕진구 한 투표장에서 선관위 관계자가 “사람이 몰려 혼란이 있으니 구별하기 위해 투표용지 뒤에 이름을 쓰라”고 한 일도 있었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김모씨는 조선닷컴에 “사람들이 항의하자 관계자는 그제야 ‘혼란스러워 선거법위반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며 “당시 현장에 남아있던 사람들에 한해 무효표 처리한 뒤 재투표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선관위 내부 전산 시스템에도 각지에서 올라온 불미 사태 보고가 줄을 이은 것으로 알려졌다. 선관위 홍보 담당 관계자는 “유권자가 기표한 투표용지를 바구니나 상자에 담아 정식 투표함까지 옮기도록 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중요한 것은 그 이동 과정을 참관인이 지켜보도록 했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참관인 없이 투표 보조원 1명이 표를 운반하는 모습이 발견됐다. 선관위 관계자는 “확진자 투표 인원이 많아 일부에서 혼란스러움이 있었던 것 같다”며 “정확한 상황을 파악 중”이라고 했다.
◇선관위, 투표지 직접 투표함 넣으려던 시민에 “난동 부린다”
하지만 공식 홍보 담당의 이 같은 해명과 달리, 선관위 고위 간부는 유권자의 선거법 준수 요구 항의를 ‘난동’이라고 표현했다. 이날밤 야당이 중앙선관위를 항의방문, 김세환 선관위 사무총장을 면담했다. 김웅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방문을 마친 뒤 면담 내용을 정리해 올렸다.
면담에서 의원들이 ‘기표하지 않은 투표용지가 야외에 방치돼 바람에 날아다니는 모습’에 대해 항의하자, 김세환 선관위 사무총장은 “확진자들이 직접 투표함에 넣겠다고 ‘난동’을 부리다 인쇄된 투표용지를 두고 간 것 같다”고 설명했다고 김 의원은 전했다. ‘공직선거법 지키라고 한 국민보고 난동이라고 표현했나’라는 항의에도 사무총장은 “그렇다”고 답했다고 했다.
03월 06일 ‘투표함 1개’ 보완책이 소쿠리? 비닐팩?… 선거관리 참사

▲ [사전투표] 선관위가 비치한 확진자용 투표용지 수거박스 (부산=연합뉴스) 사전투표 마지막 날인 5일 부산 해운대구 한 사전투표소 측이 준비한 확진자·격리자용 투표용지 종이박스. 2022.3.5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마스크 내려 얼굴 확인 못해…‘확인서’ 요구하며 장시간 대기 유발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5일 코로나19 확진·격리자를 위한 별도 투표함을 마련하지 못한 것은 관련 법령 때문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공직선거법 151조 2항은 ‘하나의 선거에 관한 투표에 있어서 투표구마다 선거구별로 동시에 2개의 투표함을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선관위는 확진자의 투표용지를 비닐 팩이나 종이 상자, 플라스틱 소쿠리 등에 담아 투표소마다 단 하나만 설치된 투표함으로 옮기려다 논란을 빚은 것이다.
이 같은 문제는 확진자와 비확진자의 사전 투표가 동시에 진행된 데서 비롯됐다.
앞서 선관위는 지난달 25일 발표한 확진자 투표 관리 특별 대책을 통해 본투표 시 확진자 투표를 오후 6시부터 7시 30분까지로 일반 투표와 분리했다.
그러나 확진자 사전투표의 경우 5일 하루로 지정하면서, 일반 투표와 시간을 분리하지 않았다.
선관위가 동시에 2개의 투표함을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한 법 조항을 인식했다면, 애초 별도의 대책을 마련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표 현장에서 신분증이나 지문 스캔 대신 ‘본인 여부 확인서’로 확진자 신원을 확인하면서 장시간 대기로 불편을 겪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는 확진자와 비확진자 투표시간 분리로 ‘투표함 논란’의 소지가 없는 본투표 당일에도 재현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 확진자는 마스크를 내리고 얼굴을 확인할 수 없어 불가피하게 확인서를 요구했다는 것이 선관위 측 입장으로 전해졌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통화에서 “선관위가 확진자 투표 대책 자체를 늦게 발표해 법을 개정할 여지가 없었다”며 “노정희 선관위원장이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문화일보
03.07 21세기 한국 맞나, 與 편향 선관위가 부른 투표 관리 大亂
대선 사전투표 이틀째인 5일 코로나 확진·격리자 투표 부실 관리로 대혼란이 빚어졌다. 투표용지를 라면 박스, 비닐 쇼핑백에 모아 투표함으로 이동하는 장면들이 전국 투표소에서 벌어졌다. 각 당 참관인들이 없는 상태에서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는 경우도 빈번했다고 한다. 유권자들이 “내 표가 제대로 투표함에 들어간 게 맞냐”, “표를 어디로 빼돌리려는 것 아니냐”며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선관위는 확진·격리자들이 투표한 용지를 사무원들에게 전달하면 이들이 대신 투표함에 넣도록 했다. 확진자와 비확진자 간 접촉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하지만 직접·비밀투표 원칙이 침해될 소지가 다분했다. 그리고 이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특정 후보에게 이미 기표된 투표용지가 유권자들에게 배부되는 사태도 벌어졌다. 서울 은평에선 민주당 이재명 후보로 기표된 용지를 받았다는 유권자가 3명, 부산 연제에선 이 후보 또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로 기표된 용지를 받았다는 유권자가 6명 나왔다. 가로나 세로로 접힌 자국도 선명했다고 한다.
선관위는 투표소 1곳당 확진·격리자는 20명 안팎이 올 것이며 1인당 투표 시간 5분을 잡아 1시간 안에 투표를 마친다는 시나리오에 맞춰 준비했다고 한다. 하루 20만명 이상씩 쏟아져 나오는 확진자들이 투표소별로 같은 비율일 것이라는 추측에 기댄 것이다. 그러나 일부 투표소에선 이보다 몇 배 인원이 몰려들면서 추운 날씨 속에 떨며 몇 시간씩 기다리거나 투표를 포기하고 돌아가는 사례도 있었다.
선관위는 “사전투표에 불편을 드려 매우 안타깝고 송구하다”면서도 “절대 부정의 소지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선거 결과가 초박빙으로 갈릴 경우 확진자 사전투표를 둘러싼 불복 시비가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9명이 정원인 선관위원은 현재 7명만 재직 중인데 이 중 6명이 친여 성향이다. 문재인 대통령 뜻으로 임기 연장을 시도하던 문 캠프 출신 조해주 전 상임위원은 지난달 내부 직원들 반발에 밀려 사퇴했는데 이 자리는 계속 공석이다. 야당 몫 선관위원 자리 하나는 여당 반대 속에 대선 전 선임이 무산됐다.
편향적으로 구성된 선관위는 선거 때마다 노골적으로 여당 편을 들며 사실상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어떻게 하면 여당에 유리한 선거판을 만들 것인지만 고민하던 선관위가 정말 중요한 민주 선거의 기본과 유권자 권리에는 완전히 손 놓고 있었던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사전투표 대란이 벌어진 5일 노정희 위원장은 출근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일보 사설
03-07 대법원, 선관위서 모두 정치 편향 결정한 노정희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14일 중앙선관위 과천청사에서 제20대 대통령 선거 공식 선거운동 시작을 하루 앞두고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앙선관위가 이재명 후보의 선거공보물에 허위 사실이 게재됐다는 야당의 이의 제기를 인정하지 않았다. 문제가 된 공보물은 ‘검사 사칭’ 전과와 관련된 이 후보의 소명이다. ‘이 후보가 범죄를 공모했다’는 법원 판결과 달리 이 후보는 공보물에서 ‘방송 PD가 인터뷰하던 중 담당 검사 이름과 사건 중요 사항을 물어 알려줬는데 법정 다툼 끝에 결국 검사 사칭을 도운 것으로 판결됐다’고 주장했다. 선관위는 공보물이 ‘객관적 내용을 쓴 게 아니라 개인 의견을 쓴 것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다. 이런 논리라면 음주운전 전과에 대해서도 “술을 안 마셨는데 음주 단속에 걸렸다”고 해도 된다는 뜻이다.
노정희 선관위원장은 이재명 공직선거법 재판 당시 대법원 주심을 맡아 2020년 무죄 취지 판결을 주도했다. 이 후보 측 변호사와의 관계 때문에 애당초 주심을 맡아선 안 되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무죄 판결을 내린 기소 내용 중 하나가 바로 지방선거 당시 이 후보가 ‘검사 사칭’ 전과에 대해 누명을 썼다는 취지로 말한 허위 사실 공표 혐의였다. “허위 사실을 주장한 것이라기보다 자신의 입장에서 유죄 판결이 ‘억울하다’는 의견을 표현한 것”이라며 최종 면죄부를 줬다. 노 대법관은 선거관리위원장에 임명돼 다시 같은 논리로 이 후보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다. 이것을 우연이라고 할 수 있나.
노 위원장은 대법관 임명 때부터 자질 논란이 있었다. 좌파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기 때문에 대법관에 올랐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주심을 맡은 대법원 판결이 하급심에서 뒤집히는 이례적인 일이 있었다. 법 조문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재판해 망신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문책을 받지 않았고 ‘대한민국 5부 요인’으로 꼽히는 선관위원장까지 올랐다. 전임이 지금 대장동 일당과 ‘재판 거래’ 의심을 받고 있는 권 전 대법관이다. 선관위원장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 때 노 대법관은 다른 선관위원 후보자 답변을 그대로 베낀 답변서를 제출해 대한민국 사법부 전체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특히 선관위 정책 관련 질문 63건에 대한 답변을 거의 베꼈다고 한다. 오늘의 선거 혼란은 온갖 무리를 하면서 그에게 중책을 맡길 때부터 예상된 일이다. 선거 막바지에 선관위가 내리는 결정을 보니 무리한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조선일보 사설
03.07 여름 한 철 사는 매미가 정치권에 가득하다
1800조 넘는 가계빚에 국가부채마저 지금처럼 늘면
10년 이내 외환위기 수십배 경제 변고 닥친다
혹독한 겨울 오는 줄 모르는 포퓰리즘 정치인 근절해야
2010년 그리스가 국가 부도로 무너졌을 때 아테네대학의 하치스 교수는 다음과 같이 한탄했다. “그리스는 1980년까지 일본보다 성장이 양호하고, 국가 부채도 GDP의 22%에 불과한 건실한 나라였다. 그런데 1981년 파판드레우라는 사회당 총리가 최저임금 인상, 무상 의료, 연금 수령액 인상, 공무원 증원 등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면서 장기 집권에 성공하자, 보수 야당도 포퓰리즘 경쟁에 뛰어들면서 파탄의 길로 갔다. 여야 할 것 없이 나라 곳간을 활짝 연 결과 국가 부채가 GDP의 100%를 넘으면서 재정이 붕괴하고 국민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10여 년 전 이 이야기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대부분 남의 나라 이야기로 치부하였다. 하지만 2년 전 총선에서 여권이 전 국민 재난지원금 덕택에 압승했을 때부터 더 이상 남 이야기가 아니었다. 당시 수도권에서 낙마한 야당 정치인이 ‘이번 선거에서 포퓰리즘을 이길 유일한 방법은 더 큰 포퓰리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할 정도로 포퓰리즘이 다가왔고, 결국 이번 대선에서 거스를 수 없는 추세로 뿌리내리고 있다.
재난지원금을 두고 여야가 35조니, 50조니 금액 경쟁을 벌이고,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1월에 추경을 편성하는가 하면, 대선 공약에서는 국민에게 돈 나눠주고, 빚도 갚아주겠다는 식의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
포퓰리즘의 대부분은 여권에서 먼저 불을 지폈다. 이들은 우리 국가 부채가 외국보다 낮은 수준이니까 문제없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국채를 많이 발행하면 나라는 어떤 식으로든 내상을 입게 마련이다. 최악은 국가 부도다. 갚을 능력보다 국채가 많아지면 그 국채는 아무도 안 산다. 기축통화가 아니면 더욱 그렇다. 결국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살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돈 가치가 떨어지면서 물가가 오르고 외국 자본이 떠난다. 달러가 없으니 환율은 치솟고, 석유·곡물·의약품 같은 생필품마저 수입이 어려워지서 물가는 폭등하고, 국민 생활은 쑥대밭이 된다.
이론적 이야기가 아니고 실제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났다. 지금은 최고 우량국인 독일마저도 과다 국채 발행으로 1913년부터 10년간 물가가 100조% 오르면서 파탄 났고, 러시아는 1992년 한 해 2000% 넘는 인플레로 무너졌다. 이 외에도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아일랜드, 그리스 등 사례는 수없이 많다. 우리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국채가 과다하면 국가 부도까지는 안 가더라도 경제는 큰 타격을 받는다. 이자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금년 들어 국채 10년물 금리는 작년 말 2.25%에서 불과 두 달 만에 2.6%대로 뛰었다. 추경 편성과 향후 예상되는 재정 적자 때문이다. 금리가 오르면 기업 투자 위축은 차치하고, 당장 1800조원이 넘는 가계 부채가 뇌관이다. 금리가 1%만 올라도 추가로 내야 할 이자가 18조원이 넘는다. 시중금리가 벌써 5%를 넘어 계속 오를 추세라서 900조원이 넘는 빚을 진 자영업자, 소득보다 많은 빚을 ‘영끌’한 청년 세대의 피해가 우려된다.
국가 부채에 따른 위기는 먼 훗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가계 부채가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국가 부채가 지금 추세로 늘어나면 10년 이내에 과거 외환 위기의 수십 배나 되는 큰 변고가 올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인식은 참 안일하다. 특히 여권이 예산을 아끼려는 경제부총리에게 “국가 부채 좀 늘면 어때?” “감히 임명직이 말을 안 듣는다” “기재부를 해체하겠다”는 등 겁박하는 모습은 도를 넘었다.
2005년경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기획예산처 예산실 간부들을 청와대로 불러 격려해 준 적이 있다. 당시 어떤 간부가 “예산 편성 때 정치인과 이익 단체의 압력이 너무 심해 힘들다”고 말하니까, 노 대통령은 “내가 바람막이가 되어 줄 테니 소신껏 하라”고 말했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은 예산실 직원 전체를 청와대 오찬에 초청해서 다음과 같이 격려했다. “자기 돈도 아닌데 국가 예산을 이렇게 알뜰하게 쓰는 여러분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다.” 지금 정치 지도자들과 비교하면 격이 다르다.
중국 옛말에 “매미는 눈 내리는 겨울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여름 한 철 치열하게 살다가 죽으니 혹독한 겨울을 모른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 정치권이 이런 매미들로 가득 차 있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리스의 파판드레우 전 총리 같은 왕매미가 이 땅에 발붙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
03.07 누구보다 조마조마할 文 대통령
엄정중립 외쳤던 文 대통령, 與 편들며 대놓고 선거 개입
정권연장·정권교체 대충돌… 대선은 文정부 최종평가
대선 초반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에 고전한 데는 친문(親文) 분열도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 후보를 마뜩잖아한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친문 핵심들은 경선에서 이 후보 대신 이낙연 전 총리를 도왔다. 이 후보는 부동산 정책을 필두로 문재인과의 차별화에 나섰고, 이재명 지지층들은 강성 친문들을 ‘수박’ ‘똥파리’로 부르며 거친 태도를 보였다. 친문 분열로 이 후보 지지율은 문 대통령 지지율보다 항상 낮았다.
‘엄정 중립’을 외쳤던 문 대통령이 결국 움직였다. 윤 후보의 ‘적폐 청산 수사’ 발언에 문 대통령은 “분노를 표한다”며 제1야당 후보에게 전면전을 선포했다. 이때부터 대통령 지지율에 못 미쳤던 이 후보 지지율이 움직였고, 이 후보는 “문재인을 지켜달라” “노무현의 비극을 재현할 건가”라며 친문·친노에 매달렸다. 대장동 때문에 이 후보가 감옥 갈 것이라고 했던 여당 중진은 “참 억울했겠다”며 180도 태세를 전환했다.
선거에 발을 들인 문 대통령은 거칠 게 없었다. 추경에 대해 “속도가 중요하다”며 자영업자들에게 대선 전 300만원지급을 독촉해 자영업자 표심을 흔들었다. 과학적 기준도 없이 거리 두기를 풀어준 것은 자영업자를 염두에 둔 정치 방역이다. ‘광주 쇼핑몰’을 기화로 호남의 ‘민주당 카르텔’에 대한 비판론이 커지자 문 대통령은 전북 군산을 찾아 “우리 정부가 함께했다는 걸 기억해달라”고 했다. 탈원전 비판론이 거세자 “향후 60여 년 원전을 주력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무마에 나섰다. 탈원전으로 한전이 대규모 적자를 봤지만 전기료 인상은 대선 이후로 미뤘다.
중립 내각을 구성했던 전직 대통령들과 달리, 문 대통령은 행안부, 법무부 장관 등 선거 주무장관에 친문 정치인을 앉혔다. 선관위원까지 친여(親與) 인사로 앉히려 하더니, 확진자 투표장에서는 직접·비밀투표 원칙까지 무시하는 ‘사전투표 참사’가 벌어졌다. 정부의 무능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북한의 미사일 연쇄 도발로 안보 불안이 커지자 청와대는 “문재인 정부는 ‘평화를 뒷받침하는 강한 국방’에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비공개 석상에서 “열린우리당에 표를 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 하고 싶다”고 말했다가 탄핵 소추까지 당했다. 비교해 보면 문 대통령의 선거 개입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문 대통령의 대담함은 40%를 웃도는 지지율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지지율보다 훨씬 높은 정권 교체 여론은 우여곡절 끝에 야권 후보 단일화로 이어졌다. 결국 문 대통령의 선거 개입과 정권 교체 여론은 이번 대선을 ‘이재명 대 윤석열’의 구도가 아니라 ‘문재인 대 윤석열’, 정권 연장과 정권 교체의 한판 대결로 만들어 버렸다. 정권 연장은 기호 1번, 정권 심판은 기호 2번으로 귀결되고 있다.
부동산도 탈원전도 소득 주도 성장도 대북 정책도 대선을 통해 확실한 심판 또는 계승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이재명 후보의 승리는 180석보다 더 강력하고 거칠 게 없는 여당의 등장과 야권 소멸로 이어진다. 여권은 더 강력한 부동산, 탈원전의 ‘시즌 2′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반면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 정권 교체, 문재인 정부 심판, 소수 여당과 거대 야당의 동거라는 난제(難題)를 안게 된다. 노영민 전 비서실장 말대로 문재인 정부의 최대 업적이 이재명 정부의 탄생이 될지, 아니면 문재인 정부가 심판을 받고 정권이 교체될지 9일 밤 결정된다. ‘조국 사태’에서 시작된 문재인과 윤석열의 대결도 이제 마지막이다.
조선일보 정우상 정치부장
03.07 ‘부정선거’ 논란 자초한 선관위의 무능과 해이

▲서울=연합뉴스
유권자에게 고통 주고 “법대로 했다” 맞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방지 대책 필요
지난 4일부터 이틀 동안 진행된 제20대 대통령선거의 사전투표율이 역대 최고치인 36.93%를 기록했다.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노정희)가 코로나 확진·격리자 투표 관리를 부실하게 한 탓에 전국의 수많은 투표장이 아수라장이 됐다. 5일 오후 5시부터 실외에 급조된 임시 기표소에서 투표해야 했던 확진·격리자들은 강풍과 미세먼지 속에서 1∼2시간씩 대기하며 불안에 떨었다. 기다리다 쓰러지는 확진자도 나왔다.
게다가 확진자들은 자신의 기표지가 투표함 아닌 종이박스나 쇼핑백에 담겨 이동하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참관인들이 실외에 투표함 없이 설치된 확진자 투표장과 공식 투표함이 있는 내부 투표장을 오가며 기표지를 나른 결과였다. 확진 투표자들은 표를 도둑질당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에 항의하거나 “기권 처리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안 된다” “선관위가 시키는 대로 한 것”이란 말 뿐이었다. 급기야 서울 은평구 한 투표장에선 유권자가 자신의 투표용지 봉투에서 여당 대선후보에 기표된 용지를 적발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코로나 확진자 추이를 오판하고 대비를 게을리한 선관위의 무능과 해이가 빚어낸 참사였다. 지난달 9일 국회 행안위에 출석한 선관위 관계자는 수도권에서 사전투표에 참여할 확진자는 투표장당 20명 선에 그치고, 투표시간도 40분이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투표장마다 확진자가 수백 명씩 몰렸고, 투표시간도 1~2시간씩 걸렸다.
국내에서 누적 코로나 확진자는 6일 현재 445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유권자(4419만여 명)의 10%가 넘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이 엎치락뒷치락하는 박빙 구도에서 확진자들의 투표지가 부실하게 관리된다면 얼마든지 선거 불복 시비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도 선관위는 9일 본투표에서만 확진자 투표시간을 1시간30분 연장했을 뿐, 사전투표에선 확진자를 투명인간 수준으로 취급해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게다가 선관위는 부실관리를 추궁하는 야당 국회의원들에게 “법대로 했다”고 맞서고, 일부 확진 투표자를 가리켜 “난동을 부렸다”고 해 빈축을 샀다. 국민의 질타가 이어지자 뒤늦게 사과했지만 부정선거 우려에 대해 납득할 만한 해명 없이 “절대 그럴 소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해 정말 잘못을 반성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낳았다.
9일 본투표까지 이틀 남았다. 선관위는 사전투표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해 혼란이 재발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무엇보다 확진자 투표는 비확진자 투표가 끝난 뒤 반드시 실내 투표소에서 여야 참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실시되도록 보장해야 한다. 확진자가 급증할 경우 1시간30분으로 정해진 투표시간을 추가 연장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의 신뢰성을 실추시킨 이번 사태는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중대 직무유기다. 대선 뒤 선관위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및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놔야 한다. 사법 당국의 철저한 수사도 필수다.
중앙일보 사설
03.07 사전투표 1632만… ‘비호감 대선’ 물밑에서 분출하는 민심
20대 대선 사전투표율이 36.93%에 달했다. 전체 유권자 4419만여 명 중 1632만여 명이 투표를 마쳤다. 19대 대선 투표자 수 3280여만 명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다. 그동안 최고였던 2020년 총선 때보다도 10%포인트 이상 높다. 지역별 편차는 있었다. 전남이 51.45%로 가장 높았고, 전북과 광주는 48%대였다. 세종 44%에 이어 경북도 41%를 넘었다. 경기 제주 대구 인천 부산 등은 33∼34%대에 그쳤고, 서울은 전국 평균을 약간 상회했다.
오미크론 확산에 따른 ‘분산 투표’ 심리로 사전투표율이 사상 처음으로 30%를 넘을 것이란 예상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유권자 10명 중 4명 가까이 투표를 마치는 등 역대 최고의 사전투표율이 현실로 나타나자 여야 후보 측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이 정도 추세면 1997년 15대 대선(80.7%) 이후 25년 만에 처음으로 대선 투표율이 다시 80%대에 진입할 가능성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측은 서로 “지지층 결집의 결과”라며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놓고 있다. 실제 어느 후보 측에 더 유리할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분명한 건 이런 뜨거운 사전투표 열기는 본투표와 달리 신분증만 지참하면 전국 어디서나 투표가 가능하다는 편리함 등의 요인만으론 충분한 설명이 안 된다는 점이다.
이번 대선 기간 내내 역대 최악의 비호감 선거라는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외신에 ‘역겨운 대선’이라는 낯 뜨거운 평가가 나왔을 정도였다. 후보와 부인이 따로 투표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은 ‘역대급’ 사전투표율을 보여줬다. 1, 2시간 차례를 기다리는 불편함까지 감수한 유권자들이 줄을 이었다. 이게 무엇을 뜻하겠는가. 역대급 비호감 대선일수록 국가 미래를 걱정하는 주권자들의 민심은 저변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는 방증 아닌가. 누구를 지지하든 이젠 ‘4류 정치’를 끝내 달라는 열망일 것이다. 여야는 이런 민심의 흐름을 선거공학으로만 해석해선 안 된다. 남은 기간, 또 대선 이후에도 실질적인 통합과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것으로 분출하는 민심에 응답해야 할 것이다.
동아일보 사설
03월 07일 대통령 잘못 뽑고 후회하면 늦다
김상협 경제부장
푸틴·시진핑 제국 부활 야망에
글로벌 경제 롤러코스터 요동
뜬구름 균형론은 위기만 가중
물가·쌍둥이 적자 저성장 위협
전례 없는 복합 위기 돌파 위해
경제와 안보 지킬 리더 뽑아야
미국과 중국 간 G2 패권 다툼에 러시아가 가세했다. 중·러 모두 황제·차르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듯한 행태에 글로벌 마켓 지표들이 휘청거린다. 당장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0.2%포인트 이상 깎였다. 9일 선거로 20대 대통령을 확정하는 한국으로서는 ‘힘’에 대해 냉철하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았다. 우크라이나 상황은 지구 저편의 일이 아니다. 촘촘한 그물망으로 경제·정치·안보가 모두 얽혀 있다. 사태 추이에 따라 현실화할지 모르는 중국의 대만 침공은 최악의 시나리오로 한반도에 가공할 파괴력을 몰고 온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정교한 구상에 따라 차곡차곡 진행돼왔다. 목표는 소련 시절의 패권 회복이다. 1999년 보리스 옐친 당시 대통령에 의해 총리로 발탁됐을 때부터 꿈꿔온 야망이다. KGB 출신의 푸틴은 정보·군사·검찰·경찰 출신으로 구성된 ‘실로비키’ 그룹으로 권력 기반을 다졌다. 에너지복합체는 올리가르히(신흥재벌)에서 빼앗아 직접 챙긴다. 2024년 물러나야 하는 헌법상 제한도 없앴다. 2036년까지 재임할 수 있다. 야망 실행은 2000년 대선에 당선된 직후 시작했다. 체첸 반란군 진압(2002년) 및 연방 편입(2003년), 조지아 침공·굴복(2008년), 크름(크림)반도 강제병합(2014년) 및 도네츠크·루한스크 인민공화국의 분리·독립(2022년 2월)으로 이어졌다. 이번에 성공하면 전쟁 도박은 계속될 것이다. 다음 타깃은 발트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당장은 마지노선을 넘지 않는다고 해도 언제든 발톱을 드러낼 수 있다. 대만 침공 카드다. 미국이 러시아를 굴복시키지 못하면 현실화 가능성이 커진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두 개의 전쟁 전략’이 가능한지 재검토하는 배경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쟁범죄를 추궁하는 여론전, 경제제재 외에 구사할 카드가 빈약하다. 12일 시행되는 국제금융결제망(SWIFT) 제재에는 루프홀이 2개나 있다. 7곳 러시아 퇴출 명단에 1억 명 고객의 최대 은행인 스베르방크, 에너지 거래의 핵심인 가스프롬방크는 빠졌다. 러시아 에너지에 의존하는 유럽의 딜레마다.
푸틴은 오래전부터 외환보유액(1월 말 6302억 달러, 세계 4위)을 비축하고, 독자 결제망을 구축하며 제재에 대비했다. 시진핑 역시 미국 추월의 야욕을 숨기지 않고 중국특색사회주의·국가자본주의의 우월성을 선전하며 전 세계에 시스템을 수출해왔다. 2018년 중국 헌법을 개정해 주석 임기 제한을 없앤 시진핑은 4일 공산당 양회(兩會)에서 장기집권 토대를 완성한 뒤 10월 제20차 공산당대회에서 2032년까지 주석직을 유지한다는 의지를 곧추세우고 있다. 중국은 ‘제조업 2025’로 미국과 한국의 초격차 산업을 맹추격하는 동시에 과잉 투자, 과도한 부채 속에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불안한 국면에 놓여 있다.
이런 정세 속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와 명백한 차이가 있다면, 그건 바로 한·미 동맹이다. 핵(核)을 포함한 미국의 확장 억지력 제공이 핵심이다. 문제는 한반도 유사시 “동맹으로서 피를 같이 흘려 달라”고 요청할 한국이 대중·대러 제재나 가치동맹에 참여하자는 미국의 요구는 건건이 외면하거나 뒷북을 치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의 행태는 동맹 신뢰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요인이다. ‘균형’ ‘조정’ ‘주도’라는 뜬구름 잡는 말로 국민의 생명과 안위, 기업·국가의 생존을 지켜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은 그렇잖아도 수많은 위협을 헤쳐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전쟁, 팬데믹, 버블 붕괴를 비롯해 경기침체 요인이 동시다발로 섞여 있다. 그나마 경제를 버텨주던 무역수지 흑자도 불안하다. 미국이 곧 양적 긴축과 기준금리 인상 국면에 들어가면서 우리는 긴축발작(taper tantrum)도 경계할 때다. 체감 물가는 통제 불능이다. 성장률이 받쳐주지 못하면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우려도 있다. 정부가 능력 이상으로 재정을 퍼붓고 대규모 국채 발행으로 위기를 키우면 자본 유출과 국가신인도 하락, 금융위기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다음 대통령마저 힘과 판단력 결핍으로 국민을 지키지 못한다고 한탄하는 상황이라도 막아야 한다.
문화일보
03월 07일 직접·비밀투표 무너뜨린 선관위 ‘불법’과 文정권 책임
이번 사전투표 사태는, 문재인 정권이 선거관리위원회마저 망가뜨렸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동안 중앙선관위 구성 및 운영의 친정권 코드화에 대한 우려가 계속 제기됐는데, 이번에 심각한 무능과 반민주적 인식까지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선관위는 3·15 같은 부정선거를 막기 위해 4·19 직후 제3차 개헌에서 헌법기관으로 설치됐으며, 그 취지에 맞게 계속 발전해 선거관리 시스템을 수출할 정도로 세계 일류가 됐다. 그런데 문 정권 5년 만에 후진국 수준으로 전락해 버린 셈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시작이자 끝이다. 따라서 지난 5일 발생한 코로나 확진·격리자 사전투표 대혼란은 엄중한 사건이다. 이번 사건에는 불법·부실·부정이 혼재돼 있다. 선관위는 확진·격리자가 기표한 투표용지를 선거사무원이 받아 대신 투표함에 넣도록 지침을 줬다는데, 이것부터 헌법이 규정한 직접·비밀 투표 원칙을 위반하는 불법이다. 투표용지를 소쿠리와 택배 상자, 심지어 쓰레기봉투에 담도록 한 것, 확진·격리자 투표 집계도 하지 않은 것은 부실이다. 특정 후보에게 이미 기표가 된 투표용지를 확진·격리자에게 준 것은 부정 선거 가능성마저 의심케 한다.
예고된 관재(官災)였다는 데 더 큰 심각성이 있다. 근원적 책임자는 ‘코드 선관위원’ 및 상임위원 추천·임명권을 행사한 문 대통령과 김명수 대법원장 등이다. 노정희 중앙선관위원장은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대법관 임명 때부터 성향과 능력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았다. 특히, 대법원이 2020년 현 여당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릴 때 주심 판사였다.
문 대통령은 대선 캠프 백서에 특보로 이름을 올렸던 조해주 상임위원을 임명했고, 임기 3년이 끝나자 편법으로 임기를 연장시키려다 선관위 내부 반발로 포기했다. 현재 7명의 선관위원 가운데 6명이 문 대통령과 김 대법원장 추천으로 임명됐고, 야당 추천 인사는 1명도 없다. 선관위가 아니라 여당 선대위 비아냥을 듣는 배경이다. 심지어 선관위 사무총장은 항의하는 유권자에게 “난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법과 원칙” 운운했다고 한다. 당장 직무정지가 필요한 위험한 인식이다. 노 위원장 등은 이미 직무유기 혐의 등으로 고발됐다. 대선 일정과 무관하게 민주주의 파괴 범죄로 규정하고, 철저히 수사해 직무유기·불법·부정에 대한 사법적·정치적 책임을 엄정히 물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3.08 文이 망가뜨린 대법원·선관위, 결국 대형 의혹과 대란 터졌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를 책임지는 헌법 기관이다. 정치적 독립성이 생명이고 선거 과정과 결과에 한 치의 착오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런 막중한 책무를 진 선관위가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보여주는 일이 벌어졌다. 투표용지를 소쿠리, 라면 상자, 비닐 봉투로 운반하고 이미 기표된 투표용지를 주기도 했다. 확진자, 격리자 사전투표가 실시된 5일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토요일이라면서’ 출근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 20만명씩 쏟아지는 코로나 확진자를 대상으로 투표를 실시해야 하는 초비상 상황이었다. 자신이 맡은 공무에 대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책임 의식이 없는 것이다.
노 선관위원장은 대법관 임명부터 자질 논란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권 편 법조 서클인 ‘우리법 연구회’ 출신이라고 무리한 임명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대법원 주심으로 맡은 재판에서 법조문도 제대로 읽어 보지 않고 판결했다가 하급심에서 뒤집어지는 참사까지 벌어졌다. 문 대통령은 이런 함량 미달 인사를 5부 요인인 선관위원장 자리에까지 앉혔다.
문 대통령은 2019년 자신의 ‘선거 캠프’ 출신 인사를 선관위 상임위원으로 강행 임명했다. 선거 운동원을 선거 심판시킨 것이다. 대선을 목전에 두고 그 사람을 연임시키려다가 선관위 공무원들의 집단 반발을 불렀다. “박원순 만세 만만세”라고 외친 사람을 선관위원에 앉혔다. 현재 선관위원 7명 가운데 야당 단독 추천은 한 명도 없다. 선관위 간부는 일부 확진자의 투표 항의에 대해 “난동을 부렸다”고 했다.
망가진 것은 선관위뿐이 아니다. 엄정하고 공정한 판결로 사회 정의의 기준을 세워야 할 사법부는 소수 친여 법관들의 동아리나 놀이터처럼 돼버렸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해 대법관 14명 중 7명이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민변 등을 거친 인사들이다. 김명수 법원은 현 정권의 각종 불법과 비리를 막아주는 방패막이 역할을 거듭해왔다.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 등 정권의 도덕성과 직결된 재판을 막무가내로 미루면서 정권 말까지도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이 자체가 범죄의 공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대법원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판결 두 개를 연이어 내렸다. ‘TV 토론에선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기괴한 결정으로 여당 후보의 정치 생명을 살려주었다. 그때 주심 대법관이 노정희 선관위원장이다. 대법원은 또 금품 수수로 유죄를 받은 성남시장을 ‘검사가 항소서를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황당한 이유로 무죄를 만들어 주었다. 헌법재판소도 문 정권 들어 9명 중 5명이 친여 법조인 모임 출신 인사들로 채워졌다.
대법원, 헌재, 선관위는 국가의 주춧돌과 같은 기관이다. 대통령 한 명이 이 기관들을 마치 점령한 듯이 자기 편 함량 미달 인사들로 채워 철저히 망가뜨렸다. 지금의 대형 의혹과 투표 대란은 예고된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3.08 방역 다 풀면서 덜 위험한 투표소만 억지 방역, 이유가 뭔가

▲제20대 대선 코로나 확진·격리자 사전투표가 실시된 지난 5일, 선관위의 준비 부족과 부실 관리로 전국 곳곳서 큰 혼란이 벌어졌다. 투표 용지를 소쿠리 등으로 운반하는 장면이 곳곳에서 포착됐다(위). 일부 투표소에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아래 오른쪽) 후보, 국민의힘 윤석열(아래 왼쪽) 후보 이름 옆에 이미 기표가 된 투표용지가 유권자에게 배부되기도 했다./뉴시스 연합뉴스
주말에도 21만명 넘는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 이렇게 폭증한 것은 정부가 방역 전문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선을 앞두고 거리 두기 등 방역 조치를 급격히 완화했기 때문이다. 사망자와 확진자 수가 코로나 사태 후 최대를 기록한 그날 방역을 더 풀어버린 상식 밖의 조치는 자영업자들 몇 표를 더 얻겠다는 선거용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이런 방역을 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방역 현장은 지옥인데 거리 두기를 완화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정부 위원직을 사퇴한 전문가까지 나왔다.
이렇게 비상식적으로 방역을 완화하는 정부가 유독 투표소에 대해선 너무나 지나친 방역을 강제하고 있다. 사전투표 이틀째인 5일 벌어진 확진·격리자 투표 대혼란도 이 때문이었다. 누가 투표를 하든 자신이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는 것이 상식인데, 전국 투표소에서 투표용지를 라면 상자, 소쿠리 등에 모아 투표함으로 옮기는 일이 벌어졌다. 확진자와 비확진자 간 접촉을 막기 위한 조치라지만 직접·비밀 투표 원칙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했다. 일부 투표소에선 확진·격리자가 예상보다 몇 배 많이 몰리면서 추운 날씨 속에 떨며 몇 시간씩 기다리거나 투표를 포기하고 돌아가는 사례도 있었다.
현재 무증상 감염자가 얼마나 많이 돌아다니는지 가늠할 수도 없는 지경이다. 이들은 아무 제한 없이 식당, 카페, 지하철, 버스 등을 이용하고 있다. 마스크를 벗고 대화하며 식사하는 식당이나 혼잡하게 사람이 밀집한 지하철에 비하면 투표소는 상대적으로 더 안전한 곳이다.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고 말도 거의 하지 않는다. 비닐 장갑도 착용한다. 그런데도 식당에 대해선 지나칠 정도로 방역을 풀고 투표소에 대해선 엄격하게 구는 것은 무능인가 고의인가. 앞뒤가 맞지 않아도 너무 맞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고 모순된 방역 조치들의 진원지는 질병관리청 등 방역 당국이 아니라 그 위의 정권 차원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정치 방역의 이면이 모두 밝혀져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3.08 사전투표 우편물 5만여부, CCTV 가려진 국장실에 보관
수도권 한 지역 선거관리위원회가 타 지역에서 온 사전투표용지를 사무실에 임시로 보관하면서 실내를 비추는 CCTV를 가려놓은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다. 해당 선관위는 “CCTV가 언제 왜 가려졌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부천시선거관리위원회 사무국장실에 설치된 CCTV가 종이로 가려져 있는 모습. /페이스북
6일 유튜브에는 부천시선관위 사무국장실 내부 상황을 담은 영상이 올라왔다. 실내에는 지난 4~5일 진행된 관외 사전투표용지 우편물 5만여부가 500매 단위로 상자에 담겨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규정상 우체국을 통해 타 지역에서 투표에 참여한 지역민의 투표지가 지역선관위에 접수되면, 정당추천위원 입회하에 우편투표함에 이를 넣는 것이 원칙이다. 부천 선관위 관계자는 영상 속 장면에 대해 “사전투표용지를 우편투표함에 넣기 전, 접수하는 단계에서 일단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사무국장실에서 보관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문제는 다음 장면이다. 투표지가 쌓인 사무국장실에는 방호용 CCTV가 설치돼 있었는데, 누군가 카메라 부분에 이면지를 덧대 촬영이 안 되도록 해놓은 상태였다.
공직선거관리규칙 제96조는 “우편으로 송부된 사전투표를 접수한 때는 접수일시를 기재한 뒤 정당추천위원의 참여하에 이를 우편투표함에 투입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또 공직선거법은 이를 담을 우편투표함과 사전투표함이, 영상정보처리기기(CCTV 등)가 설치된 장소에 보관돼야 한다고 정해 놓고 있다. 그런데 투표용지가 우편투표함에 가기 전 단계에서 거치는 장소의 CCTV를 가려놓은 것이다.
조선닷컴은 부천시선관위에 ‘설치돼 있는 CCTV를 굳이 가려놓은 이유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부천시선관위는 그러나 “(임시 보관 장소에는 CCTV가) 없어도 되는 것인데 가려 놓은 게 문제가 되느냐”며 “해당 CCTV는 청사 보안용인데, 누가, 언제, 무슨 이유로 가린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외부에서 송달된 사전투표 용지를 각 지역선관위가 접수하는 과정에서 임시 보관할 때에 대해서는, 어디서 어떻게 하라고 규정해놓은 것이 없다”고 해명했다. 부천시선관위의 행태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였다.
조선일보 김명진 기자
03월 08일 부천 5만票, 제주 투표함 방치…선관위 違法 전면 수사해야
제20대 대통령을 뽑기 위한 본선거가 9일 오전 6시 시작되지만, 막판까지 흑색선전은 물론 여론조작까지 횡행한다. 극심한 포퓰리즘 공약마저 뒤로 밀릴 판이다. 지지후보 선택은 물론 당선인 결정 이후에도 국민의 냉철한 이성과 건강한 상식이 절실하다. 자칫 잘못하면 불복 등의 후유증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흠결 없는 선거 관리가 더욱 중요해졌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여서 우려된다.
코로나 확진자 투표를 둘러싼 현장의 혼란 사태는 이미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지만, 투표함 관리 등 사후 조치 역시 위법(違法)투성이로 드러나고 있다. 제주도선관위는 7일 사전투표함과 관외 사전투표 우편물을 정식 보관실이 아닌 사무국장 집무실에 보관했다. 반드시 CCTV가 설치된 보관실에 보관해야 한다는 공직선거법 위반이다. 경기도 부천시에서도 5만 건에 달하는 관외 사전투표 우편물이 역시 시선관위 사무국장실에 보관됐다고 한다. CCTV는 종이로 가려져 있었다. 여러 이유로 인한 임시 보관이었다고 변명했지만, 그런 일은 용납될 수 없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코로나 확진·격리자 사전투표 때 투표용지를 선거사무원이 대리로 투표함에 넣도록 한 중앙선관위 지침과 관련, 내부에서 이의 제기가 있었는데도 묵살한 것이다. 수도권 시·군·구 선관위 사무국장과 실무자들이 지난달 중앙선관위의 지침에 공직선거법 위배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그런데도 중앙선관위는 선거법 위반은 물론 직접·비밀 투표를 규정한 헌법 원칙에 위배된 지침을 강행했다. 직무유기·직권남용 등의 혐의도 가능하다. 지난 5일 사전투표 현장에서 혼란 와중에 신분만 확인했거나, 투표용지를 받고 그냥 귀가했던 유권자들의 투표 허용 문제도 있다. 관련법을 잘 검토해 투표권이 침해되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의 총책임자인 노정희 중앙선관위원장의 행태는 무책임의 극치다. 사전투표일이던 4∼5일 선관위에 출근하지 않은 것은 물론 7일 대책회의에 참석하고도 국민 앞에 진솔한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 출범 뒤 대법관에 기용될 때부터 자질 논란이 일었다. 이재명 무죄 판결의 주심이었고, 법조문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아 하급심에서 부정당하는 ‘망신 판결’도 있었다.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선거 관리의 부정·불법 의혹에 대한 전면적인 수사가 불가피하다. 드러난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문화일보
03월 08일 소쿠리 투표와 文정권 무능 요지경

김성천 중앙대 교수·법학
법치주의를 무던히도 싫어하는 정부가 소쿠리 투표를 통해 법치 파괴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사전선거 확진·격리자 투표 과정에서 도대체 선거 관리를 하는 것인지 모를 일들이 벌어졌다. 선거사무원이 투표용지를 담을 봉투를 주기에 열어 봤더니 이미 1번 후보에게 기표가 돼 있었다고 한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인은 투표용지에 기표한 뒤에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도록 접어서 투표참관인 앞에서 투표함에 넣게 돼 있다. 부정선거를 방지하기 위한 규정이다. 그런데 선관위가 확진·격리자 투표의 경우에는 투표함이 아닌 바구니에 모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선거관리위원회가 공직선거법 규정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더욱 한심한 일은, 이미 기표된 투표용지가 자신에게 건네진 사실을 확인하고 항의하며 자신은 직접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겠다고 하는 유권자를 두고 ‘난동’을 부렸다고 말하는 선관위 사무총장의 무식함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법과 규정’에 따랐을 뿐이라고 큰소리쳤다니 한심할 뿐이다. 확진·격리자 투표를 1시간 앞당기지 말고 원래대로 일반 투표가 끝난 뒤에 실시해야 한다는 일선 선관위 직원들의 반대 의견은 무시됐다고 한다. 소쿠리 투표가 선거법 위반이라는 의견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선관위 위원 7명 가운데 6명이 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이다. 비상근이라 사전선거 하는 날 출근하지 않았다는 노정희 선관위원장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대한 고등법원의 당선무효형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할 때 주심이었던 사람이다. 코드 인사로 민주당 핵심 추종 세력이 장악하는 모든 조직이 법치주의를 파괴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자신들이 정의를 구현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이들의 본질은 무식하고 철저하게 무능한 유형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 달 전 국회에서 선관위 사무총장은 코로나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을 경우에 대비해 철저히 준비하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호언장담했다. 당시 하루 확진자 수가 5만 명 수준이었는데 투표가 가까워지면서 그 수가 20만 명 대에 이르렀다. 확진자 수가 4배로 치솟는데도 그들은 추가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고, 위원장은 쉬는 날이라고 출근도 하지 않았다. 사고가 난 뒤에 했다는 긴급 대책회의도 바로 다음 날이 아닌 월요일에 했다. 국회의원들이 선관위를 항의 방문해 공직선거법을 지키라고 한 국민을 보고 난동이라고 하는 것이냐고 묻자 사무총장은 ‘그렇다’고 뻔뻔하게 답변했다. 마음대로 떠들어라 권력은 우리가 쥐고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법을 위반하면서도 떳떳하기만 한 현 집권 세력의 오만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대한민국의 선거 관리 시스템은 해외에 수출할 정도로 정평이 나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최후진국 수준으로 전락해 버렸다. 오랜 기간 공들여 구축한 모범적인 제도도 부적절한 인물들이 권력을 잡으면 짧은 기간 내에 무참하게 망가뜨릴 수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아무리 봐도 전문성이라고는 1도 없는지라 정치를 하지 않으면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 두루 요직을 차지하고 있으니 온전하게 남아날 공적 영역이 있을 것 같지 않다. 내일 본선거를 잘해야지 아니면 모든 걸 포기하고 살아야 할 듯하다.
문화일보
03.09 오늘 20대 대통령 선거, 국민 모두의 주권 행사가 절실하다
오늘은 제20대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이번 대선 선거운동은 유례없는 코로나 대확산 속에서 치러졌다. 많은 국민이 고통을 겪었다. 지난 4~5일 사전 투표 때는 부실한 선거 관리 문제까지 불거졌다. 이 악조건 속에서도 사전 투표율은 36.9%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번 대선에 대한 국민의 높은 관심을 잘 보여준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마지막 유세에서 “유능하고 준비된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며 “미래로 가는 길에 투표해 달라”고 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국민을 제대로 모시는 머슴이 되겠다”면서 “무능하고 부패한 세력을 투표로 심판해 달라”고 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양당 독점 정치를 종식시키기 위해 소신 투표해 달라”고 했다.
이번 대선만큼 네거티브 공방과 진흙탕 싸움으로 일관한 선거도 드물었다. 역대 최악급 비호감 선거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여야는 빚내서 돈 퍼주겠다는 포퓰리즘 공약을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공약 이행 비용만 200조~300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난제가 산적한 국정을 제대로 이끌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느냐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다고 말하는 유권자도 많다. 하지만 오늘 투표로 앞으로 5년을 맡을 새 대통령과 정부가 정해진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코로나 속에서도 국민들이 빠짐없이 투표장에 나가 주권을 행사해야 하는 것은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민주주의를 완성하고 사회를 통합하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지금 국내적으로는 코로나 사태, 집값 급등과 전세난 문제, 과중한 세금과 줄어드는 일자리 문제 등 현안이 쌓여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유가가 폭등하고 세계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안 그래도 우리 경제는 고물가와 금리 문제라는 어려운 과제에 봉착해 있다. 북한은 우리 대선을 전후해 예외 없이 대형 도발을 벌였다. 8일 북한 경비정이 서해 NLL을 넘어온 것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이번 대선은 이 같은 국내외 위기와 혼란을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세대와 이념, 지역으로 분열된 나라를 다시금 하나로 만드는 계기가 돼야 한다. 투표가 그 시작이다. 민주국가에서 모든 것은 결국 국민 손에 달렸다.
조선일보 사설
03.10 윤석열 대통령 당선… 5년만에 정권교체
초박빙 20대 대선… 밤새 피말리는 접전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후보는 10일 오전 2시 15분 기준 48.64%를 득표하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47.78%)를 0.8%포인트 차로 앞섰다. 개표율은 85.6%다. 사진은 윤 후보가 지난 6일 경기도 부천역 앞 마루광장에서 열린 유세에서 주먹 쥔 손을 들어 보이는 모습. /이덕훈 기자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됐다. 10일 오전 3시 20분 현재 개표가 94.3% 진행된 가운데 윤 후보는 1546만1012표(48.6%)를 얻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1522만9316표, 47.8%)를 0.8%포인트 앞서고 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75만3569표로 2.4%를 얻어 그 뒤를 이었다. 윤 후보의 승리로 5년 만에 정권 교체가 이뤄지게 됐다. 하지만 표 차가 근소해 여야 간 협치 필요성이 커질 전망이다.
이날 선거는 ‘역대 최악 비호감 대선’이라는 평가 속에서 새벽까지 피 말리는 초박빙 레이스를 펼쳤다. 개표 초반 사전 투표를 먼저 개봉하면서 더불어민주당 이 후보가 한때 10%포인트 넘게 앞서 갔지만 10일 0시 32분을 넘어서면서 국민의힘 윤 후보가 역전하며 격차를 조금씩 벌려나갔다. 정권 교체에 호응하면서도 국정 독주를 할 수 없도록 국민들이 견제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날 방송사들의 출구 조사도 초박빙으로 엇갈려 나왔다. KBS·MBC·SBS 등 지상파 3사의 출구 조사 결과 윤 후보가 48.4%, 이 후보가 47.8%를 각각 득표할 것으로 예상됐다. JTBC 출구 조사에서는 이 후보가 48.4%, 윤 후보가 47.7%를 득표하는 것으로 나왔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후 후보 간 최저 표 차는 15대 대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1.6%포인트(39만557표) 차로 꺾었을 때 나왔다.
이낙연 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은 “생각보다 더 접전으로 나와서 새벽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개표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했고, 권영세 국민의힘 총괄선대본부장은 “최종 개표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겸허한 마음으로 기다리겠다”고 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집계한 이날 잠정 투표율은 77.1%로 나타나, 19대 대선 최종 투표율 77.2%에 0.1%포인트 모자랐다. 당초 사전 투표율이 36.93%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두 후보의 박빙 대결로 투표율이 80%를 넘을 것이란 기대도 있었지만 결국 미치지 못했다.
이낙연 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은 “생각보다 더 접전으로 나와서 새벽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개표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했고, 권영세 국민의힘 총괄선대본부장은 “최종 개표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겸허한 마음으로 기다리겠다”고 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집계한 이날 잠정 투표율은 77.1%로 나타나, 19대 대선 최종 투표율 77.2%에 0.1%포인트 모자랐다. 당초 사전 투표율이 36.93%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두 후보의 박빙 대결로 투표율이 80%를 넘을 것이란 기대도 있었지만 결국 미치지 못했다.
조선일보 조의준 기자
03.10 尹 당선, 통합하라는 국민의 뜻

▲(서울=뉴스1) 국회사진취재단,오대일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왼쪽),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8일 저녁 각각 서울 청계광장, 서울광장에서 마지막 총력 유세를 펼치고 있다. 2022.3.8/뉴스1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10일 1시 40분 현재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48.7%,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47.8%로 접전을 벌였다. 역대 대선에서 이 새벽까지 당선자를 가리지 못한 채 혼전이 벌어진 것은 유례가 드문 일이다. 국민이 여야 후보 지지로 갈라진 모습이다. 이런 경우 자칫하면 후유증까지 우려된다.
민심이 쪼개진 것은 이번 대선에서 양 진영이 네거티브 극한 대결로 치달았기 때문이다. 양 진영은 TV 토론과 유세 과정에서 서로에게 막말을 퍼붓고 의혹 공세를 펴는 데만 열중했다. 대장동 사건과 재판 거래, 고발 사주 의혹 등 온갖 비리 의혹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후보 아내들 문제까지 더해져 온통 진흙탕 싸움이라는 자조가 팽배했다. 이렇게 정책 공약은 뒷전인 채 상대 약점 잡기에만 열중한 결과 국민 사이에 혐오 감정만 퍼져 나갔다. 이 와중에 돈 퍼주는 선심성 포퓰리즘 공약은 경쟁적으로 쏟아졌다. 자연스레 선거가 정책 아닌 진영 대결로 옮아갔고 그 결과가 이런 개표 양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누가 당선되든 새 정부는 갈라질 대로 갈라진 나라를 통합해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됐다. 국민을 가르는 방식의 정치는 더 이상 안 된다. 지금처럼 분열된 나라로는 앞으로 한 발짝도 나아가기 어렵다. 새 대통령은 무엇보다 경제정책에서 이념을 추방하고 시장 원리를 복원해야 한다. 부동산 값을 잡으려면 필요한 곳에 원하는 집이 충분히 공급된다는 확신을 시장에 줘야 한다. 마차가 말을 끈다는 소득 주도 성장과 세금으로 급조하는 알바 일자리는 모래 위에 세금 붓기였다. 성장과 고용은 민간 혁신에 맡겨야 한다. 세계가 부러워하던 한국 원전을 고사시킨 탈(脫)원전 정책은 즉시 폐기해야 한다. 지난 5년간 나라엔 절실하지만 인기가 없는 개혁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기금 고갈 위기를 맞은 연금, 건강보험 개혁이다. 새 당선인의 과제다.
새 당선인은 제왕적 대통령에서 벗어나 야당과 형식적 대화가 아니라 마음을 연 대화를 하기 바란다. 그 진정성이 확인되면 야당이 반대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국민 통합 정치의 시작을 새 내각 인선부터 열었으면 한다. 갈라진 나라를 합치는 길로 나아가면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도 박수를 보낼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3.10 최재형 종로 당선… 재보궐선거 5곳도 야당 압승

▲10일 국회의원 보궐선거 국민의힘 종로 최재형 ,서초갑 조은희 당선자/뉴스1
9일 서울 종로, 서울 서초갑, 경기 안성, 충북 청주 상당, 대구 중·남구 등 5개 선거구에서 대선과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10일 오전 1시 20분 기준으로 국민의힘 및 국민의힘 출신 무소속 후보가 5곳에서 모두 앞서고 있다.
서울 종로에서는 국민의힘 최재형 후보가 47.69%를 얻어,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영종 후보(33.95%)를 13.74%포인트 차로 앞섰다. 국민의힘 조은희 후보와 민주당 이정근 후보가 맞붙은 서울 서초갑에서도 조 후보의 당선이 유력하다.
경기 안성에서는 국민의힘 김학용 후보가 54.04%로 무소속 이기영 후보(26.18%)를 앞섰다. 충북 청주 상당에서는 국민의힘 정우택 후보가 56.11%로 무소속 김시진 후보(33.83%)에게 앞섰다. 민주당은 안성과 청주 상당에 후보를 공천하지 않았다. 대구 중·남구에서는 국민의힘이 후보를 내지 않았으나, 국민의힘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임병헌 후보가 26.40%를 얻어 무소속 도태우 후보(18.99%), 국민의당 권영현 후보(18.57%), 민주당 백수범 후보(18.35%)에게 앞섰다.

▲국민의힘 청주 상당 정우택,안성 김학용, 무소속 대구 중 남구 임병헌 국회의원 당선자
이번 선거는 민주당 의원 3명이 사직하거나 당선무효되고, 국민의힘 의원 1명과 국민의힘에서 탈당해 무소속이 된 의원 1명이 각각 사직하면서 치러지게 된 선거다. 민주당은 민주당 지역구였던 3곳에 후보를 공천하지 않았고, 국민의힘도 대구 중·남구에 후보를 공천하지 않았다.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은 곳에서는 모두 국민의힘 후보의 당선이 유력하고, 대구 중·남구에서 당선이 유력한 무소속 후보도 국민의힘 출신이다. 이대로 결과가 확정되면 민주당 의석은 3석 줄고 국민의힘 의석은 그만큼 늘게 된다.
조선일보 김경필 기자
03월 10일 민주당, 새 정부 발목 잡지 말고 ‘정치교체’ 약속 지켜야
여권 입장에서 볼 때, 탄핵으로 물러난 정치 세력에게 5년 만에 패배한 것은 뼈아픈 일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의 ‘10년 집권 주기’가 깨지는 오욕의 기록도 남기게 됐다. 그러나 1년 전부터 정권교체 여론이 정권연장 여론보다 10%P 전후로 높았음을 고려하면, 국민이 근소한 표차를 만들어 냄으로써 시정의 기회를 준 셈이다. 따라서 이제부터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당면한 6월 지방선거와 2년 뒤 국회의원 총선거 등의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이번 대선 결과는 ‘윤석열의 승리’가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의 패배라고 할 정도로 자업자득이다. 5년 전 문 정권은 80%가 넘는 압도적 지지로 출범했지만, 취임사의 통합 약속부터 외면했다. 조국·추미애·윤미향 등이 상징하듯, 촛불민심을 왜곡하고 독선과 오만 행태를 보였다. 내로남불이 일상화했다.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부동산 정책 실패에 따른 후유증이 심각하다. 친중·친북 노선으로 안보는 불안해졌다. 이런데도 문 대통령은 ‘마음의 빚’ 운운하며 측근들을 비호했다. 국익과 민생은 뒷전이었다. 코로나 공포가 심각할 때 실시된 2020년 총선에서 압승하자 더욱 기고만장해졌다. 지난해 서울·부산시장 보선에서 참패로 민심의 경고를 받았지만, 근본적 변화는 없었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크게 밀리자 다급하게 ‘정치교체’를 내걸었다. 정권교체 요구를 물타기 하려는 꼼수에서 나왔겠지만, 진정성 있는 정치개혁에 앞장선다면 국민은 다시 신뢰를 보낼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는 5월 10일 출범할 윤석열 정부와 ‘건강한 경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현재 172석이라는 압도적 다수 의석의 힘을 내세워 무작정 정부의 발목을 잡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 다음으론 586 기득권 정치 카르텔의 해체다.
이재명 후보는 물론 송영길 대표도 지난 1월 25일과 2월 24일 ‘정치교체’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의 다음 총선 불출마 등 586 용퇴, 결선투표제 도입 등의 정치개혁안을 내놨다. 진정한 정치교체는 국익을 최우선 순위에 놓는 정직한 정치를 추구하는 일이다. 해묵은 울산시장선거 개입 의혹 사건 등은 물론 대선 과정에서 드러난 대장동 사건, 법인카드 유용, 재판 거래 의혹 등에 대해서도 이제부터 앞장서서 ‘특검’ 등을 통해 진실을 밝히는 일이 필요하다.
문화일보 사설
03월 10일 부천 5만票, 제주 투표함 방치…선관위 違法 전면 수사해야
제20대 대통령을 뽑기 위한 본선거가 9일 오전 6시 시작되지만, 막판까지 흑색선전은 물론 여론조작까지 횡행한다. 극심한 포퓰리즘 공약마저 뒤로 밀릴 판이다. 지지후보 선택은 물론 당선인 결정 이후에도 국민의 냉철한 이성과 건강한 상식이 절실하다. 자칫 잘못하면 불복 등의 후유증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흠결 없는 선거 관리가 더욱 중요해졌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여서 우려된다.
코로나 확진자 투표를 둘러싼 현장의 혼란 사태는 이미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지만, 투표함 관리 등 사후 조치 역시 위법(違法)투성이로 드러나고 있다. 제주도선관위는 7일 사전투표함과 관외 사전투표 우편물을 정식 보관실이 아닌 사무국장 집무실에 보관했다. 반드시 CCTV가 설치된 보관실에 보관해야 한다는 공직선거법 위반이다. 경기도 부천시에서도 5만 건에 달하는 관외 사전투표 우편물이 역시 시선관위 사무국장실에 보관됐다고 한다. CCTV는 종이로 가려져 있었다. 여러 이유로 인한 임시 보관이었다고 변명했지만, 그런 일은 용납될 수 없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코로나 확진·격리자 사전투표 때 투표용지를 선거사무원이 대리로 투표함에 넣도록 한 중앙선관위 지침과 관련, 내부에서 이의 제기가 있었는데도 묵살한 것이다. 수도권 시·군·구 선관위 사무국장과 실무자들이 지난달 중앙선관위의 지침에 공직선거법 위배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그런데도 중앙선관위는 선거법 위반은 물론 직접·비밀 투표를 규정한 헌법 원칙에 위배된 지침을 강행했다. 직무유기·직권남용 등의 혐의도 가능하다. 지난 5일 사전투표 현장에서 혼란 와중에 신분만 확인했거나, 투표용지를 받고 그냥 귀가했던 유권자들의 투표 허용 문제도 있다. 관련법을 잘 검토해 투표권이 침해되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의 총책임자인 노정희 중앙선관위원장의 행태는 무책임의 극치다. 사전투표일이던 4∼5일 선관위에 출근하지 않은 것은 물론 7일 대책회의에 참석하고도 국민 앞에 진솔한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 출범 뒤 대법관에 기용될 때부터 자질 논란이 일었다. 이재명 무죄 판결의 주심이었고, 법조문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아 하급심에서 부정당하는 ‘망신 판결’도 있었다.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선거 관리의 부정·불법 의혹에 대한 전면적인 수사가 불가피하다. 드러난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문화일보 사설
03.11 초상화 大選, 1위는?
신진 화가 안서진(30)씨가 전통 동양화 기법으로 비단 위에 그린 21세기판 어진(御眞)이다. “왜 우리나라 대통령 초상화는 다 서양화인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시도다. 정부 공식 대통령 초상화는 임기를 1년 정도 남긴 시점에서 청와대 측이 화가를 섭외해 대통령과 실제 대면해 그리도록 하는 게 보통이지만, 예외가 하나 존재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탄핵 여파로 인해 실물 대신 사진을 그림으로 옮긴 까닭이다.

03.11 정권 교체 민심이 가른 대선, 國政 바로잡아 달란 뜻
1987년 직선제가 도입된 이래 정권은 예외 없이 10년 간격을 두고 보수와 진보 정파 사이를 오갔다. 더구나 대통령 탄핵 사태로 몰락하다시피 했던 보수 정당이 5년 만에 정권을 되찾으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윤석열 당선인이 작년 3월 평생 몸담아온 검찰을 떠나 정치적 도전을 시작했을 때 그의 성공을 점치는 사람 역시 많지 않았다. 과거 이런 경력의 대선 주자가 일으킨 바람은 일시적인 경우가 많았다. 윤 당선인의 대선 승리는 정치사에 없던 일이다.
이처럼 어려운 승리가 가능했던 가장 큰 동력은 문재인 정권의 교체를 바라는 민심이었다. 대선 기간 중 정권 교체 민심은 언제나 정권 유지를 크게 앞섰다. 이번 대선은 윤 당선인의 승리이자 정권 교체 민심의 승리다. 정권을 바꿔야 한다는 민심은 결국 지난 5년 상식과 정도를 이탈한 국정 진로를 바로잡아 달라는 뜻일 것이다.
문 정권이 나라 전체보다 정파의 이익을 앞세우면서 헝클어진 국정 분야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탈원전과 소득 주도 성장, 이념적 부동산 정책도 합리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나라를 포퓰리즘의 늪에서 건져내야 한다. 문 정권은 5년 간 국가 부채를 415조원이나 늘려놓았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문 정권 전까지 역대 정부가 진 빚이 모두 600조원임을 감안하면 너무나도 방만한 빚 늘리기였다. 415조원은 나라와 경제의 면모를 바꿀만한 엄청난 돈이지만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정치와 선거가 포퓰리즘에 감염되면 정치인들은 경쟁적으로 가속 페달을 밟게 된다. 이번 대선에서도 여야는 주거니 받거니 수백조 규모 공약을 쏟아냈다. 이 폭주 열차를 멈추지 않으면 지금 청년 세대는 그리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나라를 물려받게 될 수 있다. 윤 당선인은 도저히 감당 못 할 약속들은 욕먹을 각오로 거둬들였으면 한다. 코로나 피해 계층에 대한 지원은 꼭 필요하지만 이 역시 국가 재정 상황과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외교와 안보는 지난 5년 동안 골병이 들었다. 한미 관계는 형식적 동맹과 같은 상태가 됐다. 대선 결과가 나오자마자 바이든 미 대통령이 윤 당선인에게 전화를 걸어와 “빠른 시일 내에 만나자”고 제안한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한일 관계는 역대 최악으로 추락했다. 한중 관계는 3불 약속으로 군사 주권을 내줄 정도로 저자세로 일관했다. 모두 정상화돼야 한다.
문 정권이 외교 안보를 이렇게 만든 것은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한 환상 때문이었다. 북핵을 사실상 인정하고 대북 제재를 풀어 남북 이벤트 벌일 생각만 했다. 그러는 사이 군은 ‘대화로 나라를 지킨다’고 선언하는 지경이 됐다. 이제는 북한의 도발을 도발이라고 말조차 못 한다. 돌아온 건 더 커진 북핵 미사일 위협이다. 북한은 우리 새 대통령 취임 전후에 어김없이 도발해왔다. 새 정부를 길들이려는 것이다. 이번에도 상당한 도전이 예상된다. ICBM 발사나 핵실험 등 대형 도발로 나올 수도 있다. 어쩌면 이것이 윤 당선인인 마주할 첫 도전일지도 모른다.
동시에 윤 당선인은 갈라질 대로 갈라진 나라를 통합해야 할 막중한 책임도 지고 있다. 이번 대선 승패는 0.73%포인트 차로 갈라졌다. 24만7000여 표 차다. 역대 대선 최소 표 차다. 이를 우리 사회의 분열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는 국민이 적지 않다. 문 정권은 매사 국민을 가르는 방식으로 정치를 해왔다. 새 정부도 스스로 그런 문제가 없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회를 장악한 거대 야당의 협조 없이는 새 정부의 원활한 국정이 어려운 상황이다. 다음 총선까지는 2년이나 남아 있다. 거대 야당과 2년 동거, 협치가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윤 당선인이 기댈 언덕은 정권 교체를 통해 국정을 바로잡아 달라고 한 국민의 지지밖에 없다. 민심은 윤 당선인이 문 대통령과는 다른 리더십을 보여주길 바란다. 어떤 경우든 뒤로 숨지 않고, 공은 아래로 돌리고 책임은 자신이 지길 바란다. 겉으로 하는 말과 실제 행동이 같아야 한다. 착한 척하며 뒤로는 다른 일을 꾸미는 대통령은 더는 없어야 한다. 내 편만 챙기는 국정도 끝나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은 새 정부에서 ‘내로남불’만은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윤 당선인은 문 정권의 위선과 내로남불에 맞섰던 공정과 상식으로 국정을 운영하기 바란다.
윤 당선인의 첫 국정 시험대는 비서실과 내각 인선일 것이다. 국민은 편을 가리지 말고 능력 있는 사람을 폭넓게 기용하는 대통령을 보고싶어 한다. 편중되지 않은 상식적 인선, 야당도 대체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인선을 원한다. 거대 야당이 그런 인사를 무조건 낙마시켜 정치적 이득만을 취하려 한다면 국민이 그 야당에 회초리를 들 것이다.
윤 당선인은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광화문 정부 청사로 옮기겠다고 했다. 당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 “언론 앞에 자주 서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도 5년 전에 똑같은 다짐을 했지만 정반대로 했다. 윤 당선인 말의 무게는 전임자와 다른지 국민은 지켜볼 것이다. 이 약속만 실천에 옮겨도 ‘제왕적 대통령’ ‘불통(不通) 대통령’ 문제는 해소되기 시작할 수 있다.
윤 당선인은 자신이 정치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그래서 윤 당선인의 대선 구호는 ‘국민이 불러낸 윤석열’이었다. 정치를 시작한 후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왜 국민이 저를 불러내셨는지를 생각했다”고 했다. 윤 당선인은 앞으로도 5년 동안 끊임없이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고 답했으면 한다.
조선일보 사설
03.11 이제 광기의 시대를 끝내야 한다
정의로운 것 같은 광장은 사실 불온하고 위험하다
내로남불 아닌 춘풍추상일 때 진정한 화해로 승화된다
대장동 게이트의 핵심 주범인 남욱이 검찰에서 말했다. “내가 좀 더 일찍 귀국했으면 민주당 후보는 바뀌었을 것이다.” 그는 미국 체류 중 검찰과 모종의 협상 끝에 지난 10월 18일 귀국했다. 그러나 민주당 경선은 8일 전에 이미 끝난 상황이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 패배에 책임을 지고 지도부 총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2022.03.10/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은 경선에서 50.29%를 득표해 가까스로 결선 투표 없이 대선 후보가 됐다. 만약 남욱이 보름쯤 일찍 귀국해 ‘대장동 설계자’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밝혔다면 당내 경선은 물론 어제 대선 결과까지 바뀌었을까.
지난 과거를 가정법으로 뒤집어보는 건 관심 없다. 그러나 지인들을 만나면 가끔 이런 말을 한다. 코로나 사태가 없었다면 문 정권은 어찌 됐을까. 청와대 분수대, 광화문 광장, 서울시청 앞 등에서 금지 조치 없이 집회가 열렸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문 정권의 실정을 질타하는 군중 대회가 주말마다 벌어지고, 수백만 시민이 정권 퇴진을 외쳤다면 청와대가 온전했을까. ‘저지른 대로 되갚음을 당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이제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했다. 두 달 뒤 문 정권은 보따리를 싸서 떠나야 한다. 그들은 광장의 분노를 모면한 것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까. 코로나 사태의 최고 수혜 세력은 자신들이라며 안도하고 있을까.
윤석열 당선인은 자신을 “국민이 불러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를 만든 4인방을 호명한다면 문재인, 조국, 추미애, 이재명이다. 이 사람들은 윤석열 검사를 전국 스타로 만드는 데 손발을 맞춘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강골 소리를 듣던 ‘일개 검사’를 중앙지검장·검찰총장으로 초고속 승진시킨 사람은 문 대통령이다. 윤 검사를 천거하는 과정에 관여했을 조국 민정수석은 그 뒤 윤 총장이 지휘하는 비리 수사의 타깃이 됨으로써 윤 후보 만들기에 이중으로 공헌했다. 추 법무장관이 윤 총장에게 “명을 거역했다”며 정직 처분을 내리던 때부터 여론은 정권 교체 쪽으로 뒤집혔다.
문재인과 이재명은 ‘광장과 촛불’을 끝까지 떠받들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우리 광장은 선동적이고, 때론 독선적이었다. 광기에 몸을 맡길 뿐 자신이 옳다는 신념이 어디에서 오는지 사색할 틈이 없었다. 영화 제목처럼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추상적 직관도 없었다.
정의로운 것만 같았던 광장도 사실은 불온하고 위험하다. 그걸 나중에 깨닫게 된다. 광장에는 상징적 단두대가 광기의 시대를 대변했다. 사법 처리는 내로남불이 아닌 춘풍추상일 때 진정성 있는 화해로 승화될 수 있다. 저들은 그것을 거꾸로 잡아틀어 ‘적폐 청산’이라고 분칠했다. 그런 광기를 지렛대 삼아 정권을 횡재하고 누렸던 586들이 물러가고 있다.
오늘은 선거 결과에 희비하기보다는 역사를 생각한다. 당선인이 선대의 묘역을 찾을 때 유권자도 옷깃을 여며야 한다. 스스로 묻는다. 5년 뒤 ‘오늘 내 선택’이 옳았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인가.
코로나가 터지고 아이와 함께 서울시청 앞 광장을 거닐어 본 적이 있다. 코로나 이전에 그곳은 거의 매일 옆 건물 유리창이 흔들릴 만큼 고성능 확성기가 쩌렁쩌렁 울리던 장소였다. 그날은 평화로운 잔디밭이 너무나 고즈넉했다. 멀리서 아빠랑 술래잡기를 하는 아기 웃음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나는 놀랐다. 광장은 원래 이런 곳이었구나.
광장의 몸살을 더 이상 앓고 싶지 않다. 앞선 위정자에게 잘못이 있으면 법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 그것은 광장이 아닌 법정에서 다뤄져야 한다. 그래야 철저하게 할 수 있다. ‘인터넷 광장’도 편안해져야 할 때다.
새 시대가 열렸다. 코로나도 고개를 숙일 것이다. 집회도 풀릴 것이다. 광장은 특정 세력의 소유가 아니다. 광장에는 어떤 확성기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가 광기에서 놓여날 수 있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
03월 11일 노정희 사퇴와 무능·코드 선관委 전면 재구성 급하다
대통령 선거에 이어 6·1 지방선거가 석 달도 남지 않았다. 17명의 광역단체장과 같은 수의 교육감, 226명의 시장·군수·구청장을 비롯해 광역·기초의회 의원들을 선출하는 선거가 다가오면서 이미 수만 명이 뛰고 있다. 그런데 ‘심판’이어야 할 선거관리위원회가 문재인 정권의 ‘선수’로 뛴다는 불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게다가 이번 대선에서 무능의 극치를 연출했다. 사전 투표에서 등장한 ‘소쿠리 투표’는 직접·비밀투표란 핵심 원칙을 위배한 것이다. 일선 선관위가 법률 위반이라고 지적했지만, 중앙선관위가 묵살했다. 투표용지 재발부 등 온갖 요지경 상황에도 노정희 위원장은 출근조차 하지 않았고, 김세환 사무총장은 투표용지를 직접 투표함에 넣겠다는 코로나19 확진자들의 주장을 ‘난동’이라고 표현했다. 본 투표에서도 적잖은 혼란이 되풀이됐다. 사전투표를 한 유권자에게 투표용지를 발급해주는가 하면 선거 사무원이 투표자에게 2장의 투표용지를 배부했다 적발됐다.
9명의 중앙선관위원 중 2명은 공석이고, 현직 7명 중 6명이 친여 성향의 코드 인사다. 지난 1월에는 문 대통령이 조해주 전 상임위원을 연임시키려다 선관위 직원 전원이 반발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하루빨리 선관위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노 위원장의 즉각 사퇴와 김 사무총장 경질이 최소한이다. 공석 중인 야당 몫 선관위원을 당장 선임하는 등 전면적 재구성이 급하다. 대선이 야당 승리로 끝났다고 결코 흐지부지 넘겨서 될 일이 아니다.
문화일보 사설
03.13 민주당 지도부 총사퇴… 586의 운명은?

▲지난 3월 10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3·9대선 패배로 당내 주류세력인 586세대를 향한 책임론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대선 국면에서 민주당 쇄신방안으로 언급됐던 ‘586 퇴진론’이 용두사미로 끝난 만큼, 이들이 패배에 대한 본격적인 책임을 지고 물러날지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지난 30년간 진보정권의 파트너이자 진보정당의 핵심 세력으로 자리 잡은 586세대가 이번 선거를 끝으로 2선으로 물러나게 되면, 진보진영은 지금과는 크게 다른 양상으로 개편된다.
민주당에서 당장 이 후보를 비롯한 당 지도부를 향한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지난 3월 10일 송영길 당대표 등 지도부가 총사퇴를 선언했다. 이로 인해 우상호 선대위 총괄선거대책본부장뿐 아니라 선대위에서 요직을 맡았던 586 정치인들 역시 비판의 화살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윤호중 원내대표를 비롯해 오영훈 후보 비서실장, 서영교 총괄상황실장, 윤건영 정무실장, 김영진 총무본부장 등에게 당장 비판이 쏠리고 있다.
“문 정부의 특권 계속 누리기 힘들 것”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심판론이 선거의 핵심으로 작동했던 만큼, 특히 지난 정권에서 기득권 이미지가 굳어진 이들이 더는 진보진영의 전면에 나서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진보진영의 원로로 꼽히는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586세대가 문재인 정부 들어 어느 세대보다도 훨씬 더 강한 국가주의적 사고방식을 공유하게 되면서 좋지 않은 정치 이미지를 갖게 됐다”며 “그런 이미지를 안고 정치 일선에 나서기는 어려움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때 누렸던 어떤 특권 혹은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이러한 기득권 이미지 때문에 민주당은 지난 1월 선거를 코앞에 두고 ‘586 용퇴론’을 꺼내들었다. 당시 이 후보 지지율이 30% 선에서 움직이지 않자 다급해진 당내에서 중도층을 겨냥하기 위해 꺼낸 카드였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던 김종민 의원이 지난 1월 23일 처음 ‘용퇴론’을 꺼냈다. 그는 “386 정치가 민주화운동의 열망을 안고 정치에 뛰어든 지가 30년이다. 그동안 국회의원도 하고, 장관도 하고, 청와대 일도 했다. 그러나 그 30년 동안 대기업·중소기업 임금격차, 출산율 등 총체적 민생 위기가 왔고, 이는 30년 동안 우리가 민주주의를 제대로 못한 것”이라는 취지로 글을 적었다. 이에 송영길 대표와 우상호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동참했지만, 그 밖에 불출마 의사를 밝힌 정치인이 없어 ‘용두사미’로 끝났다는 비판을 받았다. 김종민 의원은 나중에 “정치인이 아니라 제도를 용퇴하자는 것”이라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이들이 20대 대선을 기점으로 물러나게 되면, 진보정당의 주류 세력은 20년 만에 바뀐다. 1980년대 학생운동에 앞장섰던 이들은 2000년대 참여정부를 기점으로 청와대나 국회에 본격적으로 입성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첫 내각 참모진에는 운동권 경력이 있는 30~40대 젊은층이 다수 포진됐는데, 당시 30대 후반이었던 이광재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김경수 청와대 제1부속실 행정관 등이 대표적이다. 지금 진보정권의 핵심적인 동반자 역할을 해온 여의도의 정치인들도 이때 대거 입성했다. 노 전 대통령 집권 1년 만에 치러진 2004년 17대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한 열린우리당에서 초선 의원은 108명에 달했는데 그중 31명이 386세대였다. 우상호 의원, 이 후보 측 선대위 총괄본부장을 맡았던 조정식 의원, 특임본부장을 맡은 김태년 의원 등이 이때 합류했다.
이들의 퇴진은 2030세대의 부상으로 인한 불가피한 세대교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20대 대선 국면에서는 전에 없이 2030의 목소리가 주목을 받았는데, 청년 세대의 개인주의적 성향과 586세대의 집단주의적 정치 행태는 필연적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한상진 교수는 “50대 이상이 중심에 서는 건 세대 구조상 불가피한 데다가 우리나라만큼 응집성이 강한 정치 세대가 없을 정도로 이들이 국가 권력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며 “이들은 이 결집력을 정권의 성공 카드로 받아들이면서 더 철저해졌는데, 자유주의적 가치를 강조하는 20대와 가치관이 다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러한 가치관 차이 때문에라도 젊은층이 586세대를 점점 더 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건 논리적으로 거의 필연적”이라고 설명했다.
청년 정치인이 성장하기 위해서라도 586의 퇴진이 필요하다는 측면도 언급된다. 송 대표가 앞장서고 나선 ‘586 용퇴론’이 용두사미로 끝나자, 이동학 민주당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 1월 27일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려 “586 선배님! 말을 꺼내셨으면 실행하셔야죠! 이런 정치 물려주실 겁니까”라고 공개 저격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후보의 패배와 민주당 586 세력의 패배를 동일시하기는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후보부터 대선 결과에 승복하며 “모든 책임은 오롯이 저에게 있다. 여러분의 패배도 민주당의 패배도 아니다”라고 말하며 당과 선을 긋고 나섰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과연 586이 잘못해서 이재명 후보가 선거에서 실패했는가, 그게 패배의 원인인가 이런 맥락을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며 “이 후보를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던 지도부, 선대위에서 주요 역할을 맡았던 사람들이 주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장 이들을 대체할 만한 대안 세력이 없는 상황에서 ‘586 정치’가 사라지기는 쉽지 않을 거란 분석도 있다. 이 교수는 “단순히 세대만 가지고 얘기하기는 어렵다”며 “2030은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586이 책임을 져야 한다면 또 60~70대 의원들은 괜찮은 건지 등 대안과 한계에 대한 답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도 “지금 이 견고한 집단을 대체할 만한 세력은 (민주당 내) 없다”며 “586이 특이하리만큼 어느 세대보다도 내부적으로 강하게 응집한 측면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 준비가 돼 있거나 영향력을 누리는 다른 세력은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 신뢰를 잃고 대거 낙선했던 ‘386 초선 정치인’들이 10여년 후 진보정권에서 그대로 복귀한 선례도 눈여겨볼 만하다. 참여정부가 힘을 잃으면서 18대 총선에서는 대거 낙선했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출신 386 정치인들은 문재인 정권에서 주요 요직에 올랐다. 당시 17대 총선에서 대거 당선된 초선 의원들은 국민 통합, 경제 성장, 부동산 정책 등 민생 현안에 미숙한 모습을 보이며 국민의 실망을 샀고, 이 때문에 18대 총선에서는 이인영·오영식·임종석·정청래 의원 등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출신 의원들이 줄줄이 낙선했다. 그러나 10여년 후 문재인 정부에서 이들은 다시 청와대 등 요직에 복귀했다. 당시에도 ‘386 정치’에 대한 자성과 혁신의 요구가 있었지만 별다른 변화 없이 진보정권에서 다시 등장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민주당 586세대의 향방이 주목된다.
주간조선 조윤정 기자
03.14 골격 짜인 인수위, 선거 때 남발된 공약 거품도 걷어내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지명하는 등 핵심 인선안을 발표했다. 이번 주 중 출범할 인수위는 두 달간 활동하면서 윤석열 정부의 5년 국정 청사진을 만들고 첫 내각을 구성하는 등의 역할을 맡는다. 안 대표가 인수위원장을 맡은 것은 단일화 과정에서 약속한 ‘국민 통합 정부’를 이행하는 첫 단추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민주당과의 협치 기반도 될 수 있다. 윤 당선인과 안 대표는 앞서 회동에서 국정 방향과 가치에 대해 생각이 일치했다고 했다. 안 위원장은 윤 당선인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시급한 민생·안보 관련 현안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새 내각의 틀을 짜야 할 것이다.
과거 인수위에선 정권 실세들이 정부 부처와 공직자들에게 호통을 치며 점령군 행세를 하곤 했다. 번드레한 말잔치나 이벤트성 행사를 벌이고, 설익은 정책 구상을 중구난방으로 쏟아내 혼란을 야기했다. 인사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아 첫 총리 내정자가 낙마하는 사태마저 있었다. 만약 이런 일이 되풀이된다면 윤 당선인은 취임도 하기 전에 난관에 부딪힐 것이다.
역대 인수위원의 70% 정도는 청와대와 정부 고위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실상 예비 내각의 성격이 짙다. 그런 만큼 인수위원·전문위원부터 정실·인맥·친분 관계가 아니라 능력·자질·전문성 중심으로 뽑아야 한다. 총리와 장관 후보자 등에 대한 인사 검증도 철저히 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 편’ ‘내 식구’가 아니라 각 분야 새로운 인재를 널리 발굴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도덕성에 하자가 있거나 전문성이 떨어지는 정실 인사를 한다면 172석 야당의 반대 이전에 국민부터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대선 공약을 기초로 국정 과제를 만들되 현실성이 떨어지는 선심 공약은 과감하게 쳐낼 필요가 있다. 윤 당선인의 공약 비용은 최소 266조원이다. 연간 수조 원이 들 ‘병사 월급 200만원’과 50조원에 달할 코로나 피해 지원 등 큰돈이 필요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세금 퍼붓기 정책으로 국가 부채가 1000조원으로 부풀었다. 공약 거품을 걷어내지 않는다면 심각한 재정 위기를 맞을 것이다. 못 지킬 약속은 국민에게 솔직하게 이해를 구해야 한다. 안 위원장은 “인수위에서 공약 실현 가능성을 점검할 것”이라고 했다. 그대로 해야 한다.
지금 나라 안팎으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코로나 확산세는 꺾일 줄 모르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고유가·고물가·고환율의 ‘3각 파도’가 덮치고 있다. 부동산도 여전히 불안하다. 북한이 예고대로 ICBM 도발에 나설 경우 한반도 안보 지형은 거세게 요동칠 것이다. 인수위엔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출범 첫날부터 엄중한 위기의식을 갖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3.14 민주당 정성호, 文겨냥 “잠시 맡긴 권력에 오만” 김두관 “증오를 정의로 착각”
대선패배 ‘반성문’ 쏟아져

▲더불어민주당 정성호,김두관,조응천 의원./뉴스1·뉴시스
더불어민주당에서 대선 패배 원인을 놓고 ‘반성문’이 쏟아지고 있다. ‘내로남불’ ‘오만’ ‘진영논리’ 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 가운데 문재인 정부 실정(失政)을 정면으로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재명 전 경기지사와 가까운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성공자는 방법을 찾고 실패자는 구실을 찾는다”며 “남 탓이나 하는 자는 미래가 없다”고 썼다. 이어 “방법은 나의 무능과 무책임을 성찰 반성하고 혁신과 변화를 통해 내일을 열어 가는 것뿐”이라며 “국민이 만들어서 잠시 맡긴 권력을 내 것인 양 독점하고 내로남불 오만한 행태를 거듭하다 심판받았다는 사실을 벌써 잊어 버리고 나는 책임 없다는 듯 자기 욕심만 탐하다가는 영구히 퇴출당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의원의 지적은 특히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 전 지사와 가까운 인사는 “문재인 정부 잘못에 대해 이재명 후보가 백번 사과한들 무슨 소용이 있었겠느냐”며 “적어도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해서라도 문 대통령이 인정하고 사과했으면 대선에 패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응천 의원도 이날 소셜미디어에 “지난 5년 동안 조국 사태와 시·도지사들의 성추행 사건, 윤미향 사건, 말 바꾸기 위성 정당 사태 등을 거치며 우리 당의 도덕성과 공정성은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그런데도 강고한 진영 논리로 덮이면서 민주당은 더 이상 개혁적이지도 도덕적이지도 않은 세력으로 인식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작년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 과정에서 근본적인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노출되었음에도 반성하지 않았고, 쇄신은 더더욱 없었다”며 “우리는 그래도 ‘야당보다는 유능하니 우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선거에 임했다”고 했다.
김두관 의원은 지난 12일 페이스북에 대선 패배 원인을 진단하면서 “문재인 시대에 들어 노무현의 원수를 갚는다는 미명 아래 ‘증오의 대오’를 ‘정의의 대오’로 착각하는 중대한 실책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또 “개혁은 우리만이 할 수 있다는 오만이 민주당을 지배했다”며 “진영 논리와 내 편 감싸기가 국민과 민주당을 더욱 멀어지게 했다”고 했다.
조선일보 김경화 기자
03.14 민주당 이상민 의원 “尹을 악마로 모는 데만 매몰, 당 가치·원칙 사라졌다”
[김경화가 만난 사람]
민주당 ‘미스터 쓴소리’ 이상민 의원의 대선 패배 반성문
”여야 권력에 모두 거품 껴있어… 협치 말고 다른 방법 있나
더불어민주당 5선 이상민 의원(대전 유성을)은 정부·여당 잘못에 직언을 아끼지 않아 ‘미스터 쓴소리’로 불린다. 대선 기간에도 당내의 과도한 ‘문재인·이재명 성역화’를 비판하다 문자 폭탄에 시달렸다. 대선 이틀 후인 지난 11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난 이 의원은 민주당의 패배에 대해 ‘내로남불’ ‘위선’ ‘오만·독선’ ‘패거리 의식’ 등의 수식어를 쓰며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으로 잡은 정권을 곧장 내어주게 된 데 대한 절절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번 대선 결과와 관련해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문재인 정부와 집권 세력이 심판받은 것”이라며“172석 거대 야당이‘통 큰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그는 특히 윤석열 당선인과 국민의힘은 ‘현재의 승리’에, 민주당은 ‘2년 전 총선 승리’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윤 당선인은 민주화 이후 최소 표 차(0.73%포인트·24만7077표) ‘신승(辛勝)’으로 청와대와 행정부 권력을 쥐게 됐다. 172석 막강한 의회 권력을 갖고 있는 민주당 역시 현재는 “과다 대표된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 의원은 “각자 현재 딛고 있는 상황, 자기 신세를 직시하면 협치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文 정부·민주당 심판받은 것
-20대 대선의 의미를 짚어본다면.
“문재인 정부·집권 세력에 대한 심판이다. 내용 면에서는 이긴 쪽도 진 쪽도 절반도 안 되는 각각의 지지 기반을 갖고 가야 하는 매우 부조화스러운 구조가 됐다. 국가나 국민 입장에서 매우 우려스럽고 정치권의 지혜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민주당 패배의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사람들이 민주당에 대해 생각하면 내로남불, 위선, 오만, 독선, 맹종, 패거리 의식 등을 떠올린다. 현직 대통령을 내쫓고 문재인이라는 사람을 내세웠는데 민주당이 어떤 행태를 보였나. 우기고, 어거지(억지)쓰고. 버티고 아니라고 하거나 상대에게 뒤집어씌웠다. 그래도 안 되면 마지막에는 ‘이명박·박근혜 때보다는 낫지 않냐’고 했다. 국민들은 ‘민주당 너희는 다르겠지’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그걸 채워주지 못한 실망감이 있는 거다.”
-이재명 전 경기지사가 ‘정권 심판론’을 넘지 못했다고 보는 건가.
“이재명 후보와 관련된 대장동 의혹과 욕설 파문, 아내 등 주변 관련 의혹도 패배 원인의 한 축이라고 볼 수 있다. 대장동 건은 막판에는 ‘윤석열이 몸통’이라고 하는 프레임으로 가지 않았나. 그런 대응이 과연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었나 싶다. 억울한 게 있다면 그걸 풀어야 하는데, 상대방을 끌어들여 그 얘기만 했다.”
-0.73%포인트, 최소 표 차로 뒷심을 보였다는 평가도 있다.
“0.7%포인트 차로 졌든, 0.0001%포인트 차로 졌든 진 것은 진 것이다. 3분의 2 가까운 국회 의석을 갖고 있으면서 반도 못 얻었다면 성공한 게 아니다. 그런 평가는 자기 환시, 자아도취, 자기 위안을 넘어 자기기만을 하는 것이다.”
-선거 과정에서 가장 아쉬운 장면이 있다면.
“네거티브다. 이재명 후보가 경선·본선 때 모두 네거티브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는데 결국 그 유혹을 떨치지 못한 것 같다. 왜 네거티브 안 하고, 인간적 예의를 갖춰 신사적으로, 정책 어젠다를 더 재미있게 풀어내며 하지 못했냐는 거다. 상대 후보를 좀비·악마처럼 몰아붙여서 억지 주장을 하고 잡아먹으려 했다. 관용·배려·용서·연대·공존 이런 가치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원칙 있는 패배였으면 더 좋았다.”
李, 네거티브 유혹 떨치지 못해
-최악의 네거티브는 무엇이었나.
“(윤 당선인 아내) 김건희씨에 대한 공격은 아주 비열했다. 김씨 사생활 관련 루머를 공식 석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떠들거나, 아무리 표현의 자유라고 해도 이른바 ‘쥴리 벽화’에 대한 비판적 인식도 없었다. 여권 모 인사는 윤 당선인이 어퍼컷을 할 때 배가 나와 와이셔츠가 삐져나온다며 용모를 비난했다. 출신·용모·배경으로 차별·혐오해서는 안 된다는 건 민주당의 기본적인 가치·지향점이고 우리가 자부심을 느끼는 부분이다. 그런 우리 당의 전통이 사라진 것 같다. 매우 실망스러웠다.”
-민주당 강경 지지층 문제도 많이 지적했다.
“우리 당의 결함 중 하나가 맹종·일색에 성역화를 한다는 거다. 문재인 대통령, 이재명 후보, 김어준씨 등이 성역화됐다. 패거리 정치가 활개를 치면서 다른 목소리가 스며들 틈이 없다. 그런 열성 지지층이 있다는 게 자산이면서도 부담이다.”
-그런 선거를 치렀는데 윤석열 정부와 협치가 가능할까.
“상대를 배려해서 통합과 협치를 하라는 건 허구다. 자기 신세와 형편, 확보하고 있는 지분을 생각하면 ‘이러면 안 되겠네’라는 생각이 퍼뜩 들 것이다. 현실적으로 딛고 있는 기반을 생각하면 각자 절반도 안 되는 것 아닌가. 겸허하게 상대가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고 내 것도 관철시키고, ‘협상’을 해야 한다.”
-172석 민주당은 이른바 ‘입법 폭주’를 해왔다.
“양쪽 모두 이번 선거에 대한 겸허한 성찰을 하면 알게 될 것이다. 현재는 양쪽 다 ‘과다 대표’ 상태다. 2년 전 선거로 180석을 얻은 민주당이지만 이번 대선은 절반도 못 했다. 국민의힘은 절반 안 되는 득표로 당선됐지만 대통령이라는 막대한 권력을 싹쓸이했다. 둘 다 거품이 꼈다. 양쪽 모두 축소 지향적으로 바라봐야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
-협상과 거래를 해야 한다는 건가.
“미국에서는 ‘딜(deal)’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우리는 유교적 기반 때문인지 거래를 하고 싶어도 말하지 않는다. 상대의 신념이나 이해관계를 설득·굴복시킬 수는 없다. 신념·체계·인생관을 어떻게 굴복시키고 양보하라고 할 수 있나. 서로 ‘딜’ 하는 거다. 내어 줄 건 내어주고, 받을 건 받고. ‘올 오어 너싱(all or nothing)은 건강한 싸움이 아니다.”
巨野 통 큰 리더십 보여줘야
-현실적으로 172석이 무기가 될 것 같다.
“172석 거대 야당이 이런 리더십을 보이면 어떨까. 민주당이 아니면 법안 통과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을 게 아니라, 적극 협조할 테니 가지고 와봐라 하는 거다. 윤 당선인이 정부조직법을 내놓으면 그걸 함께 ‘초벌구이’ 해서,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의 정부조직법을 제출하는 거다. 태클, 흠집 잡기, 꼬투리 증폭시키기 이런 거 말고 ‘포지티브’ 하게 지금까지의 야당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그럼 국민들도 민주당을 다시 볼 것이다.”
-차기 민주당 지도부도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나.
“그렇다. 우리가 의석이 적을 때는 ‘약자의 굽신거림’일 수 있지만 172석 거야의 ‘통 큰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쾌활하게, 통 크게, 쾌도난마처럼, 상대가 입을 떡 벌리게끔 화통하게 해야 한다. 발목 잡기, 흠집 내기 그간 많이 해봤지 않나. 자신은 속 시원한 거 같은데 사실 자기 마음도 병들어가고 어둡고 음습해지는 거다. 그런 정당에 좋은 기운이 오겠나.”
-이재명 후보의 앞으로 역할은.
“대선이라는 힘든 과정을 거쳤으니 당분간 자중하며 여유롭게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지 않을까. ‘부족한 건 나였다’고 한 최근의 자세는 아주 잘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 자세를 견지하는 게 국민 신뢰와 호감을 이어가는 방법이다.”
-당 일각에서 비대위원장·당대표 등 조기 등판론이 나오는데.
“그건 이 후보를 도와주는 게 아니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이 가만히 있는 사람(윤 당선인) 공격해서 키워준 것처럼 역작용이 생길 수 있다. 엉뚱한 얘기해서 잘하고 있는데 재 뿌리고 먹칠하는 거 아닌가 싶다.”
-윤호중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기로 했다.
“정치는 무한 책임이기 때문에 패배했으면 책임을 지는 건 마땅하다. 다만 당대표·최고위원만 그만두고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는 건 자연스럽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2030 갈라치기’ 반성해야
-선거 결과 2030 남녀가 극히 분화됐다.
“정치 세력과 여야 후보들의 맹성이 필요하다. 자기들 표를 얻으려고 ‘갈라치기’한 것 아닌가.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아주 몹쓸 짓을 한 거다. 청년들이 갖는 울분과 좌절감을 이용해 상대를 혐오하게 한 건데 아무도 반성을 안 하고 있다.”
-선거제 개편 등 정치 개혁 논의는 이어갈 수 있을까.
“여야 모두 절반을 획득하지 못한 지금이 적기라고 본다. 크게 다섯 가지를 바꿔야 한다. 분권형 대통령제로 대통령 권한을 확 줄여야 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든 중대선거구제든 선거 제도를 개편하고 국회법을 바꿔 교섭단체 기준을 현재 20석에서 10석이나 5석으로 낮춰야 한다. 2030세대의 참여를 높이려면 정당법상 정당 구성의 진입 장벽을 확 낮춰야 한다. 국가보조금도 의석수별로 배분할 게 아니라 소수 당, 신생 정당에 더 많이 가도록 해야 한다.”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이 동의할까.
“윤 당선인이 정말 한국 정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면 정치 개혁을 추진력 있게 끌고 가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내려놓고 분권형으로 확 바꾸고, 의회에 상당한 권한을 넘기는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 민주당도 공약했기 때문에 윤 당선인이 결심하면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다.”
조선일보 김경화 기자
03월 14일 선대위 난국 속 등판… 합리·통합·직언으로 승리 이끈 킹메이커

■ Leadership 클래스 - 尹캠프 선대본부장 임무완수 권영세
- 합리성
이념 치우치지 않는 중도우파
과거 친이-친박 중재 역할도
보수 후보로 강북권 유일 당선
- 통합·조화
김종인 사퇴 후 구원투수로
사분오열 당 조직 정비 집중
원팀 강조하며 당내갈등 봉합
- 직언
이준석에게 “安 공세 중단하라”
김건희 논란엔 “잘못 인정하자”
악역 자처하며 서슴없이 쓴소리
“지금 이 국면을 타개할 수 있는 사람은 권영세 의원밖에 없다.”
지난 1월 4일, 한 국민의힘 핵심 인사는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 선거대책위원회가 해체된 이후 긴박하게 이렇게 말했다. 대선을 치러본 경험이 있으며,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조직 정비에 집중할 수 있는 인물. 무엇보다 후보와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권 의원이라는 말이다. 권 의원은 실제 슬림화된 선거대책본부장으로 64일간 캠페인을 총괄하며 ‘0선 윤석열’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 과정에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충돌하는 과정을 봉합하고, 철저히 후보만 앞세우는 ‘그림자 리더십’이 있었다는 평가다. 권 의원의 드러나지 않으며 세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킹메이커’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다.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합리적 리더십=권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정부에서 주중대사를 지내 ‘범친박(친박근혜)계’로 분류되지만, 사실 계파색보다는 합리적 ‘온건파’로 불린다. 계파에 따라 행동하기보다는 합리적인 판단을 중시한다는 의미다. 당내에서도 ‘따듯한’ 중도 우파 성향으로 분리된다. 국민의힘이 전신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시절 강성 보수에 기대어 광화문 집회에 매진한 것에 대해서는 “서민들의 삶에 문제에서는 보수를 위한 이념적 접근이 아니라, 중도 실용의 자세로 다가가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가 2020년 총선 때 서울 강북권에서 보수당 명패로 출마해 당선된 유일한 인물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2007년 대선 당시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계의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 중재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갈등이 계속되자 “친이·친박을 넘어서는, 계파색이 약한 새로운 지도세력을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은 60여 일 동안 계파 갈등이 불거지지 않도록 신중을 기했다고 한다. 실제 선대본부 내 친이계 인사들이 대거 포진했지만, 선대위 해체 후 조직을 슬림화하는 과정에서도 계파와 연결된 잡음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또 수도권 의원으로서 메시지나 일정을 최대한 조화롭게 분배해, 당이 ‘영남당’이라는 과거 비판에 직면하지 않도록 했다.
◇무엇보다 ‘통합’을 중요시=권 의원은 윤 당선인의 탄생으로 ‘여당’이 된 국민의힘이 “통합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국민 통합, 여·야의 협치, 당내 통합 등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나, 그의 방점은 국민의힘 ‘원팀’에 찍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계파 갈등으로 당이 부서지고 다시 합쳐지는 수차례의 과정을 지켜봐 온 장본인으로서, 무엇보다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하는 것이다. 지난해 5월 당 대표로 출마할 당시, 입당 전이던 윤 당선인을 두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당 플랫폼으로 올 때 당내 갈등이 많아질 수도 있다. 이런 부분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려면 경험이 필요하다”며 자신이 대표직에 도전한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통합을 중시하는 만큼 선대본부장으로서 자신은 철저히 그림자에 머물기도 했다. 대신 그는 선대위 ‘3김 체제’(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의 종식과 해체 이후 사분오열된 선대본부를 재정비하고, 조화로운 선대본부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당시는 윤 당선인, 윤 당선인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를 향한 더불어민주당의 네거티브 공세가 거셀 시점이었다. 전방위적으로 쏟아지는 이슈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먼저 원팀이 돼야 한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한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무엇보다도 선대본부가 안정적으로 굴러가는 데 권 의원이 노력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당을 위해선 악역도 자처=온건한 그지만 필요하면 쓴소리도 마다치 않았다. 이 대표에게 안 대표를 향한 공세를 중단하라고 공개 발언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이 대표는 안 대표와 윤 당선인 간 야권 후보 단일화 관련 물밑 논의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안 대표를 향해 조롱성 댓글을 다는 등 공격성 발언을 이어갔다. 이에 권 의원은 선대본부 회의 공개 발언에서 “당 대표를 비롯해 우리 모두 사감과 사익을 뒤로하고, 정권교체라는 대의를 앞세워야 할 때다. 명심하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 대표가 ‘통일부 폐지론’을 제기해 ‘반헌법적’이란 비판을 받은 지난해에도 그를 향해 “언행을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며 “남북한도 언젠가 통일을 해야 하는데, 미리 내·외적으로 공히 독립적 국가관계로 처리한다면 통일과정에서 큰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직언도 불사=김 여사에 대한 경력 과장 의혹이 있었을 당시에도 “인정할 것은 확실하게 인정을 하고 가야 하는 게 맞다. 우리 쪽에서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진솔하게 그건 잘못됐다, 앞으로는 이런 일은 없겠다, 이런 식으로 털고 가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해 눈길을 끌었다. 당시 당내에서는 김 여사와 관련된 의혹들에 대해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하는 분위기였다. 권 의원은 “너 50보 넘어갔고 나는 100보 넘어갔다, 나는 50보밖에 안 넘어갔으니 내가 잘했다. 이런 식의 대응은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김 여사는 지난해 12월 26일 여의도 당사를 찾아 해당 이력 논란에 대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했다.
대선 사령탑으로서 캠페인을 성공시킨 그는 고사했지만 13일 윤 당선인의 거듭된 요청에 따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게 됐다. 그는 인수위원장인 안 대표와 인수위를 이끌며 차기 정부 국정 운영의 밑그림을 그리게 된다. 윤 당선인은 “권 의원은 풍부한 의정 경험과 경륜으로 지난 선거 과정에서 유능하고 안정적인 리더십을 보여줬다. 안 위원장과 정부 인수 업무를 성공적으로 이끌 것”이라고 인선 이유를 밝혔다.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
03.16 선관위 사무총장 사의 표명… 노정희는 거취 안밝혀
김세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장관급)이 코로나 확진·격리자 사전투표 부실관리 논란과 관련해 16일 사의를 표명했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김 사무총장은 이날 낮 중앙선관위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사전투표 부실관리 사태와 관련해 사무총장으로서 그 책임을 통감하고 사죄드린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조선일보가 단독 입수한 김 사무총장의 사의 표명 입장문을 보면, 김 사무총장은 “코로나 폭증으로 인한 어렵고 힘든 여건에서도 직원 여러분께서는 최선을 다해 헌신적으로 선거관리에 임해 주셨지만, 모두 저의 잘못으로 이번 사태가 초래됐다”면서 “실행이 어려운 복잡한 지침과 늑장 지시, 일선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한 업무 추진, 소통과 공감이 부족한 권위적인 태도 등으로 현장의 혼란과 어려움을 가중하고 정신적인 고통까지 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우리 위원회에 국민적 비난과 질책이 빗발침으로써 혼신의 노력으로 희생을 감수해 주신 직원 여러분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히게 됐다”면서 “어려운 환경과 힘든 여건에서도 최일선에서 땀과 눈물로 대선을 묵묵히 관리해 주신 직원 여러분의 열정과 노고에 다시 한 번 감사와 사죄를 드리며, 저는 이번 사태의 모든 책임을 지고 사무총장직에서 물러나고자 한다”고 했다.
이어 “부디 모두의 힘과 지혜를 모아 이 난관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지방 선거를 성공적으로 관리해 우리 위원회가 국민의 신뢰를 받는 기관으로 재도약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1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김세환 사무총장의 사의 표명 입장문. /노석조 기자
앞서 선관위는 3·9 대선을 앞두고 지난 4~5일 진행된 사전투표 관리를 부실하게 하면서 여야로부터 강한 질책을 받았다.
사전투표 마지막 날인 지난 5일 코로나 확진·격리자가 기표한 투표용지를 비닐 팩이나 종이 상자, 플라스틱 소쿠리 등에 담아 옮기면서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이 벌어졌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뉴스1
당시 확진자 투표 인원 예측에도 실패하면서 확진자들이 장시간 투표장에서 대기하는 문제가 노출됐고, 야당을 중심으로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의 책임론이 제기됐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20대 대통령 선거 부실 관리 문제와 관련해 “선관위의 총책임자인 노정희 위원장이 사퇴해야한다”고 밝혔다. 노 위원장은 사전투표 부실 관리 논란이 벌어진 지난 5일 당일에도 선관위 자신의 사무실로 출근도 하지 않아 논란을 불렀다. 노 위원장은 지난 8일 사전투표 부실 관리 논란에 대해 대국민담화를 통해 사과했지만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서는 이날까지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다.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
03.17 ‘소쿠리 투표’ 참사, 아래서 책임지고 선관위원장은 버틸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김세환 사무총장이 16일 “사전투표 부실 관리 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사죄드린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 5일 코로나 확진·격리자 사전투표에서 21세기 대한민국이라고 믿을 수 없는 원시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투표용지를 소쿠리나 비닐봉지 등에 담아 옮기고 이미 기표한 용지를 나눠주는가 하면, 참관인도 없는 상태에서 투표함에 용지를 넣기도 했다. 직접·비밀투표라는 선거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훼손된 것이다.
김 총장은 확진자들이 부실 투표 관리에 대해 항의하자 “난동을 부렸다”고 해서 물의를 빚었다. 선거를 실무적으로 총괄한 책임도 있으니 사퇴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김 총장 한 사람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노정희 위원장도 당연히 물러나야 한다. 그가 선관위 수장으로서 총체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론적인 의미에서뿐만이 아니다. 사전투표에서 엄청난 혼란이 벌어진 당일 야당 의원들이 항의차 선관위를 방문했을 때 노 위원장은 자리에 없었다. 토요일이어서 쉬었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하루 20만명씩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투표가 처음으로 실시되는 비상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휴일이라서 출근하지 않았다는 것은 선거 관리라는 중책을 맡은 책임자로서 기본 소양을 의심하게 한다.
노 위원장은 당초부터 대한민국의 5부 요인 중 하나인 선관위원장을 맡을 적임자냐는 자질 시비의 대상이었다. 대법관 임명 때부터 정권과 뜻이 맞는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는 점 말고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대법원 주심으로 맡은 재판에서 법조문도 제대로 읽어 보지 않고 판결했다가 하급심에서 뒤집어지는 창피스러운 사태까지 벌어졌다.
노 위원장은 사전투표 참사에 대해 뒤늦은 사과 담화를 발표하고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러더니 김 총장의 사의 표명에도 거취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대로 버틸 생각이라면 염치도 눈치도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 사설
03.17 5년 만에 실권하고도 정신 못 차린 민주당
“이상민 이 XX 야! 왜 내부총질이냐? 저쪽(국민의힘)에나 가라.”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유성을·5선)은 요즘 잠을 못 이룬다. 자정부터 새벽까지 이런 협박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오기 때문이다. “밤새 무슨 기계를 돌리는 것 같다. 조직적 동원으로 볼 수밖에 없다.”
3·9 대선에서 패배한 더불어민주당의 행태가 볼만하다. 패인을 반성하기는커녕 성찰을 요구하는 중진 의원을 비방하며 ‘네탓 공방’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재명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으로서 대선 패배 책임이 막중한 윤호중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것부터 상식밖 일이다. 그가 임명한 비대위원 다수도 이재명 후보 측근들로 패배에 책임이 있는 이들이다. 게다가 김두관 의원 등 일부 정치인은 “이재명을 비대위원장에 앉히자”고 소리를 높이고 있다.
만약 국민의힘이 대선에서 졌는데 ‘윤핵관’들이 비대위를 장악하고 “윤석열을 비대위원장에 앉히자”고 주장한다면 민주당의 반응은 어땠을까. 과거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엊그제까지 집권당이자 의석 172석의 거대 정당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고 제동을 하는 의원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 수준이다.
그나마 이상민 의원이 상식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강도가 그리 센 편도 아니다. 정치에 딱히 관심이 없는 국민이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준이다. 그러나 그에게 쏟아지는 문자폭탄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 투하하는 바보 폭탄(dumb bomb)을 뺨칠 만큼 잔인하고 무자비하다. 견디다 못한 이 의원은 전화를 가방에 넣거나 끄고 다녀 업무에 지장이 많다고 한다. 그의 사무실에도 하루 수십 통씩 욕설 전화가 걸려온다. 대뜸 육두문자를 날리는 전화는 보좌관들이 받자마자 끊어버린다. 그러나 차분하게 말하는 사람들도 결론은 같다. “이상민은 내부 총질하는 배신자”란 거다.
이상민 의원의 말이다. “내게 쏟아지는 문자 폭탄의 본질은 ‘이재명 지키기’인 듯하다. 난 방송에서 이재명을 욕한 적 없다. 대선에 진 원인 두 가지만 얘기했을 뿐이다. ①민주당의 내로남불 ②이재명 후보가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것이라고만 했지 ‘이재명 때문에 졌다’고 안 했다. 그런데도 문자폭격이 가해지는 건 누군가 배후가 있는 조직적 행동이다. 날 굴복하게 하려는 모양인데 그렇게 되겠는가.”
지금 민주당은 ‘문재인의 민주당’에서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이동한 징후가 뚜렷하다. 2년 전 친(親) 이재명 성향의 이해찬 대표 체제로 치러진 총선에서 대거 금배지를 단 초선 의원들이 홍영표·전해철 의원 등 ‘정통 친문’들을 밀어내고 당내 다수가 됐다. 친 이재명 성향인 이들은 숫자상으로 이미 ‘주류’다. 하지만 민주당 당직자들은 이들을 여전히 ‘비주류’라 부른다. 의원다운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권력만 쫓아다니는 모습이 ‘주류’로 불리기엔 함량 미달이란 것이다.
이들은 대선 패배 뒤 입을 모아 ‘쇄신’을 외치고 있다. 그런데 쇄신 내용이 납득하기 힘들다. “이재명이 쇄신”이라는 거다. 대선 패배 당사자로 자숙이 필요한 사람을 쇄신의 아이콘으로 추켜세우며 조기 등판을 연호하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입으론 쇄신을 외치지만 속으론 ‘이재명’으로 상징되는 구체제와 기득권을 지키려는 것이 아닐까.
윤호중 비대위도 이런 비판을 의식했는지 20대 여성 박지현씨를 공동위원장에 앉혀 ‘변신’ 시도에 나섰다.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를 찍은 사람이 58%에 달하는 ‘이대녀’를 다시 한번 ‘친 비대위, 친 이재명’ 세력으로 결집해 정권교체 뒤 예견되는 사정 정국에 맞설 방패로 삼고, 6·1 지방선거에서도 활용하겠다는 전략인 듯하다.
하지만 명심할 게 있다. 20대 여성이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를 택한 건 그가 좋아서가 아니라 국민의힘의 남녀 갈라치기에 대항 성격이었다. 그걸 바로 잊고 민주당 비대위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이대녀를 앞세우려 한다면 그들이 순순히 동의할지 의문이다.
이상민 의원 말대로 “0.0001% 차이로 졌어도 진 건 진 것”이다. “수도권 의석의 90%에다 지방권력까지 압도적 우세를 보여온 민주당 정권이 5년 만에 권력을 내줬다면 0.7%가 아니라 70%나 진 것”이라는 당내 중진 안규백 의원의 고언을 경청해야 한다. 패배한 정당이 할 일은 분명하다. 당내 책임자들은 선거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고, 등 돌린 민심을 성찰하며 개혁적 새 피에 지휘권을 넘겨야 한다. 대통령 둘을 잇달아 감옥에 보내고 수렁에 빠졌던 국민의힘도 그런 진통 끝에 이번에 겨우 이긴 것 아닌가.
중앙일보 강찬호 논설위원
03.17 "광주가 조국" 범죄 옹호에 분노...광주 출신 의사 尹 찍었다

▲대통령 선거 다음날인 10일 광주에서 당선 인사를 하고 있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배경은 지난 2월 광주 5·18민주광장에서 연설 중인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그래픽=전유진 기자
나는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5·18과 지역 차별이라는 아픈 기억을 대대로 공유하는 환경에서 자란 30대 의사다. 현재 내과 전문의로 코로나 확진자를 진료하고 있다. 많은 광주시민이 그러하듯 오랫동안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하며 정통 민주당 계열 정당 지지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서울 소재 의과대학 진학 후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무조건 하나의 특정 정당만 지지하기보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와 생산적 복지를 추구하는 정당에 표를 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적 사건 이후 공정을 내걸고 당선된 문재인 정권만은 정치적 지향과 무관하게 부디 잘해주길 바라며 지지했다.
'광주가 조국이다' 구호에 분노
지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집권 초반 드루킹 여론조작이 드러나며 이 정권 정통성에 의구심이 생긴 탓이다. 또 문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절반의 국민을 적폐로 모는 모습에 실망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 비리 의혹이 촉발한 소위 조국 사태가 터졌고, 당시 광주의 한 시민단체가 내건 ‘광주가 조국이다’라는 플래카드를 보며 분노했다. 내 고향의 견고한 지지를 자기 진영 범죄자 옹호에 이용하는 행태를 참을 수 없었다.

▲지난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옹호하는 서울 서초동 집회에 나부낀 '광주가 조국이다' 플래카드. [SNS 캡처]
광주에서 자란 평범한 청년인 나로선 고교 시절 의대 교수를 사적으로 만난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 입시 준비라 해봐야 종일 EBS 문제집과『수학의 정석』을 풀 뿐이었다. 그런데 친한 의대 교수에게 부탁해 고교생 자녀를 주저자로 올리고 표창장까지 위조하는 위법한 방식으로 남의 기회를 빼앗아 내 자식을 기어이 의대생을 만든 '내로남불의 상징' 조국이 어떻게 내 고향 광주를 상징할 수 있는가.
문재인 민주당 정권의 실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취약계층 일자리를 없애버리고, 앞서가는 원자력산업을 무너뜨리고는 멀쩡한 나무 베어낸 자리에 중국산 태양광을 설치하고, 수많은 권력형 성(性) 비위 사건을 저지르고 오히려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 폄하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팔아 후원금을 가로채고, 반일 감정을 자극해 외교를 망치면서까지 자기들 표 장사만 하고, 일관성 없는 코로나 19 방역을 빌미로 국민의 자유를 겁박하고, 검찰개혁을 한다면서 정권 비리 수사하는 검사들은 죄다 좌천시켰다. 어디 이뿐인가. 자신들은 서울 강남의 비싼 아파트에 살면서 힘없는 국민은 살던 집에서 쫓겨나 월세를 전전하게 하지 않았나.
더 기가 막힌 건 잘못이 드러나도 사과 한 번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과는커녕 정권 심판론이 불거진 후 대선 후보로 내세운 인물이 민주당의 말단 당직자로도 부적격한 검사사칭, 음주운전, 공용물건손상, 선거법 위반의 전과 4범이었다. 지지자들 반대에도 노동 유연화, 일본 문화 개방, 이라크 파병, 한미 FTA 등의 정책을 추진하며 잘못하면 고개를 숙이는 염치를 보여줬던 김대중과 노무현의 민주당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광주에 갈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나를 비롯한 적잖은 출향민들이 민주당 지지를 철회했다. 하지만 광주에 사는 사람들은 이마저도 쉽지 않다. 아무리 실망해도 마음을 줄 대안 정당이 없어서다. 그렇게 민주당이 광주에서 장기간 일당 독재를 하고 견제할 세력마저 씨가 마르다 보니 광주시의 청렴도는 5등급 꼴찌가 되고 복합쇼핑몰과 5성급 호텔이 단 하나도 없는 뒤처진 도시가 됐다. 편찮은 아버지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광주를 방문할 때마다 생활 인프라의 부족이 안타까웠다. 최근엔 터미널 인근 화정동 아파트 붕괴 현장과 집 앞 학동 건물 붕괴 잔해를 보며 한없이 부끄러웠다.

▲지난달 7일 광주 화정동 아파트 붕괴 사고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중앙포토]
대선 국면에서 이런 사실을 간파한 국민의힘은 호남에 공을 들였다. 윤석열 당선인은 후보 시절 광주 복합쇼핑몰을 공약하고 "호남이 잘 돼야 영남이 잘 되고 영남이 잘 돼야 대한민국이 잘 된다"는 연설로 화합의 정치에 진심을 보여줬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전남의 외진 흑산도까지 찾아 지역 발전 공약을 챙겼다. 한때 호남의 국민의힘 지지율이 30%에 육박한 이유다. 그러자 민주당에서 갑자기 광주정신을 들먹이며 광주는 절대 국민의힘을 찍으면 안 된다고 가스라이팅을 했다.

▲지난해 11월 광주 지역 50여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다음 날로 예정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광주 방문을 비판하고 있다. [뉴스1]
도대체 광주정신이 뭘까? 민주당이 무슨 잘못을 하든 민주당만 찍어주는 게 광주 정신일까? 아니다. 광주는 북한과 이념대결을 하던 시기 이승만과 박정희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자유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또 5·18 때는 ‘북괴는 오판하지 말라’는 플래카드를 걸었다. 민주주의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광주는 지금 다양한 볼거리와 쇼핑을 즐길 복합쇼핑몰을 원한다. 시장경제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를 더한 게 바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다. 나는 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가 바로 광주정신이고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이 바라는 보편적인 가치와도 정확히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은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 의해 불타 죽어도 아무 말 못 하고, 민주화 운동 이력을 내세워 사익을 추구하고, 광주시민이 바라는 쇼핑몰 반대도 모자라 ‘어차피 광주는 가난해서 소비할 능력도 없다’며 비하하는 등 광주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해왔다.
국민의힘, 호남 민심 계속 두드려야
한동안 광주 분위기가 술렁였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기대했던 것만큼의 표는 얻지 못하고 과거와 똑같이 민주당이 싹쓸이했다. 광주복합쇼핑몰 공약 이슈가 도마 위에 올랐을 때 광주에 없는 것들 리스트가 여러 커뮤니티에 떠돌면서 고질적인 광주 비하 밈이(meme) 재현되어 시민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탓일까? 출향민인 나도 지인이 "은식아, 광주에 진짜 코스트코·이케아·스타필드 없어? 주말에 뭐 하고 놀아?"라고 물으면 자존심이 상했는데, 하물며 광주 사람들 심정은 어땠을까? 국민의힘이 공들인 만큼 호남 지지율을 얻지 못하면서 일부는 호남 공략을 실패한 전략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실패하지 않았다.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힘은 역대 최고 호남 득표를 기록했다. 자신감을 가지고 끊임없이 호남 민심을 두드렸으면 좋겠다. 이미 과거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이정현이 순천에서 당선되고, 정운천이 전주에서 당선된 바가 있지 않나. 또 문재인 후보 지지세가 뚜렷하던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호남의 30% 지지를 받았다. 이는 호남 일당독주를 하는 민주당에 대한 비토 정서, 그리고 정치지형이 바뀔 여지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증명한다.
무엇보다 희망적인 것은 이번 대선에서 호남 2030의 비(非) 민주당 지지율이 40%에 육박했다는 점이다. 꼭 특정 정당이 지지를 더 받아야 한다는 게 아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도 있지 않나. 민주당 담론이 지배하는 광주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다양한 주제에 관해 토론할 기회가 마련되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서로 견제하는 정치가 회복되고, 종국에 내 고향 광주·호남 지역이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중앙일보 박은식 내과 전문의
03.21 선거관리 파행 자초한 노정희와 與의 파렴치한 ‘남 탓’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2022.3.17/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대선 사전투표 혼란에 대한 책임을 물어 선거정책실장과 선거국장 등 실무 책임자들을 교체할 방침이라고 한다. 해당 사태로 사퇴론에 직면했던 노 위원장은 최근 “앞으로 더 잘하겠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었다. 선관위 수장인 자신이 짊어져야할 책임을 아랫사람들에게 떠밀면서 자리 보전에 나선 것이다.
코로나 확진·격리자 사전투표에서 유권자들이 기표한 투표용지를 소쿠리, 라면박스, 비닐쇼핑백 등에 모아 옮기는 황당한 일들이 벌어졌다. 민주주의 선거의 기본인 직접·비밀투표 원칙을 어긴 것이다. 이 방식은 노 위원장이 주재한 선관위 회의에서 채택한 것이다. 선관위 사무처의 보고에 오류가 있었고 운영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 해도 최종 책임은 노 위원장에게 있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노 위원장은 자신의 안일한 판단으로 혼란이 벌어진 사전투표일에 휴일이라는 이유로 출근도 하지 않았다.
이런 노 위원장을 감싸고 나선 여당의 논지도 어처구니없기는 마찬가지다. 국회 행안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현재 선관위원 2석이 공석인 상황에서 노 위원장에 대한 사퇴 요구는 선관위 업무를 마비시키는 처사”라고 했다. 마치 선관위원이 공석이 된 것이 남 탓인 양 말한 것이다. 청와대는 대선 직전 문재인 대선 캠프 특보 출신 조해주 전 상임위원의 사의를 반려하고 무리하게 유임시키려 했다. 이에 대해 17개 시도 선관위 간부들이 친여 논란이 있는 인사의 유임은 안 된다고 반발하자 해당 자리를 공석으로 두게 된 것이다. 또 여당은 인사청문회까지 마친 야당 추천 위원에 대해 본회의 상정을 거부해서 자진사퇴를 유도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 총괄선대위원장이었던 이낙연 전 총리는 사전투표 부실관리를 보고 “2022년 대한민국 선관위가 맞느냐”고 질타했다. 선관위가 이렇게 엉망이 된 것은 자질은 물론 최소한의 책임감도 없는 노 위원장과 이런 사람에게 내 편이라는 이유로 자리를 맡긴 정권 때문이다. 그래 놓고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려 하니 그 파렴치에 혀를 차게 된다.
조선일보 사설
03.21 文 정부의 실패가 반면교사
3·9 대통령 선거에서 진 더불어민주당이 반성문을 썼다. 김두관 의원은 지난 11일 입장문을 내고 “탄핵당한 세력에 단 5년 만에 다시 정권을 내주게 됐다”며 “문재인 정부는 촛불의 요구였던 탄핵 연대, 촛불 연대를 외면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끼리끼리 나눠 먹는 전리품 정치에 회전문 인사를 거듭했고,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을 내 편이라는 이유로 자리에 앉혔다”며 “이번 선거는 부동산 심판이었다. 그런데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염치 없이 단체장 선거에 나간다며 표밭을 누볐고 당에선 아무 제지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20년 집권’을 장담하던 민주당이 5년 만에 단명한 이유로 촛불(지지 세력)의 요구 외면, 전리품 정치, 회전문 인사, 정책 실패, 내 편 봐주기 등을 꼽은 것이다.
사실 이런 것들은 문재인 정부 임기 내내 사회 각계각층이 지속적으로 지적한 사안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비판의 화살에 “가짜 뉴스” “정치적 공세”라고 했다. 그러나 이번 반성문을 보면 속으로는 뭐가 잘못인지 알고 있었던 듯하다. 알면서도 실천에 옮기지 않은 게 패착이었다.
한 정치학자는 김 의원의 글에 대해 “패자의 반성문이자 오답노트지만, 승자인 윤석열 당선인에게는 좋은 참고서”라고 했다. 정권 초 지지율 80%로 시작했던 전임 정부가 어떻게 민심을 잃어갔는지를 되짚어보면 새 정부로서 어떻게 민심을 얻을지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새 정부가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문재인 정부의 지난 5년 키워드를 꼽으면 ‘오만’ ‘무능’ ‘내로남불’로 정리될 것이다. 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지난 13일 “이미 작년 서울·부산 보궐선거에서 오만과 무능, 그리고 내로남불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노출됐지만, 반성하지 않았다”면서 “처절한 반성을 통한 근본적 쇄신만이 다시 우리 당이 국민에게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집값 폭등에 전세 대란이 일어나는데도 부동산 정책에 대해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무리한 ‘탈원전 정책’ 추진으로 국가 백년대계로 꼽히는 에너지 정책이 망가지고 멀쩡한 원전이 가동 중단된 데 대해서도 별다른 설명이 없다. 방만한 재정 관리, 무리한 적폐 청산, 방역 실패도 오만과 무능의 사례로 꼽힌다.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0일에도 “왜 소득 주도 성장(소주성)이 실패했다고 낙인을 찍는가”라며 “코로나 시대에도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경제학자들이 소주성은 ‘마차로 말을 끌겠다는 것’이라며 잘못된 정책으로 평가하는데도 청와대는 “성공한 정책”이라는 주장을 막판까지 하는 것이다.
오만, 무능, 내로남불. 새 정부는 전 정부의 잘못에서 배워야 한다. 윤 당선인이 존경한다는 윈스턴 처칠은 임기 내내 ‘로마제국 쇠망사’를 옆에 끼고 읽었다고 한다.◎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