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소식 2022-01/
01.03 우크라이나서 열리는 ‘판도라의 상자’… 미·러 갈등 넘어 한반도에도 영향
유라시아의 체스판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2014년 민스크 협정으로 위태로운 봉합을 유지하고 있었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에 새로운 전운이 감돌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경에 10만 명이 넘는 병력을 배치하고 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뒤로 물러서라는 강경한 통첩을 보내는 한편, 동우크라이나 지역에 대한 영향력도 확대했다. 4150만 명의 인구와 독립국가연합 국가 중 둘째로 큰 경제 규모를 가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로서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지정학적 요충지이자 역사적 기원지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7월 발표한 에세이에서 “우크라이나의 진정한 주권은 러시아와 협력해야만 가능하다… 우리는 한 민족이기 때문”이라고 언급하며, 친서방 기조와 나토 가입 의사를 천명한 젤렌스키 정부에 대해 직접적인 압력을 가하고 유라시아 지역의 패권 부활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다.

▲그래픽=김현국
러시아가 적지 않은 정치적⋅경제적 피해를 수반할 전면전을 선호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향후 지구전과 게릴라전이 지속될 경우 러시아 측이 부담해야 할 장기적인 비용은 크게 증가한다. 실제로 러시아의 군사적 개입은 초청장을 동반한다. 무력화된 정부가 러시아의 개입을 요청하고, 해당 지역의 자국민과 친러 진영을 보호하기 위해 개입을 하는 모양새를 갖춘다. 국민투표나 선거의 형식을 빌려 정당성을 확보할 수도 있다. 러시아의 행보는 “다 계획이 있는” 게임이다.
위기의 고조는 NATO의 추가적인 확대 가능성을 차단하고, 우크라이나를 확실히 완충지대화하는 한편, 미국으로 하여금 인도·태평양으로부터 유라시아까지 전선을 확대시키는 부담을 지게 한다. 금융 제재에는 이미 상당히 면역이 쌓여 있고 에너지 거래 단절은 유럽과 러시아 양측에 치명적이다. 중동과 아프간에서의 철군 이후 미국의 원거리 개입 역량은 불투명하고,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핵심 이익에서 벗어나 있다. 유럽은 여전히 리더십 부재와 분열을 보이고, 코로나 시기의 경제위기로 투입 가능한 안보 재원도 부족하다. 러시아로서는 크게 잃을 게 없는 게임에서 미국과 NATO는 무승부 이상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 분주해진다.
동유럽의 체스판은 중국에 긴요한 학습효과를 준다. 미국이 동맹국과 파트너국을 다루는 방식은 동북아에도 그대로 투사된다. 미국과 유럽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는 중국이 대만 문제와 동아시아 전략을 가늠해 볼 잣대가 된다. 새로운 힘의 구도가 유라시아 지정학의 단층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국제정세는 다시 힘의 영역으로 기울어가고, 논리와 명분은 부차적으로 밀린다. 선의에 기반한 구두 약속일수록 위기 시에 취약성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약속은 깨지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역사의 비극은 반복될 수 있다.
대화에 기반한 외교적 해법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거대한 체스판에 올라와 있는 말들은 얼마만큼의 자체적인 역량과 카드를 들고 있는지에 따라 생사가 갈린다. 강대국 경쟁 하에서 종종 당사국의 입장은 가려진다.
푸틴과 바이든이 주인공이 된 무대에서, 러시아의 강력하고 세련된 선전술 앞에 우크라이나의 목소리는 묻혀버리기도 한다. 우크라이나 외교는 모호한 중립 기조와 일관성의 결여로 미국 및 유럽과 실질적 공조 체제를 갖추지 못했다. 지속된 위기에 둔감해지고, 내부적으로 취약한 거버넌스는 국제사회에 신뢰감을 주지 못했고,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도 모호한 정치적인 선택을 가져왔다.
완충지대라는 지정학적 위치에서는 많은 긴장을 안고 살아야 한다. 러시아의 또 다른 접경국인 핀란드는 거대한 인접국에 맞서 ‘겨울전쟁’을 치르는 결기를 보였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켜내며 유럽연합과 국제정치의 주요 일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운명은 궁극적으로 그 나라의 선택과 역량에 달려있다. 국제정치에서 지정학적 고려로 누군가가 지원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또한 힘의 대결에서 균형점 위에 서 있으려는 것은 흔들리는 외줄을 타는 것과 같다. 어떤 가치를 가지고 동맹을 맺고 외교 전략을 짜는지가 중요하다.
자유인지, 민주주의인지, 아니면 민족인지, 경제적 이해인지에 대한 근본적 우선순위 설정이 필요하다. 그게 혼재되고 미사여구로 덮이는 순간 약소국의 운명은 가늠하기 어렵다.
1945년 크리미아 반도 남단의 얄타에서 열린 강대국 간의 협정은 여전히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미·중 경쟁과 인도·태평양 전략의 확장은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독일까지 동북아로 불러들이며, 열강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구한말의 상황을 기시감을 가지고 재현시키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여전히 민족의 명분과 쇄국 논의의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7000㎞가 떨어진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위기는 먼 나라의 일로 보이지만 유라시아 지정학의 단층대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거대한 판이 충돌하는 파열음은 점점 가까이 들리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우물 안에서 보이는 작은 하늘의 모습에 함몰되어 있다. 멀리 볼 수 있어야 거대한 체스판에서 살아남는다
01.07 카자흐스탄 유혈 시위에 수십명 사망… 러시아 공수부대 투입
최대도시 알마티선 시위대가 시청사·대통령 관저 점거·방화
알마티 공항 점거에 운영중단

▲5일(현지 시각)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인 알마티에서 연료 가격 폭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AFP 연합뉴스
중앙아시아 국가 카자흐스탄에서 물가 상승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격화하면서 내각이 총사퇴하고 전국에 비상사태가 선포되는 등 국가적 혼란이 빚어졌다. 5일(현지 시각) 카자흐스탄에선 수천 명이 벌인 유혈 시위 사태로 최소 1000여명이 다치고 수십명이 숨졌다.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보안요원 2명은 참수(斬首)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가 이끄는 옛 소련권 국가들의 안보협의체인 집단안보조약기구(CSTO)는 카자흐스탄 정부의 요청으로 평화유지군을 투입했다.
러시아 타스통신과 CNN 등에 따르면 이날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알마티와 수도 누르술탄 등 4개 지역에 2주간의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야간통금 조치를 발동했다. 그러나 긴급대응에도 시위가 잦아들지 않자 이날 저녁 비상사태를 전국으로 확대 발령했다.
이날 알마티에선 수천 명의 시위대가 대통령 관저와 시장 집무실을 점거하고 불을 질렀다. 타스통신은 시위대 중 상당수가 곤봉과 방패 등으로 무장한 상태였다고 전했다. 경찰이 수류탄과 최루탄을 사용해 해산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시위대와 충돌도 있었다. 유혈 사태가 빚어지며 1000여 명이 다쳐 400명가량이 입원했고 60명가량은 중태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시위 진압 과정에서 보안요원 13명이 숨졌고, 그중 2명은 참수당했다고 한다. 카자흐스탄 국민 73%는 수니파 무슬림인데, 시위대에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침투할 가능성까지 언급되고 있다.
시위가 격렬해지자 이날 토카예프 대통령은 옛 소련 국가들이 결성한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 지원을 요청했다. CSTO는 구 소련권인 러시아와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6국이 2002년 결성한 안보협의체다. 카자흐스탄 정부 요청에 응한 이들은 이날 러시아 공수부대를 평화유지군 1진 자격으로 투입했다.
한편 카자흐스탄 대규모 시위는 새해 정부가 차량용 액화가스(LPG) 가격 상한제를 해제하면서 촉발됐다. 상한제가 폐지되자 작년 1리터당 50텡게(약 138원)이던 LPG 가격은 며칠 새 120텡게(약 330원)으로 2배 가까이 치솟았다. 이에 지난 2일 서부 카스피해 연안 유전지대인 망기스타우주(州) 자나오젠과 악타우에서 처음 항의 시위가 일어났고, 이후 전국 주요 도시로 번져 극심한 혼란이 나흘째 이어지고 있다.
현지에선 아시아나항공 승객과 승무원 70여명도 발이 묶인 것으로 전해졌다. 알마티 공항 측은 “상황이 안정되는 대로 공항 운영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01.09 브라질 절벽서 떨어져 나온 거대바위 관광보트 덮쳐…6명 사망·20명 실종
브라질의 한 협곡의 절벽이 쪼개지며 떨어져 나온 거대한 바위가 관광보트를 덮쳐 최소 6명이 사망하고 20명이 실종한 사고가 발생했다.
8일(현지 시각) AP통신, 브라질 G1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주의 푸르나스 협곡에서 절벽이 무너져 주변의 관광보트들을 덮쳤다.

/FabianC 트위터
소셜미디어에 확산한 사고 당시 영상을 보면 협곡에서 여러 척의 보트들이 관광을 하고 있는 가운데 갑자기 절벽에 균열이 생기며 커다란 바위가 떨어져 나온다. 이를 본 주변의 관광객들은 비명을 지른다. 바위는 그대로 쓰러져 아래에 있던 보트 2척을 덮쳤다. 이 바람에 생긴 세찬 물살에 주변의 보트들도 휩쓸렸다.
각 보트에는 어린이를 포함해 12~20명 정도의 인원이 탑승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은 이 사고로 최소 6명이 사망하고 32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부상자들은 사고 이후 병원으로 옮겨졌고 대부분 이날 저녁 퇴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나스제라이스주 공보실은 소방구조대가 다이버들과 헬기를 동원해 실종자 수색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주 당국은 사고의 원인이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았지만, 폭우로 인해 절벽이 붕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근 미나스제라이스주에서는 폭우와 홍수로 수재민 약 1만 7000명이 집을 잃고 대피했다.
‘미나스의 바다’로 알려진 해당 협곡은 인기 관광지로 상파울루시에서 북쪽으로 420㎞ 정도 거리에 있다. 6년 동안 해당 지역에서 일하고 있다는 로빌슨 테세이라는 “이런 일은 본 적이 없다”며 “이 일로 모두가 망연자실했다. 이 지역은 현재 다친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온 구급차들로 가득하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정채빈 기자
02.01 가상화폐가 바꾼 부의 지도...바이낸스 창업자 자오창펑, 아시아 최고 부호에

▲자오창펑 바이낸스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바이낸스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의 창업가 자오창펑(45)이 이달초 아시아 최고 부호에 올랐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그의 자산은 약 960억 달러(115조원)으로 11위.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1위)부터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2위), 빌 게이츠(4위) 등 모두 유명 테크 기업 창업가들이 10위 안에 포진한 가운데 그 바로 아래다.
자오창펑의 현재 국적은 캐나다지만, 그는 유년기를 중국에서 보내다 문화혁명으로 사실상 추방 당해 캐나다에 정착했다. 이런 점을 감안해 블룸버그는 “자오창펑이 무케시 암바니(12위)를 제치고 아시아계 최고 부호에 올랐다”고 평가했다. 암바니는 인도 최대 부호로, 인도 1위 통신업체 등 여러 계열사를 거느린 재벌 기업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즈의 대주주다. 과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터번을 쓰고 그의 딸 결혼식에 참석해 화제가 된 적 있었다. 창업 5년차 스타트업 창업자가 수십년에 걸쳐 내려온 인도 최대 재벌 가문과 한국 최대 재벌 가문을 모두 제친 것이다.

▲인도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 회장 딸 결혼식 축하연에 참석한 힐러리 클린턴(가운데) 전 미 국무장관이 8일(현지 시각) 무케시 암바니(오른쪽)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 회장과 아내 니타 암바니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AP연합뉴스
그의 자산이 집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블룸버그는 바이낸스의 지난해 추정 매출을 기준으로 기업가치를 산출한 다음, 자오창펑의 지분가치를 평가했다. 자오창펑은 바이낸스 지분 90%를 갖고 있다. 싱가포르 등 바이낸스가 사업장을 둔 여러 국가의 서류를 종합하면, 블룸버그는 지난해 바이낸스 매출이 최소 200억 달러(약 24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시가총액 500억 달러인 미국 최대 거래소 코인베이스의 지난해 추정 매출액의 세 배 규모다. 세계 최대 거래소 바이낸스에선 하루 60~90조원 어치 가상화폐가 거래된다.
종합하면 바이낸스의 시가총액은 최소 1000억 달러 이상(121조원), 그의 자산이 900억 달러가 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그가 보유한 가상화폐의 가치는 하나도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그가 보유한 가상화폐의 수량은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는 과거 조선일보가 주최한 ALC(아시안리더십컨퍼런스)에 참석해 “내 자산의 99%는 가상화폐고, 필요한 현금 약간을 제외하면 모든 수입은 가상화폐로 둔다”고 밝힌 적 있었다. 만약 이 가상화폐의 가치까지 매긴다면 그의 재산은 10위 안에 충분히 들어갈지도 모른다. 블룸버그는 “그의 실제 순자산은 훨씬 클 수도 있다”며 “자오창펑이 구글 창업가 래리 페이지나 세르게이 브린,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같은 테크 거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까지 왔다”고 평가했다.

◇중학교 때 햄버거 패티 구웠던 청년, 포커판에서 비트코인 알고 전재산 올인
자오창펑의 아버지는 중국에서 교수였다. 하지만 문화혁명 때 ‘친 부르주아지’로 낙인이 찍히자 그가 13살 때 가족이 모두 캐나다로 이주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자오창펑은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패티를 구웠고, 캐나다 맥길대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도쿄와 미국 블룸버그 등에서 선물거래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했다.
이때까지 그의 삶은 평범했다. 하지만 중국계 캐나다인들과 함께한 포커 자리가 그의 인생을 바꿨다. 우연한 자리에 그는 비트코인 초기 투자자들과 함께 포커를 치게 됐다. 그 자리에서 그는 비트코인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그날부터 비트코인을 공부한 자오창펑은 아파트까지 팔아 비트코인에 모든 것을 걸었고, 거래소 사업도 시작했다. 그가 선물, 증권 거래 시스템을 직접 개발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쫓겨다니던 바이낸스, 이제는 본사 유치 전쟁 중
엄청난 자산에도 불구하고 자오창펑이 그동안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가상화폐에 대한 부정적 인식 탓도 있다. 중국에서 창업했던 바이낸스는 중국 정부가 ‘가상화폐가 경제를 교란한다’는 이유로 가상화폐 관련 기업을 탄압하면서 본사를 일본, 몰타 등으로 옮겼다. 최근엔 싱가포르를 주요 거점으로 삼고 있는데, 공식적인 본사는 없다. 가상화폐가 법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여러 국가를 전전하는 신세였던 것이다.
하지만 메타버스와 NFT가 떠오르고, 미국을 중심으로 가상화폐에 대한 법적 지위를 인정하려는 각국 정부의 움직임이 시작되면서 바이낸스의 입지도 달라지고 있다. 최근 아랍에미레이트 왕족들은 두바이에 바이낸스 본사를 유치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두바이의 여러 파티에서 자오창펑이 왕족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봤다는 목격담이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됐다. 바이낸스는 싱가포르 민간 증권거래소 지분을 인수하기도 했다. 미래 가상화폐 금융허브를 노리는 두바이, 싱가포르 등 도시들이 세계 최대 거래소 바이낸스 거점을 자국에 두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가상화폐판 최고 부자는 누구?
하지만 이런 바이낸스의 질주는 역설적으로 ‘가상화폐가 꿈꾸는 이상’의 반대기도 하다. 가상화폐는 익명의 개인들이 자유럽게 1대1 거래를 할 수 있는 ‘탈중앙화’를 이상으로 내세우지만,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가상화폐를 현실 화폐로 바꾸기 위해서는 거래소를 통해야하고, 비트코인의 송금 속도가 매우 느리기 때문에 은행 장부처럼 거래소 장부에 기록하는 형식으로 가상화폐를 거래하고 있다.
결국 탈중앙화된 방식으로 가상화폐를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중앙화된 거래소를 통하는 장부 상 거래가 대부분인 것이다. 결국 거래소가 은행과 다를 바가 없는 셈. 더욱이 바이낸스는 각종 가상화폐 파생상품도 내놓아 거래량이 부쩍 늘었다. 바이낸스에서는 레버리지 100배 가상화폐 공매도(가격 하락에 베팅)도 가능하다. 때문에 미국, 독일 등 정부는 바이낸스를 수사 중이다. 자오창펑은 “나는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가 아니다”며 여러 규제를 환영하고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이다.
한국의 경우 가상화폐 관련 기업인 중 최고 부자는 누구일까. 한국 최대 거래소는 업비트고, 이미 기업가치 10조원을 넘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상장의 경우에는 20조원에도 도달할 것이라는 업계 관측이 나온다. 업비트 창업자인 송치형 의장이 지분 26%, 김형년 부사장이 13%를 갖고 있는데, 이 지분 가치를 환산하면 송 의장이 3~5조원, 김 부사장이 1조~2.5조원의 자산을 보유한 셈이 된다.
블룸버그는 비트코인을 개발한 익명의 개발자 사토시 나카모토가 약 450억 달러 자산을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가 보유한 비트코인(110만개) 가치를 환산한 것이다. 그는 익명의 인물이기 때문에 공식 순위 집계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순위로 따진다면 세계 29위, 텐센트를 창업한 마화텅과 알리바바를 창업한 마윈 바로 위다.
조선일보 임경업 기자
02.05 英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70주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95)이 6일 즉위 70주년을 맞는다. 영국 역사상 최장 기록이자, 유일한 재위 70년 군주다. 영국 정부는 4일(현지 시각) 이를 축하하는 기념우표<사진>를 내놨다. 8장이 한 세트로, 195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주요 장면을 10년마다 한 장씩 담았다. 군복과 파티복, 일상 외출복까지 여왕의 다채로운 패션을 보여주는 구성이다. 85펜스(약 1380원)짜리 기본 우표 4장과 1.7파운드짜리 4장으로 이뤄져 있다.
여왕은 1952년 2월 6일, 25세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아버지 조지 6세가 이날 새벽 갑자기 서거하며 갑작스레 물려받은 왕위였다. AFP 통신은 “엘리자베스 2세는 2차 대전 이후 영국의 국력 쇠퇴와 함께 나타난 급속한 사회·정치적 변화 속에도 왕실의 권위와 지위를 지켜냈다”며 “명실공히 현대 영국을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여왕은 70년간 윈스턴 처칠을 시작으로,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와 현 보리스 존슨 총리까지 총 14명의 총리를 겪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남편 필립 공과 사이에 찰스 왕세자와 앤 공주, 앤드루·에드워드 왕자 등 3남 1녀를 뒀다.
여왕의 70년 재위 기록은 세계사에서도 드문 기록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이전까지 영국 최장수 군주는 고조모인 빅토리아 여왕으로, 1837년부터 1901년까지 만 63년간 통치했다. 재위 기간이 70년 이상이었던 군주는 루이 14세 프랑스 국왕(1643~1715년)과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1946~2016년), 요한 2세 리히텐슈타인 대공(1858~1929년) 등 3명뿐이다.
즉위 70주년 당일에는 특별한 공개 행사가 열리지 않고, 여왕이 현재 머물고 있는 샌드링엄 별장이나 런던 버킹엄 궁에서 간단한 왕실 내 행사를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정부는 “오는 6월 2일부터 5일까지 공식 축하 행사를 연다”고 밝혔다. 6월 2일은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고, 대규모 열병식이 열릴 계획이다. 6월 3일에는 영국과 영연방 국가에 대한 여왕의 헌신을 기리는 기념 예배가, 6월 5일에는 런던과 콘월에서 수천명이 참여하는 오찬회가 예정돼 있다.
조선일보 파리=정철환 특파원
02.23 러시아 침략 명분이 ‘평화’, 이게 국제 정치 ‘평화’의 본질
러시아가 21일 우크라이나에 군 병력을 진입시켰다. 푸틴 대통령이 돈바스 지역에 ‘평화 유지’를 목적으로 병력 파견을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그 본질이 이웃 국가를 군사적으로 침략한 것이란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러시아 국영 보도기관들은 우크라이나가 먼저 공격했다고 주장하지만 조작된 뉴스였다. 우크라이나가 군사적으로 대응하면 러시아는 이를 빌미로 전면 공격에 나설 것이다.
러시아가 ‘평화’라는 이름으로 이웃 나라를 침략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2008년 조지아 침공도 분리·독립을 추진하던 남오세티야에 평화 유지군을 파견한다며 시작했다. 조지아 정부군이 반격하자 이를 이유로 조지아에 대한 전면적 군사 공격을 했다. 결국 남오세티야는 러시아 영향력 아래에 들어갔다. 2014년 크림반도 강제 합병 때도 러시아는 크림반도 내 러시아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보냈다.
1973년 베트남전 종전에 합의한 파리협정도 이름은 ‘평화협정’이었다. 미국과 남·북 베트남은 종전을 약속하고 미군은 철수했다. 협정 주역이었던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은 그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북베트남 협상 대표인 레둑토는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다”며 수상을 거부했다. 그 후 북베트남의 군사 공세가 시작됐고 2년 후 남베트남은 항복했다. 이것이 ‘평화 협정’의 결과였다.
평화는 소중한 가치이지만 국제 정치에선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나 구실로 흔히 이용되고 있다. 특히 러시아, 중국, 북한 등 구공산권 국가들은 평화를 정치 전략의 도구로 삼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문재인 정부는 5년 동안 ‘남북 평화’를 내세웠다.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확인됐다면서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두 번의 미·북 정상회담을 열었다. 모두 ‘평화’를 외쳤지만 김정은에게 평화의 뜻은 핵 폐기가 아니라 핵을 보유한 채 대북 제재를 허무는 것이었다. 같은 ‘평화’라는 말을 두고 생각은 정반대다. 대선이 끝나면 북한의 ‘평화 공세’도 다시 시작될 것이다. 평화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고, 말이 아니라 힘으로 지키는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2.23 바이든 “EU·일본·호주 등 동맹국들과 러 제재”… 한국은 빠졌다
한국 정부 대러 제재 참여 안한 듯
전날에도 한국 정부 러시아 우려·규탄 대열에서 빠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진입을 지시한 가운데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22일(현지 시각) 대국민 연설을 갖고 대러 제재를 발표했다. 이날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전화 브리핑에서 이날 발표된 여러 금융 제재를 두고 “우리는 유럽연합, 영국, 캐나다, 일본, 호주의 동맹국 및 파트너들과 함께 논의해 하루도 안돼 우리의 첫 번째 제재를 발표했다”고 했다. 러시아를 타깃으로 한 제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동맹국들과 긴밀히 협의를 거쳤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2일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러시아에 대한 새로운 제재를 발표하고 있다./UPI 연합뉴스
그런데 여기에 한국은 빠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날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보존은 존중돼야 한다”고 했다. 외교부도 “우크라이나의 긴장 고조 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했었지만 러시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비롯해 군사적 조치에 대한 우려나 규탄 등은 없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러시아의 대형 금융 기관 두 곳에 완전한 제재를 시행한다”라며 VEB와 군사 은행을 그 대상으로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는 서방 자금 조달로부터 러시아를 차단한다는 의미”라며 “러시아는 더는 서방으로부터 돈을 마련할 수 없을 것이고, 우리 시장 또는 유럽 시장에서 신규 국채로 거래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바이든 대통령은 “내일부터 향후 며칠 동안 우리는 러시아 엘리트와 그 가족 구성원에게 제재를 부과할 것”이라고도 했다. 독일과 러시아를 잇는 가스관 사업 ‘노르트 스트림2′ 중단도 포함됐다.
전날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에서도 문 대통령은 “미국과 서방국가들은 (러시아를 향해)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에 대한 침해이자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력히 규탄하며 즉각적 제재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침공 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 메시지는 없었다.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전자제품 등을 러시아에 수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입장에선 수출 통제 제재와 관련해 한국에 제재 동참 및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미국은 지난 12일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서 ‘러시아의 도발에 신속하고 단합된 대응의 중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이날 ‘바이든, 전례 없는 러시아 제재 계획에 아시아 파트너들 참여 요청하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바이든 정부가 러시아에 대한 수출 통제를 시행하기 위한 계획으로 싱가포르, 일본, 대만의 지원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여기에서도 한국이 빠진 것이다. 기사에선 미국이 준비 중인 수출 통제 제재안 내용을 한국에 설명했는지, 한국의 반응이 무엇이었는지 대해서는 별도 언급이 없었다.
조선일보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02.25 러시아 우크라 침략, 다극화 정글로 가는 세계 질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공식화하면서 곳곳에서 포성과 폭발이 잇따르고 있다. 사진은 24일(현지시간) 폭격에 인한 폭발로 불타고 있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일대./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제공/뉴스1
러시아가 24일 우크라이나 동·남·북부에서 동시다발적인 침공을 개시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군 통제 센터에 미사일 공격을 했고 남부 항구도시에선 상륙 작전을 했다. 북부에서도 탱크와 장갑차가 국경을 넘었고 동부 도시에 대한 공격도 시작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를 추구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에 항복하라고 협박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시도를 문제 삼고 있지만 애초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를 위협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과거 소련에서 벗어난 여러 나라가 앞다퉈 미국과 손잡고 나토에 가입한 이유와 다르지 않다.
러시아의 침공은 미국과 러시아의 신냉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는 핵으로 추진돼 무한정 지구 궤도를 돌아다니는 핵미사일, 극초음속 핵미사일, 미국 해안 도시들을 수장시킬 수 있는 핵 어뢰 등 가공할 무기들을 연이어 실전 배치하면서 자신들이 ‘세계 최강’이라고 호언하고 있다. 푸틴의 힘 과시가 계속되면 미국 등 나토와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이 신냉전이 몰고 올 파장은 가늠하기 쉽지 않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먼 남의 나라 일이라고만 할 수 없다. 당장 중국의 시진핑이 대만을 무력으로 통일하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에도 미국 등 국제사회는 경제제재 외엔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제재는 큰 효과가 없다. 시진핑이 대만을 공격해도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 사태처럼 무력할 가능성이 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기 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한 나라였다’고 강조했다. 시진핑이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중국·러시아는 언제든 힘으로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는 나라다. 우리는 그런 나라들의 지원을 받고 있는 북한으로부터 핵 위협을 당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다음은 대만, 남중국해 등 아시아가 긴장의 무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예사롭지 않다. 거기에 한반도도 빠지지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국방을 강화하는 대신 국내 정치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1994년 러시아·미국·영국이 안보와 경제를 지원한다는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한 장만 믿었다. 코미디언 출신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를 향해 “평화를 원한다”고 호소했다. 정글과도 같은 국제 정치에서 무슨 ‘조약’ ‘합의’ ‘선언’ 등은 휴지와 같고, 힘없는 ‘평화 호소’는 ‘나를 공격하라’는 것과 같다. 러시아의 침공에 대해 여당 대선 후보는 “우크라이나는 지구 반대편 남의 나라 이야기”라며 “그런데 주가가 내려가고 있다. 전쟁이 아닌 평화의 길을 가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인식과 같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세계 금융시장과 에너지 등 실물 경제에 충격이 오고 있다. 우리도 주가가 급락하고 환율은 급등했다. 국제 유가는 100달러에 육박했다. 에너지와 원자재, 곡물 가격이 오르면 기업 생산과 수출에 큰 타격이 올 수 있다. 코로나 확산에 글로벌 경제 회복세까지 차질을 빚으면 국민 고통은 더 커질 것이다. 경각심을 갖고 대비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2.25 키예프 도심 아파트까지 불탔다… 젤렌스키는 “곧 대화 시작”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5일 새벽(현지 시각)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재개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군이 25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방공망을 포격하는 과정에서 미사일 파편이 수도 키예프 주택가에 떨어져 폭발이 발생했다./뉴스1
우크라인시카 프라우다 등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TV로 방송된 대국민 연설에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군과 민간인 거주 지역을 가리지 않고 공격을 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젤렌스키는 “거의 모든 방향에서 진격을 막고 전투가 진행되는 중”이라며 “우리 군이 지칠 것이란 기대 속에 공격이 계속되고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또 “러시아가 이 전쟁을 끝내는 방법에 대해 우크라이나와 대화해야 할 것”이라며 “조만간 적대 행위 중단에 대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화가 더 빨리 시작될수록 러시아가 잃을 것이 적어질 것”이라고도 했다.
앞서 러시아군이 이날 동 트기 전부터 키예프에 미사일 공격을 했다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밝혔다. 안톤 하라셴코 우크라이나 내무장관 보좌관은 “키예프에 순항미사일이나 탄도 미사일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CNN은 키예프에서 이날 새벽 최소 3번의 폭발음이 들렸다고 보도했다. CNN 현지 취재팀은 먼저 키예프 도심에서 두차례 커다란 폭발을 들었고, 멀리서 또 한 번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내무부는 폭발음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 방공시스템이 러시아군 미사일을 격추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워싱턴 포스트(WP)도 이날 오전 4시쯤 키예프에서 두차례 폭발음이 들렸고, 키예프 도심 아파트에서 불이 난 장면도 포착됐다. 이 신문은 로켓 잔해 때문에 불이 난 것으로 보이며, 3명이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전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 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키예프에 끔찍한 로켓 공습이 있었다”며 “우리 수도(키예프)가 이런 일을 겪은 것은 1941년 나치 독일의 공격 이후 우리 수도가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없었다”고 했다.
CNN 등에 따르면 오스틴 로이드 미국 국방부 장관은 24일(미국 동부 시간 기준) 열린 미국 연방 하원의원 보고에서 러시아 기갑부대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32km(20마일) 떨어진 곳까지 진격했다고 브리핑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진입한 또 다른 러시아 병력 역시 키예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고 했다. 또한 두 병력 모두 키예프를 포위하고 우크라이나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한 목적으로 키예프로 향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서방 정보당국 관계자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키예프가 몇 시간 안에 함락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조선일보 서유근 기자
“내 나라에서 뭐하는 거야” 러 군인에 맞선 우크라 여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본격화되면서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개전 첫날 민간인을 포함한 사상자 수백명이 발생했고, 폴란드 등 인접국가로 향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피난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이 가운데, 중무장한 러시아 군인에게 맞선 우크라이나 여성의 모습이 포착돼 온라인상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한 우크라이나 여성이 러시아 군인에 맞서 소리치고 있다./트위터
24일 영국 데일리메일, 밀리터리타임스 등은 한 우크라이나 여성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이 영상은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의 항구도시인 헤니체스크의 한 길거리에서 촬영됐다. 영상에는 중무장한 러시아 군인과 대치하는 한 용감한 여성의 모습이 담겼다.
검은색 옷차림에 흰색 털모자를 쓴 이 여성은 러시아 군인 두 명에게 다가가 “우리 땅에서 대체 뭘 하는 거냐”고 소리치며 분노를 표했다. 이에 당황한 군인은 여성을 진정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그녀는 굴하지 않고 “내 나라에 왜 온 거냐”며 따져 물었다.
이 여성은 “당신이 죽은 뒤에 우크라이나 땅에 해바라기가 자랄 수 있도록 주머니에 씨앗을 넣어 두라”고 소리친 뒤, 현장을 떠났다. 해바라기는 우크라이나의 국화다.
이 영상은 트위터에서 233만회 이상 조회되면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를 본 세계 각국의 네티즌들은 “그녀의 용기가 정말 놀랍다. 고맙다. 우리는 당신을 지지한다”, “나였으면 저런 용기는 못 냈을 것 같다” 등 반응을 보이며 응원과 지지를 전했다.
한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4일 국가총동원령을 발령했다. 이번 조치는 90일간 발효되며, 우크라이나 내 징집 대상자와 예비군 전체가 소집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오늘 군인과 민간인 137명을 잃었다. 부상자는 316명이 나왔다”며 군사 시설만 겨냥한다는 러시아의 주장과 달리 민간 시설도 공격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러시아가 사람들을 죽이고 평화로운 도시를 군사 표적으로 바꾸고 있다”며 “잔혹한 짓이고 절대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02월 25일 “대통령이 힘없어… 우릴 도와줄 사람이 없다”

▲ 피 흘리는 우크라이나 24일 러시아군의 폭격을 맞은 우크라이나 동부 도시 추위브의 한 아파트 앞에서 머리를 붕대로 감싼 여성이 피 묻은 얼굴로 눈을 감고 있다. SNS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는 해시태그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트위터에 올라온 이 사진에는 ‘푸틴, 당신이 이 여성의 상처에 책임이 있다’고 적혀 있다. 트위터 캡처
■ 우크라이나 인접 폴란드 장서우 기자 르포
키예프 고려인 강정식 교수
“피란 행렬에 사방이 꽉 막혀
뭉쳐 싸워야지, 방법이 없어”
통화 중에도 계속 포격 소리
우크라 18~60세 男 총동원령
“전쟁에서 우리를 도와줄 사람, 도와줄 국가가 없습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뭉쳐서 싸워야지, 다른 방법이 없네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한 지 이틀째인 25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6㎞ 떨어진 인근 도시에 머물고 있다는 고려인 강정식 키예프 국립외국어대 한국학과 교수는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아주 힘이 없는 대통령”이라고 자조했다. 강 교수는 “통화하는 지금도 포격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다. 피할 곳이 없다. 피란민들의 행렬로 사방의 길이 꽉 막혀 있고, 주유소에도 길게 줄이 늘어서 있어 차에 기름도 못 넣는다. 일단 집에서 뉴스만 보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며 급박한 상황을 전했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18~60세 남성의 출국을 금지하고 국가 총동원령까지 내린 상태다. 다만, 강 교수는 “2008년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 때와는 다르다. 우리(우크라이나) 군대는 조지아보다 훨씬 강하고, 국민의 애국심도 깊기 때문에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제재만 얘기한다”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등으로 10만 명이 피란했다고 유엔난민기구가 추산했다. 전날 헝가리에 처음으로 도착한 크리스티안 스자블라는 AFP통신에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이 우크라이나를 빠져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인접국인 폴란드 바르샤바에서도 한국 대사관을 포함해 각국 대사관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남종석 폴란드한인연합회 회장은 “주폴란드 한국 대사관 직원들을 포함해 영사·참사 등 인력이 죄다 우크라이나 국경 쪽으로 내려가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장서우 기자 suwu@munhwa.com
02.26 우크라이나 침공과 ‘독을 품은 새우’

이틀 전인 지난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고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그런데 미국은 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을 막지 못했을까? 그것은 러시아의 현상 변경 의지에 비해 이것을 막겠다는 미국의 의지가 훨씬 약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국가들은 러시아가 지난해 4월부터 군사력을 국경지대에 집중 배치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군사력 사용을 통한 강한 억제(deterrence) 의지를 보여 주지 못했다. 외교적 해결만 시도했을 뿐인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러한 서방측의 강한 의지 결여를 간파하고 허점을 파고들었다.
미국의 군사력 사용 의지 결여에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제국적 자만심(hubris)에 대한 역작용이라는 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의 후유증으로 과도한 군사개입을 피하고자 하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이래 미국은 세계 분쟁지역에서 주도적인 해결사 역할을 하지 못하고 흔들리며 위축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예를 들어 오바마 행정부가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를 사용하면 군사공격을 하겠다고 레드라인을 그어 놓고 2013년 그것을 어겼는데도 못 본 체했던 것은 미국 리더십에 치명적 타격이었다. 반면 러시아는 2015년 시리아에 개입해 내전의 흐름을 바꾸고, 알아사드 정권을 되살려내면서 역내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강화했다.
제국적 프로젝트에 희생 경험 한국
독을 품은 새우까지는 안 되어도
경제력 맞는 외교의 격 갖춰야
대러시아 제제 동참은 잘한 일
어찌 되었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2022년 2월은 유럽 및 세계정치사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다. 이제 유럽은 ‘침공 이전’과 ‘침공 이후’의 시기로 확연히 구분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침공 이후 유럽정치는 군사화할 것이다. 이제까지 유럽국가들은 나토라는 미국 주도의 집단방어체제와 유럽연합(EU)이라는 정치경제 협력체의 틀 안에서 대체로 안보에 대한 큰 걱정 없이 살아왔다. 그러면서 제각각 러시아와의 이런저런 경제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미국과는 대러 정책과 관련해 부딪치기도 하면서 지내 왔다. 예를 들어 독일은 미국이 반대하는 노르트스트림2 가스파이프라인 건설을 고집했고, 프랑스는 유럽의 독자 역할을 강조하면서 미국과 결이 다른 목소리를 내곤 했다.

▲선데이 칼럼 2/26
이제 그럴 여유가 사라졌다. 푸틴은 국제법을 적나라하게 위반하며 군사력을 행사했다. 그에게는 러시아의 바로 이웃에 우크라이나가 성공한 민주국가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위협이다. 따라서 그는 우크라이나의 군사력을 궤멸하고 정부 기능과 경제 인프라 등을 파괴하여 극도로 혼란스러운 실패국가로 만들 것이다. 더 나아가 그가 1997년 이전으로 나토 확장을 되돌리라고 요구한 것과 최근 러시아의 핵무기에 대해 언급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그의 ‘소련제국의 영광 되살리기’ 프로젝트가 우크라이나에서 끝나지 않고 앞으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까지, 더 나아가 폴란드, 루마니아, 슬로바키아로 확장되어 갈 수 있음을 예상케 한다. 미국과 나토의 핵심 국가들은 이들 국가들에게 어떻게 안전보장을 해 줄 것이냐가 큰 과제가 되었다. 핀란드와 스웨덴도 불안해 할 것이고 이들이 원한다면 나토 가입 문제가 논의될 것이다. 이제 경제가 아니라 군사안보가 유럽 국제관계를 규정하는 1차 변수가 된 것이다. 미국과 유럽이 얼마나 단결할 것인지, 서방 국가들의 경제제재와 이에 대응한 러시아의 에너지, 사이버 및 다양한 교란작전이 어떻게 진행될지가 관건이다.
여기서 중요 관심 사항은 두 가지다. 첫째는 미국의 딜레마이고, 둘째는 중국의 반응이다. 미국은 이른바 ‘유럽으로의 귀환(Pivot to Europe)’을 추진해야만 될 상황이다. 중국을 의식한 ‘아시아로의 귀환(Pivot to Asia)’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유럽을 단합시켜 미국 쪽으로 더욱 당기지 못하면 러시아-중국의 연대에 제대로 맞서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적극 지지하고 후원할 것인가? 이제까지 중국은 나토 팽창 문제와 관련하여 러시아 입장을 지지해 주었다. 따라서 러시아는 서방측 경제제재의 부정적 여파를 중국이 상당 정도 완충시켜 주리라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침공에 대해서는 유보적이다. 다른 한편,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집중해 있을 때 중국이 대만에 다양한 공세적 행동을 취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결국 미국의 가장 큰 외교 과제는 어떻게 중국을 미국에 협조하도록 끌어당길 것이냐이다.
이제 국제정치 분석자가 아니라 한국 사람 입장에서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 할지 생각해 보자. 한국은 주변 대국들과 북한이 국제법과 규범을 위반하거나 악용하면서 추구한 제국적 프로젝트와 권력정치에 번번이 희생되어 왔다. 구한말 일제 식민지화, 북한의 남침, 중국의 6·25 참전이 그랬다. 그렇기에 러시아의 무력을 사용한 우크라이나 주권 침해에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1966년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는 “큰 고기는 작은 고기를 사냥하고, 작은 고기는 새우를 잡아먹는 세상이다. 싱가포르는 독을 품은 새우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독까지 품는 것이 좀 그렇다면, 최소한 세계 10위 경제력에 맞는 ‘격(格)’ 정도는 갖추는 외교가 되어야 한다. 늦게나마 우리 정부가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키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중앙일보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전 외교통상부 장관
02.26 정권 인사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우크라 조롱…그 입 다물라

▲왼쪽부터 박범계 법무부 장관, 문재인 대통령, 홍현익 국립외교원장. 그래픽=김영옥 기자
"러 침공 예측 못 하고 위기 키운 '아마추어 대통령'". 국내 한 언론이 지난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외신을 종합한 짧은 기사에 단 헤드라인이다. 동의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현 법무부 장관인 여당 소속 박범계 의원이 트위터에 이 기사를 포스팅한 건 전혀 다른 일이다.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하는 위치에 있는 공인이, 침략당한 외국 대통령을 조롱하는 모양새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 와중에 청와대는 미국 주도의 대러시아 제재 불참을 말하다 뒤늦게 제재 동참으로 선회해 인심만 잃었다.
외교원장이 "우크라이나의 어리석음"
러시아 침공을 당한 우크라이나를 조롱한 건 박 장관뿐만이 아니다. 홍현익 국립외교원장도 SNS 댓글로 "우크라이나의 어리석음이 오히려 주요인이고, 그다음 미국과 러시아의 국익을 내세운 위정자들의 정치적 계산의 합작품…. "이라고 평했다. 이 정부나 더불어민주당에 속해 있거나 정권 친화적인 인사들이 이와 비슷한 과격한 표현을 쏟아내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전직 코미디언이었다는 점을 특히 조롱거리로 삼는다. 가령 역사학자라며 노골적인 어용 행보를 일삼는 전우용은 트위터에 "무식하고 무능한 코미디언을 대통령으로 뽑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처지가 안타깝다"다며 "국민이 무식한 통치자를 선택하면, 무식한 통치자는 대개 '재앙'으로 보답한다"는 극단적인 비하 발언을 내뱉었다.

▲박범계 SNS

▲홍현익 국립외교원장이 단 댓글. [페이스북 캡처]
개전 직후 속절없이 무너지는 우크라이나를 보며 손가락질하기는 쉽다. 우크라이나에 대해 잠깐 검색한 후 현 대통령 젤렌스키가 정치 경력이 전혀 없는 희극 배우였다는 사실을 끄집어내 웃음거리로 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공적인 자리에 있는 사람, 혹은 많은 이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관료나 지식인이라면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그런 식으로만 묘사해서는 안 된다.
개도국 멸시하는 '꼰대 의식' 투영
그런데 왜 재야 지식인부터 장관에 이르기까지 다들 이런 행태를 보이는 걸까. 나는 586 세대, 더 나아가 진보 진영 일각에 팽배한 예능인 혐오와 개발도상국 멸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거라고 본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소련 붕괴로 탄생한 나라다. 건국 30년을 갓 넘긴 신생국이다. 정치·경제 등 사회 전반이 제자리를 잡을 여유를 갖지 못한 채 숱한 대내외적 풍파를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우크라이나의 현황은 비참하다.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부패가 심각한 나라다. 짐작할 수 있듯이 1등은 러시아다. 하지만 러시아는 막강한 군사력과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석유 및 천연가스를 가진 나라지만, 우크라이나는 다르다.
그런 우크라이나가 정치적, 경제적으로 안정적이긴 어렵다. 정치적으론 친서방파와 친러시아파로 나누어져 혼란스럽다. 한편 우크라이나 경제는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소수의 재벌, 즉 올리가리히에 의해 지배된다. 전임 대통령 포로셴코 역시 올리가리히 중 한 사람으로, 동유럽 최대의 초콜릿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기업인 출신이 대통령이 된다 하여 그 나라가 반드시 부패하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그랬다. 친서방파가 집권하든 친러파가 집권하든 고질적인 정경유착과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았으니 국민들은 염증을 냈다.
우크라이나 정치는 러시아의 영향력에 휘둘려왔으나, 2013년 유로마이단 시위 후 유럽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그러자 러시아는 2014년 군사력을 동원해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했고, 이후 우크라이나 동쪽 돈바스 지역에서는 반정부세력을 조직, 포섭, 지원하는 방식으로 비정규전쟁을 벌여왔다. 2022년 2월 현재 전면전이 벌어졌으나 사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8년째 계속되고 있었던 셈이다.
코미디언 대통령 당선은 부패 반작용
젤린스키의 대통령 당선은 이런 맥락에서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정치 경력이 전혀 없는 배우 출신으로, 2015년부터 '인민의 일꾼'(Servant of People)에 출연해 큰 인기를 누려왔다. '인민의 일꾼'은 시골학교 선생님이 SNS에 올린 정치 비판 영상을 통해 국민적 인기를 얻어 정치권으로 진출하여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은 정치 풍자 시트콤이다. 답답하고 암울한 정치적 현실 속에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사이다'를 선사했다.

▲24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지하철역 안에 시민들이 대피해 있다. 이날 새벽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군사작전을 선언하면서 침공이 시작됐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렇다고 코미디언을 대통령으로 뽑아?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개그와 다큐를 구분하지 못하나? 박범계 장관과 전우용을 비롯한 대다수 586들이 이런 경멸을 대놓고 드러낸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우크라이나 문제는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뿐만이 아니다. 건국 이후 30년간 얽히고설킨 정경유착을 해결하지 않는 한 미래가 없다.
2019년 대선 당시 젤렌스키는 1차 투표에서 1위를 하고, 2차 결선 투표에서 73.19%의 득표율로 전임 대통령 포로셴코(24.48%)를 압도적 표차로 눌렀다. 우크라이나인들이 시트콤과 현실을 구분 못 하는 바보 멍청이여서가 아니다. 처음 정치에 뛰어든 신인을 지지하여 단번에 정치적 구도를 뒤흔들지 않으면 고질적인 정경유착을 끊을 수 없다는 위기감의 발로였다.
젤렌스키가 법학 석사 엘리트라는 점을 알고 보면 더욱 그렇다. '코미디'라는 키워드를 빼고 본다면, 우크라이나의 2019년 선거는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비슷한 일은 프랑스에서도 있었다. 정치 경험이 거의 없는 투자회사 출신 엘리트 마크롱이 전광석화처럼 나타나 대통령이 되고 본인의 지지 정당을 원내 제1당으로 만들었던 것과 사실상 동일한 현상이다. 기존 정치권에 통째로 염증을 느낀 국민들의 열망이 뭉쳐, 기존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해하기 어려운 정치적 결과를 낳은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몹시 열악하다. 2013년, 우크라이나의 이웃 폴란드에는 약 22만 명의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2019년 현재 120만여 명으로 늘었다. 유출 인구 상당수는 고학력, 고소득, 고급 인력이다. 이 추세가 지속할수록 친서방파는 선거에 이기기도, 설령 이긴다 해도 우크라이나를 개혁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기도 어렵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5일 새벽 연설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 인스타그램 캡처]
물론 젤렌스키 정권은 여러 약점을 드러냈다. 특히 인재풀이 부족한 탓에 젤렌스키와 가까운 방송 관계자들이 정부 요직을 차지했다는 뉴욕타임스 보도는 젤렌스키의 무능 이미지에 쐐기를 박았다. 하지만 젤렌스키를 택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그가 '아웃사이더'이기 때문에 뽑지 않았나. 실제로 젤렌스키는 이전 정권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강력한 올리가리히 규제 법안을 연이어 내놓았다. 유효성과는 별개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원하던 방향이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정치 전체를 뒤집어버릴 '아웃사이더'를 원했는데, 우리가 과연 그 선택을 비합리적이거나 어리석다고 비난하고 조롱할 수 있을까?
선거용 견강부회, 혐오 발언
해방 직후 영국의 한 언론인이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정착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고 했던 발언은 수많은 한국인의 마음속에 두고두고 응어리로 남았다. 일제 식민지배가 끝나자마자 북한의 침략을 겪고 황무지가 된 국토 위에 두 주먹만 가지고 서 있는 것도 서러운데, 그런 비참한 처지의 대한민국을 이런 식으로 조롱했던 말을, 우리는 쉽게 잊을 수가 없었다.
박범계, 전우용, 그 외 민주당 의원들과 그 지지자들이 내뱉는 폭언 역시 마찬가지다. 근엄한 유교적 사농공상 세계관을 깔고는 무려 한 국가의 대통령을 예능인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광대''천민'으로 취급하는 혐오를 내비친다. 더 나쁜 건 우크라이나의 사정과 역사적 맥락을 알지도 못하면서, 젤렌스키를 대통령으로 뽑은 우크라이나 국민을 통째로 멸시하는 태도다.
입으로는 온갖 정치적 올바름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노골적인 차별과 혐오와 멸시를 드러내는 사람들 아닌가. 침략당한 외국을 두고 선거용 견강부회를 위해 그런 혐오 발언을 하는 걸 보면 너무 끔찍해서 내가 다 미안할 지경이다. 모든 한국인이 그렇지 않다는 걸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알아주면 좋겠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가 독립된 주권국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회복할 수 있도록 우리가 힘을 보탤 수 있기를 바란다.
중앙일보 노정태 칼럼니스트
02.27 국경 넘을 수 없었던 우크라 아빠, 처음 본 사람에 “아이들 부탁”

▲우크라이나인 안나 세먹(33)이 낯선 아주머니와 함께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은 아이들을 헝가리 쪽 초소 근처에서 만나 품에 안고 있다./로이터통신 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우크라이나 국경엔 인접 국가로 향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피난 행렬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아이들을 피난 보내기 위해 국경에서 처음 만난 낯선 여성에게 두 아이를 맡길 수 밖에 없었던 우크라이나 아빠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다.
26일(현지시각) 가디언지에 따르면 나탈리야 아브레예바(58)는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처음 만난 한 남성이 안고 있던 어린 딸과 아들을 데리고 국경을 넘어 헝가리로 향했다.
아이들 아빠는 38세 남성으로 국경을 통과할 수 없었다. 우크라이나는 조국을 위해 싸울 수 있도록 18세 이상 60세 미만 모든 우크라이나 남성의 출국을 금지한 상태다. 당시 아이들 엄마는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헝가리 쪽 국경으로 오는 길이었다. 절망에 빠진 아빠는 국경에서 처음 만난 낯선 여성에게 두 아이를 맡기기로 결심했다.
아브레예바는 “아이 아빠가 나를 믿고 두 아이를 내게 맡겼다”며 “아이들이 국경을 넘을 수 있도록 아이들의 여권을 내게 줬다”고 말했다.
아브레예바는 아이들 엄마의 휴대전화 번호를 건네받았고, 아이들 아빠는 자녀들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안나 세먹이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안전하게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은 나탈리야 아브레예바(58)와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다./로이터통신 연합뉴스
아브레예바도 우크라이나에 두 명의 자녀를 둔 엄마였다. 그의 자녀들은 경찰과 간호사로 동원령에 따라 우크라이나를 떠날 수 없었다. 아브레예바는 자신의 자녀 대신 국경에서 처음 만난 두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국경을 넘었다.
국경을 넘은 아브레예바는 헝가리 쪽 국경 초소에 마련된 난민 텐트 근처에서 아이들 엄마를 기다렸다.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렸지만 다행히 아이들 엄마가 곧 초소에 도착했고, 아브레예바는 무사히 아이들을 엄마에게 보낼 수 있었다.
아이들 엄마 안나 세먹(33)은 아이들을 달랜 뒤 아브레예바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껴안은 채 눈물을 쏟았다. 세먹은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말 뿐”이라며 “1~2주 후면 다시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김자아 기자
02.28 2차대전 때로 돌아간 동유럽 시계… 싸울 각오와 동맹 없이 자유 못 지킨다
시계는 2차 대전 당시로 거슬러 돌아가고 있다. 러시아가 사라지고 ‘소련’이 다시 등장했다. 정치적 이유로 인접 주권국가를 침공하는 사례는 탈냉전기 유럽에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기대되었다. 테러와 벌이는 전쟁이나 민족 분규는 있었지만 국가 대(對) 국가의 전면전은 사라졌을 것이라 생각해 왔다.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 회복은 최소한의 국제 규범을 보장하리라 믿었고,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의 분쟁도 결국 국지전 형식으로 전개될 것으로 전망되었다.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러시아는 전격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그래픽=김현국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유럽의 인접국들은 각기 다른 운명을 맞았다. 1939년 11월 30일, 소련의 공습을 받은 핀란드는 이듬해 봄까지 치열한 겨울 전쟁을 벌였다.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지만 결코 순순히 내주지도 않았다. 1941년부터 진영을 바꿔가며 소련(계속 전쟁), 독일(라플란드 전쟁)과 맞서 싸웠다. 결국 소련과 친선 조약을 맺었지만 핀란드는 주권과 자유를 지켜냈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최근 우크라이나 해법으로 제시한 핀란드화는 인접 강대국의 이해를 보장하는 조건으로 평화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고, 핀란드 국민은 이 용어를 모욕스럽게 생각한다. 다윗과 골리앗이 맞붙은 겨울 전쟁에서 결기를 보여준 핀란드는 유럽연합의 일원으로 국제 평화 외교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바로 아래 위치한 발트 3국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소련에 병합되었다. 1939년 맺은 독-소 불가침조약에서 리투아니아는ᅠ나치 독일이,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는 소련이 나눠 가지기로 합의했지만 이후 폴란드 영토 분할 대가로 모두 소련 몫이 되었다. 스탈린의 압력에 맞서 발트 3국은 병합을 거부했지만 1940년 6월 일주일 만에 무력으로 진압당하고, 이후 설립된 친소(親蘇) 위성 정부에 의해 전광석화처럼 소련에 합병되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립을 선언한 발트 3국은 이후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에 가입하며 친서방 기조를 확립했고, 폴란드와 더불어 미군 주둔에 가장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벨라루스는 지속적으로 친러 기조를 유지했고, 러시아와 ‘국가 통합’에 합의했다.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진격은 합동 훈련을 구실로 벨라루스의 국경을 통해 이루어졌다.
소비에트 연방 중에서도 우크라이나는 지정학적으로 가장 요충지에 있었고, 키예프 루스라는 역사적 기원을 공유하기에 결코 러시아가 포기하지 않고 싶은 지역이다. 흑해로 진출할 수 있는 전략적 가치와 더불어 유럽에서 영토가 매우 큰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동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친러 성향도 강하다. 그러나 과거의 러시아 영향력과는 별도로 우크라이나는 1991년 다시 독립한 이후 서방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특히 1990년대 이후 태어난 젊은 세대는 새로운 친유럽 정체성을 가지기 시작했고, 2014년 유로마이단 시위에서 그것을 표출해 내었다. 현(現) 젤렌스키 정부는 나토 가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을 천명했다.
이 접경국들의 운명은 일차적으로 지정학적 위치로 설명된다. 전략적 가치가 높을수록, 지리적으로 접근성이 높을수록 강대국의 이해관계는 강하게 투사된다. 그러나 또 다른 핵심적 요소는 약소국으로서 자신이 원하는 가치를 어떻게 표현하고 지켜내느냐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치적, 경제적, 외교적 역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군사력의 상대적 열세는 극복할 수 없기에 내부 결속과 더불어 동맹의 끈을 단단히 챙겨야 한다. 그동안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불안정, 그리고 뚜렷한 동맹 체제를 구축하지 못한 느슨한 외교 기조는 서방화 의지에도 불구하고 결정적 순간에 미국과 나토가 직접적으로 개입할 명분을 제공해 주지 못했다.
서방이 러시아의 군사적 진격을 제재라는 카드로 막기는 쉽지 않다. 제재의 위력은 갈수록 강력해지겠지만, 당장 눈앞의 침공을 막는 데는 시차가 있다. 그 사이 러시아는 최대한의 공포와 좌절을 우크라이나에 심어주고자 한다. 그걸 이겨내는 것은 약소국이자 당사국의 몫이다.
긴장이 고조되는 냉엄한 현실에 실리와 균형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강대국 간 힘의 균형점에 서있겠다는 것은 이상론에 가깝다. 그 균형점은 잘 보이지도, 영속적이지도 않다. 중립과 균형은 자신이 원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강대국의 침략 전쟁을 벌일 때 약소국에 일차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맞설 각오가 없이는 자신의 미래를 지켜줄 우방은 없다. 충분한 신뢰를 주지 못하면서 우방의 도움을 막연히 기대하는 것도 위험하다. 우방도 아닌 주체에 기대는 것은 환상이다. 적의 선의에 기대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일이다.
국제 질서는 또다시 힘의 정치로 향하고 있다. 말의 외교는 유한하다. 치열한 패권 경쟁 속에서 말의 약속은 결코 약소국의 운명을 보장해 주지 않았다. 우크라이나가 핵을 포기한 대가로 안전을 보장받은 ‘부다페스트 양해 각서’는 유통기한이 몇 번은 지난 색 바랜 어음 조각이 되었다. 수많은 유럽의 불가침 조약은 쉽게 무너졌다. 얄타 회담을 면밀히 분석한 하버드 대학의 세르히 플로히 교수는 다른 가치 체제를 가진 전체주의 국가와 협약하면서 민주주의 국가들은 언제든 그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똑같은 역사는 반복되지 않더라도, 역사의 교훈은 그대로 반복된다.
02.28 전쟁
Simon & Garfunkel ‘Scarborough Fair/Canticle’(1966)

▲<Scarborough Fair/Canticle>(1966), Simon & Garfunkel
“나는 평생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웃음을 주고자 모든 것을 다해왔다. 그것이 나의 사명이었다. 이제 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최소한 울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TV 시트콤 ‘인민의 종’의 제작, 연출, 각본, 주연을 맡아 국민 드라마로 만든 코미디언 출신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2019년 취임식 연설에서 이렇게 자신의 소명을 천명했다. 평범한 역사 교사가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정치판에 들어와 대통령직에 오른다는 이 시트콤 스토리처럼 그는 단숨에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다. 그가 창당한 정당 이름은 바로 이 시트콤의 제목이다.
그러고 3년이 흐른 지금, 우크라이나는 20만에 육박하는 러시아군의 침공으로 수도 키예프는 풍전등화이고, 나토나 미국의 군사 개입은 거의 가능성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다.
미국은 그에게 대피를 권고하며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대피할 운송 수단이 아니라 탄약이라며 수도에 남아 결사 항전의 의지를 밝혔다. 이런 젤렌스키 대통령의 결연한 의지는 러시아 정부를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의 명백한 제1 타깃은 다름 아닌 젤렌스키인데 그가 최후까지 우크라이나군, 시민과 함께 수도를 지키다 전사한다면 영원히 순국의 영웅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에 뉴욕타임스마저 그의 정부를 아마추어 정치 집단이라고 조롱했지만, 그는 지금 푸틴을 향해 그리고 세계를 향해 최후의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전쟁은 참혹하다. 사이먼과 가펑클이 스코틀랜드 민요에 얹어 1966년에 읊었던 것처럼 ‘장군은 병사들에게 살육을 명령하고/ 잊힌 지 오래인 대의를 위해 싸우라고’ 한다. 병사들이 총을 깨끗이 닦고 있는 숲의 언덕 한편엔 전쟁의 나팔 소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어린 소년의 주검이 놓여 있다. 그냥 아름다운 하모니라고만 생각했던 ‘스카버러 시장’엔 이런 처연한 묵시록이 숨어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 강헌 음악평론가
03.01 곤란해지자 핵 위협 푸틴, 김정은은 더 할 것

▲김정은(왼쪽)과 푸틴이 각각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운용하는 러시아 전략 로켓군 등 핵무기 부대에 특별 전투 임무 돌입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핵 위협 카드다.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갈 핵무기를 자위권도 아닌 이웃 나라를 불법 침략하는 목적에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깡패 국가나 테러 단체가 아니고선 할 수 없는 일이다. 우크라이나에는 빨리 항복하라는 경고이며 미국과 서방에는 관여하지 말고 제재를 풀라는 협박이다. 여의치 않으면 핵 위기를 고조시키려 할 것이다. 공산권 독재국가가 핵을 어떻게 악용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북한 김정은은 이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다. 북은 과거에도 걸핏하면 한·미를 향해 ‘불바다’ ‘핵 공격’ 위협을 했다. 2010년엔 “핵 억제력에 기초한 우리 식 성전(聖戰)을 개시할 준비가 돼 있다”며 세 번이나 핵 위협을 했다. 2013년에는 분쟁 상대국에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핵보유국 지위 공고법’을 제정했다. 2017년에도 미국을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 조치’로 위협했다. 북한이 서해5도 등에서 국지적 도발을 일으킨 후 핵 카드를 내밀면 우리는 제대로 대응도 못하고 핵 포로가 될 수 있다. 여권과 좌파는 “북핵은 자위용” “남한 겨냥이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북은 핵으로 우리를 군사적으로 굴복시키려 할 것이다.
북은 지난달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을 쏘면서 “검수 사격”이라고 했다. 무작위 품질 테스트로 실전 배치했다는 뜻이다. 27일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뒤엔 정찰위성 개발을 위한 중요 시험을 했다고 했다. 위성을 가장한 ICBM 발사용 실험을 했다는 의미다. 핵·ICBM 모라토리엄을 파기하는 수순으로 갈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종전 선언을 하면 북한이 비핵화에 나설 것처럼 말한다. 여당 후보는 북의 핵 도발 임박 시 선제 타격이나 북 미사일을 막는 ‘사드 배치’에 대해 ‘전쟁광’이라고 비난했다. 이런 조치도 없이 북의 핵 위협에 어떻게 맞서겠다는 건가.
조선일보 사설
03.01 “이 사진을 푸틴에게 보여주라” 러시아 폭격에 숨진 6세 소녀

▲27일(현지 시각)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부상을 입고 구급차에 실려온 6세 소녀./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이 거세지면서 민간 지역에 대한 무차별 폭격도 자행되고 있다. 지난 27일(현지 시각)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는 6세 소녀가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치명상을 입고 사망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27일(현지 시각)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부상을 입은 우크라이나 6세 소녀를 의료진이 살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AP 연합뉴스
유니콘이 그려진 바지를 입은 소녀와 가족들은 폭격 당시 도시 외곽에 있는 한 슈퍼마켓에 있었다. 구급차에 실려온 소녀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고 얼굴은 창백했다. 뛰어나온 의료진은 필사적으로 소녀의 입과 코에 산소 호흡기를 끼우고 제세동기로 소녀를 소생시키려 했다.

▲27일(현지 시각)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사망한 우크라이나 6세 소녀./AP 연합뉴스
소녀는 결국 사망했다. 간호사를 비롯해 수술복을 입은 의료진들이 눈물을 흘렸다. AP통신에 따르면 사진 기자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한 의사는 “이것을 푸틴에게 보여주라, 이 아이의 눈빛 그리고 우는 의사들”이라고 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민간 지역에 대한 공격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하지만 민간인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마틴 그리피스 유엔(UN) 인도주의긴급구호조정관은 28일 우크라이나 내 민간인 사상자가 최소 406명 발생했다고 밝혔다. 그는 확인되지 않은 사상자가 아직 많기 때문에 실제 민간인 사상자 수는 훨씬 더 많을 수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김수경 기자
03.01 "사흘만에 전투부대 30% 잃었다"…우크라 쉽게 본 푸틴의 오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닷새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팔을 손쉽게 비틀 것이란 예상과 다르게 전황이 흘러가고 있다. 러시아는 주요 목표인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예프, 제2 도시인 하르키우, 흑해 연안의 거점인 마리우폴을 아직 점령하지 못했다.

▲러시아군 탱크가 우크라이나군 공격에 파괴돼 연기를 내뿡고 있다. AFP=연합뉴스
게다가 전쟁 초반 러시아의 손실이 매우 크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우크라이나 국방부의 26일 발표에 따르면 러시아 전차 146대와 장갑차 706대가 파괴됐다”며 “보통 전체 전력의 30~50% 정도 피해를 본 부대를 전투불능으로 여긴다. 25~30개 대대전술단이 녹아내린 셈”이라고 말했다. 대대전술단은 전차(10대)ㆍ장갑차(40대)를 중심으로 포병ㆍ방공ㆍ공병ㆍ통신ㆍ의무를 모아놓은 대대 규모의 러시아군 임시 부대편성이다.

▲28일 현재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 전황. 트위터 Kamil Galeev 계정
러시아는 이번 전쟁에 160개의 대대전술단을 동원했고, 100개를 전투에 투입했다. 사흘(26일 기준) 만에 전투에서 30%를 잃었다는 수치다. 우크라이나가 선전하고 있다는 얘기다.

▲러시아군 피해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 이유에 대해 방종관 한국국방연구원 객원연구원(예비역 육군 소장)에게 들어봤다.
러시아의 오판
러시아는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낼 생각이었다. 러시아군이 3개 방면에서 대규모로 침공하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포함한 우크라이나 정부의 지휘 체계는 와해할 것이라고 가정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가정대로 전쟁이 진행됐더라면 5일 만에 무조건 항복에 가까운 조건으로 끝낸 2008년 조지아 전쟁과 같은 양상이 됐을 것이다.

▲그로니즈 전투 당시 체첸 전투원이 파괴된 러시아군 보병전투장갑차인 BMP-2 곁을 지나가고 있다.
러시아가 이번 전쟁을 위해 동원한 15만 병력은 우크라이나의 영토와 인구를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예프를 포함한 다른 대도시를 핵심 목표로 선정했을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국민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총을 들고 있다. 이들의 높은 전의는 러시아가 개전을 결정할 때 고려했던 ‘가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가정은 빗나갔고, 속전속결의 성공 가능성은 멀어지고 있다.
개전 2~3일 후 러시아는 포위한 대도시의 진입 여부를 두고 고민했을 가능성이 있다. “도시는 병력을 삼킨다”는 말이 있다. 시가전은 공격 측에게 매우 불리하다. 도심의 건물은 아군의 진격을 방해하고, 적군에겐 최적의 매복 장소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1994~95년 제1차 체첸 전쟁 때 체첸의 수도인 그로즈니에서 큰 피해를 봤다.
키예프를 포함한 시가전에서 러시아군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다면 푸틴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감당하기 힘들다. 러시아는 독재 국가이지만, 선거를 치른다. 다음 대선에서 푸틴 대통령은 결코 유리할 수 없을 것이다.
서방의 지원
지난해 11월 러시아군이 대규모 병력을 집결하자마자 미국은 이를 언론에 적극적으로 공개하기 시작했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미국은 2014년 크림반도와 2021년 아프가니스탄 철수 작전의 정보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절치부심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최초 침공 예정일로 공개한 2월 16일이 실제로 러시아가 최초 계획했던 일정이었는데, 기습 효과가 사라지면서 늦췄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크라이나군 장병이 미국에서 지원한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 등 군사 지원품을 화물기에서 내리고 있다. 로이터=연합
미국과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는 우크라이나에 파병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군사 지원은 이어가고 있다. 미국만 해도 2014년 러시아의 크림 반도 강제 합병 이후 우크라이나에 54억 달러(약 6조 5000억원)의 군사 원조를 보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3억 5000만 달러(약 4200억원) 규모를 승인하면서 의회에 64억 달러(약 7조 7000억원)의 예산을 요청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과 스팅어 지대공 미사일 등을 제공하면서 도심 지역을 중심으로 방어하라고 조언한 것으로 보인다. 휴대와 조작이 간편해 자발적으로 전투에 참여하는 민병들도 운용할 수 있다는 게 이들 무기의 장점이다. 실제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전차와 장갑차, 헬기를 막아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대대전술단의 한계
러시아는 대대전술단이라는 독특한 부대편성을 편성하여 전투에 투입했다. 지역분쟁 개입에 최적화된 부대편성이다. 대대전술단의 장점은 작은 규모에 전차, 장갑차, 포병, 방공 등 제병 협동요소를 최대한 포함한 것이다. 가장 큰 단점은 정비·보급 등을 담당하는 조직의 편성이 미약하다는 것이다.

▲사열을 받고 있는 러시아 육군 대대전술단. mycity-military
이 때문에 러시아는 2014년 돈바스 분쟁에서 대대전술단이 적지 종심 깊은 지역으로 진격하지 않도록 지시했다는 미국의 보고서가 있다. 러시아 대대전술단은 우크라이나에서 장기간 작전하는 것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현재 국경 밖에 대기하고 있는 대대전술단과 교대로 투입될 가능성이 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03.02 '젤렌스키 암살' 노린 러 악마부대, 우크라軍에 전멸 당했다

▲25일(현지시간) 러시아 그로즈니에서 우크라이나에 투입된 체첸 공화국 부대원들이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가 젤렌스키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우크라이나로 파견한 엘리트 ‘체첸’ 무슬림 특수부대 등이 무력화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1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일간 미러(Mirror)에 따르면 올렉시다닐로프우크라이나 국가안보회의 의장은 이날 TV 연설에서 “대통령을 죽이러 온 부대가 제거됐다”면서 “젤렌스키 대통령 암살을 위해 체첸의 독재 지도자 람잔 카디로프가 투입한 체첸의 엘리트 부대를 무력화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이미 부대가 수행할 특수 작전을 알고 있었다”며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 참여하기를 원하지 않는 러시아 연방 보안국 대표들로부터 기밀 정보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통령을 죽이러 온 카디로프의 체첸 특수부대는 전멸했다”고 밝혔다.
해당 암살 부대는 두 그룹으로 나뉘어 움직이고 있었고, 우크라이나 측은 이들의 움직임을 면밀하게 추적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닐로프 의장은 “두 그룹 중 하나가 수도 키예프 북서쪽 교외인 호스토멜에서우크라이나 군의 공격을 받아 전멸했다. 또 다른 그룹은 ‘우리의 시야’ 안에 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우리의 국가도, 대통령도, 절대 내주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곳은 우리 영토다. (러시아는) 당장 여기서 떠나야 한다”고 했다.

▲25일(현지시간) 러시아 그로즈니에서 우크라이나에 투입된 체첸 공화국 부대원이 장갑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앞서 지난달 26일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악마의 부대’라 불리는 러시아 남부 체첸 자치공화국의 민병대가 우크라이나로 파병됐다.
보도에 따르면 친(親) 푸틴 인사로 알려진 람잔 카디로프 체첸공화국 수장은 이날 SNS에 “러시아군은 수도 키예프를 포함해 우크라이나 대도시들을 쉽게 점령할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이 올바른 결정을 내렸고 어떤 상황에서도 (민병대가) 그의 명령을 이행할 것”이라고 썼다.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여한) 부대원 중에선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는 민병대가 어느 지역에서 전투 중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 전투가 가장 치열한 곳에 파병될 것이라고 했다.
카디로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충성하는 대가로 공화국 내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인물이다. 체첸 민병대는 카디로프에 무조건 충성하는 무력 집단이다. 수년간 전투로 단련된 이들은 고문·살인 등 잔혹한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자행해 ‘악마의 부대’로 불린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ang.co.kr
03.03 우크라서 러 전투차 수백 대 격퇴… ‘성스러운 재블린’이 해냈다
美가 4년 전 지원한 대전차무기
길이 1.2m·무게 22㎏ 불과하지만 시가전에 최적화된 파괴력 지녀

▲2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에서 군인들이 미국산 재블린 대전차미사일을 발사하며 훈련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지대에 병력을 증강해 러시아와 서방 간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미국은 러시아에 긴장 완화 조처를 재차 촉구하면서 내년 초 협상을 준비하고 있다고 이날 밝혔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공보실 제공].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육군이 뜻밖의 ‘비밀 병기’에 고전하고 있다. 미국이 2018년 우크라이나에 수출한 대전차무기 FGM-148 재블린<사진>에 러시아 전차, 장갑차, 헬리콥터가 대책 없이 당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2일(현지 시각) “전차 211대, 장갑차 862대, 군사차량 355대에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CNN은 “우크라이나의 생각 외로 강한 저항에 러시아 공세가 주춤하다”며 “우크라이나가 서방에서 획득한 무기 체계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했다.
평원이 많은 우크라이나 지형상 러시아 기갑·기계화 부대는 수도 키이우(키예프) 등 거점으로 장애물 없이 진격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전차 사거리 바깥에서 재블린을 발사, 상당한 피해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길이 1.2m, 무게 22.3㎏인 재블린은 자율 유도 장비를 갖추고 있다. 탄두를 발사한 직후 병사가 회피 기동을 해도 적외선 장비로 표적을 자동으로 추적해 명중시킨다. 공격당하는 전차 입장에선 최초 발사 지점을 찾아 타격하기가 극도로 어렵다는 것이다. 재블린의 사정 거리는 2.5~5㎞다. 민첩하게 기동할 경우 최대 유효 사거리 4~5㎞인 러시아군 주력 전차가 대응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600~800㎜ 두께 장갑까지 관통하기 때문에 파괴력과 살상력도 수준급이다. 탄두를 발사해도 후폭풍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장점 덕분에 건물 내에서 시가전을 치르기에도 유용하다. 전차와 장갑차뿐 아니라 헬기 같은 공중 목표물에도 쓸 수 있다. 이 때문에 일선 우크라이나 장병 사이에선 ‘성스러운 재블린’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고 한다.
한국국방안보포럼 신종우 전문연구위원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투입한 ‘대대전술단’은 상황 조기 종결에 특화한 부대라 전쟁 지속 능력이 취약하다”며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저항을 예상하지 못했기에 보급과 군수 지원을 받지 못하고 고립, 재블린의 손쉬운 표적이 되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가 개전 초기 공군이나 포병 등으로 대전차부대를 제대로 격멸하지 못한 것 역시 재블린 선전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미국은 재블린을 비롯, 약 3억5000만 달러(약 4226억원) 규모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추가 지원할 예정이다. 독일도 ‘분쟁 지역에 무기 수출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대전차무기 1000정, 지대공미사일 ‘스팅어’ 500기를 우크라이나에 보낼 예정이다. 프랑스·영국·네덜란드 등도 대전차무기 등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조선일보 원선우 기자
03.03 141 대 5... 유엔 러 규탄 결의안 채택 순간, 기립박수 터졌다
193개국 중 한국 등 141개국 압도적 찬성
찬성국들 ‘어린이’ 상징 인형 들고 표결
러시아, 북한, 시리아 등 5개국만 반대
중국, 인도, 쿠바는 여론 눈치에 기권

▲<YONHAP PHOTO-1588> Delegates react as results of the voting are displayed during the 11th emergency special session of the 193-member U.N. General Assembly on Russia's invasion of Ukraine, at the United Nations Headquarters in Manhattan, New York City, U.S., March 2, 2022. REUTERS/Carlo Allegri/2022-03-03 03:18:06/ <저작권자 ⓒ 1980-202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즉각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유엔(UN) 긴급특별총회에서 회원국 193개국 중 141개국의 압도적 지지로 채택됐다.
유엔은 2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한 제 11차 긴급특별총회를 열고 이런 내용의 결의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141표, 반대 5표, 기권 35표로 채택했다.
결의안 채택이 공표된 순간 각국 외교관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미국과 한국, 일본과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들이 찬성표를 던졌다.
특히 이날 러시아를 규탄하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각종 동물 모양 봉제인형을 앞에 두고 표결에 임했다. 이는 러시아군의 무차별 포격으로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 살상이 급증하는 현실을 강력히 비난하는 것이자, ‘우리의 오늘 표결은 미래 세대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결의의 표시로 각국 외교관들이 낸 아이디어라고 한다.

▲2일 유엔 긴급특별총회에서 몰타 주유엔 대사가 곰인형과 '우크라이나와 함께 하겠다'는 카드를 들고 표결에 임하고 있다. 이날 러시아 규탄안에 찬성한 많은 국가들이 이렇게 어린이용 동물 인형을 들고 유엔 총회장에 나왔는데, 이는 러시아의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 살상에 분노하면서 '오늘 우리의 투표가 미래 세대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의미다. /UPI 연합뉴스
이날 반대표를 던진 국가는 규탄의 대상이 된 러시아 외에 북한, 벨라루스, 시리아, 에리트리아(아프리카 북동부 홍해 연안의 군국주의 국가) 등 단 5개 국가였다. 김성 유엔 주재 북한 대사는 전날 표결 전 발언에서 “우크라이나 위기의 근본 원인은 다른 나라를 향한 고압적이고 독단적 태도에 심취한 미국과 서방의 패권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지난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러시아 규탄 결의안에 반대했던 중국과 인도, 아랍에미리트(UAE)나 러시아와 가까운 이란, 쿠바,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등 35개국은 이날 기권했다. 그만큼 러시아를 향한 국제 사회의 비난 여론에 러시아와 웬만큼 가까운 나라들도 민감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유엔 긴급특별총회의 결의안은 원칙적으로 안보리와 같은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하지만 러시아를 규탄하는 압도적 국제 사회의 여론 지형을 확인하는 정치적 무게를 지닌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소련이 거부권을 이용해 틀어막은 안보리를 우회하기 위해 처음 도입된 유엔 긴급특별총회제도는 당시 한국에 유엔 파병을 최종 승인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조선일보 뉴욕=정시행 특파원
03.04 좋은 연극은 훈계하지 않는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관객 스스로 반성하게 한다
희극배우 출신 우크라 대통령 “도피 아닌 탄약 필요” 큰 감동

▲연극 '리차드3세'에서 악인 중의 악인을 연기한 배우 황정민. /샘컴퍼니
대학 연극반 시절에 무대는 하늘 같았다. 흙발로는 절대 올라갈 수 없는 곳이었다. 이유 없이 무대를 가로지르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군인이 총기를 손질하듯이, 피아니스트가 건반의 얼룩을 제거하듯이, 우리는 무대를 자주 쓸고 닦았다. “배우는 가장 깨끗한 수건으로 무대를 닦고 가장 더러운 걸레로 자신의 몸을 닦는다”는 말이 거룩하게 들렸다.
‘거꾸로 말하기’가 연극의 매력이다. 연극을 정의하는 고전적 수사는 ‘연극은 세상의 거울’이라 말하는 것이다. 거울 속 세상은 좌우가 뒤집혀 있다. 리어왕이 스스로 정상이라 믿었을 때는 사리를 판단하지 못하다가 배신당하고 미쳐버렸을 때 비로소 진실에 눈을 뜨듯이, 연극은 거꾸로 비추어 바로 보게 하는 모순 어법을 사용한다. 무대에 등장한 배우가 ‘저렇게 살아야 한다’고 훈계한다면 얼마나 따분할 것인가. 잘 구운 연극은 무대에 혼돈을 던져놓고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를 관객 스스로 반문하게 한다.
5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개막하는 ‘회란기(灰闌記)’는 중국 원나라 때 이야기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여인 장해당은 동네 갑부 마원외의 첩이 돼 아들을 낳는다. 그런데 본처 마부인은 불륜남과 작당해 남편을 독살하고 장해당에게 뒤집어씌운다. 재산까지 노린 마부인은 장해당의 아들을 자기 아들이라 주장하며 산파와 이웃에게 위증을 청탁한다. 정의를 손바닥처럼 뒤집고 진실도 매수하는 우리 시대를 후려치는 연극이다.
최근 폐막한 ‘리차드3세’에서 셰익스피어는 말재주와 꾀, 권력욕으로 무장한 악마를 그려냈다. 꼽추 리차드3세(황정민)는 객석을 향해 히죽거린다. “난 지금부터 훌륭한 배우가 되겠어. 웃으면서 눈물도 흘리면서 유쾌하게 엄격하게 때론 사랑스럽고 때론 마초적으로. 세상을 속일 명연기로도 저 왕관을 차지할 수 없다면, 그땐 좀 더 악해지면 되겠지. 우선 다리를 절면서 동정을 사야겠다.” 흉한 소문을 퍼뜨려 형들을 찢어놓은 그는 조카들을 죽이고 왕을 참칭한다.
‘회란기’는 700년 전, ‘리차드3세’는 400년 전에 쓰였다. 지금 다시 공연되는 까닭은 뭘까. 불행히도 세상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자주 더 충격적으로 말문이 막힌다. 연극에서 거짓은 결국 탄로나고 부정한 사람들이 벌을 받지만 현실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들기도 한다. ‘회란기’ 연출가 고선웅 말마따나 “세상이 좀 덜 살벌하고 더 상식적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절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현실의 비극이다. 거의 모든 나라가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44)라는 흠모할 만한 지도자도 등장했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희극 배우 출신으로 ‘무능한 정치 초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 이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사일과 포탄이 날아드는 수도에 잔류하며 결사 항전 중이다. 피신을 돕겠다는 미국의 제안을 거절하며 그가 한 말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싸움이 한창이다. 나는 도피가 아니라 탄약이 필요하다(The fight is here. I need ammunition, not a ride).”
젤렌스키는 주권과 자유를 지키려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구심점이다. 세계적 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침마다 밤새 그가 무사한지 확인하는 게 루틴이 되었다는 사람이 많다. 저 한마디가 어느 연극이 들려준 명대사보다 큰 감동을 준다. 진정한 위대함은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자신에 대해 엄격한 데서 나온다. 젤렌스키의 리더십을 보며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얼마나 귀하고 드문 것인가를 생각한다.

▲2월 28일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러시아 규탄 시위에서 한 참가자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아돌프 히틀러 나치독일 총통에 빗댄 사진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영웅으로 표시한 팻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조선일보 박돈규 기자
03.04 “푸틴의 도박은 완전히 실패… 전세계를 각성시키고 있다”
[세계 석학·전문가 러 침공 분석]
유발 하라리 히브리대 교수
“이번 전쟁, 전세계 미래 결정할 것… 우크라인들, 세계에 용기 심어줘”
맥매스터 美 전 국가안보보좌관
“러, 키이우 쉽게 함락 못 시킬 것… 우크라 항전의식, 예상 뛰어넘어”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군축으로 얻은 평화배당금 사라져… 군사·에너지안보에 지출 커질듯”
추이훙젠 中 국제문제硏 유럽연구소장
“서방·러 제재, 상당기간 반복될 것… 푸틴 총체적 목표달성 어렵게 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 8일째로 접어들면서 세계적 석학과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도박이 실패했음이 자명해지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친러시아적 입장을 보여온 중국의 학자조차 “정치와 군사, 외교를 총체적으로 고려했을 때 (러시아의) 목표 달성이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고 했다. 냉전 수준의 진영 대결이 장기화하면서 군비 경쟁이 본격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유발 하라리 히브리대 교수
이스라엘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 히브리대 교수는 지난달 28일 영국 일간 가디언 기고에서 “푸틴이 전투는 이길 수 있어도, 전쟁은 이미 졌다”며 “러시아 제국의 사망 진단서에는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아니라 푸틴의 이름이 적힐 것”이라고 했다. 또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실재하는 국가가 아니며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러시아의 통치를 갈망한다’고 거짓말을 해왔는데, 거짓말을 너무 해서 자기 자신도 이를 믿게 된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국민은 전 세계의 응원을 받으며 전력을 다해 저항하고 있고, 전쟁에서 이겨 나가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작전을 개시한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인 하르키우 인근 추기예프 군 공항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AFP 연합뉴스
하라리 교수는 “러시아의 침공이 전 세계인을 각성시키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대피 수단이 아니라 탄약이 필요하다”고 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러시아 탱크 앞을 가로막은 우크라이나 시민을 언급하며 “이들의 용감한 이야기는 전 세계에 각오와 용기를 심어주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번 전쟁은 전 세계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며 “폭정과 압제가 승리하도록 내버려두면 그 대가는 우리 모두가 함께 치르게 되며, 그것을 좌시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고 말했다.

▲맥매스터 美 전 국가안보보좌관
허버트 맥매스터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2일 일본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고, 유럽이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2008년), 크름 반도(크림 반도·2014년) 병합에도 국방 강화에 나서지 않는 등 약점을 보이면서 러시아를 막는 데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로 인해 푸틴은 ‘민주주의는 부서지기 쉽고, 권위주의는 강력하다’고 확신하게 됐다”고 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현역 장성으로 참전했던 그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를 쉽게 공략할 순 없을 것”이라고 봤다. 키이우·하르키우 등 대도시를 공략하기에 러시아군 전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스미 시게키 전 주(駐)우크라이나 일본 대사도 3일 같은 신문 기고문을 통해 “과거에는 (우크라이나에) 친러파도 많았지만, 러시아가 동부의 분리주의 무장 세력을 지원한 2014년 이래 ‘러시아가 지긋지긋하다’는 인식이 널리 공유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인들의 항전 의식이 푸틴의 예상을 뛰어넘었다”고 했다.

▲추이훙젠 中 국제문제硏 유럽연구소장
추이훙젠(崔洪建) 중국국제문제연구원 유럽연구소장은 지난 1일 중국 매체 ‘관찰자망’과 가진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의 탈군사화와 탈나치화(반러시아 엘리트 청산)를 내건 푸틴의 군사행동이 군사적 승리라는 목표를 달성할 순 있겠지만, 정치·군사·외교적 고려 요소를 총체적으로 보면 목표 달성이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고 했다. 민간인 피해, 난민 발생으로 국제사회에서 러시아 반대 여론이 들끓게 됐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강한 결속을 보인 데다, 미국과 유럽 등의 대러 제재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추이 소장은 “러시아와 서방의 ‘제재와 대응 제재’가 전쟁 수준으로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국가 재정과 금융 위기 분야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인 케네스 로고프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2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기고를 통해 “미국과 유럽이 에너지와 군사적 안보에 더 많은 돈을 써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로고프 교수에 따르면 국내 총생산(GDP) 대비 미국의 국방비는 지난 1967년 11.1%에서 지난해 3.5% 수준으로 급감했다. 또 영국과 프랑스는 GDP의 2%, 독일과 이탈리아는 1.5%만 국방비로 쓰고 있다. 냉전 시대 대비 크게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각국이 국방비 증액에 나서게 됐고, 이로 인해 군비 감축으로 아낀 돈을 경제 발전과 복지에 투자해 온 이른바 ‘평화 배당금’이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고 했다.
로고프 교수는 “역사적으로 전쟁 비용이 정부 지출 변동성의 주요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잊고 있다”며 “전쟁 중에는 정부 지출과 재정 적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이자율도 함께 상승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군비 증가와 러시아에 의존적이었던 에너지 정책의 전환은 코로나 시대 대규모 부양책을 폈던 유럽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파리=정철환 특파원 도쿄=최은경 특파원 베이징=박수찬 특파원
03-04 젤렌스키 “대통령으로서 나는 죽음을 겁낼 권리가 없다”

면도도 하지 않은 채 군복 티셔츠를 입은 초췌한 모습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래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모래주머니로 방어막을 친 자신의 집무실로 언론인들을 초청한 것이다.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기지회견장의 분위기와 젤렌스키 대통령 표정을 상세히 묘사하면서 우크라이나 정부의 항전의지와 평화에 대한 갈망을 전했다.대러 항쟁의 상징이 된 젤렌스키 대통령은 활기찬 모습으로 브리핑을 하면서 러시아와 진행중인 협상 내용과 우크라이나 국민들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고 우크라이나 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지정해달라고 호소하는 한편 죽음에 대한 공포로 솔직하게 밝혔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 자신의 의자를 끌어 당겨 기자들에게 다가가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모습에서 전쟁 발발 일주일이 지난 지금 키이우(키예프)의 상황이 갈수록 절박해지고 있지만 그의 정부는 잘 돌아가고 있음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느껴졌다.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 탱크들이 주요 도시와 수도를 압박하는 속에서도 들끓어오르는 분노에 찬 우크라이나 일반 시민들의 저항에 특별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힘있고 결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라면서 “우리 국민들은 특별하고 비범한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탈출한 고위관리가 한 명도 없다고 말했으며 실제로 수십명의 보좌관들이 기자회견장에 배석했다.젤렌스키 대통령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슐츠 독일 총리에게 우크라이나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요청하는 등 서방 지도자들에게 추가적인 군사지원을 요청했다고 밝히고 한편으로는 러시아 지도부와 협상도 추진중이라고 덧붙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어떤 문제라도 논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협상대표 미하일로 포돌략은 뒤에 2차 회담에서 민간인이 집중전투지역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휴전 통로를 설치하는데 합의했지만 다른 진전은 없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측은 오래 전부터 답변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질문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점이 현재 대화가 진전되지 않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어느 대목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양보할 의사가 있다고 했고 우크라이나 주권을 위협하는 조건에는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 문제들이 있다. 사람들이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타협할 수 없는 대목도 있다”면서 “우리가 ‘우리 나라를 가져가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일부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정말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제안을 왜 하느냐?”고 반문했다.
기자들은 미니밴을 타고 콘크리트와 H빔 철강으로 만든 탱크 저지용 장벽이 설치된 교차로와 도로를 지나 대통령 집무실에 도착했다. 나무에 가려진 사무실 건물과 우아한 19세기 아파트 건물이 있는 정부청사 거리는 대체로 조용했고 장갑차가 도로를 막고 있었다.
밴이 한 건물 중정을 지나 대통령 집무실 건물 뒷문으로 들어갔다. 건물안에서 경비원들이 손전등을 들고 어두운 복도를 따라 기자들을 안내했다. 복도에는 군인들이 가득했다.
창틀에는 모래주머니가 가득 쌓여 있었다. 문가에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거리를 행해 사격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돼 있었다. 시가전이 다가올 때를 대비한 듯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참석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키이우시의 방어준비에 대해 말하면서 “직접 만날 수 있어 정말 좋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협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하루 3시간 정도 잔다고 했다. 그의 뺨은 피로로 처져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활기차고 정력적으로 제스처를 써가며 말을 이어갔다.
브리핑은 일상적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내기 위해 기자회견장에서 열렸지만 하얀 모래주머니가 쌓여 있는 창가에는 군인들이 소총을 들고 지켰다.
그는 자신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직접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푸틴은 전쟁 전에도 전쟁이 시작된 뒤에도 직접 만나기를 거부했었다.
“푸틴을 만나고 싶어서가 아니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 모두가 푸틴에게 말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이 전쟁을 멈출 수가 없다.
”전쟁 상황과 러시아군이 국내에 반전 정서를 자극하지 않도록 참전 사망자들 송환하지 않는다는 보도를 전하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건 악몽이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45세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군인들 상당수가 18세, 19세라면서 자기 딸과 비슷한 나이로 “내 자식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양복을 입은 사람이 내린 결정 때문에 이들이 군복을 입은 채 죽고 있다”고 덧붙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슐츠 총리와 마크롱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서방국들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러시아군이 충돌할 위험이 있다고 반대하고 있다.
그는 러시아의 공격이 우크라이나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러시아 지도부가 다른 동유럽국을 침공하고 새로운 “베를린 장벽”을 세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서방의 러시아 압박과 노르트 스트림2 파이프라인 건설을 동시에 추구한 독일 당국자들을 비판했다. 독일에 저렴한 에너지를 공급하려는 계획이지만 현재는 취소된 상태다.
정치에 대해 날카롭게 풍자하던 코미디언 출신인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신이 거듭 방송에 출연해 저항을 촉구하고 지원을 요청하며 포위된 키이우에 머무는 덕분에 많은 나라에서 용기와 민주주의 수호의 상징이 됐다면서 그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미국의 탈출 주선 제안을 거부한 젤렌스키는 “전세계가 뭉쳐 우크라이나를 지원해 너무 좋다”고 말했다. 미국의 제안에 대해 그는 “비행기 좌석이 아니라 탄약이 필요하다”고 답했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와 관계 유지를 위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꺼리고 이스라엘산 부품이 포함된 무기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차단한 나프탈리 베네트 이스라엘 총리를 비난했다. 그 자신 절반 유태인인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번주 러시아 미사일이 키이우의 유대인 학살 기념관 바빈 야르를 공격해 다섯명이 숨졌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미사일은 TV 방송탑을 겨냥한 것이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서 사람들이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된 우크라이나 국기를 두르고 기도하는 모습에 감동받았다고 했다. 그는 이스라엘 정부가 도덕심을 발휘해야할 때라면서 “지금 모든 것이 시험받고 있다. (베네트 총리)는 우크라이나 국기를 두르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전쟁으로 목숨을 잃을까봐 겁이 나느냐는 질문을 받자 누구라도 그렇다고 답했다.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사람이다. 죽는 것을 겁내지 않는 사람은, 또 자식들이 죽는 것을 겁내지 않는 사람은 정상이 아니다. 그렇지만 대통령으로서 나는 죽음을 겁낼 권리가 없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이 아니라면 아마도 자원병으로 나서 소총을 들었을 것이기에 어차피 위험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소총을 들기보다 군인들에게 식량을 전달하는 일을 할 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혹시 다른 사람만큼 총을 잘 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라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
03.05 원전까지 공격한 푸틴, 北·中·러 독재자의 본질 직시해야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우크라이나 최대 원전(原電) 단지에 화재가 발생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원전은 안전하다’고 했지만, 자칫 재앙으로 번질 수 있었다. 세계 전쟁 역사에 원전을 직접 공격한 것은 푸틴이 처음일 것이다. 군사작전이 아니라 테러다. 러시아가 공격한 원전은 우크라이나 가동 원자로 15기 중 6기가 모인 곳이다. 푸틴은 전쟁이 뜻대로 되지 않자 유럽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공격마저 서슴지 않는다. 민간인 살상은 물론 ‘3차 대전’ ‘핵전쟁’ 운운하며 세계를 향한 위협도 계속하고 있다.
이런 푸틴을 보며 국제사회는 러시아, 중국,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독재 집단의 위험성을 다시 보고 있다. 러시아 침공을 규탄하는 유엔 결의안에 북한은 러시아 편을 들어 반대표를 던진 5국 중 하나다. 5국 모두 비정상 국가이다. 김정은이 신(神)처럼 군림하는 북한은 푸틴의 러시아보다 더 비정상적이다.
김정은은 고모부의 신체를 고사총으로 박살 내고 이복형을 화학 무기로 암살했다. 천안함을 폭침하고 연평도에 무차별 포격을 퍼부었다. 작년엔 헌법보다 위라는 노동당 규약을 바꿔 ‘국방력으로 통일한다’는 내용을 넣었다. 하는 일이라고는 극초음속 미사일 등 무기 개발뿐이다. 걸핏하면 핵 위협도 한다.
중국은 2013년 ‘우크라이나 안전 보장’을 보증하고 약속한 나라다. 그런데 막상 우크라이나의 안전이 짓밟히자 러시아 규탄 결의안에 기권했다. 모른 척하는 것이다. 중국 시진핑은 올해 마오쩌둥 못지않은 장기 독재 체제를 구축한다. ‘중화 부흥’을 외치며 동·남중국해, 대만 등을 노골적으로 위협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와중에도 전투기를 띄워 대만을 위협했다. 호주 등에 폭력적 경제 제재를 가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시진핑은 6·25 남침을 “평화 수호”라고 했다.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한 나라였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평화 수호를 위한 것’이라는 푸틴의 말이 떠오른다.
북·중·러 독재 정권의 민낯과 위험성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이 세 나라와 인접해 있다. 이들의 폭력적이고 무자비한 본성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경각심을 가져야 할 나라가 우리다. 그런데 한국 정권은 북한 체제를 공개 찬양하고, ‘시진핑의 중국몽(夢)에 함께하겠다’고 했다. 공산당식 전체주의에 경각심이 아니라 환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3.05 “푸틴이 우크라이나 구원? 가상의 적 ‘나치’ 끌어들여 주권 침탈”
[아무튼, 주말]
반러·반전 시위의 중심에 선
우크라이나인 올레나 쉐겔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를 침공했다. 1991년 우크라이나 독립 후 동부 지역에서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졌지만, 전면전은 처음 있는 일이다. 21세기에 벌어진 이 전쟁은 두 국가의 ‘정체성 전쟁’으로도 볼 수 있다. 러시아 군대에 맞서 결사항전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인 내면에는 어떤 정체성이 자리 잡고 있을까.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앞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시위가 열렸다. 시위 한가운데서 목소리를 높인 사람은 올레나 쉐겔(41) 교수. 그는 현재 한국외국어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로 재직하며 우크라이나 언어와 역사, 정치를 강의한다. 국내 모든 반전 시위와 러시아 규탄 움직임의 중심에 있는 그를 지난 1일 만났다.

▲한국외대 올레나 쉐겔 교수.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러시아를 규탄하는 첫 시위를 주도했다.
“‘주도’라는 말은 부끄럽다. 시위에 동참한 다른 우크라이나인은 동대문 시장에 가서 노란색, 파란색 천을 구입해 재봉틀로 국기를 만들었다. 한국에서 우크라이나 국기를 쉽게 구할 수 없어서다. 피켓도 다함께 만들었다. 제발 우크라이나를 도와 달라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가족 걱정이 크겠다.
“육촌 여동생 한나(27)가 지하 벙커에서 어제(지난달 28일) 출산했다. 남편과 이란에 있다가 출산을 위해 어머니가 있는 우크라이나로 왔는데, 하필 그때 전쟁이 벌어졌다. 출산 예정일은 러시아가 침공한 24일이었는데, 며칠이 지나도 나오지 않자 어머니가 “아무래도 전쟁 세상에 나오기 싫은가봐”라며 우셨다. 나의 부모님과 여동생은 수도 키이우(키예프)로부터 300㎞ 떨어진 곳에 있다. 서너 시간 간격으로 통화하는데, 그저께 12시간 동안 연락이 안 돼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손이 떨렸다.”

▲지난달 28일 올레나 쉐겔 교수의 6촌 여동생이 우크라이나 지하 벙커에서 자녀를 출산했다. / 올레나 쉐겔 교수 제공
-러시아 침공의 서막은 2014년 크림반도 합병부터다.
“우리는 ‘합병’이란 말 대신 ‘임시 침공된 우크라이나 영토’라고 한다. 크림반도는 1954년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로 편입됐다. 두 국가 모두 소련이었으므로 당시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2014년 3월 크림반도의 러시아 귀속 여부를 묻는 주민 투표가 이뤄졌다. 표를 행사하지 못하게 막거나 조작하는 일이 만연했지만 결국 러시아로 넘어갔다. 시기적으로도 푸틴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우크라이나는 대규모 반정부 유혈 시위가 일어나 대통령이 도주해버린 정치적 불안 상황이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시도가 러시아를 자극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원인과 결과가 뒤바뀌었다. 원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는 물론 서방국가에도 기대지 않는 중립 입장이었다. 나토 가입 추구를 헌법에 담은 건 2019년 2월 들어서다. 러시아가 크림을 빼앗고 우리 영토에서 크고 작은 분쟁을 일으킨 2014년으로부터 5년이 지난 시점이다. 러시아가 침공하지 않았다면 우리도 나토에 가입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9세기 키이우 루시 공국에서 뻗어 나온 한 민족이며, 현재는 ‘나치’를 계승한 정부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했다’고 주장한다.
“한 뿌리라 부르기에는 민족, 종교, 문화 측면에서 차이점이 많다. 키이우 루시 공국은 수많은 공국으로 이뤄진 연방 국가라 당연히 슬라브족 외 여러 부족이 섞여 있다. 종교도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별도로 존재한다. 푸틴이 말하는 ‘나치’ 또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푸틴을 비롯한 일부 러시아인에게는 옛 소련처럼 다시 단결할 수 있는 일종의 ‘신화’가 필요하다. 그중 하나가 나치와 혈투를 벌였던 2차 세계 대전이다. 이때의 빛나는 영광을 되찾으려 가상의 적을 만드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인도 자신이 러시아인과 다르다고 생각하나.
“나 또한 소련을 겪은 세대이지만, 나와 내 주변인 모두의 정체성은 유럽인이다. 우리 앞에 칼을 내밀어도 빼앗을 수 없는 건 ‘자유’다. ‘자유를 위해 영혼과 몸을 희생하겠다’는 가사가 애국가에도 있다. 2004년 ‘오렌지 혁명’, 2014년 EU와의 경제협정 무산에 반발한 ‘유로마이단’ 시위까지. 잘못된 게 있으면 대통령도 끌어내린다. 하지만 러시아를 보라. 대통령이 22년째 장기 집권 하는데도 역사에 기록될 만한 시위는 없다. 그만큼 서로 쉽게 섞이지 않는 기질을 갖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초보 정치인이 대통령이 돼서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충돌했다”고 말했다.
“젤렌스키가 초보 대통령이라 치자. 하지만 마음 올바른 초보가 마음이 잘못된 경력자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물론 당선 후 부정부패를 완벽히 근절하지 못해 실망하는 사람도 있었다. 최근에는 해외로 도피하지 않고 러시아에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보이며 다시 지지율이 올랐다. 소셜미디어에는 ‘나는 널 안 찍었지만, 지금은 생각 바뀌었다’ ‘끝까지 우리 곁을 지켜 달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조선일보 신지인 기자
03-05 우크라이나 최대 원전 공격한 푸틴, 제정신 아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이 2일 남동부 에네르호다르에 위치한 자포리자 원전을 포격해 원자로 중 하나에 불이 붙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자포리자 원전은 우크라이나에서 가동 중인 원자로 15기 중 6기를 보유한 대규모 원전으로, 유럽에서 가장 큰 원전이다. 원자로는 공사 중이어서 가동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내부에 연료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자칫 폭발로 이어졌더라면 최악의 원전 참사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
어떤 나라도 원전을 공격한 적은 없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핵으로 세계를 덮겠다고 위협했는데 이제 위협이 아니라 현실”이라며 러시아를 규탄했다. 자포리자 원전이 우크라이나 전력 생산량의 약 25%를 공급하는 원전이긴 하지만 그것을 빼앗겠다는 군사적 목적에 집착해 원전에 포격을 가하는 것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반(反)인륜 범죄행위로 이어질 수 있는 짓이었다.
자포리자 원전이 폭발한다면 1986년 체르노빌 사고 규모의 10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체르노빌 사고는 우크라이나가 소비에트연방공화국(소련)에 속했을 당시 체르노빌에서 운영하던 원자로 4기 중 하나가 두 차례 폭발을 일으켜 방사능이 누출된 사고로 사고 당일 2명이 죽고 화재 진압 작업을 했던 소방관 중 28명이 3개월 내에 사망했다. 더 큰 피해는 방사능 노출로 인한 암 사망자로 나타났는데 그 수가 3만∼6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다행히 러시아의 포격에도 불구하고 원자로의 안전은 확보된 상태이며 아직 배후 지역의 방사능 수치도 변함이 없다고 한다. 한때 자포리자 원전 주변 주민들은 러시아군의 원전 접근을 막기 위해 원전으로 향하는 도로를 발 디딜 틈 없이 점령하고 약 1km 두께의 ‘인간 바리케이드’를 만들었으나 격한 대립이 오히려 원전의 안전을 해칠 수 있다고 판단해 물러났고 결국 러시아가 원전을 점령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원전을 둘러싼 무력 사용 중단을 호소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원전을 볼모로 한 군사작전을 당장 그만둬야 한다.
동아일보 사설
03.06 우크라이나 다음은 대만?… 中 아킬레스건은 싼샤댐

▲지난해 11월 대만 자이의 공군기지를 방문해 F-16 전투기 조종석에 탑승한 차이잉원 대만 총통. photo AP·뉴시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침공으로 대만해협에 위기감이 감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올 연말 중국공산당 제20차 당대회를 앞두고 3연임 명분을 만들기 위해 대만을 무력침공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면서다. 실제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무력침공 직후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엄중한 책임을 묻는다”면서도 “대만과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질적으로 다르다”며 중국의 무력도발에 호락호락 당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차이잉원 총통의 말처럼 대만과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육로를 통해 침공이 가능하지만, 대만과 중국은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135㎞가량 떨어져 있다. 중국이 대만 본섬을 무력 점령하기 위해서는 해·공군을 동원해야 하지만, 중국의 해·공군 전력이 대만해협 유사시 개입 가능성이 높은 미군 전력을 압도하기에는 힘이 부친다는 것이 정설이다. 대만의 총병력이 20만명 내외로, 중국 인민해방군(200만명)의 10분의1에 불과하지만 중국이 움직이기 쉽지 않은 이유다.
차이잉원 총통은 지난 3월 2일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대만에 파견한 마이크 뮬런 전 미군 합참의장 등 특사단을 타이베이 총통부에서 접견하는 자리에서도 “전 세계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긴밀히 주시하는 가운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특사단을 대만에 파견했다”며 “이는 대만과 미국 사이의 동반자 관계를 중시한다는 것과 양자 관계가 견고한 반석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을 분명히 나타낸다”며 사의를 표했다.
장강 싼샤댐, 1차 타격 목표
중국이 대만을 상대로 전면 도발하기에는 아킬레스건도 너무 많다. 인구와 주요 생산시설이 밀집한 인구 1000만명 이상의 중국 주요 대도시는 대부분 대만 미사일의 사정권 안에 들어간다. 대만은 최대 사거리 2000㎞로 알려진 윈펑(雲風) 탄도미사일과 슝펑(雄風) 순항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미사일은 대만 본섬에서 경제특구 선전(620㎞)과 경제수도 상하이(660㎞)는 물론, 중국 해군 동해함대와 북해함대 기지가 있는 닝보(530㎞)와 칭다오(1200㎞), 수도 베이징(1700㎞)까지 너끈히 타격할 수 있다. 이 중 한 개 도시만 공격받아도 중국이 받는 타격은 가히 치명적이다.
가령 세계 최대 컨테이너항만인 상하이 양산(洋山)항은 대만 본섬에서 불과 600㎞ 거리에 있다. 항만이 있는 소양산도는 상하이 시내와 총연장 32㎞의 동하이(東海)대교라는 해상교량 하나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대만해협 유사시 대만 측에서 동하이대교 하나만 외과수술식으로 끊어내도, 민간인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중국 최대 수출입 물동량을 처리하는 중국 경제의 대동맥을 끊어버릴 수 있다. 중국에서 가장 많은 항공화물을 처리하는 상하이 푸둥공항 역시 대만 본섬에서 직선거리로 650㎞에 불과하다.
그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대만 미사일 사정권 안에 세계 최대 싼샤(三峽)댐이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대만 육군사령부가 있는 타오위안 룽탄(龍潭)기지에서 장강 중류 후베이성 이창(宜昌)에 있는 싼샤댐까지의 직선거리는 1200㎞. 중국과 대만 사이에 전면전이 발발할 경우 싼샤댐은 대만 미사일과 공군 전력의 1번 타깃으로 꼽힌다. 만약 싼샤댐이 무너지면 1차적으로 전력생산에 차질은 물론, 장강 하류의 우한, 난징, 상하이 등의 대도시는 물론 장강 유역의 곡창지대는 모조리 수몰된다.
실제 대만군의 전시 작전연습인 ‘한광(漢光)연습’에는 싼샤댐을 비롯 중국 연해도시의 인민해방군 제2포병(미사일부대) 기지를 1차 타격하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광’은 ‘대한광복(大漢光復)’의 줄임말이다. ‘한광연습’은 원래 신해혁명이 발발한 우한의 한양병기창에서 이름을 딴 ‘한양(漢陽)연습’으로 불렀다.
하지만 장제스의 장남인 장징궈(蔣經國) 전 총통 집권 때인 1984년부터 비현실적인 ‘대륙수복’이란 목표를 사실상 포기하고 중국의 핵심시설에 결정타를 날려 전쟁을 억지하는 지금의 이름과 내용으로 작전을 개편했다.
실제로 장제스가 이끌던 국민당 국부군은 과거 대륙에서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을 수행할 당시 보와 제방을 터뜨리는 수공(水攻)작전을 종종 사용한 바 있다. 황하(黃河)의 물길이 지금과 같이 된 것도 장제스가 1938년 일본군의 침략을 저지한다며 허난성 정저우 인근의 화위안커우(花園口) 황하 제방을 터뜨리면서다. 당시 제방 폭파로 무려 89만명의 사망자가 생겼다. 시진핑이 대만을 침공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뼈를 부러뜨리기 위해 먼저 자신의 살을 내어주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의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셈이다.
전면전보다는 국지전 가능성
자연히 중국과 대만 사이에 무역충돌이 발생해도 전면전보다는 제한적 국지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과 대만 사이에 국지전은 1949년 국공(國共)내전이 끝나고 국민당이 대만섬으로 패퇴한 다음에도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중국 인민해방군으로서도 대만 본섬보다는 상륙과 보급이 훨씬 수월한 진먼다오(金門島)나 마쭈다오(馬祖島) 등 중국 본토와 가까운 대만해협의 도서들을 선제적으로 장악하는 방법이 훨씬 간단하다. 진먼다오와 마쭈다오는 각각 푸젠성 샤먼과 푸저우에서 직선거리가 10㎞와 16㎞에 불과하다.
1954년 제1차 대만해협 위기(9·3 포격전) 역시 중국 측이 진먼다오를 포격하고, 저장성 타이저우 앞바다의 이장산다오(一江山島)와 다천다오(大陳島)라는 두 개 도서를 무력점령하면서 끝이 났다. 1958년 제2차 대만해협 위기(8·23 포격전) 역시 중국이 진먼다오와 마쭈다오 두 개 섬에 포격을 퍼부으면서 시작돼 1979년까지 무려 21년간 이어졌다. 이 같은 공식이 유효하다면 중국과 대만의 무력충돌 발발 시, 중국 대륙과 가까운 대만의 군소도서들은 인민해방군의 1차 타격목표가 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하지만 이 역시 미국 해·공군의 존재로 인해 쉽지만은 않은 선택이다. 제1·2차 대만해협 위기 당시 샤먼과 불과 10㎞ 거리의 진먼다오가 함락되지 않은 까닭은 진먼다오 지하에 거미줄처럼 뚫어놓은 지하참호의 존재뿐만 아니라 당시 대만에 주둔했던 미 해군 7함대가 진먼다오와 대만 본섬 사이의 보급선을 지켜준 덕분에 가능했다. 중국의 해·공군 전력이 제 1·2차 대만해협 위기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지만, 진먼다오를 재차 무력점령하고자 할 때 미 해·공군 전력과의 재대결은 각오해야 한다.
중국으로서도 올해 국가적 이벤트가 줄줄이 예정돼 있어 양안 간 무력충돌은 호사가(好事家)들의 입방아로 끝날 가능성이 더 크다. 당장 지난 2월 20일 폐막한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이어 3월 4일부터 13일까지는 베이징 동계패럴림픽이 열린다. 오는 9월 10일부터 25일까지는 항저우 아시안게임도 예정돼 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끝난 직후인 10월에서 11월 사이에는 중국공산당 제20차 당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자연히 중국과 대만은 적어도 오는 연말까지는 불편한 긴장관계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 이동훈 기자
03.08 “푸틴 말릴 사람은 전 세계에 한 명뿐” 美 유명 경제학자 진단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 “시진핑 주석, 러-우크라 협정 중재해야”

▲스티븐 로치 예일대 경영대 석좌교수. /트위터 캡처
미국의 유명 경제학자인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는 7일(현지 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에 단 한 명뿐”이라면서 “그 사람은 바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라고 했다.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인 로치는 이날 C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하며 “지금 당장 중국이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일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평화협정을 중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한 “중국은 카드를 쥐고 있으며, 이 기회를 활용하는 것은 시 주석에게 달렸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8년 6월 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우정 메달을 수여했다. 당시 시 주석은 푸틴 대통령을 "나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부르며 중국의 첫 우정 메달을 푸틴에게 안겼다. /로이터
미국과 영국, 유럽연합(EU) 등 서방 국가들이 앞다퉈 대러 제재에 나섰지만, 중국은 이에 동참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최근 러시아를 규탄하는 유엔 총회 결의안에도 기권한 바 있다.
로치 교수는 “푸틴이 협조하지 않는다면 중국이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해야 한다”며 “중국이 러시아와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것은 커다란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시진핑 주석에게는 역사적 실수가 될 것이기 때문에 그런 태도를 지속할 순 없을 것”이라고 했다.

▲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러시아 루블화를 보여주고 있다. /뉴시스
이날 인터뷰에서 로치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러시아가 국가부채 디폴트(채무불이행)에 이를 경우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들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그는 “러시아가 채무를 이행하지 못한다면 전 세계 신흥국 시장에서 광범위한 파급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중국도 거기서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러시아와 관계를 빨리 끊을수록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며 “우리는 기다리면서 상황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는 이달 16일 7억 달러(8542억원) 상당의 국채 만기가 돌아온다. JP모건 애널리스트들은 지난 2일 고객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와 외화 결제를 제한한 러시아의 대응 조치, 결제망 차질 등은 러시아가 국외 채무를 이행하는 데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디폴트 가능성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조선일보 백수진 기자
03월 08일 우크라 전쟁은 ‘낀 국가’의 불행… 한·미·일 3각체제 이탈한 한국에 교훈

■ 이용준의 Deep Read - ‘러, 우크라 침공’ 시사점
유럽선 ‘러 vs 反러’ 대립 구도… 세계적으론 ‘美·나토 자유민주주의 vs 中·러 공산전체주의’ 신냉전 형성
우크라 전쟁은 대만해협 사태의 리허설… 자강과 동맹 없을 땐 ‘낀 국가’ 한국의 안보도 위험해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자유주의적 세계질서의 확산으로 평화 무드에 젖어 있던 국제사회에 험악했던 20세기 국제정치의 기억을 되살려 줬다. 이는 냉전체제 종식 후 군사블록에 가담하지 않으면서 평화의 꿈에 안주해 온 중립 성향 국가에 자위적 군사력과 동맹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두 진영 사이에 ‘낀’ 국가가 역사적으로 또는 국제정치적으로 종종 겪어온 ‘지정학적 중추국(pivot state)’의 불행을 보여준다. 이는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공산·전체주의 진영 간 범세계적 신냉전체제 구축의 기폭제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번 사태는 또 우크라이나처럼 낀 국가인 대만과 대한민국의 안보문제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지정학적 중추국’의 불행
우크라이나 사태는 표면상 미국이 표방하는 21세기적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확장과 러시아가 추구하는 20세기적 현실주의 세력균형 정책 사이의 충돌을 반영하는 것이나, 그 기저에는 유럽에서 적대적 경쟁국의 출현을 저지하려는 미국의 전통적 정책과 구소련 시대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러시아 민족주의의 오랜 열망이 숨어 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이해관계 충돌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에 의해 오래전부터 예견됐었다. 그는 ‘거대한 체스판(The Grand Chessboard)’에서 우크라이나를 미·러 세력균형을 좌우할 ‘지정학적 중추국’으로 정의했다. 그는 “미국이 유럽에서 러시아에 맞서려면 우크라이나를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없이는 유라시아의 제국이 될 수 없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 같은 논리에 따르면, 구소련의 영광 회복에 집착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저지하고자 군사적 고육지책을 쓴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침략전쟁을 용인하지 않는 현 국제체제에서 러시아가 같은 슬라브족 형제국가인 우크라이나에 대해 잔혹한 침략전쟁을 벌인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응과 우크라이나의 결사항전으로 상황은 러시아의 당초 의도와 크게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범세계적 신냉전의 기폭제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의 노골적 대외 팽창 의도가 확인된 만큼, 러시아로부터의 안보 위협에 직면한 핀란드, 스웨덴, 몰도바, 조지아 등 유럽 중간지대 국가의 나토 합류 움직임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그간 대체로 중도적 입장을 지켜온 스웨덴, 핀란드, 독일, 스위스까지 금기를 깨고 우크라이나 지원에 나서고 있는 현 상황은 유럽에서 ‘러시아와 반(反)러시아’ 진영 간의 구조적 대립체제의 출범을 예고하고 있다.
냉전시대를 연상시키는 이 대립체제는 유럽 대륙에 국한되지 않고 아시아에서의 미·중 패권경쟁 구도와 연결돼 ‘전(全)지구적 진영 대립’ 체제를 형성해 가고 있다. 자국에 불리한 기존 국제질서 타파 의지를 공유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공조’는 과거 막연한 추측의 대상이었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그 실체가 점차 명확해지고 있다.
냉전체제 종식 이래 30년 만에 세계는 미국·나토 중심의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중국·러시아 중심의 공산·전체주의 진영으로 결집해 범세계적 신냉전체제를 형성해 가는 중이다. 베이징동계올림픽을 통해 세계인들에게 각인된 중국의 편협한 자기중심적 비(非)문명성과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 드러난 러시아의 야만적 비문명성이 결합한 ‘중·러 추축(Axis)’의 형성은 2차대전 당시 나치독일과 군국주의 일본의 추축 형성을 연상시킨다.
◇대만 사태의 리허설인가
우크라이나 사태가 크게 주목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것이 단지 유럽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유사한 국제정치적 배경과 논리에 따라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과 직결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여준 반인도적, 반문명적 잔혹 행위와 이에 대응하는 서방 진영의 단합된 제재 조치 및 군사 지원은 멀리 동아시아에서도 좋은 타산지석이다. 러시아와 같은 정치적 이유에서 국제질서의 현상 타파를 추구하는 중국이 남중국해, 대만해협, 한반도를 위협하고 있는 이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는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중국의 선제침공에 의한 전쟁 가능성이 상존하는 대만해협 사태의 ‘리허설’처럼 보이기도 한다. 중국은 대만이 분리 독립해 서방 진영에 합류하려 할 경우 무력 침공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만일 중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고무돼 대만을 침공한다면, 이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비교가 안 되는 크고 치명적인 전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대만과 사실상 동맹관계로 볼 수 있는 미국 등의 참전을 현실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도 참전 방침을 공언하고 있다. 그 경우 중국이 직면하게 될 제재 조치는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한 대러시아 제재 조치를 훨씬 능가하는 수준이 될 것이다.
◇또 하나의 ‘낀’ 국가 한국
이러한 상황 전개는 우크라이나와 대만에 이어 또 하나의 ‘낀’ 국가인 한국에도 많은 성찰을 제공한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5년간 한·미·일 3각체제에서 이탈했고, 그와 오랜 대척 관계에 있는 북·중·러 3각체제에 접근하는 양상을 보였다. 북한은 김정은에 의해 잔혹성이 입증됐고, 중국은 국제무대에서 비문명적 민낯을 드러냈으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야만성이 확인된 나라다. 이들 북·중·러와 함께 하기엔 한국은 너무나 민주적이고 너무나 문명적인 나라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아직 이들에 대한 이념적 애착과 눈치 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뒤늦게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기로 했지만, 우크라이나의 무기 지원 요청을 거부했다. 인도적 지원액 1000만 달러도 국제사회의 일반적 기대치에 훨씬 못 미치는 규모다. 이는 약 70년 전 16개 참전국 병사들의 피와 땀에 의해 기사회생했던 나라가 취할 자세는 아니다.
국가 간 관계는 상호적이다. 남이 내게 베풀기를 원하면 나도 남에게 베풀어야 한다. 미국의 동맹국 중 유독 한국은 우크라이나 사태에도, 남중국해 문제에도, 대만 문제에도 무관심하다. 국가이기주의를 고수하면서 국제문명사회의 진정한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전 외교부 북핵대사
■ 세줄 요약
‘지정학적 중추국’의 불행 : 우크라 사태는 ‘낀’ 국가가 종종 겪어온 ‘지정학적 중추국’의 불행을 보여줌. 냉전 종식 30년 만에 세계는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공산·전체주의 진영 간 범세계적 신냉전을 형성하는 중.
대만 사태의 리허설인가 : ‘중·러 추축’의 형성은 2차대전 당시 나치독일과 군국주의 일본의 추축 형성을 연상시킴. 우크라 전쟁은 중국의 선제침공에 의한 전쟁 가능성이 있는 대만해협 사태의 ‘리허설’처럼 보임.
또 하나의 ‘낀’ 국가 한국 : 한국 역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사이에 ‘낀’ 국가이자 지정학적 중추국임. 우크라 사태는 한·미·일 3각체제로부터 이탈해온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에 대한 성찰과 교훈을 주고 있음.
■ 용어 설명
‘지정학적 중추국’은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거대한 체스판’에서 쓴 용어. 한국이나 우크라이나처럼 강대국의 교량 역할을 할 수도, 열강이 충돌할 수도 있는 국가를 지칭.
‘신냉전’은 원래 의미의 냉전 종결 후 새롭게 대두한 ‘친서방 국가 대 반서방 국가’의 갈등과 경쟁을 뜻하는 용어. ‘냉전’은 과거 2차대전 후 자유·공산 진영 간에 벌어졌던 정치·군사적 대립.
문화일보
03.21 ‘주탑 사이 2㎞' 벽 깼다...한국 기술 세계 최장 현수교 터키서 개통

▲DL이앤씨와 SK에코플랜트가 건설한 세계 최장 현수교인 터키 차나칼레 대교가 18일 개통했다./DL이앤씨
터키 마르마라해(海)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차나칼레해협을 가로지르는 세계 최장(最長) 현수교 ‘차나칼레 대교’가 18일(현지시각) 오후 개통했다. 개통식에는 레젭 타입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김부겸 국무총리 등이 참석했다. 24년간 세계 1위 자리를 지키던 일본 아카시해협 대교를 넘어 한국의 기술력으로 건설 역사의 새 이정표가 세워지는 순간이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차나칼레대교는 공사비 3조2000억원을 포함해 총 사업비가 4조2000억원에 달하는 프로젝트다. DL이앤씨와 SK에코플랜트가 2017년 1월 수주해 이듬해 4월 착공, 4년간의 공사 끝에 완공됐다.
◇역대급 인력·자재·기술력 투입
전체길이 3563m인 차나칼레대교는 주탑과 주탑 사이의 거리(주경간장)가 2023m로 세계에서 가장 길다. 기존 세계 최장이던 일본 아카시해협 대교(1991m)보다 32m 더 길다. 주탑 간 거리를 늘리는 것은 현수교 건설 기술의 핵심이다. 그동안 2㎞가 ‘기술적 한계’로 여겨졌는데, 국내 건설사가 처음으로 그 벽을 깬 것이다. 주탑의 높이도 334m로 세계 최고(最高)다. 프랑스 에펠탑(320m), 일본 도쿄타워(333m)보다 높다.
DL이앤씨와 SK에코플랜트는 차나칼레대교 공사에 대규모 인력과 자재를 쏟아부었다. 1만7000명의 인력이 투입돼 아파트 2247가구를 지을 수 있는 콘크리트(21만3448㎥)를 사용했다. 1t 트럭 3만5000대 분량의 철근과 초대형 여객기(A380) 154대를 만들 분량의 강판이 사용됐다.
주탑 사이를 연결한 케이블에서 늘어진 강선(鋼線)으로 교량 상판을 연결하는 현수교는 아름다운 외관 때문에 ‘바다 위의 하프’라 불린다. 차타칼레대교엔 총 16만2000㎞ 길이의 강선으로 만들었다. 지구를 네 바퀴 돌 수 있을 만큼의 길이다.
DL이앤씨와 SK에코플랜트는 세계에서 가장 길고, 높은 현수교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첨단 기술력과 시공법을 총동원했다. 다리를 지탱하는 케이블은 현존 최고의 인장강도(잡아당기는 힘을 견디는 정도)를 가진 지름 5.755㎜의 초고강도 강선 1만8288가닥을 촘촘하게 묶어 제작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케이블 하나는 승용차 6만여대 무게와 맞먹는 10만t의 하중을 버틸 수 있다.
강한 바닷바람을 견디도록 교량 상판은 비행기 날개처럼 유선형으로 제작했다. DL이앤씨는 “보통 콘크리트로 지은 집은 초속 50m의 바람에 무너지는데, 차나칼레대교는 초속 91m 바람도 견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탑의 받침대인 높이 47m, 무게 6만t에 달하는 지지대를 바닷속에 고정하는 작업도 난관이었다. 두 건설사는 4대의 예인선을 동원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크기만 한 지지대를 운반, GPS와 최첨단 경사계를 이용해 오차 범위 20㎜ 이내로 바닷속에 설치했다.
◇국내 업체들의 협업으로 완성
차나칼레대교 건설 프로젝트엔 DL이앤씨와 SK에코플랜트 외 다양한 국내 협력업체들이 힘을 모았다. 포스코는 주탑과 상판 제작에 사용되는 강판을 공급했고, 고려제강은 포스코에서 원자재를 받아 케이블을 제작했다. 삼영엠텍·관수E&C·티이솔루션 등은 케이블 부속 자재와 진동제어장치 등을 조달했다. 이번 공사로 발생한 국내 협력업체 매출만 1억8000만 유로(약 2400억원)에 달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히 다리와 연결도로(85㎞)를 시공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다. DL이앤씨와 SK에코플랜트는 차나칼레대교를 통과하는 도로를 12년간 운영하며 수익을 얻고, 이후 소유권과 운영을 터키 정부에 이관한다. 국내 건설업계가 단순 도급업체가 아닌 국가적 인프라 사업을 발굴·기획하고 시공과 운영까지 담당하는 디벨로퍼의 역할로 진화한 것이다. DL이앤씨와 SK에코플랜트는 “해상 현수교 분야에서 한국 건설사의 높은 기술력과 시공 능력을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면서 “글로벌 디벨로퍼로서 고부가가치 건설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추가 사업 수주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이미지 기자
03.22 132명 탄 中여객기, 8km 상공서 수직 추락… “기체 산산조각”
이륙 60분 만에 추락 “12년 만의 대형 참사”
한국인 탑승 여부 확인 안 돼

▲21일 추락한 중국 동방항공 737-800기(빨간 원)가 포착된 감시카메라 화면./웨이보
승객 123명과 승무원 9명 등 132명을 태운 중국 동방항공 여객기가 21일 오후 중국 남부 광시좡족자치구 야산에서 추락했다. 구조 작업이 진행 중인 가운데 정확한 사상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해발 9000m 가까운 고도에서 급속히 추락해 사상자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관영 CCTV에 따르면 동방항공 MU5735편은 이날 오후 1시 15분 윈난성 쿤밍을 출발해 광둥성 광저우를 향해 비행하던 도중 광시좡족자치구 시텅(西藤)현 야산에 추락했다. 광저우 바이윈공항 착륙까지 40분을 남겨둔 시점이었다.
비행 추적 사이트인 ‘플라이트레이더24′에 따르면 해발고도 8900m로 비행하던 항공기는 이륙 60여 분 후인 오후 2시 20분쯤부터 급격히 고도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봉황TV는 “고도가 8000여m 낮아지는 데 걸린 시간이 2분에 불과했다”고 보도했다. 현장 구조 활동에 나선 주민은 “추락한 기체는 산산조각났고, 추락으로 산에 화재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

▲21일 추락한 중국 동방항공 737-800여객기와 같은 기종(자료사진) /AFP 연합뉴스
추락한 항공기는 미국 보잉의 737-800 기종으로 동방항공에 인도된 지 6년 8개월 된 기체였다. 중국 상유신문은 동방항공이 사고기와 같은 기종의 운항을 잠정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사고기의 한국인 탑승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중국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추락 당시 감시 카메라 화면에는 항공기가 조종석이 지면을 향한 채 수직으로 떨어지는 장면이 포착됐다. 동체와 날개가 비교적 온전한 모습으로, 공중 폭발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일부 매체는 추락 전 공중에서 기체가 손상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중국에서 대형 항공 사고가 발생한 것은 2010년 8월 24일 헤이룽장성 이춘시 공항 인근에 추락해 44명이 숨진 허난항공기 사고 이후 이번이 12년 만이다. 중국에서 발생한 항공기 사고 가운데 사망자를 가장 많이 낸 사고는 승객과 승무원 160명 전원이 목숨을 잃은 1994년 6월 6일 산시성 시안 시베이항공 사고다. 당시 사고기는 각각 브라질제·구소련제였다.
조선일보 베이징=박수찬 특파원
03.22 푸틴이 치 떠는 '잔혹 부대'…마리우폴 지키는 1000여명 정체
우크라이나 남동부 해안도시 마리우폴 함락이 임박하면서 '잔혹 부대'로 불리는 아조프(아조우) 연대의 운명이 바람 앞 등불이다. 아조프 연대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강조했던 '탈나치화'의 핵심 대상으로 거론된다.

▲우크라이나 남동부 해안 도시 마리우폴을 지키고 있는 아조프 연대. 아조프 연대 홈페이지
영국 BBC는 21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이 남은 아조프 연대의 군인들을 생포해 우크라이나 정부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침공 당위성을 선전하는 도구로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아조프 연대의 뿌리는 극우 민족주의자가 만든 민병대다. 2014년 5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친러 반군이 전쟁을 일으키자 극우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 싸웠고, 6월에 마리우폴을 탈환하는 공을 세웠다. 그해 11월 공식군으로 편입돼 우크라이나 내무부 지원을 받고 있다. 이후 마리우폴을 지키고 있다.
현재 1000여명으로 구성된 아조프 연대는 러시아군 6000여명에 맞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사방이 러시아군에 포위돼 보급이 끊긴 악조건 속에서도 러시아 소장급 장군을 사살하고 매복 공격으로 러시아군의 도심 침투를 막아냈다. 병원·학교·극장 등 민간 시설에 쉬지 않고 포탄이 날아오고 있는데도 4주 가까이 버텨왔다.
아조프 연대, 극우 민족주의·나치 상징물로 논란
비록 지금은 정규군이지만 아조프 연대의 정체성에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독일 도이치벨레(DW)에 따르면 아조프 연대는 나치 독일 시대를 떠오르게 하는 상징물을 사용했다. 라틴 문자 N과 I의 조합으로 구성된 표식이 나치 문양(하켄크로이츠)와 비슷하다. 나치의 상징물인 ‘검은 태양’ 휘장을 사용한 적도 있다. 2015년에는 당시 아조프 연대 대변인이었던 안드리 디아첸코가 "아조프의 신병 중 10~20%가 나치주의자"라고 밝혔다.
잔혹성도 논란거리였다. 영국 더타임스에 따르면 아조프 연대는 돈바스 전쟁의 친러 포로들을 마리우폴에 데려가 물과 전기로 고문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지난 2015년 11월~2016년 2월까지 아조프 연대원들이 민간 건물에 무기와 병력을 배치하고, 주민들을 약탈해 내쫓는 등 국제인도법을 위반했다고 발표했다. 2019년에는 미국 하원에서 민주당 의원 40명이 아조프 연대를 테러 조직으로 지정하자는 의견을 냈다.
정규군 되고 극우 활동과 분리...푸틴에겐 눈엣가시
그러나 더타임스는 "아조프 연대가 더 커지면서 극단적인 시각이 희석되고, 전체 백인 우월주의 경향이 약화됐다"고 전했다. DW도 "아조프 연대가 정규군이 되면서 극우 활동과 분리됐다. 훈련 과정에서 극우 사상이 있는 군인은 적발되기도 하는 등 우익 극단주의와 분리됐다"고 했다. 올레나 쉐겔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는 "아조프 연대를 잔혹한 우익 민족주자로 악마화한 건 러시아 프로파간다 효과로도 볼 수 있다. 아조프 연대가 돈바스 전쟁에서 잘 싸우면서 러시아에서 눈엣가시가 됐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민간인 대피소였던 마리우폴 극장을 폭격한 것은 아조프 연대 소행이며 그들이 전기·난방·물 등이 끊긴 채 고립돼 있는 민간인들을 '방패' 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간 위성업체 막사르가 3월 21일에 공개한 지난 19일 마리우폴 모습. AFP=연합뉴스
마리우폴은 러시아군의 남부 회랑을 잇기 위한 절대적인 요충지다. 러시아는 서쪽 국경과 접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과 마리우폴 서쪽에 있는 자포리자주를 이미 점령한 터라 마리우폴만 함락하면 우크라이나 남동부를 전부 가지게 된다. 그런데 마리우폴이 끈질기게 방어하면서 러시아는 예상치 않은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친러 반군 수장 "마리우폴 점령 길게는 2주 소요"
러시아군은 지난 20일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면 마리우폴 주민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그러나 아조프 연대는 "마리우폴을 적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도시로 남을 것"이라면서 항복을 거부했다. 마리우폴 함락이 시간 문제라 해도 아조프 연대가 결사 항전 의지를 보이면서 러시아군이 최소 희생으로 차지하는 건 어려워졌다. 친러 반군 정부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의 수장 데니스 푸실린은 21일 러시아 국영 TV 채널인 로시야 1과의 인터뷰에서 "마리우폴 점령까지 1주도 어렵다. 길게는 2주 넘는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고 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
03.22 '밤의 마녀' 후예들? 우크라 '보이지 않는 부대' 슬픈 사연
지난 3일 우크라이나 여군 올가 세미디아노바(48)가 최전선에서 싸우다 배에 치명적인 총상을 입고 숨졌습니다. 세미디아노바는 열두 자녀의 엄마였는데, 여섯 명은 입양한 아이들이었죠. 대가족을 품은 엄마였지만 용감한 군인이기도 했습니다. 2014년 우크라이나 돈바스 전쟁 초기부터 치열하게 전투를 치러왔다고 합니다.

▲지난 3일 우크라이나 남부 도네츠크에서 자포리자로 진격하는 러시아군과 교전을 펼치다 숨진 올가 세미디아노바. 그녀는 국가로부터 ‘영웅 어머니’ 칭호를 받은 여군이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전쟁이 터지면 사무실 건물이 군사기지가 되고, 평범한 월급쟁이가 부대 지휘관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이 기사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건 우크라이나 여성들에 대해서입니다. ‘여성과 아이는 피신하고 남성은 총을 든다’라고만 생각하기 쉽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상당히 많은 여성이 직접 전장에 뛰어들어 남자와 똑같이 전투를 치러왔습니다.
39세 여성 이리나 세르게예바 준위는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한 마을에서 시민의용군 지휘관을 맡고 있습니다.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세르게예바 준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러시아가 침공하고 처음 며칠 동안 젊은 여성들이 정말 많이 지원했어요. 사실 그들은 전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전혀 모르죠. 들어보니 꽤 많은 애들이 좀 낭만적인 생각으로 지원했더라고요. 현실을 겪어보면 다 깨질 텐데.”

▲칼리시니코프 돌격소총을 파지한 자세가 능숙한 이리나 세르게예바는 우크라이나 국경수비대와 정식계약을 맺은 시민의용군이다. 지난 11일 세르게예바가 군사훈련소이자 기지로 활용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한 지하주차장에서 다른 의용군과 함께 서 있다. AFP=연합뉴스
5년이 넘게 전장을 누비면서 깨달은 바가 많았을 테죠. 러시아 침공 뒤 애국심 하나로 달려온 수많은 여성에게서 그녀는 예전 자기 모습이 보이나 봅니다. 그녀도 전사한 올가 세미디아노바처럼 2014년부터 참전했습니다. 처음엔 시민의용군 신분으로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2017년 우크라이나군과 정식 계약을 맺었다고 합니다.

▲아니시모바 하나 발레리에브나는 2018년 11월 도네츠크 지역에서 작전 중 사망했다. 당시 24세였다. 발레리에브나 같은 우크라의 여성 군인들은 전투 중 목숨을 잃기도 했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불합리한 규정에 얽매여 ‘투명 인간’ 취급을 받았다. 우크라이나 전사자 추모 사이트
하지만 세르게예바를 포함해 수많은 우크라 여성들은 실제 전투에 투입되더라도, 불과 5년 전인 2017년까지 ‘전투병’으로 대우받지는 못했습니다. 전투 병과에 속한 군인에게만 주는 혜택도 누리지 못했죠. 그래서 우크라이나에서는 여성 전투병을 '보이지 않는 부대'라 불렀습니다.
‘보이지 않는 부대’ 우크라이나 여군
안드리아나 수삭(34)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선정한 국민 영웅 중 한 명입니다. 2014년 돈바스 전쟁이 터지자 동부 지역 최전선으로 곧장 달려갔습니다. 2014년 5월부터 2015년 7월까지 기습 작전부대에 소속돼 분리주의 반군이 점령한 마을을 탈환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부대원이 거의 전멸하는 일도 종종 벌어졌습니다.
수삭은 임신 5개월이 될 때까지 전장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삭의 공식 병과는 전투병이 아닌 ‘재봉병’이었습니다. 재봉병은 군수물자나 군복을 수선·재봉하는 일을 맡는 병사입니다.

▲안드리아나 수삭은 우크라이나 키이우 군사박물관에 소지품이 전시될 정도로 국가적으로 유명한 참전 용사다. 소총을 들고 전장에서 싸웠지만 그의 공식 보직은 ‘재봉병’이었다. ‘보이지 않는 부대’ 공식 웹사이트
저격수인 율리아 마트비엔코(43) 역시 수삭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작전 때마다 동료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참호에 숨어 적군을 노려야 했지만, 그녀의 보직도 전투병이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우크라이나군은 여자를 그다지 반기지 않아요. 아쉽지만 사실이 그래요. 군에 와도 요리, 통신, 의료 같은 것만 할 수 있죠. 딴 건 못해요. 그런데도 저는 하고 싶은 걸 요구하고, 내가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했어요. 모든 여성은 조국을 지킬 권리가 있어요.”

▲율리아 마트비엔코는 저격수지만 공식 문서엔 보조 위생병으로 등록돼 있다. 2015년 참전해 최전방에서 복무했다. 다큐멘터리 ‘보이지 않는 부대’ 캡처
2017년 전에는 우크라이나에서 공식적으로 전투 병과에 소속된 여군은 없었습니다. 실제로는 저격을 하고 유탄을 쏘고 전투를 치른다 해도 공식 문서엔 취사, 재봉, 청소, 회계 같은 병과로 기재되죠.
우크라이나군 입장에선 전투병 한 명이 아쉬우니 법에선 금지해놓았다 해도 여군을 현장에 투입했던 겁니다. 그런데 상황이 급하다고 몰래몰래 투입됐다기엔 너무나 많은 여성이 총을 들었습니다. 사실 ‘여성군인의 전투 금지’는 오래 전에 사문화된 거나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그들은 공식적으로 전투병이 아니었기에 사회적 인정도 받지 못했고, 참전 용사 혜택도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싸웠는데 왜 정부가 이걸 감추려고만 하냐고 울분을 터뜨려왔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2017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보이지 않는 부대(Invisible Battalion)’에는 수삭과 같은 여성군인의 삶이 우크라이나 들판에서 전장을 바라보듯 생생히 기록돼 있습니다. 이 다큐는 우크라이나 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각국의 필름 페스티벌에 초청돼 화제를 낳았습니다.

▲다큐멘터리 ‘보이지 않는 부대’의 주인공들. 2017년 10월 16일 우크라이나 최대 방송사에서 방영돼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미국 뉴욕, 캐나다 토론토, 중국 상하이, 이탈리아 밀라노 등에서 방영됐다. 우크라이나는 현재 여성 군인에게 전투 병과 일부를 개방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우크라이나 여성 군인이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러시아의 침략 전쟁을 고발하고자 했다. ‘보이지 않는 군대’ 프로젝트의 총책임을 맡은 마리아 베를린스카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통해 드러내고 싶었던 건 우크라이나가 내전 상태가 아니라 러시아의 침략을 받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보이지 않는 부대’ 공식 웹사이트
이 다큐가 나올 즈음 여성군인의 싸울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여론이 크게 일면서 법이 개정됐습니다. 여성의용군이 군과 정규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됐고 전투 병과 등록도 가능해졌죠. 지금은 총 63개의 전투 병과가 여성에게 개방돼 있습니다. 2019년부터는 군 사관학교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자격으로 입학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여성 참전 용사들은 모든 전투 병과의 개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성은 출산해야… 전투는 금지” 소련의 성차별적 잔재
그럼, 왜 실제 전투를 치르는 여성군인을 전투 병과에 포함시키지 않았을까요. 구소련 시절부터 내려온 유구한 성차별적 제도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는 구소련에서 1991년 독립한 나라로 소련의 많은 전통과 법체계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 역시 그중 하나였죠.
소련은 여성의 출산을 국가적 의무로 여겼던 나라입니다. 여성의 생식 기능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여성의 전투 참여를 금했습니다. 사실 소련에도 러시아 혁명 시절이었던 1917년, 여장부 마리아 보치카료바가 이끌던 ‘죽음의 여군대대’라는 게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선 나치가 ‘밤의 마녀’라고 부른 588 야간 폭격기 연대의 소련 여군들이 전투에서 활약했죠.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선 여성을 전투에서 배제하는 법령이 만들어져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나탈리아 콥쇼바와 마리야 폴리바노바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에 대항해 싸운 전설적인 저격수다. 두 사람은 각각 21세와 19세에 독일군에게 체포될 위기에 처하자 수류탄을 터뜨려 목숨을 끊었다. 소련 여성 군인의 무용담은 한둘이 아니지만, 전쟁 뒤 소련은 여성은 출산에 전념해야 한다며 전투 병과 참여를 금했다.
지금의 러시아도 이런 소련의 성차별적 전통을 이어받아 군에서 여성 역할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는 군 밖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러시아는 한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령으로 450여개의 직업군에 여성들이 종사하는 것을 금했었습니다. 지금은 이 숫자를 100여개 정도로 줄이긴 했는데요, 지금도 채굴, 건설, 금속공, 소방, 용접 등의 업무를 여성이 할 수 없습니다. 러시아엔 전근대적 고정관념이 여전하죠. 사실 우리나라도 이런 직업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광부입니다. 근로기준법에 여성은 갱내에서 일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죠.
우크라이나군에도 이처럼 전근대적이고 성차별적인 제도와 문화가 남아 있습니다. 여성을 전투 병과에서 배제한 법은 이제 바뀌었지만,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은 여전하죠. 지난해 독립기념일 행사 퍼레이드를 준비하는 여성 사관생도에게 하이힐을 신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정치인뿐 아니라 세계 언론의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지난해 7월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여성 사관생도들이 펌프스 힐을 신고 독립기념일 행사를 위한 행진 연습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회의원 이나 솝순은 “이보다 멍청하고 해로운 아이디어가 또 있을까”라고 비판했다. AP=연합뉴스
이런 ‘차별 의식’이 남아 있는데도, 여성에게 전투병과를 개방하고 나서부터는 우크라 여군의 숫자가 확연히 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우크라이나 군인 21만명 중 15%인 3만2000여명이 여성인데요. 2017년 2만1000명이었던 게 5년 만에 52%나 늘어났죠.
여성군인에 대한 처우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긴 합니다. 지금은 병원에 산부인과가 개설돼 있고 여성용 속옷도 보급됩니다. 군내 성평등 담당자가 우크라이나 전역 400여개 군사기지에 배치돼 있기도 하죠. 남성 군인에게 보급되는 신발과 군복, 심지어는 속옷을 입고 전장에 나서야 했던 게 불과 몇 년 전이었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병력을 끌어모으던 지난해 12월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국방부가 여성을 전시에 동원할 수 있도록 하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18~60세까지 여성 중 의료·금융·언론 등 특정 전문분야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차출한다고 합니다. 원래 징병제 국가인 우크라이나에선 남성만 징집 대상이지만, 전시엔 강제는 아니지만 여성도 동원할 수 있게끔 조치한 겁니다. 이는 우크라이나의 열악한 군 상황 때문입니다.

▲러시아 침공을 앞둔 지난달 5일 한 우크라이나 여성이 군인의 지도 아래 소총을 다루는 훈련을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2014년 돈바스 전쟁 이후 터키제 드론과 미국제 재블린 미사일 등의 무기를 들여왔고, 병력도 20만 넘게 끌어올렸다고는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은 가난합니다. 우크라이나 국방비는 50억 달러 정도로 우리의 460억 달러에 턱없이 못 미치죠. 옆 나라 폴란드와 비교해봐도 군인 숫자는 21만명 대 16만명으로 5만명 더 많은데, 국방비는 폴란드 145억 달러의 3분의 1밖에 안 됩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는 사실 현재 모든 시민의 의용군화를 독려하고 있죠. 정규군이 아닌 일종의 의병이나 시민군 개념입니다. 정부가 직접 시민들에게 소총을 지급합니다. 국방부는 트위터에 화염병을 만드는 법과 전차의 어느 부위에 던져야 효과적인지도 올려놓고 있습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시민들에게 화염병을 만들어 러시아군의 전차에 투척하라고 독려하는 트위터 메시지를 올리기도 한다. 화염병을 만드는 방법 뿐만 아니라 전차의 어느 부위에 던져야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 상세히 적어놓았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트위터
여성들이 전쟁에 뛰어드는 이유도 국방 사정이 워낙 좋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고요. 이렇게 모인 사람들은 일종의 용병처럼 우크라이나군과 개별적 계약을 맺고 활동하게 됩니다. 시민들은 낮에는 자기 직장에서 일하고 퇴근 후 저녁 혹은 주말을 활용해 군사 훈련을 받습니다.
국민 전체가 PTSD에 시달리는 나라
이렇게 전쟁이 일상이 돼 여성들까지도 전투에 뛰어드는 나라가 우크라이나입니다.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향후 국가적 근심거리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앞서 말한 소개해 드린 다큐멘터리 ‘보이지 않는 부대’엔 PTSD에 시달리는 한 퇴역 여성 장교가 나옵니다.
옥사나 야쿠보바(51)는 우크라이나 재무부에서 수석경제학자로 일했던 인텔리지만, 전쟁이 터지자 돈바스로 자원해서 전투에 투입됩니다. 이후엔 인사 대대 장교로 복무하며 병사를 작전 지역으로 보내는 일을 했죠.
“전쟁에서 나오니 더 지옥이에요. 전쟁에서 죽는 것보다 전쟁 뒤 살아남는 게 훨씬 더 힘들어요.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면 겁에 질려요. 사람들이 너무 무서워요.”
병사를 사지로 내몰았다는 죄책감이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야쿠보바는 자살 충동에 시달려 심리 치료를 받기도 했지만 크게 나아지지는 못했습니다.
“작전 지점으로 가라고 군인들을 설득하는 게 너무 괴로웠어요. 불가능한 작전이었거든요. 무조건 가야 한다고 어떻게 설명해야 하죠. 거기 가면 100% 죽는다는 걸 전 알고 있었어요.”
남겨진 자의 죄책감과 슬픔이 어느 정도인지, 그 깊이를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우크라이나에선 이미 2014년부터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참전용사 수삭은 현재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이렇게 말했죠. “전투를 함께 했던 동료가 16층에서 몸을 던졌어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때문이래요. 나라 전체가 PTSD에 고통받고 있어요.”

▲올레나 빌로제르스카(43)는 저격수다. 참전하기 위해 출산을 미뤘다. 그녀는 “남편과 아이를 너무 갖고 싶은데,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고 했다. 전쟁 전 시인이자 기자였던 그는 조국을 위해 펜이 아닌 총을 들었다. 다큐멘터리 ‘보이지 않는 부대’ 캡처
이 기사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두 전쟁 전 번듯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전쟁 전 세르게예바는 홍보전문가였고, 두 아이의 엄마 마트비엔코는 경제학자였으며, 수삭은 전쟁 전 브랜드 매니저와 통역사로 일했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꿈을 찾아가던 사람들이 참혹한 전쟁터로 떠났던 거죠. 이들이 일상에 복귀해 행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다시 찾아오길 기원합니다.
이정봉 기자 mole@joongang.co.kr, 영상=정수경 PD, 이가진, 권세경 인턴
03.23 자유 위한 투쟁에 한국이 함께하길
민주주의 국가들이 연대해 세계 질서 붕괴 시도 막아야
강력한 대러 경제 제재와 韓 인도적 지원 큰 힘 될 것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
러시아는 지난 8년간 우리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전쟁을 계속했고, 최근 한 달 동안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략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우리의 주권을 빼앗고 잔인하게 점령하려는 러시아의 명분 없는 시도를 막으려고 온 힘을 다해 저항하고 있다. 우리 정규군과 방위군, 의무병과 자원봉사자들은 하나로 똘똘 뭉쳐 우리 땅을 지키고 국민들을 보호하고 있다.
지상군으로는 목표 달성이 불가능해지자 러시아는 여러 테러 작전을 펴고 있다. 수도 키이우를 비롯해 하르키우, 체르니히우, 수미, 마리우폴 등에서 고의로 민간 건물과 국가 기반 시설을 파괴하고 있다. 그들은 무고한 민간인을 매일 수십 명씩 살해하고 있다. 러시아군이 마리우폴의 산부인과 병동을 폭격하는 모습은 전 세계에 충격과 공포를 안겨줬다. 지난 16일엔 러시아 전폭기가 민간인 1300명이 대피해있던 대형 극장에 대형 폭탄을 떨어뜨렸고 20일엔 400명이 대피한 예술 학교를 공격했다. 이곳에는 여성과 어린이, 노인들이 있었다. 정확한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아직도 집계되지 않고 있다.

▲한국인권도시협의회 관계자들과 주한 우크라이나인들이 지난 17일 서울 중구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뉴스1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많은 사람이 이런 질문을 던질 것이다. “과대망상으로 인한 전면전이 어떻게 21세기에 일어날 수 있는가?” “잔인하고 무분별한 공격을 어떻게 하면 멈출 수 있는가?” 답은 쉽지 않다. 다만 이 전쟁이 끝났을 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한 독재자가 어떻게 나치 같은 위험한 존재로 변했는지 분석하는 시간이 반드시 올 것이란 사실은 분명하다.
지금 이 순간 내 조국이 할 일은 싸워서 우리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모두가 하나 되어 현존하는 세계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시도에 맞서고 있다. 다른 이를 희생시키면서까지 “힘과 권력만이 옳다”는 규칙을 세계에 부과하려는 러시아를 온몸으로 막고 있다. 우리는 러시아군이 저지른 테러 행위에 대해 반드시 국제사법재판소를 통해 응징할 것이다. 세계는 러시아가 테러국이라는 점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우크라이나는 친구들과 동맹국들에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미국을 비롯해 많은 민주주의 국가가 보내준 지지와 연대에 굉장한 감사함을 느낀다. 하지만 전쟁은 금방 끝나지 않는다. 러시아의 전쟁 범죄도 중단되지 않는다. 러시아 경제는 그들의 무기를 공급할 만큼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다. 이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더 필요하다는 의미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 압박은 단호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우크라이나가 지금보다 많은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방공 무기와 항공기 등 러시아 침략군을 저지하는 치명적인 무기와 탄약이 필요하다.
우리는 한국과 한국인들이 보내준 지지에 매우 감사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것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위해 한국인들이 매일 우리 대사관으로 보내주는 기부금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러시아의 계속되는 압력에도 나는 우크라이나를 위해 더 많은 지지를 얻으려 노력할 것이다. 우리의 공동의 승리를 위해서, 우리 모두의 평화를 위해서.
우리가 전쟁에서 승리하면 러시아가 망가뜨린 나라를 재건하는 데 세계의 많은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어떤 상처를 입었을지라도 우리가 다시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 자신한다. 그것은 역사적인 재건이 될 것이다. 우리가 자유를 위해 싸운 것처럼 우크라이나를 다시 세우는 모습은 세계를 또 한번 고무시킬 것이다. 그때 한국이 글로벌 동맹국들과 함께 우리 편에 서주기를 희망한다.◎
조선일보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