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危機의 韓半島2022-3/ 03.01 국민이 위협과 침략에 맞설 결의 있으면 세계가 돕는다 - 03.30 임기 말 ‘평화 쇼’의 종말, 美 ‘한반도 법안’도 물건너 간다

상림은내고향 2022. 4. 4. 14:56

危機의 韓半島2022-3/

03.01  국민이 위협과 침략에 맞설 결의 있으면 세계가 돕는다

27일(현지 시각) 독일 수도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 앞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우크라이나에 지지를 표명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AP 연합뉴스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까지 개시 후 수일 안에 수도 키예프가 함락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서방국가들이 침공 직후 말로만 러시아를 규탄하고 직접 군사 지원에 소극적이었던 것도 우크라이나 국민이 무력하게 굴복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침공 일주일이 다가오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 국가가 러시아의 국제 결제망 퇴출, 푸틴 대통령의 개인 자산 동결 등 강력한 금융 제재를 단행한 데 이어 미사일과 전투기, 레이더, 대전차 무기, 총기 등 군수 지원에도 착수했다고 한다.

 

상황이 이처럼 달라진 것은 우크라이나 국민의 결사 항전 때문이다. 러시아군은 15만이 넘는 병력을 투입하고 미사일 320발 이상을 발사하면서 강하게 밀어붙였지만 우크라이나군과 다수 국민의 필사적 저항으로 수도를 쉽게 점령하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폴란드 국경에선 침략군과 싸우려 피란 행렬과 반대로 귀국 행렬에 오른 우크라이나인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한쪽 다리가 의족인 장애인까지 총을 들었다. 청장년 13만명이 자원 입대했고 입대하지 않은 국민은 화염병을 만들어 시가전에 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한국의 여당 대선 후보가 “6개월 초보 정치인”이라고 조롱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서방의 국외 피신 제안에도 수도 키예프에 남아 ‘결사 항전’의 뜻을 담은 영상을 연일 올리면서 국민의 저항을 독려하고 있다. 자국민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세계 시민들까지 기부와 반전 시위로 응답하고 있다. 정치 지도자를 구심점으로 단단히 뭉친 우크라이나의 항전 의지가 국제 여론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경제 제재에 국내 여론까지 악화되면서 국민의 전쟁 의지가 흔들리는 쪽은 러시아라고 한다. 압도적 전력 차이 때문에 수도는 언제든 함락될 수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국민의 의지를 꺾지 못하는 한 러시아의 점령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미국에서 군수 장비를 무려 100조원어치 지원받고도 미군 철수 발표 넉 달 만에 탈레반에 항복했다. 탈레반이 몰려오자 대통령부터 해외로 도망쳤고 30만 정부군은 미국이 지원한 첨단 장비를 내팽개치고 순식간에 흩어졌다. 어떤 국민이 이런 정부와 군을 대신해 화염병을 들겠는가. 어떤 나라가 자국의 이익을 희생하면서까지 이런 국민을 구하겠는가. 강대국의 침략에 응전하는 우크라이나를 바라보면서 정치 지도자의 용기와 국민 의지의 중요성을 다시 절감한다.

조선일보  사설

 

03.01  美 수출 통제 면제에서 빠진 한국, 이러다 ‘껍데기 동맹’ 된다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해 발표한 수출 통제 조치의 면제 대상으로 지정한 32국에서 한국이 빠졌다. 최근 미국 상무부는 외국 기업이 미국의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만든 반도체·컴퓨터·통신·레이저·센서 장비를 러시아에 수출하기 전 미국 허가를 일일이 받도록 했다. 러시아에 대한 전략 물자 공급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미국과 비슷한 수준의 대러 제재를 발표한 유럽연합 27국과 일본, 호주,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 모두 32국은 이런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공지했다. 그들의 판단을 믿고 맡길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 대상에서 제외됐다. 충격적인 일이다. 70여 년간 동맹 관계를 유지해온 한국을 신뢰하기 어려운 나라로 분류한 셈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동맹국 가운데 유일하게 대러 제재 동참을 망설였다. 러시아의 무력 침공이 시작되자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제재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동참해나갈 것”이라고 했지만 독자 제재는 다시 유보했다. 그러자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을 강조하며 대러 제재에 동참하는 국가를 거명했는데 한국은 쏙 빼놓았다. 미국 조야에선 한국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정부는 뒤늦게 러시아에 대한 전략 물자 수출을 차단하기로 결정해 미국 측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허겁지겁 뒷수습에 나선 것이다.

 

정부가 신중을 기한 배경은 짐작이 간다. 러시아의 보복 조치가 우리 안보와 경제에 미칠 파장을 우려했을 것이다. 다른 나라들도 이런 고려를 안 했을 리 없다. 국제사회의 연대에 동참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한 것이다.

70여 년 전 우리가 북한의 침공을 받았을 때 미국을 포함한 16국의 도움으로 나라를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세워진 한미 동맹 체제 위에서 우리는 번영의 역사를 써 왔다. 동맹은 목숨 걸고 서로를 지켜주겠다는 약속이다. 네가 공격받으면 나도 함께 피 흘려 싸워주겠다는 다짐이다. 상대방을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어야 유지될 수 있는 관계다. 그러나 한미 동맹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믿고 맡길 수 있는 32국에도 끼지 못하는 사이가 돼 버렸다. 신뢰를 잃은 동맹은 껍데기나 마찬가지다. 동맹국이 공동 행동을 요구해 왔을 때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뒤로 빠지려 한다면 우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떻게 도와 달라고 손을 내밀 수 있겠나.

조선일보  사설

 

03.01 “나는 키예프 시민입니다”

2월 26일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시민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항해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서 의외의 주목을 받은 인물은 유엔 주재 케냐대사였다. 케냐는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60위권의 나라. 이 나라의 마틴 키마니 주유엔 대사는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케냐의 국경은 영국, 프랑스 같은 나라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그어졌다며 “만약 우리가 독립할 때 민족, 인종, 종교적 동질성에 기반해 국가를 수립하려 했다면 지금도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계속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물려받은 국경을 유지하기로 합의, 위험한 향수를 품고 과거로 돌아가기보다 앞으로 나아가는 편을 선택했다”며 러시아도 국경과 국제법을 존중하라고 푸틴을 직격(直擊)했다.

 

약소국 외교관이 소신 발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명백히 유엔 헌장과 국제법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이후 그의 발언은 세계 경제 10위권인 한국의 대응과 비교되기 시작했다.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전면 침공 후, 문재인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보존 및 독립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비판 여론이 일어 국제 제재에 동참하기 전까지는 사실상 그것뿐이었다.

 

한국은 미국이 앞장서서 EU, 영국 등 동맹국들과 함께 러시아의 달러 결제망을 끊고, 푸틴을 제재하는 데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일본이 러시아 대사를 불러 ‘국제법 위반’을 지적하고 ‘침공 중단과 러시아군의 철수’를 구체적으로 요구할 때 바라만 봤다. 오죽하면 미국의 전직 고위 관리가 공개적으로 “한국의 소심하고 미온적인 (러시아) 접근이 부끄럽고 어리석다”고 했을까.

 

문재인 정권이 진정 인권을 소중히 하는 진보 세력이고, ‘촛불 정권’이라면 누구보다 더 이번 사태의 문제점을 지적했어야 하지 않나. 이럴 때 러시아의 눈치를 본다고 해서 푸틴이 우리를 배려해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백치(白痴) 수준의 사고 아닌가.

 

지난주에 만난 전직 외교부 장관은 문 정부의 이번 사태에 대한 대응을 이렇게 개탄했다. “대한민국이 트루먼 미 대통령의 6·25 참전 결단과 유엔 지원으로 살아난 것 아니냐. 워싱턴의 한국전 참전용사비에 적힌 대로 알지도 못하고 만난 적도 없는 나라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파병된 외국 군인들 때문에 회생한 것을 생각한다면 이럴 수는 없다.”

 

다른 자리에서 만난 전직 외교부 차관급 인사는 재임 당시 주한 러시아 대사가 외교부에 왔을 때 책상을 10번 내리쳐가며 질책한 경험을 들려줬다. “국제법에 기반해 정당하게 항의할 게 있을 때는 반드시 해 놓아야 한다. 그게 외교”라고 했다.

 

푸틴이 ‘21세기 히틀러’가 돼 평화를 짓밟는 행동은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를 함락시키지 못하고 거센 저항에 직면했다. 뉴욕의 타임스스퀘어에서 시작된 대규모 반전 시위는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3년 서베를린 방문 당시 “이히 빈 아인 베를리너(Ich bin ein Berliner·나는 베를린 사람입니다)”라는 명연설을 했다. “모든 자유민은 그 사람이 어디에 살건 간에 베를린 시민”이라는 말로 동독, 소련에 맞서 서독을 돕겠다는 강한 연대의식을 표명했다. 이후 이 말은 수차례 변형되며 어려움에 처한 나라에 대해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지원과 협력을 밝히는 하나의 상징이 됐다.

 

오는 9일 대통령 선거는 유럽에서 포탄이 날아다니고 3차 세계 대전 가능성마저 거론되는 위기 상황에서 실시된다. 대선에서 “나는 키예프 시민입니다”라는 연대 의식이 확산하고, 대통령 선택 기준의 하나가 될 때 대한민국은 더 굳건해지고, 국격은 한 단계 상승할 것이다.

조선일보  이하원 국제부장

 

03.01  그래도 ‘남북러 가스관’인가

서울 외교가에선 지난 22일 김부겸 국무총리가 외신 간담회에서 한 이 발언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한 외신 기자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 온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은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노르트스트림2와 비슷하다. 이 사업이 문재인 정부 이후에도 지속돼야 하느냐”고 묻자 이같이 답한 것이다.

 

남·북·러 가스관 사업은 한국~북한~러시아를 잇는 가스관을 깔아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도입하는 프로젝트다. 한국은 에너지 도입선을 다변화하고 북한은 가스 통과료를 챙길 수 있다는 점에서 ‘남북 윈윈 사업’으로 꼽히며 보수·진보를 떠나 역대 한국 정부의 단골 대북 공약이었다. 김 총리는 답변 과정에서 남·북·러 가스관이 탄소 중립 달성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필요하다는 원론적 설명도 곁들였다.

 

평상시 같으면 김 총리의 발언은 별 논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하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에 군대를 투입하며 침공을 개시한 날 이런 발언을 했다는 점이다. 듣기에 따라 러시아의 침략적 행태에 눈을 감았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남·북·러 가스관 사업이 자원을 무기화하는 푸틴 정권의 돈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간과한 것이다.

 

김 총리의 발언은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더 논란이 됐다. 러시아는 이번 사태 이전에도 갖가지 이유로 파이프라인 밸브를 잠갔다 풀기를 되풀이하며 자국 천연가스에 ‘중독’된 유럽을 농락하곤 했다. 러시아가 남·북·러 가스관에 대해서도 이러지 말란 법이 없다. 더구나 남·북·러 가스관은 러시아도 어쩌지 못하는 불량 국가 북한을 관통해야 한다. ‘서울 불바다’ 운운하며 미사일을 쏴대고 우리 영토에 포격까지 퍼부은 북에 가스관 밸브는 한국을 갖고 놀 훨씬 간편한 도구가 될 것이다. 야당에서 “정부·여당이 얼마나 에너지 안보에 무지한지 깨달았다”는 탄식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김 총리에게 질문한 외신 기자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현재 독일이 처한 상황을 언급하며 “한반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실제 독일은 탈원전에 따른 에너지 부족을 메우기 위해 러시아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높였고 그 결과물이 러시아~독일을 직접 잇는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사업이다. 미국은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로 이어지는 이 사업을 반대해왔다. 곡절 끝에 완공돼 사용 승인만 남겨두고 있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가동이 무기한 보류됐다.

 

질문한 외신 기자는 한국의 상황과 닮은 ‘독일의 낭패’에서 김 총리가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궁금했던 것 같다. 러시아의 천연가스에 목줄이 잡힌 독일은 러시아의 악당 짓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해 구설에 올랐고, 13조원이 투입된 초대형 가스관 프로젝트는 애물단지가 됐다. 남·북·러 가스관의 ‘장밋빛 미래’보다 ‘불편한 진실’에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조선일보  이용수 기자

 

03.01  우크라이나 사태 국제연대, 정부 여당은 왜 동참 주저하나

▲28일 오전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인근에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과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단 및 평화적 해결 촉구하는 내용의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우상조 기자

국제사회 고강도 제재에 한국만 소극적

높아진 위상 걸맞은 국제적 책임 다해야

‘G10 진입’ 자화자찬은 다 어디로 갔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명분 없는 전쟁 행위의 중단을 촉구하는 세계인들의 연대가 확산되고 있다. 세계 주요 도시에서 화염병으로 러시아 탱크에 맞서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지지를 보내는 집회가 잇따라 열렸다. 엊그제 서울 남산타워를 비롯, 뉴욕·파리·로마 등 지구촌의 랜드마크 건물 외벽은 우크라이나 국기 문양의 조명을 밝히며 반전 메시지를 보냈다. 심지어 자국 러시아에서까지 반전 시위가 일어났고, 정치적으로 푸틴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운동선수 등 유명인들도 동참했다. 러시아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핵무기 운용 부대에 특별 경계명령을 내렸다. 위험선을 넘나드는 러시아의 비이성적 행동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

 

시민사회만 나선 것이 아니다. 국제적 제재는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미국을 포함한 주요 서방국들은 러시아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축출키로 합의했다. ‘금융 핵폭탄’으로 불릴 만큼 강력한 이 제재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합병 때에도 꺼내들지 않았던 카드다. 미국의 리더십에 마지못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대러 제재에 나서고 있다. 원유의 26%, 천연가스의 40%를 러시아에 의존하는 유럽연합 국가들은 원자재 공급 차질에 따른 당장의 피해도 감수하겠다는 결연함을 보이고 있고, 일본은 액화천연가스(LNG) 비축량 방출을 약속했다. 러시아의 침공이 전쟁의 명분을 찾을 수 없는 국제법 위반인 동시에 탈냉전 후의 국제질서에 대한 심대한 도전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대열에서 세계 10위의 경제강국 한국 정부만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초 외교부 고위 관리가 밝힌 대로 “제재 동참은 없다”고 했다가 침공이 현실화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동참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늘 한 박자씩 늦고 마지못해 따라가는 모양새가 역력하다. 미국 상무부가 대러 수출금지에 동참키로 한 파트너 국가 32개국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한국은 빠졌다. 국제사회가 탐탁히 여길 리 없다.

 

정부의 신중한 자세는 남북 철도 연결사업 등에 필요한 러시아의 협력을 고려한 데 따른 것이다. 이는 “우크라이나 정세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읽힌다. ‘균형 외교’를 표방하며 친중, 친러시아 성향을 보여온 문재인 정부의 외교 노선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이에 대응하는 국제사회의 행동에 담긴 본질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는 단견일 뿐이며, 대한민국이 견지해야 할 원칙과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는 “우크라이나의 초보 정치인이 러시아를 자극했다”며 인과관계를 뒤집는 발언을 했다. 표현력 부족이라고 사과했지만 이미 전 세계로 퍼져 국제적 망신을 당한 뒤였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지구촌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힘이 약한 인접국의 주권을 강대국이 무력으로 위협하는 행위에 맞서는 국제사회의 연대에 우리가 동참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 ‘사실상의 G10 국가’라며 자화자찬하던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왜 이번에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가.

중앙일보  사설

 

03.01  우크라이나와 일본의 선택

“에너지 분야의 협력을 포함해, 일·러(러·일) 관계 전체를 발전시키겠다.”

 

올해 초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국회에서 한 시정 방침 연설에는 러시아에 대한 ‘구애’가 가득했다. “평화조약 체결” “교섭” “발전” 등 긍정적인 문구로 채워진 대러시아 정책 바로 뒤, “일관된 입장에 근거해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한다”는 한국 관련 딱 한 문장이 등장해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러시아가 실효 지배 중인 쿠릴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을 돌려받겠다는 목표 아래 그동안 일본은 러시아에 유화적인 자세를 취해왔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했을 땐, 미국과 유럽이 제재를 선언한 뒤에도 한참을 미적거리다 사실상 ‘솜방망이’ 조치를 내놓는 ‘독자 외교’를 보여줬다.

 

지난달 26일 일본 도쿄 신주쿠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일본인들이 ‘전쟁을 멈추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런 일본이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여준 ‘변심’은 놀랍다. 일본은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첫 제재를 발표하자 바로 동참을 선언하더니 지난달 25일엔 반도체 수출 제한 조치 등 추가 제재를 이어갔다. 27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자산을 동결하고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배제하는 조처를 하겠다고 밝혔다. “폭거에는 큰 대가가 따른다.” 기시다 총리의 비판도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이 망설임 없이 태도를 바꾼 배경에는 중국이 있다는 분석이 많다. 일본의 한 외교소식통은 “크림반도 사태 때와 지금의 차이는 중국의 부상이다. 일본이 지난번처럼 제재에 소극적으로 나설 경우, 중국이 비슷한 군사 행동에 나설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고 말했다. 러시아에 단호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대만도 위험해진다는 판단이다. 일본 국민도 정부의 태도 변화에 동의하는 분위기다. 한 여론조사에서 61%가 “일본이 미국·유럽과 보조를 맞춰 러시아에 대응해야 한다”고 답했다.

 

일본이 군사 전략의 중심을 중국 견제로 옮긴 데는 ‘러시아와의 긴장 완화’라는 전제가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일본의 강한 대응으로 “일본의 향후 안보 전략에 파급이 예상된다”(니혼게이자이신문)는 분석이 이어진다. 중국·북한에 러시아까지 위협 요소로 더해지면, 미국의 강한 요구 하에서 일본의 군사력 증강은 더 적극적으로, 대담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예상치 못했던 전쟁이 국제 사회의 구도를 크게 뒤흔들고 있다. 각 나라는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한다. 한국은 어떤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전쟁의 포화 속에서 맞이하는 103번째 3·1절이다.

중앙일보  이영희 도쿄특파원

 
 

03.02  러시아의 민간인 살상과 핵 위협은 반인류적 범죄다

러군, 우크라이나 민간 시설 공격으로 피해 속출

푸틴 핵 공격 준비 지시…북한 핵 사용 오판 우려

 

독립국가인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정당하지 않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진격이 지체되자 군 시설이 아닌 민간 시설까지 가리지 않고 공격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무고한 민간인 살상은 반인류적인 범죄행위로 규탄받아 마땅하다.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제2 도시인 하리코프에서 교전하면서 점령이 늦어지자 공격 대상을 민간인 거주지역으로 확대해 무차별 포격을 했다는 것이다. 하리코프에는 140만 명이 살고 있다. 러시아군의 무차별 포격으로 아파트 밖에 시신이 널려 있고, 민간 건물이 불타는 영상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전파되고 있다. 러시아군은 하리코프에 이어 키예프도 무차별 공격할 전망이다.

 

러시아의 범죄행위는 이뿐이 아니다. 러시아군이 제네바협약에서 금지하는 진공폭탄을 민간인 지역에 터트렸다는 주장도 있다. 진공폭탄은 산소를 빨아들여 초고온 폭발을 일으키는 무기로 사람의 장기에 심각한 손상을 준다. 진공폭탄이 터지면 반경 수백m 이내의 사람이 피해를 보고, 건물은 불에 탄다.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과 하리코프 등에서 목격됐다고 한다. 러시아는 과거 체첸 전쟁(1994~2009년)에서도 진공폭탄을 사용한 전력이 있다.

 

이런 상황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핵무기 운용 부대에 경계태세 강화를 지시했다. 핵무기 경계태세 강화는 핵 공격을 준비한다는 의미다. 러시아가 핵으로 우크라이나를 위협하면서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핵무기를 실제 사용하지 않더라도 우크라이나를 위협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인류를 대상으로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용납될 수 없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은 지난달 28일 유엔 긴급 특별총회에서 “핵분쟁은 생각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러시아에 경고했다.

 

러시아의 핵 공격 준비 지시는 우리에게도 직접 영향을 준다. 핵무기를 고도화하고 있는 북한이 러시아의 행동에 따라 핵무기로 우리를 위협하거나, 실제 사용할 수 있다고 오판할 수 있다. 실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무기 사용 지침을 여러 차례 발표했었고, 우리 국민은 북핵 위협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러시아 핵 위협에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 등과 전화회의를 했는데 한국만 쏙 빠진 것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정부에선 러시아의 핵 위협에 관한 입장은 고사하고 민간인 살상에 대한 비판조차 없다. 이제라도 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주는 파장이 엄중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제대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러시아는 침략전쟁과 민간인 살상, 핵 위협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03.02  한국의 고장난 외교 레이더

미국의 대러 제재에 동참한 동맹국 32곳이 다 받은 ‘수출 통제 면제’를 한국만 못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진 지난달 28일,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허둥대는 꼴은 태평양 건너에서 보기에도 딱할 만큼 한심했다. 외교부는 “대러 전략 물자 수출을 차단한다”는 뒷북 제재를 무슨 중대 결심처럼 발표했다. 뒤늦게 미국에 와서 면제를 졸라봐야 할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방위적 대미 협의”를 “본격 추진”하겠다는 보도 자료를 냈다.

 

 이번 뒷북 제재를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이유는 미국의 대러 수출 통제가 처음부터 한국이 동참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이뤄졌다는 데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월 8일(현지 시각) “상무부가 휴대전화, 랩톱, 냉장고, 세탁기 등 소비재 가전의 대러 수출을 금지할 수 있다”며 미국 정부가 대러 수출 통제를 검토 중이란 사실을 처음 알렸다. 당시 이 신문은 “미국 기업뿐만 아니라 미국산 반도체나 소프트웨어를 쓰는 유럽, 한국, 다른 외국의 제조사들에도 적용될 것”이라고 ‘한국’을 명시해 보도했다. 애초부터 미국은 이번 대러 수출통제에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을 적용할 작정이었던 것이다.

 

FDPR은 미국의 기술·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만들었다면 미국 외 국가에서 생산한 제품이라도 미국 정부가 제3국 수출을 통제할 수 있다는 규칙이다. 이를 적용하면 한국 정부가 원하든 원치 않든 미국 정부가 통제 대상으로 지정한 기술·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한국 기업들은 무조건 미국의 통제를 받게 된다. 한국이 이란에서 수입한 원유 대금 70억달러를 지불하고 싶어도 미국의 대이란 제재가 해제되지 않는 이상 줄 수 없는 것과 비슷한 구조다.

 

그 후 미국과 동맹국들 간의 대러 제재 협의가 있을 때마다 우리 정부가 참여 여부를 ‘고심한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인데 무엇을 고민하나’ 내심 의아했다. 남·북·러 간의 가스관·철도 연결을 꿈꾸며 미국의 대중·대북 제재에 냉담한 태도를 보여온 문재인 정부가 선뜻 대러 제재에 나설 리야 있겠냐만, 이번 수출 통제만큼은 한국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국 제재가 발표되기 전에는 ‘참여 의사를 밝힌 나라나 안 밝힌 나라나 똑같이 수출 통제를 받을 테니, 굳이 러시아와 낯을 붉히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이해해 볼 여지가 있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 동참 의사를 밝힌 국가들은 미국의 수출 통제를 면제받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당연히 먼저 동참을 선언해 침략 행위에 반대한다는 ‘명분’과 우리 기업이 미국의 수출 허가 절차를 면제받는 ‘실리’를 다 챙겼어야 한다. 혹시 한국만 몰랐던 것일까? 국제사회 분위기를 읽는 외교의 ‘레이더’가 돌아가고는 있는지 우려스럽다.

조선일보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03월 02일 ‘결사항전’우크라 전폭 지원할 때다

김용호 연세대 교수·국제정치학

“미친 소리(Nuts)!”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벨기에 바스토뉴에서 독일군에 포위된 101공수사단이 항복을 권유받았을 때 한 대답이다. 흑해 연안 스네이크 섬을 지키던 우크라이나 병사들도 엿새 전, 러시아 해군이 항복을 권하자 “엿 먹어라!”라는 말을 남기고 전사를 택했다.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선제공격을 받지도 않은 공격, 따라서 정당화될 수 없는 전쟁(unprovoked, unjustified)’이라고 규정한다. 국경선을 힘으로 그어서는 안 된다는 국제규범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2008년 조지아 침공을 닷새 만에 끝냈고 2014년엔 무력시위만으로 크림 반도를 얻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예상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민간인 희생에 대한 국제 비난이 거세기 때문이다. 대규모 공습을 하지 못해 러시아 지상군이 고전한다거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통화하며 민간인 공격 중지를 약속했단 보도가 나온다. 어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특별지위를 부여하겠다고 선언해 유럽의회의 기립 박수를 받는 등 유럽이 똘똘 뭉쳤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NATO) 가입이나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얘기도 들린다. 현실화할지는 미지수지만, 우크라이나가 EU 회원국이 되면 보호책임(R2P)에 따른 나토의 개입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지금 소셜미디어에선 러시아의 총칼과 전 세계인들의 휴대전화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어쩌면 ‘총, 균, 쇠, 소셜미디어’란 책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피폭 영상이 떠다니면서 금지 무기를 사용한다는 의혹이 증폭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피신하라는 미국의 제의를 거부하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국민은 물론 전 세계와 소통한다. 그의 말처럼 러시아의 제거 대상 1호지만, 테러나 선제공격은커녕 선출된 지도자, 더구나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는 그를 제거하면 순교자 효과로 우크라이나 전 국민이 봉기할지도 모른다.

러시아의 자금줄도 꽉 막혔다. 푸틴은 달러는 물론 유로, 파운드, 엔화도 쓸 수 없다. 일본은 러시아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푸틴 대통령 등 6명에 대한 제재를 발표하며 미국의 맹방임을 발 빠르게 과시했다. 하지만 ‘사람이 먼저’인 문재인 정부는 민간인 희생이 훤히 예상되는데도 제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스베르은행이 특별제재대상(SDNs)에 오르면서 우리 금융기관들에 대한 세컨더리 제재가 염려되자 제재에 동참했다. 미국의 강력한 동맹인 대한민국이 제재 대상에 오르락내리락할 수도 있었던 지경까지 머뭇거린 것이다. 그나마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어제저녁 연설에서 호주와 함께 한국의 제재 참여를 언급해 구긴 체면을 겨우 회복했다.

2017년 워싱턴에서 흥남철수를 언급하며 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로 맺어진 한미동맹을 강조하던 문 대통령의 연설과 오늘날 한미동맹의 현주소는 도무지 연결이 안 된다. 일주일 남은 대선이지만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득표가 급하지만 쏟아내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몇 장의 종이 위 끄적거림이 아니다. 역사에 남아 사가들의 혹독한 평가를 받게 된다. ‘나쁜 평화’보다 결사항전을 택한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뒤늦은 감은 있지만 전폭적인 지원을 해야 할 때다.

문화일보  

 

03.03  전 세계가 우크라 돕는데 ‘러 침공’ 한마디도 안 한 文

유엔 인권이사회 고위급 회의에서 러시아 외교장관이 연설을 시작하려는 순간 전 세계 외교관 대부분이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1시간 전 유엔 군축 회의장에서도 같은 광경이 벌어졌다.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에 전 세계가 등을 돌리고 있는 상징적 장면이다. 회의장 밖에 있던 우크라이나 대표는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지지를 보여준 여러분께 감사하다”고 했다. 25년 만에 소집된 유엔 특별 총회에서도 193국 중 110여 나라가 러시아 규탄 연설을 했다. 중립국인 스위스까지 반(反)러 금융 제재에 동참했다. 중국·북한 정도만 예외라고 한다. 사실상 전 세계가 한 국가의 주권과 독립을 위해 연대하기는 전례가 없다시피 하다. 한국 국민도 우크라이나 난민 돕기 모금에 나섰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우크라이나를 식민지로 만들려는 러시아 침공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강대국 중심의 국제 질서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가 말한 ‘강대국’은 어디 인가. 러시아나 중국이 아니라 미국 아닌가. 문 대통령은 ‘대화’와 ‘평화’만 강조했다. 지금 우크라이나가 침공당한 것이 ‘대화’를 안 했기 때문인가. ‘평화’는 러시아의 침략 명분이었다.

 

대한민국은 6·25 남침 이후 미국과 동맹을 기반으로 북한 위협을 막으며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뤄왔다. 북·중·러가 협공한 6·25를 극복한 것도 미국 등 유엔 16국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우리 국민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도 국제사회였다. 그런 역사를 가진 나라의 대통령이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연설에서 독립을 침탈당하는 나라와 그 국민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강대국 중심 질서’ 운운하며 사실을 호도하려 한다.

 

문 대통령과 한국 운동권은 중국, 북한, 러시아에 남다른 친밀감을 보여왔다. 문 대통령은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 한국을 ‘작은 나라’라고 했다. 한국을 침략한 마오쩌둥을 존경한다고 했다. 푸틴에겐 “최적의 협력 파트너”라고 했다. 김정은 심기 살피기는 정부의 일상이 됐다. 평양 경기장 연설에선 스스로를 “남쪽 대통령”이라면서 북한 체제에 찬사를 보냈다. 북한 남침 수훈자를 국군의 뿌리라고 했다. 심정적으로는 5년 내내 북·중·러 편에 서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를 말한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국정 연설에서 “자유 세계가 푸틴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그 ‘자유 세계’의 일원이 될 자격이 있는가. 그럴 생각도 없는 것 아닌가.

조선일보  사설

 

03.03  푸틴의 반인도적 민간인 살상, 전 세계가 함께 단죄해야

 

러시아의 포격으로 인한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망자가 2000명을 넘어섰다. 부상자는 우크라이나 당국 집계로 1600명이 넘는다. 주요 대도시의 인구밀집지역은 물론 유치원과 산부인과, 병원, 학교까지 무차별 포격을 당하고 있다. 러시아가 주택가에 진공폭탄과 나비지뢰가 담긴 집속탄을 발사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악마의 무기’로 불릴 정도로 살상력이 높아 각종 국제협약에서 금지하고 있는 무기들이다.

의도적인 민간인 살상은 전쟁범죄다. 국제사법재판소(ICJ)와 국제형사재판소(ICC) 규약 등은 이를 전쟁범죄로 명시,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대규모 인명 피해가 예상되는 치명적 무기를 고의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러시아는 심지어 핵 위협까지도 서슴지 않고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준수해야 할 핵보유국이 비핵국가에 방어 아닌 공격용으로 핵무기 사용을 협박하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우크라이나의 민간인 피해는 앞으로 얼마나 더 늘어날지 가늠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의 우크라이나식 표기)를 향해 총공세를 준비하는 정황들이 확인되고 있다. 64km에 이르는 러시아군의 장갑차와 탱크, 수송차량 행렬이 위성사진에 포착됐다. 러시아 국방부 장관은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특별 군사작전’을 지속하겠다고 했다.

이런 반인륜 전쟁범죄에 대해 러시아는 전 세계로부터 규탄받아 마땅하다. 전쟁의 총지휘자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부터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ICC가 전쟁범죄 조사에 착수했고, ICJ도 러시아의 이번 침공 관련 청문회를 예고하고 있다. 캐나다가 즉각 ICC에 조사 촉구 서한을 보내겠다며 힘을 실었고, 미국은 러시아의 유엔 인권이사회 자격을 박탈하자는 제안을 내놨다. 국제사회는 이런 노력을 비롯해 경제, 외교, 문화적 제재를 총동원하는 대응 수위와 속도를 더 높일 필요가 있다.

러시아는 명분 쌓기용 시늉내기 협상을 하면서 뒤로는 침공의 강도를 높이는 데 골몰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는 더 큰 비난과 고립을 자초할 뿐이다. 이 전쟁을 멈추지 않으면 러시아는 현대사에서 가장 끔찍한 침략국 중 하나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동아일보  사설

 

03월 04일  구한말 실패 빼닮은 우크라 뒷북 외교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국제법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명분은, 우크라가 나토(NATO) 가입을 본격화하고 있어 서방권 영향력이 집 앞마당까지 확대되는 걸 지켜볼 수 없기 때문이란다. 친러시아계의 반군을 대놓고 지원할 목적도 있단다.

유엔 집단안전보장 체제에 따르면, 자국이 침공당하는 경우, 이를 격퇴하기 위한 목적의 정당방위나 심각한 인권침해를 치유하기 위한 목적의 개입을 제외하고 무력 침공은 엄격히 금지된다. 그동안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스스로의 대외 침공 행위를 극도로 자제해 왔다. 이제 이런 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유엔 안보리 체제는 급속히 엔트로피(entropy)를 겪게 됐다. 강대국들이 대놓고 국가이익을 대외 군사 개입을 통해 추구하는 시대의 문을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연 탓이다. 중국이 화교들을 보호하거나 사드(THAAD) 배치에 대응하기 위해 이웃 국가들에 직접 군사 개입하려 들고, 동남아 국가들의 최대 투자국인 일본이 자국 기업인과 자본 보호를 위해 언제든 동남아에 군사 개입까지 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문이다.

이 사태가 더욱 심각한 점은, 블라디미르 푸틴이 실제로 계획하는 사태의 끝이 우크라의 나토 가입 방지라는 방어적 이익에 그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라이벌인 시진핑 중국 주석은 미국과 신형 대국관계 구축을 내걸고 태평양을 반분하려 하는 패권싸움의 새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푸틴의 머릿속은 그에 걸맞은 웅대한 구상이 자리 잡고 있을 수 있다. 우크라를 접수하는 것을 시작으로 구소련의 위성국가들을 상당수 되찾아 유럽에서의 패권을 겨루는 것이다. 우크라와 구소련 위성국가들은 러시아가 접수하고, 대만과 한국은 장기적으로 중국이 접수하는 걸 중·러 간에 비밀 합의했을지 누가 아는가.

미국의 전선을 이원화시킬 수 있는 호재가 우크라 사태이기에 중국 리더십은 속으로 푸틴에게 고마워할 것이다. 푸틴으로서는 대형 전쟁인 우크라 침공을 강행하는 마당에 후방인 중국과의 국경지대가 염려됐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과 아무런 교감이나 합의 없이 우크라 침공을 전격 강행했을 리가 없다. 모스크바와 베이징 간에 모종의 묵시적인 연대라도 형성돼 있다는 말이다. 북한이 핵 영구 보장을 대가로, 이에 가세하면 중·러·북 삼각체제도 발동되게 된다.

구한말 대한제국의 운명은 1905년 일·미 간 가쓰라-태프트 밀약에 의해 결정됐다. 미국의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과 일본의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권을 서로 맞교환했다. 양국이 극비에 부쳤기에 1924년에야 이 사실이 알려졌다. 이젠 시진핑-푸틴 밀약으로 한반도의 운명이 장기적으로 좌우될지 의심해 볼 때다.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은 한반도의 핵심 안보 이익과 직결된 문제다. 한반도는 구한말과 같이 열강 군사 개입의 각축장이 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대응했다. 그저 대북한 포용정책을 위해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고려만 했다. 그 결과 미국의 수출통제 조치로 우리의 대러시아 수출 제품들이 규제를 당해 수출기업들만 이중의 규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처지다. 청와대는 뒤늦게 대러시아 경제 제재 동참 뜻을 밝혔다. 대륙 세력에 의존해 정권을 유지하려 들며 우왕좌왕 뒷북치는 외교가 구한말 대한제국 모습과 닮았다.

문화일보  

 

03월 04일  G8 생색낸 文의 외교 무능

 김남석 워싱턴 특파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한 2월 24일(현지시간) 해럴드 애즈먼 유엔주재 가나 대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러시아의 행동은 세계 질서와 평화·안보의 균형을 위협한다”며 “우리가 적극 행동하지 않는다면 무대응은 영원히 우리를 희생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각국이 우크라이나 사태가 미칠 영향을 계산하느라 바쁜 상황에서 국제사회 영향력이 크지 않은 아프리카 국가가 앞장서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고 유엔의 적극 대응을 주문한 것이다. 중립국인 스위스·스웨덴·핀란드·싱가포르 등 전 세계가 전례 없이 대러 제재·우크라이나 지원에 연대했다.

반면 한국은 갈지(之)자 행보였다. 미국·유럽이 첫 대러 제재에 나선 지난달 22일 정부는 ‘검토 중’ 입장만 밝혔고, 러시아의 전격 침공이 이뤄진 24일도 국제사회 제재는 동참하지만 독자제재는 “고려치 않고 있다”며 선을 그었다. 기류가 돌변한 것은 28일. 제재안을 내놓지 않아 유럽연합(EU)·일본 등과 달리 미국의 해외직접제품규칙(FDPR) 예외를 적용받지 못하고 대러 수출 시 일일이 미 상무부를 거쳐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응 방안 마련 지시에 정부는 곧바로 전략물자 수출 차단·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 배제 등 제재안을 발표했다. 부랴부랴 제재에 나선 덕일까.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한국을 제재 동참국으로 거론했다.

하지만 대러 제재에 한발 늦게 나서면서 미국 등 서구 진영의 실망, 러시아의 반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특히 제재 수위는 오히려 낮은 일본이 우크라이나 사태 초반부터 LNG 유럽 지원, 대러 제재 등에 적극 나서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에게 감사 서한을 보낸 것과 비교하면 실기(失期)가 더 두드러진다. 정부는 기업·교민에 미칠 파장을 분석하느라 제재 확정이 늦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이 올해 초부터 외교채널을 통해 제재안을 설명하고 동참을 요청했다는 점에서 군색하다. 오히려 종전선언 등 대북 유화책에 매달리느라 북한은 물론 북한의 우방인 중국·러시아의 잘못을 제재하는 데 소극적 눈치 보기로 일관했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 있다.

문 대통령이 초청국 자격으로 참석한 지난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직후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사실상 G8”이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국격은 행사 초청 여부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국가이자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꼭 내야 할 목소리를 내고 책임 있게 행동하느냐에 달렸다. 미국은 물론 G7 회원국 모두 가장 적극적으로 러시아 침공을 규탄하고 제재에 앞장선 국가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가렸지만 2월 28일 또 다른 중요 변화가 있었다. 이날 유엔 안보리에서 11개국이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는데, 앞서 3차례 성명에 불참했던 한국이 처음으로 북한 비판 움직임에 동참했다. 정부 태도 변화가 대선을 코앞에 둔 임기 말 일회성 정책 뒤집기가 아니라 어떤 차기 정부가 들어서도 민주주의·자유·인권 등 핵심 가치를 지키고, 할 말은 하는 진짜 외교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문화일보  

 

03-04  고심 끝 뒷북 러 제재, 버스 떠나고 손 흔드나

지난달 중순 어느 날. 외교안보를 축으로 핵심 당국자들이 모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갈등이 일촉즉발 상황으로 치닫고 전운까지 감지되자 정보를 공유하고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무거운 대화가 이어졌고, 공기는 어느 한 대목에서 더욱 무거워졌다. 미국이 리드하는 ‘예견된’ 대(對)러시아 제재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지 머리를 맞댄 대목이었다. 고려할 변수가 많고 사안이 복잡해 판단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나름의 깊은 논의를 거쳐 옵션은 대략 두 가지로 줄기가 정해졌다. 하나는 바이든 미 행정부의 제재에 시작부터 적극 발을 맞추자는 것. 다른 하나는 동맹국들 기조에 결을 맞추되 가급적 ‘후발 주자 모드’로 가자는 구상이었다. 중간은 없었다. 어정쩡한 동참은 미국의 점수도 따기 어렵고 괜히 러시아와의 관계만 악화시킬 거라고 봐서다.

 

결국 정부 방침은 후자로 기울었다. 어차피 미국과 서방 주요국이 제재를 가하면 우리도 수동적으로 영향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굳이 공개적으로 제재 의지를 밝혀 크렘린궁을 자극하는 게 무슨 실익이 있느냐는 목소리가 반영됐다. 경제적 부담도 고려됐다. 괜히 제재 최전선에 나섰다간 에너지 수급, 공급망 확보 등을 두고 러시아에 선봉에서 두들겨 맞을 거란 우려가 나왔다. 종전선언 희망을 놓지 않은 정부 입장에선 대북 관계도 러시아를 챙길 명분이 됐다.

명분은 그럴듯했지만 이 판단은 결과적으로 패착이 됐다. 바이든 행정부의 거듭된 제재 동참 시그널에도 원론적 입장만 밝히며 모호하게 흐리던 정부는 지난달 24일에서야 처음 제재 동참 의지를 밝혔다. 버스 떠나고 손 흔든 꼴이란 지적이 나왔다. 동맹 전선에서 소외되는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됐다. 경제적 부담도 커졌다. 미국은 새로운 대러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하며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 면제 국가를 정했는데 한국은 뺐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정부는 뒤늦게 “일본보다 더 센” 대러 제재안을 내놨다. 통상교섭본부장은 황급히 미국까지 날아가 제재 협의에 나섰다. 미국은 “환영한다”며 품을 열었다. 하지만 뒤에선 우릴 보는 시선이 싸늘하단 게 워싱턴 조야의 중론이다. 러시아 소식에 정통한 인사는 “뒤늦게 제재한다고 달려드니 더 눈에 띈다. 러시아도 한국을 벼르고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결국 늦장 제재로 명분과 실리 모두 잃은 건 일차적으로 정세 판단 미스에 따른 상처로 봐야 한다. 미국은 영국, 호주와 맺은 안보 동맹인 오커스(AUKUS)에 전달한 수준으로 대러 수출 통제안을 우리 정부에 공유했다. 제재 동참 메시지를 수차례 발신했다. 우린 이를 잘못 읽거나 간과했다. 동맹국 뒤에 숨기 힘들 만큼 미국의 제재가 고강도로 진화할 거란 판단도 제대로 못 했다.

 

그나마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략적 모호성’의 시대가 다했다는 값진 교훈을 체득한 건 불행 중 다행이다.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폭격 버튼은 신냉전의 본격 개시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민주주의 진영은 경고한다. 무임승차 승객에게 자리는 없다고. 또 묻고 있다. 한국은 어디에 설 거냐고.
신진우 정치부 차장 niceshin@donga.com

 

03.05  미국이 한국에 ‘쿼드’ 참여 요청하지 않았다고?

현재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다자간 협의체 중 하나는 ‘쿼드(Quad)’다. 호주·인도·일본·미국 등 4국 안보 협력체인 쿼드는 미국이 기존의 양자 동맹 네트워크 외에 아시아 주요 민주 국가들을 한데 모으려는 첫 시도다. 공식적이고 화려한 청사를 두고 있지는 않지만, 팬데믹 상황에서 첫 정상회의는 화상 회의로 열었고 아시아에 광범위하게 도움을 주는 상호 관심사에 대해 협력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와 관련해 '쿼드'(Quad) 정상들과 화상 회의를 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는 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참여했다. 미국, 일본, 호주, 인도가 참여하는 대(對)중국 견제협의체인 쿼드 정상들은 이날 회의에서 우크라이나전과 관련해 인도적 지원 메커니즘을 구축하기로 했다. /백악관

 

독자들은 아시아의 주요 민주국가인 한국이 쿼드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공개적으로 밝혀온 것과는 달리 스스로 선택한 결과다. 2021년 3월 쿼드 첫 정상 회의가 열렸지만, 그 기원은 25만명 목숨을 앗아간 인도양 대지진과 쓰나미에 대응하기 위해 모인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필자는 백악관에서 근무했는데, 재난 규모가 너무 커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가 즉각 대응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에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인도·일본·호주와 함께 화물기·병원선·헬리콥터 및 기타 군사 자산을 활용해 4만명이 넘는 병력과 긴급 구조대원을 신속하게 배치하는 다자간 재난 대응 노력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 협의체는 ‘쓰나미 코어 그룹’이란 이름으로 9일 동안 밤낮으로 일해 임무를 완수하고 해산했지만, 같은 생각을 가진 국가들의 협력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실감하고는 이후에도 더 많은 일을 하게 되기를 희망했다. 이를 두고 마크 그로스먼 당시 국무부 차관은 21세기 외교의 새로운 방식이라고 했다.

 

창의적 정책 전문가인 커트 캠벨 미 백악관 인도태평양 조정관이 제기한 현재의 쿼드는 첫 회의에서 코로나 백신 공급을 10억회 접종분으로 끌어올리기로 합의했다. 2021년 9월 열린 쿼드 제2차 정상 회의에서는 쿼드 국가들이 인프라, 기후 위기 대응, 사이버 보안, 신기술과 공급망 보호에 대해 서로 협력하기로 약속하는 등 훨씬 광범위한 의제로 나아갔다. 이는 아시아 주요 민주국가들이 지역 안정을 위해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왜 한국은 쿼드에 참여하지 않았을까? 앞서 1월 26일 필자는 포린폴리시 기고를 통해 바이든 행정부 인사들이 지난해 쿼드 첫 정상 회의에 앞서 한국에 참여를 타진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답변은, 미국이 한국에 쿼드 참여 요청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필자 기고에 대한 사실 확인을 요청한 한국 언론의 문의에 외교부 대변인은 “사실과 다르다. 한국은 쿼드 4국 중 어느 나라에서도 참여 요청을 직접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 입장은 변함이 없다”며 “공식적으로 쿼드 참여 요청을 받은 바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이런 발언은 진실을 감추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추론해보자. 첫째, 미국이 아시아의 주요 민주주의 국가로 협력체를 구성하면서 가장 가까운 군사 동맹국인 한국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미국이 한국을 쿼드에서 배제할 이유가 없다. 둘째, 한국은 코로나 백신 생산 능력과 메모리 칩 생산국으로 세계적 역할을 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쿼드에 이상적 국가다. 그런데 바이든이 쿼드에서 한국을 일부러 배제하겠나. 셋째, 바이든이 정말로 한국을 쿼드에 참여시키지 않으려고 했다면, 그것은 한국에 대한 모욕과 다름없으므로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한 실망과 분노, 당혹감을 표출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쿼드에 참여하라는 ‘정식 초대’를 받지 못했다”고만 할 뿐 이 밖의 감정 표출은 전혀 없는 상태다. 넷째, 문재인 정부에 해야 할 질문은, 미국이 초청장을 건넸느냐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진정 쿼드에 참여하길 원하는가’여야 한다. 다시 말해 문재인 정부가 왜 쿼드에 참여하겠다고 바이든에게 요청하지 않는지를 물어야 하는 것이다.

 

답은 이미 알려진 대로다. 미국은 결코 한국을 쿼드에서 배제하지 않았다. 실제로 바이든 행정부는 일찌감치 한국의 쿼드 참여를 염두에 두고 문재인 정부 의사를 타진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오히려 미국에 “제발 우리에게 동참을 요청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쿼드에 일부러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한국의 쿼드 불참은 바이든이 아니라 문 대통령의 결정으로, 한국 국민의 일반적 정서와 배치된다.

조선일보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

 

03.07  “美가 쿼드 참여 요청한 적 없다”는 것도 거짓말이라니

 한국이 쿼드(Quad)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한국이 참여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미 CSIS 빅터 차 수석 부소장이 밝혔다. 미국이 참여 요청을 한 적이 없다는 우리 정부 설명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본지 기고 칼럼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의 쿼드 참여를 염두에 두고 문재인 정부의 의사를 타진했으나 한국 정부의 반응이 미온적이었다고 했다. 오히려 “제발 우리에게 동참을 요구하지 말아달라”는 입장이었다는 것이다.

미국, 일본, 인도, 호주 4국으로 구성된 쿼드는 아시아 주요 민주국가들로 구성한 안보 협의체다. 미국이 대외 정책 초점을 인도·태평양 지역에 맞추면서 가장 빈번하게 가동하는 대화 채널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3일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하기 위한 각료 회의를 개최하기에 앞서 쿼드 소속 일본, 인도, 호주 정상들과 긴급 화상 회의를 가진 것이 좋은 예다.

 

쿼드 참여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국제사회 현안을 의논하는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나라의 안전을 보장받는 든든한 방패를 갖추는 것인 동시에 국가 위상이 제고되는 것이다. 민주 진영에 속하는 아시아 모든 국가는 쿼드 참여를 희망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미국은 한미 관계를 “동북아시아 평화와 안전의 핵심 축(linchpin)”이라고 표현해 왔다. 그런 상대를 아시아 안보 협의체에서 제외한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외교부는 쿼드 참여 문제가 나올 때마다 “참여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는 설명을 반복해 왔다. 빅터 차는 “문재인 정부의 이런 발언은 진실을 감추고 있다”고 했다. 궁금한 것은 미국이 문 정부에 초청장을 전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문 정부는 왜 쿼드에 참여하겠다고 미국에 요청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시동이 걸린 쿼드에 대해 강경화 전 외교장관은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라고 했다. 아시아의 민주 진영 핵심 대화 채널에 포함되는 것을 왜 꺼리는지 정부는 솔직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  사설

 

03월 07일  동맹·국익 저버린 文 5년 ‘대북 종속’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한국 외교의 나침반은 동서남북을 제대로 가리키고 있는가?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외교의 목적지는 어디였는가? 국제사회에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펼치는 외교는 국익에 얼마나 기여했는가? 최근 한국 외교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맞아 그동안 고수해온 전략적 모호성(ambiguity)의 함정에 빠져 허둥대고 있다. 미국 상무부의 대(對)러 수출통제 조치에서 미 동맹국 중 유일하게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 면제 혜택에서 제외됐다가 가까스로 포함되는 등 나침반의 자침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외교 난맥상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

우선, 평양에 대한 올인 정책의 결과다. 모든 ‘판돈’을 평양에 베팅했던 문 정부의 남북관계는 과유불급 수준을 넘어 갑을 종속관계로 재편됐다. 북한의 압박으로 제정된 대북전단방지법과 9·19 군사합의 및 종전선언은 문 정부가 평양에 제공한 3대 종합 선물 세트였다. 통일부와 국가정보원은 물론 외교부·국방부 등 전 부처가 평양 바라보기 정책에만 몰입해 북한 이외의 국익을 달성하는 데 무관심했다. 외교·안보 부처 장·차관들이 임기 말 청와대의 종전선언 미션을 수행하느라 전 세계를 쏘다녔다. 프랑스 상원을 대상으로 종전선언 지지를 유도하는 작업이 대가 없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건 불문가지다.

또한, 문 정부는 동맹을 거래 수단으로 격하, 폄훼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치의 토대를 무너뜨렸다. 동맹의 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다. 청와대는 함께 피를 흘리고 싸운 동맹은 거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했다. 문 정부는 지난 5년간 어설픈 운전자론, 섣부른 중계자론으로 동맹의 품격을 내팽개쳤다. 지난해 5월 미국은 백악관 한·미 정상회담에서 6·25전쟁 참전 노병을 내세워 음수사원(飮水思源)의 메시지를 전했다. 현재 대한민국 자유·번영의 뿌리를 기억하지 않는 한국 지도자에게 던진 무언의 이벤트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 유엔이 지난 2일 긴급 특별총회에서 채택한 결의안에 141개국이 찬성했다. 중국과 인도 등 35개국은 기권했고, 북한 등 5개국은 반대했다. 김성 주유엔 북한대사는 총회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위기의 근본 원인은 미국과 서방의 패권정책에 있다”면서 “안보 보장을 해 달라는 러시아의 요구는 합리적이고 정당하다”고도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 침략을 미화하고 동조하는 북한의 주장은 결코 수용할 수 없다. 탄도미사일 발사를 우주 정찰위성 시험이라고 주장하는 북한은 평화를 위협하는 도발자가 틀림없다.

스트롱맨의 시대에 안미경중(安美經中) 같은 모호성은 폐기돼야 한다. 우크라 사태는 민주국가 대한민국에 외교의 현실을 직시할 것을 요구한다. 이제 전략적 모호성과 평양 올인 정책은 손절매해야 할 때다. 자유·민주·인권의 가치를 지키는 데 모호함이 없어야 한다. 대전환의 국제 정세를 맞아 과도한 평양 몰입 전략과 사드(THAAD) 추가 배치 반대, 미국 미사일 방어(MD) 체계 불참, 한·미·일 군사 협력 불참 등 대중국 3불(不) 정책을 고수하는 패착은 시정해야 한다. 가치와 국익이라는 양축으로, 균형이 무너진 외교를 정상화해 선진국형 외교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신냉전의 파고 속에서 국익을 수호하는 길을 고심해야 할 때가 왔다.

문화일보  

 

03월 10일  동맹·대북 정책 과감한 是正 필요하다

 김숙 前 駐유엔 대사

밤샘 개표 결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새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제는 후보가 아닌 대통령의 위치에서 국민과 약속대로 강한 집중력으로 산적한 국가 현안 해결에 매진해야 한다. 하루 감염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감염병 탈출 전략과 함께 지난 2년간 피폐해진 국민 경제와 허약해진 나라 살림을 살피는 일이 급선무라는 점은 누구나 동의한다.

그러나 복잡다기한 국가 운영에서는 단기적 화급성에만 매몰돼 중장기적 중요성을 놓치는 잘못을 범하지 않는 전략적 시각이 요구된다. 새 당선인은 멀리 내다보며 국가안보에 있어 미구에 반드시 닥쳐올 일들을 국정 운영의 높은 우선순위에 두는 자세가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요동치는 국제질서 재편 움직임에서 우리의 국익을 적극적으로 확보해 나가는 일이 큰 과제다. 지난 수년간 미·중 간 패권 경쟁으로 초래된 상황에 전략적 모호성으로 대응해 실패한 후과를 겪고 있는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복합적 도전 요소다. 규범에 근거한 국제질서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도전은 자유 대 비자유, 민주주의 대 전제주의, 선정 대 폭정, 이성 대 광기의 세기적 대결이고, 이 싸움의 승자가 21세기 남은 기간을 이끌게 될 것이다.

제2차 냉전은 이미 시작됐다. 새로운 질서의 변곡점에서 그동안 강대국 사이에서 눈치만 보는 동안 2류로 밀려난 한미동맹을 명실상부 강한 포괄 동맹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이제 좌고우면 말고 미국 중심의 인도 태평양 전략 구도에 적극 참여해, 쿼드(Quad), 오커스(AUKUS) 등과의 파트너십을 통한 안보의 외연 확장에 힘써야 한다.

다음으로, 북한과의 왜곡된 관계를 시정(是正)하는 일이다.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무작정 대화 추구와 북한 입장에 대한 끝없는 유화적 태도가 전부였다. 그 결과 남북관계는 주종관계로 전락했고,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이 방치됐으며, 평화통일 가능성은 더욱 멀어졌다. 맹목적 평화 추구가 정책의 유일한 목표이다 보니 무자비한 적에게는 전쟁의 공포가 유용한 무기로 변해 우리의 도덕적 무장 해제를 야기했다. 이제 잘못된 방향타를 바로잡아야 한다. 더구나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 수단으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함으로써 국제 핵비확산 체제를 흔들고 핵무기 사용의 문턱을 낮추는 위험한 상황이다. 우리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그동안 혼란스러웠던 종전선언, 제재 완화 추진 등의 상황을 말끔히 정리해 비핵화의 새로운 동력 확보와 한미동맹 강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와 함께, 통일의 소중한 대상으로서 억압받는 북한 주민의 자유 의식 고취를 위한 정책도 개발해야 한다. 국민통합과 협치의 정신에 따라 좋은 정책은 계승해야겠지만,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절연해야 할 게 더 많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 조치를 발표하면서 유가 상승이라는 고통은 자유 수호의 대가라고 했다. 우리는 다중적 위기 상황에서 새 대통령을 맞는다. 대통령의 임무는 끝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의 선택에는 어려움과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며 이를 헤쳐나가는 게 지도자의 운명이다.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의 성공을 기원한다.

문화일보

  

월간조선 03월 호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 반대했던 싱글러브 장군 타계

 “내 별 몇 개와 수백만 명의 목숨을 바꾼 것은 보람 있는 일”

1977년 5월 美 하원 군사小위원회에 출석했을 때의 싱글러브 장군. 사진=美 하원 군사소위

 

지미 카터 전(前) 미국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군(撤軍) 정책에 반대하다가 전역(轉役)당했던 존 싱글러브 전 유엔군사령부 참모장(예비역 육군소장)이 1월 29일 미국 테네시주(州)에 있는 자택에서 타계(他界)했다. 향년(享年) 100세.

고인(故人)은 CIA 창립 요원 중 한 명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미 CIA의 전신인 OSS(전략활동국) 요원으로 독일군 후방에서 프랑스 레지스탕스들과 함께 활동했다. 1945년 이후에는 만주, 라오스, 베트남 등지에서 특수공작요원으로 활약했다. 6·25 때는 대대장으로 김화지구전투에 참전했다.

고인이 한국인의 뇌리에 각인된 것은 1977년 5월 29일 자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 때문이다. 이 인터뷰에서 존 사르 기자는 고인에게 “귀하는 카터 대통령의 철군 계획이 전쟁을 부를 것으로 생각하느냐?”고 질문했다. 고인은 “만약 (카터의) 철군 계획대로 주한미군을 철수시킨다면, 그다음에는 반드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대답했다. 일개 육군 소장이 대통령의 정책에 정면으로 반기(反旗)를 든 것이다.


후일 고인은 자신이 그렇게 대답한 이유로 북한군의 전력(戰力) 증강에 대한 최신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었다고 술회했다. 즉 북한군은 1970년대 전반기에 대포와 전투기는 두 배, 장갑차는 세 배, 수륙양용차와 수송기는 네 배로 늘렸으며 휴전선 가까이에 공군 기지를 만들고 병력을 공격대형으로 전진 배치시켰는데, 미국은 1976년에 이르러서야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고인은 이런 상황을 모르는 카터가 1975년부터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대통령이 된 후에 군부(軍部)로부터 적절한 보고를 받으면 이를 취소할 것으로 기대했다고 한다.

사실 이 인터뷰 당시 고인은 “나는 철군에 반대하지만 만약 대통령이 그렇게 결정한다면 우리는 직업의식과 열성을 다해 이를 수행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존 사르 기자는 이 대목은 보도하지 않았다.


“기자는 제 발언을 정확히 보도”

신문 기사를 본 카터는 해럴드 브라운 국방장관에게 고인을 불러 직접 자신에게 데리고 오라고 지시했다. 함께 백악관으로 들어가기 전에 브라운 장관은 고인에게 “대통령을 만나면 모든 책임을 기자에게 전가(轉嫁)하라. ‘그런 말을 한 사실이 없고, 나는 철군을 지지한다’고 말하라”고 권했다. 고인은 이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장관께선 잘 이해하시지 못하는 것 같은데, 그 기자는 제 발언을 정확히 보도했습니다. 저는 제 생각을 모든 사람이 이해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고인과 카터와의 만남은 1시간30분이나 계속되었다. 발언 경위를 묻는 카터에게 고인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대통령의 권위에 도전한 것이 아닙니다. 그 발언을 한 시기는 한미 간의 철군 협의가 있기 전이었으므로 각하께서 정책을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철군 결정이 내려지면 이를 열심히 수행할 것이지만 제가 알기로는 그런 결정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군인은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를 보면 고인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항명(抗命)하려 한 것이 아니라, 직업군인으로서의 전문성과 양심에 바탕을 두고 대통령에게 올바른 보고를 하려는 충정에서 그런 발언을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카터는 고인에게 군부에 대한 문민(文民) 통제의 전통에 대해 강의하듯 길게 이야기했는데, 고인은 훗날 “그런 것들은 다 알고 있는 내용이므로 필요 없는 것이었다”고 술회했다.

카터는 고인을 처벌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대신 고인을 다른 부대로 전출(轉出)시키라고 지시했다. 그러는 사이에 하원 군사위원회 소(小)위원회는 고인을 불러 주한미군 철수 문제에 대한 그의 의견을 물었다. 이 자리에서도 고인은 주한미군 철수 불가(不可)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 소위원회는 나중에 한국을 방문해 현황을 살펴본 후 결국 주한미군 철수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이러는 과정에서 고인의 인터뷰 파문은 점점 더 커져갔다. 브라운 국방장관은 고인에게 한국으로 귀임(歸任)하지 말고 바로 조지아주 육군사령부로 부임하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었던 존 베시 장군이 반발했다. 결국 브라운 장관은 고인에 대한 성대한 환송 파티나 훈장 수여, 이임(離任)인사를 위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예방(禮訪) 등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고인이 한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음 임지로 가는 것을 허용했다.

 

때문에 고인은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지는 못했으나, 박 대통령은 사람을 보내 고인에게 위로와 감사의 뜻을 전했다. 고인은 이임을 앞두고 휴가를 얻어 일주일간 한국을 여행했는데, 가는 곳마다 그를 알아본 한국인들이 고맙다는 인사를 했고, 식당에 들어가면 일어나서 박수를 치곤 했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한국을 떠난 후 조지아주 육군사령부 참모장으로 전속(轉屬)되어 근무하다가 1978년 4월 다시 카터의 중성자탄 제조 연기, B-1 폭격기 생산계획 취소를 비판, 결국 전역당했다. 예편 후에는 서방목표재단(Western Goals Foundation)을 설립, 전 세계적 차원에서의 반공(反共)운동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이란-콘트라게이트에 연루되기도 했다. 말년에는 공산주의희생자기념재단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누군가는 잘못되었다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

주월미군사령관과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윌리엄 웨스트모어랜드는 고인을 “진정한 군사 전문가이자 정직하고 애국적인 신념과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고 했고, 헨리 하이드 전 미 하원의원은 “용감한 사람, 철저한 애국자, 예리한 관찰자”라고 했다.

고인은 후일 전인범 전 육군특수전사령관과 만난 자리에서 “유엔사령부 소속으로 한국 방어를 책임지는 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면서 “카터 대통령이 그런 결정을 했다면 누군가는 그것이 잘못됐다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언젠가 고인은 “그 바람에 더 높이 올라가지 못하고 별 둘로 예편된 데 대해 아쉬움은 없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내 별 몇 개와 수백만 명의 목숨을 바꾼 것은 보람 있는 일입니다.”

한국인들은 고인에게 큰 빚을 졌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월간조선 03월 호

 《슬픈 중국》의 저자 송재윤 교수

“北中은 운명공동체… 대한민국은 北中의 公敵”

⊙ “現 정권 핵심부의 中國觀은, 리영희가 뿌려놓은 편향되고 왜곡된 중국 인식 그대로”
⊙ “중국 인민의 편에 서서 中共 정부 비판해야”
⊙ “마오쩌둥, ‘강한 敵일수록 절대로 굽히지 말라’고 말해”
⊙ “中國夢은 一黨獨裁의 논리이자 구태의연한 覇權主義… 한국의 중국몽 동참, 용납되나?”
⊙ “외국에서 보는 대한민국은 최첨단 지식정보 사회이면서 낡은 이념에 포박당한 ‘자폐증 사회’

사진=조선DB

 

2022년 2월 4일 밤 9시(한국시각) 막을 올린 베이징동계올림픽에는 대한민국의 박병석 국회의장과 황희 문화체육부 장관이 참석했다. 서방권의 올림픽 보이콧으로 이날 귀빈석에 앉은 국가원수와 정부 수반, 왕실 관련 인사는 총 31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제외하면 나머지 인사들은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권 안에 있는 ‘스탄’ 국가들이 대부분이었다. 미국과의 동맹국 중 국가 서열 2위급 인사와 행정부 담당 장관을 동시에 파견한 나라는 한국뿐이었다.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5년 내내 대중(對中) ‘저자세 외교’로 일관했다. 집권 직후 중국에 ‘사드 3불(不)’ 약속을 했고, 2017년 12월 13~16일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 기간에는 10끼 가운데 6끼를 ‘혼밥’으로 때웠다.

중국의 홍콩 보안법 강행 통과와 신장위구르 인권 탄압, 왕이 외교부장의 문 대통령 어깨를 툭툭 치는 무례 등에 대해서도 논평이나 항의조차 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유례가 없는 ‘중국 눈치 보기’와 ‘친중(親中) 사대주의(事大主義)’의 극치였다.


《슬픈 중국》 3부작

송재윤 교수의 《슬픈 중국》 (1,2). 

 

송재윤(宋在倫·53) 캐나다 맥마스터대학(McMaster University) 역사학과 교수는 이런 행태를 ‘변방(邊方)의 중국몽(中國夢)’이라고 지적한다. 2018년 1월 2일 인터넷 매체 ‘펜앤마이크’에 ‘문혁춘추 : 현대중국의 슬픈 역사’ 연재를 하기 시작해 올해로 5년째인 그의 필봉(筆鋒)은 갈수록 예리해지고 있다. 그는 2020년 5월부터 《조선일보》의 인터넷판인 조선닷컴에 ‘송재윤의 슬픈 중국’을 매주 쓰면서 《조선일보》 칼럼니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그는 자신이 쓴 글을 모아 2020년 4월과 올 1월에 《슬픈 중국: 인민민주독재 1948~1964》와 《슬픈 중국: 문화대반란 1964~1976》을 각각 펴냈다. 《슬픈 중국》 3부작의 마지막 3권인 《대륙의 자유인들》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4쇄를 찍은 1권은 국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한국출판문화진흥원이 양서(良書)로 인정하는 ‘세종도서’로 선정됐다.

캐나다에서 강의와 연구 등으로 바쁜 송 교수가 한국인들에게 중국의 실상(實像)을 애써 전달하려는 이유는 뭘까. 그의 대답은 이랬다.

“2019년부터 시작된 홍콩의 자유화 운동과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를 대하는 중국 정부의 행태는 중국 정치체제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중국은 사서오경(四書五經)이나 《삼국지》 《수호지》를 아무리 반복해 읽어도 이해할 수 없다. 중국공산당 대장정(大長征)의 서사(敍事)를 접했다고 해서 실상을 알 수도 없다. 중국의 진짜 모습을 알려면 중국에서 살아가는 인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는 “구체적으로 중국의 14억 인민이 헤쳐온 최근 현대사의 굴곡을 들여다봐야 한다. 중국인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아픔을 느껴야 한다”며 “나는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약칭 중공) 성립 후 70년 동안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내건 중공이 ‘인민의 디스토피아’로 변해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권을 짓밟는 실상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했다.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한 송 교수는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테네시주립대학교를 거쳐 2009년부터 맥마스터대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동부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있는 맥마스터대는 1887년 창립됐고 사회과학과 의학이 유명하다. 학부생 2만7000여 명과 대학원생 4000여 명을 합쳐 3만1000여 명이 등록해 있다.


“세계시민의 관점으로 中共 과오 파헤치자는 것”

송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달 24일부터 6차례에 걸친 전화 및 이메일 교환 등으로 이뤄졌다.

― 한국민을 상대로 기획 연재를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세계시민의 관점으로 중국 인민의 편에 서서 중국공산당 정권이 저질러온 역사적 과오를 깊이 파헤치자는 것이다. 나의 저술은 중국의 치부(恥部)를 드러내려는 반(反)중국의 선전물이 아니다. 중국 현대사의 실상을 디테일을 살려서 핍진(逼眞)하게 기록하는 일이다.”

 

― 연재물과 책 제목 모두 왜 《슬픈 중국(A Sad China)》인가.
“중국 인민들이 1949년 이후 겪어온 슬프고도 슬픈 역사적 실상을 집중조명하고 있어서다. 제목은 집필을 시작한 시점부터 마칠 때까지 변함없는 나의 신념을 반영한다. 나는 중국 현대사에 관한 최신 연구 성과와 중국어 사료(史料)를 개미처럼 모아서 내가 알아낸 바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기록하고 상세하게 묘사한다.”



― 중국 인민들이 겪은 고통은 어느 정도였나.
“마오쩌둥(毛澤東)이 개시한 대약진운동(1958~1962년)에서 중국 인민들은 대규모 집단농장에서 국가의 농노(農奴)로 전락했다. 5년여 동안 굶거나, 맞거나, 일하다 지쳐서 숨진 인원만 최소 3000만 명이고 최대 4500만 명이다. 이는 세계 학계의 공통된 조사 결과이다. 1978년 12월 13일 당시 중공중앙 부주석 예젠잉(葉劍英)의 담화에 따르면, 문혁(文革) 기간 10년 동안 중국 총인구의 9분의 1에 달하는 1억1300만 명이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한국, 과도한 중국 찬양 범람”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2월 15일 베이징대 연설에서 ‘中國夢’에 한국도 동참하겠다는 주장을 했다. 사진=뉴시스 

 

―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왜 한국민을 상대로 매주 글을 쓰고 책까지 내는가.
“대한민국 대중에게 중국 현대사의 참혹한 역사를 정확하게 알리고 싶어서다. 중국공산당이 저지른 정책 실패와 인권 유린에 관해 세계 학계에 다양한 전문서, 학술논문, 심층 보고서가 산더미처럼 축적돼 있다. 그런데도 한국의 좌파 지식인들은 중국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특히 2015~2016년 1년간 한국에서 안식년을 보낼 때, 여러 언론매체에서 과도한 중국 찬양이 범람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 어떤 중국 찬양이었나.
“당시 한 종편방송은 몇 달간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를 칭송하고 중국의 정치체제를 미화(美化)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이 프로는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었다. 한 유명인은 언론 인터뷰에서 ‘오십 년 우방(友邦)인 미국보다 오천 년 우방인 중국 편에 서야 한다’고 말했다.”

― 방송 프로나 인터뷰 때문만인가.
“아니다. 더 결정적인 계기는 2017년 12월 베이징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은 높은 산맥의 나라이다. 한국은 작은 나라이지만 중국몽에 동참하겠다’고 말한 일이다. 어떻게 한국의 대통령이 이렇게 연설할까? 대통령의 개인 생각인가? 아니라면 누구의 작품인가? 나는 ‘세계 최첨단 국가 대한민국 정부의 정보력과 지력(知力)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나?’ 하는 실망과 좌절에 빠졌다.”
 

 

“한국의 中國夢 동참 용납되나?

마오쩌둥이 일으킨 문화대혁명은 172만8000여 명의 ‘非자연적 사망자’를 비롯해 2000만 명에 달하는 피해자를 냈다

 

송 교수는 “캐나다에서 언론매체를 통해 그 뉴스를 접한 이후, 나는 나의 모국어로 책을 써서 한국의 대중에게 중국의 실상을 알려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는 바로 다음 달부터 국내 매체에 연재를 시작해 지금까지 계속해오고 있다.

― 왜 한국이 ‘중국몽’에 동참하면 안 되나.
“시진핑 총서기가 직접 내린 정의(定義)를 보면, ‘중국몽’은 곧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다. 인류 보편가치와는 거리가 먼, 중국만의 예외주의, 중국우선주의, 중국특수주의이다. 중국몽은 또 중국인 개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제한하는 공산당 일당독재(一黨獨裁)의 논리이다. 주변국을 위협하고 압박하는 구태의연(舊態依然)한 패권주의(覇權主義)이다. 자유민주주의 주권국가인 한국이 ‘인류몽’이나 ‘한국몽’도 아닌 ‘중국몽’에 동참한다는 게 용납되는가?”

― 이들이 이러는 이유는 무엇인가? 중국과 마오쩌둥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인가.
“그렇다. 한국인이면 바로 옆 나라인 중국의 가장 문제적 인물인 마오쩌둥의 과오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대약진 운동과 문화혁명(약칭 문혁)은 마오가 저지른 최악의 역사적 과오였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거꾸로 마오쩌둥에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다.”

송 교수는 이어 말했다.

“몇 년 전 한 한국 기업 강의에서 마오쩌둥의 잘못을 조목조목 설명했더니 강연 후 한 중견 간부가 나에게 다가와 ‘그래도 마오쩌둥이 기근(飢饉)을 해결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마오는 과도한 집산화(集産化)의 광기(狂氣)로 최대 4500만 명을 아사(餓死)시켰는데, 어떻게 그가 기근을 해결했다고 말할까?”

― 많은 한국인은 문화혁명의 실상을 잘 모른다. 문혁은 어떤 사건인가.
“1966년부터 76년까지 10년간 진행된 문화혁명을 중국인들은 ‘10년 대호겁(大豪劫)’이라 부른다. 호겁이란 ‘커다란 겁탈’이라는 뜻이다. 대약진운동 실패 후 일선에서 물러난 마오쩌둥이 권력 탈환을 위해 치밀한 ‘대반란’의 시나리오를 썼다. 마오의 사주(使嗾)를 받고 10~20대의 홍위병(紅衛兵) 집단이 학살극을 벌였고, 이어 상하이(上海) 노동자 집단이 들고일어나 지방정부의 권력을 탈취하는 대규모 민란(民亂)이 이어졌다.”

송 교수는 “문화혁명은 인민재판, 집단 린치, 인격 살해, 무장투쟁, 계급학살, 대민(對民) 테러로 점철된 광란(狂亂)의 대반란이었다. 1981년 중국공산당이 인정했듯, ‘마오쩌둥이 일으키고 이끈’ 문혁은 1949년 이후 중국 인민이 겪은 가장 심각한 후퇴이자 손실이었다”고 했다.

― 문혁으로 인한 중국인 피해 규모는.
“중공중앙이 2년 7개월에 걸친 조사와 검증을 통해 1984년 5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문혁 10년 동안 172만8000여 명이 비자연적(집단 린치, 테러 등 포함)으로 사망했다. 13만5000여 명은 사형에 처했고 703만여 명이 부상을 당하거나 회복 불능의 불구가 됐다. 또 7만여 호의 가정이 파괴됐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을 포함하면 피해자가 2000만 명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확한 피해의 규모는 영원히 밝힐 수 없을지 모른다.”

― 지금 시점에서는 상상조차 힘든 대참사로 보인다.
“그렇다. 극단의 역사였다. 1978년 이후 개혁개방으로 중국은 40여 년에 걸쳐 경제성장을 이어갔지만, 중국공산당 일당독재라는 권위주의 정치체제는 동일하다. 중국 헌법 전문과 총강령 제1조는 ‘중국은 인민민주독재의 사회주의 국가’라 명시하고 있다.”


리영희, “마오쩌둥 사상은 善”

송 교수의 말이다.

“중국 인민들에게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등 표현의 자유는 극히 제한돼 있다. 사상, 종교, 양심의 자유도 보장되지 못한다. 거주 이전의 자유, 출산(出産), 양육 등 사생활의 자유도 제한된다. 노동자·농민의 나라를 표방하지만, 1982년 재개정 중국 헌법에는 ‘파업의 권리’(노동쟁의권) 자체가 삭제돼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나로선 중국공산당의 일당독재를 비판할 수밖에 없다.”


― 하지만 중공의 역사적 과오(過誤)를 지적하는 한국 지식인은 거의 안 보인다.
“한국의 상당수 지식인과 엘리트들이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가 심은 중국에 대한 환상에 아직 사로잡혀 있다. 언론사 외신부장을 거쳐 1972년부터 한양대로 옮긴 리영희는 《전환시대의 논리》(1974), 《8억인과의 대화》 《우상(偶像)과 이성(理性)》(이상 1977), 《10억인의 나라》(1983)를 썼다. 이 책들은 하나같이 중공을 찬양하며 긍정적 측면만 부각했다.”

1980년대 초반 대학 시절을 보낸 기자는 당시 가장 널리 읽혔던 《우상과 이성》을 다시 꺼내 읽었다. 이 책의 제3장 ‘현대 중국의 이해’에서 리영희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했다.(※쪽수 표시는 1980년 개정판 기준)

1. “마오쩌둥 사상의 본질은 인간주의이므로 서구식 인권이나 민주주의의 기준으로 평가해선 안 된다.”(90~98쪽)

2. “소련식 수정주의는 악(惡)이고 마오쩌둥 사상은 선(善)이다.”(103~111쪽)

3. “문혁 당시 류사오치가 겪었던 인격 살해의 과정은 ‘재교육’이다.”(91쪽)

4. “중국 혁명은 물질 생산보다 인간의 평등, 능률 향상보다 인간의 소외를 해소, 극복한다는 데 중점을 두었다.”(93쪽)

5. “중국사회주의 혁명은 이 순간에도 ‘웅장한 인류사적 실험’으로 진행 중에 있다.”(99쪽)

6. “마오쩌둥은 양자강에서 수영하고 극장 속에서 군중에 섞여 경극을 감상하고, 행사 때에는 군중 속에 섞여 들어가는 것으로 신격화라면 신격화를 완성했다.”(108쪽)

7.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은 제3세계 인민을 인도할 이념이다.”(153~160쪽)


“리영희는 관념론적 親中주의자”

리영희는 또 《8억인과의 대화》에서 소련 경제사 전문가인 기쿠치 마사노리(菊池昌典) 도쿄대 교수가 1967년에 중국을 돌아보고 와서 1971년에 쓴 글을 소개하면서 ‘마오쩌둥은 스탈린과 달리 사람은 죽이지 않는다고 단언했다’고 전했다(1977년 판, 330쪽). 문화혁명이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 일본인 교수가 잠깐 보고 와서 쓴 글을 문화혁명이 끝난 지 1년이 지난 시점에 수정 보완도 없이 중국의 진실(眞實)이라고 그대로 소개한 것이다. 송 교수에게 질문했다.

― 리영희 전 교수의 중국 관련 저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리영희는 여러 저작에서 1950년대 반우파(反右派) 운동과 1960~70년대 문혁 당시에 희생된 수많은 민초의 목숨에 대해선 일언반구 언급도 없다. 대신 문화혁명을 무작정 옹호하고 맹목적으로 칭송·미화한다. 예를 들어 그는 ‘마오쩌둥은 소련의 스탈린과는 달리 자기 혁명 동지를 죽이지 않았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송 교수는 “리영희는 중국 혁명을 미화하고 칭송한 관념론적 친중(親中)주의자였다. 그는 스스로 만든 중국 관련 신화(神話)가 그릇된 지식, 편향된 정보, 오도(誤導)된 확신이 빚어낸 일장춘몽임을 자각했지만 생전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변명조차 않고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 문제는 그를 아직도 정신적 구루(guru·스승)로 떠받드는 좌파 진영 아닌가.
“그렇다. 전대협 출신 주사파(主思派) 운동권들이 청와대를 비롯한 대한민국 중추기관에 포진해 있다. 현(現) 정권 핵심부의 중국관은, 리영희가 뿌려놓은 편향되고 왜곡된 중국 인식 그대로다. 맹목적 중국 찬양의 선전물(宣傳物)인 리영희 신화를 깨고 중국의 참혹한 실상을 제대로 봐야 한다.”

송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을 기회의 땅으로 미화하는 조정래의 판타지 소설 《정글만리》를 보면 미국 서부시대 골드러시(Gold Rush)가 연상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우리는 작은 나라이지만 중국몽에 동참하겠다’는 저자세(低姿勢)의 근저에는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과 마오쩌둥에 대한 맹목적인 흠모와 존경이 깔려 있다. 이는 구한말(舊韓末) 숭명(崇明)사상의 시대착오를 능가하는 기막힌 ‘변방의 중국몽’이다.”

그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좌파 진영의 중국 인식이 ‘모래 위에 누각’ 같다는 점이다. 1950~70년대 중국 현대사에 대한 세계 학계의 경험적 연구로 마오쩌둥의 권위는 완전히 무너졌다. 마오쩌둥을 칭송한 리영희의 권위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反美-親中-親北은 세쌍둥이”

― 1970~80년대 반(反)독재 투쟁을 벌인 이들과 그 후예들이 어떻게 중국공산당 독재를 용인하는 친중이 됐을까.
“한국 진보 진영과 중국공산당 사이에 커다란 정서적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현 정권의 핵심인 주사파 운동권은 과거 NL(민족해방노선) 계열이다. 이들이 신봉한 김일성 주체철학은 마오쩌둥 사상의 변종(變種)이다.”

― 무슨 뜻인가.
“마오쩌둥 사상은 인민대중의 주체역량, 사상개조, 자력갱생, 반외세(反外勢) 고립주의를 강조하는데, 김일성 주체철학은 여기에다 수령론(首領論)을 얹어놓은 전체주의 인격 숭배 이념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과 북한은 ‘운명 공동체’이다. 중국과 북한의 입장에서 미국 중심 자유 진영에 속한 대한민국은 그들의 공적(公敵)이다. 따라서 좌파 진영이 내세우는 반미(反美)와 친중(親中), 친북(親北)은 세쌍둥이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외국에서 보면, 지금 대한민국은 최첨단 지식정보 사회이면서 낡은 이념에 포박당한 ‘자폐증 사회’로 보인다. 많은 한국인은 거주·이전의 자유조차 제한하는 중공의 잘못에 침묵하고 동경하는 ‘정신 분열(schizophrenia)’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2017년 12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訪中) 당시 수행 기자단이 집단폭행을 당했어도 현 정부와 집권 세력은 꿀 먹은 벙어리였다. 툭하면 반미 시위를 벌이는 시민단체들도 반중 성명서 하나 내지 않았다. 이런 현상의 원인을 묻자, 송 교수는 세 가지를 꼽았다. 그의 분석이다.

“먼저 ‘황색인종주의’ 요인이다. 19세기 후반 서구의 충격 속에서 전통질서가 해체될 때, 조선인들은 중국과 일체감을 보이며 위정척사(衛正斥邪)에 사로잡혔다. 중국 아래 조선, 조선 아래 일본, 그보다 더 아래에 금수(禽獸) 같은 서양 오랑캐가 있다는 중화적(中華的) 세계관의 연장이다. 한국의 민족주의가 대중(對中) 적개심으로 잘 표출되지 않는 밑바닥에는 황인종의 동류의식 같은 게 깔려 있다. 이는 인간의 보편성에 눈감는, 낡은 19세기적 사고방식이다.”

― 또 다른 요인을 꼽는다면.
“한국 지식인들의 반(反)자본주의 내지 사회주의 성향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도덕관은 ‘천리를 지키고 인욕을 없애라!(存天理滅人欲)’는 경구로 압축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개인주의, 이윤추구, 사적 소유의 추구는 곧 세속적 탐욕주의, 물질주의이다. 성리학이 자본주의와 결합되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런 문화적 배경에서 20세기 한국 지식인들에게 미국식 자본주의는 낯설거나 부담스러울 수 있었다.”

송 교수는 마지막 요인으로 1940년대 초반 태평양전쟁 시기 일제에 의해 주입된 ‘귀축미영(鬼畜米英)’ 혹은 ‘귀축미국(鬼畜米國)’이란 슬로건을 꼽았다.

“귀축이란 불교용어로 아귀(餓鬼)와 축생(畜生)을 뜻한다. 미국이 아귀와 축생, 곧 죄악을 저지르는 사악하고도 열등한 종족의 나라라는 의미이다. 일본 군국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은 이 ‘귀축미영’의 이데올로기를 공유(共有)했다. 해방 후 ‘소련은 해방자, 미국은 점령군’이라는 선전이 먹혀들었던 밑바탕엔 일제(日帝)의 이런 유산(遺産)이 깔려 있다.”

 

“중국에 아부하면 역효과”

―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1년 6월 미국 ‘퓨리서치 센터’의 조사를 보면, 한국인의 반중(反中) 감정은 77%에 달했다. 왜 이렇게 달라진 걸까.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사람들은 인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인권을 탄압하는 중국공산당의 일당독재를 절대로 좋게 생각할 수가 없다. 2018년 1월 《슬픈 중국》 연재를 시작할 때만 해도 한국 사회에는 친중 정서가 더 퍼져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국은 ‘반중의 나라’로 바뀌었다. 한국의 반중 감정은 갑자기 삐져나온 돌발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에 만연해 있던 친중 사대주의가 기현상(奇現象)이다.”

― 한국에서 ‘반중 감정’은 언제 어떻게 낮아질 수 있을까.
“무엇보다 중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바뀌어야만 한다.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 두광(杜光·1928~) 교수가 말하듯 시대착오적인 중국공산당 일당독재와 구태의연한 황제 리더십이 폐기되고 자유·민주·헌정(憲政)이 실현돼야만 한다. 그럴 때 중국 정부가 입으로 떠드는 ‘인류 운명공동체’의 성원이 된다.”

― 많은 한국 전문가는 중국의 문제를 알면서도 침묵하거나 중국의 압력에 굴복하고 있다.
“중국의 비행(非行)에 침묵하고 아부를 한다면, 중국인들이 좋아할 것 같은가? 오히려 역효과만 난다. 세계인의 관점에서 중국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지적하고 해결책을 제시할 때, 오히려 중국인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그는 “오늘날 진정으로 중국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중공과 ‘관시(關係)’를 터서 이득을 챙기려는 아첨꾼이 아니라 인류의 관점에서 중국의 문제를 지적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비판자이다. 진정 우리가 중국인과 공감하려면 더더욱 중국 인민의 편에 서서 중공 정부를 비판해야 한다”고 했다.


맥마스터대, 공자학원 폐쇄

▲서울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공자학원 퇴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한민호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 캐나다 등에서는 이미 공자학원이 퇴출되고 있다. 사진=한민호 제공

 

― 중공을 비판했다가 역풍(逆風)이나 역공(逆攻)을 당하지 않을까.
“10년 전 중국을 방문했을 때, 한 중국인 교수가 내 앞에서 ‘한국은 작은 나라다!’고 무례한 언사를 내뱉었다. 그때 나는 웃으면서 ‘인구로 한국은 세계 193개 국가 중 28번째로 큰 나라다. 한국이 작은 나라가 아니라 중국이 특별히 지나치게 큰 나라’라고 받아쳤다. 이어 ‘유럽의 복지국가들을 보면 대부분 중국의 일개 성(省)보다 훨씬 작지만, 인민의 생활 수준은 비할 바 없이 높다’고 했더니 그 교수가 ‘한국이 그렇게 큰 나라인 줄 정말 몰랐다’며 꼬리를 내렸다.”

송 교수는 이어 말했다.

“마오쩌둥은 강한 적(敵)일수록 절대로 굽히지 말라 했다. 어린 시절 몽둥이를 들고 쫓아온 아버지를 보고 ‘연못에 뛰어들겠다’고 소리치자 아버지가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그때 마오쩌둥이 터득한 게릴라 전술의 심술(心術)이다. 중국인들은 모두 그런 얘기를 듣고 자란다. 한국이 중국을 대할 때 마오쩌둥식(式) ‘게릴라전의 지혜’를 적극 활용해야지, 문재인표 ‘꼬리 낮추기’를 하면 짓밟히고 만다.”

그는 자신이 거주하는 캐나다에서 중국공산당의 스파이 침투와 공작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맥마스터대학에서 중국 문제와 관련해 두 개의 큰 이슈가 터졌다. 먼저 2013년 3월 공자학원의 폐쇄를 결정한 사건이었다. 2011년 중국에서 파견됐던 중국인 강사가 캐나다 정부에 망명을 신청한 후, 최초 고용 계약에서 대학 당국이 정치적·종교적 표현을 제한했다는 이유로 주정부 인권위를 통해서 대학에 소송을 걸어왔다. 이에 대학 당국은 토론을 거쳐 북미에서 최초로 공자학원의 폐쇄를 결정했다.”

― 또 다른 사건은 어떤 것이었나.
“2019년 9월 맥마스터대학 학생회는 캠퍼스 내 ‘중국인 교수·학생 동우회(CSSA)’에 대해 정식 클럽의 자격을 정지하고 모든 혜택을 박탈했다. 그해 2월 캐나다 주재 위구르족 출신 무슬림 활동가 투루두쉬(Rukiye Turdush)가 맥마스터대학 캠퍼스에 와서 강연회를 했다. 그때 CSSA 회원들이 몰려가 무단촬영을 하고 소리를 지르며 강연을 방해했다. 투르두쉬는 학생들이 중국 정부의 사주를 받았다고 고발했다. 이에 맥마스터대 학생회는 마라톤 토론을 거쳐 CSSA의 클럽 자격을 박탈했다. CSSA는 항소했지만, 그해 11월 초 항소심에서 패했다.”

그는 “두 사건 모두 (캐나다와 중국 간의) 타협 불가능한 상이(相異)한 체제의 충돌임을 알 수 있다. 표현의 자유를 신성시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캠퍼스에 위구르족 활동가를 불러 강연을 듣는데, 중국 정부와 긴밀히 연결된 중국인 학생 조직이 방해한다면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 미국과 중국의 전면적 경쟁이 세계적 이슈이다. 어떻게 진행될까.
“미중(美中) 대결은 이제 막 시작됐다. 이 싸움은 자유민주주의적 세계 질서와 이에 맞서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싸움이다. 절대 쉽게 끝날 싸움이 아니다. 2020년 6월 24일부터 7월 23일까지 한 달간 미국 행정부 장관 네 명이 중국을 비판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보좌관과 크리스 레이 FBI국장, 윌리엄 바 법무장관에 이어 마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중국공산당의 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송 교수는 “이는 명실공히 미국의 대중(對中) 이념전쟁 선전포고이다. 이런 강경한 대중 압박의 외교 및 군사전략 노선이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中共의 全體主義

― 중공은 디지털 감시를 접목해 전체주의 통제를 계속 강화하고 있다.
“최근 개막한 베이징동계올림픽부터 중공의 전체주의(全體主義) 체제 성격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서 ‘전체주의’란 정부가 합법적으로 막강한 행정력을 발휘해서 개인의 자유를 침탈할 수 있는 체제를 말한다. 중공 정부는 근대국가의 재래식 행정력에 디지털 감시체제까지 갖춘 강력한 전체주의 대민(對民) 감시체제를 완성했다. 코로나19 방역을 명분으로 막강한 행정 인프라를 활용해 대민 지배력을 확장하고 있다.”

그는 “세계 어떤 국가도 1~2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고 수백만이 살고 있는 도시 전체를 봉쇄하는 무지막지한 방역 정책을 실시한 사례가 없다. ‘제로(zero) 코로나’는 중공이 중국 사회 전체에 대한 ‘토털 컨트롤(total control)’ 망상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 한국 지식인과 엘리트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한반도 이북의 북한은 전체주의 세습왕정 지배 아래 세계 최빈국(最貧國)으로 전락해 있는 반면, 대한민국은 한미(韓美)동맹에 힘입어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고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자유와 개방이야말로 선진국 대한민국을 만든 최상의 발전전략이자, 인류 보편의 가치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도 틈만 나면 친일파(親日派) 사냥을 일삼고, 북한의 김씨왕조와 함께 ‘우리민족끼리’만을 외쳐대는 집단이야말로 한국 현대사의 진정한 ‘수구(守舊) 세력’이다.”


“한국, 쿼드 가입해야”

― 올해 5월 출범하는 대한민국 새 정부의 외교와 관련해 조언한다면.
“미국이나 중국에 대한 대통령의 외교적 과공(過恭)은 의전상의 비례(非禮)를 넘어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이다. 한국은 무엇보다 미국·일본과의 공조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특히 한미동맹이 흔들리는 순간, 대한민국은 끈 떨어진 연(鳶)의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경제 규모 세계 10위의 대한민국이 반일(反日)주의와 반미(反美) 정서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차기 정부는 미중(美中) 사이에서 ‘이념적 방황’을 멈추고 헌법 정신대로 자유민주주의를 확립해야 한다. 인류의 보편가치에 맞게, 대한민국 헌법 정신에 따라 ‘쿼드(QUAD)’를 ‘펜타(PENTA)’로 확대하는 자유의 동맹에 동참해야 한다. 나아가 대만, 호주를 잇는 국제 공조의 환(環)태평양 벨트를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은 대(對)중국 외교에서 우위를 점하고 당당하게 국익을 신장할 수 있다.”

송 교수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강조했다.

“한국 현대사는 지구 끝까지 뻗어 나가 세계 대다수 나라와 경제적 공조를 강화해온 드라마틱한 확장과 혼융의 과정이다. 세계적 네트워크 국가인 대한민국 정부가 친중 사대주의를 택할 수는 없다. 전 세계가 한국 정부의 선택을 지켜보고 있음을 망각해선 안 된다.”⊙

글 : 송의달 조선일보 선임기자 edsong@chosun.com

 

03.11  민주주의 국가간 연대, 한국엔 전략적 자산

▲지난달 4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다정한 표정으로 인사하고 있다. 당시 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침공 계획을 중·러가 공유했는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 사태로 ‘독재 vs 민주’ 격화

새 정부, 전략적 모호성 재고해야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명분 없는 잔혹한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세계 강국들을 향해 자유와 도시를 지키려 저항하는 우크라이나를 도우라는 목소리가 높다. 강자 편에 설 것인가, 정의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지정학상 무관한 일이길 바라며 미적대고 눈치를 볼 것인가. 문재인 정부의 평화협정 체결에 대한 순진한 희망과 전략적 모호성에 대한 집착은 이제 밀물에 쓸린 모래성이 될 것인바, 한국의 새 정부는 새롭게 직면할 다음 네 가지 현실에 바탕을 둬 정책을 강구해야 할 듯하다.


첫째, 중·러 관계의 견고성이다. 일부 중국 학자들은 중국 정부도 러시아의 침공에 당혹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막 전 푸틴과 시진핑은 온종일 서구에 대한 대처를 놓고 전략 회담을 했다. 두 정상은 앞서 29차례 농밀한 회담 뒤 무한한(no limit) 양국 관계를 담은 공동성명을 냈다. 둘은 강력한 이념적 기반과 내부 불만에 대한 두려움, 민주주의 진영 및 미 동맹국에 대한 경멸로 결속돼 있다. 중국이 중재 역할을 할 것이란 얘기도 나오지만, 결국 중국은 나토 확장 중단 등 러시아 측 요구만 전달할 것이다. 러시아 편 일색인 관영 매체 보도가 바로 중국 지도부의 입장이다. 푸틴의 침공이 실패하지 않도록, 또 중국 혼자 서방에 맞서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세컨더리 보이콧'(제재 국가와 거래하는 제3국 기업 등에 대한 제재)을 안 받는 선에서 중국은 어떤 행동이든 할 것으로 백악관은 예상한다. 중국에 러시아는 전략적으로 북한보다 더 중요하다.


둘째, 중국이 이럴수록 미국, 유럽, 아시아의 주요 민주 국가들과의 마찰은 더 커진다는 점이다. 중국의 암묵적인 푸틴 지지는, 독재와 민주 체제 간 전선이 커지고 있다는 바이든의 주장을 더 타당하게 할 뿐이다. 지금은 추축국과 연합군이 2차 세계대전을 향해 싸워가던 1940년이 아니긴 하지만, 미·중 갈등은 어쨌거나 더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셋째, 독재 정권들의 움직임이다. 북한과 미얀마는 재빨리 푸틴 편에 서서 나토와 미국을 비난했는데, 러시아가 전례 없는 경제 제재를 받게 된 상황에서 중국, 러시아가 자신들을 더 지원할 것이란 기대에서다. 지정학적 변화의 시기를 틈타 북한은 탄도미사일 실험에 더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일부 인사들은 러시아,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는 문재인 정부 내내 한 번도 먹히지 않은 발상이다. 효과도 없을뿐더러 한국 입장에도 손해만 입힐 것이다.


넷째, 주요 민주주의 국가들의 연대 강화다. 바이든 행정부는 나토 및 아시아 동맹국의 협력을 끌어내 푸틴을 압박함으로써 찬사를 받고 있다. 최근 백악관 특사로 대만에 갔을 때 차이잉원 정부는 이런 국제적 협력이 대만 안보에 직결됨을 인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북한 도발을 억지하고 언젠가 도래할 북한 재건을 위해선 국제적 자원과 결의가 필수적이다. 한국 정부는 민주 국가 간의 전례 없는 협력을 부채나 골칫거리로 보지 말고 전략적 자산으로 여겨야 한다.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8일 오전 서울도서관 외벽에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는 꿈새김판이 게시됐다. 강정현 기자

 

이런 지정학적 지각 변동의 중요성을 한국이 간과하는 것 같다. 일반 시민의 연대 및 지지와 달리 청와대의 태도는 모호하다. 독일·호주 수준의 적극적인 러시아 제재나 우크라이나 군사 원조를 하지 않고 있다. 대선 후보들도, 문재인 대통령도 1950년 한국전쟁 때 약소국조차 대한민국 편에 섰듯 이제는 어떤 나라보다 한국이 우크라이나 국민 편에 설 차례라고 당당히 선언했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 5년, 한국은 민주 국가들의 결속 흐름에서 떨어져 있었다. 새 정부는 그간 한국이 보여온 전략적 모호성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03.17  ‘3不 이행’ 경고장 날린 中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 마련된 당선인 사무실에서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에게 시진핑 중국국가주석의 축하 서신을 전달받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진짜 공약대로 한대요? 그러면 중국이 한국에 대해 무역 보복을 할 수 있어요. 사드 이상으로.”

중국 전직 언론인 A는 윤석열 후보의 당선 후 자국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또 다른 중국인 지인은 기자에게 “윤 당선인이 친미(親美) 반여권(反女權)주의자라던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베이징에선 박근혜·문재인 대통령 당선 때 같은 달달한 기대감을 찾기 어렵다.

 

중국 관영 매체는 경고부터 날리고 있다. 관영 환구시보는 사설을 통해 윤 당선인에게 ‘사드 3불(不)’을 계승하라고 주문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 방중을 두 달 앞두고 사드 추가 배치, 미국 미사일 방어망(MD), 한·미·일 군사동맹을 안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게 이른바 ‘3불’이다. 3불 협상 당사자인 남관표 전 주일대사 등 문 정부 인사들은 3불이 정부 입장을 설명한 것이지 ‘약속’은 아니라고 강조했었다. 그런데도 환구시보는 “3불은 한·중 상호 존중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안보 환경에 따라 정부의 입장은 달라질 수 있고, 달라져야 한다. 한국 안보 상황은 2017년보다 더 악화됐다. 북한은 추가 핵실험만 하지 않았을 뿐 방어가 어려운 초음속 미사일, 다(多)탄두 탄도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새 정부가 실제 사드를 추가 배치할지는 결국 북한의 도발 여부에 달렸다.

 

한국의 안보 위험에 대해 무감각한 모습을 보여온 중국의 책임도 크다. 올 들어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수차례 발사하는 동안 중국은 북한을 비판하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의 안보 위험을 강조하고 제재 해제를 주장했다.

북한은 이제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발사할 태세다. 박근혜 정부가 사드 배치를 최종 결정하게 된 계기는 2016년 1월 북한 4차 핵실험 직후 박 대통령의 전화를 시진핑 국가주석이 피했기 때문이었다. 한국 젊은 층에서 반중(反中) 감정이 커지는 근원은 북한의 도발을 감싸는 중국의 태도 때문이라는 해석에 동의한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 정책연구소 소장은 “중국과의 관계 설정이 향후 5년 한국 외교의 최대 과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윤 당선인이 공약한 사드 추가 배치나 쿼드 가입 검토는 메가톤급 이슈들이고, 면밀히 검토를 거쳐 결정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중국에 우리의 원칙을 분명하고 일관되게 전달해야 한다.

 

윤 당선인의 측근인 권영세 의원은 사드 배치 직전 주중 대사를 지낸 지중(知中)파다. 권 의원은 2020년 한 인터뷰에서 사드 배치가 불가피했다면서도 한·중 간 협의는 아쉽다고 회고했다. “중국이 북한 핵·미사일에 대해 압박해 준다면 (한국이) 미국과 이야기해서 사드 배치를 연기시킬 수 있다는 내용으로 협의를 했어야 했다.” 같은 사안도 외교적으로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야당과의 소통도 중요하다. 중국은 한국 여론이 갈라진 틈새를 집요하게 파고들 것이다. 사드 사태의 아픈 교훈이다.

조선일보  베이징=박수찬 특파원

 

03.28  북 ICBM 규탄 반대 시진핑, 사드 추가 배치도 반대 말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5일 시진핑 중국 주석과 첫 통화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실현과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양국이 긴밀히 협력해 나가자"고 했다. /연합뉴스

 

유엔 안보리가 북한 ICBM 발사를 규탄하는 언론 성명을 내려 했으나 중국·러시아 반대로 무산됐다. 윤석열 당선인이 시진핑 중국 주석과 첫 통화에서 북 전략 도발을 우려하며 양국 협력을 당부했는데도 중국은 곧바로 북한 편을 든 것이다. 유엔 주재 중국 대사는 북 도발이 ‘한미 연합 훈련을 중단하지 않은 미국 때문’이라고 했다. 한미 훈련은 2018년 남북, 미북 쇼 이후 사실상 없어졌는데 무슨 소리인가.

 

북한은 이번에 바퀴 22개가 달린 이동식 발사대(TEL)에서 ICBM을 쐈다. 초대형 다축(多軸) 트럭과 미사일 연소관을 만드는 탄소섬유, 고강도 알루미늄 등 핵 관련 부품 등은 대부분 중국을 통해 수입된다. 중국이 핵·미사일 관련 물자의 북한 유입만 안보리 약속대로 통제했어도 김정은의 “핵 무력 완성” 선언은 불가능했다. 중국은 명백히 북핵의 ‘공범’이다.

 

중국 선전 기관은 2017년엔 ‘미국이 북핵 시설을 타격해도 중국의 군사 개입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미·중 충돌이 본격화하자 180도 돌변했다. 북이 핵·미사일 전력을 대놓고 증강하는데도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했다. 시진핑은 김정은과 다섯 차례 만나며 고비마다 ‘뒷문’을 열어줬다. 북의 핵 개발을 ‘미국 탓’으로 돌리며 북한 비핵화를 장기 과제로 만들었다. 북핵을 미⋅중 패권 경쟁의 카드로 쓰고 있는 것이다.

 

그 사이 북한은 한국 방공망을 뚫을 수 있는 신형 탄도미사일 3종 세트를 개발했다. 여기에 ICBM이나 IRBM(중거리 탄도미사일) 등을 고각 발사해 섞어 쏘면 방어는 더 어려워진다. 김정은은 실전에서 쓸 수 있는 ‘전술핵’ 개발까지 공언했다. 유사시 생존하려면 사드 추가 배치 등으로 다층 요격망을 구축하고, 동맹 및 우방국과 군사 협력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윤 당선인이 대선 중 ‘사드 추가’와 ‘한·미·일 군사 협력’을 언급하자 중국은 반발했다. 일각에선 ‘보복’까지 거론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국민 생명과 주권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 정부 책무는 없다. 북 핵·미사일이 계속 고도화하면 한국 정부는 사드 추가나 군사 동맹보다 더한 조치도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싫으면 중국은 북이 도발해도 ‘뒷문’을 열어주는 행태부터 중단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3.30  임기 말 ‘평화 쇼’의 종말, 美 ‘한반도 법안’도 물건너 간다

미국 연방 하원에 발의돼 있는 ‘한반도 평화 법안’은 한국 여권(與圈)이 지난 5년간 ‘평화’ ‘남북 대화’를 어떻게 다루고 이용해왔는지 잘 보여준다. 발의 과정부터 여론 조성, 홍보까지 정부가 한때 치적으로 내세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똑 닮았다.

 

이 법안은 한국전쟁 종전 선언, 평화협정 체결, 이산가족 상봉 등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임기 말 대선용 ‘남북 이벤트’에 목매던 문재인 정부가 두 손 들고 환영할 만한 것들이 ‘패키지’로 들어갔다. 공교롭게도 작년 5월 문 대통령과 바이든 미 대통령 간 첫 정상회담이 열리기 하루 전날 발의됐다.

 

사실은 문 대통령 대학 후배가 대표로 있는 미주 한인 단체가 미 민주당 의원들을 접촉해 이 법안을 추진했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 김경협·윤건영 의원 등 여권 핵심 인사들이 이 단체 ‘연사’로 등록돼 있다. 법안 발의 다음 날 민주당 의원 전원과 정의당 등 범여권 의원 186명이 단체로 환영 입장문을 발표했다. 일사불란했다. 워싱턴에서 “한국 정권이 막후에서 주도한 법안”이란 말이 나온 이유다.

 

그런데 정작 발의 이후 김이 빠졌다. “법안 통과가 목적이 맞느냐”란 생각이 들었다. 법안 통과율이 3% 남짓한 미 의회에서 ‘기계적 중립성’을 갖추는 것은 기본이다. 지지 의사를 밝힌 의원들의 민주·공화 비율을 맞추는 것이 필수라는 것이다. 다른 당 의원의 지지를 구하기 위해 발의를 1년간 미루는 경우도 봤다. 그런데 지지 서명을 한 의원 총 37명 중 공화당 소속은 단 1명이다. 나머지 36명도 민주당 내 주류와 거리가 있다.

 

법안이 ‘당파성’을 띠기 시작하자 작년 12월 공화당 의원 35명은 ‘비핵화 약속 없는 종전 선언에 반대한다’고 했다. 특정 법안에 단체로 반대 성명까지 내는 건 이례적이다. 법안 통과는 더욱 요원해졌다는 소리다.

 

더 큰 문제는 초당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이산가족 상봉’ 같은 문제마저 이 법안에 포함돼 ‘당파적 이슈’로 간주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민주·공화 의원들이 별도로 발의해 이산가족 상봉을 촉구하는 법안이 이미 하원을 통과했는데, 불똥을 맞을 처지다. 문제 법안을 공동 발의한 한 민주당 의원은 최근 지역구민들에게 “종전 선언이 아니라 이산가족 상봉에만 동의한 것이었다. 법안 수정을 요구하겠다”고 했다.

 

이런데도 여권은 얼마 전까지 “법안 통과 어렵지 않다” “초당적 지지를 얻고 있다”며 사실과 다른 말을 해왔다. 대선 국면서 “문 정부 평화 정책에 미국이 호응하고 있다”고 뽐내고 싶었을 것이다. 친여 매체들도 앞다퉈 ‘공공 외교의 활약’이라며 치켜세웠다. 현실은 ‘빈 껍데기’로 끝날 처지다. 이 과정을 지켜본 워싱턴 인사는 “마지막까지 ‘평화 기만 쇼’를 한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조선일보  워싱턴=이민석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