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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조선일보) 2022-03/ 03.01(화) 인터넷 전쟁 중계 - 03.31(목) 촉법소년

상림은내고향 2022. 4. 3. 11:42

만물상(조선일보) 2022-03/

03.01(화)  인터넷 전쟁 중계

“아마도 마지막 글이 될 것 같다. 사이렌이 온 동네에 울리고 있다. 오늘 하루는 친구와 술을 진탕 마시고 취할 것이다. 그리고 입대하겠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 24일 우크라이나 청년이 영어권 최대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에 올린 글이다. 전쟁터로 가는 사내가 아내와 어린 딸을 부둥켜안고 함께 눈물 흘리는 모습도 인스타그램을 타고 전 세계에 타전됐다. “마음이 아파서 끝까지 볼 수 없었다” “푸틴을 규탄한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인류가 전쟁을 생중계한 것은 1991년 걸프전 때가 처음이다. 인공위성 덕분이었다. 러시아의 침략으로 전쟁터가 된 우크라이나에선 인공위성 대신 휴대전화가 전쟁 현장을 실시간 중계한다. 미사일 폭격으로 공항, 무기고, 고층 아파트가 파괴되는 참상에 소름이 돋는다. 공포와 분노를 토로하거나 투쟁을 다짐하는 우크라이나인들 목소리도 생생하다.

 

▶소셜미디어에선 총성 없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러시아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국외로 탈출했다는 가짜 뉴스를 퍼뜨렸다. 젤렌스키는 수도 키예프의 한 성당을 배경으로 휴대전화 ‘셀카’ 동영상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림으로써 받아쳤다. 대통령이 철모를 쓰고 병사들과 함께 전장을 누비는 모습도 ‘업로드’했다. 조회 수가 단숨에 수백만 건 치솟았다. 시민들은 항전 의지를 불태웠고 전 세계에서 응원이 쇄도했다.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에선 한 여성이 중무장한 러시아 군인들에게 다가가 “네가 죽으면 우크라이나 땅에 해바라기가 자랄 수 있도록 주머니에 해바라기 씨를 넣어 두라”며 꾸짖었다. 러시아 군인의 피로 우크라이나 국화인 해바라기의 양분을 삼겠다는 여성의 엄포가 휴대전화에 찍혀 전 세계로 퍼졌다. 휴대전화는 군사 기밀도 뚫는다. 휴대전화 위치 추적 서비스와 연계된 구글 지도에 침공 당시 러시아군 차량이 국경 넘는 상황과 우크라이나 군 시설, 도로를 포위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포착됐다. 러시아는 자국 군인의 참전 사실을 가족에게 숨겼다. 가족들은 아들과 형제의 소셜미디어 계정이 꺼져 있으면 울부짖는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 포로들 모습을 텔레그램에 공개하며 러시아 내 반전 여론을 확산시키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항전을 막으려 인터넷 접속 차단에 나서자 일론 머스크는 초고속 인터넷 통신위성 서비스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에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러시아 국영방송 채널 4곳을 제재했다. 휴대전화와 소셜미디어가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항전 무기로 떠올랐다.

김태훈 논설위원

 
 

03.02  푸틴의 정신 건강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탄탈로스는 제우스의 아들이자 리디아 왕이다. 신의 혈통과 세속의 권력을 함께 가졌다는 자신감이 지나쳐 오만(傲慢)해졌다. 신의 능력을 시험하겠다며 자기 아들을 죽여 짐승 고기라 속이고 신들의 식탁에 올렸다가 파멸한다. 탄탈로스가 저지른 죄를 신화에선 휴브리스(hubris·오만)라 한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인간 본성의 약점인 휴브리스를 권력의 의미로 재해석했다. ‘역사를 바꾸는 데 성공한 소수가 성공으로 인해 교만해져 남의 말에 귀 막고 독단에 빠져 판단력을 잃는 상태’라고 했다. 심리학에선 아랫사람을 자기 뜻대로 부리는 데 익숙해진 권력자는 신이 된 것 같은 전능감을 맛본다고 설명한다.

 

 

▶역사상 수많은 권력자가 휴브리스의 덫에 걸렸다.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는 부하가 자기 말에 토 다는 것을 참지 못했다. 술자리에서 다른 의견을 냈다는 이유로 생사고락을 함께한 장군조차 창으로 찔러 죽였다. 로마 황제 칼리굴라는 스스로 제우스 신이라 믿었다. 로마 곳곳에 자신을 기리는 신전을 짓고 동상을 세웠다가 근위대 손에 목숨을 잃었다.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분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영국 더타임스는 푸틴이 ‘휴브리스 증후군’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절제되지 않는 분노, 독단적 의사결정, 과대망상 등 휴브리스 증후군으로 의심할 만한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후해 TV 등장한 푸틴은 냉정함을 잃고 화를 냈다. 자신이 모든 러시아어 사용자의 운명을 결정하는 ‘21세기 차르’라는 과대 망상증에 빠졌다는 지적도 있다.

 

▶푸틴의 불안한 정신 상태에 대한 지적은 처음이 아니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침공하자 미 국방부는 푸틴이 자폐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병을 앓으면 타인의 표정이나 몸짓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독재자는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심리 상태에 쉽게 빠지는데, 푸틴도 우크라이나를 단숨에 굴복시키지 못하는 것을 치욕으로 여긴다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판단력 흐려지고 쉽게 흥분하는 푸틴 손에 핵가방이 들려 있는 상황에 백악관이 긴장하고 있다”고 했다.

 

▶오만의 죄를 범한 탄탈로스는 원하는 것을 아무것도 갖지 못하는 타르타로스 연못에 갇혔다. 과일을 먹으려고 손을 위로 올리면 나뭇가지가 위로 올라가고 물을 마시려 몸을 숙이면 수위가 낮아졌다. 국제사회가 바라보는 푸틴의 모습이 바로 그 꼴이다. 그가 침략의 광란극을 계속할수록 타르타로스 연못에 더욱 깊숙히 빠져들어 끝내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03.03  사탄의 마차

하르키우는 우크라이나 제2 도시다. 지난 1일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민간인 수십 명이 죽거나 다쳤다. 시 청사가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이는 장면이 전 세계로 퍼졌다. 외신들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민간인 주거지를 무차별 공격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군 행렬엔 ‘사탄의 마차’ ‘악마의 무기’라 불리는 열압력탄 발사 차량이 눈에 띈다. 도시 말살용 무기다. 푸틴은 과거 체첸에서 이 무기를 쏜 전례가 있다.

 

 

▶1994년 당시 옐친 대통령은 체첸의 분리 독립을 저지하고자 기계화 군을 보냈다가 처참하게 패퇴했다. 전차 62대와 장갑차 163대를 잃었다. 체첸 수도 그로즈니 진입 60시간 만에 장갑차 42대와 전차 20대를 잃고 전멸한 여단도 있다. 구조적으로 전차 포로는 높은 곳에 있는 적을 쏘지 못한다. 체첸 반군은 건물로 올라가 위에서 휴대용 대전차포를 쏟아부었다. 러시아 전차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러시아는 도심 시가전에 대한 교훈을 얻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열압력탄이다.

 

▶1999년 2차 체첸 전쟁이 발발하자 푸틴은 폭격으로 그로즈니 건물부터 잿더미로 만들었다. 얼마나 철저하게 파괴했는지, 지금도 포격 전후 도시를 비교하는 항공 사진이 인터넷에 돌아다닌다. 열압력탄도 이때 등장했다. 러시아군은 반군을 향해 TOS-1M 다연장 로켓 발사대로 열압력탄을 한꺼번에 30발씩 쏘았다. 방공호에 몸을 피한 민간인도 무차별 살상 당했다.

 

▶열압력탄은 주변 산소를 빨아들여 초고속 폭발을 일으키기 때문에 ‘진공 폭탄’으로도 불린다. 폭심(爆心)에서 살상력이 뻗어나가는 게 아니라 먼저 가연성 분진을 퍼뜨린 뒤 폭발하므로 엄폐물 뒤에 숨어도 소용없다. 폭발할 때 발생하는 높은 압력으로 내장이 파열돼 즉사하거나 화염에 휩싸여 순식간에 타 죽는다. 당시 체첸 민간인 3만5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중 5000명은 어린이였다.

 

▶그로즈니는 러시아어로 ‘(번개처럼) 무섭다’는 뜻이다. 무시무시한 통치자였던 이반 4세의 별명이 ‘이반 그로즈니(뇌제)’다. 푸틴도 체첸을 파괴한 뒤 ‘푸틴 그로즈니’로 불렸다. 이후 10년에 걸쳐 그로즈니에서 전쟁의 흔적은 말끔히 지워졌다. 폐허였던 도심에 거대한 모스크가 들어섰고 초고층 건물이 주변을 에워쌌다. 그러나 깨끗한 대신 자유도 독립도 없다. 수만 명 시신 위에 세워진 이 모습에서 공포를 느끼게 된다. 지금 우크라이나인들은 ‘악마의 무기’ 앞에 서 있다. 그들의 조국이 또 다른 ‘그로즈니’가 될 수도 있는 위기다.

김태훈 논설위원

 
 

03.04  70년 전 졌던 원조 빚

6·25전쟁에 참전한 리처드 위트컴 미 제2군수사령관은 한국인이 겪는 전쟁의 참상에 눈물을 흘렸다. 부산항에 들어오며 수송선에 무기뿐 아니라 구호물자를 한가득 실었다. 군수 지원과 별도로 이재민을 위한 주택 200가구를 지었고 부산 메리놀병원 건립 자금 모금에도 앞장섰다. 부하 장병을 대상으로 급여 1% 모금 운동도 펼쳤다. 휴전 후엔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아 밴 플리트 장군과 함께 한미재단을 설립해 전쟁 폐허 복구를 도왔다. 그는 미 의회에서 이렇게 이유를 설명했다.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

 

 

▶많은 나라가 위트컴 장군처럼 한국을 도왔다. 유엔은 16국이 전투병을 파병한 것과 별도로 ‘한국 민간인에 대한 구호’를 결의했다. 이 결의에 따라 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 등 여섯 나라가 의료진을 파견했다. 이 나라들은 휴전 후 한동안 돌아가지 않고 의료 기술을 전수하거나, 귀국하며 의료 장비를 기증했다. 인도는 파병한 야전병원 부대원 수십 명이 적의 포격에 죽거나 다치는 희생도 겪었다.

 

▶국제 구호 단체들도 팔을 걷었다. 세계적 구호 단체 월드비전과 컴패션은 최초 설립 동기가 6·25전쟁 중 생긴 고아들을 돕자는 것이었다. 6·25 난민과 이산가족·고아 돕기에 나선 NGO가 130곳을 넘어섰다. 당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조를 받은 나라였다. 그들이 내민 도움의 손길엔 전후 한국의 미래를 위한 지원도 포함됐다. 1951년 교과서 인쇄 공장을 지어준 게 대표적이다.

 

▶러시아의 침략으로 고통을 겪는 우크라이나에 전 세계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는 70만 피란민 구호를 위해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들이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개인들은 구호 계좌로 송금하고 인증 샷을 찍어 인터넷에 올린다. KFC와 맥도널드는 음식 기부를 시작했다. 테슬라는 우크라이나 접경 국가에서 구호 활동 중인 전기차 무료 충전을 지원한다.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한국을 언급한 적이 있다. “발전할 수 있고, 강하고 자유로운 나라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한국은 우크라이나의 아주 좋은 본보기다.” 70년 전 전쟁의 폐허 속에서 허덕이던 이 나라를 인류애로 뭉친 세계가 돕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우크라이나의 모범이 될 수 없었을지 모른다. 세계의 도움을 발판 삼아 자유 민주 번영을 누리는 국가로 우뚝 선 대한민국이야말로 우크라이나를 향한 전 세계의 도움 행렬 맨 앞에 서야 할 것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03.05  스카이라인

2018년 5월 미국 뉴욕에서 미·북 고위급 실무회담이 열릴 때,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에게 창밖의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보여주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 뉴욕의 마천루는 그 자체가 경제 번영의 상징이다. 북한이 비핵화에 응한다면 풍요롭고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듯 보였다.

 

 

▶”파리는 신중하게 작곡된 심포니 같고, 뉴욕은 혼란스럽지만 멋진 재즈 연주자들이 악보 없이 즉흥 연주하는 잼 세션 같다.”(에드워드 글레이저, ‘도시의 승리’). 파리는 고층 건물이나 고층 아파트가 별로 없다. 19세기 중반 나폴레옹 3세의 명을 받아 오스만 남작이 파리를 전면 개조했고 그 틀을 유지한다. 반면 뉴욕은 20세기 초반부터 민간에 의해 자유롭게 개발됐다. 뉴욕의 상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비롯해 초고층빌딩 10곳 중 5곳가량이 1930년대 초반에 지어졌다. 뉴욕 스카이라인은 지금도 바뀐다. 도시가 하늘로 쑥쑥 자란다.

 

▶일본의 수도 도쿄의 스카이라인은 지난 20년 새 상전벽해가 됐다. 20여 년 전 고이즈미 총리 시절부터 도쿄 재생에 박차를 가했다. 고도 제한을 완화하자 낡은 4~5층 건물이 즐비하던 곳에 대기업·금융기업의 멋진 본사 건물이 들어섰다. 추가 용적률을 주는 대신 공원과 녹지를 조성할 책임을 지웠다. 공중권(空中權)을 사서 건물을 더 높이는 것도 허용했다. 당초 30층 허가가 난 도쿄역 인근의 신축 건물은 도쿄역의 남아도는 공중권을 사들여 38층 건물로 높였다. 도쿄역은 공중권 판 돈으로 건물 보수비를 충당했다.

 

▶1970~1980년대에 서울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고도 성장기에 부족한 집을 대량 공급하느라 지어진 아파트들인데 한강변에 성냥갑 세운 것처럼 똑같은 크기, 똑같은 높이로 들어서 무슨 담벼락처럼 돼 버렸다. 최악의 스카이라인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가 넘는 나라의 수도가 맞나 싶을 정도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박원순 전 시장의 아파트 35층 규제를 풀었다. 주어진 용적률 내에서 높낮이가 다른 건물을 단지 내에 지으면 서울에도 스카이라인이 생길 듯하다.

 

▶서울의 인구 밀도(㎢당 1만4600명)는 홍콩(6888명), 싱가포르(8371명)의 2배 안팎이다. 미국 뉴욕(1만1000명)보다도 높다. 홍콩, 싱가포르, 뉴욕 못지않게 ‘수직 개발’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대선 후보들이 용적률 상향 등을 내걸었지만 마구잡이 개발로는 멋진 스카이라인이 만들어질 수 없다.

강경희 논설위원

 
 

03.07(월)  저격수

2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저격수에게 사살당한 러시아군 소속 안드레이 수코베츠키 소장이 생전에 작전을 지휘하던 모습. 수코베츠키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사망이 확인된 러시아군 최고위급 인사다. /게티이미지 코리아

 

주드 로 주연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Enemy at the Gates)’는 2차 대전 당시 소련군의 전설적 저격수(sniper) 바실리 자이체프를 다룬 영화다. 1942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그의 총에 나치 독일군 242명이 숨졌다. 사용한 총알이 243발이었다니 100% 가까운 명중률이다. 그는 우랄산맥 산골에서 태어나 어려서 사냥하며 사격술을 체득했다.

 

▶지금까지 최고 저격 기록은 2차 대전 당시 핀란드의 저격수 시모 해위해가 세운 505명이다. 당시 소련군들은 정체 모를 이 저격수를 ‘하얀 죽음’이란 별칭으로 불렀다. 그가 설원에서 흰색 위장복을 뒤집어쓰고 활약했기 때문이다. 저격 거리 세계최고기록은 2017년 이라크에서 캐나다 특수부대 저격병이 세운 3450m다. 믿기 어렵지만, 그는 이 거리에서 이슬람국가(IS)의 중요 표적을 저격했다고 한다. 그 전까지 세계기록은 영국군 저격병이 2009년 아프가니스탄전에서 세운 2475m였다.

 

 

▶”잘 훈련된 저격수 한 명은 대대 하나를 막아낼 수 있다”고 한다. 적 지휘관 등을 사살해 공포감을 심어 주는 저격수는 현대전에서도 중요한 존재다. 이들의 모토는 ‘원 샷 원 킬(One shot, One Kill)’이다. 우리 군에도 육군 특전사 예하 특수전학교, 해병대 등에 저격수 양성 과정이 있다. 전문 저격수는 아니지만 실제 전투에서 준(準)저격수 역할을 하는 ‘샤프슈터(Sharp Shooter)’도 양성하고 있다. 국산 기술로 K14 저격 소총도 개발했다.

 

▶외신들이 지난 3일 러시아 중부군사령부 부사령관 안드레이 수코베츠키 소장이 우크라이나 저격수의 총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한 이래 사망한 최고위 러시아군 관계자다. 그가 장병들 앞에서 연설하다 저격당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2차 대전 때 사상 최고 여성 저격수로 꼽히는 루드밀라 파블리첸코를 배출하는 등 ‘저격수 강국’으로 알려져 있다. 루드밀라는 2차대전 때 독일군 309명을 사살해 ‘죽음의 숙녀(Lady Death)’ 소리를 들었다.

 

▶이런 전통이 있는 우크라이나여서 러시아군이 키이우 등 대도시에서 본격 시가전을 벌일 경우 우크라이나 저격수들 때문에 고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러시아군은 현재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저항과 보급 부족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무고한 우크라이나 국민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빨리 평화가 찾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김민철 논설위원

 
 

03.08  의용군

스페인 내전은 1936년 군부가 공화정을 전복하며 시작됐다. 이후 3년간 수많은 사람이 공화정 회복을 위해 피를 흘렸다. 세계 53국 3만5000명도 의용군으로 동참했다.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1차대전 때 의용군으로 참전했던 헤밍웨이는 스페인 내전 의용군 얘기를 다룬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썼다.

 

 

▶의용군은 전쟁의 대의(大義)를 좇아 참전한 민간인이다. 오웰은 스페인 내전 참전 경험을 담은 논픽션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의용군은 명령에 의해 참전하는 정규군과 다르다”고 했다. ‘의용군에는 일반 군대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기합이 조금도 용납되지 않았다.(중략)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다 해서 그 자리에서 처벌하지는 않았다. 우선 동지애의 이름으로 호소한다. 최악의 신병이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눈에 띄게 나아졌다.’

 

▶의용군의 역사는 11세기 교황 우르바노 2세가 주도한 십자군 원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교황은 정규군인 영주와 기사의 참전을 바랐지만 종교적 열정으로 뭉친 하층민이 더 적극적이었다. 창과 칼 대신 괭이와 몽둥이를 들고 원정에 나섰다. 스페인 내전에서 활동한 대표적 의용군은 국제여단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주인공 조던도 국제여단 소속이었다. 10년 전 중동의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 때 시리아 정부군과 맞서 싸운 자유 시리아군(FSA)에도 중동 전역에서 청년들이 몰려들었다.

 

▶러시아에 침략당한 우크라이나로 무기를 든 세계 각국 시민이 모이고 있다. “러시아 전범과 맞서 싸워달라”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호소에 약 2만명이 호응했다. ‘우크라이나 수호 국제부대’라는 명칭으로 활동한다. 대부분 유럽인이지만 미국과 캐나다인 약 3000명도 참전 의사를 밝혔다. 일본에선 자위대 출신들이 적극적으로 나섰고, 국내에선 아덴만 인질 구출 작전 경험이 있는 이근 전 대위가 참전을 위해 출국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했다가 러시아의 훼방으로 좌절하고 크림반도까지 빼앗겼다. 당시 수도 키이우 독립광장에 모인 우크라이나인들의 모토가 “우크라이나는 유럽 국가다”였다. 자유·민주·번영을 희구하는 우크라이나인의 열망이자 무기를 들고 현장에 달려가는 전 세계 의용군의 구호이기도 하다. “나는 우크라이나인은 아니지만 그들과 같은 인간”이라고 한목소리로 외친다. 러시아가 당장은 우크라이나를 좌절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오래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03.09  영문도 모르고 왔다는 러시아 군인들

러시아의 군사력 규모만 보면 우크라이나 침공에 고전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세계 140국가의 군사력 순위를 매기는 ‘글로벌 파이어파워(GFP) 랭킹’에서 올해 러시아는 미국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우크라이나는 22위로 어떤 분야에서도 러시아의 상대가 못 된다. 정규군 규모부터 러시아(85만명)가 우크라이나(20만명)의 4배가 넘는다. 러시아군이 보유한 탱크(1만2420대)는 우크라이나의 5배, 전투기·공격기(1511대)는 15배에 이른다.

 

 

 ▶우크라이나군과 시민들이 저항하면서 러시아 군인들도 상당수 전사했다. 최정예 공수부대까지 시가전에서 사상자가 많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48시간이면 우크라이나를 정복할 수 있다”는 푸틴 대통령의 호언장담을 믿었던 러시아군의 사기는 떨어졌다고 한다. 탱크나 장갑차를 포기하거나 심지어 파괴하면서 전투를 회피하는 병사가 속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투항하거나 포로로 잡힌 러시아 군인 중 “훈련인 줄 알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동하는 부대를 따라왔더니 전쟁터였다는 것이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보급도 차질을 빚고 있다. 전투 식량을 받아보니 유효기간이 20년 넘게 지난 것까지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 병사들은 우크라이나 수퍼마켓에서 식료품을 털고 일부는 그 자리에서 허겁지겁 먹기도 했다. 투항한 러시아 병사가 우크라이나 시민의 도움으로 모국에 있는 어머니와 영상 통화를 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러시아 군인의 4분의 1은 징집병이다. 18~27세 모든 남성이 징집 대상이며 복무 기간은 1년이다. 대우는 형편없다. 직업군인이 한 달에 136만원 받을 때 징집병은 5만원도 못 받는다. 소련군 시절부터 악명 높았던 구타와 가혹 행위는 지금도 심각하다. 유튜브에 떠도는 영상을 보면 끔찍할 지경이다. 그런데 푸틴의 총알받이까지 돼야 한다.

 

▶아무리 징집병이라도 자기 나라가 침략받으면 죽기 살기로 싸우게 된다. 하지만 이 전쟁은 아무런 명분 없는 침략일 뿐이다. 전사하면 개죽음이다. 훈련과 경험이 부족한 어린 병사들이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다. 대전차 미사일이 무서워 탱크에 통나무까지 덧댄 모습을 보면 그들의 공포를 알 것 같다. 아무리 러시아 사회라지만 이런 문제를 마냥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푸틴은 뒤늦게 “징집병을 우크라이나 전투에 참여시키지 않겠다”고 했다 한다. 푸틴 자신도 왜 하는지 모를 이 전쟁을 하루빨리 멈추는 게 옳다.

금원섭 논설위원

 
 

03.10  또 셰일 오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결정했을 때 믿는 구석이 두 가지 있었다. 핵무기와 원유였다. 푸틴 예상대로 러시아의 핵무기는 미국과 나토의 군사 개입을 막는 방패 기능을 하고 있다. 러시아의 원유는 서방의 경제 제재를 우회할 탈출구이자 전쟁 비용을 조달할 ‘돈줄’이다. 서유럽은 원유의 30%, 천연가스의 4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어 에너지에 관한 한 러시아의 볼모나 다름없다.

 

 

 ▶미국은 하지만 러시아 원유 수입 차단으로 대응했다. 유럽 국가들은 동참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져 있다. 미국은 산유국이라 대안이 있지만 유럽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유는 중동 산유국의 증산으로 구멍을 메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서유럽 가정의 난방을 책임진 러시아 천연가스의 대체재를 찾기는 어렵다. 약점을 잘 아는 러시아는 “가스관 밸브를 먼저 잠글 수도 있다”고 협박하고 있다.

 

▶미국이 셰일 가스를 대량생산해 공급해주면 좋겠지만 당장은 어렵다. 셰일(shale) 가스란 깊은 땅속 퇴적암에 원유와 함께 녹아 있는 가스를 말한다. 접근 불가 에너지였는데 2000년대 들어 미국에서 모래와 화학물질을 섞은 특수 용액을 강한 수압으로 쏘아 암석층을 부수고 원유와 가스를 채취하는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활용 가능한 자원이 됐다. 셰일 오일 덕분에 미국은 원유와 천연가스를 수출하기 시작했다.

 

▶기체 상태 파이프라인 천연가스(PNG)로 서유럽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러시아에 미국산 셰일 가스의 등장은 중대한 위협이었다. 사우디가 증산으로 저유가를 유발해 미국 셰일 산업을 고사시키려 했듯이 러시아는 천연가스 가격을 낮춰 미국산 셰일 가스의 시장 침투를 막았다. 결국 미국 셰일 가스는 액화 및 운송에 드는 비용 탓에 생산 원가가 러시아산보다 40% 이상 비싸 경쟁에서 밀렸고 고사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글로벌 에너지 지정학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에너지 안보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바이든 정부의 탄소 중립 정책과 환경오염 논란 탓에 찬밥 신세였던 셰일 산업의 전략적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다. 셰일 기업 3분의 1이 파산했지만 올 들어 시추정이 650개까지 다시 늘어났다. 하지만 유럽 쪽 LNG 저장 시설이 부족해 당장 러시아를 대체하긴 어렵다. 장차 미국산 셰일 오일이 대체재가 되면 유럽 소비자들은 추가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다. 서유럽 시민들이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보내는 지지와 성원을 보면 이 정도 비용은 감수할 것 같기도 하다.

김홍수 논설위원

 
 

03.11  족집게 출구조사

대선 출구조사 적중을 두고 “과학이자 예술의 경지” “무섭도록 정확한 족집게”라는 말이 나온다. 선거 막판까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5%p 안팎 앞선다는 여론조사들이 쏟아졌는데 정작 출구조사는 윤 후보 우세가 오차 범위 내인 0.6%p일 것이라며 초박빙 승부를 예측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유권자들이 많았지만 실제 개표 결과는 0.73%p 차 윤 후보 승리로 출구조사와 불과 0.13%p 차이였다.

 

 

▶출구조사는 1967년 미국의 여론조사 전문가인 워런 미토프스키가 CBS를 위해 켄터키 주지사 선거에서 처음 실시해 주목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대선에 적용해 대성공을 거뒀고 이후 여러 방송사가 출구조사 경쟁을 벌였다. 1980년 대선 당시에는 시간대가 다른 동부 지역에서 투표한 유권자의 출구조사 결과가 서부 지역 투표 시간에 보도돼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는 논란을 빚기도 했다.

 

▶투표를 마치고 나온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출구조사는 여론조사보다 정확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출구조사에도 사전투표라는 변수가 생겼다. 사전투표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전투표자가 전체 투표자의 거의 절반에 육박한 이번 대선에서도 출구조사가 정확할지 의문이 있었다. 하지만 미리 전화 조사로 사전투표자들 투표 성향을 파악하고 여기에 선관위가 제공한 사전투표자 연령 성별 등 변수를 감안해 예측한 것이 적중했다.

 

▶국내 대선 출구조사는 1997년이 최초였는데 지금까지 당선 예측이 어긋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번 정도는 아니지만 득표율도 비슷하게 맞혔다. 2017년 대선 출구조사에선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후보에 대해 각각 41.4%, 23.3%, 21.8% 득표를 예측했는데 최종 득표율은 41.08%, 24.03%, 21.41%였다. 하지만 전국 250여 개 지역구 당선자를 맞혀야 하는 총선에선 번번이 빗나갔다. 1996년 총선부터 2012년까지 5회 연속 예측 의석수와 실제 결과가 달랐다. 출구조사에선 이겼으나 실제 개표에선 연거푸 패배한 후보들에겐 ‘출구조사 다선 의원’이란 별칭이 붙기도 했다.

 

▶이번 대선에선 사전투표를 먼저 개표해 선거 초반에 이재명 후보가 크게 앞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출구조사와 같은 수치로 접근해갔다. 양측 지지자들 모두 마음 졸이며 새벽까지 이어진 이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대선 출구조사와 여론조사 중 어느 쪽이 더 정확한지 경쟁은 다시 한번 출구조사의 압승으로 끝났다.최승현 논설위원

 

03.12  이대녀가 표미새로 간 이유

3월 8일 저녁, 김부선씨가 시청광장에서 말했다. “내일 (윤 후보가) 승리하면 옥수동 누나가 광화문에서 레깅스 입고 댄스를 추겠다.” 2030 여성들은 “레깅스 입은 여성을 성상품화했다”고 화냈다. 레깅스는 ‘쫄바지’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내가 뭘 입건 흘끔대지 말라’ 선언하는 옷이다. 그들은 이전 세대와 다르게 듣는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민주당 소속 시장·도지사 등 세 명이 성폭력을 저질렀다. 민주당 일부가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 조롱했다. 페미니즘은커녕 평균적 윤리도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대녀(20대 여성) 58%가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했다. 남성과 거의 정반대다(3월 9일 방송 3사 출구 조사). 민주당의 성폭력 사건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은 결과에 놀랐다. 20대 여성들은 “커뮤니티 분위기에 비하면 이재명 표가 적게 나왔다”고 한다.

 

▶20대 여성이 자주 가는 인터넷 커뮤니티 쭉빵(153만명), 여성시대(82만명) 등 5대 커뮤니티 회원이 약 300만명이다. ‘미투’ 이후 확 컸다. 여기서 이재명의 악재는 형수 쌍욕, 불륜 의혹, 대장동이 아니었다. 모녀 살해범 조카와 조폭에 대한 변호였다. 성폭행, 조폭, 데이트 살인, 20대 여성이 가장 경악하는 단어다. ‘이 후보는 안 된다’는 의견이 점점 커졌다.

 

▶국민의힘의 ‘여성가족부 폐지’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 주장이 흐름을 바꾸기 시작했다. 지난 1월 후보 페이스북에 올라온 일곱 글자 ‘여성가족부 폐지’가 결정적이었다. 분위기가 반전됐다. ‘윤석열이 우리를 버렸다’ ‘이 모든 건 이준석 때문’이라는 주장이 다수가 됐다. 이 대표가 SNS에 ‘ㄹㅇㅋㅋ(레알ㅋㅋ)’ 같은 글을 올리면, ‘남성이 여성을 혐오하면서 적는 댓글’이라며 분노했다. 이 대표가 선거 이틀 전 “여성은 실제 투표 의향이 떨어진다. 온라인에서만 조직적이다”라고 한 말도 이들을 자극했다고 한다. ‘윤석열 찍으면 이준석이 이긴다’는 말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그들은 ‘표미새(표에 미친 새X)’로 달려갔다. ‘표미새’는 욕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애칭’ 성격이 강하다. ‘이재명은 표를 위해서는 뭐든지 하니 여성 공약도 잘 지킬 것’이란 주장이 확산됐다. ‘심상정이 여성 위해 뭘 했냐’는 말이 돈 곳도 여성 커뮤니티다. 19대 대선에서 20대 표 6.17%(200만표)를 얻었던 심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80만표(2.37%)로 주저앉았다. 정의당에 대해 유권자 상당수도 비슷한 생각일 테지만, 이대녀는 특히, 더, 매우 그런 것 같다.

박은주 에디터 겸 에버그린콘텐츠부장

 
 

03.14(월)  戰場의 음악회

유고 내전이 한창이던 1992년 5월 어느 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수도 사라예보 한복판에 적국 세르비아 민병대가 쏜 포탄이 떨어졌다. 빵을 사려고 줄 서 있던 시민 22명이 목숨을 잃었다. 폭발 다음 날, 텅 빈 거리에 한 남자가 나타나더니 첼로를 꺼내 들었다. 사라예보 필하모닉 소속의 이 연주자는 폭격의 잔해 속에서 첼로를 켰다. 그가 연주하는 동안 포격은 중단됐다. 건물 곳곳에 숨어 있던 세르비아 저격수들도 그를 쏘지 않았다. 연주는 22일간 지속됐다.

 

 

▶옛 소련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평생 15개의 교향곡을 남겼다. 그 가운데 교향곡 7번은 ‘레닌그라드’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제정 러시아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소련 시절 레닌그라드로 불렸다.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군이 이 도시를 870여일간 봉쇄하는 바람에 100만명 넘게 아사한 비극의 도시이기도 하다. 교향곡 ‘레닌그라드’는 그곳에서 태어난 쇼스타코비치가 나치에 맞서 싸우는 고향 동포들에게 바친 곡이다.

 

▶당시 교향곡 연주는 레닌그라드 라디오 교향악단이 맡았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단원들이 리허설 도중 쓰러져 목숨을 잃었다. 그때마다 악기를 연주할 줄 아는 시민과 군인이 빈자리를 채웠다. 봉쇄가 한창이던 1942년 8월 9일, 마침내 전쟁터 한복판에서 곡이 연주됐다. 포연 속에 울려퍼지는 연주를 들으며 시민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곡을 감상했다고 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이 곡은 우리가 겪은 교향곡이다.”

 

▶나치 희생자였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 이번엔 우크라이나인들이 악기를 들었다. 수도 키이우에선 키이우 클래식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며칠 전 독립광장에서 야외 콘서트를 열었다. 독립광장은 2014년 유럽연합(EU) 가입을 갈망하던 우크라이나인들이 친러 성향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축출한 역사적인 장소다.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에선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전투가 없을 때면 총 대신 악기를 들고 전란에 휩쓸린 주민들을 위로한다.

 

▶교향곡 ‘레닌그라드’ 악보는 마이크로필름에 담겨 나치의 봉쇄를 뚫고 서방에 전해졌다. 전 세계가 그 곡을 연주하고 듣는 것으로 침략자를 규탄했다. 전쟁 동안 미국에서만 62회나 연주됐다. 지금 폴란드와 루마니아의 우크라이나 접경 도시에서도 반전과 평화를 기원하는 음악 소리가 연일 울려 퍼지고 있다. 음악은 부드럽지만 그 안에 담긴 평화를 향한 염원은 강철처럼 단단하다. 푸틴이 그 선율을 끝까지 외면했다간 파멸당한 나치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03.15  중국 코로나 ‘막다른 길’

중국 베이징 서우두국제공항에서 방역센터 요원들이 분주하게 업무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가 작년 10월 중국 광저우의 코로나 격리 단지를 보도했다. 3층 회색 건물들로 5000개 독실을 갖췄다. 외국 입국자는 접종 여부와 관계없이 최소 2주를 격리해야 한다. 음식은 로봇으로 배달된다. 바이러스가 국경을 넘지 못하게 완전 차단한다는 ‘제로 코로나’ 정책이다. 작년 12월 시안에서 집단 확진자가 나왔을 때 1300만명의 바깥출입을 끊는 봉쇄가 시행됐다. 청두에선 휴대폰을 추적해 확진자로부터 800m 이내에서 10분 이상 머물렀던 8만2000명을 상대로 PCR 검사를 했다.

 

▶중국은 코로나 이후 국제선 승객을 종전의 2%대로 묶고 있다고 한다. 여권 발급률도 2% 수준으로 곤두박질했다. 외국 언론 베이징 특파원은 “방송에서 외국인을 걸어다니는 바이러스 운반자라고 하는 걸 봤다”고 했다. 시진핑은 지난 2년 외국 손님을 거의 만난 적이 없다고 한다. 작년 로마의 G20, 글래스고 기후회의에도 가지 않았다.

 

 

▶그런 폐쇄 정책이 코로나 억제에 효과를 냈다. 2년간 기껏 하루 10명, 20명 확진자가 나왔다. 13억 대국의 누적 확진자가 11만6000명밖에 안됐다. 일상생활도 거의 정상으로 이뤄졌다. 중국 언론은 서구의 바이러스 확산을 허약한 국가 리더십과 정책 판단 미스 탓이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10일부터 중국 내 확진자가 급작스레 늘고 있다. 1100명(10일)→1524명(11일)→3122명(12일) 식이다. 2주 전엔 100명 정도였다. 오미크론이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대부분 서구 나라들은 방역의 고삐를 늦추면서 코로나와의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한국의 두 달 전 상황이다. 다른 점은, 한국 경우 방역을 포기하고 ‘감염에 의한 집단면역’ 쪽으로 사실상 방향을 틀었는데 중국은 여전히 두더쥐 잡기식 소탕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방역에 실패한 지린 시장, 장춘시 추타이 구청장은 단칼에 잘랐다.

 

▶철통 방역으로도 오미크론을 틀어막기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올가을 5년 만에 당대회가 열린다. 여기서 시진핑의 3차 연임이 결정된다. 원만한 당대회를 위해 결사 방역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러나 엄중 방역은 세계로부터의 고립과 수시 산발 봉쇄 등 큰 대가를 동반한다. 그렇다고 방역을 완화하자니 감염 파도가 몰아치게 된다. 의료 인프라가 취약한 상황에서 사회 혼란도 걱정이다. 서구의 허술한 방역을 손가락질해온 입장에서도 낭패일 수밖에 없다. 이리 가면 절벽이고, 저리 가면 낭떠러지다.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03.16  대통령 ‘셀프 훈장’

우리나라 상훈법에 따르면 훈장은 모두 12개 등급이 있다. 최상위에 무궁화대훈장이 있는데 대통령과 배우자, 우방국 원수와 배우자, 전직 우방 원수만이 대상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공과(功過)와 무관하게 모두 자신의 임기 중 이 훈장을 받았다. 그렇다 보니 정치적 반대 진영으로부터 ‘한 게 뭐가 있다고 훈장이냐’는 식의 비판이 끊이질 않았다. 퇴임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 내외도 국무회의 의결을 통한 이 훈장의 ‘셀프 수여’를 준비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다.

 

 

 ▶대한민국 1호 훈장은 1949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에게 수여된 무궁화대훈장이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까지는 취임과 동시에 이 훈장을 받았다. 포상 차원이 아니라 국가를 대표하는 원수에 대한 상징과 예우의 의미였다. 노무현 정부 시절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모든 서훈을 취소하기로 했지만 무궁화대훈장만큼은 제외한 것도 그렇게 할 경우 대통령 재임 자체를 부정하게 된다는 해석 때문이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5년간의 공적과 노고에 대해 치하받는 의미에서 퇴임 때 받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고 임기 말인 2008년 초 이 훈장을 받으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국민의 존경을 받을 수 없는 집안 잔치”라고 하는 등 여론의 비판이 집중됐다. 5년 후 이명박 대통령 역시 임기 말 이 훈장을 수여받자 이번에는 민주당이 “뻔뻔함이 금메달감”이라고 비판했다.

 

▶외국도 국가 원수에게 최고 권위의 훈장을 수여하곤 한다. 하지만 대체로 퇴임 후 주는 게 관례다. 영국 왕실은 전직 총리에게 가터 훈장을 수여하는데 토니 블레어, 존 메이저, 마거릿 대처 등은 각각 퇴임 후 14년, 8년, 5년 만에 받았다. 모두에게 주는 것도 아니다. 일본은 뛰어난 업적이 있는 총리에게 대훈위국화장경식(大勲位菊花章頸飾)이라는 훈장을 주는데 전후(戰後) 요시다 시게루, 사토 에이사쿠, 나카소네 야스히로 등 3명만이 이를 받았다.

 

▶무궁화대훈장은 국내외 다른 훈장과 비교해 지나치게 비싸고 화려하다는 것도 문제다. 문 대통령 내외가 받는 훈장은 금·은·루비·자수정 등의 보석으로 제작하면서 한 세트당 6800여 만원, 총 1억3600여 만원의 예산이 쓰였다고 한다. 안중근 의사, 김좌진 장군 등이 사후에 받았던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은 최근 제작비가 172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퇴임하는 대통령의 노고에 대한 적절한 예우를 막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5년마다 반복되는 논란을 해소할 방안을 고민해볼 필요도 있다.

최승현 논설위원

 
 

03.17  한미 대선은 北 ‘도발 타임’

북한이 지난해 열병식에서 '괴물 ICBM'으로 불리는 화성 17형을 공개하고 있다. /뉴스1

 

김정일이 첫 장거리 미사일(대포동 1호)을 쏜 건 1998년 미국 중간선거를 석 달 앞둔 시점이었다. 2006년 첫 핵실험도 미 중간선거 한 달 전에 했다. 미국 대통령이 민감해하는 국정 중간 평가에 맞춰 대형 도발을 한 것이다. 미 최대 국경일인 독립기념일(7월 4일)도 그냥 넘기지 않았다. 2006년과 2009년 독립 축제날에 대포동 2호 등 탄도미사일을 6~7발씩 난사했다. 워싱턴 휴일을 망쳐놨다. 미 중간선거와 기념일이 김정일 시대 ‘도발 타임’이었다.

 

▶2013년 2월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당선인이 청와대에서 긴급 회동을 했다. 당시 두 사람은 이 대통령의 측근 사면을 놓고 갈등했지만, 김정은이 3차 핵실험을 감행하자 ‘안보 공백’을 막으려고 머리를 맞댔다. 2012년 대선 일주일 전에는 북의 장거리 로켓 발사도 있었다. 김정은 시대 첫 핵실험과 ICBM 기술 확보가 한국 대선을 틈타 이뤄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취임 한 달 만에 미 언론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로 ‘블러핑’ 치고 있지만”이라고 했다. 핵·ICBM 개발을 협상용 ‘뻥 카드’로 평가한 것이다. 그런데 김정은은 석 달 뒤 6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ICBM 장착용 수소탄 완전 성공”이라고 했다. 그해 말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ICBM(화성 15형)까지 쏘고는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뻥’은커녕 김정은은 두 번의 한국 정권 교체기를 이용해 사실상 ‘핵 보유’에 성공했다.

 

▶북이 어제 평양 순안 일대에서 탄도미사일 추정체를 발사했으나 공중 폭발했다고 한다. 최근 같은 곳에서 우주발사체를 가장한 ‘괴물 ICBM’ 관련 시험을 두 차례 한 만큼 실제 쐈을 수 있다. 세계 최대 크기에 다(多)탄두 공격이 가능한 ICBM(화성 17형)은 2년 전 공개됐다. 핵탄두가 여러 개로 쪼개지는 ICBM은 미국도 방어가 어렵다. 북은 이번 기회에 미국 공격용 핵미사일까지 손에 넣으려 할 것이다.

 

▶북은 한·미의 정권 교체기 약점을 잘 안다. 새 정부는 혼란스럽고, 전(前) 정부는 힘이 없다. 무슨 도발을 해도 제대로 된 대응이 어렵다고 본다. 새 정부 대응을 떠보면서 길들일 필요도 있다. 지금 김정은은 지난 두 번의 한국 대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려 있다. 코로나 봉쇄와 대북 제재로 최악의 경제난에 몰렸다. 한국엔 ‘대북 원칙론’을 말하는 새 정부까지 출범한다. ‘괴물 ICBM’은 물론이고 핵실험, 사이버 공격, 천안함·연평도식 도발까지 만지작거릴 수 있다. ‘도발 타임’은 이제 시작이다.

안용현 논설위원

 
 

03.18  다섯에 하나 ‘누나 결혼하자’ 

요즘 여성은 많이 배우고, 늦게 결혼한다. 1960년 여성 초혼 평균 나이가 21.6세(남자 25.4세)였다. 2014년 처음으로 여성 초혼 나이가 30세를 넘었다. 2021년 평균은 여성 31.8세(남성 33.3세)다. 여성 대학 진학률이 81.6%(남성 76.8%)로 매우 높고, 직업을 갖기 때문이다. 결혼을 잘 안 한다. 지난해 결혼은 19만 건이 좀 넘어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그러자 결혼의 ‘결’이 달라졌다. 초혼 커플 중 ‘연상녀’와의 결혼이 다섯 쌍 중 하나(19.2%), 연상남과 결혼은 64.2%다. 각각 역대 최고, 역대 최저치다. 재혼 커플은 이미 2014년부터 연상녀가 20%를 넘었다. ‘연상녀 연하남’ 커플은 아예 줄여서 ‘연상연하’라 부른다.

 
 

▶80년대 ‘연상녀’ 소재는 주로 ‘19금’ 영화에나 나왔다. 15세 소년과 가정부(실비아 크리스털)가 등장하는 ‘개인 교수’는 남성의 판타지를 충족시켰다. 21세기 들어 남녀 모두 보는 편한 ‘연상연하’ 드라마가 나왔다. 드라마 ‘로망스’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그때 나왔다. 2004년 고교생 가수 이승기 데뷔곡은 ‘내 여자라니까’였다. “나를 동생으로만, 귀엽다고 하지만, 누난 내게 여자야”, ‘누나 팬’이 열광했다.

 

 ▶세종-소헌왕후, 숙종-장희빈도 부인이 두 살 많았다. 동서양 왕족이나 귀족에게는 연상연하 결혼이 어색하지 않았다. 연상 여성의 ‘임신 안정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연상남과의 결혼이 보편이었다. 인류는 오랫동안 ‘남성의 안정적 경제력과 여성의 안전한 출산력’을 합리적 거래로 봤다.

 

▶한국에서도 이른바 ‘쿠거 현상’이 나타날까. 퓨마류 동물인 쿠거는 어슬렁거리며 먹이를 찾아다닌다고 한다. 미국 중년 여성들이 연하남을 찾는 걸 ‘쿠거’라고 놀렸다. 2000년 들면서 40~69세 여성의 34%가 연하남과 사귀거나 결혼한 적 있다고 응답한 조사가 나왔다. ‘쿠거 현상’이 주목받았다.

 

▶미국 통계를 보면 미국 기혼남 중 25%가 아내보다 5세 이상 연상이었지만, 반대 경우는 약 6%였다. 우리나라 ‘연상녀’ 드라마도 여자가 대개 4~8년 연상으로 나온다. 여성들은 ‘미디어의 환상’이라 한다. “주로 한두 살 차이다. 요즘 세대는 이걸 나이 차이라 여기지 않는다.” “대여섯 살 연하와 결혼하려면 ‘밥 사주는 예쁜 누나’여야 한다.” 배우자 경제력 학력이 더 좋아야 한다는 ‘상향혼(上向婚)’ 욕망은 남녀불문인 건가. 

/박은주 논설위원·에버그린콘텐츠부장

 

 

03.19  코로나 정점 미스터리

감염병 유행 곡선에서는 확진자 수가 최고치에 달하는 정점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급격히 상승했다 하강하는 형태와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형태가 있다. 각각 에베레스트형과 한라산형이라 부를 수 있다(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 방역의 기본은 이 유행 곡선을 완만한 한라산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의료체계가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나라 코로나 유행 곡선은 너무 가팔라서 에베레스트형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다. 첨탑형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듯하다. 방역 당국의 대응에 뭔가 심각한 잘못이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지만, 이 피크가 어디까지 올라갈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걸려야 잦아들지 예측하기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결국 대부분 국민이 한 번씩 걸려야 끝나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오미크론 정점이 나타난 나라 중에서 미국의 경우 누적 확진자가 전체 인구의 25%, 영국은 30%에 이르렀을 때 정점을 형성했다. 18일 현재 우리나라 누적 확진자 수는 865만명으로 인구 대비 16.6% 정도다. 미·영 사례를 대입하면 앞으로 인구의 10% 안팎이 더 걸려야 겨우 정점을 찍고 내려오기 시작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한 것이다. 요즘처럼 하루 40만명 확진자가 나올 경우 10일에서 2주 정도 걸리는 수치다.

 

▶정부의 정점 예측은 번번이 빗나갔다. 지난 1월 하루 확진자 8000명대였을 때 김부겸 총리가 3만명으로 예측한 것이 곧바로 틀린 것을 시작으로 몇 번이나 예측하고 틀렸는지 세기 힘들 정도다. 최근엔 “금주나 늦어도 다음 주 초반 정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했다가 17일 “확산세가 예상보다 높은 상황으로, 정점 구간이 다소 길게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을 바꾸었다. 방역 전문가들은 정점 예측이 힘든 이유 중 하나로 정부가 방역을 계속 완화하는 것을 들었다. 상수여야 할 방역 조건이 계속 변하니 예측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가 18일 방역 조치를 또 완화했다. 사적 모임 인원을 6명에서 8명으로 2명 늘린 것이다. 최소한 정점을 확인한 후 방역을 완화해도 늦지 않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듣지 않는다. 이 조치가 또 정점 높이와 시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확진자 정점이 지나면 더 무서운 후폭풍,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 정점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정부의 고집이 맞기만을, 큰 피해 없이 이 위기가 끝나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김민철 논설위원

 

03.21(월)  안락사 결심한 ‘세기의 미남’

 호주의 저명한 식물학자 데이비드 구달이 104세 생일이던 2018년 4월 4일 “내 삶은 야외 활동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밖에 나갈 수도 없다.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며 안락사를 선택하겠다고 했다. 구달 박사는 102세 때도 대중교통을 이용해 연구실에 갈 정도로 노익장을 과시했었다. 집에서 넘어져 다친 이후로 혼자 거동할 수 없게 되긴 했지만 불치병을 앓던 것도 아니었다. 한 달여 뒤인 2018년 5월 10일, 구달 박사는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는 호주 땅을 떠나 멀리 스위스 바젤에 가서 약물을 투여받고 생을 마감했다.

 

 

 ▶‘세기의 미남’으로 불리며 1960~70년대 스크린을 주름잡던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이 건강이 더 나빠지면 안락사를 선택하기로 결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1935년생으로 86세인데 자신이 세상 떠날 순간을 정하면 임종을 지켜봐 달라고 아들에게 부탁했다는 것이다. 알랭 들롱은 현재 안락사를 허용하는 스위스에 살고 있다. 2019년 뇌졸중으로 수술받은 뒤 급격히 쇠약해졌다. 전처 나탈리 들롱도 안락사를 희망했지만 프랑스 법이 허용하질 않아 실행에는 못 옮겼고 작년 1월 파리에서 췌장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9년 전 파리의 유서 깊은 호텔에서 86세 동갑내기 노부부가 안락사 금지를 비판하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조용히 생을 마감하고 싶은 사람들을 무슨 권리로 잔인한 상황으로 몰고 가느냐”는 항변이었다. 남편은 경제학자, 아내는 작가이자 교사였던 지식인 부부였다. 60여 년 해로한 이 노부부는 사별해서 혼자 남겨지거나, 거동 못 하는 지경에 이르러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을 죽음보다 두려워하면서 이런 선택을 했다고 한다.

 

▶1975년 미국에서 21세 여성 캐런 앤 퀸런이 술과 약물을 함께 복용한 뒤 의식을 잃고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 딸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수 있게 해달라는 소송을 부모가 냈고 이듬해 법원이 허락했다. 이를 계기로 ‘인간답게 죽을 권리’라는 개념과 함께 존엄사 논쟁이 촉발됐다. 우리나라도 2018년부터 환자 뜻에 따라 무의미한 연명 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일명 ‘존엄사법’이 시행됐다. 하지만 구달 박사나 알랭 들롱이 선택한 것 같은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여전히 극소수다.

 

▶'100세 시대’를 넘어 곧 ‘120세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한다. 늘어나는 수명만큼 ‘존엄한 죽음’ ‘품위 있게 죽을 권리’에 대한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강경희 논설위원

 
 

03.22  내 고향 ‘용산’

필자의 본적은 서울 용산구 용산동 3가, 국방부 일대다. 이북에서 월남한 선친이 직업 군인으로 복무할 때 현 국방부 청사 가까이 살면서 호적을 얻었기 때문인 듯하다. 제대 후 한동안 성북구에 살다가 1977년 용산으로 돌아왔다. 그후 45년 동안 용산에서 살았다. 선친도 용산에서 살 때 돌아가셨다. 누군가 고향을 물으면 나는 “용산”이라고 한다.

 

 

 ▶용산엔 별별 사람이 다 있었다. 한남동엔 재벌, 한강로엔 매춘부, 용산동엔 미군이 살았다. 필자가 다니던 공립 초등학교에도 한강 변 맨션에 사는 부잣집 학생, 길 건너 공무원 아파트에 사는 중산층 학생, 철길(경의중앙선) 밖 서민집 학생이 어울려 다녔다. 철길에서 국방부에 이르는 한강대로 일대가 해방촌과 함께 용산의 대표적인 서민 동네였다. 20년 전 ‘동창 찾기’ 사이트가 유행할 때 재상봉 기회가 있었는데 ‘철길 밖’ 친구들이 ‘한강 변’ 친구들보다 더 많이 성공해 놀란 적이 있다.

 

▶상전벽해한 곳도 주로 그 동네다. 초등학생 때 개구리 잡겠다고 월담을 했다가 쫓겨난 미군 골프장 일대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가족공원이 됐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으로 꼽힌다. 풍수가 안 좋아 기업이 멀리한다던 한강대로엔 서울 건축의 명작인 아모레퍼시픽 본사가 들어섰다. 홍등가 자리는 고급 주상복합으로 바뀌었다. 개발에서 소외된 경리단길은 한국의 골목길 상권의 원조가 됐고, 서울의 청춘 핫플레이스가 된 해방촌은 ‘HBC’란 이름으로 외국인의 사랑까지 받는다.

 

▶한강대교에서 국방부를 잇는 한강대로 일대는 일제가 일본군 기지를 위한 병영 주거공간으로 개발했다. ‘남쪽의 병영’을 뜻하는 남영동처럼 지명에도 흔적이 남아있다. 하지만 해방 후 국군과 미군이 같은 자리에 들어서면서 나라를 지키는 큰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군 기지인 덕에 개발이 안 돼 용산엔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이 들어설 공간이 있다.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을 국방부 자리로 옮기겠다고 했다. 대통령이 구중궁궐 청와대를 벗어난다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청와대는 국민들이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공원이 된다고 한다. 그 터에 멋진 미술관과 박물관까지 생기면 금상첨화일 듯 싶다. 하지만 현 정부가 “무리”라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올해 봄꽃 만발할 때 청와대를 통해 북악산을 오르려 했는데 당분간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반대하는 용산구민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시위대까지 딸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일엔 명암이 있다. 여하튼 본적지 일대가 대통령실이 된다니 개인적 감회가 크다.

선우정 논설위원

 

03.23  소름끼치는 푸틴 내로남불

러시아군의 포위 공격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시민이 푸틴을 규탄하는 포스터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나치 독일의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격으로 민간인만 100만명이 희생됐다. “지구상에서 없애라”는 히틀러 광기에 독일군은 870일 넘게 도시를 봉쇄하고 포탄을 퍼부었다. 레닌그라드의 소련 병사 스피리도노비치 푸틴은 독일군 수류탄에 맞아 쓰러졌다. 푸틴 대통령 아버지였다. 병원 쓰레기장에 버려진 그를 지나가던 이웃이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푸틴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푸틴은 레닌그라드의 폐허에서 태어났다. KGB 요원이 된 푸틴의 첫 해외 근무지도 2차 대전 미·영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독일 드레스덴이었다.

 

▶1999년 체첸 공화국 수도 그로즈니의 중앙시장에 러시아군 로켓포가 떨어졌다. 식량을 구하러 나온 여성과 어린이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해 총리로 임명된 푸틴의 ‘작품’이다. 그 후 그로즈니의 사진을 보면 완전히 ‘평탄화’돼 있다. 폭탄에 가루가 됐다. 당시 ‘진공 폭탄(열압력탄)’까지 사용됐다고 한다. 수백m 내 사람의 내장을 파열시킨다고 한다. 40만명이던 그로즈니 인구는 반 토막이 났다. 반면 푸틴 지지율은 2%에서 70%대로 급등했다.

 

 

▶우크라이나의 항구 도시 마리우폴이 3주 넘게 러시아 군대에 포위돼 무차별 포격을 받고 있다. 도시 건물 80%가 파괴됐다. 시민 30여 만명은 전기·수도·가스가 전부 끊긴 채 눈 녹인 물로 연명하고 있다. 시체를 수습할 엄두도 못 낸다. 다친 시민은 고통을 견디다 못해 “독약을 달라”고 울부짖는다. 푸틴은 눈도 깜짝 않는다. 최근 탈출한 그리스 외교관은 “마리우폴이 2차 대전의 레닌그라드가 될 것”이라며 “내가 본 것을 누구도 보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난 푸틴이 레닌그라드를 만든다는 것이다.

 

▶130여 명을 태운 중국 여객기가 21일 추락하자 푸틴이 하루 만에 애도 성명을 냈다. “이 비극으로 가족과 친구를 잃은 사람들의 슬픔을 공유한다”고 했다. 지금 궁지에 몰린 푸틴이 기댈 곳은 시진핑뿐이다. 중국 외교부는 중·러 협력에 대해 “금기도, 상한도 없다”고 했다. 푸틴은 중국 지원을 바라고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푸틴이 “가족과 친구를 잃은 사람들의 슬픔”을 말하다니 소름이 끼친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사망한 러시아 군인만 1만명에 육박한다. 우크라이나 민간인 희생은 통계도 내기 어렵다. 난민만 이미 수백만명이다. 벌벌 떠는 어린이들 모습을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 푸틴의 중국 비행기 추락사 애도는 21세기 최악의 ‘내로남불’일 것이다.

안용현 논설위원

 
 

03.24  코로나 ‘초과 사망’

코로나19 사망자 증가에 화장장 부족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 전광판에 화장 관련 안내가 되고 있다. /뉴시스

 

1995~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관련해 피해 배상 신청자는 7766명이었다. 이 중 사망자는 1742명이다. 피해자들은 주로 영·유아와 산모였다. 그런데 한 독성학 교수는 이 기간 선진국 대부분은 폐렴 사망자가 감소했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증가한 점에 주목했다. 그는 노인은 가습기 살균제로 폐렴에 걸려 사망했더라도 사인이 묻혀버렸을 것이라며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렴 사망자를 2만명으로 추정하는 논문을 냈다.

 

▶이처럼 질병 대유행이나 대형 사고 등 특이한 원인으로 통상 수준을 넘는 사망자가 나왔을 때 늘어난 사망을 ‘초과 사망(excess death)’이라고 부른다. 다른 건 몰라도 사망자는 숨기기 힘들기 때문에 믿을만한 지표로 평가받는다. 우리나라 경우 폭염으로 인한 온열 질환 사망자가 공식 통계로는 한해 수십 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폭염은 직접적으로 열사병 등을 유발하는 것 외에도 고혈압·심장병·뇌졸중 등 심뇌혈관 질환 환자의 증상을 크게 악화시킬 수 있다. 통계청이 추산한 2018년 폭염 초과 사망은 800명이 넘는다.

 

 

▶우리나라 코로나 사망자가 하루 300명 안팎이다. 그러나 휠씬 큰 규모의 초과 사망이 있을 것이라고 방역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코로나 검사를 받기 전에 숨진 경우는 공식 집계에 넣을 수 없다. 코로나로 인한 의료 과부하로 다른 질병 환자들이 수술·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숨진 경우도 집계에 들어갈 수 없다. 이들이 다 ‘초과 사망’에 해당한다.

 

▶추정할 수 있는 사망 통계도 나와 있다. 델타 변이 때인 지난해 12월 국내 사망자는 3만1634명으로, 코로나 직전인 2020년 12월 사망자 수보다 4768명(17.7%)이나 급증했다. 2020년 집단감염이 발생한 대구의 경우 그해 1분기 누적 사망자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0.6% 증가했다. 모두 코로나 초과 사망일 가능성이 있다. 지난 2년 동안 전 세계 코로나 사망자는 공식 통계로 600만명이다. 그러나 미국의 워싱턴대 연구팀은 지난 10일 이보다 3배 많은 1820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지금 전국적으로 화장장·안치실·장례식장 부족 사태가 심각하다고 한다. 정부가 화장로 1기당 하루 운영 횟수를 5회에서 최대 7회로 늘렸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하루 300명 안팎인 코로나 사망자 때문이라고 하기엔 부족 규모가 크다. 정부는 지난 2월부터 방역을 사실상 포기했다. 그런 결정을 내리면서 이런 초과 사망까지 감안했는지 묻고 싶다.

김민철 논설위원

 

03.25  ‘양심에 털 난’

조국 전 장관이 자기 책에서 “외고생은 어문 전공으로 진학하도록 강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썼다. “장학금은 학생의 경제 상태 위주로”라고도 했다. 그런데 그의 딸은 외고를 나와 이공 계열에 진학했고 의학대학원까지 갔다. 신고 재산이 56억원인데 딸은 3년간 의대 장학금을 챙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씨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공정을 해치는 제도를 개혁”을 강조했다. 문 정권 사람들은 외고·자사고·미국을 비난해놓고 제 자식들은 거기로 보냈다.

 

 

▶‘친일 척결’을 내걸고 총선 출마한 청와대 비서관은 일본 고급 차를 갖고 있었다. 2018년 지방선거 때 민주당은 일본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를 패러디한 ‘평화철도 111′을 띄웠다. 그래 놓고 정권 내내 ‘죽창가’를 불렀다.

 

▶박원순 전 시장은 “여성다움이 원순다움”이라고 했다. 오거돈 전 시장도 “성추행 엄벌”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부하 직원을 성추행했다. ‘여성 인권’을 입에 달던 정권 사람들은 피해자 보호는커녕 ‘관노’ ‘피해 호소인’이라고 모욕했다. 오히려 가해자를 ‘맑은 분’이라고 칭송했다.

 

▶지난해 문 대통령은 유럽 수도원에서 “정치인이 된 이후에도 높은 윤리 의식을 지킬 수 있었다”고 했다. 그 직전 ‘내로남불’이 뉴욕타임스에 등장할 정도로 정권의 비윤리적 행태가 산더미였다. 대통령 친구 당선을 위해 울산 선거에 개입한 혐의, 딸을 도운 이상직 비리 비호, 자신을 수사하던 검찰 수사팀 공중분해 등이 대표적이다. 문 대통령은 선거 공작 피해자인 야당 원내대표의 면전에서 “불공정하게 선거 관리한 게 없다”고 했다. 언론 재갈법이 추진될 때는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 기둥”이라고도 했다. 청와대는 코로나 확진자가 세계 1위인데도 “세계가 감탄한 K방역”이라고 했다. 이런 말을 태연하게 한다.

 

▶문 대통령은 2018년 남북, 미북 쇼 이후 북한 위협에 계속 눈 감다가 이제 와 “군 통수권자로서 책무를 다하겠다”고 했다. ‘정권 편들기’ 수사를 하던 김진욱 공수처장은 최근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키겠다”고 했다. 정권 불법 수사를 뭉개던 김오수 검찰총장도 “법과 원칙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겠다”고 했다. ‘여당 의원’임을 강조하던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선거 범죄 처벌”이라고 했다. 5년 내로남불과 유체이탈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반성은 끝까지 없다. 대법원장의 위선과 거짓말이 드러났을 때 대법원 앞에는 ‘양심에 털 난’이라고 적힌 조화가 등장했다. 문 정권 전체 얘기 아닌가.

안용현 논설위원

 

03.26  우크라 ‘테크 지원군’

스타링크

 

2011년 파리 특파원 시절 ‘중동의 봄’ 취재차 이집트, 리비아에 갔었다. 이집트 군사정부는 국내외 정보 소통을 막기 위해 인터넷과 국제전화 송신을 차단했다. 기사를 송고할 길이 없어 난감해하다 틈새를 찾았다. 필자가 파리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 문자를 보내면, 아내가 필자 숙소로 전화를 걸었다. 유선 전화로 아내에게 기사를 불러주면, 아내가 컴퓨터로 받아쳐서 서울로 기사를 보냈다. 리비아에서도 기사를 보내려면 카다피 정부군의 집중 공격 타깃인 반정부 민병대 본부까지 가야 했다. 그곳에서만 유일하게 인터넷이 연결됐기 때문이다.

 

▶요즘 우크라이나 상황을 보면 격세지감이 든다. 세계 테크 기업들이 지원군으로 나서준 덕분에 인터넷망이 정상 가동되고 있다. 일등 공신은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저궤도 통신위성) 서비스다. 머스크는 우크라이나 부총리의 SOS 요청에 즉각 화답해 스타링크 연결망을 제공했다. 발전기와 달리 연기를 내지 않고 스타링크 수신 장비에 전력을 공급하는 특수 장비도 전달했다. 위성 접시 안테나를 자동차 시거잭에 꽂아 쓸 수 있도록 구조 변경까지 해주었다. 이 인터넷망이 우크라이나 군의 선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구글은 우크라이나 돕기 사내 아이디어 공모를 했다. 현재 우크라이나 스마트폰 사용자들에게 ‘공습 경보 알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러시아군에 도움을 줄지 모르는 도로 정보 구글 맵 서비스는 차단했다. 애플은 러시아에서 애플페이 서비스를 중단했다. 모스크바 지하철 이용자들이 불편하다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빅테크 기업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미지 회복의 기회로 삼고 있다”고 했다.

 

▶사이버 전장에도 의용군이 몰려들고 있다. 우크라이나 부총리가 ‘IT 군대’ 모집 공고를 SNS에 올리자 전 세계에서 20만명의 해커가 자원했다. 이들은 러시아 국방부, 크렘린궁 웹사이트, 타스통신 등을 공격해 기능을 일시 마비시켰다. 미국 하버드대생은 ‘피란처 웹 사이트’를 만들어 세계 각국의 2만5000개 숙소를 우크라이나 난민에게 제공하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마리우폴처럼 전기마저 끊겨 인터넷을 쓸 수 없는 주민들을 위해 라디오 단파 방송을 쏘아주고 있다.

 

▶암호화폐 대표 주자 비트코인은 양쪽에서 다 활용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암호화폐 기부 사이트에 전 세계에서 1억달러 이상의 비트코인이 모였다. 국제 달러 결제망에서 축출된 러시아는 원유, 가스 판매 대금을 비트코인으로 받겠다고 나섰다. 비트코인 자체가 컨트롤타워가 없어 전쟁에서도 ‘중립지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김홍수 논설위원

 
 

03.28(월)  김정은의 ‘탑건 스타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지난 24일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발사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 영상을 조선중앙TV가 25일 공개했다. /조선중앙TV 화면 캡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폭군이 되는 법’의 마지막 회는 북한의 김씨 정권을 다루고 있다. 히틀러, 스탈린 등 쟁쟁한 폭군을 누르고 최종회를 차지했다. 20세기 이후 세습에 성공한 유일한 절대 권력이라는 이유다. ‘영원히 지배하라’가 제목으로 달린 이 다큐는 북한의 성공 비결을 간추렸는데 그중 하나가 영상이다. 영화를 통해 김씨 일가를 신격화하는 데 성공해 마침내 불멸의 권력에 다가섰다는 것이다.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은 전 세계에서 영화 덕을 가장 크게 본 독재자라고 한다. 한때 후계 경쟁에서 밀렸던 김정일은 영화를 김일성 우상화에 활용해 후계자로 급부상했다. ‘피바다’ ‘꽃 파는 처녀’ ‘한 자위대원의 운명’ 등이 이때 제작됐다. 북한 영화의 전성기였다. 영화 수준을 높이겠다고 한국 감독과 배우까지 납치할 정도로 광적이었다. 예술적 가치와 감동을 논할 수 없더라도 당시 북한 영화엔 전율을 일으키는 장대한 서사는 있었다.

 

 

▶조선중앙TV가 김정은의 탄도미사일 참관 영상을 공개했다. 유광 점퍼에 선글라스를 낀 김정은이 슬로 모션으로 미사일 격납고에서 나왔다. 할리우드 영화 ‘탑건’의 한 장면 그대로다. 김정은이 시계를 보다가 선글라스를 벗는 장면은 짧은 영상을 리듬감 있게 반복하는 편집 방식으로 처리했다. 싸이의 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에서 사용한 코믹 기법이다. 공중에서 드론으로 찍은 탄도 미사일 장면을 고속 회전시키는 기교까지 부렸다. 영화광 아버지가 봤다면 북한의 영상 제작 수준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입을 다물지 못했을 것이다.

 

▶북한 권부에도 탁현민 같은 쇼맨이 등장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북한은 작년 심야 열병식 때부터 건물 외벽에 빛을 입히는 미디어 파사드, 드론 촬영 등 각종 기법을 도입했다. 하지만 아무리 북한판 탁현민이라도 김정은 허락 없이 ‘최고 존엄’의 모습을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처리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할리우드 스타일이든, 강남 스타일이든 각본·연출·제작·주연은 모두 김정은이라는 것이다.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는 마이클 잭슨 의상을 입고 국제 무대에 나올 때부터 정신이 이상해졌다. 푸틴의 폭주는 근육질 영상을 공개한 다음부터 시작됐다. 북한이 세상에 웃음을 주기 위해 그런 영상을 공개했을 리 없다. 독재자를 ‘관종’으로 만드는 과도한 자신감은 언제나 세상을 위협했다. 북한이 만든 영상은 저열함 때문에 조롱받고 있지만 영상이 담은 실물 탄도미사일은 대형 핵탄두를 미국 전역에 날릴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김정은의 황당 영상을 웃어넘길 수 없는 이유다.

선우정 논설위원

 
 

03.29  ‘코로나 데스밸리’

28일 오전 중국 상하이 창닝구의 한 병원 앞에서 시민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듣기만 해도 으스스한 데스밸리(death valley)는 미국에 실제 있는 지명이다. 캘리포니아 동부에 위치한 분지형 사막 계곡으로, 지구에서 가장 뜨겁고 건조한 곳 중 하나다. 여름 평균 기온이 47도에 달할 정도다. 1800년대 후반 골드러시 때 유타주에서 캘리포니아로 가는 도중 이곳에 잘못 진입했다가 죽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서 이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지금은 관광객이 찾는 국립공원이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이 28일 “오미크론 유행이 정점을 지나 감소세로 전환하고 있다”고 했다. 올 들어 이달 셋째 주까지 10주 연속 하루 평균 확진자가 40만명대까지 폭증하다가 11주 만인 지난주 35만명으로 증가세가 꺾였다는 것이다. 희망적 관측이라 반갑지만, 문제는 정부 전망이 지금까지 번번이 빗나갔다는 점이다. 정부의 낙관 전망이 ‘희망 고문’으로 국민 고통을 가중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확진자가 감소세로 돌아서더라도 불안 요인이 적지 않다. 우선 3차 접종 효과가 떨어지면서 확진자 중 고령층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전국 중증 병상 가동률도 67.8%로 위험 수위를 향하고 있다. 80%에 접근하면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본다. 조만간 ‘코로나 데스밸리’로 접어들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사망자 수는 확진자 변화를 2~3주 시차를 두고 따라가기 때문에 머지않아 사망자가 급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심상치 않은 것이 중국 상황이다. 인구 2500만의 중국 상하이에서 25·26일 이틀 연속 확진자가 2000명이 넘고 27일 3500명에 달하자 상하이 시 당국은 도시 봉쇄에 나섰다. 황푸강을 경계로 동쪽과 남쪽은 다음 달 1일까지, 서쪽 지역은 다음 달 1일부터 5일까지 봉쇄한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 코로나 사태가 안정되더라도 중국에서 계속 번진다면 안심할 수 없다. 14억 인구 대국에서 유행하는 바이러스가 다른 나라로 전파될 수 있고, 중국에서 상당 기간 번진다면 오미크론에 이은 또 다른 변이가 등장하진 않을지도 걱정거리다.

 

▶언제쯤에나 코로나 위기를 무사히 건너 연착륙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우선 급한 불은 눈앞의 데스밸리는 무사히 건너는 일이다. 전문가들은 3월말이나 4월초 코로나 사망자 수가 많게는 하루 400명 안팎에 달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우리나라 코로나 사망자 수는 지난 23일 470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가 예상밖으로 적게 나오면서 이 마의 구간을 통과하기를 바랄 뿐이다.

김민철 논설위원

 

03.30  농담의 수위

 농담이 심하기로 유명한 미국에서도 코미디언 크리스 록의 말은 아슬아슬하다. 흑인이 백인 경찰 총에 죽는 것은 반문명적 행동을 하기 때문이라며 “니거(흑인을 비하하는 표현)가 다 죽었으면 좋겠다”는 폭탄 발언도 했다. 백인이 했다면 용서받을 수 없는 말을 하고선 “나도 흑인인데 농담이었다”며 빠져나갔다. 201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동양인 아이들을 불러내 괴상한 동양식 이름을 붙여 좌중을 웃기려 했다. “내 농담이 불쾌하다면 트위터에 띄워라. 물론 스마트폰도 이 아이들이 만들었다”며 아시아는 아동 노동을 착취한다는 부정적 인상까지 덧씌웠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끔찍한 농담”이란 비난이 들끓어도 못 들은 척했다.

 

 

▶그제 열린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배우 윌 스미스가 아내 제이다 핀킷의 삭발한 머리를 조롱한 크리스 록의 뺨을 때렸다. 제이다는 영화 ‘콜래트럴’에서 숱 많고 탐스러운 장발을 자랑하던 배우였다. ‘매트릭스’에선 머리를 질끈 동여맨 함장으로 열연했다. 그런데 탈모증을 앓다가 아예 머리를 밀었다. 상실감이 컸을 게 분명한데, 데미 무어가 박박머리 여군으로 나온 ‘GI 제인’ 속편에 출연하라 했으니 농담이라 해도 선을 넘은 것이다.

 

▶자신의 결점을 의식하는 사람은 그 결점을 잣대 삼아 세상을 본다. 키 작은 사람 눈엔 사람들 키가 보이고, 탈모인 눈엔 머리숱부터 들어온다. 그로 인해 박탈감을 겪는다는 의학 연구도 있다. 많은 탈모인이 우울증을 호소한다고 한다. 이걸 농담 소재 삼는다면 남의 상처를 헤집는 폭력이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인종, 신체, 배우자에 대한 농담을 피하라고 경고한다. 몇 해 전 모 대학 동창회에서 누군가 “우리 집사람은 수수해”라고 했다. 한 친구가 “네가 눈이 낮긴 했지”라고 농담했다가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타인 신체의 단점을 농담 소재로 삼는 것도 금기다. 특히 쿨한 척 자기 외모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이른바 ‘셀프 디스’ 농담을 들어도 절대 맞장구치지 말라고 권한다.

 

▶한국 사회는 언어 폭력에 민감한 편이다. 하지만 미국은 물리적 폭행을 더 심각하게 여긴다. 이번 사건 이후 미국인들 생각을 물었더니 “록의 농담이 지나쳤다”는 답보다 “스미스의 행동은 폭행(assault)”이라는 반응이 두 배를 넘었다. 아카데미 측도 스미스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태세다. 사태를 유발한 록은 ‘친구를 잃는 것보다 농담할 기회를 잃는 편이 낫다’는 격언을 새겨야 할 것이다. 최고의 영화 축제를 폭력으로 얼룩지게 한 스미스도 반성해야 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03.31(목)  촉법소년

사람의 뇌는 뒷부분이 먼저 성장하고 앞부분은 마지막에 성숙한다. 마치 가을 단풍이 남하하며 숲을 차례로 물들이는 것과 같다. 뇌 과학은 10대 청소년 문제의 원인을 뇌 앞부분인 전두엽 미성숙에서 찾기도 한다. 육체는 성인처럼 됐는데 판단과 충동 조절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성숙하지 못한 탓에 물불을 가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미성년 범죄자를 성인과 달리 다뤄야 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세계 각국은 소년범을 성인범보다 온정적으로 대해왔다. 영국의 소년법 제정(1908년)이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이 법에 따라 14세 미만은 감옥에 가지 않고 학교 교육이나 직업 훈련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아이들에게 잘못을 뉘우치고 올바른 길을 찾아갈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법원이 미성년자에 대한 사형 집행,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등은 위헌이라고 판결한 것도 같은 취지이다.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나이는 나라마다 다르다. 현재 우리나라는 14세 미만인 ‘형사 미성년자’에게 형사처벌을 면제하고 있다. 10~14세 미만은 ‘촉법소년’으로 사회봉사, 보호관찰, 소년원 송치 등만 하고 전과 기록도 남기지 않는다. 독일, 오스트리아, 일본의 형사처벌 면제 연령도 14세로 우리와 같다. 중국(16세), 프랑스(13세), 캐나다(12세) 등은 조금 높거나 낮다. 미국은 주에 따라 7~17세로 차이가 있다고 한다.

 

▶소년범 형사처벌 면제는 미성년 흉악범이 발생할 때마다 논란이 된다. 소년법의 원조인 영국도 1993년 열살짜리 2명이 두 살배기를 무자비하게 살해한 사건을 계기로 엄벌 정책으로 전환했다. 국내에서도 13세가 모친을 칼로 살해한 사건, 촉법소년에게 성폭행당한 여학생이 극단 선택을 하는 사건 등이 잇달아 벌어졌다. “우리는 사람을 죽여도 교도소에 안 간다”며 대놓고 악행을 일삼는 아이들까지 나타났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촉법소년을 엄벌해야 한다’는 청원이 줄줄이 올라온다. 학교 폭력을 당한 딸을 위해 가해 촉법소년들에게 직접 보복했다는 아버지 이야기도 소셜미디어에 등장한다.

 

▶법무부가 ‘촉법소년’ 기준을 낮추겠다고 대통령직 인수위에 보고했다. 만 12~13세도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대선 때 여야 후보 모두 비슷한 공약을 냈다. 반론도 있다. 처벌 연령을 낮춰 소년 범죄가 줄었다는 나라가 없고, 처벌 만능주의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촉법소년의 기준이 어떻게 되든 아이의 잘못 뒤에는 부모와 학교의 잘못이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금원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