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여행/국가별5/ 노르웨이 - 뉴질랜드 - 니카라과
■ 노르웨이
정식 명칭은 노르웨이왕국(Kingdom of Norway)으로, 해안선의 길이는 25148㎞이다. 면적은 32만 3802㎢, 인구는 520만 7689명(2015년 현재), 수도는 오슬로(Oslo)이다.
인종은 대부분이 게르만족인 노르웨이인이며, 그밖에도 사미족이 있다. 언어는 노르웨이어이며, 전인구의 94%가 복음루터교를 신봉하여 헌법상 국교로 지정하였으나, 2017년 1월 종교간 형평성을 명목으로 국교 지위를 내려놓게 되었다. 종교의 자유는 인정된다.
노르웨이는 전국토의 3%만이 경작 가능하여 농업생산은 미미하나, 해운업 및 어업이 크게 발달하였다. 또 풍부한 수력발전을 이용한 금속·제철·목재·제지·조선·전기공업 등이 주종산업을 이루고 있으며, 영국과 공동개발한 북해유전에서 1975년부터 시작된 원유 및 천연가스의 생산은 노르웨이 경제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
이웃나라인 스웨덴·덴마크와 더불어 세계 최고수준의 복지국가로, 1971년에 완성된 국민사회보장계획에 따라 전국민에 대하여 무료교육제도·의료혜택·실업수당·노후연금 등의 완벽한 사회보장시책이 베풀어지고 있다.
노르웨이인의 조상인 노르드인은 8세기 말까지 남부에서 여러 개의 작은 나라들을 이루고 있었다. 9세기에 들어와서 노르드인의 해외 진출, 즉 바이킹 활동이 활발해져서 11세기까지 이어진다. 872년에는 하랄왕(Harald王)에 의하여 통일왕국이 세워졌고, 11세기 중엽에는 노르웨이왕이 덴마크왕을 겸하는 세력을 지녔다.
14세기 말부터 1814년까지는 덴마크의 지배를, 1814년부터 1905년까지는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다. 1905년 스웨덴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오늘의 왕가가 시작되었다. 2차세계대전중에는 독일의 지배를 받았다. 노르웨이는 내각책임제의 입헌군주국이며, 대외정책은 친서방중립 및 북구협력(北歐協力)으로 요약된다.
1949년 종래의 중립 정책에서 친서방 정책으로 전환하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였다. 1952년에는 북유럽이사회(Nordic Council)의 창설 회원국이 되었다. 1962년과 1967년 두 번에 걸쳐 유럽공동체(EC)의 가입을 신청하였으나 프랑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1992년 11월 다시금 EC가입을 신청하려 했으나 무산되었다. 1994년 국민투표로 유럽연합(EU) 가입이 부결되어 유럽연합 가입 협정안에 서명하지 않았다.
1991년 1월에 즉위한 하랄드 5세(HaraldⅤ) 국왕이 형식상 국가 원수이다.
대외정책은 중도좌파의 외교를 펴고 있으며, 1945년 유엔에 가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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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볼거리
http://www.youtube.com/watch?v=ldo-OFJ7lSs&feature=player_embedded -피요르드의 땅 1
https://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RnXwfX7Watw - 피오르드의 땅 2
○폭포
○호수
▲노르웨이 크레단 빙하 호수
○풍경
▲송네 피오르 끝에 위치한 계곡 마을 플롬
▲해발 1천 미터 절벽 사이에 낀 거대 암석 라그볼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베르겐의 목조 건물
▲피요르드 협만
▲게이랑에르 피에르 협곡 = 피에르중 가장 아름답다는 협곡
▲노르웨이 12-3세기 수도였던 항구도시 베르겐
▲아틀랜틱 다리 -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선정한 세계 제일의 드라이브 코스, 북극해 바다위를 작은섬과 연결 8개의 교량을 거치는 환상적인 다리
▲로포텐의 아름다운 풍경
▲신비로운 로포텐 제도
▲피오르 호수와 도시 풍경
▲천국의 다리-노르웨이 서남부에 건설되고 있는 하당게르 다리
▲해상 도로 - 길이 8.3km
▲야경
▲동양화 같은 풍경 - 노르들란드
▲오페라 하우스
▲외로운 등대 호텔
▲칼날 같은 절벽과 바다
▲석양의 바다
▲홍수 - 보스의 오포강이 범람 강가의 건물들이 위기
▲오로라
■ 뉴질랜드 New Zealand
스트레일리아에서 동남쪽으로 약 1,600km 떨어져 있으며 남위 33~53°사이(남북 길이 1,600km), 서경 162~173°사이(동서 길이 450km)에 있다. 폭 32km의 쿡 해협을 끼고 있는 2개의 주요 섬인 노스·사우스 섬과 기타 많은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노스 섬과 사우스 섬은 남부의 산들과 북부의 구릉지대로 양분된다. 대다수 국민이 유럽계이고, 약 10%를 차지하는 마오리족과 태평양 도서군 원주민·화교들이 소수 집단을 이룬다. 공용어는 영어와 마오리어이다. 종교는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으로 구성된 그리스도교가 많지만 불교·힌두교 신자도 있다. 화폐단위는 뉴질랜드달러(New Zealand dollar/NZ$)이다.
지리적으로 다른 나라들과 동떨어져 있어서 사회적·문화적·경제적으로 특징 있는 발전을 이룩했다. 뉴질랜드 경제는 농업·중소기업·서비스업에 기반을 둔 선진적 시장경제이다. 농업은 특히 목양업이 발달했다. 단원제를 기반으로 한 입헌군주국이다. 국가원수는 영국 국왕이고 총독이 대표한다. 정부수반은 총리이다.
폴리네시아인들이 뉴질랜드에 정착한 것은 AD 1000년경부터이다. 1642년 네덜란드 항해가 아벨 타스만에 의해 주요 섬들이 처음 발견되었고, 1769년 제임스 쿡 선장은 이 섬들의 지도를 만들었다. 1840년 영국 직할식민지가 된 이 지역에서는 1860년대 내내 마오리족 원주민과 점령자들 간의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 1865년 수도를 오클랜드에서 웰링턴으로 옮겼고, 1907년 뉴질랜드 자치령의 지위를 얻었다.
뉴질랜드는 1919~62년 서사모아를 위임통치했고 제1·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1970년대 초 영국의 유럽경제공동체(European Economic Community/EEC) 가입은 뉴질랜드 경제에 인플레이션 급등과 실업의 증가라는 악영향을 미쳤다. 뉴질랜드 정부는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출시장을 확대하고 경제를 다각화했다. 또한 뉴질랜드는 외교관계에서도 독립적인 지위를 갖게 되었고, 핵무기 확산 반대 입장을 강하게 견지했다. 문맹률은 거의 0%다.
뉴질랜드의 문화적 환경은 유럽 풍이 강하면서도 마오리족의 전통 문화와 예술을 되살린 복합적 요소를 갖는다. 20세기 후반 이후 마오리족의 사회·경제적 활동 범위가 넓어지면서 뉴질랜드 정치 발전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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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
○풍경
▲지구 남반부 테카포 호수 주변의 아름다운 층층이 부채꽃
▲숨 죽여 바라 본 테카포 호수
▲거대한 해변 속의 사람은 작은 미물에 불과하다
▲그림같은 풍경
▲길게 뻗은 도로 푸른 언덕 거대한 산 먹구름과 파란 하늘이 장관을 이룬다
▲남부의 밤하늘
▲서던알프스 와카티푸 호수 부근의 장엄한 풍경
▲스타운을 날으는 패러글라이더
▲오클랜드의 석양
▲오타코 퀸스타운 호수 지역의 풍경
▲웰링턴의 야경
▲간헐천
▲반딧불이 동굴 - 뉴질랜드 북섬 와이토모에 있는 빛나는 벌레 동굴
▲ 타우포강의 후카폭포
▲루비아 인공폭포
▲화산 분화구에 있는 에메랄드 호수 - 통가리로 국립공원
▲에메랄드 호수
▲테이카포 호수
○남섬
▲밀포드 트랙 - 뉴질랜드에는 Great Walks라는 9개의 대표적 하이킹 트랙중 하나로 남섬 피오르드랜드에 있다
▲마운트 쿡 - 남섬 최고봉 3573m
▲장엄한 알프스 - 뉴질랜드 남섬의 산맥으로 남북 방향 450km에 서던 알프스, 사진은 와카티푸 호수 부근
▲번개빛 줄기 같은 산
○북섬
▲북섬 오클랜드 피하의 해변 풍경
▲황금빛 해돋이 - 북섬 와이카토
○퀸즈타운
○일상
▲해안 화물선 레니호가 좌초 컨테이너 유실 기름 유출2011.10.12.
▲좌초화물선 태풍으로 두동강
▲뉴질랜드 500년 만의 대홍수 17.4.6 북섬
■ 니카라과
Nicaragua 니카라과공화국
중앙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나라로 면적이 130,373㎢ 이르며 수도는 마나과이다. 혼혈인 메스티소가 국민의 약 70%에 이르며 인구의 대다수가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국교는 없으나 국민의 대다수가 천주교이며, 화폐는 코르도바이다. 농업·경공업·무역에 기반을 둔 시장경제 체제의 개발도상국으로 국내총생산(GDP)은 최근 성장률을 보이고 있으나 아직 최빈국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문맹률이 15%이하로 낮은 편이며 13세까지의 무상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1502년 9월 콜럼버스가 니카라과 동북단에 상륙하여 스페인 국왕의 이름으로 영유권을 선언하면서 이 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다. 1821년 9월에 1차로 독립하였으며, 1823년 멕시코가 주도하는 중미연합에 일시 참가하였다가 1838년 9월 15일 스페인으로부터 재독립하였다.
독립 후 니카라과는 레온시를 거점으로 하는 자유주의자와 그라나다시를 거점으로 하는 보수주의자 간의 정치적 투쟁의 격화로 정치적 불안정이 지속되었다.
외세와 결탁한 양측의 투쟁으로 1856년에는 자유주의자들이 불러들인 미국인 워커(Walker,W.)가 니카라과군 총사령관과 대통령직에 오르기도 하였으며, 1912년부터 1933년 사이에 두 차례에 걸쳐 19년간 미국 해병대가 주둔하였다.
1937년에는 소모사(Somoza, A.)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1979년까지 족벌독재정치를 실시하여 왔다.
그러나 1978년 8월 코스타리카 국경지대에서 결성된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은 쿠바의 지원하에 반소모사 게릴라활동을 벌였다. 이 민족해방전선은 1979년 6월 임시정부와 군사평의회를 결성하고, 1979년 7월 19일 수도 마나구아를 점령한 후 국가재건위원회를 구성하여 정권을 장악하였다. 1984년 11월 혁명정권 수립 뒤 처음으로 총선거를 실시하였으며,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의 오르떼가(D. Ortega)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1986년 12월 신헌법을 제정하였다.
그러나 쿠바의 지원을 받는 좌익정권이 들어서면서 니카라과와 미국은 심각한 갈등을 빚어왔다. 니카라과는 소모사 정권 때까지는 반공국가로서 친서방정책을 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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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부부 국가수반
▲세계 최초 남편은 대통령 아내는 부통령 - 니카라과16.11.7 72.5% 득표율로 대통령 당선된 오르태가, 부인 로사리오 무리요를 부통령 후보로 내세워 당선
▲이구아나 장사 - 니카라과 13. 6.8
▲니카라과 모모톰보 화산 110년 만에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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