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계의 추악한 괴물들1 - 그들은 좌파였다
2018.02.08 최영미 시인 언급한 '괴물'...문학계 원로 고은 시인
류근 "고은 만행이 성령 손길인듯 묵인한 사람들 다 뭐하나"
▲시인 류근. 우상조 기자
시인 류근이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의 당사자가 시인 고은이라고 밝혔다. 그는 6일 오후 11시 30분경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몰랐다고? 놀랍고 지겹다. 60~70년부터 공공연했던 고은 시인의 손버릇, 몸버릇을 이제야 마치 처음 듣는 일이라는 듯 소스라치는 척 하는 문인들과 언론의 반응이 놀랍다”고 밝혔다. 또 “눈앞에서 그의 만행을 지켜보고도 마치 그것을 한 대가의 천재성이 끼치는 성령의 손길인 듯 묵인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폭로했다. 이어 “그의 온갖 비도덕적인 스캔들을 다 감싸 안으며 오늘날 그를 우리나라 문학의 대표로, 한국문학의 상징으로 옹립하고 우상화한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라며 일갈했다.
▲2017년 고은 시인·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문사회과학부 초빙석좌교수.
고은은 1958년 시 ‘폐결핵’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한 이래 시‧소설 등 저서 150권 이상을 내 놓은 원로 문인이다. 70년대엔 암울했던 독재 시대에 반기를 드는 작품을 내놓았다. 1974년 출간된 『문의 마을에 가서』는 그의 치열한 시대정신을 담은 대표 시집이다. 1960년 발표한 ‘눈길’은 국정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고은은 매년 국내외 문학계에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돼 왔다.
앞서 6일 시인 최영미(57)가 쓴 시 ‘괴물’이 SNS를 뜨겁게 달궜다. 계간지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실린 이 시는 최 시인의 성추행 경험을 밝히고 있다. 1인칭으로 쓰인 시엔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고 시작해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선생에게 자신이 "이 교활한 늙은이야!" 라고 항의한 내용까지 담겨있다. 특히 “100권의 시집을 펴낸", "노털상(노벨상을 일컫는 듯한 말) 후보로 이름이 거론되는” 이라고 상대를 표현하고 있다.
이에 고은은 지난 6일 한 언론에 “30여 년 전 어느 출판사 송년회였던 것 같다"며 "여러 문인들이 같이 있는 공개된 자리여서 술 먹으며 격려하느라 손목도 잡고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오늘날에 비추어 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뉘우친다”고 밝혔다.
▲최영미 시인. 신인섭 기자
6일 오후 9시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최영미는 이러한 고은의 설명에 대해 “구차한 변명이다. 그는 상습범이다. 여러 차례, 너무나 많은 성추행과 성희롱을 목격했고 내가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권력을 쥔 남성 문인의 성적 요구를 거절하면 그들은 뒤에서 복수를 한다”고 밝혔다. 최 시인은 구체적으로 “그들이 편집위원으로 있는 잡지가 있다. 요구를 거절한 여성 문인에겐 시 청탁을 하지 않고 그의 시에 대해서 한 줄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주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폭력 고발 이후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문화·예술계로 퍼지는 추세다. 2016년 문화·예술계에선 한 차례 비슷한 흐름이 있었다. 트위터 등 SNS에선 '#영화계_내_성폭력' '#문단_내_성폭력' '#미술계_내_성폭력' 등 해쉬태그와 함께 문화계에 몸담은 여성들의 과거 성폭력 경험이 상당수 공개된 바 있다. 이번 최 시인의 ‘괴물’은 고은이라는 거장을 향한 폭로인 만큼 문화계 전반에 큰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은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2018.02.09 최영미 시인의 폭로, 그리고 괴물의 똥물을 거부하는 대중들
▲ 드라마 '더 폴'에서 현장에서 경찰을 지휘하는 수사관 스텔라
최근 넷플릭스(Netflix)를 통해 드라마 ‘더 폴(The Fall)’을 보았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제작사가 합작한 이 시리즈물은 영국의 여성 수사관 스텔라가 벨파스트에 파견돼 연쇄살인범을 체포하는 추리물이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모두 3부작으로 방영된 이 드라마의 1,2부는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영상물 평론 사이트인 ‘로튼토마토 닷컴(www.rottentomatoes.com)’에서 100%라는 완벽한 평점을 얻은 수작이다.
드라마 주인공인 스텔라는 뛰어난 능력으로 남성수사관들을 지휘하며, 연쇄살인범을 추적한다. 젊고 잘 생긴 남성 수사관들을 보면 거리낌없이 자신의 침실로 불러들이기도 한다. 시리즈 두 번째에는 친밀하게 지내던 경찰 상관이 그녀를 침실로 찾아가 어떻게 한번 해볼려고 마구 들이대는 장면이 있다. 완강하게 거부하던 스텔라는 한 주먹으로 남성의 얼굴을 가격하여 피투성이를 만든다. 그리고 나서 정신차린 남성의 얼굴에 흐르는 피를 닦아주며 다시 범인과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나서 며칠 후 마침 최영미 시인이 문단에서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의 단초가 된 최영미 시인의 괴물을 읽으며 문득 드라마 '더 폴'에서 집적거리는 상관의 쌍코피를 터뜨린 스텔라 수사관을 떠올렸다.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의 전반부는 다음과 같다.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여기서 En은 한 시대를 풍미한 시인 고은 이라는 것은 이제는 세상이 다 안다. 유승민 의원은 8일 “최영미 시인이 고은 시인의 문학계 성추행을 고발했다. 매우 추악하고 충격적”이라고 언급했다. 또 “고발 내용을 보면 매우 추악하고 충격적으로 정말 추하게 늙었다”면서 “고은 시인의 시를 국정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최영미 시인이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지도록 성추행을 당했을 때 즉석에서, 드라마 ‘더 폴’의 주인공인 스텔라 수사관처럼 En의 면상을 주먹으로 내리쳐서 쌍코피를 쏟게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최 시인은 En이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것을 보고도 “이 교활한 늙은이야!”하고 소리치고 도망쳤다. 만약에 최 시인이 즉석에서 En의 얼굴을 내리쳐서 입술이라도 터지게 만들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En의 ‘호위무사’들에 의해 현장에서 즉각 무력으로 제압당하고 보복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노 대가의 유머를 받아주지 못하는 속좁은 인물로 치부되고, 까칠한 성격, 긴 가방끈 등도 도마위에 올랐을 것이다. 한 시대를 상징하는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인 시인에게 감히 상처를 입힌 무엄한 인물로 두고두고 비난을 받지 않았을까 한다. 그리고 En선생의 성희롱 사건은 한 시대를 풍미한 늙은 시인의 기행 정도로 문단의 이면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을 것이다.
명백한 잘못조차도 만담이나 전설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En의 힘, 영향력...그것이 바로 En이 누리고 보유한 권력이 아니었을까? En의 권력은 한국 지식 사회나 문단을 좌파가 장악한 이래 매우 공고해 보였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En의 권위는 불가침적인 절대적인 것 같았다. 최영미 시인도 올해 1월30일 다음과 같이 페이스북에 올렸다.
“서지현 검사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뉴스 보며 착잡한 심경.
문단에서도 성추행 성희롱 문화가 만연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시절의 이야기를 지금 할 수 없다. 이미 나는 문단의 왕따인데, 내가 그 사건들을 터뜨리면 완전히 매장당할 것이기 때문에?
아니, 이미 거의 죽은 목숨인데 매장 당하는 게 두렵지는 않다. 다만 귀찮다. 저들과 싸우는 게. 힘없는 시인인 내가 진실을 말해도 사람들이 믿을까? 확신이 서지 않아서다. 내 뒤에 아무런 조직도 지원군도 없는데 어떻게? 쓸데없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래서 더 무시무시한 조직이 문단.”
그런데 최영미 시인이 jtbc에 출연해서 En의 성희롱문제가 공론화되면서, En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En의 호위무사인듯한 사람들이 En을 비호하는 글들이 온라인에 나타났다.
저명한 문학평론가이자 대학교수인 K가 2월7일 En을 쉴드치는 글을 포스팅하였다. 그는 불과 며칠 전에 서지현 검사를 응원한다는 포스팅을 올리기도 하였다. 그의 포스팅의 주요 부분은 다음과 같다.
“- 얼마 전 서지현 검사가 그랬듯 이른바 ‘산전수전 다 겪었을’ 그녀도 ‘상급 권력자’에게 당한 성적 모욕을 돌이키는 일은 그만큼 힘겨웠던 게 분명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서 검사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울음을 참고 있는 느낌이었고, 최시인은 격앙과 분노를 짓누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 하지만 적지 않은 ‘문단 사람들’이 지청구를 대듯, 그녀의 인터뷰 내용은 여러 형태의 성폭력을 적당히 감내하지 못하고 저항한 여성문인들은 주요 문학지면을 얻지 못하고 중요 문학출판사에서 작품집 한 권 내지 못하다가 문단에서 잊혀져가게 되는 것이 예외 없는 현상인 것처럼 비쳐지기에 충분했다. 그녀가 조금 더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 그런 식의 성마른 일반화를 강변하지 않고도 자기 본의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라는 반론을 승인한다고 해서 문제의 심각성이 희석되는 것은 아니다. 최 시인 자신의 경험 여부를 떠나서 그런 사례가 다만 몇 건이라도 실재해 왔다면 그것만으로도 문단이라는 곳의 불건강성은 ‘일반적으로’ 추론되기에 충분하며, ‘여성문인’들이 문학을 업으로 하여 먹고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가를 환기하기에 충분하다. 베스트셀러 작가로 나름 한 시대를 풍미한 명망가인 최영미가 저러할 진대 나머지 수많은 작고 기댈 곳 없는 영혼들의 운명은 불문가지일 것이다. 나 같은 ‘꽃길만 걸어온’ 언필칭 엘리뜨 남성 문인은 죽어도 알기 어려운 경지임에 틀림없다.
- 모든 권력구조는 원래 하부구성원들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에 의해서만 지속가능한 것인즉, 확실히 이젠 변화가 오기는 올 모양이다.
- 진심으로 말하건대 나는 여전히 그 En선생을 좋아하고 따르는 쪽에 속해 있는 사람이다. 비록 노벨상을 향한 오랜 갈구가 이젠 좀 근천스러워 보이고, 엄청난 다작이면서도 한국문학사를 너끈히 관통할만한 단 한 편의 절창을 가지지 못한 것이 아쉽긴 해도, <피안감성>에서 <새벽길>을 거쳐 <만인보>에 이르는 그의 시적 여정 한 땀 한 땀을 늘 아끼고 좋아해 왔으며, 무엇보다 70~80년대의 헌신적 투쟁 과정 속에서 만난 그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 그가 젊고 예쁜 여성들을 좋아하고 술자리에서 그들에게 이쁘다느니 어떻다느니 희롱하고 또 이리 와봐라 저리 가봐라 하면서 손을 잡고 더듬고 하는 일은 나처럼 이런저런 행사에 잘 끼지 않는 사람도 직접 본 적이 있을 정도로 흔한 일이다. 아마 본인은 다 기억도 못할 것이다. 그것은 전설이기도 하고 현실이기도 할 정도로 오랜 시간 파다한 문단의 일상 같은 일이었다. 산에 가면 나무가 있고, 강에 가면 물이 있듯 자연스러운 일이라고나 할까? 근래에는 나로서는 접할 기회가 없어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20년 전까지는 그런 세상이었다. 문단이건 다른 문화예술판이건 젠더감수성, 일상적 인권감수성은 거의 제로라서 어딜 가든 크고 작은 En선생들이 그야말로 즐비했다고 보면 될 것이다.
-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를 둘러싼 전설이 그처럼 파다했다는 것,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사실에서 의외로 그를 옹호해 줄만한 작은 언턱거리가 찾아질 수도 있겠다. 그의 인생을 내가 어떻게 다 알겠는가마는 내 기억에 그에 관한 소문은 늘 중인환시리(衆人環視裏)에 모두에게 공개된 술자리가 진원지였다.
- 당사자에게는 그런 자리에서 공개리에 희롱을 당하고 추행을 당하는 것이 정말로 고통스럽고 끔찍한 경험이었겠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만큼 지속적일 수는 없다는 뜻도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음습한 곳에서 일어나는 추악한 성범죄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과 대비해 본다면 그의 ‘파다한 행각’은 상대적으로 매우 양명(?)한 것이고 일회적인 것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 말하는 김에 또 하나,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그가 무슨 주요 문학잡지의 편집위원 같은 것을 지속적으로 맡은 적이 없다. 그의 문단 내외의 젊은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이 기본적으로 강약이 부동한 상황에서 발생하므로 원천적으로 권력관계의 소산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가 이를테면 등단이라거나 발표지면 등을 미끼로 여성들을 괴롭혔다는 소문은 들은 바가 없다. 그런 점에서 최영미시인의 인터뷰가 마치 그 En선생이 권력관계를 이용하여 여성문인들의 문단활동을 좌우한 것처럼 비쳐진 것은 조금 유감스럽다. 적어도 내가 아는 그는 그런 뒤끝을 가진 사람은 아닐 것이다.
- 이렇게 쓰면 누군가는 나에게 자기 주례선생님을 능멸하는 패륜아라고 할지도 모르고, 반대로 오랫동안 문단출입을 안 하더니 눈과 귀가 어두워 순진한 소리만 늘어놓는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로서는 최선을 다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변명 같지 않은 변명, 이유 같지 않은 이유는 열거할수록 사실 기름불에 물 끼얹는 격이 될 것이다. 이런 구구한 말 몇 백 마디를 늘어놓는다 해도 최영미시인 한 사람이 겪은 모멸감의 무게 단 일 그램과도 맞설 수는 없는 게 분명하다.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제 판이 바뀌는 중이다. 이제는 누구도 함부로 다른 존재를 사물화하거나 타자화할 수 없는 세상이 오고 있다. 기존의 질서가 안온하고, 그대로 지속되었으면 하는 자들만이 기존 질서 속에서 언어도 장소도 갖지 못한 채 떠돌고 있는 존재들이 계속 침묵하기를, 견디기를, 이대로 배부른 노예처럼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 어쩌면 En선생은 이 일로 ‘명예’에 흠집을 입고, 그렇지 않아도 미적거리기만 하는 노벨상 위원회에 상을 안 줘도 되는 좋은 구실을 주게 될지도 모른다. 주제넘고 남의 인생을 두고 할 말은 아닌 줄 알지만, 어차피 제국과 그 주변에서 돌아가며 타 먹는 노벨상 따위 못 받으면 어떤가.
- 당사자는 좀 억울하고, 이른바 ‘죄질’도 진짜 어둠 속 독버섯 같은 악질들에 비해서는 범속한 수준일 수도 있지만, 차제에 인생 후반에 맞는 또 한 번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스스로 꿈에라도 악행이라 생각해본 적 없었다 할지라도 그 일로 인해 평생을 치욕감으로 살아가야 하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치열하게 깨닫는 것으로부터 다시 만년의 문학을 시작할 수 있다면 그도 큰 다행 아닐까. 처음부터 아무 것 없이 탁발로 표표하게 시작한 삶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문단의 명망가인 K 교수의 글에 달린 댓글 120여개의 대부분은 K교수의 글을 비난하는 것들이었다. 심지어 En을 비호하는 K교수를 ‘공동정범’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 사진출처=jtbc 뉴스룸 캡쳐본
En을 옹호하여 화제가 된 도 하나의 글은 시인 L씨. 그도 7일 페이스북에 최 시인을 비난하는 글을 포스팅하였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JTBC 손석희ㅡ최영미 인터뷰를 보면서 내내 심기가 불편했다. 문단에 만연한 성추행이라니, 최영미는 참으로 도발적인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잣대로 마치 성처녀처럼 쏟아냈고, 천하의 손석희는 한국문단이 "아 이럴수가 있나" 하며, 통탄하고 있었다. 메이저 출판사와 무소불위의 평론가들의 묵계를 강조하면서 그녀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남발했다.
- 최영미의 그런 발언에 대해 절실성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왠지 내가 그녀의 가해자가 된듯 나도 모르게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최영미 인터뷰는 한국문단이 마치 성추행집단으로 인식되도록 발언했기에 난 까무라치듯 불편했다. 왜 그녀가 이 시점에서 자기 체험을 일반화해서 문단 전체에 만연한 이야기로 침소봉대해 쏟아내는지 조금 의아했다.
- 지난번 호텔 집필실 사건이 터졌을 때 썩 달갑지 않았지만 그래도 난 그녀를 옹호했었다. 시인도 인간이기에 욕망에 자유로울 수 없지 않은가. 하긴 그녀는 손석희와 인터뷰 때 추악한 문단을 떠난지 오래였다고 했다. 허나 그 오랜 기억이 문단의 현재적 풍토인양 뉴스화됐다.
- 최영미 시인, 그녀는 선병질적으로 튀는 성격이었다. 매우 완강한 자존의 소유자였고, 어찌 보면 유아독존적 처신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 시에 대해 추호의 비판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건 어찌보면 창비와 언론이 만들어낸 <최영미 현상>이 불러온 결과였기에 그녀의 무례함에 대해 누구도 대놓고 반박하지는 못했다.
- 그즈음 이 땅의 민족문학은 사실상 최영미 현상으로 인하여 절단나고 있었다. 그녀의 시 구절 ㅡ "컴퓨터와 씹하고 싶다"는 말만이 오랫동안 술좌석에 회자되었을 뿐, 그때 우리는 그녀가 야기한 환멸의 미학에 얼마나 통탄스러워했던가.
- 1994년 어느날이었을 것이다.
서울 마포 아현동 작가회의 사무실에서 <민족문학작가회의 시분과 합평회>가 열렸다. 그날 창비에서 출간된 그녀의 첫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잔치는 끝났다"는 표현은 서정주 시의 표절이었다)에 대해 수십명의 시인들이 참가한 가운데 토론회를 가진 적이 있었다.
저자인 그녀는 물론 민영 시인 등 원로 문인들도 자리를 함께 했는데,
몇몇 시인들이 그녀 시에 대해 사소한 비판을 했는데, 그때 그녀는 좌중이 놀랄 정도로 난리 부르스를 쳤다. 숫제 안하무인이었다고 할까. 그 싸가지없던 악다구니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합평회란 시의 문제점에 대해 이런저런 비판이 오가는 게 상례건만 합리적 대화가 불가능한 정도로 그녀는 피해의식으로 부르르 온몸을 떨었다.
- 십여년 전인가? 그녀는 실천문학사에서 <돼지들에게>란 시집을 펴낸 적이 있었다.
그 시집을 보면 시적 소재로 등장한 수많은 문화계, 문학계 인사들이 나온다.
시의 요점은 모두들 그녀에게 했다는 성적 추행의 이력이다. 어찌보면 지독한 남성혐오에 가까운 트라우마일 수도 있다. 왜 그녀는 그 시집에 등장한 수많은 유명인사들과 일부러 만나 그런 사건을 만들어야 했는가. 어찌보면 난 그게 의문스러웠다.
그 시집을 읽고 이걸 팩트로 믿어야 하나, 물론 시적 장치이지만, 여러 의구심이 들었다.
- 최영미 발언이 용기 있다고 한다.
어허 그렇다면 한국문학의 상징, 우리 En시인은 어찌할꼬나.
물론 En 시인의 기행에 대해서 숱한 얘기를 들은적 있지만 먼먼 소싯적 얘기를 현재 진행형하여 매도하는 건 조금 납득할 수 없다.
- 남자의 성적 욕망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가.
그리고 그 욕망의 피해자가 받는 고통은 또 얼마나 지속적이고 치유 불가능한가.
그걸 최영미 발언을 통해서 확인해본다.
- 난 미투가 두렵진 않다. 나도 한때는 여자사람을 좋아했는데 누가 나를 이십년, 삽십년 전 일로 미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잠시 옛날을 되돌아 본다. 타인의 불행이 더이상 나의 행복은 아니다.
허나 미투 투사들에 의해 다수의 선량한 문인들이 한꺼번에 도매금으로 매도되는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시인 L의 글에는 무려 580여개의 댓글이 붙었다. 대부분 L시인을 맹렬히 비난하는 내용들이다.
평론가 K는 En의 ‘명예’에 흠집이 날까, 노벨상을 못받을까 걱정한다. L 시인도 “한국문학의 상징, 우리 En시인은 어찌할꼬나”하고 통탄하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의 일부 반응을 살펴보면 그는 이미 바닷 속 깊이 침몰한 난파선 신세나 다름없는 것 같다.
정치인들이 그와 함께 사진을 찍으려 들 것 같지 않다. 아무리 좌파 언론이라 하더라도 En에게 다시는 새해맞이 기념시를 부탁하거나, 앞날을 묻는 인터뷰를 기획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한 시대를 풍미한 저항시인이 젊은 대중의 분노의 대상으로 전락하여 이처럼 속절없이, 이처럼 빠른 속도로 세상에서 멀어져 가기도 쉽지 않을 듯 하다.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의 후반부에서 대중들에 대해 걱정한다.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은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하지만 최 시인의 이러한 걱정은 기우(杞憂), 즉 앞일에 대한 쓸데 없는 걱정이라 생각해도 좋을 듯하다.
글 | 우태영 조선뉴스프레스 인터넷뉴스부장
2018.02.19 연그계 이윤택의 노추
이윤택 "더러운 욕망, 억제할 수 없었다. 성폭행은 아니다"
17일과 18일 여배우의 ‘미투’ 고백 이어져
▲이윤택 연출이 19일 서울 대학로 30스튜디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TV조선 캡처.
연극계 여배우들의 ‘미투’로 추락한 연출가 이윤택(67)이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피해자에게 사과했다.
19일 서울 대학로 30스튜디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윤택 연출은 “성추행 피해자분들에게 사과한다. 앞으로 조사를 받고 결과에 따라 벌을 받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윤택은 “단원들에게도 사죄드린다. 선배 단원들이 항의할 때 다시 그러지 않겠다고 매번 약속을 했는데 번번이 제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이런 큰 죄를 지게 됐다”고 했다. 연극계 선후배를 향해서도 “사죄드리고 싶다. 저 때문에 연극계 전체가 매도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사과했다.
“극단 내에서 18년 가까이 생활하며 관습적으로 일어난 아주 나쁜 행태라고 생각한다. 어떨 때는 나쁜 죄인지 모르고 저질렀다. 제 더러운 욕망을 억제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다. 번번이 악순환이 오래 진행됐다. 일부 단원들이 문제 제기했지만 약속을 못 지켰다. 죄송하다.”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수백 명의 기자가 모여 연극계에 불고 있는 ‘미투’ 고백에 대한 관심을 반영했다. 그러나 그는 “성폭행은 인정하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다. “진위 여부는 법적 절차가 진행된다면 성실히 수사에 임하겠다”는 것이었다.
“성추행은 맞지만 성폭행은 아니다. 폭력적이고 물리적인 방법으로 성폭행하지 않았다. 서로 생각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행위는 있었지만 성폭행은 아니었다. 진위 여부는 법적 절차가 진행된다면 성실히 수사에 임하겠다.”
▲ 배우 김보리씨가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에서 이윤택의 성폭행 의혹을 두 차례에 걸쳐 공개했다.
한편 지난 14일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에 이어 배우 김보리(가명)씨가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연극 뮤지컬)를 통해 또 다른 ‘미투’를 고백했다. 그는 17일 ‘윤택한 패거리를 회상하며’ 를 쓴 뒤 이튿날 ‘윤택한 패거리를 회상하며2’로 재차 이윤택의 성추문 의혹을 제기했다.
“이윤택씨로부터 극단에 있었던 2001년 19살, 극단을 나온 2002년 20살 이렇게 두 번의 성폭행을 당했다. 성추행은 성폭행 이전에 여러 번 있었다. 그 수법과 장소 등이 앞서 폭로한 분들의 것과 동일하며 이후 그의 추행은 성폭행이 되었다”고 했다.
김보리 배우는 또 “이윤택만이 아니라 연희단거리패 단체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밀양연극촌의 촌장인 하○○에게 먼저 성폭행을 당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폭로했다. 하씨는 모 대학 겸임교수를 지냈고 인간문화재이기도 하다.
글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2018.02.20 이윤택, 하용부, 고은.. 문화예술계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점
▲2월 19일 기자회견장에 나온 이윤택 연출_뉴시스
“그는 내가 속한 세상의 왕이었다”
“그는 그곳에서도 왕 같은 교주였다”
피해자들의 공통된 진술이다. 사건 당시 피해자들은 열아홉, 스물 혹은 극단의 중간 정도였다. 극단은 폐쇄적이고 수직적이었다. 그 서열의 맨 꼭대기에 가해자가 있었다. 극단 안에서 몇 번 정도 경고가 있었지만, 그는 무시했다. 이 일들은 ‘극단 내에서 18년간 관습적으로 일어난’ 일이었고, ‘어떤 때는 나쁜 짓인지 모르고 저질렀을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죄의식을 가지면서 제 더러운 욕망을 억제할 수 없었을 수도’ 있었다.
수직적인 서열의 맨 꼭대기에, 가해자가 있다
피해자는 1인칭으로 과거의 일들을 털어놓는데, 막상 가해자는 3인칭으로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한다. 그는 성폭행과 성관계의 차이도 인지하지 못한다. 상대방의 동의 없이 이루어지는 모든 성적인 행위는 ‘성폭력’이다. ‘어떤 형태든 피해자가 원하지 않은 성적 접촉이 강제로 행해진 경우’다. 이 때 중요한 건 상대방의 의사다. 피해자들은 동의한 적이 없다. 그런데 가해자는 “폭력을 이용해 강제적으로 한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성관계이지, 성폭행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지난 18년 동안 있었던 일을 사과하기 위해 나온 자리에서 말이다.
이런 유체이탈 화법이 이윤택 연출에게만 발견되는 건 아니다. 애초 이윤택 연출의 성추문이 알려진 건 SNS를 통해서 였다. 그에게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 용기를 내 ‘미투 캠페인’에 동참했다. 이 중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겪었던 일들을 썼다. 다시는 이런 일들이 후배들에게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였다. 그의 용기에 다른 이들도 동참했다.
처음에 연희단거리패는 이윤택 연출을 공연에서 제외시키겠다고 말했다. 그가 이끌던 밀양연극촌에서도 그를 제외하고 예년대로 축제를 열 것이라고 말했다. “이윤택 예술감독이 스스로 전부 내려놓기로 결론을 내렸고 밀양과도 관련이 있는만큼 그가 없더라도 행사는 예년대로 준비해 치러낼 것”이라는 공식입장이었다. 그런데 그 입장을 내놓은 밀양연극촌의 촌장인 인간문화재 하용부 역시 성폭행의 가해자였다.
▲인간문화재 하용부 뉴시스
가해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인지부조화
또 다른 피해자는 열아홉, 스물이던 당시, 자신의 스승이자 존경하는 예술인이던 이윤택 연출과 하용부 교수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그 역시 자신의 피해 이후에도 수 십 년간 이런 성폭행이 이뤄졌다는 점을 견딜 수 없어 쓰게 됐다고 했다.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피해자들은 매일 고통으로 잠식되는 일상을 견디며 지냈지만, 가해자들과 방관자들은 “최고의 연극 집단 중 하나라는, 그 집단의 우두머리를 모신다는 명목으로 마치 집단 최면이라도 걸린 듯 각자에게 일어난 일과 목격한 일을 서로 모른 체 하며 지냈다”는 것이다.
이들은 ‘연희단 거리패가 사과문 하나로 예정된 공연을 이어가고, 피해자들에게는 몇 줄의 사과를 안겨주며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늘 그렇듯 우두머리인 이윤택을 보호할 것’이라고 썼다. 처음에는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사태는 일파만파 커져갔다. 이미 ‘고은’ 시인으로 촉발된 ‘거장의 성폭력’에 데인 후였다.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으며 배워온 시인의 민낯이 자기보다 약한 존재들을 무람없이 짓밟는 인물이었다는 것이 준 충격은 컸다. 더구나 그 역시 ‘문단의 제왕’이었다. 제왕적 권력을 가진 그가 여성 문인, 출판계 동료들을 대하는 태도는 수 십년간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역시 “나로서는 격려차원에서 한 행동인데 상대방이 기분이 나빴다면 죄송”이라는 식의 사과 아닌 사과를 건넸고, 그가 거처하던 수원을 떠나는 이유도 “성추문 때문은 아니”라고 했다.
▲고은 시인 뉴시스
흉가에 볕들어라
가해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증상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상처 입은 얼굴로,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고 굳은 결심을 한 듯이 말한다. 이들이 가진 명예와 권력을 말하는 의미일텐데, 이미 피해자들은 그 날 이후 살아도 사는 게 아닌 날들을 살아온 후다. 도대체 인간을 사랑한다며 이들이 만들어온 예술은 어떤 것이었나, 총체적인 혼란에 빠진다. 최영미 시인의 말대로, 인류의 절반인 여성을 짓밟는 이들이 말하는 휴머니즘은 공허하다.
김수희 미인 극단의 대표는 이윤택 연출의 기자회견을 보고 “(성폭행이 아닌)성관계라고 말하는 그 뻔뻔함에 치가 떨린다”고 말했다. 서울연극협회와 극작가협회는 이윤택을 제명하기로 했다. 연희단거리패는 해체됐다. 피해자들은 아직 ‘제2의 이윤택’이 있다고 말한다. 이들의 말대로 “사과는 피해자에게, 자수는 경찰서에” 해야 한다. 흉흉해진 문단과 연극계, 이 흉가에 볕들 날이 있을까.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교훈이 씁쓸하다.
글 | 유슬기 조선pub 기자
02월 22일 고은·이윤택·오태석·조민기…어쩌다 ‘괴물’이 되었나
▲ 【서울=뉴시스】‘성추행 논란’에 휩싸인 이윤택 전 극단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성추행 관련 기자회견을 마친 뒤 회견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 이 나라를 떠나야지 /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 괴물을 잡아야 하나”(최영미 시인의 ‘괴물’)
“그곳은 지옥의 아수라였다.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었다. 도저히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방금 전까지 사실이라고 말하던 선생님은 이제 내가 믿던 선생님이 아니었다. 괴물이었다.”(오동식 극단 연희단거리패 배우 겸 연출)
“학교는 학생들의 순수한 열정을 더러운 욕망을 채우는 데 이용하는 괴물이 발도 붙일 수 없는 곳이어야 한다.”(배우 송하늘)
미투 열풍으로 드러난 문화예술계 민낯은 추악했다. 이른바 거장으로 불렸던 이들은 한낱 ‘더러운 욕망’ 그 자체였다.
문화권력을 잡은 시인(고은) 연출가(이윤택 오태석), 배우 교수(조민기)는 ‘그 세계의 왕’으로 ‘종교 집단의 교주’처럼 군림했다.
◇괴물은 어떻게 탄생했나?
존경받는 스승과 유명세 사이에서 어떻게 그럴수가 있었을까?
이들 괴물들은 당사자의 추악함과 함께 해당 분야의 폐쇄적인 문화와 삐뚤어진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것이 문화예술계의 중론이다.
우선 연희단거리패처럼 밀양연극촌에서 일정 기간 합숙을 하며 이 예술감독이 전 감독이 좌지우지하는 연극 공동체 생활을 하는 곳에서는 그의 명령은 곧 법전과 같았다.
폐쇄적인 환경에서 공동작업을 해야만 하는 연극계 환경에서 연출가 또는 예술감독은 전권을 쥐고 있다. 이곳에 매달려 생계까지 꾸려야 하는 막내 여성 단원들이 그동안 성추행을 당했음에도 ‘입조심’이라는 명목으로 쉬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성추행 의혹에 휩싸인 오태석 극단 목화 레퍼토리 컴퍼니 대표 역시 권력의 공고함을 보여주고 있다. 오 대표는 물론 극단 목화 단원들은 공식적인 입장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한결같이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외부와는 소통하지 않는, 그들만의 견고한 세계가 있는 것이라고 연극계 관계자는 말했다.
고은, 이윤택, 오태석에 비해 문화예술계에서 명망이 떨어지는 조민기도 본인의 세계에서는 왕이었다.
송하늘은 조민기에 대해 “예술대학에서 배우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민기 교수는 절대적인 권력이었고 큰 벽이었기에 그 누구도 항의하거나 고발하지 못했다. 연예인이자 성공한 배우인 그 사람은 예술대 캠퍼스의 왕이었으니까”라고 적었다.
◇그간 괴물을 왜 못 잡았나
문화예술계 내의 성추행 또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그간 속내를 털어놓지 못했던 이유는 가해자들이 권력을 이용해 보복을 하거나 2차 피해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최영미 시인은 최근 페이스북에 “권력을 쥔 남성 문인들의 이러저러한 요구를 거절했을 때. 오랜 시간에 걸쳐 ‘제외되는’ 식으로 문단의 주변부로 밀려난다”면서 “그들에게 희롱당하고 싶지 않아 문단 모임을 멀리하고 술자리에 나가지 않으면, 더 큰 불이익을 당한다”고 썼다.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과 ‘위드유’(#With You·당신과 함께 하겠다) 운동으로 인한 연대에 힘 입어 이런 불이익을 당한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면서, 괴물을 만드는데 방조한 이들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 역시 높아지고 있다.
송하늘은 “조민기 교수를 배웅하려 죽 서있는데 인사를 하던 중 저에게 다가와 얼굴을 붙잡고 입술에 뽀뽀를 했다”면서 “모두가 지켜보고 있었지만 아무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폭로했다.
문화예술계 관계자는 방관자들의 태도에 대해 “자신의 성공을 위해 권력자에게 잘 보이기 위한 심리적 방어기제”라면서 “그들 역시 무력감을 느꼈을 테지만, 괴물을 만들어낸 공범”이라고 말했다.
이윤택 전 감독이 제왕적 권력을 쥔 연희단거리패에서 방관자적인 태도는 더욱 강했다.
2008년부터 연희단거리패에서 활동해온 배우 겸 연출인 오동식이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는 나의 스승을 고발한다”면서 연희단거리패에서 성추행·성폭력 사건을 무마시키려고 했던 정황을 공개했으나 상당수가 그를 지지하는 대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유다.
이 전 감독 왕국의 일원이자 방관자였던 장본인이 뒤늦게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는 비판이다.
특히 오동식의 글에 ‘한 1년 전 익명으로 이 전 감독의 성추행을 폭로했으나 결국 글을 내렸던’ 피해자로 등장한 이는, 이날 오동식이 쓴 글에 댓글을 통해 “혼자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니었으면 좋겠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나 역시 들었던, 오빠가 저지른 잘못들에 대해서도 언젠가 털어놓고 그들에게 사과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흔적 지워지고 수모 당하는 추락한 괴물들
추락한 괴물들은 곳곳에서 흔적이 지워지는 동시에 정부의 지원에서도 배제될 위기에 몰렸다. 밀양시는 이윤택 전 감독이 운영해온 밀양연극촌에 대해 최근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이 전 감독 모교 앞에 새겨졌던 그의 동판 역시 철거됐다.
교과서에 실려 있는 고은 시인의 시가 퇴출당할 지도 관심이다. 교육부는 21일 “향후 발행사 혹은 저작자의 수정·보완 요청이 있는 경우 교과서 상시 수정·보완 시스템을 통해 관련 내용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도서관에 있는 ‘만인의 방’ 철거 문제도 현안으로 떠올랐다. 고은 시인이 ‘만인보’를 집필했던 안성 서재를 재현해 지난해 11월 개방한 곳이다.
이윤택 전 감독이 이끈 밀양연극촌의 촌장이었던 하용부에 대해 문화재청은 지원금 지급을 중단했다. 성추행 의혹이 사실로 확인돼 법적 조치가 이뤄질 경우 지원금 환수 등의 필요한 행정조치도 취할 예정이다. 한국관광공사는 하용부를 문화여행 지역 명사 명단에서 제외했다.
오태석 대표가 이끄는 극단 목화 레퍼토리 컴퍼니는 내달 15일부터 25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신작 ‘모래시계’를 공연할 예정인데, 이 역시 취소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의 ‘창작산실’ 선정작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아 공연하기 때문이다. 공연계는 물론 일반 대중 사이에서 오 대표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문예위의 고민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문예위는 “이날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23일 다시 한번 회의를 통해 이번 건에 대해 입장을 밝힐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 연출에 대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미 지원한 수천만원의 제작지원금을 회수하는 방안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도종환)는 문화예술계 성추문의 파장이 커지자 적극 대응에 나서고 있다. 작년 진행한 문학·미술 분야와 영화계를 대상으로 한 시범 실태조사의 결과 등을 바탕으로 주요 분야별 신고·상담 지원센터를 운영한다.
영화계의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2018년 3월∼·영화인신문고에서 분리), 문화예술계의 예술인복지재단 내 신고·상담센터 운영(2018년 3월∼), 대중문화계의 콘텐츠진흥원 공정상생센터(2018년 3월∼) 등이 신설된다. 아울러 문화예술, 영화계, 출판, 대중문화산업 및 체육 분야를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한다.
문체부 이영열 예술정책관은 “문화예술계 특성상 성폭력 등의 문제는 잘 드러나지 않는데 용기를 내신 분들로 인해 알려졌다”면서 “예술기관의 인사 등에 있어서 평판 조회 등 철저히 검증하는 과정을 진행하겠다. 시스템이 잘 갖춰진 여성가족부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문화예술계 성희롱·성추행 예방·근절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뉴시스>
2018.02.22 추한 ‘이윤택 패거리’… 쏟아지는 실명 폭로
사과회견 리허설 파문 이어
극단 ‘끼리’ 대표 홍선주씨
“李 性폭력 조력자는 김소희
언론사에 내가 제보 했다”
“男 선배들앞에서 다 벗겼다”
前극단원 추가 폭로도 나와
연출가 이윤택(왼쪽 사진) 씨의 성추행·성폭행 사실에 대해 익명으로 성폭력을 제보했던 피해자가 자신의 실명을 공개하고 추가 피해 사실이 공개되는 등 사태를 둘러싼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2010년까지 연희단거리패에 몸담았다고 밝힌 한 배우는 22일 “이 씨가 다른 남자 선배들까지 있는 자리에서 강제로 속옷을 포함한 모든 옷을 벗겼다”고 폭로했다. 인터넷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올라온 이 글에는 “생리 중인 상태에서 전라의 모습으로 몇 분간 서 있었다”며 “이 씨에게 반항하자 배역에서 잘렸고, 이후 수치심이 트라우마가 되어 우울증 치료까지 받았다”는 내용까지 적혀 있다.
이에 앞서 어린이 극단 ‘끼리’의 대표 홍선주 씨는 21일 저녁 SNS에 이 씨의 성폭력과 연희단거리패 김소희(오른쪽) 대표의 묵인을 폭로한 사람이 자신이라고 밝혔다. 그는 글에 “JTBC ‘뉴스룸’ 손석희 씨와 전화 인터뷰하고 영상 인터뷰까지 한 사람이 저”라고 적었다. 홍 씨는 앞서 지난 19일 “2004~2005년부터 안마라는 이름으로 수위를 넘어서는 행위를 강요받았다. 발성을 키워야 한다면서 사타구니 쪽에 막대기나 나무젓가락을 꽂고 버티라고 했다”는 등의 내용을 익명으로 폭로했다.
이어 그는 극단 내에서 성폭행 장면을 목격했고, 이 씨 때문에 임신과 낙태를 한 친구도 있었다고 털어놨으며 “(김소희 대표는) 안마를 ‘조력자’처럼 시키고 후배들을 ‘초이스’하는 역할을 했다”고도 밝혔다. 이후 김 대표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히자 홍 씨는 실명을 밝히며 그에게 “(내게) 해명하고 싶으시다고요? (내 실명을) 찾으셨으니(밝혔으니) 하세요”라고 반박했다. 이같은 폭로는 문화계 관행이었던 ‘조직적 은폐시도’에 대한 반기로 받아 들여진다.
경찰은 이날 문화예술계 성폭력 폭로 사건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경찰은 연극연출가이자 전 밀양연극촌 이사장인 이윤택, 전 밀양연극촌장 하용부·연예인이자 교수인 조민기 씨와 관련한 성폭행·성추행 폭로 사건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이 씨와 하 씨에 대한 폭로 내용은 공소시효(10년)가 만료됐으나,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단원들에 대한 성폭력이 이뤄졌을 것으로 보고 피해자 탐문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
창원 = 박영수 기자
2018.02.22 이윤택 조민기 뒤에는 '침묵하는 목격자들' 있었다
이윤택-조민기 사건, 5가지 공통점
절대권력 가진 ‘스승’이 은밀한 공간으로 유인
발뺌하다 불리해지면 ‘법에 맡긴다’
알고도 외면하는 ‘침묵의 동조자들’도 존재
모두 사제(師弟) 관계였다.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과 조민기 청주대 연극학과 교수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스승이자 선배였다. 이들은 어린 제자들을 은밀한 공간으로 불렀다. ‘연기를 가르쳐주겠다’는 구실이었다.
밀폐된 공간에서 그들은 성폭력을 저질렀다. 스스로 ‘피해자 숫자를 모르겠다’고 할 정도로 지속적이었다. 그들의 제자들은 대부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윤택과 조민기의 성폭력은 판박이처럼 닮았다. 이에 대해 무대 안팎에서 “침묵의 동조자들이 제2의 이윤택·조민기를 양산하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절대권력 ‘연기 스승’이 제자를 범했다
제자들에게 이윤택과 조민기는 ‘왕’의 다른 이름이었다. 실제 연극계에서 캐스팅 권한을 쥐고 흔드는 이윤택의 지위는 ‘황제’에 가까웠고, 성공한 배우 조민기는 모교인 청주대에서 연극학과 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윤택 감독과 배우 조민기./ 조선 DB
스승 조민기의 성추행을 폭로한 배우 송하늘씨는 “연예인이자 성공한 배우인 그 사람(조민기)은 예술대 캠퍼스의 왕이었다”고 했고, 이윤택에게 성추행당한 이승비 극단 나비꿈 대표도 “그는 연극이라는 세계의 왕, 종교집단의 교주와도 같았다”고 했다.
문제는 이 ‘황제’들이 피해자들의 ‘오늘’은 물론 ‘내일’까지 쥐고 있다는 것이다. 연극, 연예계가 한다리 건너면 다 아는 구조라 이윤택이나 조민기에게 잘못 보이면 ‘여지’가 많지 않았다. 여성문화예술인연대 박은선씨는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도 오랜 시간 일궈 온 꿈을 포기하는 게 쉽지 않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문화예술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신고하지 않고 참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②오피스텔과 황토방, 密室로 불렀다
두 사람은 처음엔 피해자들을 자신의 개인 공간으로 불렀다. 이윤택은 자신이 별채로 쓰던 ‘황토방’에서 수차례 성폭력을 저질렀다고 스스로 밝혔다. 연극배우 김지현은 “많은 분들이 증언해주신 것처럼 황토방이란 곳에서 여자 단원들이 밤마다 돌아가며 (이윤택에게) 안마를 했었고 저도 함께였다”고 밝혔다.
조민기의 ‘밀실’은 청주 오피스텔이었다. 조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이들은 공통적으로 “조씨가 오피스텔로 불러서 술을 마시게 했다”고 증언했다.
조씨의 제자 A씨(23)는 “여학생이 전화를 안 받으면 같은 학과 남자 선배들에게 전화해 ‘걔 오피스텔로 오라고 해라’고 강요했다”고 말했다. 조민기의 제자 송씨도 “한밤중에 오피스텔에 불려간 여학생이 한 학번에 5~6명은 된다”고 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외부와 단절된 사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범죄는 우발적인 게 아니라, 고의적으로 범의를 품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증인들의 목격 가능성을 낮게 하기 위해 이런 행동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③본인조차 피해자 규모를 모른다
스승의 성폭력은 피해자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지속적이었다. 이윤택에 당한 사실을 밝힌 폭로자만 성폭행 2명·강제 안마 5명·성추행 4명까지 총 11명이다.
이윤택의 성폭력이 18년간 지속된 점, 피해 사실을 숨긴 피해자가 더 있을 것이라고 감안한다면 피해 규모는 알려진 것보다 더 클 수 밖에 없다. 피해자가 어느 정도 되느냐는 질문에 이윤택 스스로도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원길 변호사는 “실제로 범행을 많이 저지른 사람은 피해자수나 이름을 기억을 잘못하는 사람이 많다”며 “특정한 범죄를 반복해서 하니까 기억을 못 하는 것”이라고 했다.
조민기의 성폭력은 의혹이 불거진 지 하루 만에 3명의 폭로자가 나왔다. 피해자 송하늘씨는 “거의 한 번에 5~6명은 오피스텔로 불려갔던 것 같다”며 “피해자는 숫자로 셀 수 없이 많다”고 했다. 조민기는 2010년부터 지금까지 청주대 연극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④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이윤택의 성폭행은 20여년 만에 세상에 드러났다. 조민기의 성추행 의혹도 5년 만에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윤택 사건이 공개되자, ‘이씨는 원래 그런 쪽으로 유명한 사람’이라는 얘기가 쏟아져 나왔다. 알고도 묵인한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조선 DB
조민기의 경우, 여학생을 유인하기 위해 ‘남자친구’를 동원한 경우도 여러 차례였다고 피해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조씨로부터 추행을 당한 송하늘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남자친구와 함께 조민기 교수의 오피스텔에 불려갔는데 남자친구는 먼저 잠이 들었고, 저는 혼자 그 상황을 버텨야 했다”며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너무 무서웠지만 그 어디에도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다고 (그 순간) 느꼈다”고 적었다.
송씨와 같은 사례가 여럿이었지만 주위 학생들이 이 문제를 나서서 고발하거나, 조민기씨의 행위를 저지하려고 노력한 흔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 학과 졸업생 김모씨는 “당시 조교를 비롯한 몇몇 선배들은 (조민기 성추행 사실을 알고도)‘네 몸은 네가 알아서 간수해야 한다’고만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안마 등의 행위를 거부하거나, 추행을 발설하면 극단에서 조리돌림을 당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재령 음악극단 콩나물 대표는 “안마를 거부하면 다음날부터 극단 안에서 외톨이가 됐다”고 했다.
⑤일단 부인, 막판에야 ‘법적 절차(경찰 조사)’ 입에 올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두 스승은 그들의 행동이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윤택은 이렇게 말했다. “안마에 대해서는 지금 제 잘못을 통감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남자건 여자건 다 했다.”
조민기도 처음에는 “확인 안 된 구설” “피해자도 없이 떠도는 소문” 등의 말로 강력 부인했다. 그러나 여론이 부정적으로 형성되자 “가슴으로 연기하라고 손으로 툭 친 걸 가슴을 만졌다고 진술을 한 애들이 있더라” “노래방 끝난 다음에 얘들아 수고했다 안아줬다. 나는 격려였다”고 말을 바꿨다. ‘피해자 없이 떠도는 소문’에서 ‘격려 차원의 신체접촉’으로 한발 물러선 것이다.
이윤택, 조민기는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자 일단 부인→합리화→법적 절차(경찰 수사)를 언급하는 대응 패턴에서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이윤택은 “성관계는 했지만 성폭행은 아니었다. 만일 법적 절차가 강행된다면 성실히 수사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19일 자청한 기자회견에서 “법적 절차를 따르겠다”는 말을 5번이나 반복했다. 조민기도 피해자들의 폭로가 잇따르자 “성실히 경찰 조사를 받겠다”고 태세 전환했다.
두 사람의 대응 패턴에 대해 전문가들은 “성폭력 범죄의 경우, 입증이 쉽지 않아 이러한 발언을 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두 사람 모두 도덕적, 사회적 명예가 실추되긴 했지만, 법적으로는 크게 불리하지 않다는 법률가 조언이 있었을 것”이라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는 것과 이를 입증해 가해자를 벌하는 데는 간극이 매우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출가 이윤택의 성추행 공개사과 기자회견. 그는 19일 기자회견장에서 법적 절차를 따르겠다는 말을 5번이나 반복했다./ 이다비 기자
실제 이윤택이 기자회견 전에 법적 자문을 받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연희단거리패 소속 연출가 오동식 씨는 21일 페이스북에 “이윤택 감독은 성추행 의혹을 부인하는 기자회견을 하기 전 이를 연습하거나, 변호사에게 형량을 묻기도 했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송혜미 법률사무소 현율 변호사는 “처음에는 논란이 커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대응하지 않다가 논란이 커지자 법적으로 대처하겠다고 하는 것 같다”며 “성범죄 증거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반영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성범죄 공소시효는 강간·강제추행의 경우 10년, 특수강간은 15년, 특수강도강간은 25년이다.
사건 발생 당시 피해자의 나이가 미성년자라면 피해자가 성년이 된 날로부터 공소시효가 적용된다.
현재 이윤택 감독의 성폭력 의혹을 제기한 피해자들은 2001∼2005년에 성폭력을 당했다고 말한다. 피해자들의 규모와 연령이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았지만, 당시 미성년자였다 해도 공소시효가 지났을 가능성이 있다.
조선일보 고성민 기자 김명진 기자 안소영 기자
2018.02.22 입으론 진보, 손으론 몹쓸 짓
이윤택 사태에서 되풀이된 여권의 내로남불
성추행은 좌우 없어 … 선민의식부터 버려야
강찬호 논설위원
지난해 6월 23일 영부인 김정숙 여사는 더불어민주당 여성 의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점심을 대접했다. 당시는 “친구들과 여중생을 (성적으로) 공유했다”는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의 행적이 도마에 오르면서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조차 그의 사퇴를 요구한 시점이었다. 그러나 김상희·박경미 등 오찬에 참석한 14명의 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100분간 식사 내내 탁현민의 거취를 제대로 거론하지 못했다. 몇몇 의원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지만 김 여사가 즉답을 피해 유야무야됐다는 전언도 있다. “인사는 대통령 고유 권한”이라며 탁현민을 안고 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청와대 기세에 눌려 민주당 ‘여전사’들이 할 말을 못한 것으로 봐야 한다.
탁현민 말고도 문재인 대통령이 기용한 인물 중에는 성 추문으로 낙마한 이가 적지 않다. 교수 시절 부적절한 처신으로 여성단체의 항의를 받은 끝에 지명 11일 만에 국가안보실 2차장직에서 물러난 김기정, 강제 혼인신고에다 “술자리엔 반드시 여자가 있어야 한다” 같은 여성 비하 발언으로 법무부 장관 후보를 사퇴한 안경환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9월 문 대통령의 뉴욕 방문 당시 청와대 파견 공무원과 경호처 직원들이 현지 여성 인턴을 성희롱하고 이를 방조한 사실이 드러나 징계받은 것도 ‘진보 페미니스트 대통령’ 체면을 깎아먹었다.
민주당도 가관이다. 이윤택의 성 추문이 불거진 이래 침묵을 거듭하다 엿새 만인 20일 뒷북 비판 성명을 냈다. 이윤택은 진보 계열 연극계의 수장이자 문 대통령과는 경남고 25회 같은 반 친구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찬조 연설을 하며 “도덕성 높고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가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1호에 올랐다. 지난해 대선 때는 문 대통령이 전화해 “이제 (블랙리스트 탄압에서) 괜찮을 거다”고 했고, 이윤택은 “내 걱정 말고 선거운동이나 열심히 해”라고 했을 만큼 절친한 사이다.
[민주당이 혹여 두 사람의 친분이나 진영논리를 의식해 이윤택 비판을 주저했다면 백장미까지 달고 여성 지킴이를 자처해 온 집권당의 위선 아니냐는 지탄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민주당은 또 자당 강원도당위원장인 심기준 의원의 비서관이 평창에서 20대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데 대해서도 “개인적으로 평창에 간 것”이라며 입을 씻으려 했다. 지난해 5월 민주당 부산시당 당직자가 여성 당원을 성추행한 사건도 9개월 내내 쉬쉬해 같은 편인 정의당마저 비판 성명을 내는 사태를 자초했다. 서지현 검사 성희롱 폭로 당시 즉각 비판 성명을 내고 은폐 시도 의혹에 휘말린 보수 인사를 맹공하던 때와 대비된다.
민주당과 진보진영은 새누리당을 ‘성누리당’으로 부르며 보수 정당의 성적 방종과 비뚤어진 여성관을 공격해 왔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 여권과 진보 진영에도 그릇된 성의식과 여성관을 가진 이들이 즐비한 현실이 확인되고 있다. “진보는 정의”라는 선민의식과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자기 합리화가 성추행을 ‘관행’이었다고 강변하는 진보진영 인사들의 위선을 낳았을 것이다.
집권세력은 말로만 ‘미투’ 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성 적폐’ 청산에 나서야 한다. 여권의 성 모럴 해이 뿌리 격인 탁현민을 경질하고 당과 정부, 문화계를 대상으로 성추행 전수조사를 투명하게 실시해 가해자를 엄벌하라. 더 중요한 건 “우리는 뭘 해도 정의”란 그릇된 의식을 버리는 것이다. 그래야만 입으로 진보를 외치면서 손으로는 몹쓸 짓을 해 온 구태와 결별할 수 있다.
중앙일보 강찬호 논설위원
02월 26일 성추행 신부의 두 얼굴… 세월호·촛불때 “정의·양심” 목소리
▲ ‘양심’은 도구였나 7년 전 해외 선교지에서 여성 신도를 성폭행하려 했다는 증언이 나온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한모 신부가 지난해 12월 6일 경기 수원역 로데오 거리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석방을 촉구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7년前 신도 성폭행 시도해놓고
대중 앞에선 “양심은 강한 힘”
“양심수 석방이 촛불혁명 완성
이석기 특사로 석방을” 연설도
신부 속했던 정의구현사제단
뒤늦게 사과했지만 비판 거세
해외 선교지에서 여성 신도를 성폭행하려 했다는 증언이 나온 한모 신부가 정의와 양심을 강조하며 국내에서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26일 종교계 등에 따르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소속이었던 한 신부는 쌍용차 사태와 세월호 침몰 참사 등 주요 사회 이슈마다 정의와 양심을 내세우며 진보 진영을 대변하는 취지의 주장을 꾸준히 펼쳐왔다.
실제 한 신부는 2013년 11월 사제단이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연 ‘쌍용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과 이 땅의 해고노동자들을 위한 미사’를 집전하며 “인간에게는 양심이라는 빛이 있다”며 “어둠이 깊어갈 때 빛이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처럼, 거짓이 깊어갈 때 양심 또한 강한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그는 세월호 사고 이후인 2014년 8월 광화문광장 미사에서 “양심은 하느님의 말씀”이라며 “불의에 침묵하지 말고 저항하자. 정의는 진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설교한 바 있다.
한 신부는 2016년 4월 같은 장소에서 연 미사에서도 성경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가지고 박근혜 정권과 ‘기득권 언론’ 등을 맹렬히 비난했다.
한 신부는 지난해 12월에도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을 비롯한 양심수들을 성탄절 특사로 석방하라”고 역설했다. 그는 “양심수는 사회를 양심적으로 만드는 빛인데, 양심수가 많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양심을 탄압하고 있다는 바로미터”라며 “적폐세력이 사회·정치를 장악하고 있어 양심수가 석방되지 못하고 있고, 양심수 석방이 촛불 혁명의 시작이며 완성”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23일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천주교 신도 김모 씨는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한 신부는 2011년 11월부터 이듬해 귀국하기 전까지 11개월 동안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수차례 성폭행을 시도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사제단은 논란이 불거지자 지난 25일 “한 신부는 엄연히 사제단의 일원이며 형제이기에 그의 죄는 고스란히 우리의 죄임을 고백한다. 소식을 접할 당시 정확한 사실과 피해자의 심정을 미처 다 헤아리지 못한 점도 반성한다”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
02.26 성추행 의혹' 제기된 신부는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 출신 김덕진씨
경찰도 인정... 민간위원직은 사퇴 / 김씨,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대외협력팀장 맡기도
최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뿐 아니라 천주교인권위원회 소속 간부 김덕진씨가 4년 전 여성활동가를 성추행한 것으로 알려져 경찰이 사실 확인에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김씨는 경남 밀양 송전탑 건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용산 참사, 쌍용자동차 파업 등 국내 여러 인권운동 현안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했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촉구 촛불집회에서도 비중 있는 역할을 맡은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은 천주교인권위 간부 A씨가 2014년 지역의 한 여성활동가 B씨를 성추행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A씨의 강제추행 혐의를 확인하고자 최근 내사에 착수했다.
앞서 B씨는 자신의 SNS에 글을 올리고, 자신이 2014년 A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했고, 김씨가 자신에게 사과한 뒤에도 지인들에게 성추행 행위가 합의로 이뤄진 양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다녀 추가 피해를 줬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B씨는 피해 사실을 인권운동 진영의 다른 활동가들에게도 알렸으나 별다른 조치 없이 묵살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A는 경찰 공권력 행사 과정에서 인권침해 논란을 빚은 사건을 조사하고자 작년 8월 발족한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 민간위원도 맡고 있었다. 그는 B씨의 폭로가 나온 이후인 지난 14일 위원직을 사퇴했다고 한다.
▲김덕진씨의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 민간위원 선임을 알리는 가톨릭 뉴스 '지금 여기' 기사의 일부.
‘월간조선’이 확인한 결과 A씨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출신으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대외협력팀장을 맡았던 김덕진씨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도 '월간조선'에 "김씨가 개인 신상 문제로 사퇴한 게 맞다"고 밝혔다. '개인 신상 문제라는 게 성추행이 맞냐'고 묻자 이 관계자는 "맞다"고 답했다.
평소 김덕진씨는 이른바 진보 성향의 정치적 입장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월 16일 ‘공익인권법재단’에 기고한 글에서 “유독 차가웠던 그 겨울 우리는 추위와 싸우며 어떻게 하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만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박근혜 시대의 시작은 재벌들의 시대, 가진 자들만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미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억압받고 차별받던 이들에게는 앞으로 5년을 더 견딜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 9월 20일 가톨릭 뉴스 사이트 ‘지금 여기’와의 인터뷰에서 김씨는 8월 25일 발족한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 민간위원 선임에 따른 포부를 밝혔다. 앞서 진상조사위는 ▲백남기 씨 사망사건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파업농성 ▲경남 밀양 송전탑 건설 갈등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운동 등 5가지를 우선 조사할 사건으로 정해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김덕진씨는 “용산참사는 조합과 철거 세입자들 간의 분쟁이었는데 경찰이 들어가 조합 편을 들었죠. 쌍용차 파업은 기업과 노동자의 문제였지만 경찰이 개입해 사용자 편을 들었습니다. 제주 해군기지는 해군, 국방부와 주민들 간의 갈등이었는데 거기도 경찰이 들어가 군대 편을 들었습니다”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사드 발사대 반입에 대해 “엄청나게 고민(했다)”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국가폭력 조사하러 진상조사위에 들어갔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방치하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사퇴하라’는 사람도 있었어요. 저도 매우 화나고 속상했습니다. 사드가 배치된 성주에 대해서도 진정이 들어오면 진상조사위가 조사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2012년 11월 1일 자 ‘경향신문’은 김덕진씨와 서보혁(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씨와의 대담을 보도했다. 이 대담에서 김씨는 이른바 보수 측에서 제기하는 북한 인권문제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는 “북한 인권문제가 ‘장사’가 좀 되면서 정보의 독점이 생겼다”며 “우리도 중국에 가서 북한이탈주민들을 만났다. 2006~2007년에 두 차례 헤이룽장성에서 수십 명을 만났는데 당시 남쪽으로 오고 싶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보수처럼 서울시청 앞 규탄집회를 하지 않았다고 북한 인권운동을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어요. ‘공개처형하는 북한은 반인권적인 국가야’라고만 비판하는 건 인권운동이 아니라고 봅니다. 인권운동은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만 이뤄질 수 있는 건 아니죠. 원인을 차단하는 게 근본문제를 푸는 거예요.>
김씨는 또 “보수 쪽에서는 언제까지 기다릴 거냐고 하는데 처음 유엔의 보편적 정례인권검토(UPR)가 나왔을 때 인권단체들은 북한에 인권 개선하라고 권고했다”며 “정당 이외에는 북한 정권 눈치 보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이해찬 민주통합당 의원이 ‘내정간섭’이라고 말했다면 그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는 것”이라고도 했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02.26 “일부 사제들, 교만 탐욕 음란이라는 세 사탄에게 몸 맡겨”
천주교 신자 모임 ‘대수천’, “정의(正義)구현사제단인가, 정욕(情慾)구현사제단인가?” 성명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이하 대수천)’이 만든 정의구현사제단 실체를 알리는 홍보 자료.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이하 대수천)'은 보수적인 목소리를 내는 천주교 신부와 평신도 모임이다. 좌경화되고 편향된 사제들에 맞서 “한국천주교를 지키는 수호단체로 거듭날 것”이란 의미에서 모임 이름을 정했다
대수천 모임(www.catholicsuho.com)의 지도신부인 김계춘 원로 사제는 한국천주교 군종 총대리를 역임한 원로 사제다. 부산교구 총대리를 역임했다. 좌파 사제들이 가장 껄끄러워하는 원로다. 최근 미투 고백에 의해 밝혀진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의 수원교구 한만삼 신부의 성폭행 의혹에 대해 25일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서 내용이 위기에 처한 한국 천주교의 현실을 담고 있어 소개한다. 성명서는 대수천 김원율(金元律) 교리연구소장이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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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천주교 여성 신자가 현직 신부로부터 오래전 성폭행을 당했다는 고발의 글이 15일 새벽에 KBS 특별취재팀 앞으로 도착했다. 현직 신부는 천주교 수원교구 광교1성당 한만삼 주임신부로 알려졌다. 한 신부를 고발한 천주교 신자는 김○○ 씨(세례명 소피아)이며 최근의 #미투 운동에 힘입어 신부의 성폭력을 고발하기로 용기를 내었다고 한다.
한만삼 신부는 2008년부터 4년 동안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선교활동을 펼치며 주목받기 시작했고 KBS 다큐〈울지마 톤즈〉에도 이태석 신부와 함께 등장, 사목활동에 헌신적인 사제로 소개됐다. 그 때문에 한 신부는 과거 많은 신자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남수단으로 봉사하러 온 여성 신자에게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성폭력을 가했다. 그는 김씨가 문을 잠그고 있으면 클립으로 문을 따고 들어가 여성에게 “내 몸을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러니까 네가 좀 이해를 해달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았다고 한다.
“내가 내 몸을 어찌 할 수 없다?” 그토록 정욕을 주체할 수 없다면 무엇 때문에 독신으로 살아야 하는 사제직을 택하였는가. 정의구현을 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정욕(情慾)구현사제단을 결성해야 하지 않나.
더 충격적인 것은 김씨가 한 신부의 후배 신부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그들도 한만삼의 위세에 눌려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한다. 이들은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목자로서 힘없고 가련한 어린 양의 호소를 외면했다. 반드시 이들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하며 사죄와 처벌이 행해져야 한다.
한만삼 신부는 시대의 예언자를 자처하면서 쌍용차 사태, 세월호 비극, 한상균·이석기 양심수 석방 촉구선언대회 등에서 정의의 수호자인 양 행세하여 왔다. 참으로 인면수심의 위선자요 이중인격자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는 “불행하여라 진실을 덮어버리려는 위선자들아!” “어둠이 짙어갈 때 빛이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처럼 거짓이 깊어갈 때 양심 또한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정의는 진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진실을 두려워하는 정의는 거짓된 선이며, 위선입니다”와 같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말들을 장광설로 떠벌였다. 이 사실이 폭로된 2월 23일 오전까지도 수원 광교1동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며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수천은 가톨릭 내부의 언론이 특정 정파의 주장에 경도되어 일부 정치사제들의 주장을 여과 없이 전달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며 사제와 신자들이 모여 결성했다. 몇 해 전 언론에 발표한 성명서.
창세기에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킨 것은 음란이라는 죄악에 빠진 도읍의 주민들 때문이었다. 음란은 마귀의 가장 큰 유혹이며 사제가 음란에 빠지는 것은 바로 그들이 마귀의 유혹에 빠져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광주대교구 장홍빈 신부는 자신의 책 《오! 놀라운 사랑이여》에서 1985년 8월 ‘지금 사제들이 바람 앞의 등불이다. 사제관의 창문이 열려 있어 교만과 탐욕, 음란이라는 세 마귀가 들여다보고 있다’라는 성모님의 메시지가 있었다고 증언하였다. ‘나는 미사와 약간의 사목활동을 빼면 골프, 고스톱, 카드를 줄곧 즐겼고 자신은 동료사제들과 먹고 마시고 즐기노라고 예수님과 성모님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한 죄인이었다’고 그는 고백하였다. 또한 광주대교구에는 훌륭하신 사제들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사제들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골프, 카드놀이 등 세속의 쾌락에 몰두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사제는 순명, 정결, 청빈의 의무가 있으나 일부 사제들은 교만, 탐욕, 음란이라는 세 사탄에게 몸을 맡기고 있다. 심지어 정의구현사제단의 사제들은 ‘사제의 독신제’라는 제도는 결혼을 하지 말라는 말이지 여자와의 관계를 금한다는 말은 아니다’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고 한다. 이는 거룩함을 잃어버리고 정치적 편향성에 기울어진 사제들이 사적인 생활에서 얼마나 세속적인 쾌락에 젖어 살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안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는 한국의 천주교회
오늘날 한국의 천주교회는 주일미사 참여율이 19.5%에 불과하고 통계청에서 발표한2015년 말 천주교 신자 수는 교적 중심으로 천주교 신자 수를 발표하는 주교회의 통계보다 180만 명이나 적다. 그러나 10년 전에 발표한 통계청 신자 수는 오히려 주교회의 발표 신자수보다 35만 명이 많았었다. 과거에는 비록 일시적으로 냉담하고 있더라도 신자들은 자신을 천주교 신자라고 생각하였으며 세례를 준비하는 예비신자나 교적이 없는 신자들도 자신을 천주교 신자라고 밝혔지만 이제는 더 이상 교회와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신자수가 엄청나게 늘어났음을 뜻한다.
이는 신자들이 정치신부의 끝없는 반국가, 반미, 친북의 분탕질에 환멸을 느껴 교회를 떠나고 있음을 나타낸다.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 4대강 및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반대, 한미 FTA 반대 등에 극렬하게 나섰다.
외부에서 보기에 사제단 신부들의 이와 같은 시국미사 등 편향적인 정치행동이 교회를 파멸로 이끌고 있다고 생각하겠으나 실제 천주교회는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미 한국교회는 내부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일부 신부들은 거룩함을 잃고 ‘하느님 현존의 표지’라고 할 수 있는 거룩한 전례를 ‘전례의 생활화’ 등의 명분으로 파괴하고 있다. 또한 해방신학에 빠져 예수를 나사렛의 혁명가로 생각하는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들은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신다는 성체의 실체변화를 인정하지 않는다. 성체에 대하여 지극한 신심을 나타내며 무릎을 꿇고 입영성체를 청하는 신자들에 대하여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들은 무례하게도 성체를 거부하고 신자를 쫓아내는 망동을 저지르고 있다. 전 세계에서 입영성체를 청하는 신자들을 쫓아내는 천주교회는 대한민국의 교회가 유일하다.
이들은 종국에 천주교회가 성공회처럼 개신교화(化)하고 ‘사제의 독신제’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미 사제의 독신제와 상관없이 내밀하게 여성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제가 평신도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수원교구의 성남시 인근 성당에서 모 신부가 갑자기 수도원으로 발령이 나서 신자들에게 인사도 하지 못하고 쫓겨났는데 원인이 여자 문제였다고 한다. 사제의 여자 문제는 이처럼 밖으로 알려지는 것보다 알려지지 않고 덮이는 경우가 더 많다. 교회가 거룩함을 잃고 사제가 해방신학에 빠져 유물론적 무신론에 젖어 나라를 공산화하겠다는 세속적 망상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수원교구 한만삼 신부의 사건은 정의구현사제들의 위선과 이중성, 뻔뻔스러움과 파렴치함,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들의 악독한 심성을 감안할 때 제2, 제3의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리라 생각된다. 한만삼 신부의 강론에서도 나타나듯이 ‘거짓이 짙어갈 때 진실의 위대함이 마귀집단이 된 사제들의 음란함을 세상에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작년 9월 기자와 만난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 관계자들. 왼쪽부터 김원율, 김계춘 신부, 현안상, 서정숙, 강동순씨.
글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02.26 성추문 연루 유명 인사들의 대응은 '천차만별'
부인하다가 나중에 시인, '조건부 사과', 침묵으로 일관, 잠적...
최근 성추문에 연루된 인사들의 대응 방식을 두고도 여러 말이 나오고 있다. 부인하다가 나중에야 시인하는 경우, 조건부 인정, 침묵으로 일관하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부인하다가 나중에 인정한 조민기씨
부인하다가 차후에 사실을 인정한 대표적인 예는 배우 조민기씨다. 지난 20일 조씨가 성추행 혐의로 청주대에 사직서를 제출한 사실이 알려지자 조씨 측은 소속사를 통해 “(성희롱과 관련된) 악성 루머가 있어서 연기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지난해 말에 이미 사직서를 냈다”고 주장했다. 조씨의 소속사 측은 “그런 루머가 있지만 정작 피해를 봤다는 이는 없다. 그런 문제가 있었다면 학교 차원에서 이미 문제를 삼았을 것”이라고 사실상 조씨의 성추행 혐의를 부인했다.
이튿날 경찰이 조씨에 대해 내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조씨 측은 입장을 바꿨다. 조씨의 소속사는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배우 조민기에 대한 성추행 관련 증언들에 대해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면서 “배우 조민기는 앞으로 진행될 경찰조사에 성실히 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루만에 입장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일부만 인정한 이윤택씨
이윤택씨는 일부 혐의에 대해선 인정하고 일부는 부인하는 입장을 보였다. 성추행 의혹은 공개 사과를 했지만, 추가로 제기된 성폭행 의혹은 부인한 것이다. 지난 19일 오전 서울 명륜동 30스튜디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씨는 “(성폭행 주장은) 인정할 수 없다”면서 “성관계는 있었으나 강제적으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만일 법적 절차가 진행된다면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를 본 당사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 부끄럽고 참담하다"며 "법적 책임을 포함해 어떤 벌도 달게 받겠다"고도 했다.
이씨가 기자회견 전, 사전 연습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이씨의 사과를 두고 또 다른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씨가 운영하는 연희단거리패 상임연출을 맡았던 A씨가 이 같은 사실을 SNS에 폭로한 것이다. A씨가 쓴 글에는, 이윤택씨가 피해자 실명을 거론하며 대책회의를 했고 변호사에게 전화해 (성폭행) 형량부터 확인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기자회견 사전연습을 통해 성추행만 인정하고 성폭행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연습한 사실도 있다고 주장했다.
잠적한 것으로 알려진 오태석씨
오태석 극단 ‘목화’ 대표는 잠적 상태라고 한다(지난 24일 기준). 복수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오 대표는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한 19일부터 외부활동을 하지 않고 연락을 끊었다고 한다. 21일까지 진행된 자신의 공연장에도 모습을 비추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극단도 오태석 대표와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고 한다. 지난 24일 ‘일요신문’은 ‘목화’의 한 배우의 말을 인용해 “선생님(오태석-주)이 직통으로 배우와 연락하지는 않으신다. 개인의 일이라 극단 차원에서 어떤 발표를 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조건부 사과' 고은씨
최영미 시인을 통해 폭로된 고은씨의 경우, 이른바 ‘조건부 사과’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씨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오늘날에 비추어 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뉘우친다”고 말했다. 고씨의 사과 방식을 두고 한 인터넷 매체는 “자신의 행위가 성추행인지를 모르는 건지, 알면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성희롱으로 규정된다면’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은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듯하다”고 비판했다.
'침묵 일관' 오달수씨, 하루 만에 인정한 조재현씨
영화배우 오달수씨는 성추행 논란이 벌어진 지 일주일 여 정도가 흘렀지만, 아직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뚜렷한 입장 표명이 없어 단정할 수 없는 상태다. 그의 소속사도 묵묵부답이라고 한다.
배우 조재현씨는 성추문 논란에 휩싸인지 하루 만에 공식 입장을 표명한 경우다. 조씨는 지난 24일 입장문을 발표하고 “(처음엔) 음해라는 못된 마음이 컸던 것 같다”며 “추측성 기사도 있어 얄팍한 희망을 가지고 마무리되길 바라기도 했다. 반성보다 아주 치졸한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다”고 비교적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다.
가장 발빠르게 대처한 곽도원씨 '사실무근'으로 일단락
배우 곽도원씨는 가장 발빠르게 대응한 경우다. 지난 25일 새벽에는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해 곽도원씨를 지목하는 성폭행 의혹글이 게재됐다. 글쓴이는 ‘ㄱㄷㅇ’이라는 초성의 배우와 7~8년 전 함께 공연을 했으며 그가 당시 동료들을 희롱하고 폭행했다고 전했다. 이에 곽씨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곽씨 측은 25일 ‘스포츠서울’과의 통화에서 “해당 행위 자체도 사실이 아닐뿐 아니라 해당 게시글 작성자가 7~8년 전 함께 공연을 했다고 말했지만 당시 곽도원은 이미 연희단패거리를 퇴단하고 영화 ‘황해’ 등을 한창 촬영하던 때”라고 부인했다. 이후 해당 폭로글은 삭제됐고, 곽씨의 성추행 의혹 역시 사실이 아닌 것으로 일단락됐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02.27 정의 구현' '인권' 내걸고 뒤로는 성폭력
천주교 수원교구 소속 한모 신부가 2011년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봉사 활동을 하던 여신도를 성폭행하려던 일이 뒤늦게 드러나 지난주 정직(停職) 처분을 받았다. 한 신부는 고(故) 이태석 신부가 활동했던 남수단에 파견돼 4년간 선교 활동을 하면서 이태석 신부를 다룬 TV 다큐 '울지마 톤즈'에도 출연해 유명해졌다. 피해 여신도가 지난주 TV에 나와 한 신부의 성폭행 시도를 폭로하면서 알려졌다. 한 신부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소속으로 평택 쌍용자동차 사태부터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과 한상균 전 민노총위원장 석방 요구 기자회견까지 시국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고 한다. 성직자가 봉사 활동 하러 온 여신도를 성폭행하려고 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 사람이 '정의 구현'을 내걸고 있었다니 참으로 가증스럽다.
천주교 인권위원회 간부가 2014년 함께 활동하던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폭로가 나와 경찰이 내사에 들어갔다. 이 간부는 밀양 송전탑 반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등에 앞장섰고, 경찰청 인권침해사건진상조사위 민간 위원을 맡기도 했다. 이 사람에게 '인권'은 위장 도구에 불과했다. 이런 위선이 없다.
그런데 '나는 꼼수다'를 진행했던 김어준씨는 지난주 인터넷 방송에서 '미투 운동'을 언급하며 "타깃은 결국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진보적인 지지층일 것"이라고 말했다. 현 정부나 좌파 인사들의 성폭력 가해 사실이 계속 드러날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타깃(표적)이라는 말을 쓴 것을 보면 그는 최근의 미투 현상을 누군가가 뒤에서 조종하는 것으로 보는 모양이다. 성폭력 피해자 문제에 좌파 우파가 어디에 있나. 겉으로는 정의 인권을 내걸고 뒤로는 성폭력을 저지르는 사람들이나 그 위선이 드러나는 것을 음모라고 보는 사람이나 다를 게 없다.
조선일보 사설
02.27 인권운동가, 함께 시위하던 여성 성추행
천주교인권위 사무국장 맡다 사건 불거지며 '정직' 징계 받아
작년 경찰 인권침해조사위도 참여… 피해 여성 "밀양 송전탑 시위때…"
경찰, 성추행 혐의 내사 착수
종교계와 정부 기관에서 인권운동을 해온 활동가가 과거 시민단체 회원을 성추행하려 한 사실이 밝혀져 경찰 수사를 받게 됐다.
경남 지역 인권 활동가인 한 여성은 지난 14일 소셜 미디어에 '2014년 2월 김○○이 강제 키스하려 했다'고 폭로했다. 이 여성이 지목한 가해자는 천주교 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김모(45)씨다. 가톨릭 사제는 아니다. 성추행 시도가 있었던 때는 김씨와 피해 여성이 밀양 송전탑 반대 시위를 함께 하던 때였다. 김씨는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깊이 반성한다'고 했다.
피해자가 올린 글에 따르면 김씨는 그 후로도 단체 채팅방에서 다른 여자 동료에게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식의 성희롱 발언을 계속했다고 한다. 피해자는 줄곧 김씨에게 항의했지만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김씨는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 그날 일(성추행)이 합의하에 이뤄졌던 것처럼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피해 여성은 "그동안 여러 경로로 문제를 지적해 온 노력이 하나도 이뤄지지 못했다. (김씨가) 잘못한 만큼 책임을 지고 가능한 조치를 취하길 바란다"고 했다.
김씨는 밀양 송전탑 반대 시위와 용산 철거민 집회 등에서 여러 차례 사회를 보며 인권 단체들 사이에선 잘 알려진 인물이다. 작년 8월에는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민간 위원으로 임명됐다. 서울시 인권위원직도 맡고 있었다. 2003년엔 한 온라인 매체에 '군대 내 성폭력, 이제는 말해야 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거기에 "우리 스스로 입을 여는 것은 어떨까? 지금까지 내 일이 아니라고 입을 닫았다면, 당했어도 '말해봤자'라고 고민했다면 이제는 말해보자. 나는 피해자였나, 방관자였나"라고 적었다.
김씨는 피해자의 글이 올라온 후 경찰 인권조사위 등 외부 위원직을 모두 사퇴했다. 천주교 인권위원회는 지난 22일 김씨에게 '정직 6개월 및 교육 프로그램 이수' 징계를 내렸다.
경찰은 최근 김씨의 성추행 사건 내사에 착수했다. 성추행 친고죄 조항이 폐지된 2013년 이후 발생한 사안이라 피해 여성의 고소 없이도 수사는 가능하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 진술을 듣기 위해 피해 여성을 계속 접촉하고 있지만 응하지 않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폭로가 계속되면서 경찰도 본격적 수사에 나섰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이날 "소셜 미디어 글과 풍문 등으로 파악된 유명인 19명을 수사 대상에 올려놓고 있다"고 했다. 혐의가 뚜렷한 인물에 대해선 "구속영장 청구도 검토 중"이라고 했다.
가해자에 대한 체포와 소환도 잇따를 전망이다. 경찰은 "배우 출신 조민기 청주대 교수 성추행 의혹을 내사한 결과 본격적 수사로 전환해 피해자와 참고인 등을 소환 조사키로 했다"고 밝혔다. 또 이날 경남지방경찰청은 2007~2012년 10대 단원 2명을 성폭행한 의혹이 제기된 김해 극단 '번작이' 대표 조모(50)씨를 체포했다. 경찰은 일선 경찰서와 지방 경찰청 단위의 성폭력 수사 체계를 정비해 '미투 고발'에 적극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
김은정 기자
02-27 “고은, 女대학원생 성추행하며 신체 주요부위 노출”
문단 인사들의 증언
▲고은
성추문에 휩싸인 고은 시인(85)의 침묵이 계속되는 가운데 불과 10년 전에도 그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성폭력을 일삼았다는 구체적인 증언이 나오고 있다. 최영미 시인(57)의 최초 폭로 직후 고 시인은 “30년 전 일이다. 격려 차원에서 손목을 잡았으나 나쁜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복수의 문학계 인사에 따르면 고 시인의 성추행은 오랜 기간 이어졌다.
26일 40대 문인 A 씨에 따르면 2008년 4월 고 시인은 지방의 한 대학 초청 강연회에 참석했다. 행사 후 뒤풀이 성격의 술자리가 열렸다. 고 시인과 문인 출신인 다른 대학의 교수(60), 여성 대학원생 3명 그리고 A 씨가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고 시인은 옆에 앉은 20대 여성 대학원생에게 “이름이 뭐냐” “손 좀 줘봐라”고 말하며 손과 팔, 허벅지 등 신체 부위를 만졌다. 누구도 이를 말리지 못했다. 급기야 술에 취한 고 시인은 노래를 부르다 바지를 내리고 신체 주요 부위까지 노출했다고 한다. 한 여성은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 A 씨는 “그는 이 세계의 왕이자 불가침의 영역, 추앙받는 존재였다. 그런 추태를 보고도 제지할 수 없어 무력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고 시인이 자신의 시집 출판 계약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중소 출판사 여직원을 성추행한 사건도 있었다. 50대 문인 B 씨에 따르면 사건은 2000년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술집에서 일어났다. 고 시인은 여성의 손과 팔, 허벅지 등 신체 일부를 더듬었다. B 씨와 출판사 대표 등 함께 있던 사람들은 이를 보고도 침묵했다. B 씨는 “여직원은 출판 계약이 잘못될까 봐 저항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저 자리를 피해 눈을 감아버리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후로 나는 고은의 시를 읽지 않는다”고 말했다. 앞서 최영미 시인은 17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1993년 제가 목격한 괴물 선생의 최악의 추태는 따로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문인들은 고 시인의 성폭력을 보고 어쩔 수 없이 침묵했다고 털어놨다. 더 나아가 일부 문인은 사실상 고 시인의 추태를 간접적으로 돕는 역할도 했다. “고은을 볼 수 있는 기회” “고은과 술 마실 수 있다”고 말하며 술자리에 자신의 여성 제자를 부른 것이다. 40대 문인 C 씨는 “그들은 고은과의 술자리에 여성 제자만 불렀다. 여성을 같은 문인이 아니라 접대부로 취급하는 저급한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 50대 시인은 “술과 도박, 여자는 남성 문인에게 ‘낭만’으로 치부되는 문단 내 분위기가 있었다. 성추행을 범죄로 느끼지 못하는 남성 문인이 많은 게 문제”라고 말했다.
수십 년을 이어온 추태가 드러나지 않은 건 고 시인의 위상 때문이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고문이고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된 그는 ‘문단 권력’의 정점에 있었다. 고 시인의 추태를 오히려 ‘시인다움’으로 떠받들고 그의 치부를 숨기기 위해 작품성을 과도하게 치켜세우는 문단 내 ‘카르텔’이 공고했다.
50대 여성 시인 D 씨는 “여성 문인 사이에선 ‘고은 옆자리에 가지 마라’ ‘손이 치마 안으로 들어갔다 윗도리로 나온다’는 말이 퍼져 있었다. 그의 기행을 ‘시인다움’ ‘천재성’으로 합리화하는 이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가) 문인이라면 한평생 돌아보고 자기로 인해 고통받은 여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02-27 고양지원 女공무원 4명 “판사가 성희롱-성추행”
법원도 성폭력 자체조사 착수
檢, 안태근 성추행 의혹 소환조사
▲안태근 전 검사장이 26일 오전 검찰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취재진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법원에서도 성폭력 피해 사례 조사가 시작됐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법원공무원 노동조합은 소속 공무원들을 상대로 벌인 성희롱 및 성추행 피해 실태 조사 결과를 22일 법원 내부망에 게시했다. 이 설문은 판사를 제외한 법원 공무원 16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95명이 응답했다.
결과에 따르면 여성 응답자 50명 중 14명(28%)이 직접 피해를 당했거나 피해 사례를 목격 또는 전해 들었다고 답변했다. 특히 여성 4명은 판사로부터 성희롱 또는 성추행을 당했다고 답했다. 피해 유형으로는 ‘손, 어깨 등 신체 접촉 또는 포옹’이 6건, ‘음담패설 및 성적 농담’이 4건으로 가장 많았고, ‘가슴, 엉덩이 등 특정 부위를 접촉했다’는 답변도 2건이 나왔다.
노조 측은 26일 “가해자 대부분이 상급자라 피해자 다수가 참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답했다”며 “법원 차원에서 정기적으로 이런 전수조사를 해달라는 요청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판사와 법원 직원들로 구성된 ‘성희롱 고충심의위원회’를 통해 이번 설문조사에 대한 추가 조사 및 후속 조치에 나설 예정이다.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는 27일 회의를 열어 전국 법원으로 조사를 확대할지 논의할 예정이다. 판사들로 구성된 대법원 산하 젠더법연구회도 법원 내 양성평등 저해 사례(성차별, 성추행 등)를 수집할 계획이다. 젠더법연구회는 법원노조와 연계하거나 조사 대상을 평판사에서 부장판사급까지 확대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검찰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단장 조희진 서울동부지검장)은 서지현 검사(45·사법연수원 33기)를 성추행하고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을 받는 안태근 전 검사장(52·20기)을 이날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안 전 검사장은 조사단이 위치한 서울동부지검에 출석하며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말했다.
조사단은 안 전 국장의 인사 개입 의혹이 확인되면 직권남용 혐의 적용을 검토할 방침이다.
권오혁 hyuk@donga.com·허동준 기자·신아람 채널A 기자
02-28 날라리 진보, 헤게모니와 오르가슴
진보측 예술가 性추문 많은 건 문화계 헤게모니 장악한 탓
미투 폭로 대상 된 이윤택의 성추행 범죄의식 없는 작품
자유분방함 추구하더라도 자유연애와 성추행 구별해야연극 연출가 이윤택을 향한 미투(#MeToo) 폭로에서 간과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의 성추행이나 성폭력은 단지 나쁜 손의 문제가 아니라 나쁜 의식의 문제라는 사실이다.
그의 작품에는 사실상의 성추행 장면이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한다. 그의 출세작 ‘오구’라도 좋고 셰익스피어를 각색했다는 ‘햄릿’이라도 좋고 다른 작품이라도 좋으니 한번 봐 보라. 이윤택 자신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인간의 성적 욕망의 탐구’니 어쩌니 할지 모르겠으나 실은 모두 범죄행위에 가깝다.
범죄적인 성적 욕망을 예술의 소재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범죄적인 성적 욕망도 예술의 중요한 소재다. 다만 범죄라는 인식이 작품 속에서 갈등으로 작용하는 한에서 그렇다. 이윤택의 작품에서는 성추행 장면이 반복적으로 벌어지는데도 범죄라는 인식이 느껴지지 않는다. 성추행은 처음에는 여성에 의해 거부되지만 결국 여성에 의해 기꺼이 즐거이 받아들여진다. 그의 작품은 성에 있어서 여성은 솔직하지 못하다는 착각에 기초해 ‘남녀관계는 남자가 밀어붙여야 한다’는 마초적 인식을 관객들에게 부추긴다.
남녀상열(男女相悅)은 인간의 거부할 수 없는 욕망이다. 아프리카 오지의 밤하늘 아래서 성욕에 불타올랐던 정의구현사제단 신부에게까지도 ‘유혹할 자유’를 부인할 생각은 없다. 현대 사회는 성인에게 있어서 자유연애의 사회다. 다만 자유연애라 하더라도 그 속에 어떤 규율이 있다. 상대가 거부의 반응을 보일 때 무시하고 더 나가서는 안 된다는 규율이다. 이 엄격한 규율이 지켜지지 않으면 자유연애는 부자유연애가 된다. 그것이 성추행이고 성폭력이다.
법적으로 성추행이나 성폭력이 되려면 피해자의 분명한 거부 의사표시가 전제돼야 한다. 문화예술은 일찍부터 거부와 동의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한 영역을 다뤘고, 외면상 동의가 있었다고 보일지라도 돈이나 권력관계에 의해 성립한 동의는 진정한 동의와 거리가 멀다는 비판의식을 갖고 위대한 로맨스를 창조해왔다. 현대 문화예술은 자유분방해 보여도 실은 현실의 법보다 더 높은 도덕성을 추구했던 것이다.
이윤택의 작품은 그런 것과 거리가 멀다. 저승에서 온 남성들이 거대한 음경을 흔들며 등장하는 ‘오구’ 같은 작품은 니체 식으로 말하면 디오니소스적 성의 굿판을 벌여놓고 이를 수습할 어떤 아폴론적인 계기도 제시하지 않는다. 디오니소스적 착란 속에 무대 위의 연극과 무대 아래의 현실은 둘로 나눌 수 없는 불이(不二)의 세계가 된다. 무대가 곧 사타구니 안마를 받는 여관방이고 발성연습 시간은 그것을 핑계로 상대의 몸을 더듬는 순간이 된다.
이윤택을 진보예술가라고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진보연(然)한 예술가임에는 틀림없다. 노무현 정부 들어 과거 정부가 직접 나눠주던 문예진흥기금을 문화예술인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나눠주도록 했다. 자율성이 강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문화예술계의 상당 부분을 진보 측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개편이었다. 이런 개편에서 가장 이익을 본 것이 이윤택 같은 이들이다. 이런 예술가가 각광을 받았기에 그의 작품이 성공의 모범이 되고 연극판 전체가 성의 난장판 비슷하게 변질된 감이 없지 않다.
이윤택은 박근혜 정부에 들어와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대표적 인물이다. 박근혜 정부는 어떻게 나눠줘도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시대착오적인 문예진흥기금을 폐지하는 쪽으로 갔어야 했으나 노무현 정부가 만든 체제를 그대로 둔 채 그 배분을 강압적으로 수정하려다가 직권남용의 함정에 빠졌다. 이윤택은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 다시 정부 문화지원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지난해만도 문예진흥기금 등에서 4억4600만 원을 지원받았다고 한다.
진보연한 문화예술인이 주로 미투의 폭로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이 분야의 헤게모니를 그들이 쥐고 있다는 방증일 뿐이다. 미투는 당연히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데올로기적 분류와 상관없다. 검찰같이 보수적인 세력이 헤게모니를 쥐었던 분야에서는 그들이 미투 폭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알량한 헤게모니를 이용해 찰나의 오르가슴을 얻으려다 수치스러운 폭로에 직면한 것이 어디서나 미투 사태의 본질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02-28 최영미 “고은 시인, 술집서 바지 지퍼 내리고 만져달라고…”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미투] 24년전 성추행 목격담 본보 보내와
“탑골공원 근처서 문인들과 술자리… 의자에 누워 나와 女시인에 추태
동석한 사람 중 누구도 제지안해”
“2012년 광주 노래방서도 노출”… 20대 작가지망생도 폭로
작품을 통해 고은 시인(85)의 성추문을 처음 세상에 알린 최영미 시인(57·사진)이 다시 글을 썼다. 17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내 입이 더러워질까봐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고 한 사건을 마침내 폭로한 것이다.
최 시인은 27일 동아일보에 직접 작성한 글을 보냈다. 약 1000자 분량이다. 그는 ‘그때’ 자신이 목격한 장면을 상세히 적었다. 그는 “반성은커녕 여전히 괴물을 비호하는 문학인들을 보고 이 글을 쓴다”고 이유를 밝혔다.
최 시인에 따르면 사건은 1992년 겨울에서 1994년 봄 사이 일어났다. 장소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근처의 한 술집이었다. 문인들이 자주 찾던 곳이라고 한다. 최 시인은 선후배 문인과 술자리에 참석했다. 그때 ‘원로시인 En(고은)’이 들어왔다. 그가 의자 위에 등을 대고 누웠다. 그리고 갑자기 바지 지퍼를 내리고 자신의 아랫도리를 손으로 만졌다. 잠시 후 그는 최 시인과 다른 젊은 여성시인을 향해 “니들이 여기 좀 만져줘”라고 명령하듯 말했다.
하지만 동석한 문인 중 아무도 그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고 한다. 술집에 일행 말고 다른 손님도 있었지만 함께한 남성 문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최 시인은 당시를 떠올리며 ‘누워서 황홀경에 빠진 괴물’이라고 표현했다.
최 시인은 “20년도 더 된 일이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처치 곤란한 민망함이 가슴에 차오른다. 나도 한때 꿈 많은 문학소녀였는데, 내게 문단과 문학인에 대한 불신과 배반감을 심어준 원로시인은 그 뒤 승승장구 온갖 권력과 명예를 누리고 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현 상황에 침묵하고 오히려 가해자를 비호하는 사람들을 향해 “공개된 장소에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물건’을 주무르는 게 그의 예술혼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나는 묻고 싶다. ‘돌출적 존재’인 그 뛰어난(?) 시인을 위해, 그보다 덜 뛰어난 여성들의 인격과 존엄이 무시되어도 좋은지”라고 반문하며 글을 마무리했다.
새로운 성추문 폭로도 이어졌다. 불과 6년 전에도 고 시인이 자신의 신체를 노출하고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내용이다. 작가지망생 이모 씨(28)에 따르면 2012년 5월 광주에서 시인들이 참석한 행사가 열렸다. 고 시인은 초대시인으로 참석했다. 그는 노래방에서 술에 취한 채 테이블 위에 올라가 바지를 내렸다. 주최 측이 항의하자 고 시인은 도중에 서울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 씨는 “고 시인을 조금만 가까운 거리에서 봤던 사람은 그의 행태를 몰랐을 리가 없다. 이제 와서 불거진 게 이상하다. 문인들이 여태껏 숨겨왔다는 게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02-28 권력 뒤의 추악한 그들, 여성 유린 죄의식조차 없었다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미투]한달간 성추행 불거진 22명 분석해보니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45)의 ‘미투(#MeToo·나도 당했다)’가 28일로 한 달을 맞았다. 그가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에 안태근 전 검사장의 성추행을 폭로한 것이 지난달 29일이다. 당시만 해도 서 검사의 폭로가 ‘한국판 미투’로 이어질지 확신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불과 한 달 만에 미투는 사회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다.
○ 권력형 성폭력의 실체 드러나다
처음엔 법조계 안팎의 일부 성폭력 규명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일부 비슷한 폭로가 있었지만 확산될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미투 폭발의 결정적 계기는 지난해 말 발표된 최영미 시인(57)의 작품이었다. 고은 시인(85)의 성추문을 폭로한 작품이 6일 뒤늦게 주목받은 것이다.
이후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66)과 배우 조민기 씨(53)의 성폭력 피해자들이 실명으로 나서면서 문화예술계 전반으로 미투가 번지고 있다. 종교계와 시민단체 등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건 폭로가 이어졌고 마침내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지금까지 미투 대상으로 지목된 사람은 30명 안팎. 이 중 피해자가 실명으로 폭로하거나 본인이 공개적으로 해명에 나선 유명 인사는 22명 정도다. 피해자가 폭로한 성폭력의 유형은 성폭행 6명, 성추행 15명, 성희롱 1명 등이다. 문화예술계 인사가 19명으로 가장 많다. 극단 대표가 소속 단원을, 예술대 교수가 제자를, 유명 배우가 후배나 연기자 지망생을 대상으로 삼았다.
미투에 나선 피해자 대부분이 당시 성폭력 여부조차 실감하지 못한 것도 공통점이다. 명백한 성추행인데도 ‘원래 이렇게 연습하나’ ‘예술가는 이런 것인가’ 같은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예술계 거장들이 자신을 따르는 후배와 제자의 경외심을 악용해 술자리에서 성폭력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해당 분야의 명성을 바탕으로 대학에 진출한 인사들은 교수의 주관적 평가가 절대적인 예술 강의의 특성을 이용해 제자들을 유린했다.
○ 경찰, 미투 대상자 모두 확인한다
경찰은 미투 대상으로 지목된 모든 인사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다. 모든 폭로 내용을 들여다보며 정식
수사로 진전시킬 사안을 가려내고 있다. 성범죄의 친고죄 폐지(2013년 6월) 이전 사건이거나 공소시효(10년)가 지나 형사처벌이 불가능한 인사도 일단 확인 대상이다. 해당 사안에 대한 형사처벌이 불가능하더라도 조사 과정에서 친고죄 폐지 이후 발생한 다른 성폭력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경찰은 미투에 동참한 피해자를 한 명씩 접촉 중이다. 피해 내용 확인뿐 아니라 가해자 처벌을 원하는지도 묻고 있다. 다만 일부는 향후 법정 공방까지 갈 경우 2차 피해가 두려워 경찰 접촉을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26일 미투 가해자 중 처음 체포된 조증윤 극단 번작이 대표(50)는 미성년자 성범죄의 친고죄가 폐지된 2008년 2월 이후 미성년 여제자 2명을 성폭행,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성관계 사실을 인정하면서 ‘호감을 갖고 동의하에 한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조민기 씨는 최초 폭로 이후 내내 부인하다가 27일에야 “모든 게 내 불찰이다. 법적 책임을 지겠다”며 사과문을 냈다.
배우 오달수 씨(50)에 대한 추가 성추행 의혹도 제기됐다. 연극배우 엄지영 씨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2003년 오 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오 씨 소속사는 “확인 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입장을 알리겠다”고 밝혔다.◎
조동주 djc@donga.com·배준우·김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