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2022-02/ 동아일보
02-03(목) 사도광산과 ‘아베의 주술’

일본 영화계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22년 만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모국에 안긴 2018년, 아베 신조 당시 총리는 이례적인 ‘침묵’으로 일관해 화제가 됐다. 고레에다 감독이 앞서 발간한 에세이 ‘걷는 듯 천천히’에 적은 내용이 심기를 거슬렀다. 그는 단일 가치관에 매몰된 일본 사회를 비판하면서 “시야가 좁고 상상력이 부족한 인간일수록 내부에서밖에 통용되지 않는 ‘아름다운 나라’ 같은 단어를 중얼거리는 법”이라고 했다. ‘아름다운 나라’는 일본 우경화에 가속페달을 밟던 아베 총리의 캐치프레이즈였다.
▷일본 정부가 당초 예상과 달리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을 끝내 강행하고 나선 배경에는 역시 아베 전 총리가 있었다. 그는 지난달 일본 정부가 한국의 반발을 의식해 보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페이스북에 ‘(한국이) 역사 전쟁을 걸어온 이상 피하면 안 된다’는 글을 올리며 뒤집기에 나섰다. 적반하장식 억지였지만 이 글을 신호탄으로 일본 집권 여당 내 우익 강경파들이 들고일어났고 국내외 눈치를 보던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결국 방향을 틀었다.
▷세계인이 공유하는 세계문화유산은 ‘완전한 역사’를 수록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사도광산 등재 대상 기간에 조선인 강제노동 시기를 제외하는 꼼수를 부렸다. 아베 총리 시절 추진했던 하시마(일명 군함도) 탄광 등재 때와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도 결국 뒤통수를 맞은 건 유네스코와 한국이었다. 등재 조건으로 강제노역의 역사를 알리고 희생자를 기린다는 후속 조치를 약속받았는데 지켜지지 않았다. 보다 못한 유네스코가 작년 7월 약속 이행을 권고했지만 일본은 귓등으로 흘렸다.
▷사도광산이 위치한 니가타현 등 한국의 동해 쪽에 면한 일본 자치단체는 오래전부터 ‘우라니혼(裏日本·뒷일본)’으로 불려왔다. 일본 경제가 오사카-도쿄 벨트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줄곧 소외돼 있었기 때문이다. 변변한 국제공항도 없고 고속도로도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았다. 사도광산도 1989년 관광자원화됐는데,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관광객을 더 유치하겠다는 자치단체의 욕심에 일본 정부의 체질화된 역사 왜곡이 기름을 부은 게 이번 사태의 발단이다.
▷사도광산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 2000명 남짓이 동원돼 혹사당한 비극의 현장이다. 하시마와 함께 국제문제화될수록 일제의 만행과 현재 일본이 보여주는 상식 이하의 양식을 비춰 주는 거울일 수밖에 없다. 일본 언론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는 이유다. 일본이 아베 전 총리의 주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일본의 미래는 ‘내부에서밖에 통용되지 않는 아름다운 나라’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배극인 논설위원 bae2150@donga.com
02-04 기만적 SNS 뒷광고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바이럴 마케팅(입소문 홍보) 덕을 톡톡히 봤다. 개성 만점의 콘텐츠가 유튜브에 올라가자 국내외 구독자들은 스스로 춤추며 노래했고 패러디물인 태릉스타일, 홍대스타일, 건담스타일로 그 열기가 이어졌다. 만약 기획사가 광고 효과를 높이려고 패러디물 제작에 돈을 댔다면 강남스타일의 생명인 자발성은 빛을 잃고 발매 이후 43억 뷰라는 신화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바이럴 마케팅 효과를 노린 일부 기업들이 인플루언서들에게 돈을 주고 제품 후기를 쓰게 하면서 유료 광고임을 숨겨 소비자를 기만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4∼12월 인스타그램, 네이버 블로그, 유튜브 등 플랫폼을 모니터링한 결과 이 같은 ‘뒷광고’ 1만7020건을 적발했다. 뒷광고를 하는 사람은 몇 년 전만 해도 스타에 가까운 인플루언서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직장인, 주부, 학생 등 일반인으로 확대됐다. 뒷광고 운영자가 다양해지고 관련 플랫폼 종류가 늘면서 이제는 광고 없는 SNS 공간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SNS 뒷광고가 사회 문제로 크게 부각된 건 한 스타일리스트가 유료 협찬 사실을 알리지 않고 ‘내돈내산(내 돈을 주고 내가 산 제품)’ 콘셉트로 방송한 2020년 7월 무렵이었다. 이후 불법 바이럴 마케팅 의혹을 받은 유명 유튜버들이 릴레이 사과에 나섰고, 공정위는 광고표시 기준을 강화했다. 그런데도 뒷광고가 여전히 많은 건 인플루언서와 플랫폼 사업자를 처벌하기 힘든 현행 표시광고법의 한계 때문이다. 아무도 솜방망이 처벌을 겁내지 않으니 소비자 보호도 한낱 구호에 그치고 있다.
▷현실을 모르는 당국이 ‘상시 모니터링’ 엄포만 늘어놓는 사이 인플루언서를 이용한 바이럴 마케팅 수법은 더욱 정교해졌다. 솔직한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간파한 기업들은 팔로어 수가 100만 명 이상인 거물급 인플루언서 대신 팔로어 수 2만5000∼10만 명대의 중간급 인플루언서로 소비자에게 친밀감을 주고 신뢰도를 높이려 한다는 분석도 있다. 업체의 이런 전략 때문에 일반 소비자가 광고와 실제 후기를 분간하기란 더 어려워졌다. 규제 타이밍을 못 잡는 당국의 엇박자 행보 때문에 뒷광고에 대한 불신만 쌓이고 있다.
▷SNS 플랫폼 경제는 재미와 놀이를 무기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왔다. 소비자들이 이 공간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동안 콘텐츠가 저절로 쌓였고, 인플루언서·기업·플랫폼은 이 콘텐츠를 활용해 돈을 벌었다. 자발성과 신뢰도 ‘제로(0)’인 기만적 SNS 뒷광고는 이 선순환 구조를 허물고 있다. ‘플랫폼 자본주의’의 위기가 예상보다 빨리 올지 모른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
02-05 하이브리드 전쟁

기습공격으로 전면전을 유발하는 것은 20세기 중반까지도 전쟁을 시작하는 주된 방식이었다. 1941년 6월 독일의 소련 침공과 여섯 달 뒤인 12월 일본의 미국 진주만 공습은 소련과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초래한 기습공격이었다. 1950년 한국전쟁도 북한 김일성의 전격적인 남침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과연 이것이 전쟁의 시작인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방식으로 전쟁이 시작되기 시작했다.
▷2001년 알카에다가 납치한 비행기로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빌딩과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에 충돌했을 때 미국인이 새로운 종류의 전쟁이 시작됐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범죄와의 전쟁’처럼 비유적으로 ‘테러와의 전쟁’으로 불렸던 것은 실제 전쟁이었다. 미군은 곧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로 쳐들어가서 최근에야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했고 이라크에는 아직 남아 있다.
▷2006년 제2차 레바논 전쟁은 이스라엘과 레바논이 34일간이라는 짧은 기간에 벌인 전쟁이었지만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열었다. 전쟁과 평화, 전투원과 비전투원의 경계가 애매모호하고 국적을 뛰어넘어 뒤엉켜 싸운다고 해서 하이브리드다. 제2차 레바논 전쟁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을 상대로 전면적 도발보다는 단계가 낮은 로켓포 공격을 하면서 시작됐다. 이스라엘은 공군으로 헤즈볼라의 은신처를 공격했으나 계속 로켓포 공격을 받았고 레바논에 진입해서는 친(親)헤즈볼라 의용군을 상대하느라 힘들어했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동부 돈바스 지역을 장악한 우크라이나 사태도 하이브리드 전쟁의 양상으로 진행됐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친(親)러시아 우크라이나인이 반(反)러시아 정부에 항거해 분리주의 운동을 벌이는 것으로 포장했다. 실제로는 군복에서 부대 기장을 떼어낸 러시아 군인들이 러시아로부터 자금과 무기를 지원받는 우크라이나 친러시아 반군들과 함께 싸웠다.
▷러시아가 10만 명 이상의 병력을 우크라이나 국경 지대에 배치해 다시 우크라이나를 위협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얼마 전 정부 홈페이지가 일제히 해킹 공격을 받아 시스템이 마비됐다. 미국 정보당국은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영토 또는 친러시아 반군이 장악한 우크라이나 동부를 공격하는 가짜 영상을 입수했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할 목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무력 사용에 앞서 사이버의 위력을 최대한 활용한 정보전과 선전전을 펼쳐 상대방의 싸울 의지 자체를 꺾는 것 역시 하이브리드로 개념화되고 있는 새로운 전쟁의 수법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02-07(월) ‘스포츠 워싱’

“아, 상당히 도발적이네요!” 4일 베이징 올림픽 개회식을 중계하던 미국 NBC 방송 앵커가 다소 놀란 듯한 어투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성화봉을 치켜든 최종 성화 봉송 주자 2명이 성화대를 향해 움직이던 순간이었다. 이 중 한 명이 신장위구르 출신 선수라는 내용이 소개되자 진행자들이 움찔한 것이다. ‘중국이 도발적 선택으로 서방의 올림픽 보이콧을 되받아쳤다’는 내용의 외신 분석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중국 서북쪽의 신장위구르는 중국 당국의 인권 유린이 행해지는 핵심 지역으로 지목받아온 곳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국가들이 ‘대학살(genocide)’이 자행되는 곳이라고 맹렬히 비판해온 곳이자 ‘외교적 보이콧’에 줄줄이 나선 주된 이유다. 그 지역 출신 선수를 중국이 보란 듯이 점화식 주자로 내세우자 ‘스포츠 워싱(sports washing)’의 전형적인 사례라는 분석이 나왔다. 스포츠 정신과 게임 열기를 앞세워 인권 유린 같은 부정적 평판을 세탁하려 한다는 것이다.
▷권위주의 정권이 이미지 포장을 위해 국제 스포츠 행사를 이용하려는 시도는 늘 있어 왔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놓고 국제 인권단체들은 ‘피로 얼룩진 월드컵’이라는 혹평을 서슴지 않는다. 러시아가 크림반도 강제 합병과 반체제 인사 탄압 등을 월드컵의 열기로 감추려 했다며 ‘스포츠 워싱’의 대표 사례로 거론한다. 올해 11월 열리는 카타르 월드컵도 비슷하다. 카타르는 현대판 노예제로 불리는 가혹한 고용계약 시스템 ‘카팔라(kafala)’ 등 인권 문제로 비판받아 온 국가다. 영국 가디언은 “2022년은 베이징에서 시작해 카타르로 끝나는 ‘스포츠 워싱의 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논평까지 내놨다.
▷거액이 투입되는 국제적 스포츠 구단 인수나 후원에도 관련 논란이 따라붙는다.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가 3억 파운드(약 4800억 원)를 들여 영국의 프로축구 구단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인수한 것은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살해 사건으로 국제적 비판에 시달린 이후였다. 러시아 부호인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2003년 첼시FC를 인수하자 “러시아 정부가 배후에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됐다.
▷선수들의 피땀과 스포츠 정신은 전 세계인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힘이다. 파킨슨병을 앓던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올림픽 성화를 들어올렸을 때의 감동을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 이런 스포츠 파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가 결국 얄팍한 눈속임이라는 것을 팬들은 모르지 않는다. 위구르인 성화 주자의 미소만으로 위구르 인권 문제를 가릴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02-08 검경 수사권 조정 1년

경찰이 금융정보분석원(FIU)에서 대장동 개발업자 화천대유의 횡령과 배임 의심 자료를 처음 받은 것은 작년 4월이었다. 계좌추적 영장을 신청하지 않는 등 경찰의 수사 미진이 드러난 같은 해 9월 “왜 검찰이 나서지 않느냐”는 질문에 검찰은 “직접 수사 범위가 아니다”고 했다. 횡령과 배임은 5억 원 이상만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데 당시엔 액수를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부패 혐의로 고발장이 접수된 뒤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대장동 의혹은 지금까지 검경이 각각 수사 중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지난해 1월부터 시행된 형사소송법의 핵심은 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 참사 등 6대 범죄 외에는 검사가 인지 수사를 못 하도록 막은 것이다. 하위 법령으로 4급 이상의 공무원, 3000만 원 이상의 뇌물 등 검사가 수사할 수 있는 범죄를 더욱 세분화했다. 흔히 ‘수사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고 하는데, 수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수사가 끝나면 확정되는 죄명과 액수에 따라 수사 착수 기관을 미리 정한 것이다.
▷개정 형소법 시행 첫해인 작년 검찰이 3385건의 인지 사건을 처분했다고 대검찰청이 7일 밝혔다. 이는 전년도(6388건) 대비 절반가량 줄어든 것이다. 10년 전엔 1만6000여 건이었는데 검찰개혁 움직임이 커지면서 검찰의 인지 수사 총량은 급감했다. 규정상 수출입 관련만 검사가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마약 관련 범죄는 1년 새 4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됐다. 미제 사건 처리를 위해 야근을 하던 검사들은 요즘 ‘칼퇴근’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반면 경찰에선 “업무량이 몇 배로 늘었다”는 고충이 제기되는 등 정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이러다 보니 고소 고발된 사건 중 경찰이 골치 아픈 것들을 다른 경찰서나 검찰 등으로 보내는 이른바 ‘사건 쇼핑’ 현상이 생겼다는 불만이 변호사단체로부터 나왔다. 경찰이 처리한 사건에 대해 검찰이 보완 수사 요구를 하면서 사건 처리 시간도 전반적으로 늘어났다. 시행 초기엔 사건 종결 이유서를 길게 썼던 경찰이 최근 한두 줄로 축소하자 “종결된 이유를 모르겠다”는 민원인들의 불만이 있다.
▷검경을 협력 관계로 바꾼 수사권 조정은 1954년 형소법 제정 이후 가장 큰 변화였다. 이제 와서 과거로 되돌리면 더 큰 혼란이 불가피하다. 검경 모두 보완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함께 각 수사기관이 상호 견제하는 방향으로 규정을 재정비해야 한다. 특히 대장동 의혹과 같은 대형 사건의 경우 수사 관할 신경전 등으로 신속한 수사에 지장이 생기지 않도록, 수사 공백과 허점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
02-09 ‘사이버 불링’ 살인

“끔찍하게 뒈져버렸으면 좋겠어. 꺼져 창녀야. 멍청한 ××.” 2017년 한 강연장에 선 할리우드 여배우 애슐리 저드의 입에서 저속한 욕설이 나오기 시작했다. 외모와 작품에 대해 자신이 받았던 악성 댓글들이었다. 하나씩 담담히 읊어나가던 목소리가 어느 순간 흔들렸다. 소셜미디어에서 거의 매일 이런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며 그는 울먹였다. 셀럽 피해자가 직접 공개한 대표적인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 사례였다.
▷온라인상 괴롭힘과 따돌림을 뜻하는 사이버 불링은 쉽게 개선되지 않는 고질병이다. 최근에는 BJ 잼미와 배구선수 김인혁이 악플의 고통을 호소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2019년 가수 설리와 구하라, 2020년 배구선수 고유민의 자살에 이은 또 다른 충격이다. 사이버 불링은 교묘하게 방식을 바꾸며 되레 공격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유명인의 사건, 사고를 자극적으로 짜깁기해 반복 재생하는 ‘사이버 레커’ 동영상의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이 주공격 대상이지만 일반인도 그 집요한 공격을 피해가기 어렵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인터넷 사용량이 늘어나면서 사이버 불링 사례도 많아지는 추세다. 2020년 방송통신위원회 조사에서 성인의 사이버폭력 경험률은 전년보다 11.1%포인트 늘어난 65.8%에 달했다. 지금도 누군가의 모바일폰에서는 ‘떼카’(단체방에서 떼로 욕설), ‘카따’(카카오톡 왕따), ‘방폭’(대화방 초대 후 혼자 남겨두는 따돌림), ‘카톡감옥’(대화방에서 나가지 못하게 막고 공격)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2020년 이후 소셜미디어를 이용한 10대 청소년의 사이버 불링이 70% 증가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와 있다.
▷사이버 불링은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이나 모욕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범죄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의 공격자들을 일일이 찾아내 대응하기도 어려운 데다 가벼운 벌금형으로 마무리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처벌 강화, 인터넷 준(準)실명제 도입 등 내용을 담은 법안 논의는 진전을 보지 못한 채 흐지부지돼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플랫폼에 더 많은 관리 책임을 묻고 있는 해외의 움직임도 국내에서는 아직 찾아보기 어렵다.
▷인터넷 공간은 멀쩡한 사람도 익명의 가면 뒤에서 사이버 불링의 유혹에 빠지게 만드는 함정이다. 지난해 한 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의 조사에서는 성인의 69%가 온라인에서 공격적 언어를 사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철저한 규제와 시스템 관리만큼 사이버 불링의 문제점에 대한 인식 제고가 절실하다. 댓글 하나가 치명적인 살인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 사이버 불링은 죽음을 부르는 범죄가 된다는 인식 말이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02-10 인도 현대차 ‘억울한 불똥’

90년 역사의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팀 워싱턴 ‘레드스킨스(빨간 피부)’의 구단 명칭에는 아메리카 인디언을 비하하는 뉘앙스가 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도 구단명을 둘러싼 인종차별 논란은 있었지만 늘 ‘찻잔 속 태풍’에 그쳤다. 그러다 2020년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차별 반대 시위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기업 평판이 급락하는 위기에 구단은 일단 ‘풋볼팀’이라는 밋밋한 이름으로 바꾼 뒤 이달 초 ‘커맨더스’로 완전 개명했다.
▷인종, 종교, 정치 등 경영 외적인 이슈들이 기업 이미지와 실적에 큰 영향을 주는 ‘소셜 리스크의 시대’다. 현대자동차의 파키스탄 현지 협력업체가 5일 ‘카슈미르 연대의 날’을 맞아 “카슈미르인 형제들의 희생을 기억하자”는 글을 SNS에 올리면서 인도인들 사이에서 현대차 불매 조짐이 일고 있다. 카슈미르는 파키스탄과 인도가 1947년 영국에서 독립한 뒤 줄곧 영유권 문제를 두고 충돌해온 화약고다. 이번 SNS상의 한 줄 글이 그 뇌관을 건드린 것이다.
▷문제가 된 글이 올라온 SNS는 파키스탄 내 독립 대리점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계정이다. 특정 지역의 정치 종교적 이슈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비즈니스 정책을 갖고 있는 현대차로선 황당할 것이다. 게다가 파키스탄에서 영업 중인 혼다, 스즈키, GM 등 다른 나라 업체도 카슈미르 연대와 관련한 글을 올렸지만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현대차 인도법인의 SNS 팔로어 수가 다른 업체보다 월등히 많다는 게 평소에는 강점이었지만 민감한 이슈가 부각될 때는 약점이 됐다.
▷요즘의 소셜 리스크는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고 일단 터지면 그 전파 속도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원래 기업의 평판은 영업 성과와 구성원들의 행동, 대내외 커뮤니케이션 효과가 오랜 기간 축적된 결과물이다. 평판은 쌓기도 어렵지만 쉽게 바뀌지도 않는다. 하지만 정치 종교 인종 문제와 결부된 리스크가 이 평판을 무너뜨리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게 될 수 있다.
▷예측 불가의 리스크를 기업 혼자만의 힘으로 감당하기는 어렵다. 연결된 세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소비자와 각국은 해당 기업뿐 아니라 국가에까지 해명을 요구한다. 이번에 인도 외교부는 한국대사를 소환하고 외교부 장관에게까지 전화했다. 그 과정을 전달받은 인도 소비자는 기업의 평판을 다시 매길 것이다. 과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벌어들인 돈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였다. 세계를 무대로 뛰는 오늘의 기업은 돈을 버는 과정에서 지역 사회와 관계를 제대로 맺는 책임까지 요구받고 있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
02-11 ‘벽을 뚫고 간’ 황대헌

중국 베이징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1000m 준결선 경기에서 황대헌 선수가 1, 2위로 앞서가던 중국 선수 2명을 순식간에 제치는 순간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한국인만 애국심 때문에 그런 게 아님은 생중계하던 미국 NBC 방송의 해설자도 놀라면서 ‘교과서적인 (완벽한) 추월’이라는 찬사를 보낸 데서 드러난다. 그러나 황 선수는 그 장면 때문에 실격됐다. 중국 선수들이 그 덕에 결선에 올라 금·은메달을 따자 ‘이따위 경기는 해서 뭐하나. 차라리 보이콧하고 돌아오라’고 할 정도로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누구보다 실의에 빠졌을 사람은 4년간 피땀 흘려 훈련해온 황 선수 자신이다. 그는 기다리던 기자들에게 ‘나중에 얘기할게요’라는 말 한마디를 던지고 믹스트존을 빠져나갔다. 그 이후의 시간을 그가 어떻게 보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그날 밤 그의 인스타그램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 마이클 조던의 말이다. ‘장애물이 너를 멈추게 해서는 안 된다. 벽에 부닥쳤을 때 포기하고 돌아서지 마라. 벽을 기어오르든, 벽을 뚫고 가든, 벽을 돌아가든 방법을 찾아라.’
▷다른 사람 같으면 심판을 탓하고 중국을 탓할 시간에 그는 방법을 찾았다. 이틀 뒤 1500m 경기에서 찾은 답을 보여줬다. 그는 뒤쪽에서 기회를 엿보다 결승선을 9바퀴 남기고 치고 나가 순식간에 선두로 올라섰다. 여기까지는 늘 하던 것이다. 이후 9바퀴를 계속 선두에서 도는 건 체력이 바닥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판정 시비를 초래할 접촉을 아예 피하기 위해 그 방법을 택했다. 마지막 바퀴에서 그는 극한의 질주를 하는 듯 다리가 후들거리는 모습까지 보였다. 더 이상 체력이 아니라 분노의 힘으로 달리는 듯했다.
▷그가 금메달을 따자 한국 선수들이 늘 반칙으로 메달을 딴다고 우기던 중국은 야단맞은 학생처럼 조용해졌다. 한국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그것 봐라’ 할 여유를 갖게 됐다. 그럼에도 황 선수의 실격 사유인 ‘접촉을 일으킨 뒤늦은 추월(late pass causing the contact)’이 과연 있었는지 국제재판을 통해서라도 끝까지 밝혀야 한다.
▷장애물을 만났을 때 하늘에서 갑자기 뚝 내려오는 사다리 같은 건 없다. 조던처럼 부단히 노력해서 실력을 쌓는 사람에게만 벽을 극복할 길이 보인다. 벽이 나타나면 그 벽을 극복하기 위해 실력을 쌓고, 다시 실력을 쌓다보면 새로운 벽이 나타나도 그 벽을 극복할 길이 반드시 생긴다는 사실을 23세의 젊은이가 보여줬다는 점이 장하다. 그런 정신이라면 어느 분야의 어떤 벽도 극복하지 못할 게 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02-12 주한 美대사의 삼성행

지난해 4월 미국 워싱턴의 한 외교안보 싱크탱크가 주최한 화상 세미나에 한국 프로야구단의 유니폼들이 배경으로 등장했다. 다채로운 색깔의 야구복들이 진행자 뒤쪽 벽에 줄줄이 걸렸다. ‘한국 야구와 한미 관계’라는 이례적 주제 선정부터 화면 구성, 진행까지 총괄한 이는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대사. 워싱턴에서 접속한 청중들은 놀랍지도 않다는 반응이었다.
▷리퍼트 전 대사의 ‘한국 사랑’은 진지하다. 퇴임 후 5년이 지났지만 그는 요즘도 한반도 관련 세미나에 참석할 때마다 한국말로 인사하고, 최신 한국 뉴스들을 소개한다. 두산 베어스의 광팬으로 KBO리그 점수를 실시간 업데이트하면서 치맥을 즐긴다. 두 자녀는 한국이름 ‘세준’, ‘세희’가 새겨진 책가방을 메고 주말 한글학교를 다닌다. 이런 진심 때문일까. 그가 삼성전자 북미 총괄 대외협력팀장(부사장)으로 영입됐다는 소식을 워싱턴과 서울은 모두 반기는 분위기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리퍼트 전 대사를 삼고초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튜브 임원으로 근무해온 그를 영입하기 위해 적잖은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미국 전직 고위인사의 대기업 스카우트가 처음은 아니지만, 활동 분야가 반도체 산업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관심을 끈다. 반도체는 미중 간 기술패권 경쟁의 핵심으로 떠오른 전략물자. 미국의 관련 정책과 입법 동향을 발 빠르게 파악해 대응하려는 주요국들의 정보전과 로비전, 인재영입전이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서로 수출 통제와 제재의 칼을 휘두르는 ‘반도체 전쟁’의 유탄이 언제 어떻게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리퍼트 전 대사 앞에는 많은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미중 간 경쟁 사이에 끼인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기회만큼이나 많은 위기를 떠안아야 한다. 삼성과 SK하이닉스 등은 지난해 미 상무부로부터 대외비로 분류되는 민감한 반도체 수급 자료 제출을 요구받았다. 대만 TSMC 같은 해외 반도체 기업들과의 경쟁도 불붙고 있다. 백악관, 상무부 고위인사들과의 면담 섭외 또한 까다로운 미션이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이재용 부회장의 방미 당시 추진했던 조 바이든 대통령,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의 면담은 끝내 불발됐다.
▷미국을 상대해야 하는 해외 기업들에 전직 고위인사가 지닌 폭넓은 네트워크는 강력한 자산이다. 리퍼트 전 대사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렸던 측근으로 민주당 인사들과의 친분이 두텁고 현직 인사들과의 접촉면이 넓다. 펜타곤의 인도태평양 차관보 사무실에는 아직도 전직이었던 그의 사진이 걸려 있다. 경제안보의 시대에 특정 기업을 넘어 양국 간의 경제협력에서 그가 펼칠 더 큰 역할을 기대한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02-14(월) 남의 뉴스로 장사하는 포털

한국 국민의 포털 뉴스 의존도는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지난해 세계 46개국의 온라인 뉴스 이용 경로를 조사한 결과 한국의 포털 이용률은 1위(72%)로 전체 평균(33%)의 갑절 이상이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최근 설문조사에서도 우리나라 유권자 10명 중 7명은 이번 대통령 선거 관련 정보를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 뉴스로 접하고 있었다.
▷한국의 포털 영향력은 막강하지만 뉴스 신뢰도는 46개국 중 38위로 하위권이었다. 가짜뉴스와 가십성 기사, 선정적인 기사 제목이 쏟아지는 현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국내 주요 뉴스 포털이 아직도 대부분의 뉴스를 언론사 홈페이지가 아니라 포털 사이트에서 보여주는 ‘인링크’ 방식을 유지하면서 노출 경쟁을 부추기고 있어서다. 이 과정에서 언론사의 심층 기획 탐사보도 등 양질의 기사는 묻히기 일쑤다. 포털의 알고리즘 등에 의해 편집된 뉴스는 공정성과 여론 조작 논란 속에 우리 사회의 균형성과 다양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엊그제 TV 토론에서 여야 대선 후보들은 포털 뉴스를 해당 뉴스를 생산한 언론사 홈페이지로 연결해 보여주는 ‘아웃링크’ 추진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재명 후보는 “포털은 심각한 문제”라며 “뉴스 아웃링크 의무화와 (포털의) 뉴스 편집 금지법은 꼭 필요하다”고 했다. 안철수 후보는 “포털의 뉴스 추천 기능을 없애고, 단순검색 방식으로 기사를 누르면 포털 내부가 아니라 오리지널 (언론) 사이트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구글 등 세계 주요 포털에서는 당연한 일이 한국 대선 토론장에 오른 것이다.
▷국내 포털이 국내 온라인 뉴스 시장을 가두리 양식하듯 독점하던 체제에 비판 여론이 커진 것은 2018년 드루킹 일당의 댓글 여론 조작 사건이 계기였다. 이후 포털은 언론사 자율권을 높인다며 여러 차례 개편안을 내놓았지만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특히 네이버는 압도적 점유율을 보이는 모바일 뉴스에 대해 아직도 인링크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다음은 작년 말 아웃링크 구독 모델로 전환하고 뉴스 배치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고 밝혔지만 실행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포털의 뉴스 장사는 사실상 언론으로서의 영향력은 행사하면서 책임은 나 몰라라 한다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국민 70% 이상이 같은 플랫폼에서 뉴스를 소비하는 획일성은 민주주의 발전 방향과도 맞지 않는다. 뉴스 접촉 경로가 언론사 홈페이지로 바뀐다면 언론사 간 경쟁이 촉진되고 보다 양질의 콘텐츠가 한국 사회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것이다. 국회는 늦기 전에 법제화로 결론을 내야 한다.
배극인 논설위원 bae2150@donga.com
02-15 ‘다이노 베이비’

미국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셰릴 필렉스는 47세였던 2007년 구글에 입사지원서를 넣었지만 고배를 마셨다. 2014년까지 3번 더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 채용담당자가 “몇 살인지 알아야 하니 대학원 졸업 날짜를 적어라”라고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구글을 상대로 한 연령 차별 집단소송에 동참했다. 5년간 법정싸움 끝에 필렉스를 비롯한 원고 227명은 구글로부터 모두 1100만 달러의 합의금을 받아냈다.
▷이런 사례들을 반면교사로 삼는 기업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미국에서는 연령 차별을 이유로 한 수십 건의 대규모 소송이 지금도 진행 중이다. 정년제를 폐지했고 40대 이상을 위한 ‘고용연령차별금지법(ADEA)’을 만들었지만 때로 무용지물이다. 최근에는 IBM이 나이 든 직원들을 ‘다이노 베이비스(Dinobabies)’로 부르며 “멸종시켜야 한다”고 한 내부 e메일이 공개됐다. 멸종된 공룡(dinosaur)과 베이비붐 세대(baby boomers)를 합친 ‘다이노 베이비’는 퇴출 위기에 놓인 50∼70대를 비하하는 조어다.
▷베이비 부머(1946∼1965년생)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남다르다. 이들 중 53%는 나이 때문에 차별받았다고 느낀 적이 있다. 뒷방 신세가 되는 연령대는 심지어 계속 낮아지는 추세. 아마존 직원들의 평균 연령은 30세, 페이스북은 29세다. 능력 차이가 문제라면 할 말이 없겠지만 나이 자체를 문제 삼는 건 차별이다. IBM을 상대로 소송을 낸 직원들은 회사가 “밀레니얼 세대 직원의 숫자가 (젊은 경쟁사들보다) 뒤처지고 있다”고 한 것도 차별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IBM의 직원 평균 연령은 48세다.
▷연령 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는 고령화와 맞물려 한동안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2024년에는 근로자 4명 중 1명은 55세 이상이 된다. “나이가 전부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낼 모(母)집단이 커진다는 의미다. 영국에서는 89세 할머니가 늙었다는 이유로 자신을 해고한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2019년 20만 파운드의 배상금을 받아 화제를 모았다. 1970년대 이미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경우 고용연장 의무화 제도 등으로 일손 부족의 위기를 넘었다.
▷정년제와 임금피크제 등을 시행하는 한국은 미국 등 서구 국가들과는 노동 환경이나 제도가 다르다. 대기업에서 명예퇴직한 50대 임원이 연령 차별을 받았다며 제기한 소송에서는 패소 판결이 나왔다. 그러나 나이와 상관없이 성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기본 원칙은 다르지 않다. 유명 광고 문구처럼 ‘나이를 먹어도 늙지는 않는다’는 일할 의욕과 역량을 갖춘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이어야 한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02-16 日 감동시킨 이상화의 눈물

“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는 지금도 국내 스포츠 중계 사상 가장 유명한 멘트로 꼽힌다. 송재익 축구캐스터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최종예선 도쿄 방문경기에서 이민성의 역전골이 터지자 내지른 일성이었다. 일본의 자존심을 저격한 이 멘트는 당시 일본 언론에까지 다뤄질 정도였다. 세월이 지나 이번에는 한국 해설자가 일본 선수를 응원하다 눈물까지 흘려 일본의 반응이 뜨겁다. 베이징 겨울올림픽에서 나온 훈훈한 장면이다.
▷사흘 전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 경기.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해설위원이 된 ‘빙속 전설’ 이상화가 절친이자 경쟁자였던 일본 고다이라 나오(36)의 경기를 중계하다 부진한 성적에 끝내 눈물을 흘렸다. 고다이라는 4년 전 평창 겨울올림픽 때 이상화의 올림픽 3연패를 저지하며 금메달을 따낸 라이벌이었다. 당시 대회를 끝으로 이상화는 은퇴했고, 세 살이 더 많은 고다이라는 현역으로 남아 이번 대회 2연패에 도전했다. 고다이라는 경기 뒤 공식 인터뷰에서 중계석의 이상화부터 찾으며 한국어로 “보고 싶었어. 저는 오늘 안 좋았어요”라고 했다.
▷둘의 우정에 일본 언론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아사히신문은 “올림픽을 앞두고 이상화가 몇 번이고 보낸 격려 메시지에 고다이라가 마음 든든해했다”고 소개했고 요미우리신문은 ‘이상화 눈물에 감동 커져…. 우정에 국경이란 없다’고 보도했다. 마이니치신문은 ‘고다이라 17위에 라이벌 눈물’이라며 관련 내용을 전했다. 기사들에는 “눈물이 나왔다. 한일관계는 나쁘지만 둘의 관계는 멋지다. 같은 일본인으로서 고맙다”는 등의 댓글이 이어졌다.
▷4년 전 평창 대회에서도 둘의 우정은 뜨거웠다. 당시 올림픽 기록을 갈아치운 고다이라는 관중석이 열광하자 손가락으로 ‘쉿’이라며 이상화의 다음 경기를 배려했다. 2위로 통과한 이상화가 눈물을 흘리자 “여전히 너를 존경한다”며 어깨를 감싸 안았다. 둘의 우정에 특별한 비결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래전 선수 대기실에서 이상화가 친근하게 말을 건넨 게 계기였고 고다이라는 이상화를 롤 모델로 훈련한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서로에 대한 인정과 배려가 우정을 키워온 것이다.
▷역대 한일 간 스포츠 경기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자존심 대결이곤 했다. 지난해 한 번 급조되기는 했지만, 매년 열리던 축구 한일평가전이 10년 이상 사라진 것도 과열 후유증이 한 원인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상화와 고다이라의 우정이 특별한 감동을 주는 것은 국가와 정치를 뛰어넘는 올림픽과 스포츠 정신 본래의 가치를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꼬일 대로 꼬인 한일관계를 푸는 첫 단추도 이처럼 작은 관심과 배려일 것이다.
배극인 논설위원 bae2150@donga.com
02-17 “두려움 없이 걷고 싶다”

호신용 칼, 테이저건, 최루액 분사기. 여자 스노보드 1인자인 한국계 미국인 클로이 김(22)이 집 밖을 나서면서 챙기는 물건이다. 경기장을 갈 때, 강아지 산책 시킬 때, 집 근처 식료품점에 갈 때도 예외가 아니다. 평창에 이어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여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사상 첫 2연패를 달성한 국가대표도 두려움 없이 거리를 걸을 수 없을 만큼 미국의 아시아계 증오범죄는 심각하다.
▷클로이 김은 미국에선 증오범죄 공론화에 앞장서는 인물로도 유명하다. 지난해 ESPN 인터뷰에서 인종차별을 일상으로 겪고 있다고 폭로한 것이 계기가 됐다. 2013년 애스펀 X게임에서 첫 메달을 딴 후 “백인 소녀의 메달을 훔쳤다”는 악플에 시달리기 시작해, 평창에서 우승한 후론 “멍청한 동양인” 같은 문자폭탄을 받았으며, 부모의 귀가 시간이 늦어지면 병원에서 나쁜 소식을 전하는 전화가 걸려 올까 봐 두려움에 떨었다고 한다. 그는 정신적 충격으로 평창 이후 22개월간 스노보드를 접어야 했다.
▷클로이 김이 슬럼프를 극복하고 베이징에서 다시 정상에 서자 미국 언론은 세계적인 스타도 피해가지 못하는 아시아계 혐오범죄의 심각성을 조명하기 시작했고 결국 백악관도 움직였다. 15일 백악관 정례 브리핑에서 젠 사키 대변인은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며 “조 바이든 대통령은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엄중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클로이 김이 피해를 호소하고 바이든 정부 들어 아시아계 증오범죄가 339% 늘었다’는 기자들의 지적에 대한 답변이었다.
▷클로이 김의 ‘용기’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만큼 아시아계가 인종차별을 문제 삼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아시아계는 ‘모범적 소수자(model minority)’로서 신고나 보복으로 문제를 일으키려 하지 않는다. 이는 적은 숫자, 작은 체격과 함께 유독 아시아계가 증오범죄의 표적이 되는 요인으로 꼽힌다. 클로이 김도 한동안 “그냥 무시하라”는 부모의 말을 따랐지만 메달리스트가 되자 “부당함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됐다”고 했다. 백인 친구들은 “당하고도 침묵하는 너도 문제”라며 화를 냈다고 한다.
▷평범한 아시아계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4, 15일에는 뉴욕 맨해튼에서 증오범죄 규탄 집회가 잇달아 열렸다. 30대 한국계 여성이 노숙인에게 살해당하고, 한국 외교관이 길거리에서 ‘묻지 마 폭행’을 당한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예방책을 촉구하는 집회였다. 참가자들은 “두려움 없이 거리를 걷고 싶다”고 외쳤다. 부당함에 맞서는 용기가 그런 당연한 권리를 되찾아 줄 것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02-18 자동차세 역차별

출고가 3500만 원인 현대차 그랜저 자동차세는 87만 원이다. 그런데 가격이 억대인 포르셰 파나메라는 자동차세가 75만 원에 불과하다. 판매가가 그랜저의 두 배 정도 수준인 모델의 독일산 BMW와 벤츠의 자동차세는 이보다 훨씬 적다. 해마다 국산차 소유자들 사이에 “우리만 봉이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조세 형평성에 맞느냐는 것이다.
▷국산차가 세금 역차별을 받는 것은 수입차보다 배기량이 더 크기 때문이다. 현행 자동차세는 차 값에 관계없이 엔진 배기량을 세 구간으로 나눠 클수록 누진적으로 많이 내는 구조다. 배기량 자체가 없는 전기차 수소차 등 친환경차는 일률적으로 10만 원이다. 억대의 테슬라 모델X도 지방교육세를 합쳐 연간 13만 원만 내면 된다.
▷우리나라 자동차세에 배기량 개념이 처음 도입된 것은 55년 전이었다. 배기량이 크면 힘과 속도가 좋고, 기름도 더 많이 쓰니 세금도 더 내야 한다는 논리였다. 당시만 해도 배기량이 클수록 차 값도 비싸니 문제될 게 없었다. 세월이 지나 국산차 역차별 논란이 불거지게 된 것은 기술 진보 때문이다. 비싼 수입차들이 작은 엔진으로 주행 성능은 높이면서도 배기량을 줄였다. 옛날에 만든 조세 제도와 새로운 현실 간에 괴리가 생긴 셈이다.
▷배기량 기준이 처음 도마에 올랐던 것은 15년 전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때였는데 지금과는 다른 이유에서였다. 미국은 한국의 배기량 기준 자동차세가 엔진 사이즈가 큰 자국산 자동차 구입을 저해한다며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밀고 당기기 협상 끝에 배기량에 따라 5단계로 나뉜 자동차세를 현행 3단계로 간소화해 누진성을 다소 완화했다. 미국은 ‘한국이 차종 간 세율 차이를 늘리기 위해 배기량에 기초한 새로운 조세를 채택할 수 없다’는 내용까지 합의문에 담았다.
▷당시만 해도 배기량 기준이 국산차에 대한 역차별 요인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한국 시장에서 수입차 점유율이 늘면서 논란이 확산됐고 그동안 몇 차례 개편 시도가 있었지만 결실은 없었다. 예컨대 차 값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면 중소형차가 많은 소도시의 세수가 감소하게 되는 등 이해 조율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기술과 시장 변화에 맞는 세제 개편을 언제까지나 미룰 수는 없다. 차량 가치를 기준으로 하는 미국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조세 기준의 하나로 삼는 유럽 사례를 두루 참조해 역차별을 해소하면서도 미래 자동차산업을 성장시킬 해법을 찾아야 한다. 배기량에 따른 역차별을 해소하자는 것이니 미국과의 협상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배극인 논설위원 bae2150@donga.com
02-19 北 코인 해킹 적발 나선 美

2015년 1월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의 다카 본사에 근무하던 한 직원은 ‘라젤 아흐람’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입사지원 이메일을 받았다. 첨부된 이력서 파일을 클릭하는 순간 북한이 심은 악성코드가 침투했다는 사실은 해가 넘도록 아무도 몰랐다. 무려 8100만 달러의 자금이 빠져나가고 난 뒤에야 연방수사국(FBI)이 수사에 착수했다. 악성코드를 심은 이후에도 1년 이상 숨죽이며 준비 작업을 거친 북한 해커들의 주도면밀함에 전문가들은 혀를 내둘렀다.
▷최대 1만 명의 ‘사이버 전사’들을 앞세운 북한의 사이버 범죄는 국제사회의 골칫거리다. 과거 은행 내부 전산망이나 현금자동입출금기 등을 공격하던 것에서 나아가 요즘은 가상화폐를 집중 공격하는 게 특징이다. 2017∼2019년 북한이 아시아 주요국의 가상화폐 거래소를 15차례 해킹해 가로챈 금액은 1억7000만 달러에 달한다. 미국 법무부가 이번에 신설한 국가가상화폐단속국의 주요 해외 타깃도 북한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보, 수사당국은 그동안 북한을 비롯한 해외 해커들의 사이버 범죄를 집중적으로 추적해왔다. 미 국가안보국은 2019년 사이버보안부를 신설하면서 북한을 주요 타깃으로 지목했다. 북한이 가상화폐 해킹으로 정권유지 자금을 마련한다면서 “창조적인 역량을 보인다”고 꼬집기도 했다. 미 재무부는 ‘라자루스’와 ‘블루노로프’, ‘안다리엘’ 등 북한 해킹그룹 3곳을 특별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법무부는 북한의 주요 해커 3명을 공개수배하며 얼굴 사진이 들어간 전단까지 배포했다.
▷미국의 집요한 추적과 감시에도 불구하고 가상화폐를 노린 북한의 사이버 범죄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로 돈줄이 막힌 북한으로서는 해킹을 통한 자금 확보가 절실하다. 군사, 외교 기밀정보 획득 등을 목적으로 한 다른 적성국가와 달리 북한의 해킹이 주로 금융수익을 노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슈퍼노트’나 마약 거래 같은 위험을 무릅쓸 일도 없고, 외교행낭으로 돈다발을 몰래 반입하다 국제적 망신을 당할 일도 없으니 북한으로서는 수지맞는 장사다.
▷이런 북한의 사이버 공격에 한국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 2017년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 해킹 사건 배후는 북한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가상화폐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만큼 피해 규모도 더 커질 수 있다. 미 법무부의 가상화폐 전담부서 책임자로 한국계 최은영 검사가 임명된 것을 놓고 한미 간 수사 공조 강화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키보드를 든 강도’들이 활개 치지 못하도록 법무부와 국정원도 더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02-21(월) 가짜 깃발 작전

공산당이나 파시스트가 일으키는 전쟁에서는 가짜 깃발 작전이 거의 빠짐없이 등장한다. 독일이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하기 전날 SS대원 7명이 폴란드인을 가장해 국경 인근의 독일 라디오 송신탑을 장악하고 그 사실을 알리는 방송을 내보냈다. 히틀러는 자국 시설이 공격받았다며 폴란드를 침공했다. 같은 해 핀란드와의 국경에 위치한 한 러시아 마을이 포격을 받았다. 소련은 핀란드군이 포격을 한 것이라며 핀란드를 상대로 겨울전쟁을 개시했다. 포격은 실은 소련 보안기관의 자작극이었는데 소련 해체 이후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비로소 그 사실을 시인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때는 러시아 군복을 입었지만 부대 기장을 달지 않은 사람들이 무장한 채 크림반도와 동부 돈바스 지역에 나타났다. 러시아는 그들이 우크라이나의 지배에 반대하는 러시아계 주민들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러시아 군인들이 상당수를 차지했다. 이번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앞서 가짜 영상을 만들어 뿌리는 작전을 펴고 있다. 영상 속에는 돈바스 지역이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포탄 공격을 받고 러시아계 주민들이 러시아로 피란하는 모습이 담겼다.
▷가짜 깃발이란 말은 해적들이 상선에 접근하기 위해 그 상선에 우호적인 나라의 깃발을 건 데서 비롯됐다. 가짜 깃발 작전은 나중에 국제해양법에 의해 해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작전으로 받아들여졌다. 단 조건이 하나 있다. 가짜 깃발을 걸고 공격한 직후에는 즉시 진짜 깃발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지금까지도 진짜 깃발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을 둘러싸고 공격 준비를 끝낸 지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자극해서 얻을 게 없다. 군사력도 러시아에 비해 턱없이 약하다. 세력 관계에 비춰 우크라이나의 선제공격은 날조다. 그러나 러시아의 자작극 혹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측 도발에 피치 못해 한 대응을 우크라이나의 선제공격인 양 영상을 만들어 보여주면 보는 이들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2014년 러시아의 가짜 깃발 작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번에는 당하고 있을 수만 없다고 판단했는지 러시아가 제작하는 가짜 영상 정보를 사전에 입수해 공개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러시아가 가스관 폭파 자작극에 이어 화학공장 폭파 자작극까지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스마트폰이 전 세계인의 손에 쥐어져 있는 시대다. 스마트폰을 통해 한쪽에서는 가짜 영상을 뿌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가짜임을 폭로하고 있다. 누가 하이브리드라고 불리는 이 미래형 전쟁의 승자가 될 것인가.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02-22 닉슨 방중 50주년

“우리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을 만들어 냈는지도 모른다.” 중국 정책을 회고하던 말년의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슬픈 표정이었다. 중국이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에 대한 불안과 실망이 배어 있었다. 닉슨의 연설문 작성자가 기록했던 이 한마디는 30년 가까이 지나 미국이 대중 우호 정책의 종식을 선언하는 자리에 다시 소환됐다. “우리는 (중국이 괴물이 돼버린) 그 지점에 와 있다”는 답변의 형식으로.
▷닉슨이 20년간의 냉전을 깨고 극적인 중국 방문을 성사시켜 마오쩌둥 주석을 만난 지 21일로 50주년이 됐다. 1972년 2월 21일, 마오는 바닥까지 책이 가득한 자신의 서재에서 닉슨의 손을 맞잡았다. ‘폴로 1’로 명명된 헨리 키신저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비밀스러운 베이징 방문을 통해 극비리에 진행된 물밑 작전의 결과였다. 8일간 이어진 닉슨의 방중 행보는 상하이 공동성명을 이끌어내며 미중 관계의 물꼬를 트는 동시에 고립된 중국을 외교무대로 복귀시켰다. 현대사의 가장 역사적인 장면들로 기록돼 있는 순간이다.
▷닉슨은 당시 ‘중국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포용 전략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10억 인구가 분노에 찬 고립 속에 살아갈 공간은 이 작은 지구상에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2020년, 미국은 닉슨의 대중 포용 정책이 목표했던 중국 내부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판단하에 이를 폐기하고 만다. 닉슨도서관 앞 연단을 굳이 발표 장소로 선택한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은 중국공산당을 ‘악성 변종(變種)’이라고 맹폭하며 대중 우호 정책의 종식을 공식 선언했다.
▷워싱턴에서는 닉슨의 데탕트 정책이 결과적으로 중국을 너무 키워줬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중국은 절대 슈퍼파워가 되지 못할 것”이라던 마오의 대미 유화 발언을 믿는 사람은 이제 없다. 키신저도 ‘중국의 실체를 수십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더 힐)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않다. 미 행정부와 의회는 군사, 외교, 경제 등 전방위 분야에서 각종 견제 정책과 법안들을 쏟아내고 있다. 양국 우호외교의 상징이었던 판다를 중국으로 돌려보내지 못하도록 막자는 법안까지 발의됐다.
▷미국은 닉슨의 방중 50주년을 함께 기념하려는 중국 측의 은근한 제의도 외면했다. 주요 외교 기념일이면 어김없이 나오는 국무부의 성명이나 논평은 한 줄도 내놓지 않았다. 미중 갈등은 신흥 강대국이 부상해 강대국과 충돌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의 목전에서 ‘강대국 파워 경쟁’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앞으로도 수십 년간 지속될 것이라는 이 거대한 충돌 속에 한국의 설 자리도 좁아져만 간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02-23 코로나 ‘간접 사망’

코로나19가 미국에 상륙한 2020년 이후 ‘초과 사망’한 사람의 수가 지난주 100만 명을 넘어섰다. 2019년 이전의 사망자 규모와 비교해 볼 때 100만 명 이상이 더 숨졌다는 의미다. 코로나 사망자가 대거 발생한 것이 주원인이지만 심장질환, 고혈압, 치매 등 질병으로 목숨을 잃은 경우도 예전보다 크게 늘었다. 코로나 대처에 힘을 쏟는 사이에 고령자와 기저질환자 등에 대한 의료의 질이 떨어지면서 빚어진 일로 분석됐다.
▷각국에서 작성하는 코로나19 사망자 통계에는 코로나가 직접 사망의 원인이 된 사례만 포함된다. 의료 역량이 코로나 대응에 집중되는 바람에 다른 질병을 앓던 환자가 충분히 치료를 받지 못해 숨진 경우, 코로나 후유증으로 사망한 경우 등 코로나로 인한 ‘간접 사망’은 반영되지 않는다. 코로나 사태 이후 사망자 수가 예년 수준에 비해 얼마나 늘었는지를 보여주는 초과 사망(excess death)을 분석해야 코로나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숨진 사람의 전체적인 규모를 파악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통계청에서 주간 단위로 초과 사망을 집계하고 있다. 지난해 전체로는 7000여 명의 초과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 중 4000여 명은 ‘병상 대란’이 심각했던 11월 말부터 5주 동안에 집중적으로 나왔는데, 절반가량은 코로나 사망자였고 다른 절반은 코로나가 직접적인 사인은 아니었다. 의료 역량이 한계에 이르면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비코로나 응급 환자들의 피해가 크게 늘어났던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당시 충분한 준비 없이 위드 코로나 정책이 시작된 이후 델타 변이 환자가 폭증하면서 각 병원 응급실은 기능이 마비되다시피 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심정지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사망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코로나 환자를 받느라 일반 중환자용 병상이 부족해 암, 장기이식 등 수술이 제때 이뤄지지 못하는 사례도 속출했다. 의료 현장에선 “코로나 환자 때문에 응급환자들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절박한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 우세종인 오미크론은 델타보다 증상이 가볍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전파력이 워낙 강해 다음 달에는 하루 확진자가 최대 27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방역당국은 전망한다. 이에 따라 위중증 환자가 늘어나고 의료 역량이 버텨내지 못하면 간접적으로 피해를 입는 환자들이 늘어날 수 있다. 소방, 치안 등 사회 필수기능을 담당하는 인력이 대거 격리되면서 구멍이 뚫려 안타까운 희생자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민관이 바짝 긴장하면서 방역에 총력을 기울여야 오미크론의 직간접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02-24 청년희망적금 신청 폭주

“벌이가 없다고 적금도 못 드나”, “연봉 적은 금수저는 가입이 되고, 연봉 많은 흙수저는 가입이 안 되는 건 불공평하다”…. 21일 출시된 청년희망적금에 가입 신청이 급증하지만 거부되는 사례가 늘면서 온라인상에 불만의 목소리가 쌓이고 있다. 이 적금은 고금리와 비과세, 장려금 혜택을 몰아 넣은 정책 지원 상품이다. 여기에 매달 50만 원씩 2년 동안 넣으면 98만 원 정도의 이자를 챙길 수 있다. 시중은행의 연리 2%짜리 적금보다 77만 원가량 더 버는 구조다.
▷77만 원에 청년들이 일희일비하는 것은 연초 주가가 폭락하면서 원금 손실 위험 없이 연리 10%의 효과를 내는 청년희망적금에 대한 기대치가 갑자기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 적금 출시 전 사전 조회에서 잠재적 가입자가 200만 명에 달하면서 폭주의 조짐이 보였다. 실제 선착순 가입 신청이 시작되자 온라인 애플리케이션(앱)은 먹통이 됐다. 일부 외국인까지 가입을 받아주면서 작년에 취업해 소득 정보 확인이 안 되는 내국인은 가입이 거절되자 역차별 논란도 일고 있다.
▷청년들이 희망적금에 몰리고, 가입 조건을 깐깐하게 따지는 것은 이들이 그만큼 간절하다는 뜻이다. 원하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고 집값까지 급등한 어두운 터널에서 어떻게든 빠져나오려는 몸부림이 신청 폭주 현상에 녹아 있다. 지금의 2030세대는 하위 20%와 상위 20%의 자산 격차가 2019년 33배에서 2020년 35배로 벌어진 불평등 사회를 살고 있다. 77만 원이 기성세대에게는 작은 돈일지 모르지만 ‘흙수저’ 청년들에게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재테크인 셈이다.
▷현 기성세대치고 ‘재형저축’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는 드물다. 재형저축은 연리 20%대에다 비과세 혜택이 더해져 3년만 넣어도 원금이 2배 가까이로 불어났다. 이걸 종잣돈 삼아 직장인들은 월세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자기 집으로 갈아타며 계층 사다리를 오를 수 있었다. 여기에 비해 청년희망적금은 재산 형성의 마중물이 되기엔 많이 부족하다. 30년 전 고금리 시대만큼 이자를 주긴 어려워도 장려금 규모를 늘리는 식의 보완이라도 해야 또 하나의 계층 사다리가 될 수 있다.
▷열심히 저축하는 사람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적금은 현금 퍼주기와는 다르다. 가입자가 일터에서 꾸준히 일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빈곤층을 줄이는 효과를 낸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만으로 소득 향상은 어렵다. 2015년 이후 청년 지원 통장들이 쏟아졌지만 눈에 띄는 소득 개선 효과는 없었다. 역시 자산 형성의 기본은 일자리다. 청년들에게 고기를 직접 주는 것보다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게 중요하고, 고기가 많아지도록 고용 여건을 개선하는 건 더 중요하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
02-25 푸틴 칭찬한 트럼프

“애쓰지 않고도 얻어지는 것을 군대에서는 ‘공짜 치킨’이라고 부릅니다. 트럼프는 러시아에 그런 존재였습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 파견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미군 중령 알렉산더 빈드먼의 평가다. “러시아는 트럼프에게 ‘콤프로마트’(약점 자료를 수집하는 공작)를 쓸 필요도 없었을 것”이라고 그는 2020년 언론 인터뷰에서 냉소했다. 견제 없는 권력을 휘두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흠모한 나머지 트럼프가 그의 대리인처럼 굴었다는 것이다.
▷‘스트롱맨’에 대한 트럼프의 열망은 퇴임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듯하다. 그는 최근 우크라이나 침공에 앞서 돈바스 지역의 독립을 승인한 푸틴을 “천재적”이라며 추켜올렸다. “얼마나 똑똑한가”라며 “오! 훌륭한 결정”이라고 했다. 푸틴을 ‘독종’이라고 부르면서 “그는 조국을 사랑한다”고 감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을 코앞에 두고 전 세계가 철회를 촉구하는 위기의 순간에 느닷없이 그 결정을 칭찬하고 나선 것이다.
▷4년간의 재임 기간 푸틴을 향한 트럼프의 러브콜은 노골적이었다. 대통령 당선인 시절부터 푸틴 이야기만 나오면 정신없이 빠져들었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 러시아의 2016년 대선 개입 의혹을 뒷받침하는 미 정보기관의 보고는 무시한 채 첫 정상회담에서부터 푸틴에게 공개 면죄부를 주는가 하면, “푸틴이 살인자라고 해도 존경한다”는 취지의 인터뷰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미국 언론은 그런 트럼프를 향해 ‘알랑거린다’, ‘홀딱 빠졌다’, ‘푸틴에게 인정받으려고 안달이 났다’는 식으로 혹평해 왔다.
▷푸틴을 신경 쓰는 이유를 묻는 질문이 나올 때면 트럼프는 “러시아가 핵무기를 가졌지 않느냐”는 식으로 대답을 얼버무렸다고 한다. 강한 리더십에 끌리는 본심을 드러내기 싫었던 걸까. 그러나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이나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같은 독재, 권위주의 지도자들을 향한 그의 구애는 일관됐다. “그(푸틴)는 나를 좋아한다. 나도 그를 좋아한다. 우리는 잘 지냈고, 나만큼 그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는 트럼프의 화법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그가 ‘친구’라는 김정은을 향해 수없이 반복했던 같은 문장이다.
▷트럼프는 푸틴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투입한 군대를 놓고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강한 평화유지군”이라며 “(미국) 남부 국경에도 사용할 수 있겠다”는 말도 했다. 재집권할 경우 불법 이민자를 막기 위해 푸틴식의 군사적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견제와 감시 시스템에서 작동하는 ‘절제된 힘’에 만족 못 하는 지도자는 위험하다. 칼자루를 잘못 쥔 ‘스트롱맨’들이 지구촌을 우악스러운 근육질 정치로 몰아넣고 있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02-26 러시아의 체르노빌 점

“나는 시대를 체르노빌 이전과 이후로 구분하고 싶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했던 말이다. 그는 이 사고를 돌이켜보면서 “5년 뒤 소련이 붕괴하는 주된 원인이 됐다”고도 했다. 그만큼 당시 소련에 정치적·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고, 전 세계에 핵의 무서움을 일깨워 준 사건이었다. 36년이 지난 지금, 이번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마자 체르노빌을 점령하는 일이 벌어졌다.
▷1986년 4월 26일 오전. 당시 소련에 속했던 우크라이나 북부의 체르노빌 원전 4호기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하지만 관료제에 빠진 소련 당국은 사건을 축소하는 데 급급했고 대응은 느슨했다. 결국 히로시마 원자폭탄보다 400배나 많은 방사능이 누출되면서 유럽까지 퍼져 나갔다. 이 사고의 여파로 최대 15만 명이 희생됐다는 분석도 있다. 사고 이후 원전 주변 30km는 출입금지 구역으로 지정됐고, 방사능 누출을 막기 위한 방호벽도 세웠지만 여전히 시설 안에 방사성물질이 남아 있는 상태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첫날인 24일 체르노빌을 점령한 이유에 대해선 해석이 분분하다. 로이터통신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에 파병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는 러시아군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러시아군이 원전 관리 직원을 억류하자 미국 백악관에서 “인질을 석방하라”고 비난하는 등 러시아와 서방 간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소련의 잘못으로 벌어진 체르노빌 사건으로 인해 악몽을 겪었던 유럽국들을 향해 방사능 누출 가능성을 운운하며 협박한 것이라면 비열한 전략이 아닐 수 없다.
▷반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의 진격을 늦추기 위해 방사능을 누출시키는 사태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는 관측도 나온다. 우크라이나가 체르노빌을 악용하지 못하도록 선수를 쳤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원전이 중요하다기보다는 러시아군이 벨라루스를 통해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로 진격하기 위해 중간 지점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 체르노빌을 접수했다고 본다. 어떤 이유에서든 러시아군 입장에서 체르노빌은 반드시 차지해야 하는 지역이었던 셈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공격 개시를 알리는 연설에서 소련 붕괴 이후 “세상 힘의 균형이 깨졌다”고 주장했다. 세계 양대 강국으로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냉전시대의 소련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뜻으로 들린다. 하지만 군사력을 앞세워 주변국을 짓밟는 것만으론 국제사회에서 강대국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체르노빌 사건을 ‘역사상 최악의 인재(人災)’로 키웠던 러시아 내부의 문제점부터 돌아보는 게 푸틴이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02-28(월) 우크라 시민들의 저항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연인 아리에바(21)와 푸르신(24). 둘은 러시아가 침공해온 24일 공습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키예프 수도원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조국을 잃을 위기에 처한 두 사람은 식이 끝난 뒤 국토방위군에 자원입대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사는 이 땅을 위해 함께 싸우다 죽을 것이다.”
▷당초 1∼4일이면 함락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러시아가 고전하는 이유는 시민들이 겁먹고 도망가기는커녕 결사적으로 항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맨몸으로 러시아 탱크 부대를 막아서고 화염병을 던지는 모습을 소셜미디어로 공유하며 전의를 다지고 있다. 중년 여성이 중무장한 러시아 군인들에게 “내 나라에서 뭐 하는 짓이냐”고 호통치고, 80세 남성이 속옷과 칫솔을 챙겨들고 “내 손주들을 위해” 자원병 대열에 합류했다. 테니스 스타도 “온몸으로 내 나라 지키겠다”며 라켓을 집어던지고 총을 들었다.
▷우크라이나의 주요 징병소에선 20∼50대 남녀 수천 명이 소총 지급을 기다리고 있다. 군복도 군화도 없다. 운동복이나 평상복 차림에 테니스화, 하이킹화를 신은 이들은 노란색 완장으로 자원병임을 표시하고는 “우크라이나에 영광을!”을 외치며 전장으로 달려 나간다. 온라인 쇼핑몰 사업자, 엔지니어, 나이트클럽 댄서 등 직업도 다양하다. 회사원인 올레나 소코란 씨는 “폭격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난 건강한 성인 여성이고 이건 내 의무”라고 했다. 58세의 키예프대 역사학과 교수는 “아내와 딸들이 걱정하면서도 말리진 않았다”고 한다.
▷러시아는 정규군이 90만 명, 우크라이나는 19만 명이다. 무기나 장비도 러시아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 옛 소련에 속했던 발트3국은 개혁을 단행한 후 유럽연합에 가입했고, 러시아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은 2000∼2008년 유가의 고공행진으로 돈벼락을 맞았다. 비슷한 행운에 올라타지 못했던 우크라이나는 사회 인프라는 물론 실제 군사력도 2005년 이후로는 서류상 숫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 됐다.
▷그래도 우크라이나가 좀 더 버텨준다면 희망이 없지 않다. 러시아는 매일 200억 달러(약 24조 원)를 이 전쟁에 쏟아붓고 있다. 무기도 바닥을 드러내는 중이다.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많은 이들이 우크라이나 국기를 흔들며 “전쟁 중단” “우크라이나 만세”를 외치고 있다. 러시아에서도 처벌의 위험을 무릅쓰고 수만 명이 반전 시위에 나섰다. “이게 우리의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며 러시아군에 맞서는 우크라이나인을 간절한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