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2022-02/ 조선일보
02.03(목) 중국 축구 ‘미스터리’
시진핑 중국 주석이 2011년 한국 인사로부터 박지성 사인볼을 선물 받고 “중국이 월드컵에 나가고, 월드컵을 유치하고,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시 주석은 자신을 ‘치우미(축구 광팬)’라고 소개한다. 집무실에 축구공을 직접 차는 사진도 걸어 놨다. 2013년 멕시코 방문 때는 1986년 월드컵 때 멕시코 팀을 지휘한 밀루티노비치 감독이 2002년 월드컵에서 중국 팀을 본선으로 이끈 인연을 언급하기도 했다.

▶2015년 중국 소림사에서 쿵후를 연마하는 청소년 40여 명이 매일 축구공으로 훈련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무술 고수가 아니라 메시 같은 축구 스타를 키운다는 것이다. 훈련 책임자는 “축구에 소림 무술 정신을 더하면 효과가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그 무렵 중국은 ‘축구 굴기’를 위해 축구를 초·중 과정의 필수 과목으로 지정했고, 중국 전역에 2만여 개의 ‘축구 학교’를 세운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중국이 1일 베트남에서 열린 2022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베트남에 1대3으로 패해 본선 진출이 또 무산됐다. 2002년을 빼고는 한 번도 본선에 나간 적이 없다. 설날 밤 ‘참사’가 벌어지자 중국인들은 “배부른 돼지만 모인 축구대표팀은 해산하라”며 TV를 부수거나 “1979년 중·베트남 전쟁 패배보다 더 치욕적인 일”이라며 흥분했다. FIFA 랭킹도 중국(74위)이 베트남(98위)보다 앞선 데다 중국은 1956년 이후 66년간 베트남전 무패였다.
▶중국인들은 자신들 입으로 축구 못하는 이유를 다양하게 분석한다. 어떤 이는 “도박을 좋아해서 승부 조작이 빈번한데 실력이 늘겠느냐”고 한다. 실제 중국 리그는 대형 승부 조작 스캔들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고액 몸값을 받는 중국 대표 선수들이 더는 노력을 안 한다”고도 한다. 연봉 10억 선수가 되려면 어릴 때부터 감독에게 뇌물 주고 출전 기회를 많이 받아야 한다. 정작 실력 있는 유망주는 돈이 없어 퇴출된다고 한다. “메시나 호날두가 될 만한 가난한 유망주들은 공장으로 간다”는 것이다. “중국인의 개인주의적 성향과 팀워크가 중요한 축구는 궁합이 안 맞는다”는 분석도 있다. 그런데 농구·배구 등은 중국이 아시아 최강자로 꼽힌다.
▶중국은 “축구가 2400년 전 고대 중국의 축국(蹴鞠)에서 기원한다”고 주장한다. ‘시 황제’라는 시 주석이 직접 축구를 챙기는 데다 축구 인구도 많다. 14억 인구가 축구에 열광하고 중국 기업은 엄청난 돈을 축구에 쏟아붓는다. 그럼에도 중국 축구가 바닥을 헤매는 건 그야말로 ‘현대 스포츠의 미스터리’(미국 타임지 평가)다.
/양지혜 스포츠부 기자·논설위원
02.04 코딩의 시대
뉴욕의 치과의사 에드워드 저커버그는 중학생 아들 마크에게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코딩(coding)을 가르치다가 개인 교사까지 붙였다. 고등학생이 된 마크는 대학원 과정을 들으며 여러 컴퓨터 간 통신이 가능한 ‘저크넷’이라는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코딩 신동으로 불리며 하버드에 입학한 그가 기숙사에서 재미 삼아 만든 프로그램이 페이스북이다. 아들의 재능을 알아 본 아버지의 조기 코딩 교육이 전 세계 30억명이 쓰는 서비스를 탄생시켰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겸 CEO가 메타버스 사업을 강화하며 회사명을 '메타'로 바꾼다고 발표하고 있다. /페이스북
▶테슬라와 스페이스X 창업자 일론 머스크도 코딩 천재였다. 10살 때 8비트 컴퓨터를 산 그는 독학으로 코딩을 배워 12살에는 우주선이 등장하는 ‘블래스터’라는 게임을 만들어 잡지사에 팔았다. 내성적이고 왕따였던 머스크에게 코딩은 자신감과 사업 감각을 심어줬다. 머스크가 코딩을 몰랐다면 우리는 테슬라 전기차나 화성 탐사 로켓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도 초등학교 때 컴퓨터를 만난 것이 일생의 전환점이었다고 했다.
▶컴퓨터는 0과 1로 이뤄진 이진법을 쓴다. 사람의 말을 컴퓨터가 알아듣는 언어로 바꿔주는 번역 작업이 코딩이다. 최초로 코딩의 개념을 만든 것은 시인 바이런의 딸 에이다 러브레이스였다. 러브레이스는 1800년대 초반 수학자 찰스 배비지가 설계한 연산기계에 사용할 각종 알고리즘을 만들었지만 정작 기계가 완성되지 않았다. 반도체와 컴퓨터의 시대가 열린 뒤에야 이 알고리즘이 빛을 봤고 포트란·C·파이선 같은 코딩 언어가 등장했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코딩을 쉽게 할 수 있게 됐다.

▶코딩은 논리와 창의력에 가깝다. 코딩을 잘한다는 건 컴퓨터가 더 효율적으로 빠르게 작동하도록 만든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이 몇 달 걸릴 프로그램을 며칠 만에 간결한 논리로 풀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논리가 탄탄하면 오류가 덜 나고 개선도 쉽다. 이런 능력을 가진 개발자는 초봉 1억원을 줘도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페이스북·구글 개발자 초봉은 3억원이 넘는다.
▶삼성전자가 올해부터 모든 신입사원에게 코딩 교육을 의무화했다. 다른 언어를 이해하면 더 많은 문화와 지식을 접할 수 있는 것처럼 인사·총무·마케팅 담당도 코딩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앱부터 인공지능, 로봇, 자율주행차까지 모든 것이 코딩으로 만들어지는 시대다. 여야 대선 주자들도 앞다퉈 코딩을 국·영·수처럼 가르치고, 디지털 미래 인재 100만 명을 양성하겠다고 공약했다. 바야흐로 코딩의 시대다.
박건형 산업부차장·논설위원
02.05 부인 전담 공무원
K 시장 아내는 2016년 여성 공무원 2명을 운전사 겸 수행 비서로 각종 행사에 데리고 다녔다. 이들은 시장 배우자 일정이 있을 때마다 출장계를 내고 개인 차량으로 수행했다. 이런 일이 무려 200회를 넘었다. 광역단체장인 O 시장 아내는 2019년 미술관 관람을 위해 시청 관용차와 운전기사를 불렀다. 정기 휴관일에 혼자 관람해 ‘황제 관람’ 논란까지 일었다. P 시장 아내는 각종 행사 때마다 시청의 실무 과장을 의전 비서로 데리고 다녔다. 과장은 시장 아내를 밀착 수행하면서 참석자들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했다.

▶아내가 관용차를 사용하고 도청 직원을 가사 도우미로 쓴 사실 등이 드러나 총리 후보에서 사퇴하는 일도 있었다. 전 청와대 경호처장도 직원을 관사로 출근시켜 집안일을 시켰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모두 공무원이 기관장 아내를 위해 일한 경우였다.
▶H 군수의 아내는 군청 인사에 수시로 개입했다. 2015년 지인의 아들을 군청 공무원으로 채용해 주겠다며 수천만원을 받았다가 구속됐다. K 도지사는 “도청 인사는 아내 손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 시장·군수 공천까지 아내가 좌지우지했다고 한다. 국회 보좌관 L씨는 야당 의원실에 들어가기 위해 면접을 봤다. 그런데 면접관은 의원이 아니라 그의 아내였다. 그가 주로 한 일은 의원 아내를 모시는 일이었다. A 시장 아내는 2016년 남편과 8박 9일 동안 유럽을 다녀오면서 비즈니스 왕복 항공료 800여만원을 시에 떠넘겼다.
▶공직자 중 공식적으로 배우자의 의전·수행 비서를 둘 수 있는 경우는 대통령 배우자뿐이다. 이것도 법령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관례에 따라 청와대 직제로 정해져 있을 따름이다. 장성 아내들의 갑질 논란 때문에 공관병도 사라졌다. 행정안전부는 2016년 ‘단체장 배우자의 사적 행위에 대한 준수 사항’을 만들었다. 배우자의 인사 개입과 해외 출장 경비 지원, 관용차 사적 이용, 공무원의 수행·의전 등을 금지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아내 김혜경씨가 경기도 5급과 7급 공무원 2명을 자기 비서처럼 부렸다고 한다. 5급 배모씨는 이 후보의 변호사·성남시장 시절부터 함께한 오랜 측근으로 사실상 수행 비서였다. 7급 공무원은 이 후보 집의 냉장고·속옷·양말·셔츠 정리와 음식 배달, 약 처방, 병원 퇴원 수속 등 온갖 심부름을 다 했다고 한다. 도청 공무원을 개인 집사이자 가사 도우미로 쓴 것이다. 못 할 게 없는 민주당의 행태로 보면 아예 도지사 아내도 전담 공무원을 두자는 법안을 낼지도 모르겠다. 기우이기를.
02.07(월) ‘한복 공정’

▲4일 열린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한복'을 입은 것으로 보이는 여성이 중국 소수민족 중 한 명으로 소개됐다. /연합뉴스
중국 정부의 ‘동북공정’이 한창이던 2004년 중 외교부 부부장이 서울을 방문했다. 그가 “한국에서 간도를 ‘조선 땅’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고구려가 중국의 소수민족 국가였다고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당시 NSC 사무차장 회고록에 나온다. 동북공정이 단순한 역사·문화 왜곡이 아니라 북한 급변 등을 대비해 만주 영유권 분쟁의 불씨를 없애려는 의도임을 내비친 것이다. 그 무렵 중국은 한국 관광단이 ‘옛 영토 찾기’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다니는 데 민감해했다.
▶2016년 새해 시진핑 주석 책상에 등장한 사진 7장 중 3장이 소수 민족 관련이었다. 시진핑이 조선족 마을을 방문하고, 위구르족·티베트족 대표 등과 환담하는 장면이다. 위구르와 티베트는 중국의 대표적 민족 분규 지역이다. 조선족은 55개 소수민족 중 유일하게 세계 10위권 모국(母國)이 있다. 몽골족·키르기스족 등과 비교할 수 없다. 중국은 재작년부터 조선족 교과서에서 한글을 퇴출하고 있다. 한글·중국어 병기 교과서를 못 쓰게 했다. 조선족 자치구 인구가 급감해도 방치한다. 조선족 흡수 공정이다.

▶중국은 단오제, 고구려·발해사(史), 백두산 등이 ‘중국의 일부’라고 주장해왔다. 문재인 정부 들어선 ‘파오차이(김치)가 중국 전통 음식’이고 ‘한복(韓服)은 수·당 복장 계승’이라는 주장까지 버젓이 하고 있다. 과거 한국 정부는 중국의 왜곡과 억지를 좌시하지 않고 항의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 한국을 ‘작은 나라’라고 한 이후엔 침묵하고 있다. 문 대통령 특사가 홍콩 행정장관이나 앉는 하석(下席)에서 시진핑을 만났는데도 가만있었다. 시진핑이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은 중국의 일부’라고까지 했는데도 그냥 넘어갔다.
▶4일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한복’이 등장했다. 중국 국기(國旗)를 전달하는 소수민족 사이에 분홍 치마와 흰색 저고리를 입은 여성이 카메라에 잡혔다. 외국인이 보면 ‘한복’을 중국 문화의 일부로 오해했을 것이다. 중국 국회 격인 전인대가 열리면 소수민족 대표는 전통 옷을 입고 참석한다.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때도 ‘한복 여성’이 나왔다. 그때와 달리 우리 국민이 분노하는 건 그동안 쌓인 반중(反中) 정서가 폭발 직전이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은 이웃 문화를 ‘원래 중국 것’이라며 삼켜온 역사가 있다. 조선족을 빌미로 한국 문화도 중국의 일부로 만들고 싶을 것이다. 중국은 이웃과 평등에 기초한 교류를 해본 적이 없다. 조공(朝貢) 외교 뿐이었다. 침묵하고 있으면 상상 못할 ‘공정’도 벌어질 것이다.
02.08 “공부가 훈련보다 쉬웠어요”
올림픽 금메달만 4개 있는 ‘탁구 마녀’ 덩야핑이 1997년 스물넷 나이로 은퇴했을 때 알파벳 ABC 읽는 법도 몰랐다. 체육 특기자 전형으로 중국 칭화대 영문과에 입학한 덩야핑은 새벽 5시부터 자정까지 공부하는 노력 끝에 4년 만에 졸업했다. 2008년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선수 시절 남들 몇 년 신는 운동화를 한 달 만에 닳게 하는 훈련량으로 유명했다.

▶에릭 하이든은 1980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5부문 전관왕(500m, 1000m, 1500m, 5000m, 1만m)이다. 특히 500m와 1만m를 동시에 석권한 것은 100m 달리기와 마라톤을 한꺼번에 우승한 셈이어서 불세출의 스포츠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그는 은퇴 후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에 진학했고, 정형외과 전문의가 돼 저명한 스포츠 의학자로 활동한다. “스포츠는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에 못 할 일이 없다.” 하이든의 지론이다.
▶실리콘밸리 대기업 구글엔 올림픽 출전 경험이 있는 직원이 수십 명 있다. 이들은 소프트웨어 설계를 비롯해 재무,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고위직으로 활동한다. 티머시 괴벨은 그중 하나다. 2002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남자 피겨스케이팅 동메달리스트인 괴벨은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5년 전부터 구글의 데이터 분석가로 일한다. 그는 “실패해도 계속 시도했던 운동선수로 들인 습관이 새 길을 열어줬다”고 말한다.
▶서울 신일고 좌완 투수였던 박건우(20)씨가 재수 끝에 정시 모집 전형으로 서울대 체육교육과에 합격한 것이 화제다.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까지 참가했던 엘리트 선수 출신이 수시가 아닌 정시로 서울대에 입학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수학 100점을 비롯해 수능 전 과목 1~2 등급이 나왔고, 고려대 미디어학부에도 정시 합격했지만 서울대를 선택했다. 그는 재수 학원에서 하루 14시간씩 공부했는데 “스포츠 선수는 어릴 적부터 매일 고3 공부하듯 훈련하기 때문에 수험 생활에 적응하기 쉬웠다”고 했다.
▶고교 야구부 시절 전교 꼴찌를 하다 사법고시까지 통과한 판사, 프로농구 선수였다가 체중을 30kg 넘게 빼고 데뷔한 패션 모델, 복싱 세계 챔피언 출신 제약 회사 영업왕 등 운동을 그만두고 제2 인생을 빛내는 사람이 많다. 이들이 말하는 성공 비결은 한결같다. “땀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스포츠든, 공부든, 시험이든, 영업이든 다를 게 없다는 뜻이다.
02.09 ‘車 무덤’에 재도전하는 현대차
간양록은 조선 유학자 강항이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가 겪은 고난의 체험기다. 그런데 당시 수도였던 교토에 대한 서술엔 경탄이 배어 있다. 왜인의 성질이 신기한 것을 좋아해 통상을 훌륭한 일로 여긴다는 것, 온갖 기술에 반드시 천하제일을 창조하고 그런 물건은 금은으로 후한 값을 주는 풍속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일본 시장이 조선이 아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다.

▶일본의 ‘천하제일’ 집착은 근대 이후 더 강해졌다. 방직, 철강, 조선, 철도, 기계, 광학을 비롯해 전투기, 항공모함 등 무기 산업에서도 세계 최고를 만들었다. 전후에는 전자와 자동차 산업에서 정상에 올랐다. 한때는 스포츠 용품까지 석권했다. 무엇이든 천하제일에 도달해야 직성이 풀리는 국민성이다. 세상이 ‘아날로그’에 머물렀다면 기술에서 일본을 상대할 나라는 독일 정도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중에도 일본인의 장점이 가장 응축된 제품이 자동차라고 한다. 장기 불황 이후 일본 산업이 대부분 부진했지만 자동차만큼은 지금도 정상이다. 도요타, 혼다, 닛산, 마쓰다 등 7개 글로벌 브랜드가 자국 내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일본 국내 수요는 장기 불황과 고령화로 30년 전의 60% 수준까지 떨어졌다. 노인의 자동차 이탈은 ‘졸차(卒車)’란 신조어가 생길 정도다. 젊은이의 이탈은 20년이 넘었다. 사정이 이러니 일본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레드 오션으로 통한다. 세계 자동차의 무덤이 된 지 오래다.
▶현대자동차가 어제 이런 일본 시장에 참여하겠다고 발표했다. 전기차와 수소차 등 차세대 자동차를 온라인 방식으로 판매하겠다는 것이다. 새로운 도전이다. 일본 자동차 시장의 현실을 모를 리 없음에도 진출하는 것은 일본 자동차 시장이 세계에서 가장 수준 높고 까다로운 시장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BTS가 미국을 향하듯 자동차는 일본 시장에서 인정받아야 세계 최고다. 이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 자체가 자산이 될 수 있다.
▶현대차의 일본 진출은 ‘재수(再修)’에 해당한다. 2001년부터 9년 동안 1만5000대만 팔고 철수했다고 한다. ‘욘사마’ 배용준도 모델로 내세웠지만 반응이 차가웠다. 한류를 좋아한다고 한국 차를 사줄 소비자는 없었다. 현대차 장재훈 사장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진지하게 고객과 마주 보겠다”고 했다. 현대차는 미국 시장 판매에서 혼다를 능가할 만큼 기술력이 발전했다. 전기차든, 수소차든, 엔진차든 ‘천하제일’이란 원점을 집요하게 추구하면 ‘자동차의 무덤’ 일본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02.10 다시 온 론·야스 시대

▲1986년 4월 레이건 미 대통령이 나카소네 전 총리를 대통령 휴양지 캠프 데이비드로 초청해 환담을 나누며 걷고 있다. 나카소네 총리는 재임 당시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미·일 관계를 최상의 밀월 관계로 만들어 미·일 동맹을 실질적 군사 동맹으로 이끌었다. /미국 정부 아카이브
일본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는 재임 당시 일본열도를 ‘불침(不沈) 항모’라고 했다. 공산주의를 막는 자유세계의 항공모함이라는 뜻이다. “미·일은 공동 운명체”라고 했다. “미국의 전쟁터가 되겠다는 소리냐”는 국내 반발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과 함께 미·일 동맹을 최고의 시대로 이끌었다. 그때 두 정상의 이름을 딴 ‘론·야스 관계’는 지금도 양국의 밀월 시대를 상징한다.
▶일본의 근대 외교사는 단순하다. 근대화 성공, 열강 편입, 경제 대국 도약 등 잘된 역사는 미국과 친했을 때다. 미국과 멀어졌을 때 처참하게 패망했다. 핵폭탄까지 떨어졌다. 그때 왜 반미(反美)를 했는지는 일본사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다. 당시 일본 정치를 지배한 육군 엘리트들의 유학 지역이 독일이 아니라 미국이었다면 운명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믿는 역사가도 있다.

▶이런 일본이지만 얼마 전까지 실수를 반복했다. 2009년 권력을 잡은 일본 민주당은 ‘동아시아 공동체론’을 내세워 중국에 접근했다. 미국과는 오키나와 미군 기지 이전 문제로 대립했다. 무엇이든 자민당과 달라졌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안달할 때였다. 중국은 그런다고 잘해주는 나라가 아니다. 미·일 동맹에 균열이 생기자 즉각 일본의 센카쿠 열도 영유권을 침해했다. 미국은 일본의 도움 요청에 “다른 나라 주권 분쟁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이 없으면 동북아에서 일본은 주권조차 지키지 못하는 나라였다.
▶미·일 동맹은 70년이 넘었다. 미국의 아시아 안보를 떠받치는 대들보라고 한다. 하지만 나카소네 총리처럼 끝없이 실천하지 않으면 미·일 안보 조약은 문서상 약속에 불과했다. 그 후 일본은 쿼드, 반도체 등 미국이 새로운 국제 질서를 요구할 때마다 앞장서서 미국 편을 들고 있다. 미국에서 새 대통령이 나오면 가장 먼저 가장 많은 선물을 안기려고, 미 대통령의 첫 전화를 받으려고, 미 대통령의 첫 해외 방문지가 되려고 노력한다. 생존을 위해서다.
▶미·일 관계가 다시 사상 최고라고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센카쿠가 “미·일 공동 방어 대상”이라고 했다. 미국이 지킨다는 것이다. 바이든의 측근인 신임 주일 대사는 일본이 러시아와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섬 4개에 대해 “일본 땅”이라고 했다. 독도를 제외한 일본의 다른 영토 문제에서 모두 일본 편을 들었다. 일본은 철강 관세 특혜도 받았다. 중·러와 대립하는 미국의 전선에서 일본이 맨 앞자리를 자청해 얻어낸 성과들이다. 한국은 일본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어느 쪽이 현명한지는 머지않아 드러날 것이다.
02.11 세계에 없을 ‘주한 중국 대사관’

▲9일 주한 중국대사관 인근에서 베이징 올림픽 편파 판정과 탈북민 강제 북송 반대 등을 주장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조선일보 DB
1882년 청나라 군대가 서울에 진입해 임오군란 배후라며 대원군을 납치해 갔다. 반항하던 대원군을 억지로 가마에 태운 게 스물세 살 위안스카이(袁世凱)라고 한다. 그는 조선 군대를 진압한 공로로 ‘총독’이 됐다. 정치는 물론 통신, 선박 운항까지 좌우했다. 식민지 수준의 내정간섭을 했다. 1892년 주조된 동전에 ‘대(大)조선’이란 국호가 들어가자, 위안스카이는 ‘대’자를 빼라고 했다. 조선은 1894년 청일전쟁으로 위안스카이가 떠난 이후에야 ‘대’자를 다시 집어넣었다. 중국 속박에서 벗어난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 서울의 ‘독립문’이다.
▶위안스카이 이후 한·중 관계를 다시 연결한 것이 1992년 수교다. 처음 한국에 온 중국 외교관들은 덩샤오핑 말대로 ‘도광양회(뒤에서 힘을 기른다)’했다. 한국 발전을 배우려 했다. 2006년 주한(駐韓) 중국 대사처럼 김정일 방중 관련 정보를 한국 인사에게 언급했다가 체포돼 곤욕을 치른 경우도 있었다.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성공한 것도 상대국 마음을 얻으려 한 외교가 큰 몫을 했다.

▶그런데 시진핑 집권 후 완전히 달라졌다. 중화가 부흥했으니 엎드리라는 식이다. ‘전랑(늑대) 외교’다. 호주 주재 중국 외교관은 호주의 핵잠수함 개발에 “못된 놈”이라고 했다. 파키스탄 주재 외교관은 가운뎃손가락을 드는 그림도 올렸다. 한국의 중국 외교관은 더하다. 북핵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드’를 도입했는데 북핵을 방조한 중국의 외교관들이 “한중 관계 파괴”라고 거꾸로 협박한다. 우리 기업인을 불러 ‘보복’을 경고하기도 했다. 한국 대선 후보의 발언까지 시비한다.
▶9일 주한 중국 대사관이 “일부 한국 언론과 정치인이 반중(反中) 정서를 선동했다”는 입장문을 냈다. 지금 세계 주요국과 언론이 베이징올림픽의 편파 판정을 비판하고 있는데 한국만 찍어 공격한 것이다. “엄중한 우려와 엄정한 입장을 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도 했다. 요즘 전 세계 어떤 해외 공관이 주재국 언론과 정치인을 겨냥해 협박하고 훈계하나. 불만이 있다면 주재국 외교부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 외교 상식이고 기본인데도 깡그리 무시했다.
▶시진핑은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그래도 침묵했다. 문 대통령은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라고 부르며 한국을 “작은 나라”라고 했다. 중국 장관급이 문 대통령 팔을 툭 쳐도, 문 대통령 특사를 중국 지방관이 앉는 하석(下席)에 앉혀도 가만있었다. ‘세계에 없을 주한 중국 대사관’은 우리가 만든 것이다.
02.12 文이 지킨 약속 한 가지
2020년 9월 문재인 대통령과 당시 스가 일본 총리가 정상 통화를 했다. 청와대는 2시간 후에야 대변인이 짧게 발표했다. 스가 총리는 14분 만에 기자회견을 열어 직접 브리핑했다. 스가 취임 13일 만에 6번째 회견이었다. 문 대통령이 그때까지 가진 기자회견 횟수와 같았다. 스가의 13일 소통이 문 대통령의 3년 4개월과 같다는 말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를 불통이라 비판하면서 “주요 사안은 언론에 직접 브리핑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언론 직접 회견은 단 7번뿐이다. 취임 1주년 회견은 없었고 2주년은 방송사 대담으로 대체했다. 올해 신년 회견도 석연찮은 이유로 취소했다. 문 대통령은 시장에서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실제 그런 적은 거의 없다.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기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24시간 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과 비교해 자신은 다를 것이라고 했다. 일본 총리처럼 모든 일정과 만난 사람, 출퇴근 시간까지 공개하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비서실 업무 보고’ 같은 의미 없는 내부 일정만 주로 올렸다. 2019년이 되자 이마저도 공개하지 않는 날이 허다했다. 공무원이 서해에서 북한군에게 살해당하고 소각됐을 때 문 대통령은 자고 있었다고 했다. 유족이 당시 어떤 상황이었고 정부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자료를 공개해 달라고 했다. 법원도 공개하라고 했다. 야당은 “대통령이 그 10시간 동안 뭘 했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항소까지 하며 자료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전 정부의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을 적폐라고 비판하며 특활비를 투명하게 개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납세자연맹이 청와대 특활비와 김정숙 여사의 의전비 공개를 요구하자 국익을 내세워 거부했다. 결국 소송까지 갔고 10일 법원이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국익을 해칠 우려가 없다는 것이다. 전 정권 특활비는 끝까지 파헤쳐 전직 대통령과 국정원장 등을 줄줄이 구속하더니 본인 특활비는 한사코 숨기려 한다.
▶시중에는 문 대통령이 취임 때 국민에게 한 약속 30가지를 얼마나 지켰는지 체크리스트가 돌고 있다. ‘일자리 대통령’ ‘국민과 수시로 소통’ ‘야당과 대화 정례화’ ‘능력과 적재적소 인사’ ‘권력기관 독립’ ‘상식이 통하고 특권·반칙 없는 세상’ 등인데 제대로 이행된 걸 찾기 어렵다. 진짜 지킨 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뿐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도 미안해하기는커녕 ‘화가 났다’고 한다.
02.14(월) DNA 경호
2019년 미·북 정상회담을 위해 열차를 타고 베트남으로 향하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에서 잠시 내려 담배를 피워 물었다. 여동생 김여정이 재떨이를 들고 다가가 꽁초를 챙기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담배꽁초에 묻은 침을 통해 김정은의 DNA 정보가 서방에 넘어가는 것을 우려했다고 한다. 싱가포르에서 트럼프와 회담하는 내내 김정은은 전용 변기를 썼고 철저히 수거해 돌아갔다.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과 합의문에 서명할 때 쓴 펜을 김여정이 일일이 챙기는 것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알려져 있다.

▶국가 지도자의 건강이나 DNA 정보는 각국 정보기관이 탐내는 아이템이다. 2011년 5월 아일랜드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펍에 들러 맥주를 들이켜고 나가자 경호원들이 나타나 맥주잔을 수거했다. 브레즈네프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덴마크 코펜하겐을 방문했을 땐 프랑스 첩보기관이 그가 묵은 호텔 아랫방을 빌려 관을 해체하고 소변을 채취했다. 국가원수가 만진 종잇조각 하나도 수거 대상이다. 우리도 대통령 건강 정보를 대통령령의 보안 업무 규정에 의해 2급 비밀로 보호한다.
▶인간 DNA에는 약 30억개의 유전정보가 담겨 있다. 피부색은 물론이고 수백년 전 조상의 가계(家系)까지 추적할 수 있다. 분뇨나 침 한 방울이면 어떤 질병을 앓고, 무슨 약을 먹는지도 파악 가능하다. 전체 암의 5% 내외에선 발병 확률까지 예측할 수 있다. 희소 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도 들통날 수도 있다.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은 재임 중 전립선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수술 직전까지 숨겼지만, 생체 정보가 유출됐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우크라이나 사태 중재를 위해 최근 러시아를 방문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4m 간격을 두고 떨어져 회담을 한 사진이 화제가 됐다. 두 사람은 악수도 하지 않고 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마크롱이 러시아 측의 PCR 검사 요구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PCR 검사 때 면봉에 채취된 상피세포를 통해 DNA 정보가 러시아 측에 넘어가는 것을 우려했을 것이다.
▶특정인의 DNA에만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바이오 공격 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가능할까. 전문가들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인류는 DNA의 99.9%를 공유하는데 특정 유전자만 공격하는 기술은 아직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미크론처럼 소수에게만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있는 걸 보면 상상 속 얘기만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02.15 4차 접종 논란

미국에서 인기 끄는 오미크론 특효 식품이 있다. 유증상 코로나 감염자들이 흔히 말하는 호소가 “목이 아프다”는 것이다. 음식을 삼키기 힘들 정도라고 한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는 폐 안쪽보다는 목에 머물러 있으니 기침보다는 인후통이 대세다. 그래서 나온 의사들의 ‘의외 처방’이 아이스크림이다. 따가워진 목을 식혀주고, 유제 단백질이 포함돼 있어 영양에도 좋다. 단 혈당을 빨리 올릴 수 있기에 당뇨병이 있으면 섭취에 주의해야 한다.
▶게임 체인저로 기대했던 먹는 치료제 팍스로비드가 기대만 못하다. 입원 확률을 89% 낮춘다고 했다. 문제는 복용 대상이 너무 적다는 점이다. 이 약은 바이러스가 체내서 증식할 때 필요한 효소들을 차단해 효과를 내는데, 이 효소 작용과 연관된 약을 먹고 있으면 투여할 수 없다. 그 대상이 진통제, 고지혈증약, 통풍약, 수면제, 우울증약 등 다양하다. 그러니 여태껏 팍스로비드 투여는 4000명 수준이다. 하루에 확진이 5만명 이상 쏟아지는데 말이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말부터 60세 이상, 의료인, 면역저하자에게 코로나 백신 4차 접종을 하고 있다. 중간 조사 결과, 네 번째 접종으로 항체량은 증가했지만, 오미크론 감염 예방 효과가 충분치 않을 수 있다고 나왔다. 4회 맞은 사람에게서도 돌파 감염이 나왔다. 그래도 4차 고령 접종자가 위중증으로 가는 비율은 20~30% 줄었다. 이에 우리나라도 면역저하자와 요양시설 입소자 위주로 4차 접종을 오는 28일부터 실시한다.
▶4차 접종이 득보다 해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최근 세계 최고 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메디신에 실렸다. 백신으로 생긴 항체가 새로운 항체를 유도하여 그것이 자기 세포를 공격한다는 이론이다. 백신을 자주 맞을수록 바이러스 수용체가 있는 심장근육이나 신경계에 염증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4차 접종을 면역결핍자로 국한하라는 의미다. 여명을 1년 이상 유지하기 어려운 요양시설 입소자와 환자도 많은데, 일괄적으로 백신을 또 맞으라고 하기도 어렵다.
▶코로나 방역 역설이 있다. 많은 수가 코로나에 걸려서 자연 면역을 획득한 사람이 많은 나라가 코로나에서 일찍 빠져 나온다는 얘기다. 대거 걸리고 대거 낫는 오미크론 게임이 진행된 탓이다. 물론 백신 접종률이 높은 나라에 해당한다. 오미크론 중증화율이 낮다고 해도 엔(n) 수가 늘면 중환자가 늘기 마련이다. 그래도 믿을 건 백신과 마스크다.
02.16 ‘빈집세(稅)’
2017년 초 복면 두른 홈리스들이 영국 런던의 200억원짜리 고급 맨션을 무단 점거했다. 이 맨션은 빈집이었다. 이를 차지한 이들은 “이렇게 빈집들을 홈리스 센터로 활용하자”고 주장했다. 집주인이 러시아 억만장자였는데 집을 사두고 3년 동안 한 번도 들어가 살지 않았다고 한다. 무단 점유자들은 강제 퇴거당했지만 곧바로 다른 빈 저택을 점거했다.

▶영국은 2013년 ‘빈집세(稅)’를 도입했다. 2년 이상 비어있는 집에 지방세를 최대 50%까지 중과했다. 점점 더 무겁게 물려 최대 300% 중과하는 곳도 있다. 집을 비워두지 말고 빨리 팔거나 세 놓으라는 뜻이다. 2004년 32만호이던 빈집이 2016년 20만호로 줄었다. 하지만 주택 부족으로 아우성인 런던에도 아직 빈집이 꽤 있다. 세금을 아무리 올려도 부담을 안 느끼는 러시아, 중동의 억만장자들이 런던에 대저택을 사두고 마냥 비워두기 때문이다.
▶캐나다 서부 밴쿠버의 집값이 껑충 뛰었다. 중국, 홍콩 부자들이 대거 집을 샀고 집값과 월세 값이 올라갔다. 시민들 분노가 치솟자 밴쿠버 시장이 “집은 사람 사는 곳이지, 투기 대상이 아니다”라며 2017년 빈집세를 도입했다. 처음엔 공시가격의 1%를 매기다 작년에 3%까지 올렸다. 빈집세 덕에 밴쿠버의 임대 매물이 2년간 6000채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작년 4월 20년째 버려진 전북 익산의 빈집에 인터넷 개인 방송 운영자가 흉가 체험 동영상을 찍으러 들어갔다가 백골 시신을 발견했다. 도시로 떠난 뒤에도 고향 주택을 팔지 않는 경우가 많다. 팔리지 않기도 한다. 전국 지자체마다 폐가가 된 시골 빈집 처리로 골머리를 앓는다. 국내 대도시 가운데 ‘빈집 1위’는 부산이다. 대도시 가운데 제일 먼저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탓이다. 인구는 서울의 3분의 1인데, 방치된 빈집은 훨씬 많아 5000호가 넘는다. 한 집 건너 빈집인 동네는 쓰레기가 쌓여 여름이면 악취가 진동하고 쥐, 벌레가 들끓는다.
▶일본 교토시가 빈집세를 도입하기로 했다. 집이 부족해 빈집세를 도입한 영국이나 캐나다와는 정반대로, 일본은 집이 남아돌아 빈집세를 도입한다. 초고령 국가 일본에는 빈집이 850만채나 된다. 7채당 1채가 빈집이다. 조만간 3채 중 1채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10~20년 전부터 온갖 빈집 재생 프로그램을 가동했지만 늘어나는 빈집 속도를 감당 못해 급기야 세금 방망이까지 동원한다. 세계 최고 속도의 저출산 고령화 국가인 우리에게도 곧 닥칠 일이다.
02.17 법카의 윤리
2012년 한 스포츠 단체 직원이 개인 비리로 걸렸다. 대한체육회가 수사 의뢰를 지시했는데도 피해자인 이 단체는 뭉개려고만 했다. 알고 보니 그 비리 임원과 ‘단체 일에 입 다물면 고발하지 않겠다’는 합의서를 쓰고 1억5000만원의 퇴직 위로금도 줬다. 그 임원이 단체의 법인카드 비리를 폭로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결국 임직원들의 2억원대 법카 비리가 드러났다.

▶한 방송사 사장은 휴일에 호텔 투숙하고 고가의 가방·귀금속을 구매하는 데 7억원 가까운 법카를 사용해 징역형을 받았다. 정부 산하 연구원장은 명품 의류와 고가 향수·화장품에 반찬 값까지 법카로 긁었다. 한 지자체 간부들은 법카로 허위영수증을 끊는 방식으로 유흥업소를 다녔다. 가족에게 법카를 맡겨놓고 생활비로 쓴 인사도 있었다. 스페인에선 대형 은행 경영진이 무려 210억원 달하는 법카 부정 사용으로 정치 쟁점까지 됐다.
▶'법인카드 깡’(현금화)도 많다. 한 광역시장은 법카로 백화점 상품권을 20억원어치 산 뒤 현금화했다. 이 중 2억원을 생활비·골프비로 썼다. 모 시청 간부와 공기업 임원들은 법카 깡으로 수억원의 비자금을 만들었다. 법카는 뇌물이 되기도 한다. 2010년 한 중견기업은 정·관계 인사들에게 회사 법인카드를 돌렸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법카 수가 100개에 달했다고 한다. 경제부처 공무원과 군 간부 등이 금융기관과 방산업체에서 법카를 받아 쓰다 걸리기도 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성남시장 시절 업무추진비 법카를 부정하게 썼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같은 날 점심·저녁을 여러 차례 한 내역이 다수 발견됐다는 것이다. 점심을 9번 먹고 하루에 18번 식사한 날도 있었다. 하루 식비가 390만원에 달하기도 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법카를 여러 장 만들어 많은 사람이 나눠 썼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 후보 아내 김혜경씨는 도청 행사 명목으로 소고기와 초밥, 샌드위치 등을 대량 구매해 집으로 배달시켰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개인카드로 지불한 뒤 법카로 바꿔치는 수법도 나왔다. 이 법카는 각 부서의 업무추진비에서 나갔다.
▶이 후보는 대장동 의혹이 터지자 “부패지옥 청렴천국”을 얘기했다. 자신이 성남시청 화장실에 붙여뒀던 문구라고 했다. 그는 “공금 횡령 한 번만 저질러도 퇴출한다”고 했었다. 문재인 정권은 다른 편을 공격하기 위해 김밥 집에서 법카로 2500원 결제한 것까지 문제 삼았다. 누구든 대통령 꿈을 품으면 자기 처신부터 조심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후보는 그렇지 않았다.
02.18 대법원 재판연구관
법원에서 “잘나간다”고 인정받는 판사들 이력서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경력이 있다. 바로 ‘대법원 재판연구관’이다. 지금 대법원에서도 김명수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8명이 재판연구관을 지냈다. 서울에 있는 법원 9곳의 법원장도 절반 이상이 재판연구관 출신이다. “법률 지식과 재판 능력이 뛰어난 ‘에이스 판사’로 인정받으려면 반드시 재판연구관을 거쳐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재판연구관은 대법원에 사건이 올라오면 쟁점과 법리를 검토해 대법관에게 보고서를 올린다. 이 보고서는 법원 내 어떤 보고서보다 ‘파워’가 있다. 대법원 재판 결과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시환 전 대법관은 “한 번에 수십 건씩 올라오는 기록을 (대법관이) 자세하게 살펴볼 여유가 없다”면서 “재판연구관이 보고한 의견과 같게 (사건을) 처리하는 비율이 90%가 넘는다”고 했다. 대법원이 ‘대법관 재판’이 아닌 ‘연구관 재판’을 한다는 말까지 있다.
▶그러니 실력이 빼어난 판사들이 주로 재판연구관에 발탁된다. 한 해 대법원에 5만건 가까운 사건이 올라오는데 모두 재판연구관 손을 거쳐 대법원 재판에 넘어간다. 연구관 한 명이 1주일에 많게는 60건씩 사건을 검토해야 한다. 거의 매일 야근과 휴일 근무로도 시간이 모자라 집으로 기록을 들고 가는 날도 많다. 재판연구관은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산다. 연구관 출신 판사는 “마지막 재판인 대법원에서 하급심의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거나 새로운 법리를 고안해 공정하게 처리했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재판연구관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판사들은 변호사로 개업하지 않고 평생 법원에 남아 재판을 하며 살겠다는 이가 많았다. 그러나 김명수 대법원에서는 재판연구관이 줄줄이 법원을 떠나고 있다. 올 들어 법관 정기 인사 때도 재판연구관 5명이 한꺼번에 사표를 냈다고 한다. “대법원장이 특정 성향의 자기 사람만 챙기는 것을 보고 ‘희망이 없다’고 느낀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최근 대법원은 민주노총 출신으로 집회 때 경찰관을 폭행한 벌금 전과까지 있는 변호사를 재판연구관으로 뽑았다고 한다. 이 연구관은 “대법관이 노동 문제를 적대적으로 보는 이들로 구성됐다”고 한 사람이다. 대법원이 그에게 노동 사건을 맡겼다. 그는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대법원 재판을 받을 때 “항소심 (유죄) 판결은 잘못됐다”는 탄원서 제출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법원장이 정권 편들기 재판과 코드 인사로 법원을 망치더니 재판연구관까지 한쪽으로 기울어진 사람으로 채우고 있다.
02.19 도핑의 나라, 러시아
약물로 경기력을 키우는 도핑(doping)은 남아프리카 카피르족이 사냥 전 원기를 북돋으려 마시던 음료인 ‘도프(dop)’에서 비롯됐다는 설과 미국에서 마약을 뜻하는 속어인 ‘도프(dope)’에서 기원했다는 설 등이 있다. 과학기술 발달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도핑은 1960년 로마 올림픽 사이클 경기 도중 덴마크 선수가 암페타민 과다 복용으로 급사하면서 인식이 달라졌다. 1968 프랑스 그르노블 동계 올림픽부터 도핑 검사가 시작됐다.

▶2014년 12월 독일 방송이 “러시아 올림픽 팀의 99%가 금지약물을 복용하며, 국가가 나서서 소변 샘플을 조작한다”고 폭로했다. 2년 뒤 러시아반도핑기구(RUSADA) 핵심 관계자 2명이 모스크바에서 돌연사했다. 이들은 당시 ‘러시아 도핑의 역사’를 집필 중이었다. 신변 위협을 느낀 또 다른 RUSADA 핵심 관계자가 미국으로 망명해 러시아의 도핑 실태를 폭로했다.
▶이 폭로를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는 2011~2015년 동·하계 종목을 막론하고 자국 선수 1000여 명에게 약물을 먹였다. 러시아는 올림픽 도핑 역대 최다 적발국(47명)이지만 실제는 훨씬 많을 것이다. 특히 러시아가 개최국이었던 2014 소치 동계 올림픽 때는 정보기관 요원들이 RUSADA에 잠입해 소변 샘플 바꿔치기로 도핑을 감추려 했다. 러시아는 총 메달 33개(금 13개)로 종합 1위를 했지만, 이후 메달 11개가 박탈됐고 2018 평창 올림픽부턴 선수들이 개인 자격으로만 참가 가능하다.
▶예테리 투트베리제 러시아 여자 피겨스케이팅 대표팀 코치는 소치부터 평창, 베이징까지 10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연속해서 배출하고 있다. ‘예테리의 소녀들’은 성인 남자 선수들도 버거워하는 4회전 점프를 10대 초반부터 뛴다. 이 코치가 체중 관리를 위해 물도 많이 못 먹게 하고, 2차 성징을 늦추려 폐경 유도제(루프론)를 먹이고, 각종 약물 투여를 강요한다는 사실을 3년 전 13세 러시아 선수가 폭로했는데 배신자로 찍혀 국적을 우크라이나로 바꿔야 했다. 베이징 올림픽을 집어삼킨 발리예바 사태는 예견된 일이다.
▶1991년 소련 해체 후 러시아의 국제 대회 성적은 내리막을 걸어 2010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선 11위(금3)까지 떨어졌다가 푸틴 재집권 이후 반등했다. 푸틴에겐 올림픽 금메달도 ‘강한 러시아’에 필수 요소다. 페어 플레이와 선수의 건강엔 아무 관심도 없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주변에 군대를 집결시켜 힘으로 세계를 위협하는 것과 올림픽 도핑 스캔들이 동시에 일어난 것이 우연 같지 않다.
02.21(월) 60대의 뇌
구글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죽음을 정복하겠다”며 노화 방지 연구에 수조 원을 쏟아붓고 있다. 다른 쥐의 10배 이상인 32년을 사는 벌거숭이두더지쥐를 연구해 영생의 꿈을 이루는 것이 목표이다. 오러클 창업자 래리 앨리슨, 페이팔 공동 창업자 피터 틸도 노화 연구소에 거금을 내놓았다. 러시아 미디어 재벌 드미트리 이츠코프는 아예 로봇에 정신만 옮겨가면서 살겠다고 나섰다. 부(富)를 거머쥔 사람들의 목표가 생명 연장인 것은 2200여 년 전 진시황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2015년 미국 아인슈타인 의대 연구팀이 임상 시험을 시작했다. 이들은 메트포르민이라는 당뇨약으로 노화를 치료하겠다고 했다. 노화를 자연의 섭리가 아니라 고칠 수 있는 ‘질병’이라고 본 것이다. 실험 결과 메트포르민은 암 발생 위협을 낮추고, 인지 저하와 치매도 늦췄다. 아직은 정확한 원리를 모르지만 메트포르민 실험이 성공하면 우리는 한 알에 100원짜리 불로초를 갖게 될 수도 있다.
▶노화를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학설은 1982년 엘리자베스 블랙번 UC샌프란시스코 교수가 내놓았다. 염색체 끝부분에서 염색체를 보호하는 ‘텔로미어’는 세포 분열이 커질수록 조금씩 짧아지는데, 텔로미어가 닳아버리면 세포가 제대로 복제되지 않고 힘을 잃어간다는 것이다. 노화 시계로 불리는 텔로미어의 실체를 밝힌 블랙번은 2009년 노벨상을 받았다. 지난 30년간 노화 연구 대부분은 텔로미어 손상을 막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최근에는 ‘드라큘라 실험’이 각광받고 있다. 젊은 쥐의 피를 나이 든 쥐에게 투여하니 늙은 쥐의 상처가 훨씬 빨리 나았고, 뇌세포인 뉴런도 몇 배로 늘어났다. 근육과 간도 젊어졌다. 이런 원리로 회춘약을 만들겠다는 스타트업이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핏속에서 회춘 단백질을 찾았다는 곳도 있다. 현재 과학자들이 115세로 보는 사람의 한계수명이 앞으로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독일 연구진이 사람의 인지 능력이 60대까지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118만명 대상 실험에서 질문에 반응하는 속도는 젊을수록 빠르지만, 정보 처리 속도는 60세까지 거의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특히 나이 든 사람일수록 실수도 덜했다. 나이가 들수록 신중하고 확실한 대답을 내놓으려 고심하기 때문에 인지 속도가 느려진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뇌는 그대로인데 나이에 대한 편견 때문에 60대가 은퇴당하고 있는 셈이다. 현대 과학이 120세, 150세 시대를 열고 있다. 노화에 대한 사회적 고정관념도 깨져야 할 것 같다.
02.22 사라진 꿀벌
벌은 전 세계적으로 약 2만 종이 서식한다. 그중 인간의 혀에 황홀함을 선사하는 꿀벌은 아피스속(屬)의 10여 종이다. 한반도에서는 2000년 전부터 토종벌을 길렀고, 100년 전 서양 벌도 수입해 꿀을 얻고 있다. 꽃이 피면 꿀벌은 최대 4㎞까지 날아가 꿀을 딴다. ‘조그만 날개 고단하여 너무 지쳤지마는/ 머나먼 나라까지 꽃을 찾아서~’라는 동요 ‘꿀벌의 여행’ 가사 그대로다.

▶인간은 그 고단함에 기대어 풍성한 식탁을 누려왔다. 식량·과일·사료용 작물의 30%가 벌의 가루받이에 의존한다. 꿀벌이 인간에게 제공하는 경제 가치가 50조원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공동체에 헌신하고 협동하는 꿀벌 생태는 예술적 상상력의 샘도 되어줬다. 오페라 ‘술탄 황제의 이야기’에서 연주되는 ‘왕벌의 비행’은 피아니스트의 빠른 손놀림으로 벌의 윙윙거리는 날갯짓을 표현한다. 가요 ‘땡벌’은 땅속에 집 짓고 억척스레 살아가는 ‘땅벌’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미국에서 2006년 꿀벌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 보고됐다. 2010년대 들어 최근까지 40%가 감소했다고 한다. 유럽과 아시아에서도 벌 개체 수가 줄고 있다. 벌은 한두 마리씩 감소하지 않고 벌통 단위로 통째 몰살하는 군집붕괴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CCD)을 보이는 게 특징이다. 꽃가루를 찾아 나선 벌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면서 몰살을 겪는다. 학자들은 무선장비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나 특정 농약이 벌의 귀소(歸巢)를 방해한다고 의심한다.
▶네오니코티노이드라는 농약에 오염된 꽃가루를 먹은 꿀벌은 길찾기 능력을 잃는다는 사실도 추가로 밝혀졌다. 현재 유럽에선 이 성분이 들어간 농약을 비닐하우스에서만 쓰도록 제한하고 있다. 우리도 벌 집단폐사를 겪었지만 원인은 다르다. 10여 년 전 ‘벌의 구제역’이라 불리는 낭충봉아부패병으로 토종벌이 90% 넘게 폐사했다. 2010년 이전 42만여 개에 달하던 벌통이 한때 1만개까지 급감했다.
▶간신히 피해를 복구한 양봉업계에 다시 비상이 걸렸다. 올겨울 경남·전남 일대에서 겨울을 나던 꿀벌 수십만 마리가 사라졌다. 낭충봉아부패병 때문이라면 벌통 주변에 죽은 벌이 있어야 하는데 벌통 11만개가 텅 비었으니 원인도 모른다. 전문가들은 가을에 노출된 살충제의 영향으로 귀소하지 못했거나, 이상기후로 계절을 착각한 벌 무리가 외출했다가 얼어 죽었을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 어느 경우이든 인간이 초래한 환경 재앙일 가능성이 크다.
02.23 50년 전 닉슨과 마오쩌둥 밀담

▲50년 전인 1972년 2월 22일 마오쩌둥(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을 공식 방문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동서 데탕트의 물꼬를 트는 계기였다./신화/AFP 연합뉴스
1968년 소련이 체코의 민주화 운동을 탱크로 짓밟았다. 미국 등 서방은 충격을 받았다. 1969년 중국과 소련이 우수리강과 신장 등 국경에서 무력 충돌했다. 4300㎞가 넘는 중·소 국경에 150만 군대가 대치하더니 ‘핵 공격’ 위협까지 주고받았다. 미·중 모두 소련의 패권을 견제해야 했다.
▶50년 전 닉슨 미국 대통령이 베이징 공항에 내렸다. 마지막 날 ‘황제’를 만날 것이란 예측을 깨고 도착 몇 시간 만에 마오쩌둥과 비공개 회담했다. 소련 얘기는 서로 구체적으로 하지 않았다. 이심전심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오는 뜬금없이 “중국 군대는 해외로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닉슨이 골치 아파하던 베트남전에 6·25 때처럼 중공군이 참전할 일은 없다는 의미였다. 마오는 “우파를 좋아한다”고도 했다. 당시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우파 청산’을 해놓고 ‘우파인 미 공화당 집권이 즐겁다’고까지 했다.

▶닉슨은 “일본이 국방을 위한 군사력이 없는 편이 더 나을까”라고 물었다. 일본 재무장에 대한 마오의 걱정을 덜어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닉슨 방중 결과인 상하이 코뮤니케(공동선언)는 ‘대만이 중국의 일부’이고 ‘미국은 대만 주둔 군대를 감축할 것’이란 내용이 핵심이다. 닉슨 방중에 앞서 대만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포함한 유엔 무대에서 퇴출당했다. 미·중 비밀 협상으로 대만의 안보와 독립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닉슨은 마오에 이어 저우언라이를 만나 “남이든 북이든 한국인은 충동적인 사람들”이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이 호전적인 사람들이 우리 두 나라(미·중)를 곤궁에 빠뜨리는 사건을 일으키지 않도록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 “한반도가 (미·중) 갈등의 장이 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도 했다. 중공군에 맞서 같이 피 흘렸던 동맹국 맞나 싶은 말이다. 저우는 닉슨의 주한미군 감축에 감사 뜻을 표하기도 했다. 방중 1년 전 닉슨이 주한미군 2만여 명을 뺐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이런 밀담 내용을 까맣게 몰랐다.
▶닉슨 방중 50주년인 21일 닉슨 방중을 수행했던 미 국무부 전 차관보는 “시진핑 주석의 개인 숭배 부활과 철권 통치가 마오쩌둥과 비슷하다”고 비난했다. 닉슨 방중이 열었던 미·중 ‘데탕트(긴장 완화)’가 지금은 꿈같은 얘기로 들린다. 이제 중·러가 밀착해 미국을 견제한다. 시진핑·푸틴 정상 회담만 40회에 육박한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 때나 지금이나 세계는 ‘스트롱맨’들의 세상이란 것이다. 지금 우리 머리 위에서 이들이 어떤 밀담을 나누는지 알 수 없다.
02.24 세계 2위 된 韓 확진자
23일 발표한 전날 신종 코로나 확진자 수가 17만여 명을 기록했다. 전날보다 7만여 명 폭증했다. 전 세계 코로나 데이터를 제공하는 아워월드인데이터(Our World in Data)에서 우리나라 확진자 추이 그래프를 보니 이번 피크가 너무 높아 수백~수천명을 기록한 1~4차 대유행 정점은 살짝 올라온 점처럼 보일 정도였다. 신규 확진자가 1700명 나와서 놀랄 때가 엊그제 같은데 ‘0′이 둘 더 붙었다.

▲우리나라 확진자 수 추이 그래프. 이번 피크가 하도 높아 수백~수천명을 기록한 1~4차 대유행 정점은 살짝 올라온 점처럼 보일 정도다.
▶하루 확진자 17만여 명은 세계 1~2위 수준이다. 러시아(17만698명), 독일(16만8000여 명) 확진자 수를 넘는 숫자였는데 독일 집계가 22만여 명으로 새로 나오면서 2위가 됐다. 인구 100만명당 확진자는 3342명으로 주요 국가 중 가장 많다. 우리나라와 독일 등은 강력한 거리 두기로 유행을 억제해온 탓에 뒤늦게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확진자 수가 세계 1~2위를 다투게 됐다는 소식에 한숨이 나온다.

▶코로나 사태 이후 하루 확진자 수 역대 세계 최대는 미국이 지난달 10일 기록한 137만명이다. 다음으로 인도가 지난해 5월 하루 40만명 가까운 기록을 보였고, 프랑스가 지난달 말 하루 36만여 명을 기록했다. 미국은 요즘 8만명대로 떨어졌다. 미국 인구는 우리의 6.5배인데 우리 확진자 수가 더 많아졌다니 잘 믿기지 않는다. 일본은 이달 초 정점에 이르렀을 때 9만여 명을 기록했지만 최근 6만명대로 낮아졌다.
▶우리 방역 당국은 “과거와 같이 확진자 수만 갖고 두려움이나 공포감을 가질 이유가 전혀 없다”(김부겸 총리), “한 번의 유행 이후 안정기가 오기 때문에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고 한다. 산에 불이 번지는데 물을 끼얹을 생각보다 빨리 다 타서 불이 꺼지길 기다리는 사람들 같다. 확진자 수 세계 1~2위가 된 것도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유행 시기가 늦어 비교하기는 적절하지 않다”고 한다.
▶확진자는 어디까지 늘어날지 모른다고 한다. 방역 당국은 이달 말이나 3월 중 하루 확진자가 최대 27만명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전문가들은 지금 추세로 가면 이 예측치도 넘을 것 같다고 했다. 더 걱정되는 것은 우리는 다른 나라처럼 정점이 짧게 끝나지 않고 오래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달 초까지 200명대를 유지하던 위증증 환자는 500명을 넘었고 사망자도 하루 100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제는 큰 피해 없이 이 위기가 지나갈 수 있다는 정부의 장밋빛 전망이 맞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게 됐다.
02.25 코로나로 2년 보낸 2년제 대학
국내 첫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2020년 대학 신입생을 ‘코로나 학번’이라고 한다. 그해 2년제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이달에 졸업했다. 그들은 대학 생활을 ‘잃어버린 2년’으로 기억하고 있다. 온라인 강의 위주가 되면서 학교에 오지 않은 날이 훨씬 많았다. 입학식도 온라인으로 했고 졸업식도 메타버스에서 했다. 졸업식 단체 사진도 찍기 힘들어 개인 사진을 합성해 졸업 앨범을 편집하기도 한다. 수도권 2년제 졸업생은 “학교 내 건물 위치도 제대로 모르는 채 졸업을 맞았다”고 했다.

▶2년제 대학 코로나 학번은 대학이 뭔지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다. 입학 동기를 만나도 서로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굴 전체가 아니라 눈매만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신입생 환영회, MT, 축제, 동아리 활동도 제대로 할 수 없어 선후배 사귀기도 쉽지 않았다. 이성 교제도 힘들었다. 지방 2년제 졸업생은 “1학기를 마치기도 전에 학과가 여자 고등학교처럼 돼 버렸다”고 했다. 온라인 강의에 실망한 남학생들이 군 입대를 위해 서둘러 휴학하면서 여학생만 남게 됐다는 것이다.
▶2년제 대학에는 자동차학과, 미용학과, 조리학과처럼 실습 비중이 높은 학과가 많은데 코로나 때문에 실습이 크게 줄었다. 자동차학과 졸업생은 “실습 세 번 중 한 번만 대면 강의였고 나머지 두 번은 온라인 강의였다”며 “부품과 장비를 한 번이라도 더 만져보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너무 크다”고 했다. 치위생과 졸업생은 “병원에서 환자 상대 실습은커녕 학생들끼리 실습 대상이 돼주기도 쉽지 않았다”고 했다.
▶코로나 장기화와 경기 둔화로 2년제 졸업생 취업도 전보다 힘들어졌다고 한다. 취업을 해도 걱정이다. 2년제 졸업생은 “인턴으로 취업했는데 코로나 이전 대학에서 제대로 공부한 선배들에 비해 실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을까봐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코로나 학번은 대학에 다니는 동안에도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한 교수는 “코로나 학번은 교수나 선후배와 어울릴 기회가 크게 줄어 인적 유대감이 약해지면서 ‘나만 외톨이’ ‘미래가 안 보인다’는 불안감을 갖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2년제 대학은 오랜 현장 경험이 있는 실무 출신 교수가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생생하게 전수해 기업들에 인기가 있었다. 4년제를 졸업하고 2년제에 다시 입학하는 경향도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덮쳤다. 2020년 3월 코로나 사태와 함께 입학한 학생들이 등교도 제대로 못 해보고 오미크론 폭증 사태 속에 졸업했다. 기막힌 일이다.
02.26 ‘호구’ 된 바이든

▲지난해 바이든 미 대통령이 전용기에 오르던 중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있다. /조선일보 DB
베트남전에서 고전하던 닉슨 미국 대통령이 1969년 ‘앞으로 군사 개입을 피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70년대 카터 대통령도 주한미군 완전 철수 등을 추진했다. 그러던 10여 년간 인도차이나가 공산화했고,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중동에서도 하루가 멀다고 폭탄이 터졌다. 미국이 ‘힘’ 쓰기를 주저하자 전 세계 ‘스트롱맨’들이 활개쳤다.
▶1981년 취임한 레이건 대통령은 서방 7국 정상회담에서 ‘소련의 군사 우위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어설픈 ‘데탕트(긴장 완화)’가 공산 세력 강화와 민주주의 축소를 불러왔다고 믿었다. 소련을 ‘악(惡)’으로 규정하고 군사 훈련을 강화했다. 소련 영향력이 커지던 그레나다·니카라과 등에서 적극적인 군사 작전을 펼쳤다. ‘명분 없는 무력 개입’이란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소련 경제의 모순을 간파하고 군비 경쟁을 우주로까지 확대한 끝에 소련의 자폭을 유도했다.

▶공산권 붕괴로 중동에 힘의 공백이 생기자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레이건을 이은 부시 대통령은 1991년 1차 걸프전에서 이라크를 압도했다. 첨단 무기를 효율적으로 운용하며 지상군 투입 100시간 만에 ‘전쟁 종료’를 선언했다. 이후 미국 중심으로 세계 질서가 잡혔다.
▶작년 여름 바이든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을 전부 철수시켰다. 미국 내 철군 여론이 높았다고 하지만 갑작스러운 ‘발 빼기’로 아프간은 대혼돈에 빠졌다. 탈출하려고 미군 수송기 바퀴에 매달린 주민까지 있었다. 미국의 베트남전 패배를 떠올리게 했다. 미 합참의장마저 “전략적 실패”라고 비판했다. 그런데도 바이든은 “미국 국익이 걸리지 않은 분쟁에 무한정 개입할 수 없다”고 했다. 앞으로 군사 개입을 피할 것이란 신호로 ‘스트롱맨’들은 해석했을 것이다. 시진핑의 관영 매체는 “(미국의) 아프간 포기는 대만에 대한 교훈”이라고 했다.
▶푸틴의 러시아 군대가 거침없이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고 있다. 유일한 상대인 바이든이 군사력을 못 쓴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상원 외교위원장 등을 지낸 바이든은 ‘외교 달인’으로 불린다. ‘힘’보다는 외교 공조나 국제 제재 등을 선호한다. 1991년 걸프전 때도 반대표를 던졌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상대인 푸틴이나 시진핑은 무력 사용에 거리낌이 없는 ‘스트롱맨’들이다. 미국 레이건 기념관에서 가장 잘 팔리는 기념품이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라는 문구가 새겨진 셔츠와 모자라고 한다. 이 말을 잊으면 ‘국제 호구’가 된다.
안용현 논설위원
02.28(월) 금융 핵폭탄, 스위프트(SWIFT)
“피가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2005년 미국이 북한 김정일의 통치 자금 2500만달러가 은닉된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를 동결한 사건을 두고 나중에 북한 외무성 제1부상 김계관이 한 말이다. 최고 권력자의 비자금이 묶이자 북한은 1차 핵실험을 단행하는 등 강력 반발했지만, 미국과 막후 협상에선 BDA 제재 해제를 통사정했다. 독재자의 약한 고리는 ‘돈줄’이라는 걸 보여준 사건이었다.
▶지난해 1월 이란 혁명수비대가 별안간 한국 화물선을 나포했다. ‘해양 오염’ 핑계를 댔지만, 실제 이유는 ‘돈’이었다. 한국은 금융 제재를 받는 이란 원유 수입을 위해 ‘원화 결제 계좌’라는 우회로를 만들었다. 원유 수입 대금을 이 계좌에 예치하고, 한국 기업이 이란에 수출한 대금을 빼 가는 상계 결제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미국 트럼프 정부가 원화 결제까지 가로막자 70억달러가 묶였고, 화가 난 이란이 한국 화물선에 분풀이한 것이었다.
▶미국과 서구 동맹국들이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보복 조치로 미 달러 중심의 국제 금융 결제망(SWIFT)에서 러시아를 축출하기로 결정했다. 스위프트는 200여 나라 1만1000여 금융기관이 이용하는 국제 송금·결제 시스템이다. 스위프트에서 축출되면 러시아는 달러 결제가 안 돼 최악의 경우 원유, 천연가스 수출이 중단되고, 중앙은행의 보유 외환 6300억달러도 마음대로 꺼내 쓸 수 없게 된다.
▶스위프트는 프랑스 재무장관이 “금융의 핵무기”라 부를 정도로, 서구 동맹국들이 아껴놓은 비장의 무기다. 하지만 원유의 26%, 천연가스의 4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는 EU(유럽연합)로선 상당한 부작용을 감수해야 하는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러시아에 한 해 40만대 이상 자동차를 수출하는 한국도 후폭풍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러시아가 암호 화폐나 중국의 위안화 국제 결제 시스템(CIPS)으로 우회로를 뚫으려 할 것이란 전망도 있지만 달러 결제망을 대체하기엔 역부족이다. 일각에선 스위프트 축출에서 더 나아가 푸틴 대통령의 해외 은닉 재산까지 동결해야 ‘금융 핵폭탄’이 완성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푸틴의 아킬레스건은 1000억달러대 해외 은닉 재산”이라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선언하면서 “러시아는 여전히 가장 강력한 핵보유국”이라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핵무기 덕에 서방의 군사 개입은 차단했지만, 서구의 금융 핵무기 공세까지 잘 막을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