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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조선일보) 2022-01/ 01.01(토) 새해도 코로나 블루 - 01.29(토) 건설공사 중단 부른 ‘1호 포비아’

상림은내고향 2022. 1. 31. 14:58

만물상 2022-01/ 조선일보

01.01(토)  새해도 코로나 블루

▲12월 24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주안말 사거리에서 조원고 학생들이 오래된 벽화를 수정ㆍ보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조원고 학생들은 코로나 블루 극복 등을 위해 학교 앞 주안말 사거리 벽화를 수정ㆍ보완해 그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생에 한 번뿐인 대학 신입생 시절을 코로나 때문에 날려버린 것 같아서 허무했어요.” 이른바 ‘코로나 학번’이라는 20학번 대학생의 말이다. 이들은 신종 코로나 때문에 2년째 정상적인 대학 생활을 해보지 못했다. 20학번과 21학번들은 동기·선배들과 인사 한번 제대로 나누지 못했고 학과 사무실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른다. 20·21학번만 아니라 대학생 대다수가 코로나로 대학 생활이 엉망이었을 것이다.

 

▶미국 CNN에 따르면 일부 전문가들은 코로나 시대에 영·유아기 혹은 유소년기를 보내는 아이들을 ‘C세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손 소독제와 마스크가 생활 필수품이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놀지 못한 아이들이다. 아직 정확한 개념 규정은 없지만 팬데믹 기간에 태어나고 주요 발달기를 보낸 아이들이 이 세대의 중심이다. 생애 주기 중 중요한 시기에 장기간 ‘집콕’한 이 세대가 기존 세대와 어떻게 다를지, 어떤 행동 양태를 보일지 궁금하다.

 

 

▶아이들과 젊은이들만이 아니다. 끝 모를 팬데믹, 일상 회복에 대한 희망과 좌절의 반복에 모두 심신이 많이 지쳤다. 최근 나온 질병관리청의 ‘2020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를 보면 남녀 모두에서 우울장애 유병률이 높아졌다. 남성의 우울장애 유병률은 지난 2018년 2.5%에서 지난해 4.8%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여성은 같은 기간 6.1%에서 6.7%로 올랐다. 코로나 2년째인 지난해는 더 늘었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언제 코로나 블루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전망도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30일 “2022년 말까지는 코로나의 급속 확산기(acute phase)가 끝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빨라야 올해 말에야 확산세가 멈출 것 같다는 것이다. 물론 새로운 변이가 출현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의 얘기다. 미국 등 세계 주요 7국(G7)의 백신 접종률은 70%가 넘지만 아프리카에서는 15명 중 1명 정도에 불과하다. 동남아 국가도 접종률이 높지 않다. 백신 접종률이 낮은 국가는 코로나를 퍼뜨리고, 새로운 변이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다행인 것은 현재 확산 중인 오미크론 변이는 심각도가 낮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팬데믹이 일종의 독감과 같은 계절성 감염병(엔데믹)으로 누그러질 것이라는 낙관론도 적지 않다. 한국도 먹는 코로나 치료제를 사용할 시기가 멀지 않았다. 코로나 3년째 첫날을 맞아 올해엔 이 지긋지긋한 재앙에서 벗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김민철 논설위원

 
 

01.03(월)  세계 유일 ‘한국식 나이’ 이제 그만

영어에서 나이를 묻는 ‘How old~’는 표현 자체에 이미 만 나이 개념이 들어 있다. 12월 31일 출산한 엄마에게 다음 날인 1월 1일 아이 나이를 물으면 “하루 됐다(1 day old)”고 한다. 해가 넘어가면 무조건 두 살(2 years old)이 되는 한국식 나이 셈법은 그들에겐 엉터리 계산법일 뿐이다. 미국인에게 “새해가 되면 한 살씩 더 먹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가 “한국인은 전 국민 생일이 단체로 1월 1일이냐?”는 반박 질문을 받고 난감했던 적도 있다.

 

 

▶전 세계에서 나이를 세는 방법이 가장 헷갈리는 나라가 한국이다. ‘세는 나이’ ‘만 나이’ ‘연 나이’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 이 중 태어나자마자 한 살로 출발해 해마다 새해 첫날 한 살씩 더 먹는 ‘세는 나이’가 가장 많이 쓰인다. 한국인 82%가 일상에서 세는 나이를 쓴다는 통계도 있다. 생일을 기준으로 해마다 한 살씩 더 먹는 만 나이는 형법·민법 등 법률 관계, 공문서, 병원 처방이나 언론에서 주로 사용한다. 태어난 해를 0살로 하되 해가 바뀔 때마다 한 살씩 더하는 연 나이는 두 방식의 절충인 셈인데, 병역법의 입영 영장 발부 등 주로 법 집행 편의를 위해 쓴다.

 

▶세는 나이는 중국에서 비롯돼 유교 문화권인 한국·일본·베트남 등에서 쓰였다. 세는 나이의 기원으로 어머니 배 속의 아이도 사람으로 인정했다는 설, 한자 문화권엔 ‘0′ 개념이 없어 ‘1′부터 시작했다는 설 등이 있다. 제왕의 재위 첫해부터 기산하는 연호(年號) 셈법과 같다는 주장도 있다. 기원이 어찌 됐든 오늘날 세는 나이를 쓰는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중국에선 1960~70년대 문화대혁명 때 사라졌고, 일본은 1902년 법을 제정하며 세는 나이를 버리고 만 나이를 정착시켰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도 나이 셈법을 바꾸자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지난달엔 만 나이 사용에 찬성하는 의견이 열에 일곱을 넘는 여론 조사도 나왔다. 세는 나이를 지지하는 응답은 15%에 머물렀다. 아카데미 작품상과 배우상을 거머쥐고 K팝을 전 세계에 퍼뜨리는 나라가 세는 나이 관행 때문에 코리안 에이지(Korean Age)라는 조롱 섞인 지적을 당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통일된 기준 없이 나이를 세 가지 방식으로 표현하는 데서 오는 혼란과 사회적 비용도 그대로 둘 수 없다. 국회에서도 2019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만 나이로 통일하자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사회적 논의를 거쳐 하루속히 정리해야 할 과제다.

김태훈 논설위원

 
 

01.04  ‘빨간 줄 임원’ 급구

모 대기업 계열사 사장이 취임 직후 총수의 호출을 받았다. 총수는 금(金)으로 만든 명함을 선사하고 법인카드 사용한도도 예상보다 ‘0′을 하나 더 붙여주었다. 몇 달 뒤 총수가 청구서를 내밀었다. 비자금을 조성해 상납하라는 것이었다. “그 순간 교도소 담장이 어른거렸다”는 그는 ‘바지 사장’ 역할을 거부했고 결국 중도 하차했다. 몇 년 뒤 계열사 사장 2명이 횡령·배임 혐의로 감옥에 갔다.

 

 

▶천명관의 소설 ‘고령화 가족’엔 철없는 아들이 불법 도박장의 바지 사장으로 취업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들이 원하는 건 적당히 ‘가다’(’체격’이란 뜻)가 있으면서 적당히 어수룩해서 다루기 좋고 뒤탈도 없는, ‘핫바지’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바지 사장’의 어원엔 두 가지 설이 있다. 사업주의 불법 행위 책임을 대신 뒤집어 쓰는 ‘총알받이’에서 ‘받이’를 따온 것이란 해석과 ‘바지저고리를 입은 허수아비’에서 ‘바지’만 따왔다는 설이다.

 

▶정치권에서도 ‘바지 사장’이 논란이 된 사례가 적지 않다. 1985년 12대 총선 때 이민우 총재의 신민당이 민한당을 밀어내고 제1 야당 올라서는 돌풍을 일으켰다. 한껏 고무된 이 총재가 민정당이 요구하던 내각제 개헌을 수용하는 ‘이민우 구상’을 시도했다가 YS·DJ의 뜻을 거스른 죄로 쫓겨나고 말았다. ‘바지 사장’의 선을 넘은 대가였다.

 

▶오는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바지 임원’이란 말이 새 유행어로 등장했다. 산업 재해가 발생하면 대표이사나 안전 담당 임원에 대해 징역 2년 이상 형벌을 가하는 세계 최강의 산업재해처벌법이 가동되기 때문이다. 재해 때마다 오너나 대표가 감옥에 가면 회사가 유지될 수 없으니 대신 감옥에 가는 ‘방패막이’ 임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업주가 대표이사직을 내려놓고 안전책임자(Chief Safety Officer·CSO) 임원 자리를 새로 만드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신설 CSO 임원들은 “우린 ‘빨간 줄(감옥행) 임원”이라고 자조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엔 기업 대표이사를 형사처벌할 수 있는 각종 법과 규제 조항이 무려 2000여 개(벌금형 포함)에 이른다. 주 52시간을 어기면 징역 2년, 화학물질 신고를 소홀히 하면 징역 5년, 직장 내 괴롭힘 방지를 제대로 못하면 징역 3년 처벌 대상이 된다. 대기업 대표가 ‘위험한 직업’이 돼가고 있다. 감당 못 할 일을 강요하면 사람은 대응책을 찾는다. 60대 대기업 중 총수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곳이 23곳에 그친다. 비난만 할 수 있겠나.

김홍수 논설위원

 
 

01.05  사상 초유 ‘문재인 퇴임식’ 열리나

2015년 3월 우루과이 바스케스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다. 물러나는 무히카 대통령은 바스케스의 어깨에 대통령 띠를 매어주고 어깨를 감싸 안았다. 백발 대통령이 손을 흔들자 환호성이 터졌다. 우루과이 국민이 가장 존경했고 가장 검소한 대통령이라 일컬었던 무히카의 퇴장은 소박했다. 그는 고물 딱정벌레차(비틀)를 직접 몰고 근교의 아내 집으로 떠났다. 대통령 월급 90%를 기부해 재산도 없었다. 퇴임 때 지지율(65%)은 신임 대통령보다 훨씬 높았다.

 

 

▶프랑스 미테랑 전 대통령은 1995년 5월 엘리제궁에서 시라크 신임 대통령을 맞이했다. 그는 대통령 권한을 넘긴 뒤 담담하게 레드카펫을 밟으며 퇴장했다. 시라크가 궁 입구까지 배웅했다. 그는 “국민께 감사드린다. 시라크가 프랑스를 평화와 정의 속에서 이끌어 갈 것”이라는 짤막한 고별사만 남겼다. 궁을 나온 미테랑은 부근에서 기다리던 아들 차로 갈아탔다. 집까지 신호 대기에 여러 번 걸렸다. 14년간 프랑스를 통치하며 스스로를 ‘상머슴’이라고 불렀던 권력자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미국 대통령도 공식 퇴임식이 없다. 퇴임 전 고별 연설과 사적인 환송 모임을 하고 신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는 게 전부다. 대신 백악관을 떠나기 전 후임자에게 편지를 써서 집무실 책상에 올려둔다. 이런 전통을 깬 게 트럼프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앤드루스 공군 기지에서 셀프 환송식을 열었다. 대통령 전용기로 플로리다까지 갔다.

 

▶영국 총리는 다우닝가 관저에서 고별 연설을 한 뒤 여왕을 알현하면서 임기를 끝낸다. 별도 퇴임식은 없다. 그런데 독일은 물러나는 총리의 퇴임식을 열어준다. 신·구 총리와 내각이 함께 물러나는 총리에게 박수와 감사를 보낸다. 지난 연말 메르켈 총리가 이렇게 퇴임했다. 콜이나 슈뢰더 등 다른 총리들도 마찬가지다.

 

▶청와대 탁현민 비서관이 “대통령 퇴임식이 없어 아쉽다”고 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탁 비서관은 남북 정상회담과 각종 기념일 때마다 사람들 눈길을 잡는 화려한 이벤트를 기획해 왔다. 그래서 문 대통령도 그를 각별히 아꼈다. ‘쇼통령‘이란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문 대통령은 탁현민식 쇼 무대를 좋아했다. 우리나라에서 본 적 없는 대통령 퇴임식 쇼도 검토하는 모양이다. 그 퇴임식 무대에서 문 대통령은 지난 5년간 국민을 편 가르고 공정과 상식을 무너뜨리고 민생을 벼랑 끝으로 내몬 데 대해 일말의 반성이라도 할까. 아닐 것 같다.

배성규 논설위원

 

01.06  ‘모(毛)퓰리즘’

역사 속 위인 중엔 탈모의 고통에 시달린 이가 적지 않다. 로마 장군 카이사르는 휑한 정수리를 감추려 평생 월계관을 쓰고 다녔다. 40대부터 탈모에 시달린 청나라 서태후는 죽을 때까지 가발을 썼다. 대머리였던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는 감추는 대신 “세월이 머리카락을 가져가는 대신 지혜를 주었다”고 자위했다. 서양 의학의 시조 히포크라테스는 탈모약으로 비둘기 똥을 처방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염소 오줌’을 바르면서 “거세된 남성 중엔 대머리가 없다”는 점을 주목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2300년 뒤 현대 생명과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추론을 과학적으로 규명했다. 미국의 한 제약회사가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를 찾는 과정에서 남성호르몬 대사물질(DHT)을 억제하면 탈모를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렇게 개발된 탈모 치료제가 ‘프로페시아’다. DHT를 줄이는 성분, 피나스테리드가 1㎎씩 들어 있다. 문제는 매일 한 알씩 평생 먹어야 하는데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고, 한 알당 1500~2000원으로 약값이 비싸다는 점이다.

 

▶1000만명에 달한다는 탈모인들이 그냥 있을 리 없다. 한 알에 100원꼴인 인도산 복제약을 해외 직구로 구입하거나, 피나스테리드가 5㎎씩 들어 있는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를 5등분해 먹는 ‘꼼수’를 찾아냈다. 전립선 치료제는 건강보험이 적용돼 한 달 치 약을 1만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 비용을 정품 약의 25분의 1 로 줄일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전립선 치료제의 탈모약 전용은 불법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탈모인의 이런 불편에 주목했다. 이 후보가 “탈모약을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 넣자”고 제안하자 탈모인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열띤 반응에 고무된 이 후보는 “이재명을 뽑는다고요? 노(no) 이재명은 심는 겁니다”면서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건강보험은 말 그대로 ‘건강’을 지키기 위한 보험 제도다. 외모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건강과 직접 관련 없는 약제는 비급여 대상일 수밖에 없다. 이 후보는 이 기준을 허물려 한다. 현재 건보 재정은 나가는 돈이 너무 많아 위태롭다. ‘문재인 케어’ 탓에 건강보험 적립금이 3년 뒤엔 바닥난다고 한다. 어려운 건보 재정 때문에 항암제같이 생명과 직결되는 약도 비급여가 많은 실정이다. 그런데 표 얻자고 탈모약도 지원하자고 한다. ‘모(毛)퓰리즘’이라고 할 만하다. 이 후보가 돈 주는 아이디어를 내 점수를 따고 좋아할 때마다 나라와 사회의 바탕엔 금이 간다.

김홍수 논설위원

 

01.07  극초음속 미사일

“우리 신 무기로 미국이 이끄는 NATO의 미사일 방어가 무용지물이 됐다.” 2018년 3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국정 연설에서 6종의 최신예 ‘수퍼 무기’들을 선보이며 큰 소리를 쳤다. 푸틴은 2시간에 걸친 연설 가운데 45분가량을 연단 뒤에 설치한 대형 스크린에 동영상 등을 띄우며 그 무기들을 자랑하는 데 할애했다. 그 수퍼 무기 중 하나가 ‘아방가르드 ICBM’과 ‘킨잘 순항미사일’ 등 2종의 극초음속 무기였다.

 

 

▶푸틴이 공개한 동영상에서 아방가르드 미사일은 글라이더처럼 지그재그로 미국 미사일 방어망을 피해 미 본토를 타격했다. 영화 CG 같아서 푸틴이 허풍을 떤 것 아닌가 반신반의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아방가르드와 킨잘은 2019년 이후 실전 배치에 들어선 것으로 밝혀졌다. 러시아는 마하 8(음속의 8배) 이상의 속도로 미 항모 등을 때릴 수 있는 ‘지르콘’ 극초음속 미사일 실전 배치까지 눈앞에 두고 있다.

 

▶극초음속 무기는 보통 최대 속도가 마하 5가 넘는 무기를 말한다. 1초에 1.7km 이상을 날아가는 데다 일부는 지그재그 회피 기동까지 해 기존 미사일 방어망으로는 요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게임 체인저’로 불린다. 두 종류가 있는데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은 스크램제트 등 특수한 엔진을 달고 크루즈 미사일처럼 날아간다. ‘극초음속 활공체’는 탄도미사일처럼 상승했다가 일정 고도에서 활공체가 떨어져 나와 글라이더처럼 초고속으로 비행한다.

 

▶미국은 군사력과 무기 기술면에서 압도적 1위 자리를 지켜왔지만 극초음속 무기 분야에선 러시아뿐 아니라 중국에도 뒤지는 양상이다. 지난해 7월 중국이 시험한 신형 극초음속 미사일에 대해선 미군 수뇌부가 ‘스푸트니크 쇼크’를 거론할 정도다. 1957년 소련이 미국보다 스푸트니크 인공위성을 먼저 발사했을 때 미국민들이 받은 충격과 비슷하다는 얘기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미국은 육·해·공군이 공동 또는 따로 4~5종의 극초음속 무기들을 개발 중인데 2023년 이후 단계적으로 배치될 전망이다.

 

▶우리도 순항미사일 방식의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 중이지만 아직 시험 발사도 하지 못한 수준이다. 그런데 북한이 엊그제 극초음속 미사일을 발사해 700㎞ 떨어진 표적을 명중시켰다고 발표했다. 북한의 수십 배에 달하는 우리 국방비는 다 어디로 가고 있나. 극초음속 무기는 러시아·중국 등 공산권 국가들이 앞서가고 있다. 이들의 기술이 북한 극초음속 무기 개발에 직간접으로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01.08  목숨 걸고 소명 지키는 유일한 직업

▲지난 6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의 한 신축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실종됐던 소방관을 태운 구급차가 현장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홍제동 2층 주택에서 불이 났다. 소방관 46명이 출동했지만 다른 차 때문에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했다. 소방관들이 소방 호스를 끌고 수십 미터를 달렸다. 구조대는 불 속에 뛰어들어 집주인과 세입자 가족을 구출했다. 그런데 집주인이 “아들이 안에 있다”고 울부짖었다. 소방관 3명이 다시 불 속에 뛰어들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분명히 있는데 왜 돌아왔느냐”는 집주인의 항의에 방화복도 입지 않은 소방관 10명이 또다시 뛰어들었다.

 

▶얼마 후 굉음과 함께 집 전체가 내려앉았다. 동료를 구하기 위해 소방관 수십 명이 다시 달려들었다. 굵은 눈발 아래 처참한 잔해 속에서 소방관 6명의 시신을 발견했다. 수색을 멈추지 못했다. 애를 태우는 집주인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참 후 아들이 화재 현장이 아니라 친척 집에 있다는 것이 확인되자 구조 작업이 끝났다. 이 아들이 불을 지른 방화범이었다.

 

 

▶이때 순직한 소방관 책상에서 미국에서 유래했다는 ‘소방관의 기도’가 발견됐다. ‘신이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2001년 일어난 홍제동 방화 참사는 소방관의 열악한 처우 문제와 함께 공직의 직업적 소명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이 사회에 던졌다. 이 소방관들의 죽음은 허무했던 것인가? 아들이 방화범이란 사실을 알았어도 불 속에 뛰어들어야 했을까? 이런 상황에서도 목숨을 걸고 한 생명을 구하라는 것이 신의 부름일까? 소방관은 모두 “그렇다”고 한다. 그것이 그 직업의 소명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살기 위해 탈출하는 곳으로 달려들어야 하는 직업이 군인, 경찰, 소방관이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이런 직업의 역할이 빛나는 나라다. 6·25전쟁 이후 연평해전과 천안함까지 수많은 군경의 희생이 없었으면 오늘의 번영도 없었다. 하지만 번영과 안정 속에서 직업적 소명을 잊어버린 군인, 경찰도 많이 보게 된다.

 

▶경기도 평택에서 창고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관 3명이 또 목숨을 잃었다. 화재 진압과 인명 구출만큼 소방관의 안전도 소중하다. 위험한 진압 방식과 관행을 고쳐야 한다. 소방관은 지금 이 사회에서 목숨을 걸고 직업적 소명을 다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다. 2020년 울산 주상 복합 화재 당시 33층 꼭대기에서 구출된 시민이 이렇게 말했다. “연기에 쓰러지기 직전 누군가 나를 붙잡았다. ‘헬멧을 쓴 신(神)인가’ 하며 의식을 잃었다.” 이 숭고함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선우정 논설위원

 
 

01.10(월)  정용진의 멸공

어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군가 인기투표를 했다. 1위가 “높은 산 깊은 골~”로 시작하는 ‘전선을 간다’였다. 2위가 ‘멸공의 횃불’이다. 70년대 중반 보급된 노래로 후렴구가 “멸공의 횃불 아래 목숨을 건다”로 끝난다. 박정희 대통령이 1969년 대만의 ‘자유중국 기념식’에 메시지를 보냈는데, 요지가 “공산 세력이 영원히 붕괴할 때까지 단결하자”였다. 6·25 때 발행된 신문에도 ‘멸공 전선에 총무장하자’ 같은 표현이 보인다.

 

 

▶군 부대도 ‘멸공’을 경례 구호로 썼다. ‘충성·단결·필승’처럼 꽤 퍼져 있었다. 동네 여자애들이 고무줄 놀이할 때 ‘멸공’ 들어간 군가 소리가 섞였고, 반공 포스터 학생 콘테스트에선 표어가 으레 ‘멸공’이었다. ‘공산주의에 반대한다’는 정도를 넘어 아예 ‘뿌리를 뽑는다’는 것이었다. 사변을 겪은 뒤 냉전의 한복판을 살아가던 우리 국민에겐 절박한 사회적 다짐 같은 구호였다.

 

▶'멸공’이 언제부턴가 사라졌다. 지나치게 전투적인 냉전 시대 용어라는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2000년 정상회담 이후 남북 화해 시대가 열리면서 거의 사어가 되다시피 했다. 예비역 모임, 종교 단체 이름에 ‘멸공’이 들어간 사례가 없진 않으나 이미 ‘두루 쓰이는 말’은 아니었다. 옆에서 이 말이 들리면 돌아볼 지경이다. 방송에선 거의 안 쓴다. 마치 ‘괴뢰군’이라는 표현처럼.

 

▶그랬던 ‘멸공’이 요 며칠 새 핫한 단어가 됐다. 지난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인스타그램에 숙취 해소 사진과 함께 “끝까지 살아남을 테다. 멸공!!!”이란 글을 올렸다. 그는 두 달 전에도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표현을 여러 번 써서 주목을 끌었다. 인스타그램은 ‘멸공’이 “폭력을 선동한다”면서 삭제했고, 정 부회장은 “이게 왜 폭력 선동이냐”며 맞섰다. 해볼 테면 해보자고 덤볐다. 그러자 인스타그램이 “시스템 오류였다”며 물러섰고 게시물은 복구됐다.

 

▶조국 전 법무가 정 부회장을 “거의 윤석열 수준”이라고 헐뜯고 나서면서 사태는 대선판으로 번져 있다. 윤석열 후보는 이마트에서 ‘멸치’와 ‘콩’을 골라 장을 봤는데, 누가 봐도 ‘멸공’을 뜻했다. 여당 쪽에선 ‘중국을 자극 말라’며 발끈했지만, 정 부회장은 “오로지 위(북한)에 있는 애들을 향한 멸공”이라고 했다. 어제 야권 관계자들이 릴레이하듯 멸치·콩 사진을 올리며 윤 후보와 정 부회장을 응원하고 있다. 정권이 5년 내내 북한 김정은에게 저자세로 끌려 다닌 데 대한 국민적 반감이 만만치 않다는 뜻일 것이다.

김광일 논설위원

 

01.11  병사 월급 200만원?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페이스북에 '병사 봉급 월 200만원'을 약속하는 글을 올렸다. /윤 후보 페이스북

 

카투사 시절 병장 계급장을 달고 미군 상병을 지휘한 적이 있었다. 군 생활 2년 미만 해놓고 실전 경험까지 있는 5년 차 미군 상병에게 이래라저래라 명령했다. 미군 상병은 속이 뒤틀렸는지 뜬금없이 ‘너 월급 얼마냐’고 물어왔다. 20여 년 전 한국군 병장 월급이 약 2만원, 미군 상병은 1200달러쯤으로 기억한다. 60배 차이였다. 당시 ‘징병제와 모병제 차이’라고 설명했다. 모병제인 미군은 모두 직업군인이다.

 

▶2차 대전 후 일찌감치 모병제로 바꾼 영국과 프랑스 병사 초봉이 200만원 남짓이다. 2년 이상 복무한 일본 자위대 부사관도 그쯤 받는다. 전부 한국보다 잘사는 나라들이다. 우리와 1인당 GDP가 비슷한 대만은 2014년 모병제를 본격화하면서 이병 월급을 120만원으로 올렸다. 하지만 징병제 국가에선 ‘월 100만원′도 찾기 어렵다. 한국처럼 전쟁 위험에 놓인 이스라엘의 전투병 월급이 50만원 수준이다. 독일도 징병제일 때는 병사 월급이 30만~40만원이었다. 지금 한국군 병장은 월 68만원을 받는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그제 “병사 월급 200만원”을 공약했다. 그러자 민주당 이재명 후보 측도 “환영한다”며 작년 말 이미 ‘월 200′을 약속했다고 맞섰다. 작년 국방부가 병장 월급을 2026년까지 10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했는데 대선 한 번 거치면서 ‘따블’로 뛸 판이다. 미군 2년 차 미만 상병이 2100달러 수준이다. 군 생활 1년에 월 200만원이면 세계 최강군 미군 못지않을 것이다.

 

▶징병제는 상시적 안보 위기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병역 의무를 지운 것이다. 국방은 대가보다 의무가 우선하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대선 후보들이 말하는 ‘병사의 최저임금 보장’은 징병제를 끝내고 모병제로 전환할 때 제기될 문제들이다. 징병제 국가 중에도 태국·이집트는 최저임금의 100%를 지급한다고 하지만 월급 50만원 미만이다. 징병제에서 모병제 전환은 기존 군사·안보 체제를 송두리째 바꿔야 하는 일인데도 진지한 고민이나 토론은 안 보인다. 그저 20대 남성 표 얻을 생각뿐이다.

 

▶현재 한국군 하사 초봉이 170만원쯤이다. 병장 월급이 200만원이면 부사관과 장교는 얼마를 받아야 하나. 월급을 연쇄적으로 올리려면 1년에 10조원 가까이 더 들 것이란 추산도 있다. F-35A 스텔스 전투기 40대 도입 예산이 8조원이다. 최첨단 사드 1개 포대도 1조원이면 산다. 무엇이 우선돼야 하나. 조금 있으면 후보들이 군 복무 기간 단축을 들고 나올 차례다.

안용현 논설위원

 

01.12  눈앞에 온 인간 장기 대체 시대

심장 박동이 없어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가슴에 청진기를 갖다 대면 두근거리는 심박동 대신 ‘슥~’ 나직한 기계음이 들린다. 인공심장 펌프 돌아가는 소리다. 국내 200여 명을 포함, 전 세계서 수십만 명의 말기 심장병 환자들이 펌프를 이식받아 살고 있다. 양 옆구리에 매단 배터리가 모터 펌프를 1분에 1만번 고속 회전시켜 전신에 피를 돌린다. 그 덕에 골프를 치고, 계단을 오른다.

 

 

▶코로나 감염으로 폐가 망가진 환자에게 쓰이는 에크모(ECMO)는 일종의 인공 폐다. 정맥 피를 밖으로 빼내 이산화탄소를 제거하고, 산소를 녹여서 대동맥에 넣어준다. 전격성 간염으로 간 기능이 정지되면 며칠 만에 사망하지만 신장 투석하듯 피를 빼내 인공 간에 돌려서 수백 종류의 대사 물질을 해독하는 기술도 있다. 미국서 이런 인공 간이 100여 명에게 시행됐다.

 

▶죽고 사는 문제만이 아니다. 남자 성기에 피가 들어가지 못하거나 밑 빠진 독처럼 피가 빠져나가면 발기가 일어날 수 없다. 이런 사람의 고환 안에 심은 용액 주머니 버튼을 누르면 용액이 성기 속 관으로 흘러 들어가 발기가 된다. 콜라겐 지지체를 이용한 인공 피부는 화상 환자에게 덮인다. 그래도 사람 모발을 대신하는 것은 아직 없다. 모낭은 면역반응이 강해서 동물 털 이식도 힘들다.

 

▶사람에게 돼지 심장을 이식하는 수술이 미국서 처음으로 성공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면역 거부 반응이 없도록 유전자가 변형된 돼지 심장을 말기 심장병 환자에게 이식한 것이다. 수술 3일이 지나 심장 박동이 정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식용 미니 돼지는 사람과 장기 크기나 해부학 구조가 비슷해 이식 장기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돼지 신장이 사람에게 이식됐고, 간세포 덩어리는 인공 간 틀에 쓰인다.

 

▶최근에는 줄기세포로 만든 세포 뭉치들을 낡은 조직에 넣어주는 세포 이식이 활발하다. 망막 세포를 만들어 실명 망막에 찔러주고, 적혈구 대량생산으로 수혈을 대신한다. 심장 근육 역할을 하는 파스를 만들어 병든 심장에 붙인다. 췌장 세포 덩어리를 주입해 혈당을 조절한다. 도파민이 부족한 파킨슨병 환자 뇌 속에 도파민 줄기세포를 심기도 한다. 거의 모든 장기가 교체되는 바야흐로 인간 장기 대체 시대다. 앞으로는 장기 기능 보존보다 대체 장기들을 지니고 다닐 몸통 내구성이 수명에 더 큰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몸이 튼튼해야 첨단 의학도 받아낸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01.13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영화 ‘펠리컨 브리프’에서 주인공인 법학대학원생은 미국 연방 대법관들의 잇단 죽음에 관한 가설을 썼다가 암살범의 표적이 된다. 가설이 진짜였던 것이다. 미국 남부 유전을 개발하려던 업자가 펠리컨 새 보호 소송에 막히자 친환경적인 대법관 둘을 암살했다. 주인공의 애인이 주인공 차를 운전하려다 폭발로 죽는다. 이 업자는 대통령 후원자이기도 해서 대통령은 관련 수사를 막으려고 한다.

 

▲영화 '아수라'의 한 장면

 

▶영화 ‘브로큰 시티’에선 현직 시장의 부인이 남편의 부패를 폭로하려고 한다. 시장은 사설 탐정을 고용해 부인의 불륜을 조사하라고 하지만 실제 목적은 부인이 만나는 사람들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시장의 부패 증거를 확보한 사람은 결국 암살범에게 살해된다. 영화 ‘더블 타깃’에선 대통령 부인을 암살하려던 조직이 비밀을 알게 된 수사관을 자살처럼 위장해 살해하려고 한다. 수사관 손에 강제로 총을 끼워 넣고 방아쇠를 당기게 만드는 기계까지 등장한다.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에선 정보감찰법 통과를 반대하던 상원의장이 정보 당국에 의해 독살된다. 현장 영상을 입수한 주인공을 향해 위성·통신을 총동원한 추적이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친구와 애인이 줄줄이 살해당한다. 이런 영화들은 그야말로 픽션일 뿐이지만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정적이나 반대파를 암살로 제거한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도 실화를 배경으로 했다. 전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을 비판하다 프랑스로 유인돼 피살된다.

 

 

▶영화 ‘아수라’에선 안남시장이 개발 사업과 관련해 측근이 수사를 받게 되자 사고사를 위장해 암살한다. 돈을 받아내려던 형사를 비롯한 관련자들도 추락사 등으로 줄줄이 죽는다. 대장동 사건을 보고 아수라 영화를 떠올렸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대장동 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던 성남도시개발공사 유한기 전 개발사업본부장과 김문기 개발사업1처장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자 그런 말은 더 회자되고 있다.

 

▶'이재명 후보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제기했던 이모 변호사가 서울 한 모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도 없었고 사인도 분명치 않다. 그는 한 달 전 유한기 전 본부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날 페이스북에 “딸 아들 결혼하는 거 볼 때까지는 절대로 자살할 생각이 없다”고 썼던 사람이다. 김 전 처장이 죽은 날에도 “이재명 반대 운동에 나선 분들이 서로 생사 확인한다고 분주하다”고 했었다. 이씨는 병사일 가능성도 높다지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배성규 논설위원

 

01.14  위문편지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해도/ 고마운 우리 국군 아저씨길래/ 정성 들여 위문편지 써 보냈더니/ 고맙다는 답장을 보내왔어요~.’ 아동문학가 강소천의 동요 ‘위문편지’엔 전방 군인들에게 단체로 편지 쓰던 1970년대 교실 풍경이 녹아 있다. 여중·여고생 중엔 ‘이번에는 내 사진도 넣어 보내고~’라는 가사 2절처럼 사진을 넣어 보냈다가 편지를 주고받게 되고 훗날 결혼하는 사례도 있었다.

 

 

▶초등학교 이후 쓴 적 없던 위문편지를 몇 해 전 아들이 입대한 뒤 다시 썼다. 훈련소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해 글을 남기는 ‘인편’(인터넷 편지)은 당일로 배달되니 편리했다. 훈련소 첫날 잠 못 이뤘던 경험을 들려주고 “군대 시계 금방 간다”고 위로했다. 각개전투와 행군을 힘들지 않게 하는 요령도 귀띔해줬다. 다 큰 아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자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편지로는 그게 됐다.

 

▶위문편지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총독부 주도로 초등학생들에게 쓰게 한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그게 이렇게 저렇게 이어져 오다 인터넷과 휴대전화 시대인 지금까지 극히 일부에서 남아 있다고 한다. 교육부나 국방부와는 상관 없는 학교 자율이라고 한다. 외국에도 위문편지 문화가 있다. 제복 입은 이들을 각별히 존중하는 미국에선 초·중등학교 학생들이 주로 해외 파병된 군인에게 편지를 보낸다.

 

▶서울의 한 여고생이 쓴 위문편지 때문에 요 며칠 소셜미디어가 들끓었다. 인터넷에 공개된 편지를 읽어보니 청춘의 한 시기를 나라 위해 희생하는 장병에게 보낼 글로는 부적절했다. 차라리 편지를 안 보내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학교에서 쓰라고 해서 억지로 보낸 위문편지들 중에는 이보다 더 심각한 내용도 있다고 한다.

 

▶그런 한 편으로 요즘 시대에 위문편지는 시대착오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한 세대 전만 해도 남자에게 군 입대는 외부와의 단절을 의미했다. 편지가 주요 연락 수단이기도 했다. 70년대 이전 군 생활은 배까지 고팠다. 고생 그 자체였다. 이런 시대에 위문편지는 군인들에게 작은 위로가 됐다. 부모나 친구·애인과 만나는 것은 고사하고 연락조차 제대로 할 수 없던 시절에 어린 학생들이 보내 온 편지를 읽으면 두고 온 고향 생각이 나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엔 학생들도 정성 들여 고마운 국군 아저씨에게 편지를 썼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군에서도 휴대전화를 쓸 수 있게 된 뒤로 가족 친구와 수시로 통화한다. 이제는 위문편지가 아니라 위문카톡의 시대인가 보다.

김태훈 논설위원

 
 

01.15  여론조사

기원전 472년 그리스 아고라에서 페르시아와의 살라미스 해전 승리의 주역 테미스토클레스에 대한 도편(도자기 조각)추방 투표가 시작됐다. 그가 추방될 거라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정적과 선동가들은 그가 독재자처럼 군다고 일제히 비방했다. 실제로 6000표 이상이 나와 ‘10년 추방형’이 내려졌다. 그런데 도편에 쓰인 글씨체가 상당수 비슷했다. 여론 조작에 투표 조작까지 이뤄진 것이다.

 

 

▶KBS는 2007년 자체 여론조사에서 디지털 전환과 공익성 강화를 위해 수신료 인상이 필요하다면서 적정 액수부터 물었다. 그러곤 57%가 인상에 찬성한다고 발표했다. 2014년 전교조는 신뢰도 조사에서 ‘참교육을 목표로 촌지 근절, 체벌 금지 활동을 해온 전교조를 신뢰하느냐’고 물었다. 2020년 한 방송사는 정부·야당 심판론을 물으며 ‘자기 반성 없이 정부의 발목만 잡는 야당’이라고 했다. 전형적인 ‘답정너’ 여론조사였다.

 

▶여권 입맛에 맞춘 듯한 여론조사도 많다. 2019년 여당 대표는 한 업체를 겨냥해 “여 지지율이 야당보다 10~15%는 높아야 정상”이라고 했다. 그러자 이 업체는 곧바로 여당이 13%포인트 높은 결과를 내놓았다. 친여 성향의 한 업체는 조국 장관 임명 반대 여론이 월등히 높다고 했다가 청와대가 임명을 강행하려 하자 바로 찬반이 비슷해졌다고 발표했다.

 

▶2012년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는 서울 관악을 야권 단일 후보 여론조사를 조작했다. 수백 대 임시 전화를 개설하고 착신 연결을 한 뒤 당원들에게 연령을 속여 답하게 했다. 2016년 한 여론조사 업체는 특정 후보에게 돈을 받고 원하는 수치의 여론조사를 냈다가 적발됐다. 의뢰인에게 “원하는 결과를 내줄 테니 맡겨 달라”고 제의하는 경우가 지금도 적지 않다. 작년 한 업체는 특정 후보 지지를 유도하고 응답 결과까지 조작했다. 덤핑을 하거나 공짜 조사를 해주는 업체들도 많다. 그래서 일부 대선 캠프에선 “차라리 수억원 들여 여론조사 회사를 하나 차리자”는 말까지 나왔다.

 

▶지난 13일 코리아리서치는 3개 회사와의 공동 조사에서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에게 9%포인트 우세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 회사는 같은 날 다른 조사에선 윤 후보가 6%포인트 앞섰다고 발표했다. 한 회사가 한날 발표한 조사 결과가 딴판이었다. 여론조사는 당내 후보 공천의 수단으로 정착돼 있다. 실제 표심 흐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이런 여론조사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 여론 조작을 의심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무리가 아니다.

배성규 논설위원

 

01.17(월) ‘마스크 사기꾼’ 효과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알렉산더 토도로프 교수팀이 타인의 얼굴을 보고 매력을 느끼거나, 나쁜 인간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조사했다. 0.1초도 걸리지 않았다. 첫인상으로 남을 판단하는 것은 인간 본성이다. 윤리적이지 못할 순 있어도 과학적 타당성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살던 인류의 조상은 눈앞에 나타난 짐승이 맹수인지 사냥감인지 한눈에 간파해야 했다. 잘못 판단하면 목숨을 잃었다. 뇌과학에선 이처럼 불충분한 정보를 ‘얇은 조각(thin slicing)’이라 한다. 사람끼리 갖는 첫인상도 그런 얇은 조각 중 하나다.

 

 

▶많은 사람이 첫인상을 결정할 때 눈을 가장 먼저 본다. 니캅(베일)으로 눈 아래 얼굴을 가리는 아랍 여성들은 눈 화장에 온 정성을 쏟는다. 마스크가 일상이 된 코로나 사태는 이런 눈 화장을 세계적 신드롬으로 만들었다. 한국 홈쇼핑 채널들은 “지금은 눈썹이 정말 중요한 시대”라며 눈 화장 제품을 판다. 눈 화장품 매출이 코로나 이전보다 90% 이상 증가했다는 통계도 있다. 마스크 쓰고 면접장에 가는 청년은 좁은 취업 문을 뚫기 위해 눈 트임 같은 눈매 교정 수술도 받는다.

 

▶얼굴 일부를 가린 이성을 민얼굴 이성보다 매력적으로 보는 현상을 ‘마기꾼(마스크+사기꾼)’ 효과라고 한다. 영국 과학자들이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여성 43명을 대상으로 남성의 매력을 평가하게 했더니 매력적이지 않은 남성의 점수가 민얼굴 때는 1.8점에 머물렀지만, 마스크를 쓰면 2점을 넘기는 거로 나타났다. 보이지 않는 부분을 자기에게 편리하게 해석하려는 인간 뇌의 편향성이 발현된 것이다.

 

▶제한된 정보만 주는 이성에게 호감을 느끼는 심리는 남녀가 적극적으로 짝을 찾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반면 선거에선 불합리한 선택을 조장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에서 상·하원 의원 선거에 처음 출마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유권자 호감도를 조사했더니 호·불호를 결정하는 데 걸린 시간은 5초에 불과했으며, 주로 외모와 말투 등으로 판단했다. 이는 투표 결과에도 반영됐다.

 

▶다행히도 ‘얇은 조각’ 효과는 지속적이지 않다. 반복적으로 만나는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것은 마스크 너머 눈빛이 아니라 약속 지키기라고 한다. 특히 첫 번째 약속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행동에도 첫인상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시민들과 달리 현대 유권자는 후보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투표장에 가기 불가능하다. 부족한 인상 정보에 좌우되기보다 어떤 후보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 따져볼 일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01.18 후보 아내 리스크

세상에 별의별 정치인이 많은 것처럼 정치인 아내도 다양하다. 대부분은 조용한 내조 역할을 한다. 트루먼 대통령의 부인 엘리자베스는 “대중 앞에서 아내가 할 일은 남편 옆에 조용히 앉아 모자를 제대로 쓰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는 반대 민심을 남편에게 전달하고 각종 민원 편지에 일일이 답했다고 한다. 한국 대통령 부인 상당수가 ‘육영수 스타일’을 지향했지만 좋은 평가를 받은 사람은 별로 없다.

 

1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국민의힘 부인 김건희씨의 녹취 보도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뉴시스

 

▶악명을 떨친 아내도 적지 않다. 짐바브웨의 독재자 무가베 대통령의 아내 그레이스는 한 가게에서 1억원 넘게 쇼핑할 정도로 방탕한 생활을 하다 나중엔 자신이 권력을 행사했다.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도 비슷하다. 가로세로 21m의 방을 2200켤레의 구두로 채웠다.

 

▶튀는 언행의 부인들도 있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아내 카를라 브루니는 “일부일처제에 싫증 났다”고 하더니 가수와 바람을 피웠다. 질투와 히스테리가 심했다는 링컨 대통령 부인은 “죽은 사람과 대화했다”고 주장했다. 하토야마 일본 총리의 부인 미유키도 “외계인에 납치돼 금성에 다녀왔다”고 횡설수설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아내 김건희씨가 친여 유튜브 이모씨와 52차례 7시간 45분에 걸쳐 통화한 내용이 공개됐다. 공개가 적절한 지 여부를 떠나 자신이 정치를 잘 알고 직접 개입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고서는 나오기 힘든 말들이 있다고 한다. 김씨의 경력을 보면 일반인 이상의 정치 지식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 자신이 잘 알고 다 안다는 식의 자신감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궁금하다. 김씨와 6개월 동안 ‘누님’ ‘아우’라 부르며 대화를 나눈 사람은 대검찰청 앞에서 다른 유튜버를 발로 차고 폭행했던 사람이다. 그렇게 정치를 잘 안다면 어떻게 이런 사람에게 속아 넘어갔겠나.

 

▶김씨가 윤 후보를 무시하는 듯한 말을 공개된 곳에서 마음대로 하는 것을 듣고 놀랐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일부에선 그런 김씨에게 ‘화끈하다’는 식의 호평을 하기도 한다. 사사로운 부부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유력한 대선 후보 중 한 사람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윤 후보는 이런 김씨를 제지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이 관여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지금 김씨의 녹취록이 일부 공개되면서 예상과는 달리 효과가 크지 않자 국민의힘은 안도한다고 한다. 하지만 김씨의 언행을 이렇게 방치하면 언제든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국민의 시선을 두려워해야 한다.

배성규 논설위원

 

01.19  만병통치 대선 공약

▲그래픽=백형선

 

틀니, 보청기, 임플란트 지원은 역대 선거에서 단골 공약이었다. 고령층 표를 공략하기에 좋은 소재라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후보의 관련 공약은 ‘65세 이상 저소득층 노인 틀니·보청기 지원’이었다. 지금 보면 소박한 정도다. 임플란트 건강보험 적용은 2014년 75세 이상에서 2015년 70세, 2016년 65세로 조금씩 대상이 늘어났고 본인 부담금도 50%에서 30%로 내렸다.

 

▶틀니·보청기 등 공약은 양념 성격이어서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박근혜 정부의 4대 중증 질환 보장 강화, 현 정부의 ‘문재인 케어’ 등은 나름 건보 정책의 큰 방향을 제시한 공약이었다. 그러나 이번 대선 들어 확 달라졌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탈모 치료약과 모발 이식 건보 적용을 공약한 것을 시작으로 구체적인 질환 관련 공약이 늘어나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17일 연속혈당측정기 건보 적용 대상을 기존 제1형 당뇨병 환자에서 임신성 당뇨병, 성인 당뇨병 환자 등 제2형으로까지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도 전 국민 건강검진에 정신 건강 검진을 추가하고 정신 건강 의료비 90%를 건보로 보장하겠다고 했다.

 

 

▶국내 탈모인을 1000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내 당뇨병 환자는 330만명이 넘는다. 30세 이상 성인 7명 중 1명 정도가 당뇨병을 앓고 있다. 정신·행동 장애 치료를 받은 사람도 340만명이다. 캠프 입장에서는 이들을 핀셋 공략할 수 있으니 구미가 당길 만도 하다. 대선이 50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어느 후보도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약의 신천지가 생긴 셈이다.

 

▶그러나 ‘치료 목적에 충실’이라는 건보 적용의 큰 원칙이 무너지려고 하자 곳곳에서 그럼 왜 우리 쪽은 건보 적용을 안 해주느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성형·비만이 대표적이다. 670만 고혈압 환자, 470만 관절염 환자도 관련 공약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대선이 만병통치약 파는 마당이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후보와 캠프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질병 건보화 여부는 건강보험평가위, 건강보험정책심의위 같은 기구의 검토와 승인이 필요하다. 공약한다고 실현 가능성을 장담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또 각종 통계는 3년 후인 2025년 건보 재정 고갈을 예고하고 있다. 더구나 탈모같이 불요불급한 것에 대한 급여화 추진은 암 환자처럼 힘들게 병마와 싸우는 환자와 가족들의 반발을 살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김민철 논설위원

 

01.20  한·일 유전 개발 경쟁

우리가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란 말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한 것이 동해-1 해양 가스전이었다. 1998년 한국석유공사가 울산에서 동남쪽으로 58㎞ 떨어진 해저에서 가스 시추에 성공해 2004년부터 생산에 들어갔다. 그 덕에 한국은 세계 95번째 ‘산유국’이 됐다. 하루 34만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가스와 자동차 2만대분의 초경질유를 생산했다. 인근에 추가로 개발한 동해-2 가스전은 2016년부터 가스를 생산했다. 작년 말로 이 동해 가스전은 생산을 마무리했다.

 

 

▶일본이 동해 EEZ(배타적 경제수역)에서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 시추에 나선다고 한다. 일본 시마네현에서 북서쪽으로 130㎞, 포항에서는 160㎞ 떨어진 지점이다. 상업성이 확인되면 2027년 개발 준비에 착수해 2032년쯤 천연가스를 생산하겠다고 한다. 일본이 1990년 니가타현 앞바다에서 생산을 개시한 이후 30여년만에 자국 인근 바다에 해양 가스전을 개발하는 것이다.

 

▶동해 못지않게 한국과 일본 사이 해저 자원 개발의 이해관계가 첨예한 곳이 제주도 남단 동중국해에 있는 제7 광구다. 1968년 작성된 미국 해양연구소의 ‘에머리 보고서’에서는 동중국해에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석유 자원이 매장돼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석유 매장량이 사우디아라비아의 10배라는 주장도 있다.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이 제7 광구 영유권을 선포했다. 일본의 허를 찌른 선제 선언이었지만 해저 자원을 개발할 돈과 기술이 없었다. 결국 한·일 양국이 7광구를 공동 개발하기로 1978년 50년짜리 협정을 맺었다.

 

▶양국이 공동 시추한 제7 광구 7곳 중 3곳에서 석유와 가스가 나왔다. 1980년대 온 국민이 산유국 꿈에 부풀었다. “제7 광구, 검은 진주~”라고 강렬하게 후렴구를 외치는 유행가 ‘제7 광구’까지 나왔다. 하지만 경제성이 없다며 일본이 손을 뗐다. 한국이 공동 개발을 요청해도 미적댔다. 그새 국제해양법이 바뀌어 대륙붕 대신 배타적경제수역 개념이 등장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이 훨씬 유리해졌다. 1978년 발효된 한일 대륙붕 공동 개발 협정은 2028년 만료된다. 제7 광구의 80%가 일본 쪽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새 중국도 7광구 인근에서 유전 개발에 성공했다.

 

▶우리나라 유일의 울산 앞바다 해양 가스전이 생산을 종료한 시점에 공교롭게도 일본이 동해에서 해양 가스전 개발에 나설 것이라는 뉴스가 심상치 않다. 한·일, 그리고 한·중·일 사이에서 벌어질 바다 자원 전쟁의 서막을 보여주는 듯하다.

강경희 논설위원

 

01.21  예술가의 핏줄

화가 박수근은 평생 가난했다. 아들 성남은 아버지와 다른 길을 가겠다며 공고에 입학했다. 고3 때 아버지가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유작전에 걸린 그림들 앞에서 성남은 고백했다. “아버지, 저도 화가가 될래요.” 그 후 독학으로 그림을 배워 국선에 7차례 입상했다. 박성남 화백의 장남 진흥도 화가의 길을 택했고 누나 인숙과 조카 천은규도 화가다. 3대가 화가 집안이다.

 

 

▶재작년 별세한 한국화의 거장 서세옥은 한학자 아버지의 지도로 한문 서적에 파묻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자라서 부친과 다른 길을 걸었지만 우리 것을 사랑하는 피는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아버지에게 배운 서예에 스승인 김용준의 묵법 화풍을 접목해 평생 화업의 지향으로 삼았다. 서울 성북동 자택에 창경궁 연경당을 본뜬 한옥도 지었다. 세계적 설치미술가인 장남 서도호의 ‘한옥’은 이런 토양에서 키운 결실이다.

 

▶부부가 다채로운 사연을 빚고 아름다운 예술품을 낳기도 한다. 운보 김기창의 아내인 화가 박래현은 언어 장애를 가진 남편의 뜻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독순술과 구화를 익혔다. 자식도 넷 낳아 키우면서도 밤잠 줄여가며 그림을 그렸다. 운보는 그런 아내를 ‘밤 부엉이’라 불렀고 아내를 부엉이로 형상화한 작품도 남겼다. 박래현이 그림에만 몰두했으면 더 큰 작품들을 남겼을 것 같다.

 

▶대지(大地) 미술가 부부인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는 1935년 6월 13일로 생일이 같다. 반세기 동안 함께 세계를 돌아다니며 파리 퐁뇌프 다리, 베를린 제국 의회 건물 등을 천으로 감쌌다. 부부가 함께 작업하기로 약속했던 ‘포장된 개선문’은 아내가 먼저 세상을 뜨고 홀로 작업하던 남편마저 재작년 별세하며 위기를 맞았다. 그걸 크리스토의 조카 블라디미르가 이어받아 지난해 9월 파리 시민 앞에 공개했다.

 

▶서울 광화문의 복합 문화 예술 공간 아트조선스페이스가 20일 개관 기념 특별전 ‘잊다, 잇다, 있다’를 개막했다. 1989년 타계한 한국 색면 추상의 대가 하인두와 그의 딸인 중견 작가 하태임 부녀전이다. 진중하고 사색적인 아버지의 작품들과 밝고 경쾌한 곡면의 색띠가 화폭에 펼쳐진 딸의 ‘통로’(Un Passage) 연작은 다르면서도 닮았다. 전시장에 가보니 하인두 화백이 타계 1년 전 그린 ‘역동의 빛’이 맨 먼저 눈을 사로잡았다. 한 바퀴 돌아 마주 선 마지막 작품도 그가 1954년 그린 ‘자화상’이다. 딸의 작품은 그 중간에 배열돼 있다. 예술가의 시작도 끝도 아버지라고 말하는 듯했다.

김태훈 논설위원

 

01.22 드라마가 죽인 말

말은 서부영화, 전쟁영화, 사극의 단골 배우다. 전쟁터를 달리다 쓰러지고 총과 대포에 맞아 죽는 위험한 배역도 자주 맡는다. 그러다 목숨도 잃는다. 서부영화 ‘제시 제임스’에 출연한 말은 주인공과 함께 20m 절벽 아래 강으로 떨어지는 장면을 찍다가 익사했다. 결국 큰 사고가 터졌다. 한 영화에서 말이 무더기로 고꾸라지는 장면을 찍기 위해 쇠줄을 썼는데 넘어진 말 25마리가 몰사하는 참사가 빚어졌다. 두 사건 모두 1939년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동물 복지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줄을 써서 말을 넘어뜨리는 촬영 기법도 거의 자취를 감췄다.

 

 

▶서커스도 동물 학대 논란에 휩싸인다. 국제동물보호단체가 2009년 볼리비아의 한 서커스단에 잠입해 동물들이 쇠사슬에 묶여 채찍질과 전기 충격을 당하는 모습을 촬영해 폭로했다. 볼리비아 정부가 서커스에 동물 사용을 금지했다. 이후 40여 나라가 동참했다. 146년 역사를 자랑하던 미국의 유명 서커스단도 새끼 코끼리를 쇠꼬챙이로 찔러가며 훈련하는 사진이 공개되며 2017년 문을 닫았다.

 

▶KBS 사극 ‘태종 이방원’에 출연한 말이 태조 이성계의 낙마 장면 촬영 도중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이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공개된 동영상을 보니 기가 막힌다. 다리에 줄을 매달고 달리던 말은 줄이 당겨지자 바닥에 머리부터 나뒹굴며 목이 크게 꺾였다.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일어나지 못하고 발만 버둥거렸다. 말 등에 탔던 배우도 튕겨 나갔다. 너무 무모하고 위험한 장면이어서 보고도 믿기 힘들 정도였다.

 

▶KBS는 “사고를 통해 낙마 촬영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다른 촬영 방법을 찾겠다”고 했다. 어이없는 해명이다. 미국이 쇠줄을 퇴출시킨 게 80여 년 전이다. KBS가 16년 전 제작한 ‘용의 눈물’과 8년 전 방영한 ‘정도전’에도 이성계의 낙마 장면이 나오지만 모두 말을 쓰러뜨리지 않고 비교적 안전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안전한 촬영법을 몰라서라기보다는 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연민이나 안전에 대한 기본적인 고려가 없어서 빚어진 사고다.

 

▶한류 팬들은 “아카데미상 받고 ‘오징어 게임’ 찍은 나라 맞냐”고 한다. ‘태종 이방원’은 KBS가 “수신료의 가치를 입증하겠다”며 5년 만에 선보인 사극이다. KBS 게시판에는 “내 수신료 받아서 말을 죽이느냐”는 항의도 이어지고 있다. 수신료 가치를 증명하려면 정권 응원단식 보도부터 먼저 바꿔야 한다. 말 못하는 짐승의 생명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세상은 바뀌고 있고 여기에 뒤처지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김태훈 논설위원

 

01.24(월)  코로나 엔데믹

‘엔데믹(endemic)’은 주기적으로 발생하거나 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을 뜻한다. 현재 팬데믹 상태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감기나 독감처럼, 대규모 감염을 일으키지 않고 사회의 각 기능이 작동하는 데 차질을 일으키지 않는 정도로 파괴력이 낮아진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인류의 관심은 지금 오미크론 변이가 팬데믹의 끝, 그러니까 엔데믹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일까 하는 점에 쏠려 있다.

 

 

▶영국은 요즘 하루 10만명의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27일부터 실내 마스크 착용, 백신 패스 등을 중단하기로 했다. 확진자 자가 격리를 규정한 법이 3월 24일 만료하지만 더 이상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코로나를 독감 같은 엔데믹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사지드 자비드 영국 보건부 장관은 “독감이 심한 해에는 약 2만명이 사망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라 전체를 봉쇄하거나 많은 규제를 가하진 않는다”고 했다. 영국의 이런 조치는 12세 이상 인구 대비 64%가 부스터샷까지 맞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영국만 아니라 남아공·미국 등에서도 오미크론 변이의 폭발적인 확산세가 한풀 꺾인 듯한 모습을 보이자 코로나가 엔데믹 국면으로 옮겨가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 CNN은 작년 11월 말 오미크론이 출현하면서 세계가 최악의 상황을 두려워했지만 지금은 이런 프레임이 다소 바뀌었다고 22일 보도했다. 오미크론의 중증화율이 델타 변이의 3분의 1, 적게는 5분의 1 정도라는 점이 핵심 근거다. 덴마크와 스페인 등도 국가 방역을 엔데믹 체제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리스 알파벳 순서에서 오미크론 다음은 파이(pi)다. 오미크론이 진정 단계에 진입하더라도 엔데믹으로 갈 수 있는 핵심 전제조건이 있는데 새로운 변이, 즉 파이 변이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NIAID) 소장도 “기존 변이의 면역반응을 회피하는 또 다른 변이가 등장하지 않을 경우에만 오미크론이 팬데믹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변이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라는 전제가 틀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있다. 베타·감마·델타 변이가 등장했듯, 아프리카·동남아 등처럼 백신 접종률이 낮은 지역이 남아 있는 한 상당히 파괴력 있는 변이가 등장해 퍼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는 이제 오미크론 대확산의 초기에 진입해 엔데믹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사치일지 모른다.

김민철 논설위원

 

01.25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포비아’

러시아에 우크라이나는 피를 나누고 역사를 공유한 형제다. 두 나라의 뿌리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중심으로 9세기에 등장한 키예프 공국이다. 조상도 스칸디나비아에서 이주해 온 루스족(族)으로 같다. 레닌과 함께 소비에트 혁명을 주도한 트로츠키 전 소련 외상과 브레즈네프 전 서기장은 모두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러시아가 자국 영토인 크림반도를 1954년 우크라이나에 넘긴 것도 두 나라 사이에 경계따윈 필요 없다는 형제애의 발로였다.

 

 

▶러시아는 ‘루스인의 땅’이라는 뜻이다. 우크라이나도 한때 ‘우크라이나 루스’를 자처했다. 더는 아니다. 우크라이나 흑토(黑土) 지대는 아르헨티나 팜파스, 북미 프레리와 함께 세계 3대 곡창지대다. 비료 없이도 곡식이 자란다. 그런데 1930년대 스탈린이 밀어붙인 집단농장 실패로 우크라이나인 수백만 명이 굶어 죽었다. 스탈린은 흑토에서 난 농작물을 팔아 러시아 산업화 밑천으로도 썼다. 푸틴은 크림반도를 도로 빼앗았다. 두 나라는 원수가 됐다.

 

▶우크라이나의 ‘크라이나’는 ‘땅’ 또는 ‘변경’이란 뜻이다. 강대국들 사이에 낀 지정학적 상황이 국명에 들어 있다. 그로 인한 고통이 컸다. 러시아 등 주변 유럽 국가들에 여러 번 분할 점령당했다. 2차대전 때는 ‘유럽의 빵 공장’을 노리는 히틀러와 ‘러시아의 식량 창고’를 지키려는 스탈린 사이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드넓은 평야에 밀 대신 피가 흥건했다.

 

▶친서방 노선을 택한 우크라이나가 서유럽 군사동맹인 나토(NATO)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좌시하지 않겠다며 무력을 앞세워 위협하고 있다. 미국은 엊그제 자국 대사관 직원 가족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 러시아의 침공 위협에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루스의 혈통’으로 다시 묶이기를 거부한다. 우크라이나 국민 64%가 나토 가입을 바란다는 여론조사도 있다.

 

▶1989년 민주화 벨벳 혁명을 시작한 체코의 모토가 ‘유럽으로의 복귀’였다. 러시아로부터의 탈출이었다. 유럽연합(EU) 가입도 추진했다. 법치·시민권·자유에 대한 서유럽 기준을 충족하는 문명국이 되겠다는 염원이었다. 동구권 국가들은 지금도 러시아 포비아(공포증)를 토로한다. 훈련차 온 미군에게 이들 나라 국민은 ‘당신은 너무 늦게 왔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걸어 환영했다. 푸틴은 지금 옛 소련의 영토를 야금야금 되찾아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고 한다. 피를 나눈 이웃의 마음도 얻지 못하는 나라, 함께했던 다른 나라들이 몸서리치는 그런 나라의 ‘영광’이란 무엇일까.

김태훈 논설위원

 

01.26  가짜 명품족

“현재 시각 새벽 2시10분, 샤넬 오픈런 줄 서러 왔습니다. 지금 제 뒤로 텐트들이 있고 줄이 조금씩 더 길어지고 있어요. 원래 ‘신본’하면서 가까운 ‘롯본’도 대기 걸어놓는다는데 저는 신본만 하고 갈 겁니다.” 한 여성이 ‘샤넬 입장까지 10시간 대기’라는 제목의 영상을 유튜브에 띄웠다. 명품 구매족들 사이에서는 ‘신본’ ‘신강’ ‘롯본’ ‘압현’ 같은 말이 통용된다.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강남점, 롯데백화점 본점,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의 줄인 말이다. 유튜브나 인터넷에는 백화점 명품 매장 문 열자마자 쇼핑하는 ‘오픈런’ 경험담이 넘쳐난다.

 

 

▶코로나 불황에도 값비싼 명품 브랜드가 날개 돋친 듯 팔린 덕에 매출 1조원을 넘긴 백화점이 1년 새 곱절로 늘어 10곳이 됐다. 코로나 ‘보복 소비’에, MZ 세대로 불리는 2030 젊은 층까지 명품 소비에 가세했다. 샤넬은 작년에만 네 차례 값을 올렸다. 하룻밤 새 가방 값이 100만원이나 오르니 하루라도 먼저 사는 게 이득이라는 ‘샤테크’(샤넬+재테크) 심리까지 더해져 명품 소비가 폭발했다. 한정판 운동화를 사서 되파는 ‘슈테크’에 롤렉스 시계에 투자하는 ‘롤테크’도 등장했다.

 

▶지난해 중국 베이징 중앙예술원의 한 여대생이 가짜 사치품을 걸치고 부잣집 딸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21일간 호텔과 공항VIP 라운지 등에서 무전취식한 동영상을 졸업 작품으로 내놨다. 가짜 다이아 반지 끼고 가짜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고급 요리가 제공되는 경매장에서 비싼 보석도 착용해 보고 공항 VIP 라운지의 공짜 음식도 즐겼다. 명품을 걸치면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대접받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의 이성 교제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기가 급상승한 20대 여성 유튜버가 가짜 명품을 착용하고 나온 것 때문에 논란의 중심에 섰다. 유튜브 구독자 191만명, 인스타그램 팔로어 370만의 인플루언서였던 이 여성의 유튜브 계정에는 예전 화려한 영상은 보이지 않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나와 사과하는 영상만 달랑 떠있다. 빼어난 외모에, 금수저 가정에서 태어난 데다,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해 명품만 소비하는 ‘명품 인생’처럼 포장했는데 옷과 목걸이뿐 아니라 보여진 삶 자체가 가짜였다고 의심 받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명품은 인간의 허영심을 겨냥한 산업이다. 그래서 명품을 살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을 겨냥한 짝퉁 산업도 근절되지 않는다. 명품 소비가 명품 인생을 만들어줄 것이라는 막연한 동경이 하룻밤 새 사라지는 신기루 같다는 걸 보여주는 듯하다.

강경희 논설위원

 

01.27  “살려주식시오”

워런 버핏의 오랜 동업자 찰스 멍거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은 투자에 성공하기 위한 비결을 물으면 책 한 권을 권한다. 심리학자인 로버트 치알디니가 쓴 ‘설득의 심리학’이다. 투자와는 무관한 심리학 책인데도 멍거는 이를 경전처럼 신봉한다. 주식 투자에 성공하려면 심리부터 다스려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책은 사람들이 그릇된 결정을 내리는 심리적 요인을 분석한다. 그중 하나가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다.

 

 

▶요즘 주식 시장은 공포에 뒤덮여 있다. 주가가 급락해 ‘멘붕’에 빠진 투자자가 많다. 한국 증시가 유난히 많이 하락하자 ‘이것이 진정한 K증시인가’, ‘바닥 아랜 지하가 있더라’ 같은 하소연이 주식 게시판에 대거 올라온다. 과거의 주식 투자 실패기를 담은 책 ‘살려주식시오’를 쓴 정신과 의사 박종석씨는 최근 페이스북에 “주식 우울증으로 상담을 받으러 온 분이 많아 안타깝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조언한다. “폭락장에서 초보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주식 앱을 지우라.”

 

▶박종석씨도 주식 투자로 인생을 날릴 뻔했다. 5년간 3억2000만원을 잃고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다가 가까스로 회복했다. 정신과 의사인데도 막대한 손실 앞에선 멘털이 무너지더란다. 그는 하락하는 시장에서 멘털을 지키는 방법이 공황장애 치료법과 흡사하다고 썼다. 공포의 원인을 찾아 제거하지 않으면 부수적 피해가 더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그가 한 인터뷰에서 한 얘기다. “물타기(하락 주식 추가 매입)도 손절도 안 된다. 한 달만 모든 것을 잊고 본업에 충실해서 추가 재난을 막아라.”

 

▶코로나 이후 급상승장에서 처음 투자를 시작한 이른바 ‘주린이’라면 지금의 증시 급락 상황이 재난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10% 정도의 증시 하락은 한 해 한 번꼴로 드물지 않게 있는 일이다. 지난 2년 동안의 큰 상승이야말로 이례적인 사건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뱅가드의 설립자 잭 보글은 생전 이렇게 조언했다. “투자의 성공은 당신의 성격과 배포, 그리고 짜릿한 폭등과 좌절의 폭락장에서도 ‘이 또한 지나간다’고 인식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렸다.”

 

▶'주식하는 마음’을 쓴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는 마음의 평화 또한 투자의 비용이라고 말한다. 큰돈을 벌 가능성이 있다 한들 종일 불안에 시달린다면 다시 생각해보란 얘기다. 전문가들은 분산·장기투자가 이런 불안한 시기에 마음의 평화를 지켜줄 도구라고 조언한다. 변동성에 따른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힘들다면 눈높이를 낮춰 예금 쪽으로 가야 한다.

김신영 경제부 차장·논설위원

 

01.28  염색 샴푸 논란

가발을 한 번 사면 오래 쓰는 줄 알지만, 가발도 1~2년에 한 번씩 바꾼다. 인모라도 모낭 없는 모발이어서 오래되면 푸석푸석해진다. 대개 가발 쓰는 나이에 흰머리도 늘기 시작하기에 가발과 생모의 은발 비율을 같게 조정할 필요도 있다. 얼굴에 화장 잘 받는 날이 있듯이 가발 잘 쓰이는 날이 있다니, 이왕 쓰는 거 잘 써야지 싶다. 모발 이식 의사들은 평생 가발 살 비용을 생각하면 머리 심는 게 낫다고 말한다.

 

 

▶머리카락 색은 모낭 속 멜라닌 세포 양으로 결정된다. 많을수록 짙다. 세월 따라 흰머리가 느는 것은 노화로 생긴 활성산소가 두피 모낭의 멜라닌 세포 수와 기능을 떨어뜨린 탓이다. 금발도 은발이 된다. 흰머리는 옆머리, 정수리, 뒷머리 순으로 난다. 나중에는 수염과 눈썹도 하얘진다. 움직일 때 마찰을 줄여주는 겨드랑이나 음모 털은 실버화가 가장 더디다.

 

▶염색하고 나서 시력이 떨어졌다며 백발로 다니는 어르신들이 꽤 있다. 염색 자주 하면 방광암에 걸린다는 얘기도 있다. ‘dye or die’(염색하느냐, 죽느냐)라는 말이 있듯이, 발암 가능성은 논란이 됐다. 염모제에 방향족 아민 등 화학물질을 쓰는데, 이게 피부 접촉 등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와 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것이다. 미용사처럼 매일 오랜 기간 염모제에 노출된 경우는 방광암 발생 위험이 다소 높다고 나온다. 가정용 염모제 수준에서는 암 발생률이 높아지지 않는다.

 

▶머리를 감기만 해도 흰머리가 검게 물든다 해서 인기를 끌던 ‘모다모다’ 샴푸가 퇴출될 전망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엊그제 샴푸 원료에 유전독성이 있는 ‘00벤젠’ 염모제 성분이 있다며, 이를 화장품 사용 금지 목록에 올렸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화장품학 박사 출신 기자의 추적 보도로 시작됐다. 샴푸를 쓴 사람들에게서 손도 검어졌다는 불만을 보고, 샴푸에서 유럽서 사용이 금지된 염모제 성분을 찾아낸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흰머리 염색을 위해 암소 피, 말린 올챙이 기름 등 각종 재료가 쓰인 기록이 있는 것으로 봐서 염색의 역사는 깊다. 사람들은 머리카락이 하얗게 되면 젊음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19세기 말부터 화학 성분 염모제 사용이 본격화 됐다. 고려 후기 문신 우탁은 늙어감을 한탄한 ‘탄로가’(歎老歌)를 쓰며, 아무리 늙지 않으려고 해도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고 했다. 가는 세월을 그 무엇으로 쉽게 잡을 수가 있겠나.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01.29(토)  건설공사 중단 부른 ‘1호 포비아’

2016년 9월 시행된 김영란법은 국민 400만명에게 ‘1호 공포’를 안겨줬다. 법 적용 대상이 애초의 공무원에서 교사, 언론인 등 총 240만명과 그 배우자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바뀌자 식사 약속, 축하 난, 선물 주문 취소가 잇달았다. 그런 와중에 ‘1호 위반자는 망신당하고 직장에서도 문제가 될 것’이란 ‘1호 포비아(phobia·공포증)’가 일어났다. 결국 1호 위반자는 자신의 고소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에게 감사 표시로 떡을 보낸 사람이었다.

 

 

▶2004년 시행된 성매매방지법도 커다란 1호 포비아를 불러일으켰다. 1호 적발에 대한 공식 기록은 없지만 적발 업소에서 유출된 고객 명단을 장사 밑천으로 삼는 범죄꾼도 생겼다. 몇 해 전 광주에선 “인터넷 성매매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해 49명에게서 10억원을 뜯어낸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국내 코로나 1호 확진자는 중국 우한시에서 입국한 중국 여성이었다. 코로나가 확산되자 직장인들은 ‘사내 1호 확진자’가 될 것을 몹시 두려워했다. 사태 초기엔 확진자 1명이 나와도 직장 전체가 마비될 수도 있을 정도였다. 그 비난을 혼자 뒤집어쓸까 전전긍긍했다. 당시 서울대 연구팀이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확진될까 두렵다(58%)’보다 ‘확진자로 비난받고 피해 입을 것이 두렵다(68%)’는 대답이 더 높았다.

 

▶27일 중대재해 처벌법이 시행되면서 건설업계가 ‘1호 포비아’에 시달리고 있다. 산업재해로 근로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면 최고경영자(CEO)에게 징역 1년 이상 형벌을 가하는 세계 최강의 산업재해 처벌법 탓이다. 고용노동부가 기업을 돕겠다며 안전 확보를 위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배포했는데, 400개 이상의 점검 항목에 놀란 기업 안전 담당자들이 ‘감당 불능’을 하소연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CEO가 현장의 사고를 다 알고 일일이 책임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기업들은 1호가 되면 기업 이미지 실추뿐 아니라 ‘시범 케이스’로 가중 처벌될 위험이 높아 “무조건 1호는 피하자”고 야단이다. 국내 5대 건설사에 속하는 현대·대우건설은 27일부터 전국의 공사를 전면 중단하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중소 건설사 중에도 ‘공사 일단 중지’를 택하는 경우가 많아 건설 일용직 근로자들이 새벽 인력 시장에 나왔다가 허탕을 치는 경우가 급증했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도 양대 건설노조에선 안전관리자를 자기네 사람으로 채용하라고 건설사를 압박하고 있다 한다. 재해 처벌법이 만든 풍경들이다.◎

홍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