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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토의 소식 15/ 2021.07.03 [단독]北 ‘코로나 국경봉쇄’ 1년만에 中과 교역 일부재개 - 12.23 北여군 극단선택…12장 유서에 담긴 '상관 성폭행' 끔찍했다

상림은내고향 2022. 1. 5. 13:41

동토의 소식 15/ 2021.07.03 - 

07-03 [단독]北 ‘코로나 국경봉쇄’ 1년만에 中과 교역 일부재개

 북한이 북-중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최근 중국과 제한적으로 물자 교류를 재개했다. 여전히 국경 폐쇄 상태를 유지한 채 ‘비공식적인’ 교역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그동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대한 공포로 1년 넘게 국경을 봉쇄해왔다. 일각에선 이러한 교역 재개가 11일 북-중 우호협력조약 60주년을 앞두고 양국이 공조체제를 다지는 신호라는 해석도 나온다.

 

2일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북-중 무역 거점 도시인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시 등을 중심으로 지난달 말 일부 물자가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교류는 육로로 매우 제한적인 수준에서 비정기적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이동 인력은 최소화하고 식량 등 생필품을 중심으로 주로 중국에서 북한으로 물자가 흘러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北, 식량난에 주민들 불만 폭발… 코로나 공포에도 中에 손 내민듯 

北, 中과 교역재개

 

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공포를 무릅쓰고 중국과 제한적 교역에 나선 건 결국 그만큼 경제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지난해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퍼져나가자 일단 국경부터 신속하게 차단했다. 전체 대외 무역의 90%를 상회하는 대중(對中) 교역까지 차단한 ‘봉쇄령’은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보릿고개로 불리는 춘궁기까지 최근 거치면서 주민 생활은 더욱 궁핍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 외교 소식통은 “쌀 등 가격이 2배 이상 치솟은 생필품이 급증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소집해 코로나19 방역 관련 ‘중대 사건’을 이유로 핵심 간부들을 강하게 질책했다. 이를 두고 방역 통제 장기화로 식량난이 심각해져 주민들의 불만이 폭발하자 간부들에게 그 책임을 돌린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결국 북한은 당장의 위기 극복을 위해 사실상 유일한 우군(友軍)인 중국에 손을 내민 것으로 풀이된다. 코로나19 버티기가 힘에 부치자 물자 조달에 나섰다는 의미다. 다만 코로나19 공포가 여전한 데다 비축한 물자가 남은 만큼 아직은 필수품 중심으로 비정기적으로 최소한의 교역만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경 봉쇄 상태도 일단 유지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북-중의 이러한 교역 재개가 양국 관계를 돈독하게 다지는 일종의 상징적 움직임이란 해석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1일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축전을 보내 “중국 공산당과 굳게 단결해 시대의 요구에 맞게 북-중 친선을 발전시킬 것”이라고 했다. 중국 역시 코로나19 백신 지원 의지를 표명하는 등 북한과의 관계에 최근 더욱 공을 들이는 모양새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존재 역시 양국이 물자 교환 등을 중심으로 밀월 관계를 다지는 데 영향을 끼치는 변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은 악화일로에 있는 대미(對美) 관계 속에서 북한을 일종의 레버리지(지렛대)로 활용할 여지가 있다. 정부 당국자는 “향후 미국이 북한과 협상판에 다시 앉는다고 가정해 보라”면서 “중국 입장에선 북한의 든든한 형님처럼 자리 잡고 있어야 미국에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 역시 중국과 밀착해야 미국 중심의 대북 제재로 고립된 현 상황을 타개할 만한 여지를 확보할 수 있다. 결국 중국과의 밀월 관계를 통해 대북 제재 및 코로나19로 인해 봉착한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계산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07-08 전화 못 받아 처형된 총정치국 38부장

 북한 노동당 비자금을 관리하던 38호실은 많이 알려졌다. 38호실은 2008년경 비슷한 역할을 하는 39호실과 통합된 것으로 파악된다.

 

북한군에도 숫자 ‘38’로 시작되는 38부라는 비밀 부서가 있다. 총정치국 소속인 38부는 김정일 시절부터 있던 역사가 오랜 조직이지만 지금까지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이 부서의 임무는 김씨 일가의 별장 관리다.

북한에는 초대소 또는 특각으로 불리는 김씨 일가의 별장이 최소 30여 개 있는데, 평양에만 10개가 넘는다. 백화원초대소나 고방산초대소처럼 과거 한국 대통령 방북 때 숙소로 사용해 외부에 알려진 것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북한 사람들도 잘 모르는 비밀시설이다. 평양의 대표적 비밀 초대소는 문수거리의 문수초대소, 모란봉 자락의 모란초대소, 혁신역 근처 비파초대소 등을 들 수 있다.

 

김정일은 수시로 측근들을 초대소에 불러 밤새 술을 마셨다. 초대소를 수십 곳이나 만든 것은 한곳에만 다니면 질리니 색다른 분위기를 느끼기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보는 이의 시선을 의식한 측면도 있다. 한곳에만 계속 가면 초대소 종사자들이 “장군님은 일은 안 하고 밤마다 술판만 펼치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특정 초대소에 어쩌다 한 번 가야 “장군님이 열심히 일하다가 오랜만에 쉬러 오셨으니 잘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김정일 사망 후 이 초대소들은 김정은이 물려받았다.

 

초대소는 요리사를 제외한 모든 근무 인원이 군 소속이다. 군복을 입혀 놓고 관리하는 것이 비밀 유지나 운영에 편리하기 때문이다. 여성들도 많은데 5과 선발을 통해 전국에서 뽑아 온 미녀들이다. 초대소를 호위사령부에서 관리할 법하지만 경호원들에게 사치스러운 생활이 폭로되는 것이 싫었는지 경비는 호위사령부에서, 관리는 총정치국 38부에서 하도록 분리했다.

 

38부는 과거 왕조 시절 내시나 환관이 담당했던 일을 하는 부서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의 우두머리로 상선이나 태감과 같은 위치에 있는 38부장의 계급은 중장이다. 왕조 시절 권력과 거리를 두었던 상선이 오래 자리를 지켰듯이, 북한도 38부장은 잘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2014년 4월 38부장이 어이없이 처형되는 일이 벌어졌다.


내막을 잘 아는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혁신역 앞에 있는 비파초대소에 김정은이 불쑥 나타났다고 한다. 그날은 리설주와 부부 동반으로 와서 술을 마시고 갔는데, 둘이 일어난 시간은 오후 10시 반에서 11시 사이였다.


김정은이 돌아간 뒤 비파초대소 근무원들이 모였다. 북한 초대소들에는 행사가 끝나면 그날 봉사조가 한자리에 모여 “이번에 행사를 잘했다”고 격려하거나, 잘못한 것이 있으면 총화를 한 뒤 회식을 하는 관행이 있다.

음식도 잔뜩 준비한 날이니 다 먹어치우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것이다. 이런 행사는 38부장이 주관한다. 그는 상선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김정은이 어느 초대소에 나타났다고 하면 현지에 나와 모든 것을 지휘한다.


그날따라 38부장은 기분이 좋았는지 부하들과 술을 과하게 마시고 곯아떨어졌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 비파초대소 성원들은 38부장이 술도 깨기 전에 끌려가 처형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필 그날 새벽 김정은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38부장에게 전화를 했는데 받지 못했다는 것이 죽은 이유였다. 특징적인 것은 김정은과 리설주가 그날 술을 마시고 떠나기 전 설탕 없는 진한 블랙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갔다고 한다. 밤에 블랙커피를 마시는 것이 김정은의 습관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자정 직전에 커피를 마신 김정은은 잠이 오지 않았는지 갑자기 38부장을 찾은 것이다.

 

그런데 취해버린 38부장이 전화를 받지 못했고, 김정은은 이를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듯하다. 얼마 뒤 군인들이 들이닥쳐 38부장을 끌고 갔다.

 

2014년 4월은 김정은이 신경이 매우 곤두서 있을 때였다. 5개월 전 고모부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을 처형한 뒤 ‘여독을 청산’한다면서 다음 해 봄까지 관계자 수천 명을 처형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일 수십 명 살생부에 사인을 할 때이니 김정은에겐 상선의 목숨쯤은 하찮게 보였을지 모른다. 38부장의 죽음은 북한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정치국 위원으로 있다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노동당 박태성 비서나 최상건 비서는 이름이라도 남겼다. 하지만 38부장처럼 충복으로 살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이는 또 얼마나 많을까. 그 숫자를 헤아릴 만한 사람도 이미 북한에 남아 있지 않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07.08 남편을 오빠라 부르면 징역 산다... 北, 남한식 말투 금지령

▲북한 노동당 외곽 청년단체인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소속 청년·학생들의 결의 모임이 함경남도와 개성시에서 진행됐다고 조선중앙TV가 지난 5월 12일 보도했다. 사진은 청년학생들이 결의모임을 가진 후 시위행진을 하는 모습. /조선중앙TV 연합뉴스

 

북한에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한국식 말투와 옷차림을 집중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지난해 말 한국 말투를 사용하면 징역형에 처한다는 법을 제정한 후 한국식 문화 단속이 한층 엄격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회 정보위 간사인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8일 국가정보원이 이 같은 내용을 보고했다고 전했다.

 

구체적으로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면 안 되고 `여보`라고 해야 한다. 북한에서도 손위 남자 형제를 `오빠` 또는 `오라버니`라고 부르긴 하지만 남편에게 사용하는 건 한국식 언행이기 때문이다. 또 `남친(남자친구)`은 `남동무`로, `쪽팔린다` 대신 `창피하다`라는 단어를 쓰도록 한다.

 

한국식 옷차림과 길거리에서의 포옹 등도 단속 대상이다. 북한은 이러한 청년층의 일탈행위를 `혁명의 원수`로 지칭하며 근절하자는 취지의 캠페인 영상도 제작했다.

 

북한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국식 말투와 패션, 행동양식이 유행하자 북한에서는 `사회주의 수호전`을 내걸고 한층 엄격하게 한국식 문화를 단속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제정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은 한국 영상물 유포자를 사형에 처하고 시청자는 최대 징역 15년에 처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영상물뿐 아니라 도서⋅노래⋅사진도 처벌 대상이고, ‘남조선 말투나 창법을 쓰면 2년의 노동교화형(징역)에 처한다’는 조항도 신설된 것으로 파악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나섰다. 지난 4월 세포비서대회 폐회사에서 청년들의 사상통제를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언급한 김 위원장은 “청년들의 옷차림과 머리 단장, 언행,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늘 교양하고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달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10차 대회를 맞아 보낸 서한에서는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적 행위들을 조장하거나 청년들의 건전한 정신을 좀먹는 사소한 요소도 절대로 묵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하 의원은 “비사회주의 행동 단속에 걸리는 연령대 중 80%가 10대부터 30대, 우리로 치면 MZ세대”라며 “북한판 MZ세대가 ‘동유럽 (혁명 당시) 배신자’와 같이 등장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선일보 이가영 기자

 

 

월간조선 07월 호 2021

“제1비서직 신설은 ‘제2의 장성택’ 만들기”

⊙ 북한의 가족들, 탈북자에게 “큰돈 보내도 할 일이 없으니 돈 보내지 말라”

⊙ “밀무역 끊은 건 중국… 金家王朝 버리는 신호일 수도”

⊙ “北 당국, 북한 주민 눈높이에 맞춘 탈북자 유튜브 채널 골치 아플 것”

 

▲2015년 9월 평양시내 창광상점을 시찰하는 김정은. 북한은 최근 경제제재, 중국과의 교역 중단 등으로 물자난을 겪고 있다. 사진=뉴시스

 

북한 내부에 의미 있는 변화가 있다. 탈북민들의 최근 전화 통화 내용을 전문가 두 사람과 함께 분석했다. 김길선·한수정 모녀다.  

 

김길선씨는 1955년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 태생으로 1979년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를 졸업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육상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1995년 말까지 제2자연과학원(현재 국방과학원) 산하 제2자연과학 출판사 강연선전편집부 기자로 일했는데, 동료들과 성혜림에 관해 언급한 것이 문제가 되어 40일 동안 구속 수사를 받았다. 얼마 후 풀려나기는 했지만 직장에서 쫓겨나고 1995년 12월 지방으로 추방되어 혹독한 시절을 지냈다. ‘평양 밖’ 북한 주민들의 실상을 체험하고 ‘고난의 행군’을 눈앞에서 지켜봤다. 1997년 8월 가족(남편·딸)과 함께 탈북해 1년 넘게 중국에서 노동일을 하며 숨어 지내다 1999년 1월 대한민국에 정착했다. 현재는 유튜브 ‘김길선의 평양만사’를 딸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중국에서 들여오던 물건 끊겨”  

― 지난 6월 초에 200만원을 고향의 가족에게 송금한 탈북민이 그들에게서 의외의 답을 들었다고 한다. ‘큰돈 보내도 할 일이 없으니 돈 보내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한 푼이라도 더 보내달라고 사정하던 것이 보통 아닌가. 

“최근 들어 장마당에 물건이 사라졌다고 한다. 경제제재의 효과다. 쌀, 땔나무 등 생존에 꼭 필요한 물건은 있지만, 기름과 비누 등 생필품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에서 들여오던 물건이 끊겼다는 뜻이다. 그러니 돈을 받아도 사업을 할 수 없겠지. 돈 받았다는 소문이 나면 뜯어먹으러 오는 것들만 달려드니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 뇌물도 그렇다. 장사해서 이익을 남길 생각으로 미리 고이는 것 아닌가. 장사를 할 수 없는데 뇌물은 왜 고이나.”

 

  ― 그렇다면 ‘고난의 행군’이 또 오는가. 

“개인적으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고난의 행군’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경제가 좋아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굶어 죽는 사람이 북한 전역에서 나온다. 다만,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주민들이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에, 영양 상태가 부족하기는 해도 예전과 같은 대규모 아사(餓死)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최근 들어 달러 환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작년 9월만 해도 1달러에 북한 돈 8500~8900원 하던 환율이 최근에는 7000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숫자만 보면 북한 돈 가치가 올라갔다는 이야기인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달러로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이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다른 곳은 몰라도, 외화로만 상품 구입이 가능한 외화상점은 외국 식품부터 각종 전자제품, 고가(高價)의 사치품까지 구비해놓고 파는 곳이다. 그런데 그곳조차 물건이 없거나 부족하다면 화폐가 무슨 소용 있는가. 그렇다고 은행에 가서 환전할 수도 없다. 개인 소유 외화는 무조건 불법인 곳이 북한이기 때문이다. 한국식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 북한에서 지역마다 환율이 다른 이유는.  ‘데일리NK’ 보도에 의하면 6월 중순 현재 1달러에 평양은 7100원, 신의주는 7120원, 혜산은 7000원이라고 한다.  

“북한에서 달러는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화폐다. 달러가 널리 통용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환율은 당연히 차이가 난다. 혜산에서 달러 가치가 낮은 것은, 혜산이 북중(北中) 접경지역이라 위안화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김길선씨는 2009년 화폐개혁이 북한 경제의 분수령이라고 했다. 북한 주민이 북한 당국을 불신하게 된 결정적 계기라는 것이다. 신권이 나왔지만 북한 돈은 시장에서 휴지 취급을 받고, 달러·엔·위안화가 북한 전역에 널리 통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소생은, 어쩌면 달러화 가치 하락이 장롱 달러를 빨아들이려는 북한 당국의 술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민들이 축적한 부(富)를 단번에 빨아들이기엔 한번 더 화폐개혁을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터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참지 않을 주민들의 폭동(暴動)이 두려워 우회로(迂廻路)로 돌아가려는 것이 혹시 아닐까?   

 

“탈북자 급감은 코로나19 여파”  

― 탈북자 수가 급감한 건 어떤 이유인가.  남성 탈북민 500명을 동시 수용할 수 있는 하나원 화천 분소는 지난 2월 교육생이 3명이었다. 여성 탈북민 교육 시설인 안성 하나원은 시설 관리·운영 인력은 80여명이지만 2월 교육생은 17명이었다. 국내 입국 탈북자가 가장 많았던 2009년에는 총 2914명이 입국했지만 2019년엔 그 수가 1047명까지 줄었고, 2020년엔 불과 229명만 입국했다.  

“가장 큰 요인은 코로나19의 여파다. 일단 북중 접경지대를 통과하기가 예전에 비해 훨씬 힘들고,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도 장거리 이동을 하기 어렵다. 탈북 의지가 줄어든 것이 아니다. 본질적인 흐름은 여전히 탈북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 북한 내 코로나19 방역은 잘 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함흥 출신 탈북자 말로는 지난 5월 초부터 함흥에 코로나19가 많이 퍼졌다고 한다. 고향의 가족이 ‘거긴 괜찮냐?’며 남쪽의 탈북민 건강을 걱정할 정도라고 한다. 

“지역 간 이동이 활발하지 않은 북한 특성상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지역은 꽤 유행하고, 그렇지 않은 지역은 별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에게 코로나19는 새로운 경험이 아니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아직도 철마다 전염병이 도는 곳이 북한이다. 질병에 대한 관념도 남북이 판이하다. 한국에선 거의 사라진 결핵이 아직도 북한에선 주요 사인(死因) 가운데 하나일 정도다.”  

 

― 북한이 노동당 규약을 바꿨다. 국내외 언론이 6월에 보도한 바에 따르면, 김정은 바로 밑에 ‘제1비서’를 신설했다. 

“한국 언론에는 ‘제1비서’가 후계자냐, 2인자냐, 누가 그 자리에 임명되었는지가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고 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이것은 ‘제2의 장성택’ 만들기다. 북한 내부 사정이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결정적인 시기에 책임을 물어 숙청할 희생양이 필요한 것이다.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려면, 인민들이 보기에도 책임질 만한 자리여야 하지 않은가.”  

 

― ‘혁명 통일론’은 뺐지만 ‘공산주의’는 다시 명기했다. 이것의 의미는. 

“그것도 본질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북한은 대남(對南) 혁명을 단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할 수도 없다. 다시 말하지만, 북한은 대한민국 정부를 적(敵)으로 규정한다. 북한에 더할 나위 없이 호의적인 정부가 나오더라도, ‘대한민국 정부’인 이상 타도(打倒)해야 할 ‘혁명의 적(敵)’일 뿐이다.”    

 

“北 주민들, 김소월 몰라”  

― 장마당 물건이 떨어졌다면, 북중 밀무역도 막혔다는 말인가? 김정은이 북중 접경지대에 CCTV를 설치해 도강(渡江)을 엄격히 막는 바람에 탈북뿐 아니라 밀무역도 타격을 받았다고 한다. 

“밀무역이 거의 끊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선(線)을 끊은 쪽은 중국이지 북한이 아니다. 모든 주도권은 중국이 쥐고 있다. 이제까지는 경제제재 위반임을 알면서도 소규모 생필품 밀수는 눈감아주는 것이 중국 측 태도였다. 그런데 이것조차 꽉 막아버렸다면? 상상력(想像力)을 좀 동원하자면, 이는 중국이 북한을, 적어도 김가 왕조(金家王朝)를 버리는 신호일 수도 있다.  

 

중국과 베트남의 관계를 생각해보라. 두 나라는 국경을 맞대고 있고 공산우방(共産友邦)으로 관계가 돈독했다. 지금의 중국과 북한의 관계와 유사한 점이 많다. 하지만 1979년 중월전쟁(中越戰爭) 이후 지금까지 적대적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김정은이 중국에 투항하는 건 절대 불가다. 북한에선 ‘일본(日本)은 백년숙적(百年宿敵), 중국은 천년숙적(千年宿敵)’이라고 한다. 중국에 투항한다면, 공산당 원로들부터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김정은 안위조차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차라리 미국에 항복하는 건 모르겠지만….”   

 

― 북한은 2021년 4월2일자 《로동신문》 논설을 통해 “제국주의자들의 선전심리전, 사상문화침투에 각성과 대응을 촉구한다”고 했다. 이후에도 외부 사조 유입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투의 기사가 꾸준히 실리고 있다. 이미 많은 외부 정보가 북한에 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새삼스럽게 이런 말을 하는 저의는 무엇인가. 

“북한 주민들의 외부 정보에 대한 갈증은 상상 이상이다. 평양에서만 나오는 ‘만수대TV’ 통로(채널)는 주말에만 방송한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만수대 통로만큼은 기를 쓰고 본다. 중국영화나 인도영화 등 외국 영화를 틀어주기 때문이다. 기승전-수령찬양(起承轉-首領讚揚)인 북한영화와는 비교 불가이니까.  

 

북한 당국이 김정일 지시로 1991년부터 제작해, 지금까지 62부를 만든 연작 영화 〈민족과 운명〉도 인기 만점이었다. 영화 내용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듯 나오는 외부 정보 때문이다. ‘최덕신(崔德新)’ 편에 나온 유럽 풍경을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극장에 갔고, 남조선 현대사를 다룰 때 나온 노래 ‘그때 그 사람’은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널리 불렸다. 아마 역사상 최고의 인기가요일 것이다.   최덕신 편에 ‘기회’라는 시가 나오는데, 누구 작품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정말 궁금했다. 오죽하면 입국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이 시가 누구의 작품인지 찾아서 읽는 것이었겠는가.”  

 

― 시 ‘기회’의 작가인 민족시인 김소월(金素月)은 평안북도 구성 출생인데 그의 존재를 몰랐다는 말인가. 

“몰랐다. 전혀 몰랐다. 혁명시, 충성문학 말고는 조금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이상화(李尙火)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영화 〈이름 없는 영웅들〉에 나온 적이 있다. 그것이 북한 주민들이 알고 있는 남조선 시인의 전부다. 그러니 시 한 줄, 노래 한 소절이 다 새롭고 강렬한 것이다.  

 

그래서 최근 들어 급증한 탈북자 유튜브 채널은 북한 당국 입장에서는 골치 아플 것이다. 북 주민들의 궁금증, 호기심, 생활 정보 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예능+다큐’ 프로그램이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거니까. 남북 각지의 온갖 소소한 정보가, 음식이며 옷이며 화장이며 드라마 등 모든 정보가 들어 있는 것 아닌가. 그것도 북한 주민 눈높이에 딱 맞춰서. 그러니 북한 주민들에겐 이보다 더 생생하고 재미있고 또 부러운 오락거리가 어디 있겠는가.”    

 

‘재미’는 혁명정신보다 힘이 세다   현대사회에서, ‘재미’는 혁명정신보다 확실히 힘이 세다. 영향력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너르게 미친다. 혁명정신은 외부 정보에 무너지고, 혁명생활은 돈의 힘에 무너지는 총체적 위기가 ‘제1비서’의 숙청으로 잠잠해질 수 있을까. 직책은 새로 만들었지만, 누가 그 자리에 올랐는지 북한은 아직도 함구하고 있다.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제1비서가 이 기사를 읽는다면 꼭 전하고픈 말씀이 있다. 

 

“남은 시간이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다. 숙청당하기 전에, 다른 사람처럼 당하지 마시고, 꼭 선제공격(先制攻擊) 하시라.”⊙

글 : 장원재  장원재TV 대표  

 

08.13 망사드레스·포옹이 범죄? 北, 웨딩영상 커플에 “머리통 썩었다, 박멸해야”

“반사회주의적 결혼문화” 北 영상 선전물 보니
영상속 젊은이에 “무자비하게 짓뭉개야 ”
포옹 장면엔 “어디서 배운거냐” 南 겨냥

북한에서 한국식 웨딩 영상을 찍은 이들을 `반국가적 범죄자`로 규정하며 재판에 넘기는 영상이 공개됐다. 앞서 국가정보원은 북한 당국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한국식 말투와 옷차림을 집중적으로 단속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12일 월간조선이 보도한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로부터 받은 20분가량의 영상에 따르면 `조선중앙통신사 콤퓨터강연선전처`는 “우리 인민의 고상한 미풍양속과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배치되는 이색적인 결혼식 녹화 편집물 제작 행위를 철저히 배격하자”는 내용의 선전물을 제작했다.

 

지난달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해당 영상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제국주의의 사상 문화적 침투 책동을 짓부수고 우리의 사회주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철저히 고수해야 한다”는 지시문으로 시작했다.

 

영상은 “최근 일부 사상적으로 불건전한 청춘 남녀들과 돈벌이에 환장한 집단이 결혼식을 사회주의에 전혀 맞지 않게 변태적으로 변형하다 못해 편집물로 만들어 유포했다”며 “건전한 사상 의식을 흐려놓고 고상한 미풍양속을 어지럽히는 엄중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전했다.

 

◇시스루 웨딩드레스 입었다고 “머리통이 썩었다”

선전처는 “안일하고 퇴폐적인 생활 풍조만을 고취시킨다”며 예시 영상을 보여줬다. 독일의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 티셔츠를 입은 여성의 모습을 두고 “저들의 차림새를 봐서는 도무지 공화국 국민인지 가늠하기 힘든 정도인데, 이들의 짓거리를 지켜본 숱한 사람들 속에 눈이 바로 박힌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단 말이냐”고 한탄했다. 또 유람선에서 와인을 마시는 예비부부를 향해서는 “불건전하고 나태한 생활을 흉내 내느라 가련한 저 신랑신부들이 하나같이 대학까지 나온 청년들”이라며 “슬프게도 당에서 하지 말라는 짓만 해대고 있으니 과연 저런 인간들이 시련의 시기에 당의 은덕을 저버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공원이나 바닷가에서 포옹하는 남녀의 모습에 대해서는 “때와 장소도 가리지 않고 서로 끌어안는 모습이 차마 보지 못할 지경”이라며 " 어떻게 수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대중 장소에서 아무런 부끄럼이나 거리낌도 없이 노골적으로 추접하게 놀아댈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혼 영상에서는 보트를 타고 북한의 예비 부부들이 자연스럽게 와인을 즐기는 모습도 등장하지만 북한당국은 반민족,반당적 행위라고 비판하고있다./월간조선

 

심지어 “신랑 김지훈과 신부 이지향의 결혼 녹화 편집물”이라며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는 사례도 있었다. 선전처는 “처녀의 손목에 4개에 달하는 금속 팔찌가 끼워져 있다”며 “해외 동포 여성이거나 아시아계 외국인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고 봤다. 미니스커트나 망사 웨딩드레스를 입은 사진에 대해서는 “머리통이 썩을 대로 썩었다”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이 부부와 같은 젊은이들, 무자비하게 짓뭉개버릴 박멸 대상”

불법 유통된 한국 영상물을 원인으로 의심하는 발언도 나온다. 선전처는 “남들이 볼 테만 보라 하는 심정의 신랑과 신부들에게 묻건대 당신들은 어디서 무엇을 보고 이러한 동작을 스스럼없이 흉내 내고 있느냐”며 “혹시 남몰래 불순 선전 시청물을 본 것 아니냐”고 했다.

 

선전처는 “이 부부와 같은 영상물을 제작하는 젊은이들은 썩어빠진 자본주의 사상문화를 끌어들인 혁명의 원수이자 무자비하게 짓뭉개버릴 박멸 대상”이라며 “추격전, 수색전, 소탕전을 맹렬히 벌여 밑뿌리째까지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투쟁 분위기를 고조시켜 우리 사회를 좀먹는 불건전하고 이색적인 행위를 하고서는 감히 얼굴을 들고 다닐 수도 없고 배겨낼 수도 없게 만들어야 한다”며 “알아들을 만큼 교양했음에도 이색적인 생활방식을 추구하는 자들은 결국 우리와 딴 길을 가겠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 법적으로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상 뒷부분에는 실제로 다수의 남녀가 죽을죄를 진 것처럼 고개를 숙인 채 재판을 받는 모습도 담겼다.

지난해 12월 북한에서 제정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는 `남조선식으로 말하거나 남조선 창법으로 노래하는 자는 노동단련형 또는 2년까지의 노동교화형에 처한다`는 조항이 들어갔다. 또 남측 영상물 유포자는 사형에 처하고 시청자는 최대 징역 15년에 처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일보 이가영 기자

 

월간조선 08월 호

08.07 반항하는 북한의 MZ세대

⊙ 이혼, 혼전동거 늘어나… 저출산으로 합계출산율 1.9명
⊙ 집에서 한류 콘텐츠 발견된 북한군 대좌, 한류 영상물 도매상 등 처형… 〈펜트하우스〉 시청자는 징역 10~12년
⊙ “한국의 문화적 침공은 김정은과 북한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평양거리의 젊은이들. 북한의 젊은이들은 당의 지시가 잘 안 먹히는 신세대이다. 사진=조선DB

 

  김정은 머릿속에선 지금 내전(內戰)이 발생했는지 모른다. 교전(交戰) 상대는 북한의 MZ세대, 이른바 ‘장마당 세대’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김정은이 케이팝(K-pop)을 ‘악질적인 암(vicious cancer)’으로 규정해 문화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6월10일자 기사다. 《로동신문》이 《뉴욕타임스》 보도가 사실임을 확인해줬다.
 
  《로동신문》 6월27일자 1면 사설에는 ‘백절불굴의 혁명 정신은 새 승리를 향한 총진군의 위력한 무기’라는 제목 아래 “우리 혁명의 밝은 미래는 백절불굴의 혁명정신,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투쟁기풍에 의하여 굳건히 담보된다…. 혁명의 시련을 겪어보지 못한 새 세대들이 주력으로 등장하고 우리 당의 사상진지, 혁명진지, 계급진지를 허물어보려는 제국주의자들의 책동이 날로 더욱 우심해지고(심해지고) 있는 현실은 혁명전통교양이 나라와 민족의 운명과 장래를 결정하는 사활적인 문제로 된다는 것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라는 문장이 이어진다. 《로동신문》 편집 관례상 위 문장은 김정은 육성(肉聲)이라고 봐야 한다. 김정은의 선전포고(宣戰布告)다.
  
  김정은은 왜 젊은 세대가 무서운가? 자신의 말을 한 귀로 흘리기 때문이다. 자기 말 한 마디, 손짓 하나에 벌벌 떠는 나이 든 세대와는 달리, 장마당 세대는 독재자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 당(黨)이 우리를 먹여 살린다는 부채 의식이 없는 탓이다. 그래서 전제군주(專制君主)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다. 사상이완(思想弛緩), 정신무장(精神武裝) 같은 구세대식 표현도 조롱한다. 당연히, 존경심도 없다. 신도 수 기준 세계 9위의 사이비종교(似而非宗敎) 주체교(主體敎)는 ‘일사불란(一絲不亂) 집단주의(集團主義)’가 핵심 교리 중 하나다. 집단주의의 정점에 태양족 백두혈통 김씨 일가가 있고, 그들의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 잘살 수 있다고 주민들을 세뇌한다. 하지만 신도들이 세뇌에서 깨어나면 교단은 무너진다. 그래서 말을 안 듣고, 말이 안 통하는 젊은 세대의 등장은 김정은 시각에선 그 자체가 권력의 붕괴다. 


  김정은, 이혼 막으라고 지시

  북한의 10대는 이전 세대와 확실히 다르다. 사회현상을 기준으로 살펴보자. 2018년 양강도에선 월(月) 평균 이혼 판결이 100건을 넘어섰다. 이혼을 막으라는 김정은의 특별 지시가 떨어질 정도다.
 
  핵심은 특별 지시 하달 전부터 북한 전역의 결혼 풍속이 급속도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남자가 돈 못 벌고 무능하면 결혼 후 한 주든 한 달이든 바로 갈라서는 사례가 나왔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김정은 지시 이후로도, 북한 주민들은 체면이나 남 눈을 더 이상 의식하지 않는다. 이혼은 이제 감춰야 하는 일이 아니다.
 
  혼전동거(婚前同居)도 많다. 3~4년을 함께 살다가 서로 능력과 성향을 확인한 후 뒤늦게 결혼등록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경우다. 만혼(晩婚)은 저출산으로 이어졌다. 저출산 문제는 남쪽만의 고민이 아니다. 유엔인구기금(UNFPA)이 지난 4월에 발표한 세계 인구 현황 보고서 〈내 몸은 나의 것(my body is my own)〉에 따르면 북한의 합계출산율은 1.9명이다. 세계 평균인 2.4명, 아시아태평양 지역 평균 2.1명, 인구 유지에 필요한 수치 2.1명보다 아래다. 조사 대상 198개국 가운데 119위. 덧붙이자면, 최하위 198위는 1.1명인 한국이다. 한 자녀 가정이 많다 보니 아이들도 부모도 자연스럽게 개인주의로 이동했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자유롭게 미래를 꿈꿀 수는 없지만, 북한 청소년들이 ‘호기심(好奇心)’과 ‘재미’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다. 호기심과 재미는 그들의 삶을 위로하는 활력소이자 대리몽(代理夢)이다. 그래서 끊을 수 없다. 북한 밖 다양한 세계의 존재를 형형색색으로 알려주는 문화 콘텐츠는 청소년들의 몸과 마음에 빠르게 스며든다.
 
  선봉장은 ‘한류(韓流)’다. 말이 통하기에 전파력(傳播力)이 남다른 것이다. 위기감에 휩싸인 북한 당국이 2004년 한국 영상물 전문 단속기구인 ‘109상무’를 만들었다. 불시 가택 수색 등 대대적 단속을 하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단속 방식은 아날로그인데 회피 수단은 진화하기 때문이다. CD가 USB로, SD카드로 바뀌었는데, SD카드는 유사시 잘라버리거나 삼켜서 증거인멸이 쉽다. 109상무 단속에 대비해, 노트북을 켜면 아예 기록과 메모리가 사라지는 프로그램도 나왔다. 노트북 암호를 ‘109타도’로 설정한 것만으로는 처벌이 불가능하다.
 
  김정은의 최신 응전(應戰)은 2020년 12월 4일에 나온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다. 남한 영상물 유포자에 대한 형량(刑量)을 최대 사형, 시청자에 대해선 징역을 기존 5년에서 최대 15년으로 강화한 악법이다. 김정은이 느끼는 공포심의 성문화(成文化)다.'

 

  이 법을 제정한 이후로 김정은은 공개석상에서 여러 차례 초조감을 드러냈다. 지난 1월 당대회에서 청년세대에 대한 사상통제를 거듭 강조했고, 4월 세포비서대회에선 “청년들의 사상통제가 최중대사(最重大事)다. 옷차림부터 언행까지 통제해야 한다”고 했다. ‘세포비서’는 당 최말단 조직 일꾼들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K팝이나 한류 흉내를 밑바닥에서부터 철저히 단속하라는 소리다.
 
  그럼에도 한류 유행은 잡을 수 없었다. ‘데일리NK’는 북한군 내부 소식통의 전언을 토대로, 지난 2월 북한군 3군단 훈련장 사격장에서 3군단 후방부장인 김모 대좌가 군단 지휘부 장교와 핵심 군인들이 모인 가운데 공개 총살당했다고 보도했다. 김 대좌 집에서 한류 콘텐츠가 대량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제국주의 반동들에게 동조하는 이적행위를 한 역적’이라는 것이 죄목이다.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은 정치범수용소로 호송됐고, 집과 재산은 모두 몰수당했다고 한다. 법 시행 후 첫 군부대 단속 건인 것을 보면, 김 대좌 총살은 군 내부의 공포심을 극대화하기 위한 시범 케이스인지도 모른다.
 
  지난해에는 20대 북한군 3명이 오락회에서 방탄소년단의 ‘피 땀 눈물’의 안무를 따라 했다가 끌려가는 일도 있었고, 3월 초엔 남조선 영상물을 유포한 평양시민 4명을 공개처형했다. 사동구역 대원리사격장에서 평양시 전체 인민반장들과 인근 지역의 주민들을 모아놓고 집행했다고 한다. 5월에는 한류 콘텐츠 도매상 역할을 하던 원산 주민도 공개처형했다.
 
  지난 6월 초에는 평성에서 SBS TV 드라마 〈펜트하우스〉를 시청하던 20대 남녀 4명이 10~12년 형을 받았다는 뉴스도 있었다. 평성 운동장에서 공개재판할 만큼 요란을 떨었지만, 주민들 반응은 ‘왜 우리만 가지고 이러냐?’다. 권력층이 외부 문화를 마음껏 즐기고 있다는 건 비밀도 아니기 때문이다. 극소수지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유튜브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이 비디오 게임을 하고 서양 영화를 보며 한국 드라마를 애청한다는 걸 북한 주민들은 다 안다. 김정일의 애창곡이 최희준의 ‘하숙생’,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였다는 건 잘 모르겠지만


 
  새 선전가요 나왔지만 주민들 외면

  노래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만 더해보자. 지난 6월 하순 조선중앙TV는 새 선전가요 ‘우리 어머니’와 ‘그 정을 따르네’ 영상 편집물을 방송했다. 노동당과 김정은을 찬양하는 선전가요다. 신곡 발표는 오직 당(黨)만 할 수 있으니 예전 같으면 북한 전역에 이 노래들이 울려 퍼져야 한다.
 
  신문은 “우리 마음이 그대로 가사가 되고 선율이 됐다”며 “새 노래들이 온 나라를 격정의 도가니로 끓게 하고 있다”고 했지만, 사정은 다르다. 아무도 자발적으로 듣지 않는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독점(獨占)이 깨졌다는 증명이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권력이 듣지 않는 사각지대(死角地帶)가 있고, 그곳에선 김정은보다 더 힘과 영향력이 센 무엇이 있다는 뚜렷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도 ‘문화 경쟁자’의 존재를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엔 나름대로 변화의 모습을 보이며 주민에게 다가갔지만, 주민들이 외면한 것이다.
 
  이 두 곡은 김정은과 당 간부들이 관람한 국무위원회 연주단 공연에서 처음 발표했다. 조선중앙TV는 지난 6월 22일 공연의 녹화 실황을 방영했고, 6월 24일에는 뮤직비디오 형태의 영상 편집물도 공개했다. 녹음실에서 노래하는 가수, 바닷가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연주단원, 드레스를 입고 진지하게 연주하는 모습, 단원들의 장난스러운 표정 등 한국 뮤직비디오를 모방한 영상이다.
 
  이렇게 유연하게 다가가도 대중은 반응이 없는 것이다. 시대가 변했는데, ‘윗대가리’들은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어쩌면 변화 자체를 인정하기 싫은 건지도 모른다. 정말 인정하기 싫은 건 북류(北流)가 한류(韓流)에 완전히 밀렸다는 사실일 수도 있다.  


  남자 친구에 대한 호칭이 ‘동지’에서 ‘오빠’로
  

이시마루 지로 ‘아시아프레스 인터내셔널’ 편집장은 오랫동안 북한 문제에 천착해온 전문가다. 북한 내부에 비밀 취재원을 두고 생생한 뉴스를 전한다.
 
  그는 “한국의 문화적 침공은 김정은과 북한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평가한다. ‘아시아프레스 인터내셔널’이 입수한 북한 정권 문서에 따르면, 북한 청년 사이에서 한국 콘텐츠와 한국식 말투가 대유행이다. 예를 들면 남자 친구에 대한 호칭이 ‘동지’에서 ‘오빠’로 바뀐 것 등이다. 말투가 바뀌면 생각도 바뀐다. 바뀐 생각은 달라진 행동을 낳는다. 한국 드라마 속 청춘들의 행동이 북한 젊은이들에게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주인공 말투까지는 어찌어찌 따라 할 수 있는데, 옷차림은 따라 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귀고리, 머리염색, 청바지, 짧은 치마, 민소매를 엄격하게 단속하는 곳이 북한이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건 인지상정. 다른 건 다 참아도, ‘내로남불’만큼은 못 참는 건 남북 청소년이 같지 않겠는가. 이전 세대와 다른 건 이들이 통제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반항한다는 점이다.
 
  김정은은 ‘한류’를 막을 방법이 없다. 북한에는 ‘호기심’과 ‘재미’를 생산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창의력의 바탕은 자유인데, 북한에는 자유가 없지 않은가. 한류 맛을 본 ‘자유주의자’들은 어디로 얼마나 어떻게 튈지 모른다. 그래서 무섭다. 김정은 머릿속 내전의 반군은 오늘도 신나게 진군 중이다. 김정은의 머리 밖 현실세계에서도 진군 중이다. 흥겨운 노래와 춤, 그리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그들의 무기다.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린 호메이니 혁명의 별칭은 ‘카세트테이프 혁명’이다. 호메이니 연설이 카세트테이프에 담겨 이란 내부로 밀반입되었고, 밀반입된 ‘말’이 정권을 뒤엎었기 때문이다. 문화 콘텐츠는 힘이 세다. 그렇다면 북한 혁명의 별칭은 무엇이 될까? 아버지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 아들은 할리우드 스타인 장 클로드 반담의 영화에 심취했던 김 부자 역시 재미와 진실의 힘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08.10  4년전 김정남의 최후… 영화 ‘암살자들’이 보여준 몰카

[동서남북] 2017년 김정남의 죽음은 ‘몰카’로 위장한 공개 처형
북 “한미 훈련 중단” 각본 짜고 남쪽 갈등 즐기고 있을 것

집단체조 ‘아리랑’은 1박 2일 평양 출장의 하이라이트였다. 나는 능라도 5·1 경기장에 앉아 있었다. 2005년 가을, 북한은 노동당 창건 60주년을 맞아 관광객의 방북을 허용했고, 체제를 선전하며 외화를 챙기고 있었다. ‘아리랑’ 1등석을 150달러에 팔았다.

북한 집단체조 '아리랑'/조선일보 DB

 

눈앞에서 글자들이 명멸했다. ‘만경대’ ‘모란봉’ ‘대동강’···. 배경대(背景臺)라는 카드섹션이었다. 북한 중학생 2만명이 커다란 색종이들을 일사불란하게 펴고 접었다. 감탄은 연민과 공포로 바뀌었다. 부품처럼 움직이기까지 혹독한 연습과 고통이 있었을 것이다. ‘아리랑’은 김일성의 항일 투쟁으로 열려 선군(先軍)과 행복, 통일을 지나 강성 부흥으로 닫혔다. 관중으로 선별됐을 북한 주민들은 모두 기립해 김일성 찬양가를 불렀다.

 

‘아리랑’은 기괴한 쇼였다. 껍데기는 사회주의 지상낙원이었고 알맹이는 공허했다. 평양에서는 관광객을 데려간 장소와 접촉한 사람, 심지어 옥류관 냉면까지 각본에 따르지 않은 것이 없었다. ‘아리랑’을 보던 남쪽 진보 단체 참관단이 한반도기를 흔들며 “조국 통일”을 외치자 북한 주민들이 일어나 화답했다. 이 또한 선전물로 쓰일 터였다. 위장된 평화에는 꿍꿍이가 있었다. 김정일은 이듬해 첫 핵실험을 했다.

 

12일 개봉하는 ‘암살자들’은 북한을 상대해야 하는 대통령이 꼭 봐야 할 영화다. ‘아리랑’이 허구라면 이것은 사실이다. 2017년 2월 13일 대낮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남이 살해당했다. CCTV가 즐비한 국제공항은 암살에 부적합한, 안전한 장소다.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의 최후를 보고 세계가 경악했다. 인도네시아·베트남 국적의 두 여성이 그의 얼굴에 치명적 화학물질을 발랐다. CCTV에 녹화된 이 암살은 의도된 공개 처형이었다.

 

2001년 김정남은 위조 여권을 가지고 일본에 들어가다 적발돼 추방당했다. “가족과 도쿄 디즈니랜드에 가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이 사건으로 후계 구도에서 완전히 밀려난 김정남은 마카오 등 해외를 떠돌며 낭인 생활을 했다. 살해당할 때는 뚱뚱하고 무력한 중년 남성이었다. 하지만 김정은에게 그는 오용 가능성이 있는 위험 요소였고 제거해야 할 백두 혈통이었다.

 

‘암살자들’은 김정남 피살부터 재판 종결까지 2년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두 여성은 침착하게 행동했고 곧장 화장실에서 손을 닦았다. CCTV를 향해 ‘그래 내가 했다. 어쩔래?’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쓴 두 화학물질은 혼합될 경우 신경 작용제 VX를 만드는데, 국제적으로 사용이 금지된 화학무기였다. 작전을 주도한 북한 공작원들은 중국을 피하려는 듯 자카르타, 두바이,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평양으로 도주했다.

 

두 여성은 법정에서 “일본 유튜버(북한 공작원)에게 속아 몰래카메라를 찍는 줄 알고 연기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오래전부터 몰카를 촬영하는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사건 직전엔 북한 공작원이 연습용으로 커다란 곰 인형을 사 줬다. 그들은 코미디로 위장된 암살의 배우였고 마지막 촬영의 표적은 김정남이었으며, 그날만 베이비오일 대신 화학무기가 사용된 것이다. 공작에 당한 두 여성은 가까스로 무죄판결을 받고 석방됐다.

 

▲북한 공작에 속아넘어간 두 여성 시티 아이샤(인도네시아)와 다안 티 흐엉(베트남). 이들은 김정남 암살에 참여하고도 몰래카메라 장난 영상인 줄 알았다. 북한 공작원들로부터 이용당하고 버려졌지만 2년 재판 끝에 무죄로 석방됐다. /더쿱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은 없다. 스티븐 킹 뺨치는 각본 아닌가. 북한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빠져나갔다. ‘너희도 안전하지 않다’는 협박은 지속된다. 선전 선동 책임자 김여정은 한미 연합 훈련에 대해 “희망이냐 절망이냐? 선택은 우리가 하지 않는다”는 극적인 대사를 던졌고 효과를 거뒀다. 다음 대통령은 장기판의 말로 이용당하지 않아야 한다. 북한은 지금 남쪽의 동요와 갈등을 몰카 보듯 감상하고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 박돈규 기자

 

08-19 처형된 무역일꾼, 억류된 중국 사업가

2월 중국 주재 북한대사가 교체됐다. 그런데 전임 지재룡 대사는 북한이 코로나 방역을 핑계로 받아주지 않아 아직 베이징에 머무르고 있다. 1942년생인 지 전 대사로서는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평양에서 자녀와 손자들과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베이징에서 기약 없는 나날을 보내게 됐다.

 

3월에 철수한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 관계자 수십 명도 베이징에서 발이 묶였다. 북한이 체류비도 주지 않아 말레이시아에서 번 달러가 생활비로 다 날아가지만 불평할 수도 없다. 노동당 국제부 부부장을 지냈던 지재룡도 귀국하지 못하는데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이런 처지의 북한 사람들이 꽤 많다. 그만큼 북한은 해외와의 인적 왕래를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이러한 폐쇄가 비단 북한 외교관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리진쥔(李進軍) 북한 주재 중국대사도 임기가 끝나 돌아가야 하지만, 북한이 신임 대사 입국을 거부해 평양에 사실상 발이 묶였다. 북한 주재 중국대사들의 임기는 보통 5년이다. 리 대사는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부장을 거쳐 2015년 3월에 부임했고 2020년 3월에 임기가 끝나야 했다.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이 특별비행기로 순안공항에 새 대사 한 명만 내려놓고 돌아오겠다고 했는데도 북한이 거절했다고 한다. 리 대사는 임기가 끝난 지 1년 반이 넘도록 인질처럼 평양에 잡혀 있다. 물자가 부족한 평양에서 사는 것도 어려운데, 그동안 승진도 할 수 없으니 리 대사의 속도 타들어갈 것 같다. 러시아 등 10여 개 평양 주재 외국 공관 외교관들은 탈출에 성공했지만, 중국은 북한처럼 중요한 우방국 대사 자리를 비워둘 순 없다.

 

이렇게 북한이 대사급 교류조차 막고 있는 와중인 6월에 간이 크게 중국 사업가를 북한에 데려간 북한 무역일꾼이 나타났다. 그가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다 해도 신의주 세관에서 통과시켜 줄 정도면 평양에서 특별 지시가 떨어져야 가능하다.

 

요즘 김정은은 평양종합병원, 평양시 5만 가구, 의주비행장 대규모 방역시설 등 각종 건설 과제를 제시하고 간부들을 닦달하고 있다. 그런데 철강재나 시멘트, 방역설비 등을 중국에서 수입하지 못하면 건설이 진척될 수가 없다. 못하면 못했다고 처벌하고, 그렇다고 자재 수입도 못하게 하니 북한 고위 간부들은 죽을 맛이다.


진퇴양난 상황에서 그들은 못해서 목 잘리는 것보다는 편법을 써서라도 해놓는 것이 낫다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못하면 눈에 딱 보여 처벌될 가능성이 100%인데, 몰래 물자를 중국에서 들여와 마무리하면 살 확률이 좀 더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위 간부 누군가가 측근 무역일꾼에게 “죽게 생겼다. 내가 국경을 열어줄 테니 중국에 가서 투자자나 물자를 좀 끌어오라”고 지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이 무역일꾼이 움직였다. 중국 사업가를 현장에 데려가서 “이런 것들을 해결해주면 이런 이권을 보장해주겠다”고 제안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게 발각됐다. 김정은의 지시로 무역일꾼은 즉시 체포돼 처형됐고, 중국 사업가는 북한에 체포돼 현재까지 억류 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사업가도 북한과 나름대로 오랫동안 교류했던 사람이라고 하는데 도와주러 갔다가 봉변을 당하게 됐다. 앞으로 다른 중국 사업가들에게 북한과의 거래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될 듯하다.

 

처형된 무역일꾼의 윗선은 누구였을까. 6월 29일 김정은은 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소집해 “국가와 인민의 안전에 커다란 위기를 조성하는 중대 사건이 발생했고 그로 인해 엄중한 후과가 초래됐다”고 하면서 고위 간부들을 줄줄이 처벌했다. 리병철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해임됐고, 최상건 교육 및 보건담당 비서는 회의 중에 끌려 나가 아직까지 생사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박정천 군 총참모장은 원수에서 차수로, 김정관 국방상은 차수에서 대장으로 강등됐다. 고위급이 처벌되면 부하 간부들도 줄줄이 함께 처벌된다. 이때 처벌된 간부 중 한 명이 처형된 무역일꾼의 윗선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 고위 간부들을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저들의 처지도 참 답답해 보인다. 이러면 이랬다고 처벌하고, 저러면 저랬다고 처벌하고, 그렇다고 달아날 수도 없으니 온전히 목숨을 보전할 경우의 수가 거의 없다. 김정은의 지시를 받는 순간 머릿속에는 “아이쿠, 죽었구나”하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을 것 같다. 서울에서 북한 간부들 욕하기도 미안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월간조선 09월 호

■단독입수 2020년 北 사치품 수입액으로 본 북한 경제

김정은 통치자금 2018년, 2019년에 비해 5분의 1 수준으로 줄

⊙ 사치품 수입으로 벌어들인 달러 모두 김정은 주머니로
⊙ 2018년, 2019년에 비해 확 줄어든 北 사치품 수입액… 김정은 금고 바닥났을 것
⊙ ‘달러’ 뺏기 위해 돈주들 줄줄이 처형
⊙ 현재 북한 식량 1년 수요 548만t에 비해 100여 만t 부족
⊙ 경제난 희생양 찾는 김정은, 경제 관련 당 간부들 숙청 중
⊙ 김정은의 ‘자력갱생’, 오히려 ‘제2의 고난의 행군’ 부를 것 
   

▲사진=뉴시스

 

  북한 김정은의 통치자금이 바닥을 드러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통계가 나왔다. 《월간조선》이 입수한 ‘2020년 북한의 사치품 품목(통일부 고시 13개)별 수입액 현황’ 자료를 보면 2020년 북한의 사치품 수입액은 최대 2512만 달러(한화 291억152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치품 13개 품목의 수입액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음료 및 주류 510만 달러 ▲화장품 255만 달러 ▲가죽제품 46만 달러 ▲모피제품 5만 달러 ▲양탄자류 22만 달러 ▲귀금속류 35만 달러 ▲전자·전기기기 63만 달러 ▲차량 및 부품 54만 달러 ▲선박 0달러 ▲광학·의료기기 599만 달러 ▲시계 및 부품 887만 달러 ▲악기 36만 달러 ▲예술품 0달러


  이는 2018년과 2019년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 액수다.

  2018년의 경우, 북한의 사치품 도입액은 1억3788만 달러(한화 1597억3300여억원)로 추산됐다. 품목별 수입액을 보면 ▲음료 및 주류 4211만 달러 ▲화장품 1283만 달러 ▲가죽제품 571만 달러 ▲모피제품 500만 달러 ▲양탄자류 146만 달러 ▲귀금속류 72만 달러 ▲전자·전기기기 812만 달러 ▲차량 및 부품 201만 달러 ▲선박 0달러 ▲광학·의료기기 1040만 달러 ▲시계 및 부품 4642만 달러 ▲악기 264만 달러 ▲골동·예술품 46만 달러이었다


  2019년에는 상반기에만 사치품 도입액이 8304만 달러(한화 962억원)였다.

  ▲음료 및 주류 1951만 달러 ▲화장품 552만 달러 ▲가죽제품 275만 달러 ▲모피제품 110만 달러 ▲양탄자류 56만 달러 ▲귀금속류 2만 달러 ▲전기·전자기기 11만 달러 ▲차량 및 부품 21만 달러 ▲선박 0달러 ▲광학·의료기기 650만 달러 ▲시계 및 부품 4525만 달러 ▲악기 150만 달러 ▲골동·예술품 1만 달러.

▲《월간조선》이 입수한 ‘2020년 북한의 사치품 품목(통일부 고시 13개)별 수입액 현황’ 자료를 보면 2020년 북한의 사치품 수입액은 최대 2512만 달러(한화 291억152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치품 수입액 김정은 통치자금과 연관

  국정원 관계자는 북한의 2020년 사치품 수입액이 2018년, 2019년 대비 급감한 것에 대해 “코로나19에 따른 국경통제 조치로 인한 교역량 대폭 감소, 주 수입원인 석탄 광물 등 수출 감소로 인한 외화 부족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치품 수입액은 김정은의 통치자금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주(駐)영국 북한공사 출신의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의 이야기다.
 
  “북한에서 지난 10년 동안 장마당을 중심으로 시장경제가 돌아가면서 신분은 당 간부처럼 높지 않지만 부(富)를 축적한 돈주(신흥 부르주아)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들은 평양에 있는 외화를 받는 이른바 ‘달러 상점’에 가서 사치품을 사는데, 달러 상점이 이렇게 벌어들인 돈은 다 김정은 호주머니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제재와 코로나19에 따른 국경 봉쇄 때문에 북한으로 사치품이 들어가지 못하니 돈주들은 돈이 있어도 쓰지 못하고, 자동적으로 김정은의 수입은 줄어들게 된 겁니다.

 

  국정원 슈퍼컴퓨터에 이력이 보관돼 있는 고위 탈북자도 비슷한 말을 했다.
 
  “사치품은 평양에 있는 달러 상점, 백화점으로 들어갑니다. 돈주들이 달러를 내고, 이 물품을 사지요. 이 달러는 모두 김정은한테 들어갑니다. 2018년, 2019년과 비교했을 때 2020년 사치품 수입액이 대략 5분의 1 수준으로 줄었으니, 김정은의 손에 들어가는 달러도 그만큼 줄었다고 보면 됩니다.”
 
  그는 “김정은의 통치자금을 관리하는 39호실 산하 10여 개의 총국이 거의 폐쇄 수준으로 외화벌이 활동이 중단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재 김정은의 통치자금은 거의 말랐을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이 미북회담 전제조건으로 고급 양주와 양복 등 사치품 수입 허용을 내놓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달러 확보 위해 돈주들 죽이는 김정은

  달러 기근에 초조해진 김정은은 ‘돈주’들의 달러를 강탈하기 위해 그들에게 누명을 씌워 처형・숙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 탈북자는 “김정은이 이런 어려운 상황에 쌀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비리를 저지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내세워 돈주들을 줄줄이 처형・숙청하고 있다”며 “처형・숙청의 진짜 이유는 이들의 달러를 뺏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에 돈주 등 북한 엘리트층 사이에서는 자신들이 돈 버는 데 아무것도 해준 것 없는 김정은이 ‘돈을 뺏으려 말도 안 되는 혐의를 씌운다’는 불만이 상당하다고 한다.
 
  수많은 북한 주민이 아사(餓死)해도, 김씨 일가의 금고는 빈 적이 없었다. 2020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 때 경제난·태풍피해·코로나19 등 삼중고로 인민을 걱정한다며 울먹이던 김정은의 손목에는 스위스 명품 시계가 번쩍였다. 당시 김정은이 찬 시계는 스위스 IWC사(社)의 ‘포르토피노 오토매틱’ 제품으로 1만1700스위스프랑(약 1450만원) 상당이다.
 
  태 의원은 “북한 인민의 고난에 눈물지으면서도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대상인 고가의 시계를 찬 모습은 ‘지킬박사와 하이드’와 같은 양면성이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함의”라고 했다.


 바닥 보인 김정은 금고

▲2019년 북한이 음력 설을 맞아 평양 주민들에게만 제공한 종합과자세트의 표지.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현재 북한의 식량은 1년 수요 548만t에 비해 100여만t이 부족한 상황이다. 사진=뉴시스

 

  이렇게 ‘마르지 않는 샘’이던 김정은의 금고가 바닥을 보이는 상태니, 북한 주민의 상황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제 현재 북한 경제는 최악의 상황이다. 한국은행(한은)이 지난 7월 30일 발표한 ‘2020년 북한 경제성장률 추정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년보다 4.5% 감소한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1997년(-6.5%) 이후 가장 큰 폭의 역(逆)성장이다. 2017년부터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한 북한 경제는 2019년 0.4%로 반등했다가 1년 만에 다시 고꾸라졌다. 북한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37만9000원인데 한국(3762만1000원)의 3.7%에 불과했다.
 
  한은은 통일부, 농촌진흥청, KOTRA 등에서 북한 경제 기초 자료를 받아 한국의 가격, 부가가치율 등을 적용해 북한의 경제성장률 추정치를 산출한다. 최정태 한은 국민소득총괄팀장은 “북한의 실물경제는 2003년 수준까지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북 소식통들은 “현 북한 경제는 주민들이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처럼 식량을 사기 위해 집기를 내다 팔아야 할 정도로 악화됐다”고 했다.
 
  북한의 농촌 지역 일부에서 지난해 분배받은 식량이 벌써 바닥난 이른바 ‘절량세대’가 발생했으며 심각한 기아 징후까지 나타나고 있다. 절량세대는, 분배된 것을 다 소비해버리고 먹을 곡식이 없는 세대를 말한다.
 
  일본의 북한 전문 언론매체인 《아시아프레스》는 절량세대는 해마다 6월 말이나 7월부터 생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올해는 4월 초부터 발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현재 북한의 식량은 1년 수요 548만t에 비해 100여 만t이 부족한 상황이다. 국회 정보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하계 곡물인 보리와 감자 등을 40만t 정도 수확해 추수기까지 버티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쌀값은 6월까진 급등세로 연초 대비 최대 2배까지 올랐다가 7월에 진정세를 보였지만 지금 다시 상승 추세라고 한다”고 전했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북한에 정통한 관계자를 인용, 북한 당국이 식량난 문제 해소를 위해 군이 비축해둔 식량을 주민들에게 판매하기 시작했다고 보도(8월 9일)했다. 신문에 따르면 최근 북한 당국 식량 판매소가 쌀·옥수수를 시장 평균 가격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팔기 시작했다. 북한 당국은 내년 초까지 총 400만t에 달하는 군 비축미를 방출할 계획이라고 전해졌다. 이런 조치에 ‘무료 배급’을 기대하던 주민들 사이에선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北 어린이 연령 올라갈수록 만성영양실조율 높아

《월간조선》이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경기 여주시·양평군)을 통해 입수한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및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의 북한 식량안보 긴급 합동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주민 식단의 대부분은 탄수화물이었으며(쌀, 옥수수 또는 감자) 대개 다양한 방법(국, 죽, 튀김, 면)으로 조리한 후 소량의 건조 미역, 시래기, 그리고 비교적 드물기는 하나 어떤 경우에는 된장 등을 곁들여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대부분의 가구는 육류를 전혀 소비하지 않거나 매우 적은 양만을 소비하였으며, 육류가 포함된 식사는 친지들이 평양을 방문하는 경우나 제사같이 가끔 있는 행사 때만 가능한 상황이라고 적시했다.
 
  보고서는 어린이의 연령이 올라갈수록 만성영양실조율(stunting rates)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도 했다. 북한의 만성영양실조율은 일부 도에서 32%에 달했으며, 농촌에 거주하는 유아의 경우 도시에 거주하는 유아보다 만성영양실조율이 더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이 발표한 공동 보고서 〈긴급 식량불안정 조기 경보: 2021년 8~11월 전망〉의 내용도 비슷하다. 보고서는 지난해 11월부터 오는 10월까지 연간 북한의 곡물 부족량이 86만t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북한 중앙통계국의 식량 상황표와 FAO 세계정보조기경보국(GIEWS)의 분석을 토대로 보면, 이 기간 북한의 곡물 수입 필요량은 최근 5년 평균과 비슷한 약 110만t이지만 공식 수입량은 20만5000t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미국 농무부 산하 경제연구소도 최근 공개한 〈국제식량안보 평가 2021~2031〉 보고서에서 북한을 몽골·예멘과 함께 아시아에서 식량 상황이 가장 나쁜 3개국으로 꼽았다. 보고서는 올해 북한의 식량 부족분을 104만t으로 추산하고, 주민 1630만명(63.1%)이 올해 식량 불안정을 겪을 것으로 전망했다. 보고서는 주민 1인당 하루에 열량 446kcal가 부족할 것으로 봤다.
 
  여기에 외환 통제와 국경 봉쇄로 달러와 위안화 가격이 하락하고 북한 원화 가격이 두 배로 상승한 것도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외화 가치가 하락하면 물가도 같이 떨어져야 하는데 북한에선 반대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며 “주민들의 구매력이 떨어져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北 외교관 ‘때밀이’로 생계유지

  소위 엘리트 계층인 해외 체류 북한 외교관들도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외교관은 ‘때밀이’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한다고 한다. 국경 봉쇄로 1년 반 넘게 귀국하지 못한데다 월급도 못 받고, 사무실 임대료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선택이란 분석이다.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중국 내 일부 북한 외교관과 무역 일꾼들 속에서 사우나에 출근해 때밀이로 돈을 버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때밀이가 신분을 숨기고 돈벌이를 할 수 있는데다 주로 밤에 일하기 때문에 투잡이 가능하다”며 “수입이 짭짤하다는 소문까지 퍼지면서 중국 내 일부 외교관과 무역 일꾼들은 물론 그 부인들도 사우나를 찾아 때밀이를 한다”고 했다.
 
  전직 북한 무역 일꾼 출신 A씨는 “북한 당국이 극심한 경제난을 겪는 해외 공관들을 대폭 축소하는 방안까지 고려하는 상황”이라며 “해외에서 돈을 벌지 못하고, 귀국까지 못 하니 때밀이라도 해야 먹고살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김정은은 북한의 경제난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다. 그는 지난 7월 전국노병대회 연설에서 “사상 초유의 세계적인 보건 위기와 장기적인 봉쇄로 인한 곤란과 애로는 전쟁 상황에 못지않은 시련의 고비”라고 했다. 김정은은 지난 4월 8일 당 세포비서대회 폐회사에선 “현재 어느 부문, 어느 단위나 조건은 대단히 어렵고, 없는 것도 부족한 것도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 어디에 기대를 걸거나 바라볼 것도 없다”며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할 것을 결심했다”고 했다. ‘고난의 행군’은 1990년대 중·후반 수십만~수백만명의 주민이 아사할 정도로 경제·식량난이 극심했을 때 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며 내놓은 구호다.
 
  김정은은 경제난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그 책임은 간부들에게 떠넘기는 모습이다. 자신이 계획한 화폐개혁이 실패하자, 박남기 전 노동당 계획경제부장에게 책임을 물어 죽인 것과 같다.
 
  김정은은 올해 상반기에만 전례 없이 당 전원회의를 세 차례 개최하며 간부들에 대한 숙청을 단행했다. 지난 1월 임명된 김두일 당 경제부장은 공개 비판을 받고 한 달 만에 교체됐고, 박태성 당 선전선동 비서 겸 부장도 임명 2개월 만에 사라져 실각·숙청설이 나온다. 북한은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식량 생산을 파괴했다며 농업 담당 비서를 총살한 바 있다.
 
  고위급 탈북민은 “아래로부터의 불만이 김정은 자신에게로 향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목적”이라며 “내부 동요와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공포정치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와 함께 북한 간부들은 경제정책 실패를 자인하며 반성문 릴레이를 벌이고 있다. 북한 내각과 경제 현장 간부들이 부문 간 협력 실패와 탁상행정, 형식주의 등 그간 만연했던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시인하며 자아비판을 하는 것이다.
 
  조용덕 내각 국장은 “경제 부문 간 유기적 연계와 협동이 원만히 보장되지 못했다”며 “금속·전력·석탄공업·철도운수를 비롯한 나라의 주요 경제 부문들의 협동이 제대로 되지 않아 생산에서 지장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현상의 책임을 모두 내각 앞으로 돌렸다. 조 국장은 “유기적 연계와 협동이 제대로 보장되지 못한 책임은 우리 내각 일군(간부)들에게 있다”며 “비상한 각오로 경제적 난관과 애로들을 극복하기 위한 사업을 대담하게 전개했다면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대북제재에 동참한 시진핑 위협한 사연

김정은은 경제난 극복, 자신의 비자금 조성을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는데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는 격언이 떠오를 정도다. 올해 들어 우리와의 대화 제의를 무시해오던 북한이 돌연 태도를 바꿔 통신선 복구에 합의한 배경에 ‘경제난 극복’이 있다는 분석이다.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선 외부 지원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우선 남북대화에 호응하는 신호를 보냈다는 것이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을 지낸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남북 정상 간 주고받은 친서들의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는 합의가 이미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며 “인도적 지원을 명분으로 식량 등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안이 물밑에서 논의됐을 것”이라고 했다.
 
  앞서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50만t 규모의 쌀 지원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대북제재에 동참한 중국 시진핑 주석을 위협한 일도 있었다. 2017년 8월 6일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 2371호는 북한에 경험해보지 못한 ‘지옥’을 보여줬다. 김정은 ‘금고지기’ 출신인 이정호씨는 “2017년 채택된 유엔 대북제재는 역사상 유례없는 제재로, 북한 지도부에 치명적인 타격을 줬다”고 밝혔다. 대북제재가 북한의 핵심 돈줄 역할을 하던 광물·섬유·수산물 수출과 노동시장, 원유 수입 등 수출입 시장을 막아 북한의 자금줄이 많이 차단됐다는 것이다. 김정은을 코너 끝으로 몬 것은 혈맹인 중국의 제재 동참이었다.
 
  김정은은 중국, 그러니까 시진핑의 아킬레스건을 저격하기로 했다. 시진핑의 아킬레스건은 신장 위구르다. 이 지역은 19세기 중반 청나라의 통제력이 약해지면서 독립해 동튀르키스탄공화국이란 이름으로 몇 차례 건국했지만, 1949년 중국에 강제 병합됐다. 중국 정부는 분리·독립 세력이 강한 위구르족을 늘 감시하며, ‘재교육 센터’로 불리는 여러 곳의 강제수용 캠프에선 고문과 성폭행 논란이 끊이지 않아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다. 신장 위구르 지역은 위구르족 1200만명의 고향이며, 인구 대부분은 무슬림이다.
 
  김정은은 2017년 10월 18일 열린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 대표대회(19차 당 대회) 일주일 전, 대형 화물차 두 대에 신장 위구르 무장 세력에게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게 포장한 무기를 한가득 싣게 한 후 ‘동주리물홈’[평안북도 벽동군 동주리와 마주하는 콴뎬현 다시차(大西岔)진 린장(臨江)촌으로 추정]이라는 곳으로 보냈다. 중국 당국은 트럭 안에 실린 신장 위구르 무장 세력에게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는 무기를 보고 발칵 뒤집혔다. 북·중 혈맹을 자랑하는 양국 간에 일어난 일이라곤 상상하기 어려운 사건이란 이유에서였다.
 
  대북 정보통은 “김정은이 신장 위구르 무장 세력에게 무기를 제공하는 척 한 것은 ‘중국 너희가 미국놈들과 합세하여 제재에 동참하니까 우리는 이렇게 해서라도 살아야겠다’는 강력한 메시지였다”며 “시진핑 입장에서는 굉장한 치욕이었지만, 실제로 북한이 신장 위구르 무장 세력에게 무기를 줄 수 있다는 판단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문 것”이라고 했다. 실제 중국은 애꿎은 변방대대장과 ‘따릉이’라고 불리는 중국인 대북 밀수업자를 처형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김정은 경제정책 실질적 효과 없어

  이렇게까지 해서 김정은이 얻으려는 것은 통치자금과 핵무기다. 북한은 갈수록 악화하는 경제 상황에도 올해 상반기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꾸준히 개발해오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보고서 요약본’에 따르면 북한은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고도화를 위해 외국에서 관련 부품과 기술을 입수하는 등의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전문가 패널은 보고서에서 “북한이 갈수록 악화하는 경제난 극복에 집중하고 있지만, 여전히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기술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경제·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으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강행하며 강경 도발에 매달리는 김정은은 과연 북한을 경제난에서 구할 수 있을까.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회의적인 견해를 밝혔다.
 
  “대북제재로 경제가 타격을 입은 상황에 더해 지난해 코로나19 봉쇄 조치에 따른 교역 중단과 홍수로 인한 흉작 등으로 향후 전망도 좋지 않다.”
 
  유 원장은 김정은이 내세우는 ‘자력갱생’이 오히려 ‘제2의 고난의 행군’을 부를 것이라고 했다.
 
  “자력갱생을 하려면 무엇보다 풍부한 자원과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생산시설은 물론 전력과 각종 부품 등 생산에 필요한 지원 수단 등이 마련돼야 합니다. 기술과 경험을 갖춘 노동력도 있어야 하지요. 낙후한 생산시설, 부족한 전력과 원자재 등 내부 자원이 고갈된 상태에서 자력갱생 방식으로 총체적인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2020년 발간한 〈2016년 대북제재 이후 북한 경제의 변화와 신 남북협력 방향〉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김정은의 경제정책은 실질적인 효과는 없이 선언에 머무는 것으로 보인다. 대북제재하에서 현 수준의 경제 규모를 유지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다 보니, 경제가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지 못하고 제재를 버텨내는 고비용 구조로 바뀌고 있다. 대북제재가 장기화하면 북한 경제가 수탈경제 형태로 변해 성장동력 자체를 상실할 수도 있다. 경제제재로 인한 북한의 민생경제가 악화하면 자본주의 세력에 대한 적대감을 높이고 이는 체제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져 개혁과 개방을 선택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08.27 유엔에 ‘인민 10명중 9명은 장작으로 밥 짓는다’ 보고

김정은 ‘공포 통치’에서 ‘고백 통치’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0월 10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당창건 기념 열병식에 참석해 연설도중 “주민들에게 미안하다”며 울먹이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북한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문건이 하나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2030 의제 이행에 관한 자발적 국가 검토 보고서’(Voluntary National Review·VNR)라는 제목으로 북한이 지난달 1일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다. 

 

63쪽 분량의 보고서에서 북한은 인민생활 향상과 농업·보건 등 17개 분야의 목표와 실상, 과제를 담았다. 최근 북한의 경제 실태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북한은 2019년 국내총생산(GDP)을 335억 400만 달러(약 39조2164억원)라고 밝혔다. 1조 6463억 달러 (약 1926조9942억원)로 세계 12위인 한국의 50분의 1,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사이인 세계 96위(국가통계포털 KOSIS 기준) 수준이다. 북한은 VNR에 공개한 GDP가 명목인지, 실질인지 밝히지 않았다. “모든 여성이 필요로 하는 영양이 충족됐다”는 식의 다소 모호한 표현도 여럿이다.

 

최근 ‘자발적 국가검토 보고서’ 제출

GDP 등 경제 실상 민낯 그대로 노출

보안에 부치던 통계, 기존 모습 탈피

국제 규범, 주민 불안 다스리려는 듯

 

그렇더라도 북한이 지금까지 정보 공개를 꺼려왔기에 과거 어느 때보다 구체적이고, 공식적인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식량은 2018년 495만t을 생산했다.“자연재해 등으로 최근 10년간 최저치를 기록”했지만, 2019년과 지난해 각각 665만t과 552만t 수준으로 집계했다.

 

에너지 분야에선 북한의 열악한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북한은 “에너지 현안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며 주민들의 에너지 이용실태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전기나 가스 등 청정연료를 이용하는 북한의 인구비율은 전국 평균 10.3%에 불과했다.(2017년 기준) 도시에선 취사와 난방에 석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90% 가까운 인구가 여전히 장작이나 농업부산물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력생산량을 늘리고,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 친환경 연료와 기술 도입을 촉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보건과 관련해 아동사망률 감소 등의 성과가 있지만, 보건인력과 제약·의료기기 공장의 기술 기반, 필수 의약품 부족을 과제로 꼽았다. 식수와 위생 부문은 “진전이 더디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북한이 자신들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공개한 건 대단히 이례적이다. ‘사회주의 낙원’을 내세우고 있는 북한은 과거 낙후한 장면을 철저히 가렸다. 김일성 주석 때도, 김정일 국방위원장 때도 그랬다. 북한 관영매체들을 통해 그려지는 북한은 대부분 지도자의 업적 찬양과 장밋빛 미래였다. 그렇다보니 북한은 평양을 방문한 외부인들, 특히 한국 국적자의 경우 화려한 북한의 모습만 카메라에 담도록 했다. 귀국 전날이면 방북기간 촬영한 사진을 모두 인화해 ‘검열’한 뒤, 자신들의 기준에 맞지 않는 장면에 대해선 사진은 물론이고 필름까지 잘라내곤 했다. 2000년대 후반 평양 인근을 찾은 남측 인사가 밭에서 소 쟁기질하는 모습을 보고, 목가적인 장면이라며 촬영하자 “공화국 어디에서 소가 농사를 짓느냐. 그런거 없다”며 그 자리에서 사진 삭제를 요구했을 정도다. “좋은 장면도 많은데 남측(한국)에선 왜 사실과 다른 장면만 찍으려 하냐”는 북한 당국자의 불만 토로는 일상이었다.

▲북한이 지난달 1일 유엔에 제출한 ‘자발적 국가 검토 보고서’ 표지. [사진 유엔]

 

그런 북한이 변하고 있다. 2018년 한창 남북관계가 좋을 때이긴 하지만 사진 촬영에 제약이 없었다. 이동중에 촬영을 금지하던 모습에서 “저걸 찍어야지?”라며 손을 가리킨 경우도 있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으면 “구태의연하게 그걸 묻냐”는 ‘핀잔’이 돌아왔다. 북한 매체들 역시 자연재해 현장 등 볼썽 사나운 장면들을 싣는 건 금기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지난해 김 위원장이 렉서스 SUV차량을 타고 홍수 피해 현장을 찾거나, 지방의 도로에 물난리가 난 장면을 생중계했다.

 

무엇보다 최근 공개석상에서 경제와 관련한 김 위원장의 언급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아버지인 김정일 위원장은 대중연설 자체를 삼갔다.

 

그러나 그는 기회만 있으면 마이크를 잡는다. “더이상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겠다”(2012년 4월)고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자 지난해 10월 “인민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하다”며 울먹였다. 지난 6월 15일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선 “인민들의 식량 형편이 긴장해지고 있다”며 식량난을 언급했다. 앞서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엔 “수령을 신비화하지 말라”(2019년 3월)고도 했다. “수령의 결정에는 오류가 없으니 무조건 따라야 한다”며 선대(先代) 지도자들이 만들어 놓은 논리(유일사상)의 수정이자, 일종의 고백에 가깝다.

 

유엔은 VNR을 제출하지 않을 경우, 추후 경제·기술적인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해 보고서 제출에 강제성을 뒀다고 한다. 북한이 유엔의 지원을 염두에 두고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그러나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겠다”는 북한의 입장을 고려하면 VNR은 최근 김 위원장의 ‘고백통치’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화려한 면만 부각하는 경직성에서 벗어나 외부를 의식하는 결과라는 얘기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 국제기구의 본부가 다수 있는 스위스에서 유학한 김 위원장은 국제사회와 교류 없이 경제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주변 사회주의 국가들이 이미 오래전 체제전환을 한만큼 국제기준을 무시하고는 한 걸음도 나가기 어렵다는 사실을. 김 위원장이 집권 직후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고 지시했던 게 이를 대변한다.

 

김 위원장이 ‘단번 도약’을 내걸며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북한 경제의 어려운 처지는 새삼스런 뉴스가 아니다. 또  2019년 2월 주민들의 대대적인 환송을 받으며 떠난 2차 북미 정상회담도 빈손귀국이었다. 2018년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조성한 통일의 기운도 냉각기다. 경제에서도, 외교에서도, 남북관계에서도 녹록지 못한 현실인 셈이다.

 

북한은 수령을 신(神)처럼 여기는 신정(神政)체제다. 좋지 못한 결과를 지도자의 탓으로 돌리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김 위원장의 ‘고백’은 오히려 북한 주민들이나 당국자들이 스스로를 질책하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다이어트에 나선 김 위원장의 모습을 보며 주민들이 가슴 아프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김 위원장의 고백통치가 치밀한 계산에 의한 것인지,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억압과 결속만 강조하던 이전의 모습에서 탈피해 국제사회의 규범을 의식하고, 주민 불만을 다스리는 수단이 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북, 한미훈련 마지막날 “정기국회 소집” 

북한이 다음 달 28일 정기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14기 5차)를 소집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26일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16차 전원회의가 24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됐다”며 이같이 전했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는 최고인민회의 휴회중의 최고 주권기관이다.

 

통신에 따르면 북한은 다음달 최고인민회의에서 시·군 발전법, 청년교양보장법 채택 및 인민경제계획법 수정보충(개정), 조직(인사)문제를 다루기로 했다. 북한은 1년에 1~2차례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법안 및 장관급 인사를 예고 했다.

 

눈길을 끄는 건 북한이 청년교양보장법을 채택키로 했다는 점이다. 북한은 지난해 말 동영상이나 음악등 서방 문화를 접했을 경우 처벌하는 ‘반동사상 문화 배격법’을 제정했다. 체제 이완을 막기 위한 것이다. 최근에도 사상과 일심단결을 강조하고 있다. 청년교양보장법에 어떤 내용이 포함될지 주목된다.

 

또 코로나19로 국경을 봉쇄하며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이 경제관련법을 수정키로 한 것 역시 관전 포인트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지난 1월 8차 당 대회를 열어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에 방점을 둔 5개년 경제계획을 확정했다”며 “올해 진행된 경제계획 집행 실태를 점검하고, 더욱 조이기 위해 법적 장치를 마련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시·군 발전법 및 재자원화법 집행 검열 감독 실태에 관한 문제를 논의키로 한 것도 경제난 속에서 자력갱생에 의한 지역 발전과 국가계획 수행 전반에 대한 문제점을 보완하고 대책을 강구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는 얘기다.

중앙일보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

 

09-16 ‘오빠, 동생’까지 괴뢰 말투가 된 북한

▲김정은이 지난달 30일 탄광과 건설장 등 험지로 자원 진출해 인생의 새 출발을 했다는 ‘뒤떨어졌던 청년’ 9명을 만나 격려해주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출처 조선중앙통신

 

북한의 인터넷 사이트인 ‘조선의 오늘’에 2일 눈길을 끄는 사진들이 올라왔다. 김정은이 지난달 30일 탄광과 건설장 같은 험지에 자원해 새 출발을 한 ‘뒤떨어졌던 청년’ 9명을 만났다는 사진이다. ‘조선의 오늘’은 “지난날의 과오를 깨끗하고 성실한 땀으로 씻으려는 자그마한 양심의 싹도 소중히 여기고 모두를 안아 내세워주시는 분”이라고 김정은을 치켜세웠다.

 

그 사진을 보면서 이들은 어떤 죄를 지었기에 뒤떨어진 청년이 됐을까 상상해봤다. 강력범죄를 저질렀다면 ‘접견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그나마 용서가 가능한 ‘범죄’의 범위에서 나름 짐작해봤다. 깡마른 청년들은 생활고 때문에 도둑질을 했을 것 같고, 키 큰 청년들은 주먹질하다 잡혔을 것 같다. 김정은과 사진 찍는 자리에서도 발을 쩍 벌리고 양옆 청년들과 팔짱을 낀 ‘배포 큰 청년’도 보였다. 피부도 하얗고 영양 상태도 좋은 이 청년은 무슨 죄를 지었을까. 혹 보지 말라는 영상물이나 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가 걸린 잘사는 집 자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김정은은 지난해 11월 ‘괴뢰 말투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 지금까지 많은 청년들이 체포됐다. 벌써 1년 가까이 돼 가고 있는데 단속은 점점 심해진다. 게다가 계속 새로운 ‘괴뢰 말투’들이 지정돼 내려오는데, 그걸 다 외우고 실수하지 않는 것도 예삿일은 아닐 듯하다.


처음엔 한국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단어가 괴뢰 말투로 지정됐다. 가령 연인 사이에 “오빠야, 자기야” 했다간 괴뢰 말투를 쓰는 범죄자가 되는 식이다. 그런데 청년절인 8월 28일에 새로 내려온 방침을 입수해 보니 더 기가 막혔다. 이런 대목도 있었다.

 

“괴뢰 문화의 졸렬성, 부패성을 똑바로 인식시키기 위한 사상교양 사업을 짜고들 것. 청년들 속에서 친인척 관계가 없는데도 ‘오빠’ ‘동생’이라는 괴뢰 말투를 쓰면서 불건전한 사상을 유포시키는 행위를 근절하도록 할 것.”

형제나 친인척이 아닌 관계에서 오빠, 동생이라고 부르면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연상이나 동갑이면 “철수 동지” “영희 동무” 이런 식으로 부르고, 나이가 어리면 이름을 부르라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에 한국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들어간 지 20년도 더 되는데, 어릴 때부터 그 영향을 받아 오빠, 동생 하며 큰 청년들은 하루아침에 저도 모르게 튀어나가는 호칭을 쉽게 바꾸긴 어려울 것이다.

 

오빠, 동생뿐만 아니라 방침에는 괴뢰 말투의 잔재를 완전히 쓸어버리기 위해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표현들이 잔뜩 나열돼 있다. 이번에 새로 괴뢰 말투로 지정된 표현은 이런 것들이다.


‘파격적이다. 이례적이다. 특례적이다’는 말은 절대로 쓰지 말 것. ‘단언하건대, 강조하건대, 정세하에서, 조건하에서, 금후, 사회적 거리두기’ 등도 괴뢰 말투라 피해야 한다. 괴뢰 말투가 아니지만 피해야 할 단어도 지정돼 있다.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에 대하여 ‘회고’라는 말을 쓰지 말 것”이라 내려온 것으로 보아 앞으로 ‘회고 모임’, ‘회고 음악회’ 이런 행사는 열리지 않을 듯하다. ‘친인민적’ ‘친현실적’이란 말은 ‘망탕(마구)’ 쓰지 말아야 할 단어가 됐다.


방침을 보니 시대를 역행하는 탈레반이 떠올랐다. 앞으로 북한에서 오빠, 동생 하다가 걸리면 범법자가 되고, 불미스러운 과거를 가진 뒤떨어진 청년이 돼 잘해봤자 탄광과 건설장에 가야 한다.

 

‘조선의 오늘’은 김정은이 만난 청년들을 1998년에 제작된 영화 ‘줄기는 뿌리에서 자란다’의 주인공에 비교했다. 깡패 두목이던 청년이 조직원들을 데리고 탄광에 가서 열심히 일해 영웅이 된다는 영화다. 웃기는 일은 이 영화가 북한에서 상영 금지된 영화라는 것이다. 불법영상물 단속기관의 자료에는 이 영화가 ‘장성택 역적의 여독청산과 관련하여 회수해야 할 전자다매체 목록’과 ‘역적들과 그 관련자들의 낯짝이 비춰지는 영화’ 목록에 동시에 올라있다. 여주인공 김혜경이 장성택의 정부였다고 처형됐기 때문이다. 보면 범죄자로 몰려 잡혀가던 영화를 다시 언급하며 따라 배우라고 하니 노동당 선전선동부도 이 박자 저 박자 맞추다가 맛이 간 것 같다.

 

어처구니없는 일은 북한은 ‘괴뢰말 사전’을 만들어 사람들을 마구 잡아들이는데, 한국은 저들과 함께 ‘겨레말 큰사전’을 만든다며 400억 원의 세금을 썼고, 지금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월간조선 09월 호

《일본에서 북한으로 간 사람들의 이야기》 쓴 가와사키 에이코 

⊙ 북송 재일동포가 겪은 북한의 모습을 그린 실화소설
⊙ 고3 때 사회주의 통일의 역군이 되려 홀로 北送 선택
⊙ 환영객, 일본어로 “조선학교 학생들은 단 한 명도 내리지 마라. 다시 그 배를 타고 일본으로 돌아가라”고 외쳐
⊙ 탈북 후 북한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 제기… 국제형사재판소에 김정은과 조총련의 허종만 제소

▲북송 재일교포 출신 탈북자 가와사키 에이코(왼쪽) 씨는 2004년 일본에 재정착한 이후 도쿄 도심 조총련 본부 앞에서 자신의 수기를 들어 보이며 조총련의 사죄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여왔다. 사진=조선DB

 

1944년 말 200만명 넘게 헤아리던 재일(在日) 조선인들은 1945년 해방 이후 대다수가 귀국했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일본에 남은 인원은 약 60만명. 북한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일본은 그들이 잠재적인 그리고 중대한 사회불안 요인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둘 사이의 협잡으로, 1959년부터 1984년까지 9만3340명이 북한으로 갔다. 일본에서 차별에 시달리던 그들은, 조총련(朝總聯)과 일본의 선전을 믿고 평등한 세상과 지상낙원을 그리며 북송선(北送船)에 올랐다. 꿈에 부풀어 떠난 길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도착 첫날부터 ‘속았다’는 말이 속출했다. 상식이 통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먹고 입을 것이 절대 부족했다. 그들은 노예였다. 노예들은 맞아 죽고, 굶어 죽고, 얼어 죽었다. 미쳐버린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진영이 소리 높여 찬양한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민족 대이동!’의 민낯이다

 
  《일본에서 북한으로 간 사람들의 이야기》

가와사키 에이코 씨의 실화 소설 《일본에서 북한으로 간 사람들의 이야기》.

 

  지난 7월 30일 출간한 《일본에서 북한으로 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노예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비참한 생애를 노예였던 누군가가 기록한 실화 소설이다. 2007년 일본에서 나온 책(《日本から北に帰った人の物語》(新幹社))을 읽은 실향민 곽철(郭鐵) 캘리포니아주(州) 변호사가 제작비를 부담했다. 출판 실무는 김덕영 감독이 진행했다. 북한에서 유럽으로 보내진 전쟁고아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김일성의 아이들〉(2020)을 만든 바로 그 사람이다. 두 사람은 2021년 말 개최 예정인 리버티국제영화제 발기인과 집행위원장이기도 하다. 번역은 리소라씨가 담당했다.
 
  저자 가와사키 에이코(川崎榮子)는 1942년 교토(京都)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다. 고3 때인 1960년 홀로 북한으로 갔고, 43년 동안 북한에서 살다 2003년 탈북해 2004년 일본에 정착했다. 일본 이름을 쓰고 일본 국적을 취득한 이유는 여럿이다.
 
  첫째, 북송사업으로 귀국한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일본 내에서 일본 국민으로 활동해야 일본 정부가 더욱 관심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북송 인원 중에는 6838명의 일본인 처(妻)와 자녀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사업의 일본 측 주체는 일본 적십자사다. 일본과 북한 사이의 국교(國交)가 없어 일본 적십자가 사실상 일본 정부의 역할을 대리한 것이다.
 
  설령 사업 초기에는 비인도적 사업이라는 것을 몰랐다 해도, 이후에는 사정이 다르다. 1980년대 이후에는 일본과 북한의 왕래가 가능했다. 일본 정부가 26년 동안 벌어진 북송사업의 실상을 모를 리 없다는 뜻이다. 대학살(大虐殺)에 버금가는 비극의 책임이 전적으로 북한에 있다는 점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일본 정부에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 ‘사후(事後) 대책’을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출국한 이들의 인권문제는 자기들 소관이 아니라며 시종일관 모르쇠로 일관했다. 무엇보다도 북송사업의 적극적 실행자의 한 축이라는 점에서 적어도 이 문제를 방관 혹은 방조했다는 책임이 있는 것이다.
 
  둘째, 안전문제다. 만에 하나 일본 국민의 안전에 문제가 생긴다면 일본 정부도 전면(前面)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터이다. 일본에는 조총련의 근거지가 있고, 북한을 추종하는 과격집단이 살고 있다. 일본인을 일본에서 북한으로 납치하는 집단이 북한이다. 100% 신변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가와사키 에이코 선생은 자신을 일종의 인계철선(引繼鐵線·tripwire)으로 활용하고 있는 셈인지도 모른다.
 
  셋째는 개인사(個人史)에 얽힌 감정적인 이유다. 43년 북한 생활 내내 사용했던 본명에 진저리가 나기 때문이다. 이름을 들으면 기억이 따라온다. 바꿀수 없는 몸서리쳐지는 과거사에 일상에서 시시때때로 분노가 치민다면 생존에도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다.
 

  “좀 지나면 이런 것도 먹지 못해요”

▲북송 재일교포 문제를 다룬 시미즈 한 에이지 감독의 애니메이션 〈트루 노스〉. 사진=유튜브 캡처

 

  책의 서두는 떠들썩한 항구 풍경이다. 조총련 계열 조선학교 취주악단이 쉼 없이 쿵작거리며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연주하고 부두와 사람들 사이에 형형색색의 테이프가 드리워져 있다. 사람들은, 가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이나 들뜬 분위기다. 소설 속 고3 승객 ‘경희’는 아마 가와사키 에이코 자신일 것이다. 부모 모두 남쪽 출신이라 북으로 갈 이유가 없었지만,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한행을 신청했다. 집안 형편이 어렵기도 했지만, 통일의 역군이 되고 싶었기에 결행한 일이다.
 
  4·19가 발생하자 조총련은 “이승만이 무너졌으니 남조선은 곧 붕괴될 것”이라며 “청년 인재들이 북에 가서 사회주의 통일을 미리 준비하자”고 했다.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만류했지만, 소녀는 소신에 따라 배에 올랐다. 사회주의를 배우기는 했지만 겪어보지 않았기에 직접 체험해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조총련은 “2년 후에는 자유 왕래와 일본 방문이 가능할 것”이라고 선전했다. 가와사키 에이코 혹은 경희가 큰 부담 없이 북송선을 탄 이유다.
 
  승객 모두가 ‘속았다’는 걸 안 것은 배가 청진항에 도착한 바로 그 순간이다. 도시 전체가 새카맸고, 환영 나온 사람들의 얼굴도 말이 아니었다. 씻지 못했고, 영양부족의 흔적이 역력했다. 환영객 중에는 “조선학교 학생들은 단 한 명도 내리지 마라. 다시 그 배를 타고 일본으로 돌아가라”며 일본어로 외치는 선배도 보였다. 북한 군인들이 못 알아듣도록 암호처럼 말을 건넨 것이다.
 
  하지만 선내(船內) 체류는 불가능했다. 북송 교포가 “내리지 않겠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체포되어 어디론가 끌려갔다. 함흥초대소에서 나눠준 ‘귀국 후 첫 도시락’은 ‘사료’로도 쓸 수 없는 수준이었다. 모두가 버린 밥을 누군가가 보자기에 챙겨 담았다. 한 달쯤 먼저 도착한 하급생이었다. 거지처럼 구는 모습이 괘씸하고 전신(全身)의 피가 거꾸로 흐를 만큼 기가 막혔지만, “좀 지나면 이런 것도 먹지 못해요”라는 하급생의 혼잣말을 이해하게 된 건 바로 며칠 후다. 누군가가 항의와 분노의 표시로 벽에 걸린 김일성 보천보 전투 그림을 짓밟았다. 바로 어딘가로 끌려간 그의 얼굴을 다시 본 사람은 없었다.
 
  경희는 살아남기 위해 평생을 말조심하며 살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래도 일본으로 편지는 쓸 수 있었다. 1년 후 출발하려던 고향의 가족들에게 ‘서두르지 마시고, 막내가 다 자란 뒤 천천히 오시라’는 편지를 거듭 발송한 가와사키 에이코의 실화가 겹친다. 가족들은 계속 같은 이야기만 써서 보내는 큰딸의 속마음을 알아듣고 일본에 남았다.


  간식 대신 골탄

  책에는 모두 여덟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가와사키 에이코 여사가 전하는 재일교포 귀국자들 삶의 기록이다. 처음부터 탄광이나 산간벽지로 배치되든 대도시에서 편하게 일하든 결론은 같다. 누군가가 재일교포들을 연행하고, ‘간첩이 아니냐’며 일본 내에서의 행적을 캐묻는다. 가족들은 사라진 이들의 행방을 모른다.
 
  사방 70~80cm의 시멘트 독감방에서는 사람이 앉을 수도 설 수도 없다. 징그러운 벌레들의 습격과 취조를 빙자한 무자비한 폭력은 그곳의 다반사(茶飯事)다.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던 사람은 북한 독재자에게는 그 존재 자체가 ‘위험인자(危險因子)’인지도 모른다. 북으로 귀환한 인민군 포로들조차 ‘자본주의 경험’을 했다며 거의 다 숙청한 북한이 아닌가.
 
  그래서 본토박이라면 웃고 넘어갈 일도 귀국동포에게는 적용 기준이 다르다. 사소한 불평불만조차 국가반역죄로 간주해 처벌하는 것이다. 의견을 내거나 생각을 말하는 것도 금지다. 사회주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말 한 마디로 잡혀가는가. 누가 그들의 말과 행동을 보고 듣고 일일이 기록하는가.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배경이 있다. 귀국동포들은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감시 대상이다. 과수원 낙과(落果)를 주워도, 가지에 달린 과일을 몰래 따갔다며 누군가가 밀고(密告)하는 정도다. 밀고자에게는 포상이 따른다. 그래서 모두 열심이다. 이웃 사람 모두가 24시간 눈에 불을 켜고 나의 삶을 감시하는 삶. 재일교포들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 배경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속았다’는 탄식이나 취중에 부른 일본 노래 한 소절이다.
 
  간식이 먹고 싶은 아이들이 골탄(석탄과 진흙을 이긴 것)을 껌 삼아 씹고(실제로 단맛이 난다고 한다), 강냉이 낱알을 하나하나 헤아리며 먹는 곳이 북한이다. 무엇보다도 인명을 경시하기에 안전사고가 잦다. 교통사고, 폭발사고, 건축현장 동원 중 추락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다 인재(人災)다. 하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는 법이 없고, 보상이나 사과도 기대난망(期待難望)이다.
 
  안전사고만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해치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무법천지(無法天地)가 바로 북한이다. 한 가족의 생명이 걸린 화물인 줄을 뻔히 알면서도, 열차 승무원과 승객들은 다른 이들의 물품을 거리낌 없이 훔치고 빼돌린다. 내가 먼저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굶주림 앞에선 체면이나 염치가 들어설 틈이 없다. 


  자살자 가족은 수용소로 끌려가

열차 여행은 편안한 레저가 아니다. 과장 보태지 않고, 그야말로 목숨을 건 행동이다. 모두가 악에 받쳐 있는 상황이라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한 번 떠나면 언제 다음 열차가 올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래서 무조건 승차다. 좌석이든 복도든 화장실이든 예외 없이 모든 공간이 사람으로 꽉 찼기에, 때로는 업은 아기가 압사(壓死)할 때도 있다. 용변은 창문을 열고 해결해야 한다. 화장실 칸까지 갈 수도 없고, 화장실 안에도 이미 뇌물을 고인 누군가가 짐을 가득 실어놓았기 때문이다. 전기가 끊어지면 며칠씩 열차가 멈춰서는 일도 부지기수다. 냉난방은 물론 사치다. 다 알아서 각자가 해결해야 한다.
 
  골짜기를 가로지른 난간 없는 다리 위에 열차는 한없이 멈춰 있는데, 한 여학생이 잠결에 평지로 착각해 바닥에서 일 보고 온다고 점프했다가 산골짜기 밑으로 추락사한 일도 있다. 기차는 여전히 멈춰 있고, 한참 아래로 굴러 떨어진 여학생은 아직 숨이 붙어 있는데 아무도 구하러 가지 않는다. 갈 수도 없지만, 구해온 다음 일도 난감하기 때문이다.
 
  30년 만에 만난, 일본에서 고향방문단으로 건너온 친구가 건넨 3만 엔은 생명의 동아줄이었다. 장사 밑천으로 활용하면 수십 년 가난을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3만 엔은 지역의 당 간부에게도 큰돈이었다. 더 위에서 알기 전에 각종 구실을 붙여 물건을 몰수하고, 온전히 자기 주머니로 집어넣었다. 돈을 뺏긴 재일교포가 죽어도 양심의 가책은 없다. 다만 위에서 추궁해 비위 사실이 드러나고, 지방으로 추방되는 것이 두려울 뿐이다.
 
  자살도 할 수 없다. 자살하는 것 자체가 사회주의 조국에 대한 비방이자 배신이기 때문이다. 자살자의 가족은 그날로 수용소로 끌려간다. 그래서 가족들의 안전을 염려한 한 일본인 처는 이렇게 유서를 남겼다.
 
  “나는 절대로 이 나라의 제도나 정치에 불만이 있어서 죽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어머니로서 자식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실격자이기 때문에 죽는 것이다.”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

가와사키 에이코 여사는 북한에서 결혼해 1남4녀를 낳았다. 결혼하지 않으면 간첩이라고 의심받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사망했고, 후에 탈북한 딸 하나를 제외한 가족들은 아직도 북한에 남아 있다. 국제 인권단체가 관심을 가진 사안이라 수용소로 추방되지는 않았지만, 보위부가 그의 가족을 집중 감시 중이라는 전언(傳言)이 있다. 의약품 등을 보내고 싶어도 연락이 닿지 않는 것을 보면 이 말은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브로커나 다른 탈북자들도 이러한 점을 모르지 않기에 물품전달 부탁을 할 수도 없다. 소설 속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지만, 가족 이외에 친구나 친지 등도 남아 있어 소설 속 등장인물의 이름과 고향 등을 살짝 바꾸었다. 11월에는 영문판도 출간할 계획이다.
 
  재일교포 역사학자이자 시민운동가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양태호(梁泰昊·1946~98) 선생을 ‘양태황’으로 표기한 것은 아쉬운 오타다. 그렇다고 이 책의 가치가 빛바래는 건 아니다. 북한의 속살을 보고 싶다면, 무엇보다도 진실을 알고 싶다면 일독을 권한다. 소생, 읽는 내내 둔중한 기운이 가슴을 짓눌렀다.
 
  가와사키 에이코 여사는 부모님과 상봉했다. 27년 만이었다. 독단으로 오게 된 북한이라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지만, 부모님이 1986년 북한을 방문했다. 부모님 허리는 곧은데 본인의 허리가 휘어 있어 민망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딸의 모습을 보고 분노했다. 북한 그리고 조총련과 발을 끊었다. 어머니는 모두 네 번 북한에 오셨다.
 
  탈북 후 중국에서 지내며 일본 귀국을 확정할 무렵, 아버지는 병상에 누워 계셨다. ‘내가 갈 때까지만 버텨주시라’는 바람이 통했는지, 아버지의 임종(臨終)을 지킬 수 있었다. 2004년 귀국 후 나흘 만의 영면(永眠)이었다.
 
  가와사키 에이코 여사는 현재 NGO 단체 ‘모두 모이자’, 사단법인 ‘AKU JAPAN’을 이끌며 북송문제 해결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북한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을 도쿄지방재판소에 제기하고,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에 김정은과 조총련의 허종만을 제소한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승소(勝訴)하면 일본 내 조총련 자산에 대한 압류를 시도할 계획이다.
 

 

〈피와 뼈〉 〈트루 노스〉

▲북송 재일교포 문제를 다룬 시미즈 한 에이지 감독의 애니메이션 〈트루 노스〉. 사진=유튜브 캡처

 

이 책과 더불어, 재일교포 북송문제에 대해 두 편의 영상도 함께 추천한다. 하나는 양석일(梁石日·85)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최양일(崔洋一·62) 감독의 〈피와 뼈(血と骨)〉(2004년)다. 두 사람은 재일교포 2세다. 두 번째는 제44회 프랑스 안시 애니메이션 영화제에 나온 시미즈 한 에이지(淸水ハン榮治·50) 감독의 〈트루 노스(True North)〉(2020년)다.
 
  양석일 작가는 택시 운전을 하며 발표한 소설 〈달은 어디에 떠있는가〉가 유명하다. 이 소설 역시 최양일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다. 양 작가의 아버지와 두 여동생은 북송선을 탔고, 그 후 부친은 곧 사망하지만 남은 가족이 아직 북한에 있다고 한다. 1998년에 발표한 〈피와 뼈〉는 작가의 유년 시절 기억이 담긴 자전 소설이다. 최양일 감독이 각색도 맡았는데, 주연 배우로는 일본의 국민배우 기타노 타케시(北野 武)가 출연했다. 최양일 감독과의 친분이 작용한 결과다.
 
  ‘애니메이션이라면 전 세계 사람들이 즐길 수 있다. 북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고 제작 의도를 밝힌 시미즈 한 감독은 재일 한국인 4세다. 인권침해가 심각한 북한의 실정을 알리고 싶다는 사명감에 탈북자 증언을 수집하며 10년에 걸쳐 〈트루 노스(True North)〉를 제작했다.
 
  이 애니메이션의 소재가 《일본에서 북한으로 간 사람들의 이야기》와 겹친다. ‘1960년대 북송사업에 참여해 북한으로 건너간 후 간첩 혐의를 받아 가혹한 수용소 생활을 겪는 한 가족을 주인공으로 하는 픽션’이다. 본인의 가족 중에는 없지만, 그의 어머니에게는 ‘북송사업’으로 북한으로 건너간 뒤 소식이 끊긴 친구가 여럿 있다고 한다. 그것이 작품을 만든 동기였다고 한다.
 
  재일교포 북송은 가와사키 에이코, 양석일, 최양일, 시미즈 한 감독을 넘어서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관련된 문제인지도 모른다. 인류 전체에 대한 도발이며 인권유린이기 때문이다. 심각한 인권침해는 현재진행형이며 해결의 기미도 보이지 않지만,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도 인권운동일 수 있다. 진실을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거짓과 폭력의 힘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글 : 장원재  장원재TV 대표  

 

10.13 북한의 외화흡수 작전과 김여정의 ‘실천’

김병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장·경제학부 교수

9월 말 김여정 담화의 키워드는 남한 정부의 ‘실천’이었다. 얼마 후 조선중앙통신도 “남조선 당국은 선결되어야 할 중대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할 것”이라며 재차 ‘실천’을 강조했다. 북한은 다급해졌다.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 후 김정은은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들고 와야만 협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0년 7월에 김여정은 “제재를 가해온다고 우리가 못사는 것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미국에 끌려 다니겠는가”라며 “미국이 바쁘지 우리는 바쁘지 않다”고 여유를 부렸다. 그런데 지금은 남한이 적극적으로 행동하라고 압박한다. 기다림이 초조함으로 바뀐 것이다.

 

북한의 시간 셈법을 바꾼 것은 경제다. 필자의 추정에 따르면, 2017∼19년 북한 주민의 가계소득은 이전 3년 대비 25% 줄었으며, 제재의 충격을 가장 적게 받는 시멘트 산업의 지난해 생산량도 2015년 대비 25% 감소했다. 북한 정권은 초기엔 제재의 영향을 과소평가했지만 이젠 그 무게를 절감하고 있다. 더욱이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 경제난은 훨씬 심각해졌다. 가장 긴급한 문제는 정권이 사용할 수 있는 외환보유고가 빠른 속도로 감소하는 것이었다. 외환보유고가 고갈되면 무역이 재개되더라도 경제의 생명줄인 석유와 생필품을 수입할 수 없다. 김정은 일가를 위한 소비품과 권력층에게 지급할 선물도 수입할 수 없다. 제재를 더 버텨내려면 주민 보유 외화를 정부로 흡수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남한 실천을 강조한 김여정 담화
오히려 북한의 초조함 담고 있어
민간 외화를 흡수하려는 시도가
북이 처한 곤경을 뚜렷이 보여줘

코로나 방역 조치인 무역 봉쇄가 ‘외화흡수 작전’을 펼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강제로 빼앗으면 주민의 반발이, 드러내놓고 작전을 펴면 제재 효과를 더 확신할 미국의 대응이 염려됐다. 따라서 시장을 활용하여 조용히, 그리고 값싸게 주민 외화를 사들일 방법을 궁리했다. 무역이나 밀수가 막혀 있으니 주민이 외화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은 북한 내 시장뿐이었다. 만약 시장에서도 달러나 위안화를 사용할 수 없다면 외화 가치는 크게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2009년 화폐개혁 때처럼 외화 사용을 명시적으로 금지할 수는 없다. 마치 시장의 수급으로 인해 달러가 절하되는 양 가장하는, 이른바 ‘어둠의 하락 작전’을 펴야 했다. 지금까진 작전이 먹혀들었다. 지난해 10월, 1달러에 8000원, 1위안에 1200원 하던 환율이 지금은 각각 5000원, 700원으로 떨어졌다.

 

문제는 2단계, 즉 주민 보유 외화를 ‘조용히’ 정권 곳간으로 옮기는 ‘어둠의 이동 작전’이다. 싼값으로 달러를 시장에서 암암리 매집하고 있지만 지금 환율로 외화를 팔려는 주민은 많지 않다. 최근 북한 정부가 발행한 ‘돈표’는 이런 상황에서 나온 외화흡수 방안이다. 예전에도 돈표는 있었다. 외화를 가진 사람이 북한에서 물건을 사려면 이 돈표와 교환해야 했기 때문에 ‘외화와 바꾼 돈표’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번에는 ‘외화와 바꾼’이란 말을 아예 빼고 돈표를 찍었다. 발행의 목적이 외화 부족을 메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민에게 일종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려는 양 가장하려 했다. 그러나 정말 재난지원을 위해서라면 현금으로 지급하면 될 것을 비용까지 들이며 돈표를 찍을 이유가 없다. 결국 돈표를 자발적으로 외화와 바꿀 주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만약 강제력을 발동한다면 ‘대낮의 작전’이 되어 북한의 아킬레스건이 대내외에 다 드러날 것이다.

 

비핵화 압력에 맞선 북한의 전술은 ‘숨기기, 압박하기, 흔들기’다. 북한의 곤경을 숨기고, 무기 개발 속도전을 벌여 한미를 압박하면서, 한국을 흔들어 제재를 허문 상태에서 유리한 조건으로 미국과 협상하려는 속내다. 이에 대응하는 우리 정책은 북한의 상황을 정확히 아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북한의 치트키를 우리가 꿰뚫고 있다는 것을 김정은이 알아야 제대로 된 비핵화 협상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북한 행동의 이유를 드러내고, 군사적 억지력을 키우고, 철저한 한미 공조 가운데 움직여야 한다.

 

북한이 단지 대화에 나오는 대가로 제재를 해제하자는 제안은 미숙하고 성급하다. 비핵화 협상은 빨리 시작되는 것이 좋다. 비핵화의 진전에 맞추어 제재도 점진적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북한 스스로 미래를 위해 핵을 내려놓는 결단을 하도록 국제적 환경도 조성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을 협상에 불러낼 목적으로 제재를 해제하면 오히려 한미의 협상력만 떨어진다. 그 상태에서 북한이 버티면 실제 핵보유국이 될 수도 있다. 일부에서는 제재 해제라는 인센티브를 먼저 주되 스냅백(snapback) 조항을 넣자고 한다. 북한이 협상에서 비핵화를 거부하면 다시 제재를 부과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중 갈등이 첨예화된 지금, 이런 제안은 이미 철 지난 레퍼토리다.

 

제재로 경제난이 지속되는 한 북한은 협상 트랙을 벗어날 수 없다. 김여정 ‘실천’의 역설적인 고백이다. 문재인 정부는 어떻게 빨리 협상을 시작할지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시작보다 성공이 더 중요하다. 잘못 시작하면 협상을 그르친다. 정확한 지식으로 때를 읽어야 한다.

중앙일보 김병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장·경제학부 교수

 

 

월간조선 10얼 호

■허세의 공화국 북한

⊙ 음식점에서 국수를 시킬 때 ‘국시’라고 발음하는 것은 금니를 보여주기 위해서

⊙ 김정일, “酒量은 度量”… 술 대신 보리차 마시면서 자기는 절대 술에 취하지 않는다는 거짓 신화 유포

⊙ 사랑을 고백할 때 여학생이 거부하거나 답하지 않으면 주먹으로 피가 나올 때까지 나무를 치며 “이래도? 이래도?” 하며 소리쳐

▲2018년 10월 5일 평양 5·1경기장에서 열린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의 한 장면. ‘허세의 공화국’ 북한을 보여주는 듯하다. 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이 세계 최고인 분야가 있다. 허세(虛勢)다. 규정보다는 뇌물이 앞서고 법보다는 주먹이 가까운 곳에선, 남들에게 만만하게 보이면 바로 당한다. 끝없이 당한다. 간부들에게 시달리고 동네 건달들에게 무시당하며, 사기꾼들에게 이용당한다.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센 척, 강한 척, 있는 척을 해야 한다. 그래서 북한에서 허세는 자기 보호 수단이자 생존 방식이다.  

 

허세의 출발점은 의복이다. 집에선 풀죽을 먹어도 밖에 나갈 때는 차려 입고 나서야 한다. 못 먹은 건 눈에 안 띄어도 못 입은 건 바로 눈에 띄기 때문이다. 남자라면 흰 셔츠와 러닝셔츠를 입으려 한다. 잘 다림질한 깨끗한 옷은 잘사는 사람의 상징이다. ‘나는 막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을 굳이 내 입으로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 손에 생수통을 드는 것이 포인트다.  

 

배가 나왔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살찐 사람이 부(富)와 권력의 상징인 곳이 북한이다. 멜빵이 간부들의 전용 패션인 이유다. 그래서 마른 체형인데도 ‘있어 보이려고’ 일부러 멜빵을 착용하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북한에선 셔츠를 바지 밖으로 늘어뜨려 입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중국제 봉황 장식 허리띠를 구입한 다음 날은 사정이 다르다. 상의를 하의 속으로 넣고 바지를 최대한 추켜올려 입는다. 길 가는 사람, 직장 동료들이 모두 쳐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멋있다’ ‘보여달라’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꼭 있게 마련이다. 그럴 때 ‘별것 아니다’라고 무심한 척해야 있어 보인다.  

 

음식점에서 “국시 두 그릇 빨리 달라. 시간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수’가 아니라 ‘국시’라고 하는 건 금니 때문이다. 국수라고 발음하면 금니가 보이지 않는다.  

 

“시간 없다!”는 대사의 핵심은 손목시계를 접대원 코앞에 들이미는 동작이다. 왼손을 한껏 올리고 오른손으로 시계를 여러 번 가리키면 주변의 다른 손님들도 눈길을 준다.  

 

음식점에서 돈을 좀 쓸 요량이라면, 외화식당에 가서 메뉴판을 마다하고 “다 가져오라”고 말하면 된다. 함께 간 일행의 시선이 달라진다. 자금이 부족하다면 장마당에서도 비슷한 연출을 할 수 있다. 인조고기밥, 꽈배기, 삶은 달걀, 떡 매대에 가서 딱 두 마디만 하면 된다. “이거 다 얼마요?” “담으라” 하며 반드시 명령문을 써야 하고, 흥정을 하거나 값을 깎지 않는 것이 동행자에게 허세 보이는 효과를 극대화하는 요령이다.    

 

김정일의 허세  

허세 하면 술 얘기가 빠질 수 없다. 술은 남성성(男性性)을 사수(死守)하는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집으로 술친구들을 데려오면 “○○ 에미, 사발 들여오라!” 하고 소리친다. ‘첫 잔은 사발로!’가 북한식 주도(酒道)의 상식인 까닭이다. 한 손에 들어오는 한국식 소주잔은 ‘제사상에나 쓰는 물건’이지 실전용이 아니다.  

 

김정일(金正日) 어록 중엔 “주량(酒量)은 도량(度量)”이라는 황당한 것도 있다. 남들은 취하도록 사발에 술을 부어주고 취중진언(醉中眞言)하게 하는데 부하들을 감시하기 위해 본인은 보리차를 마셨다고 한다. 이러면서 본인은 아무리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는 거짓 신화(神話)를 유포했다. 이게 ‘김정일의 허세’다.  

 

주당(酒黨)들의 다음 대사는 “야! 라이타!”다. 40도짜리 독주(毒酒)를 마신다는 걸 자랑하기 위해 술에다 불을 붙이는 것이다. 누군가 “농태기술(개인이 만든 옥수수술) 19도짜리야 그저 맹물이지” 해야 주흥(酒興)이 돋운다. 다른 사람을 깎아내려야 술맛도 나고 위로받는 느낌도 든다.  

 

남성성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마디 더 하자면 ‘고난의 행군’ 때 실제로 쫓겨난 남편이 하나둘이 아니다. 가정 살림에 도움이 되지 않고 눈치조차 없기 때문이었다. 남편들의 “그래도 내가 바지 입었는데”라는 가부장적 발언은 이제 설 자리가 없다. 과거에는 ‘화목(火木) 패기’ 등 생활에 근력(筋力)이 꼭 필요한 일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남편이 “술 한잔 사주기 전엔 나무 안 패겠다”고 어깃장을 놓으면, 아내들은 아무 말 없이 장마당에 가서 ‘팬 나무’를 사온다.

 

1990년대 후반 장마당이 생긴 이후에 벌어진 현상이다. 권력 없고 돈 없고 공부도 하지 못한 남자들에겐, 안까이(아낙네)에게조차 밀린다는 건 견딜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밀린 사람들은 어떻게든 시비를 걸어 ‘잘나가는 놈들’을 팬다. 일상에 폭력이 난무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고난의 행군’과 ‘폭력’으로 북한에 새로 등장한 직업(?) 이야기를 하려 한다. 해결사다. 이들은 대신 빚을 받아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북한의 특징은 채무자 쪽에서도 방어사(?)를 동원한다는 점이다. 이들이 서로 만났을 때도 허세 작렬이다. 선글라스를 끼고 통성명한 뒤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고 상대를 노려보며 기싸움을 한다. 손에 박인 굳은살을 과시하고 손바닥이나 주먹으로 콘크리트 바닥을 긁으며 대화를 이어간다. 굳은살은 거친 노동이나 격투의 흔적이 아니다. 직업(?)을 위해 무른 살을 뜯어내며 만든 인공 결과물이다.    

 

청춘의 허세  

북중(北中) 접경지대 세관(稅關) 앞도 허세의 경연장이다. 손전화(휴대전화)를 들고 주변 사람이 다 듣도록 “여보시오!”를 외치는 사람은 초짜다. 비즈니스 통화인 척, 하지만 주변에 다 들리게 계산한 성량(聲量)으로 통화를 하는 사람이 일류 사기꾼이다. “단동? 알갔다. 내가 차 끌고 들어가면 되니?”라는 식으로 전화기에다 대고 말하는데, ‘나는 중국까지 기차 몇 량을 운행할 수 있는 능력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통화 내용은 물론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위압형(威壓形) 통화도 있다. “여보시오? 누구야? 시끄럽다. 좀 있다 다시 하라!”고 나지막하게, 하지만 다소 노기(怒氣) 어린 음성으로 전화를 끊는 것이 포인트다. ‘갑질할 만한 사람’이라는 걸 돌려 말하는 것이다.  

 

초일류는 동원하는 장비와 인력의 수준이 다르다. 외화(外貨)를 만지는 회사 사장인 척하는 경우로, 자동차를 타고 모임에 온다. “야, 운전수 오라!”로 경제적 능력을, “야, 지도원 오라!”로 정치적 배경을 과시한다. 목소리를 최대한 깔고 느리게 말하며 헛웃음을 터뜨리는 것이 남들 눈을 혹하게 만드는 요령이다. 

 

  마른 체형이어서 외모가 밀리거나, 손전화 보유 등 기초투자(?)가 불가능한 사람은 과거 경력으로 허세를 부린다. “내 한마디면 4여단, 5여단 다 나와서 줄 쫙 서고…”의 군대회고형, “사형장 끌려가다 안전원 까고 튀어서 살았다. 지금은 장군님이 직접 오해를 풀어주셨다”는 인생과장형, “대남연락소에서 밀선(密船) 타고 어디 좀 여러 번 갔다 왔다”는 확인불가 비밀기관 근무설 유포형 등이 있다. 이 중 마지막 유형은 “그때 공작금 남은 게 어디 해안에 묻혀 있는데…”라며 사람들을 유혹하기도 한다.  

 

청춘들의 허세도 있다. “나 누구다”라고 말하며 오른손으로 머리를 쓸어넘기는 것이다. 고개도 동시에 뒤로 확 젖혀주는 것이 포인트다. 1980년대 초반 영화에 나온 뒤 아직까지 북한 전역에서 유행하는 동작이다.  

 

사랑 고백도 특이하다. 좋아하는 여자를 자전거에 태워 산으로 간 뒤 “나 너 좋아한다. 너 나 좋아하나?” 식으로 직진한다. 여학생이 거부하거나 답을 하지 않으면 주먹으로 나무를 친다. 피가 나올 때까지 친다.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이래도? 이래도?” 하며 사자후(獅子吼)를 토해야 한다. 영화에서는 여학생이 “나 같은 게 뭐라고…”라며 눈물을 흘리고, 손수건으로 남학생 주먹의 상처를 싸매준다.    

 

김씨 일가의 일그러진 자화상  

최고 권력층이라고 허세가 예외는 아니다. 오진우(吳振宇·1917~1995년) 전 인민무력부장이 남긴 전설적인 일화가 있다. 특수부대를 방문한다고 예고하고 “너희 부대 주방 좀 돌아보갔어”라고 따로 전언한다. 오진우가 오는 날, 부대장과 부대원들은 살점이 일부 붙어 있는 고기 뼈를 뜨물 버리는 통에 담가놓는다. 퍼포먼스를 위한 사전(事前) 준비다.  

 

오진우가 뜨물 버리는 통에서 고기 뼈를 맨손으로 꺼내는 것이 공연의 시작이다. “수령님께서는 병사들 먹이겠다고 고생하시는데, 우리가 이렇게 낭비하면 충성스러운 전사가 아니다” 운운하는 것이 기승전결(起承轉結)의 ‘승(承)’이다. 오진우가 현장에서 고기를 뜯어 먹는 오버(?)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오진우의 충성스러운 언행은 상부에 보고되고, 부대장과 부대원은 ‘알아서 행사를 잘 조직한 공로’를 인정받아 각종 이익을 누린다. 김씨 일가의 기분에 기생(寄生)한 ‘허세 충성’의 끝판왕이다.  

 

무엇이 북한 사람들을 ‘허세’로 내모는가? 북한 체제의 모순이다. 김씨 일가는 감추고 싶은 비밀이 많다. 남북회담에서 보이는 정치적 허세는 비밀을 감추려는 위장막(僞裝幕)이다. 북한 주민들도 허세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서로 속고 속이며,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 권모술수(權謀術數)와 배신이 난무하는 것이 북한의 일상이다. 수십만, 수백만명이 굶어 죽는 곳에선 체면이 밥을 먹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속지 않으려면, 당하지 않으려면 필사적으로 잘사는 척, 권력 있는 척을 해야 한다. 그래야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 그래서 북한 전역에서 보이는 각종 허세는 김씨 일가의 일그러진 자화상(自畵像)인지도 모른다.⊙   

글 : 장원재  장원재TV 대표  

 

10.29 中 대사 입국은 불허, 밀수꾼은 사살… 北 2년째 ‘방역 감옥’

도 넘는 北의 코로나 공포

앤드루 김 미국 중앙정보국(CIA) 전 코리아미션센터장이 이달 초 세미나에서 ‘문재인 정부 임기 내 남북 정상회담이 또 열릴 것인가’라는 질문에 “예”라고 답한 뒤 “아마도 온라인이고 대면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김 전 센터장은 2018년 미·북 정상회담의 막후 주역이었다. 최근 남북 모두 ‘정상회담’을 거론하고 있다. 그런데 형식은 대면 아닌 화상 회담이 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정부 소식통은 “북의 코로나 포비아(공포)가 여전히 심해 대면 회담하자는 말도 꺼내기 어렵다”고 했다. 북은 어떤 상황일까.

 

평양역 앞에서 북한 방역 요원이 주민 손에 소독제를 뿌려주고 있다. 북한 전문가들은 코로나 봉쇄와 국제 제재, 수해 등이 겹치면서 북한 경제 상황이 계속 악화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AFP 연합뉴스

 

“단둥 北사업가, 아내 사망해도 귀국 못 해”

북·중 교역의 70%가 이뤄지는 중국 단둥의 조선족 사업가는 “작년 여름쯤 북한 무역일꾼의 아내가 평양에서 지병으로 사망했는데 국경 봉쇄 때문에 남편이 아직도 단둥에 있다”고 했다. 북 노동력이 새로 들어오지 못하면서 기존 북 노동자들의 월급이 중국인의 90% 수준까지 올랐다는 얘기도 있다. 북은 2004년 사스와 2014년 에볼라, 2015년 메르스가 유행할 때도 국경을 닫았지만 국경 도시 중심의 밀무역은 완전히 차단하지 못했다. 강폭이 10여m에 불과한 압록강·두만강 상류를 야밤에 몰래 넘는 것까지 단속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특수전 부대를 보내 국경을 봉쇄했다고 한다. 주한 미군 사령관도 ‘국경에서 밀수꾼 사살 명령이 내려졌다’고 했다.

 

평양에서 6년 8개월째 근무 중인 리진쥔 중국 대사는 역대 최장수 기록을 세웠다. 중국이 원해서가 아니다. 올 1월 후임으로 왕야쥔 대외연락부 부부장(차관)이 결정됐지만 국경 차단으로 교대를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 주재 지재룡 북한 대사도 마찬가지다. 지난 2월 후임인 리용남 대사가 베이징에 부임했는데도 귀국하지 못하고 있다. 두 명의 대사가 8개월째 같이 지내는 것이다. 작년 말 국정원에 따르면 김정은은 바닷물이 코로나에 오염됐을까 봐 어업과 소금 생산을 금지했다고 한다. 철새도 막는다고 한다.

 

코로나 의심 환자는 ‘고려장’ 처리

북한 공포에 이유는 있다. 2019년 5월 북은 세계동물보건기구에 아프리카돼지열병 한 건이 발생했다고 알렸다. 그런데 그해 9월 국정원은 “평안북도 돼지가 전멸했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방역·의료 시스템이 무너진 북에서 바이러스 확산은 체제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 김정은이 ‘기저 환자’인 것은 더 심각한 문제다. 살을 뺐다고는 하지만 비만일수록 코로나에 취약하다는 연구가 있다. 북에선 김씨 일가 안전이 최고의 가치다. 탈북 외교관은 “김정은이 대면 회담에 나갔는데 CIA 등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몰래 퍼뜨리면 끝장 난다는 걱정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정보 소식통은 “코로나 의심 환자가 북에서 계속 나오고 있다”고 했다. 지역별로 격리 시설을 만들어 놓고 열·기침 증세를 보이면 바로 수용한다고 한다. 진단 장비는 절대 부족하다. “약과 식량을 제대로 공급하지 않아 죽어나가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상 ‘고려장’인 셈이다. 자유아시아방송은 얼마 전 “전 세계에서 백신이 없는 나라는 아프리카 국가인 에리트레아와 북한 두 곳뿐”이라고 했다. 북한은 코백스(국제 백신 협력체)가 중국산 백신 공급을 제안했으나 거부했다. 믿을 만한 ‘미국산’을 달라는 것이다. 코로나 의심 환자는 있고 백신은 없는 상황에서 북한 선택지는 외부 접촉 금지밖에 없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방역은 ‘기저 환자’ 김정은의 유일한 업적

이번 주에도 북한은 코로나 확진자가 ‘0명’이라고 세계보건기구에 보고했다. 4만2773건을 누적 검사했지만 전원 음성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작년부터 코로나 방역을 진두지휘한 결과라고 북은 내부 선전할 것이다. 경제도, 외교도 전부 엉망인 상태라 코로나 방역이 김정은의 유일한 업적이 됐다. 북은 김정은 한마디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경직된 체제다. 김정은이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밑에서 누구도 ‘방역 완화’를 먼저 거론할 수 없다. 유성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은 “지금 한국과 대면 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김정은표 방역’에 이견을 말하는 것이 된다”고 했다. 북에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직접 만나는 장면이 연출된다면 북 주민들은 ‘봉쇄가 곧 풀릴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한번 풀어진 방역 긴장은 다시 죄기 어렵다.

 

김정은은 한미 정상과 여러 차례 대면 회담을 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북 주민들이 기대했던 제재 해제도, 대규모 경제 지원도 얻지 못했다. 남북 정상이 다시 만나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크다. ‘종전 선언’이 북 주민의 주린 배를 채울 수는 없다. 대면 아닌 화상 회담일 경우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한류·탈북 차단은 방역 봉쇄의 부수 효과

김정은이 코로나 방역을 핑계로 부수적 효과를 챙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금 북 정권은 한류(韓流) 유입이 코로나만큼 위험하다고 여긴다. 한국 드라마를 보고 탈북을 결심했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특히 배급을 받아본 적이 없는 청년 세대의 이반이 문제다. 그래서 작년 12월 한류 처벌을 강화한 ‘반동사상 문화 배격법’까지 제정한 것이다. 남편을 ‘오빠’라고 불러도 징역 2년이다. 국경 봉쇄 때문에 새로운 K팝이나 드라마 유입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탈북 억제 효과도 크다. 올해 3분기까지 한국에 들어온 탈북민은 48명에 불과하다. 작년엔 229명이었고 코로나 이전인 2019년만 해도 1047명이 입국했다. 방역으로 코로나뿐 아니라 한류와 탈북까지 차단하는 것이다.

 

[北, 19년만에 ‘돈표’ 발행… 주민 보유 달러 반강제 흡수]

경제가 최악이면 그 나라 화폐가치는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코로나 봉쇄와 제재로 ‘고난의 행군’급 경제난을 겪은 북한에서 원화(북한 돈) 가치가 강세를 보이고 있어 의문이라고 블룸버그 통신이 최근 보도했다. 작년 10월 1달러당 8000원이던 북 환율이 지금은 5000원이라고 한다. 위안화도 1200원에서 700원이 됐다. 북한 민간이 보유한 달러와 위안화를 누가 흡수하고 있나.

/데일리NK

 

북한 정권이 19년 만에 ‘돈표<사진>’를 발행했다고 북 전문 매체들이 보도했다. 평양 개선문 등이 그려진 실물도 공개했다. 외화를 장마당에서 바로 쓰지 말고 ‘돈표’로 바꿔 사용하라는 것이다. 작년 말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관은 페이스북을 통해 평양 시내 상점들이 달러나 외화 선불카드 대신 북한 돈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실상 달러, 위안화 사용 금지령이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 무역이 차단된 북 주민이 장마당에서 식량이나 생필품을 사려면 보유한 외화를 ‘돈표’와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울대 김병연 교수는 “1달러가 8000원에서 5000원이 되면 북 정권은 3000원을 앉아서 먹는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 봉쇄가 장기화하면 북 정권의 외환 보유액도 바닥을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 예전처럼 주민이 가진 외화를 강제로 뺏을 수도 없다. 그러니 19년 전 ‘돈표’를 다시 꺼낸 것이다. 북한 돈이 달러로 대체되는 이른바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이 심화할수록 김정은이 강조하는 자력갱생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북은 코로나를 계기로 주민들 달러를 긁어가면서 북한식 화폐 경제를 시도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세계은행’도 잘 모르는 김정은 체제의 경제 실험이 성공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  안용현 논설위원

 

10-30 집권 10년 ‘김정은주의’… 배곯는 인민에 강요된 核·수령 숭배

▲노동당 창건일 기념강연회 연설 나선 김정은.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10년을 맞아 당 회의장 배경에서 김일성·김정일 부자 사진을 없애고 내부적으로 ‘김정은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국가정보원이 그제 국회 국정감사에서 보고했다. 김정은이 할아버지·아버지와 다른 독자적 사상체계를 정립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북한은 또 한반도 종전선언을 논의하기 위한 대화의 선결조건으로 한미 연합훈련의 중단과 광물 수출, 석유 수입 등 제재 해제를 내걸고 있다고 국정원은 밝혔다.


김정은주의는 김정은이 집권 이래 내걸어 온 ‘인민대중제일주의’와 ‘우리국가제일주의’를 아우르는 김정은 시대의 도그마를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선대(先代)에 부여하던 ‘주의’를 벌써 김정은 이름에 붙인 것은 김정은 체제의 공고화를 위한 권력층의 안간힘일 것이다. 김정은에게는 공식 호칭은 아니지만 이름 앞에 ‘또 한 분의 위대한 수령’ 같은 수식어가 붙으며 그간 할아버지에게만 부여됐던 수령의 반열로 올라가고 있다.

 

김정은은 올해 1월 8차 당대회에서 총비서 자리에 오르면서 당규약 개정을 통해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선대의 역사로 돌렸다. 아버지 시대의 ‘선군정치’도 삭제하고 대신 인민대중제일주의를 내세웠다. 아울러 2017년 장거리 핵미사일 도발 이후 세계적 전략국가의 반열에 올랐다며 우리국가제일주의를 제창해 왔다. 하지만 인민도 제일, 국가도 제일이라는 김정은주의는 집권 10년의 현실을 감추기 위한 허상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과 함께 권좌에 오른 김정은은 친족 살해와 측근 숙청 등 공포정치로 권력층의 충성을 강요하고 주민들에겐 핵무기로 상징되는 국가주의 환상을 심으며 대중 동원 체제를 이끌어왔다. 3년 전 비핵화를 내건 외교 쇼로 국제무대에 나타나 개혁·개방의 기대도 낳았지만 결국 북한을 다시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자폐(自閉)국가로 되돌렸다. 그 결과가 김정은 스스로 토로하고 있는 극심한 식량난이다.

 

김정은은 이제 “미국이나 남조선은 우리의 주적이 아니다”라며 슬금슬금 대화의 여지를 시사하고 있다. 그만큼 어렵다는 절박감의 반영이다. 그런데도 대화 테이블에 나오는 것 자체를 카드로 내밀며 터무니없는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핵을 껴안고 더 버텨 보겠다는 심산이겠지만 그건 집권 10년을 파탄과 재앙의 역사로 마무리 짓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굶주린 인민들에겐 핵미사일도 수령도 숭배와 복종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동아일보 사설

 

11.05 북한 주민들, 언제까지 김정은 정권 신뢰할까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11일 조선노동당 창건 76주년을 기념하는 ‘역사적인’ 연설에서 ‘조선혁명’을 이끈 당의 공적을 장황하게 치하했다. 그리고 소위 ‘사상 사업’, 즉 혁명에 대한 믿음과 김 위원장 및 노동당에 대한 충성심을 유지하는 것과 관련한 여러 문제에 대한 해법을 촉구했다. 문제의 범위와 정도가 퍽 인상적인데, 북한 주민들의 믿음이 빠르게 약해지고 당 조직이 부패하고 무너져내리고 있는 걸 암시한다.

 

김 위원장은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게 “사람들의 의식 상태와 사회적 환경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인정했다. 또 사상 사업의 요체를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참된 충신, 열렬한 애국자로 준비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는데, 많은 주민이 그렇지 못하다는 얘기다. ‘법기관’에 대한 당의 지도를 강조한 건 경찰(사회안전국)이 당 지시를 무시하고 있음을 안다는 뜻이다. 당 고위 일꾼을 두고도 “당 정책을 무조건 철저히 관철하는 것을 체질화”해야 하며, “건전한 도덕 풍모를 소유”해야 한다고 했다(즉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간 본 칼럼에서 북한 정권이 마주한 ▶코로나19 ▶경제 침체 ▶고위층 분열 등 여러 위기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조선혁명에 대한 믿음, 즉 국가 비전에 대한 믿음이 붕괴할 경우도 특히 간부층까지 그럴 경우 정권에 치명적일 수 있다.

 

이런 비전은 영국의 인도 통치 말기처럼 그저 소멸할 수 있다. 200년 가까이 인도인들은 정도 차는 있어도 발전과 번영이란 영국의 비전을 믿었기에 영국의 지배를 수용했다. 하지만 1945~46년 생각이 달라졌고 영국의 통치는 어느 관료의 말마따나 ‘헝겊 인형에서 톱밥 새듯이’ 힘이 빠졌다. 47년 인도는 독립했다.

 

비전은 때론 순식간에 파괴되기도 한다. 루마니아 독재자였던 차우셰스쿠는 사회주의 블록에서 국가 정체성을 지키고 국익을 수호할 지도자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1989년 12월 당국에 의한 반체제 목사의 교단 축출 사건이 계기가 돼 시위가 거세졌고 같은 달 21일 그의 연설은 야유 받았다. 4일 후 그는 처형됐다. 반면 벨라루스의 루카셴코는 지난해 부정선거로 신뢰를 잃었지만, 정보기관의 충성 덕에 반정부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정권을 유지했다.

 

북한은 수십 년간 강력한 비전에 의해 지탱됐다. 김일성 주석 땐 ‘아버지 수령의 보살핌을 받는 사회주의 지상낙원’이었고, 90년대 기근 이후엔 ‘적대적인 외세 공격을 받는 희생양’이다. 현명하고 자애로운 김씨 일가만이 핵무기 개발을 통해 북한을 속박에서 구원할 수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의 이번 연설은 두 번째 비전마저 퇴색하고 있고 주민은 물론 당 일꾼마저 정권을 믿지 않고 있다는 걸 시사한다. 동시에 김 위원장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해법을 찾은 것 같지는 않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때 번쩍이는 고층 건물 영상을 방영하며 새 비전을 제시하려고 애쓰는 듯했으나 씁쓸한 실패가 됐다. 그렇다면 북한 주민들이 외국인들처럼 북한을 ‘잔인하고 우스꽝스러운 지도자가 이끄는 불합리한 국가’라고 보게 될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이 경계한 “사람들의 의식 상태에서 일어나는 커다란 변화”다. 북한 정권엔 끝장일 수 있다.

 

어찌 될까. 영국의 인도 통치처럼 끝날까. 아니면 루마니아처럼 될까. 성난 군중이 갑자기 김일성광장에 모여 변화를 요구하면 김 위원장이 루카셴코처럼 시위대를 강제해산할 수 있을까. 경찰이 방관하진 않을까. 주민을 향한 발포 명령에 군이 따를까. 차우셰스쿠처럼 외려 그가 공격당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국가 비전에 대한 신뢰 추락으로 북한 정권이 자체 붕괴한다는 발상이 터무니없게 들릴 수도 있다. 영국령 인도에서도, 루마니아에서도 불가능해 보였었다.

중앙일보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월간조선 11월 호

11.13 北 국가경제발전전략 5개년 계획

“北, 경제전략 허구와 망상으로 만들어… 경제 해결 못 해”

⊙ 김정은 처음으로 ‘경제 전략’ 사용… 선대들과 차별화

⊙ 北, 자신들 핵보유국 지위에 올라섰다고 선전

⊙ “핵이야말로 인민에게 만복을 누리게 하는 가장 정당한 로선”⊙ 北, 인민 생활 소비품 제대로 생산하지 못해 인민들 불편

⊙ “풀과 고기를 바꾸자!” 김일성 때 만들어져⊙ “北 개혁개방 하지 않는 한 경제 절대로 살리지 못한다”

 

▲2016년 5월 6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개최된 제7차 노동당대회에서 김정은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북한은 2021년 1월 5일 개막한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이례적으로 경제 실패를 인정했다. 당시 김정은은 개회사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수행 기간이 지난해까지 끝났지만 내세웠던 목표는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했다”며 경제 실패를 자인했다.
 
  그러면서 “결함의 원인을 객관이 아니라 주관에서 찾고 경험과 교훈, 범한 오류를 전면적으로 깊이 있게 분석하고 총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사실상 경제 실패의 결함을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북한이 경제 실패를 인정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북한은 1993년 당 전원회의 당시 “제3차 7개년 계획을 원래 예견한 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됐다”며 처음으로 경제 실패를 인정했다. 그러면 왜 북한은 자신들이 세운 경제 전략이 실패했다고 인정했을까.

  《월간조선》은 최근 북한 내각이 2016년 4월 발표한 ‘국가경제발전전략’ 원본 자료 전체를 입수해 분석했다. 자료는 총 6개의 장과 19개 절로 이뤄졌다.
 
  해당 자료는 2014년 1월 10일과 2015년 6월 10일 두 차례 김정은의 지시가 있었고, 이를 국가경제발전전략중앙상무에서 작성한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상무라는 개념은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잠깐 꾸려진 조직을 말한다. 즉 5년간의 경제 전략을 세우기 위해 경제 전문가들이 모여 자료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이 해당 자료 작성 목적으로 밝힌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 당의 사회주의 경제강국건설 구상을 실현하는 데서 현시기 가장 중요한 문제인 에네르기(에너지) 문제를 기본적으로 풀고 먹는 문제를 해결하며 금속공업을 활성화하고, 지식경제 강국건설의 도양을 마련하여 경제 발전의 높은 속도와 균형을 보장하는 데 이바지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라고 했다

 
 北, 과거 ‘경제 계획’에서 ‘전략’으로 바꾼 이유

▲북한이 2021년 9월 30일 신형 반항공 미사일을 시험발사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자료에서는 “우리 당의 사회주의경제건설을 위한 현명한 령도와 사회주의경제강국건설구상을 밝히고 나라의 경제와 인민생활 실태를 분석한 데 기초하여 국가경제발전의 전략적 목표와 방향, 중심, 그 실현방도와 대책들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국가경제발전전략’을 처음 공개한 것은 2016년 5월 6일부터 9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된 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다. 1953년 8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처음으로 경제발전을 위한 ‘3개년 계획’이 나온 이후 5개년 계획(1957~1961), 7개년 계획(1961~1967), 6개년 계획(1971~1976), 7개년 계획(1978~1984) 등이 발표된 바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경제 전략으로 제시된 적은 없었다.  

 

북한이 ‘경제 계획’에서 ‘전략’으로 변경한 이유는 김일성·김정일과 김정은 시대에 차별화를 두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과거 김일성 시대의 경제는 외부 의존도가 높았다. 구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과의 차관 또는 원조를 통한 계획 경제였다. 하지만 1990년대 초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이 붕괴하면서 북한은 자체 생산으로 경제난을 극복해야 했고,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과거 장성택 측근으로 일하다 탈북한 김성남(가명)씨는 이에 대해 “김일성 시대 북한은 완전한 외부 의존형 경제였다. 그것이 공산국가 붕괴와 함께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며 “김일성 시대에는 북한이 자립경제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북한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고 말했다.  

 

김씨는 북한 원산경제대학과 인민경제대학에서 공부한 뒤 여러 경제 관련 자리에서 일을 하다 장성택의 눈에 들었다. 그는 1990년대 초 장성택과 함께 해외를 다니며 곧 북한이 망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김씨는 북한이 ‘경제 계획’에서 ‘전략’으로 바꾼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김씨의 말이다.  

 

“과거 북한은 3개년, 5개년, 7개년 등 여러 계획 경제 노선을 유지해왔다. 김일성, 김정일 시대 모두 그랬다. 보통 경제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모든 기관과 단위마다 자신들이 수행할 계획과 목표를 세워 중앙으로 올려보내라고 지시한다. 각급 기관 단위, 도, 시, 군에서 올라온 계획을 가지고 내각에서 그것을 수정해 김일성, 김정일에게 보고하고 다시 내려보내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그러나 이번 ‘국가경제발전전략’을 보면 김정은이 과거 선대들과는 차별화된 방식으로 경제를 이끌어나갈 것이라는 의지가 보인다. 또 과거 방식을 탈피하고 내각에 상무조를 만들어 계획을 수립하게 한 것은 하급 기관들을 믿지 못한다는 의미로도 보인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 시대와 차별화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하는 것 같다. 이뿐만 아니라 군 관련해서도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며 “과거 자신의 선친들과는 다른 지도자로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중이다”고 말했다.  

 

박은주 통일연구원 부연구원도 이에 대해 “과거 선대들과 차별화 정책을 펴려는 것과 정상국가가 됐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의도도 숨어 있다”며 “이제는 북한이 국가경제발전전략을 세우고 이를 집행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역량을 갖추게 되었음을 대내외에 공표한 것이라 볼 수 있다”고 했다.   

 

 北, 핵보유국 자랑하던 병진노선에서 경제건설로 급선회

 

▲북한이 주장하는 핵과 경제 병진노선 포스터.

 

자료는 1990년대 어려운 시기에도 김정일이 북한을 핵보유국 지위에 당당히 올려놨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이 경제건설과 핵 무력건설 병진노선으로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고 했다. 해당 부분을 살펴보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의 애국헌신의 장정에 의하여 새 세기 산업혁명의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고 지식경제 강국건설의 돌파구가 열리게 되었으며 우리나라가 핵보유국, 인공지구위성제작 및 발사국의 지위에 당당히 올라서게 되었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경제건설에 쌓아올리신 불멸의 업적을 만대에 길이 빛내어 나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는 일심단결과 불패의 군사력에 새 세기 산업혁명을 더하면 그것이 곧 사회주의 강성국가라는 고전적정식화를 내리시고 새 세기 경제강국건설로선을 제시하였으며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령도하고 계신다.”  

 

또 북한은 “우리 당의 사회주의경제강국건설을 위한 구상은 무엇보다 먼저 경제건설과 핵 무력건설 병진로선을 튼튼히 틀어쥐고 경제강국건설을 다그치는 것이다”며 “경제건설과 핵 무력건설을 병진시킬 데 대한 로선은 우리 혁명의 최고 리익으로부터 항구적으로 틀어쥐고 나가야 할 전략적 로선이며 우리 인민이 핵 강국의 덕을 입으며 사회주의 만복을 누리게 하기 위한 가장 정당한 로선이다”고 밝혔다.  

 

김성남씨는 “북한은 사실상 경제보다는 핵이 먼저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김정일 시대는 더욱 심했다”며 “김정은 시대에 경제를 더 강조하는 것은 자신들은 이미 핵을 가지고 있기에 이제는 경제에 신경 쓸 때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2018년에 김정은이 핵·경제 병진노선을 경제건설로 선회한다고 선언한 것도 이것 때문일 것이다”며 “덧붙여서 2016년에 5개년 전략을 세웠는데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니 경제에 더 힘을 집중하려 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김정은이 2018년 4월 20일 노동당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 “우리 공화국이 세계적인 정치사상 강국, 군사강국의 지위에 확고히 올라선 현 단계에서 전당, 전국이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것, 이것이 우리 당의 전략적 노선”이라고 선언한 것을 놓고 국내외 학자들은 북한이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경제건설로 전략을 선회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씨는 자료의 내용을 살펴보며 이렇게 말했다.  

 

“자료를 보면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을 전면적으로 확립해야 한다며 사회주의 원칙을 지키며 큰 실리를 얻자’고 되어 있는데 이것 자체가 모순이다”며 “북한식 경제관리방법으로는 절대로 경제를 살리지 못한다. 이유는 북한 자체로 생산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1990년대 초에 벌써 북한이 자랑하던 김책제철소가 용광로 4개 중 3개가 멈춰 있었다. 그 이후에도 돌아가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또 사회주의 원칙을 지키라고 강조하고 있는데 북한은 이미 사회주의가 아니다. 형식상 사회주의지 자본주의가 된 지 오래다.”  

 

정성장 센터장은 “북한이 수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017년에 강력한 대북제재로 인해 16년에 세웠던 계획들이 진행되고 있지 않자 핵에서 경제로 노선을 바꾼 것”이라며 “그런데 코로나19가 닥치고 자연재해가 겹치면서 큰 피해를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은 “2017년 김정은은 미숙했지만, 핵무장 성공을 서둘러 발표했다. 이는 대외적인 측면에서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그랬을 것”이라며 “핵무장을 한 다음엔 경제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당시 강력한 대북제재로 어려운 시기라 판단하고 경제에 총 집중하기 위해 노선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10년간 지출 185.7% 초과… 인민들 식량도 해결 못 해”  

자료에는 현재 북한의 경제 상황과 주민들의 생활실태에 대해서도 서술했다. 하지만 곳곳에 오류와 과장된 수치, 통계들이 난무하고 있다. 먼저 자료 내용을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경제는 세계적인 경제 파동에도 끄떡하지 않는 자립적 민족경제이며 국방력 강화와 경제건설에 필요한 현대적인 무장 장비들과 기계 설비들을 자체로 만들어내는 위력한 경제이다. 그러나 나라의 경제실태를 분석하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적지 않다. 사회 총생산액의 안정한 장성(성장-기자주)과 통화안정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 총생산액은 국가 경제력을 특징 짓는 중요한 지표의 하나이다. (중략) 최근 년간 경제강국건설을 위한 투쟁이 힘있게 벌어져 사회 총생산액이 2002년~2014년 기간에 년 평균 105.7%로 장성하였다. 그러나 최고생산년도인 1980년에 비하면 아직 낮은 수준에 있다. 국가예산집행에서 최근 10년간 수입에 비하여 지출이 평균 185.7%로 초과하여 통화안정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또 북한은 2014년 12월 사회주의 재산 총 실사와 생산능력 평가를 한 결과 인민경제 중요 부문의 생산능력은 설계능력에 비하여 현존능력이 전력 70%(518만KW), 석탄 58%(1793만 톤), 강철 31%(117만 톤), 시멘트 47%(226만 톤)인데 생산 실적과 비교해 보면 전력 44%, 석탄 92%, 강철 10%를 비롯한 적지 않은 지표들이 생산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특히 전력 부문을 집중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전기 생산에 관한 지표들을 나열했지만, 해당 지표들도 모두 허위로 작성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김성남씨는 “북한이 실제 자료에 나오는 대로만 생산된다면 주민들이 지금처럼 살지는 않을 것이다”며 “북한은 현재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 있다. 전기를 생산하려면 발전기가 돌아가야 하는데 그 발전기를 돌릴 연료도 없는 형편이다. 물론 석탄으로 조금씩 돌리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10년간 수입보다 지출이 평균 185.7% 초과했다고 말했는데 아마 이보다 더 초과해서 지출했을 것”이라며 “이의 99%가 김정은의 사치품구입에 쓰였을 것이다. 김정일의 선물용으로 쓰이는 216 벤츠 창고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는 몇만 대의 벤츠가 진열되어 있었다. 그때는 사람들이 식량이 없어서 굶어 죽고 있는 시기였는데 사치품으로 그렇게 쌓아두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마도 각 도, 시, 군 등 하급 기관들에서 자료를 받아 작성했을 것이다. 그런데 밑에서 제대로 된 정보가 아닌 거짓 정보들로 채워 중앙에 올려보냈을 것”이라며 “진짜 정보들을 올려보내면 김정은이 아마 충격받아 쓰러질지도 모른다”고 했다.  

 

박 부연구원도 “자료를 살펴보면 2002년부터 2014년까지 총생산액이 연평균 105.7%로 성장했다고 했는데 이 정도 수준이면 북한은 지금 부자 나라가 되어 있어야 한다”며 “지난 1월 김정은이 경제 5개년 전략에 실패했다고 인정했는데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자료는 인민생활실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북한은 “우리 당에서 인민생활 향상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으나 식량과 필수 소비품을 제대로 생산 보장하지 못하여 인민들의 생활에 불편을 주고 있다”고 자책했다.  

 

북한은 자료에 식량생산량에 대해 “알곡생산량이 1979년 657만6000톤에 비하여 2014년 614만 톤으로서 93.4% 수준에 있다. 인구 1인당 알곡생산량은 1979년 404kg에서 2014년 301kg 수준으로 낮아졌다”고 했다.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1979년과 2014년은 별다른 차이가 없다. 그런데 북한 주민들은 매년 식량난으로 허덕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1970년대 후반과 비교해 93%가 아니라 20~30%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북한은 주민들의 생활 향상에 대해 강조하면서도 자료에는 가장 적은 부분을 할애해 생활실태를 언급했다.  

 

2017년 탈북한 김예성씨는 “북한은 1990년 말 ‘고난의 행군’ 이후 계속해서 식량이 모자랐다”며 “농사도 잘 안되어 중국에서 들어오는 옥수수를 사먹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고 증언했다.    

 

北, 에너지 문제 인민생활 향상 선차적 과업

▲북한이 만든 국가경제발전전략 수행을 독려하는 포스터.

 

  북한은 인민생활 향상에 앞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전력이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인민 생활은 물론 북한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력, 화력, 풍력 발전소들을 이용해 전기 생산에 적극 힘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수력발전소를 통해 2018년까지 250만KW, 2022년까지 380만KW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잡았다.  

 

2012년 통계청이 공개한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북한 관련 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연간 총 전력소비량은 1971년 1만3463GWh(기가 와트시), 1980년 1만9201GWh, 1990년 2만5111GWh, 2000년 1만6334GWh, 2005년 1만9292GWh, 2008년 1만8121GWh 등으로 집계됐다.  

 

화력발전소를 통해 150만KW 수준 이상으로 정상화하고, 풍력을 30만KW로 확대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북한의 발전소들의 부품과 설비들이 노화한 상태에서 이 같은 전력을 생산하기란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북한은 인민들의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농산과 축산, 수산을 3대 축으로 해야 식생활 수준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북한이 농산과 축산, 수산업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농산과 축산, 수산 부문의 방법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해당 내용을 살펴보자.  

 

“농산물은 다른 나라의 다수확 품종들을 들여와 우리나라에 맞게 적응시켜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한 벌 농사가 아닌 두 벌, 세 벌 농사를 통해 알곡 생산을 높이고, 풀과 고기를 바꿀 데 대한 당의 방침을 철저히 관철한다. 지역 특성에 맞게 인공풀판과 자연풀판을 대대적으로 조성하고 영양가 높은 먹이 풀을 만들어 집짐승들을 키워나가야 한다. 수산 부분은 2018년까지 원양선박을 비롯한 여러 현대적인 고기배 300척을 만들어 선진적인 어로 기술 수산들을 도입해야 한다. 특히 양식을 비롯해 제대로 된 정보를 통해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북한에서 농민으로 살다 탈북한 김분녀씨는 “당에선 2벌, 3벌 농사를 하라고 지시하지만, 북한 실정으로는 절대로 3벌 농사까지 할 수 없다. 1벌도 힘든 마당에 3벌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또 땅이 척박하여 곡식이 잘 여물지도 않는다. 여기에 비료도 없는 실정이다”고 한탄했다.  

 

2010년에 탈북한 김성일씨는 “평생을 바다에서 살았다. 그런데 자료에 나오는 대로 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지금 있는 배도 부품이 낡아 바다 한가운데서 오도 가도 못 할 때가 잦다. 이로 인해 인명 피해도 발생한다”고 했다.  

 

김인태 책임연구원은 “아마 북한이 5개년 전략을 만들 때까지만 해도 김정은의 자신감은 차고 넘쳤을 것”이라며 “핵무장 이후 더욱 자신감에 넘쳐서 남북・미북 정상회담을 연이어 했는데 결국 무산되고 거기에 코로나19와 자연재해, 대북제재가 겹치면서 김정은의 계획은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北, 대북제재 해제 고려해 전략 수립  

북한은 대외무역을 더욱 활성화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북한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벗어나 러시아, 동남아시아, 중동을 비롯해 여러 국가와의 무역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특히 러시아 원동지역시장을 개척해 대외경제 관계를 확대발전시켜 2020년까지 10억 달러를 끌어올리는 데 중점을 뒀다. 그러면서 러시아로부터 전력과 수력발전소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끌어오기 위한 전략도 세워야 한다고 했다.  

 

다음으로 베트남,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시장을 뚫어 아시아 지역 나라들과의 무역에도 힘써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보세무역항으로 선정되는 항안에 조선-아시안물자 교류시장을 꾸리고 원유와 생고무를 비롯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물자를 마그네샤크링카(마그네사이트), 공작기계, 굴착기 등 우리가 생산한 물자와 설비를 맞바꿈하기 위한 대책을 세운다”고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김성남씨는 부정적이었다. 김씨의 말이다.  

 

“북한이 중국에 대한 의존성을 낮추기 위해 러시아와 동남아 나라들에 대한 무역을 확대할 것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 역시 틀린 계산이다. 먼저 러시아는 과거 김일성 때와 달리 북한과의 교류와 원조 등을 해줄 의향이 전혀 없다. 또 동남아 지역 나라들도 북한과의 교류에서 이득이 되는 것이 많지 않다. 자료에서 보면 공작기계와 굴착기 등 북한이 생산한 기계들과 맞바꾼다고 하지만 그 나라들은 이미 최첨단 기계를 보유하고 있어 북한처럼 낙후된 곳에서 생산하는 기계와 누가 거래하려고 하겠나. 예전에 내가 장성택 부장과 일할 때 북한의 광물을 팔기 위해 여러 나라를 돌면서 시장 조사를 한 적이 있다. 광물 특성상 99%의 순도를 자랑해야 하지만 북한 상품은 1차 가공만 한 것이라 상품 가치가 없었다. 지금이라고 달라진 것은 없을 것이다.”  

 

북한은 몽골, 인도, 파키스탄과 경제무역관계를 활성화하면서 이란 시장도 개척할 목표를 세웠다. 몽골과는 임가공 무역, 맞바꿈 무역을 추진하며 기술 무역을 활발히 벌이기 위한 대책을 세운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몽골을 비롯한 자료에서 언급하는 나라들은 대부분 친한파가 된 지 오래된 국가들이다. 이들이 과연 북한과의 교류를 원할지가 문제라고 김씨는 말했다.  

 

특히 몇몇 나라 이외에 미국이 대북제재를 하는 것을 알면서 북한과 거래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북한은 앞으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도 계획하고 5개년 전략을 구상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인태 책임연구원은 “아마 김정은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을 것이다. 일단 목표를 세워놓고 미국과 관계 개선을 통해 대북제재를 풀어나갈 심산이었을 것”이라며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핵 보유 성공을 공표했고, 미국이 더욱 압박한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후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문재인 대통령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할 계획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계획대로 됐고 당시와 2019년도 하노이 회담 전까지 분위기가 좋았다”며 “하노이 회담이 결렬되자 그동안 구상했던 시나리오들이 모두 물거품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또 북한은 러시아와 동남아 지역을 비롯한 여러 지역과의 합영, 합작을 더 확대하고 광산 개발 등을 담보로 투자를 끌어오기 위한 대외활동을 전략적으로 벌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독일과 유럽 기업들이 북한 흥남지구를 비롯한 경제개발구들에 진출하도록 투자유치활동을 적극 벌여야 한다고 밝혔다.    

 

경제특구 관심  

북한은 경제특구 사업에도 관심을 돌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에는 “국가의 안전을 지키고 나라의 경제적 리익을 보장하는 원칙에서 경제개발구 개발에 대한 투자의 안전성과 특혜조건을 담보해주기 위한 대책을 세운다”며 “관련법들과 시행규정들을 투자가들에게 투자의 안전성과 특혜를 법률적으로 보장해주는 방향에서 수정, 보충, 완비해야 한다”고 했다. 관련 내용을 살펴보자.  

 

“경제개발구와 관련법과 규정집행에서 일관성을 보장해야 한다. 국제관례에 맞는 투자환경을 법적으로 담보해주도록 한다. 경제개발구에 대한 투자촉진활동을 적극 벌여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 임도 개발구, 청수관광 개발구, 무봉국제 관광특구, 경원경제개발구를 비롯한 개발구 개발에 필요한 투자를 끌어들인다.”  

 

김성남씨는 “지금 중국 동북 지역에 가보면 북한에 투자했다가 뒤통수 맞고 쫓겨 나온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북한은 상습적으로 투자를 받아놓고 전면 몰수하는 식으로 지금까지 사업을 진행해왔다”며 “그런데 과연 누가 투자를 하겠다고 할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지금 모든 수단을 동원해 경제를 살리고 싶겠지만 이런 환경이라면 절대로 북한 경제는 좋아질 수 없을 것”이라며 “만약 어느 정도의 개혁개방을 한다면 희망이 보일지 몰라도 그 전엔 절대로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같은 의견이다. 박은주 부연구원은 “지금 미국이 대북제재를 하고 있는 속에서 북한이 할 수 있는 것은 중국을 통해 몰래 들여가는 방법밖에는 없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경제를 발전시킬 수 없다”며 “북한을 살릴 길은 두 가지다. 개혁개방인지, 핵 포기인지 그런데 북한 입장에선 두 가지 모두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글 : 정광성  월간조선 기자  jgws89@chosun.com

 

12-08 “北 여군 70%가 성범죄 피해, 마취 없이 강제로 낙태”

북한에서 여군으로 6년간 복무하다가 탈북한 여성이 성범죄 피해 사실을 고백하면서 북한의 심각한 인권침해 실태에 대해 증언했다.

탈북 여성 제니퍼 김 씨는 최근 워싱턴의 민간단체 ‘북한인권위원회(HRNK)’와 인터뷰를 통해 “북한 여군에 대한 가장 심각한 인권 침해는 성폭행 범죄다. 경험상 북한 여군의 거의 70%가 성폭행이나 성추행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며 “나 역시 성폭행 피해자”라고 고백했다.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23세 때 부대 정치 군관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군의관에게 마취 없이 강제로 낙태 수술을 받았다. 그는 “조선노동당 입당 결정 등에 막강한 권한을 가진 정치 군관의 요구를 거부할 경우 자신의 미래가 송두리째 날아가기 때문에 그런 수모를 견뎌야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 상처와 고통이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힌다”며 “이런 경험으로 인해 아이를 가질 수도 없고 좋은 결혼 생활을 하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영국에서 북한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는 탈북자 박지현 씨 역시 지난달 유엔 여성기구 영국 국가위원회(UN Women UK)가 시작한 ‘젠더 기반 폭력 추방을 위한 16일의 캠페인(16 Days of Activism against Gender-Based Violence)’ 발대식에 참석해 북한 여성들이 겪는 폭력 피해들에 대해 증언했다.

지난 2일(현지시각) 미국의소리(VOA)에 따르면 박 씨는 “북한은 성폭력이나 성추행 같은 문제에 대해서 정부 자체가 관여를 안 한다고 봐야 한다. 오히려 피해자가 더 욕을 먹는 사회다. 북한이 남녀평등법을 발표했어도 남녀에 대한 서로의 존중이 없기 때문에 남자가 여자한테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할 수 없다. 아주 심각하다”고 말했다.

북한의 형법은 상관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에 대해 2년 이하 징역, 엄중한 경우 5년 이하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 인권단체들은 북한 관리들의 부패와 위력, 가부장적 문화 때문에 이 같은 형법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 씨는 “결국 의식이 문제다. 성인지 감수성과 성폭력 등 모든 형태의 폭력에 대해 인권 의식이 없는 북한 주민들에게 교육적 차원의 외부 정보를 적극적으로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치훈 동아닷컴 기자 sch53@donga.com

 

 

월간조선 12월 호

■북한법 어디까지 왔나

한국 문화 막고, 경제 교류 준비하는 북한

 

⊙ 법 위에 노동당 규약, 그 위에 김일성·김정일·김정은 김씨 3대의 ‘교시’
⊙ 권리 없고 의무만 있는 북한
⊙ 남한의 노래, 드라마 유포 금지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제정되고 열흘 후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에서 ‘대북전단금지법’ 통과시켜
⊙ ‘전람회법’ 제정해 경제 교류 준비하는 북한

▲북한의 ‘1972년 사회주의 헌법 발표’를 기리는 전시물. 평양의 조선혁명박물관에 있다. 사진=《로동신문》 캡처

 
 

문화는 막되, 돈은 받겠다? 북한은 코로나19 종식을 기다리며 ‘우리식 개방’을 준비 중이다. 김정은 정권 들어 유독 변화가 눈에 띄는 분야가 있다. 바로 ‘법’이다.

그동안 북한의 변화를 추적할 때 법을 관찰하는 건 경시되어왔다. 북한이 법보다 ‘수령님의 교시’나 노동당 규약을 중시하기 때문이라고 할까. 북한 법률이 느리게 변화한 탓도 있을 터다.

북한법의 특성을 간단히 살펴보자. 대한민국과 북한의 법률에 공통점이 있긴 하다. 둘 다 대륙법계다.

 

법은 크게 대륙법계와 영미법계로 나뉜다. 대륙법계는 독일과 프랑스 등 대륙에서 형성되어 발전해온 법률의 계통이다. 《로마법 대전》까지 그 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 성문법(成文法)주의가 특징이다. 어떤 행위를 따질 때, 법률로 제정되어 문서에 기록되어 있는 법규가 관습에 우선한다는 뜻이다.

영미법은 원칙적으로 불문법(不文法)이다. 문서로 쓰인 법률이 아닌 판례(判例)로 판단한다. 미국 드라마를 보면 로스쿨 학생들이 판례를 외우느라 골치를 앓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재판을 할 때, 철저히 판례로 법리(法理)를 따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대륙법적 근간에, 판례를 중시하는 영미법적 요소가 더해져 왔다.

북한 헌법은 소련 군정(軍政) 기간인 1948년 선포됐다. 크게 소련 법률을 따른 대륙법계에 속하는 이유다. 첫 북한 헌법의 이름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헌법’이었다. 이후 5번의 개정을 거쳤다.


私法 없는 북한법

1972년 제6차 개정을 통해 북한 헌법은 크게 바뀐다. 명칭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으로 바꿨다. 이름대로 1972년 헌법은 북한식 사회주의를 표방했다. 주체사상이 헌법 구문에 등장했다. 노동당의 1당 독재와 국가주석체제가 확립됐다.

법학계에선 영미법계나 대륙법계 외에 사회주의 법계를 별도로 인정할지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형식적으로는 대륙법계에 속하지만, 내용과 역할을 볼 때 독자적인 법계가 아니냐고 주장하는 측이 있어서다.

사회주의 법률의 큰 특징은 사적(私的) 분야를 법으로 규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공사법(公私法) 이원체제다. 공법(公法)은 정부기관이나 공적인 단체 혹은 이들과 개인이 함께 연관된 분야를 다루는 법이다. 헌법, 행정법, 형법 등이 속한다. 사법(私法)은 개인의 의무와 권리에 관한 법이다. 민법과 상법이 사법이다. 자본주의가 있는 곳엔 사법이 있을 수밖에 없다. 북한은 사적 소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法治 인정 안 하는 북한

북한법의 특징은 크게 다섯 가지다.

 

첫째, 법치(法治)를 인정하지 않는다. 북한 헌법 제11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령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고 되어 있다. 모든 활동에는 당연히 사법(司法) 영역도 포함된다. 법리와 상관없이 당의 결정에 따라야 한단 얘기다.

조선노동당의 강령인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을 보면 좀 더 분명해진다. 제4조 제8항은 이렇다. ‘우리 당의 혁명사상 당의 로선과 정책에 대하여 시비중상하거나 반대하는 반당적인 행위에 대하여서는 추호도 융화묵과하지 말아야 하며, 부르죠아사상, 사대주의사상을 온갖 반당적, 반혁명적사상 조류를 반대하여 날카롭게 투쟁하며 김일성-김정일주의의 진리성과 순결성을 철저히 고수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조선노동당의 결정이란 건 누가 내리는 걸까. 지난 1월 평양에선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2021년 1월 5~12일)가 열렸다. 여기에서 당 규약 변경이 결정된 사실이 뒤늦게 한국에 알려져 주목을 받았다. 일부 언론은 개정 당 규약에서 ‘김일성’ ‘김정일’ ‘선군’ 등의 용어가 빠진 점을 조명하며, 마치 북한이 정상 국가로 나아가고 있는 듯이 해설했다. 당 규약 개정을 알린 결정서를 보면 틀린 해석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해당 부분이다.

‘조선로동당의 창건자, 건설자이시며 영원한 수령이신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김정일 동지의 혁명사상과 업적을 변함없이 고수하고 빛내여 나가려는 우리 당의 확고부동한 의지를 반영하였다.’

조선노동당은 김일성·김정일의 당이란 얘기다.


법보다 ‘김정은 말씀’이 우위

▲북한 곳곳에 붙어 있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구호. 김정숙평양제사공장이다. 사진=《로동신문》 캡처

 
 

북한 헌법을 읽어보면 서문에서부터 이질적인 단어가 등장한다. ‘인덕(人德)정치’다. 해당 대목이다.

‘김일성 동지께서는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어 언제나 인민들과 함께 계시고 인민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치시였으며 숭고한 인덕정치로 인민들을 보살피시고 이끄시여 온 사회를 일심단결된 하나의 대가정으로 전변시키시였다.’

예상치 못한 맥락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유교적 단어에서, 어쩔 수 없이 법치가 아닌 인치(人治)가 연상된다.

김일성종합대학 철학부 리홍수 부교수는 인덕정치를 이렇게 설명했다.

“인덕정치는 사랑과 믿음으로 사람들을 움직이는 정치이다. 인민에 대한 사랑과 믿음은 인덕정치의 기본 핵이며 근본 바탕이다. 인민을 혁명동지로, 스승으로 여기고 따뜻이 이끌어주며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은정 깊은 혜택을 베풀어주며 충성과 보답을 낳게 하는 정치가 인덕정치이다.”

흡사 조선 시대 왕이 갖춰야 할 태도를 제안하는 신하의 글 같다.

둘째, 다른 곳에서 법규범력이 발생할 수 있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법률 외의 다른 것들이 법처럼 적용된단 뜻이다. 예를 들면, 김씨 3대의 이른바 교시와 말씀, 당 지시와 규약, 당의 결정 등이다.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의 10대 원칙도 해당된다. 북한 헌법 11조에 명시되어 있듯, 김씨 3대의 교시와 말씀, 당의 규약은 법보다 위에 있다.

대한민국은 법적인 판단을 할 때, 법령과 판례를 참고하지만, 북한은 노동당 규약과 해설서, 당 총비서 교시 및 해설서를 먼저 참고해야 한다. 북한에서 재판소는 최종적인 법해석기관이 아닌, 당의 결정을 집행하는 기관에 불과하다. 당연히 판검사 위에 노동당이 있다.

셋째,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다. 배경엔 집단주의가 있다. 북한 헌법에는 극도의 집단주의가 스며 있다. 북한 헌법 제63조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공민의 권리와 의무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 원칙에 기초한다.’

개인의 권리마저도 집단주의에 기초하고 있단 얘기다. 천부인권을 부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범죄를 저질렀거나 선천적인 문제가 있어 전체, 즉 공화국 인민에 속하지 않게 된 개인(공화국 적대자)은 북한에서 가혹한 처지에 빠질 수 있다. 수용소행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는 전체에 속하지 않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북한 헌법 제81조는 ‘공민은 인민의 정치사상적 통일과 단결을 견결히 수호하여야 한다. 공민은 조직과 집단을 귀중히 여기며 사회와 인민을 위하여 몸 바쳐 일하는 기풍을 높이 발휘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북에선 권리마저도 실질적으로는 의무로 작용한다.


북한판 신앙의 자유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 북한의 자유권은 남한의 자유와 다르다. 국가로부터의 자유, 방어적 성격으로서 개개인이 누리는 권리가 아니다. 국가에 의한 자유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다음과 같다.

‘1.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2.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37조는 자유는 특정 상황을 제외하고는 법률로 제한할 수 없는 권리라는 걸 분명히 한다.

‘1.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2.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북한 헌법에도 여러 자유가 열거되어 있다. 신앙의 자유, 신체의 자유, 서신의 자유, 언론출판집회 결사의 자유, 정당의 자유, 거주 여행의 자유 등이다. 신앙의 자유를 보자.

‘헌법 제68조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 이 권리는 종교건물을 짓거나 종교의식 같은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보장된다. 종교를 외세를 끌어들이거나 국가사회질서를 해치는 데 리용할 수 없다.’

1972년 헌법에 ‘모든 공민은 신앙의 자유와 반종교선전의 자유를 가진다’고 되어 있던 것이 1992년 개정하며 변화한 규정이다.

북한은 정말 신앙의 자유를 보장할까. 《로동신문》 2019년 9월 19일 자엔 ‘피의 교훈을 남긴 42시간’이라는 글이 실렸다. 여기에 종교에 대한 설명이 등장한다.

‘조국이 전쟁의 불길 속에서 준엄한 시련을 겪던 시기 선천땅에서 (반동단체인) 《치안대》에 가담한 자의 60% 이상이 종교신자였다고 한다. 평양과 신의주를 잇는 교통상 유리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선천땅을 조선에 대한 종교 침투에 적합한 지역으로 삼은 미제는 해방 전부터 《자선》과 《박애》의 간판 밑에 수많은 선교사들을 들이밀어 미국식 생활양식과 숭미노예굴종사상을 퍼뜨렸다. 이렇게 길들여진 악질 종교인들 대부분이 반동단체들에 가담하여 우리 인민의 참다운 삶의 요람인 공화국 정권을 말살하기 위해 피눈이 되여 날뛰였던 것이다. 지금 적대세력들이 우리 내부에 종교와 미신 등 부르죠아사상독소를 류포시키기 위해 끈질기게 책동하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사상과 제도를 말살하려는 저들의 음흉한 목적을 손쉽게 실현하기 위해서이다.’

종교를 사상적 독소로 규정하고 있다. 결국 북한 헌법에 명시된 신앙의 자유라는 것은 국가를 위해 신앙을 갖지 않을 자유를 뜻한단 걸 알 수 있다.


헌법 고쳐 김정은 지위 다져

넷째, 법을 정권의 도구로 활용한다. 권력 구도를 수정하고 혈연세습 구도를 굳히려 할 때마다 헌법을 바꿨다. 북한의 헌법 개정을 보면 권력 구도 변천사를 볼 수 있는 이유다.

김정은 집권 시기에만 10년 동안 5번 헌법을 개정했다(2012년, 2013년, 2016년, 2019년 4월, 2019년 8월). 평균 2년에 1회 헌법을 수정했다는 얘기다. 김정은의 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헌법이 개정됐다. 2019년 4월 개정 헌법은 100조에서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국가를 대표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영도자’라 명시했다. 김정은을 법적인 국가수반의 지위에 올려놨다.

2019년 8월 헌법 개정에선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전체 조선인민의 총의에 따라 최고인민회의에서 선거하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는 선거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인민회의 대의원을 겸직하지 않는단 뜻이다.

국무위원회 위원장, 즉 김정은에게 최고인민회의 법령, 국무위원회의 중요 정령과 결정을 공포하는 권한도 부여했다. 국무위원장이 최고주권기관인 최고인민회의보다 우위에 있다고 헌법으로 명시한 셈이다. 국무위원장이 다른 나라에 주재하는 외교 대표를 임명 또는 소환(해임)한다는 내용도 추가됐다. 김정은이 헌법 조문상으로는 다른 나라의 지도자와 비슷해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핵무기 금지한 법도 있어

▲북한이 제작한 지능형 손전화(스마트폰) 법전 ‘의무 2.0’. 사진=‘메아리’ 제공

 
 

다섯째, 일부 선언적이고 장식적인 법규정이 있다. 실제로 효력이 없는 조항을 그저 장식처럼 넣어놨단 얘기다.

핵 환경법이 그 예다. 환경보호법 제7조다. ‘핵무기·화학무기의 개발·시험·사용 금지 원칙. 핵무기, 화학무기의 개발과 시험, 사용을 금지하고 환경의 파괴를 막는 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일관한 정책이다. 국가는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핵무기, 화학무기의 개발과 시험, 사용으로 환경이 파괴되는 것을 반대하여 적극 투쟁한다.’

핵무기 사용을 금지한단 얘기다. 북한은 2000년대 들어 총 6차례 핵실험을 했다.

정당 활동의 자유를 보장한 조항도 마찬가지다. 헌법 제67조다. ‘공민은 언론, 출판, 집회, 시위와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국가는 민주주의적 정당, 사회단체의 자유로운 활동조건을 보장한다.’

정당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노동당 1당 독재 체제다.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가 우리 당의 최고강령’이란 말이 최근 발행된 《로동신문》에도 등장한다(2021년 10월 28일 자 ‘우리식 사회주의의 정치사상적위력을 백방으로 강화해나가시며’).

북한에서도 느리지만 조금씩 법치로 향하는 변화가 있어 왔다. 그러나 그 방향은 ‘사회주의 법치’다. 1982년 12월 15일 김정일은 〈사회주의 법무생활을 강화할데 대하여〉라는 논문에서 ‘사회주의 법무생활’을 주장했다. 사회주의 법무생활이란 말 그대로 사회주의 사회에 사는 모든 사회성원들이 법규범과 규정을 철저히 지키고 그 요구대로 활동하는 사회생활이다.

‘사회주의 법무생활’을 위해 법전을 발간해 인민에게 공개했다. 2012년에 발간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법전》 제2판의 발간사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사회주의법은 모든 공민들의 사회생활, 사회적 활동을 통일적으로 규제하는 공동규범이고 준칙이다. 온 사회에 준법기풍을 확립하고 인민대중 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 제도를 더욱 튼튼히 다지고 빛내기 위해서는 모든 공민들이 사회주의 헌법을 비롯한 모든 법규범을 자각적으로 준수하는 것을 신성한 의무로 여겨야 한다.’

법률을 스마트폰으로 열람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도 출시했다. 앱의 이름은 ‘의무 2.0’이다.

조선중앙통신의 10월 23일 보도를 보면, 모범준법군(시·구역) 칭호를 제정하는 내용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이 지난 18일 발표됐다. 보도에는 ‘김정은 시대의 요구에 맞게 사회주의 법무생활을 대중 자신의 사업으로 전환시켜나감으로써 혁명적 준법기풍을 확립하고 우리의 국가사회제도를 공고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한 군(시·구역)들을 국가적으로 표창하기 위하여’라고 취지가 나와 있다. 이어 평안북도 창성군에 모범준법군칭호가 수여되었다는 보도가 11월 4일에 나왔다.

북한이 강조하는 ‘준법’이 대한민국의 ‘준법’과 같다고 볼 순 없다. 북한의 ‘법’ 자체가 성문화된 법령만 의미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장애자보호법 개정

일부 법 제정 분야에선 국제적인 법규 수준에 맞추기 위한 노력이 일부 보인다. 예를 들면 인권 관련 법령이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국가별 정례인권검토(UPR)를 진행한다. UPR은 193개 유엔 회원국이 자국의 인권 현황과 자국이 스스로 한 인권 관련 약속을 얼마나 지켰는지 다른 회원국과 함께 검토하는 제도다. 인권이사회의 47개 이사국으로 구성된 실무그룹이 진행한다. 실무그룹은 심사 대상 국가를 주제로 3시간30분 동안 회의를 연다. ‘상호 대화(interactive dialogue)’다. 한 주기인 4년 6개월 동안 순차적으로 전체 회원국의 인권 상황을 검토한다.

김정은 정권 들어 특정 부문에서는 조금씩 국제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있다. 여성, 아동,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관한 부분이다. 제2차 UPR을 위해 스스로 제출한 보고서에 여성의 사회 진출 장려를 강조해놨다. 2014년 기준으로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중 여성 비율이 20%가 넘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장애인 인권을 위해서는 ‘북한장애자보호전략’을 수립하고, 아동의 권리를 위해서는 ‘아동질병통합관리확장전략’을 수립했다고 발표했다.

북한은 2013년 11월 ‘장애자보호법’을 개정했다. ‘장애자후원기금’을 설립한다는 조항과 장애인 복지사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내용이 포함됐다. 장애인과 여성에 관한 정책 변화는 북한 체제를 위협하지 않는다.

 

남조선 콘텐츠 금지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들이 2020년 5월 31일 대북전단을 북한으로 보내는 모습. 민주당이 ‘대북전단금지법’을 통과시킨 후 중단됐다. 사진=자유북한운동연합 제공

 

가장 최근에 제정된 법률 두 가지는 북한 내부 상황을 짐작게 한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과 ‘청년교양보장법’이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4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제14기 제12차 전원회의에서 세 가지 법을 채택했다. 그중 하나가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다.

‘반사회주의사상문화의 유입, 유포 행위를 철저히 막고 우리의 사상, 우리의 정신, 우리의 문화를 굳건히 수호함으로써 사상진지, 혁명진지, 계급진지를 더욱 강화하는데서 모든 기관, 기업소, 단체와 공민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준칙들을 규제’한 법이라고 한다. 세부 처벌조항은 다음의 행위들을 금지한다.

〈▲남조선(한국)의 문화콘텐츠의 시청 및 유포 ▲음란물 제작 및 유포 ▲등록되지 않은 TV, 라디오, 컴퓨터 같은 전자기기의 사용 ▲열람이 금지된 영화, 녹화편집물, 도서를 시청하거나 보관〉

처벌 강도는 가혹하다. 예를 들어 미국과 일본의 문화나 공화국(북한)을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된 편집물을 보거나 유입한 자는 최고 10년의 노동교화형을 받을 수 있다. ‘많은 양’의 콘텐츠를 들여오면 사형에 처한다.

성(性) 녹화물 또는 미신을 설교한 도서와 사진, 그림을 보았거나 보관한 자는 최소 5년에서 최고 15년까지의 교화형에 처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직접 제작하고 유포한 경우엔 무기(無期) 노동교화형 혹은 사형에 처할 수 있다.

남한식으로 노래해서도 안 된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시행령 제32조는 ‘남조선식으로 말하거나 글을 쓰거나, 남조선 창법으로 노래를 부르거나 남조선식 서체로 인쇄물을 만든 자는 정상에 따라 노동단련형으로부터 2년까지의 노동교화형에 처한다’고 정해놨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 제정되고 정확히 열흘 뒤, 한국의 국회에선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일명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표결로 강제 종결하고 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북전단은 북한에 외부의 실상을 알려주는 상당히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북한이 주장하는 반동사상의 공급 원천이란 얘기다.


청년교양보장법 제정

▲북한은 ‘청년교양보장법’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등을 제정하며 청년층에 대한 사상단속을 하고 있다. 사진=《로동신문》 캡처

 

 

지난 9월 29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5차 회의에선 세 가지 법령이 채택됐다. ‘시·군발전법’과 ‘청년교양보장법’ ‘인민경제계획법’이다. 이 중 문제가 되는 게 청년교양보장법이다. 역시 북한식 표현으로 권리인 양 ‘보장’이라 표현했지만, 어떤 부문의 교양은 쌓지 말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법으로 판단된다. 세부 조항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지난 4월 8일 김정은이 조선노동당 제6차 세포비서대회에서 한 발언을 보면, 어떤 내용이 들어 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김정은은 당세포들이 이뤄야 할 10가지 과업 중 하나로 ‘청년교양’을 들었다.

김정은은 ‘지금 우리 청년들의 건전한 성장과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적지 않고 새 세대들의 사상정신상태에서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라며, ‘당원들에게 청년들을 맡아 교양하고 키울데 대한 분공을 주고 정상적으로 총화대책하여 당원들이 의식적으로 청년교양에 관심을 돌리며 특히 자녀교양에서 책임을 다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지시를 내렸다.

‘청년들의 옷차림과 머리단장, 언행,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하여서도 어머니처럼 세심히 보살피며 정신문화생활과 경제도덕생활을 바르게, 고상하게 해나가도록 늘 교양하고 통제하여야 한다’는 구절도 있다.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북한의 청년교양보장법은 유엔이 명시한 국제 인권규범을 위반한다’고 비판했다.

최근 사상 침투는 사력을 다해 막으면서, 경제와 관련한 법령은 정비하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지난 10월 29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제14기 17차 전원회의에서 ‘국제상품전람회법’을 채택했다.

조선중앙TV는 ‘국제상품전람회의 조직과 운영에서 지도와 질서를 확립해 인민의 생명, 건강, 합법적 권익을 보호하며 나라의 대외 경제 관계를 확대 발전시키는 데서 나오는 실무적 문제들을 세분화, 구체화한 법’이라고 설명했다.


국제금융시장에도 관심

전람회법 채택에 맞춰, 조선민족보험총회사는 ‘전람회보험’ 상품을 소개했다. 전람회보험은 ‘전람회 기간에 각종 자연재해와 우발적 사고들로 전람회 참가자들이 입게 되는 여러 경제적 손실을 보상하고 대외무역 활동에 유리한 조건을 지어주기 위한’ 보험이다.

조선민족보험총회사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보험 설명에는 ‘보험 업무의 정보화, 과학화 수준을 높여 상품 전람회의 안전성과 권위를 높이고 전람회 참가자들이 우리나라에서 진행하는 상품 전람회들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가하도록 고무 추동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는 설명도 달려 있다.

코로나19 이후 국내 박람회는 물론 국제 전람회도 열어 경제 활성화를 꾀해보려는 의도가 읽힌다.

지난 6월 25일엔 김일성종합대학 게시판에 눈에 띄는 글이 등장했다. ‘현대국제금융시장과 그 특징’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김일성종합대학 재정금융학부의 리경호가 작성했다. 첫 대목이다.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대외경제관계를 확대발전시켜야 하겠습니다.》 국제금융시장에 주동적으로 진출하여 금융활동을 공세적으로 벌리자면 현대국제금융시장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한다.’

국제금융 거래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이 뒤따라온다. 김일성종합대학 게시판엔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온 힘을 다해 발전시키자는 둥 정치적인 글만 주로 올라온다. 순수하게 학문적인 글은 극히 드물다. 북한 당국이 국제금융 거래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문화는 막고 물질만 받아들이려는 북한의 벽을 어떻게 넘을 수 있을까.⊙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12.16 “北, 아버지가 보는데서 아들 총살하고 시신도 불태워”

국제인권단체, 탈북민 증언 공개
‘김정은 시대 10년 처형 보고서’ 내

북한이 이달 하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개최한다고 2일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5차 정치국회의가 지난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회로 열렸으며 회의에서는 12월 하순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를 소집할 데 대한 결정서를 채택했다고 보도했다. 2021.12.2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북한에서 총살부대 등에 의한 광범위한 공개 처형이 이뤄졌다는 탈북민들의 증언이 새로 공개됐다. 북한 당국은 공개 처형 소식이 외부 세계로 유출되는 것을 막고 국제적 감시를 어렵게 하기 위해 현장의 휴대전화를 철저히 통제하는 등 은폐 전략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 인권 단체 전환기 정의워킹그룹(TJWG)은 15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김정은 시대 10년의 처형 지도’ 보고서를 공개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에서 이뤄진 공개처형 장소 관련 탈북민 진술 기록한 지도/전환기정의워킹그룹

 

보고서는 지난 6년간 국내 입국 탈북민 683명을 인터뷰한 내용과 위성지도와 공간지리정보(GIS) 기술 등을 이용해 북한 당국이 어디서 어떻게 처형을 벌였는지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김정은 집권 이후 처형 장소와 관련된 기록은 27건이다. 이 가운데 총살부대에 의한 공개 처형은 23건, 교수형에 대한 증언이 2건 기록됐다. 비밀 처형이 계속되는 것 같다는 진술도 나왔다.

 

처형 상황에 대한 증언도 다수 나왔다. 보고서는 “2012년과 2013년 사이 평양에서 처형되는 사람의 가족들을 맨 앞줄에 앉혀 전 과정을 지켜보게 했다”며 “그중 한 아버지는 아들의 시체가 불태워지는 것을 보고 기절했다는 진술이 나왔다”고 전했다. 또 “2012년 함흥시에서는 공개 처형돼 머리가 깨진 시체 앞에 사람들을 일렬로 세워서 얼굴을 보게 했다는 진술도 있다”고 전했다.

 

한 탈북자는 2014년 황해북도 사리원시에서 진행된 공개 처형에서 나무 기둥에 묶인 사형 대상자의 입속에 자갈돌이 채워져 있었다고 했다. 양강도에선 2013년 한 번에 10명 이상이 집단 처형됐다고 한다.

 

공개 처형 이유는 남한 영상 시청·배포(7건), 마약 관련(5건), 성매매(5건), 인신매매(4건), 살인·살인미수(3건), 음란행위(3건) 등이다. 북한 당국은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공개 처형장에 주민들이 휴대전화를 가져가지 못하게 하고, 전파탐지기 차량을 현장에 배치하는 등 감시 통제를 강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영환 전환기정의그룹대표는 “과거에는 중국과의 국경 근처에서도 공개 처형이 있었지만, 김정은 시기 공개 처형 대부분은 은폐를 위해 국경과 도심부에서 떨어진 혜산비행장과 그 주변의 언덕·산비탈·개활지·들판에서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조선일보 김명성 기자

 

 

월간조선 12월 호

■김정은의 ‘밀어제끼기’ 행정이 불러온 풍선효과들

⊙ 벌목공 탈락자의 伸訴에 김정은이 반응하면서 해외 파견 관련 뇌물 시스템에 연쇄 파장
⊙ 응시자의 10%가 체중 하한선 60kg에 못 미쳐… 북한의 식량난 짐작게 해
⊙ 돈주들의 투자받아 商街 조성하는 ‘상업망 새로 꾸리기’ 진행 중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아파트 공사장의 북한 노동자들. 지난 2011년 찍은 사진이다. 사진=조선DB

 
 

사람은 언제 가장 분노하는가. 자기의 이익을 누군가가 바로 눈앞에서 빼앗아갈 때다. 그래서 지금 평양의 일부 시민들이 격분하고 있다. 이익을 빼앗기는 과정이 북한 이외의 지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방식이라는 점이 관전 포인트다.

 

“유엔에 가입한 193개 나라에서 일하는 북한 국적 노동자와 이들을 감시하는 당국 관계자들을 ‘2019년 12월 22일’까지 돌려보내라”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對北)제재 2397호 결의안은 아직 유효하다. 당연히 신규 인력의 해외 파견은 결의안 위반이다.

 

그런데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숨통을 틔우려고 한다. 2021년 10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대북제재 완화를 위한 결의안 초안을 제출한 것이다. 지난 2019년 12월에 이어 2년 만의 두 번째 시도다. 북한 당국은 최근 들어 러시아 파견 벌목공 노동자들을 선발했다. 결의안 통과를 자신했는지, 아니면 러시아와 북한 사이에 사전(事前) 밀약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오랜만에 기회의 창(窓)이 열리니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경쟁이 말도 못 하게 치열했다고 한다.


뇌물생태계

‘신체 건장한 남성’을 뽑고 파견 교육을 진행하던 중에 사고가 터졌다. 탈락자 가운데 누군가가 ‘신체검사 기준 미달자’가 선발되었다며 신소(伸訴)를 접수했다. 말하자면, 모든 선발 절차가 마무리된 이후에 ‘판정결과’에 이의(異議)를 제기한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당국이 무시하고 넘어갔겠지만, 이번엔 사정이 달랐다. 김정은의 관심 때문이다. 김정은의 관심은 예상치 못한 파장(波長)을 불러왔다. 생각보다 복잡하게 얽힌 거대한 미로(迷路)의 탑(塔) 같은 뇌물생태계(賂物生態系)가 불쑥 수면 위로 거대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외국에 나가려면 걸음마다 돈을 고여야 한다’는 건 북한 사회의 상식이다. 응모, 1차 선발, 신원조회, 신체검사, 2차 선발, 초급당 담화, 파견기관 담화, 상급당 담화 등 심층면접, 중앙당 문건 검토(서류심사), 여권 발급, 출국 전 사상 교육, 심지어는 국제선 기차표 구입 등 모든 단계마다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돈을 주지 않으면 과정이 멈춘다. ‘뭐가 잘못되었다’ ‘뭐가 기재 누락이다’라며 하염없이 시간을 끈다. 러시아 벌목공의 경우 뇌물로 필요한 총액은 대략 2000달러 내외. 5인 가족이 2년 정도 살 수 있는 돈이다. 그런데 뇌물을 고였는데도 탈락했다면, 그리고 고였던 돈을 돌려받을 수 없다면?

답답한 점은, 돈을 받은 쪽에서도 억울함을 토로했다는 사실이다. 받은 돈을 100% 혼자 먹을 수 없고, 일정량을 위에다 고여야 한다는 것도 북한 사회의 상식이다. ‘먹을 알이 있는 자리’에 붙어 있으려면, 인사권자에게 수시로 인사를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뇌물을 받고서도 응시자를 탈락시킨 간부들의 변명은 “위에서 지시가 내려와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나 혼자 먹었느냐는 항변도 한다. “다음에 꼭 잘 봐주겠다”고 하지만, 다음이란 없다. 언제 인력을 다시 뽑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뇌물의 유효기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빛이 바랜다는 사정도 있다.


신체검사 체중 하한선 60kg

▲쿠웨이트 건설 현장의 북한 노동자들. 지난 2014년 찍은 사진이다. 사진=조선DB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문제가 꼬였는가. 김정은과 중앙당의 방침 때문이다. 북한 당국은 해외 파견 노동자의 체중 하한선을 60kg이라고 발표했다. 명목은 노동 강도가 세서 저(低)체중인 사람은 일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었지만, 국제적인 이목을 의식했다는 편이 진실에 가깝다. 마르거나 연약해 보이는 사람, 영양실조 기운이 있는 사람들을 내보내면 북한이 감추고 싶은 심각한 식량 사정이 그대로 민낯을 드러낸다고 여긴 것이다. 몇 년 전 러시아 인력회사에서 “죄수들을 보낸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고, 이를 북한 당국이 아파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체중을 잴 때 부정이 있었다’는 신소가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飛火)한 배경이다.

과거에는 키와 전염병력이 주요 심사 대상이었다. 신장(身長)이 작은 사람이 해외에 나가는 걸 북한 당국은 나라 망신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엄격하게 기준을 적용한다고 했지만, 기준에서 2~3cm 모자란 것까지는 굽 높은 신발이나 두꺼운 양말을 신고, 뇌물을 써서 통과했다. 평양 제2 인민병원에서 진행한 신체검사는 간염이나 결핵 등 전염병력 검사였다. 물론 병력(病歷)이 있는 지원자는 돈으로 해결하여 난관을 돌파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체중(體重)이라니!

이번에 밝혀진 부정행위 수법은 ‘쇳덩이 붙이기’다. 모자란 체중을 보충하느라 두꺼운 외투를 입고 저울에 올라서는 것까지는 애교로 봐줄 수 있다. 하지만 쇳덩어리를 옷 안에 붙이고 몸무게를 재는 건 이야기가 다르다. 신소에 따라 1차 재검을 했는데, 엄격하게 측정을 하지 않았는데도 합격자의 약 10%의 인원이 체중 미달인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는 60kg으로 통과한 응시자의 ‘탈의(脫衣) 후 측정’한 실제 체중이 48kg인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해외 파견 노동자는 극빈자가 아니다. 적어도 거액의 뇌물을 마련할 만큼 수완도 좋고, 중간 이상으로는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체중이 영양실조에 가까운 인원이 10%가 넘는다? 그래서 유추(類推)한다. 올해 지원자의 영양 상태가 역대 최악이라는 것, 그만큼 북한의 식량 사정이 어렵다는 것, 일반 주민들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 더 큰 문제가 생겼다. 대외건설지도부의 ‘응시자 전원 체중 재측정’ 결정이다. 1차 합격자 중 몸무게 차이가 큰 사람의 자격 박탈, 박탈자를 추천한 간부들의 추천권 박탈 등 강력한 처벌도 함께 시행한다고 한다. 신체검사 포함, 선발 전(全) 과정을 재실시해 신체검사 조작 행위를 근절하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

그래서 문제가 오히려 커졌다. ‘조작’ 없이 통과한 인원이 극소수라는 건 누구나 아는데, 제일 밑단부터 최상층부까지 이어져 있는 ‘거대한 뇌물의 사슬’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가. 받은 돈을 토하고 계산을 정리하는 것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일 뿐 아니라 복잡다단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탈락한 사람들의 신소가 정치적 문제로 떠오른 이상, 드러난 문제들을 대충 덮으며 갈 수도 없다.

새 신체검사에 또 추가로 얼마만큼의 뇌물이 필요한지도 의문이다. 엄격하게 측정하라고 했으니, 고이는 돈의 단가가 올라가리라는 건 상식이다. 위험부담이 커졌다는 걸 누구나 알기 때문이다. 판이 복잡해진 이상, 피해자가 늘어나는 건 당연한 이치다. 판돈도 커졌다. 자칫 거센 불만의 후폭풍이 평양을 중심으로 터질 수도 있는 이유다.


상업망 새로 꾸리기

풍선효과를 생각하지 않고 ‘밀어제낀’ 일 중에는 ‘상업망 새로 꾸리기’도 있다. 인민소비품(생활필수품)을 더 많이 공급하기 위해 당국이 나서서 상가(商街)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올해 말부터 운영 예정으로, 당위원회, 인민위원회가 함께 토론 중이라고 한다. 돈주들의 투자도 받고, 인민들의 노력 동원으로 새 건물을 짓는다고 한다. 장마당보다 환경이 좋으니 상인이나 소비자가 모두 몰릴 것이며, 당국에 ‘바치는 돈’도 정확하게 계산할 테니 안심하고 입주할 수 있고, 그만큼 싼값에 물건을 살 수 있으니 파는 사람, 사는 사람 모두에게 좋은 일 아니냐는 말이다. 현재 입주 신청자를 받고 있지만, 주민들 사이에서는 앞뒤가 막힌 짓이라는 얘기가 돈다. 지금도 장사를 못 하게 막으면서, 무슨 뜬금없는 ‘상업망 새로 꾸리기’냐는 반발이다.

10월 초 북한 당국은 ‘야간 통행금지 시간을 어긴 자들을 대대적으로 잡아들이라’는 긴급지시문을 사회안전성에 내려보냈다. 분주소(파출소) 실적을 위해 ‘1분 1초도 봐주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 시범게임이니 봐줄 수도 없다. 그래서 하루 저녁에 한 동네에서 60명이 넘게 잡혀가는 일도 있었다. 밤 12시 통금이 아니다. 북중(北中) 접경지대의 경우, 저녁 6시부터 아침 7시까지, 무려 13시간이 통행금지다. 10월 1일부터 강화된 규정이다. 시간을 어기면, 이유불문하고 노동단련대로 가야 하는 가혹한 처벌이 뒤따른다. 15일에서 한 달 정도 강제 노역에 시달리는 동안, 가족들은 도시락을 배달하며 옥바라지를 해야 한다.

 

탈북자를 막자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경제는 확실히 얼어붙었다. 밀수가 어려워지고 밀수 실행 비용이 올라간 탓에 물동량이 줄고 중국산 생필품의 값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단속에 걸린 사람의 대부분이 장마당이나 골목에서 장사하던 사람이라는 사정도 있다. ‘물건이 없고 사람을 못 다니게 하는데, 건물만 새로 짓는다고 새로 꾸린 상업망이 자리를 잡을까?’라는 것이 북한 주민의 속마음이다.

돈주들은 돈주들대로, ‘상업망’이 기존의 장마당을 위협할까 걱정이 많다. 당국이 가세한 ‘불공정 경쟁’을 우려하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기존의 장마당을 밀어버리고, 그 터에 자기들의 상업망을 꾸릴 수도 있다는 걱정도 한다.

복거일(卜鉅一) 선생은 “뇌물과 암시장은 물론 기형적인 수단이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급한 수요를 충족시켜 사회의 붕괴를 막는 선(善) 기능이 있다”는 주장을 했다. 평양이나 북중 접경지대나, 자기의 이익을 눈앞에서 빼앗긴 사람들, 긴급한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뇌물마저 작동하지 않는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해외 파견 노동자의 신체검사 재실시와 상업망 새로 꾸리기, 13시간 야간 통행금지와 강력한 시범게임 실시는 어쩌면 거대한 물밑 변화를 부르는, 서로 이어진 연결고리일 수도 있겠다. 돈의 힘, 이익의 힘은 무섭고도 강력하기 때문이다.⊙

글 : 장원재 장원재TV 대표

  

12.20 37세 맞아?…보름 만에 급격히 늙은 김정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달 초 군사교육 간부대회를 주관한 모습(왼쪽)과 17일 아버지 김정일의 10주기 추모대회에 참석한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또 제기됐다. 최근 공식석상에 등장한 모습이 이달 초와는 확연히 다른데다, 혈색이 어둡고 얼굴 하관에는 주름이 깊게 파이는 등 노화한 듯한 모습이어서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은 지난 17일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0주기를 맞아 평양 금수산태양궁전에서 열린 중앙추모대회에 참석했다.

 

김정은의 모습은 불과 보름 전과는 눈에 띄게 달랐다. 이날 김정은의 얼굴은 검붉게 보였다. 하관에는 팔(八)자 등 주름이 깊었다. 온라인에서는 “30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반응도 나왔다. 김정은은 1984년생으로 올해 37세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아버지 김정일의 10주기인 17일 평양 금수산태양궁전에서 진행된 중앙추모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연합뉴스

 

강추위의 영향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지난 17일은 북한 전 지역에 강추위와 강풍 경보가 내려졌다. 평양의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6도였고 낮 최고기온도 영하 5도였다. 서해에서 불어오는 강풍의 영향으로 체감온도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김정은은 목도리와 모자 등 방한도구 없이 가죽코트만 입고 1시간가량 야외에서 있었다고 한다.

 

김정은을 둘러싼 건강이상설은 꾸준히 불거지고 있다. 김정은은 군부대나 공장, 병원, 육아원 등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포착될 정도로 줄담배를 피우고, 술도 많이 마시는 것으로 알려졌다. 할아버지인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이 모두 심근경색으로 사망해 성인병 가족력도 갖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김정은의 체중이 2012년 8월 90㎏에서 지난해 140㎏으로 연평균 6~7㎏씩 늘어난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김정은은 지난 9월 북한 정권 수립 기념일 행사 당시 살이 빠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당시 일본 도쿄신문과 미국 글로브는 ‘대역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조선일보 오경묵 기자

 

12.23 北여군 극단선택…12장 유서에 담긴 '상관 성폭행' 끔찍했다

최근 북한에서 여군 하전사(병사 계급)가 5명의 상관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가 중태에 빠졌다. 그런데도 북한군 당국은 여군을 조기 제대시키는 등 사건 축소를 시도하면서 ‘쉬쉬’하고 있다.

 

22일 데일리 NK 보도에 따르면 북한 내부 소식통은 “함경남도 함흥에 위치한 7군단 지휘부 전신 전화소 교환분대에서 간부석 교환수로 근무하던 여군 A씨가 군의소(군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 이달 중순 극단적 선택으로 중태에 빠졌다”고 전했다.

 

A씨는 극단적 선택으로 인해 과다출혈 상태가 됐다. 하지만 혈액 부족으로 수혈을 받지 못했고, 결국 의식불명이 됐다.

▲지난 1월 7일 북한 노동당대회 2일차 회의 참석한 군인 대표들. 조선중앙TV=연합뉴스 (기사 내용과 무관한 자료 사진)

 

북한군 간부들, 상습 성폭행 시도…거액 내밀며 노골적 성관계 요구하기도

A씨 극단선택 사건의 전말은 앞뒤로 빽빽하게 적은 12장의 유서가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A씨 유서의 제목은 ‘신소 청원편지’였다. 쉽게 말해 ‘유언’이라는 의미다.

 

황해남도 출신인 A씨는 17세 때 하전사로 군에 입대했다. 이후 6년간 7군단에서 전화 교환원으로 근무해 왔다.

 

성폭행은 A씨가 신병훈련을 마친 뒤 부대에 배치된 직후 시작됐다. 당시 7군단 정치지도원(당시 계급 소좌, 한국군으로 치면 소령)이었던 40대 초반의 김 모씨는 1년 가까이 A씨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했다.

 

성폭행 후엔 “앞으로 일생을 돌봐주겠다”며 A씨를 다독였지만, 이후 김씨는 정치 군관을 양성하는 정치대학에 들어가면서 연락을 끊었다.

 

두 번째 가해자는 대렬부(인사과) 부부장(당시 중좌, 한국군 기준 중령) 한 모씨로, 그는 자신의 사무실로 A씨를 부른 후 성폭행을 저질렀다. 한씨는A씨의 뒤를 봐주겠다며 간부석 교환수로 진급시키기도 했지만, 이후로도 지속적인 성폭행이 이뤄졌다.

 

상관으로부터 성폭행에 시달리던 A씨는정치 일군(일꾼)이 돼 여군들의 군내 성폭력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정치군관학교에 지원했다.

 

그러나 간부부장(당시 계급 상좌, 한국군 기준 중령과 대령의 중간 단계로 고급장교) 조 모씨는A씨의 정치대학 지원서를 누락시키면서 정치대학에 가고 싶으면 지하 갱도(벙커) 내 지휘부 사무실로 오라고 A씨를 유인했다.

 

A씨는 당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지인에게 손전화(휴대전화)를 빌려 녹음을 하며 사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A씨 예상대로 조씨는 속옷 차림으로 기다리고 있다가 거액의 돈을 내밀며 노골적으로 성관계를 요구했다.

 

A씨가 거부했지만 조씨는 계속해서 성폭행을 시도했고, A씨 옷에서 녹음 중인 휴대전화가 나오자 A씨를 폭행하기까지 했다. 휴대전화 주인을 찾아내 “발설하지 말라”며 협박하기도 했다.

 

이 사건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A씨는 처음 그를 성폭행했던 김씨와 다시 만났다. 총정치국 소속이 돼 A씨 부대로 검열을 나온 김씨는 함께 검열을 나온 총정치국 간부(대좌, 한국군 기준 대령) 조 모씨가 묵는 방으로 A씨를 유인, 강제로 성폭행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옷이 찢기고 상해를 입어 군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수차례 상관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A씨는 지난 10월 제대를 신청했지만, 군에선 “심신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대를 허락할 수 없다”며 2022년 2월로 제대를 미뤘다.

 

제대할 날만 기다리던 A씨는 또 성폭행 피해에 노출됐다. 세포비서를 겸하는 군 병원 내과 과장(소좌) 염 모씨가A씨에게 수면제를 투여한 후 성폭행을 한 것이다. A씨는 의식을 차린 뒤 자신이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깨닫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8월 10일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북한군 초소. 뉴스1 (기사 내용과 무관한 자료 사진)

 

가해자들, 직무 정지 혹은 전보에 그쳐…피해자는 강제 제대

A씨 극단적 선택과 유서로 사건의 전말이 알려지자, 북한군 당국은 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가해자들은 직무 일시 정지 또는 전보 조처를 받았을 뿐 현재까지 다른 처벌은 받지 않았다.

 

이 소식을 데일리 NK에 전한 소식통은 “가해자 중 총정치국 고위 간부가 포함돼 있어 솜방망이 처벌로 사건이 무마될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A씨는 현재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와중에 군 당국은 지난 20일, A씨에게 제대 통지를 내렸다.

 

소식통은 “북한군은 동기 훈련이 진행 중인 12월에 제대 조치를 하지 않는다. 상당히 이례적인 조치”라며 “제대 통보를 받아 A씨는 현재 민간인이 됐다. 군이 사건을 축소하기 위해 A씨를 서둘러 제대 조치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하수영 기자 ha.su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