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 칼럼 조선일보 부국장 편집국 부국장 겸 뉴스 총괄에디터 논설위원, 사회·국제·주말뉴스부장, 도쿄특파원
2021
01.13 법원의 反日 모험, 다음에 올 것들
일본처럼 미국을 한국 법정에 세우고
미국 정부의 재산을 몰수해 보라
한국 법원은 역사의 판도라 상자를
너무 쉽게 열었다
한국 법원이 8일 일본에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일본 정부는 “재판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했다. 완전히 승소한 피해자도 항소할 이유가 없다. 1심 판결은 조만간 최종 판결로 확정된다.
위안부 제도는 불법이다. 그러면 배상은 당연하고 판결은 정당한가? 과거사, 특히 위안부 문제가 나오면 ‘한국인다움’을 요구받는다. 한국인이라면 피해자를 따라야 한다. 다른 목소리는 허용되지 않는다.
세상엔 반대 경우가 많다. 폴란드는 한국 이상으로 외세(外勢)에 당했다. 독일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자가 자국 법원에 독일을 상대로 배상을 청구했다. 2010년 폴란드 대법원은 패소를 확정했다. “재판 관할권이 없다”는 이유다. 프랑스 법원은 세 차례 판결에서 독일에 끌려간 자국민의 배상 소송을 모두 기각했다. 슬로바키아, 벨기에, 세르비아도 자국 국민의 패배를 선고했다. 그리스에선 학살 피해자의 승소를 선언한 대법원 판결을 특별최고재판소가 패소로 뒤집었다. 이 법원들은 피해자의 아픔을 외면하고 불법과 가해자 독일 편에 선 것일까?

▲1939년 폴란드 서부도시 레슈노에서 나치 친위대가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 폴란드 법원은 국제관습법의 국가 면제 규정을 들어 독일을 상대로 한 자국 학살 피해자의 배상 소송을 기각했다
이런 가정을 해보자. 베트남 국민이 한국군의 학살 피해자라며 자국 법원에 한국을 상대로 배상을 청구했다. 베트남 법원은 일방적으로 한국을 법정에 세우고, 원고 승소를 선언하고, 한국 정부 재산을 몰수했다. 한국은 이 판결을 수용할 수 있을까. 학살 행위가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국가가 다른 국가를 재판할 수 없다는 주권 평등의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국제관습법은 국가의 권력 행위에 대해 타국의 재판 관할권에서 면제(국가 면제)된다고 규정한다. 주권 평등과 국가 간 분쟁을 막으려는 장치다. 폴란드, 프랑스 등이 자국민 패소 판결을 내린 것도 학살, 납치, 강제 노동을 용인해서가 아니다. 나의 권리를 보장받고자 남의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러면 국가 책임은 사라지는 것이냐”고. 정의는 사법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법이 안 되면 외교가, 외교가 안 되면 민간도 할 수 있다. 세계의 전후(戰後) 화해 방식이다. 한국만 무시한다.
판결문을 보면 한국 법원의 논리는 명확하다. 절대 규범을 위반한 반인권적 범죄는 국제관습법에서 예외라는 것이다. 학계에서 이 논리가 지지를 얻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세계 법정에선 여전히 변방의 논리다.
이탈리아는 한국에 앞서 이례적으로 이 논리를 강제 노동 배상 판결에 적용했다. 대신 정말 치열하게 논쟁했다. 2000년 1심 판결에서 2014년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까지 패소와 승소를 거듭하면서 재판만 7번 거쳤다. 국제 법정까지 갔다. 2012년 국제사법재판소는 “절대 규범 위반과 국가 면제는 별개 사안”이라며 이탈리아 법원이 국제법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이것이 세계 법정의 지배 논리다. 한국은 이 논리를 지방법원 40대 판사가 ‘전부 승소’ 결정으로 단판에 부정했다.
저변엔 대중 감정이 있다. 상대가 일본이라면 때릴수록 지지한다. 판사가 영웅 대접도 받는다. 이런 환경에서 국제 절도단이 일본에서 훔쳐온 장물까지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이 나온다. 14~16세기 왜구가 약탈했을 수 있다는 추정을 법정 증거로 삼는다. 21세기 한국 법원의 판결이다. 일본이라면 일사부재리, 시효, 협정, 증거, 판례, 국제관습법의 벽까지 간단히 넘어선다.
스웨덴 법학자 울프 린더팔크는 절대 규범 논리의 위험성을 판도라의 상자에 비유했다. 한국 법원은 일본을 만능 열쇠로 삼아 ‘국가 면제’란 판도라 상자의 뚜껑을 단숨에 뜯어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진실화해위원회가 밝힌 미군의 민간인 희생 사건은 대부분 전폭기 폭격에 의한 민간인 사망이다. 위원회는 이 중 상당수 사건을 미군의 전쟁 범죄로 규정하고 미국의 배상 책임을 거론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6·25전쟁 당시 노근리에서 미군에게 여러 민간인이 희생당했다고 2001년 발표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제주 4·3 사건 발발과 진압 과정에서 미 군정이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노 정부가 만든 진실화해위원회는 미군을 대구 폭동의 가해자라고 규정했고, 1948년 여순 사건 진압 작전을 미군이 통제했다고 발표했다. 위원회가 밝힌 6·25 당시 미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은 249건이다. 중대 사안에 대해 위원회는 “전쟁 범죄에 해당하며 국가 책임이 발생한다”고 명시했다. 당시 밝히지 못한 미군 사건 202건은 문재인 정부의 2기 진실화해위에 넘어가 있다.
‘절대 규범이 모든 법의 상위에 있다’는 법 논리는 일본에만 적용될 수 없다. 한국 사회의 특정 세력이 미국을 피해 가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국가 면제를 철저히 보장하는 나라다. 이런 미국을 한국 법정에 세우고 미국 정부의 한국 내 재산을 몰수해 보라. 만만한 일본을 상대로 갈 데까지 간 한국 법원의 모험주의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 진입하고 있다.
02.03 성희롱 선거, 성추행 단일화
4월 선거의 구도는 ‘민주당 대 국민’이다
태생적, 본질적 책임은 모두 민주당에 귀속된다
선거 끝까지 묻고 또 묻자
“성희롱 사건은 어떻게 됐느냐”고
한국 국민은 곧 ‘성추행 단일화’라는, 세계 정치사에 길이 남을 장면을 목격할 듯하다. 정의당이 당대표의 성추행 사건 탓에 4월 보궐선거 포기를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범여권은 사실상 후보 단일화를 이룬다. 민주당의 두 시장이 성희롱을 저질러 세상에 없던 선거를 창조하더니, 정의당 대표가 성추행을 저질러 불가능했던 단일화까지 이뤄낸다. 성희롱으로 이벤트를 만들고 성추행으로 몸집을 불리는, 전대미문의 정치 쇼가 벌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4월 선거에 대해 야당이 반드시 이겨야 할 선거, 절대 져서는 안 되는 선거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선 야당이 명운을 걸어야 할 어떤 귀책 사유도 없다. 민주당 시장의 성희롱 탓에 선거에 끌려들어가,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 탓에 범여권의 단일 후보를 맞게 될 뿐이다. 선거의 주어는 어디까지나 성희롱을 저지른 민주당이다. 여당이 반드시 져야 할 선거, 절대 이겨서는 안 되는 선거, 즉 성희롱 심판이 선거의 출발점이다.

▲정의당 관계자들이 1월 26일 김종철 대표 성추행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정의당은 성추행 사건의 책임을 진다며 4월 보궐선거 포기를 논의하고 있다. 이 경우 전대미문의 범여권 '성추행 단일화'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국회사진기자단
이번 선거 구도는 여당 대 야당이 아니다. 4월 선거엔 관리 비용만 서울에서 487억원, 부산에서 205억원이 들어간다. 선거 공약에 따른 추가 비용, 성희롱이 한국 정치에 끼친 악영향까지 계산에 넣으면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여당의 성희롱이 국민 주머니에서 세금을 빼앗아 가는 것이다. 민주당은 ‘국민이 이 비용을 왜 감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부터 내놔야 한다. 이번 선거의 태생적 구도는 민주당 대 국민이다.
국민은 민주당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왔다. 첫째 성희롱 진상을 얼마나 철저하게 밝혔는가, 둘째 책임자를 얼마나 공명하게 단죄했는가, 셋째 피해자를 얼마나 성실히 보호했는가, 넷째 성희롱 사건을 얼마나 통렬하게 반성했는가, 다섯째 정치적으로 얼마나 엄중하게 책임졌는가. 이 질문에 대한 지금까지 민주당의 대답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작년 7월 박원순 시장 빈소에서 진상 규명을 묻는 기자에게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는 눈을 흘기면서 “ХХ자식”이라고 했다. 이해찬과 남인순 당시 최고위원은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불렀다. 46명이 달려들어 167일간 수사한 경찰의 진상 규명 내용은 ‘공소권 없음’이 전부였다. 박원순 측근 서울시 간부들의 박원순 성희롱 방조 의혹은 무혐의로 끝났다. 남인순 위원의 성희롱 피의 사실 유출 의혹도 없던 일이 됐다. 윤준병 민주당 의원은 이를 두고 “사필귀정”이라고 했다. 박원순 측근들이 피해자의 이름과 편지를 공개하고 친여 검사가 그를 ‘꽃뱀’으로 몰았을 때 민주당은 침묵했다. 피해자 어머니는 “대성통곡을 하고 싶지만 딸 앞에서 절대 내색하지 못한다. 내가 힘들다고 하면 같이 죽자고 하기 때문”이라고 호소했다.
민주당 대표가 성희롱 피해자를 비로소 피해자로 부르고 공식 사과한 것은 박원순 사건 후 반년이 지난 뒤였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성희롱 판정을 내린 후, 그것도 대변인 이름으로 서면 반성문만 달랑 냈다가 호된 비판을 받자 사과했다. 선거를 포기해야 마땅한 민주당은 당헌을 뒤집고 선거에 뛰어들었다. 당헌을 만든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했다. 진상 규명도, 책임자 단죄도, 피해자 보호도, 통렬한 반성도, 정치적 책임도 없다. “배 째라”며 웃통 벗고 덤벼드는 권력욕뿐이다.

▲작년 7월10일 이해찬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마친 뒤 성희롱 진상 규명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불쾌감을 표기하고 있다. 그는 기자들에게 "XX자식"이라고 말했다.
전근대엔 권력과 돈이 대중을 지배했다. 근대엔 이념이 대중을 움직였다. 탈근대의 권력은 소셜미디어를 통한 이미지 조작으로 대중을 움직인다. 성희롱 정당에 무슨 근대적 이념이 있겠는가. 민주당은 전근대적 금권과 탈근대적 이미지 조작을 동원해 본말 뒤집기를 시도 중이다. 나랏빚 수십조원이 투입될 사업을 선거용 밑밥으로 뿌린다. 우리 후세가 왜 박원순·오거돈의 성희롱 책임을 빚으로 떠안아야 하는지 설명해 보라.
민주당은 야당 후보의 자격 문제를 제기한다. 고민정 의원은 오세훈 후보를 “광진구민에게 선택받지 못한 자”, 정청래 의원은 야당 서울시장 경선을 “총선 패전의 땡처리 시장”이라고 표현했다. 이수진 의원도 곧 나경원 후보에 대해 “동작구민에게 선택받지 못한 자”라고 말할 것이다. 뻔한 이미지 조작이다. 아무리 끌어내려도 성희롱 정당의 후보만 할까. 오세훈은 서울 시민의 선택을 두 번, 나경원은 유권자 선택을 네 번 받았다. ‘낙하산 초선’ 고민정·이수진과 ‘탄돌이’ 정청래가 입에 올릴 수준이 아니다.
잔챙이들의 합창은 무시하고 야당은 본질을 향해 달려라.
4월 선거의 본질은 민주당 두 시장이 저지른 성희롱 문제다. 역사적 ‘성추행 단일화’를 눈앞에 둔 여당을 향해 묻고 또 묻자. “성희롱 사건은 어떻게 됐느냐”고.
02.24 외교로 망했던 나라의 외교 행태
중요한 것은 한국은 일본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를 뿐만 아니라 알 가치도 못 느낀다는 것이다
▲19세 때 오키치의 모습으로 알려진 사진. 19세기 중반 일본 여성을 기준으로 상당한 미인이라 이 사진은 '오키치 붐'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진위가 불명확함에도 오키치 사진으로 유통되는 것은 이 여인을 근대의 추억으로 남기고자 하는 일본 사회의 의지가 반영돼 있다.
일본 이즈반도의 항구 도시 시모다(下田)에서 인상 깊게 본 것은 한 기녀의 기념관이다. 시모다는 일본을 개국시킨 미국 페리 제독의 상륙 장소이자 주일 미국 공관의 첫 개설지로 유명해 개국과 근대를 추억하는 시설이 많다. 기녀 ‘오키치’의 기념관도 그중 하나다. 오키치에 대한 공식 기록은 초대 미국 공사를 사흘 동안 모셨다는 것이 전부다. 여기에 수많은 이야기를 더해 오키치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비극의 여성으로 극화됐다. 일본이 세계와의 첫 만남을 얼마나 추억하고 싶어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일본에서 정한론(征韓論) 파동이 일어난 것은 1873년이다. 한국사 교과서는 일본이 이때 목표를 한국 병탄까지 무력을 통해 일직선으로 밀고 간 것처럼 서술한다. 결과는 맞지만 내용은 다르다. 정한론 파동은 내전까지 거치면서 사무라이 구세력의 퇴장과 외교를 중시하는 신세력의 대두로 귀결됐다. 일본의 국제화에 강력한 동력을 제공한 사건이다. 한국의 서술은 일본의 신세력이 이후 거대한 국제 외교 무대에서 어떤 수법으로 한국을 삶아먹었는지 알려주지 못한다.
러일전쟁 초기 프랑스 신문 ‘르 프티 파리지앵’에 실린 유명한 만평이 있다. 왜소한 일본인과 덩치가 3배쯤 되는 러시아인이 링에서 붙고 있다. 링 바닥엔 동북아시아 지도가 그려져 있다. 러시아인은 만주와 한반도 북부, 일본 선수는 한반도 남부를 밟고 있다. 관중석 앞줄에는 덩치가 큰 영국인이, 다음 줄엔 프랑스와 독일인이 앉아 있다. 그다음 줄에 미국인이 서 있다. 경기장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장막 뒤에서 훔쳐보는 중국인이 처량하다.
▲러일전쟁 초기 프랑스 신문 ‘르 프티 파리지앵’에 실린 유명한 만평. 당시 국제 정세와 관련한 풍자화가 유명했는데, 한국은 이처럼 밟히는 존재로 묘사됐다. 닭장 속의 닭, 갓을 쓴 소경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당시 일본은 영국, 러시아는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다. 영국은 여러 수법으로 러시아 함대의 전력을 고갈시켰다. 몰래 약을 먹여 선수를 녹초로 만든 뒤 링에 올린 것과 같다. 프랑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프랑스 참전 가능성이 있었다면 일본은 전쟁을 꿈꾸지 못했을 것이다. 한반도 운명도 달라졌을 것이다. 프랑스는 왜 그랬을까. 같은 시기 프랑스는 모로코를 두고 독일과 충돌했다. 영국의 지지가 필요했다. 이를 계기로 영국과 프랑스는 1904년 적대 관계를 청산하는 이른바 ‘앙당트(협상)’ 체제를 만들었다. 영국의 동맹국에 칼을 겨눌 수 없었다.
일본이 영국과 동맹을 맺은 것은 1902년이다. 실권자 이노우에 가오루는 “횡재”라고 했다. 하지만 일본엔 지구 반대편 나비의 날갯짓을 예민하게 읽어낸 탁월한 외교관들이 있었다. 국제 외교의 역학 변화를 귀신같이 낚아채 재빨리 반응했다. 영일 동맹으로 러시아를 고립시킨 뒤 전쟁에 돌입했다. 일본 해군은 한국 진해 기지에서 러시아를 기다렸다. 작가 시바 료타로의 책 ‘가도를 간다’엔 이순신 진혼제를 연 일본 해군의 모습이 나온다. 출전하는 군인들이 이순신에 향해 예를 올렸다는 기록도 있다. 과거의 적장에게 예를 갖춤으로써 승전을 기원했다. 정한론 파동도, 모로코 위기도 모른 한국은 이순신의 가치조차 일본보다 몰랐던 것이다.
외교사로 보면 한국은 1907년 헤이그 회담까지 실낱같은 숨을 쉬고 있었다. 한국사 교과서는 헤이그 사건을 고종의 반일 저항과 독립 외교의 출발점으로 본다. 이준 열사의 비상한 자결 신화로도 전승된다. 헤이그 특사는 러시아의 공식 초청에 따른 것이다. 러시아는 한국 독립을 의제로 올려 일본을 압박하려고 했다. 이 시도가 성공했다면 명목상이나마 한국 국호는 얼마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한국 카드를 중도에 접었다. 러시아 혁명으로 다시 전쟁을 일으킬 여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나비효과를 갖다 붙이면 ‘피의 일요일’에 뿌려진 러시아 인민의 피가 한국의 운명을 결정했다. 한국은 철회 사실도 몰랐다. 러시아는 영국과 앙당트 체제를 구축하고 일본과는 만주 이권을 분할하는 협약을 맺었다. 영국과 러시아가 벌인 ‘그레이트 게임’이 영·불·러·일의 4국 협상 체제로 결판났다. 한국 편이 사라졌다. 한국은 외교로 망한 것이다.
지금 동북아 링 위에는 중국 선수와 일본 선수가 마주하고 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의 시선으로 보면 ‘전제정치’ 대 ‘민주주의 동맹’의 대결이다. 맨 앞줄에 미국인이, 그 뒤엔 호주와 인도인이 앉았다. 영국인이 문을 열고 들어오려 한다. 한국은 어디에 있을까? 한국만의 링에서 삼류 일본인을 데려다 ‘반일(反日)’ 주먹을 날리고 있는지 모른다. 그건 그렇다고 치자. 중요한 것은 미중이 벌이는 ‘그레이트 게임’에 일본이 들어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은 일본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를 뿐만 아니라 알 가치도 못 느낀다는 것이다.
아베 정권의 한국 정책엔 역설적인 부분이 있었다. 집권 8년 내내 사이가 좋지 않았던 한국에 외무성 엘리트를 집중 배치했다는 점이다. 친한·혐한을 떠나 자국 이익을 중시하는 유능한 외교관이란 느낌을 받았다. 주미 일본대사를 비롯해 이들이 세계 주요국으로 퍼져 무언가 새로운 외교의 틀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궁금하기도 하고 약간 두렵기도 하다.
03.17 문재인 청와대가 부동산 적폐다
공공 주도? LH로 파탄 났다… 적폐 주도 대책이다
이왕 막가는 것, 후임 국토부 장관은 김의겸씨가 어떤가
시민단체가 2019년 4월 청와대 재직 중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물러난 김의겸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2년이 지났다. 고발한 시민단체에 연락하니 담당자까지 바뀌어 진척 상황을 들을 수 없었다. 검찰에 물었다. “다른 일이 많아 아직 결론을 못 내리고 있다”고 했다. 수사를 시작했는지조차 분명치 않다.
정부가 땅 투기 혐의로 수사 의뢰를 한 LH 직원은 20명, 이외의 수사·내사 대상자는 100명에 이른다. 이들이 받는 혐의는 가볍지 않다. 그렇다고 김의겸씨보다 무겁지도 않다. LH 직원 20명이 산 땅은 경기도 광명, 시흥 지역이다. 예전부터 신도시 후보로 거론돼 투기 수요가 많았다. 그들이 비난받는 것은 신도시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LH 내부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 천하의 악당으로 몰려 수사를 받고 있다. 여론이 법을 삼키는 한국적 환경에서 그들은 이 위기를 쉽게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김의겸씨는 서울 흑석동 재개발 지역에 전 재산과 은행 빚 10억원을 쏟아부었다. 동생까지 같은 지역에 9억원을 넣었다. 이런 경제 행위를 투기라고 한다. 경북 칠곡에서 태어난 그는 전북 군산에서 자랐다. 서울 안암동에서 대학을, 만리동 고개에서 직장을 다녔다. 전세 보증금까지 빼 투기하고 청와대 관사에서 살았다. 흑석동 정보는 어떻게 얻었을까. 보통 사람이면 불가능에 가까운 10억원 대출은 어떻게 일으켰을까. 청와대 정보망은 사통팔달이다. 정보를 흡수하는 권력의 중력은 무한하다. 이 정보를 취재하려고 기자 345명이 들락거린다. 김의겸씨는 “아내가 다 했다”고 했다. 이 한마디로 법적 추궁을 면제받고 있다. LH 직원들은 아내가 없어 저 수모를 당하는 것일까.
스스로 목숨을 끊은 LH 파주사업본부 직원의 이야기가 안타깝다. 그는 5년 전 파주에 땅을 샀다. 대규모 택지지구와 관계가 없고 농사 이외에 쓰임새가 없는 맹지라고 한다. 5년 동안 시세가 오르지 않았다. 적어도 ‘농부 문재인’만큼은 농부답게 농사를 지었다. 자신의 책임 지역에서 땅을 샀다는 두려움이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김의겸씨가 청와대를 떠나는 날 식사를 같이하며 “어디서 살 거냐”고 걱정했다. 김의겸씨는 곧 국회의원이 된다. 뻔뻔스럽게 버틸수록, 적반하장으로 대들수록 잘되는 세상이다. 문 정권 4년이 그랬고, 이 정권이 이어지는 동안 계속 그럴 것이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회의에서 “부동산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적폐의 구체적인 내용이 모호하다. 본인도 모를 것이다. 남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려고 꺼내든 정치적 수사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인식은 다르다. 권부에 앉아 투기에 뛰어든 김의겸씨, 공직을 버리고 강남 2주택을 지킨 김조원씨, 김의겸 파문으로 청와대가 뒤집어졌을 때 태국에서 양평동 집을 사 1억4000만원을 번 대통령 딸 문다혜씨, 그리고 규제와 선동으로 일사천리 집값을 폭등시키는 정책을 국민은 부동산 적폐라고 한다. 청와대 자신이 적폐인 것이다. 문 대통령은 “LH 사건을 접하면서 국민은 근본적 해결책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아니다. 국민은 김의겸씨를 볼 때부터, 청와대의 엉터리 정책이 집값을 수직 상승시킨 순간부터 해결책을 요구했다.
LH는 모든 책임을 져야 할 대단한 조직이 아니다. 침략 전쟁 때 주거 관리를 위해 급조된 일제의 잔재에 불과했다. 패전 후 일본에선 해체된 조직이 한국에선 살아남았다. 권위주의 시대 정부 주도의 도시 개발이 마무리될 무렵,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최소한의 공공 영역으로 기능이 축소돼야 했다. 이런 구시대 조직이 문 정권의 이해 덕분에 커졌다. 문 정권은 규제 완화에 대한 자기편의 반발을 마사지하기 위해 공공(公共)의 이름으로 LH를 끌어들여 버거운 권한을 부여했다. 정책 실패를 분칠하는 데 이용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공공주도형 부동산 공급 대책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신도시 정보만으로 난리가 났다. 대통령 말대로 정책이 실현되면 LH는 민간 재건축, 재개발 사업권까지 가져간다. 대통령이 부동산 적폐로 찍은 LH가 부동산 시장의 풀뿌리 정보를 독점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미세 혈관에서 일어나는 부정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공공 주도 같은 소리는 집어치워라. 적폐주도형 대책이다. 이왕 막가는데, 후임 국토부 장관은 김의겸씨가 어떤가.
문 정권은 부동산 정책 실패를 깨끗이 인정하고 규제를 완화해 민간 공급을 유도하면 그만이었다. 이걸 절대 못하겠다고 4년 동안 온갖 잡술(雜術)을 동원해 한국 부동산 시장을 부정과 꼼수, 거품과 가렴주구가 가득한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경제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의 아집이 초래할 한국 경제의 비극을 걱정한다. 5년 동안 쌓이면 폭발하고, 폭발하면 파국이 될 것이라고 한다.
04.07 김어준과 생태탕, 그리고 박원순의 생태계
벌써 10년이다
해먹을 만큼
해먹은 것 같은데
아직도 타오르는
저 목마름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가?
막판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격차가 20%포인트까지 벌어졌다면 한국 우파는 이미 포기했을 것이다. 붙들고 늘어지는 악력(握力)의 강도에서 한국 우파는 좌파에 족탈불급이다. 생태탕 집 아들의 16년 전 페라가모 기억을 끌어내 마지막까지 몸부림치는 광기에 이번에도 혀를 내둘렀다. 서울 시정이 좌파로 넘어간 지 10년이다. 해먹을 만큼 해먹은 것 같은데, 아직도 타오르는 저 목마름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번엔 공정성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TBS는 재정의 77%를 서울시 세금에 의존한다. 이 방송 시사 프로가 그제 익명 제보자 5명을 불러 90분 동안 야당 후보의 비리 의혹을 보도했다. “하얀 면바지에 멋진 페라가모 구두”란 믿거나 말거나 하는 주장은 내곡동 생태탕과 대조를 이루면서 타깃의 이미지 재구축을 시도한다. 진행자 김어준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김어준은 2년 전에도 윤지오를 불러내 정파의 이익을 위한 소도구로 소비한 적이 있다. 윤지오는 의도를 알면서도 미끼를 물었고, 덕분에 한몫 챙겨 해외로 튀었다. 그는 지인에게 김어준에 대해 이런 문자를 보냈다. ‘병Х’ ‘미친 Х라이’. 윤지오는 비록 사기꾼이지만, 사람 보는 눈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윤지오씨 사기 파문이 일자 윤씨 지인들이 공개한 카카오톡 대화록. 왼쪽이 김어준에 대한 부분이고, 오른쪽이 그를 기획 입국시킨 검찰과거사위원회에 대한 부분이다. 윤씨는 김어준씨에 대해 "X신" "미친 X라이"라고 혹평했으나 김어준 프로에 출연해 자신을 공개하고 돈을 챙겨 해외로 튀었다. 과거사위에 대해선 "진짜 꼴값들"이라며 "기자보다 못한 작자들"이라고 조롱했으나 역시 그들이 뜻에 따라 입국에 국가 세금으로 국내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김어준은 왜 저럴까?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교통 전문 방송 TBS를 정파 방송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가 구축한 생태계 상단에 올려놓았다. 김어준은 이곳 최상위에 자리한 포식자에 속한다. 회당 출연료가 100만원이란 주장도 있고, 200만원이란 주장도 있다. 어느 쪽이든 사장보다 많고 전체 방송사에서 최고 수준이다.
이번에 “김어준 저리 가라”며 알몸으로 나선 사람이 안진걸이다. 거물은 아니고 마이크 끼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아스팔트 좌파 정도로 평가하면 된다. 김어준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그에게서 찾을 수 있다. 안진걸은 2019년 TBS에서 시사 프로 진행자 자리를 꿰찼다. 방송 100회, 200회 때마다 박원순이 축하 영상을 보냈다. 평일 매일 방송이었으니 보수가 두둑했을 것이다.
내 경험으론 좌파일수록 자리를 탐한다. 밀려나면 더 격한 반응을 보인다. 돈, 권력도 마찬가지다. 이념? 동지애? 이번 선거에서 그들의 검질긴 광기는 좌파 생태계의 먹이 사슬을 지키기 위한 전초전으로 보면 무리가 없다.
생전의 박원순 시장을 가까이서 몇 번 봤다. 그는 상대 성향에 맞춰 자기를 주장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어떤 자리에서 한 기자가 박 시장의 어떤 시정(市政)을 비판하자 이렇게 말했다. “그 덕분에 기자님 회사 (부동산) 가치가 얼마나 올랐는지 아세요? 저한테 고맙게 생각하셔야죠?” 그는 정치에 유리하면 개발 논리로 자신을 포장했다. 한강 노들섬, 한강 월드컵대교 등이 정치적 득실에 따라 소신을 바꾼 사례다.
박 시장은 10년 전 “아무것도 안 한 시장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거대 사업을 벌이지 않고 내실을 기하겠다는 뜻으로 읽었다. 그런데 정말 ‘아무것도 안 한 시장’이 될 듯하다. 박원순이 만든 서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넓어진 보행로와 따릉이, 정비된 골목길, 한양 도성길, 작은 박물관과 수많은 조형물. 그런데 서울시장은 구청장이 아니다.
서울은 일제의 대(大)경성 계획과 박정희 시대의 강남 개발로 영역이 확정된 메트로폴리스다. 한국만 한 땅에선 더 커질 수 없고 커져서도 안 된다. 균형 발전 논리에 따라 기능을 지방에 주는 맏형 노릇도 마다할 수 없다. 선진국 대도시가 이미 그 길을 걸었다. 그들은 국제화에서 활로를 찾았다. 도시 기능을 재생산하고 확대하면서 세계 도시로 재도약했다. 전임 시장들은 ‘금융 허브’ ‘문화 허브’를 내걸고 서울의 세계화에 도전했다. 박 시장은 ‘서울의 한양화’로 시침을 조선 시대로 돌렸다. 지금 광화문 공사판을 보라. 서울의 국제 도시 경쟁력은 하락했고, 경제 규모는 2014년부터 경기도가 추월했다. 나는 좌파 권력이 설계한 ‘의도한 쇠퇴'로 해석한다.
그래서 그의 발언에는 더 본질적인 무언가가 있다. 깊숙이 뿌리내린, 노출하고 싶지 않은 생태계다. ‘원전 하나 줄이기’는 좌파 동지들에게 광범위한 축재(蓄財) 기회를 안겼다는 의심을 받는다. 태양광 사업으로 한몫 챙긴 운동권 허인회가 대표적 인물이다. 윤미향의 정대협에 여성부 다음으로 많은 세금을 쏟아부은 곳이 박원순의 서울시였다. ‘마을 공동체’ 프로젝트를 통해 시민 단체를 키웠다. 서울시 등록 시민 단체를 2295개로 늘렸다. 각종 보조금과 공모 사업을 통해 이들에게 세금을 수혈했다. 이 모두를 좌파로 볼 순 없다. 하지만 상당수가 그렇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최대 유산은 세금에 기대는 좌파의 합법적 생태계를 만든 일이다. 지금 최전선에서 광기를 발산하는 좌파의 전사 중 직간접으로 그에게 녹을 먹지 않은 자가 없다. 실제로 밥통을 빼앗겼을 때 좌파 생태계가 발산하는 전방위적 광기는 실로 볼만할 것이다.
04.28 문재인 vs 박근혜, 비교가 시작됐다
조만간 文정권은 집권 4년을 채운다
朴정권도 그 정도였다 시간 탓은 안 된다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나아진 게 무언가?
지난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박근혜 정권의 중요한 유산 하나를 복권시켰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다. 문재인 대통령은 합의 2주년을 맞은 2017년 12월 28일 “국제사회의 보편 원칙에 위배되며 피해자 배제라는 중대한 흠이 있는 뼈아픈 합의”라고 선언하고, 피해자 지원 사업을 무산시키는 방식으로 합의를 사실상 파기했다. 그런데 법원은 피해자의 소송을 기각하면서 이 합의가 “피해자 권리를 구제하는 정부의 유효한 외교적 보호권 행사”라고 판결했다. 국제사회의 보편 원칙에도 맞고, 합의 과정에서 피해자가 배제되지도 않았으며, 피해자 상당수가 합의에 따른 구제 사업에 응했다고 했다. 대통령의 고의적 왜곡을 사법부가 온전히 바로잡았다. 문 정권 4년 외교를 결산하는 상징적 반전(反轉)이었다.
▲꿈 같은 날.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대화하고 있다. 남북이 벌인 이날 TV 이벤트는 북한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와 삶은 소대가리 욕 폭탄으로 일단락됐다.
서울 종로의 어느 한식집엔 일명 ‘아베 메뉴’가 있다. 메뉴판에 없는 비공식 메뉴다. 생선회, 꽃등심, 갈비, 한국산 맥주로 구성된다. 위안부 합의 두 달 전 한국에 온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 식당에 들러 먹은 음식이라고 한다. 아베 총리는 그날 오전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그러고도 점심을 같이하지 못했다. 거절당한 것이다. 수행원은 있었지만 외교적 ‘혼밥'이었다. 푸짐하게 먹었지만 국가적 수모였다. 아베 총리와 동행해 서울에 온 일본 정부의 한 외교관을 그날 밤 만났다. 박 대통령이 오찬을 거부한 이유가 위안부 문제의 ‘연내(年內)’ 타결을 약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냐는 질문에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전쟁 때도 장군이 협상하러 오면 밥은 먹여 보낸다. 나는 박 정권의 이런 대일(對日) 외교 방식이 너무 협량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실제로 해가 넘어가기 전에 협상이 타결됐고 12월 28일 합의가 발표됐다. “정신이 너덜거릴 정도로” 막후 협상 때 고생한 사람들 이야기를 몇 년 뒤 들었다. 다들 하는 얘기가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고집이 아니었다면 거기까지 밀어붙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점심 한 끼까지 반일(反日)을 했다. 하지만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목표에 도달하자 동북아 안보의 한·미·일 삼각 공조를 구축했다.
박 정권에 비하면 문 정권의 반일은 놀이에 가깝다. 2018년 대법원이 징용 재판에서 일본 기업이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정상적 정부라면 일본과 심각하게 협의했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자국 국민의 대일 청구권 포기 조항에 서명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시간만 끌다가 일본이 경제를 건드리자 문 정권은 국내 정치에 이용했다. 죽창가, 토착 왜구, 이순신 12척 발언, 거북선 횟집 오찬…. 국민을 갈라치기 한 이런 저질 발언의 출산지는 소셜미디어가 아니다. 모두 대통령의 말, 청와대 핵심 참모의 글과 행동에서 나왔다. 그러면서 지지율이 올랐다며 낄낄거렸을 것이다.
외교가에서 이런 얘기가 돈다. 청와대는 강창일 전 국회의원을 주일 대사에 내정한 뒤 “오래 쌓아온 고위급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경색된 관계의 실타래를 풀 것”이라고 했다. 강 대사의 학자 시절 일본 우익 연구는 대단했다. 하지만 학식이 있다고 대사가 되는 건 아니다. 강 대사는 10년 전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쿠릴열도를 방문해 일본의 ‘고위급 네트워크’에서 제외된 인물이다. 서울에 있는 일본인 특파원 한 명만 잡고 물어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실타래를 풀라”며 보냈다. 고차원적 반일인가? 정말 몰랐거나 그래도 통한다고 생각해서 보냈다는 게 외교가의 정설이다.
문 정권은 반일 몰이를 중단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너무 돌변해서 외교관이 창피할 정도라고 한다. 대통령은 떠나는 주한 일본 대사를 청와대로 불러 덕담을 나눴다. 이례적이다. 그는 주미 대사로 이동했다. 외교가에선 미·일에 좋은 말을 해주길 기대한 듯하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대법원의 징용 판결을 흔들 수 없는 금석처럼 여겼다. 그런 대통령이 피해자 손을 들어준 1월 위안부 판결에 대해선 “곤혹스럽다”고 했다. 외교가에선 다들 “도쿄올림픽에서 남북 평화 쇼를 하려고 저런다”고 한다. 일본도 의도를 뻔히 안다.
반일은 친북(親北)과 함께 문 정권 외교의 두 축이었다. 친북 노선은 작년 북한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와 삶은 소대가리 발언으로 사실상 물 건너갔다. ‘친북’을 살려보겠다고 ‘반일’을 ‘친일’로 돌렸다. 역시 문 정권의 머리 꼭대기에 북한이 있다. 북한과 쇼를 할 수 있다면 달나라라도 가려나.
5월 10일이면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4년을 채운다. 박근혜 대통령 재임 기간과 같다. 이제 시간 탓은 안 된다. 문 대통령은 대일 외교에서 박 대통령에게 참패했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겼다. 이것이 첫 승패다. 그러면 경제는? 사회는? 정치는? 외교는? 안보는? 앞으로 문 정권은 그들이 대중을 선동해 적폐로 몰아낸 박 정권과 하나하나 비교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박 대통령 4년의 명암도 정당하게 재평가돼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05.19 박범계 장관이 이성윤 공소장 공개에 흥분하는 이유
드라마 같은 공소장
법대로 한 진짜 검사와,
그를 무너뜨리기 위해
추악한 술수를 부린
권력의 낯 뜨거운 행적
그 적나라함에
문 정권은 얼굴을 못 들 것이다
작가라면 이성윤 공소장을 읽었으면 한다. 선악의 대립 구도가 분명하며, 권력의 군상들이 연출한 초여름 촌극의 극적 농도가 매우 진하다. 문장을 문학적 표현으로 손질하고, 묘사와 설명을 덧붙이면 훌륭한 논픽션을 만들 수 있다. 역설적이지만 공소장 공개에 대해 박범계 장관이 뿜어내는 격한 반응도 공소장을 읽으면 납득할 수 있다. 부끄럽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수원지검 안양지청 수사팀 윤원일 검사. 2019년 4월 11일 대검찰청이 박상기 법무장관의 의뢰를 받은 수사를 그에게 맡겼다. ‘누군가 김학의씨에게 출국이 가능하다는 정보를 흘린 것 같으니 찾아내라’는 것이다. 열심히 수사했다. 그런데 증거들은 반대쪽을 가리켰다. 출국을 막은 조치가 불법이었고 이를 합법으로 속이기 위해 공문서를 조작했다. 정권 보위 수사가 저격 수사로 변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자신 없다. 그는 덮지 않았다. 공소장은 그 이유를 쉽게 설명한다. ‘범죄 혐의가 있다면 검사는 수사해야 한다는 형사소송법 195조를 따랐다’고. 하지만 이후 주변인 행태를 보면 이 ‘법대로’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그가 얼마나 특별했는지 알 수 있다.
수사 착수 두 달이 지난 6월 19일, 윤 검사는 지휘부인 대검 반부패강력부에 계획을 알렸다. 대검의 첫 반응은 “다른 데에도 보고했느냐”는 물음이었다. 공소장은 의도를 설명하지 않았지만 누구나 음습한 의도를 짐작한다. 혐의가 다른 데로 새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반부패부는 이성윤 부장 주재로 회의를 열었다. “의뢰 내용이 아닌 것을 수사해 시끄럽게 만든다”는 불평이 나왔다. 수사가 의무인 검사가 한 소리다. 그 후 벌어진 일은 전쟁 논픽션을 읽는 듯하다. 장관, 청와대 수석, 비서가 화력을 보태고 지연, 학연, 사법연수원, 운동권 서클 인연 등 온갖 연줄을 동원했다. 평검사 한 명을 잡기 위해서.
이성윤 부장은 지연을 통해, 소속 과장은 학연을 통해 수사 중단을 요구했다. 다른 갈래에서도 압력이 들어갔다. 공소장에 따르면 수사 대상자(이규원 검사)가 이광철 행정관에게, 이 행정관이 조국 민정수석에게, 조 수석이 윤대진 법무부 검찰국장에게, 윤 국장이 안양지청장에게 청탁했다. 이규원과 이광철은 연수원 36기 동기, 조국과 윤대진은 대학 운동권 선후배, 윤대진과 안양지청장은 연수원 25기 동기다. “이 검사가 곧 유학 간다니까 수사하지 말라.” 정권 이너서클이라는 법 전문가들이 끼리끼리 뒷구멍에서 한 소리다. 세계 후진국 로비스트들에게 이 공소장을 교본으로 뿌려라.
압박은 수사팀에 전달됐다. 수사팀엔 수사를 주도한 윤 주임검사 외에 최승환 검사, 이들의 상관인 장준희 부장검사가 있었다. 지청장은 수사 중단을 지시했다. 다른 검사 결혼식장에서까지 압박했다. 지청장은 직접 윤 검사에게 수사 중단을 요구했다. 그때 발언이 공소장에 적혀 있다. “(긴급 출금 당시) 급박한 상황도 고려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 윤 검사 반응은 공소장에 없다. 결혼식 3일 후 사건 주임이 윤 검사에서 장 부장검사로 변경됐다는 사실만 기록했다. 그의 반응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굴복하지 않았다. 주임검사가 바뀐 뒤에도 수사팀은 법무부 직원 2명을 불러 수사를 계속했다. 박상기 법무장관이 윤대진 국장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내가 시켜서 직원들이 한 일을 조사하면 나까지 조사하겠다는 것이냐?” 범죄 자백인가. 이런 코미디가 없다. 윤 국장은 안양지청장에게 푸념했다. “장관이 왜 계속 조사하냐고 나한테 엄청 화를 내서 내가 겨우 막았다.” 작가라면 일대 반전의 가능성도 상상할 수 있다. 공소장에 따르면 박 장관이 수사 의뢰 때 넘긴 자료가 불법 출금 사건의 증거가 됐다. 그의 정체는? 엑스맨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까지 있다. 안양지청 수사팀은 이 문제로 반성문 같은 경위서를 냈다. 수사를 중단한다는 보고서도 올렸다. 공소장은 여기서 끝난다. 하지만 드라마는 끝이 아니다.
수사팀의 좌절과 분노가 세상을 움직였을까. 1년 6개월 후 공익 신고와 언론 보도를 통해 문 정권이 파묻은 수사가 부활했다. 이 이야기는 길게 쓸 수 없다. 수사 검사와 기자, 신고자가 훗날 상세한 기록을 남길 것이다. 기승전(起承轉)이 그렇게 마무리되고 수사는 마지막 결(結)을 향하고 있다. 이성윤 공소장은 마지막 시즌의 첫 회에 해당한다. 이광철·윤대진·박상기·조국, 그리고 어둠 속에 있을지 모를 ‘최종 보스’에 대한 공소장이 드라마를 완성할 것이다.
쟁쟁하다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도 아니었다. 수원지검 안양지청이다. 여기서 권력을 향해 “법대로 하겠다”고 나섰다가 된통 깨지고 시말서까지 쓴 검사들을 기억하자. 이런 검사들 때문에 권력이 편히 잠들지 못한다.
06.09 文정권에선 검사가 정치하고 판사가 외교한다
대통령이 정치를 안 하니 검찰이 대신 정치하고
외교를 안 하니 법원이 대신 외교한다
그러면서 북한이 할 일은 정말 열심히 해준다
조국 전 법무장관은 회고록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정권 수사를 ‘정치’로 몰아갔다. 동의한다. 그는 수사를 했지만 동시에 정치를 했다. 조씨는 윤씨에게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고 했다. 이 주장엔 동의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수사가 정치가 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를 내동댕이친 탓이다.
▲2019년 10월 3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집회. 조국 사태에 자극을 받은 시민들이 광화문광장에 모여 조국 법무장관의 퇴진을 요구했다. 조 장관은 11일 후 사퇴했다.
조씨는 검찰 수사로 조국 사태가 시작된 것처럼 서술했다. 자신의 고난이 검찰 개혁을 막으려는 검찰의 불순하고 치밀한 반란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몇 년 지났으니 멋대로 떠들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조국 사태는 대통령이 그를 법무장관으로 지명했을 때 언론이 시작했다. 언론이 사모펀드 의혹을 제기했고 조씨 딸의 의학대학원 장학금 문제, 학술 논문 제1저자 등재 문제를 폭로했다. 이 기사로 공정 이슈가 분출했다. 검찰 압수 수색은 지명 18일이 지난 후, 비판 여론이 폭발하던 시점에 이루어졌다. 수사는 오히려 조국 지지자들의 역풍을 불렀다.
조 전 장관은 이 ‘18일’을 371쪽짜리 회고록에서 단 8줄로 적었다. 딸 논문 얘기는 뺐다. 너무나 명백해 변명으로 슬쩍 넘어갈 수 없다고 느낀 듯하다. 밑도 끝도 없이 ‘검·언·정’이 벌인 ‘저주의 굿판’이라고 했다. 검찰과 정치권이 흘린 정보로 언론이 공격했다는 것이다. 얄팍한 언론관이다. 나는 그때 사회부장이었다. 기자에게 “조국이 낙마하면 우리 취재 때문에 낙마했다는 소리를 듣도록 하자”고 했다. 모든 언론사 사회부장이 그랬을 것이다. 공직자 검증은 언론의 본질적인 업무다. 권투선수가 링에서 상대를 쓰러뜨리려는 것과 같다. 자식에 이어 언론이 아버지까지 프리패스를 허용한다면 직무 유기 아닌가.
언론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대통령은 그의 지명을 철회하면 그만이었다. 수사는 그냥 수사로 끝났을 것이다. 사과 한마디만 했으면 국민은 감동했을 것이다. 이런 게 정치다. 그런데 대통령은 끝내 그를 법무장관에 앉혔다. 대통령이 알고도 피의자를 공직에 앉혔다면 그 피의자를 공직에서 끌어내리는 행위는 수사이면서 파장이 큰 정치에 해당한다. 유재수, 울산, 원전, 불법 출금 수사가 그랬다. 대통령이 피의자를 챙기자 수사는 정치가 됐다. 역설적이지만 이럴 때 수사를 밀고 가는 게 진짜 검사, 중단하는 게 정치 검사다. 지금 검찰은 정치 검사의 소굴로 변했다.
검찰 수사 한 달 뒤 상갓집에서 일어난 일이다. 윤 총장이 문상을 마치고 나오자 접객실에 있던 조문객들이 일어나 손뼉을 쳤다. 청소원까지 함께 쳤다. 초상집에서 박수라니. 무의식적으로 마음을 따르다 보니 다들 실례한 것이다. 작년 말에도 그랬다. 법원이 윤 총장 직무 복귀 판결을 내렸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내 주위에서 많은 박수 소리가 들렸다. 정치는 감동이다. 나는 그때 윤석열이 정치인이 됐다고 생각했다. 대통령과 조국씨는 4년 동안 국민에게 그런 감동을 준 적이 있는가. 감동의 정치를 왜 윤석열에게 빼앗겼는지 생각했으면 한다.
조국 회고록엔 ‘나는 왜 죽창가를 올렸는가’란 대목이 나온다. 조씨 특유의 날탕 논리는 일단 접어두자. 그는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이 나온 후 판결을 옹호하고 일본에 맞서자는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썼다. 그가 주도했다는 것이다. “판결의 의미를 부정하면 헌법 위반자”라고 독을 내뿜었다. 그 후 전개 과정은 알려진 대로다. 죽창가를 부르고, 토착 왜구라고 공격하고, 거북선 횟집에서 끼리끼리 밥을 먹었다. 20세기도 아닌데 대통령은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고 했다. 애들도 이러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는 왜 존재하나. 한국 정부는 한일 청구권 협정의 서명 당사자다. 대법원 판결이 협정과 충돌하면 외교 해법을 찾아야 했다. 이것은 의무다. 피해 당사자들도 대결보다 협상을 원했다. 일부 피해자는 한국 정부의 무대응에 항의하는 시위도 했다. 현실적인 이유다. 소송에서 현금화까지 시간이 너무 걸린다. 압류할 수 있는 국내 일본 기업 자산도 거의 바닥났다. 징용 피해자들은 앞으로 아무리 소송에서 이겨도 일본 기업에서 실질적인 배상을 받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은 반일 몰이에만 열중하고 피해자들은 배려하지 않았다.
몇 년 전 소송 관계자에게서 한심한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 기업 자산을 압류했는데 움직이지 않는 한국 정부를 자극하기 위해서 그랬다는 것이다. 소송 피해자가 외교를 하고 정치를 한 것이다. 이번에 징용 소송을 각하한 1심 법원은 판결문에서 “일본과 맺은 관계가 훼손되고 이는 결국 한미 동맹으로 우리의 안보와 직결된 미국 관계 훼손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국제 무대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다. 법원이 법리만이 아니라 외교까지 걱정한다.
문 대통령은 중요한 일을 안 한다. 정치를 안 하니 검사가 정치하고, 외교를 안 하니 판사가 외교한다. 그러면서도 북한이 해야 할 일을 정말 열심히 해준다는 소리를 국제사회에서 듣는다.
06.25 150년 전 韓日 세대교체 바람, 성공 여부가 나라 운명 바꿨다
세대교체와 나라의 운명
한일 근대사에서 자주 비교되는 두 공간이 있다. 서울 북촌의 박규수 사랑방과 야마구치현 하기의 요시다 쇼인 촌숙(村塾)이다. 19세기 중·후반 10년 시차를 두고 이 공간들에서 20대 진보적 신세대 그룹이 배출됐다. 요시다의 제자들은 세대교체에 성공해 나라를 지배했고 촌숙은 메이지유신의 상징으로 보존돼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박규수의 문인들은 시대의 주역이 되지 못했다. 사랑방은 사라졌고 그 자리는 지금 헌법재판소 뒷마당으로 변했다.
▲갑신정변 실패 후 1885년 망명지 일본에서 찍은 주역들의 사진. 왼쪽부터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김옥균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을 탈출하지 못한 홍영식과 박영교는 청군에 참살됐다. 김옥균은 9년 후 중국 상하이에서 고종이 보낸 자객에 의해 암살당했다. 박규수의 문인 중 일제강점 후에도 호의호식한 사람은 철종의 사위 박영효 뿐이다.
◆쟁쟁했던 조선 신세대, 그러나
경력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박규수는 연암 박지원의 손자로 서울 명문 거족 출신이다. 중국 사신으로 서세동점(西勢東漸)의 현실을 직접 목격했다. 병조·이조참판, 평안도 관찰사, 한성부윤 등 요직을 지냈다. 실학의 계승자이자 개화 사상의 선구자였다. 오경석·유대치 등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은 사상가를 곁에 두고 10년 넘게 후학을 길렀다.
하급 무사 출신인 요시다 쇼인은 영주에게서 천재로 인정받아 난학(蘭學)과 병학(兵學)을 체계적으로 학습했다. 하지만 변방을 벗어나지 못했다. 두 차례 밀항을 시도했다가 실패해 옥살이를 했다. 막부에 대들다가 목이 잘려 죽은 때가 29세였다. 박규수보다 23년 늦게 태어났으나 18년 먼저 죽었다. 숙부에게 물려받은 쇼카(松下) 촌숙에서 후학을 길러낸 시기는 불과 2년 정도다.
제자들도 달랐다. 박규수 사랑방엔 과거에 급제한 서울 명문가 수재들이 드나들었다. 왕의 사위(박영효)와 영의정의 아들(홍영식)까지 있었다. 수신사·시찰단 등으로 전원이 일본과 미국을 다녀왔고 문명 개화를 지지했다. 당대 최고의 20대 엘리트로 이뤄진 드림팀이었다.
요시다의 촌숙은 변방의 하급 무사로 채워졌다. 이들의 사상적 지평은 유신 직전까지 천황을 받들어 서양 오랑캐를 내몰자는 존왕양이(尊王攘夷)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수제자 4명이 외세, 막부와 싸우다 모두 20대에 죽었다. 촌숙의 신세대 그룹이 문명 개화로 질적 변화를 일으킨 것은 열등생 그룹이 양이를 포기하고 유학에 나선 이후였다. 그중 한 명이 농민 출신 이토 히로부미다. 그가 칼 대신 영일(英日)사전을 옆구리에 차고 영국으로 떠났을 때가 22세였다.
▲1863년 유럽으로 유학을 떠난 야마구치 신진 엘리트 5명. ‘죠슈5’로 불린다. 사진 속 상단 오른쪽이 이토 히로부미, 하단 왼쪽이 이노우에 가오루다. 요시다 쇼인의 쇼카촌숙 제자들이다. 이들의 유학을 기점으로 일본의 흐름은 반외세에서 문명 개화로 전환했다. 이토는 초대 총리 등 네차례 총리를 맡았고 이노우에는 대장·내무·외무대신을 역임했다. 둘 다 한국과 악연이 있다.
◆250년 만의 능력주의 시대
두 나라 신진 엘리트의 신분 차이는 역설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일본은 질이 상대적으로 낮았으나 문호를 하층에 개방해 인재군(群)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인재를 배출한 사숙(私塾)이나 사당(私黨)은 요시다의 촌숙만이 아니다. 후쿠자와 유키치를 배출한 오사카의 데키주쿠(適塾), 사이고 다카모리와 오쿠보 도시미치를 배출한 가고시마의 세이추구미(精忠組)가 대표적이다. 일본 근대를 만든 이들은 모두 하급 무사 출신이다.
나라가 위기에 빠지자 지방 영주들이 각자도생을 위해 발탁 경쟁을 벌였다. 실력이 신분을 결정하는 능력주의 시대가 전국시대 종결 이후 250년 만에 돌아왔다. 이 경쟁에서 승리한 지역을 웅번(雄藩)이라고 한다. 웅번 4곳의 하급 무사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거대 세력을 만들었다. 막부조차 가쓰 가이슈와 같은 하급 인재를 발탁해 세대교체를 시도했다. 청년 전성시대였다. 그들은 유신으로 권력을 쟁취한 뒤 중앙집권화를 통해 자신을 키워준 웅번까지 삼켜버렸다.
박규수 사랑방의 제자들은 고립된 섬과 같았다. 고종에 의해 중앙 정계에 발탁된 수제자 그룹은 갑신정변으로 죽거나 망명했다. 홍영식은 29세, 박영교는 35세에 청군에 살해됐다. 김옥균은 망명지를 떠돌다가 43세에 암살당했다. 김홍집과 어윤중이 아관파천 때 참살되자 조선의 개혁 지사(志士)는 씨가 말랐다. 그 후에도 조선이 신세대를 멀리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젊을 뿐 새롭지 않았다. 내부대신 이지용이 늑약에 서명해 을사오적이 된 나이는 불과 35세였다.
◆능력만큼 중요했던 천명(天命)
유신 직전에 양이론자였던 천황이 세상을 떴다. 36세였다. 15세 천황이 뒤를 이었다. 천황부터 세대교체됐다. 사망 시점이 너무나 절묘해 지금까지 암살설이 돈다. 구세력의 정점인 막부의 쇼군(將軍)도 그 무렵 세상을 등졌다. 개혁 성향의 쇼군이 뒤를 이었다. 그는 스스로 정권을 천황에게 바쳤다. 이 세대교체가 없었다면 유신은 성공했어도 엄청난 피를 흘렸을 것이다.
신진 그룹 내부에서도 맹렬한 세대교체가 일어났다. 선두 그룹인 극단적 양이론자들은 막부와의 싸움에서 대거 죽었다. 유신을 성공시킨 이른바 영웅 삼걸(三傑)도 유신 10년 후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을 떴다. 사이고는 하급 무사를 대표해 중앙집권화에 저항하다가 자결했고, 오쿠보는 독재 정치를 하다 암살당했다. 성공과 함께 개혁의 걸림돌이 된 사무라이 기득권과 유신 영웅의 권위주의가 이들의 죽음으로 한꺼번에 정리됐다.
촌숙의 열등생 이토 히로부미 등이 그들의 뒤를 이었다. 농민 출신으로 일본 최고 권력자(초대 총리)가 된 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후 그가 처음이다. 스승 요시다는 그에 대해 “재능은 떨어지고 학문은 미숙하지만 성격은 곧고 꾸밈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집권했을 때 그는 해외 시찰을 통해 미국과 유럽 신문물에 달통한 선각자로 변해 있었다. 서구의 정치·사법·재정 제도를 섭렵해 일본에 국회와 헌법, 재정의 기초를 완성했다. 한국을 집어삼켜 일본을 열강에 올린 것도 그였다.
▲일본 나가사키 가자가시라(風頭) 공원에 서 있는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동상. 오른쪽 깃발은 그가 운영했던 주식회사 '가이엔타이' 깃발이다. 하급 무사였던 료마는 1865년 서로 원수지간이던 사쓰마번과 조슈번을 극적으로 화해시켰다. '삿초동맹'은 메이지 유신의 실질적인 추진 동력이었다. 이어 막부에 권력을 천황에게 돌려주는 대정봉환을 제안해 실현시켰다. 대정봉환 한 달 뒤 료마는 암살당했다. 32세였다. 19세기 말 일본은 목숨을 건 혁명가들이 변혁을 이끌었다.
◆이준석은 21세기 김옥균? 료마?
신채호는 박규수의 사랑방에서 벌어진 일을 이렇게 소설로 썼다.
“박규수가 벽장 속의 지구의(地球儀)를 내어 한 번 돌리더니 김옥균에게 웃어 가로되, ‘오늘에 중국이 어데 있느냐, 저리 돌리면 미국이 중국이 되고 이리 돌리면 조선이 중국이 되어 어느 나라든지 중(中)으로 돌리면 중국이 되나니, 오늘에 어찌 정한 중국이 있느냐?’ 하더라. 김옥균, 이 말을 듣고 크게 깨닫고 무릎을 치고 일어났더라, 이 끝에 갑신정변이 폭발되었더라.”(지동설의 효력)
김옥균은 박규수의 사랑방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세계관의 전환을 경험했다. 그는 천재였고 뜻을 세우면 반드시 실천하는 혁명가였다. 하지만 전략가는 못 됐다. 박영효는 정변의 동지이자 리더였던 그에 대해 “문장력, 화술, 시, 글, 그림, 어느 것 하나 못하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단점이라면, 덕(德)이 모자라고 모략이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김옥균형’ 혁명가는 일본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불같은 의지를 소화시키지 못하고 세상에 대들다가 허망하게 죽은 요시다 쇼인과 수제자 4명이 그랬다. 근대의 변곡점에서 전(前)근대적 의리를 지키다 죽은 ‘라스트 사무라이' 사이고 다카모리, 근대를 앞당기려 정적을 제거하다가 암살당한 오쿠보 도시미치도 김옥균 스타일에 속한다. 그런데 이들만 있었다면 일본의 근대 역시 잘난 영웅들이 갈가리 찢어져 조선처럼 엉망진창이 됐을 것이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보기 드문 혁명가가 ‘료마형’ 영웅이다. 박훈 서울대 교수는 사카모토 료마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를 떠올리면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근엄하고 살벌한 메이지유신 시기에 드문 일이다. 그는 ‘난 일부러 죽으려고 해도 죽어지지 않는다’는 희대의 낙천가였다. 대단한 검객이면서도 암살이나 할복보다는 바다와 무역을 좋아했다. 막부를 미워하면서 무력 토벌보다는 협상과 타협을 선호했다. 삿초맹약은 그의 스타일이 만들어낸 걸작이다. 메이지유신이 그의 명랑함을 닮았더라면 근대 일본은 좀 더 세련됐을 것이다.”(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삿초맹약은 양대 웅번이던 사쓰마(가고시마)와 죠슈(야마구치)의 동맹을 말한다. 중재자 료마는 거창한 명분이 아니라 무기와 곡식을 거래하는 방식으로 두 웅번을 하나로 묶었다. 동맹 때문에 막부를 이기고 세대를 바꿀 수 있었다. 분산된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 거대 에너지로 만든 것이다. 그렇다고 영화를 누리지도 못했다. 김옥균처럼 료마도 암살로 생을 마감했다. 31세였다. 조선 후기에도, 지금도 한국에 필요한 혁명가 유형이 이 ‘료마형’이다. 거대 야당을 이끄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요구받는 유형도 료마형에 가깝다.
06.30 내가 본 야당 대선 주자들
훌륭한 사람들이었다
약점을 들춰내기보다
서로 장점을 부각시켜
작아지기만 하던
한국 보수 정치의 그릇을
몇 배로 키웠으면 한다
요즘 이름이 나오는 야당 대선 후보들을 어쩌다 만난 일이 있다. 편한 자리였는데 대부분 대통령 얘기가 나오기 훨씬 전이라 정치에 포장되지 않은 면면을 곁에서 볼 수 있었다. 일회성 만남에서 얻은 단편적 선입관을 일반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들에 대한 독자의 평가에 작은 소재를 제공한다는 뜻에서 내 기억을 공유하고자 한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된 직후의 윤석열. 그는 문 대통령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했다. 여기서 얻은 여론의 지지를 바탕으로 4년 후 대통령 출마를 선언했다.
서울중앙지검장 윤석열을 본 건 검찰이 박근혜 대통령 수사를 정리하고 이명박 대통령 수사를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죽은 권력의 두 전직 대통령 수사에 대해 그가 큰 부담을 내비친 기억이 난다. 구체적인 정보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두고 보면 알 겁니다”라고 몇 차례 큰소리로 반복했다. 이 대통령은 감옥에 안 갈 거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결과는 반대였다. 검찰은 그를 구속했고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뭐 저런 사람이 있나 싶었다. 그러자 후배 기자가 “그 직후에 증거가 쏟아져 나와 그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이었다.
추미애 전 장관은 윤석열 전 총장에 대해 “한 손에 칼, 한 손에 법전을 쥐고 있으니 (군인 대통령보다) 더 무서울 것”이라고 했다. 검찰 독재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죽은 권력 수사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살아있는 권력을 냉정하게 수사했다. 그런 그가 정권을 잡으면 자신의 살아있는 권력을 보호하고 죽은 권력에 가혹할까.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고맙다”고 했다. 그러면서 울산 선거를 수사했다. 이게 정상적 검찰이다. 정권을 잡아도 이렇게 하라고 국민이 그를 지지하는 것이다.
사실 그날 동석한 부하 검사가 더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가 윤석열을 대변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다음 날 새벽 박 대통령을 수사해야 한다며 반주를 피했다. ‘이 정권에서 잘나가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후 그가 조국 수사를 막은 선배에게 “당신도 검사냐”고 들이받았다. 그리고 장렬하게 좌천됐다. 검사에 대한 나의 인상이 그때 달라졌다.
최재형 전 원장과는 정말 사적으로 만났다. 존경하는 부친 최영섭 대령과 관련해 내가 무언가를 할 때였다. 내 선친도 참전용사라 주로 부친 시대를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최 전 원장이 자신을 유명하게 만든 미담에 대해 언급했다. 그 미담이 40년 전 조선일보 특종 기사였기 때문이다. 몸이 부자유스러운 친구를 등에 업고 등하교하면서 함께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야기다.
뜻밖에 최 전 원장은 기사를 읽었을 때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이 친구와 함께 미담 주인공이 될 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멀쩡한 몸으로 친구를 업고 다니다가 사시에 합격한 내가 아니라, 친구 등에 업혀서라도 공부하면서 사시에 합격한 그가 훨씬 중요한 주인공이 아니냐”고 했다. 세상을 이렇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다. 이 말을 듣고 그의 진면목을 알았다.
몇 년 전부터 한국 보수(保守)의 원형에 대해 공부하다가 최영섭 가문을 접했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기성 정치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것을 최 전 원장에게서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정치 선진국이 그렇듯 우리도 이런 집안을 보수의 자산으로 삼아 정치 명가로 육성할 때가 됐다고 나는 생각한다.
홍준표 의원은 그가 자유한국당 대표에서 물러났을 때 만났다. 유튜브 방송을 준비할 때였다. 그는 달변가이자 다변가였다. 웅변가이자 다변가인 윤석열의 발언 점유율이 80%였다면 그는 90%를 넘는 듯했다. 자신이 나서면 바로 보수의 대표 유튜버가 될 거라고 했는데 실제로 그랬다. 그의 낙천성과 자신감이 좋았다.

▲유튜브 '홍카레오(홍카콜라+알릴레오)' 맞짱토론을 위해 출전하는 홍준표 전 대표. 하지만 그에게는 이 수준을 넘어 정치적 대도약이 가능한 입지전적 서사가 있다.
나는 이런 보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훨씬 큰 자산을 가지고 있다. 자력으로 가난을 딛고 일어나 스타 검사로 성장했고 24년 동안 정계에서 국회의원, 지사, 당대표, 대선 후보를 지냈다. 적을 줄이고 사람을 끌어안고 언어를 정제하면 충분히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주변 사람에게 이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만난 김에 직접 하려고 했는데 끝내 못 했다. 그의 자신감엔 파고들 빈틈이 없었다. 그래도 그를 기대한다. 그런 입지전적 서사(敍事)를 가진 인물은 드물기 때문이다.
유승민 전 의원은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직후에 만났다. 나는 그가 추진하던 사회적 경제 기본법을 비판적으로 봤다. 그런데 그의 설명을 듣고 바로 수긍하고 말았다. 그는 이성적으로 토론할 때 정말 빛나는 사람이었다. 많은 KDI 출신이 왜 그를 따르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반대로 그는 정치판에서 남과 싸울 때 가장 이상했다. 얼굴이 달라졌다. 나는 그에게 “대통령과의 싸움에 앞장만 안 서도 정말 큰 정치인이 될 듯하다”고 했다. 그에 대한 싸움꾼 인식이 그의 진정한 가치를 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돌아보니 주제넘은 말이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가 한국 정치의 큰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다들 훌륭한 사람들이었다. 서로 단점과 약점을 들춰내기보다는 장점을 부각해 한국 보수 정치의 그릇을 몇 배로 키웠으면 한다
07.21 文 정권, 숫자 놀이로 독립 만세 외쳤다
수출 규제 두 품목은 95% 일본 독점
한국 불매운동 했지만 일본이 더 불매
대통령을 필두로 2년 간 법석만 떨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업적은 빈약하다. 온몸을 던진 친북과 분배 정책이 삶은 소 대가리 파문과 부동산 파동으로 파탄 났기 때문이다. 새로 일을 벌일 시간은 없다. 고민 끝에 일본과 치른 무역 갈등을 업적으로 삼은 듯하다. 일본은 2019년 7월 1일 세 품목에 대해 수출 규제를 발표했다. 큰일이라고 했는데 지금까지 별일이 없다. 대통령은 결과가 이러니 이겼다고 믿는 모양이다.
대통령은 수출 규제 2년을 맞아 난데없이 소부장 성과 보고 대회를 열었다. 소부장은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말한다. 대통령 뒤편에 ‘자, 이 모든 것은 소부장에서 시작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일본의 기습 공격에 맞서 소부장 자립을 이뤄냈다. 그 자신감이 코로나 극복의 밑거름이 됐다. 코로나 이후 ‘대재건’의 동반자로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향해 전진했다”고 했다. 정말일까.

일본 3개 수입 규제 제품의 한국 수입시장 점유율 추이. 일본 포토레지스트와 불화 폴리이미드의 지배력은 변함없이 압도적이다. 한국은 수입 물량의 일정 부분을 벨기에산으로 돌렸으나 이 역시 일본기업 제품이다. 수입규제 이후 점유율이 급락한 품목은 불화수소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전부터 일본의 불화수소는 시장 지배력을 잃고 있었다. 중국산 불화수소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수출 규제 세 품목 중 두 품목의 한국 수입 시장 점유율은 지금 94~95%다. 일본 폴리이미드는 한국 시장 지배력을 더 키웠다. 정부는 수입처 다변화로 포토레지스트의 일본 지배력이 약해졌다고 했지만 이것도 눈속임이다. 새로운 수입처는 벨기에에서 현지 생산하는 일본 합작 기업이다. 같은 일본 기업 제품을 다른 나라에서 수입할 뿐이다. 벨기에 통계를 더하면 일본의 지배력은 규제 이전처럼 절대적이다. 대통령은 “3대 품목의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구축했다”고 했지만 두 품목에서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지표는 없다.
대통령의 시선이 어디 꽂혔는지 안다. 일본산 불화수소만 점유율이 2018년 42%에서 13%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큰 성과”라는 발언은 이를 두고 한 듯하다. 그런데 이 품목에서 일본 점유율이 하락하기 시작한 것은 소부장 운동 이후가 아니다. 2012년 77%에서 3년 만에 41%로 곤두박질쳤다. 이때 박근혜 정권이 기념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산업 논리에 따라 주도권이 재편된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산 불화수소 수입이 이번에 다시 급감한 것도 예견된 일이다. 수입 규제 이전에 국내 기업이 국내 공급을 늘리기 위해 불화수소 생산 시설을 증설했기 때문이다. 완공 시점이 우연히 일본 수입 규제 시점과 맞아떨어졌다. 소부장 운동의 역할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일본의 공세에 깜짝 놀란 정부가 인허가 규제를 완화해 빨리 양산이 시작됐다. 화학 산업에 대한 한국의 규제는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다. 유능한 정부라면 이미 해결했을 것이다. 일본의 공세 때문에 정부가 모처럼 정부다운 일을 했다.
이 기업은 어떻게 고순도 불화수소를 양산해 수입을 대체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 한일 경제 발전의 본질이 있다. 이 기업은 1996년 불화수소 산업을 시작했다. 맨땅에서 출발한 게 아니다. 첨단 기술을 보유한 일본 100년 기업과 손잡았다. 일본 기업은 왜 한국에 왔을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거대 수요처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25년 동안 축적한 기술로 국산화를 앞당겼다. 많은 한국 제조업의 발전 방식이다. 대통령이 꽂힌 성과는 죽창가가 아니라 한일 협력의 결과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이를 갈등의 결과로 오독(誤讀)하고 있다. 그래야 자신의 업적이 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할 일은 무엇일까. 수입 규제 세 품목의 작년 수입액을 더하면 3억7304만달러다. 한국은 이 소재를 이용해 작년에 반도체를 얼마나 수출했을까. 메모리 반도체만 369억달러였다. 100배에 달한다. 세 품목 정도는 천년 만년 일본이 만들어 먹고살아도 상관없다. 세계 경제는 이렇게 서로 물려 돌아간다. 그래서 관계가 파탄 나지 않도록 외교를 한다. 이것이 대통령이 할 일이다. 그런데 문 정권은 대법원 판결 이후 일본과 담을 쌓았다. 외교라는 직무를 유기했다. 기업을 위기에 빠뜨렸다. 책임을 모면하려고 1%까지 생산하라고 기업을 다그쳤다. 기업이 성과를 내자 이젠 자기 업적으로 포장하기 바쁘다.
문 대통령은 한발 더 내디뎠다. “100대 핵심 품목에 대한 일본 의존도를 25%까지 줄였다”고 했다. 한국 산업을 일본 의존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뜻이다. 소부장 2년 동안 가능한 일일까.

소재·부품 수입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28%에서 2020년 16%로 하락했다. 하락 속도가 가장 빨랐던 건 2010~2015년 사이다. 25%에서 16%로 9%포인트 하락했다. 문 정권이 시작된 2017년부터 2020년까지 하락폭은 1%포인트였다. 주목할 것은 중국의 점유율 확대다. 2001년 9%에서 작년 29%로 올라갔다. 제정신을 가진 정부라면 일본이 아니라 중국 의존도를 우려할 것이다.
정부는 대통령이 말한 100대 핵심 품목의 정체를 밝힌 적이 없다. 대통령이 어떤 데이터로 저렇게 말했는지 알 방법이 없다. 정말로 문 정권 들어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났다면 상세 데이터를 공개했으면 한다. 한국 산업의 일본 의존도는 분명히 줄고 있다. 더 분명한 것은 문 대통령의 업적이라고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두 가지 지표가 있다. 먼저 소재·부품 수입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20년 전 28%에서 작년 16%로 하락했다. 하락 속도가 가장 빨랐던 건 2010~2015년 사이다. 이 속도는 문 정권 들어 둔화됐다.
다음은 대일 무역적자다. 대일 무역적자는 한국 경제에 나쁜 신호로만 볼 수는 없다. 경제가 성장하고 수출이 늘면 함께 늘어나는 동조 현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반대 경우가 외환위기 때다. 1998년 이때 대일 무역적자는 10년 전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게 축복이었을까. 그런데 이 동조 현상도 2010년부터 균열이 생겼다. 한국 산업의 고도화, 수출 둔화, 일본 기업의 한국 진출 등이 원인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한국 산업의 ‘탈일본’을 알려주는 모든 신호가 문 정권의 소부장이 아니라 훨씬 이전에 시작됐다는 것이다.

대일 무역적자는 한국 경제의 성장과 함께 늘어났다. 일본은 세계 최강의 중간재를 생산하는 나라다. 한국은 이 중간재를 들여다가 부가가치를 생산해 발전을 이루는 모델을 선택했다. 따라서 반세기 가까이 성장과 적자의 동조화는 필연적이었다. 대일 무역적자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상승세는 2010년 이후 극적으로 꺾였다. 한국 산업의 일본 의존이 약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반일 몰이는 쉽다. 청와대가 죽창가와 토착 왜구 타령으로 국민을 두 쪽 내고 거북선 횟집에서 쇼를 부리자 많은 사람이 일본 상품 불매운동으로 호응했다. 대통령은 짜릿했을 것이다.
한국의 일본 제품 수입은 2018년 546억달러에서 작년 460억달러로 16% 줄었다. 불매운동이 큰 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일본의 한국 제품 수입은 18% 줄었다. 일본도 불매운동을 했나. 올해는 두 나라 모두 수입이 늘었다. 5월까지 한국의 일본 제품 수입은 20%, 일본의 한국 제품 수입은 12% 늘었다. 지금 한국에서 일제 구매 운동이 벌어지는가. 모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한일 경제는 경제 논리를 따라 흘러가는 거대한 강물이다. 불매운동이든 구매 운동이든, 수입 규제든 소부장 운동이든 감정적 대응이 의미 있는 영향을 줄 수 없다. 한국은 지난 2년 동안 문재인 대통령을 필두로 법석만 떤 것이다.
08.11 도쿄올림픽의 진짜 패배자들
문 대통령의 방일 집착
대선 주자의 보이콧 소동
체육회의 현수막 촌극
선수단에 흙탕물 튀기고
역대급 최저 성적을 내더니
선수 감동 드라마에 올라탔다
문재인 대통령이 도쿄행을 단념한 시점은 올림픽 개막 나흘 전이다. 원칙적으로 가는 게 옳았다. 3년 전 평창올림픽 때 아베 일본 총리가 방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대통령이 도쿄에 꼭 가야한다는 여론은 없었다. 오히려 반대 여론이 강했다. 일본이 와달라고 매달리지도 않았다. 북한이 석 달 전 불참을 선언해 남북 평화 이벤트도 무산됐다. 그래도 밀어붙이다가 막판에 “성과가 미흡하다”며 단념했다. 대통령은 방일 대가로 일본의 수출 규제 해제를 기대한 듯하다. 일본이 해줄 리가 없다.
올림픽을 기회로 정치적 성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 성과를 위해 정상이 올림픽에 가는 것은 아니다. 성과를 기대하고 추진했어도 겉으로 말하지 않는다. 아무리 사실이라 해도 병역을 면제받기 위해 메달 따러 올림픽에 간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올림픽은 언제나 넘지 말아야할 선이 있다. 제풀에 주저앉은 대통령의 집착을 해명하기 위해 청와대는 올림픽의 선을 넘었다. 정치색을 칠했다. 그러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다.

▲도쿄올림픽 선수촌의 선수단 숙소에 현수막이 펼쳐져 있다. 가운데는 대한민국, 왼쪽 윗줄부터 시계 방향으로 그리스, 크로아티아, 푸에르토리코, 싱가포르, 체코, 우크라이나, 지부티공화국, 포르투갈, 그리스 등이다. 대부분 자국 국기를 걸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대한체육회는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올림픽 선수촌 외벽에 현수막을 걸었다. ‘이순신 장군 12척’ 문구를 응용한 문구였다. IOC에서 경고를 받고 철거했다. 정치적 선전에 해당한다고 했다. 한국에선 생트집이라고 일본을 비판했다. 일반 여론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대한체육회는 마찰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평창올림픽 때 한국 아이스하키 선수가 이순신 동상을 그린 헬멧을 썼다가 IOC 경고를 받았다. 헬멧에서 그림이 지워졌다. 그런데 대한체육회는 3년 만에 또 이순신 장군의 문구를 내세웠고, 또 경고를 받았고, 또 내렸다. 국가 영웅을 가지고 장난하는 것인가. 현지 기자에게 선수촌 풍경을 물었다. 각국 국기만 보일 뿐 한국과 같은 구호성 현수막은 안 보인다고 한다. 코로나로 감옥처럼 통제된 상황에서 그런 행위 자체가 어색한 분위기라는 것이다.
대한체육회는 다시 현수막을 걸었다. ‘범 내려온다’ 문구와 호랑이 지도다. 결과적으로 쑥스럽게 됐다. 16위한 나라가 범이라고? 이번엔 지도의 꽃잎 그림이 일본 온라인에서 입길에 올랐다. 호랑이 등 부분, 지도로 따지면 동해에 꽃잎 두장을 그렸다. 일부가 “독도 아니냐”고 시비를 걸었다. IOC가 아니니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일본이 올림픽 홈페이지 자국 지도에 독도를 넣었고 IOC가 이를 용인했기 때문에 설사 IOC가 얘기했어도 “이것은 한국 영토인 독도”라고 해도 됐다. 그런데 대한체육회는 친절하게 “독도가 아니라 그냥 꽃잎”이라고 했다. 평창 때도 올림픽 조직위가 한반도기에서 독도를 넣었다가 IOC 지적에 뺐다. 북한 눈치에 태극기를 내리더니 일본 눈치에 독도를 지웠다.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대한민국 상징이 수난을 당한다. 배짱도, 담력도 없으면서 올림픽에 무언가를 자꾸 덧씌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로 그리자 여당 대선 후보들은 너도나도 “올림픽 보이콧”을 주장했다. 누군가는 일본을 향해 “저놈들” “고약하고 치사하다” “나쁜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래야 표가 모이기 때문이다. 그들 말대로 했으면 국민 대부분은 안산을 몰랐을 것이다. 김연경의 진가도 몰랐을 것이다. MZ세대 체육인의 위력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자랑스러운 우리 선수들의 분투가 빛난 대회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MZ세대가 다른 가치를 보여줬다”고 했다. 부끄러움을 모른다. 개막 직전까지 정치적 성과를 저울질하던 대통령은 “메달 색깔은 중요하지 않다. 경기 자체를 즐긴 젊은 선수들이 많았고, 긍정의 웃음 뒤엔 신기록까지 따라왔다”고 했다.
육상 높이뛰기 기사에서 이런 제목을 봤다. “메달 못 따면 어때요, 결과보다 도전 즐겼다.” 높이뛰기 결승전 마지막 장면은 강렬했다. 허장성세로 일관하던 카타르의 챔피언은 금과 은의 갈림길에서 기대와 욕망, 긴장과 불안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메달과 노메달의 기로에 선 한국 선수는 웃었지만 웃는 게 아니었다. 야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역전당했을 때 질겅질겅 껌을 씹는 선수만 있었던 게 아니다. 외야 담장에 기대 고개를 푹 숙인 선수의 절망이 있었다. 배에 기름이 끼었다고 욕을 먹지만 나는 그 절망의 장면이 한국 야구팀 전체 분위기였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져 메달을 놓친 터키 배구팀은 코트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올림픽 메달은 이런 것이다.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8강전에서 한국에 진 터키 대표팀 선수들이 경기에서 지자 코트에 앉아 옷으로 얼굴을 가린채 울고 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스포츠는 적자생존의 세계다. 어려서 압도적 실력을 보여도 학교 대표가 될까 말까라고 한다. 국가대표는 하늘이 내린다고도 한다. 그러면 올림픽 메달은? “메달 못 따면 어때요.” 이렇게 즐기면서 국가대표에 오른 선수가 없다. 정치인들이 침을 튀기면서 아첨하는 MZ세대에서도 그런 선수는 없다. 한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도 똑같다.
메달이 올림픽의 전부가 아니라고 한다. 한국 선수가 수영, 육상, 체조에서 보여준 것처럼 치열한 도전은 그 자체가 감동적이다. 난민 대표처럼 팀 자체에 메달 이상의 가치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올림픽 메달에 초연한 나라는 없다. 몇 번 순위가 밀리면 정신을 차리고 엘리트 체육에 힘을 쏟는다.
마지막 날 미국이 극적으로 1등에 올랐을 때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중국을 밀어내고 최다 메달을 가져갔다”는 긴급 뉴스를 올렸다. 일본에서 올림픽 여론이 반대 다수에서 찬성 다수로 바뀐 것도 일본 선수가 따낸 메달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은 45년 만에 가장 안 좋은 올림픽 성적을 거뒀다. 인구 460만 뉴질랜드와 경제 규모 세계 61위인 쿠바에도 뒤졌다. 한국 스포츠를 오염시킨 정치인과 정치병에 걸린 체육인이 진짜 패배자들이다. 그런 그들이 선수들의 감동 드라마에 올라타 “메달은 중요하지 않다”며 어깨를 토닥인다. 요컨대 자기도 잘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선수들을 향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감사하라”고 요구한다.
09.01 391명의 환호 속에서 납북자 516명의 절망을 생각했다
전후 납북자 516명, 상당수 살아있을 것
“결코 아프간 친구를 포기못한다”면서
북한에 끌려간 자국민은 왜 포기하는가

▲아프가니스탄 대한민국 조력자와 가족들이 한국으로 입국하고 있다. 391명이다. 고향을 떠난 이들은 겉으론 환호하지만 두려움이 앞설 것이다. 70여 년 전부터 북한을 탈출한 탈북 난민들도 같은 두려움에 떨었다고 한다. 140만명을 넘어선다./뉴시스
법무부 직원의 ‘무릎 의전’ 해프닝이 모든 것을 삼켰지만 아프가니스탄 난민 구출은 의미 있는 성과였다고 생각한다. 자국민과 함께 현지 조력자까지 구출한 나라는 미국, 영국 등 소수에 불과하다. 일본 언론은 이 뉴스를 보도할 때 주어를 ‘구미(歐美) 각국과 한국’이라고 한다. 박범계 법무장관은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는 국제 대열의 한 축이 됐다”고 했다.
한국은 냉전 후 최대 난민 수용 국가라고 할 수 있다. 난민은 외국인만 뜻하지 않는다. 해방 후 박해와 전쟁을 피해 한국에 들어온 북한 난민은 140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최대 500만명이란 주장도 있다.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수용하면서 “우리도 난민이었다”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엔 역사적 실체가 있다.
북한 난민은 초기 남한에서 냉대와 멸시를 받았다. 여순 사건 때는 경찰과 함께 반란군의 학살 대상이었다. 북한 난민인 나의 아버지는 인천중학 교사를 하다가 이 소식을 듣고 “앉아서 죽느니 총이라도 쏴보고 죽겠다”며 군에 자원했다. 그 시대 월남민의 처지가 이랬을 것이다. 이런 일을 겪은 후 그들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한국에 정착했다. 난민 1세대에서 국무총리, 2세대에서 대통령이 나왔다. 내가 재직하는 언론사도 난민이 일으켰다. 같은 논설실에도 북한 난민의 자손이 있다. 편집국에는 2차 북한 난민에 해당하는 탈북민이 근무하고 있다. 아무리 동족(同族)이라고 해도 이처럼 단기간에 이주 난민이 정착하는 나라는 드물다. 이리저리 갈려 매일 싸우는 듯하지만 한국인의 본성은 착하고 포용적이다. 다른 민족에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한국은 최대 기민(棄民) 국가라고도 할 수 있다. 기민은 자국민을 버린다는 뜻이다. 전쟁은 많은 억류자를 낳는다. 탈출을 못 해 남은 사람들, 포로로 잡히거나 납치당해 끌려간 사람들이다. 억류자 송환은 나라가 나라이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7년 전쟁 끝에 국가의 체계와 인간의 도의가 완전히 무너진 400년 전 조선조차 납치 억류자 송환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첫 사절이 끌려간 동포를 일본에서 데려오는 쇄환사(刷還使)였다.

▲서울 동대문구의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사무실에서 탈북자 장씨가 사무실 한쪽의 납북자들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장씨의 아버지는 6·25 당시 납북된 뒤 돌아오지 못하고 작년 3월 북한 땅에서 생을 마쳤다.
6·25전쟁 때 북한에 끌려간 전시(戰時) 납북자는 8만3000명에 이른다. 억류된 국군 포로도 8만명 정도로 추정한다. 전후에도 3835명이 끌려갔고 516명이 억류됐다. 미국은 억류된 미군을 전원 데려왔다. 한국 정부도 노력했다. 민간에선 납북자 송환 100만 서명 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다. 한국 안에서 진상 규명과 기념관 건립 정도가 그나마 이루어졌다. 북한과 소통이 돼야 송환 실마리를 잡는데 소통이 가능한 정권일수록 송환 이슈를 피했다. 북한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청와대 외교안보특보가 이끄는 재단이 탈출 국군 포로에게 배상해야 할 한국 내 북한 자산을 온갖 수단을 동원해 지켜주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납북자 문제는 망각과 금기의 영역에 갇히는 듯하다.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구출했을 때 일본이 한국을 빛내줬다. 한국과 달리 현지 조력자 구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어느 한국 언론은 ‘카불의 치욕’이라고 했다. 하지만 어느 쪽이 나라다운가는 고민해야 할 문제다. 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 일본인은 17명이다. 그래도 일본은 20년 이상 송환 요구를 밀고 갔다. 정부는 총리 관저 홈페이지에 “납치 문제 해결 없이 국교 정상화는 있을 수 없다”고 명기했다. 2002년 김정일의 사과를 받아냈고 5명을 일본에 데려왔다. 북한이 아무리 “숨졌다”고 해도 나머지 납북자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 외국인 구출에는 무능할지 몰라도 이게 나라다운 것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은 일본보다 어려운 입장이다. 북한에 주장해야 할 과제가 많다. 그렇다고 침묵이 용인되는 건 아니다. 한국 정부는 정반대 행동까지 했다. 일본인 납치범을 남북 화해 쇼의 대가로 북한에 돌려보내 인민 영웅을 만들었다. 거물 간첩 신광수 송환 문제는 통일 이후 그 진상이 밝혀질 것이다. 김대중 정권 때였다. 이러면서 “납북자를 내놓으라”면 북한이 얼마나 한국을 비웃겠는가.
3년 전 예멘 난민 문제로 반대 시위가 일어났을 때 시위대는 “국민이 먼저다”라고 외쳤다. 나는 단계적 난민 수용에 동의하면서 이 외침엔 더욱 동의한다. 법무부가 “한 축이 됐다”고 자랑한 국제 대열엔 미국·영국·독일·호주 등이 있다. 이 나라들은 국민을 구하는 데 최선을 다하면서 외국인을 구한다. 한국처럼 적국에 방치한 다수 국민에 대해 침묵하면서 “국가 위상에 맞는 책임을 다할 필요가 있다”며 자랑하지 않는다. 인도적 행위가 국가의 의무에 앞설 수 없기 때문이다.
전시 납북자와 달리 전후 납북자 516명은 상당수 살아있을 것이다. 박 법무장관은 “대한민국 정부를 도운 친구들을 우리는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아프가니스탄 친구를 그렇게 아끼면서 왜 우리 국민은 쉽게 포기하는가. 보이고 들리지 않을 뿐 훨씬 가까운 곳에 우리 국민의 고난과 절망이 있다.
10.13 이재명 지사, 국민의 수준을 묻는다
보통 정치인이 아니다
시대의 표상으로서
나라에 던진 과제는
대장동 파문보다
훨씬 무겁고
근본적인 것 아닐까
그제 국민의힘 대선 토론회에서 한 후보가 이재명 경기도 지사를 “대량 살상 무기”라고 했다. 방송 토론이었는데도 직함과 경칭을 달지 않고 흉악범 부르듯 이름만 불렀다. “조폭을 척결하듯 그를 척결하겠다”는 후보도 있었다. 뇌물죄, 배임죄, 국고손실죄 등 죄목도 야당 후보들끼리 정했다. 이재명 이름만 나오면 신들이 나는 듯했다. 이게 요즘 국민의힘 분위기인 모양이다.
안희정 지사와 박원순 시장이 몰락하고 이 지사의 선거법 재판이 대법원에서 뒤집힌 뒤 “이재명이 정말 대통령 되는 거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 답을 원해서 묻는 건 아니었겠지만 “형수에게 한 욕설을 들으면 그런 사람을 누가 지지하겠냐”고 했다. 그런데 미디어를 통해 그를 지켜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침전물처럼 어둡게 고인 인생 밑바닥을 넘어서 국민 일부는 더 큰 무언가를 그에게서 발견하는 게 아닐까, 이재명 지사가 시대의 표상으로서 이 나라에 던진 과제는 그런 것보다 훨씬 무겁고 근본적인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에 선출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서울 합동연설회에서 수락연설을 마치고 퇴장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얼마 전 민주당 윤건영 의원이 이번 대선을 “이익 투표”라고 했다. 대선은 승자와 패자만 남는 게임이기 때문에 지지자들이 모든 사안을 정치적 유불리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대장동도 그런 단계에 접근했다는 것이다. 대장동 파문은 그의 희망과 달리 오래 가겠지만 결국 정치 게임으로 수렴하고 선거는 각자의 득실에 따르는 이익 투표로 귀결될 것이란 의견에 동의한다. 김오수 검찰이 여당 후보를 겨냥할 리 없고, 여당이 특검법을 만들 리 없고, 야당 유력 후보들이 이익 투표를 가치 투표로 바꿀 수 있는 정치 역량을 아직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장동 개발은 성남시민, 개발지 주민 등 다수의 이익을 빼앗아 소수에게 퍼주는 구조로 설계됐다. 이 지사가 대장동과 반대로 설계한 것이 ‘이재명식 기본소득’이다. 소수의 이익을 빼앗아 다수에게 나눠주도록 돼 있다. 그냥 다수가 아니라 모든 국민, 모든 유권자를 수혜 대상으로 했다. 그동안 유력 대선 후보는 증세와 금전 살포를 이렇게 대놓고 말하지 못했다. 매표(買票) 비난 때문이다. 대장동에 한계가 없었듯 대선에서도 그에겐 한계가 없다. 그는 기본소득을 통해 나라를 이상한 곳으로 끌고 가려고 하고 있다.
그는 국민에게 1인당 매년 100만원을 주겠다고 한다. 기본소득은 생계비라 보통 월 단위로 말한다. 8만3000원이다. 그런데 크게 보이려고 연 단위로 말했다. 사실 기본소득이 아니라 용돈 수준이다. 문제는 이 용돈을 주려고 매년 세금 59조원을 쓴다는 것이다. 국방 예산(53조원)보다 많다. 재원이 없으니 국토보유세를 걷겠다고 했다. 이 세금으로 기본소득 절반을 댄다고 해도 부동산 보유세를 두 배 늘려야 한다. 한국은 부동산 세율이 낮지만 땅값 폭등과 높은 거래세, 상속·증여세로 재산 관련 세수 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지사 주장과 달리 부동산 등 재산을 가진 국민이 이미 많은 세금을 내고 있다. 백번 양보해도 이렇게 걷은 귀중한 세금을 “봄날 흩날리는 벚꽃잎처럼(윤희숙 전 의원 표현)” 왜 ‘이재명 용돈’을 위해 허무하게 날려야 하는가. 하지만 좌파는 그럴수록 다수의 지지를 얻는다고 생각한다. 후진국일수록 사실이 그렇다.

7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판교대장 도시개발구역 모습. /연합뉴스
어느 편이든 대장동 의혹에 분노하지 않는 국민은 거의 없다. 다수의 공적 이익을 소수가 과하게 가져갔기 때문이다. 성숙한 국민이라면 같은 논리로 ‘이재명식 기본소득’에도 분노해야 한다. 아무리 부자라도 개인이 모은 재산을 과하게 가져가선 안 된다. 그리고 재정을 무너뜨린다. 무엇보다 그렇게 거둔 공공 자금을 선거라는 사적 목적에 이용하고 있다. 6년 전 스위스 국민은 국민투표를 통해 기본소득을 거부했다. 그가 정상적인 정치인이라면 적어도 핀란드처럼 2년 동안 사회 실험이라도 해보고 결과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했어야 한다. 그런데 집권 다음 해 실행을 약속하고 “세계 최초”라고 자랑한다. 당장 선거에서 써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재명의 기본소득이 대장동보다 이 나라를 훨씬 위험하게 만들 것이란 주장에 동의한다.
이 지사는 여론 주도 능력이 탁월하다. 상대가 백 가지 문제점을 얘기해도 자신이 원하는 핵심만 반복해 말한다. 그는 “40년 전 매월 7000원만 있었다면 제가 공장을 다니다 팔에 장애를 입는 불행이 없었을 것이고, 송파 세 모녀에게 월 30만원만 있었으면 극단적 선택도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복잡한 논리에 함몰되지 않고 비약을 통해 대중을 설득한다. 국민의 증세 고통을 가진 자의 꾀병으로 몰아붙이고, 여기에 소년공과 세 모녀의 고통을 대입한다.
이 지사는 보통 정치인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정치 수준과 경제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실험하면서 나라를 바꾸려고 한다. 야당 후보가 그를 얕보고 모욕하면 당장은 후련하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허망한 얘기가 될 것이다.
11.03 권순일 대법관이 준 또 하나의 선물
이재명 후보에 대한허위사실 공표 무죄 판결이그의 정치 생명을 살리고법에 속박된 언어의 고삐까지완전히 풀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2일 제20대 대통령선거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두 팔 들어 인사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이재명 후보의 말은 조리가 있어 귀에 잘 들어온다. 그런데 그는 사실 일부만 조리 있게 말한다. 전체를 알고 나면 완전히 다른 그림이 그려질 때가 있다. 대장동 문제가 전형적이다.
그는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이 무려 4년이 넘도록 공공 개발을 막으면서 민간 개발을 강요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토건 세력과 결탁했다”고도 했다. 국민의힘 정치인이 이 후보의 당시 대장동 공공 개발 주장에 반대한 건 사실이다. 일부 가족이 투기꾼에게 돈을 받은 일도 있다. 이 둘을 붙여 “부패 토건 세력의 반대”라고 했다. 그런데 실상은 다르다. 이 후보는 시장이 되자마자 “성남시의 빚 5200억원을 갚을 수 없다”며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성남은 거덜 난 파산 도시가 됐지만 그는 이 승부수로 유명 정치인이 됐다. 그런 그가 1년 뒤 대장동 공공 개발을 하겠다며 빚 4500억원을 요구했다. 당연히 시의회가 반대했다. 이 후보는 이 얘기는 하지 않는다. 논리학의 함정에 해당하는 ‘일부와 전체의 혼용’이다. 이 후보의 말을 들을 땐 항상 전체를 알아보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다음은 ‘시간의 비약’이다. 이 후보는 “국민의힘이 강요해서 대장동 개발을 민관 합동으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고 했다. 자신을 약자로 규정했다. 첫 시장 재임 땐 시의회에 국민의힘이 다수였다. 하지만 두 번째 시장 재임 땐 시의회도 민주당 다수로 변했다. 대장동 개발을 시작한 건 두 번째 시장 때였다. 성남 정치의 최강자였고 갑 중의 갑일 때다. 그에게 민관 합동을 “강요”해서 관철시킬 세력은 성남에 없었다. 시간을 비약하는 방법으로 책임을 국민의힘으로 미룬 것이다.
이 후보는 이 기술에서 달인이라고 할 수 있다. 유명한 사례가 있다. 2018년 경기도지사 선거 때 ‘형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했냐’는 강제 입원 의혹에 대해 그는 “형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건 형수와 조카”라고 했다. 강제 입원 의혹은 2012년 일을 말하고, 형수가 형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건 2014년 일이다. 2014년 일로 슬그머니 2년 전 일을 부정했다. 거짓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냥 딴소리인데 사정을 모르면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의 말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전체는 물론 디테일에도 해박해야 한다.
그는 논리적으로 절대 양립할 수 없는 말도 쉽게 한다. 대장동 사업에 대해 그는 “고정 이익 환수가 이 사업에서 내린 나의 첫 지침이었다”고 했다. “적자가 나도 성남시의 고정 이익이 깎이지 않는 이상, 초과 이익은 모두 민간에 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반하는 주장을 하면 내 지시를 위반한 것”이라고 했다. 고정 이익 확보와 초과 이익 배제는 같다는 것이다. 이 지침이 투기꾼들에게 천문학적 돈벼락을 내렸다. 그런데 하루 뒤 “초과 이익 조항에 대해 보고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논리학에서 말하는 모순명제의 전형이다. 이런 말도 그럴 듯하게, 당당하게 하는 능력을 그는 가졌다.
같은 사례가 부동산 경기 논란이다. 그는 2015년 대장동 개발을 설계할 때 “당시 부동산 경기가 엄청 나쁘고 미분양이 속출했다”고 했다. 고정 이익을 선택한 이유에 대한 답변이다. 경기가 나쁠 땐 고정 이익이 유리한 편이다. 그런데 성남시가 2014년 대장동에 앞서 위례 아파트를 분양했을 때 30대1 경쟁률로 완판(完販)을 기록했다. 그때 성남시장도 그였다. 물론 경제에 어두우면 경기를 오판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사실이라면 다시 판단과 행동의 모순이 발생한다. “부동산 경기가 엄청 안 좋은” 그때 왜 대장동을 개발했을까. 당시 대장동 개발은 10년 이상 묵은 과제였다. 그의 임기 중 꼭 하라는 법도 없었다. 이 의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지금까지 “국민의힘 강요”밖에 없다. 이런 논리적 오류가 하루 국감에서만 여러 건 나왔다.

▲2018년 이재명 경기도지사 후보의 선거공보물
2018년 도지사 선거를 대비해 이 후보가 개발 치적을 만들기 위해 대장동을 설계했다는 가설을 세우면 의혹 대부분이 풀린다. 왜 2015년을 선택했고, 왜 고정이익을 선택했는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선거 전에 대장동 개발비로 그의 표밭인 성남 구시가지의 공원 조성에 가시적 성과를 내야 했고 배당금 1822억원으로 그의 주특기인 현금 배분을 이뤄내야 했다. 실제로 그는 2018년 도지사 선거 직전 대장동 치적을 담은 선거공보물 520만장을 경기도에 뿌렸고 배당금 1822억원을 성남 시민에게 1인당 18만원씩 주겠다고 선언했다. 공익의 사유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본질을 말솜씨로 피하려다 보니 화려한 말잔치 속에서 수많은 오류와 억지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후보의 이런 화술이 법정에 오른 일이 있다. 2020년까지 그를 벼랑 끝으로 몰고간 공직선거법의 허위 사실 공표 혐의 재판이다. 대장동 개발도 쟁점 중 하나였다. 2심 유죄였으나 대법원이 ‘계획성이 없는 말’이라는 황당한 논리로 무죄로 뒤집었다. 이 판결이 그의 정치 생명을 살린 것은 물론 최소한 법에 속박됐던 언어의 고삐까지 완전히 풀었다고 생각한다. 그때 이 후보에게 사실상 최종 면죄부를 준 대법관이 권순일 전 화천대유 고문이다.
11.24 똑똑한 이재명과 대한민국의 위대한 바보들
“10% 부자가 내는 거야,
90%가 왜 걱정해? 바보냐?”
이런 말에 넘어가지 않은 국민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일으켰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자신이 도입하자고 하는 국토보유세와 관련해 “토지 보유 상위 10%에 못 들면서 손해 볼까 봐 이에 반대하는 것은 악성 언론과 부패 세력에 놀아나는 바보짓”이라고 했다. 종합부동산세를 재검토하자고 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발언을 겨냥한 것이다. 나는 이 주장이 정치인 이재명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나한테만 이익이면 무조건 찬성하는 존재인가. 당장 기분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가족, 회사, 공동체, 나라 등 전체의 이익을 고려해 나에게 귀결되는 최종 이익을 판단한다. 이런 사람을 시민, 국민이라고 한다. 민주공화국의 정치는 자연체로서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는 시민과 국민을 상대로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의 정치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다.

▲이재명 후보가 11월 15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윤석열 후보의 종합부동산세 재검토 발언 다음 날이다./페이스북
그가 주장하는 국토보유세는 이재명의, 이재명에 의한, 이재명을 위한 세금이다. 오직 그의 공약인 기본 소득을 조달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세금이기 때문이다. 당초 공약처럼 국민 한 사람당 1년 100만원씩 주면 연간 59조원을, 요즘 다시 논의하는 것처럼 60만원씩 주면 30조원을 부동산세로 거둬야 한다. 기존 재산세와 종부세 액수를 거의 그대로 두고 계산한 것이다. 올해 종부세의 10배에 달한다. 파괴적이다. 이걸 어떻게 감당하나. 이럴 때 그들은 속삭인다. “잘사는 10%가 내는 거야. 나머지 90%가 왜 걱정해? 바보냐?”
많은 사람이 이 후보를 “똑똑하다”고 한다. 한국 정치 풍토에선 이렇게 하면 90%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와 대비되면서 한없이 미련해 보이는 정치인이 윤석열 후보다. 그가 종부세 재검토 주장을 하자 정부는 “국민의 98%가 과세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반대자는 그가 2% 부자 편에 섰다고 공격했다. 일부 지지자는 “정치적 손해를 자청했다”고 비판했다. 한국 국민의 정치 수준은 정말 이럴까.
조금만 생각하면 국토보유세에 대한 합리적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개인의 부동산 보유세는 한계를 넘었다. 가렴주구를 해도 약간만 더할 수 있다. 탈탈 털어 10배를 거둘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법인이다. 곧 이재명 곳간을 채울지 모를 1차 납세자 리스트를 우리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세(지방세) 특례제한법에 수없이 열거된 재산세 감면 대상이다. 교회, 사찰, 공장, 물류센터, R&D 센터, 창업 중소기업, 직업훈련 시설, 농업 법인 농지, 학교, 병원, 박물관, 공기업, 정당 등등. 한국지방세연구원은 국민 한 사람에게 연간 기본 소득 30만원을 주기 위해 서울대 병원만 연간 141억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고 했다. 단순 계산으로 기본 소득이 60만원이면 282억원, 100만원이면 469억원이다.
그동안 몰라서 안 거둔 게 아니다. 경제, 국민 건강, 복지, 문화 등 공동체 발전을 위해 유보한 것이다. 의료진, 연구 인력, 학생, 문화인에게 뜯어낸 돈을 한 달에 8만3000원씩 국민 용돈으로 주자는 주장이 먹혀들면 이 나라가 정상인가. “나라를 위해 그런 돈을 받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국민을 향해 이 후보는 ‘악성 언론과 부패 세력에 놀아나는 바보짓’이라고 했다.
그의 정치 인생은 “주면 좋아한다”는 신념을 다져온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변혁적 리더십은 꿈으로, 거래적 리더십은 이익으로 이끈다. 이 후보는 성남시장 때 연간 310억원, 경기도지사 때 연간 1700억원을 나눠 줬다. 그의 표밭에 2761억원짜리 공원을 만들어 주려고 유동규를 매개로 투기 세력과 손을 잡고 일으킨 사업이 대장동 개발이다. 이제 통이 더 커져 연간 59조원짜리 새 사업을 일으키려 한다. 그 후유증은 6조원짜리 대장동 파문과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조세부담률과 조세 항목별 국제 비교/한국조세재정연구원
지도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 후보는 한국의 조세 부담률을 OECD 평균과 자주 비교한다. 선진국보다 세금을 덜 내니 더 거둬서 나눠 줘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 소득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소외 계층을 위해서 증세는 필요하다. 그런데 이 후보는 늘 부동산 보유세가 적다고 한다. 그래서 국토보유세를 신설하자는 것이다.
이 후보다운 속임수다. 한국의 GDP 대비 부동산 보유세 비중은 올해 OECD 평균을 넘어선다. 앞으로 더 높아진다. 2019년 기준 부동산 보유세를 포함한 재산 부분 세금 비율은 OECD 평균의 1.7배, 법인세 비율은 1.2배다. 반면 부가가치세와 개인 소득세 비율은 각각 0.7배에 그쳤다. 수치가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하다. 부가가치세와 개인 소득세를 조정해야 한다. 두 세금은 대상자가 전 국민이기 때문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다. 이럴 때 손해를 보고도 타협점을 찾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이다.
지금까지 그런 지도자는 박정희 대통령뿐이었다. 그와 함께 공동체를 생각하는 국민이 지금의 이 나라를 만들었다. 대한민국은 쉽게 몰락하지 않을 것이다. 이 후보의 말과 행동에 놀아나지 않는 수많은 바보가 있기 때문이다.
12.15 추미애가 수상하다
이재명 후보는 그가 왜 자꾸
청와대로 가는 자신의 앞길에
계속 오물을 뿌려대는지
진지하게 의심해 볼 만하다

▲추미애 전 장관이 페이스북을 통해 윤석열 후보 부인 김건희씨의 과거 행적에 대해 공격하고 있다. 5선 의원, 당대표, 법무장관 출신이 할 행태냐는 비판이 여권에서도 나온다.
댓글 조작 사건을 고발해 대권 주자 김경수를 날린 주인공이 추미애 전 법무장관이란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여당 대표가 내막을 모르고 흥분했다가 제 발등을 찍은 자해극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추 전 장관이 하는 일을 볼 때마다 그 사건에 무언가 심층이 있을 수 있다는 음모론적 의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잊을 만하면 그때 일을 복기하게 하는 특별한 재주가 그에게 있다.
4년 전 사회부장을 맡은 직후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이 일어났다. 그래서 당시 언론에 보도된 정보가 어떻게 생성됐는지 흐름을 어느 정도 아는데, 김경수를 겨냥한 정보가 사건을 수사한 경찰에서 직접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럴 때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이런 의심을 한다. 정보가 공개됐을 때 누가 이익을 보나. 먼저 김경수 전 지사의 정치적 경쟁자들이 떠오른다. 당시 많은 음모론이 나왔지만 경쟁자들도 여러 희한한 사건에 휘말려 줄줄이 사라졌다. 그나마 나락에서 기사회생한 유일한 경쟁자가 이재명이고, 그의 명예선대위원장이 된 추씨는 이번에도 제 발등을 찍는 듯한 이상한 글을 날마다 올리고 있다.
다음 의심이 가는 곳은 검찰이다. 드루킹 사건이 일어난 정권 초 검경의 최대 이슈는 수사권 조정이었다. 경찰은 문재인 정권에 잘 보여 더 많은 권한을 검찰에서 가져와야 했다. 그래서 사건을 덮으려 했는데 검찰이 정보를 흘려 경찰을 골탕 먹였다는 가설이다. 진위는 알 수 없으나 허익범 특검이 수사를 가져가면서 “저런 경찰에 수사권을 통째로 맡길 수 없다”는 여론이 경찰의 수사권 열망에 찬물을 뿌린 건 사실이다. 이때 서울중앙지검장이 윤석열 후보다. 결과적으로 이때부터 추씨는 윤석열을 도운 것이다.
일본 전통극 ‘노(能)’에서 배우의 최고 경지를 뜻하는 ‘이견(離見)의 견(見)’이란 말을 나는 좋아한다. 무대에서 떨어진 객석 관객의 눈으로 연기하는 자신을 쳐다본다는 뜻이다. 완벽한 자기 객관화를 말한다. 누구나 이렇게 살 수는 없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은 조금씩 이 능력을 터득하고 남을 의식해 살려고 노력한다.

▲추미애 전 장관이 페이스북에 올린 합성사진/페이스북
추미애가 법무장관이 됐을 때 그는 완전히 남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여당 초선 의원들 앞에서 책상을 탁탁 치면서 “장관의 지시를 겸허히 들었으면 좋게 지나갈 일을 새삼 지휘랍시고 해 가지고”라며 박자까지 맞춰 말할 때 그는 권력의 황홀경에 푹 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 나이에 보이는 그런 행태를 세상은 그냥 ‘꼰대 짓’이라고 한다. 추미애가 윤석열의 종아리를 몽둥이로 때리는, 너무 유치해 보통 사람이라면 차마 자세히 볼 수 없는 합성사진을 공개한 것도 그가 노추(老醜)의 함정에 빨려 들어가 있음을 말해준다. 아니라면 무언가 까닭이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법원이 그가 내린 윤석열 징계 사유 몇 가지를 인정하자 “석고대죄하라”고 했다. 나는 윤 후보의 검찰권 장악에 지나친 측면이 있었다고 본다. 지금도 많은 국민이 염려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당시 국민이 분노한 것은 징계 사유와 절차가 아니라 조국, 울산시장 선거, 원전 등 정권 비리를 수사하던 검찰총장을 강제로 끌어내린 권력의 폭력이었다. 추 장관은 몰랐을까. 알았다면 왜 무리했을까. 그 덕분에 윤석열은 정치적 검증을 거쳐 야당 대선 후보 자리를 차지했다. 추미애를 빼면 정치인 윤석열은 존재하지 않는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아트디렉터 이제석과 박서원이 만든 유명한 반전(反戰) 광고의 제목이다. 군인이 총을 들고 누군가를 겨누고 있지만 총부리는 기둥을 한 바퀴 돌아 자신의 뒤통수를 향해 있다. 추미애의 총구가 늘 그렇다.

▲한국인 아트디렉터가 제작한 반전 광고 포스터. 이 포스터를 둥근 기둥에 감으면 적을 향해 겨눈 총구가 자신의 뒤통수를 향한다. 제목은 '뿌린 대로 거두리라'.
요즘 그는 윤 후보의 아내를 겨냥하고 있다. “줄리라고 하면 안 되는 이유가 나왔다. 주얼리이기 때문이었나!” “줄리에 대한 해명; 줄리할 시간이 없었다. 근데 주얼리에 대하여는?” “건진요. 건희씨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조국의 강은 실체가 없었으나 줄리의 강은 실체가 있다.” 페이스북 글들이다.
5선 국회의원, 당대표, 법무장관 출신이 쓸 글인가. 여성 인권의 상징이라는 권인숙이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는 캠프에서 어떻게 이런 행태를 용인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관련 기사를 보면 “윤석열 대통령 시켜주려고 저러니 그냥 놔두라”는 댓글이 주류를 이룬다. 김부선씨는 추씨의 합성사진을 두고 이렇게 썼다. “윤 후보는 새벽마다 추씨에게 냉수 한 사발이라도 떠올리고 조석으로 감사 인사 올리시라.”
그의 독설은 오히려 독설의 상대를 키워주는 이상한 위력을 갖고 있다. 그 위력을 윤석열을 향해 다시 발산해 여권의 대선 가도를 좁히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그가 왜 자꾸 자신의 앞길에 오물을 뿌리는지 이제 진지하게 의심해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