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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중앙일보) 2021. 01.11 이명박·박근혜 사면은 야당 분열 노린 불장난인가 - 12.13 이재명·윤석열의 정치보복 추방 선언

상림은내고향 2022. 1. 3. 19:56

이하경 칼럼 중앙일보 주필·부사장 2021

01.11(월)  이명박·박근혜 사면은 야당 분열 노린 불장난인가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 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5일 ‘미국 민주주의의 위험한 순간’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선포되지 않은 쿠데타(undeclared coup d'état)가 시도되고 있다”고 했다. 설마했는데 다음 날 유혈극이 벌어졌다.      

통합 실패로 미국 민주주의 위기
남북대치 한국 통합 더 절실한데
5년마다 신생국 되는 악순환 반복
문 대통령은 분열 끝내는 사면을

차기 미국 대통령의 당선 확정을 저지하려는 수천 명의 트럼프 지지자가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것은 쿠데타 시도였다. 헌법의 수호자인 현직 대통령이 헌법을 파괴하는 반역자를 “위대한 애국자(Great patriot)”라고 호명한 순간 미국 민주주의는 추락했다.
 
1831년 프랑스 베르사유 법원 배석 판사 출신 토크빌은 신분 차별이 없는 신대륙의 민주주의에 감탄했다. 동시에 “지나친 자유보다는 폭정에 대해 충분한 보장책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가 더 경계할 대상이다”(『미국의 민주주의』)라고 했다. 놀라운 선견지명이다.
 
미국의 위기는 세계화 이후 양극화에 둔감했던 워싱턴 주류 정치에 원죄(原罪)가 있다. 백악관의 새 주인 바이든은 빈자(貧者)와 소수자, 흑인의 눈물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눈과 귀, 입이 될 요직은 탐욕스러운 월가와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로비스트 출신들로 넘쳐난다. 진보 성향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소(CEPR)의 제프 하우저는 “바이든의 문제는 로비스트가 되기 전에 알았던 이들을 여전히 로비스트가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분열의 시대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단 한순간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적 삶의 공간, 한반도는 어떠한가. 양극화의 고통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악화되고 있다.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피케티지수는 진보를 표방한 문 정부 들어 오히려 치솟고 있다. 이 와중에 북한과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것도 모자라 남쪽 내부에서도 죽기살기로 싸운다. 고령의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은 ‘적폐’라는 죄목으로 큰칼을 목에 차고 있다. 보수 진영에서는 “정권을 되찾아 문재인도 감옥에 보내자”며 이를 갈고 있다.
 
이러니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대한민국은 5년 시한부 신생국가로 힘들게 출발해야 한다. 과거 정권 사람들을 하도 내쳐서 인재풀은 완전 고갈 상태다. 무능한 충성파가 요직을 독식하다 보니 문 정부의 외치와 내치 역량은 역대 최저 수준이다. 꽉 막힌 아포리아의 상황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통합을 위해 대통령에게 사면을 건의하겠다”고 하자 청와대는 “논의해 볼 수 있다”고 반응했다. 친문 강경파가 “쉽게 용서하면 다시 힘을 길러 민주주의를 파괴할 것”(김용민 의원)이라며 반발하지만 큰 흐름은 잡혀 가고 있다.
 
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야당을 분열시키겠다는 정치공학적 의도가 들어 있다면 사면 카드를 거둬들여야 한다. 박 전 대통령만 ‘선별’ 사면하겠다는 것도 난센스다. 이 전 대통령의 단죄가 “이명박이 노무현을 죽였다”는 친노의 분노에서 비롯된 정치적 탄압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면 철학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는 1980년 전두환 신군부 시절 사형을 선고받은 뒤 매 순간 죽음의 공포에 떨었다. “밖에서 발자국 소리만 나도 깜짝 깜짝 놀랐다”고 했다. 유언을 겸한 최후진술에서는 “정치적인 보복이 이 땅에서 다시는 행해지지 않도록 부탁하고 싶다”고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에서 김대중을 구한 것은 미국이었다. 대선에서 패배한 카터 대통령은 레이건 당선자에게 “김대중을 살려 달라”고 요청했다. 레이건은 자신과의 정상회담에 매달리는 전두환에게 ‘김대중 감형’을 전제조건으로 요구해 관철시켰다.  
     
김대중은 1997년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김영삼 대통령에게 건의해 전두환·노태우를 사면시켰다. 용서할 수 없는 ‘원수’를 용서한 셈이다. 김대중은 취임 이후 분기에 한 번 이상 전직 대통령 내외를 모두 청와대로 초청했다. “사람은 겪어 봐야 그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전두환 부인 이순자는 토로했다.
 
김대중이 ‘원수’를 국가원로로 예우한 것은 개인적 해원(解冤)의 차원을 초월한다. 화해와 통합만이 분열된 분단국가를 이끌어 나갈 동력이기에 정치보복을 중단하겠다는 신념의 결과였다. 김대중은 이를 통해 진보와 보수, 영·호남의 화해라는 정치적 신뢰자산을 축적했다. 그래서 노사정 합의를 통해 노동개혁을 하고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을 수 있었다. 국민건강보험 통합, 의약분업이라는 난제도 해결했다.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도 국민 통합의 결과였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무너진 것은 달러가 부족해서도, 첨단 무기가 없어서도 아니다. 내부 통합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분단국가 한국에서는 내부 통합이 더 절실하다. 사면이라는 통합의 카드를 정략적 불장난으로 접근하면 공동체가 산산조각난다.
 
문 대통령은 3년7개월 동안 이렇다 할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이제는 정권 핵심에서도 “적폐 청산은 업적이 아니다”고 한다. 단 하나의 업적이라도 역사에 남기려면 국민 통합이 절실하다. 사면이 분열과 저주가 아닌 통합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01.25  눈먼 정치인이여 들어라 “사격중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정치가 모든 것을 파괴하는 맹렬한 불이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를 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생각보다 바이든은 더 변혁적”이라며 “우리는 더 많은 정치적 무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미국이 달라졌다.      

자영업자 손실보상·가덕도 ‘과속’
검찰총장·감사원장 마구 흔들어
바이든 정치 파괴성 경고하는데
한국은 정치가 모든 것 삼켜버려

전직 대통령들이 혹독한 징벌을 받고 있는 한국은 아직 정치적 내전 상태다. “정권 뺏기면 감옥 간다”는 경험칙이 지배하는 한 승리지상주의의 정치공학만이 신성한 경전으로 남을 것이다. 인류적 재난인 코로나19에 대처하는 최전선에서도 정치는 맹위를 떨치고 있다.
 
방역으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의 손실보상은 필요하다. 그러나 곳간 형편을 살펴가면서 완급을 조절해야 한다. 그런데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이 “해외 유사 사례를 찾기 어렵다”고 하자 정세균 총리는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고 호통쳤다.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던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국채를 찍어 100% 지급하겠다”고 꼬리를 내렸다.
 
국민의힘도 “빠른 시일 내에 재원을 마련하라”고 ‘속도전’을 촉구하고 나섰다. 재정건전성을 중시해 온 보수정당답지 않다. 1년 예산이 558조원인데 불과 넉 달 동안 98조8000억원을 나눠주는 엄청난 일이 서울·부산 시장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으로 결정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가덕도 신공항 추진도 마찬가지다. 부산시장 예비후보인 김영춘 전 해수부 장관은 “첫 삽을 반드시 뜨겠다”며 호(號)를 가덕(加德)으로 지었다. 소극적이었던 김종인 위원장도 “대폭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입장을 취할 수 있다”고 선회했다. 표 앞에는 장사가 없다더니 이제는 입지 논란과 과잉투자 우려가 나오지 않고 있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전광훈, 윤석열, 그리고 이제는 최재형에게서 같은 냄새가 난다.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라 했더니 주인행세를 한다”고 했다. 전형적인 ‘태극기’ 프레임이다. 헌법기관인 감사원장에게 권력의 주구(走狗)가 되라는 것인가.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김정은의 싱가포르 선언을 “이벤트성 만남과 리얼리티 쇼”라고 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대화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며 당시의 주역인 정의용 전 안보실장을 새 외교부 장관으로 내정했다. 정상의 결단에 의존하는 톱다운 방식의 장점도 있다. 그러나 바이든에게 이렇게 트럼프식 북·미 대화를 요청해야 하는가. 차라리 바이든과 스가 일본 총리가 원하는 한·일 관계개선을 위한 실질적 조치를 먼저 취해야 하지 않을까. 지지자가 아닌 국익을 위한 결단이 필요하다.
 
야당도 할 말이 없다. 김종인 위원장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별의 순간을 제대로 포착하느냐에 따라 국가를 위해 크게 기여할 수도,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현직 검찰총장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포기하란 말인가. 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꺼낸 이익공유제에 대해 국민의힘 대변인은 “사회주의 경제를 연상케 하는 반시장적 발상”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의 초과이익공유제, 박근혜 정부의 기업소득환류세제는 또 무엇인가. 잘못됐다면 반대만 하지 말고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압도적 위기는 하늘이 준 절호의 개혁 기회다. 국가의 목표와 방향, 시스템을 뜯어고칠 수 있다. 국민 통합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한국형 뉴딜에는 어떤 간절함도 보이지 않는다. 1930년대 대공황 위기에서 미국을 다원적 민주국가로 개조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용기와 철학을 찾아볼 수 없다.  
      
   1653년 제주도에 표류한 하멜은 황금기의 네덜란드인이었다. 당시 네덜란드는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와 증권거래소를 가진 나라였다. 3만4000척의 상선을 보유했고 세계 제일의 부자 나라였다. 그러나 효종의 조선은 서양문명을 수용한 청나라가 아닌 망해 가는 명나라를 모시는 시대착오적 국가였다. 하멜 일행 36명을 13년간 억류했던 조선은 끝내 이들의 국적을 몰라서 남만인(南蠻人)이라고 불렀다.
 
이방인 하멜 일행은 효종의 어가(御駕) 행렬을 빛내 주기 위해 행진하거나 고관집 잔치의 주흥을 돋우는 광대로 소일했다. 반면에 일본은 이들이 탈출해 오자 심문을 통해 출신과 행적, 조선의 군사·교통·지리·산업·문화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단 하루 만에 얻어냈다(『다시 읽는 하멜 표류기』, 강준식).
 
나가사키의 인공섬 데지마에 일찌감치 네덜란드 상관을 열었던 일본과 꽁꽁 문을 걸어잠갔던 조선의 실력 차이였다. 깊이 잠든 조선을 노크한 근대의 빛은 허망하게 스쳐 지나갔다. 지금의 우리도 팬데믹이 준 역설적 기회를 정치과잉으로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팬데믹은 우리 모두가 지상의 모든 생명체와 상호의존적 관계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화가 난 바이러스를 잠재우려면  탐욕을 절제하고 공존의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바이든은 “우리는 정치를 제쳐두고 하나의 국가로서 이 팬데믹을 마주해야 한다”고 했다. 오직 나의 이익에 눈이 멀어 죽기살기로 싸우는 한국의 정치인들도 “사격중지(Cease fire)!”가 필요하다.

 

02.08  “법복을 걸친 정치꾼” 지옥 문 앞에서 발가벗다

재판받는 사람의 눈에 비친 판사는 신(神)이다. 죽고 사는 것이 법대 위 절대자에게 달려 있다. 하지만 판사도 불완전하고 위태로운 존재다. 상반된 진술의 홍수 속에서 하나뿐인 진실을 확신하지 못해 괴로워한다. “민사는 머리가 아프고, 형사는 가슴이 아프다”고 토로한다. 그래서 거짓말하는 피고인을 미워하고 중형을 선고한다. 판사가 거짓말한다는 건 판사이기를 포기하는 일이다.     

권력 눈치, 거짓 김명수 사퇴해야
대통령도 최악 사태에 원인 제공
전시 제왕적 권력에 맞선 김병로
사법부 독립과 민주주의 지켰다

그런데 사법부의 수장이 거짓말을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탄핵을 거론하면서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는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폭로가 나오자 “그런 취지의 말을 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녹취록이 공개되자 “9개월 전의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해 다르게 답변했다”며 사과했다.
 
녹취록에는 “지금 뭐 탄핵하자고 (여당에서)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는 발언이 나온다. 43분간 여섯 번 “탄핵”을 언급했다. 거짓말은 “희미해진 기억” 때문이 아닌 고의였다. 본인이 탄핵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이 나라 사법은 불신의 화염에 휩싸여 있다. 가인(街人)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1948~57)의 손자인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김명수를 “법복을 걸친 정치꾼”이라고 했다. 단테는 『신곡(神曲)』에서 법률가들에게 천국을 허용했다. 다시 쓴다면 “여기로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고 적힌 지옥문 앞에 시정잡배가 된 사법부 수장을  발가벗겨 세울 것이다. 김명수는 절망한 국민의 탄식을 들어야 한다.
 
정의와 공정을 앞세운 인권 변호사 출신 대통령의 임기 중에 사법의 신뢰가 무너진 것은 슬픈 역설이다. 김명수는 제왕적 대통령 권력의 호위무사가 된 입법부의 눈치를 보면서 병마와 싸우는 임성근을 탄핵의 제물로 바쳤다. 그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해서도 일차적으로 사법부 내에서 책임지고 정리하지 않고  통째로 검찰 수사에 맡겼다.
 
이제 판사들은 법원 내·외부 권력의 의중을 모두 살펴야 하는 기막힌 처지가 됐다. 어제 박범계 법무장관의 “윤석열 패싱” 검찰 인사로 각종 권력형 비리 수사도 갈 길을 잃었다. 법원과 검찰이 한꺼번에 흔들리고 있다.
 
‘대법원장 거짓말 파동’의 실질적 주역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정권을 잡았지만 “포위된 요새에 갇혔다”는 친문 세력의 초현실적 강박 때문에 무리한 인적 청산을 무한 반복하고 있다.
 
김명수와 대비되는 인물은 김병로다. 10대 후반에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면암(勉菴) 최익현을 찾아가 의병에 가담했고, 항일운동가를 위한 무료 변론을 수없이 자청한 지사(志士)였다. 전쟁 중인 부산 피란시절 대법원장으로서 제왕적 대통령 권력에 맞서 사법부 독립과 삼권분립을 수호했다. 위기의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이승만 대통령은 집권 연장을 위해 1952년 직선제 개헌안을 추진했고, 반대에 앞장선 서민호 의원을 구속시켰다. 국회가 석방결의안을 냈지만 검찰은 석방을 거부했다. 부산지방법원 합의부 재판장 안윤출 수석부장판사가 결의안을 넘겨받았다. 그는 3000여 명의 관제시위대가 법원을 포위하고 “석방하면 죽인다”는 위협 속에서도 “죽음을 각오하고” 석방명령서에 도장을 찍었다.
 
이승만이 김병로에게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김병로는 “판사가 내린 판결은 대법원장도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것이다. 판결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절차를 밟아 항소하시오”라고 의연하게 응수했다(『가인 김병로』 한인섭).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권력의 바람이 불기도 전에 납작 엎드린 김명수와는 정반대였다. 김명수는 박근혜 권력과 거래한 판사들을 적폐 세력으로 핍박할 자격을 상실했다.  
     
문 대통령은 “정치꾼” 대신 윤관(1993~99)·이용훈(2005~2011) 전 대법원장류(類)의 올곧은 법조인에게 개혁을 맡겼어야 했다. 윤관은 영장실질심사제를 도입했다. 판사가 피의자를 직접 만나 억울한 사정을 들은 뒤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다. 검찰이 반발했지만 인신구속이 눈에 띄게 줄었다. 그는 청렴한 법관의 상징이었다. 대법원장 공관의 외관을 ‘크레마 오로’로 불리는 이탈리아산 고급 ‘라임스톤’으로 바꾼 김명수와 달랐다.
 
이용훈은 2005년 공판중심주의라는 법정 소통 방식을 도입했다. 판사가 기록에만 의존하지 않고 법정에서 당사자의 육성 진술을 듣고 결론을 내리게 했다. 그는 “검사들이 밀실에서 비공개 진술을 받아놓은 조서가 어떻게 공개된 법정에서 나온 진술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느냐”고 해 검찰의 반발을 샀다. 개혁적인 사법부 수장이었다.
 
영장실질심사제와 공판중심주의는 “힘없는 사람의 편에 서는 인권중심의 사법개혁”이었다. 어떤가. 법원과 검찰의 수뇌부를 몽땅 우리 편으로 물갈이하려는 적폐청산 푸닥거리보다는 훨씬 정의롭고 공정하지 않은가.
 
민심은 “법복만 입은 정치꾼”의 퇴장을 원한다. 원인을 제공한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반성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권력은 민심을 두려워해야 한다.  

 

02.22  우리는 왜 제왕적 대통령과 결별해야 하는가

 신현수 민정수석 사의(辭意) 파문의 본질은 “나만 옳다”고 믿는 제왕적 대통령의 독주다. 청와대를 향하는 권력형 비리 수사 차단은 임기 말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다. ‘방파제’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유임시키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을 박범계 법무장관이 제대로 읽었다. “왜 우리 편에 서지 않느냐”는 취지로 신 수석을 몰아세웠다.     

‘신현수 파문’ 본질은 대통령 독주
청와대 향하는 수사 차단 위한 것
누구의 견제도 안 받는 절대 권력
‘싸가지 없는 진보’로 되돌아갔다

“윤 총장은 문재인 정권의 총장”이라는 대통령의 말을 믿고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을 중재하려던 신 수석은 “창피해서 더는 못 하겠다”고 했다. 헌법 11조가 명령한 ‘법 앞의 평등’은 실종됐다. 기업 CEO로 잔뼈가 굵은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합리적인 신 수석의 기용으로 민생 중심으로 국정운용 기조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는 무너졌다.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반성했다. “혹시 우리가 민주화에 대한 헌신과 진보적 가치들에 대한 자부심으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선을 그어 편을 가르거나 우월감을 갖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이른바 ‘싸가지 없는 진보’를 자초한 것이 아닌지 겸허한 반성이 필요한 때다.”(『1219 끝이 시작이다』) 그런데 ‘싸가지 없는 진보’는 여전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범죄를 저지르면 누구나 수사의 대상이 된다.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울산시장 선거 개입, 라임·옵티머스 사태, 조국 일가 비리,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혐의로 정권 실세와 강성 친문(親文) 의원들이 줄줄이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상황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신현수 파문’의 핵심 코드다.
 
수사와 재판을 받는 의원들은 내친 김에 중대범죄수사청을 만들자고 한다. 검찰은 공소유지나 하는 허수아비가 된다. 기상천외한 법안을 발의한 황운하·최강욱 의원은 “검찰의 선택적 수사”를 문제 삼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중수처 신설은) 검찰개혁의 마지막 단추”라고 주장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고간 ‘최순실 게이트’보다 심한 국정농단이다.
 
국민을 무시하는 비상식의 출발점은 제왕적 대통령제다. 한국의 ‘차르’는 구중궁궐에 앉아 국민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고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심부름꾼을 뽑았는데 상전이 돼서 군림한다. 대부분 비극적 운명을 맞는다. 문 대통령도 의원 시절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했다. “대통령제보다는 내각책임제가 훨씬 좋은 제도다. 민주주의가 발전된 대부분 나라들이 내각책임제를 하고 있다. 대통령제를 해서 성공한 나라는 미국 정도며, 미국도 연방제라는, 연방에 권한이 분산됐다는 토대 위에 성공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와 환경이 다르다.”(연합뉴스)
 
그랬던 문 대통령도 제왕적 대통령의 길을 가고 있다. 민의를 받들겠다는 의지가 아무리 넘쳐도 제도가 불량하면 다원적 의사결정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대통령제의 원산지는 미국이다. 국가원수와 행정수반의 권한을 한 사람이 갖는다. 승자독식이어서 연립정부를 구성할 필요가 없다. 독재자가 출현하기에 딱 좋은 제도다. 문 대통령도 갈파했듯이 성공한 나라는 미국 정도다. 미국은 폴리비오스의 권력분립, 몽테스키외의 3권분립을 토대로 국가를 건설하고 독립전쟁의 영웅 조지 워싱턴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는 총사령관 시절 “왕이 되어 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 사실상의 ‘종신 군주’가 될 수 있었지만 한 차례 연임했고, 8년 만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평화적 권력이양의 선례를 남겼다. 미국이 ‘선거 군주제’ ‘제왕적 대통령제’가 아닌 ‘민주적 대통령제’ 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워싱턴의 초인적 절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미 6개국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시킨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가 ‘종신 대통령’에 취임했던 것과 대조를 이룬다. 장기집권으로 몰락한 이승만·박정희와도 달랐다.
 
자국의 최고 지도자에게 ‘대통령(大統領)’이라는 극존칭의 전근대적 호칭을 부여한 나라는 지구상에서 한국뿐이다. 시민혁명을 통해 건국한 나라답게 미국은 유럽의 황제와 다른 ‘회의 주재자(presider)’라는 의미의 ‘president’를 사용했다. 수평적 리더십의 상징이다. 문제는 일본이 19세기 후반 ‘대통령’으로 번역했다는 사실이다. ‘통령’(統領)은 ‘사무라이를 통솔하는 우두머리’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위계(位階)를 강요하는 전근대적 호칭을 만들어냈다. 태평양을 건너오면서 의미가 변질된 것이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 위압적, 권위적 용어는 “대통령 말씀은 복종의 대상이다”라는 억압적 명제를 내면화시킨다. 정작 일본은 대통령이 존재하지 않으니 비틀린 용어로 인한 피해도 없다. 그런데 왜 우리만 낡은 유물인 ‘대통령’을 부둥켜안고 이 고생을 해야 하는가.
 
21세기 대한민국의 국민은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믿고 있다.  국민이 뽑은 일꾼이 주인에게 “군말하지 말고 내 말을 따라야 한다”고 큰소리치는 건 시대착오가 아닌가.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제왕적 대통령과 단호하게 결별해야 한다.

 

03.08  윤석열 떠난 문재인 ‘LH 폭탄’ 피할 출구가 없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의혹’은 부동산과 불공정을 동시에 때린 폭탄이다. 조국 사태, 울산 선거 개입,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옵티머스·라임 의혹은 충격이 제한적이었다. 이번에는 세대·이념을 불문하고 온 국민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이 정권은  24번의 오작동 대책으로 집값 폭등, 전세 대란을 불러 경제적 약자를 사지(死地)로 몰아넣었다. 뒤늦게 공급 확대로 전환했는데 악재가 터졌다. 제대로 수습하지 않으면 민란(民亂)을 각오해야 한다.   

부동산·불공정 동시 강타한 악재
노태우·노무현은 검찰에 조사 맡겨
‘피의자’인 변창흠이 ‘검사’라니
직권남용은 대통령 위기의 시작

문제의 LH 토지보상 담당 직원들은 프로페셔널한 투기꾼이었다. 비공개·내부 정보를 손에 쥐고 3기 신도시 예정지 땅을 쇼핑하듯 사서 쪼개고, 희귀종 나무를 심어 보상가를 극대화시켰다. 경매 ‘1타강사’로 돈을 벌었다. 추악한 기교(技巧)는 엄정해야 할 법과 제도를 악취를 풍기는 축재(蓄財)의 도구로 만들었다. 자본주의의 하수구가 이런 것인가.
 
“집값을 취임 전 수준으로 돌려놓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을 믿었던 국민들은 사기당한 심정이다. 이 지경인데도 LH 직원들은 “우리는 투기하지 말란 법 있느냐”며 항변한다. 도덕적 해이가 선을 넘었다. 3기 신도시는 물론 주택 83만 호를 공급할 2·4 대책도 출발선에서 길을 잃었다. 이제 미친 집값을 무슨 재주로 막을 것인가.
 
문 대통령이 전수조사를 지시했지만 검찰은 정부합동조사단에서 제외됐다. 형식적으로는 총리실이 주관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부동산거래관리시스템을 운용하는 국토부가 주도한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은 LH가 사고칠 때 관리책임이 있는 사장이었다. 결과적으로 피고인이 검사석에 앉은 초현실적인 장면이다. 법치주의의 몰락이다.
 
더구나 변 장관은 “개발 정보를 알고 땅을 미리 산 건 아닌 것 같다”고 직원들을 감쌌다. 컨트롤 타워가 “무죄”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으니 조사 결과는 볼 것도 없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길 수 없다”고 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조직을 두둔하는 듯한 언동은 절대로 해선 안 된다”고 질책했다. 부동산 대책을 감당할 자격을 잃은 국토부 장관은 자진해서 물러나야 한다.
 
노태우·노무현 전 대통령은 달랐다. 노태우 정부는 1989년 분당·일산·중동·평촌·산본 등 5개 지역의 1기 신도시 건설계획을 발표한 뒤 땅값 폭등을 겪었다. 대통령은 검찰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하고 1년2개월 동안 투기 사범 1만3000명을 적발해 987명을 구속했다. 구속된 공무원만 131명이었다. 노무현 정부도 2005년 2기 신도시 조성 후 검찰 중심의 조사단을 만들었고, 공무원 27명을 적발해 처벌했다.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참모였던 문 대통령이 검찰이 부동산 투기 단속의 주체가 됐던 전례를 몰랐을 리 없다. ‘셀프조사’라는 반칙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잘 알 것이다.
 
인간 문재인은 청렴한 삶을 살았다.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까지 서울 홍은동 ‘금송힐스빌’에서 전세로 지냈다. 투기꾼을 봐줘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더구나 ‘공정’과 ‘정의’의 수호자가 아닌가.
 
그런 문 대통령이 ‘투기꾼의 저승사자’인 검찰을 빼고 합동조사단을 만든 데는 필시 말 못할 곡절이 있었을 것이다. 자신에게는 엄격하지만 뜻을 같이하는 사람의 허물에는 한없이 관대한 성품이 이런 부조리한 상황을 초래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썩은 살을 도려내야 새 살이 돋아나는 법이다. 공사(公私)를 혼동한 부적절한 관용은 대통령 권한의 남용이다.
 
이제 야인(野人)이 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조국 사태 당시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의 싹을 초기에 자르지 못해 몰락했다. 검찰이 대통령 주변의 비리를 선제적으로 쳐내는 것은 대통령을 보호하는 길이다. 그런데 이 정권은 검찰이 남을  상대로 칼질할 때는 환호하다가 정작 자기 환부에는 칼을 갖다 대기만 해도 난리를 친다.” 그는 스스로를 ‘충신’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윤석열의 진심은 싸늘하게 거부당했다. 황운하·김남국·김용민·진성준·최강욱 등 피의자·피고인 신분의 여당 의원들이 뭉쳐서 “중대범죄수사청을 만들어 검찰 문을 닫겠다”며 그를 압박했다.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며 ‘검찰 개혁 속도조절’ 신호를 보냈던 대통령은 무도한 행위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 윤석열이 “헌법정신과 법치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며 사의를 표시하자 즉시 수리했다. 대통령의 진심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공정과 정의를 열망했던 대통령이 힘센 참모들에게 둘러싸여 결단하지 못할 때 민심을 읽고 행동으로 실천했던 ‘충신’은 떠났다. 윤석열은 "(국토부) 자체 조사로 시간을 끌고 증거 인멸하게 할 것이 아니라 즉각적이고 대대적인 수사를 해야 한다”며 안타까워한다. 권력형 비리의 주역과 신도시 예정지에서 크게 한탕해 서민들을 괴롭힌 거악(巨惡)들은 “윤석열 없는 세상에서 발 뻗고 마음 편하게 자게 됐다”고 환호할 것이다. 하산(下山)하는 대통령에게는 출구 없는 위기의 시작이다.

 

03.22 대통령은 민심 이탈 막을 기회를 놓쳤다

농지가 수난을 당하는 시대다. 돈 있는 사람들은 농지를 쇼핑하듯 쉽게 사들인다. 한 필지를 쪼개 수십·수백 명이 나누어 갖는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뿐 아니라 대통령 친구의 배우자, 실세 장관의 보좌관, 여당 국회의원들의 이름이 너절하게 등장한다. 힘없고, 정보 없고, 돈 없는 사람들은 절망하고 있다. 농민들은 “투기꾼이 땅값을 올려놔서 정작 우리는 농지를 살 수 없는 세상이 됐다”고 절규한다.     

농지 투기는 망국의 유행병
대통령 친구, 장관 보좌관도 가세
투기 조장하고 정권 재창출?
민심·헌법 무시 정권 미래 없어

‘탐욕의 절제’라는 시민적 윤리가 소멸한 공간에는 “너 죽고 나 살자”는 적의(敵意)만 확대재생산된다. 연대의 에토스(ethos)는 사라진 지 오래다. 마침내 인간과 금수(禽獸)의 경계가 흐릿해졌다. 나라에 망조가 들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농지 쪼개기의 추악한 역사는 유구하다. 고려 말기에는 ‘일전다주(一田多主)’의 미친 바람이 불었다. 한 뼘의 농토에 권문세가(權門勢家) 일고여덟이 찰거머리처럼 붙어서 피골이 상접한 농민의 고혈(膏血)을 빨았다. 농민들은 살기 위해 도적이 돼 떠돌았다. 당대의 경세가 정도전은 “빈자는 송곳 꽂을 땅도 없다”고 탄식했다. “전 인구의 10분의 5,6은 호적에서 빠져나갔다”(조선경국전)는 기록이 상흔으로 남았다. “아노미의 극한 상황”(『정치가 정도전』 최상용·박홍규)이었다.
 
이러고도 버틸 정권은 없다. ‘위화도 회군’이라는 반역으로 고려의 숨통을 끊어놓은 이성계 신세력이 착수한 것은 토지제도 개혁이었다. 권귀(權貴)들의 ‘일전다주’를 혁파해 역성혁명(易姓革命)의 정당성을 거머쥐었다.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조선의 설계자였던 정도전은 “당시의 구가세족(舊家世族)들이 비방하고 원망하면서 방해했다”고 적었다.
 
전제(田制)는 왕조의 흥망을 좌우하는 마법의 상자였다. 토지제도의 문란으로 망한 고려가 천년왕국 신라를 살해한 명분도 “전제 혼란을 바로잡는 것”이었다. “신라 말엽에 전제가 고르지 못하고 부세(賦稅)가 무거웠으므로 도적이 군기(群起)하였다. (중략) 태조(왕건)께서 민간에게 3년 동안의 조세를 면해 주었다. (중략) 비록 천하를 호시(虎視)하는 요(遼), 금(金)이 우리와 땅을 연접하였어도 감히 나라를 침범하지 못한 것은…”(『고려사절요』). 민심(民心)은 언제나 천심(天心)이다.
 
이 정부는 신라, 고려 말기의 혼란상을 반복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부동산 투기로 돈 못 벌게 하겠다”고 했다. 종합부동산세, 양도세 폭탄을 퍼부었다. 그런데 정작 LH 직원들은 내부 정보를 빼내 탈법 투기로 자기 배를 채웠다. 권력자들까지 악취 나는 자본주의의 하수구에 발을 담갔다. 국가와 악당의 차이는 도대체 무엇인가.
 
문 대통령은 “부동산 적폐 청산을 남은 임기 동안 핵심 국정과제로 삼겠다”고 했다. 전형적인 유체이탈 화법이다. 김헌동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운동본부장은 “대통령 본인이 적폐의 적통 세력인데 대체 무슨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것이냐”고 물었다. 대통령은 “큰 허탈감과 실망감을 드렸다”고 사과했지만 진정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사저(私邸) 논란의 당사자다. 퇴임 후에 거처하기 위해 양산에 부지를 사들였다. 일부가 농지인데 ‘영농 경력 11년’이라고 적어 허가를 받았다. 이후 9개월 만에 농지를 대지로 형질변경했다.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허위 기재가 아니다”고 했다. 대통령은 “살기만 할 뿐 처분할 수도 없는 땅”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선의(善意)를 믿고 싶다. 법과 현실의 괴리도 인정한다. 그러나 “싼 농지를 사서 비싼 대지로 바꾼 것은 투기 아니냐”(윤영석 국민의힘 의원)는 날선 비판은 시기가 시기인지라 예사롭지 않다.
 
베트남 국부(國父) 호찌민은 프랑스 총독 관저였던 주석궁에서 지내다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석 달 만에 배관공 집으로 옮겼다. 문 대통령은 “호찌민을 본받으면 부패가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래놓고도 솔선수범의 기회를 놓쳤다. 양산 사저의 규모는 1817평에 이른다. 경호시설을 거론했지만 진정한 경호는 초소의 규모가 아니라 국민의 존경도에 달렸다는 사실을 놓쳤다.
 
민심이 떠나가고 있다. 한국리서치·코리아리서치·엠브레인·케이스탯 합동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3%가 “청와대와 정부의 투기 조사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다. 82%는 “LH 사태가 보궐선거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표로 심판하겠다는 것이다.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는 “위에는 맑아지기 시작했는데 아직 바닥에 가면 잘못된 관행이 나와 있다”며 “그런 것까지 고치려면 재집권해야 한다”고 했다. 참으로 위대한 정신승리법이다.
 
농지를 유린하는 투기는 헌법적 가치인 ‘경자유전(耕者有田)’을 부정하는 악행(惡行)이다. 헌법 121조는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고 했다. 농지법 6조 1항은 “농지는 자기의 농업 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고 못 박았다. 민심과 헌법을 우습게 아는 정권에 미래는 없다.

 

04.05 착한 대통령 임기 말에 벌어지는 해괴한 일들

 문재인 대통령은 “그동안 신용이 높은 사람은 낮은 이율을 적용받고, 경제적으로 어려워 신용이 낮은 사람들이 높은 이율을 적용받는 구조적 모순이 있었다”고 했다. 법정 최고이자율을 연 24%에서 20%로 인하하는 ‘이자제한법’과 ‘대부업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한 발언이다. 빈자(貧者)를 향한 ‘선한 의도’가 담겼다. 그러나 “시장 원리도 모른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임세은 청와대 부대변인은 “금융의 생태적인 구조를 모순이라고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권력의 도덕적 해이 심각한 수준
이대로 가면 대통령 몰락할 것
기득권 된 진보의 일탈 시정해야
경세제민 향한 노력 기억할 것

대통령의 ‘선의’와 차가운 ‘현실’의 간극은 생각보다 크다. 금융위원회는 “20%를 넘는 금리로 대출받는 208만 명의 이자 부담이 매년 4830억원 경감될 것”이라고 했다. 대신 3만9000명 정도가 ‘금융 난민’이 돼 불법 사금융을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6000여 개 대부업체 상당수가 경영난을 겪고, ‘금융 난민’ 60만 명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미시(微視)경제학의 창시자 알프레드 마셜은 1885년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교수 취임 첫 강의에서 “경제학자는 냉철한 머리(cool head)와 따뜻한 가슴(warm heart)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 영국 빈민의 참상을 목도한 마셜의 결론이었다. 그는 함수와 그래프로 수요·공급과 가격의 관계를, 미적분으로 한계효용을 최초로 규명한 수리경제학자였다. 그가 “세상을 잘 다스려 빈자를 구제한다”는 경제학(Economics)의 동양적 정의(定義)인 경세제민(經世濟民)과 만난 것은 ‘따뜻한 가슴’을 가졌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선의는 마셜의 ‘따뜻한 가슴’과 통한다. 현실을 오차 없이 파악하고 접근했을 때 실현된다. 그런데 정부는 현실 진단에 실패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부동산 정책이다. 인간의 꿈틀거리는 욕망이 살아 숨쉬는 시장을 향해 공중투하한 24번의 규제 폭탄은 ‘벼락 거지’를 양산(量産)했다. 그러고도 지난해 “문 정부 들어 집값은 11%가 올랐다”(김현미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며 엉터리 통계를 꺼냈다. 무능했다. 여기에 ‘LH 사태’까지 터지면서 부패가 죄목에 추가됐고, 민심은 정권을 떠났다.
 
청와대에는 민심을 파악하고 권력 실세의 전횡을 감시하는 사정(司正) 기능이 있다. 박정희 정권 때 탄생했다. 1970년 신민당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춘천 유세 현장에 갔던 ‘직보라인’ 이건개 서울시경국장이 경쟁자이기도 한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김 후보가 정권의 부정부패를 공격했는데, 이를 점검하는 사정실을 만들자고 건의했다. 대통령은 즉시 채택했다. 이건개는 “청와대 사정 기능은 건국 이후 최고의 연설가 김대중 때문에 만들어졌다”고 했다.
 
박정희는 직보라인에게 “내가 잘한다는 얘기는 귀가 닳도록 듣고 있다. 내 잘못과 정부의 잘못, 내 주변 핵심 권력 참모들이 잘못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수시로 얘기해 달라”고 했다. 이토록 냉철한 박정희도 임기 말에는 부하인 차지철 경호실장이 민심을 차단하는 바람에 부마사태의 심각성도 모른 채 10·26 사태를 맞았다(『불멸의 본질, 위대한 국가의 길』).
 
박근혜 전 대통령도 대통령과 친족, 핵심 참모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특별감찰관 제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동생 박근령 사기사건과 우병우 스캔들을 조사한 직후 내쳤다. 몰락의 시발점이었다. 문 정권에서는 임명조차 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은) 임명절차를 진행하고 기능을 회복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는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의 발표는 허언(虛言)이 됐다.
 
문 대통령 임기 말에 해괴한 일들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 집값은 치솟고, 코로나19 백신 접종 속도는 세계 111위(통계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타 1일 발표)로 주저앉았다. 마땅히 부동산과 방역 대책에 올인해야 할 시점이다. 그런데 권력으로 향하는 수사를 차단하기 위해 검찰수사권을 박탈하려다 윤석열 총장 사퇴를 초래했다. 정권 실세들은 대법원에서 뇌물죄가 확정된 한명숙 전 총리 구명에 정신이 없다.
 
설훈 민주당 의원 등 범여권 의원 73명은 “민주화 유공자 배우자와 자녀의 교육·취업 등을 지원하자”는 법안을 발의했다가 “특혜 세습”이라는 거센 항의를 받았다. 문 대통령은 퇴임 후 거처할 1800평 사저를 마련하려고 농지를 형질변경했고,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포함한 실세들은 부동산 거래로 사익을 취하다 들통났다.
 
권력의 도덕적 해이가 위험 수준이다. 이대로 가면 대통령은 불가역적 몰락의 순간을 맞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이라고 칭송했던 민주당의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조차도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은 갈수록 고립될 것이다.
 
진보정권 들어 사회적 약자의 삶은 악화됐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기득권이 된 진보의 오만을 반성해야 한다. 그래야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의 균형에 도달하게 된다. 선의를 지키면서 경세제민을 위해 노력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수 있다.

 

04.19 이재용 부회장에게 나라 위해 기여할 기회를 주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천금 같은 기회를 놓쳤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주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대책 화상회의를 열었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브라이언 디스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주재하고 알파벳·삼성전자·대만 TSMC 등 19개 글로벌 기업 CEO를 초청했다. 바이든은 “우리는 다시 세계를 주도할 것”이라며 중국 견제 의지를 분명히 했다. 수감 중인 이재용 부회장이 참석하지 못한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바이든·트럼프 회의 불참은 손실
리더십 없는 경제전쟁 승산 없어
세계 반도체 강국 도약하려면
문 대통령, 사면·복권 결단 내려야

2016년 12월에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테크 서밋을 열고 이 부회장을 초청했지만 국정농단 수사로 출국금지돼 불참했다. 애플의 팀 쿡, 알파벳의 에릭 슈밋,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등 14명의 CEO가 참석했다.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던 피터 틸 페이팔 창업자가 참석자를 정했다고 한다. 그는 이 부회장 글로벌 인맥의 일원이다.
 
펜스 부통령 당선인, 프리버스 비서실장 내정자, 윌버 로스 상무장관 내정자, 트럼프의 세 자녀와 사위 쿠슈너 등 최측근들도 모두 참석했다. 트럼프는 “미국에 투자하고 일자리를 늘려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도울 일이 있으면 어떤 것이든 하겠다”며 “언제든 내게 바로 전화하라”고도 했다. 유일한 외국 기업인인 이 부회장이 참석했다면 한국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의 메신저 역할도 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에는 전면전 대신 총성 없는 경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경쟁국은 기업과 정부가 합심해 싸우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주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반도체 수퍼사이클을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삼아 종합 반도체 강국 도약을 강력히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바이든의 화상회의를 의식했을 것이다.
 
한국은 ‘반도체 전쟁’의 한복판에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분야 세계 1, 2위다. 파운드리(위탁생산) 분야의 압도적 1위(점유율 56%)인 대만의 TSMC를 상대로 삼성전자(18%)가 도전장을 던졌다. 질주하는 중국에 맞선 한국이 마지막 기술 우위를 지키고 있는 분야가 반도체다. 미국이 중국을 아프게 때리는 지금이 한국 기업에는 한숨 돌릴 기회다. 여기서마저 밀리면 한국 경제는 끝장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이 부회장의 부재(不在)는 뼈아프다.
 
한국식 재벌제도에는 정경유착과 황제경영이라는 부끄러운 흔적이 남아 있다. 비판받아 마땅하고 언젠가는 지워질 것이다. 하지만 책임과 권한을 갖고 신속하게 결정을 내리고 과감하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존재하는 장점을 굳이 사장(死藏)시킬 필요는 없다. 한국 경제가 생사의 기로에 선 지금,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에는 통 큰 결정을 내릴 리더십이 절실하다.
 
이 부회장은 복역기간을 다 채우고 5년간 취업이 제한되는 2027년까지는 경영 복귀가 불가능하다.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도 모른다. 미국의 반도체 개발과 설계 능력은 세계 최고지만 생산 규모는 세계 생산량의 12%에 불과하다. 그런 미국이 15%를 점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1위인 대만(22%)과 한 배를 탔다. 대만은 최대 고객인 중국 화웨이와 거래를 끊었다. 반도체는 산업과 군사 전 분야에서 핵심이기 때문에 미·중 격돌은 피할 수 없다.
 
이런데도 삼성전자(21%)는 20조원 규모의 미국 파운드리 공장 증설 계획도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리더십 부재로 자칫하면 시장과 기술을 모두 잃을 수 있다. 그때는 중국이 우리를 속국으로 취급할 것이다. 그래도 좋은가.
 
한국 경제에 불이 났다면 비상구가 필요하다. 이 부회장이 사면·복권돼 경영 일선에 복귀하는 게 최선의 해법이다. 그래야 ‘총성 없는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손경식 경총 회장 등 경제5단체장도 “한국이 반도체 강국인데 그 위치를 빼앗기고 있다”며 사면을 요청했다.
 
‘재벌 3세 이재용’에게 특혜를 주자는 것이 아니다. 허물을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가 국가를 위해 글로벌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그러면 겉돌기만 했던 미국과의 관계도 회복되고 “한국이 중국에 기울었다”는 불만도 잠재울 수 있다. 정부는 중국의 압력에 당당하게 버텨주면 된다. 그러면 비로소 중국이 우리를 제대로 대접하게 된다. 미·중 대결 속에서 경제와 안보를 확고하게 지키는 길이다.
 
이 부회장은 승계 과정에서의 허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제 아이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말 그대로 준법경영을 실천하는 중이다. 어떤 뜨거운 맹세와 가혹한 징벌이 더 필요할까. 문 대통령은 2년 전 삼성전자 공장에 가서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성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이 부회장의 등을 두드렸다. 약속을 지키려면 그를 사면·복권하면 된다.
 
문 대통령은 선악 이분법이 아닌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으로 판단해야 한다. 물색없는 원칙론자에게 휘둘린다면 시정(市井)의 범부(凡夫)와 무엇이 다른가. 모두를 위해 그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

 

05.17 ‘조국’ 사과 없는 문 정권 혹독한 대가 치른다

민주당 초선의원들이 재·보궐 선거 참패 뒤 초청한 2030 청년들은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민주당이 촛불집회 대상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민심 이반의 시발점은 ‘조국 사태’였다. 문재인 정권의 공정과 정의가 허위였다는 집단적 각성은 ‘윤석열 현상’을 불렀고, 차기 대선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국민의힘은 박근혜 탄핵 사과
광주 5·18 참배로 극우 탈색 시도
조국 지키려 공정 팽개친 민주당
반성 없는 재집권 정의롭지 않아

국민의힘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사과했다. 광주 5·18민주묘지를 참배해 극우 태극기 이미지 탈색을 시작했다. 올해 추모제에 정운천·성일종 의원이 처음으로 공식 초청을 받았다. 광주가 마음을 열었다. ‘무릎 사과’를 한 김종인의 힘이다. 민주당에서는 조국 사태에 대한 문제제기가 강성 친문 지지층의 공격으로 봉쇄됐다. 이런 정당의 정권 재창출은 정의롭지 않다.
 
조국은 정권 실세인 586그룹의 핵심이다. 586은 대체로 북한에 포용적이고, 친중(親中)·반미(反美)·반일(反日)이다. 군부독재와 반공보수에 저항했던 공통의 경험과 유대로 하나가 됐다. 조국이 반일 민족주의를 격발하기 위해 죽창가를 소환한 것은 특유의 집단정서를 대변한 것이다. 청년기의 분노와 진보적 세계관은 공동체 전진의 에너지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386이 586이 됐는데도 사고가 폐쇄회로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한 세기 전 자본주의 성지(聖地) 미국에서는 볼셰비키혁명 이후의 소련 사회주의에 대한 기대가 넘쳤다. 혁명 10년이 되던 1927년에는 학자·언론인·노동계 인사들이 시찰에 나서 트로츠키와 스탈린을 만났다. 이구동성으로 “소련의 실험은 성공적”이라고 했다. 경제논평가인 스튜어트 체이스는 “미국이 자유시장 모델과 결별해야 한다”며 “러시아가 모든 실질적인 목적의 경제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그 3년 전 소련에 다녀온 진보주의자 링컨 스테펀스는 “나는 미래에 다녀왔고 이는 성공적이었다”며 “신세계의 아침을 지켜보며 인생의 황혼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시찰단 멤버들은 워싱턴과 시카고·맨해튼의 사교계에서 환대받았다. 뉴욕타임스에는 거의 매일 소련을 동경하는 기사가 실렸다.
 
컬럼비아대학의 렉스퍼드 터그웰, 시카고대학의 폴 더글러스 교수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경제 브레인으로 영입됐다. 터그웰은 1934년 농림부 차관이 돼 소련의 집단농장을 미국에 이식시켰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를 표지 인물로 선정했다.(『잊혀진 사람』 애미티 슐래스)
 
루스벨트는 대공황이라는 초유의 위기 속에서 몰락하는 자본주의를 살리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하고, 큰 정부와 복지 확대를 추진하는 뉴딜에 사활을 걸었다. 이 과정에서 좌파인 터그웰의 경험과 문제의식을 활용했다. 동시에 거부(巨富)인 조셉 케네디를 증권거래위원회(SEC) 초대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존 F 케네디의 아버지인 조셉 케네디는 20대에 은행장이 됐고, 채권 투자로 큰 돈을 번 인물이다.
 
여론은 “루스벨트가 여우에게 암탉 우리를 지키게 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주식 매매의 편법을 모두 알고 있었기에 적임자라고 확신했다. 기대한 대로 조셉 케네디는 1년반 동안 수백 건의 불공정 거래에 대한 기소를 의뢰했다. ‘투데이’는 “케네디와 SEC의 출범으로 미국의 금융이 법의 지배를 받게 됐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루스벨트가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하지만 실은 많이 다르다. 루스벨트는 “밑바닥의 잊힌 사람에게 다시 한번 희망을 주자”며 취약계층을 위한 진보적 국가 개조를 추진했다. 연방대법원의 끝없는 위헌 판결에도 굴하지 않았고, 필사적으로 국민과 소통했다. 전무후무한 4연임을 하면서 대공황을 극복하고 미·영·소 대동맹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미국을 세계 최고의 나라로 만들었다.
 
반면에 문 대통령은 “일자리를 지키는 게 국난 극복의 핵심 과제”라고 했다. 한국판 뉴딜은 그저 돈을 뿌려 일자리를 만드는 평범한 프로젝트가 됐다. 586의 좁은 세계관에 의존하면서 국민·전문가와 불통했기 때문이다. 586의 상징인 조국은 장관후보자 사퇴를 권유받자 “나는 홀몸이 아니다”며 거부했다. 대통령은 아직도 조국과 한몸인가.
 
‘조국 지키기’의 명분이었던 검찰개혁의 종착역은 공수처 설치다. 그런데 처음부터 길을 잃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해직교사 특채 의혹을 1호 수사로 정했다. 이것이 거악(巨惡) 척결인가. 검찰개혁은 정권 실세의 비리 수사를 차단하기 위한 위장막이었던가.
 
문 정권 내리막길의 출발점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공정과 정의를 내팽겨친 초현실적인 장면이다. 조국은 “당시 존재했던 법과 제도를 따랐다 하더라도 그 제도에 접근할 수 없었던 많은 국민과 청년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말았다. 기존의 법과 제도를 따르는 것이 기득권 유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고 ‘사과’했다. 불법을 부인한 궤변이다.
 
바보 취급을 당한 국민은 허탈하다. ‘조국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권이 통회(痛悔)하지 않으면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이다.

 

05.31 또 미국에 버림받고 중국에 무시당할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마친 뒤 “정말 극진히 대접받았다”고 했다. 양국은 한·미 동맹의 영역을 군사·안보에서 경제·기술로 확장했다. 세계 최강국이 우리를 환대한 것은 좋은 일이다.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분야에서 44조원을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기업의 파워 덕분이다. 하지만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황제 대접은 푸대접으로 바뀔 것이다. 역사의 상처가 실증하고 있다. 

‘극진 대접’이 ‘푸대접’ 될 수 있어
우리가 잘살고 강해지는 게 살길
양보 불가의 가치·전략 준비해야
강대국 눈치 보는 게 외교 아니다

우리가 미국과 최초로 수교한 것은 139년 전인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면서부터다. 조선은 “미국이 열강의 침략을 저지하고 보호해 줄 것”으로 믿고 ‘연미(聯美)’ 노선을 결정했다. 고종은 미국을 “대인배의 나라”라고 표현했다. 조약 1조는 어느 한 나라가 제3국으로부터 ‘불공경모(不公輕侮)’, 즉 부당한 처사나 모욕 또는 위협을 당했을 경우에는 다른 일방이 중재에 나서는 조항이다. 그러나 미국은 1905년 일본이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만들 때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일본이 묵인하는 조건으로 양해했다. 조약은 휴지 조각이 됐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결과였다.
 
1949년에는 한국의 애소(哀訴)에도 불구하고 7만 명의 미 육군 24군단을 전원 철수시켰다. 북한은 1년 뒤 침략전쟁을 일으켰다. 트루먼 행정부는 1951년 5월 결정한 NSC 48/5(한국전쟁 발발 이후의 미국의 아시아 정책)와 12월의 NSC 118/2(정전협상에 임하는 지침)에 의해 일본·필리핀·호주·뉴질랜드와 달리 한국은 미국의 방위동맹 대상국에서 제외했다. 북한·중공의 침략에 목숨 걸고 싸워 한국을 지켜놓고 다시 버리기로 한 것이다. 힘없는 계륵(鷄肋) 한국에 대한 강대국의 이율배반적 결정이었다.
 
아무 대책 없이 떠나가려는 미국을 상대로 상호방위조약을 쟁취해 한·미 동맹을 성사시킨 인물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다. 미국은 이승만을 물러나게 하고 고분고분한 장면을 2대 대통령으로 취임시키려고 했다(『미워할 수 없는 우리들의 대통령』 이영일). 워싱턴에서는 이승만 정부 전복을 위한 에버레디(Everready) 계획을 놓고 국무부, 합참, 백악관, 국방부, CIA 등 5개 부서 합동회의까지 열렸다(『한미동맹의 탄생 비화』 남시욱).
 
이승만은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명예로운 휴전’에 ‘단독 북진 통일’로 맞서면서 반공포로 2만7000명을 기습적으로 석방한다. 아이젠하워는 백악관 비상회의를 소집하고 “이승만은 우리의 적”이라고 했고, 덜레스 국무장관은 “이승만이 우리 등에 칼을 꽂았다”고 성토했다. 훗날 마오쩌둥은 “정작 무서운 적은 미국이 아니라 변화무쌍한 이승만이었다”고 했다. 한국은 ‘괴뢰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났다. 이승만은 미국 대통령 특사 월터 로버트슨에게 “조선과 체결했던 조미수호통상조약을 헌신짝처럼 버린 미국이 해방 후 한반도를 두동강내더니 지금 우리에게 일방적 휴전을 강요하는 상황은 또 하나의 팔아넘기기(sell out)”라고 비난했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은 미국의 로버트 슈펠트와 청나라 이홍장의 협상 결과다. 조선이 협상을 청나라에 위임한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이홍장은 “조선은 청의 속국이다”는 문장을 조약 1조에 넣으려고 했다. 슈펠트는 강력히 반대했다. 조선에서 미국에 보내는 외교문서에 조선이 중국의 속방임을 표시하는 것으로 타협이 됐다. 나라 꼴이 우습게 됐다. 미국이 우리를 배신했다면 중국은 무시한 셈이다.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에게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한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미국은 자기가 선한 리더이며 세상을 향해 빛을 내리비추는 ‘신의 도성(City of God)’이라는 기독교적 세계관의 나라다(『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 김준형). 하지만 이용가치가 없을 때는 가차없이 버렸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뉴욕타임스 기자 밥 우드워드는 “트럼프가 주한미군을 빼라고 했다”고 기록했다. ‘주한미군 철수’는 미국에서 꺼지지 않은 불씨다.
 
중국은 북핵에 대비하는 한국의 자위적 조치인 사드 배치에 대해 무차별 경제보복을 한 나라다. 국빈 방문한 문 대통령에게 ‘혼밥’ 모욕을 줬다. 미국이 요청한 사드 배치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도 미국은 침묵했다. 한·미 동맹 중시 노선을 더 분명히 할 때 중국의 거친 보복을 미국이 막아줄 거라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러고도 동맹국이 맞는가.
 
믿을 건 우리 자신뿐이다. 잘살고 강해져야 한다. 이승만처럼 국익을 위해 사활을 걸겠다는 결기가 있어야 한다. 적당히 미국에 잘 보이고, 중국에 미움받지 않는 것이 외교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우리는 경제 강국이고, 전 세계가 인정하는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국가다.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가치와 정체성,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도대체 누구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호랑이가 되려면 먼저 전모(全貌)가 머릿속에 선명하게 존재해야 한다. 줏대 없이 휘둘리면 야성(野性)이 실종된 고양이만 남는다. 치욕의 역사를 소환한다. 우리 하기에 달려 있다. 어떤 강대국도 우리를 끝까지 지켜줄 수는 없다.

 

06.14 ‘이준석 현상’의 운명은 이준석에게 달렸다

보수의 얼굴이 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세상을 흔들고 있다. 기성 정치에 환멸을 느낀 대중, 특히 2030 ‘MZ세대’는 원내 경험이 없는 36세 정치인의 돌직구에 열광하고 있다. 그는 “공정과 경쟁이 보수의 핵심 가치”라고 선언했다. 평범한 언술(言述)인 것 같지만 조국의 불공정에 포박된 현 정권을 정조준한 승부수다.   

조국 불공정이 ‘이준석 현상’ 불러
이대로라면 민주당엔 미래 없어
이준석, 앙시앵 레짐에 선전포고
나의 방식 고집 말고 변해야 성공

‘박근혜 키즈’인 그는 ‘보수의 심장’ 대구에서 “나를 영입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감사한다. 그러나 탄핵은 정당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강심장의 정면승부로 지옥 같은 ‘탄핵의 늪’을 통과했다. 대중은 기존의 정치 문법을 거부하고 겁없이 덤비는 이준석에게서 강렬한 유대감과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고 있다.
 
그는 앙시앵 레짐으로 전락한 주류 정치에 홀로 선전포고했다. 정치적 메시아를 열망하는 대중들을 사로잡았다. ‘이준석 현상’을 스스로 창조했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유럽의 봉건질서를 해체한 나폴레옹에게는 “마상(馬上)의 세계정신(Weltgeist)”이라는 헌사(獻辭)가 주어졌다. 예나의 36세 철학자 헤겔은 한국의 젊은 전사(戰士)에게도 같은 축복을 내릴 것인가.
 
국민의힘은 지도부까지 확 달라졌다. 6인 가운데 30대와 여성이 3명씩이다. 탄핵당한 폐가(廢家)에서 다원적 유럽좌파 정당의 면모가 만개(滿開)했다. 586 중심 무풍지대의 꼰대정당 민주당은 ‘클리셰(cliché·진부함)’와 동의어가 됐다. ‘이준석 현상’의 힘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뿐 아니라 우리나라가 변화하는 조짐”이라고 축하했다. 진심이라면 이준석과 윤석열에게 ‘공정’이라는 신형 무기를 쥐어준 조국의 불공정과 위선을 옹호한 데 대해 사과해야 한다. 4·7 재·보선 참패 이후 30대 초선 5인과 송영길 대표의 반성·사과를 조롱한 강성 친문의 민심 역주행도 퇴출시켜야 한다. ‘조국의 시간’이 계속되는 한 민주당의 미래는 없다.
 
이준석의 능력주의에 대한 불편한 시선이 존재한다. 그는 저서 『공정한 경쟁』에서 이렇게 말한다. “미국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는 자유다. 정글에는 나름의 법칙이 있다. 약육강식이다. 강자가 다 먹는 세상이다. 미국은 이런 정글의 법칙, 약육강식의 원리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는다. 미국식 자유의 가치를 사회 전반에 받아들이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사회적 약자를 좌절시키는 ‘정글의 법칙’을 바로잡기 위해 총력전에 나선 현실을 오독(誤讀)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정글 보수주의자가 보수혁신의 아이콘, 세대교체의 기수란 말인가”(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라는 공격을 받는다. 합당한 비판이다.
 
하지만 대중이 선택한 것은 ‘이준석’이 아니라 ‘이준석 현상’이었다. 대중의 열광은 그의 극단적 능력주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냉소, 여성·청년·호남 할당제 폐지에 대한 지지가 아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민심과 담을 쌓은 거대한 정치카르텔의 무능과 부도덕에 대한 분노와 심판을 누군가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피가 끓었던 것이다. 이걸 혼동하면 이준석도 실패하고, 보수야당도 혁신의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김영삼·김대중·이철승은 1970년 ‘40대 기수론’을 기치로 신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 주류 카르텔의 유진산 당수는 “구상유취(口尙乳臭)의 정치적 미성년자들”이라고 평가절하했다(『김대중 회고록』). 시대는 40대 기수의 편이었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민주화의 구심점이 됐고, 목숨을 건 투쟁 끝에 차례로 집권했다. 이준석이 한 시대를 거머쥐려면 백팩에 공유자전거 따릉이로 출근하는 스타일의 변화만으로는 부족하다. 치열함으로 허전한 정치적 실체를 채워야 한다.
 
이성복 시인은 “방법을 가진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고 했다. 철학자 강신주는 이렇게 해석한다. “(그런 사랑은) 그와 무관하게 결정된 사랑하는 방법을 그에게 실험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불행히도 이때 사랑은 폭력으로 변질되고 마는 것이 아닐까. 방법을 가진 삶은 삶이 아니다. 미래의 삶을 현재에만 타당한 방법으로 통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방법을 가진 삶은 박제된 삶일 수밖에 없다. 이런 삶에서는 새로운 타자와 마주쳐서 자신이 변화되는 일은 생길 수 없다.”(『김수영을 위하여』 강신주)
 
몰락한 정치의 공간에 선 이단아(異端兒)에게 거는 대중의 기대가 크다. 그는 당선 수락연설에서 “세상을 바꾸는 과정에 동참해 관성과 고정관념을 깨달아라”고 했다. 진심이라면 시인의 마음, 철학자의 정신과 만날 것이다.
 
나의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스스로를 유연하게 바꿔 나갈 때 이 지긋지긋한 무능과 부도덕의 아포리아에서 한국정치를 구원할 수 있다. ‘이준석 현상’이 분열과 적대를 청산하고 통합의 광장으로 달려오라는 시대정신과 만나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정글의 법칙’을 숭배하면서 정당한 비판에 귀를 닫는다면 ‘이준석’ 현상은 소멸될 것이다. 활시위를 떠난 ‘이준석 현상’의 운명은 이준석에게 달려 있다.

 

06.28 미국은 천사도 악마도 아니다

코미디언 자니 윤은 1970년대에 미국 TV 토크쇼의 전설 ‘자니 카슨 쇼’에 출연했다. 데뷔 무대의 ‘필살기’는 6·25였다. 한국은 몰라도 한국전쟁은 모두가 알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온 식구가 쫄쫄 굶은 채 단칸방에 누워 있는데 밤중에 도둑이 들어왔다. 얼씨구나하고 일어나 도둑을 털었다.” 미국 시청자들은 폭소를 터뜨렸지만 재미교포들은 눈물을 흘렸다.     

6·25 때 중공에 대패…철군 검토
이젠 중국 견제하려 한국 잘 대우
가치 떨어지면 결별 통보 각오해야
기업가 ‘야성적 충동’ 존중이 살길

피아(彼我) 560만 명이 죽고 다친 3년여의 ‘소규모 세계대전’이 끝났지만 한국은 1970년대 초까지 미국 원조에 의존하는 최빈국이었다. 변변한 산업도 없었다. 1961년 5·16 쿠데타의 주역 박정희는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국가 예산의 52%, 국방예산의 72.4%를 미국의 원조에 의존했다”고 적었다. 원조의 권부(權府) 유솜(USOM, 주한미국경제협조처)에는 수백 명의 미국인이 상주하면서 가난한 신생국의 돈줄을 관리했다.  
 
그런 한국의 대통령이 2021년 미국과 유럽에서 칙사 대접을 받고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턱 밑까지 따라온 중국의 첨단산업을 따돌리기 위해 반도체·자동차·배터리 제조 강국인 한국의 협조가 절실하다. 이재용·정의선·최태원·구광모가 실질적인 구세주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과 한 배를 탔는데도 중국은 보복하지 않았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한국이 반도체 수출을 멈추면 중국 내 IT 조립 산업도 멈춰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파란 눈의 한국인’ 제프리 존스 전 주한 미국 상공회의소 회장은 한 모임에서 한국 경제의 발전상을 이렇게 정리했다. “전 세계에서 여섯 개 나라가 자체 기술로 자동차를 만든다. 세 나라(독일·일본·이탈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이다. 두 나라(미국·영국)는 전승국이다. 한 나라는 나라도 아니었다. 바로 대한민국이다.”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한국은 2차대전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에 모두 성공한 유일한 국가다. 지옥을 천국으로 바꾼 기적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당사자만 잊고 있다.
 
한국을 살려준 은인은 미국이다. 2차대전 직후 미군 병사들은 듣도 보도 못한 한국에 와서 38선 이남의 일본군 23만 명을 무장해제시켰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을 위험에도 빠뜨렸다. “한국은 전략적 가치가 없다”며 미군 5만7000명을 1949년 6월 전원 철수시켰다. 소련과의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의 전력 손실을 막기 위해 일본으로 보낸 것이다(『6·25전쟁과 미국』 남시욱). 김일성이 스탈린·마오쩌둥과 합작해 남침하는 데 멍석을 깔아준 셈이다. 그해 11월 맥아더 사령부의 G-2(정보과)에 배속된 슈나벨 대위는 “극동 정세 설명회에 참석했는데 브리핑 장교는 내년 여름 북한이 남침해 남한을 정복할 것이라는 느낌을 말했다”고 했다. 미 육군부는 “북한이 남침해도 한국을 군사력으로 지원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막상 1950년 북한이 남침하자 의외로 트루먼 대통령과 애치슨 국무장관,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이 닷새 만에 미국의 지상군 파병을 결정했다. 미국은 178만9000명의 대병력을 한국에 보냈다. 전사·사망 3만6574명, 부상 10만3284명, 실종 7578명, 포로 7245명이라는 희생을 감내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미국 기자들로부터 “중요하지도 않다고 생각해 포기했던 나라의 전쟁에 어떻게 그렇게 빨리 개입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병 주고 약 주는 미국의 모순적인 결정은 지금도 납득하기 어렵다.
 
그뿐이 아니다. 같은해 12월 22일 합참에서 열린 국무·국방 수뇌부 회의에서는 “중국의 의도가 유엔군을 한국에서 몰아내는 것이 명백하다면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미군을 철수시키는 결정을 내리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압록강을 건너와 산속에 숨어 있던 중공군  30만 명의 존재를 모르고 맥아더가 1950년 11월 크리스마스 대공세를 벌이다 대패한 직후였다. 트루먼의 반대로 실행되지 않았지만 “한국을 포기하자”는 비정한 결론이었다.
 
당시 서울은 “미국이 한국을 중국에 팔아넘기려고 한다”는 소문이 돌아 공황 상태였다. 합참은 “미국 본토에서 병력을 증강해 달라”는 맥아더의 건의도 거부했다. “일본의 안전이 위험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태평양 건너편의 미국은 한국에 털끝만 한 영토적 야심도 없다. 중국·일본·러시아와는 다르다. 이 땅에 자유와 민주주의·시장경제의 가치를 심었고, 침략자들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었다. 그러나 미국은 천사도, 악마도 아니다. 자기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언제든 우리를 버릴 수 있다. 이를 탓할 수도 없다.
 
현대의 정주영, 삼성의 이건희는 쫄닥 망할 각오를 하고 승부수를 던진 참 기업인이다. 케인스가 『일반이론』에서 강조한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을 발휘해 잿더미 위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을 만들어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축복은 국민의 민주화 열정과 기업가들의 헌신 덕분이다. 지금처럼 미국과 세계로부터 계속 존중받으려면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통합적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할 것이다.

 

07.12 이재명 ‘여배우’ 윤석열 ‘장모·아내’…깃발은 안 보인다

대통령 선거(2022년 3월 9일)가 여덟 달 앞으로 다가왔다. 스무 명이 넘는 후보가 꿈틀거리고 있다. 새로운 리더십을 발굴하는 대선은 공동체의 항로(航路)를 결정하고 기운을 채워넣는 민주주의 특유의 페스티벌이다. 그런데 지금의 양상은 실망스럽다. 선두인 이재명·윤석열도, 다른 후보들도 문재인을 넘어설 가치를 내놓지 못했다. ‘여배우 스캔들’ ‘장모·아내 의혹’ 대응은 낙제점이다.      

당연한 검증인데 비상식적 대응
문재인 넘어설 가치도 제시 못해
통합적 국정운영자가 진정한 거인
긴 분열의 시대에 종지부 찍을 것

이재명은 “바지 한 번 더 내릴까요”라고 했다. 민주당 경선은 ‘포르노 경선’이 됐다. 윤석열은 장모가 요양급여 부정 수급 혐의로 징역 3년의 실형을 받은 데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누구나 동등한 수사와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먼 산 보고 남 얘기하듯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했다. 다른 후보들도 심장을 뛰게 하는 한 방이 없었다. 이대로라면 대통령감이 없는 상태에서 선거를 치러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이 민심과 불화하고 몰락하는 장면을 목격해야 할 판이다. 완벽한 부조리극이다.
 
이승만·박정희·김대중은 사형수였다. 몰락하는 왕조의 공화주의자 이승만은 반역죄로, 남로당원 장교 박정희는 여순반란사건으로, 비타협의 정치인 김대중은 전두환 신군부가 조작한 내란음모 혐의로 처형될 뻔했다. 김대중은 “밖에서 발자국 소리만 나도 깜짝깜짝 놀랐다”고 자서전에 적었다. 김영삼은 목숨을 건 23일간의 단식으로 전두환 정권과 대결했다. 가혹한 운명과 직면했지만 물러서지 않은 거인들이었다. 결국 이승만은 건국, 박정희는 산업화, 김영삼·김대중은 민주화를 국민과 함께 성취했다.
 
노태우는 반공(反共)이 몸에 밴 군인 출신이지만 북방외교로 중국·소련과 수교하고 남북기본합의서를 만들었으며 최초의 통일 방안을 여야 만장일치의 합의로 탄생시켰다. 수구·냉전의 틀에 갇힌 보수(保守)를 보수(補修)해 남남통합을 이뤄낸 선구자다. 5인의 대통령에게는 과(過)도 있지만 그래도 공(功)이 더 많았다.
 
양김(兩金) 이후로는 세계 일류의 경제력과 민도에 어울리는 대통령이 나오지 않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 제왕적 대통령들이 국내외의 파고를 감당하지 못해 국민을 힘들게 했다. 하지만 애타게 기다린다고 저 광야에서 백마를 탄 초인(超人)이 홀연히 나타날 리 없다. 지금 우리 눈앞에서 각축하는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이 청와대의 새 주인이 될 것이다.
 
지금 유권자들에겐 최선이 아닌 차선의 선택밖에 없다. 후보들은 자신의 인간적·정치적 실체와 견해를 숨김없이 드러내야 한다. 유력 후보인 이재명·윤석열은 어떤 혹독한 검증도 달게 받아야 한다. 지금처럼 질문자를 공격하거나 딴청을 부리면서 답변을 회피하는 태도는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재명은 ‘여배우 스캔들’에 대해 먼저 사실 여부를 솔직히 밝히고 거취를 국민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윤석열이 아내 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되자 측근을 통해 이재명·정세균·추미애 논문 표절 의혹을 거론하는 것은 순리(順理)가 아니다. 장모 문제도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겸허하게 국민의 판단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스무 명이 넘는 후보 중 누구도 “이런 나라를 만들겠다”는 선명한 메시지를 발신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의 친문(親文) 이낙연·정세균은 국민이 분노하는 부동산 실정(失政)의 해법으로 ‘시장에 맞서는 규제 위주의 대책’을 내놓았다. 이재명도 “대통령이 말씀하신 데 모든 답이 들어 있다”고 했다. 문재인을 넘어서려는 용기와 소신이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끄는 반도체 산업은 최후의 경제·안보 보루다. 그런데 미국·중국·대만·일본의 총공세에 맞설 수 있도록 과감하게 규제를 풀겠다는 목소리는 내지 않는다. 그저 골수 지지층의 눈치나 살피고 있다.
 
야권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반(反)문재인”만 반복할 뿐 대안의 깃발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현 정권의 각종 실정(失政)은 폐기하더라도 한반도 평화 정착에는 뜻을 함께한다는 메시지를 낸 사람은 전무(全無)하다. 박정희가 김일성과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의 7·4 남북 공동선언을 했고, 노태우가 김대중·노무현·문재인에 앞서 남북관계 개선의 초석을 깔았던 보수의 전사(前史)를 잊고 퇴행하고 있다. 치열한 고민도 없이 로또복권에 당첨돼 정권을 잡고 싶은 욕심만 가득하다.
 
이대로 가면 공멸한다. 대선 과정에서 여야, 진보·보수의 협력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박정희가 1964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다 곤경에 처했을 때 김대중은 ‘여당의 첩자’로 몰리면서도 공개적으로 찬성했다. “경제대국으로 무섭게 성장하는 일본을 활용해야 한다”는 논리는 진영을 초월한 실사구시의 탁견(卓見)이었다.
 
레드 콤플렉스에서 자유로운 보수가 남북관계 개선에 앞장서고, 노동친화적인 진보가 노동개혁에 앞장선다면 통합의 정치가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유연하고 협력적인 자세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후보가 나올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긴 분열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는 진정한 거인이 될 것이다. 

 

07.26 수준 미달 대선주자 심판할 미래 세대의 반란

역사가 오래된 제약회사의 CEO가 들려준 얘기다. 영업직 사원을 뽑는데 명문대 출신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의 지원자에게 “정말 다닐 생각인가”라고 물었더니 “합격만 시켜주시면 뼈를 묻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요즘 젊은이들은 지옥 같은 취업의 관문을 통과한 뒤에는 ‘미친 집값’에 좌절한다. 이러니 연애·결혼이 두렵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세계 최저인 0.84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생산인구 감소가 한국 경제에 코로나19 여파보다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했다.  

2057년에 바닥나는 국민연금
청년들에게는 ‘다단계 금융사기’
미래 없는 과거 타령에 신물난다
유승민 홀로 미래 위해 개혁 공약

부모의 노후 대책인 국민연금도 이들에게는 ‘다단계 금융사기’일 뿐이다. 매달 보험료를 납부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받을 돈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적립금은 2042년 1774조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57년이면 바닥난다. 이창수 차기 한국연금학회 회장은 “미래세대의 반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여야의 유력 대선 주자들은 ‘지금과 다른 미래’를 만드는 데 관심이 없다. ‘과거’는 진흙탕 싸움을 펼칠 익숙한 무대고, 표가 쏟아지는 노다지이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느닷없이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될 당시 이낙연 전 대표가 찬성했다”고 공격했다. 이 전 대표는 “반대표를 던졌다”고 맞섰다. 그러자 정세균 전 총리는 “나는 탄핵을 막기 위해 의장석을 지켰다”고 했다. 17년 전의 정치 지형은 지금과 완전히 달랐다. 이제 와서 누가 누구를 ‘배신자’로 심판하겠다는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인 김경수 경남지사가 4년 전의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 여론 조작은 공론장을 붕괴시키고, 선거 과정에서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교란하는 범죄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사과하지 않았고, 여권 주자들은 김 지사를 감싸고 나섰다. “진실은 끝내 찾을 수 없게 됐다”(이재명 측), “불법적 방식을 동원할 이유도, 의지도 전혀 없었던 선거”(이낙연), “증거우선주의 법 원칙에 위배된다”(정세균), “이해가 안 가고 아쉽다”(김두관), “결백함을 믿는다”(추미애)라고 했다. 자기 성찰과 비판을 이적행위로 보고 적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포위된 요새’ 신드롬에 사로잡혀 있다. 상식과 이성이 거부당한 곳에서 미래는 열리지 않는다.
 
유력한 야권 주자들도 미래를 소환하는 메시지를 발신하지 않는다. 그저 문 정권의 ‘과거’만 때리고 있다. 선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KAIST 원자력공학과 전공 학생, 스타트업 대표, 식당 주인, 부동산 중개업자를 만났다. 메시지는 문 정권 비판 일색이다. 윤 전 총장은 대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에 대해 “송구한 부분도 없지 않다”고 했다. 골수 야당 지지층의 반문(反文) 정서를 의식했다. “탄핵은 정당했다”고 했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난감해졌다. 그는 “탄핵의 강으로 들어가자는 취지의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과거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수록 미래는 멀어진다.
 
그나마 미래를 이야기하는 유력 주자는 이재명 지사다. 청년에게 연 200만원, 국민에게 100만원을 주는 보편적 기본소득을 꺼냈다. 하지만 겨우 용돈 수준을 나눠주는데 연간 예산의 10분의 1인 57조원을 투입해야 한다. 가성비는 낙제점이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차라리 “국민연금 개혁을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유승민 전 의원의 공약에 믿음이 간다. ‘더 내고 덜 받는’ 개혁을 하지 않고 이대로 2057년을 맞으면 연금을 파산시키거나 소득의 30%를 연금 유지용 세금으로 내야 한다. 국민이 부담하는 총 세금이 60%로 치솟는다. 윤석명 한국연금학회장은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지속가능한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인기 없는 공약을 꺼낸 유승민은 미래에 가장 가까이 서 있는 주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을 앞세워 ‘덜 받는 구조’로 국민연금을 개혁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5년 ‘눈덩이’ 적자로 굴러가는 공무원 연금을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개혁했다. 30년간 185조원의 세금을 아끼게 만들었다. 집권당 원내대표로 여야 협상을 이끌었던 사람이 유승민이다. 노무현·박근혜는 지지율 하락을 감수하고 대통령다운 결단을 내렸다. 반면에 문 대통령은 “더 많이 주겠다”는 시대 역행의 공약을 했다. 역사는 누가 공동체의 미래를 지키려 노력했는지 평가할 것이다.
 
경쟁자의 전력(前歷)을 공격하거나 집권세력을 때리는 ‘과거’ 장사는 이제 지긋지긋하다. 백년대계를 생각하고 청년 세대의 아픔까지 살피는 ‘미래’ 경쟁의 문을 열어야 한다. 박근혜를 징벌하기 위해 따져보지도 않고 문재인을 뽑는 식의 선거는 글로벌 시대 한국의 위상에 맞지 않는 자폐적 악습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41년 전 사형선고를 받은 뒤 감옥에서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읽고 정보화를 구상했다. 집권한 뒤 한국을 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의 정보화 강국으로 만들었다. 부끄럽지 않은가. 주자들은 “탄핵” "백제 집권” “혜경궁 김씨” “줄리”의 신물나는 이전투구를 중단하고 각자가 준비한 공동체의 미래를 펼쳐놓기 바란다.

 

08.09 민주당은 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려 하는가

이제는 성인이 된 딸이 유치원생일 때 회사로 편지를 보내왔다. “아빠 밤중에 일찍 들어오세요”라고 삐뚤삐뚤 적었다. 젊은 시절, 기자는 ‘밤에만 오는 손님’이었다. 새벽에 집을 나갔고 자정이 지나야 귀가했다. 예고 없는 사건·사고의 현장은 늘 어수선하다. 정리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발로 뛰고, 눈으로 보고, 물어서 확인한 ‘원초적 팩트’로 승부하는 전쟁터였다. 타사 동업자들에게 패배하면 선배들은 “눈 좀 뜨고 다녀라” “멍청한 것 같다”고 눈을 부라렸다.      

여당 징벌적 언론법 개정은 무리
권력 감시 취재 제동…불의 확산
박종철·최순실 보도 불가능해
약자에게 피해, 민주주의 위축될 것

그래도 정신은 늘 맑았다. 사익(私益)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외롭지만 불의를 감시하는 공익(公益)의 수호자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1974년 닉슨 미국 대통령을 하야시킨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기자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과 2년 전에 만나 대화했다. 70대 후반인 그는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나쁜 악마들이 뭘 숨기고 있을까를 생각한다”고 했다. 한국 기자의 심장도 우드워드처럼 펄떡펄떡 뛰고 있다. 불의(不義)의 단서를 포착했을 때 정의감으로 무장한 기자는 지옥 끝까지 추적해 세상을 바꾼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역사를 만든다.
 
더불어민주당은 징벌적인 언론법 개정을 8월 중에 밀어붙이려 한다. 허위·조작보도에는 피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금을 물리고, 인터넷 기사에 대해 열람 차단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권력과 사회적 강자에 대한 공격적 취재가 위축된다. 불의와 부패가 확산되고 피해는 사회적 약자에게 돌아갈 것이다.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 소장, 김현 전 대한변협 회장 등 법조인들은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률은 민주주의를 위축하는 효과를 수반하기 때문에 그 제한은 필요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고 비판했다.
 
만일 징벌적인 언론법이 존재했다면 지금의 민주당 전성기는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기폭제가 된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박근혜 정권의 비선 국정농단을 폭로한 JTBC 최순실 태블릿 PC 보도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박종철 사건은 1987년 1월 14일 중앙일보 사회부 신성호 기자가 특종 보도했다. 금창태 편집국장 대리가 돌아가는 윤전기를 세우고 정권을 뒤흔들 위험천만한 기사를 밀어넣었다. 전두환 정권은 고문치사를 부인했다.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이두석 사회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기사 중 “검찰이 가혹행위로 인해 숨졌을 가능성에 대해 수사 중”이라는 내용을 문제삼고 “오보에 책임지라”고 압박했다.
 
다행히 동아일보의 남시욱 편집국장, 사회부 황호택·황열헌 기자가 필사적으로 후속 보도에 나섰다. 의사 황적준·오연상, 검사 최환의 위험을 무릅쓴 결단과 양심적 증언이 가세해 사건 전모가 드러날 수 있었다. 징벌적인 언론법이 있었다면 이 사건은 우드워드가 말한 ‘나쁜 악마들’에 의해 성공적으로 은폐됐을 것이다.
 
불편한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일은 언제나 위험하다. 사실로 최종 확인되기 전까지는 압도적인 힘을 지닌 권력과 대결해야 한다. “오직 사실로 말한다”는 기자의식과 ‘공익의 수호자’라는 정의감이 흔들리면 취재는 그걸로 끝이다.
 
여권이 징벌적 언론법 개정을 강행한다면 권력을 겨냥하는 언론의 정의감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공동체의 치명적인 손실이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권력자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나 비판적 여론을 위축시키고자 배상금 청구소송을 남발할 가능성이 불 보듯 뻔하다”고 했다. 이렇게 불온한 카드를 꺼낸 이유는 한 가지다. 언론이 자신들에게 비판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권이 마지막 선을 넘기 전에 숙고할 점이 있다. 소득주도 성장, 부동산, 탈원전…. 어느 정책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내로남불의 조국 사태는 정권의 도덕성까지 흔들었다. 이런데도 언론이 용비어천가를 부른다면 ‘나쁜 악마들’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언론법 개정은 내년 대선과 대통령 퇴임을 앞두고 정권 비판과 국민의 알 권리에 족쇄를 채우기 위한 무리수다. 오영우 문화체육부 1차관도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해 “전례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여권 주자들은 “5배 배상은 약하다. 악의적 가짜뉴스를 내면 망하게 해야 한다”(이재명 경기지사), “현직 기자였으면 환영했을 것”(이낙연 전 대표)이라고 했다.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갈등의 현재화(顯在化)’가 필요하다. 공동체가 당면한 문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할지를 드러내고 논쟁해야 한다. 그런데 여권의 언론법 개정안은 비판적 보도를 봉쇄하기 위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고 한다.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것이다. 언론·출판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21조 위반이다. 권력 비판을 포기하는 순간 언론인은 전체주의 국가의 ‘보도일꾼’으로 전락한다.
 
언론이 권력의 총애를 받는 앵무새가 되면 누구도 진실을 알 수 없다. 미화된 가상현실을 사실로 착각하는 우민(愚民)이 존재할 뿐이다. 민주당은 고통받고 피흘려 민주화를 성취해 놓고 왜 어둠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는가. 

 

08.23 언론탄압법 강행은 문재인 대통령의 진심인가

 여권의 언론중재법 개정 강행의 뿌리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그림자가 있다. 서울 서초동에서 ‘조국 수호’를 외친 사람들은 ‘검찰 개혁’과 ‘언론 개혁’도 요구했다. 이들에겐 조국의 불공정과 일탈은 사소했고, 윤석열 검찰의 철저한 수사와 언론의 비판 보도는 징벌의 대상이었다. 허수아비가 된 공수처 출범으로 요란했던 검찰 개혁은 일단락됐다. 대선을 앞둔 여권은 골수 지지층인 ‘조국 수호’ 세력을 달래고 재집권을 위해 언론 악법의 25일 국회 본회의 처리를 밀어붙이고 있다.

 

‘조국 백서’라는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의 저자 중 김민웅·전우용·최민희는 대표적 진보 지식인이다. 이들은 개혁을 “자기 존재의 조건을 바꾸는 행위”로 규정했다. “예로부터 지배세력 내의 개혁운동가들은 한편으로 자기 존재 자체에게 주어진 혜택을 받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자기 존재를 부정하려는 이율배반적 면모를 보이곤 했다. 이런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를 비난하면 개혁은 불가능하다.” 이들이 드러낸 편향된 사고의 폐쇄회로를 따라가면 비상식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조국의 위선을 비판한 언론은 불경스러운 반개혁 세력이 된다. 그러니 이제 주저없이 언론을 손봐야 하는 것이다. 

 

곡필…언론의 부끄러운 과거지만

‘동굴의 사고’ 벗어나려 늘 노력 중

지금도 표현의 자유 제약 있는데

‘조국 수호’ 위해 언론에 족쇄라니

이들은 마음속으로 “우리가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하고 감옥 갈 때 언론은 무얼 했느냐. 독재정권과 결탁해 단물을 빨지 않았느냐”고 외치고 있을 것이다. 인정할 부분도 있다. 총칼로 집권한 독재자의 보도지침을 거부하지 못했고, 학살자에게 용비어천가를 불렀다. 직필인주(直筆人誅) 곡필천주(曲筆天誅), 바른 말을 하면 사람의 벌을 받고 왜곡하면 하늘의 벌을 받는다는 인과율(因果律)을 잊었다. 부끄럽게 생각한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이 19일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진보 지식인들이 놓친 게 있다. 민주화는 소수 엘리트의 희생에 의해서만 성취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이 미워하는 절대다수의 기자는 1단짜리 기사의 행간에도 진실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 보도는 넥타이 부대가 대학생 시위대에 합류해 “독재 타도” “직선제 쟁취”를 외치게 만들었다. 언론탄압법으로 손발을 묶어야 할 정도로 타락한 집단은 아니다. 나는 정의고, 너는 불의라는 이분법은 받아들일 수 없다.

 

국내외의 역풍에 직면한 여권은 개정안 중 독소조항의 일부를 고쳤다. 그러나 처벌 기준이 되는 고의·중과실 범위, 대상이 되는 허위·조작 보도 개념은 여전히 모호하다. 자의적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기자는 권력 내부에서 벌어지는 비리의 전모를 처음부터 알 도리가 없다. 권력이 초기 단계에서 사실을 숨기고 허위·조작으로 몰아가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자기 검열이 강화되면 언론 자유는 위축될 것이다. 권력의 언론 길들이기가 쉬워지고, 민주주의의 최대 장점인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가 무너질 것이다. 민주화 투쟁을 했다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이런 언론 탄압인가. 국제적인 망신이다.

 

언론은 지금 이 순간도 국민의 알 권리를 지키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K방역의 성과에 도취했고, 국내에서 개발 중인 코로나 치료제를 ‘게임체인저’라고 요란하게 선전했다. 그러나 관건은 백신이었다. 언론의 집요한 추적 보도로 백신 도입을 실기(失期)해 부실한 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드러났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모더나 CEO와 화상 통화를 하고 2021년 4000만 회분의 백신을 공급받기로 했다고 홍보했다. 한국 정부는 미리 서두른 미국·EU와 달리 월별·분기별 공급량을 계약서에 명시하지 않았다. 올해 들어온 물량은 6%에 불과하다.

 

한국의 백신 접종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꼴찌다. 부동산 가격 인상률도 정부가 줄곧 축소해 발표했지만 결국 언론에 의해 허위로 판명됐다. 이래도 언론을 가짜 기사나 쓰는 적대 세력으로 몰아갈 것인가.

 

물론 언론도 수시로 오류와 편향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동굴의 사고’에 갇혀 전체적 맥락과 본질을 놓치지 않았는지 수시로 자문(自問)하고 상호 비판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한계로 문제가 발생하면 혹독하게 자책(自責)하는 것이 기자 사회의 불문율이다.

 

여권은 지금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언론탄압법에 대한 역사의 최종적 심판은 문 대통령을 향할 것이다. 그는 후보 시절 최순실 게이트 때 “언론의 침묵은 국민의 신음”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둥”이라고 선언했다. 그렇다면 언론에 족쇄를 채우려는 악법을 폐기시켜야 할 것이다.

 

한국은 언론의 자유가 유난히 취약한 나라다. 핵으로 무장한 북한과 대치하는 분단국가이며 냉전의 최전선에 서 있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한다. 다른 민주국가와 달리 어쩔 수 없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제약된다. 민·형사상 허위 사실과 명예훼손에 대한 처벌 규정도 존재한다.

 

이런데도 굳이 5배의 손해배상을 물리는 징벌적 언론 악법을 만들어야만 하는 것일까. 민주주의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09.06 文정권 "세계 최초 코로나 청정국가" 환상의 후폭풍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무기인 K방역의 최대 피해자는 650만 자영업자들이다. 뒷골목의 텅 빈 식당과 카페, 치킨집과 노래방에서 한숨과 눈물로 힘든 시절을 견디고 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밀려오는 임대료, 인건비, 카드 수수료, 전기·수도료, 프랜차이즈 가맹비, 배달 대행료를 감당할 재간이 없다.

 

빚을 내서 빚을 갚고 있다. 이들의 금융권 대출은 850조원으로 부풀었다. 발동 걸린 금리 인상은 시한폭탄이다. 폐업 결정도 능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권리금을 회수할 수 없고, 대출금도 한꺼번에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퇴로마저 막힌 셈이다. “살려 달라”며 차량 시위에 나섰다. 지옥이 따로 없다.

 

정권 수뇌부 치료제로 역주행
백신 접종 늦어져 거리두기 의존
650만 자영업자 퇴로조차 없어
붕괴 땐 금융·부동산 줄줄이 위기

정부는 오늘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한다. 수도권을 포함한 거리두기 4단계 지역 식당·카페에서 사적 모임을 할 때는 두 번의 백신 접종을 끝낸 사람을 포함해 최대 6명까지 모일 수 있도록 했다. 영업시간도 오후 9시에서 10시로 한 시간 늘렸다. 그러나 현장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식당에 주로 오는 젊은 직장인 가운데 백신 접종 완료자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자영업자의 숨통이 트이려면 백신 인센티브가 1차 접종자까지로 확대돼야 한다”고 했다. 이래저래 “코로나에 걸려서 죽는 사람보다 빚에 치여서 죽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는 탄식이 나온다.

▲지난달 31일 오후 경기도 안성시 한 중고 주방용품 판매점에 폐업한 음식점에서 나온 의자가 수북이 쌓여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4차 대유행의 여파로 숙박·음식업 종사자가 7월에 6만4000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뉴시스]

 

도대체 어디서부터 일이 꼬였을까. K방역 초기 성공의 여세로 지난해 4·15 총선에서 압승한 문재인 정권은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10월 송도 셀트리온 공장 연구소를 찾았다. 서정진 회장과 만났고, “셀트리온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이 강력한 치료제를 조기에 대량 생산하면 우리는 세계 최초의 코로나19 청정국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서 회장은 한 달 뒤 “내년 봄에는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 청정국’이 될 것”이라며 “코로나 퇴치를 위해서는 먼저 치료제가 필요하고, 백신이 뒤따라와야 한다”고 했다. 정세균 당시 총리는 지난해 12월 코로나19 치료제를 개발 중인 인천 셀트리온을 방문해 서 회장과 만난 뒤 “국민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했다.

 

지난해 5월 15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신 개발을 위한 ‘초고속 작전(Operation Wrap Speed)’을 선언했다. 유럽 국가들도 “백신이 게임 체인저”라고 판단해 미리 돈을 내고 선구매에 나섰다. 하지만 K방역에 취한 정권 수뇌부는 연말까지도 “치료제”에 목소리를 높였다. 유승민 전 의원이 “내년 세계 경제는 백신 디바이드(divide)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무시됐다.

 

이낙연·정세균 두 사람의 역주행(逆走行)은 문 대통령이 발신한 메시지를 충실히 따른 결과일 것이다. 대통령이 지난해 1월 ‘기업인과의 대화’를 위해 대기업·중견기업 대표들을 초청해 청와대 경내를 산책할 때 서 회장은 스타였다. 대통령 오른편에 이재용 삼성 부회장, 왼편에 서 회장이 섰다. 바로 뒤에는 노영민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 자리 잡았다.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청주에서 열린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전략 선포식’에서 “서 회장이 한 10년 전에 5000만원으로 창업했는데, 어느덧 세계 바이오시밀러 시장을 석권할 만큼 규모가 커졌다”고 공개적으로 칭찬했다. 서 회장이 참석한 5월 ‘선포식’과 11월 바이오산업 현장 방문에는 노 실장이 이례적으로 동행했다. 노영민과 서정진은 청주 동향(同鄕)이고 동갑이다. ‘치료제’ 신화(神話)는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국산 치료제를 개발하는 기업의 회장이 자사 제품의 가치를 강조한 것은 이상하지 않다. 개발하고 수출까지 성공했기에 광범위한 코로나 진단 검사가 이뤄지고, 확진자를 찾아내 조기에 치료했다면 ‘세계 최초의 코로나 청정국’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문제는 정부가 서 회장의 의욕적인 계획뿐 아니라 다양한 정보를 토대로 적기(適期)에 최선의 판단을 내리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치료제보다 백신이 우선”이라고 했지만 무시했다. 백신 도입이 늦어지면서 한국의 완전접종률(34.6%)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최하위권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올 4월에 신설된 방역기획관직에 “백신이 급하지 않다”고 했던 기모란 국립암센터 교수를 발탁했다. 납득하기 어렵다.

 

영국·덴마크·싱가포르는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코로나19와의 공존)’에 들어갔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백신 후진국 신세다. K방역 유일의 무기인 사회적 거리두기는 가혹하고, 죄 없는 국민은 고통을 겪고 있다.

 

만일 취업자 2700만 명의 네 사람 중 한 명꼴인 650만 자영업자가 못 버티고 무너지면 대책이 없다. 돈을 꿔준 금융기관이 충격을 받고, 임대 부동산 시장도 가격 폭락을 겪게 될 것이다. 민란(民亂)이 일어날 판이다. 국민 생존에 무한책임을 져야 할 정권이 “세계 최초 코로나 청정국가” 환상에 취했던 결과는 이렇게 참혹하다.

 

10.04 수사로 결판나는 대선, 민주주의의 퇴행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2008년에 각본이 완성됐지만 “낯설고 난해하다”는 이유로 외면당했다. 황동혁 감독은 중앙일보 이지영 문화팀장과의 인터뷰에서 “10여 년 만에 이 말도 안 되는 살벌한 서바이벌이 어울리는 세상이 됐다”며 “슬프다”고 했다. ‘오징어 게임’은 각자도생, 승자독식의 절망적인 현실을 은유한 우울한 서사인 셈이다.

 

 대장동 개발 의혹의 주역들은 일확천금을 노리고 뛰어든 불나방이었다. 그래서 원주민과 입주자에게 돌아가야 할 8000억원을 집어삼켰다. 전직 대법관·검찰총장·특검·청와대 민정수석이 사적 인연으로 투기세력과 손을 잡았다.

원주민·입주자 농락한 투기세력
기자와 법조인 ‘형님, 아우’라니…
저신뢰 국가라는 후진성의 증거
민초들은 더 이상 속지 않는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는 1995년 저서 『트러스트(Trust)』에서 “신뢰는 거래비용을 줄여 경제적 효율성을 증대시킨다”고 했다. 경제의 핵심인 신뢰는 문화를 통해 구축된다고 설파했다. 따라서 “경제가 문화를 만든다”는 카를 마르크스가 아닌, “문화가 경제를 만든다”는 막스 웨버를 지지하는 사상가다. 그는 한국을 사회적 자본이 부족한 저신뢰 국가로 분류했다. 거의 한 세대가 지난 지금도 한국의 신뢰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투명한 공적 시스템이 아닌 음습한 사적 연고의 카르텔이 주도한 대장동 개발 의혹은 움직일 수 없는 후진성의 증거다.

 

 전직 법조기자인 화천대유의 김만배 대주주는 고문으로 끌어들인 법조인들을 “친한 형님”이라고 불렀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불문율이 깨진 순간 양자(兩者)는 윤리가 아닌 깡패의 의리로 움직인다. 감시자와 피감시자의 경계가 무너지면 공익은 설 땅이 없다. 이러니 돈 없고 빽 없는 약자는 ‘오징어 게임’의 아수라장(阿修羅場)에 뛰어드는 것이다.

 

권순일 대법관은 2019년 이재명 후보가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대법원은 "표현의 자유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생존에 필요한 ‘숨 쉴 공간’이 필요하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그래서 “친형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했느냐”는 질문에 “그런 일이 없었다”며 ‘허위 사실’을 발언한 이 후보가 무죄가 됐다. 권 대법관은 2015년 다른 사건의 재판에선 정반대로 유죄 판결했다.

 

바로 그 ‘형님’ 권순일 대법관의 사무실을 ‘아우’ 김만배가 판결을 전후해 여덟 번이나 들락거렸다. 김만배는 권순일을 화천대유 고문으로 모셔가 매달 1500만원씩 주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의형제의 우정이다. 김만배의 누나는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돼 청문회를 앞두고 있던 윤석열 후보의 부친 집을 19억원에 샀다. 당사자들은 결백을 주장하지만 민초들은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곽상도 의원의 아들이 자신을 “치밀하게 설계된 오징어 게임 속 말”이라고 했다. ‘아빠 찬스’로 화천대유에 취직해 6년 일하고 50억원을 받고 나온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다.

 

박완서의 소설 ‘도둑맞은 가난’은 모든 걸 가진 부자가 ‘가난’이라는 빈자(貧者)의 남루한 영역까지 침범한 악행을 비난하고 있다. 고아가 된 어린 여주인공은 월세와 연탄값을 아끼기 위해 멕기(도금) 공장에 다니는 상훈과 동거한다. 어느 날 상훈이 좋은 옷을 입고 나타나 실은 자신이 가난을 체험하러 온 부잣집 대학생이라고 고백한다. 홀로 남은 주인공은 독백한다. “내 방에는 이미 가난조차 없었다. 나는 상훈이가 가난을 훔쳐갔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 내 가난을, 내 가난의 의미를 무슨 수로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인가.” 가슴이 먹먹해진다. 저 무례한 자들에게 상처받은 민초들의 영혼은 누가 위로해야 하나.

 

이재명 후보는 대장동 개발에 대해 “설계는 내가 했다”고 했다. “5503억원을 시민의 이익으로 환수한 모범적인 공익사업”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경실련은 “국민 상대로 장사하고 민간 업자에게 부당이득을 안겨준 공공과 토건 사업자의 짬짜미 토건부패 사업”이라고 규정했다. 검경은 개발 모델을 설계하는 데 깊숙이 개입한 유동규 전 성남시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와 화천대유의 결탁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

 

과연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금융분석원(FIU)은 올해 5월 화천대유의 수상한 자금 흐름을 파악하고 관련 자료를 넘겼지만 경찰은 다섯 달이 지나서야 김만배를 소환했다. 성남의뜰 초대 대표는 “몇천억원 갖고 쳐발라놨다. 대장동 수사가 되겠나. 이 상황이 무섭다”고 했다. 검경이 적당히 수습하려 한다면 모욕당한 민심은 부패 카르텔을 단숨에 뒤엎을 것이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투표장에서 내 손으로 도장 꾹 찍어 뽑고, 국가의 진로를 결정하는 민주주의의 경건한 제의(祭儀)다. ‘아빠 찬스’로 정계에 입문한 세습 의원을 민의가 아닌 파벌의 이해관계로 총리를 만드는 일본의 ‘호텔선거’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한국은 근대화의 후발주자지만 민주주의는 더 잘하는 나라가 됐다. 그런데 이번 대선은 여야 1위 후보의 ‘화천대유’ ‘고발사주’에 대한 검경의 수사 결과로 결판날 수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비극적 퇴행이다

 

10.18 이재명은 대장동 라쇼몽을 끝내라

 대장동 아귀다툼은 이 나라 윤리와 사법 시스템의 오작동을 실증한다. 힘없는 원주민이 피눈물을 흘리는 동안 고위 법조인과 정치인, 언론인이 토건업자들과 어울려 질펀한 탐욕의 파티를 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속·철저 수사” 지시에도 검찰 수사는 속 빈 강정이다. 계좌 추적도 없이 업자들의 녹취록에만 의지해 화천대유 김만배 대주주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당했다. 수사 착수 16일 만에 성남시청을 압수수색했지만 핵심인 시장실과 부속실은 뺐다.

 

 김만배가 “천화동인 1호 배당금의 절반은 ‘그분’ 것”이라고 하자 이정수 서울중앙지검장은 국정감사에서 “정치인 ‘그분’을 얘기하는 부분은 아니다”며 민주당 대선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면죄부를 선사했다. 김오수 검찰총장은 성남시의 고문변호사였다. 이러고도 대장동 개발의 최종 결정권을 쥔 성남시장이었던 이 지사의 연루 여부를 확실하게 가려낼 수 있을까.

 

농지개혁은 통합의 경제민주화
공산화 막고 경제 성장 이끌어
‘대장동’은 역사를 모욕한 범죄
결백하다면 특검 자청해야 마땅

1948년 건국한 대한민국의 기개를 생각한다. 찢어지게 가난했고, 강대국에 멸시받았지만 삶의 터전인 땅의 가치는 확실하게 지켰다. 철저한 반공주의자 이승만 대통령은 공산주의자였던 죽산(竹山) 조봉암을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임명해 농지개혁에 착수했다. 지주 중심의 정당 한민당 당수인 인촌(仁村) 김성수가 협력했다. 정부가 지주들에게 사서 농민들에게 파는 유상몰수, 유상분배 방식이었다.

 

 소작농은 매년 수확량의 30%씩 5년만 내면 소유권을 인정받았다. 일제강점기의 1년 소작료가 수확량의 50%였으니 공짜나 마찬가지였다. 농지개혁법은 한 차례 개정을 거쳐 1950년 3월 10일 공포됐다. 이승만은 “춘경기(春耕期)가 촉박했다”며 시행규칙도 없이 속전속결로 밀어붙여 4월 15일까지 분배를 끝냈다. 자칫하면 두 달 뒤 터진 6·25 남침전쟁으로 농지분배는 일장춘몽이 됐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제헌 헌법에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한다”(86조)는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못 박고 출발한 나라다. 인촌의 요청을 받은 현민(玄民) 유진오 고려대 교수가 헌법 초안을 만들었다. 그는 “농지개혁만이 공산당을 막는 최량(最良)의 길”이라고 했고, 인촌은 적극 찬성했다. 지주들에게는 재앙이었다. 헐값에 땅을 몰수당하고 받은 국채는 전쟁 중 인플레이션으로 휴지조각이 됐다. 몰락한 지주들은 “이승만은 김일성과 똑같은 놈”이라고 욕했다. 대지주인 인촌의 이타성이 빛나는 대목이다.

 

해방 직후 미군정청은 남한 주민 8000명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했다. 80%가 사회주의, 7%가 공산주의 체제를 원했다. 하지만 농지개혁으로 처음 내 땅을 갖게 된 농민들은 6·25 남침 때 “이 박사 덕분에 쌀밥을 먹게 됐다”며 공산주의에 동조하지 않았다. 양반과 상민의 신분 차별이 없어져 상민들도 자식을 교육시켰고, 이는 산업화의 원동력이 됐다.

 

1950, 60년대 한국의 토지소유 평등지수는 세계 1위였다. 세계은행은 2003년 정책연구보고서를 통해 “건국 초기 토지분배 상태가 평등할수록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높다”고 했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자국의 빈곤 원인을 “한국은 1950년대에 토지개혁을 했지만 브라질은 아직도 이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100여 개 가문이 국토의 절반을 소유한 필리핀은 아직도 토지개혁을 하지 못하고 있다. 농지개혁은 한국 최초의 경제민주화 조치였다.

 

70여 년 전 한국은 반공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 대지주와 지식인이 국가 공동체의 통합과 번영을 위해 하나가 됐다. 선각자들은 인간 존엄성의 출발점이자 생산과 풍요의 원천인 땅을 평등하게 분배했다. 아마도 대지의 여신(女神) 데메테르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대장동을 아수라장(阿修羅場)으로 만든 특권층 괴물들과는 달랐다.

 

대장동 게이트는 기적적으로 성취한 경제 민주화 역사를 모욕했고, 나라의 근본 가치를 전복시키고 있다. 모든 의혹의 정점에 이재명 지사가 서 있다. 그는 “단 1원이라도 받았으면 후보직을 사퇴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신뢰하기 힘든 검찰 수사보다는 중립적인 특검을 자청해 지체없이 결백을 입증해야 하지 않을까. 하나의 팩트를 놓고 두 개의 기억이 맞서는 라쇼몽은 국민을 고문(拷問)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대장동, 윤석열 후보는 주술(呪術) 논란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분”과 “왕(王)”이 21세기 한국을 흔들고 있다. 국민은 민주공화국으로 이주했는데 후보들은 아직도 근대 이전의 왕궁에 혼곤히 잠들어 있다.

 

국제사회는 포스트 코로나와 미·중 패권경쟁의 기로에서 경제 강국이자 미들파워의 선두인 한국의 역할을 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후보도 합당한 메시지를 발신하지 못하고 있다. 언행(言行)이 따로 노는 여야 후보에 대한 상대 진영의 비호감도는 사상 최고치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통합은 기대하기 어렵다. 불안한 권력자는 오직 나의 진지를 더 높이 구축하고 반대자를 공격하는 진영의 리더로 만족할 것이다. 함량 미달의 후보가 ‘아무 말 대잔치’를 하는 대선 판은 국가의 비극이다.

 

11.01 노태우 전 대통령과 미토콘드리아의 기적

독일은 20세기에 두 번씩이나 아마겟돈의 세계대전을 일으켜 유럽 문명을 살해하려 한 불온한 전범국가였다. 프랑스 작가 모리아크의 “독일을 너무 사랑하기에 하나의 독일보다는 두 개의 독일이 있어서 기쁘다”는 발설(發說)은 유럽인의 심정을 대변한 것이다.

 

그런 독일이 악몽의 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재통일된 것은 19세기 통일의 주역 비스마르크도 놀랄 현대사의 기적이다. 비결은 서독의 내부 통합에 있었다. 진보인 사민당의 슈미트, 보수인 기민당의 콜 총리가 제3당인 자유민주당의 겐셔를 16년간 외교장관으로 세워 일관된 초정파적 실리외교로 기적을 이뤄냈다. 겐셔는 통독 이후에도 2년간 외교장관이었다. 강대국의 흥정으로 두 동강 난 지 76년이 된 한반도와는 너무도 다르다. 분단된 남쪽에선 내부 총질이 일상이 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교와 대북 정책이 급변침을 반복한다. 동맹국도, 북한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다.

군사반란·광주진압 원죄 있지만
북방정책은 경제·외교 영토 넓혀
과와 함께 공도 제대로 평가해야
통합·남북화해의 상징 자격 있어

분열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권이 바뀌어도 30년 넘도록 계승된 유일한 장전(章典)이 있다. 1989년 9월 11일 발표된 한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이다. 자주·평화·민주가 기본 원칙이다. 대통령이 앞장섰고, 야당의 김대중·김영삼·김종필 총재가 훗날 총리가 된 이홍구 통일원 장관과 함께 만들었다.

 

국회는 두 달 동안 공청회를 열었고, 정부는 258회의 세미나·간담회를 개최해 진보·보수의 의견을 들었다. 여론조사를 통해 해외 교민의 의견까지 수렴했다. 여야가 합의한 뒤 대통령이 발표하기 전에 박철언 정무제1장관을 평양에 특사로 보내 사전 설명했다. 완벽한 남남 통합, 남북 합의였다.

 

지휘자는 위대한 철인(哲人)도, 탁월한 정치가도 아닌 군인 출신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다. 그는 최전방을 지키는 9사단장이었지만 병력을 이끌고 중앙청 앞에 나타난 12·12 군사반란의 주역이었다. 광주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책임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 국무부가 애도하면서도 “복잡한 유산(complicated legacy)을 남겼다”고 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북방정책은 탈냉전의 흐름을 제대로 읽은 전환기 외교의 전범(典範)이다. ‘민족 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7·7선언), 한민족공동체 통일 방안, 소련·중국 등 공산권 국가를 포함한 39개국과의 수교,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지구의 반쪽에 갇혀 있던 외교와 경제의 영토를 한국 스스로의 힘으로 전 세계로 넓혔다.

 

놀라운 것은 한국이 공산권과 손 잡는 과정에서 미국이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한·소 수교 3개월 전인 1990년 6월 노태우와 고르바초프가 샌프란시스코에서 회담을 갖도록 주선했다.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는 “매우 정교한 외교를 펼쳤다”고 노태우를 평가했다. 미·중 대결의 전환기에 북한에 끌려다니느라 주도적 외교 전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과는 달랐다.

 

생명체의 진화 역사에서 가장 경이로운 사건은 세포에 미토콘드리아라는 세균이 침입했을 때 죽이지 않고 공존을 선택한 일이다. ‘에너지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 덕분에 단세포는 다세포를 거쳐 고등 생명체로 진화했고, 인류가 탄생했다. 노태우가 비우호적 경쟁자인 야당, 적대 세력인 공산권과 손 잡은 것은 미토콘드리아의 기적을 환기시킨다. 적대적 모순을 비적대적 공존의 에너지로 전환시킨 유연하고 냉철한 결단이 없었다면 북방정책은 생명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상대를 오직 타도의 대상으로 여기는 오늘의 정치인들이 배워야 할 점이다.

 

굴신(屈伸)이 자유로운 모든 부드러운 존재는 살아 있다. 죽어 있는 것은 경직돼 있다. 나무도, 물고기도, 사람도, 조직도, 국가도 마찬가지다. ‘물태우’였던 노태우는 장자(莊子)의 “오상아(吾喪我)!”, 내가 나를 잃어버리는 경지를 꿈꿨던 것일까. 그래서 적대적 타자(他者)와도 경계를 허물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제물(齊物)의 상태에 이르려고 했던 것일까. 정파와 이념의 차이를 초월한 노태우 리더십은 분열된 이 나라 통합의 교훈이 돼야 한다.

 

이탈리아의 역사철학자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했다. 한 세대 전 대통령 노태우는 그의 과(過)와 함께 공(功)까지도 통합이라는 현재적 프리즘을 통과했을 때 엄정한 포폄(褒貶)이 가능하다. 12·12 군사반란, 광주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2000억원대의 비자금 조성, 호남 고립을 초래한 3당 합당이라는 과(過)는 한없이 무겁다.

 

그렇다고 그의 공(功)이 역사의 여신(女神) 클리오의 신전(神殿)에 입장할 자격을 불허하는 것은 가혹하다. 북방정책과 함께 대통령 직선제 수용, 권위주의 독재에서 민주주의로의 이행, 88 서울 올림픽의 성공, 전 국민 의료보험 실시, 토지공개념 도입, 분당·일산신도시를 포함한 주택 200만 호 건설, KTX와 영종도 국제공항 건설은 시간이 흐를수록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균형을 잃은 모욕과 폄훼는 역사를 분열의 도구로 만들 뿐이다. 자신의 무거운 원죄에 용서를 구하고 통합과 남북 화해의 상징으로 부활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

 

11.15 생명줄이 요동치는데 넋 놓은 정부, 이게 나라인가

 한국은 지독한 자원 빈국(貧國)이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지만 원자재 공급이 끊기면 대책이 없다. 그런데 생명줄인 글로벌 공급망이 요동치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과 차이나 리스크, 코로나 팬데믹의 파도가 거칠다.

특정 국가에 의존하면 결국엔 독(毒)이 된다. 그런데 한국은 특정 국가에서 80% 이상 수입하는 품목이 3941개나 된다. 전체 수입 품목(1만2586개) 10개 중 3개꼴이다. 중국이 1850개로 가장 많다.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라는 생존 수칙이 무시되고 있다.

 

중국발 요소수(尿素水) 대란은 국가가 기본 수칙을 어겼을 때 어떤 위험에 처하게 되는지를 똑똑히 보여준다. 산업용 요소 수입물량의 97%를 차지하는 중국이 수출을 전면 중단하자 도처에서 비명소리가 나고 있다.

특정 국가 의존 원자재 10개 중 셋
중국에 요소 97% 의존 위험 불러
일본, 자체 생산 위주…피해 없어
주도적 전략 전무…어쩔 셈인가

디젤연료를 사용하는 200만 대의 화물차는 배기가스의 매연을 줄여주는 요소수를 주입하지 않으면 시동이 걸리지 않도록 설계됐다. 엄격한 국제 환경기준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움직이는 모든 것을 멈춰 세울 수 있다. 기사들은 주유소를 찾아 헤매면서 10배의 가격으로 사야 했다. 공장과 건설현장 마비, 병원 구급차와 소방차 운행 중단 사태까지 예상됐다. 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이 사과했고, 경제수석도 교체됐다.

 

한국과 산업구조가 비슷한 일본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 최대 생산·수출국인 중국 의존도가 전무(全無)하기 때문이다. 요소의 주 원료인 암모니아의 77%를 국내 4개 기업이 생산하고 있다. 전략물자라고 판단해 대비한 결과다. 지난해 12월에는 암모니아를 수소와 함께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지정했다. 채산이 맞지 않아 2011년 국내 기업이 생산을 중단하자 중국 올인을 방치한 한국 정부의 직무유기와 대비된다.

 

우리는 조선시대까지 중화(中華) 질서를 수용해 생존을 보장받았다. 수시로 변화하는 나라 밖 현실을 파악하면서 독자적인 힘과 안목을 키우는 일에 소홀했다. 외교안보는 동맹국인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는 중국에 치우쳐 있는 현실은 우연한 결과가 아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생존전략을 마련하겠다는 결연한 각오는 지금도 보이지 않는다.

 

반면에 일본은 자기주도적 전략을 모색해 왔다. 문명의 중심지로부터 고립되지 않으려고 몸부림쳤다. 7세기 초반 쇼토쿠 태자 때부터 동중국해의 사나운 바다에 인명을 수장(水葬)시키면서도 필사적으로 견수사(遣隋使), 견당사(遣唐使)를 보냈다. 메이지유신(1868년) 직후에는 독자적인 근대국가 모델을 만들기 위해 지구를 한바퀴 돌면서 미국·영국 등 12개국을 방문하는 사절단을 보냈다.

 

이와쿠라 도모미 특명전권대사가 이끄는 사절단에는 훗날 초대 총리가 된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젊은 핵심 실세와 우수한 관료가 포함됐다. 이들은 눈에 불을 켜고 각국의 정치 제도와 인프라, 산업시설을 눈으로 확인하고 100권의 책으로 남겼다. 당시 영국의 더 타임스는 “일본의 상류계급은 스스로 지위를 포기했으며 중대한 사회혁명이 시작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고종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1882년) 이후 “미국이 우리를 살린다”며 1883년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구미시찰단인 보빙사(報聘使)를 파견했다. 명성황후의 친정 조카 민영익과 영의정 홍순목의 아들 홍영식이 각각 정사(正使)와 부사(副使)였고, 서광범·변수·유길준이 참여했다. 미국의 체스터 A 아서 대통령과 두 번 만났고, 조선식으로 큰절을 했다. 초대 조선 주재 공사 루시어스 푸트는 미 국무부에 보낸 보고서에서 민영익의 “나는 어둠에서 태어나 광명의 세계를 갔다가 어둠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고백을 적었다.

 

귀국한 뒤 홍영식·서광범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서구식 근대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강력한 개혁을 꿈꿨다. 이들은 김옥균·박영효·서재필과 함께 갑신정변을 일으켰지만 3일천하로 끝났다. 이와쿠라 사절단과는 완전히 다른, 참담한 결과였다.

 

한 국가가 기민하게 국외의 정세 변화를 읽고 현실적인 판단을 내리는 능력은 천년 전이나 오늘이나 생존을 위해 중요하다. 이번 요소수 파동도 중국과 호주의 갈등으로 지난해 10월 호주의 대중국 석탄 수출이 중단됐을 때 사실상 예고됐다. 석탄을 원료로 하는 요소의 생산량이 줄어 중국이 수출 물량을 줄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수출 중단 흐름이 가시화된 지난달 초부터 수입업자들이 SOS를 보냈지만 외교부와 산자부는 외면했다. 이런 사실을 보고받지 못한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중국 왕이 외교부 장관과 지난달 29일 로마에서 30분 동안 만났지만 요소 얘기를 꺼낼 수 없었다. 청와대 경제수석을 팀장으로 한 ‘요소수 대응 TF’는 11월 5일에야 가동됐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정부인가. 이게 나라인가.

 

1832년 충청도 홍주 목사 이민회는 영국 무장상선 암허스트호가 고대도(島)에 들어와 통상을 요구하자 “번신은 외교가 없다.(藩臣無外交)”고 거절했다. 부끄러운 사대(事大)의 절정이다. 지금 한국의 국정 운영과 통상외교의 영혼은 이 섬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

 

11.29 박정희·전두환 후예의 고해성사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두 사람을 떠올렸다. 따뜻하고 수려한 정치학도 김동관. 2학년을 마치고 입대해 1980년 5월의 광주에 특전사 진압요원으로 투입됐다. 동족에게 총부리를 겨눈 사실을 끝없이 자책했고, 정신병원에서 한평생 투병 중이다.

 

민주주의를 열망한 전성. 광주유혈진압 항의 시위를 주도해 구속됐다. 세 차례 징역을 사는 동안 꽃 같은 청춘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뒤늦게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됐다. 학과 동기인 친구 김동관을 국가 유공자로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해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고도 경제성장의 공 뚜렷하지만
자유 없는 야만의 시대 반성해야
주류였던 보수가 먼저 달라져야
진보의 비민주적 오류 고쳐질 것

신군부 쿠데타 세력의 5·18 광주유혈진압은 평탄했던 두 사람의 운명에 불쑥 개입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어찌 이들뿐인가. 전두환 정권은 “독재정권 타도”라는 사실에 입각한 양심적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로 대학생 1000여 명을 한날 한시에 구속했다. 박종철과 이한열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투옥과 고문, 의문사를 포함한 인권유린이 일상이 됐다. 보도지침은 언론의 자유를 질식시켰다. 자유가 없는 노예의 삶을 강요한 야만의 시대였다.

 

생전의 전두환은 일체의 사과를 거부했다. 사후(死後)에 부인이 “남편의 재임 중 고통받고 상처를 입으신 분들께 남편을 대신해 깊이 사죄를 드리고 싶다”고 했을 뿐이다. 그나마 임기 시작(1980년 9월 1일) 이전의 일인 5·18에는 침묵했다.

 

그럼에도 공(功)은 부인할 수 없다. 성장·물가·국제수지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을 실현했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유치해 국가의 위상을 높였다. 단임(單任)을 결단해 민주화 수순을 밟았다. 김재익 경제수석에게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면서 전권을 준 것은 성공적 권력 위임의 백미(白眉)였다.

 

박철언을 수석대표로 임명해 30여 차례의 남북 비밀회담도 했다. 박철언은 “이런 노력이 결실을 보아 훗날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이 가능했다”고 했다. 정통성 부재(不在) 콤플렉스를 성과로 만회하려 했다.

 

하지만 5·18 앞에서는 이성적 판단의 작동이 멈췄다. 책임을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않았다. 이래서는 피를 나눈 자국민을 향해 총질을 한 치명적 범죄를 용서받을 길이 없다.

 

보수의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진보에서는 박정희·전두환의 과(過)를 비판하지만 공도 대체로 인정한다. 그러나 보수에서는 과에 대한 언급을 터부시한다. 독재와 인명살상, 인권유린의 후유증이 여전한데 애써 외면한다. 오직 경제성장 신화(神話)만 강조한다. 팩트는 하나인데 두 개의 기억이 존재하는 라쇼몽의 상태를 만들고 있다.

 

한국은 지금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선진국이 됐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 5위의 기술 강국이다. K콘텐트는 세계를 정복했다. 이제부터의 경쟁 상대는 만만한 후진국이 아니다. 힘이 센 선진국인 미국·유럽·일본이고, 거대한 중국이다. 이들과 겨루려면 탄탄한 생존 전략이 필요하다. 내부의 에너지를 모으는 통합은 필수다. 그래야 경제도, 문화도, 외교도, 안보도 일류가 된다.

 

오늘을 만들어낸 주역인 보수가 달라져야 한다. 독재시대의 잘못을 과감하게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광주에서 무릎을 꿇어야 한다. 그래야 통합이 된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유족이 이미 모범을 보였다. 박정희·전두환의 후예가 역사 화해의 무대에 합류해야 한다. 그러면 두 사람의 독재를 타도한다는 명분으로 비민주적 오류를 정당화해 온 586 진보 세력의 오만도 사라진다.

 

▲김수영 시인

 

진보·민주화의 상징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에서 수장(水葬)될 뻔 했고, 전두환 정권에서 사형 집행 직전까지 갔다. 미국의 구명(救命)으로 살아남았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되자 원수를 용서하고 전직 대통령으로 예우했다. 박정희의 오른팔 김종필을 총리로, 전두환의 참모 김중권을 비서실장으로 중용했다. 이젠 박정희·전두환 지지자들이 민주화 세력의 고통에 속죄하고,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 독재의 강을 건너야 자폐(自閉)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국은 섬나라였다. 프랑스에서 선포된 68운동의 “금지함을 금지하라”는 지상명령은 유럽·미국·일본, 심지어 남미까지 점령했다. 평등·성해방·인권·공동체주의·생태주의의 황홀한 세례를 한꺼번에 내렸다. 독일에서는 전후에 총리까지 배출했던 나치가 비로소 청산됐다. 그러나 우리의 반공독재 왕조는 이 통과의례조차 봉쇄했고, 심각한 문화지체의 후유증을 지금도 겪고 있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자유인의 초상(肖像)’ 김수영이 있다. 그는 식민지와 전쟁 포로, 좌절된 혁명의 몸서리를 견뎌내고 이 척박한 불모의 땅에서 인간의 위엄을 사수한 전사(戰士)였다.

 

김수영은 지금도 “바람에 나부껴서 밤을 모르고/ 언제나 새벽만을 향하고 있는/ 투명한 움직임의 비애(悲哀)를 알고 있느냐”(1958년 ‘비’)라고 묻고 있다. 박정희·전두환 후예(後裔)의 고해성사 거부를 예견이라도 한 듯 마구 꾸짖고 있다. 역사의 전진을 가로막는 허상의 노예들에게 동굴에서 나와 광야의 자유를 숨쉬라고 명령하고 있다.

 

12.13 이재명·윤석열의 정치보복 추방 선언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성인(聖人)’이라고 했다. 그는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 어떤 정치 보복도 하지 않았다”며 “모든 정적을 용서하고 화해하는 성인 정치인으로 국민통합을 이룩했다”고 했다.

 

정확한 평가다. 김대중은 평생 탄압받았지만 대통령이 되자 유능한 적장(敵將)을 중용했다. 이회창의 참모 이헌재·임창렬을 품어 외환위기를 해결했다. 민정당 출신 김중권을 비서실장으로, 강경 보수인 강인덕을 통일부 장관으로 기용했다. 정적을 내각에 포진시킨 링컨, 오바마의 ‘팀 오브 라이벌(Team of Rivals)’이 따로 없었다.

윤석열, 정적 용서 DJ ‘성인’ 불러
정치보복의 결과는 무능한 정부
힘 모아 해결할 과제 쌓여 있는데
분열하면 선진국에서 추락할 것

임동원은 전두환 정부에서 호주대사, 노태우 정부에서 통일원 차관을 지냈고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만들었다. 김대중 정부 초대 외교안보수석에 발탁된 뒤 “김영삼 정권의 비서관과 행정관을 전원 유임시켜 달라”고 건의했다. 김대중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청와대에 남은 송민순 비서관은 ‘햇볕정책 전도사’가 됐고, 훗날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냈다. 임동원은 “유능한 인재 덕분에 성과를 냈다”고 했다.

 

반면에 이명박 정권 때는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받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박근혜 정권에선 이명박 정권 핵심 인사 수백 명이 뒷조사에 시달렸다. 문재인 정권은 두 정권 인사를 배제했다. 정치보복은 모두를 현재권력에 충성하는 노예로 만든다. 유능한 인재는 고갈된다. 인재풀이 ‘우리 편’으로 좁혀지면 상상력은 빈곤해지고 정부는 무능해진다.

 

2015년 9월 매일경제는 정치 전문가를 대상으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조사했다. 1위 이재만, 2위 정호성, 3위 김기춘, 4위 최경환, 5위 정윤회, 6위 안봉근이었다. 비선에 포박된 기괴한 정권이었다. 문재인 정부에선 참여연대 출신 장하성·김수현·김상조가 대통령 정책실장으로, 조국이 민정수석으로 기용됐다. 소득주도 성장, 탈(脫)원전, 부동산 실정(失政)의 책임자들이다. 코로나 방역 혼선, 대북 저자세 외교도 실력 있는 전문가를 배제한 결과다.

 

정권교체론이 들끓고, 윤 후보는 “반문(反文)”을 외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도 “나는 문재인이 아니다”며 차별화에 나선다. ‘조국 사태’에 사과하고, 탈원전에 대해 “다시 한번 숙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방역에 대해선 “다른 나라 같으면 폭동이 났다”고 하고, 만신창이가 된 부동산 대책을 비판한다. 문 정권의 자업자득이다.

 

다음 대통령이 직면한 방역·경제·안보·복지는 모두 난제인데 두 후보의 역량은 미지수다. 이 후보는 시장과 도지사를 11년 했지만 나라 전체의 사안을 다루는 의원이나 임명직 경험은 없다. 윤 후보는 26년간 검사·총장이었지만 정치 세계에선 초보자다. 과거를 불문하고 유능한 인재를 모셔와야 한다.

 

두 사람은 스스로의 결핍을 인정하고 선거에 임해야 한다. 통합적 비전과 정책을 함께 만드는 협력적 경쟁자로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 “다투되 싸우지 않는다”는 원효(元曉)의 화쟁(和諍)정신을 되새겨야 한다.

 

다행히 두 사람은 통합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윤석열이 김대중을 ‘성인’으로 평가했듯이 이재명도 박정희·전두환의 과(過)뿐 아니라 공(功)도 인정하고 있다. "전두환이 삼저 호황을 잘 활용해 경제를 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건 성과”라고 했다.

 

부익부·빈익빈의 양극화 현상이 심각하다. 이념·세대·지역·계층 갈등은 폭발 직전이다. 중산층 강화가 해결책이다. 서양 정치사상의 창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2300년 전 내놓은 해법이다. 그는 『정치학(Politika)』에서 “가능한 최선의 정체는 중산계급(hoi mesoi)에게 결정권이 있는 정체다. 지나친 부(富)와 지나친 가난은 이성적인 행동을 어렵게 한다”고 했다.

 

중산층을 늘리려면 ‘돈 뿌리기’ 경쟁이 아니라 혁신 기업의 창업, 기존 기업의 도약을 촉진하는 대담한 경제정책, 산업정책이 필요하다. 첨단 과학기술이 비즈니스와 융합하고, 낡은 규제가 철폐되도록 정부와 공공부문을 흔들어야 한다. 그래야 산업의 체질이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중심으로 바뀐다.

 

외교와 안보도 마찬가지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고, 핵을 가진 북한과 마주하며, 힘이 센 4강국에 둘러싸여 있는데도 여론은 분열돼 있다. 통합을 위해서는 ‘이성에 가장 잘 복종하는’ 중산층의 목소리가 커져야 한다.

중국은 1820년 이전 세계 GDP의 3분의 1을 차지한 독보적 경제 강국이었다. 그러나 19세기에 몰락했고, 재기하는 데 두 세기가 걸렸다. 한국은 경제력 10위, 군사력 6위, 기술력 5위의 선진국이다. 미국·중국·일본·EU와 경쟁해야 한다. 여기서 분열하고 패배하면 모든 것을 영원히 잃는다. 그래도 좋은가.

 

우리는 지난 9년간 정책과 비전이 고장난 무능과 불통의 시대를 경험했다. 이번 선거는 민생·안보·미래를 위한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을 탄생시키는 생산적 과정이 돼야 한다. 이재명·윤석열 후보는 먼저 상대를 인정하고, 정치보복을 추방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이하경 칼럼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