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칼럼 문화일보 논설위원 2021
01월 08일 美 의사당 난동과 ‘문빠 정치’
팬덤 정치의 막장劇 보여줘
獨 나치의 의사당 방화와 대비
극단적인 진영정치의 폐해
‘양념’ 문빠가 이젠 與 안방 차지
野가 대선 승리 땐 美 사태 재연
文대통령이 결자해지 나서야
의회 민주주의 대표 국가인 미국에서 6일 연방 의회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난입해 난동을 부린 사태는 21세기 극단적 팬덤 정치의 막장극을 보여준다. 미 언론에 생생하게 생중계된 모습에서 ‘포퓰리스트 지도자’ 한 명이 200년 전통의 민주주의 유산을 한꺼번에 쓰레기통으로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미국도 이런데 문재인 정권 4년 동안 정치의 중심을 차지한 ‘문빠 정치’가 악성화(惡性化)될 경우 내년 대선 이후 대한민국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날 미 의회는 상·하원 합동회의를 열어 선거인단의 투표 결과를 인증하고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를 공식화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를 반대하기 위해 백악관 앞에 모인 시위대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 지지 연설에 나서 “대선 불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절대 승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동 연설에 이어 시위대가 의회로 행진, 의사당을 점거했고 상·하원 의원들은 투표를 중단하고 긴급히 대피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번 사건은 20세기 초 독일 나치의 독재 체제 기폭제가 된 의사당 방화 사건을 연상시킨다. 1933년 2월 독일 국회의사당이 정체 모를 방화로 불에 타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나치는 독일 공산당의 계획적 범행으로 몰았다. 이를 빌미로 대통령 긴급명령을 공포해 공산주의자를 비롯해 사회주의자·민주주의자에게 탄압을 가했고 ‘수권법’이 통과되면서 나치가 완전히 정권을 장악하는 계기가 됐다. 21세기에 벌어진 미 의사당 난동 사태는 ‘민주주의가 어떻게 무너져 가는가’라는 차원에서 보면 독일 의사당 방화 사건의 기시감처럼 보인다.
문 대통령은 취임 때만 해도 ‘촛불 혁명’이라는 진보와 중도층의 합작품에 힘을 실었다. 취임사에서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선언하면서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적폐 청산’을 국정 제1 목표로 내걸면서 극성 지지층인 ‘문빠’에 의존했고 이들은 문 대통령을 교주(敎主)처럼 떠받들었다. 20만∼30만 명으로 추정되는 극성 문빠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문 대통령에게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인사들에게 문자 폭탄과 댓글로 괴롭힘을 가하고 다녔을 때 문 대통령은 “경쟁을 흥미롭게 하는 양념”으로 치부했다. 이들은 지난해 4·15 총선 경선 판도도 좌우해 금태섭 전 의원과 같이 비판적 인사는 탈락시켰고, 총선 압승에 기고만장했다. 이젠 더불어민주당의 안방을 차지해 당 대표, 장관은 물론 대통령마저도 함부로 반대하기 어려운 존재가 돼 버렸다.
이낙연 대표가 전직 대통령 사면론을 꺼냈다가 이들의 거센 반발에 밀려 이틀 만에 꼬리를 내린 것이 상징적이다. 한때는 “당의 에너지”라고 했던 이 대표도 이들의 덫에 빠져 버렸다. 이들에게 밉보였다간 대선 후보 경선을 통과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했을 것이다. 지난달 16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사퇴 권고를 받고도 거부했다고 한다. 결국, 문 대통령이 ‘경질’하겠다고 하자 마지못해 사의를 표명했고 청와대가 이를 발표하며 쐐기를 박았다고 한다. 추 장관이 이렇게 대통령의 요구까지도 거절하면서 버틸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뒤에 문빠의 지지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추 장관 유임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참가자가 40만을 훌쩍 넘긴 것이 상징적이다.
야당이나 반대자에 대한 설득은 아예 포기하고 극성 지지층만 ‘국민’으로 보고 정치를 한다면 미국과 같은 민주주의 파괴 사태는 우리에게도 재연될 수 있다. 내년 대선에서 만약 야당 후보가 승리하더라도 국회 의석은 향후 2년간 여당의 압도적인 174석이 유지되는 만큼 극심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문빠와 민주당은 사사건건 새 정권에 반대할 것이고, 대통령은 무엇하나 뜻대로 할 수 없는 국정 마비 사태가 올 수도 있다. 정권이 연장되든 교체되든 ‘책임 윤리’를 상실한 폭력적인 ‘빠 정치’는 정치적 해악이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문 대통령은 양념이 아니라 독(毒)이 될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말해야 할 때다.
01월 29일 ‘거짓·음모’ 없인 정권 유지 못하나
이데올로기보다 강한 음모론
광우병·사드·원전 怪談 선동
거짓 드러나도 반성·사과 없어
조국·김어준·유시민이 주도
‘상대 악마화’ 柳 사과에도 여전
대선 앞두고 또 기승부릴 듯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4년간 거짓이나 사실을 오도하는 주장을 한 것이 모두 3만573건에 달한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팩트 체크 시스템을 통해 집계했다. 임기 첫해에는 하루 평균 6건이었고, 대선이 있었던 마지막 해에는 39건으로 늘었다. 허위 주장을 일일이 검증한 언론도 대단하지만 이렇게 거짓말을 하고도 강고한 지지층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아무리 전문가가 과학적인 데이터를 근거로 설명해도 믿지 않을 정도로 거짓 음모론의 위력이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음모론’을 학문적으로 연구한 서강대 전상진 교수는 저서 ‘음모론의 시대’에서 ‘음모론은 종교나 이데올로기처럼 강력하다’고 했다. 권력자가 통치의 수단으로 음모론을 퍼뜨리기도 하지만 이에 저항하는 음모론도 있다고 한다. 약자나 피지배자도 저항이나 항의의 수단으로 음모론을 활용하는데 본질적으론 똑같다. 가장 위험한 유형으로 중세에 횡행했던 ‘마녀 사냥꾼’ 유형인데, 종교재판관은 누군가를 마녀로 지목할 때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녀로 지목당한 사람이 자신이 마녀가 아님을 입증해야 하는 황당한 경우다.
조국 전 장관이 페이스북에 ‘검찰이 지난 총선에서 여당의 총선 패배를 예상하고 문재인 대통령 탄핵을 위한 밑자락을 깔았다’고 한 주장이 대표적이다. 김어준 씨가 정의기억연대 회계부정을 폭로한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 이후 “냄새가 난다”며 배후설을 주장하고, 사과는 했지만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검찰이 노무현재단 계좌를 들여다본 것을 확인했다”고 한 것이 ‘마녀 사냥꾼’ 유형이다. 검찰이나 이용수 할머니가 증명해야 하는데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그들은 믿지 않는다. 음모론으로 돈도 벌고 금배지도 다는 등 소득이 짭짤하기 때문에 때가 되면 어김없이 나타난다.
정치적으로 가장 잘 활용한 세력은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이다. 야당일 때는 ‘저항적 음모론’으로, 여당일 때도 반대 세력을 향한 음모론으로 재미 좀 봤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08년 광우병 파동으로 온 나라가 미증유의 파동을 겪었다. MBC ‘PD수첩’은 인간 광우병에 걸린 여성의 죽음 등을 미국산 쇠고기와 연관해 방송했고, ‘뇌송송 구멍탁’이라는 괴담 촛불이 수개월 동안 광화문 광장을 흔들었다. 정권이 휘청일 정도로 강력했다. 이후 지금까지 미국산 쇠고기 먹고 뇌에 구멍이 생기고 광우병이 걸렸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박근혜 정부 때는 경북 성주에 사드가 배치되자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성주로 몰려가 ‘전자파 튀김 참외’를 외쳤다. 사드 레이더 전자파가 성주 참외를 시들게 하고 무(無)정자증으로 불임이 온다는 허무맹랑한 얘기를 노래와 춤까지 추면서 떠들었다. 그런데 전자파 무해론이 밝혀지면서 지난해 성주 참외 생산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이런데도 반성하는 의원 한 명 없다.
동일본 대지진 때 문 대통령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2016년 3월 현재 총 1368명이 사망했다”며 탈원전 정책의 핵심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쓰나미로 인한 사망자는 많았으나 원전 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최근엔 여당이 탈원전의 명분을 찾기 위해 한 지방 방송사가 보도한 ‘삼중수소’ 음모론을 퍼뜨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멸치 1g에 포함된 양이라며 과학적으로 무지한 주장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유시민 이사장은 최근 사과문을 통해 ‘과도한 정서적 적대감에 사로잡혔고 논리적 확증편향에 빠졌다’면서 ‘대립하는 상대방을 악마화했고 공직자인 검사의 말을 전적으로 불신했다’고 했다. 검찰 수사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우려해 사과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말 자체로 보면 백번 옳다. 그런데 말뿐이다. 문 정권이 집권 5년 차에도 국민 앞에 내놓고 자랑할 뚜렷한 성과가 하나도 없다 보니 야당과 검찰, 언론을 악마화해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는 여전하다.
대선이 다가오면서 문 정권은 그들의 특기인 음모론을 또 들고나올 태세다. 야당이 무능하고 팩트 체크할 능력이 없으니 여권이 막강한 스피커를 동원하면 휘둘릴 수밖에 없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제2의 ‘뇌송송 구멍탁’ ‘전자파 참외’와 같은 황당한 음모론에 또 속고 말 것이다.
02월 22일 윤석열의 소명
대통령 몰래 인사 발표 下剋上
親文 민정수석도 못 참고 사표
與 권력 농단 실세 세력 있나
사법부·검찰 뿌리째 흔들려
법치 파괴된 자리에 獨裁 자라
5개월 남은 尹총장 응답해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 이젠 주술(呪術)이 됐다. 지금 문 정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정말 이 말이 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할 따름이다. 지난 주말 동아일보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문 대통령 재가 없이 검사장 인사를 발표했고, 문 대통령은 사후 승인했다고 한다.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이런 하극상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어 문 대통령에게 박 장관의 감찰을 건의했지만 묵살당한 뒤 청와대에서 자신의 역할이 더는 없다고 판단해 사표를 거듭 제출했다는 것이다. 평소 온화한 성품인 신 수석은 지인에게 문자를 보내 “박 장관과는 더는 볼일이 없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내용이 사실이라면 ‘문 정권판 국정농단 사건’이다.
1979년 12·12 쿠데타 이후 권력을 잡은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장이 최규하 대통령을 겁박해 인사와 국정 운영을 하던 때와 다름이 없다. 그렇다면 검찰 인사를 대통령의 사전 재가도 없이 감히 발표할 수 있고 대통령은 마지못해 사후 승인해주는 ‘간 큰 세력’이 있다는 것인데 그 실체가 궁금하다. 나아가 주로 피의자·피고인 신분인 여당 의원들이 앞장서서 돌연 검찰이 올 초부터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6대 범죄에 대해서만 수사권을 갖고 있는데, 이것마저 빼앗는 입법을 추진 중이다. 중대범죄수사청을 만들어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뺏어오고 법무장관이 통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권력 비리 수사를 막고 검찰 해체를 노리는 ‘입법 쿠데타’나 다름없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와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 등 현대 독재자들이 하는 사법 장악과 똑같은 일을 검찰 해체를 지향하는 여당 내 ‘탈레반’ 그룹이 주도하고 친문들이 뒷받침하는 형국이다.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 수장인 김명수 대법원장은 존경은커녕 ‘거짓말쟁이’로 전락하고 말았는데 창피함을 모른다. 진실과 거짓을 판단하는 책무인 판사의 최고 수장이 자신의 입으로 정치권의 눈치를 보고 있음을 시인해 놓고도 9개월 전 ‘기억력 탓’을 하고 있다. 군사독재 시절 군부 엘리트 모임인 ‘하나회’ 같은 사법부 내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들이 온갖 요직을 다 차지하고 있다. 양식 있는 판사들은 여지없이 쫓겨나가고, 정권 비리 사건을 심리하는 ‘코드 판사’는 3년 만에 다른 법원으로 전출 가야 하는 인사원칙도 무시하고 4∼6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런 혼돈을 종식시키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담할 뿐이다. 국민은 야당이 견제와 균형을 잡아줄 것으로 기대해 보지만 절대 열세인 의석구조나 인물면에서 기대난망이다. 여권의 법치 파괴에 맞서 징계·감찰·수사 등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안간힘을 쓰고 있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결단이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윤 총장은 취임사에서 “헌법 정신을 가슴에 새기고 국민의 말씀을 경청하며 국민의 사정을 살피고 국민의 생각에 공감하는 국민과 함께하는 자세로 법 집행에 임해야 한다”고 했다. 만약 현 정권이 그렇게 윤 총장 찍어내기에 혈안이 되지 않았다면 그는 평범한 검찰총장으로 퇴임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1년간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징계, 수사지휘권 등으로 그의 정치적 맷집을 키웠고, 후임인 박범계 장관도 추 전 장관 못지않게 윤 총장의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윤 총장이 인기를 얻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저 공직자로 자신의 직분에 충실했고 어느 정권이건 빌붙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기가 5개월 남은 윤 총장은 막스 베버의 말처럼 ‘소명(召命)으로서의 정치’에 대한 질문에 직면하고 있다. 법치가 무너지면 독재가 자라는데 이를 지켜만 봐서는 안 된다는 국민의 소명이 있고, 이에 윤 총장이 응답할 때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라는 ‘운명(運命)’ 때문에 정치를 시작했지만, 윤 총장에겐 운명보다 더 중요한 소명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검사와 정치의 영역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머리를 빌릴 수는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말처럼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열정과 책임감, 균형적 판단력을 갖추고 있느냐가 기준이 될 것이다.
03월 17일 文정권이 망가뜨린 反부패 시스템
文 다시 적폐·촛불 들고나와
LH 투기 몰리자 지지층 동원령
부패 막을 장치 모두 없애버려
검찰 무력화 反부패 능력 저하
靑 특별감찰관 4년 공석 방치
초보 공수처 처음부터 헛발
이제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문재인 대통령이 또 ‘적폐 청산’과 ‘촛불 정신’을 들고나왔다. 전직 대통령 2명과 대법원장, 경제부총리, 국가정보원장 등이 구속돼 있고 적폐로 몰려 수사받은 인사만 100명이 넘는다. 4명이나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들이 받은 징역형만 130년이 넘는다.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전 정권을 잔인하게 심판해 놓고 집권 4년 차에도 또 들고나왔다. 지난 4년간 스스로 쌓은 신(新)적폐가 넘치는데, 또 이명박·박근혜를 소환한 것이다. 3기 신도시 투기로 궁지에 몰리자 ‘적폐·촛불 보검’을 다시 빼 들었다.
지금까지 드러난 행태만 봐도 문 정권에서 기획한 3기 신도시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정보를 빼내 투기를 한 것이고, 대부분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LH 사장으로 있을 때 벌어진 일이다. 더욱이 2019년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도 이를 고발하는 글이 올랐지만 당시 조국 민정수석비서관, 최강욱 공직기강비서관 등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인데 이것도 전 정권부터 쌓여 왔던 일인 것처럼 부동산 적폐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염치없는 짓이다.
그런데 더 근본적인 문 정권의 죄상(罪狀)은 이런 비리를 미리 차단하고 단죄할 국가의 ‘부패 방지 시스템’을 통째로 무력화했다는 점이다. 첫째는 사정의 중추기관인 검찰의 무력화이고, 둘째는 4년째 공석인 청와대 특별감찰관, 셋째는 공수처 설치에 따른 수사 역량의 약화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추미애 전 장관은 “왜 검찰이 수사권을 가지고 있을 때 이런 비리를 적발하지 못했는가”라며 검찰 책임론을 제기했다. 한마디로 소가 웃을 일이다. 추 전 장관은 지난해 임기 내내 집요하게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박탈했다. 서울중앙지검 등 4곳을 제외하고 전국 지검의 특별수사부를 해체했다. 고도화하는 증권·금융 범죄 대응에 큰 역할을 해 왔던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도 없애 버렸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금융감독원 등이 이것만은 살려야 한다고 했지만 끝내 없앴다. 이런데도 박 장관은 “증권·금융 범죄가 걱정”이라고 딴소리를 하고 있다. 부패, 경제, 공직자 비리 등 6대 범죄만 남기고 수사권을 모두 경찰에 넘기다 보니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신도시 투기 사건은 검찰이 손도 못 대는 황당한 일이 현실이다. 전국 2200여 명의 검사를 놔두고 기껏 10명도 안 되는 특검에 수사를 맡겨야 한다는 여당의 주장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이렇게 검찰을 무력화한 결과 ‘거악(巨惡)’들은 발 뻗고 잘 수 있는 나라가 됐다.
청와대에는 대통령 친인척과 수석비서관 이상의 비리를 적발하고 예방하는 목적의 특별감찰관 제도가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우병우 민정수석의 비리와 월권 등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바 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4년이 지나도록 아무 이유 없이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지 않고 있다. 만약 특별감찰관이 있었다면 조국 전 수석의 문제 등이 미리 걸러졌을 것이다. 울산시장 선거 공작사건,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 모두 특별감찰관의 수사 범위에 있는 일이다. 문 대통령 딸 다혜 씨의 부동산 문제, 처남의 그린벨트 투자 문제 등도 특별감찰관이 미리 들여다봤을 수 있다. ‘대통령 가족 사고 총량의 법칙’이라는 말처럼 비리가 없을 수 없다. 뭐가 무서워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지 못하는 걸까.
예전 대검 중수부가 해체되면서 고위 공직자나 재벌 등에 대한 수사 역량이 줄었는데 공수처는 이를 더 가속화했다. 대선 비자금 사건이나 대통령 관련 사건 등 권력 범죄는 수사의 독립과 중립이 절대적이다. 그런데 김진욱 공수처장은 판사 출신으로 조서 한 번 작성해 본 경험이 없다. 피의자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난 7일 비공개로 만난 사례만 봐도 수사의 ABC조차 모른다. 이런 ‘초보 공수처’에 수사를 맡긴다면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정권 내 ‘휘슬 블로어 (내부 감시자)’ 역할을 하는 기관들이 무력화된 상황에선 앞으로 LH보다 더한 비리도 나올 수 있다. 수사기관이 많이 생긴다고 수사를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부패 방지 및 추적·수사시스템 붕괴로 국가는 위기이지만 범죄자에겐 기회의 순간이다.
04월 05일 文정권 4년이 만든 ‘이상한 나라’
역대 정권 미래 디딤돌 만들어
5년차 문 정권 남긴 遺産 없어
다음 정권에 숙제만 남겨 놓아
쇼하더니 일자리 195萬 증발
도보 다리 쇼는 毒舌로 되받아
국민이 현명해야 亡國 막아내
5년 단임 대통령제 아래서 마지막 5년 차는 레임덕을 피할 수 없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권이 모두 5년 차엔 지지율이 20%대 이하로 떨어졌고, 박근혜 정권은 탄핵까지 당했다. 청와대 권력의 장악력이 떨어지면서 국정의 난맥상이 있지만, 그래도 역대 정권은 다음 정권에 긍정적인 정치적 유산(레거시)을 남기면서 전체적으로 보면 대한민국은 전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들 비리로 곤두박질쳤지만, 벤처 붐을 일으키고 4차 산업혁명시대의 기초를 마련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라크 파병으로 한·미 동맹을 튼튼히 하고, 기업의 경쟁력 확보 기반도 닦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잘 극복함으로써 제2의 IMF 사태를 막아낸 공로는 평가할 만하다. 집값도 이때는 안정됐다. 박근혜 정부도 탄핵당하긴 했지만, 재정은 양호했다.
1년 남은 문재인 정권은 어떤 레거시를 남길지 살펴보면 참담함이 앞선다. 역대 어느 정권보다 압도적 의석과 3권 장악에, 지방권력까지 가진 정권이지만 유산은커녕 각종 청구서만 잔뜩 남겨두고 있다. ‘음악 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이젠 다 멈춘 채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 있죠/어둠만이 흐르고 있죠’라는 ‘연극이 끝난 후’ 노래 가사가 실감 난다.
지난 4년의 국정은 한편의 ‘대형 쇼’를 본 것만 같다. 이제 쇼는 끝나고 조명이 꺼져버린 초라한 무대를 봐야 하는 국민은 허탈한 심정이다. 일자리 정부를 자처하고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 상황판까지 만들어 쇼를 했는데, 최근 통계에 따르면 문 정부 출범 이래 주 40시간 이상 근무하는 ‘풀타임 일자리’는 195만 개나 증발했다. 반대로 주 40시간 미만 근로자는 213만 명이나 늘었다. 주 52 시간제에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각종 기업 옥죄기 법률의 통과 등이 낳은 결과다. 코로나19 핑계를 대지만 이미 그전부터 나타났는데, 세금 일자리 때문에 착시효과가 있었다. 집값 상승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임대차 3법 때문에 겪는 전·월세 대란은 생각하기도 싫다. 그런데 이 정권 인사들은 법 제정 이전에 자신들의 손해는 절묘하게 피해갔다.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박주민 의원이 상징적이다.
법치는 또 어떤가. 사법부는 코드 인사 일색으로 배치해 이제 재판을 받는 피고인들은 먼저 판사가 어느 연구회 소속인지를 물어보고 변호사를 구한다고 한다. 대법원장이 버젓이 거짓말을 하고도 버티고 있으니 누가 사법부를 신뢰하겠나. 정권 비리 수사를 막기 위해 검찰의 수사권을 빼앗고 검찰총장을 못살게 한 끝에 결국 중도에 검찰을 떠나게 했다. 쫓겨난 검찰총장이 대권 후보 선호도 1위에 오르는 ‘이상한 나라’가 돼버렸다. 고위공직자 수사하라고 만든 공수처장이 ‘친정권 피의자(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를 관용차로 에스코트해 ‘황제 조사’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K-방역이라고 온 나라에 자랑하느라 코로나 백신 확보를 무시하다가 세계 112위의 백신 접종국 오명을 썼다. 다른 나라 사람들 해외여행 갈 때 우리는 내년에도 ‘마스크 대선’을 치러야 하는 신세가 됐다. 남북관계는 더 가관이다. ‘도보 다리 회담’ ‘백두산 등정’ 등 온갖 쇼를 하다가 이젠 북한 김여정이 갖은 욕을 해도 대꾸도 못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됐다. 김여정 한마디에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 정도로 노예가 돼버렸다. 국제사회는 문 정권을 인권탄압국으로 보고 있다. 안보의 뿌리인 한·미 동맹마저 거추장스럽게 생각하며 친중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한 팀이라고 자랑하던 당·청은 떨어지는 대통령 지지율 앞에 이별 연습을 하고 있다. ‘문재인 보유국’이라던 박영선 후보는 한 달도 안 돼 ‘문(文)’ 자조차 입에 담지 않는다. 친문 핵심 의원이라고 자처하는 이가 이젠 “대통령 임기는 1년 남았지만, 우리는 3년이나 남았다”고 공공연하게 얘기하는 지경이다.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문 정권이 만든 말기적 증상은 심각하다. 이렇게 나라답지 않은 나라가 된 데는 문 정권에 절대적인 책임이 있지만, 지난해 4·15 총선 때 여당에 압도적 승리를 몰아준 국민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 4·7 선거를 통해 국민이 개돼지가 아니라 깨어 있음을 보여줘야 할 때다.
04월 26일 文, 국민과 법치에 선전포고할 건가
4년 동안 내 편 네 편 나누기만
차기 총장 자격도 ‘국정철학’
이성윤 임명 위한 사전 포석
거짓말 대법원장에 病暇 판사
사법부 신뢰 땅바닥에 떨어져
民心경고 무시하면 심판당해
지난해 7월 국회 법사위에서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한 감사원 감사를 둘러싸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최재형 감사원장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감사원은 국회가 감사를 요청함에 따라 원전 폐쇄의 절차상 문제를 감사했을 뿐인데 여당은 이를 탈원전 정책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런 합법적인 활동을 놓고도 신동근 민주당 의원은 최 원장을 향해 “대통령 국정 운영 철학과 맞지 않으면 감사원장을 사퇴하라”고 몰아붙였다.
문재인 정권은 인사를 할 때마다 “국정 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설명을 빼놓지 않는다. 문 대통령 국정 철학이 명문화돼 있지는 않지만, 취임사나 매년 발표하는 신년사를 보면 공정, 정의, 평등, 혁신, 포용, 개혁, 남북 화해 등이다. 이를 제대로 실천했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말로만 보면 역대 정부가 내세워 온 국정 철학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런 추상적인 취지에 동의하지 않는 인사가 어디에 있을까. 사실 문 정권 핵심 인사들의 행태를 보면 이런 국정 철학에 부합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도 문 정권이 입버릇처럼 국정 철학 운운하는 것은 ‘내 편이냐 아니냐’를 나누는 기준을 거창하게 표현했을 뿐이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23일 새 검찰총장 인선 기준에 대해 “대통령이 임명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대한 상관성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이 발언을 듣고 “말 잘 듣는 검찰을 원한다는 걸 장관이 너무 쿨하게 인정해버린 것 같아 당황스럽다”고 했다. “장관이 생각하는 검찰 개혁이 무엇인지 정말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내각의 장차관을 임명할 때는 모르겠지만, 준사법기관이자 법과 원칙, 공정성이 생명인 검찰총장을 임명하면서 대놓고 국정 철학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 무식하거나 아니면 오만하기 짝이 없다.
결국 권력 비리 수사를 뭉개거나 막는 데 혁혁한 공로가 있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차기 검찰총장으로 임명하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이 지검장은 김학의 전 법무차관 불법 출금 사건의 핵심 피의자일 뿐 아니라 그간 보여준 처신을 보면 검사 자격조차 없는 인물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조사를 받으면서 이해관계가 있는 검찰 출신 변호사의 차를 이용하질 않나, 몰래 공수처장의 관용차로 조사 같지 않은 ‘황제 조사’를 받았다. 검찰 수장이 되려는 사람이 검찰보다 공수처를 더 신뢰한다면 2000여 검사가 그를 따르겠는가. 만약 문 대통령이 이 지검장을 총장으로 임명한다면 법치 파괴를 공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문 정권은 검찰·사법 개혁을 국정철학으로 제시했지만, 그 행태를 보면 ‘권력의 시녀’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거짓말 대법원장’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사법부 권위를 망가뜨렸다. 정권 비리 사건을 챙기기 위해 ‘코드 판사’를 무리하게 연임시키며 맡겼더니 사건 심리와 선고를 앞두고 돌연 ‘병가(病暇)’를 내고 사라지는 블랙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제 재판을 받기 전에 판사가 어느 모임 소속인지를 먼저 알아보고 변호사를 선임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
문 정권의 ‘정치적 숙원’이라며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공수처는 제대로 출발도 하기 전에 ‘정권 범죄 비호처’라는 오명은 물론, 온갖 구설에 휘말리고 있다. 심지어 김진욱 공수처장이 검찰에 수사를 받아야 하는 처지다. 특수 수사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변호사 출신 검사들로 권력 범죄를 수사하겠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경찰은 국가수사본부를 거창하게 발족시켰지만,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투기 수사 실적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사법부와 헌법재판소의 ‘코드화’는 물론 검찰, 공수처, 경찰 할 것 없이 국가 형사·사법체계가 문 정권 4년 동안 철저히 망가져 만신창이가 돼 버렸다. 전직 검찰총장(윤석열)이 차기 야권의 대선 후보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민심의 결과물이다. 지난 4·7 재·보궐선거에서 분노한 민심을 보고도 문 정권은 반성은커녕 또 국정 철학과 검찰개혁을 앵무새처럼 되뇌고 있다. 국민의 58%가 ‘만성적 울분’에 처해 있는 현실을 문 정권이 직시하지 않는다면 그 후과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05월 21일 국민의힘이 진짜 국민의 ‘힘’ 되려면
“아직 민주당 지지하나” 反轉
文정권 위선·무능에 등 돌려
반사이익 야당도 여전히 不信
코로나 이후 시대는 정치 격변
유능하고 따뜻한 保守가 관건
국민 여론 100% 반영 경선 돼야
얼마 전만 해도 20대에게 국민의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극혐”이라는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한마디로 최상으로 혐오스럽다는 얘기다. ‘꼰대’ ‘막말’ ‘여성 혐오’ ‘기득권 옹호’ 이미지가 가장 먼저 연상된다는 것이다. 대학가에서 보수 정당을 지지한다고 밝히거나 모임을 만든다고 하면 왕따가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요즘 대학가에선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고 한다. 지난 17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초청으로 국회 간담회에 참석한 한 20대 대학생은 “요즘엔 민주당을 지지하느냐가 더 비하하는 말”이라며 “청년들이 더 이상 현금 공약에 속아서 표를 주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최근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여야의 20대 지지율이 처음으로 두 배 이상으로 벌어졌다. 지난 17일 리얼미터 조사에선 20대의 민주당 지지율은 17.9%를 기록해 국민의힘 지지율(37.0%)의 절반이었다.
문 대통령 출범 초기만 해도 여당 지지율이 80% 육박하던 20대가 민주당에서 마음이 떠난 것은 지난 4년간 그들의 위선과 무능을 적나라하게 지켜봤기 때문이다.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외친 그들이 조국, 윤미향, 추미애 사태 등을 통해 보여준 모습은 ‘그들만의 평등과 공정, 정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4·7 재·보궐선거를 통해 표로 응징했다. 그런데 민주당에 등을 돌린 이들이 여전히 국민의힘으로 오지 않는 것은 당장은 문 정부와 대척점에 서 있지만, 그들의 본질 또한 민주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불신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 시대는 인류가 그동안 경험한 중세 흑사병이나 20세기 초반 스페인 독감처럼 정치·경제·국제 질서·과학 등에서 엄청난 변화에 직면할 것이다. 특히 정치 영역에서는 벌써 격변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 문법으로 정치 외면 층이던 2030세대가 적극적으로 정치적 의사 표시에 나섰다. 서울시장 유세 때 보면 이들은 거리낌 없이 연단에 올라 자신들의 주장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SNS상에서 벌어지는 논쟁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세대교체의 거대한 물결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치 에너지를 흡수하려면 정당의 그릇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번 민주당 대표 경선에서 여전히 586 패권이 확인됨에 따라 선택지에서 멀어졌다. 이제 국민의힘이 이들을 흡수해야 한다. 그런데 6월 11일 열리는 당 대표 경선을 보면 당명인 ‘국민의 힘’이 아니라 점점 ‘당원의 힘’이 되고 있다. 초선의 1970년대생 김웅, 김은혜 의원과 30대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당 선관위가 예비경선에서는 당원 50%, 국민여론 50% 룰을 정했지만 본 경선에서는 당원 70%, 여론조사 30%를 고집하고 있다. 국민의 정당이 되겠다고 당명도 바꿔놓고선 여전히 당원 중심이다.
한국 정치에서 보수는 기득권 또는 변화를 거부하는 이미지로 각인됐지만 전통적인 보수 정당인 영국 보수당만 해도 오히려 변화와 개혁의 상징이다. 최초의 유대인 총리와 최초의 여성 총리를 배출한 것도 보수당이다. 산업화 이후 빈부 격차가 심해지자 ‘두 개의 국민’이 생겼다며 엘리트의 책임의식,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한 것도 보수당이었다. 13년 동안의 야당 생활을 끝내고 2010년 총선에서 보수당은 43세의 젊은 데이비드 캐머런을 총리로 내세웠다.
‘깨끗하고 따뜻하며 도덕적인 보수’를 만들기 위해선 국민의힘이 이번 대표 경선은 가히 혁명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의 파격을 주도해야 한다. 내년 대선의 승패는 젊은층과 중도층을 잡아야 가능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영남당, 꼰대당, 구태당 이미지로는 성공할 수 없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같은 아파트에 사는 것을 큰 장점으로 자랑하고, 선거 때마다 단골손님처럼 나타나고, 방송 사회자가 5선이나 되는 자신의 이름을 잘못 불렀다고 호통치는 인물로 어떤 개혁이 가능하겠는가. 박원순, 오거돈의 성비위로 지난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치른 것이나, 윤 전 총장을 비롯한 후보군이 있는 것은 하늘이 야당에 내린 기회이다. 오세훈 시장이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100% 국민 여론조사에 따른 후보 단일화 과정이 있어서였다. 당 대표 경선도 이런 승리의 공식을 따라야 한다.
06월 11일 ‘문빠’시대 가고 ‘조빠’시절 오나
전국 곳곳에 조국 지지 현수막
나꼼수도 다시 뭉쳐 출마 권유
‘조국의 시간’ 깃발 아래 뭉쳐
당 경선과 대선에 영향 포석
김명수 大法에 무죄 압박 시위
‘變化盲視’ 하다간 수렁에 빠져
최근 용인 법무연수원과 일산 사법연수원 앞에는 조국 전 장관 지지자들이 ‘검찰의 만행 그 진실을 밝힌다. 조국의 시간’이라는 현수막을 붙여 놓았다. 지방에도 지지자들이 현수막을 걸어놓고 ‘인증샷’을 올려놓기도 한다. 조 씨가 ‘현수막을 내려달라’고 SNS를 통해 부탁했지만 진심인지는 모를 일이다. ‘조국의 시간’이라는 책이 출간된 지 2주도 안 돼 20만 권 이상 팔려나갔다고 한다. 읽기 위한 것도 있지만 구매 자체가 일종의 ‘조빠 인증’이 돼 버렸다.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각자 방송활동을 하며 헤어졌던 ‘나꼼수 4인’도 ‘조국의 시간’을 계기로 다시 뭉쳤다고 한다. 한때 김용민 씨는 주진우 씨를 ‘친 윤석열’이라고 비난하며 자신은 ‘더 이상 나꼼수 멤버가 아니다’라고 결별을 선언하더니 장사가 된다고 봤는지 스멀스멀 다시 모여들었다. 앞으로 유튜브를 개설해 독후감을 공모하겠다고 한다. 멤버 중 한 명인 정봉주 전 의원은 조 씨에게 대선 출마를 권유했다고 밝혔고, 조 씨는 ‘never’라고 대답했는데 자신은 ‘ever’라고 응수했다고도 한다.
이런 움직임을 보면 ‘조국의 시간’은 이들에게 단순히 책 한 권이 아니다. ‘문빠’ 시대는 가고 ‘조빠’ 시대가 도래한다는 상징이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국민 사과를 하며 조 씨와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은 이례적으로 언론 인터뷰를 하면서 조 씨에 대해 “그분 정도 위치에 있으면 운명처럼 홀로 감당해야 할 역사적 사회적 무게가 있다”면서 “꼭 책을 냈어야 했는지, 당에 대한 전략적 배려심이 아쉽다”고 비판했다. 친문 내에서도 분화가 이뤄지는 징조다. 조 씨는 “나를 밟고 가라”고 했지만, 역설적으로 ‘밟고 가면 가만 안 있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아내, 동생, 5촌 조카가 구속되고, 아들과 딸 모두 표창장·인턴 위조 사실이 밝혀지고 자신도 재판을 받는 등 법률적으로만 접근하면 그의 재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내년 3월 대선과 가깝게는 민주당 9월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논란이 될 것을 뻔히 알면서 조 씨가 왜 이런 책을 냈을까 하는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첫째, 문재인 정권 하면 먼저 생각나는 ‘내로남불’의 촉발점이 된 자신의 원죄를 벗기 위한 일종의 ‘선동’이다. 여기에 정권 내내 방송 등에서 ‘꿀’을 빨다가 새로운 먹잇감을 발견한 김어준 등 나꼼수가 조국을 등에 업고 제2의 부활을 노리고 있다.
둘째, 다음 정권을 겨냥한 정치세력화다. 정권을 재창출할 경우 차기 주자들에게 ‘나를 잊지 말라’는 압박이다. 이낙연·정세균 전 총리는 이미 ‘조국의 시간’에 무릎을 꿇었다. 경선에서 비토당하지 않으려면 조국에게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직 이재명 경기지사만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친조국 세력들은 이 지사에게 끊임없이 입장을 강요할 것이다. 만약 정권을 빼앗긴다면 노무현처럼 검찰에 탄압당한 자신의 이미지를 부각해 ‘조빠’ 시대를 열어보겠다는 계산도 할 것이다. 셋째, 검찰과 사법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아내려 할 것이다. 이미 검찰은 무력화됐고, ‘코드’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어떤 식으로든 보답할 것이라고 희망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문 정권의 큰 늪이 돼버린 ‘조국의 시간’은 전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책임이다. 조 씨를 법무장관에 공식 지명하기 전에 비리 의혹이 쏟아지자 당시 문 대통령은 이낙연 총리, 임종석 비서실장, 김경수 경남지사와 이해찬 민주당 대표, 이인영 원내대표를 청와대로 불렀다. 이 총리, 임 실장, 김 지사 등 3명은 장관 임명에 반대했지만, 이 대표와 이 원내대표는 “여기서 밀리면 끝이다”며 끝까지 고집을 부려 결국 문 대통령이 이들의 의견에 따랐다고 한다. 이후에도 “마음의 빚” 운운하며 단절하지 못하는 바람에 이 지경까지 온 것이다.
속단하긴 이르지만, 국민의힘은 이준석 바람과 윤석열 몸풀기에 힘입어 ‘극혐’에서 벗어나 미래로 달려가려는 조짐이 보인다. 반면 민주당은 조국이라는 과거의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변화맹시(變化盲視·변화를 탐지하지 못함)’라는 양 전 원장 지적이 정확하지만, 지금 민주당은 이를 인식하고 쇄신하기엔 역부족인 듯하다.
06월 30일 정치인 윤석열의 ‘公正 정치’
6·29 선언 34주년에 출사표
분열로 패한 야당의 反面敎師
이젠 실력으로 증명할 시간
反文 빅텐트는 혼자선 역부족
정당의 중요성 망각하면 패착
野와 결합 늦추면 위기 올 수도
1987년 6월 29일 오전 9시 서울 관훈동 민정당사. 당시 노태우 대표는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직선제 개헌과 김대중 사면복권 등을 골자로 하는 8개 항의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회의장은 충격과 놀라움으로 침묵이 흘렀고, 일부 의원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대통령 간선제였다면 당연히 차기 대통령은 노태우 대표였지만 직선제가 되면 정권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 대표는 자신의 주장을 전두환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모든 직책에서 사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쳤고, 전 대통령은 마치 각본을 짜기라도 한 듯이 곧바로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야당은 ‘6·29 항복선언’이라고 들떠 있었고 이후 3김 씨는 각각 대선에 출마하게 된다. 당연히 야당이 승리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4자(者) 필승론’ 등 낙관적인 전망이 난무했다. 그러나 분열한 야당은 자멸하고, 노 후보는 고작 36.6%의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공교롭게도 6·29선언 34년이 되는 날 정치 참여 선언을 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비롯한 야당에서는 대선 낙관론이 팽배하다. 윤 전 총장, 최재형 전 감사원장 등 주자들이 있고, 당 지지율도 40%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마치 34년 전 6·29선언 때 야당처럼 자신감이 충만하다. 반면 문재인 정권은 부동산 실책을 연발하고 레임덕 조짐도 보인다. 하지만 선거는 어떤 드라마를 연출할지 아무도 모른다. 끝까지 국민의 마음을 얻는 자만이 승리의 축배를 들 수 있다.
‘검사 윤석열’은 권력의 부당한 압력과 수사 방해에 맞서 법치와 헌법 정신을 지키는 이미지로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이젠 ‘정치인 윤석열’ ‘대권 후보 윤석열’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때 홍명보 감독이 경기에 패한 뒤 “선수들이 월드컵에서 좋은 경험을 했다”고 말하자 당시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월드컵은 경험하는 무대가 아니다. 월드컵은 최고의 실력으로 증명해 보이는 대회다”고 지적한 바 있다. 내년 3·9 대선도 마찬가지다. 최고의 실력으로 증명해 보여야 한다.
윤 전 총장은 이날 정치참여 선언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위대한 국민의 상식으로부터 출발하겠다”고 했다. 1987년 이후 정치는 상생(相生)이 아니라 상극(相剋)으로 치달았다. 권력을 잡은 측은 5년 내내 상대방 죽이기에 골몰했고, 반대로 야당은 정권 끌어내리기에만 힘을 쏟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갈등의 정점이었다. 문재인 정권은 이런 갈등을 해소하기는커녕 더 부추겼고, 이제 임기를 1년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 상처만 남겼다. 오죽했으면 문 대통령이 한 인사 중에 가장 잘했다는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이 중도에 사퇴하고 야권의 대선후보로 나서겠다고 하겠는가. 화합은 말은 쉽지만 현실정치에서 구현되기란 별 따기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지금 윤 전 총장을 지지하는 국민은 문 정권의 죄상을 다음 정권에서 철저히 단죄해 달라는 요구가 많다. 더욱이 윤 전 총장은 문 정권의 ‘적폐청산 수사’를 이끌었던 원죄 아닌 원죄가 있다. 보수와 중도뿐만 아니라 진보에서 반문으로 돌아선 이들까지 모두 엮어 ‘반문 빅텐트’를 치겠다는 것인데 난관이 많다. 이런 일을 혼자서 이루긴 어렵다. 이준석 대표 취임 이후 정치의 새바람을 주도하는 국민의힘과 함께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현실적이다. 친문처럼 친윤(親尹) 그룹도 만들어야 한다.
윤 전 총장이 ‘공정’의 가치를 등에 업었듯 지금 정치권의 화두는 ‘공정한 정치’다. 이 대표가 시작한 대변인 토론배틀이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오는 것도 처음으로 새 정치의 모델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학벌·지연·돈이 없어도 누구나 공정한 과정을 거쳐 정치권에 들어올 수 있다는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이제 검찰의 공정을 넘어 정치의 공정을 직접 보여줘야 한다. 안철수·반기문·고건 현상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기득권을 버리지 못했고 정당의 가치를 경시했기 때문이다. 높은 지지율만으로 정권교체를 달성하긴 어렵다. 그러기 위해선 정치의 영역에서 윤석열식 공정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당원들과 의원들의 지지와 공감을 끌어내고 국민 앞에 당당히 자신의 실력을 보일 때 지지율은 표로 현실화된다. 대선 과정에 부전승(不戰勝)은 없다.
07월 21일 자유민주주의와 그 敵들
상대방 인정이 열린사회 기본
이재명의 위험한 ‘날치기 소신’
토론 없는 다수결은 제도 폭력
5·18 독점 깨지자 당황한 與
언론·검찰 장악 행태 노골화
닫힌사회 북한 중국엔 저자세
영국의 철학자 카를 포퍼는 히틀러가 2차 세계대전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고향인 오스트리아를 침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역작인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책을 썼다. 그가 정의하는 ‘열린사회’는 이성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고 내가 틀리고, 당신이 옳을 수 있다는 주장이 통용될 수 있는 곳이다. 진리가 독점되지 않으면서 절대적 진리가 없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는 그런 사회다. 반면 ‘닫힌사회’는 전체주의에 기초한 사회로, 전체가 개인을 규제하며 선민사상 등에 의해 지배되는 곳을 말한다. 한마디로 열린사회의 반대 개념이다.
포퍼의 분석 틀에 기초해서 보면 지금 대한민국은 과연 열린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대선을 8개월 앞두고 집권 여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선에 나선 후보들의 언행을 보면 열린사회로 가는 길은 한참 멀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아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형해화하려는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짓밟아 없애버려야 하는 ‘독극물’로 여긴다.
여권 대선 후보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 15일 김어준 씨가 진행하는 TBS 라디오 방송에 출연, 국회가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재난지원금을 “과감하게 날치기해야 한다”고 했다. 이 지사는 “180석 얘기를 자주 하지 않냐”면서 “정말로 필요한 민생에 관한 것은 과감하게 날치기해줘야 한다”고 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이던 1996년 12월 26일 여당인 신한국당은 야당 의원들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새벽에 단체로 버스를 타고 몰래 여의도를 건너 들어가 자기들끼리 국회에서 회의를 소집했다. 이들은 노동법과 안기부법 개정안을 날치기해 통과시켰다. 이후 야당과 노동계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40일간 벌어진 가두 집회에는 연인원 350만 명이 참가했다. 1월 21일, 결국 YS는 야당 총재인 DJ(김대중), JP(김종필)와 함께 영수회담을 가진 후 이 자리에서 노동법 재논의를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
입만 열면 민주화 적통(嫡統)이라고 자부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 입에서 ‘날치기’라는 말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온다. 소신이라고 한다. 자신들만 옳고 야당은 반(反)민생으로 여기는 독선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다수결의 힘을 이용해 충분한 토론과 타협 없이 자신들 뜻대로 관철시키는 것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제도적 폭력이다. 임대차 3법을 비롯해 문재인 정권에서는 이런 폭력이 이제 일상이 돼 버렸다. 그 결과 전셋값이 7배나 오르며 고스란히 서민의 고통으로 다가오고 있다. 마찬가지로 날치기로 통과시켜 만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잘 돌아가고 있는가. 이래놓고선 후보들끼리 서로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의 적통이라고 주장하며 왕조시대 ‘세자 놀이’에 빠져 있다.
김두관 의원은 지난 19일 국립 5·18 묘지를 참배한 뒤 앞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참배하면서 손으로 만졌던 열사 묘역의 묘비를 손수건으로 닦아 냈다. 김 의원은 “윤 전 총장이 더럽힌 비석을 닦아 드려야겠다는 심정으로 손수건으로 비석을 닦았다”고 했다. 자신들이 ‘볼모’로 잡은 5·18에 대해 이제 야당도 참배하는 상황에 이르자 빼앗기지 않겠다는 독선의 극치다. 독점이 깨지는 것을 참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영령들이 잠든 묘지까지 조폭들이 영역 다툼하는 곳처럼 만든 행태가 역겨울 따름이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의 필 로버트슨 아시아 부국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대북전단 금지법과 관련, “문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이 학생운동을 할 때 정부가 민주주의 가치를 담은 전단 배포를 금지했다면 가만히 있었을까”라고 되물었다. “아마도 졸도할 정도로 화를 냈을 것”이라고 했다. 이제 여권은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입법화해 정부 비판의 입을 틀어막겠다고 한다. 법무부 장관이 노골적으로 수사에 개입하고, 검찰과 경찰의 수사는 친정권이냐 아니냐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외교에서도 닫힌사회인 중국과 북한의 내정간섭적 행태엔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면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일본에 대해선 정반대다. 학자들은 ‘역사는 진보한다’고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09월 10일 되살아나는 ‘김대업 악몽’
대선판 흔드는 폭로전 재연
언론-여당-시민단체로 확산
兵風 피해 이회창 2.3%P 패배
고발 사주 의혹도 비슷한 궤적
與·검찰이 앞장서서 의혹 확산
국민 선택 왜곡 다시는 없어야
한비자에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나온다. 세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외치면 임금도 믿는다는 것이다. 거짓말도 여럿이 하면 참말이 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해 4·15 총선을 12일 앞두고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을 시켜 당시 미래통합당 후보로 출마한 김웅 의원에게 최강욱 의원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기자 등을 고발하도록 사주했다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이면 검찰 조직을 사유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지만, ‘공작(工作)’ 의혹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대선 때마다 나오는 폭로인데 지금 상황을 보면 2002년 대선판을 흔들었던 ‘김대업 병풍(兵風)’과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기시감이 든다. 의무부사관 출신인 김대업은 사기 행각으로 감옥을 들락거리면서도 1년 넘게 수사관 행세를 했다. 수감 중인데도 병역비리를 판별하는 탁월한 능력으로 검찰 수사를 돕기도 했다. 2001년 3월 사기 혐의로 구치소에 있던 중 뇌물수수 혐의로 긴급 체포된 김길부 전 병무청장에게 검찰 수사관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자백을 회유했다. 출소 후 김대업은 오마이뉴스 기자를 만나 “김길부로부터 1997년 대통령 선거 직전 이회창 후보 아들 이정연 등 병역면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대책회의를 열었고, 그에 따라 병역판정부표를 파기했다는 진술을 들었다”고 제보했다. 녹음테이프도 있다며 신빙성을 더했다.
당시 오마이뉴스 보도 제목은 ‘이회창 아들 병역비리 은폐 대책회의 열었다’ ‘병무청 간부 폭탄 진술 뒤 부인’ 등이었다. 민주당은 병역비리가 드러났다며 이회창 후보를 심판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고, 대선 전까지 발표한 논평만 249회에 달했다. 인터넷 신문의 보도를 신문, 방송이 받아 확대 재생산했고, 검찰 수사가 시작됐으며 시민단체까지 가담했다. 전방위 공세에 이 후보는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불과 2.3%포인트 차이로 석패했다. 그런데 검찰 수사 결과 결정적 증거라는 녹음테이프는 ‘녹음 시점’보다 2년 뒤 생산된 제품인 것으로 드러나는 등 사기의 전모가 밝혀졌다. 당시 수사 검사가 “김 씨는 거짓과 사실을 교묘하게 뒤섞어놓는 재주가 있었다”고 했다. 온 국민을 농락해 놓고도 김 씨는 “대선이란 전쟁터에서 죽음을 불사하고 싸웠다”고 큰소리쳤다. 김대업의 거짓말에 언론과 검찰, 야당과 시민단체가 한통속이 됐지만 이 후보 입장에선 버스가 이미 지나간 뒤였다.
‘최순실 국정농단’을 폭로한 고영태의 경우도 그와 측근들이 최 씨와 대통령 관계를 악용해 자신들의 이권을 추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제보한 것이 전화 녹취록 등을 통해 뒤늦게 확인됐다. 그러나 워낙 ‘최순실 국정농단’의 프레임이 강력하다 보니 이런 사실은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번 고발 사주 의혹도 평행이론처럼 닮아간다. 인터넷 매체 ‘뉴스버스’가 처음 보도했고 여당이 문제를 키웠다. 친여 매체들이 앞장서 보도한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감찰 조사가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윤 전 총장과 손 정책관 사이에는 그 이상의 관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윤 전 총장이 손준성 검사를 대단히 가깝게 활용한 것으로 파악한다”는 등 윤 전 총장 개입에 군불을 땠다. 제보자는 친여 성향의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에게 공익신고자 신청을 했고, 대검은 전광석화처럼 발표했지만 주무기관인 국민권익위는 월권이라고 꼬집었다.
검찰은 감찰을 수사로 전환해 윤 전 총장을 입건해 조사하는 시늉을 할 것이고, 공수처는 10일 재빠르게 김웅 의원실 압수수색을 함으로써 ‘수사 경쟁’에 나섰다. 이러다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이 떨어져 경선을 통과하지 못하면 여권으로선 최선이다. 시간과의 싸움인 대선 국면에서 ‘사실 규명’이라는 프레임은 문제 제기 진영에 유리할 수밖에 없지만 반대편은 속수무책이다. 그래서 김영삼 대통령 시절 ‘김대중 비자금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수사를 중단했다. 손 전 정책관이 작성했다는 증거가 나와도 윤 전 총장과 연결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결국 ‘검찰 사유화’인지 ‘공작’인지는 유권자 판단의 몫으로 넘겨야 할 가능성이 크다.
10월 06일 ‘부패완판’ 세상이 됐다
대형 비리 터졌는데 수사 방치
경찰, 수상한 자금 6개월 뭉개
검찰 수사 의지도 능력도 의문
재판거래 의혹 침묵하는 大法
검찰·사법개혁 민낯 드러나
巨惡과 부패 판치는 세상 우려
지난 3월 여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지금 진행 중인 ‘검수완박’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치·경제·사회 제반 분야에서 부정부패에 강력히 대응하는 것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고 국가와 정부의 헌법상 의무”라고 강조했다. 이 얘기를 하고 얼마 후 결국 윤 총장은 사퇴의 길을 택했다. ‘검찰 개혁이냐, 부패 완판이냐’ 논쟁은 이번 성남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을 계기로 윤 전 총장 예언이 100% 맞은 것으로 결론 나고 있다.
조국·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부터 박범계 장관까지 문재인 정권은 검찰 수사권 무력화를 ‘검찰 개혁’으로 포장해 밀어붙였다. 전국 지검·지청의 특별수사부를 폐지하고 서울중앙지검 등 4곳에만 남겼다. 부패·경제 범죄 등 6대 범죄를 제외한 수사권을 경찰에 넘겼고, 판·검사 등에 대한 수사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맡도록 했다. 이것도 모자라 파죽지세로 몰아붙이던 ‘검수완박’은 윤 총장이 사퇴하고 김오수 검찰총장이 취임하자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 검찰 요직에 특정 지역, 친정권 인사 배치를 완료했기 때문이다. 박 장관은 “검찰권의 남용, 특히 직접 수사가 갖고 있는 여러 문제점을 극복하자는 차원에서 나온 것”이라며 여당이 추진한 중대범죄수사청에 무게를 실었고, 김 총장은 “검찰의 직접 수사를 최대한 자제하겠다”고 맞장구쳤다.
이렇게 검찰도 개혁되고 경찰은 수사권이 생기고, 공수처도 탄생했지만 ‘단군 이래 최대 개발 비리’라는 대장동 사태가 터졌는데 제대로 믿고 수사를 맡길 기관이 없다. 예전에는 이런 대형 비리가 생기면 대검 중수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나서 어느 정도 국민 의혹을 풀어주었는데 이젠 믿을 사정기관이 하나도 없어지면서 ‘부패완판’ 세상이 됐고, 거악(巨惡)들은 살판이 났다. 뇌물 단위도 수백·수천억 원이 쉽게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조상 대대로 가지고 있던 땅을 싸게 팔고, 대출받아 내 집을 마련했던 시민들의 돈이 고스란히 몇몇 거악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대장동 사건은 지난 4월 시행사인 ‘화천대유’의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한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서울 용산경찰서에 통보했을 때 제대로 살펴봤더라면 진작 포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말단 직원 한 명에게 맡겨두고 6개월이나 뭉개다가 문제가 불거지자 이제야 수사하는 시늉을 하고 있다. 화천대유 측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은행에 찾아와 거액의 현금을 찾아가는 바람에 은행 직원이 짜증을 냈을 정도라는데, 경찰은 뭘 하고 있었는지 황당하다. 이런 경찰에 수사권을 줘봐야 뭘 할 수 있겠는가.
친정권 인사들로 수사 라인을 완벽하게 구성한 검찰은 기자들이 의혹을 파헤치는 동안 수수방관하다가 천화동인 5호 소유주인 정영학 회계사가 지난달 27일 검찰에 녹취록과 사진 등을 제출하고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 증거 제출이 없었다면 아직도 뭉개고 있을 것이다. 지난 3일 구속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 대한 압수수색도 엉성하기 짝이 없다. 유 씨가 휴대전화를 밖으로 던졌다고 하는데 찾지도 못한다. 유 씨가 예전에 쓰던 휴대전화를 지인에게 맡겼다고 진술했는데도 확보하지 못했다. 억지로 수사하는 티가 역력하다. 윤 전 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 사건 땐 아직 제대로 수사를 하지도 않았는데 박 장관이 국회에 나와 “강한 의심이 든다”며 결론이 난 것처럼 말하고, 김 총장은 검사 10명을 투입하더니 이번엔 침묵한다.
대법원도 마찬가지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거래’ 의혹에 대해선 김명수 대법원장이 수사를 의뢰하고, 전국법관회의는 호들갑을 떨더니, 이번 권순일 전 대법관의 ‘재판 거래’ 의혹엔 입을 다물었다. 이재명 경기지사 무죄 판결에 앞장선 권 전 대법관이 판결 전후로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 씨를 8번이나 만나고, 퇴임 직후 이 회사 고문으로 가 거액을 받았다. 국가 사정 시스템을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다. 지난 5년 문재인 정권이 입버릇처럼 말해온 검찰 개혁, 사법 개혁으로 부패가 판치고 거악이 살판나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 됐다.
11월 01일 ‘총량 허가제’가 만들 기막힌 나라
언론 통폐합 닮은 식당 허가제
‘선량한 규제’ 뒤에 숨은 獨裁
초법적 공직자 부동산 매각도
대선을 계급 간 대립으로 몰아
포퓰리즘과 사회주의의 결합
경험 못한 나라 ‘시즌 2’ 예고
12·12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신군부는 1980년 11월 12일 각 언론사 사주들을 소격동 보안사령부로 소집했다. 보안사 요원들은 그들에게 각서를 강제로 받아냈다. 거부하는 이들에겐 인격 모독과 가혹 행위가 잇따랐다. 이 각서는 조건 없이 언론사를 포기하며, 이를 발설하지도 않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구미 각국과 비교해도 많은 신문, 방송, 통신사가 난립하여 왔으며 이로 인하여 언론이 각계 국민에게 본의 아닌 누를 끼쳐왔고 사회적 적폐 또한 적지 않았음을 자성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틀 뒤 신군부는 방송 공영화, 신문과 방송의 겸영 금지, 신문 통폐합, 중앙지의 지방 주재기자 철수, 지방 신문은 1도에 1개 사, 통신사 통폐합으로 대형 단일 통신사(연합통신) 설립 등을 골자로 하는 언론통폐합 조치를 강행했다. 이에 반발하는 기자들에 대한 해직 조치도 뒤따랐다. 언론이 난립하고 경쟁이 치열하니 정부가 개입해 강제 조정을 하겠다는 것인데 사실은 정권이 언론을 길들이겠다는 의도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난달 27일 소상공인·자영업자 간담회에서 “음식점 허가 총량제를 운용해 볼까 하는 생각이 있다”고 했다. 자영업이 과잉 진입과 경쟁으로 망하는 데가 많으니 그 대책으로 허가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당장 시행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수습했지만 빈말로 들리지 않는다. 언론사가 많고 정권에 도움이 안 되니 언론사와 기자를 줄이겠다는 신군부의 발상이나, 음식점마저 정부가 허가하겠다는 이 후보의 생각은 그 뿌리가 같다. 헌법이 규정한 자유권적 기본권마저 권력이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론 ‘개미 지옥’을 국가가 방치할 수 없다는 ‘선량한 규제’ 운운하지만 공산·사회주의도 그런 식으로 시작했다. 영화 대사처럼 “살려는 줄게”라고 하면서 대신 파우스트처럼 영혼을 정권에 팔라는 취지다. 국민이 먹고 입고 자는 것을 정부가 책임지겠다는 이면엔 통제하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 기본소득, 전 국민 재난지원금, 공직자 부동산 강제매각 등이 모두 이런 정치철학에서 나왔다.
불우했던 유년·청소년 시절을 겪은 이 후보는 비주류·소외된 사람의 대표임을 자임한다. 그래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이재명 정부’라고 명명하겠다고 한다. 앞으로 계급적 입장을 대변하는 더 기상천외한 공약들이 나올 것이다. 언뜻 들으면 그들을 위하는 것 같지만 한 꺼풀만 벗겨도 모순투성이다. 일산, 김포 등 경기도민의 교통권을 명분으로 국민연금으로부터 일산대교를 강제로 빼앗아 무료화한 것이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사 시절 행정권을 발동해 일산대교를 무료화했던 이 후보는 2500억 원을 손해 본 국민연금을 악덕 사채업자라고 비난했다. 국민 전체의 노후를 위해 한 푼이라도 더 이익을 남겨 국민에게 돌려주려는 국민연금이 악덕 사채업자라는 것이다. 일부 경기도민은 반기겠지만 결국 막대한 손해는 고스란히 세금으로 메꿔야 한다. 민간업자 몇 명에게 천문학적인 이득을 남겨준 대장동을 찾아 “부동산 불로소득을 없애겠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유체이탈은 애교 수준이다.
공산·사회주의 실험이 어떻게 실패했는지 역사는 이미 보여주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북한이다. 평양에 있는 10대 냉면집 중 가장 유명한 곳이 옥류관이다. 그러나 이 집 냉면은 아무나 먹을 수 없다. 하루 표가 5000개만 발매되는데, 대부분 권력기관에 배포된다고 한다. 누구나 먹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음식점 허가제가 현실이 된다면 서울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 허가권을 가진 냉면집은 가격을 올릴 것이고 사 먹기가 어려울 것이다. 실력이 있는 사람도 냉면집을 개업하려면 기존 가게에 거금을 주고 허가권을 사든지, 허가권을 가진 관에 로비를 해야 할 것이다. 기존 식당 업자와 공무원만 살판난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시행하지 않고 있는 기본 소득제, 음식점 허가제가 시행되면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이재명 기준의 가짜뉴스’를 보도하는 언론사도 폐쇄하려고 들 것이다. 포퓰리즘과 사회주의를 결합한 성향의 산물이다. 문 정권 5년 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을 너무 많이 경험했는데, ‘시즌2’는 더 황당하다.
11월 24일 윤석열 앞의 3가지 위기 신호
尹 지지율 우위 속 위기 징후들
김종인 합류 거부, 이준석 침묵
당내 긴장 떨어지고 자리다툼
경선 승리 후 절박감 안 나타나
이재명의 변신에 속수무책
선거는 투표함 열어봐야 결판
요즘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목소리에는 힘이 많이 들어가 있다. 홍준표 의원과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고 컨벤션 효과도 톡톡히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 승리 가능성이 크다 보니 사람들이 몰려 자리다툼이 치열하고, 정권 향방에 민감한 기업들도 정보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동안 관망하던 공직 사회도 중립으로 돌아서는 조짐이 있다. 그러나 선거는 개표가 끝날 때까지 모른다는 속설처럼 아무리 여론조사에서 좋은 분위기를 타고 있더라도 마지막까지 긴장을 풀 수 없다. 지난 1997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 진영이 승리감에 도취해 선거가 끝나기도 전에 논공행상에 몰두하다가 패배한 뼈아픈 기억이 있다.
지금 윤 후보 진영이 결코 안심할 수 없는 3가지 위기 신호가 있다. 첫째는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준석 대표와 윤 후보의 관계가 깨지고 있는 조짐이다. 김 전 위원장이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을 것이라고 예견됐는데 최근 갈등이 노골화했다. 결국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 김한길 새시대준비위원장 인선만 발표하고, 김종인은 “더는 정치 얘기 하지 않겠다”며 선을 그었다. 김종인은 자신과는 급이 다르다고 생각되는 김한길·김병준을 함께 ‘신(新) 3김(金)’ 취급을 한 것에 매우 불쾌해했다고 한다.
김종인은 2012년 박근혜 후보를 돕다가 선거를 한 달 앞두고 대기업의 기존 순환출자 금지를 놓고 박 후보와 의견 충돌을 빚었다. “박 후보 주변에 사람이 많고, 로비도 있고 하니까…”라고 발언해 박 후보가 “내가 로비를 받을 사람이냐”고 격분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결국 헤어졌다. 2017년 대선에서도 문재인 후보를 도왔으나 상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다 결국 결별했다. 두 번이나 팽(烹) 당한 김종인은 이번만큼은 이를 반복하지 않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윤 후보가 두 김 씨를 선대위에 넣겠다고 고집하는 것이 자신을 또 팽하기 위한 의도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극적 타협도 있으나 만약 김종인을 끝내 끌어안지 못하면 윤 후보는 본선 출발부터 순탄치 않다. 김종인과 같은 편인 이준석 역시 최근 ‘침묵’으로 무언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둘째, 당내 긴장감이 떨어지는 징조가 뚜렷하다. 홍준표·유승민은 아예 윤 후보 전화도 받지 않는다. 윤 후보 당선 가능성이 커지자 의원들의 자리다툼이 치열하다. 대선이 끝나면 바로 6월 지방선거가 있어 자리를 차지해야 미래가 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 사례를 보면 의원이 많이 있다고 해서 선대위가 잘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아들인 래퍼 노엘이 구속되면서 캠프에서 물러났던 장제원 의원이 비서실장을 노린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그러나 23일 2선 후퇴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은 잦아들었다. 나경원 전 의원과 김태호 의원도 선대위 직책을 맡지 않겠다고 함에 따라 물꼬는 트였지만 이 정도로는 안 된다.
셋째, 자만에 빠지는 조짐도 보인다. 경선 과정에 5·18 발언으로 혼이 났으나 앞으로 본선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지율이 정체되자 과감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연신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쇼’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유권자들은 그 절박함에 지지를 보낸다. 그러나 윤 후보는 경선 승리 이후 이런 절박함이 보이지 않는다. ‘경선해 보니 별거 아니네’라는 자만감에 빠질 우려가 크다. 이준석 대표는 홍준표 의원 집을 찾아가 선대위 참여를 설득하는데, 윤 후보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만 하지 삼고초려 할 뜻이 없어 보인다. 이회창 후보에 맞서 DJP 단일화를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태도를 배워야 한다.
행사만 쫓아다닌다고 표가 늘진 않는다. 인간적인 호감도를 높여야 하고 메시지도 분명하게 발신해야 한다. 선대위 구성이 늦어지면서 캠프도 해체하다 보니 전략이 보이질 않는다. 주변에 쓴소리하는 참모는 멀어지고 다들 좋은 소리만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후보가 귀를 열지 않으면 참모들은 이미 권력이 된 후보에게 절대 먼저 직언(直言)을 하지 않는다. 경선에서 승리했다고 자만하고 본선 준비를 소홀히 한다면 역전패를 당할 수도 있다. 경선의 치열함보다 몇 배의 노력과 열정을 본선에 쏟아야 한다. 대선도 골프처럼 장갑을 벗어봐야 안다.
12월 17일 文정권이 허문 법치…누가 국민 지키나
공수처·檢·法·警 총체적 붕괴
‘귀태’ 공수처 언론사찰 앞장
검찰은 무능하기로 작정한 듯
법원은 분쟁해결 아닌 복불복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사건
코드 공권력이 빚은 참담 현실
진보를 표방한 정권 아래서 사어(死語)로 여겨졌던 ‘언론사찰’이라는 단어가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 인용되리라 생각지 못했던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감시자인 ‘빅브러더’가 재등장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전진한다고 했는데 대한민국의 역사는 거꾸로 가는 것 같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라는 586세대가 주류인 더불어민주당 정권과 인권변호사 출신의 문재인 대통령 아래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무능을 넘어 언론사찰 선봉에 서 있다. ‘대검 중수부’ ‘서울지검 특수부’처럼 말만 들어도 범죄자들이 무서워해야 할 검찰은 이제 서초동 주변을 지나가던 개도 코웃음칠 지경이다. 법원은 법리가 아니라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복불복 같은 곳이 돼버렸다. 차라리 점(占)을 보는 게 낫겠다는 얘기도 있다. ‘민중의 지팡이’ 경찰은 범죄 현장에서 가장 먼저 도망치고, 폭력 피해자들을 지켜주지 못한다. 왜 이렇게 됐을까. 법치를 떠받드는 기둥들이 뿌리째 썩어 문드러지고 무너지는 참담한 현실을 누가 만들었나. 문재인 정권 5년간 총체적 법치 붕괴의 현주소다.
노무현 정권 때부터 고위공직자 비리를 엄단한다는 이유로 참여연대 등을 시작으로 줄기차게 설립을 요구했던 공수처가 범여권의 날치기 통과로 만들어질 때부터 ‘귀태(鬼胎)’라는 비난에 직면했다. 문 대통령의 꿈이었고 이를 주도한 조국 당시 민정수석은 “눈물이 핑 돌 정도”라며 기뻐했다. 그러나 국가 사정기구가 여야와 국민적 합의 없이 만들어진다는 것부터 어불성설이다. 이런 우려는 공수처 설립 1년이 가까워지면서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아직 1명의 구속 실적도 없고 1호 사건(조희연 서울시 교육감)만 기소 요청한 참담한 성적이다. 실력은 앞으로 나아질 수 있지만 ‘이성윤 황제 소환’ ‘윤수처’ 논란에서 보듯 정권의 앞잡이 노릇 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공수처는 수사를 이유로 최소 11개 언론사의 법조 취재 기자는 물론 일부 언론사의 야당 취재 기자들 통화 자료를 50건 넘게 조회한 것으로 드러났다.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고 하지만 검찰도 극히 제한적으로 하는 통신 조회를 광범위하게 실시했다. 대부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관련한 사건일 가능성이 크다. 취재를 위해 1970∼1980년대처럼 몰래 ‘비둘기’라도 날려야 하나.
검찰은 아예 ‘바보 모드’로 변신한 것 같다. 어떤 비판을 해도 그저 못 들은 척한다. 대장동 개발 의혹 수사에서 나타난 행태는 ‘수사 기관’이 아니라 ‘덮는 기관’으로 착각할 정도다. 늑장 수사로 피의자가 또 극단 선택을 하는 사태도 초래했다. 이성윤 서울고검장 공소장 유출 사건과 관련, 수사 검사들이 부당하게 감찰과 공수처 수사를 받는데도 김오수 검찰총장은 나타나질 않는다. 윤 후보 부인 김건희 씨 사건은 2년 가까이 붙들고 있다. 정권에 충성한 검사만 승승장구하니 이젠 저항의 목소리도 없다.
법원은 분쟁 해결이 아니라 재판 지연으로 사회적 화병(火病)의 원인이 되고 있다. 민사 단독 재판부가 담당하는 2억 원 미만의 분쟁 사건 처리에 평균 225일이 걸린다. 합의부가 처리하는 2억 원 이상 분쟁에는 거의 1년이 걸린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다섯 달이나 느려졌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은 기소된 지 22개월 만에 첫 증인 신문이 열렸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후배 법관에게 공공연히 거짓말을 하고, 친정권 판사는 인사 원칙을 무시하고 4년이나 한자리에서 근무하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수사권을 많이 가져가며 위상이 높아진 경찰은 되레 국민 불신이 더 커졌다. 하루가 멀게 데이트 폭력·살인사건이 터지는데 속수무책이다. 경찰청장이 사과한 다음 날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경찰이 가지고 다니는 총은 쏘는 것이 아니라 던지는 것이라는 자조만 들린다. 문 정권이 말로는 부패척결, 인권 운운했지만 정권 입맛에 맞게 공권력을 쓰고 편중·코드인사를 하다 보니 짧은 시간 안에 법치가 송두리째 무너지는 상황을 초래했다. 이렇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다시 세우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이현종 칼럼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