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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동아일보) 2021-01-13 분노하라! 자영업자들이여 - 12-29 문과의 위기 그 자체인 이재명과 윤석열

상림은내고향 2021. 12. 27. 13:52

송평인 칼럼 동아일보 2021

01-13 분노하라! 자영업자들이여

일본 휴업보상금 하루 60만 원

독일은 고정비 90%까지 지원

영업의 자유 존중하지 않는 우리만 쥐꼬리만 한 보상

자영업자 희생 더는 안 돼

 
 

일본은 도쿄 등 수도권 일대에 이달 8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코로나 긴급사태를 선언하면서 휴업보상금으로 하루 6만 엔(약 6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지난해 4월 긴급사태 선언 때의 4만 엔(약 40만 원)을 6만 엔으로 올렸다. 이번 긴급사태 예정 기간은 한 달이므로 영업일수를 따져 최대 180만 엔(약 1800만 원)까지 지급한다.

 

휴업이라고 해도 종일 휴업도 아니고 오후 8시 이후의 휴업이다. 강제도 아니다. 오후 8시 이후 영업을 하는 곳의 명단을 공개해 간접적 압박을 가하면서 오후 8시 이후 영업을 하지 않는 식당 주점 카페 등에 대해서는 휴업보상금으로 휴업을 유도한다. 전염병 확산을 막는다는 이유라 할지라도 휴업은 헌법이 보장하는 영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으로 충분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독일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12월 16일부터 부분 봉쇄에 들어가면서 아예 영업을 하지 못하거나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이 떨어진 업체에 대해 전년도 같은 기간 매출액의 75%까지 보상하는 조치를 취했다.

 

올 1월부터는 보상 방식이 바뀌었다. 임차료 이자료 등 고정비를 기준으로 매출액이 전년도에 비해 30∼50%가 줄면 고정비의 40%, 50∼70%가 줄면 60%, 70% 이상 줄면 90% 지원한다. 지원상한선은 문을 닫은 업체는 월 50만 유로(약 6억 원)이고 매출이 떨어진 업체는 월 20만 유로(약 2억6000만 원)이다. 상한선이 높은 것은 자영업자만이 아니라 중소기업까지 지원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수도권에서 지난해 11월 24일부터 2단계, 12월 8일부터 2.5단계, 12월 18일부터 2.5단계+α로 방역조치를 강화했다. 정부가 K방역 홍보에 흠이 갈까 봐 긴급사태니 봉쇄니 하는 말을 쓰지 않았을 뿐 일본의 긴급사태 조치보다 더 강력하고, 이동의 자유 제한을 빼고 영업의 자유 제한만 놓고 보면 독일의 부분 봉쇄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지난해 11월 24일 이후 강화된 방역 조치로 인해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에 대한 보상은 일본과 독일에 비해 쥐꼬리만 한 수준이다. 11일부터 지급되기 시작한 3차 재난지원금이 그 보상인데 헬스장 노래방 학원 등 집합금지 업종에는 300만 원, 식당과 카페 PC방 독서실 등 영업제한 업종엔 200만 원이 지급된다.


국회에서 배진교 정의당 의원은 “인천의 한 헬스장 사장님 이야기를 들으니 임차료가 월 800만 원이라고 한다. 인건비를 빼고도 관리비 렌털비 등 고정비 지출이 월 1200만 원이다. 두 달 가까이 문을 못 열고 있으니 반발하는 게 당연하지 않냐”고 정세균 국무총리에게 질의했다.


그 헬스장 사장님은 3차 재난지원금으로 300만 원을 받는다. 300만 원은 일본의 닷새 치 휴업보상금에 불과하다. 한 달 고정비가 1200만 원이므로 두 달이면 2400만 원이다. 재난지원금 300만 원을 뺀 2100만 원을 손해 보는 셈이다. 독일의 보상 기준을 그 사장님에게 적용하면 고정비의 90%인 월 1080만 원의 두 달 치인 2160만 원을 보상받는다. 이런 간단한 비교로도 K방역의 성과는 자영업자의 엄청난 희생 위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부는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1차 재난지원금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4인 가족 기준 100만 원을 약속한 뒤 총선 후에 지급했다. 예산 14조 원이 들어간 단군 이래 최대 금권선거였다. 김종인 씨가 한 축이 돼 이끌었던 국민의힘도 전 국민 지원에 부화뇌동하는 바람에 야당은 정부와 여당을 향해 금권선거라는 비판도 할 수 없게 됐다.

 

그 돈은 사실 코로나로 타격받은 자영업자나 실업자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었다. 그런 짓을 저질러놓고도 올해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다시 전 국민 지급 얘기가 나오고 있으니 정치권이 미쳐 돌아간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우리나라 ‘감염병예방관리법’도 일본과 독일처럼 전염병으로 인한 영업 중단에 대해 합당한 보상을 하도록 돼 있다. 그렇게 하지도 않으면서 구상권 행사로 국민을 협박하는 데만 이 법을 이용하고 있다. 정 총리가 배 의원 질의에 답변하면서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총리라면 지금 할 수 있는 일도 하지 않으면서 괜히 가슴만 뜨거워져 눈물을 흘릴 때가 아니라 본인이 자영업자가 된 심정으로 실질적인 보상책을 내놓아야 한다.
 

 

01-27  정치권 밖의 정치적 히어로

박근혜와 문재인의 실패한 9년, 정치를 직업 정치권에 가둔 결과

정치권 밖 어떤 인물이 부상하는 건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정치적 현상

가능한 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안철수가 2012년 문재인을 밀어내고 민주당 대통령 선거 후보가 됐으면 어땠을까. 문재인은 박근혜에게 지고 말았지만 안철수였다면 박근혜를 이겼을까. 안철수가 박근혜를 이겨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박근혜 탄핵을 통해 집권한 문재인에게 기회는 오지 않았을 수 있다. 물론 역사에서 가정(假定)은 허무한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가 아니라 누가 됐더라도 박근혜와 문재인보다는 잘했으리라는 회한은 생생한 현실이다.

 

2012년 당시 민주당의 문재인파(派)만이 아니라 보수 진영도 안철수를 애송이로 폄하하며 공격했던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집권 이후 진보 진영은 86세대 운동권을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었다. 안철수는 스스로를 진보라고 여기는 사람 중에서 그런 재편에 거부감을 가진 세력을 대변한다. 보수 진영이 넓게 멀리 내다보았다면 어땠을까.


86세대 운동권은 서구식으로 분류하자면 극좌파에 해당한다. 그들은 민주주의가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말할 때의 그 좌파가 아니다. 문재인 시대에 들어와 만천하에 드러난 86세대 운동권의 반(反)민주성을 86세대 학생 대중들은 이미 대학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최장집 교수에 따르면 ‘정치권력 앞에서 취약하게 조직된’, 그러나 한상진 교수에 따르면 ‘진보적인 중민(中民)’이 바로 학생 대중이었고 안철수는 그 학생 대중의 하나였다

 

당시 문파와 보수 진영이 안철수를 협공하면서 쓴 ‘애송이’란 말은 직업 정치권의, 정치의 근본이 일상임을 모르는 오만함을 드러낸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직업 정치권 바깥의 정치적 히어로(hero)에 대해 직업 정치권이 이 정도의 폐쇄성을 드러낸 사례가 없다. 그런 폐쇄성은 어쩌면 박근혜 정권과 문재인 정권 실패의 불길한 전조였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19세기 중반 이후 정치를 생계수단으로 삼는 직업 정치가들의 등장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1919년 ‘직업으로서의 정치’란 유명한 글을 썼다. 오늘날 시각에서 보면 국회의원이나 그 보좌관이 전형적인 직업 정치인이겠지만 베버는 기자를 최초의 직업 정치가로 봤고, 전문직 중에서는 변호사를 정치에 반쯤 발을 걸친 직업으로 봤다. 베버의 관점이 훨씬 더 풍부하게 직업화하는 정치의 현실을 잡아내고 있다.

 

진보 정당으로 갈수록 정치는 직업 정치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진보 정당의 출현이 역사적으로 직업 정치가의 등장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반면 보수 정치는 정치를 직업 정치의 폐쇄회로에 가두지 않고 일상에 토대를 두려는 경향이 강해 직업 정치권 밖에 상대적으로 더 개방적이다.

 

그것은 역사적으로도 증명된다. 미국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첫 당선 이래 민주당에 5차례 선거에서 진 공화당이 정권을 되찾아온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영웅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를 통해서다. 리처드 닉슨 탄핵 이후 위기에 처한 공화당에 신보수주의로 새 바람을 불어넣은 것은 영화배우 출신의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한국에서도 보수 정치는 군인 박정희와 기업가 출신인 이명박을 통해 경제적으로 큰 기여를 했다. 박정희와 달리 이명박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겠지만 한국의 고질적 부동산 문제를 풀 실마리를 제공한 뉴타운 정책만으로도 그는 민주화 이후 어떤 대통령보다 뛰어나다. 반면 진보 진영의 노무현과 문재인이나 미국 민주당의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는 반쯤 정치인인 변호사 출신이다.


정치권 밖의 정치적 히어로의 등장은 직업 정치가 아니라 일상에 뿌리를 둔 진정한 의미의 정치가 작동하는 것으로 보고 환영해야 할 일이다. 안철수만이 아니라 윤석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개념(예를 들어 경제민주화) 사용도 똑바로 못 하는 학자 출신으로 유신 정권과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 몸담았던 김종인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자리에 앉아 노련한 직업 정치인 행세를 하며 정치권 밖에서 다가온 정치적 히어로에게 증오감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한국 정치의 실패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한 번은 변변한 직업 한번 가져보지 못한 일종의 정치 건달인 유신 공주를 도와 대통령으로 만들고, 한 번은 반쯤 정치인인 변호사로서 세상을 바라본 게 고작인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일조해 지난 9년의 한국 정치를 망친 장본인이 그가 아닌가.

 

02-10  마지막 프랑스어 독일어 수업이 온다

서울 공립고교 프랑스어 독일어 교사 고작 8명, 후년이면 다 퇴직
중국어와 일본어에 편중된 제2외국어교육 바람직하지 않아
20년 넘게 중단된 충원 재개해야

우리나라 고등학교의 프랑스어 독일어 교육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올 2월 현재 서울시 공립고교에 프랑스어 정교사는 6명 남았다. 그나마 4명은 올해 중 정년퇴직하고 나머지 2명은 내년과 후년 각각 정년퇴직한다. 독일어 정교사는 2명 남았다. 둘 다 내년에 정년퇴직한다. 심각한 정도를 넘어 전멸 위기다.


학생들이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배우기 싫어해서, 혹은 배울 필요가 없다고 여겨서 이렇게 된 걸까. 그렇지 않다. 지난해 학생들이 어떤 과목을 배우고 싶어 하는지 조사한 ‘교육학점제 도입에 따른 교원수급 쟁점’이란 제목의 논문에 따르면 제2외국어 중에서 학생들의 수업 요구에 비해 교사 수가 적은 불균형이 가장 심한 과목에 프랑스어와 독일어가 속한다.

 

학생들의 수업 요구는 중국어와 일본어가 가장 많다. 그러나 프랑스어나 독일어에 대한 수업 요구도 그다음으로는 많다. 과거에는 고교 제2외국어 교육이 프랑스어 독일어로 편향돼 있었다면 오늘날은 중국어 일본어로 편향돼 있다. 그러나 프랑스어는 여전히 제2외국어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가르치는 언어이고 독일어는 인문학 분야의 중요한 언어다. 동서양 언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학과 비즈니스만 생각하면 영어만 배워도 충분하다.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과 교역이 많은 나라이므로 영어 외에 중국어와 일본어까지 알면 비즈니스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문화의 언어로서 간체(簡體) 한자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유용한 언어가 되기 힘들고 오히려 배울수록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문화의 언어로서 일본어는 어느 정도는 유용하지만 우리의 프랑스어 독일어 능력이 떨어지면 프랑스어 독일어 문헌을 다시 일본어 번역을 통해 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고교에서 제2외국어를 배워봐야 얼마나 많이 배우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언어는 익숙함의 문제다. 대부분의 사람이 영어로 대화 몇 마디 하는 게 고작이지만 영어는 오래 접해 친밀하게 느끼고 그 친밀감을 바탕으로 사람에 따라서는 더 깊이 공부하기도 한다. 고교 때 접해본 제2외국어는 평생 친밀하고, 접해보지 않은 제2외국어는 평생 낯설다. 낯설어지면 대학에서도 사회에서도 더 이상 공부하지 않게 된다.


프랑스와 독일어에서 명사 형용사의 성(性)·수(數)·격(格)에 따른 변화(declension)와 동사의 인칭·시제(時制)·태(態)·법(法)에 따른 변화(conjugation)는 영어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배우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지만 그 때문에 프랑스어를 배워본 학생들은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 남유럽 언어를, 독일어를 배워본 학생들은 스웨덴어 덴마크어 등 북유럽 언어를 쉽게 배울 수 있고 나아가 서양의 한자(漢字)나 다름없는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에도 상대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제2외국어 과목이 다양해지고 상대적으로 프랑스어와 독일어 수업의 비중이 축소되면서 한 고교에 한 명의 프랑스어 교사나 독일어 교사를 두기 어려워진 현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약 5년 전부터는 한 학교 소속의 교사가 교육청 소속의 순회교사로 전환돼 인근 여러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남아 있는 몇 명의 교사마저 퇴임해버리면 그마저도 불가능해진다.

 

임용고시를 통해 프랑스어와 독일어 교사를 뽑지 않은 지가 20년이 지났다. 대학 사범대에는 불어교육학과와 독어교육학과가 남아 있지만 20년이 넘도록 국공립 교사를 배출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기이하게 느껴진다. 순회교사 제도라도 유지하려면 올해부터라도 임용고시를 통해 교사를 충원해야 한다. 기간제 교사나 시간강사를 통해 보완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완에 불과하지 근본적 대책이 되지 않는다.

 

공립고교보다 훨씬 많은 사립고교의 상황은 더 어렵다. 사립고교에 남아있는 정교사들도 5년 내로 거의 다 정년퇴임한다. 사립학교는 교사 임용권이 교육청이 아니라 각 학교에 있어 순회교사 제도를 도입하기도 쉽지 않다. 교육청이 지역별로 거점학교를 지정해서라도 교사 채용을 위한 별도의 지원을 하지 않으면 사립고교에서 프랑스어 독일어 교육이 완전히 중단될 수 있다. 한번 끊어진 맥은 다시 잇기 어렵다. 더 늦기 전에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02-24  박범계를 지켜보는 게 고통스러운 이유

박범계 스스로 문제점 못 느낀 ‘살려주세요 해보라’는 발언과
검찰 인사안의 민정수석 패싱, 일반적인 무례함을 뛰어넘어
양아치 같은 이질감 안겨 줘

 박범계 법무장관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동네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박 장관이 다닌 고교에 가지 않으면 내가 다닌 고교에 가도록 배정이 됐으니 학교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교 1학년 때 반에 밴드부원이 있었다. 어느 날 자율학습 시간에 하도 떠들어서 내가 조용히 좀 하라고 제지하다가 다툼이 벌어졌다. 그가 교실 거울을 깨 조각을 집어 들었다. 친구들이 나서 말리는 바람에 싸움은 일단 중단됐다.


휴식 시간에 3학년 밴드부 주장이 밴드부실로 날 불렀다. 학생들은 음악 시간에 음악실에 가다가 음악실 옆 밴드부실로 끌려가 괴롭힘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곳에서 혼자 밴드부 주장과 마주했다. 그가 겁을 주다가 “혹시 서클에 가입돼 있느냐”고 물었다. YMCA에 있다고 하자 그냥 가라고 했다.

 

YMCA는 박 장관이 가입한 ‘갈매기 조너선’류의 음성서클 약자가 아니라 국사책에 나오는 황성기독교청년회를 말한다. 하지만 제(祭)보다 젯밥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많이 들어와 있었고 그중에는 우리 학년 ‘짱’도 있었다. 여학생과 빵집에서 빵만 먹어도 바리캉으로 머리가 깎이던 시절 서울 종로 YMCA회관이나 야외에서 여고 YMCA와 연합집회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랑 시비가 붙었던 밴드부 녀석은 3학년 때 반 친구를 칼로 찔러 퇴학을 당했다.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오듯 1980년을 전후한 당시는 서울 변두리 지역 학교에 폭력이 만연했다. 그래도 웬만해서는 학생을 퇴학까지 시키지는 않았다. 서클 친구가 다른 서클 친구에게 맞고 와 패싸움을 벌였다가 학교에서 나오게 됐다는 박 장관의 말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최근 거론되는 연예인 체육인 학폭과는 비교도 안 되는 심각한 일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의원님 살려주십쇼’ 한 번만 해보세요.” 박 장관이 국회의원 때 대법관인 법원행정처장을 상대로 삭감된 대법원 예산을 복원시켜 주겠다며 한 말이다. 일반인은 호의를 베풀 때도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학교 양아치가 친구를 잡아놓고 괴롭히다가 ‘보내줄 테니 살려주세요 한번 해봐’ 하는 것과 비슷한 뉘앙스다. 그런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 이상하게 느끼지 않았다면 그가 일반적이지 않은 것이다. 대법원이 얼마나 분노했던지 요구한 예산을 철회해버렸다. 가정이 불우해서 양아치가 되는 경우도 없지는 않겠지만 개과천선했다는데도 양아치 근성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종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검사들은 아무리 터프해도 범생이들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9수 끝에 사시에 합격하고 소신을 굽히지 않는 좌충우돌 끝에 정상에 올라 지금은 뒷짐을 지고 어슬렁거리고 다니지만 기본적으로 범생이다. 신현수 민정수석 역시 검사 출신답지 않게 술 한잔 들어가면 피아노 앞에 앉아 노래를 흥얼거리는 로맨티시스트이지만 기본적으로 범생이다. 그 범생이들의 구역에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이 들어와 발생한 것이 최근 검사 인사 사태다.


박 장관은 신 수석을 패싱해버렸다. 인사권자가 대통령인데 별거냐 할지 모르지만 청와대가 그 패싱을 해명할 논리를 찾지 못해 얼버무릴 정도로 이질적인 사건이다. 박 장관은 신 수석을 패싱하면서 그에게 “왜 우리 편에 서지 않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범생이들은 억지 논지로라도 왜 옳은가를 먼저 내세운다. 그래서 범생이이고, 그래서 사회가 유지된다. 양아치들은 우리 편이냐 아니냐만을 따지고 우리 편이 아닌 상대편을 굴복시키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패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조국 전 장관은 잘생긴 외모에 예의도 깍듯하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그런 위선적인 삶을 살았는지, 지지하는 사람은 믿기 싫고 비판하는 사람은 궁금할 따름이다. 추미애 전 장관은 유신 말기에도 홀로 입신양명을 위해 고시 공부에 몰두한 학생이었고 장관으로서 완장질을 할 때도 범생이 티가 역력해 가련해 보이기까지 했다. 박 장관은 그들과는 전혀 다른 부류다.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는 푸틴을 연상시키는 러시아 대통령 페트로프가 등장한다. 만찬에서 페트로프의 불편한 행각을 함께 지켜본 뒤 미국 대통령에게 영부인이 이런 말을 한다. “페트로프는 똑똑해. 그러나 양아치(thug)야. 양아치 앞에선 움츠려선 안 돼(Don‘t cower to him).”

 

03-10 윤석열의 정치적 소명의식

 윤석열의 정치적 카리스마는 만든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
여기서 시대정신을 읽는 걸 넘어 자기희생을 감수할 수 있어야
소명의식을 지닌 정치인이 된다

 윤석열이 검찰총장에서 사퇴한 후 야권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을 더 키우고 있다. 그가 정치하겠다고 한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 안 하겠다고 한 적도 없다. 그의 경우는 부정하지 않는다는 게 긍정으로 읽히는 경우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에 의존해 사는 직업정치가와 정치를 위해 사는 정치가, 즉 소명(召命)의식을 가진 정치가를 구별한다. 정치권 밖의 한 분야에서 확고하게 자기 입지를 굳힌 사람이 대중의 요구에 부응해 정치권에 들어오는 경우는 베버가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본 직업정치가와 달리 소명의식을 가진 정치가라 할 수 있다.

 

정치적 카리스마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카리스마는 본래 신의 은사(恩賜)라는 뜻이다. 정치적 카리스마는 본인조차도 예측하지 못한 대중의 지지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그 지지는 은사적이다. 본인이 거기서 시대의 정신을 읽고, 시대의 정신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면 그때의 정치는 직업으로서의 정치가 아니라 소명으로서의 정치가 된다.

 

윤석열의 검찰총장 사퇴는 잘했다고 보면서 그의 대권 도전은 부적절하다고 보는 이가 많다는 한 여론조사는 기만적이다. 윤석열을 내쫓고 싶은 문재인 지지 응답자들에 의해 왜곡이 빚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권 밖의 인물이 정치에 뛰어드는 데 대한 반대 여론이 적지 않은데 그것은 정치는 직업정치가가 해야 한다는, 그럴듯하지만 근거 없는 사고에 기인하고 있다. 이상적인 정치는 소명의식을 가진 지도자가 직업정치가들을 이끄는 정치다.

 

 더불어민주당은 가장 직업적인 정치가들인 운동권 출신에 의해 장악된 정당이다. 이들은 국회뿐 아니라 청와대 비서실을 장악하고, 전통적으로 전문직이 수행하는 장관직까지 진출해 국회와 정부의 분립 기반을 무너뜨리고, 공기업 임원과 공공기관 단체장직을 약탈적으로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정권 연장에 필사적인 것은 대부분 한 번도 정치 이외의 직업을 가져보지 못한, 그래서 정치를 계속 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는 직업정치가들이기 때문이다.

 

베버는 정치 기자를 현대적 대중 정당에 속한 직업정치가가 생기기 전부터 활동한 최초의 직업정치가라고 봤고, 변호사를 다른 전문직과 달리 정치를 겸할 수 있고 원한다면 언제든지 정치에 몸담을 수 있는 제1의 직업정치가 예비군으로 봤다. 노무현 정동영 문재인 이낙연 등 민주당 쪽에서 내세운 역대 대선 후보(혹은 예비주자)는 예외 없이 변호사 출신이거나 정치 기자 출신이다.

 

보수 정당의 위기는 박근혜 탄핵으로부터가 아니라 박근혜를 대선 후보로 내세웠을 때부터 시작됐다. 그는 정치 외의 어떤 직업도 가져본 적이 없지만 그렇다고 노련한 직업정치가도 아니었다. 좋은 정당은 정치권 밖으로부터의 충원에 의해 활력을 얻는 법인데 보수 정당은 법관 출신에 대쪽 감사원장으로 통했던 이회창과 기업가 출신으로 성공적인 서울시장을 지낸 이명박 같은 외부 충원이 박근혜를 기점으로 사라짐으로써 위기를 맞았다.


10년 전 안철수가 별의 시간을 맞았고 지금 윤석열이 별의 시간을 맞고 있다. 안철수는 국민의힘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고 윤석열도 정치를 한다면 그의 인적 네트워크의 스펙트럼이 좌우로 널리 퍼져 있어 국민의힘과 일정한 거리를 둘 것으로 예상된다. 10년 간격으로 별의 시간을 맞은 두 사람이 다 국민의힘과 거리를 둔다는 사실이 보수 정당의 진짜 위기를 보여준다. 국민의힘은 안철수, 윤석열과의 연대를 통해 유연하게 변함으로써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안철수는 그동안 분명한 소명의식을 보여줬다. 그가 내년 대선 출마를 포기하고 서울시장에 도전장을 낸 것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현실적 면이 없지 않지만 ‘야권의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전초전부터 승기를 잡아야 한다’는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면도 분명히 있음을 평가해야 한다.


문제는 윤석열에게 소명의식이 있느냐는 것이다. 소명의식이란 자신이 지향하는 정치적 목표를 향해 거듭되는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밀고 나갈 힘이다. 대선에서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못하고 일어설 목표가 있어야 소명의식이 있다고 할 것이다. 반기문은 그런 소명의식 없이 거품 같은 인기에 의존해 나왔다가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사라지고 말았다.

 

03-24  안철수의 길, 료마의 길

국민의힘 오세훈 단일화 승리, 안철수로서는 결정적 패배
사쓰마 조슈 통합한 료마처럼 반문진영 연대에 헌신하는 게
남겨진 안철수의 소명이다

 내 사무실에는 안철수 씨의 미니어처 조각상이 하나 있다. 방송용으로 제작해 쓰던 것을 하나 구해 갖고 있다.

 

2012년 대선 때 안철수 씨를 지지했다. 당시 보수정당의 대선주자는 박근혜 씨였다. 하지만 박 씨를 지지할 수는 없었다. 그가 박정희 딸이라는 사실 말고는 대선후보가 될 아무런 이유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박정희 시대의 유산과도 같은 최순실과의 관계 때문에 몰락하고 말았다.

 

민주주의는 선거에 의해 권력을 주고받는 정치체제이기 때문에 자신이 평소 지지하는 정당 못지않게 권력을 넘겨받을 수 있는 상대편 정당이 신뢰할 만하냐가 중요하다. 당시 진보 진영에는 안 씨와 문재인 씨가 단일화를 두고 맞붙었다. 문 씨는 1980년대 운동권의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고 안 씨는 1980년대 학생 대중의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었다. 안 씨라면 진보 진영의 후보가 되더라도 믿고 정권을 맡길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안 씨는 단일화에서 져 진보 진영의 재편은 이뤄지지 않았다. 문 씨는 단일화에서는 이겼으나 박근혜에게 패해 거의 몰락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 박근혜 탄핵을 기회로 집권까지 했다. 운 좋게 집권한 것을 실력으로 집권한 것으로 착각한 문재인 정권은 곧 본색(本色)과 무능(無能)을 드러냈다. 문재인파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확산됐고 반문(反文)진영이 형성됐다. 안 씨가 이번에는 반문진영의 단일화 주자로 등장했다. 10년 만의 반전이다.

 

 안 씨는 어제 다시 결정적으로 패했다. 초심으로 돌아가 서울시장으로 다시 시작해 그 성과로 2027년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안 씨로서는 실망스러운 결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반문진영 전체로 보면 안 씨가 꼭 이겨야 할 이유는 없다. 안 씨가 되든 오세훈 씨가 되든 양쪽 다 최선을 다하면 야당 후보에 승산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게다가 안 씨의 목표는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서울시장이 아니지 않은가. 안 씨의 패배는 어쩌면 다시 대선에 도전해 볼 기회가 될 수 있다. 서울시장 후보가 됐다면 이번에는 아예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안 씨에게 다시 대선에 도전해 보라고 권하고 싶지 않다. 2011년 박원순 씨와의 서울시장 단일화에서 양보하고 대선에 도전했다가 10년간의 긴 우회 끝에 다시 서울시장 후보로 도전했으나 그마저도 실패한 사람이 어떻게 다시 대선 후보가 될 수 있겠는가. 그의 한계인 면도 있고 한국 정치의 한계인 면도 있다. 이쯤에서 차라리 깨끗이 포기하는 게 낫겠다.

 

그 대신 료마의 길을 권하고 싶다. 일본 메이지유신 때 사카모토 료마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사쓰마번 출신도 조슈번 출신도 아니면서 사쓰마번과 조슈번의 통합을 이끌어 일본의 근대화를 이뤘다. 안 씨가 단일화에서 이긴 오세훈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되도록 성심성의껏 돕고 이후에는 반문진영에서 국민의힘과 강력한 대선 주자로 부각된 윤석열 씨를 결합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지금 한국 정치에 무엇보다 기여하는 길이다.


안 씨는 의사로서 또 벤처기업인으로서 성공한 사람이지만 기존의 보수와 진보 진영 사이에서 새로운 정치적 소명을 발견하고 정치에 뛰어들었다. 안 씨는 권력을 잡아 휘두르는 데서 희열을 느끼거나 권력의 전리품을 측근들에게 나눠주는 데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지지를 받았다. 권력지향적인 정치인과 다른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앞에 놓여 있다.

반문진영의 유력한 후보가 드문 상황에서 안 씨가 2선에 위치한다면 반문진영에는 든든한 느낌을 주고 정치 전반에는 활력을 준다. 보수 정당 출신의 문제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도 뒤져보면 구린 데가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오 씨가 지금 제기되고 있는 서울 내곡동 셀프특혜 의혹을 얼마나 잘 해소할지 의문이다.

윤 씨는 지지율이 높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 검찰주의자는 여전히 많은 불안한 점을 갖고 있다. 안 씨가 희생적 자세로 자기 소명을 다하다 보면 지나가버린 별의 시간이 혜성처럼 다시 올지 누가 알겠는가. 

 

04-07 박원순 9년의 심판 날 

박원순의 졸렬한 도시 개조… 전임들 잘하던 것까지 맥 끊어
7일 보궐선거는 권력 악용한 성범죄 응징하는 것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건물 앞에 이맘때면 취할 듯한 향기를 뿜어내는 크고 아름다운 라일락 나무가 있었다. 박원순 서울시장 때 이 나무가 베어지고 길거리 농구장이 들어섰다. 처음에는 젊은이들이 와서 농구를 했다. 얼마 지나 여기까지 와서 농구를 하지 않게 되자 농구장마저도 사라졌다. 지금 빈터로 남아 있다.

 

박 시장의 어버니즘(urbanism)이 이런 수준이다. 그는 한 번은 잠수교에, 한 번은 광화문광장에 모래를 퍼날라 프랑스 파리처럼 서울 플라주(plage·해변)를 시도했다. 비가 와 두 번 다 망쳤다. 유럽의 여름은 가물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걸 잊었다. 거의 아무도 찾지 않는 돈의문 박물관 마을을 가보면 좀스러운 원순 씨를 느낄 수 있다. 그곳에서 철거된 카페와 맛집이 그리울 뿐이다. 서울역 인근의 고가인도(高架人道)인 ‘서울로’ 정도가 인정해줄 만한데 그마저도 최선의 개조였는지는 의문이다.


광화문 일대는 단지 서울의 메인 스트리트가 아니고 대한민국의 메인 스트리트이다. 그곳 광장이 한쪽으로 찌그러져 개조되고 있다. 박 시장과 친한 몇몇 문화인들이 광화문 앞에 월대(月臺)를 복원해야 한다며 도로를 없애고 광화문 일대 전체를 광장화한다는 망상을 박 시장에게 불어넣었다. 그것이 현실성 없는 것으로 드러났으면 포기했어야 하는데 안 되는 걸 억지로 밀어붙인 반쪽짜리가 편측광장이다.

 

이해찬 씨는 서울을 천박한 도시라고 했다. 어떤 의미로 한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서울을 천박하지 않게 하려면 멀쩡한 광화문광장을 파헤칠 게 아니라 세종문화회관부터 뜯어고칠 생각을 했어야 한다. 세종문화회관은 유신 말기 정부 행사장으로 만든 곳으로 부분적 개조를 했음에도 음향이 좋지 않다. 서울 도심에 제대로 된 공연장 하나 없음을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게 천박하다면 진짜 천박한 것이다.

 

 박 시장의 성곽 복원 사업은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하면서 완고한 집착으로 흘렀다. 옛 한양 성곽은 군사적 성벽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 함부로 드나드는 것을 막는 담 같은 것이었다. 유럽의 도시들에는 해자까지 갖추고 감시탑만 수십 개에 이르는 진짜 성벽이 있었지만 오늘날은 대부분 사라졌다. 이를 굳이 복원한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한적한 곳에 성곽을 복원해 서울만의 독특한 둘레길을 만드는 것까지는 좋다. 문제는 사람 사는 주거지에서 성곽을 복원한답시고 개발을 막는 것이다. 복원한 성곽이 무슨 문화재적 가치가 있겠는가. 유네스코가 그런 걸 등재해줄 리도 없지만 외국 관광객들의 관심도 끌지 못할 걸 등재해서 박 시장 실적이 되는 외에 무엇에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없다.

 

옛 굴레방다리 인근의 아현동 일대와 모래내시장 뒤쪽의 남가좌동은 작부들의 맥양집(맥주양주집)이 즐비한 곳이었다. 그곳이 뉴타운 사업으로 상전벽해해 아파트촌이 됐다. 뉴타운 사업은 2002년 이명박 서울시장 때 시작됐다. 2005년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활력을 얻었으니 노무현 정부와 당도 그 사업에 큰 기여를 한 셈이다. 이런 뉴타운 사업이 박 시장 재임 9년 동안 줄줄이 중단되거나 지연됐다.


창신동과 숭인동은 광화문에서 아현동과 남가좌동의 반대 방향으로 딱 그 정도의 좋은 위치에 있지만 낙후돼 있다. 박 시장이 동대문 의류시장 수선집 주인들을 부추겨 뉴타운 개발을 막았다. 박 시장 밑에서 서울주택공사(SH) 사장을 하던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뉴타운 대신 도시 재생이란 걸 했는데 900억 원을 들여 했다는 게 고작 계단 손잡이 수리하고 벽에 페인트칠하는 정도였다. 현재 노후화가 심각해 주민들이 점점 더 떠나면서 폐가가 속출하고 있다.


박 시장은 2019년 서울시 산하 교통방송에서 공정성이라곤 ‘일(一)도 없는’ 뉴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김어준 씨의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언론의 자유는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 언론에만 해당한다”고 말했다. 말짱히 이런 말을 하고 듣는 자들의 정신세계가 궁금하다.

 

물론 시정(市政)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것만은 분명히 했으면 한다. 이번 보궐선거는 윤석열 씨가 간명히 정리한 대로 ‘권력을 악용한 성범죄 때문에 막대한 국민 세금을 낭비하게 된 선거’다.


오늘은 ‘공소권 없음’으로 인해 못 한 박 시장의 성범죄에 대한 응징을 선거로 하는 날이다.

 

04-21 가짜 진보 몰아낼 3년의 시작일 뿐인데

김종인의 분열적 발언 안타까워
4·7선거, 보수 중도 연합 첫 결실
국민의힘 안철수 윤석열은 보완관계
대선과 2024년 총선까지 이어가야

 앞으로 3년간 우리 정치의 과제는 보수와 중도의 연합으로 가짜 진보를 몰아내는 일이다. 문재인 세력, 즉 가짜 진보가 차지하고 있는 우리 정치의 왼쪽 자리는 반문(反文)이면서 보수가 아닌 중도와 진짜 진보에 주어져야 한다.

 

문재인 세력은 단순히 야권으로가 아니라 야권에서도 가능한 한 주변부로 밀어내야 할 세력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야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전직 대법원장을 별것도 아닌 죄목으로 구속까지 하고 정치적 프로토콜을 무시하고 전전(前前) 대통령을 수감했다. 이들을 처벌하기 위해 자신들이 내세웠던 검찰총장이 똑같은 칼을 살아있는 권력에 들이대자 그마저 사실상 쫓아냈다. 외국에서도 이 정권의 독재적 본색(本色)을 서서히 알아채고 있다.


독재라도 박정희 독재와 문재인 독재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박정희 독재가 유능했던 반면 문재인 독재는 무능하다. 이 정권 들어 외교 국방 경제를 막론하고 국정의 전 분야가 망가졌다. 우리나라는 자유의 가치를 중시하는 동맹에서 서서히 배제되고 있으며 군은 북한의 핵위협에 무력한 채 실전훈련도 못하는 오합지졸이 됐고 경제는 집 없는 국민을 벼락거지로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방역 하나 영업의 자유이고 보상이고 무시하고 마구 틀어막는 방식으로 성공하나 싶더니 그마저도 전문성이 필요한 백신 접종 단계에 와서는 파탄에 직면했다.

 

4·7 재·보궐선거에서의 승리는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너무 이른 긴 여정의 출발에 불과하다. 가짜 진보를 몰아내려면 내년 3월 대선에서 정부 권력을 바꾸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고 2024년 4월 총선에서까지 승리해 국회 권력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이 승리가 보수 단독으로 이뤄질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정치의 한 당사자가 아니라 정치 전반에 의미를 가지려면 보수·중도 연합으로서의 승리여야 한다.

 

 내년 3월 대선에서 국민의힘의 어느 후보가 오세훈처럼 갑자기 떠서 집권하느냐, 안철수가 집권하느냐, 윤석열이 집권하느냐는 국민에게는 부차적일 뿐이다. 서울시장이 오세훈이 되든 안철수가 되든 국민에게는 부차적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국민에게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와 법치를 존중하는 세력의 단합된 힘으로 가짜 진보를 몰아내는 것이다.

 

 민주주의 정치는 자기 쪽이 권력을 쥐는 것 못지않게 자기 쪽이 권력을 내줄 때 신뢰할 수 있는 상대편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 필요하다. 그 상대편이 중도와 진짜 진보가 되도록 정치판을 재편하지 않으면 보수와 가짜 진보가 소모적으로 싸우는 과거 정치로 돌아간다.

 

 눈앞의 자기 이익에 급급한 정치기술자에게는 이런 큰 정치적 소명(召命)은 아예 생각할 거리도 되지 않는 모양이다. 오세훈은 김종인이 선택한 후보가 아니었다. 오히려 무상급식 반대를 트집 잡아 구박하던 후보였다.

그가 지금 와서는 오세훈이 당선된 것이 자기 덕분인데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징징거리고 있다. 그가 국민의힘에서 쫓겨난 홍준표와 비주류로 밀려난 김무성파가 당을 흔드는데도 중심을 잡고 서 있었으니 그의 덕분이라는 게 작은 사실일 수는 있겠다. 그러나 큰 진실은 오세훈이 아니라 안철수가, 아니 다른 누가 야권의 단일화 후보로 나왔어도 서울시장이 됐으리라는 것이다.


4·7 재·보선은 국민의힘과 안철수가 가진 힘의 벡터가 합세해 작용하고 장(場) 밖에서는 윤석열이 지원함으로써 승리한 선거다. 국민의힘, 안철수, 윤석열 다 일정한 한계가 있다. 윤석열이 ‘별의 시간’을 맞은 듯하지만 막상 정치판에 나와 보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럼에도 3자는 서로의 한계를 보완할 가능성이 있음이 4·7 재·보선에서 드러났다. 이런 가능성을 더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지는 못할망정 고마워해야 할 사람에게 건방지다는 망발을 늘어놓는 게 딱 정치기술자 수준의 인간적 품성이다.


반문 연합이 꼭 합당이란 방식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가짜 진보가 쫓겨난 후에는 보수, 중도, 진짜 진보가 경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안철수류의 중도와 진중권류의 진짜 진보는 문재인 정권과의 싸움에서 민주주의와 법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보여줬다. 이들과 정화(淨化)된 보수 세력 사이에는 진정한 의미의 토론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민주주의는 좌우(左右)의 날개로 난다는 말은 그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05-05 개인이 대통령과 싸워 이긴다는 것 

KBS 이사서 해직된 강규형 교수
1, 2심 모두 이겼으나 상처 커
대통령의 좀스럽고 불공정한 처분
당하는 개인은 큰 고통 겪어

 현대사 전공 학자로 클래식 음악 평론에도 조예가 깊은 강규형 명지대 교수를 최근 광화문 근처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4년 전 KBS 이사 해직 사태에 휘말리기 전의 활기와 열정이 넘치던 얼굴은 사라졌다. 보기 좋은 체형이었는데 몸은 마르고 배만 불룩 나와 있었다. 머리는 덥수룩했다. 지친 표정이었다.

 

문재인 정권은 2017년 감사원 정기 감사를 마친 KBS 이사들을 다시 표적 감사해 업무추진비를 잘못 사용했다는 이유로 이사 전원을 문제 삼으면서 정기 감사 결과를 뒤집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감사 결과를 토대로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처럼 한 놈만 팬다는 식으로 강 교수를 찍어 이사직 해임을 건의했다. 문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이 해임을 재가했다.


강 교수는 문 대통령을 상대로 해직 취소 소송을 냈고 1, 2심 모두 강 교수 손을 들어줬다. 강 교수만이 아니라 KBS 이사 11명 전원에게서 업무추진비 부당 사용 사실이 드러났고 강 교수의 소위 부당 사용 액수가 다른 이사들에 비해 오히려 적은 편이며 KBS에서 업무추진비 부당 사용을 이유로 이사를 징계한 사례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박상기 연세대 교수는 형사정책연구원장으로 있을 때 360만 원을 부당 사용했다가 국무조정실 감사에 적발된 사실이 국회 인사청문 과정에서 드러났는데도 법무장관으로 임명됐다. 대통령에게 공정한 잣대는 없었으며 주의를 줄 것, 징계를 할 것, 파면을 할 것 사이의 구별도 없었다.

 

 문 대통령과 싸운다는 것은 단지 대통령과만 싸우는 것이 아니다. 홍위병 같은 지지자들과도 싸우는 걸 의미한다. 강 교수가 한번은 모 씨에게 폭행을 당했는데 언론노조와 미디어오늘은 강 교수가 오히려 폭행했다고 주장했고 방통위는 이를 또 다른 해임 사유로 삼았다. 강 교수는 이 주장이 거짓임을 입증하기 위해 형사소송까지 했다. 대법원은 강 교수가 가해자이기는커녕 피해자임을 분명히 했다.


강 교수에게 한 사건이 끝나면 또 다른 사건으로 소장이 날아왔다. 이런 소송이 20여 건에 이른다. 상대편은 소송비를 부담하지 않는다. 노조나 특정 변호사 집단이 도와준다. 이런 경우 일단 ‘소송 괴롭힘’ 때문에 손을 들어버리기 쉽다. 상대편도 그걸 노린다. 소송비로 억대의 돈이 깨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소송 대응 과정에서 극심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도 겪는다. 개인에게는 이것이 정말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강 교수가 다른 이사들처럼 정권이 원하는 대로 사퇴해 줬으면 별일 없었을 것이다. KBS 이사는 KBS 사장과 달리 봉급이 있는 자리도 아니다. 활동비가 조금 나올 뿐이다. 해직 취소 소송 승소를 바탕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낸들 받아낼 돈도 별로 없다. 다만 그는 한 사람의 역사학자로 현 정권의 언론 탄압에 대한 분명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싸웠다고 한다.


강 교수가 겪은 일은 이 정권에서는 특이한 것도 아니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지 겨우 닷새가 지나 수상한 기사가 하나 한겨레신문에 보도됐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법무부 검찰국장과 밥을 먹고 각자 상대편 후배들에게 100만 원씩 돈 봉투를 줬다는 내용이었다. 관행대로 특수활동비를 쓴 것인데도 문 대통령은 직접 감찰을 지시했다. 두 사람은 쫓겨나고 그 틈을 타 윤석열 검사가 등용됐다. 두 사람에 대한 면직 처분은 나중에 법원에서 취소됐다.

 

기가 막힌 것은 문 대통령이 스스로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검찰총장에까지 앉힌 그를 등용할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쫓아낸다는 점이다. 법무장관은 검찰 인사를 전횡하고 수사지휘권까지 남발해도 뜻대로 되지 않자 검찰이 관행적으로 해오던 재판부 분석을 사찰이라고 트집 잡아 윤 총장을 징계했다. 징계가 청구되자 문 대통령은 망설임 없이 결재했다. 하지만 이 처분도 법원에서 퇴짜를 맞았다.


대통령의 처분이 사자처럼 당당하지는 못할망정 벌레처럼 좀스럽기까지 하다. 그런 처분과 싸우는 개인에게 그 싸움은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 검찰총장조차도 법무부라는 조직이 동원돼 씌운 징계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사활을 걸다시피 했다. 일반인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강 교수의 경우 연금통장 2개를 털었고 몸은 엉망이 됐으며 무엇보다 학자로서 가장 열정적으로 연구할 50대 중후반의 수년을 부질없는 송사(訟事)에 빼앗겼다.

 

05-19 윤석열 안철수 국민의힘의 이기는 연대 

통합은 단선율, 연대는 다선율
연대는 차이 인정하는 데서 출발
불협화음 불가피한 순간 있지만
더 높은 목표 위해 관리해야

 국민의힘 30대 최고위원인 이준석과 초선 의원인 김웅은 당 대표에 도전하면서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윤석열의 영입을 전면에 내세웠다. 실은 주호영 같은 중진들도 윤석열 영입을 거론하고 있다. 주장하는 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보수 진영에서 탄핵의 강은 유승민이 바란 대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건너기는 어렵다. 금태섭과 권성동이 만든 국회 탄핵소추안은 엉터리였다. 탄핵심판 주심 강일원은 기업들의 미르·K스포츠재단 기부금을 뇌물로 규정한 소추 내용을 헌법상의 영업 자유 침해로 슬쩍 바꿨다. 검사의 공소장을 판사가 멋대로 바꾼 것이나 다름없다. 후에 윤석열은 미르·K스포츠재단 기부금을 뇌물로 기소했으나 법원에서도 인정되지 않았다.


탄핵은 사법 절차처럼 상소나 재심이 가능한 제도가 아니다. 잘못이 있었다고 해도 나중에 바로잡을 수 없다. 그래서 탄핵은 정치에 가깝다고 말한다. 탄핵을 비이성적으로 몰고 간 당시의 힘의 관계는 그 자체가 받아들여야 할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럼에도 탄핵에 이성적 제동을 걸기는커녕 오히려 ‘관행의 범죄화’ 등으로 가속기를 밟고 박근혜 탄핵을 넘어 이명박까지 사실상 탄핵한 윤석열을 국민의힘으로 영입하는 건 탄핵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다.

 

윤석열에게도 국민의힘의 영입 제안에 응하는 것이 좋을지는 고민일 것이다. 국민의힘이 가진 조직과 자금을 이용할 수 있지만 자신을 향한 지지의 일부를 잃을 수 있다. 국민의힘에는 정반대의 고민이 있다. 윤석열을 영입한다고 정체성을 과도하게 흔들어버리면 전통적 지지자들이 떠날 수 있다.

 

 국민의힘과 윤석열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각자의 정체성을 허물고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연대하는 것이다. 엄연한 차이를 얼버무리면서 억지로 하나로 묶기보다는 서로의 입장 차이를 분명히 한 뒤 더 높은 목표를 위해 가능한 한 차이가 드러나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함께 가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박근혜 탄핵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박근혜 탄핵 당시 탄핵에 찬성표를 던진 소수파가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홍준표가 복당에 어려움을 겪는 사실이 그런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홍준표는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이 제 손으로 뽑은 후보다. 홍준표의 품격 없는 언행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홍준표를 배제함으로써는 국민의힘이 전진할 수 없다. 유승민과 원희룡은 홍준표를 넘어서야 진정한 대선 주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윤석열의 정치적 출발점은 제3지대가 더 적절해 보인다. 제3지대에는 이미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있으니 맨땅에서 시작하는 것보다 낫고 국민의당이 소규모 정당에 불과하니 상대하는 부담도 작다. 윤석열과 안철수의 입장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차이가 작은 편끼리 먼저 힘을 합치는 것이 순서다. 제3지대가 국민의힘을 상대로 의미 있는 협상력을 가지려면 세를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윤석열이 개인적으로 국민의힘에 영입되는 것이나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국민의힘과 합당하는 것은 둘 다 국민의힘에 흡수되는 것처럼 보여 표의 확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민의힘이 4·7 재·보선을 자기 힘으로 이긴 줄 알고 윤석열과 안철수에게 기차 떠나기 전에 타라는 식으로 압박한다면 착각이다. 국민의힘이 조직과 자금을 바탕으로 윤석열과 안철수를 국민의힘의 일부로 만들려는 순간 정권교체의 목표는 멀어진다. 국민의힘 윤석열 안철수는 각각 존재감을 상실하지 않고 하나의 그릇에 들어 있어야 한다. 기업의 인재 스카우트나 M&A가 아닌, 함께하는 다른 방식을 상상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연대다.


음악에 비유하자면 통합은 단선율(單旋律)이고 연대는 다선율(多旋律)이다. 하나의 주선율(主旋律)이 있고 다른 음들은 주선율에 화음을 이루기 위해 종속되는 음악이 아니라 각기 다른 선율이 독자적으로 울리면서 조화를 이뤄가는 것이다. 각기 다른 선율 간에 음이 부딪쳐 불협화음이 나오는 순간들이 없을 수 없지만 불가피한 곳을 제외하고는 가능한 한 화음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4·7 재·보선은 친문(親文)의 단선율 집단에 맞서 반문(反文)의 다선율 연대가 압도적 승리를 거둔 선거다. 넓고 큰 것이 좁고 작은 것을 이기는 법이다.

 

06-02 586세대 넘어 진격하는 30대 

경제계에서 괄목상대할 30대들
정치권 이준석 돌풍도 그런 예
586세대가 드리운 긴 그늘
30대가 헤치고 나와야 미래 있다

 김슬아 마켓컬리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38세다. 사진으로 보던 것과 달리 약간 체격이 있다. 자신이 신선한 야채나 과일을 먹고 싶어 신선식품에 특화된 e커머스 업체 마켓컬리를 시작했다고 한다. 민족사관고에 1년간 다니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 고등학교를 마친 뒤 웰즐리대에 입학해 정치학을 전공한 후 골드만삭스 등에서 일하다 창업했다.

 

한국에서는 과거 유학을 가도 주로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갔다. 그렇게 공부하고 와서 교수가 된 친구들이 하는 말인즉 같은 한국인이라도 고등학교나 대학 학부 과정부터 다닌 학생과 대학원 과정부터 다닌 학생은 쓰는 영어부터 다르다고 한다. 그 사회에 스며들어 교류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르다는 뜻이다.


네이버의 이해진, 넥슨의 김정주,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등 50대인 정보기술(IT) 분야 선두 기업의 창업자들은 대부분 유학을 가지 않았다. 서울대나 KAIST를 다녔다. 미국에서 경영전문대학원(MBA) 과정을 한 적도 없다. 다음의 이재웅이 특이하게 프랑스의 이공계 그랑제콜을 다녔다. 정치인이 된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정도가 뒤늦게 미국에서 MBA를 했다.

 

한화 3세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도 올해 38세다. 영어 발음이 원어민 수준이다. 그도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영어 소통에 불편이 없으니 다보스포럼 같은 국제 모임에도 빼놓지 않고 참석한다. 그가 주도한 차세대 에너지 기업에 대한 투자는 외국 CEO들과의 개인적 교류를 통해 얻은 정보에 기초한 것이 많다고 한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 등 50대인 재벌가 자제들은 대개 국내에서 대학을 마친 뒤 ‘황제교육’ 차원에서 유학을 갔다. 김 사장은 고등학교 때부터 일반 외국 학생들과 섞여 지내서인지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면이 거의 없다. 공군 통역장교로 3년 근무해 일반인 이상으로 병역 의무를 충실히 마쳤고 결혼도 회사 동료와 해서 화제가 됐다.

 

이들은 내가 올 들어 우연한 기회에 가까이서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두 30대 기업가다. 괄목상대(刮目相對)할 30대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 정치권에서는 이준석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올해 36세다. 40세가 안 돼 아직 대통령 피선거권도 없지만 국민의힘 당 대표가 될지도 모르겠다.

 

정치권, 특히 여권은 586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586 정치인들은 대부분 국산(國産)이고 그것도 ‘운동’을 하느라 공부를 소홀히 한 세대인 반면 이 전 위원은 서울과학고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경제학과 컴퓨터과학을 전공했다. 이런 경력이면 대개 금융계나 IT 업계에서 활동하는데 그는 26세에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다. 따지고 보면 26세에 전업 정치인이 돼 보겠다고 한 것 역시 창업 못지않은 모험적인 선택이었다.


586세대는 평준화 체제에서 교육받고 기껏해야 읽는 영어로 세계의 흐름을 따라잡으려 노력했던 세대인 반면 30대는 수월성 교육을 받고 말하고 듣는 영어로 세계와 함께 호흡하기 시작한 세대다. 50대는 30대보다 경험치가 20년가량 많다. 그 경험치의 한계효율을 뛰어넘을 만한 실력의 축적이 30대들에게 이뤄지고 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상하게도 40대는 정치에서도 경제에서도 존재감이 희미하다. 586세대 정치인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거론할 수도 없을 정도인 반면 40대 정치인은 많지도 않은 데다 있는 정치인들도 586세대 정치인의 아류 같은 느낌이다. 586세대 IT 기업가들은 개발시대의 재벌에 필적할 정보화시대의 새로운 거대기업군을 만들었다. 그들이 대학생이던 시절 IT 시대가 시작돼 그 업계를 선점해버린 탓도 있겠지만 40대에는 그만한 기업가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무튼 30대가 40대와는 달리 586세대가 드리운 긴 그늘을 헤치고 나와 새로운 미래상을 제시하는 건 반가운 일이다. 다만 젊다고 무조건 박수칠 일은 아니다.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젊음은 미숙함일 뿐이다. 배우려고 하지 않는 젊은이가 높은 지위에 올라가면 그만큼 사회에 유해한 것도 없다. 전(前) 세대의 고루한 통념에 도전하되 그들의 경험에서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도 함께 가졌으면 한다.
 

 

06-16 30대는 어떻게 50대를 따라잡고 있는가

신입 사원이 30년 베테랑 사원보다
일 더 잘할 수 있는 디지털화 시대
디지털 네이티브에 교육 잘 받은 30대
정부보다 시민 중시의 새 보수 가능성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2017년 낸 ‘Thank You for Being Late(늦게 와줘서 고마워)’란 책에는 “어제 입사한 신입사원이 직관이 뛰어난 30년 된 숙련 기술자보다 더 일을 잘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는 대목이 나온다. 30대가 50대보다 20년이나 어린데도 어떻게 50대를 따라잡을 수 있는지 설득력 있게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기계에는 인간의 지각으로 발견하기 어려운 약한 징후가 있다. 과거에는 오랜 경험을 통해 직관을 갖게 된 사람만이 이 징후를 포착해 대응했다. 그러나 지금은 센서를 통해 수집한 빅데이터를 잘 분석할 수 있기만 하면 베테랑에게나 가능했던 ‘건초 더미 속에서 바늘 찾기’가 신입사원에게도 가능해졌다.


4차 산업혁명을 영어권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이라고 부른다. 아날로그적인 것을 디지털로 바꾸는 것이다. 러다이트 운동 같은 반발이 없어서 그렇지 1차 산업혁명 시기 수공업을 기계공업으로 바꾸는 것 못지않은 작업 방식의 근본적 변혁이다. 아날로그에 익숙한 구세대 사원은 결국 디지털에 익숙한 신세대 사원에게 따라잡힐 수밖에 없다. 그래서 60대의 프리드먼은 ‘늦게 와줘서 고맙다’고 한 것이다.

 

36세의 국민의힘 정치인 이준석이 586세대인 나경원을 제치고 당 대표가 됐다. 그가 디지털 접속을 정치에 어떻게 활용하는지 설명해주는 최근 주간조선 기고문을 흥미롭게 읽었다. 34세의 국민의힘 정치인 김재섭은 당 대표 후보 여론조사에서 이준석이 1위라는 소문이 처음 돌았을 때 함께 저녁을 먹다 접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이준석은 여론조사 소식을 접하자 즉각 태블릿을 꺼내 구체적 수치를 확인하고 곧바로 각종 커뮤니티 인기 글의 현황을 알려주는 ‘이슈링크’에 접속했다. ‘이준석’이란 키워드가 1위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짧은 논평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논평을 인용한 글이 각종 소셜미디어에서 재생산됐다. 주요 언론사에서도 이준석의 논평을 기사화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선순환을 일으켜 온라인 공간에서 화제는 더욱 확산됐다.”

 

586세대와 40대가 젊었을 때 일어나기 시작한 정보기술(IT) 혁명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서막에 불과했다. 2007년 애플의 아이폰이 출현할 무렵 도약이 일어났다. 페이스북이 개방되고 트위터가 시작됐으며 구글이 유튜브를 매입했다. 하둡(Hadoop)의 분산병렬식 처리로 인해 컴퓨터의 저장 연산능력이 폭발했고 깃허브(Github)라는 소프트웨어 오픈 플랫폼이 등장해 애플리케이션 개발이 용이해졌다. 30대는 그 무렵 16∼25세였다. 그렇게 첫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30대 이하를 눈여겨볼 또 다른 이유가 있다. 586세대가 고등학교에 갈 때는 이미 명문고가 다 없어지고 평준화가 시행됐다. 40대들도 대부분 평준화 교육을 받았다. 1996년 민족사관고등학교가 평준화 이후 처음으로 수월성 교육을 표방하고 나왔다. 2002년 민사고를 시작으로 자립형 사립고가 생겼다. 30대는 새로 수월성 교육을 받기 시작한 세대다.


수월성 교육의 결과 국내를 넘어 외국 대학의 학부 과정에 도전장을 내는 학생이 늘었다.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말하고 듣는 이들이 지금 30대의 선두주자로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국내에서 공부한 학생도 이른바 ‘인서울(in Seoul) 대학’에 가는 학생의 실력은 586세대 때 서울대와 연고대에 가는 학생의 실력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들의 기초 실력은 586세대나 40대보다 높다.


한상진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가 ‘이준석 현상’과 관련해 곧 발표할 원고를 하나 보내줬다. 그의 조사와 연구에 따르면 20, 30대는 이념적으로는 보수와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념 대신 정부 중심이냐, 시민 중심이냐는 구별을 대입해 비교해 보면 50, 60대는 정부 중심, 20, 30대는 시민 중심으로 큰 차이가 난다. 30대 이하가 이전보다 보수화하고 있다면 그것은 과거 정부 중심의 보수와는 다른 시민 중심의 새로운 보수다. 아날로그 시대의 중민(中民)과는 다른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중민이 나올지도 모른다.

 

06-30 자영업자에겐 나라도 아닌 나라

소급적용 빠지고 객관적 기준도 없어
자영업자 보상 제대로 안 하면서
전 국민 재난지원금에는 안달인 정권
이 나라에 共和적 가치가 살아 있는가

문재인 정부가 자랑하는 K방역은 철저히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희생 위에서 이뤄졌음에도 끝까지 그 희생에 대한 보상을 거부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어제 국회 상임위에서 소급적용이 빠진 손실보상법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손실보상을 법으로 하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선진국들은 법 없이도 행정절차로 잘만 보상하고 있다. 앞서는 법이 없어 보상할 수 없다고 하더니 결국 법으로도 제대로 보상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 방역을 위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휴업이나 영업제한을 강제해 놓고는 어떨 때는 100만 원, 어떨 때는 200만 원, 어떨 때는 300만 원씩 찔끔찔끔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객관적인 기준도 없다. 서울 이태원에서 주점을 경영하는 가수 출신 강원래 씨는 올 1월 한 인터뷰에서 “지난해 4월 이후 2억5000만 원 손실을 입었는데 자영업자를 위한 재난지원금으로 170만 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독일은 올 초부터 코로나 방역으로 인한 손실에 대해 매출액이 전년도에 비해 30∼50%가 줄면 고정비의 40%, 50∼70%가 줄면 60%, 70% 이상 줄면 90% 지원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산수에 불과하다. 국가에 충분한 돈이 없으면 독일보다 보상 비율을 줄이면 된다. 우리나라는 이 단순한 셈도 관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나이트클럽 등 유흥업소에 손실을 보상하면 몇억 원씩 될 텐데 국민들이 그런 상황을 납득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대부분의 성인이 유흥업소에 가서 돈을 쓴다. 김 총리도 요즘은 안 그런지 모르겠으나 그랬을 것이다. 경제는 유흥이냐 아니냐로 선악을 따지면 안 된다. 유흥업소라도 매출액을 신고하고 세금을 냈으면 보상받아야 한다.

 

명동에 가보면 코로나 방역으로 포장마차가 다 사라졌다. 이들 포장마차의 월수입이 억대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 포장마차의 주인들은 재난지원금을 신청하라고 해도 하지 않는다. 재난지원금이 억대 수입에 비하면 몇 푼 되지도 않는 데다 괜히 신청해서 세금 추적을 당하면 골치 아프다고 본 것이다. 매출액이 잡히지 않아 세금 한 푼 안 내는 포장마차 주인보다는 세금 내는 나이트클럽 주인에게 더 많이 보상해야 한다.

 

돈 못 버는 놈이 돈 쓸 줄도 모른다. 코로나 직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사실상 1%대로 떨어뜨린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로 2년 동안 국가채무비율을 40% 미만에서 50%로 늘렸다. 어디에다 돈을 다 쓰고는 정작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손실 보상할 돈은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불하지 못해 안달이다.


코로나로 인해 오히려 돈을 번 기업들도 많다. 정보기술(IT)이나 반도체 산업 등의 언택트(untact) 기업은 코로나 와중에 큰 이익을 냈다. 지난해 말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연봉 절반 수준의 성과급을 사원들에게 지급했다. 같은 반도체 업체인 SK하이닉스는 연봉의 20% 정도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려다가 사원들이 반발해 결국 비슷한 수준의 보상을 했다.


올 초 넥슨이 전 직원 연봉을 800만 원 인상하자 넷마블 등 다른 게임업체도 줄줄이 인상했다. 언택트 기업이 아니라도 대부분 기업이 월급을 깎지 않거나 조금 깎았을 뿐이다. 코로나로 소비가 줄어 돈을 아낀 측면도 있다. 부동산과 주식으로 떼돈을 번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지난해 한 차례로도 모자라 또 주겠다고 한다. 속셈이 뻔히 보이는 뻔뻔한 정치를 하고 있다.

 

물론 코로나로 직장에서 쫓겨난 실업자들, 취업하지 못한 취업준비생들, 일자리가 줄어든 일용직 근로자 등 국가가 도와야 할 많은 사람들이 있다. 전 국민에게 나눠줄 돈이 있으면 이들에게 더 줘야 한다. 그러나 무상급식 논란 때부터 개인의 소득을 파악할 자료가 충분치 않다는 것이 보편적 지급의 핑계가 됐다. 실제로는 아예 자료를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을 뿐이다.


방역 과정에서 모든 국민이 같은 희생을 치른 게 아니다. 우리 주변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유독 큰 희생을 치렀다. 그렇다면 그 손실의 분량을 가능한 한 정확히 계산해서 전액을 다 보상하지는 못하더라도 비례를 따져 객관적으로 보상해 줘야 하는데 그러지는 못할망정 코로나로 오히려 수입이 늘어난 사람들에게까지 돈을 퍼주지 못해 안달이니 과연 이 나라가 공화(共和)적 가치를 추구하는 나라인가 하는 회의가 든다.

 

07-14 누가 야윈 돼지들이 날뛰게 했는가

인민위원회 구성해 학살 자행한
여순반란은 제주 4·3과도 달라
여순반란 단죄 흐리려는 시도
대한민국 훼손의 마지막 단계

역사가 늘 명확하지는 않다. 역사에는 거짓으로 포장된 숨은 관계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것이 갑자기 정체를 드러낼 때가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는 1948년 여순반란사건이 그랬다.

 

“여수 시민들은 10월 20일 새벽 1시부터 들려오는 난데없는 요란한 총소리에 잠에서 깨었지만 설마 군인들이 일으킨 봉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하에서 숨죽여 지내던 남로당 조직원들도 여수 14연대의 시가전 연습이려니 생각했다. 순천의 남로당원들은 14연대가 여수를 거쳐 왔기 때문에 대응책을 논의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만 여수 남로당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부터 여수 도심에는 인민대회를 알리는 벽보가 붙고 ‘미군 철수’ 등 구호도 나붙었다. 오후 3시 여수 중앙동 로터리에서 인민대회가 열렸다. 여수 좌익계의 이름 있는 거두들이 모두 나왔다. ‘우리는 유일하며 통일된 민족적 정부인 조선인민공화국을 보위하고 충성할 것을 맹세한다’ ‘무상몰수 무상분배에 의한 민주적 토지개혁을 실시한다’ 등 혁명과업 6개항이 채택됐다.”

 

여순사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승만 반공체제 확립에 비판적인 김득중 국사편찬위 연구사의 ‘빨갱이의 탄생’에서 인용한 글이니 과장은 없을 듯하다.

 

 인민위원회는 여수에서 8일간, 순천에서 3일간 통치했다. 반란군과 좌익세력은 여수에서 72명, 순천에서 48명의 경찰관을 죽였다. 민간인도 386명을 죽였다. 손양원 목사의 두 아들이 기독교 우익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한 좌익 학생에 의해 당한 잔혹한 죽음이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져 있다. 다만 오늘날 개신교인들마저 그게 어느 때 일인지 잘 모른다는 게 흐리멍덩해진 역사 인식의 현주소다.

 

 반란이 평정된 뒤 반란군과 그 협조자들은 군사재판을 통해 처형되거나 수감됐다. 원한 감정이 들끓었던 반란 현장의 군사재판에서 작성된 기록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을 것이며 그마저도 6·25전쟁을 거쳐 7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 온전히 보존됐으리라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도 서류상 체포의 근거가 남아 있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대법원 판결은 시공을 초월한 듯 태연해 보인다.

 

국회에서는 ‘여수 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됐다. 명예회복을 요구할 쪽은 반란군과 그 협조자의 후손밖에 없다. 당시의 살벌했던 분위기 속에서 억울한 희생자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대법원이 길을 터준 기록 소실이나 기록 부실만으로 억울함을 판정하는 건 역사의 복잡한 실상을 도외시하는 것이다.


남조선노동당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을 방해하기 위해 제주에서 4·3사건을 일으켰다. 4·3사건 진압 거부를 핑계 삼았지만 실제로는 정체가 드러날 위기에 처한 14연대 남로당 세포들이 지도부와 상의도 없이 일으킨 것이 여순반란사건이다. 남로당 지도부마저 6·25 남침에 맞춰 전 군에서 동시에 일어났다면 하고 아쉬워한 성급한 반란이었다.


여순사건은 반란군이 인민위원회라는 통치기구를 설치하고 학살을 자행했다는 점에서, 반란 관련자의 처벌은 대체로 군사재판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제주4·3사건과는 구별된다. 여순반란사건의 단죄마저 흐려지면 대한민국 군대와 사법체제를 넘어 대한민국 자체의 정당성이 도전받게 된다.

 

여순 반란군의 잔당이 산으로 도망쳐 지리산 빨치산이 됐다. 그 대장이 이현상이다. 이현상의 자살로 남로당의 맥은 남한에서 끊겼다. 남로당의 계보를 이으려고 한 것이 민혁당이고 통혁당이고 통진당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정해구 교수를 정책기획수석으로 임명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 자신이 통진당 해산을 격렬히 비난했고 통진당 해산에 유일하게 반대한 김이수 헌법재판관을 헌법재판소장에 임명하려 했다.


부모가 김원봉의 수하였음이 자랑거리인지도 모르겠으나 부모가 정말 김원봉의 수하였는지조차 의심스러운 김원웅 광복회장은 ‘소련군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이라고 했다. 점령이라는 행정적 용어와 해방이라는 프로파간다도 구별하지 못하는 자가 감히 역사를 거론한다. 선조들은 이런 모습을 두고 주역을 인용해 ‘야윈 돼지가 날뛰어 난장판을 만드는 꼴’이라고 했다. 누가 야윈 돼지들이 날뛰게 했는가

 

07-28 김종인 유승민에게 잘못 배운 이준석 

애늙은이처럼 돈 조직 운운하며
윤석열에 入黨 압박하는 이준석
보수 중도의 독자적 정체성 흐리고
자연스러운 외연 확장 가로막는다

공론(公論)은 크고 높은 것이어서 무엇이 공론이고 아닌지 시간이 지나면 결국 드러난다. MBC는 2008년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릴 것처럼 보도해 나라를 뒤집어 놓았으나 지금 한국인은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미국산 소고기를 아무런 걱정 없이 잘만 먹고 있다.

 

유승민은 2015년 여당인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 더불어민주당 이종걸에게 국회가 대통령령의 수정을 요구할 수 있는 위헌적인 국회법 개정안에 합의해줬다. 이 뜬금없는 합의로 그는 반발을 사 원내대표에서 쫓겨났다. 그의 주장이 공론에 어긋났음은 시간이 지나 저절로 드러났다. 민주당은 여당이 된 지 오래됐지만 그런 개정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2012년 대선 당시 시대정신은 ‘안철수 현상’으로 표현된 중도였다. 김종인의 중도는 대의(大義)를 위해 자기희생을 감수하는 중도가 아니라 좌(左)든 우(右)든 돈과 조직을 가진 정당에 자신을 파는 중도팔이의 중도였기에 실패했다. 한 번은 박근혜 정당에, 한 번은 문재인 정당에 중도를 팔아 나라를 탄핵의 소용돌이에 몰아넣고 그 결과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유승민과 이준석은 박근혜 탄핵을 지지해 탈당했다가 제3지대의 광야 생활을 1년도 견디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들과 김종인의 공통점은 돈과 조직이 없는 걸 견디지 못하는 웰빙 체질이다. 제3지대에서 고군분투하는 정치인을 향한 가학적 발언은 자신들의 부모 때로부터 이어받아 벗어나지 못하는 웰빙 체질에 대한 무의식적 콤플렉스의 표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보수 쪽에서는 ‘박근혜를 탄핵하고 이명박을 수감한 윤석열은 도저히 지지할 수 없다’며 최재형을 대안으로 삼는 일부 세력을 제외하고는 윤석열을 지지하는 경향이 높다. 이런 선택은 윤석열이 정권교체의 가장 유력한 후보라는 인식하에 ‘정권 연장을 막을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다 한다’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심리로만 설명할 수 있다.

 

 물론 이들은 숫자의 많고 적음을 떠나 윤석열 지지 세력의 본류는 아니다. 과거 새누리당의 탄핵찬성파, 국민의힘에도 민주당에도 속하지 않은 제3지대 세력, 민주당 쪽에서 넘어온 진보세력이 본류다. 하지만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듯이 결이 다른 두 물이 윤석열 대망(大望)론으로 합류하고 있다. 이 기이한 결합은 문재인 정권이 만들었다. 두 물이 충돌을 피하면서 합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서로 불만 없는 정권교체의 대(大)전제다. 윤석열의 국민의힘 입당은 그 전제를 파괴하는 자살행위다.


그저 배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디서 배우느냐가 중요하다. 좋은 데서 배워야 한다. 이준석은 서울과학고와 하버드대에서 배워 디지털과 말싸움에는 능하다. 하지만 정치는 잘못 배웠다. 정작 김종인은 지금까지의 ‘제3지대 불가론’으로부터 돌아서 또 될 만한 쪽에 붙을 요량으로 딴소리를 하고 있는데 이준석은 과거 김종인에게 잘못 배운 그대로 애늙은이처럼 돈 조직 운운하면서 윤석열의 입당을 압박하고 있다.


‘찐’ 보수들이 나라는 살려놓고 봐야 한다는 일념으로 주장할 것도 주장하지 못하고 참는 사이, 독자적으로는 중도를 추구하지도 못하는 겁쟁이들이 남(보수)의 둥지를 차지하고 설치고 있다. 이준석은 사실상의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깎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늘려준 뒤 ‘나쁘지 않은 스탠스’ 운운했다. 대의는 없고 술수(術數)만 있는 것이 김종인이 해온 것과 똑같다.

 

김종인류는 탁류(濁流)다. 탁류는 서로 다른 두 물이 합류 지점에서 선명한 선을 그으며 ‘따로 그러나 같이’ 흐르는 장엄한 모습을 알지 못한다. 그 모습은 새의 시선으로 보이지, 지렁이의 시선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걸 흐린다. 그렇게 보수의 정체성을 흐리고 남로당식 진보의 정책에 중도의 베일을 씌워줬다.


윤석열이든 안철수든 진중권류든 법치와 안보의 최저선(bottom line)에 대해 보수 쪽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식을 드러냈다. 문재인 정권을 겪으면서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우연히 공유한, 이 희귀한 경험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보수와 중도 모두 각자의 외연(外延)이 확장되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이때 그 외연을 축소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라.

 

08-11 정권 교체의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기 전에

국민의힘만으로 대선 승리 장담하며
싸움닭으로 일관한 김종인 이준석
압도적 야권 승세, 넉 달 만에 사라져
재보선 당시의 화합 못 살리면 필패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는 리더라는 자의식 자체가 부족한 듯하다. 그는 그제 또 “내가 당 대표가 돼 보니 지금 대통령 선거를 하면 여당에 5%포인트로 진다”고 말했다. 4·7 재·보선 직후 국민의힘만으로 대선 승리가 가능하게 됐다더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4·7 서울시장 보선에서 야권 단일 후보는 여당 후보를 18%포인트 차이로 이겼다. 그로부터 넉 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 5%포인트 차이로 지고 있다면 누구의 책임인가.

 

윤석열이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야권에서 가장 지지율이 높은 후보이니까 국민의힘 밖에 있다면 그에게 책임을 돌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준석 자신이 갑질하듯 압력을 넣어 윤석열을 국민의힘에 입당시켰다. 그렇다면 야권의 열세는 정말 책임이 있든 없든 국민의힘 당 대표가 책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평론가가 남 얘기 하듯 하고 있다.


4·7 재·보선 당시 야권의 좋았던 분위기가 나빠지기 시작한 것은 김종인이 안철수에게 감사는커녕 반감을 쏟아내면서부터다. 국민의힘의 서울시장 후보들이 지지부진할 때 안철수가 도전장을 내 판세를 뒤집었고 윤석열이 정치권 밖에서 지원해 승기를 굳혔다. 거의 다 된 승리를 막판에 국민의힘 것으로 가로채 가서는 오히려 성낸 사람이 김종인이다. 그때부터 좋았던 분위기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안철수가 서울시장이 됐어야 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정권 교체를 원하는 유권자에게는 안철수든 오세훈이든 대동소이(大同小異)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윤석열이 되든 유승민이 되든 또 다른 누가 되든 대동소이다. 이번 대선은 큰 차이가 중요하지, 작은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정권 교체가 되려면 야권이 화합하는 분위기여야 한다. 그런 분위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준석은 김종인의 기조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안철수와 갈등을 빚고 윤석열과도 갈등을 빚고 있다. 윤석열이 당 밖에 있을 때라도 갈등은 바람직하지 않았는데 당 안으로 들어왔는데도 여전히 갈등을 빚고 있다. 본래의 당내 후보들과도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은 어쩌다 이런 싸움닭을 당 대표로 뽑은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정권 교체의 희망보다 절망을 말하고 있다.

 

이준석은 서울 노원병에서 3번 출마해 3번 다 떨어졌다. 그 지역을 잘 아는 사람들 얘기로는 그는 지역구를 관리하는 조직다운 조직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한다. 하는 일이라곤 TV에 패널로 출연하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프라인에서 지역 주민과의 정서적 유대는 거의 없다. 어린 시절부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커온 데 익숙한 탓인지 늘 ‘내가 이기냐, 네가 이기냐’의 자세다. 봉사자의 마음(servant mind)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자세로 중앙당의 조직인들 잘 끌고 나가겠는가.

 

 물론 정권 교체의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고 있는 책임을 이준석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윤석열의 책임도 크다. 본인과 가족 검증 과정에서의 팩트 왜곡이나 정치적 화법을 익히는 과정에서의 말꼬리 잡기로 일시적으로 지지율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것보다는 대장부처럼 큰 품으로 야권 전체를 아우르는 길을 추구하기보다는 혼자만 국민의힘에 쏙 들어가버림으로써 나머지 야권을 낙동강 오리알로 만들어버렸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윤석열과 이준석은 둘 다 그 자리에 있을 만해서 있는 게 아니다. 윤석열은 박근혜와 이명박을 감옥에 보낸 장본인이다. 두 사람을 감옥에 보냈다고 탓하는 게 아니다. 다만 그렇게 하고도 그들이 속했던 정당의 후보로 나선다는 사실이 염치없어 보이고 아이러니하다는 것이다. 최고위원을 지내고 허구한 날 TV에 나오는데도 선거 때마다 떨어진 36세 젊은이가 당 대표가 된 것도 이변이다. 이 모든 것이 ‘정권 교체를 위해서는 못 할 게 없다’는 절치부심(切齒腐心)이 아니라면 이해 불가능하다.


윤석열이 중도층과 탈(脫)진보세력의 지지까지 끌어모으는 후보가 아니었다면 보수 유권자들이 그를 원했을까. 2030세대의 마음을 잡는 데 매진하라고 뽑아준 당 대표가 기존 대표들이 누렸던 권위를 인정받지 못한다고 투정이나 부리고 있으면 뽑아준 사람들이 좋아할까. 자신을 향한 유권자의 기대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08-25 볼셰비키 홍범도에게 바친 최고 예우

자유시서 무장해제하고 협조한 뒤
레닌에게 불려가 상 받은 행적
만주서 독립군 功 상쇄하고 남아
최고 훈장 수여 가당치 않았다

동아일보는 한소(韓蘇) 수교 직후 한국 근현대사와 관련한 소련 측 정부 문건을 발굴해 소개한 적이 있다. 문건 중에는 홍범도의 신상명세를 밝혀주는 1930년대의 각종 증빙서류도 있었다. 그가 소련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기 위해 작성한 이력서 등은 홍범도 연구의 필수 자료가 됐다.

 

홍범도는 1921년 11월 모스크바에서 레닌을 만났다. 그의 이력서에는 단순히 원동(遠東)민족혁명단체 대표회의 참석차 가서 레닌을 만난 것이 아니라 “자유시 유혈사태에 대해 보고하기 위해 한인 빨치산 지대 대표단원 자격으로 레닌 동지를 만나러 모스크바에 갔다”로 돼 있다.


유혈사태는 같은 해 6월 자유시에서 무장해제를 거부한 독립군이 공격당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장갑차 대포를 동원해 공격한 소련군 문서에 따르더라도 ‘사망 36명, 행방불명 59명’이다. 코민테른 전권위원 오홀라는 익사자 60명을 포함해 전체 사망자를 160명으로 추산했다. 독립군 측은 400명에서 600명까지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사망자 외에 포로로 잡힌 독립군만도 864명이다. 죄질이 무겁다고 인정된 500명은 재판에 회부됐다. 이 중 428명은 강제노동에 처해졌고 나머지 72명은 중대범죄자로 분류돼 이르쿠츠크로 이송돼 재판을 받았다. 이때 재판을 담당한 3인 위원 중 1명이 홍범도였다.

 

 홍범도는 순순히 무장해제하는 편에 섰다. 그가 같은 독립군을 공격하는 데까지 가담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자유시 참변 보고로 레닌을 만났을 때 레닌의 서명이 새겨진 권총과 금화 100루블을 상으로 받은 사실, 자유시 참변에서 당한 김창수와 김오남이 그를 죽이려 했다는 사실은 그가 단순히 중립적이었다고 보기 어렵게 만든다.

 

 홍범도의 빨치산 증명서에는 활동 기간이 1919∼1922년으로 나온다. 그는 이력서에 “1913년 일본인들의 수배를 당해 소련의 극동지역으로 건너와 1919년까지 머물렀다”고 적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고 그 무렵부터 그는 볼셰비키 이념에 경도된 것으로 보인다.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는 1920년의 일이니 그는 빨치산으로 전투에 참가한 것이다.

 

그는 1927년 볼셰비키 당원이 됐으며 1937년 스탈린 치하에서 강제 이주를 겪었으면서도 말년에 파시스트와 싸우는 데 나가겠다고 나서는 등 소련 정부에 충성했다. 스스로를 독립군보다는 빨치산으로 여겼기에 청산리 전투 후 일본의 대대적 반격에 쫓겨 다시 소련 영내로 들어갔을 때 소련군의 명령에 순순히 응해 무장해제를 했다. 청산리 전투에서 같이 싸운 김좌진 이범석 등은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만주로 돌아갔다.


문재인 정부는 3·1운동 이후 독립운동에서 외교노선보다 무장투쟁노선을 치켜세운다. 그러나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의 승리는 새로운 무장투쟁 시대를 여는 여명이 아니라 황혼의 장엄한 피날레였다. 황혼 뒤의 어둠은 자유시 참변으로 찾아왔다. 간도와 연해주의 독립군은 사실상 궤멸됐다. 무장해제에 순응한 한인 빨치산 부대도 교육·훈련 부대가 돼 더 이상 전투에 투입되지 않았다. 그렇게 홍범도의 빨치산 이력도 1922년으로 끝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홍범도에게 건국훈장 최고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줬다. 홍범도는 은퇴한 뒤 소련 정부로부터 연금도 받고 전직 빨치산으로서의 특혜도 누리며 말년까지 비교적 안락하게 살았다. 그는 소련 사회에 동화된 고려인의 영웅 혹은 북한이 모시고 싶은 영웅일 수는 있어도 대한민국의 영웅은 아니다. 그가 자유시 참변 이전까지 만주벌판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을 하며 독립운동을 한 업적은 그것대로 기려야 한다고 하더라도 자유시에서의 배신은 이전의 공(功)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홍범도의 유해를 싣고 오는 비행기가 한국 영공에 들어서자 공군 전투기가 6대나 호위했다. 이승만 등 해외에서 숨진 건국의 아버지들도 받지 못한 대우다. 오늘날 대한민국장을 받아야 할 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인 백선엽 장군이 별세했을 때는 문상도 하지 않은 대통령이 유해를 맞기 위해 한밤에 공항까지 나왔다.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식에서의 대통령 연설 속에 자유시 참변에 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었다. 국민에게 설명해야 할 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기괴하고 기만적인 서훈이었다.

 

09-08 고발 없는 ‘고발 사주’에 관한 몇 가지 시비

윤석열은 명예훼손 고소권자
고발 사주해도 법적 문제 없지만
실제 고발도 없어 사주도 의문
정작 고발은 反윤석열 측이 해

이른바 ‘윤석열 고발 사주’ 의혹이 제기되던 날 뉴스버스라는 인터넷 매체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런 생소한 매체가 쓴 기사를 어떻게 바로 알았는지 그날 오후 더불어민주당 쪽 사람들이 벌 떼처럼 윤석열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윤석열 고발 사주’는 도대체 무슨 죄가 되는가 곰곰이 생각해 봤다. 당시 최강욱 공직선거법 위반 고발 건은 거론되지 않았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밝혔듯이 그 고발 건은 김 의원이 먼저 문제로 의식하고 고발장인지 초안인지 메모인지를 작성했다고 하니까 일단 사주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제쳐 두자.


‘윤석열 고발 사주’에 관련된 의혹은 부인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과 측근의 이른바 ‘검언(檢言) 유착’ 의혹이다. 사실이 아니라면 윤석열과 부인, 윤석열과 측근의 명예가 훼손된다. 고소할 권리가 윤석열에게 있다. 자신이 고소할 권리를 갖고 있는 사안을 다른 누구로 하여금 고발하게 하는 건 그 자체로는 법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윤석열이 일개 검사였다면 스스로 고소하면 된다. 문제는 그가 검찰총장이라는 데 있었다. 검찰총장은 모든 사건 수사를 지휘한다. 자신이 고소한 사건도 지휘해야 하는 구조다. 그래서 고소가 어색하다. 그러나 아내와 측근까지 걸린 명예훼손을 그냥 두고 넘어갈 수 없다고 여길 수 있다. 그래서 다른 누구로 하여금 대신 고발하게 했는가 하는 것이 ‘윤석열 고발 사주’ 의혹의 출발이다.

 

윤석열이 당시 부하인 손준성 수사정보정책관을 시켜 고발하게 했다면 검찰총장 권한의 사유화(私有化), 즉 권한을 사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적절하지 않은 처신이라고 볼 수 있다. 윤석열은 ‘고발 사주’ 의혹이 제기된 후 직권남용죄로 고발됐지만 그의 고발 사주가 사실로 드러나더라도 권한 밖의 일을 시킨 것이기 때문에 국정농단 심판에서 확실해진 대법원 논리에 따르면 ‘권한 내의 일에서 권한을 남용하는’ 직권남용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윤석열이 적절하지 않은 처신을 했는지조차도 사실관계가 밝혀지고 나서 판단할 일이다. ‘손준성 보냄’이라고 적힌 파일 사진들이 공개됐다. 뉴스버스에의 제보자로 지목된 사람이 국민의힘에 있다가 다른 당 후보의 캠프로 간 데다 과거 조작 경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조작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김 의원이 손 검사로부터 자료를 받아 전달한 적이 있다고 하니 그 사진들을 일단은 믿지 않을 수 없다.

 

사진에 담긴 자료가 수사정보 등 기밀을 유출한 것이라면 그 부분에 대해 윤석열이나 손 검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 다만 자료를 보낸 것이 김 의원의 요청에 따른 것인지 손 검사가 부탁한 것인지가 ‘윤석열 고발 사주’를 따지는 데 중요하다. 김 의원은 최강욱 고발과 관련해 필요한 자료를 요청했는데 딸려와 전달했을 뿐이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그 말을 믿는다 하더라도 손 검사의 능동적 부탁이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만사 큰 틀을 먼저 본 뒤 세세한 것을 따져야 한다. 당시 국민의힘에 의한 고발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 윤석열에게 고소할 정당한 권리가 있는 사안을 고발로 대신하는 것에 ‘사주’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도 지나치지만 그런 프레임마저도 최소한 고발이 실제 이뤄졌을 때나 씌울 수 있다. 윤석열이 정말 고발을 사주해 수사할 의지가 있었다면 고발 미수가 되도록 내버려뒀겠냐는 의문이 든다. 두 사건 다 윤석열과 무관하게 민주언론시민연합과 최강욱의 고발로 결국 수사가 이뤄졌다. ‘검언유착’은 1심에서 무죄가 났고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은 검찰이 새로 수사 중이지만 과거 금융감독원과 경찰 조사에서 혐의 없음으로 내사 종결된 바 있다.

 

추미애가 법무부 장관일 때 헌정 사상 최초로 검찰총장을 징계하며 나라를 흔들어 놓았으나 징계 관련 행정재판이 끝나지도 않은 지금 도대체 무슨 일로 징계가 있었는지 기억하려 해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번 사안도 그런 사안이다.


민주당에서 어제 이해찬까지 나서 ‘국기 문란’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총선 전에 제보받은 내용 중 하나라고 넌지시 언급했다. 당시 민주당이 받은 제보와 뉴스버스가 받은 제보가 같은 것이라면 제보의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10-06 이재명, 민주당의 황혼

밑바닥서 ‘오징어게임’ 거쳐 올라온
생계형 좌파, 본래 좌파와 달라
원대한 이념보다 탐욕 두드러져
이재명으로 민주당 수명 다한 듯

경기 성남 분당의 한 교회를 10년 넘게 다닌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성남시장 재선에 도전하던 2014년의 어느 일요일이었다. 목사가 예배 시간에 이 지사의 성남시장 재선 출마 소식을 광고했다. ‘이 지사가 이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한 번 놀랐고, ‘이 지사가 (어느 교회든)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또 한 번 놀랐다.


2016년 ‘혜경궁 김씨’의 댓글이 SNS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지사와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의 잠재적 대권후보로 경쟁할 때다. ‘혜경궁 김씨’는 문 대통령을 향해 ‘한국말도 통역이 필요한 문어벙’ 등의 거친 말을 쏟아냈다. 이 지사 측은 ‘혜경궁 김씨’는 부인 김혜경 씨가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곧 댓글을 쓴 아이디와 똑같은 아이디가 우리 교회의 인터넷 게시판에서 발견됐는데 아이디의 주인이 김혜경 씨였다.


이 지사를 교회에서 본 적은 없다. 큰 교회니까 못 볼 수 있다. 그래서 다른 교인들에게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물어봤지만 봤다는 사람을 못 봤다. 목사는 몇 주 전 일요일에 이 지사가 우리 교회 교인이 아니라고 밝혔다. 과거 김혜경 씨가 남편의 선거운동에 이용하기 위해 등록만 해준 것이 아닐까 싶다.

 

목사가 7년이 지나 이 지사의 교인 여부를 확인해준 것은 형수 욕설 녹음파일이 영향을 미친 듯하다. 형수에게 악감정이 있더라도 처음에는 조곤조곤 얘기해 보려 시도하다가 참기 힘들면 목소리를 높이는 게 보통이다. 그의 말은 다짜고짜 옮기기도 거북한 쌍욕으로 시작한다. 같은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 아닌 사실에 교인들이 큰 자괴심을 느꼈을 것이다.

 이 지사는 소년노동자로 시작해 검정고시로 대학에 들어가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성남시장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생계형 좌파라는 게 있다. 이들에게는 본래 좌파가 지닌 원대한 이념이 없다. 너무 원대해서 우파로부터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그런 이념 말이다. 생계형 좌파는 눈앞의 이익이 있으면 놓치지 않는다. 처음에는 먹고살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었을지 몰라도 웬만큼 먹고살게 된 다음에도 관성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 얻기를 추구한다.

 

이 지사와 그 주변 세력에서 언뜻언뜻 느껴지는 낯선 행태는 밑바닥으로부터 ‘오징어게임’식의 생존투쟁을 통해 단계를 밟고 올라온 사람들의 치열함과 무관치 않다. 그 치열함이 윤리적으로 가다듬어진다면 더없이 좋은 성품으로 승화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웹툰에 상투적으로 등장하는 무자비하고 탐욕적인 캐릭터가 된다.

 

이 지사가 2016년 ‘정부가 매년 성남시 돈 1051억 원을 빼앗아 가려 한다’고 주장하며 단식농성을 벌인 적이 있다. 1051억 원의 교부금은 분당과 판교 덕분에 부자 도시가 된 성남시는 더 이상 받을 필요가 없고 대신 경기도내 가난한 시군으로 가야 할 돈이었다. 이 지사는 이마저도 빼앗기지 않겠다고 단식에 들어갔다. 난 그의 스크루지처럼 탐욕스러운 단식을 비판하는 칼럼을 썼다가 그로부터 ‘기레기’ 공격을 당했다. 당시 민주당 지도부가 나서 무모한 단식이라고 여기고 말렸으니 망정이지 그대로 뒀으면 아무도 동조하지 않는 단식을 중단하지도 못하고 큰 곤란을 겪었을 것이다.

 

음대 성악과를 나와 건설현장에서 ‘힘’쓰는 친척 동생이 있다. 덩치가 커 성량은 좋았으나 성악으로 먹고살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민노총을 위해 경쟁업체를 밀어내는 역할을 했다고 들었는데 얼마 전 만나니 한국노총으로 옮겨 비슷한 일을 한다고 한다. ‘대장동 게이트’의 유동규를 보니 그도 음대 성악과 출신으로 덩치가 좋다. 건설업체 운전기사 명목으로 그 바닥에 들어간 모양이다. 2010년경 분당 리모델링 조합장을 할 때 성남시장 선거에 도전하는 변호사 이재명을 만난 이후 측근이 됐다고 한다.


이 지사 주변에는 경기동부연합의 떨거지들, 건설업체의 삐끼들에 조폭까지 맴돌고 있다. 이익이 될 만한 것의 냄새를 맡는 데는 귀신같고, 한번 냄새를 맡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취하려 하고, 취한 이익을 어떻게 숨겨놓아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지사가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를 이어가고 있다. 민주당이 생계형 좌파에 권력을 넘겨주려 한다. 저 정당도 수명이 다했다는 느낌이다.

 

10-20 ‘고담시장’ 이재명 

이재명 이후 고담시 닮아간 성남
가짜 모라토리엄으로 기만하고
대장동에선 무능 부패 드러내
조폭 같은 측근에 조폭 연루까지

성남은 특별한 시군 기초자치단체다. 서울 강남에 인접한 배후지역이라는 위치 덕분에 강남 다음으로 아파트 값이 비싼 판교와 분당이 있고 실리콘밸리 같은 판교 IT 단지도 있다. 지방세만으로도 세수가 넘쳐 국가나 경기도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다시피 하니 간섭도 거의 안 받는다. 그래서 시장의 권력이 막강한데도 지방이라서 언론의 감시도 소홀하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2010년 성남시장이 되자마자 ‘모라토리엄(지불유예) 선언’을 했다. 전임 시장이 호화 시청사를 짓느라 돈을 펑펑 쓰긴 했지만 재정자립도가 그보다 훨씬 못한 지자체도 모라토리엄을 선언해 본 적이 없다. 정작 돈을 받아야 할 국가 측은 한 해 수백억 원씩만 갚으면 된다는데 돈을 줄 쪽이 오히려 수천억 원 빚 타령을 하며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그리고 3년 뒤, 있지도 않던 모라토리엄 위기를 극복했다고 자찬하더니 이후로는 넘쳐나는 세수에다 경기도의 가난한 시군으로 가야 할 돈까지 움켜쥐고 ‘나 홀로 퍼주기 복지’를 하면서 경기지사와 대통령으로 가는 정치적 가도를 닦았다.

 

대장동 개발은 그의 2014년 재선 이후 본격 추진됐다. 그는 자신은 100% 공영개발을 고집했지만 국민의힘 시의원들이 반대해 못 했다고 주장한다. 이 말은 그의 재선 이전에는 타당하지만 재선 이후에는 더불어민주당 시의원이 다수를 점했기 때문에 거짓말이다.

 

‘두 번 담그기(double dipping)’란 말이 있다. 한 번은 공영개발에 담가 저가에 토지 수용을 한 뒤 또 한 번은 민간개발에 담가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대장동 민간개발을 주도하다 이 지사에게 사업권을 뺏긴 업체에 따르면 민간개발만으로는 예상 수익이 3400억 원이었지만 관이 개입해 토지 수용에서만 6000억 원의 이득이 더 났다. 손해는 원주민 몫이었다.

 

이 지사는 100% 민간개발보다 더 탐욕적인 방식을 택하면서 자신의 임기 중 손에 쥘 확정 금액에만 정신이 팔려 민간업체 초과이익 환수 조항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 나중에 막대한 민간업체 이익을 보고 그 일부를 빼돌리려 했는지는 다음 얘기다. 무능이냐 부패냐가 아니라 무능 기본에 부패 추가가 어느 정도인가의 문제일 뿐이다.


배트맨 시리즈에는 고담시라는 가상 도시가 나온다. 성남시는 이 지사 재임 이후 선량들 위에 약탈자들이 활개 치는 고담시를 닮아갔다. 이 지사, 정진상 캠프 부실장 다음의 ‘넘버3’였다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는 대장동 설계를 지휘하면서 실무를 담당한 변호사(남욱)와 회계사(정영학)의 뺨을 후려갈길 정도였다. 이 지사가 성남시장에 출마할 때 선대본부장을 한 김인섭은 백현동 개발 시행사 대표를 협박해 지분 25%를 받아가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 지사 측근들의 조폭 같은 짓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실제 조폭이 등장한다. 이 지사는 변호사 시절 조폭 사건을 수임했다. 성남시장 시절에는 그 조폭 출신이 운영하는 기업에 중소기업인 대상을 줬다. 후임인 은수미 현 성남시장은 바로 그 기업으로부터 1년간 운전기사와 차량을 제공받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으나 대법원이 항소심의 절차적 오류를 트집 삼아 벌금 90만 원만 선고하는 바람에 시장직을 유지했다.

 

그 조폭이 성남 국제마피아파이고, 출신 기업가가 이준석이고, 기업이 코마트레이드임은 검찰 공소장과 판결문에도 다 나온다. 국회 국감장 화면에 등장해 이 지사에게 뇌물을 전달했다고 주장한 박철민(수감 중)은 이준석 아래 조직원이었다고 한다. ‘돈 사진’의 진위 논란이 불거져 있지만 본인이 얼굴과 실명을 밝히고 ‘거짓이면 처벌받겠다’고 한 만큼 정식 고발 절차를 밟게 하고 검찰이 사실인지 무고인지 수사해 잘못을 가려내야 한다.


‘흐흐흐, 크크크’ 국감장에서 조커의 웃음이 흘러나왔다. 조커는 사실 힘은 세지 않다. 그럼에도 위협적인 것은 규칙을 무시하고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공격하기 때문이다. 배트맨까지 쩔쩔맬 정도다. 이 지사는 모라토리엄 선언 때부터 조커적 재능을 보여줬다. 민주당에서조차 ‘이재명은 한다면 한다. 거짓말까지도’라는 자조적인 말이 나왔다. 조폭의 말이 그대로 믿기 어려운 만큼 이 지사의 말도 그대로 믿기 어렵다. 어디 거짓말뿐이겠는가. 쌍욕에 표절에 범죄(전과 4범)까지. 이 불온한 기운을 멈춰 세워야 한다.

 

11-03 김종인과 이준석이 불러낸 안철수

국민의힘의 오만함과 어리석음에 재·보선 승리 이끈 야권 단합 사라져
국민은 국민의힘 집권이 아니라 나라 바로 세울 정권교체 원한다

안철수의 대선 출마가 정권 교체의 길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안철수를 다시 불러낸 것은 김종인과 이준석이다. 김종인은 올 4월 재·보선이 끝난 후 안철수를 향해 ‘건방지다’고 말했다. 안철수가 ‘재·보선은 야권의 승리’라고 말한 데 대한 반응이다. 재·보선은 안철수가 마련한 야권의 승기를 국민의힘이 조직의 힘으로 가로챈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안철수도 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피눈물을 삼키며’ 오세훈의 선거운동을 도왔다. 김종인은 고마움을 표하기는커녕 막말로 응답했다. 정치인의 절제를 말하기 전에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준석은 ‘어쩌다 국민의힘 대표’가 돼서는 그 자리를 이용해 침묵하는 안철수를 계속 건드리면서 안철수와 선거에서 붙을 때마다 진 패배에 대한 뒤끝을 작렬시켰다. 최근에도 “안철수와 결별한 지도자는 대통령이 되고 통합하려 노력한 지도자는 고생한다”고 깐죽거렸다. 안철수를 자극하기만 할 뿐 누구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늙거나 젊거나 간에 제 감정 하나 다스리지 못하는 자들이 연이어 국민의힘을 이끌고 있다.

 

재·보선에서 야권이 압도적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과 안철수가 뜻을 모으고 바깥에서 윤석열이 지원하면서 전(全) 보수·중도 진영이 정권교체의 기치 아래 단합했기 때문이다. 그 단합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 김종인이다.

 

김종인에게 재·보선은 야권이 권력을 되찾느냐 마느냐의 문제 이전에 자신의 정치적 생명이 끝나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다. 그는 안철수의 서울시장 출마 선회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국민의힘이 서울시장을 차지하지 못할 경우 국민의힘을 이끄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이 끝날 수밖에 없었다. 오세훈의 승리는 김종인의 머릿속에서는 자신과 국민의힘의 승리일 뿐이지 야권의 승리가 아니다. 그것을 안철수가 야권의 승리라고 하니 저도 모르게 ‘건방지다’는 말이 튀어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재·보선은 누가 봐도 단합된 야권의 승리였다. 반문(反文) 유권자들에게 오세훈과 안철수의 단일화에서 누가 되든 큰 차이가 없었다. 오세훈이 아니라 안철수가 더불어민주당의 박영선과 붙었더라도 승리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안철수가 서울시장이 됐다면 국민의힘과 중도파가 더 단합된 분위기 속에서 대선을 준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김종인의 막말에 이어 야권 단합의 분위기를 꺾은 것은 윤석열의 국민의힘 조기 입당이다. 정치 적응을 위한 절대적 시간이 부족했던 윤석열은 국민의힘 밖에서 안철수 등과 힘을 모았다가 단일화를 꾀했어야 했다. 정작 대선은 남 일처럼 보면서 자기 치적이 될 국민의힘 경선 흥행에만 몰두한 이준석에게 놀아나 조기 입당을 선택하는 바람에 주위에 권력의 냄새를 맡은 똥파리들이 잔뜩 몰려들어 정권교체의 대의(大義)는 후퇴하고 권력투쟁만 부각됐다. ‘구라’와 정치적 발언을 구별하지 못하는 윤석열을 보면서 중도적인 유권자들은 망설이게 됐다. 그것이 안철수가 움직일 여지를 열어줬다.


김종인의 정치적 승리는 이상하게도 늘 나라의 실패로 이어졌다. 그가 한번은 박근혜의 당선을 도와, 한번은 문재인의 재기를 도와 킹메이커로 불리게 됐지만 나라는 두 대통령의 임기를 거치면서 잃어버린 10년으로 빠져들었다.


오세훈의 서울시장 당선도 당장은 김종인의 정치적 승리로 보였다. 그러나 김종인이 승리를 독차지하기 위해 분열을 조장하고 윤석열이 국민의힘에 조기 입당하고 안철수가 대선 출마를 선언함으로써 재·보선을 승리로 이끌었던 야권 단합은 완전히 사라졌다. 인간사 흔히 성공한 그것으로 망하기도 하는 법이다.


이제 와 안철수에게만 수(手)를 물리라고 할 수 없다. 진보 진영은 민주당과 정의당이 같이 나온다. 정의당이 나온다고 문제 삼는 사람은 없다. 판이 바뀐 이상 중도·보수 진영도 국민의힘과 안철수가 같이 나오는 것이 정상적이다. 그걸 문제 삼는 쪽이 이상하다.


안철수에게 더 이상 스스로 당선될 힘은 남아 있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를 떨어뜨릴 힘은 있다. 안철수가 이번에는 독심을 품은 듯하다. 안철수를 그렇게 만든 건 김종인과 이준석이다. 안철수 정도는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自信)했으니 그랬을 것이다. 자신인지 자해(自害)인지 두고 보겠다.
 

 

11-17 이재명의 아는 체하는 역사

가쓰라-태프트 협약’은 본래 없어… 비망록 수준의 문서가 있을 뿐
아는 체하며 남 탓이나 해서는 역사의 돌파구 마련하지 못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얼마 전 방한한 존 오소프 미국 상원의원 앞에서 ‘가쓰라-태프트 협약’을 거론했다. 그러나 ‘가쓰라-태프트 협약’은 없다. 비망록 수준의 문서가 있을 뿐이다.


역사는 복잡다단해서 검정고시나 사법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공부하는 국사 정도로는 알아지지 않는다. 1905년 일본 가쓰라 다로 총리와 미국 윌리엄 태프트 육군장관이 서명한 문서는 협약(pact)이나 협정(agreement)이 아니라 이러저러한 대화를 주고받았음을 ‘서로 확인한 비망록(agreed memorandum)’에 불과하다.


이 비망록은 서명 당시 공개되지 않았다. 1924년에 가서야 타일러 데닛이라는 학자가 우연히 발견해 ‘비밀협약(secret pact)’ ‘행정협정(executive agreement)’이라고 과장했다. 그러나 태프트 장관이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전문(電文)의 제목 자체가 비망록일 뿐만 아니라 1959년 레이먼드 에스더스라는 학자가 데닛이 밀약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일부러 뺀 전문 내용들을 복원해 비망록임을 밝혀냈다.

 

이 비망록이 발견 당시 눈길을 끈 것은 일본은 필리핀에 관심이 없고 미국은 일본의 조선 보호령화에 이의가 없다는 대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자들은 그 의미를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미국은 필리핀을 이미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있었던 반면 일본은 러일전쟁 후 곧 다시 전쟁을 일으킬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의 필리핀 불개입 보장과 미국의 조선 보호령화 인정 사이에 ‘대가(quid pro quo)’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 후보는 오소프 상원의원에게 일본에 의한 조선의 병합이 미국 탓이라고 말하기 위해 ‘가쓰라-태프트’ 얘기를 꺼냈다. 물론 학자들이 ‘가쓰라-태프트 비망록’의 의미를 축소했다고 해서 당시 미국이 일본 편을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바뀌지는 않는다. 다만 ‘가쓰라-태프트 비망록’은 현상(現狀)의 변경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그것이 없었어도 일본에 의한 조선 보호령화는 진행됐을 것이라고 봤기 때문에 그 의미를 축소한 것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가쓰라-태프트 비망록’ 2개월 뒤 러시아와 일본의 포츠머스 조약을 중재한다. 조선에서 일본의 특수 이익을 인정하는 것이 조약의 주된 내용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포츠머스 조약을 중재한 공로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다. 조선으로서는 억울한 일이었지만 일본 외의 특정한 나라를 탓하기는 어렵다. 당시는 약소국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강대국 사이의 전쟁을 방지하는 걸 세계 평화의 선결 과제로 보던 시대였다.


미국이 자유세계의 가치를 위해 자국의 희생을 감수하게 된 것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참전부터다. 미국은 1950년 한국에서도 3만7000명의 자국민을 희생하며 싸웠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미국은 고립주의를 바탕으로 철저히 자국 위주의 현실적인 정책을 폈다. 미국만이 아니라 모든 열강이 자국의 손해를 감수한다는 생각은 머릿속에 들어 있지도 않던 시대다. 가까운 시기에 미국이 한국을 위해 싸운 사실은 다 건너뛰고 돌연 다른 시대로 돌아가 자신도 국민 대부분도 잘 모르는 역사 문서를 들먹이며 미국 탓을 하는 대통령 후보가 우리가 보기에도 황당한데 미국 상원의원의 눈에는 얼마나 황당하게 비쳤을까.


오늘날 ‘가쓰라-태프트 비망록’과 포츠머스 조약에서 얻어야 할 교훈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가쓰라-태프트 비망록’과 포츠머스 조약은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해 세계열강 중 하나로 급부상한 데 대한 미국의 대응이다. 지금은 중국이 미국에 맞먹는 강대국으로 등장해 당시와 비슷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미중(美中) 간 투키디데스 함정을 경고한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가 2017년 펴낸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에 따르면 중국의 홍콩 편입과 대만 점령 다음은 한국의 예속화다. 지금 대만 점령 직전까지 와 있다. 반면 미국은 점점 더 자국 우선주의로 돌아서고 있다. 역사 앞에 겸손한 자세로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하고 아는 체나 하고 있다가는 주변 강국에 예속된 구한말의 전철을 다시 밟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12-01 上王과 중2병에 걸린 당 대표 

윤석열 선대위 全權 놓고
김종인 이준석 몽니는
국민의힘 정상화 과정의 진통
야권 연대 회복의 숙제 남아

윤석열 씨가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된 후 그의 정치력을 처음으로 평가받았다. 다행히 윤 후보는 김종인 씨에게 굴복하지 않았고 김 씨를 상왕(上王)으로 뒀다는 프레임에 휘말리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2012년 대선에서는 김 씨가 선대위의 원톱 같은 자리를 차지하지도 못했지만 그런 자리를 차지했다고 해도 강력한 파벌을 거느린 박근혜 때문에 전권을 휘두를 수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정치권 밖에서 온 신참자가 대선 후보가 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씨가 선대위의 원톱을 맡을 경우 상왕처럼 될 수 있다는 우려는 누가 일부러 퍼뜨릴 필요도 없이 누구나 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래서 총괄선대위원장을 견제할 수 있는 상임선대위원장을 둔다는 발상이 나왔을 것이다. 상임선대위원장으로서의 최적임자가 김병준 씨인가 하는 의문은 남아 있다. 다만 그 자리에 누가 오든 김종인 씨와는 생각을 달리하고 그의 독주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함은 분명하다. 김병준 씨 외에 누가 더 적임자인가 물으면 딱히 답하기도 쉽지 않다.

 

김종인 씨는 권력욕이 없는 노인이라서 상왕처럼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지나치다는 사람에겐 한 가지 사실만 상기시키고 싶다. 그는 박근혜 탄핵 후인 2017년 뜬금없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가 다들 이상하게 여기자 12일 만에 접은 적이 있다.

 김 씨를 상왕처럼 모시는 건 과거 쇄신파에서도 보지 못한 ‘김종인 키즈(kids)’의 특징이다. 김종인 키즈 중 현재 가장 큰 마이크를 갖고 있는 건 이준석 대표다. 상왕 프레임은 다른 누가 일부러 퍼뜨린 게 아니라 김종인 키즈가 스스로 만든 것이다.

 

당 밖에서는 진중권류가 국민의힘은 김 씨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정당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가 더불어민주당을 향해서는 이런 식의 훈수를 둔 적이 없다. 보수 정당과 그 지지자들을 미숙아(未熟兒) 취급하면서 은근히 독재적 리더십을 부추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김영삼 이후 정권을 잡은 보수 정당은 한 번은 친이(親李)계가, 한 번은 친박(親朴)계가 독주하면서 망가졌다. 국민의힘도 이제 어느 한 사람이나 어느 한 세력이 이끌어가는 정당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이 좋은 기회다. 윤 후보는 당내 세력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당의 체질을 협의체적으로, 민주적으로 바꿀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윤 후보 주변에 벌써 권력의 냄새를 맡고 몰려온 파리 떼가 없지 않다. 탈당했다 돌아온 친이계가 중심이다. 이들은 윤 후보라는 태풍을 국민의힘이란 가두리에 가둔 후 소멸시켜 버리려 했던 이준석-홍준표-유승민 연합군에 맞서 윤 후보가 대선 후보가 되는 걸 도왔으니 전리품을 취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친이계에 대한 반감도 친박계에 대한 반감 못지않게 크다. 한번 믿은 사람은 끝까지 믿는다는 검찰총장 시절 윤 후보의 생활 태도는 훌륭한 것이긴 하지만 사도(私道)와 왕도(王道)는 다르다. 친이계와는 더 확실히 거리를 둬야 한다.


윤 후보는 총괄선대위원장 자리를 비워놓았다. 계속 비워놓는 것이 김 씨에 합당한 예우이자 당의 화합을 위해 노력한 흔적이 된다. 그 흔적은 동시에 김 씨가 끝까지 오지 않으면 몽니의 자국으로 남을 것이다.


김 씨에게 총괄선대위원장, 이 대표에게는 김병준 씨와 동급의 상임선대위원장 자리와 홍보미디어총괄본부장 자리를 줬는데도 이들은 만족하지 못한다. 이 대표는 ‘모든 권력을 김종인에게로’를 외치며 그만두겠다고 생떼를 부리고 있다. 중2병에 걸린 청소년 같다. 권력에 대한 강한 집착이나 당의 주인이 되고 나서도 만년 손님처럼 행세하는 게 김 씨와 비슷하다.

김 씨와 이 대표가 부린 최악의 몽니는 올 4월 재·보궐선거를 압도적 승리로 이끈 야권 연대를 산산조각 낸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단일화 없이 끝까지 완주할 뜻을 밝혔다. 안 후보의 지지율이 고작 5% 안팎이기는 하지만 국민의힘이 민주당과 박빙의 대결을 펼친다면 안 후보의 출마가 정권 교체의 성패를 좌우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수 있다. 그들의 스텝은 아마도 그때부터 꼬이지 않았을까. 누가 밀지도 않았는데 꼬인 스텝을 밟다가 저절로 넘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12-15 지체된 과학 대통령의 시간

문화는 세계에서 펄펄 나는데 이념적 탈원전, 아는 척 수소차
문화와 과학-기술 간극 커져… 그 간극 메워야 선진국 된다

얼마 전 노벨상 시상 시즌이 끝났다. 올해까지 일본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 대 한국 수상자는 25 대 0이다.

2015년 20 대 0, 2016년 22 대 0, 2018년 23 대 0, 2019년 24 대 0으로 일본은 한 해나 두 해에 한 번씩 수상자를 내는 데 반해 한국은 0의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특허출원 건수에서 독일을 제치고 중국 미국 일본 다음의 4위를 차지한 데 이어 올해도 같은 순위를 유지했다. 이런 순위만 놓고 보면 과학은 몰라도 기술에서는 한국의 성적이 괜찮아 보인다.


그러나 특허출원 건수로 국가의 기술력을 비교하는 건 맹점이 있다. 특허를 유지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한국은 특허출원을 많이 해도 그 유지에 드는 비용을 감수하면서 특허를 장기적으로 유지할 만한 기술은 적다. 핵심 기술은 그런 기술인데 그런 기술은 주로 미국 일본 독일이 갖고 있다. 코로나 사태에서 봤듯이 mRNA을 이용한 첨단 백신은 미국과 독일의 제약회사만 만들어냈다. 특허출원 1위인 중국은 노력했으나 효과적인 백신을 만들지 못했다. 한국의 기술도 원천 기술이라기보다 주로 파생 기술이다. 원천 기술은 과학이 뒷받침될 때 나온다.

 

한국은 문화에서는 많은 자랑거리를 갖게 됐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데 이어 배우 윤여정이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BTS’에 이어 블랙핑크 에스파 등이 빌보드 순위에 오르면서 비틀스 시대의 ‘영국 침공(British Invasion)’을 연상케 하는 ‘한국 침공(Korean Invasion)’이 이뤄지고 있다. OTT가 상영관을 대체하는 흐름 속에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 1위를 차지하면서 세계적인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더니 ‘지옥’이 그 뒤를 잇고 있다.

 문화가 발전하는 시기는 대개 과학·기술도 발전하는 시기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 재임 시기는 그렇지 않았다. 문화의 발전에 반해 과학·기술 분야는 뒤처지거나 오히려 후퇴했다.

 

빌 게이츠도 주장했듯이 탈(脫)원전 정책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이산화탄소 감축 정책을 방해한다. 문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원전이냐 탈원전이냐는 이항(二項) 대립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연은 연속적이고 과학적 사고도 연속적이다. ‘A 아니면 B’라는 사고 속에는 소형 모듈 원자로(SMR) 같은 ‘보다 안전한 원전’을 위한 자리가 있을 수 없다.


수소차는 원(遠)미래의 차일지언정 근(近)미래의 차는 아니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는 ‘그린 수소’를 값싸게 얻으려면 아직도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은 수소차를 전기차와 비슷한 근미래의 차로 아는 체하다 결국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다.


대통령은 과학을 몰라도 참모가 과학을 알면 될 것 같지만 문 대통령의 사례는 대통령이 과학에 대한 감각이 없으면 과학에 대해 올바른 조언을 하는 참모를 두지도 못하고, 참모가 올바른 조언을 해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걸 보여준다.


1992년 문민정부가 들어섰을 때 우리나라는 이미 정치 이외에 경제를 아는 대통령이 필요했다. 경제를 알기는커녕 경제에 대한 감각도 없는 대통령을 뒀다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는 사태를 맞았다.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이란 말로 대체되고 있다. 산업화와 정보화를 결합시키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현상은 스마트폰이 대세가 된 2010년대에 들어와서부터 본격화됐다. 2012년과 2017년 대선은 과학까지 아는 대통령을 뽑았어야 하는 선거였으나 그러지 못했다.


물론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나라를 지키는 것이다. 헨리 키신저는 앞으로의 전쟁은 핵무기가 아니라 인공지능(AI) 기술이 승패를 가를 것으로 봤다. 미중(美中) 대립의 시대에 한국이 고슴도치처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무기도 과학이다. 이미 두 번의 지체가 있었다. 더 늦기 전에 과학을 아는 대통령, 아니 과학은 잘 몰라도 과학에 대한 감각이 있는 대통령, 아니 과학을 잘 모르고 과학에 대한 감각도 없으면 최소한 괜히 아는 체하면서 간섭하는 것만큼은 삼갈 줄 아는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 문화가 뭘 해줘서 발전한 게 아니라 놔둬서 발전했다.

 

12-29 문과의 위기 그 자체인 이재명과 윤석열

문과의 위기는 단지 취업난 아냐…대학 교육의 근본 결함에서 비롯
浮薄한 정치 면하지 못하는 건 문과의 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아

우리나라에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이 없을 때 많은 문과생들이 사법시험을 준비하느라 전공 공부를 등한시했다. 로스쿨이 생기자 그런 현상은 어느 정도 사라졌다. 인문사회계열 학생도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한 후 원하면 로스쿨에 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문과가 과거 법학 천하였다면 지금은 경영학 천하가 됐다. 요새 문과생의 상당수는 경영학을 부전공으로 택한다. 취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그렇게 하지만 성격이 완전히 다른 두 가지를 함께 공부하다 보니 둘 다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고 졸업한다.

미국 대학의 특징은 순수학문과 직업 교육을 분리한다는 점이다. 낮은 단계의 직업 교육은 칼리지(college)에서, 높은 단계의 직업 교육은 전문대학원(professional school)에서 한다. 법학과 경영학은 전문대학원에서만 가르친다. 학부에서 순수학문을 한 후에야 계속해서 석·박사 과정을 하든, 아니면 로스쿨이나 MBA 과정에 들어갈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델라웨어대에서 역사와 정치학을 공부하고 시러큐스대 로스쿨을 나왔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컬럼비아대에서 정치학과 영문학을 공부한 뒤 나중에 하버드대 로스쿨을 다녔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예일대 로스쿨을 다니기 전에 영국 옥스퍼드대로 유학해 철학 정치학 경제학을 공부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1982년 중위권 대학 법대에 학비에 더해 생활지원금까지 받는 장학생으로 들어가 그 대학의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늘려주기 위해 죽어라고 사법시험 공부만 한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악착같은 생존 본능에 법 지식만 갖춘 사람이 됐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다닌 서울대 법대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윤 후보는 9수를 했다고 하니 20대 청춘을 온전히 사법시험에 갖다 바쳤다는 얘기다. 9수가 가능했던 경제적 여유에서 오는 한량 특유의 다방면에 대한 관심은 보이지만 깊이는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문과의 위기는 단지 ‘문송합니다(문과여서 죄송합니다)’로 표현된 그 분야 교수와 학생만의 위기가 아니다. 젊은 시절 인문사회과학적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 정계 관계 재계로 진출해 지도층이 됨으로써 발생하는 사회 전반의 위기다.


우리나라 중산층은 그렇지 않아도 교육비로 허리가 휘고 있는데 고등교육을 4년이 아니라 6, 7년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감당하겠느냐고 물을 수 있겠다. 물론 대학의 개혁은 공교육의 강화, 장학제도의 확대 등이 동반돼야 한다. 다만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사회 지도층의 평균 학력 수준이 우리의 석사 수준이라는 현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파리 10대학에서 철학으로 DEA(후에 master로 통합), 파리정치대(Sciences Po)에서 공공정책으로 마스터(master)를 받은 뒤 고위직 공무원이 되기 위한 직업학교(그랑제콜)인 국립행정학교(ENA)를 다녔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6년 과정의 함부르크대 법대를 나왔다.

프랑스 대학에서는 리상스(licence)에 3년, 마스터(master)에 2년이 소요된다. 독일 대학은 학위 구분도 없이 기초과정(Grundstudium)과 본과정(Hauptstudium)으로 나누고 합쳐서 평균 6년이 걸리는 본과정까지를 마쳐야 마기스터(Magister) 같은 최초의 학위를 준다.

중요한 점은 리상스나 기초과정에서 입학생의 절반 정도가 탈락한다는 사실이다. 리상스를 통과하면 대개 마스터 단계까지 간다. 프랑스나 독일에서 ‘대학을 다녔다’ 함은 마스터나 본과정을 마쳤음을 의미한다. 이 나라들에서 대졸은 우리의 석사 수준인 셈이다.

문(文)·사(史)·철(哲)은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학문이 아니다. 인간사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함께 진실 추구의 정신을 배우는 학문이다. 그 점이 직업 교육과 다르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어울리지 않은 우리 정치의 부박(浮薄)함은 그런 교육의 부재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누구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누구는 거짓 서류를 밥 먹듯이 꾸민 집안과 연을 맺는다. 문과의 위기는 취업난 정도로 봐서는 해결할 수 없으며 선진국 문턱에 올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대학 제도의 결함으로 봐야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