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파 정권의 국정농단 2021-11-2/ 스페셜
월간조선 2020. 11월 호
1. 권력형 비리 옵티머스 정·관계 로비 의혹 관련자들
“나, 지금 떨고 있니?”
옵티머스 자산운용은 지난 2년여간 한국도로공사나 경기도교육청 등 돈 떼일 염려가 거의 없는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해 3~4%의 수익률을 거둘 수 있다고 홍보하면서 투자금을 모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거래소에 상장되지 않은 장외기업 사모사채 등 엉뚱한 곳에 대부분(98%)을 투자했다.
나중에 투자한 사람들의 돈으로 앞서 투자한 사람에게 수익금인 양 지불하는 이른바 ‘폰지형 사기’ 행각을 2년여간 해온 것이다. 옵티머스의 사기는 사모펀드 시장이 비정상적인 상태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사기 사건의 피해 규모는 5100억원대, 피해자만 2900여 명이다. 서민의 등을 치고 피눈물을 뽑아낸 이 사기 사건이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 번지고 있다.
옵티머스 수사팀이 청와대와 정·관계 인사 20여 명이 거론된 옵티머스 내부 대책 문건, 이를 요약한 ‘펀드 하자 치유 관련’ 문건을 확보하고도 수사를 전면화하지 않았던 것이 뒤늦게 알려지고부터다. 옵티머스 펀드 사기 혐의로 기소된 사내 이사 윤모씨의 아내 이 모 변호사가 옵티머스 회사 지분 9.85%를 보유한 사실을 숨기고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다는 사실이 《조선일보》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이 전 행정관은 작년 10월 청와대에 들어갈 때 옵티머스 주주였는데 작년 말쯤 라임 등 펀드 부실 문제가 불거지자 지분을 회사 대표의 비서 명의로 돌린 뒤 올 6월 검찰 수사 착수 직후까지 청와대에서 일했다는 것이다. 민정비서관실은 대통령 친·인척과 정권 실세들의 비위 감찰은 물론 금융업계 및 당국에 대한 감시 업무도 담당한다.
옵티머스 펀드 사기 사건이 ‘권력형 게이트’로 비화할 가능성이 큰 중요 단서가 속속 드러남에도 검찰의 수사는 미진하다. 청와대와 정·관계 인사 20여 명이 거론된 옵티머스 내부 대책 문건 확보 사실조차 대검찰청에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펀드 관련자들은 수사팀에 금감원 국장 등을 상대로 금품 로비를 했다는 진술도 했는데 이것도 정식 조서에는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0월 13일 옵티머스·라임자산운용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제기하는 국민의힘을 “뭐가 지금 나왔기에 권력형 비리 게이트라 하는지 모르겠다”며 “야당 고질병”이라고 주장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라임과 옵티머스 건으로 근거 없는 의혹 제기, 부풀리기 등을 통한 정치 공세가 도를 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정치권에는 옵티머스 로비 명단이라는 게 돈다. 이 명단에 거론된 한 사람은 자신의 회사 홈페이지에 “회사는 펀드의 피해자로, 개인 자격으로도 옵티머스 임직원 및 관계자와 인사를 한 적도 없다”며 “대표이사는 물론 개인 자격으로도 옵티머스 측 임직원 및 관계자들과 단 한 번의 미팅도 해본 적 없으며, 심지어 인사조차 나눠본 적이 없기에 그들이 누군지도 모른다. 사법 당국의 최종 수사를 통해 명명백백하게 밝혀질 일이지만 마녀사냥식의 근거 없는 지라시로 인해 회사의 명예가 실추되는 일이 없어야겠기에 이를 다시 한 번 밝힌다”고 했다.
이 명단에 나와 있진 않지만 한 회사가 옵티머스에 투자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소문이 도는 민주당 현역 의원은 전 정권 사람들을 비판할 때는 누구보다 앞장서는 인물이지만 이 사기 사건과 관련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최대 피해자는 서민들인데도 말이다.⊙
최우석 기자
월간조선 12월 호
美에 있는 옵티머스 쌍둥이 법인의 실체
사기판매·정관계 로비 의혹 / 옵티머스의 사실상 美 지사, LA 한인타운 근처서 영업
⊙ 美 옵티머스, 오너스톤 컨설팅으로 社名 바꾸고 여전히 영업
⊙ 사실상 옵티머스 미국支社로 보이는 오너스톤 컨설팅 대표는 양호 전 나라은행장
⊙ 韓 옵티머스가 검찰로부터 무혐의 받은 날 ‘옵티머스’로 이름 바꾼 美 옵티머스
⊙ 먼지처럼 사라진 4100억원의 행방, 美 옵티머스가 쥐고 있나?
⊙ 옵티머스의 ‘펀드 하자 치유’ 문건의 진실성에 주목
⊙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 문건에 나온 옵티머스와 남동발전 사이의 수상한 계약 사실 밝혀내
사기판매 및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는 한국 옵티머스자산운용(이하 옵티머스)의 ‘쌍둥이 기업’으로 볼 수 있는 법인 회사가 미국에서 여전히 영업 중(지난 10월 21일 현재)인 것으로 밝혀졌다. 옵티머스 펀드 사기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은 해외 공조 수사를 검토하는 등 이 법인을 주목하고 있다. 옵티머스 간부들이 이곳을 통해 자금을 빼돌렸을 가능성이 큰 탓이다
2006년 5월 유니 홀딩스 세운 양호 전 행장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이 코트라(KOTRA)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06년 4월 14일 P씨는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 부근에 ‘유니 홀딩스(UNI Holdings Corporation)’를 설립한다. 그런데 한 달도 안 된 5월 9일 유니 홀딩스는 ‘유니 홀딩스 크리스털 캐피탈(UNI Holdings Corporation Crystal Capatal, INC)’로 사명(社名)을 바꾼다. 대표자도 P씨에서 양호(YANG HO)로 바뀌었다.
여기 대표자로 명시된 양호란 인물은 전 나라은행장인데, 옵티머스 회장 명함을 가지고 다니며 금감원을 상대로 로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양 전 행장은 옵티머스 지분 14.9%를 가진 최대 주주다.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는 양 전 행장을 2017년 4월 한 금융업계 인물이 주도한 모임에서 만났다고 한다.
김 대표는 과거 라오스에서 농장 개발 사업을 했다. 양 전 은행장에게서 ‘농업 분야 사업 투자를 준비 중’이란 말을 듣고 사업을 논의하며 가까워져 옵티머스 고문직을 제안했다고 한다.
양 전 행장은 김 대표에게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김 대표는 이 전 경제부총리에게 옵티머스 고문직을 부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7년 말 금감원에 민원을 넣기 위해 김 대표가 고문이던 양 전 행장을 앞세워 이 전 부총리를 4~5차례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금감원장은 이 전 부총리의 경기고 후배인 최흥식씨였다.
양호 전 행장은 누구?
▲한국 옵티머스 고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양호 전 나라은행장이 미국에 세운 ‘유니 홀딩스 크리스털 캐피탈’은 2019년 5월 22일 ‘옵티머스 자산(Optimus Asset USA, INC)’으로 이름을 바꿨다. 2020년 2월 한국 옵티머스 김재현 대표도 이곳의 임원으로 등록했다.
김 대표가 만든 ‘펀드 하자 치유’ 관련 문건에는 “양호 고문님이 (김재현 대표에게) PEF(사모펀드) 설립을 제안, 진행을 검토”라고 써 있다. “양호 고문님으로부터 공공기관 매출채권 딜소싱(투자처 발굴)을 도와주도록 증권업계 종사자 유현권과 대부 업체를 운영하는 이동열을 소개받음”이라는 내용도 있다. 유씨와 이씨는 옵티머스 사건으로 지난 7월 구속 기소됐다. 《월간조선》이 입수한 통화 녹취록에는 양 전 행장이 2017년 김재현 대표의 금감원 상대 로비를 지원하는 내용이 다수 등장한다.
이와 관련해 양 전 행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옵티머스의 최대 주주가 아니고 경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혁진(전 옵티머스 대표)씨가 최근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주장한 연루설은 사실이 아니며 나는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며 “2018년 5월 이후 이 회사에는 비상근 고문으로만 일해왔고, 지분도 감자된 자본금 19억원 중 2%에 불과하다.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펀드 판매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하다가 지난 6월 17일 환매 중단 사태가 발생한 이후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유니 홀딩스 크리스털 캐피탈’은 2019년 5월 22일 ‘옵티머스 자산(Optimus Asset USA, INC)’으로 이름을 바꿨다. 지난 2월 한국 옵티머스 김재현 대표도 이곳 임원으로 등록했다. 유니 홀딩스 크리스털 캐피탈이 옵티머스 자산으로 사명을 바꾼 시기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 재임 때인 2018년 10월 중앙지검 형사부는 한국전파진흥원의 옵티머스 관련 수사 의뢰를 접수했다.
전파진흥원은 옵티머스 펀드의 첫 기관투자가였다. 전파진흥원은 옵티머스에 2017년 6월부터 2018년 2월까지 1060억원의 기금을 투자했다. 이 중 대신증권이 830억원, 한화증권이 230억원을 차례로 판매했다. 당시 자본 미달 상태였던 옵티머스는 전파진흥원 투자를 마중물 삼아 시장에서 퇴출당할 위기를 모면했다.
하지만 옵티머스를 정상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전파진흥원은, 2018년 10월 돌연 옵티머스와 대신증권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에 수사를 의뢰한다. 당시 전파진흥원의 수사의뢰서를 보면 “대신증권에 기망당해 기관 자금을 편취당한 의혹이 있다”고 써 있다. 전파진흥원은 “원리금을 전액 회수해 손해는 없지만, 국가의 공적자금이 불법행위 도구로 사용됐을 가능성에 공공기관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를 수사해달라고 요구했다.
檢, 韓 옵티머스 무혐의 이유
전파진흥원이 수사를 의뢰한 것은 옵티머스와 경영권 분쟁 중이던 이혁진 전 옵티머스 대표가 전파진흥원 감독기관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민원을 냈기 때문이다. 과기부는 전파진흥원에 수사 의뢰를 지시했다. 이런 이유로 검찰이 수사에 돌입했을 때 전파진흥원은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며 조사에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당시 전파진흥원 관계자를 조사했는데 ‘과기부에서 수사 의뢰하라고 해서 한 거고 우리는 혐의가 뭔지 잘 모른다. 대신증권에서 이미 피해 금액 다 회수했다’고 진술했고, 금감원에서도 ‘이상이 없다’고 했다”고 밝혔다.
당시 옵티머스자산운용 횡령 의혹 수사팀의 부장검사였던 김유철 원주지청장은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부실 누락 수사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당시 전파진흥원 감사실 관계자 등 직원 2명의 진술조서 내용을 일부 공개했다. 이들은 검찰 조사에서 “전파진흥원은 피해가 없고, 전파진흥원 자체 조사와 금감원의 2차례 조사에서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서울 강남경찰서에서 동일 사안을 수사했는데 고소 각하 처리됐다”고 했다. 수사 의뢰 기관이 해당 수사를 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검찰 측에 의견을 낸 것이다.
김 지청장은 “이미 동일 내용 사건이 고소 취소로 각하 처리된 사정, 전파진흥원 직원의 진술 등에 비춰 자산운용사 관계자들의 내부 분쟁에서 비롯된 민원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했다.
무혐의 처분된 날 옵티머스로 社名 변경
▲美 옵티머스는 지난 6월 한국에서 옵티머스 환매 중단 사태가 터지고, 관련자들이 구속되자 8월 5일 ORNERSTONE CONSULTING, INC(오너스톤 컨설팅)으로 이름을 바꿨다. 사명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대표자는 양호 전 행장으로 변함없었다.
검찰은 2019년 5월 22일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공교롭게 무혐의 처리된 날 ‘유니 홀딩스 크리스털 캐피탈’은 ‘옵티머스 자산’으로 사명을 바꿨다. 한국 옵티머스와의 연결성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인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미국의 투자자들에게 우리는 요즘 한국에서 ‘핫’한 투자회사인 옵티머스 자산의 해외 지사(支社) 격으로 보면 된다며 투자금을 모았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옵티머스가 펀드 사기로 빼돌린 투자금 일부가 미국의 옵티머스 자산으로 흘러 들어갔을 것이란 추론도 가능하다.
미국의 옵티머스도 한국 옵티머스와 비슷한 행태로 운영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수사기관이 아니고서는 사실 확인이 불가능하다.
미국 증권거래 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개인 소유 기업은 재무 및 운영 정보를 공개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기업정보를 제공하는 민간 디렉터리인 ‘D&B Hoovers’ ‘Reference USA’ 등을 통해 미국 옵티머스 자산의 재무 및 운영 정보를 파악하려 했지만, 미국 옵티머스는 자료를 공개해놓지 않았다. 어쨌든 미국 옵티머스는 지난 6월 한국에서 옵티머스 환매 중단 사태가 터지고, 관련자들이 구속되자 8월 5일 ‘오너스톤 컨설팅(Ornerstone Consulting, INC)’으로 이름을 바꿨다. 사명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대표자는 양호 전 행장으로 변함없었다.
오너스톤 컨설팅은 지난 11월 6일 기준, 영업(ACTIVE) 중으로 확인됐다. 이철규 의원은 “오너스톤 컨설팅 대표는 양호 전 행장인데, 그는 한국의 옵티머스자산운용과도 연결돼 있는 인물인 만큼 두 회사(오너스톤 컨설팅과 한국의 옵티머스자산운용)가 밀접한 관계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옵티머스가 자금을 빼돌린 게 사실이라면 오너스톤 컨설팅을 통했는지 파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韓 옵티머스 사건 터지자 오너스톤 컨설팅으로 이름 바궈
오너스톤 컨설팅이 옵티머스의 자금세탁 창구로 사용됐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다. 미국의 유니 홀딩스 크리스털 캐피탈이 옵티머스 자산으로 이름을 바꾼 2019년 5월 22일부터 오너스톤 컨설팅으로 또다시 개명한 2020년 8월 사이 한국의 옵티머스는 안정적인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하겠다며 투자금을 끌어모았다. ‘매출채권’이라는 것은 물건을 외상으로 팔고 받은 약속어음을 말한다.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등 회사가 망할 것이란 걱정을 안 해도 되는 공공기관에서 발행한 매출채권에 투자하겠다고 하니 투자자들이 몰렸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만기 1년 미만’에 ‘연 3%대 수익’을 보장하겠다고 하니 지난 3년간 2조원이 넘는 투자금이 모인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옵티머스는 이 투자금을 공공기관 매출채권을 사들이는 데 쓴 것이 아니라 자신들과 관련 있는 ‘비상장 민간기업의 사모채권’을 사들였다.
민간기업 채권도 공모채권이 있고 사모채권이 있는데, 공모채권은 금감원에 증권 신고서를 제출하고 50인 이상의 투자자에게 발행되는 채권이다. 사모채권은 50인 미만의 소수 한정된 투자자를 대상으로 발행되는 채권이다. 옵티머스는 그렇게 지난 3년간 2조원을 모았다. 그러나 공공기관 매출권에 투자한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비상장 기업 사모채권에 투자했다가 막대한 손실을 본 ‘대범한 사기’를 저지른 게 발각되어, 1조5000억원은 투자자들에게 돌려줬다. 남은 5200억원 중 1056억원은 환매가 연기된 상태고, 4100억원은 상환이 어렵다고 보고 있다. 쉽게 말해 투자자들은 5200억원을 돌려받지 못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흔적 없이 사라진 4100억원, 美 옵티머스 통해 빼돌렸나?
▲2020년 11월 10일 대신증권라임펀드 피해자연대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금감원 제재심의위의 공정한 결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상환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4100억원은 흔적이 없이 사라졌다. ‘자금의 꼬리표’를 파악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금융 당국 전문가는 “이들이 바보라 비상장 기업 사모채권에 투자한 것이 아니다. 자금을 빼돌리기 위해 문제 있는 사업장에만 투자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했다. 일부러 돈을 빼돌려 어딘가 다른 목적을 위해 거대 자금을 마련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다. 결국 이 거대 자금을 미국 옵티머스를 통해 빼돌린 것 아니냐는 것이다.
중산층과 서민 등골을 빼먹는 사기를 저지른 한국의 옵티머스는 2017년 6월 앞서 있던 회사 이름을 바꿔 새로 출범했다. 당시 대표는 이혁진이었다. 이 전 대표는 2009년 ‘에스크베리타스’라는 자산운용을 세웠다가 2015년 AV자산운용으로 사명을 바꿨다. 2017년 6월 이 전 대표의 개인 횡령 혐의가 드러나면서 2017년 7월 사명을 다시 옵티머스로 바꾸고 대표이사도 김재현으로 교체했다.
이혁진과 김재현은 사이가 틀어진 상태다. 2017년 12월 이 전 대표는 김 대표를 횡령배임 혐의로 검찰 고소까지 했다고 한다. 이 전 대표는 2018년 3월 문재인 대통령 순방 일정을 쫓아 출국한 뒤 미국으로 갔다. 그는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김치 판매와 배달 사업을 하고 있다. 이 전 대표는 옵티머스 사기 사건의 정관계 로비 정황이 드러나면서 자신이 ‘몸통’으로 지목되자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양 전 행장,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채동욱 전 검찰총장 등 옵티머스 측의 자문단으로 알려진 인사들과 초기 수사를 덮은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 등이 ‘옵티머스 펀드 사기 의혹’의 핵심”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옵티머스와 라임의 가장 큰 차이
▲2020년 10월 28일 오전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에서 2021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이 예정된 문재인 대통령의 이동 동선 주변으로 라임·옵티머스 특검을 요구하며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너무나 닮아 보이는 옵티머스와 라임 사건의 가장 큰 차이점은 로비 시기다. 라임 일당은 사태가 터진 뒤 로비를 시도했지만, 옵티머스는 시작부터 전관을 앞세웠다. 처음부터 사기를 치려고 작심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검찰과 금감원은 물론이고 자금 유치, 펀드 판매, 정부 관련 투자 등 모든 게 로비와 엮인 옵티머스 사건이 라임보다는 더욱 정관계 게이트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쉽게 설명하자면 퇴출 위기의 옵티머스가 공공기관의 투자를 받고 기사회생(起死回生)했다. 이후 공공기관 투자, 그리고 유력 투자증권사의 펀드 판매 등으로 수천억 펀드 자금을 다시 모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 정관계 로비가 있었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합리적 추론을 뒷받침하는 게 ‘펀드 하자 치유 관련’이라는 제목의 문건이다. 김재현 대표가 지난 5월 초 작성한 것으로 옵티머스의 정관계 로비를 암시하는 내용이 담겼다. ‘펀드 하자 치유 관련’이란 해당 문건에는 “이혁진 전 옵티머스 대표이사가 민주당과의 과거 인연을 매개로 국회의원, 민주당 유력 인사 및 정부 관계자들에게 거짓으로 탄원,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민주당 및 정부 관계자들이 당사(옵티머스)와 직간접적으로 연결”이란 내용이 등장한다.
또 “이혁진 문제의 해결에 도움을 줬던 정부 및 여당 관계자들이 프로젝트 수익자로 일부 참여해 있고, 펀드 설정·운용 과정에서도 관여돼 있다 보니 정상화 전 문제가 불거지면 본질과는 다르게 권력형 비리로 호도될 우려”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정부·여당 인사가 5000억원대 피해가 예상되는 옵티머스에 수익자 등으로 참여한 게 사실이라면 상당한 파장이 예상되는 문제다.
정부·여당 주장대로 ‘펀드 하자 치유 문건’은 사실이 아닐까?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은 옵티머스 대표와 남동발전 관계자가 직접 만나 해외 발전 사업을 함께 추진하기로 한 것을 밝혀냈다. ‘펀드 하자 치유 관련’ 문건 내용과 일치한다. 문건에는 ‘이헌재 고문이 추천, 남동발전과 추진하는 바이오매스 발전소 프로젝트 투자 진행 중’이란 대목이 나온다.
이 문건에 대해 정부 측은 ‘조작’이란 주장을 하고 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0월 13일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펀드 하자 치유 문건’에 대해 “저는 약간 조작된 문건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진실이 아예 없다(고 생각하느냐)?”는 질의에 “진실성이 낮은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런데 조작된 문건에 적힌 내용이 일부 사실로 확인됐다. 옵티머스자산운용의 정관계 로비 정황이 담긴 ‘펀드 하자 치유 문건’에 등장하는 전직 국세청 고위공무원이 실제로 옵티머스가 인수한 회사의 사외이사로 근무한 것으로 드러났고, 옵티머스 관계사 고문인 유모씨로부터 김재현 대표가 봉현물류단지 이권에 개입하고 인허가 로비를 벌였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 것 등이다. 봉현물류단지는 김 대표가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펀드 하자 치유 문건’에 등장하는 사업 중 하나다. 옵티머스가 고객들에게 투자받은 5200억원의 투자금 중 일부가 실제로 투자된 사업이기도 하다.
결정타는 옵티머스 대표와 남동발전 관계자가 직접 만나 해외 발전 사업을 함께 추진하기로 한 게 드러난 것이다. 남동발전은 지난 1월 옵티머스 김재현 대표와 회동 후 약 2주 만에 내부 사업선정 회의에서 해당 사업 추진에 대해 적격 판정을 내렸다. ‘펀드 하자 치유 관련’ 문건 내용과 일치한다. 문건에는 ‘이헌재 고문이 추천, 남동발전과 추진하는 바이오매스 발전소 프로젝트 투자 진행 중’이란 대목이 나온다.
이런 사실은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을 통해 밝혀졌다. 옵티머스와 남동발전이 해외 발전 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하는 과정은 수상한 부분이 많다.
우선 이철규 의원실로부터 본지가 입수한 ‘태국 바이오매스 발전소 추진 현황’ 문건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2020.02.25.: 사업정보 입수보고
2020.02.28.: 관련사 간 업무협의
2020.03.05.: 사업정보 검토회의
2020.03.31.: 남동발전 사업선정회의 심의자료 ‘적합’ 판정.〉
사업정보를 입수하고 사업선정 회의까지 한 달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런데 현재 남동발전이 추진하는 다른 해외 발전소 사업은 태국 바이오매스와는 상황이 판이하다. 일본 바이오매스 발전소 사업은 사업정보 입수부터 사업선정 회의까지만 해도 5개월이 걸렸다. 미얀마 바이오매스 사업은 2~3개월이 소요됐다. 또 태국 바이오매스 발전소 사업 과정을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이 의원실이 남동발전으로부터 해당 사업 추진 경위를 보고받은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옵티머스와 남동발전 추진 사업 과정의 의아함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
태국 바이오매스 발전소 사업 업무는 당시 남동발전 해외화력부장이 추진했다. 해외화력부장에 따르면 2018년 말 D사의 대표가 전화로 ‘해외투자 아이템’이 있으니 만나자고 해 만났다. 일면식도 없고 소개를 받은 것도 아닌데 전화 한 통에 만남이 성사된 것이다.
당시 D사 대표는 태국 대나무를 이용한 우드펠릿(톱밥 등으로 만든 바이오 원료) 사업을 제안했는데, 해외화력부장은 한국에서 검증이 안 됐기 때문에 우드펠릿 사업은 어렵다고 말하며, 바이오매스 사업이 좋다고 역제안을 했다. D사가 어떤 회사인지 검증도 안 한 것은 물론 처음 만난 사업가에게 국가 공공기관이 추진하는 사업을 같이 하자고 한 것이다.
법인등기부등본상 2018년 6월 설립된 D사는 전화 한 통으로 사업을 제안한 2018년 말 당시 사업목적이 ‘게임, 블록체인, 가상통화’인 업체였다. 해외화력부장과 D사 대표가 만나 바이오매스 발전소 사업을 하기로 한 직후인 2019년 3월 D사는 사업목적에 ‘바이오매스 원료 생산 및 판매업’을 추가했다. 남동발전은 가상화폐 업체에 바이오매스 사업을 추천했고, 해당 회사는 그 뒤에 ‘바이오매스’ 관련 회사로 전환한 셈이다.
남동발전은 외국 법인 ‘우드플러스’를 태국 현지 파트너사로 정해 MOU를 체결했다. 우드플러스는 D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인다. D사의 대표가 우드플러스의 한국 대표를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동발전은 우드플러스가 어떤 회사인지 확인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동발전 관계자는 “MOU를 체결하지 않으면 회사 정보를 공유하지 않아 MOU부터 체결한 것”이라고 이 의원실에 설명했다.
옵티머스, D사와 NH투자증권 연결
2019년 9월, D사 대표는 ‘우드플러스 한국 대표’라는 명함을 들고 남동발전에 ‘태국 바이오매스 발전소’ 사업을 제안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월 D사 대표는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를 만났다. D사의 모기업인 A사 관계자를 통해서다. A사는 가상화폐를 발행하고 ‘코인 거래소’에 상장도 시킨 업체다. A사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남동발전’이 파트너사로 등재돼 있다.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는 D사가 남동발전과 함께 바이오매스 발전소 사업을 하기로 한 것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김 대표는 “수익이 되겠다”며 “자신이 투자를 하겠다”고 했다. “NH증권도 연결해주겠다”고 했다.
김 대표의 이야기대로 지난 2월 말 D사와 NH증권은 접촉했다.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으로부터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김 대표는 D사를 NH투자증권에 소개하고, 관련 회의 자리를 마련하는 등 해당 사업과 관련된 금융투자계획 전반에 개입하고 있었다. 이는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도 시인했다. 정영채 대표는 “김진훈 옵티머스 고문(전 군인공제회 이사장)과 지난해(2019년) 4월 통화했다. 그 내용은 (옵티머스가) 금융상품을 팔려고 하는데 상품 담당자를 소개해달라는 것이었다”며 “상품 담당자에게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를) 한번 접촉해보라고 메모를 넘긴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정 대표는 김 고문으로부터 김 대표 연락처를 건네받아 펀드 판매 승인 담당 실무자에게 전달했다. 정 대표는 “만나보고 (우리 회사에서 팔 수 있는지) 검토해서 정리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정 대표의 메모를 전달받은 전 모 NH투자증권 부장은 “(김 대표와 통화해) 미팅 날짜를 맞춰 펀드 담당 부사장과 김 대표가 만났다”고 인정했다. 정 대표는 “지시나 영향력은 없었다”고 해명했으나, 야당 의원들은 “대표가 전화번호를 주면 압력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정 대표는 김진훈 옵티머스 고문과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 동문이다.
옵티머스가 남동발전 만난 후 사업 급진전
▲옵티머스와 남동발전이 해외 발전 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하는 과정은 의아한 부분이 많다.
D사는 남동발전과 김 대표를 연결해 만나게(3월 13일) 해줬다. 당초 태국 바이오매스 발전소 건립사업은 민간 현지 사업자인 ‘우드플러스’가 남동발전 등에 여러 차례 투자를 제안했음에도 제대로 추진되지 않던 사업이었다. 하지만 옵티머스가 주체가 돼 D사와 NH증권이 접촉하고, D사가 옵티머스와 남동발전을 연결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남동발전은 김 대표를 만난 직후인 3월 31일 D사가 태국 바이오매스 발전소 사업에 ‘적합’하다는 판정을 한다.
‘태국 바이오매스 발전소 사업’은 태국 남부 송클라주 5개 군과 중부 수판부리주 5개 군에서 12MW급 바이오매스 발전소 10개를 짓는 사업이다. 발전소 1개당 약 510억원이 투입되며 총사업비는 5100억원에 달한다. 어떤 거대한 힘이 작용하지 않고서는 공공기관이 옵티머스 김 대표를 만나자마자 5100억원에 달하는 거대 사업을 관련 실적이 전무한 회사에 안 맡기는 게 상식이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정관계 로비 의혹이 있는 라임·옵티머스 사건에 대해서는 “야당이 주장하는 권력형 게이트가 아니라는 것이 명백해지고 있다”고 했다. 취재의 결론은 그의 주장과 정반대다.⊙
12월 호
조폭의 ‘검은 그림자’ 드리운 옵티머스 사기 사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무자본 M&A’ 판의 추악한 실상
⊙ ‘조폭 부두목’ 조기원 일당이 박장훈을 죽음에 이르게 한 全 과정 공개
⊙ 국제PJ파 조직원의 증언 “조기원, 김태촌 양아들(김행곤)과 얽힌 적 있다”
⊙ 네오퍼플, 에스비엠 상장 폐지 과정에 개입한 조기원과 김행곤
⊙ 삼부토건 무자본 M&A 시도한 김행곤… “무자본 M&A의 元祖”
⊙ 무자본 M&A 자금 출처 ‘명동 사채시장’에서 떠오르는 代父 김모씨
⊙ ‘명동 사채시장’의 김모씨가 라임 사건의 진짜 배후인가?
⊙ 옵티머스 사건은 정권의 권력형 비리? 단순 사기 사건?
▲서울 강남구 옵티머스자산운용 사무실의 모습.
조직폭력배 ‘국제PJ파’는 ‘서방파’에서 갈라져 나온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국제PJ파는 대략 1986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 광주광역시를 무대로 삼았다가 서울에까지 진출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국제PJ파 부두목은 조기원(가명)이다. 조기원은 누군가를 ‘손보기’ 위해 벼르고 있었다. 조기원이 손볼 대상으로 지목한 이는 기업 투자 및 M&A(인수합병) 전문가로 알려져 있던 박장훈(가명)이었다.
조기원·박장훈, 두 사람은 2005년부터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박장훈은 조기원이 어느 조폭 두목에게서 2억원을 빌렸을 때, 조기원의 보증(保證)을 서줬다. 둘은 그 정도로 나름 친분이 두터웠다.
殺意의 탄생
▲박장훈(가명)을 살해하고 도주한 조기원(가명)의 지명수배 전단.
2018년 5월, 두 사람 사이에 금이 가는 일이 발생했다. 조기원은 자신에게 8억원을 빌려준 지인 김○○으로부터 “박장훈, 이○○ 등과 함께 해덕파워웨이라는 회사 인수를 추진 중”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해덕파워웨이는 선박용품 제조 업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옵티머스자산운용(이하 옵티머스)은 페이퍼컴퍼니 등을 통해 무자본 M&A 수법으로 해덕파워웨이의 경영권을 장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장훈은 업계에서 무자본 M&A를 전문으로 하는 일종의 ‘기업사냥꾼’으로 지목된 이다(‘무자본 M&A’에 관한 내용은 뒤에 자세히 설명함).
김○○은 조기원에게 “이○○에게 40억원을 제공하면 채무 8억원을 변제해줄 뿐 아니라 추가로 22억원의 이윤을 보장해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박장훈은 조기원에게 “이○○은 현재 (해덕파워웨이) 주식을 갖고 있지 않다. 투자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박장훈은 또 “김○○의 채무 8억원은 내가 대신 갚아주겠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조기원은 김○○의 40억원 투자 제안을 거절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박장훈의 이야기는 사실과 달랐다. 이○○이 해덕파워웨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기원은 박장훈의 잘못된 정보로, 몇십억원을 날렸다는 생각에 분통이 터졌다.
“내가 때릴 것… 형님은 옆에서 폼만 잡고 있으면 돼”
▲부산 강서구에 위치한 해덕파워웨이 본사. 사진=해덕파워웨이 홈페이지
2019년 3월, 조기원·박장훈 두 사람의 사이가 결정적으로 틀어졌다. 원인은 ‘300억원 투자’ 건이었다. 박장훈은 조기원에게 “코스닥 상장사에 300억원을 투자해서 주가를 끌어올리려고 준비 중인데 10억원을 투자하면 60억원 상당의 주식을 나눠주겠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박장훈은 “주가가 곧 3~4배로 오를 예정”이라며 조기원을 안심시키기도 했다.
조기원은 이를 승낙해 박장훈을 통해 10억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박장훈은 약속한 기일인 2019년 5월 17일까지, 조기원에게 주식(株式)을 교부하지 않았다. 박장훈에게 ‘속았다’고 생각한 조기원은 그에게서 약속받은 현금과 주식을 받아내기 위해 일을 꾸몄다.
조기원은 A를 찾았다. A는 조기원이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때(2000~2004년)에 안면을 트고 지내던 사이였다. 조기원은 2016년 12월부터 A에게 50만~100만원씩 생활비를 주며 관리를 하고 있었다.
2019년 5월 17일, 조기원은 A를 서울 시내 모 호텔에서 만나 “형님(A), 내가 친구를 손봐줄 일이 있는데, 일을 좀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손봐줄 친구’란 박장훈을 지칭한다. 이어지는 조기원의 말이다.
“내가 친구(박장훈) 때문에 손해를 크게 봐서 돈을 받아야 한다. 내가 때리면 뭐라고 못 한다. 형님은 광주에 내려와서 내가 때릴 때 옆에서 폼만 잡고 있으면 된다. 믿을 만한 사람이 있으면 1명 정도 더 데리고 오면 좋겠고, 일이 잘되든 잘되지 않든 1억원을 주겠다. 내려올 때 휴대폰은 집에 두고 지금 내가 주는 휴대폰만 가지고 내려와라. 이 휴대폰은 나랑 연락할 때만 사용해야 된다.”
A는 같은 날 오후 9시경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친구인 B를 만났다. A는 “내가 광주에 아는 동생(조기원)이 있는데, 광주에 내려와서 일을 하나 도와달라고 한다”며 조기원이 한 말을 B에게 전달했다. 조기원은 A에게, A는 다시 B에게 범행에 가담할 것을 제안한 셈이다.
“너 같으면 10억 받고 물러나겠냐?”
▲2020년 10월 12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오른쪽 뒷모습)이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이 제시한 ‘옵티머스 게이트 지연·학연·혈연으로 엮인 경제적 공동체’ 자료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조선DB
조기원은 2019년 5월 18일 광주광역시 서구에 있는 한 호텔 커피숍에서 A와 B, 두 사람을 만나 술값 등을 포함한 활동비 100만원을 건넸다. 이튿날인 5월 19일 조기원은 두 사람을 다시 만나 “내가 오늘 그 친구(박장훈)한테서 돈을 받아야 된다”며 다음과 같은 취지의 범죄 지시를 내렸다.
“내가 친구(박장훈)를 노래방에 데리고 가서 형님들한테 인사를 시키면 먼저 내가 얘를 몇 대 때릴 건데, 형님들은 그냥 옆에서 폼만 잡고 서 있어라. 그래도 얘기가 잘 안 되면 돈을 받기 위해 같이 얘를 데리고 다녀야 되니 형님들 오늘 집에 못 갈 수도 있다. 돈이 들어오면 금방 다 찾을 수 있고 저녁에 얘를 서울에 내려주면 된다.”
5월 19일 오후 6시, 조기원과 박장훈은 광주광역시 서구에 위치한 한 노래주점에 들어섰다. A씨와 B씨는 이미 노래방에 들어가 대기하고 있었다. 조기원은 박장훈을 A와 B에게 인사시켰다.
그 직후부터 조기원은 박장훈의 얼굴과 허벅지 등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조기원은 박장훈에게 “지금부터 말하지 마. 거짓말할 때마다 주먹 한 대씩 날아가니 묻는 말에나 대답해”라며 겁박했다.
조기원은 밖에서 A4 용지와 볼펜, 인주(印朱)를 가지고 들어와 박장훈에게 “너, 나랑 어떻게 계산할래? 나랑 어떻게 계산할지 네가 말해봐라”하고 윽박질렀다. 박장훈은 “내일까지 10억원을 주겠다”고 말했다.
조기원은 박장훈에게 계속 폭력을 행사하며 “너 같으면 10억 받고 물러나겠냐? 내가 30억~40억원 투자하려고 했는데 네가 못 하게 한 것 맞지? 너 때문에 30억~40억원이 순식간에 날아갔는데, 10억?”이라고 말했다.
겁에 질린 박장훈은 “20억원을 주겠다. 내일까지 바로 마련할 수 있는 10억원은 현찰로 주고, 나머지는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자”고 약속했다. 조기원은 A에게 “(박장훈이) 시끄럽게 하면 한 대씩 때리고, 아니면 내버려 두라”고 이르곤 잠시 자리를 비웠다.
“유(You), 술 좀 따라 봐”
조기원이 자리를 뜨자, A와 B는 박장훈을 감시했다. 조기원이 폭력을 휘두를 때보다는 상황이 다소 진정됐다. 그 과정에서 술잔도 돌았다. A와 B는 박장훈에게도 술을 마시게 했다. 그런데 술에 취한 박장훈이 A에게 “유(You), 술 좀 따라 봐”하고 반말 조의 말과 욕설을 했다.
화가 난 A는 조기원이 그랬듯 박장훈의 얼굴과 허벅지를 수차례 때렸다. 박장훈은 이미 조기원의 구타로 얼굴과 코 주변이 피범벅이었다. 그럼에도 A는 박장훈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박장훈은 결국 의식을 잃었다.
다음 날인 5월 20일 밤 12시50분경, 조기원이 다시 노래방을 찾았다. 조기원은 쓰러져 있는 박장훈을 발로 차면서 “야, 일어나 봐”라고 말했으나, 박장훈은 축 늘어진 상태였다.
조기원을 포함한 이들 세 명은 새벽 1시20분경, 의식을 잃은 박장훈을 노래방 바깥에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에 실었다. 이 차의 운전사는 조기원의 친동생이었다. 조기원은 박장훈을 납치·감금하기 전, 미리 동생에게 차를 빌려놓으라고 지시해뒀다.
조기원과 A와 B는, 조기원의 동생이 모는 차를 타고 병원이 아닌 서울로 향했다. 박장훈의 집에까지 찾아가 돈을 받아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충남 논산의 한 휴게소에 다다르던 새벽 3시쯤, 자동차 뒷좌석에 있던 박장훈은 끝내 숨을 거뒀다. 훗날 밝혀진 사인(死因)은 두부(頭部)손상(경막하 출혈, 지주막하 출혈)이었다.
박장훈 사망했음에도 병원 아닌 서울行 택해
박장훈이 사망했음에도 이들은 계속해서 서울로 내달렸다. 5월 20일 오전 6시16분경 서울 강남구의 한 초등학교 부근에 이르자 조기원의 동생은 차를 B에게 인계한 뒤 광주로 내려갔다.
조기원은 A와 B에게 특정 장소를 일러준 뒤 “내가 3시간 후에 전화할 테니 그곳에서 만나자”고 말했다. 그러곤 조기원은 지하철을 타러 갔다.
A와 B는 박장훈의 시신(屍身)이 실린 차를 가지고 조기원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에 갔지만, 조기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 두 사람은 같은 날 오후 4시40분경 경기도 양주시 철길 부근 공영주차장에 박장훈의 시신이 실린 차를 버려두고 도주했다.
이상의 내용은 조기원의 공소장과 A와 B의 공소장, 그리고 이들 세 사람의 1~2심 판결문 내용을 토대로 사건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한 것이다. 그간 조기원이 박장훈을 구타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보도는 나왔지만, 그 구체적인 상황이 법률 자료를 기반으로 공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 관련해 조기원은 1심에서 징역 18년의 중형(重刑)을 선고받았다. A와 B는 항소심에서 각각 징역 10년과 5년 형을 받았다. 대법원 역시 항소심의 판단을 그대로 인용해 두 사람의 형은 확정됐다.
‘조폭’과 ‘무자본 M&A’의 그림자
박장훈 납치·살인 사건은 최근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옵티머스 사기 사건의 아주 작은 단면 중 하나다. 동시에 옵티머스 사기 사건에 조폭이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자, 옵티머스 사건의 단초로 작용했다.
옵티머스 사기 사건에는 유독 ‘조폭’과 ‘무자본 M&A’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조기원뿐 아니라, 옵티머스 2대 주주인 이동열(구속) 대부디케이에이엠 대표도 조폭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박장훈 역시 조폭 출신이라는 설(說)이 나돈다.
무자본 M&A는 말 그대로 자기자본이 아닌 차입자금을 이용해 기업을 인수하는 것을 말한다. 금융감독원 특별조사국은 무자본 M&A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기업 인수자가 주로 자기 자금보다는 차입자금으로 기업을 인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 자체로 불법적인 것은 아니나, 기업 인수자가 정상적인 경영보다는 단기간의 시세차익을 위하여 허위사실 유포, 시세조종 등 불공정 거래를 할 가능성이 높음.〉
무자본 M&A의 문제점 중 하나는, 앞서 본 해덕파워웨이의 경우처럼 M&A 과정에 ‘기업사냥꾼’이 개입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때 조폭 관련 자금 등 정체불명의 돈이 흘러 들어갈 공간이 만들어진다.
투자자 돈 가지고 엉뚱한 곳에 流用
해덕파워웨이가 어떤 과정을 거쳐 무자본 M&A의 희생양이 됐는지 잠시 살펴보자. 해덕파워웨이는 주력 제품인 선박용 방향키가 한때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는 등 강소기업으로 인정받아 2010·2011년 한국거래소가 선정한 ‘코스닥 시장 히든챔피언’에 2회 연속 이름을 올렸다. 그만큼 우량기업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해덕파워웨이는 옵티머스를 무대로 한 기업사냥꾼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당초 옵티머스는 ‘공공기관 매출 채권에 투자할 목적’으로 사모펀드를 조성했다. 투자자들은 이 말을 믿고 사모펀드에 투자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돈은 전혀 엉뚱하게도 기업 M&A에 쓰였다.
옵티머스는 두 개 회사를 거쳐 해덕파워웨이의 경영권을 장악했다. 옵티머스의 페이퍼컴퍼니이자 자(子)회사 격인 ‘셉틸리언’과 셉틸리언의 대주주인 ‘화성산업’이다. 즉 옵티머스 → 셉틸리언 → 화성산업 → 해덕파워웨이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었다.
셉틸리언은 옵티머스 자금이 들어간 대부디케이에이엠과 트러스트올 등으로부터 250억원을 조달한 뒤 해덕파워웨이 인수에 나섰다. 대부디케이에이엠과 트러스트올의 명목상 대표는 앞서 언급한 이동열씨다. 해덕파워웨이는 회삿돈을 들여 다시 옵티머스에 350억원을 신탁(信託)했다. 이런 식으로 수천억원의 돈을 자신들이 만든 (실체도 불분명한) 회사에 내리꽂은 것이다.
이에 대해 해덕파워웨이의 소액주주들은 “셉틸리언이 자회사인 화성산업을 통해 해덕파워웨이 경영권을 인수한 것 자체가 ‘무자본 투자의 먹이사슬’”이라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부부 관계’ 등으로 얽혀 있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셉틸리언의 대표는 김재현(구속) 옵티머스 대표의 아내 윤모씨다. 옵티머스 이사로 있던 윤석호(구속) 변호사는 화성산업 감사를 맡았었고, 윤 변호사의 아내인 이모 변호사 역시 해덕파워웨이 사외이사직에 이름을 올린 적이 있다. 이모 변호사는 2019년 10월부터 올해 6월까지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다. 골든코어의 대표 유모(구속)씨와 아내 이모씨에게도 옵티머스 자금이 건너간 것으로 확인됐다.
‘국제PJ파’ 조직원의 증언
사망한 박장훈씨가 해덕파워웨이를 무자본 M&A 하는 과정에서 했던 역할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박씨는 2019년 검찰 수사에서 ‘해덕파워웨이 경영권 인수를 위해 경영 실사에 참여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이때 그는 옵티머스 고문 직함을 갖고 있는 동시에 화성산업에도 연관이 돼 있었다.
그러나 박씨는 해덕파워웨이 주주(株主) 명단엔 없었다. 또 다른 최대 주주와 대표이사를 앞세우고 자신의 실체를 감춘 것이다. 대신 박장훈씨는 컨소시엄을 만들어 외부차입금을 통해 해덕파워웨이 인수대금을 마련했다. 외부차입금 중에는 앞서 보았듯, 조폭 관련 자금이 일부 끼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박장훈씨 등이 해덕파워웨이의 새로운 최대 주주와 주식양수도 계약을 체결한 2018년 4월 이 회사 주가(株價)는 석 달 전보다 무려 4배 이상 치솟았다. 기업사냥꾼들이 왜 무자본 M&A에 군침을 흘리는지 그 이유를 잘 보여준다.
박장훈 납치·살인 사건과 관련해, 국제PJ파 조직원 C씨를 만날 수 있었다. C씨는 조기원에 대해 잘 알 뿐 아니라, 이 사건에 대해서도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 기자가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부분을 C씨에게 설명하자 그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며 몇 가지를 바로잡아주기까지 했다. 다음은 C씨와의 일문일답이다.
― 조기원이 박장훈을 살해한 데에는 돈 문제 외에 다른 이유도 있나.
“살해라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조)기원이 형님은 사람 죽이라고 지시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그 형님은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교도소와 구치소에서 보낸 분입니다. 나이도 환갑이 넘었는데, 굳이 (사람) 죽이라고 지시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김태촌 양아들이 무자본 M&A의 元祖”
▲‘국제PJ파’ 조직원 C씨는 2013년 사망한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 양아들을 자처하는 김행곤이 ‘무자본 M&A의 원조’라고 주장했다. 사진은 2013년 1월 5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태촌씨 빈소. 사진=조선DB
― 어쨌든 한 사람이 사망하지 않았나.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모르지만 저는 죽은 박장훈도 잘못이 있다고 봐요. 그 뭐냐…. ‘기업사냥꾼’ 노릇 하면서 끌어다 쓴 돈이 얼만데요. 기원이 형한테 30억원 가까이 빌려 갔다는 기사도 나왔잖아요. 내가 알기론 그 돈으로 기업사냥을 한 건데 그게 사실 사기잖아요.”
― 조기원도 박장훈과 마찬가지로 무자본 M&A 판에 뛰어든 장본인 아닌가.
“돈을 빌려준 정도지, 그 형이 직접 그 판에 끼어들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런 스타일이 아니에요.”
― 조기원은 기업 인수에 필요한 돈, 즉 무자본 M&A에 필요한 돈을 어디서 구했나.
“무자본 M&A를 위한 돈의 출처는 거의 다 명동 사채시장입니다. 내 생각에 박장훈은 기원이 형님이 명동 사채시장에서 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걸 알고, 투자하라고 (조기원에게) 접근한 거 같아요.”
― 조기원이 과거에도 이런 비슷한 일에 연루된 적이 있나.
“그 형이 김태촌 양아들과 얽힌 적이 있어요. 그것도 돈 관계로 얽힌 거죠.”
― 우리가 아는 그 김태촌 말인가? 2013년 사망한?
“네. 기원이 형님이 태촌이 형님 양아들한테 몇십억을 빌려줬습니다. 기원이 형은 그때도 사기를 당했어요. 박장훈에게 돈 빌려준 거하고 비슷해요. 양아들이란 사람이 주가 올려준다고 투자하라고 하니까, 거기에 기원이 형이 돈을 넣은 거죠.”
― 김태촌 양아들이 조기원과 관련돼 있다는 사실은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다.
“이쪽 세계에선 전부터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여기(조폭 세계)선 무자본 M&A의 원조(元祖)를 그 양아들이라고 본다니까요.”
― 양아들과 조기원은 어떤 관계인가.
“기원이 형님이 그 양아들로부터 주식을 처음 배운 걸로 압니다. 근데 그놈이 사기 친 거죠.”
삼부토건 무자본 M&A 시도한 김태촌 양아들
▲김행곤은 2018년 삼부토건(사진)을 상대로 무자본 M&A를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뉴시스
김태촌의 양아들 김모씨에 관한 부분은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 한다. C씨의 말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정황이 있기 때문이다.
2018년 3월, 주간지 《시사저널》은 삼부토건에 대한 무자본 인수 시도 의혹을 보도했다. 삼부토건의 새 대주주인 ‘DST로봇 컨소시엄’이 정체불명의 인사들을 앞세워 삼부토건의 유보금으로 인수자금을 충당하려 한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이 매체는 “그 의혹의 중심에는 ‘김○○’씨가 있다”며 “김씨는 이후 삼부토건 회장을 자처하며 측근을 경영지원부본부장과 고문 등 요직에 기용하는 등 조직 장악에 나섰고, 이를 통해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해온 것으로 전해졌다”고 전했다. 문제의 ‘김○○’씨가 바로 김태촌의 양아들이란 것이다. 다음은 해당 기사의 일부를 요약한 것이다.
〈삼부토건은 김씨의 신상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거지나 출신 등 기본 인적사항은 물론 과거 행적도 베일에 가려 있었다. 회장에 정식 취임한 것이 아니어서 그의 인사 관련 서류가 일절 접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DST로봇에서도 김씨의 존재를 아는 이는 없었다. 김씨는 범서방파의 두목인 고(故) 김태촌씨의 양자(養子)로 알려진 인물로 확인됐다. 김○○ 역시 실명이 아니었다. 한때 범서방파에서 행동대장으로 활동한 김씨는 김태촌씨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병수발을 들며 양아들을 자처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앞서 기업사냥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전력이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그의 행적은 여느 조폭들과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1999년 폭행죄로, 2002년 특수강도죄로 각각 실형을 받은 바 있다.〉
조기원 아내 “김태촌 양아들의 주가조작 실상 공개”
김씨는 자신의 본명 대신 ‘김행곤’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했다. 이를 근거로 알아본 결과, 조기원과 김행곤이 과거 주가조작과 관련해 다툼을 벌인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C씨가 말한 ‘조기원이 김태촌 양아들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내용과 상당 부분 일치하는 것이었다.
해당 내용은 조기원의 아내 이○○씨가 2013년 3월, 어느 주식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것이다. 이씨의 글은 “폭력조직인 범서방파 행동대장이며 고 김태촌씨의 양아들인 김행곤(실제 이름은 김○○: 녹취록 근거)의 주가조작 실상을 당사자와 녹취된 내용 일부를 공개하여 더 이상 선의의 피해자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라고 시작한다.
이씨는 “저는 네오퍼플로 손해를 본 조기원씨의 아내이며 제가 녹취록에 근거하여 실명으로 자료를 공개하여 주주님들의 현명한 판단과 투자에 주의를 바란다”며 “네오퍼플 외에도 다른 코스닥 주식(에스비엠, 경원산업 등) 주가조작 내용 일부를 올린다”고 했다. 또한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올려놓기도 했다(현재 전화번호는 변경된 것으로 확인). 이씨가 올린 남편 조기원과 김행곤의 녹취록 일부를 약간의 해설과 함께 소개한다.
조기원-김행곤 녹취록 (1)
네오퍼플 관련
〈조기원: 지금 감자(減資)하면 어저께나 이야기해 주지.
김행곤: 아니, 감자를 안 할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형님…. 지금은 감자 타이밍이 아니고 좀 더 있다가 주식으로 해가지고 우리 것 기본적인 것, 지인들 것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그거는 정리하는 걸로 하고 했는데 직접적으로 ○○형 쪽에서 물량이 어제도 한 400만 주 나온 것을 제가 받았습니다. 죽일라고 형님. 받아서 지금 남아 있는 물량만 예를 들어서 카운트 해야죠. (중략)
조기원: 갑자기 결정해버린다잉?
김행곤: 왜 그러냐면 저희들끼리만 하면 되니까요. 왜 그러냐면 감자해가지고 하는 걸로 해서 지금 제가 판 짜려는 것이 감자하면 제가 봤을 때는 주식이 200원까지 빠집니다.
조기원: 그러면 어떻게 내일이라도 매도를 해야 되냐?
김행곤: 저희들은 어떻게 할라고 하냐면 200원까지 판이 빠지니까 말입니다, 200원대로 해가지고 봐서 감자를 예를 들어서 그거 빠지면 거기서 주식을 지금 걷을…. 초안을 놔뒀다가 그때 걷어서 형님 다시 올린다든지, 감자도 우리가 부결시킬 수도 있거든요. 그러면 지금 20만 주를 말입니다, 20만 주를 제가 조금 이따 늦게라도 전화 한번 주시면…. 안 그러면 내일 아침 일찍 터는 게 낫습니다. 오늘 형님 감자 나가면 우리가 막을 수 있는 한계가 지나거든요.
(중략)
조기원: 네오퍼플은 솔직히 형한테 이야기해봐라. 네오퍼플은 버릴라고 하냐, 갈라고 하는 거냐.
김행곤: 네오는 뭐가 좋냐면 야쿠르트 사업부라고 있거든요. 거기에서 수익이 납니다. 수익이 나고 거기는 갖고 가다가, 궁극적인 건 계속 갖고 갈 수는 없고 말입니다. 2년 후에 매각을 시킬라고 생각합니다.〉
식료품 제조업체였던 네오퍼플은 2013년 3월, 작전세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상장 폐지될 위기에 처했다. 당시 네오퍼플은 자본잠식이 50% 발생해 감사의견이 거절됐고, 두 달 후 네오퍼플은 상장 폐지됐다. 당연히 소액주주의 주식은 휴지 조각이 돼버렸다. 네오퍼플 소액주주들은 상장 폐지 배후에 작전 세력이 있다고 항의했다.
앞서 그해 1월, 네오퍼플은 결손 보전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보통주 3주를 1주로 병합하는 감자를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감자 후 자본금은 102억4800만원으로, 발행 주식 수는 2049만6329주로 각각 감소했다. 경영 상태가 악화됐음을 대외(對外)에 공표한 셈이다.
녹취록의 내용상 김행곤은 이 회사 주식이 감자될 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 반면 조기원은 이 사실을 몰랐던 것 같다. 김행곤은 작전 세력으로서 네오퍼플의 주가를 조작하는 형태로 수익을 얻은 듯하다. 이 과정에 조기원이 함께 투자한 것으로 보인다. 김행곤의 말을 가만히 살펴보면, 경영 상태가 나빠지자 네오퍼플 주식을 손절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조기원-김행곤 녹취록 (2)
에스비엠 관련
〈조기원: 그런데 에스비엠은 30억 계약금 걸었다매?
김행곤: 예.
조기원: 그런데 주식은 400만 주를 어떻게 취득한 거야?
김행곤: 30억 계약금을 걸고 나머지 235억은 맞춘 거죠. 35억은.
조기원: 주식을 산 거야?
김행곤: 아 네, 명동하고 자금을 맞춰서 해서 거기다 집어넣고.
조기원: 주식으로 받은 거야?
김행곤: 주식하고 나머지는 플러스해서 임총(임시주주총회)으로 넘어와서 회사에 돈이 많이 있습니다. 이면으로 설정해주고 싼 이자로 쓴 거죠.
조기원: 명동 사채는 웬만한 실리 없이는 못 움직이는데…. 네가 지분이 있냐 회사에 가?
김행곤: 회사를 제가 갖고 있는데요. 그 돈을 제가 다 쓸 수 있는데요.
조기원: 에스비엠을 네 앞으로 사버렸냐, 지금?
김행곤: 예, 제가 다 샀죠, 형님.
조기원: 긍께 같이 다른 사람들하고?
김행곤: 다른 사람은 의미가 하나도 없습니다. 왜 그러냐면 제가 계약금 30개를 넣었고요 235개(235억)를 제가 아는 사채에서 다 끌어서…(중략) 에스비엠 같은 경우는 돈이 많아서 제가 나쁜 마음 먹으면 100개는 내일이라도 빼가지고 상폐(상장 폐지)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100억은 벌지 않습니까?〉
에스비엠은 위조지폐감별기와 지폐계수기 제조업체다. 김행곤 일당은 자본금 1억원의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에스비엠의 지분과 경영권을 넘겨받기로 했다. 그 후 인수자금 262억원 가운데 10% 정도만 우선 현금으로 지급하고 주식을 넘겨받은 뒤, 주요 경영진을 모두 측근으로 교체했다. 삼부토건 무자본 M&A와 유사한 수법이다.
이후 명동 사채업자들이 동원됐다. 에스비엠이 소유한 234억원대 양도성예금증서(CD)를 이들에게 담보로 제공하고, 사채를 빌려 잔금을 치렀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명동 사채시장이 등장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런 방법으로 김행곤은 별다른 자본을 동원하지 않고 코스닥 상장사를 인수했다. 위 대화에서 김행곤이 “마음먹으면 100개(100억)는 내일이라도 빼 상폐시킬 수 있다”는 건 무자본 M&A로 취득한 에스비엠의 경영권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납치 전문’ 조기원
조기원-김행곤, 두 사람은 결국 돈 문제로 사이가 틀어졌다. 조기원은 김행곤을 납치·폭행해 교도소 신세를 졌다. 박장훈의 사례에서 보았듯 이때도 돈을 둘러싼 배신의 흔적이 엿보인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이면, 조기원은 ‘납치 전문’이라고 한다. 그간 조폭 세계에서 입소문 난 굵직굵직한 납치 사건의 중심엔 거의 다 조기원이 있다고 한다. C씨의 말이다.
“기원이 형님 전문은 무자본 M&A 이런 게 아니라 납치예요. 걸리지 않은 납치 건까지 합하면 대략 7~8개는 될 겁니다. 2008년인가? 공○○하고, 전직 조폭 두목이자 고깃집 ○○○ 사장 나○○ 납치 사건이 대표적이죠. 이용호(전 G&G그룹 회장) 손본 것도 기원이 형이 관여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C씨가 말한 이용호씨 역시 옵티머스 사기 사건과 관련해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이용호씨는 230억원을 투자해 옵티머스 관계사 해덕파워웨이 인수에 참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박장훈이 해덕파워웨이 인수자금을 마련할 때 일부 지분 양도를 조건으로 약 230억원을 건넨 것이다. 박장훈은 조기원에게 그러했듯, 이용호씨에게도 이 계약조건을 지키지 않았다고 한다.
이용호씨는 한 언론과의 전화통화에서 “기업 인수 후 박 고문(박장훈)이 계약조건을 지키지 않으면서 나는 2018년 7월 해덕파워웨이에서 완전히 배제됐고, 이후 이들을 사기 혐의로 고발한 사건에서 검찰에 참고인 신분으로 나가 이미 관련 조사를 모두 마친 상태”라며 사건과 무관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이용호씨는 김대중 정부 시절 권력형 비리의 전형(典型)으로 일컬어지는 ‘이용호 게이트’의 장본인이다. 이 사건은 특검으로까지 이어졌다. 특검 수사팀은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처조카와 측근, 신승남 당시 검찰총장의 동생 등의 비호 사실을 밝혀냈다. 신승남 총장과 검찰 고위 간부 5명이 불명예 퇴진했다.
2005년 이용호씨는 이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6년에 벌금 250만원 확정판결을 받았지만, 이후 재심(再審)을 청구했다. 재심 재판부는 이 전 회장의 일부 횡령 혐의를 무죄로 확정하고 형량을 3개월 낮췄다.
또 하나의 ‘검은 그림자’
명동 사채시장… 떠오르는 代父는?
▲2000년대 초반의 명동 사채시장. 사진=조선DB
국제PJ파 조직원 C씨와 김행곤의 말 중 주목할 대목은 무자본 M&A의 자금 출처가 명동 사채시장이라는 것이다. 이 역시 좀 더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
D씨는 조폭 출신 사업가로 국제PJ파의 생리를 잘 아는 이다. D씨는 김태촌, 조기원과도 친한 사이다. 그로부터 명동 사채시장과 조폭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들을 수 있었다.
“명동 사채업자는 조폭에게 돈을 빌려줄 때, 한 번에 몇백억원씩 빌려줍니다. 조폭이야 제1금융권에서 거액의 대출을 받을 수 없으니 눈 돌릴 곳은 사채업자밖에 없죠. 조폭은 ‘지하경제’에서 나온 그 돈을 통해 페이퍼컴퍼니 수십 개에서 수백 개를 만들 수 있고, 무자본 M&A에도 나설 수 있죠. 조폭 입장에서는 몇백억을 빌려도 몇 달 후에 다양한 방법으로 ‘돌려막기’가 가능하니 액수가 커도 상환하는 건 그다지 큰 무리가 없어요.”
D씨는 “사채업자들이 정작 중요하게 여기는 건 이자(利子)”라고 했다. 그는 “사채업자는 조폭에게 짧은 상환 기간을 요구하는 동시에 그들로부터 몇억가량의 이자를 받는다”며 “세상에 그런 이자가 어디 있냐. 순수한 현찰 거래니 사채업자 입장에선 완전히 남는 장사”라고 말했다. 이때 사채업자가 적용하는 이율은 월 10%(연리 120%) 선이라고 한다. 시중 은행 금리(金利)를 감안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고리(高利)인 셈이다. D씨는 “사채업자들이 조폭에게 건네는 돈을 일명 ‘브릿지 자금’이라고 부른다”고 덧붙였다.
D씨는 또 “최근 명동 사채시장에서 김○○이 아주 유명하다”고 귀띔했다. 김○○이 명동 사채업계의 ‘대부(代父)’로 떠오르고 있다는 말이었다. 실제로 김○○은 라임사태의 실질적인 배후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라임수사가 한창일 때 검찰은 김○○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으나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사채업 세계에 밝은 어느 사업가는 “명동 사채시장도 산업의 발전과 함께 트렌드에 맞춰 최첨단으로 무장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 사업가는 교도소에 수감된 적이 있는 사채업자 E씨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자본이 전혀 없었던 E씨는 성실함을 앞세워 법무사 사무실에 돈을 대주는 ‘전주(錢主)’들과 친분을 쌓다 이 업계에 발을 들였다고 한다.
E씨는 여느 사채업자들처럼 처음에 부동산 몇 건을 성공시켜 종잣돈을 마련했고, 이후 M&A 시장에 뛰어들어 명동 바닥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사채업자 E씨의 수법은 이렇다. 적당한 규모의 코스닥 상장업체를 찍어서 ‘자기 사람들’을 앞세워 그 회사의 주식(경영권)을 사들인다. 주식을 사들이는 돈은 물론 사채업자가 댄다. ‘자기 사람들’이란 룸살롱의 ‘바지사장’들과 같은 개념이다.
E씨의 ‘바지사장’들이 회사 경영진으로 들어가면 E씨는 그들의 주식을 담보로 잡고, 회사 인감과 회사 통장을 10~20개 만든다. 이후 E씨의 돈으로 코스닥 회사의 주식을 사고팔기를 반복해 주가를 몇 배 뛰게 하는 식이다. E씨는 동일한 수법으로 1년에 4~5차례 기업사냥을 반복했다. 이는 앞서 본 해덕파워웨이를 장악한 수법과 흡사하다.
이런 식으로 E씨는 ‘100억 놓고 300억 먹는 식’의 장사를 계속했고 그 덕에 E씨는 한때 사채업계의 황제로 군림했다. 이 사업가의 말이다.
“E씨가 이 과정에서 세금 10원 한 장 낸 것이 없습니다. 사채업자들끼리 ‘룰’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E씨는 회사를 인수해서 회사 내부자금과 인감도장을 따내는 게 목적이지 경영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E씨가 앞세운 경영진은 룸살롱 바지사장과 똑같아서 세금을 추징할 수 없습니다. 한때 사채시장에서 E씨 돈 안 쓰고는 기업 합병을 할 수 없다는 얘기가 돌았습니다. 6~7시간 만에 현금 1조원을 모을 수 있다고들 했죠.”
“김태촌, 생전에 양아들의 존재 언급한 적 없어”
다시 김행곤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D씨는 김태촌의 양아들 김행곤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냈다. 그는 “(김)태촌이 형님 돌아가시기 며칠 전 어느 음식점에서 만난 적이 있다”며 “그때도 태촌이 형님은 양아들의 존재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그 이전에도 비슷한 얘기를 한 번도 꺼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김행곤의 ‘김태촌 양아들’ 운운이 사칭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였다. D씨는 “김행곤이 작정하고 기원이 형을 속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C씨 역시 D씨와 같은 입장이었다.
D씨는 또 “기원이 형님을 누구보다 잘 아는데 기업 인수합병 이런 것에 그다지 밝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제PJ파 내에서 기원이 형님을 따르는 애들은 소수인 걸로 안다”며 “박장훈 혼내줄 때 자기 조직원이 아닌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이들을 데리고 간 것이 그 이유”라고 주장했다. D씨는 “기원이 형이 나이가 많고 조직 내에서 입지가 좁아지니 돈놀이에 눈을 돌렸고, 그게 지금의 화(禍)를 초래한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추정했다.
D씨는 또 “오히려 기원이 형님보다 형수(이○○)가 더 수완이 좋다고 들었다”며 “형수가 광주광역시에서 큰 음식점을 하는데, 광주 유지들과 친분이 깊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옵티머스 사건, 권력형 비리로 단정해선 안 돼”
조폭과 얽힌 옵티머스 사기 사건은 이처럼 돈을 매개로 곳곳에 음습한 자취를 남기고 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본질은 뭘까. 야권(野圈)에서는 이 사건을 사실상 문재인 정권의 ‘권력형 비리’로 단정하고 있다. 등장인물 중 몇몇이 친여(親與) 성향 인사라는 이유에서다.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준비하고 있는 국민의힘 소속 F씨는 “옵티머스 사건이 문재인 정권의 권력형 비리라는 시각은 약간 무리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회계를 전공한 F씨는 선거를 준비하면서 옵티머스 사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그 결과 ‘기업사냥꾼’에 의한 규모가 큰 사기 사건이란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F씨의 말이다.
“옵티머스 사건과 관련해 특정 지역, 특정 고교 인맥이 언급되면서 자연스럽게 현 정부 실세들과의 유착을 의심했는데 연결고리가 너무 약하더라고요. 우리(국민의힘)는 물론 일부 언론까지 ‘옵티머스=문재인 정권 비리’로 몰아가던데 조금 위험한 감(感)이 있습니다. 이 사건은 권력 실세보다는 그 밑에 ‘잔챙이’들이 설친, 규모가 큰 사기 사건이에요. 그 이상의 정황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어요.”
옵티머스 사건 수사는 현재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 주민철)가 맡고 있다. 일각에서는 친(親)정권 인사로 분류되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이 사건을 제대로 지휘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보이기도 한다. 국민의 시선이 온통 사건 해결의 키(key)를 쥔 검찰에 쏠려 있다.⊙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12월 호
옵티머스와 이스타항공, 박 모 변호사의 상관관계
잠적한 박 변호사(前 이스타항공 사내이사)는 김재현(前 옵티머스 대표)을 왜 ‘惡意의 취득자’라고 했나?
⊙ 박 변호사 측 ‘사실확인서’ ‘주식인도 청구소송’ 판결문, 이혁진 ‘고소장’ 분석
⊙ 김재현, 박 변호사가 담보로 제공한 이스타항공 주식 20만 주의 성격 알고 있었나?
⊙ ‘펀드하자치유문건’에 등장하는 홍모씨, “김재현, 박 변호사에게 총 23억원 대여”
⊙ 이혁진이 김재현 고소한 이유 중 하나는 박 변호사가 경영에 관여하던 업체 ‘코디’ 때문
⊙ 박 변호사, 2001년 ‘아이러브스쿨’ 기업사냥했다는 의심받아
▲이스타항공 본사.
이스타항공 주식이 김재현(구속) 옵티머스자산운용(옵티머스) 대표에게 넘어간 사실이 알려지자, 그 과정에 개입한 김재현 대표의 지인이자 이스타항공 창업주 이상직(李相稷·전 민주당·현 무소속) 의원의 전주고(高) 동창 박 모 변호사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민사재판에서 드러난 사건의 단면
옵티머스와 이스타항공, 그리고 박 변호사가 얽힌 주식 거래는 얼마 전 민사재판을 통해 그 단면이 드러났다.
지난 7월 17일 서울남부지법 민사 11부(이유형 부장판사)는 이스타항공 최대 주주인 이스타홀딩스가 화장품 용기 제조 및 판매 업체 ‘코디’를 상대로 이스타항공 주식 40만 주를 돌려달라는 취지로 낸 ‘주식인도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敗訴) 판결했다. 박 변호사는 코디사(社) 사내이사와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이에 대해 이스타홀딩스 측은 “박 변호사에게 주식을 매각할 권한이 없는 것을 코디가 알면서도 주식을 사들였고 다시 이를 매각한 것은 위법하다. 주식을 처분하고 얻은 약 41억원 중 2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코디가 주식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악의(惡意) 또는 중(重)과실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관련 증거가 부족하다”는 취지로 이스타홀딩스의 요구를 모두 기각했다. 박 변호사는 이스타항공 사내이사와 코디사의 사내이사·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여기엔 ‘숨은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박 변호사가 보관하고 있던 이스타항공 주식 20만 주를 김재현 전 옵티머스 대표에게 담보로 제공한 뒤, 김재현 대표가 박 변호사에게 15억원을 대여한 사실이다. 즉 박 변호사와 그와 관련 있는 회사가 이스타항공 주식을 담보로 돈을 대여한 것이다.
최근 사모펀드 사기 사건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옵티머스, 전 여당 의원이 실소유주였던 회사가 얽힌 소송은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핵심적인 키(key)를 쥐고 있는 박 변호사는 현재 해외 도피 중이다.
이스타홀딩스가 이스타항공 최대 주주가 된 과정
▲이스타홀딩스가 이스타항공 주식 77만1000주(10%)를 담보로 ‘서래1호 조합’에서 80억원을 차용할 때 작성한 ‘금전 소비대차 계약서’. 이스타홀딩스는 이 돈에 20억원을 더 보태 이스타항공 최대 주주가 됐다.
기자는 이스타항공(이스타홀딩스)과 박 변호사, 그리고 옵티머스 간 주식 거래를 매개로 어떻게 움직였는지 앞서 ‘주식인도 청구소송’ 판결문과 박 변호사 측이 이스타홀딩스에 제출한 ‘사실확인서’, 2017년 이혁진 전 옵티머스 대표가 김재현 대표와 양호 전 나라은행장을 상대로 제출한 고소인 의견서 등을 통해 자세히 살펴봤다.
이 사건은 매우 복잡하다. 이를 최대한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타홀딩스의 설립 배경과 이스타홀딩스가 이스타항공 최대 주주로 올라서는 과정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이스타홀딩스는 2015년 10월 30일 자본금 3000만원으로 설립됐다. 설립 당시 이상직 의원의 아들과 딸이 각각 66.7%와 33.3%로, 이 의원 자녀가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였다.
그로부터 두 달 후인 12월 31일, 이스타홀딩스는 이스타항공의 최대 주주인 새만금관광개발과 아이엠에스씨로부터 522만여 주(지분 68%)를 100억원에 사들여 이스타항공의 최대 주주가 됐다. 참고로 이 시기 아이엠에스씨의 대표이사는 이상직 의원의 형인 이○○씨였다.
이스타홀딩스가 이스타항공 최대 주주가 되는 과정엔 사모펀드 ‘서래1호 조합’의 역할이 있었다. 이스타홀딩스는 그해 11월 10일, 이스타항공 주식 77만1000주(10%)를 담보로 ‘서래1호 조합’에서 80억원을 차용했고, 이 차용금을 담보로 매매예약을 체결했다. 또 이스타홀딩스는 다른 방법으로 20억원을 더 끌어왔다.
이렇게 두 회사(새만금관광개발, 아이엠에스씨)가 보유하고 있는 이스타항공 지분을 인수하기 위한 돈 100억원(80억원+20억원)을 마련했고, 이스타홀딩스는 이스타항공의 최대 주주가 됐다.
이와 별개로 2015년 11월 10일 있었던 이스타홀딩스와 ‘서래1호 조합’과의 거래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스타홀딩스는 ‘서래1호 조합’으로부터 80억원을 대여하면서 담보로 제공한 주식에 ▲동반매도 청구권(Tag-along) ▲사외이사 선임 청구권 ▲주식매수 청구권(Put-option) 등의 권리를 부여했다.
동시에 이스타홀딩스는 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기존의 매매예약 대상 주식이 아닌 추가로 이스타항공의 주식 77만1000주를 ‘서래1호 조합’에 담보로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이스타홀딩스는 (매매예약 대상 주식이 아닌) 77만1000주에 에스크로(escrow·결제대금예치)를 걸었다.
에스크로란 A와 B의 거래에서 제3자인 C가 등장해 주식과 거래대금을 맡아주고, 거래 조건이 모두 충족된 뒤에야 서로에게 거래대금과 주식을 넘겨주는 걸 말한다.
구매자와 판매자 간 신용관계가 불확실할 때 서로가 직접 거래하지 않고 믿을 수 있는 제3자가 거래대금과 물건을 맡고 있다가 거래가 제대로 이뤄진 뒤에 구매자에게는 물건을, 판매자에게는 대금을 지급해주는 것이다. 일종의 ‘거래 사고’를 막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그동안 주식시장에서는 에스크로를 담당하는 변호사나 법무법인이 임의로 주식을 처분하는 사고가 종종 있었다. 이 거래에서 박 변호사가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이스타항공 주식 77만1000주 중 일부를 김재현 전 옵티머스 대표에게 대여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박 변호사의 ‘사실확인서’에서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수정액이 칠해져 판독이 불가능한 부분은 ‘…’으로 처리함).
이스타항공 주식 담보로 48억원 빌린 박 변호사
▲박 변호사 측이 이스타홀딩스에 제출한 ‘사실확인서’. 이 문서엔 박 변호사가 자신이 보관 중이던 이스타항공 주식 77만1000주를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와 자신이 경영을 맡고 있던 코디사에 담보로 제공한 사실이 적혀 있다.
〈(77만1000주 중) 200,000주에 대하여는 …자금에 상용하기 위하여(주식처분등기) 김재현에게 위 200,000주를 담보로 제공하고 15억원을 대여받았습니다. 위 김재현은 본인의 친한 후배로, 본인은 김재현에게 …사정을 설명하며 금전이 급하게 필요하다고 하여(주식처분등기) 이에 김재현이 흔쾌히 응하였고, 위 김재현은 옵티머스 자산운용사의 대표로, 담보제공동의서도 없었기 때문에 200,000주가 위 1.항의 에스크로 주식임을 (정상적인 소유권을 지닌 주식이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가운뎃줄은 삭제를 위해 박 변호사 측이 그은 것이다. 괄호 안에 적힌 ‘정상적인 소유권을 지닌 주식이 아닌 것을’은 지운 부분(‘위 1.항의 에스크로 주식임을’)을 새롭게 보충한 내용이다.
요약하면, 박 변호사는 77만1000주 중 20만 주를 김재현 대표에게 담보로 제공한 뒤, 김대표는 박 변호사에게 15억원을 대여했고, 김재현 대표는 20만 주가 정상적인 주식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는 김재현과 박 변호사가 비정상적인 주식 거래를 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이 밖에도 박 변호사는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이스타항공 주식 77만1000주 중, 40만 주를 담보로 제공해 33억원을 추가로 빌렸다. ‘사실확인서’의 관련 대목이다.
〈본인은 …자금을 대여받기 위하여 위 에스크로 주식 중 400,000주를 …로 명의개서한 다음 본인의 …이 실질적으로 경영하(면서 인장을 들고 보관하)고 있는(사실 관계확인 要) 주식회사 …를 채무자로 내세워 2차에 걸쳐 위 400,000주를 담보로 제공하고 3,300,000,000원을 대여받았습니다.〉
박 변호사가 40만 주를 담보로 제공한 회사는 앞서 언급한 ‘코디’였다. 박 변호사는 코디의 사내이사와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박 변호사가 이스타항공 주식 40만 주를 코디사에 담보로 제공할 때 그는 대표이사 직함을 갖고 있었다. 결국 박 변호사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회사(코디)에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이스타항공 주식을 담보로 제공한 셈이다.
박 변호사는 이스타항공 주식 77만1000주 중 60만 주(20만 주 + 40만 주)를 김재현과 코디사에 담보로 제공해 총 48억원(15억원+33억원)을 챙겼다.
“김재현은 惡意의 취득자”
박 변호사의 ‘사실확인서’에는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박 변호사가 김재현 대표를 ‘악의의 취득자’라고 표현한 부분이다. 김재현(옵티머스)에게서 주식 담보 제공을 대가로 15억원을 받은 박 변호사가 김재현을 왜 ‘악의의 취득자’라고 표현한 걸까.
그 이유는 이스타홀딩스와 코디의 ‘주식인도 청구소송’ 판결문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악의는 우리가 관용적으로 말하는 악의(惡意)가 아닌 법률 용어로 해석해야 하는 ‘악의’다. 재판부는 해당 판결문에서 판례(대법원 2000.9.8 선고 99다58471 판결 등)를 근거로 ‘악의’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악의’란 교부 계약의 하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경우, 즉 종전 소지인이 무권리자 또는 무능력자라거나 대리인이 흠결되었다는 등의 사정을 알고 취득한 것을 말하고….〉
이 판결문에 옵티머스 관련 내용은 없지만, 이스타항공 주식 40만 주가 박 변호사에 의해 코디에 담보로 제공된 것처럼, 이스타항공 주식 20만 주 역시 박 변호사에 의해 김재현 대표에게 담보로 제공됐기에 서로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재판부의 이 같은 설명은 ‘박 변호사-김재현(옵티머스)’ 주식 거래에도 적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는 박 변호사가 담보로 제공한 이스타항공 주식 20만 주가 문제 있음을 알고도 (담보로) 제공받았다는 뜻이 된다. 앞서 본 대로 박 변호사 측이 작성한 ‘사실확인서’ 역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박 변호사가 왜 어떤 이유로 김재현 대표를 ‘악의의 취득자’로 표현했는지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두 사람 사이에 금전 문제로 어떤 갈등이 있지 않았나 추정해볼 뿐이다.
‘김재현, 박 변호사에게 23억원 대여했다’는 진술
김재현 전 대표와 박 변호사 간 거래는 이외에 또 있었다. 이는 ‘펀드 하자 치유 문건’에 등장하는 인물인 홍모씨의 ‘진술서’를 통해 드러났다. 홍씨는 이혁진(해외 도피) 전 옵티머스 대표의 고등학교 후배로, 자본시장에서 무자본 인수합병(M&A) 전문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홍씨는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가 해외에서 농업을 하다 국내로 돌아왔을 때, 박 변호사를 김재현 대표에게 소개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홍씨는 최근 한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무자본으로 인수합병을 하는 과정에서 부당 이득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2018년 9월 19일 김재현 대표가 금전 문제로 피소(被訴)된 어느 민사소송과 관련해 해당 재판부에 진술서를 제출했다.
홍씨 진술서를 보면 김 대표는 박 변호사에게 앞서 언급한 15억원을 포함해 네 차례에 걸쳐 총 23억원 이상 대여해준 것으로 나타났다.
진술서에서 홍씨는 “박 변호사는 2017년 8월 개인 자금이 부족한 상태였다. 이에 자금을 대여할 사람을 물색하던 중 박 변호사에게 김재현 대표를 소개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7년 8월 3일 김재현 대표가 운영하던 옵티머스가 박 변호사에게 15억원을 빌려주면 D사의 공동경영권을 받기로 하는 내용의 공동경영계약서를 작성했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D사’는 코디를 말한다.
홍씨는 ‘박 변호사가 개인 자금이 부족했다’고 했다. 그 이유는 코디의 경영 상태가 어려워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2017년 4월, 이스타항공은 코디에 자사(自社) 주식을 담보로 제공하고 25억원을 빌렸다. 2015년까지 이스타항공 사내이사였던 박 변호사가 이때는 코디의 사내이사(2016년 11월 취임)로 재직하고 있었다.
박 변호사가 코디에 합류한 이후, 코디는 사업영역 확대라는 명목으로 ‘항공기’ 관련 사업목적이 대거 추가됐다. 자금 거래에 이어 관련 사업 목적의 추가까지 이어진 셈이다. 당시 코디는 이스타항공에 빌려준 25억원을 포함해 총 104억원의 대여금 및 채권을 보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재현, 코디의 ‘구원투수’로 나섰지만…
2017년 8월 11일, 코디는 ‘감사의견 거절’을 당해 상장폐지 위기에 놓였다. 감사의견을 거절한 영앤진회계법인은 코디에 대해 ‘선급금, 대여금 등에 대한 회수 가능성에 대해 충분하고 적합한 검토절차를 수행하지 못했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때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가 경영 상태가 어려워진 코디의 ‘구원투수’ 역할을 맡는다. 김재현 대표는 코디가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2017년 8월 25일, 자신이 최대 주주이자 대표이사인 ‘이피디벨로프먼트’를 앞세워 코디의 20억원대 유상증자 대상자로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김재현 대표가 이피디벨로프먼트를 통해 코디 경영에 나서려고 한 셈이다. 이보다 앞선 2017년 6월 18일, 김 대표는 이피디벨로프먼트를 통해 코디의 전환사채(CB) 10억원어치를 매입했다.
같은 해 9월, 박 변호사는 코디 사내이사에서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김재현 대표에게 박 변호사를 소개해준 홍모씨는 이피디벨로프먼트의 사내이사직을 맡고 있었다.
그러나 이피디벨로프먼트의 유상증자는 납입일이 연기(2017년 10월)됐다. 이스타홀딩스는 이스타항공이 25억원을 차입하면서 코디에 담보로 제공했던 이스타항공 발행 주식에 대한 처분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코디로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이피디벨로프먼트를 통한 김재현 대표의 ‘코디 20억원 유상증자’ 계획은 계속 표류했다.
이혁진이 김재현 고소한 이유 중 하나는 코디社 때문
▲이혁진 전 옵티머스 대표가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와 양호 옵티머스 사내이사(전 나라은행장)를 상대로 낸 고소장의 일부. 이혁진 측이 김재현 대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코디社였다. 이혁진 측은 코디에 대해 “경영이 악화되어 사채 원금 회수가 불확실한 부실 가능 채권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 와중에 김재현 대표가 소송에 휘말렸다. 2017년 12월 1일, 이혁진 전 옵티머스 대표는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김재현 당시 옵티머스 대표와 양호 옵티머스 사내이사(전 나라은행장)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옵티머스 전·현직 대표가 송사(訟事)로 맞붙은 것이다.
이혁진 측이 김재현 대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코디였다. 이혁진 측은 ‘고소인 의견서’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피고소인 김재현과 양호는 옵티머스자산운용 주식회사(이하 ‘회사’라고 합니다)의 대표이사와 이사로서… 2017. 9. 8. 회사 자금 357,000,000원을 피고소인 김재현이 실질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주식회사 코디의 무보증 전환사채(이하 이 사건 ‘전환사채’라고 합니다)를 매입하는 데 사용하였습니다. 피고소인 김재현이 대표이사이자 실제 사주로서 운영하고 있는 주식회사 이피디벨로프먼트 명의로 보유하고 있던 이 사건 전환사채를 회사가 직접 매입하면 문제가 될 것으로 여겨, 회사 직원인 김○○(부장) 명의로 넘긴 뒤, 회사에서 김○○로부터 전환사채를 매입하는 것처럼 가장(假裝)하였으나 실질적으로 김재현이 보유하고 있는 전환사채를 회사가 매입해주고 그 대가를 김재현에게 지급한 것입니다.〉
코디, 담보로 받은 이스타 주식 처분
이혁진 측의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면, 김재현 대표는 자신이 실소유주인 ‘이피디벨로프먼트’ 명의로 보유하고 있던 코디의 전환사채를 ‘제3자’(옵티머스 직원 김○○)에게 넘겨 옵티머스 자금을 이용해 매입하려 했다는 것이다. 즉 김재현 대표가 전환사채 매입 자금으로 자신이 대표로 있는 옵티머스 자금을 동원하는 건 ‘배임’에 해당한다는 게 이혁진 측 주장이다.
이혁진 측은 또 ‘고소장’에서 “최근 상장 회사 코디는 경영권 변동 및 불성실 공시 법인으로 지정되는 등 회사의 경영이 악화되어 사채 원금 회수가 불확실한 부실 가능 채권에 해당한다”고도 했다.
이혁진-김재현 간 소송의 또 다른 원인은 경영권 때문이었다. 2017년 6월 금융감독원은 옵티머스에 대한 검사에 돌입했다. 옵티머스는 적정 자본금 미달로 문제가 되는 상황이었다. 금감원은 2017년 8월 24일부터 30일까지 옵티머스를 현장 실사(實査)했고, 그해 12월 20일 적기시정조치 유예 결정을 내렸다.
비슷한 시기 김재현 대표는 다른 사건으로 구속돼 있던 이혁진 전 대표와 경영권 분쟁을 벌였다. 이혁진 전 대표 측 주장에 따르면, “김재현 대표는 금감원 검사의 원만한 해결을 이유로 대표이사 사임 등을 요구하며, 이 전 대표를 과거 ‘가(假)지급금 과다’ 등을 이유로 고소하겠다며 압박했다”고 한다.
실제로 금감원은 검사에서 이혁진 전 대표의 ‘횡령 혐의’를 포착해 검찰에 통보했다. 지난 7월 금감원 관계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 검사는 이혁진 대표 시절 자기자본 유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서 검사를 진행한 것”이라며 “이혁진의 횡령과 다른 제반 불법 사안에 대한 검사가 있었고, 검사 결과 횡령 위반으로 검찰에 통보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결국 이혁진 전 대표가 고소한 지 약 2개월 후인 2018년 2월 12일, 김재현 대표의 이피디벨로프먼트는 결국 코디의 유상증자에서 발을 빼 코디 인수는 무산됐다. 코디는 박 변호사가 코디의 대표이사를 사임한 2017년 12월 6일을 전후로 이스타항공으로부터 담보로 제공받은 주식을 처분했다. 코디가 처분한 주식의 행방은 현재 확인되지 않는다.
분쟁 있었던 ‘아이러브스쿨’과 박 변호사
이쯤 되면 옵티머스와 이스타항공을 오가며 등장하는 박 모 변호사의 실체가 궁금해진다. 박 변호사는 전주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이후 여러 법무법인에서 일했다.
박 변호사의 이름이 세간에 알려진 건 2001년 ‘아이러브스쿨’이라는 벤처 회사와 관련해서다. 아이러브스쿨은 온라인상에서 초·중·고 동창생을 찾아주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로,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가입자가 한때 300만명을 넘을 정도였다.
박 변호사가 아이러브스쿨과 얽힌 배경 역시 다소 복잡하므로, 간단히 요약하고자 한다.
벤처 사업가 김영삼씨 등 4명이 공동 설립한 아이러브스쿨은 2000년 8월, ‘야후(Yahoo)’로부터 500억원 인수 제의를 받았다. 이때 김영삼씨는 아이러브스쿨의 미래 가치와 경영권에 대한 미련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러자 아이러브스쿨에 10억원을 투자했던 E사의 정 모 사장이 김영삼씨에게 ‘야후와 비슷한 (인수) 가격으로 경영권까지 보장해준다’는 약속을 했다. 그 말을 들은 김영삼씨는 정 사장에게 주식을 판매하기로 결정한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E사는 김영삼씨 등 창업자 4명의 주식 16%를 81억원에 산 것으로만 보도됐다. ‘야후와 비슷한 수준으로 해준다’는 조건 치고는 가격이 너무 낮았다.
알고 보니 창업자들과 정 사장 사이에 ‘이면계약’이 있었다. 정 사장이 창업자들의 주식 32%를 개인 명의로 160억원에 사기로 따로 약속한 것이었다. 이때 정 사장은 매각 대금을 2001년 1월과 3월에 나눠 주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정 사장은 지급기일이 되자 시장 상황이 어렵다며 재계약을 요구했다. 또 다른 창업자 임모씨 등에게는 2001년 6월 말에, 김영삼씨에게는 2002년 6월 말에 대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또다시 만기일이 되자 정 사장은 1차 계약 만기대금 100억원 가운데 20억원만을 제시하면서 80억원을 2001년 10월 말로 지급일을 연기했다. 이 과정에서 창업자들은 E사의 50억원짜리 약속어음과 아이러브스쿨 지분을 질권(質權)으로 제공할 것을 제안했고, 정 사장 역시 그 제안을 수락했다.
2001년 11월 1일 정 사장이 또 돈을 갚지 않자 창업주들은 E사의 약속어음을 은행으로 가져갔다. 그러나 은행에서는 ‘인감 상이(相異)’라는 이유로 이들에게 지급을 거절했다. E사의 법인 인감이 아니라 정 사장의 사용(私用) 인감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이미 정 사장은 아이러브스쿨 주식을 F사 등에 모두 매각한 뒤 홍콩으로 잠적한 상태였다. 아이러브스쿨의 경영권은 E사를 통해 F사로 넘어가버렸다.
‘아이러브스쿨’ 주식 사들인 F사의 대표이사는 박 변호사
▲김영삼(사진)씨를 비롯한 아이러브스쿨 공동 창업자들은 아이러브스쿨을 인수한 박 변호사 역시 E사의 정 모 사장과 공범(共犯)이란 취지의 주장을 했다.
아이러브스쿨 주식을 사들인 F사의 대표이사가 바로 박 변호사였다. 아이러브스쿨 창업자들은 정 사장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혐의로 형사 고발하는 한편, 아이러브스쿨을 인수한 박 변호사 역시 정 사장과 공범(共犯)이란 취지의 주장을 했다.
김영삼씨는 그 근거로 F사가 인수한 아이러브스쿨 주식 가격을 예로 들었다. 박 변호사 아내가 대표로 있는 회사의 아이러브스쿨 주식을 다른 주식보다 3~4배 높은 주당 12만원에 인수했다는 것이다. 정 사장과 박 변호사의 공모(共謀) 없이는 불가능한 인수 가격이었다는 게 당시 김영삼씨의 주장이었다.
당시 증권 시장에서는 “아이러브스쿨이라는 벤처 기업을 상대로 정 모 사장과 박 변호사가 기업사냥에 나섰다”는 의혹이 뒤따랐다. 박 변호사는 뚜렷한 범죄 혐의가 없어 별다른 법적 제재를 받지 않았다. 참고로 박 변호사와 정 사장 역시 전주고 동창이다. 박 변호사는 2001년 6월까지 E사에서 정 사장과 공동 대표이사를 지냈다.
박 변호사는 앞서 ‘사실확인서’에서 확인한 대로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를 ‘친한 후배’라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이상직 의원과는 고교 동창이다. 김재현 대표와 이상직 의원의 관계에 대해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이 의원은 김 대표라는 사람과 일면식도 없다. 이 사안은 박 변호사가 주식을 무단으로 팔아넘긴 횡령·사기 사건이며 이스타항공과 이스타홀딩스는 피해자일 뿐”이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박 변호사는 해외로 도피해 ‘기소 중지’된 상태다. 48억원을 챙긴 그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는 옵티머스뿐 아니라 파산 직전에 몰린 이스타항공의 내부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글 :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12.04 "저녁 먹고 오겠다"던 이낙연 측근, 옵티 의혹 조사중 숨진채 발견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실 부실장 이모(54)씨가 3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씨는 지난 4·15 총선에 출마한 이 대표의 선거사무실 복합기 임차료를 옵티머스자산운용 관련 업체로부터 지원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가 검찰에 고발한 2명 중 한 명이다.
옵티머스측 복합기 대납 의혹 수사
조사 다음날 발견, 극단선택 추정
중앙지검 2일 저녁 먹고 재조사 예정
검찰청 나간 뒤에 연락 두절돼
3일 중앙지법 인근서 시신 발견
이성윤 지검장, 윤석열 총장에
이낙연 측근 실종 사실 보고 안해
경찰 관계자는 “2일 이씨에 대한 실종신고 접수 후 기동대가 법원 인근에 대한 수색작업을 벌여 왔고, 3일 과학수사대가 이씨의 신원과 사인을 파악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2일 해당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에 두 번째로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이날 오후 6시30분까지 조사받은 뒤 저녁식사 후 다시 조사를 재개하기로 했으나 이후 소재가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가족으로부터 변호인과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실종신고를 접수하고 휴대전화 위치추적 등을 통해 소재를 파악하다가 그를 발견했다.
이낙연 측근, 숨지기 전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말 남겨
▲서울 종로구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무실에 설치돼 있던 복합기. 3일 숨진 채 발견 된 이모씨는 지난 4월 총선 당시 옵티머스자산운용 측으로부터 복합기 임대 편의를 제공 받은 혐의로 서울시선관위로부터 검찰에 고발돼 조사를 받던 중이었다.[뉴스1]
이씨는 숨지기 전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어 하루 뒤인 3일 오후 9시15분쯤 중앙지법 인근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이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주변인들을 상대로 정확한 사망 경위 조사에 나섰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런 일이 발생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를 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2일 이씨가 실종된 사실을 이성윤 중앙지검장으로부터 보고받지 못했다고 한다.
숨진 이씨는 옵티머스자산운용 관계사인 트러스트올을 통해 지난 2~5월 서울 종로구 이 대표 선거사무실에 복합기를 설치하고 렌트비 76만원을 대납하게 한 혐의다. 정치자금법 제31조에 따르면 국내외 법인은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 이 대표 측은 “지역사무소 관계자가 지인을 통해 해당 복합기를 넘겨받았는데 실무자 실수로 명의 변경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명한 바 있다.
▲옵티머스의 관련 기업인 ‘트러스트올’이 맺은 복합기 대여 계약 관련 서류. [중앙포토]
관련 보도가 나온 뒤 이 대표는 “복합기는 참모진의 지인을 통해 빌려온 것으로 선관위 지침에 따라 정산 등의 필요한 조치에 나서겠다”며 옵티머스와의 연루 의혹엔 선을 그어 왔다.
검찰은 이씨를 통해 옵티머스 금품수수 의혹에 대한 이 대표의 연루 가능성을 수사하려 했었다. 검찰은 이씨가 이 대표의 선거와 관련해 자금을 끌어오는 역할을 한 것은 아닌지 의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며 이 대표와 옵티머스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는 작업은 어려움에 부닥칠 것으로 보인다.
이씨는 이 대표가 국회의원이었을 때 10년 가까이 지역구 관리 등을 맡았던 최측근 비서관 출신이다. 2014년 이 대표가 전남지사 당내 후보 시절엔 권리당원 2만여 명의 당비 대납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돼 1년2개월의 실형을 살고 나오기도 했다. 2016년 이씨가 실형을 살고 나온 뒤 당시 전남지사였던 이 대표의 정무특보로 임명되자 도내에서는 밀실 인사라는 비판이 있었다. 이씨의 정무특보 인사는 이 대표의 총리후보 시절 청문회에서 또다시 논란이 됐었다. 당시 이 대표는 “이씨의 역량이 필요했다. 보은인사가 아니다”고 해명했다. 검찰이 이씨의 극단적 선택 후에도 이 대표와 옵티머스 간의 연루 의혹을 수사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중앙일보 박태인·김수민·편광현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라임사태 2020
월간조선 12월 호
‘라임사태’ 김봉현은 왜 갑자기 ‘검찰개혁’을 외쳤나
“김봉현에게 ‘전자 保釋’ 약속한 세력 있을 것”(전관변호사 A씨)
⊙ 경찰 얼굴에 침 뱉던 건달(김봉현) 말에 ‘수사지휘권’ 발동한 추미애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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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정 교수, “未決囚의 편지, 분석 필요도 없어… 의도 뻔해”
⊙ 김봉현은 雜犯… 政爭 치열해질수록 뒤에서 웃는 ‘베일의 主犯들’
▲지난 4월 검거된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수원 경기남부지방경찰청으로 이송되고 있다. 사진=조선DB
전세(戰勢)가 역전됐다. 지난 10월 16일 공개된 한 편지를 기해서다. 발신자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 ‘라임 돈’을 횡령한 혐의로 도주 끝에 지난 4월 구속된 인물이다.
그는 지난 6개월간 ‘여권 로비’가 있었음을 증언해왔다. 이와 관련 이상호 전 부산 사하을 지역위원장이 8000만원을,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가의 양복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라임이 ‘권력형 비리’로 비화된 배경이다.
김봉현은 10월 초까지만 해도 법정에서 “강기정 전 청와대 수석에게 5000만원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 측이 10월 16일 공개한 자필 옥중 서신.
그런 그가 돌연 태세를 바꿨다. 구치소에서 쓴 ‘폭로성 입장문’을 통해서다. 요약하면 이렇다.
“허위 증언이었다. 라임 사건에 여권 정치인은 1명도 연루되지 않았다. 검사가 회유한 것이다. 현직 검사 3명에 대한 접대도 있었다. 검사장 출신의 ‘야당’ 유력 정치인에게 수억원을 주면서 라임 사태 무마를 청탁한 적도 있다. 그런데 검찰에서는 비위 검사, 야당 정치인에 대한 수사는 은폐했다.”
그러면서 그는 ‘검찰개혁’도 언급한다. “검찰개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마치 기다린 듯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10월 19일 “중앙·남부지검은 윤석열 총장 지휘를 받지 말고 결과만 보고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라임 로비 의혹 사건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 또한 “라임 사건에서 술 접대 의혹이 불거진 검사와 수사관을 수사와 공판팀에서 배제하라”고도 했다. ‘권력형 비리’는 어느새 ‘검찰 게이트’로 탈바꿈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모양새다. 여당은 이참에 공수처 설치 필요성도 강조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같은 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라임 사태 핵심인물이 옥중 서신을 통해 검찰이 검사 비위와 야당 정치인 로비 의혹을 알고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고 폭로했다”며 “이제라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며 공수처 설치와 가동을 촉구했다.
며칠 뒤, 추 장관은 ‘굳히기 한 판’에 들어갔다. 10월 26일 국정감사에서 김봉현의 폭로를 ‘검사, 수사관들의 뇌물 게이트’라고 규정하고 “김봉현의 말이 사실이라면 공익제보자로 추켜세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범죄자는 말 한마디로 의인(義人)이 됐고, 검찰은 죄인이 됐다.
어딘가 절묘한 타이밍. 일각에서는 견강부회(牽强附會), 혹은 공작(工作)이라는 말이 나왔다. 지검장 출신인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입장문을 쓴 김봉현이 한 달도 안 돼 법정에 두 번 출석해 내용과 정반대되는 증언을 두 차례나 했다”면서 “이는 입장문을 누군가 대신 작성했거나, 혹은 입장문대로 진술하면 위증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未決囚의 말, 분석할 필요도 없어
▲지난 10월 국정감사에 참석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 사진=조선DB
‘폭로문’의 신빙성이 검증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허점이 속속 발견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예견된 일이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 교수의 말이다.
“재판에 목숨이 달려 있는 이의 이야기를 과연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영화 〈암수살인〉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우리가 미결수(未決囚) 연구를 안 하는 이유다. 미결 때 거짓말을 했던 사람들이 형이 확정되면 그때부터 진실을 얘기하기도 한다.
예컨대 이춘재처럼 더 이상의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없는 자의 자백은 한번 들어볼 만하다. 라임 사태와 김봉현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는 모르지만, 원론적으로 그의 편지는 구절구절 분석할 필요도 없다. 그런 이의 주장만 가지고, 증거도 없이 어떻게 수사지휘권을 발휘할 수 있겠나.”
법조계에서 또한 김봉현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속셈이 보인다’며 관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20년 경력의 검사 출신 변호사 C씨는 “대형 금융 사건의 경우, 궁지에 몰린 피의자들이 흔히 쓰는 방법 중 하나가 로비 사건을 부각시키는 것”이라면서 “김봉현의 경우 또한 전세 역전을 위해 이 방법, 저 방법 써보며 방향을 트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잡범’ 수준의 김봉현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김봉현 옥중문서에 등장하는 성명불상 검사와 변호사를 고발하기 위해 서울남부지방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여기서 김봉현이라는 인물을 잠깐 짚어본다. 세간에 ‘라임 살릴 회장님’ 혹은 ‘라임의 전주(錢主)’로 알려져 있지만, 그에게 그런 별칭은 버거울 수도 있다. 범죄 행각을 들여다보면 전형적인 ‘횡령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주로 남의 돈을 자기 기업으로 끌어와 횡령하거나, 다른 기업을 인수한 뒤 돈을 빼돌리는 식이다.
현재 구치소에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수원여객 회삿돈 241억원을 빼돌린 혐의, 자신이 실소유한 상장사 스타모빌리티의 회사 자금 517억원을 횡령한 혐의, 재향군인회상조회를 인수했다가 300억원가량의 고객 예탁금을 빼돌린 혐의 등이다. 다른 건 몰라도 그가 편지에 언급한 ‘나는 곁가지’라는 말만큼은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라임 사태와 관계된 인물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김봉현은 필드에서 뛰어준 선수일 뿐이다.”
김봉현의 과거 범죄 이력은 더욱 ‘잡범’ 수준이다. 경기 남부지방경찰청 관계자의 말이다.
“10여 년 전, (김봉현이) 만취 상태로 식당 종업원을 폭행한 일이 있다. 그때 출동한 경찰관에게 피우고 있던 담배를 던지고 얼굴에 침을 뱉어 공무집행방해죄로 끌려갔다. 그 밖에 투자 의사를 철회한 투자자를 폭행 및 감금한 전력도 있다. 공무집행방해, 상해, 감금, 공갈 등으로 몇 차례 기소됐었다.”
경찰 얼굴에 침을 뱉던 ‘건달’의 말에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휘한 셈이다.
알다시피 김봉현은 ‘도주 전력’도 있다. 2019년 12월 수원여객 횡령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직후 도망쳐 5개월간 도주 생활을 했다. 그때 김봉현의 변호를 담당하고 있던 이가 바로 서신에서 언급된 ‘전관변호사 A’다. 김봉현은 A씨에 대해 이렇게 썼다.
“과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의 주임검사였던 전관 출신 A 변호사를 통해 현직 검사 3명을 상대로 접대를 제공했다. (A 변호사는) ‘내가 전직 대통령도 뛰어내리게 했다’는 얘기도 했다. A 변호사가 ‘여당 정치인과 강 전 수석을 잡아 오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보고 후, 보석으로 재판받게 해주겠다’고 해서 거짓 증언을 했다.”
사실일까. A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그는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니 차분히 기다려보자”면서도 몇 가지 질문에 짤막하게 답했다.
― 김봉현을 언제 처음 알게 됐나.
“2007년도, 내가 중앙형사 1부에 있을 때다. 김봉현은 경찰에서 공갈 혐의로 구속돼 우리 방에 송치된 피의자였다. 당시 (김씨는) 어렸고, 변호인도 없는 상태였다. 죄는 있지만, 조금 억울한 측면도 있어 보였다. 검사 입장임에도 사건 정리를 해줬다. 이후 구속기소가 됐는데, 집행유예가 떨어졌다.”
A씨와 김봉현은 처음 ‘검사-피의자’ 사이로 만나, 몇 년 후 ‘변호인-의뢰인’ 사이가 됐다.
― 이후 김봉현의 변호를 맡게 된 배경은.
“검사를 그만두고 2018년도에 변호사사무실을 개업했는데, 2019년 2월에 느닷없이 김씨가 찾아왔다. 수년 만이었다. (예전에 집행유예가 떨어졌으니 고마워서) 나를 잊지 못했다고, 내 인사(人事)를 보고 찾아왔다고 했다. ‘어떻게 부장님같이 훌륭한 분을 노무현 수사했다는 이유에서 사표를 쓰게 만드느냐’고 했다. 그러더니 본인은 상장사(스타모빌리티)를 하나 인수했고, 종교에 귀의해 교회도 열심히 다닌다며 근황을 얘기했다. 이후 수원여객 (횡령) 사건이 터졌고 ‘주범은 외국으로 도망갔고 나는 주범이 아니다. 억울하다’면서 변론을 부탁해왔다.”
― 그런데 어떤 계기로 사임하게 됐나.
“나는 계속 (횡령금을) 변제하라고 설득했는데, 끝까지 하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도망까지 가버렸지 않았나. 그래도 얼굴은 보고 사임해야겠다 싶어서 잡히자마자 지난 4월 찾아갔다. 그리고 ‘더 이상 도움을 주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다시 변호사를 선임해야 할 상황에 놓인 김봉현. 그는 이때 “사임계를 내더라도 라임 수사팀에 누가 와 있는지만 알려달라”고 했고 A 변호사는 마지막으로 이를 대략적으로 설명해주고 나왔다고 한다.
새로 꾸린 친여 성향 변호인단
현재 김봉현의 사건을 맡고 있는 로펌은 엘케이비앤파트너스(LKB)와 사람법률사무소 등이다. LKB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 친문(親文) 핵심 인사를 변호하고 있는 로펌으로, ‘여권 구세주’로도 불리는 곳이다. ‘우리법연구회’ 창립 멤버인 이광범 변호사가 2012년 설립했다. 이 변호사는 초대 공수처장 후보로 자주 거론되기도 한 인물이다.
한편 사람법률사무소는 규모가 아주 작은 곳이다. 한 부부 변호사가 개업한 곳인데, 둘 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출신이다. 이 중 남편인 L 변호사가 김봉현의 이른바, ‘집사 변호사’ 역할을 하고 있다.
L 변호사와 동문인 K 변호사는 “L 변호사 부부와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부부 모두 민변 출신으로 서로 잘 아는 사이”라면서 “L 변호사가 지난 2014년 민변에서 세월호 관련 변호 활동을 하면서 박주민 의원과 연이 닿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박주민 의원은 김봉현의 서신이 공개된 직후 한 라디오 방송에서 “김봉현 전 회장은 추가 수사,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까지 각오하며 입장문을 냈다”면서 “김봉현의 자필 입장문만 가지고 (추 장관이) 수사지휘를 한 것 같지는 않고, 감찰 과정에서 뭐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입장문의 정치적 의도?
▲라임자산운용 피해자들이 환매 보상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민변 출신 L 변호사는 1974년생으로 김봉현과 동갑이다. 옥중 입장문을 전달한 것도 그다. L 변호사는 로스쿨 1기 졸업생이다. 김봉현의 두 번째 서신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검사들이 전관변호사들은 잘 챙기지만 로스쿨 출신은 아는 체도 안 한다.’
K 변호사는 “아무리 검사와 전관의 유착관계를 설명하는 대목이라지만, 이는 사족이다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디테일하다”고 봤다. 입장문에 변호사 입김이 들어갔을 수도 있다는 추측이다. 그는 이어 “김봉현이 자신의 호소문이라면서 사건과 전혀 관련 없는 윤 총장 일화를 쓴 것 또한 정치적인 의도를 의심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라임 사태의 또 다른 피의자에게 억대 사기를 당한 S씨는 과거 김봉현을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옥중 서신을 모두 읽어봤다는 그는 “김봉현은 그런 (복잡한) 문장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입장문이 공개된 시기도 묘하다. 1차 입장문이 작성된 건 9월 21일인데 언론을 통해 공개된 건 한 달 가까이 지난 10월 16일 금요일이다. 그 다음 주 월요일에는 라임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남부지검에 대한 국정감사가 있었다. 2차 입장문은 외부에 곧바로 공개됐다. 2차 입장문이 서울남부구치소 밖을 나간 시점은 10월 21일 낮 12시인데, 당일 바로 L 변호사를 통해 언론에 전달됐다. 이날은 대검찰청 국정감사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편지에 찍힌 구치소 도장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보통 재소자가 외부로 바로 편지를 보낼 경우 도장이 찍히지 않는다. 도장이 찍혔다는 것은, 변호인 등 인편을 통해 ‘반출’됐다는 의미다.
‘전관변호사’ A씨는 “윤석열 총장과 (내가) 사이도 좋지 않은데, (입장문을 통해) 나를 윤 총장 라인, 나아가 한동훈 라인으로까지 만들었다면 뭔가 프레임이 있는 것 아니겠느냐”라면서 “소설을 너무 많이 써놨다”고 말했다.
“김봉현에게 전자 보석 약속한 세력 있을 것”
특정 집단의 ‘입맛’에 맞게 입장문이 활용되는 가운데, 김봉현 또한 이를 통해 원하는 바를 확실히 했다. 그의 속내는 분명해 보인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전자 보석을 받으려는 목적’이라고 했다. 실제로 김봉현은 1차 옥중 편지에서 “전자 보석을 (재판부에)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고, 2차 편지에서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향해 “만들어놓고 활용도 못 할 거면 뭐 하려고 만들었냐”라고 했다. 지난 10월 남부지검 출정 조사에서도 “전자 보석으로 나가게 해주면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고, 횡령액 피해 복구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수정 교수는 “이런 (재소자 등의) 편지를 접해본 사람이라면, 편지의 본질이 ‘본인에게 유리한 처분을 받기 위한 의도’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봉현을 오래 지켜본 ‘전관변호사’ A씨의 말이다.
“전자 보석. 딱 그 이유밖에 없다. 일반 보석은 도주 전력이 있기 때문에 안 된다. 아마 김봉현에게 전자 보석을 약속해준 세력이 있을 거다. (검찰 수사를) 기다려보라. 법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에 전자 보석 결정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데, 김봉현 성향에 만일 전자 보석이 거부되면 그걸 담보해준 세력이 누군지 또 폭로할 거다.”
政爭 치열해질수록 웃는 主犯
전자 보석은 피고인 도주 방지를 위해 전자 장치 부착을 조건으로 보석을 허가하는 제도다. 추미애 장관이 지난 8월 도입했다. 법조계 한 소식통은 “김봉현은 A 변호사가 사임한 후 보석을 해주겠다는 변호사를 찾아 다녔고, 이를 위해 수억원의 수임료를 낼 의사를 비쳤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1월 6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전자 보석을 신청한 상태다. 심문 기일은 11월 27일이다.
라임은 1조6000억원대 규모의 사기사건이다. 등장인물도 많다. 큰 그림을 그리고 돈의 흐름을 좇다 보면 첫 도미노 조각이 어디서 어떻게 쓰러졌는지 알 수 있다. 그때 누가 가장 큰 이득을 봤는지도 보인다. 이에 따르면 김봉현은 그의 말대로 ‘곁가지’가 맞다. 그런 그를 이용하는 자, 그리고 그 말에 들썩이는 동안 ‘주범’들은 점점 베일에 가려지고 있다.⊙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07.07 옵티머스 사태, 꼬리 자르기 안 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과 옵티머스펀드 피해자들이 지난 4월 서울 서대문구 NH농협금융지주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NH농협금융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투자원금 전액을 배상하라는 금융감독원의 결정 수용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5000억원이 넘는 피해 금액과 1000여 명의 피해자를 낳은 희대의 사모펀드 사기사건을 관리·감독해 온 금융당국에 솜방망이 징계가 내려졌다. 감사원은 그제 옵티머스 사태의 배경에는 금융감독원의 부실 감독이 있었다고 밝히면서, 금감원 직원 4명과 한국예탁결제원 직원 1명에 대해 징계를 요구했다. 정작 관리·감독의 책임을 져야 할 기관장 등 고위직들은 퇴직자라는 이유로 징계 대상에서 모두 빠졌다. 실정법상 감사원의 한계를 모르는 바 아니나 부실 감사에 대한 솜방망이 징계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감사원은 수사기관을 위한 수사 참고자료조차 내지 않았다고 하니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 감사”라고 하는 금감원 노조의 비판에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금감원 노조는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해 윤석헌 전 원장과 원승연 자본시장 담당 전 부원장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감사원, 부실감독 금감원 실무진 징계 요구
피해액만 5000억원, 검찰 철저 수사 필요
감사원이 밝힌 옵티머스 사태는 복마전 그 자체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금감원은 옵티머스가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95% 이상을 투자하는 것으로 설정·설립 보고를 해놓고도 일반 회사채에 투자가 가능하도록 모순적인 집합투자규약을 첨부했는데도 별다른 보완조치를 요구하지 않았다. 금감원은 또 수천억원대 피해로 이어진 옵티머스 사태를 2017년부터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감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특히 금감원은 지난해 옵티머스에 대한 서면검사에서 펀드 자금 400억원을 대표이사 개인증권 계좌로 이체하는 횡령 및 사모펀드 돌려막기 등의 위법 사실을 확인하고도 바로 검사에 착수하거나 금융위·수사기관에 보고하지 않았다. 금융감독 당국의 안일한 대처로 부실을 막을 수 있던 기회를 네 차례나 놓쳤다는 게 감사원 감사 결과다.
수사기관의 소극적인 태도도 여전히 문제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그간 전직 경제부총리와 검찰총장이 옵티머스의 고문으로 역할을 하는 등 정·관계 고위 인사 연루설 등을 강력하게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검찰은 제대로 된 수사도 없이 “권력형 비리는 오도된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금감원 감찰 무마 의혹을 받고 있는 청와대 행정관에 대한 수사도 진척이 없다. 옵티머스 자산운용의 설립자인 이혁진 전 대표는 2018년 미국으로 도피한 후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 전 대표는 2012년 대선에서 문 대통령의 선거캠프 금융정책특보를 맡았고,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과는 대학 동문이다. 그는 지금 샌프란시스코 인근에서 식료품 판매업 등을 하고 있다고 한다.
무엇이 두려운가. 이번 감사원의 감사 결과 금융당국의 부실 감독 사실이 밝혀진 만큼 검찰이 철저히 수사해 한 점 의혹도 남지 않도록 해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08월 09일 옵티머스 로비 ‘與 무혐의’ 巨惡 더 설치는 나라 만드나
옵티머스 펀드 사기 사건을 수사해온 검찰이 로비 의혹이 제기된 범여권 인사 전원을 무혐의 처리했다. 20명 가까운 검사가 투입돼 13개월 동안 수사를 벌였지만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사실상 수사를 마무리한 것이다. 옵티머스 사건은 피해자만 1000명, 그 규모가 5000억 원에 달한다. 사건 초기 검찰은 속도감 있는 행보를 보였다. 지난해 6월 22일 펀드 상품 판매사들이 고발장을 접수하자 검찰은 이틀 뒤 대규모 압수수색을 실시했고 고발 한 달 뒤 김재현 대표 등을 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7일 옵티머스 고문단 이름이 적힌 ‘펀드 하자 치유 문건’이 공개되자 수사는 갈지자 행보를 걷기 시작했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수사팀 대폭 증원을 지시했지만, 20일 뒤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느닷없이 2018년 옵티머스 사건 무혐의 처분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다. 법조계에서는 문건에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채동욱 전 검찰총장,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등 여권 인사들이 다수 적시돼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의혹을 뒷받침하듯 수사팀은 정관계 로비에 대한 김 대표의 진술을 확보하고도 검찰총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논란이 제기되는 등 축소·늑장 수사를 뒷받침하는 정황이 잇달았다. 당시 수사 지휘는 친정부 검찰 인사인 이성윤 서울고검장(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맡았다.
수사 결과는 우려했던 대로였다. 옵티머스 자금이 흘러간 경기 봉현물류단지 사업과 관련해 지난해 5월 이 지사에게 청탁을 했다는 채 전 검찰총장은 입건조차 안 됐다. 선거캠프 복합기 사용료를 지원받은 이 전 대표는 이미 지난 4월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됐다. 옵티머스 로비스트에게 현직 부장판사를 소개한 의혹을 받은 김진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소환 조사도 없이 무혐의 처분됐다. 옵티머스 지분을 10%가량 보유하고, 배우자가 옵티머스 이사였던 청와대 민정수석실 이 모 행정관에 대해서는 수사를 계속하겠다고 밝혔지만 결과는 미지수다.
검찰은 그간 추 전 장관 아들 휴가 미복귀 의혹, 김학의 전 차관 관련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 사건, 월성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 관련 배임교사 적용, 울산시장선거 개입 사건 등 권력형 비리 의혹 사건을 뭉개거나 축소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지금은 검찰 수뇌부를 포함한 사정기관 전체와 사법부가 친정권 인사들로 채워져 있어 거악(巨惡)이 설치고 ‘권력형 반칙’도 가능하겠지만 새 정부가 들어서면 결국 ‘판도라의 상자’는 열릴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2 김학의 전 법무차관 출금 불법 조작 은폐
2021.01.11 대통령의 한마디 압박이 연쇄 불법 낳았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2019년 3월 인천공항에서 긴급 출국금지시키기 위해 법무부와 검찰이 불법, 위법을 서슴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공익 제보자가 당시 상황을 기록한 106쪽짜리 신고서 주요 내용이 공개된 것이다.
제보자에 따르면 김 전 차관에 대한 출국금지 관련 공문서 2건 모두 위조였다. 출금 요청서에는 이미 무혐의 처리된 사건번호가, 출금 승인 요청서에는 검찰 전산망에 존재하지 않는 내사번호가 붙어있었다. 있지도 않은 범죄 혐의로 사람을 출국금지할 수 없다는 건 상식이다. 이런 공문서 위조에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 조사단에 파견된 현직 검사가 관여했고, 법무부는 이를 확인하지 않고 출금했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학 후배로 검찰의 정권 불법 수사를 막는 방패 역할을 하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가짜 내사번호' 무마에 나섰다는 의혹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당시 출금 닷새 전 “(김 전 차관 사건에) 검경 지도부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라”고 했다. 공소시효를 사실상 무시하라고도 했다.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왕조 시대의 ‘어명’처럼 된다. 법을 지키라고 있는 국가기관인 법무부·검찰이 불법까지 저지르게 된 배경이다. 김 전 차관은 처음 수사 대상이던 성폭행 의혹이 아닌 별건 수사로 수감됐다. 불법을 수사하는 것 못지않게 그 수사가 적법한 것도 중요하다. 이 원칙이 무너지면 그 누구든 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대통령이 공직자들로 하여금 불법 행위를 저지르도록 몰아세운 건 이뿐이 아니다. 월성 1호기 원전은 “언제 폐로하느냐”는 대통령 한마디에 막무가내 조작이 벌어졌다. 산업부 장관은 “2년 반 더 가동”을 보고하는 부하에게 “죽을래”라고 압박했다. 담당 공무원들은 일요일 한밤중 사무실에 들어가 증거 문서 530건을 삭제했다. 울산시장 선거 때도 문 대통령이 30년 친구의 당선을 “소원”이라고 한 뒤 대통령 비서실 7개 조직이 후보자 매수, 경찰 하명수사, 공약 협조 등 선거 범죄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 전직 대통령이 내린 지시 때문에 전직 대통령 자신과 측근 참모들은 감옥에 있다. 문 대통령의 말값은 언제 어떻게 치르게 될 건가.
조선일보 사설
01.12 박상기 이성윤이 불법 조작 은폐 공범, 세상에 이런 나라 있나
2019년 3월 법무부와 일부 검사가 김학의 전 차관 출국 금지를 조작과 불법으로 강행했다는 공익 제보자 신고는 정권의 지시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불법, 조작으로 국민의 인권을 유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일이 이른바 민주화 정권에서 자행됐다. ‘민주화 운동'은 허울일 뿐이다.
출국 금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법이었다. 김 전 차관은 당시 피의자가 아니었고 그에 대한 출입국 기록 조회는 불법이다. 그런데 김 전 차관은 출국 금지에 앞서 무려 177차례나 출입국 기록 조회를 당했다. 특정 시점엔 3분마다 한 번 꼴로 조회됐다. 법무부 출입국 담당 공무원들이 한 일이다. 국가기관에 의한 불법 사찰이다. 이 불법행위의 최고 책임자로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이 지목되고 있다. 공익 제보자는 신고서에서 박 전 장관이 “법무부 공무원들이 무단으로 출입국 정보를 조회한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 “불법 출국 금지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승인하게 했다”고 했다.
법무장관만이 아니라 대통령의 수족 검사라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도 개입했다. 출금 요청서는 ‘가짜’ 사건번호와 내사번호를 붙인 위조 공문서였다. 게다가 관련 기관장인 서울동부지검장 직인조차 안 찍혀 있었다. 그런데도 법무부는 출금을 승인했다. 이후 이성윤 지검장이 서울동부지검 관계자에게 “내사번호를 추인한 걸로 해달라”며 불법과 위조를 은폐하려 했다는 것이다. 법무장관과 검찰 고위직이 공범이라는 것은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 두 사람은 이날도 입을 닫고 한마디 해명하지 않았다. 이 정권은 대통령부터 아래까지 범죄가 드러나면 무조건 입을 다물고 숨는다. 정권의 응원단이 된 언론들이 따라서 침묵한다. 시간을 보내다 선거만 이기면 모두 흐지부지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있나.
조선일보 사설
01.13 “관행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현직 부장검사, 불법출금 맹비난
현직 부장검사가 김학의 전 장관 출국금지 과정에서 저질러진 불법을 일각에서 ‘관행’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규원 검사가 가짜 내사번호를 쓰고 기관장 관인도 없이 출국금지한 사실이 알려지며 파문이 커지자 ‘검사들이 구속영장을 긴급하게 청구할 때 임시번호를 붙인 뒤 정식 번호를 부여하는 게 수사관행’이라는 식의 주장이 나오자 반박한 내용이다.
정유미 부천지청 인권감독관(부장검사)은 12일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검사들은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수사활동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하게 판단한다”며 “그 인권이 설령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인간들의 인권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임시번호 뒤 정식번호는 수사관행’이라는 주장을 언급한 뒤 “도대체 어떤 인간이 이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씨부리는 것인지 궁금해 미치겠다”며 “적어도 내가 검찰에 몸담고 있던 20년간에는 그런 관행 같은 건 있지도 않고, 그런짓을 했다가 적발되면 검사 생명 끝장난다”고 했다.
그는 “영장 관련 ‘관행’ 운운하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도 했다. 사건을 입력하면 사건번호는 정식으로 부여되고, 정식 사건번호가 없는 건에 대해서는 법원에서 영장을 내주지도 않기 때문에 가짜 번호로 영장을 받는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정 부장검사는 “언론에 나온 것이 사실이라면 명백한 불법행위인데 관행 운운하며 물타기하는 것도 어처구니없다”며 “일부 검사같지도 않은 것들이 불법을 저질러 놓고 다른 검사들까지 도매끔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기가 찬다”고 했다.
그는 과거 ‘고소장 분실 사건’을 들며 “고소장 표지 한장을 분실했는데 마침 반복된 고소건이라 같은 내용의 다른 고소장 표지를 복사해 붙인 게 들통나 사직했다”고 했다. 그는 “그 건은 검사가 자기 잘못을 은폐하려고 편법을 사용한 것이었을 뿐 누구의 인권을 침해한 것은 아니었다”며 “그러나 다른 검사들은 그 검사의 일처리 행태에 대해 어이없어 했다. 우린 그따위로 일하지 않으니까”라고 했다.
그는 “심지어 임은정 검사는, 해당 검사를 징계하지 않고 사직서를 수리했다는 이유로 당시 지휘부와 감찰 라인을 형사고발까지 했다”며 이 사건으로 김수남 전 검찰총장, 김주현 전 대검 차장 등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한 임은정 부장검사를 저격하기도 했다. 이들 사건은 모두 무혐의 처분됐다.
정 부장검사는 ‘고소장 분실사건'과 ‘불법 출금'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를 비판했다. 그는 “근데 공문서를 조작해서 출국금지를 해놓고 관행이라 우긴다”며 “내 불법은 관행이고 니 불법은 범죄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아~나, 관행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다”고 했다.
조선일보 양은경 기자
01월 13일 정권 범죄로 드러나는 ‘김학의 出禁’ 배후까지 밝혀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출국금지 과정의 불법성에 대한 의혹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런데 최근 공익제보와 언론 취재를 통해 정권 차원의 조직적 범죄일 개연성이 드러나고 있다. 법무부와 검찰 내부의 친(親)정권 인사들이 여러 단계의 불법 행위에 관여한 구체적 정황과 증거가 제시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출금(出禁)의 기획·실행 단계에서 불법임을 인지했으며, 그러고도 실행하고, 그 뒤에 은폐·조작도 시도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런 범죄 혐의자들이 지금도 ‘불법 출금’ 수사에 관여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와중에 법무부는 12일 가짜 사건·내사번호를 기재한 위조 출국금지 서류로 출국을 막은 행위에 대해 “급박하고도 불가피한 사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것만으로도 법무부가 불법적 법집행을 옹호하는 중대한 국기 문란 사태다. 7년 이하의 중형에 처하는 허위공문서 작성죄를 ‘불가피한 사정’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스스로 범죄 집단 일각임을 자인하는 것과 다름없다.
최근 구체적으로 확인되는 정황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 지시를 기점으로 법무부와 검찰 내 친정권 인사들의 조직적 관여를 금방 알 수 있다. 문 대통령은 2019년 3월 18일 성 접대 의혹 재조사와 관련, “검찰과 경찰은 조직의 명운을 걸라”면서 “공소시효가 끝난 일은 그대로 사실 여부를 가리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구체적 사건 수사 지시 자체는 말할 것도 없고, 시효가 끝나 기소할 수 없는 사안까지 수사기관에 규명하라고 한 것도 불법이다.
법무부는 출입국 공무원을 통해 177차례나 김 전 차관의 출국 여부를 불법 사찰했다. 입건도 안 된 사람의 출국을 막기 위해 자격이 없는 대검 진상조사단 파견 검사를 ‘서울동부지검 검사직무대리’로 발령 내 가짜 출금 요청서까지 만들었다. 출금 조치는 법무부 과거사위 위원이던 이용구 당시 법무부 법무실장(현 차관)이 제안했고, 김태훈 대검 기획조정부 과장(현 법무부 검찰과장)이 지시했다. 당시 박상기 장관의 정책보좌관이던 이종근 대검 형사부장과 반부패 부장이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도 불법 출금 및 은폐 의혹의 지휘 라인이다. 이런 만큼 당연히 배후도 있을 것이다. 성역없이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법 집행기관의 이런 불법을 용인하면 법치는 완전히 무너진다.
문화일보 사설
01.14 "적법하다는 김학의 출금···법무부 단장은 끝까지 거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불법 긴급 출국금지 의혹과 관련 사후 승인 과정에서 당시 법무부 출입국정책단장은 승인요청서에 대한 결재를 회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단장을 건너뛰고 상급자인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만 가짜 내사사건 번호가 기재된 승인요청서를 결재했다.
당시 민변 출신 차규근 출입국본부장만 결재
차 본부장 "단장 결재란 비었지만 거부 아냐"
사후 승인과정에서 법무부 고위 간부가 결재를 거부할 만큼 긴급 출금의 절차상 위법했다는 뜻이다. 법무부가 12일 적법했다고 주장한 것과도 상반된다.
"이규원이 보낸 승인요청서, 출입국정책단장은 결재 안 해"
13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 파견 이규원(43) 검사는 2019년 3월 23일 0시 8분 인천공항에 '대검 진상조사단(서울동부지검 검사직무대리) 명의로 긴급 출국금지 요청서를 보내 김 전 차관의 태국 방콕행 비행기 탑승을 막았다. 이후 새벽 3시 8분 김 전 차관에 대한 긴급 출국금지 승인요청서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접수했다. 그런데 법무부 출입국심사과 직원이 당시 A 출입국정책단장에게 결재를 요청했지만, A 전 단장은 끝까지 서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법무부 출입국 사정을 아는 한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그날 새벽 A 전 단장이 승인요청서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결재를 하지 않자 직원들은 결국 그를 건너뛰고 차 본부장의 자택까지 찾아가 결재를 받았다"며 "단장이 결재를 회피할 만큼 출입국 내에서도 승인요청서의 위법성을 알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 3월 23일 자정이 지나 긴급출국금지 조치로 태국행 비행기를 타지 못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공항에서 나오고 있다. [jTBC 뉴스 캡쳐]
중앙일보가 입수한 106쪽 국민권익위원회 공익신고서에 따르면 김 전 차관은 2019년 3월 23일 오전 0시 20분 인천공항발 태국행 비행기를 타려고 했지만 출국 10분 전 공항 출입국·외국인청 직원들로부터 출국금지 사실을 통지받고 탑승을 제지당했다. 이 검사가 0시 8분 전산으로 긴급 출국금지 요청을 해서다.
이 검사가 긴급 출국금지 요청의 근거로 적은 사건번호는 '서울중앙지검 2013년 형제 65889호'로 김 전 차관이 2013년 이미 무혐의 처분을 받은 성폭력 혐의 사건번호였다. 출입국관리법상 '사형·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범죄 피의자'라는 긴급 출금 대상자가 될 수 없는 사건이었다.
또 긴급 출국금지 요청은 같은 법 시행령에서 '수사기관의 장'이 해야 하지만 이 검사는 수사권도 없는 진상조사단 파견자 신분이었다. 이때 이 검사는 진상조사단이 소재한 서울동부지검장의 관인도 빠진 요청서를 보냈고 김 전 차관이 긴급 출금 대상자에 해당한다는 사실과 긴급 출금이 필요한 사유를 기재한 서류도 제출하지 않았다.
출입국관리법령에 따라 수사기관은 긴급 출국금지를 요청한 때로부터 6시간 안에 법무부에 승인요청서를 보내야 하고, 12시간 안에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출국금지 조치를 해제해야 한다. 이 검사도 그날 새벽 3시 8분에 승인요청서를 법무부에 접수했다. 이번엔 승인요청서에 적었던 서울중앙지검 무혐의 사건 대신 '2019년 내사 1호'라는 서울동부지검의 내사사건 번호를 적었다. 당시로선 동일한 번호의 사건이 존재하지 않았던 유령사건이었다.
A 전 단장의 결재 회피에 대해 차 본부장은 "당시 결재 서류에 A 전 단장의 결재란이 비어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다만 결재란이 비어있다는 것과 결재 거부는 명백히 다른 것이어서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고 해명했다. 이를 두고 A 전 단장이 사후 결재마저 하지 않아 결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분명히 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다만 A 전 단장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기억나는 게 없다"고만 했다. A 전 단장은 그해 10월 법무부 산하 기관으로 자리를 옮긴 뒤 지난해 말 퇴직했다.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 이모 검사가 2019년 3월 22일과 이튿날인 3월 23일 작성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긴급 출입금지 요청서와 법무부 장관 승인 요청서. 이 검사는 긴급 출입금지 요청서엔 이미 김 전 차관이 무혐의 처분을 받은 서울중앙지검 2013년 사건번호를, 승인 요청서에선 존재하지 않는 서울동부지검 2019년 내사1호란 사건번호를 적었다.[중앙일보]
법무부는 전날 불법 출국금지 의혹과 관련해 "이 검사는 동부지검 검사직무대리 발령을 받은 수사기관에 해당하므로 내사 및 내사번호 부여, 긴급 출국금지 요청 권한이 있었다"며 "당시는 중대한 혐의를 받고 있던 김 전 차관이 심야에 국외 도피를 목전에 둔 급박하고도 불가피한 사정을 고려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이 검사는 진상조사단 소재지인 서울동부지검에 '진상조사업무에 한정'한 검사직무대리 발령을 받아 수사권이 없었다"라며 "통상 검사라도 '수사기관의 장'(서울동부지검장) 결재 없이 마음대로 내사사건을 만들어 형사소송법상 긴급체포와 같은 요건인 긴급 출금을 요청했다는 건 일어나선 안 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직원 카톡방엔 "본부장, 긴급 요건 맞다고 한다"…이후 최장수 본부장
법조계에선 차 본부장이 불법 긴급 출금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의심한다. 하지만 수원지검 안양지청의 2019년 수사에서는 법무부 출입국 실무진만 조사하고 그 윗선은 조사하지 않았다. 공익신고서에 따르면 출입국심사과의 한 직원은 당시 카카오톡 단체카톡방에 "과장님은 긴급 (출금은) 미승인하고 법무부 장관 직권으로 거는 쪽 얘기하시고 본부장님은 피의자인지 아닌지는 수사기관이 판단해서 요청하니까 긴급 요건에 맞다고 볼 수 있다 하시고"라며 "본부장님 의견 쪽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차 본부장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출신 변호사로 2017년 9월 임명돼 현재까지 3년 3개월 넘게 자리를 지킨 최장수 본부장이다. 2년 넘게 출입국본부장 직을 수행한 인물은 차 본부장이 유일하다고 한다. 그는 이용구 법무실장에 이어 법무부 탈검찰화 방침에 따라 검사만 맡던 법무부 간부직에 채용된 두 번째 사례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차 본부장을 포함해 당시 의혹에 관련된 인사 대부분은 요직을 지키고 있거나 영전했다"고 말했다.
강광우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01.16 법무부 직원 “출국 사전감시, 김학의가 유일”
文대통령 “명운 걸라” 지시 다음날 출입국 현황 무단 모니터링 시작
김학의 전 법무차관 ‘불법 출국금지 및 은폐’ 의혹과 관련, 당시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가 김 전 차관을 찍어서 대(對)테러 관련 인물 등을 상대로 시행하는 출입국 현황 모니터링을 한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법조계에서는 “윗선 지시 없이 일선 공무원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본지 취재와 공익제보서에 따르면, 법무부 출입국본부 직원 10여명은 2019년 3월 19일부터 김 전 차관이 출국을 시도한 3월 22일 밤까지 김 전 차관 출입국 정보를 총 177회 조회했다. 3월 1일~18일까지는 한 번도 없었던 일인데, 문재인 대통령이 김 전 차관 사건에 대해 “경찰·검찰은 명운을 걸라”고 지시한 다음 날인 19일부터 조회가 시작됐다.
출입국심사과 직원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당시 무단 조회 사실을 인정하면서 “공항 승객 모니터링은 대테러 관련 인물이나 출입국 규제자 등 특정 인물을 확인하는 업무로 알고 있다”고 진술했다. 이어 그는 ‘출국 규제 요청이 없는 경우, 대기업 총수 등 주요 인물이 모니터링된다는 말을 듣거나 목격했느냐’는 질문에는 “없다”고, ‘김학의를 제외하고 출입국 규제 없이 모니터링 대상이 된 사람이 없다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예”라고 답했다.
출입국 규제자 모니터링은 출입국본부 정보분석과 상황실이 담당하게 돼 있다. 이번 경우 출입국심사과뿐만 아니라 정보분석과 직원도 가담했다. 김 전 차관 출금 이후 출입국심사과 B 서기관이 작성한 사후 대응 문건에 따르면, 2019년 3월 22일 오후 10시 52분쯤 인천공항 정보분석과가 김 전 차관의 출국장 진입을 인지했고 그 ‘불법' 정보가 출입국본부를 거쳐 대검 진상조사단에 전달됐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일반인을 상대로 이런 식의 전방위 감시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 사건 제보자는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한 민간인 사찰”이라고 했다.
법무부가 당시 감찰을 통해 출금 과정의 불법성을 확인하고도 윗선으로 번질까 봐 사안을 덮었다는 의혹도 점점 커지고 있다. 법무부 감찰담당관실은 2019년 4월 5일 공익법무관 2명에 대해서만 수사 의뢰를 하고 사실상 불법 조회를 시인했던 법무부 공무원들에 대해선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다. 당시 감찰담당관은 지난해 법무부 검사징계위에 윤석열 총장 징계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진술서를 낸 현 이정현 대검 공공수사부장이었다.
秋의 검찰개혁위도 “出禁은 피의자로 한정”
‘검찰 개혁’을 뒷받침하기 위해 발족된 법무부의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지난해 “범죄 수사가 개시돼 출국이 적당하지 않은 피의자로 출국금지 대상을 한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던 것으로 15일 알려졌다. 추미애 법무장관 체제의 개혁위조차 김학의 전 법무차관 사례처럼 수사 기관에 입건되지 않고 피의자 신분도 아닌 민간인을 출국금지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제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위원장 김남준)는 작년 6월 8일 ‘출국금지 제도 개선’ 권고안을 발표하고 “거주·이전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한할 수 있는 출국금지 제도 개선을 권고한다”며 “범죄 수사를 위한 출국금지 대상을 명확히 하기 위해 그 대상을 ‘범죄 수사가 개시’되어 출국이 적당하지 않은 피의자로 한정해야 한다”고 했다. 김 전 차관은 2019년 3월 23일 출국금지됐다. 당시는 수사 개시 전이었다. 검찰 ‘김학의 수사단’은 그해 4월 1일 꾸려졌다.
민변 사법위원장 출신 김 위원장은 2019년 9월 조국 법무장관이 임명했다. 개혁위에는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위원으로 ‘김학의 사건’ 주심위원을 맡았던 김용민 변호사(현 민주당 의원)도 참여했다. 김 변호사는 2019년 3월 법무부 과거사 위원으로 있으면서 김 전 차관에 대한 선제적 출국금지를 주장했는데, 1년 뒤에는 김 전 차관 출국금지가 위법했다는 개혁위 권고안 발표에 동참한 것이다.
개혁위는 “출입국관리법 4조 2항은 범죄 수사를 위해 출국이 적당하지 않다고 인정되는 사람에 대해 1개월 이내 출국을 금지하고 있다”며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수사 개시 전 내사 단계에서는 물론 참고인까지 ‘범죄 수사를 위해’ 광범위한 출국금지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개혁위는 “출국금지 대상을 피의자로 한정하고 다만 피의자 이외 사람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이 구체적으로 필요성을 소명한 경우에 한해 출국을 금지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 이규원 검사는 과거 무혐의 처리된 사건번호와 가짜 내사번호를 기재한 허위 공문서로 김 전 차관 긴급 출국금지를 요청하면서, 출금 필요성에 대해서는 “구체적 사유는 보안상 적시하지 않는다”고 요청서에 썼다.
당시 법무부도 불법성을 인지했다. 법무부 출입국심사과 서기관은 2019년 3월 25일 내부 보고서에서 “긴급 출국금지 대상은 범죄 피의자라고 규정한 법문 취지를 고려할 때 향후 법리 논쟁이 예상됨”이라고 썼다. 박상기 당시 법무장관은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열흘 전인 2019년 3월 13일 업무보고에서 “출국금지 심사를 강화하는 등 인권을 보호하는 정책에 매진하겠다”고 했었다.
01.18 아무리 ‘나쁜 놈’도 적법하게 처벌하는 게 法治다
김학의 출금에 가짜 불법 서류
정부 공식 해명은 ‘불가피했다’
불법 반복하다가 무감각해졌나
現정부, 법치·사법체계를 공격해
지난해 ‘채널A 사건’ 수사 과정에서 일반인들에겐 낯선 ‘독직폭행(瀆職暴行)’이란 범죄 용어가 등장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한동훈 검사장의 휴대전화기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폭행 사건에 적용된 혐의이다. 글자 그대로 풀자면 ‘직(職)을 더럽힌(瀆) 폭행’이라는 뜻이다. 형법 제125조에 규정돼 있는 이 범죄는 재판, 검찰, 경찰 등 공무원이 인신 구속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면서 폭행이나 가혹 행위를 한 경우를 말한다.
▲한동훈 검사장과 정진웅 차장검사 측의 주장을 토대로 재구성한 압수수색 당시 상황. 위에 올라탄 것이 정진웅 차장검사.
독직폭행은 일반 폭행죄보다 형(刑)이 무겁다. 벌금형 없이 징역형 선고만 가능하다. 혐의가 인정되면 5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 정지에 처한다. 김근태 전 의원을 비롯해 수많은 야권·학생운동권 인사를 고문했던 ‘고문 기술자’ 이근안이 독직폭행 혐의 등으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우리 형법 체계에 독직폭행에 관한 별도 조항이 있는 것을 알고 새삼 감동했다. 이 조항은 국가 권력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불법적 권력 행사를 견제하는 내용이다. 민주(民主)와 민권(民權)을 상징하는 조항이라고 할 수 있다.
조작된 서류로 김학의 전 차관을 불법 출국금지한 것은 국가 권력이 민권을 짓밟은 일이었다. 형벌권 문제를 관장하는 법무부와 검찰이 그 짓을 했다. 김 전 차관은 검찰 간부 시절 건설업자에게서 난잡한 성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의 인물이다. 아무리 ‘나쁜 놈'일지라도 그를 처벌하기 위한 권력 행사의 과정은 적법해야 한다. 그것이 법치(法治)이고 민주주의이다. 처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의 탈·편법을 용인한다면 고문이라고 하지 못하겠는가. 전체주의 독재국가에서 횡행하는 일이다.
이근안이 그랬다. ‘용공(容共) 분자 처벌’이라는 그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관절 꺾기, 전기 고문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근안은 7년 형기를 마치고 수년이 흐른 뒤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은 고문 기술자가 아니라 ‘심문 기술자’라고 했다. 자신의 행위는 ‘애국’이라고 했다.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은 일을 하겠다”고 했다. 정의를 실현한다는 명분으로 불법에 눈감으면 이런 야만(野蠻)으로 돌아간다.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불법 출국금지가 당시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에 파견됐던 검사 개인의 범죄일까. 물론 가짜 사건번호를 적은 허위 문서로 출금 요청서를 만들고, 사후 승인요청서에 있지도 않은 내사번호를 적어 집행한 것은 그다. 그러나 법무부가 지난 12일, 16일 연이어 내놓은 공식 입장문을 보면, 이 같은 범죄가 정권과 정부 차원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법무부는 입장문에서 “급박하고도 불가피한 사정을 고려할 필요성이 있었다” “부차적 논란”이라고 했다. 국가 기관을 동원해 노골적으로 불법을 저지른 사례가 하도 반복되다 보니, 이젠 정부 공식 입장문에서까지 불법을 따지는 문제에 “불가피했다” “부차적”이라는 해명을 버젓이 내놓는다.
어쩌다 이런 지경이 됐을까. 정의를 독점하고 있는 양 도취해 있다 보니 불법에 무감각해진 것이다. 대통령의 친구를 울산시장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청와대의 7개 조직이 개입한 정권이다. 월성 원전 조기 폐쇄를 원하는 대통령 뜻에 맞추기 위해 경제성 평가를 조작한 정부다. 이런 불법을 저지르고도 해당 사건 검찰 수사팀을 조각내 찢어 놓았고, 감사원장에겐 “집 지키라고 했더니 주인 행세를 한다”고 공격한다. 기가 막힌 건 그러면서 적반하장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법과 제도를 맘대로 재단한다”고 한다는 점이다. 법치와 사법 체계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집단이 법과 제도, 민주주의를 운운한다.
01월 18일 ‘불법 출금’ 정당화 궤변 법무부, 反법치 본거지인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불법 출국금지’를 정당화한 법무부 해명은 궤변을 넘어 범법을 자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휴일이던 지난 16일 법무부(장관 추미애)가 낸 입장을 보면, 법치 주무 부서가 아니라 반(反)법치의 본거지가 아닌지 의심이 들 지경이다. 지난 1년 동안 추 장관 등은 인사권·지휘권·감찰권을 남용해 윤석열 검찰총장을 내치려다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리기도 했을 정도로 다른 사례도 수두룩하다. 법무부가 내놓은 입장문은 A4용지 5쪽 분량의 비교적 긴 자료임에도 발표 주체도 구체적으로 적시되지 않았다고 한다. 법무부 내부에서도 이번 해명이 떳떳하지 않음을 알았다는 반증도 될 것이다.
불법 출금 사건의 핵심은 출금 조치 권한이 없는 검찰과거사위 검사가 ‘가짜 사건번호’와 ‘가짜 내사번호’를 붙인 위조 공문서를 만들어 출국을 막은 것이 핵심이다. 불법 혐의가 제기되자 그것을 조작·은폐하는 과정에 법무부와 검찰의 친정권 인사들이 연루됐다. 그런데 법무부는 “출금 자체의 적법성과 상당성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부차적인 논란에 불과하다”면서 “법무부 장관은 직권으로 출금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있다”고 했다. 사리에 맞지 않는 말장난이다. 장관이 당시 직접 지시했다면 일말의 근거라도 가질 수 있다. 출입국관리법에 장관이 출금할 수 있도록 한 것(4조 2항)은 일반적인 경우이고, 김 전 차관처럼 긴급출금의 경우 수사기관의 장이 요청하고, 장관은 사후 승인·해제 권한만 있다. 김 전 차관은 형사 피의자·피내사자 신분도 아니어서 일반·긴급 모두 출금 요건에 해당이 안 된다. “불가피” 운운하는 것도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성이 생명인 법치를 부정하는 것으로, 왕조시대 ‘관심법(觀心法)’이나 탈법으로 수사하겠다는 발상이다.
당시 법무부 직원들은 가짜 출금 서류가 발급도 되기 전에 김 전 차관의 출국을 막았고, 전산 입력도 뒤늦게 하는 등 구체적 불법 정황들도 속속 새롭게 드러나고 있다. 이런데도 추 장관은 SNS에 “이 사건 검찰 수사는 검찰개혁에 반하는 극장형 수사”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불법 혐의자들이 검찰을 공격하는 적반하장이다. 국민을 상대로 한 국가기관의 형사법 절차 위반은 중대한 범죄이고 심각한 기본권 침해다.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1.20 이게 ‘검·언 유착’ 아닌가
‘별장 성 접대’ 의혹을 받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인천공항에 도착한 것은 2019년 3월 22일 밤 10시가 넘어서였다. 현장 발권을 하고 23일 0시 20분 이륙하는 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김 전 차관은 이륙 직전 법무부의 긴급 출국금지 조치로 붙잡혔다. 법무부가 ‘가짜 사건번호’를 동원해 김 전 차관 출금을 집행한 건 23일 오전 0시 8분이었다.
그런데 한 친여 성향 신문의 온라인판에 김 전 차관 출금 첫 보도가 22일 밤 11시 19분에 올라왔다. 이 시점은 김 전 차관이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불과 한 시간 뒤였다. 출금 서류가 법무부에 접수되기도 전이었다. 김 전 차관 출금에 대한 내용을 준비 단계에서 누군가로부터 전해 듣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보도였다.
당시 김 전 차관의 인천공항 도착 사실은 법무부 정보분석과 직원이 처음 인지했다. 나흘 전인 3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 조직 명운을 걸라”며 김 전 차관 사건의 철저한 수사를 공개 지시한 뒤, 법무부 인천공항 직원들은 피의자 신분도 아니었던 ‘민간인 김학의’의 출국 정보를 수백 회에 걸쳐 실시간 조회했다.
그리고 22일 밤 김 전 차관이 공항에 들어왔다. 이 사실은 즉시 법무부 출입국 본부를 거쳐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에 직보됐다. 청와대에도 당연히 보고됐을 것이다. 당시 출금 서류 조작 의혹을 받는 조사단 이규원 검사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이광철 비서관과 사법연수원 동기로 가까운 사이였다.
김 전 차관이 출금됐다는 첫 보도에 다른 언론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민감한 개인 정보인 출국금지 사실 관계는 수사기관에서 확인해주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검사나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관련 정보를 흘렸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김 전 차관 개인 비위와는 별개로 그를 잡기 위한 권력기관의 행태는 온갖 불법으로 점철됐다는 사실이 최근 뒤늦게 드러났다. 그는 두 달 뒤 구속됐다. 그 과정에서 영화에서나 볼 법한 심야의 드라마틱한 출금 상황이 친여 성향 신문뿐 아니라 친여 성향 방송에도 실시간 중계됐다. 물론 언론 취재에 성역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당시 이들의 보도는 권력 측과 긴밀하게 실시간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이뤄진 것이라는 정황이 역력하다. 결과적으로 불법 출금에도 이용당한 셈이다.
친정권 매체들은 작년 채널A 기자가 한동훈 검사장을 만나 사건 취재를 한 것을 놓고 ‘검·언 유착’이라며 맹공격했다. 정권 초기 적폐 청산 수사 과정에서 검찰 지휘 라인에 있었던 한 검사장을 가장 많이 취재했던 것은 정작 이 매체들이었다. 채널A 기자는 유시민을 잡으려다 미수에 그쳤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채널A 기자의 실패한 취재는 ‘검·언 유착’이고 이 매체들의 ‘김학의 불법 출금’ 생중계는 단순히 열심히 취재한 결과물일까.
조선일보 박국희 기자
01.23 공익제보자 “김학의 불법출금, 외압에 수사못해 부끄럽다”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금 및 은폐 사건의 공익 제보자는 지난 21일 관련 사건에 대한 ‘수사 중단 외압’을 추가로 폭로하며 “국가 권력의 불법을 계속 수사하지 못하고 중단한 당시 판단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후회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년이 지났지만 늦게라도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침해를 바로잡고 불법을 저지른 자들에게 법에 따른 정당한 처벌을 바라는 마음으로 공익 신고했다”고 밝혔다.
본지가 입수한 14쪽 분량의 추가 공익 신고서에 따르면 이 공익 제보자는 “허위 공문서 작성, 불법 정보 조회 등의 혐의를 규명하여 단죄할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면서 “수사를 중단한 책임은 신고인에게 있으며, 신고인이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할 생각도 없다”고 밝혔다. 그는 “공익 신고에 정치적 의도나 고려는 전혀 없었다”고 했다.
2019년 4월 수원지검 안양지청은 법무부의 수사 의뢰로 공익 법무관들이 김 전 차관 측에 출국 금지 여부에 대한 정보를 유출한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규원 대검 진상조사단 소속 검사의 서류 조작과 법무부 출입국 공무원들의 무단 출국 정보 조회를 알게 됐다. 하지만 이에 대한 수사는 대검 반부패부 등의 외압으로 중단됐다고 공익 제보자는 폭로했다. 그는 지난 3~21일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총 네 차례에 걸쳐 이 내용을 공익 신고했다.
/일러스트=김하경
그는 “아무리 나쁜 잘못을 저지른 죄인이라도 적법 절차에 따라 수사와 재판을 한 후 처벌해야 진정한 법치국가”라며 “적법 절차의 원칙은 선언적 법률에 그치지 않고 권력기관 종사자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제대로 작동하게 해야 한다”고 신고 취지를 밝혔다.
“왕이 나라의 주인이 되어서는 아니 되네/ 나라의 주인은 백성이어야 하네/ 지금의 조선은 백성의 것이 아닐세/ 백성을 위해 일하는 자들이/ 백성 위에 군림하고/ 자기 것을 지키려/ 패를 가르고 싸우는 자들/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왕 앞에 붙어 간언하고/ 자기와 다르다 하여 역도로 모는 그들/ 지금의 조선은 그들 것이네.”
영화 ‘조선 명탐정’에 나오는 대사다.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금 및 은폐, 수사 중단 외압을 폭로한 공익 제보자는 국가기관의 불법 혐의를 확인했는데도 수사를 중단하도록 외압을 받은 상황과 심경을 이 대사로 대신 설명했다.
2019년 4월, 수원지검 안양지청은 법무부가 수사 의뢰한 공익법무관의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출국 금지 정보 유출 사건을 수사했다. 그 과정에서 출입국심사과 직원들이 김 전 차관 정보를 불법 조회하고,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에 파견된 이규원 검사가 서류 조작으로 긴급 출국 금지를 했으며 차규근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이 이를 승인한 사실을 알게 됐다. 박상기 법무장관도 보고받고 묵인한 정황이 드러났다.
공익 제보자는 “충격적인 내용을 보고받은 후 긴 고민의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교수 출신 장관(박상기), 인권 변호사 출신 출입국본부장(차규근), 파견 검사(이규원)가 왜 이런 일을 했을까? 혼자 한 일일까? 수없이 의문을 갖게 하는 사건”이라고 했다.
안양지청은 그해 5~6월 휴대전화 17대를 포렌식하고 출입국심사과 직원들을 소환했다. 그러자 대검 반부패부·법무부 등 여러 경로로 수사 중단 압력이 왔다. 결국 그해 7월 “야간에 급박한 상황에서 관련 서류의 작성 절차가 진행됐고 동부지검장에 대한 사후 보고가 된 사실이 확인되어 더 이상의 진행 계획 없음”이라는 보고서를 남긴 채 수사가 중단됐다.
제보자가 그로부터 2년이 지나 공익 제보에 나선 것은 당시 판단에 대한 부끄러움과 후회 때문이었다. “공익 신고 과정에서 ‘검사 선서’를 읽어보았는데,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라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서와 같은 사명감과 용기를 갖고 허위 공문서 작성, 불법 정보 조회 등 혐의를 규명하여 단죄할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후에도 법치주의가 왜곡돼 가는 상황을 보며 “불법 출금이 선망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역할을 다하지 않아 생긴 사건인 만큼, 나 또한 책임 있는 자리에서 책무를 회피하면 안 된다고 공익 신고를 결심했다”고 했다.
그는 “(공익 신고 홈페이지의) ‘제출’ 버튼을 누르는 일이 제일 어려웠다”고 했다. 만감(萬感)이 교차했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버튼을 누르고 나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했다.
그의 제보는 큰 파장을 불러왔고, 법무부·대검 등에 대해 대대적 압수 수색까지 이어졌다. 그는 “두렵기도 하고, 막중한 책임감이 든다”고 했다. “수사 중단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생각이 없으며 앞으로 조사 과정에 협조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향후 재판 과정을 통해 한 사람(김 전 차관)에 대해 왜 국가기관 전체가 나섰는지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했다.
공익 제보 이후 일각에서 ‘김학의 비리 옹호’ ‘추미애 사단 찍어내기’로 보는 것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그는 “김 전 차관과 아무 인연이 없으며 고위 공직자로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그를 옹호할 생각도 전혀 없다”며 “오로지 진실을 찾아 인권침해를 바로잡고, 정당한 처벌을 바라는 마음으로 신고했다”고 밝혔다.
그는 “김학의 사건만은 법치주의와 적법 절차의 예외로 인정하자는 견해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런저런 핑계로 적법 절차 예외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결국 자신과 가족, 친지도 불법 수사로 구금되거나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절차와 관련한 부차적 논란에 불과하다”고 해명한 법무부 입장의 위험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선한 목적을 위한 절차 하자는 부차적'이라는 잘못된 지시가 정당화되면, 권력기관 종사자들이 증거를 조작해 구속영장을 허위로 작성하는 무법시대(無法時代)로 후퇴할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양은경 기자
01.26 2019년 그날 파견 검사는 헌법 12조를 훼손했다
공익 신고로 불거진 김학의 불법 출금의 진상
▲김학의 전 차관이 2019년 3월 23일 오전 비행기가 떠나고 난 뒤 111번 탑승구를 배경으로 서 있다. 동행자가 찍어 당일 김 전 차관이 휴대폰으로 본지에 보낸 것이다. 당사자 요청에 따라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으나 사태가 확산됨에 따라 21개월만에 공개한다. [사진 김학의]
그땐 정말 긴가민가, 알쏭달쏭했었다. 어느 쪽이 맞는지 궁금 답답했었다. 2019년 3월 23일 새벽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이 저지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규정에 없는 부당한 조치라고 소리 없이 ‘절규’했다. 법무부는 검사의 긴급 출국금지 요청에 따른 적법한 결정이라고 일축했다. 국민 대다수는 닷새 전 문재인 대통령이 ‘사회 특권층 비리’라며 철저 수사를 지시한 ‘별장 성접대’ 의혹 당사자보다는 법치행정 주무부처의 발표를 더 신뢰했던 것 같다. 지난해 말 국민권익위원회에 날아든 한 건의 공익신고가 묻혀있던 진상의 일단을 드러냈다. 축약하자면 ‘국가권력 남용에 따른 기본권 침해 의혹 사건’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살아있는 권력’ 수사 목록에 추가됐다. 이를 둘러싼 법철학적 논란, 피해자 겸 수감자 김 전 차관의 딜레마를 추적했다.
이륙 10분전 탑승구 앞에서 저지
21개월만에 ‘불법 출금’ 드러나
국가 권력에 의한 헌법 파괴 행위
재발않게 철저히 수사·단죄해야
지난주 늦은 밤 인천공항을 찾았다. 김 전 차관이 2019년 3월 22~23일 지나간 경로를, 시간대에 맞춰 따라가보기 위해서였다. 곧장 3층 출국장으로 올라가 발권 및 탑승수속 창구 L구역으로 갔다. 그가 3월 22일 금요일 밤 10시25분 태국 방콕행 왕복항공권(타이에어아시아항공 0시 20분발)을 구매한 곳이다. 항공사 직원은 “0시 20분발 비행편이 있긴 한데 코로나19 영향 등으로 월·화·목 운행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김 전 차관이 통과한 T1 4번 출국장 앞에는 시간이 늦어선지 인적이 없었다. 그 이상 들어갈 순 없었다. 표 없는 사람 출입금지가 당연한데도 가슴이 답답했다. 하물며 비행기표 사서 탑승을 학수고대하다 출발 10분 전에 긴급 출금 통보를 받고, 빈 좌석을 싣고 떠나가는 비행기를 속절없이 바라봐야 했던 이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그때 맞닥뜨린 건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거대 석상, 진격의 거인이었을 듯하다. 이때부터 김학의의 시간과 동선은 역방향으로 흘러갔다. 4시간여 갔던 길을 되돌아 결국 집으로 향했다. 가택 연금된 셈이다. 다만 불복의 흔적은 남겼다. 비행기가 떠나고 난뒤 탑승 게이트에 홀로 남은 자신의 사진을 찍어두고 공항 직원이 작성을 요구한 ‘출국취소 신청원’에 펜으로 X표시를 한뒤 사진을 찍어뒀다. 그는 같은 날 오전 5시께 기자와의 통화에서 “나중을 생각해 기록을 남겨둔 것”이라고 말했다.〈중앙일보 2019년 3월 28일자 25면〉
이틀 뒤 김 전 차관은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에 의해 수사 의뢰됐다. 조사단에 파견 갔던 이규원 검사가 긴급출금 요청서에 미리 기재(‘3·25일경 대검찰청에 뇌물수수 등 수사 의뢰 예정’)한 그대로였다. 이후 뇌물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차관은 1심에선 무죄가 선고됐으나 지난해 10월 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정의 실현 vs 명백한 불법
▲〈중앙일보 2019년 3월 28일자 25면〉
반전이 일어난 건 최근 국민권익위원회에 1, 2차 공익신고서가 접수되면서다. 신고자에 따르면 이규원 검사는 긴급출금 요청서에 가짜 사건·내사번호를 넣어 조작했다. 당시 법무부 장·차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과 휘하 공무원들, 대검 간부 등은 민간인의 출입국 정보를 사찰하거나 수사 중단 외압을 가한 공모자로 지목됐다. 사실이라면 검찰개혁과 정의를 입버릇처럼 외쳐오던 법무부·검찰 간부들이 공문서 위조·조작에 가담한 것이다.
그러나 법무부는 “당시는 중대한 혐의를 받고 있던 김 전 차관이 심야에 국외 도피를 목전에 둔 급박하고도 불가피한 사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정당성을 주장했다. 성범죄와 뇌물 혐의의 잠재적 피의자에 대한 사법 정의의 실현 측면에서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이에 판사 출신 방희선 변호사는 “김 전 차관이 선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그는 공항에 나갈 때 조사중인 사건이 전혀 없는 평범한 시민이었다”며 “그런데도 검사가 가짜 서류를 만들어 출국을 막은 것은 외국 같으면 중죄로 처벌받는다”고 잘라 말했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 신체의 자유(제12조)와 거주이전의 자유(제14조)인데, 이는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제한할 수가 없다”며 “불법 출금 사건은 굉장히 위험한 비민주적 사고에 기반한 헌법 파괴 행위”라고 강조했다. 헌법 제12조는 국가의 사법절차나 권력행사는 반드시 적법한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듀 프로세스(Due Process)’ 원칙이다. 안창호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김 전 차관 사례를 통해 드러난 사찰과 불법 긴급출금은 국민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기에 중차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선 “불법 긴급출금은 민간인을 불법 체포한 것과 유사한 인권 침해”라는 진단도 나왔다.
▲불법 출국금지 사건을 수사중인 수원지검이 지난 21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서 압수한 물품 상자를 들고 철수하고 있다. [뉴스1]
서울고등법원의 한 판사는 독일 사례를 들면서 “이 사안은 법철학적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예전에 독일에서 아이 유괴 사건이 발생했다. 공범 한 명을 검거한 경찰이 가혹행위를 통해 아이를 데리고 있는 다른 공범의 소재를 파악, 아이의 생명을 구했다. 범인을 폭행해서라도 아이의 생명을 구한 건 칭찬받을 일이다, 그렇다 해도 폭력을 용인해서는 안된다는 사회적 논란이 격렬했다.” 이 논란의 결말은? 경찰은 기소됐고 유죄 판결을 받았다. 최근 자택·사무실을 압수 수색당한 이규원 검사의 가짜 서류 작성과 관련해 수사기관 고위 관계자는 “정의감이 넘쳐 형사소송법의 룰(절차)을 무시하고 돌격했다가 부대 전체를 전멸로 이끈 형국”이라며 “정의감 있는 검사일수록 법적 절차 준수가 수사의 생명임을 더 잘 알고 있었을 법도 한데…”라고 안타까워했다.
피신고자 중 차규근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이 25일 “익명의 공익신고자가 검찰 관계자로 의심된다”며 공무상 기밀유출 혐의로 고발할 뜻을 비치면서 양측의 공방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차관이 비행기를 타고 출국했다면 자기주장대로 1~2주만에 귀국했을지, 아니면 해외 도피 행보를 벌였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설령 해외 도피의 길로 들어서 수사가 장기간 지연됐다 하더라도 국가 권력이 미래의 범죄를 상정해 기본권을 침해해선 안되는 것이었다. 공권력의 잘못은 가혹하리만치 철저하게 규명하고 단죄해야 한다. 그래야 기본적 인권이 다시 짓뭉개지지 않는다.
김학의의 딜레마…“진상 규명 반갑지만 대법원 선고에 영향 미칠까 걱정”
아이러니한 건 피해자인 김 전 차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시로 수원지검 형사3부(이정섭 부장검사)가 진행중인 불법 출금 의혹 수사 소식을 달갑게만 여기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인 김 전 차관을 1~2주에 한 차례씩 면회했다는 측근 변호사로부터 근황과 입장을 전해 들었다.
예상보다 불법 출금 관련 의혹이 빨리 터진 것 같다.
“맞다. 정권이 바뀌고 사건화될 줄 알았는데.”
김 전 차관은 어떻게 지내나.
“(구치소) 안에서 신문 꼼꼼히 보고 관련 기사도 (제가) 우편으로 보내줘 주의깊게 읽고 있다. 구치소에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와 면회가 제한되고 있다. 이번주는 다 막혔다.”
늦었지만 묻혔던 진상이 드러나게 돼 좋아하나.
“진상규명하고 싶은 마음은 있겠지만 겉으로 표현하는 것조차도 거북스러워한다. 이것 자체도 스트레스가 되는 것 같다.”
검찰 조사에는 협조할 계획인가.
“(국가권력 남용의) 피해자로 조사한다는 얘기가 수원지검에서도 나온다. 그런데 뇌물 사건에 대한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있어서 부담스러워 한다. 수사에 적극 협조했다가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나지 않을까 걱정한다. ‘원래 나쁜 사람인데 긴급 출금 갖고 떠드느냐’는 식으로 몰아갈까봐 우려하는 것이다.”
2019년 3월 비행기 타기 직전 출금 통보받고 되돌아왔을 때 상황은.
“그때 긴급출금 자체가 위법이라고 주장했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더라. 왕복 티켓 끊고 나갔는데 국민 여론에는 ‘도피 시도범’으로 찍혔다. 그네들(이규원 검사 등)도 당시 내부적으로 위법하다는 것 확실히 알고 있었다. 부랴부랴 수사 의뢰한 것만 봐도 그렇다. 신속하게 피의자 만들어야 했으니까.”
중앙일보 조강수 논설위원
01.29 '김학의 외압' 키맨 검사도 소환···"이성윤 진퇴 위기"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연합뉴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출금)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2019년 수사 때 ‘윗선 외압’을 규명할 핵심 인물인 당시 안양지청 수사팀 부장검사를 소환 조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향후 검찰의 칼끝이 이성윤 당시 대검찰청 반부패부장을 정조준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당시 반부패부장 이성윤, '진퇴' 위기 처했다
29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수원지검 수사팀(팀장 이정섭 형사3부장)은 최근 2019년 당시 출국정보 유출 사건을 수사했던 B 부장검사를 조사했다. B 부장검사는 당시 출국 정보 유출 사건의 마무리를 담당하며 해당 수사의 ‘책임자’ 역할을 했다.
수상한 사건 재배당, ‘외압’ 있었나
당초 김 전 차관에 대한 출국 정보 유출 사건의 주임 검사는 B 부장검사가 아니라 A 검사였다.
A 검사는 당시 “김 전 차관의 출입국 기록을 무단 조회한 법무부 출입국 직원 3명과 공익법무관 2명에 대해 무혐의로 처분하는 결정문을 쓸 수 없다”고 버티다가 사건이 재배당되면서 수사에서 배제됐다. 이어 불가피하게 B 부장검사가 수사를 마무리했다고 한다.
이 석연찮은 재배당 과정에서 당시 대검 반부패부의 ‘외압’ 의혹이 불거졌다. 지난 20일 자로 국민권익위에 제출된 2차 공익신고서에 따르면 대검 반부패부는 “긴급 출금 위법 여부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지 말고 수사를 종결하라”는 취지로 당시 수사팀을 압박했다.
이에 검찰은 지난 24일 A 검사를 불러 조사한 데 이어 26일엔 당시 안양지청 지휘부였던 C 검찰 간부도 조사하면서 당시 안양지청 수사·지휘라인 모두에게서 사건 재배당과 종결 경위에 대한 진술을 받았다. 또 26일에는 대검 반부패부를 압수 수색해 당시 안양지청 보고 자료 상당수도 확보했다고 한다.
이성윤 당시 반부패부장 겨누나
수원지검 수사팀이 2019년 안양지청 1차 수사 당시 외압 정황을 확보하면서 앞으로 수사는 이규원 검사의 불법 긴급 출금 요청과 차규근 출입국본부장의 승인 등과 관련한 “수사를 하지 말라”고 지시한 대검 반부패부 보고라인으로 향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미 검찰 안팎에서는 수원지검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조만간 소환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왔다. 공익신고자가 이 지검장을 수사 중단 외압을 행사한 책임자로 지목해 직권남용 혐의로 신고했기 때문이다. 이 지검장은 당시 수사 중단 외압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대검 반부패부장으로서 최종적인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된 셈이다.
이를 두고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당시 안양지청 수사팀은 외압을 받은 게 사실이라면 ‘직권남용 피해자’로도 볼 수 있다”며 “대검 반부패부의 종국적 의사결정자인 이 지검장에 대한 소환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뉴스1]
한편, 이 지검장은 취임 후 가장 많이 논란이 됐던 ‘검언유착’ 의혹 수사에서도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이 지검장 휘하의 형사1부(부장 변필건)는 채널A 사건과 관련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무혐의 의견을 수차례 전자결재로 상신했다. 변 부장검사를 필두로 수사팀 검사 전원이 이 지검장을 찾아가 결재를 요구하기도 했다. 지휘부가 반려한 결재를 수사팀이 계속 다시 올리며 집단 항명하는 건 검찰에선 극히 이례적인 상황이다.
반면 이른바 ‘검언유착’의 대립항 격인 ‘권언유착’ 의혹 수사의 경우 형사1부 수사팀이 줄줄이 기소 판단을 내렸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는 지난 27일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목표로 취재원을 협박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최 대표는 지난해 4월 페이스북에 이 전 기자가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 코리아 대표에게 “유시민 이사장에게 돈을 줬다고 해라. 그러면 유시민 인생은 종친다”"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끝없이 추락하고 다음 정권은 미래통합당이 잡게 된다" 등의 협박 발언을 했다고 썼지만 가짜로 판명난 것이다.
또 검찰은 MBC의 ‘최경환 전 부총리, 신라젠 65억원 차명투자 의혹’ 기사도 오보로 판단해 이를 MBC에 제보했던 이철 전 VIK 대표를 최 전 부총리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다.
이를 놓고 한 검찰 고위 간부는 “‘검언유착’이 아닌 ‘권언유착’이 진실임을 보여주는 결과”라며 “이 지검장이 설 곳이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김수민·정유진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02.01 이성윤·윤대진 협의, 불법출금 지시하고 수사 막았다
2019년 당시 尹 법무부 검찰국장·李 반부패부장 ‘은폐·외압 정황’
2019년 3월 당시 윤대진(현 사법연수원 부원장) 법무부 검찰국장과 이성윤(현 서울중앙지검장)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 협의해 이규원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파견 검사를 통해 김학의 전 차관을 불법 출국 금지한 것으로 31일 알려졌다. 또 몇 달 뒤 수원지검 안양지청이 ‘김학의 불법 출금’을 수사하려 하자 윤대진 국장과 이성윤 반부패부장이 외압을 행사해 수사를 저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피의자도 아닌 김 전 차관을 긴급출금하면서 출금 서류에 ‘가짜 사건 번호’를 붙인 불법이 이규원 검사의 단독 행동이 아니라 윤대진 국장과 이성윤 반부패부장의 ‘지시'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윤대진 이성윤
◇반부패부가 가로막고 반발하던 주임검사 교체
안양지청의 이 사건 수사는 애초 2019년 4월 법무부가 ‘공익법무관 등이 김학의 전 차관 측에 출국 금지 여부에 대한 정보를 사전 유출했다’며 수사 의뢰를 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안양지청 수사 라인 등 이 사건 내막을 잘 아는 관계자들에 대한 취재를 종합하면, 안양지청 수사팀은 수사 과정에서 법무부 출입국 공무원들이 김 전 차관 출국 정보를 무단 조회했고 이규원 검사가 출금 요청 서류에 ‘가짜’ 내사 번호를 적는 등 서류를 조작한 사실을 발견했다. 출금 자체가 불법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인지한 수사팀은 이 검사 등을 수사할 계획을 세웠다. 그해 6월 19일쯤 주임검사였던 안양지청 A 검사는 대검 반부패부 연구관 검사에게 이 검사의 범죄 혐의를 수원고검에 통보하겠다는 보고서를 보내고 통화도 했다. 그때까지 안양지청 지휘 라인도 ‘불법 출금’ 수사가 필요하다는 기류였다고 한다.
그러나 6월 20일쯤 이성윤 반부패부장이 안양지청에 대해 ‘이규원 검사 건을 수원고검에 통보하지 말라’고 지휘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 지시는 이성윤 부장이 아닌 다른 대검 관계자를 통해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6월 21일쯤 A 검사는 안양지청 상급자에게 “(대검에서) 고검에 통보하지 말라고 했다”는 말을 전달받았다. A 검사는 “지침상 검사 비위를 발견하면 관할 고검에 통보하게 돼 있다”고 반발했지만 무산됐다. 나흘 후 사건 재배당이 이뤄지면서 주임검사가 교체됐다.
◇윤대진, 인사 앞둔 안양지청 지휘부 압박 의혹
안양지청은 ‘고검 통보’를 포기하면서도 일단 출입국 공무원 소환 조사는 계속 진행했다. 그러자 윤대진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이 안양지청 지휘부에 전화해 “내가 이성윤 대검 반부패부장과 협의해서 이규원이 (김 전 차관을 출국 금지)한 것”이라며 “차라리 나를 입건하라”고 했다고 한다. 안양지청 수사팀은 이를 ‘출금 자체가 법무부 검찰국장과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협의로 이뤄졌으므로 이 검사를 수사하지 말라’는 압박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안양지청 수사팀 관계자도 최근 검찰 조사에서 그와 관련된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당시 상부로부터 ‘검찰국장과 반부패부장이 이규원 검사에게 긴급 출금을 시킨 것’이라고 전해 들었는데 지금 이규원 검사 한 명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이어서 가혹하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수사 저지) 외압은 은밀하고 조직적인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전했다. 법무부·대검의 부당한 압력이 당시 인사를 앞두고 있던 안양지청 지휘부에 집중적으로 가해졌다는 것이다. ’2019년 6월'은 검찰 인사를 한 달 앞두고 있었던 시점이었는데 윤대진 검찰국장은 검사 인사를 총괄하는 자리에 있었다. 이성윤 반부패부장 역시 정권과 직접 통하는 ‘실세’로 알려져 있었다. 이 관계자는 “안양지청도 피해자”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안양지청 수사는 2019년 6월 25일 법무부 출입국관리과 K서기관을 전화 조사했다가 법무부 검찰국과 대검 반부패부로부터 ‘김 서기관 통화 경위를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을 계기로 최종 중단됐다. 당시 K서기관은 검사에게 “수사하면 검찰도 다친다”고 했다고 한다. 2019년 7월 4일 자 안양지청 수사 보고서에는 대검 반부패부 요구에 따라 ‘출국 금지 서류가 야간에 급박한 상황에서 작성됐고 동부지검장에게 사후 보고됐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이런 사실은 공익 신고자가 지난 21일 이성윤 검사장의 ‘수사 외압’을 추가로 공익 신고한 이후 드러났다. 향후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과 청와대 민정수석실 등 ‘윗선’의 불법 출금 관여 여부도 수사 대상이 될 전망이다. 윤 검사장은 본지의 해명 요청에 “사실무근이고 수사중인 사안이라 할 말이 없다”고 답했다.
조선일보 양은경 기자
03.03 ‘김학의 불법출금’ 현직 법무부 간부에 첫 영장 청구
민변출신 차규근 출입국본부장
‘김학의 전 법무차관의 불법출금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수원지검이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에 대해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2일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청구한 첫 구속영장이었다. 수사팀은 차 본부장의 신병이 확보되면 불법출금과 관련해, 법무부 내 ‘윗선’과 청와대 관계자 등으로 수사를 확대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수사팀이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차 본부장은 변호인을 통해 수원지검 검찰시민위원회에 검찰수사심의위 소집을 신청했다.
민변 출신인 차 본부장은 2019년 3월 김 전 차관에 대한 긴급 출국금지를 승인했던 인물이다. 2019년 3월 당시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 이규원 검사는 ‘가짜’ 서울중앙지검 사건번호와 동부지검 내사번호를 김 전 전 차관 출금요청 서류에 기재한 것으로 드러나 있다. 수사팀은 차 본부장에 대해 그 같은 법적 하자를 알고도 출금을 승인한 혐의를 두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작년 12월 이 사건 공익신고인은 차 본부장을 직권남용 및 배임 혐의로 국민권익위 등에 신고한 바 있다.
그러나 차 본부장은 “허위 번호인 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규원 검사를 믿고 절차에 따라 출국금지를 승인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면서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은 차 본부장에 대해 ‘김학의 불법 사찰 혐의’도 적용할 것이라고 한다. 당시 법무부 출입국심사과 공무원들은 김 전 차관 긴급출금을 앞두고 177차례에 걸쳐 김 전 차관의 이름, 생년월일, 출입국 규제 정보 등이 포함된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조회했다. 특히, 검찰은 차 본부장이 테러리스트에게 적용되는 ‘승객정보 사전분석 시스템’으로 김 전 차관의 출국 동향을 감시한 것은 불법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차 본부장이 검찰수사심의위 소집을 신청한 것에 대해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시간 끌기를 하는 것 같다”는 지적이 나왔다. 수사심의위는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에 대해 수사 계속 또는 공소제기 여부를 심의하는 기구다. 다만, 수사심의위 결정은 일종의 ‘권고’ 사안으로 법적 구속력은 없다.
조선일보 김아사 기자
03월 29일 [단독]‘김학의 조사’ 이규원, 윤중천 면담때 靑과 통화
檢, 서부지검압수수색 기록확보
‘靑 기획 사정’ 뒷받침 할 증거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 접대 의혹(김학의 사건)에 대한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 조사 과정에서 위법이 있었는지 수사해온 검찰이 당시 조사단 소속 검사가 청와대 인사와 주요 상황이 발생했을 때마다 서로 전화통화 등 연락을 주고받은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변필건)는 지난달 23일 서울서부지검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대검 조사단 8팀에서 김학의 사건을 전담했던 이규원 검사(현 공정거래위원회 파견)와 이광철 청와대 행정관(현 민정비서관)이 수차례 연락을 취했던 통신기록을 확보했다. 통신은 2018년 11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1년여 동안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근무하면서 ‘경찰총장’으로 불렸던 윤규근 총경이 연루된 일명 ‘버닝썬 사건’과 김학의 사건 재조사가 진행 중인 시기와 맞물려 이뤄졌다. 서울서부지검은 2019년 10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윤중천 별장 접대 의혹 관련 언론사 고소 사건을 수사하며 통신기록을 확보했었다. 검찰은 이 검사가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를 통해 주고받은 쪽지와 이메일도 입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검찰은 통신기록이 이 검사가 6차례 면담에 걸쳐 작성한 윤중천 면담보고서에 기재된 면담 진행 날짜, 시간대와 상당 부분 겹친다는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통화는 윤 씨에 대한 면담 시작 전과 후로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고 한다. 이에 따라 수사팀은 김학의 사건의 핵심 인물인 윤 씨 등의 면담 전반에 걸쳐 이 비서관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김학의 사건 재조사 과정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관여했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검찰은 윤 총경을 지난 25일 불러 버닝썬 사건으로 조사받았을 당시의 휴대전화 자료에 대한 포렌식 참관 조사도 진행했다.
윤정선 기자 wowjota@munhwa.com
03월 29일 [단독]윤중천 면담 시작과 끝날때 靑과 통화…‘버닝썬’은 묻혀갔다
■ 檢, 김학의 수사 통화기록 확인
‘버닝썬-경찰유착’ 의혹 커지자
‘김학의 사건’ 띄워 악재 잠재워
이광철, 윤총경과 텔레그램서
“진작 ‘檢-警 대립’ 만들었어야”b>
검찰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 접대 의혹에 대한 과거사 진상조사단 위법조사와 관련해 ‘청와대의 기획’ 여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배경에는 ‘합리적 의심의 증거’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최소 6차례에 걸친 진상조사단의 윤중천 면담 조사 때마다 번번이 이규원 검사와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당시 행정관) 사이에 통신기록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에 따라 ‘윤중천과 김학의’ 사건을 부각시켜 정권의 악재였던 ‘윤규근 총경과 버닝썬’ 이슈를 자연스럽게 묻으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29일 문화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변필건)는 지난달부터 서울서부지검과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 수원지검 등을 증거기록 확보 차원에서 압수 수색해 이규원 검사와 윤 총경의 통신 내역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이번 의혹의 핵심 인물인 당시 진상조사단 소속 이 검사가 면담보고서를 언론 등에 유출하는 과정 전반에 실제 이 비서관 등 청와대 인사가 개입한 정황이 대거 쏟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2019년 3월 14일 민갑룡 당시 경찰청장이 국회에서 “별장 동영상 속 남성이 김학의가 맞다”고 발언한 전후로 청와대발 ‘기획’이 집중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비서관은 민 전 청장의 발언 직후 텔레그램 대화에서 윤 총경이 “(민 청장이) 이 정도면 발언을 잘하지 않았느냐”고 하자 “더 세게 해야 했다. 검찰과 (경찰이) 대립하는 구도를 진작에 만들었어야 했는데” 등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윤 총경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파견 근무를 마치고 경찰청 인사담당관으로 영전해 있던 도중 서울 강남 클럽 버닝썬과의 유착 의혹에 휘말리면서 첫 경찰 조사를 하루 앞둔 상태였다. 이로부터 나흘 뒤인 3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김 전 차관 사건 등을 지목하며 철저한 수사를 지시해 버닝썬과 경찰 유착에 쏠려 있던 사회적 관심은 급격하게 김 전 차관 사건으로 쏠리게 됐다. 당시 버닝썬 사건에 민정수석실 파견 경력이 있던 윤 총경이 배후로 드러나면서 사건이 청와대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던 시기였다.
검찰은 이 검사가 주도적으로 작성했던 당시 면담보고서가 상당 부분 왜곡되면서 특정 언론에 실체가 불분명한 전·현직 검찰 관계자 비리 정황이 흘러간 배경에 대해서도 청와대 개입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미 압수물 분석과 관련자 진술 등을 확보한 만큼 의혹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이 비서관과 민 전 청장 등 당시 경찰 수뇌부에 대한 소환조사를 보궐선거 이후 본격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일보 이희권·윤정선 기자
04.15 검찰 ‘김학의 불법출금’ 이성윤 기소한다
‘수사중단 외압’ 직권남용 혐의… 검찰총장 후보 구도에 큰 영향
▲검찰이 김학의 전 법무차관 불법 출금 사건과 관련해 ‘수사 중단 외압’의 핵심 피의자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불구속 기소하기로 결론 내린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차기 검찰총장 유력 후보로 거론돼 온 이 지검장 기소는 총장 인선 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14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대검찰청은 이 사건 수사팀인 수원지검 형사3부(부장 이정섭)의 의견대로 이 지검장에 대해 ‘기소’ 결론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지검장은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재직 당시인 2019년 6월 수원지검 안양지청이 ‘김학의 불법 출금’ 혐의로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의 이규원 검사를 수사하려 하자 수사 중단 압력을 행사한 혐의(직권남용)를 받고 있다.
고위 공직자 비리 사건을 지휘하는 반부패·강력부(부장 신성식)도 이 지검장 기소는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의 소환 통보를 네 차례 거부하며 ‘공수처 관할’을 주장했지만 공수처는 지난달 12일 이 사건을 수원지검으로 재이첩했다.
검찰은 이 지검장이 차기 총장 후보군에 포함된 만큼, 조만간 법무부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의 후보 추천 절차가 끝난 직후 이 지검장을 기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 절차에 영향을 미쳤다는 논란을 피하는 차원이라고 한다.
아울러 총장후보추천위가 이 지검장을 총장 후보 중 하나로 추천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총장 후보로 거론되는 김오수 전 법무차관 역시 2019년 3월 ‘김학의 불법 출금’을 보고받은 일로 수사 대상에 올라 정권이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구본선 광주고검장, 양부남 전 부산고검장 등이 부상하고 있다고 한다. 그간 법무부·검찰 갈등 과정에서 균형감을 보인 조남관 총장 직무대행이 검찰 내부 신망은 가장 높지만, 윤석열 전 총장 징계 반대 등으로 여권 눈 밖에 났다는 평가가 많다.
한편 2019년 3월 23일 새벽에 이뤄진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금은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당시 선임행정관)이 사실상 총지휘했으며 그날 박상기 법무장관과 문무일 검찰총장은 보고를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이 비서관은 수원지검 수사팀이 허위 공문서라고 결론을 내린 ‘긴급출국금지 요청서’ ‘긴급출국금지 승인요청서’ 등 두 건의 출금 서류를 휴대전화를 통해 실시간으로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의 이규원 검사로부터 전달받았다고 한다. 이 검사는 당시 대검 과거사진상조사위 소속으로 이 비서관과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으며 허위 출금 서류를 작성해 출입국 당국으로 보냈다.
수원지검은 최근 이 비서관을 직권남용의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비서관 ‘지시’에 따라 긴급 출금을 실행한 이규원 검사와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 정책본부장은 지난 1일 직권남용 등 혐의로 이미 기소됐다.
법조계에선 이 비서관이 출금 서류를 전달받은 것이 그의 혐의를 뒷받침하는 유력한 증거로 보고 있다. 당시 이규원 검사가 작성해 이 비서관과 법무부 출입국 담당자에게 보낸 ‘긴급출국금지 요청서’의 경우, 김학의 전 차관이 이미 무혐의 처리된 서울중앙지검 사건 번호가 적혀 있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피의자가 아닌 사람에 대한 긴급출국금지는 혐의가 없는 사람을 긴급 체포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가담한 사람은 직권남용의 공범”이라고 했다.
긴급출금의 경우 출금 후 6시간 이내에 법무장관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뒤이어 이 검사가 작성한 ‘긴급출국금지 승인요청서’에는 서울동부지검장의 관인 대신 그의 대리인으로 표시된 이 검사의 서명이 적혔다. 이 검사가 대리인을 사칭한 것이다. 또 당시까진 피의자가 아니었던 김 전 차관은 피의자로 기재돼 있었다.
이 외에도 이 비서관은 김 전 차관이 출국을 시도했던 2019년 3월 22일 밤 10시에서 자정 무렵 차규근 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 검사가 출금과 관련해 연락이 갈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 검사와의 통화에선 “김 전 차관을 출국 금지해야 한다. 법무부 대검과 이야기가 됐다”고 했다고 한다.
반면 대검의 경우, 일부 간부에 알렸을 뿐 문무일 총장에게는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부의 경우는 박상기 장관이 연락이 닿지 않아 김오수 차관과 이용구 법무실장에게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검사와 차 본부장의 공소장에는 두 사람의 진술과 포렌식 결과 등을 기초로 이 비서관이 출금 전반을 지휘한 정황이 재구성됐다.
이광철 비서관은 이규원 검사와 함께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변필건)가 수사 중인 ‘김학의 성접대 기획사정 의혹’ 사건의 핵심 수사 대상이기도 하다. 중앙지검은 이 검사가 2018년 말~2019년 초 건설업자 윤중천씨를 면담한 뒤 그 내용을 조작한 보고서를 작성해 친여 언론에 흘린 혐의를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비서관이 이 과정에도 개입한 것으로 보고 소환 조사를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일보 양은경 기자
04월 15일 불법출금 수사 방해로 기소되는 이성윤 당장 사퇴해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권력 범죄도 원칙대로 수사하겠다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맞서 어떤 부당한 행태를 보였는지는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그런 이 지검장을 수원지검이 기소하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드러난 행태만 봐도 당연한 일이다. 앞으로 또 어떤 해괴한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서울중앙지검장이 기소되는 것은 초유의 일로, 문재인 정권 검찰의 난맥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지검장은, 2019년 6월 수원지검 안양지청이 김학의 전 법무차관 불법 출국금지 혐의로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의 이규원 검사를 수사하려 하자 ‘수사 중단’ 압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수원지검은 그동안 이 지검장에게 소환 조사를 받으라고 네 차례나 통보했으나, 모두 불응했다. 검찰 핵심 인사가 오히려 공권력을 무시한 것이다. 일반 범죄자가 그렇게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심지어 본인 사건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해 실제로 이첩됐으나, 정작 김진욱 공수처장 등의 ‘조사 아닌 대책회의’ 의혹만 일으키고 다시 수원지검으로 재이첩됐다. 이후에도 이 지검장이 계속 조사에 불응하자 수원지검과 대검은 주변 수사만으로도 혐의를 입증할 수 있다고 보고 불구속 기소를 선택한 것이다.
이 지검장은 대학 선배인 문 대통령 집권 뒤 ‘친정권 호남 인맥’의 대표적 인물로 승승장구했다. 급기야 검찰총장 물망에도 올랐다. 이 때문에 검찰은 부득이 법무부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 절차가 끝난 뒤 기소할 예정이라고 한다. 공인으로서 일말의 염치라도 있다면, 법치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이라도 있다면 당장 사퇴해야 한다. 늦었지만 보완 수사에라도 협조해야 한다. 김 전 차관 불법 출금을 사실상 지휘한 것으로 드러나는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도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은 이 비서관을 당장 경질함으로써 ‘법 앞의 평등’ 시늉이나마 해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4.21 김학의 사건 조사단의 조작 의혹 충격적이다
최근 언론에 공개된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의 ‘김학의 전 법무차관 조사 보고서’ 내용과 이 문건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조사단 관계자의 행태는 충격적이다. 활동에 참여했던 박준영 변호사가 폭로한 내용엔 이 안에서 진행된 반인권적 행각이 상세히 담겼다.
조작과 인권 침해, 언론플레이 구태
이러고도 검찰 개혁 말할 자격 있나
현 정부가 검찰 개혁을 추진하면서 앞세운 명분은 피의사실 공표나 몰아가기 수사 같은 인권 침해 관행의 단절이다. 그러나 이번에 드러난 조사단의 민낯은 이들이 얼마나 악의적으로 조사 대상자를 다뤘는지를 보여준다. 한 전직 검찰 고위 간부가 “어떤 검사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수사를 몰고 가는 걸 본 일이 없다”고 탄식할 정도다.
김 전 차관의 비리는 엄벌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인권 측면에서 보면 이번 폭로로 드러난 조사단의 일탈 또한 심각하다. 김 전 차관에게 뇌물을 준 윤중천씨 별장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왔다든가,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이 윤씨의 접대를 받았다는 언론 보도가 조사단의 이규원 검사가 작성한 보고서에서 비롯된 정황이 짙어졌다. 확인도 안 된 내용이 보고서에 담기고 언론사에 흘러간 의혹은 간단히 넘길 사안이 아니다. 조사 대부분을 담당한 검사의 의견과 달리 성폭력으로 몰아갔다는 대목도 우려스럽다.
피의사실 공표 금지와 포토라인 폐지는 현 정부가 강행해 온 개혁과제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최근 페이스북에 “피의사실을 공표하면 저는 노무현 대통령님이 떠오른다”고 적었다. 추미애 전 장관은 피의사실 공표 금지를 이유로 국회가 요구한 ‘청와대 선거 개입’ 사건 공소장 전문 제출을 거부했다. 조국 전 장관 가족을 위한 조치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피의자 공개 소환을 폐지했다.
이번에 드러난 조사단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은 이들이 공개소환을 언론플레이용으로 이용했음을 보여준다. 이규원 검사가 “내일 (김학의) 공개소환 때릴까 검토 중입니다. 어차피 안 나오겠지만” “연락이 안 닿을 수도 있으니 뉴스로 알려드릴 수밖에요”라고 올리자 다른 팀원은 “내일 15시 김 전 차관을 소환 조사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알렸습니다”라고 공유했다. “하하하 내일 카메라 엄청 올 건데”라는 한 팀원의 얘기에 이 검사는 “기자들에겐 좀 미안한 감이 있습니다(김학의가 안 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라고 답했다. 황당한 언행이 아닐 수 없다. 독재 시절부터 이어져 온 잘못된 수사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조사단이 더 심각한 인권 침해와 불법행위 논란에 휩싸였다. 검찰이 앞서 기소한 이 검사 등의 김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 관여 혐의에 더해 새롭게 드러난 명예훼손과 허위공문서 작성 의혹을 엄중히 수사해야 한다. 우리 편 봐주기로 슬쩍 넘어가려 한다면 이번 과거사위를 재조사하는 또 다른 과거사위의 등장을 예고할 뿐이다.
중앙일보 사설
05.07 “김학의 무조건 출금하기로 돼 있다” 이광철 ‘지휘’ 드러난 그날
이광철 전화 받은 차규근, 이규원에게 “이검사님 큰일 맡으셨다”
▲2019년 김학의 전 차관을 불법 출국금지한 혐의로 기소된 이규원 검사와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 정책본부장 재판에서 이광철 민정비서관(당시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의 관여 정황이 드러났다.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 27부 (재판장 김선일)심리로 열린 두 사람에 대한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은 이들의 ‘직권남용’ 혐의와 관련 김 전 차관 출국금지일인 2019년 3월 22일~23일의 상황을 설명했다.
차 본부장은 22일 밤 차 본부장은 출입국 직원으로부터 김 전 차관이 다음날 0시 20분 태국으로 출국한다는 사실을 보고 받았다. 테러범 등을 대상으로 한 ‘중점관리대상 알람정보시스템’을 이용해 김 전 차관의 항공기발권 사실이 자동으로 통보되도록 등록한 결과였다.
차 본부장은 그 무렵 청와대 행정관이던 이 비서관과 통화했다. 이 비서관은 “과거사 진상조사단 파견 나간 검사(이규원 검사)가 있는데 곧 당신에게 연락할 것”이라며 이 검사의 연락처를 알려줬다. 그 직후 이 비서관은 이 검사에게 전화해 “공항에 나간 법무부 직원이 김 전 차관의 출국(시도를) 확인했다. 무조건 (관련 서류를) 받아서 출금하기로 얘기가 돼 있으니 네가 빨리 출금요청서를 보내 주면 좋겠다.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 본부장이 연락해 소통하며 네가 실무조치 취하는 것을 돕기로 법무부와 얘기됐다”고 했다.
사법연수원 동기(36기)인 두 사람은 같은 로펌에서 일했으며, 이 비서관이 이 검사보다 5살 많다. 그가 서로 모르는 사이였던 이 검사와 차 본부장을 조율해 출국금지 과정을 조율한 것이다.
이 검사의 전화를 받은 차 본부장은 “이 검사님이 어려운 일 맡으셨다”며 “사진으로 찍어서 (긴급출금) 요청서를 전송해 주면 접수해 처리하겠다”고 했다. “검사님도 수사기관이니 검사님 이름으로 하면 된다. 원래 팩스로 공항에 보내야 하는데 사무실 가서 요청서 작성해 찍어서 내 휴대전화로 보내 주면 접수된 것으로 처리해 주겠다”고도 했다. 차 본부장은 출입국 직원에게 “검찰에서 김학의 출금요청서가 들어올 텐데 들어오면 즉시조치 이뤄지게 전산입력하라”고 했다. 이후 이 검사는 출금요청서에 무혐의 처리된 중앙지검 사건번호를 적었고 승인요청서에는 존재하지 않는 동부지검의 가짜 사건번호를 적었다.
두 사람에게는 서류조작이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 외에 ‘직권남용’ 이 공통적으로 적용됐다. 피의자가 아니어서 긴급출금 대상이 될 수 없었던 김 전 차관에게 권한을 남용해 불법 출국금지를 했다는 혐의다. 청와대 선임행정관이던 김 전 차관을 조사하던 대검 진상조사단 소속 이규원 검사와 출입국 실무 최고책임자인 차 본부장 사이를 조율하는 등 사실상 출금 과정 전반을 지휘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이 비서관은 지난달 24일 수원지검에서 직권남용 혐의의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를 받았다. 한 검찰 관계자는 “법령상 청와대에서 출국금지에 관여할 이유도, 권한도 없다”며 “선임행정관이던 이 비서관도 독자적으로 판단해 행동했다기보다는 ‘윗선’의 지시에 따랐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검찰 “공수처가 쥐고 있는 이규원 사건, 같이 재판해야 “
7일 재판에서 검찰은 중앙지검에서 수사중이다 공수처로 이첩된 이 검사의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가 이사건에 병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형사 1부에서 김 전 차관 관련 허위 내용의 면담보고서를 작성해 특정 언론에 흘렸다는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 조사를 받고 있었다. 중앙지검은 지난 3월 17일 검사 범죄 의무 이첩 조항에 따라 이 사건을 공수처로 보냈다.
하지만 공수처는 사건을 검찰에 돌려 보내지도, 직접 수사하지도 않은 채 50일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때문에 중앙지검은 역시 면담보고서 작성 과정에도 관여한 의혹을 받는 이광철 비서관의 소환조사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공수처의 사건처리 지연을 두고 이 비서관과 김진욱 공수처장이 고교 동문이라는 사실도 거론된다. 두 사람의 관계가 사건 처리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중앙지검에서 수사하던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은 그 일부 내용이 이미 기소된 수원지검 사건 공소장에 ‘전제사실’로 들어가 있다. ‘별장 성접대’로 국민적인 지탄을 받던 김 전 차관에 대해 허위 내용의 면담보고서가 만들어졌고 결국 김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공수처가 쥐고 있는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까지 법원 심판대에 올라야 이사건의 실체가 밝혀진다는 게 검찰 입장이다.
조선일보 양은경 기자
05.08 안양지청 ‘이규원 보고서' 보니...이성윤 주장은 다 거짓말
본지, 김학의 불법출금 보고서 입수
‘2019년 김학의 불법 출금 수사 무마’ 혐의를 받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등 당시 대검 반부패부 관계자들은 “2019년 6월 안양지청 수사 보고서는 이규원 검사 비위 발생을 알리는 것일 뿐 수사 개시 승인 요청은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해 왔다. 그러나 7일 본지가 해당 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이 지검장(당시 반부패부장) 등의 주장은 상당 부분 사실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김지호 기자
본지가 입수한 안양지청 보고서는 ‘과거사 진상조사단 파견 검사 비위 혐의 관련 보고’라는 제목의 5쪽짜리 문건이다. 안양지청 형사3부 A 검사가 2019년 6월 18일 자로 작성해 다음 날 대검 반부패부에 보고했던 이 보고서에는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 이규원 검사가 2019년 3월 23일 허위 출금 서류를 작성해 김학의 전 차관을 불법 출금한 혐의 내용이 상세히 담겼다.
이 보고서는 이규원 검사가 긴급 출금 승인 요청서를 작성하면서 한찬식 서울동부지검장 직인 대신 자신이 서명한 것, 허위 사건 번호인 ‘서울동부지검 2019년 내사 1호’를 기재한 것에 대해 모두 범죄 혐의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수원고검장이 관할 지검 검사장에게 입건 지휘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면서 범죄가 이뤄진 장소를 ‘경기도 과천시 소재 정부과천청사 출입국 심사과’로 기재했다. ‘과천’의 관할 검찰청은 안양지청으로 이규원 검사 혐의를 포착한 안양지청이 수사하겠다는 뜻이다. 이 내용에 대해 한 관계자는 “이 정도 내용이면 ‘수사 개시 승인 요청이 없었다’는 이 지검장 등의 주장은 말이 안 되고, 수사 착수를 지시하지 않은 것 자체가 직권남용”이라고 했다.
이 지검장은 또 최근 입장문에서 “해당 보고서는 일선 청에서 대검에 보고하는 양식이 아니라 검사 개인 명의의 보고서이고 당시 안양지청에 확인한 결과 안양지청 수사팀과 지휘부 사이에 의견 대립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보고서'는 당시 안양지청 부장·차장·지청장 등 보고 라인을 거쳤으며 13차례 내부 협의와 수정을 거친 최종본인 것으로 전해졌다. 원래 보고서 제목은 ‘과거사 진상조사단 파견 검사의 범죄 사실 확인 보고’였는데 이 과정에서 조정됐다고 한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이성윤 검사장이 외압을 가하기 이전에는 수사 필요성에 대한 이견이 안양지청 내부에 전혀 없었다”고 했다. 반부패부 간부를 지낸 한 법조인은 “안양지청 보고서는 통상적으로 쓰이는 양식이고 검사가 대검에 보고했으면 그 자체로 공식 보고인 것”이라고 했다.
또 보고서와 본지 취재에 따르면, 이성윤 지검장은 안양지청 보고서를 받은 다음 날 동향 후배인 배용원 당시 안양지청 차장에게 전화해 “긴급 출금은 대검과 법무부가 협의해서 한 일이고 동부지검장도 추인했으니 문제가 없다”며 제동을 걸었고 이로 인해 안양지청이 대검 감찰본부와 수원고검에도 보고를 못 한 정황도 드러났다.
보고서에는 ‘검찰공무원의 범죄 및 비위 처리 지침 2조에 따라 대검 감찰본부 및 수원고검에 각 보고’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를 본 당시 반부패부 모 연구관은 A 검사에게 전화해 “벌써 대검 감찰부와 수원고검에 보고했느냐”고 물었고 A 검사는 “아직 안 했다. 반부패부 허락을 맡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대검 감찰본부 관계자는 본지 확인 요청에 “대검 반부패부가 검사 비위를 인지하면 우리 부서로 넘겨야 하는데 당시 그런 내용을 전혀 전달받지 못했다”고 했다.
안양지청의 감찰본부 보고가 이뤄지지 않은 점을 확인한 당시 대검 반부패부 관계자들은 안양지청에 대해 ‘전방위 압력’을 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지검장뿐 아니라 반부패부의 모 과장은 이현철 당시 안양지청장에게 “고검 통보 보고서는 대검에서 보고받지 않은 것으로 하겠다”고 통보했다는 것이다. 결국 안양지청이 2019년 7월 4일 더 이상 수사 진행 계획이 없다는 취지의 수사 결과 보고서를 대검에 보내면서 상황은 일단락됐다.
한편, 이 지검장은 “당시 (문무일) 총장에게 안양지청 6월 18일 자 보고서를 보고했다”고 주장했지만, 문무일 전 총장은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수원지검에 ‘해당 보고서 내용은 보고받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양은경 기자
05.14 檢 "이성윤 관여 탄로날까봐…'이규원 비위' 총장 보고 안했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한 수원지검 수사팀(팀장 이정섭 부장검사)은 이 지검장이 2019년 3월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금 과정에 직접 관여했기 때문에 3개월 뒤 수원지검 안양지청 수사에 3차례에 걸쳐 외압을 가했다고 봤다. A4용지 16쪽 분량의 '피고인 이성윤' 공소장에 적힌 핵심 요지다.
'피고인 이성윤' 16쪽 공소장 보니
전국 검사들이 접속할 수 있는 수사결정시스템을 통해 13일 공소장이 공개되자 검찰 내부에서는 “주요 수사를 이끄는 중앙지검장이 노골적으로 수사 외압을 행사하고도 그 직을 유지하려 하는가”라는 개탄이 터져나왔다.
李, '이규원 비위' 문무일 총장에 보고 누락
중앙일보 취재에 따르면 이 지검장 공소장에는 2019년 6, 7월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이던 이 지검장이 안양지청 수사팀의 수사를 방해한 상황이 낱낱이 적시돼 있다.
안양지청은 2019년 6월 19일 이규원 검사의 범죄사실을 적시한 ‘과거사 진상조사단 파견검사 비위 혐의 관련 보고’를 검찰 내부통신망과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반부패강력부에 보고했다. 당시 보고서에는 김 전 차관의 출국 정보 무단 유출 의혹을 수사하던 중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이던 이규원 검사가 긴급 출금 승인요청서 등에 서울동부지검장의 자격을 도용하고 허위 사건번호를 기재한 사실이 담겨있었다.
"이 검사의 자격모용공문서작성 등 범죄 혐의에 대해 검찰총장과 수원고검장에게 보고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이규원의 범죄 혐의를 수사하고 출입국본부 관계자들의 문제점도 확인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다음 날인 6월 20일 보고서를 전달 받은 이 지검장은 '검사 범죄 등 비위에 관한 검찰총장 보고 의무'를 어기고 문무일 당시 총장에게 "'이규원 검사의 범죄 혐의 발견과 이에 따른 검찰총장 및 수원고검장에 대한 보고, 이 검사 입건 후 추가 수사 진행 계획' 등 보고서 핵심 내용을 의도적으로 누락했다"고 한다.
문무일 총장 보고 누락과 관련해 이 지검장은 지난 10일 열린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서 “수사가 미진해 문 총장과의 대질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주장했다고 한다.
왜? “이규원 범죄 수습에 적극 관여한 때문”
검찰은 그 이유를 이 지검장 스스로가 이규원 검사의 범죄 행위 수습에 가담했기 때문에 그 사실이 탄로날까봐 염려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이 지검장은 김 전 차관 불법출금 다음 날인 지난 2019년 3월 23일 오전 7시 당시 서울동부지검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규원이 긴급 출금하는 과정에서 임의로 사용한 서울동부지검 내사 사건번호를 추인해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같은 날 대검 조직범죄과장에 "김학의에 대한 긴급 출금의 적법성을 검토하라"며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하는 등 불법 출금을 수습하는데 적극 관여했기 때문이었다.
검찰은 이 지검장 역시 그 불법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총장 승인 하에 수사가 본격화된다면 본인의 관련 사실까지 드러나게 될까봐 염려해서 보고를 의도적으로 누락한 것이라고 공소장에 적었다.
▲2019년 3월 22일 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인천공항에서 태국행 비행기에 탑승하려다 긴급 출국 금지돼 공항에서 나오고 있다. 최근 이 과정이 법무부와 검찰의 서류·기록 조작 등에 의한 불법적 출금이란 공직 제보가 있어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JTBC 캡처]
조국 당시 수석부터 시작된 수사 중단 연쇄 요구
검찰은 또 같은해 6월 20일 이규원 검사와 관련된 보고 및 후속 수사를 가로막기로 마음먹은 이 지검장이 ▶김모 반부패과장은 이현철 안양지청장에게 ▶이 지검장 자신은 배용원 안양지청 차장검사에게 이 검사의 범죄와 관련된 수사를 가로 막도록 지시했다고 봤다.
이 지검장은 배 차장검사에 전화해 "김학의 출금은 법무부와 대검이 이미 협의된 사안이고 서울동부지검장도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며 이 검사의 범죄혐의 발견 사실을 검찰총장과 수원고검장에 보고하지 못하게 하는 동시에 관련 수사를 더이상 진행하지 못하게 하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당시 수사지휘과장에겐 이현철 지청장에 같은 내용을 전달하도록 지시했으며 실제 당시 과장이 이 지청장에 "안양지청 차원에서 해결해달라. 이 보고는 안 받은 것으로 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공소장에 이규원 검사의 수사 중단의 요구의 최종 윗선을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지목하기도 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이 검사는 그 무렵 자신이 수사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사법연수원 36기 동기로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당시 선임행정관)에 이 사실을 알렸다. 이 비서관은 다시 이를 상급자인 조국 당시 민정수석에 전하면서 “이규원 검사가 곧 유학 갈 예정인데 검찰에서 이규원 검사를 미워하는 것 같다. 이 검사가 수사를 받지 않고 출국할 수 있도록 검찰에 얘기해달라”라고 말했다. 조국 수석은 이 내용 그대로 윤대진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에게 전했고 윤 검찰국장은 이현철 안양지청장에 "이규원 검사가 곧 유학을 가는데 출국에 문제가 없도록 해달라"고 말하면서 조국 수석의 요구사항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또 대검과 법무부는 수사팀이 법무부 출입국본부 A 직원과 B 서기관에 대해 출금의 불법성에 대해 조사하자 경위서를 내라고 지시하기도 했다.(7월 1일자 '수사의뢰 대상자 A 조사 경위 및 B 통화 경위 보고서').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이 차규근 출입국본부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뒤 윤대진 당시 검찰국장을 불러 "나까지 조사하겠다는 것이냐"라며 강하게 질책하며 경위 파악을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이현철 지청장은 같은 해 7월 2일 배용원 차장검사 및 수사팀과 회의에서 "법무부와 대검에서 긴급 출금 위법여부에 대해선 수사를 하지 못하게 하면서 또 경위서를 작성하라고 하고 대검은 빨리 사건을 마무리하라고 독촉하니 더이상 수사를 못하겠다. 수사의뢰된 부분만 정리해 사건을 마무리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결과 보고서에 추가된 문구…“더 이상의 진행 계획 없음”
결국 이같은 수사 외압 끝에 안양지청은 7월 3일 “수사의뢰 대상자 전원 불기소처분 하겠다”는 취지의 수사결과 보고서를 작성해 대검 반부패강력부에 보고했다.
이 지검장은 자신의 '범죄 혐의 발견 보고 금지 및 수사 중단 지시'가 향후 문제되지 않도록 안양지청 스스로 수사를 중단한 것처럼 선임연구관을 통해 “2. 긴급출국금지 부분. 야간에 급박한 상황에서 관련 서류의 작성절차가 진행되었고, 동부지검장에 대한 사후보고가 된 사실이 확인되어 더 이상의 진행 계획 없음"이란 문구를 추가해 7월 4일 다시 보고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에 검찰은 “피고인이 안양지청 수사팀 검사들의 의사에 반하는 최종 수사결과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게 함으로써, 안양지청장 이현철 및 안양지청 수사팀 검사들의 수사권 행사를 방해하고 이들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결론 내렸다.
이 지검장은 공소장 주요 내용에 대한 중앙일보의 입장 요청에 13일 밤까지 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날 거취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상 출근했다. 전날 수원지검 수사팀의 기소가 예정되자 ‘개인 사정’을 이유로 하루 휴가를 냈었다.
김수민·정유진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3 ‘드루킹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2021.08.26 얼간조선 09월 호
‘드루킹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용기 있는 제보와 재빠른 판단 덕에 드러난 ‘드루킹 사건’
⊙ ‘사정당국 관계자’ B씨의 충격적인 제보
⊙ 언론인 출신 A씨, B씨의 제보 내용 언론에 알려
⊙ A씨 “B씨가 보여준 용기 세상에 알리고 싶다”
⊙ “김경수 기자회견 보며 사건 연루된 게 확실하다고 판단”
⊙ “‘언론징벌법’ 시행되면 드루킹 사건 같은 권력형 비리 보도하지 못해”
▲2018년 8월 9일, 특검에 재소환된 김경수 당시 경남도지사가 서울 서초구 허익범 특검 사무실 앞에서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조선DB
2018년 4월 10일, 전직 언론인 A씨는 사정당국 고위 간부 B씨의 전화를 받았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이날 두 사람 사이엔 대략 이런 취지의 대화가 오갔다.
〈A씨: 어쩐 일이십니까. 전화까지 다 주시고요.
B씨: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한번 뵐 수 있을까요.
A씨: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B씨: 중요한 일이 있어 그렇습니다. 전화로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현직 기자 시절 많은 특종을 한 A씨. 그에겐 그때 다져진 예민한 ‘촉’이 있었다. A씨는 B씨의 말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이튿날 두 사람은 서울 인사동 어느 한정식 집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 B씨가 A씨에게 말한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B씨가 전한 충격적인 사실
▲2018년 8월 9일 서울 서초구 허익범 특검 사무실로 소환되고 있는 ‘드루킹’ 김동원씨. 사진=조선DB
“경찰이 최근 김모(김동원·일명 ‘드루킹’)라는 사람을 체포해 구속했다. 이 사람과 관련해 올라온 보고를 보니 아주 심각했다. 체포 과정에서 김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버리려고 했다. 그걸 경찰이 잽싸게 압수해 포렌식을 했다. 그랬더니 김경수(전 경남지사·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와 수백 건의 텔레그램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문자메시지 내용을 종합하면, 201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조직적인 여론조작을 했다는 것이다.”
A씨는 B씨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김경수가 누군지 즉각적으로 떠올리지 못했다. 그러자 B씨는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불린다”며 “문 대통령뿐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 비서를 했던 사람”이라고 A씨에게 알려줬다.
B씨에 따르면, 드루킹 일당이 주고받은 대화 중에 김경수 의원이 문재인 후보에게 자신들의 활동을 보고했다는 내용도 있었다고 한다. B씨는 김경수 의원과 김동원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을 A4 용지로 출력했더니 30장이 넘었다고 한다. B씨는 A씨에게 “이 사실을 빨리 언론에 알려야 할 것 같다”며 “내가 직접하는 건 위험 부담이 따른다. 당신(A씨)이 도와달라”는 취지의 말도 했다.
A씨는 현직 대통령 최측근이 연루된 사건이란 점에서 ‘향후 파장이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에 긴장했다. 복잡한 머리를 다잡으며 숙고 끝에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빨리 이 문제를 공론화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이 사건은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사건’이란 문재인 정부의 정통성 시비까지 불러온 이른바 ‘드루킹 사건’을 말한다.
지난 7월 21일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경수 지사의 상고심에서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징역 2년,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原審)을 확정했다. 이 판결로 문재인 정권 실세(實勢)던 김경수 경남지사는 지사직을 박탈당하고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한겨레》가 보도한 ‘뜻밖의 기사’
대법원 판단이 있은 지 일주일 뒤인 지난 7월 31일, A씨를 서울 광화문 근방 커피숍에서 만났다. A씨는 B씨에게서 제보를 받은 뒤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기자에게 하나하나 털어놓았다.
“(2018년) 4월 12일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C 의원에게 만나자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같은 날 자유한국당 고위 당직을 맡은 D 의원에게도 만나자고 제안했어요. C 의원은 4월 13일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고, D 의원도 곧 만나기로 가닥을 잡았는데 4월 13일 뜻밖의 기사가 나왔습니다.”
A씨가 말한 ‘뜻밖의 기사’란 《한겨레》가 보도한 〈[단독] ‘정부 비방 댓글 조작’ 누리꾼 잡고 보니 민주당원〉이란 제하의 기사였다. 전(全) 언론을 통틀어 ‘드루킹 사건’을 최초로 알린 단독 기사였다. 기사의 리드 부분(첫 부분)은 이렇다.
〈네이버 등 인터넷 포털에서 문재인 정부 비방 댓글을 쓰고 추천 수 등을 조작한 혐의로 누리꾼 3명이 구속됐다. 이들 가운데 2명은 더불어민주당 당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보수세력이 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댓글을 조작했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들의 행위가 개인적 일탈 차원인지, 정치적 배후는 없는지 등을 밝히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한겨레》 기사는 사건 개요를 첫 보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핵심 인물인 김경수 이름 석 자는 기사에 나오지 않았다. A씨는 “이 기사를 처음 보고 선거를 앞두고 당국이 (선거 이전에) 빨리 털어내기 위해 언론에 흘린 건 아닌지 의심했다”고 말했다.
당시는 제7대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두 달가량 앞둔 시기였다(2018년 6월 13일 실시). 게다가 김경수 의원은 경남지사 출마가 거의 확정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사건이 크게 번진다면, 지방선거는 물론 정치권에 큰 파장이 일 게 불보듯 뻔했다.
A씨는 C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한겨레》 기사 링크를 보낸 뒤 ‘내가 당신에게 이야기하려 했던 게 바로 이 사건’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보도가 나온 당일(4월 13일) 내내 거의 모든 언론은 《한겨레》 기사를 인용하는 식으로 일관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대다수 언론이 김경수 의원 연루 사실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날 관련 기사엔 김경수란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TV조선’ 김경수 이름 최초 보도
▲2018년 4월 14일 TV조선 뉴스 프로그램 〈뉴스7〉이 보도한 〈[단독] ‘댓글 공작팀’, 더민주 김경수 의원과 수백차례 비밀문자〉라는 제목의 기사. 드루킹 사건에 김경수 의원이 연루됐음을 최초로 전한 기사다. 사진=TV조선 캡처
4월 14일, 《조선일보》는 〈‘댓글 공작’ 민주당원 與 핵심과 비밀 문자〉라는 제하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도 김경수 의원 이름이 나오진 않았다. 하지만 ‘여권 핵심’이 사건에 관계돼 있음을 최초로 밝혔다는 점에서 그간의 보도보다는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었다.
마침내 그날 저녁 TV조선 뉴스 프로그램 〈뉴스7〉은 〈[단독] ‘댓글 공작팀’, 더민주 김경수 의원과 수백차례 비밀문자〉라는 제목의 기사를 전하며 이 사건에 김경수 의원이 연루됐음을 최초로 밝혔다. 기사의 일부다.
〈어제 인터넷 댓글을 조작한 민주당원 3명이 경찰에 붙잡혔고, 민주당 현역 국회의원이 개입한 정황도 확인됐다고 단독 보도해드렸습니다. 지금 관심은 이 국회의원이 누구냐에 쏠려 있습니다. 저희는 오늘 이 핵심인사가 누군지 공개합니다. 경찰은 ‘댓글 공작팀’의 주범과 수백 건의 문자를 주고받은 여권 인사가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 김경수 의원이라고 확인했습니다.〉
TV조선은 “김씨(김동원)의 스마트폰에서 보안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통해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과 수백 건의 메시지를 주고받은 사실을 확인한 겁니다”라고 했다. 이어 “사정당국 관계자는 ‘김씨가 김 의원과 연락할 때 문자든 전화든 텔레그램만을 이용했다’며 보안에 극도로 신경 쓴 모습이었다고 말했습니다”라고도 했다. B씨가 A씨에게 제보해준 내용이 확인 취재 끝에 김경수란 이름 석 자와 함께 수면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김경수가 묵묵부답한 기자의 질문
이때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 TV조선이 김경수 의원을 실명 보도하자, 그날 밤 김경수 의원이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 의원은 TV조선의 보도를 전면 부인하며 “저와 관련해서 전혀 사실 아닌 내용이 무책임하게 보도된 데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진상을 밝히는 것이 핵심인데 이를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채 보도가 나간 것은 명백한 악의적 명예훼손”이라며 “강력하게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가졌다. 당시 인터넷 통신사 ‘뉴스1’ 보도에 따르면, 한 기자가 김 의원에게 ‘지시한 적 없다고 했는데, 의원직 걸 수도 있나’라고 물었다. ‘뉴스1’은 그에 대한 김경수 의원의 답을 ‘답변 없음’이라고 적었다. 기자 질문에 김 의원이 답하지 않은 것이다. 이어 김 의원은 “그런 식으로 가정을 갖고 질문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 지시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A씨는 “‘의원직을 걸 수 있냐’는 기자의 물음에 묵묵부답하는 모습을 보면서 김경수 의원이 사건에 연루된 게 확실하고 판단했다”고 회고했다.
김 의원은 또 ‘대선 무렵 (메시지를) 활발하게 주고받았나’라는 질문에는 “주고받은 일이 없었다. 대부분 일방적으로 (상대방이) 보냈다”고 말했다. 또 ‘일방적으로 많이 받았다고 했는데, 먼저 메시지를 준 적도 있나’는 물음에는 “그쪽에서 보내준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경수 의원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은 특검 수사 결과와 법원 판단과는 차이가 있다. 특검과 법원 모두 김경수 의원과 김동원, 그 일당을 일종의 공모(共謀) 관계로 봤기 때문이다.
이 사건 핵심 물증은 소위 ‘댓글 조작’에 사용된 컴퓨터 프로그램인 ‘킹크랩’이다. 킹크랩은 ‘드루킹’ 김동원의 주도 아래 개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을 수사한 ‘허익범 특검팀’은 “경기 파주시 소재 ‘경제공진화모임’(약칭 ‘경공모’) 사무실에서 2016년 11월 9일 오후 7시부터 1시간 정도 김경수 의원이 인터넷 여론 동향 등에 대한 브리핑을 받았고, 오후 8시부터는 ‘킹크랩’ 시연을 참관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즉 김경수 의원이 ‘킹크랩’ 프로그램의 사용을 묵인·지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특검팀은 법정에서 ‘킹크랩’을 직접 시연해 보이기도 했다.
김 의원 측은 김경수 의원이 ‘킹크랩’ 시연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반론을 펼쳤으나, 재판부는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경수 의원은 2016년 6월 30일부터 2018년 2월 20일까지 1년 8개월간 김동원을 11차례 만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무렵 김동원씨가 김 의원에게 보낸 기사 건수는 8만 건에 달한다. 재판부에 따르면, 김동원씨는 일방적으로 댓글 작업 내역을 보내는 데 그치지 않고, 김 의원과 전화 통화를 주고받기도 했다. 통화할 때도 텔레그램 메신저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러한 특검 조사 결과와 법원 판단을 종합하면, 김경수 의원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은 대법원 판단이 이뤄진 현시점에서 볼 때 사실과 거리가 있는 셈이다.
TV조선 연속 특종, 거세지는 對與 압박
▲2018년 4월 20일, 김성태(앞줄 가운데)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당 의원들이 비상 의원총회 민주당원 댓글 공작 사건 규탄과 특검 도입 촉구 기자회견을 위해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TV조선은 이후 〈[단독] 김경수·드루킹 텔레그램 메시지엔 기사 제목·URL 있었다〉(4월 15일) 〈 [단독] ‘판도라 상자’ 김경수·드루킹 대화록은 A4 용지 30장 육박〉(4월 15일)이란 기사를 연이어 보도하며 특종을 터트렸다.
야당도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김성태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4월 15일 이 사건과 관련해 ‘특검 추진’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권의 민낯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며 “민주당원 댓글 조작 사건은 온 국민을 일거에 뒤통수치는 메가톤급 충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민주당 대변인이 비록 개인적 일탈일 뿐이라고 꼬리 자르기를 시도하고 나섰지만 밤늦은 시각에 김경수 의원이 직접 해명에 나서는 걸 보면 민주당도 이 사건을 결코 간단치 않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자유한국당은 이날 ‘민주당원 댓글 조작 진상조사단’을 출범시켰고, 김영우 의원을 단장으로 임명했다. 단장을 맡은 김영우 의원은 “특검 수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A씨와 B씨의 제보 덕분에 이 사건은 특검 수사로 이어졌고, 그 수사를 통해 김경수 의원은 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됐다.
A씨가 겪은 안타까운 두 사례
A씨와 B씨는 이 사건 한가운데에서 끊임없이 서로 정보를 공유했다. B씨가 A씨에게 제보하면 A씨가 그 정보를 언론에 알리는 식이었다. A씨는 이 사건을 언론에 제보하면서 수시로 기사를 모니터링했다. 그 과정에서 겪은 안타까운 사례 두 가지를 언급하기도 했다.
하나는 친여(親與) 성향 모 매체가 보도한 칼럼이었다. 이 매체는 4월 15일 〈드루킹과 김경수 엮은 TV조선의 무리수〉란 제하의 칼럼에서 김경수 의원 주장에 무게를 실어주며 “아직은 김경수 의원의 주장이지만 TV조선보다는 개연성을 가진 해명이라는 평가가 많다”고 전했다. 이어 “TV조선이 ‘드루킹’과 김 의원이 주고받았다는 텔레그램 문자를 근거로 제시할 수 없다면 김 의원이 예고한 법적 조치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경수 의원 기자회견 후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TV조선의 ‘종편 허가 취소를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고, 하룻밤 새 4만명 이상이 동의했다는 점을 근거로 “‘드루킹’과 김경수 의원을 엮은 무리수가 가져올 파장이 작지 않아 보인다”고도 했다.
A씨는 이 칼럼에 대해 “드루킹 사건을 바라보는 좌파 진영의 편향된 시각을 고스란히 보여준 글”이라고 지적했다.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자체적으로 취재에 나섰으면 사건의 진실을 파악했을 텐데 그런 시도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안의 단면만 보고 취재 기사가 아닌 칼럼으로 대응한 건 다소 비겁했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또 다른 하나는 언론의 태도였다. A씨는 “B씨로부터 사건을 제보받고 중앙 일간지와 종편 채널 여러 곳에 이 사건을 제보했다”며 “그때 이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끈질기게 달려든 언론은 몇 안 됐다”고 회고했다.
A씨는 사건 발생 3년이 지난 이 시점에 《월간조선》 인터뷰에 나선 이유를 털어놓기도 했다. 그의 말이다.
“드루킹 사건 이면(裏面)에 B씨라는 용기 있는 제보자가 있었다는 걸 뒤늦게나마 알리고 싶었습니다. B씨가 끝까지 침묵했다면 이 사건은 영영 묻혔을지 모릅니다. 공직자들은 정권의 비리를 보고도 못 본 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민의 녹을 먹고 사는 공직자들이 그러면 안 되죠. 이제라도 B씨처럼 용기 있는 공직자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그들을 책임지고 보호해주는 언론의 태도도 매우 중요합니다.”
A씨는 B씨의 존재에 대해선 “무덤까지 갖고 갈 것”이라며 “’사정당국 관계자’라는 것 외에 다른 그 어떤 것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A씨는 또 최근 여권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골자로 하는 언론중재법(이른바 ‘언론징벌법’)을 발의(發議)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이 법이 시행되면 드루킹 사건과 같은 권력형 비리에 대해 언론은 입도 뻥긋 못 하게 될 것”이라며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이러한 시도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글 :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chosh760@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