危機의 韓半島 2021- 05-10/
10.04 중국에 당한 호주 미국에 밀착, 아시아 안보 지형 바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미국 뉴욕에서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만났다. [AP=연합뉴스]
1958년 7월 미국과 영국이 ‘상호 방위 목적의 원자력 이용 협력 협정’을 체결한 배경에는 ‘스푸트니크 쇼크’가 있었다. 그 전해 소련이 세계 최초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 지구 궤도에 진입시키는 데 성공하자 과학 기술 분야에서 소련을 압도하고 있다고 믿었던 미국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미·영, 호주에 핵 잠수함 기술 전수
"중국 패권 추구 단념시키는 조치"
“한국 등 비핵국도 타진 가능성”
위기감이 커지자 미국은 대서양 건너 영국과 손잡았다. 공동의 적 소련에 맞서기 위해 핵 기술을 공유하기로 했다. 미국은 54년 세계 최초 핵 추진 잠수함 USS 노틸러스(Nautilus) 개발에 성공한 터였다. 협정 덕분에 영국은 미국으로부터 원자로 기술을 전수받아 핵 잠수함 건조 시점을 앞당길 수 있었다.
그로부터 63년 만에 미국이 다시 한번 핵 잠수함 기술을 다른 나라에 넘기기로 했다. 지난달 15일 미국과 영국ㆍ호주 3국 정상이 발표한 새로운 안보동맹 ‘오커스(Aukus)’에 따라 호주는 미ㆍ영으로부터 핵 잠수함을 공급받게 됐다. 이들을 뭉치게 한 21세기 공동의 적은 중국이다.
오커스 출범은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이 63년 만에 핵 기술 이전을 결심할 정도로 중국과 경쟁이 격화되자, 대중 견제를 ‘행동’으로 옮겼다는 의미에서다.
호주에 핵 잠수함 최소 8척을 판매하는 것은 무기 거래로서 규모도 크지만, 전략적 가치는 더욱 크다고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미국이 지금까지 인도ㆍ태평양에서 보인,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는 가장 극적이고 결연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스티븐 왈트 하버드대 교수는 “중국이 미래에 역내 헤게모니를 노리는 시도를 단념시키거나 좌절시키기 위해 설계된 조치”라고 풀이했다. 다만, 미ㆍ중간 해상에서 힘의 균형 변화를 늦출 수는 있지만, 멈출 수는 없다는 전망도 있다.
지난해 워싱턴에서는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군사적 침략을 억제하려면 미국과 동맹이 72시간 안에 모든 중국 배를 침몰시킬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조 바이든 행정부 초대 국방장관 후보로 거론된 미셸 플러노이 전 국방차관의 포린어페어 기고였다.
플러노이는 “미군이 72시간 안에 남중국해상 모든 중국 군함, 잠수함, 상선을 침몰시킬 수 있다고 믿을만한 위협을 가할 수 있으면, 중국 지도자들은 예컨대 봉쇄나 대만 침략을 감행하기 전에 재고할 것”이라며 “함대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생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호주가 핵 잠수함을 갖게 되면 미국은 아시아에 함대를 증강하는 효과를 얻는다. 대중 견제 세력의 외연을 확장하고 억지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된다. 호주 싱크탱크 호주전략정책연구소의 마이클 슈브리지 국장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핵 잠수함은) 매우 강력한 타격 무기이기 때문에 인도ㆍ태평양에서 장기적인 군사적 균형을 재설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미국은 핵 잠수함 52척, 중국은 7척을 보유하고 있다. 호주가 2030년께 핵 잠수함 8척을 보유하게 되면 단숨에 중국을 능가한다. 호주 국방부는 "핵잠수함은 재래식 잠수함과 비교해 잠행 능력, 속도, 기동성, 생존성이 월등하며, 작전 지속성은 거의 무한대"라고 밝혔다.
호주 서부 퍼스 기지에서 출발한 잠수함이 남중국해에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대기 태세를 유지하는 기간이 핵 잠수함은 77일, 재래식 잠수함은 11일로 추산된다.(이코노미스트) 호주가 2016년 프랑스와 맺은 디젤 잠수함 12대 공급 계약을 파기하고 미국의 핵 잠수함을 택한 가장 큰 이유다.
▲국가별 핵추진 잠수함 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호주는 5G 통신사업에서 중국 기업 화웨이 참여를 배제하고, 중국의 코로나19 기원과 책임에 대한 조사를 요구해 중국과 갈등을 빚었다. 중국으로부터 전방위 경제 보복에 시달리다가 미국과 안보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기로 결심하면서 세계 7번째 핵 잠수함 보유국을 예약했다. 핵보유국이 아닌 나라 중에선 유일하다.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이후 고립을 피하기 위해 태평양 진출 필요성이 커진 영국도 오커스에 거는 기대가 크다. 영국에서 잠수함 일부가 건조될 경우 일자리 창출 등 경제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프랑스는 미국이 동맹의 “등에 칼을 꽂았다”(장이브드리앙 프랑스 외교장관)고 반발하면서 “우리는 태평양 국가”(에마뉘엘 르냉 인도 주재 프랑스대사)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인도ㆍ태평양 지역 내 영토가 있고, 프랑스인 200만 명이 거주하며, 군인 7000명이 주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간 중국 견제에 상대적으로 미온적이던 프랑스가 이번 일을 계기로 인도ㆍ태평양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칠 가능성이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프랑스와 영국이 쿼드(Quad)에 합류할 가능성을 예상했다. 미국·호주·일본·인도 4개국 안보회의체인 쿼드에 영국과 프랑스가 합류해 ‘쿼드+2’가 되면 오커스와 쿼드, 프랑스가 일치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쿼드 일원인 일본이 오커스 동참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일본이 오커스를 신속히 승인했고,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인 데다 호주와 안보 관계를 증진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잠수함 관련 기술을 보유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일각에서는 이번 결정으로 핵 기술 확산을 막으려는 국제사회 노력이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AFP통신은 전문가를 인용해 “이번 협정은 ‘판도라의 핵확산 상자’를 여는 것일 수 있다”면서 한국·캐나다·브라질·아르헨티나·사우디아라비아 같은 핵무기 비보유국에 무기급 연료를 얻을 수 있는 핵 잠수함 구매를 권장할 수 있다고 전했다.
▲아시아·태평양 주요 동맹 및 안보회의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인도·태평양 안보 지형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호주는 이 지역에서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으로 자리매김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오커스, 쿼드와 파이브아이즈(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5개국의 정보 동맹)에 유일하게 모두 참여한다. 유럽 국가들이 쿼드에 합류할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한국의 고민도 깊어질 전망이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park.hyunyoung@joongang.co.kr
10.05 미국이 한국 대선 결과를 지켜보는 이유
문 정권, 남북정상회담 위해 중국 비위 맞추는데 급급
中 예속 정권 지속되면 미국은 한국서 손 뗄 것
내년 대선 결과에 따라 美의 한국 정책 달라진다
정권 말기에 들어 문재인 대통령은 뜬금없이 ‘종전 선언’을 반복하고 있고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중국 두둔과 북한 옹호에 열 올리고 있다. 아마도 마지막으로 남북 정상회담 한번 해보겠다는 발버둥이리라. 정 장관은 지난달 22일 미국에서 미국·한국·호주·일본을 반중(反中) 블록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냉전(冷戰) 시대의 사고(思考)’라며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 외교 수장(首長)의 현실 인식이 이 정도인가. 아니면 중국 들으라고 한 아부성 발언인가?
▲2021년 9월 24일(현지 시각) 미 백악관에서 첫 대면 회담을 한 미국·일본·호주·인도 연합체‘쿼드(Quad)’의 4국 정상들이 마스크를 쓴 채 함께 걸어가고 있다. 왼쪽부터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이날 4국 정상은“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AP 연합뉴스
미 국방부 관리였던 드루 톰프슨은 지난달 23일 자 뉴욕타임스 기사에서 “미국의 중동전은 마감됐다. 다음 전쟁은 중국과 벌일 고성능 고밀도 분쟁이고 그 지역은 동북아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미국의 세계 전략은 전 세계의 자유로운 해상망을 기조로 한다. 따라서 중국이 노리는 남중국해 지배력과 정면충돌하고 있다. 특히 바이든은 남중국해의 자유로운 항해를 방해하는 어떤 세력과도 타협할 수 없다는 강경론자다. 그래서 그는 일차적으로 인도·일본·호주를 연결하는 쿼드를 결성하고 배수진 또는 2차 저지선으로 영국과 호주를 연결하는 오커스(AUKUS)라는, 이른바 앵글로색슨 동맹(또는 백인 민주주의 연합 전선)까지 내닫는 거침없는 대(對)중국 포위망을 구성하고 있다.
미국은 조만간 한국에 ‘어느 쪽에 설 것인지’ 선택하라 요구할 것이다. 중국은 이미 한국의 답을 얻어 갔다는 말도 들린다. 지금까지 미국은 중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분단 한국의 지리적 사정을 이해하는 듯 해왔다. 그래서 쿼드 참여 문제에도 한국을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았다. 그러나 냉전 양상이 짙어질수록, 중국의 기고만장이 승(勝)할수록 미국은 한국에 ‘설 자리’를 요구할 것이다. 이것은 한국으로서 국가의 천년대계(千年大計)를 내다보는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북한 문제와 맞물려 군사적 전쟁을 감수하는 데까지 내몰릴 수 있다.
국제적 분쟁은 그것이 전쟁이든 냉전이든 궁극적으로 영토(領土) 문제로 귀결돼 왔다. 말하자면 ‘땅따먹기’ 싸움이었다. 영토 분쟁은 근대에 와서 영향력과 경제력 지배의 확충으로 전화하고 있다. 결국 미·중 간 싸움은 누가 한국 땅에서 영향력을 차지하느냐는 싸움이다. 한국은 천 년 넘게 음양으로 중국의 지배를 받아왔다. 우리는 그렇게 처신함으로써 병합의 치욕을 면했다. 중국은 지금도 우리를 속국으로 여기고 있다는 징후가 널려 있다. 그것은 북한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다르지 않다. 이에 반해 미국은 한국에 영토적 욕심이 없다. 게다가 우리는 2차 대전 이후 미국 신세(?)를 졌다. 중국과 일본에 갇혀 대륙의 반도에 묶였던 우리는 미국을 고리로 해, 미국의 인도(引導)를 받아 세계로 나올 수 있었고 그래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과 역사를 고려할 때 한국의 그나마 안전한(?) 선택은 미국일 수밖에 없다. 중국과 같이 가면 중국의 ‘속국’을 면할 수 없지만 미국과 같이 가면 ‘능력 있는 약소국’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대한민국의 선택은 분명해진다. 미국과 상대할 위치의 강한 중국을 대척점에 두게 된다는 것은 약소국으로서는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것이 한국의 고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중국은 같이 갈 ‘친구’가 아니다.
불행히도 문재인 정권의 선택은 ‘중국’ 쪽인 것 같다. 그들 눈에는 정권 막바지 남북 정상회담만 보이고 이를 위해서 중국의 비위를 맞추는 데 급급하다. 이런 중국에 예속된 정권이 지속되면 미국은 조만간 한국에서 손 뗀다. 미국도 어제의 미국이 아니다. 중국 견제를 위해 호주를 끌어들이려고 전통적 우호국인 프랑스의 이익(잠수함 수주)까지 외면한 미국이다. 대(對)중국 단일 대오를 형성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철수의 수모를 감수한 바이든이다. 한국이라는 전초기지가 무용지물이 될 것에 대비해 오커스(미·영·호)라는 제2선까지 친 바이든이다. 그런 마당에 중국 편에 서는 한국 땅에 미군을 계속 주둔시킬 미국이 아니다. 바이든 정부는 북한이 고성능 미사일을 연신 쏘아대는 와중에 북한과 화해·협력하기만을 강조하는 문 대통령과 정 외교의 발언에 내심 못마땅해하고 있다. 그래서 내년 한국의 대선 결과에 따라 미국의 한국 정책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니스트
10.06 대만 코앞에 사상 최대 군용기 띄웠다, 중국의 노림수 4가지
대만에 대한 중국의 무력 위협이 심상치 않다. 지난 1일부터 4일까지 총 149대의 중국군 전투기와 폭격기 등이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을 침범했다. 지난해 9월 대만 국방부가 중국군의 ADIZ 침범 정보를 일반에 공개한 이후 최대 규모다. 중국 관영 매체 환구시보 영문판은 “전쟁은 실제”라며 노골적으로 대만에 엄포를 놨다.
중국이 국경절(10월 1일)이나 대만의 건국 기념일(10월 10일) 전후로 대만해협에서 공중 무력시위를 벌이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이번 만큼 대규모 작전을 펼친 적은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순히 중국의 군사적 우위를 각인시키는 연례 이벤트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미국 CNN 방송은 5일(현지 시각) 중국 군용기가 나흘간 대만을 위협한 이유를 크게 네가지로 분석했다.
◇첫 번째 이유: ‘하나의 중국’ 원칙 위배에 대한 보복
CNN방송은 대만이 지난달 22일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신청한 것이 중국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분석했다. 대만이 CPTPP 회원국으로 인정 받게 되면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고수해온 ‘하나의 중국’ 원칙이 깨지기 때문이다.
국제 문제 전문가인 리오넬 패튼 스위스 웹스터 대학 조교수는 “대만이 CPTPP 가입을 신청한 이후 대만에 대한 중국의 무력 위협이 급증했다”면서 “중국은 대만이 국제사회에서 독립 국가로 인정 받으려 할 때마다 군사적인 수단을 동원해 억제해왔다”고 했다. 실제로 중국은 대만이 CPTPP에 가입 신청서를 제출한 다음날 24대의 군용기를 보내 대만 ADIZ를 침범했다. CNN방송은 “중국의 공중 무력 시위는 대만에게 보내는 협박 메시지인 셈”이라고 평가했다.
◇두 번째 이유: 대만 침공 모의 훈련
중국이 대만해협에서 벌어질 대규모 전투를 대비하기 위해 실전 훈련을 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군사 전문가인 칼 슈스터 전 미 태평양사령부 합동정보센터 작전국장은 “대만에서 멀리 떨어진 중국 공군 기지에서 다수의 전투기를 동원해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실전 훈련 경험이 필수적”이라면서 “앞으로 더 많은 중국 전투기가 (경험치를 쌓기 위해) 대만 상공에 날아들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중국 군용기의 대만 도발 규모는 급증하는 추세다. 대만 중앙통신사에 따르면 2019년에는 10여 대의 중국 군용기가 대만 ADIZ를 침범했는데 2020년에는 380대, 올해는 600대를 넘겼다.
◇세 번째 이유: 대만 공군 전투력 약화
대만의 공군 전력을 상세하게 평가하기 위한 전략이란 분석도 나온다. 칼 슈스터 전 작전국장은 “중국은 전투기를 보낼 때마다 대만의 공중 위협 탐지 능력과 대응력을 테스트했을 것”이라면서 “대만 공군이 대응에 걸리는 시간, 전술, 공중 요격 절차 등 정보가 중국에 넘어갔을 수 있다”고 했다.
노후화 된 대만 전투기의 출격 빈도를 높여 대만 공군의 전투력을 낮추겠다는 계산이 깔렸다는 주장도 있다. CNN방송은 대만 전투기 대부분의 연식이 30년 이상이라면서 중국 군용기에 대응하기 위해 출격할 때마다 기체 수명이 빠르게 닳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호주 공군 장교 출신의 피터 레이튼 그리피스대 아시아연구소 연구원은 “대만이 전투력에 피해가 갈 만큼 전투기를 혹사시키지 않았을 것”이라며 “장거리 전자 수단을 이용해 중국 군용기를 식별하고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네 번째 이유: 대만 지지국에 대한 항의
중국의 대규모 공중 무력 시위는 대만 지지 국가들에 대한 항의 표현이란 주장도 있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의 티모시 히스 선임 연구원은 “최근 미국 등 국가들이 대만 인근에서 해상 훈련을 벌인데다 영국의 대만 해협 구축함 파견, 일본 새 지도부의 (반중 성향의) 대만 정책 등이 중국의 군용기 시위 규모를 키웠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대만 ADIZ 침범은 과거에도 특정 사건 직후 대규모로 일어나는 패턴을 보였다. 예컨대 지난 4월에는 미 국무장관이 미국은 대만을 보호할 것이라고 말한 다음날 25대의 전투기가 대만 ADIZ을 침범했고, 6월에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대만 해협 안정을 강조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직후 중국 군용기 28대가 대만해협에 나타났다.
◇일촉즉발의 양안 갈등
중국의 군용기 시위는 일단 소강 상태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6일 대만 중앙통신사에 따르면 전날 중국군 Y-8 대잠기 1대가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해 대만 공군 초계기가 대응해 무전으로 퇴거를 요구했다. 그러나 대만 일대의 군사적 긴장 수위는 쉽게 낮아지지 않을 전망이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중국 군용기 시위가 한창이던 5일 ‘대만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란 제하의 미국 외교전문매체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대만이 (중국에 의해) 무너지면 역내 평화와 민주동맹 체제에 재앙이 될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며 “대만의 민주주의와 삶의 방식을 지키고자 무슨 일이든 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 영문판은 같은 날 사설에서 “대만의 차이 총통은 재앙적인 결과에 겁을 먹고 주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비판했다. 이 매체는 “대만 당국은 그들의 분리주의 시도가 막다른 골목에 달했다고 보고 상당히 겁먹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들은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의 반(反) 중국 전초기지로서 조만간 중국 본토에 의해 전멸될 것”이라고 했다.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는 2016년 대만에 반중 성향의 민진당 차이잉원 정권이 출범하고 이듬해 트럼프 행정부가 ‘대만 카드’를 꺼내 중국을 압박하기 시작하면서 급격하게 악화됐다. 올해 1월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도 대만과의 협력 수위를 높이며 중국과 대만의 대결 구도를 강화시키고 있다. 미국은 대만관계법 제정 기념일에 전직 미 의회 및 국무부·국방부 인사들의 대만 방문을 허가했고, 한미 정상회담과 미일 정상회담, G7·나토 정상회의 공동선언에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명시했다. 대만을 자국 영토로 간주하는 중국은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무시하고 도발을 일삼고 있다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중국, 2025년 대만 침공 역량 갖춘다”
양안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게 되면서 중국의 대만 침공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6일 추궈정(邱國正) 대만 국방부장은 2025년까지 중국이 대만에 대한 전면적 침략을 감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날 2400억 대만달러(약 10조 2000억 원) 규모의 해공군 전력 증강 특별 조례를 심사 중인 대만 입법원에 출석해 이같이 말했다.
추 국방부장은 “내 군생활 40년 이래 가장 엄중한 시기를 맞이했다”면서 “2025년까지 중국은 (대만 침공에 들어가는) 비용과 소모되는 노력 등을 최소한으로 낮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지금도 중국은 (침공할) 능력이 있지만, 고려할 것들이 많아 당장 전쟁을 시작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허버트 맥매스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4일 한·미·일 기자 간담회에서 “최근 중국의 대만 ADIZ 침범이 무력 침공을 위한 준비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베이징올림픽이 열린 후) 2022년이 핵심적 시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맥매스터 전 보좌관은 2014년 2월 러시아 소치 동계 올림픽이 끝날 무렵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무력 병합한 예를 들며 “유사점이 있을 수 있다”고도 했다. 지난 3월에도 인도·태평양 사령관이던 필립 데이비슨 제독이 의회에서 중국이 6년 안에 대만을 공격할 수 있다고 증언했다.
다만, 중국이 가까운 미래에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평가 된다.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지난 6월 중국이 당장 대만을 공격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6일 전했다. 컨설팅 회사 ‘바우어 그룹 아시아’의 대만 전문가 티파니 마 역시 FT에 “비상경보를 울리기에는 너무 이르다”면서 “중국이 대만을 군사적으로 점령하려면 매우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이벌찬 기자
10월18일 文 ‘종전’ 집착과 동맹 균열
김남석 워싱턴 특파원
최근 한·미 외교안보 고위인사 간 접촉이 부쩍 잦아졌다.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와 양자협의, 한·미·일 북핵수석대표 협의 등을 위해 16일 미 워싱턴DC에 도착했다. 8월 말 방미 후 한 달 반 만에 다시 미국을 찾은 셈이다. 12일에는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백악관에서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과 만났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도 지난 5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각료이사회에 참석해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약식회담을 했다. 안보실장, 외교부 장관 등 정부 고위인사들이 총출동해 미국과 만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9월 유엔총회에서 제안한 ‘종전선언’ 관련 설득 때문이다.
정부의 전방위 설득에도 미국 측 반응은 미지근하다. 서 실장과 만남 후 나온 NSC 보도자료에는 한·미 동맹 중요성, 남북 대화·협력 지지 등 내용만 담겼을 뿐 종전선언 언급은 전혀 없다. 블링컨 장관이 정 장관과 만난 후 올린 트위트에도 종전선언 논의 내용은 거론되지 않았다. 백악관, 국무부는 대화를 통한 북한 비핵화를 강조하면서도 ‘조건 없이’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수십 년 북핵 협상 경험으로 대북 불신이 팽배한 미 의회나 한반도 전문가들은 비핵화가 일정 부분 진행된 후에야 보상으로 주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조 바이든 행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는 공식 입장과 달리 10월 초 중앙정보국(CIA) 산하 코리아미션센터를 폐지했다. 대신 최우선 정책 목표인 대중국 견제를 위해 중국미션센터를 신설했다. CIA 분석가·요원 수백 명이 투입됐던 코리아미션센터 폐지는 대북 정책의 우선순위가 뒤로 밀린 것을 방증한다.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모든 문제는 기구를 어떻게 만들고, 사람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며 “김 특별대표를 멀리 인도네시아에 놔두고, 한·미 워킹그룹·코리아미션센터를 해체한 것은 북핵 문제 해결보다 현상유지에 무게를 둔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미국과 북한이라는 두 협상 당사자가 양보 없는 대치를 하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의 답답함은 이해한다. 하지만 조급한 움직임은 자칫 한·미 동맹에 균열을 내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공조에 차질을 초래할 수 있다. 북핵 문제는 남북 간 문제만이 아닌 국제 현안이기도 하다. 북한을 단지 협상 테이블에 앉히는 것이 아닌 비핵화가 진짜 목표라면 북한이 선심 쓰듯 대화에 나서도록 할 게 아니라 협상에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 북한도 오랜 제재와 코로나19 봉쇄로 인한 경제난, 내부 불만 등 불안 요인이 산적해 있다. 조급해하지 않고 한·미 동맹 강화, 자체 방어력 향상, 한·미·일 3국 안보협력 복원 등에 나선다면 시간은 반드시 북한 편은 아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듯 외교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말 무리하게 종전선언을 밀어붙이고 남북 이벤트에 매달리면 진짜 한반도 비핵화는 요원해진다. 얼마 전 특파원간담회에서 “무리하지도, 서두르지도 않고 꼭 필요한 사안만 추진하겠다”던 정부 고위당국자의 말이 공언이 아니길 바란다.
문화일보
10월 20일 文 4년 반만에 ‘외교 변방’ 전락했다
이미숙 논설위원
팬데믹 이후 합종연횡 본격화
쿼드 이어 오커스 동맹도 출범
美 대 中 아시아 그레이트 게임
文은 北에 집착하며 친중·반일
10년 내 중국권 편입 관측 불러
다음 정부가 전면 시정 나서야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일상으로의 복귀 움직임이 세계 주요국들을 중심으로 본격화하면서 세계 질서 재편 움직임도 뚜렷해지고 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중심 전략을 가속화하면서 4개국 협의체 쿼드(Quad)에 이어 3개국 안보동맹 오커스(AUKUS)를 발족시켰다. 브렉시트로 유럽연합(EU)의 족쇄에서 벗어난 영국은 오커스 참여를 통해 재빠르게 인·태 지역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질서의 틀을 짰던 미국이 영국·호주·일본 등과 의기투합해 중국의 패권을 저지하는 아시아판 ‘그레이트 게임’을 시작한 형국이다.
불행하게도 문재인 정부는 팬데믹 이후 자유 진영 핵심 국가의 합종연횡에 눈감은 채 종전선언에만 매달리며 대한민국을 외톨이 국가로 만들고 있다. 미국의 쿼드 초청에 대해 문 정부 인사들은 “특정국을 배제하는 것은 좋지 않다” “공식적으로 제안받은 바 없다”는 식으로 한사코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 쿼드는 안보 차원의 대중 견제 성격이 강했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는 오커스 출범 후 쿼드를 인공지능·반도체·기후변화 등 비안보 분야 협력으로 전환 중임에도 요지부동이다.
문 정부가 팬데믹 이후 국제 흐름에 둔감한 원인은 첫째, 문 대통령의 모든 관심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동에 쏠려 있어서다. 둘째, 북한을 끌어내는 데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해 중국에 맞서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의 인·태 전략이 미국의 새 아시아 전략이 된 것에 대한 생리적 거부감이다. 문 대통령의 대북 집착이 대중 의존증을 낳고, 대일 혐오가 미국의 아시아 전략 불신으로 이어져 팬데믹 이후 한국의 변방국 전락을 가속화시키는 셈이다.
반면 한국보다 대중 무역의존도가 높고, 한때 중국에 더 밀착했던 호주는 정반대 길을 갔다. 2018년 8월 집권한 자유당의 스콧 모리슨 총리는 우한(武漢) 발 코로나 이후 먹고사는 문제보다 살고 죽는 문제를 우선시해 화웨이의 5세대(G) 이동통신망 사업 및 일대일로 합의를 백지화했다. 코로나 기원 조사 필요성을 제기해 중국으로부터 거센 무역 보복을 당했지만 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았다. 쿼드를 통해 발언권을 강화하며 오커스 동맹 구상으로 미국을 설득하자 백악관은 비핵국가인 호주에 핵잠수함 기술을 제공하는 결단을 내렸다.
우리나라가 팬데믹 이후 세계 질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면 호주처럼 안보 최우선 전략을 견지해야 한다. 안보 기반을 흔들 종전선언에 집착하며 미국의 동의를 재촉하기에 앞서 한·미 간 인·태 공조 방안부터 만들어야 한다. 호주는 바이든 대통령의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을 확대한 ‘더 나은 세계재건(B3W)’을 콘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때 어젠다로 관철시키며 대미 공조를 강화했다. 한국도 호주처럼 G7 옵서버국으로 초대받았지만, 문 대통령은 G7 정상들과 찍은 사진으로 한국의 국격 상승을 자랑했을 뿐이다. 오죽하면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가 한 인터뷰에서 “호주는 댄스파티 한가운데서 춤을 추는데 한국은 가장자리에 앉은 채 수줍어하는 소녀 같다”고 했겠는가.
인·태 전략의 기원이 어떻든 미국은 인·태 중심으로 21세기 안보 전략을 짜고 있다. 최근 이코노미스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쿼드 참여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언론에서는 일본과 대만, 인도의 오커스 참여설도 제기된다. 그러나 어디서도 한국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문 정부 4년 반 만에 아시아 변방국으로 치부되며 잊힌 듯하다. “2030년대 한국과 싱가포르는 중국 쪽으로 편입된다”는 진단까지 나온다.
영국과 프랑스 동참으로 쿼드 플러스가 출범하고 오커스가 확대되면 그레이트 게임은 자유 진영 대 중국의 전략 경쟁으로 전면화한다. 중국 압박을 영·미 동맹으로 돌파한 호주, “등 뒤에서 칼 맞았다”고 하면서도 쿼드 참여를 저울질하는 프랑스처럼 국익을 최우선에 놓고 전략적 결정을 해야 한다. 이런데도 문 대통령은 북한만 바라보며 중국에 매달리는 ‘자폐적 외교’를 고수한다. 다음 정부는 이를 시정해야 한다. 내년 3월 대선은 이를 위한 국민 결단의 기회다.
문화일보
10.28 훈련대신 낙엽 쓸며 “미국이 지켜주겠지”… 당나라군이 된 대만군
“대만 전쟁준비 안됐다” 美 WSJ 심층보도
▲지난 6월 대만 북쪽 신추에서 중국의 침공에 대비해 훈련 중인 대만군. 그러나 군비나 정규군 규모, 군 기강 면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에 크게 밀리고 있다는 평가가 미 정부 내에서 나오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뉴시스
중국이 ‘평화 통일’을 내세워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대만은 현재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이대로라면 중국 억지에 실패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나오고 있다. 대만의 군비가 늘고 신무기가 확충되고 있음에도 불구, 국민의 안보 불감증과 군(軍) 기강 해이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미 유력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6일(현지 시각) 1면부터 게재한 ‘대만군은 전쟁에 준비돼 있는가? 그렇게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제하의 기사에서 미국과 대만 정부 내부의 초조한 분위기를 전했다. 이는 최근 대만 국방부가 “자체 워게임(전쟁 시뮬레이션)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의 상륙 작전을 막아냈다”고 밝힌 것과는 배치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 시각)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열린 CNN 방송 타운홀 미팅에서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경우 미국이 대만을 방어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방부와 백악관은 하루 만에 "중국을 자극하고 싶지 않다"며 대통령의 발언을 진화하고 나섰다. /로이터 연합뉴스
WSJ는 지난 21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중국이 공격하면 대만을 방어하겠다”고 했다가, 중국이 발끈하자 곧바로 백악관과 미 국방부가 “양안 문제로 인한 충돌을 원하지 않는다”며 진화에 나선 이유를 설명하면서 대만의 군사력을 분석했다. 이 신문은 “오랜 평온과 경제적 번영 속에 누적돼온 대만군의 기강 해이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했다. 대만은 3년 전부터 징병제와 모병제를 혼용해 운용 중인데, 정규군은 10년 전 27만여 명에서 현재의 18만여 명으로 줄었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100만 병력을 보유한 것과 차이가 크다. 대만은 매년 8만명을 새로 징병하고 예비군 220만명을 유지 중인데 병력 충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의무 복무 기간은 과거 2년에서 4개월로 줄었으며, 예비군은 1~2년에 한 번씩 5~7일간 소집돼 재교육받는다.
▲대만 군사력
군 복무를 마친 대만 청년들은 이 신문 인터뷰에서 “4개월 기초 훈련 중 한 일은 잡초 뽑기, 타이어 옮기기, 낙엽 쓸기였다. 사격술을 배우긴 했지만 대부분 수업은 무의미했다”며 “중국이 홍콩을 집어삼키는 것을 보고 입대하려고 했더니, 병무 관리가 ‘시간 낭비 말고 살이나 찌우라’고 핀잔을 줬다”고 말했다. 한 청년은 “한 달간 4시간마다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어가며 살을 찌워 비만으로 군 면제를 받았다”고 했다.
예비군들 역시 “훈련 내내 할리우드 전쟁 영화를 감상했다. 책 읽고 그림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대만 감사원과 국방부 내부 문건에는 “예비군 훈련장은 ‘시간이나 때우자’는 정서가 지배적” “군 내 관리 부실과 비리로 군에 입대하려는 젊은이들의 사기가 꺾인다”는 표현이 나온다고 한다. 군 엘리트 사이에선 “세상에 4개월 내에 마스터할 수 있는 전문 기술·지식은 없다” “중국 군비만 해도 대만보다 13배나 많은데, 대만 남성들은 싸울 의지조차 잃었다”는 등의 우려가 나오고 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가운데)이 지난 9월 연례 '한광(漢光) 군사 훈련'의 일환으로 핑둥현 자둥의 고속도로에 착륙한 군용기 옆에서 훈련 참가 장병을 격려하고 있다. 중국군의 무력 침공 대비를 위한 올해 훈련에선 4대의 대만 군용기가 비상 이착륙 훈련을 벌였다. /대만 총통부 제공
WSJ는 대만 군인들이 스스로를 ‘딸기 병사’로 부른다고 전했다. 경제적 윤택함과 부모의 과잉 보호 속에 작은 불편과 위기에도 쉽게 상처받는 젊은 세대를 뜻하는 ‘대만 딸기 세대’에서 파생된 용어다. 대만군이 ‘딸기군’이 된 것은 “미국 등 국제사회가 지켜보는데 중국이 설마 쳐들어오겠느냐” “전쟁 나면 미국이 도와줄 것”이라는 등의 생각이 팽배하기 때문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중국에 맞서 싸우겠다는 국민들의 의지도 높지 않다. 대만 일간지 ET투데이가 지난 7월 중순 20세 이상 2640명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중국과 전쟁이 날 경우 ‘싸우겠다’거나 ‘가족의 참전을 막지 않겠다’고 한 응답이 40.9%에 그쳤다. 49.1%는 ‘싸우지 않겠다’고 답했다.
▲지난해 7월 중국의 무력 침공에 대비한 대만의 군사훈련 때 대만 군인들이 탱크에 올라 유사시 조국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하지만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6일(현지 시각) 대만은 군비와 첨단 무기를 크게 늘리고 있지만, 실제로 군인들의 정신력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보도했다. /AFP 연합뉴스
대만은 중국의 야욕이 가시화하자 뒤늦게 군 조직 정비에 나서고 있다. 대만 국방부는 지난달 의무 군사 훈련을 대폭 강화하고 신병들을 전원 전투 부대로 보내 실전 훈련을 받도록 방침을 바꿨다. 또 중국의 상륙작전을 저지할 미사일과 항모 등 무기 체계 개편에 87억달러(약 10조원)의 특별 예산을 편성했다. 2022년도 국방 예산은 4%를 인상, 총 151억달러(약 17조6000억원)로 사상 최고치에 달한다. 대만에 무기만 팔던 미국은 최근 대만군을 훈련할 특수부대와 해병대 인력을 파견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의 싱크탱크인 신미국안보센터(CNAS)는 26일(현지 시각) 중국이 남중국해의 프라타스 군도(東沙群島·둥사군도)를 침공하는 시나리오를 가정한 워게임 결과 보고서를 공개했다. CNAS는 대만이 프라타스 군도를 실효 지배 중이지만, 중국군이 이곳에 주둔한 대만군 500명을 억류하고 군사 기지를 구축할 경우, “미국이 중국을 쫓아내고 섬을 대만에 돌려줄 분명한 수단이 없다”고 밝혔다. 자칫 미국의 군사행동은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에 미국과 대만 모두 이 문제로 중국과 충돌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뉴욕=정시행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