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만물상 2021-10/ 10.01(금) 부동산 요지경의 나라 - 10.30(토) 中, 대만 침공 가능할까

상림은내고향 2021. 10. 31. 09:18

만물상 2021-10 조선일보

10.01(금) 부동산 요지경의 나라

예전에 ‘땅꾼’이라는 직업이 있었다. 뱀을 잡는 사람들이었는데 거의 사라졌다. 이젠 부동산 시장에서 신종 ‘땅꾼’들이 활약한다. 개발 가능성 있는 땅을 찾아 부동산 디벨로퍼(시행사) 등에 소개해주는 전문업자를 속칭 ‘땅꾼’이라고 부른다.

▲27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도심속 재건축 단지와 아파트가 보이고 있다./뉴시스

 

▶원래 부동산 디벨로퍼는 남다른 아이디어와 안목으로 쓸모없는 땅에 가치를 불어넣어 사람들 삶을 더 낫게 만드는 선진국형 직업이다. 국내에 디벨로퍼 시대가 열린 건 IMF 외환 위기 이후다. 줄줄이 무너진 건설사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부동산 시장에서 디벨로퍼로 변신했다. 과거엔 건설사들이 직접 은행 돈 끌어와 땅 사고 아파트 지어 팔았다. 하지만 건설사들이 돈 많이 들고 위험 부담 큰 ‘시행’에서 손 떼고 시공만 전담하면서 시행사·시공사 분업 구도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전주(錢主)들로부터 돈 끌어와 땅 사 모으고, 정부 인허가받고, 부동산 개발 전체를 지휘하는 디벨로퍼가 본격 등장한 것이다.

 

▶디벨로퍼의 세계엔 명암이 분명하다. ‘한국의 트럼프’라고 불리는 MDM그룹의 문주현 회장은 다니던 회사(나산그룹)가 부도나자 재취업을 하지 않고 1998년 서울 서초동에 월세 20만원짜리 오피스텔을 얻어 창업했다고 한다. 손대는 부동산 개발 사업마다 성공을 거둬 국내 굴지의 부동산 개발 업체를 일궜다. 반면 2000년대 초 서울 동대문에 초대형 쇼핑몰 건립을 추진하던 굿모닝시티 윤창열 대표는 분양 대금 3700여억원을 가로채고 회삿돈을 횡령하며 정치권에 뇌물 준 혐의 등으로 징역 10년형을 받았다. 만기 출소 후에 또다시 사기 혐의로 수감됐다 지난해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코로나에 감염돼 사망했다.

 

 

▶부동산 호황기에 엄청난 숫자의 디벨로퍼가 생겨났다. 건설사 출신, 은행원, 공무원은 물론 변호사, 회계사, 의사 등 전문직 출신들도 있다. 별다른 학맥이나 직장 경력 없이 남다른 ‘부동산 감’을 가진 동네 유지나 주부도 디벨로퍼로 뛴다. 소규모 상가 건물만 잘 개발해도 상당한 목돈을 만질 수 있다는 기대가 있어 디벨로퍼들이 난립한다고 한다.

 

▶디벨로퍼는 큰 위험 부담을 지고 인생을 거는 사람들이다. 실패하면 감옥 가기 십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대장동 요지경은 그런 위험 부담 없이 일확천금을 챙겼다. 천문학적 돈을 챙긴 사람들은 그 돈으로 다시 서울 등 요지의 부동산을 사들였다고 한다. 부동산이 부동산을 만드는 부동산 요지경이다. 집값 폭등으로 벼락거지가 되고, 전셋값 폭등으로 살던 집에서 밀려나게 된 사람들로선 혀를 찰 노릇이다.

강경희 논설위원

 

10.02 파란만장 성남

“1968년 서울시는 경기 광주군 중부면(지금의 성남) 일대에 철거민을 위한 주택 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1년 뒤 ‘실어다가 들이붓는’ 비인간적 이주 대책이 시행됐다. 2년 만에 인구가 14만명으로 늘어났고 누적됐던 주민들의 불만이 폭발했다.”(고건 전 총리) 투기꾼들에게 분양권을 뺏기듯 했고 ‘일터 제공’ 약속도 지켜지지 않자 철거민 수만 명이 행정 관청을 점거하고 경찰차를 불태웠다. 이후 성남은 빈민 운동의 메카가 됐다.

 

 

▶이 ‘광주 대단지 사건’에 놀란 정부는 일터 제공을 위해 서둘러 성남에 산업 공단을 조성했다. 1974년 1,2공단, 1976년 3공단을 준공했다. 세 공단에 서울 성수동에 있던 공장들이 대거 이전했다. 이번엔 노동운동의 싹이 자라기 시작했다. 성남은 1980년대 초반 서울 구로구, 인천과 함께 수도권 노동운동 3대 거점으로 부상했다. 당시 노동운동을 주도한 성남노련은 나중에 민주노총 ‘경기동부’ 조직으로 재편된다. 내란 선동으로 해산된 통진당의 핵심이 경기동부다.

 

▶광주 대단지 사건에 앞서 1960년대 성남시에선 재향군인 단체인 ‘모란 개척단’이 도시 개발에 나섰다가 실패했다. 모란 개척단은 사라졌지만 평양이 고향인 사람이 평양 모란봉 이름을 따 만들었다는 재래시장 ‘모란시장’은 살아남았다. 조폭인 성남 국제마피아파는 모란시장을 근거지 삼아 세력을 키웠다고 한다.

 

▶1990년대 서울 강남 주택난으로 분당 신도시가 개발됐다. 이후 성남은 구시가지와 신도시 분당이 동거하는 ‘이중(二重) 도시’가 됐다. 구시가지 쪽에선 분당처럼 발전하려는 욕구가 강했다. 2010년 민주당 후보로 성남시장 선거에 출마한 이재명 변호사는 당시 민노당의 ‘1공단 공원화’ 요구를 수용해 1호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면서 1공단과 대장동 택지를 하나로 묶은 결합 개발을 추진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바로 그 대장동이다.

 

▶역대 성남시장 역사도 파란만장이다. 1995년 이후 민선 성남시장 3명이 잇따라 뇌물수수로 구속됐다. 노동운동권 출신 은수미 현 성남시장도 국제마피아파 조폭 출신 인사에게 1년여간 차량 편의를 제공받은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반해 성남시장 출신 이재명씨는 경기지사가 되고 여권 1위 대선 주자로 부상했다. 하지만 이 지사도 변호사 시절 국제마피아파 조직원 2명을 변호해 구설에 올랐고, 이번에 대장동 의혹으로 위기다. 이제 성남시는 과거와는 상전벽해로 달라졌다. 첨단 IT 산업의 메카 ‘판교 테크노밸리’를 품고 있다. 성남시가 파란만장을 넘어 최고 도시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김홍수 논설위원

 

10.04(월) 선거 철마다 등장하는 역술

국민의힘 경선 후보 TV 토론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 손바닥에 ‘王’(왕) 자가 그려진 것을 두고 네티즌들의 공방이 한창이다. 한쪽에선 “정상이 아니다” “21세기에 웬 미신”이라는 비판이 쏟아졌고, 다른 쪽에선 “국민을 왕처럼 정중히 모신다는 뜻” “단순한 이모티콘에 무속 주술이라는 허깨비를 씌운다”고 두둔했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큰 선거가 다가오면 정가(政街)에선 미신과 관련된 온갖 소문이 떠돈다. 풍수가나 호사가들 입에서 나오는 대표적 메뉴가 조상 묘지 이장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고향 신안의 아버지 묘와 포천 천주교 공원묘지에 있던 어머니 묘를 용인으로 옮겨 합장한 후 1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세 차례 대권 도전 실패 끝에 마지막 수단으로 묘지를 이장했는데 이것이 적중했다고 일부 풍수가는 말한다. 김종필, 이회창, 한화갑, 김덕룡, 이인제씨 등의 조상 묘 이장도 대망론과 무관치 않다는 말이 많았다.

 

▶무속인을 전속으로 ‘고용’해 정치활동 일거수일투족을 의존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의원은 아침에 집을 나설 때 동쪽으로 가라는 무속인의 말을 듣고 대문이 없는 동쪽 벽을 사다리를 타고 넘어갔다는 일화가 있다. 해외출장 날인데 “비행기를 타면 안된다”는 점쟁이의 만류에 일정을 연기한 사람도 있다. 풍수가를 데려와 사무실 문이나 책상위치를 바꾸기도 했다. 집권당 사무총장이 점을 보고 선거일을 잡은 시절도 있었다.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도 이따금 미신이 등장한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 암살 시도 사건 후 트라우마에 시달린 낸시 여사는 남편의 일정과 안전을 점성술사에게 의지했고, 그 점성술사가 백악관의 막후 실력자로 주목받았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대선 당일 밤 호텔 파티 계획을 막판에 갑자기 취소하고 측근 3인방과 함께 개표 방송을 지켜봤는데, 뉴욕타임스는 “그가 미신을 믿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4년 전 선거 당일 똑같은 3인방만 곁에 뒀다는 것이다.

 

▶윤석열 전 총장의 손바닥 ‘王’을 공격한 홍준표 경선 후보도 ‘레드 홍’ ‘레드 준표’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빨간색을 애용했다. 마스크, 넥타이는 물론이고 속옷까지 붉은 색을 입는데, 역술인의 충고 때문이라는 소문에 시달렸다. 정치인, 공무원, 기업인처럼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운’에 미래를 맡겨야 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미신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 하지만 AI 시대 대한민국 미래를 책임질 지도자 선택 과정에 미신이나 역술이 개입한다는 것은 개운치 않은 일이다.

조선일보 윤영신 논설위원

 

10.05 안동도 “딸이 더 좋아!”

딸만 둘 둔 종갓집 장손이 “아들 낳아 대를 이으라”는 집안 어른들 압력에 시달렸다. ‘남편은 한 달간 고기만 먹고, 아내는 같은 기간 채소·과일만 먹은 후 합방하라’는 민간 처방을 받아 몸만들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만취해 귀가한 날, 그만 자제력을 잃고 말았다. 낳아보니 딸이었다. 1990년대 초, 딸 셋 둔 타사 기자가 신세 한탄하듯 들려준 얘기다. 박완서 소설 ‘꿈꾸는 인큐베이터’(1993년)는 그 시절 셋째 딸을 임신했다가 시어머니·시누이 강요로 낙태수술 받은 여자의 내면을 들여다본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여자는 자기 몸이 인큐베이터 취급당한 것에 분노해 시댁과의 인연을 끊다시피 한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소설의 시간적 배경인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남아 선호가 여전히 강했다. 자연 상태에서 남녀 출생 성비는 여아 100명당 남아 103~107명인데, 1990년 전국 평균 수치 116.5명으로 성비 불균형이 최고를 기록했다. 유교 전통이 강한 경북 지역은 130명까지 치솟았다. 그랬던 것이 2000년대 들어 꾸준히 개선됐고, 지난해 104.8명으로 정상 범위에 들어왔다고 한다.

 

▶이 변화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도시가 경북 안동이다. 안동은 조선 후기 양반가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조상 제사를 모시는 종택(宗宅)이 즐비하다. 반드시 장손이 대를 이어야 했다. 그런데 올 8월 조사해보니 남아 260명과 여아 251명이 태어나 출생아 남녀 차이가 9명에 불과했다. 79명이었던 2016년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 속도다.

 

▶딸 둔 아빠들이 이구동성 하는 말이 ‘키우는 재미’다. 필자의 딸도 그런 재미를 준다. 고등학생 때부터 용돈을 모아 아빠 생일에 축하금 봉투를 내놓는다. 딸보다 다섯 살 많은 아들에겐 아직 받아보지 못했다. 여행에 동행하고 휴일 산책에 말동무가 되어주는 쪽도 딸이다. 남들도 그렇다고 한다. 여성이 평생 낳는 아이 수를 뜻하는 합계 출산율이 1명 아래로 떨어지면서 ‘하나만 낳으면 딸’이란 생각도 자리 잡고 있다. 딸 낳는 한약까지 먹는다.

 

▶근본적으로는 사회의 변화가 반영된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여성의 사회 활동이 확대됨에 따라 노부모 돌보는 ‘아들 노릇’은 딸도 참여하는 ‘자식 노릇’으로 바뀌고 있다. 결혼한 딸이 부모 옆에 살면서 ‘출가외인’은 아들 빼앗긴 부모가 하는 푸념이 됐다. 대부분 아들이 잔정 없고 무뚝뚝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건 다르지 않다. 아빠와 축구 하며 땀 흘리고, 엄마 대신 무거운 짐 들어주는 건 아들이다. 아들이든 딸이든 모두 사랑스러운 자식일 뿐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10.06 대장동 원주민의 恨

“우리가 대장동에 둥지를 튼 날이 2005년 10월 30일이네요. 마을버스도 없는 그 시골마을에서 회사 출퇴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저녁 8시만 되어도 가로등이 없어 깜깜했거든요. 그런 논두렁 밭두렁을 임신한 몸으로 용감하게 다녔지요.” 성남시 대장동에 살다 이사 간 여성이 요즘 대장동 개발 비리로 장안이 떠들썩하자 인터넷에 ‘대장동 원주민의 한’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5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대장 도시개발사업구역 모습. /연합뉴스

 

▶대장동은 원래 50명 정도가 농사짓고 살던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 소 키우는 집도 있었다. 대장동 인근에 태봉산이 있는데 조선 인조의 태(胎)가 묻혀 있어 태장산 또는 태봉이라고 부른다(성남시 40년사). 대장동 명칭도 거기에서 영향받았다는 얘기가 있다. 2004년 무렵 대한주택공사(현재의 LH)가 대장동을 한국판 베벌리힐스로 개발하겠다고 했는데 계획이 유출돼 개발은 실패하고 투기만 일으켰다. 여기저기 빌라와 상가 주택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유입돼 200명 정도 사는 마을로 커졌다. 2009년 재추진된 LH 공공 개발도 민간 업자들의 금품 로비로 무산됐다.

 

▶대장동 원주민 몇몇이 대장동 의혹의 핵심인 ‘성남의뜰’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1심에서 패소했다. 애초 원주민들은 평당 600만원 하던 땅을 시세의 절반인 270만~300만원에 ‘성남의뜰’에 넘기고 이주자 택지 분양권을 받았다. 민관 개발이라는데 땅은 헐값에 수용되고 택지 분양가는 너무 높게 책정돼 원주민 상당수는 아파트를 포기하고 성남 외곽으로 전세나 월세 얻어 밀려났다. 재판은 시행사 ‘성남의뜰’은 상법에 따라 설립된 주식회사여서 공기업인 성남도시개발공사에 적용되는 보상 규정을 적용할 수 없고 따라서 높은 분양가가 정당하다는 기막힌 판결이 나왔다. 땅을 수용당할 때는 공공 개발이라고 헐값에 당하고, 아파트 분양은 민간 사업이라고 높은 분양가에 당한 것이다. 원주민들은 “억울하다”며 분통만 터뜨린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성남시는 대장동 개발로 벌어들인 이익 배당금 1822억원 가운데 1000억원을 지난해 성남 시민 1인당 10만원씩 재난연대자금으로 뿌렸다. 그 소식에 원주민뿐 아니라 아파트 입주민들도 “개발 수익금은 대장동 주민들한테 반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장동 개발로 일확천금을 챙긴 법인 화천대유, 천화동인은 주역의 64괘에서 이름을 따왔다. 공교롭게도 한자는 다르지만 주역 64괘에 대장동(大庄洞)과 발음이 같은 뇌천대장(雷天大壯) 괘가 등장한다. ‘하늘을 요동치게 할 만한 엄청난 힘’이 뇌천대장이다. 그 결말이 궁금할 따름이다.

강경희 논설위원

 

10.07 무서운 ‘좋아요’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는 타인의 인정을 목숨과 맞바꾼 파이톤 이야기가 나온다. 파이톤은 태양신 아폴로의 혼외자로 태어나 계부 밑에서 자랐다. 세상이 자신의 위대한 출생 배경을 믿지 않자 아폴로를 찾아가 “아버지 소유의 천마(天馬)가 끄는 수레에 올라 천도(天道)를 달리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오늘날로 치면 부자 관계 인증 샷 요구다. 아폴로는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아들의 뜻을 꺾지 못했다. 파이톤은 세상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을 날다가 추락해 죽었다.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갈망하는 인간 본성을 뜻하는 파이톤 콤플렉스가 여기서 비롯됐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한 데이터 분석업체는 어떤 개인이 SNS상에서 어디에 ‘좋아요’(likes)를 눌렀는지 68개만 알면 그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고도 그의 피부색과 가정사, 마약·술 중독 여부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한다. 70개를 알면 그와 잘 아는 ‘절친’처럼 될 수 있고, 300개를 알면 그의 아내나 남편보다 그를 더 속속들이 알게 된다. 300개를 넘어서면 그에 대해 그보다 더 잘 아는 전지자 경지에 오른다. ‘좋아요’가 기업들에 소중한 마케팅 자료로 쓰이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상업적 가치가 1조달러를 넘는다고 한다.

 

▶'좋아요’는 강력한 유권자 정치 성향 파악 툴(tool)이기도 하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거대한 해킹’은 2016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측이 데이터 분석 기업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를 통해 페이스북 이용자 8700만명의 개인정보를 불법 활용한 기법을 추적했다.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 지지자를 겨냥해 개인 맞춤형 정치 광고를 제작할 때도 ‘좋아요’와 공유(share), 댓글 등을 활용했다.

 

▶페이스북에서 근무하던 한 여성 매니저가 엊그제 미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페이스북이 청소년의 정신적 문제를 방치하고 정치적 양극화를 조장해 왔다고 주장하면서, 페이스북이 기업 윤리를 저버린 중심에 ‘좋아요’가 있다고 성토했다. 에티오피아를 피로 물들이고 있는 종족 간 폭력 배후에도 혐오를 조장하는 글을 띄우고 ‘좋아요’를 유도하는 부정적인 메커니즘이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란 책을 쓴 오타 하지메 일본 도시샤대 교수는 “나를 인정하는 이는 ‘남’이기 때문에 인정에 매달릴수록 삶을 주체적으로 살 수 없다”고 충고한다. 하지만 인정 욕구가 일으키는 온갖 폐해를 개인 문제로만 돌릴 수는 없다. ‘좋아요’ 개수를 숨기는 등의 보완책을 고민해야 할 때다.

김태훈 논설위원

 

10.08 위기의 CIA

▲CIA가 현지 정보원이 노출돼 처형되는 등 위기를 맞았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1949년 소련이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하자 미국이 충격에 빠졌다. 그 직전까지 미 중앙정보국(CIA)은 소련의 원폭 성공 시기를 1953년쯤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몇 달 뒤 미국 원폭 개발에 참여했던 클라우스 푹스 박사가 소련 간첩으로 체포됐다. 독일 출신인 푹스는 히틀러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해 핵 물리학자가 됐고 1943년 소련에 포섭됐다. 이듬해 미국으로 옮겨 핵폭탄을 만들면서 핵심 정보를 소련에 넘긴 것이다. 영국에도 미국의 핵 정보를 흘렸다. 소·영 모두의 스파이였다.

 

▶1959년 스위스 주재 미국 대사관에 편지가 왔다. 암호명 ‘다이아몬드’라는 이중 스파이가 영국 정보국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서베를린의 영국 요원인 조지 블레이크가 체포됐다. 그러나 공산권 내 서방 스파이 400여 명 명단이 유출돼 영국 요원 40여 명이 희생된 뒤였다. 반면 소련군 정보총국(GRU)의 폴랴코프 장군은 1961년부터 25년 동안 CIA에 정보를 제공했다. 미국이 반신반의하던 중·소 갈등을 사실이라 확인하면서 1970년대 미·중 데탕트의 물꼬가 터졌다. ‘스파이 전쟁’은 상대 정보기관에 자기 스파이를 심는 것이 핵심이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1982년 시베리아 가스관이 대폭발했다. 우주에서도 관측될 정도였다. CIA가 가스관 제어 프로그램을 조작해 소련에 치명적 피해를 입힌 것이다. 냉전 때 CIA는 첨단 기술과 자금력으로 소련을 압도했다. 인공위성을 첩보전에 처음 도입했고 ‘에셜론’이라는 비밀 도·감청 시스템으로 전 세계를 엿들었다. 상대 스파이 포섭에도 돈을 아까지 않았다. 정보·작전 실패도 많았지만 소련 붕괴엔 CIA의 공도 있다.

 

▶그랬던 CIA가 전 세계 지부에 ‘위험 경고’를 발령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해외 정보원 수십명이 검거·처형되는 등 정보망이 곳곳에서 붕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러시아 등 적성국이 생체 및 안면 인식, AI(인공지능), 해킹 같은 기술을 발전시켜 CIA가 심은 정보원이 누구를 만나는지 실시간 추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중국이 이 분야에 앞서 있다.

 

▶손자병법에 나올 정도로 중국의 스파이 역사는 깊다. 미 영사관 통역 출신으로 CIA 요원이 된 진우다이(金無怠)는 실제는 중국 간첩이었다. 무려 40년간 암약하다 1985년에야 검거됐다. 6·25 전쟁 때부터 미국 정보를 중국에 넘겼다. 2018년엔 중국 내 CIA 공작원 명단을 중국에 넘긴 중국계 CIA 요원이 체포되기도 했다. CIA가 소련 KGB를 능가하는 적수를 만났다.

안용현 논설위원

 

10.09 ‘한국의 폴 포츠’ 탄생을 꿈꾸며

▲TV조선 '내일은 국민가수'

 

1932년 ‘황성옛터’를 부른 이애리수는 그 시절 국민 가수였다. 나라 잃은 울분을 노래할 때마다 인파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이 한 곡으로 ‘민족의 연인’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2년 뒤 조선일보가 향토 노래 가사 공모전을 열었다. 일제에 억눌린 민족 고유의 정서를 되살리자는 호소가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응모작 가운데 문일석의 ‘목포의 노래’가 1등을 차지했다. 이 노랫말에 손목인이 곡을 붙이고 이난영이 부른 게 ‘목포의 눈물’이다. 발표 즉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민족의 노래가 됐고 이난영은 국민 가수 계보를 이었다.

 

▶국민적 사랑을 받는 노래엔 시대의 좌절과 성취, 슬픔과 희망이 녹아 있다. 광복 후 전쟁의 고통과 이산의 아픔은 ‘가거라 삼팔선’,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로 우리 입에 올랐다. ‘서울 가서 잘살아보겠다’며 시작된 이촌향도(離村向都) 물결, 경제 부흥과 민주화 역사는 추석 귀성객의 애창곡인 ‘고향역’과 근대화된 도시 서울을 찬미한 ‘서울의 찬가’, 민주화 염원을 녹여낸 ‘아침이슬’로 우리 곁에 남았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TV조선의 새 오디션 ‘내일은 국민가수’가 목요일인 7일 밤 첫선을 보였다. ‘K팝 오디션’으로 새단장하고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류 열기에 맞춰 글로벌 스타 발굴의 대장정에 나선다. 첫선을 보이자마자 동 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고 유튜브엔 관련 영상이 쏟아졌다. “이런 보물들이 여태껏 어디에 숨어 있었나” 등 댓글도 줄을 잇는다.

 

▶천만 조회수를 자랑하는 유튜브 스타 최진솔, ‘노래를 듣고 전율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를 실감케 한 소울의 숨은 진주 김희석, 김광석 노래 ‘그날들’을 불러 마스터 박선주의 눈물을 쏟게 한 박창근 등이 무대를 휘어잡았다. ‘아, 옛날이여’를 부른 김유하가 작은 몸에서 뿜어낸 폭풍 성량은 이 아이가 정녕 7세 유치원생인지 듣고도 의심하게 했다. 무대 공포증을 이겨내고 돌아온 박장현, “나를 알리고 싶었다”는 CM송 가수 김도하에겐 따뜻한 박수가 쏟아졌다.

 

▶영국 팝페라 가수 폴 포츠와 수전 보일은 오디션 프로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서 우승하며 영국을 넘어 세계의 스타로 발돋움했다. 휴대전화 판매원이었던 폴 포츠 노래를 들은 심사위원들은 “다이아몬드로 바뀔 석탄의 발견”이란 찬사를 보냈다. 우리 가수가 노래하면 유튜브에 영어·일어·아랍어 댓글이 달리는 시대다. 전 세계가 한류를 주목하는 지금, 한국 국민 가수는 세계의 국민 가수다. ‘내일은 국민가수’에서 새로운 폴 포츠와 수전 보일의 탄생을 기대해본다.

김태훈 논설위원

 

10.11(월) 언론인에게 주어진 노벨평화상

1935년 유럽에서 ‘강제수용소로 평화상을!’ 청원 운동이 벌어졌다. 수용소에 감금된 독일 언론인 카를 폰 오시에츠키에게 노벨평화상을 주자는 움직임이었다. 아인슈타인, 로맹 롤랑, 토마스 만 등이 앞장섰다. “한쪽 눈은 부어오르고 이는 뽑힌 채 부러진 다리를 질질 끌고 있었다.” 그의 처참한 수용소 생활이 국제적십자사를 통해 알려졌다. 논란 끝에 독일 언론인 오시에츠키가 1935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로부터 86년 후,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와 러시아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노벨평화상을 받는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오시에츠키는 수용소에 잡혀 있어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나치는 그의 노벨상 지명을 저지하려다 실패하자 모든 독일인의 노벨상 수상을 금지해 버렸다. 1889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오시에츠키는 주간지 ‘벨트뷔네’ 편집장을 맡고 있던 1929년 독일 공군이 러시아에서 비밀리에 훈련하면서 재무장한다는 기사를 게재해 반역죄 및 간첩죄로 체포됐다. 18개월 형을 선고받고 사면된 후에도 군국주의와 나치 비판을 이어 가다 비밀경찰에 체포됐다.

 

▶마리아 레사가 필리핀 저항 언론의 상징이 된 건 두테르테 대통령 때문이다. 2016년 대통령 선거전에서 두테르테가 SNS 가짜 계정을 활용해 온갖 거짓 정보를 흘리며 지지자를 결집하고 반대자를 따돌린다는 사실을 파헤쳤다. 비판 기사를 낼 때마다 두테르테 지지자들의 협박, 정부 소송에 시달렸다. 레사는 홀어머니를 따라 어린 시절 미국으로 갔다.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필리핀으로 돌아가 CNN 마닐라·자카르타 지국장으로 활동했다. 10대 때 미국에서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를 누리며 성장한 이 여성 언론인은 동료들과 뜻을 모아 2012년 온라인 매체를 창간했다.

 

▶‘필리핀의 트럼프’로 불리는 두테르테 대통령은 인권 탄압, 언론 탄압으로 악명 높은 포퓰리스트 정치인이다. 취임하자마자 ‘마약과 전쟁’을 선포하고 8000여 명을 즉결 처형했다. 실제 희생자는 2만명이 넘고 억울한 피해자도 상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집권 이후 살해당한 언론인도 12명이다. 공동 수상한 러시아 무라토프 기자 상황도 녹록지 않다. 동료 기자들과 창간한 ‘노바야가제타’는 푸틴 정권의 언론 탄압에 맞서다 기자 6명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나치 저항 언론인에 이어 86년 만에 노벨평화상이 권력 비리를 감시하고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투해온 언론인에게 돌아갔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가짜 뉴스 단속을 핑계로 언론 자유를 후퇴시키는 ‘언론 재갈법’을 강행하려는 정권을 겪고 보니 새삼 더 그렇다.

강경희 논설위원

 

10.12 ‘어둠의 과학자’의 죽음

▲'국제 핵확산 주범'으로 지목되는 압둘 카디르 칸(Abdul Qadeer Khan) 박사. /조선일보 DB

 

“(조국)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에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핵무기 개발의 핵심은 고농축 우라늄에 있습니다.” 1974년 네덜란드 민간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던 우라늄 농축 전문가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파키스탄의 부토 총리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해 5월, 숙적인 인도가 핵실험에 성공하자 부토 총리는 “풀만 먹는 한이 있더라도 핵무기를 개발할 것”이라 선언했지만 진전이 없어 답답해하던 터였다. 칸 박사의 편지는 가뭄 속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부토 총리가 조국에 돌아올 것을 권유하자 칸 박사는 유럽의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귀국했다. 그는 300달러의 적은 월급을 받아가며 개발에 착수한 지 불과 7년 만에 핵무기 제조에 성공했다. 변변한 제조업도 없는 기술 후진국에서 기적을 일궈낸 것이다. 1998년 공식 핵실험에 성공해 파키스탄을 이슬람권 최초의 핵 보유국으로 만들어준 그는 ‘파키스탄 핵 개발의 아버지’로 국가적 영웅이 됐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우리 귀에도 낯익은 칸 박사가 코로나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국내외 언론은 ‘국제 핵 확산의 주범’이란 수식어를 붙여 그의 죽음을 전했다. 2000년대 초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미국 등 서구 사회는 파키스탄 정부가 북한 등에 핵 기술을 이전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그를 주요 인물로 지목했다. 급기야 그는 2004년 기자회견을 자청, 북한·이란·리비아 등 3국에 핵무기 기술을 판매했다는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파키스탄 정부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국제사회는 믿지 않았지만 파키스탄 대통령은 그를 사면했고 가택연금 조치로 끝냈다.

 

▶그는 북한·이란·리비아에 고농축 우라늄 제조에 필요한 원심분리기 기술이나 장비를 전수해줬다. 세 나라 중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것이 북한이었다. 파키스탄이 북한의 탄도미사일 기술과 미사일을 제공받는 대신 우라늄 농축 기술·장비를 제공하는 ‘기브 앤드 테이크’ 방식이었다. 10여 차례 북한을 방문했던 그는 북한이 1차 핵실험을 실시하기 7년 전에 이미 북에서 3개의 핵무기 장치를 목격했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칸 박사가 북한 핵 개발에 어느 정도 결정적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선 전문가 사이에 평가가 엇갈린다. 하지만 그가 북한 핵 개발, 특히 북 핵무기의 주류가 된 고농축 우라늄 핵무기 개발에 상당한 도움을 줬다는 사실에 대해선 이론이 없다. 일각에선 그가 히틀러처럼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광기(狂氣) 어린 과학자였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가 도움 준 북핵을 자나 깨나 머리에 이고 사는 우리로선 그의 죽음에 착잡한 심정이 들 수밖에 없다.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10.13 결선투표

1974년 프랑스에선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의 서거로 보궐선거가 치러졌다. 1차 투표에선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이 독립공화당의 지스카르 데스탱에 43% 대 32%로 앞섰다. 하지만 과반수 득표자가 없어 치러진 결선투표에서 데스탱이 1.6%p 차이로 전세를 뒤집었다. 새로 도입된 TV토론의 덕을 보았다. 프랑스 결선투표에서 벌어진 첫 역전극이었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결선투표는 과반수를 얻은 후보가 없을 때 상위 득표자 2명을 놓고 다시 투표하는 제도다. 당선자의 대표성을 높이고 사표(死票)를 방지할 수 있다. 러시아·체코·폴란드·아르헨티나·브라질·칠레 등 수십 국이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선거를 두 번 치러야 하고, 결선에서 승자가 바뀔 수 있어 변동성이 심하다.

 

▶프랑스는 10번의 대선 결선투표에서 승자가 세 번 바뀌었다. 1981년 미테랑은 결선에서 판세를 뒤집으며 7년 전 데스탱에게 당한 아픔을 되갚았다. 1995년엔 우파인 자크 시라크가 좌파인 리오넬 조스팽에게 역전승했다. 일본도 결선투표에서 역전이 일어나곤 했다. 2012년 아베 신조 전 총리는 1차에서 이시바 시게루 전 방위상에게 졌으나 결선에서 역전해 총리 재집권에 성공했다. 우리나라에선 1971년 신민당 대선 경선 결선투표가 유명하다. 당시 40대 기수론을 내건 김영삼 후보가 1차에서 이겼지만, 김대중 후보가 결선에서 뒤집었다. 1차 투표 뒤 승리를 낙관한 김영삼 측이 방심한 사이 김대중 측이 대의원들이 묵는 여관 방을 훑었다고 한다.

 

▶결선투표는 후보 난립을 부른다. 지지율이 낮아도 2등만 하면 역전승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엉뚱한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2002년 프랑스에선 조스팽을 필두로 한 좌파 집권이 확실시되자 좌파 후보가 10명 가까이 난립했다. 이들의 득표율 합계는 60%가 넘었지만 도토리 키 재기였다. 아무도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황당한 결과에 좌파에선 “결선만 믿고 단일화를 외면한 참사”라고 했다.

 

▶이번 민주당 경선에선 결선투표 실시 여부를 두고 이재명·이낙연 후보가 첨예하게 맞서있다. 이재명 후보가 1차에서 50.29%를 얻었지만 중도 사퇴 후보의 득표를 합치면 49.3%에 그치기 때문이다. 대장동 파문 여파로 마지막 일반 국민 투표에서 이낙연 후보가 크게 이긴 결과였다. 당 지도부는 ‘이재명 당선’을 선언했지만 이낙연 측은 결선투표를 요구하고 있다. 결선투표는 속성상 결과 예단이 어렵다. 자칫 법정 공방까지 갈 수도 있다는 말도 나온다. 이번 결선투표 논란의 결말은 이번 대선 판을 뒤흔들 수 있다.

배성규 논설위원

 

10.14 1타 강사

‘미스터 트롯’ 경연에도 참가했던 수학 ‘1타 강사’ 정승제씨가 얼마 전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왔다. 진행자가 “6층짜리 건물이 있고 직원이 70명 정도 된다”고 소개하면서 연 수입을 묻자 “미국 메이저리거 정도의 연봉을 받는다”고 답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강의료, 교재 인세, 유튜브 수익 등을 다 합하면 이 1타 수학 강사의 수입은 메이저리그에서도 고액 연봉군에 속하는 연간 수백 억원일 것이라고 학원가에서는 추정한다.

 

 

▶학원가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강사를 ‘1타 강사’라고 부른다. ‘1등 스타 강사’ 내지는 ‘1번 타자 강사’를 줄인 말이다. 2000년대 들어 강사 한 명이 동시에 전국의 수만 명에게 강의할 수 있는 ‘인강(인터넷 강의)’ 시대가 열리면서 사교육 시장은 무한 경쟁, 승자 독식 구조가 됐다. 귀에 쏙쏙 꽂히게 강의 실력이 뛰어나야 하는 것은 물론, 연예인 같은 외모와 입담도 중요하다.

 

▶피 말리는 경쟁 속에서 승자로 등극한 극소수 1타 강사는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기업’이다. 3년 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320억원짜리 건물을 누군가 대출 없이 현금으로 구입해 화제가 됐다. 그 큰손은 스탠퍼드대 수학과 출신의 1988년생 1타 강사 현우진씨였다. 사회탐구 영역 1타 강사로 손꼽히는 이지영씨는 “2014년 이후 연봉이 100억원 이하로 내려가 본 적이 없다”면서 130억원이 넘게 찍힌 은행 잔액을 공개했다. 부동산, 주식 자산은 포함하지도 않은 주거래 은행 통장 잔액만 그 정도였다.

 

▶대장동 게이트 와중에 국민의힘 대선 예비 후보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대장동 1타 강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민·관 개발의 외피를 쓰고 소수가 수천 억원을 챙겨간 대장동 게이트는 등장인물도 많고 내용도 복잡해서 일반인이 속속들이 전모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이 복잡한 걸 원 후보가 학원 선생님처럼 소매 걷어붙이고 칠판에 글씨 쓰고 점 찍고 동그라미 쳐가며 쉽고 명쾌하게 설명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띄웠다. 많은 사람이 그 유튜브를 보고 대장동 게이트를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수포자(수학 포기)’ 수험생들에게 1타 수학 강사는 수학 공부도 도전해볼 만하다고 마음먹게 해주는 동아줄 같은 존재다. ‘정포’(정치 포기) 국민이 정치권에 기대하는 1타 강사는 그저 어렵고 복잡한 사안을 쉽게 설명해주는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국민에게 실타래처럼 얽힌 국정 현안의 해법을 제시하는 ‘1타 리더십’을 보고 싶다.

강경희 논설위원

 

10.15 도롱뇽 생각나게 한 단양쑥부쟁이

▲13일 오후 경기 여주시 대신면 남한강 지천 변에 단양쑥부쟁이가 무리 지어 피어 있다. 4대강 사업 당시 멸종 위기 2급인 단양쑥부쟁이의 유일한 서식지를 파괴한다는 반대가 심해 공사를 일시 중단하기도 했으나, 11년 지난 지금 여주보 하천 인근 등에서 대거 서식하는 게 확인됐다. /고운호 기자

 

2003년 경남 양산시 천성산 아래 KTX 터널 공사를 할 때 승려 지율은 단식을 하며 환경 단체들과 함께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습지에 사는 도롱뇽도 소송 원고에 넣었다. 습지가 없어져 도롱뇽이 살 수 없게 된다는 이유였다. 이 때문에 공사가 중단되고 비용은 엄청나게 늘어났다. 3년 전 이맘때 천성산에 오른 적이 있다. 도롱뇽은 이미 월동에 들어가 볼 수 없었지만 습지는 신발이 젖지 않게 조심해야 할 정도로 살아 있었다.

 

▶환경 단체들은 개발에 반대할 때 동식물을 상징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천성산 도롱뇽이 대표적이고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반대 운동은 산양이 상징이다. 지구온난화는 얼음이 녹아 먹이를 찾지 못하는 북극곰을 상징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런 상징으로 사람들 감성에 호소하면서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한 경우가 많다. 제주 해군 기지 반대 운동은 무생물인 구럼비 바위를 상징으로 내걸었다.

 

 

▶10여 년 전 4대강 사업 공사를 할 때는 멸종 위기 2급 식물인 단양쑥부쟁이가 4대강 반대 운동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단양쑥부쟁이는 쑥부쟁이 종류의 하나로, 충북 단양에서 경기 여주까지 남한강 변 모래땅에 주로 서식하는 꽃이다. 마침 요즘이 제철이다. 잎이 둥글거나 타원형인 다른 쑥부쟁이에 비해 가는 선형인 것으로 구별할 수 있다. 반대 때문에 공사를 중단했다가 단양쑥부쟁이 무리를 여주 강천섬으로 옮기고 나서야 재개할 수 있었다.

 

▶10년이 흐르는 사이 대체 서식지로 옮긴 단양쑥부쟁이는 세력이 시원치 않은 반면, 없어질 것이라던 여주보와 강천보 사이 남한강 변 일대 단양쑥부쟁이는 오히려 소규모 군락이 여러 개 생겼다고 한다. 단양군은 남한강 변과 도로가에 단양쑥부쟁이를 대량으로 심어 놓았는데 그게 잘 자라고 있다. 자연 훼손의 상징으로 삼은 식물이 곳곳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4대강 사업 당시 ‘단양쑥부쟁이가 사라질 것’이라고 한 환경 단체의 주장이 과했다는 지적이 안 나올 수 없다. 애초에 천성산 도롱뇽처럼 아무 상관 없는 문제였을 수도 있다.

 

▶천성산 도롱뇽도 단양쑥부쟁이도 함께 살아가야 할 소중한 것들이다. 적절한 개발은 이런 소중한 환경을 더 잘 보존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 많은 학자의 견해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편의와도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단양쑥부쟁이에서 보듯 자연의 자생력, 복원력도 만만치 않다. 보존만을 앞세워 국토 개발을 모조리 반대하는 환경근본주의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김민철 논설위원

 

10.16 대장동의 5만원권

10년 전 마이크로소프트 부사장이 재미 삼아 향수를 하나 만들었다. 달러 지폐 냄새를 담았다면서 이름을 ‘머니(money)’라고 지었다. 일본의 한 공장에서 환기구를 통해 돈 냄새를 주입했더니 생산성이 현격하게 올라갔다는 연구를 보고 힌트를 얻었다고 했다. 그는 “백만장자 냄새를 나게 해준다”는 광고를 내세워 실제 지폐를 갈아 넣었다는 이 향수를 병당 35달러에 팔았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하지만 낡은 지폐는 향기는커녕 악취를 풍긴다. 뇌물 현금 뭉치를 집에 보관했던 한 국회의원 부인은 “퀴퀴한 돈 냄새가 진동해 머리가 아파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했다. 헌 지폐의 악취는 세균 때문이다. 국내 한 미생물 전공 교수가 지폐 속 세균을 조사했더니 적혈구를 파괴하는 바실러스균, 폐렴을 유발하는 수도모나스균, 살모넬라균, 대장균 등 온갖 세균이 10종이나 검출됐다. 하루 종일 돈 세는 은행 직원들은 세균 탓에 호흡기 질환에 시달린다. 이 때문에 지폐 계수기 제조업체는 살균·탈취 기능을 넣었다는 점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는다.

 

▶검은 뭉칫돈을 숨겨야 하는 범죄꾼들에게도 돈 냄새는 골칫거리다. 그래서 땅에 파묻는 걸 선호한다. 1980년대 남미 마약 운반책 역할로 떼돈을 번 미국인 파일럿의 실화를 다룬 영화 ‘아메리칸 메이드’에선 주인공이 집 정원에 700만달러를 파묻었다. 반려견이 이를 파헤치는 통에 지폐가 사방에 흩날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도 2011년 인터넷 불법 도박사이트로 떼돈을 번 일당이 현금 110억원을 김제 마늘밭에 묻었다가 적발됐다. 한 전직 대통령 아들은 뇌물로 받은 10만원권 헌 수표 1만장(10억원)을 아파트 베란다에 숨겼다 들통이 났다. 아마 냄새 때문에 그곳을 선택했을 것이다.

 

▶범죄자가 주로 활용하는 현찰은 최고액권이다. 2년 전 유로존 국가들은 최고액권 500유로 지폐가 탈세와 돈세탁에 주로 활용되자 사용을 금지했다. 우리나라에선 2009년 이후 250조원이나 발행된 5만원권이 계속 지하로 잠기고 있다. 올 1~8월 중엔 5만원권 환수율이 역대 최저인 19%대로 떨어졌다. 그런데 이 5만원권이 대장동 게이트를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올봄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수십억원을 5만원권 현금으로 찾아가는 바람에 성남시 일대 은행 지점들이 5만원권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이를 수상히 여긴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지난 4월 경찰에 이 사실을 통보한 것이 이 사건의 공식 시발점이 됐다. 검은돈이 풍기는 악취를 따라가면 대장동 ‘그분’이 드러날까.

김홍수 논설위원

 

10.18(월) 위드 코로나

국민의 65%가 코로나 백신 2차 접종을 마쳤다. 18세 이상 성인 접종률은 75%를 넘어섰고, 이번 주 중 80%를 돌파할 전망이다. 질병관리청은 성인 접종률이 80% 이상이면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전략을 도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르면 11월부터 거리 두기가 없어지고 점차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17일 프로야구 두산과 KIA의 무관중 경기가 열리는 잠실야구장에 관계자가 관중석으로 시설물을 옮기고 있다./연합뉴스

 

▶대부분 선진국들은 이미 위드 코로나를 실행하고 있다. 영국은 지난 7월 ‘자유의 날’을 선포하고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 등 방역 규제를 전면 해제했다. 독일·덴마크·스웨덴·싱가포르 등도 비슷한 조치를 취했다. 미국은 다음 달부터 백신 접종을 완료한 외국인 여행객에 대해 입국 제한을 해제하겠다고 발표해 세계 항공·여행업계를 들뜨게 만들었다.

 

▶경제 현장에선 위드 코로나 특수(特需)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유럽행 항공권이며, 해외여행 패키지 상품 판매가 급증해 여행사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끝내고 사무실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주류업계에선 연말 회식이 늘어날 것에 대비해 술 생산량을 늘리고 있고, 백화점 업계는 새 점포 출점을 서두르고 있다. 투자 전문가들은 억눌려온 ‘인간의 욕망’에 베팅하라면서 백화점, 항공사, 호텔, 카지노, 엔터테인먼트 기업 주식을 ‘보복 소비’ 수혜주로 추천하고 있다. 실제로 영국에선 위드 코로나 이후 롤스로이스(고급차), 플러터엔터테인먼트(스포츠 도박) 등의 주가가 급등했다.

 

 

▶한국이 위드 코로나의 글로벌 수혜국이 될 가능성도 있다. 세계 여행 잡지 ‘타임아웃’은 서울 종로3가를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동네 3위로 선정하면서 “포장마차에서 소주에 오징어 튀김을 즐겨보라”고 추천했다. 넷플릭스 세계 1위 기록을 세운 ‘오징어 게임’에서 탈북자가 가장 가고 싶은 곳으로 ‘제주도’를 꼽자, 제주도가 글로벌 구글 검색어 상위에 올랐다. 일본관광공사가 세계 12국 국민을 대상으로 코로나 이후 가고 싶은 나라를 조사했더니 한국이 2위를 차지했다. 여행업계에선 다시 하늘길이 열리면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폭증할 것으로 기대한다.

 

▶코로나 이후 홈 트레이닝, 원예, 가정간편식 제품 판매가 급증하고, 아파트 선호 평형이 중대형 평형으로 바뀌는 등 ‘가족과 함께’ 하고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하는 소비자가 급증했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KPMG는 코로나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건강, 행복, 가족 등 본원적 가치를 중시하는 소비 행태가 뉴 노멀(new normal)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한다. 코로나가 바꿔놓은 가족 중시의 뉴 노멀이 위드 코로나 시대에도 계속됐으면 한다.

김홍수 논설위원

 

10.19 ‘큰손’ 미국 부자 대학들

증시 호황 덕에 미국 하버드대 기부 적립금이 34% 투자 수익률을 올리면서 13조원(113억달러) 불어나 63조원(532억달러)이 됐다. 예일대 역시 40% 수익률을 올리면서 기부 적립금 규모가 50조원(423억달러)으로 커졌다.

 

 

▶돈 많기로는 하버드가 1위이지만 투자업계에서는 예일대의 자산 운용을 첫손가락에 꼽는다. ‘예일 모델’까지 있다. 1985년부터 35년 넘게 예일대 최고투자책임자로 일해온 데이비드 스웬슨이 기부금 운용 방식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대학들은 안전한 예금이나 채권에 묻어두거나 주식에 일부 투자하는 정도였다. 스웬슨은 헤지펀드, 벤처캐피털, 부동산 같은 대체 자산을 발굴해 장기 분산 투자하고, 외부 전문가들에게 운용을 맡기는 전략을 폈다. 미국 각 대학이 ‘예일 모델’을 본떠 투자했고, 스웬슨 밑에서 기금 운용 전략을 배운 속칭 ‘스웬슨 사단’이 미국 각 대학에 투자책임자로 영입됐다.

 

▶2000년대 중반 스웬슨의 별명이 ‘80억달러 사나이’였다. 20년간 예일대가 받은 기부금보다 스웬슨의 투자 수익이 더 많아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예일대 박사 출신의 스웬슨은 월가에서 일하다 31세이던 1985년 예일대 기부금 운용을 제의받고 연봉이 80% 깎이는데도 수락했다. 1985년 10억달러이던 기부금을 2020년 310억달러로 키웠다. 교수 월급, 연구비, 장학금 등 예일대 운영비의 3분의 1이 이 기부금 투자 수익에서 나온다. 올 5월 스웬슨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지인은 “위대한 화가는 피카소처럼 다른 화가들의 그림 그리는 방식까지 바꿔놓는데 투자업계에서는 스웬슨이 그런 사람”이라고 애도했다.

 

▶하버드는 HMC라는 별도 회사를 세우고 직접 기부금을 굴려왔다. 1990년부터 2005년까지 HMC를 이끈 잭 마이어가 하버드대 기부금 48억달러를 4배 넘게 키워 유명해졌다. 그 이후로 하버드 투자가 그리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천연 자원에 투자했다 큰 손실을 봤다. 최근 10여 년간 투자 수익률이 미국 증시 S&P500의 상승률을 밑돌고 다른 대학들보다 낮았다. 2017년에는 HMC 직장 문화가 느리고 게으르다는 컨설팅 결과가 나와 직원 230명을 절반으로 줄였다. 그러다 증시 호황 덕에 돈벼락을 맞았다.

 

▶미국 부자 대학들이 기부금 운용 수익을 학생 장학금과 교직원 보너스로 펑펑 풀고 있다. 반값 등록금으로 학교 재정은 쪼그라들고 학생 수 급감으로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한국 대학들로서는 상상도 못 할 얘기다.

강경희 논설위원

 

10.20 ‘역벤션’

대선 후보 경선이나 당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 등 주요 정치 행사에서 승리한 후보나 정당 지지율이 이전보다 크게 상승하는 현상을 ‘컨벤션 효과(Convention Effect)’라고 한다. 경선 후보들끼리 치고받는 난타전이 끝나면서 패자는 승복하고 승자가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면서 지지율이 단숨에 치솟는 것이다. 국내 정치에서 컨벤션 효과를 가장 극적으로 그것도 두 번이나 누린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2002년 민주당 경선에서 지지율 2%로 시작한 노무현은 경선 승리 직후 지지율 40%라는 컨벤션 효과를 봤다. 그 후 하락했지만,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정몽준 후보와 이룬 단일화 이벤트로 지지율이 다시 10%포인트가량 오르는 2차 상승 곡선을 탔다.

 

 

▶선거에서 컨벤션 효과는 크든 작든 있다는 것이 정치 상식이다. 그런데 열흘 전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재명 경기지사의 지지율 추이는 컨벤션 효과와 정반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얼마 전까지는 이 지사가 야당의 윤석열, 홍준표 후보와 가상 대결에서 강세를 보이는 여론조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후보로 선출된 직후부터 야당 후보에게 밀리는 조사가 나오고 점차 간격이 벌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국민의힘 경선 4강에 턱걸이한 원희룡 전 제주지사와도 오차 범위 내 접전을 벌이는 조사까지 나왔다.

 

▶대장동 의혹이 이어지면서 지지층의 동요가 현실화하는 시점이 공교롭게도 후보 확정 시점과 맞물렸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경선 최종일 함께 발표된 3차 일반 당원·국민 선거인단 투표에서 이 지사가 낙선자인 이낙연 전 대표에게 28% 대 62%로 크게 밀린 것으로 드러나면서 ‘컨벤션’이 아니라 ‘역(逆)벤션’이 돼버렸다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 무효표 계산을 어떻게 하느냐로 논란이 벌어진 것이 지지층 분열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낙연 전 대표 지지층 중 본선에서 이재명 지사를 지지하겠다는 응답은 14%, 야당 후보 지지는 40%라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2012년 대선을 앞둔 문재인, 안철수 후보 단일화가 ‘아름답지 않은’ 모양이 되자 컨벤션 효과는 크지 않았는데 결국 문 후보는 박근혜 후보에게 패했다.

 

▶2016년 미 대선 때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도 후보 경선 승리 후 경쟁자였던 버니 샌더스 지지층 반발로 컨벤션 효과를 별로 보지 못했다. 결국 트럼프에게 패했다. 이재명 후보가 ‘역벤션’이라는 생각지 못한 난국을 극복할 수 있을지가 이번 대선의 관전 포인트일 것이다.

최승현 논설위원

 

10.21 50代 간병 우울증

이승하 시인의 어머니는 아들이 나이 50줄에 들어섰을 때 치매를 앓기 시작했다. 나중엔 아들을 알아보지도 못했다. 가끔 발톱을 깎아 드릴 때면 기억이 되살아나기라도 한 듯 아들을 꼭 끌어안았다. 노모 품에 안긴 초로의 사내가 눈물 쏟으며 시를 썼다. ‘작은 발을 쥐고 발톱 깎아 드린다/(…)/ 뼈마디를 덮은 살가죽/ 쪼글쪼글하기가 가뭄못자리 같다/(…)/ 가만히 계셔요 어머니/ 잘못하면 다쳐요/ 어느 날부터 말을 잃어버린 어머니/ 한쪽 팔로 내 머리를 감싸 안는다./(…)’(‘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 드리며’)

 

 

▶한두 세대 전만 해도 치매 앓는 고령 부모와 그런 부모를 돌보는 50대 이상 초로 자녀는 흔한 풍경이 아니었다. 많은 부모가 고희를 맞기 전에 자식 곁을 떠났다. 치매는 드물었고 자리보전도 오래 하지 않았다. 더는 아니다. 20여 년 전 필자의 아버지가 환갑을 맞았다. 동네 어르신들은 축하한다며 “아들이 아버지를 업고 춤을 춰야 한다”고 권했다. 아버지는 단호히 거절했다. “자식에게 업히라니, 내가 노인이란 말인가.”

 

▶이제 60대는 노인 축에도 끼지 못한다. 대신 노년은 늦게 찾아오고 오래 지속된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 기대 수명은 남자 80세, 여자 86세다. 자식 관점에서 보면 많은 한국인이 50대 이후 부모와 사별한다는 의미다. 간병 기간도 늘었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일본은 거동 불편한 부모를 임종 때까지 간병하는 기간이 평균 5년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노환으로 인한 장기 와병과 연명 치료에 지친 50대 자녀가 간병 우울증을 앓는다는 사연이 어제 조선닷컴에 소개됐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요즘 50대 후반 60대 초반 연령대의 회식 자리 최고 화제는 노부모 간병이다. 식사할 힘도 없어 콧줄로 음식을 삼키는 아버지 어머니 얘기를 나누다가 함께 목이 멘다. 길에서 ‘요양’이란 간판만 봐도 눈길이 간다는 경험담에 너도나도 맞장구친다.

 

▶장수(長壽)는 우리 사회에 혁명과도 같은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대부분 노인이 집에서 임종을 맞았지만, 이젠 90% 이상이 요양원에서 지내다가 병원에서 세상을 떠난다. 요양원 수십 개가 몰려 있는 요양원 마을도 등장했다. 그런 식으로 부모를 떠나 보내야 하는 자녀도 못 할 노릇인데 딱히 해결책이 없다. 시중에 간병 정보 관련 서적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장수가 진정한 축복이 되기 위해서라도 생명 윤리와 제도 정비가 시급해 보인다.

김태훈 논설위원

 

10.22 비트코인 ‘제도권 진입’

가상 화폐의 대표 주자인 비트코인 가격이 6만6909달러(약 8100만원)까지 치솟아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미국 뉴욕 증시에 비트코인 ETF(상장지수펀드)가 상장됐다는 소식이 호재로 작용했다. 서학개미들이 ‘돈나무 언니’로 부르며 추종하는 캐시 우드 아크인베스트먼트 CEO까지 나서 “기관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포트폴리오에 5%씩만 담아도 50만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면서 추격 매수를 부추겼다.

 

 

▶뉴욕 증시에 상장된 비트코인 ETF는 비트코인에 직접 투자하는 상품이 아니다.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되는 비트코인 선물지수에 투자하는 간접 투자 상품이다. 그런데도 투자업계에선 ‘비트코인의 제도권 진입’이라고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비트코인 현물에 투자하는 ETF의 등장도 시간문제라고 보면서 2004년 금 ETF의 등장 이후 금값이 급등한 것처럼 ‘디지털 금’의 상승 랠리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지난 5월을 기점으로 미국과 중국이 가상 화폐에 대해 정반대 행보를 보이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은 중앙은행이 만든 디지털 위안화 사용 기반을 넓히기 위해 비트코인을 비롯한 민간 가상 화폐의 채굴·거래를 전면 금지시켰다. 반면 미국은 가상 화폐 생태계를 키우는 것이 미국의 금융 패권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가상 화폐를 제도권으로 수용해 가고 있다. 그 결과 40%를 웃돌던 중국의 비트코인 채굴 비율은 0%로 떨어지고 미국의 비율은 4월 17%에서 8월 35%로 급등했다.

 

▶가상 화폐 자체의 미래에 대해선 투자 고수들의 의견도 크게 엇갈린다. JP모건 CEO는 “비트코인은 ‘바보들의 금’”이라고 일축하고, 세계 최대 헤지펀드 설립자는 “비트코인의 가장 큰 위험은 성공 그 자체”라며 결국 정부가 죽이려 할 것으로 본다. 반면 제2의 비트코인이라 불리는 이더리움의 창시자는 “10년 뒤면 주로 메타버스 세계에서 생활하면서 가상 화폐로 거래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비트코인의 지위 격상이 안 그래도 유난스러운 한국의 코인 투자 열기를 더 고조시키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10월 1~18일 국내 4대 코인 거래소 거래 대금은 297조원으로, 주식 거래 대금(129조원)의 2.3배에 달했다. 덕분에 코인 거래소들은 돈을 쓸어담고 있다. 1위 거래소 업비트가 올 상반기에 올린 순익이 무려 1조8000억원이다. 업비트 측은 이 돈을 들고 정부가 매각하려는 우리금융 지분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코인이 은행을 집어삼키겠다고 나선 격이다. 우리가 알던 금융의 상식도 무너지고 있다. 하도 변화가 빨라 따라잡기 버겁다.

김홍수 논설위원

 

10.23 실패의 축적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21일 오후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붉은 화염을 내뿜으며 날아오르고 있다. 로켓 엔진부터 동체, 발사대까지 한국 독자 기술로 개발된 누리호는 이날 발사 16분 7초 만에 지구 700㎞ 상공에 도달했다. 하지만 로켓의 마지막 3단 엔진 연소가 계획보다 빨리 끝나는 바람에 누리호에 탑재됐던 위성 모사체를 목표 궤도에 올리는 데는 실패했다. /사진공동취재단

 

1986년 1월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사고는 우주 도전사에서 참사 중 하나였다. 승무원 7명을 태운 챌린저호는 발사 73초 만에 가스 누출로 공중 폭발했다. 이 장면을 세계인이 생중계로 지켜보았다. 원인은 미터법을 쓰지 않은 데 있었다. 이음매를 미터보다 더 큰 단위인 인치로 설계하면서 로켓의 고무링에 틈새가 생긴 것이다.

 

▶‘항공우주 개발의 역사=실패의 역사’다. 브라질은 2003년 로켓이 폭발하면서 발사대가 붕괴해 과학자 등 23명을 잃었다. 중국은 1996년 쓰촨성 우주센터에서 위성 탑재 로켓을 쏘아 올렸다. 그러나 발사 몇 초 만에 로켓이 심하게 기울더니 하필이면 주변 민가로 추락했다. 중국의 언론 통제로 정확한 피해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수백 명의 사상자가 생겼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인류 최초 달 착륙을 앞두고 이뤄진 최종 점검에서 우주인 3명 전원이 사망하는 비극도 있었다.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는 21일 발사 후 2단과 3단 분리와 엔진 점화, 페어링 분리, 위성 분리까지 성공했으나 3단 엔진에 문제가 생기면서 위성 모사체를 목표 궤도에 진입시키지 못했다. 이번에 얻은 경험과 수치는 향후 발사 성공률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로켓 엔진은 경험을 축적하는 것 말고는 제대로 작동하게 만들 방법이 없다고 한다. 미국의 첫 우주 발사체 뱅가드도 1957년 12월 발사 후 1.5m도 솟구치지 못하고 2초 만에 폭발했다.

 

▶서울대 교수들이 쓴 책 ‘축적의 시간’은 “창조적 역량은 오랜 기간의 시행착오를 전제로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축적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다”고 했다. 모든 기술은 실패의 축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수십만 개 부품이 극한 환경에서 정확하게 작동해야 하는 우주 발사체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실패가 축적돼 성공으로 가려면 과학자들이 ‘과학’만을 생각해야 한다. 누리호 발사 중계를 지켜보던 국민은 발사 14분 만에 뜬 ‘3단 엔진 정지 확인’이란 자막이 무엇인지 의아해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주는데 항공우주연구원은 아무런 발표도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언론은 ‘발사 성공’이란 오보를 내보내야 했다. 항우연은 궤도 진입 각도 등 구체적인 수치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한 시간이나 지나서 대통령이 나와 ‘미완의 과제’라면서 위성 궤도 진입 실패를 알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대통령이 아니라 과학자가 국민에게 발표하고 설명해야 할 일 아닌가. 내년 5월 누리호 2차 발사는 성공하기를 바란다.

김민철 논설위원

 

10.25(월) 아이티의 비극

중미 카리브해에 작은 섬 이스파니올라가 있다. 그곳 흑인 노예들이 1804년 프랑스를 축출하고 아이티를 건국했다. 아이티인들은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식민지 시절에도 설탕·커피 생산지로 번영하며 유럽 국가의 아메리카 식민지 중 가장 부유하다는 명성을 누렸다. 프랑스로부터 배운 영농 기법만 잘 활용해도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해방 노예가 세운 최초의 독립국이란 국민적 자부심도 컸다. 1822년엔 여세를 몰아 그때까지 스페인 치하에 있던 섬 동쪽 도미니카 지역마저 손에 넣었다.

 

 

▶그러나 오늘날 아이티는 파탄국가(failed state)로 전락했다. 1957년 집권한 프랑수아 뒤발리에 대통령과 그의 아들 장클로드 뒤발리에의 30년 세습 정권이 나라를 완전히 거덜 냈다. 그후로도 쿠데타와 정파 대립, 무장 세력의 발호 등 혼란이 반복됐다. 오늘날 아이티는 인구 1140만명 중 60% 이상이 빈곤에 빠져 있고 120만명은 극심한 기아로 고통받는다.

 

▶아이티는 환태평양조산대에 있는 재난 빈발 국가다. 2010년 1월 규모 7의 강진이 이 나라를 덮쳤다. 사망자 수가 22만명을 넘었다. 2월에는 같은 지진대에 놓인 칠레에 규모 8.8의 대지진이 닥쳤다. 아이티 지진보다 500배나 강력했다. 그런데 사망자는 450명뿐이었다. 칠레 정부가 앞장서 건물마다 내진 설계를 한 것이 수많은 국민 생명을 구했다. 1955년 허리케인 피해로 사망자 600명을 낸 멕시코는 2007년 같은 규모의 허리케인이 닥쳤을 때는 한 명도 죽지 않았다. 심지어 아이티와 국경을 맞댄 도미니카 공화국도 1844년 독립 후 경제 발전과 정치 안정을 이루며 중진국으로 발돋움했다.

 

▶정치가 실종된 아이티에는 깡패가 들끓는다. 전국적으로 무장 갱단이 90개 넘는다고 한다. 아이티에서 가장 세력 큰 갱단이 지난주 총리 주재 건국 영웅 추념식장에 난입해 총기 난사극을 벌였다. 지난 7월 대통령이 암살당하더니 이젠 깡패가 국가 행사장에 나타나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던 총리를 행사장 밖으로 내쫓고 총리 행세까지 했다.

 

▶아이티는 1949년 개발도상국 최초로 엑스포도 개최했던 나라다. 1950년대 초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50달러 선에 머물 때, 아이티는 200달러를 넘나들었다. 이젠 수많은 아이티인이 목숨 걸고 미국에 밀입국한다. 미 국경수비대가 그들을 찾아내 채찍질한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자들이 이런 국제사회의 멸시엔 변변한 항의조차 없다. 아이티의 비극이 정치 리더십의 중요성을 생생하게 증언해 준다.

김태훈 논설위원

 

10.26 영화 제작자 이태원

1980년대 중반, 고3 수험생이었던 필자는 모의고사 끝나는 날마다 친구들과 학교 근처 재개봉관에 몰려가곤 했다. 시험 스트레스 풀자며 가끔 야한 영화도 봤는데 배우들이 아무 맥락 없이 벗는 3류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다만 안성기·이보희가 주연한 ‘어우동’은 달랐다. 스토리는 정교했고 배우 연기도 다른 영화와는 차원이 달랐다. 무엇보다 이보희가 입은 한복이 눈부셨다. 우리 한복이 이렇게 예뻤나 싶었다. 이 영화를 제작한 이가 1980년대 초 태흥영화사를 설립한 이태원이다.

 

 

▶그 시절 많은 한국 영화가 돈 되는 외국 영화 수입하기 위한 쿼터 충당용으로 날림 제작됐다. 공동묘지에서 시신이 누운 채로 날아다니는 공포영화도 봤는데, 시신 역할 배우가 입은 소복 안에 널찍한 송판이 두드러졌다. 그걸 피아노 줄로 연결해 배우를 들어 올리니 무섭기는커녕 황당했다. 이태원은 “이래선 안 된다”며 “제작비에 인색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보희가 입은 한복만 해도 최고 전문가를 찾아내 만들었다. 총 제작비가 당시 평균의 두 배 넘게 들었다고 한다.

 

▶이태원의 영화 인생은 ‘성공은 실패가 없는 삶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1990년대 초 그가 제작한 ‘장군의 아들’ ‘서편제’는 역대 최다 관객 기록을 연이어 갈아치웠다. 하지만 1959년 제작자로서 첫 작품인 ‘유정천리’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한동안 영화를 떠났다가 1984년 돌아와 내놓은 ‘비구니’는 아예 촬영도 못 하고 제작비만 날렸다.

 

▶그는 한류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내다본 제작자였다. 1989년 임권택 감독의 ‘아제아제바라아제’를 들고 모스크바 영화제를 찾았다. 난생처음 참석한 국제영화제에서 배우 강수연이 최우수 여자 연기자상을 받는 기쁨을 맛봤다. 하지만 씁쓸한 경험도 했다. “한국 영화에 관심 가져 달라”며 영화제 집행위원들을 식사에 초대했는데 단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그에게 국제 무대에서 한국 영화의 위상을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우리 영화의 세계화는 이태원 평생의 비원이었다. 마침내 2002년 ‘취화선’이 한국 최초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자 “월드컵 4강에 맞먹는 쾌거”라며 기뻐했다. 그가 초청한 식사 자리를 무시했던 외국 연예인들이 이젠 한국의 영화인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며 제 발로 찾아온다. 그 반전을 위해 누구보다 땀 흘렸던 ‘영화 제작자 이태원’이 그제 영면에 들었다. 한국 영화인들이 만들어갈 한류의 새바람을 하늘에서 응원하며 지켜보리라 믿는다.

김태훈 논설위원

 

10.27 군인 두발 규정

▲국방부가 간부와 병사의 두발 규정을 통일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김태성(왼쪽) 해병대사령관의 두발이 일선 해병대만큼 짧다. /뉴시스

 

고대 스파르타 정치가 리쿠르고스는 병사들에게 장발을 권유했다. ‘긴 머리를 하면 미남은 더 아름답게 보이고, 추남은 더 무섭게 보인다’는 것이다. 스파르타 군대가 페르시아와 결전을 앞두고도 태연히 머리를 손질하는 모습은 영화에도 등장한다. 그런데 다음 세대인 알렉산더 대왕은 짧은 머리를 강조했다고 한다. 적에게 머리카락을 잡히면 백병전에서 불리하다는 것이다. 로마 군단도 비교적 짧은 머리를 유지했다.

 

▶얼굴 옆으로 땋아 내린 머리를 ‘카드네트(cadenette)’라고 한다. 18세기 프랑스 군인들 사이에 유행했는데 유럽 기병들이 자주 하던 헤어스타일로 알려졌다. 영국 육군은 긴 머리를 ‘올백’으로 넘겨 꽁지 머리로 묶는 ‘큐 헤어(queue hair)’ 규정이 있었다. 영국 해군도 머리를 땋았다. 그런데 자주 감기 어려운 머리에 이가 들끓고 쥐까지 덤비는 등 위생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서 장발 규정은 없어졌다. 19세기 나폴레옹 전쟁 이후 ‘단발’이 세계 군대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군인 두발이 짧으면 다친 머리의 상처를 찾고 치료하기가 쉽다. 방독면을 신속하게 쓰고 얼굴에 틈이 없도록 밀착하기도 좋다. 해군 앞머리가 육군보다 길어도 봐주는 것은 바다에 빠졌을 때 머리카락을 잡아 끌어올려야 할 필요성 때문이라고 한다. 미군의 턱수염 금지 규정도 철모의 턱 끈을 매는 데 방해가 없어야 한다는 취지다. 군대에선 멋보다 효율이 우선이다.

 

▶우리 국방부가 간부와 병사의 두발 규정을 통일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앞머리 3cm 스포츠형’인 병사 두발을 장교·부사관처럼 가르마를 탈 수 있을 정도로 기르게 하겠다는 것이다. “왜 간부만 머리를 기르느냐”는 신세대 병사들의 항의가 거셌기 때문이라고 한다. 샤워 시설이 잘 갖춰진 요즘 군대에서 병사만 ‘밤톨 머리’를 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주장이다. 국가인권위도 병사들 손을 들어줘 두발 개선을 권고했다.

 

▶올 초 미 육군이 여군 두발·복장 규정을 대폭 완화했다. 머리 길이 제한을 없앴고 땋은 머리, 말총머리도 허용했다. 귀걸이와 매니큐어, 립스틱 사용까지 풀었다. 민간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후 전투력이 약해졌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다. 미군은 “병사의 경험과 배경을 수용하는 신뢰 문화”를 강조했다. 병사들 개성을 존중해 잠재력과 자발성을 끌어올리는 것이 전투력 향상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판단으로 해석된다. 훈련 안 하고 머리 손질에 시간을 허비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전제를 깔고 있다. 한국군도 그러길 바란다.

안용현 논설위원

 

10.28 ‘물태우’

몇 년 전 일본 기자가 한국 방송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문재인씨”라고 했다가 방송국이 수난을 당했다. 대통령 지지자들이 떼로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대통령 별명이라도 말했으면 프로그램이 폐지됐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방송에서 대통령 별명을 말할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노태우 대통령이 공약으로 “대통령을 개그 소재로 삼아도 좋다”고 한 이후다.

 

 

▶‘물태우’는 노 대통령의 약한 리더십을 풍자했다. 허(虛)태우, 속태우, 애태우 등 아류작까지 나왔다. 대통령이 강하게 나서면 “불태우”라고 했다. 나중에 비자금 문제가 생기자 “돈태우”라고 했다. 당시 개그맨 김형곤은 물태우 리더십을 이렇게 놀렸다. 대통령이 회의에서 방귀를 뀌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은 “임자도 뀌어”라며 밑에 권하고, 전두환 대통령은 부하들이 먼저 “내가 뀌었다”며 나선다. 노 대통령은 “네가 뀌었제?” 하고 밑에 덮어씌우려는데 부하들이 “누가 방귀를 대신 뀌어줍니까?”라며 대든다.

 

▶노 대통령은 늘 평범했다고 한다. 권력 2인자로 부상했을 때 중학교 동창생들이 모여 그의 특징을 기억하려 했지만 ‘노래와 휘파람을 기차게 불었다’는 것 외엔 없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데 참을성만큼은 유명했던 모양이다. 육사 시절엔 물에 들어가 오래 참는 시합에서 늘 일등을 했다고 한다. ‘물태우’의 유래를 여기서 찾는 이들도 있다. 그는 생전 “자꾸 참다 보니 참는 게 제2의 천성이 됐다”고 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노 대통령이 위중하다”는 얘기가 계속 나왔다. 그의 부음(訃音)을 써놓은 게 10년이 훨씬 넘었다는 신문사도 여럿 있다. 말년의 지병은 소뇌 위축증이었다고 한다. 의식은 있지만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딸 노소영씨는 “한마디 말도 못 하고 몸도 움직이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 어떻게 십여 년을 지낼 수 있을까? 나는 단 한 달도 그렇게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인내 천성으로 10년을 보냈을 것이다.

 

▶노 대통령은 생전에 ‘물태우’를 “매우 좋은 별명”이라고 했다. “물 같은 사람이 바람직한 지도자”라고도 했다. 2007년엔 “용수철처럼 일어난 욕구도 가만히 두면 강도가 약해져 자율이라는 규범 속에 가라앉을 것이라고 봤다”고 했다. 그게 물과 같은 리더십일 것이다. 그는 유언으로 ‘나를 용서해달라’고 했다. 무겁게 다가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 대통령 조문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옹졸한 처사에 ‘물태우’는 뭐라고 했을까. 조용히 인내하고 돌아서 걸어가지 않았을까. 그의 영면을 빈다.

선우정 논설위원

 

10.29 ‘금융의 주한미군’

2001년 한국 씨티은행이 ‘씨티가란트 펀드’라는 상품을 내놨다. 투자금 대부분을 채권에 투자하고 채권 이자에 해당하는 부분만 주식에 투자해 고수익을 노리는 상품이었다. 미국 씨티 본사가 원금 지급을 보장한다고 하자 순식간에 2000억원이 모였다. 씨티은행에선 2·3호 펀드를 내놓으려 했는데 금융 당국이 제동을 걸었다. “(손실 가능성 있는) 펀드를 예금으로 오인하게 만든다”는 이유였다. 알고 보니 국내 은행들이 방해 공작을 펼친 결과였다. 몇 달 뒤 국내 은행들이 씨티 상품을 그대로 베껴 ‘원금보장형 펀드’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으로 판매했다.

 

▲2004년 11월 2일 한미은행과 씨티은행 서울지점이 통합된 한국씨티은행의 당시 하영구 행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조선호텔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조선일보 DB

 

▶씨티은행이 한국에서 개인 상대 소매금융 영업을 시작한 것은 1986년부터다. 1989년 프라이빗뱅킹(PB), 1990년 ATM(현금입출금기), 1993년 24시간 폰뱅킹 등 혁신적인 서비스를 선보이며 시장을 선도했다. 규제 탓에 지점을 늘리지 못해 답답해 하던 씨티은행은 2004년 한미은행을 인수해 한국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후 은행 통폐합으로 덩치를 키운 토종은행들과의 경쟁은 만만치 않았다. 은행 달력 배포조차 금기시하는 미국 본사의 영업 방침에 발목을 잡힌 사이 토종은행들이 한국적 영업으로 고객을 잠식해 갔다. 토종은행이 연 3조원대 수익을 내는 반면 씨티은행은 연 2000억원도 못 버는 소형 은행으로 쪼그라들었다. 수익 악화를 견디다 못한 씨티는 2017년 은행 점포 80%를 없애 충격을 주었다.

 

 

▶미국 본사 씨티그룹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치욕을 겪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관련 부실 채권 탓에 미국 정부로부터 250억달러 구제금융을 받고 다우존스 지수에서도 퇴출됐다. 경쟁사인 JP모건은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미국 1위 자리를 빼앗았다. 지난 2월 새로 취임한 씨티그룹 회장은 글로벌 전략을 수정할 때라며 한국을 포함해 아·태 지역 13국의 소매 금융 철수를 결정했다. 씨티그룹은 한국 직원 1인당 최대 7억원의 특별퇴직금 등 철수 비용만 1조원 넘게 써야 할 상황이다.

 

▶씨티은행은 한국 경제가 위기에 빠졌을 때 구원투수 역할을 많이 했다. 1970년대 석유 파동 때 2억달러 차관을 제공해 급한 불을 끄게 해주었고, 외환 위기 땐 240억달러 외채 상환 연장에 기여해 한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2008년 글로벌 위기 땐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을 도왔다. 그래서 한국에서 ‘금융의 주한미군’이란 평판을 갖게 됐다. 비록 소매금융은 철수하더라도 ‘한국 금융 지킴이’ 평판은 이어지면 좋겠다.

김홍수 논설위원

 

10.30(토) 中, 대만 침공 가능할까

지난달 중국군 기관지는 ‘최근 제73집단군 모 합동여단이 푸젠성 남부의 한 해역에서 해안기지를 점령하는 실전훈련을 진행했다’며 영상을 공개했다. 푸젠성은 대만과 마주하고 있는 지역이고, 73집단군은 유사시 대만 상륙작전을 맡을 핵심 부대다. 앞서 중국 CCTV는 지난해 73집단군이 상륙훈련을 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이 영상을 본 홍콩 명보는 ‘중국의 대만 작전, (전쟁) 준비는 끝났다. 실질 (전쟁 수행) 단계로 전환됐다’고 평가했다.

 

 

▶이달 초 대만해협에선 중국 군용기들이 최대 규모로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했다. 총 149대였다. 지난 18일엔 중국군이 이례적으로 승객 1700여 명, 차량 350대를 동시에 수송할 수 있는 4만5000t급 대형 여객선으로 병력을 수송하는 훈련을 실시했다. 대규모 상륙훈련에 대비한 것으로 분석됐다.

 

▶대만을 위협하는 중국군의 무력 시위와 훈련이 강화되면서 ‘중국의 대만 침공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오는 2027년 중국군 창군 100주년 때까지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점령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200만명(중국군) 대 18만8000명(대만군)으로 큰 차이가 나는 병력을 비롯, 각종 무기 숫자에서도 군사력 격차는 매우 크다. 중국군은 만재 배수량 4만t급 강습상륙함 3척을 비롯,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상륙전 전력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실제로 대만을 침공해 점령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도 많다. 최대 난관은 바다다. 중국이 170㎞쯤 되는 대만해협을 건널 수 있는 기간은 태풍과 거친 풍랑 때문에 연중 두어 달밖에 되지 않는다. 상륙 가능한 해안도 14곳에 불과하다고 한다. 상륙작전은 군사 작전 중에서도 가장 위험하고 힘들다. 바다를 건너는 도중이 더 취약해 중국 상륙군이 몰살당할 수도 있다. 특히 미국 해군이 막아서면 중국군이 바다를 건너는 것은 지옥처럼 될 것이다. 대만엔 해발 3000m가 넘는 산봉우리도 258개에 달한다. 중국군은 실전 경험도 없다. 지난 몇 년간 중국군의 대만 모의 상륙전은 6승48패6무로 참패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대만 입장에선 미국의 강력한 대만 사태 개입의지 천명은 ‘최후의 보루’일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대만 본토 대신 인근 섬을 기습 점령할 경우 미국의 실제 개입 시나리오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당나라군’이 됐다는 대만군의 기강 해이와 훈련 부족이 변수가 될 수 있다.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나라는 아무도 지켜줄 수 없다.◎

유용원 군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