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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진단 6/ 이영종 편2/ 바로보는 평양2/ 2017.09.06 문재인의 북핵 트라우마 … 김정은 폭주 멈춰 세우려면 - 12.27 김정은의 2월 노림수 … 여동생 여정 ‘평창’ 파견할 수도

상림은내고향 2021. 10. 16. 20:16

이영종 편2/ 바로보는 평양2/ 2017

09.06  문재인의 북핵 트라우마  김정은 폭주 멈춰 세우려면

김정은의 북핵 야심이 폭주기관차를 탔다. 6차 핵실험의 여진이 채 그치지 않은 함북 풍계리에선 추가 도발 움직임이 포착됐다. 병기고에 은밀히 숨겨 둬야 할 핵탄두를 최고지도자가 만지작거리는 전대미문의 광경이 북한 TV로 공개됐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거리 발사도 임박 징후가 나타났다. 잇따른 도발 행보에 대한민국은 휘청거리고 있다. 김정은이 탄 북핵 열차가 지나온 노정을 짚어보고, 대응책을 분석해본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몰라라
북한 이틀  핵실험 도발 행보

 대통령 대화 제의엔 묵묵부답
 도발로 되돌아    건너

대북정책에 대화 금기어 삼고
북한이 채점관 되는  막아야

노무현 대통령 급서(急逝) 충격이었다. 그의 동지이자 영원한 비서실장을 자임한 문재인 대통령에겐 엄청난 슬픔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곧이어  하나의 파동이 겹쳤다. 서거 이틀 뒤인 2009 5 25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한 것이다. 평양 남북 정상회담(2) 파트너이자 누구보다 북한과의 대화와 관계 진전에 애착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은 고인이다. 그런 상황을 조금이라도 배려했다면 있을  없는 일이 벌어졌다. 상주(喪主) 격인 입장에서 대놓고 분노를 표하기는 어려웠지만, 당시 북한 정권에 대한  대통령의 실망감은  수밖에 없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전조는 노무현 대통령 집권 시기인 2006 10 9 울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핵실험을 감행했다. ‘ 프로그램 의혹이나 평양 정권의 블러핑(bluffing·허세나 과장)’ 정도로 여기던 북핵 이슈가 실체적 위협으로 다가온 순간이다. 임기 4  대통령에겐 안보 리더십의 위기이기도 했다. 북핵 실험의 책임을 물어 핵심 대북 참모인 이종석 통일부 장관을 읍참마속해야 했다. ‘ 보유는 억제 수단이란 북한 주장을 두고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2004 11) 입장을 보인  대통령은 핵실험으로  거센 여론 비판에 직면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에서 비서실장으로 직을 바꾸며 핵실험 상황을 목도한 문재인에게 북핵은 트라우마였다.
 
그런  대통령에게 북핵이 다시 다가왔다. 이번에도 불청객이다. 5 취임 직후 탄도미사일 도발로 정세를 격랑에 휩싸이게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이번엔 핵실험 버튼을 눌렀다. 핵과 투발수단(미사일) 결합을 통한 현존하는 위협으로 북핵이 성큼 다가선 것이다. 상황이 이런 식으로 꼬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북한 정권에 깐깐했던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 9 동안의 대북 적폐를 청산하는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김정은이  정부에 전향적 태도로 나올 것이란 기대도 깔려 있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북한은  대통령의 베를린 대북 제의와  후속 조치인 군사·적십자회담 제안을 깔아뭉갰다.  대통령을 향해 남조선 집권자 운운하며 막말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달  서해 연평도 점령 훈련을 참관하며 남조선을 타고 앉으라 호전적 발언을 쏟아냈다. ‘대화 방점을 두던 문재인 정부에 대한 최소한의 고려도 없어 보였다.
 
6 북핵 도발은 문재인 대통령의 마음속 레드라인(red-line·한계선) 깊숙하게 침범당했음을 보여줬다. 핵실험 직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주재한  대통령은 참으로 실망스럽고 분노하지 않을  없다 말했다.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한 가장 강도 높은 실망감의 표현이다.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지금껏  세계가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 직면하게  이라고 경고했다.  발언에 청와대와 정부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달도  지나지 않아  대통령이 분노 말하는 상황이 됐다.
 
정부의 후속 조치는  빠르다. 청와대는 당분간 대화는 어려울 이란 방침을 내비치며 제재와 응징에 무게를 실었다. 우리  독자로 북한 핵심 시설 정밀타격을 겨냥한 실사격 훈련도 벌였다. 국방부는 올해 안에 대북 참수(斬首)부대’(특수임무여단) 창설한다고 밝혔다. 유사시 평양에 진입해 김정은과 전쟁 지도부를 제거하는 임무다. 5 통일부의 국회 외통위 현안보고에는 대화 단어가 아예 빠졌다.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문재인 정부와  구성원의 몸에는 김대중 정부 시기 첫선을 보인 대북 햇볕정책의 DNA 깊이 녹아 있다. 제재와 압박이 아닌 대화와 화해 협력·교류에 절대가치를 둔다. 그런 생각은 대북정책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남북관계 기류나 정세의 급박성에 맞춰 탄력 있게 변화하지 않는 교조주의적 대북 인식은 곤란하다. 북한의  도발과 미사일 위협에 국민들은  어느 때보다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가슴 졸인다. 이런 목소리를 외면하다간 집권  국정 동력의 상당 부분을 안보 리스크에 허비할 공산이 크다.
 
정치권이 코앞에 닥친 안보 위기를 두고 책임 떠넘기기에 골몰하는  볼썽사납다. 국회 규탄 결의안을 턱걸이 표결로 겨우 처리해 놓고 뒤편에서는 말싸움이 한창이다. “도발을 묵과 않겠다 대통령의 고뇌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당 대표는  빼기식 대화 타령으로 논란을 빚었다. 대북특사는 함부로 꺼내  카드가 아니다. “받아야 특사 말이 있다. 북한이 거부하면 망신만 당하고, 후유증은  크다. “문재인 정부 출범 4개월 만에 5000 국민이 북핵 인질이 됐다 보수 야당 대표의 발언도 과하다. 지난 9 동안 집권 여당으로서 얼마나 북핵 해결에 노력했는지 자성하는  우선이다.


북핵은 어느  갑자기 우리 앞에 다가온  아니다. 어쩌면 북한이 작정했던 시간표대로 도착했을  있다. 북한은 1990년대   의혹이 불거지자 핵을 개발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국제사회를 기만했다. 물증이 드러나자 평화적  동력(원자력 발전)”이라고 은폐했다. 그리고 마침내 핵보유국 주장하며 서울과 워싱턴을  불바다로 만들겠다 위협한다. 카멜레온 같은 위장막을 걷어내고 도발 본색을 드러냈다. 민낯의 북한 정권을 보는 진실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이번 핵실험을 두고 어처구니없는 전략적 실수라고 비판했다. 지난 4 대선후보 시절 했던, “6 실험은 돌아올  없는 다리를 건너는 이란 말이 아직도 유효하다면 상황은  절망적일  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북한을 다뤄온 베테랑 대북 전문가들은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 말의 힘을 믿는다. 김정은의 북핵과 미사일 폭주는 앞으로도 속도를 더할 전망이다. 그가 거쳐온 간이역을 돌아보면 곳곳에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때 멈춰 세울  없었을까 하는 회한이다. 하지만 후회와 원망,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한반도 정세의 조타수와 우리 대북정책의 채점관 노릇을 북한에 맡길  없다. 8000 우리 민족의 운명을 김정은에게 담보 잡히는  더더욱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핵 트라우마를 떨쳐내고, 견결하게 북한의 도발에 맞서길 기대한다.

 

09.13 갈라파고스 북한  국제제재에 갇혀버린 외딴섬

제재는  도발적 행동을 응징하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뒷북이란 인상도 준다. 유엔 대북 결의처럼 다자간 합의를 요구하는 경우 특히 그렇다. 11(현지시간) 나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375호도 마찬가지다. ‘솜방망이 혹평도 제기된다. 하지만 당하는 쪽에서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가랑비에도 옷은 젖고 낙타의 등을 부러트릴 지푸라기  가닥이 될지 모른다. 북한의 시선으로 바라본 대북제재는 어떤 모습일까

대북제재 끄떡없다 김일성
미국 압박에 스트레스 시달려

 실험에 제재 무용론 대두
체제 내부엔 충격파  수도

군사노선에 명운  김정은
국제 외톨이 전락 안타까워

김정은이 6차 핵 실험 버튼을 누른 지난 3일 낮. 베트남 하노이 외곽을 달리던 버스 안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남북한의 학자·전문가와 당국자들이 함께한 비공개 회합 자리에 핵 실험 소식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한국 대표단은 급히 버스를 세운 뒤 숙의를 거쳤고, 즉각적인 서울 철수를 결정했다. 한국 측 단장은 “귀측의 핵 실험 도발로 더 이상 이 만남은 의미가 없어졌다. 매우 유감이란 점을 평양 당국에 전해 달라”며 자리를 떴다. 당혹스럽기는 행사를 주선한 독일의 한 비영리재단 측도 마찬가지였다.
 
정부 관계자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관심을 보여  산림 녹화와 환경 보존 분야 대북 지원을 요청하러 나온 북측 관리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귀띔했다. 대외경제성과 국토환경보호성 소속인 이들 관리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관련해 ·  인사들에게 뜻밖의 얘기도 꺼냈다.    관리는 공화국() 대한 제재가 이리 엄혹한데 어떻게 어렵지 않다고 하겠나. 지내(매우) 힘들다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는 것이다. 월급이 북한  3000~5000 수준인데 4 가족이   살려면 50만원이 든다는 말도 했다. 장마당에 주로 의존하는 민생 분야까지 타격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대북제재에 끄떡없다고 호언장담하는 관영 선전매체의 주장과 달리 내상(內傷) 적지 않다는 얘기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하지만 북한은 이런 내색을 일절 하지 않고 있다. 6  실험 완전 성공 발표한 이후 연일 잔치 분위기를 이어간다. 평양과 지방도시에서 축하 군중집회가 줄줄이 열리고,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에는 찬양 선전물이 봇물을 이룬다. 어제 아침 노동신문은 활짝 웃는 김정은 사진을 1면에 실었다. 대북제재에도 흔들리지 않는 최고지도자의 이미지를 연출하려는 의도다.
 
김일성 통치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존재 자체로 두통거리였던 미국에 대한 반감은 김일성이 남긴 발언 곳곳에서 확인된다. 1994 7 6 열린 경제 부문 책임일꾼협의회에서도 김일성은 대북제재에 끄떡없다 허풍을 떨었다. 1 북핵 위기 여파로 대북 선제타격이 검토될 정도로 한반도 위기가 한창이던 시기다. 그는 당시 중재차 방북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과의 대화를 소개하며 카터에게 미국이  문제를 유엔에 끌고  제재를 가하겠다고 하는데 우리는 제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까지 제재를 받으며 살아 왔지 제재를 받지 않은 적이  번도 없다고 말해 줬다 주장했다. 김일성은 지금까지 제재를 받으면서도 별일 없이 살아 왔는데 이제 제재를  받는다고  살아갈  아는가라고 말해 줬다 전했다. 이어 그랬더니 카터는 자기가 북조선에 대한 미국의 제재 조치를 취소시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덧붙였다(『김일성 저작집 44권』, 1996 평양). 특유의 자기과시와 과장이 더해진 언급이지만 김일성이 미국의 대북제재로 인해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음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공교롭게도 김일성은  발언 이틀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대북제재로 인한 스트레스는 김정일 집권시기에도 이어졌다. 미국이 대북 압박 차원에서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 계좌 2500 달러( 281억원) 동결하자 북한은 이해할  없을 정도로 강한 집착을 보였다.  국무부 관리가 우리는 살짝 팔만 비틀어 주려 했는데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놀랐다 말할 정도였다. 북한 정권의 아킬레스건을 제대로 건드리자 꼼짝 못하더라는 얘기다. 천영우 당시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북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에게 고작 2500 달러에  집착하나. 6·15 정상회담 때는   달러를 남측에서 받기까지 했으면서…”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부상은 귀엣말에 가깝게 액수는 문제가 아니다.  조직의 돈이기 때문이다 배경을 설명했다. 이를 두고 김정일의 해외 자금이나 핵심층 또는 군부의 돈이란 얘기가 나왔다.
 
안보리 대북 결의 2375호에 원유 공급 전면 중단 등이 빠지면서 반쪽짜리 지적과 함께 대북제재 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제재에도 불구하고 평양에 초고층 빌딩이 속속 들어서고 ·미사일 도발은 수그러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북한 매체들의 주장이나 선전영상을 꿰뚫어 보면 제재 속에 고민하는 김정은과 북한의 속살이 드러난다. 대북제재의 약발이 없다는 목소리에 김정은은 아마 니들이 겪어 봤나. 당해 보면  아프다 볼멘소리를 할지도 모른다.

 

북한은 김정은 집권 6년 동안 극단적 고립에 빠졌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때문이란 북한의 주장은 본말이 전도됐다. 김정은이 지금까지 4차례의 핵 실험과 59회의 미사일 시험 발사 등 전례 없는 도발을 벌이며 국제사회의 규범과 질서를 어지럽힌 게 핵심이다. 초라한 그의 대외 관계 통치 성적표가 이를 입증한다. 권력을 잡은 뒤 해외 방문을 한 번도 못한 건 물론이고 중국·러시아 등 후견 국가와의 정상회담조차 없었다. 6차 핵 실험 이후엔 멕시코에 이어 페루 주재 북한대사가 추방됐다. 이해당사국이 아닌데도 두 나라가 이런 극단적 조치를 취했다는 건 외톨이로 전락한 북한의 처지를 잘 보여 준다.
 
남아메리카 동태평양상에 위치한 갈라파고스 제도(Galapagos Islands)는 에콰도르 해안에서 926㎞나 떨어져 있다. 고립된 생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섬 고유종(固有種)의 동식물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외부와 담을 쌓고 자기들만의 논리로 무장한 채 살아가는 집단이나 체제를 일컫는 대명사가 됐다. 국제사회가 북한을 갈라파고스에 비견하는 건 전대미문의 폐쇄적 특성 때문이다. 김일성의 ‘고슴도치론’으로 대표되는 방어기제에 ‘반미’를 기치로 한 통치 이데올로기가 이를 드러낸다. 김정은은 핵·미사일을 앞세운 극단적 군사노선에 체제 명운을 걸고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시선은 싸늘해진다. 겉으로 태연한 척하지만 주체할 수 없는 고독과 절망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해외 유학파(스위스) 출신으로 집권 초 개혁·개방에 대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김정은이라 그의 핵 질주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09.20   정권만 살찌우는 대북지원은 타락천사

대북지원은 남북관계에 뜨거운 감자다. 북녘 동포를 돕자는  이견이 없겠지만 민생을 팽개친 북한 정권을 보면 찜찜한 구석이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핵과 미사일 도발을 일삼으며 서울  불바다까지 위협하자 우리 사회는  냉담해졌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800 달러 규모 지원을 하겠다며 운을 뗐다. 비판여론에 통일부는 주춤하는 제스처를 하지만 굽히지 않을 기세다. 대북지원을 둘러싼 논란과 명암을 짚어본다.

대북지원 감귤 선물용 빼돌려
식량 군사 전용 알고도 쉬쉬

 차관 갚을  호언했지만
, 상환청구서 수령조차 거부

정부, 800 달러 지원 방침
대북제재 국면에 부적절 논란

제주 감귤을 북한에 보내기 시작한 건 김대중 정부의 대북 햇볕정책이 윤곽을 드러낸 1999년 초다. 이후 10여 년간 북송된 물량은 감귤 48328t, 당근 18100t으로 23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북한 주민에게 비타민을 보충해 주고, 따뜻한 남녘의 풍미를 전달하는 뜻깊은 사업이었다. 그런데 이상 징후가 대북 정보당국에 포착됐다. 감귤 대부분이 김정일 충성유도용 선물로, 당근은 노동당 간부를 위한 식자재와 주스 제조에 쓰인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 초 감귤 대북지원은 중단됐다.
 
감귤 북송선을 멈춰 세운  현인택 당시 통일부 장관이다. 제주 출신인 그도 어쩔 도리가 없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는 얘기다. 이처럼 대북지원 역사는 전용(轉用),  빼돌리기 귀결된다. 한국과 국제사회에 인도적 지원을 호소해 놓고, 챙긴 물량은 군부나 노동당이 가로채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논란의 중심에는 대북 식량지원이 자리한다. 2000 남북정상회담 직후  30t 옥수수 20t 보낸  시작으로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연간 40~50t 쌀을 북한에 보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북한 군부 주도의 식량 빼돌리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골머리를 앓았다. 지원된 쌀이 군용트럭에 실려 부대로 들어가는 정황이 첩보위성 등을 통해 확인됐고, 최전방에서는 진지 구축에 남한  포대가 쓰인 장면이 관측됐다. 하지만 정부는 대북정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판단에 따라 이를 숨겼다. 눈치를 보던 국방부는 보수 정부가 집권한 이후에야 관련 정보를 언론에 흘렸다.
 
엄밀히 말하면  북송은 인도적 지원이라기보다 식량차관 형태였다. 10 거치 20 상환에 연리 1% 조건으로 남북 당국  계약이 이뤄졌다. 당시 정부 고위 당국자들은 북한에 자본주의를 학습시키고 국제사회의 차관 제공 방식에 익숙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설명했다. 모두 240t으로 40㎏짜리 포대 6000  분량에 이른다. 72000 달러의 비용을 떼이는  아니냐는 지적에 당국자는 예전의 북한이 아니다. 반드시 갚을 이라고 호언했다. 하지만  상환기한인 2012년이 되자 북한은 청구서 수령조차 거부했다. 남북  철도·도로 연결용 자재·장비와 경공업 원료 등을 포함해 모두 93060 달러( 1521억원) 국고가 사실상 손실을 봤는데 책임지겠다는 당국자는 없다. 자신들의 급여나 연금이라면 이렇게 퍼주거나 떼인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북지원의 출발은 긴급구호 성격을 띠었다. 1990년대 중후반 북한을 휩쓴 대홍수는 사상 최악의 기근 사태를 초래했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다. 황장엽  노동당 비서를 비롯한 탈북 고위 인사들이 주민 200~300 명이 죽었다”(· 정보당국은 46  사망으로 판단) 증언한 참혹한 재앙이다. 당시 옥수수 5t 챙기려 베이징 남북 적십자회담에 나온 북측 인사는 내가 이걸 얻어가지 못하면 평양 공항에 내릴  없소라며 남측 대표단에 읍소할 정도로 절박했다.
 
하지만 대북지원이 20 넘게 이어지면서 한계를 드러냈다. 대북지원 단체 관계자는 북한의 자구노력 등이 없이 유사한 지원 패턴이 되풀이되면서 기부자가 피로감을 느끼는 이른바 도너 파티그(donor fatigue)’ 나타났다 설명했다. 특히 우리 정부나 국민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기는커녕 ·미사일 도발과 남조선을 타고 앉겠다 호전적 행보를 하는 북한 권력에 대한 실망감이 크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통일부는 21 남북교류협력추진위를 열어 800 달러( 905120만원) 규모 대북지원을 결정한다. 세계식량계획(WFP) 450 달러, 유엔아동기금(UNICEF) 350 달러를 지원하는데 임산부·아동 지원에 쓰인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미사일 도발 국면에 갑작스레 꺼낸 대북지원 카드는 최악이다. 북한이 추석(10 4) 이산상봉 제안까지 걷어찬 마당이라 더욱 그렇다. 비판이 일자 통일부는 지원 결정만  놓고 집행시기는 여건을 보며 하겠다 군색한 해명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여론몰이에 공을 들인다. 유엔이 2500 북한 인구  1800 명을 식량부족 취약 인구로 규정했다는 통계치도 제시했다. 대북제재를 훼손하는  아니며, 북한의 전용 가능성도 없다는 문답자료도 배포했다.
 
하지만 당국자들의 얼굴엔 당혹감이 드러난다. 이전 정부  대북지원보다 제재에 무게를 싣던 브리핑을 하다 갑작스레 말바꾸기를  때문이다. 서두르다 보니 부처  엇박자도 냈다. 대북지원 시점을 두고 통일부와 국방부가 신경전을 벌인  대표적이다.

 

도탄에 빠진 동포를 돕자는 데 어깃장을 놓긴 쉽지 않다. 자칫 피도 눈물도 없는 걸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세습독재는 밉지만 지원은 계속해야 한다는 인도주의 활동가의 입장은 본분에 충실하다. 하지만 정책 당국자는 달라야 한다. 줄 때와 주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하는 전략적 마인드가 필수다. 온정주의와 무전략으로 접근하다간 낭패를 본다. 주민들의 궁핍한 삶을 볼모로 대남공세에 집착하는 북한 정권의 속성을 꿰뚫어본다면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 남측의 지원은 절대 받지 않겠다고 북한이 손사래를 치는데도 밀어붙이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자칫 “우리의 핵 보유에 질겁해 남조선이 조공(朝貢)을 바치는 것”이란 북한 선전에 자리를 깔아주는 격이 될 수 있다.
 
대북지원 물품의 전용 문제도 어물쩍 넘겨선  된다. 복지시설 원장이 기부금을 빼돌리고 학대를 일삼는데도 무작정 지원하자는   빠진 독에 물붓기가   있다. 인도적 지원을 지렛대로 대화의 문을 열겠다는 낡은 생각은 접었으면 한다. 10 가까이 와신상담하며 집권플랜을 짜왔을  정부 대북·안보라인의 대북접근 로드맵이  정도라면 실망스럽다. 낡은 레코드판으로는 창의적 대북정책을 내놓지 못한다. 달라진 김정은 체제의 북한, 포악해진 최고지도자란 대북 인지 코드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 민생을 팽개친  ·미사일 폭주를 거듭하는 북한 집권층만 살찌우는  타락천사(Fallen Angels)’ 길이다.

 

09.25  '말폭탄 대장' 김정은이 사과농장서 함박웃음 지은 까닭은

미국을 향해 거친 말폭탄을 쏟아내고 있는 북한 김정은이 지난주 황해도의 한 과수원을 찾은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과 북한 체제를 지목해 '완전 파괴'를 언급하면서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갑자기 지방 사과농장을 방문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 것이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6월 하순 치위생품 생산시설 방문 후 핵과 미사일 도발에 올인해오다 두 달여만에 경제현장 방문으로 이곳을 택했다.  

 

노동신문은 김정은의 황해남도 과일군 방문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주렁주렁 열린 사과 앞에서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을 여러장 공개했다. 김정은은 "눈뿌리 아득히 펼쳐진 청춘과원을 바라보노니 정말 기분이 좋고 어깨춤이 절로 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쌓였던 피로가 말끔히 가셔진다"고 만족스러워했다고 한다.  

▲김일성과 김정일·김정은 3부자는 과일, 벼 등을 통해 이미지 연출을 시도했다.[통일문화연구소]

 

 김정은이 찾은 과일군은 본래 송화군 송화과수농장지구였다. 김일성(김정은의 할아버지)이 이곳을 방문해 대규모 과수단지에서 많은 과일이 생산된다며 '과일군'으로 개칭할 것을 지시해 1967 10월에 승격 개편된 곳이다. 김일성 뿐 아니라 김정일도 가을철이 되면 이 곳을 찾아 풍성한 과일을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하는 행보를 이어왔다. 대표적 과일산지를 배경으로 최고지도자의 경제 리더십을 부각 선전하는 이미지를 연출해온 것이다

▲김정은의 과일군 과수협동농장 방문 소식을 전한 노동신문 9월21일자 1면. [노동신문]

 

김정은의 이번 과일군 방문도 이같은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6차 핵 실험과 탄도미사일 도발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자초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생을 챙기는 제스처를 드러낸 것이란 분석이다. 활짝 웃는 모습도 '제재에도 꿈적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다. 과일군 방문을 '피로회복제' 정도로 언급한 것도 마찬가지다.

▲맨 위부터 1966년5월 황해제철소를 방문한 김일성과 1988년4월 8호제강소를 찾은 김정일, 2014년12월 제851군부대관하 여성 방사포병 구분대를 현지지도하는 김정은.[통일문화연구소]

 

김정은은 후계자 시절부터 김일성의 이미지와 카리스마를 차용하는 통치행보를 이어왔다. 2012년 집권 이후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리더십을 유사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장소와 상황을 취사선택하는 수법을 구사했다. 이번에 공개한 김정은의 과일군 방문은 꼭 12년 전인 20059월 김정일의 과일군 방문 상황과 유사하다. 뒷짐을 진 모습에서는 60대 나이의 김정일(2005년 당시)을 따라하려는 33살 김정은의 제스처가 드러난다. 지난 7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 시험발사 성공 축하공연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미사일 개발 현지지도 장면을 무대화면으로 내보낸 것도 이런 점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화성-14형' 시험발사 성공 축하공연 무대에 등장한 김일성과 김정일의 미사일 개발 지도 기록영상. 맨오른쪽은 지난해 3월 핵무기 병기화 사업을 벌이는 김정은.[통일문화연구소]

 

하지만 전례없이 극한 도발행보로 국제적 고립을 맞은 김정은의 과수원 방문 쇼가 노동당과 군부 핵심층과 주민들에게 어떻게 비쳐질지는 미지수다. '태평양 상 수소탄 시험' 등 극단적인 위협을 일삼는 북한에게 유엔과 국제사회는 최고의 압박을 가할 채비를 단단히 하고 있다. 촘촘한 대북제재가 본격화하면 주민들의 불만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올 추석은 풍요로움보다 불안과 공포가 짓누를 공산이 크다.  
  
2012
4월 취임 첫 연설에서 "다시는 우리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공언한 김정은의 말은 5년 넘게 지켜지지 못한 공수표가 됐다. 주민들은 "노동당 보다는 차라리 장마당을 믿겠다'는 말로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제법 정교해보이는 김정은의 김일성·김정일 이미지 따라하기는 이제 약발이 다한 분위기다.  
 
※이 기사의 취재와 영상편집에는 정영교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이 기여했습니다

 

09.27  북한 앞에 서면 작아지는 일그러진 군상들

평양발 전운이 심상치 않다. ‘서울 핵 불바다’에 이어 태평양상 수소탄 실험을 위협하더니 그제는 외무상까지 ‘선전포고’ 운운하며 도발행보에 가세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선 김정은과 그 핵심 추종세력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찾기 어렵다. 심지어 그가 대단한 세계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양 치켜세우거나 마지못해 ‘도널드 트럼프와 김정은 서로 말폭탄’ 같은 물타기식 양비론에 머문다. 북한 앞에만 서면 유난히 작아지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들여다보고 대안을 제시해본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3 걸친  권력 세습에 침묵
한반도 위협 괴물지도자 키워

인권운동가는  참상 눈감고
환경단체는 핵실험에  막아

 정부의 주류는 민주화 세력
70  독재 영속 믿는  미망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 추대되기 6개월 전인 2010 3  서울의 어느 조찬 강연장. 베테랑 외교관 출신 인사의 기조연설 초반부터 좌중이 술렁였다. 노무현 정부  요직을 거쳐 이명박(MB) 대통령 취임과 함께 외교안보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를 맡은  연사의 발언이 문제였다.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 건강을 회복하고 후계자로 내정되신 분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권력에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평가했다. 김정일에게 깍듯한 존칭을 쓰고 김정은에게까지 후계자로 내정되신 이란 표현을  논란이 일자 그는 그분이  국가를 다스리는 분이라 예의를 지키는  맞다고 생각했다 주장했다. 이런 태도를 통해 그는 매너 있고 경우 바른 외교관이란 평가를 받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3 세습을 강행한 북한 정권에 대한 국민과 국제사회의 비판적 인식과는  거리 차가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보수적 성향을 보인 MB 정부는 대북 이슈에 대한 철학이 부족했다. 전대미문의 북한 3 세습이 한창 벌어지는데도 핵심 관료들은  심각성을 몰랐다. 비판 목소리   제대로 내지 못하고 침묵했다. 김정은 후계 체제 구축에 양탄자를 깔아준 셈이다. 조선노동당 3 대표자회(2010 9)에서 후계자에 오른 김정은은 이듬해 12 김정일 사망으로 전권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집권 6 만에 한반도 평화와 국제사회의 안정을 뒤흔드는 리바이어던(Leviathan)으로 등장했다. 독재권력 세습을 끊어버리거나 견제·약화시킬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후과(後果)
  
이처럼 북한 체제와 최고지도자에 대한 비판을 꺼리거나 은근히 감싸는 듯한 우리 사회 일각의 분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현직 대통령과 외국 국가원수 등에게는 존칭을 쓰지 않다가도 북한 김정은에게는 빼놓지 않고 노동당 위원장이란 직책을 붙여야 직성이 풀린다. 직함을 알리는 차원에서 한두 차례 정도면 충분한데도 말이다.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를 리설주 표기하고, 노동신문을 로동신문이라고 써야 북한을  아는 거란 착각이 학계와 언론 등에 만연하다. 남북  국어(북한은 조선말) 표기법에 대한 결론이 나기 전까지는 잠정적으로 각기 표기 방식대로 쓰기로  남북 합의와 그간의 관례는 묻혀버렸다
  
진보연()하는 인권운동가들과 환경단체도 북한에 눈감는  마찬가지다. 사소한 인권 침해와 갑질 행태에 감시의 눈길을 놓지 않으면서 탈북자 강제북송이나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아닌 보살한다. 세상에 어느 진보가  같은 폭압정권에 시달리는 동포를 방기한 적이 있는지 묻고 싶을 정도다. 원전 폐기와 반핵을 주장해온 환경단체도 그렇다. 북한이 여섯 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자행하고, 풍계리 현장에선 방사능 누출로 인한 지하수 오염과 붕괴·지진 등의 징후가 잇따르는데도 규탄성명이나 시위   없다. 천성산 도롱뇽과 제주도 강정마을의 구럼비보다 한반도 환경생태에 엄청난 재앙을 불러온 사안인데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피해 호소와 핵실험 중단을 요구하고 나선  중국 동북 3 지역 환경단체와 지역주민이다
  
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북한이 최고 존엄 운운하며 김정은 비판 목소리를 옥죄고 나서자 주눅  모습까지 보인다. 지난달 말에는 북한이 체제 비판한 번역서를 신간 소개란에  우리 언론의 문화 담당 기자 2명과 해당 신문사 대표에게 사형 선고한다며 즉각 처단을 위협하기도 했다. 북한이 중앙재판소까지 내세운 유령 궐석재판을 벌여 우리 언론인에게 살해 위협을 가했는데도 정부는 제대로  항변조차 못했다. 언론자유 수호를 제일 가치로 표방하는 한국기자협회를 비롯한 관련 단체도 마찬가지다
  
정부 대북부처도 미덥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4년째 수감생활 중인 선교사 김정욱씨를 비롯해 6명의 대한민국 국민 억류사태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책이 없다. 93060 달러( 1521억원) 대북 식량차관을 떼일 판인데도 상환 촉구는 미적거린다. 북한이 청구서를 수령하지 않는다며 볼멘소리에 그친 것이다. ·미사일 도발로 국민 여론은 부글거리는데 800 달러 규모의 대북 지원 결정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여 비판을 자초했다
  
우리 국가원수에 대한 비방과 폄훼(貶毁), 국민을 상대로  위협이 도를 넘었는데도 대응은 안이해 보인다. 유엔 총회에 참석했던 이용호 북한 외무상은 25(현지시간) 뉴욕에서  전략폭격기가 영공을 침범하지 않아도 자위권을 행사하겠다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완전 파괴 발언이 선전포고이기 때문에 그럴 권리가 있다는 억지다. 이용호의 말대로라면 북한은 그간 무수한 대남 선전포고를  셈이다. 대남 특수부대의 청와대·연평도 타격 훈련장을 찾은 김정은이 직접 남조선 것들 쓸어버리라. 서울을 타고 앉으라 등의 극단적 발언을 쏟아내왔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핵심 관료와 정부부처 구성원의 주류는 민주화운동과 진보 사회활동 경험을 갖고 있다. 민주와 인권·자유·평화를 최고 가치로 삼는 걸로 알려져 있다. 대북 문제에서도 제재보다 대화에 무게를 싣고, 인도 지원이나 경협·교류에 열린 마음을 보여왔다. 하지만 그들이 집권세력으로 맞닥트린 북한이란 현실은 녹록지 않다. 누구보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정권의 실체적 진실을 목도하고 많이 번뇌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도발 본색이 드러나면서 선택지는 분명해졌다. 박정희 대통령 18년 장기 집권과 전두환 시대를 건너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농단까지 무너트린 우리 사회의 민주화세력이 북한의 70년 노동당 독재통치가 영속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미망(迷妄)이다. 젊은 시절 권위주의 체제에 억눌린 헛헛한 마음을 현혹시킨 주사파류의 노폐물만 걷어낸다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민족의 운명을 농단하는 김정은의 군사 모험주의 노선에 견결한 비판 목소리를 냈으면 한다. 북한 동포의 인권 회복과 민주화를 위해 서둘러 머리를 맞대길 권한다. 혹여 하는 기대에 어물쩍거리기엔 임기 5년은 너무 짧다.

 

10.11  은둔 강요받던 그녀들  평양 권력의 중심에 섰다

북한 최고권력자의 여인들은 오랜 기간 은둔을 강요받았다. 공개석상에 퍼스트 레이디 등장하는  절대 금기였다. 얼굴이나 신상도 철저히 베일에 싸였다. 그런데 김정은 집권 이후 모든  달라졌다. 노동신문에 부인 이설주 동지 호칭이 등장했고, 다정한 부부의 모습도 연출한다.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의 행보도 만만치 않다. 오빠의 최측근 보좌역인 그녀는 지난 주말 노동당 정치국에 진입하며 파워엘리트 그룹의 중심에 자리했다. 기지개를  평양 안방권력의 속살을 들여다본다
 

베일 속 평양 로열 패밀리 여인들
김정은 집권 후 속속 얼굴 드러내

‘부인 이설주’는 정상국가화 포석
여동생 김여정 사실상 2인자 굳혀

봉건왕조 때나 있을법한 통치행태
“김정은 유고시 대안 세력” 관측도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김정은(33) 노동당 위원장의 곁에는 지금 28 동갑내기  여인이 있다. 부인 이설주와 여동생 김여정이다. 올케와 시누이 사이인 이들은 절대권력을 거머쥔 김정은을 가장 가까이에서 챙긴다. 이설주는 주로 내조와 부부동반 공개활동을 맡고, 김여정은 행사 의전과 수행을 담당하는 역할 분담으로 이뤄져 있다. 눈길을 끄는  이설주·김여정이 같은 동선에서 움직이거나 대화  교감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나름대로의 철저한 영역 구분이다
  
권력무대 데뷔는 이설주가 앞섰다. 2011 12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으로 집권한 김정은은 이듬해 7 모란봉악단 창단 공연 관람 자리에 이설주를 동반했다. 그리고 며칠  관영매체가 처음으로 부인 이설주 동지라고 호칭했다. 이후 행보는 파격이었다. 최고지도자와 팔장을   나타나고, 평양 시내 카페에서 팝콘을 나눠 먹는 모습은 노동당과 군부 원로는 물론 주민에게 충격을 던졌다
  
김정일 집권 시기엔 상상도 못할 일이다. 5 안팎의 여인들이 김정일 위원장의 여성편력을 거론할  등장하곤 했지만 미확인 첩보나 카더라 수준에 머물렀다. 정혼한 부인으로 알려진 김영숙도  파악되지 않을 정도였다. 2000 6  남북 정상회담 당시 이희호 여사 동반 문제를 막판까지 고심한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사망    중국·러시아 방문길에 마지막 여인으로 알려진 김옥을 동반해 서방 언론의 추정보도가 나왔지만 북한은 함구했다
  
김일성 주석도  부인인 김정숙이 1949 숨지자 비서인 김성애를 맞았지만 공개적으로 내세우기 쉽지 않았다. 후계권력을 다져 가던 김정일이 계모인 김성애를 견제한 때문이다. 1994 6 방북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부부를 맞이한 김일성은 김성애를 이례적으로 동반했다. 하지만 북한 매체들은 이름도 언급하지 않은  김일성 동지가 부인과 함께 카터 일행을 맞았다 수준으로 처리했고, 김성애의 모습은 노동신문 지면에서 빼버렸다
  
김정은이 부인 이설주 공식화한  정상국가화를 노린 포석으로   있다. 퍼스트 레이디를 동반한 최고지도자의 모습을 떠올린 것이란 얘기다. 여동생 김여정의 등장은 상대적으로 조심스레 진행됐다. 북한 매체에 김여정의 모습이 처음 등장한  2014 3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때였다. 오빠를 수행해 투표장을 찾은 그녀는 이듬해 1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란 직함을 얻은  본격적으로 권력무대에 나섰다. 주로 행사장에서 김정은이 받은 꽃다발을 챙기거나 보좌하는 모습이 북한TV 드러났다. 지난해 5 7 노동당 대회 당시엔 휴대전화와 수첩을 들고 행사를 지휘하는 장면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김여정의 극히 일부 모습에 불과하다는  대북 정보당국의 판단이다. 김정일 관련 행사의 기획·진행은 물론 정책결정 과정까지 개입하는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10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김여정이 간부의 사소한 실수도 수시로 처벌하는  권력남용 행태를 보인다 지적했다. 오빠의 후광을 업은 김여정의 거침없는 행보는 곳곳에서 확인된다. 지난 4 평양의 뉴타운격인 여명거리 준공식에선 중장( 둘로 우리의 소장 계급에 해당)  간부에게 지시를 내리는 모습이 드러났다. 평양 권력층 사이에서는 여정 동지를 거치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 말이 나돌 정도라도 한다. 이설주와의 권력다툼설도 있지만 대북정보 관계자는 이설주의 행사 참석과 동선도 김여정이 기획한  따라 움직이는 구조라고 귀띔했다
  
김여정은 지난 7 열린 노동당 7 2 전원회의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에 오르며 승승장구한다. 60~70대가 주축인 정치국에 20 나이인 김여정이 진입한  노동당 72년사에 전례 없는 파격이다. 고모인 김경희(김정일의 여동생) 66세인 2012 정치국 위원으로 처음 진입한 것에 비춰 봐도 그렇다. 여기에는 믿을  핏줄뿐이란 김정은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의는 ·미사일 도발 국면을 중간 점검하고, 집권 6년차 김정은 권력을 물갈이하는 자리다. 노동당 핵심 부서인 조직지도부 조연준 1부부장을 검열위원장으로 퇴진시킨 것도 이런 맥락이다. 결국 초점은 김여정이 사실상 노동당의 2인자 지위를 거머쥐는  맞춰진 셈이다
  
김여정의 급부상을 놓고 정부가 안일하게 대응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3 세습 지도자인 김정은이 이른바 백두혈통 내세워 봉건왕조 시대에 비견할 비정상적 통치행태를 보이는데도 제대로  진단이나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통일부는  전원회의 분석자료를 냈지만 국면 돌파를 위한 인적 개편이란 수준에 그쳤다. 스위스 유학 시절 여권정보를 통해 김여정이 ‘1989 9 26 출생이란 점을 서방 정보당국은 파악하고 있는데도 우리 정부는 갈팡질팡하는  기초적인 정보 수집에도 구멍이 뚫렸다. 미국은 촘촘한 대북 정보를 토대로 김정은 일가의 전횡을 압박하는 조치도 취하고 있다.  국무부가 지난 1 대북인권보고서에서 김여정을 북한 언론검열과 주민 세뇌공작의 총책으로 규정해 인권범죄자 리스트에 올린  대표적이다
  
노동당 정치국 진입을 계기로 김여정은 서방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9 김정은과 이설주 사이의 자녀(우리 정보당국은 3명으로 추정) 모두 여섯  이하인 점을 거론하며 예기치 못한 통치 부재의 상황에서 왕조를 보증할  있는 장치를 마련한 이라고 보도했다. 김정은 유고시 여동생을 대안세력으로 세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고위층 출신 탈북인사는 김여정이 김정은과 수시로 통치노선과 인사·정책 문제를 논의하는  유사시 권력 후계 1순위로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말했다. 호르몬계 질환으로 후계 자리를 동생에게 내준 김정철(36) 팝스타 에릭 클랩턴의 음악에 심취하는  권력에 미련을 버린 상태로 파악된다
  
 기사의 취재·편집에는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이 기여했고, 『김정은 리더십 연구』(정성장 ), 『김정일가의 여인들』 등의 문헌을 참고했습니다.   

 

10.18 대화보다 대남 평화 공세에 대비할 때다

북한의 도발 기류가 주춤하자 서울발 대화·협상론이 고개를 든다. 대북특사 파견설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당국회담 재개나 인도 지원 주장도 이어진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의 방러 일정에 맞춘 남북 접촉 구상도 제기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며칠 평화와 대화 메시지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압박에 탄력을 붙이고, 유럽연합(EU) 강력한 대북 독자제재를 내놓는  국제사회의 움직임과는 결이  다르다. 북한 김정은의 예상 행보를 짚어 보고 대응책을 살펴본다.   

숨고르기 들어간  도발 행보
대북특사 파견설 솔솔  나와

남북관계 복원   바쁜 정부
겨울올림픽  참가에 공들여

김정은, 군축·평화 공세 가능성
대화 집착하다간 낭패  수도

임기를  달도 남기지 않은 2003 1  김대중(DJ) 대통령은 대북특사를 파견했다. DJ 대북책사인 임동원  국가정보원장과 출범을 앞둔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이종석(2006 통일부 장관 취임) 대통령직인수위원이 공군기를 타고 평양으로 향했다. “북한에 DJ·노무현 정부 인수인계를 사전 신고하러 가는 것이냐 비판이 나왔지만 강행됐다. 특사단은 DJ 친서를 가져갔다. 고농축우라늄(HEU)  개발 의혹과 남북 문제,  정부와의 관계  3가지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방 방문을 핑계로 만나 주지 않았다. 면담을 낙관했던 청와대와 정부는  위원장이 절대적 위치지만 그를  만났다고  망가진 것처럼  일은 아니다 군색한 해명에 나서야 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오랜 기간 남북 당국회담에 관여해  베테랑 요원 사이에선 받아야 특사 말이 있다. 최고당국자 간의 소통이란 막중한 의미가 부여되지만 기대에  미치거나 아예 특사 면담이 불발되면  낭패를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특사 카드가 자꾸 거론되는  쾌도난마식의 해결을 기대하는 심리 때문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지난 8  당국회담 제안에 북한이 끝내 호응해 오지 않자 여건이 된다면 특사 교환을 적극 추진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관계자는 경색된 남북 관계를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푸는 단초가   있다는 점에서 마치 마약 같은 유혹에 빠져들게 된다 지적했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관계자의 조언이다. 지금의 남북 관계 단절이나 갈등은 특정 현안을 둘러싼 입장 차가 아닌 김정은의 ·미사일 도발 때문이고, · 간에 풀어야  성격이 크다는 것이다. 특사 파견 제안을 북한이 받아들일 상황도 아닌데 공연히 스타일만 구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당국대화 재개에도 공을 들인다. 통일부는 13 국회 외교통일위 업무현황 보고에서 남북 관계를 복원하고 지속 가능하게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 입장을 밝혔다. 지난 5 정부 출범 이후 무더기로 승인해  131건의 대북 접촉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국민 비판 여론 속에 강행한 800 달러( 904600만원) 대북 지원 결정도 집행할 시기를 엿보고 있다
  
정부가 이처럼 남북 관계 복원에 속을 태우는  나름대로 속사정이 있다. 대북 문제는 지난 9년간의 보수정부 집권시기와 차별화할  있는 최적의 아이템이다. 진보진영은 DJ·노무현 집권시기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개최  절대 우위에 있다. 그렇지만 정부 출범과 함께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라는 엄혹한 현실에 직면했다. 김정은의 극단적 도발 노선에 국민 여론은 들끓었고, 국제사회도 냉담해졌다. 어쩔  없이  대통령도 북한을 ()’이라 지칭해야 했고, 핵실험 때는 참으로 실망스럽고 분노하지 않을  없다 입장도 냈다. 생각을 같이한다고 여긴 일부 인사로부터  대통령이 완전히 아베 신조 일본 총리처럼  가고 있다”(정세현  통일부 장관) 비판까지 받았다. 보수세력과 비판적인 진보 사이에  형국이다. 이대로 ·미사일 쓰나미에 휩쓸려 가다간 이명박 정부의 광우병 사태나 박근혜 대통령 집권 때의 세월호 참사 같은 재앙이   있다. 내년 6 지방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정부가 내년 2 평창 겨울올림픽의 북한 선수단 참여를 통해 남북 관계 돌파구를 열려는 것도 이런 배경으로 보인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앞서 변곡점으로 기대했던 6·15 공동선언 기념일이나 8·15 광복절은 북한의 호응이 없어 그냥 넘겼다. 2 남북 정상회담 공동선언(10·4 선언) 10주년과 추석이 겹친 지난 4일도 겨냥했다. 하지만 북한은 노동당 전원회의 개최를 통해 체제 내부 조직을 다지는  집중했다. 우리 정부의 마음이 바빠지는 이유다
  
  문제는 북한이  대대적 평화 공세에 나설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북한은 6 핵실험 이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채비를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세계를 겁박할 다른 도발 카드는 없는 상황이다.  공격이나 워싱턴 타격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김정은은 지금 칼은 칼집에 있을   위력적이란 말을 실감하고 있을지 모른다. 핵이야말로 베일에 싸인  은근한 위력을 투사할  최고의 가치를 발휘할  있는 무기 체계다. 핵탄두를 앞에 놓고 파안대소하고 노동신문에 공개하는 과시욕의 대상은 결코 아니란 얘기다
  
핵과 미사일 도발로 자초한 대북제재는 김정은 정권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어떤 제재에도 굴하지 않겠다고 호언하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번의 경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기 때문인지 대북제재 피해조사위 꾸렸다. 평양과 지방 도시에서는 연일 미국의 대북제재를 비난하고 결사항전을 외치는 군중대회가 열린다. 자성남 유엔 주재 북한대사는 지난 11 대북제재로 교과서와 학습장은 물론 어린이 영양을 위한 생산까지 엄중한 난관이 조성되고 있다 주장했다. 하지만 민생을 외면한  핵과 미사일 도발로 제재 국면을 자초한 김정은에 대해 국제사회는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사면초가의 위기 속에서 김정은 체제는 생존 전략 차원의 대화 국면을 탐색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선희 북미국장을 러시아에 파견해 이란 핵협상에 관여한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차관과 1.5트랙(반관반민) 접촉을 하는   신호탄이다. 이르면 내년 1 김정은 신년사를 통해 선보일 평화 공세 리스트는 ·미사일만큼이나 파격적일  있다. 핵무장 완성을 선언하며 재래식 전력의 남북한 동시 군축을 주장하고, 한미연합사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 등을 주장하는 상황이다. 이를 위한 군축회담을 제의하며 이산가족 상봉이나 교류·협력사업을 제안해  경우 우리 사회는  논란과 분열에 휩싸일  있다. 대화에 목말라하는 문재인 정부엔 자칫 죽음의 오아시스   있다. 대화보다 대남 평화 공세를  경계하고 대응책을 짜야 하는 이유다. 

 

10.25 평양서 울려오는 비명…"끄떡없다" , 허세 접고 읍소

제재 끄떡없다 허세 접고
피해조사위 만들어 고통 호소

주민 불만 김정은에 불똥 튈까
화살 미국에 돌리려 전전긍긍

정부 독자제재  달째 뭉그적
 태도 변화에 집중력 쏟아야

  북한이 대북제재로 인한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구체적 증세까지 열거하며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어떤 제재에도 끄떡없을 이라며 버티던 이전과  달라진 분위기다. 국제사회는 이참에 김정은의 셈법을 고쳐놓겠다면서 고삐를 바짝 당기는 형국이다. ·미사일 도발 모드를 잠시 멈추고 호흡조절에 들어간 북한은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해 보인다. 강도 높은 대북제재에 직면한 평양의 내부 분위기를 들여다보고 속내를 짚어본다
  
북한은 체제 내부에서 벌어진 사건·사고나 피해상황을 좀처럼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폐쇄적 특성에다 주민에게 끼칠 부작용 등을 우려해서다. 2004 4 평북 용천역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로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아직도 구체적 내용은 베일에 싸여 있을 정도다. 그런 북한도 피해조사위 꾸려 상황을 적극 알리고 지원을 요청한 적이 있다. 1990년대 중후반 대규모 수해와 기근 사태로 200~300 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다는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다. 당시 북한은 큰물피해 조사위 만들어 유엔의 대북지원을 이끌어 내는 창구로 활용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런 전례 때문에 북한의 제재피해 조사위 출범은 눈길을 끈다.  위원회는 지난달 23 이용호 북한 외무상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국가적 차원의 피해조사위 가동과 조사활동이 벌어지고 있다 언급하면서 존재가 확인됐다. 조사위는 지난 20일에는 담화를 통해 주민들의 일반 생활용품까지 이중용도의 딱지가 붙어 제한받음으로써 어린이들과 여성의 권리 보호와 생존에 막대한 지장을 주고 있다 비난하는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북한은 미국과  추종세력이 공화국에 끼친 물질적·도덕적 피해를 철저히 조사·집계하는  사명으로 한다 조사위를 내세웠다
  
피해조사위는 대북제재에 맞서는 북한의 전술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재 무용론과 함께  제국주의의 고립압살 책동을 분쇄하자 주장하던 데서 피해자 코스프레(costume play)’ 쪽으로 선회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유엔과 국제적십자는 물론 인도주의 협력기구 무대에서 읍소에 나선 모습이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도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 듯하다. 그는 지난 7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72 전원회의에서 대북제재 대책을 유난히 챙겼다. 연설에서 언급한 20  항목  5개가 제재 관련 내용으로 파악된다. 그는 제재 압살 책동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화를 복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기본 열쇠가 바로 자력갱생이라고 강조했다. 봉쇄 수준의 대북압박에 맞서 외부로부터의 자원 공급 없이도 버틸  있는 체제를 갖추자는 주장이다
  
관영 선전매체들은  상황을 엄혹한 난국이라고 규정한다. 마치 94 김일성 사망 직후 지금은 어려운 시기라고 토로하던  연상시킨다. 특히 전력과 석탄 생산이 강조된다. 어제  노동신문은 1 사설에서 전력과 석탄 생산은 적대세력들의 초강도 제재를 짓부수는 최전선이라고 주장했다
  
선전·선동의 초점은 제재로 인한 민생파탄 책임과 불만을 미국과 서방국가 쪽으로 돌리는  맞춰진다. 만약 김정은의 ·미사일 도발이 초강도 제재를 자초했다는 쪽으로 불똥이 튀었다가는 낭패란 점에서다. 자칫 김정은의 핵심 정책기조인 경제· 병진노선이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평양을 시작으로 지방 주요 도시를 이어가며 연일 반미 군중시위를 벌이도록 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꼬여가고 있다. 엘리트나 부유층이  고객인 주유소의 휘발유값이 급등하고 시장물가도 들썩인다. 대북정보 관계자는 쌀과 환율 등은 장마당과 암달러의 힘으로 일단  동요 없이 버티는 상황이지만 앞으로 대북제재가 심화되고 장기화할 경우 흔들릴  있다 귀띔했다. 올겨울이 고비란 얘기다
  
대북압박의 파고는 거칠어진다. 유럽연합(EU) 지난 16 전면적 대북투자 불허 조치와 함께 대북송금 한도를 현재 15000유로( 2000만원)에서 5000유로( 667만원) 크게 줄이는 독자제재를 내놓았다. 현재 4000 규모인 북한 노동자의 채용도 금지했다. 스웨덴은 북한이 40 넘게 장기 연체해온 자동차 대금 27 크로나( 3721억원) 상환 문제를 다시 꺼냈다. 스위스와 핀란드도 북한에 떼인 돈을 받아내겠다는 입장이다. 유엔은 북한에 동상 건립을 발주해준 아프리카 14 국가를 무더기 조사하기로 했다. 잇따른 외교공관 폐쇄 조치 등까지 이어지며 북한은 사면초가의 위기에 몰렸다
  
중국까지 가세한 대북제재 공조 국면에서 북한은 러시아를 산소호흡기로 택했다. 9 말부터 최선희 외무성 북미국장을 러시아에  차례 파견했고, 러시아의 6자회담 특임대사 방북 등을 통해 공조를 모색 중이다.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 러시아 대사는 · 사이의 철도  항만 연계 경협사업인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손뼉을 마주치려 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 카드로는 역부족이란 평가다
  
문재인 정부는 유엔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불가피하다는 점과 철저한 이행을 강조한다. 하지만 내심 대화국면으로의 전환을 꾀하기 위한 페이스 조절에 공을 들인다. 7 북한의 잇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  우리 정부 차원의 독자제재 방침을 공언하고도  달째 미적거리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국민과 국제사회의 비판여론에도 불구하고 800 달러 규모의 대북지원을 결정해 대북제재 국면에 스스로 균열을 만들기도 했다
  
이런 어정쩡한 틈을 비집고 북한은 격렬한 대남 비난을 퍼붓는다. 대남기구인 민족화해협의회는 13 담화에서 남조선 당국은 북을 제재·압박해 대화에 나오지 않을  없게 하겠다는 개꿈을 꾸고 있다 비방했다. 우리 정부를 압박해 대북제재의 주축을 흔들겠다는 의도다. 정부가 적극적 제재·압박을 구사해 김정은 정권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 내는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상황 때문이다
  
북한과의 대화에 마음이 쏠린 문재인 정부는 캘린더만 쳐다보다 허송세월했다. 6·15 공동선언 17주년과 8·15 광복절, 10·4 선언 10주년에 기대를 걸었지만 북한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요즘엔 내년 2 평창 겨울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이 참가하면 모든  풀릴 것처럼 집착한다. 이런 잘못된 기대와 전략부재로는  어느 때보다 혹독할 올겨울 한반도 정세를 견뎌낼  없다. 국제공조와 북한 사이에서 눈치만 보다간 인심도 잃고 실리도 챙기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질 것이란 경고에  기울여야 한다. 

 

11.01 "믿을  핏줄뿐"···숙청 얼룩진 김정은 패밀리 잔혹사

평양 권력 핵심에서 피비린내가 풍겨 온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해외에 은거 중인 조카 김한솔을 제거하기 위해 공작조를 파견한 정황이 포착되는 등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지난 2월 이복형 김정남을 암살한 데 이어 그의 아들마저 없애는 ‘씨 말리기’ 차원이다. 화근을 미리 들어내겠다는 심산일 수 있다. 북한 김씨 패밀리의 잔혹한 숙청사를 통해 이른바 ‘곁가지’ 제거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김정은의 속사정을 분석해 본다.  

형제의  씨앗 뿌린 김정일
아들 후계 옹립에 여인들 암투

부친 죽음에 원한 품은 한솔
김정은 부담 느껴  말리기

장성택 처형  잇단 피비린내
잔혹한 숙청은 세습권력 업보

세습권력의 아킬레스건은 정통성 문제다. 북한 김정은 정권처럼 선대 지도자의 여성 편력 때문에 가계도(family tree) 복잡다단할 경우엔 상황이  꼬이게 된다. 절대권력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인들은 슬하의 아들을 후계자로 등극시키려고 암투를 벌인다. 죽음을 무릅쓴 자리다툼은 유혈까지 불러온다.  상흔과 앙금은 고스란히 자식들 몫이다. 권좌에 오른 승자는 철저한 응징으로 잠재적 불안요인의 싹을 자르려 든다. 패자는 절치부심하며 복수의 칼날을 벼린다

▲북한의 세습 권력자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지금 평양에서 벌어지는 불화와 대립의 씨앗을 뿌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다. 1960년대 후반 당대의 인기 배우 출신 성혜림에 빠진 그는 동거에 들어갔고,  아들인 정남을 낳았다. 다섯  연상의 유부녀를 강제 이혼시켜 차지할 정도로 불같은 사랑의 결과다. 상심한 남편 이평의 자살은 안중에도 없었다. 득남의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는 성혜림의 언니 혜랑(서방 망명)씨의 자전소설 『등나무집』에  드러난다. 71 5 10 새벽 잠결에 자동차 경적소리가 요란해 4  창문을 열고 보니 아래에 김정일이  있었는데, “이제 금방 혜림이가 아들을 낳았어라는 말을 웃음과 함께 던지고 사라졌다는 제법 훈훈한 스토리다
  
하지만 평양 왕세자의 사랑은  식어버렸다. 대신 재일동포 출신 무용수 고용희가 자리를 차지했다. 단박에 김정일의 마음을 사로잡은   연하의  여인은 28년간 안방을 사수하며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사후 공개된 영상에는 김정일과 함께 군부대를 방문하는  거침없는 행보가 드러난다. 균형추는 고용희의 21 쪽으로 일찌감치 기울어졌다. 호르몬계 질환을 앓는  정철이 밀려나자 막내 김정은이 부상했고 최종 낙점을 받았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게임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후계 권력을 장악한 김정은은 2009  이복형이자 한때 경쟁자이던 김정남의 평양 근거지 우암각 별장을 습격해 완전 거세를 시도했다. 마카오와 홍콩 등을 오가며 살던 김정남은 분개했고,  사이엔 돌이킬  없는 골이 패었다. 김정은은 중국과 오스트리아에서 김정남 암살을 시도했으나 해당국 공안당국에 의해 저지된 것으로 우리 정보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김정남이 김정은에게 후계 자격이 없다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낸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버림받은 성혜림은 우울증에 시달리다 러시아에서 쓸쓸히 숨졌다. 시신은 모스크바 근교 공동묘지에 묻혔다. 유선암 치료를 받다 파리에서 사망한 고용희의 시신이 전용기에 실려 평양에 안장된 것과 대비된다.  여인의 대립과 반감은 고스란히 아들에게 전이됐다. 스위스에서 유학한 김정남(제네바) 이복 형제인 정철·정은(베른) 평양에서도  차례 만난 적이 없을 정도로 철저히 차단됐다
  
이런 형국은 김정일이 이복동생 김평일에게 가했던 차별과 응징보다 지독하다. 어릴  생모를 잃은 김정일은 후계자 시절부터 계모 김성애와  소생들을 박대했다. 하지만 생명에 위해를 가하지는 않았다. 이복 여동생 김경진은 오스트리아에, 김평일은 동유럽권 대사로 해외에 머물도록 했다. 김정남 암살에 이어  아들까지 겨눈 김정은과는 차이가 난다. 4  고모부 장성택을 ()국가 혐의 잔혹하게 처형한 것도 마찬가지다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권력승계 사례는 30차례 가까이 된다. 권력자가 생전에 후계자를 지정한 경우도 10 회에 이른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아들·손자로 이어지는 3 세습은 그야말로 전대미문이다. 국제사회의 빈축을 사고 있지만 북한은 혁명위업 계승 문제를 원만히 해결해 세계적 모범을 창조했다”(김일성종합대 학보, 2016 4) 강변한다. 그러나 국호(國號)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표방하면서도 특정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봉건적 행태는 숨길  없다
  
북한은 국부(國富) 군주와  가족에게 속해 있다고 여기는 가산제(patrimonialism) 국가체제 성격을 띤다. 자원에 대한 독점과 인민 동원체제가 거친 형태로 표출되고 세습된다. 핵과 미사일에 대한 대를 이은 집착도 이런 배경에서 가능했다.  결과는 가공할 만하다. 3 세습을 통해 절대권력을 장악한 김정은은 핵무장으로 국제사회를 겁박하고, 한반도와 민족의 운명을 농단하고 있다. 김소월이 노래한 약산의 진달래꽃은 영변 원자로 때문에 빛이 바랬다. 원산 명사십리의 모래톱은 대남 기습타격의 선봉인 북한군 장사정포의 화염에 덮였다. 세습 혈통의 정당화를 위해 차용한 백두산은 잇따른 핵실험 여파로 붕괴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 됐다
  
한때 대남선동의 기치로 떠받들던 우리 민족끼리 구호는 슬그머니 내려졌다. 북한 최고지도자는 남조선 것들 쓸어버리라 멸절() 저주까지 쏟아낸다. 서울  불바다 위협은 세습권력이 부리는 오만의 극치다. 그런데도 우리 집권세력과 지도층에선 대북 비판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북한 권력을 두둔하거나 체제의 특수성 운운하며 감싸고 든다. 권위주의 시절 민주화 운동에 청춘을 바쳤다고 자부해  이들이 유독 북한 앞에선 꼬리를 내리는  수수께끼다
  
봉건왕조가 원칙으로 삼아  장자승계(長子承繼)대로라면 김일성-김정일-김정남-김한솔이 순리다. 이런 구도가 탐탁할  없는 김정은으로서는 믿을   핏줄뿐이란 생각에 마음이 급할  있다. 하지만 그의  자녀는 모두 여섯  이하다. 지난달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여동생 김여정을 정치국 후보위원에 앉혔지만 불안감 해소엔 역부족이다. 김정은이 조카 김한솔을 눈엣가시로 여겨 제거하려 드는 것도 이런 연유일 공산이 크다. 중국이 김정은 대안세력으로 김한솔을 내세우려고 보호 중이란 관측까지 나오면서 신경이  곤두섰을  있다
  
불귀의 객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이 이런 아들·손자를 어떤 심정으로 지켜볼지 궁금해진다. 분명한   같은 골육상쟁이 세습제의 업보란 점이다. 평양판 카인과 아벨이라 불릴 만한 형제의 난은 이제부터 시작일 수도 있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 김정은에 대한 김한솔의 원한은 다른 것으로 풀리기 어렵다. 사태를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  듯하다. 

 

11.08 판도라의 상자  국정원장 집무실의 비밀 금고

/국정원

 

꼬리표 붙지 않은 현찰은 유혹 자체다. 슬쩍 챙겨 써도 좀체 뒤탈이 나지 않는다.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가  전형이다. 비밀 보장이 생명인 정보기관의 특성 때문이다.  돈이 적폐의 아성으로 지목되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공방도 거세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국정원 특활비를 챙겨   뇌물 상납이란  정부·여당의 공세다. 하지만 야권 일각은 물론 상당수 ·현직 고위 인사들은 그리  일만은 아닌데…”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야누스의 얼굴을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들여다본다

 5억원 국정원장 특수활동비
사실상 한도 없는 화수분인 

내년 국정원에 4930억원 책정
판공비 빠듯한 관료엔 오아시스

균형감 잡힌 적폐청산이 절실
검은돈 드러내 관행 결별해야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인사는 부임 첫날의 기억을 잊을  없다. 한마디로 돈의 위력과 달콤함에 완전 제압당하는 아찔한 체험을 하는 순간이었다고 한다. 정보기관에서 잔뼈가 굵은 보좌진이 귀띔해준 내용은 충격이었다. 첫째는 매월 국정원장이   있는 특수활동비가 5억원(연간 60억원) 수준이라는 , 둘째는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혹여  돈을  써버려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실무부서의 특수활동비 등으로 얼마든지 충당해 놓을 테니 안심하라는 취지였다
  
화수분은 원장실에 놓인 육중한 금고였다. 국정원 수표는 물론 현찰과 달러·엔화 등이 정갈하게 쌓여 있었다.  용처는 어디였을까.  인사는 역시나 전관예우가 중요했다 말했다. 바로 앞서 원장을 지낸 전임자와 식사 자리를 만들어 깍듯한 예의를 표한  거액의 금일봉으로 성의를 전달했다. “전관(前官) 대통령 독대 보고 때의 노하우나 인수인계 사항을 제대로 (pool) 주지 않으면 난감한 일을 겪게  이란 보좌진의 조언에 따른 조치였다
  
각각 1억원대를 조금 넘는 월급이나 법인카드는 그야말로  발의 였다.  금고  돈을 어떻게  쓰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란  깨닫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당 사무총장급 중진 의원이 취임 축하 식사를 하자고 연락이 왔다. 약속에 맞춰 나가려는 그에게 비서진은 쇼핑백 하나를 가져왔다. 수천만원의 현금과 해당 의원의 지역구 정보가 담긴 자료였다. 의아해하는 원장에게  이렇게 하시는 겁니다 보좌진의 귀엣말이 들려왔다
  
놀라운  야당 의원과의 만남 때도 돈봉투와 정보 자료가 준비됐다는 점이었다. 황당해하자 마찬가지 답이 돌아왔다.  인사는 돈으로 완전히 원장의 혼을 빼놓으려는  같았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여기서  공직 인생은 끝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말했다.   지나면서 5억원을 몽땅 쓰기보다는 절반 정도는 남겨 청와대와 검찰·경찰  유관 부서 핵심 라인에 뿌려 주는  관행이자 미덕이란 것도 깨닫게 됐다고 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문재인 정부가 내년 예산안에 반영한 국정원 특수활동비는 49308400만원이다. 국정원을 제외한 청와대 비서실  정부 19 기관의 특수활동비 총액이 3289억원인  비하면  비중이다. 국정원 예산은 철저히 비밀에 싸여 있다. 과거  현직 국정원장이 사석에서 요원 8000명에 예산이 1조원쯤 된다 발설했다가 곤경에 처한 적이 있다. 이를 토대로 한다 해도 정규 예산의 절반 수준인 특수활동비가 별도로 책정된 셈이다
  
국정원 특수활동비는 관료 사회의 오아시스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장관급 인사들의 빠듯한 판공비를 충당해 주는 산소호흡기와 같다는 말도 나온다. 통일부의 경우 김영삼 정부 초대 한완상 장관이 안기부(국정원 전신) 돈을  받겠다 없애버리는 바람에 후임 장관들이 애를 먹었다. 중앙정보부 북한국장 출신으로 김대중 정부 초대 강인덕 장관이 정보비 도움 없이 어떻게 일을 하느냐 DJ 건의해 겨우 환원시켰다는  당국자의 전언이다
  
 빨아먹듯 달달하던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임자를 만났다. 문재인 정부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국정원 적폐를 정조준하며 칼날을 들이대면서다. 실국장급 인사들이 국고 손실이란 죄목에 엮여 줄줄이 구속됐다. 특수활동비  일부가 박근혜 정부 실세 청와대 비서관인 이재만·안봉근씨에게 상납됐다는 검찰 수사까지 이어져 논란이 불거졌다. ‘뇌물이냐 통치자금이냐 하는   공방이다
  
권력 실세들이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정보기관 현찰 예산을 끌어다 착복했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다는 방어 논리도 불법의 평등까지 보장하기 어렵다는 차원에서 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교통단속에 걸려놓고  다른 사람들도 위반하는데 나만 잡느냐 항변하는 꼴이   있다
  
중요한  적폐의 진앙으로 부상한 국정원의 태도다. 국민과 국가 앞에 석고대죄의 심정으로 회초리 맞을 채비를 해야 하지만 그런 자성의 분위기는 없다. 환골탈태의 결의도 보이지 않는다. 새로 수뇌부에 포진한 인사들은 아닌 보살하며 칼자루 잡기에 바쁘다. 서슬 퍼런 권력의 눈치만 보다  다른 적폐를 쌓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제 공개된 국정원 개혁위 적폐청산 테스크포스(TF)’ 조사 결과 보고서는 이런 우려를 깊게 한다. 우선 발표 시점의 문제다. 국정원은 오후 8 언론에 보도자료를 돌렸다. 국정원 법률보좌관으로 파견됐던 변모 서울고검 검사가 댓글사건 연루 의혹을 받자 억울함을 호소하며 투신해 숨진  불과 4시간이 지난 때다. 유족과 검찰 동료들의 비통함이 빈소에 가득 차던 시간 국정원은 적폐 파헤치기 성과를 알리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무리수를 뒀다
  
조사 내용도 마찬가지다. 2013 6월엔 국정원장이 비밀 등급 재분류 권한이 있어 공개 결정이 적법하다 ‘2007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꺼내놓았다. 이번에는 비밀 엄수 위반이라며 수사를 의뢰하는 오락가락 행보다. 국민을 우습게 보지 않고서는 있을  없는 일이다
  
6건의 조사 대상 모두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겨냥했다는 점도 그렇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의 45000 달러 대북 비밀 송금에 국정원이 환전소 역할을 하고, 요원들을 동원해 차명계좌를 만들도록  적폐의 진상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대목이 많다. 좌우 적폐의 균형 있는 청산이 이뤄지지 않으면 국민 공감을 얻을  없다. 당시 대북라인의  축을 맡은 서훈 원장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특수활동비 논란도 마찬가지다. 먼저 원장을 비롯한 핵심 간부와 각 실무부서가 어디에, 어떻게 특수활동비를 집행했는지를 규명해 문제를 바로잡는 게 바람직하다. 조직이 만신창이가 되고 국민 혈세를 도둑질했다는 비난까지 받는 국가정보기관이 숨을 곳은 없다. 이제부터라도 관행과 불법을 구분해 새 틀을 짜야 한다. 판도라의 상자는 열려야 한다. 

 

11.15 예능으로 번진 김정은 혐오막말과 도발이 부른 자충수

북한 김정은에 대한 외부 세계의 평점이 바닥까지 추락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유튜브에는 조롱과 희화화된 영상물이 넘쳐난다. 한국의 TV 프로그램엔 김정은 비판과 3 세습 폐해를 지적하는 코너까지 등장했다. 젊은 층의 대북 반감이 커지는  전례 없는 흐름이다. 북한에 우호적인 진보 성향 인사도 가세했다.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남 막말까지 쏟아낸 김정은이 자초한 일이다. TV 예능으로까지 파고든 김정은 혐오현상을 진단한다

80년대 반공드라마 지금 평양에선
대북 비판여론 형성에 결정적 역할

정상회담 분위기에 누그러졌지만
·미사일 도발로 김정은에 화살

대북 적대감  젊은  반북 진보
 평창 초청 골몰 정부엔 부담감

중년 연배의 한국인 머릿속엔 북한 하면 떠오르는 드라마가 있다. KBS1-TV 1982 11 시작한 지금 평양에선이란 작품이다. 북한 권력의 막전막후를 당시 후계자 신분이던 김정일에 맞춰 해부한  드라마는 2  동안 200 가까이 방영되며 공전의 히트를 쳤다. 저녁 황금시간대 시청률이 46% 달했다. 마흔을  넘긴 김정일이 노간부들을 하대하고, 대남 공작에 골몰하는 장면은 우리 국민의 대북 비호감지수를 한껏 끌어올렸다. 여성 편력에다 잔혹하고 호전적 리더십을 가진 최고지도자 김정일의 이미지를 굳히는  일등공신 역할을  것이다. 거칠고 직설적 방식인 1950~70년대 반공영화 메시지를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안방에 끌어들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민 대북인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간판급 반공드라마란 얘기다
  
그런데 80년대 ~90  동구권 붕괴와 소련 해체, 92 남북 기본합의서 발효와 2000 정상회담으로 이어진 화해·교류 분위기 속에 변화가 나타났다. 북한 TV 영상자료나 탈북자 증언을 소재로 제작한 시사교양물 남북의 ’(KBS·1989) 통일전망대’(MBC·2001) 등장이다.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 제공하는 자료를 쓰고 제작 방향을 간섭받는 한계가 있었지만 북한 영상이란 사실 근거한 방송물을 선보인 것이다
  

▲영상물을 통해 본 대북인식 흐름

 

특히 2000년과 2007  차례 남북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반공 이데올로기에 반기를  영화가 쏟아졌다. 과거 빨갱이 치부된 보도연맹(좌익 전향  반공운동) 관련자를 배고픔 때문에 보리  말에 도장을 찍어  피해자로 재조명하는 식이었다. 지나친 좌편향이란 우려와 반공에 함몰됐던 인식의 균형을 찾는 시도란 주장이 교차했다
  
다시 미묘한 반전이 일어난  김정은이 후계자로 자리 잡은 2010 즈음이다. 호전적인 26 청년 지도자와 세습체제에 대한 거부감과 비판이 커지는 복고(復古) 국면이 닥친 것이다. 그해 3 북한군의 어뢰 공격에 의한 천안함 폭침 도발이 터지고, 같은  11월에는 북한이 연평도에 포격을 가하는 초유의 상황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듬해 종편 채널에서 탈북 여성들을 출연시켜 북한의 폭압적 통치와 김정은 체제를 비판하는 프로그램이 생겼다. ‘탈북 미녀를 내세운 선정성 지적하는 시각도 있었지만 유사한 포맷이  방송에서 이어졌다. 지상파와 종편에서 탈북자 출신 전문가의 등장이 눈에 띄게 늘고 대북 비판 수위가 올라간 것도 이즈음이다
  
 들어 핵실험과 잇따른 미사일 도발로 한반도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면서 김정은에 대한 비판은 정점을 찍었다. 이런 분위기는 SNS 유튜브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김정은(Kimjongun)’ 검색하면 호전성을 꼬집거나 조롱하는 영상이 압도적이다. 만화나 캐릭터를 통해 전달력을 높인 영상물도 두드러진다. 영어권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중동 지역까지 비판적 콘텐트가 번져 나가는 양상이다. 한류 바람을 타고 평양과 지방 도시에 상륙한다면 북한 당국으로선 낭패다. 북한 댓글부대가 조선중앙TV 김정은 찬양 영상 등을 열심히 업로드해 물타기를 시도하지만 역부족으로 보인다
  
우리 TV에도 김정은을 꼬집는 프로그램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달 JTBC 시사교양 프로  이름을 불러줘-한명()  회에 김정은 다뤘다. 한국에는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이 13915명에 이르지만 북한에선 최고지도자의 존함이란 이유로 같은 이름을   없고, 강제로 개명당한다는  핵심 메시지다. tvN 이달 방영한 예능 프로 유아독존에서 독재자의 권력 세습을 다루면서 북한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세습 독재국가 지목했다. 평소 진보적 성향으로 알려진  출연자는 69 동안 이어진 3 세습 독재를 비판하고 주민에 대한 일상생활에서의 세뇌 김정은 유고 사태까지 언급했다
  
청소년과 대학생·청년  젊은 세대의 대북 비판 인식이 높아지는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촛불시위에서   있듯이 권력 부패와 갑질 행태  국내 이슈에 대한 사회 기류는 진보 성향이 짙어졌다. 하지만 북한 체제와 김정은에 대한 인식은 보수적 성격을 더해 가는 추세가 가파르다. 기성세대보다 젊은 층이  비판적 태도를 보이는 점도 흥미롭다
  
이원재 KAIST 교수가 2003~2016 한국종합사회조사(KGSS) 데이터를 분석한 노무현 정부 이후 한국 사회 세대별 정치·사회 성향 변화’(중앙SUNDAY 3 12일자 보도) 결과에서도 이런 현상은 확인된다.  기간 북한에 대해 적대적 입장으로 변해 가는 추세는 유사했지만 가장 젊은 세대인 포스트86(1970년생 이후) 특히 심했다.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도를 4 척도(높을수록 적대적) 보면 86세대(1960~69년생) 2.64였고, 포스트86 2.78 나타났다. 산업화세대(1959년생 이전) 3.04 버금가는 수치다.  교수는 포스트86세대는 2008년을 기점으로 민족주의적 자세를 버렸다 진단했다. 이른바 반북(反北) 진보 성향을 구축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이런 기류는 김정은에게 치명적일  있다. ·미사일 도발에서 대화 국면으로 전술적 전환을 하려 해도 한국  비판 여론이 쉽게 용납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마음 내키는 대로 서울  불바다 공언하고 남조선 것들 쓸어버리라 극언을 퍼부었던 후과다. 변변한 역량이나 검증 절차 없이 절대권력을 세습한 평양판 금수저 대한 한국 또래 청년세대의 싸늘한 시선도 만만치 않다.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서울로 생중계되던 평양 정상회담 자리에서 은둔에서 해방됐다 메시지를 던졌다. 북한 최고지도자에 대한 남한 사회의 반감을 누그러트리려는 제스처였다. 김정은은 자기 아버지의 이런 노력을  번에 무너트린 셈이다
  
대북 접근에 공을 들여온 문재인 정부에도  두통거리다. 오늘로    동안 도발을 멈춘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 내려면 대북 비판 여론을 무시할  없다. 자칫 북한에 저자세를 보이거나 대북 퍼주기를 시도하다간 뭇매를 맞을  있기 때문이다. 내년 2 평창 겨울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을 초청해 남북 관계의 물꼬를 트기 위한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까닭이다

 

11.29  정권의 아킬레스건…‘강영실 동무 판문점 탈출 사건

빗발치는 총탄 세례도 자유를 향한 질주를 막지 못했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됐지만 심장 고동은 멈추지 않았다. 끝내 살아남아 지옥 같던 청춘을 증언하라는 숙명인 듯하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통해 지난 13 탈북을 결행한 북한군 병사 오청성(25)씨의 이야기다. 무엇이 죽음을 무릅쓴 탈주에 나서도록 만들었을까. 그의 귀순사태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과 북한 내부 실태를 들여다봤다.  

 김정은 최전방 부대 방문 사진에
강한 영양 실조 북한 병사 포착

판문점 귀순 병사   회충은
열악한 보건·의료 실상 드러내

북녘 참상 외면하는 우리 사회에
국제 양심 세력은 싸늘한 눈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집권  서해  방어대를 자주 찾았다. 남측 수역 백령도와 연평도 등이 빤히 바라다보이는 북측 최전선이다. “항복 문서에 도장 찍을 놈도 없게 모조리 수장(水葬)시켜 버려라 섬뜩한 대남 위협을 쏟아낸 그는 초병들과 사진을 찍었다. 이튿날 노동신문 1면에 대문짝만 하게 실렸다. ‘병사들과 함께하는 최고지도자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사진엔 북한이 감추고 싶어 하는 치부가 드러나 있었다. 몇몇 병사의 경우 단박에 심한 영양실조라는  알아챌  있을 정도로 야위고 눈은 퀭한 모습이었다. 일부는 소년병으로 보일 정도로 키가 작았다. 북한군이 우리보다 평균 키가 11~13cm 작다는  고려해도 그랬다. 김정은이 격노했다는 대북 첩보가 입수된  달포 정도 지나서였다. 병사들의 열악한 실태에 충격을 받은 김정은이 먹을 것과 주거 문제를 해결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렸다는 요지였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김정은이 현장 방문할 정도의 정예 방어부대가  이런 꼴이었던 것일까. 세계 3 규모로 119 명에 이르는 북한군 병력의 주축은 20 초중반의 하전사급이다. 17  초모(招募·징집) 절차를 거쳐 10년간 의무복무해야 한다. 이들은 대부분 1990년대 중후반에 태어났다. 북한이 지금도 치를 떠는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다. 1994 7 김일성 사망에 뒤이어   동안 몰아닥친 대수해로 200~300 명의 주민이 사망(황장엽  노동당 비서의 증언)하는 참혹한 사태가 벌어졌다. 국가정보원과  정보 당국은 대북첩보를 통해 모두 46 명이 아사했다는 보수적 정보 판단을 내렸지만, 북한 인구가 2500  수준임을 감안할  대재앙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유엔과 국제인도기구 단체는 임산부·영유아  취약계층 지원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 산모와 아이의 건강에 극히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대북 모자(母子)보건 1000 프로젝트 펼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엄마  속에서의 9개월(270), 그리고 태어나서 2년간(730) 집중하자는 취지다. 북한군 병사 대부분은 재앙 같던 기근 사태로 태아 시절부터 제대로  영양 공급을 받지 못한 세대다. 그래서 북한 병영에는 강영실 동무 불리는 병사가 유난히 많다고 한다. 군대에도 제대로  식량 공급이  되면서 강한 영양실조에 걸렸다 자조 섞인 표현이다
  
고난의 행군은 현재진행형이다. 다음  김정은 집권 6년을 맞지만 북한 민초의 삶은 별반 달라진  없다. 긴급 구호 차원에서 시작된 식량과 보건·의료 지원은 20년을 넘기면서 피로감(donor fatigue) 드러낸다. 노동당의 배급망은 파산했고, ‘무상치료 빛이 바랬다. 대북 의료지원 활동을 벌여온 유진벨 재단의 스티브 린튼 박사가 전하는 북한 의료 실태는 참혹하다. 수술실에 전등이 없어 한낮 창밖에서 거울로 햇빛을 반사해 환부를 들여다볼  있었다고 한다. 링거가 부족해  사이다병에 수액을 담아 주사했고, 거즈는 넝마가  정도로 빨아 사용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선전 차원에서 세운 평양의 최신 병동은 그림의 떡이란 귀띔이다
  
판문점을 넘어온 오청성씨의 몸은 북한의 열악한 보건 실태를 웅변한다. 그의 헛헛한 내장에 똬리를 틀고 있던 길이 27㎝의 회충이 던지는 메시지는  마디 말보다 명징하다. 2012 4  연설에서 다시는 우리 인민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 김정은의 다짐은 공수표가 됐다.  당혹감 때문인지 북한의 관영 선전매체는 오씨의 귀순을 보름 넘도록 함구하고 있다
  
이런 국면에서 오씨의 인격 침해 문제를 들고나온 김종대 정의당 의원 주장은 뜬금없어 보인다.  의원은 수술 집도의 이국종 교수가 회충 검출 사실 등을 공개한  귀순 병사의 인격을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탈북을 막으려고 총격을 퍼부은 북한군과 다름없다는 주장까지 펼쳤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뒤에야 뒤늦게 사과에 나섰지만 어물쩍 넘길 일은 아니다. 진정 그가 북한 주민의 인격과 존엄성을 살갑게 챙길 생각이라면 구충제 하나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 북한 당국에 비판 성명이라도 내는  맞다. 그게 혈세로 의원 세비를 대주는 국민에게 석고대죄하는 길이다. ‘정의 간판을  소속 정당에 끼친 누를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길이기도 하다
  
자유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는 이유로 40 발의 AK 소총 사격을 서슴없이 퍼붓는 북한군 경비병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동독의 베를린 장벽 탈출 장면이 오버랩된다. 300 명의 서독행 탈출이 이어지자 동독 당국은 1961 8 182km 이르는 철조망과 장벽을 기습적으로 세웠다. 죽음을 무릅쓰고 담장을 넘는 이들을 지켜보던 서베를린 시민들은 도움의 손길과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총으로 위협하며 저지에 나선 동독 경비병을 향해 야유와 조소를 퍼부었다. “공산 보초병조차도 감히 총을 쏘지 못했고,    돌아서서 마치 쏘지 않을 테니 길을 가시오하는 표정이었다”(대한뉴스 336, ‘자유를 찾아오는 동독 사람들’) 상황 묘사에는 자유를 응원하는 시민의 힘이 투사된다
  
우리의 현실은 답답하다. 대통령부터 장차관, 고위 관료 그룹이 마치 담합한  이번 사태에 침묵한다. 통일부  대북 부처는 물론이고 인권문제 담당 기관들은 실종 상태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이런 판에 나온 브라이언  미국 국무부 정책기획관의 25(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그는 북한군 병사의 기생충 문제를 김씨 일가와 평양 엘리트층의 행태에 빗대어 군인들조차 끔찍한 영양실조로 고통받게 하고 있다 비판했다.  병사가 북한 주민들의 삶을 조망할  있는 (window)’   있다는 의미도 부여했다
  
언제부턴가 북한의 치부를 드러내는 상황에선 침묵이 이자 미덕인 세상이 돼버렸다. 정치권과 관료사회, 시민단체와 언론·학계·종교·사회단체 등이 그렇다.  사이 북한은 더욱 근육질을 키운  흉포한 주먹자랑을 해댄다.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선이 싸늘해진  북녘 동포의 참혹함을 외면한 업보다

 

12.06 평창 겨울올림픽은 남북관계 희망봉이 아니다

평창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내년 2 이곳에서 열릴 겨울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이 참가하는 문제를 두고서다. 정부는 북한 초청을 위한 분위기 조성과 여론 띄우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일각에선 · 합동군사연습 중단 주장까지 나온다. 하지만 ·미사일 도발로 긴장을 고조시킨 북한을 불러들이려 연연하는  볼썽사납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뜨거운 감자 다가온 평창 겨울올림픽과 북한 참가의 함수관계를 짚어본다   

 모셔 오기 공들이는 정부
· 합동연습 중단 만지작

올림픽 흥행 북한 손에 달렸나
몸값 올려주는 결과 피해야

이벤트에 지나친 기대는 금물
치밀한 북한 다루기 전략 짜야

스포츠는 이데올로기와 체제를 뛰어넘어 인류를 소통하게 만든다. 때론 외교전선의 첨병을 맡아 꽁꽁 얼어붙은 정세를 녹여준다. · 관계 개선의 메신저 역할을  핑퐁 외교는 대표적이다. 1971 4 일본 나고야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했던 미국 선수단 15명은 중국을 전격 방문했다. 베이징과 상하이 등을 돌며 친선 경기를 펼쳐 양국 관계 복원의 물꼬를 텄다. 남북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64 도쿄 올림픽 북한 선수단에 포함됐던 육상선수 신금단이 열두   헤어진 아버지 김문준씨를 극적으로 상봉한  남북 분단의 아픔을 세계에 알린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됐다
  

▲평창 겨울올림픽 북찬 참가 추진 관련 움직임

 

65 앞으로 다가온 평창 겨울올림픽을 평화 올림픽으로 만들려는 발걸음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북한 김정은 체제의 무모한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격랑에 휩싸인 한반도에 봄기운을 불어넣자는 취지라는  정부 설명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지난 10 평창 겨울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는   국면으로 전환하는  도움이   있을 이라고 강조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도 북한이 출전할 경우 모든 경비와 훈련비를 지원하겠다 밝히는  국제 스포츠계 분위기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적극 나섰다.  대통령은 지난 6 24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북한 선수단 앞에서 평창 겨울올림픽에 북한 측이 참여해 달라 요청했다. 북한의 반응은 싸늘했다. 선수단을 이끌고 방한한 장웅 북한 IOC 위원은 북남관계를 체육으로 푼다는  천진난만하기 짝이 없다. 기대가 지나치다 일축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7  바흐 위원장을 만나 북한의 참가를 위해 힘써  것을 요청하는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정부와 여권도 군불 때기에 나섰다. 북한의 참가를 유도하기 위한 묘책을 강구 중이란 후문이다. 논란도 불거졌다. · 합동 군사연습 중단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 통일연구원 주최 학술회의에서 평창 겨울올림픽 무렵 키리졸브 훈련을 연기해, 북한의 추가 도발을 억제하고 대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말했다. 군사연습 중단을 주장하는 측은 지난달 13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평창 겨울올림픽 휴전결의안 근거로 제시한다. “평화와 화합이란 올림픽 정신과 성공 개최를 위한 군사 긴장 완화란 측면에서 군사연습의 잠정 중지는 충분히 명분을 갖는다”(김상기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지적이다
  
하지만 비판 여론도 팽팽하다. 우선 북한의 잘못된 행위인 군사 도발과 이를 억제·방어하기 위한 연례적 훈련을 맞바꾸는  타당한가 하는 문제다. 둘째는 평화를 지키는 노력인 · 군사연습이 한반도 평화 파괴의 주범으로 인식될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외교 전문가는 북한의 도발은 외면하고 · 군사연습을 악의 근원으로 몰아가려는 북한과 추종 세력의 논리에 말려드는  단추가   있다 지적했다. 셋째, 중국이 주장해  쌍중단(雙中斷, 북핵과 · 합동연습 중단)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형국이  향후 중국의 입지만 높이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우려다. 대북제재에 미온적으로 대처해  중국은 쌍중단과 쌍궤병행(雙軌竝行, 한반도 비핵화와 · 평화협정) 내세워 · 책임론을 펼쳐 왔다
  
남북한은 올림픽을 관계 개선의 호재로 삼아 왔다.  남북 정상회담 개최   후인 2000 9월에는 호주 시드니 올림픽에서  공동 입장이 성사됐다. 2002 9 부산 아시안게임에선 남북 공동 입장과 함께 북한에서  응원단이 화제를 모았다. 이듬해 겨울 아시안게임과 2004 올림픽, 2006 겨울올림픽과 2007 겨울아시안게임에서도 남북 공동 입장은 이어졌다. 하지만 북한은 2008 베이징 올림픽  남북 응원단이 경의선 열차를 이용해 참가하기로 합의하고도 이행하지 않았다. 정세 변화나 남북관계, 한국 정부의 성향 등에 따라 스포츠 협력의 수위를 달리하는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북한의 도발 패턴을 살펴보면 한국의 국제 스포츠 행사 일정이나 남북  합의 이행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확인할  있다. 북한은 2002 · 월드컵 한국·터키  3~4위전이 열리던 6 29 2 연평해전을 도발했다. 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자행한 대한항공 858 폭파사건은 북한에 테러지원국 족쇄를 채우게 했다
  
북한은 대성산체육단 소속 피겨스케이팅 페어 종목의 염대옥-김주식 조가 자력으로 출전권을 확보한 상태다. 하지만 10  국가별 1 참가 등록 마감에 신청서를 내지 않았다. 최종 선수단 등록 마감이 내년 1 29일이기 때문에 아직 시간은 남았다. 평창에 올지 여부에 대해선 함구 중이다. 막판까지 지켜보며 참가에 따른 득실을 계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집권 이후 국제 스포츠 행사는 정세와 관계없이 참가토록 하는 유형을 보여왔다. ‘국가  무력 완성 선언을 계기로 내년  대남 유화 공세로 돌아설지도 북한 참가의 변수다
  
우리 사회 일각에선 북한의 참가가 평창 겨울올림픽의 흥행과 성패를 좌우하는 듯한 주장이 판친다. ‘북한 모셔 오기 몰입하다 보니 몸값만 올려주는 모양새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의 참가를 환영한다는 원칙적 입장을 견지하고, 여느 국가와 마찬가지 수준의 손님 맞이 준비면 충분하다. 북한 도발에 대응한 제재·압박과 방어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88 서울 올림픽 때는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대비해 · 전력을  증강했고, 결국 북한의 오판과 준동을 억제하는 효과를 거뒀다는   원로의 귀띔이다
  
지난 5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6·15 공동선언 발표 17주와 8·15 광복절, 10·4 선언 10주년  주요 계기마다 남북관계의 돌파구가 열릴 것으로 희망했다. 북한의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김정은의 도발 카드에 뒤통수를 맞았다. 치밀한 북한 다루기 전략 없이 캘린더나 이벤트만 쳐다봐서 해결될 일은 없다. 평창 겨울올림픽 북한 참가 자체가 남북관계의 희망봉(Cape of Good Hope)  것이란 기대는 버리는  맞다

 

12.15 "남조선 TV 시청 말라"…해외공관 北방송전용 셋톱박스

북한의 역주행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번엔 외교무대인 해외 공관에서 시대 흐름에 반하는 일을 벌인다. 현지 TV 방송이나 한국과 서방 드라마·가요 접촉을 엄단한다며 괴상한 장치 하나씩을 의무적으로 설치했다. 평양에서 보내는 체제 선전 방송과 김씨 일가 우상화 콘텐트만   있는 일종의 셋톱박스다. 최고의 엘리트 그룹  하나인 외교관과  가족까지 엮어 체제단속의 고삐를 당겨야 하는 북한의 딜레마를 들여다봤다

김정은 찬양 TV·콘텐트 일색
서방매체 접촉  차단·검열도

태영호 망명 사태 따른 대응책
설치비 2000달러 강요에 불만

따분한 프로그램 누가 보나
엘리트 외교관·가족 등돌려

만방 사업으로 이름 붙여진 특수장치 보급 사업은 아주 은밀하게 추진됐다. 해외 외교공관이나 무역대표부에서 일하는 외교관과 대표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함구령이 내려졌다. “밖으로 알려지면 공화국(북한) 이미지가 흐려지고, 악의적 입소문이   있다 이유였다. 서방 외교가에서는 지난달부터 북한이 해외 공관마다 정체를   없는 장비를 공급하고 있다는 얘기가 솔솔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대북정보 당국도 최근 구체적 내용을 파악했다고 한다
  
중앙일보가 12 단독 입수한 장비와 관련 설명서 등에 따르면 장치 이름은 ()TV 다매체 열람기 붙여졌다. 인터넷망을 통해 북한의 신문·방송과 영상·도서·문헌 정보 등을 제공한다. ‘다매체 멀티미디어의 북한식 표현이다. 우리의 인터넷TV 셋톱박스와 유사한 모양을 띠고 있다. 기억용량(메모리) 8G USB 2.0 포구(포트) 2개가 달려 있으며 MP4 Divx  동영상 재생을 지원한다
  
만방이란 이름이 붙여진  서비스에 대해 북한 만방정보기술보급소 측은 “TV 실시간 시청과 편집물 요청, 신문·통신  문서열람과 검색기능 등이 제공된다 밝히고 있다.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대북소식통은 북한 당국이 자체 개발한  장치는 해외에서 북한TV 노동신문을 보거나 검열을 마친 영화·도서를 검색할  있도록 고안됐다 서방 매체의 TV 인터넷 영상물 등에 접촉하는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말했다. 북한 체제 찬양과 우상화 선전 관련 정보만을 제공한다는 얘기다
  

/북한의 해외 공관 정보통제 체계

 

북한은 지난해 7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 공사의 탈북·망명을 계기로 대책 마련에 부심해 왔다. 해외에 근무하는 외교관과 대표부 멤버 등이 한국과 서방의 정보물을 접한  체제를 등지는 사례가 빈번해진다는 판단에서다.   공사는 한국 도착 직후 인터뷰에서 북한 해외 공관원들이 휴대전화를 통해 한국의 뉴스와 영상을 접하고 세계를 이해하고 있다 말한  있다. 지난 6월에는 베이징에 나와 있던 북한 경공업대표가 남한TV 드라마를 보다가 적발돼 평양으로 소환조치되기도 했다. 소식통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격노했고 직접 실태 파악과 대책 수립을 지시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동안 북한 외무성과 국가보위성 등이 고심해 왔을 이라고 말했다. 전체 해외 공관을 대상으로 이런 조치가 취해질  있는 것도 김정은의 지시사항이기 때문이란 얘기다
  
북한은  장치를 대사관 구역(담장 내부에 조성된 주거단지 포함) 물론 외부의 공관원·대표 가정에도 의무적으로 설치토록 하고 있다. 북한 해외 공관의 경우 대사와 보위원, 서기관급 2, 경제참사 등으로 기본 구성되며 가족을 포함하면 15 안팎이다. 해외 80~90개국에 외교공관과 대표부 등을 두고 있다. 소식통은 가구당 2000달러( 218만원) 장비 구입  설치비를 강제로 내도록 하는 바람에 불만을 사고 있다 귀띔했다
  
만방 시스템과 설명서를 살펴본 정보통신 전문가는 우리의 인터넷TV 컨버터와 유사한 형태라고 보면 된다 말했다. USB 이용해 한국 TV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경우 어떻게 파악할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이에 대해 전문가는 평양에서 송출하는 북한 관련 TV 영상과 문헌 정보만을   있도록 하고 다른 정보는 철저히 차단하는 통제장치를 갖추고 있다 말했다. 다른 채널을 선택하거나 선로를 바꿔 금지된 방송이나 콘텐트를 접할 경우 기록이 남을  있도록 고안됐고, 불시 단속을 통해서도 검열이 가능할 것이란 설명이다
  
북한은 지난해 8 만방 체계에 대해 관영TV 통해 소개한  있다. 당시 김정민 만방정보기술보급소장은 국가망에 가입한 기관·기업소나 가정에서 중앙TV 용남산·체육·만수대 방송을 실시간 시청할  있고 이미 방영된 편집물도 다시   있다 설명했다. 북한 주민에게는 인터넷 접속이 허용되지 않아 만방 시스템을 통해서는 외부의 방송이나 콘텐트에 접속할  없다. 이번에 해외 공관에 보급하고 있는 장치는 인터넷 환경 속에서 사용하는 점을 감안해 보안성을 크게 높였을 것이란 지적이다
  
그동안 북한의 해외 공관에서는 태국 위성을 이용해 북한이 송출하는 조선중앙TV 영상을 시청해 왔다. 대사 집무실을 제외한 대사관 건물과 단지  북한 시설에선 한국과 서방의 뉴스·영상물이나 영화·드라마 등은 물론 현지 TV 시청도 금지됐다. 하지만 외부에 거주하는 경우 TV 위성방송을 몰래 시청하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 해외 공관에서 일하다 탈북한 고위 인사는 국가보위성 소속 안전영사가 가끔 단속을 나오지만 사전에 귀띔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말했다
  
노동신문의 경우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해 출력한 내용을 복사해 대사관원이나 가족들이 돌려 보도록 하는 방식을 썼다고 한다. 탈북 인사는 해외의 다양하고 흥미로운 영상물과 음악이 넘쳐나는데 누가 만방 체계를 이용해 따분한 김정은 찬양 프로그램이나 문헌자료를 볼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북한도 이런 점을 의식한  이달  조선중앙TV HD(고화질)급으로 업그레이드하고 뉴스에 주민들의 현장 반응을 담는  제한적이나마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북한의 70  노동당 통치는 식량배급과 정보통제라는  축으로 버텨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부 세계를 접할  없는 2500 주민들은 지상낙원 이밥에 고깃국 선전에 속아 왔다. 하지만 해외생활을 통해 허구임을 자각한 외교관과 외화벌이 기관원들은 체제이반을 꿈꾸고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 쏘아올리고 국가 핵무력 완성 선언하는 김정은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절망하는  이들 계층이다. 국제사회의 싸늘한 시선과 비난을 외교전선에서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만방(世界萬邦)에서 따왔을 만방 국제화와 개방을 상징한다. 하지만 북한이 보급에 열중하고 있는 만방체계는 고립과 폐쇄로 가는 안간힘으로 읽힌다. 시대의 조류인 4차산업, 인공지능(AI)과도 거리가 멀다.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

 

12.20 협력기금에 깜깜이 예산 2480억원  대북 퍼주기 꿈틀

정부 예산에는 대통령의 통치철학과 정권의 지향점이 녹아 있다. 돈을 어느 곳에 어떻게 쓰는지 살펴보면 정책노선이 드러난다. 북한과의 교류·지원에 방점을  문재인 정부는 어떨까. 대북정책 추진에 필요한 자금을 쟁여 두는 곳간 격인 남북협력기금이 바로미터다. 기금 문제를 집중 분석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정양석(자유한국당) 의원실을 찾아 정부 대북예산을 심층 분석해 봤다.

 철도 보수에 백두산 관광 지원
“10·4 선언 부담 떠안기 지적도

통일부, “실행에 14조원 든다
김정은이 합의 사실상 뒤엎어

국회 견제 없는 주먹구구 집행
18 심의위원  민간 3명뿐

통일·대북 현안과 관련된 정부의 돈주머니는 크게  개로 나뉜다. 통일부의 일반회계 예산과 남북협력기금이다. 탈북자 정착 지원과 통일교육, 대북 정보분석 등에 쓰일 내년 예산은 2275억원 규모. 그런데 남북경협이나 대북지원에  돈을 비축해  협력기금은 4배가 넘는 9624억원에 이른다. 배보다 배꼽이   격이다. 통일부는 당초 지난해보다 835억원 증액(8.7%) 1462억원을 요청했지만, 국회 심의 과정에서 838억원이 삭감됐다. 잇따른 ·미사일 도발에다 심의가 임박한 11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까지 쏘아 올리는 바람에 일부 항목이 줄어든 것이다. 협력기금 1조원 돌파라는 상징성을 겨냥했던 통일부의 뜻도 꺾여 버렸다
  
유리지갑 같은 예산 내역과 달리 남북협력기금은 상당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다. 대북협상 등을 고려해 구체적 항목은 공개하기 어렵다는  통일부의 입장이다. 고위 당국자는 대북협상  북한이 마치 자기들 예산 항목 하나를 남측에서 조달하려는 모습까지 보인다 귀띔했다. 예산 부처나 외통위 소속 의원실에도 개략적 내용을 열람 또는 대면보고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2018 협력기금도 마찬가지다. 연례적으로 책정해 두는 식량·비료 지원 등의 항목 외에 대부분은  개의  사업명으로 뭉뚱그려 놓았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내년 협력기금 예산 내역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기타 경협사업(비공개)’이란 대목이다.  2480억원이 책정돼 있지만 세목은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다. 꼼꼼히 들여다보니 지난해 없던 관광협력 관련 14억원이 신설된  확인된다. 금강산 관광 9억원과 백두산 관광 5억원이 각각 잡혀 있다. 어떤 식으로든 내년 금강산 관광 재개와 백두산 관광 착수를 추진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뜻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북한 기술인력 양성 항목에 배당된 43억원은 비판 소지가  보인다. 군사 전용이 가능한 컴퓨터·정보기술(IT) 분야 등의 영재와 전문가를 우리 돈으로 키워 주는 교육이란 점에서다. 유엔과 국제사회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따른 대북제재 논의 과정에서 북한 유학생에 대한 특정 분야 기술교육을 금지하는  비판 분위기로 돌아섰다. 지난 4월부터 계속된  차례의 국내 암호화폐(일명 가상화폐) 거래소의 해킹 공격이 북한 소행이란  최근 국가정보원에 의해 드러나기도 했다. 국제사회와의 대북 공조 차원에서 이미 잡힌 예산이라도 전액 삭감하는  맞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남북 경협 시설 기반 구축 항목이다. 올해보다 무려 1009억원이나 증액한 1640억원으로 늘렸다는 점에서다. 통일부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한반도 정책의 핵심인 ()경제지도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신경제지도는 남북한이 하나의 시장이라는 경제공동체를 구현하고, 주변국과의 경제벨트를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에 평화·번영의  경제질서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런 설명과 달리 실제는 북한의 노후한 철도·도로  인프라를 ·보수해 주는 쪽에 치우쳐 있다. 평양~신의주 철도 ·보수에 595억원을 비롯해 개성~평양 철도 ·보수 462억원, 개성~평양 고속도로 ·보수 20억원  1077억원이 철도·도로에 배당됐다
  
이쯤 되니 퍼뜩 떠오르는  생겼다. 2007 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합의한 10·4 선언이다. 8 항의 합의문에는 남북경협을 위한 기반시설 확충 내세워 대북 인프라 지원 항목이 빼곡하게 담겼다. 여기에는 내년 협력기금에 잡혀 있는 개성~신의주 철도’(평양 경유) 개성~평양 고속도로 ·보수 문제가 핵심 사업이다. 백두산 관광 실시와 직항로 개설 등도 포함됐다
  
노무현 정부 임기  달을 남기고 합의한 10·4 선언은 천문학적 국민 부담을 후임 정부에 떠안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통일부는 10·4 선언 이행에 필요한 40  항목의 지원에 모두 143000억원의 국민 세금이 들어간다는 소요 재원 추계 국회에 제출한  있다. 개성~신의주 철도·도로 ·보수  사회간접자본(SOC) 지원에 86700억원, 개성공단 2단계 사업에 33000억원 등이다. 정양석 의원실의 김수철 보좌관은 문재인 정부가 결국 10·4 선언 이행을 위해 협력기금에 깜깜이 항목을 배정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말했다
  
남북협력기금의 집행 의결이 주먹구구 식으로 이뤄지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1990 8 만들어진  기금은 매년 1조원 안팎으로 편성된다. 김대중 정부 18564억원, 노무현 정부 31081, 이명박 정부 5296억원, 박근혜 정부 9683억원을 쓰는  집행 규모가 만만치 않다. 그런데도 최근 3년간 집행 의결기구인 남북교류협력추진위(위원장 통일부 장관) 16차례 회의  2차례만 대면심의(2307500만원 규모) 했고 나머지 14회는 서면심의(5781억원) 처리했다. 50 안건 가운데 수정이나 보류된 경우는   차례도 없었다
  
개선 방안은 없을까. 우선 1조원 가까운 예산을 다루는 만큼 주요 집행 결정  국회 보고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8명의 교추협 위원(정부 차관급이 12) 가운데 민간 위원이 3명에 불과한 점도 문제다.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을 발의한 정양석 의원은 협상력 제고를 이유로 비공개하는 것은 남북관계를 정권 차원에서 독점하려는 폐쇄주의적 정책의 산물이라며 여타 기금운용심의기구처럼 민간위원을 적어도 절반 이상 위촉하는  기금 집행이 투명해야 한다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 대화 재개를 통한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위기 타개를 표방한다. 평창 겨울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이 참가하는   돌파구가  것이라며 공을 들이고 있다. 10·4 선언 이행 채비도 서두른다. 하지만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아버지이자 선대(先代) 수령인 김정일이 10·4 선언에 서명한  문제 해결과 남북 신뢰를 걷어차 버렸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 남북 응원단이 경의선 열차를 타고 함께 가자 선언문 6항의 약속도 공수표로 만들었다. 정부가 국민 혈세로 대북 짝사랑 빠지는  아닌지 걱정스럽다

 

12.27 김정은의 2월 노림수 … 여동생 여정 ‘평창’ 파견할 수도

북한 체제의 속내나 정책 노선을 제대로 들여다보긴 쉽지 않다. 체계적 분석이나 전망은 더욱 어렵다. 폐쇄적 속성 때문에 설명하고 예측하는 데 쓰일 잣대가 미덥지 않다는 점에서다. 연말이면 내로라하는 대북 전문가와 연구기관이 골머리를 앓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1991 4월 설립된 통일연구원(원장 손기웅)은 간판급 국책연구기관이다. 이런저런 한계 속에서도 공신력 있는 전망 보고서를 펴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북한연구실 등 5개 팀 박사급 연구원 50여 명의 ‘집단지성’이 완성한 2018년 정세 전망 보고서를 토대로 김정은 정권의 행보를 예견해 본다
 
2017  해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미사일 도발로 점철됐다. 지난달 29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 발사와 김정은의 국가  무력 완성 선언으로 정점을 찍었다. 시발점은 김정은의 신년사였다. “ICBM 발사 마감 단계라는 그의 말에 발맞추려는  북한 군부와 국방공업 부문은 폭주를 거듭했다. 하지만 체제 내부의 피로감도 심각하다. 엘리트의 이반이나 민심 동요  대북제재로 인한 위기감도 만만치 않다. 도발 국면으로 내달리기보다는 전술적  고르기 국면이 필요한 상황이란 지적이다. 내년에 북한은 정권 수립 70주년을 맞는다. 3 세습 권력은 파국이냐, 노선 변화를 통한 생존 모색이냐 하는 벼랑 끝에 섰다. “2018년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과 북한, 미국·중국  유관국들이 마지막 일전을 벌이는  해가  이라는  통일연구원의 진단이다. 닷새  선보일 김정은 신년사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2018년 한반도 주요 일정

 

김정은, 신년사에 어떤 중대 제안 담을까=조선중앙TV 중계될 육성 연설을 통해 국면 전환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남북한 군사적 신뢰 조치와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는 제안일  있다. 도발 일변도에서 화전(和戰) 배합으로의 변환인 셈이다. 김정은은  무력 완성 선언을 통해 이른바 핵보유국으로서의 전략적 지위를 재확인했다고 자체 판단할  있다. 통일연구원은 · 관계의 대결 국면을 우회하기 위한 남북 관계 공간 확보라는 측면에서 평화 공세 취하는 차원일 이라고 분석한다. 금강산 관광 재개나 개성공단 재가동 같은 경제적 실익 챙기기 쪽으로 눈길을 돌릴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의 도발과 대남 위협에 따라 우리 국민의 대북 감정이 싸늘하게 식은 상황이라 정부엔 고민거리다. 대외적으로 평화협정 체결과  군축 주장을 더욱 노골화할 공산도 크다.  같은 유화적 제스처는 대북제재와 압박 국면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남북 관계 해빙 가능한가=봄바람이 불어오려면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북한은 지난 5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제안을 모두 무시하거나 거부했다. 새해에도 한국 주도의 남북 당국 대화나 교류·협력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고 시도하는 북한이  포기나 동결을 전제로  회담 테이블에 나서지 않을 것이 분명하고, ·  주변국도 남북  대화 중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을 것이란 점에서다. 다만 평화 공세 차원에서 김정은 신년사 등을 통해 남북 관계 개선을 주장하고 나올 가능성이 있어 대비는 필요하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남북 최고위급 회담 등을 언급해 한국의 반응을 떠보고 남북 관계의 주도권을 쥐려는 움직임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물론 김정은의 대화 제안이 제대로 이행된 적은 없다
  
평창 겨울올림픽으로 돌파구 열리나=김정은의 최종 결심 여부에 따라 북한의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는 기대해  만하다는  통일연구원의 전망이다. 김정은이 집권 이후 체육강국 건설 표방해  데다 국제 체육행사의 경우 정세와 무관하게 선수단을 파견하거나 평양에서 행사를 예정대로 치른 전례가 있다는 점에서다. 문재인 정부가 · 군사연습 시기 조정  가용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 요소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4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는 황병서  총정치국장 등이 방문한 적도 있다. 김정은이 여동생 김여정(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파견하는 깜짝쇼를 벌일 가능성도 점쳐진다. 손기웅 통일연구원장은  세계 이목이 쏠린 올림픽 무대에 김여정을 세움으로써 유화 메시지를 보내고 자기 주도의 판을 짜려 시도할  있다 말했다. 북한 초청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지만 고위 인사의 참석이 성사될 경우 이를 계기로 남북 대화 복원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사일 추가 도발 가능성은=대북제재와 설득에도 불구하고 도발 일변도의 행태를 보여  북한이 2018년부터는 관리 모드로 전환할 것이라고 통일연구원은 내다본다. ‘ 무력 완성 선언을 통해 수위 조절의 명분을 얻었다는 측면에서다. 2018년부터는 ICBM 전략 도발이나  능력 과시라는 압박감에서 다소 자유로워질 것이란 얘기다. 신종호 통일연구원 기획조정실장은 최근 들어  해도 거르지 않고 최종 관문이나 마감 단계 등으로 ·미사일 도발을 밀어붙인 북한이 이젠 피로감을 털어 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이라고 말했다. 물론 미국의 전략자산과 확장억제전력의 틈새를 노리는 산발적 도발 가능성은 남아 있다. · 군사연습 기간  북극성-3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쏘거나 지대함·함대함 순항미사일로 대응하는 방식이다. 평창 겨울올림픽 기간에는 도발 자제를 통한 정세 관리와 이미지 개선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 대화 열릴까=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한 북한의 총력전과 미국의 제재·압박이 충돌하는 갈등 국면은 새해에도 지속될 수밖에 없다. 최근 공개된 미국의 ‘2017 국가안보전략보고서(NSS)’에서 드러났듯이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일부 혼선에도 불구하고 이런 원칙은 북한과의 대화 시작을 위한 조건으로 유지되고 있다. 북한의 주장을 받아들여 문턱을 낮출 경우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 국제공조가 와해될  있다. 북한의 평화 공세가 본격화돼 대화 재개를 위한 표면적 환경이 조성된다고 해도 의미 있는 · 대화나 관계 진전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대북제재 약발 먹히나=2018 상반기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란 전망이다. 북한은 버티기에 나서겠지만 상황은 심각하다. 9 6 핵실험 도발로 나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결의안 2375호가 본격 가동한  4분기를 기점으로 타격은 점점 커져  것으로 보인다. 지난 22일엔 ICBM급인 화성-15 발사로 인한 안보리 결의 2397호가 보태졌다. 북한은 제재 장기화에 대비하려 내년엔 내부 정비기간을 가질  있다. 정권 수립 70주년에 부응할 경제 성과나 치적을 쌓는  초점을 맞출 가능성도 크다. 평양 뉴타운 건설 같은 이벤트로 대북제재 무용론을 확산시키려 했지만 이젠 주민들이 피부로 느낄 성과를 보여 줘야  상황이다. 김정은이 23 폐막한 5  세포위원장 대회 폐막사에서  중앙은 인민을 위한 많은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작전의 과감한 전개 공언한 것도 주민 불만을 무마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통일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