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진단 5/
★이영종 편1 바로보는 평양1 중앙일보
2017.01.03 국정원 5명 경호 받고 온 태영호, 사진 찍을 땐 혀 빼물고 수줍은
탈북자
“첫눈에 알아보겠구먼요. 나의 망명을 가장 먼저 알리신 분이시죠.”
“비밀이던 내 망명 어찌 알았나”
기자에게 특종 보도한 경위 물어
런던서 안내했던 김정철엔 함구
‘김정은에게 경고 메시지’ 해석
그가 망명길 세운 뜻 ‘북한 민주화’
우리 사회가 계속 돕고 성원을
인터뷰 장소에 들어선 태영호(55) 전 북한 공사(公使)는 악수를 청하며 맞는 기자에게 웃으며 화답했다. 지난해 8월 16일자 신문에 그가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을 벗어나 탈북한 사실을 특종 보도한 걸 두고 한 말이다. 태 전 공사는 “한국에 도착한 다음날부터 중앙일보를 매일 읽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내 망명 소식이 실린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철저히 비밀에 부쳤을 텐데 어찌 알아서 보도할 수 있었는지 무척 궁금하다”며 기자를 채근했다.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중앙일보 본사를 방문한 태영호 전 공사(왼쪽)와 태 전 공사의 망명을 단독 보도했던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사진을 찍자 태 전 공사는 혀를 빼물고 수줍게 웃었다. [사진 전민규 기자]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서울 서소문로 중앙일보 7층 회의실. 5명의 국가정보원 요원들에게 둘러싸인 특급 경호를 받으며 인터뷰룸에 들어선 태 전 공사에게서는 베테랑 외교관의 경륜이 묻어났다. 부드러운 시선 처리에 양손을 적절히 활용하는 제스처까지 선보이며 그는 두 시간 넘게 달변을 이어갔다. 기자의 질문 공세에 카메라 플래시 세례, 동영상 카메라까지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거침없었다.
서울 도착 후 어떤 휴대전화를 장만했느냐는 물음에 그는 푸른색 폰케이스를 내놓고는 “맞혀 보라”고 했다. ‘갤럭시 노트5 같은데요’라는 말에 태 전 공사는 “정답입니다”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경직된 얼굴로 북한 체제를 강변하던 여느 북한 외교관의 스타일과는 차이가 났다.
가장 눈길을 끈 건 외래어를 자유자재로 섞어 쓰는 말투다. “김정은이 베팅할 수 있는 건 그것(핵)밖에 없다”거나 “이 세상에 퍼펙트한 사회가 어디 있겠는가”라는 말이 술술 나왔다. “영국에서 제가 프레스 담당이었다”고 말하고는 “한국에서는 이를 홍보라고 하는가요?” 라며 되묻기도 했다. ‘시스템’이란 단어는 여러 차례 되풀이됐고 “지난 시기엔 인터넷도 PC가 있어야 했지만 이젠 스마트폰 앱으로도 가능하지 않으냐”는 말도 했다.
영국에 체류할 때 그는 유창한 영어로 김정은 정권을 대변하거나 방어하는 역할을 했고 그 영상은 유튜브 등에 여러 편 올라 있다. 탈북·망명이 세계적 뉴스가 된 데는 그가 런던 외교가나 BBC 등 외신기자 사이에 꽤나 알려진 인사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영어를 그리 잘할 수 있게 됐느냐’고 묻자 태 전 공사는 “중학교 시절 중국의 국제학교에 유학했다”고 털어놨다. 영어뿐 아니라 중국어도 구사한다는 것.
서울 생활 6개월을 넘겼지만 대부분 관계당국 조사와 안가(安家) 체류로 보냈다. 사회에 나온 게 지난해 11월 말이니 남한 사회를 직접 접한 건 달포 정도다. 그런데도 한국산 제품 이름이 입에 착착 감기듯 흘러나왔다. ‘소주를 좋아한다’가 아니라 “참이슬”이라고 꼭 집어 말하고, 북한 상류층에서 인기가 좋다는 한국 화장품 ‘설화수’도 거론했다. 그는 ‘짝퉁’이란 단어에도 익숙했다. 런던에서 LG 휴대전화를 통해 서울발 뉴스와 문화 콘텐트를 접했다는 그는 남북한의 언어 차이도 또렷하게 알고 있는 듯했다. 전기밥솥 얘기를 하다가는 “북한 말로 밥가마인데 여기서는 뭐죠”라며 확인할 정도였다.
태 전 공사는 서방에 파견된 외교관 중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한 편이다. 하지만 극도로 통제된 북한 체제에서 체득된 긴장감을 노출하기도 했다. 인터뷰룸 밖에 사람이 오갈 땐 잠시 멈칫했고, 경호원의 움직임에 동공이 흔들렸다.
태 전 공사는 2일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 처음 출근해 시무식을 치렀다. 이곳에 먼저 자리 잡은 10여 명의 탈북 엘리트 인사들과 만나 의기투합했다. 앞으로 외신회견이나 서방 국가 방문을 통해 김정은 정권의 핵 야욕과 인권 유린상을 국제사회에 폭로할 계획도 갖고 있다. 이 과정에서 태 전 공사의 폭발력은 커질 수 있다. 김정은 체제의 아킬레스건을 겨냥할 최전방 공격수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물론 태 전 공사는 “제 혀끝을 어떻게 놀리는가에 따라 북한에 있는 많은 분들이 다치게 된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지난해 5월 김정은의 친형 김정철(36)이 런던을 방문했을 때 태 전 공사는 밀착 안내를 맡았다. 그렇지만 김정철의 호르몬계 질환설이나 김씨 일가의 내밀한 정보 등에는 일단 함구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당국자는 “태 전 공사가 ‘여차하면 민감한 내용을 폭로할 것’이란 경고 메시지를 김정은에게 보낸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제 남은 건 태 전 공사가 탈북·망명을 결행하며 세운 ‘북한 민주화’란 뜻을 우리 사회가 일관성 있게 성원하는 일이다. 대북 햇볕정책 성과에 집착한 정부에 억눌려 쓸쓸히 숨져간 비운의 망명객은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한 분이면 족하다.
01.17 김정은 이름 앞에 찬양문구 59자…우상화 속도전
▲김정은의 동정을 보도한 15일자 노동신문 1면.
새해들어 북한 노동신문에는 작지만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김정은(33)의 직책 뒤에 길다란 찬양 문구가 덧붙여진 것이다.
이전까지는 노동당 위원장과 국무위원장, 군 최고사령관 등 3개의 직책만 썼다. 그런데 뒤이어 ‘우리 당과 국가, 군대의 최고영도자’란 찬양 문구가 따라온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젓갈가공 공장 방문 소식을 전한 15일 자 노동신문 1면 기사의 첫 문장은 김정은을 꾸미는 글귀만 59자에 이른다. 정작 기사 알맹이는 32글자에 불과해 본말이 전도된 느낌을 준다. 김정은을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로 부르기 시작한 것도 눈길을 끈다. 지난달 17일 사망 5주기를 맞은 김정일 시신 참배 때는 북한 관영매체들이 김정은에게 9차례나 이 표현을 썼다. 대북 부처는 “김정은 집권 5주년이기도 한 시점에 이런 변화가 첫 감지됐고, 올들어 본격 시행되는 분위기”라고 설명한다.
노동당위원장·최고사령관·영도자…
젓갈공장 방문 보도 첫 머리에 붙여
대북제재 여파로 민심은 시큰둥
예고됐던 33세 생일행사 없던 일로
김정은 찬양과 우상화는 올들어 더 속도를 낼 것으로 점쳐진다. 통일부는 ‘2017년 북한정세 전망’ 자료에서 올해 북한이 ‘김정은 유일지도체계’ 공고화를 위해 대대적 우상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도 이를 숨기지 않는다. 오는 8월에는 평양과 백두산에서 이른바 ‘백두산 위인 칭송대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북한이 백두산 3대장군으로 칭해온 김일성·김정일과 김정숙(김정일의 생모)을 치켜세우는 큰 행사를 연다는 얘기다.
주목되는 건 백두산에 김일성·김정일 외에 김정은 동상가지 세우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런 의욕적 모습과 달리 곤혹스러워하는 내부 분위기도 감지된다. 당장 지난 8일에 33살을 맞은 김정은 위원장 생일 행사를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해 10월 “2017년 1월 김정은 각하의 탄생일을 성대히 경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백두산 위인칭송대회 국제준비위’란 기구의 호소문 형태였지만 김정은 관련 예고를 없던일로 넘긴 건 심상치않다. 이를 두고 “유령단체를 내세워 생일 행사 여론을 탐색하려는 전형적인 발롱데세(ballon d’essai) 수법을 구사한 것”(안찬일 한국열린사이버대 석좌교수)이란 분석이 나온다. 북한 주민이나 안팎의 여론이 신통치 않자 없던일로 했다는 것이다.
▲김정은 우상화에 필수적인 가계(家係)우상화에 큰 걸림돌이 있기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생모 고용희(2004년 사망)
1962년 북송선을 탄 재일교포 출신이다. 고영희의 부친인 고경택은 제주 사람으로, 일제 때 일본 오사카(大阪)로 건너가 군복공장의 간부로 일했다. 북한 주민들에게 ‘째포’(재일교포를 줄여 비하하는 표현)라고 멸시받던 계층인데다 ‘남조선’에 뿌리를 뒀다는 건 가계 우상화에 치명적이다.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김정은의 외조부가 항일을 기치로 한 김일성 세력을 토벌하려던 일본군의 군복을 만들던 인물인 셈”이라고 말했다. 자칫 주민들 사이에 “우리 원수님(김정은을 지칭)은 백두혈통이 아니라 후지산·한라산 줄기”라는 비야냥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28)과 친형 김정철(36)의 운신 폭도 좁아졌다. 김여정은 대북제재 리스트에 오르면서 ‘평양 로열패밀리’로 불리는 김(金)씨 일가로 불똥이 번지기 시작했다는 진단이 나온다. 미 국무부는 지난 11일 김여정을 인권범죄와 북한 주민 세뇌공작의 주범으로 낙인했다. 당장 피해는 없더라도 심리적 위축 등 타격은 불가피하다.
막내 김정은에게 후계 자리를 빼앗긴 형 김정철(36)은 권력과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모습이다. 직책조차 공개되지 않고 공식석상에 한번도 등장 않았다. 다만 팝스타 에릭 크랩튼의 열렬한 팬으로 2015년5월에는 런던에서 열린 공연을 직접 관람하면서 현지 언론에 노출됐다. 당시 그를 밀착 안내했던 태영호 전 북한 공사는 지난해 여름 탈북·망명했다. 대북정보 관계자는 “태 전 공사가 김정철을 챙기며 지득한 신병(호르몬계질환으로 후계 탈락) 관련 사항이나 김정은·김여정과의 관계를 알수 있는 정보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서울의 핵심 정보 당국자 사이에선 북한 김씨 일가 남매의 내밀한 정보가 한국과 서방 정보당국에 노출됐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01.30 호위사 병력만 12만 명…신변불안 김정은 ‘3중 보디가드’
김정은(32)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집권 이듬해인 2013년 3월 서해 최전방 장재도 섬방어대를 방문했습니다. 맞은편 연평도와 불과 9㎞ 떨어진 곳인데요. 북한 관영매체들은 당시 “작은 목선에 몸을 의지해 병사들을 찾았다”며 김정은을 치켜세운 뒤 관련 영상을 공개했죠. 한·미 정보 당국의 추적 결과 김정은 일행은 남포시 서해함대사령부에서 전함을 타고 출발했습니다. 섬 가까이에서 목선으로 옮겨타 깜짝쇼를 벌인 건데요. 핵심 정보 관계자는 “김정은 동선은 대북감시망에 실시간으로 포착되고 있다”며 “그 때 우리 군 당국은 정찰위성이 파악한 김정은의 모습을 공개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고 귀띔합니다. ‘남조선 벌초’ 등 호전적 언동을 한 김정은의 기세를 꺾으려는 심리전 차원이었다는 겁니다. 미군 측 반대로 무산됐지만 북한 최고지도자의 동정에 한·미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음을 잘 보여준 사례입니다.
‘최고존엄 지키기’ 비상 걸린 평양
한·미 ‘참수작전’ 가능성에 공포
김정일묘 참배 등 관례 행사 취소
폭발물·독극물 탐지장비도 수입
일부선 “경호망 안이 더 위험할 수도”
요즘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맞선 국제사회의 대북압박이 거칠어지자 평양은 잔뜩 긴장하는 분위기입니다.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차관보는 “김정은이 핵 공격을 하면 바로 죽는다”는 초강경 발언까지 쏟아냈는데요. 북한은 “워싱턴을 핵으로 타격하겠다”거나 “괌 미군기지를 날려버리겠다”는 위협으로 맞서고 있죠.
그러면서도 이른바 ‘최고존엄’으로 부르는 김정은 신변경호에 걱정이 많은듯 합니다. 노동당 창건 71주년인 지난 10일 김일성·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평양 ‘금수산태양궁전’ 참배행사를 생략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분석됩니다. 주요 기념일 새벽 0시에 이 장소에 들린다는게 관례화된만큼 위험하다고 본겁니다. 이 즈음 한반도에는 B1-B 랜서 전략폭격기와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 등 북한이 두려워하는 미 전략자산이 총출동하는 긴장국면이 조성됐죠.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은 실제 한·미가 김정은 제거작전에 나설 수 있다는 공포를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김정은이 최근 신변불안으로 외부행사 일정과 장소를 갑자기 바꾸는 일이 잦아졌다는 국가정보원의 지난주 국회 정보위 보고도 마찬가지입니다. 폭발물이나 독극물 탐지장비를 해외에서 도입하는 등 경호를 대폭 강화하고 있는 동향도 파악됐다는건데요. 김정은 제거를 의미하는 ‘참수 작전’의 구체적 내용이나 미 전략폭격기 파괴력, 특수부대 규모 파악에도 나섰다고 합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1월 메르세데스 벤츠의 S600 풀만가드 리무진을 타고 인민무력성에 방문하는 모습. [사진 노동신문]
김정은의 근접 경호는 우리의 대통령 경호실에 해당하는 호위사령부가 담당합니다. 북한군 963부대로 불리는 호위사는 중무장한 병력을 포함해 12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김정은 집무실과 숙소는 물론 지방의 특각(전용 별장)을 철통같이 지킨다는데요. 여동생 김여정과 이복형 김정철을 비롯한 가족과 친인척 신변도 이들이 책임집니다.
군부대 방문 때는 우리의 기무사령부 격인 군 보위사령부가 무기 회수 등 경호를 맡는데요. 호위사와 주도권 갈등을 벌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보위성(옛 보위부)과 경찰에 해당하는 인민보안성까지 포함해 3선(線)체제의 그물망 경호가 펼쳐집니다. 전용 벤츠 리무진과 똑같은 모양의 차량 몇대를 나란히 이동시키거나, 노동신문에 김정은 방문 날짜를 공개않는 것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려는 방책입니다. 이 때문에 김정은에게 위해를 가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탈북인사들은 입을 모읍니다.
물론 김일성·김정일 시기 위해시도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1990년대 초반에 발각된 소련 푸룬제아카데미 출신 군 간부들의 쿠테타 시도나 95년 함경북도 주둔 6군단의 반란 시도는 대표적 사례인데요. 최근 김정은 체제에도 불안요소가 적잖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국정원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엘리트층의 충성심 약화, 주민불만 고조 등으로 인해 체제 불안정성이 높아졌다”는 입장이죠. 대북정보 관계자는 “김정은의 가장 큰 적(敵)은 철통같은 경호망 안쪽에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민생을 외면한 채 핵·마시일 도발에 집착하며 공포정치를 일삼는 최고지도자에 대한 북한 핵심 엘리트 층의 반감이나 동요가 심상치 않다는 겁니다.
01.31 “김정은, 통전부 30년간 못한 일 최순실이 해냈다 생각할 것”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다루는 북한 관영매체의 입이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어제 아침 평양에서 발간된 노동신문은 ‘남조선’ 코너 한 개면 전체를 관련 선동 글로 채웠는데요. 지난 3일 서울에서 열린 6차 촛불 집회를 머릿기사에 올린 지면 곳곳에는 ‘박근혜 패당’ ‘박정희 족속’ ‘역적 무리’ 등의 표현은 물론 욕지거리 수준의 막말까지 등장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저열한 단어가 버젓이 노동당 기관지에 실릴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입에담기 힘든 극렬한 비방을 그대로 쏟아내는 조선중앙TV 아나운서의 멘트는 귀를 의심케합니다. 대남 선전용 웹사이트인 ‘메아리’는 최순실 사태 초점 페이지를 만들어 ‘박근혜의 교활한 술책은 통하지 않는다’는 등의 글을 무더기로 올려놓기도했죠.
/11월29일자
북한의 이런 움직임은 지난 10월29일 1차 촛불집회를 계기로 본격화했는데요. 관영매체를 총동원한 선동보도는 첫째로 박근혜 정부의 퇴진과 남한 정국의 혼란조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둘째로는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 내 혼란과 부패상을 부각시켜 김정은에 대한 충성과 이른바 ‘체제 우월성’을 갖도록 유도하는 문구들이 눈에 띕니다. 셋째는 박근혜 정부가 그동안 추진해온 대북정책의 부당성을 주장해 노선변화를 이끌려는 의도가 드러납니다. 넷째는 북한으로서는 껄끄러운 존재인 남한 내 보수세력을 이참에 완전히 몰락·퇴출시켜버리겠다는 뜻도 감지됩니다.
흥미로운 건 북한 스스로 ‘북풍(北風)’ 운운하고 나선다는 겁니다. 북한은 2일 민족화해협의회 명의의 담화에서 “박근혜 패거리들은 날로 고조되는 전민(全民)항쟁이 ‘북의 조종’에 의해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여론화해보려고 획책하고 있다”고 주장했죠. 최근 활발해진 대남 난수(亂數)방송이나 북핵 위협론까지 거론하며 셀프 북풍 차단에 나선 겁니다. 최순실 사태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겠다는 북한 당국의 뜻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대목인듯 합니다.
‘촛불시위 대서특필’ 북한매체 의도
정국 혼란, 보수세력 축출 등 주목
김정은, 수시 보고 받고 실시간 체크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작금의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집무실과 관저의 위성TV나 인터넷망으로 실시간 체크하는건 물론이고, 당 통일전선부의 ‘남조선 정세보고’를 통해 수시로 추이를 살펴볼 것이란 게 정보당국의 판단입니다. 대남부문에 관여했던 탈북인사는 “김정은이 ‘통전부가 30년 넘도록 해내지 못한 일을 최순실이 해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진단합니다. 집요한 대남 공작에도 성과가 없던 남한 정국 혼란이나 보수세력 축출 국면을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가 스스로 만들어줬다는 건데요. 며칠 전 포병부대 훈련을 참관한 김정은이 “남조선 것들을 쓸어버리라”고 호언한 것도 결국 우리가 북한에게 얕잡힌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씁쓸해집니다.
/11월 30일자
하지만 북한도 마냥 촛불을 즐길 수 만은 없는 상황인 듯 합니다. 집회와 시위 장면을 전하는 북한 매체의 영상에서는 평양 집권층의 심각한 고민이 엿보이는데요. 남한 TV 화면이나 신문 사진을 무단전재하면서도 유독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찍은 사진만을 선호하는 게 눈길을 끕니다. 화질도 떨어트려 다소 조잡하게 만들죠. 노동당 간부 출신의 탈북인사는 “북한 주민들에게 서울의 고층빌딩 숲이나 차량정체를 또렷하게 보여주는 건 치명적인 역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합니다. 군중의 모습과 플래카드만 보일 정도만 남기고 주변을 모두 잘라내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라고 하는군요.
자칫 주민들 사이에 “남조선에는 최고지도자도 몰아낼 자유가 있구나”하는 생각이 꿈틀거린다면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죠. 2010년 말 튀니지에서 시작해 이집트와 알제리 등을 휩쓴 민주화 물결인 ‘재스민 혁명 ’과 달리 서울발 촛불혁명은 코앞에 닥친 일입니다.
02.14 숙청됐다던 북 김원홍 영상 계속 나와 … 역정보에 당했나
지난 주말 한·미 군 당국의 대북 감시망은 북한 방현비행장(평북 구성시)에 쏠렸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인 ‘북극성 2호’가 발사된 때문이다. 미국 측이 운용하는 키홀 첩보위성(KH-12) 등의 추적을 따돌리려 북한 당국은 핵·미사일 시설을 은폐하거나 기만전술을 펼쳐왔다. 이동식 발사대(TEL)에 실린 미사일을 고속도로 터널에 숨겨놓았다가 갑자기 쏘아올려 국제사회를 놀라게했다. 함북 풍계리 핵 실험장의 병력과 차량을 사라지게 만들어 핵 실험이 임박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핵 실험이나 미사일 시험발사는 그나마 낌새라도 알아차릴 수 있어 사정이 나은 편이라는 게 대북정보 관계자의 귀띔이다. 가장 까다로운 건 북한 권력 핵심 인물 동향을 체크하는 일이라고 한다. 폐쇄적인데다 최고지도자 한 사람에 좌우되는 체제 특성상 김정은의 동정은 초미의 관심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망 사실을 북한 발표 전까지 까맣게 몰랐던 트라우마도 정보 당국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요소다.
북 권력핵심 동향 파악 최고 난제
주로 내부 암약 인사 정보에 의존
설익은 첩보 흘린 뒤 대응도 살펴
김정은, 정보 유출 막는 활동 강화
핵 실험장 접근한 협조자 최근 처형
이달초 불거진 김원홍 국가안전보위상의 해임설도 마찬가지다. 통일부는 관계당국 첩보를 바탕으로 보위성 부상(副相·차관급)과 직속 부하들이 처형되고 김원홍이 해임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보 당국도 확신하지는 못하고 있다. 북한이 김원홍의 해임·강등이나 새로운 보위상의 임명사실을 밝히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다. 조선중앙TV에서 김정은을 수행한 김원홍의 과거 자료영상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것도 찜찜한 대목이다. 부하들이 처형될 정도의 중대 과오라면 김정은 영상에서 삭제되는 게 원칙이란 측면에서다.
정보당국은 지난해 2월 이영길 북한군 총참모장이 처형됐다고 발표했다 곤욕을 치렀다. 브리핑까지했는데 석달 뒤 이영길이 ‘살아서’ 나타난 것이다. 부총참모장으로 강등됐지만 그는 여전히 김정은을 수행하며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언론의 질타가 쏟아지자 당국은 말을 잊었다. 한 당국자는 “첩보 검증 과정에 문제가 생겼거나 북측이 흘린 역정보에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대성공을 거둔 경우도 있다. 국가정보원은 2013년 말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몰락을 초기단계부터 정확히 파악해 대처했다.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이 연금되고 부하들이 처형된 정황을 국회 정보위에 신속히 보고했다. 그해 12월 북한 관영매체는 장성택 처형을 공개함으로써 국정원의 대북정보가 적중했음을 확인시켜줬다.
대북정보의 세계에서는 엇갈리는 이런저런 설(說)이 1차적으로 걸러져 첩보가 된다. 현장을 뛰는 정보요원들은 이를 보고서로 만들어 서울의 데스크에게 전한다. 검증을 거친 첩보는 재확인 과정을 거쳐 ‘시인(是認)된 정보’가 된다. 사실로 확인돼 믿을만하고 정책의 참고자료로 쓸만한 가치가 있다는 의미의 정보용어다. 때로는 설익은 첩보 수준의 스토리를 언론에 흘린 뒤 북한의 대응을 살피며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수법도 구사한다.
가장 믿을만하고 정확한 정보는 북한 권력 내부에 암약하는 협조자가 전해오는 정보다. 하지만 그 존재는 극비에 부쳐진다. 2008년 여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당시 청와대 고위인사는 “양치질은 혼자 할 수 있을 정도”라는 언급을 했다 황급히 거둬들였다. 한 정보 기관장은 언론간담회에서 김정일이 파리에 체류 중이던 부인 고용희(김정은의 생모)와 나눈 통화내용을 발설했다 대통령의 진노를 샀다. 오랜기간 구축해온 대북정보망이 한순간에 노출될 수 있는 민감한 발언이란 측면에서다.
핵·미사일과 관련한 북한의 방어막을 뚫으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북한 태천지역의 200메가와트(MWe)급 원자로 지역의 토양 시료를 채취해오는 데 성공한 정보요원은 비밀리에 훈장을 받았다. 풍계리 핵 실험장에 접근을 시도하던 우리 정보 당국의 협조자가 북한 경비병에 잡혀 처형당한 일도 있다. 대북정보 관계자는 “김정은 집권 후 정보유출을 막는 북한의 ‘반탐(反探)’활동이 강화된데다 외부시선을 의식한 언론플레이까지 등장하면서 대북정보 요원들의 어려움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02.28 “직계 분께서 벌인 일” 북 고위인사가 말한 백두혈통 누구?
평양 권력 핵심부의 움직임을 추적 중인 한·미 대북 감시망에 최근 눈길을 끌만한 첩보 하나가 입수됐다. 새해 벽두부터 불어닥친 숙청 바람을 두고 북한 고위 인사가 “직계(直系) 분께서 벌인 일”이라고 발설했다는 내용이다.
최고실세 김원홍 숙청 이끈 배후
김정남 암살도 기획·실행 가능성
정보당국 “김정철 지칭” 잠정 결론
국정원 “김정은, 허위 보고에 분노
김원홍 해임하고 부하 5명 총살”
북한에서는 지난달 중순 김원홍(사진) 국가보위상이 대장(별 넷)에서 소장(북한군은 별 하나)으로 강등당한 뒤 전격 해임되는 등 사태가 벌어졌다. 권력 최고실세 중 하나인 국가보위성(옛 국가안전보위부) 책임자를 하루아침에 몰락시킬 정도의 힘을 거머쥔 인물을 ‘직계 분’이라고 지목한 것이다.
북한에서 직계란 ‘핏줄이 한 줄기로 곧게 이어내린 갈래로, 할아버지·아버지·나·자식·손자로 내려가는 갈래’(2007년판 조선말대사전)를 의미한다. 정보 당국은 추가 첩보를 통해 ‘직계 분’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차남 김정철(36)을 지칭한다고 잠정 결론내렸다. 김정철은 김정은(33) 노동당 위원장의 친형으로, 호르몬계 질환 등 건강상 문제로 후계자리를 동생에게 내준 것으로 알려져왔다.
대북 소식통은 27일 “김정철이 보위성 부상(副相·차관급)으로 김정은 체제 공안통치를 사실상 주도해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집권 첫해인 2012년 4월 보위부장에 앉은 김원홍은 이듬해 말 장성택(김정은 고모부) 처형 등을 전격적으로 처리해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김원홍도 결국 ‘얼굴마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국회 정보위원장인 이철우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날 정보위 직후 “(보위성이) 당 간부를 조사한 뒤 허위보고를 하다 들통났다고 국정원이 보고했다”며 “김정은이 격노해 김원홍을 연금한 채 강등시키고 (보위성) 부상 5명을 고사총으로 총살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에 따르면 김정은은 “너희(보위성)들은 장군님(김정일) 동상을 섬길 정도가 안 되는 놈들이니 동상도 다른 곳으로 치우라”는 지시도 했다. 김정일은 생전에 “보위부는 나의 조직”이라며 공석이 된 보위부장 자리를 채우지 않았다. 김정일이 보위부장을 겸한다는 관측도 있었다.
북한 내 ‘직계’ 관련 언급이 불거진 상황에서 지난 13일 김정남(46) 암살 사건이 터지자 대북 정보 당국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를 기획하고 실행토록한 인물이 김정철일 것이란 측면에서다.
대북정보 관계자는 “김정남 살해를 결심한 김정철이 최고지도자인 동생 김정은의 최종 결심을 받았고, 말레이시아 현지 공작원과 보위성 직파 요원 등이 동원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2012년 내려진 김정남 살해 ‘스탠딩 오더’(standing order·취소할 때까지 계속 유효한 명령)가 이번에 결행된 건 태영호 영국주재 전 북한 공사의 탈북·망명 사태가 작용한 것이라고 한다. 태 전 공사의 김정은 비판이 큰 파장을 일으키자 북한 당국이 유일지배 구축에 걸림돌이 될 ‘블랙리스트’를 만들었고, 김정남은 그 1순위였다는 것이다.
이런 관측은 우리 정보 기관의 기존 판단과 차이가 난다.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은 지난해 10월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김정철이 술에 취하면 헛것이 보이고 호텔에서 술병을 깨고 행패를 부리는 등 정신불안 증세를 보이다”고 밝혔다. 또 2015년에는 동생인 김정은에게 “제구실도 못하는 나를 한 품에 안아 보살펴 주는 크나큰 사랑에 보답하겠다”는 편지를 보냈다고 말했다. 권력에서 철저히 소외된 채 감시받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출신 뮤지션인 에릭 클랩턴의 공연을 보겠다며 2015년 5월 런던을 찾은 것도 ‘권력에 욕심없다’는 시그널을 던지려는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이런 판단과 궤를 달리하는 첩보도 적지 않다. 고위 탈북인사는 “김정은과 정철, 여동생인 김여정(28)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등 3남매가 강원도 원산의 특각(별장)에서 휴양을 겸한 모임을 수시로 갖고 체제운용을 위한 주요 결정사항을 협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5월 스톡홀롬 북·일 합의 등 대일(對日)협상도 김정철이 관장하고 있으며, 서대하 보위부 부부장이 납치 일본인 관련 특별조사위원장을 맡은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란 얘기다.
김정남 사망으로 김정은 입장에서는 가장 껄끄럽던 잠재적 도전세력이 사라졌다. 김정일과 고영희 사이에 태어난 정철·정은·여정 3남매 만이 남았다.
03.14 촛불 대대적 보도하던 노동신문, 탄핵 기사는 달랑 세 문장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이 이뤄진 지난 10일 이후 북한 노동신문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다. 탄핵 사태와 관련한 사진이 지면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촛불시위 인파와 탄핵 요구 플래카드 영상을 무더기로 싣고 주민들에게 ‘남조선 정국 혼란’을 전달하려 애쓰던 이전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탄핵결정 이튿날 노동신문은 남한 정세를 다루는 제5면(전체 6면 발행) 중간에 ‘남조선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탄핵 최종선고’라는 기사를 자그맣게 싣는데 그쳤다. 딱 세 문장에 불과했다. 관련 기사의 양도 확 줄었다.
이런 모습은 탄핵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것과 큰 차이가 난다. 노동신문은 헌재의 탄핵 결정 하루 전인 9일자에 “보수진영에서도 탄핵 가능성은 100%라는 비명이 터져나온다”고 전하는 등 전례없이 상세하게 분위기를 전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청와대 악녀’, ‘역도’ 등의 거친 표현을 써가며 비방을 퍼붓기도 했다.
거친 표현으로 비방 퍼붓다 돌변
“남한에선 지도자도 잘못하면 축출”
주민들 동요할까 속도조절 나선 듯
탄핵에 공을 들여온 북한은 정작 가결 이후엔 속도조절에 나선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태도를 두고 “엄청난 후폭풍을 우려한 때문”(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이란 해석이 나온다. 노동당과 군부의 엘리트 세력들은 물론 주민들까지 “자유민주 국가인 남조선에서는 대통령도 잘못하면 인민들에 의해 탄핵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되는 상황을 북한 당국이 우려한 때문이란 얘기다.
이런 위기감은 북한 관영매체들이 석달 넘게 탄핵 사태 보도를 이어오면서 점차 커졌다고 볼 수 있다. 백만명 규모의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최고지도자와 집권당의 부패와 실정(失政)을 성토하는 모습이 북한 주민들에게 미칠 부작용을 부담스러워 했을 것이란 점에서다. 정부 당국자는 13일 “2010년 튀니지에서 촉발돼 아랍 국가 등을 휩쓴 재스민 혁명을 가까스로 차단한 북한 정권으로서는 위기감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으로서는 최근 평양 안팎의 상황마저 녹록치 않다고 느낄 수 있다. 지난해 태영호 주영 북한 공사의 탈북사태로 해외 엘리트층의 동요가 만만치 않은 상태에서 최근엔 내부도 뒤숭숭한 형국이다. 1월 중순 노동당 조직지도부 주도로 김원홍 국가보위상을 강등·연금하는 조치를 취하는 등 권력 핵심이 술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달 13일 이복형 김정남이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암살당하는 사태의 배후로 김정은이 지목되면서 국제사회로부터 지탄받고 있다. 이 소식을 접한 눈치빠른 간부층과 주민들 사이에서는 “권력을 위해 피붙이를 죽인 잔혹한 지도자”란 인식이 퍼져가고 있다는 전언이다. 북한 공안기관이 북·중 변경지역을 중심으로 외국과 휴대전화 메시지로 사진이나 글을 주고받는 걸 단속하는 등 통제의 고삐를 죄고 있다는 소식도 들여온다.
북한은 2004년 5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 기각사태 때는 “탄핵 저지투쟁에서 승리했다”며 반색했다. 그리고는 “이런 기세와 기백으로 미국의 군사적 강점과 식민지배를 끝장내기 위한 반미·결사항전에 나서야 한다”며 대남 선동을 펼쳤다. 이번의 경우 남한 내 보수층을 정조준하고 나섰다. 13일자 노동신문은 ‘끝까지 청산해야 할 반역무리’란 기사에서 “괴뢰 보수정권과 역도의 졸개들은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태를 남한 내 반(反)보수 분위기 조성에 적극 활용할 것임을 드러낸 것이다. 거친 표현들 속에서는 지난 9년간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깐깐한 대북정책과 대북압박에 시달린 것에 대한 앙갚음이 배어있는 듯하다.
03.28 “10년을 1년으로” 만리마 운동 모델 된 평양 뉴타운 건설
천리마는 본래 하루에 천리(千里·약 400㎞)를 내달릴 수 있을 정도의 준마를 일컫습니다. 이 말처럼 쉼없이 산업생산이나 건설에 매달려 목표를 초과 달성하자는 게 북한의 취지일 텐데요. 천리마운동은 북한 사회와 경제현장을 반 세기 넘게 지배했습니다. 대중잡지 『천리마』가 등장하고, 천리마구역·천리마작업반·천리마속도 같은 말이 넘쳐났습니다. 순안비행장에 내려 평양 시내로 들어가다보면 제일먼저 마주치는 게 날개가 달린 천리마 동상입니다.
그런데 천리마로는 뭔가 부족했나 봅니다. 김정은이 지난해 5월 열린 7차 당 대회에서 “10년을 1년으로 주름잡아 달리는 만리마 시대를 열었다”고 주장하면서 천리마는 힘을 잃어버립니다. 북한은 “천리마가 남을 따라 앞서기 위한 비약의 준마였다면, 만리마는 세계를 디디고 솟구쳐오르기 위한 과학기술 용마”(노동신문 3월 21일자)라고 주장합니다. 김정은 시기 통치 이데올로기의 하나로 만리마속도가 올라선 느낌입니다.
33살 젊은 통치자 김정은은 유독 속도전에 집착하는 모습입니다. 집권 초기 들고나온 ‘마식령속도’는 그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데요. 강원도 원산 인근 마식령(馬息嶺) 지역에 12개의 슬로프를 가진 대규모 스키장을 불과 몇 달 만에 속성 건설한 데서 따온겁니다. 2013년 봄 착공해 연말까지 완공하라고 김정은이 지시하자 해당지역 5군단 병력이 총동원돼 밤샘작업까지 벌였다는데요. 결국 그해 12월 31일 김정은이 참석한 완공식을 가까스로 치렀죠. 관광객 유치 실패로 지금은 흉물로 돼버렸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김정은의 과속 드라이브는 계속됐습니다. 평양 용남산구역에 짓고 있는 뉴타운 여명거리가 대표적입니다. 연 건축 면적이 172만㎡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에 초고층 건물까지 들어서는 이 공사는 당초 지난해 연말 끝낼 목표였죠. 하지만 완공이 지연되자 김정은이 올들어 두 차례나 현장에 나왔다고 합니다. 그가 김일성 출생 105주년인 4월 15일까지 완공할 것을 지시하면서 공사 관계자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명거리 건설은 미제와의 치열한 대결전”
북한은 여명거리 70층 주상복합 건물의 외벽타일 공사를 불과 13일 만에 끝내는 등 “기적적인 속도를 내고 있다”고 자랑합니다. 그런데 우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날림공사 우려가 나오고 있죠. 마치 1950~60년대 북한에서 벌어졌던 대규모 부실공사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겁니다. 당시 북한은 ‘평양속도’를 내세워 “14분 만에 집 한 채를 지었다”고 선전했는데요. 7000세대분 공사 자재로 2만 가구를 지었다는 발표를 내놓기도 했죠.
김정은 체제 들어서도 이미 부실공사로 참사가 빚어진 적이 있습니다. 2014년 5월 평양 평천구역에서 23층 신축 아파트 붕괴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난겁니다. 당시 위성사진 등으로 상황이 공개되고 입소문이 퍼지자 북한도 할 수 없이 관영매체를 통해 사고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죠.
최근에는 만리마속도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맞서기 위한 움직임으로 선전하며 체제결속에 활용하려는 의도까지 드러내는데요. 김정은이 직접 “여명거리 건설은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과의 치열한 대결전”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죠. 노동신문이 “수소탄을 백 발, 천 발 쏜 것보다 더 위력한 대승리가 이룩된 곳”이라며 여명거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차질없이 돌아간다는 걸 과시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북한의 속사정은 녹록치 않아 보입니다.
무엇보다 김정은 집권 5년여 동안 이어진 속도전식 노력경쟁에 주민들은 무척 고단해 보입니다. 지난해의 경우 연초부터 70일전투를 벌였고, 5월 노동당 대회를 마친 뒤엔 곧바로 200일전투에 나서야 했죠. 일년 열두 달 중 9개월을 ‘마른 수건도 짜는’ 식으로 시달린 겁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게 무한속도로 달릴 것을 채근하고 있습니다. 관영매체를 통해 “현실은 전체인민이 천리마 대진군 때보다, 지난해의 70일전투와 200일전투 때보다 더 높은 목표를 세우고 총 결사전을 벌여나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노동신문 3월 13일자)고 압박하고 있는 겁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2년 4월 첫 공개연설에서 “다시는 우리 인민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핵·미사일 도발이 자초한 대북제재 여파로 민생은 훨씬 피폐해졌죠. 주민들 사이에는 “우릴 먹여살리는 건 노동당이 아니라 장마당”이란 볼멘소리가 터져나온다고 합니다.
03.31 청년 빨치산이 마침내 눈을 뜨고 있다
북한 차세대 엘리트마저 김정은식 폭정에 등 돌려
“침묵하는 모습 참담” 자성이 체제붕괴 싹 될 수도
빨치산’은 본래 적군의 배후에서 비정규전을 펼치는 게릴라 집단을 말한다. 프랑스어 ‘파르티(parti)’를 어원으로 하는 ‘파르티잔(partisan)’을 빨치산이란 우리말로 표기하면서 굳어졌다. 평양에서 발간된 조선말대사전은 빨치산에 대해 “유격대 또는 유격·유격전의 뜻”이라고 설명한다. 김일성의 이른바 ‘항일 빨치산’ 활동은 북한 정권 수립의 기본 정신으로 내세워졌고, 그 투쟁 근거지로 주장되는 백두산은 혁명성지(聖地)로 선전된다. 김일성 일가를 일컫는 백두혈통이 그렇고, 북한 체제 핵심세력 또한 빨치산 가문이 차지한다. 조작과 왜곡이 더해졌지만 국가체제를 갖추면서 그럴듯한 틀을 갖췄다.
나흘 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평양 조선혁명박물관을 방문했다. 연건평 8만㎡가 넘는 규모로 증축해 신장개업한 이곳은 빨치산 활동을 시원으로 노동당 통치 70여 년간의 족적이 집대성돼 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TV의 초점은 박물관 시설이나 전시물을 비켜갔다. 대신 김정은이 휠체어를 탄 한 고령의 여성을 껴안고 손을 잡은 채 만면의 웃음을 띠는 장면에 집중했다. 조선혁명박물관장을 맡고 있는 올해 98세의 황순희였다.
황순희는 빨치산 활동 당시 김일성 유격대의 간호사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해방 이후 북한에 귀환해 민주여성동맹 간부를 맡는 등 김일성 정권의 핵심 인물 중 하나로 자리했다. 그 상징성 때문에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권력 내 지위를 점유했다. 게다가 그의 남편 유경수는 6·25전쟁 당시 서울에 가장 먼저 진주해 중앙청에 인공기(人共旗)를 게양했던 제105 탱크부대의 여단장이다. 김정은이 1월 말 기갑부대의 동계 도하훈련을 참관한 뒤 “남조선 괴뢰들을 불이 번쩍 나게 와닥닥 쓸어버리도록 하라”고 언급했던 최정예 부대다.
최고지도자가 황순희를 끌어안는 모습은 북한 주민들에게 낯설지 않다. 김일성은 물론 김정일 국방위원장 때 여러 차례 써먹은 방식이다. 김정은도 집권 첫해인 2012년 4월과 7월에 같은 장면을 연출했다. 북한 고위층 출신 탈북 인사는 “황순희는 물이 빠질 대로 빠진 인물”이라고 일갈했다. 김일성 시기부터 우려먹을 대로 써먹는 바람에 더 이상 약발이 없는데도 노동당 선전선동가들이 ‘마른 수건 짜듯’ 고집한다는 얘기다.
김정은의 다급한 속사정을 짚어보면 이해가는 구석도 있다. 6년 전 김정일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절대권력을 넘겨받은 27세 청년지도자는 디딜 땅이 없었다. 3~4년간 속도전식 속성 후계수업을 받았지만 서툴렀다. 1974년 2월 노동당 5기8차 전원회의에서 후계자로 낙점된 후 20년간 공동정권에 가까운 제왕학 실습을 거친 아버지와 차이가 났다.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의 헤어스타일과 패션은 물론 말투와 미세 동작까지 차용해 권좌에 앉았다. 그렇지만 마음은 허할 수밖에 없었다. 수령 김일성의 적통(嫡統)임을 증빙할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조차 없었다. 의식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황순희를 3월의 광장으로 끌어내 인증샷을 남긴 이유다.
북한에서 빨치산은 영원한 ‘갑(甲)’이자 기득권층이다. 김씨 일가의 절대권력 치하에서 안위를 누릴 수 있는 생존방법을 가문 내력으로 터득·전수해왔다. 정치행사에서 적당히 박수 쳐주고 사진 찍으며 충성맹세하면 편한 세상이란 걸 잘 알고 처신했다.
하지만 은밀하고 미묘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게 고위 탈북인사의 귀띔이다. 젊은 빨치산 후예들과 파워엘리트 그룹 내부에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 권력 중추세력인 군부 원로와 고위 장성을 부하와 어린 자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가벗겨 공개 처형하는 김정은 통치의 반인륜성에 등을 돌린다고 한다. 어느 북한 내부 문건에는 “가장 참담한 것은 20대 젊은이의 손에 어느날 훌쩍 맡겨진 이 나라, 그의 정신적 미숙함과 무지함이 불러오는 이 참상 앞에서도 겁에 질려 침묵에 잠긴 우리들의 모습”이란 차세대 엘리트들의 ‘집단지성’이 등장한다. 3대 세습통치와 김정은식 공포정치에 대한 울분이 저항의 목소리로 움터나고 있다.
04.11 평양 주민 60만 명 강제 이주 준비 … 반체제분자 솎아내나
북한 당국이 평양에 거주하는 주민 가운데 60여만 명을 타 지역으로 방출하는 대규모 이주조치를 준비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대북 소식통은 10일 “평양 인구 260여만 명 가운데 60여만 명을 시(市) 경계 바깥이나 평안도 등 타 지역으로 옮기도록 하는 사실상의 강제이주 계획”이라며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계획대로 이주가 이뤄질 경우 사상 최대 규모의 평양시 인구변동이 될 것으로 보인다.
260만 중 23% … 명분은 인구조절
국가보위성 주도로 대상 선정작업
탈북자·정치범 친인척 주로 포함
노동당원 등 핵심계층만 남게 될 듯
소식통은 “이번 조치는 ‘평양시 인구조절’이란 명목으로 시행되지만 실제로는 출신성분이나 생활수준 등을 고려한 노골적 차별정책”이라며 “노동당원을 비롯한 핵심계층을 주축으로 평양시 거주민을 순혈화(純血化)하겠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반(反)체제 분자나 동요계층의 평양시내 거주를 불가능하게해 체제결속을 꾀하고, 위해 요소를 차단하려는 조치란 해석도 나온다.
북한은 공안기구인 국가보위성과 인민보안성 주도로 주민 성분조사 등 이주 대상 가구 선정작업을 벌여온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는 탈북자나 행방불명자 가족 외에 ▶정치범과 수용소 수감자의 친인척 ▶마약 및 위조지폐 사범 ▶남한 영상물 제조·유포·판매 등 체제안위와 관련된 범죄자 등이 포함된 것으로 대북 소식통은 전했다. 다만 장마당에서 불법행위를 하다 적발된 경우 등 경제사범의 경우는 중범죄가 아닌 경우 관용을 베푼다는 방침이라고 한다.
지난 2012년 김정은 집권 이후에도 평양에서 발생한 일부 징벌성 추방조치는 있었다. 주로 남한 영상물을 일가족이나 인민반 구성원이 돌려보거나 김정은 체제에 불만을 토로한 사례가 대상이었다.
정부 당국자는 “이른바 ‘그루빠’(그룹의 북한식 표현)로 불리는 특별단속반에 의해 이뤄지는 집중검열에 적발돼 본보기식 처벌로 지방으로 쫓겨나는 경우가 있었다”며 “하지만 수 십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강제이주가 추진된다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라 사태를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일성·김정일 집권 시기에도 몇 차례 평양 주민을 대상으로 한 이주나 추방조치가 이뤄졌다. 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는 방식을 이용하거나 특정 세력 을 축출하는 차원이었다. 외국인 관광객의 눈에 거슬릴 수 있다는 이유로 평양 거주 장애인을 추방해 국제인권단체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고위층 출신 탈북인사는 “김정일 집권 시기인 2006년에는 ‘1호 기차’(김정일 전용열차)가 통과하는 철로 옆 주택들을 철거하면서 상당수 주민을 외곽으로 이주시킨 적이 있다”고 전했다. 열차 운행시간이 노출되는 등 경호문제가 생겼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였다.
평양 거주민이 외곽이나 지방으로 추방되는 건 북한에서 매우 심각한 처벌로 인식된다. 김정은 집권과 함께 측근 실세로 부상한 마원춘 국무위원회 설계국장도 2014년 말 가족과 함께 최북단인 양강도 협동농장으로 추방됐다 1년 만에 겨우 복귀했다. 평양 순안공항 리모델링 공사 현장을 둘러본 김정은 위원장이 격노한데 따른 것이다. 특권층은 물론 평양 거주 중산층에게도 지방 이주나 추방은 자신의 지위나 집안의 몰락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대규모 추방조치를 두고 “김정은의 보여주기식 평양 건설 드라이브의 결정판”(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이란 진단이 나온다. 김정은은 집권 초기부터 유난히 평양시 건설에 집착하며 노동당과 군부의 건설 담당조직을 채근해왔다. 권력을 거머쥔 첫 해인 2012년 뉴타운 성격인 창전거리 건설을 시작으로 이듬해에는 핵·미사일 개발 유공자를 위한 과학타운인 은하과학자거리 등을 선보였다. 오는 15일에는 김일성 출생 105주를 맞아 70층 주상복합 건물 등이 들어선 평양 여명거리를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04.17 김일성 출생일을 '태양절'이라 부르지 못하는 이유
지난 주말 평양은 김일성 출생 105주를 기념한 군사퍼레이드 열기로 떠들썩했습니다. 김정은이 참석한 가운데 15일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선 신형 장거리 미사일이 선보였고, 관영선전 매체들은 도발과 긴장의 수위를 높이느라 목청을 돋구었죠. 내친김에 퍼레이드 이튿날 실제 미사일 위력까지 선보이겠다며 기세좋게 한 발 쏘아올렸지만 실패하는 바람에 스타일을 구기기도 했는데요.
▲15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김일성 출생 105주년 기념 군사퍼레이드 [노동신문]
북한은 김일성 출생일인 4월15일을 소위 '태양절'이라 부르며 경축행사를 벌이고 있고, 김정일 생일인 2월16일은 '광명성절'이라 칭하죠.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로 이어지는 3대세습을 통해 수령독재를 이어가는 체제답게 김일성을 태양, 김정일을 '별(광명성)'에 비유해 우상화 놀음을 벌이고 있는 겁니다. 이들의 출생일을 이른바 '민족최대의 명절'로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죠.
북한의 우상화 표현인 '태양절' 표현을 부지불식 간에 우리 언론이나 정부 당국자들까지 따라하는 문제가 발생
그런데 북한의 교묘한 우상화 수법은 북한 뉴스를 다루는 우리 언론매체나 기자들에게도 참 부담스런 측면이 있습니다. 4.15를 '태양절'이라 부르고,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된 시설을 '금수산태양궁전'(옛 이름은 금수산의사당 또는 금수산기념궁전)이라 이름을 붙여놓았으니 부지불식간에 이를 따라부르거나 보도에 인용하는 방식이 되버린 겁니다. 이번 김일성 출생일 보도에서도 적지않은 언론과 기자들이 이런 모습을 보였는데요. 김정은에게 꼬박꼬박 '노동당 위원장' 직함을 부쳐 보도하는 걸 두고 못마땅해하는 시각도 많습니다.
▲북한군 명예위병대를 사열하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노동신문]
정부 당국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의식해 언론에 대해 "태양절이란 명칭 사용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국정원은 "언론이 '금수산태양궁전'이란 이름 대신 '금수산 시신 보관소'란 표현을 써달라는 권고를 하기도 했죠. 다소 과격한 표현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지만, 그만큼 정부 당국으로선 고민이 깊었던가 봅니다.
사실 우리 사회의 북한이슈 다루기에서 이런 유사한 문제가 나타납니다. 노동신문 보다는 북한식으로 '로동신문'이라고, 노동당 보다는 '로동당'이라 쓰는 걸 학계나 전문가들이 더 선호하는 듯한 분위기가 있는 건 학술적인 문헌인용이란 측면에서 일견 이해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상당수 경우 북한에 대한 지적 수준을 드러내려는 과시욕도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노동신문을 '로동신문'이라 하는 건 지적 수준을 부풀려보려는 과시욕도 작용하고있다는 지적이다.
기차역 대폭발 사고가 있던 북한의 용천 지역을 '룡천'이라 부르고,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를 '리설주'라고 부르는 게 이젠 우리 언론에도 보편적이 되가는 분위기인데요.
뭔가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도 언론과 학계에서 나옵니다. 미디어 콘텐트나 학술 논문 자료 등에서 검색에도 적지않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입니다.
▲김일성 출생 105 군사퍼레이드 소식을 다룬 4월16일자 노동신문 1면. [노동신문]
무엇보다 남북 간에는 '통일된 표기법이 나오기 전까지는 남북 각기의 표기대로 쓴다'고 한 잠정적 합의가 있었던 만큼 그대로 따르는 게 혼란이 없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미 많은 언론과 학계인사들이 북한식 표기 따라하기에 너도나도 나서고 있으니 되돌리기 쉽지 않아보인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이제라도 정부 당국과 학계, 언론이 머리를 맞대고 '태양절'과 같은 우상화 용어를 어떻게 다룰지하는 문제와 북한식 표기법의 범람에 대해 대책마련을 논의해야 할 때란 생각이 듭니다.
그나저나 부모님이나 가족, 애인, 친지 등의 생일도 깜빡잊고 챙기지 못하는 바쁜 일상 속에서 김일성, 김정일 출생일과 사망일, 북한의 기념일까지 줄줄이 외우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지난 주말에도 해당분야 언론 종사자와 대북부처 당국자들은 주말을 반납하고 북한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죠.
망자(亡者)가 된 김일성,김정일을 추모하고 관련 행사를 치르는 건 그 자손인 김정은과 이른바 '백두혈통'이라 선전되는 일가친척이면 충분합니다.
북한 주민들은 물론 대한민국의 기자, 당국자들이 평범한 4.15와 2.16을 맞이하는 그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합니다.
04.25 김원홍, 숙청 석 달 만에 복귀 … ‘김정은 캠프 멤버’ 덕 봤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삼지연 8인 그룹’. 왼쪽부터 한광상 군 중장,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김병호 선전선동부 부부장,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사망), 김정은, 현지 관계자, 김원홍 당시 국가보위상. [사진 노동신문]
북한 김정은 권력의 핵심 실세 중 하나인 김원홍(72)이 국가보위상 해임 석 달여 만에 기사회생했다. 지난 1월 문책성 계급 강등 조치를 당한 뒤 가택연금설까지 나왔던 그가 15일 김일성 출생 105주 군사퍼레이드에 등장한 것이다.
노동당 간부 고문치사로 강등·해임
김일성 출생 105주년 행사 때 컴백
장성택 막강할 때 김정은 편든 공로
예전처럼 권력 휘두를지는 미지수
김원홍은 일명 ‘주석단’으로 불리는 단상에 올라 김정은(33) 노동당 위원장과 함께 열병식을 지켜봤다. 최부일 인민보안상과 나란히 자리해 신상에 큰 변동이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원홍의 복권은 이례적으로 빠르고 전격적이었다. 대북정보 당국은 회복이 어렵거나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봤다. 김원홍 숙청설이 나오자마자 통일부가 공식 브리핑을 통해 “1월 중순 경 노동당 조직지도부 조사를 받고 대장(별 4개)에서 소장(북한군 계급은 별 1개)으로 강등당한 뒤 해임됐다”고 확인했다. 그만큼 첩보에 자신있었다는 얘기다. 정부 당국자는 “입수된 정황이 잘못됐다기보다 김정은이 보호막을 쳐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지난 1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 주석단에 숙청설이 제기됐던 김원홍(빨간 원)이 대장(별4개) 계급장을 단 채 등장했다. [사진 조선중앙TV 캡처]
김원홍의 조기복귀 배경은 뭘까. 대북 소식통은 24일 “후계자 지위가 확고하지 않던 시절 김정은 쪽에 일찌감치 줄을 선 김원홍에 대한 끈끈한 신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2010년 9월 노동당 3차 대표자회를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지명된 김정은의 지위는 다소 불안한 구석이 있었다. 김정일 사망(2011년12월) 이후 상당 기간 후견인 격인 고모부 장성택 쪽으로 힘이 쏠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럴 때 위험을 무릅쓰고 김정은 편에 선 게 김원홍이다. 소식통은 “우리 정치로 말하면 김정은 캠프에 가장 먼저 몸을 던진 원조멤버”라고 김원홍을 설명했다.
김정은은 이런 김원홍을 각별히 챙겼다. 집권 첫 해인 2012년 4월 국가안전보위부(국가보위성의 전신) 책임자에 앉히고, 노동당 정치국원과 국방위원 직함을 줬다. 같은해 11월에는 보위부를 직접 방문해 힘을 실어줬다. 두터운 신임을 뒷심 삼아 보위조직을 장악한 김원홍은 이듬해 12월 장성택 처형 때 뒷탈없는 깔끔한 일처리로 화답했다. 장성택 숙청 한달 전 대책을 논의한 백두산 삼지연 8인 회동의 핵심멤버가 김원홍이다.
보위성은 최고지도자와 북한 체제를 지키는 기둥으로 여겨진다. 1973년 ‘국가정치보위부’로 출범해 국가보위부(1982년), 국가안전보위부(1993년)로 개칭됐고 지난해 국가보위성이 됐다. 반체제 사범 단속과 정치범 수용소 관리, 해외공작 등에 걸쳐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다. 김정일은 오랜기간 보위부장 자리를 공석으로 뒀고, “보위부는 나의 조직”이라고 언급해 보위부장을 겸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김원홍이 김정은 위원장의 인사를 받고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 조선중앙TV 캡처]
김정일 집권 말기 보위부는 큰 위기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12월 밀사로 서울에 왔던 보위부 부부장 유경이 반(反)체제와 부패혐의로 공개처형되면서다. 대북 소식통은 “유경이 숙청당한 건 남한에서의 행적보다 권력 내 알력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정일 비밀파티에 단골이던 유경은 당시 보위부 책임자이던 우동측 제1부부장(부장은 공석)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하지 않았다. 보위부에 대한 당적(黨的)통제를 담당한 김창섭 보위부 정치국장은 이를 괘씸하게 여겼다. 당 조직지도부 8과(검열담당) 과장이던 김창섭은 보위부 장악 목적으로 파견됐다. 결국 유경은 검열을 받았고, 가택수색 때 200만달러가 나온 점을 들어 “여차하면 해외로 탈북·망명하려했다”는 혐의가 씌워졌다는 것이다.
김원홍의 이번 위기도 보위성과 당 조직지도부의 해묵은 갈등 때문이란 분석이다. 보위성 권한이 세지면서 당 간부에게까지 칼을 휘둘렀고, 중앙당 과장이 고문받다 숨지는 사태가 벌어지자 조직지도부가 반격에 나섰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이번 검열은 보위부 정치국과 당 조직지도부의 합동 방식이었다”며 “김원홍이 정치국을 억눌러온데 대한 앙갚음”이라고 말했다.
일단 복귀에 성공했지만 몰락의 문턱까지 갔다온 김원홍이 예전처럼 권력을 휘두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열병식 자리에서 김정은과 마주친 김원홍은 예전과 달리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김원홍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김정은이 뭐라 말을 던졌지만 다른 간부들에게 건넨 것과 같은 악수는 없었다. 좀 더 지켜보겠다는 의미로 읽혀진다.
국가보위성의 어제와 오늘
1973년 …………… 국가정치보위부로 출범
1982년 …………… 국가보위부로 개칭, 정무원에서 분리
1993년 …………… 국가안전보위부로 명칭 변경
2012년 4월 …………… 김원홍 부장 임명
2013년 12월 …………… 장성택 숙청 주도(삼지연 8인방)
2016년 5월 …………… 국가보위성으로 명칭 변경
2017년 1월 …………… 김원홍 숙청설(강등 및 혁명화 교육)
4월 …………… 김일성 생일 기념 열병식 단상 등장
05.07 김정은 비판하는 후보들 싸잡아 비난 ‘모두까기’ 모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판문점을 방문한 지난달 17일 북한 병사들이 남쪽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AP=뉴시스]
“특유의 정교함이 사라졌다.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를 정도다.”
미시적 비방 선전에 치중하며
정작 큰 흐름은 놓치고 있어
김양건 같은 대남전략가 없는 듯
한때 대선 최대 변수였던 북풍
최근 들어 점점 약발 안 먹혀
19대 대통령선거가 사흘 앞으로 다가온 6일 대북 부처의 핵심 당국자는 북한의 대선 개입 움직임을 이렇게 분석했다. 노동당 통일전선부와 하부 선동기구들이 구사하는 선거 개입 전술이 남한 내 판세 변화나 대선후보의 입을 좇아가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혹평이다.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노련한 대남 전략가가 없어 보인다는 얘기다. 김양건(2015년 12월 사망) 대남비서의 공백과 후임인 군부 출신 김영철 통전부장의 좌충우돌을 꼬집는 말이다.
북한은 그동안 대선 때마다 북풍(北風)이니 총풍(銃風)이니 하며 직간접적으로 개입해 왔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강력한 대남라인 부재 등으로 선거 막판까지 북한 요인이 큰 변수로 작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를 비롯한 북한 관영 매체들은 연일 남한 대선과 관련한 노골적 선전·선동을 펼치고 있다. ‘구국전선’ 등 160여 개의 인터넷 선동 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총동원해 선거 투쟁과 사이버 여론 조작에 나섰다는 전문가 주장도 나온다. 선거가 임박하면서 비방 수위도 한껏 높아졌다. 초점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후보에 대한 은근한 지지와 그에 맞서는 보수·중도 대선주자 비방과 폄훼에 맞춰진다.
언뜻 보면 대선 관련 흐름을 제법 꼼꼼히 짚어 나가는 듯한 모습이다. ‘우리가 남조선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고, 이 정도는 분석해 낸다’는 북측의 메시지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일에는 바른정당 소속 의원들의 집단 탈당 사태에 대해 즉각 “야당 세력의 집권을 기어이 막아 보자고 ‘보수 대통합’과 ‘보수후보 단일화’까지 떠들며 최후 발악을 해대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18일엔 비방 사이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게 보수층 표심이 쏠리는 이른바 ‘차악(次惡) 선택론’을 문제 삼았다. “파멸 위기에 직면한 보수패당이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악 선택’이니 뭐니 하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고 비난을 퍼부은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미시적 비방 선전에 치중하다 보니 북한이 정작 큰 흐름은 놓치고 있다는 게 대북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북한은 3월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점까지는 퇴진 선동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고는 곧바로 대선 국면으로 눈을 돌렸다. 같은 달 14일 통일부 당국자가 “북한의 대남 선동이 탄핵에서 선거 쪽으로 옮겨 가고 있다”고 브리핑한 건 이를 짚은 것이다.
노동신문은 3월 23일 “보수세력의 재집권을 막아야 한다”며 대선 개입 포문을 열었다. 이후 북한은 한·미 합동 군사연습 등을 소재 삼아 “정치인들은 반미 평화 수호 투쟁에 나서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지난달 4일 대선주자가 확정되자 개별 후보에 대한 차별적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북한 대남파트는 커다란 벽에 부닥쳤다. 무엇보다 ‘서울 핵 불바다’ 위협에 미사일 도발까지 들고 나온 김정은 정권에 대한 우리 국민의 여론이 싸늘해진 것이다. 2월 중순 쿠알라룸푸르에서 발생한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 독살사건은 결정타가 됐다. 이런 분위기를 간파한 대선 주요 후보 5명이 모두 대북 비판 입장을 취하자 북한이 싸잡아 비난하는 전례 없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26일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안보대통령’을 주장하며 야당과 그 후보들을 ‘종북좌파’로 몰아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에 뒤질세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도 안보 강화와 한·미 동맹 중시를 떠들며 ‘북이 가장 두려워하는 정부를 만들겠다’느니 뭐니 하면서 못된 소리를 줴치고(외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를 두고 “북한이 남한 대선에서 ‘모두까기 인형’(모든 사람을 비판하는 행위를 호두까기 인형에 빗댄 우스개) 역할을 한 건 보기 드문 일”이란 말이 나온다.
이 같은 국면에서도 북한은 19대 대선에 각별히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보수 성향인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 논란과 탄핵 사태를 기화로 차기 남한 정부에 대북정책 변화를 압박하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대북 군사 압박과 제재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산소호흡기 역할을 해 줄 남한 정권의 탄생을 기대하는 듯하다.
보수정권의 재집권은 북한으로선 떠올리기조차 싫은 끔찍한 악몽이다. 김정은은 자신의 집권 첫해인 2012년 말 치러진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자 큰 실망감을 보였다. 박근혜 당시 후보가 2002년 5월 방북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나눈 대화록을 폭로하겠다는 위협까지 가하며 집권을 가로막으려 했지만 허사였다.
서울의 대선을 바라보는 김정은의 생각은 종잡기 어렵다. 핵 위협은 물론 ▶미사일 도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 ▶대규모 대남 타격훈련 등을 이어가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노동신문은 5일 김정은이 서해 연평도와 마주한 장재도·무도 방어대를 방문했다며 그가 “(남조선) 괴뢰들의 사등뼈(척추뼈)를 완전히 분질러 버리라”는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같은 날 북한 국가보위성은 구체적 근거는 제시하지 않은 채 한·미의 김정은 생화학테러 음모를 밝혀냈다고 주장했다. 마치 남한 대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가겠다는 식이다.
대선 때마다 불거졌던 북한 문제
남한 선거에서 북한 문제는 한때 최대 변수로 꼽혔다. 북풍이란 말도 그래서 나왔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6년 4월 총선 때 북한 무장병력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진입한 사건은 신한국당이 서울에서 사상 최초로 여대야소를 이루는 데 일조한 것으로 평가됐다. 97년 대선 후 불거진 ‘총풍’ 사건은 오히려 역효과를 낸 경우다. 2000년 4월 총선 며칠 전 남북 정상회담을 발표한 것도 여당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터진 해외 북한 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 망명도 마찬가지다. 북풍의 약발이 점점 먹히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건 북풍 무용론의 틈을 북한 당국이 파고들어 오는 모양새다.
북한은 미국 대선 유세가 한창이던 지난해 6월 “트럼프는 ‘막말 후보’나 ‘괴짜 후보’가 아닌 현명한 정치인”이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취임 100일을 맞아 “악독한 폭력배이자 사기꾼”이라고 맹비난했다. 고위 탈북 인사는 “힐러리 클린턴보다 트럼프가 나을 것이라고 조언했던 미국통 참모들은 지금 김정은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평양의 대남통들도 이제 시험대에 섰다.
05.23 아그레망 거부되고 밀수 혐의까지 … 북 외교관 위상 추락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잇단 핵·미사일 드라이브에 북한 외교라인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쏟아지는 국제사회의 비난과 대북압박 조치를 온몸으로 막아낼 수 밖에 없는 곤혹스런 입장에 처한 때문이다. 김정은 정책노선을 찬양·선전하는데까지 동원되다보니 평양과 국제 외교가에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고 한다.
“미사일 발사 의의” 외무성 주장에
평양주재 외교관들 반응 썰렁
‘김정은 테러음모’엔 자작극 의혹
해외 나간 외교관들 추방 수모도
북한 외무성은 지난 15일 평양 주재 외교관들을 인민문화궁전에 불러모았다. 박정학 아주2국장은 이른바 ‘정세 통보 모임’에서 하루 전 북한이 강행한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의 발사에 대해 설명했다. “조선반도(한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는 데서 중대하고도 특별한 의의를 가진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반응을 썰렁했다는 게 외교경로를 통해 입수한 우리 정보 당국의 첩보다.
앞서 한성렬 외무성 부상(차관급)은 11일 평양의 외교관과 국제기구 대표를 초청했다. 한 부상은 “국가보위성이 한·미 당국의 김정은 테러음모를 밝혀냈다”는 주장을 펼쳤다. 보위성이 이달 초 ‘특대형 테러음모 적발’이라며 내놓은 걸 확산시키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삼엄한 경호가 펼쳐지는 김정은을 테러하기 위해 한·미가 포섭했다는 인물이 러시아에 나가있던 북한 벌목 노동자란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고, 보위성의 ‘자작극’ 의혹까지 제기됐다. 지난 1월 권력남용 등으로 몰락 위기에 처했던 김원홍 체제의 보위성이 김정은 신임을 얻기 위해 꾸민 사건이란 분석도 나왔다.
한성렬은 지난 14일 미 AP통신에 이어 18일에는 영국 BBC와의 인터뷰를 통해 6차 핵실험을 위협하고 추가 미사일 발사를 주장하는 등 전방위로 나서고 있다. 외교관 출신 탈북인사는 “베테랑 대미통인 한성열까지 내세웠다는 건 그 만큼 보위성이 이슈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해외에 나가있는 외교관이나 대표부 멤버들도 예외는 아니다.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의 김인룡 차석대사는 요즘 외신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북한 인사 중 하나다. 19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는 북한의 핵·미사일과 함께 최근 150여개국에 피해를 입힌 랜섬웨어 공격 관련 ‘북한 배후설’까지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려야했다. 김 차석대사는 “무슨 일만 벌어지면 미국과 적대 세력은 의도적으로 우리와 이를 연결지으며 반북 비난전을 벌인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과거 북한이 주도한 해킹과의 기술적 유사성이 속속 드러나면서 눈총을 받고 있다.
유엔을 무대로한 ‘김정은 테러 음모 적발’ 선전도 이어지고 있다. 유엔 대표부는 12일 공보문을 내고 “이번에 적발 분쇄된 특대형 범죄는 단순히 우리 공화국만이 아닌 인류의 정의와 양심에 대한 테러”라며 유엔 회원국이 반(反)테러 타격전에 호응해달라고 주장했다.
올들어 가장 큰 위기를 맞았던 건 강철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다. 2월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 씨가 피살당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말레이시아 경찰은 북한 대사관을 공작거점으로 지목됐다. 소속 외교관까지 범행에 가세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국제사회와 언론의 눈길이 쏠렸지만 강철 대사는 막무가내로 버텼다. 그는 “사망한 건 김정남이 아닌 북한 공민 ‘김철’(김정남의 여권상 이름)”이라고 버티며 불똥이 김정은에게 튀지 않도록 모르쇠로 일관했다.
외교관에게 주는 주재국의 승인 조치인 ‘아그레망’이 거부되는 수모에다, 대사 추방이란 사태도 겪고 있다. 지난 1월 독일 주재 북한 대사로 부임한 박남영은 2명의 대사 후보가 거부 당한 뒤 9개월 만에 가까스로 자리를 잡았다. 불법 행위로 지난해 초 외교관 2명이 추방된데다, 정보기관 간부를 대사로 파견하려 한 걸 독일 당국이 문제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춘일 이집트 주재 북한 대사는 지난해 11월 유엔 대북결의에 따라 여행금지 대상으로 묶이면서 도중하차했고 마동희 대사에게 자리를 내줘야 했다. 외교관으로서의 활동이 사실상 끝난 것이다.
지난해 11월 미국의 특별제재 대상에 오른 김석철 미얀마 주재 북한 대사도 9년 간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사실상 추방됐다. 제재 대상인 조선광업개발회사(KOMID·창광무역)의 활동을 지원했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다 외교관 신분을 악용한 밀수와 각종 불법행위까지 드러나면서 북한 외교의 위상은 바닥으로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8월에는 방글라데시에서 북한 외교관들이 삼성전자 TV·에어컨과 담배 수 만 갑을 몰래 반입하다 세관에 적발됐다. 앞서 같은 해 6월에는 파키스탄 주재 북한 외교관들이 주류 밀매를 하며 몇 배의 차익을 올리다 적발된 사례가 10건에 이른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북한이 외교 공관 건물과 부지를 불법 임대해 수익을 챙긴 건 독일과 폴란드·루마니아·불가리아 등 확인된 곳만 4개국가다.
정부 당국자는 “평양으로부터의 지원이 거의 끊긴 상태에다 본국으로의 ‘충성자금’(달러 상납) 압박까지 받다보니 해외공관들이 불법·탈법 행위에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7월 탈북 망명한 태영호 런던주재 북한 공사는 서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공관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사는 한 달에 1100달러, 참사·공사는 700∼900달러 정도의 월급을 받는다”고 털어봤다. 현재 물가수준이나 외교관이란 위상으로 볼 때 가족 등과 최소한의 생계를 꾸리기도 어려운 돈이다.
북한의 불법적인 외교활동에 대해 미국은 대북제재 차원의 강한 압박을 예고하고 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달 28일 유엔회원국들에게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정지(suspend)하거나 격하(downgrade)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07.05 꽃길 사라진 대북접근 … 김정은의 생각을 읽어라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연신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접근에 북한은 수성(守城)을 고집했다. 어제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9년 만의 남한 권력 교체에 반색할 것이란 예상은 깨졌다. 선뜻 손을 맞잡지 못하는 김정은의 속사정은 뭘까. 새 정부가 중대한 대북 착시에 빠져 있는 건 아닐까. 풀리지 않는 남북관계 함수를 짚어본다.
봇물 터진 문재인 정부 대북제안
북 ICBM 발사로 기로에 선 형국
전략마인드 없는 대통령 참모들
집권 6년 김정은 변화 주목하라
출범 50여 일 동안 새 정부가 쏟아낸 대북 제안은 가위 공세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5월 10일)에서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다”며 남북 정상회담 추진 카드를 띄웠다. ‘1급 회담 기술자’로 꼽히는 서훈 국가정보원장도 “정상회담은 필요하다”며 힘을 실었다. 굳게 닫힌 개성공단에 다시 기계소리가 울리도록 하겠다는 방침이 등장했고, 금강산 관광길도 꿈틀댄다. 기지개를 켠 인도 지원 단체들의 대북 접촉은 줄줄이 승인됐다. 내년 2월 평창 겨울올림픽에 북한 선수가 참여하는 문제와 함께 공동 개최까지 거론된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그제 취임 일성으로 이산가족 상봉의 시급성을 강조하면서 “8·15 광복절이 아니라도 당장 되면 제일 좋겠다”며 속도를 낼 것임을 내비쳤다. 대북 제안의 종합선물세트란 말이 과하지 않다. 막혔던 남북 교류·협력에 봇물이 터질 기세다.
그런데 정작 평양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대북 지원 봇짐을 싸던 단체들은 퇴짜를 맞았고, 첫 남북 정상회담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자던 6·15선언 17주년 ‘공동행사’도 각자 상을 차리는 반쪽짜리가 됐다. 문 대통령이 의욕을 보인 평양 겨울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은 초장에 벽에 부닥쳤다. 지난달 말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참석한 북한의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은 인터뷰에서 “단일팀을 한다는 말 자체가 지금 우습다”고 일축했다. “북남관계를 체육으로 푼다는 건 천진난만하기 짝이 없고 기대가 지나친 것”이란 그의 말에는 파고들 빈틈이 없다.
평양 선전매체의 입도 거칠어지는 형국이다. 노동당 외곽기구인 아태평화위가 문 대통령을 겨냥해 “외세와 맞장구치며 온당치 못하게 놀아대고 있다”고 비난한 건 취임 나흘 만이다. 처음엔 ‘남조선 당국자’로 지칭하다 ‘집권자’로 바꿔 부르며 대통령 때리기 공세의 고삐를 죄어 왔다. 어제는 문 대통령 방미에 시비 걸며 “한·미 동맹이 자신의 뿌리고 그것이 있어 오늘이 있다느니 뭐니 하며 온갖 추태를 다 부렸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조짐이 좋지 않지만 정부 당국의 대응은 미덥지 않다. 정권 출범 초기 북한의 의례적 ‘남한 길들이기’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대통령을 직접 거명하지 않는 데서 위안을 찾는 분위기도 있다. 머지않아 문재인 정부의 ‘진정성’을 간파하게 되면 대북 지원 수용을 시작으로 민간교류와 당국대화에 적극 호응해 올 것이란 기대에 무게가 실린다. 북핵 문제의 해결도 꿈꾼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핵 동결을 입구로 대화를 시작하고, 핵 폐기라는 출구로 북한을 유도한다”는 청사진이 지침서다. 회담·교류가 절정을 이루고 개성공단이 첫 가동하던 황금기에 터져나온 9·19 공동성명(2005년 9월)에서 북핵 폐기와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를 약속받았던 황금기의 재연 구도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 집권 6년차에 접어든 김정은 정권은 김정일 시대와 확연히 다르다. 33세 젊은 지도자는 대한민국과 국민들을 향해 “남조선 것들 쓸어버리라”고 호언한다. 한·미 동맹을 겨냥해서는 “미 제국주의와 그 졸개들”이라며 조롱한다. 극렬한 대남 비난의 대상을 ‘남조선 집권세력’이나 ‘군부 호전광’으로 한정하던 선대(先代) 수령 시절의 신중함은 사라졌다. 모든 걸 뭉뚱그려 타도 대상으로 삼는 대남 적개심과 열패감이 폭발 직전이다. 이런 통제불능의 김정은에게 대남통들이 ‘남조선과의 대화’를 말하기는 쉽지 않다.
대화에 대한 평양 당국의 수요도 좀체 찾기 힘들다. 핵 문제는 남한과 다룰 문제가 아니란 입장이 확고한 데다 이산가족 상봉이나 교류·협력 같은 낡은 레퍼터리는 구미가 당기지 않는 듯하다. 대북 지원은 김정은 시대의 금기어가 됐다. 지난해 8월 말 발생한 함경도 북부 지역 대홍수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은 5차 핵실험(9월 9일) 버튼을 눌렀다. 대북 구호 채비를 하던 우리 인도지원 단체들은 아연실색했다. 돌격대를 투입해 수해복구와 새 주택건설을 마친 북한은 ‘자력갱생을 통한 전화위복’을 주장했다. 중국에서 만난 노동당 간부는 “분유나 영양제 같은 걸로 우릴 돕겠다는 생각은 이제 버리라”고 호언한다.
북한은 ICBM 발사 성공으로 “국가 핵무력 완성을 위한 최종 관문을 넘었다”(4일 국방과학원 보도)는 입장이다. 상황이 절박한데도 정부의 대북 제안에는 고민이나 전략적 코드가 읽히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언급하며 여전히 “평양에 가겠다”고 말한다.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 때 발표된 6·15 선언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서울 답방을 약속했다. 하지만 차일피일 미뤘고, 2007년 2차 정상회담도 평양에서 치렀다. 3차 회담은 서울에서 개최하는 게 상식과 남북 호혜평등 원칙은 물론 우리 국민 정서에도 맞다. 북한 사정이 어렵다면 제주 방문 카드라도 성사시키는 게 바람직하다. 평양을 또 가는 건 남북관계의 정도가 아니다.
문 대통령이 ‘대동강의 기적’(6월 1일 제주포럼 영상 축사)을 강조한 대목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이미 여명거리를 비롯한 평양 뉴타운 공사를 통해 대동강의 스카이 라인을 바꿨다고 선전한다. 그들 논리대로라면 스스로 이룬 ‘대동강의 전변(轉變)’이다. 한강의 기적을 전수해 주겠다는 제안이 먹혀들 리 없다. 과거회귀형 대북메시지만 건성건성 써서 대통령에게 건네는 참모들을 호되게 꾸짖어야 할 판이다. 북한을 제대로 읽어내는 전략가의 기용이 아쉽다.
김정은 위원장은 공개활동을 접은 채 보름간 숨고르기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어제 ICBM 시험발사라는 승부수를 띄웠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10월 첫 북핵 실험의 충격에 맞먹는 북한의 도발이다. 북한 세습정권이 3대(代)를 이어 꿈꿔온 핵무기와 투발수단(미사일)의 결합 완성이다.
남북관계 이벤트에 열광하던 호시절 꽃길은 막다른 골목을 만난 듯하다. 이제라도 패러다임의 전환을 서두를 때다. 패러다임은 인식의 틀이자 새로운 비전을 향한 선도적 개안(開眼)이다. 봉하마을을 찾아 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다시는 실패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문 대통령이다. 하지만 똑같은 노선과 행동은 마찬가지 결과를 낳을 뿐이다. 대통령과 대북 참모들에게 꽤 오랜 침묵과 고뇌의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두드려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다”라는 말은 적어도 지금 상황에선 팩트가 아니다.
07.12 화장품 세트가 10년치 월급 … 북 장마당엔 어떤 비밀이
한 달 치 월급으로 작은 버터빵 6개를 사 먹으면 지갑이 텅빈다. 여성 화장품 세트 하나 장만하려면 무려 121개월, 즉 10년 넘게 꼬박 저축해야 한다. 어떻게 생활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평양의 쇼핑센터와 장마당은 흥성인다고 한다.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내로라하는 북한 문제 전문가들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마법 같은 북한 시장경제의 현장을 들여다봤다.
공식환율 53배 넘는 암달러의 힘
파탄 난 민생경제에 산소호흡기
김일성대 교수도 ‘하우스 푸어’
시간당 1달러 과외 나서기도
“월급만으론 못살아’ 풍조 만연
김정은의 ‘허리띠’ 약속은 공수표
캐나다 동포 A씨는 지난 5월 방북길에 놀라운 경험을 했다. 안내원을 따라 둘러본 평양의 대표적 쇼핑센터인 광복거리상업중심. 그런데 상품 가격표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살결물(스킨)과 물크림(로션) 등 6개 품목으로 구성된 ‘미래’라는 브랜드의 화장품 세트 가격은 북한 원화로 36만5100원. 실내용 공기청정제인 ‘방안 향수’는 개 당 4만3500원의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북한 노동자 월급이 보통 3000원 수준이란 걸 알고 있던 A씨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화장품 세트 하나를 사려면 10년, 공기청정제는 14개월 치 월급을 꼬박 모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다.
북한에서 요즘 한창 인기를 얻어 가는 커피믹스는 100봉지 한 묶음에 7만2500원에 팔렸다. 한때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에게 제공돼 ‘막대커피’란 이름으로 각광받던 제품이다. 북한은 컬러와 디자인까지 베껴 ‘삼복’(三福,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이 내린 복이란 의미)이란 자체 상품을 만들었다. 가격표대로라면 한 달 월급으로 커피믹스 4개를 사면 남는 게 없다는 얘기가 된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첫 번째 비밀은 북한 특유의 이중환율 제도에 있다. 북한은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고려호텔이나 주요 외화상점·쇼핑몰에서 1달러당 150원 정도의 공식 환율을 게시한다. 이대로라면 광복거리상업중심에서 팔리는 화장품 세트는 2434달러, 커피믹스는 483달러에 달한다. 북한 돈 306만7900원인 전기자전거는 무려 2만452달러다. 웬만한 소형 자동차 값에 맞먹는다. 공식 환율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비공식 환율인 암달러는 1달러에 북한 돈 8000원에 거래된다. 이걸 적용하면 화장품 세트는 45달러(우리 돈 5만1700원), 전기자전거는 383달러(우리 돈 44만원) 수준이다. 암달러라고 해서 환전에 큰 어려움이 있는 게 아니다. A씨는 “물건을 사고 싶다고 했더니 수퍼에서 조선원(북한 원화)으로 바꿔줬다. 그런데 환율이 암시장과 같은 8000원이었다”고 말했다. 호텔·쇼핑센터 문밖만 나서도 공식 환율보다 53배나 더 힘센 암달러로 환전할 수 있다. 북한 안내원이 약간의 수수료를 챙기고 바꿔다 주기도 한다. 고위 탈북인사는 “평양을 처음 방문하거나 물정에 여둡지 않다면 공식 환율로 환전하는 사람은 드물다”고 귀띔했다.
그래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달러 한 번 손에 쥐어 보지 못하는 대부분의 북한 민초들은 어떻게 먹고사느냐는 점이다. 북한 전문매체인 데일리NK가 11일 밝힌 평양의 쌀값은 1㎏당 5800원. 한 달 월급으로 쌀 500g밖에 살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이 대목에서 북한 주민의 민생을 살리는 두 번째 비밀코드가 작동한다. 바로 시장, 즉 장마당 경제다. 일부 특수계층을 제외하면 식량은 물론 부족한 생필품 대부분은 장마당에 의존한다. 상당수 주민은 물품을 구입하던 소비자에서 벗어나 직접 장사에 뛰어들고 있다. 노동당과 행정조직의 사무원이나 공장·기업소 노동자로 일하는 경우 부부 중 한 사람은 장마당에 나가 국수를 말아 파는 등의 장사를 한다. “월급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현상은 인텔리 계층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김일성대 출신 탈북인사는 “2000여 명의 김일성대 교수 가운데 부부가 교수인 경우는 10여 명에 불과하다. 꽤나 수준 있는 교수·교원의 부인도 장마당에 나간다”고 말했다. 정무원(내각) 국장급 대우를 받는 김일성대 교수의 경우에도 월급은 5000원에 불과하다. 둘 다 교수직에 매달리다간 굶어 죽기 십상이란 얘기다. 그나마 김일성대 교수에게는 아파트와 식량(가족 1인당 하루 쌀 600g)이 공급된다. 탈북인사는 “부부 김일성대 교수의 경우 집만 덩그러니 있고 생계는 빠듯한 한국의 ‘하우스 푸어(house poor)’인 셈”이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가 생긴 건 1990년대 말 대기근으로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다. 식량 부족 등으로 국가배급망이 붕괴했고, 체제 위기까지 겪었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당시 굶어 죽은 사람이 200만~300만 명(국가정보원은 46만 명으로 추산)에 이른다고 증언했다. 아사자 중 상당수가 배급체제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하급공무원이나 지식인층이란 점은 북한 정권에 충격을 줬다. 북한은 2002년 들어 국정가격을 올리고 월급도 18~25배 대폭 인상하는 7·1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시행했으나 상품 공급 부족 등으로 사실상 실패했다.
암달러로 50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월급은 그저 ‘상징적 임금’이란 인식이 퍼지며 사회 부작용도 속속 생겨났다. 비공식 수익활동과 뇌물의 성행이다. 기관 소속 차량을 몰래 운행해 돈벌이를 하거나 공장 부품을 하나둘 빼내 조립해 시장에 파는 경우다. 김일성대와 김형직사범대 같은 명문대 교수들은 과외시장에 뛰어든다. 탈북인사는 “3~5명 정도를 가르치는데 시간당 각기 1달러 정도를 받는다”고 전했다. 장마당 허가권과 입시·취업·승진 등 사회 전반에 뒷돈과 뇌물이 성행하는 것도 결국 월급으론 살 수 없는 현실 때문이란 분석이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2012년 4월 첫 공개연설에서 “다시는 우리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듬해 3월에는 핵 개발 덕으로 국방비를 민생에 돌릴 수 있게 됐다며 경제·핵 병진노선을 들고나왔다. 하지만 약속은 5년 넘게 지켜지지 않았고, 대북제재를 자초해 주민들의 삶은 점점 고단해졌다.
북한에서는 “노동당보다 장마당”이란 말이 은밀히 입에 오르내린다고 한다. 조선노동당은 민생을 내팽개쳤지만 장마당은 숨통 역할을 해 준다는 의미다. 김정은은 ‘핵 강국’을 외치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성공으로 “미국 본토를 사정권 안에 두게 됐다”고 위협한다. 하지만 달러의 맛에 빠진 주민들은 “미국 할아버지(100달러에 새겨진 벤저민 프랭클린을 지칭)가 최고”라고 여긴다. 중국 할아버지(100위안에 그려진 마오쩌둥)에 이어 ‘수령님’(북한 화폐의 김일성을 지칭)이 제일 마지막이란 비아냥이다. 장마당에 부는 달러화(Dollarization) 바람은 북한 체제를 뒤흔들고 있다.
07.19 “북 선전영상 돈 주고 봐야 하나” … 대북 저작권료 지불 논란
북한에 이권을 챙겨주려 수금에 열중하는 사람들이 있다. 뉴스·보도물에 북한 TV 영상을 사용하는 우리 방송사 등에 접근해 “저작권료를 내야 쓸 수 있다”며 압박한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처해 돈줄을 바짝 죄고 있는 뒤편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놀라운 건 문재인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주도해 온 단체가 이 같은 사태의 중심에 서 있다는 점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캐내 대안을 모색해본다.
임종석 비서실장 주도 단체가 대행
북한에 13년간 22억원 넘게 챙겨줘
5·24 대북제재에도 꼬박 걷어 공탁
새 정부들어 군소방송까지 손뻗쳐
“북 한푼 안 내는데 남측에만 강요”
남북 합의로 상호주의 원칙 세워야
이달 초 국방TV의 제작담당 간부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북한으로부터 저작권 대행을 위임받았다는 단체 관계자였다. 그는 북한 관련 프로그램에 쓰인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영상과 미사일 발사 장면 등을 문제 삼았다. “북한 TV의 영상이니 돈을 내야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국방부 소속 국방홍보원이 운영하는 이 방송은 군 장병들에게 확고한 대북관을 갖추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핵·미사일 도발과 대남 비난 영상까지 북한에 돈을 건네주고 써야 한다니 무척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뉴스나 시사·교양 프로에 쓰이는 북한 TV의 영상물이 거액의 돈을 지불한 것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방송 관계자나 대북사업에 관심 있는 일부 인사 사이에서만 입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KBS(한국방송공사)를 비롯한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등의 경우 이미 북한에 상당한 액수의 사용료를 내고 있다. 시청자들이 무심코 접하는 북한 아나운서의 대남 비방 발언이나 미사일 발사 장면도 상당한 액수의 돈을 주고 사 온 영상인 셈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북한 TV에 대한 저작권료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한 건 2005년부터다.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이란 민간단체가 북한 조선중앙방송위원회로부터 대행 권한을 받았다며 우리 방송사들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연간 수억원 규모였던 대북 저작권료는 큰 폭으로 늘어나는 추세라는 게 정부 당국의 설명이다. 이 돈은 고스란히 북한 당국의 계좌에 송금됐다.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 도발에 대응해 정부가 내놓은 5·24 대북제재는 북한에 대한 현금 지원과 투자를 금지했다. 하지만 저작권료 징수는 중단되지 않았다. 북한으로 당장 보내지는 못하지만 제재가 풀리면 송금하겠다면서 법원에 공탁을 해놓겠다는 얘기였다. 지난 13년간 거둬들인 돈이 187만6700달러(22억5206만원) 라는 게 통일부 집계다.
문제는 경문협 설립을 주도한 인물이 문재인 대통령의 현직 비서실장이란 점이다. 임종석 실장은 대북 협의는 물론 경문협 재단 출범을 주관했고 이사장을 맡았다. 이 단체의 홈페이지에는 ‘임종석 이사장’의 인사말이 사진과 함께 올라 있다. 단체 관계자는 “비서실장 임명과 함께 이사장 일에서는 손을 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연설문을 담당하는 신동호 연설비서관도 이 단체의 위원장으로 올라 있다. 단체 홈페이지의 ‘남북저작권센터’ 코너에는 아무런 자료가 올라 있지 않다. 저작권료 징수 대행 외에 다른 저작권 사업은 없다는 방증이다.
경문협은 2000년대 중반 대북 저작권 문제와 관련한 무리수로 수차례 논란에 휩싸였다. 북한 작가의 문학작품을 펴낸 국내 출판사들에 저작권료 67만6000달러(약 7억5900만원)를 챙겨 북한에 보낸 적도 있다. 대부분 영세업체인 데다 소송 제기 등의 방식으로 압박하는 바람에 원성을 샀다. 통일부는 2009년 보고서에서 “경문협의 대북 파트너인 ‘저작권 사무국’의 실체도 확인되지 않고 저작권료가 저자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도 불투명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저작권료 1억2700만원을 북한에 보내지 않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정부는 북한의 원 저작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도 불투명한 일을 경문협이 벌이고 있다며 사업 취소를 검토하기도 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본래 우리 측 출판·방송업자들의 대북 저작권 협의를 염두에 두고 사업 승인을 받은 경문협이 범위를 벗어나 무리하게 나서는 건 위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 방송 화면 등을 무단 사용하는 북한 당국의 행태에 비춰 형평성 문제도 지적된다. 관영매체인 조선중앙TV와 노동신문 등은 우리 TV 화면과 사진을 무차별적으로 사용해 대남 비방에 활용한다. 이런 실정 때문인지 북한 당국은 한 번도 공개적으로 남북 간 저작권 문제를 제기하지 않아 왔다.
북한도 저작권의 국제적 보호를 위한 베른협약 가입국이다. 물론 ‘북한이 위반하는데 우리도 어기면 어때’라는 식의 주장은 맞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이찬호 변호사는 “북한 TV 영상 사용에 저작권료를 내야 한다는 주장은 법률적으로 합당하고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형평성과 남북 관계에 대한 국민 여론 등을 고려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국제 스포츠 중계 행사 등을 해적방송으로 시청하다 국제사회의 비난을 산 북한은 우리 정부의 기술·자금 지원으로 겨우 오명을 벗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남북 간 저작권 문제도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우선 북한에도 저작권 준수의 필요성을 제기해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또 남한 방송물이나 영상에 대한 저작권료 지급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촉구하고, 상계(相計) 방식으로 정산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필요하면 저작권 교육 등을 지원해 주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게 ‘남북 문화 교류의 가교 역할’을 표방한 경문협의 설립 취지에도 부합한다는 지적이다.
공교롭게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직후 대북 저작권료 독촉이 부쩍 심해지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업계 관계자는 “보수 정권 시기 주춤하던 경문협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중소 규모 방송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고 말했다. 수백만~수천만원의 추가 부담이 닥치자 “북한을 챙겨주겠다며 우리 영세 방송업체를 쥐어짜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곳곳에서 나온다. 대통령의 최측근인 비서실장과 연설비서관이 주도한 단체이다 보니 관련 업계의 압박감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 기관이 운영 주체인 방송매체는 딜레마에 빠졌다. 국방TV의 경우 북한 영상 사용료를 내는 행위 자체가 정부의 대북제재 조치를 스스로 위반하는 셈이 된다. 공영방송의 경우 혈세를 북한에 보내는 격이다. 외눈박이식 대북 저작권료 챙겨주기를 멈추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 연구기관 박사는 “남북 당국 간 합의를 통해 저작권 문제에 해법을 마련할 때까지 일방적 저작권료 징수는 자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07.26 남한 TV 드라마에 발칵 뒤집힌 베이징 북 대사관
중국 베이징(北京)의 북한 대사관이 요즘 뒤숭숭하다. 평양에서 특별검열단이 투입돼 고강도 조사가 한창이다. 컴퓨터와 CD는 물론 저장장치인 외장하드와 USB까지 들여다보고 있다고 한다. 대사관저 바깥 지역에 거주하던 공관원과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조사 결과에 따라 평양 소환 조치를 포함한 큰 숙청 바람이 불 것이란 얘기가 흘러나온다. 북한의 ‘외교 1번지’로 불리는 주중 대사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추적해 봤다.
김정은 생필품 챙기던 대표부 간부
남한 드라마 몰래 보다 숙청 위기
태영호 전 공사 망명 1주년 앞두고
북한의 '외교 1번지' 한류에 뚫려
ICBM '성공' 떠들썩한 분위기에
핵심 엘리트층은 체제이반 갈등
발단은 한 편의 TV 드라마였다. 주중 북한대사관 소속 간부가 지난달 말 남한 TV 드라마를 몰래 보다 적발된 것이다. 슬쩍 눈감아주거나 자체 징계로 끝내버릴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간단히 마무리되지 않았다. 문제의 노동당 인사가 북한 대표부의 ‘경공업 대표’ 직책을 갖고 있는 비중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해외 공관에 근무하다 탈북·망명한 고위 인사는 “베이징 경공업 대표는 북한이 필요로 하는 인민소비품(주로 경공업 제품)의 조달을 담당하는 꽤 중요한 자리”라며 “특히 김정은과 그 일가친척, 특권층의 생필품을 맞춤형으로 구매해 평양에 보내는 일도 담당한다”고 귀띔했다.
공관원을 감시·단속하는 ‘안전영사’(국가보위성 소속)는 이 사실을 평양에 즉각 보고했다. 그리고 중앙당과 보위성 등으로 구성된 검열단이 즉시 투입됐다. 문제가 된 경공업 대표와 그 가족은 물론 공관·대표부 소속 인력이 모두 검열 대상에 올랐다고 한다. 주로 남한 영상물 시청과 보유 여부를 파악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컴퓨터와 각종 저장장치를 샅샅이 뒤졌고, 특히 휴대전화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봤다. 이 과정에서 남한 영상물이나 뉴스를 들여다본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났다고 한다. 대북 소식통은 “외부에 거주하는 북한 측 관계자는 물론 대사관 내 생활구역에 머물러 온 공관원과 가족들 상당수가 적발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베이징 중심지인 차오양(朝陽)구 르탄베이루(日壇北路)의 외교단지에 자리한 이 대사관은 해외에 개설된 북한 외교공관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중국 내 외국 공관 중에서도 러시아 다음이다. 주중 북한대사관은 울타리 내부에 가족 단위 주거시설이 갖춰져 있다. 7층 규모의 아파트까지 들어서 있고, 공관원뿐 아니라 출장 나온 북한 관리들도 이곳에 주로 머무른다. 주변에 북한 식당과 식료품점·안경점·환전소 등도 있다. 통제를 쉽게 하기 위한 작은 타운 내에서 남한 영상물을 접하는 비법행위가 벌어진 것이다.
검열단 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내친김에 전반적인 공관 운영 실태와 사상검증까지 진행 중이란 얘기다. 고위 탈북인사는 “평양에서 직파된 중앙당 검열의 경우 건물 내부 곳곳에 걸린 김일성·김정일 초상화까지 꼼꼼히 살핀다”고 말했다. 가정집 초상화의 경우도 먼지가 쌓여 있거나 비가 새 얼룩진 채 방치됐다가는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초상을 ‘모시는’ 기본 자세가 비뚤어지면 모든 게 제대로 될 리 없다는 생각에서 가장 먼저 들여다보는 것”이란 설명이다.
이는 북한이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는 ‘유일영도 10대 원칙’에서 잘 엿볼 수 있다.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절대충성을 통해 김정은 체제를 결사옹위하자는 취지를 담은 11쪽짜리 소책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배하는 규범이다. 이 원칙의 제3항은 “김일성·김정일의 권위, 당(노동당)의 권위를 훼손시키려는 자그마한 요소도 절대 융화묵과하지 말고 비상사건화하라”고 요구한다. 남한 영상을 보거나 김일성 초상화 관리를 소홀히 한 행위가 반(反)혁명이란 무시무시한 죄목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것도 유일영도 10대 원칙의 막강한 파워 때문이다. 4년 전 처형당한 장성택(김정은의 고모부) 국방위 부위원장도 피해 가지 못했다.
이번 일탈행위에 북한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건 주중 북한대사관이 지니는 상징성 때문이다. 체제 고립이 심해진 북한 외교의 교두보이자 마지막 숨통 역할을 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도 중국은 후견국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또 김정은의 지시로 이뤄지는 외교활동도 베이징을 거치는 동선으로 짜이는 양상이다.
지난해 7월 런던에서 태영호 전 북한 공사의 탈북·망명 사태가 터진 지 1년이 되는 시점에 중국 주재 공관이 뚫렸다는 당혹감도 감지된다. 서방 언론을 대상으로 북한 체제를 선전하던 태 전 공사의 체제이반은 충격을 던졌다. 북한은 대대적 검열 끝에 현학봉 영국 주재 대사를 경질하고 외무성 담당 간부를 숙청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해외 체류 외교관과 대표, 무역일꾼 등에게 가족 동반 금지령을 내리고 이미 체류 중인 경우 평양 귀환을 지시했다.
사실 베이징 북한 공관은 크고 작은 사건·사고로 내홍이 끊이지 않았다. 태영호 망명의 여진이 한창이던 지난해 9월에는 대표부 고위 간부 2명이 가족과 함께 탈북·망명했다. 비슷한 시기 대사관 소속 북한 요리사가 의문의 자살을 하는 사건까지 벌어져 분위기가 흉흉했다고 한다. 97년 2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망명한 것도 평양 귀환길에 며칠 이곳에 머무를 때였다.
우리 정보당국은 베이징 북한 공관의 이상징후를 포착해 사태 추이를 관망 중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해외에 체류 중인 북한 엘리트층 사이에 남한 TV 드라마와 영화·가요가 확산되는 분위기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태영호 전 북한 공사는 지난해 12월 국회 정보위 간담회에서 “북한 주민들이 낮에는 ‘김정은 만세’를 외치지만 밤에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국 드라마를 보며 동경심을 키운다”고 말했다. 외교관들도 컴퓨터나 휴대전화로 한국 뉴스부터 먼저 열어본다는 얘기다.
평양은 지난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발사 성공에 축제 분위기다. 화려한 불꽃놀이와 김정은·이설주 부부가 참석한 축하 연회까지 펼쳐졌다.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에 크고 작은 선물을 자주 보내겠다”며 추가 도발을 예고했다. 지난 2주 동안 공개활동을 멈춘 채 여름 휴양을 겸한 장고에 들어갔다는 게 정보당국의 판단이다.
북한 당국의 고민스러운 모습도 드러난다. 우리 정부가 지난 17일 군사당국회담과 적십자회담을 동시 제안했지만 열흘 가깝도록 아무런 답이 없다. 이달 말 평양에서 개최하려던 ‘대동강맥주 축전’을 전격 취소한 것을 두고도 이상징후일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핵과 미사일을 앞세워 기세를 높여 온 것과 다른 분위기란 점에서다.
이런 국면 속에서 남한의 TV 드라마와 영화·가요는 북한 외교무대의 심장부인 베이징 공관을 넘어 평양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판 한류(韓流)는 김정은 체제의 주축으로 간주돼 온 엘리트와 핵심 계층까지 뒤흔들고 있는 기세다.
08.02 100년 왕국 꿈꾸는 김정은 … 우상화엔 빨간불 켜졌다
평양은 요즘 축제 분위기다. ‘대륙간탄도로케트’의 발사 성공을 자축하는 잔치로 흥청대고, 밤에는 화려한 불꽃이 대동강을 수놓는다. 관영 선전매체는 김정은 찬양에 바쁘다. “비범한 군사적 예지와 담대한 배짱, 영활한 지략으로 세인의 예상을 뒤엎으며…”를 외치는 아나운서는 숨가쁘다. ‘김정은 동지’를 찬양하는 수식어만 모두 59글자에 이를 정도다. 그런 떠들썩한 분위기 뒤편으로 감지되는 김정은 체제의 고민을 짚어 본다.
5년 전 연설에 등장한 ‘최후승리’
김정은 시대 통치 키워드로 자리
미사일 성공 불구 우상화엔 제동
생모 고용희 실체 주민 알까 쉬쉬
‘3대 세습’ 수레바퀴 더는 못돌려
민심이반이 아킬레스건 될 수도
평양 권력 내부에서 요즘 가장 뜨거운 이슈는 ‘최후승리’다. 지난달 28일 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시험발사 소식을 전한 관영 조선중앙통신 보도는 “반제·반미 대결전에서 반드시 최후승리를 이룩할 것”이란 다짐으로 끝났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참석한 축하연회에서도 이 말은 핵심 화두가 됐다. 31일자 노동신문에 실린 논객 방성화의 정론(政論) ‘조선의 힘 세계를 뒤흔든다’는 “최후승리의 그날까지 계속 힘차게 앞으로!”란 글귀로 마쳤다. 마치 김정은 체제 정책노선의 최종 지향점을 알리는 분위기다.
이 표현이 처음 등장한 건 2012년 4월 김정은의 연설에서다. 할아버지인 김일성(1994년 사망) 출생 100주년을 맞아 김정은은 자신의 첫 공개연설을 했다. 그는 “다시는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공언한 이 연설의 끝을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앞으로!”란 구절로 맺었다. 당시 28세이던 청년 지도자는 연설대에서 몸을 좌우로 흔들며 불안한 모습을 드러냈다.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미숙함 때문에 ‘최후승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대북 관측통들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
한동안 잊혔던 이 키워드가 5년여 만에 주목받게 된 건 김정은의 핵·미사일 도박이 마지막 주로(走路)에 접어든 때문이다. 김정은은 후계자 시절이던 2009년 5월 함북 풍계리 서쪽 갱도에서 감행된 2차 핵실험을 주도했다. 집권 이듬해인 2013년 2월과 지난해 1월, 9월 추가 핵실험을 벌였다. 미사일 쪽으로 눈길을 돌린 그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거쳐 마침내 ICBM급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아버지인 김정일의 유훈(遺訓)으로 여겨지는 ‘선군(先軍)노선’에 집착한 결과다.
지난달 4일 ‘화성-14형’을 1차 시험할 때만 해도 김정은은 “미국에 크고 작은 선물을 주겠다”며 추가발사를 예고했다. 하지만 2주일 뒤 2차 시험을 마친 뒤에는 “이 정도면 미국이 감히 우리를 건드리면 무사할 수 없으리란 걸 제대로 이해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과시했다. 미사일 도발 드라이브는 이쯤에서 일단 숨고르기를 하겠다는 기류가 감지된다. “미 본토 전역이 우리 사정권 안에 있다는 게 뚜렷이 입증됐다”는 그의 주장에는 핵무기와 그 투발수단인 미사일의 결합이 완성단계에 이르렀다는 메시지가 읽혀진다. 말 그대로 기세등등이다.
물론 일부 과대망상 수준의 언급은 김정은의 현실 인지 능력에 의문을 갖게 한다. 김정은은 “미국놈들이 핵 방망이를 휘두른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보여준 핵전쟁 무력으로 톡톡히 버릇을 가르쳐줄 것”이라고 말했다. 잇따른 ICBM급 발사 성공에 한껏 고무된 여파다. 그렇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인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압박 전략은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을 앞둔 형국이다. 세계적 외교석학인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북핵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북한 정권 붕괴 이후 상황에 대해 미국과 중국이 사전에 합의하면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고 나섰다. 핵과 미사일을 거머쥔 채 ‘게임 체인저’로 부상한 김정은을 제거하는, 이른바 ‘레짐 체인지’를 미·중 간에 공론화하자는 아이디어다.
김정은 제거에 초점을 맞춘 대북공세는 엘리트층의 체제이반을 가속화할 공산이 크다. 이미 북한 핵심 권력층 가운데 적지 않은 숫자가 평양을 등졌다. 이른바 ‘빨치산’ 세대로 불린 북한 정권 수립 일등공신 그룹의 이탈도 속속 이어진다. 외교관과 무역대표부 등에서 일하며 해외체류 특권을 누리던 인사들이 주축이다. 2013년 말 벌어진 고모부 장성택 처형 사태는 파워엘리트들에게 “여차하면 우리도 하루아침에 몰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부추겼다. 고위 탈북인사는 “김정은이 화성호를 아무리 쏘아올린다 해도 북한 핵심층들은 결코 내켜 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축하행사에 마지못해 나서 박수치고 환호하는 쇼를 하지만 결국 “여차하면 나도 가족과 함께 모아둔 달러를 챙겨 탈북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얘기다.
집권 6년차인 김정은이 자신과 가계의 우상화 작업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이달 개최 예정인 이른바 ‘백두산위인칭송대회’도 빨간불이 켜졌다. 북한은 이 행사를 2017년 8월 백두산과 평양에서 진행한다고 지난해 10월 관영매체를 통해 밝혔다. 소위 ‘백두산 3대 장군’으로 불리는 김일성과 김정숙 부부, 그의 아들인 김정일 등 세 사람을 우상화하는 ‘1호행사’다. 해외 친북단체를 내세웠지만 김정숙 북한 대외문화연락위원장이 행사준비위원장을 맡는 등 올 초까지 채비를 해 왔다. 하지만 슬그머니 꼬리를 감췄고 8월 들어서도 기척이 없다. 대북정보 관계자는 “행사가 취소됐거나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북한은 2012년 김정은 생일(1월 8일)에 맞춰 김정은의 어린 시절과 생모 고용희의 모습을 TV로 방영했다. 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2월 16일)을 사흘 앞두고는 고용희를 ‘평양의 어머니’로 찬양하는 시를 노동신문에 싣기도 했다. 이후 아무런 후속 움직임이 없자 고용희가 북송 재일교포 출신이란 점이 알려질 걸 우려한 때문이란 해석이 나왔다. 특히 고용희의 아버지 고경택이 일제시대 제주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육군성 소속 히로타군복공장의 간부로 일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칫 김정은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김정은은 북한 체제가 ‘사상강국’에서 ‘군사강국’으로 전변됐다고 주장한다. 이제 자신이 주창한 ‘경제·핵 병진노선’으로 경제강국까지 꿈꾸겠다는 포부를 내비친다. 조선노동당 집권 72년에 자신의 향후 집권 전망을 더해 100년 왕국을 꿈꿀 기세다. 하지만 3대세습으로 점철된 역사의 수레바퀴는 더 이상 거꾸로 돌지 못할 듯하다. 김정은의 발목을 잡는 건 국제사회의 대북압박만이 아니다. 제동 걸린 우상화에다 엘리트의 체제이반, 민심 동요까지 겹친 삼각파도가 평양 정권을 뒤흔들고 있다. 진짜 위기는 ‘미제와 남조선’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
08.09 “용순 아바이만 있었어도” … 북 대표단 탄식의 속뜻 읽어야
첫 스텝이 꼬였다고 생각될 땐 발 빠른 판단과 결단력이 생명이다. 고집을 부리며 질질 끌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개인사나 사회적 관계는 물론 정치나 국제 관계도 마찬가지다. 오늘로 출범 92일째를 맞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당국 대화 전략이 엉망인 게 드러났고, 북한을 보는 인식과 대북 접근 방식은 구태의 답습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같은 현안 대처도 미덥지 못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평양 분위기 ‘천기누설’ 했나
서울 체류 장웅 북한 IOC 위원
북 냉담에도 대화 재개에 미련
잇단 도발에 냉온탕 대북정책
‘압박과 대화’ 병행은 어정쩡
제재 이행 집중할 새 틀 짜야
6월 말 서울을 방문한 북한의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남북 관계와 관련한 북한 내부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언급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소식통은 8일 “장웅 위원이 당국 대화 재개와 남북 스포츠 교류 행사 등을 촉구한 우리 측 인사들에게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노동당의 대남 라인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에게 남북 대화와 관련한 소통을 하기 힘든 상황임을 드러낸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북한 태권도 시범단을 이끌고 방한한 장웅은 공식 행사 외에 만찬과 참관 행사를 통해 남측 당국자와 민간 인사들을 접촉했다.
장웅 위원은 이 과정에서 “양건 동지나 용순 아바이가 살아 있었다면 얘기가 통했을 텐데…”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는 게 정부 당국의 파악 내용이다. 언뜻 보면 노동당 대남정책을 총괄한 베테랑 김용순·김양건 두 통일전선부장의 부재(不在)를 아쉬워하는 듯한 말투다. 하지만 이를 두고 김정은 정권에서 대남 비둘기파의 입지가 좁아진 데 따른 불만을 은연중에 토로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실세 통일전선부장이던 김용순과 김양건이 사라진 뒤 김정은에게 직접 조언할 측근이 없어진 걸 염두에 둔 발언이란 얘기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노동당 국제부를 거쳐 1992년 말 대남 담당 비서에 오른 김용순(2003년 사망)은 북한 대남통 사이에 ‘용순 아바이’란 애칭으로 불린다. 그는 98년 6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 당시 판문점 통과를 반대하던 군부를 단번에 제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그해 11월 금강산 관광 시작 때도 “군사 요충지를 남조선 관광객과 정탐꾼에게 내줄 수 없다”는 군부 주장을 꺾었다. 통일부 당국자는 “김용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직접 설득한 결과라는 게 북측 인사들의 귀띔”이라고 설명했다. 김용순과 마찬가지로 당 국제부장을 거쳐 통일전선부장에 임명된 김양건 통일전선 비서(남측에선 ‘대남담당 비서’로 통칭)는 2014년 10월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차 남한을 방문했다. 그는 당시 박근혜 정부의 대북 메시지를 김정은에게 직접 전하는 등 실세 대화파로 간주됐다. 김양건이 2015년 말 교통사고로 급거하자 강경파에 의한 살해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장웅의 토로대로 북한은 태권도 시범단의 방남(訪南)을 스포츠 차원에 국한했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 대표단에 대남 요원인 통전부 소속은 없었고, 공안기관인 국가보위성 멤버 등으로 채워졌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장웅 일행을 경색된 남북 관계의 돌파구를 여는 지렛대로 삼으려고 무리수를 뒀다. 대통령은 북한 대표단이 함께한 전북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장까지 달려가 강원도 평창 겨울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이 참여하는 문제를 공개 제안했다. VIP석에 있던 장웅의 이름을 직접 호명하면서 관심과 협조를 부탁해 부담을 떠안겼다. 평양 귀환에 앞선 외신 인터뷰에서 장웅이 “북남 관계를 체육으로서 푼다는 건 천진난만하기 짝이 없다. 기대가 지나치다”고 한 건 불쾌감의 표시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그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면 된다”고 평가절하했다. 그 이후 북한의 행로는 말 그대로 나타났다.
정부 당국은 장웅의 비공개 발언을 함구에 부쳤다. 그러고는 지난달 17일 북한에 군사당국회담과 적십자회담을 동시에 제안했다. 그것도 회담 날짜와 장소를 못 박는 방식을 취했다. 회신 방법까지 담았다. 남북회담에 오래 관여한 통일부 관계자는 “끊겼던 당국 대화를 복원하려는 경우에는 대개 ‘시기와 장소는 귀측이 편리하게 정해 알려 달라’고 하는 게 호응 가능성을 높이는 지혜”라고 꼬집었다. 마치 결혼 상견례를 앞두고 예비 사돈 측에 ‘언제 어디로 나오라’고 통보하는 일방적 태도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의 대화 드라이브에 잇따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도발로 응수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을 ‘적(敵)’으로 지칭하며 응징을 주문했다. 북한 전역을 타격할 지대지 탄도미사일 현무-2C 시험발사를 직접 참관하기도 했다. 보수적 대북정책을 추진한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없던 일이다. 다른 한편으론 우리 민간단체들이 북한 민주화와 외부 정보 유입을 위해 펼쳐온 대북 전단 보내기 운동을 중단시키는 방안을 강구하라는 지시를 내린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북한이 중단을 요구하자 ‘고압가스관리법 위반’이란 해괴한 법리로 제지한 전철을 되밟으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통일부 등 대북 부처는 북한 도발 응징을 외치면서도 ‘대화 병행’을 빼놓지 않고 챙긴다. 대통령과 청와대의 속내를 누구보다 잘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대북 억제의 집중력은 떨어지고, 국민과 국제사회에 속마음을 자꾸 들키고 만다. 결과는 안팎에서 밀어닥치는 신뢰와 진정성의 위기다.
북한은 군사·적십자회담 제안에 24일째 묵묵부답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북한이 명확한 거부는 안 하고 있지 않느냐’면서 태연한 척한다. 국방부는 군사회담 날짜로 제시한 7월 21일이 지나자 7·27 휴전협정일까지 지켜보자고 하다가 이젠 말을 잊었다. 6·15 선언 남북 공동행사를 북한이 걷어차자 8·15 행사를 기대했지만 또 무산됐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2차 남북 정상회담 합의물인 10·4 선언 10주년을 기다리는 눈치다.
평양의 기별을 학수고대하는 사이 유엔과 국제사회는 김정은의 버릇을 고치겠다며 제재의 고삐를 더욱 죄고 든다. 후견국인 중국과 러시아도 만장일치 의결에 팔을 걷어붙였다. ‘압박과 대화의 병행’이란 우리 정부의 어정쩡한 노선은 끼어들 틈조차 없어 보인다.
날은 무덥지만 그제 입추가 지났다. 갈팡질팡하다가는 집토끼도, 산토끼도 다 잃을 판이다. 동네방네 인심을 잃는 것도 시간문제다. 대통령과 대북 참모들은 이제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취임 석 달여를 꼼꼼히 복기해 볼 때다. 그 속에 어긋난 나침반이 있고, 새로운 이정표가 있다. 아무리 기다려도 죽은 ‘용순 아바이’는 오지 않는다.
08.16 김정은의 첫 ‘굴욕’ … 2015년 여름을 떠올린 이유
평양은 요즘 전쟁 전야다. 김일성광장 10만 군중집회와 반미시위, 입대 탄원이 이어진다. 마치 미국과 핵전쟁을 불사한 끝장 대결이라도 벌일 판이다. 조선노동당 위원장 김정은의 속내는 복잡해 보인다. 괌(Guam)을 타격하겠다며 군부를 채근해 놓았지만 막상 엄두가 나지 않는 형국이다. 그렇다고 꼬리를 내릴 수도 없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도발 공세의 패턴을 분석해 앞으로의 행보를 전망해 본다.
‘괌 포위타격’ 공언한 김정은
도발 실행엔 발 빼며 숨고르기
목함지뢰 땐 ‘48시간’ 최후통첩
남한 움쩍 않자 “남북대화” 제의
“남조선 초토화” 북 위협 지속
대화집착은 북 오판 부를 수도
매사에 시한을 너무 구체적으로 못 박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자칫 부메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지금 그런 국면을 맞았다. 지난 8일 미국령 괌도를 타격하겠다는 전략군사령부 발표를 내놓을 때만 해도 기세등등했다. 이달 중순까지
작전계획을 완료하겠다는 공표가 이어지자 한반도의 긴장 수위는 한껏 올라갔다.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을 내세워 섬 인근 수역을 포위하는 방식으로 공격하겠다는 구체적인 언급까지 이어졌다. 김정은이 전략군사령부를 방문(14일)해 타격계획을 보고받는 장면이 어제자 노동신문을 통해 공개됐다. 그는 “포위사격 준비가 대단히 만족스럽다”고 환하게 웃었다. 보름 만의 공개석상 등장은 그가 이 사안에 얼마나 올인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김정은의 말에서 묘한 뉘앙스 변화가 감지된다. 당장 일을 낼 것처럼 전의에 불타던 그가 “미국 놈들의 행태를 좀 더 지켜볼 것”이라며 주춤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북한은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언급에 발끈하던 분위기에서 한발 빼는 모양새다. 미국의 대북압박을 거론하며 “지금 상황이 어느 쪽에 불리한지 명석한 두뇌로 득실관계를 따져보는 게 좋을 것”이란 말도 던졌다. 미국에 공을 넘기며 스스로 호흡조절에 들어간 듯한 태도다. 자신들이 제시한 시한에 발목이 잡히는 걸 피해보겠다는 의도가 드러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런 상황은 꼭 2년 전 목함지뢰 도발 때의 북한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북한군이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 매설한 지뢰를 밟아 한국군 부사관 2명이 다리가 절단되는 등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우리 군 당국이 북한에 대한 응징 차원으로 전방 지역에서 대북 방송을 전개하자 북한은 포격 도발로 맞섰다. 북한군 총참모부는 같은 달 20일 “48시간 내에 심리전 방송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군사행동에 들어갈 것”이라고 위협했다. 하지만 시한이 다가오면서 다급해진 건 북한이었다. 추가 도발은 한·미 연합 전력의 대북 응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함부로 선택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시한을 넘기고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못하면 북한 스스로 스타일을 구길 수 있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결국 북한이 먼저 나섰다.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은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 앞으로 대남통지문을 보내 판문점 회담을 제안했다. 최후통첩 시한을 불과 두 시간 남긴 시점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호락호락하게 넘기지 않았다. 즉각 대북 회신을 통해 “김양건보다는 북한군을 대표하는 황병서가 직접 나오라”고 수정 제의했다. 북한은 이를 받아들였고 22일부터 남북 고위 회담이 열렸다. 이틀간의 협상을 통해 북한은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이 부상당한 데 대해 유감을 표한다” 등 6개 항의 합의문에 서명해야 했다. 대남도발에 대해 좀체 사과하지 않아온 북한 군부엔 사실상 첫 굴욕이었다.
이 과정에서 빛을 발한 건 북한의 도발을 용납할 수 없다는 국민여론의 결집이었다. 젊은 군 장병들의 희생에 가장 분개한 건 또래 청년세대였다. 각급 군부대 병사들은 전역을 연기하면서까지 대북 비상태세에 나섰다. 남북 정상회담 때 막후 역할을 한 야당 실세 인사도 김정은 정권의 도발적 행태를 비판했다. 국회 결의 등 여야가 초당적 대처에 나선 것도 의미 있는 대목이다. 사고 당시 영상이 생생히 공개됐는데도 “증거 영상을 제시하라”는 북한의 뻔뻔한 태도에 국민적 공분이 일었다.
군 당국의 단호한 대처도 북한의 추가 도발을 억제하고 ‘유감’ 표명을 이끌어 내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정은이 준(準)전시사태까지 선포하며 벼랑끝 전술을 썼지만 먹히지 않았다. 일각에서 대북특사 파견 같은 주장도 있었지만 곧 사그라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전투복 차림으로 3군 사령부를 방문해 “추가 도발 시 철저하고 단호하게 대응하라”며 군에 힘을 실어줬다. 당시 상황에 관여했던 정부 당국자는 “국민여론과 정부·군 당국의 일치된 대북압박 여론에 북한이 달리 발뺌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귀띔했다.
현재 북한은 괌 타격을 위한 준비를 일단 마친 상태로 볼 수 있다. 지난 9일 김락겸 전략군사령관은 “8월 중순까지 괌 포위사격 방안을 최종 완성해 김정은에게 보고하겠다”고 밝혔다. 예정대로 14일 보고 절차가 진행됐다. 북한 측 설명을 토대로 하면 이젠 발사대기 태세에서 명령을 기다리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북한은 괌 ‘포위사격’을 주민들에게도 공개하겠다는 구상까지 밝힌 상태다.
문제는 오는 21일 시작하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 합동군사연습이다. 전폭기와 항모 등 미국의 전략자산을 포함한 한·미 연합전력이 한반도에 포진하는 상황에서 북한의 운신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2년 전 목함지뢰 도발 당시에도 북한 군부는 이 군사연습 일정 때문에 대남도발의 수위를 더 높일 수 없었다.
이번 사태의 경우 김정은은 이 같은 스케줄을 고려해 ‘8월 중순’을 시한으로 괌 타격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 발사 준비를 마친 상황을 유지하면서 한·미 군사연습을 지켜본 뒤 출구를 모색하겠다는 계산이다. 당장 북·미 대화까지 가기 어렵더라도 일촉즉발의 충돌에서 벗어나는 시점을 노릴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과의 군사 대결이 현실적으로 녹록지 않다는 판단에서 이번 일을 내부 결속이나 리더십 다지기에 활용할 공산도 크다. 미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력에 놀라 대화로 돌아섰다거나 김정은의 주동적 조치로 한반도에서의 전쟁 위기를 모면했다는 식의 선전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김정은이 괌 타격 계획을 보고받은 소식을 전하며 “남조선과 일본, 태평양 작전지대와 미국 본토의 타격 대상물들을 섬멸적인 초강력 타격으로 초토화할 것”이란 위협을 쏟아냈다. 핵과 미사일의 첫 타격 대상으로 서울을 꼽은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광복 72주년 경축사를 통해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은 북한 핵과 미사일”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심각성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대화를 통한 해결에 치중하며 군사회담까지 언급한 것이 적절했는지 의문이다. 2년 전과 많이 달라진 대북접근법이 북한에 잘못된 사인을 주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에서다.
08.23 북한발 위기의 뿌리엔 김정은판 ‘남조선 콤플렉스’
한반도 정세에 먹구름을 몰고 온 북한의 도발 기류가 심상치 않다. 괌 타격과 ‘서울 불바다’ 위협을 쏟아내더니 어제는 평양 군부가 ‘징벌의 불소나기’ 운운했다.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분풀이다. 김정은 정권이 쏟아내는 대남·대미 비난을 꼼꼼히 분석해 보면 격앙된 감정과 조롱, 과대망상이 두드러진다. 김일성·김정일 때의 치밀한 통일전술이나 대미전략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김정은의 공개 발언과 자료 등을 통해 그 심리 세계를 파헤쳐 본다.
대남 패배감에 호전적 발언
청와대 타격 훈련 참관도
‘어리다고 무시당해’ 생각
장성택 처형 등 극단 통치
벼랑 끝에서 핵·미사일 도박
파국보다 대전환 선택하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한 건 10대 시절이다. 당시 공립학교 같은 반에 ‘성미’라는 또래 여학생이 있었다. ‘박운’이란 가명을 쓴 김정은은 유일한 한국인 친구인 이 여학생에게 관심이 있었다. 어느 날 학교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던 성미의 뒤편으로 김정은이 다가왔다. 한국말로 “내가 밀어줄까”라고 말하자 성미는 “아니!”라고 답했다. 김정은은 “괜찮아. 내가 밀어줄게”라며 굽히지 않았다. 그녀가 “하지 말라고!”라며 저리 가라 소리치자 김정은은 분노를 삭이며 고개를 숙인 채 돌아섰다고 한다. 부시 2기 정부 때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국장을 지낸 빅터 차(Victor Cha)는 성미라는 여학생을 면담해 접한 사연을 저서 『The Impossible State』(불가사의한 국가, 2012)에 담았다. 성미의 가족은 김정은에게 부모의 존재를 묻자 “우리 엄마, 아빠 여기 없어”라며 심한 북한 억양으로 퉁명스럽게 답한 것으로 기억했다. 존칭을 쓰지 않는 그의 말투 때문에 ‘나쁜 아이’로 보게 됐다는 말도 곁들였다.
이런 전언은 성장기 김정은의 심성을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에피소드다. 평양으로 돌아간 이후 행적은 김정일 패밀리의 요리사였다고 주장하는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70)를 통해 일부 알려졌다. 형 정철과 팀 대항 농구경기를 즐겼는데 게임이 끝나면 승패 요인을 분석하는 모임을 하는 등 치밀한 승부 기질을 보였다는 얘기다. 팀원들과 그저 ‘수고했다’는 인사만 나누고 헤어지는 형과 달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 김정은의 생각을 엿볼 말과 행동의 단서는 한동안 흘러나오지 않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로 막내아들 김정은을 낙점하면서 더욱 베일에 싸여버렸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공개 발언을 통해 그의 진면목을 드러낸 건 집권 첫해인 2012년 4월이다. 할아버지 김일성(1994년 사망) 출생 100주년 공개 연설에서 그는 “다시는 우리 인민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는 인상 깊은 ‘약속’을 했다. 그때만 해도 민생 챙기기 노선으로의 전환이나 전향적 대남·대미 정책에 대한 기대가 안팎에서 나왔다. 서구 유학파인 김정은이 할아버지·아버지의 노선을 답습하지는 않을 것이란 측면에서다.
그러나 김정은이 선대(先代) 지도자 뺨치는 호전적 언사로 실망을 주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이듬해 3월 서해 최전방 섬 방어대를 시찰하며 “적진을 아예 벌초해 버리라”는 등 거친 언사를 토했다. “항복 문서에 도장 찍을 놈도 없도록 수장(水葬)시키라”는 섬뜩한 말도 나왔다. 지난해 말 한국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도 막말의 극단을 보여줬다. 김정은은 군부대를 방문해 “남조선 것들 쓸어버려라”고 했다. 과거 ‘남조선 집권 세력’ 또는 ‘군부 호전광’ 등으로 도발 대상을 제한하던 데서 벗어나 아예 대한민국을 뭉뚱그려 멸절(滅絕)의 대상으로 지목한 것이다. 평양 근교에 청와대 모형 건물을 짓고 북한군 대남 특수부대의 타격훈련을 벌인 걸 두고는 “대남 열패감에 치기 어린 장면을 연출한 것”이란 우리 정보당국의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김일성 시기인 1968년 미수에 그쳤던 청와대 습격(1·21 사태)의 추억 더듬기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김정은의 머리를 사로잡고 있는 대미인식은 한마디로 ‘피포위 의식(siege mentality)’으로 압축된다.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미 제국주의의 대북 고립 압살 책동’으로 북한 체제가 지난 70년간 정치·경제적으로 고립과 궁핍을 면키 어렵게 됐다는 주장이다. 여기에는 북한의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나 김일성 유일 지배의 폐해는 낄 틈이 없다. 미국의 위협을 과장함으로써 책임을 떠넘기려는 의도다. 집권 5년 넘게 핵·미사일 도발에 올인하며 내부 성장동력 대부분을 갉아먹은 김정은 통치의 정당성만이 찬양된다. “미 본토도 손아귀에 넣게 됐다”는 김정은의 주장이 국제사회에서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다.
김정은의 심리를 지배하는 또 하나의 축은 통치 리더십과 관련된다. 그는 27세이던 2011년 말 김정일 사망으로 권좌에 올랐다. 후계자 시절 ‘청년대장’으로 불리던 김정은의 어린 나이는 ‘미숙한 지도자’란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김일성의 젊은 시절을 차용한 스타일도 시도했다. 노동당과 군부 고위직을 롤러코스터식 인사와 숙청으로 주물러 봤지만 약발은 강하지 않았다. 급기야 2013년 말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앞에서는 복종하는 척하며 뱃속으로 배신을 꿈꾼다는 면종복배(面從腹背)가 사형 판결문에 등장한 건 ‘어리다고 깔보지 말라’는 김정은의 경고였다.
요즘 관영 선전매체가 드러내는 김정은의 이미지는 한껏 부풀려져 있다. 마치 국제 정세를 쥐락펴락하는 형국으로 선전된다. 이런 프레임에 갇혀 평양 권력과 최고지도자를 평가하는 착시현상도 일각에서 나타난다. 김정은이 한·미 대북정책의 채점자인 양 여기는 저명한 학자·전문가들도 일부 있다.
하지만 김정은의 심리를 꿰뚫어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기에는 대남 열패감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있다. 밤마다 한국의 포털 사이트를 뒤져 보며 남한 사회의 발전상에 좌절하는 장면이다. 반미와 자주·주체의 기치는 몰락의 길을 걷는데, 자신들이 ‘미제 식민지’라 혐오하는 남한은 경제발전과 번영을 일궈 가는 패러독스는 절망감 자체다. “남조선이 발편잠을 못 자게 할 것”이란 김정은의 말에 증오가 가득한 이유다. 집권 6년 차에 접어들고도 해외 방문은커녕 시진핑·푸틴과의 정상회담조차 못한 고립감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조카의 손에 불귀의 객이 된 장성택의 유령이 한밤 관저를 맴도는 건 악몽이다. 측근의 배반을 두려워하는 김정은에게 불면의 밤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20여 년 전 스위스의 어느 놀이터에서 남조선 소녀의 그네를 밀쳐버린 김정은은 지금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됐다. 벼랑 끝에 선 그는 핵과 미사일을 앞세워 세계를 겁박하고 있다. 33세 청년 지도자가 다다르게 될 좌절의 결말이 파국보다는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이길 기대해 본다.
08.30 국정원장 서훈의 칼끝 … ‘좌우 적폐’ 모두 청산해야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청사가 술렁이고 있다. 북한 핵이나 미사일 때문이 아니다. 이른바 ‘적폐 청산’ 칼날을 빼든 서훈(63) 원장의 개혁 드라이브가 그 진앙이다.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 시절 문제점을 집중 파헤치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볼멘소리도 만만치 않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의 국가 정보기관도 제 역할을 못한 건 마찬가지란 얘기다. ‘좌(左) 적폐’도 손보자는 주장이다. 첫단추 꿰기부터 편향 논란에 휩싸인 국정원 적폐 청산의 문제점을 들여다보고 성공 조건을 따져본다.
적폐 청산 리스트 13개 항목은
‘보수 때리기’에 집중된 분위기
대북 뒷돈 거래와 눈치보기도
국가 정보기관의 참담한 민낯
정권 입맛 따른 편향된 개혁은
또 다른 적폐 만들 패착될 수도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은 설립 56년 역사에 가장 굴욕적인 대북공작 실패를 경험한다. 핵심 정보 당국자들 사이에 아직도 악몽으로 기억되는 북한 공작원 서울 납치소동이다. 새 정부 출범 5개월이 지난 1998년 7월 국정원은 중국 선양(瀋陽)에서 대남 정보 요원 최인수(당시 43세)를 납치한다. 대선 과정에서의 북풍(北風) 사건을 조사한다는 생각에서다. 안가에서 철야 신문을 당하던 최씨는 감시 소홀을 틈타 맨발로 탈출했다. 이 사건으로 담당자들이 줄줄이 옷을 벗었고, 해외공작 전담 6국은 아예 해체됐다. 최씨를 보호하던 기관으로부터 신병을 넘겨받은 국정원은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돌아가도록 조치했다. 하지만 최씨는 북한 당국에 의해 ‘간첩’ 혐의로 처형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보다 넉 달 앞서 중국 단둥(丹東)에서는 사업가로 위장 활동하던 우리 대북 정보요원이 북한으로 납치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니셜을 따 정보기관 비밀파일에 ‘CKW’ 사건으로 올라 있는 사안이다. 평양으로 끌려간 정모 중령은 고문과 회유에 시달렸고, 우리 대북정보망 등 기밀을 상당 부분 누출하지 않을 수 없었다. 6개월 후 북한이 돌려보낸 정 중령은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였다. 동료들을 놀라게 한 건 북한이 정 중령에게 대북공작 미션(이중간첩)을 떠안긴 대목이었다. 하지만 북한과의 화해를 모색하던 국정원은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당시 사정에 밝은 전직 대북요원은 “국군정보사령부의 대북공작을 총괄 지휘하던 국정원은 사건을 은폐하는 데 급급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대한민국 국가 정보기관으로서의 국정원 위상을 바닥까지 실추시킨 건 대북 비밀송금 파문이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첫 남북 정상회담 개최 과정에서 북한 측에 4억5000만 달러(약 5067억원)의 천문학적인 돈을 몰래 보냈는데, 국정원이 핵심 역할을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은 자금의 불법 환전소 역할을 했고, 정보요원 개인의 계좌까지 동원했다. 대북송금 특검에서 국정원 고위 간부는 “북측이 군사비로 전용할 우려가 있다는 문제를 알고 있었다”는 증언을 해 국민에게 충격을 안겼다. 그런데도 국정원은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국민을 기만하거나 언론에 책임을 돌렸다.
수집된 대북정보를 바탕으로 국가안보의 알람 역할을 해야 할 국정원의 파행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내내 줄을 이었다. 북한이 현대 측에 각종 차량을 보내 달라고 요청한 뒤 대남공작원 훈련에 쓴 사실을 포착하고도 쉬쉬했다. 대북 반출 금지 품목인 컴퓨터와 LCD 모니터를 북한이 요청하자 “중국에서 사서 쓰라”며 40만 달러를 우리 당국자가 갖다 준 적도 있다.
남측이 지원한 식량을 군사용으로 전용하기 위해 북한이 군용트럭으로 실어 부대로 반입하는 장면을 포착하고도 눈을 감았다. 정상회담 직후인 2000년부터 노무현 정부 말인 2007년까지 북한에 보낸 식량은 쌀 240만t을 포함해 7억2000만 달러어치였다. 모두 국민 혈세로 마련됐다. 당시 청와대와 국정원·통일부의 고위 당국자들은 “차관 형태로 공여하는 것이니 북한이 반드시 갚을 것”이라 호언했다. 그렇지만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청구서 수령조차 거부하며 핵과 미사일로 ‘서울 불바다’를 위협하고 있다. 당시 국정원장이나 통일부 장관 등 어느 누구도 자신의 책임이라며 고개 숙이거나 김정은에게 “김정일 집권 시기의 차관을 당신이 갚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분명한 건 서훈 국정원장이 누구보다 이런 상황을 잘 안다는 점이다. 국정원에서 28년간 잔뼈가 굵은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핵심 북한 정보를 다뤘고, 크고 작은 대북접촉에 빠지지 않았다. 현재로선 서 원장이 이런 문제보다 보수정부 시절 국정원 관련 이슈에 코드를 맞추는 분위기다. 국정원 ‘적폐청산 TF(태스크포스)’가 확정한 13개 대상은 ▶남북 정상회담 북방한계선(NLL) 대화록 공개 ▶국정원 댓글 ▶문화계 블랙리스트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세월호 참사 관련 의혹 ▶보수단체 지원 등에 집중됐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수뢰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을 당시 “(고가의 시계를) 밖에 버렸다”고 진술한 내용이 ‘논두렁에 버렸다’로 드라마틱하게 각색된 대목에 국정원이 개입했는지 들여다본다고 한다.
국가 정보기관의 비행을 들춰 바로잡자는 데 제동을 걸기는 어렵다. 비공개·익명 활동이 가능한 특권을 활용해 음습한 정치공작과 조작·비리를 저질렀다면 응당 처벌이 따라야 한다. 하지만 특정 정부의 입맛에 따라 ‘적폐’ 여부가 규정되고, 편향된 조사와 공정하지 못한 책임 따지기가 벌어진다면 국민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상명하복의 미덕이 여전한 국정원 요원들에게 정권교체 때마다 ‘좌향좌, 우향우’를 강요해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폐 청산이 정작 또 다른 적폐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도 우려된다. 이번에 국정원 1급 간부(실·국장과 주요 지부장) 30여 명이 모두 물갈이됐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발탁된 이른바 ‘적폐 관련 인사’들은 철저히 배제됐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 초기 김대중·노무현 정부 세력으로 몰려 하루아침에 강원도 동해안의 사무소로 황망하게 짐을 싸야 했던 어느 국정원 간부의 모습이 떠오른다. 적폐 청산의 도돌이표만 또 하나 찍고 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어느 한쪽으로 과도하게 밀어붙이기식 개혁은 곤란하다. 국정원 출신 한 실세 여당 의원은 “개혁에 저항하면 참혹한 결과를 맞을 것”이라며 “방해 세력은 선배든 후배든 좌시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서슬 퍼런 권력이 머리를 쭈뼛하게 만든다.
서훈 원장은 지난 6월 1일 취임사에서 “역사와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며 국정원 개혁을 향한 결기를 내비쳤다. 꼭 하나 조언을 한다면 부디 진영논리에 따른 적폐청산은 피했으면 한다. 물론 자신이 관여했던 사안을 ‘적폐’로 꼽아 척결 리스트에 올리는 건 고통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보수정부도 손대지 못한 청산작업을 서훈 체제의 국정원이 결자해지(結者解之)한다면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서 원장이 이제부터 두 눈을 부릅떠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