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진단] 2
◆ 고수석 편2 [Possible 한반도] 2017.09.26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1) '장사꾼' 트럼프의 절묘한 계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21일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 명의로 성명을 발표했다. 국무위원회는 2016년 6월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4차 회의에서 김정일 시대의 국가 최고권력기관인 국방위원회를 확대·개편한 조직이다. 김정은 시대의 최고권력기관인 셈이다. 김정은은 노동당 위원장·국무위원장·최고사령관을 겸하고 있다.
김정은 성명에서 트럼프의 '완전파괴' 언급에
'부담'과 '위압감' 을 느끼는 표현 많아
사족이 많고 장황하게 설명해 두려움을 간접 표현
트럼프는 김정은과 '치킨게임'에서 1석3조 효과
중국 압박· 지지율 상승· 무기 판매 등
김정은과는 '치킨게임'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판단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21일 국무위원회 위원장 명의로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김정은이 발표한 성명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북한에 대해 ‘완전파괴’라고 언급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김정은은 성명에서 트럼프에게 대놓고 ‘불망나니’ ‘늙다리 미치광이’ ‘깡패’ 등으로 퍼부었다. 김정은이 이번처럼 자신의 이름을 걸고 발표한 성명은 과거 김일성·김정일 시대는 없었다. 김씨 3부자는 새해 첫날 신년사·공동사설 형식으로 발표해 왔다.
김정은이 왜 직접 나섰을까? 바꿔 질문하면 김정은이 직접 나설 정도였는가다. 김정은은 트럼프의 ‘완전파괴’의 말에 극도의 부담과 위압감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번 성명을 보면 사족이 많고 장황하게 설명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어느 정도 짐작은 하였지만’ ‘트럼프에게 권고하건대’ 등의 표현은 과거 김정은의 말에서 찾아볼 수 없는 표현들이다. 이런 표현들은 메시지의 파괴력을 떨어뜨린다.
둘째, 조목조목 설명하고 설득하려고 했다. 조목조목 설명하고 설득하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두려움의 간접적인 표현 방식이다. 그동안 북한 지도자들은 처해있는 상황을 조목조목 설명하지 않았다.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식이었다. 이번 성명에서 김정은은 “세계 최대의 공식외교 무대인 만큼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가 이전처럼 자기 사무실에서 즉흥적으로 아무 말이나 내뱉던 것과는 다소 구별되는 틀에 박힌 준비된 발언이나 할 것으로 예상했다”라고 밝혔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대목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셋째, 자신은 이성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줬다. 아슬아슬한 위기 상황에서 이런 자세는 공포에 대한 방증이다. 김정은은 “트럼프가 역대 가장 포악한 선전포고를 해 온 이상 우리도 그에 상응한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 조치 단행을 신중히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신중히 고려’한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이런 ‘말폭탄 대결’로 ‘장사꾼’으로서의 절묘한 계산을 하고 있다. 김정은과 아슬아슬한 ‘치킨게임’을 벌이면서 1석3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9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미국과 동맹을 방어해야만 한다면 우리는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PA=연합뉴스]
첫째,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가졌다. 미국은 지난 21일 북한과 정상적인 거래를 하는 제3국의 기업과 금융기관·개인 등에 대해 미국과의 거래를 차단하는 ‘세컨더리 제재’을 발표했다. 미국 언론들은 북한의 해외 거래의 90%를 차지하는 중국의 은행들이 결제자금 통로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이번 세컨더리 제재의 표적은 중국 은행들이라고 보도했다. 앞서 에드 로이스 미 하원 외교위원장은 “중국의 국영은행들이 여전히 북한과 거래하고 있다”며 자산 3조4700억 달러(약 3925조원) 세계 최대 은행인 공상은행을 포함해 12개 은행을 제재 대상에 올리라고 재무부에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이 외에도 미국은 이미 중국을 향해 ‘통상법 301조(관세 인상, 수입량 제한 등)’를 꺼내들어 중국을 압박하려고 하고 있다. ·
둘째, 국정수행 지지율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미국 정치 분야의 대표적인 여론조사기관인 라스무센 리포트는 지난달 12일 트럼프의 지지율이 전번주 39% 보다 6% 포인트 상승한 45%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라스무센 리포트는 “트럼프의 대북 강경 대응 발언과 군사행동 제안이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셋째, 한국·일본에 무기를 판매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트럼프는 지난 4일(현지 시각) 자신의 트위터에 “한국과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상당히 정교한 군사 장비들을 대량 구입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썼다. 백악관은 이에 앞서 지난 1일에도 한·미 정상의 통화와 관련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수십억 달러 상당의 미국산 군사 장비에 대한 한국의 계획된 구매를 개념적으로 승인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장사꾼’출신답게 절묘한 시기에 절묘한 방법으로 절묘한 계산을 하고 있다.
한반도 전쟁에 대한 우려로 미국 정치권 안팎에서 트럼프의 표현이 과격하다고 지적하며 공세의 수위를 낮출 것을 주문하지만 트럼프는 고개를 흔든다. 그는 김정은 같은 사람은 오래 버티는 쪽이 이기는 ‘치킨 게임’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2) 김영철 대남비서를 교체할 때
김영철(71) 북한 대남비서는 대표적인 강경파로 알려진 사람이다.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의 주범으로 알려져 남북관계 개선에 적임자가 아니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남북 관계가 험악했던 2016년 초에 임명돼 당시 상황을 반영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인사로 해석된다.
김영철, 난수방송 등 냉전의 산물을 고집
군인 출신을 대남라인에 배치해
대화보다 대결을 조장하는데 앞장
김정일은 허장성세로 끝나는 경우 많고
김정은은 자신의 말을 실천하는 스타일
올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 강조
▲북한 김영철 대남비서. [연합뉴스]
대남비서는 대남공작과 함께 남북대화를 주도하는 사람이다. 그동안 대남비서는 국제비서를 맡았던 김용순·김양건 등 국제적 감각을 겸비한 대화파들이 주로 맡아왔다. 김영철이 군인 출신으로 대남비서를 맡은 것은 1968년 1·21사태의 주역 가운데 한 명인 허봉학 이후 처음이다. 김영철은 1990년 9월 제1차 남북고위급 회담을 시작으로 2007년 제2차 남북국방장관 회담까지 북한 대표로 꾸준히 참석해 남북 대화에 경험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자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파트너로 적합한 인물은 아니다. 김정은이 한국 정부에 맞춰 대남비서를 교체할지는 자신이 판단하겠지만 남북 관계를 고려하면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의 대화에 집중하려는 김정은이 한국에 관심이 없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남북 관계를 완전히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최근 B-1B 전략폭격기의 잦은 출현으로 ‘강공 드라이브’의 손익 계산서에 차질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강공’을 지속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미국 대통령들처럼 ‘대화의 손’을 내밀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68년 푸에블로 나포 사건처럼 미국이 먼저 대화를 제안해 ‘폼’을 잡았던 것을 재현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정은이 이번에 상대를 잘못 판단했다. ‘치킨 게임’을 즐기는 트럼프 대통령에 오히려 말려들 수 있다는 것을 늦게 깨달은 것이다. 최근에는 바짝 엎드려 있다. 미국에 오해 받을 수 있는 경거망동한 행동을 절대로 하지 말라고 인민군에 지시한 듯하다.
김정은은 지난 7일 대규모 인사를 단행하면서 이용호 외무상을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위원으로 승진시켰다. 강경파보다 대화파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의도로 파악된다. 아울러 지난 7일 인사에서 빠졌지만 김영철의 교체설까지 최근 중국에서 나돌고 있다.
기세등등했던 정찰총국장(2009~2015년) 시절의 버릇이 남아 있던 김영철은 지난해 대남비서의 권한을 무리하게 확장하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기존 정찰총국과 월권행위로 마찰이 생겼고 개인 비리까지 보태져 혁명화 처벌을 받기도 했다. 김정은이 여차하면 날릴 사람이다. 사실 확인 여부는 시간이 지나면 밝혀지겠지만 김영철이 물러나고 대화파 인사가 대남비서에 임명되면 남북 관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김영철이 주도하는 대남라인은 자신과 가까웠던 군인들로 채워졌다. 대표적으로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을 들 수 있다. 인민군 중장(별 둘)으로 김영철의 오른팔이다. 이선권 외에도 군인 출신들이 대남라인에 상당수 포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난해김영철이 대남비서를 맡으면서부터 난수방송(숫자나 문자 등으로 만든 암호를 전달하는 방송)을 재개하는 등 냉전 시대에나 통했던 방법을 다시 사용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왼쪽에서 둘째)이 2016년 2월 평양에서 열린 당 중앙위, 당 인민군위원회 연합회의를 지도하고 있다. 정찰총국장에서 대남비서로 자리를 옮긴 김영철(김정은 오른쪽)이 인민복을 입고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노동신문]
김정은이 올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의 개선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파국상태에 처한 현 북남관계를 수수방관한다면 그 어느 정치인도 민족 앞에 지닌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한다고 말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동족끼리 서로 싸우지 말고 겨레의 안녕과 나라의 평화를 수호하려는 우리의 입장은 일관하다”고 덧붙였다.
이런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면 김정은은 김영철을 교체해야 한다. 김정은이 ‘강공’에 따른 손익계산서를 이른 시일내에 수정하려면 주변에 대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곁에 적절히 둬야 한다. 2013년 선포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위한 병진노선을 성공시키려면 더더욱 그렇다. ‘제2의 김양건’을 발굴해 곁에 둬야 신년사에 본인이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다.
김정일은 강성대국 등 거대한 슬로건을 내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목표를 내세웠지만 허장성세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김정은은 김정일과 달리 스스로 공헌할 말에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리고 끊임없이 점검하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그의 결단을 기대해 본다.
11.30 김정은이 서둘렀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서둘러 방아쇠를 당겼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12월께 발사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29일 오전 2시 48분에 쏘았다. ICBM 기술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는데 서두른 감이 든다. 게다가 미국의 감시가 두려웠는지 캄캄한 야밤중에 도발을 감행했다.
기술적 완성 논란 속에 화성-15형 도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김정은 성격 탓
핵무력 완성 이후 대화 국면 전환 노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 발사를 앞두고 관계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화성-15형이 대기권 재진입(re-entry) 기술에 성공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9일 밤 대기권 재진입과 관련해 “(화성-15형 발사를 통해) 설계의 요구를 정확히 만족했다”면서 성공을 주장했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은 지난 17일 국회 정보위에서 북한이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확보하는 데 한계에 부닥쳤다고 보고했다. 설령 “화성-15형이 동해 공해상의 설정된 목표 수역에 정확히 탄착했다”는 북한의 주장이 사실이더라도 대기권 재진입 기술이 완성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그럼 김정은은 왜 서둘렀을까? 첫째, 내부 결속용이다. 그는 올해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로케트 시험 발사 준비 사업이 마감단계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자신의 뱉은 말을 실천하려는 듯 2017년을 핵·미사일 도발의 한 해를 보냈다. 그리고 이번에 ICBM급 화성-15형을 발사한 뒤 그는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 로케트 강국 위업이 실현됐다”고 선포했다. 아직은 ‘완성’이라는 단어를 쓸 단계가 아닌데 마침표를 찍었다.
김정은은 목표를 제시하면 끊임없이 확인하는 스타일이다. 아버지 김정일은 강성대국 등 거대한 슬로건을 내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목표를 제시했지만 점검했다는 인상을 주지 못했다. 김정은은 이번에 주민들에게 자신은 약속을 지킨다는 이미지를 남기려고 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가속되는 대북 제재에 대한 위기의식도 반영된 듯하다. 서둘러 핵 무력 완성을 선포하고 대화국면으로 넘어가 제재 국면을 타파하려는 계산이 깔렸다.
▲김정은이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이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둘째, 대외 과시용이다. 북한은 29일 발표한 정부 성명에서 “책임있는 핵강국으로 평화애호국가로서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한 숭고한 목적의 실현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발표했다. 화성-15형 도발에 대해 변명이자 한발 물러서는 듯한 표현이다. 막다른 골목이 몰린 북한이 자신들은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놓고 인제 와서 세계 평화를 거론한 것이다. 결국 북한은 자신의 몸값을 최대한으로 올려놓고 협상하겠다는 주변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을 듯싶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이 이에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미국은 일단 강공이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대북 원유공급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헤일리 대사는 “모든 유엔 회원국들은 북한과의 외교 및 교역 관계를 단절해야 한다”며 “북한의 유엔 회원국 자격을 제한하는 것도 옵션”이라고 말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추가 금융 기관에 맞춰질 것”이라며 “우리는 잠재적 추가 대북 제재에 대한 긴 목록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외교적으로 우리는 매일 계속 노력하고 있다”며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김정은이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을 발사 이전에 점검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문제는 중국의 대응이다. 쑹타오(宋濤)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특사로 방북했지만, 김정은과의 면담이 불발됐다. 중국의 대북 제재를 줄여달라는 김정은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서라는 게 해외언론들의 반응이다. 중국이 결국 패싱 당한 꼴이 돼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화성-15형 도발과 미국의 강공 드라이브가 중국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은 그동안 원유공급 중단의 요구를 못 들은 척했다. 북한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오히려 중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믿고 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인지 두고 볼 대목이다. 원유공급을 완전히 중단하지 못하더라도 대북 압박용으로 줄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북한은 중국의 지원에 대해 항상 “죽지 않을 정도만 지원한다”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은 원유공급의 경우 북한이 죽지 않을 정도만 지원할 수 있다.
북한은 화성-15형 발사 이후 얼굴을 바꿔 대화 국면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때를 놓쳤다. 세상이 북한의 계산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세상 밖으로 나와야 세상이 보이는데 북한이 이 중요한 사실을 항상 잊고 살고 있다.
2018.01.01 유엔 대북제재가 통했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화전양면(和戰兩面)전술을 펼쳤다. 북한의 대표적인 전술의 하나다. 핵무력 완성을 강조하는 한편 남북대화의 필요성을 내비쳤다. 그는 먼저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화전양면 전술을 담은 신년사
핵무력 완성과 남북대화 필요성 강조
평창올림픽 참가 위한 당국회담 제의
중국이 동참한 대북 제재가 효과
통전부에 베테랑 배치로 각론적 접근
북미 관계가 변수 '60일 플랜' 통할까
또한 그는 “우리는 겨울철 올림픽 경기대회가 성과적으로 개최되기를 기대하며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은이 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것은 지난해 11월 29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발사하면서다. 김정은은 지난달 12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폐막한 제8차 군수공업대회에서 핵무력 완성을 강조하는 등 여러 차례 발표했다. 그는 이번 신년사에서 “바로 1년 전 나는 이 자리에서 당과 정부를 대표해 대륙간탄도로케트 추진 사업이 마감 단계에서 추진 중임을 공표했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1일 오전 9시 30분(평양시 기준 9시)에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조선중앙TV]
아울러 그는 “지난 한 해 동안 그 이행을 위한 여러 차례의 시험 발사를 안전하고 투명하게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자신이 한 말을 실천했다고 자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지난해 핵무력 완성의 선포를 서둘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핵·미사일 개발에 올인해 주민 피로도가 높고 2017년 신년사에 강조한 만큼 지난해 핵무력 완성을 선포하고 평화 및 대화 모드를 조성하려고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 실장은 “평창동계올림픽 전후는 국제사회의 비난 등 정치적 부담이 컸기 때문에 2개월 전인 지난해 11월 29일로 잡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정은이 이런 전술을 택한 것은 유엔 대북제재 강화와 중국의 동참이 효과를 거둔 결과로 보인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해 12월 22일 대북제재 결의 2397호를 발표해 석유 정제품 공급량을 현행 연간 200만 배럴에서 50만 배럴로 줄이는 등 북한을 압박했다. 또한 대북 해상차단까지 강화해 북한을 사면초가로 만들었다. 중국은 과거와 달리 정교하면서 단계적으로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이번에는 끝장을 보겠다는 기세로 보인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1면에 1일 게재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2018년 신년사.[연합뉴스]
김정은은 그 탈출구로 한국에 손을 내밀었다. 그는 “지금은 등을 돌려대고 자기 입장이나 밝힐 때가 아니며 북과 남이 마주앉아 우리민족끼리 북남 관계 개선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그 출로를 과감하게 열어 나가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당국자뿐 아니라 민간의 역할도 강조했다. 김정은은 “북남 관계 개선이 당국만이 아니라 누구나 바라는 초미의 관심사이며 북과 남 사이의 접촉과 내왕 협력과 교류를 폭넓게 실현하자”고 제안했다. 김정은은 과거와 달리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총론보다 각론적으로 접근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구체적으로 평창동계올림픽을 언급하고 대화를 위한 로드맵을 제시했다. 이는 남북관계를 담당하는 통일전선부에 베테랑들이 포진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영철 부장은 제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고 그가 데리고 간 군인들은 대거 물러나고 맹경일 부부장이 실무 책임자로 부상했다는 소문이 있다. 따라서 한국이 받을 수 있는 구체적인 ‘카드’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이제는 공이 한국으로 넘어왔다.
김정은은 또 다른 출구 전략으로 신년사에서 선제 핵 불사용 원칙을 재천명했다. 그는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책임있는 핵강국으로서 우리 국가의 자주권과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우리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모든 나라들과 선린우호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정은이 신년사를 실현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북·미 관계다. 미국은 김정은의 신년사를 검토한 뒤 평창동계올림픽 때까지 북한의 행동을 지켜볼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조건에 따라 북·미 대화를 하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남북 관계의 진전에 따라 북·미 대화를 재개할 가능성도 있다. 조셉 윤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지난달 7일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중단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후 60일간 도발을 중단한다면 북한과 대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은 공식적이든 비공식이든 우리에게 대화하기 위해 도발을 중단하겠다는 말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북한과 미국이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은 평창 겨울올림픽이 끝나는 2월 말이나 평창 겨울패럴림픽까지 포함하면 3월 중순까지다. 그 이후는 북·미 모두 피로감으로 대화의 동력은 크게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조셉 윤이 제시한 ‘60일 플랜’도 그 기간과 비슷하다.
01.02 김정은 신년사에 누가 '평창'을 넣었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도박’을 걸어왔다. 한손에는 핵단추, 다른 손에는 평창을 들고 한국과 미국을 향해서다. 문재인 대통령은 ‘환영’,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두고 보자’로 응수했다. 예상하지 못한 김정은의 제안에 다소 놀란 듯한 반응이다.
최용해 지원하에 김양건 라인이 참여
남북관계 베테랑들로 대화파로 구성
김영철 대남비서는 대화국면에 부적합
지난해까지 핵·미사일 도발로 한반도를 긴장시킨 그가 돌연 대화 공세로 나와 당황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난 연말에 대화 공세를 대부분 예상하기도 했다. 이유는 지난해 11월 29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발사한 이후 ‘핵무력 완성’을 선포하면 그다음 수순은 대화 공세였기 때문이다.핵무력 완성 상태에서 몸값이 더 올라간다는 계산이었다. 김정은은 대화 제의를 미국이 아닌 한국에 왜 먼저 했을까?
▲2014년 10월 4일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앞서 깜짝 특사로 인천을 방문한 북한 최용해 노동당 비서겸 국가체육지도위원장(오른쪽)이 정홍원 당시 총리(왼쪽)와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김정은은 치킨 게임을 하자는 트럼프 대통령보다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자는 문재인 대통령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대화 제의를 하더라도 어차피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북관계 개선으로 북·미 관계를 돌파하자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여기서 궁금해지는 것이 김정은 신년사에 누가 ‘평창’을 넣었을까다. 그동안 김정은 신년사에서 대내 문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더라도 남북문제는 총론적으로 제시했다. 지난해를 보더라도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북과 남 사이의 첨예한 군사충돌과 전쟁위험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올해 김정은 신년사는 조금 달랐다. 총론보다 각론적으로 접근했다. 우선 겨울철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운을 띄운 뒤 대표단 파견과 이를 위한 당국 회담을 제시했다. 그리고 김정은은 “지금은 서로 등을 돌려대고 자기 입장이나 밝힐 때가 아니며 북과 남이 마주 앉아 북남 관계 개선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그 출로를 과감하게 열어나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정은 주변에 이런 생각을 제안할 수 있는 사람은 최용해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다. 김영철 대남비서는 천안함·연평도 사건의 주범으로 대화 국면에 나설 수 없는 입장이다. 김영철이 나서면 한국 정부가 그를 받기가 어렵다. 대북 소식통은 “최용해의 지원으로 통일전선부 내부의 김양건 전 대남비서 라인이 김정은에게 보고한 것이 신년사에 반영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최근 김영철이 데리고 온 군인들이 대부분 통일전선부에서 빠졌다”고 덧붙였다. 대표적인 김양건 라인은 원동연-맹경일-강용철 등이다.
▲원동연 전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
원동연은 30년 넘게 대남관계를 맡았던 베테랑으로 건강상의 이유로 활동을 제대로 못 하지만 조언 정도는 할 수 있다. 맹경일 통일전선부 부부장은 원동연을 대신해 남북 관계를 20년 넘게 맡았다. 강용철 통일전선부 서기실장(비서실장)도 마찬가지다. 강 실장은 김양건에 이어 김영철 때도 서기실장을 맡고 있다. 남북관계를 오랫동안 맡았던 이들이 신년사에 참여했거나 최용해를 지원한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의 신년사에 ‘평창’이 들어간 것은 베테랑이 아니면 생각하기 힘든 내용이다. 한국 정부가 받을 수 있게 정교하게 내용을 다듬었다. 김정은 신년사는 북한의 올해 정책으로 북한 내부에서 누구도 거역할 수 없다. 한국은 이를 북·미 대화의 촉매제로 활용해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 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이 기회를 과감하게 살릴 필요가 있다. 북한의 의도를 파악하는 차원에서 실무자 회담을 먼저 제안해 기회를 놓치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01.03 김정은과 트럼프의 '핵버튼 자랑'
김정은(34)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72) 미국 대통령이 핵버튼을 가지고 ‘위험한 자랑’을 하고 있다. 굳이 자랑하지 않아도 될 핵버튼을 아이들 장난감처럼 쉽게 말하고 있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고 말했다. 이에 트럼프는 “나는 더 크고 강력한 핵 버튼이 있다”고 응수했다.
나이 차이가 38살인데 치킨 게임 벌여
김정은 '핵버튼'은 약한 모습을 드러낸 결정
트럼프는 덩치에 맞지 않는 행동
트럼프가 김정은의 적수로는 제격
두 사람 전쟁 일으킬 그릇은 못 돼
올해는 국내 문제에 집중 할 때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사진 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 CNN 홈페이지]
국가 최고 지도자를 나이로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38살이다. 이를 고려하면 ‘핵버튼 자랑’은 유치하다는 생각이 든다. 치킨게임을 벌이는 두 사람이 서로 임자를 만난 것은 사실이다. 오바마식 ‘전략적 인내’는 김정은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김정은식 도발은 트럼프식 대응이 제격이다. 그래야 문제가 풀린다.
하지만 자랑할 것도 많은데 하필 핵버튼을 자랑하는 것은 서로의 수준을 낮춰 버렸다. 김정은의 ‘핵버튼 자랑’은 대내용이며 촌스러운 결정이다. 김정은은 “미국이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보지 못한다”며 ‘핵버튼 자랑’을 했다. 트럼프에게 인지시키려는 의도이지만 오히려 약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에게 김정은의 핵버튼은 러시아·중국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설령 김정은의 주장대로 핵버튼이 자신의 책상 위에 있다손 치더라도 직설적으로 표현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의 발사로 미국 본토 전역까지 핵 타격 사정권에 넣었다고 자랑한 마당에 핵 버튼이 어디에 있든 무슨 상관인가. 김정은이 지시를 내리면 핵미사일은 발사된다. 굳이 핵미사일을 발사하기 위해 자신의 사무실까지 달려 올 필요가 없다.
트럼프의 ‘핵버튼 자랑’은 더 유치하다. 트럼프의 핵버튼이 훨씬 크며 더욱 강력하고 잘 작동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자랑하지 않아도 전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김정은을 상대하기에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자랑이다.
두 사람의 유치한 ‘핵버튼 자랑’에 세계는 약간의 긴장을 갖고 있지만, 관심을 덜 보이고 있다. 두 사람이 싸워야 이익을 보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자극적인 뉴스도 반복되면 재미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김정은과 트럼프는 전쟁을 일으킬 그릇이 되지 못한다. 삶의 과정이 절박하거나 치열하지 못했다. 인생을 즐긴 사람들이다. 그리고 가진 것도 많다. 특히 세계 ‘최고의 부자’인 김정은은 전쟁이 나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그를 떠받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전쟁을 일으킬 ‘감’도 안되는 두 사람의 말에 긴장의 2017년을 보냈다. 올해도 정초부터 이들의 유치한 ‘핵버튼 자랑’으로 시작했다. 김정은은 올해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을 맞아 주민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해야 한다. 트럼프는 러시아 스캔들 특검의 칼날을 잘 피해야 하고 중간 선거에서 좋을 성적을 거둬야 한다. 올해는 핵버튼보다 국내 문제에 더 신경을 써야 할 상황이다. 유치하고 재미없는 ‘자랑’을 멈추고 국내 문제에 올인(All-in)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01.05 김정은과 트럼프가 싸워야 이익을 보는 사람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초부터 ‘핵버튼’으로 말폭탄을 쏟아냈다. 지난해의 연장전이다. 이제는 말폭탄에 재미가 단단히 들었는가 보다. 그동안 두 사람이 사용하는 말폭탄을 보면 ‘로켓맨’ ‘늙다리 미치광이’ ‘화염과 분노’ ‘불망나니’ 등 거칠고 저급하기 짝이 없다.
북한 보수세력과 미국 군산복합체
김정은·트럼프의 성정 이용해 싸움 부채질
북한쪽은 미국의 위협을 활용해 입지 강화
미국쪽은 한·일의 '좋은 시장' 유지할 필요
트럼프는 군산복합체가 상대하기가 무난
이들의 이익이 충족돼야 한반도 문제 해결
이런 성정을 가진 사람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존심이 강하고 작은 것에 예민해 하는 이들을 싸움 붙여 자신들의 이익을 보려는 사람들이다. 누구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살기 때문에 비난할 일은 아니다. 다만 싸움을 붙여 이익을 보려는 생각은 문제가 있다. 북·미를 포함해 한국에도 있다.
북한에도 한국에서 말하는 보수가 있다. 노동당과 군부에 주로 포진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6·25전쟁 당시 38선을 넘은 미군에 의해 피해를 본 사람들이거나 그 후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미국을 ‘철천지원수’로 생각한다. 북한이 남침했을 때 피해를 본 사람들이 북한을 그렇게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앞줄 가운데)이 지난달 11일 화성-15형 시험발사 성공에 기여한 성원들과 함께 제8차 군수공업대회에 참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2일 보도했다. 장창하 국방과학원장(앞줄 왼쪽)과 전일호 중장(국방과학원 소속 추정)이 허리를 숙이고 김정은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연합=조선중앙TV]
북한의 보수들은 대화보다 대결을 선호한다. 남북한이 대화와 협력으로 전환하는 것에 불만이 많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과 5·24 대북제재 조치 이후 남북관계가 단절되자 이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난하면서도 한편으로 반겼다고 한다. 그 이유는 남북 교류가 잦아질수록 흔들리는 북한 주민들을 통제하기 힘들었는데 교류를 단절시켜 속으로는 좋아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미 정부가 발표한 내용 가운데 꼬투리로 삼아 이를 침소봉대해 김정은을 흥분하게 만든다. 남북한 및 북·미 관계가 개선되는 것을 자본주의와 결탁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조금만 삐끗거려도 판을 엎어버린다. 이들은 북·미 대결을 통해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시키고 김정은에게 겉으로 복종하지만 협박하고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 손해 보는 그룹이 있다. 군산복합체다. 한국과 일본의 ‘좋은 시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난해 같은 상황이 금상첨화였다. 김정은과 트럼프는 그들이 다루기에 편한 상대들이다. 반응을 빨리하기 때문이다. 싸움을 걸 때 좌고우면하는 스타일이면 그들에게 재미가 없다. 그들에게는 최고의 친구가 있다. 케네스 퀴노네스 전 미국 국무부 북한 데스크가 ‘악마의 제국’으로 표현한 중앙정보국(CIA)이 도와주고 있다.
▲한미연합군사훈련에 참가한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가 해군 부산기지 장병들의 환영을 받으며 입항하고 있다.[연합뉴스]
북한과 미국의 이런 세력들이 김정은과 트럼프의 싸움을 부추기고 이익을 챙기고 있다. 이들의 부추김에 두 사람이 동조하는 것도 문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반도의 평화가 앞당겨진다. 이들의 이익을 만족하게 해 줄 만한 대안을 찾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종이 몇장의 평화협정과 북·미 수교를 체결하더라도 잠재적인 ‘지뢰’가 남아있는 한 공염불이 될 수 있다.
01.10 김정은이 이산가족 상봉을 거절한 이유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거절했다.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우리측이 설날 계기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회담을 제의했지만, 공동 보도문에 반영되지 못했다. 이산가족들에게 안타까운 일이다. 북한은 이번 회담에서 평창 겨울철 올림픽 참가에 집중한 듯하다.
▲9일 남북 고위급회담이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렸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양측 대표단이 종료회의를 열고 있다. 리선권 위원장이 서해 군 통신선 보도 등과 관련해 강한 톤으로 이야기를 하고있다.<사진공동취재단>
감성적인 김정일과 달리 민족 문제 관심 부족
실용적이고 스포츠를 좋아해 '계산'이 중요
과거 두 차례는 금강산 관광 재개 기대로 승인
유엔 제재로 금강산 관광 재개 어려워져
김정은, 이산가족 상봉에 관심이 떨어진 듯
北, 식당 종업원 12명 송환을 명분으로 제시
주도면밀한 전략이 없으면 상봉 어려워
북한은 왜 이산가족 상봉에 소극적일까?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과 달리 민족 문제나 인간의 감성 부분에 관심이 덜한 편이다. 김정일은 1942년 태어나 항일하던 부모 밑에서 자랐고 1950년 6·25전쟁을 겪으면서 이산가족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느낄 기회가 있었다. 아울러 영화와 음악을 좋아해 감성 부분이 풍부한 편이었다.
반면 김정은은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와 달리 직접 이 문제를 접하지 못했고 청소년기도 스위스에서 유학하면서 고민할 기회가 적었다. 실용적이고 스포츠를 좋아하는 그는 계산이 맞지 않는 선택을 싫어하는 편이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이산가족 상봉을 두 차례 가졌다. 2014년 2월과 2015년 10월이다. ‘통일 대박’을 언급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두 번 모두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개최하면서 금강산 관광 재개를 꿈꿨다. 하지만 그의 꿈은 물거품이 됐고 이제는 강화된 유엔 제재로 꿈도 못 꾸게 됐다.
▲2015년 10월 26일 강원 고성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0차 남북이산가족상봉 2차 작별상봉행사에서 최고령 구상연 할아버지가 북측의 딸 구송옥씨와 얼굴을 비비며 인사하고 있다. [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따라서 김정은은 이산가족 상봉을 절박한 문제로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남북 회담의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의 실무진들도 이산가족 상봉에 회의적인 편이라고 알려졌다. 이산가족 상봉을 하려면 추운 날씨에 준비하기가 만만치 않을뿐더러 상봉 이후 ‘눈빛’이 흔들리는 사람들을 상봉 이전으로 돌리는 것도 귀찮은 일이다.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북한은 핑계를 만들었다. 그동안 2016년 4월 탈북한 북한 식당 여종업원 12명을 송환하지 않으면 이산가족 상봉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한국이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만약 여종업원 12명이 북한으로 귀국할 경우 ‘납치’ 등으로 정치적인 문제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울러 국내에 들어온 탈북민을 공식적으로 북송한 전례도 없다.
따라서 안타깝지만,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아졌다. 인도적인 고민보다 정치적인 장해를 제거해야 한다. 지금 유엔 제재로 북한이 원하는 대로 금강산 관광을 무턱대고 재개할 수 없게 됐다. 한국 정부는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해야 필요가 있다. 인간적인 호소보다 주도면밀한 전략이 없으면 이산가족의 아픔을 달래기는 희망일 뿐이다.
01.22 현송월 관심이 지나치다
현송월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에 대한 관심이 지나칠 정도로 과하다. 은여우털, 캐시미어 코트, 가방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의 스타일을 스캔하듯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모처럼 한국을 찾은 북한 대표인 데다 가수 출신의 미녀라는 점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지만, 과연 그의 모든 동선이 뉴스를 탈 정도의 인사인가 싶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과 북한 예술단 사전점검단이 21일 경기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우리측 관계자들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통일부 제공]
남북실무접촉 내용보다 현송월에 더 관심
공연 점검하러 온 북한 대표단장에 지나쳐
루머가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면서 유명세
예술단,응원단은 평창의 주연 아닌 조연
정치권도 기다렸다는 듯이 흥분하고 있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북한 대좌(대령급) 한명 모시는데 왕비 대하듯 지극정성을 다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김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한국당은 시대착오적인 색깔론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이처럼 ‘현송월 신드롬’은 그가 지난 15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북한 예술단 파견을 위한 실무접촉의 북한 대표단으로 참석하면서 생겼다. 삼지연관현악단 140여명이 서울과 강릉에서 공연한다는 공동보도문보다 현송월이 누구인가에 더 관심이 쏠렸다.
그는 확인이 안 된 ‘김정은 애인설’부터 ‘음란 동영상 처형’ 까지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면서 유명세를 치렀다. ‘은둔의 북한’에서 벌어지는 일을 확인할 방법이 없지만, 루머가 사실처럼 번졌다. 루머가 사실인지 아닌지 그것이 중요할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현송월은 그냥 가수 출신의 북한 예술단장일 뿐이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 등 대표단 일행을 태운 차량이 21일 오전 경찰들이 일반인의 통행을 통제하고 있는 서울역에 도착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과거 서울에서 열린 남북총리회담이나 남북장관급회담에 참석하러 온 북한 대표단이 아니다. 서울과 강릉에 있을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을 위해 사전점검하러 왔다. 뉴욕필하모닉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가 공연하더라도 좋아하는 팬들만 관심을 가진다. 하물며 그 지휘자의 일거수일투족이 뉴스를 타지는 않는다.
현송월을 포함한 사전점검단이 지난 19일 오기로 했다가 12시간 만에 번복하자 이를 놓고 소란이 일었다. 급물살을 탔던 남북 관계에 적신호가 켜지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일 오후 다시 북한이 입장을 바꾸면서 현송월이 21일 서울로 내려왔다. 이를 준비했던 사람들은 이틀 사이에 천당과 지옥을 오갔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도 말 못 할 사정이 있겠지만 사전 설명을 하지 않은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며 앞으로 반드시 고쳐야 한다. 언제까지 이런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이런 북한을 지혜롭게 대처하려면 그들의 행동에 덜 예민해져야 한다. 예술단이든지 사전점검단이든지 오면 오는 것이지, 오지 않는다고 해서 그 이유를 놓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예정대로 평창 겨울올림픽을 준비하면 된다. 북한이 함께 참여하면 좋은 일이다. 북한의 참석 여부에 따라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이끄는 북한 예술단 사전점검단이 21일 강릉 아트센터에 도착하자 취재진과 시민들이 다가가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뉴스1]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의 말대로 북한의 올림픽 참가는 평창 겨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데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 수석은 “북한의 참가로 평창 올림픽이 남북한 화해를 넘어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평화 구축을 위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며 “북한의 올림픽 참가가 평창 올림픽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흥행을 확신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의 참가가 특별해서는 안 된다. 다른 참가국들과 똑같으면 된다. 예술단이나 응원단이 오더라도 뉴욕필하모닉의 축하공연 정도로 생각하면 어떨까. 이들이 한국에서 열린 국제스포츠 행사에 처음 오는 것도 아니다. 지나친 관심이 오히려 남북관계에 부담이 될 수 있다.
현송월이 서울·강릉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면 멀지 않아 삼지연관현악단 140여명과 응원단 230명이 내려올 예정이다. 이번 현송월의 방한보다 더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의 방한은 환영을 받아야 하겠지만, 평창의 ‘조연’이어야지 ‘주연’이 되어서는 안 된다.
01.30 “미국이 한국을 버릴 수 없다는 점을 최대한 활용해야”
‘평창 허니문’이 언제까지 갈까?
북·미 관계 개선에 한국이 역할 가능
이승만式 대미 외교를 본받을 필요
김정은 신년사 ‘긴장완화’ 최대 활용
대북제재는 축적된 자본으로 버텨
‘고난의 행군’이 학습 효과로 작용
평창 이후 민간교류로 분위기 지속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대화만으로 끝난다면 그 후에 우리가 겪게 될 외교 안보상의 어려움은 가늠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걱정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기회를 활용하지 못하면 오히려 위기가 될 수 있다. 지금은 ‘평창 허니문’의 흥분과 그 이후의 걱정을 냉정하게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때다. 전현준 우석대 초빙교수를 만나 ‘평창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들어봤다.
▲전현준 우석대 초빙교수
-남북관계가 조금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우선 김정은이 평화공세를 나온 이유를 따져보죠.
“김정은은 지난해 11월 29일 핵무력 완성을 선포하면서 안보문제를 일단락 짓고 경제 활성화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제재 국면에서 인민생활 향상이 그의 최우선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북·미 개선까지 내다보고 있다.”
-제재를 해결하려면 미국에 먼저 손을 내밀어야 왜 한국이 먼저였을까요.
“상대적으로 미국과 일본보다는 한국을 상대하기가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 김정은은 6·15와 10·4 선언을 계승하려는 문재인 정부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는 문재인 정부를 거쳐 미국으로 가려고 계산한 것 같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자기들의 입장을 이해해 주지 않으면 실망해서 ‘평창’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한국은 이미 대화를 시작했고 미국도 대화에 나설까요.
“미국은 대화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군사적 공격이 쉽지 않고 북한의 핵 보유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현상유지를 선호한다. 현상타파는 한반도에서 누리는 미국의 많은 이득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 이득은 한·일에 무기 판매, 한반도에서 중국 묶기, 러시아의 신동방정책 저지 등이다. 공격하다가 상대방이 쓰러지지 않으면 공격자가 쓰러질 수 있다. 4월 한미합동군사훈련으로 다시 위기가 고조되겠지만, 그 이후 대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없이 대화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현실적으로 당장 북한의 비핵화는 어렵다. 단계별로 접근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우선은 핵동결로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핵동결이 입구이고 비핵화가 출구가 되는 셈이다.”
-냉각된 북·중 관계도 김정은의 평화공세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북한은 중국과 교역량이 전체의 90%를 넘을 정도로 지나칠 정도로 의존했다. 그들이 주장하는 주체사상에 어긋난다. 따라서 중국 의존도를 분산시킬 필요가 있었고 김정은은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한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이 동북 4성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살 수밖에 없다. 이번 기회에 한국뿐 아니라 러시아 등으로 시장 다변화를 시도할 기회로 생각할 수 있다.”
-북한이 평창 겨울올림픽 이후 ‘청구서’를 한국에 내밀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동감하지 않는다. 북한은 대북제재와 관련해 한국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5·24대북제재 조치 해제,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북한의 청구서’로 예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북한이 제재 국면에서 이런 것들을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청구서’를 내민다고 가정하면 6·15, 8·15, 10·4 공동행사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평창 겨울올림픽 이후 흐름을 이어가는 차원에서 민간교류를 재개한다면.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민간교류의 길을 열어놓겠다고 언급했다. 북한이 필요한 것 가운데 산림녹화와 관련한 묘목과 병충해 방제 지원이 어떨까 한다. 그리고 영유아 의약품도 함께 고려해 볼 만하다. 북한이 인도적 지원을 꺼리기 때문에 개발협력으로 한 차원 높은 지원 형태가 바람직하다.”
-북·미 관계 개선에서 한국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은 지정학·지경학적으로 한국을 버릴 수 없다. 한국은 이 부분을 최대한으로 활용해야 한다. 미국에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이승만식 대미 외교를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그는 1953년 6월 반공포로를 석방하고 10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었다. 불과 4개월 만이었다. 반공포로의 기습적인 석방은 미국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UN사령관이었던 마크 클라크는 자신의 회고록 『다뉴브강에서 압록강까지』에서 반공포로 석방에 대해 ‘우리가 지금껏 두려워하고 있는 사실이 정말 일어났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대미 외교는 이렇게 해야 한다.”
-그렇다면 북한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추가 도발을 자제할 것을 딱 부러지게 얘기해야 한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북과 남은 정세를 격화시키는 일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하며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을 걸고 북한을 설득하면 된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김정은에게 골칫거리일 텐데.
“현재까지 북한식 표현대로 ‘자강력’으로 버티고 있다. 그동안 축적된 자본도 있는 것 같다. 최소한의 원유가 공급되고 있어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 그보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주민들이 생존의 방식을 터득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일단 참고 견딜 것이다. 하지만 장기화되면 도발할 가능성이 커진다. 북한은 그런 상황을 만들지 말자고 미국에 신호를 보내고 있다.”
-2월 8일 조선인민군 창건일 열병식으로 앞두고 국내 여론이 좋지 않다.
“북한이 조선인민군 창건일을 4월 25일에서 2월 8일로 바꾼 것은 탈(脫) 빨치산을 의미한다. 원래 창건일은 2월 8일이었다. 1978년에 4월 25일로 옮겼다. 김정일이 ‘김일성주의’를 군대에 심기 위해 조선인민군이 김일성의 항일혁명전통을 계승한 군대라는 것을 명백히 밝히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핵무력 완성으로 항일의 의미가 퇴색됐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려는 것이다. 이번 열병식은 ‘김정은의 군대’로 만드는 첫 작업으로 볼 수 있다.”
02.14 임종석 실장 대북 특사로 평양 가나?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지난 9일 ‘김정은 특사’로 내려와 2박 3일의 일정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갔다. 김여정은 방한 동안 청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평양 초청을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고 대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서울 국립중앙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 공연에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방남한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의 설명을 듣던 중 잠시 눈을 감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문 대통령. [연합뉴스]
과거에는 국정원장이 대북 특사
이번에는 정권2년차로 정치인이
연속성과 장기적 관점에 낙점 유력
DJ도 처음엔 자신의 의중을 잘 읽는
박지원 전 장관을 대북 특사로 보내
전문성과 경험을 갖춘 보좌진을 배석
이에 따라 답례 형식으로 대북 특사가 누가 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시절부터 역대 정권에서 대북 특사는 국가정보원장이 주로 맡았다. 이후락-장세동-서동권-임동원-김만복 등이다. 따라서 과거 사례를 보면 서훈 현 원장이 유력할 수 있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북한과 숱하게 공식·비공식 접촉을 했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관료 출신보다 정치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집권 2년차에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면 연속성과 장기적인 관점을 고려하면 관료보다 낫다는 판단에서다. 김대중 정부는 3년차, 노무현 정부는 5년차에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서훈 원장보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유력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에 ‘김정은 특사’로 온 김여정과 김정은과의 거리를 생각하면 문 대통령에게는 임 실장이다. 아울러 김여정이 평양으로 돌아가던 지난 11일 저녁 만찬도 임 실장이 주재했다.
북한 대표단이 오후 7시부터 국립중앙극장에서 문 대통령 내외와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을 관람하고 곧바로 북한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저녁 시간이 애매해 만찬을 제공했을 수 있다. 하지만 통일부 장관도 있는데도 임 실장이 주재하면서 대북 특사의 가능성이 자연스레 높여졌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11일 오후 서울 중구 반얀트리클럽앤스파 서울 호텔에서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김여정 제1부부장을 비롯한 북측 대표단과 만찬을 함께 하고 있다.[청와대]
대북 특사가 과거처럼 반드시 국가정보원장이 갈 필요는 없다. 대북 특사는 협상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뜻을 전달하고 김정은의 메시지를 가져오는 역할을 한다. 만약을 대비해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춘 사람은 보좌할 수 있도록 함께 보내면 된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그에 앞서 3월 9일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현 민주평화당 의원)을 싱가포르에 보내 송호경(1940~2004)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만나게 했다. 그 자리에 전문성과 경험을 두루 갖춘 당시 김보현 국정원 3차장과 서훈 단장(현 원장)을 배석시켰다.
김 대통령은 자신의 의중을 가장 정확히 대변하는 것으로 알려진 ‘측근 중의 측근’인 박 장관을 보낸 것이다. 임동원 당시 국가정보원장은 자신의 회고록 『피스메이커』에서 “2000년 2월 3일 대통령에게 주례보고할 때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들었는데, 국정원장이 이렇듯 중요한 대북관계 정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한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지난 12일 평양으로 돌아온 김여정 등 북한 대표단의 보고를 받고 “이번 올림픽 경기대회를 계기로 북과 남의 강렬한 열망과 공통된 의지가 안아온 화해와 대화의 좋은 분위기를 더욱 승화시켜 훌륭한 결과들을 계속 쌓아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향후 남북관계 개선 발전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해당 부문에 실무적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02.22 이용호 북한 외무상을 주목하라
북·미 대화가 한반도의 화두가 됐다. 남북정상회담의 ‘여건’도 북·미 대화의 성사 여부에 달려 있다. 북·미 대화 없는 남북정상회담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날 수 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1994년 제네바합의 숨은 주역으로
북·미 대화 해결사 역할로 나설 듯
아버지는 정전협정 촬영한 사진기자
김정일 때 조직지도부 부부장 출신
김정은, 외교는 노동당 통하지 않고
바로 이용호를 불러 상의하고 결정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3명 석방 조건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 초청할 수 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도 같은 고민일 게다. 김여정 특사의 방한으로 남북 관계는 어느 정도 개선됐지만 북·미 관계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문재인 정부가 중재자 역할을 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노동신문은 지난 17일 “우리는 미국과의 대화에 목말라 하지 않으며 시간이 갈수록 바빠질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북한이 보인 태도를 보면 이 대목을 거꾸로 해석할 할 필요가 있다. 즉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에 목말라 한다는 뜻이다.
▲2017년 9월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 도착한 이용호(왼쪽) 북한 외무상이 자성남 유엔주재 북한대사의 안내를 받으며 숙소를 나오고 있다. [뉴욕=안정규 JTBC 기자]
김정은의 고민은 그대로 이용호(62) 외무상의 몫이 된다. 김정은은 지난 12일 귀환한 대표단의 보고를 받은 뒤 “향후 북남관계 개선 발전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해당 부문에서 이를 위한 실무적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그 해당 부문에 외무성이 포함된다.
따라서 이용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용호는 외무성에서 잔뼈가 굵은 미국통이다. 제1차 북핵 위기(1993~94년)때 외무성 국제기구국 차장과 핵군축담당 부국장으로 북․미 고위급 회담 대표인 강석주(1939~2016) 제1부부장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이용호는 밀고 당기는 북·미 고위급 회담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고, 북한이 기본합의문 내용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는지를 확인하는 임무도 맡았다. 또한 2010년부터 6자 회담 북한 수석대표를 맡았으며 싱가포르 등에서 미국과 1.5트랙(반관반민)을 주도하기도 했다. 따라서 그는 제네바 합의 및 그 이후 미국과의 협상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2017년 12월 만난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왼쪽)과 이용호 북한 외무상. [AP=연합뉴스]
이용호는 강석주 등 많은 북한 외교관들이 다닌 평양외국어대학 영어과를 졸업하고 주 짐바브웨 대사관 3등 서기관으로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91년 6개월짜리 학술 프로그램인 ‘유엔 군축 세미나’에 참석해 워싱턴의 펜타곤과 진주만의 미 해군기지를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이용호는 2016년 외무상으로 승진했고 지난해 10월 노동당 제7기 제2차 전원회의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위원으로 승진했다. 권력 서열로 따지면 18위다. 그의 아버지는 김정일 곁에서 보좌한 이명제 조직지도부 부부장이다. 이명제는 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서명 때 조인식을 촬영한 사진기자였다. 이명제는 김일성 부자 다큐멘터리를 기본으로 촬영하는 조선기록영화촬영소(현 조선기록과학영화촬영소) 제1부소장을 맡았다. 영화광인 김정일의 취향이 반영됐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이용호의 경력과 아버지끼리의 인연으로 그를 확실히 믿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문제는 노동당을 통하지 않고 직접 이용호를 불러 물어본다고 한다. 이런 관계로 이용호가 북·미 관계를 어떻게 풀지 주목하는 이유다.
그는 미국에 던질 수 있는 카드는 북한에 억류된 미국 시민 3명의 석방이다. 그리고 이들을 데려갈 사람으로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을 초청하는 것이다. 현재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를 구걸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대화를 거부할 이유 또한 없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북한이) 내게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기를 귀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보면 지금은 북·미간에 탐색적 대화 수준을 넘는 실질적 대화가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은 2016년 7월 비핵화를 위한 5대 조건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대변인 성명’으로 발표했다. 그 조건은 ▶남한 내 미국의 핵무기 모두 공개 ▶남한 내 모든 핵무기 및 기지 철폐와 검증 ▶미국의 핵 타격수단을 한반도에 전개하지 않는다는 보장 ▶북한에 대한 핵 위협이나 핵 불사용 확약 ▶핵 사용권을 가진 주한미군 철수 선포 등이다. 북한은 이 성명에서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김일성·김정일의 유훈이며, 김정은의 영도 따라 나아가는 우리 당과 군대, 인민의 드팀 없는 의지”라고 밝혔다.
북한은 5대 조건을 미국이 그대로 받아들일 것으로 기대하기보다는 대화를 시작해보자는 제안 정도로 보는 것이 맞는 듯싶다. 5대 조건은 비핵화로 가는 과정에서 논의될 내용이고, 5대 조건을 전제로 하면 대화 자체가 어려워진다. 이용호는 제1차 북핵 위기 때 이미 비슷한 경험을 겪어 대책을 고민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7년 8월 한·미 회담장에서 차로 5분 거리인 필리핀 국제회의장에선 이용호 북한 외무상(오른쪽 사진 왼쪽)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양자회담을 했다. [AP=연합뉴스]
이용호는 제1차 북핵 위기 때 미국에 요청한 것이 있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회국원국에게는 미국이 선제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북한은 93년 3월 13일 NPT 탈퇴 의사를 발표했다. 이용호가 미국과의 협상에서 먼저 그것을 요청했다. 미국은 그렇게 약속했고 북한도 NPT 탈퇴 효력이 발효되기 직전(6월 11일)에 보류하겠다고 전달했다.
NPT 회원국은 비상사태로 자국의 이익이 위태로울 경우 탈퇴 의사를 밝히면 3개월 뒤에 효력이 발생한다. 하지만 북한이 2003년 1월 NPT를 탈퇴하겠다고 하면서 보류됐던 사항이 발효됐다. 이에 따라 회원국으로서 누렸던 안전을 국제사회에서 보장받을 수 없게 됐다.
김정은의 외교 책사인 이용호가 이 난제를 안게 됐다. 그의 대미 외교 경험과 정치국 위원으로서 정치적 위상이 대미 외교의 돌파구를 마련할지 지켜볼 대목이다.
02.27 미국은 '법적 의무' 북한은 '정치적 해결'로 접근
이제는 북·미 대화다. 문재인 대통령의 비핵화 언급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북·미 대화 용의는 결국 북·미 대화로 결실을 거둘 수 있다.
미군은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에게
6·25전쟁 보다 더 많이 죽고도 우방이 돼
북한과는 68년이 지나도 악연을 지속해
북한과 미국, 서로 극심한 상호 불신으로
북핵 접근 방식이 달라 접점을 찾지 못해
한국은 북·미의 차이점을 알고 해결책 찾아야
북·미는 그동안 보기 드물게 악연을 이어왔다. 독일군은 끔찍했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6·25전쟁 동안 사망한 한국인보다 훨씬 더 많은 미국인을 죽였다. 그러나 1945년 항복한 지 5년도 안 돼 독일은 미국의 우방이 됐다.
북·미는 6·25전쟁 이후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68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76년), 제1차 북핵 위기(94년), 제2차 북핵 위기(2002년) 등 잊을 만하면 악연을 만들었다. 북·미는 아직 6·25전쟁을 역사의 한 페이지로 넘기려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이런 북·미 관계의 원인은 극심한 상호 불신 탓이다. 미국은 북한 사람들이 불법적이고 합법적이지 못한 행위를 한다고 비난했던 냉전 시대의 유산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반면 북한은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을 버리지 않고 있다.
▲강석주 북한 외교부 제1부부장(사진 왼쪽)과 로버트 갈루치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1994년 8월 3단계 북-미 고위급 회담을 앞두고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래서 그동안 북·미는 ‘전제 조건’을 달아 왔다. 예를 들면 ‘북한이 A를 하면 미국은 B를 할 것이다’ 식이다. 그러면 북한은 진저리를 쳐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를 하겠다고 하면 대화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북한은 미국이 대북 적대시정책을 철회하면 비핵화를 할 수 있다며 양보하지 않고 있다.
그 대안으로 ‘동시’ 개념을 채택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북한이 이런 일을 하는 동안 미국은 이런 일을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트럼프와 김정은의 극심한 상호 불신은 ‘동시’를 쉽게 만들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과거 중국이 이 방식을 적용하려고 6자 회담을 통해 나섰지만 좋은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상호 불신을 극복하지 못해서다.
▲2005년 9월 19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6자회담 대표들이 '9·19 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악수를 나누며 축하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 사사에 겐이치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이상 당시 직책). [중앙포토]
북한과 미국은 문제를 푸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 미국은 북한이 국제안전에 대한 법적 약속을 지키지 않는 데 대한 징계를 강조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핵 문제에 대한 법적 해결이 아니라 정치적 합의를 원하고 있다. 그래서 ‘법적 의무’ 대(對) ‘정치적 합의’가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유엔 대북제재와 미국의 단독 대북제재를 풀기 위해 북한이 넘어야 할 촘촘한 법적 조건들이 산적해 있다.
아울러 미국은 국내 정치시스템에 따른 ‘견제와 균형’이 정책과 실천 사이에 괴리를 유발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소수의 보좌진에 둘러싸인 김정은의 손에 권위가 집중돼 있다. 이런 정치시스템의 차이로 북·미는 문제를 푸는 데 있어 속도와 방향이 다르다.
북·미 대화가 시작해야 남북정상회담도 성사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김영철에서 비핵화를 언급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문재인 정부는 북·미간의 북핵 접근 방식과 정치시스템의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고 양쪽을 설득해야 한다. 북·미간은 오랜 불신으로 스스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일단 북한을 설득하는 데 성공할 것 같다. 다음은 미국이다. 어쩌면 북한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정치적 해결도 중요하겠지만, 법적 해결도 함께 끌어낼 수 있는 협상가를 찾기 바란다.
03.12 김정은, 소련 따라간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과연 핵무기를 어떻게 할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되면서 비핵화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반면 과거 기만 전술적인 행동으로 이번에도 실망스러운 결과가 도출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소련 49년 핵실험 이후 잠잠하다가
스푸트니크 발사하고 미국과 갈등
쿠바 미사일로 위기 정점에 다달아
72년 ABM 조약으로 핵위협 줄여
북한은 2006년 핵실험 이후 6차례 감행
ICBM 2017년 발사하고 북·미 위기 최고조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협상 분위기로 바꿔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가시적 성과내나
과거 미국과 소련의 핵 협상 과정이 보면 북·미간의 협상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소련은 1949년 핵실험에 성공해 미국의 핵무기 독점을 깨뜨렸다. 그리고 53년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 그 이후 한동안 잠잠했다. 화근은 소련이 57년 미국을 제치고 로켓 추진력에 의한 첫 번째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호를 궤도 상에 쏘아 올린 것이다.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 [중앙포토]
소련은 미국을 명중시킬 만큼 강력한 로켓에 의해 추진되는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해 선제공격할 수 있게 됐고 미국은 이를 방어해 낼 수 없었다. 미국은 이를 ‘스푸트니크 쇼크’라 불렀다. 장거리 미사일과 같은 무기체계와 과학기술 전반에 걸쳐서 당연히 소련을 앞서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련이 핵실험 이후 스푸트니크호 발사까지 8년 동안 잠잠했다가 그 이후 미국에 공격적으로 변했다. 61년 베를린 위기를 거쳐 급기야 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로 정점에 달했다. 핵무기보다 장거리 미사일이 미국과 소련의 긴장을 촉진하는 매개체가 된 것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핵전쟁으로 갈 뻔했던 상황까지 이르렀다가 협상으로 끝났다. 그리고 미·소는 72년 군비통제 조약으로 ABM(Anti-Ballistic Missile) 을 체결했다. 군비경쟁을 완화하는데 시금석이 된 대표적인 조약이다. 미·소는 핵무기 경쟁을 하다가 장거리 미사일로 핵전쟁 위기로 갔다가 결국 협상으로 돌아섰다.
▲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흐루쇼프(왼쪽)와 케네디. [중앙포토]
북·미도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다. 북한은 지금까지 수소폭탄을 포함해 6차례 핵실험을 감행했다. 유엔 대북제재는 강화됐고 북·미간의 긴장은 고조됐다. 그러는 사이 북한은 2017년 7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을 발사했다. 여기에 더해 북한은 괌 포위사격까지 엄포를 놨다. 이에 미국은 항모전단 3척이 한반도 주변에 집결시키는 고강도로 대응했다. 북한은 2017년 11월 신형 ICBM 화성-15형을 발사하고 서둘러 핵무력 완성을 선포했다.
김정은은 소련보다 형식과 내용에서 다를지언정 협상으로 빠르게 가고 있다. 그는 올해 신년사에서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 핵타격 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는 것, 이것이 결코 위협이 아닌 현실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로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김여정 특사를 보내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그리고 방북한 대북 특사단에게 북·미 정상회담을 제안해 비핵화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김정은이 2017년 11월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이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소련은 49년 핵실험→57년 스푸트니크호 발사→61년 베를린 위기→62년 쿠바 미사일 위기→72년 ABM 조약 체결 등을 밟았다. 핵실험에서 조약 체결까지 23년이 걸렸다.
북한은 2006년 핵실험→2017년 ICBM 발사→2018년 북·미 정상회담 추진을 진행하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의 가시적인 조치가 나오면 핵실험에서 12년이 걸린 셈이다.
북한에 핵무기 야욕을 키워 준 나라는 소련이다. 소련은 64년 북한 영변에 핵연구소를 건설하고 85년 핵발전소 건설협정까지 체결했다. 조건은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이었다. 그리고 핵발전소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었다. 하지만 소련의 붕괴로 핵발전소 건설은 중단됐고 북한은 독자적인 핵개발로 갔다.
04.02 덩샤오핑과 김정은의 공통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북한의 덩샤오핑’이 되고 싶어한다. 중국 베이징에 들락거리던 북한 관리들이 2010년부터 자주 했던 말이다. 김정은이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되면서 후계자로 공식적으로 등장하면서부터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1일 동평양대극장에서 공연을 마친 남측 예술인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10대 시절 유럽에서 시장경제 학습
덩샤오핑-프랑스, 김정은-스위스
개혁·개방 시도 같지만 김정은 성과 없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최대 관건
아울러 평양을 자주 드나드는 유럽 언론인들은 ‘김샤오핑’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김정은과 덩샤오핑(1904~1997)을 합성한 말이다. 평양과 맨해튼을 합성해 ‘평해튼’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북한 관리들은 왜 김정은이 북한의 덩샤오핑이 되고 싶어한다는 말을 했을까? 그들은 ‘김일성-건국, 김정일-국방, 김정은-경제’라는 프레임을 그리고 싶어했다. 그 롤모델로 덩샤오핑이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덩샤오핑의 궤적을 따라가고 있다. 덩샤오핑은 16살에 프랑스로 유학 갔다. 중국 정부가 만든 근공검학 프로그램에 합격하면서다. 근공검학은 근면하게 일하고 검약해서 공부한다는 뜻이다. 즉 낮에는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주경야독을 의미한다. 덩샤오핑은 5년 동안 프랑스에 체류하면서 현대 국가의 상공업을 관찰할 기회를 가졌다.
그는 프랑스에서 서구와 마르크스주의, 노동자, 세계, 중국의 지위, 세상에서의 자신의 존재를 깨달았다. 프랑스는 또한 그의 기호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는 평생 커피와 와인, 치즈와 빵을 좋아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21살의 나이로 그가 프랑스를 떠날 때 확고한 입장을 지닌 경험이 풍부한 지도자가 됐다는 점이다. 덩샤오핑은 1949년 이전까지 한 번도 중국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는 마오쩌둥(1893~1976) 보다 훨씬 더 넓은 국제적 시야를 지니고 있었다.
▲중국공산혁명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鄧小平)의 1959년 모습. [AP=연합]
그는 22살 되던 1926년 1월 모스크바로 옮겼다. 덩샤오핑이 모스크바에서 공부할 때까지만 해도 소련은 사회주의 체제를 수립하지 못한 채 여전히 신경제정책(NEP) 체제에 있었다. NEP는 소농과 소자본가에게도 사회주의 경제가 중공업을 발전시킬 때까지 번창하도록 장려했다. 또한 외국인에게도 소련에 대한 투자를 장려했다. 그는 소련 공산당 체제에서 사기업을 허락하고 외국 투자를 권장하는 경제 체제가 자본주의 제도보다 훨씬 빠른 경제 발전을 촉진할 것이라고 믿었다.
덩샤오핑은 공산당 체제하의 시장경제를 최고지도자로 가는 과정에 적용했다. 49년부터 52년까지 중국 서남부 지역을 담당할 때와 70년대 후반 특구 4곳을 지정할 때 시도했다.
김정은은 12살 때 스위스 베른에서 유럽을 경험했다. 덩샤오핑보다 4살 어린 나이에 유럽을 밟았다. 그리고 4년 동안 그곳에서 세상을 보았다. 그는 덩샤오핑을 걸었던 특구 지정을 따라 2013년부터 중앙급 경제특구 5곳과 지방급 경제개발구 22곳을 선정했다.
하지만 덩샤오핑처럼 특구를 성공시키지 못한 것은 대북 제재를 풀지 못해서다. 김정은은 남북,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북·미정상회담에서 어떤 내용으로 합의에 도달할지 모르겠지만, 덩샤오핑이 미·중 수교(1979년)를 한 것처럼 북·미 수교를 논의할 것이다.
10대 시절에 경험했던 덩샤오핑의 프랑스 DNA가 그의 국정철학에 반영됐듯이 김정은의 스위스 DNA도 북한의 미래를 좌우하기를 기대해 본다.
04.16 북한 '핵보유 국가' 대신에 '전략국가' 띄운다
최용해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지난 11일 김정은 당과 국가의 최고수위 추대 6돌 중앙보고대회에서 ‘전략국가’ 라는 말을 언급했다. 최용해는 “최고지도자 동지께서 우리 조국을 그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세계적인 군사대국으로 빛내주시고 전략국가의 지위에 당당히 올려세웠다”고 밝혔다.
김정은 지난해 12월 언급 시작
직접적·호전적 이미지 보다
간접적·포괄적 표현을 선호
정상회담으로 대화 국면 조성
▲최용해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지난 11일 김정은 당과 국가의 최고수위 추대 6돌 중앙보고대회에서 보고를 하고 있다. [노동신문]
전략국가는 이번에 처음 언급된 것이 아니다. 김정은 노동장 위원장이 지난해 12월 21일 세포위원장대회 개막사에서 처음으로 말했다. 그는 “미국에 실제적인 핵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전략국가로 급부상한 우리 공화국의 실체를 이 세상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 됐다”고 주장했다. 전략국가는 미국을 핵으로 위협할 수 있는 국가라는 의미를 우회적으로 강조한 표현이다. 세포위원장은 5~30명을 구성된 노동당 최하부 조직인 당 세포의 책임자를 일컫는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전략국가를 언급했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김일성)과 위대한 장군님(김정일)의 최대의 애국유산인 사회주의 우리 국가를 세계가 인정하는 전략국가의 지위에 당당히 올려세웠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지난해 11월 29일 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뒤 그동안 언급했던 ‘핵보유 국가’ 대신 ‘전략국가’라는 신조어를 사용하고 있다. ‘핵보유’라는 직접적이고 호전적인 이미지보다 ‘전략’이라는 포괄적이면서 간접적인 단어를 선택했다. 명료함이나 투명함보다는 모호함과 기만성을 선호하는 북한의 고민이 담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3월 25일부터 나흘간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 부부가 시진핑 내외와 오찬에 참석해 기념 촬영하는 모습. [연합뉴스]
김정은은 핵무력이 완성된 만큼 이제 경제발전을 위한 ‘평화적 환경’ 조성에 나서려고 한다. 대화 국면의 수단으로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 북․중정상회담(3월 27일)을 선두로 남북정상회담(4월 27일), 북․미정상회담(5월말~6월초)을 예약해 놓고 있다. 북․러, 북․일정상회담도 여건에 따라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04.21 김정일도 걱정했던 경제·국방 병진노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 노선’을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발표는 김 위원장이 지난해 11월 29일 핵무력 건설을 완성했다고 선포한 이후 예상돼 왔다.
김정은, 핵·경제 병진노선 종료 선언
지난해 핵무력건설 완성 선포가 계기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에 총력 집중
김정일도 경제·국방 병진노선 고충 토로
국민들이 2~3배 생산력 높여야 성공 가능
유엔 제재 없어도 어려운데 지금은 한계 도달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를 열고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노동신문]
김 위원장은 지난 20일 열린 노동당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2013년 3월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의 역사적 과업이 빛나게 관철됐다”고 자랑했다. 아울러 그는 “우리 공화국(북한)이 세계적인 정치사상강국, 군사강국의 지위에 확고히 올라선 현 단계에서 전당, 전국이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것이 우리 당의 전략적 노선”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새로운 구호로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여 우리 혁명의 전진을 더욱 가속화하자’를 제시했다. 그 실천과제로 2016년 5월 노동당 제7차대회에서 제시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모든 공장·기업소들에서 생산 정상화의 동음이 세차게 울리게 하고 전야마다 풍요한 가을을 마련해 온 나라에 인민들의 웃음소리가 높이 울려퍼지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엔 대북제재를 의식한 듯 자력갱생과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빠뜨리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모든 부문, 모든 단위에서 자력갱생, 자급자족의 구호를 높이 들고 과학기술에 철저히 의거해 자강력을 끊임없이 증대시키며 생산적 앙양과 비약을 일으켜 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의 이번 선택에는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 노선의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강화되는 유엔 대북 제재하에서 병진 노선을 성공시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아버지 김정일도 김일성이 1962년 12월 노동당 제4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발표한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노선’을 관철시키는 것이 어렵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김일성이 발표한 병진노선은 김 위원장의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의 기원이 된다.
김일성은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미국의 침략에 대비해 경제와 군사력을 모두 발전시켜야 그동안 이뤄놓은 사회주의 성과들을 지켜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김일성이 병진노선을 발표한 것은 미국 요인뿐 아니라 내부적으로 크게 성장한 군부의 영향력도 작용했다. 6·25전쟁 이후 경제가 회복되면서 군대가 다시 성장했고, 특히 군대의 핵심 자리에 있던 항일빨치산 출신들의 입지가 강화됐다. 그들의 영향력은 북한의 정책 노선을 경제에서 경제·국방 병행 발전으로 비교적 쉽게 바꿀 수 있었다.
노동당 선전선동부 과장이었던 김정일은 1967년 선전선동부 일꾼들에게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한다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다.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의 병진노선을 관철하려면 전체 인민이 긴장되고 동원된 태세를 갖추고 한결같이 떨쳐나서 사회주의 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혁명적 앙양을 일으켜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켜 사회주의 경제건설의 높은 목표를 수행하면서 조국보위의 완벽을 기할 수 있도록 국방력을 강화하자면 한 사람이 두 몫, 세 몫을 해야 하며 생산과 건설을 평상시보다 두배, 세배의 높은 속도로 밀고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에서 나서는 방대한 과업들을 성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011년 10월 평안남도 평성 합성가죽공장을 현지지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일은 병진노선의 성공조건으로 한 사람이 2~3배로 생산해야 한다는 어려움을 토로한 것이다. 당시는 유엔 대북 제재가 없던 시절로 그나마 ‘평양속도’ ‘천리마속도’ ‘100일전투’ ‘200일전투’ 등으로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김정은 시대는 국제환경이 달라졌다. 미국과 든든한 우군이었던 중국마저 유엔 대북 제재에 발맞춰 단계적으로 북한을 압박해 사면초가에 몰리는 상황이 됐다. 그리고 김 위원장은 집권 초 군부 강경파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병진노선을 채택했지만, 지금은 잦은 인사와 전격 발탁으로 군부를 완전히 장악한 상황이다.
김 위원장은 병진노선이 아버지의 고충에서 드러났듯이 한시적일 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그는 경제를 총괄하는 내각에 확실하게 힘을 실어주었다. 북한 권력 구도에서 하위에 있는 현실을 고려해 김 위원장은 내각 관료들에게 “경제사업의 주인으로서의 위치를 바로 차지”하는 동시에 “당의 경제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내각의 통일적 지휘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05.28 김정은의 득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중과 게임을 하면서 무엇을 얻고 잃었을까?
트럼프를 몰라 제대로 '한 방' 먹고
6.12북미정상회담 성공으로 반전 노려
7.27종전선언은 김정은의 올해 최대목표
시진핑과 만남으로 경제지원 얻은 듯
하지만 트럼프의 오해를 사 곤란해져
미국의 경제지원 수용은 어려운 '선택'
먼저 미국부터 따져보자. ‘우물 안 개구리’식 사고방식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맞서다가 제대로 한 방을 먹었다. 과거처럼 미국과 기 싸움을 펼치면 더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는 참모진들의 얘기가 솔깃했던 모양이다. 그러다 기대와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했다. ‘협상의 달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예 판을 깨버리자 화들짝 놀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학습 부족 탓에 과거의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크게 낭패를 볼 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대통령과 달리 프로토콜이 없는 편이다. 그는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며 경험이 이론을 앞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자신이 프로토콜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에 대한 학습이 북한에 부족했다.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한 공격은 하수 중의 하수였다. 과거의 패턴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김계관과 최선희는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리면 그 이후에 처벌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을 취소하면서 미국 여론을 반전시키는 효과를 거두었다. 북·미정상회담에 회의적인 미국 의회와 국민에게 북한에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으로 보여줬다. 따라서 그는 북·미정상회담을 한 때 취소하면서 일거양득의 ‘횡재’를 맞은 셈이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게임에서 졌다. 김 위원장을 다루는 데 있어 트럼프 대통령을 따를 사람이 없다.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최고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얻은 것은 그의 스타일에 대한 학습이며, 잃은 것은 6·12북미정상회담에 대한 주도권이다. 하지만 6·12북미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리면 북한 주민들에게는 ‘위대한 지도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 김일성-김정일도 하지 못한 미국으로부터 안보 위협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7월 27일 종전선언까지 하게 되면 금상첨화다.
두 번째는 중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7~8일 다롄에서 열린 북·중정상회담으로 보인다. 그는 “김정은이 시진핑을 만난 이후 변했다”고 평가했다. 그의 평가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게 인식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 3월 북·중정상회담을 한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어떤 계산으로 다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는지 알 수 없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의심할 만했다. 시 주석은 북한을 여전히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두려고 한다. 그래서 중국식 개혁·개방을 따를 것을 기대하고 있다. 지난 14일 북한의 시·도 당위원장으로 구성된 ‘조선노동당 친선참관단’을 중국에 초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것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빌미를 제공했다. 그리고 5월 16일 남북고위급회담마저 취소하면서 더 오해를 살 행동을 했다.
▲(왼쪽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시 주석의 비위를 맞추면서 경제지원을 끌어낸 듯싶다. 시간이 지나면 밝혀지겠지만, 다롄 북·중정상회담에서 6·12북미정상회담 이후 유엔 대북제재가 완화되면 중국 정부가 대규모 대북 투자를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소규모 중국 기업이 대북 투자로 낭패를 보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중국 정부가 공기업을 앞세워 대북 진출할 것이라는 소문이 중국에 퍼져 있다.
김 위원장이 시 주석에게서 얻은 것은 경제지원이다. 미국과 손을 잡으려고 하니 중국의 대북 태도가 바뀌는 것을 확인했다. 김 위원장이 잃은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의심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북·미정상회담 이후 미국이냐 중국이냐 선택의 갈림길에 설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엄청난 잠재력이 있고, 언젠가 경제적으로 위대한 나라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북·미회담이 성공하면 대북 경협에 나서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피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대로 경제적 지원으로 ‘유혹’하면 김 위원장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해진다.
북한은 27일 노동신문을 통해 “우리가 회담을 통해 미국의 경제적 지원을 바라고 있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진심은 두고 볼 일이다.
[김정은 시대의 신조어] 2018.04.24
(1)김정은, 핵·미사일로 자신의 정당성 강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올해로 권력을 잡은 지 7년이 된다. 국내외적으로 많은 도전을 겪으면서 과거와 다른 북한을 만들려고 한다. 그는 “새것에 대한 지향과 요구는 시대가 전진하고 사회가 발전할수록 끊임없이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시대를 연 핵·경제 병진노선
5년만에 종료하고 새로운 전략적노선
사회주의 버리고 김일성·김정일주의 채택
세대교체 차원에서 청년 중시하고
핵·미사일 개발로 점철된 지난 7년
김일성·김정일의 비핵화 유훈 실현하나
‘김일성-건국, 김정일-군사, 김정은-경제’라는 프레임 속에서 2013년 3월 전원회의에서 ‘경제발전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을 선포했다. 그리고 5년만인 2018년 4월 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노선의 종료를 선포하고 ‘새로운 전략적노선’을 발표했다. ‘새로운 전략적노선’은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자는 것이다.
이처럼 김 위원장은 자신의 시대를 대표하는 신조어를 통해 ‘김정은의 북한’을 만들어가고 있다. 지난 7년 동안 북한에서 만들어진 신조어의 의미를 살펴보면 지금의 북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에 신조어를 정치·군사, 경제, 사회·문화 등 세 분야로 나눠 소개할 예정이다.
□정치·군사 분야
◇경제건설 및 핵무력건설 병진노선=김 위원장의 트레이드 마크로 집권 2년 차인 2013년 3월 전원회의에서 처음 발표했다. 전원회의에서 구체적인 과업으로 ▶농업·경공업에 역량을 집중함으로써 인민생활 향상 ▶자립적 핵동력 공업 발전 및 경수로 개발 ▶통신위성 등 발전된 위성 개발 ▶지식경제로 전환 및 대외무역 다각화 ▶주체사상을 구현한 우리식의 우월한 경제관리 방법 완성 등이 그것이다. 핵무력을 건설하는 작업과 함께 경제를 건설하려는 계획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전원회의는 병진노선에 대해 “국방비를 추가적으로 늘이지 않고도 전쟁억제력과 방위력의 효과를 결정적으로 높임으로써 경제건설과 인민생활향상에 힘을 집중할 수 있게 한다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핵무기 개발을 통해 재래식 무기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이를 통해 국방비를 감축하고 인민생활과 관련된 부문에 더 투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핵무기 자체를 제조하는 이상으로 추가적인 비용의 지출이 불가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전원회의 후속 조치로 2013년 4월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하여’라는 법령을 채택해 핵보유국임을 법제화했다. 또 우주개발법을 제정하고, 국가우주개발국도 설립함으로써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아울러 영변의 5MWe급 흑연감속로를 재가동했으며 원자력총국을 원자력공업성으로 격상시켰다.
이후 북한은 2016년 1월, 2016년 9월, 2017년 9월 등 세 차례 핵실험을 했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세 차례 시험 발사하는 등 핵무기와 운반수단 개발을 진행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29일 신형 ICBM ‘화성-15형’을 발사하고 핵무력 완성을 선포했다.
병진노선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북한은 1962년 12월 노동당 제4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제시하고 1966년 10월 제2차 당 대표자회에서 채택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병진노선은 지속하는 데 한계가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동당 선전선동부 과장 시절인 1967년 7월 선전선동부 일꾼들에게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한다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이 두 몫, 세 몫으로 해야 하며 생산과 건설을 평상시보다 두배, 세배의 높은 속도로 밀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현재 핵무기 개발에 따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받고 있다.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경제 활성화에 상당한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핵문제를 풀지 않고 경제가 활성화되기 어려운 구조다. 따라서 김 위원장은 2018년 4월 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노선의 종료를 발표했다.
◇김일성-김정일주의=북한이 2012년 4월 6일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김정일의 선군사상을 계승하겠다며 발표한 김정은 시대의 지도사상이다. 그해 4월 11일 제4차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조선노동당의 영원한 지도사상”이라고 못 박았다.
북한은 그 이후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방송 등 언론매체를 통해 이 이념을 지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2014년 5월 “모든 당 출판보도물은 온 사회에 김일성-김정일주의를 힘있게 뿜어주는 선도자, 나팔수가 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동신문 제호 왼쪽에 가끔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새겨 넣었다.
▲북한 김일성 주석 사망 23주기를 맞은 지난해 7월 평양시 만수대 김일성·김정일 부자 동상 앞에서 평양 주민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위원장은 2016년 5월 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는 우리 당의 최고강령”이라고 언급했다. 북한은 2016년 8월 열린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제9차 대회에서 사회주의를 빼고 청년동맹의 이름을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으로 개칭했다.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새로운 이념을 담은 것이 아니다.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을 김일성-김정일의 이름으로 재규정한 것에 불과하다. 김 위원장이 김일성-김정일주의라는 선대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정체성을 재규정하고 통치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다.
◇전략국가=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1일 제5차 세포위원장대회 개막사에서 처음으로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미국에 실제적인 핵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전략국가로 급부상한 우리 공화국(북한)의 실체를 이 세상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전략국가는 미국을 핵으로 위협할 수 있는 국가라는 의미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전략국가’를 언급했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김일성)과 위대한 장군님(김정일)의 최대의 애국유산인 사회주의 우리 국가를 세계가 인정하는 전략국가의 지위에 당당히 올려세웠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29일 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뒤 그동안 언급했던 ‘핵보유 국가’ 대신 ‘전략국가’를 사용하고 있다. ‘핵보유’라는 직접적이고 호전적인 이미지보다 ‘전략’이라는 포괄적이고 간접적인 단어를 선택한 것이다.
최용해 노동당 부위원장도 지난 11일 김정은의 당과 국가의 최고수위 추대 6돌 중앙보고대회에서 김 위원장이 언급한 ‘전략국가’를 표현했다. 그는 “최고지도자(김정은) 동지께서 우리 조국을 그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세계적인 군사대국으로 빛내주시고 전략국가의 지위에 당당히 올려세웠다”고 밝혔다. 이처럼 전략국가는 핵보유 국가 대신하는 말로 안성맞춤이다. 명료함·투명함보다 모호함·기만성을 선호하는 북한 사람들의 언어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백두산청년강국=김 위원장 시대 들어 청년세대의 역할을 강조한 표현이다. 북한에서 청년층은 국가 주요 시설물 건설에 필요한 주요 노동력의 원천이며, 군을 밑에서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세대다. 집권 후 김정은은 청년층을 지지 기반으로 자신의 시대를 열어가려는 움직임을 활발하게 보이고 있다.
김정은은 2015년 4월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건설장을 현지지도 하면서 “건설장에서 발휘되는 청년돌격대원들의 애국심은 우리나라(북한)가 세상에 둘도 없는 청년강국이라는 것을 힘 있게 과시하는 것”이라며 ‘청년강국’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김일성 시대 시작해 김정은 시대인 2015년 10월 완공한 백두산영웅청년 발전소의 모습. [사진 노동신문]
이후 북한 당국은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완공을 ‘청년중시 사상’의 성과로 선전하며 ‘백두산 청년강국’이란 신조어를 만들었다. 청년층 결집에 ‘백두산 청년강국’이란 용어를 폭넓게 사용하면서 체제선전과 청년층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
청년층에 대한 김정은의 애착은 2016년 8월 김정일 시대에도 열지 않았던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대회를 23년 만에 열면서 정점에 달했다. 연설에서 김정은은 “청년강국의 휘황한 내일을 향해 힘차게 싸워나가자”며 청년들을 격려했다.
김정은의 행보는 사회주의 국가건설과 전쟁을 경험하지 못해 상대적으로 한국과 미국에 대한 적개심과 체제 수호 의지가 약한 청년세대를 결속해 체제를 떠받쳐나갈 ‘미래 친위세력’을 키우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북한의 청년동맹은 만 14세부터 30세까지 청년들이 가입하는 단체로 약 500만 명이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년들은 기초단계의 정치조직인 청년동맹을 통해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 체제의 이념 등을 교육받는다.
◇동방의 핵강국=김 위원장의 지난 7년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핵'이다. 유엔 대북제재가 단계적으로 강화되는데도 불구하고 핵보유에 대한 집념은 강렬했다. 북한은 핵·미사일을 만들려는 의지가 있으면 반드시 만든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김 위원장은 미국의 핵 위협을 구실로 자국의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핵·미사일을 개발한다고 주장하면서 집권 이후 네 차례 핵실험을 했고 핵무력 완성까지 선포했다.
동방의 핵강국은 북한이 2017년 7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의 성공적인 발사를 주장하며 사용한 말이다. 북한이 이에 앞서 2016년 5월 열린 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 채택한 결정서에서 ‘동방의 핵대국’이라고 언급했다. 김정은은 2017년 신년사에서 또다시 “우리 조국이 그 어떤 강적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동방의 핵강국, 군사강국으로 솟구쳐 올랐다”고 밝히면서 ‘동방의 핵강국’을 언급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1월 29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인 '화성-15형' 시험발사를 참관하며 환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김일성은 한반도 비핵화를 유훈으로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일성이 1964년 10월 중국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에게 보낸 서한에서 “북한은 핵무기의 전면적 금지와 핵무기 폐기를 지금까지도, 또 앞으로도 계속 지지한다”고 밝혔다. 김정일도 2007년 제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우리는 핵무기를 가질 의사가 없다. 유훈이다. 우리의 이러한 의지는 확고하다”면서 김일성의 유훈을 확인시켜줬다.
김 위원장도 집권한 이후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김정일의 유훈’이라고 언급한 것은 2013년 6월 국방위원회 대변인 중대 담화부터 지금까지 네 차례다. 그리고 지난 4월 전원회의에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중단하고 북부 핵시험장(풍계리 핵실험장)도 폐쇄하기로 했다. ‘유훈’이라고 하면서 핵개발을했지만, 이제는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경제부문은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2) 대북제재를 자강력·속도전으로 대응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 전원회의에서 ‘새로운 전략적 노선’으로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김 위원장의 집권 7년 동안 가장 많이 등장한 신조어는 경제와 관련된 용어다. 김 위원장이 2012년 4월 첫 육성 연설에서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도록 하는 것이 당의 확고한 결심”이라고 밝혔다. 유엔 대북제재 가운데 김 위원장이 이를 실천하기 위해 어떤 신조어를 만들었는지 알아보자.
'자기의 힘'으로 극복하자는 자강력이 바탕
독립채산제 확대하고 지배인 경영책임제 확산
허리띠 졸라매지 않겠다는 약속 실천에 안간힘
공장·기업소에 가격·판매 자율권 부여
협동농장 분조 단위를 줄여 생산력 향상
기존에서 변화했지만 근본적 개혁은 아직
□ 경제 분야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김 위원장이 4월 전원회의에서 ‘새로운 전략적노선’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목표로 국가경제발전 5개년(2016~2020) 전략을 언급했다. 이는 2016년 5월 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 제시됐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은 과거와 차이점으로 ‘계획’이란 용어 대신에 ‘전략’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1956년 3월 노동당 제3차 대회에서는 ‘인민경제발전 5개년 계획’, 1961년 9월 노동당 제4차 대회에서는 ‘인민경제발전 7개년 계획’을 사용했다. 아울러 구체적인 목표 수치를 제시하지 않은 것도 특이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이 지난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를 주재하고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 중단을 결정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1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5개년 전략의 목표로 ▶인민경제전반의 활성화 ▶경제 부문 사이 균형을 보장 ▶나라의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 마련 등을 선정했다. 부문별 과제로 특히 전력을 강조했다. 전력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5개년 전략 수행의 선결 조건이며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의 중심고리이며 발전소 개선, 송배전망 개건 보수,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을 제시했다.
경제 운영 방식에서는 내각 책임제와 사회주의기업 책임관리제의 두 가지 방식을 채택했다. 내각 책임제는 박봉주 총리를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임해 힘을 대폭 실어주었다. 김 위원장은 4월 전원회의에서 내각 관료들에게 “경제사업의 주인으로서의 위치를 바로 차지”하는 동시에 “당의 경제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내각의 통일적 지휘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주의기업 책임관리제는 독립채산제를 확대하고 차별임금제, 지배인 책임경영제를 강화한 것이다.
◇자강력 제일주의= 김 위원장은 2016년 신년사를 통해 ‘자강력 제일주의’를 처음으로 제시했다. 그는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에서 자강력 제일주의를 높이 들고 나가야 한다”며 “우리는 자기의 것에 대한 믿음과 애착, 자기의 것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강성국가 건설대업을 반드시 우리의 힘, 우리의 기술, 우리의 자원으로 이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 국가우표발행국에서 2016년 7월 자강력제일주의를 비롯한 노동당 제7차 대회 과업을 반영한 우표를 제작했다. [사진 조선의 오늘 홈페이지]
북한이 2016년 자강력 제일주의를 강조하고 나선 것은 연이은 핵실험과 각종 미사일 발사 등으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김 위원장은 2016년 5월 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 자강력 제일주의에 대해 “자체의 힘과 기술, 자원에 따라 주체적 역량을 강화하고 자기의 앞길을 개척해 나가는 혁명 정신”이라고 정의했다.
아울러 그는 “자강력 제일주의의 기반은 자기 나라 혁명은 자체의 힘으로 해야 한다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혁명사상이며 자강력 제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투쟁방식은 자력갱생, 간고분투”라고 규정했다.
자강력 제일주의는 김일성이 1961년 12월에 제시한 자력갱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북한은 경제적인 능력을 향상하고 있었지만, 중소분쟁으로 소련과 중국의 지원이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북한이 내놓은 것이 자력갱생이다. 자력갱생은 원래 중국 공산당의 지도방침 가운데 하나로 북한이 차용한 것이다. 중국은 1959년부터 계속된 3년간의 자연재해와 1960년 소련의 지원이 중단되면서 이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북한은 자강력 제일주의를 내세우면서 국산화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봄향기’ ‘은하수’ 등 토종브랜드의 육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해외의 유명 브랜드를 자체 브랜드로 대체하면서 외화 사용을 억제하고 국내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2016년 생산 현장을 시찰하면서 ‘자기식 투쟁 방식’과 ‘창조 방식’ 등을 강조하면서 자강력 제일주의의 실천을 역설했다. 가방공장, 양묘장 등에서도 자강력 제일주의를 강조했다. 그는 북한 사회가 자강력 제일주의를 바탕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선전하고 있다.
◇우리식 새로운 경제관리체계(6·28방침)= 김 위원장은 2012년 6월 28일에 ‘우리식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를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방침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시장경제 요소를 가미해 경제 운용 체제를 변화시키겠다는 것이다. 만성적인 식량난 해결을 위해 물질적 인센티브 제공과 계획화의 부작용 개선 등을 통해 농업 생산성과 주민생활 향상을 도모하고자 도입했다.
크게 공장·기업소, 협동농장 개혁 두 부문으로 돼 있다. 공장·기업소 개혁은 초기에 국가가 생산비를 투자하지만, 이후에는 개별 단위에서 자율적으로 하도록 했다. 국가가 생산 품목과 목표를 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자재, 연료, 전력 등을 다른 공장이나 탄광, 발전소 등과의 거래를 통해 사도록 했다. 가격·제품 판매도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했다. 판매 수입은 국가와 공장·기업소가 일정 비율로 나누게 했다. 근로자들은 제품 판매로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배급은 폐지했다. 국가기관이나 교육, 의료 등의 분야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에 대해서만 배급제를 남겨놓았다.
협동농장 개혁은 기존 작업 분조(통상 10~25명)를 4~6명으로 줄였다. 능률 향상을 위해 한 가족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했다. 국가가 제시한 목표를 달성하면 그 생산물을 국가와 분조가 7대3으로 나누도록 했다. 목표를 초과한 생산물은 분조가 가지도록 했다. 따라서 농민들의 근로 의욕을 자극해 식량 생산을 늘리는 효과를 거뒀다. 집단영농제에서 가족영농제로 이행되는 전단계로 볼 수 있다.
6·28방침은 기존의 경제운용 방식에서 변화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공장·기업소 개혁은 공장·기업소의 소유는 그대로 국가만이 할 수 있었다. 개인이 설립할 수 없도록 했고 공장·기업소의 책임자도 노동당에서 임명했다. 협동농장 개혁은 농민들의 몫이 많아지긴 했지만, 군량미 등으로 징수해감에 따라 대부분의 농장에서는 초과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다.
◇만리마 속도= 김정은 시대를 대표하는 속도전식 생산성 향상 운동으로 김일성 시대의 '천리마 운동'에서 따온 슬로건이다.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千里·약 393㎞)를 달릴 수 있는 준마를 말한다. 최단기간 내에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최상의 성과를 달성하자는 취지에서 등장한 개념이라 볼 수 있다.
▲천리마 동상을 담은 북한 화폐의 모습. [사진 중앙포토]
김 위원장은 2016년 5월 열린 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 “10년을 1년으로 주름잡아 내달리는 만리마 시대를 열어놓았다”고 밝혔다. 이를 계기로 반세기 넘게 북한 경제와 사회 전반을 지배해 온 ‘천리마’는 ‘만리마’에게 바통을 넘겨주게 됐다. 지난해 3월 노동신문은 “천리마가 남을 따라 앞서기 위한 비약의 준마였다면, 만리마는 세계를 디디고 솟구쳐오르기 위한 과학기술 용마”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속도를 강조하는 대중동원 운동을 통해 근로자들의 생산성 향상을 추동해왔다. 김일성 시기에는 1956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천리마를 탄 기세로 달리자는 '천리마 운동'을 제기한 데 이어 각 부분에서 '평양속도', '비날론 속도', '강선속도'를 강조했다. 김정일은 70일 전투, 100일 전투, 150일 전투, 200일 전투와 같이 일정한 기간을 정해놓은 속도전을 강조하면서 정치사업과 문화예술 분야까지 영향력을 확산시켰다.
김 위원장도 치적사업의 달성을 위해 최근 2년 동안 대규모 노력 동원 운동을 전개했다. 노동당 제7차 대회를 개최한 2016년에는 ‘70일전투’와 ‘200일전투’를 펼쳐 자본과 노동력을 총동원했으며, 지난해엔 '만리마 운동'을 독려한 바 있다. 속도전은 생산을 늘려 단기간에 목표를 달성할 수 있어도 성과의 질적 하락과 비효율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겠다는 북한에 속도와 내적 발전의 균형추가 필요한 시점이다.
◇여명거리= 북한이 지난해 김일성 생일 105주년을 맞아 건설한 평양의 대표적인 신도시다. 여명은 ‘북한에 여명이 밝아온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말이다. 2012년 집권한 김 위원장은 평양의 신시가지 건설에 공을 들였다. 창전거리와 은하과학자거리, 미래과학자거리와 같은 신시가지를 건설했을 뿐 아니라 문수물놀이장과 능라인민유원지 같은 위락시설도 만들었다. 북한의 관영 매체들은 ‘주체건축의 새로운 전성기’라며 김 위원장의 건설 업적을 선전하고 있다.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표적 치적시설로 선전하는 평양 여명거리의 모습. [노동신문]
건설 분야에 대한 북한 지도자의 관심은 김정일 시기에도 있었다. 평양의 창광거리와 문수거리에 현대식 고층아파트를 건설했으며 주체사상탑과 개선문 같은 상징적 건축물도 만들었다. 1981년에는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여성전문 병원인 평양산원을 만들어 체제 선전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김 위원장은 ‘건설정치’를 통해 경제적 치적을 선전하고 주민들의 생활을 살뜰하게 챙기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주민들의 충성과 존경을 유도하고 있다.
평양의 신도시는 김 위원장의 ‘과학기술 중시정책’에도 활용됐다. 핵·미사일을 개발하는 국가우주개발국이나 조선인민군 전략군 소속 연구소의 전문 인력뿐 아니라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종합대학의 교원들을 새로 건축한 평양의 고급 아파트에 우선 입주시켜 과학자들을 우대한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평양의 쑥섬에 건설한 과학기술전당은 과학중시 정책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치적물이다. 젊은 세대에게 과학강국의 꿈을 심어주고,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세계가 부러워하는 기술대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사회·문화 부문은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끝)] "새 것, 새 것, 또 새 것"을 강조한 김정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체제유지를 위해 사회·문화적으로도 신조어를 많이 만들었다. 김 위원장은 “교육사업은 나라와 민족의 부강번영을 위한 만년대계의 애국사업이다” “예술의 힘은 핵폭탄보다도 더 위력하다” 등으로 사상 선전에 관심을 기울였다. 여동생인 김여정을 북한의 사상생활 지도를 담당하는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에 임명한 것도 그의 관심을 엿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이 권력을 잡은 이후 등장한 사회·문화적 신조어가 어떻게 북한 사회에 영향을 주었는지 살펴보자.
반복과 유사성이 없이 독특한 것을 선호
집중·연속·명중 포화로 선택과 집중
백두혈통 내세워 정권의 정당성 유지
소학교 과정을 1년 늘려 '12년제' 의무교육
믿을 것은 사람 밖에 없어 인재양성이 중요
군자리 정신으로 국산화 강조하면서 위기 극복
□ 사회·문화 분야
◇ 모란봉악단= 김정은 시대 들어 북한 최고의 악단으로 자리 잡은 모란봉악단은 2012년 7월 시범공연을 통해 처음으로 선보였다. 하이힐과 미니스커트 차림의 여성 예술인만으로 악단을 창단했다. 모란봉은 평양시 모란봉구역에 있는 언덕(96m)의 이름이다.
▲모란봉악단이 2014년 3월 4.25문화회관에서 전국예술인대회 참가자들을 위한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우리민족끼리]
모란봉악단은 파격적인 의상에 팝송을 번안해 부르는 등 이전 예술단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북한 주민들에게 충격을 줬다. 단장은 평창 겨울올림픽 맞아 삼지연관현악단을 이끌고 강릉(2월 8일), 서울(2월 11일) 공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현송월이다. 모란봉악단 이름은 김 위원장이 직접 지었다. 아버지 김정일이 모란봉을 좋아해 그 이름을 따왔다.
김 위원장은 모란봉악단을 창단하면서 그 임무로 “모란봉악단의 기본 사명은 우리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힘 있는 무기가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모란봉악단을 지도하면서 “새 것, 새 것, 또 새 것을 창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래서 북한은 모란봉악단이 창조한 모든 공연은 형상이 참신하고 진실하며 모방과 도식, 반복과 유사성이 없이 언제나 새롭고 독특한 것이 특징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모란봉악단은 기존 북한식 공연과 달리 화려한 조명, 현대적 전자악기, 연주자들의 세련된 의상, 여성 보컬들의 경쾌한 음악을 바탕으로 과감한 무대를 선보였다. 김 위원장의 부인 이설주가 처음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김 위원장과 함께 본 모란봉악단 공연이다.
◇ 첨입식 사상사업= 북한이 2016년부터 시작한 사상사업 및 선전선동 방식이다. 김 위원장이 2016년 노동당 제7차대회에서 “첨입식 사상사업 방법의 요구대로 사상공세의 대상을 바로 정하고 집중포화, 연속포화, 명중포화를 들이대야 한다”고 말했다.
‘첨입’은 더 보태어 넣는다는 뜻으로 첨입식 사상사업은 여러 군데에 선전선동사업을 벌여놓은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대상을 정해서 집중적으로 사상사업을 펼치는 방법이다.
노동신문은 2016년 3월 원산군민발전소 건설장을 소개하면서 “원산군민발전소 건설에서 중심고리이며 기본전선인 물길굴 건설장에 모든 선전선동역량과 수단을 총집중하고 집중포화, 연속포화, 명중포화를 공세적으로 들이대는 첨입식 정치사상사업이 벌어지게 됐다”고 소개했다.
김 위원장은 소규모로 다양하게 선전선동을 하는 것보다 첨입식 사상사업 방식에 따라 가장 중요한 현장을 정하고 이곳에 선전선동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 백두의 칼바람정신= 2014년 10월 백두산에 오른 김정은이 “백두의 혁명정신, 백두의 칼바람정신은 우리 군대와 인민이 심장 속에 영원히 품어 안고 살아야 할 숭고한 정신이며 온 세상 금은보화를 다 준다고 해도 절대로 바꾸지 말아야 할 제일 귀중한 재보”라고 언급하며 제시한 투쟁정신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5년 4월 북한군 전투비행사 행군대원들과 백두산에 올랐다. [사진 노동신문]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백두혈통을 강조해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체제의 강화 발전을 이끌려는 의도를 요약한 구호로 보인다. 김정일의 급사로 갑작스럽게 권력을 승계한 청년지도자 김 위원장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은 ‘백두혈통’이라는 점이다. 김 위원장은 ‘백두산 항일혁명가’인 김일성의 적자인 김정일을 이은 ‘혁명위업의 계승자’인 것이다.
북한은 3월 초 남북, 북·미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한 후 주민을 대상으로 사상전을 강조하면서 ‘백두의 혁명정신'을 언급했다. 노동신문은 지난 3월 12일 ‘백두의 혁명정신, 백두의 칼바람 정신으로 최후 승리의 진격로를 열어나가자’라는 제목의 사설을 1면에 게재하고 “백두의 칼바람 정신이 세차게 나래 치도록 하기 위한 사상공세를 맹렬하게 벌려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 전반적 12년제 의무교육= 북한은 2012년 9월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2기 6차 회의에서 '전반적 12년제 의무교육 실시함에 대하여'를 법령으로 채택했다.
▲2014년 4월 북한 최고인민회의가 열린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주석단의 대의원들이 대의원증을 들어 표결을 하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법령은 ▶전반적 12년제 의무교육을 모든 지역에서 무료로 실시하며 ▶대상은 5세부터 17세까지 모든 어린이·청소년이고 ▶유치원 1년(높은 반)과 소학교 5년·초급중학교 3년·고급중학교 3년을 교육한다고 규정했다. 1972년부터 11년제 의무교육을 시작했으나 소학교 과정이 4년에서 5년으로 1년 늘어남에 따라 의무교육 기간이 12년이 되었다. 북한의 의무교육을 확대한 것은 지식경제 시대 교육 발전의 현실적 요구와 세계적 추이에 따라 교육의 질을 결정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다.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이기 때문에 등록금 같은 교육비는 없다. 북한이 선전하는 무상교육은 교과서, 학용품, 기숙사 등에 드는 모든 비용을 포함하는 개념이지만 1990년대 이후 경제가 어려워 지면서 이 같은 비용을 개인이 부담하고 있다. 과학기술과 외국어에 대한 관심도 높아 교육을 강조하지만, 평양 등 주요 도시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교육 기자재를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의 교육열도 한국에 못지않다. 과학·외국어·예술 분야의 영재들을 모아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영재반부터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선발되기 위해서 재능을 조기에 찾아야 유리하기 때문에 특권층은 어린 자녀를 명문 유치원에 보내려고 한다.
평양의 대표적인 명문 유치원은 창광유치원과 경상유치원인데 좋은 교육환경과 우수한 교양원(교사)이 배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고위층이 많이 거주하는 창광거리에 위치한 창광유치원은 음악 분야 영재를 키우기 위한 조기음악반을 운영하고 있다. 이 과정을 마쳐야 명문 예술학교인 금성학원·평양예술학원· 평양음악대학 예비교육학부 진학이 가능하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다.
◇ 군자리 정신= 독자적 무기 개발 및 군수산업 발전을 추동하기 북한이 강조하는 투쟁 정신이다. 군자리 정신은 평안남도 숙천군 군자리 군수공장 노동자들이 6·25전쟁 시기 부족한 물자에도 무기와 각종 탄약을 생산한 성과를 선전하며 불굴의 혁명 정신을 강조할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북한 당국은 1950년대 군자리 주민들이 사용하던 박격포직장, 공구직장 등의 모습을 복원해 군자혁명사적지로 조성해 사상 교양 사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2016년 4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을 통해 군자리 노동계급 훈장을 제정해 노동계급의 투쟁을 독려하는 대중운동을 벌이고 있다.
김 위원장은 2014년 4월 평양에 위치한 미사일 부품공장인 약전(弱電)기계공장을 현지지도하면서 "우리의 힘과 기술에 의거해 우리의 실정에 맞게, 우리 식대로 새 제품개발 사업을 다그쳐야 약전 기계제품 생산의 주체화, 국산화를 실현할 수 있다"며 군자리 정신을 강조했다.
또한 그는 2015년 5월에는 함경남도 용성연합기업소에 위치한 2월11일 군수공장을 방문해 "1950년대 군자리 노동계급이 발휘한 투쟁정신을 백두의 혁명정신, 백두의 칼바람정신으로 더욱 세차게 폭발시킨다면 점령하지 못할 요새가 없다"며 군자리를 언급했다.
북한은 핵·미사일 도발로 강화된 국제사회의 전방위적인 제재로 인해 대외무역이 축소되면서 외화 수입이 급감했다. 군자리 정신을 강조하는 이유는 제재와 폐쇄적인 경제구조로 나타나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주민들을 결속시켜 체제이완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판단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