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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토의 소식2/ 2019.01.02 “북한군 간부 비행장서 총살 - 월간조선 12월호 최근 북한군 정치장교들에게 배포된 ‘학습제강’ 자료 분석

상림은내고향 2021. 10. 11. 19:32

동토의 소식2/ 2019

01월 02일 “북한군 간부 비행장서 총살…김정은 공포정치 불만확산”

▲  【서울=뉴시스】지난해 북한에서 군 소속 정치위원이 공개총살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공포정치에 대한 불만이 군 간부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사진은 김 위원장이 1일 김여정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조용원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왼쪽),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오른쪽)과 노동당 청사에 마련된 신년사 발표장으로 향하는 모습. 2019.01.02. (사진=조선중앙TV 캡처

 

RFA “고위간부 처형·숙청 도넘어…간부들, 못 참고 불만” 지난해 북한에서 군 소속 정치위원이 총살되는 사건이 발생, 군 고위간부들 사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공포정치에 대한 불만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1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북한군 평양고사포병사령부 정치위원이 당에 대한 태도불량죄 및 사생활 문란 혐의로 미림비행장에서 총살형을 당했다. 처형은 수백명의 장군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 집행됐다. 

 

RFA가 인용한 소식통은 이번 공개처형에 대해 “당의 정책집행을 태공(태업)하고 사회주의를 좀먹는 이런 행위와 관련해서는 추호의 용서도 없다는 것을 군 간부들에게 분명하게 각인하는 효과를 노린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공개처형으로 북한군 내부에선 중앙당의 공포정치에 대한 불만 목소리가 나온다고 RFA는 또 다른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소식통은 RFA에 “죄의 경중을 따져볼 때 꼭 총살까지 할 필요가 있었는가라며 동정론을 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며 “당 중앙(김 위원장)의 공포정치가 도를 넘고 있다는 반응을 보이며 간부들끼리 내부적으로는 수군거리고 있다”고 했다.

 

이 소식통은 또 “이같은 반응은 예전 같으면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뜻밖”이라며 “최고 지도자의 고위간부에 대한 처형과 숙청이 도를 넘다보니 이때까지 숨을 죽이고 두려움에 떨던 간부들도 이제 더는 참지 못하겠다며 불만을 표출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 뉴시스> 

 

 

01.24 월간조선 뉴스룸

■"가택 검열에 총살 위협까지"... 김정은式 '공포통치' 강화하는 北의 속내

北 당국 "남조선 문물 접하는 주민은 체제 위험 세력 된다!" 들통난 김정은의 '거짓 평화' 제스처

 

▲북한 김정일(좌)과 김정은. 아버지 김정일 못지않게 김정은의 공포통치도 최근 강화되고 있다는 북한 내 증언이 나왔다. 사진=연합뉴스, 조선DB

 

북한 지도부가 주민들에 대한 '공포통치'를 강화하고 있다. 당 중앙에서 생활검열단을 조직, 가택 검열을 하고 남한 문물을 접하다 발각되면 총살하겠다고 위협하는 식이다.

 

이 조치들은 모두 김정은이 직접 지시한 것으로, 북한 사회에 전파된 한류(韓流) 문화를 차단하고 주민을 통제·착취하기 위함이다. 남북한의 정치·사회·경제적 격차를 경험한 주민들이 세습 독재에 반기를 들지 못하도록 '내부 단속'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북한 내 소식통들은 당국이 남한 문물을 접하는 주민들을 "반(反)체제 세력, 체제 위험 세력"으로 보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 교류 국면이 조성된 상황에서도 북한의 남한 적대시, 인권 탄압은 여전하다는 점을 증명해 주는 사례다.

 

23일(현지시각) '자유아시아방송'(rfa) 보도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이달 중순부터 지방 주민들의 생활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중앙당에서 '생활검열단'을 조직해 지역별 조사를 진행 중이다. 소식통들은 이 생활 검열이 단순 조사가 아닌, "간부들이 각 가정을 통제하고 뇌물을 받기 위해 실시한 요식 행위"라고 전했다.

 

평안북도의 한 소식통은 "당 중앙(김정은)의 직접 지시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생활검열단은 불시에 주민들의 가택을 방문한다. 집안의 가재도구 등을 살펴보고 집안의 가장을 불러 살림살이의 형편을 검증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중앙의) '검열단이 언제쯤 내려온다'는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지방 당과 행정기관들이, 준비를 재빨리 갖춰 놓고 검열단을 안내하고 있다"며 "검열단이 들어갈 만한 집들을 미리 선정, 쌀과 과일 등을 집안에 쌓아놓고 검열이 끝나면 다시 회수한다"고 덧붙였다. 형식적인 검열조차도 허위 보고를 위해 지방 기관들이 속임수를 쓴다는 것이다.

 

/그래픽=조선DB

 

이와 관련 평안북도의 또 다른 소식통은 "주민들의 어려운 생활상이 '있는 그대로' 당 중앙에 보고되면, 해당 지역 당 간부들은 물론 중앙당 간부들에게도 좋을 게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소식통의 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당 중앙 차원의 검열이 있어도, 그에 대한 평가는 지방 간부들이 건네는 뇌물의 액수에 따라 내용이 조정돼 (상부에) 보고될 게 뻔하다."

 

북한 당국은 또 연초부터 연선지역(휴전선 접경지역)인 황해남도 주민을 대상으로 강연회를 반복 진행, "남한 문물을 접하다 적발될 경우 총살형까지 처해질 수 있다"고 위협했다.

 

황해남도의 한 소식통은 "새해 들어 황해남도 여러 지역에서는 보안서가 주민들 대상으로 인민반 강연회를 직접 진행했다"며 "(보안서는) 텔레비전 채널을 고정하지 않은 채 주파수를 돌려, 남조선 채널을 시청하는 주민들이 적발될 경우 직위를 불문하고 '공개총살'에 처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사격 훈련 중인 북한 김일성대 학생들. 사진=조선DB

 

이 소식통은 또 "적지물(대북전단 등)로 떨어진 저장장치(USB)를 보안서에 바치지 않고, 몰래 소지하고 다니면서 '퇴폐적인 자본주의 영상물을 보는 현상을 철저히 없애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그의 증언이다.

 

"실제로 황해남도 벽성군과 강령군 등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남조선과 가까워, 주파수만 맞추면 KBS를 비롯한 남조선 채널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지난해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서 남조선 채널 시청을 두려워하던 주민들도 새벽에 전기가 오는 시간을 이용, 몰래 시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북한 당국이 당혹해하고 있다."

 

소식통은 "(북한 당국으로서도) 남한과의 접경지역 주민을 확실히 통제하고 민심을 다 잡지 못할 경우, (그들이) 유사시 적대국을 돕는 세력으로 돌변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며 "이는 체제 위험 세력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주민들의 남조선 텔레비전 시청을 강하게 통제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강원도의 한 소식통이 전한 이야기다.

 

"그러나 주민들은 단속의 위험을 무릅쓰면서 나라 안팎의 정확한 소식을 전해 주는 남조선 방송과 텔레비전을 몰래 시청하고 있다. (USB) 메모리나 SD카드에 담겨 있는 남조선 드라마를 한 번만 봐도 주민들의 생각이 달라진다. 남조선 텔레비전을 직접 보게 되면 국내외 정세는 물론, 남조선 사람들의 생활을 체감하면서 우리나라(북한) 문제가 무엇인지 저절로 알게 되어 비판의식이 싹트게 된다. 날이 갈수록 달라지는 주민들의 의식 수준에 대응하느라 중앙에서는 구태의연한 사상 교양 사업과 주민 강연회를 반복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뻔한 내용으로 일관하는 당의 선전 내용을 비웃고 있다."

글=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02.12 "집에서 미국돈 300만달러 나왔다" 北 백화원초대소 소장 공개

文대통령 묵었던 북한의 영빈관

  "남북정상회담前 새 단장 했는데… 김정은, 비용 청구서 보고 대노"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평양 정상회담 때 묵은 북한의 영빈관 '백화원초대소' 소장이 지난해 12월 부정부패 혐의 등으로 공개 처형당한 것으로 11일 알려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말부터 강조하고 있는 '부패와의 전쟁'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이 밖에도 최근 당과 군 간부 다수가 숙청돼 평양 분위기가 흉흉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9월 17일 문재인 대통령 부부 전용 방탄 차량이 평양 백화원초대소 영빈관 앞에 대기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평양 소식에 밝은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백화원초대소장은 지난해 10월 노동당 조직지도부의 검열 과정에서 비리가 적발됐다. 백화원초대소는 김정은 일가와 지도부의 경호를 담당하는 호위사령부 소속이며, 소장은 대좌(우리의 대령)급이다. 대북 소식통은 "검열 결과 소장의 집에서 미화 300만달러가 발견됐다"며 "초대소에서 근무하는 여성들과의 추문도 죄명에 추가됐다"고 했다. 평양의 한 거리에서 이뤄진 공개 처형엔 호위사령부와 군 관계자들, 노동당과 내각의 간부들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화원초대소는 북한을 찾는 국빈급 인사의 숙소로 사용됐다. 2000년 김대중, 2007년 노무현, 작년 문재인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했을 때 숙소로 사용했다.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과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일본 총리 등도 이곳에 묵었다.

 

북한은 지난해 문 대통령의 방북 전 백화원초대소를 새로 단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장의 비리는 이 과정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대북 소식통은 "백화원초대소 수리 비용으로 막대한 금액의 청구서가 올라오자 김정은이 노발대발했다는 얘기가 있다"며 "공사비 착복이 있었는지 철저히 검열하라는 지시가 떨어져 조직지도부의 검열이 붙었다"고 했다. 다른 소식통은 "백화원초대소는 김씨 일가의 경제 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담당하는 '금수산의사당 경리부'에 서 물자를 우선 공급받기 때문에 비리도 그만큼 잦다"고 했다.

 

한편 이와 비슷한 시기 부정부패 혐의로 내각 소속의 간부 3명도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도쿄신문은 당 조직지도부의 검열이 이뤄져 호위사령부 고위 간부가 숙청됐다고 보도했다. 대북 소식통은 "대북 제재 장기화로 권부 내 동요가 일자 군기 잡기 성격의 '피바람'이 불고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김명성 기자

 

03-07 김일성·김정일 방부처리관리 여전히 러시아 담당…연간 4억5000만원

▲러시아가 여전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인 김일성 전 주석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시신 방부처리를 담당 관리하고 있으며, 소요비용은 연간 40만달러(약 4억5000만원) 이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포스트는 6일(현지시간) 러시아의 과학이 과거의 북한 지도자 2명의 시신이 부패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직까지도 북한의 기술로 방부처리를 해내지 못하고 러시아 연구진이 담당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1994년 숨진 김일성 전 주석과 2011년 세상을 떠난 김정일은 평양의 금수산태양궁전에 안치돼 있다.  

 

이들의 방부처리에 관해서는 모든 게 극비이지만 김일성과 김정일 사망 당시 ‘레닌 연구소(Lenin Lab)’로 불리는 러시아 모스크바의 전문가팀이 방부처리를 했다.

 

레닌 연구소는 1969년 숨진 호치민 베트남 전 주석의 시신도 방부처리한 바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북미정상회담차 방문한 베트남에서 호치민 전 주석의 묘지를 찾아갔다. 

 

일부 전문가들은 마오쩌뚱 전 중국 국가주석의 시신을 방부처리한기술을 갖고 있는 중국이 북한에 기술을 가르쳐주었거나 도움을 주고 있을 것으로 보기도 했다.

 

그러나 뉴욕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아직도 러시아 연구팀이 김일성, 김정일 시신의 방부처리를 관리하고 있다. 아울러 호치민 전 베트남 주석의 시신도 여전히 관리하고 있다. 

 

방부처리된 공산주의 지도자에 대한 책을 쓰고 있는 알렉세이 유차크 미 버클리대 인류학 교수에 따르면 러시아의 시신방부처리 노하우는 세계 최고이며 살아있는 사람처럼 몸을 유연하게 유지한다. 

 

뉴욕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북한이 김일성과 김정일 시신 관리에 얼마나 많은 돈을 쓰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가늠할 수는 있다.

 

러시아는 지난 2016년 처음으로 레닌 시신 보존비용을 공개했으며, 그해에 20만달러가 들었다고 했다. 연구팀이 북한까지 출장가야하는 것을 감안하면 김일성과 김정일 시신 유지에 연간 40만달러 이상이 드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로스앤젤레스=뉴시스】

 

 

03.21 월간조선 04월 호

■리설주 醜聞이 부른 은하수관현악단원 12명 공개 처형 직접 참관한 당시 장철구평양상업대학생의 증언

“고사총으로 한 명 한 명 난사한 뒤 ‘이런 민족반역자들은 공화국 어디에도 묻힐 곳이 없다’며 탱크로 짓뭉개”

 

⊙ “리설주가 미치지 않고서야 본인 섹스비디오 유포했겠느냐고 한 선배의 온 가족 수용소行”

⊙ 평양에는 은하수관현악단 단원들이 리설주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고 다녀 처형됐다는 소문 퍼져

⊙ 김정일 때도 첩 성혜림이 김정일 집에 들어간다고 이야기한 주민들 처벌

⊙ 단원 12명 모두 죽이는 데 20~30분 걸려… 일부 참관자 잔혹한 광경에 졸도

⊙ 단상(사형대)에 올라선 장수길과 리룡하 입안은 쑤셔 박은 쇠뭉치로 가득

⊙ 두 사람 처형 끝까지 참관한 장성택, 중앙당 청사로 돌아오자마자 연행

⊙ 장수길·리룡하 처형 때 장성택 이름 처음 언급… 간부들 그때야 보통 일이 아니라 판단 

 

 

김정은이 권력을 잡으면서 북한의 처형 방식이 더욱 잔인해졌다. 물론 상체가 거의 없어질 정도로 총을 쏴 죽였던 김정일 때도 잔혹했던 건 매한가지지만 강도가 더욱 세졌다. 아버지가 총으로 처형했다면 김정은은 포()를 동원한다. 박격포·고사포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고모부인 장성택, 인민무력부장이었던 현영철이 대표적이다. 김정은은 둘을 고사포로 흔적도 없이 사살했다. 이들 외에도 김정은은 수많은 사람을 매우 잔인한 수법으로 처형했다. 한국의 북한 인권 단체인 북한전략센터는 김정은의 인권말살 행위를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엘리트 출신 탈북민 다수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에는 은하수관현악단 12명과 장성택 인맥인 리룡하(노동당 행정부 제1부부장), 장수길(노동당 행정부 부부장)의 공개처형을 직접 참관한 탈북자들의 증언이 담겼다. 그들의 증언을 보면 김정은이 얼마나 끔찍하고 잔혹한 방법으로 수많은 북한 인사를 처형하는지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현 정권의 김정은에 대한 환상으로 인해 ‘잔혹한 독재자 김정은’은 우리 사회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뜻이 없음이 확인돼 미북정상회담이 결렬됐음에도 정부는 북한에 ‘당근’을 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당은 협상 결렬의 책임을 미국에 돌리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 2차 미북정상회담 결렬 이후 한미가 대북정책을 놓고 연일 엇박자를 내자 주요 외신들이 ‘불화’ ‘이견’ ‘마찰’ 등의 표현을 쓰며 한미 관계의 이상 기류를 우려하는 보도를 쏟아내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라) 김정은 편을 든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북한과 김정은을 마치 정상 국가의 민주적 지도자인 양 판단해서 벌어진 일이다.
 
  《월간조선》은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은하수관현악단, 리룡하·장수길 공개처형 상황을 종합적·입체적으로 재구성했다. 김정은을 제대로 알자는 취지다. 

   
  김정일이 생전 공들여 키운 은하수관현악단  

▲2012 3 14일 밤(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살 플레옐’ 콘서트홀에서 공연하는 은하수관현악단. 은하수관현악단 단원 12명은 불순 녹화물과 性 녹화물을 시청하고 그것을 재연하는 영상을 만들어 유포시켰다는 이유로 잔인하게 처형됐다.

 

“음악은 나의 첫사랑이고 영원한 길동무이며 혁명과 건설의 무기다.”    

김정일에게 음악은 ‘혁명의 무기’였다. 김정일은 만수대예술단을 만들어서 김일성에게 바쳤고, 자기 시대에 와서는 북한식 전자악단인 ‘보천보전자악단’을 만들었다. 2009년 5월에는 후계자 김정은의 ‘은’ 자를 따서 북한 최초 팝 오케스트라인 ‘은하수관현악단’을 만들어줬다. 은하수관현악단은 연주자 70명에 성악가까지 합쳐 100명이 넘는 대규모 관현악단이다. 김정일은 생전 이 악단을 공들여 키웠다.    

 

음악적 자질만 보면 악단의 수준은 높은 편이었다. 단원 다수가 외국 콩쿠르 대회에서 입상한 경력을 갖고 있었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황은미라는 단원은 이탈리아 산타세칠리아 국립음악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2006년 주세페디스테파노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했다”며 “이 외에 러시아·이탈리아·중국 유학파도 여럿”이라고 밝혔다. 김정은 부인 리설주도 이 악단에서 독창가수로 활동했었다.    

 

은하수관현악단은 2012년 3월 프랑스 파리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당시 악장은 서른 갓 넘은 바이올리니스트 문경진이었다. 그가 쓴 악기도 화제였다. 18세기 최고 명기(名器) 스트라디바리우스였기 때문이다. 수십억원을 줘도 살 수 없는 귀한 악기를 그가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궁금증을 낳았다. 이듬해 뜻밖의 뉴스가 전해졌다. 문경진이 ‘풍기 문란’ 혐의로 다른 단원들과 함께 기관총으로 처형당했다는 것이었다.        

 

은하수관현악단 공개처형 참관한 학생의 증언     

당시 공개처형을 참관한 장철구평양상업대학 3학년 학생이 밝힌 상황은 이렇다. 2012년 여름 어느 날 오후 2시쯤 당 위원장이 3학년생들을 운동장에 모이라고 했다. 나가 보니 1시간 내로 강건종합군관학교 운동장으로 집결하라고 했다. 공개처형 참관임을 직감했다. 강건군사훈련장은 평소 강건종합군관학교와 평양방위사령부가 사용하는 12km2 규모의 훈련장으로, 길이 100m, 폭 60m 크기의 사격장을 포함하고 있다. 이 사격장은 AK-47 소총 등 소화기 사격(small arms firing) 훈련에 쓰이는 곳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고위 간부나 대형 사고 친 병사를 처형하기도 한다. 강건종합군관학교 사격장을 고위층의 무덤이라 부르는 이유다.

   

강건종합군관학교는 만경대구역 끝에 있어 택시를 이용해야만 1시간 내에 갈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하니, 운동장은 먼저 와 있는 평양시내 3학년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을 1순위로 대학생들이 자리를 잡았다. 장철구평양상업대학은 운동장 중간에 자리하게 됐다. 장철구평양상업대학은 북한 제일의 요리학교다. 해외 기자들이 평양에서 식사하거나 호텔에 묵을 때 만나게 되는 봉사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장철구평양상업대학 출신이다. 학교에는 봉사학부, 료리학부, 호텔경영학부 등이 있다. 졸업생들은 학창시절 배운 전공과 관련한 일을 하게 된다.    

 

1시간 정도 기다리니 군용차 3대가 운동장으로 들어왔다. 이 중에는 4신(총열 4개)의 고사총을 실은 차량도 있었다. 죄인 12명(은하수관현악단 단원)의 얼굴은 가려져 있었고, 가슴에는 이름이 적힌 커다란 명찰이 달려 있었다. 금색 견장을 단 30~40명의 군인이 12명을 말뚝에 묶었다. 곧장 인민재판이 시작됐다.    

 

“민족 반역자들을 처단하는 재판을 시작하겠다. 이들은 불순 녹화물과 성(性) 녹화물을 시청하고 그것을 재연하는 영상을 만들어 유포시켰다. 준엄한 인민의 이름으로 처형한다.”    

 

12명이 묶인 말뚝과 고사총과의 거리는 40m가량 되어 보였다. 고사총과 참석 대학생들 사이의 거리는 12m 정도였다. 처형이 선언되자 4신의 고사총이 한 사람에게 연발로 난사됐다. 그 사람의 형체가 사라지자, 다시 장전해 그다음 사람에게 발사하는 방식으로 처형이 진행됐다. 고사총은 북한이 전투기 등 항공기를 격추하기 위해 보유한 구경 14.5mm의 대공화기다. 6·25 때 소련에서 들여왔으며 최대 사거리 4km인 기관포의 일종이다. 12명을 모두 죽이는 데 20~30분이 걸렸다.      

 

“공화국 어디에도 묻힐 곳 없다”는 음성과 함께 탱크 등장    

끝났다 싶었는데, “이런 민족반역자들은 공화국 어디에도 묻힐 곳이 없다”는 음성과 함께 탱크가 등장했다. 탱크는 이미 고사총 난사로 형체가 사라진 12명의 사체 잔해 위를 지그재그로 전진하고 후진했다. 사체 잔해마저 탱크로 뭉갠 것이다. 사형수 중엔 임신부도 있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일부는 졸도하기도 했다.

   

사형 집행 후 당 위원장은 오후 7시까지 학교에 집합하라고 명령했다. 대학교 운동장에 전 학년 학생이 집결했다. 당 위원장은 “(은하수관현악단 단원) 처형 내용을 설명하고, 불순 녹화물 투쟁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녹화물이나 미국 녹화물을 본 사람이 있더라도 지금 ‘자수서’에 적어 제출하면 용서해주겠다”고 했다. 이 같은 투쟁은 평양시 전 대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진행됐다.    

 

평양에는 은하수관현악단 단원들이 동료 단원이었던 김정은 부인 리설주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고 다녔기 때문에 처형된 것이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실제 2011년 경상유치원 방문에 리설주가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 대학 선배 두 명이 리설주 과거 행실을 가십거리로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온 가족이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기도 했다. 이들은 자신이 등장하는 섹스비디오를 만들어 스스로 유포할 미친 사람이 있겠느냐며 리설주 과거 행적을 이야기하고 다니다 적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때도 수령의 사생활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했고, 김정일의 첩이었던 성혜림이 김정일 집에 들어간다고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온 가족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사례가 있었다.    

 

은하수관현악단원들의 처형에 대해 일본 《아사히신문》은 “리설주와 관련된 추문을 은폐하기 위해 은하수관현악단 단원들을 공개 처형했다”고 전했다. 리설주도 한때 은하수관현악단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국내에도 리설주도 연관됐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하지만 리설주 음란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대북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음란물의 전파 속도는 어마어마하다. 한 정부 관계자는 “빠른 속도로 퍼지는 음란물의 속성상 정말 리설주 음란 동영상이 있다면 벌써 중국 동북 3성뿐만 아니라 국내에도 유입됐을 것”이라고 했다.    

 

탈북자나 중국 내 북한 소식통들은 “만약 리설주 음란물이 존재한다면 당시 국내 정보기관이나 언론사에 팔아넘겼을 것”이라며 “리설주 동영상은 말만 무성할 뿐 직접 봤다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당시 북한은 국내 언론의 ‘리설주 포르노 촬영설’ 보도에 대해 “감히 우리의 ‘최고 존엄’을 모독했다”며 “추호도 용서치 않고 가차 없이 징벌할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조선중앙통신’은 “괴뢰패당이 어용 매체들을 통해 감히 우리의 최고 존엄을 비방 중상하는 모략적 악담질을 거리낌 없이 해대고 있다”며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민족의 최고 존엄까지 무엄하게 훼손하려 분별없이 날뛴 천하의 불한당 무리는 없었다. 아무리 동족대결에 환장이 되였어도 분별과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법이다”라고 했다      

 

장성택 죽이기 전 측근 잔혹하게 처형한 김정은

▲장성택의 측근으로 공개처형되었다는 장수길.

 

김정은은 북한 권력 2인자이자 고모부였던 장성택을 처형하며 명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을 무색게 한다는 평을 들었다. 주원장은 중국 역사상 숙청을 가장 잔혹하게 한 군주다. 장성택 제거의 시작은 최측근인 리룡하 노동당 행정부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의 사형이었다. 김정은은 리룡하와 장수길이 자신의 명령을 즉석에서 실행하지 않고 “장성택에게 보고하겠다”고 토를 달자, 격노했다. 만취 상태였던 김정은은 리룡하·장수길의 처형을 명령했다. 리룡하와 장수길은 2013 11 16, 강건종합군관학교 사격장에서 처형됐다.
 
 
사실 리룡하는 장성택이 많이 아끼던 측근이었지만 장수길은 ‘장성택 사람’이 아니었다. 장성택은 사업 수완이 뛰어난 군부 출신 장수길을 기용했을 뿐이었다. 쉽게 설명하면 리룡하는 행정부 등에서 작성한 중요 보고서를 종합해 장성택에게 보고하는 사람이었고, 장수길은 돈을 벌어 바치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처형되기 며칠 전, 김정은은 장성택의 조선노동당 행정부장 권한을 정지시켰다. 권한이 정지되면 사무실에는 그대로 출근을 하지만, 업무는 볼 수 없다. 사격장으로 이동할 때도 장성택은 일반성원 버스를 탔다. 간부들이 사격장 등으로 집단 이동할 때는 어느 한 장소에 집결해 조직지도부, 행정부, 선전부 등의 단위로 정해진 버스에 탑승해 움직인다. 각 부서의 직위에 따라 부장급, 국장급 등 직급에 따른 탑승버스가 정해져 있다. 예를 들면 행정부 부장급이 타는 버스, 부부장급이 타는 버스, 조직부 부장급 버스 등 직급에 따라 탑승 차량이 정해진다. 하지만 당시 부장이었던 장성택은 부장급 버스에 타지 못했다. 강건종합군관학교 사격장에 도착해서도 장성택은 일반 지도원 지정석에 앉았다. 사격장에도 직위에 따른 지정석이 있다.

 
 
간부들, 장성택 업무정지 혁명화 정도로 끝날 것으로 판단

그럼에도 간부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권한 정지 상태였던 만큼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행정부 구성원은 과거처럼 기껏해야 ‘혁명화’나 ‘사상비판’ 정도의 처분으로 장성택의 권한 정지 건이 끝날 것으로 판단했다.
 
 
사격장에는 인민무력성, , 중앙기관 간부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격장 맞은편에 20m 높이의 하얀 백포가 씌워진 단상이 있었다. 인민군 보위국 복장 군인 몇 명이 분주히 단상을 오갔는데, 자리에 모인 간부들은 당시 누구를 처형하는지 몰랐다. 모두 착석하자 단상에서 “이제부터 반당, 반혁명분자에 대한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는 음성과 함께 단상에 씌워진 백포가 걷혔다.
 
 
리룡하와 장수길이 서 있었다. 모두가 놀랐다. 이윽고 두 사람을 향해 고정된 4신의 고사총이 모습을 드러냈다. 4신 고사총이 한 사람에게 난사되는 처형이었다. 4신 고사총은 총신 하나에 60발이 장전된다. 그러니까 한 번 쏘면 240발이 날아간다. 240발의 총탄을 맞은 시체는 완전히 분해된다. 이런 상황이 주는 공포의 무게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한다.   


 
너무 맞아 정신 나간 것처럼 보인 장수길과 리룡하

▲공개처형된 리룡하 행정부 제1부부장.

 

단상 위에 서 있던 장수길과 리룡하의 모습은 처참했다. 너무 맞아서,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입안은 쑤셔 박은 쇠뭉치가 가득했다. 북한에서는 고문한 뒤 말을 못 하게 쇠뭉치를 입안에 쑤셔 넣는다. 죄목이 나열됐다.
 
  “이들은 장성택을 등에 업고 최고사령관 동지의 명령전달 통지를 받고도 행정부 회의가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명령전달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으며, 명령이 일주일 후면 뒤집힐 것이라고 망동했다.
 
  장성택이란 이름이 언급되자, 참석자들은 동요했다. 곧장 사형이 언도됐고, 사격명령이 떨어졌다. 따다닥, 따다닥, 따다닥, 따다닥. 고사총이 4번 발사됐고, 처형은 순식간에 끝났다. 단상에 있던 장수길, 리룡하의 형체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참석자들은 두 사람의 죄목에 장성택의 이름이 거론되고 나서야 이번 사태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당사자 장성택도, 두 사람의 처형을 끝까지 참관했다. 그는 타고 왔던 버스를 타고 중앙당 청사로 돌아오자마자 974호 호위총국 요원들에게 연행됐다. 중앙당 청사에서는 974호 부대원이나 창광분주소(노동당 간부들에 대한 법적 조사와 처리를 담당하는 본부당 직속 부서) 요원들만 최고 간부를 체포할 수 있다.
 
  장성택은 체포되고(2013 11 16) 한 달도 안 돼(12 12) 사형 선고를 받고 처형됐다. 장성택 사형을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장성택 사형은 총탄 90여 발을 쏘는 형식으로 진행됐는데 시신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일부 참가자 중에는 졸도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참혹했다”고 전했다. 보고서를 만든 북한전략센터의 강철환 대표는 2017 2 13일 국제사법재판소(ICC)에 김정은의 집단학살 사건인 장성택 사건을 고발했다.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제2차 미북정상회담 결렬 후의 북한

“ ‘朝美회담이 뭔가 틀어진 모양’이라고 쉬쉬하는 분위기”

⊙ “회담하러 출발할 때는 선전 많이 하더니, 어떻게 마무리됐다는 얘기 없어”

⊙ “평양 농업일군 회의, 각자 알아서 숙소를 정하라고 하고 선물도 거의 없어”

⊙ 핵무기에 대해 나이 든 세대는 “싼값에 넘기면 절대 안 된다”,

젊은 세대는 “인민들 다 죽고 나면 핵무기가 무슨 소용이냐” 

 

▲김정은은 베트남까지 가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났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사진=뉴시스   

 

오늘도 북()으로 전화가 간다. 방해 전파를 뚫고서 간다. 돈의 힘이다. 북의 가족에게 송금(送金)하는 사람들이 주 고객이다. 돈을 보내는 사람들은 가족들의 ‘목소리’를 원한다. ‘얼마를 받았다’는 육성(肉聲) 없이는 전달 여부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급전(急錢)이 필요하다’며 북의 가족들이 먼저 전화를 걸어오는 경우도 있다.
 
 
통화에 이르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브로커와 접촉해서 북한의 주소를 알려준다. 주로 중국 국적의 조선족인 브로커는 현금을 들고 북한으로 간다. 현지에 도착해 찾는 사람이 맞는지 확인하면 한국으로 전화를 건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중국 전화기를 쓴다. 통화가 되자마자 간단히 ‘접선 성공’ 사실만을 알리고 전화를 끊는다. 통화료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개 전파 추적을 피하려는 목적이 크다. 곧바로 이번에는 한국에 있는 송금자가 전화를 건다. 직접 통화하며 가족임을 확인하고 즉석에서 브로커의 중국 계좌로 온라인 송금을 한다. 입금을 확인한 브로커는 수수료 30%를 제하고 북의 가족에게 현금을 지급한다.
 
 
수수료에는 중국에서 북한까지의 여비, 직접 현금을 운반하며 국경을 통과하는 위험수당 등이 모두 들어 있다. 예전에는 북한 돈으로 거래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100% 달러나 위안화다. 송금 수수료는 최근 들어 40% 선까지 오르기도 했다. 북한의 감시와 단속이 더 심해졌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은 ‘수수료가 비싸기는 해도 신원 확인 후 돈을 보내니 떼일 염려가 없어서 좋다’며 선()확인 후()송금 방식을 선호한다.
 
 
다른 용도로 국제전화를 하는 사람도 있다. 탈북 브로커, 밀수업자, 비공식 통신원 등이다. 중국산 ‘선불 칩’을 충전하면 전화번호가 바뀐다고 한다. 그들은 그렇게 단속을 피하며 외부와 접촉한다. 그들에게는 국제 정세 같은 ‘외부 정보’가 곧 돈이다. 경제 동향을 알려주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전화기를 타고 들어간 외부 정보는 장마당을 매개로 북한 전역에 널리 퍼진다. ‘소문’은 북한의 공식 매체에 실리는 ‘기사’를 압도한다. 소문이 기사보다 진실에 가깝다는 것을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통화하는 중에 북한 내부 사정도 실시간으로 밖으로 흘러나온다. 《데일리 NK》 등 북한 전문 매체가 북한 각 지역의 쌀값과 환율 등을 보도할 수 있는 이유다.

 

“이번에는 큰 기대 안 했다” 

미북(美北)정상회담 후 북한 주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최근 들어 북한 주민들과 통화한 사람들의 증언을 모으면 북한 내부의 여론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추측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조미(朝美·미북) 회담이 결렬된 것은 알고 있나.
 
“모른다. 알려주지 않으니까.
 
 
― 소문이 돌지 않나.
 
“뭔가 사달이 난 모양이라고 짐작은 한다. 회담하러 평양을 출발할 때는 텔레비전이고 신문이고 선전을 많이 했다. (베트남)에 가서 미국 대통령 만나 밥 먹고 회의하는 사진이 신문에 쭉 났다(2 27일 회담 후 《로동신문》이 1, 2면에 걸쳐 사진 18장을 싣고 미북회담 소식을 대서특필함). 그런데 회담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다는 얘기는 없고, 며칠 후 남 수상하고 친선을 다졌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래서 다들 ‘조미회담이 뭔가 틀어진 모양’이라고 쉬쉬하는 분위기다.
 
 
― 주민들이 실망한다는 뜻인가.
 
“그렇지도 않다. 이번에 별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작년에 남쪽 대통령 만나고 미국 대통령 만났을 때만 해도 당장 통일이 되는 줄 알았다. 집집마다 돼지고기 사다가 잔치를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남쪽 대통령은 여러 번 만났잖은가. 그때만 해도 ‘일이 잘 풀려가나 보다’라고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거진 1년이 지나도록 우리 같은 백성들 생활은 나아진 것이 없다. ‘이러려면 뭐하러 회담을 하냐’고 욕하는 사람도 있다.
 
 
― 최근 들어 살기가 어려워졌나.
 
“‘고난의 행군’이 다시 오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 쌀값이나 환율에 큰 변동이 있나.
 
“우리가 알기로는 물가가 크게 오르지는 않은 것 같다. 고난의 행군 때도 소문은 흉흉했지만, 쌀값이 오르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하루 사이에 두 배가 되고, 그 다음 날에는 또 두 배가 되고…. 서서히 진행된 것이 아니라 단방에 문제가 터지면서 손쓸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사정이 나빠졌다. 지금 쌀값과 환율은 큰 변동이 없지만 밀가루, 식용기름, 설탕은 몇 배가 올랐다. 그래서 불안하다.
 
 
― 장마당 분위기는 어떤가.
 
“물건 자체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다만 남쪽 제품이나 일제 물품들이 거의 사라졌다. 남쪽 제품은 중국제보다 비싼 대신 품질이 좋고 고급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구할 수가 없다.
 
 
2018년 농사가 흉작인 것은 알고 있나.
 
“안다. 작년 전국 농업일군 열성자회의(평양, 2018 12 24~25)에 다녀온 사람한테 말을 들었다. 엄격한 비판과 총화가 있었다고 한다. 생산량이 예년에 비해 많이 모자랐다는 것이 토론 주제였다고 한다.(註·정보기관에서 퇴직 때까지 북한 업무를 담당한 김정봉 한동대 석좌교수는 ‘2018년 북한에 흉년이 들어 농업 생산량이 2017년에 비해 3.4%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만성적인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북한에서, 공업 생산이 아니라 농업 생산이 3% 이상 줄어들었다는 것은 엄청난 타격’이라고 진단한다. 금년도 부족분이 150t 정도로 당장 올여름 북한 주민들의 식량 사정이 급속히 나빠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회의 내용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이 있다.
 
 
― 그것이 뭔가.
 
“예년에는 평양 농업일군 열성자회의에 참석하면, 당국에서 참석자 모두 호텔에 재워주고 회의 후에는 선물도 한아름 줘서 보냈다. 다녀온 얘기 듣고, 선물 구경도 하고, 받아온 술을 나눠 먹는 게 큰 낙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지방에서 온 사람들한테 각자 알아서 숙소를 정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친척이며 친구들한테 이틀 밤만 재워달라고 사정하느라 면이 깎였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선물도 거의 없었다. 참석자들이 ‘나라 사정이 이 정도로 어려운 건가’라며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요즘 들어 강연제강에서 ‘자력갱생’ ‘간고분투’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고난의 행군’ 때 늘 듣던 말이다.

 
 
핵무기에 대해 세대 간 시각차

▲김정은의 귀환을 보도한 35일자 《로동신문》. 트럼프와의 정상회담 소식은 빠지고, 베트남 방문에 대해서만 보도했다. 사진=뉴시스

 

― 미북회담에서 기대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남쪽이나 미국에서 쌀이나 물건을 지원해주는 것인가.

“아니다. 어차피 외국에서 도와주는 물건이 있어도 백성들한테 차례질 일은 없다. 다만, ‘경제제재가 풀리면 장사를 좀 더 마음놓고 편하게 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기대는 했다. 경제제재만 풀려도 굶어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이번에 우리가 미국한테 당하고 중국한테도 속은 것 아니냐’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미국이 중국이랑 공화국(북한)을 한패로 엮어서 손을 보려고 하는데, 우리가 왜 못 빠져나왔는가. 정세 판단을 잘못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이번 일 때문에 외교일군들이 많이 상할지 모른다는 얘기도 돈다.”    

 

― 경제제재에 대해서는 알고 있나.  

“물론이다. 경제제재 때문에 우리가 어렵게 산다는 건 모두 안다.”    

 

― 핵무기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젊은 사람들과 나이 든 사람들 생각이 다르다. 나이 든 세대는 사회주의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다. 김일성 시대에는 배급도 잘 나왔고, 잘살았다, 그때가 좋았다고 생각하기에 김일성에 대한 충성심이 남아 있는 것이다. 김정일·김정은 시대를 산 젊은 세대는 수뇌부에 대한 존경심이 없다. 먹고살기가 어려웠으니까. 나이 든 세대는 ‘우리가 어떻게 만들고 지킨 핵무기인데, 더 고생하면 고생했지 싼값에 넘기면 절대 안 된다’ 하고, 젊은 세대는 ‘인민들이 다 죽고 나면 핵무기가 무슨 소용이냐’ 한다.”    

 

― 북한에도 세대 간 의견 차이가 심한가.  

“나이 든 분들은 어떻게든 사회주의를 지키자는 거고, 젊은 세대는 ‘먹고사는 것이 중요하지, 사회주의든 개혁개방이든 상관없다’고 한다.”      

 

김정은의 오판    

미북회담이 결렬된 이후, 미국 쪽에서 ‘시간은 미국 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북한의 외화 사정이 최근 들어 급속히 나빠졌다는 사실을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김정봉 한동대 석좌교수의 분석이다.    

 

“유엔의 경제제재가 본격화되기 전, 북한의 매년 수출액은 평균 약 30억 달러, 수입액은 약 40억 달러였다. 40억 달러어치 물품을 수입하면, 풍족하게 살지는 못하지만 북한 장마당도 그런대로 돌아가고 대량 아사(餓死)도 막을 수 있다. 적자(赤字) 폭 10억 달러는 조총련의 상납이나 벌목공, 무기 수출, 해외 식당 등을 통해 그럭저럭 메워왔다. 문제는 2017년부터다. 수입액은 약간 줄어 37억7000만 달러인데, 수출액은 16억5000만 달러로 거의 반 토막이 났다. 20억 달러 적자가 난 것이다. 2018년에는 사정이 더 안 좋다. 3/4분기까지의 수출액이 1억5000만 달러다. 연말까지 합산해봐야 2억 달러에도 못 미칠 것이다.”    

 

그렇다면 2017년 수입이 반 토막이 났는데도 북한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2016년 수입 물량이 유통되었기 때문이다. 2018년에는 김정은이 나머지 비자금을 풀고, 군(軍)부대나 각급 기관의 비상창고를 열어가며 버틴 것이 아닌지 추측한다. 있는 돈을 다 써가며 물건을 수입, 수입 물량을 줄이지 않았기에 장마당에서 상품이 사라지지 않았다. 남북정상회담, 미북정상회담을 통해 ‘곧 현금이 들어올 것’이라고 오판했는지도 모른다. 개성·금강산 관광 재개, 개성공단 재가동, 철도 차량기지 건설, 선박블록공장 건설, 제2의 개성공단인 해주공단 조성 등 당장 거액의 돈이 북한으로 흘러 들어가는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광범위하게 오갔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국에 ‘한국이 건설비를 전액 부담하는 평양-신의주 간 고속철도 건설’을 요구했다는 소문도 있다.    

 

김정봉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김정은의 외환보유고는 지금 거의 바닥이 났다. 선물정치를 통해 측근들의 충성심을 유도하는 방식은 더 이상 쓸 수 없다. 유사시 외국에서 식량을 들여올 비상금조차 부족하다. 어쩌면 이것이 이번 미북회담에서 미국이 자신 있게 판을 걷은 배경인지도 모른다. 시간은 지금 북한 편이 아니다.⊙

월간조선 04월 호  : 장원재  배나TV 대표

 

■美北회담 결렬 이후 대두하는 북한 경제 붕괴 가능성

對北제재로 김정은의 잔고가 바닥나고 있다!

⊙ 김정은, ‘최고 국가이익’ 운운하며 대북제재 해제 끈질기게 주장
⊙ 대북제재 기대 효과는 북한 외화 수입 25억 달러 차단… 실제로는 10~15억 달러
⊙ 북한은 이미 개방된 ‘무역 국가’… 대북제재로 막대한 타격 불가피
⊙ 제재 이후 북한의 수출은 궤멸… 지난해 對中 무역 적자만 20억 달러
⊙ 대북제재 유지하면 2020년 안으로 북한 외화보유액 바닥 드러낸다?
⊙ 핵·미사일 개발 등으로 ‘김정은 비자금’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주장
⊙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효과 나타나는데 문재인은 ‘남북경협’ 강조 

 

북한은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겪을까. 지난 2월 말,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의 이른바 ‘제2차 미북(美北)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북한이 ‘경제위기’를 맞는 게 아니냐는 예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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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전부터, 국제사회는 핵·미사일 개발로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의 ‘돈줄’을 차단하기 위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대북제재 공조를 해왔다. 2016년과 2017,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는 회원국들에 북한의 외화 수입 차단을 위한 대북제재 결의안 5건을 연달아 내놨다. 미국 정부는 독자적으로 북한과 거래하는 국가와 기업, 개인을 제재했다.
 
 
올해 국내 연구기관들이 내놓은 북한 경제 지표들을 보면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공조는 유효했다. 북한 교역 규모는 2년 만에 많이 축소됐다. 외화 수입도 대폭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누적 무역적자로 인해 외화보유액이 바닥을 드러내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비핵화 전 대북제재 해제’ 거절한 트럼프… ‘의욕 상실’ 김정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2 28,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단독 회담을 마치고 나와 함께 걸으며 얘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말, 아산정책연구원은 〈아산 국제정세 전망 2019〉를 통해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이후 평화협정 체결을 먼저 요구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던 북한은 9월 이후 대북제재 완화를 강력하게 주장했다”며 “북한이 정치적 목표인 평화협정에서 멀어지고 제재 완화에 집착하는 모습에서 북한 경제의 외화 수급 상황이 나빠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체제 유지를 위한 ‘잔고’가 부족하다는 현실에 직면한 김정은은 지난해 평양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에게 ‘핵실험장 사찰’이란 조건을 걸고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미국이 제재와 압박을 계속한다면, 국가 최고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놨다. 대북제재를 해제하지 않으면 핵 공격 능력 강화를 계속하겠다는 ‘협박’이었지만, 이는 통하지 않았다.  


  2 28,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이른바 ‘미북정상회담’에서도 북한은 앞서 언급한 대북제재 5건에 대해 해제를 요구했다. 이는 사실상 ‘제재 전면 해제’를 요구한 것과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거부했다. 요구에 상응하는 ‘비핵화 조치’를 김정은이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 외무성 부상 최선희에 따르면 회담 결렬 이후 김정은은 ‘의욕’을 잃었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핵을 가진 한 대북제재는 풀릴 수 없다는 걸 그제야 알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국제사회는 대북제재가 김정은을 압박할 수 있는 효과적인 무기란 사실을 재확인했다.   


  김정은은 미국이 입장을 바꾸기를 기다리겠지만, ‘시간과의 싸움’에서 그가 이길 가능성은 크지 않다.  


  각종 지표를 보면 북한 경제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가까운 미래에 ‘외환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있다. 그 근거를 국내 기관들이 내놓은 북한 경제 분석 보고서를 바탕으로 분석했다.     


  북한 돈줄 차단하는 2016·2017년의 안보리 대북제재 5 

현재 북한의 경제 상황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내놓은 대북제재 내용부터 살펴야 한다. 2016~2017,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강행할 때마다 김정은이 핵·미사일 개발과 독재 체제 유지에 쓰는 자금의 유입을 차단하는 대북제재 결의안(2270, 2321, 2371, 2375, 2397)을 연달아 내놨다. 각 결의안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1. 안보리 결의안 2270

결의: 2016 3 2
  원인: 북한의 4차 핵실험(2016 1 6)과 ‘광명성 로켓’ 발사(2016 2 7)
  내용: ▲광물 및 원유 거래 제재 ▲무기 거래 전방위 봉쇄 ▲금융제재 및 운송 봉쇄 ▲핵무기 자금 조달에 관여한 기관 및 개인의 해외 활동 제재
  기대 효과: 북한 외화 수입 2억 달러 감소
  

2. 안보리 결의안 2321
  결의: 2016 11 30
  원인: 북한의 5차 핵실험(2016 9 9)
  내용: ▲북한 석탄 수출 상한제 도입 ▲북한의 수출 금지 광물 추가 및 조형물 수출 금지 ▲북한 공관 임대사업 금지 ▲북한 소유·운영·통제 선박에 대한 보험·재보험 금지 ▲회원국 금융기관의 북한 내 활동 금지 ▲대북 무역 관련 공적·사적 금융지원 금지
  기대 효과: 북한 외화 수입 8억 달러 감소
  

3. 안보리 결의안 2371
  결의: 2017 8 5(2017 7 4)
  원인: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화성-14) 발사
  내용: ▲북한의 석탄·철·납·해산물 수출 금지
  기대 효과: 북한 외화 수입 10억 달러 감소
  

 4. 안보리 결의안 2375
  결의: 2017 9 12
  원인: 북한의 6차 핵실험(2017 9 3)
  내용: ▲북한의 섬유류 수출 금지 ▲북한 유류 수입량 제한(원유는 400만 배럴, 정제유는 200만 배럴)
  기대 효과: 북한 외화 수입 25000만 달러 감소
  

5. 안보리 결의안 2397
  결의: 2017 12 23
  원인: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 15호 발사(2017 11 29)
  내용: ▲북한의 유류 수입 제한 강화(정제유 수입 한도를 200만 배럴에서 50만 배럴로 감축)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 24개월 이내 송환 ▲북한의 식품, 농산물, 기계류, 전자기기, 목재류, 선박 수출 금지 ▲해상 차단 강화
  기대 효과: 북한 외화 수입 25000만 달러 감소〉
  
  
  북한은 이미 개방된 ‘무역 국가’… 대북제재로 막대한 타격 불가피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3 3, ‘비핵화’를 거부한 북한에 대해 최고 수준의 압박과 제재를 가하겠다고 밝히면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진짜 충격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뉴시스

 

북한 경제 전문가들은 안보리의 강력한 대북제재 시행 이전, 북한이 한 해에 벌어들인 외화 수입 규모를 40~50억 달러라고 추정한다. 상기한 안보리 대북제재 5건의 총 기대 효과는 북한의 연간 외화 수입 중 25억 달러가량을 차단하는 것이다. 북한 외화 수입의 절반 이상을 틀어막는 셈이지만, 실제 그 효과는 15억 달러가량인 것으로 추산된다.  


  ‘달러’가 김정은 독재 정권의 ‘경제적 토대’란 점을 감안하면, ‘달러 가뭄’은 단순한 유동성 위기가 아니다. 정권의 사활적 이익이 걸린 중대 사안이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국가 최고이익’을 운운하며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은 ‘폐쇄경제’이기 때문에 무역 의존도가 낮아 ‘무역제재’는 효과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북한은 세계 여느 국가와 비슷한 ‘무역 의존도’를 보인다. 2000년에 20%였던 북한의 무역 의존도가 지금은 세계 평균(60%)에 약간 못 미치는 50%가 됐다. 한마디로 북한도 무역으로 먹고사는 체제인 셈이다. 그 무역을 규제하면 북한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안보리 대북제재에 따라 북한의 외화 수입은 실제로 대폭 감소했다. 올해 초, ‘미국의소리’의 분석에 따르면 14개 주요 교역국(중국 제외)에 대한 북한의 수출 실적은 2016년에 23532만 달러였지만, 2017년엔 9465만 달러, 2018년엔 2000만 달러(추산)로 줄었다. 85% 감소한 셈이다 

 

▲중국 단둥에서 북한으로 갈 화물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대북제재 시행 이후 사실상 북한 무역의 전부인 대중(對中) 무역은 크게 위축됐다. 북한의 수출은 궤멸적 타격을 입었고, 수입도 급감했다. 사진=뉴시스 

 

북한의 무역 의존도가 90%에 달하는 중국과의 교역도 크게 줄었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2018년 북한의 대외무역 평가와 전망〉에 따르면, 2018년 북한의 대중(對中) 무역액은 246000만 달러로 2017 498000만 달러에 비해 51% 감소했다. 안보리의 강력한 대북제재가 본격화되기 이전인 2016년 당시 58억 달러와 비교하면 58% 줄었다.  


  북한의 대중 수출은 궤멸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2018년 대중 수출액은 22000만 달러다. 전년 165000만 달러 대비 87% 감소한 셈이다. 같은 해, 수입은 2017 333000만 달러에서 33% 줄어 224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대중 무역에서 북한의 손익은 ‘마이너스(-) 20억 달러’란 얘기다.  


  정 선임연구위원은 “2018년도 북한의 대중 수입 감소는 북한의 구매력 감소에 따른 수입 감소로 해석할 수도 있다”면서 “북한의 무역적자 역시 2017 16억 달러로 급증한 상황에서 2018년에도 20억 달러에 이르는 등 북한의 경제적 여건은 더욱더 악화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경제 질적 하락과 잠재력 감소는 2018년에 이미 시작”

▲김정은 집권 이후 2012년부터 북한 경제는 미미하게나마 성장세를 이어왔다. 2016년엔 경제성장률이 3.6%를 기록했지만, 본격적인 대북제재가 시행된 2017년엔 ‘-3.5%’로 내려앉았다. 2018년의 경우엔 성장률 감소세가 더 심화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료=한국은행

  

무역 부문의 ‘궤멸적 타격’은 북한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줬을까. 지난 1, 국회입법조사처의 이승열 외교안보팀 입법조사관의 보고서 〈북한 경제의 현황과 2019년 전망〉에 따르면 대북제재로 북한 경제는 ‘작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 북한은 매년 지속적인 성장세를 기록했다. 특히 2016년의 경우엔 성장률이 3.9%였지만, 본격적인 대북제재 시행에 따라 2017년 경제성장률은 ‘-3.5%’를 기록했다. 이 입법조사관은 “북한 광업 등 산업 생산 전반에 걸친 생산성 하락으로 인한 것으로, 그 결과 북한 경제에 상당한 물가상승 압력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풀이했다. 


  이석기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2, 2018년 북한 산업 및 실물경제 동향〉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연중 지속된 강력한 대북 경제제재로 대외경제 부문이 북한의 산업 및 실물 부문에 상당한 타격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 선임연구위원의 분석이다.  


  〈대북 경제제재가 수출광업에 심대한 타격을 주고, 자본재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기계공업을 둔화시켰다. 경공업에서도 섬유·의류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의류 임가공 수출이 중단되고, 소득 감소에 따른 시장거래의 위축으로 식품가공업을 비롯한 소비재 부문 전반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광업이 가장 크게 후퇴하였고, 제조업도 전반적으로 소폭 후퇴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략) 자본재 수입 감소에 따른 북한 경제 전반의 질적 하락과 잠재력 감소는 2018년에 이미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제2차 미북정상회담’이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돈주(북한 신흥 자본가)나 엘리트의 미래 전망이 악화되어 북한 경제를 지탱하는 한 축인 시장경제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고, (북한 정권은) 시장 우호적인 정책 기조를 바꿔 극단적인 자력갱생 정책을 추구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평양 집값 폭락은 ‘돈주’들의 ‘외화 유동성 위기’가 원인 

북한은 지표상 ‘경제 위기’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북한 내부의 동요가 외부에서는 포착되지 않는다. 김석진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2, 2018년 북한 시장 동향과 2019년 전망〉이란 보고서에 그 까닭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지난 몇 년 동안 UN 차원의 강력한 대북제재가 실시되어 왔지만, 북한의 시장과 사경제는 큰 변화 없이 기존 발전 추세를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제재는 주로 국영경제를 겨냥하고 있지만, 간접적으로 시장과 사경제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조치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럼에도 주택가격이 크게 떨어진 것 외에는 제재 효과가 뚜렷이 드러나지 않고 있는데, 이는 북한이 외화보유액을 사용해 상당한 수준의 상품 수입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경제 구조가 의외로 견고하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기도 하지만, 이는 ‘대북제재 무용론’을 주장하기 위한 ‘믿음’에 불과하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이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겪을 당시 아사자가 속출했는데도, 외부 세계에서는 이를 뒤늦게 알았던 점을 감안했을 때 이미 시작된 북한 내부의 경제 붕괴를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앞서 언급된 평양 등 북한 대도시 집값 폭락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상징후’라는 게 북한 경제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북한 전문 매체 ‘데일리NK’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당시 20~30만 달러(면적 230m2)였던 평양 중구역과 대동강 주변 아파트 가격이 두 달 만에 5만 달러나 하락했다. 평안남도 평성시 아파트의 경우엔 10만 달러에서 7만 달러로 떨어졌다. 이 같은 부동산 가격 폭락은 대북제재에 따른 ‘돈주’들의 매출 감소와 ‘외화 유동성 위기’일 가능성이 있다

 
  “주택가격 하락은 대북제재 효과 드러내는 신호탄”

▲지난해 평양을 비롯한 북한 대도시 아파트의 가격이 폭락했다. 이는 ‘돈주(북한 신흥 자본가)의 수입 감소’와 ‘외화 유동성 경색’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 경제 붕괴의 ‘신호탄’인 셈이다. 사진=뉴시스

 

이와 관련, 김석진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주택가격 하락은 대북제재로 인한 피해 또는 피해에 대한 예상이 가장 중요한 요인일 가능성이 크다”며 “주택가격 하락은 제재 효과를 드러내는 신호탄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평양 등 북한 대도시 집값 폭락의 주요 원인으로 ‘북한의 외화 수입 감소’를 꼽았다. 다음은 그의 보고서에 기술된 내용이다. 

 

〈평양 등 주요 도시의 주택가격은 왜 떨어졌을까? 정확히 알긴 어려우나 제재로 인해 외화소득이 크게 줄어든 것이 가장 중요한 원인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신규 아파트를 비롯한 고급 주택을 구매할 수 있는 계층은 외화벌이 및 이와 연관된 사업을 하는 신흥 부유층과 권력층이고, 고급 주택 매매는 외화로 결제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평양을 비롯한 북한 지역의 ‘주택 사업’을 추진하는 데는 돈주들의 역할이 컸다. 주택뿐 아니라 각종 정권 홍보용 치적 사업에도 돈주들의 자금이 들어갔다. 이들은 돈을 대고 나중에 생산품으로 돌려받는 식으로 사업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 폭락’은 돈주들에게 막대한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이는 그들의 불만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 ‘돈주’ 상당수가 사실은 북한 노동당의 간부나 그 자제들이란 점을 감안하면, ‘집값 폭락’은 김정은의 정권 기반을 흔드는 ‘초대형 악재’다

 
 
대북제재 유지하면 2020년 안으로 북한 외화보유액 고갈

현재 상태로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해제될 가능성이 없다. 김정은이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다. 핵을 비롯한 모든 대량살상무기(WMD)를 포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은 그럴 생각이 없다. 그는 “서두르지 않겠다”고 한 트럼프 대통령과 ‘시간 싸움’을 해야 한다. ‘돈줄’이 막힌 상태에서 ‘버티기’를 하려면 쌓아놓은 ‘외화’가 많아야 한다. 북한은 장기간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달러’를 충분히 갖고 있을까.  


  2017
10, 임수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통일국제협력팀장이 내놓은 〈김정은 시대의 대외경제: 외화수급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1991년부터 2016년까지 북한은 220억 달러에 달하는 상품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남북경협 및 비상품 수지에서는 250억 달러 흑자를 본 것으로 추정됐다. 여기에 2000년 이후 대외교역 시 ‘리베이트’ 명목으로 들어온 외화 수입을 감안하면, 1991년 이후 북한은 130억 달러에 달하는 순이익을 얻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북한이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을 겪었고, 계속되는 경제난과 대북제재 속에서도 핵·미사일 개발을 지속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북한의 외화보유액은 이보다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북한 경제 전문가들은 북한의 외화보유액을 50억 달러 안팎으로 보고 있다.  


 
이 중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북한의 외화보유고를 30~70억 달러라고 추산한다. 그는 올해 초 “최근 대북제재 여파로 북한은 1년에 10~15억 달러를 소진하고 있다. 내년 안으로 외화보유고가 모두 사라질 수 있다”고 예상한 바 있다. 


  30~50억 달러에 이르는 ‘김정은 비자금’도 바닥 보였나?

북한은 또 다른 ‘달러 금고’를 갖고 있다. 김정은의 비자금이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진 천문학적인 비자금은 북한 김씨 정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김정은의 ‘검은돈’은 약 30~5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난해에는 이마저도 고갈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미국 의회가 설립한 ‘자유아시아방송’은 지난해 1 24, 중국의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이와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김정은은 김일성과 김정일이 각종 범죄와 인권 유린 등으로 그러모았던 비자금을 집권 7년 동안 ▲핵·미사일 개발 ▲평양 ‘여명 거리’ 조성 ▲마식령 스키장 건설 등에 탕진했다. 이와 함께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외화 수입이 막히면서 비자금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김정은 비자금’을 관리하는 북한 노동당 39호실 간부들은 현재 ‘자금 부족’을 걱정하고 있다.  


 
송봉선 전 국가정보원 북한조사단장도 유사한 주장을 2014년에 제기했었다. 그는 당시 대북제재 강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전시성 사업들로 인해 북한 외화 지출 규모가 김정일 때보다 늘었다고 분석했다. 송 전 단장에 따르면 김정일의 연간 외화 지출 규모는 3억 달러였지만, 김정은은 매해 6억 달러가 넘는 외화를 썼다. 이에 따라 김정일이 물려준 비자금은 2014년 당시에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고 추정했다.  


 
김정은이 2014년 이후에도 예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비자금을 써댔다면, 대북제재가 더 심한 지금은 ‘자유아시아방송’이 보도한 것처럼 ‘김정은 비자금’ 규모가 대폭 감소해 말 그대로 ‘바닥’을 보였을 가능성도 있다. 남은 비자금이 별로 없고, 외화보유액마저 완전히 소진된다면, 그간 ‘달러’로 당()과 군()을 장악해왔던 김정은의 리더십은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북한, 외화수급 한계 직면… ‘경제 위기’ 가능성 고조

▲국제사회 대북제재의 견고함을 실감한 김정은은 ‘조건 없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등을 제안했다. 이는 사실상 ‘대북 퍼주기’에 불과한 ‘남북경제교류협력’으로 북한이 직면한 외환위기를 타개하겠다는 속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뉴시스

 

트럼프가 ‘경제 성장’을 약속하며 제시한 ‘빅딜’을 거부한 김정은의 북한은 올해 경제적으로 어떤 상황을 맞을까. 아산정책연구원은 〈아산 국제정세 전망 2019〉를 통해 “북한은 2019년에도 거시경제와 생활경제 안정을 위해 예년 수준의 석유와 생필품을 수입할 것으로 보이나 이를 지탱할 외화 수급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고 비관적으로 예측했다. 

 

김석진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외화보유액이 소진되어가고 상품 수입이 더 줄어들면 시장과 사()경제 활동도 위축되고, 이에 따라 전반적 생활수준도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며 “국영경제 참가자 중 일부가 사경제 부문으로 이동해 제재 피해를 상쇄하는 완충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으나, 피해를 충분히 만회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19년도의 북한 경제는 더욱더 힘든 고난의 행군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며, 북한의 수입에서도 외화보유액 감소에 따라 2018년 대비 더욱 감소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그의 보고서 내용이다.  


 
〈특히 대북 경제제재가 지속된다고 하면, 현재 북한의 대중수출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섬유류에 대한 위탁가공 합작도 금지되어 있어 이들 교역액 역시 2018년 수준이나 그 이하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매우 가시적인 비핵화 조치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대북제재는 지속될 것이고 이에 따른 북한의 고통도 더 커져만 갈 것으로 예상한다. 결론적으로, 제재 효과가 더 가시화될 2019년 북한의 대외경제 여건은 2018년보다 더 악화될 것이 분명하다.  


 
이승열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2017년 이후 북한의 경제지표를 고려할 때 북한 경제의 위기 가능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대북제재의 영향이 수입량의 급감으로 나타나면서 시장가격에 대한 압력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물가 상승은 북한 주민 민생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북한이 ‘친시장 기조’를 버리고 시장을 통제하려고 하면, 20년 동안 자생적으로 성장한 북한의 자본·상품 시장은 극심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줄기차게 ‘남북경협’ 강조하는 文대통령은 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지난해 5월 26일, 판문점에서 헤어지며 서로 껴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줄기차게 대북제재 완화 또는 해제, ‘남북경협’을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정은은 북한 경제 붕괴를 막기 위해 대북제재 해제를 강조했다. 문재인(文在寅) 대통령도 지난해 유럽 순방을 가서 줄기차게 ‘대북제재 해제’를 주장했다. 김정은은 또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등 남북경협을 위기 타개 방안으로 택했다. 그는 올해 신년사에서 “개성공업지구에 진출했던 남측 기업인들의 어려운 사정과 민족의 명산을 찾아보고 싶어 하는 남녘 동포들의 소망”을 언급하면서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 7, (북한이) 신년사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조건·대가 없이’ 재개하겠다는 것은 환영할 만하다”고 밝혔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고, 개성공단이 폐쇄된 원인에 대해 북한이 지금까지 시정 조치와 사과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환영한다”고 화답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또 3·1 100주년 기념사에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의 재개 방안을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문재인 정부의 통일부는 3 12, ‘대통령 업무보고’ 내용을 공개하면서 “남북공동체 추진 기반을 조성하겠다”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비해 대북제재 틀 내에서 사전준비와 환경조성을 하겠다”고 주장했다. 왜 문재인 정부는 국제사회가 강력한 대북제재로 북한의 돈줄을 차단한 결과 위기에 직면한 김정은을 회생시키려는 것일까. 왜 국제사회의 오해와 대북 압박 공조 균열을 초래할 수도 있는 발언들을 북핵의 가장 큰 피해자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하는 것일까.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北, 美·北 대화 진행 중에도 내부 단속 강화

김씨 일가 위해선 개인 삶도 버려야 된다는 북한식 사상교육

⊙ 김정은 ‘수령 신비화’ 발언은 대내외적 이미지 개선 작업
⊙ 2차 美北정상회담 전에 간부 사상교육 강화
⊙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黨과 수령에 충성해야 

▲2018년 12월 북한이 간부들을 상대로 배포한 사상교육 자료다.

 

《월간조선》은 2018 12, 북한이 고위 간부들을 대상으로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을 더욱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배포한 학습제강(학습 지도안) 자료를 단독으로 입수했다. 해당 자료는 ‘학습제강(간부), 예술영화 〈자신에게 물어보라〉의 주인공처럼 살며 일할 데 대하여’라는 제목의 16페이지 분량이다. 자료는 조선노동당출판사에서 만들어졌다. 조선노동당출판사는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 소속이며 김씨 일가의 우상화 관련 책이나 문서, 간부 강연 자료 등을 만드는 곳이다.  


  자료는 “인간의 참된 삶의 가치는 수령의 사상과 뜻을 높이 받들고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위해 헌신하는 보람찬 투쟁 속에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예술영화 〈자신에게 물어보라〉의 주인공처럼 양심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보며 당의 뜻대로 살며 일하기 위해 애쓰는 진실한 인간, 조국과 인민의 부름 앞에 말로써가 아니라 한 몸을 내대고 실천으로 대답하는 사람이 바로 우리 당이 바라는 진짜배기 충신이다. 일군들은 영화의 주인공이 지닌 숭고한 정신세계를 따라 배워 당을 받드는 충정의 한길에서 인생의 값 높은 삶을 빛 내여야 한다.

 
  김정은, 美北정상회담 실패 미리 예상했나  

북한이 지난해 12월에 이 같은 자료를 만들어 사상교육에 박차를 가한 것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먼저 김정은의 ‘수령 신비화’ 발언이다. 김정은은 미북정상회담 결렬 이후 내놓은 첫 대내 메시지에서 “수령의 풍모를 신비화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은 김정은의 이런 발언이 있기 몇 달 전까지 간부들에게 충성심을 강요했다. 이를 볼 때 김정은의 발언은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북한은 2차 미북정상회담 결렬을 미리 짐작하고 내부 결속을 다진 것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 있다.  


  김정은은 지난 3 6~7일 평양에서 열린 ‘제2차 전국 당 초급선전일꾼대회’에 보낸 서한에서 “수령의 혁명 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우게(가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는 대내외적으로 김정은 자신은 할아버지·아버지와 달리 친근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의도다. 반면 북한 내부에서는 당 간부와 인민에게 당과 수령에 충성을 다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당이 곧 수령이며 수령이 곧 당이다. 즉 당에 충성하는 것이 수령에게 충성하는 것이고, 수령에게 충성하는 것이 당에 충성하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위 탈북자 김모 씨는 “말도 안 된다. 만약 북한에서 수령 신비화가 없으면 김정은 정권은 곧 무너질 것이다. 이유는 정통성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북한은 김일성부터 김정은까지 수령유일사상 체계로 이어져 온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령 신비화는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찬일 세계북한인권센터 소장은 “김정은 자신을 신비화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김일성·김정일을 신격화하면 진실을 가린다는 얘기다. 덩샤오핑(鄧小平)이 마오쩌둥(毛澤東)을 비판하면서 자기 시대를 열었듯이, 김정은 역시 선대들의 과오를 비판하는 시작이 될 것이다. 김정은은 선대를 비판하면서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런 관점도 있다. 북한은 미북정상회담을 대북(對北)제재 해제용으로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북한에는 미국과의 대화를 반대하는 ‘강경파’가 존재한다. 이 강경파의 의견을 묵살하고 진행한 미북 대화가 실패로 끝날 경우 김정은의 입지는 충분히 흔들릴 수 있다. 김정은은 이를 사전에 막기 위해서 정상회담 전에 사상교육을 시켰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한 책임연구원은 “북한은 핵을 포기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고 말했다


  “경제가 최고로 안 좋은 상황에서 미국과 비핵화를 전제로 여러 협상을 한다고 하면 간부들이 동요(動搖)할 것이다.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기대감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 회담이 실패하면 어떻겠는가? 북한은 이것을 예상하고 미리 사상교육을 한 것이다. 일종의 당과 김정은을 위해 충성심을 가지고 당에서 가장 바라는 방향에 자신을 헌신하라고 강조했을 것이다. 북한은 과거에도 대외적 변화가 있을 때 내부 결속 강화를 더 강하게 했다.
 
  이처럼 북한은 대내외적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것처럼 보이고 있지만, 실제 간부와 주민에게는 여전히 충성심을 강요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월간조선》이 입수한 자료를 살펴보자. 

 〈양심은 깨끗한 마음이다. 가장 순결하고 진실한 마음을 지닌 인간만이 당을 받드는 데서 티끌만 한 사심도 없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쳐 투쟁할 수 있다. 영화는 주인공의 형상을 통하여 혁명적 양심은 개인의 이익보다도 당과 혁명의 이익을 더 귀중히 여기고 그것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는 데서 표현돼야 한다는 고귀한 삶의 진리를 가르쳐주고 있다. 우리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티 없이 맑고 깨끗한 당적 양심, 혁명적 양심을 지니고 당과 수령을 진심으로 받들어야 하며 그 길에서 혁명가의 참된 삶을 빛내야 한다.


  한 여성의 인생을 망친 북한식 혁명가의 삶은

자료에서 소개한 예술영화 〈자신에게 물어보라〉를 짚고 넘어가 보자. 이 영화는 북한 강원도의 한 산골짜기에서 소를 방목하면서 지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에서는 소를 방목하며 살던 여주인공 산매(김영숙 역)가 결혼을 위해 그곳을 떠나려고 한다. 이때 혁명적 양심이 투철한 책임자 문석주가 도시에서 내려온다. 문석주는 당과 수령을 위해 일생을 바친 인물이다. 그런 문석주가 산매의 앞길을 막는다. 그 이유는 산매가 방목지의 발기자(發起者)이자 핵심이기 때문에 떠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산매는 문석주에게 어떻게 그렇게 쉽게 남의 앞길을 막을 수 있는지 따진다. 그러면서 “만약 내가 당신의 딸이라고 해도 이곳에 남으라고 했겠느냐”고 다그친다. 문석주는 혁명적 양심에 찔려 선뜻 답하지 못하고 고민에 빠진다. 며칠 뒤 그는 산매에게 당적 양심으로 답하겠다고 하면서 “내 친딸이라고 해도 이곳에 남으라고 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산매는 “그럼 당신의 딸 중에 누구든지 방목지로 데려올 수 있느냐”고 되묻는다. 문석주는 또 고민에 빠진다.  


  자료에서는 “만일 그가 양심을 귀중히 여기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산매의 물음에 쉽게 답하고 아무런 양심상 가책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당적 양심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으로 여겼기에 산매의 물음에 양심의 대답을 주지 못한 자신에 대해 그처럼 경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문석주는 도시로 내려가 자신의 세 딸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자신의 뜻에 따라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딸들은 이를 거절한다. 그는 홀로 다시 방목지로 돌아온다. 이후 자신이 강조해오던 혁명적 양심을 실천으로 보여준다. 밤낮없이 일하면서 혁명적 양심을 앞세워 산매를 설득하려 한다. 문석주의 오랜 설득 끝에 산매는 방목지를 떠나지 않기로 결심한다. 세월이 흘러 문석주의 막내딸이 방목지로 자원해서 오게 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자료는 “영화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혁명가는 가식과 변심이 없는 순결한 양심을 지닐 때에만 당을 따라 혁명의 한길을 변함없이 걸어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지금 일부 사람들은 당에 속을 주지 않고 거짓보고를 하고 있으며 당 결정을 채택할 때에는 손을 들고 뒤에 돌아앉아서는 못하겠다고 하면서 자기의 양심을 속이고 있다. 이렇게 당 조직과 외교를 하면서 앞에서 한 말과 뒤에서 하는 말이 다른 사람들은 준엄한 시련의 시기가 닥쳐오면 양심을 버리고 당과 수령을 배반한다.  


  이는 당이 결정하는 어떤 것이든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 길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배반하지 말고 당과 수령을 위해 목숨도 서슴없이 바치라고 요구한다.  


  북한은 자료에 김정일의 말을 인용해 간부들에게 혁명적 양심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당과 수령을 따르는 길에서 그 어떤 불만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혁명적 양심은 말로써가 아니라 실천행동에서 표현되야 한다고 하시면서 양심적인 일군은 원래 번지르르한 말을 질색한다. 말을 앞세우는 일군은 자기 양심과 빈 구석을 몰라 메운다고 하시였다. 계속해서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는 일군들의 양심을 귀중히 여기며 양심적인 일군을 제일 사랑한다고 하시면서 옥에는 티가 있을 수 있어도 당과 수령을 받드는 일군의 양심에는 그 어떤 보이지 않는 티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시였다.

 
  , 김정은 위해 불구덩이라도 뛰어드는 혁명정신 갖춰야

  북한은 그 어떤 경우에도 김씨 집안을 위해서 정치 사상적으로 무장하고 결사옹위 정신으로 싸워야 한다고 교육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전부 태어나서부터 이런 교육을 받으며 자란다. 일명 세뇌교육이다. 세뇌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돼도 북한 선전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당에서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한다.  


  자료에는 “주인공 문석주는 당의 부름이라면 어떤 곳이든 주저 없이 뛰어들어 당 정책관의 앞장에서 대중을 이끄는 당에 충직한 일군이다”고 말한다.  


  〈그는 청춘 시절부터 머리에 흰 서리(흰머리)가 내릴 때까지 당이 부르는 어렵고 힘든 곳에서 조국과 인민, 후대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왔으며 그 길에서 떳떳한 생의 흔적을 남겼다. 문석주와 같이 당의 구성과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쳐 헌신 분투하는 사람이 바로 당에 대한 충실성을 체질화한 우리 시대의 참된 일군이다. 


  북한은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에 대한 무한한 헌신과 희생성을 따라 배워 김정은의 구성과 의도를 실현해나가는 보람찬 투쟁의 길에 빛나는 흔적을 남길 것을 강조하고 있다. 


  고위 탈북자 김씨는 “어려서부터 당과 수령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서슴없이 바치는 당 일꾼이 돼야 한다고 배웠다. 또 일꾼들은 누가 보든 말든 진심으로 당을 받드는 혁명의 뿌리가 되어야 하며 당과 조국, 인민을 위해 흔적을 남기는 참된 애국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어린 시절부터 고위층이던 부모 덕으로 북한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고 자란 예비 일꾼이었다.   


  북한은 “문석주는 당의 뜻을 받드는 충정의 길에 모든 것을 바쳐왔다. 그는 당이 부르는 어렵고 힘든 곳에 먼저 달려가 피 끓는 청춘을 조국에 바쳤고, 수십 년이 지난 다음에는 당의 축산정책을 관철하는 길에 자신의 모든 것을 깡그리 바쳐왔다”고 했다.   


  특히 자료에는 나선시의 한 옷공장 지배인의 사례를 소개하며 어려운 시기에도 환경을 탓하지 말고 자력갱생(自力更生)의 정신으로 당이 준 가업을 무조건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라선혜성옷공장 지배인 채정옥 동무는 경공업부분에서 전망이 좋은 경공업제품에 대한 가공무역을 널리 벌이데 대한 당의 의도대로 자기 단위의 경영활동을 수입위주로부터 수출위주로 전환시킬 대담한 결심을 내렸다. 그는 낡고 오래된 건물을 헐고 그 위해 새로운 건물을 짓기로 마음먹었다. 순수 여성들의 힘으로 건물을 짓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채정옥 동무는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건물을 일떠세웠다. 어느 해 매 작업반들에서 월에 수십만 벌의 수출품을 생산하여야 할 과제가 나섰을 때었다. 이 과제는 매우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지배인은 하고자 결심하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 각오를 가지고 당위원회의 적극적인 방조(도움) 속에 기술혁신운동과 사회주의 경쟁운동을 힘있게 벌려 불가능을 가능으로 전환시키는 기적을 창조했다. 결과 공장에서는 국가에 적지 않은 이득을 주게 됐고, 공장의 고정재산은 종장이 일떠서던 시기보다 무려 수백배나 늘어나게 됐다. 지난 10여년간 라선혜성옷공장이 이룩한 비약적인 발전에는 이렇듯 당의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 지혜와 열정을 아낌없이 바쳐온 사회주의 애국공로자 채정옥 동무의 열화 같은 애국심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당과 수령 위해 대를 이어 충성해야… 전 세대 고귀한 전통

▲북한 군 장성들이 회의 중 김정은의 말을 받아적고 있다. 사진=뉴시스

 

북한은 김정은을 위해 대를 이어 충성을 다할 수 있게 교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료에 담긴 내용을 보면 부모들이 자녀 교육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명시했다. 그러면서 부모들이 자식을 교양하지 않으면 혁명가로 자라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부모가 혁명가라고 하여 자식이 저절로 혁명가가 되는 것은 아니며 사회주의제도에서 자라난 새 세대들이라고 하여 전 세대들의 고귀한 전통이 그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후대들이 당을 충직하게 받들며 조국과 인민을 위해 피와 땀을 아낌없이 바쳐온 선열들의 혁명정신을 변함없이 계승해나가도록 꾸준히 교양하고 이끌어줄 때에만 이어질 수 있다.  


  북한은 맡겨진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녀들을 혁명 전사로 잘 키우는 것도 중요한 임무 중의 하나라고 한다. 특히 부모가 자녀 교육에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본분을 다했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강조한다.  


  자료에는 “부모로서 자녀들에 대한 교양을 소홀히 하면 그들이 혁명보다 저 하나의 안락과 행복만을 추구하는 시대의 속물이 되고 만다”고 명시했다.  


  〈우리는 자식들을 훌륭히 키우는 것은 당의 운명, 혁명의 생사존망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명심하고 자녀들이 당의 뜻대로 살며 일하도록 옳게 교양하여야 한다. 자녀 교양을 잘하여 그들이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를 충정 다해 받들며 당과 혁명이 요구하면 목숨까지도 서슴없이 바치는 고결한 희생정신을 지니도록 하여야 한다. 조국의 미래와 혁명의 전도는 청년들을 어떻게 준비시키는가에 달려 있다. 


  북한은 청년들을 대상으론 정치 사상교육을 더욱 강화한다. 그 이유는 청년들을 정신적으로 세뇌시켜 일단 유사시 김정은을 위해 자기 목숨도 바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김정은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청년들은 따로 있다. 북한에서 말하는 성분이 안 좋거나, 부모의 배경이 없는 청년들이다. 이들은 당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을 시켜도 피할 방법이 없다. 반면, 성분이 좋고 부모의 배경이 좋은 집 청년들은 위험하거나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은 언제든 회피할 수 있다. 특히 북한 정권에 반하는 잘못을 하지 않는 한 이들은 모두 무죄다.  


  북한은 자료에 청년들이 자진해서 어렵고 힘든 곳으로 가고 있는 사례들을 적으며 청년들을 선동하고 있다.
 
  〈지금 우리 시대 청년들 속에서는 청년강국의 주인공으로 내세워준 당의 믿음과 기대에 충정으로 보답하기 위해 당이 부르는 혁명초소에 자원 진출하는 소행들이 많이 발휘되고 있다. 청진농업대학 원예학부 남새학과 졸업생 7명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숭고한 뜻을 높이 받들고 경성군 온포온실농장에 탄원함으로써 온포온실농장 건설 준비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 커다란 기쁨을 드렸다.  


  그러면서 북한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구성과 의도를 깨끗한 양심과 헌신으로 받들어나가는 이런 청년들의 아름다운 소행을 널리 소개 선전하고 그들의 모범을 적극 따라 배우도록 하기 위한 교양사업을 잘하여야 한다”고 했다.  


  북한이 지금까지 3대를 이어오면서 독재를 할 수 있었던 데는 세뇌교육이 자리한다. 북한판 세뇌교육의 핵심은 사상교육이다. 북한의 모든 것은 오직 수령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또 수령을 위해서 언제든지 목숨까지 바쳐야 한다. 이것이 가능한 곳이 북한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북한은 태어나면서부터 죽는 순간까지 세뇌교육을 받는다. 북한 주민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배우는 말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 고맙습니다’ ‘경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장군님 고맙습니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수령의 풍모를 신비화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정권을 인정하지 말라는 말이다. 김정은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이 이 같은 발언을 했다고 해서 북한의 세뇌교육이나 정치사상 교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김정은이 독재를 포기하지 않는 한 북한의 사상교육은 계속될 것이다.

: 정광성  월간조선 기자

  

03.28 김정은의 숨은 딜레마는 세습 엘리트 200여명

▲ 김정은이 지난해 4 9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주재하는 있는 모습. photo 노동신문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제2차 미·북 정상회담(2 27~28)이 결렬된 이후 김정은의 입장을 대변하는 ‘나팔수’로 적극 나서고 있다. 최 부상은 3 15일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북한)는 미국의 요구에 굴복하거나 이런 식의 협상에 나설 의사가 없다”면서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 중단(모라토리엄)을 계속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결정에 달렸다”고 주장했다. 최 부상은 “김정은 위원장이 하노이에서 돌아오는 길에 ‘대체 무슨 이유로 우리가 다시 이런 기차 여행을 해야 하겠느냐’라고 말했다”면서 “미국의 강도 같은 태도는 결국 상황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면서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경고했다   


   최 부상은 3 1일 새벽 리용호 외무상과 함께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합의 무산에 대한 미국의 ‘북한 책임론’을 반박했다. 당시 최 부상은 “김정은이 앞으로의 조·미(미·북) 거래에 대해서 좀 의욕을 잃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이라는 발언까지 했다. 미·북 간 교착 국면에서 최 부상이 등장해 긴장을 고조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 부상은 지난해 4 27일 싱가포르 제1차 미·북 정상회담을 3주 앞둔 5 16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을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 “횡설수설하며 주제넘게 놀아댔다”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강력 비난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끈해 회담을 취소했었다.
 


   최 부상은 북한 외무성에서 강석주(2016년 사망)와 김계관의 계보를 잇는 미국통이다. 최 부상은 중국과 오스트리아 등에서 유학했으며 1990년대 말부터 미·북 회담 및 6자회담에서 통역을 담당했다. 또 북미국 국장 겸 미국연구소 소장을 거쳐 지난해 3월부터 외무성 부상으로 일하며 김정은의 측근으로 일해왔다. 최 부상(1964년생)은 노동당에 입당할 때 보증인이 김정일이었다고 한다. 최 부상은 김일성의 측근이었던 최영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명예부위원장이 입양한 수양딸이다. 최영림은 슬하에 자녀가 없었다. 김일성의 책임서기를 10여 년간 했던 최영림은 중앙검찰소장, 정무원 부총리,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서기장, 평양시 당 위원회 책임비서, 당 정치국 상임위원, 내각 총리까지 역임한 북한 정권의 실세다. 최영림은 2011 12월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 북한의 권력 서열을 대변하는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에 김정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 이어 세 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최 부상의 오빠인 최승호(입양한 아들)는 당 중앙검사위원회 위원장이다.      


   김일성 최측근의 수양딸 최선희 부상   
   

최 부상처럼 김정은의 측근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에 충성했던 부모 덕분에 요직을 세습하고 있는 인물들이 즐비하다. 리용호 외무상의 부친 리명제는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과 서기실장을 지낸 김정일의 측근이었다. 김정은은 그동안 할아버지 김일성과 항일 빨치산 활동을 함께 해왔던 혁명 1세대의 후손인 혁명 2세대와 3세대 엘리트들을 중용해왔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일성과 막역한 사이였던 항일 빨치산 출신인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 아들인 최룡해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들 수 있다. 최현은 김일성과 공식석상에서만 경어를 사용하고 사석에서는 편하게 ‘김일성’이라고 호칭하면서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눈 유일한 인물이었다. 최룡해는 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 중앙군사위 위원, 당 중앙위 부위원장,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등 당·정·군의 주요 요직을 두루 꿰차고 있다. 군 총정치국장을 역임한 최룡해는 김정은이 싱가포르와 하노이를 갔을 때 평양을 지킨 사실상 북한의 제2인자라고 말할 수 있다.  


   김정은으로 후계자가 결정되는 과정에는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 김국태 당 검열위원장(김책 전 전선사령관의 아들), 전병호 당 책임비서,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등 혁명 2세대의 지지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혁명 3세대로는 김국태의 딸인 김문경 당 국제부 부부장, 최룡해의 아들 최준, 김영남의 손자 김성현, 강석주 내각 부총리의 장남 강태성 등이 있으며 이들은 당·정·군 요직에 진출해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김정은 집권 이후 40~50대들이 주요 요직을 꿰차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혁명 3세대 또는 고위 전직 당·정·군 간부들의 자녀들이다.

 

▲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지난 3월 1일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하노이 회담 결렬 미국 책임론을 주장하고 있다. photo TTXVN

 

사회주의 군주제 국가

   김정은에 항상 붙어다니는 수식어는 ‘3대 세습 독재자’라는 말이다. 20대 나이에 당·정·군 어느 분야에서도 전혀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이 김일성과 김정일의 권력을 그대로 물려받아 북한의 최고지도자에 등극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권력 3대 세습은 공산주의 종주국인 옛 소련과 중국에서는 물론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찰스 드주 전 미국 하원의원(공화당)은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중세 봉건체제(medieval feudal lordship)’라고 규정했다. 다시 말해 중세시대 봉건 영주처럼 가신(家臣)들을 거느리고 대대손손 권력을 세습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김정은이 지금까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면서 북한을 통치하고 있는 것은 타고난 재질과 능력 때문이라고 볼 수 없다.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수령 독재체제에서 김정은이 통치력을 과시해온 바탕에는 수령 독재체제를 후원하고 뒷받침해온 엘리트 그룹이 있다. 엘리트 그룹의 구성원들도 대부분 봉건 영주의 가신들처럼 부모 덕분에 요직을 차지한 세습 후계자들이다.   


   당 조직지도부를 비롯해 당·정·군 요직에 포진하고 있는 이들은 그동안 북한을 이끌어온 핵심 통치 그룹이다. 200여명으로 구성된 이들 세습 엘리트 입장에선 3대 세습이 자신들이 그동안 유지해온 지위와 권력을 그대로 행사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하고 안정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들은 김정일이 사망하자 김씨 일가가 아닌 다른 인물이 최고지도자가 됐을 경우 권력투쟁이나 새로운 충성경쟁 등으로 자신들이 숙청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백두혈통’인 김정은이 최고지도자가 되면 계속 충성을 바침으로써 안정적으로 자신들의 지위와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들은 또 최고지도자의 3대 세습처럼 자녀들에게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물려줄 수 있다는 계산까지 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왕과 신하가 권력을 대대로 세습하고 있는 중세 봉건체제처럼 북한은 ‘사회주의 군주제 국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심각한 식량난, 2호 창고도 열리나 

김정은은 제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드러났듯이 핵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김정은은 ‘김씨 왕조’라는 세습체제를 유지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김정은으로선 선대의 유훈(遺訓)인 핵을 보유해야 체제를 지킬 수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유일한 수단인 핵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심지어 북한 정권은 1990년대 중반 수백만 명이 굶어죽었던 ‘고난의행군’을 감내하면서도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김정은은 2017년 11월 29일 6차 핵실험과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5형 시험 발사를 성공했다면서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이후 김정은은 2018년 4월 20일 개최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 건설 노선’의 종료를 공식 선언하고 ‘경제 건설 총력 노선’을 제시했다. 당시 김정은이 ‘경제 건설 총력 노선’을 강조한 것은 핵을 포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미국 등 국제사회의 제재 조치를 해제시키려는 ‘꼼수’였음이 제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입증됐다.  


   김정은은 핵을 포기하고 체제 안전을 보장받더라도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에 절대로 핵을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김정은으로선 자신의 부하들인 통치 엘리트들이 미국 등이 체제를 보장할 경우 더 이상 자신에게 충성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베트남은 물론 쿠바의 사례에서 보듯이 이들 국가에선 북한처럼 김씨 일가의 독재체제가 아닌 통치 엘리트들이 1인 독재체제 대신 집단체제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 북한 정권의 통치 엘리트들은 자신들도 국가를 통치할 자격과 능력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은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1988년생)이 고모 김경희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2017년 10월 열린 당 제7기 2차 전원회의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출된 것에 상당한 회의감을 느꼈을 것이다. 김여정은 지금까지 승승장구하면서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자리를 차지했고 3월 10일 실시된 제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대의원으로 선출됐다. 김여정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이처럼 벼락출세를 할 수는 없다. 말 그대로 ‘백두혈통’이기 때문이다. 부모 또는 조부모 덕에 출세한 통치 엘리트들은 자신들도 기회만 주어졌다면 김정은과 김여정처럼 최고지도자와 핵심 실세 자리를 차지했을 테고 오히려 ‘애송이’라고 볼 수 있는 김정은과 김여정보다 북한을 더 잘 통치했을 수도 있다고 여길지 모른다. 김정은도 통치 엘리트들의 이런 마음을 알아차렸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핵을 포기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의 또 다른 딜레마는 핵 포기의 반대급부로 미국 등 국제사회의 경제 지원을 받아들였을 경우 체제가 붕괴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통치 엘리트들이 핵 포기를 가장 강력하게 반대할 것이 분명하다. 현 체제에서 온갖 특권을 누리면서 잘 먹고 잘살고 있는 통치 엘리트들은 김씨 왕조의 세습체제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자녀들도 똑같이 특혜와 권력을 세습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게리 세이모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김정은에 대한 정치적 위협은 외부에서만 가해지는 게 아니라 북한 내부에도 존재한다”면서 “경제 개발과 개혁이 이뤄지면서 번영을 누리게 될 북한 주민들은 정치적 개혁을 갈망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김정은이 전임자인 김일성과 김정일을 비판하면서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김정은의 정통성은 오로지 김일성과 김정일의 권력을 세습한 데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통치 엘리트들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이들도 부모나 조부모 덕분에 권력을 누려왔다. 북한에서 통치 엘리트들의 요직 대물림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왕조와 ‘운명공동체’로 묶여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주민들이 굶어죽어도 자신들은 최고의 대우를 받으면서 3대 세습체제와 일당독재를 보위하기만 하면 된다.

 

▲ 지난 1월 김정은과 북한 고위 당정군 간부들이 새해를 맞아 금수산 태양궁전에서 참배하고 있다. photo 노동신문

 

김정은 집권 이후 사치품 구입 4조5000억    

실제로 북한 정권의 통치 엘리트들을 비롯한 특권층은 미국 등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 조치에도 불구하고 잘살고 있지만 일반 주민들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 특히 식량난이 심각하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지난해 폭염과 홍수가 겹치며 올해 북한의 식량 배급량이 크게 줄었다. 프라빈 애그러월 WFP 평양소장은 “몇 년간 연간 곡물 540만~560만t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왔는데 지난해 490만t으로 뚝 떨어졌다”고 밝혔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도 올해 북한을 외부 지원이 필요한 식량부족국가로 재지정했다. FAO는 “북한의 올해 식량부족량은 64만1000t으로 지난해 46만t보다 늘었다”면서 “올해에도 북한 주민들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 충분한 음식 섭취를 못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 때문에 북한 정권이 김정은의 지시로 몇 달 전부터 ‘5호 창고’를 개방해 쌀 등 양곡을 대거 시장에 풀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5호 창고는 재난과 구호 상황에 대비해 비축하는 전략 예비물자를 보관하는 시설로 노동당에서 관리한다. 일각에선 김정은이 주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2호 창고’를 열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2호 창고는 전쟁에 대비한 양곡 비축 시설로 군이 관리한다. 과거 고난의행군 시기에도 2호 창고는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 정권이 김정은과 통치 엘리트들의 사치품을 구입하는 데 사용한 돈으로 쌀 등을 수입할 경우 식량난은 쉽게 해결될 수 있다. 김정은이 집권한 2012년 이후 북한 정권이 사치품 구입에 쏟아부은 돈은 40억429만달러(4조5040억원)나 된다. FAO가 추산한 올해 북한 부족 식량 64만t은 북한 정권이 2017년 한 해 들인 사치품 값만으로도 충분히 구입할 수 있다. 게다가 국제사회의 대북 인도주의 지원은 대부분 당 간부 등 특권층에 돌아간다. 탈북 주민들은 “인도주의 지원으로 밀가루나 쌀이 들어오면 김정은과 당에 충성하는 간부들 배만 불리게 된다”고 밝혔다. 북한 특권층이 주로 거주하는 평양시 중심구역에서 고급 아파트 한 채(45평 수준·약 150㎡)는 20만달러에 거래된다. 이런 아파트에는 가구 등이 모두 최고급 사치품으로 꾸며져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김정은에게 북한 주민들의 경제적 번영은 전혀 관심 밖의 사항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정은의 최우선 관심사는 자신과 김씨 왕조의 생존이다. 이를 위해선 통치 엘리트들의 권력세습도 당연히 용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국 등 국제사회의 제재 조치가 강화될수록 통치 엘리트들도 갈수록 생활이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다. 김정은에 충성한 대가로 호의호식하면서 달러를 물 쓰듯이 써온 이들은 이 때문에 불만이 늘어날 것이다. 제재가 강화되면 돈주(신흥 부호)들과 결탁해 이익을 챙겨온 통치 엘리트들은 더욱 타격을 입을 것이다. 북한 주민들의 봉기는 강력한 통제로 막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통치 엘리트들의 불만은 김정은에게 엄청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간조선 2550호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truth21@empas.com

 

04.20 NYT "대북제재로 김정은 통치기반 흔들"

"당관료 등 北지도층 최대 타격"… 北외교관 출신 "식량비축 지시"
"北 보위성 간부 6명 중국으로 잠적, 탈북자도 작년 이맘때의 2~3"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북한 경제가 흔들리면서 김정은 정권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 18(현지 시각) 보도했다. NYT는 탈북자들의 증언과 경제학자들의 분석을 인용, 최근 몇 년간 대북 제재로 인해 북한 석탄·철광석·해산물 등의 중국 수출길이 막혔고, 그 결과 노동당 관료와 군인, 경찰관 등 '북한 지도층'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고 전했다. 이시마루 지로 아시아프레스 북한취재팀장은 NYT 인터뷰에서 "제재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이들은 정권의 급여와 배급을 받는 20~30%의 사람들"이라며 "일반 주민들은 시장에서 채소를 팔아도 군인들의 한 달 임금만큼 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 외교관 출신인 고영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은 "김정은이 지난해 대미 관계 악화에 대비해 식량과 석유 비축을 지시했다" "불법 환적 등으로 석유를 비축하는 데 통상 시장가격의 1.5~2배 값을 치르면서 외화 소비가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당의 곳간이 비면서 간부들의 주머니 사정도 열악해졌고, 외화 소비의 거점인 평양 백화점에도 당 간부들의 출입이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북한 고위층을 비롯해 탈북자 수도 증가 추세다. 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 보위성 고위 간부 등 6명이 지난달 탈북 해 중국으로 잠적했다"고 전했다. 김정은은 이들을 체포하기 위해 대규모 체포조를 보냈지만, 아직 행방이 파악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반북(反北) 단체인 '자유조선'( '천리마민방위')에 구조 요청을 보내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중국 등은 그간 북한 일반 주민들의 생활고를 덜어주기 위해 대북 제재 완화를 주장해 왔다. 그러나 NYT 보도에 따르면 대북 제재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난 대상은 김정은 체제를 떠받치는 북한 엘리트 집단이었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은 대중 수출로 외화를 벌어 소비재·자본재를 사왔기 때문에 그간 이를 향유하던 10% 엘리트층이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을 것"이라며 "이 특권층이 대북 제재로 가장 먼저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북·중 무역액은 243000만달러로 전년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고영환 전 부원장도 "시장의 쌀·기름 값은 크게 요동치지 않고 있다" "일반 주민들한테까지 '고난의 행군' 시절의 어려움이 닥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이 최근 '부정부패 청산'을 강하게 내세우고 있는 것도 엘리트 계층의 이반(離反)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김정은이 부정부패를 청산한다면서 특정 대상을 솎아내고, 나머지는 체제에 충성하게 하는 일종의 공포정치를 수반할 가능성이 있다" "특권층은 생활수준은 갈수록 나빠지고 정권의 탄압도 두려워지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 전 부원장은 "김정은이 대북 제재로 인한 내핍의 원인을 고위층의 부정부패 탓으로 돌리는 내부 선전 효과도 있다"고 했다.


한편, 북한 인권 단체 관계자는 "올해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최근 압록강·두만강을 넘는 탈북자들이 소폭 늘어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브로커를 통해 도강(渡江)을 의뢰하는 건수가 보통 일주일에 2~3건 수준이었는데, 최근에는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3배 늘었다"고 말했다. 중국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패 이후 북한 경제 악화로 탈북자가 대거 몰려들 것을 걱정해 최근 북·중 국경 지역인 윈펑(雲峰)에 첫 5G 초소를 세우기도 했다.

조선일보 김경화 기자

  

 

월간조선 05월 호

■북한의 물() 사정

수세식 변기에 쓸 물 없어 오물은 창밖으로 투척

⊙ 평양의 고층아파트에서도 매일 아침 3~4차례씩 물지게를 지고 20층까지 오르내려
⊙ ‘물 한 컵으로 모든 일 다하기’… 한 모금으로 양치,

남은 물로 손발 씻고, 걸레를 빤 후 용변 내리는 데 사용 

▲평양 ‘미래과학자의 거리’에 들어선 고층아파트. 북한의 고층아파트들 가운데는 상수도 시설이 미비해 직접 물지게를 지고 올라가야 하는 곳이 많다. 사진=공동취재단 

 

‘물과 공기만 있으면 살 수 있다. 간고분투하자.

  미북(美北)정상회담 결렬 후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강조하는 말이다. 이 말을 듣고 주민들은 속으로 욕을 한다. 공기는 몰라도 ‘물’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에는 세 ‘리을()’이 없다. 물·불·쌀이다.  


  남한에 와서 ‘물’에 관한 동사가 ‘긷다’에서 ‘받다’로 바뀌었다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자기 물은 자기가 길어 와야 한다. 고층아파트라고 물긷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문수거리에는 러시아가 건설해준 20층짜리 아파트가 있다. 월드뱅크에서 일하는 재미교포가 친해진 북한 공무원에게 “당에서 배려해줘서 평양 한가운데 고층아파트에서 사니 얼마나 좋으냐”라고 농담 삼아 물었더니, “매일 아침 3~4차례씩 물지게를 지고 20층까지 오르내려 보라. 그런 소리가 나오나” 했다는 일화가 저간의 사정을 대변한다. ‘고난의 행군’ 이전만 해도 물·불 사정이 요즘처럼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빠데미장’  

  평양 낙랑구역에는 5만 가구가 산다. 물탱크는 10만 가구 기준으로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수도시설이 있어도 불(전기)이 없으면 펌프를 돌리지 못한다. 불이 와야 물이 온다. 불이 없으니 물이 없고, 물이 없으니 각자 자력갱생해야 한다. 일단 어쩌다 물이 나오는 시간에 대비해 인테리어를 한다. 욕조를 없애고 화장실 한쪽에 벽을 쌓아 물탱크를 만든다. 이것을 ‘빠데미장’이라고 한다. 쌓은 벽 중간에 수도꼭지를 다는 것은 필수다. 문제는 수질이다. 쇳밥이 많이 섞여 나오기에 청소를 자주 해줘야 한다. 그래서 식수는 부엌에 따로 받아 사용한다. 독 안에 담아놓으면 물이 맑아진다. 일종의 정수기인 셈이다.  


  만성적인 물 부족 문제가 중앙당 강연 주제가 된 적도 있다. 내용은 ‘물 한 컵으로 모든 일 다하기’다. 일단 물 한 모금으로 양치한 후 다른 컵에 뱉는다. 남은 물로 손과 발을 씻고 마지막으로 걸레를 빤다. 걸레 빤 물과 처음 양치한 물은 버림 없이 모아 용변 내리는 용도로 쓴다. 행정기관이 진지하게 제작해서 배포한 내용이다. ‘알뜰한 조선 여성의 기본’이라는 부제(副題)도 붙어 있다.  


  식수 상황이 이러한데 용변 볼 물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러다 보니 오물을 창문 밖으로 투척하는 경우도 많다. 버리는 사람이 있으면 맞는 사람도 있는 법. 길 가다 난데없는 오물 벼락을 맞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북한의 아파트 주변을 지날 때는 머리 위를 주도면밀하게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오물을 투척할 때는 요령이 있다. 북한 아파트 창문은 밖이 아니라 안으로 열린다. 일단 창문을 열고 1~2m 뒤에서 오물을 투척한다. 여유가 있는 집은 비닐에 담아서 버리고, 여유가 없는 집은 대야에 담아 밖으로 던진다. 그러고 나서 얼른 창문을 닫아 어느 집에서 던졌는지 알지 못하게 한다. 그래야 큰 싸움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분은 북한에서 귀중한 비료다. 학교 다니는 모든 학생은 ‘꼬마과제’로 인분 몇백kg을 바쳐야 한다. 그래서 창밖으로 투척된 오물은 밤 사이 누군가가 수거해 간다. 하지만 오물은 사라져도 냄새는 남는다

 
  ‘물빨기

  상수도뿐 아니라 하수도도 문제다. 2000년대 중반 평양에서 밀착 고무마개가 날개 돋친 듯 팔린 적이 있다. 집 화장실 하수구를 막는 용도다. 겨우내 얼어 있던 하수관이 녹으면 오물이 올라온다. 밀착 고무마개는 다른 집 하수가 ‘우리 집’으로 역류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수압이 증가하면서 고무마개를 막지 않은 집으로 오물이 분수처럼 솟구쳤다고 한다.  


  지방은 물 사정이 더 열악하다. 북한의 주택단지는 산을 깎아 짓는 경우가 많다. 아래쪽 집은 낡아도 값이 비싸다. 그나마 물이 잘 나오기 때문이다. 언제 물이 나올지 모르기에, 북한에서는 24시간 수도꼭지를 열어놓고 사는 것이 일상이다. 모든 집이 수도를 틀면 ‘압력이 샌다’. 그래서 인민반장이 주민들에게 말한다. “윗집들은 수도꼭지를 잠그자. 그러면 아랫집들은 물을 받을 수 있으니, 나눠 쓰면 되지 않느냐.” 주민들은 그 앞에서는 그러겠다고 약속하지만 돌아서면 여전히 24시간 수도꼭지를 틀어놓는 물 쟁탈전을 벌인다.  


  이웃들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직접 맞대결을 펼치는 경우도 있다. 물이 돌면 수도에 연결해놓은 호스를 입으로 빠는 것이다. 빨리 빨아야 물길이 우리 쪽으로 온다. 빠는 힘이 약하면 저쪽으로 우리 물이 빨려가는 느낌이 온다. 그래서 ‘물빨기’ 할 때는 식구 많은 집이 유리하다. 숨이 차면 다음 사람에게 호스를 넘기고 릴레이하듯 돌아가며 필사적으로 호스를 빤다. 마침내 아기 소변 줄기 정도라도 물이 나오면 식구 모두가 환호성을 지른다. 해방이 되더라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라 한다.  


  물빨기가 쉬운 작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압록강이나 두만강에서 물을 긷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강에서 물을 길을 때는 ‘퉁제’라는 물통을 쓴다. 14L가 들어가는 쇠로 만든 물통이다. 물을 채우면 20kg 정도 무게가 된다. 일단 무릎에 올려놓은 뒤 2차 동작으로 머리에 이는 것이 요령이다. 역도의 용상(聳上) 동작과 흡사하다. 따바리(똬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정하는 것도 요령이다. 따바리 가운데 끈을 잇고 다른 한쪽을 입에다 물면 따바리가 떨어지지 않는다.


  물배달

  아랫집 가운데 인심 좋은 집은 이웃이 물을 퍼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집도 있다. 집 안 수도꼭지에서 문 밖까지 길게 호스를 연결해두는 것이다. 명절 때면 이웃들이 음식이며 술이며 인사를 한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수요가 생기고,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따른다.  


  첫 번째 해결책은 입주민들이 돈을 모아 아파트 단지별로 우물을 파고 펌프를 다는 것이다. 우물 파기 사업은 한때 ‘꽃제비’들의 아르바이트였다. 펌프에는 자물쇠를 달아 주민 이외에는 사용을 막는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우물을 파지 않고 물을 사 먹는다. 오전 6~7시에 강물을 길어다 주는 사람이 있다. 새벽물이 깨끗하기에 그 시간에 배달하는 것이 품질과 신용을 지키는 길이다. 


  평양 문수원 봉사총국은 물탱크 차 5대를 보유하고 있다. 봉사총국 전체가 외화벌이에 나서면서, 아예 물탱크 차에다 약수를 싣고 아파트 고층까지 배달해주기도 한다. 단 이때는 외화로만 물값을 받는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비를 사랑한다. 비가 오면 물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란 그릇은 모두, 심지어 간장종지까지 모두 밖에 내다 놓는다. 처음 받은 빗물은 흙탕물이지만, 가라앉혀서 쓰면 별문제가 없다. 비가 오면 통빨래를 하기도 한다. 옷 입은 채로 비누칠하고 비를 맞는 것이다. 빗물이 흘러내리는 지붕 네 귀퉁이는 자연 샤워를 할 수 있는 명당이기도 하다.  

 
  개인목욕탕도 등장 

  물이 없으니 목욕은 사치다. 단 탄광 지역은 예외다. 더운물이 매일 나오는 목욕탕이 있다. 직원 외에는 사용 불가지만,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 도둑목욕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한국식 목욕탕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일단 타일이 없고 콘크리트 욕조만 있다. 비누, 물바가지 등 각종 도구도 본인이 다 챙겨야 한다.  


  타일 목욕탕이 있기도 하다. 2005년 이후 평양의 각 기관기업소들이 만든 목욕탕이다. 각 기관들이 외화벌이에 나서면서 100~150명을 수용하는 소규모 목욕탕을 경쟁적으로 만들었다. 개인들이 만든 목욕탕도 있다. “국가계획 좀 하게 해달라”고 청을 넣으면, 당국에서는 엄격한 실사 후 “매달 얼마씩 바치라”며 허가를 내준다.  


  계획보다 더 벌면 나머지는 다 자기 것이 되기에, 개인목욕탕들은 필사적으로 영업한다. 서비스도 좋고 시설도 깔끔하다. 남탕과 여탕 구분은 있지만, 물 데우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욕조가 거의 붙어 있다는 것이 옥의 티다. 벽으로 막아놓기는 했지만 벽 건너편에서 하는 이야기가 다 들릴 정도다. 그래도 겨울에는 한증막 밖이 곧 영하인 국영 목욕탕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장마당 상인 가운데는 집에서 목욕을 하는 사람도 있다. 술 뽑는 날은 가마뚜껑을 엎어놓고 더운물을 계속 갈아줘야 한다. 술 뽑고 난 뒤 더운물을 재활용해 목욕하는 것이다. 함지에 물을 받고 비닐방막을 두르면 그런대로 목욕하는 분위기가 난다. 문제는, 하도 오랜만에 하는 목욕이라 ‘때도 말을 안 듣는다’는 점이다. 30분 이상 불려야 비로소 때가 말을 듣는다. 그래서 북한 당국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물과 공기만 있으면 살 수 있다고 선전하기 전에, 일단 물부터 주고 나서 그런 얘기를 하라.”⊙ 

  

 

월간조선 06월 호 

■북한의 불(전기) 사정

희천발전소 실패와 김정일의 죽음

 

⊙ 전구는 개당 강냉이 1~2kg을 줘야 살 수 있는 高價品… 전구 사느니 차라리 밥을 한 끼 더 먹자는 사람도 많아
⊙ 지하철 停電되면 性추행 빈발… 전기 잘 들어오는 金 父子 동상 주변 집값 비싸
⊙ “김정일, 희천발전소 건설해 김정은 업적으로 삼으려 했으나, 김정은이 발전소 건설용 시멘트 빼돌렸다는 보고에 격노, 사망”(마이클 리 前 CIA요원)

 

▲2010년 4월 자강도 희천발전소 건설 현장을 돌아보는 김정일. 희천발전소에 큰 기대를 걸었던 김정일은 이듬해 12월 죽었다. 사진=뉴시스/신화

 

북한에서 ××라는 욕으로 불리는 3대 직종이 있다. 보위부 ××, 안전부 ××, 배전부 ××다. 보위부는 사람을 자꾸 잡아가서, 안전부는 장사를 못 하게 해서, 배전부는 불(전기)을 안 줘서 사람들이 욕을 한다.  


  소련이 망하기 이전만 해도 북한의 전력(電力) 사정은 나쁘지 않았다.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만 전기가 나갔다. 지금은 다르다. 1980년대 말부터 전력 사정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하루 한 시간이라도 불이 들어오는 데는 사정이 나은 곳이다. 3일 만에 1시간 전기가 공급되는 지역도 부지기수다. ‘배려전기’ ‘명절공급 전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평양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정전(停電)이 되면 평양 시내 대부분이 암흑이 된다. 가장 심한 소동이 벌어지는 곳은 지하철 안이다. 사람들은 일단 차 밖으로 나와 승강장에서 다시 전기가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이때 성(性)추행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이때 남자들이 젊은 여성을 막아선다. 그러고 손 건사를 하지 못한다. 여성들의 대응책은 옷핀이다. 일명 벌침이라고 한다. 정전이 되면 옷핀을 양손에 쥐고 사방에서 들어오는 손들을 사정없이 찌른다. 비명을 지르면 들통나기에, 찔린 사람은 끙끙거리며 참는 수밖에 없다.  


  전기 사용이 권력과 능력의 상징

  고층 아파트도 문제다. 퇴근 후 바로 집에 안 들어가고 아파트 1층 마당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 20층을 걸어서 올라가느니, 잠깐이라도 전기가 올 때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려고 대기하는 것이다. 과학자거리에 있는 50층 아파트는 더 문제다. 어쩐 일인지는 모르지만, 전기가 와도 엘리베이터는 20층까지만 운행하고 그 위층으로는 다니지 않는다. 맨 꼭대기 층인 50층에 거주하는 주민은 30층을 걸어 오르느냐, 50층을 걸어 오르느냐의 선택밖에 할 수 없다. 평양 시내 한복판에 사는 노인 가운데, ‘땅 한번 밟아보고 죽는 것이 소원’이라는 분이 많다. 
  
  어쩌다 전기가 와도 문제가 있다. 전압(電壓)이 고르지 않으니 전구며 가전(家電)제품이 많이 상한다. 백열전구가 하얗게 빛나다 붉은색으로 변한 뒤 폭발하듯 깨지곤 한다. 북한식 표현으로 ‘수수떡 전구’다. 깨진 전구를 기울여서 꽂아놓으면 텅스텐 선이 이어지며 3~4일은 더 버틴다고 한다. 전구는 개당 강냉이 1~2kg을 줘야 살 수 있는 고가품(高價品)이기에, 전구를 사느니 불 없이 살고 차라리 밥을 한 끼 더 먹자는 사람들도 많다.

LED 전구라고 예외가 아니다. 반도체 소자 있는 부분이 까맣게 타며 축포처럼 터져버리는 경우가 흔하다. TV나 컴퓨터 모니터는 들어오는 데 시간이 한참 걸리고, 전압이 변하는 것에 따라 화면 양옆에 까만 줄이 생기거나 상하좌우로 늘어나고 줄어들기를 반복한다. 전기에도 품질이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생활한 탈북자(脫北者)들의 입에서 “220V 전기가 하루 종일 만땅으로 들어오네!”라는 감탄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터져 나오는 이유다

 
  전기 自力更生 

북한에서는 전기를 쓰는 것이 능력과 권력의 상징이다. 중앙당 아파트나 전력공업성 간부가 사는 지역에는 전기가 24시간 끊이지 않는다.  


  김 부자(金父子) 동상 주변도 전기가 잘 들어온다. 일반선이 아니라 기념탑선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낡았어도, 동상 주변 집값이 비싼 이유다. 배전부선, 무선국 방송선도 비교적 전기를 잘 받는다. 


  뇌물을 주면 따로 전기를 공급받을 수도 있다. 이것을 ‘독선’이라고 한다. ‘독선 끌어다 쓰는 집’ 주변에서는 ‘코걸이’를 통해 몰래 전기를 훔쳐 쓰는 사람이 생긴다. 전기 주인은 나무 막대기를 가지고 선을 따라 누가 도둑인지 찾는다. 돈을 내고 쓰라는 뜻이다. 독선은 ‘비(非)사회주의’다. 뇌물을 통해 이뤄지는 범법(犯法) 행위다. 그래서 독선 주변에서 갑자기 전기소비량이 늘어나면 위에서 눈치를 채고, 여러 사람이 처벌을 받는다.  


  사정이 이러하니, 집마다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장비가 있다.
 
  먼저 발동발전기다. 디젤용은 소음이 심하고, 휘발유용은 유지비가 많이 들지만 소음은 덜한 편이다. 자체적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기계다. 지방에서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전기를 사용할 수 없는 곳이 많기에 자력갱생(自力更生)을 하는 것이다.  


  다음은 변압기다. 아랫동네 제품(220V)과 본산제(일제·110V)용 변압기를 따로따로 장만하는 것이 좋다. 공급되는 전기의 양(量)이 제한적이기에, 어쩌다 전기가 올 때는 변압기 용량이 큰 집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어느 집 변압기 성능이 좋은지는 금방 표시가 난다. 창문마다 비치는 불빛 색깔이 다르기 때문이다. 불빛이 흰색에 가까울수록 잘사는 집이다. 이런 집에서 전기밥가마를 켜면 우리 집으로 오는 전기가 줄어들며 전구의 색깔이 수수떡 색깔로 변한다.  


  그래서 정전 때 불을 켜거나 전기 뺏어가는 집은 질투와 감시의 대상이 된다. 몰래 한국 드라마를 보지는 않는지, 중국과 한국에 전화질은 안 하는지, 가족 아닌 여자가 드나들지는 않는지, 혹시 양담배질은 안 하는지를 주변 사람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며 신고한다. 프라이버시가 없는 북한에서 남의 집을 들여다보는 것은 흉이 아니다. 특히 지방에는 울분에 찬 젊은이들이 많기에, 사고를 당하지 않으려면 전기 사용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과전압(過電壓)차단기도 필수 장비다. 전구가 깨지는 것이야 그럴 수 있다 해도, 전자제품이 망가지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컴퓨터 사용자에게는 UPS (Uninterruptible Power Supply)도 필수품이다. 안정된 교류(交流)전력을 공급하는 장치로, 갑자기 정전이 되더라도 15분간은 컴퓨터가 꺼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도구다. ‘삐~삐’ 하는 경보음이 올리는 동안, 서둘러 자료를 백업해야 한다.  


  UPS는 단속을 피하는 데도 유용한 장비다. 한국 드라마 보는 집을 찾는다고, 아예 아파트 배전반을 내려놓고 집마다 들이닥쳐 수색하는 놈들이 있다. CD 알판이 기계 안에 남아 있으면 꼼짝없이 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UPS가 중요하다

 
  김정일의 야심작 희천발전소

북한의 전기 사정이 이른 시일 안에 획기적으로 좋아질 가능성은 전무(全無)하다. 평양의 전기 사정을 일거에 해결하겠다며 야심적으로 추진한 희천댐 발전소 프로젝트가 사실상 크게 실패했기 때문이다.  


  2001년 착공 후 경제난으로 방치되었다가 2009년 3월에 공사를 재개하고 2012년 4월에 ‘완공’한 희천발전소는, 김정일이 생전 여덟 차례나 공사현장을 방문할 정도로 각별하게 신경을 썼던 곳이다. 10년 정도 걸려야 정상인 일을 3년 만에 마쳤기에, 북한은 자강도의 희천발전소를 ‘희천속도’와 ‘단숨에 기상’이라는 말로 선전한다. 2011년 5월 김정일·김정은 부자가 현지 방문을 했을 때 감격한 인민군대의 건설자들이 장비도 없이 다투어 물속에 뛰어들며 ‘단숨에’ 일을 해치웠다고 한다. 


  무리한 공기 단축은 필연적으로 안전문제를 부른다. 2013년 6월, 희천발전소 용림댐이 비상 방류(放流)를 하고 있는 것이 위성사진에 잡혔다. 갈수기(渴水期)도 아니고 홍수 예보도 없었기에 의아한 상황이었다

 
  김정은, 후계자 교체 검토? 

  전 CIA 요원 마이클 리(한국명 이명산) 선생은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희천댐은 김정일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낙점한 뒤 김정은의 업적으로 내세우려고 했던 시설이다. 대규모로 군(軍)부대를 투입해 발전소를 완공했는데,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김정은이었다. 평양 전 지역이 24시간 안정적으로 전기를 쓸 수 있게 된 것은 김정은의 지도 역량 덕분이다’라고 선전하는 것이 원안(原案)이었다.


  문제는 공사기간 동안 이 사업의 실패가 예견되었다는 점이다. 공사 중인 댐에서 물이 샌다는 비밀보고가 올라갔다. 조사결과 김정은이 고강도 시멘트 1000t을 빼돌린 것이 드러났다. 제대로 콘크리트 양생도 하지 않고 정량도 채우지 않은 것이 부실공사의 원인이었다.  


  희천댐이 붕괴할 수도 있다는 보고를 받은 김정일은 격노했고, 숙소가 아니라 본처의 딸인 김설송의 집으로 갔다. 김정은에게 지도자 자질이 없다고 판단하여 그가 아니라 다른 아들로 후계자를 세우려는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기분이 좋아진 김정일이 김설송의 집에서 와인을 마시다 그날 갑자기 사망했다는 것이 내가 가진 정보다. 지방 현지 지도를 나가다 기차 안에서 사망했다는 북한의 공식 발표는 사실이 아니다.”  


  현재 희전댐의 저수량은 당초 설계용량의 30% 내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붕괴 위험이 적지 않은데도 북한이 이를 쉬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김정은이 시멘트를 빼돌렸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주민들에게 전기를 공급하는 것보다 고향 원산의 스키장 건설사업이 더 급했다는 뜻인지, 훗날 역사가 밝혀내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김정은의 가상(假想) 사과문 한 줄로 글을 마무리한다

  “오지 않는 전기를 평생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인민들이여!”⊙

글 : 장원재  배나TV 대표

 

05.18 돈 주고 사형당할 뻔한 목사

북한은 지난 2015년 1월 캐나다 큰빛교회 임현수 목사를 억류하고 '국가 전복 음모'를 이유로 사형을 구형했다. 임 목사는 실제 재판에선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임 목사 지인들과 설교 영상 등에 따르면 그는 잡히기 전까지 150여 회나 북한을 드나들며 교회 헌금 등을 모아 5000만달러(약 590억원)에 달하는 대북 지원을 했다. '고난의 행군' 시대를 거치면서 배고픔에 죽어가는 어른과 아이들을 직접 본 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가 하루아침에 국가 전복 혐의로 잡힌 것은 "북한에서 김일성, 김정일이 아닌 예수를 믿게 해야 한다"고 미국과 캐나다에서 설교한 동영상 때문이었다.

 

임 목사는 뉴욕의 유엔 북한대표부 외교관들이 아프면 병원도 못 가는 상황이 안타까워 의료 보험료를 지원하고 북한 대사를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여행시켜 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성경책을 읽어 보라고 권했던 것이 나중에 모두 '회유 혐의'로 재판에 올라왔다. 임 목사는 31개월간 강제 노동을 한 뒤 2017년 8월 풀려났다. 


임 목사가 감옥에 갔을 때 그를 담당한 책임자는 "어떻게 우리 수령님을 모욕할 수 있느냐"며 "법이 당신을 살렸다"고 말했다고 한다. 북한 사람이면 그냥 처형하겠지만 국적이 캐나다인이라 못 죽인다는 것이다. 김씨 일가 대신 예수를 믿으란 말이 북한 체제에선 '죽을죄'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임 목사는 한 설교에서 "북한에서 1만명의 고아를 지원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억류되면서 고아에 대한 지원도 끊겼다.
 


590억원을 지원하고 수많은 고아를 돌봐줘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곳이 북한이다. 북한은 임 목사를 잡아들이면서 1만명에 달하는 고아의 배고픔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대북 식량 지원이 마치 대화 재개와 관계 개선의 마중물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임 목사의 사례를 보듯 인도적 지원만으론 북한에 어떤 정치·사회적 변화도 만들지 못한다. 식량 지원이 북한의 변화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망상에 가깝다.


그렇다고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김정은 정권은 사악한 체제이지만 주민들은 죄가 없다. 개인적으론 북한의 기근이 심각한 상황이라면 정치적 고 려 없이 긴급 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지원은 정말 착취받는 주민들에게 돌아갈 물품으로 한정돼야 한다. 임 목사도 쌀은 북한 상류층만 먹는 것을 알고 식량 지원은 옥수수로만 했다.
 


북한에 대한 지원으로 김정은이 변할 것이란 환상을 가져선 안 된다. 지원은 김정은 정권과 대화가 아니라 오로지 굶주림에 지친 주민들을 돕기 위해서만 이뤄져야 한다.

조선일보  조의준 워싱턴 특파원  

  

05.25 마약에 빠진 북한… “동네마다 얼음 파는 집” 

동남아 휩쓴 북한산 마약… 국내 유통량 30% 넘어

▲연일 연예인 마약 사범 뉴스가 언론에 도배되다시피 하면서 마약의 유입 경로 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유통 마약의 적잖은 물량이 북한산 마약으로, 중국 동남아 등을 거쳐 국내에 들어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경찰이 태국에서 3700억 원 상당의 필로폰 112kg을 밀반입하려던 일당을 체포한 뒤 증거물을 공개한 모습이다. 압수 물량은 수사 당국이 적발한 필로폰 중 역대 최대 규모였다. 동아일보DB

 

연일 연예인들의 마약 투약 사건으로 시끄럽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연예인 마약 사범 뉴스로 언론이 도배되고 있다. 그럴 때마다 커지는 궁금증은 ‘도대체 저 마약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유통 마약 중 적잖은 물량이 북한산일 것으로 추정한다. 일반적으로 삼엄한 감시와 폐쇄성으로 인해 북한은 ‘마약 청정 국가’일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북한은 급속히 마약에 빠져들고 있다. 게다가 갈수록 북한산 마약이 한국에 더 많이 유입됨으로써 한반도 전체가 ‘마약 지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자유한국당 소속 윤상현 외교통일위원장은 2012년에 “2010년 국내에서 적발된 외국산 필로폰 8200g 57.3%가 중국에서 반입됐고 그중 상당량이 북한산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 외 여러 마약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국내에서 유통되는 필로폰의 최소 3040%는 북한산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때문에 마약 전문가들은 정부가 나서서 북한의 마약 실태를 파악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탈북자와 북한 소식에 정통한 전문가들이 털어놓은 북한의 마약 제조와 유통, 중독 현황 등을 정리해 본다.


2013
년 북한 당국은 형법을 개정해 ‘비법아편재배·마약제조죄’에 대해 사형할 수 있도록 했다. 그만큼 마약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는 뜻이다. 실제로 마약 사법은 급증하고 있다. 단속해야 할 보위성 요원들부터 마약에 빠져 있거나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평양 출신의 한 탈북민은 “2010년에 검사로 일하는 친구가 술을 마시며 ‘전당 전군 전민이 약을 한다’며 개탄하더니 몇 달 후에는 그 친구가 마약을 하더라”라고 말했다.

 

마약이 얼마나 북한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가에 대한 증언은 넘쳐난다. 최근 입국한 탈북민들은 “어느 마을에 가나 얼음(마약의 은어)을 파는 집은 꼭 있으며 이런 집을 ‘소분집’이라 한다”고 말했다. 북한 내에서 현재 10회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얼음 1g의 가격은 15달러( 18000) 이하로 거래된다. 한국에서 밀거래되는 가격의 수십분의 1에 불과하다.


가격이 싼 만큼 찾는 사람들도 많을 수밖에 없다. 북한인권정보센터는 2016년 탈북민 1467명을 대상으로 북한 마약 실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20102012년 탈북한 사람들의 13.6%가 마약을 접촉했다. 마약 접촉 비율은 2013 26.8%, 2014 25.0%, 2015 36.7%로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얼마 정도의 북한 사람이 마약을 사용할까. 이 질문에 2010년 이전 탈북자의 35.7%가 “10%가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2014년 탈북자의 경우 ‘10% 이하’라고 응답한 비율은 16.2%에 그쳤다. 이들의 27.8%가 “1030%가 마약을 사용한다”고 대답했고, 나머지 56%는 “30% 이상의 북한 주민이 마약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똑같은 질문에 2016년 탈북한 2명의 대답은 충격적이다. 이들은 “북한 주민의 90% 이상이 마약을 사용한다”고 답했다. 이 대답이 과장됐을 가능성도 있지만, 북한의 조사 결과는 마약 사용이 해마다 빠르게 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쩌다 북한이 이렇게 된 것일까.

 

○ 국가 차원에서 마약을 양성하다

사실 북한은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마약 청정 지대였다. 그러다 1980년대 중반 북한 중앙당 간부들에게 건강 치료용으로 필로폰이 공급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평양 출신의 고위 소식통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의 경우 매달 1, 2알의 필로폰이 든 알약이 ‘뇌출혈, 뇌혈전 예방약’ ‘피로 회복제’ ‘건강치료제’ 등의 이름으로 지급됐다”며 “간부들도 이 약이 마약이란 걸 알았다”고 증언했다. 당시 70, 80대 고령의 간부들이 증가하며 건강 문제가 자주 발생하자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이런 조치가 내려졌을 가능성이 높다.


1990
년대 초반부터는 국가 차원에서 양귀비를 대대적으로 재배했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1980년대부터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도별로 경작지를 10ha 혹은 20ha 규모로 할당하여 재배했다”고 말했다.


구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한 후로는 외화를 벌어들일 목적으로 마약 밀매를 시작했다. 김일성의 건강을 책임졌던 만청산연구원 출신의 한 탈북자는 “1990년 금수산의사당 경리부 당위원회가 ‘백도라지’(양귀비의 북한식 표현) 농장을 맡는 것에 대한 교시를 전달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김일성은 마약 생산을 “미 제국주의와 싸우는 새로운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등 적국을 마약에 중독시켜 자본주의 사회를 마비시키고, 북한은 돈도 벌어 사회주의를 지킬 수 있는 일석이조의 사업이란 논리였다.


이후 북한의 북부 지역 농장들마다 일정 규모로 양귀비를 재배했다. 양귀비 진액(아편)을 채취할 때엔 학생들까지 동원했다. 이렇게 전국에서 만든 아편은 평양에 집결돼 아편으로 제작됐다. 당시 상황에 정통한 한 탈북민은 “평양 외곽의 상원군에 생산기지가 있었는데, 국가과학원 상원분원이란 외피를 쓰고 있었다”며 “이곳에서 생산된 헤로인은 항불안제인 ‘디아제팜’과 외형이 똑같아 구별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보위사령부 등 최정예 공작원들이 홍콩과 마카오 등의 동남아 마약조직과 접촉해 판로를 개척했는데 신분이 드러날 경우를 대비해 철저히 개인별로 움직였다”고 증언했다.

 

○ 평양 고위층에 퍼진 헤로인 ‘덴다’

 

이후 북한산 헤로인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은 본격적인 제재 움직임을 보였다. 북한 당국은 1990년대 중반 상원분원을 폭파시켜 흔적을 없앴다. 하지만 이곳에서 이미 만들어 놓은 대량의 헤로인이 있었다. 바로 이 헤로인이 1990년대 중후반부터 북한 내부 부유층에 퍼지기 시작했다.


헤로인을 북한에선 ‘덴다’ ‘총탄’ 등으로 불렀다. 디아제팜과 똑같은 흰색의 알약 외에 특이하게 빨간색으로 된 덴다도 있었다. 상원분원에서 만든 덴다는 3, 4개 루트를 통해 평양에 흘러나왔다. 이 마약은 주로 젊은 아가씨들이 부유한 청년들을 상대로 팔았다.


덴다 구입자들은 이것을 부숴 가루로 만든 뒤 코로 흡입했다. 함유량에 따라 80캄마, 120캄마, 240캄마로 구분됐는데, 2000년 평양에서 거래된 덴다 120캄마 한 알의 가격은 2달러로, 부유층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이 때문에 평양의 극소수 부유층과 원산 신의주의 무역회사 사장 정도만 헤로인을 경험했다. 탈북자 중에 덴다를 경험한 사람이 거의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 헤로인에 이어 필로폰 ‘얼음’ 퍼져

2003년경 상원분원이 만든 덴다의 재고가 바닥이 났다. 이때 새로 등장한 것이 ‘아이스’ ‘얼음’으로 불린 필로폰이었다. 헤로인과 필로폰은 완전히 상반되는 마약이다. 헤로인은 중추신경을 억제해 그 자체로만 쾌락을 느끼게 하는 반면 필로폰은 강력한 중추신경 흥분제다. 상반된 마약이 시점을 두고 북한에 등장한 이유는 식량난 악화와 연관된다.


상원분원이 폐쇄된 후 소속 과학자들은 국가과학원 함흥분원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둘 다 화학 계열의 연구소라는 게 이유였다. 실제로 애초에 상원분원에서 마약을 만들던 기술자들은 화학 공업의 중심지인 함흥의 화학공대 출신이 많았다. 바로 이들이 고향인 함흥으로 내려갔을 무렵 북한엔 일명 ‘고난의 행군’이라 부르는 대기근이 닥쳤다. 그러니 배급만으로는 먹고살기 어려워졌고, 마약 제조 전문가들인 이들은 헤로인보다 싸고 쉽게 원료를 구할 수 있는 필로폰을 제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필로폰 원료는 중국에서 의료용으로 수입하는 염산에페드린이었다. 이들이 개발한 필로폰은 2003년경부터 헤로인 판매망을 타고 평양에 공급되기 시작했다. g 510달러 정도에 공급되는 필로폰은 순식간에 평양의 중산층까지 확산됐다. 2006년경부터는 지방에까지 필로폰 밀매가 본격화됐고, 2010년경에는 지방의 중산층들도 필로폰에 손을 댔다.


여전히 북한 내부의 마약 제조는 개인이 아닌 국가 차원에서 진행된다. 정찰총국, 보위성, 보위사령부 등 군부 조직도 마약 생산과 해외 밀매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소식통은 “김정은 집권 이후에도 북한군 총정치국 산하 53부에서 평양과 평성 사이 배산점이란 지역에 필로폰 생산 공장을 만들어 운영했다”며 “해마다 국가 차원에서 20t 이상의 필로폰이 생산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한국의 ‘기술자’까지 북한 진출

북한산 ‘얼음’은 9699% 정도의 순도를 보장하기 때문에 해외 밀매 조직엔 인기가 높다. 북한산 필로폰의 순도가 높아진 데엔 한국 ‘기술자’들의 공이 크다는 것이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한 탈북 소식통은 “필로폰 생산 초기에 한국인 기술자 3명이 국내 단속을 피해 동남아시아, 중국에 갔다가 북한까지 넘어왔다”며 “이들의 경험과 지식이 북한에 전수됐다”고 말했다. 한국인 기술자들도 99% 순도의 필로폰을 만들지는 못했다. 북한 당국이 정예 연구진을 투입하고 전문 생산기지를 제공하는 ‘투자’를 한 결과 순도가 크게 높아졌다는 것. 기술을 모두 넘겨받은 북한은 이후 한국 기술자 2명을 총살했으며 1명은 간신히 탈북해 숨어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기술자가 해외로 진출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중국의 소식통은 “중국 단둥에서 북한과 큰 규모로 거래하는 사업가 송모 씨가 2004년 북한 기술자를 10만 달러에 계약해 데려온 뒤 기술을 전수받고 살해한 사건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북한의 필로폰 기술이 다시 진화했다. 과거엔 중국의 염산에페드린이 원재료였는데 이를 수입하기 어려워지자 원재료를 바꾸면서 이른바 ‘기술혁신’을 이뤘다는 것. 탈북 소식통은 “새로운 방식의 필로폰 제조를 두고 내부에선 ‘마약 제조의 기본을 바꾼 혁명이 일어났다’고 비유한다”며 “새 재료를 쓴 필로폰의 질이 훨씬 더 좋다”고 말했다.

 

○ 해외 북한 식당이 마약 유통망

 북한의 마약 해외 밀매는 점점 거침없어지고 있다. 대북 소식통은 “신의주와 마주한 중국 둥강(東港)시 공안국 부국장과 변방정찰 대대장이 2015년경 북한과 필로폰 밀거래를 하다 체포됐는데, 압수수색에서 50kg 이상의 필로폰이 나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도 “동남아시아는 북한 얼음이 이미 점령했다. 심지어 필리핀에는 유통 거점이 없는데도 팔려 나간다”고 증언했다.


동남아시아의 북한 필로폰은 현지 밀매조직을 통해 다시 미국과 유럽 등으로 넘어간다. 실제로 2015 8월 미국 뉴욕 맨해튼연방지법에서는 북한산 마약을 미국에 밀반입하려던 홍콩 범죄조직 소속의 영국, 체코, 필리핀, 대만 등 다국적 조직원 5명이 검거돼 재판을 받기도 했다. 이들은 북한산 마약을 필리핀에 들여와 숨겨 놓은 뒤 100kg을 태국을 경유해 반입하려다 미 마약단속국(DEA)에 적발됐다. 이 중 한 명은 자기 조직이 필리핀에 북한산 필로폰 1t을 숨겨놓고 있다고 고백했다.

 

2017년 말 중국 동북 3성 지역에서 밀거래되던 고순도 북한산 필로폰 가격이 갑자기 하락했다. ‘한 작대기’에 60만 원 정도에 밀거래되던 필로폰은 25만 원 선까지 하락했다. 작대기는 1회용 주사기 한 대 분량을 의미하는데, 4g 정도다.


북한산 마약 거래에 정통한 소식통은 “대북 제재로 중국 내 북한 식당이 한꺼번에 철수하면서 이들이 가지고 있던 마약을 일시에 방출했기 때문에 가격이 크게 하락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중국 내 북한 식당들이 북한산 마약의 유통거점 역할을 한다는 간접 증거인 셈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월간조선 06월 호  2인자 최룡해 

■빨치산 혈통 최룡해는 어떻게 2인자가 됐나

⊙ 북한 ‘청년동맹 황색사건’ 관련자 전부 처형
⊙ 김정은 정권 인사권 최룡해가 가지고 있다
⊙ 김정일 동생을 죽음으로 내몬 최룡해 형 최룡택

▲2014 7 27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열병식 참관식에서 최룡해(왼쪽)가 김정은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조선중앙TV 

 

북한의 2인자는 최룡해다. 최룡해는 빨치산 혈통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1950 1월 황해북도 신천에서 태어났다. 북한의 대표적인 금수저다. 그의 부친 최현(1982년 사망) 전 인민무력부장은 일제강점 시기 중국의 동북항일연군에서 싸운 이름난 빨치산 지휘관이다.

 

당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맹위를 떨친 최현의 명성은 김일성을 훨씬 뛰어넘었고, 다른 빨치산들과 급이 달랐다. 그런 최현이 김일성에게 충성했고, 특히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에 힘을 보탰다는 점에서 김정일의 신임이 컸다. 특히 군부 내에서도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의 모친 김철호 역시 최현과 함께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한 1세대다. 

 

북한 공식 2인자 자리 오른 최룡해

▲2019 4 13일 북한 최룡해가 김정은 국무위원장 추대 경축 중앙군중대회에서 경축보고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조선중앙TV

 

최룡해는 지난 4 11일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 14 1차 회의에서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직과 함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직에 올랐다. 북한에서 국무위원회는 김정은이 직접 담당하는 핵심 국정기구이다. 특히 최룡해가 이번에 맡은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은 그동안 북한 직제상 없던 직위다. 기존 국무위원회 편제에서는 최룡해와 박봉주 전 내각총리가 함께 부위원장을 맡았다.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북한이 헌법을 ‘수정보충’하면서 새로 만든 자리로 보인다. 최룡해가 노동당에 이어 국가기구에서도 2인자임을 공식화한 것이다

 

특히 그동안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역할을 하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도 최룡해의 몫이 됐다. 올해 91세인 김영남 전 상임위원장은 1998 9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맡은 지 21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북한 ‘빨치산 혈통’의 대표 인물인 최룡해는 2017년 노동당 제7기 제2차 전원회의 이후 노동당 간부·당원을 포함해 전 주민에 대한 장악·통제와 인사권을 가진 당 조직지도부장을 맡아왔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최룡해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맡으면서 2선으로 물러났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앞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맡았던 김영남은 유명무실했다. 김영남은 북한 정권의 ‘얼굴마담’이었다. 하지만 최룡해는 김영남과 달리 많은 성과를 내놓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모 책임연구원은 “먼저 최룡해가 2인자냐 3인자냐를 떠나서 김정은 유일통치 구조에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고, 가장 필요한 조연”이라고 말했다.
 
  “최룡해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으로 간 것은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언젠가는 갈 자리였다. 하지만 그는 선임자인 김영남처럼 얼굴마담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진 않을 것이다. 북한 구조를 보면 김일성·김정일 유일체제를 하기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은 인적 자원이다. 북한은 김일성 시절부터 1인자를 보좌하는 사람이 한 명씩 있었다. 김정일 때도 있었고, 김정은을 보좌할 2인자는 최룡해다.
 
  북한은 김일성을 시작으로 2인자 역할을 했던 사람이 한 명씩 있다. 김일성 옆에는 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이 있었다. 오 부장은 1917년 함경남도에서 태어나 일찍이 중국에서 김일성과 함께 항일혁명투쟁을 했다. 이후 김일성의 경호대장을 시작으로 북한 군 주요 요직들을 거치며 김일성의 오른팔로 성장했다. 일각에선 오 부장에 대해 능력은 부족하나 김일성과 함께 항일투쟁을 했다는 이유로 승승장구한 인물로 분석한다.
 
  김정일 옆에는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있었다. 조 부위원장은 1928년 함경북도 출생으로 열 살 때부터 김일성을 따라다니며 빨치산 활동을 한 인물이다. 해방 이후 김일성을 보좌하며 김정일을 후계자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10년 조명록 사망 당시 김정일이 직접 장의 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신임이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시대 들어 이 역할을 최룡해가 하는 것이다. 오진우와 조명록은 빨치산이라는 배경을 가졌지만, 실무 능력은 뛰어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최룡해는 빨치산 출신인 부모에 더불어 실무 능력까지 모두 갖췄다는 평가다.


 
상임위원장 자리에 서둘러 간 이유… 건강 때문

  최룡해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자리에 간 이유 중 하나가 건강 문제 때문으로 알려졌다. 최룡해는 고질적인 당뇨병을 앓고 있다. 이로 인해 한쪽 다리가 짧아 걸음걸이가 자연스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에 비해 짧다는 것이다. 최룡해는 2014년부터 당뇨병과 척추질환으로 한쪽 다리를 절면서 김정은을 수행해왔다. 이는 북한이 공개한 여러 영상에서 포착됐다.
 
  한 고위 탈북민은 “최룡해는 예전부터 당뇨병으로 고생했다. 다행히 봉화산 진료소에서 치료를 잘 받아오고 있어서 지금까지 버티는 것이다. 당뇨병으로 인해 여러 차례 입원도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룡해가 14 2차 회의에서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으로 갈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건강 문제로 인해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고 보고 있다.
 
  김 책임연구원은 “3~4년 뒤에야 상임위원장으로 갈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찍 갔다. 최룡해는 예전부터 당뇨병으로 인해 고생했는데, 이것이 최근 당 조직지도부장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건강이 더 악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최룡해의 건강은 1997년 ‘청년동맹 황색사건’으로 인해 자강도 랑림군으로 혁명화하러 가면서 조금 나아지는 듯했다. 최룡해는 랑림군에 내려가 6년간 콩으로 된 음식을 먹고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병세가 조금 호전된 적이 있었지만, 다시 평양으로 복귀하면서 건강이 더욱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최고인민회의 기관 직원들은 최룡해를 반기는 분위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북 소식통은 “최룡해가 와병으로 인해 김영남 자리로 가긴 했지만, 내부 직원들은 김정은 이외 북한의 최고 실세가 온다고 다들 좋아하고 있다”고 전했다.

 
 
1997년 북한 청년조직에 불어닥친 칼바람

▲《로동신문》에 게재된 최현 인민무력부장의 부고. 사진=《로동신문》

 

 1990년대 북한은 ‘혼돈의 시기’였다.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게다가 김일성 사망과 경제난으로 인해 김정일 체제는 심하게 흔들렸다. 김정일로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당시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선 1990년대 초 발생한 ‘프룬제 아카데미’ 사건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1992년 북한군 내 프룬제 아카데미 유학파 출신 장교들이 쿠데타를 모의한 사건이다. 프룬제 군사 아카데미는 러시아 군사종합학교다. 프룬제 출신 북한군 장교들은 조선인민군 창설 60주년 기념행사가 예정된 1992 4 25일 쿠데타를 실행하기로 했다. 이들은 당일 사열식이 열릴 때 전차포(탱크)를 몰고 가다가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서 있는 주석단을 향해 포탄을 발사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정보 유출로 실패했다.
 
 
더 큰 문제는 쿠데타 모의에 최룡해 매형도 있었다. 당시 사건 처리 과정을 지켜본 한 고위 탈북민은 “당시 최룡해가 김정일에게 불려가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다. 그래서 매형은 물론 최룡해의 누나까지 숙청돼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에 최룡해가 이끌고 있던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사로청·현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에서 발생한 어떤 정치적 사건으로 인해 중앙당 근로단체부의 검열이 시작된다. 이렇게 시작된 사노청 검열은 조직지도부와 국가안전보위부(현 국가안전보위성) 검열로 확대된다. 당시 최룡해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갖고 있었다. 이것이 사건의 시작이다. 청년동맹의 부위원장급 이하 직원들은 최룡해의 권력을 믿고 보위부의 수사에 협조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김정일이 대로하여 철저히 수사할 것을 지시했다.
 
 
수사가 시작되자 최룡해는 2개월간 정직 상태에서 거의 집에 감금된 상태로 지냈다. 당시 김정일은 모든 권력을 동원해 자신의 체제 유지에 힘썼다. 반면 중앙당 간부들의 권력 다툼까지 벌어졌다. 그동안 최룡해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간부들은 청년동맹에 대해 낱낱이 수사하게 된다. 당시 수사로 인해 최룡해의 실체가 드러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이 있는 곳에는 추문이 따라다녔다. 최룡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룡해 뒤에는 성 관련 추문이 항상 따라다녔다. 먼저 최룡해는 자신이 1인자로 있는 청년동맹에 예술단을 만들어 향락을 즐겼다. 이에 대해 당시 평양에서는 김정일의 ‘기쁨조’를 따라 한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한다. 또 최룡해는 김정일의 ‘기쁨조’를 뽑는다는 명목으로 전국에서 미모의 여성들을 뽑아 별장과 청년동맹에서 관리하는 호텔 등에서 섹스 파티를 즐겼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변태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들의 치아를 뽑게 했고, 한 대당 100달러에 값을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룡해는 ‘5과’에 선발된 여성들에게도 지대한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5과는 조직지도부 소속으로 김씨 일가를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여성과 남성들을 뽑는 업무를 담당한다. 여기서 여성들은 미모가 뛰어나고 출신 성분이 좋아야 한다. 5과에 뽑힌 여성들은 어릴 때부터 당의 관리를 받게 되고, 학교 졸업과 동시에 평양으로 올라간다. 경쟁률이 치열하다. 평양에 올라간 여성들은 미모 순서대로 김정일의 기쁨조가 되거나 가까운 거리에서 수발을 들게 된다. 최룡해는 5과에 뽑힌 여성들까지도 자신의 성 노리개로 삼았다고 한다.
 
 
이 밖에도 청년동맹 간부들이 남한의 당시 안기부와 내통했다는 죄까지 뒤집어씌워 반체제, 정치적 문제로 번졌다. 이로 인해 북한 전역의 청년동맹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벌어진다. 당시 청년동맹에서 지도원으로 근무했던 한 탈북민은 “자고 일어나면 누가 잡혀갔고, 누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다는 얘기가 나돌았다”고 증언했다.
 
 
이 사건이 일명 ‘청년동맹 황색사건’이다. 최룡해는 이 사건의 ‘주모자’임에도 불구하고 부친인 최현의 공로 덕분에 사형은 면했다. 최룡해는 이후 출당(黜黨)당하고 모든 직위에서 해제됐다. 그리고 그동안 누려오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혁명화를 시작하게 된다.


 
최룡해 6년 만에 혁명화서 복귀

  1997년에 청년동맹 황색사건으로 자강도 랑림군으로 내려간 최룡해는 6년 만에 평양에 복귀했다. 최룡해 인생에 6년이라는 기간은 뼈에 사무치게 김씨 일가를 위해 충성을 다해야 한다고 다짐한 시기일 것이다. 특히 북에선 김씨 혈육이 아닌 한 누구라도 철저히 몸을 낮춰야 산다는 교훈도 얻었을 것이다.
 
 
최룡해가 다시 복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체험기다. 최룡해가 6년간 랑림군에 있으면서 쓴 〈혁명체험기〉가 김정일 손에 들어가게 된다. 김정일은 이를 보고 중앙당 과장 이상급 간부들에게 배포해 무조건 읽게 하라고 지시한다. 이후 김정일의 지시로 최룡해가 복귀하게 된다. 일각에선 최룡해 복귀에 항일 빨치산 1세들이 도움을 줬다는 말도 있다.
 
 
조선혁명박물관 관장인 황순희와 당시 정무원 총리였던 연형묵, 김정일 동생 김경희가 그의 복귀를 적극적으로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김정일이 북한에서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다. 황순희는 항일 빨치산 1세로 김정일 모친인 김정숙과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다. 김정숙이 1949년 병환으로 죽으면서 황순희에게 김정일과 김경희를 잘 부탁한다는 유언까지 남길 정도다. 연형묵은 당시 북한에서 일 잘하는 일꾼으로 김정일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김경희는 김정일의 분신 같은 존재다. 이들이 최룡해 사면을 김정일에게 여러 번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도움과 〈혁명체험기〉로 인해 최룡해는 2002년 다시 평양으로 복귀하게 된다. 최룡해가 평양에서 처음 시작한 일은 평양 상하수도사업소 당비서로, 말단직부터 시작한다. 이후 조선노동당 총무부 부부장으로 승진한다.
 
 
한 고위 탈북민은 “최룡해가 처음에 상하수도사업소 당비서로 복귀한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최룡해가 쫓겨갈 당시 상황이 심각했다. 먼저 중앙당 청년동맹 부위원장 9명 중 2명만 제외하고 모두 처형시켰다”고 말했다.
 
 
“그리고 밑에 하급 기관 지도원급까지 관련자들을 모두 색출해 처형하거나 정치범수용소로 보냈다. 당시 최룡해는 빨치산 가문이기 때문에 혁명화로 끝났다. 하지만 최룡해를 추방하면서 출당은 물론 사진까지 모조리 수거해갔다. 북한에선 정치적인 범죄를 저지를 경우 당사자 추방은 물론 관련자 사진까지 태워 없애거나 사진에서 얼굴을 도려낸다. 이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사람이라는 뜻이다.
 
 
북한에서 사진을 없애는 경우는 딱 두 가지다. 정치적 범죄를 저질러서 조용히 어디론가 데려가 처형시킬 사람과 대남 공작원으로 파견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없앤다. 대부분 정치범일 경우 수용소로 끌려가지만 심할 경우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인다. 북한은 어릴 때부터 공작원을 선발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당에선 그 부모들에게 ‘아들을 나라에 바쳤다고 생각하라’는 말과 함께 아이가 나온 사진을 모조리 수거해 소각한다.


 
최연소 황해북도 책임비서… 다시 출세 가도 달려

▲2013 4 15일 김일성 생일을 맞아 열린 군사학교 간 교직원 체육경기가 열린 가운데,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왼쪽)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함께 관람하고 있다. 사진=조선중앙TV

 

최룡해는 3년간 노동당 총무부 부부장으로 일한 뒤 2006년 황해북도 당위원회 책임비서(도지사)로 가게 된다. 당시 북한 시·도당 책임비서 중에 최룡해가 가장 어렸다고 한다. 그만큼 김정일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한 고위 탈북민은 “한번은 김정일이 참석하는 행사가 있었다. 책임비서들이 기다리고 있고, 저 멀리서 신형 벤츠 한 대가 와서 멈춰 섰다. 그 차에서 내린 사람은 최룡해였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고 전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책임비서들은 김정일이 선물한 ‘216’ 구형 벤츠를 타고 다녔다. 하지만 최룡해는 김정일에게서 직접 선물받은 신형 벤츠에 군 번호가 찍힌 차를 타고 다녔다. 이 사건은 최룡해가 다시 부활했고, 김정일에게 신임받고 있다는 증거가 됐다.
 
  북한의 216 선물 차량은 김정일 생일인 2 16일을 의미하는 번호판을 달고 다닌다. 이 차량에 대해선 누구도 함부로 세울 수 없다. 과거 김정일의 차량도 216 번호판을 달고 다녔다.
 
  최룡해는 황해북도 책임비서를 하면서 여러 업적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황해북도는 북한에서도 가장 가난하기로 소문난 지역이다. 최룡해 부임 이후 황해북도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이로 인해 김정일도 여러 차례 방문하는 일이 벌어졌다. 김정일은 평안도, 함경도, 자강도 등 다른 지역은 방문이 잦았지만, 황해북도는 좀처럼 방문하지 않았다.
 
  그가 황해북도를 선택한 이유도 따로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다. 최룡해의 아버지인 최현은 생전에 항상 김일성과 김정일을 받드는 길에서 제1선에서 보위하라는 말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최룡해가 북한의 첫 관문인 황해북도로 내려갔다는 것이다.
 
  한 고위 탈북민은 “당시 당 총무부 부부장을 하면서 김정일이 여러 번 불러 의견을 물어봤는데, 최룡해가 이때 자신이 남한으로부터 첫 관문인 황해도로 내려가 충성을 다하겠다며 그 자리에서 충성맹세를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룡해의 황해북도 생활은 4년 만에 끝이 난다. 후계구도가 김정은으로 짜이자 김정일은 곧바로 최룡해를 불러들여 인민군 대장 칭호를 준다. 파격적이다. 북한에서 민간인이 대장 칭호를 받는 일은 거의 없었다.
 
  최룡해는 김정은 정권에서 요직을 맡으면서 승승장구했다. 이는 최룡해가 김정은 체제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얘기다. 최룡해는 황해북도 책임비서에서 평양으로 복귀하고, 북한군 총정치국장과 조직지도부장 등 주요 요직에서 활동했다. 2년 정도의 짧은 시간이다. 특히 민간인 신분에서 군 총정치국장을 한다는 것은 대단히 파격적인 인사다. 최룡해는 총정치국장과 조직지도부장으로 일하면서 내부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먼저 파격 인사를 단행해 물갈이를 했다. 이는 김정은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김정은은 최룡해를 믿는다는 단편적인 예다. 


  최룡해 집안 대대로 김씨 일가 정권창출 일등 공신

  최룡해는 김정은 정권의 일등 공신이다. 앞서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정권이양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장성택과 이영호 등 공신들이 있었지만, 현존하는 인물은 최룡해뿐이다. 최룡해는 김정은으로 정권이 넘어가는 시기에 민간인으로 군을 장악하기 위해 대장 칭호와 함께 총정치국장으로 활동했다. 이는 군 내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요 사태를 잠재우며 안전한 권력 이양을 도왔다.
 
  그의 아버지 최현도 김정일의 숨은 킹메이커였다. 최현은 1960년 후반 김일성 후계자 문제를 놓고 치열한 권력싸움을 벌일 때 김정일 옹립에 앞장섰다. 당시 분위기는 김일성과 둘째 부인 김성애 사이에 태어난 김평일에게 유리했다. 김일성도 김성애의 입김 탓에 누구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최현은 권총을 들고 다니면서 김평일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협박했다. 하지만 더 중요했던 것은 김일성의 귀에 얘기하는 것이었다. 당시 절대권력을 쥔 김일성의 마음을 돌리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다들 김일성의 눈치를 보던 시절에 최현이 나선 것이다. 최현은 김일성과 사적으로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김일성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최현의 말은 귀담아듣는 사람이었다. 김일성은 자신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6권의 첫 장에 최현과 찍은 사진을 게재했고, 4권에는 ‘백전노장 최현’이라는 제목으로 35페이지를 할애해 그를 추억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다.
 
  두 사람은 1933 9월 중국 왕청현 소왕청 마촌에서 처음 만났다. 둘 다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제2군장 왕더타이(王德泰) 밑에 있을 때였다. 《세기와 더불어》 4권에는 최현이 비록 다섯 살 위였지만 처음 만났을 때 ‘김일성 대장님’이라고 불렀다고 써 있다. 이렇게 만난 두 사람은 서로 깊은 전우애를 나누었고, 최현은 ‘김일성의 남자’가 됐다. 김일성이 회고록에서 최현에 대해 서술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최현은 매우 솔직하고 소탈한 사람이다. 그는 보는 대로 말하고 생각나는 대로 표현하는 사나이다. 최현은 일평생 비관을 모르고 살아온 낙천가였으며, 어떤 폭풍 속에서도 앞으로만 돌진해온 탱크 같은 사나이였다.
 
  최현은 김일성의 최대 위기였던 1956 8월 종파사건 때 김일성을 결사 옹위했다. 이 사건 이후 김일성은 최현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으로 그를 ‘충신’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최현 집안을 ‘충신 집안’으로 부르는 이유다. 이런 깊은 관계로 최현은 1972년 김일성에게 독대를 신청해 김정일의 실력을 하나둘씩 열거했다.
 
  김정일은 1967년 노동당 제4기 제15차 전원회의에서 박금철, 이효순 등 갑산파를 숙청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이 회의를 계기로 조선노동당 내에 김일성 주체사상으로 유일사상체계를 구축하는 데 중심이 됐다고 그를 띄웠다.
 
  그 외에도 당 선전선동부 문화예술지도과장으로 문화예술 부문을 지도해 ‘백두산 창작단’ ‘피바다 가극단’ ‘만수대 창작사’ 등을 창설해 북한 문화예술계의 돌풍을 일으켜 1970년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으로 승진한 점도 내세웠다. 김일성 역시 이런 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1970 11월에 열린 노동당 제5차 대회에서 당 중앙위원으로 세워야 한다는 원로들의 주장을 일단 보류시켰다. 김일성은 둘째 부인 김성애를 삐딱하게 대하는 김정일이 거슬렸다.
 
  하지만 최현의 완강한 설득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후계자로 김정일을 결정했다. 이 소식을 들은 김정일의 최현에 대한 마음은 어땠을까? 은인이자 평생 보답해야 할 고마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김정일은 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혁명가〉라는 영화를 만들어 전국에 보급했다. 그의 감사하는 마음은 최현의 아들 최룡해로 이어졌고, 김정일 사망 이후는 김정은이 아버지의 마음을 이어받아 최룡해를 곁에 두고 있다.


  김정일 동생 ‘슈라’ 죽음에 연루된 최룡택

  최룡해는 2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바로 위의 누나는 프룬제 아카데미 사건에 개입한 매형의 잘못으로 죽었다. 큰형인 최룡택도 중앙당 간부과 과장으로 일하다 일찍 사망(1940)했다. 최룡택은 동생 최룡해와 달리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이에 대해 여러 얘기가 있지만 다수의 고위 탈북민은 “최룡택이 김일성의 눈 밖에 나면서 출세 길이 막혔다”고 증언했다.
 
  최룡택이 김일성의 미움을 사게 된 사건이 있었다. 김정일에겐 쌍둥이 ‘슈라(소련 이름)’라는 동생이 있었다. 슈라의 한국 이름은 공개되지 않았다. 슈라는 해방 이후 자신의 집 연못에 빠져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김일성은 해방 이후 소련의 도움으로 북한 정권을 잡으면서 1인자가 됐다. 당시 김일성은 집 앞에 연못이 있는 대저택에서 살고 있었다. 해방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린 김정일과 최룡택, 그리고 슈라가 연못 근처에서 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슈라가 연못에 빠지게 됐다.
 
  연못에 빠진 슈라가 살려달라고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본 김정일과 최룡택은 도움을 청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집 뒤뜰에 숨어버렸다. 시간이 지나 정원을 관리하던 사람이 그 상황을 목격하고 슈라를 건졌으나 이미 숨진 상태였다. 이 상황을 들은 김일성은 대로하여 김정일과 최룡택을 불러 따졌다고 한다. 당시 김일성은 빨치산 동지들의 도움으로 권력을 잡는 시기였다. 여기서 최현의 도움이 절실했다. 그러한 이유로 최룡택에게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았다고 한다. 김정일도 아버지 김일성의 미움을 사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때부터라고 한다.
 
  한 고위 탈북민은 이 사건에 대해 “김일성이 이 사건으로 인해 김정일과 최룡택을 끝까지 미워했다. 당시 최현이라는 혁명동지의 자식을 어찌할 수 없어서 그냥 넘어갔지만, 이후 최룡택은 동생인 최룡해가 승승장구할 때도 앞에 나서지 못하고 낮은 직책에서 조용히 살아갔다”고 말했다.     

: 정광성  월간조선 기자

  

05-31 “먹고 살기도 힘든데 마약을?”…삼엄한 통제 北이 ‘빙두’에 빠진 배경은?

Q. 북한에서 특권층, 평양시민, 농어촌 거주민을 막론하고 마약 소비가 성행하며 심지어 명절 선물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기사를 접한 바 있습니다. 삼엄한 통제가 이루어지는 북한 사회에서 광범위한 마약유통이 이루어진다는 점이 모순적이라 생각되는데 북한 내에서 전 사회적 마약 중독 현상이 나타나게 된 배경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북한 당국은 마약중독자들에 대해 어떤 조처를 하는지도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박기범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15학번(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

 

A. 북한에서 마약이 횡행한다는 이야기를 접한 많은 분들은 “먹고 살기도 힘든 곳에서 마약을?”이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북한에 마약이 퍼져있다는 것은 안타깝게도 사실로 보입니다. 북한에서 널리 쓰이는 마약은 ‘빙두’ 또는 ‘얼음’으로 불리는 메스암페타민으로, 우리가 흔히 ‘필로폰’이라고 부르는 마약입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함흥지역 제약공장 과학자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마약거래상들로부터 돈을 받고 마약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고 알려집니다. 빙두 가격은 1그램에 20~30달러 정도로 북한의 물가를 고려하면 꽤 비싼 편입니다. 따라서 빙두는 경제력이 있는 당 간부들 사이에서 먼저 퍼져나갔으며 2000년대 후반부터는 일반 주민들도 상당수 사용하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북한사람들이 빙두를 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먼저 의료가 일천한 북한에서는 빙두가 응급처치약으로 쓰이곤 합니다. 뇌혈전이나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쓰러질 경우 빙두를 하면 살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있어서 주로 노인들이 집에 1~2그램씩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빙두가 각종 질환을 고치는데 효과가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약을 약으로 사용하는 이들은 빙두가 중독되지 않는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은 빙두가 북한 사회에 퍼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국경을 넘나드는 밀수꾼들이 빙두를 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국경경비대의 시선을 피해 밤에 몰래 밀수를 해야 하기 때문에 빙두의 각성 효과를 빌린다는 것입니다. 빙두를 하면 2~3일씩 잠을 자지 않고도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또렷해진다고 합니다. 송금 브로커로 일한 적이 있는 한 북한이탈주민은 밤마다 중국과 전화 연결을 하기 위해 전파가 잘 잡히는 산 꼭대기에 올라야 했는데, 산에 오르는 것이 너무 힘들어 출발 직전 늘 빙두를 했다고 합니다. 물론 재미나 유흥을 위해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빙두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북한이탈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양강도 혜산시와 같은 국경지역 도시에서는 빙두를 적어도 한 번쯤 해본 이가 절반은 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안 해본 이가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북한과 같이 당국의 통제가 심한 사회에서 어떻게 마약이 이렇게 널리 사용될 수 있을까요? 마약을 단속해야 할 보위부원, 보안원 등 이른바 ‘법관’들이 마약을 단속하기는커녕, 단속에 적발된 마약을 압수한 뒤 본인이 직접 그 마약을 하거나 아니면 팔아먹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보위부원이나 보안원 전원이 빙두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빙두를 압수해 팔아먹는 건 ‘밑천이 안 드는 장사’이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과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꽤나 지속적으로 관련 증언이 수집되는 것을 보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북한은 2013년 형법을 수정하여 마약제조 및 유통을 사형까지도 가능한 범죄로 형량을 대폭 강화하였습니다. 이전까지는 사안이 아무리 중해도 마약제조는 5년 이하의 노동교화형(징역형), 마약밀수 및 밀매는 10년 이하의 노동교화형에 처해졌습니다. 마약 범죄는 북한 형법 상 ‘사회주의문화를 침해한 범죄’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북한은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자’들이 사회주의 안에 부르주아 반동문화를 침투시켜 체제 전복을 꾀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불건전한 문화를 책동하는 사회주의문화 범죄는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정치범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처벌의 강화가 실제로 마약의 확산을 저지하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일각에서는 처벌이 강화되면 오히려 처벌을 피하기 위한 뇌물의 액수만 커진다는 해석을 내어놓기도 합니다. 북한에서 근절되지 못한 마약 범죄는 한국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2016년 공개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국내 교도소에 수감된 북한이탈주민 가운데 마약 사범이 가장 높은 비중(29.5%)을 차지했습니다. 마약의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마약이 범죄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마약 중독 예방교육과 남한의 법문화 및 준법의식 교육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김수경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

 

06.01 "하노이 실무협상 김성혜, 통역 신혜영 둘 다 정치범 수용소행"

, 하노이 노딜 후폭풍

김정은 정권이 '하노이 노딜' 이후 취한 것으로 알려진 문책·숙청의 수위와 범위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당초 외교가에선 "북한이 외부 시선 등을 의식해 회담 관계자들에 대한 극단적 처벌은 자제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그만큼 회담 결렬에 따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분노와 상실감이 상당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소식통 "김혁철 생사불명, 신혜영도…"

하노이 회담의 실무협상을 담당했던 김혁철 전 국무위 대미 특별대표는 현재 생사가 불분명한 상황이다. 회담 결렬 직후 원래 소속 부서인 외무성으로 복귀했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종적을 감췄다. 지난 4월 선출된 최고인민회의 제14 1차 대의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김정은(가운데)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 전날 실무 대표단의 회담 전략을 보고받으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리용호 외무상, 김정은, 최선희 외무성 부상,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 북한은 최근 하노이 미·북 회담 결렬에 대한 책임을 물어 김혁철을 처형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여정(왼쪽에서 둘째 사진) 노동당 제1부부장에겐 근신 조치가 내려졌고, 김성혜(왼쪽에서 셋째 사진) 통전부 통일책략실장과 김정은 통역을 맡았던 신혜영(맨 오른쪽 사진) 통역관은 정치범수용소에 보내진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중앙TV 연합뉴스 

               

 대북 소식통은 "김혁철은 미측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협상 상황 보고를 부실하게 했다는 이유로 미제 스파이로 몰려 지난 3월 외무성 간부들과 함께 조사를 받고 평양 미림비행장에서 처형당했다는 얘기가 있다"고 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베트남 주재 북한 대사관 경제 참사와 2등 서기관, 북한 외무성에서 베트남 업무를 담당했던 서기관 등 4명도 김혁철과 함께 처형당했다는 복수의 첩보가 수집됐다.

 

특히 하노이 회담 당시 김정은의 통역을 맡았던 신혜영은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혜영은 지난해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여성(이연향 국무부 통역국장)을 대동한 점을 의식해 김정은이 직접 발탁한 인물로 알려졌다. '실전' 경험이 부족한 신혜영은 통역 과정에서 여러 차례 실수를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신혜영은 '노딜'을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이 다급하게 "한 가지 제안할 게 있다"고 말한 것을 통역하지 못했다.

 

"김영철도 위험…김여정은 근신"

대미 협상을 총괄했던 김영철은 당 통일전선부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 자강도에서 '혁명화 교육'(강제 노역 및 사상교육)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혁명화 조치를 당한 최룡해(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은 일정 기간 후 재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동신문이 이날 '혁명의 준엄한 심판'을 언급함에 따라 김영철의 생사도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김영철의 참모 역할을 수행한 김성혜 통전부 통일책략실장도 정치범수용소행 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유일한 여성 대남 일꾼'으로 꼽히는 김성혜는 작년 2월 평창올림픽 참석차 방한한 김여정을 밀착 보좌한 인물이다. 지난 1월 김영철의 방미(訪美)에 동행한 데 이어 2월 평양(6~8)과 하노이(21~25)에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등과 만나 정상회담 직전까지 비핵화 의제를 조율했다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은 외부 활동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하노이 회담을 비롯해 김정은의 외국행에 대부분 동행했지만 지난달 김정은의 방러 때는 보이지 않았다. 외교 소식통은 "김여정이 작년 2월 임신 상태로 강도 높은 방한 일정을 소화했고, 출산 후에도 북·중, 남북, 미·북 정상회담을 연달아 챙기면서 건강에 무리가 왔다" "결핵에 걸렸다는 얘기도 있다"고 말했다.

 

김여정이 건강 문제보다는 '튀는 행동'이 문제돼 근신 중이라는 관측도 있다. 대북 소식통은 "하노이 회담 당시 재떨이를 들고 김정은 시중을 드는 장면이 일본 언론에 노출되면서 북 내부에서 '부적절한 처신'이란 말이 많았다" "회담 결렬로 체면을 구긴 김정은이 이런 기류를 의식해 김여정에게 '자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했다.

 

이처럼 '하노이 회담팀' 상당수가 각종 문책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외무성의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제1부상은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이들은 회담 결렬 직후부터 '김정은의 심기와 육성'을 대외에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맡고 있다. 최선희의 경우 지난달 부상 에서 제1부상으로 승진한 데 이어, 차관급으로는 유일하게 국무위에도 진입했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작년에 갑자기 대미 협상 업무를 맡은 '통전부 라인'의 낙관적·희망적 보고와 달리, 전통적으로 북핵·대미 협상을 전담했던 외무성 라인은 김정은에게 줄곧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하노이 노딜 이후 김정은이 다시 외무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김명성 기자

 

06.01 北 중국수출 품목, 제재로 4분의 1 토막

2년만에 386개 품목서 107개로… 핵심 물품 석탄·광물 막히자 시계 부품 등 경공업품 주력
맥주·코코아·담배 수입은 늘어… 전문가들 "식량난 과장 됐을 수도
      

대북 제재가 본격화된 2017년 이후 북한의 대중(對中) 수출 품목이 4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하며 외화벌이가 큰 타격을 받은 것으로 31일 확인됐다. 특히 기존에 북한의 무역을 떠받치던 핵심 수출품들은 강화된 제재의 여파로 줄줄이 판로(販路)가 막혔다. 대북 제재가 북한 수출과 외화벌이에 미치는 구체적인 영향이 확인된 것이다. 북한은 전체 무역의 90%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수출 상위 20품목 중 1개만 '수출 유지'

본지가 중국 해관총서를 통해 2017~ 2019년의 1~4월 북한의 대중 수출품목을 전수 조사한 결과 2017년 같은 기간 총 386(HS code 기준)에 이르던 품목은 2018 159개에서 올해 107(28%)까지 급감했다.

 

이는 수출액 감소로 이어졌다. 2017 1~4월 약 6억달러이던 대중 수출액은 올해 같은 기간 7700만달러(12.8%) 수준까지 떨어졌다. 2017 8, 9, 12월 각각 채택된 세 건의 안보리 결의(2371·2375호·2397)가 치명타를 입혔다는 분석이다. 2371호는 북한산 석탄, 철과 철광석, 납과 연광, 해산물의 수출을 금지했다. 2375호는 섬유의 수출을 막았고, 2397호는 농산품·기계류·광물 및 토석류·목재류·선박 등의 수출을 묶었다

 

안보리 결의가 수출을 금지한 석탄, 광물류, 의류, 해산물은 북한 무역의 '핵심'이었다. 무연탄의 경우 2017 1~4월 전체 무역액(6억달러) 36.7% 22000만달러어치나 수출됐다. 이 기간 북한 수출품 1~20위는 의류 9, 석탄·철강·광물류 5, 해산물 3, 기계류 1, 견과류 1건 등으로 채워졌다. 20개 품목 중 광물류(규소철)를 제외한 19개는 2019년 현재 수출이 묶였다. 대북 소식통은 "안보리 제재가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이 하노이 회담에서 어떻게든 '제재 5'을 풀려고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했다.

 

"경공업으로 만회 노리지만 역부족"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제재와 충돌하지 않는 경공업 상품으로 활로를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1~4월 대중 수출액 1위 상품은 시계 무브먼트(2661만달러), 2017년 같은 기간엔 아예 수출품에 포함되지 않은 상품이다. 가발류(3위·843만달러), 교육용 마네킹(6위·361만달러), 축구공(10위·178만달러) 등도 새롭게 '핵심 수출품'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 같은 '체질 개선'이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올해 수출액 전부를 더해도 2017년 같은 기간 무연탄 수출액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석탄 의존도'가 컸기 때문이다. 송재국 IBK북한경제연구센터 연구위원은 "북한이 나름대로 제재 국면을 돌파하고자 수출 품목을 다변화하고 있지만 제재 이전 수준으로 무역액을 돌리기엔 역부족"이라고 했다. 조영기 국민대 초빙교수는 "기형적인 무역 구조로 볼 때 북한은 국제사회 압박에도 '석탄 환적'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술·과일 수입은 증가…식량난 맞나

한편 대북 제재로 수출액이 크게 줄었지만 술·과일 등 기호 물품의 대중(對中) 수입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2017 1~4월에 비해 올해 같은 기간 맥주 수입액은 297만달러에서 313만달러로 늘었다. 맥주를 제외한 다른 주류(酒類) 수입액도 총 488만달러에서 776만달 러로 증가했다. 과일 수입액은 2315만달러에서 올해 3119만달러로, 코코아류도 60만달러에서 131만달러로 수입액이 늘었다. 담배류의 경우도 올해 2283만달러를 수입했다. 이는 2017(2598만달러)보단 적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2215만달러)보단 많은 양이다. 이 때문에 일부 북한 전문가는 "북한이 말하는 식량난은 과장됐을 수 있다"고 평가한다.

조선일보 윤형준 기자  

 

06-11 北 공개처형지 323곳 찾았다…총살 참관 맨 앞줄은 초등생

 

북한 정권의 공개처형 장소 및 시체 매장지 정보를 담은 지도가 공개됐다. 비영리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10일 발표한 ‘살해당한 사람들을 위한 매핑: 북한 정권의 처형과 암매장’ 보고서에서다. 본지가 사전 입수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은 4년간 601명의 탈북민을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318건의 공개처형지의 좌표를 확보했다. 공개처형 대상자의 10세 미만 자녀들도 강제로 참관하도록 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이번 조사에서 최연소 공개처형 참관자의 나이는 당시 7세였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은 탈북민들의 진술 중에서도 신뢰도가 높고 위치 좌표까지 구체적으로 확보 가능한 정보를 골라 323건을 추출했다. 전환기정의워킹그룹 관계자는 “한 번에 10명 이상이 공개처형된 케이스도 19건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 결과에 따르면 공개처형 장소는 함경도에 200, 양강도에 67, 평안남도 20, 함경남도 11, 황해북도 6, 자강도 5, 강원도 5, 평양 4, 평안북도 4, 황해남도 1곳의 순으로 많다
 
처형된 후 사체는 암매장되거나 불태워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시체 매장지는 함경북도가 12곳으로 제일 많았고 수도인 평양엔 한 곳도 없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은 확보한 상세 주소의 공개는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단체 관계자는 “북한이 증거 인멸에 들어갈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며 “공개처형 장소 및 시체 매장지의 위치 좌표들은 이미 확보했다”고 말했다.  
 
탈북민들이 진술을 하면서 그린 공개처형 당시 스케치도 일부 공개됐다. 한 스케치에 따르면 함경북도의 시장 근처 공터에 마련된 공개처형 장소에 인민학교(한국의 초등학교) 아동과 중ㆍ고등학교

학생들이 앞줄에 앉고 맨 뒤에 성인들이 자리했다. 이들 앞에 3명의 공개처형 대상자가 나왔다. 진술자는 “처형자들은 대부분 반죽음 상태로 나왔다”며 “형식적 재판을 마친 뒤 6명의 총살 부대가 머리ㆍ가슴ㆍ다리를 조준해 사격했다”고 말했다. 처형 후 시체는 ‘승리58호’라고 쓰인 화물트럭에 실려 나갔다.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이 공개한 북한 공개처형 관련 통계 [전환기정의워킹그룹 제공]

  

일부 탈북민은 공개처형 대상자의 아내가 끌려와 총살 당하기 직전의 남편에게 “넌 나쁜 자식이야! 당을 왜 배반했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고 한다.  
 
2000년대 말 한 군 부대에서 진행된 공개처형에선 참관시킨 군인들에게 총살한 시신을 줄지어 밟고 지나가도록 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일부는 해당 군인들에게 총탄이 박힌 자국을 가까이 들여다보도록 하기도 했다고 탈북민들은 진술했다.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은 2014년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를 계기로 서울에 설립된 국제 인권단체다. 인권 관련 조사와 기록을 체계적이고 객관적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남북 및 영국ㆍ미국ㆍ캐나다 출신 20~30대 인권운동가 및 연구자들이 주축이다. 북한 외에도 동남아ㆍ중동 등의 인권 침해 관련 연구를 진행해왔다.  
 
북한 당국이 공개처형 장소로 선정하는 곳은 학교 운동장이나 시장ㆍ경기장 등 주민들이 운집하는 곳과 강변ㆍ밭ㆍ언덕ㆍ산비탈 등인 곳으로 드러났다. 주민들을 소집하기 쉽고 처형 후 과정에 용이한 장소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공개처형 및 사형을 정권 유지 수단으로 이용해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고모부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도 특별군사재판 후 즉각 사형당했다. 사진은 장성택이 처형 직전 특별군사재판법정에 서 있는 모습. [뉴스1]

 

2013년부터는 공개처형장에 특별한 도구도 등장했다. 일반 공항 보안검색대에서 사용되는 것과 유사한 휴대용 보안검색기다. 보안원들이 이 보안검색기를 들고 참관자들의 몸을 수색하고, 처형 장면을 촬영하지 못하도록 휴대전화기를 탐지해 압수했다는 진술이 복수의 탈북민에게서 나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2011년 후에 생긴 변화다. 공개처형 장면이 외부에 공개될 것을 꺼렸기 때문인 것 같다는 게 탈북민들의 공통된 진술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일부 탈북민은 “사복을 입은 보안원들이 참관자들 사이에 섞여서 잠복을 했다”며 “북한 주민들이 외부 세계와 연결되는 경우가 늘면서 처형 장면이 촬영 또는 녹음돼서 북한 밖으로 나가는 것을 북한 정권이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북한 정권도 공개처형의 반인권적이라는 점과 미국 등 국제사회의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전환기정의워킹그룹 관계자는 “이번 조사에 응한 탈북민들은 북한 정권의 살해 행위와 시체 처리 장소를 밝힘으로써 차후에 북한 정권의 책임을 추궁하는 데 도움이 되길 강력히 희망한다”며 “처형 피해자들의 신원을 밝히고 가족들에게 유해를 돌려주기 위해서라도 시체 매장지 발굴은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06.15 39호실 간부 "수출입 통로 깡그리 막혔다"

노동당 기관지에 고강도 대북제재로 인한 극심한 고통 호소
"원료·설비 등 난관에 일부 일꾼 우는소리"… 제재 효과 확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통치자금 조성 임무를 맡은 노동당 산하 외화벌이 책임자들이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13일 확인됐다. 본지가 이날 입수한 노동당 대내 기관지 '근로자' 작년 12월호에는 노동당 39호실과 재정경리부 산하기관 책임자들의 고통스러운 육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제재 극복을 위한 노력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극악한 봉쇄' '무례한 제재' '난관' '우는소리' 등의 표현을 쓰며 답답한 속내를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이다.

 

▲김정은 말엔 ‘알았습니다’ 오직 한마디 대답만 - 북한 국가공훈합창단이 조선중앙TV에 출연해 군가 ‘알았습니다’를 부르고 있다. /TV조선

 

이런 가운데 북한은 '수령'에 대한 충성을 강조한 군가 '알았습니다'를 당 간부들에게 보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소식통은 "제재 장기화로 인한 경제난으로 동요하는 조짐이 보이자 내부 기강 잡기에 부심하고 있다"고 했다.


◇외화벌이 책임자들 "제재로 우는소리"

근로자 12월에는 모란지도국, 수양산은하피복공장, 봉학식료공장 소속 책임간부들의 기고문이 실렸다. 모두 김정은의 통치자금 조성을 책임지는 당 39호실, 당 재정경리부 소속이다. 수양산은하피복공장의 박길석 지배인은 "적대 세력들의 극악한 제재 봉쇄 책동으로 생산에서 난관이 조성됐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자투리를 비롯해 있는 자재와 설비를 최대한으로 동원·이용하기 위한 사업과 방법론을 세우고, 피복 가공이 아닌 다른 항목의 제품 생산도 대담하게 받아들였다"고 했다. 39호실 출신 탈북민 A씨는 "주력 수출품인 의류 수출이 안보리 제재로 막히니 가발과 교육용 마네킹 생산 등으로 제재를 우회·회피하고 있다는 얘기"라고 했다.


39호실 소속 모란지도국의 조기철 국장은 '제재 책동에 매달리는 제국주의자들의 흉심'이라는 글에서 "(수입하는) 제품들에 금속이 들어 있다고 하여 100% 제재한다" "(제재는) 우리의 수출입 무역 통로를 깡그리 막아치운다"고 했다. 이어 "제재가 (작년보다) 올해에 더하면 더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무례한 제재가 단기간에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했다.

 

▲부산항에 들어온 주한미군 최신 전차 - 주한미군 순환배치를 앞두고 최근 국내에 반입된 탱크와 장갑차 등 미군 장비들이 13일 부산항 8부두에 도열해 있다. 작년 10월 한국에 들어온 미 육군 제1기갑사단 예하 제3기갑여단은 다음 달 미 텍사스 포트후드에 주둔 중인 제1기병사단 예하 제3기갑여단과 임무를 교대하게 된다. /뉴시스

 

당 재정경리부 소속인 봉학식료공장 지배인 박길남은 "적대 세력들의 방해 책동으로 원료, 자재, 설비 동력 보장 문제에서 여러 가지 난관이 제기되자 공장의 일부 일꾼은 패배주의에 빠져 우는소리만 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했다. 봉학식료공장은 북한의 3대 맥주인 '봉학맥주'를 생산한다.


전문가들은 "김정은 통치자금을 벌어들이는 기관·기업들이 대북 제재의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제재의 영향을 받는 품목이 석유·기계설비를 넘어 의류·식품 등 북한 산업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을 뿐 아니라, 제재가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에 외화벌이 책임자들이 비명을 지르는 상황"이라고 했다.


◇군가 '알았습니다'를 당에도 보급

근로자 12월호에는 당 조직지도부 간부로 추정되는 김철만이란 인물이 "당 조직들과 당 일꾼들은 당중앙이 앞으로 구령을 내리면 즉시 '알았습니다'라고 한목소리로 화답하며 강철 같은 규율을 확립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조직·전개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김철만은 "비록 열 가지를 하고 싶고 또 할 수 있어도 당에서 한 가지를 하라고 하면 오직 한 가지만 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와 관련,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작년 최룡해 당 조직지도부장(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군가 '알았습니다'를 당에 보급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 노래는 40여 년 전 나온 것으로, 2015년 황병서 당시 군 총정치국장이 "원수님(김정은)의 명령에는 '알았습니다'라는 한마디 대답만 해야 한다"며 군 보급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김명성 기자       

 

06 18일 탈북 현인애 “北 장마당 여성 대상 권력형 성폭행 급증”

▲탈북 현인애 이화여대 초빙교수 


“장사 일부로 생각할 정도 만연” 

 “북한 장마당의 여성들은 성폭력을 장사의 일부라고 생각할 정도로 북한 간부들의 권력형 성폭력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탈북자 출신 현인애(62·사진) 이화여대 초빙교수는 18일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과 ‘성공적인 통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공동 개최한 ‘북한 여성 성폭력 사례와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북한에서 성행하는 부정부패는 법 집행에서 공정성을 파괴했고, 힘없는 여성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화여대 북한학 박사인 현 교수는 “장마당에서는 불법 없이는 장사가 되지 않기 때문에 여성들은 장사를 위해 보안원이나 장마당 단속원 등 통제자의 요구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면서 “통제자들이 이를 이용해 성폭력을 자행하는 일이 일반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 교수는 북한에서 김일성대 철학부를 졸업하고 함북 청진의대에서 철학을 가르치다가 2004년 탈북, 이화여대 북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대북단체 NK지식인연대 부대표를 지냈다.


특히 현 교수는 북한에서 성추행은 범죄로 취급조차 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 북한의 권력형 성범죄는 상당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북한의 독재 시스템은 권력을 쥔 간부들이 특권을 당연시하는 사회적 질서를 만들었다”며 “북한은 2009년 형법에서 2년 이하의 노동단련형이던 권력형 범죄의 처벌 강도를 2012 1년으로 낮추는 등 권력형 범죄에도 관대하다”고 소개했다. 그는 “권력형 성폭행은 직장, 군대, 돌격대 등 집단생활을 하는 곳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1990년대 이후 교화소·구금소·시장에서 급증하고 있다”며 “사회주의 시기인 1980년대까지만 해도 보수적 정조 관념이 강해 성폭력 문제가 적었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 유입과 간부들의 부정부패, 사창가가 허용되지 않는 체제 특성이 겹쳐 음성적 성폭력이 급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충신 기자 csjung@munhwa.com 

 

2019

07.04 "가짜 술·가짜 약 만들면 사형"

"가족은 이주·추방" 포고문
제재 장기화로 인한 경제난에 불만 차단하려 공포 분위기

 

북한 당국이 최근 가짜 술, 가짜 약품 등을 제조·유통하는 사람은 '사형' 등 강력 처벌한다는 포고문〈사진〉을 발표한 것으로 3일 확인됐다. 본지가 입수한 북한 인민보안성(우리 경찰청 격) 6 11일자 포고문에는 "가짜 술, 가짜 약품을 만들도록 조건을 보장해준 자, 넘겨받아 판매한 자도 엄격히 처벌한다" "포고를 어긴 행위가 특히 엄중한 자는 사형에 이르기까지 엄벌에 처하며 동거 가족은 이주, 추방시킨다"고 돼 있다.


포고문은 또 가짜 상품 제조·유통에 대해 "반당적 반국가적, 반인민적 해독 행위"라며 "포고를 어긴 자는 직위와 소속, 공로와 관계없이 단속·체포하여 법적으로 엄격히 처벌하며 위법 행위에 이용된 돈과 설비, 물자는 전량 몰수하거나 생산과 영업을 중지시키겠다"고 밝혔다. 대북 소식통은 "이번 포고는 가짜 술이나 가짜 약에 의한 부 작용 사례가 심각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라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제재 장기화에 따른 내부 불만을 차단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했다.


한편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대북 제재로 인한 경제난이 내부 불만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의식한 듯 3일자 사설에서 "난관 앞에 주저앉아 남을 쳐다보거나 제재가 풀리기만을 기다리는 것 자체가 곧 투항이고 변절"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  김명성 기자     

 

07.29 ", 文대통령의 답례품 감귤을 '괴뢰가 보낸 전리품'이라 불렀다"

日도쿄신문, 작년 11월 北내부문서 입수해 보도... 트럼프 대통령에는 "트럼프 놈"
김정은, 감귤 당시 공개적으로 "뜨거운 南 마음에 감사"

북한이 작년 11월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 보낸 제주도 감귤 200t에 대해 내부 문서 상으로는 "'괴뢰'가 보내온 감귤은 전리품"이라고 표현하면서 체제 선전에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28일 일본 도쿄신문이 보도했다. 또 북한은 해당 문서에서 트럼프 미 대통령에 대해 '트럼프 놈'이라고 칭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쿄신문은 이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지시와 조선노동당의 방침 등을 치안 기관에 주지시키기 위해 작성된 북측 내부 문서를 입수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도쿄신문은 "조선중앙통신은 '(당시 감귤을 받은) 김정은 위원장이 남측 동포의 뜨거운 마음을 담은 선물이라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고 보도했었다" "하지만 (이와 별도의) 북한 내부 문서는 대외적인 설명과 달랐으며, 한국이라는 ''에게서 빼앗은 것이라고 선전했다"고 했다. 당시 북측이 우리 측에 표한 공개적인 감사 표시와 내부 문건의 내용이 달랐다는 것이다.

 

정부는 작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때 우리 측에 송이버섯 2t을 선물했고, 이에 정부는 작년 11 11~12일 공군 수송기를 동원해 제주산 감귤 200t을 북측에 보냈다. 청와대는 "송이버섯 2t 선물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고 했다. 하지만 정상회담 이후 50일 이상 지난 상황에서 답례품을 보낸 것은 당시 지지부진하던 미·북 고위급 회담 등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나왔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북한 내부 문서엔 감귤 관련 내용 외에 "미 제국주의가 존재하는 한 우리나라(북한)에 대한 제재 해제는 있을리가 없다", "'트럼프놈'을 비롯한 미국의 거물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가 핵만 포기하면 성취할 수 있는 것에는 제한이 없다고 흔들어대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우리를 완전히 말살하려는 적의 본심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적과의 대화나 교류에 얽매이지 말고 날카롭게 관찰해 대처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고 한다.


도쿄신문은 해당 북한 내부 문서에 대해 "치안기관인 인민보안성과 무장경찰, 조선인민내부군 등을 대상으로 만든 자료"라고 했다. 또 도쿄신문은 "문서가 작성된 지난해 11월은 첫 북·미 정상회담으로부터 약 5개월이 지났지만 양측 협상에 진전이 없었던 시기"라며 "북측이 체제가 흔들리는 걸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고 했다.

 

▲작년 11 11일 오후 제주국제공항에서 공군 C-130 수송기가 제주산 감귤을 싣고 있다. /연합뉴스

조선일보 김보연 기자  

 

08.20 "박지원, 덜 돼먹은 추물평양 왔을때 민망할 정도로 노죽 부려"

, 미사일 발사 비판하자 막말

"우리와의 연고 관계를 자랑하며 정치적 자산으로 이용해 먹더니 이제 와서 배은망덕한 수작"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9일 대표적인 북한통() 정치인인 박지원 의원에 대해 "마치 자기가 6·15 시대의 상징적인 인물이나 되는 것처럼 주제넘게 자칭한다" "이번에도 설태 낀 혓바닥을 마구 놀려대며 구린내를 풍겼다"고 비난했다.


통신은 '혓바닥을 함부로 놀려대지 말아야 한다'는 논평에서 "(박 의원은) 도덕적으로도 덜 돼먹은 부랑아(浮浪兒)이고 추물"이라고 했다. 이어 "6·15 시대에 평양을 방문하여 입에 올리기 민망할 정도로 노죽(노골적으로 아부하는 일)을 부리던 이 연극쟁이가 우리와의 연고 관계를 자랑거리로, 정치적 자산으로 이용해 먹을 때는 언제인데 이제 와서 배은망덕한 수작을 늘어놓고 있다"고 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처음 공개된 북·중 고위급 군사회담 - 북한 인민군 서열 1위인 김수길(왼쪽에서 다섯째)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이 16일 오후 베이징의 8·1 청사에서 먀오화(오른쪽에서 다섯째)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정치사업부 주임 등과 회담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북·중간 고위급 군사회담이 공개적으로 밝혀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박 의원이 지난 16 "계속 우리를 겨냥해 미사일 등을 발사하고 막말과 조롱을 계속한다면 그것은 정상 국가로의 진입이 아닌 야만국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 막말을 퍼부은 것이다. 박 의원은 페이스북에 "() 정주영 회장님의 고향인 (강원) 통천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2회 발사한 것은 최소한의 금도를 벗어난 것"이라고 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박 의원은 송호경 북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6·15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직접 합의했고, 2000년 김 전 대통령을 수행해 평양을 방문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이뤄진 평양 정상회담 때도 특 별 수행원 자격으로 방북했다. 이처럼 자신들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박 의원을 향해 북한이 이례적으로 인격 모독성 비판을 한 것이다. 대북 소식통은 "최근 북한의 강경 기조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미사일 발사를 직접 참관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고 했다. 박 의원은 이에 대해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고 웃어 넘긴다"고 했다.

조선일보  윤형준 기자 

 

09.11 9·9절 헌화하는 北 여성들의 세련된 옷차림

/조선중앙통신

 

북한 정권 수립 71주년 기념일인 9일 평양 주민들이 평양 만수대 언덕에 있는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찾아 헌화하고 있다.

조선일보

 

월간조선 10월 호

공포의전기검열

전기검열에서 가장 많이 단속에 걸리는 품목은 전기밥솥

전기검열은 쓰지 말아야 하는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국가 전기를 도둑질하는 반역도당색출 작업
⊙ TV·
라디오·냉장고·녹음기·세탁기·다리미 등 公的 생활과 관련되는 가전제품은 허용
전기담요·냉온풍기는이기적인 반동분자들의 비사회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제품
단속 걸리면 운이 좋아야 6개월 무보수 노동, 심하면 벽지로 추방당할 수도


張源宰
1967
년생. 고려대 국문학과 졸업, 영국 런던대학 연극학 박사 / 前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경기파주영어마을 사무총장, TV조선 〈돌아온 저격수다〉 진행 / 現 배나TV대표 / 저서 《끝나지 않은 축구 이야기》 《오태석 연극: 실험과 도전의 40년》 《배우란 무엇인가》 등 

        

 북한 주민들을 옥죄는 5대 검열이 있다. 지난 호 다룬 숙박검열 외에 전기, 녹음기, 도서, 초상화 검열이다. 이 중 걸렸을 때 가장 처벌이 엄중한 것이 전기검열이다.
 
  ‘
고난의 행군이전까지는 북한의 전기 사정이 지금처럼 엉망은 아니었다. 1995, 24시간 불을 밝히던 주체사상탑 봉화를 밤 10시에 소등(消燈)하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주민들 사이에서이러다가 좋아지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전기 사정은 나날이 악화 일로다. 2006~2007년 무렵까지는 하루에 1시간, 최근에는 사정이 좋은 날에 하루 5시간 전기를 준다. 오전 6~7시 반, 저녁 8~10, 잘하면 11시까지가불이 오는 시간이다. 같은 평양이라도, 핵심계층이 거주하는 중구역만은 24시간 전기를 줬다. ‘사회주의의 수도 평양의 얼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이 들어오는 시간  

그래서 매우 자본주의적인 현상이 벌어진다. 중구역의 집값이 평양 다른 지역에 비해 10배 이상 비싸게 거래되는 것이다. 명절에는 전국적으로 전기를 좀 더 많이 보내준다. ‘배려전기라고 한다. 배려전기가 오는 날이 또 있다. 미북회담이나 북중회담 등, 선전해야 할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날이다. 이때는 인민반장이 집집을 다니며오늘은 밤 몇 시까지 전기를 더 주는 날이라고 알려준다. 이런 날에는 당연히 TV나 라디오를 의무적으로 듣고, 다음 날 학습 전투를 준비해야 한다.
 
  ‘
불이 오는 시간에는 모든 식구가 전투하듯 집안일을 해치워야 한다. 새벽에 미리 일어나 대기하고 있다가 전기밥솥·세탁기·청소기·다리미를 돌리고, 저녁에도 각자 방으로 뿔뿔이 흩어져전기가 끊어지기 전까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다 해 놓는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냉장고보다는 극동기가 인기다. 음식을 최대로 얼리는 기계다. 냉장 보관을 하루에 5시간밖에 할 수 없으니, 아예 얼려서 저장하는 것이다. 여름철에 극동기나 냉장고 문을 자주 여닫는 것은 그래서 엄청난 잔소리를 부르는 행동이다. 평양의 경우, 퇴근한 고층아파트 거주자들은 저녁 8시까지 1층에서 대기한다. 불이 와서 엘리베이터가 운행을 시작하는 시간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가전제품 보유 목록 
 

전기검열은 북한 당국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일 가운데 하나다. 그들 표현으로, 쓰지 말아야 하는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국가 전기를 도둑질하는 반역도당을 색출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단속이 이뤄지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인민반장이 분기별로 집마다 다니며 어떤 제품을 보유하고 있는지, 연식과 전력 소모량은 어느 정도인지를 빠짐없이 기록한가전제품 보유 목록을 만든다. TV·라디오·냉장고·녹음기·세탁기·다리미는 사용 가능한 품목이다. 공적(公的) 생활과 관련이 있다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사적(私的) 이익을 추구하는 제품은 보유와 사용이 모두 금지다. 밥솥·히터·구이로(오븐전기주전자·전기프라이팬·전기담요·냉온풍기(에어컨) 등이다. 밥 짓기, 물 끓이기는 석유곤로로 해결하라는 뜻이다. 그래도 선풍기는 집마다 한 대 정도는 사용을 허락해준다. 가족 모두가 선풍기를 밤새 서로 자기 쪽으로 돌려놓는 일은 평양·청진·원산·개성의 공통적인 여름 풍경이다. 수건을 물에 적셔 몸에 얹고 잠을 청해도 보지만, 그래도 선풍기 바람만큼 시원하지는 않다.
 
  ‘
전기밥솥은 단속에 가장 많이 걸리는 품목이다. 수입 쌀, 원조 쌀의 유통이 많은 북한에서 전기밥솥은 차지고 기름진 밥맛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물건이다. 한국제 쿠쿠(Cuckoo) 밥솥은 그래서 북한 전역 어디에서나 최고의 인기상품이었다. 제품의 압도적인 품질 외에, 전기밥솥에서 흘러나오는조리를 시작합니다’ ‘뜸 들입니다’ ‘맛있는 밥을 완성하였습니다라는 여성의 목소리가 신기해서 화제가 될 정도였다. 같은 쿠쿠 브랜드가 붙어 있더라도 중국산은 미화 100~200달러, 한국산은 250~350달러에 거래된다. 농촌에서는 집 1채 값, 옥수수 기준 4인 가족의 2년 치 식량을 살 수 있는 금액이다.
 
 
단속반은 밥솥의 전력 사용량이 다른 가전제품에 비해 많다고 호통친다. 그리고 여성들이 일하기 싫어 밥가마 대신 전기밥솥을 사용하며 편하게 살려는 풍조가 번지는 것을 개탄한다. 주민들은그럴 거면 국내산(북한산) 밥솥은 뭐 하러 만드나?’며 따지고 싶지만, 물론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는다.  

  
 
급하면 집 밖으로 가전제품 던져버려

북한 가정집에 주파수가 고정된 붙박이 라디오가 설치되어 있는 모습. 이 라디오는 볼륨만 조절할수 있게 되어 있다

 

  북한에서 전기담요와 냉온풍기는 개인의 안락함만을 추구하는 가전제품으로 꼽힌다. 전력소모량도 가장 많기에, ‘이기적인 반동분자들의 비사회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제품이라고 선전한다. 다른 제품은 몰라도, 전기담요와 냉온풍기를 쓰다가 걸리면 상당한 처벌을 각오해야 한다. 그래서 냉온풍기와 담요를 사용 중에 단속반이 들이닥치면, 물건을 감출 시간이 없을 경우 아예 베란다 밖으로 던져버린다. 엄청난 고가품이기는 하지만, 단속에 걸리느니 부숴버리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단속에 걸릴 경우 재수가 좋아야 6개월 무보수 노동으로 끝난다. 무보수 노동이야 크게 두렵지 않다. 어차피 공식 직장은 허울일 뿐, 생계를 위한 수입의 대부분은 장마당에서 해결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추방령이 떨어지는 경우다. 하루아침에 연고자도 없는 산간벽지로 가족 전체가 쫓겨날 수도 있다. 가전제품을 주저 없이 집 밖으로 던져버리는 이유다. 걸리면 삶이 바뀐다. 그래서 전기 검열자들은 공포의 존재다.
 
 
단속반은 24시간 아무 때고 문을 두드린다. 인민반장이 그 옆에서가전제품 보유 목록을 들고 단속반과 함께 가택을 수색한다. 전기검열자는 그 자체가 공포의 대상이다. 나름대로 자기들끼리 교육을 하는지, 문 두드리는 소리만 가지고도 사람들을 다급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알고 왔으니 꺼내놓는 것이 좋으실 것이라는 협박도 한다. 이 경우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개 이웃의 신고로 들이닥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TV
와 라디오는 사용 가능한 품목이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물건도 아니다. 북한이 자체 생산한 TV와 라디오는 통로(채널)가 하나밖에 없다. 러시아나 중국산, 일제 중고품인 경우는 당국에서 리모컨을 압수한다. 그러고 나서 본체를 들고 가 채널조절 박스를 봉인해서 돌려준다.
 
 
북한 TV는 밤 10시면 방송 종료다. 10시 넘어 TV를 보는 것은 어떤 경우든 불법이다. 중국 TV를 보는 것도 불법이다. 밤늦도록 TV 불빛이 창문에 어른거리면 누군가는 반드시 신고하는 사람이 있다. 창문마다 담요로 불빛을 가리고 최대로 조심을 하지만, 이웃들의 생활밀착형 감시를 피할 길은 없다.

 

  도서검열과 녹음기검열

  전기검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도서검열과 녹음기(녹화기)검열이다.
 
 
도서검열은 보유해서는 안 되는 서적이 있는지를 따진다. 외국 서적이나 잡지가 있는지, 외국 소설 등 금서(禁書)가 있는지를 살핀다. 특수한 직업군의 사람들만 돌려보기 위해 100권 한정으로 도서를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서적이 개인 집에서 발견되는 것도 처벌 대상이다. 이 경우, 이 책이 어떤 경로로 어떻게 전해졌는지를 추적해 관련자 모두를 처벌한다.
 
 
녹음기검열은 녹음기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카세트든 CD든 비디오테이프든,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 어떤 물품인지 사전(事前)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사전허가를 받지 않은 제품을 보유하고 있는 것, 듣거나 보다 걸리는 것 모두 문제가 커진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걸리면, 정치범으로 몰려 일가족 모두가 수용소로 쫓겨나기도 한다. 한국 드라마 CD를 대량으로 유통하는 것은 공개사형을 당할 만큼 중범죄다. 그래도 일단 한류(韓流)에 맛을 들이고 나면, 도저히 끊으려야 끊을 수가 없다.
 
 
오죽하면 중국에서 만든노트텔이라는 저용량 노트북이 한류 CD USB 전용 재생 기기로 북한 전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겠는가. 노트텔을 전략적 차원에서 2대 보유한 집도 부지기수다. 단속반이 기기의 잔열(殘熱)을 체크하기 때문이다. 단속반이 들이닥치면 나머지 한 대를 들이밀며열이 안 나지 않느냐, 안 봤다고 우기는 것이다.
 
 
그래서 단속반은 아파트 두꺼비집을 한꺼번에 내려버리고, CD알판이 담겨 있는 그대로 기기를 압수해간다. 한류를 보고 싶은 욕망은 증가하고 단속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니, 대책이 진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단속반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스마트칩이다. 걸린 사람들이 칩을 삼켜버리는 탓에 증거를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행해지는 검열은 엄청난 인원과 조직이 전국적으로 1년 내내 동원되는 제도다. 생산을 장려하거나 사회의 활력을 높이는 활동도 아니다. 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수단이다. 그런 일에 이만한 비용과 시간을 이토록 비효율적으로 집행하는 사회가 21세기에도 남아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전기밥솥과 에어컨, 전기담요를 쓰다가 반역자로 몰려 하루아침에 가족 전체가 산간벽지로 추방당하는 삶. 고함과 더불어 우당탕탕 문을 두드리는 공포의 음성은 오늘도 북한 주민의 새벽잠을 해치고 있을 것이다.⊙

: 장원재  배나TV 대표

 

10-14 블룸버그 “北 돼지열병 대재앙 진입… 당국은 은폐”

주민 동요 우려기세 잡혀주장” “북한은 아프리카돼지열병(ASF)으로 인한 대재앙에 진입하고 있다.”


블룸버그뉴스가 13북한이 돼지열병 확산을 국제사회로부터 은폐하고 있다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북한은 5 30일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돼지열병 발생 사실을 최초 보고했다. 폐쇄적인 북한이 자국의 전염질병 발병 사실을 외부에 자발적으로 알린 것은 이례적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이미 돼지열병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됐던 것으로 보고 있다. 돼지열병은 북한 전역에서 발생했으며 중국과 접경인 평안도 지역에서는 야생 돼지까지 모두 도살 처분돼돼지 씨가 말랐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북한은 현재돼지열병 기세가 잡혔다고 외부에 알리고 있지만 이는 은폐하기 위한 의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의 공동조사 제안을 거절한 것도 정보 유출을 꺼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 국영매체에서는 돼지열병 보도가 사라진 지 오래다.


가장 큰 피해자는 북한 주민이다. 단백질의 80% 이상을 돼지고기에서 얻는 주민들의 영양 공급원이 막혔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에서는 국가가 경영하는 돼지농장보다 주민들의 개인적인 사육이 훨씬 많다. 탈북자들은돼지열병 자체보다 이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주민들의 영양 결핍, 굶주림 확산 등이 더 큰 문제라며생존을 위협하는 이번 사태야말로 북한 지도부에는 재앙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10.19 "말 한마디도 행성의 관심 모아" 북한, 김정은 우상화 점입가경

3일째 '백마 등정' 대대적 선전 "청년 장군 김일성 다시 뵈옵는 듯"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백두산 백마 등정' 3일째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지난 3월 김정은 스스로 지시한 '과도한 우상화 자제령'이 무색해진 모습이다. 전직 통일부 관리는 18 "인민들 피부에 와 닿는 성과·업적이 없으니 '상징 조작'을 통해 인위적으로 김정은의 위대성을 강조하고 있다" "미·북 관계 교착에 따른 제재 장기화로 민심 이반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노동신문은 이날 3면 전면에 '절세의 영웅 우리의 장군'이라는 제목의 정론을 싣고 "천하제일 명마를 타고 (백두산에) 오르신 그이의 거룩한 영상은 세계의 절정에 서신 현세기의 최강의 영수, 위대한 태양의 모습"이라고 했다. "김정은 조선" "민족의 영웅, 위대한 주인" "백두의 영웅" "세계를 다스리는 강대한 위인" 등 생소한 표현들이 다수 동원됐다.


신문은 특히 "일제의 백만 대군을 쥐락펴락하시던 20대의 청년 장군 빨치산 김 대장(김일성)의 그 모습 다시 뵈옵는 것만 같았다"며 김정은을 김일성의 반열에 올렸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당과 지도자, 국가를 동일시하는 '김일성민족' '김정일조선'을 잇는 '김정은조선'이라는 표현으로 김정은을 선대와 동일시했다"고 말했다.


신문은 또 "오늘처럼 조선의 말 한마디, 작은 움직임 하나마저 행성의 거대한 관심을 모은 때가 언제 있었던가"라며 김정은을 "(열강들도) 정중한 존대와 전례 없는 경칭을 아끼지 않는 걸출하신 위인"이라고 했다. 작년 초부터 대대적 평화 공세로 미·중·러와 연쇄 정상회담을 열며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난 것을 '최대 치적'으로 내세운 것이다. 앞서 김정은은 '하노이 노딜' 직후인 지난 3 "수령의 혁명 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우게 된다"며 자신에 대한 '과도한 우상화 자제령'을 내렸다.


한편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17일 공개한 '2019 세계 결핵 보고서'에서 북한을 결핵 고위험국으로 재지정했다. 지난해 북한에서 '후진국 병' 결핵으로 2만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주민 10만명당 80명꼴로 한국(4.8) 16.7, 세계 평균(20) 4배 수준이다.

조선일보  김경화 기자        

 

10.23 김정은 "기분 나쁜 금강산 남측시설 싹 들어내야…南 의존 정책 잘못"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의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고 북한 노동신문이 전했다. 북한이 올해 초 ‘개성·금강산의 조건 없는 재개’ 의지를 내비쳤던 것과 달리 말이 아예 달라진 셈이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이 금강산관광시설을 현지 지도하며 "금강산관광을 남측과 함께 진행한 선임자들의 의존정책이 매우 잘못됐다"고 비판했다고 23일 보도했다.

 

▲지난 16일 조선중앙TV가 공개한 사진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백두산에서 김여정(왼쪽)·조용원(오른쪽) 노동당 제1부부장과 함께 말을 타고 있다./연합뉴스·조선중앙TV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손쉽게 관광지나 내어주고 앉아서 득을 보려고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금강산이 10여년간 방치돼 흠이 남았다" "땅이 아깝다, 국력이 여릴 적에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의 의존정책이 매우 잘못됐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시설들을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해 싹 들어내도록 하고, 금강산의 자연경관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봉사시설들을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 금강산이 마치 북과 남의 공유물처럼, 북남관계의 상징, 축도처럼 되어 있고 북남관계가 발전하지 않으면 금강산관광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돼 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고 잘못된 인식"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훌륭히 꾸려진 금강산에 남녘동포들이 오겠다면 언제든지 환영할 것이지만 우리의 명산인 금강산에 대한 관광사업을 남측을 내세워 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대해 우리 사람들이 공통된 인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 9 19 9월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한 후 악수를 하고 있다,/평양공동취재단

 

()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1998 6월 통일소 500마리를 이끌고 북한을 방문해 금강산관광을 이뤄냈다. 하지만 20087월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 사건으로 중단됐고, 북한이 사과나 재발 방지 약속을 하지 않아 재개되지 못했다. 북한이 2010 3월 천안함 폭침 도발을 일으키자 이명박 정부는 '개성공단을 제외한 모든 남북 경협 중단'을 골자로 한 5·24 대북 제재를 가동했다. 개성공단의 경우 2016 1·2월 북한이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자 박근혜 정부가 대북 제재 차원에서 가동을 중단했다. 이후 5건의 고강도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들이 이어지며 북한과의 모든 경협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현대그룹에서 남북경제협력사업을 전담하는 현대아산은 관광 중단 이후에도 한동안 금강산에 머물면서 시설을 관리했다. 하지만 관광 중단이 예상보다 장기화하자 결국 2011 8월 완전히 철수했다. 현대아산은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열릴 때 행사 진행을 위해 방북하면 시설이 어떤 상태인지만 확인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금강산관광이 재개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있었다. 실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 1일 신년사에서 ‘개성·금강산의 조건 없는 재개’를 표명했다. 이에 남북 간엔 모든 문제가 해결됐고, 이제 미국 등 국제사회를 설득해 두 사업의 재개를 가로막고 있는 제재 완화를 본격 추진하겠다는 얘기로 풀이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1 10일 신년 기자회견 모두 발언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에 대해 "북한의 조건 없고 대가 없는 재개 의지를 매우 환영한다" "이로써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재개를 위해 북한과 사이에 풀어야 할 과제는 해결된 셈"이라고 말한 바 있다.

조선일보 허지윤 기자

 

11월 01일 “강도높은 대북 제재로 작년 최소 4000명 사망”

제재흉작에 작년 北 경제성장 21년만에 최악 추정 (CG)[연합뉴스TV 제공] 

 

여성평화운동네트워크, 대북제재 영향 다룬 보고서 발간

“가족 돌보미 겸 노동자 北 여성에게 악영향…유엔 안보리 제재 풀어야”

강도 높은 대북 제재로 북한 내 영양실조, 기초 의약품 부족 등을 다루는 유엔(UN) 프로그램이 차질을 빚으며 작년 한 해 최소 3천968명이 사망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여성평화운동네트워크는 31일 발간한 ‘대북제재로 인한 북한 주민의 피해와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the Human Costs and Gendered Impact of Sanctions on North Korea)’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히며 “이 중 3천193명은 5세 이하 유아이고, 72명은 임신한 여성”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실제 사망자 수는 이보다 많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1990년대 위기 이후 국제사회와 관계 맺기에 나서며 조금씩 개선된 북한 경제상황은 2016년 대북 제재가 본격화하며 크게 위축됐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북한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으로 수출은 2013년 30억달러에서 2018년 2억달러로 급감했다. 이는 중국이 대북 제재를 늘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제재 일환으로 모든 유엔 회원국이 올해 말까지 자국 내 북한 노동자들을 내쫓도록 하면서 2016년 11만∼12만3천명이던 해외 북한 노동자는 급속히 줄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제재는 특히 북한 여성들에게 악영향을 미쳤다. 북한에서 여성은 가족을 도맡아 돌봐야 하는 동시에 노동자로도 일한다. 두 가지 일을 해야 하는 탓에 남성보다 제재 영향에 더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제재 직격탄을 받은 북한 섬유산업에서 여성 노동자 비율은 82%, 소매업은 90%다. 여성이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까지 북한에서 시장 거래는 여성이 자신의 경제·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잠재적인 수단으로 여겨졌지만, 이 또한 제재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단체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국제법, 유엔 헌장, 인권과 인도주의 규범을 위반한 모든 제재를 풀어야 한다며 “현재 시행 중인 제재에 대한 인도주의, 성인지적 평가 및 인권 영향 평가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여성평화운동네트워크는 “대북 제재의 부정적인 영향을 다룬 최초의 종합적인 보고서”라며 “유엔 기구가 다루지 못한 현장의 정보와 공중보건, 경제, 역사, 여성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적 시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단체는 영문으로 작성한 이 보고서를 정부 부처와 각국 대사관에 발송할 예정이다. 또 한국어 보고서를 발간한 후 정부 부처와 국내 전문가들과 공식 간담회를 진행할 계획이다. 

 

여성평화운동네트워크는 올해 5월 전국여성연대,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YWCA연합회를 중심으로 구성돼 발족했다. 한반도 종전과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한 활동을 벌인다. 

< 연합뉴스>  문화일보

 

 

11.05  월간조선 11월 호

■마약의 나라’ 북한 - 주민의 30%가 마약 상복 

⊙ 김일성, “마약 생산은 美 제국주의와 싸우는 새로운 방법”

⊙ 함흥은 ‘두부 만드는 집보다 마약 제조집이 더 많다’ ‘주민의 60%가 마약 제조에 관여’

⊙ 마약은 가정상비약, 미용치료제, 선물, 뇌물 등으로 활용

⊙ 국내 유통 마약 중 최소 30~40%가 북한산일 것으로 추정

 

張源宰

1967년생. 고려대 국문학과 졸업, 영국 런던대학 연극학 박사 / 前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경기파주영어마을 사무총장, TV조선 〈돌아온 저격수다〉 진행. 現 배나TV대표 / 저서 《끝나지 않은 축구 이야기》 《오태석 연극: 실험과 도전의 40년》 《배우란 무엇인가》 등

 

▲2013년 12월 18일 울산지검 특별수사부는 탈북자로 구성된 필로폰 밀수조직을 적발했다. 사진=뉴시스

 

  북한은 ‘마약의 나라’다. 미국 국무부의 2017년 〈국제마약통제보고서〉는 “필로폰이 북한 내 비교적 광범위한 지역에서 생산·소비되고 있으며, 대부분 독립적인 범죄조직이 그 공급을 맡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각계각층에서 마약을 널리 사용하고 있으며, 특히 중국과의 국경지대에서 생산과 소비가 확산되고 있다는 뜻이다.
 
 
북한 전체 주민의 30%가 마약을 상복한다는 보고도 있다. 북한인권정보센터 이관형 연구원의 조사결과다. 그는 “전() 세계 유통 아편의 80~90%를 생산하는 아프가니스탄도 주민의 3~4%가 마약을 하는데, 30%가 마약을 상용한다는 것은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수치다. 참고로 한국은 0.2%, 중국은 0.5%가 마약 사용자로 추정된다”고 말한다. 과장이 아니다.
 
 
북한에서 수의사·축산공무원으로 일했던 조현씨, 신경내과 의사이자 위생방역소 공무원으로 일했던 최정훈씨. 두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마약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을 기준으로 하면 북한에서 마약을 안 해본 사람은 없다”고 한다.
 
 
그 이유가 있다. 북한 주민의 26.6%는 마약을 치료제로, 26.4%는 마약을 각성제 혹은 가벼운 환각제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위 두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진통제나 감기약을 드신 적이 있습니까?’ 혹은 ‘커피나 에너지드링크를 드신 적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가 ‘그렇다’고 답하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고난의 행군’ 이후 확산  
 

북한에 마약이 범람하는 것은 북한 당국의 책임이다. 1990 1 8, 김일성이 지시했다. “인민들의 생활 향상을 위해 백도라지를 많이 심어 외화벌이를 하라.
 
 
금수산 경리부 당()위원회가 〈백도라지(양귀비) 농장을 맡는 것에 대한 교시 전달〉이라는 문건을 내려보내 북한 전역에 당국이 관리하는 양귀비 농장이 생겼다. ‘백도라지’는 김일성이 만든 이름이다. 양귀비를 양귀비라 할 수 없으니 슬쩍 돌려서 말한 것이다.
 
 
김일성도 마약이 위험한 물건이라는 것은 모르지 않았다. 그는 “마약 생산은 미() 제국주의와 싸우는 새로운 방법”이라고 했다. 마약을 퍼뜨려 자본주의 나라 국민을 타락시키고 자기는 마약 밀수출을 통해 돈을 벌겠다는 의미였다.
 
 
문제는 북한산 마약이 ‘고난의 행군’ 이후 내부에서 대량으로 소비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나라 국민들이 아니라, 북한 주민이 타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조 주체가 당국에서 민간으로 확산되며 마약 소비층이 불 번지듯 늘어났다는 점도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양귀비는 북한 주민에게 친숙한 물질이다. 전국적으로 재배한 아편은 실제로 의약품을 만드는 데 쓰였다. 청진 나남제약, 함흥 흥남제약 공장에는 아편만 관리하는 특수직장, 이른바 1직장이 있었다. 처음에는 아편진을 수출했고, 나중에는 기술이 늘어 모르핀·헤로인을 가공생산해 외국에 팔았다. 아편꽃·아편대 등 나머지 부산물로는 설사약 등 대중약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공급했다.
 
 
‘고난의 행군’ 전후, 각 도() 수의사업방역소에 ‘약초를 캐서라도 진료하라’ ‘자체적으로 약을 생산하라’는 지령이 내려왔다. 사람 먹을 약도 없던 시절이다. 수의방역소 텃밭의 50%가 아편 재배에 할당되었다. 수의사 자격증이 있고 가축 치료에 종사한다고 인정되는 사람은 자기 집 마당에 양귀비를 심어도 단속하지 않았다. 여기서 나온 아편은 가축뿐 아니라 사람을 위한 설사약·진통제로도 쓰였다.
 
  2000
년대 초 국제사회 통제 후 마약 합성 기술이 주민에게 이전되었다. 북한에서는 정식으로 만든 제품은 ‘중앙제품’, 민간이 제조한 제품은 ‘8·3’이라고 한다. 8·3’이란 1984 8 3일 시작된 “자투리 자재를 이용해 추가로 상품을 만들자”는 ‘8·3 인민소비품 창조운동’에서 나온 말이다. 돈을 내고 소속 직장에 나오지 않으면서 자체 활동을 통해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을 ‘8·3노동자’, 이들이 만든 물품을 ‘8·3제품’이라고 한다.  


 
산업화한 마약 제조  

  모든 물건과 마찬가지로, 마약도 8·3제품이 있다. 모르핀은 북한 장마당 어디에서든 구입할 수 있다. 중앙제품은 앰풀병이 깨끗하고 병입(甁入)도 기계로 한다. 8·3제품은 어딘지 모르게 엉성하다. 하지만 시장의 승자는 8·3제품이다. 가격만 싼 것이 아니다. 중앙제품은 마약 함유량이 정량이지만, 8·3제품은 정밀측정이 불가능하니 함유량을 더 넣어 강한 약효(?)로 승부하기 때문이다.
 
 
약효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경쟁원리가 작동한다. 민간 제조 마약은 효능에 따라 A, B, C급으로 나뉜다. A급 판정을 받으면 그 제조자가 만든 약의 가격이 오른다.
 
 
마약이 워낙 전국적으로 퍼지다 보니, 순도와 품질을 판별해주는 감별사도 있다. 감별사는 본인이 샘플(?)을 가지고 공짜로 마약을 하고, 제조자가 갖다 준 마약을 팔기도 한다. 이른바 ‘소분(小分)집’이다. 아편, 모르핀, 헤로인을 모두 파는 마약 소매상이다. 1회 흡입량으로 나누어 파는 가게라는 뜻이다. 최근에는 현장판매 이외에 전화주문, 배달도 한다.
 
 
아편, 모르핀과 마찬가지로 헤로인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모르핀은 앰풀로 팔고, 헤로인은 가루로 판다. 민간에서 가장 많이 만드는 마약은 아편, 모르핀, 헤로인과 출발물질이 다른 필로폰이다. 운반도 쉽고, 제조과정이 상대적으로 간단하며 이익도 가장 많이 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거래되는 필로폰 가격은 1g(10회 사용분) 17000원이다. 한국에서 같은 분량 거래가격은 31~60만원이다. 필로폰 1g이면 식량 30kg을 구입할 수 있다.
 
 
초기에는 중국에서 필로폰 제조에 필요한 재료인 염산에페드린을 수입했다. 국제사회 단속 이후에는 자체 대체물질을 개발해 가격을 낮추고 효과를 높였다. 그렇게 만든 자력갱생 간고분투형 마약이 바로 얼음, ‘빙두(氷豆)’다.
 
 
돈주가 3000~5000달러를 투자하고 약대생에게 제조를, 보안원(경찰)에게 뒷배를 맡겨 기업형으로 제조하는 곳도 많다. 함흥은 ‘두부 만드는 집보다 마약을 제조하는 집이 더 많다’는 말이 있고, ‘주민의 60%가 마약 제조에 관여한다’는 말도 있다. 60%가 전부 마약제조자라는 것은 아니다. 원료공급자, 1차 판매자, 지방 대상 판매자, 망책, 보조 망책 등을 모두 합한 관련 산업(?) 종사자 총합이 그 정도일 것이라는 추정이다. 한동안은 ‘얼음’이 대세였지만, 최근에는 아편이 다시 유행이라고 한다.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가정상비약이자 기능성 물질

한편 북한에서 마약이 범람하는 이유는 의약 대체용품으로 마약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관형 연구원에 따르면, 다른 나라는 마약 A를 마약 B로 대체하지만 북한은 병치료(아편), 진통제(필로폰)로 마약을 쓴다. 북한에서 아편은 가정상비약이다. 설사나 복통, 치통, 신경통, 대장염, 부인병에는 아편 달인 물을 마시거나 진액을 불에 달궈 흡입한다. 마약인 줄은 알지만 ‘중독 안 된다, 중독이 되어도 끊으면 된다’고 가볍게 생각하고 계속 복용한다. 가히 ‘만병통치약’인 셈이다. 시골에서는 역삼(대마초)으로 쌈을 싸 먹으면 정신이 맑아진다고 하며, 씨를 볶아 간식으로 먹기도 한다.
 
 
최근에는 마약이 상비약(?)을 넘어 다른 용도로도 널리 쓰인다. 이른바 ‘기능성 물질’로 진화한 것이다. 일단 젊은 여성들 사이에 미용치료제로도 널리 쓰인다. 예뻐진 여성을 보고 “한 코 했누나”라고 농질을 하는 것은 이야깃거리도 아니다. 잠을 쫓는 데 특효가 있다고 알려진 탓에 장거리 운전기사, 2~3일 연착하는 기차 안에서 도둑으로부터 짐을 지켜야 하는 달리기 장사꾼들도 ‘얼음’을 한다. 국경지대 경비군인도 필로폰 투약 후 근무를 서는 경우가 많다. 밤샘하는 상가(喪家)라고 예외가 아니다.
 
 
최근 유행하는 자영업 한증탕(사우나), 비법(非法) 도박장, 매춘업소는 마약 소비의 온상이다. 도핑이 없어 체육경기 선수들도 마약을 하는 선수가 부지기수다. 이 에리사의 라이벌이던 1975, 1977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단식 우승자 박영순(朴英順·1956~1987)의 사인(死因)이 ‘마약남용’이라고 한다. 북한에서 마약 최대 소비층은 업무처리량이 많은 상류층 간부들과 보안원, 사법일꾼들로 중독자가 상당하다는 보고가 있다. 단속한 마약 일부를 자신들이 자체 소비하기 때문이다.
 
 
마약은 북한에서 ‘쌀보다 구하기 쉽다’. 생일선물, 결혼식 부조, 승진용 뇌물로도 마약이 최고다. 마약이 유행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환금성(換金性)이 가장 좋기 때문이다. 인플레가 심하던 1990년대 동구권에서, 말보로, 던힐 등 담배는 화폐처럼 쓰였다. 북한 국돈(국내 화폐)은 기능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다. 달러나 위안화 등 외화는 유통량이 충분하지 않다. 부족한 유통량을 보완하기 위해 북한에서 외화처럼 쓰이는 물건이 두 가지 있다. 휘발유표와 마약이다. 마약이 곧 화폐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또 다른 쓰임새도 있다. 과거에는 어떤 담배를 피우는지가 북한 남자에게 신분의 상징이었다. 국산 담배를 양담배 곽에 넣고 다니는 것은 북한 남자들 사이에서 유행한 허세 가운데 하나였다. 최근에는 기준이 ‘어떤 마약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전당(全黨), 전군(全軍), 전민(全民)’이 약을 하는 것이다. ‘얼음 때문에 망할 것’이라는 탄식은 북한 고위층 사이에서 널리 퍼진 위기감을 표현하는 말이다.    


 
중국과 국내로 확산 

  북한산 마약은 북한 내에서만 소비되지 않는다. 지금도 대한민국으로 흘러들고 있다. 그래서 문제다. 윤상현 의원은 2012년 국회에서 “2010년 국내 적발 외국산 필로폰 8200g 57.3%가 중국에서 반입되었다. 이 중 상당량이 북한산으로 추정된다”고 발언했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다. 마약 사범도 매년 증가 추세다. 매년 12000~16000명 정도가 검거된다. 제조, 밀수, 판매, 운반, 흡입 등을 저지른 범죄자다. 전문가들은 국내 유통 마약 중 최소 30~40%를 북한산으로 본다.
 
 
중국 지린성(吉林省) 옌지(延吉)의 마약중독자 수는 1990년대 중반 44명에서 2010 2100명으로 급증했다. 중국 전역의 마약중독자 70%는 헤로인 중독자지만, 지린성은 90%가 필로폰 중독자다. 북한 마약이 널리 퍼진 결과다.
 
 
중국으로 밀수입된 북한산 마약의 상당량이 한국으로 반입된다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 따라서 북한 마약 문제는 통일 후의 문제이면서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통일 후 단속비용, 사후(事後) 수습비용을 생각한다면 경로 차단, 교육, 생활조건 개선, 교육 등 1, 2차 가동 프로그램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11.15  금강산 시설 철거 '최후통첩'···정부 감추자 북한이 공개했다

지난 7일 북한 선원 2명을 송환하는 과정에서 ‘몰래 송환’ 의혹을 받고 있는 정부가 금강산 관광과 관련한 북한의 ‘최후통첩’을 공개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5일 ‘금강산은 북과 남의 공유물이 아니다’라는 논평에서 “우리(북한)의 금강산은 민족 앞에, 후대들 앞에 우리가 주인이 되어 우리가 책임지고 우리 식으로 세계적인 문화관광지로 보란듯이 훌륭하게 개발할 것”이라며 “금강산 관광 개발에 남조선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3일 금강산을 현지지도 하며 "남측 시설물들을 싹 들어내라"고 지시했다. [사진 조선중앙통신]

 

15일 조선중앙통신 논평 "11일 최후 통첩했다" 13~14일 세 차례 대미 담화이어 금강산 공세 정부는 최후 통첩 사실 공개하지 않아 7일 선원 북송 이어 또다시 은폐 논란 확산

통신은 “시간표가 정해진 상황에서 우리는 언제까지 통지문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허송세월 할 수 없다”며 “11일 남조선 당국이 부질없는 주장을 계속 고집한다면 시설철거를 포기한것으로 간주하고 일방적으로 철거를 단행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고 밝혔다. 지난달 2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금강산을 현지지도하며 “남루한 남조선 시설물들을 싹 들어내라”고 지시한 뒤, 북한은 문서교환 방식으로 날짜를 정해 철거하라는 통지를 했다. 이에 정부는 실무회담ㆍ공동 점검단 카드를 제시한 데 이어 개별관광 방안 검토, 김연철 통일부 장관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면담(14일) 등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는데 했는데, 북한이 이를 “깊이있는 논의니 공동점검단의 방문필요니 하고 오리발을 내밀었다”거나 “귀머거리 흉내에 생주정까지 하며 우리 요구에 응해 나서지 않고 있다”고 비하한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주장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정부의 입장에 대해 ‘얼굴을 보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에 더해 압박 수위를 한단계 높인 것으로 보인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14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만나 금강산 관광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특히 북한이 담화가 아닌 ‘기사’형식을 취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통첩’을 정부가 4일 동안 침묵하자 자신들이 공개하고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남측 정부가)가을뻐꾸기 같은 소리를 하기에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아 10월 29일과 11월 6일 우리의 확고한 의사를 거듭 명백하게 통지했다”며 “하라고 할 때에도 하지 못한 금강산관광을 모든 것이 물건너간 이제 와서 논의하겠다니 말이나 되는가”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문을 열고 기다릴 때는 움쩍않고 있다가 막상 문을 닫자 ‘금강산을 더욱더 자랑스럽게 가꾸어 나가자는 입장’이라고 귀간지러운 소리를 내며 들어오게 해달라고 계속 성화를 먹이니 보기에도 민망하다”며 “멀쩡하게 열린 귀를 닫아매고 동문서답하며 벙어리 흉내를 내는 상대에게 더이상 말해야 입만 아플 것”이라는 비난을 이어갔다.   

 

남북이 통지문을 주고 받는 동안 통일부는 “협상에는 상대가 있는 법이다. 협상중인 사안을 일일이 공개할 수 없다. 상황이 바뀌면 소상히 공개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북한이 ‘최후 통첩’에 나섰음에도 정부가 이를 알리지 않은 건 은폐의혹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17일 미국을 방문하는 김연철 장관이 미국 관계자들과 금강산 관광과 관련한 문제도 논의할 예정인데, 북한과 추가적인 협의를 염두에 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의 최후통첩 공개와 관련해선 연말 공세로 보는 분석도 있다. 전현준 국민대 겸임교수는 “김 위원장이 금강산을 방문해 남측 시설물을 들어내라는 지시를 한 만큼 실무자들은 속도를 낼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 이행과 함께 연말을 앞둔 총공세에 나선 측면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13일과 14일 야밤에 세 차례의 담화를 통해 미국의 태도변화 주문에 이어 금강산으로 대남 압박에 나섰는데, 이는 김 위원장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겠다”는 연말 시한을 6주 가량 남겨놓고 14~15일 서울에서 열리는 한ㆍ미 군사위원회(MCM)과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을 기해 공세에 나선 것이란 얘기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월간조선 12월 호 장원재의 북한요지경

■“처음부터 끝까지 남조선을 깔아뭉개려고 대놓고 나온 것” 

⊙ “할 수 있는 일은 이번에 다해서 남조선에 본때를 보이자고 작정한 것”

⊙ “남쪽 유명한 선수들이 실물로 돌아다니는 걸 눈앞에서 보고 왔다면 북한 전역에 무슨 말이 얼마나 돌아다닐지, 짐작도 할 수 없어”

⊙ 김정은의 금강산 시설 철거 지시에 ‘야, 우리가 금강산 통해서 정말 돈을 벌고 싶은 모양’이라는 반응

 

張源宰

1967년생. 고려대 국문학과 졸업, 영국 런던대학 연극학 박사 / 前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경기파주영어마을 사무총장, TV조선 〈돌아온 저격수다〉 진행. 現 (사)배우고나누는무지개 대표 / 저서 《끝나지 않은 축구 이야기》 《오태석 연극: 실험과 도전의 40년》 《배우란 무엇인가》 등

 

▲지난 10월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카타르월드컵 2차 예선에서 공을 다투는 손흥민(왼쪽) 선수와 북한의 한광성. 경기는 치열했지만 관중은 없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최근 들어 북한이 보인 특이행태가 있다. 지난 10 15일 월드컵 2차 예선 축구경기와 “금강산 남쪽 시설을 싹 들어내라”고 한 1023일자 김정은의 발언이다.
 
  2010
년 월드컵 3차 예선, 최종 예선 때 한국과 북한은 같은 조()에 편성되었다. 북한은 두 번의 홈 경기를 모두 상하이(上海)에서 개최했다. 이번 경기는 그래서 평양에서 처음으로 열린 남북 간의 A매치였다.

 

FIFA(국제축구연맹) 규정에 따라 국기 게양, 국가(國歌) 연주가 필수였다는 뜻이다. 지아니 인판티노 FIFA 회장까지 평양으로 날아갈 만큼 관심을 모았던 경기지만 결과는 괴이했다. ()관중·무중계에 격투기와 다름없는 거친 플레이가 난무했기 때문이다.
 
 
금강산과 관련된 김정은의 느닷없는 분노도 연구대상이다. 황당하고 해괴한 일일수록 이른바 내재적(內在的) 접근법으로 살펴보아야 하는 법. 북한 내외 소식통과 전화 연결을 한 이들로부터 취합한 내용을 정리한다.  


 
“남조선을 깔본 것”

― 월드컵 예선 경기가 열린다는 것은 북한 주민이 알고 있었나.
 
“북한 주민은 모른다. 관계자만 알았다. 아예 모르는 주민이 절반 이상이고, 그 나머지도 소문만 들어서 어렴풋이 아는 것이다.
 
 
― 이번에는 예전과 달리 그래도 평양에서 경기를 개최했다.
 
“남조선을 깔본 거다. 2010년 월드컵 때는 그래도 남쪽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예전 여자축구 때처럼 4~5개국이 모여서 대회 하면 다른 나라 때문에라도 함부로 굴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번에는 북·남 둘이서만 만난 경기 아닌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번에 다해서 남조선에 본때를 보이자고 작정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여자축구 경기란 2017 4 7, 아시안컵 본선 진출권을 놓고 평양 김일성경기장(이번에 무관중 경기가 열린 곳)에서 치른 경기를 말한다. 결과는 1 1 무승부. 남·북한, 우즈베키스탄, 홍콩, 인도 등 5개국이 풀리그를 벌여 1위 팀만 본선에 진출했는데, 한국은 31무로 북한과 동률을 이뤘지만 골득실에서 앞서 북한을 제치고 본선에 진출했다.
  
 
― 무슨 뜻인가.
 
“간부들은 남조선과 축구경기 하는 것을 다들 알았다. 자기 위신을 높일 기회인데, 그냥 넘어갈 김정은이 아니지. 북한에서는 남을 깔아뭉개야 위신이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특히 남조선과 관련된 일은 더더욱 그렇다. 우리가 깔봤을 때 저쪽이 별 반응을 안 보이면 우리가 남조선을 눌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공항이나 호텔에서 남쪽 선수들에게 함부로 군 것은 김정은이 간부들 보라고 일부러 시킨 것이다.
 
 
― 그것이 이번 경기의 목적이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처음부터 끝까지 남조선을 깔아뭉개려고 대놓고 나온 것이다.
 
 
― 왜 관중 없이 경기를 했을까.
 
“경기에서 지기라도 하면 난리가 나니까. 여자축구는 우리가 이긴다는 자신감이 있어서 관람을 허용한 거다. 남자축구는 다르다. 축구는 북한의 자존심이다. 평양에서 열리는 국제경기는 이기면 당연, 비기면 진 것이나 진배없다고 여긴다. 그런데 남조선에 진다? 그걸 수만 명이 동시에 본다? 아무도 뒷감당할 수 없었을 거다. 무관중 경기였지만 한국이 이긴다면 이 경기에 관여한 북한 조직성원들 전부 어디로든 끌려갔을 거다.  


 
1990년 경평 축구 때 15만 관중 선별, 사전 교육”  

  ― 경기에 졌다면 한국 선수들도 반나절 이상 출국을 막고 그랬을까.
 
“아무리 북한이라도 그렇게까지는 못 한다. 이번처럼 몇 시간 잡아두는 건 가능하겠지만…. 다만 남조선이 이겼다면, 경기 막판에 다리를 부러뜨리는 날아차기가 들어갔을 거다. 경기에 지더라도, 그런 식으로 투쟁심을 보이면 위에서 용서해줄 테니까. 국제축구연맹에서 선수단이야 징계를 먹겠지만, 일단 감독과 선수가 살고 봐야 하지 않겠나. 물론 이겼다면 대대적으로 홍보했을 것이다.
 
 
김일성경기장은 해방 후 김일성이 북한에 들어가 처음 군중집회를 하고 연설을 했다고 알려진 곳이다. 북한이 나름대로 신성시하는 곳이다. 개칭 전 명칭은 모란봉경기장이다. 몇 번의 개축을 거치고 명칭을 김일성경기장으로 바꾸었다. 본래 명칭은 평양 기림리(箕林里)운동장이다. 조선총독부는 1926년 히로히토(裕仁)의 황태자 책봉을 기념해 남선(南鮮)에 한 곳, 북선(北鮮)에 한 곳, 국제규격의 운동장을 건설했다. 남쪽의 경기장은 경성운동장(옛 동대문운동장), 북쪽의 경기장이 바로 기림리운동장이다.
 
 
― 경기 결과 말고 두려웠던 것이 있을까.
 
“있다. 사람 수만 명이 모였다 흩어지면 아무래도 말이 퍼지기 마련이다. 남조선 선수들 외모나 머리염색, 유럽에서 뛴다는 선수들 이야기들이 번지는 걸 통제할 방법이 없다. 다들 남조선 드라마를 보고 있고, 남조선 사람들이 잘산다는 걸 안다. 남조선 사람들에 대한 선망의 분위기가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다. 일단 남쪽 말투를 흉내 내야 젊은 축 사이에서 제대로 된 사람 대접을 받으니까. 그런데 남쪽 유명한 선수들이 실물로 돌아다니는 걸 눈앞에서 보고 왔다면 북한 전역에 무슨 말이 얼마나 돌아다닐지, 짐작도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 평창 동계올림픽 때는 김여정도 내려오고, 유화적인 분위기 아니었나.
 
“그거야 미국을 핵() 회담에 끌어들이기 위해 한 것이지.
 
 
1990년 경평 축구 때는 15만 관중이 평양 능라도경기장을 가득 채웠는데.
 
“그때는 우리가 대남(對南)공작에 자신이 있던 때다. 그때도 15만 관중을 일일이 선별하고 사전 교육을 철저히 했다. 지금과는 사정이 다르다.
 
 
― 당신은 이번 경기 정보를 어떻게 알았는가.
 
“중국 쪽 대방(무역업자)이 알려줘서 알았다. 


 
“남쪽에다 돈 내라는 얘기”

▲현대아산이 금강산에 지은 시설물들을 철거하라는 김정은의 지시를 북한 주민들은 금강산 이용해 돈 벌고 싶은 모양이라고 받아들인다고 한다. 사진=뉴시스/《로동신문》 캡처.

 

 ― 금강산 관광, 김정은은 왜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보는가.
 
“남쪽에다 돈 내라고 하는 소리지. 현대아산이 진짜로 철수한다고 하면 말이 달라질 거다. 뭐는 가져가도 되고, 뭐는 절대 가져갈 수 없고…. 다르게 나올 거다. 국경 연선 소식통들은 ‘야, 우리가 금강산 통해서 정말 돈을 벌고 싶은 모양이다’라고들 한다.
 
 
― 김정은 발언은 한국 정부에 실망했다는 뜻일까.
 
“자기들 요구를 들어달라는 소리다. 간부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미국에 매달린 사람으로 본다. 대한민국에 반공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고, 미국 때문에라도 우리 하자는 대로 하지 못할 것을 안다. 그래서 ‘연말까지 시간을 줄 테니 결단을 내려라’ 한 것이다. ‘불과 불’ 운운하며 협박도 하지 않았나.
 
 
― 국제제재 해제가 어렵다는 걸 북한 당국도 모르지 않을 것 같은데.
 
“알지. 그러니까 국제제재 무시하고 남조선보고 우리를 도우라고 하는 것이다.
 
 
― 그러다가 한국도 국제제재 대상이 되면 남북이 같이 망할 수 있다.
 
“그거야 우리가 알 바 아니라는 거겠지. 어차피 남조선은 우리에게 수복해야 할 대상일 뿐이라고 교양한다.
 
 
이번에 전화 통화한 대상들의 태도는, 전해 듣기로 친()대한민국도 친북한도 아니었다. 이들은 누구일까? 이들이 대표하는 흐름은 어떤 것일까? 다음은 북한에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기자로 일하다 1997년 탈북해, 1999년 한국에 온 김길선 기자의 분석이다.   


 
김정일, “함북 버려도 북조선 유지할 수 있다”

  〈함경북도와 양강도 등 변경지역은 단속이 느슨하다. 남한 드라마를 보다 걸려도 ‘이렇게 대놓고 보면 어떻게 하나. 좀 숨어서 보라’고 넘어가고, ‘가족들이 남쪽에 갔더라도 너만은 가지 마라. 송금액도 우리가 단속 안 하겠으니 조금만 고여 달라’고 할 정도다. 여기서는 김정은이 밀리는 것 같다. 아무리 사상이 투철한 간부를 내려보내도 몇 개월이면 현지 지역사회 문물로 동화되고 만다. 중국 쪽에서 들어오는 문물과 정보, 소문을 막을 길이 없는 것이다. 오죽하면 김정일이 1996년 ‘함경북도를 버려도 북조선 유지할 수 있다’고 했겠는가. 제일 먼저 배급이 차단된 곳도 함경북도와 양강도고 탈북자도 80% 이상이 이 두 곳 출신이다. 여기서는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최고다. 다른 지역에 대한 통제는 아직까지는 살아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함경북도와 양강도 사정을 북한 전역의 사정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물론, 철권통제에서 벗어난 지역과 주민들이 생겼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적지 않은 의미가 있을 터이다.〉⊙

 

 

월간조선 12월 호

■최근 북한군 정치장교들에게 배포된 ‘학습제강’ 자료 분석

정치장교 학습자료에 김정은 친모 ‘평양의 어머니’ 고용희 최초 등장

“지금 내 옆에는 내가 어려울 때 의지할 수 있는 믿음직한 동지들이 필요합니다. 지난 시기 장군님 옆에는 어려울 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동지들이 많았습니다. 내 옆에도 그런 일군들이 많아야 할 텐데 없어 못내 가슴 아픕니다.”(‘학습제강’ 자료 중 김정은 발언)

 

⊙ 北 군 내부 술렁… “미사일 말고 인민생활 돌봐야” 불만

⊙ 美·北 회담 이후 북한 내부 김정은에 대한 불신 커져

⊙ 북한 軍 간부들 김정은 지시에 불만 속출

⊙ 김정은 軍內 정치장교들 정치사상 단속 나서

 

  

북한은 최근 좌천됐던 김영철을 내세워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미국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 대북(對北)제재를 해제하고 북한 주민들의 동요를 막기 위함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김정은은 싱가포르 회담과 하노이 회담에서 성과를 얻어내지 못했다. 특히 하노이 회담이 결렬되면서 이에 대한 불만은 북한 주민뿐만 아니라 북한군에서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간조선》은 지난 6월 북한군 정치장교들에게 배포된 ‘학습제강’ 자료를 입수했다. 이는 ‘정치 일군들 속에서 혁명화를 더욱 다그칠 데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연대(聯隊) 단위 이상 장교들에게 배포된 자료다. 북한군에서 정치장교들은 부대 내 모든 군인을 감시하는 한편 정치사상, 즉 김씨 일가에 대한 세뇌교육과 사상교육을 동시에 하고 있다.
 
  연대급 이상 정치장교면 북한에서는 높은 지위다. 북한의 모든 정치장교는 인민무력성 소속이 아니라 총정치국 소속이다. 북한군 부서의 서열은 인민무력성, 총참모부, 총정치국 순이었지만 어느 순간 총정치국이 1위로 부상(浮上)했다. 해당 자료는 총정치국 조직부에서 만든 것이다.
 
  자료에는 “인민군대를 더욱 강화발전시키자면 부대의 전반 사업을 당적으로, 정치적으로 지도하는 우리 정치 일군들이 그 누구보다도 투철한 혁명적 신념과 깨끗한 량심을 지니고 자기의 사명과 본분을 훌륭히 수행해나가야 한다”며 “(그런데) 최근 시기에만도 인민군대 안에서 신의와 량심을 판 배신자들이 나오고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의 령도 체계를 세우기 위한 사업에 지장을 주는 현상들이 많이 나타났는데 그 장본인들 속에는 우리 정치 일군들이 적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정은 지시에 불만 가진 북한군 장교들 늘어

▲2019 3 27일 제5차 조선인민군 중대장·중대정치지도원 대회에서 김정은이 연설하고 있다. 사진=인터넷 화면 캡처

 

북한에선 김정은의 말 한마디는 신의 명령이다. 특히 군은 절대복종이다. 그러나 최근 군 내부에서 김정은의 지시에 불만을 품은 세력이 생겨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은 지난 2월 하노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북한 경제 개선과 대북제재 해제를 꿈꿨다. 북한 주민과 군 또한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1차 회담에 이은 미·북 만남으로 상당한 기대를 했다. 하지만 전보다 못한 회담 자체의 결렬로 오히려 실망감이 더하다고 북한 주민들 입에서 나오고 있다. 학습제강은 이런 불만들이 북한군 정치 간부들 사이에서도 나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자료 내용을 살펴보자.

  〈당의 방침을 놓고 감히 후론질(훈시)을 하고 비조직적인 발언을 하다못해 적(한·미·일)들의 궤변을 그대로 옮기는 행동을 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께서는 지금 부대들에 나가보며 사관, 병사들은 최고사령관이 하라는 대로만 하겠다고 윽윽하는데 정세가 이렇다느니, 무엇이 어떻다느니 하면서 말질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사관 병사들이 아니라 윗 단위 일군들이라고 심각히 말씀하시었다. 어느 한 부대 정치위원은 부대 개편과 관련한 당의 방침을 놓고 그것이 현실에 맞지 않는 것처럼 떠벌이면서 자기 식의 견해와 대치시키는 행위를 하여 처리되었다.
 
  이는 북한군 내에서 적지 않은 장교들이 외부의 소식을 접하고 있고, 이에 동조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사실을 김정은까지 알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서 모() 부대 정치장교로 15년 복무하다 2014년 탈북한 김영회(가명)씨는 “북한군 내부에서도 장교들의 불만이 많다. 미래는 안 보이고 자꾸 어두운 터널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다”며 “그래서 장교들은 병사들 관리는 뒷전이고 어떻게 하면 더 빨리 출세할 수 있을지에 대해 머리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軍 내부서 “인민생활 어려운데 미사일 자꾸 발사해” 불만 나와

▲김정은이 제5차 조선인민군 중대장·중대정치지도원 대회 참석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인터넷 화면 캡처

 

북한은 2019년 들어 12차례 미사일 시험발사를 했다. 미사일 전문가인 독일 ST애널리틱스의 마르쿠스 쉴러 박사는 미사일 1대당 최소 100~150만 달러(12~18억원)의 비용이 들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100만 달러로 가정해도 이는 북한 전체 주민이 식량을 이틀 동안 먹을 수 있는 비용이다. 북한은 지난 5월부터 지금까지 20발에 가까운 미사일을 발사했다. 2000만 달러를 하늘에 날린 것이다.
 
  자료에는 이로 인한 군 내부의 불만 또한 담겨 있다. 관련 내용이다.
 
  〈지난해 어느 한 부대장 놈이 우리의 미사일 발사를 시비하는 적들의 망발을 그대로 옮긴 것으로 해서 처리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당에서 경종을 울렸지만 정치 일군들의 사상정신 상태 역시 떨떨하다 보니 이번에 또다시 어느 한 부대장이 ‘인민생활이 어려운데 미사일이나 자꾸 발사해서 뭘 하는가, 빨리 인민생활 문제나 풀었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망탕() 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이런 불만은 공개적으로 하기보다는 내부에서 친한 사람들끼리 하고 있다. 그런 불만들을 수집해 자료로 만들어 내려보낸다”며 “북한 정권은 이런 자료를 통해 정치장교들에게 경고하기도 한다. 이 자료도 최근에 북한군 내부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에 대해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자료에는 또 이런 내용도 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를 모시고 얼마 전에 진행한 포 사격 경기에 참석한 어느 한 단위의 일군들은 5발씩 공급하게 된 포탄을 15발씩 공급하여 사격하였는데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최고사령관 동지께서는 최고사령관이 직접 조직하고 지도한 연습에서까지 높은 점수를 맞으려고 요령주의를 하였다는 것은 매우 엄중한 비당적 행동이라고 엄하게 지적하시었다. 문제는 이 단위에도 정치 일군들이 있었지만 누구 하나 이에 대해 원칙적인 립장에서 투쟁하지 못하고 오히려 거기에 동조했기 때문에 이런 비정상적인 행위가 뻐젓이 감행된 것이다.


  北 서해함대 두 달 새 구축함 1, 전투함 4, 보조함선 2척 파손  

자료에는 최근 서해함대에서 구축함 1척과 전투함 4, 보조함선 2척이 파손된 정황도 들어 있다. 자료는 이런 일련의 사고에 대해 모든 책임이 정치장교들이 사업을 잘 하지 못해서 발생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해당 대목이다.
 
  〈지금 인민군대 안에서는 월남, 월경, 집단사상사건, 무기, 전투기술기재 도난 및 파손사고와 같은 엄중한 정치적 사고들이 련이어 발생하고 있다. 서해함대에서 발생한 구축함 파손 사고만 놓고 보아도 그렇다. 구축함 사고가 나기 한 달 전에 4척의 전투함선과 2척의 보조함선을 파손시키는 사고가 일어나 해군에서는 물론 전군적으로 떠들며 그와 관련한 대책들을 세우고 집행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해군사령부 안의 정치 일군들이 제구실을 못 하다 보니 그로부터 한 달 만에 서해에 한 척밖에 없는 구축함까지 파손시키게 된 것이다.
 
  북한 해군은 동해와 서해에 구축함 1척씩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 탈북자에 따르면 특히 서해는 동해와 비교하면 전투함과 보조함선 등 배가 부족하다고 한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근무하는 한 고위 탈북자는 “현재 북한은 동해와 서해에 구축함 1척씩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이 구축함 등 파손 사고가 군인들이 훈련 도중 발생한 사고이긴 하겠지만, 서해함대에는 큰 손실이다”며 “한데 이 사고가 훈련 중 발생한 사건이 아니고 병사들이 일부러 파손시켰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내 옆에 어려울 때 믿고 의지할 동지들 없다”  

  김정은은 혼자다. 더 이상 김정은 옆에는 그에게 충성할 사람이 남아 있지 않다. 이유는 김정은의 잔악함 때문이다. 그의 옆에는 고모부인 장성택과 최룡해, 황병서, 이용호, 김양건, 김영철 등이 함께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김정은 손에 죽임을 당했다. 이 중 생존자는 최룡해와 김영철뿐이다. 그러나 최룡해는 1선에서 물러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직을 맡았다. 그동안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김영남이 했다. 이 자리는 북한에서 유명무실한 직위다. 최룡해는 건강상의 문제로 2선으로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철도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 회담 이후 6개월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회담 결렬 책임으로 처형당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다시 북한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영철의 첫 행보는 미국을 압박하는 것이었다. 이는 김정은이 김영철을 다시 미국과의 대화에 활용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만약 김영철이 다시 미·북 대화를 주도해 실패로 돌아간다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의 측근들을 모두 숙청시킨 김정은은 최근 자신의 여동생인 김여정과 현송월을 대동하고 북한 언론에 자주 등장했다. 자료에 따르면 김정은은 최근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지금 내 옆에는 내가 어려울 때 의지할 수 있는 믿음직한 동지들이 필요합니다. 지난 시기 장군님 옆에는 어려울 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동지들이 많았습니다. 내 옆에도 그런 일군들이 많아야 할 텐데 없어 못내 가슴 아픕니다.
 
  주변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김정은에게 없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내용이다. 현재 김정은 주변에 있는 사람의 대부분은 김정일의 사람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주변에 든든한 뒷배들이 있었다. 김일성은 항일빨치산 시절 함께 싸웠던 동료가 있었고, 김정일에겐 아버지의 동료와 그 자식들이 함께했다. 그러나 지금 김정은 옆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그의 동생 김여정뿐이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쫓겨 40년을 해외에서 전전하던 삼촌 김평일을 불러들인 것 또한 이를 증명한다.
 
  자료는 〈인민군대 안의 정치기관들과 정치 일군들이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어버이 수령님께서 전쟁의 그 엄혹한 시기에 인민군대 안에 총정치국을 내오도록 하시고 중대들에까지 정치 일군 직제를 내오도록 하신 것은 바로 수령을 받들고 수령의 사상과 령도를 실현하는 데서 기수가 되고 손발이 되기를 바래서다〉며 〈그런데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를 받드는 데서 그 누구보다도 혁명적 신념이 투철하고 사상적으로 견실한 최고사령관 동지의 제일동지, 제일전우가 되어 최고사령관 동지의 어깨에 실린 무거운 중하를 조금이라도 떨어뜨려야 할 우리 정치 일군들이 오히려 망탕 짓을 하여 최고사령관 동지께 걱정을 끼쳐드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치장교, 병사들 상대로 ‘입당’ 장사 만연

▲김정일이 자신의 세 번째 부인이자 김정은의 생모인 고용희와 현지지도에 나선 모습이다. 사진=인터넷 화면 캡처 

 

“정치 일군들은 그 누구보다 청렴결백한 품성을 소유하여야 한다.

  김정일이 한 말이다. 자료에 따르면 김정일은 〈어버이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생전에 우리 인민군대 간부들이 귀족화, 관료화되면 군대가 망하고 나라가 망한다고 하시면서 지휘성원들이 맨밥에 된장을 찍어 먹어도 혁명만 하면 그만이라는 각오를 가지고 청렴결백하게 살며 일할 데 대하여 간곡히 당부하시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북한의 정치장교들과 일반 장교들은 병사의 주머니를 털어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바쁘다. 먼저 인민군 총정치국에 소속된 정치장교들은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바로 병사들의 ‘입당’ 문제다. 북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노동당에 들어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특히 남자라면 가장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이 당증이다. 북한에선 당증이 없는 남자는 사내 구실을 못 한다고 평가한다. 노동당에 입당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가장 흔한 방법이 군에서 입당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10년간 군 생활만 해도 대부분 입당이 가능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입당하는 것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북한에서 입당하려면 사회에서는 당비서나 조직의 당 간부들의 추천이 있어야 한다. 군도 마찬가지다. 추천을 받아 입당원서를 내도 정치장교들이 서명해주지 않으면 당에 가입할 수가 없다. 병사들은 정치장교에게 잘 보이기 위해 뇌물을 바친다.
 
  2018년에 군 복무를 마치고 탈북한 20대 청년은 “지금 북한 사회에서도 그렇지만 군에서 입당하려면 정치위원이나 정치지도원에게 최소 1000달러 이상을 뇌물로 바쳐야 제대할 때 입당을 할 수 있다”며 “먹고살기도 어려운 병사들이 그 돈이 어디 있나. 집에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병사들은 문제가 없지만, 집 형편이 어려우면 입당은 생각도 못 한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북한은 군 복무 시 희망자에 한해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상급학교나 대학의 추천서 및 정치장교의 보증이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정치장교나 부대 지휘관들에게 바칠 뇌물은 필수다. 이 같은 현실에 집안 형편이 좋지 않은 병사들은 부대 식량을 훔쳐 팔거나 민가(民家)를 털어 돈을 마련한다. 자료에도 이러한 내용이 나와 있다. 어느 부대에 한 병사가 상급학교에 가기 위해 뇌물을 줬다가 발각이 됐다. 당시 그 병사의 자술서 내용을 자료에 첨부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상급학교 추천을 위한 사업을 하자고 하니 돈과 물자가 필요했다. 그것을 구입하는 제일 빠른 길은 중대의 쌀을 퍼내 가거나, 다른 군인의 피복을 채다(훔쳐다) 팔아먹는 것이었다. 그래도 모자라는 것은 주민지구에 나가 개인 집이나 농장, 기업소의 창고를 털어 보충했다.
 
  김정은 친모 고용희도 자료에 등장한다.
 
  〈사람은 량심이 있어야 한다. 믿음을 받았으면 보답하는 것이 인간의 량심이고 도덕이다.
 
  고용희의 말이다. 김정은의 친모인 고용희가 한 말이라고 자료에 명시되어 있다. 정치장교 학습제강 자료에 고용희 말까지 인용한 것이다. 정치장교 학습자료에 고용희가 등장한 것은 처음이라고 다수의 고위 탈북자는 말했다. 자료는 고용희를 ‘평양의 어머니’로 칭했다. 이는 김정일이 생전 남긴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정일은 〈우리 집사람은 군인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그들의 생활을 친어머니 심정으로 따뜻이 보살피고 있습니다. 아마 온 나라 어머니들의 마음을 다 합친대도 군인들을 위해 바치는 그의 지성을 따르지는 못할 것입니다〉며 〈지금 군인들에게 돌려지는 배려 속에는 우리 집사람의 뜨거운 마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군인들을 위해 주는 그의 마음은 친어머니의 심정입니다. 그래서 군인들은 우리 집사람을 평양의 어머니라고 하면서 친어머니처럼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고용희는 과거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량심이 있어 인간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늘 장군님을 결사 옹위하겠다는 구호를 많이 부르는데 장군님을 지키는 것은 총과 대포도 아니고 돈과 황금도 아니다. 량심이 장군님을 지키는 것이다.
 
  이어 자료는 〈평양어머님의 이 말씀을 놓고 우리 정치 일군들의 사업을 돌이켜볼 때 현실은 어떤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에 대한 충실성을 량심화, 도덕화하지 못하다 보니 배은망덕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돌이켜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 일군들 人心 잃고 피해를 당해도 김정은 忠犬 돼야

▲김정은의 친모 고용희가 어린 김정은이 나무 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인터넷 화면 캡처

 

북한에서는 김정은 다음으로 조선노동당이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당 일군의 힘이 세다. 이들은 북한 어느 조직이든 모두 속해 있다. 북한 정권은 이들을 통해 주민들을 통제하고, 정권을 유지한다. 이 때문에 김정은은 이들의 충성심을 계속 확인하고 이들이 대오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자료의 내용이다.
 
  〈부대, 구분대(작은 단위에 부대) 일군들이 사업과 생활에서 결함이 나타나면 사상투쟁의 방법으로 달구고 당 회의나 당 생활 총화, 사업 총화에서 강하게 걸어 채여 당의 사상과 의도에 어긋나는 짓을 하였을 때에는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아 견뎌 내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모든 문제를 정치적으로 예리하게 보고 사업에서 정책 적대를 바로 세워야 한다. 정치 일군들은 말 그대로 당의 권위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다. 모든 정치 일군들은 이제라도 정신을 단단히 차리고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의 눈과 귀가 되어 제기되는 사소한 문제도 절대로 실무적으로 여기지 말고 정치적으로 예리하게 보고 정책적으로 심중하게 따져보고 당의 사상과 의도와 어긋날 때에는 이것저것 재지 말고 제때에 투쟁의 불을 걸어야 한다. 투쟁을 벌여도 뜨뜻미지근하게 하지 말고 사나운 맹수가 되어 날카롭게 해야 한다.
 
  북에서 정치장교였던 김영회씨는 “북한에서는 김정은이 외 당이 먼저고, 당이 우선이고, 당이 제일이다. 당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김정은에게 도전하는 것”이라며 “당을 우산으로 그 밑에 있는 정치 일군들은 그 조직에서 왕으로 군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당 일군을 하려면 물론 집안 성분도 좋아야 하지만 어느 정도 돈도 있어야 한다. 특히 북한 당국은 당 일군들을 김정은의 충견으로 키운다. 북한은 이들을 통해 전체 인민을 통제한다. 즉 정치 일군들은 누구보다 충성심이 높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정치 일군들이 더 많은 뇌물을 받고 북한이 하지 말라는 비사회주의를 많이 저지르고 있다”며 “이것이 지금 북한의 현실”이라고 했다. 

정광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