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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소리 2021-09/ 09.01 매일 2000억원 빚내 펑펑 쓴 정권이 다음 정부에 ‘씀씀이 줄이라’ 요구 - 09.30 참으로 꾸준한 문재인 외교

상림은내고향 2021. 10. 1. 19:59

바른소리 2021-09

09.01 매일 2000억원 빚내 펑펑 쓴 정권이 다음 정부에 ‘씀씀이 줄이라’ 요구

정부가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8.3% 늘어난 604조원으로 편성해 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2017년 401조원 규모 예산을 물려받은 정부가 5년 만에 51%나 늘어난 초팽창 지출 구조를 만들어놨다. 대선이 치러지는 해이니 더 적극적으로 세금을 뿌리겠다고 작심한 듯하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정부가 상상도 못했을 만큼 방만하게 재정을 운영해왔다. 집값을 사상 최대로 올려놓더니 국민 세금은 마치 헬리콥터로 살포하듯 펑펑 써왔다. 그 결과 내년 나랏빚은 1068조원으로 GDP의 50.2%에 이를 전망이다. 2017년 660조원이던 국가부채가 5년 새 408조원이나 늘어나게 됐다. 우리 국민 중에 ‘국가부채 1000조원’을 생각해본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그게 현실이 됐다. 5년간 408조원 빚을 냈다면 하루 평균 2235억원씩 부채를 진 것이다. 정말 한 번도 경험 못한 나라다.

 

408조원의 빚은 그 규모도 어마어마하지만 내용은 더 한심하다. 잘못된 정책으로 부작용을 자초해놓고 이를 막겠다며 세금을 동원하는 일이 4년 내내 반복돼왔다. 마차가 말을 끈다는 소득 주도 성장 정책으로 고용 참사를 빚자 세금 퍼부어 임시직 알바 자리만 양산했다. 눈속임 수치 분식에 지나지 않지만 가짜 세금 일자리를 올해 101만개에서 내년엔 105만개로 더 늘리겠다고 한다.

 

이 정부는 4대강 사업 같은 SOC 투자를 ‘토건 적폐’로 비난하더니 정작 내년 SOC 예산은 역대 최대인 27조5000억원으로 편성했다. 선거용 매표 사업들이다. 자신들 스스로 한 말도 손바닥 뒤집듯 한다. 정권에 등 돌린 청년층을 잡겠다고 23조5000억원에 이르는 청년 희망사다리 패키지도 편성했다. 중산층 대학생도 대학등록금을 반값으로 깎고, 저소득 청년에게 월세 20만원씩을 1년간 주기로 했다. 병장 봉급을 11% 인상하고 병사 적금액에 3분의 1을 얹어줘 1000만원 목돈 마련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문 정부 5년간 정부 지출 증가율은 연평균 8.6%에 달한다. 연평균 4.3%였던 박근혜 정부는 물론, 글로벌 금융 위기를 수습한 이명박 정부 때의 6.6%보다도 높다. 보다 못한 기획재정부가 재정 건전성 유지를 법률로 의무화하는 재정준칙을 국회에 발의했지만 여당은 9개월째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 그래 놓고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60%를 넘지 않도록 2023년 이후 재정지출 증가율을 5% 이내로 억제하도록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명시했다. ‘우리는 펑펑 쓸 테니 다음 정부는 씀씀이를 줄이라’는 것이다. 무책임하기 그지없다.

조선일보 사설

 

09.01 빚더미를 미래 세대에 떠넘긴 무책임한 정부

내년 본예산 604조원 초확장 예산 편성

대선 앞둔 선심성 … 국가채무비율 첫 50%

기어이 선을 넘었다. 정부가 내년에 쓰겠다고 편성한 본예산 604조4000억원 얘기다.

 

추경을 제외한 본예산이 600조원을 넘어서는 것은 처음으로, 올해보다 8.3% 늘었다. 정책 실패와 코로나19 대응으로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와중에 문재인 정부 마지막 해인 2022년 예산안도  초(超)확장 재정으로 꾸리게 되면서, 내년에도 77조6000억원의 적자 국채 발행이 불가피해졌다. 이로써 국가채무는 1000조원을 넘어서게 됐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처음으로 50.2%를 기록할 전망이다. 반면에 내년 총수입은 548조8000억원에 그쳐 ‘악어의 입’(재정지출이 느는 반면 세수는 줄면서 두 선 간격이 점차 벌어지는 그래프 모양)은 점점 더 벌어지는 모양새다. 올해는 그나마 부동산값 폭등으로 예상보다 세수가 크게 늘었지만 금리 인상이 본격화한 만큼 내년에도 같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문 정부의 정책 기조가 ‘일단 쓰고 보자’이다 보니 재정 씀씀이와 나랏빚 증가 속도 모두 과거 정부를 압도한다. 문 정부 5년 동안 본예산 증가율(50.84%)은 이명박(32.5%)·박근혜(17.11%) 정부보다 훨씬 가파르다. 꼭 필요한 돈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정부 지출 내역을 살펴보면 내년 대통령선거를 염두에 둔 선심성 돈 뿌리기라는 의혹을 받을 만한 현금 지원 사업이 잔뜩 들어 있어 우려스럽다.

 

특히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등 돌린 2030세대를 잡기 위한 청년 예산 23조5000억원을 비롯해 복지 관련 지출이 200조원을 넘기면서 낭비 요소가 더 짙어졌다. 단순히 복지 예산이 늘어난 게 문제가 아니다. 취약계층을 돌보고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드는 데 쓰인다면 더 많은 예산이라도 반기겠지만 상당액이 허공에 사라지는 일회성 예산이다.

 

문 정부는 무리한 소득주도 성장 등 잘못된 경제정책을 가리려고 지난 4년 동안 단기 일자리와 실업급여 확대 등 세금 퍼주기에 막대한 돈을 써 왔다. 효율성을 따져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대신 내 돈이 아니니 뿌리고 본다는 재정중독증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다. 이런 비판에 귀를 열고 임기 마지막 해라도 이를 바로잡기를 바랐는데 내년엔 오히려 중산층 대학생까지 반값 등록금을 확대하고, 저소득 청년에겐 월세 20만원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 당사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은 되지 않고 막대한 세금만 들어가는 불필요한 사업을 왜 지금 벌이겠다는 것인가. 이러니 재정 낭비를 넘어 재정 탕진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렇게 돈을 펑펑 쓰고는 2023년 예산부터는 증가율을 5% 이하로 낮추겠다며 재정 건전성 확보 의무를 차기 정부에 떠넘겨버렸다. 빚더미를 다음 정부와 미래 세대에 떠넘기는 무책임한 정부 탓에 국민 시름만 깊어진다.

중앙일보 사설

 

09.01 여론 소나기만 피한 언론법 처리 연기, 강행 명분 쌓기 안 된다

여야는 31일 언론에 재갈을 물린다는 비판을 받는 언론중재법의 본회의 처리를 9월 27일로 미루고 ‘8인 협의체’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언론중재법 강행에 대해 국내 언론·시민단체와 법조·학계뿐 아니라 해외 언론 단체까지 일제히 비판하자 여당이 처리 시한을 한 달 늦춘 것이다. 하지만 법안 내용에 대한 구체적 합의가 없고, 반드시 여야 합의안을 상정한다는 조항도 없다. 민주당이 시간만 보내고 현재 법안을 27일 그대로 상정 처리할 가능성이 있다.

 

언론중재법은 세부 조항 한두 개 고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언론만을 징벌적 배상의 대상으로 삼은 것 자체가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다. 언론이 스스로 고의·중과실이 없음을 입증해야 하는 점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에서 기사 자체를 볼 수 없게 만드는 열람차단청구권 또한 비판 보도를 봉쇄하는 독소 조항이다. 법 주요 내용 전체가 언론 자유와 권력 감시 기능을 억압하는 내용이다. 해외 언론 단체와 전문가들이 이 법을 비판하는 이유다. 미국 외교 안보 전문지 디플로맷은 “대형 언론사를 표적 삼은 세계 유일의 언론법”이라고 했고, 미디어법 전문가들은 “미국에선 트럼프도 이런 법을 꿈꾸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 법은 법안 자체를 철회하든가, 8인 협의회를 통해 핵심 독소 조항을 모두 삭제해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 지도부와 강경파들은 언론중재법의 핵심 내용은 바꿀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그렇다면 한 달 동안 야당과 협의하는 모양새만 갖추고 강행 처리 명분을 쌓으려는 속셈 아닌가. 야당은 일단 시간을 벌었다고 했지만 한 달 후 이를 저지할 힘도 수단도 의지도 있는지 의문이다. 야당이 필리버스터를 한다고 해도 범여 의석을 다 합치면 중단시킬 수 있다.

 

언론중재법에 침묵해 왔던 문재인 대통령은 “여야가 숙성의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을 환영한다”고 했다. 그동안 뒤에 숨어있다 법 처리 시한이 연기되자 나타나 하나 마나 한 얘기를 한다. 한 달 뒤 여당이 언론중재법을 일방적으로 강행 처리하고 나면 또 모른 척할 것이다. 민주당이 이날 합의로 여론의 거센 비판이라는 소나기만 일단 피하고 나중에 강행할 명분을 쌓으려는 것이라면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조선일보 사설

 

09.01 유엔도 우려한 언론惡法…‘한 달 유예’ 아닌 폐기가 正道

여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온 ‘위헌적 언론 악법(惡法)’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 확산은 급기야 유엔도 공식으로 문제 삼기까지 이르렀다. 외교부가 31일 “유엔 특별절차 서한을 접수했다”고 확인한 대로,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지난달 30일 외교부를 거쳐 문화체육관광부에 공문을 보내 ‘한국의 언론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중재법(개정안)이 세계인권선언 및 자유인권규약에 위배된다는 의혹에 대한 한국 정부 공식 입장을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이를 전달받은 더불어민주당은 그래도 강행에 집착한다. 여·야 국회의원 2명씩과 각 당 추천 언론계·법조계 인사 2명씩인 8명의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한 뒤, 오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정·처리하기로 국민의힘과 31일 합의했으나, 그 유예도 꼼수로 보인다. 합의 직후 민주당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 등이 훼손되지 않아야 할 것”이라며 독소(毒素) 고수 의지를 재천명했다. 윤호중 원내대표는 “본회의 처리를 위한 수정안이기 때문에 기존 법안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한병도 원내수석부대표는 “합의가 안 되면 진짜 (원안을) 통과시킨다”고 했다.


침묵으로 방조해오던 문재인 대통령이 ‘일부 수정 후 강행’ 주문으로 들릴 입장을 뒤늦게 낸 것도 그 연장선으로 비친다. 문 대통령은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둥이고 국민의 알 권리와 함께 특별히 보호받아야 한다”면서도 “악의적 허위 보도나 가짜뉴스에 의한 피해자 보호도 매우 중요하다. 신속하게 바로잡고, 정신적·물질적·사회적 피해로부터 완전히 회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언론의 각별한 자정 노력도 필요하다”며 언론 탓을 강조했다.


한국신문협회 등 7개 언론 단체가 “악법은 본질이 바뀌지 않는 한 아무리 분칠을 해도 악법일 뿐”이라며 “누더기 악법이 된 언론중재법(개정안)은 폐기하고 원점에서 숙의 과정을 거치는 게 타당하다. 처리 시한도 폐지해야 한다”고 밝힌 배경도 달리 없다. ‘한 달 유예’ 후 강행 아닌 전면 폐기가 정도(正道)다. 강행을 일시적으로 늦춰 국내외 비판을 회피해 보겠다는 꼼수라면, 그 또한 단념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9월 01일 유엔 “韓언론법 징벌적 손배제는 완전히 균형 잃은 조항”

■ 유엔인권사무소 공문 입수

“정부 측에 과도한 재량권 부여
자의적으로 적용할 우려 크다” 

 
法조항 문제점 조목조목 지적
국제인권기준 맞게 수정 촉구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한국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국제인권규약을 위배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정부에 과도한 재량을 부여한 자의적 법적용 등을 우려하며 “완전히 균형을 잃은 법”이라고 비판했다. 언론중재법이 인권과 민주주의의 근간인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한다는 국제사회의 경고 목소리가 커지면서 법안 통과를 추진하던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부담도 한층 늘어날 전망이다.


1일 문화일보가 단독 입수한 유엔 측 공문(사진)에 따르면 아이린 칸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한국 정부에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국제적 인권 기준에 맞도록 수정하라”고 촉구했다. 칸 특별보고관은 “한국 정부의 의도는 ‘언론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구축하려는 것’이지만, 수정 없이 입법되면 정반대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한다”며 “한국 정부는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9조 상 의견과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고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개정안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국제인권규약은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A규약)’과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B규약)’으로 이뤄져 있으며 한국은 1990년 국제인권규약에 가입한 상태다.


칸 특별보고관은 서신에서 언론중재법의 문제점을 △법적 측면 △필요성 측면 △비례성 측면 등으로 나눠 조목조목 지적했다. 칸 특별보고관은 “유엔인권이사회 보고서에서는 표현과 정보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떤 법도 범위와 의미, 효과가 충분히 명백하고 정확하며 공개적이어서 국제법적 최소기준을 충족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며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지금 상태에서는 당국에 과도한 재량권을 부여하며 자의적인 적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허위·조작보도 특칙(제30조의2)에 대해서는 “매우 애매모호한 규정이 광범위하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한다”며 “표현의 자유는 민주사회의 초석이고 여기엔 뉴스 보도, 정부와 정치인 및 공인 비판, 그리고 인기가 없는 소수 의견의 표현도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에 대해 “법의 자의적 적용에 이를 수 있다”고 비판했고,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해서도 “완전히 균형을 잃었다고 우려한다”고 밝혔다.


칸 특별보고관은 한국 정부에 서한 내용을 국회와 공유할 것과 함께 법안 수정을 요구했다. 그는 또 국제인권 기준에 맞도록 법안을 수정하는 데 한국 정부에 기술적 도움을 제공할 수 있다는 의사도 밝혔다. OHCHR는 통상 각 국에 보낸 서한의 내용을 60일 이내 공개하는데,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특별 절차’를 거쳐 48시간 만에 전문을 공개했다. 언론중재법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반영된 때문으로 해석된다.
조재연 기자 jaeyeon@munhwa.com   

 

09.02 단것은 지금 따 먹고 쓴 것은 후세에 떠넘기는 포퓰리즘 복지

▲지난달 9일 서울 노원구 서울북부고용센터 앞에서 시민들이 실업급여 신청을 위해 줄 서 있는 모습. 실업자가 늘면서 구직급여 지급액은 올 2월부터 6개월 연속 1조원을 넘었다. / 연합뉴스

 

정부가 고용보험료를 내년 7월부터 현재 급여의 1.6%에서 1.8%로 인상하기로 했다. 고용보험료는 1995년 급여의 0.6%로 도입된 이래 김대중 정부 때 1.0%로, 이명박 정부 1.1%, 박근혜 정부가 1.3%로 올렸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2019년 11월 1.6%로 인상한 다음 이번에 다시 1.8%로 올리기로 한 것이다. 임기 중 두 번 올리는 건 이 정부가 처음이고 두 차례 누적 인상률은 38%나 된다.

 

고용보험료는 문재인 정부 출범 때만 해도 10조원가량 쌓여있었다. 그것이 올해 말 4조7000억원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빌린 7조9000억원을 합치면 사실상 거덜이 났고 3조2000억원 마이너스다.

 

탄탄한 재정이던 고용보험이 이렇게 된 것은 이 정부가 허황된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그 부작용을 고용보험 기금을 살포해 메꿨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으로 고용 참사가 발생해 실업급여 지급액이 급증했다. 중소기업이 청년을 채용하면 지원금을 주는 정책의 재원까지 고용보험 기금에서 끌어다 썼다. 결국 다른 기금에서 돈을 빌려와 적자를 메우는 변칙까지 동원했다. 그 빌린 돈은 나중 이자까지 쳐서 갚아야 할 빚이다.

 

뒷일은 어찌 되든 일단 선심부터 쓰고 본 것은 건강보험도 마찬가지다. 건강보험료율은 박근혜 정부에선 매년 0.9~1.6% 올랐다. 그랬던 것이 이 정부 들어선 2018년 2.04%, 2019년 3.49%, 2020년 3.20%, 2021년 2.89% 올랐고 2022년에도 1.89% 올리기로 며칠 전 결정됐다. ‘문재인 케어’라면서 건보 적용 범위를 대폭 확대시켰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2017년 7899건이었던 뇌 질환 MRI 촬영이 지난해엔 8만2089건으로 10배 이상으로 늘었다. MRI가 건보 적용을 받게 되자 너도나도 MRI를 찍고 보는 도덕성 해이가 만연한 것이다.

 

국민연금은 문 정부 복지 포퓰리즘의 또 다른 형태다. 고용보험, 건강보험료는 가입자에게 거둔 돈을 그때그때 쓴다. 국민연금은 지금 거둬놓고 수십 년 뒤 지급한다. 지금은 돈이 남아돌아도 20년, 30년 뒤 고갈 위기가 온다. 따라서 역대 정부는 후세를 생각해 임기 중에 한 번은 보험료율을 올리거나 지급액을 줄이는 인기 없는 개혁을 해왔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예외다. 부처가 개혁안을 가져와도 퇴짜를 놨다. 인기 없지만 국민에게 꼭 필요한 정책은 하지 않는다. 인기 있지만 국민에게 해가 되는 정책은 반드시 한다. 단 것은 빨아 먹고 쓴 것은 후세에 떠넘기는 포퓰리즘이다.

조선일보 사설

 

09.02 나라와 청년층 미래 위해 민노총 개혁보다 시급한 것은 없다

▲민노총 산하 현대제철 노조원들이 8월 25일 충남 당진제철소에서 협력업체 비정규직의 본사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신현종 기자

 

문재인 정부에서 급격히 세력을 불린 민노총의 불법·폭력 횡포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대기업, 공기업, 공공기관, 전국 각지의 건설 현장, 플랫폼 작업장에 이르기까지 민노총의 횡포에 시달리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급기야 김포의 택배 대리점주가 민노총 택배노조의 불법 태업 및 업무 방해, 협박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민노총 산하 현대제철 노조는 비정규직 협력업체 직원의 직고용을 요구하며 지난달 제철소 핵심 시설인 통제 센터를 기습 점거한 후 불법 집회를 계속하고 있다. 해운업체 HMM 노조는 임금 25% 인상, 성과급 1200% 지급을 주장하며 파업 엄포를 놓고 있다. 만성 적자로 경영 위기에 빠진 서울지하철 노조도 구조조정 철회를 요구하며 오는 14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전국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과 우체국 등 현장 곳곳에서 불법 파업과 집회를 벌이고 있다. 코로나 방역 최전선의 보건의료노조까지 총파업에 나설 태세다. 전국의 수많은 아파트 공사장에선 민노총이 자기 조합원을 타워 크레인 기사 등으로 써달라고 물리력을 행사하는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고 있다. 마피아를 방불케 한다.

 

그래도 정부와 사법 당국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 기업이나 지자체가 노조를 고발하고 경찰에 도움을 청해도 방관만 하고 있다. 민노총 위원장의 구속영장이 발부돼도 경찰은 20일째 영장을 집행하지 못하고 있다.

 

민노총이 문 정권에서 특권 대접을 받자 조합원 수가 4년 새 40% 이상 늘어 100만명을 넘었다. 대부분 현대차, KBS, 전교조, 공무원 등 이른바 ‘신의 직장’에 속하는 귀족 노조다. 전체 근로자의 4%밖에 안 되지만 이들이 정부와 법 위에 군림하고 있다. 민노총 산파 역을 했던 한 인사는 민노총을 “양아치 같은 노동 귀족 주사파”라고 했다. 노동경제학 교수는 “가장 큰 피해는 청년층이 보았다”고 했다. 나라의 미래와 청년을 위해 민노총 개혁보다 시급한 것은 없다.

조선일보 사설

 

09.02 5년 최대 허위조작 뉴스 탈원전, 文은 5배 징벌 배상을

틀린 사실로 점철된 명백한 ‘가짜 뉴스’ 정책
오류 지적에도 반복까지 언론법상 징벌 조건 부합
회복 어려운 피해 국민에 文은 5배 징벌 배상하라

민주당 언론법은 ‘명백한 고의’가 있으면 징벌적 배상을 하라는 내용이다. 법리 문제를 떠나서 ‘이런 법은 누구에게 가장 먼저 적용돼야 하는지’를 생각해봤다. 지난 5년간 한국 최대 가짜 뉴스는 문재인 대통령의 2017년 6월 19일 탈원전 선언 연설이다. 신규 원전 전면 백지화를 선언한 이날의 연설은 역대 대통령 연설 중 명백하게 틀린 사실(fact)로 점철된 최악의 연설로 기록될 것이다.

 

당시 문 대통령은 후쿠시마 사태와 경주 지진을 예로 들며 지진 때문에 원전이 위험하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지진만으로 발생한 원전 사고는 한 건도 없다. 후쿠시마 사태도 지진이 아니라 지진 후 이어진 쓰나미로 발전기가 물에 잠겨 고장 난 사고다. 지진만 있었고 쓰나미가 없었다면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영국 원자력 매체는 “한국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가 지진이 아니라 쓰나미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바보 아니

 

문 대통령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1368명이 사망했다고 했다. 전체 맥락상 방사능으로 인한 사망자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후쿠시마에서 방사능으로 인한 사망자는 아직까지 없다. 일본 정부가 1368이란 숫자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몰라 당황했다고 한다. 후쿠시마 사망자는 대부분 이재민 시설에서 다른 이유로 사망한 80대 이상 고령자다. 문 대통령은 방사능으로 인한 암 환자 발생 수는 파악조차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WHO) 조사 결과 후쿠시마에서 소아 갑상샘암 등의 특기할 증가는 나타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설계 수명이 다한 원전 가동을 연장하는 것은 선박 운항 선령을 연장한 세월호와 같다”고 했다. 미국의 원전 99기 중 88기가 설계 수명 뒤 20년 추가 운영 중인 것이다. 미국에 세월호가 88기나 있다는 건가. 문 대통령이 서구 선진국 등이 원전을 줄이며 탈핵을 선언하고 있다고 말한 것도 사실과 다르다. 오히려 탄소 저감 추세에 따라 세계는 그 반대로 가고 있다.

 

문 대통령이 국가 에너지 백년대계를 뒤집는 이 중대한 발표를 하면서 관련 부처 전문가에게 한 번만 사실 확인했어도 이런 황당한 발표는 없었을 것이다. 전 세계 모든 책임 있는 정부가 다 하는, ‘발표 전 사실 확인’이라는 당연한 절차를 문 대통령은 지키지 않았다. 책임 있는 언론은 보도 전 확인 과정에 한 달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오보를 한다. 그런데 국가 에너지 정책을 혁명적으로 바꾸면서 기본 팩트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탈원전이라는 ‘고의’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검증 절차 따위는 거추장스러웠을 것이다. 탈원전 가짜 뉴스는 ‘명백한 고의’에 의한 것이다.

 

통상 언론은 제보를 받으면 일단 의심하고 관련 전문가에게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이 ‘말도 안 된다’고 하면 바로 접는다. 문재인 대선 캠프의 환경·에너지팀에는 원자력 전문가라고 할 사람이 없었다. 에너지 공약에는 환경운동가와 미생물학 전공 교수가 관여했다. 후보 아닌 대통령이 됐으면 탈원전 정책 발표 전 한번쯤이라도 이를 의심해보고 진짜 전문가에게 물어봤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 역시 탈원전 가짜 뉴스에 ‘명백한 고의’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문 대통령은 체코 대통령에게 ‘한국 원전은 40년간 한 번도 사고가 없었다’고 자랑했다. 한국 원전이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탈원전은 정책 방향의 문제가 아니라 ‘명백한 고의’에 의한 가짜 뉴스의 문제다.

 

문 정권 언론징벌법에 따르면 가짜 뉴스를 ‘반복 보도’하면 ‘명백한 고의’가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탈원전에 대한 수많은 오류 지적이 있었다. 문 대통령은 이를 다 무시하고 반복해 밀어붙였다. 이 이상의 ‘명백한 고의’가 있나. ‘가짜’만이 아니다. 월성 1호는 경제성 평가 수치를 조작해 폐쇄시켰다. 허위 조작 뉴스다.

 

문 정권의 언론징벌법은 ‘명백한 고의’가 있는 경우 피해액의 5배까지 징벌적 배상을 하게 했다. 문 대통령은 그 ‘정신’에 따라 탈원전으로 국민이 입은 피해의 5배를 배상해야 한다. 언론징벌법은 또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은 경우’에도 5배 배상토록 하고 있다. 탈원전으로 세계 최고이던 원전 생태계가 사실상 붕괴 수준으로 망가졌다. 그사이 중국 등 경쟁국은 일취월장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 원전의 이미지도 추락했다. 태양광 한다며 전국에서 파헤치고 베어 없앤 숲도 이루 말할 수 없다. 다 회복 불가능이다. 전체 국민 피해액은 추산도 불가능하지만 당장 경제성을 조작해 폐쇄한 월성 1호기의 피해액만 5600억원이다.

 

탈원전만인가. 문 정권은 ‘곧 집값 떨어지니 집 사지 말고 집 팔라’ ‘이 법 통과시키면 전셋값 떨어진다’고 수도 없이 발표했다. 모두 그 반대로 됐다. 그런데 여기에도 ‘고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 대변인은 그 와중에 투기를 했다. 정부는 팔라는데 자신은 샀다. 정부 발표가 가짜 뉴스라는 것을 안 것 아닌가. 이미 수많은 사람이 ‘벼락 거지’가 됐다. 문 대통령은 이 피해액의 5배도 배상해야 마땅하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

 

09.02 “강남 집값 오른 게 언론 탓”이라니 제정신인가

국토연, 엉터리 가설로 언론에 책임 전가

원장이 김수현 사단 … 정책실패 사과부터

 

이런 언어도단이 없다. 국책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이 어제 ‘주택 거래가격 결정에 대한 행동경제학적 이해’라는 보고서와 보도자료에서 “강남 집값이 오른 건 언론 때문”이라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했다. 국토연구원은 주택의 평균가격, 최고가격, 전체 거래 건수 등과 관련한 언론의 보도 건수가 집값 상승 기대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서울에서 주택의 최고가격 변화와 최고가격 경신을 다룬 언론 보도의 증가가 향후 가격 상승을 예상하는 사람들의 비율을 증가시키는 경향을 보인다고 결론지었다. 이런 경향은 서울에서 2017년 이후 더 강해지는 것으로 나타났고, 언론 보도 등 정보의 영향 역시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언론이 집값 상승을 부추겼다는 얘기다.

 

국토연구원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해당 보고서는 연구의 시작부터 집값 상승의 원인을 언론 보도 때문이라는 가설에 꿰맞춰 풀어가고 있다. 가격 상승과 언론 보도의 시점에 대한 데이터를 모으고, 서로 간에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갖고 그들이 원하는, 그러나 잘못된 결론을 만들어냈다. 정부 정책이나 금리 등 부동산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는 아예 빼놓고 연구했다. 국토연구원은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라는 기본적인 통계분석의 정의부터 오류를 범하고 있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고, 결국 시간이 지나 언젠가 비가 내렸다고 해서 기우제 때문에 비가 내렸다고 할 수 있나.

 

집값 상승의 주된 원인은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정책이라는 것을 온 국민이 알고 있다. 26차례의 누더기 부동산 대책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지 않나. 정부의 실책은 인정하지 않고, 부동산 정책의 문제점과 암울한 시장 상황을 보도해 온 언론을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몰고 있으니 어처구니없다.

 

국토연구원 강현수 원장은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설계한 김수현 사단의 핵심 멤버 중 한 사람이란 점을 주목한다. 강 원장과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서울대 환경대학원 출신이 주축으로, 진보를 표방하는 사단법인 한국공간환경학회에서 학회장을 이어받았다. LH 사태로 취임 4개월 만에 물러난 변창흠 전 국토부 장관 역시 이 학회의 핵심 회원으로 활동해 왔다. 국책연구기관의 곡학아세(曲學阿世) 연구를 통해 부동산 정책 실패의 책임을 전가하려 하고, 언론 탓으로 몰고 가는 것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 김수현 사단은 부동산 폭등으로 좌절하는 국민, 특히 꿈을 잃은 젊은이들에게 사과하고 도대체 어디부터 잘못된 건지에 대한 성찰부터 하기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

 

09월 02일 “집값 상승 언론 탓” 국책연구기관도 동원된 곡학아세(曲學阿世)

국토교통부 산하 중요한 싱크탱크인 국토연구원이 1일 서울 강남 아파트값 상승은 언론 보도 때문이라는 황당한 분석을 내놓았다. ‘주택거래가격 결정에 대한 행동경제학적 이해’라는 내부 연구를 요약한 자료에서 특정 단지 내 ‘최고 거래가 경신’을 다룬 언론 보도가 늘어날수록 아파트값 상승을 예상하는 사람의 비율이 늘었고, 이전보다 높은 가격에 아파트를 사게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를 언론 탓으로 돌린 것이다.

 

곡학아세(曲學阿世)가 도를 넘었다. 집값·전셋값 폭등이 부동산정책 실패 때문이라는 건 온 국민이 안다. 문 정부가 뒤늦게 8·4 대책이니, 2·4 대책이니 하며 주택 공급 확대에 나선 이유다. 그런데도 세금폭탄·임대차 규제 3법을 비롯, 25차례나 되는 부동산정책 실패 등 정책 영향은 다 빼고 벌어진 일을 전하는 사후의 언론 보도만 갖고 집값 상승의 원인 운운하는 것은 억지요 왜곡일 뿐이다. 정작 봐야 할 달은 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본다.

 

강현수 연구원장은 변창흠 전 국토부 장관과 함께 문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설계한 김수현 사단의 핵심 멤버다. 이들은 토지공개념을 주장한 헨리 조지를 신봉하는 한국공간환경학회 소속이기도 하다. 이젠 연구기관까지 코드화해 정권 호위무사로 나서는 셈이다. 소득주도성장 주역인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원장으로 간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다른 기관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갈수록 문 정부 실정(失政)을 비호·은폐·왜곡하려는 시도가 기승을 부릴 게 분명하다. 연구원들이라도 냉철한 이성으로 국책 왜곡 범죄의 하수인 노릇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9월 02일 대한민국 국격도 깎아내릴 언론 악법

박남규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미래산업 분야 선도하는 한국
의료 체계와 시민의식도 일류
언론중재법 시도는 황당 퇴행
유력 언론들의 자유 경쟁으로
가짜뉴스 생존 가장 힘든 나라
왜 민주화 시계 되돌리려 하나


 대한민국은 이제 명실공히 세계적인 선진국이다. 반도체·배터리·바이오·항공산업 등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1등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현지 언론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 기업들이 한국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하느라 정신없다.


지난 2년 동안 국민은 역시 K-방역으로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시민의식을 보여줬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세계 최고의 검사 및 진단 속도로 한국 의료 체계의 선진성을 입증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생존의 위기 속에서도 생업에 최선을 다하는 눈물겨운 장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학생들은 온라인 수업으로 학업 성과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으로 인내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요즘 언론에서 접하는 정치권의 소식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랍다. ‘언론봉쇄법’ ‘언론재갈법’ 등으로 불리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관한 일련의 기사들은 21세기 인류의 미래 세계를 선도해야 하는 한국의 국제적 지위를 고려하면,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독소조항을 아무리 제거한다고 하더라도, 이번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본질은 언론의 자유를 저해하는 것이다. 여당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언론으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는 법안이라는 명분 역시 궁극적으로는 국민을 기만하는 논리에 불과하다.


1980년대로 돌아가면, 전국의 대학가에 “어용 언론 물러가라” 또는 “민주언론 탄압을 중지하라”라는 구호가 건물의 벽을 메우고 있었다. 현 정권의 주류들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가장 선두에서 온몸으로 저항했던 사람들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 언론인들은 언론 자유를 위해서 직장과 목숨을 걸고 독재정권에 맞서서 맨손으로 싸웠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돼 쏟아지는 최루가스에도 굴하지 않고 더 나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인권과 언론의 자유를 목청껏 외쳤다.


군사정권이 무너진 이후 언론 자유화는 거의 모든 정권이 내세웠던 중요한 가치였다. 그런데 뜬금없이 등장한 언론중재법 때문에 온 나라가 민주적 가치의 본질이 흔들리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언론의 자유는 어떠한 이유와 명분으로도 침해하거나 저해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기둥이다. 만약 언론중재법이 어떠한 형태로 수정되거나, 다른 방식으로 국회를 통과한다면, 이런 사실 자체만으로도 대한민국의 언론 자유는 심각한 침해를 받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세계 10대 선진국 중 가짜뉴스가 생존하기 가장 어려운 시장이 한국이다. 한국에는 신문사만 200개 이상 있고, 10개 정도의 공영 방송사와 종합편성 채널들이 있으며, 수십 개의 기타 언론 채널들과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인터넷 언론들이 있다. 이런 무한경쟁 속에서 특정 매체가 계속 가짜뉴스를 생산한다면, 해당 언론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퇴출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공정한 언론을 만들고, 언론의 자유와 존엄성을 지키는 유일한 해결책은 언론중재법이 아니라, 높은 시민의식이다.


언론중재법에서 규제하려는 주된 대상은 해당 매체의 사회적 영향력이 높고 총매출액이 많은 대형 언론사들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40년 전 군사정권과 투쟁하면서 한국에서 언론의 자유를 회복시킨 핵심 주인공들이 바로 현재의 대형 언론사들이다. 이들은 40년 전에도 정부를 비판했고, 40년이 지난 지금도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의 본질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사실은, 40년 전 대학생들과 일반 시민들이 맨몸으로 싸웠던 군사정권 아래서도 현재 논의되는 언론중재법 같은 법률은 존재하지 않았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술이 하루가 무섭게 발전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논의가 일어나는 것 자체가 국제적인 망신이자, 세계인들에게 존경받아야 하는 한국인의 민주 의식과 존엄성을 침해하는 일이다. 세계의 수많은 언론 단체는 물론 유엔도 한국의 언론중재법에 매우 많은 우려를 표명하는 것을 결코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만약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돼 대한민국의 민주화 시계를 40년 전으로 되돌린다면, 역사의 심판에서 반드시 누군가는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09월 02일 文정부 財政의 추악한 위선

조해동 경제부 부장

 정부가 8월 31일 ‘2022년 예산안’과 ‘2021∼2025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했다. 내년 예산도 총지출을 올해(본예산)보다 8.3% 늘어난 604조4000억 원의 ‘초(超)확장 예산’으로 편성했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 5년(2017년 5월∼2022년 5월)간 총지출 증가율은 50.91%에 달한다. 정부 안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니 국회 확정안에서 다소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내년에 대통령 선거가 있고 최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행태를 고려하면 수치가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문 정부의 총지출 증가율은 연평균으로 따져도 10.18%에 달한다. 우리나라 예산 편성에 총지출 개념이 도입된 2005년 이후 총지출 증가율을 살펴보면, 이명박 정부 5년간 32.97%(연평균 6.59%), 박근혜 정부 4년간 17.11%(〃 4.28%)였다. 문 정부의 ‘재정 퍼주기’가 얼마나 도를 넘은 것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문 정부 재정 퍼주기의 결과는 결국 ‘채무 폭탄’과 ‘세금 폭탄’으로 돌아왔다. 기획재정부 전망에 따르면, 내년 국가채무는 1068조3000억 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1000조 원을 넘는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도 50.2%로 사상 최초로 50%를 돌파한다. 국가채무를 통계청 추계 인구(중위 추계)로 나눈 1인당 국가채무액은 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1285만3883원에서 내년에는 2060만5119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2000만 원을 넘어선다. 문 정부가 불과 5년 만에 국민 한 사람 어깨에 775만 원이 넘는 빚을 지운 것이다. 악화하는 나라 살림을 떠받치기 위해 단행한 증세(增稅) 등의 여파로 내년에는 국민에게 ‘세금 폭탄’도 떨어진다. 기재부는 내년 국세가 338조6490억 원 걷혀 올해 본예산 대비 19.8%(55조9065억 원)나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 국세 증가율은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 22.7% 이후 가장 높다. 내년에 국세가 걷히는 강도가 외환위기로 한국 경제가 완전히 고꾸라졌다가 다시 회복을 시작한 때와 비슷하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내년 조세(국세 + 지방세) 부담률은 20.7%로 사상 처음으로 GDP 대비 20%를 넘어선다. 조세와 국민연금·건강보험 등 사회 보장성 기금을 더한 금액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인 국민부담률도 내년에 28.6%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다.


그러나 문 정부 재정의 가장 추악한 위선을 드러낸 것은 이런 것이 아니다. 자신들은 연평균 증가율 10%가 넘도록 국민 세금을 쓰고, 그래서 나라 살림을 파탄 일보 직전으로 만들어놓고, 차기 정부에는 총지출 증가율을 4.2∼5.0%로 억제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주장한 것이다. ‘2021∼2025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는 총지출 증가율이 2023년 5.0%, 2024년 4.5%, 2025년 4.2%로 명기돼 있다. 문 대통령이 2017년 5월 9일 당선된 뒤 처음 한 일이 무엇이었는가. 그해 6월 7일 국회에 제출된 11조2000억 원 규모의 ‘일자리 추가경정예산’ 편성 아니었나. 청와대와 내각의 공무원들은 “내 임기만 채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역사에는 지나간 시간을 되돌려 준엄한 심판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09.03 “오래 사는 것 위험” “×별” “GSGG” 패륜과 막말 어디까지

▲왼쪽부터 박원순 전 시장 측 정철승 변호사와 민주당 김승원, 윤건영 의원

 

박원순 전 서울시장 측의 정철승(51) 변호사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한 원로 철학자 김형석(101) 교수에게 “이래서 오래 사는 것이 위험하다는 옛말이 생겨난 것”이라고 했다. “어째서 지난 100년 동안 멀쩡한 정신으로 안 하던 짓을 (정신이) 탁해진 후에 시작하는 것인지, 노화 현상이라면 딱한 일”이라고도 했다. 자기 편을 안 든다고 100세를 넘긴 한국 대표 철학자를 ‘노망난 노인’쯤으로 폄하한 것이다. 인간 도리를 짓밟는 행위를 ‘패륜’이라고 한다.

 

그는 “김 교수가 이승만 정권 때부터 60여년간 반(反)민주를 비판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4·19 혁명 때 교수 시위를 주동했다. 정 변호사는 ‘적정 수명’을 언급하며 “요즘 80세 정도가 한도선 아닐까”라고도 했다. 80세 이상은 부적절하다는 건가. 사람이 할 말인가. 노무현 측 인사가 했던 “60세 이상은 투표하지 않아도 된다” “60대가 되면 뇌세포가 변해 다른 인격체가 된다”와 같은 폄하 발언이다.

 

문 대통령 복심이라는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군 장성 출신들이 윤석열 전 총장 캠프에 합류하자 “별값이 X값이 됐다”고 했다. 군대 진급과 보직은 사적인 시혜가 아니다. 국군은 북한군이나 중공군처럼 당(黨) 소속 군대도 아니다. 군에서 전역하면 정치적 자유도 있다. 다른 당으로 갔다고 사석도 아닌 공개 방송에서 ‘X별’이라 할 수 있나. 자기 편이 아니면 배신자 취급하고 ‘X별’이라 매도한다. 한 군 출신 인사는 “왜 많은 군인이 (문 정부에) 등을 돌리는지 돌아보라”고 했다.

 

여당 초선 의원이 6선 국회의장을 향해 ‘GSGG’라고 한 것도 유례가 없다. 제 성에 안 찬다고 같은 당이나 마찬가지인 국회의장에게 ‘개XX’라는 욕설을 한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청와대 출신 민주당 의원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의당 의원에게 “야! 어디서 지금 감히”라고 고함쳤다. 탈북민 의원에게는 “변절자의 발악”이라고도 했다. 공무원을 향해 “X자식들”이라고 소리 친 당 지도부도 있었다.

 

과거 이런 사람들은 불이익을 받았다. 그런데 정철승 변호사는 “하루 사이에 (소셜미디어) 팔로어만 300명 이상 늘었다”고 자랑했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 때 야당 후보를 “쓰레기”라고 했던 사람은 여당 원내대표가 됐다. 오히려 이익을 본다. 여당 극렬 지지층은 막말에 환호하고 여권은 이들 눈치를 본다. 국회의장에게 ‘GSGG’라 해도 징계를 못 하는 지경이다.

조선일보 사설

 

▶“새파란 녀석” “싹수노란 자식”… 정철승, 20대엔 나이 앞세워 막말

100세 철학자 김형석엔 “오래사는 건 위험” 조롱

 

▲연세대 김형석 명예교수(왼쪽)와 정철승 변호사./조선일보DB

 

최근 ‘100세 철학자’ 김형석(101) 연세대 명예교수를 향해 노인 비하성 막말 공격을 했던 정철승(51) 변호사가, 과거엔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기 나이가 많다는 점을 앞세워 막말을 퍼부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 변호사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측 법률대리인으로, 최근엔 박 전 시장을 비판한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고 있다.

 

정 변호사는 2017년 7월 지하철 임산부석에 앉아있던 20대 남성 흉보는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쓰며 ‘낯 두꺼운 녀석’ ‘새파란 녀석’ ‘싹수 노란 자식’이라고 했다.

 

/페이스북

 

이에 한 네티즌이 댓글을 달았다. “타인에게 에티켓을 강요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되묻고 싶네요. 그리고 ‘싹수 노란 OO’이라는 문장을 붙이는 것이 옳은 것인지, 저는 정철승님의 언사를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라고 적었다. 경어체로 자신의 의사만 표현했고, 정 변호사를 향한 욕설이나 비아냥은 없었다.

 

거기에 대한 정 변호사 답변. “SNS가 이래서 힘들더군요. 생각없고 버르장머리까지 없는 애들이 맞먹으려고 하는 것을 모른척 무시하기가…” “바퀴벌레도 아니고 어디서 이렇게 기어나와서…”.

 

봉변을 당한 네티즌은 깜짝 놀라서 “세상에… 지금 댓글 저한테 하신 말씀이신가요?”라고 물었지만, 정 변호사는 답하지 않았다.

 

또 다른 네티즌이 뛰어들어 “당신이야말로 남부터 배려하쇼”라고 적었다. 이에 대한 정 변호사 답변은 “이 싸가지없는 자식이 어디서 함부로? 내가 네 친구냐? 이 핏덩이 같은 녀석이?”였다.

 

정 변호사는 최근 김형석 명예교수가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페이스북에 그에 대한 비난 글을 쓰면서 “이래서 오래 사는 것이 위험하다는 옛말이 생겨난 것” “어째서 지난 100년 동안 멀쩡한 정신으로 안 하던 짓을 탁해진 후에 시작하는 것인지. 노화현상이라면 딱한 일” “이제는 저 어르신 좀 누가 말려야 하지 않을까? 자녀들이나 손자들 신경 좀 쓰시길”이라고 적었다.

 

김 명예교수의 70대 딸이 공개편지를 통해 “아버지를 향한 인신공격은 말아 달라”고 호소했지만, 정 변호사는 “어떤 자들의 장난질” “교활한 허위 왜곡”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장상진 기자 09.18 

 

09.06 유엔 반대 서한까지 숨긴 언론법 폭주, 국제적 수치다

▲아이린 칸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1일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홈페이지에 공개된 8월 27일 자 서한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그대로 통과될 경우 정보의 자유와 언론 표현의 자유를 심하게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사진은 아이린 칸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2014년 6월 10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회의에서 당시 국제개발법기구 사무총장 자격으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유엔과 국내외 언론 단체들의 잇단 반대에도 언론 보도에 재갈을 물린다는 언론중재법을 그대로 밀어붙이고 있다. 누가 뭐라 해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정부·여당은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가 지난달 보낸 언론중재법 반대 서한을 자신들끼리만 돌려본 뒤 야당과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 유엔 서한을 고의적으로 숨긴 것이다.

 

이 서한은 “언론중재법이 통과되면 언론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며 “과도한 손해배상이 언론의 자체 검열을 초래하고 공중의 이익이 걸린 중요한 토론을 억누를 수 있다”고 했다. 서한은 “국제 인권 기준에 일치하도록 법을 수정하라”면서 이 같은 우려를 국회의원들과 공유해 달라고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서한을 야당에 보내지 않았고 공개하지도 않았다. 여당 의원들만 돌려본 뒤 쉬쉬하고 넘어갔다. 그러자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이례적으로 서한을 홈페이지에 곧바로 올렸다. 서한을 은폐하려다 국제 망신을 자초한 것이다. 그동안 여당은 언론중재법이 언론 개혁인 것처럼 떠들더니 무엇이 부끄럽고 두려워서 숨겼느냐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여야는 언론법 처리를 오는 27일까지 미루고 ‘8인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하루 만에 “합의가 안 되더라도 27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8인 협의체는 “합의가 아닌 협의 기구”라고도 했다. 언론법 발의와 강행 처리에 앞장선 김용민·김종민 의원 등 강경파를 협의체에 넣었다. 협의체를 허수아비로 만든 뒤 밀어붙이겠다는 뜻이다. 언론 7단체는 “8인 협의체는 장식품에 불과하다”며 협의체 불참을 선언했다. 역대 방송학회장들도 반대 성명을 냈다.

 

하지만 여당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시간을 끌며 비판 소나기만 피한 뒤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입장 표명을 피해오던 문재인 대통령은 “언론법을 다음 정부로 넘겨야 한다”는 야당 측 국회 부의장 요청에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짜 뉴스가 전 세계적으로 횡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청와대는 “언론법과 바로 연결해 해석하지는 말라”고 했지만 결국 법안 강행에 힘을 실어준 것과 다름없다. 인권 변호사 출신이라는 대통령이 유엔과 국제사회에서 비판을 받고도 언론재갈법을 방조하고 있다.

 

언론법은 최대 5배 징벌적 배상과 열람차단청구권, 언론에 떠넘긴 고의·중과실 입증 책임, 애매모호한 법 조항으로 언론·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국내 언론 단체나 법조·학계뿐 아니라 유엔과 국제 언론 단체 등이 모두 반대하고 있다. 여권과 북한을 빼곤 모두가 우려한다는 법이다. 그런데 여당은 이 모든 것을 무시한 채 밀어붙이고 대통령은 수수방관하고 있다. 국가적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조선일보 사설

 

09.06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를 주장하는 L교수님께

안녕하신지요.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저를 아시리라 봅니다. 10년 전에 ‘우리 방송을 망친 이데올로그들’이라는 신문 기고문에서 “종편 개국공신” “기득권 세력의 탐욕을 이론으로 포장해준 학자” “곡학아세” 같은 표현으로 저를 실명 비판하신 적이 있으시지요.

 

얼마 전에 쓰신 글 ‘대형 언론사에 절망하는 국민에게 회초리 하나는 필요합니다’(오마이뉴스·8월 30일)를 읽었습니다. 언론중재법 개정 옹호 주장을 대표할 만한 글이었습니다. 그 글에서 교수님은 숙려 기간을 두고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를 거치라는 이부영·신홍범·성한표 등 언론계 선배들의 제언을 반박하며 개정안 강행 처리를 주장하셨습니다. 숙의는 충분했고 합의는 불가능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정부에 대한 국민적 저항은 법안이 통과됐을 때 언론 개혁 반대 세력이 아니라 무산됐을 때 지지 세력에서 시작될지 모른다”고도 하셨습니다. 이에 “언론중재법 처리는 정권 재창출에 도움이 되는지로 판단하겠다”며 여당 대표가 맞장구를 쳤지요. 긴 세월 언론을 지켜온 선배들의 제언은 이처럼 당리당략에 따라 언론을 재단하려는 권력의 폭주를 막아보려는 간절한 호소였습니다. 이마저 거부하며 정치권력의 편에 서서 언론을 공격하는 자신의 모습이 정녕 옳다고 보시는지요.

 

교수님은 징벌적 손해배상 상한선을 10배 정도로 올리고 하한선도 두는 게 옳다며 미국 캔자스주와 미시시피주의 사례를 근거로 드셨습니다. 이 사례들을 찾느라 수고가 크셨을 줄 압니다. 굳이 거들자면, 최근 보안법 시행으로 언론사 자산 동결 및 폐간, 언론인 체포와 사직이 이어진 홍콩 사례가 보다 적실한 사례로 교수님께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비웃자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중국 입장에서 외세 침탈의 상징인 홍콩의 병합은 타협할 수 없는 역사적 숙원이며, 자유를 빙자한 어떤 저항도 징벌되어야 할 매국적 반동일 것입니다. 교수님이 지적한 ‘자유를 남용하는 언론’ 및 그에 대한 ‘국민의 회초리’가 자유분방한 홍콩 언론에 가해지는 징벌과 과연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교수님은 언론사 매출액의 1000분의 1 또는 10000분의 1 같은 손해액 산정 기준이 빠진 것도 아쉬워하셨습니다. 형법에서도 중요 범죄는 ‘몇 년 이상, 몇 년 이내 징역’ 등으로 기준을 구체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기자들이 고의나 악의를 각성하고, 중대 과실을 저지르지 않으려 주의한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한숨을 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준의 타당성은 논외로 치고, 더 심각한 건 언론의 과실을 형법상 중요 범죄와 동일 선상에 놓고, 징벌 강화에 따른 언론의 ‘위축’을 ‘각성’ 내지 ‘주의’로 간주하는 교수님의 인식입니다. 잠재적 범죄 집단인 언론을 징벌로 교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론에 대한 이처럼 깊은 불신, 심지어 적개심의 뿌리가 무엇인지 아연할 따름입니다.

 

언론사 구상권(求償權) 제한 조항 삭제가 문제라는 지적엔 저도 모처럼 같은 의견입니다. 자유로운 취재·보도 활동을 지켜주는 장치 중 하나가 언론사의 소속 언론인에 대한 법적 보호입니다. 그런데 이번 법안이 처리되어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이 남발되면 언론사는 결국 그 손실 책임을 언론인에게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사와 언론인 간의 관계가 악화하고 언론은 안에서부터 꺾일 것입니다. 법안 초안에 들어간 언론사 구상권 행사 제한 조항은 입법자들도 이 문제를 의식했음을 보여줍니다. 병 주고 약 주고라고 할까요. 논의 과정에서 이 조항이 빠졌을 때 그들이 지었을 회심의 미소를 생각하면…, 입이 더러워질 것 같아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저 역시 언론 개혁의 대의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정치권력의 개입을 배제한 아래로부터의 규범 정립이어야 합니다.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입니다. 이 맥락에서 정치권력이 주도한 언론중재법 개정 폭주 사태는 애초에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불순한 의도를 지닌 권력 집단 내 소수가 “대선을 앞두고 강성 지지층들을 또다시 정치적 흥분 상태로 몰아넣기 위해”(진중권) 벌인 반민주적·반헌법적 준동(蠢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나저나 저를 비판한 교수님의 글은 지금도 인터넷을 떠돌고 있습니다. 제 눈에 모욕적 표현과 허위 주장들로 가득한 글입니다. 하지만 저는 설사 법적으로 가능해도 손해배상이나 열람 차단 청구를 할 생각이 없으니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교수님의 주장이 틀렸더라도 그것을 표현할 자유가 지켜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지금도 종편 도입이 그토록 잘못된 일이었다고 확신하시는지 궁금하긴 합니다. 부디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조선일보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09.06 유엔 가입 30주년에 유엔 '옐로카드' 받은 정권

9월 17일은 대한민국이 1991년 161번째 유엔 회원국이 된 역사적인 날이다. 북한(160번째 가입)과 함께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지 어느덧 30주년이다. 당시 중앙일보는 유엔 가입의 의미를 1면 톱기사로 전하면서 '통일 징검다리 놓았다'는 큰 제목을 뽑았다. 유엔 가입이 통일의 징검다리가 됐는지, 가입 당시 일각에서 우려한 대로 '두 개의 코리아'(Two Koreas)를 국제사회에 각인시켜 영구 분단으로 가는 것인지는 좀 더 세월이 지나면 판가름날 것이다.

 

어쨌든 31년 전 유엔 가입의 의미는 각별하다. 1948년 8월 15일에 탄생한 신생 독립국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한 1948년 12월 11일 유엔 총회 195호 결의를 계기로 대한민국과 유엔이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유엔 회원국이 되기까지는 그로부터 무려 42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미·소 냉전 체제에서 소련의 거부권이 결정적 장애물로 작용했다.

 

1989년 12월 당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몰타 선언으로 냉전이 해체되면서 기회의 문이 열렸다. 1991년 가입 당시 외교 라인업은 노태우 대통령의 지휘 아래 김종휘 외교안보수석, 이상옥 외무부 장관, 유종하 차관, 문동석 국제기구국장, 이규형 유엔과장이었다.

 

▲1994년 3월 방한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을 노태우 대통령이 만찬장에서 반갑게 맞고 있다. 노 대통령은 북방외교를 통해 소련 중국과의 수교, 유엔 가입을 성공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중앙포토]

 

당시 국제기구국장으로 유엔 가입을 총괄했던 문동석(79) 전 스위스 대사는 "유엔 가입이 최종 성사되는 과정에서 최대 공로자는 북방외교를 추진한 노태우 대통령이었다"고 회고했다. "외무부는 1990년 말에 유엔 가입 노력을 점검하는 보고서를 청와대에 올렸다. 노 대통령은 보고서 첫 페이지에 '유엔 가입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친필 메시지를 보내 격려했다. 그만큼 유엔 가입에 대해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지도자가 시대 조류와 세계의 변화를 정확히 읽고 방향을 분명히 제시해준 덕분에 일선 외교관들은 수많은 난관을 돌파할 수 있었다."

 

문 전 대사는 유엔 가입의 의미에 대해 "비정상의 정상화였다"고 회고했다. 6·25 전쟁의 잿더미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한 대한민국이 유엔 옵서버에서 당당한 회원국이 됐다는 의미다. 당시 유엔과장이던 이규형 전 주중대사도 "비정상적 외교 환경을 정상화했고 국격과 국민의 자긍심을 고양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유엔 가입 이후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졌고 2007년엔 한국인 최초 유엔 사무총장(반기문)도 배출했다.

 

그런데 어렵게 일군 대한민국의 국격과 이미지를 일순간에 떨어뜨리는 행태가 자행돼 경악하는 이들이 많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민주주의와 인권에 반하는 악법을 남발하면서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있어 개탄스럽다.

 

가장 최근의 악법 사례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 시도다. 헌법 21조 1항에 명시한 언론의 자유를 짓밟는 '언론족쇄법'에 대해 관훈클럽 등 7개 언론 단체가 철회를 요구했다. 심지어 문 정부를 옹호해온 민언련 등 친정부 성향의 시민단체조차 반대 성명을 냈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신문협회(WAN), 국제언론인협회(IPI), 국제기자연맹(IFJ),국경없는기자회(RSF), 아시아기자협회(AJA),서울외신기자클럽(SFCC) 등이 성명과 입장문을 통해 한국의 언론 자유 후퇴에 큰 우려를 표시했다.

 

급기야 유엔까지 나섰다. 아이린 칸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최근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 자유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며 “국제 인권 기준에 맞게 수정을 촉구한다”는 서한을 문 정부에 보냈다. 독재국가를 닮은 언론 탄압법을 추진해 나라 망신을 톡톡히 시킨 셈이다. 문 정부 들어서만 유엔은 인권 문제를 23차례나 지적했다. 올해가 유엔 가입 30주년인데 유엔으로부터 옐로카드를 줄줄이 받았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문 대통령은 2012년 7월 저서『사람이 먼저다』에서 “권력은 언론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권력은 언론을 통제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2017년 대선 당시엔 “언론의 침묵은 국민의 신음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SNS에 글을 올렸다. 정치적으로 필요할 때는 언론 자유를 외치고, 권좌에 오르자 언론을 장악하려는 행태는 위선의 극치다.

 

언론 악법으로 권력은 언론 망신주기라는 소기의 성과를 충분히 거뒀다고 본다. 부끄러운 언론족쇄법은 폐기가 마땅하다.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보낸 시 끝부분을 권력자들에게 보낸다. "족한 줄 알고 그치길 바라노라(知足願云止)."

중앙일보 장세정 논설위원

 

09월 06일  김형석 교수 70대 딸의 ‘아버지 인신공격 말라’는 호소

한국 철학계의 대표적 원로 학자인 김형석(101) 연세대 명예교수에 대한 ‘혹세무민 막말’을 참다못한 김 교수 딸이 급기야 ‘아버지 인신공격은 하지 말라’는 호소 편지를 지난 3일 공개했다. 70대인 김 교수 둘째 딸은 최근 잇따라 김 교수 비난에 나선 정철승(51) 변호사를 향해 쓴 편지에서 ‘여러 정권을 지나오며 저는 봤다. 형사들이 퇴근하는 아버지를 연행해간 것은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다. 정권에 불리한 강연을 하신 탓’이라고 밝혔다.


정 변호사는 지난 1일 페이스북에서 김 교수를 겨냥해 ‘이래서 오래 사는 것이 위험하다는 옛말이 생겨난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가 하루 전 일본 언론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의 언론 압박 등을 지적한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정 변호사는 매도했다. ‘60여 년 동안 정권의 반(反)민주, 반인권을 비판한 적이 없었다’며 김 교수가 4·19 혁명 당시 교수시위를 주동한 사실 등을 없던 일로 돌렸다.


정 변호사는 2일 해당 보도를 ‘악의적 왜곡’으로 몰며 ‘정치인이나 공직자도 아닌 자영업자인 나에게 별다른 대미지를 주지 못했다. 오히려 하루 사이에 팔로어만 300명 이상 늘었다”고 자랑까지 했다. 소영웅주의에 빠져 ‘패륜 막말’도 서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정 변호사 유(類)는 정신 차려야 한다.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GSGG’ 욕설을 하고 황당한 변명으로 국민을 더 우롱한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그를 “점잖은 분이고 아주 바른 정치인”이라며 궤변을 늘어놓은 박성준 민주당 의원 등도 마찬가지다.

문화일보 사설

 

09.07 일산대교 무료화로 국민연금이 보는 손해는 결국 국민의 손해

이재명 경기 지사가 일산대교 통행료 무료화를 위해 일산대교의 운영권자인 국민연금으로부터 사업권을 회수하겠다고 밝혔다. 일산대교는 민간자본 유치 사업으로 2008년 건설됐고 이듬해인 2009년 국민연금이 2700여억원을 투자해 30년 운영권을 인수했다. 이때 국민연금이 목표한 30년 운영 수익은 최대 7000억원이었다. 그런데 이 지사는 운영권을 강제 회수하면서 국민연금에 투자 원금인 2000억원대 정도만 주겠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에 기대 수익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일산대교는 민간 SOC 사업 모델로 추진됐다. 사업자가 자본을 투자해 건설한 뒤 장기간에 걸쳐 사업비를 회수하는 모델이다. 수익률은 민자 사업의 표준 기대 수익률을 적용했다. 그런데도 경기도 측은 ‘봉이 김선달’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수익률이 과다하다고 했다. 설사 수익률이 높더라도 이는 국민의 노후 생활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 이 지사가 유력 대선 주자여서 국민연금 측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고 한다.

 

적립금 833조원의 국민연금은 가입자인 국민이 주인이다. 국민 노후 자금을 관리하는 국민연금이 수익률을 1%포인트만 높여도 보험료율을 2.5% 높이는 효과를 내고 2056년으로 예정된 연금 고갈 시점도 8년 정도 늦출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연금 수익률 제고가 최대의 공익(公益)이요, 국민 전체와 미래 세대에 기여하는 길이다. 하지만 이 정부 들어 주인 없는 돈처럼 여기고 정치적 이익을 위한 쌈짓돈으로 쓰려는 행태가 계속되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09.07 ‘공무원과 세금 면제자 위한 나라’ 만들어 어쩌자는 건가

올해 공무원·군인연금 적자 메우는 데 국민 혈세 7조원이 들어가고, 내년엔 적자 보전액이 8조원으로 불어난다. 두 연금의 적자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과거 정부는 그래도 해법을 찾는 노력은 했다. 2015년 박근혜 정부는 공무원 월급에서 보험료 내는 비율을 7%에서 9%로 올리고, 지급받는 연금액은 단계적으로 내리는 개혁을 단행했다. 잠시 효과를 보긴 했지만 결국 적자 폭은 다시 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4년간 공무원을 무려 10만명이나 더 늘렸다. 그로 인해 공무원·군인에게 지급해야 할 연금액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 부채(연금 충당 부채)가 1000조원으로 4년 만에 300조원이나 불어났다. 연금 전문가들이 공무원 연금 부담률을 월급의 15% 이상으로 올리고 지급률은 더 낮춰야 한다고 조언해도 문 정부는 들은 척도 않는다. 인기 없지만 나라에 도움 되는 정책은 절대 안 하고, 인기 있지만 나라에 도움 안 되는 정책은 반드시 하는 정권이다.

 

 

올해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적자를 메우는 데 국민 혈세 7조원이 투입되고, 내년엔 적자 보전액이 8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또 공무원 10만명 증원 등으로 두 연금의 충당 부채가 4년간 무려 300조원이나 늘어났지만 문재인 정부는 연금 개혁엔 손을 놓고 있다.

 

문 정부는 이처럼 미래 세대에 빚 폭탄을 떠안기면서 그 빚을 갚을 세금을 늘리는 일은 왜곡해왔다. 세금을 안정적으로 늘리려면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란 공평 과세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정부는 상위 소득자와 대기업만 겨냥한 증세에 몰두해 왔다. 상위 1% 고소득 근로자가 전체 소득세의 41%를 내는 반면 근로자 40%는 세금을 단 한 푼도 안 낸다(2019년 기준). 상위 1% 기업이 전체 법인세 중 83%를 내는 반면 법인의 49%는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2020년 기준).

 

저출산 고령화로 연금 의존층은 급증하는데 세금을 내는 생산 가능 인구는 계속 줄고 있다. 생산 가능 인구 100명당 부양해야 하는 65세 이상 인구가 현재는 22명인데 2040년에는 65명으로 늘어난다. 그런데도 정부는 연금 받을 공무원을 대폭 늘렸다. 세금 낼 사람 늘리는 일은 관심 밖이다. 공무원과 세금 면제자를 위한 나라가 갈 길은 정해져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그 끝은 예상 외로 빨리 올 수 있다.

조선일보 사설

 

09.07 문재인 대통령 공약도 뒤집으려는 건가

정치인의 언어중추에는 인공지능(AI)으론 절대 못 따라갈 고성능 번역기가 내장돼 있다. 머릿속에선 정치적 이해타산의 알고리즘이 쉼없이 돌아가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늘 고결한 대의명분으로 포장된다. 이해타산과 대의명분을 이어주는 번역기의 특징은 고도의 의역(意譯)이 위주란 점이다. 간혹 어설픈 직역(直譯)으로 최대한 숨겨야 할 본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다.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4년 전 대선 공약과 정반대 내용

국제사회는 민주주의 후퇴로 평가

 

송영길 민주당 대표의 발언이 딱 그런 경우다. 그는 언론중재법 개정의 이유를 한참 설명하다 이에 반대하는 야당을 향해 “평생 야당만 할 생각이냐”고 했다. 아뿔싸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것 아닐까. 그의 발언은 언론중재법이 야당에는 불리하고 여당에는 유리한 법이라고 시인하는 자백과 마찬가지다. 설령 그게 누구나 다 꿰뚫어 보는 사실이라 해도 입 밖으로는 내지 말았어야 했다. 인권 보호와 피해 구제라는 대의명분과 달리 실제로는 이 법을 만들려는 발상부터가 정파적이고 정략적이란 얘기로 들리니 말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을 정략적 발상이라 보는 이유는 또 있다. 언론 환경의 본질이 그 사이 바뀐 것도 없는데 4년 전 대선 때 공약했던 것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집『나라를 나라답게』의 60∼61쪽 ‘민주주의와 인권 회복’편에는 표현의 자유, 특히 인터넷 공간에서의 자유 보장에 관한 공약들이 나온다. 신문이든 방송이든 모든 언론의 콘텐트가 인터넷으로 수렴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는 사실상 언론 자유에 관한 공약이다. 여기에 이렇게 적혀 있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위법성 조각사유 대폭 확대 ^정치적 표현에 대해서는 자율규제로 전환. 나아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라고 명기하며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터넷 실명제 폐지까지 공약했다. 방임에 가깝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한 셈이다. 하지만 지금 민주당이 발의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정반대다. 왜 정반대인지 설명하는 건 지면 낭비일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공약집에는 “정보 게재자의 표현의 자유와 방어권 보장을 위해 정보통신망법상 사업자의 일방적 ‘임시조치’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약속도 나온다. 사이트 운영자 등이 함부로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차단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얘기다. 그런데 민주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서 ‘열람 차단 청구권’을 들고나왔다. 이런 규제 장치들이 이중 삼중으로 작동하면 ‘재갈’이란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권위있는 유엔 인권기구와 해외의 언론단체들이 줄줄이 우려를 표시하고 나선 이유가 그 때문이다. 유독 집권 여당만 그 이유를 모르는 듯한데, 하버드대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2018년 펴낸『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읽어봤으면 한다. 저자들은 선출된 정치 지도자의 잠재적 독재 성향을 감별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15개의 구체적인 질문을 제시했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양성반응을 보이면 독재로 흐를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20세기 이후 미국 대통령들 중에 양성 판정자는 리처드 닉슨

이 유일했었는데, 도널드 트럼프가 그 대열에 합류해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렸다는 게 저자들의 평가였다.

 

레비츠키의 지표를 지금의 한국 상황에 대입하면 어떤 평가가 나올까. 15개 질문 가운데 언론 관련 질문은 두 개다. 그중 민주당의 언론중재법은 “명예훼손과 비방, 집회금지 등 시민의 자유권을 억압하는 법률이나 정책을 지지한 적이 있는가”란 항목에서 양성 판정을 받을 게 명백하다. “상대 정당, 시민단체, 언론에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협박한 적이 있는가”란 질문에서도 양성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 판정표는 고스란히 문재인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지금 한국의 언론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엄중한 시선을 “뭣도 모르면서”라고 치부하며 넘어갈 일이 아니란 얘기다.

중앙일보 예영준 논설위원

 

09-08 다 퍼주고 나서 “곳간 비어간다”는 무책임한 경제부총리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01차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안철민 기자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이달 6일 “나라 곳간이 쌓여 가는 게 아니라 비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곳간에 곡식을 쌓아두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답한 내용이다. 무분별한 재정 확대로 나랏빚이 1000조 원을 넘었으니 홍 부총리의 말은 맞다. 하지만 추경을 포함해 10차례나 예산을 편성한 재정 책임자가 마치 남 이야기 하듯 이런 말을 하니 황당할 따름이다. 곳간에 곡식이 쌓였다는 정치권 인식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홍 부총리는 4일 취임 1000일을 맞았다. 최장수 기록인데 곳간지기로서 역할은 낙제점에 가깝다. 홍 부총리 재임 동안 국가 예산은 정부 출범 때보다 50% 증가했다. 국가채무비율 등 나랏빚과 관련한 통계는 대부분 역대 최대를 경신했다. 그래 놓고 임기가 끝날 즈음 곳간이 비어 간다고 한다. “나는 경고했다”는 식으로 재정 악화 책임을 회피하려는 비겁함으로 비칠 수 있다.

 

그는 나라 곳간을 걱정한 지 하루 만에 어제는 “재정이 탄탄하다”며 말을 뒤집었다. 전날 발언에 대해 여당 의원들이 “국민을 불안하게 하지 말라”며 반발하자 말을 바꾼 것이다. 소신을 얘기했다가 입장을 번복한 게 이번뿐만이 아니다. 올해 2차 추경 논의 과정에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반대하며 소득 하위 70% 지급을 주장했다. 하지만 정치권에 밀려 88% 지급으로 물러섰다. 이전 4차례 재난지원금 지급 때도 온전히 소신을 관철한 적이 없다.

 

홍 부총리는 국가 채무의 증가 속도가 빠르다고 하면서도 재정 건전성을 개선할 시점은 2023년으로 못 박았다. 책임을 다음 정부로 떠넘긴 것이다. 물론 홍 부총리만 탓할 수는 없다. 여당이 퍼주기 정책으로 나랏빚을 급증시킨 게 사실이다. 지금도 돈 풀기에 골몰하는 정치권은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런 포퓰리즘에 맞서 곳간을 지키는 자리가 경제부총리다.

 

대선을 앞두고 국가 재정을 쏟아붓는 선심성 공약이 넘쳐나고 있다. 다음 정권에서도 재정 건전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 홍 부총리는 지난해 나랏빚을 제어할 장치로 재정준칙을 마련했다. 느슨한 수준인데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재정준칙을 강조하지만 이마저도 관철시킬 결기가 있는지 의문이다. ‘최장수’ 경제부총리가 오명으로 남지 않도록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동아일보 사설

 

09월 08일 “부동산 失政 책임 국민에 전가…징벌 과세 애먼 칼 뺐다”

정부 국책연구기관들이 장기간의 연구를 거쳐 최근 내놓은 방대한 분량의 부동산 정책 보고서는 여러 측면에서 충격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전면 실패했음을 선명한 논리와 표현으로 평가했는데, 대부분 정부의 기존 홍보를 반박하는 내용이다. 연구를 주관한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전·현 원장이 모두 참여연대 출신이라는 사실은 실정(失政)의 심각성을 방증한다. 형사·법무연구원과 국토연구원, 주택금융연구원 등 3개 기관은 지난해 8월부터 1년 동안 협력해 719쪽의 ‘부동산 시장질서 확립을 위한 중점 대응 전략’ 보고서를 작성, 지난달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제출했다고 한다.


산업·조세, 부동산 금융, 부동산 형사정책 등 세 분야를 중심으로 작성된 이 보고서는 공공 중심의 주택 공급, 임대차 3법,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과세, 과도한 금융 규제 등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한마디로 총체적인 실패라는 주장이다. 국책연구기관이 만든 보고서로는 아주 드물게 거칠고 직설적 표현을 담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정치가와 공직자들이 실정 책임을 국민 탓으로 전가하고, 부동산을 통한 불로소득을 바로잡겠다고 징벌적 과세 수준의 애먼 칼을 빼 들었다’는 표현이 정책 평가를 함축한다.


보고서는 또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공 중심의 공급 정책을 비판하면서 ‘공공 부문이 차익과 폭리를 노리는 악덕 투자자와 다르지 않게 됐다’고 했다. 전국적 집값 급등에 대해 정부의 정책 오류 또는 ‘의도적 정책 실패’라는 의미심장한 표현까지 썼다. 임대차 3법 강행을 비판하는 대목에서는 ‘스스로 소유자 적대적 또는 반(反)자본주의적 이미지에 갇히게 된 측면이 작지 않다’고 질책했다.


이번 보고서는 ‘순서가 잘못됐고 퇴로 없는 정책은 저항만 낳을 뿐’이라며 민간 공급 확대 등의 제언도 담았다. 지난 8월 기준 전국 아파트 매매가는 3.3㎡ 당 평균 2030만 원으로, 2019년 말 1466만 원에 비해 1년8개월 만에 38.5% 폭등했다는 통계(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도 나올 정도로 문 정부 주택정책은 대재앙이 돼 버렸다. 그렇지만 이제라도 시정해 죄책을 더는 키우지 말기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

 

09.08 20세기 교수가 21세기 학생을 가르치는 한국 대학

대졸 청년들이 취업 시장에서 구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정작 기업들은 현장에서 쓸 만한 인재를 뽑기 어렵다고 하소연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본지가 최근 기업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기업들은 여전히 원하는 인력 확보가 어렵다며 대학이 학생 교육 내용을 바꾸어 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10년, 20년 전부터 들어온 말이지만 대학은 하나도 바뀌지 않고 있다.

 

이런 인력 미스 매치는 우리 대학과 교수들이 글로벌 경쟁이라는 인식은 없이 철밥통 매너리즘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20~30년 전부터 유지해온 학과와 커리큘럼을 고수해도 등록금이 들어오고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돈 내는 기계나 마찬가지다. 철밥통, 변화 무풍지대, ‘20세기 교사가 21세기 학생을 가르친다”는 말이 우리나라만큼 잘 들어맞는 나라가 없다.

 

선진국 대학들은 우리와 정반대로, 4차 산업혁명 생태계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학을 중심으로 기업가, 연구자, 투자가 등이 경쟁하고 협력하고 연구개발하면서 새로운 사업 모델, 플랫폼, 상품, 산업은 물론 사회 혁신까지 선도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실리콘밸리에서 스탠퍼드와 버클리와 같은 대학을 중심으로 혁신이 일어나는 것이 좋은 예다. 미국 MIT·프린스턴대, 싱가포르 난양공대와 같은 대학들도 HP·인텔 등 글로벌 기업과 합작해 최고의 인력을 길러내고 있다.

 

한국 대학은 이런 세계적 흐름과는 딴판인 세상을 살고 있다. 반도체·배터리·소프트웨어 같은 첨단 산업의 기업들은 대학 졸업생들을 새로 가르쳐야 한다. 대학이 창의력과 혁신 역량을 갖춘 인재를 길러내는 것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실무 능력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게임 회사가 신입 사원에게 코딩 과외를 하고 배터리 회사가 별도의 물리학 강좌를 개설해 가르치는 일이 흔한 일이 돼버렸다. 급기야 ‘삼성 청년 소프트웨어 아카데미’처럼 기업들이 직접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LG는 최근 오창 공장에 세계 최초로 배터리 전문 교육기관을 세우겠다고 했다.

 

우리나라 대학에서 세계 첨단 수준에서 경쟁하겠다는 교수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학생은 대학에 대한 기대를 접고 돈 내서 졸업장을 따겠다는 생각뿐이다.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길러내지 못하는 대학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대학 교육을 교수 등 공급자 중심에서 기업과 사회 등 수요자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바꾸는 혁신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시점이다. 대학이 교육부 관료 손아귀 안에 있는 한 혁신은 불가능할 것이다. 한국 대학 교육은 낡고 낡아 이제 더 이상 갈 수 없는 한계에 와 있다.

조선일보 사설

 

09.08 무능한 아웃사이더들의 등장을 경계한다

행정학계 원로인 정정길 전 대통령실장의 ‘3불(不)’ 사회 위기론은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국민들이 먹고사는 것이 불안(不安)하고, 사회는 불공평해서 나만 손해 본다는 불만(不滿)이 가득한데, 이를 해결해야 할 정부는 무능하여 믿을 수 없다는 불신(不信)이 만연하면 사회에 위기가 온다. 국민들은 분노하고, 분열하면서 국정은 최악의 상황이 되는데 이때 비제도권에서 아웃사이더들이 등장하게 된다. 아웃사이더는 정치·행정 체제의 변두리에 머물면서 실제 정책을 해본 경험이 없는 시민단체·어용학자·정치인들을 일컫는다. 아웃사이더는 참신한 시각으로 나라를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지만 대부분은 실패했다. 왜냐하면 이들은 국정에 대해 치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는 데다가, 자기 분야 이외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복잡하게 얽힌 사회문제 해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외환 위기 때 아웃사이더들이 본격 등장하기 시작했다. DJ 정부는 ‘과거 청산과 제2의 건국’을 주창하면서 종전 경제 사령탑이던 재정경제원을 4개 기관으로 분리 해체하고, 주요 정책은 학계, 시민단체 인사들에게 맡겼다. 그러나 이 체제는 오래가지 못했다. 성과가 별로였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결국 경제수석을 관료 출신으로 바꾸면서 경제 구조 조정, 공공 부문 개혁을 과감히 추진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경제 위기도 조기에 극복했다.

 

곧이어 등장한 노무현 정부도 처음에는 아웃사이더들의 독무대였다. ‘특권을 폐지하고 반칙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기치하에 아웃사이더들이 대거 국정에 참여했다. 초기 청와대 비서실 구성만 보더라도 비서관급 이상 50명 가운데 관료 출신은 1명밖에 없을 정도였다. 주요 정책은 부처가 아닌 위원회에서 ‘로드맵’이란 이름으로 추진되었다. 역대 정부 중 위원회가 가장 많았던 시절이다. 그러나 위원회 체제는 말만 무성하고 성과는 신통치 않았기에 노 대통령 역시 제도권 중심의 국정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초기에 추진한 지역 개발 전략이 부동산 투기로 이어지면서 국정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보수 정권에서 잠잠했던 아웃사이더들이 현 정부 들어 전성기를 맞이했다. 정권 핵심들은 과거 노무현 정부가 관료들에 둘러싸여 제대로 개혁을 못 했다고 비판하면서 집권 내내 아웃사이더들을 중용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일자리 정부를 내세웠지만 임금 인상과 노조 편향 시책들로 인해 시장에서 일자리는 오히려 줄었고, 국가 부채는 치솟았으며,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해외로 나가고 있다.

 

환경 단체가 주도한 탈원전 정책은 최악이다. 본래 환경론자들은 천성산 도롱뇽 사태에서 보듯이 자기가 보고 싶은 부분만 본다. 지난 2012년 태국에서 치수 사업 국제 입찰이 있었는데, 우리는 수자원공사가 참여하여 일본·중국과 경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 환경 단체들이 태국을 방문하여 한국의 4대강 사업을 본받지 말라고 훼방을 놓으면서 우리 팀에 치명타를 가했다. 당시는 건설업계가 힘들어 해외 수주가 한 푼이라도 아쉬웠지만 환경 단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탈원전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환경 단체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들에게 에너지 정책까지 맡긴 것은 큰 잘못이다.

 

아웃사이더 정책의 난맥은 부동산 대책에서 극에 달했다. 집값은 주택 수급뿐만 아니라 거시 경제, 투기 심리, 심지어 교육까지 여러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매우 복잡·다난해서 역대 부동산 대책은 정책 경험이 많은 전문가들이 주도했다. 그런데 현 정부에서는 정치인, 시민단체 출신의 정책 책임자들이 세금과 공권력으로만 집값을 떨어뜨리려다가 사달이 났다. MB 정부 시절 부동산세를 낮추고도 집값을 안정시킨 것과 대비가 된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이 난립하면서 또다시 아웃사이더들이 대거 등장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내세우는 정책들을 보면 소득·주택·대출, 심지어 목돈 마련까지 정부가 보장하겠다는 허황된 것이 많다.

 

정치는 국민을 속여도, 경제는 속이지 않는다. 콩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으면 팥 난다. 콩 심어놓고 비료 아무리 뿌려봐야 팥 안 된다. 정책이 잘못되면 아무리 재정 퍼부어도 경제가 좋아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시장 순리를 따르면 집값도, 일자리도 저절로 해결되는데 아웃사이더들이 어설프게 시장에 개입하다가 배가 산으로 갔다. 다음 정부에서마저 아웃사이더들이 국정을 주도하고 시장에 역행하는 정책들을 쏟아내면 경제는 희망이 없다.

조선일보 김대기 단국대 초빙교수·前 청와대 정책실장

 

09.09 이 정권서 더 정치화된 관료들, 벌써 대선 바람 타기 시작

청와대 비서관 출신의 산업자원부 1차관이 부처 정책 중에 “정치인 입장에서 ‘할 만하네’라고 받아줄 만한 게 잘 안 보인다”면서 “(대선) 공약으로서 괜찮은 느낌이 드는 어젠다를 내라”고 직원들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대선을 앞두고 유력한 대선 후보 입맛에 맞는 정책을 개발해 줄 대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차기 권력 줄 대기’는 산자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재명 경기 지사가 여당 대선 주자로 부상하자 일부 부처는 이 지사의 ‘기본 공약’ 시리즈를 뒷받침할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있다고 한다. 이 지사가 주장하는 기본소득·기본주택에 맞춰 지역·기관별로 연구개발 예산을 골고루 나눠주는 ‘기본 R&D’ 아이디어까지 낸 부처도 있다. 어떤 부처는 대선 결과에 대한 시나리오를 짜서 여야 후보별로 정책·예산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양쪽 구미에 맞는 정책을 각각 들고 눈치 보고 있다가 집권하는 쪽 입맛에 맞는 정책을 들이밀겠다는 것이다. 중앙 부처뿐 아니라 지자체와 산하 공기업까지 이미 대선 영향권에 들어가 있다.

 

이 정부 들어 ‘정책의 정치화’는 더욱 심각해졌다. 정권이 주요 정책을 시시콜콜 주도하면서 정상적인 정책 결정 시스템이 다 무너졌다. 탈원전, 소득 주도 성장, 일자리 정책,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26차례의 부동산 대책, 임대차 3법 등이 모두 해당 사안에 경험 있는 공무원 집단이나 전문가 의견은 배제된 채 정권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됐다. 그 결과 원전 생태계가 무너지고, 좋은 일자리가 사라졌으며, 소득 격차가 심화되고 집값이 최악으로 치솟는 등의 부작용을 일으켰다.

 

과거 정부에선 정치가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을 밀어붙이면 그래도 관료들이 목소리를 내서 조정하는 과정이 있었다.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고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정책 다듬기도 관가(官街)의 전통이었다. 세금 낭비를 막기 위해 투입된 예산 대비 정책의 실효성도 따져가면서 추진했다. 하지만 이 정부 들어 전문가 관료 조직의 정책 입안·조정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됐다. 그 결과 부작용이 뻔히 예상되는 비현실적 정책이나 전 국민 현금 뿌리기 같은 낭비성 매표(買票) 행정이 비일비재해졌다. 산자부 차관이 말한 ‘정치인 입장에서 할 만하네’에 해당하는 정책은 바로 이런 정책들일 것이다.

 

국민 세금으로 월급 받는 공무원은 정권 아닌 국민과 국가에 충성해야 한다는 기본 상식조차 사라졌다. 승진시켜주는 정권 앞에 공무원들은 바람이 불기도 전에 드러눕는 풀과 같다고 한다. 대선 바람은 태풍이다. 각 부처 공무원들은 이미 풀처럼 드러누워 대선 후보 입맛에 맞는 공약을 궁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선거는 필요악이라고 하지만 그 해악이 갈 데까지 가는 것 같다.

조선일보 사설

 

09.09 차 떠난 뒤 손 든 국책硏 “정부가 부동산 실패 국민에 전가”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국토연구원, 주택금융연구원 등 국책 연구기관 3곳이 합동으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총체적 실패작임을 지적하는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객관적 기준이나 사회적 합의 없이 여러 주택을 소유한 것만으로 종부세 등 세금 중과의 핵심 표준으로 삼았고” “충분한 정책 검증 없이 임대차3법을 강행함으로써 스스로 반(反)자본주의적 이미지에 갇히게 됐으며” “(민간 아닌) 공공이 주도하는 주택 공급 전략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실정의 책임을 국민 탓으로 전가하고, 국민을 향해 징벌적 과세 수준의 애먼 칼을 빼들었다. 순서가 잘못됐고 퇴로 없는 정책은 저항만 낳을 뿐”이라고 했다. 구구절절 옳은 얘기다. 그러나 늦어도 너무 늦었다. 잘못 짚은 헛다리 대책이 26번씩이나 나왔는데도 입 다물고 있던 국책연구소들이 이제 와서 누구나 다 아는 얘기를 늘어놓으며 정책이 잘못됐다고 한다. 전 국민이 ‘미친 집값’과 ‘전세 대란’으로 아우성치는 동안 정부 눈치만 보고 있던 국책연구소들이 정권 말이 되자 ‘면피’용으로 뒷북 보고서를 낸 것이다. 그런다고 면피가 되지 않는다.

 

국책연구소는 정부 정책이 제대로 입안·집행되도록 뒷받침하고 조언하는 국정의 두뇌 기관이다. 정책이 잘못되고 있다면 문제를 제기하고 수정·보완토록 목소리를 낼 직무상 책임이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의 포퓰리즘 폭주가 숱한 부작용을 낳아도 침묵했다. 국토연구원은 부동산 난맥상, 노동연구원은 최저임금 과속 인상, 산업연구원·에너지경제연구원은 탈원전, 보건사회연구원은 사회보험 적자, 조세재정연구원은 징벌적 과세 등에 대해 문제점을 분석하고 개선책을 제시해야 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권 앞잡이 노릇을 했다. 26개 국책 연구기관은 연구 인력 6300여 명으로 한 해 1조1000억원 예산을 쓴다. 왜 세금으로 이들 월급을 줘야 하나.

조선일보 사설


09.09 언론은 권력의 시녀가 아니다

언론중재법 논란 초기에 “가짜뉴스 처벌에 동의하십니까”라고 물으면 ‘찬성’ 응답이 많았다(더불어민주당 주장). 빈대 잡겠다는데 누가 반대하랴. 하지만 이렇게 당위를 물으면 찬성하지 않을 사람이 거의 없다. 문제는 이 법안을 추진한 집권당의 강경세력이 국민을 농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짜뉴스의 99%는 돈벌이 목적의 1인 유튜브 방송에서 나오고 있는데도 언론중재법은 이들을 규제 대상에서 쏙 빼놨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찬성률은 30%대로 뚝 떨어졌다.

독재 선포나 다름없는 언론중재법
받아쓰기만 하라고 강요하는 악법
언론통제의 유혹과 망상 벗어나야

권력자는 세계 어디서나 언론을 통제하거나 피하려고 한다.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시절, 조지 W 부시도 마이크가 켜진 걸 모른 채 취재기자에게 욕설을 쏟아낸 것처럼 민주국가에서도 언론은 성가신 존재다. 언론만 아니면 권력자와 돈 많은 사람은 거칠 게 없다. 그래서 미국은 헌법에 언론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못 박아 정권ㆍ자본 등 모든 권력을 견제하도록 했다.

 

민주주의가 취약할수록 언론 통제의 유혹은 커진다. 1980년 신군부는 언론 통폐합에 나섰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조선일보 출신 허문도 청와대 정무비서관에게 ‘언론 창달 계획’을 입안하게 했다. 이에 맞춰 보안사는 언론사 사주들을 남산으로 소환해 통폐합에 이의 없다는 각서를 강제로 받았다. 수많은 해직 기자도 쏟아졌다. 그때도 명분은 있었다. 허문도는 5공 청문회에서 “언론 통폐합은 잘한 일”이라고 했고, 1996년 검찰 조사에서도 “언론사가 난립하고 사이비 기자가 판을 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군사정부의 폭거를 정당화했다.

 

외형만 보면 신군부의 폭압적 방식이 전형적인 언론 탄압이다. 하지만 언론중재법의 위험성이 결코 물리적 언론 통폐합보다 작다고 할 수 없다. 언론중재법의 독소조항은 취재 의지 자체를 꺾음으로써 한국에서 언론 자유가 질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 언론사 내부를 보자. 의외로 언론사의 취재 여건은 열악하다. 아침에 배달되는 신문 지면만 보면 신문사가 세상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 실패, 권력자의 횡포, 기업의 소비자 기만을 언론에 스스로 알려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 딱 한마디 들은 것을 단서로 실체 파악에 나서야 한다. 취재가 시작되면 내부자는 은폐에 나선다. 아무런 공권력이 없기 때문에 계좌 추적은 물론이고, 핵심 인물의 주소 파악이나 관계자 인터뷰조차 쉽지 않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부터 언론이 조명한 수많은 사건은 모두 기자가 발로 뛰어 세상으로 끌고 나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언론중재법은 기자에게 고의·중과실이 있다고 추정하고, 사생활을 이유로 기사 열람 금지 청구를 허용한다.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뒤따른다. 이 법이 실행되면 어떻게 될까. 위험을 무릅쓰고 진실과 비리를 파헤치려는 시도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자기 검열이 앞서면서 취재 의욕이 약화할 수 있다.

 

더 심각한 건 언론이 피해자의 도움 요청을 받아도 이를 수용할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증거 없는 의혹 보도는 부담스러운 일로 기피될 수 있다. 언론중재법이 군사정부의 언론 통폐합보다 덜 위험하다고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유엔이 국회에 경고를 보내고 해외 언론단체가 일제히 우려를 표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폭압적 법안을 외국 언론에 보란 듯 설명하려다 “가짜뉴스는 1인 미디어에서 나오는 것 아니냐”부터 “외국 언론도 적용되느냐”는 질문에 우왕좌왕한 건 스스로 자초한 나라 망신 아닌가. 권력에 취하다 보니 언론만 통제하면 비판을 막을 수 있다는 유혹과 망상에 빠져 “받아쓰기나 해”라는 오만에서 빚어진 참사다. 언론을 권력의 시녀로 보는 건가. “뭣도 모르는” 게 누구란 말인가. 특히 언론인 출신 정치인들은 허문도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언론중재법은 땜질이 아니라 폐기하는 게 마땅하다.

중앙일보 김동호 논설위원

 

09.10 韓銀서 돈 찍어 자영업자 돕자는 與 원내대표 제정신인가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가 그제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한국은행은 현재의 양적완화 정책을 조정하는 한편 소상공인·자영업자 채권을 매입하는 포용적 완화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 관계자는 “중앙은행이 직접 하든, 채권매입전문기구(SPV)를 통해 하든 고금리 소상공인 채권을 매입하고 금리를 인하해 재대출하는 방법을 말한 것”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소상공인, 자영업자에게 대출해준 금융회사들의 원리금 회수 권리를 한은이 인수하고 기존에 내던 높은 이자까지 깎아주라는 주문이다.

 

문제는 이 방법이 소상공인 등을 지원하는 데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원리금을 회수하지 못할 걸 각오하고 한은이 돈을 찍어 연체, 부도 가능성이 높은 소상공인 등의 대출을 인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해 나랏빚이 100조 원씩 늘도록 재정을 쓴 것도 모자라 한은을 동원해 현금을 살포하겠다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매입 가능한 채권을 국채, 정부보증채 등으로 제한한 한은법 취지에도 어긋난다.

 

포퓰리즘에 중독된 정권이 중앙은행을 압박해 돈을 풀었을 때의 후유증은 경제가 파탄 난 후진국들에서 수없이 확인된다. 선심 쓰며 찍어낸 돈은 물가 폭등을 부른다. 이에 따라 화폐가치가 떨어지면 외국인들이 돈을 빼내갈 수 있다. 국채금리가 올라 정부, 기업이 해외에서 돈을 조달하기 힘들어지고 국가 신용등급이 하락할 위험도 있다. 윤 원내대표 발언 이후 국고채 금리가 오른 게 이 때문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꼭 필요한 이유가 이런 정치권의 황당한 요구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의 여당 원내대표가 통화정책의 ABC를 무시한 주장을 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피해 기업의 채권 매입을 허용하는 내용의 한은법 개정안까지 발의해 놨다. 윤 원내대표와 여권은 발언을 즉시 취소하고 관련 법안도 철회해야 한다.

종아일보 사설

 

09월 10일 부동산 재앙 재확인한 국책硏 보고서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최근 세 국책연구기관이 협동으로 1년 동안 연구한 끝에 발표한 한 연구 보고서가 정부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해 눈길을 끈다. 문재인 정부의 가장 아픈 부분인 부동산정책의 실패 원인과 대책을 719쪽에 걸쳐 제시하면서 그 책임이 정부에 있음을 직격했기 때문이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국토연구원, 주택금융연구원 등 3개 국책연구기관이 지난 7일,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협동연구 총서로 제출한 ‘부동산 시장 질서 확립을 위한 중점 대응 전략’ 보고서가 그것이다. 이 보고서는 정부가 징벌적 수준의 과세를 통해 부동산정책 실패의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겼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연구자들은 문 정부에서의 정책 실패의 출발점이 다주택자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했다는 점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다주택자들에게 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해 막대한 세금을 중과했지만, 집값은 오히려 천정부지로 올랐다는 것이다. 역대 정부의 주택정책이 집권 세력의 이념과 가치에 따라 영향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다른 정부들이 시장의 현실을반영해 정책을 편 데 비해, 문 정부는 충분한 정책 검증 없이 임대차 3법을 강행함으로써 스스로 반자본주의적 이미지에 빠졌다고 비판했다.


또, 주택 공급의 주체는 기본적으로 민간인데도 공공 주도의 공급정책에 몰두해 주택 문제 해결이 어려워졌고, 정책 수행 라인의 일부 직원들이 자신들만 접근할 수 있는 정보를 악용해 차익과 폭리를 노리는 악덕 투자자가 되는 도덕적 해이가 만연했다고 지적했다.


공공 주도의 주택 공급은 소유주 반발 등으로 언제 구체화될지 모르는 데도 이를 고집했으며, LTV(주택담보대출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 등을 제한해 집값을 안정시키려 한 것은 자기자본이 부족한 실수요자들의 주택 마련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면서 현금 부자들만 주택 구입을 가능케 했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최근의 시중은행에 대한 급격한 대출 규제는 전세나 중도금 대출까지 막아 무주택 서민들을 두 번 죽이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결과적으로, 문 정부 출범 이후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5억7000만 원에서 11억9000만 원으로, 전세 평균 가격은 3억8400만 원에서 6억1500만 원으로 올랐다. 이 보고서의 내용은 그동안 부동산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주장해 온 것들이고, 언론을 통해 수없이 지적되고 보도된 바 있다. 그러니 청와대와 국토교통부 관계자들이 이를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념에 치우친 채 규제 만능주의에 빠져 전문가와 언론의 문제 제기와 대안 제시를 무시하고 자신만 옳다는 도그마에 빠진 결과가 바로 지금의 부동산 정책 실패다. 애꿎은 주택 소유자들만 가만히 앉아서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의 덤터기를 썼다.집권층이 말하는 ‘있는 사람들’은 평생 열심히 일해 내 집 한 채 장만했으며,자녀들 출가시킨 뒤 이제는 은퇴해 수입은 없이 집 한 채만 달랑 가진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제는 그 집을 담보로 세금을 내기 위해 대출을 받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문 대통령과 집권 여당 인사들은 집값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잡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집값이 얼마나 폭등해야 잘못을 인정할 텐가.

문화일보

 

09월 10일 재난지원금 항의 폭주에 또 대상 확대…국정이 장난인가

소득 하위 88%에게 주기로 한 코로나 재난지원금은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지만, 불만이 폭주하자 정부와 여당은 지급 대상을 늘리기로 했다. 그것도 ‘기준’을 정해서 90%까지 준다는 것도 아니고, 항의하면 최대한 수용하는 형식이라고 한다. 국정을 장난으로 여기는 행태임은 물론, 불만이 있으면 쟁취하라는 최악의 발상이다. 제5차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은 대상을 놓고 논란을 벌이다 소득 하위 80%에 1인당 25만 원씩 지급하는 것으로 지난 7월 초 당·정이 결정했다. 그러나 여당 내에서 전 국민 지급 주장이 계속 나오고, 그달 12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회동에서 100% 지급 ‘합의’ 얘기가 나오면서 7월 말 88%까지 올라갔다.


이에 따라 지난 6일부터 신청 절차가 시작됐는데,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한 소득 하위 88% 포함 여부를 놓고 나흘 만에 5만4000건의 이의신청이 접수되는 등 불만이 폭주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9일 국회 예산결산특위에서 “판단이 애매모호하면 저희가 가능한 한 지원해드리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완주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더 나아가 “88%보다 조금 더 상향해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아 90% 정도 하면 좋겠다”면서 “지급률을 2% 올리면 3000억 원가량 드는데, 코로나 손실보상금 등 남는 예산을 활용하면 감당할 수 있다”고 했다. 90%로 올려도 불만이 계속 나오면 또 92%로 올릴 것인가.


이런 주먹구구와 조령모개가 없다. 당초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정부·여당이 건보료를 기준으로 지원금 지급 대상을 결정할 때 “적합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 직장 가입자와 지역 가입자의 부과 체계가 달라 소득 분류 기준으로 쓰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특히, 당정은 2019년 건보료를 토대로 하위 88%를 산정했는데, 당시는 코로나 확산 전이어서 코로나로 인한 소득 변동을 반영할 수도 없다. 이런 엉터리 국정을 되풀이하기보다는 차라리 이제라도 이재명 경기지사 주장처럼 전 국민에게 주는 게 나을지 모른다.

문화일보 사설

 

09.11 文의 방송 장악에 짓밟힌 강규형, 언론법으론 누구 짓밟나

KBS 이사직 해임을 둘러싼 문재인 대통령과 강규형 KBS 전 이사의 법정 공방이 강 교수의 승리로 최종 결정됐다. 3년 8개월 만이다. 대법원은 강 전 이사의 해임 취소 판결에 불복해 문 대통령이 제기한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본안 심리조차 하지 않았다. 그만큼 문 대통령 주장은 말이 되지 않았다.

 

문 정권이 강 이사를 해임하는 과정은 이들이 말하는 언론 개혁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대통령 당선 7개월 후인 2017년 12월 강 이사를 해임했는데 의도는 뻔했다. 강 이사 해임으로 KBS 이사회의 여야 구도가 여당 다수로 역전됐고, 친정권 사장을 내세울 수 있었다. 문 대통령은 극히 사소한 법인카드 유용을 구실로 강 이사를 해임하고 세월호 참사 당일 노래방에서 법인카드를 사용한 양승동씨를 사장에 앉혔다. 그런 그가 사장 후보 면접 때 세월호 리본을 달고 나와 ‘적폐 청산’을 외쳤다고 한다. 그러곤 재임 3년 동안 만성 적자의 친문(親文) 방송으로 만들었다.

 

문 정권의 강 이사 축출엔 KBS 노조원들이 앞장섰다. 강 이사가 재직하는 대학에 몰려가 시위하고 대학 총장에게 압력을 가했다. 그래도 물러나지 않자 회사 데이터를 빼내 강 이사의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파악했다. 강 이사 가족사진을 들고 강 이사가 사는 동네 음식점을 돌아다니면서 개인적인 유용 여부를 캐내기까지 했다.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하고 방송통신위원회에 몰려가 해임을 요구했다. 홍위병이 따로 없었다. 감사원과 방통위도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임으로써 권력의 흥신소로 전락했다. 이 막장극을 주도한 노조 간부들은 줄줄이 KBS 간부로 올라갔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언론을 장악한 이들이 지금은 언론징벌법을 만든다고 한다. 그 목적이 무엇인지 강 이사가 당한 고난이 다 말해주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09.11 나라님도 안 하는 나라 걱정을 국민이 한다

국민은 ‘공돈 유혹’ 거부했지만 대선 앞둔 정부는 또 돈 뿌리기
국민만 나라 걱정 하는 나라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나

1차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주느냐, 소득 하위 70%에게만 주느냐를 놓고 민주당과 기획재정부가 힘겨루기를 하던 때가 지난해 4월이었다. 이 무렵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전 국민 지급 찬성이 30.2%, 70% 지급이 28.9%, 모름·무응답이 40.9%로 나왔다. 만약 내가 전화를 받았다면 선별 지급에 한 표를 던졌을 것이다. 코로나로 아무런 피해 본 게 없는 나 같은 직장인까지 왜 나라에서 지원금을 받아야 하나. 총선을 앞두고 돈으로 표를 사겠다는 얄팍한 속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전 국민 지급’으로 결정돼 받게 된 ‘공돈’의 맛은 생각보다 달콤했다. 내가 지원금을 사양하더라도 어차피 나랏돈은 멀쩡한 보도블록을 갈아엎거나, 관변 시민 단체들이 나눠 먹거나, 강의실 불 끄기 알바를 채용하느라 허무하게 사라질 것이다. 심지어 대통령 아들조차 나라에서 지원금을 수천만원 타 간 뒤 뭐가 문제냐고 큰소리치는 세상이다. 나 같은 소시민이 나랏돈 몇 십만 원 받든 안 받든 무슨 의미가 있나. 그렇게 받은 지원금은 애 학원비 내고 치킨 사 먹이는 데 썼다.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비슷한 심정이었던 모양이다. 돈을 받기 전 조사에서 재난지원금을 기부하겠다는 사람이 20%였지만, 실제로 기부한 금액은 0.2%에 불과했다.

 

그래서 이번 5차 재난지원금을 두고 지난 7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전 국민 지급에 찬성하는 의견이 38.7%밖에 안되는 걸 보고 내심 놀랐다. 80% 지급이 42.8%, ‘지급할 필요 없다’가 16.9%였다. 경기도가 독자적으로 전 도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주겠다는 계획에도 경기도민 39%가 반대했다. ‘공돈’의 단맛을 경험한 국민 대다수가 자제력과 분별심을 발휘한 것이다.

 

김부겸 총리 말대로 ‘현금 대신 자부심’을 택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대부분 ‘나랏돈을 이렇게 막 써도 되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세계은행에서 근무하며 여러 개발도상국을 돌아다닌 경력이 있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국가에서 돈을 주겠다고 하는데 나라 곳간 걱정하는 국민은 제가 태어나서 처음 본다”고 했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기어코 전 국민 지급을 놓고 좌충우돌하다 ‘88%’라는 기형적 결론을 냈다. 지난 총선 때 현금 살포 정책의 단맛을 잊지 못한 민주당과, 재정을 아꼈다고 자위하고 싶은 기재부 관료들의 정신 승리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애초 “코로나가 종식되는 상황이 오면 온 국민이 힘을 내자는 취지에서 전 국민을 위로하고 소비도 진작할 수 있는 지원금을 검토하라”는 대통령 지시로 시작된 5차 지원금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왜 나랏돈으로 선심을 쓰나.

 

관직을 떠난 뒤 전국 민생 탐방을 다닌 김동연 전 부총리는 “전남 여수의 한 어촌을 방문했을 때 어떤 분이 ‘예전엔 나라가 국민을 걱정했는데 요즘은 국민이 나라를 걱정하고 있다’는 말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국민들은 지원금을 굳이 모두에게 주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데, 연봉 1억5000만원을 받는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확인해 보니 나도 재난지원금 대상이 아니더라. 전 국민에게 지급했어야 한다”고 한다. 나라님들도 안 하는 나라 걱정을 국민만 한다.

 

국민들의 이런 유별난 애국심과 분별력이 지금까지 한국을 지탱해온 것일 테지만, 어떤 나라에서도 이런 비정상이 영원히 갈 수는 없다. 다시 국민을 걱정하는 나라가 되든가, 결국 국민도 나라 걱정을 포기하든가. 아마 내년 대선 때쯤에는 판가름 나지 않을까 싶다.

조선일보 사설

 

09.13 “北서 살 때 경험해보니 언론통제는 자유통제 신호… 文 대통령은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

[박돈규가 만난 사람] 101세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101세 철학자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통창 앞에 앉아 있었다. 지난 11일 오후 인천 을왕리 낙조대카페 옆 집필실. 책상엔 친필 원고가 놓여 있었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를 만난 것은 정철승 변호사의 막말 파문(“이래서 오래 사는 게 위험하다” 등)이 계기였지만 그는 훨씬 더 큰 걱정을 하고 있었다. 김 교수는 “정치에 관심 두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은데 1920년 일제시대에 태어나 공산 치하에 살아보고 군사독재도 겪어본 사람으로서 더 두고 볼 수는 없어 인터뷰에 응했다”고 말했다. 이달 말 국회 통과가 예고된 언론중재법, 퇴장이 6개월 남은 문재인 정부, 다음 대통령의 자격 등에 대한 고언(苦言)이 쏟아져 나왔다.

 

◇국가가 퇴행한다

김형석 교수는 광복 이후 전두환 정권까지를 ‘권력국가’로 정의했다. 강자가 약자를 지배한 그 시기에 우리는 독재정권과 군사정권을 겪었다. “김영삼 정부부터 현재까지는 ‘법치국가’이며 여기서 멈추면 안 되고 ‘선진국가’로 올라가야 하는데 퇴행 징후가 보인다”고 그는 우려했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나.

“신생국, 후진국은 민도가 낮아 권력 국가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다. 이승만 독재가 심해질 땐 4·19로 막았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이 초기에 애국심을 가지고 한 일은 다 좋았다. 국민이 그 덕에 절대 빈곤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정권욕이 강해지고 영구 집권을 노리며 유신헌법을 만든 뒤론 업적이 없고 과오만 쌓였다. 그때부터 전두환 정권이 끝날 때까지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야 했다. 1990년대 우리 대표단이 평양에 갔을 때 김정일이 한 말이 우습다.”

 

▲인천에서 만난 김형석(101) 연세대 명예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은 자랑할 때만 나타나고 자랑할 게 없으면 숨는다”며 “애국심 있는 대통령이라면 자화자찬도 안 한다. ‘아직도 부족하고 할 일이 많다’고 말할 것”이라고 했다. /이덕훈 기자

 

–김정일이 뭐라고 했나.

“당신네는 5년마다 정권이 바뀌어 믿을 수가 없다. 나는 군대를 장악하고 있으니 끄떡없다. 그 자랑은 사실 ‘북한은 아주 후진 국가, 권력국가’라는 소리였다(웃음). 우리는 애써 법치국가까지 올려놓았는데 역설적으로 지금 대단히 위태롭다. 국민의 자율성이 확대되는 선진국가로 올라가지 못하고 이러다 다시 권력국가로 돌아갈까 겁난다.”

 

–왜 그렇게 판단하나.

“불필요한 법을 정부가 자꾸 만든다. 집값 잡겠다고 급조한 법 때문에 국민은 더 불행해졌다. 정직한 사회는 깨지고 말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약속한 나라와는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됐다. 뭐든지 법과 권력으로 해결하려 든다. 언론중재법도 그렇고 국가가 퇴행 중이다. 정부 통제가 심해지면 중국과 비슷해진다.”

 

–해결할 방법은.

“다가오는 대선에서 국민의 올바른 선택을 바랄 수밖에 없다.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김형석 교수가 육필로 원고를 쓰고 있다. 그는 “90을 넘은 뒤론 장기적인 목표가 없다”며 “한 3년쯤 내가 할 수 있는 봉사 중에 가장 소중한 일부터 할 것”이라고 했다.

 

◇언론중재법은 언론통제법이다

–유엔과 세계의 언론 단체들이 반대해도 집권 세력은 언론중재법을 밀어붙인다.

“언론중재법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언론통제법이라고 답하겠다. 언론을 통제하는 나라는 후진국이다. 모자를 벗기면 머리가 나타나듯이, 말만 중재지 내용은 통제다. 유엔과 선진국들이 ‘한국이 저 수준밖에 안 됐나’ 놀란다. 내가 북한에서 경험해 보니 언론 통제는 자유 통제의 신호탄이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짓이다.”

 

–왜 그렇게 단정하나.

“민주주의에서 언론은 공기와 같다. 문제가 있어도 상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 왜 정부가 나서나. 동기와 목적이 순수하지 않다. 언론중재법은 정권 유지를 위한 법이고 좀 심하게 말하면 ‘문재인 보호법’이다.”

 

–현실적으로 야당이 국회 통과를 막긴 어렵다.

“더불어민주당에도 양식 있는 의원들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동생이나 아들이 이 법을 만드는 데 앞장선다면 ‘역사에 부끄러운 한 페이지를 만들고 있다’고 꾸짖을 것이다. 야당이 여당과 절충한다는 것도 민주주의가 뭔지 모르는 행동이다.”

 

–그럼 무력하게 보고만 있나.

“지금은 가슴 아프지만 국민이 깨어날 것이다. 애국심으로 뭉치면 훗날 바로잡힌다고 나는 믿는다. 아닌 것은 아무리 분칠을 한들 아닌 것이다.”

 

◇경제는 망쳤고 정치는 실패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가 박하다.

“오해할까 봐 말하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그렇게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제2의 4·19가 일어날 뻔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 때 내가 강연에서 좀 직설적으로 비판하면 중앙정보부가 전화했고 몇 번은 연행도 됐다. 지금 그 정도는 아니지만, 문재인 정부에 정말 묻고 싶다. 당신들이 5년간 한 일이 과연 국민을 위한 것이었는지 정권 유지를 위한 것이었는지.”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잘못했나.

“초창기에는 가난한 국민을 위한다고 한 일이 경제를 망쳐놨다. 소득 주도 성장도 한심한 정책이었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문 대통령이 자랑할 게 있으면 나타나고 없으면 숨는다. 국민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진영을 위해 권력을 잡은 거다. 애국심이 있는 대통령이라면 자화자찬 못 한다. 아직도 부족하고 할 일이 많다고 말하지. 또 통합을 하겠다더니 국민을 두 쪽으로 갈라놓지 않았나. 겪어 보니 정의의 가치도 모르는 지도자였다.”

 

–무슨 뜻인가.

“자기 편이면 정의이자 선이고, 아니면 불의이자 악이었다. 정의는 평등을 위한 수단이 결코 아니다. 민주주의 정부는 더 많은 국민이 더 인간답고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좌파랄까 운동권은 경제적으로 평등하면 누구나 행복해질 거라고 착각한다. 다음 대통령도 이런 사람이면 국가 수준이 중국과 비슷해질 것이다. 더 추락하면 북한이 된다. 교육과 문화의 하향 평준화는 무서울 정도다. 60~70년 쌓아 올린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최근 일본 산케이신문과 인터뷰하며 ‘문 대통령이 일제시대 항일운동가처럼 존경받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고 지적했다.

“광복절에 대통령은 일본을 향해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고 말했고 광복회장은 ‘친일파를 처단하자’고 했는데 손발이 안 맞는 쇼였고 국민을 우롱한 기념식이었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돌아와 현충원에 안장됐는데, 그의 행적이 이중적이라는 사실을 대통령이 모르진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독립운동을 했지만 나중엔 공산당원으로 일했고 독립군이 많이 희생됐다. 통일된 뒤라면 모를까, 지금은 현충원이 아니라 평양으로 가야 더 어울릴 사람이다.”

 

/김형석 교수의 산케이 신문 인터뷰 기사 /인터넷 캡처

 

◇다음 대통령의 자격

–‘대선 앞두고 野 유력 후보 겨눈 공수처’가 오늘 신문 헤드라인이다.

“읽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동기도 목적도 불순하다. 제3자인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 자기 편에게는 너그럽고 반대편엔 합리적 의심이라며 수사까지 한다면 정의롭지 못 한 정부다. 지금 이 나라를 장악한 두 세력은 법조계와 운동권 출신이다. 공통점은 뭔지 아나? 국제 감각이 없다. 정치인은 기업가를 보고 배워야 한다.”

 

–직접 만나본 윤석열 전 총장의 인상은?

“검찰에서 그렇게 사심 없이 일한 사람도 드물다. 만나 보니 법조인으로 있을 사람이지 정치를 할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정부가 쫓아내는 바람에 저렇게 됐지만 정치를 한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는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고 그릇이 크더라. 좋은 일꾼만 함께하면 괜찮을 것 같다.”

 

–다음 대통령의 과제랄까 자격이라면.

“문재인 정부가 남겨 놓은 한국병부터 고쳐야 한다. 국민 분열이 심각하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국민과 신뢰 회복부터 해야 한다. 유권자는 정권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사람을 뽑아야 한다.”

 

–입이 있는 후보는 다 그렇게 말하는데 어떻게 감별하나.

“국민이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을 겪어 봤으니까. 나처럼 나라 없이 살던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나라가 있던 사람들과는 다른 애국심이 있다. 우리는 전쟁 후 폐허에서 대한민국을 건설했다. 유례 없는 압축 성장을 경험한 한국인에겐 그만한 안목과 저력이 있다.”

 

–흑백논리와 편 가르기가 고질적인 문제다.

“지금 흑백논리가 남은 분야는 공산주의와 탈레반 같은 잘못된 분파밖에 없다. 영국이나 미국 사람을 만나보면 흑백논리가 없다. 우리는 조선왕조부터 원수 갚느라 다 죽이고 은혜 갚느라 끼리끼리 뭉쳤다. 공산주의가 그래서 무너진 거다. 현실에는 밝은 회색과 어두운 회색이 있을 뿐, 흑도 백도 없다. 세계는 다원사회로 가고 있다.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는 낡은 생각이다.”

 

–소셜미디어(SNS)가 발달하면서 인간관계는 넓어졌지만 얕아졌다. 정철승 변호사처럼 저격을 하기도 한다.

“읽어 보고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말았다. 딸은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편지를 썼다는데 내가 꾸짖었다. 성숙한 사회에서는 SNS도 단점보다 장점이 많다. 저격도 자정 작용이 일어나도록 놔둬야 한다. 미국인에게 총기 사고가 저렇게 자주 일어나는데 왜 규제를 안 하냐고 물으면 ‘총기를 가지고 싶은 사람은 다 갖고 그럼에도 사고가 없는 세상을 지향하는 게 아메리카’라고 답한다.”

 

김형석 교수는 “그것이 미래 지향적”이라며 “후진국가는 미래를 안 보고 과거에 붙잡혀 있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다시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서해가 보였다. 이 철학자가 탈북할 때 목숨 걸고 건너온 그 바다였다.

 

☞김형석

1920년 평남 대동 출생. 도산 안창호 강연을 들었고 윤동주 시인과 동문수학했으며 김일성이 초등학교 선배다. 스물다섯 살에 광복을 맞았지만 환희는 짧았다. 공산주의를 경험하다 탈북했고 서른 살에 6·25전쟁, 40대엔 4·19를 목격했다. 일본 조치(上智)대 철학과를 졸업했고 연세대 교수로 퇴직한 대한민국 1세대 철학자. ‘백년을 살아보니’ 등 베스트셀러가 많고 요즘도 왕성하게 집필과 강연을 한다. 틀니나 보청기, 지팡이 같은 노년의 그림자는 아직 없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뒤에 장락만년(長樂萬年)이라는 한자가 보인다. /이덕훈 기자

조선일보

 

09.13 온 나라를 쑥대밭 만든 원칙 없는 재난지원금

근거 없는 기준에 불만 폭주하자 대상 늘려

현금 살포로 세금 낭비하고 1년 내내 갈등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못 받는 사람들의 항의가 수만 건 쏟아지자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신청을 받은 지 나흘 만에 지급 대상을 소득 하위 88%에서 90%로 늘려 100만 명에게 더 주기로 결정했다. 재난지원금 지급 기준을 신라시대 골품제에 빗댄 ‘계급표’까지 온라인에 퍼질 정도로 급속하게 나빠진 여론에 대응하기 위해 내놓은 해결책이 대상 확대였다. 이를 위해 추가로 필요한 세금이 3000억원이나 된다.

 

당정과 여야가 오랜 줄다리기 끝에 정한 원칙을 무시하고 세금을 마구 퍼주는 것은 큰 문제다. 애초에 국민을 88과 12로 가르는 기준 자체가 비합리적이라는 각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를 묵살한 채 강행했다는 점에서도 비판을 면하긴 어렵게 됐다. 사전에 예정된 혼란이었음에도 대처가 워낙 주먹구구식이라 “국정이 장난이냐”는 조롱마저 나오는 것이다.

 

당정은 지난 7월 초 하위 80%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지만, 여당 내의 지속적인 전 국민 지급 주장과 이재명 경기지사의 경기도민 100% 지급 강행으로 지역 간 형평성 문제까지 불거지자 결국 대상을 넓혀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하위 88%에게 1인당 25만원을 주기로 했다. 대상이 일부 늘긴 했으나 여전히 국민을 88 대 12로 나눈 근거가 빈약한 데다 지급 기준을 코로나 발생 전인 2019년 건강보험료로 삼은 탓에 불만 폭주는 예고된 수순이었다. 누구는 받고 누구는 소외되는 선별 지급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였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아 정말 도움이 절실한 자영업자는 부적절한 기준 탓에 대상에서 빠지고, 형편이 괜찮은 사람들 가운데 지원금을 타내는 불합리한 사례가 속출하면서 재난지원금을 왜 주는지 명분을 찾기조차 어려워졌다.

 

사정이 이런데도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이제라도 꼭 필요한 곳에 돈이 갈 수 있도록 하기보다는 “판단이 애매모호하면 가능한 한 지원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재정을 자기 돈 쓰듯 말하니 기가 막힌다. 박완주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경계선에 있는 분들이 억울하지 않게 구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국민 세금을 허투루 낭비하면서 대체 누가 누굴 구제하겠다고 생색을 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일단 국민 불만을 무마하고 보자는 식의 무책임한 대응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대상을 아무리 확대한다 해도 100% 지급 전까지는 경계선에 놓여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생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결국 야금야금 대상을 확대해 여당 뜻대로 전 국민 지급을 관철하겠다는 것인가. 정부의 강제적인 사회적 거리두기로 당장 생계가 막막해진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1인당 25만원을 나눠 주느라 이런 극심한 혼란과 갈등을 야기하니 선거용 돈 풀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중앙일보 사설

 

09.15 ‘미친 집값’ 만든 靑 정책실장들 “집값 상승률 낮다” 끝까지 궤변

▲문재인 정부 출범 이듬해인 2018년 12월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김수현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 /고운호 기자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설계한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새로 출간한 책에서 “부동산 거품은 전 세계적 현상”이라며 “(한국의) 집값 상승률이 전 세계 평균보다 단연 낮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기에 아시아적 문화라고 하는 ‘부동산에 대한 집착’이 영향을 미치면서 상황이 더 악화되었다”고도 했다. 집값 상승의 원인을 우리 문화 탓으로 돌린 것도 이상하지만 “세계 평균보다 낮다”는 주장은 귀를 의심케 한다.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도 얼마 전 “작년 OECD 평균 집값 상승률이 7.7%인데 한국은 5.4%에 불과하다”고 말해 듣는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가장 신뢰도 높은 KB국민은행 조사에서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문 정부 4년간 90%이상 폭등했고 지금도 연일 최고가를 갱신 중이다.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 집값은 전 세계 최고일 것이다. 그런데도 전·현 청와대 정책실장들이 현실과 딴판인 얘기를 한다.

 

이들이 억지 주장의 근거로 삼는 OECD 통계는 한국 정부가 제출한 한국부동산원 자료를 토대로 산출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부동산원 자료는 실거래 정보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부동산원이 지난 7월 조사 대상 아파트 표본을 2배 늘렸더니 서울 아파트 가격이 한 달 전보다 20%나 급등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 이전 통계가 부실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런 왜곡 자료를 근거로 다른 나라와 비교한 OECD 통계가 정상일 수 없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유리한 일부 통계만 끌어다 부동산 참사를 가리려고 한다.

 

문 대통령이 “죽비를 맞고 정신이 번쩍 들 만한 심판을 받았다”고 실토했을 정도로 집값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국토연구원 등 국책 연구 기관들도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총체적 실패작임을 지적하는 합동 보고서를 뒤늦게 냈다. “세계 평균 이하”라는 김 전 실장의 주장이 맞는다면 왜 대출 중단이라는 초강력 규제까지 펴면서 집값을 잡으려고 애쓰나. 왜 유력 대선 주자들은 아파트 200만~300만개를 짓겠다는 공약을 앞다퉈 내놓나.

 

김 전 실장은 과거 저서에서 “집이 없으면 진보적 투표 성향을 갖게 된다”고 썼다. 부동산마저 선거 유불리를 따지는 정치 공학으로 접근하니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리가 없다. 여권 조차 “노무현·문재인 정부가 부동산에서 실패한 공통 원인은 김수현을 기용한 것”이란 말을 한다. 김 전 실장이 주도해 설계한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 실험은 헤아리기 힘들 만큼 큰 경제적·정신적 피해를 국민에게 입혔다. 그런데도 반성은커녕 여전히 억지 궤변으로 현실을 호도하고 있다.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한다.

조선일보 사설

 

09.15 "北에 왜 세금 퍼주냐" 집 없는 20대, 40대와 이렇게 갈라졌다[2040 세대 성향 리포트]

[창간기획]“내집 마련도 어려운데 통일?” 20ㆍ40 이렇게 달랐다 

“대체 북한을 왜 VR로 체험해야 하나요” “세금 살살 녹는다”

 

통일부가 국내 청소년을 대상으로 평양과 금강산 등 북한 관광명소를 가상현실(VR)로 둘러보는 체험실을 짓겠다고 발표한 8일, 젊은 층이 주로 이용하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엔 이런 댓글들이 올라왔다. “통일에 대한 공감을 국가가 강요하지 말라” “북한에 또 세금 퍼주려는 것 아니냐” 등의 반대 의견이 주를 이뤘다.

 

이처럼 20대와 40대의 인식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분야가 남북문제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랫말은 40대에겐 익숙하지만 20대에겐 생소한 옛노래에 불과하다.

北 백신 지원? 20대 59% “반대”, 40대 67.3% “찬성” 

 

/남북 문제 시선 엇갈리는 2040.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중앙일보·엠브레인퍼블릭이 20·40세대 2018명(20대 1011명, 40대 1007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7~29일 진행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통일에 대한 인식은 20대가 훨씬 더 부정적이었다. ‘남북통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20대에서 47.1%로 40대(23.8%)의 두 배에 달했다. 반면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20대 49.0%, 40대 73.9%로 40대가 24.9% 포인트 높았다.

 

특히 통일 문제처럼 장기적인 이슈가 아닌,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남북 이슈로 주제를 좁히면 두 세대의 인식 차이가 더 뚜렷했다. 코로나19 백신을 북한에 지원해야 하느냐를 두고 20대에선 반대가, 40대에선 찬성이 더 많았다. 20대의 58.9%가 북한 백신 지원을 반대했고, 찬성은 38.8%에 그쳤다. 40대에선 반대가 31.3%, 찬성이 67.3%였다.

 

남북통일을 대비하는 ‘통일세’에 대한 반응도 비슷했다. 20대의 62.1%가 통일세를 부담하고 싶지 않다고 했고, 부담하겠다는 응답은 36.5%에 머물렀다. 반면 40대는 부담하겠다(57.6%)는 응답이 부담하고 싶지 않다(41.9%)는 응답보다 많았다.

 

“취업난에 집도 없는데 北 한 핏줄? 안 통해”

▲20일 강원도 강릉시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7~8위 순위 결정전 남북 단일팀 대 스웨덴 경기. 경기를 마친 남북 선수들이 인사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이같은 조사 결과는 최근 정치권에서 논란이 된 남북관계 이슈와 궤를 같이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7월 꺼내 든 통일부 폐지론이 대표적이다. 이 대표는 “외교·통일 업무가 분리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며 통일부 폐지를 주장했다. 이 대표의 논쟁적인 발언에 야당 내부에서도 “쓸데없이 반통일세력이란 오명을 뒤집어쓸 필요가 없다”(권영세 의원)는 신중론이 나왔지만, 젊은 층에선 “이 대표 주장에 공감한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여자 아이스하키팀을 남북 단일팀으로 구성한다는 정부 결정에 앞장서서 반대한 것도 20대였다. “올림픽에 인생을 건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실력이 밀리는 북한 선수에 밀려 출전 못하는 건 불공정하다”는 논리였다.

 

전문가들은 “북한과 한 핏줄이라는 식의 민족주의적 관점은 더는 MZ세대에게 통하지 않는다”고 분석한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취업난에 시달리고, 부동산값 폭등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을 접는 등 벼랑에 내몰린 20대 입장에선 통일 담론은 사치일 수 있다”며 “반면 학생 시절 2000년 남북정상회담 등을 목도하고, 남북이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공감대가 강한 40대들은 여전히 통일에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학과 교수는 “낙후 국가에다, 왕조적인 세습 체제를 이어오는 북한에 거부감을 느끼는 20대들이 많다”며 “자유를 중시하고 드론과 인공지능에 익숙한 젊은 층의 입장에선 북한이 도저히 함께 살아갈 공동체로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난민 수용해야” 20대 33.7%, 40대 60.3% 

/난민 미중 갈등도 인식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미국과 중국을 바라보는 20·40의 시선도 다소 달랐다. ‘미·중 갈등에 정부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나’라는 물음에 20대의 90.5%가 미국과의 협력을 중시해야 한다고 답했고, 중국과의 협력을 중시해야 한다는 응답은 4.5%에 불과했다. 하지만 40대는 11.5%가 중국과의 협력을, 74.1%가 미국과의 협력을 중시해야 한다고 답했다.

 

특히 난민 사태에 대한 인식은 정반대였다. 해외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는 20대 응답은 33.7%, 수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응답은 64.4%였다. 반대로 40대는 60.3%가 난민 수용에 찬성했고, 37.8%가 반대했다. 2년 전인 2019년 예멘 난민의 제주도 수용 문제를 놓고 20대에서 반(反)난민 정서가 일었던 것과 유사한 결과다. 당시 배우 정우성씨가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하자, 젊은 층을 중심으로 “우리는 집도 못 구하는데 난민을 받아들일 여건이 되느냐”며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전문가들은 “20대와 40대가 중점을 두는 가치와 신념이 다를뿐더러, 세대별로 처한 현실이 다르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미·중에 대한 인식 차이에 대해 강원택 교수는 “날 때부터 민주주의 체제에서 자라난 20대는 공산주의 국가에 통제 사회라는 인상이 짙은 중국에 반감을 갖기 더 쉽다”며 “반면 40대 일각에는 여전히 586세대로부터 습득한 반미주의 정서가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난민 문제에 대해 “내 집과 가정이 있고, 안정기에 접어든 일반적인 40대와 달리, 팍팍한 현실에 처한 20대는 난민 수용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文정부식 공정'에 반발한 20대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사태가 공정성 논란을 빚었다. 지난 해 6월 30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에서 인국공 직원이 전단지를 배포하고 있다. 뉴스1

 

철도공기업에 재직 중인 A(29)씨는 최근 노조를 탈퇴했다. 입사할 땐 동기들을 따라 어영부영 가입했지만, 해가 갈수록 노조의 행보가 “불공정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매월 5만원씩 적지 않은 노조비를 내는데 쟁의현장에선 ‘비정규직 정규직화’ 같은 동의할 수 없는 구호만 외치고, 전체 구성원이 아닌 특정 직렬의 이익만 위해서 활동한다는 불만이 점점 커졌다. A씨는 “비슷한 시기 입사한 또래 직원들도 본사로 옮기면서 대부분 노조를 탈퇴했다”고 전했다.

 

A씨처럼 20대가 다른 세대보다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문제가 ‘공정’이다. 20대의 공정 개념은 “내가 이만큼 노력해서 성취했으면 그에 맞는 보상을 달라(『K를 생각한다』임명묵 작가)”는 말로 요약된다. 학업과 취업 경쟁에 직면한 이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문재인 정부가 ‘공정’을 화두로 추진한 정책에 대해 “정당한 노력 없이 똑같은 처우를 요구하는 건 불공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한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반대하는 20대, “실력으로 승부보자”

/공정, 증세, 탈원전도 세대 차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중앙일보ㆍ엠브레인퍼블릭이 지난 달 27~29일에 걸쳐 20대(만 18~29세) 1011명, 40대(만40~49세) 1007명 등 20ㆍ40대를 대상으로 진행한 세대 인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20대에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 대해 “공정하지 못하다”고 답한 응답자가 10명 중 6명(59.2%)으로 나타났다. “공정하다”(33.4%)고 답한 응답자보다 월등히 많은 숫자였다.

 

반면 40대에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해 “공정하다”고 답한 비율이 53.1%로, “공정하지 못하다”(42.7%)는 답변보다 우세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실력을 중시하는 MZ세대들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은 ‘실력과 관계없는 이동’이라고 판단한다. 반면 기성세대인 40대는 집단주의, 공동체주의를 강조하며 ‘약자에 대한 보호’를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40대 이상은 이미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 집을 보유하는 등 사회적인 불확실성이 많이 사라진 반면, 20대는 당장 취업현실에서 40대 이상이 주장하는 공정과 정의 때문에 자신이 희생된다고 인식한다”고 분석했다. 즉 40대 이상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혜택을 다 봤으면서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고 있다”는 인식이다.

 

최근 20대가 크게 반발했던 현안들도 이런 인식에 맞닿아있다.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현장 1호 공약이었던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박성민 청와대 청년비서관 발탁, 지역ㆍ여성할당제 등에 대해 “정당한 경쟁을 거치지 않은 일자리 획득은 ‘불공정’”이라고 주장했다. 자녀 대학 입시 과정에서 허위 인턴 확인서 발급 등이 확인된 이른바 ‘조국 사태’ 역시 “부모 찬스=불공정”이라는 20대의 반발이 거셌고, 이는 20대의 문재인 정부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20대 “합리성”, 40대 “당위성”…탈원전에 찬반 갈려

정부가 추진하는 탈원전 정책을 놓고도 20대와 40대의 인식 차가 컸다. 20대 응답자 가운데 탈원전 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인 “원전을 확대해야 한다”(50.0%)는 주장이 “축소해야 한다”(42.4%)는 주장보다 많았다. 반면 40대에서는 36.4%만 “원전 확대”를 주장하고, 10명 중 6명(59.0%)이 “원전을 축소해야 한다”고 답해 탈원전 정책에 대한 지지의견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간극은 “당위적으로 옳은 것”보다는 “지금 당장, 나의 이익”을 추구하는 MZ세대의 특성에서 비롯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MZ세대는 지금 당장 내가 속한 집단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편익을 극대화하려는 ‘합리성’을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원자력마이스터고나 대학의 원자력학과에 다니는 학생들이 “탈원전을 시행하면 저희 일자리도 줄어든다”며 “탈원전을 멈춰달라”는 주장의 청원을 올려 다수의 공감을 얻었는데, 이 역시 “당위성 보다는 합리성”을 중시하는 MZ세대의 특성이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특히 20대는 “공동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하라”는 개념에 쉽게 동의하지 못한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재묵 교수는 “산업, 직업구조, 일자리의 기회 변화가 전혀 예측되지 않는 상황에서 산업화의 막차를 타고 안정된 삶을 꾸려 온 40대가 ‘당위적으로 이게 옳으니 희생하라’고 하는 데 대해 20대의 반감이 크다”고 말했다.

 

환경보호와 경제개발 중 어떤 것을 우선시할 건지를 놓고도 이런 경향성이 드러난다. 20대의 경우 “경제개발이 더 중요하다”(53.9%)고 답한 비율이 “환경보호가 더 중요하다”(44.9%)이라고 답한 비율보다 높았던 반면, 40대는 “환경보호”(57.4%)를 “경제개발”(40.2%)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고강섭 책임연구원은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선 환경보호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40대와 달리, 당장 그들의 경제ㆍ문화ㆍ사회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MZ세대의 경향성이 드러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병훈 교수는 “코로나19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가장 크게 겪고 있는 젊은 세대가 경제성장에 대해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2040 리포트, 이렇게 조사했다

중앙일보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20대와 40대의 인식차가 적잖다”는 주장을 실증하기 위해 이번 기획을 준비했다. 여론조사업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달 27~29일 사흘간 20대 1011명, 40대 1007명을 대상으로 사회 인식을 조사했다. 조사는 전화 면접원 면접조사(가상번호 100%)로 진행됐으며, 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3.1%포인트다.

 

설문에선 남북 통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증세, 여성가족부 폐지 등 모두 15개의 문항을 물었다. 질문 문항과 답변 보기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이재묵 한국외대 정외과 교수, 이준호 에스티아이 대표, 조진만 덕성여대 정외과 교수(한국정당학회장), 허진재 한국갤럽 이사의 감수를 받았다. 설문 설계 과정에선 강원택 서울대 정외과 교수, 강정한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로부터도 도움을 받았다. (가나다순)


중앙일보는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만든 디지털 인터렉티브 서비스 「초간단 세대성향 판별기」(https://www.joongang.co.kr/digitalspecial/453)도 제공한다. 이를 이용하면 이용자가 20대, 그러니까 MZ 세대와 가까운 성향인지, X세대라고 불렸던 40대에 가까운 성향인지 알 수 있다. 중앙일보 홈페이지 회원 가입 후 15문항에만 답하면 된다. 2020년 총선과 올해 4월 재ㆍ보선에서 각각 백만명 넘게 이용하고 공유해 화제가 됐던 「초간단 정치 성향 테스트Ⅰ,Ⅱ」의 후속작 성격이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09월 15일 文정부 ‘경제 실패’ 청구서 쏟아진다

문희수 논설위원

 국민지원금 또 확대 ‘매표 국정’
대출 조이며 돈 풀어 정책 충돌
결국 고용·건강보험료 줄인상
‘건전 재정은 다음 정부’ 뻔뻔
단물 빼먹고 차기 정부 덤터기
이 땅에 없던 ‘현금중독 정부’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이 끝까지 갈팡질팡한다. 재난지원금은 또 대상을 늘렸다. 국민 세금으로 국민을 우롱한다. 시각을 넓히면 정책의 충돌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렸는데도 문 정부는 여전히 돈 풀기다. 가계부채가 심각하다며 대출을 조이는 것과도 상충한다. 정부 명령으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자영업 지원은 그렇다지만, 멋대로 국민 90% 수준으로 늘린 소비확대 위로금은 정부가 경제 회복을 강변하는 것과도 맞지 않는다. 한 정부의 재정·금융 정책이 엇박자로 따로 가는 명백한 정책 미스다.


이런 문 정부가 결국 국민에게 청구서를 내밀고 있다. 임기 내내 경제를 망친 대가를 국민 보고 치르라는 것이다. 고용보험료와 건강보험료를 연속 인상한 것부터 그렇다. 고용보험료는 2019년에 이어 내년 7월에 또 올라간다. 임기 중 두 번 인상은 역대 정부 중 처음이다. 출범할 때 10조 원이 넘던 고용보험기금을 다 턴 것도 모자라, 올해 말엔 3조 원 넘는 적자로 파탄 내놓고는 월급 받는 직장인에게 부담을 떠넘겼다. 실업급여액을 늘리고 급여 대상을 택배 기사 등 특수고용직 근로자까지 확대하며 기금을 펑펑 쓴 결과다. 심지어 기금을 일자리 예산으로까지 돌려썼다. 건강보험료 역시 내년까지 5년 연속 오른다. 임기 내 인상률이 14.2%나 된다. 문 정부 출범 전에 정했던 2017년 보험료는 동결이었고, 이전 3년간 증가율은 0.9∼1.7%였지만 문 정부 들어 증가율은 그 두 배다. 문재인케어 탓이다. 건강보험기금도 20조 원 넘게 쌓여 있었지만, 펑펑 써대다 3년 연속 적자를 내며 빠르게 까먹고 있다. 특히 지난해는 코로나로 병원 이용자가 크게 줄었는데도 적자였다. 기금 고갈이 더 빨라진다는 우려가 높건만 문 정부는 국민의 지갑을 축내며 자화자찬이다.


더구나 앞으로 들어갈 예산이 점점 불어나게 돼 있다. 고용·건강보험을 포함한 8대 사회보험에 쓴 세금이 지난해 19조 원으로. 문 정부가 출범한 2017년보다 41%나 늘었다. 이 중 국민연금·공무원연금 등 4대 공적연금은 적자 확대로 지난해 메워준 세금이 7조4000억 원으로 늘었는데, 마지막 해인 내년엔 8조 원이 넘고 2025년에 가면 10조 원을 넘을 전망이다. 문 정부가 인기 없는 국민연금 등의 개혁을 미룬 부담을 청년세대가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총체적인 경제 실패다. ‘일자리 정부’라더니 정작 고용 절벽이다. 청년을 위한다던 정부는 기존 근로자의 기득권만 더 높여 청년 일자리를 막았고, 단기 저임금의 세금 일자리나 권하고 있다. 이래놓고는 공무원은 내년 채용을 포함, 5년 새 10만5000명이나 늘리고 있다. 총급여액은 임기 동안 8조 원(23.7%)이나 늘려 놓았다. 이 역시 미래세대의 짐이다. 소득분배 개선은커녕 소득 격차는 오히려 더 커졌고, 저소득층의 소득 부족분은 세금으로 이전소득을 늘려 분식하고 있다. 특히 부동산은 대란이다. 주택공급 실패로 집값·전셋값이 마냥 치솟는데도 차기 정부가 처리할 몇 년 뒤의 공급 계획이나 운운하며 사실상 두 손을 들어 버렸다. 허구적인 탈원전·태양광은 장기 에너지 수급 차질을 구조화했다. 또, 수시로 말을 바꿨던 기만적인 백신 정책은 어떤가.


이 와중에도 문 대통령은 내년 재정 확대를 지시했고 재정을 총괄하는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어이 이행했다. 그 결과 내년은 예산 600조 원·국가채무 1000조 원 돌파라는 역대 최악의 흑역사를 남기게 됐다. 그런데도 홍 장관은 재정 건전화는 차기 정부가 출범한 이후인 2023년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후안무치의 극치다.


문 정부는 임기 내내 곳간을 털어 인심 쓰며 단물을 다 빨고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고통은 차기 정부로 떠넘기고 있다. 말 그대로 내로남불 정부의 국정 농락이다. 예산은 복지 등 경직성 지출이 크게 늘어난 탓에 1조 원 줄이기도 힘들다. 가만둬도 늘 수밖에 없는 방만 구조다. 8대 사회보험의 구조적인 막대한 적자만 봐도 알 수 있다. 다음 정부는 문 정부에 발목 잡혀 뒤처리만 하다가, 5년 임기를 보내게 생겼다. 지금까지 이런 재정 중독·현금살포 정부는 이 나라에 없었다. 이런 문 정부를 4년여나 겪었다. 과거엔 몰라서 그랬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이제는 변명도 안 된다. 그런데도 국민이 생각이 없다면 재앙을 피할 길이 없다.

문화일보

 

09.16 ‘쇼찾사’ 文과 탁의 마지막 무대들

美 원치 않는 文 유엔 방문
BTS와 함께하는
탁현민 쇼 나올 듯
북 미사일, 반도체, 쿼드…
현안 대처는 못해도
쇼할 거리는 찾는다

지금 국민 관심은 대선에 쏠려있지만 진짜 중요한 국가 문제는 선거 외에도 많이 있다. 그중에서도 미국의 반도체 동맹 등 주요 공급망 재편 구상, 쿼드(미 일 호주 인도 연합체) 참여 문제, 파이브 아이즈(미 영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정보협의체) 가입 이슈는 대선 못지않게 국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 최고위 차원에서 이 심각한 사안들에 대해 깊이 있는 검토와 대책 수립이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그런 낌새도 없는 것 같다.

 

국가 중대 이슈에 판단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곳이 국가정보원이다. 그 국정원장은 어떤 여성과 함께 뭔지도 모를 선거 정쟁에 얽혀 영일이 없다. 북이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순항 미사일과 탄도 미사일을 발사해도 사전에 알지도 못하는 정보기관이 국민 세금 1조원을 쓰고 있다. 순항미사일 발사와 탄도미사일 발사가 국민에게 끼치는 위험이 뭐가 다르다고 청와대는 순항미사일 때는 국가안전보장회의도 열지 않는다. 그 회의는 무엇 하러 있나.

 

이런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이 방탄소년단(BTS)을 또 청와대로 불러 자화자찬하는 것을 보니 이분들 머릿속 진짜 관심은 TV용 쇼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BTS를 유엔 방문 특별 사절로 임명하는 행사였는데 정작 미국은 문 대통령의 방미를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미국은 코로나 사태와 아프간 철수 논란으로 외국 정상의 유엔 방문을 달가와하지 않는다. 각국에 연설 영상을 보내달라는 요청도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남북 유엔 동시 가입 30년인 올해 유엔 총회의장에 꼭 직접 가서 연설을 해야겠다고 한다. 아마도 총회의장에 서서 연설하는 TV 화면이 필요할 것이다. 얼마 전 청와대 탁현민 행정관이 뉴욕에 출장을 갔다는 뉴스를 보고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이제 앞뒤가 맞는 것 같다. BTS와 문 대통령이 함께하는 무대가 있을 것이다.

 

남북이 유엔 동시 가입으로 평화 공존으로 가는 중이라면 미국 정부가 불편해하더라도 한국 대통령이 현지 연설을 하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북한 핵 개발로 민족 공멸의 암운이 드리운 상황이다. 그 핵을 탑재해 쏘겠다고 미사일을 연속 발사하고 있다. 유엔 동시 가입의 의미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연이은 북한의 치명적인 위협을 보면서 이 상황에서 남북 유엔 동시 가입을 축하한다는 것은 현실 왜곡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번 유엔총회는 비대면으로 진행돼 회의장은 사실상 비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TV 뉴스는 문 대통령이 전 세계인 앞에서 중요한 연설을 한 것으로 방송할 것이다. 거기에 BTS까지 있으니 흥행 요소가 다 채워진 것이다.

 

문 대통령의 임기 5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쇼 무대’였다고 생각한다. 역대 정부도 각종 행사를 했지만 이 정부처럼 쇼와 무대가 중요했던 적은 없었다. 한 언론의 집계에 따르면 정권이 출범한 2017년 5월 이후 8개월 동안에만 문 대통령 행사에 사회나 공연을 위해 연예인이 참석한 횟수가 20차례에 가까웠다. 이 정권은 연예인의 대중 동원력과 호소력을 잘 이용한다. 조국 가족의 불공정에 대한 분노가 클 때 문 대통령은 ‘청년의 날’ 행사를 청와대에서 열면서 BTS를 초청해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조국 사태의 책임자인 문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공정’을 무려 37번 언급했다. 스스로 모순이란 것을 알았겠지만 선망의 대상인 BTS를 배경으로 ‘우리는 공정하다’고 외치면 대중에게 어느 정도는 먹혀들 것으로 계산했을 것이다.

 

탁현민은 과거 정부는 미처 생각 못한 행사까지 화려한 쇼로 만들었다. 남북정상회담 때 판문점 도보다리 산책 시나리오는 나중에 시진핑과 트럼프까지 따라 할 정도였다. 판문점을 레이저 쇼로 수놓더니 6·25 전사자 유해 송환식까지 레이저 쇼로 만들었다. 자신들이 홀대했던 ‘서해 수호의 날’도 선거에 필요하니 낙하산과 연예인 쇼로 만들었다.

 

정권 말기가 되자 거의 ‘쇼찾사(쇼할 거리를 찾는 사람들)’ 수준이다. 아프간 철수에 ‘미라클(기적)’이란 작전명까지 붙여서 쇼로 만들었다. 세계에 이런 나라가 없을 것이다. 공무원이 무릎 꿇고 우산을 받쳐 든 사고도 이 ‘미라클’을 홍보하던 중 벌어졌다. 청해부대 장병 거의 전원이 코로나에 감염된 사태는 정부와 군의 책임이 큰데도 ‘오아시스’라는 작전명을 붙여 자신들이 ‘잘했다’는 쇼로 만들었다. 무슨 TV 드라마를 만드는 것 같다. 청와대가 이 드라마에 빠질 리 없다. ‘오아시스 작전에 군 수송기 투입은 문 대통령 아이디어’라고 했다. 수송기 외에 무엇으로 장병을 데려오나. 한심한 얘기지만 대중에겐 통한다고 본다.

 

지금 청와대는 문 대통령 지지율 40%를 지키는 것이 지상 과제라고 한다. 유엔에 굳이 가는 것도 그 일환일 것이다. 지지율 지키기가 곧 여당 대선 운동이다. 그 임무가 탁현민의 어깨 위에 있다. 정권 남은 기간 최대의 쇼는 역시 남북정상회담이다. IOC가 북한의 베이징 동계 올림픽 참가를 불허해 ‘베이징 남북 쇼’가 위태로워졌지만 결코 단념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정도로 포기한다면 ‘쇼찾사’가 아니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

 

09.17 HRW “언론법 우려” 대통령·국회에 서한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를 비롯한 국내외 인권 단체 네 곳이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를 담은 서한을 문재인 대통령과 국회에 보냈다.

 

HRW는 16일 홈페이지를 통해 청와대, 국회, 여야 협의체 앞으로 보낸 서한 전문을 공개했다. 이번 서한에는 영국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아티클19’와 한국의 진보네트워크센터, 사단법인 오픈넷이 함께 이름을 올렸다.

 

HRW는 서한에서 1990년 한국이 비준한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자유권규약·ICCPR) 19조를 근거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과도한 재량권을 허용하는 모호한 법률은 임의적인 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국제법적 기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HRW는 특히 허위·조작 보도에 피해액의 최대 5배까지 손해배상이 가능하게 한 개정안 제30조의 2와 ‘허위·조작 보도’를 정의한 제2조 17의 3호를 강하게 비판했다. 개정안에 명시된 ‘허위·조작 보도’에 대한 정의와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정보’라는 문구는 모호하며 “국제법하에서 보호되는 의견이나 풍자, 패러디를 처벌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언론사에서 자기검열을 통해 소송 유발 가능성이 있는 보도를 회피하게 한다”고도 지적했다.

 

한국에는 현재 보편적인 징벌적 손해배상에 관한 법률이 없기 때문에 개정안이 통과되면 형평성에 어긋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전했다. 예를 들어, 직장 내 성희롱을 묵인하는 기업은 징벌적 손해배상을 면하지만, 이를 보도한 신문사는 해당 기업이 보도가 거짓이라고 주장할 경우 손해배상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HRW는 개정안의 제2조 17의 3호, 제30조 2, 제2조 17의 2호, 제17조의 2를 삭제하라고 권고했다. HRW 측은 오는 27일 국회가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한다는 방침인 만큼 시급히 서한을 보낼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언론중재법 처리 주요 일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HRW의 윤리나 한국 담당 선임연구원은 16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국제인권법을 기준으로 판단했을 때 자의적으로 남용될 우려가 크며, 현재 많은 국제인권단체들이 대부분 비판적 입장”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날 HRW의 서한을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날 “언론의 자유와 피해자 보호가 모두 중요하므로 이번 기회에 국민적 공감대가 마련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09월 17일  급기야 HRW도 철회 촉구한 언론惡法 전면 폐기하라

여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언론봉쇄법’에 대한 철회 촉구 확산이 급기야 대표적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로도 이어졌다. HRW는 문재인 대통령, 국회, 여야 협의체 등에 보낸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거부하라’ 제목의 서한을 16일 홈페이지에서 공개했다. 또 다른 국제인권단체인 아티클19와 한국의 진보네트워크·오픈넷 등도 함께 서명한 서한은, 허위·조작 보도에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게 한 조항부터 ‘표현의 자유를 얼어붙게 하는 효과가 있다’며 철폐의 당위성을 뒷받침했다.


이 밖에도 독소를 조목조목 지적한 서한은 개정안이 ‘민주사회에 필수적인 자유로운 정보의 흐름을 제한할 것이다. 국제법하에서 보호되는 의견이나 풍자, 패러디를 처벌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언론사에서 자기검열을 통해 소송 유발 가능성이 있는 보도를 회피하게 한다’고도 했다. 1990년 한국이 비준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세계신문협회·국제기자연맹·국제언론인협회 등이 철회를 촉구한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의 방송토론에서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에 대해 “불필요한 논란이 생길 수 있어 삭제하겠다” 운운의 일부 수정 꼼수를 꺼내면서, 오는 27일 국회 본회의 강행 처리 방침을 재확인했다. 그래선 안 된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언론 악법(惡法)은 전면 폐기하는 것이 옳다.

문화일보 사설

 

09.17 세계 인권단체들도 폐기 요청한 언론징벌법

/휴먼라이츠워치 홈페이지에 올라온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거부하라'는 내용의 게시글./휴먼라이츠워치 홈페이지

 

국제 인권 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가 현 정권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언론징벌법’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과 국회에 보낸 서한에서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저해하고 언론의 비판적 보도를 어렵게 만들 수 있으니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징벌적 손해배상, 열람차단청구권 등의 조항을 삭제하라고 촉구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앰네스티 인터내셔널과 함께 가장 권위 있는 국제 인권 단체로 평가받는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해 “허위·조작 보도에 대한 정의가 모호해 남용의 여지가 있으며 언론사가 소송을 유발할 수 있는 보도를 피하려고 자기 검열을 하면 비판적 보도 등이 제한될 수 있다”고 했다. 열람차단청구권과 관련해서도 “국제 인권 원칙에 위배된다”고 했다. 한마디로 이 법은 정권 관련 비판 보도를 막기 위해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용도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 조항들이 언론법의 핵심인 만큼 사실상의 법안 폐기 요구와 같다. 아티클19 등 다른 인권 단체들도 이 서한에 이름을 올렸다.

 

언론징벌법에 대해선 전 세계가 우려하고 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도 정부·여당에 서한을 보내 “언론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으니 국제 인권 기준에 일치하도록 법을 수정하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이 서한을 국회의원들에게 공유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자신들끼리만 이 서한을 돌려본 뒤 숨겼다. 이 사실은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가 서한을 홈페이지에 올리면서 드러났다. 세계신문협회(WAN), 국제기자연맹(IFJ), 국제언론인협회(IPI) 등 해외 언론 단체들도 일찌감치 “민주주의 훼손 법안의 철회를 요구한다”고 했지만 여당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시민단체, 법조계, 학계 등의 여권 편 인사들까지 대거 반대 입장을 내면서 여당은 이 법의 국회 본회의 처리를 27일까지로 미루고 여야 ‘8인 협의체’를 구성해 중재안을 찾기로 했지만 아무런 진전이 없다. 이 법은 조국 일가의 불법 파렴치를 취재 보도한 언론에 보복하려는 강성 친문들이 요구하는 법이다. 그 대표 격으로 법안을 만든 김용민 의원과 조 전 장관 아내의 변호를 맡았던 인사 등이 8인 협의체 주축이니 한발도 물러설 뜻이 없는 것이다. 이들의 성향으로 볼 때 세계 민주사회의 비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흘 뒤 이 법을 강행 처리하려 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9.18 호랑이보다 무서운 ‘대통령 資質 下落의 법칙’

미래를 팔아 현재를 사다 속병 깊어진 나라
지도자들 경박한 입과 천박한 낙관론, 좋은 조짐 못 돼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5년마다 1%p씩 떨어진다고 한다. 문재인 시대에 1%를 찍었으니 다음은 0%대, 그다음은 마이너스 성장 시대로 접어들지 모른다. 1960년대 중반까지 한국 공무원들은 필리핀 마닐라 행정대학원으로 연수를 갔다. 제철소(製鐵所) 견학은 파키스탄으로 갔다. 두 나라 사람들이 한국인을 대할 땐 태도에 자부심이 묻어났다. 먹거리를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는 베네수엘라 국민도 과거엔 이렇지 않았다. 경제는 국민 성격마저 바꾼다.

 

경제의 ‘잠재성장률 장기 저하(低下) 경향’보다 더 뚜렷한 게 ‘대통령 자질(資質) 장기 하락(下落) 법칙’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그의 판단력·현실 대처 능력·국가 미래 대비 역량(力量)이 김대중·노무현 대통령보다 낫다고는 못 한다. 두 사람은 때로 국가 차원에서 지지층의 뜻과 이익에 어긋난 결단을 내려 역풍(逆風)을 맞았다. 문 대통령은 국민연금·건강보험·재정 적자·노동 개혁·교육 개혁 등 모든 어려운 문제는 다음 대통령에게 떠넘겼다. 국가 이익을 우선해서 ‘내 편’ ‘우리 편’ 이익에 칼을 대려 했던 일이 없다. 내일을 팔아 오늘의 지지(支持)를 샀다. 2020년 중국에서 1200만명, 일본에선 84만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한국 신생아는 27만명이었다. 대통령은 비서관이 써 준 걸 읽는 것 말고 이 문제가 나라를 어떻게 바꿔 놓을지 혼자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자질 하락의 법칙은 보수 진영에도 적용된다. 어느 누구도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처럼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나라를 세우고 나라의 틀을 바꾸는 과제와 정면 승부하는 자세를 보인 적이 없다. 진정한 보수는 과거로 돌아가는 복고(復古)가 아니다. 미래의 과제를 선취(先取)해서 도전해야 마당이 넓어진다. 터가 넉넉해야 높이 쌓을 수 있다. 보수는 빈부 격차(格差), 중앙·지방 격차 문제의 샅바를 잡고 씨름해야 한다. 격차의 그늘에 기생(寄生)하는 세력이 격차 문제를 정치 무기로 독점하는 사태를 방치하면 보수에 미래가 없다.

 

‘경제 잠재성장률 장기 저하 경향’과 ‘대통령 자질 장기 하락 법칙’이 맞물리면 국가의 재앙(災殃)을 만든다. 국가 지도자의 경박한 낙관과 천박한 역사 인식은 불길한 조짐이다. 이런 언동은 땅 밑에서 울리는 세계 지각변동 소리를 듣지 못하게 만든다. 벼락부자가 된 듯한 대통령의 선진국 행세, ‘마침내 일본을 넘어선 나라가 됐다’는 여당 원내대표의 허풍선이 국회 연설이 그렇다. 그들은 무엇이 자신들을 선진국 궤도에 쏘아 올려놓았는지는 생각하지 못한다. 튼튼한 나라는 그 바탕에 진중(鎭重)한 비관론(悲觀論)이 얕게나마 늘 깔려 있어야 한다. 그것이 경거망동을 막는다.

 

역사는 200여 년에 걸친 영국 영화(榮華)가 끝나갈 무렵 20세기 초 영국 정치 지도자들을 ‘부박(浮薄)하다’ 했다. 부잣집 도련님처럼 처신이 가볍고 입이 헤펐기 때문이다. ‘영국의 세기’가 저물며 ‘미국의 세기’가 밝아오는 전환을 그들은 보지 못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군은 신속하게 아프가니스탄에 진공(進攻)해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다. 테러의 주체 알카에다는 산산조각이 났고, 유럽은 물론이고 중국까지 미국 뒤에 섰다. 2001년 12월 시점에서 그 전쟁은 미국이 확실하게 승리한 전쟁이었다. 거기서 일단 멈췄어야 했다. 그러나 미국을 장악한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은 비탈진 땅에 민주주의 이식(移植) 실험을 벌이고 이라크로 전역(戰域)을 확대했다. 두 전쟁의 전비(戰費)는 6조4000억달러로 치솟고 사망한 미군 숫자는 쌍둥이 빌딩 테러 희생자의 두 배에 달했다. 오만(傲慢)이 ‘승리한 전쟁’을 ‘늪에 빠진 전쟁’으로 바꿨다. ‘오사마 빈라덴은 어떻게 미국에 승리했는가’라는 칼럼이 미국 신문에 실리는 배경이다.

 

‘중단하는 자는 승리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중단해야 할 때 계속하는 자 역시 승리하지 못한다’는 게 옳은 경우도 있다. 문재인 정권은 계속해야 할 것은 중단하고, 중단해야 할 것은 계속하면서 4년 반을 보냈다. 나라 곳곳에 깊고 퍼런 멍이 들었다.

 

내년 3월엔 대통령을 새로 뽑아야 한다. 대통령 후보 시장은 하락장(下落場)이고 금(金) 없는 금방(金房)이다. 미국 대통령 전기(傳記)로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들이 모여 만든 책 제목이 ‘결국은 성품(性品)(character above all)’이다. 누구를 떨어뜨릴 것인가를 먼저 골라야 한다. 도금(鍍金)한 가짜 금부터 골라낼 일이다.

조선일보 강천석 논설고문

 

09.18 언론에 ‘부르카’ 씌우려는 자들

한국이 또 국제사회로부터 한 소리를 들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16일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철회를 촉구하는 서한을 문재인 대통령과 국회에 보냈다. 언론중재법은 이른바 ‘악의적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는 내용이 골자다. HRW는 서한에서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저해하고, 언론의 비판적 보도를 억압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17일 국회에서 언론중재법 협의체 8차 회의가 열리고 있다. 2021.09.17 국회사진기자단

 

최근 몇 달간 국경없는기자회,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등 국제 단체는 물론, 국내 거의 모든 정당과 언론 단체가 한목소리로 이런 문제를 지적했다. 이렇게 우리나라가 언론의 자유 등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와 관련해 ‘문제아’ 취급을 받는 것은 이례적이다. 통상 국제사회의 우려를 사는 단골은 쿠바·짐바브웨·아프가니스탄·북한 같은 데 아닌가.

 

아프가니스탄 인권 문제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부르카’다. 부르카는 여성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펑퍼짐하게 가린 옷을 말한다. 탈레반 정권은 자기 나라 여성들에게 이런 옷을 입으라고 강요하고, 따르지 않으면 당사는 물론 가족까지 가혹하게 징벌한다. 국제 인권단체가 ‘부르카 법’을 비판하는데도 탈레반은 되레 “뭣도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부르카는 여성을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을 보호해주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자기들만의 생각에 매몰돼, 인권과 자유의 침해라는 문제는 보지 못한다. 자신들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 애써 외면하는지도 모른다.

 

▲1970년대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여성들(왼쪽)과 부르카를 입은 아프간 여성. /조선일보DB

 

이런 일이 민주주의 국가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언론징벌법에 대해 나라 안팎에서 철회를 요구하는데도 민주당은 이를 듣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1일 마지못해 ‘8인 언론협의체’를 만들어 오는 26일까지 숙의 기간을 거치기로 했지만 ‘징벌적 손해배상’ 등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독소 조항’은 좀처럼 고치려 하지 않고 있다. 결국 ‘협의체’는 일부만 살짝 손보는 정도의 구색 맞추기에 그칠 것이란 관측이 많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16일 재차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언론중재법을 오는 27일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하겠다”고 강행을 예고했다.

 

두 달 전쯤 현 정권의 실세는 여론 조작이라는 중범죄를 저질러놓고도 반성은커녕 대법원 유죄판결이 나오자 “진실은 아무리 멀리 던져도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했다. 현 정권이 앉힌 대법관이 전체 14명 가운데 12명인 대법원의 판결도 ‘허위’라고 한 셈이다. 그는 사건 초 자신의 범죄 행각을 파헤친 보도를 “악의적 허위 보도” “가짜 뉴스”라고 몰았고, 수감되는 그 순간까지 ‘악의적 허위·조작 해명’을 했다. 그는 ‘언론 부르카 법’이 서둘러 통과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

 

09.24 민주당, 국내외서 연일 쏟아지는 언론법 규탄 여론 듣고는 있나

▲9월27일로 미룬 언론징벌법 본회의 처리 시한이 다가오자 언론 7단체가 23일 "언론중재법 개정 논의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또 냈다. 사진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논의할 여야 8인 협의체의 상견례 겸 첫 회의 장면. /이덕훈 기자

 

120여 회원국을 가진 국제 언론인 단체, 국제언론인협회(IPI)가 지난 17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총회를 열고 세계 여러 나라의 언론 탄압, 언론 자유 침해 행위를 규탄하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여기에 한국의 언론징벌법이 규탄 대상에 포함됐다. 민주당 언론법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판에 대해 민주당 대표는 “뭣도 모르니까”라고 일축했지만, 세계 언론인들은 한국의 언론법을 중국 정부의 홍콩 언론 탄압, 미얀마 군부 독재 정권의 미디어 공격, 아프가니스탄 언론인에 대한 탈레반의 공격 등에 버금가는 언론 탄압 행위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IPI에 앞서 세계신문협회(WAN), 국제기자연맹(IFJ), 국경없는기자회(RSF) 등 다른 해외 언론 단체들도 “민주주의 국가에선 상상하기 힘든 악법”이라고 비판한 바 있고,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정부·여당에 서한을 보내 “언론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으니 법을 수정하라”고까지 요구했다. 국제사회만이 아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해외 주요국에서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별도 규정한 사례를 찾지 못했다”고 했고, 언론 정책 주무부처인 문체부 차관도 “전례가 없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헌법상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국내외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민주당은 이 법의 국회 본회의 처리를 9월 27일까지로 미루고 여야 ‘8인 협의체’를 구성해 중재안을 찾기로 했다. 하지만 여권 내에서 핵심 독소 조항 삭제나 수정 움직임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언론중재법은 세부 문구 몇 개 고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방송기자연합회·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기자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신문협회·한국여기자협회·한국인터넷신문협회등 언론 7단체는 23일 “관련 논의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당이 국내외 비판 여론에 귀를 연다면 그 자체로 평가를 받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9-24 우리는 소중한 것들을 잃어가고 있다

구태의연한 친일 애국심 논쟁 되풀이
정치이념 앞세운 정부, 국민생활 개입-통제
청와대 전권 행사에 공직자 자율성 빼앗겨
언론 자유-자율성 통제하는 언론법 철회해야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얼마 전 여당을 대표하는 사람이 야권 대선 주자인 한 후보에게 당신의 증조부가 친일을 한 사람인데 대통령 자격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 캠프 측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부친도 일제 때 공직에 있었는데 왜 문제가 되느냐고 반문했다. 청와대는, 해방될 때 대통령의 부친이 24세였는데…, 친일을 하였을 리도 없고 했으면 얼마나 했겠느냐는 상식적인 답변을 했다. 사실이 그렇다. 국민들은 백선엽 장군도 같은 나이였는데 왜 문제 삼느냐고 항변한다.


그 당시에 살았던 사람은 지금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살아 있는 노인들은 ‘일제강점기에 살아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친일, 항일 싸움은 그만하지. 할 일이 그렇게 없는가’라고 말한다. 젊은 세대는 관심 밖 얘기들이다.


그보다 더 절박한 문제가 있다. 현 정부가 출범할 때 대통령이 선택한 경제 정책이다. 소득주도성장은 산업혁명 직후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한 시대적 요청의 산물이다. 그로부터 150년이나 세월이 흘렀다. 경제는 노사관계나 계급투쟁의 과정을 끝내고, 국제무대의 시장경제로 전환한 지 오래다. 러시아와 중국도 이에 동참하고 있다. 상식적인 개념을 끌어들인다면, 기업을 통한 성장주도에서 국민의 소득증대가 가능하다는 시대가 전개된 지 오래됐다. 우리와 같은 부존자원이 없는 국가에서는 더욱 그렇다. 4년 반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여당 안에는 그런 경제 방향을 유지하려는 후보자들이 있다.

 

이런 불행한 과정을 밟는 동안 우리는 과거 고정관념에 집착하거나 지나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미래로 갈 수 없다는 상념에 빠졌다. 역사의식의 빈곤 때문에 얼마나 많은 국가적 손실을 초래했는가. 국가는 방향을 찾지 못하고, 과거라는 터널 속으로 되돌아가 집안싸움에 여념이 없었다. 국민과 젊은 세대들은 창조적인 미래를 잃어가고 있다. 우리는 100년 동안 오늘을 건설한 선구자들의 정성 어린 노고를 저버리는 우를 범한 것 같다. 과거라는 우물에 빠져 미래를 상실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밀려난 야권 대선 후보가 국민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했다. 이에 집권층에서는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대통령이 되려고 나섰는가, 그런 무책임한 사람이 야당의 후보자가 되었느냐고 반박했다. 일부 국민은 어느 편이 옳으냐고 묻는다. 왜 그런 문제가 생기는가. 국가가 할 일과 국민이 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대통령은 국가적인 책임을 맡아야 하고, 공직자들은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임무를 감당해야 한다. 국민은 세금을 내고 국가의 지도자를 선출하는 주권자다. 공직자나 대통령에게 요청할 수도 있고 책임을 따질 권리가 있다.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바른 길이다.

 

현 정부는 정치이념을 갖고 출발했기 때문에 국민생활 전체에 개입하고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대통령 중심의 청와대가 전권을 행사했다. 장관들과 공직자들은 심부름을 잘하면 그뿐이었다. 오죽하면 원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청와대의 지령을 받은 책임자가 반대 의견을 진술하는 공직자에게 “너 죽을래?”라고 말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생각이 기득권의 고정관념이 되면 공직자들은 자율성을 빼앗기고 국민들은 의지와 자신감을 잃게 된다.

 

그 종말은 어떻게 되는가. 북한과 같은 비운을 맞게 된다. 민주국가 지도자는 공직자의 자율성과 국민이 세계무대에서 창의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왜 이런 걱정을 하는가. 더 소중하고 건설적인 사회질서가 붕괴되며 국민들의 선한 선택과 노력이 정부 실책으로 인해 상실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잠시 시야를 넓혀 지금 전개되고 있는 사회질서와 정신적 가치의 혼란 상태를 살펴보자. 지금과 같이 윤리 질서가 흐트러지고 사회악이 보편화된 적이 과거에 없었다. 법치국가에서 정의가 사라지고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는 병들어 가고 있다.


다시 한번, 국민의 자율성과 선한 질서를 위해 요청한다. 언론의 자유와 자율성을 통제하는 언론중재법은 철회하기를 촉구한다. 그 목적과 동기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국가와 국민을 위한 법인지 정권 유지를 위한 발상인지를. 국민들은 그런 법이 없어도 선한 언론과 도덕질서를 회복할 자신을 갖고 협조할 것이다. 정부를 믿을 수만 있다면 협력을 거부할 국민은 없다는 애국심을 공유해 주기 바란다.
동아일보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

 

09월 24일 문체부 장관도 “말이 안 된다고 느꼈다”는 與 언론 악법

국내외의 철회 촉구가 갈수록 더 확산하는 여당(與黨)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공개 비판했다. 황희 장관은 지난 22일 미국 뉴욕에서 가진 한국 특파원 간담회에서 “처음 더불어민주당 법안을 봤을 때 ‘말이 안 된다’고 느꼈다. (나는) ‘이렇게 하면 큰일 난다’고 반대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할 일은 언론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다. 청와대와 정부도 개정안이 통과되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고도 했다.


황 장관의 악법(惡法) 지적 취지는 세계 주요 언론단체들의 공통 인식이기도 하다. 국제언론인협회(IPI)가 지난 17일 총회에서 ‘허위 보도에 대해 언론사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한국의 가짜뉴스법을 철회하라’는 결의안을 채택한 것도 가까운 사례의 하나다. 지난 8월 17일 성명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은 비판적 보도를 위협할 것” 등으로 지적하며 철회를 촉구했던 IPI의 재촉구는 민주당의 여전한 집착 때문임은 물론이다.


심지어 민주당은 일부 내용을 고치겠다며 위헌성(違憲性)을 더 키우기까지 한다. 수정 대안이라며, 기준과 정의조차 불분명한 ‘허위·조작 보도’를 더 개악해 ‘진실하지 아니한 보도’로 바꾼 것이 대표적이다. 위헌인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을 더 확대·추상화했다. 민주당은 오는 27일 국회 본회의 강행 처리에 집착할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전면 폐기해야 한다. 그러잖으면 ‘민주주의 파괴 악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 문 대통령의 책무다.

문화일보 사설

 

09월 24일 서민과 자영업자 더 침몰시킨 文 4년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전이던 2017년 3월 7일 국회에서 열린 경선 캠프 ‘경제현안 점검회의’에 참석해 “원래 정부가 해야 할 일인데 현 정부(박근혜 정부)가 경제에서 너무 무능해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 정부에서는 틀과 체계를 바꾸는 경제 패러다임의 대전환과 구조개혁의 대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후, 취임 첫날 문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과 양극화 해소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선언했다. 대통령 업무지시 1호로 일자리위원회가 구성됐고 ‘소득주도성장’이 경제정책 기조로 추진됐다.


‘문제는 경제야’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던 문 정부가 출범한 후 4년 반이 지난 현재의 경제성적표는 빈약한 정도가 아니라 참담한 지경이다. 문제는, 이 같은 ‘민생경제의 참사’가 코로나19가 엄습한 지난해 2분기 훨씬 이전부터 진행됐으며, ‘시장의 실패’보다는 ‘정책의 실패’라고 봐야 한다는 데 있다.


무엇보다, 벼랑에 선 자영업자의 고통과 비극은 “최근 2∼3일 새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제보가 22건 들어왔다”는 김기홍 자영업자비대위원회 공동대표의 발표로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 15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고용동향’을 보면 지난달 자영업자 수는 지난해보다 5000명이 줄어든 555만 명이고,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11만 2000명이 줄었다.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지난 8월에는 20.1%로 통계 작성 이래 가장 적었다.


‘일자리 창출’을 제1의 국정과제로 출범한 문 정부에서 지난 8월 도소매업 취업자는 11만3000명이 줄었고, 숙박음식점업도 3만8000명이 줄어 2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130만1000명으로 지난해보다 6만1000명이 줄었고, 8월 기준으로 1990년(119만3000명) 이후 31년 만에 최저 수준에 이르렀다.


한국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금융권의 자영업자 대출잔액은 831조800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18.8% 늘었다고 한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 증가율 9.5%의 2배 수준이며, 자영업자 1인당 평균 3억3800만 원의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추계된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자영업자의 39.4%가 현재 폐업을 고려 중이라고 한다.
취업자 통계도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이 얼마나 일자리의 질적 악화를 초래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달 취업시간이 주당 1∼14시간에 불과한 초단기 근무자는 7.4% 늘어난 반면 36시간 이상 취업자는 17.1%나 줄었다.


19일 통계청이 발표한 2분기 가계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2분기 전국 1인 이상 가구 월평균 소득은 1년 전보다 0.7% 줄었으며 그 폭은 2016년 4분기 -0.9% 이후 가장 컸다고 한다. 소득 상위 20% 가계인 5분위를 뺀 1∼4분위 모두 소득이 전년 동기에 비해 줄었다고 한다. 소득 양극화는 급속히 악화하고 있으며 부동산 가격 앙등과 임대차 3법으로 자산 양극화는 소득 양극화의 속도를 훨씬 초월하며 악화하고 있다.


우리를 더욱 절망시키는 것은 여야의 대선 예비후보들은 이처럼 ‘침몰하는 민생경제’는 외면하며 상대 후보들의 네거티브 공세에만 열을 올린다는 사실이다. 내년 3월 대선에서는 ‘문제는 경제야’에 대한 구체적 답안을 내놓는 후보가 선택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문화일보

 

09.27 나라 망신 ‘언론징벌법’, 더 끌 것 없이 오늘 바로 폐기하라

▲아이린 칸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지난 24일 국내 언론과 한 간담회에서 "단어 한두 개 수정은 충분치 않다. 표현의 자유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 과도한 배상 문제는 법제화해선 안 된다"면서 정부·여당에 언론징벌법 폐기를 촉구했다./UN/연합뉴스

 

국내외 비판 여론을 의식해 국회 본회의 상정을 한 달간 미뤘던 언론징벌법 처리 시한이 오늘로 다가왔다.

 

그동안 여야 ‘8인 협의체’가 몇 차례 회의를 하고, 민주당이 수정안을 내놨는데 그 내용이 기가 막힌다. 민주당은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에 대해 ‘고의·중과실에 따른 허위·조작 보도’ 조항을 빼고 대신 ‘언론의 진실하지 아니한 보도’라는 문구를 넣겠다고 한다. 더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기준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의 범위를 오히려 넓혀 놓은 꼴이다.

 

손해배상액도 ‘5000만원 또는 손해액의 3배 이내 배상액 중 높은 금액’으로 수정했는데, 5배에서 3배로 낮춘 듯 보이지만 하한선을 5000만원으로 못 박아 최저 배상액을 높이는 꼼수를 부렸다. 그런데도 8인 협의체의 민주당 의원들은 “여러 우려를 상당 부분 반영했다”고 주장하며 입법 강행을 외치고 있다.

 

이런 꼼수가 통할 리 없다. 언론징벌법에 대한 우려를 정부·여당에 전달한 아이린 칸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국내 언론 간담회에서 “단어 한두 개나 주변부 이슈에 대한 수정으로는 충분치 않다. 과도한 배상 문제는 법제화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심각한 우려는 비례성 원칙(잘못한 만큼만 책임을 지우는 것)에 어긋나는 불공정한 징벌적 배상을 언론에만 부과하는 것”이라고 악법의 본질을 정확히 지적했다.

 

입법 보류 기간 국내외 비판 여론이 더 고조되자 문 대통령은 “언론이나 시민단체, 국제사회에서 이런 저런 문제 제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점들이 충분히 검토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입법을 만류하는 듯한 발언이다. 황희 문체부 장관도 “민주당 개정안을 처음 봤을 때 ‘말이 안 된다’고 느꼈다. ‘이렇게 하면 큰일 난다’고 반대했다”고 했다. 주무 장관이 ‘큰일 난다’고까지 고백하는 악법을 무슨 논리로 강행하겠다는 건가. 국격을 추락시키고 국제사회에서 나라 망신 시키는 언론징벌법 문제는 ‘즉각 폐기’ 외에 다른 타협안이 있을 수 없다.

조선일보 사설

 

09.27 문재인 5년, 업적이 떠오르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2주년을 하루 앞둔 2019년 5월 9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KBS 특집 대담 프로그램 '대통령에게 묻는다'에 출연하기 위해 잠시 대기하고 있다./청와대 페이스북

 

긴 추석 연휴 덕분에 많은 이와 재회할 수 있었다. 모처럼 만나 많은 대화가 오갔지만, 누구도 ‘문재인’을 언급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유엔 방문을 두고 누군가 ‘BTS 인기에 숟가락 얹었다’고 한마디 했으나 아무도 거기에 말을 더하지 않았다. 한편에 짜증스러움과 답답함, 다른 한편에는 그런 시간도 이제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안도감이 교차하는 듯 보였다.

 

문득 문재인 5년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상징적이라고 할 만한 업적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조국, 분열, 부동산, 적폐 청산, 코로나 등이다. 대통령이 마음에 둔 어젠다는 정말 없었을까 하는 궁금증마저 든다. 이승만, 박정희는 말할 것도 없고, 민주화 이후의 단임 대통령도 제각기 대표적이라고 할 만한 성과를 남겼다, 북방 정책, 군의 탈정치화, 햇볕 정책, 탈권위, 녹색 성장. 이 각각은 노태우부터 이명박까지 각 대통령을 상징하는 업적이다. 이들과 대조적으로 임기 마무리 시점이지만 문 대통령의 대표 업적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여러 면에서 지난 5년은 ‘특별한’ 시기였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국정을 ‘장악’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못했고, 필요한 곳에서 대통령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국무회의보다 청와대 비서들과 하는 회의를 중시했고, 기자회견도 거의 하지 않았다.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대통령이 내려야 하는 중요한 결정도 회피하거나 다른 데로 떠넘기는 듯이 보였다. 적폐 청산을 내세웠지만 근본적으로 그것은 미래 지향적일 수 없고 그나마 반대자를 잡아넣었을 뿐 정작 필요한 제도 개선은 이뤄내지 못했다. 유명 연예인과 만나고, 독립운동가 유골 송환이나 첨단 국방 무기 실험처럼 모양새 나는 곳에 얼굴을 보일 뿐, 정작 갈등을 풀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 곳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대통령이었다. 그래서 문 대통령에 대한 여론조사의 지지도가 전례 없이 높은 비율로 유지되는지 모르지만, 그 리더십으로 당대 국민은 피곤했고 역사는 박한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문 대통령의 이런 방관적이고 무책임한 리더십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 언론중재법이다.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강행 가능성이 높았던 상황에서, 애초에 이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은 ‘입법부 소관인 법안 자체에 대해 청와대가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었다. 청와대의 이런 반응을 보며 과연 ‘누가 통치하는가(Who governs)?’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정치에서 언제부터 집권당이 대통령 뜻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법안을 다루게 되었고, 대통령은 자기 뜻과 맞지 않는 법안을 집권당이 ‘함부로’ 처리하려는 것을 소 닭 보듯이 하게 되었을까. 미국과 달리 한국 정치 체제에서 대통령은 법안 거부권뿐만 아니라 법안 제출권까지 갖는다. 입법 과정이 전적으로 ‘입법부 소관’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정치적으로 중요한 법안은 대통령이 소속당 지도부, 필요하다면 야당 지도부와도 긴밀한 사전 협의를 거치기 마련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에는 주요 법안 처리에 앞서 당정협의회라는 제도적 관행까지 마련되어 있다. 그럼에도 난 빠질 테니 집권당이 압도적 다수 의석을 차지한 입법부에서 알아서 그 법을 처리하라는 것은 대통령의 무능력이나 무책임 둘 가운데 하나 때문일 것이다. 여론이 악화되자 뒤늦게 문 대통령은 “이런저런 문제 제기가 있으니 충분히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런 상황은 임기 후반 대통령의 국정 주도권이나 장악력이 약해져 대통령의 뜻이 집권당에 무시당하기 때문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문 대통령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그 법안의 문제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로 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정국을 주도하지 않고 뒤편으로 물러서 있으면서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위와 권력은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아랫사람들’에게 이용되어 온 것 같다. 상식보다는 오기처럼 느껴진 각종 정책 추진과 도를 넘어서는 각종 ‘자리 나눔’에 대해서도 대통령은 말이 없다. 이 역시 문 대통령이 모르거나 방관하거나 둘 가운데 하나 때문일 것이다. 결국 돌이켜보면 통치에, 정치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을 대통령에 선출한 것이다. 애당초 정치하지 않는다는 다짐을 받고 노무현 정부에 참여했던 문 대통령이다. 경험도, 준비도 충분치 않았지만 떠밀려 그 자리까지 간 셈이다.

 

추석 모임에서 화제가 차기 대선 후보들로 옮아갔다. 여기서도 별로 말이 없었다. 누군가 한마디 했다. “이런 대통령제 계속해야 해?” 다들 고개는 끄덕거렸지만,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저 막막해하는 모습이었다.

조선일보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09.29 대법원은 국민의 지성이 두렵지 않은가?

판결문 공개 거의 안 하고 암호 같은 법조 언어로
소통 실패, 사법 불신 키워
4·15 총선 관련 소송 120건 넘게 제기됐는데
한 건도 판결 안해 직무유기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전경/조선일보 DB

 

민주주의가 민주주의를 잡아먹고 독재 정권을 불러들인 선례가 드물지 않다. 20세기 좌우 전체주의 정권은 모두 민주의 깃발을 들고 등장했다. 민주 정권이 독재 정권으로 돌변하는 과정은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특정 집단이 권력을 독점해서 정부 내 견제와 균형을 무너뜨리는 방식이다. 근대 입헌주의 사상가들이 한목소리로 권력 분립을 강조하고 파벌주의를 배격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3권 중 특히 사법권 독립은 자유와 민주의 생명줄이다. 사법부가 외압에 굴하거나 권력과 결탁하면, 법치가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사망한다. 몽테스키외가 내다봤듯, 법관이 입법자가 되면 국민의 자유를 빼앗고, 행정까지 도맡으면 폭력과 압제를 자행한다. 사법부의 타락을 막을 길은 무엇인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양심은 누가 어떻게 검증하나?

 

시민사회가 나서서 감시할 수밖에 없다. 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37개 회원국 중에서 한국은 사법 시스템(judicial system)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가 가장 낮은 나라다. 사법 불신이 팽배하기에 더더욱 법원은 국민 앞에 법정 문서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연방 및 주(州) 대법원, 항소법원, 지방법원, 파산법원 등의 법정 기록 수십억 건이 거의 전면적으로 정부 공식 사이트에 공개돼 있다. 법정 기록 수백만 건을 따로 수집해서 무제한 공개하는 시민단체도 있다. 덕분에 외국인도 미국 법정의 판결문, 수사 기록 , 기소장, 증언 음성 파일까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한국 법원은 판결문조차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다. 6~8년 전부터 확정된 민형사 판결문은 공개하고 있다지만, 일반인이 접근하기엔 장벽이 높다. 쉽게 인터넷 검색이 가능한 ‘종합 법률 정보 시스템’엔 대법원 판결문의 3.2%, 각급 법원 판결문의 0.003%만이 공개돼 있을 뿐이다. 그나마 공개된 판결문도 복잡하고 난해해서 일반인은 이해하기 힘들다. 문장 구분도 없이 법률 상투어(legal jargon)만 나열되어 옛날 서리들의 이두체 행정 문서가 연상될 정도다.

 

영어권 판결문은 문장이 간명하고 논지가 명확하다. 로스쿨에선 법률 문장도 “간결한 게 좋다(concise is nice)”고 가르친다. 대법원 판례는 대학에서 철학, 역사, 정치학 교보재로 널리 활용된다. 법률가들 스스로 ‘법조 은어(legalese)’를 폐기하고 평이하고 정확한 언어로 대중에게 다가간 결과다.

 

정보 혁명의 시대에 낡은 법조 언어는 사법 정의의 장애물이다. 소통 실패를 낳고, 사법 불신만 키운다. 독재 정권의 사법부는 교묘한 율사의 궤변으로 헌법을 파괴해왔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특정 대상만 골라서 처벌하는 선택적 법 집행과 민감한 사안에선 재판을 지연하는 고의적 태업 등으로 나타난다.

 

법무부, 검찰, 법원은 지난 정권의 피의자들을 포승줄로 묶거나 수갑을 채워 언론에 노출시키는 인격 살해를 사실상 허용했다. 상황이 뒤바뀌어 현 정권 인사들이 검찰에 불려갈 땐 “검찰 개혁” 운운하며 법무부가 부랴부랴 ‘포토라인’을 철폐했다. 피의자 인권을 내세우지만, 그 진의가 의심스럽다. 죽은 권력엔 엄형을 가하더니 산 권력엔 관용을 베풀기 때문이다.

 

지난 4·15 총선 관련 대법원의 태업은 더 심각한 문제다. 공직선거법 제225조는 ‘선거 소송은 다른 쟁송에 우선하여 신속히’ ‘180일 이내에 처리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선거 소송이 120여 건 제기됐음에도, 대법원은 520여 일 동안 단 한 건의 판결조차 내리지 않고 있다. 직무유기란 비판에 대해 대법원은 ‘~하여야 한다’는 의무가 아니라 훈시 규정이라는 비상식적 해석을 강요할 뿐, 공정 선거를 책임지라는 그 엄중한 법의 ‘훈시’를 따르려는 노력도, 의지도 없는 듯하다. 법관은 법을 사보타주할 수 없다. 대법원은 국민의 지성이 두렵지 않나?

 

정부 기관의 부패는 음지의 독버섯처럼 감시의 사각지대에서 자란다. 작가는 작품으로, 학자는 논문으로, 판사는 판결문으로 시민사회의 평가를 받아 공신력을 얻는다. 판결문에 대한 공적 검토 없이 법원의 신뢰는 유지될 수 없다. 법원은 국민이 알기 쉽게 법조 언어를 개혁하고, 헌법이 선언한 국민 주권 원리에 따라 법정 문서를 전면 공개하라. 국민의 지성 앞에 법관이 엎드릴 때, 법원은 비로소 권력의 외압을 벗어나 사법권의 독립을 지킬 수 있다.

조선일보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09.30 국민은 부동산 아비규환, 대장동은 돈벼락

19세기 낡은 사상으로
4년 반 내내 부동산 역주행
‘미친 집값’ 만들어
서민은 고통, 대장동은 일확천금

네 식구의 가장인 직장인 A씨가 서울 강북 아파트(전용 84㎡)에 이사 온 건 5년여 전이다. ‘전세 보증금 3억원+월세 70만원’ 계약이었다. 그 후 집주인이 바뀌면서 월세를 안 내는 대신 전세 보증금을 5억4000만원으로 올려줬다. 새 집주인과의 계약은 올 연말에 끝난다. 하지만 새 임대차법에 따라 A씨는 2년 더 사는 계약갱신 청구권을 요구할 수 있다. “운이 좋다” 생각했는데 “직장 문제로 그 집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집주인의 연락이 왔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처음 이사 올 때 5억원이던 아파트값이 5년여 만에 14억원이 됐고 전세 보증금이 9억원으로 올랐다. 근처로 이사 가려면 4억원 정도 필요한데 더 이상 빚낼 형편이 못 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도둑, 강도 짓이라도 해야 할 판”이라는 어느 세입자의 탄식이 남의 일이 아니었다.

 

A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수많은 국민들이 엄청난 부동산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의 ‘국민 부동산 스트레스 총량’을 계산할 수 있다면 한국이 단연 세계 1위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 4년 반 내내 한국은 편향된 이념 세력의 부동산 실험장이었다. 그 결과가 ‘미친 집값’ ‘미친 전셋값’이다.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은 두 배 치솟고 연립주택마저 사상 최고가를 기록 중이다. 문 정부 이전에는 번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4년 모아야 집을 살 수 있었는데 지금은 23년 걸린다. 서울 지역은 29년이다. 소득 대비 집값 비율이 세계 주요 500개 도시 중 최상위권이다. 능력과 노력이 아니라 ‘미친 집값’이 계층을 가르는 나라가 돼 버렸다.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한 사람의 오기와 고집 때문에 국민들은 부동산에 울고 웃는다. 급기야 1억원 넣고 1200억원 빼가는 희대의 대장동 일확천금 투기 사건까지 터졌다. LH 사태는 ‘소꿉장난’ 수준이다.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별의별 부동산 드라마가 문 정부 아래서 펼쳐졌다. 이를 연구·분석해 방대한 백서를 만들면 후대는 물론 다른 나라에도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

 

19세기에 지대(地代)의 공유를 주장한 헨리 조지의 신봉자들이 21세기 시장경제 국가에서 부동산 정책을 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거주 이전 자유와 행복 추구권이 헌법에 보장된 나라에서 2채 이상 집 보유는 징벌할 범죄인지, 다년간의 수요 억제 정책이 집값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논문 쓸 소재가 널려 있다. 잘하면 노벨 경제학상도 받을 수 있다.

 

국내외 투자가들은 강남·강북·서울 외곽·지방 대도시·강남으로 회귀하는 집값 풍선 효과의 흐름만 잘 파악해도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세금 연구가들은 세무사들도 계산을 포기할 정도로 복잡하고 납세자들에겐 무례하기 짝이 없는 부동산 세금이 얼마나 지속 가능한지를 지켜볼 것이다. 정치학자들은 4·17 서울시장 선거 결과와 유권자의 조세 저항 연관성을 연구해볼 만 하다.

 

‘미친 집값’에 민심이 들끓자 문 대통령은 “죽비를 맞았다”고 했고, 민주당은 “부동산은 아픈 손가락”이라 했다. 하지만 말뿐이다. ‘미친 집값’이 더 미쳐 날뛰어 청년과 서민들은 숨 넘어갈 지경이 됐는데도 정책 틀을 전혀 바꾸려 하지 않는다. 청와대 참모들은 엉터리 부동산 지표를 들이대며 국민을 속이려 든다. 그 사이 한국은 눈 뜨고 못 볼 부동산 아비규환이 됐고 그 와중에 어떤 이들은 협잡해 부동산으로 배 불리고 강남 건물주가 됐다. 문 정권이 만든 세상이다.

조선일보  윤영신 논설위원

 

09.30 참으로 꾸준한 문재인 외교

 

3년 여전 일이다. 정상회담 때마다 A4 용지를 들고 대본 읽듯 하는 게 안타까워 '트럼프의 입, 문재인의 A4 용지'란 칼럼을 썼다. "짧은 모두발언까지 외우지 못하거나, 소화해 발언하지 못하는 건 문제다. 지도자의 권위, 신뢰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칼럼이 나가자 당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강하게 반박했다. 대충 세 가지 주장이었다. "'내가 이만큼 준비를 철저하게 해왔다'는 성의 표시다", "문 대통령의 권위와 자질로 여기까지 왔다","문 대통령이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했다." 어처구니없었지만 "앞으로 노력은 하겠지라고 믿었다. 순진한 기대였다. 최근 유엔에서의 존슨 영국 총리, 응우옌 베트남 주석과의 회담 장면은 외신에도 유튜브에도 흘렀다. "오늘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우호 협력관계가 더욱 발전하길 기원합니다." "올 초 전당대회에서 국가주석으로 선출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런 대목까지 쭉 A4용지를 보고 읽는 걸 보고 깨달았다. "아, 참으로 꾸준한 대통령이구나."

 

꾸준한 건 또 있다. 먼저 북한에 대한 끊임없는 구애. 문 대통령은 이번 유엔총회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2018, 2020년에 이어 세 번째. "평화협상으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일관된 주장이다. 하지만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상대국인 미국은 종전선언을 입구에 두지 않는다. 이쪽도 하노이 노딜 이후 일관돼 있다. 접점이 없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외친다.

아직도 정상회담에서 A4 읽고,
시종일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외교적 센스 없음, 뻔뻔함도 꾸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꾸준함도 놀랍다. 북한이 순항미사일과 탄도미사일 도발을 이어가고, IAEA가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전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경고해도 끝까지 '저강도 긴장 고조'란다. 새로 개발한 극초음속 미사일 '화성-8형'을 시험 발사해도 '유감' 뿐이다. 북 도발은 안 보고, 말 않고, 듣지 않는다. 반면 김여정의 '긍정 담화' 한마디에는 반색한다. 적대시 정책 철회, 제재완화 같은 '조건부'가 달려있는데도 '뒷말'만 보고 환호한다. 언제부터 김여정 담화에 "미국산 앵무새" "꼴불견" "우몽하기 짝이 없다" 같은 욕설이나 막말만 없으면, 그게 바로 '의미있는 담화' '좋은 신호'로 해석되게 된 것일까. 외교의 대가 헨리 키신저는 "지도자가 할 일은 자신의 이상과 국가가 놓인 현실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이라 했다. 냉엄한 진리다. 돌이켜보자. 지난 4년 반 동안 대북, 대일, 대미 외교 단 하나라도 '문재인 다리'가 있기는 했는가.

 

문 대통령의 이번 뉴욕 외교는 '방탄외교'였다. 곁에는 늘 BTS가 함께 했다. 임기 내내 꾸준히 BTS를 활용했다. BTS가 기특하고 안쓰럽다. 이와 비슷한 시기 워싱턴에서는 역사적인 '가치외교'의 큰 장이 열렸다. 쿼드(Quad) 4개국(미국·일본·호주·인도) 정상이 처음으로 한 데 모였다.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대 중국 견제' 협의체다. 비동맹국 인도가 동맹국 한국의 자리를 차지했다. 협력분야는 첨단기술에서 우주 분야까지 망라한다. 모임도 매년 정기화됐다. 뉴욕까지 건너간 문 대통령을 만나지 않고, 1주일 후면 총리를 퇴임하는 스가 일본 총리에겐 "제발 워싱턴에 와 달라"고 하소연한 바이든 미 대통령의 의중은 뭘까. 아프간 철수로 곤경에 처한 바이든으로선 신 동맹 쿼드의 단결 과시가 중요하지, 태도 하나 바뀌지 않은 북한과의 대화, 꾸준히 다른 소리를 내는 한국의 종전선언 제안에 눈 돌릴 여유 따윈 없는 게다. 문 대통령이 서 있을 자리는 워싱턴이었다.

 

▲지난 2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쿼드의 첫 대면 정상회의. 왼쪽 국기대 앞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그 오른쪽으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AP 연합]

 

중국 눈치를 살피는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쿼드 가입을 제안받은 적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거리두기를 해 왔다. 그런데 이 말이 정말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한국의 외교장관이란 자가 "중국의 공세외교는 자연스럽다"고 대놓고 반복하고, 중국의 관영 환구시보가 이를 극찬하고 나서는 지경이니 말이다. 외교적 센스 없음, 뻔뻔함도 참으로 꾸준하다.◎

중앙일보 김현기 도쿄총국장 겸 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