危機의 韓半島2021- 04/
09-01 北 核증강에 韓美 달래기 급급, 이러다 ‘핵보유’ 묵인할 건가
미국 백악관은 지난달 30일 북한이 영변의 5MW 원자로를 재가동한 정황이 포착됐다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긴급한 대화와 외교의 필요성을 강조한다”고 했다. 한미 공조 아래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을 파악하고 있다는 한국 정부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어제 “완벽한 조건이 갖춰지지 않아도 남북미가 마주 앉아 대화를 재개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말했다.
한미의 반응에는 북한에 대한 경고는커녕 중단 요구도, 우려 표명도 없다. 한미는 오히려 대북 인도적 지원을 강조하며 “북한의 회신을 고대한다”고 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철군 뒤처리에 매달리느라 북핵은 상황 관리에만 치중하고, 한국은 어떻게든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고 북-미 대화를 성사시키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 그러니 북한이 보란 듯 핵 증강을 과시하는데도 한미는 별일 아니라는 듯한 반응을 내놓고 있다.
이번 IAEA 보고서를 통해 플루토늄 생산 재개라는 새로운 변수가 드러났지만, 그보다 많은 핵무기 원료를 매우 은밀하게 생산할 수 있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은 그간 아무런 중단 없이 계속돼 왔다. 이미 핵탄두 수십 개를 만들 수 있는 핵물질을 확보한 북한이다. IAEA는 영변 외에도 평양 인근의 강선에서 우라늄 농축으로 의심되는 지속적인 징후가 나타났고 평산 우라늄 광산에서도 채굴과 선광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북한 핵무기는 더 쌓이고 더 정교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한미의 대북정책에서 압박과 제재는 사라졌다. 북한이 대화에 나오기만 기다릴 뿐 기존 제재의 이행을 강화하려는 노력도 없다. 북한은 대화를 거부하면서 거리낌 없이 핵 증강을 계속하고 있다. 앞으로 협상에 나서는 조건으로 더 큰 보상을 얻어낼 수 있다고, 이러다 핵보유국 지위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한미 대북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동아일보 사설
09월 06일 파이브 아이즈 동참 관건은 동맹 의지
이용준 前 외교부 차관보 북핵담당 대사
“적에게 숨겨야 할 비밀은 친구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격언이 있다. 예민한 비밀을 남과 공유하는 데 따른 위험성을 지적한 말이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남과 비밀을 공유한다면 이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의 수준이 대단히 높다는 의미다. 국가 간 관계도 마찬가지다. 경제협력은 상호 이익만 있다면 적대국 간에도 얼마든지 가능하나, 군사동맹은 유사시 남을 위해 피를 흘려야 하는 협력 관계로 이익의 수준을 초월하는 높은 수준의 공감대와 신뢰성이 전제돼야 가능하다. 이보다 한 차원 더 높은 최고 수준의 국가 간 협력은 비밀정보를 우방국과 전면 공유하는 정보동맹이다.
지난주 미 하원 군사위가 채택한 2022년 국방예산 수권법안에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정보동맹 확대 필요성이 거론되고 한국이 대상국에 포함되자, 그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냉전 시대 초기부터 미국과 4개 핵심동맹국이 유지해 온 파이브 아이즈는 단순한 정보동맹이 아니라 미국의 세계 군사동맹 체제 중 ‘핵심 중의 핵심’을 구성하는 1급 동맹국들의 모임이다. 그 구성원인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는 미국에 운명공동체와 같은 존재이며, 국제정치와 군사현안에서 항상 함께 생각하고 함께 행동해 온 나라들이다. 일본도, 독일도, 프랑스도 그에 포함될 수 없었다. 만일 한국이 거기에 포함된다면, 이는 단순히 정보동맹 가입에 그치지 않고 한국이 미국의 2급 동맹국에서 1급 동맹국으로 격상된다는 의미다.
한국이 파이브 아이즈에 가입하려면 두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첫째 미국과 기존회원국들이 한국의 가입에 합의하고 초청해야 하며, 둘째 한국 정부가 그 초청을 수락해야 한다. 미국 입장에서 회원국 확대 검토의 최대 관건은 신뢰성 문제일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파이브 아이즈의 민감한 정보가 한국 정부에 공유될 경우 그것이 중국이나 북한에 몰래 전달되지 않으리라 확신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한국으로서는, 중국이 “그 눈을 멀게 하겠다”고 공언할 만큼 반중 전선의 최전선인 파이브 아이즈에 가입함으로써 친중 정책을 전면 청산할 정치적 의지가 있느냐가 관건이다.
하원 결의안은 내년 5월까지 행정부가 회원국 확대 검토 결과를 보고하도록 명시했다. 내년 대선에서 보수 야권이 승리한다 한들 한국의 가입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군사협력이나 동맹관계는 상대국에 이질적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잠시 중단했다 재개하면 그만이지만, 정보협력은 그 속성상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신뢰를 배신할 가능성이 없어야 한다. 제공된 정보가 나중에라도 이질적 정권에 의해 적국 손에 들어가면 큰 타격이 되기 때문이다. 설사 한국에 보수 정권이 들어선들 중국과 북한에 대한 종래의 환상과 애착을 완전히 포기하고 국제적 대의에 동참할지도 미지수다.
한국이 파이브 아이즈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유민주주의 진영이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를 공유하고 함께 행동할 의지를 갖는 것이 선결 과제다. 한국 외교가 우파정권이건 좌파정권이건 외교적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든 대외관계를 중국이나 북한과 연결지어 복잡한 손익계산을 하는 나 홀로 외교행태를 버리지 못한다면, 한국의 파이브 아이즈 가입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을 것이다.
문화일보
09.08 머리로 싸우는 전쟁과 탈피오트의 교훈
2001년 9·11사태를 계기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미국이 철수를 단행했다. 1975년 베트남전 패전으로 사이공 미 대사관 헬기 탈출의 치욕적인 악몽이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재현되었다. 1955년부터 20년간 이어진 전쟁의 패배로 베트남이 사회주의 정권이 된 것처럼 아프가니스탄도 미군 철수로 20년 만에 탈레반이 정권을 탈환했다.
뉴욕주립대의 역사사회학자 리처드 라크먼(Richard Lachmann)교수를 비롯한 많은 군사전문가들은 미국의 전쟁 대처 전략과 능력에 의구심을 제기한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대학의 데이비드 킬컬런(David Kilcullen)교수는 『용과 뱀(Dragons and Snakes)』에서 전쟁 양상의 변화로 미국의 전쟁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분석한다.
뱀에게 지기만 하는 용의 전쟁
실패의 본질은 과거 의존 습성
이스라엘의 엘리트군 변신 전략
한국도 군조직 패러다임 바꿔야
정밀유도 미사일, 항공모함, 스텔스기 등 최첨단 대규모 무기체계가 용들의 전쟁에서는 유효할지 모르지만, 탈레반이나 알카에다 같은 뱀을 상대로 하는 비정규전에서는 효과가 없다. 스와스모어 칼리지 정치학과의 도미니크 티어니(Dominic Tierney)교수의 『The Right Way to Lose a War』나 아스펜연구소의 수석전략가 크리스 브로즈(Christian Brose)의 『The Kill Chain』에서도 미국의 전략 패러다임은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국익을 위해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용들과의 전쟁만 준비하겠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후 핵 억지력으로 강대국간 전쟁보다 내전이나 테러의 전쟁만 일어났고 미국은 이 모든 전쟁에서 패했는데도 아직 미국의 전쟁 패러다임은 바뀌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 40년 가까이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있다. 지식경영이론의 대가 노나카 이쿠지로(野中郁次郞) 히토츠바시대학 교수의 『일본 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라는 책이다.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해군 함포의 우월성과 청일전쟁에서 육군의 강인한 정신력으로 승리했다. 하지만 레이더 기술을 개발한 미국과의 태평양전쟁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함포를 자랑하던 야마토호는 전투에 몇 번 참전하지 못한 채 격침되고 말았다. 일본 육군도 노몬한, 과달카날 등 전투에서 기존의 의사결정, 전략, 조직운영 방식을 고집하다 모두 패전했다. 성공의 경험은 실패로 이끄는 유혹이다.
이스라엘도 1967년 6일 전쟁의 승리에 도취되어 있다가 1973년 욤 키푸르 전쟁에서 이집트와 시리아의 공격으로 공군 전력 5분의 1을 잃고, 전쟁 발발 24시간 만에 무적의 탱크 300대 중 200대를 잃었다. 이후 패전의 통렬한 반성이 1979년 ‘탈피오트’라는 엘리트 군사교육 프로그램을 탄생시켰다. 제이슨 게위츠(Jason Gewirtz)가 쓴 『이스라엘 탈피오트의 비밀』은 이스라엘이 군대 패러다임을 바꾼 비결을 잘 보여준다.
이제 전쟁은 머리로 싸운다. 탈피오트 조직은 첨단무기 개발을 위해 뛰어난 고교 졸업생을 간부 후보생으로 모집하여 군 복무 중 3년 안에 학사학위를 취득하게 하고 5년간 추가 복무를 시킨다. 탈피오트는 견고한 산성, 최고 중의 최고라는 히브리어로 엘리트 리더십을 의미한다.
상위 5%의 지성, 창의력, 집중력, 인성을 가진 인재를 발굴하여 수학, 물리학, 컴퓨터 과학을 히브리대학 안에서 교육한다. 낙하산 훈련을 비롯한 군사훈련과 군사공학 교육도 철저하게 받는다. 부대 경험을 통해 군사기술 문제를 풀어내는 과제를 수행하여 전기통신 시스템, 인공위성 카메라, 사이버 방어 시스템, 미사일 요격 시스템 등에 관련된 최첨단 기술을 개발한다.
이스라엘에서는 탈피오트 부대원이 연예인보다 더 선망의 대상이 된다. 무인정찰기, 로봇전투원, 드론 전투기, 무인 지상 차량 등 세계 최첨단 군사기술은 탈피오트 출신에 의해 개발된다. 1%의 리더가 나라를 살린다는 자부심으로 탈피오트 엘리트들은 군에서 개발한 최첨단 기술로 제대 후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시장을 사로잡는다.
탈피오트 부대 출신들은 세계 최대 인터넷 방화벽 회사인 체크포인트와 같은 스타트업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의 핵심기술을 제공하는 모바일아이도 이들의 작품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모바일 기기를 일시 정지시키는 에어패트롤, 더 많은 정보를 저장하는 기술을 가진 아노비트, 새로운 레이더 기술을 활용한 웨이브즈 오디오 등 다양한 첨단기술의 스타트업들이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하고 있다. 그래서 탈피오트 출신들을 아이디어 머신이라고 부른다.
군대 내 폭력, 불량급식, 성추행, 노크 귀순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군도 이제 패러다임 전환을 할 때가 되었다. 세계 10위의 국방비와 60만 대군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모병제 논의와 함께 최첨단 군사기술을 개발하는 엘리트를 육성해야 한다. 군 복무를 허송세월이 아니라 제대 후 성공의 지름길로 만들어 군대에 가고 싶게 해야 한다. 몸으로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머리로 싸우는 전쟁으로 전쟁의 패러다임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09.08 미국 “중국 공산당의 불통·비협조 교정하겠다”
▲지난 3월 미 앵커리지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회담. 왼쪽부터 왕이 중국 외교부장, 양제츠 중국 정치국 위원,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 [중앙포토]
미국은 지난달 말 아프간에서의 철군 완료로 20년 전쟁의 마침표를 찍었다. 일각에선 미군이 쫓기듯이 빠져나갔다며 비웃는다. 그러나 중국은 웃을 수 없다. 미국이 ‘아프간 망신’을 감내한 배경엔 앞으로 ‘중국 때리기’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의 만남도 아직은 요원하다. 오는 10월 말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미·중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거론됐으나 시진핑이 화상 참여에 그칠 것이란 이야기가 나오며 불투명한 상태다. 두 정상의 회동 시점이 미뤄지는 가운데 미·중은 장기전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이는 우리에게 호흡을 길게 갖고 미·중 격돌의 시대에 대처해야 한다는 걸 시사한다.
바이든 정부의 대중 정책 신호탄은 지난 1월 27일에 있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취임 기자회견에서 신장 위구르족에 대한 중국의 인권탄압을 ‘대학살(genocide)’이라고 정의하면서다. 이어 지난 7월 미 국무부 등 6개 부처는 신장의 강제노동 및 인권유린과 관련된 기업에 대해 투자와 교역 금지령을 내렸다. 바이든 정부의 대중 강경정책 중심엔 인권문제가 자리한다. 홍콩과 신장·티베트 등에서의 중국의 인권탄압 문제는 민주당인 바이든 정부의 심기를 크게 건드린다. 바이든은 이를 기존의 양국 갈등 현안과 연계시켜 제재의 명분으로 활용한다는 계산이다.
충돌의 장기화 대비 나선 미·중
시진핑 집권기간 내내 갈등할 듯
미·중 격돌의 풍랑 헤쳐 나가려면
한국도 국익 중심 내부 단합 이뤄야
눈여겨볼 건 바이든 정부와 전임인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대중 강경정책엔 하나의 공통된 목표가 있다는 점이다. 바로 중국 공산당의 행위를 교정하겠다는 것이다.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미국은 초지일관 ‘포용(engagement)’ 정책을 견지했다. 교역과 교류가 중국의 민주화를 이끌 것이란 확신에서였다. 미국이 83년 이래 대중 무역에서의 만성적인 적자를 감내해온 이유다. 그러나 2013년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미국은 꿈에서 깨어났다. 중국이 이제까지 미국의 개방된 사회와 시장을 역으로 이용만 했다는 의심을 하게 된 것이다.
마침내 트럼프 정부가 중국에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미국의 지식재산권과 첨단과학기술을 훔쳐갔다는 비난과 함께다. 트럼프는 이를 2017년 미·중 무역전쟁의 도화선으로 이용하면서 중국 공산당의 행동 교정에 시동을 걸었다. 미국의 압박에 대한 중국의 대응은 2012년에 나온 ‘신형대국관계’ 구축 전략을 바탕으로 한다. 이는 대국이 서로 충돌과 대항을 하지 않고 협력하는 걸 전제로 한다. 전체적으로 안정 국면을 유지하는 가운데 상호 존중하면서 윈-윈 할 수 있는 협력 환경을 함께 만들어가자고 주장한다.
시진핑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관제(管制, 관리 및 통제)’를 들었다. 2011년 6월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을 만난 자리에서다. 시진핑에 따르면 미·중 양국은 갈등 현안에 대한 입장 차이가 너무 커 이를 단숨에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니 대신 관리 및 통제의 방법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관제’는 아무리 민감하고 입장 차이가 큰 문제라고 하더라도 대화와 협력을 통해 서로 윈-윈 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하자는 의미다. 시진핑은 이에 대한 당위성을 미·중 양국이 처한 상황에서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하는 현실에서 찾았다.
우선 미·중 양국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너무 낮아 전략적 대립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 또 서로를 안보 위협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전략적 오판을 줄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 게다가 영토분쟁과 해양질서 문제로 미국이 동맹 강화를 꾀하고 있기 때문에 갈등의 확대를 억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중국적 방안에 대해 시진핑은 상당한 자신감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2017년 19차 당 대회 보고서에서 처음으로 ‘세계의 권력 구도에 균형이 이뤄졌다’고 기술한 것이나 시진핑 스스로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말한 것 등이 그런 예다.
한편 미국의 대중 강경책은 2017년의 ‘국가안보전략보고서(NSS)’에 바탕을 둔다. 여기서 미국의 번영과 안보, 자유 국제질서에 대한 위협세력으로 중국이 암시됐다. 그리고 지난 3월의 ‘국가안보전략 중간 지침’과 국가정보국장실의 4월 ‘연례 위협평가’ 보고서에선 중국이 명기됐다. 이들 보고서의 공통된 결론은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이 장기화할 것에 대비하자는 것이다. 지난해 9월 출간된 밥 우드워드의 『격노(Rage)』는 대중 강경정책의 목표가 설정된 경위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에 대한 중국의 초기 대응 태도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중국의 불통과 무성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절실하게 경험한 미국은 중국 공산당의 행동을 교정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바이든 정부는 대중 제재의 명분으로 중국 공산당의 인권탄압을 선택했다.
물론 이에 대해 중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고 있다. 중국 정부와 학계가 역할을 나눠 미국에 반격을 취하는 모양새다. 중국 정부는 양제츠(楊潔篪)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왕이(王毅) 외교부장, 외교부 부부장인 러위청(樂玉成)과 셰펑(謝鋒) 등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미·중 갈등의 원인이 미국이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잘못 설정한 데서 비롯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중국 정부는 미국이 미·중 전략적 경쟁 관계를 협력·경쟁·갈등 등 세 분야로 나눠 접근하는 방식부터 비판한다. 갈등과 경쟁의 해결은 협력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건강한 협력관계의 발전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같은 맥락에서 중국 인권은 내정의 문제이기 때문에 협력의 대상이 아님을 강조한다. 상호 존중의 원칙에 따라 각자도생의 결정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미국의 가치와 주장의 보편성은 부인한다.
반면 왕지스(王緝思)와 옌쉐퉁(閻學通) 등 중국 학계의 대미 공격 포인트는 정부와는 다소 차이가 난다. 이들은 중국과의 국력 격차가 좁혀지며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걸 미국이 두려워하고(fear) 질투하기에(envy)미·중 갈등이 벌어진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경제 이익의 논리에 따라 협력의 당위성을 부각한다. 특히 옌쉐퉁 칭화대 교수는 지난 여름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더 강해지는’이란 기고문에서 첨단기술 부문에서 미·중 간의 수준 격차가 현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에 협력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폈다.
또 왕지스 베이징대 교수는 같은 학술지에 기고한 ‘중국에 대한 음모?’란 글에서 미·중 양국에 어떻게 뿌리 깊은 인식의 차이가 생겼는지를 설명했다. 그는 미국의 중국 내정 관련 발언이 불순한 의도와 목적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중국 공산당이 1950~60년대 폴란드·헝가리·체코 사태의 배후 세력으로 미국을 단정한 사례를 역사적인 예로 들었다. 이런 미국의 불순한 행위를 그는 ‘보이지 않는 손(a hidden hand)’에 비유했다.
바이든 취임 이후 8개월이 지나고 있다. 아직도 미·중 충돌의 방향은 불명확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명확해졌다. 두 나라 모두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입장에선 이를 최소한 시진핑의 집권 기간으로 정의해도 무난하다. 아마도 이 기간 우리는 두 나라의 힘의 균형이 교차하는 걸 보게 될지도 모른다. 최소한 경제 분야에선 미·중 간 1, 2위 자리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 자연히 우리 외교도 분기점에 놓이게 된다. 우리가 양국으로부터 선택을 강요당하는 압박을 받느냐, 아니면 우리가 이들에게 우리 국익에 유리한 선택지를 제시할 수 있느냐의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다. 이때 중요한 건 우리가 먼저 내부적으로 우리 국익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정하고 이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이뤄 단합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미·중 충돌이 일으키는 거센 풍랑을 헤쳐나갈 수 있다.
중앙일보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
09.09 日, 대만이 위협 받자 거침없는 재무장… 中 “일본 개입시 본토 공격”
中日 대만 해협 군비 경쟁
대만 동쪽 해안에서 230㎞가량 떨어진 일본 이시가키지마(石垣島)는 요즘 육상 자위대 미사일 기지 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일본 정부는 내년까지 이곳에 병력을 500~600명 배치하기로 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8월 2일 보도했다.
이시가키섬에 들어가는 육상 자위대는 대함, 대공 미사일 등을 발사하는 미사일 부대와 상륙 공격 등에 대비한 경비 부대로 구성된다. 대만에서 불과 110㎞ 떨어진 인근 요나구니섬에는 2023년까지 전자전 부대가 들어선다. 이로써 난사이제도에 미사일 부대가 설치된 섬은 오키나와 본섬, 미아코섬, 아마미오섬 등 4곳으로 늘어난다.
/그래픽=양인성
/일본 정계 인사들의 최근 대만 관련 발언
◇중 항모 전단 겨냥한 미사일 3종 세트
일본이 이 두 섬에 미사일 부대와 전자전 부대를 배치하는 것은 이 일대가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때 해군과 공군의 진격로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대만 공격에 나서면 중국 항공모함과 잠수함, 공군기 등을 상대로 미사일 공격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일본은 중국 해군력을 무력화할 수 있는 미사일 3종 세트도 공개했다. 올해 구매 예산에 포함된 초음속 공대함 미사일 ASM-3은 미쓰비시중공업이 개발한 미사일로 최고 마하 3의 속도로 방공망을 뚫고 중국 해군 전함을 공격할 수 있다.
또 주력 미사일인 12식 지대함 유도탄은 200㎞인 사거리를 단기적으로 900㎞, 장기적으로 1500㎞까지 늘리기로 했다. 여기에 사거리가 2000㎞에 이르는 스텔스 순항미사일도 내년 시제품이 나온다. ‘일본판 토마호크’라고 하는 이 미사일은 방공망의 요격을 피하면서 베이징과 평양도 타격할 수 있다. 작년엔 최고 속도 마하 5의 극초음속 스텔스 순항미사일을 개발 중인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대만 통일을 위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자 대만 해협을 둘러싸고 중일 간 치열한 군비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은 대만 방어를 명분으로 쉬쉬해오던 첨단 미사일 개발, 미사일 사거리 연장 등을 공개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집권 자민당이 공언해온 ‘적 기지 공격 능력 확보’가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시가키섬에 미사일 부대를 배치하기로 한 것도 지난 4월 중국 해군의 세 전함 동시 취역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해군은 지난 4월 23일 시진핑 주석이 참석한 가운데, 하이난성에서 최신 전략 핵잠수함 창정 18호, 대형 미사일 구축함 다롄함, 4만t급 강습 상륙함(헬기 항모) 하이난함 취역식을 가졌다. 모두 대만 공격을 겨냥해 개발한 최신예 전함이다.
◇중 전문가 “일본, 유사시 망설이지 않고 참전할 것”
일본 집권 자민당 고위 인사들도 올 들어 유사시 대만 방어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7월 29일 미국·일본·대만 의원들과 가진 온라인 전략 대화에서 “홍콩에서 일어난 일이 대만에서는 결코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아소 다로 부총리도 7월 5일 자민당 내 한 모임에서 “대만에 큰 문제가 생기면 국가 존망 위기 사태로 제한적 집단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다”며 “미국과 함께 대만을 방어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7월에 나온 방위 백서도 “대만 정세의 안정은 일본의 안전 보장은 물론 국제사회 안정에도 중요하다”는 기술이 처음 들어갔다.
중국 외교부는 “대단히 잘못되고 위험한 발언”이라며 반발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미 군사력에서 만만찮은 상대인 일본이 버티면 대만 무력 통일의 어려움은 그만큼 커진다는 것이다. 중국 싱크탱크들이 모여 있는 위챗 공식 계정과 동영상 플랫폼 등에는 “일본 본토를 타격해야 한다” “핵 공격을 하자”는 등의 주장도 나온다.
중국 내에서는 일본이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인정한 1972년 중일 공동성명의 원칙에서 벗어나 사실상 대만 정책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칭화대 류장융 교수는 일본 주간 동양경제 인터뷰에서 “이런 발언들은 자민당과 정부 내에 형성된 새로운 컨센서스를 드러내는 것일 수 있다”고 했다. 근본적인 정책 변화에 따라 그동안 은밀하게 다뤄져 온 이 문제를 이제는 공공연히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푸단대 국제문제연구원 정지융 교수는 “일본이 민감한 것은 대만해협이 넘어가면 일본의 해상 운송로가 중국 통제를 받기 때문”이라며 “유사시 망설이지 않고 직접 참전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에 대한 불신에 자체 무장 강화
일본이 미군을 지원하는 역할을 넘어 독자 무장을 강화하는 데 대해 미국에 대한 불신이 한 원인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 회귀 전략(Pivot to Asia)’을 표방했지만,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도서를 요새화하는 데 대응하지 못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반중 정책을 취하면서도 일본이 대중 견제를 위해 공을 들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해버렸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7월 26일 자에서 “중국이 힘을 확대하면 할수록, 일본의 자체 무장 강화 의지는 더 단호해질 것”이라고 썼다.
일본 내에서는 국내총생산(GDP)의 0.95%(500억달러) 수준인 국방비를 미국이 동맹국에 요구하는 2% 선까지 끌어올리자는 주장도 있다. 국방비 규모를 1000억달러 이상으로 올리자는 것이다. 중국의 올해 국방비는 2000억달러 선이다. 민간 싱크탱크 ‘아시아 퍼시픽 이니셔티브(API)’의 오우에 사다마사(전 항공자위대 중장) 선임연구원은 “중국의 오산과 과신에 따른 대만 침공을 막기 위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할 준비가 돼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며 “당장 내년부터 국방 예산을 GDP의 2% 이상으로 대폭 증액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만 주변 해역은 일본 생명선… 中에 넘어가면 에너지 안보·경제에 치명타]
일본이 공공연히 대만 방어를 공언하고 나서는 것은 대만 일대가 일본 경제의 생명선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을 대부분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 에너지 자원의 70~80%가 바로 대만 남부의 바시해협과 루손해협 등지를 경유해 들어온다. 동남아 지역에 진출한 일본 기업 공장에서 생산된 부품도 이 경로를 통해 본토로 수입된다.
/일본의 해상 운송 경로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통일해 이 일대 제해권을 장악하게 되면 일본 경제와 안보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에너지 안보와 경제가 중국의 인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해협을 피해 필리핀 남부로 우회하면 운송 비용이 20~30%가량 늘어난다. 사실상 대만 주변 해역에 동북아 지역 패권이 달린 것이다.
2006년 중국 공산당 중앙조직부가 작성한 한 논문에 따르면 미국도 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 초 일본 본토의 항전 의지를 꺾기 위해 홍콩 앞바다와 대만해협 등지에서 전략 물자를 싣고 본토로 향하는 일본 선박 48척을 침몰시켰다고 한다. 일본이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하고 시모노세키조약을 맺으면서 대만을 할양받은 것도 이 지역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진찬룽 중국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은 지난 7월 CCTV 인터뷰에서 “일본은 자원에 대한 해외 의존도가 높고, 그 자원이 수입되는 루트가 바로 대만해협”이라며 “미국보다 대만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초조해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서태평양 지역에 대한 중국의 통제력이 강화되면 중국과 영유권 분쟁 중인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의 방어도 어려워진다. 센카쿠열도는 대만에서 동쪽으로 180㎞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조선일보 최유식 동북아연구소장
09.10 “한국 엘리트들 중국의 접대와 특혜 공세에 농락당하고 있다”
[송의달의 차이나 프리즘] 중국 정치·외교 전문가 주재우 경희대 교수 인터뷰
“한국 영화와 TV드라마는 중국 자본의 투자 참여가 없으면 제작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서울 동대문 시장의 포장 배달과 사채(私債)시장까지 중국 자본이 사실상 장악하고 있어요. 국내 중국인들은 조선족이 많은데, 중국 공산당 차원에서 조직적 개입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부 교수. 그의 막내 증조할아버지는 일제 식민지 시절 일본의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순교한 주기철 목사이다./주재우 교수 제공
30년 넘게 중국의 정치·외교를 분석하고 있는 주재우(54) 경희대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미국 웨슬리언(Wesleyan)대 졸업후 1990년 9월 중국 베이징대학 국제관계대학원 유학으로 중국 연구를 시작했다.
<한국인을 위한 미중관계사: 6.25전쟁부터 사드 갈등까지>라는 미중(美中) 관계 전문서를 2017년 낸 주재우 교수는 지난달 국내에 발간된 <극중지계(克中之計) : 한국의 거대 중국 극복하기 1, 정치외교안보편>의 60% 정도를 집필했다. 이달 6일 낮 서울 광화문에서 주재우 교수를 만났다.
◇“中, 동대문시장 포장배달·사채 시장까지 장악”
- 최근 중국의 한국 진출이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것 같다.
“그렇다. 한 마디로 거침없는 파상 공세이다. 서방에서 중국 공산당의 대외 침투 공작 기관으로 지목되는 ‘공자학원’(영어명칭은 Confucius Institute)’이 세계 최초로 세워진 나라가 우리나라다. 국가 인구 및 교육기관 대비 공자학원 설치 비율도 한국이 세계 최상위권에 속한다. 대학교와 관련 연구소 등에 중국 당국의 연구비 지원이 넘쳐나고 있다.”
- 학계에서 체감(體感)은 어느 정도인가?
“단적으로 우리나라는 중국의 세계 전략 프로젝트인 ‘일대일로’와 관련해 중국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연구가 이뤄지는 나라이다. 일대일로를 중점 연구하는 연구소까지 생겨나고 있다. 중국의 조직적인 선전 공세에다 우리 정부의 관변(官邊) 지원금까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친중(親中) 정권 아래 퍼져가는 기현상(奇現象)이다.”
▲중국과 중앙아시아~유럽을 잇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하나로 중국 동부 장쑤성의 렌윈항(连云港)에서 카자흐스탄 알마티(阿拉木图)까지 개통된 열차/조선일보DB
◇“20개국과 충돌하는 중국...善한 이웃 아니다”
- 이렇게 파상 진출하는 중국은 우리에게 ‘선(善)한 이웃’인가?
“주변국들을 먼저 보자. 중국은 육상으로 14개국, 해상으로 6개국 등 총 20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데, 이 나라 가운데 중국을 선한 이웃으로 여기는 나라는 한 나라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은 2013년 시진핑의 공산당 총서기 취임이후 2049년 세계 1위 국가 목표 달성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중심적인 행보를 질주하고 있다.”
주 교수는 “중국공산당은 자기들의 일방적인 행보가 세계와 주변국에 어떠한 파급을 미칠 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기술 편취와 탈취를 거듭하며 국제적 반칙을 거듭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중국몽(中國夢)’은 보편적 가치와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다. 중화민족의 부흥과 유아독존(唯我獨尊)적 성장만이 그들의 목표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도 자국 이익에 충실하지만 중국처럼 상대국을 대놓고 무시하지는 않는다. 중국의 안하무인, 유아독존, 일방적 행태는 국제사회를 넘어 한반도에도 엄청난 위험 요인이다.”
▲히말라야의 중국-인도 접경 지역에서 두 나라 군인들이 나란히 행군하고 있다./조선일보DB
- 왜 한반도에 위험한가?
“중국이 세계 1위국을 목표로 국력을 총동원하면서 미국 등 서방과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중국이 대내외적으로 평탄했을 때는 주변국들과 수평적 ‘조공(朝貢) 외교’에 그쳤으나, 긴장된 위기 국면일 때는 주변국에 수직적 복속(服屬)을 강요해 왔다. 서방과 긴장·갈등이 고조되면서 한국을 더욱 고압적으로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
◇“中, 국내 통제 강화하고 대외 행위 난폭해져”
- 30년 전과 지금의 중국을 비교한다면?
“중국 개혁개방 시작(1979년) 만 10년이 지난 무렵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중국 사회에 앞으로 법치(法治)가 정착되고 시민사회가 발전하고, 제도가 투명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지금 중국은 정반대다. 국내적으로 통제와 억압을 강화하고 있고 대외 행위는 더 난폭해지고 있다. 국제사회의 규범과 제도는 아예 무시하고 있다.”
- 한·중 관계는 어떤가?
“지금의 한·중 관계는 우리나라의 국익(國益)과 대한민국이라는 주권국가에 전혀 걸맞지 않다. 한국 정부의 ‘저자세 외교’와 중국의 ‘고압적인 강압’ 외교로 한중 관계가 잘못되고 있는데도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중국의 한국 복속’이 다시 벌어질 것이다.”
◇“중국의 강압에 굴복해 침묵하는 韓 지식인들”
- 우리나라의 중국 전문가나 지식인들은 이런 현실에 왜 침묵하고 있나?
“중국에 불이익을 당할까 봐 하는 생각이 크다. 중국 당국은 한국 학자나 관료들의 발언과 기고문 등을 모니터링한다. 그런데 중국 당국이 비자 발급 같은 제재를 하는 경우는 미국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중국을 비판하는 정도쯤 돼야 한다. 한국에는 그만한 실력과 영향력을 지닌 중국 전문가가 없다. 많은 전문가들이 착각하고 미리 지레 겁을 먹고 있다.”
-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하나 더 꼽는다면 우리나라 학자와 전문가, 지도층이 중국으로부터 너무 많은 특혜와 대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과 정부 부처로부터 ·중국공산당의 ‘샤프파워(sharp power·자금 지원, 매수, 협박, 여론조작 같은 방법으로 영향력 행사)’ 공세에 한국 엘리트들이 농락당하고 있다.”
▲중국 정부로부터 불법 연구비를 받은 사실을 숨기다 2020년 1월말 FBI에 체포된 찰스 리버(Charles Lieber) 미국 하버드대 화학-생물화학과 학과장. 미국에서 중국과 연계돼 체포된 최초의 석학급 과학자로 중국 '샤프 파워' 공세의 희생자이다./조선일보DB
◇“韓 지식인들, 중국 心氣 두려워 자기검열하고 있다”
- 한국 엘리트들에게 소중화(小中華) 의식이 배여 있어서인가?
“근대 이전 시대에 오래 동안 지속된 ‘소중화 의식’ 영향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나라가 양도할 수 없는 주권(主權·sovereignty) 국가로 인정받고 이게 당연시되는 시대이다. 한국 엘리트들은 대중(對中) 관계에서 ‘독립’과 ‘자주의식’이 빈약하다. 중국이 한반도에서 패권적 공세를 펴는 데, 우리 지도층은 중국의 심기(心氣)를 과도할 정도로 의식하면서, 자극하지 않으려 패배주의적 자기검열을 되풀이 하고 있다.”
- ‘집단 공중증(恐中症·중국 두려움)’에 빠진 듯하다. 왜 이렇게 된 걸까?
“3가지 강박관념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통일에 중국이 결정적 역할을 하며, 중국이 북한 비핵화에 열쇠를 쥐고 있으며, 중국 시장은 절대 잃어서는 안 되는 매우 중요한 곳이라는 강박관념이다. 하지만 세가지 모두 환상이자, 착각이다.”
▲조선 후기 우암 송시열이 충북 괴산군 화양동계곡에 새겨 쓴 ‘大明天地 崇禎日月(대명천지 숭정일월)’. ‘천지는 명나라 것, 세월은 숭정황제 것’이라는 뜻이다./박종인 기자 제공
◇“3가지 ‘중국 강박관념’에 빠진 韓 지도층”
- 어떤 이유에서인가?
“중국은 1992년 한·중 수교 후에도 북한식 한반도 통일을 일관되게 지지하고 있다. 북한 비핵화의 경우, 미국이 중국에게 행동하라고 윽박지른 다음에야 중국은 마지못해 움직일 뿐인데 그나마 결정적인 역할도 못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2019년도 대중 무역 흑자는 전년 대비 반토막 났다. 코로나 발생 전에 벌어진 이런 모습은 정권 차원의 저자세 대중 외교가 한국 경제에 도움 안된다는 방증이다.”
- 우리나라 우파 정권의 대중(對中) 외교를 평가한다면?
“이명박, 박근혜 등 우파 정권은 ‘한국=친미(親美) 국가’라는 이미지 덕분에 중국공산당의 대접을 받았다. 2008년 한해에만 이명박 대통령은 후진타오 중국공산당 총서기와 8차례 정상회담을 했다. 친미 정권이라는 이유에서 중국의 ‘러브콜’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우파 정권은 황사, 미세먼지, 고대사 같은 분야에서 우리 이익을 확실하게 챙기지 못했다. 다만 우리 기업들의 중국 진출과 성장에는 도움을 줬다.”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가 2008년 8월 8일 후진타오 중국공산당 총서기 초청 오찬에 참석하기 앞서 후 총서기 부부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조선일보DB
- 문재인 정권의 대중 외교는 어떤가?
“한중 수교후 중국공산당 정권에 대해 이처럼 맹목적으로 알아서 기는 한국 정권은 처음이다. 중국 방문시 ‘혼밥’과 수행 기자 폭행 같은 수많은 외교적 결례에 제대로 항의 조차 못했다. 현 정권 지지자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혼밥 방중과 관련해 ‘내용’만 있으면 되지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중국공산당 보다 ‘의전’을 더 중시하는 정권은 세계에 없다. 중국에서 ‘형식’상 경멸(輕蔑)은 실제로도 멸시(蔑視)이다.”
◇“대중 외교, 우파정권 6~7점, 文 정권은 4~5점”
- 좌·우파 정권의 대중 외교를 점수로 매긴다면?
“우파 정권에 대해 10점 만점에 6~7점을 준다면, 문재인 정권은 4~5점이다. 한국 정권이 미국과 친밀할수록 중국은 우리를 더 중시하고 더 우대했음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차기 정권도 이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국빈 방한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4년 7월 3일 오후 청와대 대정원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의장단을 사열한 뒤 서울 은평초등학교 어린이 환영단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문 정권 출범 만 4년이 지났는데도, 시진핑 방한(訪韓)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17년 12월부터 나는 시진핑은 문 정권 임기 동안 절대 방한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시진핑이 한국에 발을 딛는 순간, 그것은 사드 문제가 해결됐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중국은 ‘사드’ 문제를 구실로 한미(韓美)동맹의 고리를 끊는 걸 최고의 외교 전략 목표로 삼고 있다. 사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시진핑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는 “문재인 정권의 또 다른 큰 문제는 중국공산당과 우리나라 국민에 ‘거짓말’을 너무 많이 했다는 사실”이라며 “문 정권은 중국에게 ‘사드’를 책임지고 해결하겠다고 큰 소리치면서 환경평가 연기 같은 꼼수를 부렸는데 사드는 그런 방식으로 절대 해결될 수 없다”고 했다.
◇“中 눈치보기 말고 국민 심정 헤아리는 대중 외교”
- 내년 5월 출범하는 한국 새 정권에 대중 외교와 관련해 조언한다면?
“3가지 대중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중국 눈치 보기를 중단하는 게 첫걸음이다. 또 우리 스스로 대중 외교를 통해 무엇을 추구하고 얻을 것인지, 대중 외교의 원칙과 목표, 가치를 분명히 세우고 행동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국민의 눈높이에서 이를 헤아리는 대중 외교를 펼쳐야 한다.”
주 교수는 “노무현 정부 때까지 우리나라 엘리트들과 일반 국민의 대중 인식 여론조사를 각각 했다. 2006년 마지막 조사를 보면 국회의원들의 60%는 중국에 호감을 보인 반면, 일반 국민들의 중국 호감도는 30%에 그쳤다. 이런 괴리감을 줄이며 국민 안위와 행복을 도모하는 대중 외교가 필요하다”고 했다.
▲홍콩 주권 반환 24주년 기념일인 2021년 7월 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의 중국 영사관 앞에서 활동가들이 중국과 홍콩 주요 정치인들의 사진을 영정사진처럼 배치해 놓고 반중 시위를 벌이고 있다./AFP연합뉴스
◇“韓 언론, 중국의 한국 침투 파헤쳐 공론화해야”
- 중국의 위협과 파상적인 침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지식인과 지도층의 각성과 더불어 언론의 치밀한 탐사 보도, 공론화 노력이 필요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대학교와 싱크탱크가 재정난을 겪을 때, 중국 자본이 홍수처럼 밀려왔다. 이때 미국 주요 언론사들이 공격적인 탐사보도로 이를 파헤치며 국민에게 알리고 위험성을 지적했다. 수년 전 호주도 그랬다. 우리나라에서도 언론들이 중국의 은밀한 한국 침공 실태와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공론화된다.”
- 미·중 전략 경쟁 시대에서 한국의 역할과 가치는 어떤가?
“잠재적 가치와 현실적 가치 모두 무궁무진하다고 본다. 외교는 생물(生物)이다. 우리의 지리적 위치는 불변하지만 지정학적 가치와 역할은 달라진다. 냉전시기 자유 진영과 공산진영의 최전선에 위치하며 가졌던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탈냉전 시기에 다소 낮아졌지만 미·중 전략 경쟁시대는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일 호기(好機)이다.”
▲미국과 중국의 외교 총사령탑. 토니 블링컨 (Tony Blinken) 미국 국무장관(사진 오른쪽)과 양제츠(杨洁篪) 중국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조선일보DB
- 어떤 측면에서 기회인가?
“일례로 중국의 제1도련선(島鏈線·오키나와~타이완~필리핀~보르네오섬을 잇는 중국의 해상 방어선) 안에 포함돼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중국이 태평양으로 진출하려면 1도련선을 돌파해야 하는데, 핵심 길목 중 하나가 대한해협이다. 대한해협이 봉쇄되면 중국은 매우 힘들다. 또 국내 군사기지들은 중국의 심장부를 최근거리에서 겨눌 수 있다.”
◇“‘中의 심장부’ 겨누는 韓의 전략적 가치 적극 활용해야”
주 교수는 “정치인들과 정책 결정자들이 이러한 우리만의 전략적 가치를 담대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하면 한국의 활로와 국익이 훨씬 커지는데, 이런 의식이 아예 없거나 매우 약한 게 안타깝다”며 이렇게 말했다.
▲중국이 자체 설정한 해상 방어선. 중국과 가까운 왼쪽이 제1도련선이고, 오른쪽이 제2도련선/조선일보DB
“미·중 전략 경쟁 시대에 우리의 국가이익이 걸린 사안에는 여·야간 초당(超黨)적 협력이 필수적이다. 쿼드(Quad·미국·인도·일본·호주 4개국 비공식 안보회의체) 참여 같은 문제에 우리가 초당적으로 임하면, 미국과 중국에 레드라인(red line) 등을 제시하며 각각 딜(deal)을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우리나라가 동북아의 규범 주도자(rule maker)로서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 중국도 그런 상황을 반길까?
“한·미·일 3국 관계에서도 우리가 주도권을 쥐는 게 중국 입장에서 더 좋다. 한국이 빠진 채 미·일 동맹만 더 밀착되면, 중국의 안보 부담이 더 커진다. 한국이 포함된 한·미·일 동맹의 경우, 한국이 중간에서 완충자 역할을 할 수 있어 중국에 더 이익이다. 우리의 외교 전략 공간 확보 노력에 따라 한·미·일과 중국까지 국익에 도움된다. 하지만 지금처럼 한일(韓日) 관계 악화로 신뢰가 고갈된다면, 시도 조차 불가능하다.”
조선일보 송의달 선임기자
09.14 남북 유엔가입 30년이 남긴 것
▲1991년 9월17일 유엔본부에서 안보리가 끝나 남북한 유엔가입이 확정된 뒤 노창희 대사(오른쪽)가 북한 대표부 박길연 대사에게 축하한다며 손을 내밀어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뉴욕 맨해튼의 유엔(UN) 본부 앞엔 한국 유엔 대표부 전용 건물이 있다. 태극기가 휘날리고 무궁화가 심어진 상앗빛 건물 안엔 백남준 등 한국 예술가의 작품이 가득하다. 여기서 길 건너 1분쯤 가면 북한 유엔 대표부가 나온다. 정확히 말하면 북한 대표부가 들어있는 낡은 상가다. 1층의 식료품점과 식당, 철물점 사이에서 북한 외교 공관이 있다는 표지조차 찾을 수 없다.
이 북한 대표부는 미국 땅에서 북한이 유일하게 공식 활동하는 장소다. 미 정보기관은 이 건물과 북한 외교관 거주지인 인근 루스벨트섬 아파트 등에 걸쳐 이들의 동선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한다. 북한이 유엔 업무를 명분으로 뉴욕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감시하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뉴욕의 북 외교관들은 다른 나라에서처럼 불법 외화벌이도 못하고 일부 한인 교포들의 도움을 받아 숨죽이며 살아간다. 지금 뉴욕시는 월가 취업을 앞두고 평양에 놀러갔다 모진 고문을 받고 사망한 대학생 오토 웜비어를 기려 북한 대표부 앞 도로를 ‘오토 웜비어길’로 개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것이 한때 미·북 간 소통 창구로 알려진 ‘뉴욕 채널’의 현주소다.
북한이 30년 전 이런 장면을 상상하고 뉴욕에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북은 1991년 9월 17일 유엔에 나란히 가입했다. 한국에게 유엔 가입은 서울올림픽의 성공과 소련·중국과의 수교 등 북방 외교에 힘입은 외교적 쾌거였다. 반면 북한의 유엔 가입은 한국의 단독 가입을 막으려다 막판에 울며 겨자 먹기로 택한 것이었다. 그래도 당시 북한은 유엔에 인공기를 꽂으며 자신들도 북·미 수교와 종전 선언을 얻어내 체제를 보장받으리라 여겼고, 국제사회도 남북 유엔 가입이 한반도 평화의 초석을 놓을 것으로 기대했다.
▲1991년 9월 17일 제46차 유엔총회에서 남북한이 회원국으로 동시 가입함에 따라 양국 국기가 유엔본부 앞에 나란히 게양되어 있다./조선일보 DB
3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우리가 북한의 정서적·물리적 폭력에 끌려다니며 대화를 구걸하는 희한한 상황이라 잘 인지하지 못하지만, 국제 무대에서 남북을 비교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한국의 유엔 정규 예산 분담률은 2022년 세계 9위가 되지만, 북한은 아프가니스탄보다도 못한 130위권으로 밀려난다. 올해 유엔 총회에서 안보리는 북핵과 인권 문제를 또 주요 안건으로 올린다. 이는 수십 년간 개혁·개방을 설득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배신한 북한이 자초한 결과다. “미국의 적대시 정책 때문”이라는 북한에 동조하는 건 쿠바·베네수엘라 같은 극소수 실패한 반미 정권뿐이다.
정부가 남북 유엔 동시 가입 30주년 공동 이벤트를 추진하다 무산됐다. 북한에 무의미하고 수치스러운 기념일까지 동원해 굳이 남북이 동등한 모습을 연출하려 하는 이유가 뭔지 안타깝다. 한국의 위상과 품격에 걸맞은 글로벌 외교에 집중했으면 한다.
조선일보 뉴욕=정시행 특파원
09월 14일 미군감축설, 등 떠미는 정부
김남석 워싱턴 특파원
미국 하원 군사위원회는 지난 2일(현지시간) 주한미군을 2만8500명 미만으로 감축하는 데 예산을 쓸 수 없도록 명시했던 조항을 삭제한 2022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의 일방적 감축을 막기 위해 의회가 2019회계연도 NDAA에 삽입해 3년간 유지됐던 안전장치가 사라진 셈이다. 하지만 정부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주한미군을 줄일 가능성은 없다며 느긋하다. 국방부는 “주한미군 감축과 관련해 미측과 논의한 바 없다”고 밝혔고, 외교부 역시 “주한미군 감축 의도가 없다는 점을 미국으로부터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중국 견제를 위해 꼭 필요한 곳이 한반도이기 때문에 주한미군을 감축하는 일은 없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주한미군 감축 논란을 보며 떠오른 나라가 필리핀이다. 남중국해·대만을 직접 사정거리에 두고 중국의 서태평양 진출을 저지하는 최적 위치인 만큼 미국으로서는 대중 견제를 위해 한국만큼이나 중요한 지정학적 가치를 가졌다. 미 식민지였던 필리핀이 1946년 독립했지만 미군이 계속 주둔한 이유다. 하지만 1992년 필리핀 의회가 클라크 기지 사용 연장을 불허하자 미군은 철수했다. 이후 안보 리스크가 커진 필리핀 경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또 중국은 2012년 필리핀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있는 스카버러 암초를 무력 점거했다. 한국은 어떤가. 문재인 정부 들어 주한미군을 등 떠미는 일이 잦아졌다. 경북 성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기지는 4년째 반미단체의 장비·물자 반입 저지가 계속돼 3월 방한한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사드 기지의 열악한 여건을 계속 방치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항의했다. 한·미 연합군은 3년째 대규모 실기동훈련을 못해 해외 전지훈련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이던 지난해 7월 “주한미군은 한·미 동맹 군사력의 오버캐파(overcapacity·과잉)가 아닌가 한다”고 발언했다.
중국과 치열한 패권 경쟁을 벌이는 미국이 당장 주한미군을 철수 또는 대폭 감축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철군 등 미국의 군사·외교전략이 급변하고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GPR)’ 검토가 마무리단계인 시점에서 주한미군 감축 제한 조항이 빠진 점은 불안하다. 미 국방부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를 검토해온 데다 바이든 행정부의 군사전략이 지상군 배치 대신 첨단군사기술로 초장거리에서 적을 공격하는 ‘지평선 너머’ 전략으로 변화하는 점 역시 한국에 밀집된 지상군의 분산 배치 가능성을 키운다. 특히 우려되는 부분은 필리핀처럼 주둔국이 반기지 않고 비용·위험 대비 효용이 떨어지면 미국의 국익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제아무리 지정학적 가치가 커도 대중국 견제에서 번번이 발을 빼고 주한미군을 내심 불편해하는 정부·여당의 행동이 계속되면 70년 동맹의 신뢰도 언젠가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한국은 아프간과 다르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말에 무작정 안심하기보다 서둘러 자체 방위력을 끌어올리고 무엇보다 동맹의 일원으로서의 가치를 제고해야 하는 이유다.
문화일보
09월 14일 6·25전쟁 환상 심는 中의 ‘映像工程(영상공정)’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6·25전쟁 도발 주체 흐리기 작업
中공산당의 참전 결정도 정당화
국군 없고 미군만 있은 듯 오도
한국 통일 가로막은 파병 미화
당·국가 위한 전쟁에 환상 심어
동북공정 연상시키는 영상공정
1953년 금성전투를 다룬 중국공산당 후원 선전 영화 ‘금강천(金剛川)’의 국내 상영이 일단 취소됐다. 수입 상영이 허가되자 당시 참전 유공자들 중 한 명은 “한 뼘 땅도 적에게 내주지 않겠다며… 녹아 없어진 전우도 있는데 나라가 이래선 안 된다”고 항의했다.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불씨는 재연(再燃)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공산당의 6·25전쟁 관련 영상물로는 1956년 작 ‘상감령(上甘嶺)’ 등이 꾸준히 제작돼 왔지만 주로 국내용이었다. 2017년 3월부터 시행된 ‘중화인민공화국 전영산업촉진법’ 이후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고, 제작진과 유통망을 전 세계 영화산업과 연결시키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국영 CCTV는 ‘압록강을 건너(跨過鴨綠江)’라는 40부작 드라마를 방영했다. 약 2300억 원을 썼다는 영화 ‘장진호(長津湖)’가 곧 개봉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이런 블록버스터급 영상물들은 이성보다는 감성을 통해 다음과 같은 환상들을 전파하고자 한다.
첫째, 개전 주체에 대한 환상. 1992년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부터의 우방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한 대가로 전쟁을 남쪽에서 일으켰다는 허위선전은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1950년 6월 25일 “조선전쟁이 폭발”했다는 식의 애매한 표현으로 개전 주체에 대한 인식을 모호하게 만든다.
둘째, 파병 이유에 대한 환상. 미군이 38선 이북으로 북진했고, 압록강 월경 폭격을 했기 때문에 1951년 10월 중국공산당이 불가피하게 파병을 결정했다는 식으로 묘사한다. 사실은 마오쩌둥(毛澤東)이 6·25전쟁 발발 이전부터 적극적으로 김일성의 개전 의지를 후원했었다. 그리고 조선인민군이 대한민국 국군을 낙동강 이남으로 밀어붙일 때 이미 병력을 만주로 이동하며 파병을 준비하고 있었다.
셋째, 오직 미군과의 전쟁이었다는 환상. ‘금강천’ 수입 논란 중에 국군은 나오지 않고 미군만 나와서 문제없다는 주장이 있었다고 한다. 사실은 국군이 없는 것이 더 문제였다. 대한민국의 존재를 무시하고, 미국만을 상대로 한 전쟁처럼 오도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앞으로 개봉될 영화 ‘장진호’에서 더 노골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넷째, ‘정의의 전쟁’이었다는 환상. 공산 진영이 서울을 다시 점령한 직후인 1951년 2월 1일 유엔은 베이징 정부를 ‘침략자(the aggressor)’로 규정했었다. 이로 인해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제사회 진출은 오랫동안 지체됐다. 중화인민공화국 내 일각에서도 한반도 파병에 대한 반성이 나왔다. 한·중 수교 이후에는 당시 유엔군 주도의 통일을 가로막은 것에 대한 대한민국의 반감을 고려한 외교적 제스처나마 있어 왔다.
그런데 시진핑(習近平) 집권 이후 노골적으로 파병을 미화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 시중쉰(習仲勳)이 6·25전쟁 당시 파병 군대를 이끌었던 펑더화이(彭德懷)와 정치적 성쇠를 같이했던 일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지난해 10월 파병기념일에는 “정의의 전쟁”이라고까지 칭송하자 캐나다에서 “나치의 폴란드 침공을 옹호하는 격”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정작 최대 피해국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의 대응은 미온적이었고, ‘금강천’ 수입 상영 논란에까지 이른 것이다.
다섯째, 당과 국가를 위한 전쟁이 아름답다는 환상. 한국 영화계에서는 과거 정치인들이 반공주의를 장기집권에 악용했던 것에 대한 반감으로 반(反)반공주의가 유행하고, 흥행 공식처럼 됐다. 예술 정신을 가로막는 도그마(독단적 신조)에 반대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더욱 중국공산당의 도그마에 따른 전쟁 미화에 묵종하거나 동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중국공산당의 6·25전쟁 영상공정(映像工程)은 2002년에 시작된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연상시킨다. 당시 한국 시민사회의 여론은 2003년 출범했던 노무현 정부의 외교정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2004년에 고구려연구재단이 만들어졌고, 2006년 동북아역사재단으로 개편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총성 없이 문화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공산당의 6·25전쟁 영상공정에 대해서도 여·야와 관·민을 초월한 지속적인 경각심과 대책이 필요하다.
문화일보
09.15 쿼드 참여 차단 말고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해야
미·중 격돌과 한국의 대응
이혁 전 주베트남 대사
지난달 말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했다. 아프간이 더는 미국의 핵심 이익이 걸린 나라가 아니며, 미국 또한 세계 각 지역에 대한 과도한 관여(overstretch)를 줄이고 중국과의 대결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을 보여준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시작된 미국 단독의 중국 때리기(China bashing)가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동맹국과 우호국을 끌어들이는 중국 포위 전략(China encircling)으로 진화하고 있다. 미국 전체에 반중 분위기가 고조되고 미국 정치에서도 중국과의 대결적 자세는 초당파적 흐름이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종료(1945)와 함께 미·소 냉전이 시작됐다. 미국은 1988~91년 옛 소련 붕괴 이후 오랜 기간 도전자 없는 단독 패권국 지위를 누려왔다. 냉전 전략의 일환으로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닉슨 대통령이 1972년 교조적 공산주의 국가였던 중국을 방문하고, 79년 미·중 수교가 이뤄졌다. 또 미국이 중국을 국제사회에 편입시키는 노력을 주도하면서 중국의 고도 경제성장에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한·미 동맹은 미국엔 선택의 문제이나 한국엔 생존의 문제
중국에 안보 굴복하면 한국 입지 좁아지고 동맹도 흔들려
대치 속 공존 찾는 미·중 간 ‘차가운 평화’ 당분간 계속될 듯
한·중·일 정상회의로 소통 강화하고 지역 긴장 완화해야
이제 그런 중국이 패권국 미국의 도전 세력으로 등장했다. 나폴레옹이 “중국을 잠자게 놔두라. 중국이 깨면 세계를 흔들 것이다”라고 말했으나, 미국이 중국을 깨워서 세계를 흔들게 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하지만 19, 20세기를 제외하고 세계 최강국이었던 중국의 재부상은 역사의 필연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군사·안보 우위 계속돼
/이혁의 한반도 평화워치
패권국이 신흥 강국의 도전을 좌시하거나 스스로 패권을 내주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패권국은 무력·경제력·외교력 등 온갖 수단을 통해 도전국을 누르려 하며, 이것이 펠로폰네소스 전쟁, 1·2차 세계대전 등 전쟁의 참화로 이어졌다. 다행히 미·소 냉전은 인류에 궤멸적 참화를 가져올 핵전쟁에 대한 공포가 중요한 억지력으로 작용하여 무력 전쟁 없이 끝났다. 소련은 군사 경쟁보다 경제·체제 대결에서 패해 무너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미·중 경쟁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까. 첫째, 미국의 군사·안보 우위는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다. 미국은 압도적 군사력(핵탄두 미국 5550개 중국 350개, 항공모함 미국 11척 중국 2척)을 바탕으로 동맹국과의 연대를 강화하면서 강력한 중국 포위 전선을 펼쳐 나갈 게 분명하다. 미국은 심지어 중·러 연대 강화를 견제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문제 등으로 악화한 러시아와의 긴장 상태를 완화할 조짐도 보인다.
중국도 미국에 대항하기 위한 군사력을 증대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 발전에 들어갈 국가 자원을 대폭 줄여서 군비로 전용하기 어렵고, 전략적 부담 요인인 북한 외에는 강력한 동맹국도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은 우선 최대 무력충돌 위험지역(flashpoint)인 대만해협에서 미군에 승리할 수 있는 전력을 갖추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미·중 모두에 전략적 요충지인 남중국해를 둘러싼 양국 공방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둘째, 중국은 10년 정도(2028~2032년) 지나면 미국을 제치고 최대 경제 대국 지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변이 없는 한 이 자리는 오랫동안 유지될 것이다. 이에 미국은 특히 컴퓨터·항공우주·반도체·통신 등 첨단 전략산업에서 대중국 우위를 지키기 위해 우방국들과 다양한 연합전선을 펼쳐갈 것이다. 다만, 미국의 노력이 중국의 경제 발전의 대세를 되돌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미국조차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통해 엄청난 이익을 누려 왔으며, 어떤 나라도 중국과의 무역·투자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중국은 14억 시장을 무기로 최대한 많은 국가가 중국과의 교역·투자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가도록 하며 고도 경제발전 흐름을 이어갈 것이다. 또 일대일로와 방대한 자금력을 활용한 선심 공세(charm offensive)를 통해 친중 국가를 늘리고 국제적 영향력과 활동 공간 확장에 노력할 것이다.
셋째, 현 중국 지도부의 정책을 볼 때 중국이 경제발전에 걸맞은 민주화 과정을 밟을 것이라는 기대는 상당 기간 하기 어렵다. 오히려 홍콩·신장위구르 사례에서 보듯 중국 지도부는 표현의 자유와 인권 증진에 대한 욕구를 차단하려 한다. 미국은 중국 인권상황에 대한 강력한 비판과 제재를 가하고 있으나, 중국은 미국이 소련을 붕괴시킨 계략을 중국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고 경계한다. 중국은 지금의 정치 체제가 중국의 안정과 발전을 담보하는 가장 효율적 시스템이라고 주장하고, 트럼프 정권에서 보듯 서구적 민주주의는 많은 문제를 노정하면서 퇴보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미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시하는 서구적 가치를 표방하는 반면, 중국은 사회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희생할 수 있다는 동양적 가치를 대변하는 일종의 문명 충돌적 대결이 전개되고 있다.
한국은 미·중 대결의 파고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첫째, 한·미 동맹 견지와 강화가 지상 명제이다. 북한과 대치하는 남한이 놀라운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달성하는 토대가 된 한·미 동맹은 미국에는 선택의 문제이나 한국에는 생존의 문제이다. 따라서 한국은 굳건한 한·미 동맹을 위해서는 비용이 수반되더라도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국 배치 사례에서 보듯 중국은 한·미 동맹 강화 노력에 대해 반발하고 필요하면 보복 조치를 취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안위가 걸린 분야에서 중국의 요구나 협박에 굴복하거나 타협하면 우리가 중국과 당당한 관계를 만들어갈 여지는 더욱 좁아지고, 한·미 동맹의 근간도 크게 흔들린다. 아무런 비용을 치르지 않고 나라의 안전과 발전이 보장될 수 있는가.
틀어진 한·일 관계 ‘정상화’ 시급
지금 바이든 행정부는 양자 동맹과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쿼드(미국·일본·인도·호주 4개국 회의체) 등 전략적 자산을 총동원해 대중국 연합전선을 펼치고 있다. 물론 우리의 국력과 지정학적 상황을 고려할 때 한국이 한반도를 넘어 중국에 대항하는 공동전선에 일본처럼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에 쿼드 참여를 강하게 요구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한국은 쿼드 참여 가능성을 차단하지 말고 동북아 상황 전개 추이를 보면서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해 가는 게 현명하다.
그리고 한·미, 미·일 동맹을 통한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도 일그러진 한·일 관계를 조속히 회복해야 한다. 동시에 중국이 북한 후견국으로서 한반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해 북한 핵 문제 등과 관련해 중국이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대화와 협력을 강화해 나가는 등 중국과의 신뢰 구축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둘째, 미국이 경제·산업 분야에서도 우호국들과 협력해 중국에 대항하고 있는 현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첨단 전략기술 경쟁이 미·중 대결의 승패에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이다. 이 분야 경쟁에서 미국이 중국에 밀리면 민간 산업뿐 아니라 첨단무기 경쟁에서도 우위를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영국·독일·일본 등 동맹국에 중국 화웨이의 5G 설비를 도입하지 말도록 강하게 압박한 대목에서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단적으로 확인된다.
미국이 최근 한국 기업의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려는 노력에서도 미·중 경쟁의 단면을 볼 수 있다. 한국은 향후 중국과의 경제 관계에서 일정한 제약을 받을 것이나, 동시에 우리가 미국·일본·유럽 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를 확대할 여지도 커졌다. 반도체·통신·AI 등 첨단 분야뿐 아니라 건설·제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가 서방과 연계·협력한다면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의 최대 무역 상대국과의 관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우리 정부는 민간 기업의 중국 시장 개척을 위한 좋은 외교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중국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미·중 경쟁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격화되지 않도록 외교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중·일 정상회의 등을 통해 동북아 3국 간 소통을 강화하여 지역 긴장을 완화하고, 보다 미래지향적 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창의적 역할을 해나가야 한다.
친미·친중 분열 상황 극복해야
지난주 바이든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의 통화에서 미·중 경쟁이 분쟁(conflict)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문제를 협의했다. 양국 간 전쟁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지만, 전쟁은 양측 모두에게 재앙적 참화를 가져온다. 세계 경제의 상호 의존성은 더욱 커지고, 기후변화 등 미·중이 공동 대처해야 할 문제도 많다. 따라서 미·중 간에는 미·소 냉전(Cold War)과 같이 승자·패자가 분명히 가려지지 않은 채 경쟁·협력·긴장 속 공존이 병행되는 ‘차가운 평화(Cold Peace)’ 시대가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미·중 경쟁에서 한국처럼 복잡하고 민감한 지정학적·지경학적 위치에 있는 나라도 드물다. 시대 흐름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국익 위주 외교를 전개하는 것이 우리의 생존과 번영의 길이다. 친미·친중으로 나라가 분열되는 상황을 극복하고 국익 우선의 초당적·국민적 합의를 이루어 창의적·전략적 외교가 가능한 튼튼한 기반과 넓은 공간을 확보하는 게 시대적 과제다.
중앙일보 이혁 전 주베트남 대사
09월 16일 대선用 ‘베이징 남북 쇼’ 집착해 中 반미에 맞장구친 文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북한의 베이징동계올림픽 참가 금지 결정을 내렸음에도 문재인 대통령 머릿속엔 ‘베이징 남북 이벤트’밖에 없는 것 같다. 문 대통령은 15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베이징동계올림픽이 평창동계올림픽에 이어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또 한 번의 전기가 되기 바란다”며 ‘어게인 평창’을 강조했다. 그러자 왕 부장은 “남북관계 개선 계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면서 “정치적 의지만 있으면 하루에도 역사적인 일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과 왕 부장이 어떻게든 남북회담 쇼라도 만들어보자는 데 서로 맞장구친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문 정부는 왕 부장의 미국 비판에도 공감을 표시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기원 조사와 관련,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왕 부장은 “정치화·도구화하는 데 반대한다”고 했고, 정의용 장관도 “정치화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내용은 한국 발표에선 빠졌다. 왕 부장은 북한의 순항미사일 발사를 두둔하는 발언을 했고, 정 장관은 인도적 지원을 강조했다.
베이징올림픽은 내년 2월 4일부터 20일까지 개최된다. 그 직전은 5일 간의 설 연휴다. 대통령 선거가 3월 9일이라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시기다. 정권 차원에서는 어떻게든 또 코로나 위로금을 뿌리거나, 남북 정상회담 이벤트라도 열고 싶은 강한 유혹을 느낄 것이다. 문 대통령과 정 장관 등 정부의 움직임을 보면, 모든 외교·안보 정책의 초점이 남북 쇼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중국 역할이 아쉽기 때문에 반미에 더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건 아닌가. 미국·유럽 등지에서는 중국의 신장위구르 인권탄압과 홍콩 사태를 들어 베이징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 주장까지 구체적으로 나온다. 문 정부 행태는 정파적 이익 때문에 동맹을 배신하는 것으로도 비친다.
문화일보 사설
09.20 “中 왕이, 한국 왔다가 뺨 석 대 맞았다” 대형사고 평가받는 까닭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청와대에서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주먹 인사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왕 부장에게 “베이징올림픽이 평창올림픽에 이어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또 한번의 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연합뉴스
“왕이(王毅) 부장이 이번 방한(訪韓) 전후 뺨을 석 대나 얻어맞았다. 중국 지도부 관점으로 보면 대형 사고다.”
지난 14~15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방한(訪韓) 결과에 대해 한 전문가는 이렇게 평가했다. 왕 부장은 15일 오전 정의용 외교장관과 회담을 하고 청와대로 가 10개월 만에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했다. 한국 외교장관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을 직접 본 것이 2017년이 마지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후한 대접이었다. 문 대통령도 왕 부장을 만나 한반도 정세에서 중국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고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대한 지지 의사도 표명했다. 그런데도 왕 부장의 방한이 대형 사고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뺨: 국제올림픽위원회
외교가에서는 이번 왕 부장의 방한에 대해 내년 2월 열리는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문 대통령을 초청하기 위한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미국, 영국, 유럽에서 베이징 동계올림픽 보이콧(거부)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한국의 지지를 확인하려 한다는 것이다. 2월 4일 베이징 동계 올림픽 개막식에 남북 고위급이 참석하면 중국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동시에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억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임기 말까지 남북 관계 개선 의지를 가진 문재인 정부가 “베이징 올림픽을 남북 관계 발전의 기회로 삼자” 제안에 응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을 가능성이 크다. 왕 부장의 방한은 베트남, 캄보디아, 싱가포르, 한국을 도는 그의 4개국 순방 일정의 ‘피날레’인 셈이다.
▲2021년 9월 8일 토마스 바흐 IOC(국제 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올림픽 집행위원회 화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하지만 방한 일주일을 앞두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이런 왕 부장의 구상에 일격을 가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8일(현지시각) 올해 도쿄 하계 올림픽에 일방적으로 불참했다는 이유로 북한올림픽위원회의 자격을 2022년 말까지 정지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내년 2월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국가 단위로 참가할 수 없게 됐다.
청와대에 따르면 왕 부장은 15일 문 대통령에게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남북 관계 개선의 계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적극적인 태도로 정치적 의지만 있으면 하루에도 역사적인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이 북한을 자극하지 말고, 대북 제재를 풀기 위해 미국을 더 설득해 달라는 메시지다. 하지만 동시에 베이징 올림픽에서 ‘남북 이벤트’를 열기 쉽지 않은 상황을 인정하는 말로도 해석된다.
◇두 번째 뺨: 북한
두 번째로 왕 부장의 뺨을 때린 건 북한이었다. 청와대 예방을 마친 왕 부장이 정의용 외교장관과 점심을 먹을 때 북한이 평안남도에서 동해 상으로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다. 왕 부장은 미사일 발사를 사전에 알지 못해 당황해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2021년 9월 15일 철도기동미사일연대 검열사격 훈련을 진행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6일 보도했다. 사진은 신문이 공개한 미사일 발사 장면으로 열차에 설치된 발사대에서 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노동신문 뉴스1
중국은 올해 북·중 우호조약 체결 60주년를 맞아 양국 관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해왔다.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서도 “북한이 자제하고 있으니 인도주의 차원에서 대북 제재 중 일부를 해제하자”며 국제 사회에서 북한 입장을 대변했다. 하지만 왕 부장이 서울에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안보리 결의를 어기고 탄도미사일을 쏜 것은 중국의 얼굴에 먹칠을 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북한의 탄도미사일 가운데 단거리 미사일의 경우 어느 정도 허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자국엔 직접 위험이 되지 않는 반면 한국과 미국이 대화에 나서도록 하는 ‘지렛대’가 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쌍궤병행(雙軌竝行·북한 비핵화와 북·미 평화협정을 병행하는 것) 등 중국의 한반도 해법이 성과를 거두지 못한 가운데 북한이 중국에 대해 공개 시위를 벌이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코로나로 양국 왕래가 끊어지긴 했지만 올해 임명된 류샤오밍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는 아직 북한 측과는 공개 회담을 하지 못한 상태다.
북한이 왕 부장의 방한 이틀 전 발사한 비행거리 1200㎞의 장거리 순항미사일도 한국군, 주한미군 기지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일부 군사 전문가는 북한이 핵탄두의 소형화, 경량화를 더 진전시킬 경우 장거리 순항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느리지만 탐지가 어려운 순항 미사일은 중국의 전략 구상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세 번째 뺨: 한국
왕 부장 방한 당일 한국이 이례적으로 다수의 신형 무기를 공개한 것도 “중국에 한 방 먹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 대통령은 15일 왕 부장을 만난 직후 국방과학연구소(ADD) 충남 안흥 시험장에서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을 참관했다. 3000t급 잠수함 도산안창호함에서 발사된 SLBM은 400㎞를 비행해 서남해상의 목표물을 맞혔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확실한 억지력이 될 수 있다”고 했다.
▲2021년 9월 15일 국방부가 공개한 우리 군의 초음속 순항미사일 발사 장면./국방부 제공
청와대는 무기를 쓸 상대로 북한을 언급했지만 이날 군 당국이 함께 공개한 무기는 중국 입장에서는 “대놓고 반대할 수 없지만 목에 가시 같은 무기”(한 중국 전문가)였다. 마하 3의 속도로 비행하는 초음속 순항미사일이 대표적이다. 초음속 순항미사일은 속도가 빨리 요격이 어렵고 저공으로 비행하면 레이더로 탐지하기도 어렵다. 특히 15일 문 대통령이 참관한 초음속 미사일은 육상에서 발사해 해상의 적 군함을 공격하는 지대함(地對艦) 미사일로 ‘항공모함(항모) 킬러’라고 불린다. 이 미사일이 실전 배치되면 서해는 물론 동중국해 등에서 활동하는 중국 항모를 견제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측이 방한 일정을 짤 때 이런 문 대통령의 일정을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신형 무기 발사의 정치적 메시지를 모르지 않을 청와대가 왕 부장 접견과 신형 무기 공개를 같은 날로 잡은 것을 놓고 청와대의 대중 외교 기조에 변화가 생겼을 가능성까지 점쳐진다. 어느 쪽이든 ‘성공적’ 방한 결과를 상부에 보고하고 싶었을 왕 부장 입장에서는 난감한 상황에 틀림없다.
◇내년 양제츠 은퇴, 왕이 후임 물려 받을까
2013년 중국 외교부장에 취임한 왕 부장에게 올해는 승진과 은퇴의 갈림길에서 매우 중요한 해다. 내년 가을 열리는 중국 공산당 20차 전국대표자대회에서 왕 부장의 상관 격인 양제츠(楊潔篪·71) 중국 공산당 정치국 위원 겸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청와대 국가안보실 격) 주임은 은퇴할 전망이다. 왕 부장의 나이(68)를 감안하면 양 주임의 후임이 되거나 은퇴하게 된다.
왕 부장은 일본통으로 영어 통역 출신인 양제츠 주임에 비해 영어에 약점이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때 이뤄진 2020년 6월 하와이 회동에서 마이클 폼페이오 당시 미 국무장관을 만난 것도 양제츠 주임이었다. 현재 중국 외교의 핵심 과제가 “미국과 미국 동맹국의 중국 포위망을 어떻게 돌파하느냐”라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동맹인 한국을 찾은 이번 출장의 결과가 왕 부장에게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조선일보 베이징=박수찬 특파원
09.23 IAEA “北核 전력 질주” 경고, 다음날 文은 “종전 선언” 반복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되었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한다”고 밝혔다. 4년 연속 유엔에서 ‘종전 선언’ 관련 발언을 한 것이다.
“종전 선언을 이뤄낼 때 비핵화의 불가역적 진전과 함께 완전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지난주 북한의 순항·탄도미사일 도발과 핵시설 재가동에 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통령 연설 하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유엔에서 “북한 핵 개발 계획이 전력 질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이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 생산 작업을 “전속력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다 북은 레이더 탐지가 어려운 순항미사일을 1500㎞까지 날렸고, 유엔 결의 위반인 탄도미사일 성능 개량에도 성공했다. 우리 영토 전역이 북핵 공격에 노출될 위기 상황이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북핵 위협엔 침묵하면서 ‘종전 선언’만 되풀이했다. 청와대는 IAEA의 ‘북핵 질주’ 경고에 대해 “별도 의견이 없다”고 했다. 국민 안전이 위협받는데 ‘의견 없다’는 정부는 세계에서 한국뿐일 것이다. 여당 대표는 “북한의 바람직한 행동에 대한 보상”이라며 개성공단 재개 등을 주장했다. 북이 핵을 늘리고 미사일 쏘는 게 보상받을 행동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되었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한다”고 밝혔다. 4년 연속 유엔에서 ‘종전 선언’ 관련 발언을 한 것이다.
“종전 선언을 이뤄낼 때 비핵화의 불가역적 진전과 함께 완전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지난주 북한의 순항·탄도미사일 도발과 핵시설 재가동에 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통령 연설 하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유엔에서 “북한 핵 개발 계획이 전력 질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이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 생산 작업을 “전속력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다 북은 레이더 탐지가 어려운 순항미사일을 1500㎞까지 날렸고, 유엔 결의 위반인 탄도미사일 성능 개량에도 성공했다. 우리 영토 전역이 북핵 공격에 노출될 위기 상황이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북핵 위협엔 침묵하면서 ‘종전 선언’만 되풀이했다. 청와대는 IAEA의 ‘북핵 질주’ 경고에 대해 “별도 의견이 없다”고 했다. 국민 안전이 위협받는데 ‘의견 없다’는 정부는 세계에서 한국뿐일 것이다. 여당 대표는 “북한의 바람직한 행동에 대한 보상”이라며 개성공단 재개 등을 주장했다. 북이 핵을 늘리고 미사일 쏘는 게 보상받을 행동인가.
조선일보 사설
09-23 북핵 ‘전력 질주’하는데 文은 ‘종전선언’에 다걸기하나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6·25전쟁)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화해와 협력의 새 질서를 만드는 중요한 출발점”이라며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종전선언’을 거듭 제안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진지한 외교’를 강조하며 “우리는 확실한 약속 아래 가능한 계획을 향한 구체적 진전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두 정상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한미 정상의 유엔 연설은 북한의 잇단 도발적 행보와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대북 유화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은 한미의 거듭된 대화 손짓에도 5MW 원자로를 재가동하고 우라늄 농축공장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엔 장거리순항미사일과 단거리탄도미사일 발사로 무력시위를 벌였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21일 “북한 핵 프로그램이 전력 질주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정이 이러니 한미 정상의 발언은 정작 북한을 향한 것이 아니라 한미 서로에게 던지는 메시지로 읽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미국은 그간 비핵화 전 종전선언에 부정적이었고, 북한은 종전선언을 대미 압박용으로 활용했다. 문 대통령 제안은 미국을 향해 먼저 양보하라는 권고로 해석될 수 있다. 미국은 새 대북정책에 한국 의견을 대폭 수용했지만 진전은 전혀 없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말한 ‘구체적 진전’도 한국 뜻대로 했는데 실질적 성과가 없지 않느냐는 답답함의 토로일 수 있다.
북한이 도발을 벼르는 상황에서 종전선언 제안은 뜬금없고 공허하게만 들린다. 올 5월 취임 4년을 맞아 “남은 임기에 쫓기거나 조급해하지 않겠다”고 했던 문 대통령이다. 유엔 연설에선 “상생과 협력의 한반도를 위해 남은 임기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종전선언 제안이 임기 말 성과를 노린 집착이나 조급증의 발로는 아닌지 자문해 봐야 한다.
동아일보 사설
09월 23일 文의 북핵·인권·언론 ‘反유엔 행보’와 종전선언 타령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매년 직접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했다. 유엔이 대한민국을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로 인정하면서 건국에 결정적 도움을 줬고, 6·25 때는 유엔군을 파견해 공산화를 저지했으며, 30년 전 유엔 가입 이후 대한민국이 세계로 힘차게 뻗어 나가고 마침내 반기문 제8대 유엔사무총장까지 배출했음을 고려하면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문 정권의 정책에는 ‘반(反)유엔’인 것들이 수두룩하다는 점에서 진정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문 정부는 인권 및 표현의 자유라는 유엔 기본 정신 침해라는 심각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북전단금지법을 제정했다. 여당이 밀어붙이는 언론중재법 개정과 관련, 유엔 산하기관인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의 특별보고관은 자유 침해 우려가 크다는 서한을 문 정부에 보냈다. 특히 북한의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에 대해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강력한 결의를 통해 저지에 나섰고, 유엔 전문기구인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지난 20일 “북한의 플루토늄 분리와 우라늄 농축 작업이 전속력으로 진행되고 있다”면서 북핵이 국제 안보의 위협이라고 경고했다. 게다가 최근 북한은 탄도미사일 도발도 했다.
이런데도 문 대통령은 지난 21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 핵무기에 대해선 비판하지 않은 채 “종전선언을 이뤄낼 때 비핵화의 불가역적 진전과 함께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종전선언은 미군 철수와 동맹 해체의 빌미가 되고, 북한 핵무장을 거드는 결과도 낳는다. 인권·언론·북핵 등 중요 현안에서 유엔 정신을 허물면서 이런 주장을 태연하게 한다. 이중성과 안보 불감증이 심각하다.
문화일보 사설
09.23 미군 철수 막은 김장환 목사의 숨은 외교력
서울국제포럼(이사장 이홍구)은 10일 ‘2021 제13회 영산외교인상’ 민간부문 수상자로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87) 목사를 선정했다.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았던 박항서 감독도 이 상을 받은 바 있다. 김 목사는 한국전쟁 때 미군 부대에서 하우스 보이로 일하다가 미군 상사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했다.
김 목사가 가진 대미 외교 네트워크는 상당하다. 16일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의 극동방송에서 만난 김장환 목사에게 ‘숨겨진 외교력’을 물었다.
▲김장환 목사가 '2021 제13회 영산외교인상' 민간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성룡 기자
1979년 카터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다.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대통령에 당선된 카터는 주한 미군 철수를 결정한 상태였다. 청와대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1차 한미 정상 회담을 가졌다. 분위기는 험악했다. 카터 대통령은 주한 미군 철수 입장을 밝히고, 김대중ㆍ김영삼 야당 지도자에 대한 가택 연금 조치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카터 대통령은 한국 정부에서 마련한 영빈관에도 머물지 않았다. 미군 부대를 찾아가 군인들과 함께 조깅을 하고, 주한 미 대사관저에 머물렀다. 박 대통령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더구나 미군 철수는 한반도 평화에 위협적인 정책이었다. 이런 위기일발 상황을 바꾼 이가 다름 아닌 김장환 목사였다.
당시 무슨 일이 있었나.
“1차 한미 정상회담이 안 좋게 끝났다. 마침 일요일이었다. 카터 대통령이 한국의 기독교 지도자 20명을 미 대사관저로 초청했다.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 한경직ㆍ강원용ㆍ강신명 목사와 저도 참석했다. 카터 대통령이 나오더니 저한테 ‘마이 굿 프렌드, 빌리 킴!’이라고 인사했다.”
둘이 아는 사이였나.
“미국 조지아주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카터는 조지아주 주지사였다. 저는 침례교 목사인데, 알고 보니 카터는 침례교 집사였다. 주지사 집무실에서 만난 카터에게 침례교회 부흥회 참석을 요청했다. 그때 카터 주지사는 내게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말했다.”
▲1976년 김장환 목사가 카터 조지아 주지사를 만나고 있다. 당시만 해도 조지아 주지사가 미국 대통령이 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카터 당시 주지사는 침례교 목사인 김 목사에게 대통령 출마 의사를 밝히며 기도를 청했다. [극동방송]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땠나.
“당시에는 누구도 조지아주 주지사가 대통령이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뉴욕도 아니고, 캘리포니아도 아니지 않나. 대통령 출마 의지를 밝힌 카터가 내게 기도를 부탁했다. 나는 그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했다. 그런 인연이 있었다.”
카터 대통령은 한국 기독교 지도자와 만남을 마치자마자 김 목사를 따로 불렀다. 그리고 여의도 침례교회에 가서 함께 예배를 보자고 요청했다. 마침 일요일이었다. 김 목사는 카터 대통령과 같은 차에 동석해 여의도로 갔다.
차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나.
“여의도가 보이기에 1973년에 여기서 100만 명을 모아놓고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함께 전도 집회를 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카터 대통령은 자기 여동생이 전도사라고 하더라. 한국을 좋아한다고. 그래서 나중에 내가 초청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주한 미군 철수에 대해서 내 의견을 말했다.”
뭐라고 했나.
“한반도에서 주한 미군이 철수하면 큰일 난다고 했다. 북한군이 내려오면 기독교인은 생존할 수가 없다. 철군을 유보했으면 좋겠다. 이게 한국의 전체 기독교인 생각이고, 한국 국민도 대다수가 그렇게 생각한다. 그랬더니 카터 대통령이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김장환 목사는 "카터 대통령과는 지금도 아주 가까운 친구 사이로 지낸다. 한국에 올 일이 있으면 나를 찾아오고, 미국에 갈 일이 있으면 나도 자주 연락을 한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그뿐만 아니었다. 김 목사는 카터 대통령에게 “박정희 대통령을 전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국제 외교상 결례였다. 그래도 김 목사는 그걸 카터 대통령에게 부탁했다. 여의도 침례교회에서 예배를 보는데 긴급전화가 왔다.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이었다. 빨리 청와대로 들어오라고 했다. 김 목사는 예배가 끝나자 곧장 청와대로 갔다.
청와대에서 누구를 만났나.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만났다. 미 대사관저에서 나눈 이야기는 이미 다 알고 있더라. 그런데 차 안에서 나눈 이야기는 몰랐다. 그걸 물어보더라. 1차 정상회담이 어긋나자 박 대통령은 화가 많이 나 있었다. 나는 ‘그래도 각하가 초청한 사람이다. 내가 카터 대통령에게 전도를 부탁했다. 만약 전도를 하거든 긍정적으로 받아달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김 목사 말도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열린 2차 한미 정상회담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카터 대통령은 주한 미군 철수 방침을 철회했다. 박 대통령은 공항까지 직접 배웅을 나갔다. 차 안에서 카터 대통령이 박 대통령에게 “내가 잘 아는 목사가 있는데, 가서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라”고 제안했다. 박 대통령은 “나도 잘 아는 목사가 있다”고 화답했다. 두 사람이 말한 목사의 이름이 똑같았다. 김장환.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장례예배에서 김장환 목사가 추모하는 설교를 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 등 미국 정치지도자들도 조문석에 앉아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소개를 따로 없었지만, 김 목사에 대한 공식 소개는 있었다. [미국 NBC방송 뉴스 캡처]
미국에서 가장 큰 기독교 교단이 침례교다. 감리교나 장로교보다 훨씬 더 크다. 김 목사는 2000년에 침례교세계연맹(BWA) 총회장에 당선됐다. 50여 개국을 다니며 선교와 구호 사업을 펼쳤다. 김장환 목사가 한국보다 미국에서 더 유명한 이유다. 김장환 목사가 갖고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는 굉장하다. 특히 보수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한 미국 주류 사회의 종교계ㆍ재계ㆍ정관계ㆍ교육계 등에 구축한 그의 인맥은 놀라울 정도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문재인 정부에는 백악관 네트워크가 별로 없었다. 한미 정상회담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다. 당시 김진표 의원이 김 목사를 찾아왔다. 김 목사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아들인 프랭클린 그레이엄에게 도움을 청했다. 보수 기독교층이 주류인 미국 사회에서 프랭클린 그레이엄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실제 트럼트 대통령과도 친분이 두텁다.
김 목사의 전화를 받은 프랭클린 그레이엄은 기존 일정을 모두 제쳤다. 이튿날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서 한국으로 곧장 날아왔다. 김 목사와 함께 청와대로 들어가 한미 정상회담에 필요한 여러 가지 일을 도왔다.
▲2009년 8월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김장환 목사가 숙소에서 예배를 인도했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도 보인다.
▲2000년 1월 김장환 목사가 침례교세계연맹 총회장이 됐을 때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을 만나 스페인어로 된 성경을 선물했다. 호탕한 성격의 카스트로는 당시 김 목사를 무척 좋아하며 환대했다. [극동방송]
탄탄한 대미 외교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던 핵심 비결이 뭔가.
“사람은 한번 만나서 끝나는 게 아니다. 계속 팔로우업이 있어야 한다. 내가 만나는 사람은 10년, 20년, 30년까지도 이어진다. 그 인맥들이 살아 있는 거다. 가령 내 친구 중에 미국 육ㆍ해ㆍ공군 군목으로 간 사람이 많다. 그들은 별 두 개까지 달 수 있다. 그들이 내게 미 공군사관학교 졸업식 설교를 부탁한다. 거기에 가서 보면 내년도 졸업 설교 강사는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다. 그런 식으로 인맥이 계속 확장된다. 이런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싶었다.”
美대통령 생일카드에 100달러 지폐 두 장 넣어
김장환 목사가 카터 전 미국 대통령에게 생일 카드를 보낸 적이 있다. 안에다 100달러짜리 지폐 두 장을 넣었다. “생일날 저녁에 부인과 함께 외식을 하세요”라는 인사말과 함께였다. 김 목사는 “카터 대통령이 외식비 200달러가 없겠나. 그렇지만 이런 생일카드를 받아보긴 처음이었을 거다”고 말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미국 정부의 특사로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김 목사에게 전화해 기도를 부탁한다.
▲김장환 목사가 9일 서울 마포구 극동방송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김 목사는 20년 넘게 극동방송 어린이합창단을 데리고 미국에 가서 공연을 했다. 갈 때마다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정관계 인사들을 초청했다. 유명환 전 외교부장관이 “외교관 100명이 가도 이런 외교는 못 한다”고 평했을 정도다.
지난달에는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미군과 카투사를 위한 워싱턴 추모의벽 건립 기금으로 4억4000만원을 모금해 보내기도 했다. 2015년 시리아 난민촌에 400채의 컨테이너 주택을 공급했고, 최근에는 아프가니스탄 특별 입국자에게 생활 필수 구호품 9.5톤(약 1억5000만원 상당)을 긴급 전달하기도 했다.
※9월 말부터 ‘백성호의 현문우답’ ‘백성호의 예수뎐’ ‘백성호의 한줄명상’ 연재물은 중앙일보 사이트에서 로그인(https://www.joongang.co.kr/etc/promo001)을 해야 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 회원가입을 해두시면 편리합니다.
백성호종교전문기자vangogh@joongang.co.kr
09.24 내년 2월 베이징 ‘남북 이벤트’ 위해 미국서 北中 편든 非상식
정의용 외교장관이 23일 미국외교협회(CFR) 초청 대담에서 ‘중국이 최근 공세적 모습을 보인다’는 CNN 앵커 지적에 “중국이 경제적으로 더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당연하다. 20년 전 중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중국이 주장하려는 것을 듣도록 노력해야 한다”고도 했다. 정 장관은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선택할 것인가’란 질문에 “한국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미국 정부에 이 말은 ‘미국을 선택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릴 것이다.
지난해 주미 한국 대사가 ‘이제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할 수 있는 국가’라고 했을 때, 미 국무부는 “한국은 수십 년 전 미국을 선택했다”며 불쾌감을 표시했었다. 외교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공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물 밑으로는 그런 선택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것이 국제 정치의 현실이다. 한국이 70년간 북한 위협을 막아내며 세계적 경제 기적을 이룬 근본 바탕은 한미 동맹이다. 이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약 한미 동맹이 흔들리면 세계에서 한국을 가장 업신여기고 들 나라가 중국이다. 정 장관 본인이 대통령 특사로 중국에 가 홍콩 행정장관이 앉는 하석에 앉았던 경험을 했다.
정 장관은 앵커가 한국을 미·일·호주 등과 ‘반중(反中) 블록’으로 구분하자 “냉전 시대 사고방식”이라고 했다. ‘냉전 사고’는 중국이 미국의 동맹 정책을 비난할 때 쓰는 말이다. 그는 ‘북이 핵을 포기하리라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어려운 질문”이라고 답변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고 보증했던 사람이 정 장관이다. 그러면서 북의 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중단에 대한 ‘보상’ 필요성을 거론하며 “대북 제재 완화를 검토할 때”라고 했다. 국제원자력기구가 ‘전력 질주’라고 우려할 만큼 북한이 핵시설을 다시 돌리고 있는데도 한국 외교장관이 북에 보상을 해주자고 한다.
정 장관이 이러는 속내는 뻔히 보인다. 청와대는 이날 2월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했다. 정 장관이 노골적으로 중국과 북한 편을 든 것도 베이징 남북 이벤트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에서 중국이 포함된 ‘4자 종전 선언’을 제안한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북한은 도쿄올림픽 불참으로 IOC(국제올림픽위원회)로부터 올림픽 참가 자격을 제한당했다. 문 정권의 남북 쇼에 비상등이 켜졌다. 지금부터 IOC를 대상으로 한 치열한 로비가 벌어질 것이다. 2월 남북 정상회담으로 북한이 핵을 버릴 것이라고는 문 정권도 믿지 않을 것이다. 3월 대선에 미칠 영향만 계산하고 있다. 미국에 가서 중국 편을 든 비상식적인 행태는 달리 해석할 수 없다.
조선일보 사설
09.24 文 “종전선언” 연설에... “허상에 불과” 면박 준 北 외무성 부상
북한은 24일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유엔 총회를 계기로 제기한 종전선언에 대해 “허상, 종잇장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리태성 북한 외무성 부상은 이날 발표한 담화에서 “종전선언이 현시점에서 조선반도 정세 안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미국의 적대시정책을 은페하기 위한 연막으로 잘못 이용될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각)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되었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한다”고 했다. 다음날 하와이에서 6·25전쟁 전사자 유해 인수식을 주관한 자리에서도 “종전선언’은 한반도를 넘어 평화를 염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용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귀국하는 길에 기내에서 이뤄진 수행기자단 간담회에서도 종전선언을 강조했다. 한국 대통령이 세차례에 걸쳐 강조한 종전선언을 차관보급의 북한 관리가 걷어찬 것이다.
리태성은 담화에서 종전선언에 대해 “상징적인 의미는 있다”며 “평화보장체계 수립에로 나가는 데서 종전을 선언하는것은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했다. 하지만 “눈앞의 현실은 종전선언 채택이 시기상조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며 최근 미국의 대(對)호주 핵잠수함 기술 이전 결정, 한·일에 대한 미국의 무기 판매 등을 거론했다.
이어 “종잇장에 불과한 종전선언이 우리에 대한 적대시 철회로 이어진다는 그 어떤 담보도 없다”며 “미국의 적대시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종전을 열백번 선언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 또 “미국·남조선 동맹이 계속 강화되는 속에서 종전선언은 지역의 전략적균형을 파괴하고 북과 남을 끝이 없는 군비경쟁에 몰아넣는 참혹한 결과만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며 “종전을 선언한다고 해도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이 남아있는 한 종전선언은 허상에 불과하다”고 했다.
리태성은 결론적으로 “아직은 종전을 선언할 때가 아니다”며 “종전선언이 현시점에서 조선반도 정세안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미국의 적대시정책을 은페하기 위한 연막으로 잘못 이용될 수 있다는것을 바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조서일보 이용수 기자
09.24 강대국은 작은 나라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바이든 정부, 동맹국도 무시하며 대중국 견제망 짜는 데 총력전
우리도 변화한 미·중 관계 고려해 새로운 차원의 전략 개발해야
초강대국들에게 국제정치란 거대한 장기판에서 말을 움직이는 것과 같다. 큰 그림 속에 작은 나라 속사정은 없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사지나 다름없는 탈레반 치하에 남겨두고 황망히 철군해버렸을 때도 또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미국의 까칠한, 그러나 중요한 동맹국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보리스 존슨(화면 오른쪽) 영국 총리, 스콧 모리슨(화면 왼쪽) 호주 총리와 화상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3국의 새로운 안보 파트너십인 '오커스'(AUKUS) 발족을 발표하고 있다. 오커스는 이들 세 국가명을 딴 이름이다. /AFP 연합뉴스
최근 바이든 정부가 영국, 호주와 함께 3국 안보협력체인 ‘오커스(AUKUS)’를 창설한 후 미·영이 힘을 합해 호주의 핵 잠수함 선단 창단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누구도 중국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오커스가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새로운 안보 네트워크라는 걸 모를 수가 없다.
미국은 1958년 영국에 핵잠수함 건조에 필요한 원자력 추진 기술을 이전한 이후 한번도 이 기술을 다른 나라에 이전한 일이 없었다. 한국도 그토록 원했지만 전례가 없다며 거절당했다. 그런데 바이든이 호주에 기술이전을 서두르겠다고 하자 국제사회가 다 놀랐다. 프랑스는 완전히 격분했다. 오커스 때문에 호주와 맺었던 77조짜리 잠수함 건조 계약을 날렸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사전 언질조차 없었다며 배신감에 부들부들 떨었다. 반면 호주는 쿼드를 비롯한 거의 모든 대중국 견제 전선에 참여해 미국의 지원을 한몸에 받고 있다. 지정학과 의지가 더해진 결과이다.
돌이켜보면 트럼프 전 대통령 시대의 외교는 단순했다. 거의 대부분의 나라가 미국과의 관계를 고민하기보다는 트럼프 개인의 예측불가능성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러는 사이 미국도 중국의 급부상처럼 동맹국들과 함께 대비해야 할 과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그 때문에 바이든 시대 외교는 훨씬 더 복잡하고 급박해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며칠 전 유엔 총회 연설에서 ‘끈질긴(relentless)’ 외교를 하겠다고 했다. 중국이란 단어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모든 언어는 중국을 향하고 있었다. 바이든은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고 우리의 가치와 힘으로 이끌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끈질긴 외교’를 위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안보망을 겹겹으로 짜나가고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일본·인도·호주가 함께 하는 4국 연합체인 ‘쿼드(Quad)’를 출범시킨데 이어 오커스를 띄웠다.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5개국 정보동맹인 ‘파이브 아이스(Five Eyes)’는 한국 등을 추가해 확대하려 하고 있다.
하원 군사위는 국방수권법 개정안에서 주한미군을 감축하지 못하게 했던 기존 조항을 삭제했다. 트럼프의 주한미군 감축을 막기 위해 만들었던 안전장치를 풀어버린 것이다. 바이든이 아시아에서 더 자유롭게 주한미군을 운용할 수 있게 문을 열어준 셈이다.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당연히 중국의 대응을 부를 것이다. 원하든 그렇지 않든 한국은 이미 이 소용돌이 안에 있고, 이런 변화된 상황은 한국에 새로운 차원의 전략과 전술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임기 마지막 유엔 총회 연설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은 다시 종전선언 얘기를 반복했다. 예전과 다른 설득력 있는 내용이 추가된 것도 아니었다. 문 대통령이 “북한 핵개발 계획이 전력질주하고 있다”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경고를 몰랐을 리 없다. 북한이 얼마나 집요하게 핵과 미사일 능력을 증강해왔는지, 미국과 중국이 얼마나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지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채 기존 종전선언 논리를 반복하는 대통령의 현실 인식은 실망스러웠다. 문 대통령의 연설을 들은 국제사회는 종전선언에 대한 의지를 읽기보다는 변화하는 세상에 발맞추지 못하는 한계를 감지했을 것이다.
조선일보 강인선 부국장
09-24 김정은 대변하던 정의용, 中 ‘늑대외교’까지 두둔하나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22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외교협회(CFR) 초청 대담에 참석해 공세적으로 변해 가는 중국 외교를 두고 “중국으로선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경제적으로 강해지고 있고 20년 전의 중국이 아니다. 그들 얘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정 장관은 진행자가 미국 한국 일본 호주를 반(反)중국 블록으로 구분하자 “그게 중국인들이 말하는 냉전시대 사고”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정 장관의 발언은 중국의 외교 행태를 두둔하면서 중국식 반박 논리까지 그대로 옮긴 것으로 한국 외교수장으로서 적절한 언사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중국의 거칠고 오만한 외교는 ‘늑대전사(전랑·戰狼) 외교’라 불릴 만큼 악명이 높다. 중국 이익에 어긋나면 거친 말폭탄이나 보복 조치도 서슴지 않는다. 미국의 견제 노선에도 입버릇처럼 ‘냉전적 사고’라고 맞받아친다. 시진핑 주석도 유엔총회 연설에서 “냉전식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중국을 감싸는 것은 결국 중국과 전략 경쟁을 벌이는 미국을 비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북핵 문제의 해결을 위해선 중국의 협력이 중요하고, 시 주석의 방한이 이뤄지면 사드 사태 이후 한중관계의 전면 회복이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다. 미중 사이에서 현명한 외교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동맹국에 가서 그 라이벌을 대변하는 것은 동맹의 불신을 살 뿐이다.
정 장관은 2018년 청와대 안보실장 시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미국에 전달해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메신저 역할을 했다. 하지만 북-미 회담은 무참한 실패로 끝났고, 정 장관이 전달한 김정은의 진정성은 의심받고 있다. 정 장관은 이제 중국까지 참여하는 또 한 번의 북핵 이벤트를 꿈꾸는 듯하다. 하지만 어설픈 줄타기 외교로는 한국이 미중 갈등의 희생물이 될 가능성만 키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동아일보 사설
09월 24일 北核 놔둔 채 평화협상 하자는 文, 대한민국 대통령 맞나
북한 핵 협상의 목표는 실질적인 북핵(北核) 폐기를 이끌어 대한민국 안보와 한반도 평화를 지키는 것이다. 역대 정부는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는 데 주력했고, 유엔과 공조해 압박과 제재로 핵 포기를 유도해왔다. 달래기식 협상에 의해 북한이 스스로 핵무기를 없앨 가능성은 없다는 사실이 수십 년 협상과 북한의 기본 전략을 통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미국 방문을 마치고 23일 귀국한 문재인 대통령의 기내 발언은 매우 심각하다. 북한 핵무기를 놔둔 채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취지여서, 북한 주장에 더 가까울 정도다.
문 대통령은 “지금은 북한 핵이 상당히 고도화되고 진전되며 평화협상과 별개로 북한의 비핵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북핵 고도화를 인정하고, 현실적으로 북핵 폐기가 어려우니 사실상 핵무기를 용인하면서 종전선언→평화협정 트랙을 가동하자는 입장을 대통령이 직접 공표한 것이다. 명백한 유엔 결의 위반이기도 한 최근의 탄도미사일 도발에 대해 사실상 면죄부를 주었다. 문 대통령은 “미사일을 발사하기는 했지만, 핵실험이라든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의 모라토리엄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대화를 위한 ‘저강도 긴장 고조’라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의 이런 낙관과 정반대로, 북한의 핵 활동에 대한 수많은 우려스러운 정황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국토 수호를 책임진 대통령이라면, 북한의 이런 행동을 규탄하고 강력한 대응책부터 밝히고 추진하는 게 당연하다. 북한의 핵 고도화를 ‘소개’하기 전에 북한 행위를 규탄하고, 그에 맞설 강력한 억지력과 상응하는 응징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평화협상이든 종전선언이든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북한 입장을 변호하는 듯한 주장을 늘어놓는다. 한편, 문 대통령 방미를 수행했던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22일 미국외교협회(CFR) 행사에서 “20년 전 중국이 아니다. 중국 주장을 듣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등 중국 입장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대통령은 북한 대변인, 외교장관은 중국 대변인 노릇을 하는 것 같다.
문화일보 사설
09월 24일 北도 “허상” 조롱한 종전선언의 함정
고성윤 한국군사과학포럼 대표
지난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제안한 ‘종전선언’에 대해 북한 리태성 외무성 부상은 24일 담화를 통해 “눈앞의 현실은 종전선언 채택이 시기상조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면서 “허상” “종잇장” 등의 표현까지 동원해 비웃고 조롱했다. 물론 리 부상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 철회를 선행조건으로 제시함으로써, 종전선언을 언젠가 추진하더라도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동맹 폐기 등의 수단으로 활용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처럼 접근 방향은 전혀 다른 문 대통령 제안이지만 현실적으로 공허하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오죽하면 북한조차 이런 반응을 보일까. 문 대통령 의도는 미·북 관계를 복원해 그 분위기에 편승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는 북한의 영변 원자로 재가동에 이은 순항미사일과 탄도미사일 도발에 한마디 언급조차 않은 뜬금없는 제안이었다. 또한, 지난 20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한이 핵 프로그램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우려를 표시한 상황이라 생뚱맞기까지 했다.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종전선언이란 중차대한 사안을 지난 4년 동안 ‘정치적 선언’ 정도로 다루려는 인식은 작은 문제가 아니다. 2018년 9월 평양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은 유엔사나 주한미군의 지위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으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같은 의견”이라고 했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기초적 로드맵 요구조차 없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외국 유명 방송 매체와의 대담, 유엔총회 기조연설, 해외 순방 시 정상회담 등에서 밝혀 김정은 대변인이란 조롱을 받기도 했다.
북한은 문 대통령 제안을 비웃었지만 내심 다른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는 종전선언, 즉 정전(停戰)체제 해체를 통한 유엔사 철폐 절차를 일관되게 추구해 왔다. 북한의 저의는 정전협정의 실질적 당사자는 미국이라는 입장에서 접근할 것이며, 한국을 배제한 정전체제를 허물어 한미동맹의 와해 및 주한미군의 철수를 궁극적 목표로 삼을 것이다.
지금 북한은, 1973년 1월 종전과 관련 베트남 평화 회복에 관한 미국과 북베트남 간의 파리협정, 그리고 최근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 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당시 파리협정의 핵심 내용은 외국군 철수는 협정을 통해 즉각 해결하고, 정치적 문제는 남베트남과 인민해방전선 등 당사자 간에 해결한다는 합의에 있었다. 그런데 지켜진 사항은 외국군의 완전 철수이고 결과는 남베트남(구월남) 패망이었다. 지난해 2월 29일 서명한 미국과 탈레반의 평화협정 또한 아프간 정부군의 몰락과 탈레반의 정권 재장악을 ‘약속’한 것이나 진배없어 구월남 패망의 경우와 유사하다.
북한은 유엔사가 창설될 때부터 유엔과 무관한 내정간섭 도구이며 유엔군 모자를 쓴 미군으로 규정하며 해체를 요구해 왔다. 따라서 종전선언이 되면 북한은 유엔사와 미군 없는 한반도를 만들어 ‘내전’ 운운하며 대놓고 한반도 적화 작전에 나설 것이다. 이렇듯 상황이 엄중한데 특정 유력 대선 후보 캠프에서 병 복무 12개월 카드를 만지작거린다니 사활적 안보 기반이 무너질까 걱정이다. 대통령에 이어 유력 대선 후보까지 안보 기반을 흔들고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
문화일보
09.25 미·중 대결 격랑 속 한국의 나홀로 외교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부와 국민이 국내 정치에 몰입한 사이에 동아시아에는 전략적 지각 변동의 격랑이 몰아치고 있다. 1991년 냉전 체제 종식 이후 30년간 지속된 미국 일강 체제가 저물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 ‘냉전 2.0′이 시작되고 있다. 지난 3월 중국을 포위하는 쿼드(QUAD) 정상회의 체제를 출범시킨 미국은 6월 G7 정상회담과 NATO 정상회담을 통해 범세계적 대중국 연합전선을 결성했다. 냉전시대의 COCOM(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을 연상시키는 대중국 첨단 과학 기술 통제 체제를 통해 중국 경제를 자유민주주의 세계로부터 격리하려는 디커플링(decoupling) 작업도 진행 중이다.
미국이 지난달 “대중국 전선에 군사력을 집중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전격 철수한 후, 동아시아의 현상 타파를 노리는 중국의 군사행동을 견제하는 반중 연합전선의 움직임은 가속화되고 있다. 한반도의 15배에 달하는 남중국해 공해 지역의 90%를 영해로 불법 편입하려는 중국의 영토적 야심에 대항하는 ‘항행의 자유 작전’에는 한국을 제외한 미국의 아태 지역 동맹국 전체가 동참하고 있고, 영국과 프랑스의 항모전단까지 가세하고 있다. 이처럼 자유민주주의 진영 전체와 중국의 대립으로 비화하고 있는 남중국해의 긴장은 대만해협으로 북상하고 있다. 최근 미국이 대만을 국가로 인정할 조짐을 보이자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는 중국은 대만 무력 점령을 공언하고 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재무장 기회를 노리는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명분으로 참전하리라는 예측이 무성하다.
▲정의용(오른쪽)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지난 9월 15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처럼 동아시아를 무대로 긴박하게 전개되는 미·중 패권 대결에서 중국은 세 가지 불리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첫째, 가까운 장래에 미·중 무력 충돌이 발생할 경우 중국 군사력은 미국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둘째, 미·중 무력 충돌 발생 시 아시아와 유럽의 미국 동맹국 다수가 참전할 전망이나, 중국의 맹방인 러시아·북한·이란·파키스탄 등 어느 나라도 중국과 함께 싸울 나라는 없다는 점이다. 셋째, 미국의 경제 제재와 디커플링 정책에 따른 경제 침체로 인해 중국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 미국을 경제적·군사적으로 추월할 가능성이 크게 감소했다는 점이다.
이런 불리한 상황에 더하여, 지난주 발표된 미·영·호주의 오커스(AUKUS) 안보협의체 결성은 중국에 큰 충격이 되었다. 지난해까지 호주는 한국을 능가하는 대중국 무역 의존도로 인해 다분히 친중적인 정책을 취해 왔다. 그러나 중국이 홍콩 사태와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 등에 관한 호주의 비우호적 태도를 문제 삼아 ‘길들이기’ 차원에서 고강도 제재를 가하자, 호주 정부는 “주권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라면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 의연한 정면 대응의 길을 택했다. 이러한 호주의 자세는 사드 제재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저자세 대응과는 상반되는 선택이었다. 그 여파로 호주는 상당한 경제적 손실을 보았으나, 파이브 아이스(Five Eyes)를 능가하는 미국의 최상위 동맹체 오커스의 일원으로 대규모 핵잠수함 전단을 보유하고 중국의 서태평양 진출을 저지하는 새로운 군사 강국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처럼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세계의 선진 문명국들이 대거 중국의 반대편에 운집하는 시기에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은 국내 정치 어젠다에 사로잡혀 세상사와 동떨어진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다. 북핵에도, 미·중 대결에도, 남중국해에도 관심 없는 한국 정부는 미국의 적국인 중국의 문전을 드나들며 국내 정치용 남북한 평화 쇼 연출에 몰두하고 있다. 사드 배치, 쿼드 가입, 남중국해, 홍콩, 화웨이 문제 등 수많은 미·중 쟁점 현안에 관해서도 변함없이 중국과 뜻을 함께하고 있다.
동맹 관계란 전쟁 발발 시 함께 싸우겠다는 국가 간 서약이다. 거기에 중립주의나 균형 외교가 설 땅은 없다. 주권국가는 언제든 원하면 동맹을 파기할 권리를 갖고 있다. 그러나 동맹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동맹국의 적국과 뒷거래하는 것은 동맹의 배신이다. 주권과 국격을 볼모로 하여 전개되는 한국 정부의 맹목적 친중 사대 외교는 국익에 유해하고 반역사적이며 국민 정서에도 역행한다. 퓨리서치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대중국 비호감도는 77%로 세계 4위에 달한다. 대다수 국민의 생각이 그처럼 깨어 있을진대, 이젠 우리 정부도 중국에 대한 미몽과 집착에서 깨어나 현실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할 때다.
조선일보 이용준 전 외교부 북핵대사
09.27 미국 가서 중국 역성든 외교장관
“중국이 공세적(assertive)이라는 표현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다. (…) 20년 전 중국이 아니다. 우리는 중국이 주장하고 싶어하는 것을 듣도록 노력해야 한다.”
처음엔 대표적 친중 국가인 파키스탄의 외교관리가 한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한국 외교부 장관의 발언이다! 그것도 지금 중국에 잔뜩 날을 세우고 있는 미국의 한복판에 가서 한 얘기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왼쪽)이 22일(현지시간) 외교ㆍ안보 분야 싱크탱크인 미국외교협회(CFR) 초청 대담회에서 파리드 자카리아 CNN 앵커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정진우 기자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22일(현지시각) 뉴욕에서 열린 미국외교협회 초청 대담회에서 “중국이 최근 공세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사회자의 지적에 “그건 당연하다. 중국은 경제적으로 더욱 강해지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또 사회자가 미국·한국·일본·호주를 ‘반중 블록’으로 분류하자 정 장관은 “그것은 중국 사람들이 말하듯이 냉전시대 사고”라며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고도 했다.
한국 외교부 장관이 쿼드(Quad,미국·일본·인도·호주)에 이어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까지 띄우며 대중 압박에 총력을 쏟는 미국의 외교정책을 정면에서 걷어찬 셈이다. “중국 대변인이냐”는 비난이 쏟아지자 정 장관은 “어떤 국가 블록이 특정 국가를 겨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에 있다고 그런 얘기 못 하냐”라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강압적(coercive)이라고 여러 나라가 우려를 표시하는데 중국이 우리에겐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이 한국에 강압적이지 않다고? 황당한 얘기다. 정 장관은 2016년 한국이 사드 배치를 결정하자 중국이 어떻게 나왔는지 애써 망각한 듯하다. 당시 중국 정부는 한한령(限韓令)을 내려 K팝·드라마·예능 등 한국의 문화상품 수입을 전면 중단시켰고,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 불매운동 등으로 전방위 압박을 가했다. 경북 성주에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그룹은 중국에서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받기도 했다.
▲중국은 한국의 사드배치 결정에 대한 보복으로 중국 관광객들의 방한을 금지시켰다. 2017년 추석 연휴때 썰렁한 제주도의 관광지 모습. 최충일 기자
게다가 정 장관의 인식은 미국과 중국을 동등한 가치로 취급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미국은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된 민주국가이고, 중국은 공산당 1당 독재의 전체주의 국가다. 홍콩 민주화 탄압에서 드러나듯 민주공화국인 한국의 정신은 공산당의 이념과 어울리기 힘들다. 게다가 지금 중국은 주변국을, 나아가 전 세계를 ‘중화적 질서’에 편입하겠다는 팽창주의 노선을 걷고 있다. 그러다 보니 중국의 위협을 느낀 나라들이 미국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생겨난 게 쿼드와 오커스다.
정 장관은 인도·일본·호주와 달리 한국은 ‘중화적 질서’에서 무사할 것으로 믿는 모양이지만 어림도 없다. 가령 문재인 정부는 남중국해 문제를 강 건너 불구경하지만, 실제로 중국이 남중국해를 지배하는 일이 벌어지면 한국의 원유 수송 루트를 중국이 장악하는 셈이어서 에너지 안보에 치명적 위기가 닥친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12일(현지시각)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함께 쿼드 첫 정상회의를 열었다. [AFP=연합뉴스]
호주 학자 클라이브 해밀턴 교수(찰스 스터트대)는 2018년 저서 『중국의 조용한 침공(Silent Invasion)』에서 중국이 호주 지도층을 은밀히 매수하고 호주를 구워삶으려 한 실태를 폭로해 국제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번에 중국 관영 환구시보가 정 장관 발언을 칭찬했다는 뉴스를 접하니 새삼 해밀턴 교수의 경고가 떠오른다.
“이미 한국의 재계에는 베이징의 만족을 유일한 목표로 삼고 활동하는 강력한 이익집단들이 자리 잡고 있다. 베이징은 또 한국의 학계와 정계, 문화계, 언론계 지도층 전반에 걸쳐 베이징 옹호자와 유화론자들을 확보했다. (…) 호주 정부는 베이징의 괴롭힘에 맞섰지만 한국의 정치지도층은 지레 겁을 먹고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나약한 태도를 유지한다. 만약 한국 정부가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국의 독립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위험한 도박을 하는 셈이다.”(『중국의 조용한 침공』 한국어판 서문)
중앙일보 김정하 정치디렉터
09월 27일 쿼드 정상회의와 文의 ‘역행’ 외교
신보영 국제부장
오커스 이은 쿼드 정상회의서
美 ‘당근’과 ‘채찍’ 기조 명확
유엔총회 계기 국제외교전 속
‘왕따’ 文 정부의 안이한 인식
추세 거스르는 ‘나홀로’ 외교
대내외적 韓 사회 ‘퇴행’ 우려
지난 24일 열린 쿼드(미국·호주·일본·인도 4자 협의체) 정상회의는 유엔총회를 계기로 한 국제외교전의 백미였다. 유엔총회 기간 전후로 미국에서는 지난 15일 미국과 영국·호주의 3자 ‘핵잠 동맹’인 오커스(AUKUS) 발족과 지난 22일 코로나19 백신 정상회의에 이어 쿼드 정상회의까지 숨 가쁜 외교 일정이 펼쳐졌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2년 만에 각국 정상들이 직접 참여한 유엔총회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소(小)다자주의’(micro-lateralism)를 본격화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이번 쿼드 정상회의는 지난 3월 첫 화상 정상회의 이후 5개월 만에 열렸다. 형식도 형식이지만 내용은 더욱 주목할 부분이 많다. 공동성명에는 지난 3월 합의한 △코로나19 대응 △기후변화 △사이버·첨단기술 △인도적 지원 △해양관리 등에서 더 나아간 내용이 많다. 5G와 반도체 공급망 관련 협력 강화 방안이 담겼고, 위성 데이터를 활용한 우주 분야 협력까지 포함됐다. 지난 3월 연 1회 4개국 외교장관회의 개최 정례화에 이어 이번에는 사이버 담당 고위 협의체와 과학·기술 분야 인적 교류를 위한 ‘쿼드 펠로십’ 신설도 담겼다. 육지·해양을 넘어 사이버·우주 공간까지 다루는 아·태 지역 주요 협의체로 거듭난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포스트 아프가니스탄’ 전략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쿼드가 겨냥한 대상이 중국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성명은 “첨단기술은 공유하는 가치관이나 인권 존중에 근거해 개발돼야 한다” “첨단기술을 권위주의적 감시와 억압 등 악의적 활동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며 중국을 겨냥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21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밝힌 ‘끈질긴(relentless) 외교’는 중국 견제를 위한 동맹·파트너 국가들의 ‘줄 세우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사용할 것이라는 점도 명확해지고 있다. 중국과 각을 세우면서 오커스까지 참여한 호주에는 1958년 이후 처음으로 핵 추진 잠수함 보유 지원이라는 선물을 줬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유엔총회 기간에 오커스 멤버인 영국 정상과 1차례, 오커스와 쿼드에 모두 동참한 호주 정상과는 2차례, 쿼드 회원인 일본·인도 정상과 양자 회담도 했다. 오커스 출범 과정에서 소외됐던 프랑스를 달래기 위해 다음 달 정상회담 개최 카드를 꺼냈다.
반면 이탈하는 국가에 대한 압박 수위는 갈수록 올라가고 있다. 체계적 압박에 도널드 트럼프 전임 행정부에 버금가는 노골적 협박까지 나온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지난 23일 백악관 반도체 공급망 회의에서 삼성전자 등에 45일 내로 재고와 주문, 판매 등과 관련한 자발적 정보 제출에 응하지 않으면 “모든 옵션과 도구를 검토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미 의회도 한국의 ‘쿼드’와 ‘파이브 아이즈’(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정보공유 동맹체) 참여 필요성을 내놓으면서 바이든 행정부의 공식 요청은 이제 시간문제가 됐다.
이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2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의 종전선언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는 한가한 인식을 보이고 있다. 외교를 총괄하는 정의용 외교부 장관 역시 별다르지 않은데, 중국의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가 공세적이지 않다면서 “한국에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동떨어진 상황 인식과 ‘나 홀로’ 주장이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라인 전반에 퍼져 있는 셈이다. 이게 바로 문 대통령이 바이든 행정부가 펼친 국제외교전에 제대로 초대받지 못한 채 쓸쓸히 귀국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번 외교전은 부실한 부동산 정책과 무리한 탈원전 정책 등으로 이미 국내에서 증명된 문재인 정부의 ‘무능’과 ‘독선’이 대외정책에까지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오는 10월 말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문 대통령은 북한의 ‘말장난’에 놀아나 종전선언 이야기를 다시 꺼내 들 것인가.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릴 수 있는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대북제재 완화를 거듭 주장할 것인가. 세계의 추세를 거스르는 ‘역행’이 결국 한국 사회의 ‘퇴행’이라는 최악 결과를 낳을까 두렵다.
문화일보
09.28 종전선언에 목매선 안 되는 까닭
2007년 9월 시드니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공동체) 정상회의 때 열린 노무현-부시 간 한·미 정상회담.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투박한 장면이 펼쳐졌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발표가 끝나자 노무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 체제와 종전선언을 빠뜨린 것 같으니 명확히 이야기해 달라"고 두 번이나 다그쳤던 것이다. 이에 부시는 "더 명확하게 할 수 없다"며 불쾌감을 드러내며 자리를 떴다. 덕담과 세련된 표현이 오가는 외교무대에선 이례적인 일이었다.
북·미 모두 상대방 양보부터 원해
북한 위협 커진 상황에선 부적절
미래 위해 때아닌 논의 중단해야
종전선언은 한 달 후의 노무현-김정일 간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다뤄졌다. 양측은 10·4 공동선언에서 "관련 3자·4자 정상들이 만나 종전을 선언하도록 협력한다"고 명시했다. 당시 노 대통령 곁에서 이런 과정을 지켜본 비서실장이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다. 그런 그가 지난해에 이어 올 유엔 총회에서도 "종전선언을 이뤄내면 비핵화 진전과 완전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무현·문재인 정권 모두 종전선언에 목을 맨 셈이다.
종전선언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행위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이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간 발언으로 볼 때 그는 종전선언이 평화협상을 끌어낼 요술방망이로 믿는 듯하다. 종전선언으로 안보를 보장해 줌으로써 북한을 평화협상에 불러내자는 전략이다.
하지만 여기엔 몇 가지 논리적 비약이 존재한다. 먼저 현 상황에선 종전선언이 이뤄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제재 철회부터, 미국은 의미 있는 비핵화부터 원하는 탓이다. 문 대통령의 유엔 발언 후 반응을 보라. 지난 24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종전선언은 좋은 발상"이라면서도 "편견적 시각과 지독한 적대시 정책, 불공평한 이중 기준부터 철회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25일 또다시 성명을 내고 "조선반도에서 군사력의 균형을 파괴하려 들지 말라"고 요구했다. 종전선언을 하려면 먼저 대북 제재를 풀고 비핵화를 포기하라고 주문한 셈이다. 미 국방부 대변인 반응은 정반대였다. "(미국은) 종전선언 논의에 열려 있다"면서도 "다만 미국의 목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고 강조했다. 종전선언이 아닌 비핵화에 무게가 실려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런 평행선이 계속되는 한 종전선언은 성사될 리 없다.
둘째, 오만 양보를 해주고 종전선언을 이뤘다고 치자. 그렇다고 북한이 진정성 있게 대화에 응하고 가시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한다는 보장이 있는가. 개성공단 재가동 같은 선물만 챙기고 '먹튀'할 위험도 적잖다.
셋째, 지금이 종전선언 운운할 때인지 의심스럽다. 북한은 최근 사거리 1500㎞에 달하는 준중거리 순항미사일과 열차 발사 탄도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 전문가들은 이제 북한이 탄두 소형화 기술을 발전시켜 전술핵까지 개발했다고 본다. 이번에 시험한 중단거리 미사일에 전술핵을 얹으면 북한은 더 다양한 핵 공격을 구사할 능력이 생긴다. 이런 상황에서 종전선언 운운하는 게 적절한가.
끝으로 우리로서는 종전선언을 해도 득 될 게 없다. 잃을 것만 있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 한반도에선 대규모 충돌은 없었다. 사실상 종전은 이미 이뤄진 셈이다. 하지만 우리 안보의 큰 기둥인 유엔사령부의 존재 명분은 힘을 잃게 된다. 50년 안보리 결의로 출범한 유엔사는 북한의 침략을 격퇴하고 한반도 평화를 회복하는 게 목표였다. 종전선언이 이뤄질 경우 "한반도 평화가 이뤄졌다는데 유엔사가 왜 필요하냐"고 물으면 뭐라고 반박할 것인가. 유엔사가 해체되면 한국 방어를 위해 마련된 일본 내 유엔사 후방기지를 미군이 마음대로 쓸 수 없게 된다.
지금처럼 북한의 위협이 커지는 상황에서 대북 견제 조치만 없애고 이뤄지는 종전선언은 해선 안 된다. 어떤 메시지라도 부적절한 시기에 계속 되풀이하면 호소력이 떨어진다. 훗날 제대로 쓰일 수 있게, 때아닌 종전선언 얘기는 당장 멈춰야 한다.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09.29 “중국에 양보할 수 없는 선은 지켜야 한다”
한중 상호 부정 인식, 원인과 대안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청와대에서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접견하며 주먹인사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한국과 중국이 내년 수교 30주년을 맞는다.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공자(孔子)의 ‘삼십이립(三十而立)’을 언급했다. 수교 30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 30년 계획을 잘 세우자는 취지였다. 한데 현실은 이런 바람과는 확연한 온도 차이가 있다.
한중이 수교 이래 지금처럼 마음이 멀어진 때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중 간 ‘역사전쟁’ ‘문화충돌’ 등과 같은 말이 나오며 서로에 대한 인식은 계속 나빠지는 추세다. 한중비전포럼은 지난 27일 11차 모임을 갖고 ‘한중 상호 부정 인식의 현황과 원인, 해소 방안’을 주제로 관계 발전 방안을 살폈다. 포럼은 현장 및 화상을 이용한 발제와 토론으로 진행됐다.
더욱 멀어진 한중 간 마음의 거리
젊은 세대일수록 부정적 인식 커
내년 수교 30년, 실리적 접근 필요
정부 개입보다 지식인 대화부터
/이동률
▶이동률 동덕여대 중어중국학과 교수(정치외교 분야 발제)=현재 한중 간 상호 인식은 수교 이래 가장 나쁘다. 배경엔 세 가지 구조적 문제가 있다. 우선 국력 변화다. 중국은 자신의 국력이 G2 수준으로 커졌지만 한국이 여전히 중국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본다. 두 번째는 북핵과 대만 문제 등 주요 전략적 이슈에서 상호 입장의 불일치다. 끝으로 체제와 가치의 이질성이다. 촛불혁명으로 더욱 민주화한 한국은 시진핑(習近平)의 중국 권위주의 체제에 강한 반발감을 느낀다. 이런 구조적 흐름 속에 사드(THAAD) 갈등과 김치 분쟁 등 개별 악재가 터지고 있다.
어떻게 해결할까. 우선 서로 잘 안다고 생각하는 이웃 증후군에서 벗어나 상호 공부부터 해야 한다. 그다음은 체제와 가치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출발한 수교 당시의 인식을 상기하는 것이다. 경제 협력 및 인적 교류란 두 가지 축에서 실리적으로 중국에 접근해야 한다. 또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중 갈등은 한국 정부가 단임제의 짧은 시간 안에 큰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생기는 악순환임을 인식해야 한다. 내년에 한국은 대선, 중국은 당 대회 등 지도부 교체 행사가 예정돼 있다.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시기다. 양국 모두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욱연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사회문화 분야 발제)=한중 상호 혐오는 양국의 MZ 세대, 특히 10대로 갈수록 높다. 한중 미래를 생각할 때 심각한 문제다. 왜 젊을수록 반감이 높나. 중국 청년 세대는 정치적 영향을 많이 받는다. 중국이 부당하게 압박을 받고 있기에 내가 지켜야 한다는 애국주의가 문화 보수주의로 나타난다. 반면 우리 젊은 세대는 코로나19, 문화 기원 논쟁 등을 거치며 반중 정서가 확대됐다. 최근 한국을 남조선, 중국을 중공(中共)이라고 호칭에서 서로 낮춰 부르는 게 유행 중이다.
이런 상호 혐오는 근본적 치유가 어려워 관리를 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양국 언론 및 전문가 그룹의 정확한 사실 지적이 필요하다. 네티즌의 오해를 막아야 한다. 여기서 중국 여론 조성에 키를 쥐고 있는 중국 정부와 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또 한중의 청년 교류를 단순 ‘인적 교류’ 위주에서 취업과 창업 등 양국 청년의 공통 관심사를 중심으로 하는 ‘사안 교류’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중국 내 한류 팬만 타깃으로 하는 우리 홍보전략도 재검토해야 한다. 이와 함께 한국의 중국 혐오가 무조건적 혐오로 흐르는 걸 방지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혐오놀이로 전락해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해칠 수 있다.
▶신정승 전 주중 대사(사회)=한중 국민 간 우호는 양국 발전의 건강한 기초다. 한데 수교 30년이 가까운 지금 두 나라 국민 간 마음의 거리가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한중 관계는 이제까지 안보 측면에서의 안정적인 한반도 상황 관리와 경제적인 차원의 협력을 두 축으로 해서 발전해 왔는데 이젠 한계에 봉착한 모양새다. 새로운 한중 관계 30년을 위한 지혜를 모아보자.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한중 간 부정적인 인식은 구조와 국면의 성격을 띠고 있어 해법을 찾기 쉽지 않다. 우리는 그동안 정태적인 안정에 초점을 맞춰 한중 관계를 관리해왔다. 위기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도록 누르는 것이다. 미봉책에 해당한다. 한중 관계를 동태적인 안정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 차원의 개입보다 한중 지식인이 함께 대화하고 현인(賢人) 클럽 등이 안정적으로 작동하면서 대안을 마련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과 같은 집단지성을 통한 관계 관리가 필요하다.
▶김인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중국 내 혐한(嫌韓) 정서의 가장 큰 요인은 문화다. 2004년부터 현재까지 중국 내 혐한 사건은 대략 60여 건인데 이중 문화 관련이 54%를 차지한다. 중국 네티즌은 주로 한국이 중국의 문화 기원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공격한다. 이들은 과거 한국이 중국의 문화를 빼앗아갔다며 ‘문화 도둑’이라 했다. 한데 사드 사태 이후엔 한국이 중국의 ‘문화 속국’이라고 주장한다. 조선의 관복을 명나라가 하사했으니 조공체계를 인정하라는 것이다. 이는 국제질서와 관련된 문제다. 미·중 대립 국면에서 미국을 선택하지 말고 중국을 선택하라는 무언의 압박인 셈이다.
▲한중비전포럼이 27일 서울 HSBC 빌딩에서 ‘한중 상호 부정인식의 원인과 해소 방안’을 주제로 열렸다. 오른쪽 뒤 두 번째부터 시계방향으로 신정승 전 주중대사, 김진호 단국대 교수, 이동률 동덕여대 교수, 이욱연 서강대 교수, 이하경 중앙일보 주필,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 김인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과 이희옥 성대 교수, 임대근 한국외대 교수, 조문영 연세대 교수, 정재호 서울대 교수는 화상으로 참여했다. 우상조 기자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우리 국내에 청년 세대와 기득권을 어느 정도 갖게 된 586세대 간의 갈등이 존재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지금 한중 관계의 복합적인 현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한국 청년 세대는 민주에 대한 가치를 잘 알고 민주를 ‘K브랜드’라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인권 교육을 받고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감수성도 높은 이 세대에게 홍콩 사태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민주화 운동을 통해 성장한 586세대가 자기의 파이를 다 가져갔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은 586세대의 과거 반미운동이나 친중적인 성향에 적대감을 갖고 있다. 청년 내부의 젠더, 세대 갈등 같은 것이 중국을 보는 시각에도 복합적으로 반영돼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임대근 한국외대 융합인재대학 교수=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과 한한령(限韓令)이 한중 관계의 변곡점이 됐다. 지금도 ‘XX 공정’이라 이름 붙이기를 하는 걸 보면 그 충격파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한중이 갈등만 하는 건 아니다. 한중 모두 서로의 콘텐트에 대한 수요가 상존한다.
한중 간 문화 콘텐트 수출입은 증가 추세다. 출판과 방송 등 이데올로기 집약형 콘텐트의 대중 수출은 타격을 받았지만, 그 외 음악과 게임, 영화 콘텐트의 대중 수출은 다 늘었다. 우리 청년 세대도 중국의 웹 소설을 많이 읽는다. 수교 30주년을 계기로 양국의 상호 이익을 극대화하는 지점을 발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진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한국의 청년 세대가 중국을 싫어하는 현상을 꼭 이상하게 볼 필요는 없다. 이런 상황을 자연스러운 사회 현상으로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 청년 세대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잘못됐으니 이를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발상이 오히려 문제가 아닌가 싶다. 기성세대의 의견으로 청년 세대를 바꿔 놓겠다는 생각이 오히려 한중 관계를 망칠 수도 있다. 양국의 젊은 세대가 서로의 문화를 수용하는 세계시민성을 갖추는 것이 자연스러운 해법이다.
▶정재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한국인의 대중 인식은 2013~2015년을 제외하면 2004년 고구려사 분쟁 이후 지속해서 악화했고 사드 사태를 통해 굳어지고 있다. 국력의 차이는 2000년대 들어 확실해졌다. 중요한 건 2010년 이후 한국이 중국에 보인 외교적 행태다. 한국이 중국에 너무 쉬운 나라, 밀면 밀리는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관심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에 대한 인식은 양극화되고 있다. 민주주의 선진국에선 대중 부정 인식이 높다. 반면 중동이나 아프리카, 남미 국가에선 중국에 대한 긍정 인식이 크다. 세계는 사실상 신냉전에 가깝다. 이런 모든 점은 2021년 한국에 매우 중요한 정치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가 하는 외교정책은 민의를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 한중 갈등에 기름을 부은 건 중국에 대한 우리 정부의 굴욕적인 태도가 아닌가 싶다. 젊은 민주화 세대는 물론 기성세대 역시 유쾌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중 갈등은 관리돼야 하고 개선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가 할 일이 있다.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한미 동맹관계, 한중 동반자관계라는 확실한 닻을 내린 상태에서 중국에 대해 우리가 양보할 수 없는 선은 꼭 지켜나가는 것이다. 저자세 대중 외교의 밑바닥엔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는 정부의 선한 의지가 깔려있지만 그럼에도 절대 변하지 않는 원칙을 지켜나가려는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 우리 청년 세대는 민주화 교육을 철저히 받았고 중국과 미국, 일본 등에 대한 콤플렉스가 적다. 이는 우리의 강점이다.
◆한중비전포럼
한중 관계의 미래 좌표와 비전을 찾기 위해 전문가 18명이 결성한 포럼.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이 대표를, 신정승 전 주중대사(동서대 석좌교수)가 위원장을 맡고 있다.◎
중앙일보 정리=사공관숙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