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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2021-09/ 09.01(수) 혀를 차게 하는 “GSGG” - 09.30(목) 법률가의 자존심

상림은내고향 2021. 9. 30. 19:12

만물상 2021-09/ 조선일보

09.01(수) 혀를 차게 하는 “GSGG”

▲판사 출신 김승원 민주당 의원이 '언론 재갈법' 처리 연기와 관련해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GSGG'란 표현을 썼다. /조선일보 DB

 

서울북부지법 판사가 2011년 12월 페이스북에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가카의 빅엿’이란 비속어를 썼다. 다른 대통령 등을 비하하는 예문을 출제한 교사에게 “버티면 이긴다”는 응원글도 올렸다. 10년간 판사 근무 평가에서 최하위권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재임용에서 탈락했지만 ‘가카의 빅엿’ 덕인지 통합진보당 국회의원이 됐다. 배지를 달자 국감에서 ‘판사 막말’을 비판하며 “법관의 언행 개선”을 주문했다.

 

▶그 무렵 창원지법 판사도 소셜미디어에 ‘가카새끼 짬뽕’과 ‘꼼수면’이라는 사진 두 장을 올렸다. 사진엔 이명박 대통령 얼굴과 함께 “가카가 쳐말아 먹은” “역겨운 매국의 맛” 등이 적혀 있었다. 그는 층간 소음 문제로 위층 주민 자동차 타이어를 구멍 내고 잠금 장치를 훼손한 혐의가 드러난 뒤 법복을 벗었다. 당시 인천지법 판사는 한미 FTA 비준과 관련,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과 관료가 나라 살림 팔아먹어”라고 쓰기도 했다. 거친 표현을 지적받으면 “표현의 자유” “사적 공간”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 유명세를 탔고 잘되면 국회의원도 됐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이 정권 출범 직후인 2017년 인천지법 판사는 법원 게시판에 ‘재판이 곧 정치라고 말해도 좋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대선 다음 날 “오늘까지의 6~7개월은 역사에 기록될 자랑스러운 시간”이라고 쓴 판사도 있었다. 지금 국회에서 같은 당 의원들조차 혀를 내두르는 ‘특이한 의원’들 중엔 판사 출신이 적지 않다.

 

▶판사를 지낸 김승원 민주당 의원이 어제 자신이 앞장섰던 언론법 처리가 미뤄지자 박병석 국회의장을 향해 “역사에 남을 겁니다. GSGG”라는 글을 올렸다. ‘GSGG’는 ‘개XX’의 영문 이니셜일 것이다. 문제가 되자 김 의원은 “정부는 국민의 일반 의지에 서브(봉사)해야 한다는 뜻”이라며 GSGG는 “Government serve general G”라고 했다. 마지막 글자 G에 대해선 설명도 못했다. 이 말을 누가 믿을까. 결국 ‘GSGG’를 지웠다. 거짓말로 둘러대기까지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재판도 이렇게 했나. 혀를 차게 된다.

 

▶한국에서 판사는 국회 탄핵이나 금고 이상의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 한 파면되지 않는다. 미국처럼 변호사 단체의 엄격한 자질 평가도 없다. 무서울 게 없으니 안하무인인가. 판사도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을 단죄하는 위치에 있는 이상 보통 사람보다는 높은 품성과 인격을 갖춰야 한다. 모두가 그렇게 기대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보통 사람 정도의 품성과 인격이라도 갖췄으면 한다.

안용현 논설위원

 

09.02 ‘디지털 통행세’ 금지법

임진왜란 때 백의종군 후 ‘배 12척’뿐이었던 이순신 장군을 살린 것은 통행세였다. 중앙정부의 지원이 끊긴 상황에서 수군 재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해로통행첩(海路通行帖)’이란 통행세를 거뒀다. 큰 배는 쌀 세 가마, 중간은 두 가마, 작은 배는 한 가마씩 거뒀는데 열흘 만에 1만석을 거뒀다는 기록이 있다. 이 통행세 덕분에 배 53척을 새로 짓고 수군을 2000명까지 늘릴 수 있었다.

 

 

 

▶서양에선 관세(關稅)로 진화한 통행세가 세계 문명사를 바꾸는 촉매 역할을 했다. 15세기 중동 맹주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유럽과 아시아 간 향신료 무역을 중개하면서 10% 이상 고율 관세를 매기자 유럽 각국은 오스만튀르크를 거치지 않는 새 무역로 개척에 나섰다. 바스코 다가마의 아프리카 항로 개척,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이어졌다. 대항해 시대가 열리며 세계 역사의 주도권이 유럽으로 넘어갔다.

 

▶현대에 들어와 통행세는 부(富)의 축적 수단으로 진화한다. 영국의 록 그룹 비틀스는 엄청난 성공으로 떼돈을 벌자 세금이 고민거리가 됐다. 당시 영국의 소득세 최고 세율이 90%나 됐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찾아낸 해법이 저작권 인세를 통행세처럼 거둬들이는 법인을 만드는 것이었다. 법인에서 배당받는 식으로 우회하면 세금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악덕 기업인이 납품 업체와 거래하면서 중간에 자신의 페이퍼컴퍼니를 거치도록 해 통행세를 챙기고 있다.

 

▶인터넷 세상이 되면서 구글, 애플 같은 IT 공룡 기업들이 통행세의 새 주체로 부상했다. 애플에 이어 구글까지 온라인 쇼핑몰, 영화·음악·웹툰 등 콘텐츠 사업자들이 스마트폰 앱(App)을 통해 올리는 매출에 대해 수수료 30%를 물리겠다고 나섰다. 국제사회에서 ‘앱 통행세’라는 비난이 들끓는 가운데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구글의 과도한 통행세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해 화제가 되고 있다.

 

▶구글은 전 세계 국가 95%에서 1위 검색 엔진으로 자리 잡았다. “칭기즈칸, 공산주의, 에스페란토어가 모두 실패한 세계 지배에 성공했다”(뉴욕타임스)는 평이 나올 정도다. 독점 IT 공룡들의 폭주에 제동을 거는 해법으로 스탠더드오일을 강제로 쪼갠 미국식 기업 분할 해법, 별도 규제법을 만드는 유럽식 해법을 거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구글 갑질 금지법’은 유럽식 해법에 가깝다. IT 업계에서 “구글이란 철옹성 댐에 균열을 가한 첫 타격”이란 평이 나온다. 다른 나라가 따라올지 지켜볼 일이다.

김홍수 논설위원

 

09.03 야외 ‘노 마스크’ 실험

▲2020학년도 후기 학위수여식이 열린 19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에서 졸업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양대는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지침에 따라 오프라인 학위수여식을 취소하고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포토존 설치와 학위복 대여도 금지했다. /뉴시스

 

서울 남산이나 한강공원을 걷다보면 마스크 착용을 단속하는 공무원들을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이 붐비는 시간은 물론 한적한 시간에도 불쑥 나타나 “마스크 제대로 써 주세요”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길거리는 물론 공원, 심지어 산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보기 힘들다. 야외에서 ‘턱스크’를 하면 주위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다. 지난 7월 잠시 백신을 1회라도 맞으면 야외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도록 했다가 델타 변이가 늘어나며 철회했다.

 

▶코로나 창궐이 1년 8개월 지났다. 아직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지만 초기와 달리 과학적인 데이터도 많이 쌓였다. 실내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면 코로나 감염 위험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는 것이 그중 하나다. 그래서 실내 마스크 착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얼마 전 “실내 마스크 착용은 아마 제일 늦게까지 유지해야 하는 개인 방역수칙일 것”이라고 말했다.

 

/일러스트=김도원

 

▶반면 붐비지 않는 야외에서까지 꼭 마스크를 써야 하는지는 논란이 많다. 지난 4월 MIT 마틴 바잔트 교수팀은 실내, 실외에서 코로나 전파 위험을 비교 연구한 결과를 내놓으면서 “실외에선 1m 정도 간격만 유지해도 마스크 없이도 안전할 수 있다”고 했다. 현재 주요국의 경우 실외 마스크 착용을 독려하는 나라는 별로 없다. 영국은 지난달부터 거의 모든 코로나 관련 방역 조치를 완화하면서 실내 마스크 착용까지 의무가 아닌 권고 사항으로 했다. 프랑스·독일도 실내 마스크 착용만 의무로 남겨두었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실외 마스크 착용이 의무는 아니다. 실외의 경우 집회·공연·행사 등으로 다중이 모이는 경우, 다른 사람과 2m 거리 유지를 못 하는 경우에 의무 사항이다. 하지만 조항 자체가 애매한 데다 지방자치단체가 상황에 따라 의무 장소를 추가할 수 있어서 ‘노 마스크’가 가능한 곳이 어딘지 알 수가 없다. 방역 당국도 무조건 “마스크 착용을 철저히 지켜달라”고 말한다. 2m 이상 거리 두기가 가능하면 쓰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말은 결코 하지 않는다.

 

▶당국 입장에선 방역 수준을 최대로 높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편할 것이다. 그러나 과학적이지 않거나 지나친 규제는 행정편의주의일 뿐이다. 국내 백신 접종률도 1차 57.4%, 2차 완료율 31.7%까지 올랐다. 감염 차단이 최우선이겠지만 과학과 합리의 선을 넘는 것은 불필요한 고통 강요다. 그 선을 찾는 것도 방역 당국이 할 일이다.

김민철 논설위원

 

09.04 아트테크와 한국판 ‘곰가죽 클럽’

수학 ‘1타 강사’ 현우진씨가 자신이 구매한 일본 작가 구사마 야요이 작품 4점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눈길을 끌었다. 네 작품의 총낙찰가가 108억원이었다. 이 비싼 작가 작품을 현씨 같은 ‘큰손’만 사는 게 아니다. 얼마 전 미술품 공동구매 앱에서 구사마 야요이의 작품 ‘호박’을 5억2000만원에 내놨는데 1분 만에 공동 구매가 마감됐다.

 

 

/일러스트=김도원

 

▶돈 있는 일부 자산가의 취미와 투자 수단으로 여겨지던 미술품 시장이 20~30대들로 문전성시다. 인터넷 ‘공구’(공동구매)에 익숙한 20~30대들을 위해 한 조각당 1000원에서 100만원 단위로 미술품에 투자하는 ‘미술품 공구’ 시장이 열렸기 때문이다. 미술품 공구 앱에는 그림별 투자 수익률이 ‘20%’ ‘8%’라고 뜬다. 한 미술품 공구 앱은 6개월 만에 회원을 2만2000명 모았는데 대부분이 MZ 세대였다. 부동산은 ‘억’ 소리 나게 올랐고 가상 화폐는 폭락했으니 젊은 층이 소액으로 가능한 투자처를 찾아 기웃거리는 곳이 미술품 재테크, 이른바 ‘아트테크’다.

 

▶20세기 미술 투자의 선구자는 프랑스의 ‘곰가죽 클럽’이다. 1904년 예술 애호가이던 기업인 앙드레 르벨이 가난한 예술가를 돕기 위해 지인 10여 명을 모아 미술품 투자클럽을 시작했다. ‘곰가죽’은 17세기 프랑스 작가 라퐁텐의 우화 ‘곰과 두 친구’에서 따온 이름이다. 10여 명이 돈을 모아 10년간 재능 있는 신진 작가들 작품을 꾸준히 사들였다. 피카소, 마티스, 고갱 등이 포함됐다. 10년 뒤인 1914년 파리에서 그동안 구입한 작품 145점을 경매에 부쳐 대성공을 거뒀다. 피카소 작품만 12점, 마티스 작품은 10점 팔렸다. 피카소 작품 중엔 구입가의 10배 넘게 팔린 것도 있었다.

 

▶미술시장 호황에는 정부의 소득세법 개정도 한몫했다. 작년 말 개정된 소득세법 덕분에 미술품 양도 차익은 ‘사업 소득’ 아닌 ‘기타 소득’으로 일괄 분류돼 세율이 최고 45%에서 20%로 뚝 떨어졌다. 그림 판매가가 6000만원 미만이거나 살아있는 국내 작가 작품이면 차익에 세금도 안 낸다. 시중에 돈은 넘치는데 부동산은 세금이 이중 삼중 부과되니 미술품 투자로 눈 돌리는 부자가 많아졌다. 그 바람에 그림 값이 도를 넘게 치솟고 있다.

 

▶20세기 초 프랑스 ‘곰가죽 클럽’은 신진 작가를 발굴하고 돈도 버는 미술품 투자의 성공 모델이 됐다. 21세기 한국판 ‘곰가죽 클럽’에 해당하는 미술품 공동구매나 그림 재테크는 미술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가상 화폐 같은 ‘묻지 마 재테크’가 아니길 바란다.

강경희 논설위원

 

09.06(월) 사병 월급 100만원

1988년 가을 사병으로 입대해 초봉 5500원을 받았다. 당시 88 담배 한 갑이 600원이었다. 공짜로 지급받는 한산도와 은하수는 맛이 써 인기가 없었다. PX에서 주전부리 빵이라도 사먹으려면 집에서 용돈을 받아야 했다. 병장 월급 1만원도 외식 한 번 하면 끝이었다. 직업란에 군인이라 적을 때면 쓴웃음이 나왔다. 30년 뒤 아들이 입대했다. 옛날 쪼들리던 생각이 나서 용돈을 보내주려 했는데 “넉넉히 받으니 필요 없다”고 했다. “병장 월급은 50만원 넘는다”며 알바보다 낫다고도 했다.

 

 

▶2000년까지 이병 월급은 1만원을 넘지 않았다. 병장 기준으로 10만원을 돌파한 게 2011년이고, 20만원에 도달한 건 2016년이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사병 급여를 최저임금의 절반 수준까지 올리겠다”며 뜀박질을 시작했다. 2017년 단숨에 두 배로 올려 40만원을 돌파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12.5% 오른 60만원으로 정했다.

 

▶요즘 군부대엔 ‘군 테크’라는 말이 유행한다. 사격이나 각개전투처럼 제대로 군인 노릇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주머니 두둑해진 사병을 위한 재테크를 뜻한다. 은행들은 사병 복무 기간에 맞춘 저축 상품을 내놓는다. 유튜브엔 소액 활용 주식 투자 비법이 올라온다. 소비 성향도 바뀌어 PX에선 남성용 화장품 판매가 늘었다. 훈련으로 지친 피부를 진정시키는 수딩 크림이나 마스크 팩, 달팽이 크림이 인기라고 한다.

 

▶국방부가 사병 급여를 2026년까지 병장 기준 100만원대로 올리는 안을 내놓았다. 직업군인인 부사관 초봉의 절반 수준이다. 여기에 내년 대선을 앞두고 청년 표심을 노리는 후보들의 선심 공약까지 가세하고 있다. 한 후보는 전역 후 사회출발자금 명목으로 3000만원을 주겠다고 했고, 또 다른 후보는 사병 급여를 최저임금 수준으로 인상하겠다고 했다.

 

▶월급 더 준다는데 누가 마다하겠는가. 보상 없는 충성을 뜻하는 ‘애국 페이’를 청년에게 강요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란 지적도 있다. 군 가산점 혜택이 없어진 마당에 급여 인센티브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청년에게 군대 급여 인상보다 중요한 것은 제대 이후 펼쳐질 미래다. 한 세대 전엔 비록 빈손 제대를 해도 크게 억울해하지 않았다. 일자리는 풍족했고 결혼하면 몇 해 안에 내 집이 생겼다. 많은 20대가 정권을 성토하는 건 사병 월급이 적어서가 아니다. 아버지가 청년일 때 꿈꾸던 미래를 자기는 꿀 수 없다는 좌절감 때문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09.07 방역과 횡포의 차이

▲5일 오전 부산 금정구 영락공원에 이른 성묘를 위해 시민들이 방문하는 가운데 추석 연휴인 9월 18일부터 22일까지 봉안시설 및 공원묘지 폐쇄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김동환 기자

 

일가 친척이 긴 줄을 만들며 산길·논길을 따라 성묘하러 가는 것은 추석 풍경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번 추석엔 이런 모습을 보기 어려울 것 같다. 방역 수칙이 성묘 인원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비수도권 등 3단계 지역에서는 8명, 4단계 지역인 수도권 등은 4명까지만 가능하다. 추석 때 가정에서는 8명까지 모일 수 있다고 했다. 성묘는 3밀(밀접·밀집·밀폐) 환경이 아닌 야외에서 하는 것인데 오히려 실내 모임 인원의 절반으로 제한하는 근거가 뭔가. 이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다. 난센스도 이런 난센스가 없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성묘만이 아니다. 자영업자들은 식당 등 다중 시설 이용 마감 시간을 오후 10시에서 9시, 다시 10시로 오락가락하는 근거가 도대체 뭐냐고 묻고 있다. 바이러스가 특정 시간을 따져 활동할 리가 없다. 정부도 그런 자료는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다만 “술을 마시며 머무는 시간이 길수록 집단감염 가능성이 커진다는 과거 사례를 고려한 조치”라고 했다. 그렇다면 일률적으로 ‘10시까지’가 아니라 ‘하루 5시간’ 등 영업 총시간을 제한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정부가 지난 3일 내놓은 ‘사회적 거리 두기 4주 연장’ 설명 자료는 무려 69페이지다. 여기엔 별별 규제가 다 들어 있다. 탁구장에 머무는 시간은 2시간 이내고 단식은 되나 복식은 금지다. 헬스장 음악을 분당 비트 수(bpm) 120bpm 이하로 제한한 규정은 해외 토픽이 됐다. 러닝머신 속도는 시속 6㎞ 이하를 유지하라는 규정도 마찬가지다. 이런 것까지 정해놓은 나라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비합리적이라는 지적이 나와도 방역 당국은 묵묵부답이다.

 

▶실내·외 체육 시설에서 샤워실 운영을 금지하는 것도 과학적 근거를 알 수 없다. 코로나 감염 가능성은 운동할 때가 더 높을 텐데 헬스장은 열게 하고 샤워는 못 하게 한다. 헬스장이나 골프장 샤워실은 대부분 칸막이가 있는데 대중목욕탕은 칸막이가 없는 곳이 많다. 그런데도 대중목욕탕은 문을 열고 있다. 전문가들은 샤워실 이용을 금지하기보다는 한 번에 입장할 수 있는 인원을 제한하고 소독을 지도하는 것이 과학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점심엔 4명에다 접종 완료자 2명 포함해 6명, 저녁은 2명에다 접종 완료자 4명 포함해 6명까지 모임이 가능하다는 것도 어떻게 해서 나온 숫자인지 궁금하다. 공무원 몇 명에게 국민이 우롱당하는 것 같은 불쾌감마저 든다. 당연히 방역이 최우선이다. 하지만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방역이 아니라 행정의 횡포다.

김민철 논설위원

 

09.08 혹시 했더니 역시 ‘홍두사미’

홍남기 경제 부총리가 엊그제 국회에서 “나라 곳간이 비어 가고 있다.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재정) 곳간에 곡식을 쌓아두고 있는 이유가 뭐냐”고 따지자 반박하면서 한 말이다. 재임 3년 내내 청와대와 정치권의 돈 풀기 요구에 끌려다니던 그가 이례적으로 여당 면전에 대고 우려를 표명했다. 오죽 심각했으면 그랬을까.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국가 재정은 건전하다”고 주장하지만 홍 부총리의 실토가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문 정부는 잘못된 정책으로 부작용을 자초해놓고 세금으로 그 구멍을 메우는 악순환을 4년 내내 반복해왔다. 소득 주도 성장 정책으로 일자리가 사라지고 저소득층이 타격 입자 노인 알바 일자리를 양산하고 실업급여 확대 등에 세금을 퍼부었다. 선거 때마다 온갖 명목으로 현금을 푸는 매표(買票) 행정도 서슴지 않았다. 그 결과 5년간 국가부채가 408조원이나 늘었다. 빚이 매일 2200억원꼴로 늘어났다.

 

▶경제 부총리는 정치권의 포퓰리즘 압박에 맞서야 하는 ‘곳간 지킴이’다. 그런데 홍 부총리는 본연의 역할을 포기한 채 문 정부의 재정 중독증을 충실히 뒷받침해 왔다. 재임 3년간 본예산 3번, 추경 7번 등 예산을 모두 10차례나 편성하면서 국가채무를 260조원이나 불려놨다. 세수가 부족해 2년 연속 100조원 넘는 적자 국채를 발행하는 상황에서 내년 예산도 600조원대 수퍼예산을 편성했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곳간지기 역할을 못한다는 비판이 고조되자 홍 부총리는 법으로 정부 지출을 제한하는 ‘재정준칙’을 만드는 시늉은 했다. 하지만 결과를 보니 ‘재정중독 면죄부’였다. 이랬던 그도 내년 국가채무가 1000조원을 넘어가고, 부채비율이 GDP의 50%를 돌파해 재정의 지속 가능성이 의심받을 지경에 이르자 겁이 난 모양이다.

 

▶홍 부총리가 “나라 곳간이 비어 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는 뉴스에 사람들 반응은 둘로 갈렸다. ‘정권 말이 되니 바른말 한마디라도 기록에 남기려는 모양’이라는 쪽과 ‘금방 제 말을 뒤집을 것’이라는 쪽이었다. 국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지 마라”고 몰아붙이자 홍 부총리는 “재정은 아직 상당히 탄탄하다”고 말을 바꿨다. 제 소신 꺾는 데 하루 걸렸다. ‘홍백기’란 별명이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다. 혹시 했는데 역시 ‘홍두사미’다. 이상한 것은 개인 소셜 미디어엔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곳간지기 역할은 국민께서 요청하는 준엄한 의무이자 소명”이란 글을 올린다.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니 소신이 있는 듯 쇼를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김홍수 논설위원

 

09.09 ‘국군 모독’ 한국 영화의 흥행 공식

▲제주도 4.3 사건을 무대로 한 영화 지슬의 포스터. 국군이 봇짐을 든 여인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국군을 악마로 묘사한 이 영화는 완성도가 뛰어난 만큼 편향성을 둘러싼 논란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제주 4·3 사건이 배경인 영화 ‘지슬’의 홍보 포스터엔 여성을 향해 총을 겨눈 국군 모습이 실려 있다. 영화에서 ‘순덕이’라고 불리는 시골 여성은 총을 겨눈 군인이 머뭇거리는 사이 도망가지만 곧 붙잡힌다. 민가의 창고에 갇힌 순덕이는 국군에 의해 극한의 수난을 당한다. 고통과 치욕을 견디다 못해 총을 훔쳐 반항하다 결국 국군에 의해 살해당한다.

 

▶이 영화 속 국군은 민간인을 상대로 살인, 강간, 방화를 일삼는다. 부대장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민간인을 총칼로 죽인다. 군복을 입은 연쇄살인마다. 영화는 학살에서 시작해 학살로 끝나지만 4·3 사건의 원인이 된 남로당 반란군의 민간인 학살은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이 영화가 지난 4월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에 의해 ‘오늘의 인권 영화’로 추천됐다.

 

/일러스트=김도원

 

▶중국 영화 ‘1953 금성대전투’는 6·25전쟁 때 국군이 패한 금성전투를 무대로 중공군의 영웅담을 그렸다고 한다. 정부 산하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이런 영화의 국내 유통을 허가했다. 문제가 되자 배급사가 유통을 무기 연기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논란이 “새삼스럽다”는 반응이 많았다. 훨씬 전부터 우리 사회 스스로 북한군을 미화하고 국군과 미군을 모욕 모독하는 영화를 만들어 흥행에 성공해 왔기 때문이다. 수백만 관객을 동원하고 영화제를 휩쓴 경우도 있다.

 

▶영화 ‘고지전’은 ‘금성대전투’처럼 정전(停戰) 직전 혈투를 다루고 있다. 실제 전투에서 수많은 국군이 한 조각 영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그런데 영화에서 국군 사령부는 군인을 사지로 몰아넣는 냉혈한, 국군 지휘관은 전쟁터에서 갈피를 못 잡다가 하극상을 당해 죽는 무능력자로 나온다. 국군 병사는 극한에서 살기 위해 동료를 죽이는 비겁자로 묘사된다. 이런 국군은 고지에서 얽혀 싸우던 인민군과 함께 미군 폭격으로 떼죽음을 당한다. 한민족이 미군에 같이 당한다는 설정이다. 한국에선 이래야 흥행이 된다고 한다. 개가 사람을 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개를 물어야 영화 표가 팔린다는 것이다.

 

▶영화는 영화다. 사실을 비틀 수 있고 선과 악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우리처럼 침략을 당해 엄청난 피해를 입은 경우는 영화라도 최소한의 선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선을 넘어야 장사가 된다고 한다. 한 영화인은 “웰컴 투 동막골에서 마을을 파괴하려는 쪽이 미군이 아니라 중공군이었다면 흥행이 됐겠느냐”고 했다. 제작사와 배급사, 평론가들이 먼저 외면한다. 적군을 띄우고 국군을 모독하는 게 한국 영화판의 흥행 공식이라고 한다.

선우정 논설위원

 

09.10 현대 수소차의 뿌리는 아폴로 우주선

“돈 걱정 말고 젊은 기술자들이 만들고 싶은 차는 다 만들어 보세요. 돈 아낀다고 똑같은 차 100대 만들지 말고, 100대 다 각각 다른 차로 만들어도 좋아요.” 2006년 현대차 정몽구 회장이 수소차 연구팀에 이런 주문을 했다. 수소차 100대를 생산하는 정부 지원 프로젝트를 현대차가 맡게 됐을 때였다. 당시 정 회장은 2013년 세계 최초 양산형 수소차를 개발할 땐 2주일 이상 직접 수소차를 몰고 서울 한남동 자택과 양재동 현대차 본사를 오가기도 했다.

 

/일러스트=김도원

 

▶수소차의 핵심은 수소연료전지다. 현대차 수소연료전지의 뿌리는 미국 아폴로 우주선이다. 현대차 연구팀이 지난 2000년 수소차 개발을 위해 손잡은 파트너가 미국 방산업체 IFC(International fuel cells)였다. 아폴로 우주선, 우주왕복선에 연료전지를 공급해온 기업이다. 정 회장은 “수소 연료전지 설계를 배우는 교육비로 생각하자”며 1000만달러를 투자했고, 양사 기술진은 6개월 만에 싼타페 수소차를 만들어냈다.

 

▶수소연료전지 국산화에 올인 한 현대차는 2017년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든 수소차 넥쏘를 선보였다. 넥소는 1회 충전에 609㎞를 달려 도요타의 경쟁 차종을 압도했다. 자신감을 얻은 현대차는 세계 최초 수소 전기 트럭까지 생산, 스위스와 1600대 수출 계약을 맺었다. 현대차는 이제 수소차의 글로벌 리더라 불러 손색이 없다. 현대차가 엊그제 국내 15개 대기업과 공동으로 수소 산업 생태계 구축을 위한 협의체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을 출범시켰다.

 

▶세계 수소 패권 경쟁은 이미 치열하다. 미국은 2030년까지 수소차 120만대 보급, 수소 충전소 4300개 구축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일본은 호주에서 그린 수소를 만들어 자국으로 가져오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2030년까지 수소차 100만대 보급을 추진 중이며, 유럽연합은 2030년까지 40GW 규모의 물 전기분해 설비를 구축해 최대 1000만t의 그린 수소를 생산하는 계획을 세웠다.

 

▶수소차는 온실가스 감축과 공기정화 기능까지 갖고 있다. 현대차가 만든 수소 트럭 1대가 8만㎞를 달리면 디젤 트럭 대비 70t의 이산화탄소 감축 효과를 낸다. 하지만 수소차의 운동에너지 전환율이 배터리 전기차의 절반 수준인 점, 현재 1%에 불과한 ‘그린 수소’를 어떻게 대량 생산할 것인지, 수소 충전망 구축 등 해결해야 할 난제가 적지 않다. 그런데 벌써 수소차 펀드에 투자금이 몰리고, 수소차 테마주가 급등한다. 아직 김칫국부터 마실 때는 아니다.

김홍수 논설위원

 

09.11 ‘최순실 300조원’

2008년 한미 FTA 체결에 대해 민주당과 좌파들은 “미국이 서민 노동자를 다 죽이고 나라 정책을 무력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전기톱과 해머를 휘두르며 비준안을 막았다. 하지만 우리 수출은 급증했고 미국의 무역 적자는 늘었다. 정반대로 된 것이다. 광우병 파동 때도 “한국인의 광우병 발병률이 95%” “화장품과 생리대로도 전염된다”고 했다. “미국의 광우병 환자 25만~65만명이 치매 환자로 은폐돼 사망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뇌송송 구멍탁’이란 말에 여중생들이 울었다. 하지만 미국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 걸린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사드 배치 땐 “레이더 전자파 때문에 암에 걸리고 농작물이 다 죽을 것”이라고 했다. “전자파에 내 몸이 튀겨진다”는 노래도 불렀다. 하지만 인체에 미치는 사드 전자파는 휴대폰보다 낮았다.

 

▲8일 국정농단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 중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사진)씨가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최씨가 안 의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법원은 “피고는 원고에게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이진한기자 이덕훈기자

 

▶천안함 폭침 때는 “내부 폭발로 침몰했다” “기뢰 폭발” “미 핵잠수함과 충돌했다”는 주장이 기승을 부렸다. 세월호에 대해 김어준씨는 “박근혜 정부가 일부러 침몰시킨 뒤 항적 데이터를 조작했다”고 했다. “닻을 고의적으로 내려 침몰했다” “잠수함과 충돌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황당무계하지만 홀린 대중이 적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을 두고도 ‘호텔에서 밀회를 즐겼다’ ‘성형 시술을 받고 프로포폴을 맞았다’ ‘굿판을 벌였다’는 의혹이 난무했다. 해외 순방 때 고산증 치료용으로 경호실에서 갖고 간 ‘비아그라’도 문제 삼았다. “청와대에 사방이 거울로 된 거울방이 있다”고도 했다. 모두 사실무근이지만 당시엔 사실처럼 돌아다녔다.

 

/일러스트=김도원

 

▶최순실씨 은닉 재산이 300조원에 이른다고 한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1억원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다. 그는 2017년 최씨 은닉 재산을 찾겠다며 유럽을 다녀온 뒤 “박정희 전 대통령 통치 자금이 8조9000억원, 지금 돈으로 300조가 넘는데, 그 돈이 최씨 일가 재산의 시작점”이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한 1979년 정부 예산이 4조5000억원이었다. 세계 최고 갑부 빌 게이츠의 재산이 126조원이다. 아무리 정치용 과장이라고 해도 최씨 재산 300조원은 너무하지 않나.

 

▶그런데 안 의원은 오히려 재판부를 비난하면서 “최씨 일가 재산을 조사할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의혹을 제기해도 최소한의 근거가 있고 상식에 맞아야 한다. 하지만 그런 양식이 필요 없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은 거짓으로 드러나도 사과 한마디 없다. 오히려 화를 내고 역공을 한다. 이런 사람들이 이 나라의 고위 공직자들이다.

배성규 논설위원

 

09.13(월) 재난지원금 계급론

 

부모 재력에 따라 자신의 처지를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라고 분류한 수저계급론이 몇 년 전 청년들 사이에 유행했다. 소득 하위 88%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씩 주는 ‘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 지급이 시작되면서 이번엔 ‘재난지원금 계급표’까지 온라인에 등장했다.

 

▶지원금을 받느냐 못 받느냐에 따라 5계급으로 나눠 신라 골품제에 빗댔다. 시세 20억원 넘는 집(재산세 과세표준 9억원)이 있고 금융소득이 2000만원을 넘으며 연봉도 높아 건강보험료 기준을 초과하는 상위 3%는 성골, 금융소득과 건강보험료 기준을 넘는 상위 7%는 진골, 월 소득 1000만원 넘는 맞벌이 부부 등 건강보험료 기준을 초과한 상위 12%는 6두품이라 칭했다. 재난지원금을 받는 88%는 평민, 그중에서도 10만원 더 받는 소득 하위층은 노비로 비하하기까지 한다.

 

▶인터넷에는 탈락자 인증 랠리도 벌어진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상위 12%에 든다니 우리나라가 이렇게 못사는 나라였나요?” “6월 말까지 회사 다니다 7월부터 백수인데 6월 건보료 기준으로 탈락했습니다. 수입도 없는 내가 상위 12%라니” “나는 지급 대상자인데 남자친구는 아니라네요. 상위 12%에 속하는 사람이었나 봅니다.” 못 받으면 불만, 받으면 신세 타령이다. “재난지원금 받는 나는 평민 아니면 노비 신세”냐 자조하고, 못 받은 사람은 “세금 걷어갈 때는 국민, 지원금 줄 때는 외국인 취급이냐” 불만이다. 건보료 기준선에 걸려 아슬아슬하게 탈락한 사람은 더더욱 불만이다.

 

▶당초 80% 지급을 확정하면서 지난 7월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원금을 안 받는 분들에게는 사회적 기여를 한다는 자부심을 돌려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빈축을 샀다. 뚜껑을 열어보니 정말로 자부심 사양하고 돈 받겠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된 지원금 탈락 이의신청만 나흘간 5만4000건이다.

 

▶모든 가구를 소득순으로 줄 세웠다고 가정했을 때 정확히 가운데 가구 소득을 중위소득이라 한다. 정부의 복지는 이 중위 소득을 기준으로 차등 지원된다. 코로나를 틈타 작년에 전 국민 현금 뿌리기를 한 것을 계기로 이상한 기준들이 등장했다. 올해 또 나랏빚 내 전 국민 지급하자니 명분이 안 서는지 ‘80% 지급 방침’이 정해졌다. 그게 88%로 바뀌었다 불만이 높으니 다시 90%로 확대하겠다고 한다. 현금은 뿌려야겠고 골대를 이리저리 움직여서라도 우리 편 유리한 득점은 해야 하겠으니 이리 이상한 국정이 등장하는 것이다.

강경희 논설위원

 

09.14 중국의 ‘영어 금지’

▲1960년대 후반 홍위병들이 마오쩌둥 어록을 손에 쥐고 톈안먼 광장에 몰려들고 있다. /조선일보 DB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처음 시작한 분야는 경제가 아니었다. 교육이었다. 청소부 등으로 쫓겨간 학자들을 대거 복권했고 문화대혁명으로 중단됐던 대학 입시도 10년 만에 부활시켰다. 중국 대학엔 서구 사상과 기술을 전하는 영문 서적이 넘쳐났다. 1978년 베이징대에 입학한 리커창 총리는 손으로 쓴 영어 단어장을 호주머니에 가득 채우고 다녔다고 한다. 1982년 중국에서 TV를 보유한 1000만 가구 대부분이 BBC 영어 학습 프로그램을 시청하기도 했다. 학문 개방과 외국어 열풍이 외자 유치보다 먼저였다.

 

▶2013년 중국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에서 “영어 학습 비중이 너무 높아 학생들이 중국어를 공부할 시간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한 미술대학은 ‘영어를 못하면 그림 재능이 있어도 불합격’이란 공고문을 붙이기도 했다. ‘외국 물’ 먹은 중국인들이 사적 모임에선 영어를 썼다. 고관대작의 자녀는 미·영으로 유학을 갔다. 시진핑 딸도 하버드에서 공부했다. 영어를 해야 돈도 벌었다. 그런데 빈곤 가정 출신이나 문혁을 겪은 중·노년층에선 알파벳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영어가 중국 사회 격차와 불만의 원인 중 하나로 부상했다.

 

/일러스트=김도원

 

▶지난달 ‘공동부유(共同富裕)’를 선언한 시진핑의 중국은 민간 기업의 팔을 비틀어 천문학적 돈을 뜯어내고 있다. 공산당에 찍힌 알리바바가 내놓기로 한 ‘기부금’만 1000억위안(약 18조원)이다. 문혁 시기 홍위병의 ‘부자 때리기’가 떠오른다. 공산당은 청소년 게임 봉쇄, 연예인 팬클럽 폐쇄 같은 개인 자유 통제도 서슴지 않는다. ‘시진핑 사상’ 교육을 강제하기까지 한다. 지금 ‘제2의 문혁이라도 났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상하이 교육 당국이 지역 초등학교의 영어 시험을 막았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중국 초·중학교에선 해외 교과서 사용이 불허됐다. 영어 사교육도 사실상 금지됐다. 대입 시험에서 영어를 빼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대학 관계자는 NYT에 “저널리즘이나 헌법처럼 (정치적으로) 예민한 과목일수록 영어 원서를 사용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했다. 영어 자리는 중공 이념 교육이 대신하고 있다. 서구의 자유와 민주 사상을 직접 체득하지 말라는 것이다.

 

▶시진핑은 5년 전만 해도 “문혁이 (중국을) 세계와 단절시켜 폐쇄된 환경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본인이 문혁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래 놓고 중국을 닫힌 나라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 내년 공산당 총서기 3연임을 위한 통제 조치다. 권력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는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안용현 논설위원

 

09.15 조용기 목사

1958년 5월 18일, 6·25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서울 은평구 대조동의 변두리 가옥 마당에 허름한 천막이 쳐졌다. 젊은 목사 조용기와 장모 최자실 목사가 무릎 꿇고 기도를 시작했다. 밭일하다가 비를 피해 들어온 이웃도 함께했다. 여의도순복음 교회의 시작이었다. 순복음교회의 역사는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욥기 8장 7절 내용 그대로다. 목사와 신도를 합해 5명으로 문을 연 작은 교회가 1970년대 초 신도 1만명을 넘어서더니 1979년 10만명, 1984년 40만명, 1992년 70만명을 돌파했다. 2009년 조 목사 퇴임 직전엔 83만명에 달했다. 지금도 곳곳에 세운 지(支)성전을 제외하고 여의도 본당 신도만 50만명 넘는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순복음교회 신화의 중심에 ‘말씀이 좋은’ 조용기 목사가 있었다. 단지 성경 속 복음만 전한 것은 아니다. 그는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던 그 시절 국민의 비원을 설교에 담았다. 그 배경엔 결핵에 걸리고 가난과도 싸웠던 조 목사의 어린 시절 경험이 깔려 있었다. 고향을 떠나 상경한 청년들은 “부지런히 일해서 잘살게 되면 그게 바로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조 목사 설교를 들으며 용기를 얻었다. 그들이 직장 잡고 내 집 마련하고 중산층으로 성장하는 사이, 순복음교회도 도약했다.

 

▶조용기 목사는 새마을운동에 자신의 건의도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2009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그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농촌이 잘살아야 한다며 ‘새마음운동’을 건의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뜻은 좋은데 기독교 냄새가 난다고 해서 새마을운동으로 이름을 바꿨다는 전언을 훗날 들었다고 했다. 사실이야 어떻든 조 목사도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의 전도사였다.

 

▶순복음교회는 서울 서대문을 거쳐 1973년 여의도로 이전했다. 허허벌판 모래밭에 터 잡고 ‘한강의 기적’을 지켜봤다. 삼성·현대·대우가 수출 역군으로 세계시장에 뛰어들 때, 조용기 목사는 비행기 타고 세계 선교에 나섰다. 브라질에서 행한 영어 설교엔 150만명이 모였다. 한국은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거듭났고, 순복음교회는 동남아 국가의 가난한 심장병 어린이 수천 명의 수술을 돕는 교회가 됐다.

 

▶순복음교회의 역사는 경제·사회·문화 모든 분야에서 우리가 이룬 기적과도 같은 압축 성장사를 닮았다. 조용기 목사는 그 기적에 뛰어들어 뜨겁게 삶을 불태웠던 한국 현대사의 인물이었다. 작은 교회에서 시작해 단일 교회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로 성장시킨 조용기 목사가 어제 오전 소천했다. 신앙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09.16 청소년 백신 접종

▲이스라엘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인도발 델타 변이 확산으로 비상인 가운데 지난 6월 21일(현지시간) 텔아비브에서 한 10대 소녀가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있다. 이스라엘 보건부는 학교 등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재확산 조짐이 보이자 12~15세 연령대의 아동·청소년에 대한 백신접종을 강력하게 권고했다. /연합뉴스

 

지난 2009년 신종플루가 유행했을 때 스웨덴과 핀란드 등에서 백신을 맞은 일부 아이들이 낮에도 참을 수 없는 졸음에 시달리는 증상(기면증)을 보였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조사에 나서 2011년 이 백신을 맞은 아이가 그렇지 않은 아이에 비해 기면증을 경험할 확률이 9배 높았다고 발표했다. 해당 백신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학계는 신종플루 백신과 기면증의 명확한 연관 관계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비슷한 일이 다시 발생할지도 모를 상황이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남자 청소년들이 화이자·모더나 등 mRNA 백신을 맞고 급성 심근염 진단을 받는 경우가 늘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이 접종 부작용을 분석한 결과, 12~15세 소년은 코로나로 입원하는 것보다 백신 관련 심근염 진단을 받을 가능성이 4~6배 큰 것으로 나타났다. 남자 청소년의 경우 화이자 백신을 2차까지 맞으면 12~15세는 100만명당 162.2건, 16~17세는 100만명당 94건의 심근염이 발생했다는 것이 연구진 추정이다. 여자 청소년 추정치는 각각 100만명당 13.4건, 13건이었다. 캐나다 통계에 따르면 30세 이하 남성의 경우 모더나 접종자가 화이자 접종자보다 심근염 발생률이 2.5배 높을 가능성이 있었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그래서 미국 등에선 남자 청소년의 경우 백신을 맞았을 때 이득과 부작용 중 어느 쪽이 큰지 논란이 있다. 코로나 감염만을 기준으로 하면 백신을 맞는 것이 낫겠지만, 코로나로 입원하는 비율을 기준으로 하면 백신 접종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은 내주부터 12~15세 청소년에게 백신을 접종하지만 우선 1회만 접종하기로 했다. 1회만 맞아도 백신 접종 이익은 대부분 얻지만 2회까지 접종하면 심근염 부작용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현재 미국과 캐나다·이스라엘·남아공 등에서는 소아·청소년에 대한 백신 접종을 하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백신 부작용으로 청소년들에게 생기는 심근염은 자연 치유가 가능한 정도로 치명적이지는 않다.

 

▶우리 정부는 4분기에 12~17세 청소년과 임신부 대상 접종을 시작하려고 준비 중이다. 그런데 “접종 이득이 월등히 크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12~17세 백신 접종은 강제 또는 유도하지 않겠다고 했다. 정보를 제공하고 청소년과 학부모가 선택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의학 지식이 얕은 청소년·학부모가 어떻게 알아서 판단하나. 정부가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들어 판단을 내린 다음 책임지고 설득하는 것이 맞는다.

김민철 논설위원

 

09.17 확진자 집계 논란

▲16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 공원에 설치된 송파구 신종 코로나 임시 선별진료소에 검사를 받으려는 시민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날 보건 당국은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1943명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신규 확진자 중 수도권 확진이 이틀째 80% 안팎을 기록해, 귀성을 앞둔 추석 방역에 '비상'이 걸렸다. /연합뉴스

 

국내에 신종플루 첫 확진자가 발생한 것은 2009년 5월 2일이었다. 이후 하루 1만명 넘는 확진자가 발생할 정도로 신종플루 기세가 거셌다. 보건 당국은 연일 신규 확진자 수를 집계하며 이 감염병에 대한 경각심을 높였다. 그러나 그해 8월 말 치료제인 타미플루를 모든 의심 환자에게 처방하도록 한 조치 이후 확진자 집계는 의미가 없어졌다. 사실상 확진자 집계를 중단했다.

 

▶신종 코로나는 언제쯤 지긋지긋한 확진자 집계를 중단할 수 있을까. 우리도 코로나 확진자 집계를 중단하고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 중심으로 방역 체계를 전환하자는 주장이 없지 않다. 거리 두기 조정을 통해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과 함께 이른바 ‘위드(With) 코로나’의 핵심이다. 이르면 다음 달 초부터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지금 확진자 중 위중증으로 발전하는 비율은 2.14% 정도다. 이렇다면 전체 확진자 숫자보다는 위중증 숫자가 더 의미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6월 15일 확진자 1943명 발생’이라고 발표할 것이 아니라 ‘6월 15일 위중증 환자 2명 감소(전체 348명), 사망자 6명 발생’이라고 발표하자는 것이다. 일부 국가가 이렇게 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동선을 추적해 역학조사를 하는 지금 방식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상당수가 추적이 불가능한 상태다. 무증상이나 경증 환자까지 모두 생활치료센터에 격리하는 것도 합리적인지 의문이다. 백신 접종 완료자는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자(전병율 전 질병관리본부장)는 주장도 많다. 그래야 경제 숨통이 트이고 의료진들도 한숨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백신 접종률은 현재 1차 68.1%, 완료 41.2%까지 올라갔다. 위중증 환자 규모도 360명 안팎으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8월 치사율은 0.29%로, 독감 치사율(0.05~0.1%)에 근접해 가는 중이다.

 

▶그러나 아직은 확진자 집계 중단이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깜깜이 방역에 빠져들어 빙산의 일각만 보고 판단하는 우를 범할 것(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이라는 얘기다. 적어도 백신 완료율이 70% 이상으로 오르고 먹는 치료제도 나와야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방역 체계를 위중증 환자 관리 중심으로 바꿔 가야 한다는 큰 방향에는 이견이 거의 없다. 자영업자들 고통도 더는 외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불합리하다는 지적을 받는 방역 규제부터 풀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김민철 논설위원

 

09.18 호주와 중국

악명 높은 호주 ‘백호주의’는 사실 ‘중국인 혐오’에서 비롯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19세기 중반 호주 골드러시 때 중국인도 대거 유입됐다. 이민자들 사이에서도 인종이 다른 중국인은 질시와 경계 대상이었다. 1855년 멜버른에 1만명 넘는 중국인이 도착하자 당국이 중국인 입국 허가에는 엄격한 제약을 두기 시작했다. 법으로 못 박은 호주 백호주의는 1973년에야 철폐됐다.

 

 

▶1990년 무렵부터 호주가 아시아로 눈을 돌리고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호주와 중국은 밀월 관계로 들어섰다. 2014년 ‘중국 부호가 선호하는 이민 국가 톱10’에서 호주가 1위였다. 중국 부자들과 유학생이 쏟아져 들어가 호주 부동산은 연일 호황이었다. 케빈 러드 전 총리(2007~2010년 집권)는 서방 지도자 가운데 손꼽히는 중국통이었다. 루커원(陸克文)이라는 중국 이름까지 있다. 2007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 회의 때 중국어로 연설해 후진타오 주석이 놀랐다. 호주국립대에서 중국어를 전공했고 자녀 셋 모두 중국어 공부를 시켰을 정도로 중국 사랑이 극진했다. 상당 기간 호주는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외교 노선으로 경제적 실익을 챙겼다.

 

▶하지만 호주 분위기는 다시 바뀌었다. 너무 많은 중국 투자와 중국인 유입이 반감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2017년 6월 호주 방송사 ABC가 중국계 돈이 유력 정치인과 정당에 흘러들어 친중 정책의 로비 자금이 된다는 보도를 했다. 중국 공안의 조종을 받는 중국 유학생들이 중국에 비판적 발언을 하는 학생의 신상 캐기를 한다는 폭로도 나왔다. 작년 10월 여론조사 결과 호주의 중국 혐오도는 81%에 달했다. 2019년 홍콩 시위, 2020년 코로나 확산은 반중 정서의 기폭제가 됐다.

 

▶2018년 집권한 스콧 모리슨 총리는 처음엔 “미, 중 사이에서 택일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 미국을 택했다. 호주는 한국 못지않게 중국에 대한 교역 의존도가 높다. 중국은 호주산 석탄, 소고기, 와인, 보리 등의 수입 금지 조치를 취하며 고강도 경제 보복을 가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사드 보복 이상이다. 하지만 모리슨 총리는 “호주가 수십 년간 만끽해온 호의적 환경은 끝났다”면서 결의를 보였다.

 

▶미국·영국·호주 협력체 ‘오커스(AUKUS)’가 출범했다. 미국은 핵 추진 잠수함 기술을 호주에 넘기는 놀라운 결정까지 내렸다. 호주는 4국 안보 협의체 ‘쿼드’에도 참여했다. 모두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호주의 친미 반중 결단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미국이 호주에 어떤 신뢰를 보낼지는 분명하다. 그 증거가 한국에는 불허하는 핵 추진 잠수함이다.

강경희 논설위원

 

09.23(목,추석 연휴) 중국판 ‘대마불사’의 몰락

▲9월22일 상해에 위치한 중국 초대형 부동산기업 헝다그룹 본사 전경/AFP연합뉴스

 

추석 연휴로 국내 증시가 쉬는 동안 글로벌 증시가 출렁거렸다. 주요국 주가가 2~3%씩 급락하고 비트코인 가격은 10% 가까이 폭락했다. 중국의 부동산 재벌 헝다(恒大)그룹의 부도설이 퍼졌기 때문이다. 총부채 2조위안(약 357조원), 달러 채권 발행액만 266억달러(31조원)에 이르는 세계 122위 거대 기업이다. 헝다의 파산 가능성은 ‘중국판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될 수 있다는 공포를 자아냈다.

 

▶헝다 창업주 쉬자인(許家印) 회장은 빈민촌 출신의 입지전적 인물이다. 한 살 때 어머니를 잃고 할머니 손에서 컸다. 월 14위안(2500원)의 정부 보조금으로 겨우 먹고살면서도 우한철강학원 금속공학과에 우등생으로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제강 회사에 취업해 몇 년 만에 공장장으로 승진할 정도로 수완이 뛰어났다. 선전시 부동산 회사로 옮겨 사장까지 지낸 뒤 39세에 독립해 헝다를 창업했다.

 

/일러스트=김도원

 

▶헝다는 “항상(恒) 크다(大)”는 뜻이다. 마치 대마불사(大馬不死)를 지향하는 듯한 작명이다. 창업주는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최고가 돼야 한다”는 집념을 보여왔다. 2013년 중국 축구 대표팀이 태국에 1대 4로 대패한 뒤 시진핑 주석이 ‘축구 굴기’를 부르짖자, 헝다 소유 광저우 축구팀에 세계적 감독과 선수를 영입하고 17억달러를 투자해 세계 최대 축구장까지 지었다. 통 큰 투자 덕분에 광저우팀은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알리바바 창업주와 중국 1위 부자를 다투던 그는 남다른 자선 활동으로 ‘홍색(紅色) 자본가’란 별명을 얻었다. 2011년부터 10년 연속 최대 기부자 타이틀을 차지하며 총 146억위안(2조6600억원)을 기부했다. 이런 이미지 덕에 그는 지난해 10월 신중국 건국 70주년 열병식에 천안문 성루에 초대받은 몇 안 되는 기업인 중 하나가 됐다. 지난 7월 중국 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에도 초대돼 VIP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최소한의 돈으로 최대한 많은 땅을 사들여 기회를 노린다”는 그의 ‘지렛대 경영술’이 결국 발목을 잡았다. 과도한 기업 부채를 우려한 중국 정부가 은행 대출을 죄자, 전기차·생수·테마파크 업종까지 문어발 확장을 치닫던 헝다가 자금난에 빠졌다. 사태 초기엔 중국 정부가 이 ‘홍색 자본가’를 살려줄 것이란 전망도 있었지만, 신용 평가사들이 잇따라 ‘투기’ 등급 딱지를 붙이자, 다른 기업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부도 처리할 것이란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대마불사를 믿고 마구 빚을 내 덩치를 키워온 헝다의 몰락은 1970~80년대 한국 재벌의 흑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김홍수 논설위원

 

09.24 文과 연예인

로마 제국의 기틀을 다진 카이사르는 장군 출신으론 드물게 쇼(show)에도 능했다. 갈리아 원정 때는 적이 투항하면 로마 시민으로 받아들이고 반항하면 처형했다. 그런데 항복한 적장 가운데 가장 용맹했던 베르킨게토릭스만은 아무 처분 없이 로마로 압송했다. 황제를 꿈꿨던 카이사르는 갈리아 정복을 자랑할 개선식 쇼를 원했고 베르킨게토릭스는 그 쇼의 활용도 만점 소품이었다. 공화정을 신봉하던 로마 시민들이 쇠사슬에 묶인 적장 모습에 손뼉 치며 카이사르를 황제나 마찬가지인 종신 독재관으로 추대했다. 쇼의 위력이었다.

 

/일러스트=김도원

 

▶정치 쇼가 해로운 것만은 아니다. 카이사르의 개선식처럼 국가의 새 비전을 제시할 수도 있다. 오늘날엔 정치적 행사에 국민적 사랑을 받는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을 주로 앞세운다. 우리나라 역대 정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의 연예인 사랑은 그중에서도 유별나다. 청와대 초청 인사만 해도 봉준호 감독, 방탄소년단(BTS), 브레이브걸스 등 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다. 한 언론에서 조사했더니 정권 출범 후 8개월간 이런저런 행사에 연예인을 부른 횟수가 스무 번 가까웠다. 세계 정상 중에 이렇게 연예인을 이용한 사례가 있었나 싶다.

 

▶연예인에 대한 문 대통령의 애착을 일찌감치 보여준 게 2017년 중국 국빈 방문이다. 송혜교씨와 아이돌 그룹 엑소(EXO) 멤버들, 한·중 커플로 유명한 추자현씨 부부 등이 동행했다. 혼밥과 한국 기자 폭행으로 파탄 나는 와중에도 송씨는 두 차례, 추씨 부부는 세 차례나 문 대통령 내외 관련 행사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이 이번 유엔 총회에 참석하며 BTS를 대동했다. 문화 특사로 임명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여러 행사에도 동참했다. BTS처럼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이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이번처럼 ‘포용적 국제 협력’ 같은 비정치적 행동에 대통령과 연예인이 동참하면 국가 이미지에도 도움 될 것이다. 그러나 연예인의 국가 홍보 참여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5월 문 대통령의 방미 때 BTS를 한껏 치켜세웠다. 그런데 정작 BTS와 동행한 문 대통령을 이번엔 만나주지도 않았다. 대북·대중 문제에 엇박자를 내는 상태에서 만나봐야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러니까 문 대통령의 쇼는 국내용이란 말을 듣는 것 아닌가. 문 대통령이 내년 초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싶어 한다. 행여라도 연예인을 동원해 공허한 남북 쇼를 할 생각은 말았으면 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09.25 운동권의 ‘이승만 포비아’

우남(雩南) 이승만은 1913년부터 25년여간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첫 인연은 미국 유학길에 오른 19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1월 29일 하와이에 내려 힘겹게 타국살이 하던 이민 1세 한인들과 만났다. 스물아홉 청년은 그 자리에서 교민 200여 명과 함께 예배를 보고 격려 연설도 했다. 이승만 평생의 업이었던 반일 독립운동의 씨가 그렇게 하와이에 뿌려졌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이승만은 다시 하와이로 돌아와 언론 출판을 통해 일제의 부당한 국권 침탈을 세계에 알렸다. 광화문을 본뜬 교회를 지어 국권 회복의 염원도 담았다. 해방 후 만들고 싶은 대한민국 청사진도 그곳에서 그렸다. 교육을 통해 남녀 차별 없는 나라를 세우겠다는 꿈은 남녀공학인 한인기독학원으로 꽃피었다. 틈틈이 미국 본토에 마련한 구미위원부를 방문해 독립 외교전도 폈다.

 

▶이승만이 하와이 동포 성금을 모아 세운 한인기독교회 건물 마당에 그의 동상이 서 있다. 위대한 독립운동가의 생애를 기리기 위해 교민들이 1985년 세웠다. 동상에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이라 새겼다. 한인기독학원은 사라졌지만 ‘쿨라 콜레아’(한국 학교)라는 도로명으로 남았다. 이승만은 하와이에서 눈을 감고 말년의 궁핍한 삶, 그러나 거대한 생애를 마감했다. 사망 직전까지 조국으로 돌아갈 생각뿐이었다. 가끔씩 눈을 뜨면 “일인(日人)들은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경계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 후 하와이를 찾아 독립유공자 두 분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연설하며 하와이 독립운동의 처음이자 끝인 이승만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 기이한 일을 단순한 옹졸함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이승만을 가장 싫어하고 저주한 사람들은 해방 전엔 일본인들이었고, 해방 후엔 소련과 북한이었다. 이승만만 없었으면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고 지금 우리는 북한 치하에 있을 것이다. 북한 ‘조선민족해방투쟁사’는 이승만을 ‘매국노 민족반역자’로, 그가 초대 대통령을 지낸 상하이 임시정부를 ‘이승만 분자들로 구성된 반인민적 정부’로 규정한다. 문 대통령이 다른 곳도 아닌 하와이에서 ‘이승만’ 이름 한 번 부르지 않은 심리의 뿌리는 어디에 닿아 있을까. 문 정권이 임정 수립 100주년을 맞아 서울 도심에 독립 지사들 초상화를 내걸면서 임정 초대 대통령이자 대한민국 첫 대통령 이승만만 제외한 행태의 바탕엔 무엇이 있을까. 이들의 이승만 포비아(공포증)의 근원이 궁금하다.

김태훈 논설위원

 

09.27(월) 화제만발 ‘오징어 게임’

영화 ‘스타워즈’에서 최고의 반전은 악당 다스베이더와 그에 맞서는 루크 스카이워커가 부자지간이란 사실이다. 다스베이더는 저항군에 속한 아들의 손목을 광선검으로 가차없이 벤다. 부자간 충돌의 원천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에서 자식을 잡아먹는 크로노스다. 뛰어난 수학적 재능을 가졌지만 겁이 많아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영화 ‘굿 윌 헌팅’의 주인공 캐릭터는 성서 속 영웅 요나에서 따왔다. 고래에 먹히고도 탈출하는 요나가 신의 계시 앞에선 머뭇댄다. 전 세계적 흥행에 성공한 영화 상당수가 이처럼 옛이야기에서 소재를 찾는다.

 

 

▶지난 17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 고유의 놀이를 소재로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구슬치기’ ‘오징어’ 등 우리에겐 친숙하지만 외국인들이 보면 낯선 놀이가 여럿 나온다. 이 작품이 한국 드라마론 처음으로 넷플릭스 시청 순위 세계 1위에 올랐다. 넷플릭스의 가장 큰 시장인 미국에서 1위를 꿰차더니 내쳐 유럽·아시아·중동·오세아니아를 휩쓸며 66개 나라에서 최고 자리를 차지했다.

 

▶한국적 소재를 동시대 세계인이 공감할 테마와 잘 버무린 것이 흥행 비결로 꼽힌다. 빚더미에 빠진 벼랑 끝 인생들이 거액의 상금을 두고 벌이는 살벌한 경쟁, 게임에서 지면 목숨마저 빼앗기는 자극적인 설정도 시청자 눈길을 사로잡았다. 여기에 ‘인생은 경쟁이 난무하는 전쟁터’ ‘가난한 사람은 부자들이 갖고 노는 장기판의 말’ 같은 주제를 녹였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뜨거운 논란을 빚은 공정 이슈도 담았다.

 

▶넷플릭스는 비디오 가게의 인터넷 버전이다. 처음엔 미드(미국 드라마)의 한국 시장 점령 기지가 될 거란 우려가 컸다. 뚜껑을 열어보니 그 반대였다. 우리 드라마가 넷플릭스 망을 통해 세계 190여 나라 안방극장을 실시간으로 공략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은 단 1주일 만에 ‘톱’이 됐다.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BTS가 일으킨 K팝 열풍도 K드라마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일조했다.

 

▶미국 영화 ‘디파티드’는 홍콩 영화 ‘무간도’ 스토리를 베껴 아카데미상까지 받았다. 넷플릭스에선 우리 작품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2013년 흥행한 한국 드라마 ‘굿닥터’가 미드로 제작돼 넷플릭스 망을 타고 세계로 퍼졌다. 한국산 좀비 영화 ‘킹덤’도 좀비물의 원조인 미국에서 톱 10 안에 들었다. K드라마의 성과가 문학·미술 등 순수예술로도 확장되길 기대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09.28 30대 남성 절반이 미혼

1990년대 초 조선일보에 입사했을 때 사내에 ‘조총련’이란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삼십줄에 접어들어도 장가 못 가고 있는 기자들을 가리켜 동료들끼리 ‘조선일보 노총각 연맹 회원’이라고 놀렸다. 그때 ‘조총련’에서 제일 나이 많아 회장으로 불리던 노총각 나이가 서른여덟이었다.

 

 

/일러스트=김도원

 

▶30년 전만 해도 남성들 역시 30대에 결혼 안 하고 있으면 귀에 딱지 앉도록 ‘노총각’ 소리를 듣었다. 30대 미혼 남성이 열 중 하나도 안 되던 시절이었다. 1990년 당시 남자 초혼 연령은 평균 27.8세, 여성은 24.8세였다. 30년 만에 결혼 풍속도는 엄청나게 달라졌다. 2020 인구주택 총조사에서 30대 남성 미혼자 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50%(50.8%)를 넘었다. 30대 여성은 셋 중 하나(33.6%)꼴로 미혼이다. 30대 미혼 비율이 이리 높은 건 ‘만혼’ 추세가 굳어지면서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평균 초혼 연령은 남자 33.2세, 여자 30.8세다. 남자의 초혼 연령은 2003년에 처음 30세를 넘겼고, 2016년에는 여성도 서른을 넘겼다.

 

▶결혼정보회사를 운영하는 ‘한방언니’라는 예명의 유튜버가 ‘배우자 선택시 여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건 6가지 순위’란 동영상을 띄워 높은 조회수를 올렸다. 직업, 연봉, 키, 학력, 집 장만 가능 여부, 시댁 경제력과 시부모의 노후 준비를 꼽았다. 신체적 조건인 키 말고는 무조건 ‘남자의 경제력’을 최우선으로 따지는 세태를 체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은 집 사기가 너무 힘들어지다 보니 결혼 상대 소개시켜 달라며 찾아오는 여성의 80%가 집 가진 남자인지부터 묻는다”고 했다.

 

▶결혼이 ‘필수’ 아닌 ‘선택’이 되면서 비혼(非婚)도 거스르기 힘든 추세이다. 여성은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결혼 안 하는 비중이 높다. 30세 이상 미혼 여성들 가운데 가장 비율이 높은 학력 집단은 대학원 졸업 여성이다. 남성은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평균 결혼 연령을 훌쩍 넘긴 30대 후반(35~39세) 남성 가운데 열 중 넷이 미혼이다. 혼자 사는 게 좋아 결혼 안 한 남성도 있지만, 가정을 꾸리는게 버거워 결혼을 포기한 남성도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월급은 쥐꼬리인데 날로 치솟는 집값과 전셋값, 초조함에 이곳저곳 투자하느라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2030세대의 빚, 혼자 벌어선 아이 키우기 힘든 양육 부담, 이런 악조건들이 점점 더 30대를 ‘결혼 안 하는 고독 세대’로 내몰고 있다.

강경희 논설위원

 

09.29 괴물 미사일

지난해 10월 폴란드 항구도시 스비노우이슈치에 인근 해저에서 갑자기 폭발음과 함께 거대한 물기둥이 솟구쳤다. 그 충격은 인근 도시까지 전해졌다. 해저에서 발견된 지진 폭탄 ‘톨보이’(Tallboy)가 뇌관 제거 과정에서 물 속에서 폭발했던 것이다. 톨보이는 길이 6.4m에 전체 무게가 5.4t에 달한 사상 최대 규모의 불발탄이었다. 이 불발탄은 1945년 2차대전 당시 영국 공군이 투하했던 것으로, 이로 인해 독일 순양함이 침몰했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톨보이는 2차대전 때 위력을 발휘한 영국제 지진 폭탄 중의 하나다. 지진 폭탄은 크고 무거운 폭탄이 높은 고도에서 빠른 속도로 떨어지면서 지하 깊숙이 관통해 폭발, 인공지진과 같은 충격파로 견고한 벙커 등을 파괴하도록 만든 것이다. 벙커버스터의 원조다. 톨보이는 독일군 유보트 잠수함기지, V2로켓 발사기지, 독일군 요새 등을 닥치는 대로 파괴했다.

 

▶괴물 폭탄 경쟁은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7년 당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IS 은신처에 ‘모든 폭탄의 어머니’로 불리는 GBU-43 MOAB 투하를 지시했다. MOAB는 반경 2.7㎞의 건물과 차량에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고, 폭발하면 핵폭탄처럼 높이 3㎞의 버섯구름이 생긴다. 러시아는 미국의 MOAB에 대응해 ‘모든 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FOAB를 개발했다. FOAB는 MOAB의 4배 폭발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이에 질세라 무게 14t에 달하는 초대형 벙커버스터 GBU-57 MOP를 개발한다.

 

▶우리 군 당국이 최초 공개한 고위력 미사일, ‘현무-4′는 괴물 미사일로 불린다. 문재인 대통령이 “세계 최고 수준의 탄두 중량을 가진 미사일”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극비 사항인 탄두 중량은 필자가 지난해 처음 들었을 때 기존 무기 상식을 깨는 수준이어서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형상도 극비 사항이어서 지난 15일 시험 발사 후 현무-4가 아닌 다른 미사일로 영상을 바꿔치기해 공개했다. 위력은 지진 폭탄처럼 한 발로 북한 금수산태양궁전이나 지하 100m 이하에 있는 ‘김정은 벙커’를 파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이런 괴물 폭탄·미사일은 평상시엔 적 지도자로 하여금 공포심을 느껴 함부로 도발을 못하도록 하고, 유사시엔 가공할 파괴력으로 적 전략 목표물 등을 파괴하기 위한 것이다. 현무-4도 유사시 북한에서 핵미사일 발사 단추를 누를 유일한 존재인 북한 김정은이 겁을 먹어 단추를 함부로 누를 수 없게 하는 게 주목적일 것이다.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09.30(목) 법률가의 자존심

박영수 전 특검이 화천대유에 고용된 것은 2015년이다. 화천대유는 직원 16명의 지역 부동산 회사다. 그때는 더 작았을 것이다. 그는 특수부 검사에게 ‘형님’으로 통했다. 대검 중수부장과 고검장을 지냈다. 퇴직 후 몸담을 곳이 아니었다. 그는 “알고 지내던 회사 대표의 권유로 갔다”고 했다. 회사 대표는 기자였다. 딸까지 같은 회사에 집어넣고 아파트 분양을 받게 한 걸 보면 단지 인연 때문만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특검으로 변신해 대통령을 탄핵에 몰아넣었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권순일 전 대법관은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았다. 로펌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법조 윤리’를 가르쳤다. 청렴한 척했다. 그러면서 뒤로는 부동산 개발 업체에 고용돼 보수를 받았다. 그는 대법관 시절 이재명 경기지사의 선거법 위반 무죄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 지사와 성남 대장동 개발사업, 화천대유의 관계도 알고 있었다. 그 역시 “친분이 있던 회사 대표의 권유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돈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법률가는 자존심이 무엇보다 중요한 직업이다. 권위주의 정권은 물리적 힘으로 그것을 무너뜨리려고 했다. 김재규 판결이 이의를 제기한 대법관을 입에서 침이 질질 흐를 정도로 고문했고, 판검사 로비 의혹에 얽힌 변호사들을 담요로 감아 2층 계단에서 발로 굴렸다(원로법학자 이시윤의 소송야사). 5공화국 초 대법원장을 지낸 이영섭은 “다시 태어나도 법관의 길은 안 간다”고 했다. 중요하기 때문에 도전이 지독하고, 그래서 더 지키기 어려운 게 법률가의 자존심이라고 한다.

 

▶권력의 물리적 힘에 눌리는 법조인은 이제 없다. 소위 ‘사법 농단’ 여파로 조직의 통제도 사라졌고,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로 승진의 압박에서도 벗어났다. 권력 비리와 관련된 중요 사건 재판을 맡은 판사가 1년 넘게 재판을 열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여가를 보장하는 ‘워라밸’ 문화도 사법부에 정착되고 있다고 한다. 자존심을 지키기에 가장 좋은 시절이다. 그런데 현실은 반대다.

 

▶전직 대법관, 검찰총장, 특검, 검사장이 지역 부동산 회사에 들어가 전관(前官)의 힘과 법 지식을 팔았다. 현직 국회의원인 민정수석 출신 법조인은 자식을 그 회사에 집어넣어 성과금 50억원을 챙기게 했다. 피고인의 유무죄를 두고 대립한 두 법조인이 몇 년 후 그 피고인에게 함께 고용돼 보수를 받았다. 최고에서 말단까지 눈이 뒤집혀 일확천금에 뛰어들었다. 법률가의 자존심이 이렇게 가벼워진 적이 없다.◎

선우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