凍土의 獨裁者 이야기 6/ 김정은은 누구? 5/
■ 충성맹세
○ 결의대회
【평양=신화/뉴시스】2014.08.27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제공한 사진으로, 평양의 김일성경기장에서 청년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통신은 이날 평양에서 청년결의대회 및 결의대행진
■ 2016.08.20 北의 '1호 사진가', 김정은 뒤통수 찍은 까닭은
젊고 호기로운 이미지 연출
김일성·김정일과 달리 근접 촬영, 웃는 사진 많아… 선전 효과 극대화 노려
사진가는 '金 우상화' 첨병
노동당 선전선동부 소속… 金씨 3代 걸쳐 우상화
북한은 지난 6월 22일 오전 5시 58분과 8시 5분 두 차례에 걸쳐 원산 일대에서 무수단 미사일(최대사거리 3500㎞)을 발사했다. 한·미 정보 당국은 하루 전에 북한이 이날 미사일을 발사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고 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전용기인 러시아제 일류신(IL-62) 비행기와 러시아제 MI 계열의 헬기가 평양에서 원산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레이더에 포착됐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헬기에는 '1호 사진가'들이 타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1호'는 북한에서 최고 지도자를 뜻하는 말로, 1호 사진가는 김정은 사진을 찍는 전용 사진가를 가리킨다.
북한은 김정은 집권 이후 노동신문 사진과 조선중앙TV 화면을 통해 김정은이 검은색 코트를 입고 뿔테 안경을 쓴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뒤로 넘긴 헤어스타일, 배 내밀고 걷는 장면도 여러 차례 등장했다. 김정은에게 김일성의 이미지를 입히기 위한 방편이라고 정보 당국은 설명했다.
▲금기 깬 뒷모습 - 촬영 김정은이 탄도미사일 발사 장면을 보고 있는 모습. 김일성·김정일 때는 뒷모습을 찍는 건 금기에 가까웠지만, 김정은의 경우 이 같은 사진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 노동신문
김일성·김정일 시대에도 1호 사진을 통해 선전 선동을 했다. 이 당시 촬영된 1호 사진에는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이 있다. ▲근접 촬영된 사진이 적고 ▲1호와 북한 주민이 떨어져 있고 신체접촉을 하고 있는 사진이 드물며 ▲1호의 앞모습만 나온다는 점이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는 이 같은 점이 모두 바뀌었다. 노동신문에는 김정은을 가까이에서 촬영한 사진이 실리고 있다. 1면 전체에 커다란 김정은 사진 한 장만 나온 적도 있다. 김정은이 북한 주민이나 군인과 팔짱을 끼고 활짝 웃는 사진도 자주 나온다. 김정은에게 젊고 호기로운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연출로 풀이된다.
특히 김정은 시대에는 1호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도 등장하고 있다. 노동신문 2015년 5월 9일자에는 김정은이 잠수함에서 발사된 탄도미사일을 바라보는 뒷모습 사진이 나왔고, 올 7월 20일자에도 김정은이 탄도미사일 발사 장면을 보는 뒷모습 사진이 실렸다. 정보 당국은 신문을 읽는 독자와 김정은이 함께 미사일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줘서, 선전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 매체에 실리는 김정은 사진을 분석한 책 '김정은.jpg'(저자 변영욱)에 따르면, 사진에는 김정은의 급한 성격도 드러나고 있다. 북한에선 1호가 단체사진을 찍을 때 한가운데 서는 지점에 가로 2㎝·세로 5㎝ 크기의 빨간색 테이프를 붙인다고 한다. 김정일은 사진을 찍을 때 모두 정확하게 마크를 가렸는데, 김정은은 대충 서서 찍거나 다리를 벌려서 마크가 보이는 사진도 나온다.
노동신문에 1호 사진이 동시다발적으로 실리는 것도 김정은 시대의 특징이다. 6월 23일자 노동신문은 1·2면에 걸쳐 무수단 미사일 발사 관련 사진을 총 33장 실었는데, 이 중 11장에 김정은이 나와 있다.
1호 사진가의 이름이나 소속은 철저히 가려져 있다. 김일성 때 노동신문에 1호 사진가 이름이 나온 적이 있지만, 1967년 10월 12일자부터 사라졌다. 그 이후에는 1호 사진과 기사 밑에 '조선중앙통신' 또는 '본사정치보도반'으로 소개되고 있다.
1호 사진가는 김정은 우상화 보도 및 선전물 제작·유포를 주도하는 노동당 중앙위 선전선동부(부장 김기남) 소속으로 알려져 있다. 김기남은 현재 당 서열 6위로,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代)에 걸쳐 선전선동부에서 일하며 우상화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히틀러에게 괴벨스 선전장관이 있었다면 김정은에게는 김기남이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여동생 김여정을 선전선동부 부부장에 임명하는 등 혈육까지 활용해 우상화에 집중하고 있다.
▲인민군 포옹 연출 - 김정은이 지난 6월 조선소년단 창립 70돌을 축하하는 행사에서 인민군을 포옹하는 장면을 1호 사진가가 촬영하고 있다. 1호 사진가가 촬영한 사진은 북한 노동당 중앙위 선전선동부(부장 김기남)의 사전 검열을 거쳐 보도된다. / 조선중앙TV
▲김정은이 지난달 19일 미사일 발사 훈련을 참관하는 모습. 탁자에는 ‘전략군 화력 타격 계획’이라는 제목의 대형 한반도 지도가 펼쳐져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 미사일이 한국 전체를 타격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사진 구도와 소품까지 고도로 연출된 사진”이라고 말했다. / 노동신문
김정은 시대에 1호 사진가의 위상은 더 커진 것으로 보인다. 2012년 10월 29일자 노동신문에는 1호 사진가 중 한 명으로 보이는 사람이 김정은을 찍기 위해 김양건 비서와 박봉주 경공업부장을 밀치고 나오는 사진이 실렸다.
김정은 1호 사진 구도 등을 분석한 결과, 통상 5명 안팎이 함께 촬영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김정은 사진에 나오는 소품 구도까지 직접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0일자 노동신문에는 김정은이 황해북도 황주에서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참관하는 사진이 실렸는데, 김정은 책상에는 '전략군 화력 타격계획'이라는 제목이 달린 대형 한반도 지도가 탁자 위에 펼쳐져 있었다. 이 지도에는 부산까지 미사일 사정권으로 표시한 것으로 보이는 곡선이 있었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북한 미사일이 한국 전체를 사정권에 두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려고 지도가 가장 잘 보이게 사진을 찍은 것"이라고 했다.
북한과 김정은의 '1호 사진' 집착은 무수단 미사일 발사 때 드러났다. 무수단 미사일은 4월 15일(1발), 4월 28일(2발), 5월 31일(1발), 6월 22일(2발) 등 총 6발 발사됐으나, 마지막 발사 전까지 5발이 실패했다. 김정은은 무수단 미사일이 발사될 때마다 거의 매번 평양에서 원산까지 전용기를 타고 날아가 현장에서 대기했던 것 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이 중 성공했을 때 촬영한 사진만 공개했다.
김정은은 전시성 건설 현장을 심야나 새벽 시간대에 수차례에 걸쳐 기습 방문했다. 이때 사진·동영상 촬영을 위해 간부와 북한 주민들이 긴급히 동원됐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는 "김정은 사진 촬영을 위해 박수 치고 울부짖는 조연 배우 역할을 해야 하는 북한 주민의 불만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현석 기자
▲충성 맹세 13. 12. 16. 금수산 태양궁전 광장
/광신도들 - 14.9.9절 청진시
■ 새로운 괴뢰들
□ 2015.01.26 뜨는 실세 일꾼 … 건설 마원춘, 선전 김병호, 기계 홍영칠
박도춘(71) 군수 담당 비서, 김평해(74) 간부 담당 비서, 김양건(73) 대남 담당 비서.
신 파워 엘리트 5060 전문관료
자기 세력 없어 유일체제 구축 도움
마원춘, 마식령 스키장 건설로 발탁
김정일(2011년 사망)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잘 보살피라고 지시했던 친위세력이다. 3인방은 김정일이 발탁하고 키운 인재들이다. 박도춘은 군수제품의 예산 관리를, 김평해는 간부들의 인사를 담당하고 있다. 김양건은 대남·대외관계를 맡고 있다. 자기 세력이 없는 기술관료(technocrat)인 이들은 김정은 유일영도체계를 구축하는 데 적합한 인물들로 평가됐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25일 “김 제1위원장이 그들에게 ‘내 지시 이외는 누구의 지시도 받지 말라’고 할 정도로 신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3대 세습 완성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다. 따라서 이들 3인방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신년사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언급된 만큼 김양건의 역할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수용(75) 외무상의 활동도 주목된다. 북·러 정상회담, 북·중 관계 회복을 위한 정지작업, 북·미 대화, 북·일 협상 추진 등 산적한 현안들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스위스 유학 시절 후견인 역할을 한 인연으로 지난해 4월 외무상으로 전격 발탁됐다. 한 달 뒤인 5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일 합의가 그의 작품이다. 그동안 중국 선양(瀋陽) 등지에서 북·일 교섭을 하는 과정에서 정보가 중국으로 새 나가자 주북한 스웨덴대사의 권유를 받아들여 스톡홀름으로 무대를 옮겼다. 지난해 9월 유엔 총회 땐 북한 외무상으론 15년 만에 연설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대북 소식통은 “이 외무상이 김정은과의 특별한 인연도 있지만 배포가 크고 리더십이 있어 외무성을 이른 시일 내 장악했다”고 밝혔다.
이외에 주목해야 할 파워 엘리트로 한광상 당 재정경리부장, 마원춘 국방위원회 설계국장, 김병호 선전선동부 부부장, 홍영칠 기계공업부 부부장, 박태성 평안남도 당 비서 등이 거론된다. 지난해 김정은의 현지지도 때 한 부장은 65회(2012년 10회), 마 국장은 39회(2012년 11회) 수행해 눈길을 끌었다.
실세 일꾼으로 알려진 이들은 50~60대의 실무형 관료로 김정은이 발탁하고 키운 인물이다. 원로관료들이 물러난 자리에 이들로 채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백두산건축연구원 설계원 출신인 마 국장은 마식령스키장 등 대형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해 전격 발탁됐다.
군부에서는 황병서(66) 군 총정치국장이 당분간 자리를 지킬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황 총정치국장은 지난해 김정은을 가장 많이 수행한 인물이다. 지난해 4월 인민군 차수로 진급한 데 이어 5월에 군 총정치국장, 9월에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임되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와 함께 김정은의 현지지도에 자주 동행하는 군인사로 김춘삼 총참모부 제1부총참모장 겸 작전국장, 이병철 당 제1부부장 등이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김춘삼 작전국장은 이전에 평양방어사령관을 역임한 경력을 고려하면 총참모장까지 올라갈 것으로 보이며, 공군사령관 출신인 이병철 제1부부장은 사상·인사를 담당하는 부서인 조직지도부에 근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특별취재팀=통일문화연구소 이영종 부소장, 고수석 연구위원, 정영교·안정호 연구원 yjlee@joongang.co.kr
□ 2015.01.26 평양 신권력 '삼지연 8인 그룹'
▲장성택 처형 논의한 삼지연 8인 모임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013년 11월 말 백두산 지구인 양강도 삼지연군을 찾아 김일성 동상을 둘러봤다. 보름 뒤 이뤄진 장성택 처형을 논의한 자리라는 관측이 나왔고, ‘삼지연 8인 그룹’으로 불렸다. 왼쪽부터 한광상 노동당 재정경리부장,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김병호 선전선동부 부부장,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김정은, 현지 관계자,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8명 중 박태성 당 부장과 마원춘 국방위 설계국장은 사진에 나오지 않았다. [노동신문]
김원홍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장의 아들 김철이 최근 노동당 특별조사를 받았다고 정보당국 관계자가 25일 전했다. 김철은 중국산 상품·자재의 수입과 북한 내 유통에 부당 개입해 막대한 이권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조사를 지시한 사람은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이다. 김철에 대한 조사를 둘러싸고 북한 권력층 내부에선 황병서의 수양딸이 북·중 교역에서 돈벌이가 제일 좋다는 인민소비품(생필품)에 손을 댄 게 드러나면서 미묘한 균열이 생긴 것 아니냐는 소문이 무성하다고 한다. 황병서가 자기 자식을 챙기려 했다는 입소문 때문이었다. 대북 부처의 한 핵심 인사는 “김원홍 보위부장이 황병서의 칼날에 맞서려 절치부심한다는 첩보가 있다”고 말했다.
2015 김정은 권력지도
황병서·김원홍·한광상 등
2013 장성택 숙청 주도 세력
황·김, 자녀들 이권 놓고 암투
집권 4년차 새판 짜기 요동
집권 4년차를 맞은 김정은 체제 핵심부가 권력과 이권다툼으로 요동치고 있다.
김정은은 3대 세습을 완성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지만 노동당과 군부의 파워 엘리트들은 사활을 건 새판 짜기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는 출범 3년(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기준)을 넘긴 김정은 체제의 권력 변동을 추적, 분석했다. 이를 토대로 2015년 김정은과 파워 엘리트를 한눈에 보여주는 권력지도를 만들었다.
우선 김정은 시대 평양 권력의 뼈대를 들여다봤다. 김정은에게 발탁돼 요직을 차지함으로써 신(新)실세로 부상한 인물은 이른바 ‘삼지연 8인 그룹’이다. 이들은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전격 처형할 때 앞장섰다. 장성택을 체포해 국가안전보위부 감옥에 수감한 김원홍 보위부장과 황병서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현 군 총정치국장),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등은 장성택 사형이 집행되기 보름 전인 2013년 11월 말 김정은을 수행해 백두산이 있는 양강도 삼지연에서 대책회의를 가진 것으로 파악된다.
김정은 후계자 만들기에 올인한 공신세력의 약진도 주목된다. 생모 고영희를 도와 김정일 위원장의 막내아들 정은을 후계자로 옹립한 황병서와 조연준은 각각 총정치국장과 당 제1부부장에 올랐다. 해외 조기 유학 때 후견인을 맡았던 스위스 대사 이수용은 대외정책 사령탑인 외무상에 앉았다. 최부일 인민보안상이 지난해 평양시 아파트 붕괴 참사에도 불구하고 건재한 건 어린 시절 농구교사란 인연 때문이란 분석이다.
빨치산 2세인 최용해(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는 김정일 시대에 이어 최고실세 그룹에 자리하고 있다. 장성택 처형의 전면에 나서거나 후계구축에 줄을 선 흔적이 드러나지 않지만 대를 이어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유학 후견 이수용, 농구코치 최부일 … 후계 공신들 대약진
‘운구차 7인’ 몰락·퇴조 … ‘삼지연 8인 그룹’으로 권력이동
빨치산 2세 최용해 대 이어 건재
내각선 소장파 관료 이용남 주목
‘운구차 7인’ 중 80대 2명만 남아
군 총정치국장에서 물러나면서 한때 실각설이 나돌았지만 최근엔 황병서 총정치국장보다 먼저 호명되거나 김정은의 특사로 러시아를 방문하는 등 재부상했다.
내각은 박봉주 총리와 노두철 부총리가 최측근에 포진, 북한 경제를 이끌고 있다. 올해 55세인 이용남 대외경제상은 소장파 경제관료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6월 무역성·조선합영투자위원회·국가경제개발위원회 등 3개 기구를 통합해 출범한 대외경제성은 경제특구 개발을 책임지고 있다.
반면 김정일 장례식 운구차 7인방은 몰락하거나 세력을 잃었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군부 과외교사로 낙점해준 이영호 군 총참모장은 불과 7개월 만에 숙청됐고, 고모부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역시 반당종파 혐의로 처형당했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훈척연대(공신과 친·인척 세력의 결합)가 붕괴됐고, 운구차 7인 중 80대 고령인 김기남·최태복 비서만 직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미 정보 당국은 김정은 권력에 대해 “예상보다 안정적으로 권력을 장악해 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내린다. 그렇지만 숙청의 후유증도 감지된다. 고모부까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하는 현실을 접한 평양 권력층은 꽁꽁 얼어붙었다는 게 당국의 분석이다. 지난해 10월 남북 군사회담 당시 북측 단장인 김영철은 딴생각을 하거나 뭔가 다른 자료를 들여다보는 등 집중 못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회담 관계자는 “협상에서 실수하거나 실패하면 끝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과거와 달리 정서가 불안해 보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파워 엘리트에 대한 공포통치는 체제 효율성을 떨어뜨려 김정은 체제의 순항에 중장기적으로 큰 불안요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별취재팀=통일문화연구소 이영종 부소장, 고수석 연구위원, 정영교·안정호 연구원 yjlee@joongang.co.kr
■ 진쌍판 패러디
□ 2015-04-14 김일성의 근거있는 질타, "정은이 이 망할놈의 새끼"
https://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4K1uH7WdyUo
북한독재체제의 원목(原木)격인 김일성이 김정은을 ‘곁가지에 불과한 놈’이라 다그치고 욕설을 해 대는 영상이 나와 화제를 모으고 있다.
문제의 영상은 1개월 전 elaine anderson이란 아이디로 유튜브에 게재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2분30초 분량의 길지 않은 영상이지만 김일성의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재현되어 있고 실지 살아있는 김일성이 말 하는 듯 한 장면으로 편집되어 있다.
죽은지 오랜 김일성이 등장한다는 것을 빼면 유튜브에 떠도는 북한관련 동영상들과 크게 다른 점이 없는 영상이다. 그럼에도 관심이 가는 것은, 현재 이 동영상이 북한내부에 들어갔다는 점과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한 고위소식통은 “지금 은밀하게 류포되고 있는 김일성-김정은 관련 동영상은 내용의 심각성으로 인해 당국자들을 크게 자극시키고 있다”면서 “지금껏 류포된 남조선동영상들 가운데 가장 해독성이 강한 영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앙은 물론 각도 보위부와 보안부에서 문제의 동영상이 입수되게 된 경로와 출처, 유통과정에 대한 은밀한 내사가 진행 중이다. 제목조차 없이 떠도는 영상이지만 내용이 너무 불경해 ‘남조선 놈들이 만든 해독영상소각작업’이란 긴 명칭을 달고 일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조선동영상들 가운데 가장 해독성이 강한 영상’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영상의 첫 장면에서 김일성은 “김정은이 망할 놈의 새끼. 친일파집안에 재포(재일교포)출신 무용수를 어미로 둔 천한 놈이 마치 백두혈통인 것처럼 사기를 치고 권력욕에 눈이 뒤집혀 형들을 내 쫒고는 내가 피땀을 흘려 세운 조선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었겠다”다며 욕설을 퍼붓는다.
더하여 “네 애비 정일이는 천한 핏줄인 네놈을 낳았다고 내게 차마 말도 못 꺼냈다”고, 이른바 김정은의 백두혈통설을 강력 부인한다.
그리고는 “인민생활은 패대기치고, 호화사치에 제 배만 채우고, 마식령 스키장 이니 문수 물놀이장이니 겉치레에 빠져 나라 돈을 마구 퍼 붓는 이런 죽일 놈 봤냐”며 김정은을 몰아세운다. “특히 네놈은... 널 길러준 네 고모와 고모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패륜아다”고 단죄하기도 한다.
“곁가지에 불과한 네놈이 이런 패륜을 저지르고도 네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냐?!”, “지금이라도 각성해서 진정으로 인민을 위해 살아가든지, 계속 이런 식이면 스스로목숨을 끊고 자결이라도 해서 책임을 지도록 해야지 사람이다”고 김정은을 단죄하는 김일성...
특히 “내가 귀신이 돼서라도 두 눈을 부릅뜨고 네 놈을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김일성의 이야기가 북조선인민들의 가슴을 파고 들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김설송 자유북한방송 기자
- 조선 팝
□ 강남스타일 패러디
https://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uYBCgV6a5kE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4NqczzfGMv8 - 패륜아 김정은
http://www.youtube.com/watch?v=TcpkKC-R_HE&feature=player_embedded 패러디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j8_X-9AIG-c - 게임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vkxSptFhrMQ - 싸이 젠틀맨 김정은 패러디 외
http://www.youtube.com/watch?v=TcpkKC-R_HE&feature=player_embedded 김정은 패러디
http://www.youtube.com/watch?v=Wd9z4VhPoQA&feature=player_detailpage 불뚝 배
□ 크레이지 김
Crazy Kim - Cag
C
zy Kim - Cagle
Crazy Kim - Cagle
□ 중국 인터넷, 김정은 패러디 봇물
최룡해가 쿠데타 일으켜 김정은 체포했다는 헛소문도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처형한 이후 중국 인터넷에 김정은을 비꼬는 사진과 풍자하는 글이 끊이지 않고 있다.
17일 홍콩 대공망(大公網)에 따르면, 포토샵으로 합성된 ‘김정은 체포 사진’이 중국 인터넷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등에 떠도는 ‘김정은 체포 사진’ 중에는 북한군이 김정은의 양팔을 붙잡고 있는 모습이 있다. 김정은이 군부대를 시찰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합성한 것으로 보인다. 네티즌들은 이 사진을 두고 “김정은이 북한 군에 체포돼 압송되는 모습”이라고 했다.
▲김정은이 쿠데타군에 의해 체포됐다는 중국 인터넷의 김정은 패러디.
처형에 앞서 양손에 수갑이 채워진 채 법정에서 국가안전보위부원들에게 끌려가는 장성택의 얼굴 부분을 김정은의 모습과 바꿔 합성한 사진도 떠돌아다니고 있다. 김정은이 ‘독재는 부끄러운 일(獨裁可恥)’이라고 쓴 팻말을 목에 걸고 있는 모습으로 합성한 사진도 있다. 중국 인터넷에는 김정은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패러디한 사진만 모아둔 사이트도 있다. 포털 사이트에 ‘네티즌 패러디 김정은 전집(金正恩遭廣大網友PS恶搞囧圖全集)’을 검색하면 김정은 사진이 여러 장 뜬다. 이 중에는 김정은을 저팔계로 합성한 사진도 있다.
웨이보에서는 ‘죽기 직전 김정일과 아들(김정은)의 대화’라는 제목의 우스개가 인기다. 김정일이 죽기 직전 김정은에게 “주체사상을 지키고 핵무기를 계속 개발하라”는 유언을 남기면서 중국어로 “부야오구푸(不要辜負·기대를 저버리지 마라)”라는 말을 끝으로 숨을 거뒀다고 한다. 그런데 김정은은 이를 “부야오구푸(不要姑夫·고모부는 필요 없다)”로 잘못 알아듣고 장성택을 처형했다는 것이다. ‘구푸’의 중국어 발음이 같은 것을 갖고 우스개로 만든 것이다.
▲중국 인터넷의 김정은 패러디. 갖가지 헤어스타일로 희화화했다.
한 블로거는 자신의 블로그에 “김정은은 아직 어려 장수한다면 50여년은 더 살 텐데 이번 사태로 그가 고령으로 자연사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고 썼다.
김정은과 관련한 미확인 소문은 한국에까지 퍼졌다. 중국 네티즌이 근거 없는 내용을 웨이보에 쓴 내용이 국내로 퍼진 것이다. 지난 16일 북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쿠데타를 일으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체포됐다는 소문이 중국발 SNS를 통해 국내로 급속히 확산됐다. 근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현재의 불안정한 북한 상황을 반영한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이날 오후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에선 최룡해가 군부대 시찰 중이던 김정은을 체포해 구금했다는 중화권 매체 ‘둬웨이(多維)’ 기사가 빠르게 번졌다. 미국에 서버를 둔 둬웨이가 15일 저녁 웨이보를 인용해 작성한 것으로, “최룡해가 김정은을 체포했으며, 북한은 정변 상태”라는 내용이었다.
▲중국 인터넷에 뜬 김정은 패러디 영상.
둬웨이는 이 같은 소식을 전하면서 정보의 출처를 ‘웨이보’라고 밝히며 “정확히 확인된 정보는 아니다”라고 했다. 이 글은 웨이보에 북한 주민이나 탈북자, 중국 접경지대에 살고 있는 조선족 등이 올린 트위터 글을 보고 기사를 작성한 것으로 추정됐다. 웨이보에선 작년 초에도 근거 없이 북한 내 쿠데타설이 유포되는 등 신빙성 없는 루머들이 자주 올라오곤 했다.
하지만 최룡해가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이 글은 SNS를 통해 국내로 급속하게 전파됐다. ‘중국 옌지의 현지 소식통들이 최룡해 쿠데타와 김정은 체포설을 확인했다’는 얘기까지 나와 진실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룡해가 2인자로 떠오르더니 곧바로 쿠데타를 일으켰느냐” “이젠 북한이 무너지는 거냐”는 반응이 나오는가 하면 “북한이 시끄러우니 별별 소문이 다 나오네”라는 반박 글도 쏟아졌다.
/중국 네티즌들이 김정은을 돼지 영상으로 패러디한 것.
이에 대해 통일부 측은 “최룡해가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아무런 징후도 없다”며 “총정치국장은 군을 감시하는 자리지 군대를 동원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기 때문에 쿠데타설은 설득력이 전혀 없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국방부 관계자도 “북한군에 이상 동향은 전혀 없다”고 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 내부나 탈북자 등이 지어낸 말일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북한 내부 상황이 생각보다 어지럽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고 했다.
이 글이 유포될 당시 김정은은 최룡해와 함께 최근 사망한 김국태 당 중앙위원회 검증위원장을 조문했다. 또 최룡해를 비롯한 군 수뇌부는 이날 김정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기도 했다. 이튿날인 17일에는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의 사망 2주기를 맞아 추모 행사에 참석한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처형한 이후 중국 인터넷에 김정은을 비꼬는 사진과 풍자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홍콩 대공망(大公網)은 17일 포토샵으로 조작된 ‘김정은 체포 사진’이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등에 떠도는 ‘김정은 체포 사진’은 북한군이 김정은의 양팔을 붙잡고 있는 장면이다. 김정은의 군부대 시찰 사진을 합성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네티즌의 김정은 패러디물. '독재는 부끄러운 일'이라는 문구를 목에 걸고 있다.
일부 네티즌은 이 사진에 ‘독재는 부끄러운 일(獨裁可恥)’이라고 적었다. 중국 인터넷에는 김정은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패러디한 사진만 모아둔 사이트도 있다. 포털 사이트에 ‘네티즌 패러디 김정은 전집(金正恩遭廣大網友PS恶搞囧圖全集)’을 검색하면 김정은 사진이 수백 장 뜬다.
웨이보에는 ‘죽기 직전 김정일과 아들(김정은)의 대화’라는 우스개가 인기다.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주체사상을 지키고 핵무기를 계속 개발하라”는 유언을 남기면서 중국어로 “부야오구푸(不要辜負·기대를 저버리지 마라)”라는 말을 덧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김정은이 이를 “부야오구푸(不要姑夫·고모부는 필요 없다)”로 잘못 알아듣고 장성택을 처형했다는 것이다
■ 2018.02.16 '김정은 코스프레' 선보인 '하워드'가 본 北응원단,
'김정은 코스프레' 선보인 '하워드'가 본 北응원단, "놀람, 충격... 몇몇은 키득대"
'(올림픽에서) 또다시 김정은으로 나타날 계획이 있나’라고 묻자 “비밀”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한 단일팀이 마지막 경기를 치른 14일 강원도 강릉시 관동 하키센터에 한 남성이 등장했다.
덩치 큰 남성은 ‘올백’ 머리, 검은색 옷과 뿔테 안경을 썼다. 언뜻 봐도 북한의 김정은을 연상시키는 외모였다. 한반도기를 흔들며 북한 응원단 앞을 지나가던 그는 경기장 관계자들의 제지를 받고 밖으로 쫓겨났다고 한다.
/북한 응원단 앞에서 한반도기를 들고 이동하는 하워드를 제지하는 요원들.
김정은 분장을 한 이 남성은 호주 출신의 ‘하워드’라고 한다. 하워드의 모습에 일반 관중들은 웃음을 터트렸지만, 북한 응원단은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응원단 일부는 고개를 돌리거나 애써 외면하려는 기색을 엿보이기도 했다.
기자들이 응원단원 중 한 명에게 이 남성에 대해 묻자 “무슨 소리네? 너 누겨? 이거 누구야? 좀 보내라”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이날 하워드는 경기장 요원들에 의해 쫓겨나면서 정강이를 맞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북측 요원으로 추정되는 이들에게) 정강이 맞아... 숙련된 폭력단(thugs)”
하워드는 왜 ‘김정은 코스프레’에 나섰을까. 그는 16일 국내 한 매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왜 김정은 코스프레를 했는지 비교적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해당 남성은 가수 겸 작곡가로 활동 중인 홍콩계 호주인으로 확인됐다. ‘하워드(Howard)’도 본명이 아닌 가명이라고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내가 한 건 단일팀을 응원한 게 전부”라며 “정치적인 의도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단지 북한이 너무 유머감각이 없다고 생각했고, 남한은 (내 응원을) 내버려뒀어야 했다”고 말했다. 정강이를 맞았다는 의혹에 대해 그는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정강이를 맞았다”며 사실임을 시인했다.
하워드는 다만 “나를 때린 사람들은 남한 경찰이 아니었다”면서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을 봤을 때 북한 측 경호원들 같았다”고 추정했다. 이들에 대해 하워드는 “관중과 언론의 눈을 피해 고통을 주는 숙련된 폭력단(thugs)”이라고 주장했다.
하워드가 본 북한응원단의 반응은 "첫째는 놀람, 충격이었고, 몇몇은 키득댔다"고 말했다. 하워드의 얘기만 보면, 북한응원단 중 일부도 하워드의 돌발 행동에 꽤나 흥미를 느꼈던 듯하다.
하워드는 가명... 본명은 북한의 보복 때문에 공개 안 해
하워드는 “(정치 지도자에 대해) 아무리 심각하게 생각하더라도 그를 조롱하는 건 표현의 자유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라며 “그 누구도 풍자의 대상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한 경찰과 관계자들이 북한의 명령을 따른다고 생각해 매우 유감이다. 북한 응원단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남한의 손님들이고, 그들은 자유의 나라에 있다는 걸 알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2013년 초부터 SNS 등에 김정은을 흉내 낸 사진을 올렸다고 한다. 유명세를 탄 그는 각종 광고와 뮤직비디오에 등장하기도 했단다. 그해 5월 하워드가 출연한 이스라엘 햄버거 프랜차이즈 업체의 CF가 공개돼 국내 언론에도 소개됐다. 광고의 내용은 김정은이 햄버거를 먹으면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향해 경고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하워드가 운영하는 페이스북의 주소는 ‘김정음(Kim Jong Um)’이다.
▲2013년 5월 이스라엘 햄버거 프랜차이즈 CF에서 김정은으로 분장한 하워드. 사진=하워드 페이스북
하워드는 “김정은과 닮았다는 얘기를 들은 뒤로 아예 전문 흉내꾼으로 나서기로 했다”며 “그 덕분에 돈도 많이 벌었고, 북한 정권과 김정은을 풍자하면서 언론의 주목도 크게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본명은 공개하지 않는다고 했다. 북한의 보복 때문이다. 하워드에게 ‘이번 올림픽에서 또다시 김정은으로 나타날 계획이 있나’라고 묻자 그는 “비밀이다. 한번 지켜보라”며 짧게 답했다고 한다.
하워드는 호주 현지 언론인 ‘선라이즈’와의 인터뷰에서도 “북한이 이 대회를 탈취(hijack)하도록 둘 수 없다. 호주인으로서 끔찍한 정권이라는 점을 사람들에게 상기시키고자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북한 응원단이 자유의 국가 한국에서도 감시를 받고 있었다며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지난 9일 개막식에도 등장
▲지난 9일 평창올림픽 개막식 때 트럼프 분장을 한 남성과 등장한 하워드.
사실 하워드의 등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평창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던 지난 9일에도 김정은 분장을 하고 등장했다. 당시 그의 옆에는 트럼프 대통령 분장을 한 남성도 있었다. 이들은 함께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기도 했다.
한참 동안 사람들의 관심을 즐기던 두 사람은 결국 관계자들에 의해 쫓겨났다. 조직위 관계자는 “복장이 문제가 아니라 미디어석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내보낸 것”이라고 밝혔다. 미디어석은 일반인 입장이 불허되는 구역이다. 이들은 제지를 당해 바깥으로 쫓겨나면서도 “우리는 정당하게 입장권을 구매했다. 거칠게 밀지 말고 신사적으로 대하라”고 외쳤다.
내부 관계자들에게 이들은 ‘눈엣가시’였겠지만, 관중에겐 관심의 대상이었다. 사람들의 사진촬영 요청도 이어졌다. 누군가 하워드에게 이름을 묻자 영어로 "김정은"이라고 답하는 여유도 보였다. ‘어디에서 왔느냐’고 하자 “평양에서 왔다”, 직업도 ‘김정은’이라고 말했다. ‘왜 이런 퍼포먼스를 준비했냐’고 하니 “평화를 위해서”라고 했다. 하워드는 대화를 나누던 중 갑자기 “배가 고프다”며 상점 쪽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쫓겨나는 와중에도 끝까지 익살과 여유를 부린 하워드. 그가 다음엔 또 어떤 퍼포먼스를 보일지 궁금해진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김일성과 강남스타일
/미 시사주간지 뉴요커가 트위터에 공개한 최신호 표지 - 전쟁놀이하는 어린이로 풍자
/인민의 고혈을 짜내는 패러디 - 중국
■ 괴뢰들 길들이기
/늙은 군단장 이상 사격 훈련
/이를 보고 좋아하는 미친놈
/동네 아이들 병정놀이 같은 김정은과 괴뢰들
/이건 무슨쇼?
/깡마른 아이들이 부실한 식사를 하는 것을 보고 웃고 있는 발달장애아 배불뚝이
/왕과 신하
/졸았다고 군 장성을 죽인놈이 지가 졸고 있다 - 16.6.29 최고인민회의
■ 이설주 이야기
http://www.youtube.com/watch?v=xsAUBG1KADM&feature=player_embedded = 병사의 발자욱
http://www.youtube.com/watch?v=bEhNwU2qP7M&feature=player_embedded - 리설주와 관현악단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LvQd7yAjfwg
North Korean Pop - 특권층 용 동영상
/2003년의 이설주 남북적십자 행사인 나무심기
■ 고수석이 본 북한의 동정 - 칼럼 중앙일보
□ 2015.01.27 평양의 난방 … 주민은 구멍탄, 고위층은 한국산 태양광
▲평양 시내 한 주택의 지붕에 설치된 태양열 집 열기. 전기를 생산해 입주자에게 난방을 공급한다.
북한의 겨울은 아주 춥습니다. 영하 40도까지 내려갈 정도입니다. 또 4월까지 이어질만큼 깁니다. 북한 사람들이 강하고 억센 건 날씨 영향도 있다고 합니다. 주민들은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견뎌낼까요? 연료로는 구멍탄을 포함한 석탄을 가장 많이 활용합니다. 다음으로 나무, 석유, 프로판가스 순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왜 그런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석탄 많아도 운반 못해 공급 부족
김정은 신년사 "산림 복구" 강조에
나무 채취까지 막아 주민들 불만
우선, 석탄은 전기 부족으로 공급의 악순환을 겪고 있습니다. 북한에 석탄은 45억톤(추정치) 정도 매장돼 있다고 합니다. 엄청난 양입니다. 하지만 캐내는 것 못지않게 운반은 더 큰 고민거리입니다. 석탄을 탄광에서 캐내 연탄공장으로 옮겨야 하는데 이동수단인 기차에 전기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섭니다. 기차가 운행을 중단하는 경우가 다반사죠. 북한은 한때 경유와 전기로 기차를 운영했는데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로 경유가 공급되지 않아 전기로만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극심한 가뭄으로 전체 발전량의 63%를 차지하는 수력 발전에 큰 차질이 생겼지요. 그러니 전기가 더 부족해졌습니다. 전기 부족은 석탄 운반뿐 아니라 북한 경제 전반에도 동맥경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이 연탄공장에서 연탄을 만들고 있다.
나무도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1980년대 중반에 시작한 벌목과 다락밭 조성으로 산림을 크게 훼손해 땔감용으로 부족하다고 합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전당, 전군, 전민이 떨쳐나 산림복구전투를 힘있게 벌려 조국의 산들을 푸른 숲이 우거진 황금산으로 전변시키라”고 지시한 게 그 때문입니다. 북한 당국은 허가되지 않은 지역에서 땔감을 채취할 경우 단속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북한 당국과 주민 간 갈등이 끊이질 않습니다. 탈북자 강혜원씨는 “산림감독원이 동원돼 단속하고 있는데 힘들여 땔감을 구해온 주민들이 땔감은 물론 낫과 도끼 등 도구까지 압수당하면 감독원과 다투는 경우가 많다”고 말합니다. 당장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김정은이 말한 황금산은 공염불인 셈이죠.
/노동신문이 1월 19일 1면에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를 인용해 산림복구를 강조하고 있다. [중앙포토]
석유는 난방용 석유 곤로 등에 사용됩니다. 중국에서 수입하는데 산업·수송·군사용으로 활용됩니다. 지난해 냉랭한 북중 관계로 그 양이 줄었습니다. 게다가 불법으로 유출돼 주로 고위층이나 신흥 부유층을 중심으로 소비됩니다. 불벌 유출된 석유류는 ‘연유장사(기름장사꾼)’들에 의해 북한 전역으로 유통되지요. 돈이 있어야 사서 쓸 수 있습니다. 북한군 훈련 기간에는 항공기 기름의 사용량이 늘어 해당 군부대 군인들이 이를 빼돌려 민간 도소매상에게 팔기도 합니다.
프로판가스가 북한에서 연료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2003년 무렵입니다. 주로 중국산이죠. 프로판 가스는 작은 건 30위안(1위안=한화 170원 정도), 중간급은 50위안, 큰 건 70위안 정도 합니다. 국경지역에는 전문적으로 프로판가스만 충전시켜주는 장사꾼들까지 등장했습니다.
북한은 요즘 연료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태양광, 태양열, 우드팰럿 등으로 대안을 찾고 있습니다. 태양광은 태양전지판이 비싸 일부 고위층과 신흥 부유층이 주로 사용합니다. 이들은 주로 중국산 태양전지판을 구입하지만 불량품이 많아 가격이 더 비싸도 한국산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 태양열은 가격이 저렴해 신흥 부유층들에게 태양광보다 인기입니다. 우드팰럿(wood pellet, 나무 숯)은 낙엽과 풀, 강냉이 뿌리, 벼 등과 같은 산림 및 농업부산물들을 압착 성형한 것으로 보일러에 넣어 난방에 씁니다.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합니다. 겨울나기는 남한도 어렵지만 북한이 더 어렵습니다. 남북관계가 개선돼 북한 주민들이 마음놓고 남측 제품을 사용할 날은 언제일까요.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 2015.03.03 "무능한 남편보다 소가 낫다
북한에서 여성이 시장경제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장마당이 확대되고 시장경제가 조금씩 스며들고 있는 가운데 그 새로운 역할 공간을 여성이 채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은 점점 기를 펴고 살고 있지만 남성은 기죽어 삽니다. 직장에 나가더라도 자재가 없어 도로공사와 같은 사회부역활동에 동원되기 일쑤이고 직장에 나가지 않으면 범죄자 교화소로 알려진 단련대에 끌려가 일하기도 합니다. 북한의 국영기업 550개 가운데 50개 정도만 운영되는 데서도 알 수 있지요.
장마당 등 시장경제 여성이 주역
일할 곳 없는 남자들 점점 기죽어
뇌물 생기는 권력기관 일꾼 인기
경제문제로 갈라서는 가정 늘어
여전히 여성이 남편에게 의존하는 고위직 간부들의 가정을 제외하곤 웬만한 가정에선 돈을 여성이 벌고 있으니 집안에서 부부간의 역할도 바뀌고 있습니다. ‘남존여비’ ‘남편공대(男便恭待)’…. 이제 흘러간 유행가입니다.
여성이 장사로 가족생계를 책임지면서 남편이 아내 대신 집안일을 도와주는 경향까지 생겼습니다. 최고의 신랑감은 물론 경제적 능력이 있는 사람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아내의 일을 도와줄 수 있는 성격을 가진 남자를 꼽는다고 합니다.
남성 쪽에서도 생활력이 강한 여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늘고 있습니다. ‘남편의 외조’가 행복한 가정의 필수요건이 돼 가고 있다니 과거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북한에선 여성 전투기 조종사도 등장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지난해 11월 28일 이들의 비행훈련을 참관했다. [중앙포토]
북한 남성이 기를 펴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북한에서 남성은 고급중학교(한국의 고교)를 졸업하는 18세부터 대부분 10년간 군대에서 복무해야 합니다. 여성이 먼저 사회에 진출하게 되는 거죠. 결혼할 시기가 되면 남녀 간의 사회적 경험에 자연스럽게 격차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여성은 생계활동에 종사한 경험이 있는 반면 남성은 군대 관련 활동밖에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생활력에서 여성보다 떨어집니다.
시장경제가 스며든 장마당에서 장사를 할 수 있는 자격은 만 50세 이상의 기혼여성에게 주어집니다. 기혼여성 중엔 나이를 속이거나 뇌물을 주고 장마당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지요. 북한이 기혼여성에게만 장마당을 허용하는 것은 비공식경제 부문에서 남성보다 덜 위협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북한 여성은 장마당 이외에도 밀수·무역·신고원 등 다양한 분야의 시장경제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여성이 돈을 벌다 보니 가정에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여성이 남편의 경제적 무능함을 탓하면서 이혼이 늘고 있습니다. 이런 말까지 생겼답니다. “남편에게 해주는 것을 소에게 해주면 소가 남편보다 더 많이 벌어다 준다”는.
돈은 이미 북한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됐습니다. 배급제가 거의 실종되면서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황금 제일주의’가 정당화되고 있는 것이지요.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은 “배급이 중단되면서 모든 것을 시장에서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돈을 주고 사는 상황이 됐으니 돈이 북한 주민들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북한 여성이 가장 이상형으로 생각하는 남성은 물론 당·군·보위부·검찰소 등의 권력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정치적 명예 때문이 아닙니다. 권력기관에 있으면 뇌물을 받아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인식에서입니다.
이런 분위기는 대학을 선택하는 데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과거엔 김일성종합대학이 최고였지만 지금은 평양외국어대학이 가장 가고 싶은 대학으로 꼽힌다고 합니다. 졸업 이후 외국에 나가 외화벌이를 할 기회가 열려 있기 때문이지요.
김은주 소장은 “북한 여성들은 북한 체제를 옹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자식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경제활동에 억척같이 뛰어들고 있다”며 “어찌 보면 1960~70년대 우리 어머니 세대의 삶과 모습이 똑같다”고 설명합니다.
□ 2015.03.17 북한 원유 매장량 세계 8위
북한에 원유가 있을까. 오래전부터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어쨌든 외국 기업들은 북한 원유 탐사에 뛰어들고 있다.
"함경도 명천·온성 등 상당량 매장"
영국·몽골서 한때 원유 탐사 입질
정주영 "평양, 기름더미 위에 있다"
북, 채산성 안 맞아 원유 수입 택해
몽골의 에이치비오일(HBOil JSC)은 2013년 6월 북한의 국영 정유회사인 승리화학연합기업소의 지분 20%를 1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북한 나선특별시 등에서 내륙 유전과 가스전 탐사에 나서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에이치비오일은 지난해 5월 평양 양각도 호텔에 사업 이행을 위한 사무실을 마련했다.
앞서 영국 아미넥스사는 2004년 북한 동해 동한만 분지에 원유가 매장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북한 전 지역에서 20년간 원유 탐사와 개발을 하기로 북한 조선원유개발총회사와 계약했다. 아미넥스의 홀 사장은 “북한에서 채굴 가능한 원유 매장량은 40억~50억 배럴”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미넥스사는 2012년 급변하는 북한의 정치상황을 이유로 북한 사업을 포기했다.
중국도 북한 원유에 관심이 많다.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는 2005년 서한만 분지에 약 600억 배럴의 원유가 매장돼 있다고 발표했다. 노두철 북한 부총리는 중국과 서한만 분지의 원유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까지 체결했다. 하지만 북·중 관계가 냉랭해지면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들 지역 외에 함경북도 명천군에 3억 배럴, 함경북도 온성군에 1억~3억 배럴 등이 매장됐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매장량은 파악되지 않았지만 평안남도 안주군과 개천군에도 원유가 매장돼 있다는 말들이 많다.
북한 원유에 대한 관심은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먼저 촉발시켰다. 정 명예회장은 1989년 방북 후 “평양이 기름더미 위에 떠 있다”고 말하면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북한 대외경제성 관계자는 “북한의 원유 매장량은 600억~900억 배럴 정도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어느 정도 믿어야 할 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의 원유매장량은 아랍에미리트에 이어 세계 8위에 해당된다. 어쨌든 북한에 원유가 상당량 매장돼 있다는 말은 점점 정설이 되는 듯하다. 그렇더라도 현재는 그림의 떡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모두 원유 채굴에 관한 문제다. 첫째, 비용이다. 원유 탐사를 위해 광구 하나를 개발하는 데 시추선 등 1000만 달러 이상이 필요하다. 북한은 이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외부 투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둘째, 채굴 장비가 거의 없다. 북한은 중국산 채굴 장비를 수입하려고 10년 전부터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실패했다. 채굴 장비가 금수품목인데다 중국이 북한의 원유 탐사에 부정적이다. 북한이 원유를 채굴하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국의 판단이다.
북한은 현재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원유를 들여 오고 있다. 중국은 다칭(大慶) 유전의 원유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단둥(丹東)을 거쳐 북한 신의주로 건넨 뒤 평안북도 피현군 소재의 봉화화학연합기업소로 보낸다. 총 연장 1000㎞. 봉화화학연합기업소는 중국에서 들여온 원유를 가공해 휘발유·등유·경유·윤활유·항공정유 등으로 생산해 공급하고 있다.
최근 북·중 관계가 불편해져 원유 공급이 줄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러시아는 북·중처럼 파이프라인이 없어 선박으로 원유를 보낸다. 선박은 블라디보스토크 등 극동 지역 항구에서 출발해 나진항·청진항 등으로 들어간다. 아직은 중국보다 적은 양이지만 최근 북·러 관계가 좋아지면서 조금씩 중국을 대신하고 있다. 북한은 나진항 근처에 있는 승리화학연합기업소에 들어오는 러시아산 원유에 특혜를 제공하고 있다. 무관세를 적용한 것이다. 그 영향으로 러시아산 원유가 중국산보다 저렴하다. 최근 북·러 간의 훈풍을 반영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북한은 최근 유가가 급락하자 원유 탐사 대신 수입이 낫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러시아산 원유를 더 수입하고 있다. 코트라가 집계한 지난해 1~9월 북한이 러시아에서 수입한 원유는 약 1500만 달러.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12% 증가했다.
하지만 대북 소식통은 “북한이 채산성을 고려해 현재는 원유 수입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국제 유가가 오르면 탐사 및 개발을 재개할 것”이라며 “한국기업이 참여하기를 북한도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 2015.03.18 북한 경제개발구 13곳 상세 자료 입수
북한이 2013년 발표한 경제개발구 13곳에 대한 상세한 자료를 입수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한국의 국회) 상임위원회는 2013년 5월 경제개발구법을 채택한데 이어 그해 11월 경제개발구 13곳을 지정했다. 그리고 지난해 6곳을 추가해 경제개발구는 현재 모두 19곳이다. 이 자료는 19곳 가운데 먼저 지정한 13곳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해외 투자 유치를 위한 설명회에 사용하고 있다. 그 동안 13곳이 어디인지는 알려졌지만 상세한 지도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 평안북도 압록강 경제개발구
▲북한의 서북지역 압록강에 위치,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의 유명한 관광지 호산(虎山)과 마주하고 있다.
(2) 자강도 만포 경제개발구
▲국제적인 관광 및 무역 서비스와 현대 녹색 농업기지로서의 개발가치를 가지고 있다
(3) 자강도 위원 공업개발구
현대적인 광물자원가공, 목재가공, 기계설비제작업, 농축산물 가공업을 기본으로 하면서 잠업 및 담수 양어 과학 연구기지와 연결하려고 한다.
(4) 양강도 혜산 경제개발구
(5) 황해북도 신평 관광개발구
(6) 황해북도 송림 수출가공구
(7) 함경남도 흥남 공업개발구
(8) 함경남도 북청 농업개발구
(9) 함경북도 청진 경제개발구
/철광석을 비롯한 풍부한 광물자원과 수산자원, 대규모 흑색 야금공업기지를 건설하려고 한다.
(10) 함경북도 어랑 농업개발구
(11) 함경북도 온성섬 관광개발구
(12) 강원도 현동 공업개발구
(13) 남포시 와우도 수출가공구
/북한의 가장 큰 무역항을 가지고 있는 오랜 항구도시에 위치하고 있다.
□ 2015.06.30 물주머니·졸짱·굴포 총동원 … 북 ‘왕가뭄’과 전쟁
곡창지대 황해남도 논 80% 말라
유엔 “올 수확량 최대 26% 줄 것”
작년엔 수확물 개인분배제로 극복
올해는 물절약형 과학농법 도입
북한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왕가물’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걱정이 크다. 지난해 가뭄의 영향으로 모내기를 하는 데 물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6월 8일 현재 전국적으로 44만1560여 정보(1정보=3000평)의 모내기를 한 논에서 13만6200여 정보의 볏모 들이 말라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피해가 가장 큰 지역은 곡창지대로 알려진 황해남북도와 평안남도, 함경남도 등이다. 황해남도는 모내기한 면적의 80%, 황해북도는 58%의 논이 마른 상태다. 유엔식량농업기구는 쌀을 비롯한 북한의 올해 곡물 수확량이 12%에서 많게는 26%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북한은 지난해부터 이런 사태에 대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해 왔다. ‘물주머니’(저수지) 등 각종 ‘물잡이시설’(제방둑)을 건설해 흐르는 물을 저장하거나 ‘굴포’(논밭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든 웅덩이)와 우물을 파고 ‘졸짱’(땅속 깊이 관을 박아 땅속의 물을 끌어올리는 설비)을 박아 지하수를 퍼올려 물을 댔다.
무엇보다 북한은 지난해 왕가뭄을 극복한 가장 큰 요인으로 포전(圃田)담당제를 꼽는다. 포전담당제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체제 출범 이후 도입한 제도다. 과거 북한은 수십 명에서 100명 정도까지 함께 농사를 지어 생산물을 대부분 국가에 바쳤다. 그러나 지금은 10~25명으로 구성된 분조를 가족단위인 3~5명으로 나눠 ‘포전’이라 부르는 논밭을 일구게 해 일부는 세금으로 내고 나머지는 실적에 따라 개인이 갖게 한다.
▲북한은 가뭄과의 싸움을 독려하는 포스터까지 제작해 주민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 포스터는 우물 파기, 졸짱 박기, 굴포 만들기 등을 가뭄 대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졸짱은 땅 속에 관을 박아 물을 끌어올리는 설비이며, 굴포는 논밭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든 웅덩이를 말한다. [AP=뉴시스, 중앙포토]
개인에게 분배 몫이 돌아가다 보니 농민들이 증산을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고 한다. 북한 농업과학원 농업경영연구소 지명수 실장은 지난 28일 “포전담당제의 도입으로 지난해 왕가물이 들어닥친 불리한 기후조건에서도 알곡 증산을 이룩했다”고 밝혔다. 평균주의보다 성과주의가 낫다는 것을 북한도 알게 된 셈이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지난해엔 왕가물에도 불구하고 곡물 수확량이 571만t으로 2013년보다 5만t 증가했다.
올해는 왕가물과 싸우기 위해 물절약형 농법을 본격적으로 도입한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농업 부문에서 물절약형 농법을 비롯한 과학농법들을 적극 받아들이라”고 지시했다. 벼영양단지모에 의한 모내기 방법이 이 농법의 하나다. 영양단지라 불리는 마른 논에 땅을 판 뒤, 모를 내고 포기마다 물을 주는 방식을 말한다. 물을 댄 논에서 모내기를 하는 재래식 방법과 다르다. 지난해 황해남도 배천군에서 이 방법을 사용해 2013년보다 물 소비량을 줄이면서 7000t을 더 생산했다고 한다.
물절약형 농법 등으로 설령 왕가물을 이겨낸다 해도 걱정이 끝나는 건 아니다. 북한의 진짜 걱정은 큰물(홍수)이다.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에 따르면 박영남 평양 순안구역 협동농장 관리위원장이 “물절약형 농업 등으로 왕가물과는 싸워볼 만한데 장마철에 비가 오기만 하면…”이라고 걱정하는 대목도 나온다. 속담에 ‘가물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는 말이 있다. 가뭄은 아무리 심해도 거둘 게 좀 있지만 장마가 지면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다는 뜻이다.
□ 2015.09.08 보통강 넘치면 평양은 물바다 … 김정은‘큰물’ 대책 골몰
▲북한 나선특별시에 지난달 22~23일 250㎜ 이상의 많은 비가 내려 40여 명이 사망하고 1070여 동, 5240여 세대가 파괴됐다. [사진 유튜브 캡처]
▲김정은이 지난해 6월 기상수문국을 방문해 장비 현대화를 강조했다. [사진 조선중앙TV 캡처]
북한이 지난달 22~23일 나선특별시에 내린 ‘큰물(홍수)’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26일 “큰물로 40여 명이 사망하고 1070여 동, 5240여 세대의 살림이 파괴됐다”며 “기관·기업소·학교·탁아소·유치원·병원·진료소 등 99동의 공공건물과 철다리를 포함한 철길 51개소가 파괴됐다”고 밝혔다. 농경지는 125정보(1정보=3000평)가 완전침수됐다고 한다.
지난달 나선서 폭우로 40명 숨져
부실한 배수 인프라가 피해 키워
상하수시설, 남북경협 동력 될 수도
북한은 큰물만 쏟아지면 속수무책이다. 북한 속담에 ‘가물(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가뭄은 아무리 심해도 거둘 게 좀 있지만 장마가 지면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다는 뜻이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지난달 28일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열고 ‘나선시 피해 복구 전투지휘사령부’를 조직했다. 김 제1위원장은 “군 최고사령관의 명령”이라며 “군대를 중심으로 피해복구사업을 당 창건기념일(10월 10일)까지 끝내라”고 지시했다.
북한이 큰물에 약한 이유는 상하수도 시설이 부족해서다. 생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도시를 건설하면서 상하수도 시설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아파트만 많이 건설하다보니 비가 조금만 와도 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고 도로에 물이 차서 주민들의 생활에 많은 지장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적으로 보면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거의 해마다 큰물이 내리니 상하수도 시설을 제대로 건설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지시대로 되지 않았다. 2007년 8월엔 보통강이 범람하면서 평양의 많은 도로가 물에 잠겼다. 당시 김 위원장은 “지금까지도 상하수도 시설을 제대로 하지 않은 ‘덕’을 본다”며 건설부문 사람들을 호되게 질책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북한은 지금 나선특별시 복구에 한창이다. 1000여 세대와 80여 동의 공공건물에 대한 부분보수가 완료됐다고 한다. 김 제1위원장은 피해주민에게 생선을 공급하는 등 필요한 물자를 보냈다.
유럽연합(EU)과 유엔 산하 아동구호기관인 유니세프 등도 큰물 피해 지원에 나섰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산하 인도지원사무국 대변인실은 지난 3일 “최근 북한 홍수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15만 유로(약 2억원)를 지원했다”고 밝혔다. 대변인실은 “이번 지원은 국제적십자사(IFRC)의 요청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며 “수재민들에게 깨끗한 물과 위생용품을 제공하고 임시 거처 등을 마련하는 데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니세프도 6만여 명이 사용할 수 있는 의료용품을 지원할 예정이다.
하지만 내년에 큰물이 발생하면 또 다시 올해와 같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특히 평양시가 문제다. 올해는 운좋게 비껴갔지만 언제 나선특별시와 똑같은 상황이 될지 알 수 없다. 북한은 지난 2009년부터 평양시에 아파트 10만 호 건설을 추진해 3만 호 정도 완공한 상태다. 문제는 상하수도 시설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을 추진했다는 점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생전 “다른 건설은 당분간 하지 말고 상하수도 시설을 보수·정비하는 데 달라붙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도 말이다.
남은 7만 호를 짓는 과정에서 이 문제까지 해결하려고 하니 최근엔 건설 속도가 떨어지고 있다. 그래서 요즘 북한에선 ‘평양 속도’란 구호가 다시 유행하고 있다. 원래 1958년 평양시를 재건할 때 나온 구호다. 6·25전쟁 이후 평양에서 ‘14분에 살림집 1대’를 건설하자는 식의, 노력경쟁을 위한 공식구호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평양속도였다. 그렇게 속도를 내다보면 부실·부작용도 따라오기 마련인데도 지금 다시 평양속도란 말이 나오고 있다.
과거 북한은 한국 정부가 아닌 민간인들에게 여러 차례 상하수도 시설을 보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그래서 한국산 상하수도관 등이 북한에 전달되기도 했다. 북한은 통수성이 좋고, 시공하기도 좋은 데다, 유지보수가 필요 없을 정도로 반영구적이란 이유에서 중국산보다 한국산을 선호한다고 한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상하수도 시설 등을 포함해 북한의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은 한국엔 새로운 기회”라며 “최근 해외에서 고생하는 한국 건설회사들에게 평양은 제2의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2015.11.17 북·중 교역 첨병 화교들, 장마당 주무르며 ‘돈주’로 등장
북한엔 중국 국적을 가진 화교(華僑)가 8000~1만 명 정도 살고 있다. 주로 평양과 신의주, 청진 등에 산다. 세계 각국의 화교에 비해선 크지 않은 인구규모다. 하지만 이 화교들이 북한 ‘장마당’(비공식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 북한에 늘고 있는 ‘돈주’라는 신흥자산계급 중에도 화교들이 많다. 북·중 사이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화교들이 교역의 첨병 역할을 하면서다.
이들은 북한에서 버섯·해산물 등 인기품목을 중국으로 들고 나가 북한으로 올 때는 전자제품·의류 등을 무관세로 가져오곤 한다. 대부분 보따리 장사들이라 정상적인 거래가 아니라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 물론 뇌물이 동반된다고 한다.
북한 장마당에 한국과 미국의 드라마와 영화 DVD, 중국산 휴대전화 등 없는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외국 물건들이 많은 것도 이들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 탈북한 한 인사는 “화교들이 들여오는 물건들은 반입금지 품목들이 대부분이라 희소가치가 높고 인기가 있다”며 “화교들은 유통경로를 장악하고 있어 북한 내부의 물건들도 빨리 많이 구할 수 있어 장마당을 장악하다시피했다”고 말했다.
북한의 화교들은 대부분 중국의 문화대혁명(1966~76년) 시기에 넘어왔다. 탈북민 이화영(71)씨는 “화교는 북한 노동당원이 될 수 없어 1970년대는 거지처럼 살았다”고 전했다. 그러다가 반전이 생긴 게 덩샤오핑(鄧小平)을 비롯한 실용주의 세력이 등장하면서 화교들에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서다. 북한 주민 가운데 극소수만 북·중 무역을 하던 시절 화교들은 중국을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개인 무역을 거의 독점해 부를 키워 나갔다.
북한이 국제적 고립과 자연재해 등으로 극도의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절도 화교들에겐 기회였다. 북한 내부에서 식량 배급이 중단될 때 화교들이 가져온 중국산 식료품 등 소비재들이 북한 시장을 장악했다.
불법도 서슴지 않았다. 화교들은 북한 당국이 금지하고 있던 고려청자·조선백자 등 역사 유물에 손을 댔다. 이들은 북한 주민들을 고용해 개성 등 역사유물이 있는 장소를 도굴하거나 어부를 시켜 옛날에 침몰된 선박에서 골동품을 찾았다. 골동품은 중국을 통해 한국이나 미국, 유럽 등으로 팔려나갔다.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서울지국장은 “고려청자의 경우 화교들은 북한에서 50달러 정도에 넘겨받은 뒤 중국을 통해 한국에 팔 때 5000달러 이상을 받았다”고 했다.
북한 당국도 가만 있지만은 않았다. 도굴한 북한 주민과 이를 지시한 화교들을 처벌한 적도 있고, 화교들의 불법 상행위를 감시·적발하곤 했다. 지난 9월의 홍콩의 주간지 ‘아주주간’은 “올 들어 최소 100명의 화교가 당국에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체포된 화교들은 ▶중국 정부에 북한 정보를 제공한 혐의 ▶북한에 한국산 DVD를 반입한 혐의 ▶북한 내부 상황을 촬영해 한국·중국 등으로 유출한 혐의 등으로 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이런 조사는 대부분 그때뿐이었다.
북한이 체제를 위협할 수도 있는 화교들에게 관대한 이유는 화교들이 북한 인민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장마당에 공급하거나 인민들에게 월급을 주면서 결과적으로 인민생활을 향상시키는 양면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화교들은 돈벌이가 시원찮은 북한 주민들을 장마당의 ‘매대 주인’으로 고용하고 있다. 이들의 상당수가 화교들로부터 월급을 받고 있다고 한다.
□ 2016.01.12 북한이 가장 겁내는 뉴스는 ‘중국의 다롄·단둥 출입금지’
▲평양의 한 주유소에 근무하는 여성 주유원 2명이 야간에 주유소를 찾은 고객 차량에 기름을 넣고 있다. 출근시간에 교통체증이 생길 정도로 택시 등 차량이 늘면서 평양 주유소는 24시간 영업하며 주유원은 대부분 여성들로 기름 도난 방지를 위해 엄격한 절차를 거쳐 선발된다. [사진작가 자카파커 제공]
중국이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이 북한을 압박할 강력한 카드를 가지고 있으면서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아 대북 제재가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북·중 물품 오가는 길목 … 경제 타격
북한 경제제재에 가장 확실한 전략
원유 중단은 긴축 익숙해 효과 미미
북 ‘수소폭탄’ 압박, 중국 의지에 달려
중국은 실제로 북한을 압박할 강력한 카드가 있을까? 강력한 카드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대북 원유 공급 중단이다. 하지만 그 효과는 기대만큼 크지 않다. 북한 대외경제성 관계자는 “중국이 현금을 받지 않으면 원유를 주지 않은 지 오래 돼 북한은 공급 중단에 익숙해졌다”고 밝혔다.
북한은 수입 원유의 90%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표 참조> 중국은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이지만 북한에는 1974년부터 원유를 수출했다. 중국이 1972년 닉슨 대통령을 초청한 것에 대한 북한의 섭섭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북·중은 1974년 ‘조·중 석유공급 협정’을 체결하고 한·중 수교가 체결되는 1992년까지 매년 100만t 정도를 국제시세의 절반 이하의 가격으로 주었다. 소련의 대북 공급가격이 배럴당 11달러인데 비해 중국은 배럴당 4.3달러였다.
거래방식은 구상무역(barter trade)으로 북한은 무연탄·시멘트를 석유 대금으로 중국에 갚았다. 1980~90년대 무연탄·시멘트의 수출액이 석유 대금에 미치지 못할 경우 중국은 원유 공급을 수 차례 중단했다. 2000년대는 핵실험을 했을 때도 줄이거나 중단하기도 했다.
북한은 1992년 1월 새로운 ‘북· 중 무역협정’을 체결하면서 어려운 상황을 맞았다. 중국이 구상무역에서 경화 결제방식으로 변경하고 국제시세를 고려한 가격으로 결제할 것을 요구했다. 북한은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북·러와 이미 같은 방식으로 체결해 버티다가 결국 합의했다.
대외경제성 관계자는 “새로운 협정 이후 원유 수입 가격이 2배로 뛰었고 북한은 중국에서 원유 수입량을 절반으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해도 50만t 정도를 중국에서 수입했다.
중국이 ‘북한 달래기’ 용도로 원유를 무상으로 지원하는 경우도 드물게 있었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 145만t을 공급하면서 절반은 무상으로 나머지는 국제가격의 반액으로 제공했다. 또한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 등 중국의 지도부가 방북하기 이전에 무상으로 2만t 정도 지원했다. 하지만 그것도 2000년 이후는 사라졌다. 대외경제성 관계자는 “중국이 원유 공급을 중단하면 북한은 원유 절약령을 내려 긴축 상황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중국의 대북제재 카드로 금융제재도 거론되고 있다. 2013년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은 공상은행·건설은행 등 주요 은행이 북한과 거래를 끊었다. 중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외환거래를 취급하는 중국은행 정도만 제재 대상이 아닌 북한 기업과 거래하는 정도다. 따라서 북·중 사업가들은 대부분 위안화·달러 등 현금거래를 하고 있다. 단둥 동흠무역회사 리유쑨(李友順) 사장은 “금융제재 이후 처음에는 현금거래가 불편했지만 지금은 익숙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중국이 국제사회의 요구대로 원유 공급 중단과 금융제재를 하더라도 일시적이거나 효과가 미미할 가능성이 높다. 리 사장은 “한·미·일과 달리 대화를 통한 해결에 무게를 둔 중국이 미국 등 의 요구에 시늉은 내겠지만 국제사회가 만족할 수준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중국의 남은 강력한 카드는 뭘까? 북한 선박의 중국내 입항 금지를 포함한 국경 폐쇄다. 관광·무역·인적 교류 등을 금지하면 북한은 곤란해진다. 리 사장은 “북한 선박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다롄(大連)만 금지해도 효과는 금방 드러날 것이며 추가로 북·중 물류가 오가는 단둥과 훈춘을 봉쇄하면 제대로 된 제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이 이런 선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진징이(金景一) 베이징대학 교수는 “시진핑 정부 들어 ‘당(黨) 대 당’ 특수관계를 정상적인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전환시키려고 했지만 수 십년 동안 이뤄졌던 관성이 쉽게 전환되기는 어려울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 2016.10.11 선제타격을 생각하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핵탄두로 추정되는 물체를 살펴보고 있다.
국방부가 선제타격을 언급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조건은 북한의 핵무기 사용이 임박했다는 징후가 있을 때다. 최근 오바마 행정부의 초대 합참의장(2007~2011년)을 지낸 마이크 멀린 전 의장도 선제타격을 말했다. 그가 제시한 조건도 국방부와 비슷하다. 그 조건은 ‘북한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에 아주 근접하고 실질적으로 미국을 위협한다면’ 이다.
선제타격은 한반도의 핵전쟁을 의미한다. 선제타격의 전제조건은 북한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완전히 무력화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도 피해를 각오해야 한다. 북한이 서울과 원전 근처에 핵무기를 떨어뜨릴 경우 그 피해는 상상할 수 없다.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탄 ‘리틀 보이(Little Boy)’는 우라늄 235 폭탄으로 전체 인구 343,000 명 가운데 7만명이 사망하고 13만명이 부상했다. 완전히 연소 파괴된 가옥은 1만호, 이재민은 10만명에 달했다.
남북한이 서로 핵공격을 시작할 경우 결과적으로 한국이 이기겠지만 한반도에 남은 인구는 1천만명 정도에 불과할 것이며, 생존자들은 50년 가까이 방사능에 오염된 땅에서 살아야 한다. 문자 그대로 끔직한 일이다.
한국이나 미국에서 선제타격이 나오는 이유는 북한의 추가도발을 막고자 하는 예방적 조치가 깔려 있다. 북한이 이에 겁을 먹고 호전적인 태도를 유화적으로 바꿀 지는 미지수다. 북한은 중국·러시아가 버티는 한 한·미의 선제타격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핵시설이 있는 곳이 북·중, 북·러 접경지역들로 북한의 핵시설이 파괴될 경우 중·러 지역에도 방사능의 영향이 미칠 수 있다.
그리고 조건이 붙어 있는 선제타격은 소극적으로 비칠 수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려고 하면 선제공격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을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다.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처럼 우물쭈물 하지 않으면 된다.
선제타격에 대해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이 명쾌하게 언급했다.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핵과 미사일 도발을 일삼는 북한에 선제타격(preemptive strikes)을 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북한을 특정하지 않고 말하겠다. 일반론적으로 말해 작전 사안의 하나로 선제 군사행동은 미리 논의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맞는 말이다. 선제타격은 미리 말할 필요가 없다. 어니스트 대변인의 말을 놓고 한국에서는 해석이 분분했다. 선제타격 성공을 위한 기습의 필요성을 언급했다고 해석하는 쪽과 당연한 얘기를 했을 뿐이라고 반박하는 쪽도 있었다.
선제타격은 우리의 희생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결정이다. 그래서 말을 꺼내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국방부는 외교부가 아니다. 말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보다 행동으로 제압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 2017.01.27 북한이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싫어하는 속사정
북한은 미국을 정말 무서워한다. 미국의 첨단 무기는 이라크 전쟁에서 보여주었듯이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상상을 초월했다. 이를 TV에서 지켜 본 북한의 공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이 미국과 동맹을 맺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북한이 최근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임시중지하면 핵실험도 임시중단하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미국은 북한 보도가 나온 지 몇 시간 만에 “일상적인 한-미 훈련을 핵실험 가능성과 부적절하게 연결하는 북한의 성명은 암묵적 위협”이라고 거부했다.
북한은 뻔히 받아들여지지 않을 이 제안을 왜 했을까?
북한의 속사정은 이렇다. 북한은 한미합동군사훈련 동안에 두 달 가까이 전쟁준비를 하느라 경제활동을 할 수 없다. 한·미가 아무리 북한의 남침에 대비한 훈련이라고 해도, 북한은 북침 훈련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만약 북·중이 연례적으로 북중합동군사훈련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아무리 훈련이라고 강조해도 우리가 그것을 고지곳대로 믿지 않을 이유와 같다.
북한은 두 달 가까이 전쟁준비 하다 보니 경제에 쓸 돈이 국방으로 흘러간다. 북한의 살림살이를 담당하는 노동당 재정경리부는 가뜩이나 돈이 없어 쩔쩔매고 있는데 전쟁준비로 소모되니 죽을 맛이다. 그렇다고 전쟁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경하게 나서는 군부를 설득할 명분과 힘이 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1942~2011)이 살아 있을 때 한미합동군사훈련이 당장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군부의 주장을 무시하거나 그렇지 않다고 설명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한미합동군사훈련이 북침으로 어릴 때부터 교육을 시켰기 때문이다. 북한 군인들은 정보 부족과 경험 부족으로 시키는 대로 행동한다. 그들은 북침으로 받아들이고 전쟁준비를 해야 한다. 그래서 김정일은 알면서도 군부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당 재정경리부는 어쩔 수 없이 그 지시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북한은 한미합동군사훈련을 하기 전에 다양한 방법으로 훈련 중단을 요구한다. 지난해 신선호 유엔 주재 북한대사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시작되기 전에 “한국과 미국이 훈련을 실시할 경우 한반도와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파괴한 책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며 “국제사회도 키리졸브와 독수리 군사연습(한미합동군사훈련)이 실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을 바라보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 가운데 돈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북한이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싫어하는 속사정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안보위협을 내세우지만, 속으론 국방에 아까운 예산이 소모되고 경제활동이 중단되는 것이 더 싫은 것이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김정은 시대의 주민들
□ 김정은 이모 고영숙, 미국 망명해 성형하고 은둔 생활"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체제의 이면엔 북한 로열 패밀리의 ‘망명 도미노 현상’이 있었다. 김정은(29)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스위스 유학 시절 뒷바라지를 했던 친이모 고영숙(55)의 미국 망명 막전막후(幕前幕後)를 김대중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고위직을 역임한 인사와 전직 고위 외교관이 4일 본지에 소상히 밝혔다
고영숙은 김정은의 생모인 고영희(2004년 사망)의 동생으로 김정은이 1996년부터 2001년 1월까지 스위스 베른에 유학할 때 약 2년간 뒷바라지했던 인물이다.
이 인사에 따르면 고영숙이 망명을 결행한 시점은 그동안 알려진 2001년이 아니라 1998년 5월 초중순. 남편 박건(57)과 함께 스위스 주재 미국 대사관 측에 망명 의사를 타진했다고 한다. 김정일의 지시로 김정은을 돌보던 고영숙은 당시 제네바 주재 북한 대표부 소속 외교관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있었다. 미국 측은 은밀히 고영숙의 신분을 확인한 뒤 두 사람의 망명을 받아들였다.
이와 관련해 이 국정원 출신 인사는 “당시 미국은 우리 측엔 알리지도 않은 채 고씨 부부의 신병을 스위스에서 빼낸 뒤 인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소재한 미군기지를 통해 미국으로 보냈다”고 말했다.
고씨 부부를 상대로 미국 정보 당국은 북한 로열 패밀리의 깊숙한 정보를 대량으로 확보했다고 한다. 이들은 “(북한 내부에 대해) 너무 많은 비밀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두려웠다”고 망명 동기를 진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고영숙은 현재 성형수술로 신분을 위장한 채 미국 정보 당국의 보호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이 인사는 “미국 정보 당국은 고씨 부부의 이름과 신분을 바꾼 것은 물론 성형수술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미국에서 특별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사용하는 ‘증인 보호 프로그램’을 적용했다는 의미다.
고영숙의 망명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고영희는 “혼자 살겠다고 (동생이 가족을 버리고) 도망치다니. 반드시 찾아내 꼭 (빚을) 갚아주겠다”며 격노했다고 이 인사는 덧붙였다. 고영숙 부부 망명 이후 고영희는 시름시름 앓다 2004년 숨졌다.
이와 관련해 1998년 스위스 주재 한국대사관에 근무했던 외교관 K씨는 중앙일보의 확인 요청에 “스위스 주재 미국 대사관은 고씨 부부가 스위스를 떠난 뒤에도 망명 사실을 우리 측에 알려주지 않았다”며 “그들이 스위스를 떠난 지 얼마 지난 5월 하순께 현지에서 망명 사실을 간접적으로 파악했다”고 밝혔다.
전직 국정원 인사는 또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42)의 이모 성혜랑(77)은 현재 그간 망명지로 알려진 미국이 아니라 영국에 거주하고 있다고 전했다. 성혜랑은 김정남의 생모인 성혜림(2002년 사망)의 언니다. 결국 김정은 위원장의 친이모는 미국에, 김정남의 친이모는 영국에서 각각 망명 생활을 하고 있는 기묘한 구도가 형성된 셈이다.
북한 로열 패밀리의 첫 망명 사건은 1982년에 발생했다.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의 조카인 이한영(본명 이일남)이 주인공이었다. 그는 80년 북한 6차 당대회에서 김일성의 후계자로 김정일이 추대된 지 2년 만에 스위스에서 한국으로 망명했다가 97년 경기도 분당 자택에서 북한 공작원으로 보이는 괴한의 총에 맞아 숨졌다. 이후 성혜랑이 96년 모스크바에서 서방으로, 그의 딸 이남옥은 앞서 92년 서방 국가로 망명했다.
98년 고영숙의 망명은 김일성 사망(1994년) 이후 북한이 극심한 식량난에 따른 이른바 ‘고난의 행군’ 말기였다. 외교관이던 그의 오빠 고동훈(김정은의 외삼촌)도 유럽으로 망명했다.
2011년 12월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이후엔 김정남이 마카오·싱가포르·중국을 전전하고 있다. 지난해 말엔 망명설도 돌았다. 그의 아들 김한솔(19)은 프랑스 파리정치대학에 진학해 사실상의 유랑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10월 보스니아의 한 국제학교 재학 중 핀란드 TV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삼촌인 김정은을 독재자로 표현하기도 했다.
장세정 기자
□ 김정은 인기 뚝…손 흔들어도 ‘멀뚱멀뚱
김정은 정권이 물질적으로 가장 많은 혜택을 베풀며 공을 들이고 있는 평양에서조차 김정은에 대한 인기가 뚝 떨어졌다고 북한전문 자유아시아방송(RFA)이 6일 보도했다.
RFA는 최근 평양을 방문한 함경북도 소식통의 말을 빌려 "평양이 겉보기엔 더 화려해 졌지만 실지 속을 들여다보면 김정일 시대보다 훨씬 가난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면서 "220만 명밖에 안 되는 평양시민들에게 조차 식량배급을 제대로 주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4월까지는 강냉이로나마 제대로 배급을 주었지만 5월부터는 한 달에 20일분씩만 통 강냉이로 배급을 주다 8월과 9월에는 보름치밖에 공급하지 못했다는 것.
특히 빈부격차가 갈수록 커져 일반주민들이 겪는 상실감이 크다고 강조했다.
이 소식통은 평양에서 북한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은 아무 것도 없었다며 지방의 부자들이 중국인민폐만 쓰고 있는데 반해 평양시 부자들은 달러만 쓴다고 전했다. 그는 평양시내에서 중국인민폐를 쓰면 "한 수 딸리(모자라는)는 사람으로 취급 받는다"고 덧붙였다.
함경북도의 또 다른 대학생 소식통은 지난 9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금수산기념궁전'을 찾았던 이야기를 들려주며 "평양시 민심이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김정은이 민심을 살피기 위해 일부러 열차를 타고 금수산기념궁전을 찾았다며 열차속도를 최대한으로 낮추고 김정은이 직접 승강대에 나가 금수산기념궁전으로 향하는 주민들에게 손을 흔들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김정은을 알아 본 일반 주민과 대학생들은 모두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을 뿐 환호하거나 만세를 외치는 사람은 없었다며 김정은도 3분가량 승강대에서 손을 흔들다 어색하고 화가 난 얼굴로 열차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전했다. 또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평양건설건재대학' 학생들이 그 일로 하여 사상투쟁을 벌이는 등 엄중한 비판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소식통들은 "일반 주민들은 식량공급도 제대로 안 되는데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들은 차마 눈뜨고 못 볼 정도의 호화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이 오늘 날 평양의 실정"이라며 "이러한 이유로 하여 김정은 체제에 대한 평양시민들의 실망과 분노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동아닷컴>
□ 김정은과 세트장, 그리고 용기
지난해 8월 김정은이 낡은 목선을 타고 연평도에서 수 km 떨어진 무도에 나타났을 때 기자는 그가 섬 주둔 병사들과 찍은 한 장의 사진을 주목했다.
사진 속에는 목이 가느다랗고 눈이 움푹 들어간, 얼핏 봐도 심한 영양실조에 걸린 것이 확연한 앳된 병사가 여럿 보였다. 김정은 옆에 선 병사는 키가 150cm도 안 돼 보였다.
김정일 시대엔 상상할 수 없었던 사진이었다.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한다면서 수시로 군부대를 방문했다. 하지만 그가 방문하는 부대는 몇 달 전부터 열심히 꾸며놓은 세트장이었다. 기자 역시 북한에 있을 때 어느 부대의 진지 경관 공사에 동원된 적이 있다. 김정일은 몇 달 뒤 이 부대를 방문해 잘 꾸며놓았다고 칭찬했다. 김정일이 찾는 부대의 영양실조 환자들은 건장한 병사들로 교체됐다. 시찰 코스에 의례적으로 포함되는 부대 식당엔 전체 군단이 달라붙어 채워놓은 육류와 산나물 같은 부식물이 늘 가득 차 있었다.
북한의 모든 정보를 독차지한 김정일이 이런 내막을 몰랐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김정일에겐 현실을 마주할 용기도, 이를 극복할 의지도 없었던 것이다. 그에게 현지시찰이란 체제유지를 위한 쇼였을 뿐이었고, 연기를 위해선 세트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김정은은 아버지가 아닌 할아버지 김일성의 1940∼1960년대 스타일을 열심히 학습해 모방했다. 그러니 당시의 김일성은 세트장은 찾아다니지 않았음도 잘 알 것이다. 김일성은 한 농장에서 보름 넘게 지내며 현실을 파악했고, 낡은 초가집에서 잠도 잤다.
허름한 목선을 타고 영양실조 군인들과 사진을 찍은 모습을 보며 나는 김정은에게 기대를 걸어보려 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후 사진에선 영양실조 환자들이 사라졌다. 그는 다시금 아첨쟁이들이 준비한 세트장에서 웃고 있었다. 집권 1년 반이 지났건만 그는 북한에서 가장 경제 상황이 열악한 함흥 이북은 아직 찾지도 않았다.
지도자에겐 현실을 피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 해도. 고난과 시련의 현실은 영웅의 탄생을 준비하는 세트장이 될 수도 있다.
1960년대 누구도 한국에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을 때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찾아가 “선배님,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머리를 숙이고 나라의 경제발전을 위한 종자돈을 얻어왔다. 누구도 지금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굴하다 하지 않는다.
김정은이 세트장을 벗어난다면 절반은 성공할 것이라 생각한다. 어느 기차역이나 장마당에 불시에 가 봐도 좋다. 그에게 인민을 위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어느 현실도 그에게 결단의 용기를 주겠기에.
북한의 전격 제안으로 내일 남북당국 간 회담이 서울에서 열린다. 기자는 이번 회담에서 김정은의 용기를 찾아보고 싶다.
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 김정은의 ‘용감한’ 염소 방목
“히야, 분대장 동지, 저… 저길 보십시오. 산에 염소들이 있습니다.”
이동 중 잠시 멈춰선 북한군 차량 행렬에서 한 병사가 벌떡 일어나 감격스럽게 소리쳤다. 그러자 다른 병사들도 환호했다. “와, 진짜네. 여긴 아직 염소가 있구나…. 천국에 왔다야….”
주변에 있던 민간인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얘들은 염소 처음 보나.”
1990년대 중반 경제난이 닥치기 직전 북한의 내 고향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그 병사들은 주둔지 변경을 명령받고 강원도에서 막 도착했던 참이다.
병사들이 왜 염소를 보고 놀랐는지는 1년도 안 돼 드러났다. 마을의 염소는 물론 닭 돼지 토끼 등 가축의 씨가 말라 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용감한 ‘공산군’은 주인이 못 나오게 문에 자물쇠까지 걸고 훔쳐 갔다. 도둑질로 처벌받은 군인은 없었다. 몇 년 뒤 군인들이 ‘선군(先軍)시대’가 왔다고 기고만장해 돌아다닐 즈음 우리 마을도 집안에서 키우지 않는 가축은 내 것이 아닌 시대가 됐다.
그 뒤부터 나도 다른 지방에 갔다 산에서 염소를 발견하면 “히야, 여긴 아직 염소가 있네” 하고 감탄하게 됐다.
1998년인가 김정일의 지시가 떨어졌다.
“산에 토끼와 염소 떼가 흐르게 해 인민들이 고기와 우유를 맘껏 먹게 하시오.”
이 지시를 집행한다면서 북한은 아사자가 속출하는 마당에 스위스에서 토끼 종자는 물론 풀씨까지 수입하기도 했다.
하나 설사 하느님의 지시라 한들, 군복 입은 도둑 떼가 흐르는 산에 염소 떼까지 흐르게 하는 방법은 도저히 없었다. 그렇다고 지시를 거역할 수도 없고…. 하지만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는 법이다. 농장은 염소 새끼를 몇십 마리 사다 놓았고 얼마 뒤 방목공이 우리에서 함께 잠을 잤음에도 불구하고 예상대로 군인들이 다 훔쳐갔다. 지시를 지킨 것도 아니고 지키지 않은 것도 아닌 걸로 끝난 셈이다.
다음 해 새로운 지시가 떨어졌다.
“양어장을 대대적으로 건설해 인민들이 민물고기를 많이 먹게 하시오.”
숱한 돌격대가 만들어져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전국 도처에 수영장만 한 구덩이를 수없이 파 놓았다. 하지만 전기와 사료가 없는데 양어가 되나. 다 아는 사실을 김정일만 모르는 듯했다. 그렇다고 목을 걸고 말하는 사람도 없고. 결국 이 지시도 수많은 물웅덩이를 전국에 남긴 채 끝났다. 파지 않았으면 옥수수라도 심어 먹지.
사람들이 “장군님, 우리가 언제 민물고기를 먹겠다고 했습니까”라고 수군댔다. 그로부터 얼마 뒤엔 지방 사람은 구경도 하기 힘든 전기로 난방을 하는 타조 농장도 새로 건설됐다.
고려 시절 문인 이규보가 북한에 환생해도 똑같이 썼을 것 같다.
“사람이 사노라면 우스운 일 하도 많아/낮에는 바빠서 다 웃지 못하고/밤중에 이불 속에서 혼자 웃노라/손뼉을 치며 소리 내어 웃노라.”
이달 24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선 대규모 축산기지를 만들기 위해 떠나는 수천 명의 평양시 돌격대원들을 바래는 행사가 성대하게 열렸다. 강원도 세포, 평강, 이천에 수만 정보의 인공 풀판과 자연 풀판을 만들어 가축을 기르겠다고 한다. 하필 이 겨울에 삽 메고 강원도로 떠나는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게 보이는 건 둘째 문제다.
그 지역은 돌을 열 개 던지면 아홉 개가 군인 머리에 떨어진다고 할 정도로 여러 개의 사단이 몰려 있는 곳이다. 반면 공급은 가장 안 좋아서 군관들조차 먹을 것만 보면 눈이 뒤집히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김정은이 지금 고깃덩어리들을 키우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걸 보며 북한 주민들은 이불 속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까. 웃고 있을까, 울고 있을까.
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 김정은의 숙청은 주원장(朱元璋)을 무색게 할 정도
북한 2인자 장성택의 실각에 관해 의논과 추측이 분분하다. 그는 무슨 죄를 지었는가? 앞으로 북한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이런 질문에 답하려면 북한이 ‘왕국’이라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국가를 왕조국가라는 틀에 넣어 추측해보면 해답의 윤곽이 잡힌다.
왕조국가에선 보통 새 임금이 즉위하면 ‘살공신(殺功臣)’을 감행하여 권신과 귀족들을 대거 숙청한다. 그들의 반역이 두려워서이다. 능력이 약한 군주일수록, 능력이 강한 대신이 많을수록, 숙청은 더욱 광범위하고 잔혹하다. 중국 역사상 숙청을 가장 잔혹하게 한 군주는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과 명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이다. 둘 다 비천한 신분으로 궐기하여 대권을 쥐었기 때문이다.
숙청을 비교적 적게 한 군주는 당태종(唐太宗)이다. 본인 능력이 비상했고 주위의 대신들이 상대적으로 약했기 때문이다. 평화적 정권교체와 관련, 중국 역사에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이라는 말이 있다. 술 한잔 대접하며 군권을 포기시킨다는 뜻이다. 송태조(宋太祖)가 당나라 말 대군벌의 폐해를 기억하고 있다가 군 거물들에게 후한 은혜를 베풀며 군권을 하나하나 포기시킨데서 나온 말이다.
김일성은 별 신분과 능력 없이 소련을 등에 업고 북한의 1인자가 됐다. 당시 김일성보다 출신 성분이나 능력이 훨씬 우수한 사람이 주위에 많고도 많았다. 그가 1956년부터 1968년까지 남조선공산당, 친소련파, 친중국파 등을 수없이 숙청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넘어가는 정권교체는 대체로 평화적이었다. 김정일은 1972년부터 권력을 이양받기 시작해 1982년, 즉 김일성이 죽기 10여 년 전에 거의 북한의 최고 권좌에 올라앉았다. 김정일은 ‘배주석병권’이 아니라 ‘선군정치’라며 군을 더 우대해주며 그들의 환심을 샀다.
보통, 나이 어린 군주를 올려 앉히면 기존 권력층이 한동안 신변의 위협을 느끼지 않으며 편안히 해먹을 수 있다. 그러므로 구 권력층은 나이 어린 군주의 즉위를 선호한다. 아마 북한의 권력층은 김정은을 올려 앉히면서 한 10년은 무사할 것으로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큰 오판이며 착각이었다. 30세란 나이는 한 나라를 이끄는 데는 어릴지 몰라도 정적을 물리치기에는 충분한 나이이다.
장성택은 구체적으로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가? 별 의미 없는 질문이다. ‘살공신(殺功臣)’은 원래 구체적 죄명 없이 행하는 숙청이다. 최고 권력자가 정적을 제거할 마음만 먹으면 없는 비리도 만들어낼 수 있다. ‘계란 안에서도 뼈다귀를 찾아낼 수 있다(鷄蛋裏能挑出骨頭)’는 중국말이 그런 뜻이다. 중국역사 경험을 보면 공신을 제거해도 혈연이 아주 가까운 사람은 웬만해서는 살려주었다. 이번에도 김정은은 고모부인 장성택을 죽이지 않고 한직에 두면서 반(半)연금 상태에서 여생을 보내게 할 가능성도 있다.
금자탑 꼭대기의 몇몇만 제거해도 그 뿌리까지 뽑으면 몇 만 명이 된다. 김정은은 작년에 15명, 금년에 40명의 측근을 제거하였다. 이 많은 사람들의 뿌리까지 뽑아매면 총 수만 명이 처벌을 당하게 된다. 800만 인구의 명나라에서 3만여 명을 제거한 주원장이 무색할 정도이다. 이렇게 큰 죄악을 저지르고도 태평무사할 리 없다.
조선일보
□"김정일 사망 소식에도 주민들이…" 김정은 충격
최근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등 북한 지도부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에 담담했던 주민 반응을 전해들은 뒤 적잖이 놀란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사망 충격으로 죽은 이들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30일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NKSIS)에 따르면 북한 노동당 조직지도부는 지난해 12월 23일 북한 사회 추이에 대한 중간 점검 보고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17일 김정일 사후 북한 주민의 동향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들은 김정일 사후 극심한 통곡이나 충격 등으로 사망한 주민이 단 한 명도 없다는 보고를 받고 놀랐다고 한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에는 충격을 받고 사망한 북한 주민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정일 사망 소식이 알려진 지난해 12월 19일 이후 5일간 집계 결과, 자연사로 숨진 북한 주민은 106명이었다. 그러나 김정일 사망 충격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없었다. 김정은을 비롯한 지도부는 주민들의 행동에 경각심을 가지고 대책 마련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조선중앙TV 등을 통해 전해진 당시 분위기는 김일성 사망 때와 확연히 달랐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주민의 통곡 소리 자체도 작았고, 억지 슬픔을 연출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김일성 사망 때와 김정일 사망 때의 달라진 북한 내 반응은 주민들의 충성도 변화를 시사하는 잣대로 여겨진다. 최근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주민들이 무능력한 북한 정권을 불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밤새워 호상(護喪)을 섰던 김일성 사망 당시와 달리 이번엔 `호상을 서라`는 북한 당국의 지시에 "엄동설한에 무슨 미친 짓이냐"며 불만을 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김정일 前처남 "독재자죽음에 의미 부여필요없다"
"김정일은 갈 때가 되서 간 독재자일 뿐입니다. 다른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습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첫 아내인 성혜림(2002년 사망)의 오빠인 성일기(79)씨는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에 "무덤덤하다"고 잘라말했다.
성씨는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19일 밤 은평구 자택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어려서부터 전투를 300여 차례나 치르다보니 누가 죽고 사는 것에 무뎌졌다. 김정일이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그냥 죽을 때가 됐으니 죽었나보다 싶을 뿐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내 "김정일 때문에 우리 가족은 비극을 겪었고 신세를 망쳤다"며 "김정일에게는 뜨거운 피가 없다. 그는 냉혈동물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씨는 북한 주민들이 김 위원장 사망소식에 오열하는 모습이 TV에 나오자 "저게 정상적인 것이냐. 반세기 떨어져있으면서 세뇌가 돼 사람들이 이상해졌다"고 흥분하기도 했다.
그는 뉴스에 김 위원장을 향해 힘껏 박수를 보내는 북한 군중의 모습이 보일 때마다 "저건 공산주의가 아니다. 김일성ㆍ김정일이 다 망쳐놨다"고 말했다. 성씨는 경남 창녕의 만석 지기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좌익 성향이던 부모를 따라 평양에 간 뒤 학도병으로 징집됐다.
18살 때인 1950년부터 빨치산 활동을 시작했다. 성씨의 둘째 동생인 성혜림은 1971년 김 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을 낳았지만 이후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쫓기듯 러시아 모스크바로 갔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첫째 동생 성혜랑은 성혜림을 간호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나온 뒤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후 한국으로 망명한 아들 이한영이 북한 공작원에게 피살되면서 한국을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현재 유럽의 한 나라에 머무르고 있다. 남매는 통화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성씨는 동생이 위험에 처할까 봐 전화번호도 묻지 않았고 혜랑씨가 3∼4개월에 한번씩 전화를 걸어와 서로 생사를 확인하는 것이 가족 간 교류의 전부다.
"혜림이가 낳은 조카 김정남은 한 번도 못 봤어요. 러시아에 머무르던 혜림이에게 한국으로 오라고 하자 동생이 `아들을 저쪽(북한)에 두고 어떻게 남쪽으로 가요`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던 기억만 남아 있습니다"
성씨는 "아무리 바보같은 녀석이라도 자식은 자식이라 놓고 오지를 못하는 혜림이를 보며 `저런게 모성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언론을 통해 정남이를 보면 머릿결이 비슷해 핏줄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성씨는 몇 년 전 중풍을 앓아 오른팔과 발을 전혀 쓰지 못한다. 성씨는 자신의 빨치산 활동을 소재로 한 소설 `북위 38도선`이 출간된 2006년 한때 언론과 접촉하기도 했지만 이후 이렇다할 대외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그는 남매를 비극으로 몰고 간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나도 김정일처럼 절뚝거린다. 나이도 많아 저 세상 갈 날이 머지않았다"며 "이미 다 과거인데 무슨 말을 하겠느냐"며 회한에 젖은 듯 눈을 감았다
(연합뉴스)
□ 김정일을 김정일이라 말도 못하고.
솔직히 좀 놀랐다. 일부 예비군 훈련장에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사진을 표적으로 사용한 것에 대한 북한의 반발이.
사실 북한 입장에서는 저런 것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긴 하다. 교주의 얼굴이 타 종교 신자들의 사격 표적이 됐다는 소식을 접한 어떤 사이비 종교단체의 반발이나 비슷한 거다.
그런데 문제는 저걸 어떻게 표현하냐 하는 방법상의 문제다. 북한이란 사회에서 “남조선 도당이 장군님의 초상화를 목표물로 하고…”란 말은 죽어도 할 수 없는 말이다.
예전에 이 블로그에도 한번 쓴 적이 있지만 1990년대 남한 기업인이 북한에 들어가서 술자리를 갖다가 김정일 이야기가 나온 자리에서 “전주 김씨들은 정력 하나는 대단하다”고 말한 일이 있다.
참고로 김일성, 김정일은 다 전주 김씨들이다. 결국 김정일의 정력이 대단히 세다는 말이다. 북한이란 사회에서 남들이 있는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도 모르는 척 하면 그건 반동이 되는 길이다.
결국 신고가 들어갔고 보위부가 출동해 이 기업인을 잡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기업인을 체포한 뒤 그 경위서를 어떻게 써서 올리는가 하는 것이다.
“이 사람이 장군님의 정력이 세다고 했습니다”고 죽어도 쓸 수 없는 일. 만일 그렇게 썼다간 쓴 놈 자체가 무엄하다고 목이 날아가는 사회가 북한이다.
보고서 작성이 그야말로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가 돼 버린 셈이다. 결국 누구도 무서워서 보고서를 작성할 수 없었고 이 기업인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석방돼 돌아왔다.
북한은 이런 사회다.
싸움질하며 욕설을 퍼붓다 상대방에게 삿대질을 날려도 그 상대방이 김일성 배지가 달려있는 가슴을 손바닥으로 떠받치며 “엇따 삿대질이냐”하고 소리치면 손가락이 쑥 움츠러드는 것이 북한이다.
그런 사회에서 김정일 얼굴이 표적이 됐다고 떠들다니 참, 이상하다.
물론 3일 발표한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을 보면 김정일 사진을 거론한 일은 없다. 그 대목을 살펴보면 이렇다.
“세계는 나라와 민족의 최고존엄을 지키기 위한 우리 천만군민의 보복대응이 어떤 것이고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함부로 덤비고 있는 이명박 역도와 괴뢰 군부호전광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가를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 북한은 ‘최고존엄’이라는 말로 에돌아 표현했다. 평소엔 북한에서 거의 쓰지도 않는 표현이다.
그렇긴 하더라도 노동신문 등에 나오면 사람들이 다 알아버리는데, 그건 북한으로 봤을 때도 교양적 가치가 전혀 없는 일이다.
아무리 이명박 대통령을 때려죽일 적으로 만들고 싶다고 한들, 차마 “남조선에서 장군님 초상화를 목표판으로 쓰고 있다”는 말을 주민들에게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렇게 되면 모든 주민들은 집에 걸려 있는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를 쳐다보면서 저것이 표적지가 되는 상상을 해볼 것인데 북한 입장에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상하다. 노동신문을 통해 북한 주민들이 분노했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노동신문은 5일 논설에서 “역적패당의 반공화국대결책동이 ‘체제통일’ 소동으로 강화되고 나중에는 우리의 최고존엄을 헐뜯는 참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적시했다.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도 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에 대한 평양방직공장, 황해남도 안악군의 마명협동농장, 황해북도 사리원의 피복공장 등의 주민들의 거친 반응을 보도했다.
또 내각 사무국 국장, 김일성대 법률대 강좌장, 평양 보통강구역 품질감독소 감독원, 농근맹중앙위원회 위원장 등 언론계, 교육계, 노동계 등 북한의 사회 각계 인물들이 쏟아내는 비난을 그대로 방영했다.
이들은 “우리는 한 몸이 그대로 총탄이 되고 포탄이 되어 이명박 깡패 역도들에게 쌓이고 쌓인 원한과 참고 참은 분노를 터쳐 지구상에서 영영 쓸어버리고야 말 것”이라거나 “우리 인민군대의 무자비한 타격을 피할 자리는 지구상에 없다는 것을 역적패당은 똑똑히 알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출연자는 섭외부터 시작해 격한 반응의 표정까지 주도 세밀하게 연습한 뒤 노출되는 것이라 이들이 말하는 말은 별 의미가 없다. 어차피 써준 대로 이야기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저들이 정말 김정일 사진이 표적이 된 것을 알고 저렇게 격분한 일이라면 개인적으로는 참 반가울 뿐이다.
앞서 말한 대로 북한 주민들이 집에 걸린 초상화를 쳐다보면서 그것이 표적판이 되는 상상을 줄 수 있다면 이건 참 대단한 일이다.
북한에서 떠들면 떠들수록 잃는 것이 훨씬 많다. 이명박 정부 증오하게 만들려 하다가 김정일의 이미지를 구겨지게 만드는 것이다.
북한 당국이 당연히 그걸 생각할 텐데, 이상하게 최고존엄을 계속 떠들다니. 다른 사람은 이상할 것이 없이 그냥 지나갈 문제겠지만, 북한에서 나서 자라 공부한 나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마침 노동신문 논평이 나온 날 5일 저녁(일요일이었다) 북한에 살고 있는 주민과 전화를 할 기회가 생겼다.
내가 물어도 보기 전에 그가 전화기에 대고 빠른 속도로 먼저 말한다.
“거기서 우리 공화국기에 대고 총을 쏘니까 요즘 국경경비 엄청 세진단 말입니다. 보위부가 비상에 들어가고 전파탐지도 강화되고 난리입니다.”
저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북한은 주민들에게 최고존엄이 국기라고 선전하는가 보다.
그럼 그렇지….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
■ 북의 권력구조
□ 2015.12.17 김정은 집권 4년, 北 권력지도
‘집권 4년’ 김정은의 북한
김정은 체제 이끄는 ‘친위 6인방’… 실세중 실세는 김원홍
新 권력엘리트 누구인가
《 17일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지 4년째 되는 날이다. 김정일의 아들 김정은은 4년 동안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후견인 체제를 자신을 위한 신(新)권력으로 완전히 교체했다. 그 핵심에는 체제 보위, 로열 패밀리, 대외·경제의 3대 축으로 구성된 ‘친위 권력 6인방’이 있다. 4년간 북한의 시장화도 빠른 속도로 진척됐다. 6인방을 포함한 북한 권력 지도의 면면은 내년이면 집권 5년 차를 맞는 김정은 앞에 놓인 과제를 보여준다. 》
집권 4년 차를 맞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핵심 실세는 체제보위-로열패밀리-대외·경제의 3대 축으로 구성된 ‘친위권력 6인방’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버지 김정일이 2011년 12월 17일 사망하기 전에 만든 후견인 체제의 권력구조가 4년 만에 김정은 친정 체제 구축을 위한 신(新)권력으로 대체된 것이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16일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은 올해 공개 활동에서 김정은을 수행한 횟수가 적지만 대면보고를 가장 많이 하는 인물”이라며 “김원홍이 김정은 권한의 절반 이상을 갖고 있다는 증언까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친위권력 6인방은 김원홍을 비롯해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김양건 오수용 당 비서, 조용원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이다. 집권 5년 차인 내년 7차 노동당대회로 완전한 권력 안착을 추진하는 김정은이 6인방을 통해 권력 통제의 고삐를 죄면서 대외관계 개선, 경제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으로 분석된다.
○ 김원홍, 김정은 권한의 절반 이상?
권력엘리트 감시 통제 결과를 김정은에게 보고하는 김원홍은 실세 중의 실세로 통한다. 그는 김정은이 2012년 4월 노동당 제1비서로 추대될 때 국가안전보위부장에 올랐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은은 2009년 김정일의 후계자로 지명된 뒤 국가안전보위부와 조직지도부에서 활동하면서 사실상 보위부장 역할을 맡았다. 권력을 감시, 통제하면서 권력을 키운 것이다. 권력 장악을 위해 보위부가 중요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정은이 김원홍에게 자신의 후계자 시절 자리인 보위부장을 맡기다 보니 “권한의 절반” 얘기까지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다른 축은 권력엘리트들의 조직과 인사를 담당하는 노동당 조직지도부다. 당 조직관리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조용원은 황병서에 이어 올해 김정은 공개활동 수행 2위를 기록했다. 조직지도부에 조직 담당 조연준, 군 담당 김경옥이 제1부부장으로 있지만 고령이어서 교체될 가능성이 있다.
김여정은 김정은의 행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과 다른 의견을 낼 수 있는 사람은 김여정뿐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김양건의 부상도 주목하고 있다. 올해 당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위원으로 승격된 그는 대남 업무뿐 아니라 병이 깊어진 강석주 대신 국제 담당 비서 역할까지 맡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시대 대외관계의 총책인 셈이다.
오수용은 내각 전자공업상, 부총리 출신의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다. 역시 내각 부총리 출신의 경제·행정 담당가인 곽범기 당 비서와 함께 경제·재정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김정일 시대에는 경제 담당 비서가 없었다.
○ 권력에서 밀려난 군, 건설 속도전에 동원
선군정치를 표방한 김정일 시대의 권력 핵심 축이던 군은 김정은 시대에 밀려났다.
군 총정치국장인 황병서는 군이 아닌 당 출신 인사다. 김정은 집권 4년간 군에선 총참모장이 3차례, 인민무력부장은 5차례나 교체되는 부침을 겪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선군정치로 지나치게 비대해진 군부를 수술해야 김정은이 절대권력을 유지할 수 있고 경제건설에 군부를 적극적으로 동원하기도 쉬워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일 시대의 건설사업에 군인 약 10만 명이 동원된 데 비해 김정은 시대에는 20만 명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2011년 12월 김정일의 운구차를 호위했던 7인방은 김정은 집권 1년 차인 2012년까지만 해도 권력 핵심이었지만 4년 만에 대부분 처형되거나 퇴진했다.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이영호 총참모장이 대표적이다.
친위권력 6인방도 김정은이 내년 개최를 공언한 7차 당 대회를 앞두고 바뀔 수 있다. 정부는 고령(75세)인 데다 최근 아시아 국가에서 척추수술을 받은 황병서도 교체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2017.03.31 북한 김씨 일가가(김정일, 김정은, 김정남, 김평일, 김한솔) 공통적으로 타는 차는?
⊙ 러시아, 중국, 북한 모두 자동차 만들지만, 북한 고위부는 아무도 안 타
⊙ 김평일이 체코에서 타고 다니는 차는 매우 희귀한 차 …
⊙ 북한의 말레이시아, 영국, 베트남 주재 대사관이 보유한 차?
⊙ 야밤에 평양시내 직접 차 몰고 다닌 김정은이 한 말은?
/메르세데스 벤츠 마이바흐 풀만가드
과거 북한 김정일은 메르세데스 벤츠 광으로 잘 알려져 있다. 김정일이 벤츠를 너무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방북에 앞서 평소 사용하던 의전용 BMW 760Li 시큐리티 차량 대신 메르세데스 벤츠 S-class로 바꿔 타고 갔다. 대북 소식통 등에 따르면 김정일은 북한 내 고위급의 승진이나 포상 때 벤츠를 선물로 준다고 한다.
야밤에 평양시내 수퍼카 운전하고, 고속보트 몰고다니는 김정은
/김정일 사망후 미국산 링컨 운구차 옆에 선 김정은(좌) 사진=구글 캡처
대북 소식통을 통해 확인된 2010년 북한에 수입된 유럽산 차량의 총 가격은 미화 약 310만 달러(한화 33억원)였다. 당시 20만 달러(한화 2억2000만원) 이상을 호가하는 의전용 메르세데스 벤츠 S600 풀만가드(Pullman guard)와 아우디의 수퍼카 R8이 포함됐다. 북한으로 유입된 아우디 R8과 같은 수퍼카를 몰고 다닐 만한 인물은 김정은밖에 없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눈이 많이 오는 스위스에서 공부한 김정은에게 4륜구동(AWD, 콰트로)을 탑재해 전천후로 달리던 아우디는 매력적인 차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김정일이 벤츠 광인 것과 달리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김정은은 아우디 광으로 보인다. 앞서 북한으로 들어간 벤츠 S600 풀만가드는 의전용 방탄차량으로 주문자의 요구에 따라서 가격은 더 비싸질 수도 있다.
2011년 말 사망한 김정일은 해당 차량의 호사(豪奢)를 얼마 누리지 못했고, 그의 아들 김정은이 북한 내 시찰 등을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아시아방송 및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은이 야밤에는 직접 자신의 차를 몰고 평양시내를 돌아다니다 83운전수(엉터리 운전자를 일컫는 북한말)들 때문에 교통체증으로 애를 먹었다고 한다. 이후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사람들을 걸러내기 위한 교통포고문을 관계부처에 하달, 뇌물을 받고 운전면허증을 무분별하게 발급해 준 관계자들을 적발했다. 즉 김정은은 자신이 소유한 차량을 직접 몰고 다니며 운전을 어느 정도 즐긴다는 방증이다.
북한에서는 김정은의 운전 실력을 두고 3세 때 차를 몰고 언덕길을 맹속력으로 내려오고, 9세에는 고속보트를 몰았다. 심지어 9세 때 고속보트를 타고 해당 보트 회사의 직원과의 경주에서 이겼다는 내용이 있다. 이에 기자는 해당 보트회사인 스모키 마운틴사의 관계자 닉 윌리엄스 씨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사실 여부를 확인해 본 바 있다. 닉 윌리엄스 씨는 “우리는 북한으로 보트를 판매한 적도 없고, 미치광이(김정은)를 돋보이려고 저런 말도 안 되는 거짓을 꾸며 내는 북한이 우습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북한의 도 넘은 우상화 작업을 보여준 사례다.
김정은의 삼촌, 김평일의 숨겨진 자동차 최초 공개
/김평일(우)이 아들과 딸과 함께 모처를 방문 중이다. 그의 뒤로 벤츠 S클래스가 보인다. 사진=구글 캡처
김평일(金平日, 62세)은 김정일의 이복동생이자 김정은의 삼촌으로 김씨 가문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축에 들며,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에 비해 북한 정권을 잘 알고 있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그가 김정은의 권력을 위협할 만한 잠재적 리더이며, 김정남에 이은 암살 가능성이 가장 유력한 인물 중 한 명으로 보고 있다. 김평일은 체코 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식적인 일정에서는 대사관의 의전용 대사 차량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체코 북한 대사관에서는 메르세데스 벤츠 S 클래스를 대사 차량으로 사용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그의 아들과 딸이 함께 나온 사진의 뒤에 드러난 차량의 번호판 등이 그 단서다. 체코에서 2001년 이전까지 등록된 외교관 차량의 번호판은 파란색 바탕에 노란색으로 글자를 새긴다. 이 벤츠도 이러한 외교관 차량 번호판을 부착하고 있다. 차량은 벤츠 S 클래스 중에서 3세대 모델(W140)로 1991년부터 1999년까지 생산된 모델이다
본지는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던 김평일의 차량으로 추정되는 한 대를 찾았다. 주체코 북한 대사관 맞은편의 관저 안에서 포착된 차량이다. 이 차량은 보기 드문 모델로 1977년부터 1986년까지 생산된 캐딜락 플릿우드 브로햄(Cadillac Fleetwood Brougham)이다. 1990년대 초까지 구소련 통치하에 있었던 체코의 역사적 배경과 문화 등을 고려할 때 1970~80년대 생산된 미국산 차량을 체코에서는 찾기 어렵다. 오래된 구소련제 군용차량 등은 찾을 수 있어도, 미국의 최고급 세단은 구소련 입장에서 적국의 차였다.
/주체코 북한 대사관 주변에 세워진 김평일의 자동차로 추정되는 미국산 캐딜락이다. 사진=구글 캡처
그런데 북한에서는 캐딜락과 같은 미국산 고급 세단이 분단 이후 김일성 때부터 고위급 인사들의 차로 줄곧 사용됐다. 김일성과 김정일 사망 직후 그의 대형 영정사진과 시신을 실은 차도 미국산 1976년형 링컨 컨티넨탈 히어스(Lincoln Continental Hearse)였다. 1970~80년대 북한의 김가는 벤츠만큼 미국산 세단인 캐딜락과 링컨도 좋아했다고 알려졌다. 즉 김평일의 차도 비슷한 시기 북한이 구매한 차로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 내부에선 미국 제국주의를 타파하고 미제 승냥이들을 혼내 주자면서도 정작 고위급에선 미국산 차를 애용했다.
김평일은 1979년부터 해외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따라서 1979년 이전 북한 내부에 있던 차, 캐딜락을 김평일 편에 함께 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김평일 자신에게는 자신의 아버지인 김일성이 챙겨 준 마지막 물건 중 하나이기에 의미있는 차일 수도 있다. 해당 차량은 사진상 비교적 관리가 잘되었으며, 에어컨(당시에는 고급사양) 등이 장착된 풀옵션 차량으로 보인다. 주체코 북한 대사로 있는 김평일은 2015년까지 캐딜락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남의 마카오 거주지 차고 속에 무슨 차 있나?
오랜 기간 동남아 등지를 떠돌아 다닌 김정남이 개인소유 차량이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또 그가 직접 운전을 즐기는지도 미지수다. 그의 거처로 알려진 마카오의 건물은 구조상 지상층에 차고가 딸린 형태다. 이 차고 안에 김정남 소유의 차가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설령 김정남 소유의 차가 있었다고 해도 오랜 기간 차고 안에 방치해 뒀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경호를 해 주기 때문에 자가용을 타고 이동할 경우 경호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국내외 대북자료 등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김정남은 김정일로부터 캐딜락과 벤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차량들은 북한 내에서 김정남이 직책을 맡고 활동하던 시기에 소유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해외 거주를 시작하면서 이 차들을 가지고 나갔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 북한에 있을 당시 그가 소유했던 캐딜락과 벤츠가 어떤 모델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시기적 정황으로 볼 때 김평일이 소유한 것과 유사한 연식의 캐딜락 브로햄과 1990년대 생산된 3세대 메르세데스 벤츠 S 클래스로 추정된다.
김정남이 자가용을 타고 다닐 경우, 주변에서 그 차량의 번호판과 차종을 알고 있어 그의 동선을 미리 파악하기 쉬워진다. 이 때문에 김정남은 택시와 같은 대중교통을 줄곧 활용해 왔다. 그가 암살당한 쿠알라룸푸르 공항도 그가 택시를 타고 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한솔의 자동차는 무엇일까?
/보스니아에서 경호원에 이끌려 가는 김한솔, 그의 뒤로 벤츠가 보인다. 사진=구글 캡처
김한솔은 김정남의 아들이기에 태어난 직후부터 줄곧 해외에서 생활했고, 아버지와 함께 경호의 대상이었다.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자동차에 태워져 이동했기에 그가 운전면허증을 취득했는지조차 확인된 바 없다. 김한솔은 파리정치대학을 다니기 전까지 보스니아에서 유나이티드 월드 칼리지(UWC in Mostar)를 다녔다. 이 학교에 다닐 당시에도 현지 경찰 등의 경호를 받았다. 그가 탑승했던 차량은 검은색 메르세데스 벤츠 E 클래스다. 이 차량은 3세대(W211) E 클래스로 페이스리프트 전 모델이며, 2006년 이전에 생산된 차량이다. 해당 차량의 소유주가 누구인지는 불분명하다. 김한솔이 개인적으로 소유한 차량은 확인된 바 없다.
이번 김정남 암살로 주말레이시아 북한 대사관에 쏠린 관심은 최고조에 달했다. 말레이시아 당국의 조사 결과 암살 배후로 북한이 유력했음에도 북한은 극구 부인, 결국 양국은 자국 내 대사관의 관계자들에게 출국금지 명령을 내리는 등 외교적 마찰이 발생했다. 강철 대사는 북한으로 추방되기도 했다. 북한 대사와 관계자들이 김정남 시신이 있는 병원을 들락날락하면서 언론에 드러난 북한 대사관의 차량만 약 8대다. 재규어 XJ, 렉서스 LS, 벤츠 E 클래스, 아우디 A6, BMW 5시리즈, BMW X5, 그 외에 SUV와 미니밴 등이다. 언론에 노출되지 않은 차량을 합치면 10대가 넘는다. 차량의 번호판은 모두 외교관 전용 번호판으로 마지막에 Diplomatic Corp의 약어 DC가 달려 있었다. 번호판의 첫 번째 두 숫자는 국가번호를 나타내는데 28은 북한을 뜻한다. 중간의 숫자 01은 대사관 내 서열을 나타낸다. 01은 대사다. 말레이시아 및 국내 정보에 따르면 북한 대사관에 근무하고 있는 북한 측 공식 인력은 약 50명이다.
해외 주재 북한 대사관의 자동차들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공사가 머물던 주영국 북한 대사관은 태 공사가 국내 방송 등에서 말하길 소규모 인원만 상주하며 외교관은 3명 정도가 있다. 태영호 공사는 한 달 월급이 100만원 남짓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주 영국 북한 대사관에는 검은색 4세대 메르세데스 벤츠 S 클래스 1대(W220)와 3세대 E 클래스(W211) 1대, 총 2대의 벤츠를 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2대의 벤츠 외에도 1대의 승합차가 더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승합차는 영국에서 김정철(김정은의 형)이 에릭 클랩튼 공연을 보기 위해 이동할 때 사용했던 차량이다. 빠듯한 월급으로 비교적 연비효율이 떨어지는 고배기량의 구형 벤츠를 운용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주베트남 북한 대사관에서도 메르세데스 벤츠 C 클래스(W202)를 운용 중이다. 이 차량은 1993년부터 2000년까지 생산된 차량으로 벤츠에서 개발한 최초의 C 클래스 모델이다. 해외 주재 북한 대사관 중 거의 유일하게 베트남의 북한 대사관이 벤츠 중 가장 작은 축에 속하는 C 클래스를 운용하고 있다.
김가의 차와 북한 대사관의 차들을 종합해 보면, 공통적으로 애용하는 자동차는 단연 독일산 메르세데스 벤츠다. 벤츠 중에서도 E 클래스와 S 클래스를 주로 사용해 등급상 중형세단 이상의 차량을 애용함을 알 수 있다. 벤츠 다음으로는 미국산 프리미엄 세단인 캐딜락과 링컨을 좋아한다. 북한 정권은 러시아와 중국 등 공산권 국가를 찬양하면서도 민주 국가의 표본인 미국과 독일의 차들을 애용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러시아와 중국도 자체 개발한 고급 자동차가 있음에도 북한에서는 타지 않는다. 북한은 과거 햇볕정책 등을 통해 국내 자동차 기업의 기술을 이어 받아 북한산 자동차 휘파람 등을 개발 및 생산한 바 있다. 북한 내부적으로는 북한 차가 최고의 차라고 자랑하고 있지만, 북한 고위부는 아무도 타지 않는다.⊙
[월간조선 2017년 4월호 / 글=김동연 월간조선 기자]
■ 2018.02.10 北 김여정의 모든 것! - 여우의 두 얼굴
이른바 ‘백두혈통’ 중 최초로 평창 동계올림픽 참석차 한국에 온 북한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은 어떤 인물일까? 또 그가 한국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개혁방송' 김승철 대표의 분석
9일 '북한개혁방송'의 김승철 대표는 김여정의 방남에 대해 "미국의 대북제재와 군사적 옵션의 강화에 따른 불안과 위기감의 급속한, 심각한 증가에 의한 (북한) 나름의 최상위 대응"이라고 분석했다. 이어지는 그의 분석이다.
<- 평창올림픽을 통해 정상 국가의 이미지 변신을 하고 싶고 또 할 수 있다는 의지와 욕망
- 평창올림픽에서 이슈를 선점함으로써 유엔과 미국의 대북제재를 받는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변화와 개선을 추구하기 위함.
- 평창올림픽에서 북한의 이미지 개선을 억제하려는 미국의 여론전, 언론전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임.
- 국제사회에 북한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부여함으로써 미국의 선제공격의 부당성을 강조하고 미국에 대한 ‘국제적 압박’의 레벨을 향상시키기 위함.
- 평창에서의 여론전, 언론전에 관한 제3자 또는 제3국의 조언이나 조율에 의한 행동을 연상케 하는 자유분방한 모습들을 보인 바 있다.>
김여정의 돌발 행동, 그 이유는?
김승철 대표는 "국가를 대표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김여정을 남한 방문단에 포함시킨 것은 김정은의 위기의식이 강력했기 때문"이라며 "어린 나이로 정치와 사교, 외교에 무지하다고 볼 수 있고 또 그것을 일련의 행동으로 보여주었다"고 분석했다. 예컨대 2월 8일 북한군 열병식 주석단에서 김여정이 김정은 뒤에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진 점을 들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도 과거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김여정은 직책이나 주석단 서열과는 관계없이 김정은 바로 다음 실세로 사실상 언제든 모든 일에 개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 원장은 “북한 내에서 누가 감히 김정은이 연설하는데 왔다 갔다 할 수 있겠느냐”며 “그게 가능한 것 자체가 김여정의 북한 내 명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친동생 보낸 것, 김정은의 절박함 보여준다'
김승철 대표는 또 "김정은 본인은 갈 수 없고, 자신의 핵 보유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려는 의지와 절박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부족함을 알면서도 친동생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의 권력이 완벽하지 않고 불안한 상태이며, 김정은의 리더십과 용인술, 통치술 등이 주관적인 것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이어 "김정은은 최후의 순간까지도 유연성을 보여줄 생각이 없고 유연한 핵협상을 할 생각도 없다는 비장함을 갖고 있다"며 "(김정은은) 최후의 순간이 오더라도 굴복할 생각이 없으며 자신이 가진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대응해 보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 체제의 '이방카'(?)
김여정은 김정일의 넷째 부인이자 김정은 모친인 재일교포 출신 무용수 고용희(본명 고영자) 사이에서 태어났다. 김정일과 고용희 사이에는 각각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이 있다. 김여정의 나이는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았다. 미국 정보 당국은 김여정을 1989년생으로 보고 있지만, 우리 통일부는 1987년생으로 파악하고 있다. 원래 김정일은 4명의 부인을 둔 것으로 알려졌다.
김여정의 어머니 고용희는 일본 오사카시 출생으로 전해지나 제주도에서 났다는 소문도 있다. 2000년대 초 신병 치료차 프랑스를 오간 적이 있다. 결국 2004년 프랑스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탈북자 등 증언에 따르면 김여정은 김정은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며 김정은 체제의 ‘이방카’로 불린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 체제의 특성상 직언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견해다.
김여정이 북한 내부에서 김여정의 승진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김여정은 지난해 10월 노동당 제7기 2차 전원회의에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에 오르면서 선전선동부 부부장에서 제1부부장으로 승진했다. 당시 언론은 김여정을 북한 내 ‘실질적인 2인자’라는 식으로 보도했었다.
리수용 외무상 조카와 결혼했나?
김여정에 대한 정보가 우리 당국에 본격적으로 입수된 것은 2014년부터다. 대표적인 예가 김여정이 리수용 외무상의 조카와 결혼했다는 정보다. 우리 정부도 이 같은 첩보는 인정했지만, 정확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같은 해 ‘NK지식인연대’는 북한 내부 소식통의 전언을 인용해 김정은이 건강 문제로 자취를 감춘 직후 소집된 당 정치국 긴급회의에 관해 소개했다. 당시 이를 주관한 인사가 바로 김여정이었다고 한다. 당시 CNN은 김정은이 40일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김여정이 북한을 통치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었다.
한편, 김여정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과 함께 9일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북한 고위급 대표단은 이날 오후 1시46분경 김정은의 전용기편을 타고 서해 직항로를 이용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 천해성 통일부 차관과 남관표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공항에서 이들을 맞이했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빨갱이들의 서투른 뽀샵
/숙청 당한 북한의 권력들
■ 기쁨조, 별장 이야기
□2011.01.11 김씨 조선의 초호화 궁전, 180채 별장마다 기쁨조 대기
김정일 부자(父子)를 위한 전용별장이 북한 전역에 180개 이상 존재하며, 일반인들이 접근하면 무조건 사살한다고 주간조선 최신호가 보도했다.
주간조선은 한 탈북자의 말을 인용해 “김일성 부자가 지방시찰을 나갈 경우 ‘그 지역에서 쉴 수 있는 초대소를 만들지 않으면 수령을 모실 수 없다’는 당의 방침이 떨어져 전국 도(道)·시(市)·군(郡)마다 초대소가 건설됐다”고 전했다.
◆“일반인 접근하면 무조건 사살”
북한에서 김정일 부자가 사용하는 전용별장은 크게 초대소와 특각, 전시(戰時) 지하벙커 등 세 종류로 분류된다. 초대소는 김정일이 지방 출장을 가거나 잠깐 쉴 때 사용하는 곳이다. 초대소라고 불리기 위해서는 김정일만 다닐 수 있는 전용도로가 반드시 만들어져야 한다. 김정일 부자가 한 번도 들르지 않은 채 ‘관리’만 되는 초대소가 실제로 사용되는 초대소보다 많다고 한다.
특각은 김정일 부자의 건강과 취미, 오락에 맞춰 체계적으로 건설된 별장이다. 특각에는 반드시 미사일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지하벙커가 마련돼 있어야 하며, 기차가 다니는 지역일 경우 김정일 부자만 사용할 수 있는 전용 기차역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 허락 없이 별장에 진입하려는 자는 누구든 막론하고 경비병에 의해 사살된다. 김정일 친위대(경호원)에서 근무했던 이영구씨는 “본의 아니게 김정일의 차를 가로막거나 별장에 잘못 들어온 사람은 즉각 사살된다”며 “애매하게 죽은 주민에게는 보상 차원에서 훈장을 수여하는 방식 등으로 문제를 해결한다”고 말했다.
지하벙커는 군수건설국 산하 583부대가 전적으로 맡아 공사한다. 이 부대는 외부에서 들여온 기술과 자재를 동원해 20년째 벙커시설을 건설하고 있다.
▲ 인공위성을 통해 추가로 확인된 김정일 별장.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호화별장에는 ‘기쁨조’ 항시 대기
김정일의 별장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기후조건에 맞춰진 별장과 취미·오락을 위한 놀이용 별장이 있다. 북한은 해마다 중앙당 5과(김정일 여자관리부서)에서 전국의 여고(女高)를 순시하면서 소녀들을 (기쁨조로) 선발, 1~3등급으로 분리해 김정일 부자에게 봉사하게 한다. 1등급은 김정일에 근접해서 봉사하고 2등급은 각 별장에 파견된다. 3등급은 당 중앙 고위간부들 비서나 해외 인사들을 매수하기 위한 미인계에 활용한다. 김정일이 거의 들르지 않는 별장에 배치된 기쁨조는 평생 김정일의 얼굴 한번 보지 못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金)씨 일가의 건강만을 연구하는 ‘만수무강 연구소’는 김정일 부자의 건강을 위해 계절별로 가장 적합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별장을 분리해 운용한다. 추운 겨울 김정일은 황해도나 평양시 인근 별장에 머물고, 더운 여름에는 백두산 지역 별장으로 옮겨간다. 별장을 지키는 호위총국 군인들과 관리인들, 관리유지비를 포함하면 별장 하나에 적어도 수백만달러의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
한 고위탈북자는 “남아도는 것이 별장이어서 이미 지어놓은 별장을 아들에게 그냥 줘도 될 것”이라며 “국민은 굶어 죽는 상황에서 국가원수가 제 자식 주려고 다른 별장을 새로 짓는다면 정말 정신 나간 짓”이라고 탄식했다.
▲ 물놀이 시설을 갖춘 개인용 고급 리조트로 꾸며진 함경남도의 김정은 별장.(추정) 개인 리조트 주변엔 청조망(붉은 선)을 쳐놓아 일반인의 접근을 차단했다.
□ 김정일, 아끼던 기쁨조의 밀애 발각에 격분해…
/북한 왕재산경음악단 무용단의 공연 모습(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북한 김정일의 대표적인 ‘기쁨조’ 예술단으로 알려진 ‘보천보 전자악단’이 곧 해체된다고 9일 탈북자 인터넷매체 뉴포커스가 북한 노동신문을 인용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3·8국제부녀절(여성의 날) 기념 은하수 음악회 '녀성은 꽃이라네'를 관람했다”는 기사를 보도하며 보천보 전자악단이 곧 해산될 것이라고 밝혔다.
보천보 전자악단은 ‘왕재산 경음악단’과 함께 김정일의 기쁨조 예술단이었다. 뉴포커스는 이 악단이 2003년 '윤혜영 사건'으로 사실상 해체돼 명분상으로만 존재했으며, 이날 노동신문이 악단 해체를 공개적으로 명시한 것은
‘김정일 기쁨조’로 대내외에 알려진 악단이 젊은 김정은의 입맛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보천보 전자악단을 해산시킨 '윤혜영 사건'이란 북한의 미녀가수 윤혜영이 기쁨조의 금기를 깨고, 같은 악단의 피아니스트 남자와 밀애를 하다 발각돼 자살을 기도한 사건이다.
윤혜영을 특별히 아꼈던 김정일은 '윤혜영 사건' 이후 보천보 전자악단, 왕재산 경음악단을 없애버리라고 지시했다. 이후 북한은 김정일의 두 악단을 외교행사 전용 명분으로만 유지시켰고, ‘조선인민군공훈합창단’이 김정일의 전용예술단이 됐다.
북한은 지난해 보천보 전자악단, 왕재산 경음악단 공연을 일반에 공개했는데 김정일 신격화에 기존 배우들을 동원한 '추억의 공연' 형태였다. 한편, 오늘날 북한의 클래식 공연을 위주로 하는 "조선인민군공훈합창단"의 역할은 김정은의 "은하수 음악단"으로 옮겨왔다.
뉴포커스는 “젊은 김정은을 위한 현대 음악단도 따로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 한송월, 휘파람, 아리랑 외 다수
중국 동영상 사이트 유쿠에는 현송월의 댄스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에서는 노출 의상을 입은 북한 여성 3명이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의 ‘알로하오에’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옆 트임이 있는 짧은 치마를 입은 댄서들은 엉덩이를 흔들고 다리를 들어올리며 선정적인 춤 동작을 선보인다. 중국의 한 매체는 영상 속 여성 중 한 명이 현송월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앞서 중국의 대북 소식통들은 현송월이 지난달 20일 음란물 취급 혐의로 공개 처형됐다고 전했다. 당시 현송월 외에도 은하수 관현악 단장 문경진 등 북한 유명 예술인 10여명이 함께 처형됐다. 이들은 은하수, 왕재산 경음악단 소속 가수와 연주가, 무용수들로 음란물을 촬영해 판매하고 시청한 혐의를 받았다.
http://www.youtube.com/watch?v=p_OfvGGDgmI&feature=player_embedded - 휘파람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j1SIS_fL3tQ - 경음악 무용
http://www.youtube.com/watch?v=rBgMeunuviE&feature=player_embedded - 1980년대 유행한 테이크 온 미
http://www.youtube.com/watch?v=lA0TtfxrVGA&feature=player_embedded 모란봉 악단
http://www.youtube.com/watch?v=-Eq2g-be9mc&feature=player_embedded - 모스코바
http://www.youtube.com/watch?v=l0d-7bRHcH8&feature=player_embedded 알로하오에
http://www.youtube.com/watch?v=p0OxK3Zt6Qw&feature=player_embedded 덤블링 춤
http://www.youtube.com/watch?v=WuMTSHQugO4&feature=player_embedded 평양예술단 공연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g_C248-WXgk - 모란봉 악단
□ 모란봉 악단 이미지
/김뚱과 기쁨조 15.10.10
/모란봉 악단과 공훈국가합창단
/모란봉 악단의 신년 축하 공연 13.1.3.
/모란봉 악단 15.12.9 평양역
/김정은 애인 현송월 - 모란봉 악단 단장
■ 2018.02.12 현송월 등 北예술단, 대한민국에 오다
■ 북한 미녀 응원단
■ 세계의 독재자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