危機의 韓半島2021- 03/
06.01 뜻밖의 한·미 동맹 확인서
1만7000자 정상회담 선언 문 한·미 관계 긍정 묘사 놀라워
바이든, 新세계 질서 천명… 한국 끌고 가겠다는 의지 보여
쇠진해가던 동맹의 기운 되살린 점 시의적절하다
지난 5월 21일 발표된 문재인-바이든 한·미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을 접하고 적잖이 놀랐다. 지난 4년간 친북·친중·반미 성향을 보여 온 한국 좌파 정권의 수장(首長)이 미국 민주당 출신 바이든 대통령과 만나서 내놓은 성명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찰떡 동맹’을 강조한 것이어서 놀랐다. 1만7000여 자에 달하는 장문의 공동성명은 한·미 관계의 ‘동맹 확인서’였다. 한·미 관계를 이렇게 긍정적으로 묘사한 외교 문서는 일찍이 없었던 것 같다.
성명은 70년 전 한국과 미국이 전장(戰場)에서 함께한 우정과 희생과 신뢰를 서두로 해서 지역과 세계의 안정, 인권, 법치에 기여한 동맹 관계를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linchpin(쐐기 핵심)’이란 단어를 두 번씩이나 사용했다. 어떤 평자(評者)는 “마치 2차 대전 직후 미국·영국·소련의 모스크바 3상회의 담화문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그것은 한·미 간의 성명이라기보다 미국의 신(新)세계 질서를 천명하고 대(對)중국 전략을 조망하는 마스터 플랜 같았다. 성명의 전체적 분위기는 미국이 한국을 도망가지 못하도록 능동적으로 끌어안는 인상이다.
흥미로운 것은 바이든이 이런 신세계적 질서를 하필이면 왜 한국 대통령을 파트너로 삼아 언급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어째서 앞서 있었던 일본 스가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건너뛰고 한국을 그 ‘무대’로 삼은 것일까? 북한과의 ‘평화 프로세스’에 올인해 합동 훈련 등 미국과의 군사적 관계를 축소하는 데 급급한 문 정권이었다. 대외 교역을 이유로 중국에 이끌려 미국의 대(對)중국 포위망인 쿼드 전략에 불참하는 문 정권이었다. 미군 퇴진을 요구하고 한·미 관계를 폄하하는 반미 데모가 공공연히 벌어지는 한국 아닌가? 그래서 미국 내에서도 그런 나라에 언제까지 미군을 주둔시킬 것이며 언제까지 방위 공약에 매달릴 것인가 하는 논의가 제기되기도 한다. 그래서 미국은 조만간 ‘한국을 버릴 것’이라는 안보 불안이 한국 내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시점에 바이든 정부는 한국과의 동맹을 새삼 굳건히 끌고 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그것을 두고 미국이 중국에 맞서는 전초이자 거점으로서의 한국을 이용하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 한국에 미군 기지가 있음으로 해서 북한의 그 어떤 대륙 간 돌발 행위도 억제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그런 분석이 사실에 기초한 것이건 단순히 기우이건 그것은 한국에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미국이 한국을 떠나지 않을뿐더러 한국을 보호하겠으며 경제적으로도 더욱 한국을 연계시켜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사실이다. 나라마다 국가적 이익이 있다. 미국에 우리가 이용 가치가 있으면 우리는 그것을 이용하면 된다.
또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이번 방미에서 미국의 의도를 미리 알았느냐, 또는 사전 협의가 있었느냐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알고 갔으면 문 대통령은 이제 한국의 안보에 관해 뒤늦게나마 현실을 인식한 것이고 ‘모르고 당했다’고 해도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다. 바라건대 문 대통령은 대북 문제에서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했으면 한다. 문 대통령은 평양 선언 이후 지난 3년 북한의 호응을 기다리며 노심초사해왔다. 비굴하리만치 고개 숙여왔다. 하지만 북한의 태도는 실망을 넘어 모욕적이라 할 만했다. 이제 임기 말이 되면서 종래의 방식과 처방으로는 북한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한다. 미국의 대통령이 트럼프에서 바이든으로 바뀐 것을 계기로 문 대통령의 대북 자세도 종북 선의에서 강고한 대응으로 전환할 필요성이 생겼다. 그렇게 보고 싶다.
일부 비평자들은 문 대통령의 방미가 고작 55만명 군인의 백신을 얻어오고 44조원의 투자를 내준 대신 얻은 게 무엇이냐고 하지만 그간 어려운 고빗길에 내동댕이쳐져 있던 한국의 안보가 한·미 동맹의 재설정으로 이처럼 되살아날 수 있게 된 것은 그 어떤 것을 주고도 얻을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뉴욕타임스 칼럼은 한·미 공동성명이 ‘북한의 비핵화’ 대신 ‘한반도의 비핵화’로 후퇴한 점, 북한이 요구해온 ‘평화 협정’을 수용한 듯한 ‘항구적 평화’를 언급한 점,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한·미를 보호할 구체적 장치에 언급이 없는 점들을 지적했다. 그의 지적은 맞는다. 하지만 한·미 동맹의 기운이 쇠진해 가는 시점에서 그것을 되살리는 선언을 한 것만으로도 이번 성명은 한국인에게는 시의적절한 것이다.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니스트
06.01 문 대통령의 변신, 표변<豹變>일까 혁면<革面>일까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어록 가운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민주적’ 지도자로 추켜세운 발언이 있다. 2017년 12월 문제의 ‘높은 산, 작은 나라’ 발언 하루 전날 한ㆍ중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께서 민주적 리더십을 제시했다”고 한 것이다. 공산당 19차 대회에서 1인 권력을 굳혀 ‘시황제’란 별칭을 얻은 직후의 일이다.
한·미 정상회담이 던진 의문
기존 친중 노선 과연 버린 것일까
회담 뒤 신뢰 깎는 언행 자제해야
외교 수사도 가려가며 해야 한다. 그 무렵 문 대통령과 이심전심이라는 노영민 당시 주중대사는 시 주석을 만나는 자리에서 방명록에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 썼다. 조선 사대부가 중국에 대한 변함없는 충정을 다짐하며 쓰던 성어다.
열흘 전 한ㆍ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보면 문 대통령이 그때 그 말을 한 게 맞나 싶을 정도다. 공동성명은 중국이 싫어할 말로 가득차 있다. “한ㆍ미는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저해, 불안정 또는 위협하는 모든 행위를 반대한다”고 했다. 누구를 가리키는지 뻔한 표현이다. 예상을 넘는 문재인 대통령의 변신에 설왕설래가 분분하다. 항간에는 싱가포르ㆍ판문점 선언을 성명에 넣는 데 집착한 나머지 미국이 원하는 표현들을 대폭 수용하는 바터(맞바꾸기)를 했다는 분석이 그럴듯하게 나돈다. 굵직굵직한 외교 협상에 관여했던 전직 원로 외교관 중에도 그렇게 보는 사람이 여럿이다. 원래 외교 협상의 속성이 서로 원하는 것을 맞바꾸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그런 바터를 받아들이는 바탕에는 지난 4년 동안의 외교 경험 축적을 통해 보다 현실적인 방향으로 바뀐 문재인 정부의 현실 인식이 작용했을 것이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깨달음이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얘기다. 노무현 정부 역시 임기말로 가면서 똑 같은 경향을 보였다. 아마도 한ㆍ미 공동성명은 이런 몇몇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어찌 됐건 대한민국이 서야 할 좌표를 보다 분명하게 표명한 것이 이번 회담의 최대 성과다.
그런데 회담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부 당국자들이 그 소중한 성과를 스스로 평가절하하고 있는 것 같다. 청와대와 외교부가 내세우는 성과는 유독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재가동’에 집중돼 있다.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부터 싱가포르 회담을 비판했지만, 그것은 행태에 관한 것이다. 북한 핵 포기와 미국의 체제 보장, 북ㆍ미 관계 정상화를 담은 싱가포르 선언 자체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판문점 선언도 마찬가지다. 비핵화의 관건은 목표를 향해 어떤 경로를 밟아 나갈지의 방법론에 있다. 이 대목에서 이번 회담은 진전된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 미국은 대북제재의 충실한 이행을 재확인했고, 말만이 아닌 진정성 있는 행동 조치를 협상의 전제로 내걸었다. 요컨대 미국은 북핵 문제에 관한 한 종전 입장에서 별로 변한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일들을 한국 정부가 이뤄낸 성과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지나친 아전인수다.
다시 반복하지만, 이번 회담의 진짜 성과는 판문점 선언을 공동성명에 포함시킨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정의용 외교장관은 한술 더 떴다. 대만해협의 안정을 거론한 것은 한반도 평화안정이나 마찬가지로 원론적인 표현이라고 했다. 누가 이 말에 동의하겠는가. 공동성명 잉크도 마르기 전에 나온 이런 말들은 스스로의 신뢰를 깎아먹을 뿐이다.
한국에서 표변(豹變)이란 단어는 부정적 뉘앙스로 사용되지만 원전을 찾아보면 그렇지 않다. 주역(周易) 혁괘(革卦)편에 ‘대인호변 군자표변 소인혁면 (大人虎變 君子豹變 小人革面)’이라 했다. 호랑이가 털갈이하듯 대인은 세상을 혁신하고, 표범 무늬가 가을에 선명해지듯 군자는 부단히 새로워져야 하는데, 소인은 얼굴만 바꾸고 본심은 바꾸지 않는다는 의미다. 여태까지의 정황으로 보건대 한·미 정상 공동성명은 호변의 결과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의 변신은 표변 아니면 혁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진실은 무엇인지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
중앙일보 예영준 기자
06월 01일 평양을 서울로 전세계에 둔갑시키고도 문제없다는 靑
대한민국이 주최국인 ‘2021 P4G 서울 정상회의’의 개막 영상에 평양이 서울로 둔갑돼 전 세계로 전달되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최대 규모 국제회의여서 문 대통령도 회의 성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했음을 고려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달 30∼31일 열린 정상회의의 해당 영상을 보면, 개최지 서울을 소개하는 장면에 남산과 한강에 이어 평양 대동강 능라도와 평안남도 일대가 나온다. 이 자체로 대한민국과 국민, 위대한 성취의 역사에 대한 모욕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청와대와 정부의 대응이다. 이 영상을 본 국민의 비판이 잇따르자 18시간 만에 그 부분을 서울 모습으로 교체했다. 청와대는 “외주사 단순 실수”라고 했다. 상식적으로 믿기 힘들다. 작은 민간 행사도 인트로 영상은 꼼꼼히 점검한다. 만약 외주사 실수가 그대로 실행됐다면, 청와대와 외교부는 정부 조직이 아니라 친목회만도 못한 엉터리 집단임을 자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근원적 문제는 청와대의 “서울이면 어떻고 평양이면 어떠냐” “뭐가 문제냐”는 주장이다. 서울 국제행사에 평양 사진을 끼워 넣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인식부터 문제일 것이다. 의도적으로 그랬을 가능성도 시사한다. 청와대가 친북·종북이 아니라면, 국민에게 사과하고, 실수든 고의든 경위를 철저히 규명해 설명하고 문책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6.02 서울과 평양 혼동, 실수로 넘어갈 일인가
▲P4G 회의 개막영상 중 서울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평양 능라도 위성사진이 등장한 장면
한국이 주최한 국제회의 가운데 최다 참가국을 기록한 P4G 정상회의 개막 영상에서 서울이 나와야 할 자리에 평양 능라도가 등장했다. 대통령이 참석한 다자 정상회의 석상에서 공개 상영되고 TV·인터넷으로 전 세계에 중계된 영상물에서 서울과 평양을 혼동한 어이없고 황당한 사건이다.
동영상보다 더 황당한 청와대 해명
철저한 경위 조사와 문책 뒤따라야
영상 자체보다 더 황당하고 심각한 것은 청와대의 안이한 인식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어차피 지구적인 문제를 다루는 회의인데 서울이면 어떻고 평양이면 어떠냐”며 “그것이 왜 흠이 될까”라고 했다. 이는 영상물이 담으려 했던 메시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무책임하고 부적절한 발언이다. 해당 동영상은 남산, 고궁, 한강 등의 영상으로 개최지 서울을 소개한 뒤 대동강 능라도의 위성사진을 시작으로 점점 줌아웃하면서 한반도와 우주에서 내려다본 지구의 모습을 담았다. 전 지구적 과제인 기후위기 대응에 한국 정부가 적극적 역할을 다할 것이며, 이번 회의 개최지인 서울이 그런 역할의 중심이자 발신지임을 강조하는 것이 동영상의 기획 의도였다. 북한은 이번 회의에 참가조차 하지 않았는데 “서울이면 어떻고 평양이면 어떠냐”고 한 것은 동영상의 메시지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회의 전체의 성과에도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그 말대로라면 이번 정상회의 결과물인 서울선언을 ‘평양선언’으로 불러도 상관없다는 것 아닌가.
이 문제는 ‘외주 제작사의 단순 실수’란 말로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행사 규모와 성격상 제작 과정에서의 시연뿐 아니라 최종 리허설까지 여러 단계의 검증과 감수가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참여했던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을 텐데도 능라도 화면은 무사히 통과됐다. 단순 실수라기보다 의도적 편집이 아니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항간에는 관련자들의 친북·종북 성향이 반영된 것이란 의심까지 나돈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태도는 외교부도 마찬가지다. P4G 회의 성과를 설명하는 정의용 외교장관의 브리핑 참석 기자들에게 외교부 당국자가 “동영상 문제는 질문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언제부터 대한민국이 언론의 취재를 막는 나라가 되었는지 개탄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이 나오자 정 장관은 유감을 표시하고 경위 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외교부의 P4G 기획단 수준에 그치는 꼬리 자르기가 돼선 안 된다. 대통령 행사의 총괄 책임이 청와대에 있다는 것은 상식 중 상식이다. 이런 일에 탁월한 전문성을 가졌다는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도 동영상을 포함한 행사 전반에 관여했음이 틀림없다. 외주 제작사가 어딘지도 공개돼야 하고, 적법한 공모 절차를 거쳤는지도 명백하게 밝혀져야 한다. 아울러 관련자에 대한 문책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만 재발을 방지할 수 있고 불필요한 의혹도 해소할 수 있다.
중앙일보 사설
06월 02일 대만이 무너지면 한국도 위태롭다
이미숙 논설위원
대만 평화 명기 한·미 공동성명
동맹 영역 한반도 밖 확장 의미
친중에서 동맹 강화로 선회 文
대만과 한·일 방어는 한 덩어리
中 대만 침공시 동북아도 위험
동맹 기반해 방위력 강화해야
30년 가까이 망각됐던 대만이 갑작스레 대한민국의 안보 영역으로 진입했다. 1992년 한·중 수교 때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하면서 대만과의 공식 외교관계는 단절됐는데 어찌 된 일인지 5·21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엔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이 강조됐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대만의 평화가 위협받을 경우 한·미가 대응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동맹의 영역이 대만으로까지 넓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미 동맹의 한반도 밖 확장은 역대 어느 정부도 시도하지 못한 일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결단을 내린 것이다. 친중 경도가 심했던 문 대통령이 중국이 내정(內政)이라고 주장하는 문제에 대해 미국과 공조를 택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합의를 성명에 넣기 위한 고육책이었든, 북한이 싫어하는 ‘완전한 북핵 폐기(CVID)’ 표현을 빼기 위한 꼼수였든 간에 결과적으로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 외교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뤄냈다. 앞으로 이 공동성명은 한·미 동맹을 안보·첨단기술·보건협력 등 전방위 글로벌 동맹으로 퀀텀 점프시키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워싱턴에서는 대만을 한·일 방어와 묶어서 보는 추세가 뚜렷하다. 이 같은 기류는 문 대통령 방미 직전 열린 미 상원 군사위원회의 폴 라캐머러 주한미군사령관 지명자 인준청문회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청문회장에선 “대만에 대한 중국의 군사 압박이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톰 틸리스 상원의원), “중국이 대만 공격에 앞서 주한미군 기지를 공격할 가능성에 대비한 대책은 무엇인가”(조시 홀리 상원의원) 등 질문이 쏟아졌다. 라캐머러는 ‘인준이 되면 상황 점검 후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식으로 답변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왜 미·일 공동성명과 한·미 공동성명에 대만을 넣었는지 이유가 드러난다. 한·일이 대만 방어에 힘을 합치지 않으면 제2, 제3의 대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중국의 대만 침공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신뢰 위기에 몰린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종신 집권용 카드라는 해석이 많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싱크탱크 중국양안아카데미 보고서를 인용, “전쟁 직전의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대만해협의 무력충돌위험지수가 장제스(蔣介石) 총통과 마오쩌둥(毛澤東)이 싸우던 때보다 높다는 게 그 근거다.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은 최근 유튜브 강의에서 “중국이 대만 침공에 나설 경우 자충수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중국이 대만 상륙전을 벌이기 어려운 데다 제공권을 장악하기도 쉽지 않아 승리가 어렵다는 이유다.
그러나 미군은 대만 방어가 쉽지 않다고 보는 듯하다. 국방부가 18차례 진행한 중·대만 워게임에서 중국이 완승했다는 내용이 최근 뉴욕타임스에 보도되기도 했다. 청문회 말미에 “미국이 대만을 방어하지 못할 경우 한·일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으로 보는가”(릭 코스트 상원의원)라는 질의가 나온 것도 그런 배경이다. 이에 대해 라캐머러는 “인도·태평양사령부가 전투태세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며 대만 사태가 동북아로 비화할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일본은 이런 사태에 대비하며 쿼드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한·미 공동성명의 대만 부분에 중국이 반발하자 “매우 원론적이고 원칙적인 내용”이라고 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미국 기류에 무지한 ‘외교 문맹’임을 자인한 것이고, 중국 압박을 모면하기 위한 교묘한 말 비틀기라면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동맹의 신의를 저버린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미사일 사거리를 800㎞로 묶어놓은 미사일지침도 없앴다. 일각에선 미사일 주권 회복 운운하지만 동북아 정세 격변을 감안한 조치로 보인다. 미국이 동맹 방어에 최선을 다하겠지만, 중국이 북한과 연대해 공격할 가능성에 스스로 대비하라는 시그널이다. 한·중 관계는 전략적 협력동반자로 모호하게 포장돼 대중견제 의식은 무장해제된 상태지만, 중국은 대한민국의 안보·경제, 나아가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위협국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문화일보
06.05 '유체이탈 사과' 화 키웠다…번지는 '능라도 음모론'
P4G ‘능라도 참사’
/ P4G 회의 개막영상 캡처.
글로벌 외교 행사나 결과물에 지명이 들어가는 의미는 남다르다. 그 자체로 역사적 상징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는 미ㆍ소 간 군축 합의와 냉전 종식의 시발점이 된 1986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간 회담 장소로도 널리 알려졌고, 1951년 연합군과 일본의 평화조약 체결 이후 구성된 2차 세계대전 전후 국제질서는 조약 체결 지명을 따 샌프란시스코 체제라고 부른다.
‘서울 선언’도 역사적으로 기록될 기회가 있었다. 서울 선언은 지난달 30~31일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 개최한 환경 분야의 다자 정상회의인 P4G(녹색성장 및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 정상회의의 결과물이다.
▶지구 온도 상승 1.5℃ 이내 억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향상 ▶해양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결속 등 각 정상들의 기후 변화 대응 의지를 포괄적으로 담았다. 올해는 세계 각국이 2030년까지 달성해야 할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약속한 파리 협정에 따라 본격적인 행동을 시작하는 첫해라 의미가 더 컸다.
하지만 이틀간의 정상회의 뒤 남은 것은 ‘능라도 영상’뿐이다. 개막식 영상에서 한국을 소개하는 부분의 시작점을 서울이 아닌 평양 능라도 위성사진으로 잡은 사실이 확인된 이후 P4G 정상회의와 관련해 이슈가 되는 것은 해당 영상밖에 없다. “서울 선언이 아니라 평양 선언이라고 해야 맞겠다” “P4G의 P가 평양이었느냐” 등 비아냥이 공공연히 나온다.
한국이 ‘기후 리더십’의 앞줄에 서고, 서울 선언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역사적 지표로 남을 기회를 잃은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정부는 남 탓을 할 수도 없다. 능라도 위성사진을 넣은 것은 영상을 만든 외주 제작사이지만, 이에 대한 관리ㆍ감독 책임은 엄연히 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태 초기 정부의 입장은 다소 안일하기까지 했다. 청와대조차 큰 문제의식을 드러내지 않았고, 정부 차원에서 처음 나온 공식 입장은 “영상제작사 측의 실수이며, 같은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히 주의하겠다”(5월 31일, P4G 정상회의 준비기획단)는 게 전부였다.
‘행사는 다 끝났는데 재발 방지 노력을 하겠다는 게 무슨 이야기냐’는 비판이 나오자 1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구체적인 경위조사가 필요할 것 같다. (P4G정상회의)준비기획단에서 끝까지 세밀하게 챙기지 못한 실수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장관이 유감 표명을 한 것으로 자세를 낮춰 사과했다고 인식했을 수 있다.
하지만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수도가 서울이 아니라 평양으로 소개된 것은 단순히 ‘외교 참사’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상대국에만 결례라면 모르겠지만, 이번 사안은 국민이 받았을 충격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유감 표명이 외교적으로 사과의 의미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제3자의 잘못에 대한 불만을 드러낼 때 쓰기도 하는 표현이다. 정부가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했다면, 이런 모호한 ‘외교적 언어’가 아니라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직접적인 ‘사과의 언어’를 쓰는 게 맞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정부의 안일한 대응은 더 무서운 후폭풍을 낳고 있다. 능라도 영상 삽입에 ‘누군가의 의도’가 있었다는 음모론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대내외 행사 홍보를 총괄해온 특정 인사의 이름도 공공연히 거론된다. 2021년 대한민국에서 이런 음모론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믿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실제 단순한 실수로만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영상 제작사가 찾아 쓴 영상 원본은 제목에 ‘북한 평양’이 명시돼 있었고, 지구 밖에서 줌인하는 방식으로 들어가 능라도 위성사진을 20초 넘게 보여준다. 대동강과 한강을 헷갈렸다는 해명이 설득력을 잃는 이유다.
결국 정부가 철저한 조사를 통해 이런 의혹에 답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차원의 조사만으로 모든 진상을 규명하거나 책임을 가리기 힘들다면 민ㆍ형사상 조치까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금 나오는 이야기들이 정말 음모론인지 아닌지까지 포함해, 국민은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gang.co.kr
월간조선 06월 호
바이든 정부의 北核문제 입장 발표와 北 핵 개발 역사
북핵 5가지 결정적 순간
⊙ 키신저, “북한문제 해결 못 하면 미국 슈퍼파워라 할 수 없어”
⊙ 쿠바 미사일 위기가 불러온 북한 핵무장 가속화
⊙ 김진우 전 美 국무부 선임보좌관,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에서 발견된 북한 계좌로 북한 더 압박할 수 있었다”
⊙ 글렌 밴허크 美 북부 사령관, “2017년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 성공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쿠바로 향하는 소련 선박을 검색하는 미국 구축함. 사진=조선DB
다시 북핵(北核)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미국 바이든 정부가 북핵에 대한 입장을 대략적으로 표명했다. 출범 100일 만인 지난 4월 30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젠 사키 대변인이 확인해줬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실용적 접근’이다.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북한이 양보할 수 있는 게 뭔지 알아내 단계적으로 합의를 추진한다."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이나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을 참고하면 그렇다.
북한이 비핵화(非核化) 트랙에서 10만큼 양보하면 10만큼 제재(制裁)를 완화하는 식이다. 오바마 정부 시절의 ‘전략적(戰略的) 인내’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오바마 정부는 제재라는 압박을 통해 북한의 핵 개발 의지를 꺾겠다는 입장이었다. 처음부터 장기전(長期戰)을 각오한 셈이다.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북핵은 결국 미국과 북한 간의 문제였다. 예를 들면, 처음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할 때부터 북한은 핵(核) 문제에 미국을 결부시켰다. 북한은 1985년 12월 12일 NPT에 가입한 후 발효일로부터 18개월 안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전면안전조치협정을 체결해야 했다. 북한은 미국에 협정을 체결하는 대신 남한에 배치한 핵무기를 철수하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오가면서 핵실험을 해왔다. 플루토늄과 우라늄 모두 핵폭탄 재료다. 고농축 우라늄을 충분히 확보한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이 플루토늄에 다시 눈을 돌린 건 핵탄두를 소형화하기 위해서였다. 핵탄두를 소형화하려는 이유는 자명하다. 대양 너머에까지 폭탄을 날려보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키신저, “미국이 北核 해결해야”
키신저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은 북핵 문제를 앞에 둔 미국의 신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북한처럼 작은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한 건가. 말만 슈퍼파워인 게 되는 거다.”
김진우 세르모 대표(전 미 국무부 선임보좌관)가 키신저와 나눈 대화의 일부다.
1985년부터로 보자면, 이제 36년째다. 돌아보면 북한 핵 문제는 꾸준히 심각해져 왔다. 북핵 문제에 결정적 변화가 일어난 순간은 언제일까. 다섯 장면을 꼽아봤다.
첫 번째는 쿠바 미사일 위기다. 1962년 10월 16일부터 28일까지 세계는 숨을 죽이고 카리브해를 바라봤다. 그곳에서 미소(美蘇) 냉전이 최고조에 치닫고 있었다. 발단은 이랬다. 1962년 10월 14일 미국 정찰기가 쿠바에서 미사일 기지 건설현장을 포착했다. 소련이 쿠바에 핵탄두까지 옮겨놓고 미사일 기지를 짓고 있었다. 쿠바는 미국 플로리다 반도 바로 밑에 붙어 있다. 그야말로 미국 전역이 소련의 미사일 기지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게 생겼다.
소련 측에도 명분은 있었다. 미국이 먼저 소련 부근에 핵 미사일을 배치했다. 소련과 국경을 맞댄 터키에 주피터(사거리 2410km·탄두 위력 1.45메가톤) 핵 미사일을 배치했다. 소련 전역이 미국 미사일의 사정거리 내에 들어왔다.
게다가 쿠바가 미사일 기지 건설을 요청해왔다. 피델 카스트로 쿠바 총리는 1961년에 피그(Pigs)만 침공 사건을 겪은 터였다. 미국이 재차 공격해올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피그만 사건은 미군의 훈련을 받은 1400명의 쿠바 망명군이 카스트로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쿠바에 상륙한 사건을 말한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배후로 지목됐다. 망명군은 격퇴됐다. 카스트로는 소련에 군사협정 체결을 요청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바꾼 세계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소련 도발에 해상봉쇄와 외교적 대응으로 맞섰다. 워싱턴과 모스크바 모두 핵전쟁 발발을 우려했다. 열흘 넘게 이어진 대치 끝에, 결국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 서기장이 공개 제안을 해왔다. 터키의 주피터 미사일을 철수하면 쿠바의 미사일 기지를 철수하겠다는 거였다. 그렇게 제3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게 됐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13일 만에 봉합됐지만 그 영향력은 오래갔다. 핵무기를 개발 중인 나라도, 핵무기가 없는 나라도 핵의 위력을 깨닫게 됐다. 당시 프랑스는 샤를 드골 대통령 주도로 핵무기 개발을 하는 중이었다. ‘미국이 뉴욕을 희생하면서 파리를 구원해줄 수 있을까’ 이 질문에서 시작한 핵 개발이었다.
미국 자체도 바뀌었다. 케네디 정부 시절 핵전략은 유연반응 전략이었다. 소련이 유럽 전선에 배치된 전술핵을 1기 투하하면 미국도 1기 사용하겠다는 식이다. 쿠바 사태 이후 ‘확증 파괴(Assured Destruction)’로 돌아섰다. 공격을 해오면 확실히 대응해주겠단 얘기다. 여기서 파괴란 소련의 산업시설 절반 이상과 국민 25% 이상이 절멸하는 걸 뜻한다.
공산권 국가들의 위기감은 또 달랐다. 소련이 자국(自國)의 이해관계에 따라 ‘핵우산’을 얼마든지 치워버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모스크바를 희생하면서 하바나를 구원해줄 생각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북한은 행동에 나섰다.
‘북한은 소련 못 믿는다’
▲우드로윌슨재단의 기록물 모음집 ‘쿠바 미사일 위기와 북한 자주 국방정책의 기원’. 출처=우드로윌슨재단
미국의 연구 단체인 우드로윌슨재단에서는 냉전(冷戰) 시대 역사 기록을 발굴·재해석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냉전사 프로젝트(Cold War International History Project)다. 냉전 후 기밀이 해제되고 있는 옛 소련과 동구권 문서들을 통해 역사를 재해석한다. 북한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북한에 대한 기록물을 발굴해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아예 따로 진행 중이다.
2012년엔 이런 연구물이 나왔다. ‘쿠바 미사일 위기와 북한의 자주 국방 정책의 기원(The Cuban Missile Crisis and the Origins of North Korea’s Policy of Self-reliance in National Defense)’. 제목 그대로 쿠바 미사일 위기가 북한 국방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했다.
여기에 6개 문서가 나온다. 그중 주(駐)북한 헝가리대사가 헝가리 외무부 장관에게 보낸 보고서가 등장한다. 여기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1964년) 12월 중순 주조선 소련대사 바실리 모스코프스키가 모스크바에서 돌아왔음. 소련 수상인 코시긴 동무와 북한 대표단 간에 있었던 협의 내용을 알려줬음. 대표단의 단장 김일은 코시긴 동무 앞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함.
첫째, 조선의 지도자들은 소련공산당과 소련 정부를 불신(不信)한다. 조선의 국방과 관련해 소련 정부가 조소우호협력및상호원조조약에 명시된 의무를 다할 거라고 믿을 수 없다. 그러므로 조선은 70만명의 군사와 20만명의 경찰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군대와 경찰을 유치하느라 조선 경제에 막대한 부담이 된다. 지난 2년간 공업과 농업에 진력을 다하지 못한 이유다. (국방비 때문에) 충분히 투자할 수가 없다.
코시긴 동무는 불신의 이유가 뭔지 물었음. 김일은 소련은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쿠바를 배신했고, 나중엔 베트남을 배신했다고 답했음.〉
이런 이유로 북한은 소련에 원자로 기술 지원을 졸랐다. 보고서는 쿠바 미사일 위기가 결국 북한 핵 무장화로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南阿共의 핵무기 포기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영변 핵 시설.
북핵 문제에서 결정적 순간 두 번째는 1994년 북한의 IAEA 특별 사찰 거부다. 1993년에도 IAEA는 북한이 핵 폐기물을 저장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두 곳을 특별 사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북한은 3개월 안에 NPT에서 탈퇴하겠다고 대응했다. 1994년엔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그해 1월 CIA는 북한이 핵탄두를 이미 생산한 것 같다고 추정했다.
같은 해 3월 IAEA 조사관들이 북한에 도착했다. 3월 21일 북한은 조사팀이 영변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을 조사하는 걸 막았다. 5월 19일, IAEA는 북한이 감시망이 없는 채로 5메가와트 연구용 원자로에서 사용후 핵연료를 제거하기 시작했다는 걸 확인했다. 그때까지 미국과 IAEA는 북한이 사용후 핵연료를 옮길 땐, 어떤 상황에서든 조사관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온 상황이었다. 사용후 핵연료를 어디로 빼돌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 개발이 국제 감시망에서 더욱 벗어나기 시작한 시점이다.
북한이 IAEA의 사찰을 극구 거부하는 건 이유가 있다. 한번 IAEA의 조사를 받으면 핵무기 개발 현황을 숨기기 힘들어진다.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무기를 스스로 포기한 나라다.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것도 핵무기를 폐기한 후에야 알려졌다. 사실 당시 남아공 정부는 핵무기의 개발과 폐기 자체를 은폐할 생각이었다. 핵무기 관련 시설과 자료는 물론, 뭘 폐기했는지 기록한 자료조차 모두 일찌감치 없애버렸다.
그랬는데 NPT에 가입한 후 받게 된 IAEA의 조사가 문제였다. IAEA 조사단이 우라늄 사용 현황을 조사하다 남아공 정부의 주장과 다른 수치를 발견했다. 결국 남아공 정부는 핵무기를 개발한 것과 은폐까지 국제사회에 모두 밝혀야 했다.
北, ICBM으로 미국 본토 타격 가능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사진=조선DB
세 번째 순간은 1998년 8월 31일이다. 이날 북한은 대포동 미사일 1호를 발사했다. 함경북도 무수단리에서 발사했다. 핵무기를 갖추기 위해선 핵탄두뿐 아니라 그걸 옮기는 투발체(投發體)도 필요하다. 특히 북한의 경우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인 미국을 목표로 삼는다면, 장거리 미사일 개발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날 북한이 처음으로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다.
대포동1호는 동해와 일본 북부 상공을 지나 4~5분간 약 1500km를 날다 태평양에 추락했다. 1단계 로켓은 블라디보스토크 남쪽 공해상에, 2단계 로켓은 고도 65km로 일본 열도 상공을 지나 태평양에 떨어졌다. 첫 발사에 이미 2단계까지 성공했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연구는 이후로도 계속 이어져왔다. 2017년 11월 29일엔 화성15호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미군은 화성15호가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로써 미국 전역이 북한 미사일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게 됐다.
2019년 12월 7일엔 평안북도 동창리 서해 위성 발사장에서 신형 ICBM용 엔진 연소 시험을 두 차례 진행했다. 북한 국방과학원 대변인은 이날 “2019년 12월 7일 오후 서해 위성 발사장에서는 대단히 중대한 시험이 진행되었다”고 발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대변인은 “국방과학원은 중대한 의의를 가지는 이번 시험의 성공적 결과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에 보고하였다”며 “이번에 진행한 중대한 시험의 결과는 머지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략적 지위를 또 한 번 변화시키는 데서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주장대로 신형 ICBM용 엔진 연소 실험에 성공했다면, 북한 장거리 미사일 개발사에 또 다른 전기가 마련된 셈이다.
예정된 실패, 6자 회담
네 번째 결정적 순간은 6자 회담이다. 6자 회담은 2003년 8월 27일 시작됐다. 한반도 주변 6개국인 한국, 북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참가했다. 2007년 10월까지 여섯 차례 회담이 열렸다. 모두 알고 있듯 6자 회담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북한을 제외한 다섯 나라의 의견을 맞추는 것부터 문제였다. 김진우 전 미 국무부 선임보좌관은 6자 회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6자 회담을 앞두고 미국에서 큰 토론이 벌어졌어요. 중국도 북핵 문제에 책임지게 하자는 주장이 강하게 나왔어요. ‘북한 문제는 중국 문제’라는 게 당시 인식이었어요. 저는 아니라고 싸웠어요. 이건 미국 문제라고요. 처음부터 저는 6자 회담에 반대했습니다. 당시 미국 입장에선 6자 회담이 실패하면 다섯 국가가 실패하는 거지, 미국의 실패가 아니거든요. 실패하더라도 미국의 실패가 아니라는 인상을 주는 게 중요했던 거예요. 베이징에서 회담을 연 것도 문제였다고 생각해요. 회담이 열린 후에는 회담의 목표가 중간중간 흔들렸어요. 북핵 동결인지, 폐기인지 왔다 갔다 했어요.”
처음부터 북한은 미국을 비롯한 6자 회담 당사자국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2002년 10월 4일 제임스 켈리 당시 국무부 차관보가 평양에서 강석주 제1부상을 만났다. 켈리가 북한에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이 있는지 물었다. 강 부상은 “(북한은) 이런 것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 이보다 더욱 강한 것도 있다”고 말했다. 켈리가 재차 확인하자 강 전 부상은 “미국이 우려하는 것은 담판으로 해결 가능하다” “최고 지도자급 회담으로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고농축 우라늄의 존재를 시사하면서 북한과 미국의 정상회담을 제의했단 얘기다.
회동 이후 중국과 러시아의 추궁이 이어지자, 북한은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HEU) 같은 건 없다면서 다시 말을 바꿨다. 6자 회담이 진행되면서 미국이 증거 자료를 들이밀자 비로소 인정했다. HEU 프로그램의 핵심 장비인 원심분리기 부품을 만드는 데 쓰이는 고강도 알루미늄관 등의 장비 수입 자료 등의 증거였다. 북한의 핵 개발 상황조차 제대로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6자 회담이 진행됐단 얘기다.
김정일의 개인 자금?
▲김진우 전 미 국무부 선임보좌관.
북핵 협상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몇 번 있긴 했다.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 건이 그중 하나다. 회담이 열리는 중에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2005년 9월, 미국은 애국법 제311조에 근거해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은행을 북한 불법자금 세탁의 주요 우려 대상으로 지정했다. BDA는 은행에 예치되어 있던 2500여만 달러의 북한 계좌를 동결하고, 북한에 금융거래 중단을 통보했다.
북한의 반발은 엄청났다. 북한은 ‘BDA 문제의 우선적 해결’을 요구하며 직전에 합의한 9·19공동성명 이행을 거부했다. 2006년 7월 5일엔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고 10월 9일엔 첫 핵실험을 강행했다. 김진우 전 선임보좌관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실 2500만 달러면 김정일 입장에선 그렇게 큰돈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격렬하게 반응했잖아요. 다른 제재로는 큰 손해를 봐도 끄떡도 안 했으면서요. 누가 미팅에서 저에게 의견을 묻더라고요. 그래서 둘 중 하나라고 답했어요. 그 자금이 중요한 척 거짓 반응을 보이는 것이거나, 자기 돈인 거다.”
― 김정일의 개인 돈이란 얘긴가요
“증거는 없어요. 저의 분석이었어요. BDA 계좌는 미국이 우연히 발견했어요. 운이 좋았던 거죠. 그런데 북한이 6자 회담에서 나가겠다고 협박했잖아요. 너무 이상했어요. 그건 김정일의 스타일이 아니에요. 북한이 이렇게까지 약점을 보인 건 처음이었어요. ‘이거다, 처음으로 김정일의 개인 계좌를 찾은 거다, 이걸로 북한을 압박하자’. 그런데 결국 제재를 풀었지요.”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조슈아 스탠턴 변호사와 이성윤 미국 터프츠대학 교수는 2014년 《워싱턴포스트》에 공동으로 칼럼을 기고했다. 여기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BDA 제재를 두고) 북한의 한 외교관이 미국 측 카운터파트에게 ‘당신들이 마침내 우리를 아프게 하는 방법을 찾았다’고 털어놨다.”
결국 미국은 30일 안에 BDA 문제를 해결하기로 북한에 약속했다. 2007년 중반기 북한은 자금을 모두 인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2007년 10월 3일 6자 회담국은 10·3 합의를 발표한다. 이런 내용이었다.
“2007년 말까지 북한은 핵 시설을 불능화하고 핵 프로그램을 신고한다.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고 적성국무역법에 따른 제재를 해제한다. 중유 100만t 상당의 경제·에너지·인도적 지원(이미 전달된 중유 10만t 포함)이 북한에 제공된다.”
6자 회담이 끝나고 불과 5년 후, 북한은 헌법을 개정했다. 헌법에서 스스로를 ‘핵 보유국’으로 명시했다.
‘北, 수소폭탄 실험 성공'
다섯 번째 결정적 순간은 2017년 9월 3일이다. 이날 북한은 6차 핵실험을 했다. 핵실험에선 핵폭탄의 폭발 위력(yield)이 중요하다. 핵실험 직후엔 6차 핵실험의 위력이 약 100kt(킬로톤)에서 140kt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한 ‘리틀보이’의 위력은 15kt급이다.
이후 6차 핵실험의 위력이 그보다 훨씬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 산타크루즈대학의 손 레이 박사 연구진은 2019년 북한 6차 핵실험의 위력이 250kt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이 미국의 과학 학술지 《지구물리학 연구저널》에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1차부터 5차까지 비슷한 북한의 핵 역량이 마지막 6차 실험에서 비약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레이 박사는 “북한은 2006년부터 2016년까지 핵실험 규모를 1kt에서 20kt까지 꾸준히 증가시켰는데 불과 1년 만에 250kt으로 대폭 증가시켰다. 이 정도 증폭은 핵분열탄(boosted fission bomb)이나 수소폭탄에서 나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말을 뒷받침해주는 게 지난 3월 16일 글렌 밴허크 미국 북부사령관이 미국 국회 상원 군사위원회에 답변한 것이다. 그는 서면답변에서 이런 언급을 했다.
“2017년에 북한은 성공적으로 수소폭탄 실험을 했다(In 2017, North Korea successfully tested a thermonuclear device).”
당시 한국 언론엔 밴허크 사령관이 북한 ICBM에 관해 한 언급만 주로 부각됐다. 북한의 ICBM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북한이 리틀보이의 15배가 넘는 위력을 가진 핵폭탄을 보유하게 됐다는 건 부각되지 않았다.
이제 임기가 1년 남은 문재인 정부와 이제 출범한 미국 바이든 정권이 북핵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현실을 외면한 평화쇼나 외교적 접근으로 미루기엔, 이제 북핵 문제는 임계점에 다다른 것 같다.⊙
06.09 다음 대통령은 ‘사드 3불’ 흑막 밝히라
370년 전 베스트팔렌 조약에도 ‘요새’와 ‘동맹’ 구축은 핵심 주권
文 방중 직전 사드 협상에서 누가, 왜, 어떻게 주권 내줬나
근대 주권국가를 탄생시킨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은 “모든 공국(국가)이 영지 내 새로운 요새를 건설하거나 강화할 권한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자체 보전과 안전을 위해 외국과 자유롭게 동맹을 맺을 권한이 있다”고도 했다. ‘요새 강화’와 ‘동맹 체결’ 같은 군사 주권이 근대적 주권의 핵심이란 의미다.
그런데 이 정부는 2017년 ‘사드 3불(不)’로 중국에 군사 주권을 내줬다. 사드 추가 배치, 미국 미사일 방어망(MD), 한·미·일 군사 동맹을 안 하겠다고 문서에 써줬다. 사드와 MD가 요새 강화권 아닌가. 지난 370년간 주권국이 스스로 군사 주권을 내주는 경우를 본 기억이 없다. 2019년 북한은 우리 방어망을 뚫을 수 있는 신형 탄도미사일을 무더기로 발사했다. 김정은은 순전히 한국을 겨냥한 전술핵 개발까지 공언했다. 사드나 MD보다 더한 것도 도입해야 할 판국인데 ‘3불’로 제 발목에 족쇄를 채웠다. 누가, 왜 그랬나.
시계를 돌려 보자. 2017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여당 의원이 갑자기 사드 관련 정부 입장을 묻자, 강경화 외교장관이 ‘3불’ 내용을 외운 듯 읊었다. 그날 중국 외교부가 ‘3불 입장을 중시한다’는 논평을 냈다. 그다음 날 양국 정부는 ‘3불’을 문서로 만들어 공개했다. 처음 보는 외교 형식이다. 몇 달을 끌어온 외교 협상이 장관 한마디로 타결되지는 않는다. 그 전에 구체적 합의가 있었던 것이다. 중국 대표는 조선족인 쿵쉬안유 당시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와 천하이 부국장이었다. 천하이는 한국 근무 시절 고압적 태도로 악명이 높았다. 우리 측에선 청와대가 협상을 주도했다고 한다. 정의용 안보실장과 남관표 차장, 최종건 비서관 등이다. 외교 소식통은 “문재인 대통령 방중을 앞두고 중국 측 압박이 거셌다”고 했다. ‘3불’에 반대하던 일부는 불이익을 받았다고 한다. 한 달여 뒤 방중한 문 대통령은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 한국을 ‘작은 나라’라고 했다.
중국은 ‘3불’을 “청눠(承諾)”라고 했다. 국가 간 약속, 공약이란 뜻이다. “엄수해야 한다(恪守)”고도 했다. 반면 우리 측은 “입장 표명일 뿐”이라고 했다. ‘3불’ 주역인 남관표 주일 대사는 작년 국감에서 “약속도, 합의도 아니다”라고 했다. 안 지켜도 그만이라는 것이다. 그러자 중국 외교부가 곧바로 “양국은 사드 합의를 달성했다”고 발끈했다. 그러고 한 달여 만에 남 대사는 강창일 대사로 교체됐다. 우연의 일치인가. 중국은 “양국의 (사드) 합의 과정이 매우 분명하다”고 했다. 공산당 간부부터 관영 매체까지 ‘3불’은 이행해야 할 약속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이 선전·선동에 능해도 아무 근거 없이 ‘약속’ ‘합의’라고 우기기는 어렵다. 믿는 구석이 있을 것이다.
이 정부는 ‘3불 문서’에 양국 서명이 없지 않으냐, 그러니 약속은 아니라는 식으로 말한다. 그러나 외교가에선 ‘서명이 들어간 비공개 문건이나 다른 약속이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중국이 계속 큰소리치니 이런 의심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당시 협상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사소한 외교 협상이라도 그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상식이다. 안 하면 직무 유기다. 만에 하나, 문제를 감추려고 기록을 없애려는 시도가 있었다면 산자부 원전 파일 삭제처럼 중범죄가 된다. 모든 외교 협상을 조사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군사 주권을 내준 ‘사드 3불’의 흑막은 밝혀야 한다. 필요하다면 책임도 물어야 한다. 그래야 참사(慘事)가 반복되지 않는다. 다음 대통령이 꼭 해야 할 일이다.
조선일보 안용현 논설위원
06월 09일 한·일·대만 적시한 美 ‘공급망 구축’과 G7 회의 중요성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글로벌 경제·기술·가치 동맹 구상이 구체적으로 발표됐다. 백악관이 8일 공개한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등 필수광물, 제약 등 4대 분야 공급망 구축 보고서는 미국이 한국과 일본, 대만 등과의 적극적 협력을 통해 새로운 글로벌 공급 체계를 만들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공급망 회복력 구축, 미국 제조업 활성화, 광범위한 성장 촉진’이란 제목에서 드러나듯 중국 의존에서 탈피해 미국과 동맹의 성장을 이끌겠다는 구상이다. 전체주의 체제의 중국이 세계를 주도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데 미국 여·야 및 조·야의 공감대가 확고하다는 점에서 앞으로 수십 년 계속될 신질서의 청사진인 셈이다.
특히, 무역대표부(USTR)가 주도하는 무역기동타격대(Trade Strike Force)를 신설하고, 중국 반발 등에 따른 단기적 공급망 차질에 대응하기 위한 범정부적 태스크포스까지 가동하기로 한 데서 미국의 강력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동맹국 및 민간기업을 초청해 국제회의도 주최할 것이라고 했다. 250페이지 보고서에 한국이 74차례, 일본과 대만이 각각 80여 차례 적시됐고, 삼성·LG·SK 등 기업 이름까지 등장한다. 물론 견제 대상인 중국은 458번 언급됐다. 아울러 대용량 배터리 산업 육성 전략도 분명히 했다. 내년 2월엔 국방·에너지·농업 등 6대 분야 공급망 구축안을 내놓겠다고 예고했다.
미국의 이러한 구상은 11∼13일 영국 콘월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세부 사안에서는 국가별 입장이 다르지만, 총론에서는 G7 국가들이 각료회의 등을 통해 이미 공감대를 이뤘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6일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을 통해 “세계 주요 민주국가들이 중국 대체제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한국·인도·호주도 초청 받은 이번 회의가 D-10(민주주의 10개국) 출발점으로도 인식되는 이유다.
이번 회의에 참석할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과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중국을 굳이 멀리할 필요는 없지만, 중국몽 미망에서 벗어나 자유민주 연대에 앞장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대한민국 국익과 미래를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6.10 이제 우리도 일본에 돈 달라는 요구 그만하자
올해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민소득韓이 日보다 높아
이야말로 진정한 克日
돈 요구로 덕 본 건
위안부 할머니 아닌
윤미향 일파 아니었나
일본 기업이 일제 때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결을 서울지방법원이 뒤집었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 사건을 보면서 오래전의 좋지 않은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필자가 편집국장 책임을 맡고 있을 때였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지낸 대법관 출신 법조인이 아내가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화제가 될 일이어서 확인시켰더니 사실이라고 했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도장만 찍어도 몇 천만원을 받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 의외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분 얘기를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진과 함께 본지 6면에 보도했다. 2013년이었다.
▲7일 강제징용 노동자와 유족 85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는 각하결정을 내렸다. 이날 재판에 참석한 관계자들이 재판 후 법정 앞에서 벌인 기자회견에서 의견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기사가 나간 지 다섯 달 만에 이분이 편의점 일을 그만두고 로펌으로 옮겼다. 당초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당분간 자연인으로 살며 서민으로 경제생활을 하겠다”고 했던 분이어서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그럴 사정이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분의 진의를 폄하하고 싶지 않았다.
5년 뒤 2018년 김명수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를 통해 일본 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할 의무가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잘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당연한 판결 같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1965년 한일 양국은 청구권 협정을 통해 ‘두 나라와 국민의 청구권이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데에 합의했다. 이때 일본에서 받은 돈 5억달러는 당시 일본 외환 보유액의 4분의 1에 이르는 거액이었다. 이 돈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마중물이 됐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일본에 대한 청구권의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해결에 따라 우리 정부는 국내 징용 피해자들에게 신고를 받고 보상금을 두 차례에 걸쳐 지급했다.
하지만 나중에 일부 피해자가 다시 일본 기업에 배상 요구 소송을 했다. 이 소송은 한국 1,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재론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이는 상식이었다. 그런데 2012년 대법원이 이를 뒤집는 ‘놀라운’ 판결을 내렸다. 그때 담당 주심이 바로 ‘편의점 대법관’이었다. 이 판결이 한일 관계 파탄의 한 시발점이 됐다. 이 판결 때문에 외교부와 대법원이 소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국에서도 외교가 걸린 판결에선 이런 과정이 흔히 있다. 현 정권은 여기에 ‘사법 농단’이라는 모자를 씌웠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고초를 당하고 있다. 2018년 김명수 대법원의 판결은 편의점 대법관의 이 판결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와 관련한 논란이 클 때 어느 자리에서 만난 법조인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이 판결을 강력히 비판했다. 한 사람은 “퇴임을 두 달 앞둔 대법관이 정권 교체기에 다음 자리를 생각하고 내린 포퓰리즘 판결”이라고 단정하면서 5년 전 본지의 편의점 보도를 거론했다. 당시 헌법재판소장이 다른 사람으로 결정되자 몇 달 지나지 않아 그분이 편의점을 그만두고 로펌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모두가 ‘설마...’ 하며 자리를 마쳤지만 필자는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필자는 지금도 그에게 악의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살다 보면 우연도 경험하고 오해도 받는다. 인물평을 들어 보니 인품도 나무랄 데가 없는 분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분이 판결을 할 때 주변에 ‘건국하는 심정으로 판결문을 썼다’고 했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선 무언가 석연찮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솔직한 심정이다.
진짜 운동권 출신에 따르면 지금 정권 주변엔 ‘민주화된 다음에 민주화 운동 한 사람’이 아주 많다고 한다. ‘해방된 다음에 독립운동 하는 사람’도 정말 많다.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다. 지금 정권에서 죽창가 부르고 ‘토착 왜구’ 운운 하는 사람 모두가 해방된 다음에 독립운동 하는 사람들이다. ‘건국하는 심정...’도 혹시 해방된 뒤에 하는 독립운동 아닌가.
위안부 문제와 달리 징용자 문제는 1965년 한일 협정에 명시돼 있다. 그래도 개인의 청구권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는 천부적 인권 차원의 원론적 얘기로 봐야 한다. 이를 근거로 외국 기업에 돈을 내라고 할 수 있겠나.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 같은 논리로 일본인들이 한국에 있던 재산의 개인 청구권을 행사하겠다고 하면 감당할 수 있나. 그야말로 이불 속에서 우리끼리 만세 부르는 것이다.
대체 왜 우리가, 21세기의 대한민국이 이렇게 구차해야 하나. 1965년 한일 협정 당시 한국과 일본의 국가 GDP 격차는 29배였다. 그게 지금은 3배 차이로 좁혀졌다. 올해 IMF 통계에 따르면 구매력 기준 1인당 소득은 한국이 4만7000달러로 4만4000달러인 일본보다 많다. 이것이 극일 아니면 뭐가 극일인가. 왜 우리가 지금도 다른 나라에 돈 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덕 본 것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아니라 윤미향 일파 아니었나.
중국은 일제에 가장 많은 피해를 본 나라지만 전쟁 배상금을 요구하지 않았다. 배상받은 나라는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돈이 없나. 이제 일본과 과거사 청산 문제에서 돈 얘기는 안 했으면 한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
06.11 왕이 “한국, 美에 휩쓸리지 말라” 훈계, 왜 이렇게 오만한가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9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통화하면서 “미국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은 냉전적 사고에 가득 차 집단 대결을 부추긴다”고 했다. 지난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에 공감했는데 “중국은 완강히 반대한다”고도 했다. 한국을 향해 “옳고 그름을 파악해 편향된 장단에 휩쓸려선 안 된다”고 했다. 한국 동맹인 미국의 대외 전략을 우리 외교 장관에게 ‘냉전적’이라고 대놓고 비난하면서 ‘휩쓸리지 말라’고 훈계조로 얘기한 것이다. 정상적 국가 관계에선 할 수 없는 말이다.
외교부는 한·중 장관 통화를 전하며 왕 부장의 이런 발언을 한마디도 옮기지 않았다. ‘한중 관계, 한반도 문제, 국제 정세 등을 논의했다’고 얼버무렸다. 정부는 ‘대만 해협’ 등을 명시한 한미 정상회담 직후 중국 반응에 대해 “이해할 것” “문제없을 것”이라고 해왔다. 그런데 왕이가 “반대한다”고 한 것이다. 중국이 반대한 사실을 감춰야 하는 이유가 뭔가. 외교부는 “시진핑 주석 조기 방한을 위한 소통을 계속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중국 발표에는 없는 내용이다. 정부에 유리한 내용만 발췌해 국민에게 알리는 게 상습적이다.
왕이의 고압적 태도는 우리가 자초한 것이다. 이 정부는 처음부터 중국이 원하는 건 다 들어줬다. 문재인 대통령 방중을 앞두고 ‘사드 3불(不)’로 군사 주권까지 양보했다. 우리 서해를 내해(內海)로 만들려는 서해 공정을 벌여도 성명 하나 없다. 문 대통령은 바이든보다 먼저 시진핑과 통화해 “중국 영향력이 날로 강해지고 있다”고 칭송했다. 왕이의 공산당 서열은 25위권 밖인데도 한국에 오면 의전 서열 1·2위인 대통령과 국회의장, 전 여당 대표, 대통령 측근 등을 줄줄이 만나고 다닌다.
왕이의 ‘냉전’ ‘옳고 그름’ 발언은 11일 개막하는 G7 정상회의를 코앞에 두고 나왔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구축하려는 반중(反中) 전선에 한국은 동조하지 말라는 압박이나 다름없다. 이번 G7 정상회의에선 민주주의 가치와 열린 사회·경제 등이 강조될 것이라고 한다. 중국의 압박에 우리 가치와 지향점이 흔들려선 안 된다. 그러지 않으면 한국은 역사적으로 자기들의 일부였다는 식의 중국의 고압적 태도는 거듭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6.14. G7의 對중국 ‘경제 영토 전쟁’, 현장에 간 文은 무얼 느꼈나
▲G7 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이 12일 영국 콘월 카비스베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G7 정상들이 중국의 경제 영토 확장 구상인 ‘일대일로’에 맞서 중·저소득 국가의 인프라 투자에 함께 나서기로 합의했다. 중국이 개도국의 인프라 투자를 독점하며 영향력을 키우는 상황을 두고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 언론은 “2차 대전 후 유럽 재건을 위한 ‘마셜 플랜’보다 규모가 클 것”이라고 했다. 미국과 동맹들이 ‘돈 싸움’에서도 중국을 압도하겠다는 것이다.
2년 만의 G7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반(反)중국 전선을 펼쳤다. 80년 전 미·영이 히틀러에 대응해 ‘대서양 헌장’을 발표한 것처럼 이번엔 중국을 겨냥한 ‘신(新)대서양 헌장’을 내놨다. 미 백악관은 개도국 투자 필요성을 강조하며 “2035년”을 명시했는데 시진핑 임기가 끝나는 해이기도 하다. 시진핑의 패권 야망을 꺾겠다는 것이다. 바이든은 G7 내내 중국의 인권 탄압과 반(反)시장 정책을 비판하며 ‘행동’을 요구했다.
반면 중국은 외국 기업이 미국 등의 대중(對中) 제재에 협조하면 처벌하는 내용의 법을 통과시켰다. 처벌 범위도 입국 금지부터 거래 금지, 중국 내 자산 압류까지 폭넓다. 중국 내 공장을 운영 중인 삼성전자 등의 한국 기업도 자산을 압류당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강 건너 불 보듯 할 때가 아니다.
지난해 주미 대사가 “이제는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할 수 있는 국가”라고 했다. 친정권 인사들은 “균형 외교” “초월 외교”라고 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한국이 한미 동맹을 복원하려 하자 중국은 “미국 장단에 휩쓸리지 말라”고 훈계조로 압박했다. G7은 미국 주도로 중국과 ‘경제 영토 전쟁'까지 벌이기로 했다. G7 현장에 간 문재인 대통령은 무엇을 느꼈을까.
조선일보 사설
06.15. G7의 중국 견제와 북한 압박, 냉엄한 현실이다
▲영국 콘월 카비스베이에서 13일 폐막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발표한 공동성명의 주요 내용. 12일 찍은 기념 사진(위)은 앞줄에서 왼쪽으로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ㆍ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문재인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그제 영국 콘월에서 폐막한 G7 정상회의는 중국 견제와 북한 비핵화, 코로나19와 기후 등이 핵심 키워드였다. 북한 비핵화와 기후 문제를 제외하면 대부분 중국에 비판적인 내용이었다. 중국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에 의한 동·남중국해 긴장 고조에 대한 비판, 신장지구 인권 존중과 홍콩 자치권 허용, 대만해협 안정, 중국에서 시작됐다고 보는 코로나19 기원 2단계 조사 등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제안해 합의한 ‘더 나은 세계 재건(B3W·Build Back Better World)’도 중국 견제용이다. B3W는 저개발국을 위한 글로벌 인프라 건설 협력 파트너십 구축인데, 중국이 돈으로 저개발국을 포섭해 옥죄는 것을 막자는 차원이다. 중국에 대응하는 서방 외교 현실이 그대로 드러났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결과와도 비슷하다.
중국, 국제질서·인권 무시해 비판받아
정부, 국제기류 피부로 느끼고 대처해야
G7 정상회의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공동성명이 나오기는 처음이다. 반중(反中) 연대가 국제 기류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이 회의에는 문재인 대통령도 게스트로 참석했다. 선진국 모임인 G7 정상회의에서 중국을 압박하는 성명이 나온 것은 중국의 비정상적인 행태가 원인이다. 서방 선진국들은 중국이 선의에 의한 경쟁을 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으며, 강압적인 팽창 전략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공해상을 강제적으로 점령하면서 주변국에 피해를 주고 있다. 또 홍콩과 신장 등에서 인권을 억압하고, 기술 탈취에 국제금융시장까지 교란하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G7은 중국의 이런 행동이 국제 질서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의 도전 행태는 미국 등 G7 국가는 물론 대한민국 헌법적 가치와도 맞지 않는다. 따라서 정부는 중국을 상대로 원칙을 지키면서도 정교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서방 선진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이번 회의에 참석한 문 대통령도 피부로 느꼈을 것이다. 혹여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을 어물쩍 넘기려 해서도 안 된다. 물론 중국이 이웃 나라인 데다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라는 점은 부담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사드 보복 때처럼 중국 눈치를 보면 동맹인 미국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이번 G7 정상회의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빠진 북한 비핵화와 인권 문제도 언급했다. 북한이 핵·탄도미사일을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으로 포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지지한 것이다. 정부는 북한에 비핵화를 다시 한번 촉구하기 바란다. 북한도 비핵화에 화답해야 한다. 아쉬운 점은 한·일 정상회담 무산이다. 문 대통령과 일본 스가 총리의 만남은 1분가량의 인사말로 끝났다. 강제징용 등 현안에 대해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이제 정부 차원에서 먼저 대안을 마련할 때다. 그래야 현안을 해결하고, 양국 관계도 개선할 수 있다.
중앙일보 사설
07.20 대통령 방일 무산으로 확인된 최악의 한·일 관계
문재인 대통령의 방일이 끝내 무산됐다. 도쿄 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악화일로의 양국 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해 보려던 정부 구상은 물거품이 됐다. 모처럼 찾아온 기회조차 살리지 못하는 한·일 관계의 현주소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일 관계가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사상 최악이란 표현이 과장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다.
일본은 대화로 풀려는 열린 자세 갖고
한국은 정치·외교 해법 찾는 노력 해야
우선 일본 정부에 강한 유감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한국 정부가 정상회담 개최에 적극적이었던 반면, 일본 정부가 소극적이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일본 정부는 최대의 현안인 강제징용·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한국 정부가 먼저 제시하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성과도 없을 게 뻔한데 왜 굳이 오려고 하느냐”는 속내가 며칠 전 불거진 소마 히로히사 주한 일본공사의 발언에서 여지없이 드러나기도 했다. 일본의 태도는 정상 간의 만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상회담 성사를 한국의 양보를 받아내는 압박 카드로 사용하고 있다는 의구심도 떨칠 수 없다. 이런 자세로는 한국 국민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고, 일본이 원하는 결과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여론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청와대의 결정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더구나 막판에 터져 나온 일본공사의 발언은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악화된 여론을 무릅쓰고 이렇다 할 성과가 없을 것이 확실시되는 속에서 일본행을 택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컸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게 2018년 10월의 일이다. 3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이 문제를 정치적·외교적으로 풀기 위해 청와대와 정부가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정부·여당의 고위층이 ‘죽창가’ 운운하며 반일감정을 선동해 한·일 갈등의 수습은커녕 악화를 부추긴 게 사실이다. 불협화음이 터져 나올 때마다 책임을 떠밀기 위한 비난전에만 열을 올리고 국민적 합의점을 찾아보려는 노력에는 소극적이었다. 이 모든 원인이 쌓인 결과가 바로 오늘의 상황이다.
문 대통령의 방일 무산으로 불신과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한·미·일 3국 협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 정부 간, 국민 간 신뢰를 회복하고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포기할 순 없다. 신뢰는 하루아침에 쌓이지 않는다. 평소 실무 단계에서부터 문제를 풀기 위한 노력을 거듭하면서 차곡차곡 신뢰를 쌓아가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기회가 와도 살릴 수 없다. 이번 방일 무산을 통해 얻은 귀중한 교훈을 한·일 양국 모두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 사설
월간조선 08월 호
08.07 바이든 행정부의 인권외교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 인권을 개선할 수 있을까
⊙ 문정인 전 청와대 특보, “지금 제일 걱정되는 건 미국이 북한 인권 문제를 들고나오는 것”
⊙ 美 국무부, “미국 외교의 중심은 인권”
⊙ 경제성장 계속되며 중국의 사회권은 신장됐지만, 자유권은 여전히 억제… 신장위구르, 티베트, 홍콩에선 인권 침해 중
⊙ 11년간 북한인권법 통과 반대해온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전 총리는 “북한인권법은 외교적 결례이자 내정간섭”이라 발언
“지금 제일 걱정되는 건 미국이 (북한) 인권 문제를 들고나오는 것이다.
지난 5월 17일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이 한 발언이다. 숭실평화통일연구원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공동주최한 ‘바이든 시대 동북아 전망과 한국의 역할’ 심포지엄에서였다. 문 이사장은 “북(北)은 인권 문제를 들고 나오면 대북 적대시 정책이라고 본다. 그러면 대화로 나오기 상당히 힘들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한 미국 국무부의 답변은 단호했다.
“미국은 외교의 중심에 인권을 두는 데 전념하고 있다.”
자유아시아방송(RFA), 미국의소리(VOA)가 국무부 대변인실에 문 이사장의 발언에 대해 묻자 나온 논평이다. 논평엔 의미 심장한 표현이 나온다.
“미국은 생각이 같은 협력국들과 인권 침해에 대한 문제 제기에 함께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을 지나고 있는 한국은 ‘생각이 같은 협력국’에 속할까, 그렇지 않을까.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2월 유엔 인권이사회 복귀를 선언했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8년 6월 인권이사회를 탈퇴했다. 다시 집권한 미국 민주당의 인권외교는 정말 북한의 인권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까.
북한 인권 문제는 국제적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정확히 18년 전부터 공식적으로 국제기구의 의제가 됐다. 2003년 4월 제59차 유엔 인권위원회는 처음으로 북한 인권 문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듬해 국제엠네스티는 현장 조사를 바탕으로 북한 인권에 대한 특별보고서를 냈다. 그해 미국 상하 양원은 북한인권법안을 제정했다. 이후 유엔 같은 다자(多者)기구에서 북한 인권을 두고 지적이 이어져 왔다.
‘가장 지독한 종교박해국’
▲2018년 7월 27일 정전협정 65주년을 맞아 파주 판문점을 방문한 북측 관광객들이 남측 판문점을 바라보는 모습이 창 너머로 보인다. 사진=조선DB
현실은 어떨까. ‘가장 지독한 종교박해국’. 지난 5월 12일 미국 국무부는 《2020 국제종교자유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2014년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북한 인권 실태를 조사한 이래, 북한의 종교 자유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면서 지난해 9월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바티칸 연설에서 북한을 두고 ‘가장 지독한 종교박해국 중 하나’로 지목한 발언을 인용했다.
다시 국제기구로 돌아온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에서 진전을 볼 수 있을까. 과거 사례에서 살펴볼 수 있다. 미국은 중국, 이란, 아프가니스탄 등 여러 나라의 인권 문제를 지적해왔다. 이 중 중국과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한 인식은 거의 유사하다.
미국은 1961년 제정한 대외원조법(Foreign Assistance Act)에서 ‘인권 침해’가 무엇인지 규정해놨다. ‘국제적으로 인정된 지속적이고 대규모적인 인권 침해 행위는 고문,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며 인격 모독적 대우 및 형벌, 기소나 재판 없이 장기간 구금, 납치, 비밀장소에 감금, 기타 생명, 자유 및 신체의 안전을 현저히 침해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외원조법은 미국 외교정책의 주요 목적을 이렇게 규정했다.
‘미국 외교정책의 주요 목적은 국제적으로 인정된 인권이 모든 국가에 의해 확고히 준수되도록 하는 것이다.’
천안문 사태 계기로 인권 지적
미국은 30년 이상 중국의 인권 문제를 제기해왔다. 1989년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미국은 중국의 인권 문제에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주목의 대상이긴 했다. 미국 국무부는 1977년부터 각국의 인권 관련 연례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이때부터 중국의 인권 상황을 보고했다.
천안문 사태 이후부터 미국 정부와 의회는 본격적으로 중국 인권 문제를 지적하기 시작했다.
1990년 12월, 미 국무부 차관보가 중국을 방문해 중국 내 모든 정치범의 석방을 요구했다. 1991년 3월엔 미국 의회 대표단이 석방된 정치범들의 명단을 제출하고 비폭력적인 정치범을 사면할 것을 중국 정부에 요구했다. 이후 미국 의회는 반체제 인사 구금, 파룬궁(法輪功) 수련자 탄압, 티베트와 신장위구르 지역에서의 소수민족 박해, 인터넷을 포함한 여론 검열, 탈북자 강제 북송 등에 대해 여러 번 결의안을 의결했다.
중국은 심하게 반발했다. ‘주권 침해’라는 것이다. 미국 국무부가 매년 발표하는 인권보고서를 두고 ‘패권주의의 새로운 표현’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미국의 인권 침해를 지적하고 나섰다. 1999년부터는 《미국 인권 백서》를 발간하고 있다. 미국 내 인권 침해 상황을 지적하는 내용이다. 중국은 미국의 인권 문제 제기를 이렇게 묘사한다.
〈미국은 자국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다른 국가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하나의 눈을 뜨며, 중국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양 눈을 부릅뜬다.〉
그러면 중국은 자국의 인권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중국 국무원은 1991년 처음으로 자국의 인권 상황을 정리한 백서인 《중국의 인권상황》을 발표했다. 이를 보면 중국의 인권에 대한 인식이 미국 등 서구와 상당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중국의 인권상황》 전문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인권 문제는 국제적인 성격도 띠지만 주요하게는 국가 주권의 범위 안의 문제’. 서구에서는 인권을 두고 ‘천부 인권’이라고 표현한다. 모든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받은 보편적인 권리라는 뜻이다.
중국은 다르다. 국가와 사회가 처한 상황에 따라 제약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공동체의 이익을 개인의 권리보다 우위에 둔다. 개개인의 인권을 논할 때에도, 권리뿐 아니라 의무도 강조한다.
자유권과 사회권
사실 인권을 간단하게 정의하긴 힘들다. 인권은 오랜 역사를 거쳐 보편적 지위를 획득해왔다. 1948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과 1966년 통과된 국제인권규약을 통해 보편성을 확립해왔다.
인권은 크게 자유권과 사회권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자유권은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뜻한다. 프랑스혁명을 계기로 정립됐다. 자본주의 국가에선 인권이라고 하면 흔히 자유권을 의미한다. 사회권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를 의미한다. 국가와 개인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볼 때 자유권이 국가의 축소를 의미한다면, 사회권은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개인보다 공동체를 강조하는 사회주의 국가에선 사회권을 자유권보다 우위에 둔다.
그러므로 같은 조약을 두고도 다른 해석이 나온다. 1966년 체결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B규약)’의 1조 1항은 다음과 같다.
〈모든 사람은 자결권을 가진다. 이 권리에 기초하여 모든 사람은 그들의 정치적 지위를 자유로이 결정하고, 또한 그들의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발전을 자유로이 추구한다.〉
이를 두고 중국은 ‘민족적 자결권’으로 해석한다.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A규약)’의 1조 1항은 이렇게 규정한다.
〈모든 인민은, 호혜의 원칙에 입각한 국제경제협력으로부터 발생하는 의무 및 국제법상의 의무에 위반하지 아니하는 한, 그들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그들의 천연의 부와 자원을 자유로이 처분할 수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인민은 그들의 생존수단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이를 두고서는 민족적 생존권이라 해석하는 식이다.
‘인권 지적은 和平演邊’
중국은 타국의 인권을 지적하는 것은 주권 침해라고 규정한다. 1991년 인권백서에서 이렇게 규정했다.
〈중국은 서로 국가 주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본다. 중국은 인권 문제를 들어 타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에 반대한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이 중국의 인권 문제를 지적하는 것을 중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간섭’ 행위로 규정한다. ‘화평연변(和平演邊)’이라는 것이다. 천안문 사태 직후 덩샤오핑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과 기타 여러 서방 국가는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해 화평연변을 획책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한 가지 방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포연이 없는 세계대전을 치르는 것이다. 우리는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본주의는 최종적으로 사회주의를 이기기 위해 과거엔 무기를 들고, 원자탄을 이용했으나 전 세계인의 반대에 봉착하자 현재는 화평연변의 방식을 획책하고 있다.”
중국의 보수세력 사이에서 쓰이던 이 말은 덩샤오핑이 1992년 남순강화에서 개혁개방을 강조한 이후엔 널리 쓰이지 않았다.
시진핑 정권이 출범한 후 이런 추세는 바뀌었다. 시진핑 주석은 취임 이후 중국몽(中國夢)을 집정 이념으로 제시했다. 2049년까지 현대화된 사회주의를 완성하겠다는 중국의 꿈을 이루겠다는 얘기다. 그러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제시된 게 언론 통제다. 타국의 문화가 중국에 침투하는 걸 막아 ‘문화 안전’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시주석판 화평연변이다.
중국의 아킬레스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4년 4월 27일 신장위구르 자치구를 방문해 인민해방군의 훈련을 지켜보는 모습. 사진=뉴시스
중국이 인권 문제에 민감한 것은 사실 이유가 있다. 중국 내에 존재하는 분리주의 세력과 민주화 세력 때문이다. 지난 5월 11일 중국 국가통계국은 2020년 실시한 인구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중국 인구는 14억1178만명인데, 이 중 한족 인구는 12억8631만명이다. 인구의 91.11%다. 소수민족은 1억2547만명으로 8.89%를 차지한다.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한족보다 소수민족의 증가 속도가 빠르다. 2010년 조사와 비교해 한족 인구는 4.93%, 소수민족 인구는 10.26% 증가했다.
소수민족은 중국의 국경지대에 몰려서 살고 있다. 이들이 정치화되고, 고도의 자치 혹은 분리를 요구하는 것을 중국 정부가 고도로 경계하는 이유다. 이들은 중국 정부의 아킬레스건이다.
중국 정부가 중국 내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강제 북송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중국 입장에선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인정해줘 버리면, 중국 국경지대의 소수민족이 국경을 넘어 탈출해도 소환을 요구할 근거가 약해진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와 신장위구르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소수민족들을 제압하고 있다. 인권 문제에 관대한 태도를 보이면, 이들 외에도 아직 봉기하지 않은 잠재적 저항 세력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민주화 세력과 파룬궁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엔(UN) 유럽본부 건물 정면에 2013년 10월 22일(현지 시각) ‘중국인권—유엔이여 티베트를 위해 일어서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티베트 자유를 위한 학생기구’ 회원들은 이날 중국 인권을 다루는 유엔인권이사회(UNHRC) 분회를 앞두고 이 현수막을 기습적으로 내걸었다. 사진=뉴시스
중국 정부는 중국 내 잠재적인 민주화 세력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반체제 인사들을 가혹하게 다뤄왔다. 중국 ‘민주화 세력의 아버지’로 불린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는 2017년 사망할 때까지 가택연금 상태에 있었다. 베이징경기장을 설계하기도 한 반체제 예술가 아이웨이웨이는 중국의 사회문제를 고발하다가 가택연금을 당했다. 이후 탈세를 이유로 체포됐지만, 국제사회의 잇따른 요구 끝에 석방됐다.
1999년부터는 파룬궁도 탄압하고 있다. 파룬따파(法輪大法)라고도 하는 파룬궁은 기공을 바탕으로 한 심신수련법이다. 중국의 리훙즈(李洪志)가 창시했다. 1999년쯤에 파룬궁 수련인은 중국 정부 추정으로 약 7000만명에 달했다. 중국 공산당원 수와 비등해졌다. 중국 정부는 파룬궁을 사교(邪敎)로 규정했다. 수련은 금지됐다.
중국 정부가 파룬궁을 왜 탄압하는지를 두고 몇 가지 해석이 있다. 그중 하나가 통치의 정당성 문제다. 파룬궁 이념엔 유교와 도교가 결합된 세계관이 배경으로 흐른다. 명·청(明淸) 시대 이전부터 이어온 중국의 전통적 가치관이자 통치관이다. 중국 공산당은 전혀 다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유물론이 공산당의 통치 이념이다. 보통의 중국인에겐 파룬궁이 더 친숙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중국 공산당이 파룬궁의 빠른 확산을 일종의 반체제 혹은 분리주의 움직임으로 인식한 이유다.
2019년 시작된 홍콩 민주화 시위에는 분리주의와 민주화 요구가 중첩되어 있다. 중국 정부가 강경하게 대응한 이유다. 중국 정부의 약한 고리 2개가 한곳에서 만났다.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신경 쓰지 않고 중국은 시위 현장을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그동안 다자기구들이 중국 인권 문제를 지적해왔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각 국가의 인권 상황을 정기적으로 검토해 발표한다. 국가별 인권 상황 정기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UPR)이다. 인권위는 중국의 인권 상황을 검토해 2009년, 2013년, 2018년에 발표해왔다. 홍콩과 신장위구르, 티베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국 정부의 인권 탄압은 국제사회의 이런 노력이 과연 어떤 효과가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북한의 ‘우리식 인권’
▲2019년 4월 30일 서울 중국대사관 앞에서 탈북자 강제북송 중단을 촉구하는 탈북자 가족,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 및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연 후 중국대사관에 탈북자 강제북송 중단을 요구하는 서한을 우편함에 넣었다
북한도 인권에 대해 중국과 유사한 관점을 갖고 있다. 바로 ‘우리식 인권’이다. 1995년 《로동신문》 6월24일자에 등장한 표현이다. 북한 헌법은 개인의 권리를 이렇게 규정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공민의 권리와 의무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 원칙에 기초한다.〉(제63조)
개인의 권리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우위에 두는 게 바로 ‘우리식 인권’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전체’라는 표현이다. 북한에서 ‘조선노동당규약’은 실질적으로 헌법보다 상위인 규범이다. ‘전체’에는 노동당 규약과 수령의 교시를 따르는 이들만이 포함된다. 반혁명분자나 민족반역자들에게는 인권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2013년 장성택 처형이나, 2017년 2월 13일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남을 암살한 사건도 북한 정권 입장에선 인권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민족반역자들에겐 인권 같은 건 없다는 게 ‘우리식 인권’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인권 상대주의
▲유엔 북한 인권 조사위원회(COI)의 마이클 커비 위원장이 2014년 2월 1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북한 인권 실태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뉴시스
‘우리식 인권’은 타국의 인권 지적을 주권 침해로 본다. 《로동신문》 2001년 3월2일자엔 이런 표현이 나온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는 각이한 전통과 민족성, 서로 다른 문화와 사회발전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매개 나라의 인권 기준과 보장 형태도 해당 나라의 실정에 따라 서로 다르다.〉
유엔 인권위원회의 북한인권결의안 채택과 미국(2004년)과 일본(2006년)의 북한인권법 제정에 북한은 강한 거부감을 표출했다. 미국의 북한인권법을 두고는 ‘완전한 반북한법’이라고 비난했다. 2009년 10월 3일 한국과 미국, 일본, 유럽연합(EU)이 유엔 사무국에 북한 인권 문제를 제출했다. 그러자 “선택적으로 특정국에 대해 인권이라는 미명하에 내정간섭을 하는 것”이라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반발했다.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북한의 인권 침해 상황에 대해 보고서를 냈다. 그러자 북한은 《조선인권연구협회 보고서》를 발표했다. 중국이 인권 문제를 지적당하자 《중국의 인권상황》을 낸 것과 유사한 반응이다. 《조선인권연구협회 보고서》엔 이런 대목이 있다.
〈인권은 내정 문제이고 국권이 보장되는 조건하에서의 인권이며, 내정간섭의 대상이 되거나 내정간섭을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로 될 수 없다.〉
북한 역시 중국처럼 자유권보다 사회권을 중시한다. 북한은 1981년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A규약, 사회권)’과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B규약, 자유권)’에 가입했다.
규약에 가입하면 5년에 한 번씩 국가보고서를 내야 한다. 북한은 1994년 이후로 보고서를 내지 않았다. 그러자 유엔인권위가 이런 문제를 지적했다. 북한은 내정간섭이라며 B규약 탈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인권이사회는 조약에 탈퇴 조문이 없기 때문에 탈퇴가 불가능하다고 알려줬다.
북한이 자유권 침해 지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유엔 인권이사회의 국가별 정례인권검토(UPR)에 응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UPR은 193개 유엔 회원국이 자국의 인권 현황과 자국이 스스로 한 인권 관련 약속을 얼마나 지켰는지 다른 회원국과 함께 검토하는 제도다. 한 주기인 4년 6개월 동안 전체 회원국의 인권 상황을 검토한다. UPR은 인권이사회의 47개 이사국으로 구성된 실무그룹이 진행한다. 실무그룹은 심사 대상 국가를 주제로 3시간30분 동안 회의를 연다. ‘상호 대화(interactive dialogue)’다.
北, 여성과 장애인 인권 강조
1주기 UPR 기간 중인 2009년 12월 7일 북한에 대한 상호 대화가 열렸다. 북한에 제시한 167개의 인권 권고를 제기했다. 북한대표부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방북 허용, 사형제 유보 및 공개처형 중단, 강제송환 탈북자 처벌 중단, 주민들의 국내외 이동의 자유 보장, 아동 군사훈련 중단 등 50개 권고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수용 거부를 밝혔다. 자유권에 해당하는 권고들이다.
북한은 김정은 정권 들어 특정 부문에서는 조금씩 국제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있다. 여성, 아동,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관한 부분이다. 제2차 UPR을 위해 스스로 제출한 보고서에 여성의 사회 진출 장려를 강조해놨다. 2014년 기준으로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중 여성 비율이 20%가 넘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장애인 인권을 위해서는 ‘북한장애자보호전략’을 수립하고, 아동의 권리를 위해서는 아동질병통합관리확장전략을 수립했다고 발표했다. 제3차 UPR을 위한 국가보고서를 보면, 부모가 없는 ‘꽃제비’들을 위한 시설 40여 곳을 지었다고 밝혔다. 얼마나 실질적인 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북한은 유엔 인권특별보고관의 방북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2018년 12월 유엔에 장애인권리협약 이행 보고서를 제출했다. 북한이 장애인권리협약 이행 보고서를 제출한 건 이때가 처음이다. 2017년 5월엔 카탈리나 데반다스 아길라(Catalina Devandas-Aguilar) 유엔 장애인특별보고관이 평양을 방문했다. 이 보고서가 이례적인 건 북한이 장애인 인권과 관련해 미비한 점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여성, 아동, 장애인의 인권은 변화를 줘도 체제 유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문이다. 인권 문제에 신경을 쓰는 정권이라며 대내외에 홍보할 수도 있다.
북한은 2016년 〈UN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간의 협력을 위한 유엔전략계획 2017~2021〉을 채택했다. 유엔전략계획 2017~2021은 4가지 우선순위를 설정했다. ▲식량 및 영양 안보 ▲사회개발서비스 ▲복원력과 지속 가능성 ▲데이터와 개발 관리다.
이것은 사회권 규약(A규약)과도 관련되어 있다. 사회권 규약은 건강권, 식량권, 근로권, 교육권, 사회보장권 등을 규정했다. 김정은 정권이 사회권 신장을 조심스럽게 추진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이유다.
中, 경제 발전하며 사회권 신장
사실 사회권은 경제가 발전하고 1인당 소득이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신장된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해 세계 무역 체제에 안착한 후 경제가 빠르게 성장했다. 2020년 기준으로 GDP 14조7300억 달러로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됐다. 1인당 GDP는 2000년 959달러에서 2019년 1만504달러로 10배 이상 늘었다.
중국 경제가 성장하며 사회권의 하나인 건강권이 신장됐다. 영아사망률을 예로 들 수 있다. 2000년 1000명당 27명에서 2020년 1000명당 8.1명으로 감소했다.
미국은 천안문 사태 이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중국의 ‘최혜국(most favores nation)’ 대우를 유지할지 여부를 중국 내 인권 문제와 연계해 활용해왔다. 그러다 1994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아무 조건 없이 최혜국 대우를 1년 연장해줬다. 이후 2001년 중국이 WTO에 가입하면서, 미국이 무역과 관련한 방법으로 중국 인권 문제에 개입할 굵직한 지렛대를 상실했다. 경제발전을 위해 미국 스스로 포기했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 결과, 적어도 중국의 사회권은 올라갔다.
북한에 대입해보면 어떨까. 북한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선 선결 요건이 있다.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다. 북한은 미국이 주도하는 각종 경제 제재에 갇혀 있다. 여기에 대해 한국 내부에서부터 입장 정리가 안 되어 있다. 사실 대북 정책 자체에 대해 합의가 전무한 상황이다. 북한인권법 제정을 두고도 여야가 합의하지 못해 11년 만인 2016년에야 통과됐다. 북한과의 경제적 협력과 인권 문제 지적을 투트랙으로 가져간다는 식의 합의는커녕 인권법안 하나 통과시키는 데 11년이 걸렸단 얘기다.
북한인권법 반대했던 더불어민주당
▲2014년 1월 북한인권학생연대 소속 대학생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김정은 가면을 쓴 채 북한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모습. 사진=조선DB
민주당은 북한인권법 통과에 반대해왔다. 북한 인권 문제엔 그들 나름의 사정이 있다는 걸 감안해줘야 한다거나,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북한 정권을 흔들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이해찬 전 총리는 북한인권법을 두고 “외교적 결례이자 내정간섭”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민주당이 이념적으로 계승했다고 주장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4년 《포린어페어》지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아시아는 굳건하게 민주주의를 확립하고 인권을 강화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가장 큰 장애물은 문화적 유상이 아니라 권위주의적인 지배자들과 그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이다. … 문화가 반드시 우리의 숙명인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가 우리의 숙명이다.〉
리콴유 당시 싱가포르 총리가 《포린어페어》지와 대담하며 ‘아시아적 공동체 의식의 특수성’을 강조한 데 대한 반박이었다.
중국을 보면 사회권과 자유권이 균형 있게 신장되어야 진정한 인권 신장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사회권이 신장되고 신장위구르, 티베트, 홍콩에선 인권 탄압이 지금도 진행 중이다.
가정을 해보자. 남남갈등이 해소되고 미국의 지원 아래 북한이 개혁개방을 하면 북한의 사회권뿐만 아니라 자유권도 신장될까.
한반도 통일 노리는 북한
일단 북한은 중국과 차이가 있다. 소수민족이나 영토 문제가 없다. 하지만 남한이라는 존재가 있다. 독일 분단 시절, 동독은 서독을 아예 다른 민족으로 치부했다. 이념이 다르므로 다른 민족이 됐다는 논리였다. 북한은 다르다.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 무력을 철거하고 조국 통일을 하기 위해 투쟁하겠다’, 북한 헌법보다 우위에 있다는 조선노동당 규약에 나오는 표현이다.
지난 6월 1일 《한겨레》는 북한 조선노동당이 규약을 변경했다고 보도했다. 8차 당대회 기간 중인 2021년 1월 9일 수정됐다. 수정 사항을 보도하며 ‘북한이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 과업을 삭제했다’고 분석했다.
수정 전후를 비교해보자.
(이전)〈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 강성국가를 건설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의 과업을 수행하는 데 있으며 최종목적은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화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 데 있다.〉
(수정 후)〈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부강하고 문명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실현하는 데 있으며 최종목적은 인민의 리상이 완전히 실현된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다.〉
유동열 자유민주원 원장은 수정 전후가 결국 같은 말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말하는 ‘사회의 자주화’란, 남한혁명을 방해하는 외세(미국)를 축출하고 민족자주권을 쟁취하는 것으로 ‘민족해방’혁명을 의미한다. ‘민주주의적 발전’은, 파쇼독재라고 규정한 남한 정권을 타도하고 민주정권을 수립하자는 것으로, 이른바 북한식 ‘(인민)민주주의혁명’을 뜻한다. 따라서 바뀐 표현은 ‘민족해방 민주주의혁명’과 다름없다.”
북한 내 자유권 신장엔 의문
새로운 규약에는 이런 대목이 추가됐다.
〈조선로동당은 전 조선의 애국적민주력량과의 통일 전선을 강화하며 해외동포들의 민주주의적 민족 권리와 리익을 옹호보장하고 그들을 애국애족의 기치 아래 굳게 묶어세우며 민족적 자존심과 애국적 열의를 불러일으켜 조국의 통일발전과 륭성번영을 위한 길에 적극 나서도록 한다.
조선로동당은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무력을 철거시키고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를 종국적으로 청산하며 온갖 외세의 간섭을 철저히 배격하고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들을 제압하여 조선반도의 안전과 평화적 환경을 수호하며 민족자주의 기치, 민족대단결의 기치를 높이 들고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기고 민족의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 투쟁한다.〉
김정은 정권이 북한 주도의, 혹은 적어도 남한 주도가 아닌 한반도 통일을 국가적 목표로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남한에 동조하거나 탈북하려는 주민들을 북한은 ‘공화국 적대자’로 분류해왔다. 북한의 경제가 발전해 사회권이 신장된다 해도, 중국처럼 반체제 세력을 억압하느라 자유권은 억압될 수 있다고 예측할 수 있다.
다시 고민해보자. 바이든 정권의 인권외교는 북한 주민의 인권 신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사회권 신장으로는 이어질 수 있겠지만, 그들에게 자유를 돌려주기까지는 험난한 여정이 기다릴 것 같다.⊙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08.09 중국의 연합훈련 내정간섭, 정부는 입장도 없나
▲지난 5월 27일 오후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台) 국빈관에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이용남 주중 북한대사를 만나 한·미 밀착에 대응해 북·중간 전략적 소통을 과시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한국에 대한 중국의 내정간섭이 도를 넘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6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의에서 “미국과 한국이 합동(연합)군사훈련 계획을 추진하는 것은 건설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주부터 시작하는 한·미 연합훈련은 북한의 전면적인 침공에 대비해 연례적으로 실시하는 방어적 성격의 훈련이다. 그런 연합훈련을 두고 제3국의 외교장관이 이래라저래라 하며 간섭한 것이다. 왕이 부장은 한술 더 떴다. 그는 “미국이 정말 북한과 대화를 재개하기를 원한다면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는 어떠한 행동도 취해선 안 된다”고 했다. 한·미 연합훈련이 마치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키고, 북한 비핵화를 더 어렵게 만든다는 얘기로 들린다. 북한은 곧바로 왕이의 발언을 전하며 북·중 밀착 관계를 과시했다.
왕이 외교부장, “한·미 연합훈련 반대”
정부, 도 넘은 발언에 눈치 보며 침묵
중국이 한국의 안보문제를 간섭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뿐만 아니라 그렇게 말할 자격도 없다. 중국은 1950년 한국전쟁에 개입해 수많은 우리 국군과 국민을 희생시키고 국토까지 훼손했지만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다. 오히려 중국은 지난 7월 1일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을 맞아 한국전쟁 참전을 승리한 전쟁으로 미화했다. 그러면서 지난달 7일엔 ‘북·중 우호조약’을 양국의 전략적 결정이라고 치켜세웠다. 이 조약엔 한반도 유사시 북한을 돕기 위한 중국의 자동개입 조항이 명시돼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중국이 러시아와 함께 군용기 20대를 동원해 동해 상공에서 무력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중국은 남중국해를 장악해 우리의 해상수송로를 위협하고 있으며,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도 직간접적으로 연루돼 있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간섭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지난달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와 관련해 우리 대선 정국에 개입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사드는 북한 미사일 방어용이다. 그런데도 중국은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며 롯데 등 한국 업체에 불이익을 줬다.
상황이 이럴진대 정부는 중국의 내정간섭 성격의 발언에 대해 눈치를 보며 한마디 입장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도리어 국립외교원장에 내정된 홍현익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실장은 지난 5일 KBS 라디오에서 “북한의 경제력이 남한의 53분의 1로 축소됐고, 군사비도 우리가 10배 이상”이라면서 “한·미 연합훈련은 안 해도 된다”고 말했다. 민주당을 비롯한 범여권 국회의원 74명은 연합훈련 취소를 요구하는 연판장에 서명했다. 훈련하지 않는 군대는 존재의 의미가 없다는 것도 모르는가. 북한이 주민의 희생을 강요하며 조만간 핵무기 100∼200개 보유에 매진한다는 데 걱정도 되지 않는가. 군 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의 입장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중앙일보 사설
08월 09일 “한미훈련 안 해도 된다”는 사람을 외교원장 시키는 文
이미 ‘키보드·마우스 훈련’ 비아냥을 받는 한·미 연합훈련이 북한 김여정의 ‘하명’ 이후 반의 반쪽으로 더욱 쪼그라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일 군 수뇌부를 불러 “(미군 측과) 신중하게 협의하라”는 식으로 사실상 축소를 지시하더니, 그걸로도 부족한지 외교 요직에 훈련 무용론을 제기한 사람을 앉히려 한다. 군 통수권자가 이 지경이니 여당에선 훈련 연기 연판장이 돌고, 중국 외교부장은 국제 외교 무대에서 대놓고 “(한미훈련은) 건설적 측면이 부족하다”고 비판하는 것 아니겠는가.
국립외교원은 외교관 양성 및 외교 전략·정책 연구 등을 수행하는 주요 국가기관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을 원장에 내정했다고 5일 발표했다. 홍 내정자는 그간의 경력으로 볼 때 적임자라고 보기 힘들다. 유능한 전·현 외교관이 즐비한데 굳이 외교 경험도 전무한 이런 인사를 내세운 것은 직업 외교관들에 대한 모욕으로 비칠 정도다. 게다가 홍 내정자는 6일 인터뷰에서 “한미훈련을 하지 않아도 된다”며 훈련을 하더라도 그 내용을 북한에 알려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 근거로는 “북한의 경제력이 남한의 53분의 1” “군사비도 우리가 10배 이상 쓴 지 10년이 지났다” 등을 제시했다.
절대무기인 핵과 생화학무기 등 비대칭 전력에 대한 이해조차 없다는 자인이거나, 이적(利敵) 발상 중 하나일 것이다. 곧 임기가 끝나는 김준형 원장은 “한국은 동맹에 중독됐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안보의 핵심인 한미동맹을 깨자는 주장과 뭐 다른가. 문 대통령이 대한민국 안보를 우선시한다면 이번 외교원장 내정부터 철회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8.13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다섯 가지 어려움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지난 5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한반도에 대한 인도주의적 구상을 모색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반가운 소식이다. 북한의 경제난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한·미 고위급 인사의 이 같은 약속은 시의적절하다.
한·미 합의에도 코로나 방역 변수
북한의 지원 당연시 태도도 문제
인도주의적 대북지원 프로젝트엔 까다로운 난관들이 있다. 코로나19 예방 조치 때문에 물리적으로 구호물자를 전달하기 어려운데, 특히 북한 내 검역 시설이 충분치 않아서다. 식량처럼 상하기 쉬운 물자가 취약하다. 하지만 팬데믹 이전부터 국제 구호 요원들은 북한이 효율적 원조를 하기 유독 힘든 나라라고 토로하곤 했다. 다섯 가지 요인 때문이다.
첫째, 북한 정권의 간부 상당수는 단순히 고통을 덜어 주려는 목적으로 구호물자를 준다는 개념을 믿지 않는다. 2005년 보안 당국이 국제 구호요원들을 해외 정보기관의 사주를 받아 침투한 존재로 간주했고, 실제로 상당수의 비정부기구(NGO)를 쫓아내기도 했다.
둘째, 보안 당국과 달리 많은 북한 관료들은 세상이 그들에게 원조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구호물자는 관용이 아닌 그들이 마땅히 누리는 권리라고 믿는다. 때로는 특정한 조건으로만 이를 허용할 수 있다는 식으로도 처신한다. 구호요원들은 북한의 관료주의적 절차에 지치고 한편으론 지원을 더 많이 해 주지 않는다는 불평에 시달린다고 털어놓곤 했다. 식량 원조만이 아니다. 영국에서 북한 현지의 영어 교사들을 훈련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북한 당국은 사의는커녕 프로그램이 미흡하니 더 해 달라고 불만을 터뜨렸다고 한다. 구호기관과 후원자들은 이런 적반하장 태도를 못마땅해한다.
셋째, 북한은 구호물자 배급을 서방이나 남한의 구호요원들이 통제하려 하면 몹시 분개한다. 북한 당국이 도움이 절실한 주민들에게 배급한다면 믿고 맡겨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기근 때부터 북한이 구호물자의 상당 부분을 주민들이 아닌 군대, 곡물 매매업자, 고위 간부들에게 빼돌리는 게 분명해졌다. 도덕적으로도 불쾌한 일일 뿐 아니라 구호기관으로선 대체로 분배의 투명성을 보장하는(또 원조에 감사할 줄 아는) 나라들도 많은데 굳이 북한을 계속 지원해야 할 이유를 후원자들에게 설명하기가 어려워지기도 했다. 이로 인해 NGO들이 북한을 떠나기 전부터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었다. 구호물자 유용(流用) 문제 때문에 접근법이 바뀌기도 했다. 일례로 세계식량계획(WFP)은 쌀 공급을 선호했지만, 고열량 비스킷을 제공해야 했다. 비스킷은 요리 필요가 없어 배급 대상자들이 먹는 걸 확인할 수 있어서였다.
넷째, 북한은 관료들 간의 복잡한 대립 관계로 분열되어 있어 부서마다 구호물자를 받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NGO들은 프로젝트를 시작하려 하면 들어 본 적도 없는 부서에서 나타나 자기들도 도움이 필요하다며 물품의 상당량을 요구한다고 종종 말하곤 했다. 이 과정에서 프로젝트는 지체되고 비용은 증가한다.
다섯째 북한에는 조직화한 시민사회가 별로 없다. 아프리카에서도 현지문화에 정통하고 최적의 배급망을 알고 있는 지역단체들과 협력할 수 있는데 북한에선 이런 협력활동이 거의 불가능하다. 있다 해도 북한 적십자사 정도인데 재난구조에 도움 되는 정도다.
북한 주민들을 돕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설명을 해야 하는 현실이 슬프다. 이제 한·미 정부도 인도주의적 북한 지원이라는 과제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직접 알게 될 것이다. 모쪼록 양국 정부가 이 문제로 오랫동안 씨름해 온 자국 NGO들과 논의한 뒤 효율적인 대북지원을 무사히 진행하기를 바랄 따름이다. 북한 주민 대다수는 어려운 시기를 견뎌 내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국제 사회가 그들을 돕기 위해
서는 건 옳은 일이다.
중앙일보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08.16 국익 없으면 동맹도 버리고 떠난다, 바이든의 아프간 '손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친미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함락시킨 소식이 전해진 15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실패하지 않았으며, 미군 철수 결정은 미국의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아프간 철군·함락으로 본 바이든 외교 정책
블링컨 "美 국익 없어 철수…사이공 아니야"
"1조 달러 투자, 5년 주둔도 달라지지 않아"
英 "트럼프와 뭐가 다르냐" 바이든 철수 비판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이날 오전 ABC방송에 출연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퇴각은 "명백하게 사이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이 1975년 베트남전 패망 직전 헬기를 이용해 미국인과 베트남인 등 6000여명을 탈출시킨 치욕적 사건과는 다르다는 주장이다.
블링컨 장관은 CNN방송에서는 "전 세계에 있는 우리의 전략적 경쟁자들은 우리가 아프가니스탄에 1년, 5년, 10년 더 머무르면서 자원을 (남의 나라) 내전에 사용하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할 것"이라면서 "그것은 우리에게 전혀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요일 아침 시사프로그램에 연속 출연해 미국의 이익을 앞세워 우방을 저버렸다는 국제사회와 미국 내 일부 여론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하지만 탈레반의 신속한 반격으로 아프간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자국민을 철수시키는 작전을 긴박하게 전개 중인 미국 동맹들 사이에서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다른 게 뭐냐는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다.
토비아스 엘우드 영국 의회 국방위원장은 워싱턴포스트(WP)에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는 어떻게 된 거냐?"고 반문했다. 그는 "로켓 추진 수류탄과 지뢰, AK-47 소총밖에 없는 무장 반군에 패배하면서 어떻게 미국이 돌아왔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세계를 향해 미국의 귀환을 알리면서 동맹을 복원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를 재건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아프간 미군 철수는 의견이 맞는 경우가 거의 없는 트럼프와 바이든이 의견 일치를 보는 몇 안 되는 분야다. 민주당과 공화당을 떠나, 미국 내 민심은 "끝없는 전쟁에서 우리 아이들을 데려오라(Bring our boys back)"고 수렴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2월 탈레반과 협상에서 2021년 5월 1일까지 미군을 철수하기로 합의했다. 최대 1만2000명에 달했던 아프간 내 미군 병력은 트럼프 퇴임 직전 2500명까지 줄었다.
정권을 넘겨받은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월 9·11테러 20주년을 앞둔 이달 31일까지 미군을 완전히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의 철군 정책을 번복하지 않겠다고 확인한 것이다.
바이든의 '미국이 돌아왔다' 외교 정책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에 꼭 맞는 아프간 철군 결정과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까.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훼손한,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위상을 높이고 동맹을 재건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중심에는 미국의 국익을 놓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기도 전인 지난해 2월 CBS '페이스 더 네이션' 인터뷰에서 아프간 철군에 대한 질문을 받고 "우리 군대를 동원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내부 문제(internal problem) 하나하나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우리 능력 밖"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에 필수적인 자기 이익(vital self-interest)이 걸려 있는가, 아니면 우리 동맹 중 한 나라의 자기 이익이 걸려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미국과 동맹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전략을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14일 미국인 탈출 지원을 위한 미군 5000명 파병 승인을 발표하면서 이 같은 '손절' 외교를 정당화했다.
바이든은 "미국은 지난 20년간 아프간전을 치르면서 가장 뛰어난 젊은 남녀를 파병하고, 1조 달러 가까이 투자했으며, 아프간군과 경찰 30만 명 이상을 훈련하고, 최첨단 군사 장비까지 갖춰줬다"고 말했다.
또 "아프간 정부군이 자신의 나라를 지키지 못하거나 않는다면 미군이 1년 더, 또는 5년 더 주둔해도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전문가들은 아프간 정부군이 탈레반보다 뛰어난 성능 무기와 병력을 갖고도 순식간에 나라를 내준 것은 무능하고 나라를 지킬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바이든은 미국의 아프간전 참여는 9·11테러 주범인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라덴 제거를 위한 것이었으며, 이 목표는 오래전에 달성됐다고 말한다. 그 이후 미군의 아프간 주둔은 "다른 나라 내전 한가운데에 미국이 한정 없이 주둔"한 꼴이라는 게 바이든 정부의 생각이다.
제아무리 동맹이나 동반자라도 자신을 지켜낼 역량과 의지가 없다면 과감하게 '손절'하고 미국의 국익을 추구하겠다는 새로운 외교 방향을 보여줬다고 평가할 수 있다.
중앙일보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08.17 아프간 사태가 한·미 동맹 중요성 보여줬다
▲미군이 20년만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자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에 항복했고, 수많은 아프간 주민이 탈레반을 피해 해외로 탈출하고 있다. 사진은 무장한 탈레반.[AF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사태는 아프간 정부의 무능과 부패, 정치적 분열이 만든 비극이었다. 아프간에서 20년 동안 공을 들인 미국이 손절매하듯이 아프간에서 미군을 철수한 것은 냉정한 국제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줬다. 어제 아프간 수도 카불 국제공항은 아비규환이었다. 베트남 패망(1975년) 사태를 다시 보는 듯하다. 2001년 아프간 탈레반 정권은 9·11 테러를 자행한 알카에다와 연관돼 주목을 받았다. 이어 미국 주도의 항구적 자유작전으로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고, 재건 과정에 한국도 참여했다. 우리의 다산·동의부대와 오쉬노부대가 10년 이상 아프간에 주둔하면서 의료 지원과 재건을 도왔다. 한국은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아프간 군대와 경찰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7억2500만 달러를 지원하기도 했다.
아프간 정부의 무능·분열이 자초한 비극
미국 포기하자 바로 망하는 냉엄한 현실
아프간에서 미군 철수는 불신과 실망에서 나왔다. 미국은 2001년 이후 아프간 전쟁과 재건에 2조 달러(2300조원) 이상 쏟아부었다. 미국의 재정이 흔들릴 정도였다. 2014년부터는 아프간 스스로 방위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정부군(ANDSF) 양성에 국방비(50억∼60억 달러)의 75%를 미국이 감당했다. 미 정부는 ANDSF가 탈레반 병력보다 훨씬 우세한 것으로 착각했다. 그런데 허상이었다. ANDSF 병력은 숫자로만 존재하고, 실제는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이 아프간에 지원해 준 많은 재원은 재건이 아니라 관료와 군 간부들의 호주머니에 들어갔던 것이었다. 미군이 철수하니 아프간 정부군은 전투 의지도 없었다. 탈레반과 전투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항복했다. 미국이 아프간에 엄청난 비용을 들이고도 철수를 결정한 배경은 아무리 도와줘도 성과가 없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아서다. 이런 아프간 상황은 1973년 베트남에서 미군이 철수했을 때와 흡사하다. 당시 베트남의 월남 정부도 부패했고 정치적으로 분열됐었다.
아프간 사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우선 강한 군대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최근 공군과 해군에서 연이어 벌어진 성추행 사건과 경계 실패, 한·미 연합훈련 축소 등을 보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군대의 생명인 군기가 무너지면 아프간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다. 더구나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을 계속 늘리고 있다. 한·미 동맹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미군이 철수한 아프간의 운명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최근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대놓고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았던가. 한·미 동맹은 한반도 안보의 기둥이다. 정부와 군은 아프간 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한·미 동맹 강화와 강군 유지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나라가 분열되고 안보가 무너지면 백약이 무효다. 아프간에 남은 교민과 외교관들의 안전한 귀국에도 온 힘을 쏟기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
08-17 美가 버린 아프간… 안보의식·軍 무너진 나라의 비극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반군 탈레반은 15일(현지 시간)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을 장악했다. 앞서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에 항복을 선언하고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우즈베키스탄으로 망명했다. 주요 거점 도시를 점령한 탈레반이 카불에서 11km 떨어진 곳까지 진격해 압박하자 결국 굴복한 것이다. 미군이 최종적인 철수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이고 탈레반이 주요 거점 도시 장악에 나선 지부터는 겨우 열흘 만이다.
아프간 정부군은 미군으로부터 지원받은 최신 장비로 무장했음에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전쟁 때의 월맹군에 훨씬 못 미친다고 평가한 탈레반 앞에서 무력했다. 서류상으로 병력은 30만 명에까지 이르렀으나 봉급을 타기 위해 거짓으로 등록한 유령 병사가 많아 실제 병력은 6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지난해 2월 미군과 탈레반의 철수 합의 이후 탈레반에 돈을 받고 무기를 판 군인들도 적지 않았다. 실제 미군이 떠나기 시작하자 사기가 꺾여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미군은 전쟁 중 갑작스럽게 물러난 베트남에서와는 달리 아프가니스탄에서는 10년 전인 2011년부터 철수를 시작했다. 이번의 미군 완전 철수는 이슬람 정부에 안보 권한을 넘긴 2014년 이후에도 미군 1만 명 정도가 남아 아프간 군경 훈련 등의 일을 맡아왔는데 그마저도 그만둔다는 의미였다.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대통령을 비롯한 아프간 지도층은 분열을 거듭하고 부패에 빠져 나라를 다시 세울 준비를 하지 못했다.
2001년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은 9·11테러 이후 숨어든 빈라덴 등 알카에다 세력을 잡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무력으로 개입했다. 그때 탈레반 정권이 무너졌다. 당시 탈레반 정권은 테러집단에 은신처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극단적 원리주의에 입각해 여성을 억압하고 처벌하는 등 반인권적 행태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그런 탈레반이 20년 만에 다시 정권을 잡았다. 국제사회는 억압적 정권으로의 회귀를 우려하고 있다.
미국이 미군 철수 후 아프간 정부의 몰락을 예상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단지 예상한 시기보다 훨씬 더 빨라 놀랐을 뿐이다. 몰락을 예상하면서도 미군은 철수했다. 미국이 더 이상 아프가니스탄에 남아있을 국익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이 타국의 자유와 인권만을 위해 한정 없이 군대를 주둔시킬 여력도 의지도 없다는 사실을 아프간 사태가 일깨워준다.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지키려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나라를 국제사회가 돕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동아일보 사설
08월 18일 동맹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김숙 前 駐유엔 대사
아프가니스탄 정부 함락과 탈레반의 정권 탈취는, 지난 4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철군 발표 때 이미 걱정스럽게 예견되긴 했었지만, 너무 급작스럽게 닥쳐오고 극심한 혼란을 야기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앞으로 샤리아 율법에 따른 가혹한 신정체제가 뒤따르겠지만, 미국과 유엔 등 국제사회는 현실적으로 탈레반 정권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동안 아프간 정부가 무능, 부패, 주인의식 실종 등으로 정통성을 잃었다면, 미국으로서는 2001년 60여 일 만의 작전으로 탈레반 축출에 성공한 뒤 이에 도취해 분별력을 잃은 채 군사전략과 목표가 흔들리는데도 우유부단하게 시간만 끌며 막대한 군비와 인명 손실을 자초했다. 또한, 탈레반의 의지와 인내력에 대한 오판과 정보 실패가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쉬운 전쟁은 없으며 명쾌한 승리는 더더욱 없다는 베트남전의 뼈아픈 교훈을 미국이 놓친 대가다.
미국이 아프간의 수렁에서 빠져나옴으로써 향후 아태전략과 쿼드 강화를 통한 중국 견제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가 신속히 탈레반에 우호의 손을 내미는 데서 보듯, 중앙아시아에서 이들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반대로 테러와의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평가를 남긴 미국의 위상은 현저히 약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오는 12월 50여 개국 참여를 목표로 제1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최를 준비 중인 바이든 대통령에겐 정치적인 타격으로 작용할 듯하다. 동맹국들의 대미 신뢰도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으나 이번 사태가 미국시대의 종언으로 해석되는 것도 과장이다. 이 사태에서 몇 가지 함의를 끌어낼 수 있다.
첫째, 일반적으로 대개의 상황은 처음에는 천천히, 그러다가 갑자기 종국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이번 아프간 사태도 지난 20년간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변화해 오다가 파국은 순식간에 왔다. 베를린 장벽 붕괴의 경우도 ‘처음에는 천천히, 그러다가 갑자기’의 패턴이었다. 북한도 가중된 경제난과 김정은의 건강 이상설 등이 간단없이 제기되고 있다. 언제 급박한 상황이 도래할지, 항상 대비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
둘째, 미·중 간 패권 경쟁의 심화로 양 강대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으나 국제 관계에 있어 미국의 비중과 역할은 지구상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중요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우리 안보에 있어 한미동맹의 위치는 결정적이며, 따라서 한국의 선택지는 확연하다.
셋째, 그러나 우리의 운명을 오로지 동맹에만 맡길 수는 없다. 월남은 전쟁을 수행하면서 미국에만 의존하며 부패에 빠졌기 때문에 멸망했다. 동맹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우리는 항상 자조(自助)와 자강(自强)을 깊이 새겨야 한다. 그런데 연합훈련 연기를 촉구하는 연판장에 74명의 국회의원이 서명하고, 국립외교원장은 연합훈련이 필요 없다고 말한다. 정부는 북한 김여정의 눈치를 보며 연합지휘소 훈련을 축소 진행하고 있다. 광복회장은 벌써 몇 번째 망언과 국가 정체성 왜곡 발언을 일삼아 광복절의 의미를 훼손하고 있다.
현 정부의 외교·안보·국방은 무척추동물처럼 흐물거리며 위축돼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고 고쳐질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내년 5월에 들어설 새 정부는 무엇보다 먼저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그 첫 번째 조치가 동맹 복원의 가시적 조치로, 1993년 이후 사라진 팀스피리트 훈련을 재개하는 일이다.
문화일보
08.18 아프간 떠나는 미국 보며 한국 처지를 생각한다
▲16일(현지 시각)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공항에서 카불을 탈출하려는 아프간인들이 미 수송기 C-17에 필사적으로 탑승하고 있다(왼쪽 사진).아프간 카불에서 카타르로 비행한 미 공군 C-17기 내부 모습. 800명을 태운 것으로 알려졌지만 익명을 전제로 한 미 국방부 관계자는 "실제 인원은 약 640명"이라고 말했다. / 트위터 Defense One
바이든 미 대통령은 대(對)국민 연설에서 아프간 철수 결정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의 국익이 걸리지 않은 분쟁에 무한정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년 전 미군이 아프간을 점령한 것은 미국 본토를 겨냥한 9·11 테러 집단을 응징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 목적은 이미 달성됐다는 의미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의 전략적 경쟁자인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이 천문학적 재원을 쏟아부으며 아프간에 계속 묶여 있기를 바랄 것”이라며 “그것은 미국의 안보 이익이 아니며, 미국 국민이 바라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 정치인과 전문가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의 치욕이었던 베트남 사이공 함락의 악몽을 재현시켰다고 비판하고, 당초 철군을 지지했던 국민 여론도 요동치고 있다. 그러나 어차피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미국은 2차 대전과 냉전 때처럼 두 개의 전면전을 치르거나 대비할 만한 힘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다. 바이든 아닌 다른 대통령이라도 뾰족한 대안이 없었을 것이다.
바이든은 “아프간군이 스스로 싸우지 않는 전쟁을 미국이 대신 싸워 줄 수 없다”고 했다. 미국의 칼럼니스트는 “한국도 미국의 도움이 없었으면 아프간과 같은 운명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국내에도 그런 시각이 있다. 하지만 한국과 아프간의 국력과 전략적 위치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이자 비약이다. 국방장관이 일곱 번이나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만큼 엉망인 국군의 기강이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지만, 아프간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따로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년에 걸친 미국의 대(對)테러 전쟁은 끝났으며, 미국 중심 국제 질서에 도전하는 중국에 맞서는 것을 첫째 국가 이익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바이든이 “미국이 돌아왔다”며 복원을 선언한 동맹 관계 역시 중국의 도발과 위협을 억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북한을 공동의 위협으로 설정했던 한미 동맹도 성격 변화를 요구받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을 겨냥한 지역 안보 협력체인 쿼드(Quad)나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에 한국이 동참해야 한다는 미국의 압박은 보다 거세질 것이다. 이런 미국의 전략에 협력하지는 않으면서 북한의 위협만 막아달라는 한국의 애매한 입장은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아프간에서 한국 대사관 직원과 현지 주민이 무사히 빠져나오는 과정에서도 미국과 미리 맺어 뒀던 양해각서가 결정적 도움이 됐다고 한다. 오로지 힘의 논리만 작동하는 국제사회 정글 속에서 국가와 국민을 지켜 내려면 믿을 수 있는 강대국과의 우호 관계가 필수적이다. 남북 이벤트 정치에 앞서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대응하는 입체적 국가 전략이 절실한 시점이다.
조선일보 사설
08.18 사이공, 카불, 그리고 서울
1975년 사이공
2021년 카불
그렇다면…
2022년 서울은?
# 탈레반이 돌아왔다. 2021년의 카불은 생지옥이 되었고, 탈출 러시는 1975년의 사이공을 재연했다. 지난 4월 14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프간 내 미군 철수를 공식화하고 그달 말부터 본격적인 철군을 시작한 지 불과 100여 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달 8일에도 “탈레반은 월맹군이 아니다. 역량이 그에 훨씬 못 미친다”며 사태를 낙관했다. 물론 탈레반은 월맹 정규군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1년 카불은 1975년 사이공의 재판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과연 2022년 서울은?
# 미군 철수에 발맞춰 ‘돌아온 탈레반’이 20여 년 만에 아프간 수도 카불을 무혈입성하듯 점령해버린 날이 공교롭게도 우리의 광복절이었다. 하지만 그날 서울 시청 앞과 광화문 광장 주변 도심은 집회를 막는다는 이유로 차벽이 둘러쳐 있었다. 해방의 날인 광복절에 서울의 심장 한복판에 차벽을 두른 처사에 대해 누구 하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또 그러려니 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옛 서울역 건물에서는 광복절 기념식이 열렸다. 이 기념식에서 부모의 독립군 활동 자체가 의문투성이로 의심받는 광복회장이란 사람이 미리 촬영된 영상으로 한국 사회의 모순은 친일 미청산과 분단이라며 1970~80년대 ‘해방 전후사의 인식’ 수준의 궤변을 늘어놓으며 친일파 없는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다고 절규하듯 말했다.
# 그 사람의 말은 곧 그 사람의 삶이 입증한다. 창씨개명한 것만 가지고도 친일파로 몰던 그는 정작 모친 고(故) 전월선씨가 에모토 시마지(江本島次)로 창씨개명한 제적등본이 제시되자 그럴 리 없다고 얼버무렸다. 더구나 인우보증(隣友保證) 외에는 그의 부모가 조선의용대 혹은 광복군에 참여하거나 복무했다는 기록 자체가 없기에 적잖은 다른 광복회원들조차 그의 부모가 독립유공자라는 사실 자체를 의심하고 부정하지 않는가. 심지어 혹자는 원(元), 웅(雄)이란 그의 이름자는 다분히 일본식으로 당시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기피하던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더구나 그는 스스로 친일 정권이라 단정했던 박정희 정권의 공화당 공채 7기 당료 출신이다. 그가 공화당 공채 당료가 된 때는 유신이 선포된 1972년이었다.
전두환 정권에서는 민정당 창당에 참여해 민정당 헌법특위 행정국장 자리까지 한 후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민정당 전국구 58번 티켓을 받아 들었다. 1992년 제14대에는 민주당으로 갈아타서 당선됐고, 다시 2000년 16대에는 한나라당으로, 또다시 2004년 제17대에는 열린우리당으로 옮겨 타며 당선됐다. 한마디로 당선만 된다면 어떤 갈지자 행보도 마다하지 않던 그다. 그야말로 철새 정치인의 원조 격 아니겠는가. 그는 이런 자신의 행보를 생계 때문이었다고 변명해왔다. 그렇다면 지금도 생계 때문에 광복회장 자리 차지하고 친일 청산을 떠들며 대한민국은 ‘친일의, 친일에 의한, 친일을 위한 나라’라고 폄하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가 친일을 그토록 목메어 비난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반미, 종북으로 귀결된다. 그는 미일 동맹에 남한을 종속시킨 것이 한미 동맹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느닷없이 ‘종북’ 이석기를 찬양하는가 하면 심지어 독립군 토벌에 앞장선 집안에서 큰 박근혜보다 일제강점기에 항일 무장투쟁한 독립운동가 가문에서 자란 김정은이 낫다고까지 말한 그다(2018년 12월 8일 김정은 위인맞이환영단 주최 “왜 위인인가?” 공개 세미나). 그야말로 대한민국 안에서 활개치는 진짜 ‘탈레반’ 아닌가!
# 지난 1일 북의 김여정이 “남조선군과 미군과의 합동 군사 연습이 예정대로 강행될 수 있다는 기분 나쁜 소리들을 계속 듣고 있다”고 밝힌 지 나흘 만에 더불어민주당 설훈, 무소속 윤미향 등 범여권 의원 74명이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연기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북한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아니고 저들의 위협에 굴복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고 단서를 달았지만, 그럴수록 북에 놀아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상식의 눈이다. 결국 엊그제부터 실시한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은 사실상 알맹이 없는 도상 게임 수준으로 축소되고 말았다. 그것도 시나리오상 ‘반격’ 부분을 사실상 뺀 채로 말이다.
하지만 김여정은 한미 연합 훈련 사전 연습을 개시한 지난 10일 또다시 “남조선 당국자들의 배신적인 처사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는 담화를 냈다. 배신이란 말은 아무 때나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믿고 있는 바가 있을 때 하는 말이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녹을 먹는 의원 중 4분의 1이 연서명해 훈련 중단 성명을 낸 것도 성에 차지 않는다면 도대체 북이 노리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미군이 남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한 화근은 절대로 제거되지 않을 것”이란 김여정의 말에 담겨 있다. 한미 연합 훈련 중단을 넘어 주한미군 철수가 핵심인 것이다!
# 얼마 전 이 정부의 국정원이 발표한 대로, 공작금을 받은 것은 물론 혈서로 ‘원수님의 충직한 전사로 살자’는 충성 서약까지 하며 북한 지령을 받아 스텔스기 도입 반대 투쟁을 벌인 이른바 ‘충북동지회’ 간첩 4인이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에도 관여한 정황이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청와대가 “언급할 가치가 없다”며 손사래를 치는 모습이 현재 대한민국의 진면목이다.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다 죽은 줄 알았던 탈레반이 순식간에 아프간을 집어삼킨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이렇게 보자면 2022년 대선은 단순히 정권 교체냐, 아니냐를 넘어 대한민국의 존폐가 걸린 한판 대결이다. 그런데 정작 정권 교체하겠다고 나선 국민의힘 대표와 그 대선 주자들을 보노라면 애들 장난 같은 기 싸움이나 하고 앉아 있으니…. 정말이지 대한민국 국민 노릇 계속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조선일보 정진홍 컬처엔지니어
08.24 “이제 중국과 무조건 잘 지내자는 생각은 버려야”
극중지계』 펴낸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유상철 중국연구소장
오늘(8월 24일)로 한중 수교 29주년을 맞는다. 분위기는 밝지 않다. 가라앉은 느낌이다. 한국인의 77%가 중국이 싫다고 말한다. 국내에서 중국을 극복하자는 책 『극중지계(克中之計)』가 나온 게 한·중의 현주소를 대변한다. 책은 2006년 니어(NEAR)재단을 설립해 지난 15년간 중국 연구에 몰두해온 정덕구 전 산자부 장관이 10여 명의 학자와 함께 펴냈다. 2년여가 걸렸다. 중국 연구는 사소한 자료마저 기밀로 취급하는 중국의 통제 탓에 쉽지 않다. 그러나 그보다 더 어려웠던 건 중국이나 미국의 시각이 아닌, 우리의 시각으로 중국 문제를 분석할 국내 학자를 찾는 일이었다고 한다. 지난 19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정 이사장을 만나 미·중 충돌 시대 한국의 생존 방정식에 관해 물었다.
한·중 관계가 정체 내지 퇴보 느낌을 준다.
“우리는 오랜 기간 미국에 파이프를 연결해 생명수를 공급받았다. 지금은 중국에 연결한 파이프에 많이 의존한다. 가끔 녹물이 나올 때도 있지만, 중국서 오는 물 없이는 생존하기 어렵다. 한데 근년 들어 분쟁이 생길 때마다 중국이 우리와 연결된 파이프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사드(THAAD) 보복이 그런 예다. 그러면서 한·중 간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중국은 한국과 관계 하향 조정 중
한국 외교엔 중국 공포증 자리해
중국의 굴기는 중국적 국익 강요
‘안미경중’ 아닌 ‘안경일체’ 필요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중국 문제는 중국 특유의 이중성 때문에 모호하고 난해하지만 우리의 운명과 직결된 만큼 우리 시각에 의한 국적 있는 연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수교 직후 중국에선 “한국을 배우자”는 목소리도 높았다.
“지금은 한국을 ‘관리대상 종목’ 정도로 본다. 중국 입장에서 한국은 중국에 민주주의 가치와 이념을 가장 근거리에서 가장 파급력 있게 전파할 수 있는 나라다. 중국 공산당 통치에 위협이라 생각할 수 있다. 중국이 왜 한류를 틀어막나. 단순히 사드 보복 차원만은 아니다. 체제 유지와도 연결된다.”
중국의 굴기가 위협인가.
“중국의 굴기는 미국적 질서와 가치를 위협하기에 미국에 위험이다. 그러나 우리에 대한 위협 이유는 다르다. 미국적 질서에 편입된 우리의 기본 질서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중국적 질서와 가치, 그리고 중국적 국익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전랑(戰狼)외교 탓인지 한국에 대한 중국의 태도가 오만하다는 지적이 많다.
“중국의 외교전술은 무자비하다. 사드 보복 때 중국은 원숭이를 겁주기 위해 닭을 죽인다는 말처럼 한국을 본보기로 삼았다. 한국은 이런 중국의 전술을 예견하지 못했다. 사드 찬반으로 국론이 분열된 채 짓밟히고 말았다. 지금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를 하향 조정 중이다. 우리 특사를 대하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행태를 보라. 중국은 한국이 미국에 기울지 못하게 묶어는 놓되 큰 관심은 기울이지 않는다.”
미국과 경쟁 중인 중국으로선 한국의 환심을 사려 노력해야 하지 않나.
“중국은 미국과 경쟁을 벌이면서 관련 국가를 세 부류로 나눴다. 첫 번째는 일본과 같은 미국의 확실한 우방국이다. 중국은 이들을 냉담하게 대하되 실리 챙기기에 몰두한다. 두 번째는 필리핀 같은 친중 국가다. 경제적 혜택을 주며 자국 편으로 묶어둔다. 마지막은 한국처럼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국가다. 이들 나라엔 당근 대신 채찍을 휘두른다. 중국은 특히 한국을 미 동맹의 약한 고리라 보고 본보기 차원에서 더 거칠게 다룬다.”
우리의 대중 외교가 저자세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 국격이 훼손되는 온갖 외교적 굴욕을 당해도 대중 소통채널이 부족하다 보니 제대로 하소연도 못 한다. 이런 부당한 대우는 우리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중국을 과도하게 의식한 나머지 중국에 대한 강박관념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정책결정 결과에 대해 중국의 반응을 선제적으로 고민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런 사고가 고착되며 중국 공포증과 같은 심리적 불안감이 의식 속에 자리 잡았다.”
우리 외교가 중국을 무서워하는 공중증(恐中症)에 빠졌나.
“그렇다. 중국에 대한 잘못된 환상이 대중 외교의 프레임으로 작동하며 우리 외교가 쪼그라들었다. 현재 우리의 대중 외교는 신기루 같은 세 개의 환상에 갇혀 있다. ‘한반도 통일에서 중국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북한 비핵화에서 중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발전을 위해 중국 시장을 절대 상실해선 안 된다’ 등이 그것이다.”
/극중8계
한반도 통일과 비핵화에서 중국의 역할이 없다는 이야기인가.
“한반도 통일 문제에서 중국이 우리와 북한에 전하는 메시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중국은 우리에게 늘 피상적 의미에서 자주 평화 통일을 지지한다고 말한다. 외세의 간여 없이 한민족 합의로 이뤄지는 평화통일을 지지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북한엔 김일성의 고려연방제 통일구상을 지지한다고 말한다. 최근엔 이를 ‘북한의 주장과 북한이 견지하는 입장을 지지한다’고 포장한다. 이는 중국이 한국 주도의 통일에 반대한다는 뜻이다. 또 비핵화 관련 중국의 역할은 늘 수동적이었다. 미국의 압박이 없으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중국을 무슨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신주 받들듯이 해야 하나.”
중국의 시장을 놓쳐서는 안 되지 않나.
“물론 중국 시장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중국의 높은 비관세 장벽으로 인해 겪는 차별과 고충은 수교 30년이 가깝도록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 와중에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좁혀지고 사드 보복이 더해지면서 우리 기업의 입지는 더 어려워졌다. 새로운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이지만 대중 프레임이 잘못됐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 프레임에서 벗어날 경우 겪게 될 단기적 위험과 외교적 마찰을 너무 크게 생각한다.”
/미·중 사이 한국의 선택에 따른 선택 비용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란 안미경중(安美經中)을 금과옥조처럼 외운다. 이게 앞으로도 우리의 호신부가 되나.
“더는 유효하지 않다. 안미경중을 우리 정부가 반복해 말하는 바람에 미·중 모두로부터 한국에 이용만 당한다는 오해를 사고 있다. 솔직히 미·중 무역전쟁 속에서 한국의 독자적 통상정책 여지가 있는가? 어떤 피해도 없이 우리 이익만 극대화한다는 접근법은 현실성이 없다. 불편한 현실과 직면하는 순간을 계속해서 연기할 뿐이다. 단기적으로 우리 몸값이 오를 수 있겠지만, 어느 순간 왕따가 될 수도 있다. 장기적 측면에서 안미경중 방식을 바꿔야 한다. 안보와 경제를 하나로 합쳐 살펴보는 안경일체(安經一切) 전략이 필요하다.”
앞으로 우리의 대중 전략은.
“우리 앞엔 중국과의 충돌, 예속, 공존이란 세 갈래 길이 있다. 한·중 레드라인을 설정해 충돌과 예속은 피하되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은 스스로 강해지는 자강의 길을 가야 한다. 중국에 꼭 필요한 나라가 돼야 존중받으며 공존할 수 있다. 이제 우리의 방어전략은 북한으로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중국도 포함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중국이 우리의 영토주권은 물론 의사주권 개입에 주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중국과 무조건 잘 지내자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한·중 양국이 서로 넘지 말아야 할 마지노선
자강의 길은 어떻게 가야 하나.
“4개의 힘이 필요하다. 경제력에선 반도체처럼 중국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초격차를 유지해야 한다. 군사력에선 전면전은 몰라도 국지전에선 중국을 이길 수 있어야 한다. 외교력은 이이제이(以夷制夷)가 필요하다. 한미동맹, 일본, 러시아 모두 활용해야 한다. 문화력에선 우리가 문화적·윤리적 우월성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정 이사장이 지난 2년간 학자 10여 명과 함께 ‘극중지계’를 놓고 씨름하며 얻게 된 건 무얼까. 그는 “중국에 대한 눈이 조금은 밝아졌지만, 아직도 중국을 깊고 체계 있게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소득이라면 “적어도 중국에 대해 무엇을 모르는지는 알게 된 것”이라고 했다. “누구는 동산(東山), 또 누구는 서산(西山)이라 부르는 거대한 산 중국을 한마디로 어떻다고 단정하는 건 무리”라는 이야기다. 특히 중국은 생물처럼 계속 변한다. 그래서 “중국은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생각해왔던 나라가 더는 아니다”라는 것이다. 중국 국민도 덩샤오핑(鄧小平)이나 후진타오(胡錦濤) 시대의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이번 『극중지계』 출간을 계기로 시진핑 시대의 미래를 예측하면서 앞으로 한·중 간 무엇이 쟁점이고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촉발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성역이 있어서도 안 되고 중국식으로 은밀하게 덮고 넘어갈 문제는 더더구나 아니다. 왜? 중국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의 운명에 치명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유상철 중국연구소장
08.24 아프가니스탄이란 이름의 타산지석
▲지난 15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는 아프간인 640명이 미 공군 C-17 수송기에 발 디딜틈 없이 앉아 있다. 공식 최대 탑승 인원은 134명 이지만 아프간인들이 후방 적재문으로 몸을 밀어넣어 탑승했다. [로이터]
사이공 함락 9일 전인 1975년 4월 21일. 대통령 직을 내던진 구엔 반 티우(응우옌반티에우)가 미군 비행기에 올랐다. 그가 트렁크를 옮길 때마다 금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베트남의 치욕”이라며 지면에 옮길 수 없는 육두문자로 티우를 비난하던 구엔 카오 키(응우옌까오끼) 전 부통령도 일주일 뒤 현금 3만5000달러를 챙긴 채 티우의 뒤를 따랐다. 그로부터 46년 뒤 카불 함락을 뒤로하고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이 미군 헬기에 올랐다. 챙겨 온 돈가방을 헬기에 다 싣지 못해 일부는 활주로에 버리고 떠났다고 한다.
역사는 때로 반복된다. 역사가 주는 교훈을 바로 보지 못한 어리석음 때문이다. 2021년의 아프가니스탄은 1975년 베트남의 판박이다. 20년간 수많은 젊은이의 피땀과 막대한 달러를 쏟아붓고도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미국이 발을 빼자마자 맥없이 카불이 함락되는 과정에서부터 사생결단의 탈출극이 일어나는 결말까지가 모두 그랬다.
동족상잔의 참화를 겪은 우리에게도 데자뷔로 다가온다. 콩나물시루와 같은 수송기 내부는 흥남 철수를 떠올리게 한다. 어찌 그게 전부이겠는가. 총 들고 완장 찬 탈레반 전사들이 가가호호 찾아가 부역자를 색출하고 즉결 처형하는 현실은 70년 전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일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가니 대통령의 동생이 탈레반에 협력을 다짐하며 함께 찍은 사진이 어제 아침 신문에 실렸다. 그가 ‘샤이 탈레반’이었다가 커밍아웃한 것인지, 바뀐 세상에 재빨리 적응한 것인지, 목숨의 위협 앞에 굴복한 것인지 내막을 알 순 없지만 형제가 서로 죽고 죽이는 적으로 갈라선 건 우리가 70년 전에 겪었던 그대로다.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친구는 없다”는 진부한 진실을 아프가니스탄 사태는 다시 일깨워 준다. 지구 어디든 달려가 불량 정권을 제거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이식하면 세계 평화가 온다는 원리주의적 발상에서 벗어나 현실 노선으로 돌아선 미국이 탈레반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을 되새기게 될 것이다. 그런 날이 머잖아 올 듯도 하다. 구호자금과 경제 협력 등의 수단을 동원해 탈레반을 온건 노선으로 변화시키는 게 차선의 해법이란 현실론이 대두되고 있으니 말이다.
남의 나라 불행을 타산지석으로 삼는 건 우리의 몫이다. 1973년 키신저가 방한해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다. 그는 자신이 산파역이 된 남북 베트남 간의 파리 평화협정을 자랑스레 설명했다. 그러자 박정희가 잘라 말했다. “이제 월남은 끝났구먼. 끝의 시작이오.”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다. 지난주 수요일자 중앙일보 1면의 헤드라인은 “미군만 철수하고 평화협정은 휴지가 됐다”였다. 지난해 2월 미국과 탈레반이 맺은 평화협정을 되짚은 기사였다. 그런데 이런 유의 기사나 논의들을 못마땅해 하는 사람도 적잖이 있는 듯하다. 하루속히 종전선언을 체결하는 것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지름길이라고 믿는 과도한 신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교훈을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보면서 주한미군 철수를 상정하고 한반도의 비극을 예상하는 건 지나친 비약이자 과도하게 공포를 조장하는 것일 수 있다. “세계 6위의 군사력과 10대 무역대국인 한국과 지금의 아프간을 비교한다는 것은 험담”이란 송영길 민주당 대표의 말은 틀린 게 아니다. 하지만 주먹 센 사람이 실전에서 항상 이기는 게 아니란 것 또한 틀림없다. 미국의 국력에 비하면 말 그대로 한 줌 밖에 안 되는 탈레반이 20년 와신상담 끝에 미국을 돌려보낸 현실이 이를 입증한다. 핵을 가진 북한은 미국이 원하든, 원치 않든 한반도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려고 한다. 실제 그런 날이 오면 자신들이 한반도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타산지석을 보지 못하면 누구라도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게 아프가니스탄 사태가 주는 교훈이다
중앙일보 예영준 논설위원
08월 25일 대한민국 ‘제2 아프간’ 기로에 섰다
이미숙 논설위원
자강 의지 일깨운 아프간 함락
프랑스도 1940년 나치에 점령
美 2020대선서 民主붕괴 막아
文정권 北에 심리적 무장해제
軍 기강도 아프간·佛처럼 붕괴
‘文시즌 2’ 저지해 민주 지켜야
아프가니스탄 함락 사태를 보면서 대한민국도 저렇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이 나서서 ‘아프간과 한국은 다르고, 주한미군 철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그게 핵심은 아니다. 미군 철수는 아프간 함락의 부차적 원인일 뿐 진짜 원인은 아프간 집권층의 자강(自强) 의지 부재다. 집권층이 스스로 안보를 포기하는 나라는 제2의 아프간이 될 수 있다는 게 이번 사태의 교훈이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허수아비 군은 나라를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아프간은 확인시켜줬다.
아프간의 어처구니없는 패배는 1940년 프랑스를 연상시킨다. 프랑스는 독일 아돌프 히틀러의 침공에 맥없이 무너져 충격을 줬다. 이 전쟁에 예비역 대위로 참전한 프랑스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는 당시 상황을 증언한 저작 ‘이상한 패배’에서 “내각과 의회는 평화주의에 빠진 채 분열됐고, 군은 독일의 획기적인 병력 증강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고 썼다. 프랑스는 독일과 전쟁 이전에 이미 정치·군사적으로 패배했다는 게 블로크의 진단이다. 히틀러의 치밀한 전쟁 준비를 파악조차 못 했던 프랑스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눈감은 채 평화가 왔다고 떠들며 한·미 연합훈련을 무력화한 문재인 시대 대한민국과 오버랩된다.
반(反)나치 레지스탕스운동을 벌이다 게슈타포에 총살된 블로크의 ‘이상한 패배’는 프랑스판 징비록이다. 프랑스인들이 위기 때마다 꺼내 읽으며 애국심을 되새기는 이 책은 도널드 트럼프 시대 미국에서도 널리 읽혔다. 1940년 프랑스와 같은 ‘이상한 패배’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트럼프 재선을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민주당과 공화당 일각에서 형성된 것도 이 책 덕분이다.
시사잡지 ‘애틀랜틱’ 기자 조지 패커는 최근작 ‘마지막 최선의 희망(Last Best Hope)’에서 미 하원의 트럼프 탄핵 시도와 코로나19 확산, 조지 플로이드 사망 이후의 흑백 갈등 등이 “민주주의 붕괴 징후”라고 썼다. 또 “이제 미국은 이라크 같은 실패국가가 된 듯하다”며 “트럼프의 재선은 민주주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 정권 말기 풍경은 패커가 기술한 지난해 대선 전야 혼란 속의 미국, 블로크가 기록한 1940년 프랑스와 그리 다르지 않은 듯하다. 문 대통령은 주적인 북한에 심리적으로 무장해제된 듯 김정은과의 대화에 집착하고,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북한이 생존과 체제 유지에 절박한 나라여서 남침 가능성이 없다고 호도한다. 여당 의원들은 김여정의 ‘한·미 훈련 중단’ 요구를 복창하듯 연기 연판장을 돌렸다. 군은 훈련보다 성범죄 해결이 더 급한 상황이다. 기강이 무너진 군에 자강은 언감생심이다. 더구나 백신 가뭄으로 코로나19 위기는 점점 확산되는 상황이고 부동산·일자리 정책 실패로 인한 계층 간·세대 간 갈등도 확산 일로다.
대한민국이 아프간과 프랑스가 겪은 ‘이상한 패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현재로썬 비관적이다. 안보·경제·사회 위기가 한꺼번에 닥치는 퍼펙트 스톰 상황에서도 여당 대선 주자들은 문재인식 대북 평화주의에 빠져 있고 국민의힘은 분열로 날을 지새우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민주당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민주주의 파괴를 막아야 한다’는 자각 속에서 분열적 행태를 버리며 통합 정신으로 뭉쳤다. 중도파 공화당 인사들은 해당(害黨)행위라는 비난까지 감수하면서 ‘당보다 국가 먼저’를 내세워 반(反)트럼프 연대 전선에 참여했다. 그런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에 미국은 트럼프식의 전체주의 급행열차를 멈춰 세울 수 있었다.
문 정권 시즌2가 열리면 운동권 출신 집권층은 전체주의적 사회·경제 정책을 강화하며 북한의 미군철수 요구에 평화협정으로 화답하는 네빌 체임벌린식 정책으로 안보 기반을 무너뜨릴 것이다. 언론봉쇄법은 그 불길한 전조다. 대한민국이 아프간처럼 북한의 핵 공격 위협에 놀라 내부적으로 붕괴하며 자유민주주의 국가 깃발을 내릴 수도 있다.
망국의 위기를 막기 위해선 문 정권 시즌2를 저지하기 위한 반(反)전체주의 연대 전선부터 짜야 한다. 민주 세력이 연대해 트럼프식 전체주의를 멈춰 세운 미국의 길을 갈 것인가, 적 앞에서 내부적으로 붕괴한 아프간·프랑스의 길을 갈 것인가, 2021대선을 앞두고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문화일보
08.28 미국의 아프간 철수가 한국에 보내는 신호
다음엔 한국에서 미군 철수? 오히려 한국에 머문다는 뜻
수렁에 묶였던 자원 풀어 동맹 복원과 아시아 집중
전략 방향 재정립한 것이지 미국 패권의 쇠퇴 아니다
요즘 워싱턴 외교 정책 전문가들의 유일한 화두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결정이다. 공항의 대혼란을 비춘 동영상들, 탈레반에 의한 현지 정부의 붕괴를 보며 많은 이들이 두 가지 결론에 다다랐다. 첫째, 탈레반이 아프간을 떠나려던 사람들과 미군 조력자들에게 복수하며 참혹한 인도주의적 위기가 뒤따를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 동맹국들 사이에서 미국의 안보 약속이 얼마나 오래 또 끈질기게 지켜질 것인지를 놓고 파장이 일 것이라는 점이다. 첫째 우려 역시 심각하지만, 여기서는 둘째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20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국제공항에 배치된 미군 병사들이 국외 탈출을 희망하며 철조망 너머에 몰려든 아프간 민간인들을 바라보고 있다./AFP 연합뉴스
미국은 아프간에 천문학적인 물적·인적 자원을 쏟아부었다. 브라운대 ‘전쟁 비용 프로젝트’에 따르면, 미국은 군사비 8157억달러를 포함해 총 2조2600억달러를 지출했다. 800억달러 넘게 들여 훈련시킨 아프간 보안군은 미군이 철수하자 카드로 지은 집처럼 붕괴됐다. 재건 사업에도 360억달러를 썼다. 전쟁 기간 미군 2442명이 숨지고 2만666명이 다쳤으며, 참전용사 의료 비용도 2960억달러에 달했다.
미국이 이 정도 규모의 자원을 투입했으니, 정책 실패를 인정하는 꼴이 되는 ‘컷 앤드 런(cut and run·황급히 도망치기)’ 전략은 고려 대상이 아닐 거라고 예측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아프간 침공 20주년 기념일에 철군키로 결정했다.
많은 이들이 내게 ‘이번 미국의 아프간 철군이 한국에 대한 미국의 헌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냐’고 물었다. 트럼프가 연임한다면 아프간에서 철군할 것으로 예상한 이들조차 바이든 대통령이 이런 대응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게다가 미국이 아프간에서 막대한 지분을 포기할 수 있다면, 한국에서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걸 뭘로 보장할 수 있을까?
한국에 대한 미국의 헌신과 깊은 신의(fidelity)에 대해, 아프간에서 도출된 결론을 적용할 수 없는 세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 정책 유지 여부를 평가하는 데 있어 성공보다 더 좋은 척도는 없다. 미국의 아프간 개입은 성공적이지 않았다. 아프간은 ‘수렁(quagmire)’이었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라고는 더 많은 돈을 집어넣는 것뿐인 끝없는 소용돌이. 미국은 스스로를 덫에 가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국은 미국의 안보 헌신이 거둔 눈부신 성공 사례다. 북한의 재침공을 억지했을 뿐 아니라, 기후변화, 녹색 성장, 국제 보건, 개발 지원, 첨단 신기술, 공급망 복원력 등 모든 분야에서 양국 모두에 유익한 새로운 자산을 창출했다. 이는 지난 5월 21일 양국 정상회담에서도 증명됐다.
둘째, 바이든의 아프간 철수 결정의 기저에는 미국의 헌신이 무위에 그쳤다는 관점이 있는데,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에 대해서는 달리 생각한다는 건 확실하다. 보도에 따르면, 오바마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 미군 1만7000명 증파 여부를 고민하던 2009년 당시 부통령 바이든은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바이든은 탈레반 제거를 위해 아프간 침공은 필요했지만, 이라크에 제2의 전선을 형성하면서 미국의 아프간 임무는 초점을 잃었고, 이 때문에 전장에서 탈레반 반군이 부활하도록 방치했다고 믿었다. 바이든은 또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믿을 만한 현지 협력 파트너조차 찾지 못한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국가 건설에 성공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다. 결정적으로, 바이든은 탈레반이 미국 본토에 대한 위협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바이든이 이런 깊은 회의감을 한국에 대해서는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은 확실하다. 반대로 그가 취임 뒤 백악관에 처음 국빈 초청한 여러 나라 중에 한국이 있었다. 이는 그가 한미 관계에 두고 있는 가치와 안보 헌신의 지속성을 과시한 것이었다.
셋째, “아프간 다음은 한국에서 미국이 철수할 차례인가?”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전제와 목적을 혼동하고 있다. 아프간 철수는 한국 철수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미국이 한국에 머문다는 뜻이다. 바이든은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수렁에 묶인 미국의 자원과 정치적 관심을 해방시켜 세계의 다른 문제와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에 집중하려 한다. 바이든이 전략적 초점을 맞추는 핵심 분야 중 하나는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동맹 관계의 복원이다. 한국은 이 두 핵심 목표의 교차점에 있다.
중국은 미국의 아프간 철수를 미국 패권 쇠퇴의 또 다른 사례로 조롱했다. 전혀 진실이 아니다. 아프간 철수는 미국이 힘을 공고히 하고 미국적 세계주의를 재건하며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를 지지하는 것을 목표로 전략적 방향을 재정립하고 있다는 신호다. 한국과 같은 동맹국은 이 국제 질서 안에서 함께 번영해왔다.
조선일보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
08.31 아프간 위기의 진짜 피해자, 북한?
▲지난 26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로 숨지거나 다친 피해자들의 모습. 이날 테러로 아프간인 190여명과 함께 미군 13명도 숨졌다. [AP]
미군 철수로 아프간에 생지옥이 펼쳐지면서 안팎에서 관련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국내에선 한국을 도왔던 아프간인과 가족들을 구한 영웅담이 넘친다. 반면에 해외에선 북한-탈레반 관계에 대한 괴담이 떠돈다. 실제로 미국 국방부는 지난 25일 "북한은 탈레반과 소통해 왔으며 특수훈련을 함께한 적도 있다"고 밝혔고, "미군이 아프간에 남긴 첨단무기를 북한이 사들일 수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테러 응징 때문에 미국 관심 줄어
북측 관심 끌기용 도발 가능성 커
유화책 아닌 북한 공격 대비해야
하지만 우리가 관심을 둘 대목은 따로 있다. 아프간 사태로 미국의 세계 전략과 대북 정책이 영향받게 됐다는 사실이다. 우선 대북 문제에 시큰둥했던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을 방치할 공산이 더 커졌다. 트럼프 행정부 이래 미국의 세계 전략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새로운 강대국 간의 경쟁'으로 진화해 왔다. 아프간에서의 미군 철수가 이런 변화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미군 13명이 숨진 자폭 테러는 바이든의 발목을 잡았다. 인기 만회를 위해 아프간에서 뭔가 보여줘야 할 처지에 몰린 것이다.
이처럼 발등에 불이 떨어진 미국으로서는 북한에 대한 관심을 줄일 수밖에 없다. 심각한 식량난 속의 북한은 제재 일부 해제를 위해서라도 대미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 한다. 이런 판에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이 사라졌으니 여간 답답한 일이 아닐 것이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가 '아프간 위기의 진짜 피해자, 북한'이란 기사를 실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북한을 이렇게 내팽개치는 건 능사가 아니다. 2026년이 되면 북한의 핵무기는 200개 이상이 된다고 한다. 30일에는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시간은 결코 우리 편이 아닌 것이다.
아울러 아프간 문제로 주한미군에 부정적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아프간에서의 미군 철수는 미국-탈레반 간 협상에서 결정됐고, 아프간 정부는 논의에서 빠졌다. 비유하자면, 주한미군 철수를 한국은 빼고 북·미가 결정한 꼴이다. 물론 바이든이 강조했듯 한국과 아프간은 다르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순 없다. 아울러 주한미군 운용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눈여겨 볼 사안이다. 해외에 주둔 중인 미군은 총 16만여 명. 이 중 주한미군은 2만6000여 명으로 일본(5만3000여 명), 독일(3만5000여 명)에 이어 세 번째다. 하지만 2차대전 패전국인 일본·독일은 제대로 된 자국 군대가 없다.
이 때문에 주한미군이란 군사적 자산을 한국 보호에만 써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부상을 고려해 해외 주둔 미군의 재배치 전략을 새로 짜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한·미 동맹에 소극적인 현 정부의 태도가 주한미군의 전력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은 주한미군 내 전투 헬기 부대를 일본에 보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미국과의 합동훈련에 적극적인 일본과는 달리 어떻게든 축소 또는 연기하려는 한국 정부 탓에 헬기 조종사들이 연습 한 번 제대로 못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가다간 북·미 간 접촉을 실무선에 맡기는 바람에 실패한 오바마식 '전략적 인내'의 재탕이 될 공산이 크다. 북한 측 협상가들은 '최고 존엄'의 지시 없이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 사령관이 "트럼프가 썼던 하향식 협상 방식이 더 낫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김정은이 구사했던 '러브레터 외교'를 미국 측에 건의하는 것도 괜찮은 아이디어다. 두 사람 간에 오갔던 친서 27통을 본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놀랐다고 한다. 예상보다 김정은의 편지가 구체적이고 내용이 있어서였다. 따라서 바이든이 친서를 보내면 김정은이 화답할 가능성이 적잖다.
어쨌거나 아프간 탓에 북한이 잊힐 위기에 처했다. 이럴 때면 북한은 도발로 관심을 끌려 했다. 지금은 이산가족 상봉, 교황 방문 같은 유화책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도리어 북한이 어떤 도발로 나올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순간이다.
중앙일보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08월 31일 美와 함께 북핵 막으라는 아프간 경고
김홍균 前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 본부장
바이든의 단호한 아프간 ‘손절’
철저히 미국 국익 고려한 결정
중국과 전략적 경쟁 집중할 것
한국 의지 따라 주한미군 영향
한미훈련 강화하고 9·19 폐기
전작권 충족할 强軍 만들어야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점령을 앞두고 어떻게든 탈출해 보려고 미군 수송기에 매달리는 아프간 국민의 처참한 광경은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화물 대신 아프간 피란민을 한가득 실은 미군 수송기의 모습은 1950년 흥남부두 철수나 1975년 사이공 함락 당시 피란민 사진과 놀랍게도 흡사해 보인다. 흔히 ‘제국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아프간이 과거 대영제국과 구소련에 이어 미국도 묻어 버렸다는 자조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번 사태에 대한 미국 내 정치권과 언론의 반응은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거의 비난 일색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의 한 칼럼니스트는 ‘바이든의 체임벌린 모먼트’라고 비꼬았다. 1938년 유화적인 뮌헨협정에 서명함으로써 히틀러에게 체코 침공의 길을 터준 체임벌린 영국 총리처럼 미국의 대외정책 중 최대의 패착이라는 것이다. 미 의회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내에서도 철군 결정에 대한 조사 요구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카불 함락 후 기자회견에 나선 조 바이든 대통령은 단호했다.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고 “아프간 정부가 포기한 전쟁에서 미군이 희생돼서는 안 된다”며 “미국의 국익이 없는 곳에 머물며 싸우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지난주 자살폭탄 테러로 13명의 미군이 희생되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더욱 궁지에 몰리는 형국이다.
아프간 사태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아프간은 최빈국 중 하나이고 정치·경제 등 모든 면에서 ‘실패한 국가’로서, 언제 미국이 손을 놓더라도 지금과 같은 사태는 벌어질 수밖에 없는 나라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최근 선진국 지위도 인정받은 한국에 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모욕이다. 그런데도 아프간의 몰락이 미국의 동맹·우방들에 미칠 영향, 특히 2만8500명의 주한미군이 있는 한국에 갖는 함의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일은 미국이 철저하게 국익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임을 깨닫게 하는 결정적인 사례다. 미국은 지난 20년간 모두 2조 달러의 전비와 한때 14만 명에 이르는 미군을 아프간에 투입했다. 전사한 미군만도 2500명에 육박한다. 이렇게 엄청난 인명과 자산을 쏟아부은 나라를 ‘손절’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기치로 내세우며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를 내세운 사람이다. 미국 안팎으로 원성이 쏟아질 줄 알면서도 바이든 대통령이 결단한 것은 그 자신도 언급했듯이 “전략적 경쟁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이 아프간에 무한정 자원과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을 즐길(love)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대중국 경쟁에 집중하기 위한 냉철한 판단인 것이다.
미국의 아프간 철군이 한국과 유럽에 영향을 미치느냐는 질문에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군 감축 의향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의지를 믿어 의심치 않지만, 불과 1년 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독일이 충분한 국방비 지출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둔 미군 감축을 추진했고, 재선되면 반드시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증언이 담긴 책(‘I alone can fix it’)도 나왔다. 바이든 행정부가 진행 중인 ‘세계 병력태세 검토’ 결과에 따라서 주한미군 수가 조정될 수도 있고, 종전선언이 이뤄져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됐다는 허상이 미국에도 감염되면 미군 철수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 2만8500명은 ‘매직 넘버’가 아닌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주국방의 능력과 의지를 갖춰야 한다. 북한을 주적(主敵)으로 부르지 못하고 명백한 북한 탄도미사일을 ‘불상의 발사체’라고 둘러대는 군(軍)이 아니라, 기강이 서고 기백이 넘치는 군대다운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 한·미 연합훈련을 통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위한 조건을 갖추고, 우리 국방력을 볼모로 잡힌 9·19 남북 군사합의서를 폐기해야 한다. 북한 미사일 방어를 위해 들여온 사드(THAAD)를 정식 배치하고, 북한의 핵 보유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되기 전에 핵 인질이 되지 않을 방안을 미국과 함께 마련해야 한다.
아프간의 비극은 우리의 안이함을 깨우는 웨이크업콜(wake-up call)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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