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이야기 2021-08/
08월 02일 이번엔 무상 냉방…與 주자도 “나랏돈 물 쓰듯 대회” 개탄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이 과열되면서 한쪽으로는 극심한 네거티브, 다른 쪽으로는 무분별한 포퓰리즘으로 흐른다. 집권세력으로서의 책임감은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선심성 돈 뿌리기 공약은 허경영 국가혁명당 명예대표를 능가할 지경이 됐다. 급기야 ‘무상 냉방(冷房)’ 주장도 나왔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달 30일 “시원할 권리를 보장하겠다”며 에어컨 가동을 위한 5000억 원 규모의 전기료 추가 감면을 정부에 요청했다. 기본·무상 시리즈에 또 하나 추가됐다. 탈원전을 밀어붙인 문재인 정부가 최근 전력 부족 우려로 전전긍긍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기료 인상을 검토하는 것과도 정반대다.
이 지사는 ‘하위 88%’에게 주기로 한 재난지원금을 경기도에서는 100% 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88% 발상부터 황당한 만큼 행정 비용 등을 고려해 전국민에게 주자는 이 지사 주장은 충분한 타당성을 갖는다. 그렇더라도 야당이 아닌 여당 소속이라면, 그런 주장을 던지기에 앞서 당·정 간에 충분한 협의부터 거치는 게 책임 있는 자세다. 따라서 이 지사 행태는 재정과 현실은 뒷전이고 무조건 인기만을 노린 ‘사이다 공약’에 몰두하는 것으로 비친다.
이낙연 전 대표는 개인 토지 소유를 1320㎡(400평)로 제한하는 ‘토지 공개념 3법’을 발의했다. 법안이 등록된 국회 입법예고시스템에는 ‘위헌’ ‘사회주의적’이라는 비판 댓글이 쏟아진다. 군 전역자에게 3000만 원의 사회출발자금 지급도 공약했다. 정세균 전 총리는 신생아 때부터 적립한 1억 원 통장을 사회 초년생에게 주자고 했다. 심각한 위헌 소지는 물론 재원 마련도 뒷전이다.
경선이든 본선이든 공약과 정책 대결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퍼주기 경쟁으로 흐르면 망국적 후유증을 남긴다. 컷오프를 통과한 여당 후보 6명 중 가장 젊은 박용진(50) 후보는 1일 “나랏돈 물 쓰듯 쓰기 대회에 나오신 분들”이라고 개탄했다. 이런 생각에 많은 여당 당원과 국민이 공감한다. 무책임 정치인을 솎아 내야 할 절박성이 더 커졌다.
문화일보 사설
08.03 “나랏돈 물 쓰듯 쓰기 대회 나왔나” 與 대선 주자도 개탄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들의 ‘현금 퍼주기 공약’ 경쟁이 끝이 없다. 하룻밤 지나면 새 선심 공약이 나온다고 할 정도다. 엄청난 속도로 불어나는 국가 부채 상황은 보지도 않고 표 얻겠다고 ‘공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오죽했으면 같은 당 박용진 대선 주자가 “다들 ‘나랏돈 물 쓰듯 쓰기’ 대회에 나오신 분들”이라고 했겠나. 문재인 정부 내내 빚내서 퍼주는 데 골몰하더니 차기 주자들은 한술 더 뜬다.
이재명 지사는 ‘하위 88%’에게 주기로 한 재난지원금을 경기도에선 100% 모두에게 주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다른 지역은 모두 88% 국민에게 지원금을 주는데 경기도만 100%에게 준다는 것은 국가 정책 방향과 국민 간 형평성을 무시하고 오로지 경기도민 지지율만 생각한 것이다. 그는 또 “국민이 시원할 권리를 보장하겠다”면서 5000억원을 들여 에어컨용 전기료를 감면해 주자고 했다. 무상 냉방 얘기도 꺼냈다. 이 지사는 연 100만원의 기본 소득과 기본 주택을 공약했고, 청년에게는 “연간 20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청년들에게 세계 여행비 1000만원을 지원해주면 어떨까 싶다”고도 했다.
이낙연 전 대표는 “군 제대 남성들에게 사회 출발 자금으로 3000만원을 장만해 드리겠다”고 했다. 정세균 전 총리는 “미래씨앗통장 제도를 만들어 모든 신생아가 사회 초년생이 됐을 때 1억원을 지원하는 정책을 설계 중”이라고 했다. 모든 이에게 나랏돈으로 각종 수당과 배당금을 주겠다고 했던 허경영 국가혁명당 명예대표를 뺨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어떻게 이 돈을 마련할지 재원 대책은 전혀 없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각종 코로나 지원금과 세금 쏟아붓는 일자리·복지 정책으로 국가 부채는 100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4년 동안 300조원 이상이 불어났다. 스스로 번 돈보다 정부 지원에 더 의존하는 국민이 1000만명에 달한다. 성장 정책은 없고 오로지 세금 걷어 돈 뿌리는 데만 혈안이다. 현금 퍼주기는 마약과 같아서 한번 시작하면 중단할 수 없다. 그리스·베네수엘라 같은 나라가 이렇게 하다 경제·재정이 파탄 났다. 이번 대선이 ‘나랏돈 퍼주기 경연 대회’로 흐른다면 한때 세계의 모범으로 불렸던 우리 재정 건전성도 파탄 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빨아들일 이 소용돌이를 멈춰 세울 사람은 유권자들밖에 없다.
조선일보 사설
08월 04일 최재형 “비난 감수… 대한민국 위해 나를 던지겠다”
■ 대선 출마 공식 선언
“文정부, 이념 따라 정책집행
감사원 업무에 한계 느꼈다”
최재형(사진) 전 감사원장이 4일 “대통령의 한마디에 국가의 근간이 되는 정책이 적법 절차도 거치지 않고 집행되는 것을 봤다”며 “비난을 감수하고 대한민국을 위하여 나를 던지겠다”고 말했다.
최 전 원장은 이날 대선 출마 선언식에서 “오로지 이념과 정치적 목적에 따라 국가의 근간이 되는 정책이 적법한 절차도 거치지 않고, 무엇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없이 결정되고 집행됐다”고 감사원장 재직 당시의 소회를 밝혔다.
그는 “정치적 목적을 위한 매표성 정책으로 혈세가 낭비됐다”며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의 몫이요 미래 세대의 짐”이라고 말했다. 이어 “감사원 업무영역의 한계를 느꼈다. 임기를 끝까지 마치고 좋은 평판을 받는 사람으로 남느냐 아니면 비난을 감수하고 대한민국을 위하여 나를 던질 것인가”라며 “저의 선택은 대한민국”이라고 했다.
최 전 원장은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대통령의 권한을 제왕적으로 행사하는 것”이라며 “진영과 계파에 휘둘리지 않고 모든 국정을 상식적으로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긋지긋한 정치적 내전을 끝내고 갈등을 봉합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출마 선언식은 코로나19 확산세를 고려해 경기 파주의 한 스튜디오에서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됐다.
손고운 기자 songon11@munhwa.com
08.05 황당한 ‘서울공항 이전’‘250만 호 공급’ 공약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이낙연 전 대표가 어제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서울공항을 이전해 인근 지역에 아파트 3만 호를 공급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이 전 대표는 “서울공항에 고품질 아파트를 공급하면 강남-송파-판교의 업무 중심 벨트와 위례 신도시-성남 구도심 주거 벨트의 두 축이 연결된 인구 10만 명의 스마트 신도시가 가능하다”고 했다. 한마디로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서울공항의 군사적 의미를 고려했다면 이런 공약이 나올 수 없다.
이낙연·이재명 부동산 정책 현실성 없어
정부 약속한 13만 호 건설도 어려운 실정
군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서울공항은 한국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군 공항으로 대통령 전용기가 뜨고 내리는 것은 임무 가운데 극히 일부에 그친다. 군사적으로는 평시에도 북한 동향을 살피는 정찰기가 운영되고, 전시엔 전방에 필요한 물자와 미군의 증원 전력을 공수하는 엄연한 군 공항이다. 유사시에는 우리 특수부대가 서울공항을 통해 북한 지역에 공수돼 치명적 타격을 가하게 된다.
이 전 대표도 군 공항이라는 사실을 의식한 듯 서울공항의 기존 업무는 김포공항으로 이전하고 미군 비행대대는 오산·평택 지기로 옮겨 안보 공백을 해소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군사 전문가들의 우려는 그치지 않는다. 다른 군 공항을 활용할 수도 있지만 서울공항이 북한에 가장 가깝고 다른 군 공항은 전투기 이착륙으로 매우 번잡한 데다 수송기를 관리하는 시설과 장비도 갖추지 않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발상도 사상누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 지사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임기 내 공공주택으로 기본주택 100만 호를 포함해 주택 250만 호를 공급하겠다”고 말했다. 공약이라고 하지만 이를 믿을 국민이 대한민국에 없다는 걸 이 지사는 직시하길 바란다. 과거 가용할 수 있는 택지가 있을 때도 노태우 정부는 200만 호 공약을 지키지 못했다. 말이 쉬워 200만 호지 이를 실현하려면 대규모 택지와 엄청난 건축 자재가 필요하다. 그 당시 택지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거니와 건축 자재도 부족해 바닷모래를 사용하는 바람에 부실공사 후유증까지 겪어야 했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8·4 대책에서 약속한 13만 호 공급조차 말 잔치로 끝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태릉 골프장과 정부과천청사 부지는 주민들이 쾌적한 환경을 요구하면서 신규 택지 공급 계획이 사실상 무산됐다. 더구나 민간을 배제하고 공공재건축을 앞세웠지만 지금까지 거의 진전이 없다. 공공재개발 역시 일부 토지주의 반대에 가로막혔다. 여당의 유력 대선후보들이 이런 현실을 보고서도 현실성 없는 대책을 내놓는다면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에 더는 희망이 없다. 유력 대선후보라면 지금이라도 집값을 폭등시킨 과도한 규제를 풀어 주택시장 정상화에 나서야 한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군 공항을 폐쇄하고 반(反)시장의 극단으로 달리는 정책은 당장 접어야 한다.
▲여당 대선 후보들이 지금보다 더 강력한 규제를 앞세운 부동산 공약을 내놓고 있다. [연합뉴스]
08.05 與 “文 지키자” 합창, 벼랑 끝 국민은 누가 지키나
정권 출범 부터
피해망상 빠져
“선거 지면 죽는다”
죽일 사람 없으니
문재인만 말고
어려운 국민도 지켜달라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부정적인 이른바 ‘대깨문’을 향해 “그들이 (차라리 야당을 찍겠다는데) 안일하게 생각하면 문재인 대통령을 지킬 수 없다”고 했다. 송 대표는 정권이 바뀌면 문 대통령이 노무현처럼 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드루킹 여론 조작으로 수감되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이낙연 전 대표에게 “문 대통령을 지켜달라”고 했다. 이 전 대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대통령님을 잘 모시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을 지키자”는 이들의 간절함은 단순한 정권 말기 현상이 아니다. 문재인 취임 첫날부터 이 정권은 오로지 ‘문재인 지키기’ 하나밖에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련한 여권 정치인 한 사람은 문 정권 출범 직후 “이 정부는 정권 출범하자마자 정권 재창출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도 요직에 있는 그의 눈에 문 정권의 의도가 간파된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의 바탕에는 역대 어떤 정권보다 심각한 피해망상증이 있다.
문 정권이 전(前) 정권 사람들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네 사람이 자살하고 징역형 합계가 100년을 넘었다. 두 전직 대통령이 아직도 감옥에 있다. 때린 사람은 발 뻗고 잘 수 없다. 권력을 놓치면 자신들도 똑같이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정권 첫날부터 이들의 머리 위를 떠돌고 있다. 이들의 피해망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 2019년 집권 2주년 날 청와대 정책실장과 민주당 원내대표가 나눈 대화다. 마이크가 켜진 상태인 줄 몰랐던 그들은 속내를 그대로 드러냈다. 두 사람은 “정부 관료들이 말을 덜 듣는다” “(민주당 장관이) 한 달 없는 사이에 자기들끼리 이상한 짓 많이 해서”라고 공무원 비난을 하다 “진짜 집권 2주년이 아니고 마치 4주년 같다”는 말을 했다. 정권 중반도 안 됐는데 말기같이 느낀다는 것이다.
당시 정부 공무원들은 말을 안 듣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정권 눈치를 너무 봐 정책이 엉망이 되는 지경이었다.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이 대표적이다. 공무원들이 정권을 위해 불법과 조작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때 ‘집권 4주년 같다’고 느낀 국민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오직 이 정권 사람들만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자신들끼리 입버릇처럼 “선거 지면 죽는다”고 하고 다녔다. 자유 민주 국가에서 선거에 진다고 죽을 일이 없지만 이들은 정말 ‘죽는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작년 총선 직전 민주당 핵심 인사가 “총선에서 지면 우리는 다 죽어”라고 했다는 것은 그래도 정치인의 경우다. 기무사 ‘계엄 문건’ 군·경 합동수사단 일부 인사들까지 ‘정권이 교체되면 우리는 모두 다 죽는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1번을 찍어야 한다”는 말들을 했다는 것이다. 이 수사는 문 대통령 지시로 시작돼 무려 200여 명을 괴롭혔지만 완전히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그렇다고 해도 대통령 지시를 이행했을 뿐인 군·경 관계자들까지 ‘선거 지면 죽는다’고 했다는 것은 정권의 피해망상이 소수 핵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
08.06 野 대표들 개인 감정싸움 6일째, 지금 그토록 한가한가
▲<YONHAP PHOTO-3891> 공식적으로 만난 안철수-이준석 (서울=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민의힘 이준석 당 대표(오른쪽)가 인사차 국민의당 안철수 당 대표를 방문, 발언하고 있다. 2021.6.16 jeong@yna.co.kr/2021-06-16 15:46:37/ <저작권자 ⓒ 1980-202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간 합당(合黨)을 둘러싼 신경전이 ‘철부지 애송이’ ‘요란한 승객’ ‘전범 몰이’ 등 거친 표현으로 연일 고조되고 있다. 4·7 재·보선 직후 합당에 원칙적으로 동의했던 양측이지만 최근 실무 협상에서 대선 후보 선출 방식, 당명(黨名) 변경 여부 등을 놓고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지지부진한 상황이 계속됐다.
그러자 이 대표는 “안 대표가 직접 협상에 나서라”며 자신의 휴가 시작일인 9일 전까지로 협상 시한을 제시했고, 국민의당 측은 이 대표에 대해 “분수 모르고 장난질하는 철부지 애송이”라고 막말로 비난했다. 이에 이 대표는 “당대표가 아니라 애송이로 보이나. 계급 보고 경례하는 것”이라며 안 대표를 겨냥해 “꼭 요란한 승객을 태우고 가야 하느냐”고 했다. 안 대표는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이 영국군에 항복을 받아낼 때 ‘예스냐? 노냐?’라고 했다”며 맞섰다. 이 대표는 다시 “친일 몰이를 넘어서는 전범 몰이가 신박하다”고 했다. 이런 설전이 6일째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합당 협상 조건을 놓고 밀고 당기는 것이 아니다. 순전히 두 개인의 감정싸움이다. 두 사람은 같은 지역구를 놓고 경쟁하면서 쌓인 감정이 상당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둘 모두 야당 대표라는 공인이다. 중대한 국정 현안, 정치 현안을 앞에 두고 있기도 하다. 치졸한 개인적 싸움을 벌이는 차원은 넘어서야 한다.
이 대표는 제1 야당을 이끌고 있다. 안 대표는 의원 3명의 작은 정당 대표라고 해도 독자적 지지세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이들에게는 내년 대선에서 정권 교체라는 큰 숙제가 주어져 있다. 그런데 안 대표는 이미 수차례 약속한 합당을 작은 계산을 하면서 미루고 있고, 이 대표는 그런 안 대표에게 통 큰 정치 대신 협량한 공세만 펴고 있다.
지금 국민은 집값 폭등과 전·월세 대란, 코로나 거리 두기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야권이 전열을 정비해 정권의 무능과 폭주를 견제해주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최근 야권에서 벌어지는 일은 난데없는 ‘남녀 갈등 논쟁’과 두 당대표 간의 감정싸움뿐이다. 이 대표와 안 대표가 국민의 바람을 절실히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조선일보 사설
08.07 월간조선 08월 호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
“문재인 대통령은 화석화된 이념에 고정돼 진화하지 못한 사람… 목숨 걸고 정권 되찾아올 것”
⊙ 국민의힘 내부 분위기는 조화와 화합의 장, 꾸준한 체질 개선의 결과로 개혁성과 유연성 상승
⊙ 180여 석 보유한 與, 안하무인 태도로 상습적 날치기 법안처리
⊙ 윤석열·최재형·김동연은 빨리 입당하는 게 정치적으로 이득, 내가 당사자라면 당장 입당할 것
⊙ 더불어민주당은 노쇠한 공룡·꼰수기(꼰대·수구·기득권) 정당
⊙ 내년 대선은 어느 때보다도 절박하고 중요한 선거… 국민의힘으로 결집해야
/사진=조준우
지난 6월 17일,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586운동권이 국가를 사유화하고 있다”며 “한때 대한민국 체제를 뒤집으려고 했던 사람들이 그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누리고 이제 ‘꼰수기(꼰대·수구·기득권)가’ 돼 가장 많은 해악을 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부동산 문제, 희망이 없는 젊은이들, 부족한 일자리, 어려워져만 가는 소상공인 등의 심정을 절절한 문구로 대변하며 여당 의원들을 향해 “꼰수기가 어떻게 민생과 공정을 챙기겠느냐”고 소리쳤다.
이날 관련 기사에는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30분 동안 원고도 보지 않고 열변을 토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야당의 변한 모습과 정권교체에 대한 절박함이 느껴졌다’ ‘김기현을 대통령으로’ 등의 댓글이 많은 동의를 얻었다. 보수세력 원로들 사이에서 “김 원내대표의 연설에서 진정성과 간절함을 보았다”는 평가도 나왔다.
판사 출신으로 국회의원 4선, 울산시장을 지낸 관록의 정치인인 그는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울산시장 선거에서 재선을 목표로 출마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친구 송철호 울산시장을 당선시키기 위한 ‘청와대 하명수사’로 고배를 마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2020년 총선에서 당선돼 재기했고, 지난 4월 30일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거에서 2차 투표 결과 반수가 훌쩍 넘는 득표로 원내대표가 됐다.
김 원내대표는 보수정당 역사상 유례없이 어려운 상황을 맞은 원내대표다. 100석을 겨우 넘는 의석수로 180여 석을 보유한 범여권에 맞서야 하는 형편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여권 성향 정당의 의석수를 모두 합치면 전체의 3분의 2가 넘어 야당이 여당을 저지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국회 내 주요 직책도 국민의힘에는 전무하다. 2000년대 들어 총선 후 국회가 새로 개원하면 야당 또는 제2당은 국회부의장 1명과 법사위원장, 의석수에 따라 배정된 수의 상임위원장직을 가져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21대 국회에서 국민의힘은 전술(前述)한 모든 직을 하나도 갖지 못하고 있다. 양당의 원내지도부가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면서 국민의힘이 모든 국회직을 보이콧했기 때문이다. 21대 국회가 개원한 지 1년이 넘도록 상임위원회에 국민의힘 위원장은 한명도 없다. 야당 몫인 국회부의장 자리도 공석이다. 국회 본청 원내대표실에서 만난 김 원내대표는 “원내 상황은 어렵지만, 우리 당이 국민의 기대를 받고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희망을 갖고 여당의 폭거에 맞서고 있다”고 했다.
소수 야당 원내대표의 어려움
▲지난 4월 30일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선출하는 의원 총회에서 김기현 원내대표가 당선된 뒤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사진=조선DB
― 어려운 시점에 원내대표가 됐습니다.
“여당은 위성정당을 합치면 180석이 넘기 때문에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습니다. 국회선진화법도 적용이 안 되고 안건조정위원회에 회부해도 소용이 없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게 된 겁니다.”
― 당대표(이준석)도 원외이다 보니 책임감이 막중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원내 현안과 입장이 당의 현안 및 입장과 상충될 때가 있기 때문에 당대표가 같이 국회 활동을 하면 원내와 당내 이해관계 조정 등 역할 분담을 할 수 있죠. 그런데 당대표가 국회 업무를 하지 못하니 제가 그 모든 걸 떠안아야 하고, 권한을 쥐고 있긴 하지만 책임도 저 혼자 다 져야 합니다. 당의 결정은 최고위원회의에서 하는데 최고위원도 원외가 많습니다. 당 지도부에서 원내 현안을 논의하는 게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 법사위원장직을 갖고 오기 위해 계속 여당과 논의 중이죠.
“최근 국회는 매번 국회의장을 여당이 가져가면 법사위원장은 야당이 가져가는 걸로 합의해왔습니다. 그런데 21대 국회 초반에 여당이 그걸 깨버렸죠. 지금도 법사위원장 문제는 계속 논의 중입니다. 다만 추경이나 민생 관련 법안은 협조하면서 정치적인 이슈는 끝까지 맞서고 관철시키는 ‘투 트랙’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정치적 이슈 때문에 민생에 영향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 우리 당의 입장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여야가 대치하는 상황에서도 처리할 민생 법안이 있으면 모두 동의하고 참여하고 했습니다. 예전엔 여야가 정치적인 이슈로 대립하면 모든 법안 통과가 올스톱됐잖아요? 그렇게는 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 그렇다면 여야가 잘 합의해서 순조롭게 입법활동을 하고 있다는 얘긴가요.
“그렇게 볼 순 없어요. 180석이 넘으니 일상이 날치기입니다. 날치기 아닌 게 없어요. 어떤 법안들은 여당이 40여 분 전에 일방적으로 문자 통보를 해서 여야 합의를 했다며 통과시키기도 하고, 야당 의원들은 알지도 못하는 법안이 통과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 상임위원장도 여당 일색인데, 일부라도 가져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법사위원장 문제가 해결되면 물꼬가 트일 겁니다. 그 전엔 상임위원장을 거론하는 게 의미가 없습니다.”
― 애초 21대 국회 초반에 너무 쉽게 상임위원장직을 보이콧한 것 아닌가요.
“여전히 그런 지적들이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갖고 왔어야 하는 게 아니냐, 지금이라도 몇 개라도 갖고 와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긴 합니다. 실리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지만, 우리가 명분이 달라진 것도 아닌데 어찌 보면 소소한 실리를 추구한다면 야당답지 않다고 봐요. 21대 초반에 여당과 국회의장이 의원 상임위 배정을 강제로 했습니다. 헌정사상 상임위를 강제 배정한 것은 전무후무한 사례입니다. 강제배정 당하고 상임위원장도 뺏기는 등 데미지 입을 건 다 입고 1년을 지내왔는데 이제 와서 굴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 여당에선 법사위 권한을 줄이자는 의견도 내놓는데요.
“여당 측은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권을 없애자는 건데, 그러면 법사위가 존재할 이유가 상당 부분 사라집니다. 서로 상충되는 법률들이 국회에서 양산될 수밖에 없어요. 법사위에 각 상임위의 법안들을 모아놓고 부처나 기관 간에 문제가 될 소지가 없는지 판단을 하고 필터링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체계·자구심사권을 없애면 상임위마다 그 조직의 이익만 추구하는 법안들이 넘치게 됩니다. 그래서 법사위라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한 겁니다. 혹자는 그런 건 본회의에서 걸러내면 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는데 그게 상식적으로 가능하겠습니까?”
― 여당은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권을 다른 기구에 두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 기능을 국회의장 산하 기구에 두자는 건데, 국회의장이 어느 편입니까. 그 산하에 외부 인사들을 데려와서 심사권을 준다? 법을 만들고 조정하는 건 국회의원의 권한입니다. 그렇게 할 거면 해당 기구에는 반드시 국회의원만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노쇠한 공룡”
▲지난 6월 17일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 21대 국회는 여대야소 현상이 극심해졌는데, 국회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지금 여당은 무소불위의 오만한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상습적 날치기를 하고 있고, 날치기 안 하면 이상할 정도가 됐습니다. 오늘만 해도 여당 쪽이 상임위 일정을 통지한다며 몇 시간 전에 문자를 보냈는데요. 안건 미정이라고 보내놓고 현장에서 여당 의원들이 안건을 마음대로 상정하고 심사를 진행했습니다.”
― 상임위 일정은 여야 간사가 합의하도록 돼 있는 것 아닌가요.
“협의하려 했는데 상대방이 듣지 않았다며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식입니다. 워낙 이런 일이 많으니 놀랍지도 않습니다.”
― 과거 국회에선 아무리 여야 의석수 차이가 나도 그렇게 일방적이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만.
“제가 4선째인데 당연히 이런 일은 없었죠.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오만불손, 안하무인의 태도를 더 이상 용납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 의석수로 볼 때 야당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만.
“아무리 소수라 해도 우리 당은 명확하게 의사 표시를 해야 하고 여당에 반대할 경우 정확한 반대 의사를 밝히는 게 도리입니다. 원래 야당이 관철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지만, 야당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국민들에게 국회의 현실을 알려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 여당 지지율은 총선 직후에 비해 하락세인데요.
“그 당 의석수가 거의 180석인데, 사실상 한명 있는 당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당대표가 한마디 하면 다 따라가는 당이잖아요. 다른 말 하면 바로 좌표 찍혀버리지 않습니까. 어디 감히 튈 수가 있겠습니까. 4·7보궐선거 직후 여당 초선 의원 몇 명이 ‘우리 당이 이래선 안 된다,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가 바로 그다음 날 생각이 짧았다, 죄송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 (여당에) 초선이 상당히 많은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별로 없는 분위기입니다.
“여당은 이미 거대한 공룡, 아니 노쇠한 공룡이 돼버렸습니다. 몸집이 무거워서 방향 전환은 할 수도 없고, 지금도 ‘문빠’와 ‘대깨문’ 위주로 돌아가는 당입니다. 국민이 뭐라 하든 위에서 따라오라고 하면 아래에선 따라가는, 꼰대의 방식을 가진 ‘꼰수기’(꼰대·수구·기득권) 정당이 된 겁니다.”
― 원래 보수정당이 그런 분위기 아니었나요.
“우리 당은 여당에 비해 비록 소수이고 힘이 없지만 유연성이 매우 높아져 있습니다. 개혁적 마인드를 가진 정당이 됐기 때문에 180석이 부럽지 않고, 우리는 180석 정당보다 민심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게 됐습니다.”
― 직접 접해본 여당 의원들에 대한 느낌은 어떻습니까.
“단체로는 180여 석만 믿고 오만불손하지만, 일말의 양심이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난번에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할 때 얘긴데요. 제가 단상에 올라가서 연설을 하면 주로 오른쪽을 쳐다보면서 합니다. 오른쪽이 더불어민주당 의석이거든요. 그 사람들을 향해서 하는 얘기니까 그쪽을 쳐다보면서, 여당 의원들과 한명 한명 눈을 마주쳐가면서 연설을 했습니다. 저는 정부·여당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당당하게 그들의 눈을 쳐다봤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상당수가 부끄러움을 느끼는 걸 제 눈으로 봤습니다. 자기들도 알지만 차마 말 못 한 내용들인 거죠. 사실 저는 이번 연설에서 단어와 어조가 좀 강했기 때문에 큰 야유가 나올 줄 알았습니다. 제가 그들을 향해 ‘당신들이 꼰대고, 기득권이고, 수구다!’라고 소리쳤는데, 옛날 같았으면 난리가 났을 겁니다. 내려오라고 고함 지르고 연설이 중단되는 상황이 왔을 겁니다. 그런데 이번엔 그게 아니라 그들의 눈에 부끄러움이 보였어요. 민주당 의원들도 현실적인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내 분위기는 조화와 화합
▲김기현 원내대표는 2018년 울산시장 선거 낙선 후 對與투쟁에 앞장섰다. 2019년 9월 울산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의 파면을 촉구하며 삭발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 ‘0선’의 젊은 당대표와 당을 이끌고 나가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당 분위기는 아주 좋아요. 최고위원회와 원내지도부 모두 조화를 이루고 잘 어우러지고 있습니다. 최고위원회의는 일방적 전달이 아니라 화합형으로,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고 그 의견들을 녹여내 최종 합의를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 다른 목소리를 내는 분들도 있지 않습니까.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건 맞는데, 불협화음이 들리지 않잖아요.”
― 당대표와 원내대표의 역할 분담은 어떻게 됩니까.
“대외적 활동은 당대표가 잘 하고 있습니다. 공개적으로 대변인을 뽑는 과정이 국민들로부터 많은 호감을 받았고, 우리에게 적대적인 세력이나 지역도 진정성 있게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 좋은 평가를 얻고 있는 것 같습니다.”
― 4월 말부터 6월 전당대회 전까지 당대표 권한대행으로 일했죠.
“당대표는 외연 확장에 힘쓸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중점을 뒀습니다. 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가치, 세대, 지역, 계층을 확장해 ‘가세지계(加勢之計·세력을 더하는 전략)’를 펼치겠다고 말했는데요, 우리가 그동안 소홀했던 가치에 대해 더 관심을 갖고 세력을 확장하자고 한 겁니다. 권한대행 시절 호남 지역을 찾고 젊은이들과 접촉하는 등 좀 더 폭넓은 활동을 펼치려고 노력했습니다. 지금 국민의힘이 가세지계를 구현해나가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 보수정당의 오래된 과제가 외연 확장이었는데, 국민의힘이 최근 성과를 얻고 있습니다.
“요즘 몇 달 사이에 폭발적이었죠.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4월 7일), 원내대표 선거(4월 30일), 전당대회(6월 11일)로 이어지는 기간입니다. 그런데 그게 어느 날 갑자기 된 건 아닙니다. 총선 후 뼈를 깎는 자성과 노력이 있었죠.”
― 국민의힘 지지율이 올라가면서 내년 대선을 앞두고 분위기가 고무적인데, 경계해야 할 점이 있을까요.
“보나 마나 여당에서는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신묘망측한 계략을 다 쓸 겁니다. 당장 예상되는 게 북한 김정은의 답방 또는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입니다. 제가 보기엔 이번 연말 전에 할 겁니다. 김정은 입장에서도 그래야 자신에게 남는 게 있다는 계산을 하겠죠. 그래서 북한 문제를 이슈화해서 가짜 평화가 진짜 평화인 것처럼 눈속임하는 쇼를 할 겁니다.”
― 과거엔 보수정당이 ‘북풍’을 선거에 이용한 예가 있는데, 이제 그 반대군요.
“저는 그걸 ‘신(新)북풍’이라고 부릅니다. 가짜 평화쇼는 대선 전에 꼭 있을 겁니다.”
― 신북풍 외에 여당은 무슨 전략이 있을까요.
“수사기관을 통해 음해하고 괴롭히는 일도 예상됩니다. 제가 지난 울산시장 선거 때 직접 겪었잖아요. 올해는 더 세게 할 겁니다.”
―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아서 그런 불법적인 음해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는데 가능성이 있을까요.
“궁지에 몰린 여당 입장에선 이판사판 아니겠어요. 지금 정권의 권력 핵심 인물들이 지은 죄가 얼마나 큽니까. 감옥 갈 사람이 수천명은 되지 않겠습니까? 그들 스스로도 궤멸적 수준의 화를 입을 거라고 예상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사고 친 숫자도 많고 사고의 깊이도 지나치게 깊습니다. 그들 눈에는 국민도 나라도 안 보이고, 자기 권력과 생존만 보일 겁니다. 저는 그들이 무슨 짓이든지 할 것이라고 봅니다.”
윤석열·최재형·김동연은 하루라도 빨리 입당하길
― 윤석열 전 검찰총장, 최재형 전 감사원장,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등 당 밖 대권 주자들을 위해 입당 축하용 꽃다발을 준비하고 있다고 얘기했죠.
“본인 입장에서도 빨리 들어오는 게 정치적으로 이득이 될 거라고 봅니다. 정치적인 계산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당사자라면 당장 입당 절차를 밟을 겁니다.”
― 빨리 입당하라는 게 당론입니까.
“당론으로 할 일은 아닌 것 같고요. 우리 당 내에도 대권 주자들이 많은데 그들이 뒷전인 건 아니니까요. 우리는 큰 플랫폼을 만들어서 다 같이 참여할 수 있는 경기장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처럼 당내 경선 후 국민경선으로 야권 후보를 단일화할 가능성도 있습니까.
“반드시 없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그 때와 지금은 다릅니다. 4·7보궐선거 전은 당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면서 우리 후보가 당선된다는 보장이 없던 시기였고, 여당에선 자기들이 후보만 내면 당선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분위기가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어요. 어느 날은 모 방송국 인터뷰 요청이 들어와서 하는데, 진행자가 ‘여당에는 (서울시장) 후보가 많은데 야당에는 후보가 별로 없지 않으냐’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무슨 질문이 그러냐, 왜 여당의 시각으로 질문을 하느냐, 우리 후보들이 여당 후보들보다 훨씬 낫다 라고 주장했죠. 언론인이라는 사람이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정도의 분위기였습니다. 서울 구청장 25곳 중 24곳, 시의원 109명 중 100명 이상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고, 박원순 시장이 만들어낸 관변조직과 단체들 모두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었잖아요. 조직력이 천지 차이인데 어떻게 이길 거냐 라는 비관론이 만연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후보 단일화를 이뤄냈던 거고요.”
― 지금은 국민의힘이 예전과 다른 힘이 있다는 얘기죠.
“우리 당 지지율이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40%를 넘어서기도 하고, 우리 지지율은 지속적으로 우상향인데 여당은 우하향입니다. 상승기류와 하강기류가 명확해요. 힘이 있는 쪽으로 결집해야죠. 당 밖의 후보들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국민의힘 지지율이 상승세인 건 분명하죠.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선거전에서 획기적인 현상을 목격했어요. 20대 청년들이 우리 후보 유세차에 자진해서 올라 마이크를 잡고 연설을 하는 겁니다. 우리가 전혀 생각도 못 했던 일입니다.”
― 작년 총선만 해도 참패했는데,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우리의 지지율은 벼락치기 해서 얻은 게 아니고 꾸준히 체질을 개선하고 노력한, 누적된 결과입니다. 작년엔 우리가 여전히 상당 부분 착각 속에 있었고, 공룡의 체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죠. 총선에서 망하고 나서 우리 현주소를 인식하고 처절하게 반성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른 목소리를 배척하지 않고 수용하는 당내 문화가 만들어졌습니다. 최고위원회의를 보면 알 수 있을 텐데요. 결이 다른 분들이 있지만 그 결이 다른 분들과도 조화를 만들어나간다는 건 당의 분위기가 이미 많이 바뀌었다는 겁니다. 시대의 흐름이고 그 흐름을 거스르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분위기라 모두들 자연스럽게 흐름을 타고 있습니다.”
원래 꿈이었던 대권 도전은 ‘준비 중'
그가 원내대표 선거에 도전하기 전, 대선 경선에 도전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가 울산시장으로 재직하던 민선 6기(2014~2018년) 광역단체장 중에는 유독 대선에 도전하려는 인물이 많았다. 박원순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홍준표 경남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최문순 강원지사, 이낙연 전남지사 등이 대권의 꿈을 내비쳤고, 김기현 울산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이 중 정치권을 떠난 3명(박원순·남경필·안희정)을 제외하고 홍준표·원희룡·최문순·이낙연 4명이 내년 대통령 선거에 도전한다· 그 역시 대선 경선에 나서려 했던 것은 아닐까 궁금했다.
― 원래 대권 도전에 뜻이 있지 않았습니까. 원내대표직을 맡은 만큼 이번 대선 경선에는 출마할 수 없는데요.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부터 큰 꿈이 있었습니다. 국회의원 몇 선 하겠다거나 울산시장 하겠다는 꿈을 꾼 건 아니지요. 그 과정이 때론 뜻대로 되기도 했지만 때론 좌절도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금까지 왔습니다. 21대 국회에 들어오면서는 이제 내게 주어진 마지막 스텝을 밟을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4선이나 했는데 국회에 계속 눌러앉아 있으면 후배들 보기도 모양이 좋지 않고, 항상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 차기(2027년) 대선에 도전한다는 뜻인가요.
“이번에는 대선 도전 준비를 하지 못했고, 했으면 원내대표 선거에 나오지 않았겠지요. 저 나름대로의 구상을 통해 준비하고 타이밍을 보고 있습니다.”
―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여야를 막론하고 대통령은 상식을 가진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예전까지 단 한 번도 ‘상식 있는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이번 정권에서는 그게 당연한 거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습니다. 모든 법 절차와 제도를 깔아뭉개고 자신의 뜻을 관철하겠다는 목표만을 향해 가지 않습니까. 민주화시대 들어 이렇게 상식이 없는 대통령이 있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 근본 원인이 뭘까요.
“도그마가 형성돼 있는, 화석화된 과거의 이념을 추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1980년대식의 이념에 생각이 고정돼 있고 진화를 못 한 거죠. 아니 어떻게 지금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나옵니까. 검찰 인사는 깽판을 쳐놓고, 그게 정의라니요. 그냥 허황된 꿈 속에 사는 사람 같습니다.”
“이번처럼 절박한 선거 없어"
― 검찰수사에서는 청와대 일부가 울산시장 선거에 개입한 것으로 확인됐고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인데요.
“수사는 70% 정도 진행돼 있습니다. 30%에 대해 수사기관은 ‘현재로서는 더 이상 증거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 말은 지금은 증거 수집이 안 되지만 나중에 얼마든지 증거 수집을 할 수 있다는 말이거든요. 지금까지의 수사는 행동대원들만 파헤친 거고 남은 30%가 핵심인데, 이제 그 보스가 누군지를 찾아내야죠. 근데 검찰 인사로 수사 제대로 하는 검사들 다 날렸으니 어찌 될지….”
― 여당 주도로 검경(검찰·경찰)수사권이 조정됐는데요.
“겸경수사권 조정의 목표는 명확합니다. 경찰은 말랑말랑하거든요. 바람이 안 불어도 바람 부는 방향을 미리 알아서 숙이는 조직입니다. 경찰이 권력형 비리 수사해서 찾아낸 게 단 한 건도 없어요. 지금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 수사한다며 국가수사본부 만들어놓고 조사해서 나온 게 뭐가 있습니까. 세종시 특공(공무원주택특별공급) 조사해서 나온 게 뭐가 있습니까.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범죄 수사하는 데 수십명이 몇 달간 투입됐는데 아무것도 안 나왔죠. 수사권도 없는 재판부와 국가인권위원회가 박 전 시장 성범죄를 인정했습니다. 대체 권력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경찰이 무슨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겁니까. 검사는 잘려도 밥벌이가 되니까 신념과 양심을 저버리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경찰은 그게 아니잖아요. 이 정권이 그런 사람들에게 권한을 주고 멋대로 주무르는 게 검경수사권 조정입니다.”
국민의힘은 8월쯤 대선 후보 경선을 시작하고 후보가 결정되는 11월쯤부터는 선거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게 된다. 이때부터 당대표는 유명무실해지지만, 원내대표는 변함없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고 책임도 막중해진다.
김 원내대표는 원래 성격이 온화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 정치인이며 기자가 과거 만남에서 받은 인상도 마찬가지였지만, 원내대표가 된 후 그 느낌은 사뭇 달랐다. 표정과 말투에는 패기가 넘쳤다.
― 내년 대선이 국가 운명에 중요한 기로가 될 것 같습니다.
“이번처럼 절박한 선거가 없습니다. 이렇게 비정상적인 나라를 그대로 두고 볼 순 없습니다. 제가 원내대표 당선 연설을 하면서 ‘목숨을 걸고 반드시 정권을 찾아오겠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생각은 똑같습니다. 반드시 제 목숨을 걸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글 :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sjkwon@chosun.com
08.13 이준석의 목표는 정권 교체인가, 자기 장사인가
역대 최연소 보수당 대표의 탄생을 알리는 팡파르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불협화음이 가득하다. 젊은 패기와 긍정의 에너지를 기대했던 이들이 크게 우려한다. 두 달 만에 마주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리스크다.
여권 비판 안 하고 내부 정쟁 몰두
다를 거라 기대한 국민에게 실망 안겨
근래엔 윤석열 캠프의 신지호 정무실장이 “당 대표의 결정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것은 탄핵도 되고 그런 거 아닌가”라고 말한 걸 두고 이 대표가 격하게 공개 반발하면서 당 전체가 분란에 빠져들었다. 신 전 의원의 발언 자체는 부적절했다. 어제 오후 "당과 대표에게 부담 드리게 된 점 심심한 사과 말씀 드린다”고 했는데 필요한 과정이었다.
이 대표의 처신과 대응이 적절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우선 당 대표라면 말 그대로 당을 대표해야 한다. 이 대표의 시야가 수권정당을 이끌 만한 높이에 도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대표의 페이스북을 보면 이달 들어 40여 건의 글을 올렸는데 백신 수급 불안정이나 한·미 연합훈련 등 현안에 대한 입장은 볼 수 없다. 위헌 소지가 다분한 여권의 언론중재법 일방처리 움직임에도 별다른 말이 없다. 그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 정경심씨의 2심 선고에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한 고위 당직자는 “여당과의 싸움에 대표가 없다”고 개탄했다.
반면에 당 안팎의 정쟁엔 공세적으로 몰두했고, 그 결과 볼썽사나운 싸움이 됐다. 이달 초반엔 국민의당, 최근엔 윤석열 캠프 공격에 치중했다. 택시 연수 교육 중이라는 어제도 한나절 만에 네 건의 글을 올렸다. 당 중진을 하이에나에 빗대기도 했다. 당내 갈등을 중재해야 할 대표가 당사자가 돼 갈등을 키우는 것도 문제인데, 동료에게 하는 언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저속했다. 윽박지른다고 대표의 권위가 서는 건 아니다.
정작 쓴소리엔 발끈했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당 대표가 공정성 시비에 휘말렸을 때 최후의 보루가 없어지게 돼 부작용이 클 수 있다. 경선 프로그램에 관심 끊어라”고 했는데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이 대표는 그러나 “경기를 뛰어야 할 선수들이 개인적인 의견을 내면서 본인의 유불리에 따라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을 드러내는 것은 방종”이라고 쏘아붙였다. 경선 과정에서 후보들 의견 청취와 조율은 필수다. 이를 방종으로 몰아붙이는 것 자체가 방종 아닌가.
남들에겐 설명과 해명, 조치를 요구한 이 대표는 정작 자신이 지난 3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되면 지구를 뜨겠다” “유승민 전 의원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발언한 사실이 드러난 데 대해선 아무런 해명을 하지 않았다. 이러면 누가 ‘공정 경선’을 믿겠나.
오죽하면 유승민 전 의원이 “말을 줄이고 생각할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했겠나. 이 대표는 대표로서의 우선순위를 바로 할 필요가 있다. 정권 교체인가, ‘자기 장사’인가.
중앙일보 사설
08.16 정권교체 걷어차는 국민의힘
정권교체 열망이 한때 55%였다. 지난 4월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 직후 갤럽 조사에서 그랬다. 최근 조사에선 8%포인트 떨어진 47%다. 정권유지론은 꾸준히 올라 39%까지 왔다. 21%포인트 차이에서 8%로 줄었다. 겨우 넉 달 만이다. 야당이 재·보선에서 압승할 때만 해도 내년 대선 승리는 따 놓은 당상 같았다. 야당에 매몰찬 말이지만 그새 오만해진 모습을 보면 정권교체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다. 정권, 넘겨주긴 쉬워도 쉽게 넘겨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유례없는 대표·후보 헤게모니 다툼
당 전체가 진흙탕 싸움에서 허우적
정권교체 열망 사라지는 건 한순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공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대선을 관리하는 당 대표는 공정이 생명이다. 중립 성향의 한 의원은 "이 대표가 윤 전 총장이 후보가 되면 불안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 내심 걱정"이라고 말했다. 대표가 그래선 안 되지만 그런 인상을 주는 것조차 문제다. 대표가 되기 전 '유승민(전 의원) 대통령'을 말한 적이 있는 이 대표는 지난달엔 라디오에 나와 '오세훈 대선 차출론'을 언급했다. 이 대표를 잘 아는 한 인사는 "설마 가능하겠느냐"면서도 "이 대표가 오세훈 서울시장 차출을 가능한 시나리오라며 여운을 버리지 않는 분위기"라고 우려했다. 이 대표는 지난 9일에는 "지금 대선을 치른다면 여당에 5%포인트 정도 차이로 진다"고도 했다. 윤 전 총장의 입장에선 서운하다고 느낄 만한 상황일 수 있다. 완곡한 화법을 싫어하고 승부를 즉시 봐야 하는 게임 세대 스타일이라 하더라도, 최근 이 대표의 언행은 지나쳤다.
이 대표는 자신이 왜 대표가 됐는지 잊어서는 안 된다. '이준석 돌풍'의 원인은 정권교체에 목마른 보수·영남 유권자들의 전략적 선택이 있어서 가능했다. 그가 대표감이라기보다 이준석 대표가 되면 정권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자신의 욕심을 앞세우기보다 정권교체를 위해 희생해야 보수가 산다.
윤 전 총장도 그다지 나을 게 없다. 윤 전 총장은 대표가 서울을 비운 사이 '기습 입당'한 이래 '봉사활동 보이콧' 등으로 사사건건 이 대표와 부닥쳤다. 윤 전 총장 측 인사들도 이 대표를 자극했다. 무엇보다 다른 후보들을 폄하한 '돌고래·멸치' 발언의 격이 떨어졌고, 신지호 캠프 정무실장의 '탄핵' 발언은 공정을 의심받는 이 대표의 수준으로 윤 전 총장도 내려앉게 만들었다. 경선준비위의 독단이 지나친 측면이 있지만 후보라면 언제든지 준비돼 있어야 할 토론회 참석을 두고 다투는 모양새도 걱정스럽다.
두 사람뿐인가. 권한이 없다는데 일방적으로 경선 일정을 밀어붙이려 했던 경선준비위, 거기에 반대해 특정 후보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최고위원들이 뒤엉켜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이럴 때일수록 당 중진들이 나서 중심을 잡아야 할 테지만 중진 다수가 캠프로 가 싸우고 있으니 그 모양새가 참 딱하다.
사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야권엔 구심점이 없었다. 여당이 네 번의 선거에서 연승을 이어갈 때 '야당 복' 때문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로 야당은 바닥에 내려앉아 있었다. 그랬던 야당에 재·보선 승리를 기점으로 정권교체의 희망이 보이자 무주공산인 당내에서 헤게모니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게 지금 국민의힘이다. 그 선봉에 이 대표와 윤 전 총장 측근들이 있는 거다. 당의 한 핵심 인사는 "당 전체가 마치 권력을 넘겨받은 듯한 착각에 빠져 헤게모니 다툼에 혈안이 돼 있다. 정권교체라는 대의는 오간 데 없고 하나같이 미래 권력을 위해 지금부터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다. 마치 대선에서 다 이긴 줄 알고 오만했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시절이 떠오른다"고 했다.
국민의힘 사람들은 자신들이 재·보선에서 승리한 이유를 정말 잊어버렸단 말인가. 야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오만한 여당이 싫어서였는데, 국민의힘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을 심판하려는 것이었는데, 얼마나 됐다고 그걸 거꾸로 알고 있나. 분위기가 뒤집히는 건 한순간이다. 계속 싸워대다간 정권교체의 희망은 훅하고 날아간다.
중앙일보 신용호 정치에디터
08.16 안철수, 대선 출마 가능성 묻자 “향후 따로 말씀드리겠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16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힘과의 '합당 결렬'을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16일 국민의힘과의 통합이 결렬됐다고 발표한 뒤 대선 출마 가능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앞으로 계획에 대해서는 향후 따로 말씀드릴 시간을 갖겠다"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안 대표는 “우선은 지금까지 혼란스러웠던 당을 먼저 추스르고 당원 지지자분과 함께 논의해 길을 찾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국민의당 당헌에 따르면 대선출마를 위해서는 선거 1년 전까지 당직에서 사퇴해야 한다. 안 대표가 출마하기 위해서는 당헌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야권 제3지대에서 김동연 전 부총리와 연대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지금 어떤 계획이나 생각을 가지고 있진 않다”면서도 “다만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고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라면 어떤 분이든 만나서 의논할 그런 자세가 돼 있다”고 밝혔다.
대선 전 야권 단일 후보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는 한참 고민한 뒤 “저는 정권교체를 바라고 더 좋은 대한민국을 원하는 그런 합리적인 중도층을 대변하고자 한다. 그리고 저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을 다 하겠다”고 했다.
이날 국민의힘과 합당 결렬을 밝히며 안 대표는 “정권교체가 과거 기득권 양당이 반복해온 적대적 대결정치의 도돌이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우리 정치는 이제 이념에서 실용으로, 대결에서 문제 해결로, 과거에서 미래로 과감히 전환해야 한다”고 비전을 제시했다.
이어 “국민의당은 실용적 중도정당이다. 국민을 통합하고 현재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젊은 세대들을 위한 국가대개혁과 미래 아젠다를 주도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해준·성지원 기자 lee.hayjune@joongang.co.kr
08.16 결전 앞두고 ‘콩가루 집안’ 만든 이준석 대표
李대표가 싸워야 할 상대는 대한민국 부정하는 세력
北 한마디에 안보 눈감고 민주주의 파괴하는 이들이다
野 후보들 위해 봉사해야지, 개인 야망 앞세울 때 아니다
대통령 선거판이 이상야릇하게 돌아가고 있다. 2022 대선은 무엇과 무엇이 싸우는 판인가? 대한민국 73년의 정당성을 긍정하는 계열(A)과 그것을 부정하는 계열(B) 사이의 내전이다. 주사파 민족·민중 혁명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A를 아군, B를 적군으로 쳐야 옳을 것이다.
이 상식을 저버리고 만약 A에 속했다면서도 같은 A 소속을 적대하는 사례가 있다면, 더군다나 대선 7개월을 앞둔 이 시점에는 그거야말로 황당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최근 그런 역설적 당착(撞着)을 드러냈다. 그는 야당이라면서도 김정은·김여정·주사파·문재인·대깨문을 공격하기보단, 윤석열·안철수를 더 치고 깠다. 왜 그랬나? 이 질문에 국민의힘 C 의원은 전화로 이렇게 말했다.
“이준석을 유승민 아바타라고들 하는데, 그렇진 않다. 그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 저런다. 그가 말을 부적절하게 하는 점은 있다. 그러나 그가 대표 된 후 젊은 층 모바일 입당이 급증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3월 제작된 영상에서 이준석은 “윤석열 대통령 되면 난 지구를 뜰 것. 유승민 대통령 만들어야”라고 했다. 이준석 현상과 유승민 대통령 만들기 사이에 ‘선택적 친화력’이 있음을 유추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 때문인지, 정권 교체를 위해 다양한 A 계열이 막판 단일 후보 중심으로 하나가 돼야 한다고 믿는 쪽 여론이, 이준석에게 썩 좋지 않게 돌아간 게 사실이다. 단일화 대의를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그가 잘못 짚었다는 것이다. 야당 대표로서 그는 자신의 야망을 앞세울 때가 아니다. 자기 당 후보들을 위한 봉사에 전념할 때다. 그래서 그는 윤석열·안철수를 물어뜯기보단, 대한민국의 주적을 향해 날을 세워야 했다.
문재인 캠프 노동특보를 지낸 ‘충북동지회 간첩단’ 같은 게 대한민국의 주적이다. 간첩들은 스텔스기 도입 반대, 미군 철수, 보수 타도 등 모든 현안을 추동했다. 김여정이 꽥 하니까 여권 의원 72명이 “한·미 훈련 연기요~~”라고 복창했다. 안보의 주적들인 셈이다. 드루킹·김경수의 선거 여론 조작, 인천 연수을 재검표로 발견된 가짜 투표용지, 울산시장 선거 개입 피소 등은 민주주의의 주적이다. 선거 철 남·북 ‘사기 평화 쇼’는 공명 선거의 주적, 삼복더위에 원전(原電)을 깨는 건 생명의 주적이다.
이준석이 야당 대표라면 그가 목숨 걸고 싸워야 할 상대는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러나 그가 우군 아닌 적군을 향해 칼을 빼 들었다는 소리는 들은 적 없다. 김영삼·김대중이 언제 야당을 깨고 야당 지도자 됐나? 그들은 2중대 야당 민한당을 깨고, 선명 야당 신한당을 만들었을 뿐이다.
이준석 현상이 초래한 난맥상을 김어준은 ‘내가 바라던 콩가루 집안’이라고 반겼다. 이준석 현상은 정권 연장을 바라는 기준에선 “잘했다” 평을 들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정권 교체를 바라는 기준에선 이준석 현상은 “잘못했다” 평을 들어야 맞을 것이다. 이 잘못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순리적 방법과 비상한 방법이 있다.
순리적 방법은 이준석 스스로 사태의 심각성을 깨쳐 내부 공격 아닌 야권 대동단결과 ‘민중주의 파시즘’ 종식 투쟁에 나서는 것이다. 이럴 때 예비 후보들은 기꺼이 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 순리가 정 안 먹힐 때는 비상한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다. 이준석 눈금에 맞추지 말고 더 보편타당, 공명정대, 공평무사한 눈금에 맞추는 것이다. 그리고 이준석이 뭐라 하든, 일일이 대적하지 말고 오직 정권 교체 여망만 바라보고 달리는 것이다.
세상이 편하려면 순리적 방법이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이 그 가능성을 허물 수도 있다. 이준석에게 힘을 실어주어 그가 윤석열과 맞짱 뜨도록 부추기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청와대가 이준석을 여·야·정 3자 협의에 초대하는 건 바로 그 효과를 노린 것 아닐까? 이준석이 정권의 반간계(反間計)에 맞출 경우, 그는 ‘제 식구를 주적 취급하고 외부와는 샴페인 터뜨리는’ 격이다. 제 집안은 콩가루 만들고 ‘늑대와는 춤을’ 추는 격이다. 순서가 거꾸로 됐다.
정권 교체 국민 연합이냐, 정권 연장 통일 전선이냐 하는 숨 가쁜 결전을 앞두고, 전자(前者)를 선도해야 할 제1 야당 대표가 ‘딴생각’에 더 바쁜 셈이다. 이럴 땐 당내 걱정하는 마음들이 일어나 외쳐야 한다. 더는 그 꼴 볼 수 없다고.
조선일보 류근일 언론인
08.17 야권, 지금 뭐 하는 건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국민의힘과의 합당 결렬을 선언했다. 안 대표는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단일화 과정에서 여러 차례 합당을 약속했다. “단일 후보가 안 되더라도 합당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자 4개월여 시간을 끌면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개인 감정이 담긴 신경전을 벌이더니 결국 약속을 깼다. 대선 후보 선출 방식, 당명 변경 등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고 하지만 진짜 이유는 지분 다툼과 두 대표 간 감정싸움 때문일 것이다. ‘새 정치’의 상징임을 자처하던 안 대표가 국민 앞의 약속을 파기하는 구태(舊態)를 보여주었다.
국민의힘 이 대표도 공범이나 마찬가지다. 작은 정당이지만 독자적 지지세가 있어 야권 통합에 꼭 필요한 상대방을 모욕 주며 압박해왔다. 자기 휴가 시작일을 협상 시한으로 제시하는가 하면 안 대표를 향해 “요란한 승객” 등으로 비유하며 조롱했다. 제1야당 대표다운 포용력 대신 협량한 공세로 야권 통합 기조에 찬물을 끼얹었다. 두 대표는 같은 지역구를 놓고 경쟁하면서 묵은 감정의 앙금이 크다고 한다. 그 결과 국민 절반 가량이 바라는 정권 교체의 첫걸음부터 망치고 말았다.
국민의힘의 내부 갈등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이 대표와 유력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대선 후보 토론회 문제 등을 놓고 10여 일째 쉼 없는 갈등을 빚고 있다. 이 대표와 윤 전 총장 측 인사들 사이에 “권력욕 부추기는 하이에나” “탄핵 가능성” 등의 거친 공방이 오갈 지경이 됐다. 급기야 이 대표 측이 윤 전 총장과의 통화 녹취록을 유출시켰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내홍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4·7 재보선을 전후해 야당 지지율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이는 문 정권의 거듭된 폭정과 무능에 따른 반사 이익일 뿐이다. 야당이 잘해서가 아니다. 그런데도 야권은 선거 승리가 확정적이라는 환상에 빠진 듯하다. 마치 정권 교체가 다 되기라도 한 듯 ‘내 몫부터 챙기겠다’는 식의 세력 다툼만 치열하다. 당 대표와 대선 후보들이 사방으로 뒤엉켜 서로 물어뜯으면서 ‘다중 분열’이란 말까지 나온다. 집값 폭등, 일자리난, 코로나 확산 등으로 고통받는 국민에 대한 염려는 안중에 없고 새로운 국정을 향한 비전은 실종됐다.
이런 사람들이 정권 교체를 외칠 자격이 있기는 한 건지부터 의문이다. 지난 4월만 해도 여론조사에서 정권 교체론이 정권 유지론을 20%포인트 이상 앞섰지만 최근 조사에선 8%포인트 차이로 줄었다. 야권에서 벌어지는 볼썽사나운 이전투구를 보며 국민들도 점차 마음을 돌리고 있다는 증거다.
조선일보 사설
08.17 與 대선 주자들 “독재·매표·포퓰리즘” 공격, 文 정권에 할 말
이재명 경기지사가 정부 방침과 달리 경기도민 전체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하자 다른 민주당 대선 주자들이 맹비난하고 있다. 이낙연 캠프 측은 “경기도를 아지트로 한 포퓰리즘 선거운동” “민주주의 탈을 쓴 독재자”라고 했고, 정세균 캠프는 “국론 분열”, 김두관 의원은 “독불장군식 매표 행위”라고 공격했다. 그런데 이들이 말한 “독재” “매표 행위” “포퓰리즘” 등은 바로 문재인 정권에 쏟아졌던 비판이다. 4년 내내 포퓰리즘·매표 정치와 국정 독주, 국론 분열에 앞장섰던 문 정권의 주역들이 이제 와서 그게 잘못이라며 경쟁자 공격의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던 취임사가 무색하게 야당과 반대 진영을 무시하는 국정 독주로 일관해 왔다. 검찰을 무력화하고 사법부를 장악했으며 비판자들을 적폐로 몰아 쫓아냈다. 탈원전과 울산 선거 개입 사건에서 보듯 법치를 무시하는 행태도 서슴지 않았다. 의석수 180석의 힘을 휘둘러 국회 18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하고, 임대차 3법, 노동 3법, 대북 전단 금지법 등을 일방 통과시켜 의회 독재가 뭔지를 보여주었다. 이게 ‘민주주의 탈을 쓴 독재’가 아니면 무언가.
문 정부 국정은 포퓰리즘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인 알바 일자리를 수십만 개씩 만들어 용돈을 뿌리고 어르신수당·교복수당 등 온갖 명목으로 살포하는 현금 복지를 2000여 가지로 늘렸다. 작년 총선 때는 아동수당 1조원을 선거 이틀 전에 앞당겨 지급하고, 전 국민 재난지원금 14조원을 뿌리기도 했다. 예타 면제 변칙을 통해 24조원이 투입되는 선심성 지역 개발 사업을 각 시도에 나눠주고,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까지 통과시켰다. 이게 ‘매표’ 아니면 무어란 말인가.
이낙연·정세균 의원은 총리와 여당 대표로서 문 정부의 국정 운영에 앞장선 핵심 인물이다. 그런 사람들이 정적을 공격하려 ‘독재’ ‘매표’ ‘포퓰리즘’ 운운하니 기가 막힌다. 오죽했으면 이 지사 측이 “제 발등 찍기”라 반박했겠나. 이 지사는 “앞으로도 계속 포퓰리즘을 하겠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조선일보 사설
08.17 시장이 아니라 정치가 정글이다
2015년 11월 초 ‘헬조선’이란 유행어가 역병처럼 한반도의 휴전선 이남을 휩쓸 때였다. 베이징에서 열린 국제 학술 대회 개막식 전야, 한인 학자들과 기업인들이 모여서 만찬을 하는데 한 재벌 총수가 스마트한 화두를 던졌다. “우리는 왜 됐나요?” 상아탑 ‘먹물들’의 허를 찌르는 재계 거물의 날카로운 잽이었다. 그 짧은 물음에 답하려면 문명사 흥망성쇠의 비밀을 밝혀야 한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성공은 세계사의 커다란 미스터리다.
대체 어떻게 망국(亡國), 식민 지배, 분할 점령,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고 분단 상태로 체제 전복의 위협에 시달리던 극동의 최빈국이 반세기 만에 선진국 문턱에 도달할 수 있었나? 휴전선 이북의 같은 민족은 전체주의 폭압 정권 아래서 빈곤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 대륙 국가 중국은 고작 1인당 GNP 1만달러를 갓 넘긴 후 그 정도 성취를 빌미로 인간의 기본권을 더욱 제약하는데? 광활한 영토도, 풍부한 지하자원도, 지정학적 이점도, 많은 인구도 없는 협소한 반쪽짜리 나라가 어떻게?
만찬장의 식객들은 차례로 돌아가며 대한민국의 발전에 관한 나름의 일가견을 피력했다. 한미 군사 동맹, 자유 진영에의 편입, 자본주의 시장경제 도입, 수출 지향 경제 전략, 효율적인 개발 독재, 창의적인 기업인들의 맹활약, 유구한 문화 전통, 시민사회 성장, 민주주의 확립, 높은 교육열, 강한 성취동기, 근면·성실한 국민성, 우수한 인력, 특유의 신바람 등등 많은 요인이 거론됐다.
한국 현대사의 성공 이유를 하나씩 꼽다 보니 그러한 한국을 ‘헬조선’이라 폄훼하던 그 당시 언론·문화·지식계의 행태가 야릇하게 느껴졌다. 산업화·민주화를 다 이루고 1인당 GNP 3만달러를 달성한 세계 10위권의 부국이 ‘헬’이라면, 중국·인도·베트남 등 개도국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비(阿鼻)지옥, 규환(叫喚)지옥인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지난 7월 2일(현지시간)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했다. UNCTAD가 1964년 설립된 이래 개도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를 변경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사진은 68차 UNCTAD 무역개발이사회에서 발언 중인 이태호 주제네바 한국 대표부 대사. /주제네바 한국 대표부
그로부터 6년 만에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의 만장일치로 한국은 개도국의 딱지를 떼고 ‘개발된 국가(developed nation)’의 지위를 얻었다. 오매불망 선진국을 동경해온 한인들로선 감개무량한 뉴스지만, 결코 샴페인을 터뜨릴 순 없다. 이제 “우리는 왜 됐나?”란 물음 대신 “앞으로도 잘될까?”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한국의 발전은 지속 가능한가? 한국 사회 최대의 위험 요인은 무엇일까?
현재 한국 사회의 최대 변수는 예측 불허의 정치판이다. 모름지기 ‘좋은 통치’(good government)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 최선의 대안을 모색하는 최고 인재들에 의한 합리적 의사 결정의 과정이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 사회는 전문성(expertise), 합리성(rationality), 정당성(legitimacy)을 모두 결여한 ‘나쁜 통치’에 위협당하고 있다.
전 감사원장 전언에 따르면, 대통령 한마디에 한수원이 월성 1호기의 경제성 평가를 적극적으로 조작했다. 집권 여당의 눈치를 보며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한 대법원장의 놀라운 발언이 공개됐음에도 반년이 넘도록 탄핵이 발의될 기미조차 없다. 대통령의 최측근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른바 ‘킹크랩’ 댓글 공작으로 국민 여론을 조작하는 중대 범죄를 저질러 실형을 살고 있다. 이 모두가 국가 운영의 전문성을 허물고, 의사 결정의 합리성을 해치고, 통치의 합법성을 무너뜨린 나쁜 통치의 단적인 실례들이다.
1995년 한 재벌 총수가 말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행정력은 3류, 정치력은 4류, 기업경쟁력은 2류”라고. 그 당시 위태롭게 보였던 한국의 재벌들은 세계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최고의 전문성과 합리성을 발휘해 초일류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반면 한국 정치는 이전투구의 권력 투쟁과 정치 보복의 악순환에 빠져 ‘5류’로 떨어진 듯하다.
누가 시장을 정글이라 했던가? 수많은 변수와 위협에도 시장은 이윤 추구의 합리성을 따라 정교하게 관리되고 조정된다. 시장이 아니라 정치가 정글이다. 아마추어 권력자가 정부의 전문성을 가볍게 무시하고, 투사형 선동가들이 정책 결정의 합리성을 멋대로 훼손해서, 급기야 통치의 정당성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정글의 정치’를 ‘좋은 통치’로 바꾸는 현명한 유권자들의 선거 혁명이 필요하다. 그 길만이 위태로운 선진국 코리아를 구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조선일보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08.19 여야의 막장 드라마…정치에 희망이 없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서 날마다 낯뜨거운 집안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대선을 앞둔 여야 대표 정당에서 국가 운영을 맡아보겠다는 대선후보들이나 당 대표까지 얽혀 이전투구에 정신이 없다. 내부 갈등 와중에 주고받는 언어나 방식도 저급하기 짝이 없다. 앞으로 여야가 대선에서 어떻게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민주당, 황교익 논란 “정치생명 끊겠다” 막말
국민의힘, 이준석-원희룡 ‘저거’ 진실 게임
민주당에선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경기관광공사 사장에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를 내정하면서 ‘보은 인사’ 논란이 불거졌다. 관광 분야 전문성이 부족하고 이 지사의 ‘형수 욕설 논란’에 대해 두둔한 게 내정 배경이 아니냐는 것이다. 대선 경선 경쟁자인 이낙연 전 대표 측이 “무자격자에 대한 채용 비리성 보은 인사를 그만두라”고 지적하면서 이 지사 측과 마찰이 본격화했다.
급기야 황씨가 직접 논란에 뛰어들면서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다. 이 전 대표 측에서 황씨가 도쿄나 오사카 관광공사 사장에나 적합하다고 하자 황씨는 “이낙연은 일본 총리 하세요”라고 맞받았다. 또 “이낙연의 정치 생명을 끊는 데에 집중하겠다”거나 “이낙연 측 사람들은 인간도 아닌 짐승”이라고 막말을 쏟아냈다. 사퇴를 거부하면서 “대통령 할아버지가 오셔도 권리 포기를 이야기하지 못한다”는 표현도 썼다. 당에 해를 끼칠 지경이 되자 대선주자인 정세균 전 총리가 이 지사에게 결자해지 차원에서 황씨 내정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황씨의 막말 논란이 거세지자 이 지사는 “경기도의회가 반대하면 내정을 철회하겠다”는 선까지 물러섰다.
국민의힘에선 대선 경선 토론회를 둘러싼 내홍이 봉합되는가 싶더니 더 큰 논란이 터졌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관련 발언을 놓고 이준석 대표와 대선주자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막장 수준의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다. 원 전 지사가 통화에서 이 대표가 ‘윤 전 총장이 곧 정리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히자, 이 대표는 지난 17일 밤 갑자기 녹취록 일부를 SNS에 공개했다. 자신은 ‘저거 곧 정리된다’고 말했고, ‘저거’가 윤 전 총장이 아니라 윤 전 총장과의 갈등을 지칭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느닷없는 ‘저거’ 공방은 18일에도 “녹음 파일을 공개하라” “딱하다”로 이어졌다.
당 대표와 윤 전 총장 측의 신경전에 원 전 지사가 참전하면서 국민의힘 내분은 확전 일로다. 다른 대선주자인 하태경 의원은 사적인 통화를 공개했다며 원 전 지사에게 후보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 대표가 "여의도연구원이 조사하고 안 하겠습니까”라고 발언한 것을 두고 당내에선 경선 시작도 전에 주자별 지지율을 조사하며 대표가 자기 정치에 이용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여야가 벌이는 내분은 각 지지층이 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다. 이러니 정치가 4류라는 비판을 듣는 것이다. 정말 국민에게 정권을 맡겨 달라고 할 생각이라면 두 당이 경쟁적으로 빨리 수습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좋다. 민주당은 인사 논란을 초래한 이 지사가 황씨의 사퇴 수순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정권 교체의 싹을 스스로 자르고 있는 국민의힘에선 이 대표가 당 내외의 조언대로 말을 줄이고 ‘봉숭아학당’이 된 당 체제부터 복원해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08.19 與 내부의 난데없고 치졸한 ‘친일파’ 싸움, 나라가 부끄럽다
음식 평론가 황교익씨의 경기관광공사 사장 내정을 놓고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간의 ‘보은 인사’ 논란이 난데없이 친일파 공방으로 번졌다. 이 전 대표 측 신경민 전 의원은 “황씨가 일본 음식에 대해 굉장히 높게 평가하면서 한국 음식은 ‘그 아류이고 카피를 해 온 거다’라는 멘트가 너무 많다”면서 “일본 도쿄나 오사카 관광공사에 맞을 분”이라고 했다. 이에 황씨는 “이 전 대표가 일본 정치인의 제복인 연미복을 입은 사진을 본 적이 있다”며 “일본 총리나 하라”고 맞받았다. 이 전 대표가 2019년 일왕 즉위식에 연미복을 입고 참석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여권이 야당 등 다른 사람들을 공격할 때 썼던 ‘친일 씌우기’를 자기들 내부 싸움에도 동원한 것이다. 애초 황씨 논란은 경기관광공사 사장을 맡을 자질과 전문성이 부족한데 이 지사의 형수 욕설 발언과 관련해 “이해가 간다”고 옹호한 데 대한 보은성 인사라는 비판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본질은 없어지고 ‘친일파 몰기’가 벌어졌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그간 외교나 국내 정치 상황이 어려워지면 느닷없이 죽창가를 부르고 반일을 외쳤다. 자신들을 비판하면 ‘친일파’라고 비난했다. 김원웅 광복회장이 “대한민국 역대 정부는 반민족 친일”이라고 매도할 때 대한민국 대통령이 그 앞에서 손뼉을 치는 지경이다. 이들에게 ‘친일’은 자신들이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정치 무기’다. 그 무기를 이제 서로를 향해서도 겨누게 된 것이다. 수틀리면 누구든 ‘친일’로 몰아 공격하는 게 이 정권 사람들의 습성이 돼 버렸다.
연미복은 일본 제복이 아니라 유럽 등에서 자리 잡은 의전 복식이다. 노무현·문재인 대통령도 과거 외교 행사에서 입었다. 황씨가 일본 음식을 좋게 평가했다고 친일파로 모는 것도 어이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양쪽은 서로 친일 프레임을 씌우기 바쁘다. 언제까지 이 치졸한 ‘친일파’ 몰이를 할 건가. 세계 선도국을 바라보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집권당 내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니 외국에서 볼까 부끄러울 뿐이다.
조선일보 사설
08월 19일 집안싸움에 날 새는 국민의힘, 정권교체는 포기했나
국민의힘 지도부와 대선 후보들 간의 갈등이 주도권 싸움 차원을 넘어 정권 교체 가능성을 우려하게 만드는 상황까지 확산하고 있다. 이준석 대표의 윤석열 예비후보 입당 압박, 윤 후보의 기습 입당, 윤 캠프 측의 ‘탄핵’ 발언, 이·윤 통화 녹음, 경선준비위의 토론회 시도 논란은 25일 비전발표회 개최와 선관위 조기 발족 합의로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런데 이 대표의 원희룡 예비후보와 통화 중 “저거 곧 정리된다”는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자 친여 방송인 김어준 씨는 “이러면 야당이 콩가루 집안이 되는 것”이라며 “제가 딱 원했던 그림”이라고 했다.
대선을 불과 6개월여 앞둔 제1 야당이 집안싸움으로 날을 새는 상황이 발생한 데는 이 대표 책임이 가장 크다. 이 대표는 지지율 1위인 윤 후보 측과 사사건건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다. 야당 대표의 가장 중요한 책무인 대여(對與) 투쟁에는 소극적이면서, 본인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는 정치 일정이나 언론 접촉에 치중해 왔다. 중도층 확보를 위해 절실한 국민의당과의 합당마저 무산됐다. 정권 교체 지지율은 높지만, 당과 후보들 지지율이 모두 하락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당 안팎에선 이 대표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의힘이 정권 교체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면 하루빨리 내홍을 정리해야 한다. 먼저 이 대표가 불공정 논란, 대여 투쟁 미흡 등을 국민 앞에 사과하고 필요한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 선거관리위원장에 가장 중립적인 인사를 앉히고, 이 대표는 거리를 두면서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경선을 유도한다는 의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의당이 합당 무산을 선언했지만, 안철수 대표와 대화가 통하는 인물이 계속 두 당의 협력을 논의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 대표는 정부·여당의 실정을 공격하는 데 당력을 집중해야 한다. 야당이 자중지란에 빠지자 여당은 국내외에서 악법(惡法)으로 지탄받는 ‘언론봉쇄법’을 국회에서 밀어붙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언론봉쇄법 철회 또는 거부권을 요구하고, 드루킹·김경수 여론조작, 청주 간첩 사건, 백신 부족, 부동산 급등에 대한 사과와 ‘선거 중립 내각’ 구성도 촉구해야 한다. 이것도 못하면 유권자는 언제든 지지를 철회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8월 19일 이준석 대표, 관리자 역할 제대로 하라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국민의힘 원희룡 후보가 이준석 대표의 불공정한 태도를 문제 삼고 나섰다. 자신과 전화 통화에서 윤석열 후보가 곧 정리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급기야 이 대표가 통화 내용 일부의 녹취 부분을 공개했고, 다시 원 후보는 전체 대화 내용을 공개하라고 주장했다. 18일 국민의힘 의총에서 서병수 경선준비위원장이 이 대표를 흔들지 말라고 발언하자 의원들의 반발이 상당했다. 원 후보의 문제 제기가 이 대표의 정당 운영이 공정하지 않다는 국민의힘 내부의 정서가 상당함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 대표의 리더십에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
국회의원 경험이 전혀 없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가 당선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공정의 가치를 중시하는 이미지가 뚜렷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가 제시한 공정한 경쟁은 대변인 선발 과정에서 토론배틀로 실천됐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당내 경선의 목전에서 공정한 경선 환경을 조성하지 못하고 윤 후보와의 갈등 소식이 연일 나온다. 윤 후보가 당이 공정과 상식에 맞게 운영돼야 한다고 언급했다는 것은 현재 이 대표의 당 운영이 공정하거나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리더십은 크게 ‘현실인식, 개선책 제시, 설득’ 3가지 지표로 나눠 평가할 수 있다. 이 대표가 당대표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위 지표들을 만족시켰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의 불공정에 대한 현실 인식이 정확하고, 공정 경쟁을 개선책으로 제시했으며, 향후 국민의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문제를 정면으로 맞서 지지자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당대표가 된 이후 대선 흥행에 필요한 윤 후보를 조기에 입당시킨 것은 리더십의 발휘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윤 갈등과 국민의당과 합당 실패는 설득의 평가 관점에서 볼 때 성공적이지 못하다. 윤 후보의 영입과 국민의당과 합당 논의 과정에서 윤 후보와 안철수 대표에게 일방적인 통고 식 압박이 야기한 부작용인 셈이다. 뚜렷한 자기 주장과 추진력이 리더의 덕목이기는 하지만, 상대를 배려하는 설득 또한 성공적 리더십에 꼭 필요한 자세가 된다.
5년 전 ‘아루다(Arruda)’라는 칼럼니스트는 리더와 관리자의 차이를 예시했다. 리더는 운동팀의 코치처럼 참여자들을 고무시켜 원 팀으로서 역량을 향상시킨다. 이 과정에서 리더는 자발적인 지지자들을 확대하게 된다. 그 반면 매니저는 지시자에 비유된다. 자신이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 달성을 보장할 수 있는 확실한 시스템과 구성원들에 대한 상황 통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리더는 예견할 수 없는 상황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지만, 관리자는 이미 설정된 프로세스에 집착한다.
이준석 대표의 등장으로 기존의 정치문법을 파괴하는 신선함과 공정성 회복을 기대한 국민은 국민의힘의 내분에 실망하고 있다. 정권 교체를 위해 당 내부의 단합을 강화하긴커녕 대선 후보 캠프와 당대표 간의 수준 낮은 공방은 공정성이 담보되지 못했기 때문이거나 고질적인 파벌적 속성이 재현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 과반이 넘는 국민이 정권 교체를 원하는 것은 국민의힘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여당을 처벌하기 위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문화일보
08.20 딱한 야당
코로나발 가택 연금’을 에어컨 없이 버텨보려 했지만 어림도 없는 여름이었다. 매시간 찬물 샤워를 하고도 밀려드는 열기에 집중이 어려웠다. ‘에어컨 없던 옛날엔 어떻게 살았지?’를 달고 살다 바로 항복했다. 참 고마운 물건이다. 물론 걱정은 남았다. 곧 청구서가 닥칠 테고 요란한 숫자일 게 뻔하다. 게다가 한전은 조만간 전기요금 인상 여부를 결정해야만 한다. 올해부터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고 기름값이 올랐다.
뭐 선거도 있고 하니 당장은 빚을 확 키우는 쪽으로 갈 텐데 그래서 더 문제가 된다. 적자 눈덩이가 매달 수천억원씩 차곡차곡 쌓이는 판이다. 눈사람 정도가 아닌 눈사태를 걱정하는 전문가가 많다. 그렇다고 이 정부가 ‘탈원전 스톱’으로 방향을 틀 가능성은 전혀 없다.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는 얼마 전 원전 비중을 더 낮추고 태양광·풍력으로 대체한다고 발표했다. 전기요금이 대략 3배쯤 올라야 할 거라고 한다. 부채질하며 산다고 치자. 서울시 면적의 10배 이상을 태양광 패널로 덮어야 한다던데 현실성은 따져봤는지 모르겠다.
'정치 교체' 약속한 30대 당 대표
두 달 만에 구태 정쟁 허우적대면
세대교체, 정권교체 어떻게 하나
폭주 기관차에 브레이크가 없기론 시민의 발도 있다. 달릴수록 적자가 불어나는 빚더미 서울 지하철은 매달 부족한 운영 자금만 1000억원을 훨씬 넘는다. 구조조정은 노조 반발로 엄두를 못 낸다. 건강보험은 3년 연속 적자 수렁이다. ‘대통령이 보살펴준다’고 자랑하는 ‘문재인 케어’ 탓이다. 골병 든 4대 연금의 신음도 깊다. 민간 기업이면 모두 부도가 났을 텐데 짐을 차곡차곡 청년들 어깨로 떠넘기는 중이다. 일자리 참사에 부동산 대란, 백신 불안으로 허둥대는 정부까지 떠올릴 필요가 없다. 일상 어디를 둘러봐도 성한 숫자가 드물다.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시절 ‘수퍼 전파자는 정부’라고 두들겨 팰 때 메르스 확진자는 두 자릿수였다. 그래도 특별 성명과 대국민 호소문으로 ‘뒷북 대응에 컨트롤타워는 작동되지 않았다’고 대통령 사과를 요구했고, 수사한다면 대상이 바로 정부라고 압박했다. 지금은 뭐가 다를까. 굵고 긴 데다 주먹구구인 K방역엔 고통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건 말건, ‘우리가 세계 제일’이란 정부다. 들이대는 통계엔 엉터리 분식이 많다. 당장 원전을 억지 폐쇄한 경제성 평가 수치가 그랬다.
딱한 건 이렇게 죽을 쑤는 정권을 상대로 야당은 더 죽을 쑤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기들끼리 싸운다. 그것도 싸우면 말려야 하는 당 대표가 올려세워야 할 주자들과 낯 뜨거운 진실 공방이다. 평론가 시절의 이준석 대표는 상대방을 조롱하며 제압하는 뛰어난 화술로 평가받았다. 사사건건 말싸움을 벌여 이겼다. 하지만 이젠 당 대표다. 얼마 남지 않은 대선에서 정권을 바꿔야 하는 큰 숙제가 주어져 있다. ‘흔들리지 않겠다’는 공격수 본능은 길을 잘못 들었다.
‘지금 대선 하면 5%포인트 차이로 진다’는 게 이 대표의 선거 방정식이다. 영남 몰표에 의존한 과거식 지역 대결론 어렵고 2030세대 지지를 끌어내야 한다는 뜻이다. 일리가 있다. 문제는 어떻게 2030의 갈채를 모을 수 있느냐다. 청년 세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바르게 리드하도록 정치권 분위기를 바꿔 달라는 게 ‘이준석 돌풍’이었다. 그들의 꿈과 미래가 무엇인지, 왜 좌절했고 어떻게 분노했는지를 조목조목 따져 바로 세워 달라는 요구다. 그렇게 했나.
반세기 전 파격의 40대 기수론이 먹혀든 건 국민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청년재난시대'를 연 정권의 무능ㆍ폭주와 싸워야 하고 잘 싸우려면 야권 전체 전열을 정비해야 한다. 적당히 투쟁하고 안락함만 찾는 당의 웰빙 체질과도 싸워야 한다. 그걸 약속했다. 그래 놓곤 ‘그냥 딱합니다’란다. 참으로 딱한 일이다. 30대가 대표인 당에서 이 모양이면 엄청난 빚잔치의 설거지를 도맡아야 할 젊은 유권자의 질식은 도대체 누가 대변할 건가.
중앙일보 최상연 논설위원
08월 20일 뜬구름 잡는 與 대선 주자 부동산 공약
문희수 논설위원
文정부 못한 공급 늘린다면서
임대주택 수치 잔뜩 키워 유혹
실현성없는 無재원 공약 공허
與 부동산 땜질도 헛발질 연속
편향 세력 좇는 후보 민심 외면
‘文정부 시즌2’론 대란 키울 뿐
여당 대선 주자들의 부동산 공약은 묘한 측면이 있다. 후보마다 서로 날 선 비판을 주고받지만 이들의 공약엔 공통점도 있다. 우선 다들 주택 공급 확대에 초점을 둔다. 후보들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패 원인을 대놓고 거론하지 않을 뿐, 공급 부족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인식은 같이하는 모양새다. 그런데도 각 후보의 공약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문 정부 정책과 닮은꼴이라는 게 특이하다. 하나같이 공공 주도 개발·임대주택 중심인 주택 공급이다. 문 정부의 틀에 갇혀 있는 것이다. 이른바 친문 세력의 지지표를 겨냥한 포석임이 분명하다.
물론 공허한 것도 공통적이다. 비현실적이고 재원 계획도 없다. 이는 후보자들의 비판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유력 후보 중 한 명인 이재명 경기지사부터 그렇다. 기본주택 100만 가구 공약은 수도권 도심역세권에 30평형대 임대주택을 지어 월 60만 원 수준의 임대료로 30년 이상 살 게 해준다는 것이다. 실패로 판명되고 있는 문 정부의 ‘변창흠표 정책’을 상기시킨다. 이 정책의 대표 격인 올해 2·4대책은 2025년까지 83만 가구를 공급한다는 것이지만, 실은 택지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어떻게 땅을 마련한다고 해도 주택 공급은 빨라야 2028년쯤에나 가능하다. 이 지사는 이렇게 어려운 역세권 임대주택을 차기 대통령 임기(2022∼2027년)에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100만 가구 공급에 들어갈 300조 원 조달은 금융권 대출이다. 더구나 그가 제시한 주택공급은 총 250만 가구로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 전체보다도 많다. 다른 후보들조차 ‘꿈같은 얘기’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그나마 주택관리매입공사 신설은 ‘집이 정부미냐’는 비판 뒤엔 별 언급이 없다.
이낙연 전 대표도 예외가 아니다. 성남 서울공항을 김포공항으로 이전하고 그 부지에 3만 가구를 지어 제2 판교를 만들겠다고 한다. 그러나 전제인 공항 이전부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지사의 지적대로 대통령 출입국 등 국가 안보와 관련된 데다 미군과도 협의해야 해 정부가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다. 과거 김대중 정부 때도 거론됐지만 국방부 반대 등으로 무산됐었다. 얼마 전 TV 토론에서 후보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던 배경이다. 이 전 대표가 해묵은 서울공항 이전까지 꺼낸 것은 앞서 제시했던 토지공개념에 비판이 거세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정세균 전 총리는 토지공개념을 도입하면 주택 공급이 준다고 꼬집었다. 그렇지만 정 전 총리 역시 마찬가지다. 280만 가구 공급 공약의 핵심인 소위 ‘주학복합’ 임대주택 건설은 허망하기만 하다. 40년 이상 된 국공립학교 위에 집을 지으면 그동안 학교는 어떻게 다니며, 설사 집을 지어 공급해도 학생·입주민 모두 온종일 소음과 번잡한 차량·상가 이용객 출입 등에 시달릴 것이다. 인터넷 카페엔 이런 집에 누가 사느냐, 학교 운동회라도 열리면 볼만하겠다는 등의 비아냥이 쌓여 간다.
국민의 눈높이와 너무 거리가 먼 공약들이다. 아파트를 원하는데 임대주택을 지어 주겠다니 말이 안 통하는 셈이다. 여당은 부동산 대책 땜질조차 헛발질하며 갈팡질팡한다. 재건축 실거주 2년 의무화·주택 임대사업 금지를 백지화한 게 단적인 사례다.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망칠지 모른다는 걱정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여당 주자들은 편향된 내부 지지세력을 품으려고 황당한 공약으로 애타는 민심을 외면하고 있다.
공약마다 문 정권 특유의 국민 분열 본능이 꿈틀댄다. 그러나 문 정부 시즌2나 실패한 정책의 짝퉁 같은 방안으로는 어림없다. 주택 공급은 대체로 공공 임대가 10%, 민간주택이 90%를 맡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공공 임대주택만 늘려선 주택난·전세대란을 해결하지 못한다. 부동산 대란을 연장해 국민 고통을 더 키울 뿐이다. 집값·전셋값 급등을 극소수인 투기세력 탓으로 몰고, 투기를 막는다며 세금 폭탄도 모자라 위헌적인 토지공개념 징벌세까지 동원하는 DNA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소용없다. 당심을 좇으면 당 후보는 될지 몰라도 정작 국민과는 멀어진다. 당 후보가 결정된 후엔 다시 대선용 공약으로 말을 바꿔 유혹할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이 한 번 속았으니, 두 번도 속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만이다. 국민을 우롱하면 혹독한 대가가 따른다.
문화일보
08.21 그래, 떡볶이가 잘못했다
자진사퇴로 끝난 ‘황교익 논란’
“도쿄공사” vs “정치목숨 끊겠다”
황씨 “극우가 친일프레임 씌웠다”
음식업계 “시장과 싸우다 패한것”
주먹다짐에 화염방사기, 급기야 방사포까지 동원됐다. 음식평론가 황교익씨 이야기다. 경기관광공사 사장에 내정됐다는 소식이 나오자 이재명 경기지사의 ‘형수 쌍욕’을 옹호한 대가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낙연 캠프 인사가 “(황교익은) 일본 도쿄나 오사카 관광공사에 맞을 분”이라고 거들었다. ‘불고기, 야키니쿠 유래설’을 논했던 황교익씨가 ‘교이쿠 센세’라 모함 당하는 걸 알았던 모양이다. 황씨가 폭발했다. “이낙연 측 사람들은 인간이 아닌 짐승.” “이낙연의 정치 생명을 끊어놓겠다.” 사태를 보다 못한 ‘민주당 교주’ 김어준씨가 한 말씀 하시었다. 낙연이 사과하고, 싸움을 멈추거라. 사과와 자진 사퇴가 이틀 만에 이뤄졌다.
지난 17일 jtbc 뉴스에 출연한 황씨가 친일 논란을 두고 말했다. “문재인을 지지한 후부터 일베 등 극우 세력이 내게 친일 프레임을 씌웠다.” 그는 경기도 산하 ‘경기농식품유통진흥원’이 만든 ‘입맛통일학교’ 교장이라는 직함으로 ‘김구=평양냉면=통일음식’ 같은 강연을 해왔다. 그런데도 최근 방영된 다큐 ‘냉면 랩소디’에 황교익은 없었다. ‘과거 일본이 우리 돼지를 수입해 갔는데, 거기서 빠진 부위가 삼겹살과 내장이다.’ 삼겹살에 ‘일본이 버린 고기’라는 개념을 입힌 ‘슬픈 삼겹살론’도 그의 주장이다. 삼겹살 다큐멘터리에도 그는 인용되지 않았다. 최근 몇 년 새 ‘음식평론가 황교익’은 방송에서 사실상 사라졌다.
알 만한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었다. “편향성 때문이 아니다. ‘박근혜 나와’ 소리친 정우성이 영화와 광고를 얼마나 많이 찍나” “황씨가 백종원씨를 정말 집요하게 공격했다. 백씨가 메인인 방송에 쓰긴 어렵지 않겠나. 백종원 팬도 화낼 거고.” “황 선생은 자기에게 반대하는 사람은 다 저격한다. 그런 평론가가 어딨나. 그런데 내 이름은 절대 쓰지 말라. 무섭다.”
십수 년 전, 외부 필자인 황교익씨가 쓴 글을 보고 식당을 찾았다가 화가 났다는 독자가 있었다. 하소연이 일리 있어 식사비를 내드리고 황씨에게 전화로 사정을 설명했다. 인사치레로라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그래도 현장 자주 가고, 식당에서 갑질 안 하고, ‘소수 의견’을 용기 내어 말하는 태도가 좋았다.
더 유명해진 그는 더 맹렬하고, 더 옹졸해져 버렸다. ‘떡볶이는 사회적으로 맛있다고 세뇌된 음식.’ ‘백종원은 분유 먹고 자란 80, 90년생들에게 단맛을 무비판적으로 허용해 인기를 얻었다’ 일리 있지만, 진리도 아니다. 떡볶이를 파는 주점 광고를 찍고 논란이 일자 “먹지 말란 얘기를 했던 것도 아닌데 왜 문제가 되냐”라더니, 학교 앞 떡볶이 금지까지 주장했다. 이재명 지사와는 떡볶이를 두고 먹방을 찍었다. 지난 6월 이천 화재 참사날이었다. 2015년부터 시작된 백종원 저격은 급기야 “맞벌이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그 결핍을 백종원의 인스턴트 요리법으로 메운다” “설탕 처발라서 팔든 먹든, 그건 자유다. 문제는 방송이다”까지 갔다. 페이스북에는 ‘황차클럽(황교익에게 차단당한 사람들 모임)’도 생겼다. 황씨 주장을 반박하는 자, 반박 글에 ‘좋아요’를 누른 자 모두 페친에서 삭제됐다는 것이다. 후배 기자도 황씨가 디자인해 남북 만찬에 올린 ‘한반도 케이크’를 촌스럽다고 썼다가 같은 조치를 당했다.
그는 대중과 맞짱 떴고, 졌을 뿐이다. 자신을 ‘극우쪽 친일 프레임의 희생자’로 포장하는 건, 황교익다운 건가, 아닌가. ‘시민의 권리’ 혹은 일자리 앞에서 야수로 변하는 그를 보면서 이재명 지사가 앞으로 어떻게 빚을 갚을지 궁금해졌다. 더불어 떡볶이와 백종원의 운명도.
조선일보 박은주 에디터
08월 23일 언론惡法 저지 위해 野 대표·대선주자 총력 투쟁 나설 때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 폭주가 24일 국회 법사위, 25일 본회의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세계 언론계는 물론 친여 성향의 단체들까지 포함해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에 족쇄를 채울 악법(惡法)이라는 데 압도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정정보도·반론 청구, 손해배상·명예훼손 고발 등 다른 구제가 가능한데도 손해액 5배까지 징벌적 배상을 요구하게 하고, 허위·조작 입증 책임을 모호하게 만드는 등 법률적 결함은 물론 절차상 하자도 심각하다.
고의적 악의적 가짜뉴스 처벌을 내세워 정통 언론을 위협하는 이런 법안은 그 자체로 독재의 신호탄이다. 언론 본연의 책무인 권력 비판과 감시를 크게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언론계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모두 저지에 나서야 하는 중대한 일이다. 이런 점에서 국민의힘 지도부와 대선 주자들이 “국민과 함께 저지하겠다”고 나선 것은,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22일 기자회견에서 “대선 주요 이슈로 삼아 국민 심판을 받게 하겠다”고 밝혔고, 홍준표·유승민·원희룡 등 다른 주자들도 폐지 투쟁을 약속했다.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국민의당, 정의당도 언론중재법 중단·폐기에 뜻을 같이하고 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25일 열릴 예정인 국민의힘 정책비전발표회를 연기하고 국회에서 함께 투쟁하자고 제안했다. 이런 방안을 포함해 대표·최고위원 및 대선 주자들은 물론 당 전체가 똘똘 뭉쳐 악법 저지에 나서야 한다. 이준석 대표 역할이 중요하다. 당내 주자들과 티격태격하지 말고 문재인 대통령을 상대로 반민주 행태를 비판해야 한다. 청와대 담판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도 요구해야 한다. 언론자유 수호를 내건 반민주 투쟁은 명분이 선명하고, 우군도 많다. 의석 수가 부족하다고 패배주의에 빠질 필요가 없다. 문 정권의 반민주성을 국민에게 각인시키고, 다음 대선·총선에서 이겨 전면 시정에 나서면 되기 때문이다.
문화일보 사설
08월 23일 “文이 나라 망쳤고 이재명 더 망칠텐데…윤석열론 정권교체 어려워”
▲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대선캠프 사무실에서 이뤄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를 이길 수 없다”며 자신이 출마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 대선주자 인터뷰 - 최재형 前감사원장
“尹, 입당했으면 黨방침 따라야… 이준석은 경선 공정 관리를
나라 이끌 결단력 보여줄 것… 당선되면 靑인사수석실 폐지
언론중재법, 권력비리보도 위축시켜… 어떻게든 바로잡아야”
유병권 정치부장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나라를 망쳤고 이재명 경기지사가 차기 대통령이 된다면 더욱 망칠 것”이라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이 지사를 이기기 어려운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는 정계 진출과 대선 출마 이유를 이같이 밝히며 대선 완주 의지와 자신감을 피력했다. 최 전 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과도한 청와대 권력 집중을 비판하고 “장관 위에 군림해 왔던 청와대 인사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했다. 최 전 원장은 대선 주도권을 둘러싼 당 내홍과 관련, 윤 전 총장을 향해 “일단 입당했다면 당 방침을 따라야 한다”고 했고 이준석 대표에 대해선 “공정한 경선 관리로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인터뷰는 22일 여의도 최 전 원장 대선 캠프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법조인과 감사원장의 모범으로 남을 수 있었을 텐데 대선에 나선 이유가 있나.
“현재 야권 후보자들로 정권 교체가 가능한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야권을 결집하는 데 부족한 면이 있어 보였다. 더불어민주당 정권이 5년 연장된다면 나라에 미래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고, 스스로가 역사 앞에 부끄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를 위해 몸을 던지는 것이 맞는다고 판단했다.”
―지지율에서 앞서 있는 윤 전 총장을 대체할 수 있다고 보나.
“다른 사람이 (정권 교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대선 후보자로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권에 굳이 남아서 자산을 쌓아야 한다거나 그럴 만한 정파적 배경이 있지도 않다. 야권 후보자로 본선에 나가 민주당 후보자를 꺾을 수 있겠다고 스스로 결심했을 뿐이다. 지지율 부분은 나라를 이끌어 갈 만한 결단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국민이 인정하고 지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감사원장 재직 중 대선 출마를 고민했었다는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아니다.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에 대한 감사원 감사 당시 민주당이 얼마큼 거칠게 압박했는지 봤지 않느냐. 감사원장직 수행이 어렵겠다고 판단했고, 그 후 고민을 거듭하다 나라가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안 될 것 같아 정치를 하기로 결심했다.”
―문 대통령 관련 내용이 월성 원전 1호기 의혹 감사 보고서에 포함됐나. 문 대통령도 사법적 판단이나 재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나.
“감사보고서에도 문 대통령 관련 내용이 포함됐다. 대통령이 감사 대상은 아니었지만, 문 대통령이 청와대 내부통신망에서 ‘월성 원전 가동 중단’ 시점을 문의하는 댓글을 달았다는 등의 내용은 관계 공무원 진술에 의해 보고서에 담겨 있다. 감사원 조사에 사실관계를 누락한다면 사건을 은폐했다는 책임에서 감사원이 벗어날 수 없다. 경제성 있는 원전을 닫으려고 하다가 경제성 평가를 조작하는 방법으로 일을 진행하게 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어느 정도 관여를 했는지가 문제다. 그 부분을 조사한 바가 없어 지금 판단하긴 어렵다. 다만 구체적인 지시가 있었고 그 지시대로 이뤄진 일이 있었다면 그 부분에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본다.”
―지난 4년간 정부를 평가한다면.
“국익보다 이념을 따랐다. 정파 유불리에 따라 국정을 운영해 국민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부동산·일자리 등 규제 실패가 시장에서 드러났는데도 고치지 않았다. 그 잘못에 대해 사과하거나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무능하고 무책임하다. 인치(人治)의 시대였다. 국가 권력은 법률에 근거하고 그 행사 절차가 적법하고 투명해야 하는데, 법치가 무너져 자의적 통치가 됐다.”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이라고 보나. 앞서 헌법과 법률 내에서 대통령직을 수행할 것이라고 했는데 어떤 뜻인가.
“책임감과 균형 감각이 중요하다. 각종 위기 상황에서 최종 결심을 하기 위해서는 용기와 결단력도 있어야 한다. 대통령은 국정의 최종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또 정치는 결국 인사(人事)인데 법 규정을 넘나들고 있는 청와대의 개입을 바로잡겠다. 장관 위에 군림해 왔던 청와대 비서실 기능도 인사수석실 폐지 등으로 정상화한다면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말은 안 들을 것이다. 선거를 도왔다고 낙하산으로 내리꽂는 일도 없을 것이다. 오직 경영 능력과 전문성을 기준으로 인사를 할 것이고, 국무총리와 장관 등에게 과감히 권한도 위임하겠다.”
―민주당은 ‘탕평 인사’의 부작용 사례로 최재형·윤석열 등을 꼽는다.
“자신들의 코드가 아니라 헌법과 국민에게 코드를 맞추니 벌어진 일 아닌가. 여권이 ‘배신’ 운운하고 있는 것이 그 방증(傍證) 아니냐.”
―역선택 방지 요구로 당 지도부와 마찰을 빚기도 했는데 윤 전 총장과 지도부 간 갈등은 어떻게 보나.
“일단 입당을 했다면 당의 방침을 따르는 것이 원칙이다. 분열을 계속한다면 정권 교체할 만한 당이 맞는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 야권 지지를 받는 사람을 후보자로 선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으로 역선택 방지를 요구한 것이지만 당이 결정하면 따라야 한다. 당도 경선 과정이 공정하게 이뤄진다는 신뢰를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윤 전 총장 캠프가 연일 인사 영입으로 세를 불리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캠프 규모가 선거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세력 과시보다는 미래에 대한 비전과 그것을 실행에 옮길 계획 등을 보여줘야 한다. 국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언론중재법은 어떻게 보고 있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가장 큰 문제다. 허위조작 보도 요건을 규정하는 데 불명확한 표현이 많다. 자의적 해석을 가능하게 했고, 또 입증 책임을 사실상 언론사에 지웠다. 특히 비리를 파헤치는 언론 보도가 위축될 수 있다. 비리 보도 특성상 그 내용 중 일부는 추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지만, 고의 혹은 중과실이 아니면 언론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 여당이 무리하게 법을 밀어붙이는 것은 결국 이를 틀어막겠다는 의도다. 정권 교체를 한다면 어떻게든 바로잡아야 한다.”
―당선된다고 해도 민주당 과반의 국회 지형에서 국정 운영은 어려울 텐데, 극복 방안이 있나.
“설득이 필요하다. 현 정권처럼 막무가내 정치는 하지 않을 것이다. 설득당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 협치 노력을 하다 보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국민적 공감대가 있는 국정을 야당이라고 해서 반대만 할 수 있겠나.”
―여의도 정치를 경험해 보니 어떠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정답이 없는 곳이라고 할까. 시비를 가리기도 전에 무조건 상대방을 공격하고 보는 진영 논리가 심한 면도 있다. 내 편이면 방어부터 하고 보는 패거리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정치 역할을 위해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다.”
―사형제·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사형제는 그 예방 효과 논란을 떠나 폐지보다는 신중한 적용으로 균형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 의무 이행과 균형을 맞춘 대체복무로 길을 열어줘야 한다.”
―동성혼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동성혼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돼야 한다’는 헌법 규정에 비춰볼 때 헌법이 예상한 가정 형태는 아닌 것 같다.”
―국가의 역할론 논쟁을 촉발하기도 했는데.
“국가의 역할은 간섭이 아니라 개인과 기업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판을 까는 것이다. 일자리 문제에 있어서 규제 철폐가 가장 효율적으로 기업의 일자리 창출을 돕는 방법이다. 스스로 활성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하면 국민이 아니라 국가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 규정된다. 다만 삶을 유지하기 어려운 이들이 단 한 사람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데서 국가의 책임은 분명하다.”
―대선에서 실패한다고 해도 정치를 계속할 건가.
“그때 봐서 당에서나 정치적으로 할 역할이 있다고 판단하면 계속해야 한다고 본다.”
문화일보 정리=서종민·손고운 기자
08.23 문 정권 사람들 끝없는 ‘세월호 내로남불’
▲20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쿠팡풀밀트서비스 덕평물류센터가 전소된 모습. 지난 17일 새벽 5시 시작된 이번 화재 사고에서 쿠팡 직원들은 모두 대피했지만 진압 과정에서 소방대원 김동식 구조대장이 1명이 목숨을 잃었다. 2021. 6. 20 / 장련성 기자
경기도 쿠팡 물류센터 화재 당시 경남 창원에서 유튜브TV 음식 방송을 찍어 논란을 일으킨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결국 사과했다. 이 지사는 “모든 일정을 즉시 취소하고 더 빨리 현장에 갔어야 마땅했다는 지적이 옳다”며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음을 인정한다”고 했다. 당초 이 지사 측은 “화재 현장에 반드시 도지사가 있어야 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과도한 주장이고 억측”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과 역시 본질을 비켜간 것이다. 국민이 분노한 것은 “모든 일정을 즉시 취소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의 당초 주장대로 모든 사고 현장에 행정 총책임자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은 화재가 이어지고 소방구조대장이 실종된 와중에도 음식평론가와 시장을 돌아다니며 소위 ‘떡볶이 먹방(먹는 방송)’을 찍은 행위를 비판한 것이다. 이 지사는 그때 함께 방송한 사람을 경기관광공사 사장까지 시키려고 했다. 이 지사는 사과에서조차 물타기로 공사(公私)를 뒤섞어 본질을 흐리려 한다.
더 문제가 된 것은 그의 내로남불이었다. 세월호 침몰 사건 직후 그는 박근혜 대통령을 직무유기와 과실치사상 혐의로 고발했다. 그는 고발장에서 “박 대통령이 보고만 받고 있었다는 것으로도 직무유기죄가 해당될 수 있는데, 만약 당시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면 업무상 과실치사죄의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고발 당일 페이스북에도 ‘전 국민이 그 아수라장 참혹한 장면을 지켜보며 애태우고 있을 때 구조책임자 대통령은 대체 어디서 무엇을 했습니까’라는 글을 올렸다. 이런 그가 몇 년 후 관내 주민이 긴급재난문자를 받는 긴급 상황에서 유튜브 먹방을 찍었다. 세월호 사고 때 교육부 장관은 현장 방문을 마치고 컵라면을 먹은 사실 때문에 국회에서 지금 여당 사람들에게 호된 질타를 받았었다. 이에 대해 이 지사는 일언반구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박 대통령 탄핵 직후 세월호 팽목항 방명록에 ‘미안하고 고맙다’고 썼다. 그러곤 세월호 참사 당일 노래방에 가 법인카드를 쓴 사람을 KBS 사장에 앉혔다. 낚싯배 전복 사고가 일어나자 청와대가 단체 묵념을 올리는 쇼를 벌였지만 물류센터 화재로 38명이 숨지고 건물이 무너져 9명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져도 책임도 지지 않고 사과도 없이 넘어간다. 이 정권 사람들의 세월호 내로남불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08.23 ‘떡볶이 먹방’ 사과했지만… 이재명, 직무유기로 고발당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 22일 서울 용산 전자랜드에 위치한 숙명여자대학교 캠퍼스타운사업단을 방문해 숙명여대 캠퍼스타운 여성청년 스타트업 간담회에 앞서 사업단 설명을 듣고 있다. /뉴시스
경기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 사고 당시 ‘먹방’ 유튜브를 촬영한 사실이 드러나 사과했던 이재명 경기지사가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당했다.
23일 시민단체 ‘정의로운 사람들’은 대검찰청에 이 지사에 대한 직무유기 혐의 고발장을 접수했다고 밝혔다. 단체는 “이 지사는 재해가 발생하면 현장 지휘 등 신속히 업무를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경기도 관내를 벗어나 경남 창원에서 유튜브 ‘황교익 TV’에 출연해 떡볶이 먹방을 촬영해 현장에 지연 도착하는 등 직무를 유기했다”며 “그 결과 소방대원 사망이라는 참사가 발생했다”고 고발 이유를 설명했다.
▲시민단체 '정의로운 사람들'이 23일 이재명 경기지사를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했다. /정의로운 사람들 제공
단체는 이 지사가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하더라도 화재 발생 소식을 접한 즉시 현장에 가지 않고 유튜브를 촬영하다 다음 날 새벽에야 현장에 도착한 건 경기 지사로서의 직무를 유기한 것이라는 내용을 고발장에 담은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이 지사가 지난 6월 17일 오전 5시 36분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가 발생한 후 김동식 소방구조대장이 실종된 상황에서 황교익씨와 ‘먹방’ 촬영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었다. 5년 전 이 지사가 “6번의 세월호 구조 관련 지시가 모두 전화 지시였고, 7번이 서면 보고로 의식적 직무 포기에 해당할 수 있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한 것과 비교해 ‘세월호 7시간’과 뭐가 다르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 지사는 지난 21일 “경남 일정 중 실시간 상황보고를 받고 대응조치 중 밤늦게 현장 지휘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다음날 일정을 취소하고 사고현장을 찾았다”며 “나름대로 온 힘을 다했다고 생각했었지만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더 빨리 현장에 갔어야 마땅했다는 지적이 옳다”고 사과했다. 그는 “저의 판단과 행동이 주권자인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사과 말씀을 드린다”며 “앞으로 권한과 책임을 맡긴 경기도민을 더 존중하며 더 낮은 자세로 성실하게 섬기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조선일보 이가영 기자
08.24 박용진 “이재명 공약 1000조 이상 들어… 표 얻으려 감언이설 나라 망친다”
모닝라이브 출연 “대통령 되면 국회 와서 야당과 일문일답 맞짱 토론하겠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24일 “이재명 경기지사의 기본 시리즈 공약의 비용을 다 합치면 임기 내에 1000조원은 넘게 써야 할 것”이라며 “표를 위해서 현실성 없는 이야기를 감언이설로 하는 것은 나라를 망치는 길”이라고 했다. 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한 박 의원은 이날 조선일보 데일리 팟캐스트와 유튜브에 출연해 “세금 많이 걷어서 많이 나눠주는 정책을 진보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낡은 진보”라며 “정치를 하다 보면 상황에 따라 말이 달라질 수 있지만, 그럼에도 국가적 사안을 바라볼 때는 솔직하고 정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지사의 기본소득은 진보·보수 학자들이 이미 여러 번 제안한 것으로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저도 점진적으로 실험하고 적용시킬 생각은 있다”면서도 “하지만 임기 중에 120조원을 동원하겠다는 것은 동의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그 점을 묻는데 이 지사는 대답을 안 하고 자꾸 화를 낸다”며 “기본주택 관련해서도 질문하면 화를 내고 저더러 (입지를) 찾아보라고 한다”고 했다.
박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규제 아니면 세금 폭탄 식의 부동산 정책과 여당 대선 주자들의 반(反)시장적 부동산 공약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부동산 정책이 시장과 대결주의로 가서는 안 된다”며 “내 집, 좋은 집을 갖고 싶어하는 국민의 욕망을 죄악시해선 안 된다”고 했다. 박 의원은 “국민들은 내 집과 내 차 마련, 자녀 교육, 가족 건강, 노후자산 마련 이 다섯 가지를 바란다”면서 “그 소박한 소망을 이루어주지 못하는 건 진보가 아니다”고 했다. 또 “그 꿈을 제도적, 정책적으로 이뤄주지 못하면 정부가 무슨 소용이냐. ‘먹고사니즘’을 보장해주는 게 유능한 진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대선 예비후보가 지난달 29일 이재명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과 이낙연 후보의 신복지 정책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박 의원은 자신의 부동산 정책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첫 번째는 ‘좋은 집 충분 공급 전략’이다. 시장에서 좋은 집을 충분히 많이 공급할 것이니 돈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사라는 것이다. 그는 “좋은 집, 좋은 아파트, 새 아파트 사겠다는 것을 죄악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두 번째는 ‘같이(가치)성장 주택 모델’로 전세입자들이 정부 지원으로 새 집을 싸게 살 수 있게 하겠다는 정책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주변 시세의 70% 수준으로 싼값에 새 집을 공급을 하면서 매입자에게 자금 대출도 해준다. 다만 토지와 건물 지분은 개인과 정부가 반반씩 나눠갖는다. 언제든지 팔아도 되지만 정부와 공공기관에 넘겨야 한다. 10억원에 샀는데 15억원에 팔리면 그 매매차익을 2억 5000만원씩 개인과 정부가 나눠 갖는다. 가치를 나눠서 같이 성장하는 모델이다. 또 내 집 마련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거나 능력이 안 되는 사람, 1인 가구 등에겐 공공임대 주택을 공급하고 임대료도 정부가 지원하겠다고 했다. 박 의원은 “우리 국민들의 삶은 울퉁불퉁하고 똑같지가 않다. 좋은 내 집도 충분히 공급하고 주거 상승의 사다리도 주면서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 안정 정책도 따로 따로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박 의원은 만일 대통령이 되면 야당과 소통을 위해 ‘한국식 PMQ’(Prime Minister Question Time)를 하겠다고 했다. 영국 총리가 매주 수요일 오후 의회에 나와 야당 대표와 일문일답을 하는 관행을 우리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영국 총리는 PMQ 동안 각종 현안에 대해 종이 한 장 보지 않고 토론을 벌인다. 박 의원은 “제가 대통령이 되면 국회에 수시로 나와서 외교·안보·국방 사안에 대해선 야당 대표나 중진 의원들과 종이 한장 안보면서 일문일답식 맞짱 토론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또 청와대 출입 기자들과도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팔 걷어 부치고 두 시간 정도 소통하는 자리를 갖겠다고 했다. 그는 “야당 대표들을 밤에 청와대에 오시라고 해서 터놓고 대화도 하고 소주도 한잔 하겠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처음에 보여줬던 권위 없고 소탈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저도 보여드리려고 한다”고 했다.
그는 열린 정책 노선도 펼쳐 보이겠다고 했다. 박 의원은 “감세 정책은 보수 전유물 아니냐고 하는데 그러면 어떤가. 손흥민처럼 왼발로 차든 오른발로 차든 골만 들어가면 된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가릴 것 없이 쥐를 잘 잡으면 된다”고 했다. 좌우 진영과 이념에 구애받지 않는 실용적 정책 노선을 걷겠다는 것이다.
박 의원은 최근 여당 경선에서 벌어지는 ‘명낙 대전’, 즉 이재명 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간의 막말에 가까운 공방전에 대해서도 “구태 정치”라고 못박았다. 그는 “국민들이 제일 싫어하는 계파 정치, 머릿수를 동원하는 정치를 계속하다 보니 양쪽의 말이 점점 거세지는 것”이라며 “정책과 무관한 과거사 이야기를 하는데 이렇게 가다가는 ‘명낙 폭망’의 상황이 올 것”이라고 했다. 이어 “대선 후보 토론회에 정책을 준비해 갔는데 정책 이야기는 안 한다”며 “토론회 시청률도 처음에는 좋았지만 바로 직전 시청률은 1%로 떨어졌다”고 했다. 그는 “진보 언론이든 보수 언론이든 싸움 이야기만 쓴다”며 “제가 ‘바이미식스 대통령이 되겠다, 새로운 안보 동맹을 설정하겠다. 강력한 경제대국으로 가야 한다’고 얘기해도 ‘명낙대전’만 다룬다. 서운하고 힘들고 답답하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여당 대선 주자 중 가장 젊다. 다른 주자들과 노선이나 생각이 다르고 신선한 정책이 많다. 강성 진보, 운동권 이념 노선, 이런 것에서 탈피해서 실용적 개혁 노선이 느껴진다. 박 의원이 재선인데 대선 도전이 너무 빠르다고 여긴 사람들도 있다. 왜 나섰나.
“재선이고 젊다고 하는데 이미 늦었다. 우리나라가 워낙 낡고 늙어서 그렇지 50세는 젊지 않다. 뉴질랜드, 핀란드 총리가 젊은 것이다. 대한민국에 왜 오바마나 마크롱 대통령이 안 나오는지 한탄하지 말고 저를 찍으시면 된다. 제가 진보 정당 출신이지만 이제 진보가 거듭나야 하는 시간이다. 사람이든 사상이든 이념이든 계속 머물러 있으면 고리타분해진다. 보수든 진보든 동식물이든 사람이든 적응이 중요한데 그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1971년 김대중이 45세의 나이에 대통령 후보가 됐다. YS는 젊으니깐 찍어달라고 했는데 김대중 대통령은 한반도 4강에 남북한 정부를 교차 승인하고 유엔에 동시가입하자고 했다. 부유세, 사치세를 도입해서 대중경제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오늘날로 말하면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다.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 이전에 민주당은 이른바 정치 구락부였다. 그런데 젊은 정치인이 나타나서 외교적 경제적으로도 다른 식견을 보여줬다. 진보는 그렇게 하는 것이다. 욕 먹고 손해를 봐도 가는 거다. 제가 진보 정당에서 많은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대한민국 진보정치는 더 유연하고 유능해져야 한다고 말하는 게 제 역할이다.”
-출마 선언에서 ‘그 동안 뻔한 인물, 낡은 구도에 갇힌 정치를 했다’고 말했다. 박 의원님은 뻔하지 않은 새로운 정치를 할 수 있나.
“예를 들면 안철수가 짠하고 등장한 것이나 최근 윤석열의 등장 같은 건 안 된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자리에 가면 나라가 어려워진다. 정치권 안에서 계속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이 중요하다. 저는 비주류이고 변방에서 시작한 사람이다. 새로운 역사를 시작한 것은 다 변방에서 시작한다. 만리장성을 넘느냐의 차이인데 저는 그걸 넘으려고 마음먹었고 넘을 수 있는 용기와 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도 아칸소, 텍사스 같은 곳에서 성장해서 워싱턴으로 온다.
“워싱턴에 앉아있는 고리타분한 계파 정치나 엘리트주의에 학을 떼는 것처럼 우리 국민들도 계파정치, 뻔한 구도, 뻔한 인믈, 낡은 진영 논리로 싸우는 것 지긋지긋해 한다. 민주당 경선도 처음에는 재미있어 했지만 고구려, 백제, 신라 나온 뒤로 시청률, 지지율이 다 박스에 갇혔다.”
-조국 사태 때도 그렇고 민주당 내 미스터 쓴소리로 불릴 만큼 할 말을 다 하는데 민주당 친문 당원의 지지를 받기 어렵지 않나.
“당 잘 되라고 하는 말이다. 손해를 보고 욕을 먹더라도 할 말을 하고 할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 세계적 지도자들의 삶을 들여다봤는데 고통스러운 결정들을 했고 욕도 많이 먹었다. 남아공 만델라 대통령은 내전을 막기 위해 욕을 먹으면서 협상을 했다. 배신자 소리도 들었다. 미국 워싱턴 대통령은 영국과 바로 전쟁하면 지니까 독립전쟁 이후에도 굴욕 협상을 했다. 한 언론은 워싱턴을 교수대로 보내자고 했다. 굴욕을 참기로 결정하는 것은 힘들다. 예를 들면 정치인이 일본을 무찌르자고 하면 박수를 많이 받는데, 그렇게 해서 나라를 책임질 수 있는가. 책임 있는 태도가 필요하고 욕먹더라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사람들은 저에게 당신이 워싱턴이냐 만델라냐고 묻는다. 그래도 사람은 초지일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여 쪽에서는 이승만, 박정희 이야기가 금기다. 박 의원은 거기에 대해서 ‘공칠과삼’, 공과를 정확히 따져서 이야기하자고 했는데 상당히 용기 있는 발언이다.
“‘너 그러다가 대통령 자리 못가’라는 말을 듣는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일 국교 정상화할 때 찬성했다. 그래서 친일파라고 욕을 많이 먹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친일파로 찍히면 살아남기 어렵다. 소신을 갖고 말하고 실천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할 때 저는 소수파였다. 그래도 마침내 총학생회장을 했다. 우리 지역에서 소수파로 첫 출마를 했지만 마침내 64.45%로 서울에서 지지율 1등으로 당선됐다. 제 뜻을 언젠가 국민과 당원 동지들이 알아본다고 생각한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여전히 정권 재창출보다 정권교체 여론이 크다.
“민주당의 근본적인 위험 구조다. 당장 윤석열 후보와 비교해서 여당 1,2위 후보가 다 이긴다더라, 끝났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민주당이 집권하고 나서 내로남불 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 똑같은 인물, 내용으로 집권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이미 4·7 재보선 때 세게 맞았다. 한 번 더 맞으면 위험한 상황이 온다. 그래서 진보를 리셋해야 한다. 첫 번째 북한과 안보에 있어서 유약한 진보를 하면 안 된다. 튼튼한 안보를 내세우는 진보가 유능하다. 또 경제, 먹고 사는 문제에 무능하다는 프레임 안 된다. ‘먹고사니즘’을 가장 앞세우는 게 유능한 것이다. 그래서 국부펀드나 기업을 앞장세워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바이미식스’ 대통령이 되겠다. 바이오, 헬스, 2,3차 전지, 미래차, 6G라는 미래 산업에서의 주도권을 우리가 잡고 가겠다는 것이다. 진보는 인권, 평화, 남북 교류확대, 민주주의만 이야기 한다고 생각하면 낡은 진보다. 세금 많이 걷어서 많이 나눠주는 재정정책을 진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낡은 진보다.”
-지금 여당 경선에서 부각되는 것은 ‘명낙대전’이다. 막말에 가까운 싸움이다. 노선도 퍼주기 아니면 규제 정책으로 점철되고 있다. 따끔하게 한 마디 한다면.
“(지금껏) 하던 대로 하는 것이다. 구태 정치, 국민들이 제일 싫어하는 계파 정치, 머릿수를 동원하는 정치를 계속 하다 보니 양쪽의 말이 점점 거세지기 시작한 것이다. 정책과 무관하게 과거사 이야기를 하면서 대한민국과 무관한 이야기를 한다. 이렇게 가다가는 ‘명낙 폭망’의 상황이 온다. 저에게까지 흙탕물이 튄다. 토론회에 정책을 준비해 갔는데 정책 이야기는 안 한다. 대선 후보 토론회 시청률도 처음에는 좋았지만 바로 직전 시청률은 1%로 떨어졌다.”
-그런데 진흙탕 싸움에 안 끼어들면 스포트라이트를 못 받지 않나.
“(웃으며) 이러니깐 언론 개혁을 하자는 것이다. 이럴 때 정책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써야 한다. 진보 언론이든 보수 언론이든 싸움 이야기만 쓴다. 답답하다. 제가 ‘바이미식스 대통령이 되겠다, 새로운 안보 동맹을 설정해 보겠다. 강력한 경제대국으로 가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쭉 하는데 다 필요 없고 ‘명낙대전’만 다룬다. 서운하고 힘든 상황이다.”
-박 의원은 법인세·소득세 동시 감세와 상속세 완화를 제안했다. 운동권과 민노당 출신으로 ‘재벌 저격수’를 자처해온 진보 정치인으로선 이례적인 제안이다. 여권 진영에선 환영받기 힘들 수도 있는데.
“더민초도 초청 토론회에서 납득이 안 된다고 하더라. 레이건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냐고 하더라. 증세와 감세는 경제 정책의 하나이지 진영 논리로 취급하면 안 된다. 우리 당이 변화를 모르는 것이다. 증세든 감세든 금리 인상이든 인하든 경제 조건이나 상황에 따라서 정치적 리더가 판단하고 해나가야지. 증세는 진보, 감세는 보수라고 하는 것은 낡은 이념이고 진영논리다. 그리고 기업과 기업 총수는 다르다. 기업 총수가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불법을 저지르는 것은 경제 질서를 위협하니깐 위험한 일인데 기업 총수가 자신의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기업의 이익과 경제 질서 전체를 위협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다. 하지만 기업은 계속 지원해줘야 한다. 제가 축구로 치면 공정 경쟁에 가장 앞장 선 사람이다. 빗장 수비를 했다. 그런데 유능한 감독은 수비만이 아니라 유능한 공격수를 배치해야 한다. 그게 기업과 노동자들이다. 기업과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근로소득세와 사업소득세를 감세하는 것이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법인세 감소를 전진 배치하는 것이다. 다만 부동산 임대소득, 금융 이자 소득은 증세해야 한다. 진보라고 일방적으로 증세를 주장하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처럼 되는 것이다.”
-이재명 지사는 많이 거둬서 국민에게 다 나눠주자고 한다. 그래서 나랏돈 물쓰듯 쓰기 대회 나온 사람들이라고 비판했죠.
“그 분 정책, 기본시리즈를 다 합치면 임기 내에 1000조는 넘게 써야할 것이다. 표를 위해서 현실성 없는 이야기를 감언이설로 하는 것은 나라를 망치는 길이다. 저는 솔직하고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하다 보면 상황에 따라 말이 다를 순 있지만 국가적 사안을 바라볼 때는 정말 진중하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
-박용진만의 브랜드를 세 가지로 정리하면.
“일단 소통인데 한국식 PMQ를 하겠다. ‘Prime Minister Question Time’인데 영국 총리가 매주 수요일 오후 2시부터 나와서 야당 대표하고 의회에서 일문일답을 한다. 총리가 의연하게 버티면서 현안에 대해서 종이 한 장 보지 않고 말한다. 저는 (대통령이 되면) 수시로 국회에 와서 외교·안보·국방 사안에 대해 종이 한장 없이 일문일답식 맞짱 토론을 하겠다. 또 청와대 출입 기자들하고 두세 달에 한 번 정도는 팔을 걷어 부치고 두 시간 정도 소통하는 자리를 갖겠다. 야당 대표들을 밤에 청와대 오시라고 해서 터놓고 대화도 하고 소주도 한잔 하겠다.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에 보여줬던 권위 없고 소탈하게 소통하려는 모습을 저도 보여드리려고 한다. 그 다음은 열린 정책이다. 감세 정책은 보수 것 아니냐고 하는데 그러면 어떤가? 손흥민처럼 왼발로 차든 오른발로 차든 골만 들어가면 된다. 흰 고양이, 검은 고양이 가릴 것 없이 쥐를 잘 잡으면 된다. 이재명의 기본 시리즈가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보수·진보 학자들이 이미 다 얘기했다. 나도 점진적으로 실험하고 적용시킬 생각이 있다. 그러나 임기 중에 120조 동원하겠다는 것은 동의 못한다. 그걸 묻는데 이 지사는 대답을 안 하고 자꾸 화를 낸다. 기본주택 관련해서도 질문하면 화를 낸다. 취지가 좋다고 결과가 좋은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진보는 평화, 인권을 말하며 참고 견디는 게 아니다. 초전박살, 든든한 안보다. 1999년 6월 1차 연평해전이 벌어졌을 때 김대중 대통령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햇볕정책 첫번째가 뭔지 아는가. 무력도발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번은 흡수통일 반대, 3번은 남북 화해 협력 확대다. 진보는 1번이 아니라 3번에만 관심 있어 보일 수 있다. 당시 김 대통령은 군을 만날 때마다 무력 도발 용납 말라는 지침을 하달했다. 그러니까 일선 지휘관이 위에 안 물어보고 북한에 발포한 것이었다. 북한 배 한 척이 침몰하고 두 척은 반파됐다. 사상자도 많았다. 남북정상회담을 위해서 베이징에서 차관급 회의가 열리기 얼마 전이다. 대통령이 조마조마해 했다. 그러나 든든한 안보를 위해서 필요했던 것이다. 유약한 진보는 진보의 자세가 아니다.”
-국민들이 가장 관심 있는 건 부동산이다. 이 정부는 규제 아니면 세금 폭탄이다. 여당 대선 주자들 공약도 똑같다. 박 의원은 집값 어떻게 잡을 것인가.
“시장 대결주의로 가서는 안 된다. 국민의 욕망을 죄악시 해서도 안 된다. 첫 번째는 ‘좋은 집 충분 공급 전략’이다. 시장에서 좋은 집 충분히 많이 공급하게 할 것이니 돈 있는 분들은 그것을 사면 된다. 좋은 집, 좋은 아파트, 새 아파트 사겠다는 것을 죄악시하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는 ‘같이(가치)성장 주택 모델’로 전세 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 공공정책이다. (정부가) 원가로 주변 시세의 70% 수준의 싼값에 공급을 하는데 대출을 100%해 준다. 그런데 환매는 다시 공공에 팔아야 한다. 토지와 건물 지분은 개인과 정부가 반반씩 나눠갖는다. 언제든지 팔아도 되지만 10억에 샀는데 15억에 팔리면 시세차익을 2억 5000만원씩 나눈다. 가치를 나눠서 같이 성장하는 모델이다. 또 내 집 마련이 필요 없거나 능력이 없는 분, 1인 가구 등은 임대 주거비를 더 지원하는 표준 임대료 정책을 시행하겠다. 우리 국민들의 삶은 울퉁불퉁하고 똑같지 않다. 좋은 내 집도 충분히 공급하고 주거 사다리도 주고 (서민층) 주거 안정을 위한 정책도 따로따로 있어야 한다. 국민들은 내 집, 내 차 마련, 자녀 교육, 가족 건강, 노후자산 마련 이 다섯 가지를 바란다. 그 소박한 소망을 이루어주지 못하는 진보는 진보가 아니다. 그 꿈을 제도적, 정책적으로 마련하지 못하면 정부가 무슨 소용이냐. ‘먹고사니즘’을 보장해주는 게 유능한 진보다.”
-단기필마라는 느낌이 든다. 캠프에 도와주는 현역 의원은 몇 명인가.
“지금 캠프에 이름 걸고 도와주는 의원은 없다. 그런데 3등이다. 한 명만 도와주면 2등할 것 같다.”
-예전 노무현 대통령도 캠프에 1명 있었다.
“이유를 알겠더라. 노무현 대통령이 3김 정치 청산, 계파 정치 청산, 지역주의 청산을 이야기했다. 그 당시 현역들이 3김으로부터 공천 받았고 계파와 지역주의에 속해있는데 어떻게 같이 했겠냐. 저도 똑같다. 진보는 계파주의, 이념의 울타리에 갇히지 않는다.”
-두 달 안에 지지율 올려서 1위와 맞붙을 수 있는 상황이 될까.
“6월 초에 제가 딱 3등으로 올랐을 때 다들 깜짝 놀랐다. 이낙연 후보와 얼마 차이가 안 나서 곧 제칠 거라 생각했는데, 네거티브가 시작되면서 쭉 빠졌다. 유튜브 보시는 국민들께서 민주당 선거인단에 가입 해주시면 된다. 가입해서 박용진 한 표 주면 된다. 어려운 게 아니다.”
-일부에선 의원님이 지금은 몸만 풀고 다음 대선을 노린다는 말이 있다.
“누가 라커룸에서 몸 풀지 링에 올라와서 몸 푸나. 정치를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국민들의 귀와 눈이 밝아서 몸풀러 나온 것인지 사력을 다하는지 다 안다. 메달은 못 따더라도 정말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실력을 보여주는 사람을 국민은 알아본다.”
조선일보 배성규 논설위원
08.24 반헌법 법안 쏟아내는 민주당, 국민이 두렵지 않나
충분한 공론화 없이 수술실 CCTV 의무화
사학 자율성 박탈하는 교원 임용권 개입
국회의원이 되면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 증진을 위해 노력한다”고 서약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독주를 보면 이들이 과연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복리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어제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처리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방안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이 한 예다. 일부 병원에서의 의료사고로 의무화 여론이 높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규제를 하려면 편익 못지않게 사회적 비용에 대한 철저한 논의와 고려가 필요하다. 언제든 ‘규제의 역설’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이번 의료법 개정안이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밟았는지 의문이다. 지난 5월 의료계·환자단체 공청회가 열린 것 정도다.
CCTV 의무화에 따른 편익은 제한적이다. 수천억원대에 달하는 비용을 들여 설치하더라도 수술 장면을 다 담을 수 없어서다. 이에 비해 사회적 비용은 막대할 수 있다. “의료진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고 수술실을 잠재적 범죄 장소로 취급하는 것”(대한의사협회)에 따른 여파다. 의료진이 가장 창의적·적극적이어야 할 수술실에서 방어적·소극적이 된다면 오히려 환자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촬영에 따른 환자의 프라이버시 침해도 불가피하다. 의료진의 외과 계열 기피 현상이 심해진다면 국가적으로도 손실이다. 이 때문에 수술실에 CCTV를 의무화한 나라가 없는 것이다.
민주당에선 2년간 설치를 유예하고 환자의 요청이 있을 때 촬영하며 의료진이 거부할 수 있는 근거를 넣었다고는 하나 이 정도론 미흡하다. 오죽하면 의협에서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고 나서겠는가.
민주당이 최근 교육위에서 일방 처리한 사립학교법안도 유사한 문제가 있다. 교원 임용의 1차 필기시험을 교육감에게 위탁하는 등의 내용인데, 사학의 자율성을 침해한다. 벌써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교원 보수 지원금을 끊는 방식으로 채용 전형 전체의 위탁을 사실상 강제화하겠다고 나섰다. 한국사립초중고등학교연합회에선 “사학 자율성 말살의 위헌·위법 법안”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언론중재법안 처리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당의 이런 입법권 남용엔 일정한 패턴이 있다. 규제 대상 전체를 잠재적 범죄(문제) 집단으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일부의 잘못을 침소봉대하고 선의의 다수는 외면한다.
적(敵)과 아(我)로 편 가르는 이분법적 사고다. 이러니 처방이 극단적이고 필연적으로 위헌 논란을 부를 수밖에 없다. 동시에 자신들에겐 ‘철갑’의 보호망을 두른다. 최근 윤미향 의원이 공동 발의한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안’에선 위안부 관련 단체에 대한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금지하기도 했다. ‘민주’당이란 이름에 걸맞지 않은 참으로 부끄러운 행태다.
중앙일보 사설
08.25 野, 5명 탈당 안하면 강제 출당… 윤희숙은 지도부에 “의원직 사퇴”
野지도부 7시간 논의… 부동산 투기의혹 조치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24일 7시간 넘는 최고위원 회의를 거쳐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서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된 의원 12명 중 1명을 제명하고 5명에 대해서는 탈당을 요구하기로 했다. 나머지 6명은 소명이 됐다고 판단해 징계하지 않기로 했다. 제명·탈당 요구를 받은 의원 6명이 당을 나가면 국민의힘 의석(현재 104석)은 98석이 된다. 이 대표는 탈당 요구에 응하지 않는 의원은 당 윤리위원회에 넘겨 강제로 당에서 내보내겠다는 뜻도 밝혔다. 권익위 조사에서 부친의 농지 매입 관련 의혹이 제기된 윤희숙 의원은 국민의힘 최고위가 소명이 됐다고 판단했지만 대선 경선 참여를 포기하겠다는 뜻을 주변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8시 최고위원 회의를 소집해 권익위가 법령 위반 의혹이 있다고 통보한 의원 12명을 화상으로 연결해 해명을 들었다. 이 대표는 오후 3시쯤 회의를 마치고 의원들에 대한 조치 내용을 발표했다. 한무경(비례대표) 의원은 제명, 강기윤·이주환·이철규·정찬민·최춘식 의원 등 5명에게는 탈당을 요구하기로 했다. 김승수·박대수·배준영·안병길·윤희숙·송석준 의원 등 6명은 소명이 충분해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고 이 대표는 밝혔다.
국민의힘 최고위에서 제명하기로 결정한 한무경 의원은 농지법 위반 의혹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공개한 권익위 조사 자료를 보면 한 의원은 2004~2006년 강원도 평창에 약 11만㎡(총 32필지) 농지를 매입했다.
그런데 땅을 산 뒤로 경작을 거의 하지 않고 방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의원은 “은퇴 후 전원생활을 위해 보유했다”고 했다. 한 의원 제명안은 다음 의원총회에 상정돼 표결 절차를 거치게 된다. 제명되더라도 의원직은 유지한다.
탈당 요구를 받은 강기윤 의원은 권익위 조사에서 토지보상법 위반 의혹을 받았다. 강 의원은 소유한 과수원 토지 7036㎡가 경남 창원시 공원 구역에 포함되는 과정에서 창원시청 공무원을 직접 면담하고, 과도한 보상금을 받은 의혹 등을 받고 있다. 탈당 권고를 받은 이주환·이철규·정찬민·최춘식 의원은 권익위 조사 결과 공개를 거부했다. 이들은 편법 증여, 농지법 위반, 공공주택특별법 위반 의혹을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는 이들이 탈당하지 않으면 윤리위원회를 소집해 출당(黜黨) 조치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윤리위가 ‘탈당 권유’를 의결했는데도 이를 따르지 않으면 당헌·당규에 따라 10일 뒤 자동 제명된다. 이 대표는 ‘최고위의 탈당 요구 후 10일이 지나도 탈당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기자들 물음에 “윤리위를 구성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 /연합뉴스
국민의힘 지도부는 송석준·안병길·윤희숙 의원 등 3명은 문제가 된 부동산이 본인 소유가 아니고, 매입 과정에도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김승수·박대수·배준영 의원은 토지 취득 경위가 소명됐고, 이미 매각됐거나 즉각 처분 의사를 밝혔다면서 징계하지 않기로 했다.
대선 경선 참여를 선언했던 윤희숙 의원은 이날 오전 자신이 권익위 통보 명단에 포함된 사실을 확인하고 측근들에게 대선 경선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윤 의원이 의원직 사퇴까지 고민해 그 의사를 당 지도부에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윤 의원은 아버지가 2016년 세종시에 농지를 샀으나 실제 경작하지 않은 의혹을 받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 지도부는 윤 의원 소명을 들어보고 그가 땅을 사는 데 관여하지 않았고 투기 목적도 아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권익위가 부동산 거래 과정에서 법령 위반 의혹이 있다고 판단한 국민의힘 의원 12명 가운데 송석준·안병길·이철규·정찬민·한무경 의원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 대선 캠프에서 활동 중이다. 송 의원은 기획본부장 겸 부동산정책본부장, 안 의원은 홍보본부장, 이 의원은 조직본부장, 정 의원은 국민소통위원장, 한 의원은 산업정책본부장을 맡고 있다. 윤 전 총장 측은 이날 “한·정 의원은 캠프 관련 직책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고 이를 수용했다”며 “이철규 의원은 당에 추가 해명 기회를 요청했기에 지켜보고 판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08.25 윤희숙 사퇴 말리던 이준석 눈물…윤평중 “한국정치에 죽비”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25일 국회의원직 사퇴를 선언한 윤희숙 의원을 위로하며 눈물을 흘렸다. 동료 의원들은 “본인 일도 아닌 부모님이 하신 일에 대해 책임지겠다는 뜻”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부친의 농지법 위반 의혹에 대해 사과하며 의원직 사퇴를 선언한 윤 의원을 지켜봤다. 이 대표가 기자회견장을 찾은 건 윤 의원의 사퇴를 만류하기 위함이다. 이 대표는 윤 의원의 두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윤 의원의 부친은 2016년 세종시에 농지를 매입했지만 실제로는 경작을 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해당 부동산이 윤 의원의 소유가 아닌 데다가 본인이 개입한 사실이 없다는 소명을 받아들여 당 처분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윤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정권교체 명분을 희화화시킬 빌미를 제공해 대선 전투의 중요한 축을 허물어뜨릴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며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다. 그는 “당에서 사실 관계와 소명을 받아들여 본인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혐의를 벗겨주었다”면서도 “저는 대선 승리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위해 제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윤 의원이 사퇴 의사를 밝혔다”며 “문재인 대통령도 농지법 위반에 대해 뭉개고 있는데, 본인 일도 아닌 부모님이 하신 일에 대해 책임지겠다는 뜻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적었다.
국민의힘 김웅 의원도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윤 의원의 아버지가 했다는 것은 한국농어촌공사가 하는 농지임대수탁사업에 따른 농지 임대인 것 같다. 이것은 부재지주가 늘어나는 우리 현실에서 농지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 권장하고 있는 제도”라며 “이것을 문제 삼는 것은 마치 대리운전시켰는데 음주운전으로 고발한 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 친구 희숙이가 ‘나는 임차인이다’ 연설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무리한 조사 결과 발표가 있었을까”라며 “권력의 간악함을 뼈저리게 느낀다”고 덧붙였다.
정치철학자인 윤평중 한신대학교 철학과 교수는 윤 의원의 의원직 사퇴를 두고 “신선한 충격이다. 감동이 사라져버린 한국 정치에 죽비를 때렸다”며 “‘정치인 윤희숙’은 지금은 죽는 것 같지만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08.26 윤희숙 의원이 보여준 염치와 상식
▲[서울=뉴시스] 전신 기자 =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대선 출마 포기와 국회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1.08.25. photo@newsis.com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서 아버지의 농지법 위반 문제가 제기된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의원직 사퇴와 대선 후보 경선 사퇴의 뜻을 밝혔다. 윤 의원은 “아버지가 위법한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 믿지만 염치와 상식의 정치를 주장해온 제가 신의를 지키고 자식 된 도리를 다하는 길”이라고 했다.
윤 의원 아버지는 2016년 세종시에 농지를 샀으나 실제로는 경작하지 않아 법 위반 의혹을 받고 있다. 윤 의원은 26년 전 결혼할 때 호적을 분리한 이후 아버지와 따로 살았다고 한다. 아버지의 경제활동도 몰랐다고 한다. 이런 경우 상식적으로 자식에게 책임을 묻기는 힘들다. 국민의힘도 윤 의원의 이런 소명을 받아들여 징계 처분을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본인이 “정권 교체 명분을 희화화할 빌미를 제공할 순 없다”며 의원직 사퇴를 선언한 것이다. 작년 민주당의 일방적인 ‘임대차 3법’ 통과에 맞섰던 ‘나는 임차인입니다’ 연설 때문에 정치적 상징성을 갖게 된 윤 의원으로선 그런 걱정을 했을 것이다.
국민권익위가 윤 의원을 부동산 투기 혐의 의원에 포함한 것도 ‘나는 임차인입니다’ 연설을 우습게 만들 정치적 효과를 노렸을 가능성이 있다. 지금 국민권익위원장은 민주당 의원 출신이다. 그러나 윤 의원은 “우스꽝스러운 조사” “평판 흠집 내기 의도”라고 하면서도 자신의 직을 내려놓겠다며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였다.
정권의 일상적인 ‘내로남불’ 행태로 국민의 정치 염증이 큰 상황에서 윤 의원의 ‘염치와 상식’은 더 눈에 띈다. 민주당은 투기 의혹이 제기된 의원 12명에 대해 탈당 권유를 조치했지만 현재 당을 나간 사람은 비례대표 의원 2명이 전부다. 당적을 유지하고 있는 의원 중에는 가족이 자신의 지역구에 산 땅 가격이 10배 이상 급등하는 등 본격 투기 가능성을 의심받는 사례들도 있다. 윤 의원과 달리 본인의 농지법 위반 의혹이 제기된 의원도 3명이었는데 이들은 탈당계도 제출하지 않고 반발했다. 농지법에 대해선 문재인 대통령도 자유롭지 못하다. 자신이 거주할 목적으로 작년 4월 매입한 경남 양산시 땅이 농지였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농업 경영 계획서’에 ‘영농 경력 11년’이라고 적었다고 한다. 말이 되는가. 이 땅은 지난 1월 갑자기 집을 지을 수 있는 대지로 형질이 변경됐다.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한 비판을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라고 비난했다.
정말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사람들은 모두 그대로 있고, 우리 정치에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받는 사람은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 염치는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고, 상식은 기본적인 사리 분별이다. 윤 의원의 경우를 보며 그 ‘염치와 상식’을 생각한다.
조선일보 사설
08월 26일 모함 알고도 사퇴한 윤희숙과 文정권의 끝없는 파렴치
윤희숙 의원의 ‘국회의원직 사퇴’는 정치권의 무책임과 부도덕에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내로남불’이 글로벌 용어가 될 정도로 위선적인 문재인 정권의 몰염치 행태와 극명히 대비될 것이다. 윤 의원이 “쌍욕에 음주운전, 사이코 먹방까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도덕성 수준인데 국민께서 포기한 것이 아닌가”라고 우려한 것처럼, 대선 주자들에 대한 국민 각성의 계기도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윤 의원 사퇴 동의안이 국회 본회의 표결에 부의되면, 여당이 딜레마에 빠질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윤 의원에 대한 잣대를 그대로 적용하면 당장 물러나야 할 여당 의원과 장관 등 고위직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윤 의원은 25일 대선 경선 포기와 의원직 사퇴를 선언한 상태다. 그러나 평소 언행과 사퇴 배경 설명을 보면 사직서를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근거 없이 윤 의원의 직접 연루 억측 등이 나오지만, 그것은 별개의 문제다. 보기 힘든 도덕적이고 책임감 있는 결정임은 분명하다. 여당 출신이 위원장인 국민권익위원회 조치부터 정치적 공격으로 비칠 여지가 많다. 권익위는 윤 의원 부친이 2016년 세종시에 논 1만871㎡를 구입했지만 농사를 짓지 않았다고 했다. 윤 의원 부친은 아내 건강 악화로 세종시에 가지 못하고 한국농어촌공사를 통해 임대차 계약을 했다고 한다. 게다가 윤 의원은 26년 전 결혼하면서 분가했다. 이 정도인데도 투기범으로 몬다면, 훨씬 심각한 범죄자가 문 정권 내부에 수두룩하다.
이런데도 문 정권 인사들은 윤 의원 사퇴를 모함하는 행태를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수사 의뢰된 의원 12명 가운데 비례대표 2명에 대해 출당 조치를 했고, 나머지 10명은 탈당 권고를 받고도 계속 버틴다. 업무상 비밀을 이용한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고도 우기는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은 말할 것도 없다. 문 대통령도 양산 사저의 농지법 위반 의혹이 제기되자 “좀스럽고 민망하다”고 뭉갰다. 그래 놓고 윤 의원을 비난하는 것은 파렴치의 극치다.
문화일보 사설
08.30 무소불위 與, 윤희숙 사퇴도 못하게 막는다니
▲8월 27일 아버지의 농지법 위반 의혹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는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 /국회사진기자단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부친의 농지법 위반 의혹과 관련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했지만 민주당은 29일에도 ‘안 된다’고 했다. “의원직을 유지하고 수사받으라”는 것이다. 국회법상 현직 의원 사퇴는 본회의 표결로 결정되는데, 170여 석의 민주당이 반대하면 윤 의원은 사퇴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국회의장이 사퇴안에 대한 여야 합의를 요구하고 있어 사퇴안의 본회의 상정조차 불투명하다. 국회의원에 대한 의혹이 불거졌을 때 상대 당에서 “의원직을 사퇴하라”고 아우성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본인이 사퇴하겠다는데 상대 당이 안 된다며 국회 표결을 거부하며 어깃장을 놓은 경우는 처음 본다.
민주당은 윤 의원 사퇴 선언을 “정치 쇼”라고 했다. 의원직 사퇴를 쇼처럼 이용하는 경우가 과거에 종종 있었다. 3년 전 여당 의원은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자 “(국회로) 돌아오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사직서를 제출했다가 두 달 만에 철회했다. 여론이 잠잠해지길 기다린 것이다. 그러고는 국회 상임위원장까지 했다. 어떤 여당 의원은 투기 의혹이 확인되면 전 재산과 목숨까지 내놓겠다더니 유죄 판결이 나오자 딴청을 피웠다. 이런 것들이 쇼다.
여당 의원 대부분은 ‘쇼’는커녕 사퇴하는 시늉도 하지 않는다. 윤희숙 의원처럼 의혹 정도가 아니라 기소되고 재판까지 받아도 꿈쩍 않고 버틴다. 한두 명이 아니다. 민주당은 권익위가 투기 의혹을 제기한 의원 12명에 대해 탈당 권유 조치를 했지만 당을 나간 건 비례대표 2명뿐이다. 그 2명도 출당당했기 때문에 의원직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본인의 농지법 위반 의혹이 제기된 의원 3명도, 자신의 지역구에 산 땅 값이 10배 이상 급등한 의원도 지금껏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윤희숙 사퇴안이 가결될 경우, 이 민주당 의원들에 대해서도 같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질 수 있다. 민주당은 이게 두려운 것이다. 민주당은 윤희숙 사퇴 입장에 대해 ‘쇼’라고 아우성칠 것이 아니라 국회에서 처리하면 된다.
조선일보 사설
08.30 홍준표가 뜬다는데…
최근 야권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의 약진이 화제다. 지난 21~22일 실시한 JTBC-리얼미터 조사에서 ‘보수 야권의 대선후보로 누가 가장 적합하냐’는 질문(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에 홍 의원은 21.5%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32.6%)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같은 조사의 추이를 보면 6월 19~20일 조사에선 두 사람의 격차가 24.2%포인트(윤 35.4%-홍 11.2%)였으나 7월 17~18일 조사에선 13.2%포인트(윤 29.9%-홍 16.7%)로 줄었고 이번에 11.1%포인트까지 좁혀졌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이 25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국민 약속 비전 발표회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TBS-KSOI 조사(범보수 대선후보 적합도,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에서도 6월 18~19일 37.5%(윤) 대 9.1%(홍)→7월 23~24일 27.9%(윤)대 13.7%(홍)→8월 20~21일 28.4%(윤) 대 20.5%(홍)로 홍 의원이 턱밑까지 쫓아갔다. 홍 의원이 ‘신상품’도 아니고 최근에 특별히 이슈를 주도한 적도 없는데 이렇게 뜬 이유는 뭘까.
해답은 지지 정당별 지지율 분석표에 나와 있다. 리얼미터 8월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층만 떼어놓고 보면 윤 전 총장은 65.1%고 홍 의원은 14.4%로 격차가 엄청나다. 그런데 민주당 지지층에선 홍 의원이 27.2%고, 유승민 전 의원이 20.4%다. 윤 전 총장은 6.1%에 불과하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지층 규모는 엇비슷하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선 홍 의원이 크게 밀려도 민주당 지지층의 성원에 힘입어 홍 의원이 추격 기반을 마련한 형국이다. 민주당 지지층에서 홍 의원의 지지율은 6월 12.0%→7월 22.6%→8월 27.2%로 급상승세다. KSOI 조사에서도 민주당 지지층의 홍 의원 지지율은 6월 13.8%→7월 20.6%→8월 28.6%로 상종가다.
▲JTBC-리얼미터 8월21~22일 조사에서 나타난 보수야권 대선주자 적합도. 국민의힘 지지층만 놓고 보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홍준표 의원의 격차가 크지만 전체 응답자에선 격차가 확 좁혀진다. 민주당 지지층에서 홍 의원 선호도가 높기 때문이다. 자료:리얼미터
흥미로운 건 여야 후보를 한데 섞어 놓고 지지 후보를 고르는 설문에선 ‘홍준표 돌풍’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KSOI 8월 조사에서 여야를 모두 포괄해 ‘차기 대선후보로 누가 적합하냐’고 물었더니 민주당 지지층의 51.6%는 이재명 경기지사, 30.8%는 이낙연 전 대표를 골랐다. 홍 의원을 찍겠다는 답변은 고작 1.9%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여론조사 전문가 A씨는 “전형적인 역선택”이라며 “민주당 지지층 입장에선 가장 미운 사람이 윤 전 총장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윤 전 총장을 막기 위해 홍 의원을 미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 다른 전문가 B씨도 “홍 의원은 이념 성향상 민주당과 가장 거리가 먼 쪽이다. 그런데도 민주당 지지층이 홍 의원을 민다면 그건 국민의힘 후보로 홍 의원이 선출되는 게 정권 재창출에 유리하다고 본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실제로 요즘 친여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그래도 홍준표가 제일 낫다”는 글이 심심찮게 발견된다. 친문 지지층의 ‘셀럽’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25일 “홍 의원을 굉장히 눈여겨보고 있다.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발언의) 전달력이 좋다”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민주당 지지층이 홍 의원을 ‘홍발정’(홍준표+돼지발정제)이라고 공격하던 게 엊그제인데,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지난달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야당 지지층을 상대로 민주당 국민선거인단 가입을 독려하면서 자신은 추미애 후보를 밀겠다고 한 적이 있다. 추 후보는 민주당 대선 후보중 성향상 국민의힘 지지층과 가장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추 후보를 밀겠다는 건 추 후보가 여당 후보가 되는게 정권교체에 가장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7월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 캡처
다소 농담조였지만 민주당은 정색하면서 “저질정치”라고 펄쩍 뛰었다. 민주당 지도부는 뜨끔했을 것이다. 김 최고위원이 완전개방형 국민경선제의 본질적 약점, 즉 다른 당 지지층이 조직적으로 참여해 결과를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을 깊숙이 찔렀기 때문이다. 다만 요즘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 지지층도 손 놓고 있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새삼 한국 정치의 역동성에 감탄하게 된다. (※상세한 내용은 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중앙일보 김정하 정치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