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護國2/ 누가 이 전쟁을 일으켰는가 - 전쟁의 상흔 1950 - 1951

상림은내고향 2021. 8. 30. 21:03

護國2/ 전쟁의 상흔

■누가 이 전쟁을 일으켰는가

여기 실린 사진은 미국 메릴랜드 주에 있는 NARA(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5층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KOREA WAR(한국전쟁)" 파일의 사진들입니다.
날짜와 장소는 사진 뒷면에 있는 영어 원문을 따랐고, 사진 설명은 원문을 참조하여 필자가 가다듬었습니다.

이 사진이 기록물이 부족한 우리나라에 자료로 남기를 바랍니다.
생사가 교차되는 전선에서 귀한 사진을 남긴 카메라맨들에게 경의를 드립니다.<필자 주>


1950 - 1951

1950. 9. 30. 전화(戰禍)로 폐허가 된 대전역

 

▲ 1950. 11. 24. 불타버린 서울역 앞 세브란스 병원.

 

▲ 1950. 10. 7. 불타고 있는 김포 비행장

 

▲ 1950. 10. 18. 전화에 그을린 중앙청

 

▲ 1950. 10. 18.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멀리 북악산과 중앙청 돔이 보인다

 

▲ 1950. 9. 20. 왜관, 낙동강 철교 복구 공사

 

▲ 1950. 10. 12. 미조리호 군함에서 청진항을 향해 함포사격을 가하고 있다

 

▲ 1950. 10. 20. 400여 명의 낙하산 부대가 평양부근에 투하되고 있다

 

▲ 1950. 12. 18. 북한군에게 뿌린 귀순 권유 전단

 

▲ 1950. 11. 2. 적십자사에서 피난민에게 구호물자를 나눠주고 있다

 

▲ 1950. 10. 13. 경기도 파주, 참혹하게 학살된 시신들

 

▲ 1950. 11. 1. 서울 중앙청 앞 지금의 문화관광부 자리,

주민들이 폐허더미에서 땔감이나 돈이 될만한 물건을 찾고 있다

 

▲ 1950. 11. 2. 원산의 한 성당, 폐허가 된 성당 내부를 신도들이 청소하고 있다

 

▲ 1950. 11. 6. 북한의 어느 농촌, 탈곡한 볏단을 달구지에 싣고 있다

 

▲ 1950. 11. 6. 북한의 어느 농촌, 전란 중에도 추수를 하고 있다. 바람개비로 알곡을 가리는 농부들

 

▲ 1950. 11. 19. 북한의 한 지하 무기공장 내부

 

▲ 1950. 11. 20. 국경지대, 미군들이 소달구지로 보급품을 운반하고 있다

 

▲ 1950. 11. 18. 미군 폭격으로 파괴된 흥남 비료공장

 

▲ 1950. 11. 18. 미군 폭격으로 파괴된 흥남 송전소

 

▲ 1950. 11. 23. 함경도 갑산, 미군 폭격으로 성한 집이 드물다

 

▲ 1950. 11. 1. 황해도 평산에 진격하는 유엔군을 두 여인이 전신주 뒤로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 1950. 12. 4. 평양을 떠나 대동강을 건너 후퇴하는 국군

 

▲ 1950. 12. 6. 황해도 사리원, 남행하는 피난열차에 피난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 1950. 12. 8. 경기도 금촌, 38선을 넘어 후퇴하는 유엔군 차량들

 

▲ 1950. 12. 9. 끊어진 한강철교

 

▲ 1950. 12. 10. 포화에 불타는 마을

 

▲ 1950. 12. 12. 한강 부교를 통하여 후퇴하는 차량들

 

▲ 1950. 12. 12. 피난민들이 한강을 나룻배로 건너고 있다

 

▲ 1950. 12. 12. 유엔군들이 인천항을 통해 장비들을 후송시키고 있다

 

▲ 1950. 12. 12. 유엔군들이 후퇴하면서 다리를 폭파시키고자 폭약을 장치하고 있다

 

▲ 1950. 12. 3. 평양, 남행 피난민 행렬 속의 한 소녀.

 

▲ 1950. 12. 10. 중공군의 참전으로 강추위 속에 후퇴 행렬. 한 병사가 너무 추운 날씨 모포를 뒤집어쓰고 있다

 

▲ 1950. 12. 12. 흥남부두, LST 함정에 가득 탄 군인과 피난민들. 미처 함정에 오르지 못한 피난민들이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 대부분의 피난민들은 원자탄이 투하된다는 말에 피난 행렬에 나섰다고 한다. 몇 날의 피난 길이 50년이 더 지났다.

 

▲ 1950. 12. 14. 서울역, 남행 피난민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 1950. 12. 16. 흥남, 국군과 유엔군들이 후퇴하고자 부두에서 수송선을 기다리고 있다.

 

▲ 1950. 12. 27. 흥남, 얕은 수심으로 수송선이 해안에  닿을 수 없자 유엔군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LST로 가고 있다

 

▲ 1950. 12. 24. 흥남, 유엔군들이 철수 후 부두를 폭파시키고 있다

 

▲ 1950. 12. 19. 묵호, 흥남에서 철수한 장비를 묵호(동해)항에 내리고 있다

 

▲ 1950. 12. 28. 서울, 피난민들이 강추위 속에 한강 얼음을 깨트리며 나룻배로 남하하고 있다

 

▲ 1951. 1. 5. 피난 행렬 속의 소년과 소녀. 소달구지가 힘겨워하자 힘을 보태고 있다

 

▲ 1950. 10. 11. 서울 교외, 부서진 북한군 전차 위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 1950. 11. 1. 전란으로 폐허가 된 서울

 

▲ 1950. 12. 28. 끊어진 한강 철교, 오른쪽은 임시로 만든 부교

 

▲ 1951. 1. 3. 한강 철교 부근의 언 강을 피난민들이 걸어서 건너고 있다

 

▲ 1951. 3. 16. 서울 중구의 수도극장(현 스카라 극장) 일대

 

▲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중앙청 광화문 세종로 일대.

 

▲ 1951. 3. 16.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왕십리 일대, 멀리 고려대학교 건물이 보인다

 

▲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서울역 일대

 

▲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중앙청, 경복궁, 수송동, 팔판동 일대.

 

▲ 1951. 3. 19. 구호 양곡을 먼저 탄 소년과 양곡을 타기 위해 줄을 선 주민들

 

▲ 1950. 10. 12. 원산. 학살된 시신들

 

▲ 1950. 12. 11. 고단한 피난길

 

▲ 1950. 12. 16. 폭격에 엿가락처럼 휘어진 철교.

 

▲ 1950. 12. 17. 보급품을 실은 화물 열차가 폭격에 불타고 있다

 

▲ 1950. 12. 18. 대구.훈련소에서 교육을 마친 신병들이 전선으로 가고자 대구역전 광장에 집결해 있다

 

▲ 1950. 12. 18. 전방으로 떠나는 신병들

 

▲ 1950. 12. 18. 대구역. “총알을 요리조리 잘 피해서 어예든동 살아오이라.   

내는 꼭 살아돌아올 깁니다

 

▲1950. 12. 21. 경북 왜관. 낙동강 철교 어귀에 부서진 북한군 소련제 탱크

 

▲ 1951. 1. 20. 아버지와 아들의 피난길, 다른 가족은 전란에 모두 죽었다

 

▲ 1950. 6. 18. 6.25 한국전쟁 발발 일주일 전 (가운데)일행이 38선 너머 북쪽을 살피고 있다    

(덜레스 오른쪽 신성모 국방장관).

 

▲ 1950. 6. 18. 미 국무장관 덜레스 일행이 38 접경 지대를 살피고 있다

 

▲ 1950. 7. 한미 수뇌부들이 환담하고 있다(왼쪽부터 조병옥 내무장관, 신성모 국방장관, 무초 주한 미대사,    

임병직 외무장관, 워커 주한 미군 사령관).

 

▲ 1950. 7. 26. 맥아더 장군이 전선을 시찰하는 중, 종군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 워커 장군

 

▲ 1950. 8. 15. 이승만 대통령과 신성모 국방장관이 8.15 경축식을 끝낸 후 임시 국회의사당인 문화극장을 떠나고 있다.     신 국방장관은 “아침은 서울에서 먹고, 점심은 평양에서…”  라고 상대의 전력도 모른 채 큰 소리쳤으나 6.25 발발 후 서울시민은 팽개치고 몰래 서울을 빠져나갔다

 

▲ 1950. 8. 18. 백선엽 장군(가운데)이 미군과 함께 작전을 세우고 있다.

 

▲ 1950. 9. 16. 구포 신병 훈련소에서 훈시하는 이승만 대통령

 

▲ 1951. 2. 7. 전선을 시찰하는 맥아더 장군.

 

▲ 1951. 2. 15. 대한민국 해상 이동방송선(HLKT)을 방문한 장면 총리 일행

 

▲ 1951. 9. 콜트 미 8군 부사령관의 이임식장

 

▲ 1950. 10. 22. 평양, 북한 주민의 학살 현장. 누가 그들을 죽였을까?

ⓒ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2.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이 트럭에 실려 고아원으로 가고 있다. 눈망울이 초롱한 아이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 1950. 11. 11. 바지 저고리들의 포로들. 총이나 한 번 제대로 잡아보고 포로가 되었는지?

▲ 1950. 11. 13. 함흥 덕산광산, 482명을 생매장한 갱도에서 시신을 꺼내 늘어놓은 것을 한 아버지가 아들을 찾고 있다. "제발 내 아들이 아니기를..."

 

▲ 1950. 11. 13. 지아비가 생매장된 갱도 어귀에서 오열하는 지어미. "날라는 어찌 살라하고 가시리잇고"

 

▲ 1950. 8. 12. 북한군 포로.

 

▲ 1950. 8. 10. 폭격으로 불타는 마을

 

▲ 1950. 8. 10. 핫바지들을 인솔하는 미 해병대.

 

▲ 1950. 7. 29. 경북 영덕, 포화에 쫓기는 피난민.

 

▲ 1950. 7. 29. 야간전투후 주간 취침.ⓒ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취침 후 병기 손질ⓒ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8. 누가 이 아이를 버리게 했을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8. 다리 아래 피난민 움막ⓒ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9. 임시 포로수용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2. 금강철교ⓒ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1950. 8. 3. 뙤약볕 속에 전선으로 가는 국군 행렬ⓒ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3. 한국전쟁 무렵의 부산항, 멀리 영도가 환히 보인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경남 진주 부근에서 생포한 빨치산(?). 원문은 포로로 되어 있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12. 16. 흥남부두. 후퇴하려고 수송선을 기다리는 병사들ⓒ2004 미국국립문서보관기록소

▲ 1950. 12. 18. 흥남에서 묵호(동해)로 후퇴한 후 수송선에서 내리는 병사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12. 24. 유엔군 후퇴 후 불타는 흥남항ⓒ2004 박도

 

▲ 1950. 12. 27. 인천항에서 출발해 부산항에 도착한 피난민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29. 최전방의 간호사들ⓒ2004 박도

 

▲ 1951. 1. 5. 한미 합작의 한국군 병사 장비. 신발, 겉옷 , 모자 : 한국제. 코트, 소총, 탄환 : 미제ⓒ2004 박도

 

▲ 1951. 1. 5.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미군 부대에 몰려온 한국의 노무자들ⓒ2004 박도

 

▲ 1951. 1. 4. 무개화차에 몰린 피난민들ⓒ2004 박도

 

▲ 1950. 12. 1. 부산 임시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를 등록하려고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1. 1. 4. 대구 근교 신병훈련소에서 신병들이 PRI(사격술 예비훈련)을 받고 있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5. 국군과 유엔군이 수복한 북한의 어느 지역(평산)에서 주민들이 지역 대표와 치안대장을 뽑고 있다. 그들 대표는 무슨 색깔의 완장을 찼을까?ⓒ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9. 22. 전쟁에는 2등이 없다. 포로가 되는 순간부터 치욕이다. 미군들이 생포된 포로의 온 몸을 수색하고 있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9. 20. 미군이 인민군 포로들을 발가벗긴 채 수색하고 있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1. 5. 28. 38선 부근 6마일 남쪽 마을에서 탱크의 포화소리에 귀를 막는 소년들. 이들의 누더기 바지 차림이 그 무렵 소년들의 대표적 옷차림이다.ⓒ2004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18. 애송이 북한군 소년 포로를 미군 포로심문관이 취조하고 있다. 곁에는 통역 겸 여비서라고 표기돼 있다. 엄마 젖 떨어진 지 얼마나 되었을까?ⓒ2004 NARA

▲ 1950. 8. 18. 임시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의 신상명세서를 만들고 있다ⓒ2004 NARA

 

▲ 1950. 8. 18. 포로수용소 천막 안에서 밥을 먹고 있다ⓒ2004 NARA

 

▲ 1950. 8. 18. 포로들이 줄을 서서 밥을 타고 있다ⓒ2004 NARA

 

▲ 1950. 8. 13. 잠깐의 휴식시간에 LMG(기관총) 병기 손질을 하고 있다ⓒ2004 NARA

 

▲ 1950. 8. 13. 박격포 사격 훈련ⓒ2004 NARA

 

▲ 1950. 8. 15. 창녕 남지철교. 국군의 최후 방어선으로 핏빛으로 강물이 물들 만큼 피아 엄청난 희생을 치렀던 격전의 현장이었다.ⓒ2004 NARA

 

▲ 1950. 8. 24. 모정 무한, 젖을 먹이는 어머니ⓒ2004 NARA

 

▲ 1950. 8. 23. 머리에 이고 등에 업고 앞에 붙들고... 고단한 피난 행렬.ⓒ2004 NARA

 

▲ 1950. 8. 25. 폭격에 불타고 기총소사에 죽어가다ⓒ2004 NARA

 

▲ 1950. 8. 15. 마산 부근, 피난민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다ⓒ2004 NARA

 

쌕쌕이의 융단 폭격으로 초토가 된 경북 왜관ⓒ2004 NARA

▲ 1951. 1. 2. 누가 이 여인을 모르시나요? 부산 임시 포로수용소에서ⓒ2004 NARA

 

▲ 1950.9. 15. 인천상륙작전을 함상에서 진두 지휘하는 맥아더 장군ⓒ2004 NARA

 

▲ 1950. 9. 16. 인천에 상륙한 후 시가지를 활보하는 유엔군들ⓒ2004 NARA

 

 

▲ 1950. 9. 16. 인천시가지에서 생포한 북한군들ⓒ2004 NARA

 

▲ 1950. 9. 15. 인천에서 생포한 포로들ⓒ2004 NARA

 

▲ 1950. 9. 25. 한강 도하 작전ⓒ2004 NARA

 

▲ 1950. 9. 27. 경인가도에서 국군 수복을 환영하는 흰옷 입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북한군이 내려왔을 때는 또 다른 깃발을 흔들어야 했던 불쌍한 백성들ⓒ2004 NARA

 

▲ 1950. 10. 1. 서울 시청 일대ⓒ2004 NARA

 

▲ 1950. 9. 29. 유엔 깃발로 펄럭이는 중앙청 광장, 서울 탈환 환영대회가 끝난 직후 바로 옆 건물이 불타고 있다ⓒ2004 NARA

 

▲ 1945. 9. 9. 미군이 서울에 입성하고 있다ⓒ2004 NARA

 

▲ 1945. 9. 9. 미군들이 서울시민들의 환영 인파에 싸여 있다ⓒ2004 NARA

 

▲ 1945. 9. 9. 조선총독이 총독부 홀에서 미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2004 NARA

 

▲ 1945. 10. 12. 부산항 부두에서 일본군인들이 본국으로 떠나기 전 미군들에게 철저하게 검색을 당하고 있다ⓒ2004 NARA

 

 

▲ 1948. 5. 10.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5. 10 총선거에 유권자들이 투표하고 있다ⓒ2004 NARA

 

▲ 1948. 5. 10. 선거 방해 사범으로 체포된 5, 맨 왼쪽 여인은 장택상을 암살하려다가 체포되었다고 기록돼 있다ⓒ2004 NARA

 

▲ 1948. 5. 31. 국회 개원식 날 국회 의사당 앞에서 서북청년단들이 소련 철수를 주장하는 데모를 하고 있다

 

2018.03.29 "北, 6·25때 대동강서 납북공무원 2000명 학살"

납북인사가족協, 미군 문건 입수

"1950년 10월 8일부터 사흘간 총살, 시신은 대형 구덩이 3곳에 매장… 부상당한 포로 등 200여명도 사살" "4월 열리는 남북정상회담 때 학살·납북 피해 문제 다뤄달라"

 

북한군이 6·25전쟁 당시 약 2000명에 달하는 남한 공무원을 학살한 사건이 미군의 기밀문서로 확인됐다. 사흘 동안 이뤄진 대량 학살이었다.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를 통해 입수한 '한국전쟁범죄 사건번호 141에 대한 법적 분석(Legal Analysis of Korean War Crimes Case Number 141)'에는 당시 북한군이 저지른 납북 공무원 학살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나와있다.

 

▲북한군 증언으로 그린 총살 당시 상황 - 1950년 10월 북한군이 평안남도 대동군의 한 언덕에서 납북 공무원 약 2000명을 총살하던 상황을 기록한 그림. 미군 기밀문서‘한국전쟁 범죄 사건번호 141에 대한 법적 분석’38쪽에 나온다. 당시 학살에 가담한 북한군 포로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려졌다.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문건에 따르면, 북한 내무성 소속 부대는 1950년 10월 납북 공무원 약 2000명을 평안남도 대동군 임원면 기암리 북서쪽에 있는 한 언덕에서 학살했다. 그해 9월은 국군과 연합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켜 북한으로 진격하던 때였다. 북한군은 시변리(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시변리로 추정)라 불리는 곳에서 포로 2000여 명을 인도받았다. 서울과 개성 지역 공무원들이었다.

 

학살은 10월 8일 자정 무렵부터 시작했다.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포로 800~ 1000명을 총살했다. 나머지 포로는 같은 방식으로 9일 자정부터 학살했다. 포로가 모두 숨진 시간은 10일 오전 4시 30분쯤이었다. 3일 만에 2000여 명을 학살한 것이다. 북한군은 시신을 쉽게 매장하기 위해 대형 구덩이(mass graves) 3개를 미리 파 두고 구덩이 주변이나 안에 포로를 세웠다. 사살(射殺)과 동시에 시신이 매장되게끔 한 것이다.

 

학살된 포로들이 매장된 대형 집단 무덤 세 곳은 미군과 국군의 현지 조사에서도 확인됐다. 현지 정보원들로부터 이 학살극을 전해 들은 미군은 같은 해 11월부터 조사에 나섰다. 미 육군 소속 존 테일러 중령 등 미군 관계자와 국군 관계자들이 11월 17일 학살이 이뤄졌다는 지역을 방문한 결과, 가로세로가 각 15m 이상, 깊이 2m에 달하는 대형 집단 무덤 3곳이 발견됐다.

 

보고서엔 포로들이 이동하는 동안 학대받은 내용도 나온다. 남한 포로들은 이동하는 동안 식사를 거의 제공받지 못했다. 대열에서 뒤처지면 구타를 당했고, 아픈 포로들은 대열 뒤로 보내진 뒤 사살됐다. 약 200명이 이런 식으로 살해됐다.

 

80쪽짜리 이 문건은 1953년 6월 한반도에 상주하던 미군 후방기지사령부(Korean Communications Zone)가 학살에 가담한 북한군 포로 3명과 민간인 목격자 증언, 현지 조사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이영조(63)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로부터 기증받은 '한국전쟁 범죄 사례(KWC)' 문서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발견했다. 이미일(69)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대표는 "이번 학살 사건으로 한국전쟁 당시 납북 피해가 명확히 증명됐다"며 "4월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이런 납북 피해를 다루지 않는다면 그 평화는 가짜 평화"라고 말했다.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는 28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한반도 평화와 종전을 말하려면 휴전협정에서 미해결의 문제로 남아 지금까지 고통받는 전쟁 납북 피해자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4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반드시 의제화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  조선일보 안상현 기자 조유미 기자

 

■ 6.25 를 결코 잊지말자

1. 파리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파리 세느강 마레다리 근처에 위치한 한국전

 

2. 호주캔버라 Korean War Memorial, Canberra

 

한국전쟁 가평전투에 참가한 호주군인들

 

3. 캐나다

Wall of Remembrance(Brampton, Ontario,
*- 한국전쟁기념비 -*

 

4. 워싱턴,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관
(Korean War Veterans Memorial)

 

링컨기념관 인근에 있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관
(Korean War Veterans Memorial)
의 기념 조형물은 미국
성조기를 향해서 우비를 입은 한 소대가 전진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조각상 양쪽으로 서 있는 벽에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2, 500
명의 얼굴들이 레이저로 새겨져 있다.

미국은 한국전쟁에 150만 명이 참전하여 5 4000명이 사망하고
11
만 명이 잡히거나 부상당했으며, 8, 000명이 실종되었다.

가운데 게양되어 있는! 성조기 아래에는 "조국은 그들이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와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조국의 부름에 응한 아들 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
라고 적혀 있다.

 

5. 맨하탄의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군인들을 기리는 장소가 뉴욕 맨하탄의
최남단 배터리 파크 내에 있다.


배터리 파크 내에는 수많은 기념물과 기념탑이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기념물이 군인 형상의 구멍 뚫린 조각물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Korean War Veterans Memorial)이다.


6. 미국 Connecticut (컨네티컷) West Haven

한국전쟁 참전기념비

 

7. 미국 Atlantic City의 한국전 참전기념비

 

8. 미국 Staten Island에 위치한

Korean War Veterans Parkway

 

9. 보스톤의 한국전쟁기념비

☞ Korean War Veterans of Massachusetts,
Charlestown Navy Yard


출처: 오니온맵 플로그 찰리의 사진첩

 

10.남아공의

케이프타운 한국 전쟁 참전 기념비
 

11.터키 한국전쟁 참전기념탑

한국전쟁 참전 토이기(터키)기념탑에 있는 참전 희생자 명단

터키 수도 앙카라 한국 공원에 있는 높이 9m 4층짜리
한국전쟁 참전토이기(터키)기념탑

서울-앙카라 자매결연을 계기로
1973
11, 1년여간 시공을 거쳐 세워진 탑이다.


12.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촌(한국마을)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국가 중 유일하게
유엔군의 일원으로 6·25 전쟁에 참전했다.

에티오피아군은 화천, 금화, 양구, 철원 등 강원도의
최전방지역에서 공산침략군과 싸웠다.


한국전 참전 16개국 중 유일하게 포로가 없을 정도로
에티오피아군은 가장 용맹스러운 군대였다고 한다.

춘천시는 국가보훈처의 후원으로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아픈쵸베르 공원에 참전용사회관과 기념탑을 건립했다

 

한국전쟁 유엔군 자격 참전국 현황 


6.25 관련 영상



전쟁의 상흔

영상 기록

 

분단시대의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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