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 2021-07/ 문화일보
07월 01일(목) 싱어송라이터 한희정
김종호 논설고문
‘끝도 없이 흩어진 너와 나의 시공간이 이렇게 포개어졌다/ 겁도 없이 흐르던 너와 나의 슬픔은 잠시 숨을 참는다’. 걸출한 싱어송라이터 한희정(42)이 작사·작곡해 부른 노래 ‘입맞춤, 입술의 춤’ 한 대목이다. 그의 또 다른 명곡 ‘더 이상 슬픔을 노래하지 않으리’는 ‘차마 할 수 없었던 말들은/ 닿지 않을 먼 곳에/ 토닥토닥 묻어 놓았지’ 한다. 인연을 읊은 ‘끈’에선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어/ 손끝과 손끝으로 이어지는 무언가/ 가느다랗지만 우리의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는’ 한다. 노래 ‘끝’의 한 구절은 ‘흘러 흘러가는 구름처럼 흐르고/ 흔들 흔들리는 갈대처럼 가눌 수 없었네/ 멈추지 못해 비에 바람에 몸을 적시고’다.
그는 모던록 밴드 더더 제2대 보컬을 맡아 2001년 제3집 앨범 ‘The man in the street’로 데뷔했다. 밴드 푸른새벽도 2002년 결성해 활동하다가, 작사·작곡·편곡·노래·프로듀싱 등을 모두 혼자 한 솔로 제1집 ‘너의 다큐먼트’를 내며 2008년 독립했다. ‘우리 처음 만난 날’ 등 10곡이 담긴 그 앨범은 그가 홍익대 주변인 한국 인디 음악의 성지(聖地)에서 가장 돋보이는 스타라는 의미로, ‘홍대 여신(女神)’으로 불리게도 했다. 그는 장르를 넘나들고 뒤섞으며 ‘한희정 자체가 장르’라는 평판도 듣는다. 맑으면서 쓸쓸한 느낌이어서 여운(餘韻)이 깊고 긴 음색으로, 파격적인 실험 음악까지 시도하며 고유의 세계를 구축했다. 솔로 2집 ‘날마다 타인’ 타이틀 곡인 ‘흙’은 시작부터 감탄사인지 울음소리인지 모를 ‘흙 흙 흙’ 한 뒤에 이렇게 이어진다. ‘그곳엔 분명 아무것도 없어 보였는데/ 밤새 물 한 모금 마시게 한 것밖에 없었는데’. 그러곤 ‘어? 흙! 뿅! 라라/ 무서워 두려워/ 작고 파란 게 돋아났어/ 그 어두운 곳에서’.
“내 기준에 좋은 곡은 고여 있지 않은 것”이라는 그가 지난 2월 내놓은 전위적 음반 ‘공간반응’에 대한 관심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중음악인지부터 혼란스럽지만, ‘Another Inspiration’ ‘양배추즙’ 등 9곡 모두 더 들을수록 묘하게 친근한 매력에 빠져든다고 한다. 가사는 없다. 한숨을 쉬거나, 물을 마시거나, 혀를 차는 소리 등이 바이올린·첼로·피아노 등의 연주에 끼어든다. 오는 10월 나올 새 음반도 기대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07월 02일 ‘하위 80%’ 해괴한 차별
문희수 논설위원
정부가 코로나19 피해 지원을 위해 33조 원 규모의 올해 두 번째 추가경정예산안을 확정해 2일 국회에 제출했다. 역대 최대인 지난해 3차 추경(35조100억 원)에 버금간다. 기존의 예산 3억 원을 합치면 총 지원금은 36조 원으로 불어난다. 재난지원금, 소상공인 지원, 상생소비지원금(카드 캐시백) 등 이른바 3종 패키지에는 15조7000억 원이 들어간다.
그런데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이 논란이다. 올해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해 ‘소득 하위 80%’에 총 10조4000억 원을 지원한다면서도 정작 기준인 소득액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직장·지역 가입자 간 소득 통계 기준이 다른 탓이다. 커트라인이 대략 중위소득의 180∼190%일 가능성이 커 4인 가구 기준으로 연 1억 원 정도라고 추산할 뿐이다.
급기야 이번에는 ‘하위 80%’라는 기이한 구분법이 등장했다. 결국 국민을 80 대 20으로 갈라 차별하는 것이다. 이런 희한한 선 긋기가 동원되는 것은 상위 20%는 차별받는다는 것을 애써 가리는 동시에 80%나 되는 많은 사람에게 지원금을 준다는 것을 부각하려는 의도인 게 분명하다. 국민 모두에게 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뜻도 있을 것이다. 소득 상위 20%는 전체 2320만 가구 가운데 470만 가구 정도라는 게 정부 분석이다.
정부가 세금을 부과할 때나 지원 대상·범위를 정할 때는 소득 등의 금액을 기준으로 하거나, 상위든 하위든 50% 이하의 수치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상위 또는 하위 20%, 30%, 40% 등으로 표기하는 식이다. 소득 5분위도 20%씩 5개 구간으로 나누지만 하위 80%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상위 또는 하위 60%, 70%, 80% 등으로 구분하는 것은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경계선 바로 밖인 계층의 반발과 혼선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민 쪼개기가 점점 해괴해져 간다. 종합부동산세를 세계에 유례가 없는 ‘상위 2%’의 비율로 과세해 징벌세 성격을 더 노골화하더니, 이젠 ‘하위 80%’란 잣대로 상위 20%를 가려내 차별하고 있다. 차라리 중위소득 이하에 해당하는 하위 50%에 두 배의 지원금을 지급하는 게 나을 것이다. 이러다간 국민을 90 대 10으로 가르는 ‘하위 90%’라는 말도 머지않아 등장하게 생겼다.
07월 05일(월) 정치인의 이상과 현실
이도운 논설위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잘 알고, 많은 검사로부터 존경받는 고검장 출신 변호사가 최근 사석에서 “윤석열의 문제는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은 지난달 29일 정치를 선언하는 회견에서 “국민 목소리를 듣고 결정하겠다”며 국민의힘 입당에 선을 그었다. 배우자 과거 논란, 장모 구속 등으로 위기를 맞았지만, 지난 3일 권영세 국민의힘 대외협력위원장을 만나서도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윤석열은 보수는 물론 중도를 넘어 문재인 정권에서 이탈한 진보 세력까지 끌어안는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보수 기반인 영남, 아버지 고향인 충청과 함께 최근 여론조사 지지율 20%가 넘게 나오는 호남도 잡으려 한다. 세대 차원에서도 보수적 60대와 탈이념 성향인 2030에 이어 진보 성향이 강한 4050까지 넘보고 있다. 진영 면에서는 김대중에서 시작해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권 인물까지 영입해 내년 3월 대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하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세 마리, 네 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겠다는 것.
정치란 꿈을 파는 직업. 국민의 일상적 기대를 뛰어넘는 이상적 명분과 목표를 제시할 필요는 있다. 이념·지역·세대·진영을 뛰어넘는 국민 통합 명분과 과반을 훨씬 넘겠다는 담대한 목표로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이겠다는데 비판만 할 수는 없다. 윤석열과 캠프의 물밑 움직임을 보면 허황한 꿈은 아니다. 이명박·박근혜 시절 인사들은 이미 캠프 안팎에서 도움을 주고 있고, 김대중·노무현 정권 사람들, 심지어 진보를 상징해온 특정 종교의 특정 모임까지 윤석열과 접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치인의 발은 언제나 땅을 딛고 서 있어야 한다. 현실성 떨어지는 이상과 명분은 지지자를 떠나게 할 수 있다. 1987년 체제 이후 대통령 선거 최다 득표는 2012년 박근혜의 51.6%다. 민주 국가의 대선에서 압도적 승리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민주당 월터 먼데일 후보를 맞아 58.77% 대 40.56%로 이긴 1984년 미국 대선이 거의 유일하다. 냉전 말기라는 역사적 특수 상황이 만든 결과였다. 선거는 가까스로 이기고, 야당을 존중하는 정치와 시의적절한 정책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얻는 것이 21세기형 민주주의다. 검사 윤석열은 아직 정치인 윤석열로 다시 태어나지 못한 것 같다.
07월 06일 시대착오적 역사인식
이미숙 논설위원
‘해전사’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해방전후사의 인식’(한길사)은 1979년 10월 출간돼 발간 열흘 만에 4500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다. 해방 전후의 역사가 분단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다룬 책으로 출간 후 10·26사태가 나며 금서가 됐는데 1980년 서울의 봄 때 해금되면서 유명해졌다. 이후 1990년까지 총 6권이 시리즈로 발간, 모두 75만 부 이상 팔렸다고 한다. 해방 전후의 정치·사회 운동과 1948년 정부수립, 6·25전쟁, 북한 정권 수립 등을 다룬 논문들이 실렸다. 80년대 대학가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책으로 꼽히면서 ‘86세대의 바이블’로도 불린다. ‘해전사’는 기본적으로 좌파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친일파 문제와 미군정기 정치·사회 운동을 분석했다. 남로당 활동에 대한 기술이 북한 중심적 시각이라는 비판도 있다. 냉전 붕괴 후 구공산권 사료가 새롭게 공개되면서 ‘해전사’에 기술된 6·25 남침유도설 등 팩트 오류도 많이 지적됐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책세상·2006)은 현대사의 좌파적 인식 극복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출간된 책이다. 서울대 박지향·이영훈, 연세대 김철, 성균관대 김일영 교수가 주도했는데 2007년 대선을 전후해 힘을 얻은 뉴라이트 운동의 사상적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이후 연세대 김호기, 서울대 강원택, 중앙대 장훈, 이화여대 박인휘 교수 등 4인은 탈냉전과 세계화를 키워드로 냉전 이후 한국사회를 분석하는 ‘탈냉전사의 인식’(한길사·2012)을 냈다. “좌파적 해전사와 우파적 재인식으로는 변화된 세상을 해석할 수 없다”는 게 저자들의 인식이다. 80년대 대학을 다닌 ‘해전사’ 세대 중도진보 학자들의 자기 극복 노력이라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학계에서는 지난 30년간 해전사에 대한 역사적 평가 및 한계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며 극복작업이 이뤄지고 있는데, 이재명 경기지사가 난데없이 역사의 시곗바늘을 80년대로 되돌려버렸다. 그 자신이 86세대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여전히 해전사적 역사관을 고수하는 것은 퇴행적으로 보인다. “친일 세력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지배체제를 유지했다”는 역사 인식은 너무도 단편적이다. ‘깨끗하지 못한 출발’ 운운하며 대한민국 건국을 부끄러워하는 이가 대한민국 대통령을 꿈꾼다는 것은 역사의 코미디다.
07월 07일 明秋연대와 反바지 동맹
이현종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가장 놀라운 장면의 하나는, 선두를 달리는 이재명 경기지사를 추미애 전 장관이 유일하게 옹호하고 나선 것이다. 이 지사는 반문(反文)의 선두주자인 데 반해 추 전 장관은 친문 강경파(송영길 대표 표현대로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의 적극적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5일 열린 JTBC와 MBN 공동 주최 민주당 대선 예비경선 후보 토론회에서, 이재명표 ‘기본소득’ 공약을 놓고 박용진 후보가 “(이 후보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해 정책이 없다고 뭐라고 하셨는데 흉볼 것 없다”면서 “윤 전 총장은 한 말이 없지, (이 후보처럼) 한 말을 뒤집은 적은 없다”고 몰아붙였다. 앞선 토론회에서도 이낙연, 정세균, 박용진 후보가 이 후보를 협공한 바 있다. 이 후보가 궁지에 몰리자 추 후보는 “박용진 후보가 윤석열 전 총장 갖고 와서 이재명 후보가 기본소득에 대해 말을 뒤집는다고 하는 것은 조금 과하다”면서 “정책을 비판하는 건 모르겠지만, 윤 전 총장을 갖고 와서 우리 후보를 비난하는 것은 원팀으로 가는 데 대단히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추 후보의 엄호에 감격했는지 이 후보는 거듭 “지원해 줘서 감사드린다”고 화답했다. 김두관 후보는 이렇게 이 후보를 감싸는 추 후보를 겨냥, “네티즌들이 ‘명추연대’ ‘재미연대’ 이렇게 말하는데 단일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노골적으로 물었다.
이런 조짐은 경선 연기론 때부터 보였다. 다른 후보들이 경선 연기를 주장할 때 추 후보는 이 후보 편을 들었다. 그러나 6일 TV토론에서 이 후보가 여배우 스캔들 추궁에 “바지 한 번 더 내릴까요”라고 한 발언엔 추 후보도 “부적절했다”고 거리를 두면서도 사과할 기회를 줬다. 우상호 의원은 “혹시 두 분 사이에 뭔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나. 이런 것도 한번 재미있게 들여다볼 요소가 있다”고 했다. 1위가 어려운 추 후보가 이 후보를 방어하는 조건으로 차기 국무총리와 같은 정치적 실리를 얻으려 한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그러나 ‘노무현 탄핵 찬성’ ‘드루킹 수사 의뢰’ ‘윤석열 대권 후보 만들기’ 등 추 후보의 정치적 선택이 늘 여권에 부담을 준 것을 보면, 이번 이재명-추미애의 ‘명추연대’ ‘재미연대’도 자칫 그러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07월 08일 6·25 휴민트
문희수 논설위원
국가 간 정보전은 21세기에도 치열하다. 위성 등 최첨단 정보기술(IT)·장비가 총동원된다. 중국·북한 등에 의한 컴퓨터 해킹 사건도 꼬리를 문다. 이들뿐만 아닌 것도 분명하다. 그래도 진짜 고급 정보를 얻는 데는 여전히 첩보원 등 인적 네트워크 활용이 더 유용하다고 한다. 첩보원·스파이·내부 협조자 등은 휴민트(HUMINT·인적정보)로 불리며, 시긴트(SIGINT·통신정보)·이민트(영상정보) 등과 구분된다. 휴민트는 워낙 은밀해 발각되면 큰 충격을 준다. 특히 미인계(honey trap·꿀 속의 함정)는 사회주의국가의 전략에서 빠지지 않는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 측의 미녀 스파이였던 마타 하리 이후 최근까지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들 ‘현대판 마타 하리’의 무대는 역시 미국이다. 지난해 12월 미국에선 5년간 암약했던 중국의 미녀 스파이 크리스틴 팡 뉴스로 시끌벅적했다. 2018년엔 러시아의 미녀 스파이 마리아 부티나가 있었다.
암호 해독이라면 영국의 천재 수학자인 앨런 튜링이 독보적이다. 튜링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암호체계인 ‘에니그마’를 해독해 연합군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는 컴퓨터의 효시 격인 튜링 기계를 고안해 암호를 빠르게 풀었다. 영국은 1954년 불우하게 숨진 그의 사진이 들어간 50파운드 지폐를 만든다고 지난 3월 발표해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6·25전쟁 때 활약했던 한국인 첩보원(일명 켈로 대원)이 국가의 외면을 받고 있다는 보도다. 한국군이 아닌 유엔군 소속이고, 극비였을 게 뻔한 첩보원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방치되다가 올 3월에야 ‘비정규군 공로자 보상법’이 만들어졌으나 보상금은 쥐꼬리 수준일 것이라고 한다. 어린 10대에 사선을 넘나드는 첩보활동으로 대한민국 수호에 일조했던 한 할머니는 아무도 몰라주는 상황에서 세상을 등진 무명의 동료 첩보원들이 지금도 눈에 밟힌다고 한다. 다른 쪽에서 민주화 유공자라고 국가가 수억 원씩 보상하고,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겠다고 경력·신분 위조 논란까지 벌이는 것과 너무 대조된다. 영국의 튜링처럼 사후에도 국가가 예우해주는 것은 꿈도 못 꾼다. 평범한 국민일지언정 그 애국심이야 누구에게 뒤지겠나. 아무리 근대사를 왜곡해도 애국자를 외면해선 안 될 일이다.
07월 09일 김현철의 시티팝
김종호 논설고문
‘오월의 내 사랑이 숨 쉬는 곳/ 지금은 눈이 내린 끝없는 철길 위에/ 초라한 내 모습만 이 길을 따라가네/ 그리운 사람/ 차창 가득 뽀얗게 서린 입김을 닦아내 보니/ 흘러가는 한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고’. 발라드·재즈·포크록 등을 아우르는 싱어송라이터 김현철(52)이 직접 작사·작곡해 부른 8곡을 담아 1989년 발표한 제1집 앨범 타이틀 곡인 ‘춘천 가는 기차’의 한 대목이다. 한국 대중음악 100대 음반에 드는 그 앨범 수록곡 대다수는 지금도 찾아 듣는 사람이 많고, 다른 가수들이 끊임없이 재발표한다.
이 밖에도 ‘오랜만에’ ‘비가 와’ ‘동네’ ‘달의 몰락’ ‘서울도 비가 오면 괜찮은 도시’ 등 많은 명곡으로 이름을 날리는 스타였던 그는 2006년 제9집 ‘결혼도 못 하고’를 내놓고 음악 활동을 중단했다. “이유 없이 음악이 재미없어졌다”고 한다. 라디오 DJ, 대학교수 등으로만 활동하던 그를 뮤지션으로 돌아오게 한 것은 제1집 노래들이었다. 1980년대 일본에서 ‘시티팝(City Pop)’ 장르로 분류했던 ‘세련되고 도회적 분위기의 음악’이 몇 년 전부터 ‘뉴트로 바람’을 타고 새삼 큰 관심을 모았고, 특히 그의 1집 노래들이 대대적으로 재조명됐다. 이에 자극받은 그는 17곡을 만들어 13년 만의 새 앨범인 제10집 ‘돛’을 지난 2019년 발표했다. ‘나는 나에게 선언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하는 ‘We can fly high’가 타이틀 곡이었다.
‘시티팝 장인(匠人)’ ‘시티팝의 시조새’ 등으로도 불리는 그가 7곡의 시티팝만을 담아서 지난 6월 14일 내놓은 제11집 ‘City breeze & Love song’은 고단한 도시의 삶에 보내는 따뜻하고 정겨운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로 들린다. ‘뭔가 분주한 아침/ 도시의 커튼을 연다/ 파란 하늘과 햇살/ 요즘 나는 달라졌다/ 무얼 해도 좋은 계절이어라’ 하고 시작하는 표제곡뿐만이 아니다. ‘따스하고 간지러운 햇살/ 머릿결을 스쳐 가는 바람/ 아무 말도 없는 웃음/ 서로를 바라본다/ 자질구레 아무 탈도 없이/ 추억 안고 쌓여가는 것들/ 만질 수도 있는 곁에/ 행복은 거기 있다/ 아무렇지도 않은 날에/ 아무렇지 않게 걸어/ 이런 날이 나는 좋다’ 하는 노래 ‘평범함의 위대함’도 그렇다. ‘So Nice!’ ‘눈물이 왈칵’ ‘어김없는 이 아침’ 등도 마찬가지고.
07월 12일(월) ‘친북 통일부’ 무용론
이도운 논설위원
정부에 통일 관련 부처가 처음 생긴 것은 1969년이다. 1967년 국회 국토통일연구특별위원회가 ‘국무위원을 장으로 하는 국토통일원 설치’를 제안하자 국회 본회의가 채택했고, 이에 따라 정부는 이듬해 7월 정부조직법을 개정해 1969년 3·1운동 50주년 기념일에 맞춰 통일원을 개원했다. 연희대학교·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내고 부흥부 장관을 역임한 신태환이 초대 장관으로 발탁됐다.
1988년 출범한 노태우 정부는 소련·중국과의 수교 등 북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북한과의 협상도 염두에 두고 1990년 통일원 장관을 부총리로 격상시켰다. 외무부 장관을 지낸 최호중이 첫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이 됐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 사태 등 경제 및 금융 위기 당시 집권한 김대중 대통령은 정부 조직을 축소하기 위해 통일원을 통일부로 바꾸면서 통일 부총리도 장관급으로 환원했다. 그러나 첫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등 김대중 정부에서 통일부의 역할은 더 커졌다. 2002년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은 김대중 정부의 마지막 통일부 장관인 정세현을 유임시켜 ‘햇볕정책’ 계승을 대내외에 알리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통일부를 외교통상부와 통합하려 했으나 “통일을 포기하느냐”는 비판 여론에 밀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급변 사태 등을 염두에 두고 통일부와 별도로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들어 통일 관련한 정치·외교·경제·산업·에너지·금융 등 제반 문제를 연구하도록 했다. 정부조직법 제31조는 “통일부 장관은 통일 및 남북대화·교류·협력에 관한 정책의 수립, 통일교육, 그 밖에 통일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역대 정권에서 사실상 통일 정책은 청와대가 정책을 주도하고, 남북 협상은 국가정보원이 주도권을 쥐고 실행해왔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통일부 폐지론을 들고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규정했기 때문에 통일부 폐지는 정치적 명분이 떨어진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 통일부가 인권 탄압 등 북한 주민의 참상을 외면하고, 탈북주민을 홀대하며, 북한 정권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논란의 빌미를 준 것이다.
07월 13일 이재명의 ‘로봇세’
이신우 논설고문
대통령 선거철이 다가왔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선 예비경선 무대에서 후보자들 간 정책 발표가 줄을 잇는다. 주목되는 것은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론이 주요 쟁점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내 지지율 1위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제시한 증세 방안이 흥미롭다. 데이터세, 부동산세 등이야 다른 후보들도 많이 거론하는 항목이지만 ‘인공지능(AI) 로봇세’는 매우 새롭다. 경제학계에서는 얼마 전부터 로봇에 세금을 부과하자는 이야기가 거론되고 있으나 정치인이 정강·정책에 담은 것은 이번이 처음일 듯하다.
‘로봇세’라는 개념이 출현한 데는 나름의 배경이 있다. 최근 AI 연구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해 나가는 로봇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생산 공장의 주역으로 떠오른 지 오래인 로봇들이 이젠 고도의 지능으로 무장한 채 화이트칼라 업무까지 손쉽게 처리할 정도다. 영국의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는 AI 로보어드바이저를 도입한 후 투자업무를 담당하던 550여 명의 인력을 해고하기도 했다. 심지어 고임금 직종으로 분류되는 신용분석가·회계감사·변호사 등의 90%가 로봇으로 대체 가능하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납세자가 시계 수리공이나 건설기계 운전자, 환경미화원 등이라면 면세점에 가까워 어차피 이들이 내는 근로소득세는 비중이 극히 작다. 하지만 고액 소득세를 감당할 수 있는 화이트칼라가 사라진다면 황금알이나 다름없는 납세자의 숫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소득세는 법인세나 부가가치세와 더불어 3대 세목(稅目)이다. 자칫 국가 재정이 흔들릴 수도 있다. 조세 당국으로서는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로봇 보유 대수에 따라 세금을 부과해 근로소득세 감소분을 벌충하자는 아이디어다. 그러나 로봇은 장치요 설비다. 노동자가 아니니 노동가치를 측정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2016년 세기의 바둑 대결에서 한국의 이세돌을 4 대1로 물리친 AI 로봇 알파고의 소유자인 데미스 허사비스에게 로봇세를 부과하자고? 허사비스는 알파고에 임금을 지불한 적이 없다. 그냥 회계상 ‘비용’으로 처리할 뿐이다. 그런 로봇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면 기업으로서는 영업이익에 대한 이중과세나 다름없다.
07월 14일 정권 청부지식인
이미숙 논설위원
‘언론에서 인터뷰 또는 기고 요청 들어오면 거절하지 말아 주시길!’ 권경애 변호사는 신간 ‘무법의 시간’에서 2019년 5월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으로부터 이 같은 부탁을 SNS를 통해 받았다고 공개하면서 ‘이런 요청을 받고 언론이나 인터뷰에 응해 정부와 조국 가족을 옹호하는 지식인을 청부지식인으로 부르기도 했다’고 썼다. 권 변호사는 그 직후 어느 신문의 연락을 받고 글을 썼다고 털어놓은 뒤 ‘어리숙한 변호사의 청부 칼럼이었다’고 고백했다. 청부(請負)란 당사자가 상대방에게 모종의 주문을 하고 결과에 따라 보수를 지불하는 행위를 뜻한다. 대개 살인 청부업자 등 부정적으로 쓰이는데 ‘사람이 먼저’라는 문재인 정부 ‘이너서클’에서 통용됐다는 게 놀랍다.
청와대는 친여 지식인들에게 특정 주문을 한 뒤 임무를 완수하면 정부 일자리를 반대급부로 제공하는 청부 관계를 활용해온 듯하다. 친문 성향 인사들은 대개 그런 방식으로 중용됐기 때문이다. 권 변호사 책에는 ‘민정수석실에서 기사를 검색해 지인들에게 여기저기 문자를 보내고 있을 민정수석’이란 대목도 나온다. 민정수석이 청부지식인을 부리는 원청업자 역할을 했다는 암시다. 조국은 민정수석에서 법무장관으로 옮겨가는 사이 서울대 교수로 복직하는 과정에서 폴리페서 논란이 일자 “앙가주망은 지식인과 학자의 도덕적 의무”라고 했다. 지식인을 여론조작 수단으로 동원해온 자신의 행동을 장 폴 사르트르의 앙가주망(사회참여) 개념으로 포장한 것이다.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은 MBC 취재진의 경찰 사칭 사건과 관련해 “나이 든 기자 출신들에겐 굉장히 흔한 일”이라고 했다. “제 나이 또래에서는 한두 번 안 해본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그런 불법 행위가 언론계의 관행인 것처럼 버젓이 거짓말을 했다. 한겨레 신문에서 일하다 청와대 대변인이 돼 흑석동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사퇴한 뒤 여권 위성정당 비례대표 의원이 된 그가 자기편 비호를 위해 친정인 언론계 전체를 모욕한 것이다. 이쯤 하면 주문을 처리한 뒤 보상을 받는 청부언론인 수준을 넘어선다. 이권 카르텔을 지키기 위해선 어떤 불법 행위도 할 수 있다는 광기마저 엿보인다. 문 정권의 청부지식인들은 무법의 시간을 거치며 요설과 궤변의 괴물이 되고 있다.
07월 15일 文의 무기 ‘침묵’
이현종 논설위원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말이던 2006년 11월. 대연정 제안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으로 지지층이 떨어져 나가고, 신당 창당 움직임으로 당·청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윤태영 대변인을 불러 친필 메모를 건넸다. “문장 하나, 낱말 하나도 절대로 바꾸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메모에는 ‘나는 신당을 반대한다. 신당은 지역당을 만들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을 지킬 것이다. 당적을 유지하는 것이 당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고 적혀 있었다.
평소 속에 있는 얘기를 가감 없이 했던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말 당과 사사건건 충돌했다.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4년 중임제’ 원포인트 개헌론 등 다양한 정국 돌파 해법을 제시했지만 번번이 당과 마찰을 빚었고, 지지율은 10%대까지 떨어졌다. 결국 정권을 야당에 내주고 퇴임 후 불행한 사태를 맞았다.
비서실장으로 이런 장면을 생생히 목격한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5년 차인데도 40%대의 국정 지지율을 유지하는 의외의 비결은 ‘침묵’이다. 부동산을 비롯한 경제 실패에 남북관계 파탄, 그리고 최근엔 자랑하던 ‘K-방역’까지 4차 대유행으로 실패하고 있는데도 지지율의 변화는 크지 않다. 여당 대선 경선 주자들도 대통령의 지지율이 30% 이하로 떨어졌으면 각을 세웠을 것인데 대통령을 건드리지 않는 것은 지지율을 의식해서다.
문 대통령의 원래 스타일이 자신의 주장을 말하지 않는데 특히, 자신에게 불리한 사안은 한 달이건 두 달이건 말을 하지 않는다.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밝혀야 할 조국 전 법무장관 비리 의혹에 대해선 온 나라가 떠들썩했지만 문 대통령은 한 달 넘게 침묵하다 신년기자회견 때 “마음의 빚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문 대통령을 오래 접하지 않은 사람은 대통령이 자신의 말을 경청하면 ‘동의한다’로 오인할 가능성이 크다. 여당의 한 인사는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한 줄 알았더니 나중에 비서진이 아니라고 해 놀랐다”고 말했다. 이낙연 전 총리의 전직 대통령 사면 발언도 문 대통령의 사인을 잘못 해석해 벌어진 일이라는 관측도 있다. 침묵은 시빗거리를 없앨 수는 있지만, 국정 책임자에게는 무책임·무능의 상징일 수 있다.
07월 16일 ‘한전 주가’ 잔혹사
이신우 논설고문
“이 시각, 가장 역적은 문재인 (대통령) 뽑아놓고 해외로 이민 간 ○들.” 네이버 증시 사이트에 들어가면 한국전력 ‘종목 토론실’이 있다. 거기에 맥 못 추는 한전 주가와 관련해 이런 분노의 댓글이 달려 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그다지 실망할 것도 없다. 이제라도 늦지 않으니 내년 3월 대선을 겨냥해 조금씩 한전 주식을 사 모으면 어떨까. 현재 한전의 주당 가격은 2만5000원 선을 배회하고 있다. 문 정권이 들어서기 전인 2016년에는 최고가가 6만3600원까지 올라간 적이 있다. 그렇다면 한전 주식은 왜 이렇게 폭락했을까. 당연히 문 정권의 탈원전 정책 때문이다. 한전 주가 폭락은 이처럼 탈원전이 범인이지만 그나마 2만5000원 선을 버티는 것도 원전을 완전히 폐기하지 못한 덕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는 모두 24기의 원자력발전소가 있으나 현재 16기가 가동 중이다. 한전 전체의 매출 비중에 비해서는 2019년 15.2%에 불과하다. 그래도 영업이익 비중은 67%를 차지했다. 2020년 영업이익 비중은 32.8%로 줄어들었지만 금액으로는 5000억 원이나 증가했다. 영업이익 비중이 크게 준 것은 이 해에 화석에너지값이 폭락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올해는 에너지값들이 폭등하고 있다. 엄청난 적자가 불가피할 것이다. 이들 수치를 보면 한전이 영업이익을 회복하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원전을 전면 재가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 정권이 끝나면 원전이 재가동될 가능성이 크다. 보수·진보를 불문하고 차기 대선의 승자는 탈원전 정책을 고수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가 실시한 ‘에너지 정책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한국에 가장 적합한 발전원 1위가 원자력이었다. 응답자의 68%가 ‘원전 확대’와 ‘원전 유지’를 원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면서 탄소 중립을 이루기 위해 원전이 필수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이 정도라면 대통령 뽑아놓고 해외로 이민 가버렸던 사람들도 다시 돌아와 주식을 사들일 만큼 한전 주식은 매력적이라 할 수 있다. 구입가보다 너무 떨어지는 바람에 아까워 팔지 못하고 있는 투자자들이 있다면 그들 역시 손절보다 내년까지 버티는 것이 나을 것이다.
07월 19일(월) 김연경의 올림픽
김종호 논설고문
“내가 선수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올림픽 메달이다. 코로나19 사태로 해외 리그의 경기가 자주 있기 어려운 상황에선 국내 팀에 복귀하는 것이 경기력 유지에 도움된다. 복귀하면, 총액 23억 원에 연봉 18억 원인 프로배구 구단의 샐러리캡 제도 때문에 후배들에게 금전 피해가 클 수 있어서 내가 대폭 삭감을 기꺼이 감수하기로 했다”. 한일전산고를 졸업하고, 2005년 프로 무대에 데뷔한 뒤 세계 최고의 기량을 쌓아 ‘배구 여제(女帝)’로 불리는 김연경(33) 선수가 해외 진출 11년 만에 지난해 국내 V리그로 돌아오면서 한 말이다. 연봉 20억 원을 받아온 그는 흥국생명 측이 연봉 4억5000만 원과 옵션 2억 원 등 6억5000만 원을 주겠다고 했는데도, 후배들을 더 잘 대우해 달라며 스스로 연봉을 3억3000만 원으로 낮췄다.
그는 경기장에서 집요하고 거친 승부사(勝負士)지만, 경기장 밖에선 2009년부터 가정 형편이 어려운 배구 꿈나무들에게 매년 수천만 원의 장학금을 줘온 ‘기부 천사’이기도 하다. 대한배구협회로부터 지난해 받은 올림픽 본선 진출 격려금도 전액 기부했다. 2020도쿄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의 결승에서, 그는 진통제를 먹고도 고통이 극심한 상황에서 찢어진 복근(腹筋)을 움켜쥐면서까지 투혼을 발휘하고 “후배들이 차린 밥상에 나는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다. 후배들과 코치진이 너무 고맙다”며 겸손해했다. 실력과 인성을 두루 갖춘 그를 두고, 이탈리아 출신인 스테파노 라바리니 한국 배구 대표팀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그냥 주장이 아니다. 카리스마와 실력과 친화력으로 팀 모두를 뭉치게 한다. 한국의 보물이다.”
2012년 영국 런던올림픽에선 한국 여자배구가 4위를 했지만, 최우수(MVP) 선수상은 그가 받았다. 그가 2016년 브라질 리우올림픽에 이어 3번째 본선에 출전하는 올림픽인 도쿄올림픽이 오는 23일 개막된다. 사격의 진종오와 함께 한국 선수단 주장이면서, 개회식에선 수영의 황선우와 같이 한국팀 공동 기수(旗手)로 나서는 그는 “코로나로 힘든 시기를 겪는 국민에게 다소라도 힘이 되게 최선을 다하겠다.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모든 사람에게 본보기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배구뿐 아니라 모든 종목의 태극전사들이 땀 흘린 만큼 결실을 거두기를 기원한다.
07월 20일 청해부대의 영광과 굴욕
이도운 논설위원
청해부대는 해상 무역을 통해 통일신라의 국력을 키웠던 장보고가 전남 완도에 설치했던 청해진(淸海鎭)에서 이름을 따왔다. 한반도 주변 해역을 넘어 5대양과 6대주를 바라보는 대양해군과 대한민국의 기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청해부대는 2009년 3월 3일 국회가 ‘국군부대의 소말리아 해역 파병 동의안’을 가결하면서 창설됐는데, 4500t급 문무대왕함 등 구축함, 대잠수함 헬기 슈퍼링스와 특수전 요원 UDT/SEAL로 꾸려진 검문·검색팀 30명 등 300여 명의 장병으로 구성됐다. 구축함은 4∼5개월 단위로 교체 투입된다.
청해부대는 바레인에 있는 연합해군사령부와 공조해 해적 차단·테러 방지 임무를 맡고, 소말리아 아덴만을 통과하는 한국 선박의 해적 피해를 예방한다. 아덴만은 유럽에서 상품을 실은 무역선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한 뒤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한국 무역선은 아덴만에서 아라비아해를 거쳐 인도양∼말라카 해협∼태평양을 통해 우리 항구로 들어온다.
청해부대 파견은 우리 해군 전투함의 첫 해외 파병이라는 의미도 크다. 특히 2011년 1월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삼호주얼리호를 구출하는 전과를 올렸다. 5시간의 작전을 통해 해적 8명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하면서 한국인 8명을 포함한 선원 21명을 전원 구출했다. ‘아덴만 여명작전’은 공해상에서의 첫 해군 작전이었지만,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해 대한민국 해군의 위상을 과시하고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생포 해적들은 국내에서 재판에 회부됐다. 복부에 관통상을 입으면서 청해부대 작전을 도운 석해균 선장과 그를 수술한 이국종 아주대 교수도 국민적 영웅이 됐다.
빛이 있는 곳엔 그늘도 있다. 2019년 5월 24일, 청해부대 28진인 최영함이 아덴만에서 귀환해 입항 환영행사를 진행하던 중 홋줄이 풀려 병사 1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최근에는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 승조원 301명 가운데 247명이 코로나에 집단감염돼 국내로 이송됐다. 적군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부른 ‘패퇴’다. 세계 해전사를 빛낸 이순신 장군과 이달 초 작고한 6·25 영웅 최영섭 함장이 지하에서 탄식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07월 21일 초음속 콩코드의 부활
문희수 논설위원
1969년 1월 상업 운행을 시작했던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는 세계적인 화제였다. 통상 음속(시속 1224㎞)의 1.2배(마하 1.2) 이상이면 초음속이라고 불린다.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 개발한 콩코드는 마하 2 이상으로 날았다. 시속 800∼1000㎞인 일반 여객기보다 2∼3배 빨랐다. 콩코드는 주로 런던∼뉴욕과 파리∼뉴욕 구간을 운항했다. 일반항공기로 7시간 걸리던 런던∼뉴욕을 3시간30분 이내에 주파했다.
그러나 낮은 경제성이 문제였다. 승객수가 100명 이내인 소형이어서 좌석은 이코노미인데 요금은 퍼스트 클래스 수준이었다. 또, 엄청난 동력을 내기 위해 일반항공기의 9배가 넘는 연료가 필요했다. 그래도 5시간 이상 날지 못해 아시아 등 장거리 노선을 운항하지 못했다. 음속을 돌파할 때 내는 굉음(소닉붐)도 큰 문제였다. 민원이 많아 하루에 한 번밖에 운항하지 못했다. 2000년 파리 공항에서 콩코드가 이륙 3분 만에 원인 모를 화재로 107명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은 결정타였다. 결국 콩코드는 2003년 퇴장했다.
이런 비운의 콩코드가 곧 부활한다. 21세기 첨단 기술을 갖춘 미국 스타트업 3개사가 이르면 2025년 초음속 여객기를 내놓는다고 한다. 약 1만㎞인 인천∼LA 구간 비행시간이 현재 11시간(직항)에서 5시간 정도로 단축될 수 있다. 이들 업체 중 ‘붐 슈퍼소닉’은 100달러만 내면 마하 1.7의 속도로 모든 노선을 4시간 내에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호언한다. ‘에어리온 슈퍼소닉’이란 곳은 미사일보다 빠른 마하 4.3의 여객기를 개발 중이다.
이에 자극받아 일본·중국 등도 잰걸음이다. 일본은 민관 연합체를 만들어 첨단 원천기술 확보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미국에 대항할 극초음속 미사일 등 신형무기 개발을 겸해 총력을 쏟고 있다. 한국은 지난 4월 최대 마하 1.8의 국산 4.5세대 초음속 전투기(KF-21) 시제기를 내놓아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2028년까지 개발을 마칠 예정이다. 그런데 최근 북한이 한국항공우주산업 등을 해킹해 핵심 정보를 빼갔다는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준다. 국가정보원 등이 문단속을 못 해 애써 개발한 첨단 기술을 날릴 판이다.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이 정부는 북한에 항의라도 하고 있나.
07월 22일 中 ‘에드거 스노’ 띄우기
이미숙 논설위원
최근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면에는 시안 스노(71)라는 독자의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왕이 외교부장이 ‘중국의 붉은 별’을 쓴 미국 저널리스트 에드거 스노를 치켜세우며 기자들에게 스노처럼 중국의 다양한 측면을 진실하게 보도하라고 촉구했다. 이것은 기자들에게 중국을 비판하는 기사보다 긍정적인 기사를 쓰라는 주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스노가 시진핑 체제의 언론정책을 지지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그의 저작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무시하거나 그 명성을 악용하는 것이다.”
기고자는 자신을 스노의 딸이라고 소개한 뒤 “아버지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언론을 신뢰하며 사실에 근거한 기사를 썼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홍콩 핑궈르바오를 폐간시키며 언론 탄압에 열중하는 중국 당국이 스노를 ‘어용 기자’ 모델로 만들려는 데 대해 제동을 건 것이다. 중국은 올 초부터 집중적으로 ‘스노 띄우기’를 하고 있다. 왕 외교부장은 지난 1월 외교부 신년 기자회견 때 “스노는 미·중 우호를 위해 힘쓴 기자”라고 했고, 3월에는 “중국공산당 혁명을 가장 객관적으로 보도한 저널리스트”라고 했다. 화춘잉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에는 스노와 같은 기자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트위터에 올렸다. 중국 영문 일간지 ‘차이나데일리’ 편집국은 에드거 스노 뉴스룸으로 개칭했다.
‘중국의 붉은 별(1937)’은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등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대장정 등을 거치며 대륙을 장악하는 과정을 쓴 책인데, 중국공산당 활동을 낭만적으로 그렸다는 비판도 받는다. ‘불온 서적’이었던 이 책은 1985년 번역돼 운동권 필독서가 됐다. 86세대의 친중적 세계관을 형성시킨 결정적 책이기도 하다. 일부 학자는 스노가 자발적으로 중국공산당의 검열에 응했다고 주장한다. 중국 수뇌부와 우호적 관계를 위해 저널리스트의 독립성을 포기한 채 중국공산당 홍보대사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중국공산당 100주년의 해에 스노 띄우기가 시작된 것은 종신 집권을 꿈꾸는 시 주석에게도 평생 마오 편에 섰던 스노 같은 저널리스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노의 딸이 ‘아버지의 언론 유산을 왜곡하지 말라’고 경고한 만큼 중국의 ‘제2 스노 만들기 공작’은 쉽지 않을 것 같다.
07월 23일 김성태의 ‘나비효과’
이현종 논설위원
브라질 나비의 날갯짓이 대기에 영향을 주고 증폭돼 미국을 강타하는 토네이도와 같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나비효과’라고 한다. 미국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가 1961년 기상관측을 하다가 생각해 낸 이론이다. 정치 영역에서도 나비효과는 입증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으로 21일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데는 허익범 특검의 역할이 있지만, 특검을 9일간의 단식으로 관철시킨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없었다면 묻혔을 것이다.
지난 2018년 1월 유튜브에서 네이버의 댓글이 조작되는 것 같다는 고발이 있었고, 친여 방송인 김어준 씨가 이를 공론화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인 추미애 전 법무장관이 공개 석상에서 문제를 제기했고, 당 차원에서 수사를 촉구했다. 네이버가 경찰에 고발하고 반정부 댓글 부대가 있을 것이라는 추정에 따라 경찰은 강도 높은 수사를 벌였다. 그러나 추측과는 달리 드루킹 김동원 씨가 민주당 권리당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수사 강도는 약해지기 시작했다. 이에 김 전 원내대표는 특검 도입을 위한 대여 투쟁을 주도했지만 4·27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6·13 지방선거전이 시작되면서 민주당은 특검 도입을 완강하게 막았다.
그러자 김 전 원내대표는 5월 3일 전격적으로 국회 본관 앞에서 텐트를 치고 홀로 노숙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단식 농성 과정에서 30대 남성으로부터 얼굴 등을 가격당하는 폭행을 당하기도 했고, 일부에서는 소금을 섭취한 것을 두고 ‘우유를 마시며 단식 쇼를 한다’며 사실을 왜곡해 공격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단식 장소 앞에 카메라를 설치했고, 농성장으로 피자를 보내기도 했다. 단식 9일 만에 김 전 원내대표는 건강이 악화했고, 그 사이 새로 여당 원내대표가 된 홍영표 의원이 드루킹 특검법에 찬성하게 된다.
김 전 원내대표의 ‘날갯짓’이 김 전 지사 구속이라는 ‘태풍’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김 전 원내대표는 이후 자녀의 KT 특혜 채용 의혹이 불거져 고초를 겪은 데다 단식 후유증이 여전하다. 과격한 투쟁이 비판받을 때도 있지만, 야당이 선명성을 잃으면 들러리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을 국민의힘은 명심해야 한다.
07월 26일(월) 코발트 전쟁과 적폐 청산
이신우 논설고문
지난 5월 포드자동차의 전기차 공장을 찾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호언장담했다. “전기차 경쟁에서 중국이 이기도록 놔두지 않겠다.” 그러자 세계 최대 광산 기업인 글렌코어의 최고경영자(CEO) 이반 글라센버그는 백악관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중국에 대항하겠다는 서방 세계가 제대로 된 배터리 소재 개발에는 관심도 기울이지 않으면서 헛된 꿈만 꾸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세계 코발트 생산량의 최대 40%를 장악하는 등 소재 확보에 적극 나서는 데 반해 서방 기업은 지나치게 안이한 태도를 보인다는 비판이었다.
코발트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핵심소재다. 수요 폭발로 지난 1년간 77%나 값이 올랐다. 중국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이 전 세계 코발트 생산량의 70%를 점유하고 있음을 감안해 어느 서방 선진국보다 앞서 콩고에 정성을 쏟아붓고 있다. 이미 이곳 생산량의 절반 가까이 보유한 상태다. 반면 미국과 유럽의 코발트 생산량은 미미하기 짝이 없다. 지난해 전 세계 코발트 생산량은 총 14만t인데 미국은 600t에 그쳤고 유럽은 생산량이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다. 만에 하나 중국이 자원 무기화에 나설 경우, 서방 세계의 배터리 공장은 ‘자동 스톱’할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도 이 같은 비상 상황을 의식한 듯 최근 민간 기업의 해외 소재 광물 개발 프로젝트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런 지원 계획과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보유 중인 코발트 광산에 대해 매각 방침을 굽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는 현재 한국광물자원공사가 보유하고 있는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코발트 광산 지분 매각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광산은 4조7000억 원 이상을 투입한 가장 성공적인 해외자원 개발 사업으로 꼽히는 곳이다. 하지만 ‘적폐 정권’이라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 이를 구입하면서 광물공사를 빚더미로 만들었다는 게 미움받는 이유인 듯하다. 그 때문인지 칠레 산토도밍고와 파나마의 코르베파나마 구리광산 등도 매각 대상으로 내몰린 지 오래다. 모두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들이다. 며느리가 미우면 발뒤축이 달걀 같다고 나무란다나? 그렇다고 서방 국가들이 구하지 못해 안달이 난 광물 자원까지 미워할 건 아니지 않은가.
07월 27일 실험미술가 이강소
김종호 논설고문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입자와 에너지, 이곳과 저곳, 있음과 없음, 나와 너 등 모든 시·공간의 찰나를 마치 신선처럼 왔다 갔다 하며, 기운생동(氣韻生動)의 붓질로 그림을 그려왔다.” 한국 실험미술의 1세대 거장(巨匠)인 이강소(78) 화백이 최근 어느 자리에서 한 말이다. 이렇게 덧붙였다. “장자(莊子)가 말한 ‘나비의 꿈’처럼 우리가 보는 세상은 환상이다. 각자 경험에 따라 현실은 달리 보인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캔버스도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다. 설치를 포함한 모든 내 작품은 존재의 증명이 아니다. 보는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한다. 나는 멍석만 깔 뿐이다. 보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느끼게 하는 것이 내 작업의 출발이다.”
헤엄치는 오리들을 추상화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 연작이 널리 알려져 ‘오리 화가’로도 불리는 그는 철학적 사유(思惟)를 회화·퍼포먼스·설치·조각·도예·비디오·사진 등 전방위 미술 장르에서 파격적으로 표현해왔다. 서울대 미술대 회화과를 1965년 졸업한 그가 1973년 서울 명동화랑에서 연 첫 개인전 ‘소멸’부터 충격이었다. 전시장을 선술집으로 만들었다. 관객들이 술과 안주를 사 먹고 대화하며, 모든 존재와 삶의 ‘본질’과 ‘허상’을 탐색하는 작가의 퍼포먼스에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했다. 그 연장선에서 1977년 제9회 프랑스 파리 청년비엔날레에 선보인 ‘무제 75031’은 ‘관계성의 미학’을 구현한 명작으로, 지금도 세계 미술계에서 회자된다. 닭의 발목에 끈을 매어 말뚝에 묶고, 석회 가루를 놔뒀다. 닭이 3일 동안 움직이며 전시장 바닥에 석회 발자국을 남기게 했다. 닭을 본래 키우던 농장으로 보낸 뒤의 전시장에는 그 흔적과 과정의 사진 9장을 설치했다. 관객에게 인식·느낌·경험의 단서(端緖)만 제공했다.
이 화백이 “내가 의도한 대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써지고 그려지는 그림”이라는 대표작 30점으로, 서울 삼청로 갤러리현대에서 지난 6월 16일 시작한 3년 만의 개인전 ‘몽유(夢遊·From a Dream)’가 오는 8월 1일 끝난다. “작가는 자기 파괴에 소홀하면 안 된다. 계속 변하지 않으면 골동품이 된다”고 말하는 그의 끝 모를 도전이 뿜어내는 ‘기(氣)’를 연작 ‘샹그릴라’ ‘허(虛)’ ‘청명’ ‘강에서’ 등을 통해 흠뻑 받을 수 있는 기회다.
07월 28일 우주 여행과 우주 쓰레기
문희수 논설위원
우주여행 시대다. 세계 최고 갑부인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지난 20일 고도 106㎞까지 올라가는 우주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11일 첫 테이프를 끊었던 영국의 71세 억만장자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에 이어 두 번째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오는 9월 지구 궤도 비행을 준비 중이다.
우주여행을 두고 우주 논쟁도 벌어진다. 브랜슨이 갔던 고도 86㎞는 우주가 아니며, 베이조스의 106㎞가 진짜라는 것이다. 유럽 국제항공우주연맹이 따르는 ‘카르만 라인’은 고도 100㎞ 이상을 우주로 정의한다. 그렇지만 미국 항공우주국과 미국 연방항공국은 고도 80㎞ 이상을 우주로 본다.
사실 대기권 밖인 외기권부터 본격적인 우주가 시작된다. 대기권은 지표에서 고도 약 500㎞까지다. 대기권은 다시 대류권·성층권·중간층·열권 등 4개 층으로 나뉜다. 지상에서 고도 약 11㎞까지는 대류권, 고도 50㎞까지는 성층권, 그 위로 고도 80㎞까진 중간층, 고도 500㎞까지는 열권이다. 86㎞나 106㎞ 모두 열권이다. 광활한 우주를 놓고 도토리 키재기를 한다. 브랜슨과 베이조스가 세운 우주 서비스업체 간 부질없는 경쟁에 불과하다.
대기권 밖인 우주는 텅 빈 게 아니다. 인공위성을 올릴 수 있는 궤도는 한정돼 있는데 이미 포화상태라고 한다. 지구 저궤도인 고도 250∼2000㎞ 상공에는 통신위성들이 즐비하다. 지구의 자전과 주기가 같은 정지위성은 고도 약 3만6000㎞ 상공에 있는데, 경도별로 0.1∼0.2도씩 촘촘하게 배치돼 있다.
그런데 우주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그 중엔 파손된 위성 등도 수두룩하다. 미국 합동우주작전센터에 따르면 지구 궤도에는 우주물체 2만3000여 개가 떠다닌다. 머스크가 창업한 스페이스X는 전 세계 우주인터넷 서비스를 위해 통신위성 1만1925대를 저궤도에 올려놓고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창공으로만 보이지만 실제 우주 모습은 다르다. 민간 우주여행 시대가 됐으니 우주 이용 윤리 헌장이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다. 멀기만 했던 우주가 어느새 성큼 다가와 있다. ‘거부들의 놀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우리에겐 그저 부럽기만 하다. 우리는 언제쯤이나 독자 기술로 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을까.
07월 29일 지역감정의 덫
이현종 논설위원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금기(禁忌)’의 영역으로 빠져들고 있다. 민주당 내에선 건들지 말아야 할 핵심 이슈가 ‘호남 차별’ 문제다. 당의 뿌리가 호남에 있다 보니 영남 출신 후보들이 이 문제에 잘못 접근했다가 낭패를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이번에도 영남 출신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백제 발언을 꺼내면서 다시 불이 붙고 있다.
호남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1593년 7월 16일 친구인 사헌부 지평 현덕승에게 쓴 편지에 나오는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말에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정치인들이 호남에 갈 때 이 말을 빼놓지 않는다. ‘국가 군량을 호남에 의지했으니, 만약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는 충무공의 언급이다. 곡창지대인 호남이 왜(倭)에 점령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는 의미인데 지금은 호남의 정치적 자부심을 상징하는 말이 됐다.
백제 발언 논란은 이재명 지사가 지난 23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이낙연 전 대표가) 당 대표 출마하시면서 (경기도에) 오실 때 내가 진심으로 꼭 잘 준비하셔서 대선 이기시면 좋겠다, 이 말씀 드렸다”며 “그 말씀을 드렸던 이유는 한반도 5000년 역사에서 백제, 호남이 주체가 돼서 한반도 전체를 통합한 예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이에 이 전 대표는 “어떤 사람과 지역을 연결해 확장력을 얘기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라고 불쾌감을 토로했다. 이 지사는 “떡 주고 뺨 맞은 격”이라고 했지만 ‘호남 출신은 확장력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되면서 ‘영남 역차별론’에 이어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도 2006년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통령도 부산 출신인데 부산시민들이 왜 부산 정권으로 안 받아들이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지난 대선 때 이 발언이 다시 논란이 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 의원과 함께 호남 지역을 다니며 무마를 시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3년 9월 호남 지역 기자들과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호남사람들이 이회창 후보가 싫어서 나를 찍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충청 핫바지론’ ‘우리가 남이가’ 등 지역 정서를 자극하는 발언이 선거 판세를 좌지우지했다. 간신히 봉합된 지역 정서가 좀비처럼 되살아나고 있다.
07월 30일 막내린 오페라 대장정
이미숙 논설위원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코로나19 팬데믹에 지친 세계인들을 위해 진행해온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 ‘한밤의 메트 오페라’가 지난 25일 주세페 베르디의 ‘가면무도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메트 오페라는 지난해 3월 이 시리즈를 시작한 뒤 홈페이지를 통해 매일 한편씩 서비스를 했는데, 오는 9월 공연 재개를 앞두고 스트리밍 대장정을 마친 것이다.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전성기 공연작인 ‘라보엠’에서,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을 전면중단하기 직전 올린 헨델의 오페라 ‘아그리피나’까지 지난 71주 동안 메트가 선보인 오페라는 500편에 달한다.
세계 어느 나라 오페라단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기획을 16개월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40여 년간 축적해온 공연영상물이 워낙 풍부한 덕분이지만, 어떤 어려움 속에도 공연은 지속돼야 한다는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메트는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멈추지 않고 혁신적 기획을 잇달아 선보였다. 줌을 통한 오페라 갈라 콘서트와 성악가 독창회를 시리즈, 오페라 신예 스타 오디션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 위기가 전면화했던 지난해 4월 세계 정상급 성악가 40인과 메트 합창단·오케스트라를 줌으로 연결한 ‘앳 홈 갈라(At-Home Gala)’ 콘서트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음악회에는 미국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 독일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과 러시아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 등이 집에서 공연하는 모습이 줌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특히 봉쇄조치로 각자의 집에 머물던 메트 합창단이 줌 화면 속의 지휘자를 응시하며 부른 오페라 ‘나부코’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코로나에서 해방되길 원하는 모든 이에게 감동을 줬다.
메트 오페라 오디션은 지난해 9월부터 화상으로 진행됐다. 1200명이 경쟁한 예선에서 10명이 최종 선발됐는데 여기에 한국의 20대 성악가 3명이 이름을 올렸다. 5월 열린 결승 콘서트에서 베이스 바리톤 한정원은 파이널리스트로 남았지만, 소프라노 김효영, 테너 듀크 김은 미 성악가들과 함께 5인의 최종 우승자가 됐다. 요즘 메트의 주역은 대부분 구소련 및 동유럽, 중남미 출신이다. 현재 활동 중인 소프라노 캐슬린 김, 박혜상, 테너 이용훈, 바리톤 연광철에 이어 올해 우승자들이 2020년대 메트의 주역으로 활약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