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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021/ [101] 늙음이 겸손과 지혜가 되려면 -[120] 페스트에도 이득 본 사람 있었다

상림은내고향 2021. 7. 21. 17:26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조선일보 소설가 2021

 

03.03

[101] 늙음이 겸손과 지혜가 되려면

 

나는 오싹함을 느꼈다. 내 얼굴은 아마도 파랗게 질렸던 모양이다. 우리는 잠시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대로 서 있었다. 메르세데스는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늙어버렸다. 나는 눈앞의 그녀와 지난날의 메르세데스를 비교해보았다.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녀의 아름다운 이마와 예쁜 눈만 변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메르세데스, 아무리 세월 탓이라 해도….” - 에두아르도 아리아스 수아레스 ‘서러워라, 늙는다는 것은’ 중에서

 

북서풍이 불지 않아 먼지 없는 날이면 밖으로 나간다. 뺨을 쓰다듬는 햇빛과 바람이 한결 부드럽다. 아직 앙상한 가지뿐인 나무들조차 싱그러운 기운을 뿜어낸다. 새들의 지저귐은 발랄하고 날갯짓도 쾌활하다. 봄이다.

 

노란 고양이가 작은 언덕 위에 누워 있다. 한참을 쳐다봐도 움직이지 않는다. 검은 고양이가 그 옆에 앉아 우두커니 죽음을 지키고 있다. 생명이 돌아오는 봄에도 떠날 것은 떠난다. 마지막이 언제인지 알 수 없으나 이 봄이 살아가면서 맞는 첫 번째 봄이다. 오늘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첫째 날이다. 지금이 남아 있는 시간 중 당신이 가장 젊은 순간이다.

 

콜롬비아 작가 E 아리아스 수아레스<사진>가 1944년에 발표한 단편소설의 콘스탄티노는 긴 방랑 끝에 고향으로 돌아와 옛 연인과 재회한다. 메르세데스는 다른 남자와 결혼해 잘 살고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엔 20년의 세월이 할퀴고 간 흔적만 가득하다. 젊은 날의 메르세데스를 쏙 빼닮아 너무도 아름다운 그녀의 딸이 콘스탄티노의 마음을 흔든다. 그러나 자신도 늙었음을 고통스럽게 깨달은 그는 다시 고향을 떠난다.

 

여든을 앞둔 어머니는 여기저기 몸이 아프다면서도 “익어가느라 그런다. 그래야 땅에 떨어져 새로 태어나지”라고 말한다. 늙는다는 것은 약해지는 것이다. 약한 것은 서러운 법이다. 하지만 낮추고 물러설 때 연약함은 겸손이 되고 지혜가 된다.

 

보통 사람은 때가 되면 일선에서 은퇴한다. 정치 권력자들만 정년도 없고 물러나지도 않는다. 노년의 건강과 열정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끝없는 노욕(老慾)과 노추(老醜)를 견뎌야 하는 국민은 괴롭다.

 

[102] 대웅전을 불태운 수행자의 번뇌망상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나를 태워 죽일지도 모를 불이 금각도 태워 없앨 거라는 생각은 나를 거의 도취시켰다. 똑같은 재앙, 똑같은 불의 불길한 운명 아래, 금각과 내가 사는 세계는 동일한 차원에 속했다. 나의 연약하고 보기 흉한 육체와 마찬가지로, 금각은 단단하면서도 불타기 쉬운 탄소의 몸을 지니고 있었다. 도둑이 보석을 삼켜서 숨기고 달아나듯, 내 몸속에 금각을 숨겨 도망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중에서

 

단풍으로 유명한 내장사의 대웅전이 화재로 전소되었다. “함께 생활하던 스님들이 서운하게 해 술을 마시고 우발적으로 불을 질렀다”고 한 수행자가 방화를 자백했다. 마음을 다스려 큰 지혜를 얻겠다며 머리 깎고 속세를 떠났을 텐데 남이 좀 서운하게 했다고 술을 마신 것도 모자라 수행처에 불까지 질렀다니, 아둔한 중생은 그 마음이 쉽게 헤아려지지 않는다.

 

1956년에 출간된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금각사’의 주인공 미조구치는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말더듬이 소년이다. 그는 금각사의 전각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 믿는다. 전쟁 중 눈부신 금각도, 못생긴 자신도 함께 불타 사라질지 모른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기뻐하지만 끝내 아무런 손상도 입지 않은 전각과 여전히 초라한 자신은 별개의 존재임을 깨닫는다.

 

이 소설은 실제 금각사 방화 사건을 소재로 한다. 당시 방화범은 ‘인간 소외’와 ‘아름다움에 대한 질투’ 때문에 불을 질렀다고 했다. 그를 모델로 한 미조구치도 금각에 불을 지르고 달아난다. 지고의 아름다움을 무너뜨리며 높이 치솟는 불길을 바라보던 그는 살아야지, 하고 생각한다. 죽음과 탄생, 파괴와 창조의 순환 등, 다양한 문학적 해석이 가능한 결말이다.

 

현실은 다르다. 서운해서 술을 마셔야 한다면 바닷물이 술이라도 모자랄 것이다. 화날 때마다 불을 지른다면 남아날 건물도 없다. 덕 높은 수행자도 어딘가엔 있겠지만 술 마시고 패싸움하고 룸살롱 드나드는 승려들, 부와 권력을 바라고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종교 지도자들이 넘쳐난다. 제 마음 하나 어쩌지 못하면서 세상과 중생을 구하겠다니, 얼마나 맹랑한 꿈인가.

 

[103] 우리의 진짜 영웅

/셰익스피어, '줄리어스 시저'.

 

그뿐만이 아닙니다. 시저는 자기의 숲을 모두 여러분에게 주었습니다. 테베레강 이쪽의 개인 정원과 새로 심은 과수원까지 전부 말입니다. 시저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후손에게 영원히 물려주었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마음 내키는 대로 가서 쉬고 산책할 수 있는 시민의 안식처가 생긴 것입니다. 시저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언제 또 그런 분이 오겠습니까? - 셰익스피어 ‘줄리어스 시저’ 중에서

 

박정희 대통령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영화, 드라마엔 비판적 왜곡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 시절을 산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덕분에 5000년의 가난을 벗고 보릿고개의 설움을 씻었다고. 우리도 잘살아 보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신바람 나게 일했다고. 그런데 어쩌다 박정희란 이름 석 자는 독재와 적폐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대사가 나오는 희곡이 1599년에 발표한 것으로 알려진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다. 작가는 황제가 되려던 시저를 살해한 브루투스 편에서 사건을 바라본다. 하지만 시저가 로마와 시민을 얼마나 사랑했고 그들을 위해 무엇을 유산으로 남겼는지 이야기하며 브루투스의 반역에 분노하도록 대중을 설득하는 안토니우스의 명연설도 들려준다.

 

시저와 같은 역사적 인물은 수많은 문학 작품과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또는 공연 예술 등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천 편의 작품은 저마다 해석이 다르고 그걸 본 만 명의 사람은 만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그 결과 시저는 사랑도 받고 미움도 받는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하나만 보여주고 하나의 결론만 강요한다. 그것과 다른 평가는 용납하지 않는다.

 

뮤지컬 ‘박정희’가 공연 중이다. 독재자, 친일, 적폐 등 온갖 불의한 수식어를 붙여 진실을 감추고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까지 무식하고 몰상식한 죄인으로 낙인찍는 사회 분위기에서 박수 쳐 줄 일이다. 수천 년 전의 아득한 과거 위인이나 조선 사람들 대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일으킨 진짜 영웅들이 대중에게 사랑받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104] 국민은 죄인, 물가와 세금은 벌금?

/알베르 카뮈, '칼리굴라'.

 

시민들의 재산을 직접 훔치는 편이 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필품에 슬쩍 간접세를 붙이는 것보다 더 부도덕하다곤 할 수 없는 거야. 통치한다는 건 훔치는 거야. 나는 말이지, 노골적으로 훔치는 쪽이야. 이 바보들아, 국고가 중요한 것이라면 인간의 생명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 돈이 전부라고 보는 이상, 목숨 같은 것은 헌신짝같이 생각해야 마땅한 거야. - 알베르 카뮈 ‘칼리굴라’ 중에서

 

2000원도 안 하던 대파 한 단이 5900원이다. 계란 한 판은 세 배로 올라 9000원 안팎. 휘발유 값도 올랐다. 허리띠 졸라매고 마련한 아파트를 한 채라도 가졌다면 건강보험료, 취득세, 재산세, 양도세, 종합부동산세 등, 내야 할 세금 걱정에 땅이 꺼진다. 살아서 먹어야 한다는 죄로, 차가 있다는 죄로, 집을 소유했다는 죄로 벌금을 내는 꼴이다.

 

정부는 세금 낼 능력이 없으면 집을 팔고 나가라며 큰소리다. LH공사 직원들은 내부 정보를 이용한 신도시 투기도 자기들 능력이라며 성난 국민을 비웃는다. 양산에 사저 부지를 갖고 있는 권력자도 농지법 위반 의혹에 대해 ‘좀스럽다’며 비난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그들에게 국민은 세금을 거두기 위해서만 필요한 존재인 모양이다.

 

1944년에 출판된 알베르 카뮈의 희곡 ‘칼리굴라’는 네로, 코모두스와 함께 폭군으로 기억되는 로마 제국 황제의 이야기다. 칼리굴라는 재산을 몰수하기 위해 귀족들을 적폐로 몰아 죽인다. 국민에겐 감당할 수 없는 세금을 강제한다. 사치로 탕진한 국고를 채울 수만 있다면 국민의 목숨 따윈 하찮다. “이 세상에 평등이라는 선물을 주겠어. 내일부터 다 같이 굶주리는 거야”라고 말했던 황제는 결국 폭정에 시달리던 원로원 의원들과 심복에게 살해당한다.

 

‘파 테크’가 유행이란다. 대파의 뿌리를 잘라 화분에 심어 길러 먹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이젠 차도 팔고 집도 팔고, 계란을 먹으려면 닭을 키워야 하는 건 아닌지. 물가와 세금은 자꾸 오르는데 내라면 낼 수밖에 없는 국민은 허리가 휜다. 이것이 ‘사람이 먼저’라던 정권의 평등과 정의, 국민의 행복이란 말인가?

 

[105] 위기의식을 갖는 게 먼저

/가스통 르루, '오페라의 유령'.

 

그들은 천장을 올려다보고는 놀라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엄청나게 큰 샹들리에가 악마의 부름을 받고 객석을 향해 미끄러지듯 내려오고 있었다. 급기야 천장 꼭대기에서 오케스트라석의 한가운데로 그대로 곤두박질치며 내리꽂혔다. 여기저기서 도망치라는 외침과 함께 공포로 가득 찬 극장 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숱한 사람들이 부상당했고 한 명의 여성이 사망했다. - 가스통 르루 ‘오페라의 유령’ 중에서

 

북한이 지난 21일에 이어 25일, 또 미사일을 쏘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을 위반하는 명백한 도발이었다. 그런데도 국민은 외신을 통해 소식을 들었을 뿐, 정부와 군 당국은 국가 위기 상황을 즉각 알리지 않았다.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던 군 최고 통수권자는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때”라는 것만 강조했다.

 

뮤지컬과 영화로도 각색되어 대중에게 사랑받는 ‘오페라의 유령’은 프랑스 작가 가스통 르루가 1909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흉측한 얼굴을 갖고 태어나 어머니의 사랑조차 받지 못한 에릭은 천재적 예술성을 가졌으나 유령처럼 오페라 극장 지하에 숨어 산다. 자신의 요구를 세상이 들어주지 않으면 협박하고 납치하며 관객이 꽉 찬 극장을 죽음의 공포 속에 몰아넣기도 한다.

 

어둠의 세계에 갇혀 살아가는 에릭이 원한 건 대화가 아니었다. 그가 궁극적으로 바란 건 크리스틴의 사랑이었지만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실질적으로 필요로 했던 것은 대리인을 내쫓지 말 것, 오페라 공연을 언제든 볼 수 있도록 지정석을 비워둘 것, 사랑하는 크리스틴에게 반드시 여주인공을 맡길 것, 그리고 다달이 일정한 돈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태생적 바보’라고 흉보던 북한이 미사일로 위협하며 대화 분위기를 산산조각 내는데도 정부는 “대화 분위기에 어려움을 주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전쟁을 원하는 국민은 없다. 그렇다고 멸시와 굴욕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국가 위기 상황엔 영민한 전술과 과감한 전략이 필요하다. 중요한 건 정부에 위기의식이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106] 통역이 필요한 정치인의 말

/줌파 라히리 '질병의 통역사'

 

카파시는 종이 위에 또박또박 주소를 쓰는 동안 상상했다. 그녀는 그의 안부를 묻는 편지를 쓰리라. 그러면 그도 가장 재미있는 생활의 에피소드만 골라서 답장을 쓰겠지. 그녀는 뉴저지 집에서 그의 편지를 읽으며 웃고 또 웃을 것이다. 머지않아 그녀는 자신의 실망스러운 결혼 생활을 고백할 것이고, 그도 비슷한 고백을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그들의 우정은 자라나리라. - 줌파 라히리 ‘질병의 통역사’ 중에서.

 

사람은 혼자 있을 때와 누군가 함께 있을 때가 다르다. 정장을 입었을 때, 청바지를 입었을 때 행동거지도 달라진다. 주먹 센 사람 앞에서는 기가 죽고 행색이 초라한 사람 앞에서는 콧대가 높아진다. 말도 그렇다. 연인의 ‘사랑해’와 스토커의 ‘사랑해’는 다르다. 같은 사람, 같은 말이라도 자신이 처한 상황과 상대의 본심을 읽지 못하면 엉뚱하게 해석될 수 있다.

 

인도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미국 작가 줌파 라히리가 1999년에 발표, 퓰리처상을 받은 단편 소설집 ‘질병의 통역사’는 양면적이고도 위선적인 인간 군상들을 담고 있다. 표제작은 인도에 여행 온 미국인 가족의 차량 운전과 통역 안내를 맡은 카파시가 젊은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품게 된 짧고 허무한 환상을 그린다.

 

다스 부인은 남편과 아이들을 짜증스럽게 바라보며 결혼 생활에 대한 불만과 외도했던 사실을 털어놓는다. 카파시가 찍힌 사진을 보내주겠다며 주소도 묻는다. 카파시는 그녀의 이야기를 호감으로 해석하고 편지 왕래로 시작될 은밀한 미래를 상상하며 설렌다. 하지만 부인에게 인도는 머나먼 이국, 카파시는 두 번 다시 만날 일 없는, 후련하게 속을 내보여도 소문날 걱정 없는 잠깐 스쳐 갈 타인일 뿐이었다.

 

성 추문으로 공석이 된 서울과 부산 시장의 보궐선거일이다. 임기 1년짜리 시장이지만 엄청난 일들을 해내겠다며 약속한 사람들. 그들이 한 말과 시민이 들은 말은 통역이 필요 없는 것이었을까? 앞과 뒤, 안과 밖이 같은 사람은 드물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고, 돈조차 앉아서 빌려주고 서서 받는다고 했다. 하물며 표를 얻어 권력을 쥐는 정치인들 다를까.

 

[107] ‘꼰대 정치’가 답할 차례

/투르게네프, '아버지와 아들'

 

“이제 나하고 형님은.” 그날 저녁 식사 후에 니콜라이가 서재에 앉아서 말했다.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이 되었고 우리의 시대는 끝났어요. 어쩌겠어요? 바자로프가 옳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괴로워요. 이제야말로 아르카디와 친해져서 정답게 살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는데 나는 뒤떨어져 있고 그 애는 앞으로 달아나버렸어요. 우린 서로를 이해할 수 없어요.”- 투르게네프 ‘아버지와 아들’ 중에서

 

러시아의 작가 투르게네프가 1862년에 발표한 ‘아버지와 아들’은 세대 갈등을 다룬 대표적인 소설이다. 대학을 졸업한 아르카디는 친구 바자로프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급진적 진보주의자인 바자로프는 기존의 관습과 질서, 구시대의 유물을 모두 파괴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세계관은 보수주의를 상징하는 아르카디의 아버지 니콜라이와 큰아버지 파벨과 사사건건 충돌한다.

 

모든 걸 다 안다는 듯 세상을 경멸하던 바자로프도 실은 좌충우돌하며 인생을 배워가는 청년이었다. 그는 사랑이란 감정마저 위선일 뿐이라고 냉소했지만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삶의 또 다른 진실을 경험한다. 실연의 아픔을 잊으려고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군의관이던 아버지를 도와 환자를 돌보다 전염병에 걸려 죽음에 이른다.

 

젊은 세대는 진보·민주·정의·평등이라는 말에 늘 현혹된다. 저 강만 건너면 푸른 초원이 펼쳐질 거라 믿는다. 그들 눈에 기성세대는 답답하고 어리석고 무식하게만 보인다. 구세대에게도 신세대는 한없이 부족하고 불완전하게만 보이는 미완의 존재들이다. 하지만 보수라 불리는 어른들이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그들이 대대손손 건강하고 자유롭고 풍족하게 이 땅에서 오래오래 살아가는 것이다.

 

모처럼 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했다. 정부 여당의 끝없는 실정과 비리가 촛불만 켜면 미래가 저절로 밝아진다고 믿었던 청춘들을 등 돌리게 했다. 하지만 젊다는 건 쉼 없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오늘의 선택이 내일 또 선택하겠다는 약속도 아니다. 이제 기성세대가 답할 차례다. 소신 있게 과감하게 그러나 정직하게, ‘꼰대'를 벗어난 어른들의 성숙한 변화가 절실하다.

 

 [108] 제한속도 50㎞, 통제는 왜 자꾸 늘어나는가

/앨런 라이트맨

 

“시간이 지역에 따라 다른 이 세계에서는, 서로 따로따로 떨어져 사는 이 세계에서는 살아가는 모습이 아주 다양하다. 도시끼리 서로 오고 가지 않으므로 세상살이가 수천 가지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다. 어떤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가까이 모여 함께 살아갈 수도 있고 다른 곳에서는 뚝 떨어져 살 수도 있다. 산 하나만 넘어도, 강 하나만 건너도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것이다.” -앨런 라이트맨 ‘아인슈타인의 꿈’ 중에서-

 

‘시간이 쏜살같다’고 한다. 하지만 누구나 빠르다고 느끼는 건 아니다. 시간은 그야말로 상대적이어서 지루한 일을 하거나 보고 싶은 사람을 기다릴 때는 한없이 느리다. 재미있는 일에 몰두하거나 좋은 사람을 만날 때는 눈 깜짝할 사이 흐른다.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은 더 빨리 간다. 지구는 일정한 속도로 도는데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

 

물리학자이자 소설가인 앨런 라이트맨이 1993년에 출간한 ‘아인슈타인의 꿈’은 시간을 연구하던 물리학도가 상상한 세상의 기록이다. 시간이 반복되는 세상, 순간만 존재하는 세상, 종말이 닥친 세상 등 천차만별의 세계가 펼쳐진다. 엉뚱한 상상 같지만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는 각기 다른 모습이다.

 

지난 17일부터 일반 도로의 주행 속도가 50㎞로 제한되었다. 학교 앞과 주택가에서는 30㎞ 이상 달릴 수 없다. 출퇴근과 등·하교, 약속 시간을 더 넉넉히 계산해야 한다. 하루 24시간도, 거리도 변한 게 없지만 체감 시간은 더 느려지고 체감 거리도 더 멀어졌다. 연료비와 범칙금 부담 가능성도 커졌다.

 

과거엔 언덕 하나만 넘어도, 시냇물 하나만 건너도 사는 방식이 달랐지만, 이제 지구는 산을 넘어도 바다를 건너도 동일한 법을 따라야 하는 하나의 세계가 되어가고 있다. 대중교통을 장려하고 자율 주행 시대를 준비하며 OECD 국가들이 시행하고 있다는 명분 아래, 개인이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자유의 범위와 다양성이 줄어들고 있는 건 우려할 만한 일이다.

 

정부는 정말 안전을 택한 것일까? 통제는 왜 자꾸 늘어나는가? 진보가 아닌 퇴보를 향한 결정만 거듭하고 있는 게 아닌가? 묻고 답할 시간이다.

 

[109] 자격 없는 이가 조종석에 앉았을 때

/오비디우스, '변신'.

 

마차는 궤도를 이탈하여 제멋대로 날뛰었다. 마부석에 앉은 파에톤은 기겁했지만 천마를 다스릴 재간이 없었다. 어디가 어딘지 분간도 되지 않았다. 설사 알았다 해도 천마를 다스릴 수 없으니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파에톤은 아득히 높은 하늘에서 대지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의 무릎은 갑자기 엄습한 공포에 걷잡을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중에서

 

가족 빼고 세상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남에게는 너그럽지만 가족에게는 인색하다. 이웃 돕기에는 앞장서면서 제 식구 배곯는 건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나라 국정을 책임지는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다음 달, 한미 정상회담이 워싱턴에서 열릴 예정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는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중국의 외교정책을 지지한다고 공식 석상에서 밝혔다. 북한과 대화하고 중국과 협력할 것도 미국에 촉구했다. 그들 머리엔 오직 북한과 중국뿐이다. 자국의 이익과 국민을 위한 말과 행동은 찾아볼 수 없다. 동맹국에 대한 우의나 외교적 계산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스 신화를 로마의 건국 신화로 재창조한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는 태양신의 서자 파에톤이 나온다. 그는 아버지를 찾아가 자기가 진짜 아들이라면 태양신의 마차를 몰게 해달라고 조른다. 부자 관계를 인정하며 우리 아들, 하고 싶은 거 다 해보라던 태양신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 약속을 후회하며 고삐와 채찍을 건넨다.

 

자신만만하게 마부석에 앉았지만 신이 모는 마차를 애송이 파에톤이 감당할 리 없었다. 마차는 이내 불덩어리가 되어 온 대지를 불바다로 만든다. 보다 못 한 신들의 아버지 유피테르는 파에톤을 향해 벼락을 던져 그의 불행과 세상의 재앙을 끝낸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일반인이 조종석에 앉는다고 비행기를 날게 할 수는 없다. 능력에 넘치는 자리는 파에톤처럼 그 자신은 물론 세상까지 불행에 빠뜨린다.

 

 [110] ‘좀스럽고 민망한’ 권력자의 고소

/Hans Christian Andersen, ‘The Emperor’s New Clothes’.

 

“임금님이 벌거벗었어요.” 꼬마가 소리쳤다. 그제야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맞아, 아무것도 안 입은 거야.” “그렇지? 내 눈에도 그렇게 보여.” 사람들은 큰 소리로 웃으며 외쳤다. “임금님은 벌거숭이다!” 사람들의 말을 듣고 왕은 부끄러웠다. 그렇다고 행차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왕은 더 당당히 걸어갔다. 시종들도 의젓한 척 벌거숭이 임금님을 따라갔다. -안데르센 ‘벌거벗은 임금님’ 중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전단을 배포했다는 이유로 한 청년이 고소당했다가 취하된 사건이 있었다. 피해자의 고발이 있어야만 수사가 가능한 모욕죄 혐의였다. 고발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경찰은 “내 입으로는 말할 수 없다. 알아서 생각하라”고 답했다.

 

그 많던 표현의 자유는 다 어디로 갔을까. 권력을 비난하지 못하도록 입막음당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가짜 뉴스 유포죄와 명예훼손죄로 국민에 대한 고소·고발을 남발해왔다. 정부 시책에 반대하는 연예인은 방송에서 사라진다.

 

덴마크 작가 안데르센이 1837년에 발표한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은 사치를 좋아하다 호되게 망신당한 왕의 이야기다. 재단사로 위장, 엄청난 의상 제작비를 챙긴 사기꾼은 ‘천하의 멍청이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이 완성되었다며 왕에게 빈손을 바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멍청이로 낙인찍힐까 두려운 신하들은 근사하다며 아부하고, 왕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새 옷을 입었다고 착각한 채 거리에 나선다. 왕의 패션쇼를 보러 나온 군중들도 바보가 되지 않으려 거짓으로 환호한다. 그런데 어린 꼬마가 깔깔 웃으며 진실을 폭로해버린 것이다.

 

궁으로 돌아간 왕이 사기꾼을 잡아 벌을 내렸다거나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성군이 되었다는 등 나라마다, 시대마다 다양한 결말이 동화 끝에 덧붙었다. 화가 난 왕이 아이와 군중을 명예훼손죄나 모욕죄로 처벌했다는 엔딩도 있었을까. ‘국민에겐 권력자를 비판할 자유가 있다’고 했던 과거 발언을 잊었다 해도, 모든 걸 다 가졌는데 뭐가 무서워서 ‘좀스럽고 민망하게’ 국민을 고발했는지 모르겠다.

 

[111] 국민은 경찰을 믿고 싶다

 

조니 입장에서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경찰이 된 이상 설령 친구라 할지라도 살인범을 도망가게 해서는 안 된다. 믿고 찾아온 친구를 배반하는 일은 분명 고통스럽다. 그런 일은 다른 사람이 해주었으면 싶다. 하지만 대신할 다른 사람이 없다면, 자신이 나서서 임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옥타버스 로이 코헨 ‘경찰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중에서

 

의대생 한강 실종 사망 사건에 대한 의혹이 걷히지 않고 있다. 몇 시간 전까지 살갑게 대화를 주고받던 아들이 실종되고 닷새 만에 주검이 되어 돌아왔으니 부모의 심정이 어떨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사실 확인과 증거 수집이 제대로 이루어졌는가, 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다.

 

옥타버스 로이 코헨이 1952년에 발표한 단편 추리소설은 한때 좋은 친구였던 두 남자가 경찰관과 범죄자로 재회하는 이야기다. 강도 살인범이 되어 도주 중이던 텍스는 조니가 경찰관이 된 줄 모르고 찾아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긴장을 푼다. 그러나 텍스의 정체를 알고 있던 조니는 친구를 배반하는 것이 괴로웠지만 아내를 시켜 경찰에 은밀히 연락해 놓은 상태다.

 

텍스도 조니의 제복을 발견, 형사들이 잠복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텍스는 조니를 협박, 그의 경찰복을 입고 조니의 아내를 인질 삼아 빠져나가려 한다. 하지만 텍스는 짧은 격투 끝에 체포당한다. 공과 사를 구별해서 경찰의 책임을 다했던 조니와 범인 앞에서 조니가 정복으로 갈아입고 집 밖에 나올 리 없다고 눈치챈 형사들의 신속한 판단이 사건을 해결했다.

 

‘경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로 번역된 이 소설의 원제는 ‘언제나 경찰을 믿어라(Always Trust a Cop)’이다. 국민은 경찰을 믿고 싶다. 경찰은 절대 거짓말하지 않고 거짓을 편들지 않는다고, 힘 가진 자들만의 보디가드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진실을 밝혀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이 경찰의 첫째 의무라는 신념으로 불철주야 수사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112] 김일성 회고록 판매가 출판의 자유일까

/귀스타브 플로베르, ‘보바리 부인’.

 

로돌프는 그녀를 울게 하던 감미로운 말을 더 이상 입에 담지 않았고 그녀를 미치게 하던 열렬한 애무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마치 바닥으로 빨려 들어가는 강물처럼, 그녀가 흠뻑 빠져 있던 엄청난 사랑이 발밑으로 사라지며 갯벌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녀는 믿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더 많은 애정을 쏟았다. 그러자 로돌프는 아예 무관심을 감추려 하지도 않게 되었다. - 귀스타브 플로베르 ‘보바리 부인’ 중에서

 

김일성 회고록 판매·배포 금지 신청을 법원이 기각했다. 지금까지 불온서적이었던 북한의 선전물 ‘세기와 더불어’를 마음껏 읽어도 좋다고 법이 허락한 것이다. 출판협회도 ‘국가보안법이 출판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음’을 증명한 판결이라며 환영했다. 앞으로는 북한의 그 어떤 출판물도 우리나라에서 출간·유통될 수 있다는 선언으로 해석된다.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1857년에 발표한 소설 ‘보바리 부인’의 주인공 엠마는 시골 마을 의사의 아내인데 남편은 무능하게만 보이고 안정된 생활은 권태롭기만 하다. 그녀는 새로운 자극을 찾아 애인에게 몰두한다. 그러나 잠깐의 행복을 맛보게 했던 불륜은 바람처럼 스쳐가고 허영심을 채워주던 사치는 감당할 수 없는 빚으로 남는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미 가진 것의 소중함을 모른다. 여기는 벌레투성이인데 강 건너 풀밭엔 꽃과 나비만 산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곳을 버리고 저곳으로 건너간 엠마는 훨씬 더 끔찍한 처지에 놓였다는 걸 깨닫고 끝내 음독 자살한다. 아내의 실체를 알고 충격을 받은 남편도 죽음을 맞는다. 졸지에 부모를 잃은 어린 딸의 불행을 암시하는 것도 작가는 잊지 않았다.

 

출판사는 누구와 출판 계약을 했을까? 인세는 누구에게, 어떻게 지불될까? 우리의 영웅은 매국노, 친일파, 독재자로 매도하고 김일성 3대는 항일운동가, 개혁 군주라 찬양하는 책들이 버젓이 출판되는 현실이 암담하다. 착한 남편과 자식은 팽개치고 외도에서 존재 의미를 찾으려 했던 보바리 부인의 비극적 종말이, 돌아선 애인처럼 싸늘한 북한만 오매불망 바라보는 이 나라의 미래가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113] 참전용사 앞에 무릎 꿇은 군 통수권자

/M.L. 스테드먼 ‘바다 사이 등대’

 

이저벨 옆에 있기만 해도 톰은 자신이 더 깨끗하고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 같았다. 그 느낌은 살점이 찢기고 팔다리가 꺾인 아비규환 속으로 그를 다시 데려갔다. 톰은 죽음을 목격하고도 그 무게에 무너지지 않는 게 힘겨웠다. 자신만 멀쩡히 살아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톰은 죽음이 데려간 전우들을 생각하며 울었다. 자기가 죽인 사람들을 생각하며 울었다. - M. L. 스테드먼 ‘바다 사이 등대’ 중에서

 

한미 정상회담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95세 전쟁 영웅의 명예훈장 수여식이었다. 그는 한국전 당시 중공군과 맞서 싸운 중위였다. 백악관이 훈장을 수여하는 자리에 한국 정상을 참석시킨 것은 처음이다. 북한과 중국,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재확인하며 피로 맺어진 한미 동맹을 각인시킨 시간이었다.

 

호주 작가 스테드먼의 장편소설 ‘바다 사이 등대’의 톰은 무공훈장을 받은 퇴역 대위다.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지 못한 그는 세상이 싫어 무인도의 등대지기가 된다. 소설은 이후, 톰이 전쟁으로 오빠들을 잃은 이저벨을 만나 결혼한 뒤 겪게 되는 가슴 아픈 사건에 대해 쓰고 있지만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군인의 고통을 작품 전반에 잘 녹여내고 있다.

 

어느 날 남자의 시신 한 구와 갓난아기를 실은 조각배가 섬으로 떠밀려 오고 유산을 거듭했던 아내는 아기를 키우겠다고 고집한다. 하지만 머잖아 아기의 친엄마가 나타나고 사람들은 톰이 남자를 살해한 것 아닌가 의심한다. 전장에서 죽어간 전우들과 자신이 죽여야 했던 이들처럼 자신도 죽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톰은 없는 죄마저 감내하려 한다. 톰이 전쟁 후유증을 앓고 있으면서도 진실한 사람인 걸 잘 아는 지인은 “톰 같은 사람이 고통을 겪어선 안 된다”며 안타까워한다.

 

조국과 자유를 지켜낸 군인은 존중받아야 한다. 군 통수권자는 “한국의 평화와 자유를 함께 지켜준 참전 용사들 덕에 폐허에서 일어나 오늘의 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며 미국에 감사를 표했고 영웅 앞에서 무릎을 꿇어 예를 표했다. 한 달 후 열릴 6·25전쟁 71주년 기념 행사에서도 같은 말, 같은 행동을 볼 수 있길 바란다.

 

[114] 거울, 셀카, 그리고 자서전

/그림형제, ‘백설 공주’.

 

왕비는 매우 아름다웠지만, 자신감이 과하고 오만해서 누군가 자신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조차 견딜 수 없어 했다. 왕비에게는 마법의 거울이 있었는데 늘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며 물었다. “거울아, 이 세상 모든 여자 중에서 누가 가장 아름답지?” 그러면 거울이 대답했다. “왕비님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지요.” 왕비는 행복했다. 거울이 진실을 말했기 때문이었다. - 그림형제 ‘백설 공주’ 중에서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방법 중 하나가 자서전을 쓰는 것이다. 소박했든 치열했든 한평생을 살며 깨우친 지혜를 자손과 지인에게 글로 남기는 일은 소중하다. 그런데 자칭 ‘사회주의자’라 천명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자서전을 출간했다. 그의 책은 역대 최고 판매 지수 상승률을 기록하며 서점에 나오기도 전에 4만부 이상 예약 판매되면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유럽에서 전해 내려오던 이야기를 동화로 재탄생시킨 그림 형제의 ‘백설 공주’에는 미모를 판정해주는 마법의 거울이 나온다. 늘 왕비가 최고라고 말해주던 거울이었지만 언제부턴가 백설 공주의 아름다움을 더 높이 평가한다. 분개한 왕비는 공주를 죽이려 한다. 그런데 동화 속 마법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 속에서 만나는 자기 얼굴과 친숙하기 때문에 호감도가 높은 까닭이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얼굴은 좌우가 뒤바뀐 모습이다. 셀프 카메라 사진도 마찬가지다. 각도와 조명, 더 예쁘게 보정해주는 앱을 사용하면 연예인 같은 외모를 뽐낼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이 그렇게 믿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일 뿐, 사실과는 다르다.

 

시인 하이네는 ‘인간이란 자신에 관해서는 반드시 거짓말을 하기 마련이므로 정직한 자서전은 없다’고 했다. 해명하고 싶은 게 많을수록 기억의 왜곡과 자기 연민, 변명이 더해진다. 거짓과 진실이 뒤바뀐 기억의 거울, 추함이 포장된 인생의 셀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진실한 인간이지? 하고 물으면 “바로 당신!”이라고 답해주는 것이 면피성 자서전의 본질이다.

 

[115] 軍이 본분 잊고 해이해진다면

/후고 폰 호프만슈탈, ‘기병대 이야기’.

 

/후고 폰 호프만슈탈, ‘기병대 이야기’

 

/후고 폰 호프만슈탈, ‘기병대 이야기’.

 

오후 내내 기병대에는 특별한 일이 없어 상사의 몽상은 계속해서 멋대로 이어졌다. 마음 한편에서는 공돈이 생기거나 상금이라도 탔으면 하는 바람이 한없이 솟았고 주머니 속으로 굴러들어 올 거액의 금화가 끝없이 어른거렸다. 침대가 있던 그녀의 방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온갖 소원과 욕망이 와그작거리며 떼 지어 몰려들었던 것이다. - 후고 폰 호프만슈탈 ‘기병대 이야기’ 중에서

 

공군 성폭력 피해 자살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3월 부사관은 고참 중사의 사적 모임에 불려 나갔다가 자동차 뒷자리에서 강제 추행당했다. 그러나 군은 사건 은폐를 위해 협박과 허위 보고로만 일관했다. 부대 기강을 바로잡아야 할 직속상관은 ‘없던 일로 해달라’며 합의까지 종용했다. 이에 정권은 최고 지휘권자에게 책임을 종용, 공군 참모총장이 전격 사임했다.

 

오스트리아 작가 호프만슈탈의 단편소설 ‘기병대 이야기’는 전쟁 중 한가한 일상을 꿈꾸던 안톤 상사의 죽음을 그린다. 본대로 진군하던 기병대는 포로와 전리품을 획득하며 승리를 거듭해간다. 이런저런 전공을 세운 상사는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오래전에 알았던 여자를 보게 된다. 이후 그는 여자와 함께 살아가는 느긋한 인생을, 그녀의 침실을 상상한다.

 

한번 풀어진 긴장은 다시 조여지지 않는다. 상사는 새롭게 포획한 말 고삐를 놓으라는 중령을 쏘아본다. 명령을 거부한 상사를 중령이 즉결 처형한다. 겁을 먹은 다른 병사들은 그제야 자신의 소유라 생각했던 전리품들을 내려놓는다. 중령은 비로소 군기가 바짝 잡힌 기병대를 이끌고 적진을 통과, 무사히 전초기지에 도착한다.

 

평범한 일상과 개인 소유를 바라는 인간의 욕망을 통해 전쟁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소설이지만, 군대의 궁극적 존재 이유는 전쟁 승리다. 군의 본분을 잊고 사적 이익을 취하거나 성욕을 해소하는 장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 일벌백계의 본으로 엄히 처벌할 일이다. 그러나 직접 관련 책임자들에 대한 수사가 완결되기도 전에 참모총장의 옷부터 서둘러 벗긴 군 최고 통수권자의 결정이 타당했는가엔 의문이 남는다.

 

[116] 안전은 뒷전, 생색내기만 열심

/고골, '오버코트'.

 

아카키는 죽을힘을 다해 초소로 달려갔다. 경찰이 졸고만 있으니 강도가 횡행하지 않느냐고 소리쳤다. 순경은 자기한테 욕설을 퍼붓지 말고 서장을 찾아가라고 했다. 서장실에서는 아직 주무신다, 외출 중이라는 말만 했다. 그다음 찾아간 고관은 “내가 누군지 알고 하는 소린가?” 하고 호통을 쳤다. 그는 망연자실하여 비틀비틀 물러섰다. 온몸이 후들후들 떨려 서 있을 수도 없었다. - 니콜라이 고골 ‘외투’ 중에서

 

지난 9일 광주, 철거 작업 중이던 5층 건물이 무너지며 시내버스를 덮쳤다. 탑승자 17명 중 9명이 사망, 8명이 중상을 입었다. 인근 주민은 일찍부터 철거 방식에 의문을 갖고 사고를 예감, 두 달 전 국민신문고에 안전 관리를 요청했다. 그러나 관련 기관은 감독에 적극 나서는 대신 공문만 발송했고 사고가 나자 시공사와 감리자를 고발하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러시아 소설가 고골이 1842년에 발표한 ‘외투’의 가난한 아카키는 힘들게 돈을 모아 겨울 코트를 장만한다. 모진 한파도 견딜 수 있겠다며 행복해했지만 하루 만에 강도에게 외투를 빼앗긴다. 코트 없이는 겨울을 날 수 없고, 다시 장만할 돈도 없던 그는 일선 경찰과 경찰서장, 고관에게 외투를 찾아달라고 애원한다. 그러나 탄원에 귀 기울이는 공직자는 한 명도 없다.

 

하급 담당자는 상사에게 책임을 미루고 지위가 높은 사람은 시민을 돌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며 외면한다. 고위 관리는 자신이 누군 줄 알고 감히 하찮은 부탁을 하느냐며 화만 낸다. 목숨과도 같던 외투를 찾을 길은 없고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 사회에 절망한 아카키는 상심한 나머지 끙끙 앓다 숨을 거두고 만다.

 

억울한 죽음이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큰소리친 정권이지만 이번에도 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안전 관리 부실로 발생한 사고였다. 그런데 매몰된 버스의 정밀 분석과 희생자 부검은 왜 필요했을까?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생색낼 일만 열심이다. 광장에는 강도들이 날뛰고 도둑맞은 외투 하나 찾아주지 못하는 소설 속 세상과 다를 게 없다. 여기저기 금 가고 깨져서 물이 줄줄 새는 항아리 같은 현실이다.

 

[117] ‘아빠 찬스’와 창작지원금

/빈센트 반 고흐, ‘편지들’.

 

너무 오랫동안 끼니를 때우지 못한 탓에 네가 보내준 돈을 받았을 때는 어떤 음식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상상하기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돈을 받자마자 내가 간절히 원한 것은 먹는 게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동안 비록 밥도 못 먹고 지냈지만, 아니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더더욱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 빈센트 반 고흐 ‘편지들’ 중에서

 

미디어아트 작가 문준용이 창작지원금 6900만원을 받는다. 가난한 작가들에겐 꿈같은 금액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아니고 왜 또 그인가, 많은 사람이 의문을 품는 것은 그가 연봉 2억3800만원을 받는 최고 권력자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가 받을 지원금도 국민 세금에서 나간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을 살았던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생전에 판 그림은 단 한 점뿐이었다. 그는 동생이 보내주는 돈에 의지해 살아야 했는데 그를 정말 고통스럽게 한 것은 배고픔이 아니었다. 물감을 사지 못해 그림을 그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자신을 책임지고 있는 동생에 대한 한없는 미안함이었다.

 

천재적인 재능을 펼치며 당대의 부와 명성을 누린 예술가가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돈을 벌어 굴리고 불리는 재주까진 갖지 못했다. 그래서 예전에는 귀족들이 후원했고 현대에 와서는 국가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그러나 심사도 사람이 하는 일, 청탁하지 않았고 특혜를 바라지 않았다 해도 권력자의 자식이 지원한 걸 알았다면 자유로울 사람은 많지 않다. 더구나 작년 말에 받은 1400만원을 더해 몇 달 만에 총 8300만원을 벌었다면 ‘아빠 찬스’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남의 흉내를 내서라도 팔리는 그림을 그릴 수도 있었을 텐데 자기만의 그림을 추구하다 쓸쓸히 세상을 떠난 고흐는 ‘사자는 원숭이 짓을 하지 않는 법’이라고 편지에 쓴 적 있다. 지원금 수혜로 실력을 평가받았다고 자부하는 권력자의 아들은, 평생을 화가로 인정받지 못해 외로웠지만 별처럼 빛나는 영혼을 지키고 살았던 예술가의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으려나.

 

[118] 정치인의 도리언 그레이 증후군

 

비결을 알려주게. 다시 젊어질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네. 청춘! 세상에 젊음만 한 것이 또 어디 있겠나. 젊은이들이 무식하니 어쩌니 하는 말은 다 어리석은 소리야. 요즘 내가 경청할 만한 이야기를 하는 건 모두 나보다 훨씬 어린 사람들뿐일세. 젊은이들이 나보다 앞서가는 것 같아. - 오스카 와일드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중에서

 

힙합 가수처럼 청바지와 티셔츠, 검은 가죽 재킷과 선글라스를 쓴 70세 전직 총리의 모습이 공개되었다. 68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온라인 게임을 하는 모습을 인터넷에 올렸다. 이에 질세라 65세의 현직 도지사도 뮤직비디오를 냈고 50세의 여당 의원은 걸그룹의 춤을 흉내 내며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강조했다. 대선 후보로 나선다는 정치인들의 최근 행보다.

 

오스카 와일드가 1890년에 발표한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은 영원한 젊음을 탐했던 인간의 파국을 그린다. 스무 살의 그레이는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 매혹된다. 쾌락주의자 헨리 워튼 경도 그의 아름다움을 극찬하며 인생에서 가치 있는 건 잠시 후면 사라질 젊음과 눈앞의 아름다움이라고 부추긴다. 젊어질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라도 치르겠다며 그레이를 부러워한다.

 

그레이는 초상화가 자기 대신 늙어가길 바라게 되고 소원은 이루어진다. 그가 방부제 같은 젊음을 유지하며 온갖 쾌락을 탐하는 사이, 그가 지은 죗값을 대신 치르듯 그림은 추하게 나이 들어 간다. 그리고 어느 날, 젊음에 집착하느라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을 아쉬워하며 인생을 후회하던 그레이는 혐오스럽게 변해버린 초상화 앞에서 끔찍한 최후를 맞는다.

 

젊음은 아름답다. 그러나 젊다는 것과 철없는 것은 다르다. 노화를 거부하고 젊음에 집착하는 증상을 ‘도리안 그레이 신드롬’이라고 한다. 서른여섯 살의 야당 대표와 스물다섯 살의 대통령 비서실 청년 비서관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시절이다 보니 정치 무대가 점점 막장 코믹 드라마의 오디션장이 되어간다. 격과 지성과 애국심 그리고 능력을 갖춘 정치인은 어디에 있을까.

 

[119] X파일과 마지막 생존자

 

다섯 명의 인디언 소년이 법을 공부했지. 한 명이 대법원으로 들어가서 네 명이 되었네. 네 명의 인디언 소년이 바다로 나갔지. 한 명이 훈제된 청어에 먹혀서 세 명이 되었네. 세 명의 인디언 소년이 동물원을 걷고 있었지. 한 명이 큰 곰에게 잡혀서 두 명이 되었네. 두 명의 인디언 소년이 햇볕을 쬐고 있었지. 한 명이 햇볕에 타서 한 명이 되었네. - 애거사 크리스티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중에서

 

1년의 절반이 끝나고 남은 절반을 시작하는 7월이다. 올해는 특히 대통령 선거에 나가겠다는 정치인들의 선언으로 하반기의 문을 열었다. 당연히 나오겠거니 한 사람도 있고 저 사람도 대통령을 꿈꾸었나 싶은 이도 있다. 새삼 강도 높여 현 정권을 비판하는 그들의 출정가를 들으며 또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희망에 부푼다.

장편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추리소설의 여왕이라 불리는 애거사 크리스티가 1939년에 발표한 그녀의 대표작이다. 외딴섬에 초대받아 온 열 명의 손님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며 저택에서 휴가를 보내게 된 걸 행운으로 여긴다. 하지만 그들은 곧 ‘열 명의 꼬마 인디언’이라는 동요처럼, 차례차례 사라져 가게 되리라는 걸 알고 공포에 휩싸인다.

 

그들은 자신이 과거에 저질렀던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한 사람씩 죽어간다. 법정에서 이미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 대체 누가, 왜 또다시 처벌을 하는 건지 억울하지만 빠져나갈 길은 없다. 결국 열 명 모두가 죽고 섬에는 아무도 남지 않는다.

 

정치 세계도 소설 못지않게 잔혹하다. 온갖 소문과 의혹이 적힌 ‘엑스 파일’이 후보들을 향해 총알처럼 날아든다. 사실이든 거짓이든, 부정하고 해명할수록 생존 가능성은 낮아진다. 초대됐든 자원했든, 정치 생명을 담보로 선거라는 이름의 섬에 발을 디딘 대가다.

 

소설과 다른 건 모두가 죽지는 않는다는 것, 마지막 생존자에겐 권력의 월계관을 씌워준다. 소문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다음 타깃은 어떤 비밀을 가졌을까? 최후의 생존자는 누가 될까? 현실은 종종 밤새워 읽던 추리소설보다 더 많은 긴장감과 상상력을 요구한다.

 

[120] 페스트에도 이득 본 사람 있었다

/알베르 카뮈, '페스트'(1947).

 

“다 소용 없을 겁니다. 페스트는 정말 세니까요.” 그러고 나서 코타르는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그리고 말이죠, 난 페스트 안에 있는 게 더 편해요. 그런데 내가 왜 그걸 저지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는 건지 모르겠네요.” 그러자 타루는 갑자기 깨달았다는 듯 이마를 탁 치면서 말했다. “아, 내가 깜빡 잊었네요. 페스트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벌써 체포되었으리라는 것을요.” - 알베르 카뮈 ‘페스트’ 중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가 시작됐다. 낮에는 4인, 저녁 6시부터는 2인의 동행만 허락된다. 한 지붕 식구 말고는 직계가족과 백신 접종자라도 예외는 없다. 행사, 모임, 집회 모두 금지다. 확진자 수가 많다고는 해도 대부분이 완치되고 사망자도 거의 없다. 오히려 서민 경제의 몰락이야말로 절벽 끝에서 추락 중이다. 그런데 정부는 왜 굳이 록 다운(lockdown)을 고집할까?

 

알베르 카뮈가 1947년에 발표한 ‘페스트’는 전염병이 창궐한 알제리 해안 도시에 갇힌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고 시민들은 ‘빵이 아니면 공기를 달라’며 비명을 지르지만 당국은 속수무책이다. 오직 의사 리유와 여행자 타루를 중심으로 뜻있는 사람들이 보건대를 조직, 자발적으로 죽음의 공포와 성실하게 싸워나갈 뿐이다.

 

 

좀도둑 코타르는 페스트 시절이 즐겁기만 하다. 전염병으로 사회가 너무나 혼란해진 터라 경찰의 손이 코타르에게는 미치지 않는다. 덕분에 그는 폐쇄된 도시에서 부족해진 물품들을 암거래하여 돈을 벌고, 보건대 사람들과도 어울리며 외로움을 잊는다. 그에게 페스트는 축복이다. 코타르는 전염병이 끝날까 봐 불안하다. 그는 페스트가 영원히 계속되길 바란다.

 

누구를 위한 극단적 거리 두기일까? 방역본부는 급격한 확진자 수 증가가 민노총 집회와는 무관하다고 발표했다. 모임 자체가 전염의 원인이 아니라는 자백이다. 그것도 아니면 혹시 코타르처럼, 코로나를 이용해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