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15/ 정치1/ 선거사
■슬로건 한국선거사
⊙ 노태우의 ‘보통사람’은 《조선일보》 ‘선우휘칼럼’에서 아이디어
⊙ ‘대통령病 환자’ 소리 듣던 DJ, ‘준비된 대통령’으로 역전
⊙ “정치 사형수, 군사독재에 사형을 선고한다!”(1985년 2·12 총선, 이철)
⊙ YS, 10·26 1년 전 “민주투쟁을 중단할 수 없다”
⊙ “‘쇠몽둥이에 솜을 감은’ 슬로건이 정말 아프다”(조동원)
/1956년 제3대 대선에서 민주당이 내걸었던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구호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성공한 슬로건이다
제20대 총선(總選)이 임박했다. 정당과 후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담은 슬로건들을 쏟아내고 있다. SNS가 발달한 요즘 선거 슬로건의 생명력도 길지 않은 느낌이다.
‘슬로건(slogan·어떤 단체의 주의, 주장 따위를 간결하게 나타낸 짧은 어구)’이라는 말은 스코틀랜드어의 ‘슬로곤(slogorn)’에서 나왔다. ‘슬로곤’이라는 말 속에는 ‘군대’라는 의미와 ‘함성’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의 대영(對英)항쟁을 다룬 멜 깁슨 주연의 영화 〈브레이브하트〉에서 보듯, 전투가 시작될 때 적(敵)의 기를 죽이기 위해 질러대는 함성이 ‘슬로곤’인 것이다.
선거도 전쟁터다. 이 전쟁터에서 슬로건은 자기편을 결집시키고 상대방의 기를 꺾기 위한 ‘전투구호’다. 더 나아가 슬로건은 상대방을 공격하는 창(槍)이다. 상대방은 그 창을 막아내야 한다. 그에게 슬로건은 방패가 되기도 한다.
대한민국이 건국한 지 68년. 그동안 18번의 대통령 선거와 19번의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그 치열한 전쟁터에 등장해 ‘시대정신’을 보여주면서 국민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슬로건들을 살펴본다.
전설이 된 ‘못 살겠다 갈아보자’
선거라는 전쟁터 중에서 가장 크고 치열한 전장(戰場)은 대통령 선거다.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에서 본격적으로 슬로건이 등장한 것은 1956년 제3대 대선(大選) 때부터이다. 국회에서 대통령을 선출한 1948년의 초대(初代) 대통령 선거, 첫 직선제(直選制) 대선이기는 했지만 야당이 정비되기 전인 1952년 제2대 대선에서는 별다른 선거 슬로건이 필요 없었다.
1956년 5월 15일 실시된 제3대 대선은 달랐다. 1955년 9월 호헌동지회를 중심으로 한 보수야권 세력이 민주당을 결성, 신익희(申翼熙) 전 국회의장을 후보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여당인 자유당 후보는 현직인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었다. 제3대 대선은 헌정사상(憲政史上) 처음으로 여야(與野)가 맞붙은 대선이었다.
이 선거에서 아직까지도 회자(膾炙)되는 유명한 슬로건이 나왔다. 민주당의 ‘못 살겠다 갈아보자’가 그것이다. ‘밑져봐야 본전이다. 갈아나 보자’라는 구호도 내걸었다. 제3당인 진보당 조봉암 후보는 ‘갈지 못하면 살 수 없다’고 외쳤다.
야당의 ‘갈아보자’ 공세에 여당인 자유당은 ‘갈아봤자 별수 없다’ ‘구관(舊官)이 명관(名官)이다’로 맞섰다. 아무래도 군색했다. 신익희 후보가 선거 유세 도중 급서(急逝)하는 바람에 정권교체는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나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슬로건은 우리나라 선거 역사상 가장 걸작으로 기억되고 있다.
강천석(姜天錫) 전 《조선일보》 논설고문은 2005년 10월 15일자 《조선일보》 칼럼에서 “건국 이후 치러진 수백 번의 선거에서 만들어진 수천 가지 선거구호 가운데 여태 국민들 기억 속에 살아남은 유일한 선거구호가 ‘못 살겠다 갈아보자’다”라고 했다. 왜 ‘못 살겠다 갈아보자’가 이렇게 생명력을 가진 것일까?
‘못 살겠다 갈아보자’ 짝퉁도 나와
조동원 새누리당 홍보기획본부장은 이렇게 말한다.
“창(槍)처럼 누군가를 찔러서 아프게 하는 슬로건은 자기편에게는 카타르시스를 주지만, (반대편이 아닌) 다른 국민들의 마음도 아프게 할 수 있다. 그런 슬로건은 전술적으로는 몰라도, 전략적으로는 그리 좋지 않다. ‘쇠몽둥이에 솜을 감은’ 슬로건이 정말 아프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가 그렇다. 거기에다 시대정신과 국민들의 열망을 담았다.”
이동호(李東湖) 캠페인전략연구원장은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 속에는 포지티브 캠페인과 네거티브 캠페인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절묘하게 배합되어 있다”고 말한다.
“선거 과정은 포지티브 캠페인과 네거티브 캠페인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공포감 불러일으키기’와 ‘희망 심어주기’라는 과정을 통해 유권자들이 반대편으로 가는 것을 막고 또 내게 투표해야 할 이유를 제공하여 끌어들여야 한다. 선거전문가들은 가장 성공적인 슬로건은 ‘예수천국 불신(不信)지옥’이라고 말한다.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간다’는 희망과 함께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도 같은 구조다. ‘자유당 정권이 계속되는 한 국민은 계속 도탄에 빠지게 될 것’이라면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한편으로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하면 새로운 미래가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다.”
명품(名品)이 있으면 짝퉁이 나오는 법. 이후 ‘다 죽겠다 갈아 치자’(제6대 대선, 송요찬 자유민주당 후보), ‘배고파 못살겠다, 죽기 전에 살길 찾자’(제7대 대선, 오재영 통한당 후보) 같은 슬로건들이 등장했다. 1971년 제8대 대선에 출마한 김대중(金大中) 신민당 후보도 ‘10년 세도 썩은 정치, 못 참겠다 갈아치자’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뒷부분에서 아무래도 ‘못 살겠다 갈아보자’의 아류(亞流) 냄새가 난다.
‘트집 마라. 건설이다’
1960년 제4대 대선에 출마하면서 조병옥(趙炳玉)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죽나 사나 결판내자’라는 결연한 슬로건을 내걸었다. 3·15 부정선거를 감지해서였을까? 민주당은 ‘협잡선거 물리치자’는 슬로건도 내놓았다. 자유당의 슬로건은 ‘나라 위한 80 평생 합심해서 또 모시자’였다.
하지만 ‘죽나 사나 결판내자’던 조병옥 후보는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신병(身病) 치료차 도미(渡美)했다가 2월15일 세상을 떠났다. 덕분에 이승만 대통령은 선거도 치르지 않고 4번째 당선이 확정됐다. 이제 관건은 부통령 선거였다. 자유당 후보는 이기붕(李起鵬), 민주당 후보는 장면(張勉)이었다. 민주당은 ‘슬픔을 거두고 다시 싸움터’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자유당은 ‘트집마라. 건설이다’로 맞섰다. ‘트집마라. 건설이다’는 이후 안정과 경제건설을 강조하는 여당 선거 구호의 원형(原型)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번에는 속지말고 바로뽑자 부통령’이라는 구호에서는 4년 전 부통령 선거에서 패했던 자유당의 초조함이 느껴진다. 결국 자유당 정권은 부통령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갖은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이에 시민·학생들이 들고일어섰다. 이승만 대통령은 결국 4·19혁명으로 하야(下野)했다. 국회는 제4대 대선을 무효(無效)로 선언하고 내각책임제로 개헌을 했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들어선 군사정부는 민정(民政) 이양을 앞두고 헌법을 개정, 대통령 직선제로 돌아갔다. 이에 따라 1963년 10월 15일 제5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됐다.
민주공화당 박정희(朴正熙) 후보는 공식 대선 포스터에는 따로 슬로건을 적지 않고, 기호와 이름, 소속정당 이름만 넣었다. 하지만 신문광고나 유인물 등에서는 ‘혁명과업의 완수, 조국근대화’라는 구호를 앞세우면서 ‘유권자 여러분, 이순신을 택할 것인가? 원균을 택할 것인가? 흥부를 택할 것인가? 놀부를 택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공화당은 ‘우리도 잘살 수 있다’ ‘새 일꾼에 한 표 주어 황소같이 부려보자’ ‘가난을 물리치자. 농민의 아들 성실한 일꾼’이라는 슬로건도 내걸었다. 황소는 공화당의 상징이었다. ‘농민의 아들’이라는 표현에서는 빈농(貧農)의 아들인 박정희 후보와 구한말(舊韓末) 명문거족(名門巨族)의 후예인 윤보선 민정당(民政黨) 후보를 대비(對比)하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공화당의 이런 슬로건은 아직 농경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가난에 찌든 1960년대 대한민국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민정당의 윤보선 후보는 ‘군정(軍政)으로 병든 나라 민정(民政)으로 바로잡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도사퇴한 국민의당 허정(許政·전 과도내각 수반) 후보도 ‘총칼로 망친 살림 내 한 표로 바로잡자’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모두 박정희 후보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는 사실과 5·16 군정의 실정(失政)을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박정해서 못살겠다 윤택하게 살아보자’
/1971년 제7대 대선 후보들의 포스터를 지켜보는 국민들. 당시 선거벽보는 유권자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 중 하나였다. 사진=조선일보
박정희 후보와 윤보선 후보는 1967년 5월 3일 실시된 제6대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대결했다. 공화당의 박정희 후보는 선거포스터에서 ‘우리들과 그리고 귀여운 아들딸들이 좀 더 잘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여러분과 함께 땀흘려 일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명랑한 생활과 보다 편리한 살림을 위해 공화당은 황소처럼 힘차게 일하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공화당의 선거 플래카드 등에는 ‘황소 힘이 제일이다! 틀림없다 공화당’ ‘중단되면 후퇴하고 전진하면 자립한다’ 등의 구호도 등장했다.
통합야당인 신민당 후보로 다시 출마한 윤보선 후보는 ‘빈익빈(貧益貧)이 근대화냐. 썩은 정치 뿌리 뽑자’고 외쳤다. 박정희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경제발전 정책의 과실(果實)이 골고루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야당이 단골로 내세우는 ‘양극화(兩極化) 프레임’의 뿌리를 여기서 본다.
신민당은 ‘박정해서 못 살겠다, 윤택하게 살아보자’는 슬로건도 내걸었다. ‘박정’이라는 말과 박정희, ‘윤택하게’와 윤보선을 접목(接木)시킨 것이었다. 신민당이 내건 또 다른 구호 ‘지난 농사 망친 황소, 올 봄에는 갈아보자’는 공화당의 상징이 황소인 점을 겨냥한 것이었다.
혁신계 정당인 대중당의 서민호 후보는 ‘보수로 망친 정치 혁신으로 살려보자’고 주장했다. 한국독립당 후보로 출마한 전진한(錢鎭漢·초대 사회부 장관) 후보는 ‘독립 위해 싸운 정당 통일에로 전진한다’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전진한다’는 말은 후보자의 이름자를 연상케 하는 것이었다. 전진한 후보는 선거 때마다 “전진한다, 전진한다, 전진한!”을 외쳤다고 한다.
‘대중시대의 막을 열자’
후보의 이름과 슬로건을 연결시키는 기법은 1971년 3월 23일 실시한 제7대 대선에서도 등장했다. 김대중(DJ) 신민당 후보가 ‘대중시대의 막을 열자’는 슬로건을 내건 것이다.
김대중 후보의 이름을 딴 ‘대중반정(大中反正)’이라는 슬로건을 담은 신문광고도 내보냈다. 당시 김대중 후보의 선전기획위원(공보비서)이었던 김경재(金景梓) 자유총연맹 총재의 말이다.
“중종반정(中宗反正), 인조반정(仁祖反正)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대중반정’이라는 구호를 만들었다. 유진산(柳珍山) 당시 신민당 당수가 ‘너무 강하다’며 반대했다. DJ가 ‘그러면 내 개인 이름으로 내보내겠다’고 해서 광고가 나갔다.”
신민당은 앞에서 말한 ‘10년 세도 썩은 정치, 못 살겠다 갈아치자’는 메인 슬로건과 함께 ‘논도 갈고 밭도 갈고 대통령도 갈아보자’는 슬로건도 내놓아 장기집권에 대한 염증(厭症)을 자극했다.
이에 맞선 박정희 후보측 대응은 밋밋하다. ‘보다 밝고 안정된 내일을 약속합니다’ ‘공화당과 함께 풍요한 결실과 행복한 생활을’ ‘동란 없는 70년대, 가난 없는 70년대, 영광의 70년대’ ‘일하는 게 제일이다, 박 대통령 다시 뽑자’….
이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는 김대중 후보를 94만6000여 표 차이로 이겼다. 그리고 1년 7개월 후 10월 유신을 선포했다. 다시 대선 슬로건이 필요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군정종식’
/1987년 제13대 대선은 15년 만에 치러진 직선제 대선이었다. 사진=조선일보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6·29선언으로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다. 국민들은 15년 만에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을 수 있게 됐다. 그해 12월 16일 실시된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정당(民正黨) 노태우(盧泰愚) 후보, 통일민주당 김영삼(金泳三) 후보,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 신민주공화당 김종필(金鍾泌) 후보가 대결했다.
김영삼 후보는 ‘군정종식, 친근한 대통령 정직한 정부’를 주된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군정종식(軍政終熄)’이라는 말은 민주화에 대한 당시 국민들의 열망을 오롯이 담은 것이었다. 김대중 후보는 ‘평민은 평민당, 대중은 김대중’을 메인 슬로건으로 삼았다. 자신이 만든 당의 이름,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기 쉬운 단어들과 결합시킨 것이었다.
당시 평민당 선거대책본부 대변인이었던 김경재 자유총연맹 총재는 “당시 나는 DJ에게 ‘군정종식’이라는 구호를 써야 한다고 제안했는데, 젊은 참모들이 ‘너무 구닥다리 냄새가 난다’며 반대했다”면서 “갑론을박(甲論乙駁)하는 사이에 YS가 ‘군정종식’ 구호를 가져가 버렸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당시 DJ가 0.99% 차이로 YS에게 2위 자리를 빼앗겼는데, 선거가 끝난 후 ‘군정종식 구호만 가져왔어도 DJ가 2위를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종필 후보의 슬로건 중에는 ‘아이러브 JP’라는 게 있었다. 영어 표현으로 된 최초의 대선 슬로건이라고 한다. ‘민중후보’를 자처하고 나선 무소속 백기완(白基玩) 후보는 ‘가자! 백기완과 함께 민중의 시대로’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보통사람 노태우’
김영삼·김대중 후보 등의 ‘군정종식’ 공세에 대해 노태우 후보는 ‘이제는 안정입니다’로 맞섰다. 6월 민주항쟁 당시의 시위와 그 이후 분출되어 나온 노사(勞使)분규 등 사회혼란에 질린 국민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이때 노태우 후보와 관련해 국민들이 기억하는 구호는 ‘보통사람’이었다. 노태우 후보는 유세 내내 ‘보통사람 노태우’를 강조했고, 대통령 취임사에서도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를 열겠다’고 다짐했다.
당시 노태우 캠프 기획팀에서 활동했던 김학준(金學俊) 전 인천대 총장은 이렇게 말한다.
“회의를 하는데, 남재희(南載熙) 의원이 미(美) 제7대 앤드루 잭슨 대통령 얘기를 하면서 ‘애버리지 피플(average people)’인가 하는 말을 했다. 《조선일보》 ‘선우휘(鮮于煇) 칼럼’에 ‘위대한 보통사람 MK택시 사장’(1985년 1월6일자), ‘보통 사람들의 보통 이야기’(1981년 4월24일자)라는 글을 본 기억이 났다. ‘영어로 할 게 뭐 있느냐? ‘선우휘 칼럼’을 보니 ‘보통 사람’이라는 말이 있던데, 그걸로 하자’고 했다. 모두 좋다고 했다. 노태우 후보의 연설에 사용했더니, 반응이 무척 좋았다. 아무도 그렇게까지 효과가 있을 줄은 몰랐다. 나중에 이한빈(李漢彬) 전 부총리는 우리가 자신의 칼럼집 《보통 사람들의 시대》에서 그 표현을 가져갔다고 주장했는데, 그렇지는 않다.”
당시 한가람기획 대표로 노태우캠프 외곽에서 활동했던 전병민(田炳旼) 한국정책연구원 고문은 “‘보통사람’의 개념을 두고 논란이 되자 우리에게 그 개념을 정리해 달라는 주문이 들어왔다. 중산층 같은 경제적 개념으로 정의할 수는 없어서 ‘남에게 부끄러울 것도, 부러울 것도 없는 떳떳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정의했다. 우리가 작성한 노태우 후보의 유세연설문에도 ‘보통사람’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다”고 말했다.
노태우 후보는 광고 전문가인 김염제(金稔堤) 박사를 영입, 이미지 메이킹 작업도 했다. 전문광고인이 대선 캠프에 합류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노 후보가 여자 어린이를 안고 있는 포스터 등이 이 팀의 작품이었다. 이러면서 노태우 후보는 군(軍) 출신이라는 이미지를 상당히 희석시킬 수 있었다.
조동원 새누리당 홍보기획본부장은 노태우 후보의 ‘보통사람’을 ‘역대 대선 슬로건 가운데 최고’로 꼽는다. 그의 말이다.
“‘보통사람’이라는 구호는 군부 통치의 중심에 있던 사람의 이미지를 친근하게 바꾸었다. 김영삼·김대중 후보가 주장하던 ‘권위주의 대(對) 민주주의’ ‘군정종식’이라는 프레임을 일거에 뒤집었다.”
‘변화와 개혁’이 ‘신한국창조’로
/1997년 제15대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의 선전물들. ‘준비된 대통령’임을 강조했다. 사진=조선일보
1992년 12월 18일 실시한 제14대 대선에선 오랜 정치적 맞수였던 김영삼 후보(민주자유당)와 김대중 후보(민주당), 그리고 통일국민당 정주영(鄭周永) 후보가 맞붙었다.
민자당의 김영삼 후보는 ‘신한국 창조’를 내걸었다. 당시 홍보위원장이었던 박관용(朴寬用) 전 국회의장은 “당시 YS가 전달하려던 핵심 메시지는 ‘변화와 ‘개혁’이었고, 그 결과로 우리가 이루려는 나라는 지금의 대한민국과는 다르다는 의미를 담아 ‘신한국 창조’라는 슬로건을 내걸게 되었다”고 말했다. 전병민 한국정책연구원 고문은 “‘변화와 개혁’, 특히 ‘개혁’에 대해 청와대와 민자당 내 민정계 일각에서 저항이 있었다. 그 결과 실무진에서 슬로건을 만들면서 ‘변화’는 담되 ‘개혁’은 희석시킨 ‘신한국창조’라는 슬로건을 만들게 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김대중 후보의 주된 슬로건은 ‘이번에는 바꿉시다’였다.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는 현대그룹 회장 출신답게 ‘경제대통령 통일대통령’을 앞세웠다. 1980년대 후반부터 ‘포스트(post) 3김(金)’ 정치인으로 주목받아 온 박찬종(朴燦鍾) 신정치개혁당 후보의 슬로건은 ‘젊어서 좋다! 깨끗해서 좋다!’였다. 민자당에서 탈당한 이종찬(李鍾贊) 새한국당 후보는 ‘변화하는 세계, 새한국의 선택’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완주하지 못했다.
1997년 12월 18일 치른 제 15대 대선은 헌정사상 최초로 여당에서 야당으로 정권이 넘어간 선거였다. 신한국당의 이회창(李會昌) 후보,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 국민신당의 이인제(李仁濟) 후보, 국민승리21의 권영길(權永吉) 후보 등이 나섰다.
이회창 후보는 ‘깨끗한 정치 튼튼한 경제’를 내세웠다. ‘대쪽’이라는 이회창 후보의 이미지와, IMF사태를 향해 추락하고 있던 경제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신한국당을 뛰쳐나와 국민신당을 만들어 출마한 이인제(李仁濟) 후보의 구호는 ‘젊은 한국 강한 나라’였다. 김영삼 대통령이 ‘깜짝 놀랄 젊은 후보’를 언급한 이래 차기 주자로 주목받기 시작한 그답게 당시 49세였던 젊은 나이를 앞세운 것이다.
경험과 경륜 vs. 참신함
이에 비해 김대중 후보는 당시 71세였다. 1992년 대선 패배 후 정계은퇴를 선언했던 그가 다시 4번째 대선에 도전하는 데 대한 비판의 소리도 높았다. 이회창·이인제 후보의 슬로건은 다분히 그런 김대중 후보를 겨냥한 것이기도 했다.
이에 맞서 김대중 후보가 내건 슬로건은 ‘든든해요 김대중, 경제를 살립시다’였다. 이와 함께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많은 이들이 대선 포스터에 들어있던 ‘든든해요 김대중, 경제를 살립시다’라는 구호보다는 ‘준비된 대통령’을 더 기억하고 있다.
‘준비된 대통령’은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당시 김대중 캠프의 여론조사 등을 담당했던 이영작(李英作·LSK글로벌파마서비스 대표이사) 박사, 새정치국민회의 홍보위원장이었던 김경재 자유총연맹 총재 등이 저작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영작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선거 슬로건은 상대방의 약점을 부각시키는 강점(mirror opposite strength)을 담고 있어야 한다. 여론조사를 해 보면, DJ의 강점인 경륜과 경험이라는 말은 참신, 도덕성이라는 말과 대비되는 걸로 나왔다. 경륜과 경험을 강조함으로써 상대방의 약점이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DJ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참신과 도덕성을 내세우는 상대 후보에게 결집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었다. 그래서 고민하던 중 DJ가 평소 ‘나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40년 동안 준비해 왔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바로 이거다!’ 싶었다. ‘준비된 지도자’라는 점을 내세우면, 상대적으로 정치경력이 일천한 상대 후보는 ‘대통령으로서 준비 안 된 후보’라는 점을 부각시킬 수 있었다. DJ에게는 ‘대통령병(病) 환자’라는 비난이 따라다녔는데, 그런 부정적 이미지를 긍정적인 면으로 바꾸는 효과도 있었다.
1997년 5월 23일 DJ도 참석한 선거전략회의에 〈준비된 후보 대(對) 준비 안 된 후보〉라는 보고서를 올렸다. 당시만 해도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구호가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구호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선거과정에서 유권자의 호응을 받아 점차 가장 중요한 선거구호가 됐다.”
김경재, “‘준비된 대통령’, 목사 기도에서 나왔다”
/2002년 노무현 후보는 ‘국민후보’임을 강조했다.
이영작 박사는 “1992년 제14대 대선 때에는 ‘유능한 대통령’ ‘경제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주장했지만, 민주당에서 반대했다”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DJ가 「유능한 대통령」이면, YS는 「무능한 대통령」이라는 말이 되는데, 그렇게까지 YS를 몰아붙일 필요가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랬다가 내심 YS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보복을 받게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솔직히 1992년에도, 1997년에도 DJ가 이긴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당시 홍보위원장이었던 김경재 자유총연맹 총재는 ‘준비된 대통령’은 자신의 아이디어였다고 말한다.
“DJ의 오랜 지지자였던 한 시골 교회 목사님을 만났다. 그가 DJ를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위해 준비하신 대통령’이라는 말이 있었다. 귀가 번쩍 뜨였다. 당에 돌아와서 표현을 조금 바꾼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제안했다.
캠프의 젊은 참모들 중에는 ‘무엇이 준비됐다는 말인지가 분명치 않다. 패배가 준비됐다는 말이냐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김대중 후보가 지금까지 세 번 낙선한 것은 앞으로 더 크게 쓰이기 위해 준비되려고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역설, 이 구호가 채택되도록 했다.”
2002년 제16대 대선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나라다운 나라’를 내걸었다. 2002년 12월 5일자 《조선일보》는 대선 후보들의 구호들을 소개하는 기사에서 이 구호를 언급하면서 “한나라당은 현 정권이 망친 국가질서를 바로잡겠다는 약속을 담을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새천년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슬로건은 ‘새로운 대한민국 국민후보 노무현’이었다. 당시 민주당 경선진행위원장이었던 김경재 총재는 ‘국민후보’라는 아이디어는 자신이 냈다면서 “가장 평범한 사람이면서도 국민이 뽑았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말했다.
조동원 새누리당 홍보기획본부장은 “노무현 후보의 경우, ‘노무현의 눈물’ 동영상에서 보듯 슬로건보다는 캐릭터가 더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구호는 ‘평등한 세상, 줏대 있는 나라!’였다. ‘줏대 있는 나라’라는 구절은 효순·미선 교통사고 시위 때문에 반미(反美) 데모로 시끄러웠던 당시 분위기의 반영으로 보인다. 사회당의 김영규 후보는 ‘돈 세상을 뒤엎어라!’라고 핏대를 올렸다.
문재인, ‘사람이 먼저다’
/선관위 직원들이 2007년 제17대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의 선거포스터를 게시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
2008년 제17대 대선에서 이명박(李明博) 한나라당 후보는 ‘실천하는 경제대통령’을 내세웠다. 당시 이명박 캠프 홍보팀의 좌장(座長) 역할을 했던 유우익(柳佑益) 전 통일부 장관의 말이다.
“회의에서 이명박 후보의 실물경제에 대한 경륜을 강조하면서 ‘경제대통령’으로 가야 한다는 얘기는 일찍부터 나왔다. 거기에 후보가 표방하는 실용주의 국정철학을 반영, ‘실천하는 경제대통령’이라는 구호가 나왔다.”
이명박 후보는 ‘국민성공시대’도 내걸었다. 캠프 이름도 ‘국민성공캠프’였다. 풀빵 장수 소년이 대기업 CEO를 거쳐 대통령 자리에 도전하게 된 자신의 성공스토리를 투영한 것이다. 정동영(鄭東泳)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이에 맞서 ‘가족이 행복한 나라’를 내걸었다. 민노당 권영길 후보는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후보는 ‘믿을 수 있는 경제대통령’을 내세웠다.
/2012년 제18대 대선 후보들의 포스터. 박근혜 후보는 ‘준비된 여성 대통령’을, 문재인 후보는 ‘사람이 먼저다’를 내세웠다
2012년 제18대 대선에서 박근혜(朴槿惠) 새누리당 후보는 ‘준비된 여성대통령’을 전면에 내걸었다. 당시 홍보책임자였던 조동원 새누리당 홍보기획본부장의 말이다.
“당시 박근혜 후보의 상대로 나온 문재인(文在寅) 민주통합당 후보는 초선(初選)의원이었고, 유력 후보로 거론되던 안철수(安哲秀) 교수는 아예 정치경험이 없었다. 반면에 박근혜 후보는 그때 이미 국회의원 생활을 15년째 하고 있었다. 대통령을 하려면 적어도 여의도 정치를 10년 이상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슬로건이 ‘준비된 대통령’이었는데, 그건 이미 1997년에 DJ가 사용했다. 다른 한편으로 박근혜 후보는 최초의 여성 대선 후보였다. 이제 ‘우리 사회도 남녀(男女)구분 없이 능력이 있으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는 걸 부각시킬 수 있었다. ‘준비된 대통령’과 ‘여성대통령’을 붙이니, 자연스럽게 ‘준비된 여성대통령’이 나왔다.”
박근혜 후보는 ‘국민행복시대’ ‘박근혜가 바꾸네’ 같은 구호도 내놓았다.
문재인 후보가 내건 슬로건은 ‘사람이 먼저다’였다. 대선 본선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손학규(孫鶴圭) 후보가 민주통합당 경선에서 내놓았던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구호는 지금도 곧잘 회자되고 있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는 ‘함께 살자 대한민국, 상상하라 코리아연방’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야권連帶가 總選 슬로건 약화시켜’
대선 다음가는 전쟁터는 국회의원 총선거(總選擧)이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해서 선거운동을 벌이고, 국민들은 한 명의 후보를 선택하는 대선과는 달리 총선은 전국 각지의 253개 선거구에서 진행된다. 후보자도 근래 선거들을 보면 1000명이 넘는다. 전국적으로 통일적인 슬로건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과거에는 정당마다 통일 슬로건을 내려보내기도 했다. 1960년 7월 29일 실시된 제5대 민의원 선거에서 많은 민주당 의원들은 공통적으로 ‘독재와 싸운 사람 마음 놓고 찍어주자’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1967년 6월 8일 실시된 제7대 국회의원 총선의 경우, 공화당은 후보들의 포스터에 ‘박 대통령 일하도록 밀어주자 공화당(또는 후보이름)’ ‘나는 나라와 내 고장의 발전을 위해 성심껏 땀흘려 일하겠습니다’라는 구호를 올렸다. 야당인 신민당은 ‘통합(단일) 야당 밀어주어 일당독재 막아내자’는 구호를 내걸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식의 통일구호는 점차 사라지고, 지역사정에 부합하면서 후보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는 슬로건들이 많아졌다.
김형준(金亨俊) 명지대 교수는 “슬로건은 총선 때가 대선 때보다 임팩트가 약할 수밖에 없다”면서 “총선에서도 근래 들어서는 야권연대(連帶)가 관심사로 되면서 정책선거, 정당 중심 선거가 되지 못하는 바람에 슬로건의 의미가 약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선거정책 면에서도 다른 당의 좋은 정책이 있으면 따라가는 현상(me too)이 늘어나는 환경에서는 ‘내셔널 슬로건(national slogan)’이 나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YS, ‘내일은 있다. 그날까지 용기를!’
국민들이 기억하는 주요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역대 총선 슬로건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1967년 제7대 총선은 3선 개헌으로 가는 길목에서 치러졌다. 김영삼 후보(부산 서구)는 ‘통합야당 밀어주어 일당독재 막아내자’는 당의 통일 슬로건만 내세웠다. 신민당의 거물 유진산 후보는 ‘국회는 야당을! 야당은 신민당!’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1971년 4월 제7대 대선 과정에서 대선 주자급으로 성장한 ‘40대 기수’들은 그해 5월 실시된 제8대 총선에서 ‘차기’를 다짐했다. 김영삼 후보는 ‘서구가 키운 일꾼 큰일하게 다시 뽑자’고 외쳤다. 그런 김 후보에게 ‘새 사람 새 정치로 밝은 국정 이룩하자’ ‘깨끗한 새일꾼 뽑아 서구 발전 이룩하자’며 도전장을 던진 공화당 후보가 있었다. 당시 32세의 젊은 변호사 박찬종이었다. 1971년 신민당 대선 경선에서 김대중·김영삼 후보와 겨루었던 이철승(李哲承) 후보는 ‘전주가 기른 민족지도자’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1971년 제8대 총선에서 야당 거물 김영삼 의원에게 도전한 박찬종 후보의 포스터
김대중 신민당 대통령 후보의 최측근이었던 김상현(金相賢) 후보는 서울 서대문에서 3선에 도전하면서 ‘민주투사 다시 뽑아 썩은 정치 뿌리뽑자’고 기염을 토했다. 제7대 총선에서 신민당 전국구로 금배지를 달았다가 제8대 총선에서 처음 지역구(부산 동래을)에 도전한 이기택(李基澤) 후보는 ‘국회만은 신민당에!’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그해 4월 대선에서 3선에 성공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견제를 호소한 것이다. 이런 견제론이 먹혀들어간 덕분인지, 신민당은 종전 45석에서 89석으로 약진했다.
원내총무를 지낸 공화당의 중진 김용태(金龍泰) 후보는 선거 포스터에서 ‘한국의 중도 대전땅에 발전시킬 일꾼 왔다’고 호언했다. 여당 의원의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인 ‘지역발전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1973년 3월 27일 실시한 제9대 총선은 유신 이후 처음이다. 포스터에 슬로건 없이 후보 이름, 당명, 기호, 경력만 적은 후보들이 많았다. 유신선포 직후 보안사령부에 연행되어 고초를 겪었던 최형우(崔炯佑) 신민당 후보(울주-울산-동래)는 ‘이번에도 2번 찍어 최형우를 밀어주자’는 구호를 포스터에 올렸다.
/1978년 제10대 총선에 출마한 김영삼 후보는 ‘민주투쟁을 중단할 수 없다’고 외쳤다
그래도 선거라는 기회를 이용해 저항의 목소리를 담으려 애쓴 후보도 있었다. 제9대 총선 때 부산 제2선거구에 출마한 김영삼 후보는 ‘내일은 있다. 그날까지 용기를!’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유신 직후의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민주화의 희망을 잃지 말자는 메시지가 느껴진다. 1978년 12월 12일 실시된 제10대 총선 슬로건에서도 그는 ‘민주투쟁을 중단할 수 없다’며 결기를 보였다. 1977년 아버지 정일형 의원의 뒤를 이어 서울 종로-중구 선거구 보궐선거에 출마한 정대철(鄭大哲) 후보도 ‘자유민주주의는 포기할 수 없다’고 외쳤다.
제10대 총선에서 신민당은 32.8%의 득표율을 보여, 31.7%를 득표한 공화당에 1.1%p 앞섰다. 야당의 득표율이 여당을 앞선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 기세를 타고 1979년 5월 신민당 전당대회에서는 ‘선명야당’을 표방한 김영삼 의원이 총재로 복귀했다. 이어 YH사태, 김영삼 의원 제명, 부마사태 등이 이어지다가 10·26사태로 유신체제는 막을 내렸다. 제10대 총선은 유신의 종말을 앞당긴 선거가 됐다.
“민초여! 새벽이 온다”
/1967년 제7대 총선에 출마한 김종필 후보의 포스터. 당의 공식 슬로건만을 담았다.
1981년 3월 25일의 제11대 총선은 신군부 출범 직후의 스산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여당인 민정당 후보들은 선거포스터에 ‘대통령이 일하게 민정당에 투표하자. 안정이 경제성장·안보의 바탕이다’라는 구호를 공통적으로 적어 넣었다. 인기방송인 출신으로 민정당 공천을 받아 출마한 봉두완(奉斗玩·서울 마포-용산) 후보는 이 공통 슬로건 위에 자신이 진행하던 방송프로그램의 이름을 따서 ‘안녕하십니까? 봉두완입니다’를 덧붙였다.
1985년 2월 12일 실시한 제12대 총선에서는 5년간 억눌렸던 민심이 폭발했다. 서울 종로-중구에서 출마한 이민우(李敏雨) 신한민주당(신민당) 총재는 ‘자생신당 밀어주어 민주회복 앞당기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5공 치하 관제야당이었던 민주한국당(민한당)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슬로건이었다. 민한당을 탈당해 신민당에 합류한 박관용(朴寬用) 후보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 늦기 전에 바로잡자’ ‘민초여! 새벽이 온다. 진짜 민심 보여주자’는 슬로건으로 기세를 올렸다. 신민당 대변인 박실(朴實) 후보는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만든 ‘박해받은 실력자 박실 대변인’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서울 동작에 출마했다.
/1985년 제12대 총선 당시 서울 성북에서 출마한 이철 후보는 ‘돌아온 사형수’라는 구호로 정권에 도전했다.
2·12총선이 배출한 스타 중 하나가 이철(李哲) 후보였다. 유신시절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던 그는 ‘정치 사형수, 이철 성북에 돌아오다’를 외치며 신민당 후보로 서울 성북에서 출마했다. 그는 ‘정치 사형수, 군사독재에 사형을 선고한다!’ ‘민주, 목숨 바칠 자 과연 누구인가’라며, 정권에 날을 세웠다.
1988년 4월 26일의 제13대 총선은 직선제 개헌 이후 출범한 제6공화국의 첫 국회의원 선거였다. 전년 12월 대선에서 2위로 고배를 마셨던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후보는 부산 서구에서 출마하면서 ‘다시 시작하겠습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김대중 총재의 평민당은 ‘선명야당, 정책정당, 국민정당’이라는 통일구호를 내려보냈다. 충남 부여에서 출마한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는 ‘한국의 희망, 부여의 자랑’이라는 슬로건으로 충청 민심을 건드렸다. 부산 동구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노무현 후보는 선거 유인물에서 ‘가자! 노무현과 함께 사람사는 세상으로’라고 외쳤다. 이 선거는 결국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을 만들어냈다.
‘핫바지라 몰아붙인 문민독재 끝장내자!’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자민련은 충청권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서산-태안에 출마한 변웅전 후보의 포스터.
1992년 3월 24일 치른 제14대 총선은 3당 합당으로 출범한 거대 여당 민자당과 김대중-이기택 두 사람이 손을 잡아 만든 민주당의 대결이었다. 서울 도봉병(丙)에서 출마한 조순형(趙舜衡) 민주당 후보의 선거포스터에는 ‘민주당 밀어주어 일당독주 막아내자!’는 구호가 적혀있다. 거대여당에 대한 견제심리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김대중 민주당 공동대표의 오랜 가신(家臣) 출신으로 전남 목포에서 재선에 도전한 권노갑(權魯甲) 후보는 ‘목포의 꿈을 이루어가는 일꾼, 김대중 대표의 성실한 동반자!!’라며 DJ와의 오랜 인연을 강조했다.
1996년 제15대 총선은 민자당에서 이름을 바꾼 신한국당이 외부 영입인사들을 대거 출전시킨 선거였다. 서울 종로에서 출마한 이명박 신한국당 후보는 ‘이젠 이명박입니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당선됐다. 4년 전 서울 은평을에서 민중당 후보로 나서 낙선했다가 신한국당으로 출마한 이재오(李在五) 후보의 구호는 ‘민주화에 바친 30년 열정, 은평발전에 쏟겠습니다’였다. 자기 이름 앞에 ‘모래시계 검사!’라고 쓴 홍준표(洪準杓) 후보는 ‘깨끗한 그와 함께 새로운 송파를 건설합시다’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김대중 총재의 새정치국민회의도 신인들을 투입했다. ‘한국의 대처’를 자처하며 서울 광진을에 출마한 추미애(秋美愛) 후보의 슬로건은 ‘껄끄러운 「소신판사」의 깨끗한 정치’였다.
제15대 총선은 신한국당에서 팽(烹)당한 김종필 총재가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자유민주연합을 창당, 재기한 선거이기도 했다. 충남 서산-태안에서 출마한 방송인 출신 변웅전(邊雄田) 후보는 ‘핫바지라 몰아붙인 문민독재 끝장내자’면서 충청인의 소외감을 노골적으로 자극했다.
민노당,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
/제18대 총선 당시 親李세력에 의해 공천에서 탈락한 김무성 후보는 친박무소속연대의 이름으로 출마했다.
2000년 제16대 총선과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는 기성정치인들이 많이 물러나고 운동권 출신 신세대가 등장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소용돌이 속에서 치러진 제17대 대선에서는 열린우리당 간판을 달고 386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당선됐다. 서울 마포을에서 출마한 정청래(鄭淸來) 후보는 ‘국민의 힘을 보여주십시오’라면서, 탄핵역풍(逆風)에 호소했다. 유시민(柳時敏) 열린우리당(고양 덕양갑) 후보는 ‘이젠, 국회를 바꿉시다’라고 외쳤다. 서대문갑에 출마한 한나라당 이성헌(李性憲) 후보는 ‘그래도 일꾼입니다’라면서 지지를 호소했지만, 낙선의 쓴잔을 마셨다.
젊은 세대에게 밀려나는 기성정치인들의 슬로건은 처연했다. 한때 대권 주자로까지 거론될 정도로 국민적 인기를 누렸던 박찬종 전 의원은 부산 서구에서 무소속으로 나서면서 ‘힘드시죠? 저도 힘듭니다. 그러나 결코 우리는 희망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라고 애소(哀訴)했지만, 낙선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이강철(李康哲) 후보는 ‘강철이, 자네만 믿네!’라는 구수한 슬로건을 가지고 한나라당의 아성(牙城)인 대구 동구갑에서 출마했지만, 벽을 넘지 못했다.
이 선거에서 10석을 차지하며 약진한 민노당은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반대로 제17대 대선 직후 실시한 2008년 제18대 총선은 한나라당의 롤백(rollback) 무대였다. 뉴라이트운동을 했던 한나라당 신지호(申志鎬) 후보(도봉갑)는 ‘사람이 바뀌어야 도봉이 우뚝 섭니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진보진영’의 거물인 통합민주당 김근태(金槿泰) 후보를 침몰시켰다. 1996년 출마 당시 ‘투옥·고문의 어둠을 뚫고 뜨거운 가슴으로 여러분 앞에 다시 섰습니다’라고 외쳤던 김근태 후보는 이때쯤에는 ‘서민의 친구가 되겠습니다’라며 목소리를 낮추고 있었다. 진보신당의 심상정 후보(덕양갑)는 ‘덕양과 대한민국의 확실한 선택’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는데, 진보세력의 목소리도 그리 높지 않은 게 느껴진다.
친이계(親李系)가 주도한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 친박무소속연대로 출마한 김무성(金武星) 후보(부산 남구)는 ‘박근혜와 나라를 지키고 남구를 발전시키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갈등을 빚고 있는 지금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작아지는 구호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 후보들은 ‘야권단일’ 후보임을 강조했다
대선을 앞두고 치른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도 슬로건의 의미에 걸맞은 ‘전투함성’ 소리는 그리 높지 않았다. 야당조차도 인물론과 지역공약을 앞세우는 게 대부분이다. 세종시에서 출마한 이해찬(李海讚) 후보는 ‘책임집니다. 세종시 완성! 정권교체’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전남 목포에서 출마한 박지원(朴智元) 후보(민주통합당)는 ‘6·15 남북정상회담의 주역’임을 앞세우면서 ‘큰 인물! 큰 발전!’을 외쳤다. 통합진보당의 이상규 후보는 서울 관악을에서 나서면서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 야권단일후보’임을 앞세웠다. 나중에 위헌정당으로 해산되는 정당의 후보지만, 포스터상으로는 ‘정권교체 위해 야권연대가 이겨야 합니다!’라고 하는 데 그쳤다. ‘야권연대’에 대해, 당명과 당 상징색을 확 바꾼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로 맞섰다.
대선도, 총선도 2000년 이후에는 전보다 슬로건의 울림이 작아지는 느낌이 든다. 이동호 캠페인전략연구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선거 슬로건이 작아지는 건, 군정종식・정권교체 등 큰 이슈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도 사회가 발전할수록 구호가 작아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선진국에서는 의료보험・연금・복지처럼 생활과 구체적인 관련이 있는 내용들이 구호가 된다.”
선거 슬로건에는 대한민국 68년의 ‘시대정신’이 녹아 있다. 신생 민주공화국이 걸음마를 하면서 민주주의가 뭔지 배워 가는 모습,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이 보이는가 하면, 어떻게든 가난에서 벗어나 보려던 개발연대의 몸부림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좋은 슬로건을 내건 정치세력은 진짜로 그 시대의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세력이었을까? ‘갈아보자’ ‘갈아치자’는 외침은 정말 선(善)이었을까? 그때 갈아봤으면, 이 나라의 운명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까? ‘민주주의’, ‘변화’와 ‘개혁’을 외쳤던 이들은 정작 정권을 잡았을 때, 그들의 말을 얼마나 실천했는가? ‘준비되었다’고 주장하던 후보들은 정말 얼마나 준비되어 있었나? ‘일꾼’과 ‘머슴’을 자처하던 후보들은 을(乙)의 탈을 쓴 갑(甲)은 아니었나?
문득 생각나는 말이 있다. “말을 아주 정교하게 남이 듣기 좋도록 하고, 얼굴빛도 곱게 하는 사람들 중에 (정말로) 어진 사람은 드물다(교언영색 선의인·巧言令色 善矣仁).”(《논어(論語)》 ‘학이(學而)편’)⊙
월간조선 글 | 배진영 기자 2016.03.26
■총선 이야기
2015-09-12 선거구 폭풍전야
2016.02.24 [선거구 합의… 달라진 전국 판세]
여야(與野)가 23일 선거구 획정에 합의하면서 4·13 총선 판세에도 변화가 생겼다. 서울·경기·인천은 의석이 한꺼번에 10석이 늘면서 전체 지역구의 절반에 육박하는 명실상부한 승부처가 됐다. 대전·충남은 2석이 늘어 중원(中原)으로서의 전략적 가치가 커졌다. 여야의 전통적 텃밭인 경북과 전남·전북에서는 의석수가 2개씩 감소했다. 여야 관계자들은 "야당이 강한 수도권에서 의석수가 많이 늘어 대체로 야권(野圈)에 유리해졌다"고 해석했다.
◇수도권, 전체 의석수 절반 육박
여야는 이번에 경기도에서 8석, 서울 1석, 인천 1석을 각각 늘렸다. 수도권 전체 의석수가 19대 총선 때 112석에서 122석으로 늘어난다. 전체 지역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5.3%에서 48.2%로 커졌다.
경기, 느는 8곳 중 6곳이 野강세
새누리는 '2野 구도'에 희망…
1석씩 느는 서울·인천은 與유리
경기도에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지역구 8곳 중 수원·화성·군포는 전통적으로 야당세가 강한 곳이다. 남양주·김포·용인은 신도시 개발로 최근 30~40대 젊은 유권자의 유입이 많아 야당에 대체로 유리하다는 평가다.
여당이 스스로 우세하다고 평가하는 지역은 광주(廣州)와 경기 동북부에서 늘어나는 지역 한 곳 정도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야당이 선거구 획정을 강하게 주장한 이유는 여야가 작년 말에 사실상 합의해 놓은 지금의 안(案)이 유리하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인천 연수구의 분구는 새누리당에 유리하고, 서울은 강서와 강남이 1석씩 늘지만 우리가 당선됐던 중구와 성동구가 합쳐질 예정"이라며 "야당에만 유리하지는 않다"고 했다. 새누리당은 수도권에서 더민주와 국민의당의 분열로 만들어지는 3자 구도에 희망을 걸고 있다.
◇충청, 호남·TK에 육박하는 中原으로
충남·대전에서 각각 1석씩 늘어 충청·대전권 의석은 25석에서 27석이 된다. 여당의 주된 기반인 대구·경북(TK)의 25석을 넘어서게 됐고, 야당 지역인 전남·전북·광주광역시의 28석에 근접하는 수치로 몸집을 불린 것이다.
이번에 충남 천안과 아산, 대전 유성구에서 각각 1석씩 늘고, 공주와 부여·청양은 하나로 합쳐질 예정이다. 이번에 각각 1석씩 늘어나는 충남 천안과 대전 유성구의 현역은 더민주이고, 충남 아산 현역은 새누리당이다. 또 더민주 지역구인 공주와 새누리당 지역구인 부여·청양이 합쳐질 예정이다.
충청·대전권은 19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이 12석, 자유선진당(새누리당과 합당)이 3석, 더민주(당시 통합민주당)가 9석을 각각 얻었다. 새누리당은 "충청도 전반적으로는 판세가 나쁘지 않은 만큼 19대 이상의 성적을 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더민주 관계자는 "충청권 공략에 적극 나서서 19대 여야 의석 분포를 뒤집거나 최소한 동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 영·호남은 '分區' 신경전
장흥·강진·영암을 쪼개
어느 지역에 붙이는지 등 논란
◇여야 텃밭 영·호남에서는 분구 지역 놓고 신경전
호남에서는 전남과 전북을 한 곳씩 줄이기로 여야가 합의했지만 대상 지역을 놓고는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전남은 국민의당으로 간 황주홍 의원의 장흥·강진·영암을 쪼개 인구 미달 지역인 더민주 이윤석 의원의 무안·신안과 국민의당 김승남 의원의 고흥·보성에 각각 붙이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더민주는 "국민의당 의원들이 있는 장흥·강진과 고흥·보성을 합치자"고 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당은 "강진·영암을 더민주 의원이 있는 무안·신안에 붙이자"고 하고 있다. 야권 관계자는 "더민주는 국민의당 두 의원을 붙여서 공천 싸움을 부추기려는 것"이라며 "국민의당은 이것만은 피하자는 입장 아니겠느냐"고 했다. 전남에선 인구 상한 초과 지역인 순천·곡성에서 곡성을 분리해 인근의 광양·구례로 붙이는 조정도 예상된다.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은 독립선거구가 되는 순천으로 출마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은 인구가 적은 더민주 최규성 의원의 김제·완주와, 김춘진 의원의 고창·부안을 합치는 방안이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4선에 도전하는 최 의원과 김 의원이 당내 경선에서 맞붙어 둘 중 한 명은 총선에 출마하지 못하게 된다. 광주광역시는 인구가 미달하는 동구와, 인구가 초과하는 북구을에서 인접 지역구와 일부 조정이 있을 예정이다.
새누리당 텃밭인 경북에서도 문경·예천과 영주를 합치고, 군위·의성·청송과 상주를 합치는 방안이 거론되지만, 해당 현역 일부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19대 때 9석을 석권한 강원도는 홍천·횡성이 쪼개져 통합되는 과정에서 최대 4개 지역구로 연쇄 반응이 일어나 판도가 변할 수 있다. 부산의 경우 해운대와 기장이 분리되면서 1석이 늘지만, 정의화 국회의장의 중·동구가 쪼개져 각각 서구(유기준), 영도구(김무성)로 합쳐져 결과적으로 의석수 변화는 없다. 경남에서는 양산이 2개 선거구로 나뉘지만, 의령·함안·합천이 인근으로 갈라지면서 1석이 줄어 전체적으로는 변동이 없을 전망이다.
이번 획정 결과와 관련해 새누리당의 수도권 지역 의원은 "중도표를 확장하기 위한 전략 여부가 여권(與圈)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했다. 더민주의 한 의원은 "어떻게 야권 분열을 최소화하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선정민 기자 엄보운 기자
□2014. 7.30 재보선 선거 결과
□2015-04-30. 4·29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4·29 재·보궐선거 민심은 야당을 외면했다. ‘성완종 게이트’가 여권을 강타한 가운데 서울 관악을과 광주 서을 등 4곳에서 치러진 재·보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전패(全敗)했다. 출범 80일째를 맞은 문재인 대표의 거취를 놓고 진통이 예상된다. 새정치연합으로서는 안방인 광주 서을에서 무소속 천정배 의원에게 참패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당내에서는 가까스로 이길 것이라는 기대도 나왔지만 투표 결과 당선된 천 의원과 새정치연합 조영택 후보의 표차는 22.6%포인트로 컸다. 호남 민심이 친노(친노무현) 지도부에 경고장을 보낸 것이어서 야권발(發) 정계 개편이 본격화될지 주목된다.
문 대표는 이번 재·보선 패배로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특히 호남 민심에 깔려 있는 ‘반노(반노무현)’ 정서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차기 대선 주자로서의 위상에도 큰 흠집이 나게 됐다. 문 대표는 이날 개표가 시작되기 전 국회를 떠났고 여의도 당사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문 대표는 30일 오전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선거 패배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호남 지지 성향이 강한 서울 관악을에서도 새누리당이 승리했다. 관악을은 1988년 이후 27년간 단 한 번도 새누리당에 의석을 내주지 않았던 곳이지만 야권 분열로 새정치연합은 패배했다. 결국 야당 내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당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경기 성남 중원에서는 당초 예상대로 새누리당이 낙승했다. 이곳은 2012년 4월 총선 때 야권 단일화로 통합진보당이 승리한 곳이지만 통진당 해산 이후 보궐선거가 치러지면서 새누리당이 통진당과 연대한 새정치연합의 책임을 거론하며 ‘종북 심판론’을 내세운 것이 주효했다. 새누리당 지지 성향이 강한 인천 서-강화을도 선거 초반 여당이 고전하는 양상이었지만 막판에 지지층이 결집하면서 승리했다.
새누리당의 승리로 여권은 공무원연금 개혁 등 국정 운영의 동력을 다시 얻게 됐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이날 밤 여의도 당사 개표상황실에서 “박근혜 정부에 힘을 실어줘서 감사하다. 지역경제를 살리고 국가 미래를 확실히 준비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라고 생각한다”며 “4곳 중 3곳의 승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야가 합의해 공무원연금 개혁을 꼭 완수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새정치연합 유은혜 대변인은 “박근혜 정부의 경제 실패, 인사 실패, 부정부패에 대한 국민의 경고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송구하다”며 “대안 정당으로 혁신하고 국민의 삶을 지키기 위해 더욱 진력하겠다”고 밝혔다. 고성호 sungho@donga.com
□4·29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결과
서울 관악을 오신환 당선자
“임기가 1년밖에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내일부터 바로 운동화끈을 조여 매고 국회와 지역을 누비며 관악 발전을 위해 사력을 다해 뛰겠습니다.” ‘젊은 지역일꾼’을 내세운 오신환 의원(44)이 1988년 13대 총선 이후 27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 관악을에서 새누리당 국회의원 당선이라는 기록을 만들어냈다. 오 의원은 “주민 여러분이 지역이 너무나 정체되어 있고 발전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일꾼을 뽑아야 한다고 판단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 관악구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하고 40여 년째 생활하고 있는 ‘관악 토박이’다. 오 의원은 부친 오유근 씨에 이어 2006년 서울시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최초의 서울시의회 부자(父子) 의원, 최연소 남성 시의원이라는 기록도 남겼다. 그러나 뒤이어 도전한 2010년 관악구청장 선거와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현재 여당인 새누리당은 물론이고 그 전신인 한나라당의 불모지였던 지역적 한계를 넘지 못하고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이번 당선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으로는 최초의 국회의원이 됐다. 오 의원은 정계에 입문하기 전 연극배우 및 영화배우로 활동했던 ‘이색 경력’도 갖고 있다.
인천 서-강화을 안상수 당선자
“지역발전론으로 민심을 파고들었다. 강화와 검단은 인천의 미래다. 앞으로 인천 강화군과 서구 검단동을 크게 발전시키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
29일 인천 서-강화을에서 당선된 새누리당 안상수 의원(69)은 상기된 표정으로 이같이 소감을 밝혔다. 여권 지지층이 워낙 두터운 지역이지만 선거 초반 새정치민주연합 신동근 후보와 접전 양상이 펼쳐지자 당 지도부는 전통적인 텃밭인 이 지역을 사수하기 위해 총력 지원에 나섰고 결국 수성에 성공했다.
안 의원은 당선 직후 “앞으로 주민 행복과 지역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강화를 대한민국 관광의 메카로, 서구 검단을 교육문화 중심도시로 발전시키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천시장 재직 시절 강화도와 영종도를 연결하는 연도교 건설과 검단신도시 건설을 계획했다”며 “지역을 위해 다시 일할 기회가 주어져 이 모든 일을 주민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충남 태안군에서 태어난 안 의원은 경기고, 서울대를 졸업하고 데이콤 이사, 동양그룹 종합조정실 사장 등을 거친 기업인 출신이다. 15대 국회의원 당선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민선 3, 4기 인천시장을 역임했다.
경기 성남 중원 신상진 당선자
“잃어버린 3년의 공백을 메워 경기 성남 중원이 재도약하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
4·29 재·보궐선거 성남 중원에서 당선된 새누리당 신상진 의원(59)은 개표 초반부터 줄곧 1위를 달리며 새정치민주연합 정환석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이날 오후 선거사무소에서 지지자들과 개표 결과를 지켜본 신 의원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어느 때보다 힘든 선거였지만 나를 믿고 지지해준 유권자들과 기쁨을 나누겠다”며 “여당의 3선 중진 의원이 된 만큼 중원 발전을 위해 공약으로 내건 지하철 유치 등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 지역에서 17, 18대 의원을 지냈지만 19대 총선 당시 야당 단일후보였던 김미희 후보(전 통합진보당)에게 패했다. 그러나 이번 재·보선에서 승리하면서 3년 만에 의원직을 되찾았다. 신 의원은 서울대 의대 재학 시절 민주화운동으로 투옥됐었고, 1984년 성남공단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지역 노동운동을 통해 기반을 닦았다. 1991년에는 15년 만에 의대를 졸업한 뒤 성남의원을 개업했고 제32대 대한의사협회장을 지냈다.
野 탈당 ‘정풍 1세대’ 명암
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인 새천년민주당에서 함께 정풍운동을 했던 천정배, 정동영 후보가 4·29 재·보궐선거에서 운명이 엇갈렸다. 두 사람은 나란히 새정치연합을 탈당해 친정과 맞대결을 했지만 결과가 달라진 것이다. 천 의원은 광주 서을에서 당선되면서 호남권을 중심으로 한 야권 재편의 중심인물이자 잠재적 대선주자로 떠올랐다. 반면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현 새정치연합) 대선후보였던 정 후보는 이날 국민모임 소속으로 서울 관악을에 출마했으나 3위에 그쳐 고개를 숙였다.
천 의원은 이날 당선이 확정된 뒤 “광주 정치를 바꾸고 호남 정치를 살려내겠다”고 밝혔다. 이어 “(새정치연합 등) 야권을 전면 쇄신해 정권 교체의 밀알이 되겠다”며 “한국 정치를 바꿔 차별도 없고 불안도 없는 정의로운 통일 복지 국가로 나아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광주 서구 금호동의 선거사무소에는 지지자 400여 명이 모여들어 “천정배”를 연호했다. 천 의원은 꽃다발을 목에 건 뒤 지지자들과 일일이 포옹을 하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는 이번 선거 하루 전날 ‘천배(千拜) 유세’까지 벌이며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었다.
천 의원 측 관계자는 “호남의 유력 정치인 천 후보를 이번에 살려 달라는 호소가 통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천 의원은 1996년부터 경기 안산 단원갑에서 출마해 4번 연속 금배지를 달았다. 2002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당시 민주당 의원 중 유일하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해 노무현 정부의 창업 공신 중 한 명으로 불렸다. 노무현 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에 기용될 정도로 정권의 핵심이었지만 2007년 대선 경선에 참여하면서 비노(비노무현)계로 돌아섰다.
천 의원은 18대 국회에서 2010년 미디어법 처리와 2011년 서울시장 출마 때 두 번이나 의원직 사퇴를 거론하다 번복해 비판을 받았다. 2012년 19대 총선에선 서울 송파을에서 낙마했고 지난해 7·30 재·보궐선거에서 광주 광산을 출마를 노렸지만 권은희 의원이 전략 공천돼 출마하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 4·29 재·보선과 관련해 당의 경선 방침에 반발해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해 재기에 성공했다.
반면 정 후보는 정치적으로 위기를 맞았다. 그는 이날 선거에 패한 직후 “새로운 정치를 염원하는 곳에서 뜻을 받들지 못했다는 점에서 저의 한계라 생각한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정 후보는 이번 재·보선 패배로 야권의 텃밭을 여권에 내줬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새정치연합 정태호 후보보다 낮은 득표율을 기록해 창당을 준비 중인 국민모임도 동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특히 대선후보까지 했던 그가 18, 19대 총선에 이어 이날 재·보선까지 낙마하면서 정치생명이 끝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국민모임을 이끄는 정 후보가 내년 20대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였던 전북 전주 덕진에서 재기를 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황형준 constant25@donga.com 외
■2016-03-17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1 새누리당
[총선 D-27]새누리 공천 내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16일 긴 침묵을 깨고 공천관리위원회를 향해 ‘돌직구’를 던졌다. 김 대표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자청해 공관위의 단수 및 우선추천 지역 선정에 대해 “당헌·당규에 위배된다”며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이한구 공관위원장은 김 대표의 기자회견이 끝난 지 10분이 채 안 돼 “공관위의 결정은 만장일치로 이뤄진 것”이라고 일축했다. 김 대표가 이 위원장과 정면 대결을 택할지, 아니면 상향식 공천 원칙이 무너졌다는 비판 속에 출구전략을 마련할지 18일 최고위원회의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 공세 나선 김무성
김 대표의 이날 기자회견은 한 달 가까이 지켜본 ‘공관위의 독주’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김 대표는 전날 공관위가 의결한 단수 및 우선추천 지역 선정에 대해 “국민공천제 취지에 반하는 전략공천의 성격이 있다”며 다음 최고위에서 다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예정된 최고위를 하루 연기한 건 냉각기를 갖겠다는 의미다.
김 대표는 여론조사에서 1등 한 후보를 탈락시키고 2등에게 단수추천이 돌아간 지역을 수용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전날 단수추천된 서울 은평을(유재길 후보)과 마포갑(안대희) 송파을(유영하), 대구 동갑(정종섭) 달성(추경호), 경기 성남 분당을(전하진) 등을 지목한 것이다.
김 대표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주호영 의원의 재의 안에 대해 공관위원 11명 중 7명만 찬성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재의 요구를 거부한) 이 위원장이야말로 바보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위원장이 여론조사에서 2등이 단수추천됐다는 김 대표의 지적에 대해 “웃기는 소리다. 여론조사로 다 결정할 거면 우리(공관위)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 바보 같은 소리”라는 주장을 재반박한 것이다.
당헌·당규상 의결 조건인 ‘재적 위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얘기다. 김 대표는 또 “어떤 지역은 현역 남성 의원이 있는데 굳이 여성 우선추천 지역으로 정하고, 여성 국회의원(후보를 잘못 말한 것으로 보임) 지역은 경선 참여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며 “이 모든 게 우리 당이 정한 상향식 공천 원칙에 반(反)한다”고 지적했다. 서울 용산을 여성 우선추천 지역으로 정해 진영 의원을 컷오프 시킨 것과 송파을에 나선 김영순 전 송파구청장의 컷오프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 코웃음 친 이한구
이 위원장은 김 대표가 기자회견을 마친 직후 “(단수 및 우선추천 지역은) 사무총장과 부총장이 참여한 가운데 만장일치로 결정했다”며 “당헌·당규를 위반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또 분당을을 예로 들며 “(단독후보로 추천된) 전하진 의원은 임태희(이명박 정부 대통령실장)와 비교가 안 된다. (분당을에는) 판교가 있어 창조경제의 본거지로 만들어야 한다”며 정보기술(IT) 전문가인 전 의원을 단독후보로 추천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대구지역 3선인 서상기, 주호영 의원을 컷오프 시킨 것에 대해선 “대구에서 (현역 의원을) 빼낼 데가 어디 있느냐. 두 사람밖에 없다”며 “두 사람 다 실컷 해먹었잖아. 그런데 지금 4선까지 하겠다는 건 무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김 대표를 향해 “알아듣는 척하더니 저런 식”이라며 불쾌해했다. 이날 점심 무렵 서청원 최고위원과 함께 김 대표를 만나 지역구별 상황을 상세히 설명할 때는 말이 없다가 갑자기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게 이 위원장의 주장이다.
○ ‘유승민 폭탄 돌리기’
여권 공천 내전(內戰)의 마지막 뇌관인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공천 여부는 이날도 결정되지 못했다. 김 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유 전 원내대표 문제를 논의하려 하자 김태호 최고위원은 “공관위가 결정하지 못한 것을 최고위에서 먼저 논의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취지로 막아 결국 아무 결론을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지도부와 공관위가 서로 ‘폭탄 돌리기’를 하면서 유 전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는 장기화될 수도 있다. 이 위원장은 “여러 방면에 의견을 수렴한 뒤 언젠가 결정할 것”이라고만 했다.
이재명 egija@donga.com
□2016.03.17 黨대표도 이해 못하겠다는 與공천
공천위, 朴대통령과 '각' 세웠던 현역 의원 대부분 공천배제 김무성 "이재오·진영·주호영 등 재고를"… 이한구 바로 거부 정치권·학계 "국민은 안중에 없고, 청와대만 바라본 공천"
새누리당이 유승민 의원 지역(대구 동을)을 제외한 나머지 공천을 사실상 완료했다. 그러나 정치권 안팎에서는 "국민은 안중(眼中)에 없고 청와대만 바라본 공천"이라는 평가가 많다. 당 대표까지 문제를 제기했다.
김무성 대표는 16일 이재오(서울 은평을), 진영(서울 용산) 의원 등의 낙천 결정에 대해 최고위원회 의결을 보류하고 공천관리위원회에 재의(再議)를 요구했다. 당 공천위는 전날 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로 지목한 유승민 의원과 가깝게 지낸 현역 의원을 대부분 탈락시켰다. 장관 재직 시 청와대와 불화를 빚은 진영·황우여 의원은 공천 탈락되거나 '험지'로 유배됐다. 이재오 의원 등 옛 친이계 상당수는 경선에 나갈 기회도 잡지 못했다. 대부분 당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지만 "정체성 기준이란 게 대통령 마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이와 관련, 김 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원내대표를 두 번 지낸 이재오 의원이 당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 대표는 공천위가 '진박(眞朴)' 후보로 불리는 정종섭(대구 동구갑), 추경호(대구 달성), 권혁세(성남 분당갑), 전하진(분당을), 유영하(서울 송파을) 후보를 단수 추천한 데 대해서도 "국민공천제 취지에 반한다"고 했다. 주호영 의원의 공천 탈락도 재의해달라고 했지만 이한구 공천위원장은 "공천위가 만장일치로 결정한 것"이라며 곧바로 거부했다.
당내에선 이번 공천 결과를 두고 "박심(朴心) 공천" "공천(公薦)이 아니라 통천(統薦·대통령 공천)"이라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당 밖에서도 비판이 적지 않다.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는 "이번 공천은 국민과 당원은 제쳐 두고 박근혜 대통령의 선호(選好), 당내 계파 간 역학 관계만 반영한 과정이었다"며 "우리 정당 정치의 후진성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 대통령과 친박계는 이 같은 비판을 예상하고 있었다. 알고도 한 것이다. 정치권에선 '레임덕'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는 해석이 가장 많다. 여권 핵심 ㅡ관계자는 "대통령은 지난 3년간 자기와 뜻이 다른 사람과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박 대통령 퇴임 후 친박계의 정치적 입지 확보 차원이라는 해석도 있다. 비난을 무릅쓰고 TK에 '진박'을 집중 배치한 것은 뚜렷한 차기 주자가 없는 친박계가 다음 대통령 임기 동안 이 지역을 중심으로 '진지전(陣地戰)'을 펼치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황대진 기자 선정민 기자
□2016-03-25 평범 김무성이 스타 박근혜를 이길 수 있을까?
/부산 영도구 자신의 선거사무실 앞 영도대교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뉴시스.조선DB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칼을 빼들었다. 번번이 그러는 듯 하면서도 이내 절제하고 후퇴하던 김무성 대표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이번에도 그러다가 적당히 숙이면 되겠거니 했는지 모르지만, 이번 그의 행동은 단순한 이견(異見) 표명 정도가 아니라, 제3자가 보기에도 정면의 '반란'이자 '도전'이었다. 이쯤 되면 야권 분당에 버금가는 여권의 내전(內戰)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는 본래 족보가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이 네이션 빌딩(nation building)과 산업화 흐름에 속한다면, 김무성 대표는 이와 대척점에 있는 민추협(民推協) 계보에 속한다. 김무성 대표도 물론 '보수'라 할 수밖에 없는 전남방직 아들이지만, 정치수업은 김영삼-김대중 계열에서 시작했다. 김영삼 김대중 두 리더들은 서로 경쟁자였지만, 그리고 때로는 적대적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유신시대와 신군부 시대를 생각하면 "우린 그때 동지였지?" 하는 일말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이점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간극이 있었을 수 있다.
김무성 대표는 이미 여러 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엇박자를 놓은 바 있다. 수년 전 철도노조 불법파업 때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과 최연해 KTX 사장이 사태를 99% 제압해 놓았는데 김무성 대표가 갑자기 뛰어들어 야당의 박지원 의원과 코드를 맞추는 가운데 노조 편을 들었다. 그래서 '박근혜-최연해 프로젝트'의 김을 확 빼버렸다. 그 후 김무성 대표는 외국에서 내각제 개헌을 거론했다가 금방 꼬리를 내렸는가 하면, 공무원 연금개혁안을 유승민 원내대표와 더불어 완전히 김빼버렸다.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이었다.
4. 13 총선에 이르러 김무성 대표는 국민경선에 의한 후보선출을 들고 나와, 비박계 현역의원들을 지원하려 했다. 이에 대해 친박계는 우선추천제를 들고 나와 현역의원 다수를 배제하려 했다. 이 줄다리기에서 김무성 대표는 유승민 사태 때도 별 말 없이 침묵을 지키며 밀리다가 막판에 와서야 갑자기 '옥새'를 거머쥐고 최후의 결전을 시도했다.
이 싸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는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밀리면 그는 즉시 레임덕으로 들어가게 된다. 반면에 김무성 대표가 꺾이면 그는 대권 지망자로서 회복하기 힘든 손실을 맛봐야 한다. 누가 이기느냐는 여론이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달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3년차에 들어서도 47%의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전례 없는 일이다. 개성공단 전면중단 등 단호하고 원칙주의적인 대북 자세에서도 그는 시종 다수여론의 지지를 받았다. 그의 통치 스타일이 안고 있는 '소통부족' 결점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어설픈 '진박 마케팅'이 자초한 역기능에도 불구하고, 적잖은 대중 사이에 드리워진 '박근혜 카리스마'는 여전히 유효하다.
김무성 대표가 그런 박근혜 대통령의 힘(권력+권위+매력)과 자신의 그것을 과연 어떻게 비교했기에 이번의 최후의 결전을 시도하기로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자신이 박근혜 대통령에 비해 권력-권위-매력에서 우위(優位)에 섰다는 결론이 서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할 코너에 몰렸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인지도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중 어느 경우든 한 번 엎질러진 물은 주어 담을 수 없다. 이 충돌은 따라서 갈 데까지 갈 수밖에 없다.
야당의 싸움도 갈 데까지 간 것이다. 야당 내부의 좌파 중도파 강경파 온건파의 충돌은 누가 어떻게 봉합할 수도 없었고 말릴 수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여당도 일단 전면전이 촉발된 이상에는 박근혜 대통령 그룹과 김무성 비박계의 싸움은 물리적 관성의 법칙대로 가는 것밖엔 별 수가 없다.
야당의 경우는 김종인 위원장이 안철수를 물 먹인 다음, 그래서 다 죽었던 친문(親文) 운동권을 살려놓은 다음, 역으로 친문 운동권 에 의해 토사구팽당하기 5분 전으로 낙착되었다. 여당의 경우는 과연 어떻게 될까? 김무성 대표에게 승산이 있을까? 4. 13 총선의 결과가 그걸 말해 줄 것이다. 여당이 성공하면 김무성 대표에게 불리하다. 그러나 실패해도 불리하다. 성공하면 그의 공로가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 덕이 되고, 실패하면 김무성 대표의 적전분열(敵前分裂) 탓이 된다. 그렇게 몰릴 것이다.
김무성 대표가 싸움을 건 타이밍, 그리고 그가 택한 싸움의 모양새도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가 박근혜 대통령 또는 '이한구 공관위'와 정말로 한 판 단단히 붙을 작정이었다면, 그는 왜 처음부터 팔 걷어 부치고 정면으로 대들어 정규전을 벌이지 않았는가? 마땅히 그랬어야 장수답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시종 소극적으로 이도저도 아닌 포즈를 취하면서 엉거주춤하고 있다가, 선거를 약 3주일 남짓 남겨놓은 막판에 와서야 겨우 옥새(玉璽)를 감춰놓고 버티는, 일종의 '방편적' 테크닉으로 임하고 있다. 이건 싸움의 큰길이라기보다는 소도구적 책략에 불과하다.
김무성 대표에게도 물론 유리한 점이 있기는 하다. 박근혜 대통령 측이 구사한 '진박' 낙하산이 초래한 민심의 역풍이 그것이다. 오죽하면 대구 민심조차 그걸 마뜩찮게 여겼을까. 친박의 이 패착은 수도권에 만만찮은 반박(反朴) 여론을 파급시켰다. '유승민 죽이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반사이익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김무성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의 권력과 권위와 매력과 카리스마를 능가할 수 있을까? 김무성 대표는 너무 '평범' 또는 '범용' 그 자체다. 그는 부자 집에 태어나 무난하게 살았고, 특징 없이 살았다. 좋은 팔자를 타고 난 셈이다. 생긴 것도 훤하다. 그러나 번뜩이는 섬광(閃光)은 없다. 지성적이지도 않다.
이게 나쁘다는 건 결코 아니다. 다만 평범하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그는 스타가 '아직'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반면에 '스타'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 서문시장에 나타났다 하면 수많은 군중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열광한다. 김무성 대통령이 자갈치 시장에 나타났을 때도 그런가?
담론의 측면에서도 김무성 대표가 그만의 멋진 정치적, 정책적, 문화적 담론을 편 바는 없다. 그는 '직업 정치인'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호남향우회에 참석했을 때도 근사한 멘트를 하기보다는 "나는 부산 사람이기 전에 전남방직 아들입니다"라는 정도의 말을 할 수 있었을 따름이다.
싸움은 갈 데까지 가야 끝난다. 김무성 대표가 그의 장-단점을 가진 채 과연 어디까지, 얼마나 싸워 보일지 흥미진진하게 주시할 따름이다. 박근혜 대통령 측 역시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라 해서 보증수표를 쥐고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두 계파가 한 쪽이 죽을 때까지 어디 한 번 싸워보라 이 말이다. 김종인과 운동권처럼 치사한 임시봉합 일랑 하지 말고. 자 그럼 준비~ 땅!
글 | 류근일 언론인, 전 조선일보 주필
□2016.04.14 [4·13 총선-충격의 새누리]
새누리 '江南 아성'도 깨져… 과반은커녕 1黨마저 위태위태
"질 수 없는 선거 망쳤다"… 공천파동 부른 親朴 책임론 커져 오세훈·김문수·안대희 등 줄줄이 낙마하자 "대선도 빨간불" 야권 분열에도 최악의 성적… 선거 초반 180석 넘보다 참패 당내 靑 비판 목소리 커지며 與圈, 일대 혼란에 빠질 가능성
13일 오후 6시 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2층 개표 상황실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출구조사 결과 새누리당이 118~ 147석 사이로 과반 의석 확보가 어려운 것으로 나타나자 곳곳에서 "아…"하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원유철 원내대표, 강봉균 공동 선대위원장, 황진하 사무총장을 비롯한 50여명의 당 관계자들은 출구조사 결과가 믿기지 않는 듯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출구조사 방송 1분여 전까지 과반 의석을 기대하며 합창으로 방송 개시 카운트다운을 했던 새누리당 사람들 사이에선 "참패다"란 얘기가 흘러나왔다. 새누리당은 서울 강남을에서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후보에게 패하는 등 전통적 '텃밭'을 야당에 내줬다.
◇충격에 빠진 새누리
새누리당은 연초만 해도 180석을 예상할 정도로 낙관적 전망 속에 총선전을 시작했다. 야권(野圈)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갈라져 선거 구도도 새누리당에 유리한 쪽으로 흘렀다.
하지만 친박(親朴)계와 비박(非朴)계가 내전(內戰)에 가까운 공천 파동을 벌이면서 흐름이 바뀌었다. 공천 파동에 실망한 지지층이 이탈하면서 총선을 8일 정도 앞둔 지난 4일 당 자체조사에서 130석도 어렵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즈음부터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후보들은 "공천 과정에서 국민 눈 밖에 나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사죄하며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는 읍소(泣訴) 전략을 펴기 시작했다.
/침통 - 새누리당 원유철(오른쪽) 원내대표와 강봉균 공동선대위원장이 13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 만들어진 종합상황실에서 굳은 표정으로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이덕훈
하지만 당내에선 투표 당일까지도 내심 과반 의석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란 기대가 적지 않았다. "지난 주말부터 지지층이 결집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기대 섞인 얘기도 나왔다. 과반 의석 확보를 전제로 총선 이후 벌어질 본격적인 당권 투쟁과 차기 대선 레이스가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이날 오후 들어 투표율이 다소 높아진다는 소식에 "젊은 층의 투표율이 높아지고 50대 이상 전통적 지지층이 투표장에 많이 나오지 않은 것 같다"는 얘기가 돌며 술렁였다. 그래도 진짜 과반이 무너질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던 듯 출구조사가 발표되자 충격에 휩싸였다. 이번 선거를 지휘한 김 대표가 과반 실패로 타격을 입고 오세훈, 김문수, 안대희 등 여권의 대권주자군으로 꼽혔던 후보들이 줄줄이 야당 후보에 밀리자 "차기 대선에도 빨간불이 켜졌다"는 우려도 나왔다.
당사에서 개표방송을 지켜본 원유철 원내대표는 침통한 표정으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고 했다. 원 원내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는 개표 방송 30분 만에 대부분 당사를 떴다. 부산 지역구에서 투표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병원에서 링거주사를 맞으며 출구조사 발표를 지켜본 김무성 대표도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밤 10시 당사에 나와 개표방송을 보기로 했던 그는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親朴 책임론' 등 소용돌이 휘말릴 듯
개표가 어느 정도 진행된 심야까지도 반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당 관계자들 사이에선 총선 이후 벌어질 책임론도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날 상황실에서 출구조사 결과 발표를 지켜본 한 비박계 의원은 "질 수가 없는 선거를 누가 망쳐놓은 거야"라고 소리치고 자리를 떴다. 야권이 분열해 여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구도에서 치러진 선거를 망친 책임이 공천 파동을 주도한 친박 주류에 있다는 얘기였다. 수도권의 한 비박계 후보는 "이른바 '진박(眞朴) 마케팅'과 유승민 의원 공천 문제를 질질 끌어 수도권에서 표 떨어져 나간다고 후보들이 얼마나 아우성을 쳤느냐"며 "공천을 주도한 친박 주류에 대한 책임론이 거세게 일 것"이라고 했다.
대구시 당사에서 출구조사 결과 발표를 지켜본 친박 핵심 최경환 의원은 "전체 선거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민심을 겸허히 수용해 반성할 것이 있으면 반성하고 개선할 점은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작년 연말부터 국회에 요구해온 노동·경제 입법도 어려움에 봉착할 가능성이 커졌다. 새누리당은 이번 총선에서 야당의 '정권 심판론'에 맞서 박 대통령이 얘기해온 '야당 심판론'을 들고 나왔다. 선거전 막판엔 "과반 의석을 못 얻으면 박근혜 정부가 식물 정부가 된다"며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권자의 표심이 새누리당에 과반 의석을 주지 않는 여소야대(與小野大)로 나타나면서 '박근혜표 입법'을 추진할 동력을 상당 부분 잃게 됐다는 평가다. 여권 관계자는 "여당 내에서도 청와대에 국정 운영 기조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올 것"이라며 "여권이 일대 혼란에 빠져들게 됐다"고 했다.
최경운 기자
이옥진 기자
□폐허 된 與… 총선책임·6월全大 놓고 또 계파 충돌하나
당장은 自省 분위기 있겠지만 친박·비박 갈등 재연 가능성 "10年前 노무현 정부 4년차때 지방선거 참패와 너무 닮았다" 내년 '여권發 정계개편' 거론도
새누리당은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에 과반 의석을 빼앗긴 이후 최대 위기에 빠졌다.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것은 물론, 김무성·오세훈·김문수 등 주요 대선 주자들이 타격을 입으며 차기 정권 재창출도 기약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당내에선 "폐허가 된 당을 일으켜 세우려면 12년 전 천막당사를 하던 심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무소속 복당, 전당대회 등 산 넘어 산
새누리당은 당분간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혼돈 속으로 빠져들 전망이다. 일시적으로는 친박·비박 할 것 없이 선거 패배에 대한 자성(自省) 분위기가 형성되겠지만 머지않아 잠복했던 계파 갈등이 재분출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선거 패배 책임론이다. 친박계는 살생부와 막말, '진박 마케팅' 논란으로, 비박계는 김무성 대표의 옥새 투쟁으로 각각 내홍을 극대화했다는 책임을 져야 한다. 당장 유승민(동을)·주호영(수성갑) 등 친여(親與) 무소속 당선자의 복당(復黨) 여부를 놓고 갈등이 재연될 공산이 크다. 최경환(경북 경산) 당선자 등 친박계는 그동안 "공천 배제자를 다시 받아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독자 과반 확보에 실패하면서 이들을 당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6월 중순쯤으로 예정된 전당대회에서는 양측의 충돌이 재연될 수 있다. 김무성 대표는 총선 이후 대표직 사퇴를 선언한 상태다. 이번 전당대회는 내년 대선 후보 경선을 관리할 당 대표를 뽑는다는 점에서 친박·비박계가 모두 자신들에게 유리한 지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공천 파동의 본질도 여기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친박계에선 당초 최경환 당선자가 유력한 당 대표 후보로 거론됐지만 이번 선거 패배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이에 따라 이주영(경남 창원마산합포)·원유철(경기 평택갑) 등 공천 파동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인사가 나설 가능성이 있다. 비박계는 선거 결과 전반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김무성 대표가 상처를 입은 가운데 마땅한 당 대표 후보마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10년 전 열린우리당과 닮은꼴?
박근혜 정부 4년차에 치러진 이번 총선 결과는 노무현 정부 4년차에 실시된 2006년 지방선거 결과와 닮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시·도지사 선거에서 전북 1곳을 빼고 전패했고, 230곳에 이르는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단 19곳만 건지며 155곳을 차지한 한나라당에 대패했다. 서울은 25개 구청장 전부를 한나라당이 가져갔다. 2004년 탄핵 바람을 타고 과반 의석을 차지했으나 불과 2년 만에 치러진 전국 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참패한 것이다. 당시 친노(親盧) 운동권의 배타적 국정 운영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선거 결과 집권당의 주요 대선 주자가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는 점도 비슷하다. 열린우리당은 당시 유력한 차기 주자였던 정동영 당의장이 선거를 지휘했으나 패배하면서 정치적 입지가 크게 흔들렸고, 결국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큰 표차로 패했다. 이후 적장(敵將) 중 한 사람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당 대표로 영입해 2008년 총선을 치르며 회생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권발 정계 개편이 있을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거론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새누리당 비박계가 친박계에 당권을 빼앗길 경우 대선을 앞두고 야권 일부 세력과 연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 관계자는 "예컨대 친박 지도부가 당권을 장악한 상황에서 비박계가 대선 후보를 배출하기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김무성 대표 등 비박계 주자들이 국민의당과 힘을 합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대선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최소 2년간 국정 운영을 책임져야 하는 새누리당 입장에선 각종 법안 통과를 위해서라도 국회 운영의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과 협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황대진 기자
□2016.04.14 이번엔 與가 '질 수 없는 선거'를 졌다
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12년 전인 2004년 1월이었다. 당시 기자는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취재팀장이었고, 박 대통령은 재선(再選) 의원이었다. 그 무렵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소장파 의원들과 자주 모임을 가졌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제왕적 총재' 1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전(前)근대적 정당에서 벗어나 '민주적 의사 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외쳤다. 처음 만난 기자에게 30분 가까이 이 문제를 이야기했다.
박 대통령은 그해 3월 새누리당의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총선을 20여일 앞둔 시점이었다. 새누리당은 당시 두 번의 대선 패배와 불법 정치 자금 차떼기 의혹, 노무현 대통령 탄핵 이후 불어닥친 역풍(逆風)으로 난파 직전의 위기를 맞았다. 새누리당 자체 여론조사에서 국회 의석 299석 중 50곳도 이기기 힘든 것으로 나왔다. 이 위기를 수습한 게 박 대통령이다. 그는 당대표 당선 직후 번듯한 건물에 자리 잡은 당사(黨舍)를 버리고 나와 여의도의 공터 한쪽에 천막 당사를 꾸렸다. 전국을 돌며 '한 번만 용서해달라' '살려 달라'고 호소했다. 당의 권력도 나눴고 각종 쇄신책을 내놨다. 고질병인 당내 계파 다툼도 사라졌다. 이런 절박함으로 새누리당은 121석을 얻었다. 국회 1당 자리를 내줬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친노 세력의 독주를 견제하기에는 충분한 의석이었다.
그 후 10여년, 박 대통령은 지금의 야당과 겨룬 선거를 전부 이겼다. 그중 상당수가 새누리당이 이기기 힘든 선거들이었다. 4년 전 총선도 그랬다. 당시 새누리당은 총선을 5개월여 앞두고 당 내분과 전당대회 부정 경선 의혹 등으로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반면 지금의 야당은 흩어진 세력들을 다시 모아 통합 신당을 만들었고, 야권 후보 단일화도 성사시켰다.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떠맡게 됐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에 실시되는 총선은 누가 봐도 여당인 새누리당에 불리한 구도였다.
박 대통령은 당 지도부(비대위)에 새누리당 출신이 아닌 사람들을 대거 영입하는 뜻밖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경제 민주화'의 상징인 김종인 전 의원, 이상돈 전 교수, 20대 중반의 이준석씨, 새누리당의 차떼기 의혹을 수사했던 안대희 전 대법관 등이 새누리당에 들어왔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의 대표를 맡고 있는 김종인, 국민의당으로 둥지를 옮긴 그 이상돈씨가 4년 전에는 박 대통령과 손을 잡고 새누리당 승리를 이끌었던 것이다. 대통령 취임 후 박 대통령이 보여준 인사(人事)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폭(幅)과 파격을 선보였던 것이다. 이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국회 과반 의석 확보라는 예상을 뛰어넘는 승리를 거뒀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후 치러진 네 번의 국회의원 재·보선에서도 전승(全勝)을 기록했다. 재·보선은 유권자가 정권을 향해 매를 드는 선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보선에서 사실상 전패(全敗)했고, 박 대통령의 전임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네 번의 선거 중 딱 한 번 이겼을 뿐이다. 반면 박 대통령은 세월호 침몰과 두 번의 총리 후보자 낙마(落馬)라는 악재가 이어진 가운데 열린 2014년 7월의 재·보선에서까지 승리를 거뒀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이길 수 없는 선거'를 거듭 이기고, 거꾸로 야당은 '질 수 없는 선거'에서 계속 지는 일이 되풀이됐다.
이렇게 이어진 선거 승리가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독(毒)이 됐다. 절박함은 사라지고 당내 계파 다툼으로 제 발등 찍기에 바빴다. 사실 선거 구도만 놓고 따지면 어제 실시된 총선은 새누리당이 손쉽게 압승(壓勝)을 거두는 것이 정상이다. 야당이 선거를 앞두고 둘로 갈라졌기 때문이다. 야당 내 곁가지 세력이 떨어져 나가 딴살림을 차린 게 아니라 몸통에 가까운 세력들이 뛰쳐나갔다. 새누리당이 기록적 승리를 거둘 수 있는 호기였다. 여당이 더 이상 국회 선진화법에 발이 묶이지 않아도 되는 180석 이상을 얻는 게 불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이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찼다. 공천 과정에서 새누리당이 보여준 추태와 기행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까불면 죽는다'는 선거의 철칙을 어긴 것이다. 결국 이번에는 여당이 '질 수 없는 선거'를 졌다. 선거 불패(不敗) 신화를 써 왔던 '선거의 여왕' 박 대통령에게는 뼈아픈 패배다.
이번 총선 결과는 이 정권과 여당에 대한 분노가 미덥지 않은 야당을 향한 불만·불안을 압도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거듭된 승리에 취해 잊고 있었던 성공 비법을 되살려 낼 수 있다면 이 패배는 약(藥)이 될 수 있다. 그러려면 12년 전 천막 당사 시절처럼 쇄신(刷新), 쇄신 또 쇄신하는 것밖에 달리 길이 없다. 박 대통령이 그간 위기의 순간마다 선보였던 극적인 변화와 반전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이번 총선에서 국민이 박 대통령에게 던진 질문이다.
조선일보 박두식 부국장 겸 사회부장
□2016.04.14 총선관전기- 몰락한 '짝퉁 보수' 정당과 김진태 의원의 생환
애국보수 진영은 오래전부터 새누리(혹은 한나라당)의 기회주의적 보수주의에 대해 경고와 우려를 나타내왔다. 탄핵정국 속에서 치러진 17대 총선을 제외하고 지난 두 번의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과반 의석이 넘는 압승을 거뒀다.
우파정권 탄생은 좌파정권 10년 동안 애국보수 세력이 거리와 인터넷에서 벌여온 눈물겨운 투쟁의 결실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이병완씨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킨 2007년 대선의 진정한 승리의 주역은 양갑(兩甲, 조갑제·서정갑)이라고 분석했다. 이씨는 “보수우파의 이론적 역사적 토대를 만든 사람이 조씨, 태극기·성조기·군복을 동원한 ‘아스팔트의 우익’이 서씨”라고도 주장했다.
노무현 정부의 핵심실세가 이렇게 평가했을 정도로 애국보수 세력은 그야말로 풍찬노숙을 해가며 눈물겨운 싸움을 해왔다. 애국보수 세력이 기댄 곳이라고는 헌법과 자유민주의 가치, 그리고 거짓 선동에 맞선 진실 외에는 없었다. 이들의 10년에 걸친 노력이 결국 극좌로 기울고 있던 대한민국호(號) 조종간을 똑바로 되돌려 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정권 창출의 일등공신인 정통 애국보수 세력을 철저히 외면했다. 외면이 아니라 조롱과 혐오를 보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애국보수 세력들이 무엇을 바라고 10년을 거리에서 투쟁한 것은 아니지만,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기 전부터 ‘수구세력(애국보수우파)들과는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가 노골적으로 흘러나왔을 때 깊은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이런 조롱을 받으면서도 애국보수 세력들은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18대 여당 의원들이 해야 할 험난한 일 대부분을 애국보수 세력이 추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애국보수 세력은 이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어렵게 세운 우파정권이 심각하게 좌 클릭 된 나라를 정상화시키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면면히 이어진 새누리의 애국보수 혐오 DNA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애국보수 세력을 멀리한 이명박 정권은 ‘중도실용’을 내세우며 좌파들에게 아부했다. 그 결과는 알다시피 촛불시위와 집권 내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종북 좌파들에게 휘둘리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집권 여당은 한미 FTA며, 제주해군기지 건설, 촛불난동 등 무엇하나 애국보수 세력의 도움 없이 스스로 싸워서 국정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치열한 전투의지를 보인 적이 없었다. 위기 때마다 아스팔트 우파들은 의병을 자처하며 일어나 정부 정책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이념적 좌표를 상실한 이명박 정부는 사상 최대의 표차로 당선시켜준 정권교체의 의미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청와대는 충신이 사라진 교수들의 ‘취업센터’로 변했고, 공무원은 영혼 없는 관료집단으로 변모했다. 영혼 없는 교육부 공무원들이 민중사학에 바탕을 둔 국사 교과서를 통과시켜 오늘날의 국사 교과서 사태를 만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는 1년 만에 50% 대에서 20%대로 떨어져 굳어졌다.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선거캠프에 참여했던 여권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가 지향하는 확실한 철학이 없으니 정권에 참여한 사람들이 그저 자기 밥그릇 챙기는 데나 관심 있지 제대로 일을 할 줄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가 출신인 이 대통령은 정권을 경매입찰해서 낙찰받은 것으로 생각해 1등이 다 먹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집권 여당 의원들의 정체성을 상실한 탈이념의 아노미 현상은 19대 국회에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애국보수 혐오 DNA가 고스란히 이어진 것처럼 보였다. 이명박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권 창출을 위해 애쓴 애국보수 인사들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이번에는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정부 탄생에 협조했다는 소위 괘씸죄가 컸다.
집권 새누리당은 젊은이들의 인기를 사기 위해 포퓰리즘 정책과 야당에 뒤지지 않는 온갖 좌파적 복지정책 경쟁을 벌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적 의지가 없었다면 통진당 해산이나 개성공단 폐쇄, 국사교과서 문제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유례없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에 억눌려 여당 의원들은 마지못해 체질에도 맞지 않는 보수정당 흉내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위해 싸울 줄 모르고, 북한 김정은 독재에 분노하지 않고, 노예상태에 놓여 있는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정당을 보수의 가치를 대변하는 정당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안이 없었다. 애국보수 세력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보수를 표방한 오렌지 웰빙정당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참 보수’는 국민이 먼저 알아본다
집권 여당의 기회주의적 보수행각에 벼르고 있던 애국보수 세력들은 드디어 이번 20대 총선에서 회초리를 제대로 들 기회를 포착했다. 자기네 말대로 한방에 훅 보내버린 것이다.
온 국민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고, 북한의 애송이 독재자가 핵개발에 열중하고 있는데도 국정을 책임진 여당은 오로지 친박(親朴)·비박(非朴)·진박(眞朴) 같은 무의미한 계파 싸움에만 열중했다. 아무리 뜯어봐도 친박·비박·진박 인사들의 성향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안보는 사라지고, 넌덜머리나는 밥그릇 싸움에만 매달렸다.
이에 반해 야당은 김종인 대표를 내세워 총선에서 이념적 대결을 희석시켰다. 개념 없이 행동해온 몇몇 좌파 성향의 의원들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정치 혁신을 외치는 제3의 대안정당도 나타났다. 중도 성향의 보수층이 큰 부담없이 야당을 선택할 수 있는 외적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그래도 차마 야당을 찍지 못하겠다고 생각한 보수층은 아예 투표장에 가지 않는 것으로 여당에 항의했다.
▲강원도 춘천에서 재선에 성공한 김진태 의원./뉴시스
여당이 경상도를 제외하고 참패를 한 와중에 의미심장한 대목이 있다. 바로 강원도 춘천에 지역구를 둔 김진태 의원의 재선 성공이다. 김 의원은 초선이었지만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깊은 관심을 가지고, 종북 좌파를 비판하는 소신 있는 발언과 행동을 해온 인물이다.
그는 철부지 젊은이들에게 ‘막말 의원’이니, ‘수구꼴통’이라느니 하는 온갖 비난을 들으면서도 통진당 해산이나 전교조, 국정교과서, 북한인권 문제 같은 국가 정체성이 걸린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김진태 의원의 생환을 보면, 헌법과 자유민주의 가치를 위해 제대로 싸울 줄 아는 애국보수 인사는 국민이 절대 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총선 결과는 오렌지 웰빙 귀족 체질에 안주해온 ‘짝퉁보수’ 정당이 진작에 맞아야 할 매를 이제 맞은 것뿐이다. 제대로 체질 개선을 하지 않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 모른다. 특정인에 코드를 맞춘 ‘진실된 사람’을 찾을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의 가치에 충성하는 ‘참 보수’ 정당으로 거듭나는 기회가 되길 바랄 뿐이다.
글 | 이상흔 조선pub 기자
□2016.04.14 박근혜 대통령과 親朴의 오만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다
13일 치러진 20대 총선이 새누리당 참패로 끝났다. 광범위한 민심 이반이 표출되면서 친여(親與) 무소속을 합하더라도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여야 1대1로 치러진 19대 총선보다도 못한 결과밖에 얻지 못했다. 심지어 새누리당 아성인 서울 강남권까지 흔들렸고 친박(親朴) 후보들이 전국에서 우수수 떨어졌다. 부산·경남에서도 야권에 10석이 넘는 의석을 넘겨줬고 충청·강원에서까지 의석을 잃었다. 비례대표 정당 투표에서도 전국적으로 19대 때보다 5%포인트 가까이 떨어졌고 서울에서는 30%를 간신히 넘겼다. 새누리당은 선거전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최대 180석까지 얻을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이런 오만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야권이 분열되지 않았더라면 어떤 참담한 상황이 왔을지 알 수 없다.
이 결과에 대한 책임은 박근혜 대통령과 진박(眞朴)이라는 사람들이 질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과 대통령을 둘러싼 사람들이 새누리당에 책임을 미루려 한다면 민심은 더 멀어질 것이다. 박 대통령은 작년 5월 자신의 말을 충실히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를 '배신자'로 지목해 끌어내렸다. 진박이라는 사람들은 이번 공천을 주도하면서 유 전 원내대표와 가까운 사람들을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모두 잘라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거칠게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말이 쏟아졌지만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눈 밖에 난 사람들을 몰아냈다. 유권자를 한 줄로 세울 수 있다는 오만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박 대통령은 1년 전부터 국민을 향해 정치권 전체를 심판하고 국회를 완전히 바꿔 달라는 말을 수시로 했다. 선거 며칠 전까지 지방을 돌며 국회 심판론을 되풀이해 선거 개입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다. 대통령이 국회 심판을 외치다가 스스로 심판당한 꼴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여권 지지자들 사이에 투표하기 싫다는 말이 유행처럼 돌았다. 실제 국민의당 수도권 지역구 후보들이 고르게 10~20%대 득표를 한 것을 보면 여당 지지표가 상당히 흡수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여당은 눈 가리기 식 읍소(泣訴)를 하거나 '식물 대통령 막아 달라' '야당이 발목 잡지 않게 해달라' 같은 상투적인 말밖에 하지 않았다. 이러고도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면 정상이 아니다. 이번 총선 결과는 대통령의 독주, 이걸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진박, 이 판을 뒤집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따라간 여당 전체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박 대통령은 임기 초에는 인사 실패를 거듭했고, 안하무인의 태도로 불통 시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박 대통령 주도로 선진화법을 만들어 주요 국정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매번 의사 결정이 지연되면서도 국민에게 사과 한번 하지 않고 국회 탓만 했다. 이제 국정 주도력이 국민 불신을 받음으로써 사실상 임기 말 레임덕이 그 어느 정권보다 빨리 시작됐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지금이라도 야당은 물론 여권 내 반대 세력과 대화하는 길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이 나라가 지금 안보·경제 동시 위기라고 말해왔다. 실제 상황이 그렇다. 밖으론 격동하는 동북아 국제 정세 속에서 평화와 통일을 우리 손으로 주도해갈 수 있느냐, 아니면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우리 운명을 휘둘릴 것이냐는 갈림길에 섰다. 경제도 장기 저성장 국면에서 자칫 길을 잘못 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우선 자신부터 바뀌어야 한다. 국정(國政)도 일대 쇄신해야 한다. 그 변화는 이번에 표출된 민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새누리당도 모든 것을 바꾸지 않으면 이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중한 심판이 내려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2016년 04월14일 새누리 ‘참패 五敵’ “靑·이한구·김무성·최경환·윤상현”
“不通·독선 공천에 등 돌려”
새누리당 내에서 이번 4·13 총선 참패의 최대 원인 제공자들에 대한 책임론이 나오고 있다. 한때 개헌 의석(200석 이상) 혹은 국회선진화법 무력화 의석(180석 이상) 확보를 넘보기도 했지만 결과는 ‘16년 만의 여소야대 정국’ ‘8년 만의 원내 제1당 교체’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 든 것에 대한 반응이다.
이와 관련 당 안팎에서 ‘오적(五敵)’이 회자하는 형국이다. 독선과 불통으로 당청 관계나 당정 관계의 혼선과 혼란을 초래한 청와대, 새누리당 공천 과정에서 유아독존 식으로 칼날을 휘두른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옥새 파동’으로 정치를 희화화한 김무성 대표, 친박(친박근혜) 마케팅과 진박(진실한 친박) 코스프레의 주역 최경환 의원, ‘막말 파문’으로 몸담았던 당 전체의 표를 잠식한 것으로 평가되는 윤상현 의원 등이 그들이다.
여권의 한 인사는 14일 “박 대통령의 독주와 국회 심판론에 대한 역풍, 김 대표와 이 위원장의 볼썽사나운 공천 다툼, 친박 핵심 인사들의 오만함에 대한 냉정한 표심이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민심 이반을 초래한 결정타가 된 새누리당의 공천을 친박계가 주도하면서 청와대는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연루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당이 친박과 비박(비박근혜)으로 나뉘어 피 튀는 공천 싸움을 벌일 때 청와대는 중재를 하기는커녕 갈등을 수수방관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이 위원장과 김 대표는 공천을 놓고 끊임없이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 여권 공천과정의 한심한 모습을 여과 없이 유권자들에게 보여줬다. 김 대표는 자신이 주장했던 100% 상향식 공천 원칙이 무너지는 내내 침묵하다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옥새 투쟁’을 벌이는 등 갈등을 극대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공관위원들이 이 위원장의 독단적인 운영에 반발해 심사를 거부하는가 하면 국민공천배심원단이 이 위원장을 향해 “비민주적이고 독선적인 공천 작태를 규탄한다”고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친박 핵심 최 의원이 영남권에서 예비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돌며 ‘진박 감별사’를 자처한 것도 유권자의 싸늘한 평가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과도한 진박 마케팅으로 전통적 지지층이 이탈하는 등 독이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공천 막판에 친박계의 핵심 윤 의원의 취중 막말 파문이 불거지면서 수도권 민심은 또 한 번 출렁였다. 당내 비박계 인사로부터 정계 은퇴 압박까지 받을 정도로 여당에 악재를 끼쳤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동하 기자 kdhaha@munhwa.com
□2016.04.15 총선 참패 부른 새누리의 6가지 장면
[4·13 국민의 심판] ①眞朴들의 과도한 마케팅 ②유승민 공천 놓고 말려죽이기 ③이한구 공천위원장의 거친 말 ④윤상현의 "다 죽여" 막말 ⑤국회만 질타한 朴대통령 ⑥공천 막판까지 입다문 金대표
여권(與圈)의 4·13 총선 참패는 정권 운용과 당 공천을 책임졌던 주류 친박계에 1차 책임이 있다. 이들이 최근 보여줬던 몇 가지 상징적인 장면에서 기존 지지층까지 등을 돌린 것이다.
①선거판 휘저은 '진박(眞朴)'들
핵심 친박, 이른바 '진박'들의 과도한 마케팅은 여권 입장에선 질 수 없는 선거를 지게 만든 첫 단추였다. 친박계는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과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 등을 사직시켜 점령군처럼 대구에 투입했다. 이들의 인기가 오르지 않자 음식점에 모아 이른바 '진박 인증샷'을 찍어 돌렸다. 그래도 오히려 역풍만 불자 이번엔 최경환·홍문종 의원 등 친박 핵심들이 "대통령을 위해서 이들을 뽑아야 한다"고 유권자들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진박 감별사'란 말까지 생겼다.
②유승민 고사시키기
유승민 의원 공천 과정은 유권자들 입에서 "잔인하다"는 말이 나오게 했다. 유 의원을 잘라낼 경우 '보복 정치' 비판이 일 것을 우려해 유 의원 스스로 탈당하도록 몰아갔다. 친박계와 이한구 공천위원장은 유 의원 '컷오프'를 정해 놓고도 1주일 이상 시간을 끌었다. 매일 "알아서 나가라" "자진 사퇴 기다린다" "서로 좋은 길을 택하자"는 말을 흘리며 압박했다. 그 과정에서 조해진 의원 등 친(親)유승민계 의원들을 하나씩 잘라내며 "유 의원도 꼭 출마해야 하느냐"고 하기도 했다. 인간적으로 견디기 힘들게 죄어들어 갔던 것이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너무한다"던 민심이 새누리당을 심판한 것이다.
③너무 거칠었던 이한구 공천
이 과정에서 이한구 공천위원장의 거친 말과 안하무인적인 행동이 논란을 키웠다. 그는 공천 시작부터 "현역 의원이라도 저성과자나 비인기자는 공천에서 배제한다"고 해서 모든 탈락자를 '저성과자' '비인기자'로 만들어 버렸다. 곧이어 대구·경북 의원 6명을 강제로 자를 것이란 얘기가 나오자 "그것밖에 안 되느냐"고 해서 '사전 기획설'을 키웠다. 청와대 정무수석과의 비밀회동 보도에 대해서도 "내가 누구를 만나든 왜 문제냐"고 해서 의혹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당내에서도 "너무 심한 말"이라는 지적이 있었지만, 이후로도 이 위원장의 험한 말은 이어졌다.
④윤상현 막말 파문
윤상현 의원 막말 파문도 파장이 컸다. 지난 2월 윤 의원이 취중에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김무성 대표를 언급하며 "죽여버리게, 다 죽여"라고 말한 녹음이 외부로 유출됐다. "내가 당에서 가장 먼저 그런 XX부터 솎아내라고, 솎아내서 공천에서 떨어뜨려 버리라"는 등의 표현은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당은 윤 의원의 거취를 며칠간 정하지 않다가 일주일 만에 공천 배제를 결정했다. 당 안팎에서 "대통령과 친한 윤상현 의원을 어떻게든 구하려고 한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⑤대통령의 일방적 국회 비난
총선 국면에서 계속된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비난'도 표를 잃게 했다는 평가가 많다. 작년 내내 국회를 비난했던 박 대통령은 선거를 앞두고 3·1절 기념사와 3월 2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등에서도 국회만 비판했다. 총선을 닷새 앞둔 8일에는 전북 전주의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찾아 "20대 국회는 확 변모되는 국회가 되기를 기원하겠다"고도 했다.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19대 국회가 파행으로 치달은 데에는 청와대 책임도 있는데 대통령은 아무 관계 없는 듯이 국회만 탓하는 건 선거에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⑥대표 역할 못한 당 대표
김무성 대표는 당 대표로서 이 같은 친박들의 행동을 제때 제어하지 못했다. 오히려 외부의 비난에도 공천 막판까지 입을 닫고 "공천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말만 했다. 그리고 자신의 측근들이 모두 공천을 받자 그때야 '옥새 파동'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그걸 '옥새 들고 나르샤'라는 홍보 동영상으로 돌리기도 했다. 김 대표가 처음부터 공정한 공천 관리를 했다면 여당의 이 정도 참패 상황은 막을 수 있었다
엄보운 기자
□2016-04-19 적반하장 이한구, 궤변본색 정청래… 표심 못 읽는 5인방
이한구 “내가 이끈 개혁공천 옳았다”… 정청래 “햇볕정책 부정해 호남 패배”
원유철 비대위장 수락 ‘책임 회피’… 막말 윤상현 복당신청 ‘염치 몰수’
김한길은 야권 단일화 ‘뒷북 훈수’
4·13총선에서 국민은 여야 정치권을 향해 매서운 표심(票心)을 보여 줬다. 계파 간 공천 갈등에 빠졌던 새누리당에는 과반 의석을 허락하지 않았다. 야권 역시 더불어민주당은 호남 민심을 잃었다. 국민의당은 제3당으로서의 가능성만 확인했다.
그러나 일부 여야 정치인은 여전히 국민의 표심을 읽지 못한 언행을 하고 있다.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았던 이한구 의원은 계파 간 논란을 일으킨 공천 직후 잠시 일본에 머물다 귀국해 정치적 발언을 삼가 왔다. 하지만 총선 패배 직후엔 작심한 듯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이끌었던 ‘개혁 공천’은 지금도 옳았다고 생각한다”는 발언을 쏟아냈다.
특히 이 의원은 공천 파동의 핵심이던 유승민 의원의 컷오프(공천 배제) 문제를 놓고 민심이 들썩였던 점에 대해 “유 의원 스스로 불출마 결정을 했다면 모두에게 잘됐을 것”이라는 말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당직자는 “당시 공천 과정을 알고 있는 당직자들이 한두 명이 아닌데 사과는커녕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가 14일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전원 사퇴할 당시 원유철 원내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한 것을 놓고도 반대 목소리가 높다. 원 원내대표는 당시 비대위원장 자리를 고사했지만 결국 수락하면서 논란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차기 전당대회 출마가 거론되는 상황에서 굳이 ‘관리형’ 비대위원장직에 그칠 거라면 다른 인물을 영입하는 게 낫지 않았느냐는 얘기다. 당 지도부였던 원 원내대표가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는 모습을 진정성 있게 보여 주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무성 대표를 향한 ‘막말 녹취 파일’이 공개되면서 논란을 일으킨 윤상현 의원도 도마에 올랐다. 윤 의원은 컷오프 된 뒤 탈당해 무소속으로 당선되자마자 복당을 신청했다. 새누리당 선거에 악영향을 미쳤던 윤 의원의 복당을 놓고 당내에선 뒷말이 나온다. 한 재선 의원은 “차기 전당대회 출마까지 염두에 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비록 지역구에서 당선은 됐지만 당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당선되자마자 복당 신청을 한 것은 아쉬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는 더민주당에도 ‘레드카드’를 들었다. 야당 텃밭인 호남은 국민의당을 선택했고 더민주당은 호남 28석 중 단 3석만 얻었다. 그런데도 더민주당 안팎에서 이번 총선 승리 배경에 대한 아전인수(我田引水)식 해석으로 계파 갈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친노·운동권으로 분류되는 더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15일 트위터에서 “반(反)문재인 정서는 호남 민심 이반의 본질이 아니다. 호남에서 지지율 1위가 문재인”이라며 “북한 궤멸론과 햇볕정책 부정 그리고 비례대표 공천 장사 운운으로 김대중과 광주 정신에 대한 모욕이 호남의 역린을 건드린 것은 아닐까”라고 적었다.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가 명분 없는 단일화에 호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입증됐는데도 이를 다르게 해석하기도 했다. ‘야권 단일화’를 주장하며 불출마를 선언했던 국민의당 김한길 의원은 14일 페이스북에 “야권이 미리 정신을 차려 조금만 더 야무지게 대응했다면 180석을 넘기는 것도 무난했을 것”이라는 실현 불가능한 희망 사항을 밝히기도 했다.
강경석 coolup@donga.com
2 더민주당
□2016.04.18 문재인은 왜 정계은퇴 하지 않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총선 투표일을 닷새 앞둔 지난 8일 광주를 방문해 "광주시민 여러분,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시겠다면 저는 미련없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겠습니다. 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습니다. 호남의 정신을 담지 못하는 야당 후보는 이미 그 자격을 상실한 것과 같습니다. 저는 저에 대한 심판조차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겠습니다"라고 했다. 광주 선거에서 국민의당에 지면 정계를 은퇴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많은 사람이 "저것은 표를 모으려는 쇼"라고 했다. "정계 은퇴한다는 정치인치고 은퇴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문 전 대표는 일반 정치인들과는 다른 무엇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도덕성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떨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남을 속이는 장난을 쉽게 치는 그런 사람은 분명 아니었다. 깊은 고민 끝에 내린 결단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문 전 대표의 선언을 진짜 '폭탄 선언'으로 받아들였다. 실제 문 전 대표가 거취를 놓고 식언(食言)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그의 정책 노선과는 상관없이 그를 정직한 사람, 투명한 사람으로 보고 있던 필자는 '저 사람이 정말 죽기 아니면 살기인 모양'이라고도 생각했다. 필자의 이런 생각에 대부분의 사람은 "정치 취재를 그렇게 오래 하고도 아직도 순진하냐"고 했다.
결론은 필자의 판단을 순진하다고 했던 그분들 생각이 맞았던 쪽으로 가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선거 다음 날인 14일 만면에 웃음을 띠고 나타나 "호남 민심이 저를 버린 것인지는 더 겸허하게 노력하면서 기다리겠다"고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더민주는 국민의당과 분당하기 전에는 호남 의석 30석 중 29석을 갖고 있었다. 분당 시점에도 30석 중 17석이었다. 이번 선거 결과 전체 28석 중 국민의당이 23석을 얻었고 더민주는 3석에 불과했다. 새누리당 2석과 별 차이도 없다. '폭탄 선언'을 했던 장소인 광주에선 8곳에서 전멸했다. 정당득표율도 국민의당 46%, 더민주는 29.5%였다. 너무나 명백하게 호남이 문 전 대표에 대한 지지를 거둔 것이다. 달리 생각해 볼 여지가 없이 문 전 대표가 제시한 정계 은퇴, 대선 불출마 조건이 그대로 성립됐다.
문 전 대표 측은 "호남에선 참패했지만 수도권 압승을 비롯해 전국적으로는 좋은 성과를 거둔 만큼 문 전 대표의 정계 은퇴나 대선 불출마는 상정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말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수도권 압승에 문 전 대표의 기여가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문 전 대표가 국민과 호남 유권자들 앞에서 정계 은퇴, 대선 불출마라는 중대한 선언을 할 때 '수도권' 등과 같은 얘기는 단 한마디 있지 않았다. 결국 지금 분위기가 좋으니까 여기에 편승해서 대국민 약속을 흐지부지, 유야무야시키겠다는 것이다.
문 전 대표의 선언을 듣고 놀랐던 또 한 가지는 '호남 아닌 다른 야권 지지자들은 뭐가 되느냐'는 것이었다. 이번에 더민주는 부산에서 5석, 경남에서 3석, 대구에서 1석, 서울 강남·송파·분당에서 5석이라는 기적을 일궜다. 문 전 대표는 이 소중한 국민의 지지는 무시하고 오로지 호남만을 기준으로 정계 은퇴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이제는 호남 아닌 다른 지역 지지를 근거로 정계 은퇴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으로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선언을 하더니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면서 뒤로 숨으려 한다.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다. 만약 여당에서 문 전 대표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대구에 가서 '대구가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면 정계 은퇴하고 대선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했으면 야당은 '대구 표만 표냐'고 들고 일어났을 것이다.
문 전 대표의 대국민 거짓말에 대해 더민주 내부에선 문제 삼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참패 당한 여당은 남 탓 할 여유도 없다. 아마도 문 전 대표 측은 이렇게 적당히 넘어갈 수 있겠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은 "(그러나) 국민이 기억하고 있다는 걸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이 기억하고 말고를 떠나서 본인이 이 거짓 선언을 어떻게 소화할지 의문이다. 그도 정치판에서 썩었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소화해서 배설해버릴 것이고, 양심이 있다면 소화불량에 걸려 있을 것이다. 필자가 아는 문 전 대표는 후자였는데 아무래도 큰 오해와 착각을 했던 것 같다.
조선일보 양상훈 논설주간
3 국민의당
□2016.04.04 흉탄(凶彈)에 부모 잃은 대통령을 저격하겠다는 권은희
광주 광산을(乙)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하는 권은희 의원이 대통령 저격을 연상케 하는 포스터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권 의원은 이 포스터에서 사막무장무늬 군복차림으로 저격총을 겨누는 사진과 함께 "박근혜 잡을 저격수 권은희지 말입니다. 다음은 국보위 너다"라는 문구를 적어 넣었다.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TV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패러디 한 것으로 보인다.
권은희 의원은 2012년 12월 제18대 대선 당시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으로 있으면서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인물. 김용판 서울지방경찰청으로부터 외압을 받았다고 주장, 주목을 받았다. 이 때문에 2013년 경실련에서 주는 경제정의실천시민상, 참여연대가 주는 의인상 특별상, 리영희재단이 주는 리영희상 등을 받았다. 2014년 6월 경찰복을 벗었으며, 얼마 후 7.30 재-보궐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공천을 받아 당선되었다.
하지만 사건 축소, 은폐혐의로 기소되었던 김용판 전 청장은 작년 1월29일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현재 권 의원은 모해위증죄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런 경력 때문에 권은희 의원은 ‘박근혜 저격수’를 자처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헌법기관인 대통령을 저격하는 컨셉트의 포스터는 너무 심했다. 더욱이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총탄에 잃은 비극적인 가족사를 갖고 있다. 그런 대통령을 저격하는 포스터는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 이 사진은 4월1일 오후 페이스북에 포스팅되었으며, 4월2일 오후 2시경까지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페이스북에서 논란이 되려는 기미를 알았는지, 현재는 이 사진이 삭제되었다.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2016.04.14 [4·13 총선-국민의黨 돌풍]
3개월 신생黨이 40석 육박… 정당득표율도 더민주 앞서
국민의黨, 호남 맹주로… 安 "더 좋은 정치로 보답하겠다" 캐스팅보트 이상의 파워… 새누리도 더민주도 눈치 봐야 1996년 자민련 이후 20년 만에 명실상부한 '3黨 체제'로
13일 오후 6시 국민의당 서울 마포 당사에 차려진 개표 상황실은 출구조사 결과 31~43석의 예상 수치가 발표되자 일제히 함성과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다. 다소 상기된 표정의 안철수 대표는 "호남에서도 야권 재편이 돼야 한다는 그런 의사들이 이번 투표에 반영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했다. 국민의당 관계자들은 수도권에서도 안 대표 외에 2~3명이 당선권에 진입하자 흥분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안 대표는 밤 10시 자신의 서울 노원병 사무실에서 "더 좋은 정치로 보답하겠다"며 당선 소감을 밝혔다.
국민의당이 14일 밤 12시 현재 광주 8석을 싹쓸이하는 등 호남 전체 28석 중 23곳을 석권하며 35석 안팎으로 제3당 실험에 성공하면서, 대한민국 정치 구도는 명실상부한 3당 체제로 재정립됐다. 국민의당은 새누리당이 과반을 넘기지 못한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에서 확실한 균형추 역할을 하게 되면서 존재감을 높이게 됐다. 새누리당이나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는 국회 과반을 넘길 수 없기 때문에, 국민의당의 '캐스팅보트'로서의 존재감은 더욱 커지게 됐다. 국회 본회의에 올라온 법안은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수 찬성이면 통과된다. 당 관계자는 "새누리당과 무소속을 합친 범여권이 국회선진화법을 자력으로 개정할 수 있는 180석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의당 주가(株價)도 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제3당의 교섭단체 구성은 김종필 전 총리의 자유민주연합이 충청권을 중심으로 50석을 획득한 1996년 15대 총선 이후 20년 만의 일이다.
국민의당은 이번 총선에서 '거대 양당 심판론'이 지지를 받았다고 보고 향후 국정 운영이나 야권 재편 과정에서 목소리를 크게 낼 확실한 기반을 마련했다. 이상돈 공동선대위원장은 본지 통화에서 "의석 숫자는 더민주보다 한참 부족하지만 진영 논리가 아닌 이슈별로 대처한다면 국회 운영에서 확실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총선으로 안철수 대표의 리더십도 강화됐다. 천정배 공동대표와 함께 총선을 이끌었지만 전국 선거는 안철수 대표 이름으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당 핵심 관계자는 "이번 총선은 사실상 '안철수 얼굴'로 치른 선거"라며 "호남 의원들 역시 안 대표가 8%까지 떨어졌던 정당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당을 살려낸 일등공신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당이 독자 정당화에 성공했지만 반대로 야권에서는 다시 '야권 통합론'이 불거질 수도 있다. 당장 박지원(전남 목포) 당선자는 이날 당선 소감에서 "야권 통합과 정권 교체에 모든 걸 바치겠다"고 했다. 천정배 대표 등 국민의당에 합류해 이번에 당선된 호남 출신 의원들도 총선 전부터 "정권 교체를 위해 야권이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결선투표제' 도입을 주장하며 3당 독자 노선을 강조해온 안 대표와 충돌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이르면 연말부터 야권에서 통합 논의가 터져나오면서 '시한부 제3당'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특히 대선에서만큼은 야권이 합쳐야 한다는 호남 민심을 지역 의원들이 버텨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문재인 전 대표는 12일 광주를 찾아 "지금 국민의당과 우리 당의 분열이 아프지만 결국 언젠가는 통합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안 대표의 대선 지지율이 지지부진할 경우 안팎에서 안 대표 흔들기가 본격화될 가능성도 있다.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압승할 수 있었던 건 문재인이 싫고 더민주가 싫었던 정서에 기댄 반사이익 측면도 컸다"며 "호남에서는 경쟁하되 수도권에서는 야권이 새누리당과 일 대 일로 싸워야 한다는 호남 정서가 상당했다"고 했다. 반면 야권 재편이 시작된다면 국민의당이 그 중심에 설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당 관계자는 "총선 결과가 나쁘지 않은 상황에서 당분간 야권 통합·연대 이야기가 나올 분위기는 아니다"고 했다.
'3당 체제'라는 정치 구도의 변화는 이뤄냈지만 국민의당은 '지역 정당'이라는 큰 숙제도 안게 됐다. 국민의당은 호남 지역을 석권하다시피 했지만 애초 목표로 했던 수도권 5석을 얻어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수도권 대부분의 후보가 15% 안팎을 득표하고, 14일 밤 12시 현재 전국 정당투표에서 25%를 얻어 24%에 그친 더민주를 앞서며'지역 정당'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도 보여줬다. 결국 안 대표가 향후 정권 교체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국민의당에 담아낼 수 있을지에 따라 야권 재편 과정에서의 주도권의 향방이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조선알보 박국희 기자
□光州의 선택은 국민의당… 8곳 모두 싹쓸이
- 확바뀐 호남 민심 문재인 무릎 꿇었지만 안 통해… 친노 반감, 더민주 무기력에 실망
호남은 이번 4·13 총선에서 국민의당 손을 들어줬다. 14일 1시 30분 현재, 호남 전체 선거구 28곳 중 23곳에서 국민의당이 더민주를 앞서 나갔다. 특히 야권 심장부인 광주에서는 국민의당이 8개 지역구를 모두 석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더민주는 전남 한 곳, 전북 두 곳에서만 당선이 확실했다. 전남 한 곳, 전북 한 곳에서 앞서 나간 새누리당과 엇비슷한 성적을 보인 셈이다.
이 같은 호남 표심은 친노(親盧)에 대한 반감, 정부·여당에 제대로 맞서지 못하는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실망감 등으로 분석된다. 광주 민심은 일찌감치 국민의당에 쏠려 있었다. 이 때문에 작년 12월 안철수 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더민주의 전신)을 탈당한 뒤 광주 현역 의원 8명 중 6명이 국민의당으로 넘어왔다. 그때만 해도 전남·전북 등에서 "국민의당도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평가가 나왔지만 광주는 국민의당에 대한 지지를 유지했다. 야권에서는 "그 정도로 반노(反盧) 감정이 강했다"고 했었다.
이후 더민주의 비례대표 공천 파동 등에 따라 문재인 전 대표가 다시 등장하자 호남 민심은 국민의당으로 굳어져 갔다. 문재인 전 대표가 선거운동 막판에 1박 2일로 호남을 두 번이나 찾아 무릎을 꿇고 "호남에서 지지를 거두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까지 했지만 민심은 바뀌지 않았다.
광주는 지난 2004년 민주당이 열린우리당과 새천년민주당으로 분당되면서 치러진 17대 총선 때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에 7석을 모두 몰아줬었다. 당시 총선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역풍 속에서 치러졌다. 당시 전남에서는 전체 13석 중 열린우리당 7석, 새천년민주당 5석, 무소속 1석으로 나눠졌다.
김아진 기자
□뚝심의 안철수, 차기 대선주자로 존재감 급부상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4·13 총선으로 차기 대선 주자로서 입지를 확실히 다지게 됐다. 국민의당이 교섭단체(20석)를 훌쩍 넘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고, 안 대표 자신도 서울 노원병에서 승리했다.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할 때 내걸었던 '3당 체제 정립'에도 성공했다.
국민의당이 야권 분열만 초래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여권 지지층까지 끌어들이며 여권에 패배를 안긴 만큼 안 대표는 다른 야권 대선 주자들과의 비교 우위도 점하게 됐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합리적 보수층까지 흡수할 수 있는 '중도 성향' 대선 후보로서의 안 대표의 존재감이 다시 커졌다"고 했다.
안 대표는 4·13 총선 꼭 4개월 전인 지난해 12월 13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양당(兩黨) 체제 심판론'을 호소하며 지난 2월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호남 현역들이 안 대표를 뒤따라 더민주를 탈당했고 안 대표는 창당 과정에서 '반(反) 문재인' 정서의 진앙인 호남을 순회하며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창당 초기엔 교섭단체(20석)를 구성할 수 있을지조차 회의적인 전망이 많았다. 게다가 지난 3월 더민주 김종인 대표가 '당 대 당 통합론'을 다시 제기하고, 당내 천정배·김한길 의원 등 당내 통합론자까지 김 대표 논의에 동조하자 안 대표의 정치적 입지는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안 대표는 "죽어도 광야에서 죽겠다"며 '통합·연대 불가론'을 고수했고 결국 당내 분란을 진압했다. 야권 관계자는 "'3당 체제 정립'이라는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모습에 국민이 점수를 준 것"이라고 했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당이 호남(28석)을 거의 석권한 것 역시 안 대표의 정치적 자산(資産)이 될 전망이다. 안 대표에 대한 '호남의 선택'이 증명된 것이다. 수도권 비례대표 정당투표에서는 국민의당이 더민주를 앞서면서 안 대표가 주장한 '교차투표론'이 유효했다는 사실도 나타났다.
안철수 대표에겐 3당 체제 안착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 더민주가 예상보다 선전하며 제1야당의 '이름값'을 지켜낸 만큼, 안 대표에게 '야권 분열 책임론'을 제기할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문재인 전 대표 등 더민주 대선 주자들과 경쟁하면서 얼마나 주도권을 쥘 수 있느냐가 숙제다.
원선우 기자
■2016 총선 뒷이야기
□총선 후보 병역·전과·세금 기록
새누리 이만기, 더민주 윤호중, 국민의黨 선병렬 등 '3관왕' 5년간 세금체납 후보 89명… 100만원 이상 체납도 41명
25일 오후 8시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4·13 총선 후보자로 등록한 729명 가운데 병역 미필과 전과 기록에 더해 세금 체납 기록까지 있는 '3관왕 후보'가 7명으로 나타났다. 지난 5년간 세금 체납 기록이 있는 후보는 89명(12.2%)으로 집계됐고, 이 중 100만원 이상 세금을 체납한 후보도 41명에 달했다. 선거 기탁금으로만 1500만원을 내야 하는 후보의 상당수가 평소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전과·병역 면제·세금 체납 등 '3관왕 후보' 7명 가운데 새누리당 이만기 후보(경남 김해을)는 본인의 재산세를 지난 5년간 175만원 체납했다가 출마 전에 정리했다. 전과는 2004년 선거법 위반(벌금 200만원)과 2010년 음주 운전(벌금 100만원)이 있었다. 씨름 선수였던 그는 체중·신장 기록으로 인해 병역을 면제받았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후보(경기 구리)는 시국 사건으로 인한 폭력 전과로 군대를 면제받았다. 윤 후보는 지난 5년간 본인 재산세와 배우자 소득세를 총 3차례 체납했다.
5·18 민주화 운동으로 인한 수형 생활로 군이 면제된 국민의당 선병렬 후보(대전 동구)는 과거 도로교통법 위반과 음주 운전, 2011~2012년 재산세 체납 기록이 있었다. 김정기(국민의당·경기 부천소사), 고영인(더민주·경기 안산단원갑), 이후삼(더민주·충북 제천단양), 이건영(새누리당·충남 아산을) 후보도 세금 체납, 전과, 병역 면제 기록이 함께 있었다.
지난 5년간 세금을 체납한 적이 있는 후보 89명 가운데 국민의당 이동규(대전 서을) 후보는 3억9720만원을, 더민주 심규명 후보(울산 남갑)는 1억2503만원을 각각 체납했다가 출마 전 정리했다. 새누리당 채용묵 후보(전북 군산)는 2722만원을 체납했던 기록이 있었다. 세금 체납 상위 10명 가운데 더민주가 4명이었고, 새누리당, 국민의당, 무소속이 각각 2명씩이었다.
지난 5년간 세금 납부액 합계 기록도 공개됐다. 재산 1위인 더민주 김병관 후보(경기 성남분당갑)는 소득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등 5년간 세금만 111억원을 냈다. 대법관을 퇴직하고 로펌에서 일했던 새누리당 안대희 후보(서울 마포갑)는 5년간 12억원, 마포에서 음식점을 했던 더민주 조응천 후보(경기 남양주갑)는 10억원을 각각 냈다. 선거구가 통합된 경북 영주·문경·예천에서 현역 2명을 경선으로 꺾은 최교일 후보(전 서울중앙지검장)는 35억원, 더민주 홍보위원장인 손혜원 후보(서울 마포을)는 8억9000만원을 각각 5년간 세금으로 냈다.
반면 후보 가운데 355명(48.7%)은 세금을 연간 555만원 이하로 냈다. 전체 출마자의 절반가량이 연간 국민 1인당 세금납부액(555만원)보다 적게 낸 것이다. 세금을 5년간 전혀 내지 않은 후보도 15명에 달했다.
□재산
1000억 넘는 후보자 제외 땐 새누리 평균 24억·더민주 11억·국민의黨 10억·정의당 2억 順 빚 가장 많은 후보 14억 진선미
25일 오후 8시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한 4·13 총선 출마자 729명의 평균 재산은 15억4680만원이었다. 정당별로는 새누리당이 평균 24억5928만원, 더불어민주당이 11억9207만원, 국민의당 10억2551만원, 정의당 2억5551만원 순이었다. 1000억원 이상을 보유한 후보자의 재산은 평균에서 제외했다.
재산 신고 상위 10명 중 5명이 새누리당, 2명이 더민주, 2명이 무소속, 1명은 국민의당 소속이었다. 1위를 차지한 더민주 김병관 후보(경기 성남분당갑)는 웹젠 주식 943만주와 네이버 주식 4만3000주, 예금 77억원 등 총 2637억여원을 재산으로 신고했다. 김 후보를 포함시켜 더민주 후보의 평균 재산을 계산하면 25억5259만원으로 새누리당 후보 평균 재산(24억5928만원)을 추월한다. 2위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서울 노원병)로 1629억원을 신고했다. 새누리당 김세연 후보(부산 금정)가 1551억원, 무소속의 조진형 후보(인천 부평갑) 840억원을 각각 신고하며 그 뒤를 이었다. 박정어학원 대표를 지낸 더민주 박정 후보(경기 파주을)가 219억5923만원을, 변호사인 더민주 금태섭 후보(서울 강서갑)가 77억2521만원을 각각 신고했다.
주요 대선 후보군 중에는 안철수 후보(1629억원)에 이어 새누리당 김무성 후보(부산 중·영도구)가 138억410만원을 신고했다. 김 대표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일대의 23억원대 토지와 함께 은행 예금액 100억원을 신고했다. 새누리당 소속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서울 종로)이 60억4633만원을,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을 탈당해 출마하는 유승민(대구 동구을) 후보가 44억4468만원을 각각 신고했다.
재산보다 빚이 많다고 신고한 후보도 28명이었고, 재산을 '0원'이라고 밝힌 후보도 7명이었다. 빚이 가장 많은 후보는 서울 강동갑에 출마한 더민주 진선미 후보(빚 14억1802만원)였다. 조선 엄보운 기자
□4.13 총선 후보 944명 전수분석 해보니…40.6%가 ‘전과자’
4·13총선을 앞두고 여야는 모두 ‘개혁 공천’을 표방했다. 하지만 출마한 후보 중 전과 기록을 보유한 후보 비율은 40.6%로 역대 어느 총선보다 높았다. 여기에는 시국사범이 다수 포함돼 있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각 정당이 공천 과정에서 각종 논란에 휩싸이며 도덕성 검증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여야, 부실한 도덕성 검증
25일 동아일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4·13총선 후보 명부에 올라온 944명을 전수 분석한 결과 이번 총선에서 전과 기록을 가진 후보는 새누리당이 80명, 더민주당이 99명, 국민의당이 67명, 정의당이 30명으로 집계됐다. 이번 분석은 동아일보 편집국과 디지털통합뉴스센터, 동아닷컴이 공동으로 진행했다.
여야는 당규를 통해 공천 부적격 기준을 규정하고, 일정 정도 이상의 범죄 전력을 가진 이에 대해 컷오프(공천 배제)하고 있다.
새누리당 ‘공직후보자추천규정’에는 공천 부적격 기준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재판 중에 있는 자 △파렴치한 범죄 전력자 △부정·비리 관련자 등을 명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직선거후보자추천규정’을 통해 아예 구체적인 범죄 유형을 명시하고 있다. ‘뇌물, 알선수재, 공금횡령, 정치자금법위반, 성범죄, 개인비리 등 국민의 지탄을 받는 형사범 중 금고 및 집행유예 이상의 형이 확정됐거나 예비후보 신청 이전의 하급심에서 같은 형량 이상의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를 부적격 심사로 걸러내도록 하고 있다.
국민의당도 ‘공직선거후보자추천규정’에서 ‘성범죄, 아동관련범죄, 공적지위를이용한범죄 등 국민의 지탄을 받는 범죄로 추천 신청일 이전에 하급심에서 금고 또는 집행유예 이상의 유죄판결을 받은 자’를 걸러낸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부적격 기준은 ‘엄중한 사유’에 해당할 뿐 공천 심사 과정에서 음주운전이나 폭행과 같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전력은 온정주의적 시각으로 눈감아 주는 편이었다.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은 음주운전으로 인한 도로교통법 위반 전력을 가진 후보가 각각 27명, 29명으로 나타났다. 더민주당과 정의당은 시국사범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성향을 보였다. 집회 및 시위법 위반 전력을 가진 후보가 각각 47명, 14명으로 집계됐다.
● 전과 후보 중 재범 이상 46.7%
전과 기록을 가진 후보 383명 가운데 재범 이상이 46.7%인 179명으로 집계됐다. 초범이 204명이었고 재범 103명, 3범 45명, 4범 15명, 5범 9명, 6범 4명이었다. 특히 전과 8범과 9범, 10범도 각각 1명씩 있었다.
후보 가운데 전과가 가장 많은 사람은 대전 대덕에 무소속으로 등록한 손종표 후보로, 전과 10범이었다. 손 후보는 2013년 7월 집회 및 시위법 위반으로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는 등 일반교통방해, 음주운전 등의 혐의로 총 10차례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각 정당별로 보면 새누리당에서는 전하진(경기 성남 분당을) 후보가 방문판매법, 근로기준법 위반과 음주운전 등으로 4건의 전과가 있었다. 더민주당에서는 신정훈(전남 나주화순) 후보가 공용물건손상으로 인한 공무집행방해,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 음주운전 등 5건으로 당내에서 전과 기록이 가장 많았다. 국민의당에서는 김철근 후보(서울 구로갑)가 집회 및 시위법 위반, 공직선거법 위반 등 5건의 전과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 민주화·노동운동 수감자
전과 기록을 가진 후보 가운데는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하다가 집회 및 시위법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수감생활을 생활을 한 후보도 적지 않았다.
새누리당에서 컷오프된 뒤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재오 의원(4선·서울 은평을)은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이 있다. 세종시에 무소속 출마한 이해찬 의원(6선)은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옥살이를 하다가 1987년 특별사면됐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1기 의장 출신인 더민주당 이인영 의원(재선·서울 구로갑)은 직선제 개헌 투쟁을 하다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대구 수성갑에서 맞대결을 벌이는 새누리당의 김문수 전 경기지사와 더민주당의 김부겸 전 의원은 모두 197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한 민주화투쟁 ‘동지’다. 김 전 지사는 1987년 국가보안법과 집회 및 시위법 위반으로 옥살이를 했고, 김 전 의원은 1978년 대통령긴급조치 9호 위반과1993년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전과 기록을 가지고 있다.
정의당 노회찬 전 의원(경남 창원성산구)은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 당시 이른바 이른바 ‘떡값 검사’ 명단을 공개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상실했었다.
김아연 기자 aykim@donga.com
●경쟁율 높은 지역구
4·13총선에서 경남 통영-고성에 출마한 새누리당 이군현 후보가 25일 무투표로 당선됐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1984년 12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로는 처음이다. 다음 달 13일 선거 당일 당선증을 받으면 이 의원은 4선 의원이 된다.
후보자 등록이 마감된 25일 전국 253개 선거구에서 모두 944명이 등록했다. 비례대표 후보자는 모두 158명이 등록했다. 경쟁률은 3.73 대 1로 집계됐다. 19대 국회의원 선거 경쟁률(3.76 대 1)보다 다소 낮아졌다. 정당별로는 △새누리당 248명 △더불어민주당 235명 △국민의당 173명 △정의당 53명 △무소속 137명 등이었다.
하지만 야권 분열로 인해 호남 등에선 야권 후보가 다수 출마해 치열한 경쟁을 예고했다. 광주시가 5.4 대 1로 가장 높았고, 전남 5.2 대 1, 세종시가 5 대 1이었다. 전국에서 가장 경쟁률이 높은 지역구는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로 10 대 1을 기록했다. 새누리당 오세훈 전 서울시장,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의원 등 모두 10명의 후보가 출사표를 냈다. 이어 △전북 남원-임실-순창, 전남 목포 8 대 1 △전남 광양-곡성-구례 7 대 1을 기록했다.
가장 재산이 많은 후보자는 더민주당 김병관 후보(경기 성남 분당갑)였다. 웹젠 이사회 의장인 김 후보는 2637억7333만 원을 신고했다. 이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서울 노원병)가 1629억2008만 원, 새누리당 김세연 후보(부산 금정)가 1551억697만 원, 무소속 조진형 후보(인천 부평갑)가 840억 원으로 100억 원대 이상 자산가는 모두 16명이었다. 세금 납부액도 안 후보가 207억642만 원으로 1위였다. 후보자 평균 연령은 53.1세였다. 최고령 후보자는 74세인 국민의당 이한준(서울 서초갑)과 무소속 김천식 후보(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였다. 이어 새누리당 서청원(경기 화성갑), 국민의당 박지원(전남 목포), 무소속 강길부 후보(울산 울주) 등이 73세였다. 17번째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도 있다. 무소속 강도석 후보는 1991년부터 지방선거 국회의원선거 등 광주 남구에서만 16차례 출마했다. 무소속 서중현 후보와 코리아당 정재복 후보는 각각 12번, 10번 선거에 입후보한 경력이 있다.
우경임 woohaha@donga.com
2016.04.01 택시 기사 등의 여론. '새누리당 압승, 더민주 참패, 국민의 당 선전'
나는 택시를 자주 탄다. 하루에 열 번 이상 이용할 때도 있다. 선거 철에는 택시 기사들을 상대로 민심(民心)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1. 출근길에 만난 60대 회사 택시 기사: '복지 공약을 경쟁적으로 하는데 나라가 가장 빨리 망하는 길이죠. 재벌 회장 손자가 왜 무료 급식을 받아야 하느냐 말이에요. 선별적 복지가 옳은 것 아닌가요. 그래도 새누리당이 이길 것 같네요. 잘해서가 아니라 덜 나쁘잖아요.'
2. 강남행 50대 개인 택시 기사: '저는 호남출신인데 안철수의 국민의 당이 호남에서 선전(善戰)하여 전체적으론 20석 이상을 얻어 교섭단체 만들 것이라 봅니다. 호남 사람들이 문재인 씨를 싫어해요. 노무현 정부 시절에 호남 사람들을 푸대접하였다는 여론이 형성되었어요. 야당 후보들끼리 단일화는 어려울 겁니다. 안철수 씨는 정당 득표를 올려야 하는데, 그렇다면 후보가 5% 지지율이라도 버티어주어야 해요. 이번 선거는 새누리당 압승, 더불어 민주당 참패, 국민의 당 약진이 될 겁니다.'
3. 국민학교 동창회에서 만난 부산 출신 70대 A: '김무성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을 욕 보인 것은 잘못된 일이다. 다음 대통령 선거 전에 朴 대통령이 반기문 총장을 밀어 김무성을 무력화시킬 것이다.'
4. 부산 출신 동창 B: '나는 김무성 대표의 뒤집기가 나오기 전엔 새누리당을 포기하고 국민의 당을 찍을까 했다. 당하기만 하던 김무성 대표가 오만한 친박 세력에 한 방 먹이는 것을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김무성의 공천 직인 파동은 보수층의 이탈을 막은 면이 있다.'
5. 강북행 회사택시 운전사(50대): '새누리당이 어려울 것으로 봤는데 요 며칠 사이 헷갈립니다. 나는 줄곧 보수 당을 찍었는데 새누리당의 공천 싸움박질을 보고 질려 버렸습니다. 반면 김종인 대표는 시원 시원하게 했잖아요. 언론이 호남 민심, 영남 민심 운운하는 데도 싫증이 납니다. 언제까지 지역주의로 선거를 이야기해야 하나요. 여성 승객들은 문재인 씨가 젠틀하게 보인다는 평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은 좀 독하게 하던데요. 김무성 대표는 얼굴이 편해요.'
6. 80대 원로 변호사: '헌법재판소가 반역적 위헌(違憲)정당으로 규정 통진당을 해산시켰는데, 그 잔존세력이 또 다시 정당을 만들어 출마하는 것을 왜 방치하는지 모르겠다. 정부와 국회가 해산 뒤의 후속 조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회 마비를 가져온 개정 국회법 조항에 대하여는 헌법재판소가 違憲 판결을 내려야 한다. 헌법 개정 같은 극소수의 예외를 빼곤 의결은 과반수 다수결 원칙이어야 하는데 이 국회는 의결 정족수를 60%로 결정한 셈이니 위헌이다. 물론 헌법에 60% 다수결은 안 된다는 명시 규정은 없지만 과반수 다수결 원칙은 일종의 자연법으로서 불문(不文)헌법 사안으로 간주해야 한다. 만약 과반수 다수결 원칙이 부정된다면 국회뿐 아니라 주주총회, 이사회 등 모든 회의체의 기능은 마비된다. 즉,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것이다. 이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부정이다.'
글 | 조갑제(趙甲濟) 조갑제닷컴대표
2016.04.14 더민주 123석 '제1당',,, 16년 만의 여소야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 결과 더불어민주당이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쳐 123석으로 ‘제1당’으로 올라섰다. 새누리당은 122석으로 ‘제2당’으로 내려갔다. 국민의당은 38석으로 원내 교섭단체를 이루며 ‘제3당’을 차지했다. 그 밖에 정의당이 6석, 무소속이 11석을 가져갔다.
이에 따라 정당별 의석이 여당(與黨) 122석, 야당(野黨) 167석으로 되는 ‘여소야대’ 국회가 만들어졌다. 여소야대는 2000년 16대 총선 이후 16년 만이다. 국민의당이 원내교섭단체가 되면서 1996년 15대 국회 이후 20년 만에 국회가 양당 체제에서 3당 체제로 바뀌게 됐다.
14일 오전 7시 30분 현재 지역구(253곳)에 대한 개표를 종료한 결과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 의석 110석을 확보했다. 새누리당은 105석, 국민의당은 25석, 정의당은 2석을 각각 얻었다. 무소속은 11석이다. 비례대표(47석)는 개표를 99.8% 진행한 상태에서 새누리당 17석, 더불어민주당 13석, 국민의당 13석, 정의당 4석으로 각각 배분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을 합산하면 더불어민주당이 123석, 새누리당은 122석, 국민의당은 38석, 정의당은 6석이 되는 것이다.
중앙선관위는 이날 오전 정당별 득표수를 공식 집계해 발표할 예정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오전 7시 30분 개표 결과에서 변경되는 내용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원섭 기자
靑은 불통, 與는 '이한구표 공천' 내전… 보수층마저 등돌렸다
새누리당은 4·13 총선에서 야권(野圈) 분열 구도 속에서도 과반(過半)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의석을 얻어 사실상 참패했다. 이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계속된 청와대와 정부, 여당의 독선(獨善)적 행태에 대한 민심(民心)의 심판으로 해석된다.
공천을 둘러싼 집권 여당의 '막장 내전(內戰)'과 자기 사람을 국회에 심겠다는 박근혜 청와대의 '아집'에 분노한 보수 유권자들이 새로 탄생한 중도 성향의 국민의당에 눈을 돌렸다는 분석이다. 특히, 선거 전문가들은 "여권 핵심 지지층 상당수가 지역구와 비례대표 선거를 각각 1번(새누리당)과 3번(국민의당) 혹은 3번과 1번에 하는 '교차투표' 양상을 보인 것 같다"고 했다. 여권의 전통적 수도권 텃밭인 서울 강남과 경기 성남 분당 등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고전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민의당 약진(躍進)에 대해 당초에는 "제1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표 분산을 가져올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는 빗나갔고 오히려 여당 지지층의 유출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야권 지지층은 지역구 후보는 2번(더민주), 비례대표 후보는 3번을 선택하는 전략적 투표 양태를 보였다는 분석이다. 서울 서초구의 회사원 박모(56)씨는 "평생 보수 정당에만 투표를 해왔는데 이번에 새누리당의 공천 과정을 보면서 그대로 용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비례대표 투표만큼은 국민의당에 표를 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인천 계양구의 주부 노모(65)씨는 "정당 투표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새누리당에 했지만 지역구 후보는 기존 여야 후보와 비교해 국민의당 후보가 더 신선해 보여 한 표를 줬다"고 했다. 이런 현상은 영남권에서도 나타났다고 한다. 새누리당의 선거 참패는 전체 253개 지역구의 절반 가까운 122석이 걸려 있는 수도권에서 확인됐다. 14일 1시 30분 개표 상황에 따르면 새누리당의 수도권 확보 의석수는 30여석으로 예상된다.
2012년 19대 총선에도 미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당시 새누리당은 112석 가운데 43석, 야권연대를 한 민주통합당(더민주의 전신)과 통합진보당이 69석을 가져갔었다.
새누리당은 당초 수도권 대부분의 지역구에 형성된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로 인해 최소한 지난 총선보다는 많은 의석을 얻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김무성 대표는 올해 초까지 "수도권 약진을 중심으로 180석 이상을 얻겠다"는 호언도 했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수도권 대패(大敗)와 그로 인한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가 현실화 된 것이다.
새누리당 참패의 근본 원인은 야권 분열로 인해 총선 승리를 예단한 친박(親朴)계와 비박(非朴)계의 공천 내전(內戰)이 꼽힌다. 2월 초 한 친박계 인사가 김무성 대표에게 현역 의원 40여명의 물갈이를 요구했다는 '공천 살생부' 파동이 터진 데 이어, 친박 핵심인 윤상현 의원의 김 대표를 겨냥한 막말 통화 녹취 파문이 불거졌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을 앞세운 친박계가 유승민·이재오·진영·류성걸 등 비박계 의원들을 대거 '컷오프(공천 배제)'시키고 이들이 탈당하면서 내전은 더 확산됐다. 김 대표가 '컷오프'된 비박계 의원 지역구에 투입된 '진박(眞朴)' 후보들 공천장에 도장을 찍어줄 수 없다는 '옥새 파동'까지 일어나 지지층의 이탈은 수습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여권의 아성인 대구·경북(TK)에서 벌어진 진박 마케팅에 대한 역풍도 수도권 민심에 영향을 줬다. 권성동 당 전략기획본부장은 "선거 과정에서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우리 멋대로 해도 승리할 수 있다는 오만에 빠져 있었다"며 "선거 막판의 사죄와 반성 릴레이에 대해서도 유권자들은 진심이 담겨 있지 않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했다.
이번 선거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콘크리트' 지지 기반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야권은 물론 당내 비박계와도 제대로 소통하지 않는 박 대통령의 일방적 국정 운영 방식에 대해 중도층은 물론 핵심 지지층도 실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국대 가상준 교수는 "박 대통령이 선거를 앞두고 일관되게 언급했던 '국회 심판론'이 오히려 민심의 반발을 불러왔고, 결국 야권의 '정권 심판론'에 밀린 것 같다"며 "국민이 박 대통령에게 포용적 리더십을 원한다는 여론이 증명된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작년 말 현실화된 야권 분열 사태가 거대 여당의 독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표심에 대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연구원 핵심 관계자는 "선거 직전 여권 지지층은 절반 가까이 떨어져 나갔다"며 "새누리당이 선거를 앞두고 해서는 안 될 행태를 지난 두 달간 모조리 했기 때문에 지는 게 당연한 선거였다"고 했다.
최승현 기자
PK의 반란…부산서 더민주 5곳 당선, 사상은 무소속 장제원
전통적으로 여당 표밭이었던 부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 5명이 당선되는 이변이 발생했다.
부산진갑에 출마한 더민주 김영춘 후보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를 지낸 재선의 나성린 의원(새누리당)을 49.6% 대 46.5%로 꺾고 당선됐다. 앞서 발표된 출구조사에서는 김 후보(47.6%)가 나 후보(49.1%)에 밀리는 결과가 발표됐지만, 개표가 시작된 뒤에는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김영춘 후보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꼬마 민주당' 때부터 함께 정치를 해온 인물로, 현재 더민주 부산시당위원장을 맡고 있다.
연제에서도 더민주 김해영 후보가 박근혜 정부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낸 친박계 김희정 의원을 꺾고 당선을 확정지었다. 김해영 후보는 개표가 99.9% 진행된 상태에서 51.6%를 득표, 김 전 장관(48.4%)을 누르고 당선을 확정지었다.
북강서갑에서는 더민주 전재수 후보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박민식 의원을 꺾고 당선됐다. 전 후보는 개표 99.9% 진행된 상황에서 55.9%를 득표, 44.1%를 얻은 박민식 의원을 크게 앞섰다. 김무성 대표가 총선 유세에서 "나는 박민식의 형"이라고 외치며 지지를 호소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부산 남을에서도 99.9% 개표가 완료된 가운데 더민주 박재호 후보가 48.1%의 득표율을 얻어 새누리당 서용교 의원(43.5%)을 누르고 당선됐다.
더민주는 경합 지역으로 분류됐던 사하갑에서도 승전보를 거뒀다. 99.9% 개표가 진행된 상황에서 더민주 최인호 지역위원장이 49.4%를 득표, 45.4%를 얻은 새누리당 김척수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사상에서는 개표 99.9% 기준으로 새누리당 공천 탈락 후 무소속으로 출마한 장제원 후보가 37.5%를 득표해 당선됐다. 더민주 배재정 후보(35.9%)는 2위를 기록했고, ‘박근혜 키즈’로 불린 새누리당 손수조 후보는 26.6% 득표로 3위를 기록했다. 이 곳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대 총선에서 당선됐던 지역구이기도 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부산 지역구 18곳 가운데 당선자 5명을 배출해 역대 야권의 총선 결과 중 최고의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부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번의 총선과 1번의 시장 선거에 출마하며 끈질기게 지역주의 타파에 도전했던 지역이다. 더민주의 전신인 민주통합당은 지난 19대 총선에서 문재인·조경태 2명의 당선자를 배출했지만, 문 전 대표는 이번 총선에 불출마했고 조 의원은 새누리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한편 부산과 인접해 있는 경남 김해 지역구 2곳에서도 모두 더민주 후보가 당선됐다.
김해갑에서는 14일 오전 2시 기준 79.9% 개표 진행 상황에서 더민주 민홍철 의원이 55.0%를 얻어 새누리당 홍태용 후보(40.6%)를 꺾고 당선을 확정지었다. 김해을에서는 개표가 85.8% 완료된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으로 유명한 김경수 더민주 경남도당위원장이 62.2%를 득표, 씨름 선수 출신인 새누리당 이만기 후보(34.7%)를 압도하며 당선을 일찌감치 확정지었다.
양지혜 기자
새누리 참패, 더민주 환호, 국민의당 돌풍
與, 과반에 훨씬 못미쳐 16년만에 與小野大 더민주 수도권 압승… 국민의당 호남 휩쓸어
13일 실시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과반(過半) 확보에 실패하면서 2000년 16대 총선 이후 16년 만에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이 형성됐다. 지난 1월 창당한 국민의당은 호남을 중심으로 약진하면서 제3당으로 입지를 굳혔다. 내부 분열 속에 고전했던 더불어민주당은 수도권에서 압승을 거두는 등 사실상 승리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3일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영도구 절영종합사회복지관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뒤 나오고 있다(왼쪽 사진). 이날 서울로 올라온 김 대표는 과로로 병원에 입원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 마련된 종합상황실에서 개표 방송을 보며 웃고 있다(가운데 사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서울 마포구 당사에서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를 확인한 후 미소를 짓고 있다(오른쪽 사진). /김종호·성형주·오종찬 기자
새누리당은 14일 1시 30분 현재 지역구 105석, 비례대표 18석 등 123석 안팎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300석의 절반에 못 미치는 패배다. 정치권과 여론조사 업계선 선거 직전까지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 속에 새누리당의 승리 가능성을 점치는 분석이 많았지만 투표장에 들어선 민심(民心)은 집권 여당에 대한 심판을 선택했다. 비례대표 투표를 기준으로 보면 새누리당 지지율은 36%로 전체 유권자의 64%는 야당을 선택한 것이다.
반면 국민의당은 창당 3개월 만에 호남(23석)과 비례대표(13석)를 중심으로 40석 가까운 의석을 확보, 기존 여야(與野) 사이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게 됐다. 선거 직전 "100석도 어렵다"는 자체 분석을 내놓았던 더민주는 야권의 텃밭인 호남은 빼앗겼지만 수도권은 물론 부산·경남 등에서도 선전하면서 122석 안팎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은 122석이 걸린 이번 선거 최대 승부처 수도권에서 30여 석을 얻는 데 그쳐 대패한 것은 물론, 텃밭인 영남권에서도 야당과 무소속 후보에게 의석을 대거 내줬다. 20여 년간 지켜왔던 영남 지역 기반이 흔들린 것이다.
새누리당은 이번 선거 패배로 차기 대선 주자 대부분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고 14일 대표직에서 물러날 것으로 보이는 김무성 대표와, 서울 종로에서 낙선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 대구에서 패배한 김문수 전 경기지사 등이다.
새누리당은 13일 오후 6시쯤 지상파 방송사의 출구 조사를 통해 절반 미달이 예상되는 것으로 나타나자 충격에 휩싸였다. 서울 여의도 당사 선거 개표 상황실에 모인 지도부와 당직자들은 침통함 속에 말을 잇지 못했다. 김 대표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더민주는 개표가 시작되면서 표정이 밝아졌다. 더민주 핵심 관계자는 "수도권의 중산층과 서민층 유권자들이 정권 심판론에 공감하면서 지역구 투표만큼은 국민의당 후보보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더민주 후보를 선택해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국민의당 약진은 총선 이후 정국에서 상당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야권의 심장부인 호남을 장악한 데다 비례대표 투표에서 여야 지지층의 고른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여야를 아우르는 정계 개편의 주축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도 나온다. 야권의 차기 대선 주자 중에서는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상승세를 타게 됐고, 선두를 지켜왔던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도 영향력을 유지하게 됐다.
이번 총선 패배로 임기 4년 차를 맞은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 운영 동력이 떨어지게 됐다. 집권 여당이 국회에서 과반 의석을 얻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핵심 지지층의 이탈마저 확인됐기 때문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정부·여당이 야당에 끌려갈 상황이 됐다"며 "더 심각한 문제는 차기 대선 대책이 거의 없어졌다는 것"이라고 했다.
최승현 기자
2016.04.15 이래도 167, 저래도 171석… 1·2黨 합의없인 법안 처리 불가능
[4·13 국민의 심판] 국회선진화법 180석에 못 미쳐… 쟁점법안 통과 어려운 구조 與, 과반 필요한 정부 예산안도 최소 국민의黨 협조 받아야 가능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원내 1당 자리를 더불어민주당에 넘겨주고 국민의당이 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하면서 20대 국회는 과반 의석 정당이 없는 여소야대(與小野大) 구도가 됐다. 이에 따라 20대 국회는 여야의 타협 없이는 법안이나 예산안을 통과시킬 수 없는 구조가 됐다. 특히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새누리당과 더민주가 합의하지 않는 이상 쟁점 법안 처리는 엄두도 낼 수 없다.
◇"새누리-더민주 협치하고 국민의당 조정자 역할 해야"
이번 총선에선 새누리당(122석)과 더민주(123석), 국민의당(38석) 등 3개 정당이 교섭단체(20석 이상)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 같은 구성의 국회에선 어느 정당도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할 수 없다. 과반 의석 정당이 없기 때문에 '의원 과반수 출석' '출석 의원 과반수 찬성' 등 법안 처리에 필요한 일반 정족수조차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해임 결의, 대통령의 비상조치 해제 요구, 계엄 해제 요구 등 재적 의원 과반수의 찬성을 요구하는 국회의 권한도 한 정당이 단독으로 행사할 수 없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여야 간 합의가 안 되면 12월 2일 본회의에 자동으로 올라가는 예산안의 본회의 처리를 위해서도 재적 의원 과반수(151석) 출석이 필요해 여당으로선 최소한 국민의당의 협조를 받아야만 가능하다.
▲지역주의 타파 사나이들, 당선 사례 - 전남 순천에서 재선에 성공한 새누리당 이정현 당선자가 14일 유세 기간 쓰던 자전거를 타고 순천 시내를 돌며 당선 인사를 하고 있다(왼쪽 사진). 같은 날 대구 수성갑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당선자가 대구 수성구 범어네거리에서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때문에 원내 3당으로 자리매김한 국민의당이 상당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법안 처리나 국회 운영에서 사안별로 새누리당이나 더민주와 각각 공조함으로써 국회를 굴러가게 하거나 공전시킬 힘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18대 국회 때 18석을 차지한 자유선진당은 2008년 한·미 쇠고기 협상 문제로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며 통합민주당과 공조해 국회 등원을 거부하다, 며칠 뒤 단독으로 등원을 결정해 국회 운영을 정상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이, 또는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손잡는다 해도 여야 간의 이견이 큰 쟁점 법안은 밀어붙이기 어렵다. 쟁점 법안 처리를 위해서는 국회의원 5분의 3 이상 동의를 얻도록 한 국회선진화법 조항 때문이다. 20대 국회 의석 분포상 새누리당이 국민의당(38석), 친여 무소속(7석)과 연대한다 가정해도 최대 167석, 더민주가 국민의당과 정의당(6석), 친야 무소속(4석)과 연대해도 최대 171석에 그쳐, 국회선진화법상 특정 정당이 반대할 경우에 적용되는 쟁점 법안 의결정족수 180석에 못 미친다.
결국 중요 법안 처리는 새누리당과 더민주의 협력 여하에 달린 셈이다. 지난 연말 국회에서 더민주가 한·중 FTA 비준안을 볼모로 자기들이 원하는 각종 법안 처리를 요구하자, 새누리당이 예산안을 법안 처리에 연계시키기도 했다. 더민주가 협상에 나서지 않을 경우 정부 예산안을 원안대로 통과시키겠다며 지역구 민원 예산에 목을 매는 의원들을 압박한 것이다. 야당도 법안 처리에 책임 있는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셈이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3당 구도가 됐다 해도 새누리당과 더민주의 타협 없이는 19대 국회 때와 마찬가지로 양쪽 모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만큼 국민은 20대 국회에서 여야가 유연한 자세로 협치(協治)하라는 메시지를 정치권에 보낸 것"이라고 했다.
◇"국회 상임위 단계부터 여야 협력해야"
15대 총선 이후 20년 만에 '3당 체제'를 맞게 된 20대 국회가 순조롭게 굴러가려면 여야 정파를 떠나 상임위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리 국회는 교섭단체 간 협의를 통해 의석 수에 따라 상임위원장을 배분해 왔다. 이 역시 선진화법과 마찬가지로 특정 정당이 일방적으로 국회운영을 밀어붙일 수 없게 하자는 취지로 관례화된 것이다. 더욱이 사실상 '상임위 위의 상임위' 역할을 하는 법사위에서 법안을 붙잡아둘 경우 현행 선진화법 아래서는 법안 처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국회가 순조롭게 운영되느냐는 의석 구조의 문제라기보단 여야가 정파적 지침에서 벗어나 사안별로 협력할 자세가 돼 있느냐에 달렸다"고 했다.
최경운 기자
2016.04.24 심층분석 - 여소야대 20대 국회 지형도 어떻게 달라지나
▲제헌국회기념조형물 제막식’이 2014년 2월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로텐더홀에서 열렸다. 국회의원 282명과 국회 사무총장 등 차관급 인사 7명 등 289명이 의사당 본관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현역 의원들의 단체 기념사진 촬영은 제헌국회의원 기념 촬영 후 66년 만이었다.
2016년 봄을 뜨겁게 달궜던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막을 내렸다. 이번 총선은 16년 만의 여소야대이자 87년 민주화 이후 보수집권당 최소의석(122석, 종전 88년 민주정의당 125석)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냈다. 여야의 지형이 뒤바뀐 결말만큼이나 당선자 개개인의 면면도 혁신적일까? 제20대 총선 지역구 및 비례대표 여야 당선인 300명을 연령·출신교·선수(選數)·직업에 따라 분석했다.
여성, 금배지 51명 경찰 출신도 8명 ‘역대 최다’
20대국회의원들의평균나이는 55.5세다. 19대(53.9세) 때보다 2세가까이늘어났고, 초대제헌국회(47.1세)와비교하면 8세이상많다. 20대국회는평균나이로보면역대최고령에해당한다.(이하모든통계는당선시점의당적기준)
이같은결과는평균수명이늘어나는추세가반영된것이기도하지만 3040 당선인이줄어들고 6070 당선인이증가한것이가장큰이유다. 19대에서 69명에불과했던 60대이상이 86명으로크게늘어난반면 89명(19대)이었던 40대이하는 53명으로감소했다.
연령대별로는▷20대 1명▷30대 2명▷40대 50명▷50대 161명▷60대 81명▷70대 5명순으로나타났다. 19대국회에서 30대이하가 9명이었던것을감안할때청년층이크게위축됐음을알수있다.
정당별로는정의당(58세), 국민의당(56.8세), 새누리당(56.7세), 더불어민주당(53.2세)의순으로평균나이가많았다. 무소속은 58.3세로나타났다. 4년전각당에서청년비례대표를경쟁적으로도입했던것과는대조적으로이번에는청년층에대한여야각당의특별한배려가거의없었기때문이다. 국민의당이김수민(29·여) 당선인을비례대표 7번으로공천해국회에입성시킴으로써역대최연소비례대표당선인이라는이정표를세운것이그나마눈길을끈다.
최고령당선인은김종인더불어민주당비상대책위원회대표다. 올해만 76세인김대표는비례대표 2번을받고 5선고지에올랐다. 특히다섯번모두지역구가아닌비례대표로당선되는진기록도세웠다. 박지원(국민의당)·강길부(무소속) 당선인은만 74세, 서청원(새누리당) 당선인은 73세로노익장을과시했다. 19대국회최고령이었던박·강당선인은생일까지도 6월 5일로같다.
김수민당선인이외에주목받는 ‘젊은피’로는신보라(33·새누리당비례대표), 김해영(39·더민주, 부산연제), 전희경(40·새누리당비례대표), 채이배(41·국민의당비례대표), 이재정(41·더민주비례대표) 당선인등이있다.
與 서청원 8선, 野 이해찬 7선으로 최다선 기록
당선인의 평균 선수(選數)는 2.14선이다. 초선의원 비율은 132명(44.0%)으로 19대 때 148명(49.3%)에 비해 줄어들었고, 133명을 기록한 18대와 비슷한 수준이다. 전반적으로 ‘세대교체’와 ‘공천개혁’ 모두 실패했음을 알 수 있다.
선수별로는 6선 이상이 7명, 5선 이상 17명, 4선 34명, 3선 46명, 재선 71명으로 나타났다. 국회의원 정수가 300명인 점을 감안할 때 3선 이상을 기록할 확률은 3분의 1 수준인 셈이다.
서청원 당선인이 8선으로 가장 선수가 높고, 이해찬(무소속) 당선인이 7선으로 뒤를 이었다. 김무성(새누리당)·천정배(국민의당)·이석현(더민주)·정세균(더민주)·문희상(더민주) 당선인은 6선 고지를 등정했다. 이들 모두 잠재적인 국회 의장단(국회의장 및 부의장) 후보로 평가된다.
정당별로 물갈이 비율을 살펴보면 새누리당이 가장 높았다. 19대 현역의원 146명 가운데 69명이 당선됐고 77명(52.7%)이 바뀌었다. 더민주는 102명 중 59명이 여의도에 재입성하고 43명(42.2%)이 생환에 실패했다. 국민의당은 20명 중 11명이 금배지를 이어간 반면 9명(45%)은 내려놓았다. 정의당은 현역의원 5명 가운데 심상정 대표 1명만 당선됐고 4명(80%)은 낙선의 고배를 들었다. 19대 현역의원 중 무소속으로 출마한 17명 중에서는 6명이 재입성했고 11명(64.7%)은 쓴잔을 마셨다.
여성 당선인 수는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모두 51명의 여성이 국회에 입성해 전체 당선인 중 여성 비율이 17%에 이르렀다. 19대(47명, 16%) 및 18대(41명, 14%)와 비교해보면 지속적인 증가세를 나타낸다. 정당별로는 더민주가 24명으로 가장 많고, 그 뒤를 새누리당(15명), 국민의당(9명), 정의당(3명)이 따랐다. 4개 정당 총 의석 대비 여성의원 비율은 각각 20%, 12%, 24%, 50%다.
특히 지역구 선거에서 여성의 약진은 놀라웠다. 20대 총선에 출마한 지역구 당선인 가운데 여성은 새누리당 6명, 더민주 17명, 국민의당 2명, 정의당 1명 등 모두 26명(10.3%)으로 헌정 사상 10%의 벽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이는 19대(19명, 7.7%), 18대(14명, 5.7%), 17대(10명, 4.1%)와 비교했을 때 대단히 놀라운 증가세다. 여야 각 정당이 여성 우선 추천지역 등을 통해 여성을 배려한 결과다. 추미애(더민주, 서울 광진을) 당선인은 지역구에서만 5선을 기록하는 독보적인 위상을 확보했다. 나경원(새누리당, 서울 동작을) 당선인도 당내에서는 유일하게 여성 4선 고지를 밟았다.
더민주 김병관은 2637억원, 진선미는 -14억원
최다 득표 영광은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 지역구에서 77.65%의 지지를 받은 김종태 새누리당 당선인에게 돌아갔다. 뒤를 이어 유승민(대구 동을, 75.74%), 박명재(포항 남·울릉, 71.86%), 최경환(경산, 69.62%), 강석호(영양·영덕·봉화·울진, 67.58%), 이철우(김천시, 64.25%) 순으로 높은 지지를 얻었다. 유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새누리당 소속이다.
평균 재산 신고액은 41억400만원으로 19대 국회(28억 4300만원, 정몽준 전 의원 제외)에 비해 1.44배나 늘어났다. 그러나 분당갑에서 당선된 김병관 전 웹젠 이사회 의장(2637억7300만원)과 노원병에서 재선 고지에 오른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1629억2000만원)를 제외하고 평균을 내면 26억7800만원으로 18대 국회(26억4400만원)와 비슷한 수치가 된다.
당선인의 면면만을 볼 때 가장 가난한 정당은 정의당(3억7300만원)이다. 국민의당이 평균 60억원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안철수 의원을 빼고 계산하면 17억5891만원으로 수직 하락한다. 더민주의 경우에도 평균은 36억6000만원으로 나타났지만 김병관 당선인을 빼면 15억2795만원이 된다. 새누리당은 42억600만원으로 가장 부자다.
가장 적은 재산을 신고한 사람은 더민주의 진선미(-14억1800만원) 당선인이다. 새누리당 김한표 당선인도 -3500만원을 신고했다. 이 밖에 국민의당 김수민(2000만원) 당선인, 더민주 제윤경(5400만원) 당선인과 더민주 이재정(1억1400만원) 당선인 등이 재산순위 최하위권을 형성했다.
안 대표와 김병관 당선인은 최근 5년간 소득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납부 내역에서도 각각 207억원과 111억원의 세금을 납부해 납부액 순위에서 나란히 1, 2위를 기록했다. 소득세는 2010∼2014년 사이 발생분을 기준으로 했고,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는 2011∼2015년 사이 부과분을 기준으로 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당선인 중 30명이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세금체납 당선자는 새누리당 14명, 더민주 9명, 국민의당 5명, 정의당 1명, 무소속 1명이었다. 특히 국민의당 장정숙 당선인(비례대표)은 무려 1억3748만원의 세금을 체납했다.
병역 불이행 당선인은 42명으로 병역의무가 있는 당선인 249명 중 약 17%를 차지했다. 19대(18.5%)보다 2.1% 줄어든 수치다. 더민주의 당선인 중 병역을 이행하지 않은 비율이 25.3%로 여야 4당 중 가장 높았다.
또한 전과가 있는 당선인은 모두 93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19대 총선 때 61명(전체 당선자의 20.3%)이 전과 경력이 있었던 것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늘어난 수치다. 2014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전과 기준이 ‘금고 이상’에서 ‘벌금형 이상’으로 강화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300명 중 93명이 법학·행정학 전공자
학력은 대학원졸이 157명(52.3%), 대졸·대학원 수료가 137명(45.6%)으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했다. 바둑기사 출신인 새누리당 조훈현 당선인(비례대표)은 유일한 중졸(일본 신메이중)이었고, 정의당 비례대표 추혜선 당선인 등 2명은 고졸, 새누리당 비례대표 문진국 당선인 등 2명은 고교중퇴였다.
당선인들의 출신대학(학부 기준)을 보면 서울대가 81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고려대 37명, 성균관대 28명, 연세대 23명 순이었다. 이화여대가 8명, 건국대·중앙대·한양대가 각각 7명의 당선인을 배출했다.
지방대학들도 지역구를 중심으로 당선인을 배출했다. 전남대·부산대·영남대는 각각 6명의 당선인을 배출했고, 울산대 4명, 전북대·경북대·제주대·충남대 등이 각각 2명을 국회에 진출시켰다. 이 밖에도 홍익대·순천향대·국민대·한국예술종합대·세종대 등 여러 대학에서 국회의원 당선인을 탄생 시켰다.
전공은 법학과가 가장 많았다. 법학 전공만 62명이고 행정학 전공자들도 31명이었다. 두 전공을 합치면 전체 당선인 수의 3분의 1에 육박한다. 다음으로 정치·외교 계열 전공자가 31명이었다. 국제경제와 농·경제를 포함한 경제학 전공은 22명, 경영학 전공도 19명이었다. 무역학과 출신은 6명이었다.
인문사회학 전공자로는 사회학과와 국문과가 11명으로 가장 많았고, 그 뒤를 철학(8명), 사학(6명), 독문(5명), 불문(4명), 영문(2명) 등이 따랐다. 사범계열(9명)에서는 역사교육(3명), 영어교육(2명), 체육교육(2명), 수학교육(2명) 등이 고루 포진됐다.
이공계열 전공자도 눈에 띄었다. 토목공학(6명), 물리학(5명), 건축학(3명), 기계공학(2), 전자공학(2명) 등으로 집계되었고, 그 밖에 화학공학, 환경공학, 천문, 전자계산 등이 한 명씩 있다.
직업은 국회의원·정치인이 220명으로 73.3%를 차지했다. 이어 교육자 18명, 변호사 16명 순이었다. 그러나 전직을 포함한 교수 출신으로 범위를 넓히면 49명으로 늘어났다.
이은재(건국대, 서울 강남병), 박인숙(울산대, 서울 송파갑), 정종섭(서울대, 대구 동갑), 이군현(중앙대, 통영·고성), 김정우(세종대, 경기 군포갑), 표창원(경찰대, 경기 용인정), 강창일(배재대, 제주갑), 최운열(서강대, 비례대표), 김성태(성균관대, 비례대표), 유민봉(성균관대, 비례대표), 김종석(홍익대, 비례대표), 박경미(홍익대, 비례대표), 문미옥(이화여대, 비례대표), 김종인(서강대, 비례대표), 오세정(서울대, 비례대표), 이상돈(중앙대, 비례대표) 당선인 등이 대표적인 교수 출신이다.
오세훈·이인제 등 낙선으로 더민주 ‘법조인 배지’ 1위
법조인(전직 포함) 출신도 49명이 금배지를 달게 됐다. 19대 총선에 비해 7명이 늘어난 수치다. 지역구 46명과 비례대표 3명으로 전체 국회의원 300명의 16.3%다.
정당별로는 더민주(22명), 새누리당(15명), 국민의당(11명), 무소속(1명)의 순이다. 한때 ‘육법당(육사 출신 및 법조인 출신이 많아서 붙여진 별칭)’이라 불렸던 새누리당이 더민주에 1위 자리를 내줬다. 후보자로는 더 많은 수가 나섰지만 총선 참패로 당선인이 크게 줄어든 때문이다. 오세훈(서울 종로), 황우여(인천 서을), 이인제(논산·계룡), 권영세(서울 영등포을), 김용남(경기 수원병), 정미경(경기 수원정) 후보 등이 줄줄이 낙선했다.
경찰 출신은 14명이 출마해 8명이 당선됐다. 지금까지 가장 많았던 16대(5명)보다 3명 늘었다. 이철규(무소속, 강원 동해·삼척), 표창원(더민주, 용인정), 김석기(새누리당, 경주), 김한표(새누리당, 거제), 윤재옥(새누리당, 대구 달서을), 권은희(국민의당, 광주 광산을), 이만희(새누리당, 영천·청도), 이동섭(국민의당 비례대표) 등이 여야에서 고르게 당선됐다.
군 출신으로는 이종명(비례대표) 예비역 대령, 윤종필(비례대표) 예비역 준장, 김성찬(경남 진해) 전 해군 참모총장, 김종태(상주·군위·의성·청송, 이상 새누리당) 전 기무사령관, 김중로(국민의당 비례대표) 예비역 준장 등이 있다. 더민주에서는 군 출신 당선인을 배출하지 못했다. 군 출신은 아니지만 군과 관계된 인사로는 백승주(경북 구미갑) 전 국방부 차관, 김종대(비례대표, 정의당) 전 디펜스21+ 편집장 등이 있다.
보건의료계에서는 지역구(7명)와 비례대표(3명)를 포함해 총 10명(의사 3명, 약사 4명, 간호사 1명, 치과의사 2명)이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의사 출신 중에서는 안철수(국민의당, 서울 노원병), 신상진(새누리당, 성남 중원), 박인숙(새누리당, 서울 송파갑) 등이 금배지를 달았다. 약사의 경우 김상희(더민주, 부천 소사), 전혜숙(더민주, 서울 광진갑), 김승희·김순례(이상 새누리당 비례대표)가 있으며, 치과의사로는 전현희(더민주, 서울 강남을), 신동근(더민주, 인천 서을)이 있다. 간호사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윤종필(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가 당선됐다.
19대 총선과 비교하면 의사 출신 국회의원은 6명에서 3명으로 줄었으며, 약사 출신 국회의원은 2명에서 4명으로 늘었다. 간호사와 치과의사는 각각 1명과 2명으로 같다.
8년 만에 귀환한 정동영, 3선 도백 출신 박준영
장애인 국회의원도 4명 배출됐다. 심재철(58·지체장애 3급), 김재경(54·지체장애, 이상 새누리당), 더민주 이상민(58·지체장애) 당선인이 지역구를 통해 국회에 진출했고, 이종명(56·지체장애) 당선인은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금배지를 달았다. 더민주가 ‘김종인 비례대표 명단’으로 장애인 대표를 상위 순번에 배치하지 않음으로써 상대적 불이익을 받은 셈이 됐다.
공인회계사도 6명이나 국회에 입성했다. 지난 19대 때 2명보다 4명이 늘었다. 김관영(국민의당, 군산), 박찬대(더민주, 인천 연수갑), 엄용수(새누리당, 밀양·창녕), 유동수(더민주, 인천 계양갑) 당선인 등 4명이 지역구에서 당선됐고, 채이배(국민의당)·최운열(더민주) 후보가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이번 총선에서도 기획재정부(경제기획원·재무부·기획예산처·재정경제부 포함) 출신 당선인이 대거 배출됐다. 최경환(행시 22회), 추경호(행시 25회), 김광림(행시 14회), 이종구(행시 17회), 정우택(행시 22회) 당선인 등이 새누리당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고, 김진표(행시 13회), 김정우(행시 40회, 이상 더민주), 장병완(행시 17회), 김관영(행시 36회, 이상 국민의당) 당선인은 야권의 주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다른 부처 출신으로는 윤상직(부산 기장), 정운천(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이현재(전 중소기업청장), 송석준(전 서울지방국토관리청장, 이상 새누리당) 당선인 등이 있다.
과학·정보통신기술(ICT) 업계 인사로는 송희경(전 KT 전무이사, 새누리당 비례대표), 김병관(웹젠 이사회 의장, 더민주, 성남 분당갑), 변재일(전 정보통신부 차관, 더민주, 청주·청원), 김성태(전 한국정보화진흥원장, 새누리당 비례대표) 신용현(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국민의당 비례대표), 오세정(서울대 물리천문학과 교수, 국민의당 비례대표), 문미옥(전 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기획정책실장, 더민주 비례대표) 당선인 등이 있다.
문화·예술·체육계에서는 4명이 당선됐다. 지역구 의원이 2명, 비례대표가 2명이다. 소병훈(출판인, 더민주, 광주갑), 도종환(시인, 더민주 청주 흥덕), 조훈현(바둑기사, 새누리당 비례대표), 이동섭(서울시태권도연합회장, 국민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등이 그들이다.
언론인 출신도 대거 여의도에 입성했다. 김종민(시사저널, 더민주, 충남 논산·계룡·금산), 정동영(MBC, 국민의당, 전주병), 박준영(중앙일보, 국민의당, 영암·무안·신안) 민경욱(KBS, 새누리, 인천 연수을), 서형수(한겨레, 더민주, 양산), 박영선(MBC, 더민주, 서울 구로을), 민병두(문화일보, 더민주, 서울 동대문을) 김영호(스포츠투데이, 더민주, 서대문을), 강효상(조선일보, 새누리당 비례대표), 김성수(MBC, 더민주 비례대표), 김영우(YTN, 새누리당, 포천·가평), 박대출(서울신문, 새누리당, 진주갑) 당선인 등이 있다.
사무총장 낙선 ‘흑역사’ 이어간 새누리당
총선 전 노동 개혁이 화두였던 만큼 여야 모두 노동계 출신 의원들이 풍년을 이뤘다. 한국노총 출신은 19대 6명에서 이번에 9명으로 늘어났다. 김성태(서울 강서을), 장석춘(구미을), 임이자(비례대표), 문진국(비례대표, 이상 새누리당), 김영주(서울 영등포갑), 한정애(서울 강서병), 김경협(부천 원미갑), 어기구(당진), 이용득(비례대표, 이상 더민주) 당선인 등이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노회찬(정의당, 창원 성산), 김종훈(무소속, 울산 동구), 심상정(정의당, 고양갑), 홍영표(인천 부평을) 당선인 등도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활동경력을 토대로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연예인 가족이나 친인척을 둔 당선인들도 눈길을 끈다. 배우 심은하 씨의 남편 지상욱(새누리당, 서울 중·성동), 배우 이영애 씨 남편 정호영 씨의 삼촌인 정진석(새누리당, 공주·부여·청양), 배우 이하늬 씨의 외삼촌 문희상(더민주, 의정부갑), 배우 윤세인 씨의 아버지 김부겸(더민주, 대구 수성갑), 배우 고윤 씨의 아버지 김무성(새누리당, 부산 중·영도), 배우 손가영 씨의 고모 손혜원(더민주, 서울 마포을) 당선인 등이 화제를 불러 모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배우 송일국 씨의 어머니 김을동(서울 송파병), 배우 박정숙 씨의 남편 이재영(서울 강동을), 아나운서 김경란 씨의 남편 김상민(경기 수원을, 이상 새누리당) 후보 등은 아쉽게 낙선했다.
대를 이은 정치인들의 약진도 두드러졌다. 유수호 전 의원의 아들 유승민(대구 동을), 김진재 전 의원의 아들 김세연(부산 금정), 김태호 전 의원의 며느리 이혜훈(서울 서초갑), 정석모 전 의원의 아들 정진석(공주·부여·청양), 정운갑 전 농림부장관의 아들 정우택(청주 상당), 홍우준 전 의원의 아들 홍문종(의정부을, 이상 새누리당), 노승환 전 국회부의장의 아들 노웅래(서울 마포갑), 김상현 전 의원의 아들 김영호(서울 서대문을, 이상 더민주) 당선인 등이 손꼽힌다.
역대 최연소 비례대표 기록으로 화제를 모은 김수민 당선인의 아버지(김현배)도 새누리당 전신인 신한국당에서 14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냈다. 부녀가 모두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는 보기 드문 기록을 세웠다.
황진하 새누리당 사무총장(파주을)이 낙선한 것도 흥미롭다. 이방호-권영세-황진하로 이어지는 새누리당 ‘사무총장 흑역사’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을 보좌해 공천에 참여한 박종희 제2사무부총장도 수원갑에서 낙선했다. 18대 총선 때 이방호 총장과 함께 공천을 주도한 정종복 당시 제1사무부총장도 경주에 출마했다가 떨어진 바 있다.◎
- 이진우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 소장 jameslee@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