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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토의 소식 14/ 2021.01.11 비핵화와 정반대의 길 가는 김정은 체제 - 06.30 北 코로나 터졌나···김정은 대노 "방역 태만, 중대사건 발생"

상림은내고향 2021. 7. 3. 15:33

동토의 소식 14/ 2021.

01.11 비핵화와 정반대의 길 가는 김정은 체제

북한이 노동당 규약을 개정해 ‘공화국 무력’을 부단히 강화할 것이라고 대내외에 천명했다. 5년 만에 개최한 노동당 제8차 대회를 통해 ‘자위적 전쟁억제력 강화’라고만 기술돼 있던 기존 당 규약을 고치고 이를 조국통일 과업과 연결시켰다. 북한 정권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 규약 고쳐 ‘공화국 무력’ 강화 천명
핵 손에 쥐고 제재 푼다는 오판 버려야

‘공화국 무력’이 핵무장을 뜻하는 것임은 불문가지다. 당 규약 개정에 앞서 진행된 ‘총화 보고’에서는 핵추진 잠수함 개발과 다탄두(MRIV) 전략무기, 극초음속 무기 개발까지 공식화했다. 반면에 이번 당대회에서 채택된 공식 문서들에 비핵화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다. 남북 합의 사항이자 북·미 정상회담 합의 사항인 비핵화와는 정반대의 노선을 갈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큰 실망과 함께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당대회 개막식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수행 기간이 끝났지만 내세웠던 목표는 엄청나게 미달됐다”며 실패를 자인했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다른 자리도 아닌 당대회에서 “일찍이 있어 본 적이 없는 최악 중 최악의 난국”이라고 고백한 것은 북한 경제난이 심각한 한계상황으로 향하고 있음을 인정한 것으로 봐야 한다.  
     
문제는 그 해법이 틀렸다는 점에 있다. 김 위원장은 여전히 해법을 ‘자력갱생’에서 찾고 있다. 최악에 이른 작금의 북한 경제난은 장기화된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에 코로나19 사태와 지난해 대규모 수해가 겹친 데 따른 것이다. 제재라는 근본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 자력갱생만으로는 경제난을 벗어날 수 없다. 핵을 손에 쥐고 이를 무기로 제재를 풀겠다는 전략은 현실적으로 국제사회에 통하지 않는다. 이는 2019년 하노이 회담 실패에서 입증된 바다. 곧 출범할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더더욱 기대하기 어려운 셈법임을 북한 지도부는 자각해야 한다. 북한이 진정으로 경제를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전략 노선을 수정해야 한다. 해법은 비핵화와 이를 통한 남북관계를 포함한 대외관계 개선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당대회에서 밝힌 것처럼 미국을 ‘최대의 주적’이자 ‘제압하고 굴복시킬’ 대상으로 삼는 비현실적 인식에서 하루속히 벗어나야 한다.
 
아울러 우리 정부도 대북 정책과 전략을 변화한 정세에 맞춰 조정해야 한다. 북한은 이번 당대회에서 “남북관계는 판문점 선언 발표 이전으로 되돌아갔다”고 분명히 밝혔다. 방역 협력, 개별 관광 등 문재인 정부의 제안을 ‘비본질적 문제’라고 일축하면서 한·미 군사훈련 중지를 거듭 주장했다. 정부는 메아리 없는 단기적 남북관계 개선 노력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춰 북한의 변화와 비핵화를 이끌어낼 것인지의 본질적 문제에 대북 정책의 중심을 둬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01.15  시진핑 바지 잡고 버티려는 김정은

당 대회서 “北中 하나의 운명”
올 7월은 中 공산당 100년이자 ‘북중 우호 조약’ 60년이기도
中에 식량·군사 지원 요구할 것

김정은이 노동당 대회에서 북중 관계를 유달리 강조했다. “다섯 차례 북중 정상회담으로 동지적 신뢰를 두텁게 했다” “사회주의를 핵으로 하는 친선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의 운명”이라고 했다. 반면 5년 전 당 대회에선 ‘중국’이란 단어 자체를 언급하지 않았다. 이번에 당 국제부장에 기용한 김성남은 대표적 ‘중국통’이다. 김일성·김정일의 중국어 통역이었다. 대신 대미 외교 핵심인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을 당 중앙위원에서 후보위원으로 강등시켰다. 5년 전 미국·핵 전문가 리용호를 외무상에 앉혔던 것과 확실히 비교된다.

 

김정은의 메시지는 당분간 남북, 미북보다 북중 관계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당 보고에서 현재 경제난이 ‘최악 중의 최악’이라고 했다. 보고의 절반 이상을 경제 분야에 할애했다. 그만큼 다급하다는 것이다. 코로나 봉쇄와 대북 제재로 북한 무역이 전년보다 90% 쪼그라들었다. 작년 말 평양의 거물 환전상을 총살할 정도로 외화 부족도 심각하다. 북이 아무리 ‘자력갱생’을 외쳐도 원시 농경 사회가 아닌 이상 오래 버티기는 힘들 것이다. 지금 미국은 코로나와 트럼프 탄핵 때문에 북한을 쳐다볼 여력이 없다.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진용과 정책도 5~6월이 지나야 틀을 잡을 것이다. 한국이 제재 현실을 무시하고 북이 원하는 만큼 퍼주기도 어렵다. 현실적으로 기댈 곳은 중국뿐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김정은이 지난해 방북한 시진핑 주석을 환송하고 있다. /뉴시스

 

올해 7월 중국 공산당은 창당 100년을 맞는다. 시진핑은 ‘사회주의 중국 굴기’를 과시하려고 성대한 잔칫상을 차릴 것이다. 여기에 북중의 ‘당 대 당’ 밀월이 빠질 수 없다. 노동당 총서기가 된 김정은에게 가장 먼저 축전을 보낸 것도 시진핑 총서기였다. 북은 100주년 선물로 넉넉한 식량 지원 정도는 기대할 것이다. 7월이면 작년 추수한 곡식도 거의 소진될 시점이다. 코로나가 관건이지만 중국 관광객이 몰려와 위안화를 뿌려주면 외화 가뭄도 해갈될 수 있다. 중국 통인 신임 국제부장이 맡아야 할 과제들이다.

 

올 7월은 ‘북중 우호 조약’ 체결 60년이기도 하다. 10년 전 중국 관영 매체는 “이 조약은 1981년, 2001년 자동 연장돼 현재 유효 기간은 2021년까지”라고 보도했다. ‘20년마다 갱신’이란 이면 합의가 있었다는 뜻이다. 한반도 유사시 ‘중국군 자동 개입’ 조항이 핵심인 이 조약도 7월 전에 어떤 식으로든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북이 핵·미사일 도발을 일삼던 2017년 만해도 중국 선전 매체는 “북중 우호 조약을 꼭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며 북을 압박했다. ‘중국은 북을 버려야 한다’는 칼럼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미 트럼프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도 ‘중국 포위’ 전략을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북중 모두 이 조약에 손댈 이유가 없다. 오히려 60년을 계기로 북중 군사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 시진핑은 작년 6·25 참전 70년을 맞아 “중국군과 북한군이 긴밀히 협력해 미군을 패배시켰다”고 했다. 김정은도 당 대회에서 공언한 핵 추진 잠수함이나 극초음속 무기 등을 만들려면 중국이 핵심 부품 밀수를 눈감아줘야 한다.

 

북은 환상으로 대외 전략을 짜지 않는다. 냉철하게 현실을 계산한다. 가진 것이라곤 핵뿐인 최빈국이 생존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노이 미북 협상 때 오판한 북 간부들은 숙청됐다. 냉철한 현실 인식은 북의 전술핵 위협까지 받는 한국에 더 절실할 것이다. 그런데 통일부 장관은 남북 쇼를 기대하며 “우주의 기운” 운운하고 여당 의원은 “김정은 답방”을 외쳤다. 외교부는 희한한 사고만 치고 있다. 그러니 북이 ‘머저리’라 하는 것이다

조선일보 안용현 논설위원

 

01.29  현실 부정의 위험에 빠진 북한

 

북한에 가장 중요한 최근의 사건은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도, 제8회 당대회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다. 그 당대회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경제·코로나 위기에 외부 탓만
폐쇄성 짙어져 협상 난항 예상

북한이 직면한 두 가지 문제는 점점 심각해진다. 하나는 경제난이다. 1월 22일 유엔식량농업기구 보고에 따르면 2016∼2019년 북한 인구의 46%가 영양실조 상태에 빠졌다. 다른 하나는 코로나19 확산 가능성이다. 이는 북한의 열악한 의료 체계로는 감당할 수 없다. 그러나 북한에서 4년마다 개최되는 주요 지도자 회의인 이번 당대회에서 그 어느 쪽에 대해서도 신뢰할 만한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5개년 경제정책이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했다”며 문제를 시인했다. 그러나 개인들에게 어느 정도의 자율적 활동을 허가해 경제 침체를 조금이라도 늦추려는 정책 대신에 국가적 통제 강화와 자력갱생을 강조했다. 경제정책 실패의 탓을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 자연재해, 코로나19 등 외부적 요인으로 돌렸다. 코로나19에 대해서는 북한에 확진자가 없다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했을 뿐이다.
 
그러면서 군사력 강화를 강조했다. 당대회 기념 열병식에서는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공개됐다. 실재하는 위험한 문제는 외면하고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무기를 계속 개발하기로 굳게 결심한 듯하다.
 
이런 비현실적 위기 대응 방식이 왜 북한에서 반복되는 것일까. 북한 지도부는 정권 존립을 위협받는 문제에 부닥쳤을 때 마치 자동차 전조등 불빛에 놀라 피하지도 못하고 제자리에 얼어붙은 토끼처럼 행동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경제 침체를 해결하려면 시장을 활성화해야 하고, 코로나19에 맞서려면 전문가의 도움과 백신 지원을 받아들여야 한다. 북한 정권은 둘 다 하지 못한다. 북한 정권은 경화증(硬化症)에 걸렸다. 좀처럼 안전지대 밖으로 나오거나 합리적인 새 정책을 추진하려 하지 않는다. 대담한 새 출발을 시도하려면 권위에 손상을 입지 않은 당당한 지도자가 필요한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그런 위치에 있는지가 분명하지도 않다. 게다가 북한에는 현실적 문제에 대한 전문가가 극히 부족하다.  
     
북한 정권은 강한 압박을 받으면 사이비 종교 집단처럼 움직인다. 그들은 폭력적인 열강에 대항하여 싸우는 국제적인 희생양이고, 최고 통치자는 신(神)처럼 오류가 없고, 지도부의 결정은 항상 최선의 선택이라고 굳게 믿는다. 이러한 믿음을 거스르는 불쾌한 현실에 직면하면 현실을 부정하며 합리화를 시도한다. 북한 엘리트층은 폐쇄된 사회에서 확고한 권력을 쥐고 있다. 설령 그 폐쇄 집단 내에서 현실에 입각한 반대 의견이 표출되더라도 그것은 곧바로 기성 지도자들의 주장에 짓눌린다. 노동당은 그들의 신조와 충돌하는 현실에 근거한 결정을 내릴 능력을 상실했다.
 
이번 당대회에서 나타난 북한의 대처는 그들이 더욱 상대하기 까다로워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북한은 더욱 속으로 움츠러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외부 세계와 진지하게 소통할 가능성이 작아졌다. 대외 관계를 전면적으로 확대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이는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는 데 힘쓰겠다는 뜻에 가깝다. 북한 미국과의 단계적 협상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김 위원장은 한국 정부가 한반도의 ‘본질적인 평화의 문제’에 집중하고 첨단 군사장비 반입 및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할 때 남북 관계에 진전이 생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남북 관계 경색을 한국 정부의 책임으로 돌린 것이다. 설령 한국이 이 조건을 받아들인다 해도 북한이 진지하게 대화에 임할 것 같지도 않다. 한국 정부를 향해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기괴한 족속들”이라고 한 김여정의 발언이 오히려 솔직한 표현일 수도 있다. 험난한 앞날이 예상된다.  
중앙일보 존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월간조선 2021. 02월 호

북한의 불륜

마다라스, 8·3부부를 아십니까?

⊙ 당 간부의 애인을 ‘마다라스’(매트리스)라고 지칭… 시집도 잘 가
⊙ 정치적 문제는 엄격하지만, 性的 문제는 상대적으로 관대
⊙ 장거리 장사하는 남녀 사이에 불륜 관계 형성되면 ‘8·3부부’

/평양거리의 모습.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인지라 그곳에도 불륜은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은 불륜(不倫)의 왕국이다. “남자는 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여자 생각한다”는 속담은 남북 공통이지만, 북한 속담은 한걸음 더 나간다. “소변에 거품만 생겨도 아기가 생긴다”는 것이다. 탈북민들에게 “북한에도 불륜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면 “그것도 조선말이라고 하느냐?”는 답이 돌아온다.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불륜이 만연하다는 뜻이다. 북한 사회의 거의 모든 불륜은 경제적 이해관계와 긴밀하게 얽혀 있다. 그래서 없어지지 않는다. 불륜의 형태는 ‘권력형’과 ‘민간형’으로 나뉜다.
 
  ‘권력형 불륜’은 전통적 유형이다. 당(黨)비서·지배인·기사장 등 당 간부들은 자기 사무실이 있다. 사무실마다 소파가 있고 방 안에서 문을 잠글 수 있다. 당 간부 주변에는 미혼 여성들이 많다. 통계원·경리원·교환수·연구실 관련 직원 등이다. 전산화가 미비하니 서류 작성 등을 수기(手記)로 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업무 처리에 인력이 많이 필요한 것이다. 인적 구성 자체가 하나의 당 간부를 미혼 여성 여럿이 보좌하는 구도인 셈이다.


  아무리 작은 권력이라도 잡으면 휘두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북한 당 간부는 실질적인 권력이 몰리는 자리다. 인허가권이 그 손에 있고 인사권·성분조사 등 주민들의 현재와 미래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힘이 있으니 뇌물도 따른다. 당 간부 주변의 미혼 여성들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당 간부 눈에 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당 간부의 선택을 받으면 그다음부터는 생활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마다라스'

당 간부의 애인을 지칭하는 속어는 ‘마다라스’(매트리스의 일본식 발음)다. “저거 누구 마다라스다”라는 표현은 북한 아줌마들의 일상 표현이다.
 
  누군가의 ‘마다라스’가 되면, 관계를 맺은 간부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들의 태도가 즉시 변한다. ‘마다라스’의 심기를 건드리면 베갯머리 송사를 통해 윗선에서 바로 보복의 칼날이 날아온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마다라스’가 이간질을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마다라스’들에게는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마다라스’의 힘은 민간까지 뻗어간다. 당 간부와 개인적인 연줄이 있다는 것은 ‘소파’에서 은밀한 부탁을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당 간부의 권력과 그에 따르는 뇌물경제의 이익을 일부 공유(共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다라스’를 통하면 청탁 성공률이 높기 때문이다.
 
  ‘마다라스’뿐 아니라, 불륜과 관련한 또 다른 명구(名句)가 있다. ‘여자의 거대한 ××에 한번 빠지면 빠져나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말이다. 도자기 속 송곳과 불륜은 숨길 수 없다지만, 요즘은 불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놀랍게도, ‘마다라스’라고 소문이 나면 최근에는 오히려 시집을 잘 가는 경우가 많다. 관계 당사자인 당 간부가 신랑감을 소개하기도 한다. 일종의 장기적인 입막음 보험(保險)이다. 소개받은 남자도 그렇고 그런 사실을 다 알지만, ‘마다라스’ 생활을 어느 정도 했다는 건 그만큼 경제적으로 부(富)를 깔았다는 뜻이다. 현역(?) 때보다야 영향력이 덜하겠지만, 그래도 스폰서 간부가 현직에 있는 한 어느 정도의 영향력도 행사할 수 있다. 그래서 마다하지 않는다. ‘이제까지는 그렇게 살았다 치고, 결혼 이후에만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괜찮다’며 장가를 든다.

 
  ‘스폰서형 불륜’도 등장

권력진화형 불륜은 초급 당 간부보다 윗선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불륜의 대상이 사외(社外)라는 특징이 있다. 이른바 ‘스폰서형 불륜’이다. 생활비를 보조하고 장기간 관계를 갖는 형태다. 평양의 경우, 지방에서 유학 온 대학생 등이 대상이다.
 
  아무리 최고위직이라도 북한에서는 부부가 아니면 숙박업소에 묵는 것이 불가능하다. 투숙하려면 공식적인 허가를 사전에 받아야 한다는 것도 이중의 걸림돌이다. 그래서 애용하는 밀회(密會) 장소가 있다. 사우나 내부의 개인 목욕탕이다. 공식적으로는 목욕하러 다녀간 것이고 동행자가 있었는지 여부는 사우나 직원이 아니면 알 수 없다. 물론 사우나 측과도 뇌물로 서로 끈끈하게 엮여 있어야 뒤탈이 없다.
  
  그렇다면 바람 든 남편을 아내들은 왜 징치(懲治)하지 않는가. 당 간부인 남편이 ‘마다라스’를 두고 부화(附和·‘불륜’의 북한식 용어) 사건을 일으키면, 당위원회에 정식으로 신소(伸訴)가 가능하다. 사무실로 쳐들어가서 한바탕 난리굿을 할 수도 있다. 고발하면 처벌은 확실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일단 걸리면 처벌 수위가 고무줄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북한 사회의 실상이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 법 일꾼들과의 친소(親疎)관계, 뒷배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소한 잘못도 중범죄로 일이 커질 수 있지만, 그보다 심각한 것은 주택(住宅) 문제다. 북한의 주택은 공식적으로는 모두 직장과 연계된 사택이다. 그래서 남편이 해임철직(解任撤職)이 되면 직장만 잃는 것이 아니라 살던 집도 내놓아야 한다. ‘바람피우는 게 중요하냐, 생계유지가 중요하지’라는 말이 북한 여성들 사이에서 떠도는 배경이다.
 
  불륜도 돈이 있어야 한다. 장마당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민간에도 돈 있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정치적 이야기는 엄금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19금(禁)에 관대한 북한 사회의 문화도 불륜을 부추긴다.
 
  민간 불륜은 장사와 연결된다. 작은 장사는 몰라도, 밀수 등 큰 장사는 여자 혼자 하기가 불가능하다. 큰 장사는 북한에서 거의 다 비법(非法)이다. 그래서 물건을 나르고 국경을 넘나들고 기타 여러 가지 업무를 처리하려면 여러 사람이 협조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남자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예를 들어 북한에는 여자 운전사가 없다. 돈이 생기고, 생사를 같이하는 모험을 겪다 보면 남녀 사이에 동지애가 생긴다. ‘오늘이라도 단속반이나 군인들에게 잡히면 바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피차간의 마음을 헐하게 만든다. 유혹이 일상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장거리 장사도 불륜의 온상이다. 무엇보다도 북한에서는 기차가 연착하는 일이 다반사다. 전기가 끊기는 일이 많아, 열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모르는 남녀가 옆자리에 앉아 사흘이고 일주일이고 길동무를 하다 보면 신변잡기부터 온갖 이야기가 다 오가게 마련이다. 죽이 맞으면 장사 정보를 나누기도 한다. “요즘 개성에 담배가 좋다니 같이 합시다”라는 식으로 의기투합하고 주소를 교환한다. 아는 인맥 누구를 통해 여기는 이렇게 저기는 저렇게, 물건 조달과 판매망을 상호 점검하며 계획을 세운다. 이렇게 같이 장사를 다니기 시작하면 ‘8·3부부’가 되는 것이다.

 ‘8·3부부’

 8·3이란 무엇인가. 1984년 8월 3일에 김정일이 평양시 경공업 제품 전시장 현지지도를 했다. 그때 폐기물 및 부산물을 이용한 인민소비품 생산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대 실시하라는 지시를 했다. 전문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 이외에 가내수공업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겉으로는 폐품 활용의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기존 공장 제품의 질과 양이 모두 문제가 많았고 개선책도 없었기에 내린 결정이다. 북한식으로, 곧바로 ‘8·3 인민소비품 창조 운동’이라는 관제 데모가 일어난 건 덤이다. 8·3 인민소비품, 8·3 제품은 가내수공업 개인공장에서 만든 제품을 말한다.
 
  8·3부부란 ‘민간에서 만들어낸 부부’라는 북한식 은어(隱語)다. 8·3부부들의 밀회공간은 대기(待期)집이다. 북한 기차는 운행 중 문제뿐 아니라 연착도 잦다. 몇 시간 늦는 것이 아니라 사흘 나흘씩 늦게 온다. 언제 온다는 기약도 없고 사전 안내도 없다. 기차를 놓치면 다음 기차가 언제 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역에서 가까운 집에 짐을 부려놓고 며칠을 묵다가 기차가 오면 바로 달려가 올라타야 한다.
 
  장사꾼들이 역 대합실이나 광장에서 노숙하다 보니 절도와 강력사건 등 온갖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다 숙박업소를 찾을 수도 없다. 그런 시설이 태부족하기도 하거니와 장사하는 사람들은 법적으로 거의 다 비법(非法) 비사회주의(非社會主義)이기 때문이다. 숙박업소가 있다 해도 정식으로 숙박업소를 이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해결책이 북한의 모든 기차역마다 여러 군데 생겨난 대기집이다. 대기집은 일종의 민간 불법 숙박업소다. 모든 대기집은 보안원을 끼고 하고, 윗선에서 단속을 할 수도 없다. 그 많은 사람을 다 단속하자니 장마당 경제가 마비될 것이요, 장마당 경제가 마비되면 ‘고난의 행군’이 다시 올까 두렵기 때문이다.
 
  대기집은 창고 등을 개조한 넓은 방에 머릿수대로 돈을 받고 사람들을 받는다. 큰 방 가운데 선을 긋고 남자구역, 여자구역만 나누고 잠을 재운다. 그런데 돈이 있어 보이는 8·3부부는 묵는 곳이 다르다. ‘대기집 윗방’이라는 독립 공간이다. 일반실(?)에 비해 숙박료가 몇 곱절 비싸지만, 8·3부부는 이런 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유능한 대기집 운영자가 되려면, 찾아온 고객 중 누가 윗방 손님일지 얼른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이 모든 행태의 상당 부분이 북한 사회의 비정상성 때문에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하기야 김씨 왕조부터가 공공연한 불륜 애호가였으니 해결책도 난망(難望)이다. 윗물이 맑지 않은데, 당 간부들이 맑기를 바라는 건 백년하청(百年河淸)이다. 어쩌면 김씨 왕조 자체가 특권층의 불륜을 조장하거나 눈감으며 거대한 이익공동체적 집단세력(利益共同體的 集團勢力)으로 진화(進化)했는지도 모른다.⊙

글 : 장원재  장원재TV 대표  

 

02-11 北주재 체코대사관 “北 전력난 심각… 대사관도 정전”

“국경봉쇄로 생필품 구입도 어려워”평양 주재 체코대사관 관계자가 9일(현지 시간) 자유아시아방송(RFA)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인한 국경 봉쇄 장기화로 평양 내 전력난과 생필품 부족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전력에 접근할 수 있는 주민들조차 정전 문제로 항상 전력을 이용할 수는 없다”며 “지난해와 달리 최근에는 여러 차례 대사관 구역에서도 정전을 겪었다”고 했다. 그는 북한 주민 26%만 전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최근 추정치에 대해 “타당하다”고 평가했다.


북한 내 식량 상황에 대해 이 관계자는 “북한의 외부 수입이 중단되면서 몇 달 동안 설탕과 식용유를 아예 찾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북한이 이 제품들의 대체품을 생산하려 하지만 북한이 생산한 제품들의 품질이 매우 나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북한 내 외국산 제품과 식품 가격이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크게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대사도 러시아 매체 인터뷰에서 “평양에서 밀가루, 설탕 등 기본적인 생필품조차 사기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02.15 김정은 “허풍떨지 마라” 삿대질, 경제책임자 한달만에 날렸다

살벌했던 노동당 전원회의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나흘간의 일정 끝에 지난 11일 종료됐다고 조선중앙TV가 12일 보도했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이번 전원회의에서 내각이 설정한 올해 경제목표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당 경제부장을 한달 만에 교체했다. 연단에 선 김정은이 오른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는데 좌석 아래 간부를 질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조선중앙TV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경제 실패 책임을 물어 간부들을 질책하고 화를 주체 못 하는 모습을 북한 매체들이 여과 없이 내보냈다. 김정은은 얼굴이 붉게 상기돼 손가락질을 하고 손을 책상에 내려치는가 하면 간부들을 일으켜 세워 공개 망신을 줬다. 당 경제 책임자는 임명 한 달 만에 해임했다. 경제난이 외부에서 파악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방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정은의 ‘격노’는 8일부터 11일까지 나흘간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2차 전원 회의에서 나왔다. 북한이 지난달 당 8차 대회와 전원 회의를 개최한 지 한 달도 못 돼 ‘준(準)당대회’ 격인 전원 회의를 소집한 것부터가 이례적이었다. 조선중앙TV와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정은은 “내각에서 작성한 올해 인민 경제 계획이 그전보다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계획을 낮춰 세우는 폐단이 나타났다”며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허풍을 피할 수 없게 했다” “보신과 패배주의의 씨앗” 등의 비판이 이어졌다. 또 수십 년간 국가 경제 위에 군림해온 특수 기관의 행태에 대해 “혁명의 원수, 국가의 적” “반당적, 반국가적, 반인민적 행위”라며 “전면적인 전쟁을 벌이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권, 법권, 군권을 발동해 단호히 쳐갈겨야 한다”고 했다. 고개를 숙이고 김정은의 질책을 받아 적은 북한 간부들은 새 의지를 다지는 기고문을 노동신문에 실었다.

 

유성옥 대안과진단연구원장은 “쥐어짜고 짜도 나올 것이 없는 상황에서 초조한 북한 지도부가 책임을 회피하고자 경제 관료들을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실제로 김정은은 경제난 책임을 물어 김두일 당 경제비서 겸 경제부장을 전격 해임했다. 김정은은 지난달 당대회에서 경제 실패를 시인한 뒤 후속 인사를 통해 당과 내각의 경제 관련 부서들을 개편하고 책임자들을 물갈이했다. 당시 인사로 평안남도 당위원장(현 책임비서)으로 일하던 김두일이 경제비서에 발탁됐다. 그런 그를 한 달 만에 경질한 것이다. 지난 9일 회의에서는 권력 서열 3위인 조용원 당 조직비서가 연단에서 좌석의 김두일을 세워놓고 비판하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후임에는 내각 부총리와 당 경제 담당 비서, 국가예산위원장으로 오랫동안 일해온 오수용을 임명했다. 전직 북한 고위급 탈북민 A씨는 “올해 경제 상황이 악화될 경우 이와 비슷한 숙청 피바람이 불 것”이라고 했다.

 

노동신문은 보고에서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적 행위를 비호·조장하는 대상들을 간부 대열에서 단호히 제거하는 것이 강조됐다”고 전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제난을 극복하려면 교역을 정상화하고 외부의 원조·지원을 수용하는 등 개방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하는데 김정은은 정반대로 ‘자력갱생’만 강조하고 있다”며 “이번 경제난 타개책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 된다”고 했다.

 

한편 김정은은 대남·대외 부문에선 별다른 메시지를 내놓지 않은 가운데 리선권 외무상을 당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시켰다. 국책 연구소 관계자는 “미국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대북 정책 수립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판단하고 강경파인 리선권을 내세워 대미 강경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김명성 기자

 

02.24 北 독재자가 벌이는 이상한 일들

140㎏ 김정은, 지방시찰 줄이고 평양서 간부들에 경제난 짜증
‘어머니·강원 인맥’이면 중용, 김일성·김정일 칭호까지 슬쩍 

갑자기 살이 쪄보면 안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만사가 귀찮아지고 짜증이 난다. 가장(家長)이 이러면 집안에 분란이 생긴다. 신(神)과 같은 독재자가 모든 국정을 ‘만기친람’하는 북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

 

김정은은 2012년 90㎏대에서 지금 140㎏대가 됐다. 북의 유일한 초고도 비만자일 것이다. 집권 초만 해도 매년 150~200회 공개 활동을 했다. 그런데 2019년 85회에 그치더니 작년엔 코로나라고 하지만 54회로 떨어졌다. 활동 내용도 처음엔 평양에서 먼 군부대와 공장을 돌아다녔는데 최근엔 평양 내부 회의가 많다. 거동하려니 숨이 찰 것이다.

/김정은이 최근 진행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내각이 설정한 올해 경제 목표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당 경제부장을 한 달 만에 교체했다. 연단에 선 김정은이 간부들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얼마 전 김정은이 경제 부진을 질책하며 당 간부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장면이 공개됐다. 달성하겠다는 목표가 높으면 “허풍”, 낮으면 “패배주의”라고 화를 냈다.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건가. 지적당한 간부는 일가족이 몰살당할 수 있다는 공포에 숨이 멎었을 것이다. 신경질과 불안이 과도하면 비이성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김정은은 바닷물이 코로나에 오염됐을까 봐 어업과 소금 생산을 금지했다고 국정원이 밝혔다. 중국이 지원한다는 식량마저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누구 하나 바른말을 못 한다. 정상이 아니다.

 

주변이 두렵고 짜증이 폭발할수록 의심도 많아진다. 믿는 사람 범위가 좁아진다. 당 요직인 선전선동부장에 발탁된 리일환은 김정은 어머니인 ‘고용희 라인’으로 꼽힌다. 2000년 청년 영웅 도로(평양~남포) 완공 당시 고용희가 젊은 노동력들을 뒷바라지했는데 청년동맹 1비서이던 리일환이 옷과 음식 등을 제때 공급했다고 한다. 김정은은 어머니가 하는 리일환 칭찬을 들었을 것이다. 어머니와 어린 시절을 보낸 강원도 인맥도 중용하고 있다. ‘김정은 대리인’으로 부상한 조용원 당 조직비서가 강원도당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조직지도부에서 강원도를 담당하기도 했다. 강원도 전방 부대 출신인 장정남 전 인민무력부장과 강원도당 비서를 지낸 박정남 당 부장 등도 김정은의 신임을 계속 받고 있다. 김정은 ‘농구 교사’로 알려진 최부일은 부총참모장, 인민보안상, 군정지도부장 등 요직으로만 돌고 있다. 아는 사람만 쓰고 있다.

 

지금 김정은 경호 부대는 호위사령부, 국무위 경위국, 당중앙위 호위처, 호위부 등 4곳이나 된다. 기존 호위사령부를 믿지 못하니 4곳이 서로 감시·견제하라는 것이다.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라고 해놓고 김정은은 지난달 ‘총비서’에 올랐다. 김일성을 “영원한 주석”이라고 해놓고 자신의 직위 영문명을 ‘위원장(Chairman)’에서 ‘주석(President)’으로 슬쩍 바꿨다. 권력 장악에 자신 있던 덩샤오핑은 죽을 때까지 군권(軍權)만 가지고 개혁·개방을 이뤄냈다. 김정은은 경호 부대를 늘려가며 할아버지와 아버지 칭호까지 손을 대고 있다. 뭔가 불안하다는 거다.

 

이제 37세인 김정은이 비만 때문에 당장 어떻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북 권력에 이상 징후도 안 보인다. 그런데 체제 내구성이라는 것이 있다. 상부 구조인 독재와 핵이 아무리 강해도 하부 구조인 경제와 사회 안전망이 흔들리면 내구성도 타격을 입게 된다. 지난해 북·중 교역액은 전년의 20%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10월 대중 수출액은 겨우 18억원이었다. 북한의 영양 결핍 인구 비율이 47.6%로 아이티에 이어 세계 둘째로 높다는 보고서도 있다. 너무 살찐 김정은이 평양에 주저앉아 일부 측근만 믿고 현장 간부들에게 짜증을 뿜어내면 상부 구조도 멀쩡하기 어렵다. 중국도 북 상부 구조는 돕지 못한다. 그래도 북에서 김정은에게 살 빼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 안용현 논설위원

 

03.25 中 “김정은은 중국 조선족”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百度)에 ‘김정은’을 검색하면 ‘중국 조선족’이란 설명이 나온다. ‘북한’을 검색해도 민족 항목에 ‘조선족’이라 적혀 있다. 한국 대통령과 국가 설명에도 과거 이런 식의 표기가 있었는데 우리 측 항의로 삭제됐다. 북한은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굴욕을 감내하는 중이다.

 

북한 사정에 밝은 한 전문가는 “코로나와 경제 제재로 국제 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된 북한은 이제 중국 앞에서 자존심을 내려놨고, 할 말을 하지 못하게 됐다”고 했다.

/2019년 6월 20일 평양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북중 정상회담에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은 올해 들어 더 노골적으로 중국에 머리를 조아리는 모양새다. 지난 12일 유엔 인권이사회 회의에서 제네바 주재 북한대표부 대사는 “일부 나라들이 신장(新疆) 지역과 홍콩 문제를 중국에 대한 내정 간섭에 이용하는 것을 중지하라”고 요구했다. 제 코가 석 자인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따거(大哥·형님)’ 중국을 적극 비호하고 나선 것이다. 18일에는 전임자가 10년 넘게 지킨 주중 북한 대사 자리에 별안간 ‘중국통’ 리룡남을 앉혔다. 리 대사는 베이징외국어대학을 나와 중국어가 유창하고, 대중(對中) 무역에 잔뼈가 굵은 ‘친중’ 인물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2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교환한 친서에서 “북·중 관계를 세계가 부러워하는 관계로 발전시키고 싶다”고 했다.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의 '바이두 백과'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조선족'이라고 표기했다. 이 페이지에서는 조선족을 '중국 조선족'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는 한국 국적이라고만 표기했다./바이두캡처

 

미·중 갈등 격화 속에서 중국은 북한의 구애에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화답하고 있다. 미국과의 대결 구도에서 북한을 협상 카드로 쓰려면 통제력을 키워야 한다는 계산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22일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낸 친서에 ‘비핵화’ 문구를 뺐고,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다음날 정례브리핑에서 대북 제재 완화를 촉구했다. 접경 지역 무역상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4월 북·중 무역 재개설’이 기정사실처럼 나돌고 있다. 중국 각지에서는 북한의 외화벌이 수단인 그림 판매 전시회가 속속 열리는 중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중 갈등 탓에 향후 중국이 북한을 핵무기 문제로 압박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고 보도했다.

 

북·중 밀착이 가속화할 경우 한반도는 미·중 갈등의 전장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중국이 북한을 대놓고 조종하고 대변하면 북핵 문제는 지금보다 더 복잡한 힘겨루기가 된다. 이럴 때 우리 정부가 나서 미·중 경쟁 중 한반도에 신냉전 전선이 그어지는 일을 막고, 북한에 대한 효과적인 압박책을 찾아야 하는데 정권 유지에만 관심 있는 현 정부는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북한의 대중 예속은 점점 심화되고 있다. 남(南)을 향해서는 온갖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최고 존엄을 ‘중국 조선족’이라고 해도 입을 닫고 있는 북한이 ‘주체’를 내세우는 것은 아이러니다.

조선일보 이벌찬 기자

 

04.05 삶은 소대가리, 미국산 앵무새... 北엘리트 수백명이 머리 짜낸다

“미국산 앵무새.” 지난달 30일 북한의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한 표현이다.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자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했다. 북한 미사일을 유엔 결의 위반과 국제사회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는 미국 입장을 되풀이했다며 문 대통령을 앵무새로 빗대 조롱한 것이다.

 

북한의 기상천외한 ‘막말’은 때로 미사일보다 더 화제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1월 “당대회 기념 열병식을 정밀 포착했다”는 남측을 향해서는 “희떠운(말이나 행동이 분에 넘치며 버릇이 없다) 소리” “특등 머저리들”이라고 비난했다. 미국과 일본 지도자들도 과녁을 피해가지 못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몽둥이로 사정없이 때려잡아야 할 미치광이”, 아베 전 총리는 “평화를 위협하는 사무라이 후예”란 모욕을 들었다.

/북한의 자극적·원초적 막말

 

◇기관마다 ‘글쓰기 전문 부서’

북한의 각 기관에는 글을 쓰는 전문 부서가 있다. 김여정의 막말은 대외 메시지를 담당하는 통일전선부가 작성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통일전선부는 주로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메시지를 전담한다. 김여정은 현재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선전선동부는 기본적으로 북한 대내 선전 담당 부서다. 하지만 북한 내 2인자인 김여정에겐 소속이나 직함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북한 외무성엔 글쓰기 전문 부서 ‘9국’이 있다. 20명 내외 인력이 외무성 이름으로 발표하는 성명을 작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련 성명은 북한군 내부 정찰총국 산하 전략 기획 담당 부서가 맡고 있는데, 인력만 100명이 된다고 한다. 물론 최종 결정권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다. 김 위원장의 발표 승인을 북한에선 ‘방침’이라고 한다. 이후 신문·방송을 통해 김여정과 외무상, 총참모장 등의 이름으로 발표된다.

 

◇문학적 소양 지닌 엘리트가 작성

글쓰기 전문 부서엔 문학적 소양을 지닌 김일성종합대학 어문학부나 김형직사범대 작가양성반 출신의 엘리트들이 대거 발탁된다. 대학 내 ‘글쓰기 방법’이란 90분짜리 수업에서 교수는 노동신문 기사를 읽어주고 작문 과제를 내린다. 예를 들어 교수가 ‘한·미 양국이 벌이는 연합 군사 훈련 팀 스피릿(Team Spirit)이 시작됐다’는 기사를 제시하면 학생들은 한 페이지 분량의 선전문을 쓰는 식이다. ‘요즘엔 남조선 논밭에 개구리가 일찍 땅에서 나왔다고 한다. 팀 스피릿 훈련에 동원된 탱크가 지나가니 놀라서 뛰어나온 것’이란 참신하고 문학적인 표현을 써내면 우수 점수를 맞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각 부서에 속해 충성 경쟁 식으로 과격하고 기발한 선전 표현을 내면 조직 내에서 승진하며 승승장구할 수 있다는 게 북한 출신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최신 단어장 만들어 연구

글쓰기 전문가들은 자기만의 ‘단어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다른 부서가 발표한 성명 중 좋은 표현은 메모해놓고 더 나은 비유나 은유를 고민한다. 약 2000명이 활동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작가동맹 문학 작품도 참조한다. 체제 선전의 도구로 활용되는 북한 문학 작품의 두 축이 있다. 끊임없이 김씨 일가를 찬양하거나, 미국과 남한이라는 ‘적'을 비하하거나. 시대가 변하면서 새로운 일상 언어와 표현도 개발해야 한다. 북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단어도 수집 대상이다. 대남 성명은 한국 신문과 방송을 통해 흔히 쓰는 표현을 수집해 넣는다. 최근 성명에 등장하는 ‘자해’ ‘자중지란’ ‘차원’이란 단어는 북한에서 쓰지 않는 남한식 표현이다. 정책 수위에 맞는 적절한 표현도 써야 한다. 북한은 지난 2018년 트럼프를 ‘골목깡패’ ‘미친개’로 비난하다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선 ‘미 집권자’라 표현하며 분위기 완화를 추구했다.

 

※도움말: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탈북 작가 림일,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조선일보 이기문 기자

 

04월 06일 北, 도쿄올림픽 불참 선언… “코로나 상황서 선수 보호”

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오는 7월 열리는 도쿄(東京)올림픽에 불참하겠다고 밝혔다. 도쿄올림픽을 남북관계 개선의 모멘텀으로 삼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하려던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좌초 위기를 맞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 체육성은 6일 자체 운영하는 ‘조선체육’ 홈페이지를 통해 “올림픽위원회 총회가 3월 25일 평양에서 진행됐다”며 “조선올림픽위원회는 총회에서 악성 바이러스 감염증에 의한 세계적인 보건 위기 상황으로부터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위원들의 제의에 따라 제32차 올림픽 경기대회에 참가하지 않기로 토의 결정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지난 3월 올림픽위원회 총회 관련 보도를 단신 처리하며 참가 여부는 공개하지 않았었다. 북한의 도쿄올림픽 참가를 통해 지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방한과 같은 극적 효과를 기대했던 문재인 정부의 대북 구상도 북한의 전격적인 불참 결정으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한이 방역 등의 이유로 올림픽 불참을 결정했지만,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동력 또한 상실됐다”고 말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도쿄올림픽이 남북 화해가 진전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지만 코로나19 여파로 그렇게 되지 못한 데 아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철순 기자 csjeong1101@munhwa.com

 

 

월간조선 04월 호

■악화된 평양의 배급 사정

김정은, 선물로 짝퉁시계 지급

⊙ 김정은이 선물하는 ‘명함시계’, 4만 달러짜리 진품에서 1급 짝퉁→중저가 짝퉁으로
⊙ 간부에게 지급하던 보양식 노루도 한 마리에서 반 마리로 줄어
⊙ 장마당 장사꾼에 대해서도 인민반장이 판매할 물건·매상고·재고 등 조사

/김정은이 ‘조국해방전쟁 승리 67주년’을 기념해 작년 7월 26일 주요 군 지휘관들에게 선물한 백두권총. ‘선물’은 김정은이 충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사진=뉴시스

 

경제제재가 아프기는 아픈 모양이다. 이제는 특권 계급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 평양 이야기다. 북한 최고위층 계급은 매일 배급을 받는다. 그래서 ‘일(日) 공급대상’이라고 한다. 매주 공급을 받는 주(週) 공급대상도 있다. 역시 어지간한 신분과 능력으로는 갈 수 없는 자리다. 중앙당 과장급 이상 간부들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다.
 
  문제는 이들에게 가는 배급 물량이 반 토막 이하로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하루 두 병 지급하던 맥주는 고귀한 신분의 상징이었다. 부부가 각 한 병씩 나누라는 것이 공급 배경이었는데, 경제제재 이후 한 병으로 줄었다가 최근에는 그마저 공급이 간헐적이라고 한다. 이전에는 특권층 간부와 배우자까지 챙겨줬지만, 이제는 간부 당사자만 겨우 챙겨주기에도 힘이 달리는 것이다. 소고기 등 기타 식료품도 공급 분량이 확 줄었다. 간부들 집에는 먹을 것이 있으니 사람이 모였다. 자녀나 친지가 찾아오면 아껴놓은 술이나 식료품을 들려 보내는 것이 북한식 예절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챙겨 보낼 여분의 식량이 없는 것이다. 예절이 무너지고 체면 유지가 곤란하다. 자식들 줄 것이 없어지니 못 주는 부모나 못 받는 자식 모두에게 불만이 고인다. 알음알음으로 ‘사정이 어려운가 보다’ ‘예삿일이 아니다’라는 소문이 퍼지는 건 순식간이다. 평양 최고위층의 최신 풍경이다.
 
  그래도 굶어 죽지는 않는다. 아직 쌀까지 끊긴 건 아니기 때문이다. 겨우 먹고살 수는 있다는 뜻이다. 북한의 최상위 특권 계층에게 배급이 절실한 이유가 있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생계를 해결할 수단이 전무(全無)하다. 당 중앙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뇌물받을 방법이 없고 명분도 없다. 직급은 높지만, 주민들의 실생활에 관련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소나 연구소 같은 단위를 받으면 아래로부터 ‘먹을 알’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중앙당은 아니다. 매일 출근해야 하니, 다른 기관처럼 뇌물을 고인 후 출근한 것으로 이름만 걸어놓고 장사를 나갈 수도 없다. 이들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것은 그래서 북한이 버티기 위한 마지노선이다. 마지노선이 아직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녹이 슬거나 헐거워진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북한이 특권층의 충성심을 유지 강화하는 비책이 있다. 상징 조작과 끼리끼리 문화의 결정판, 연회(宴會)와 선물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최근 들어 균열이 보인다. 김정은 명함시계는 북한 내 특권의 상징이다. 명함시계 차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위세 당당이다. 이 시계를 찬 사람이 지나가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고 눈치를 봐야 한다.
 


  장마당에 나온 명함시계

그런데 이 시계가 장마당에 나온다. 김정은 명함시계를 장마당에 내다 파는 것 자체가 반역적 행동이지만, 원칙대로 단속할 수도 없다. 물건이 짝퉁이기 때문이다. 단속을 해도, ‘위원장님이 짝퉁시계를 선물로 줬다’는 걸 공식화할 수는 없는 것이다. 김정은이 아예 중국에서 가짜 명품시계를 구입해 선물로 돌린다는 건 비밀도 아니다. 물론 시계에 새겨진 브랜드는 초일류다. 과거에는 ‘진품’을 줬다. 김일성의 어린 시절 동네 친구던 캐나다 교포 모 인사가 집에 돌아와 김일성에게서 받은 시계를 감정 의뢰했더니 ‘최하 3만~4만 달러’였다는 기록도 있다. 해외 경매 사이트에 나온 명함시계는 아예 스위스 본사의 보증서까지 함께 팔았다.
 
  하지만 김정은 선물 시계는 품질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 2~3년 전만 해도 짝퉁 중의 일급 시계를 지급했다면, 지금은 중저가 제품을 준다고 한다. 북한 사람 보기에도, 육안으로 조악한 품질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라는 것이다. 핵심층의 충성심 유지에 꼭 필요한 선물 구입에 쓸 현찰조차 모자라는 것이다.
 
  선물이 가짜다 보니 연쇄반응도 일어난다. 북한에서 명품시계를 수리할 수 있는 곳은 중앙당 시계수리소 단 한 곳이다. 독점(?)인데다, 일 더한다고 수입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니, 시계를 한번 맡기면 기다리는 기간만 최소 6개월이다. 그래도 명품 수리를 맡길 만한 곳은 그곳뿐이니 주인들은 이제나 저제나 수리 마쳤다는 연락을 기다렸다. 그런데 최근에는 기현상이 생겼다. 수리 마친 시계를 아예 찾아가지 않는 것이다. 짝퉁에는 재산 가치가 없다는 걸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명함시계뿐 아니라, 다른 선물도 공급 차질이다. 간부들의 보양강장(補養强壯)까지 챙겨주는 희한한 집단이 북한이다. 김씨 일가는 특권층에게 명절 때마다 노루 한 마리를 식용으로 내려 보냈다. 노루를 받았느냐 못 받았느냐가 특권층이냐 아니냐를 가늠하는 지표였다. 노루고기 육회는 특권층의 표지와 다름없는 요리였다. 노루뿐만 아니라 사슴, 타조, 자라 등도 챙겨줬다. 모두 중앙당 노루목장, 사슴목장, 타조목장, 자라목장에서 기른 ‘당의 사은품’이다. 목장에서 뛰쳐나온 사슴을 차로 치었다가 온 가족이 지방으로 추방당한 사례도 있다. 그만큼 보양강장용 동물은 당의 주요 자산으로 취급했다.
 
  그런데 지금은 노루를 한 간부당 반 마리도 주지 못한다. 전기 부족, 사료 부족, 폐사 등 악순환이 농장을 강타한 탓이다. 공급에 필요한 충분한 물량을 확보할 수 없는 것이다. 분기별로 1회씩 주던 양복지도 연 1회로 공급량이 줄었다고 한다.

 

공급 감소는 일반 평양시민들도 예외가 아니다. 평양시 중구역의 경우 지난 설 선물이 광목 손수건 한 장과 팬티 한 장이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가방도 주고 여성용 가슴띠도 줬다. 이번에 배추는 줬지만 육고기는 없었다. 과거에는 아무리 어려워도, 육고기를 못 주면 꽝꽝 얼린 생선 몇 마리라도 나눠주곤 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각 기업소별로 돼지를 길러 직원끼리 나누는 풍습이 생겼다. 공장은 멈췄지만 먹을 것이라도 알아서 챙기자는 뜻이다.
 
  경제제재로 인한 식량 부족이 불러온 평양의 새로운 풍속도 있다. 그중 하나가 주민 조사다. 과거에는 시범 케이스로 가끔 실시하던 주민 조사를 지금은 연중행사로 한다. 조사 뒤 이어지는 조치가 소개사업(疏開事業)이다. 식량이 절대 부족하니 비(非)시민, 부정수급자를 철저히 가려내 시계(市界) 밖으로 추방하는 것이다. 사소한 범법이나 규칙위반도 대상자를 추방할 수 있는 좋은 구실이다. 추방 인원은 식량 재고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진다. 평양 출신들이 지방 추방 후 탈북하거나 한국으로 갈까 봐, 그들을 멀리 북중 접경지대로 보내지 못하는 것은 북한 당국의 딜레마 가운데 하나다. 평양 주변 지역에서 불만 세력이 극소수지만 생겨나는 배경이다.
 
  남아 있는 주민이라고 삶이 편한 것은 아니다. 평양시민도 장마당에 나가 장사할 수는 있다. 하지만 글로벌 기준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장사를 나가기 전, 인민반장이 매일 찾아와 ‘오늘 판매할 물품’을 검사한다. 그리고 품목과 수량, 가격 등을 꼼꼼하게 기록한다.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면, 매일 저녁 얼마나 팔았는지 손에 쥔 현금과 매상고를 확인하고 남아 있는 재고 수량을 대조한다. 자릿세와 세금을 부과하기 위한 사전 조치다. 그렇다고 장마당에서 아는 사람과 짜고 작전을 펼칠 수도 없다. 보위부원과 끄나풀들이 상주하며 관리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생계와 생존 때문에 허용은 하지만, 북한 당국이 장마당을 비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반역의 온상으로 본다는 증거다.


  “지금이 ‘고난의 행군’"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더라도 ‘마지막 한 방’ 때문에 안심할 수 없다. 무상몰수(無償沒收)다. 돈 가지고 있는 것 자체를 범죄시하는 것이 북한의 풍조다. 돈 많은 사람이 애써 모은 현찰을 하루아침에 무상몰수를 당해도 어디다 하소연할 데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정상적 경제발전은 불가능하다. 탈출구는 없다. 경제제재는 오늘도 북한의 숨통을 은근하게, 하지만 끈질기게 조이고 있다. 짝퉁 명함시계는 그래서 김정은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상징물이다. 안 주자니 체면이 깎이고 주자니 돈이 들고 받아도 고맙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면, 조만간 ‘제2의 고난의 행군’이 올 수 있을까요?”
 
  “아뇨 못 옵니다. 지금이 ‘고난의 행군’이니까요. 1990년대에 시작된 ‘고난의 행군’은 해결된 적 없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2의 고난의 행군이란 말은 그래서 정확하지 않습니다.”
 
  필자의 우문(愚問)에 대한 전 평양시민의 현답(賢答)이다.⊙

글 : 장원재  장원재TV 대표 

 

04.23 보기엔 멀쩡하나 위태로운 북한, 세 개의 도미노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지난 7~8일 북한 노동당 제6차 세포비서대회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연설에 전문가들은 매우 놀랐다. 집권 후 첫 공식 연설에서 “다시는 1990년대의 고난의 행군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그가 이번엔 "고난의 행군을 결심했다”고 밝혀서다. 그는 현 상황을 ‘극난한 형편’이라고 표현하면서 ‘이념적 결속’의 강화를 촉구했다. 연설 내용과 어조로 미루어볼 때 북한 수뇌부는 식량부족 등의 경제 문제와 코로나19, 북한의 이념적 결속 이완을 우려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식량난·코로나에 이념적 이완 겹쳐
중국 도울지 회의적…상황 주시해야

이들 세 가지 문제와 관련해 두 가지 질문을 하게 된다. 첫째 북한의 상황은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 둘째 북한의 상황은 얼마나 심하게, 또 얼마나 빨리 악화될 것인가.
 
지난 14일 러시아 대사의 타스 통신 인터뷰에 따르면, 현재 북한은 1990년대 말 상황만큼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가 있다. 러시아 대사관에 따르면 북한에서 의약품을 거의 구할 수 없고 비료공장단지는 운영 중단 상태인 듯하다. 공식·비공식 무역은 크게 줄었고 해외 북한 노동자들의 송금액도 급격히 감소했다. 북한에 비료가 없다면 올해 수확량은 심각하게 저조할 것이고, 이는 기근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북한은 코로나19 확산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러시아 대사의 발언에 따르면 보도(步道)까지 살균한다. 현재로선 북한의 철두철미한 고립 전략이 코로나 확산을 방지한 듯하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유입될 경우 특히나 변이 바이러스라면 북한의 빈약한 의료체계론 거의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확산할 수 있다. 북한의 백신 확보도 순조롭지 않다.
 
세포비서대회에서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북한 당국이 이념적 결속 이완을 우려한다는 점이다. 처음이다. 어떤 정부라도 당원들의 충성심 약화는 염려할만한 문제지만, 북한은 이념으로 똘똘 뭉쳐 있는 만큼 이념 체계에 금이 가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북한 외부에서는 그 정도를 가늠할 수 없지만, 김 위원장이 직접 이 문제를 언급했다는 사실이 상황의 심각성을 암시한다.
 
북한의 경제, 코로나19 상황, 이념적 결속 문제는 상호 의존적이다. 예를 들어 바이러스 확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경제적 안정과 충성스럽고 정직한 간부들이 필요하다. 경제가 붕괴하면 1990년대처럼 식량을 구하려는 인민들의 이동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고 백신 프로그램을 관리할 수도 없게 되며 이념적 결속이 약해진 간부들은 자기 가족을 위해 백신을 훔치거나 팔 수도 있다. 부패는 이미 북한에서 큰 문제이고 이념적 결속 붕괴는 상황만 악화시킬 것이다.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순식간에 북한 정권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한 가지 문제가 터지면 다른 두 문제도 도미노처럼 불거질 수 있다. 밖에서 보기엔 멀쩡하나 안으론 위태로운 북한의 현 상황이 갑자기, 어쩌면 단 몇 주 안에 악화할 가능성을 인지해야 한다. 물론 북한이 과거에 그랬듯이 위기를 견뎌낼 수도 있겠지만, 재앙 앞에
비틀거릴 수도 있다. 재앙은 예고 없이 닥치기 마련이다.
 
북한이 위기에 처하면 중국이 언제든 도와줄 것이란 믿는 이들이 있지만 회의적이다. 류샤오밍(劉曉明)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임명된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류 대표는 북한 문제를 오로지 중국의 이익이란 프리즘으로만 보는 냉혹한 강경파다. 그는 북한에 우호적이지 않다. 중국은 북한이 중국에 합당한 태도를 취할 때만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북한에 고지했다. 더 이상 순망치한(脣亡齒寒)이 아닌 거래 외교(transactional diplomacy) 관계다.
 
필자는 전에도 북한의 갑작스러운 변화 위험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해왔다. 위험은 점점 커지고 있다. 김 위원장이 현 상황을 솔직하게 인정한 만큼 우리 모두 북한의 상황을 주시해야 한다.     
중앙일보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05월 14일 ‘北 기독교인 5萬 수감’ 美 보고서…文 계속 외면할 건가

미국 국무부가 12일 발간한 ‘2020 국제종교자유 보고서’에는 북한의 종교 탄압과 관련된 새로운 사실이 포함됐다. 북한이 최악의 종교 탄압국이라는 것은 이미 명백한 사실이지만, 이번 보고서는 북한의 악랄한 반(反)인권 실태를 더욱 적나라하게 폭로한 것이다. 비정부기구 발표를 인용하는 형식이긴 하지만 보고서에는 ‘북한에서 기독교인 5만∼7만 명이 수감된 것으로 추산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수백 명이 처형되거나 실종되는 등 종교 자유의 침해 사례 1411건이 보고됐다고도 했다. 한국은 물론 전세계의 종교인들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다.


한·미 정상회담을 일주일여 앞둔 시점이라는 사실도 의미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권 변호사임을 내세우고, 가톨릭 신도이기도 하지만,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에는 퇴행적 인식을 보여왔다. 미국 조야에서는 이런 문 대통령에 대한 우회적 경고가 수없이 나왔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도 13일 고별사에서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의 필수요소이자 동맹의 버팀목”이라고 했다. 의회 톰랜토스인권위원회는 지난 4월 대북전단금지법 청문회를 개최하며 문 정부를 비판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대북 전단을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국정의 중심에 놓으면서 인권 중시 외교를 펴고 있다. 문 대통령은 동맹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방미에 앞서 북한 인권 시각부터 시정하기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

 

05.15 김정은 비자금 위해 性을 파는 北 여인들

유엔 회원국은 안보리 결의(2375호· 2397호)에 따라 2019년 12월까지 모든 북한 노동자를 북한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하지만 러시아, 중국, 베트남 등에는 아직 북한 노동자들이 남아 있다.
 
  중국 소식통 A씨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 남아 있는 해외파견 북한 근로자들은 당국에 바치는 상납금을 벌기 위해 성매매와 중국인이 운영하는 식당 등에서 노래를 불러주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A씨의 말이다.
 

“현재 중국에 남아 있는 북한 근로자들이 성매매 등 불법적인 일을 하고 있다. 이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로 인해 이들을 받아주는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을 책임지고 있는 지배인들이 상납금을 보내기 위해 여성 노동자 중 미모의 여성들을 강제적으로 성매매 시장으로 밀어넣는 일도 발생한다고 했다.
 
  또 백두산 등반을 하는 남성들에게 북한 여성 근로자들을 붙여 관광안내 등의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도록 한다.
 
  “지인이 얼마 전 백두산 관광을 갔는데 북한 여성들과 함께 올라갔다고 자랑을 했다. 같이 찍은 사진도 보여주면서 돈만 주면 이들과 하룻밤도 함께 보낼 수 있다고 하더라.”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폐쇄된 중국 내 북한 식당 종업원 중에는 중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공연을 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식당에서 일하던 종업원들은 중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을 돌며 공연을 하고 있다. 한두 명씩 방에 들어가서 공연을 하고 나오는 방식으로 일한다.”
 
  코로나19를 핑계로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는 해외파견 북한 근로자들이 중국에서 성매매 등 불법으로 외화벌이를 계속해서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네팔, 베트남 등지에는 현재도 IT 전문가 1000여명이 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개인당 한 달에 평균 5000달러 정도를 벌고, 이 가운데 약 3분의 1은 북한 당국에 송금하는 것으로 관측됐다. 이들이 송금한 외화의 대부분은 김정은 주머니 속으로 직행한다.⊙      

글 : 정광성  월간조선 기자  월간조선 05월 호

 

 

월간조선 05월 호

김일성 사저 호위병 출신의 증언

김정일도 김일성 사저 들어올 땐 초소에서 검문

⊙ 김평일이 김정일보다 김일성 사저를 더 자주 드나들었다
⊙ 설날이면 전 부대원이 김일성 대문 앞에서 세배
⊙ 김일성 사저 근처에 로열패밀리를 위한 모든 시설 있어…
⊙ “김정일과 김평일 1차선 도로에서 기 싸움… 김정일이 먼저 물러나”
⊙ “함께 복무하던 사람 포도 한 송이 때문에 가족의 모든 직위 박탈”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이 있는 북한의 금수산태양궁전이다. 사진=조선중앙통신 캡처

  

김일성 사망 26년째. 그동안 여러 탈북자를 통해 김일성 관련 일화가 공개됐다. 하지만 김일성 사저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의 증언은 좀처럼 접하기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일성 인근에서 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2004년 탈북한 김순일(가명)씨는 젊은 시절 963군부 직속 1대대에서 군 복무를 했다. 김씨가 복무한 1대대는 평양 금수산 지구의 김일성 관저와 그 딸인 김경진의 사저를 지키는 경비대대다. 한마디로 김일성의 호위부대다. 당시 963부대 1대대장은 이감용이었다.

 

김씨의 부대는 김일성 사저인 51호와 김경진 사저인 53호, 김경진의 자녀들이 공부하는 54호, 흥부초대소, 주암산초대소, 합장강 낚시터가 주된 근무지였다. 김씨는 “1개 대대는 7개 중대, 1개 중대는 4개 소대, 1개 소대는 4개 분대로 구성된다”고 했다. 이들은 3개월은 보초를 서고 3개월은 훈련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입대 첫날 김일성이 근처에 있다고 하니 잠도 못 자”

/지난 1월 14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는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 기념 열병식이 열렸다. 사진=뉴시스

 

김씨는 고등중학교 4학년 때 ‘중앙당 5과’ 대상에 발탁됐다. 북한의 5과는 특수기관에서 활동할 인원을 선발하는 조직이다. 5과에 선발된 이들에게 주어지는 직업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젊은 청년 중 일부는 호위사령부 내부에서 김씨 일가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위하는 ‘친위대’에 보낸다. 남한이나 다른 나라에 파견하여 간첩활동을 하는 대상도 5과에서 선발한다.
 
  특권을 누리다 저세상으로 갈 인물들의 뒷시중을 평생 드는 이들도 5과에서 선발한다. 중앙당 비서급 고위 간부들의 안마사나 개인 비서, 식모, 담당 간호사다. 김씨 일가의 초대소나 별장에서 근무하는 인원도 모두 5과에서 선발했다.
 
  1990년대 이전까지 북한은 5과에서 뽑혀온 사람들을 외부 세계와 철저히 단절시켰다. 내부 비밀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실수로 내부 비밀을 발설한 사람은 조용히 ‘제거’를 했다. 그 가족에겐 전사자로 통보하고 훈장과 선물을 줬다.
 
  과거엔 5과 대상에 선발되면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했다. 북한 최고의 존엄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영광을 받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들어 5과의 진실이 드러나고, 5과에 뽑혀 올라간 여성들의 비참한 사연 등이 알려지며 딸 가진 부모들은 5과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김순일씨의 누나도 5과 대상으로 뽑혀, 평양 백화원초대소에서 일했다. 백화원초대소는 남한에도 이름이 알려져 있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방북 당시 백화원초대소에 머물렀다.
 
  김씨는 18세던 1986년 4월 군에 입대했다. 그는 당시 부대에서의 첫날을 이렇게 회고했다.
 
  “18세 어린 나이에 군에 입대하니 모든 것이 새로웠다. 그것도 김일성이 사는 근처에서 군 복무를 하게 됐다는 게 무한한 영광이었다. 얼마나 떨리든지 입대해서 첫날 밤은 잠을 잘 수 없었다.”
 
  ― 북한에서 5과로 선택되기가 어렵다던데.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나는 누나가 먼저 5과로 선택됐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간 편입니다.”
 
  북한 당국은 5과 선발과정에서 인물, 신체, 나이는 물론, 가족에 대한 신원조회도 철저히 한다. 만약 가족 중에 한 명이라도 김씨 가문의 뜻에 어긋난 선택을 한 경우는 5과 대상에서 제외된다.
 
 “저 김정일입니다”
 
  김씨는 입대 후 2년간은 주로 김일성 사저 주변 경계 근무를 섰다.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병들은 51호 주변의 경계 근무를 선다고 한다. 김씨의 말이다.
 
  “호위사령부에 입대하면 신병들은 51호나 53호, 54호 주변이나 울타리 경계를 섭니다. 물론 초대소 경비를 설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저를 보호합니다. 계급이 올라가면 51호 정문 보초를 시작으로 조금씩 사저에 가까워집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보통 주변 경계 임무는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바른 자세로 서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51호 정문 보초를 서면 힘들긴 하지만 오가는 사람들을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가끔 김정일이나 김평일 등 김씨 일가들을 볼 수도 있고요.”
 
  당시 김정일은 51호에 자주 오지 않았지만, 김정일의 이복동생인 김평일은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김정일은 항상 216 벤츠를 타고 왔어요. 51호는 김일성과 김성애 외 방문하는 모든 차량을 검문검색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김정일도 예외는 아닙니다. 하루는 김정일이 216 벤츠를 타고 오는데 정문 보초병이 차를 세웠어요. 그러자 김정일이 창문을 열고 ‘저 김정일입니다’라고 했지요. 김정일은 아버지 집을 방문할 때마다 항상 긴장한 모습이었어요. 반면 김평일은 제집 드나들 듯 51호를 자주 오갔습니다.”
 
  북한의 216 벤츠는 당시 고위 간부라도 아무나 탈 수 없는 자가용 차였다. 216 벤츠는 김일성이 선물하는 차다. 당시엔 김일성과 항일투쟁을 함께한 전우들과 김정일 정도만 탈 수 있는 차였다. 216은 김정일의 생일인 2월 16일을 상징한다.


  김정일과 김평일의 기 싸움

/김일성이 생전 김정일과 함께 서해갑문 건설 현장을 지도하는 모습. 사진=조선중앙통신 캡처

 

 남한에도 알려졌듯 김정일과 김평일은 한때 김일성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였다. 김일성이 장자인 김정일을 후계자로 지명하며 김평일은 권력구도에서 밀려났다. 그렇다 보니 둘 사이는 좋지 않았다고 다수의 고위 탈북자들이 말했다.
 
  ― 김정일과 김평일에 관련된 일화가 있다면.
  “둘 사이는 아시는 것처럼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결정되고 김평일은 곁가지로 분리된 상황이지만 그래도 김성애가 살아 있다 보니 힘이 있었지요.”
 
  김씨는 말을 이어나갔다.
 
  “한번은 김정일이 51호를 방문하기 위해 들어가는 길이었고, 김평일은 사저에서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51호로 들어가는 길은 시멘트로 포장된 1차선 도로여서 오가다 만나게 되면 누구 하나는 길을 비켜줘야 합니다. 그런데 김정일과 김평일이 중간에서 마주치게 되어 둘이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비켜주지 않으려고 한 것이지요.” 


  상황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원래는 김평일이 길을 비켜줘야 하는 상황이지만 당시 김평일은 피하지 않았어요. 이런 상황이 3~4분간 벌어졌고, 결국 김정일이 차를 잔디밭으로 틀어 김평일의 차를 피했죠. 당시에는 김정일이 운전을 잘해서 먼저 피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김정일이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 먼저 자리를 피한 것 같아요.”
 
  한 고위 탈북자도 이에 대해 “김정일이 후계자로 결정되긴 했지만 완전하지가 않았다. 아버지 김일성이 살아 있고, 김성애와 김평일을 지지하는 세력들도 남아 있는 상황에서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 먼저 핸들을 돌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도 한 송이 때문에 생활제대… 가족이 몰락

김씨보다 2년 늦게 입대한 후배 A씨가 있었다. A씨는 양강도 출신에 엘리트 집안의 자녀였다. 그의 아버지는 양강도 보위부장이었다. A씨는 입대 후 부대 인근에 있는 김일성의 시험농장에서 경계 근무를 섰다. 그곳은 김일성을 위해 전국에서 올린 농산물 종자들을 심어 가꾸는 일종의 시험농장이었다. 이름은 원리마사업소.
 
  A씨는 가을 어느 날 원리마사업소 포도밭 인근에서 근무를 서게 됐다. 포도나무에 달린 포도가 너무 탐스러워 몰래 한 알을 따서 먹었다. 포도맛을 본 A씨는 그날 이후로 사람들의 눈을 피해 포도를 몰래 따 먹기 시작했다.
 
  김씨의 설명이다.
 
  “그곳의 과일이나 채소들은 보통 시중에서 판매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시험농장이라곤 하지만 최고의 토양과 좋은 비료를 쓰며 최상으로 관리하다 보니 열매가 좋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A가 한 알씩 따 먹다 보니 거의 한 송이를 다 먹은 거예요. 과일 나무에 열매가 열리게 되면 땅에 떨어지지 말라고 밑에 바구니 같은 것을 놓아둡니다. 그런데 수확하려고 보니 바구니는 있는데 포도가 없으니 비상이 걸렸지요.” 


  대대에서 간부들이 내려와 근무자들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결국 A씨는 자신이 한 일을 실토했다.
 
  “포도 한 송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A씨는 곧바로 군사재판에 넘겨졌어요. 다행히 생활제대로 마무리됐지만, 양강도에서 보위부장을 하던 그의 아버지는 직위를 박탈당했습니다.”
 
  ‘생활제대’는 북한군 내에서 쓰는 용어다. 군 복무 중 규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군 복무 중간에 집으로 보내는 것이다. 이는 북한에선 불명예나 마찬가지다. 심지어 A씨처럼 김일성의 친위부대인 호위사령부에서 생활제대를 당할 경우 앞으로 당 간부뿐만 아니라 대학에도 갈 수 없다.
 
  김순일씨는 5년간 군 복무 하는 동안 김일성 사저를 한 번밖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것도 김일성 전용 수영장에 날아든 파리를 잡기 위해서였다. 그의 말이다.
 
  “하루는 근무를 마치고 부대에 복귀했는데 김일성의 부관이 찾아와 저와 몇 명을 불러 함께 가자는 겁니다. 그를 따라간 곳은 51호에 있는 실내수영장이었어요. 부관은 우리에게 파리 한 마리가 있다며 잡으라고 지시했죠. 수영장은 그야말로 웅장했어요. 그 안에서 파리 한 마리를 찾아 3시간을 보냈습니다.”
 
  ― 파리는 잡았나요.
  “결국 잡긴 했지만 3시간 동안 거의 전투였습니다. 파리 한 마리 잡겠다고 온 수영장을 이 잡듯이 다녔어요. 지금 생각하면 당시 우리는 노예였습니다.”
 
  ― 김일성 전용 수영장은 어떻게 생겼나요.
  “일단 수영장 너비가 10m이고, 길이는 40m 정도 됩니다. 수영장 옆에 방이 하나 있어요. 그곳에는 김일성의 부관과 의사, 간호사가 앉을 수 있는 책상과 침대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수영장에서 면봉을 처음 봤어요. 어린 마음에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는 틈을 이용해 하나를 챙겼습니다.”
 
  ― 면봉은 왜 챙겼나요.
  “당시에는 그게 엄청난 물건으로 느껴졌습니다. 생각해봐요. 북한 최고의 존엄이 쓰는 물건을 아무나 가질 수 없으니 그런 것을 하나 정도 가지고 있으면 큰 영광이라고 생각했지요.”
 
  김씨는 당시 수영장에서 챙긴 면봉을 보이지 않는 책 사이에 숨겨놓고 틈틈이 보면서 자긍심을 얻었다고 한다.
 
  ― 김일성을 실제로 본 적이 있나요.
  “앞에선 보지 못했습니다. 밤 10시경 근무를 서고 있는데 뒤에서 말소리가 들렸어요. 처음엔 거리가 멀어 누군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말소리가 점점 가까이 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김일성과 김성애가 산책을 나온 듯했어요. 그들을 보고 싶었지만 우리는 근무 서는 중에는 말소리가 나도 움직이면 안 돼요. 그냥 등 뒤로 지나가는 소리만 들었습니다. 그날 얼마나 설레던지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수령님, 새해에도 만수무강하십시오”
 
  북한도 설이면 아이들이나 아랫사람들이 집안 어른들을 찾아 세배를 한다. 특히 평양은 설날 아침이면 가장 먼저 꽃다발을 들고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찾아가 참배해야 된다. 북한에선 이들이 가장 큰 어른이라는 뜻이다.
 
  북한 군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은 군부대 안에 있는 김일성 동상이나 사진에 참배를 해야만 한다. 김씨는 군 시절 조금 특별한 설 인사를 했다고 한다. 김씨의 말이다.
 
  “설이면 누구나 세배를 하게 됩니다. 우리 부대는 김일성을 호위하는 부대이다 보니 당연히 김일성에게 세배를 합니다. 설날 아침이면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진풍경이 펼쳐지지요. 아침 일찍 몸단장을 하고 1개 대대가 김일성 사저를 향해 갑니다. 우리 부대에서 51호까지 1km 정도 됩니다.”
 
  ― 대대가 아침 일찍 김일성에게 세배하러 가는 건가요.
  “네, 세배하러 가는 건 맞는데 김일성에게 직접 하는 것은 아닙니다.”
 
  ― 그럼 누구에게 대신 하나요.
  “그런 셈이죠. 우리 대대는 구보로 김일성 사저 대문 앞까지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정리·정돈을 한 뒤 큰 소리로 김일성 사저 대문을 향해 ‘수령님, 새해에도 만수무강하십시오’라고 큰 소리로 세배를 합니다.”
 
  ― 김일성이나 다른 사람이 나와 보지 않나요.
  “네, 아무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 대문을 향해 넙죽 큰절을 드리고 다시 부대로 복귀합니다.” 


  
아버지의 죽음… 제대 후 중국으로 탈출

김씨의 아버지는 그가 입대한 지 5년이 지난 1990년 1월에 세상을 떠났다. 김씨는 홀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군을 나와야 했다. 당시 북한 호위사령부에서는 젊은 인재를 키운다는 이유로 모범적인 군인들을 선발해 원하는 대학에 입학시켜주는 제도가 있었다. 이들은 5년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 교육을 받으면 졸업 후 좋은 직업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이 제도가 변질하여 당 간부 자녀나 뒷배가 있는 군인들이 선발되어 대학으로 보내졌다. 김씨는 백화원초대소에서 일하는 누나의 도움으로 입대 후 5년이 지난 뒤 군을 나오게 됐다. 김씨의 말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나는 어쩔 수 없이 제대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누나가 호위사령부에 친분이 있는 사람을 통해 나를 대학교에 보낸다는 이유로 제대시켰어요. 대학교에 갈 수도 있었지만, 집안 형편이 좋지 못해 포기했습니다.”
 
  김씨는 이후 돈을 벌기 위해 중국을 오가며 밀무역을 했다. 그러다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북송 위기에 놓였다. 북한은 주민이 탈북하면 강도 높은 처벌을 하지만, 김씨같이 호위사령부나 이와 비슷한 기관에서 일하던 사람이 적발되면 심할 경우 공개처형까지 시킨다.
 
  이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김씨 본인이었다.
 
  “북송되면 어떻게 되는지 뻔히 알고 있는데 순순히 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동 중에 탈출했는데 당시 보위성이 나를 잡겠다고 혈안이 되었어요. 북한으로 다시 들어가 자수해서 누나의 도움으로 처벌은 받지 않았습니다.”
 
  김씨는 북한에서 얼마간 머무르다 다시 탈북했다. 그는 현재 남한 생활 16년째다.⊙

글 : 정광성  월간조선 기자

 

 

월간조선 04월 호

■북한의 ‘비상방역법’

코로나19로부터 평양을 사수하라

⊙ “비상방역 질서 어긴 자 戰時와 같이 엄격한 법적제재 가할 것”
⊙ “방역지휘부 내각총리 책임자… 軍, 국가보위성, 사회안전성으로 구성”
⊙ 北, 평양 중심으로 전염병 환자와 의진자 격리시설 신설
⊙ 방역법, 전염병 의진자 발생하면 주변 마을까지 완전 봉쇄
⊙ 8가지 격리 지침서까지 만들어… 외부 접촉 완전차단
⊙ “사회 안전기관 비상방역기간 평양시 출입 완전통제”
⊙ “비상방역 중 마스크 착용 필수, 악수 금지, 집단 술판 금지”
⊙ “마스크 미착용 벌금 5000원(북한 화폐)… 전염병 전파할 경우 10년 노동교화형

/김정은이 2021년 2월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2차 전원회의 도중 오른손 검지로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다. 특정 간부를 질책하는 장면으로 추정된다. 사진=조선중앙통신 캡처

 

  북한은 오는 7월 개막 예정인 도쿄올림픽 불참을 선언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부터 선수들을 보호하겠다는 이유에서다.
 
  그동안 북한은 코로나19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2020년 중순부터 코로나19에 대한 비상방역을 선포했다. 이후 주민들을 단속하고 국경을 봉쇄했다. 여기에 지난해 8월에는 비상방역법을 새로 만들어 주민과 외국인을 통제했다.


  《월간조선》은 지난해 8월 22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채택된 비상방역법령 자료를 단독 입수했다. 해당 자료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비상방역법’이라는 제목으로 5개 장의 70개 조항이 담겨 있다.
 
  자료는 이렇게 시작한다. “주체 109(2020)년 8월 22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제369호로 채택된 이 법의 기본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체는 북한에서 김일성이 태어난 해를 ‘주체 1년’으로 정하여 산정하는 북한식 연호(年號)다.


  北, 전염병 방역 ‘戰時’ 단계로 명시한 것 이례적

그동안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장티푸스 등 여러 전염병이 북한을 강타했지만 지금같이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이례적이다. 특히 비상방역법까지 만들어 전시(戰時) 상황에 따르는 엄격한 통제와 처벌을 한 적은 없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북한이 내부적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될 경우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초동 대응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에서 전직 의사였던 탈북인 A씨는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아 알려지지 않았지만, 장티푸스나 메르스 당시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다. 그렇지만 북한 당국은 이에 대한 대책 마련도 없었다”고 말했다.
 
  북한은 비상방역 등급을 세 단계로 나눴다. 1급, 특급, 초특급 악성전염병 순이다. 다음은 세 단계 등급의 내용이다.
 
  〈1급: 우리나라에 들어올 가능성이 있어 국경통행과 동식물, 물자의 반입을 제한하거나 우리나라에서 악성전염병이 발생하여 발생지역에 대한 인원, 동식물, 물자 유동을 제한하면서 방역사업을 진행하여야 할 경우.
 
  특급: 우리나라에 들어올 수 있는 위험이 조성되어 국경을 봉쇄하거나 우리나라에서 악성전염병이 발생해 국내의 해당 지역을 봉쇄하고 방역사업을 진행해야 할 경우.
 
  초특급: 주변 나라나 지역에서 발생한 악성전염병이 우리나라에 치명적이며 파괴적인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이 조성되어 국경과 지상,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을 봉쇄하고 집체모임과 학업 등을 중지하거나 우리나라에서 악성전염병이 발생해 국내의 해당 지역과 인접 지역을 완전봉쇄하고 전국적인 범위에서 보다 강도 높은 방역사업을 진행해야 할 경우.〉
 
  그러면서 비상방역기간에 범죄 및 위법행위를 저지른 이에 대해선 “전시와 같이 무겁게 보고 엄격한 행정적, 법적제재를 가하도록 한다”고 했다.  


  北, 軍·경찰·정보기관 동원해 주민 완전통제… 격리시설 건설 지시

/지난해 8월 13일 북한 평양에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마스크를 쓴 한 여성이 평양역에 입장하기 전 체온 검사를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비상방역지휘부는 내각총리를 책임자로 하는 인민무력성,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중앙급의 국가보위성(보위성), 검찰, 사회안전성(안전성), 군수, 특수단위와 국가계획기관으로 구성한다고 자료는 밝혔다.
 
  북한 당국은 총참모부와 보위성, 안전성에 모든 권한을 부여했다. 이 기관들은 비상방역 등급에 따라 국경과 지상,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을 봉쇄하거나 인원·물자·동식물의 유동을 제한 또는 차단하며 격리장소에 대한 경비를 담당한다.
 
  또 이 기관들에는 도·시·군 비상방역지휘부, 해당 부분 비상방역지휘부의 사업을 통일적으로 장악 지휘하는 권한까지 부여했다. 이 밖에도 해외에서 들어오는 물자에 대한 승인과 필요에 따라 행사와 회의를 비롯한 집단 모임과 공연, 영업 등을 제한·금지 시킬 수 있다.
 
  특히 국제기구나 해외에서 비상방역사업을 위해 제공하는 자금과 물자를 일괄적으로 이 기관들이 장악하고 공급한다.
 
  2016년에 탈북한 한 고위 탈북민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총리가 책임자로 되어 있지만, 군과 보위성, 안전성이 주도적으로 주민들을 통제한다. 이 기관원들을 앞세워 나라 전체를 봉쇄하고 통제하겠다는 의도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는 과거와 달리 격리시설까지 건설해 감염자들을 격리시킬 것을 지시했다. 해당 내용이다.
 
  〈중앙보건지도기관, 지방인민위원회, 해당 기관은 전염병환자와 의진자, 접촉자를 따로 갈라 격리시킬 수 있는 격리시설을 방역학적, 봉쇄적 요구에 맞게 꾸려야 한다.〉
 
  과거 북한은 여러 전염병이 창궐하는 속에서도 감염자들을 따로 격리하진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처럼 번지자 북한은 격리시설까지 신설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현재 북한에선 중국과의 국경을 봉쇄하고 모든 교류를 중단한 상태다. 이로 인해 북한 시장의 물가는 치솟고 주민들의 원성도 높다. 북한은 북·중 국경에 특수부대를 배치해 밀무역을 하는 군인·민간인 할 것 없이 그 자리에서 처형하기도 한다.
 
  한 대북(對北) 소식통은 “비상방역법이 발표되고 나서 국경지역 주민들에 대한 감시가 더욱 심해졌다”며 “작년 10월엔 혜산에서 밀무역하던 군인을 그 자리에서 처형하기도 한 사건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감염자 발생할 경우 마을 폐쇄

/2020년 12월 16일 북한 평양의 평양정보기술국에서 관계자들이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시설을 소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방역지침서는 ‘전염병 의심자와 감염자가 발생할 경우 해당 마을을 폐쇄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왜 격리시설까지 만들어놓고 마을까지 폐쇄하는지에 대해 의문점이 생긴다. 이에 대해 2020년 8월 이후 탈북한 B씨의 말을 들어보자.
 
  “실제로 (지방) 보위부와 안전부는 의심자가 발생한 마을을 완전 봉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다 보니 몰래 드나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곳 사람들은 다 죽을 수 있다. 물론 평양에선 방역 수칙을 잘 지키고 있지만, 지방은 아니다.”
 
  북한은 코로나19가 확산되자 평양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다.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평양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도로와 철도 등 모든 운송 수단에 대한 철저한 검열을 시행하고 있다”면서 “수시로 숙박검열을 통해 지방 사람들을 색출하는 작업을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비상방역법에도 수도의 안전을 보장하라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내용을 살펴보자.
 
  〈사회안전기관과 지방인민위원회를 비롯한 해당 기관은 비상방역기간 평양시 출입을 극력 제한하며 수도경비사업과 집중단속을 강화하여 평양시에 비법 출입하거나 전염병이 발생한 나라와 지역의 물품을 가지고 들어오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해외에 체류 중인 북한 주민들에 대해서도 철저한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 현재 해외에 외화벌이 등으로 나와 있는 이들에겐 당국으로부터 북한 출입을 금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또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해당 국가에서도 활동을 자제하라는 통보를 받은 상태다.
 
  A씨는 “이는 과거에도 비슷했다. 전염병이 생기면 일단 평양부터 봉쇄한다. 지방 사람들을 평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철저히 차단했다”며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북한 당국은 평양 주민만으로도 북한을 운영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노동당 기관지 등 선전 매체들을 통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철저한 관리를 하는 것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이는 평양에서만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염 사망자 시신 무더기로 쌓아놓고 불 질러버려”
 
  자료에는 비상방역기간에 주민과 북한 내 외국인이 지켜야 할 의무조항을 16가지나 만들어놓았다. 해당 조항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적지 물을 비롯한 수상한 물품과 죽은 동물, 바다오물을 발견한 경우 접근하지 말 것. 마스크를 항상 착용하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여야 한다. 손 소독을 자주 하며 악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 평양시에 검사, 검역을 받지 않은 물품을 가지고 들어오거나 비법 출입하지 말아야 한다. 국경과 바다에 비법 출입하거나 밀수밀매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전염병으로 사망한 사람의 시체를 정해진 대로 처리해야 한다. 상품가격을 올리거나 무더기로 사들이지 말며 가짜약품, 의료용 소모품을 만들어 파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집단적으로 모여 술판, 먹자판을 벌여놓거나 공공장소에서 유희, 오락 등을 하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전염병 사망자에 대한 시신 처리다. 2020년 8월경에 탈북한 B씨의 증언은 충격적이었다. B씨의 말이다.
 
  “북한은 코로나19 확진자가 없다고 하지만 실제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다. 이 병이 코로나19인지도 모르고 걸려 죽은 사람이 태반이다. 그런데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들의 시신을 중앙당에서 내려왔다는 사람들이 구덩이를 파고 그곳에 넣고 불을 질러버렸다.”
 
  B씨의 말대로라면 북한이 전염병으로 사망한 사람의 시체를 집단 화장하고 묘비도 없이 구덩이에 묻어버린다는 것이다. 즉 자료에 나오는 ‘정해진 대로 처리하여야 한다’는 사망자들의 시신을 집단 화장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해당 자료를 읽다 보니 2020년 9월 서해상에서 실종됐던 어업지도원 A씨가 북한군의 총격에 의해 살해된 사건이 떠올랐다. 당시 우리 군은 “군은 다양한 첩보를 정밀 분석한 결과 북한이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우리 국민에 대해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북한 선박은 A씨를 즉시 구조하지 않고 바다에 그대로 둔 상태로 표류 경위 등을 물은 정황이 파악됐다. 이후 보고를 받은 북한군 단속정이 현장으로 가서 A씨를 향해 총격을 가했고, 숨진 A씨의 시신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다. 당시 북한군은 방독면과 방호복을 착용한 상태였다고 군 관계자가 전했다.
 
  특히 자료에는 “지상과 해상, 공중봉쇄 의무태만 행위가 극히 엄중한 경우에는 무기노동교화형 또는 사형에 처한다”고 명시했다. 이 한 문장으로 왜 북한 군인들이 우리 공무원을 향해 총격을 가하고 시신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는지 알 수 있다.

 

“비상방역 제대로 지키지 않을 경우 벌금 5000원에서 사형까지”

/2020년 8월 13일 북한 평양에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마스크를 쓴 승객들이 트롤리 버스를 타기 전 차장으로부터 손 소독을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북한은 비상방역 질서를 어긴 국민에 대해 벌금 5000원부터 심각할 경우 사형까지 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1달러당 북한 화폐는 6300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개인과 기관, 기업, 단체 등으로 구분해 처벌의 수위를 나눴다.
 
  개인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을 경우 5000원, 전염병 의심자를 신고하지 않을 경우 1만원, 단체로 모여 술을 마시거나 유희·오락 등을 했을 경우 5만원, 불법으로 영업하면서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 경우 10만원, 물품을 사재기해도 1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기관 단체인 경우 처벌의 강도가 올라간다. 검진 체계를 세우지 않았거나 손 소독 시설을 갖추지 않았을 경우 20만원, 영업시간이 지나도록 영업을 했거나, 결혼식 같은 대중봉사를 하면서 인원을 초과했을 경우 50만원, 수입물자의 방치나 소독질서를 어기고 물자를 반입·반출할 경우 100만원이다. 사안에 따라 엄중할 경우 영업 중지와 폐업 처벌을 할 수도 있다.
 
  또한 격리시설에서 이탈하거나 방역사업에 대한 당의 지시에 불응하거나, 격리시설에 있는 사람과 접촉할 경우, 평양 또는 차단 및 봉쇄 구역, 바다에 무단으로 출입할 경우 노동교양의 처벌을 가한다.
 
  이 밖에 관리자들도 비상방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거나 규정에 따르지 않을 경우 무보수 노동처벌을 가한다는 조항도 포함되어 있다.
 
  자료에는 도·시 기관 단체장들이 비상방역에 관련한 명령과 지시집행에 성실히 임하지 않을 경우 5년 이하의 노동교화형, 방역에 혼란을 조성할 경우 노동교화형 10년, 지시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무기징역 또는 사형에 처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자료에는 방역을 관리·감독하는 인원들에 대한 처벌도 있다. 다음은 관련 내용이다.
 
  〈국경과 지상, 해상, 공중 봉쇄의무를 지닌 자가 경비근무를 무책임하게 수행해 불법으로 국경 또는 봉쇄구역으로 사람이나 물자가 드나들게 할 경우 최소 무기노동교화형 또는 사형에 처한다.


  외국인에 대한 처벌 항목도 있다.

〈비상방역기간 우리나라에 상주 또는 체류하는 외국인이 비상방역과 관련해 국가적 조치에 불응하면서 비상방역사업에 지장을 줬을 경우 1만원에서 100만원까지의 벌금을 적용하며 정상이 엄중한 경우 공화국 영역에서 추방한다.〉⊙

글 : 정광성  월간조선 기자

 

06월 03일 ‘南 공산화’ 변함없는 北노동당 규약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북한이 지난 1월 제8차 노동당대회 때 개정했다는 당규약 일부가 최근 보도됐다. 북한의 당규약 개정에 주목하는 것은, 당(黨)이 정권기관(입법·사법·행정)보다 우위에 있는 체제 특성상, 당규약을 통해 수령의 유일적 통치를 정당화하는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작동 원리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은, 이 개정에서 당 총비서를 대리한다는 ‘제1비서’ 직제 신설 등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나, 대한민국의 헌법 체제 수호를 위해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당규약 서문에 명시된 조선노동당의 목표(당면 목적과 최종 목적)이다. 북한은 정권 수립 이후 여러 차례 당 규약의 개정을 통해 일부 표현은 변경했어도, ‘남한혁명을 통한 공산주의사회 건설’이라는 이른바 적화통일 노선을 지난 70년간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이 개정에서 관련 문구를 대폭 수정한 것이 눈에 띈다. 북한은 당면 목표가 부강한 사회주의 건설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다만, 남한혁명노선을 규정한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 민주주의혁명 과업 수행’ 부분을 삭제하고,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실현’으로 대체했다. 이를 놓고 일부 언론에서 북한이 남한혁명통일론과 적화통일을 폐기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이러한 표현은 북한이 남조선혁명론을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론’으로 정식화한 1970년 제5차 당대회 때 김일성의 총화결정문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여기서 전국적 범위란,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까지를 혁명 대상에 포함한 표현이다. 북한이 말하는 ‘사회의 자주화’란, 남한혁명을 방해한다는 외세(미국)을 축출하고 민족자주권을 쟁취한다는 것으로 ‘민족해방’혁명을 의미한다. 그리고 ‘민주주의적 발전’은, 파쇼독재라고 규정한 남한 정권을 타도하고 민주정권을 수립하자는 것으로, 이른바 북한식 ‘(인민)민주주의혁명’을 뜻한다. 따라서 바뀐 표현은 ‘민족해방 민주주의혁명’과 다름없다.


북한은 2010년 제3차 당대표자회의 때 30년 만에 당규약을 수정해 조선노동당의 최종 목적에서 ‘공산주의 건설’을 삭제하고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으로 대체했다. 그때도 이를 놓고 북한이 적화통일 노선을 폐기했다고 주장했으나, 필자가 북한 철학사전의 공산주의에 대한 정의와 대체 표현이 일치함을 지적한 이후 잠잠해졌다. 이는 북한의 용어 혼란 술책일 뿐이다. 이번 개정에서 북한은 조선노동당의 최종 목적이 ‘인민의 이상이 완전히 실현된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데 있다’고 명시함으로써 이전 규약처럼 숨지 않고 당당히 공산주의란 표현을 사용했다.


북한이 이번 당규약 개정을 통해 적화통일론을 폐기했다는 주장은 이 표현의 등장으로 오류임이 확인됐다. 북한은 우리 국민이 거부감을 느끼는 ‘혁명’ 즉 ‘민족해방 민주주의혁명’이란 용어를 삭제해 대체 표현하고, 공산주의사회 건설은 당당히 밝히는 선택을 했다. 이는 ‘제1비서’ 직제 신설과 함께 김정은의 권력 장악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용어 혼란 전술을 간과한 채 북한이 ‘남한혁명통일론’을 폐기했으니 우리도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정치권 일각의 움직임을 보면 혹세무민(惑世誣民)이란 말이 떠오른다.

문화일보

 

 

월간조선 06월 호

■2020년 12월 北 내외 당 간부 강연 자료 분석

北 “김정은 천리 혜안 예지로 코로나19 위험성 꿰뚫어 봐”

⊙ “김정은, 강력한 국가비상방역체계 세워서 코로나19 막아”
⊙ “김정은 봉쇄 지역 인민들을 생각해 잠을 못 자”
⊙ “파격적인 열병식 누구도 예상 못 해… 韓美 첨단정보자산 갈팡질팡”
⊙ “적대세력 ‘화성15호’ 성공에 美 본토 전체 타격권 안에 들었다고 아우성”

/북한 김정은이 지난 5월 5일 부인 리설주, 당·군 고위간부들과 함께 만수대예술극장에서 군인가족예술소조공연을 관람했다. 공연 참가자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있다. 사진=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단 한명도 없다고 주장하는 나라가 있다. 북한이다. 북한 당국은 코로나19 확진자가 한명도 발생하지 않은 것은 김정은의 천리 혜안의 예지력 덕분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월간조선》은 최근 북한 노동당이 2020년 12월 당 간부들에게 배포한 〈학습제강〉 자료를 단독입수했다. 조선노동당출판사에서 발행됐다. 제목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는 인민을 위한 길에 한 생을 다 바치신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시다’.
 
  조선노동당출판사는 북한 노동당 소속 출판사다. 노동당 선전선동 자료나 김씨 일가의 위대성을 선전하며 당 간부들의 〈학습제강〉 자료 등 다양한 문서들을 만들어낸다.
 

자료에는 “바로 우리 조선민족이 온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칭송하고 일제히 흠모하는 절세의 위인이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동지를 혁명의 위대한 수령으로 모신 크나큰 행운을 지니었다”며 “사상에서도, 령도에서도, 인품에서도 천하제일이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동지의 위대성을 심장 깊이 간직할 때 절해고도에서도 만년을 용감히 이겨내고 조국의 존엄과 융성번영을 위한 길을 꿋꿋이 걸어갈 수 있다”며 김씨 일가를 신격화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런 대목도 있다.
 
  “돌이켜보면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동지께서 지난 9년 세월 적대세력들과의 대결전을 승리적으로 령도하시며 나라의 존엄과 자주권을 꿋꿋이 지켜주시고 우리 당의 강화발전과 나라의 부강번영을 위해 천신만고를 다 겪으시었다.”
 
  김정은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9년 초부터다. 이전까지 후계자에 대한 언급이 없던 북한은 2009년부터 김정은을 후계자로 밀기 시작했다. 여기에 2009년 6월 국정원이 김정은이 후계자로 올랐다고 국회에 보고하면서 만천하에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은 김정은의 공식 활동을 아버지인 김정일이 죽은 다음 해인 2012년부터 2020년까지 9년으로 기록했다.
 
  현 상황은 이렇게 설명했다.
 
  “전 세계를 휩쓰는 신형 코로나비루스 감염증만 놓고 보아도 그것이 인류의 생존과 발전에 얼마나 파국적 후과를 가져오고 있는지는 아마 우리가 주재하고 있는 나라들에서 시시각각 느끼고 목격하고 있다”며 “발생과 폭발적인 감염, 일시적인 감염자 감소, 집단감염과 2차 파동, 이러한 악순환이 바로 세계가 처한 전염병의 현 상황이다.”  


  北, 코로나19 확산 우려 상황에도 선제방역 ‘自畫自讚’

자료에는 “지금 이 시각도 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악성비루스에 의해 무고한 목숨을 잃고 있으며 전염병으로 인한 고통 속에 몸부림치고 있다”며 “그러나 사회주의 우리 조국에서는 악성비루스에 전염된 나라들의 포위 속에서도 안전한 방역형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자화자찬했다. 이어지는 내용이다.
 
  “결코 다른 나라보다 보건이 발전했거나 남들보다 면역이 강하고, 그 어떤 운수가 좋아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이러한 현실은 인민의 생명안전을 지키는 것을 가장 중차대한 문제로 여기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동지의 현명한 령도의 빛나는 결실이다. 세계적인 대유행 전염병인 신형 코로나비루스 감염증이 발생하였을 때 천리 혜안의 예지로 그 위험성을 꿰뚫어 보시고 우리나라의 국경과 영해, 영공을 전면 차단하는 선견지명의 믿음성 있는 조치와 함께 강력한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세워주신 분은 바로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동지이시다.”
 
  이에 대해 유호열 고려대 명예교수는 “북한이 코로나19 감염자가 없다고는 하지만 신뢰할 수가 없다”면서 “통제 사회가 가지는 잘못된 전형이고 확인하거나 추적할 수도 없는 일방적인 주장이다. 북한의 방역체계라든지 국경 통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한 방식이다”라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8월부터 국경을 원천 봉쇄하고 코로나19 비상방역체계를 세운다는 목적으로 주민 통제를 시작했다. 비상방역법도 새로 개정하며 주민들의 활동을 감시하고 나섰다.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원은 “지난해 북한은 코로나19가 화두였다. 당 정치국회의를 포함해 회의를 20여 차례 진행했고, 순수 코로나19만 다룬 회의도 13회나 된다”며 “북한은 순수하게 비상방역만 추구하기보다 주민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차원에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김 연구원의 말이다.
 
  “북한의 비상방역은 코로나19뿐만 아니라 과거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당시 방역을 하면서도 주민들을 통제하는 데 상당히 유용한 방법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이런 방법에는 민심도 저항하기 어렵다. 지금의 북한 비상방역체계는 비상방역도 하면서 주민도 통제하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북한이 유난을 떨면서 코로나19 방역에 힘쓰는 목적의 하나는 김정은의 신변 보호다. 전국에 코로나19가 확산되면 김정은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북한 입장에선 김정은이 코로나19 확진자가 되면 나라의 존망이 걸린 문제다. 이를 애초에 막기 위해 국경을 봉쇄하고 바다에서 남한 국민을 쏴 죽이는 천인공노할 만행까지 저지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北, 코로나19 확진자 없다고 하지만 전국 곳곳에 봉쇄 지역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도 이와 비슷한 의견이었다. 강 대표는 “김정은의 생명 안전에 초점을 맞춰 지금과 같은 과도한 비상방역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면서 “이 밖에도 해외 정보기관과 연계된 내부 첩자를 색출해내려는 방법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강 대표의 말이다.
 
  “지금 코로나19 방역을 빙자해서 국경을 봉쇄하고 사람들의 외국 방문을 막는 것은 해외 정보기관들과 관련 있는 내부자들을 색출하기 위해서다. 현재 북한에서는 해외 나갔던 사람들이 누굴 만났는지 조사를 하고 있다. 이들이 해외에서 서방 정보기관들과 맺고 있는 연계를 끊어버리려는 속셈도 있다. 또 주민들의 대량 탈북을 막고 북한으로 정보 유인도 차단하는 데 아주 큰 효과를 보고 있다.”
 
  북한은 현재 코로나19 확진자가 없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자료에는 김정은이 봉쇄 지역 인민들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해당 내용이다.
 
  “봉쇄 지역 인민들 생각에 잠 못 이루시며 자신께서는 그토록 인민들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뜨겁게 고무해주신 우리 원수님. 잠시라도 떨어지고 외로워할세라 그들의 곁에 더 가까이 다가가시는 뜨거운 사랑에 남녀노소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노동당 만세를 부르던 8월의 화폭은 우리 조국 인민들의 심장 속에 뜨겁게 간직되어 있다.”
 
  지난해 7월 말 탈북민이 개성을 통해 월북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북한은 개성시 전체를 완전히 봉쇄하더니 8월에는 중국에 체류하던 북한 여성 한명이 양강도 삼지연으로 넘어오자 삼지연시와 혜산시를 전면 봉쇄 조치했다.
 
  이 밖에도 코로나19 의심자가 발생한 마을이나 지역에 대해 철저히 통제를 하고 있다. 지난해 8월 개정된 북한 비상방역법에도 확진자나 의심자가 발생할 경우 해당 마을을 철저히 봉쇄하고 드나드는 자들에 한해서는 사형까지 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북한 당국의 국경 봉쇄 및 주민 통제로 인해 가장 고통받는 이들은 주민이다. 이들은 지난해 세 번의 태풍 피해와 코로나19 방역을 빙자한 국경 봉쇄로 인해 최악의 경제 상황을 맞았다.
 
  한 대북 소식통은 “최근 북한 시장에서 달러와 쌀값은 물론 모든 물가가 최소 10배 이상으로 치솟고 있어 주민들의 원성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면서 “이 상태로 국경을 봉쇄하고 주민들을 통제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실제로 유혈사태까지도 갈 수 있다”고 했다.
 
  강철환 대표는 “북한 주민들의 반발이 심하다. 김정은은 매점매석, 무사안일, 유언비어, 강력범죄 등 4대 금지 조치를 내리며 동요하는 민심을 잡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의 4대 금지 조치는 이렇다.
 
  현재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매점매석 행위를 하는 것은 외부와 연계된 적들의 책동, 또한 코로나19 상황에서 모여 술판을 벌이는 것은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것, 최근 북한 내부에서 공화국이 곧 붕괴할 것이라는 말을 퍼뜨리는 것은 아주 위험한 행위, 준엄한 시기에 강력범죄를 저지를 경우 반체제 행위로 간주, 강력한 처벌을 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강 대표는 “지난 4월 북한으로 200만 회를 투여할 수 있는 중국산 백신이 들어갔다. 추가 지원이 있을지는 모른다. 현재 중간 간부들과 평양 주민들 위주로 투약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상류층 간부들은 화이자를 기다리며 중국 백신을 맞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약속 못 지켜”

/2020년 10월 14일 북한 김정은은 함경남도 검덕지구의 태풍 피해 복구 현장을 시찰했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8~9월 북한에 들이닥친 태풍과 홍수가 최대 곡창지대인 황해남북도와 최대 광업 지역인 함경남도 검덕지구를 집어삼키면서 작황과 산업에 미친 타격도 엄청났다. 북한은 역사상 최초로 평양의 노동당원으로 구성된 수도당원사단과 인민군 부대를 수해 복구를 위해 피해 지역으로 급파했다. 해당 자료에는 이와 관련한 내용도 담겨 있다. 다음은 자료 내용이다.
 
  “올해 조국에 1개월 사이 다발적인 큰물 피해가 발생하고 파괴적인 태풍이 3차례나 들이닥쳐 많은 인민이 집과 가산을 잃고 많은 경제적 손실을 보는 격난을 겪었다. 사정없이 겹치는 대재난 앞에 누구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그 시기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동지께서는 강철도 녹일 뜨거운 믿음과 사랑으로 온 나라를 산악같이 일떠세우시고 검덕지구를 비롯한 피해복구 전역들에 인민군인들과 최정예 수도당원사단을 비롯한 수십만 대군을 급파하시었으며 나라의 전략 예비까지 아낌없이 쏟아 부우시여 인민 사수, 인민보위의 전설적인 새 역사를 펼쳐주시었다.”
 
  당시 김정은은 이례적으로 수해 지역인 검덕지구를 방문했다. 검덕지구는 함경남도의 주요 광산지대로 북한 최대의 연(납)과 아연 생산지다. 제철·제련 분야에 필요한 마그네사이트 광산도 소재한 곳이다. 북한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연과 아연 등을 수출해 연간 20억 달러의 수입을 벌어들인다.
 
  2020년 10월 검덕지구를 방문해 “검덕지구의 광산 마을들을 세상에 없는 광산도시,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 사상 초유의 산악협곡도시로 꾸리겠다”며 “이곳에 2만5000세대의 살림집을 새로 건설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현재 국경 봉쇄와 계속되는 대북 제재로 인해 시작도 못 하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김인태 연구원은 “최근 북한 동향을 살펴보면 북한은 아직 태풍 피해 내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며 “김정은이 검덕지구를 방문해 했던 약속조차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지역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최근 도·시·군 책임비서 회의에서 받은 다른 과제들이 중첩되다 보니 정책적으로 과부하가 걸린 상황이다”며 “조선중앙TV가 자랑하는 모습은 선전하기 위해 만든 선전용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강철환 대표도 “지난해 태풍이 북한 경제 전반에 되돌리기 어려운 타격을 줬다. 가장 심한 곳이 김정은이 방문했던 검덕지구이다”면서 “검덕지구는 북한이 연과 아연으로 1년에 20억 달러의 수입을 벌어들이는 곳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북한은 또 자료에서 지난해 진행한 조선노동당 창건 75돌 열병식에서 김정은의 연설을 듣고 세계 수많은 언론과 사람들이 ‘김정은 령도자의 연설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다’는 등의 찬사를 보냈다고 했다.
 
  당시 김정은은 연설하면서 이례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김정은은 연설 도중 눈물을 글썽이며 인민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 고위 탈북민은 “김정은이 정말 인민들에게 감동해 눈물을 흘린 것은 아닐 것”이라며 “당 서기실에서 써준 각본으로 어느 대목에서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알려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례 없는 심야열병식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자료에서는 노동당 창건 75돌 열병식을 프랑스의 AFP 통신, 영국의 로이터통신, 일본의 NHK, 미국의 CNN 등이 수백 건의 기사들과 초특급 뉴스로 경쟁적으로 보도하여 그야말로 세계가 ‘조선의 심야열병식 충격’으로 들끓었다고 자화자찬했다.
 
  그러면서 이날 열병식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미국과 남조선 정보기관들도 혼란에 빠졌다고 했다. 해당 내용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새벽 시간에 열병식을 전격 단행함으로써 미국과 남조선, 국제사회의 첨단 정보자산들을 갈팡질팡하게 한 ‘전례 없는 심야열병식’ ‘특이한 새벽 열병식’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행사장 주변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힌 대규모 조명, 웅장한 평양의 야경을 무인기들의 입체적인 촬영 등 독특한 기술을 동원함으로써 무겁고 어두운 열병식의 관례를 깨고 세련미와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 불빛 열병식이었다고 세계가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이에 대해 김인태 연구원은 “북한의 지난해 75돌 경축 열병식은 순수한 열병식은 아니었다. 처음 예능적인 측면을 열병식에 접목시키고, 화려한 조명들을 총동원한 대내외 과시용 열병식이었다”고 평가했다.
 
  “북한이 말하는 미국과 남조선 첨단 정보자산이 갈팡질팡했다고 하는 부분은 과장된 부분이 있다. 물론 우리 정보기관이 조금 혼선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유는 야간에 갑자기 본 행사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열병식을 하면 보통 7일 전부터 야간에 리허설을 했기 때문에 지난번 열병식도 리허설로 생각했을 것이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
 
  강철환 대표는 “주민들의 민심이 하도 흉흉하니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려는 선전이라고 볼 수 있다”며 “여기에 인민군에게도 첨단 무기를 보여줌으로써 자긍심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리고 미국이 계속해서 김정은 참수작전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심야에 하면 구별이 불가능하고 위성도 잡기 어려워 새벽에 진행했을 것”이라고 했다.
 
  김성민 대표는 “북한의 노동당 창건 열병식은 선전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했다”며 “아마 북한 주민들은 역시 김정은 장군님은 다르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본토까지 동시타격”

자료에는 미국에 적대적인 내용도 담겨 있다. 해당 내용을 살펴보자.
 
  “열병식에 등장한 신형 무기들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를 뚫고 미국 본토까지 동시타격 할 수 있는 힘을 완벽하게 갖추었음을 국제사회에 선언했다. 우리에 대한 거부감과 적대의식이 체질화된 적대세력들도 무적의 위용 앞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비명을 질러댔다. 이미 적대세력들은 ‘화성-12호’를 비롯한 우리 무기들이 2017년 알래스카와 하와이까지 사정거리에 들어갔다고 우는 소리를 늘어놓았으며 뒤이어 ‘화성-14호’와 ‘15호’가 장쾌한 폭음을 울리자 미국 본토 전체가 타격권 안에 들어왔다고 아부재기(아우성)를 쳤다.”
 
  항상 북한은 미국과 남한, 일본을 적대세력으로 간주하고 있다. 김정은이 판문점을 넘어와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고 해서 북한의 인식은 바뀌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직도 북한과 대화의 기회가 열려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문 대통령의 임기는 앞으로 1년 남았다. 임기 1년 남은 대통령을 김정은이 다시 만나줄지 의문이다.⊙

글 : 정광성  월간조선 기자

 

 

월간조선 06월 호

■봉쇄할 수도 개방할 수도 없는 ‘北中 국경’ 딜레마

코로나19로 인한 北中 국경 폐쇄는 北의 자승자박

⊙ 코로나19 확진자 ‘0명’이라는 북한의 주장은 허위
⊙ 평양서 귀환한 외교관들 “평양에 남은 외국인 300명 이하”
⊙ 북한의 ‘생명선’인 北中 국경 폐쇄는 사실 탈북 방지용

宋鳳善
1947년생. 양정고·고려대, 연세대 대학원 졸업 / 前 주사우디아라비아대사관 서기관, 駐이집트대사관 영사·참사관, 국정원 북한연구조사실 중국팀장·단장, 인하대 초빙교수, 고려대 북한학과 겸임교수, 북한연구소 소장 / 現 한반도미래연구원 이사장 / 저서 《사생활로 본 김정일》 《김정일 철저 연구(일어판)》 《북한은 왜 멸망하지 않는가》 등 다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로 북중(北中) 국경이 폐쇄된 지 1년여가 지났다. 그로 인해 폐쇄 사회인 북한은 최악의 경제 상황을 맞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이라는 미명하에 이뤄진 국경 봉쇄로 북한 경제가 극도로 악화되고 있음에도, 북한 독재자 김정은은 비현실적인 방역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 측 세관 당국에 따르면, 2020년 북한의 대중(對中) 수출액은 3616만 달러(약 409억원)에 그쳤다. 중국 외에 다른 국가들과의 수출액도 806만 달러(약 91억원)에 불과했다. 이를 모두 합한 수출액이 500억원 정도면 실제 북한이 번 돈은 이보다 훨씬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밀무역도 줄어들어 시장에서는 물건이 사라지고 있는 형편이라고 한다. 일부 주민들은 비싼 쌀보다는 싼 강냉이를 구입해 식량으로 대체하고 있다. 대다수 주민은 강냉이마저 구하지 못해 잡곡을 섞어 만든 죽이나 풀죽으로 끼니를 잇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고난의 행군’(1990년대 중·후반 당시 북한이 처했던 대량 아사 시기) 탈출 후 부족하지만 유지되던 평양 시내의 배급도 끊겼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 당국은 노동당 관료와의 혼인 등으로 평양 시내에 살고 있는 지방 출신 주민들을 상대로 ‘평양 퇴거’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어떻게 하든 입을 줄이려는 고육지책인 셈이다. 거의 사라져가던 ‘꽃제비’도 다시 등장했다는 전언(傳言)도 나온다.
 
  코로나19로 달러화 환율마저 폭락하자, 김정은은 환전상을 처형하는 만행도 저질렀다. 김정은은 코로나19로 바닷물이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소금 채취와 어로(漁撈)까지 금지하는 웃지 못할 지시까지 했다고 한다.
 
  북한 경제 상황이 ‘고난의 행군’ 때보다 더 어렵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북한 당국이 코로나19 선전·선동을 강화하면서 정권으로 향하는 불만을 잠재우려 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코로나19 방역 강화로 사실상 북한 정권의 생명선인 북중 국경 폐쇄는 실질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 ‘0명’은 허위

/2020년 2월 27일 북한 ‘조선중앙TV’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 대책에 대해 방영한 화면. 사진=뉴시스

 

북한 당국은 코로나19 확진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은 청정국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발생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북한 내부 소식통의 코로나19 관련 집계에 따르면, 2020년 11월 1일 기준으로 국가 지정시설 발열 독감 누적 격리 인원이 총 8만1000명이라고 한다. 이는 군인을 제외한 수로, 군인까지 모두 포함하면 이보다 더 많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2020년 1월 28일, 코로나19 국가비상체계를 선포하고 평양을 비롯한 각 지역에 중앙비상방역지휘부를 조직했다. 같은 해 연말부터는 코로나19 방역 단계를 최고 수위인 ‘초특급’으로 격상해 국경과 지상, 해상 및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을 봉쇄하고 각종 모임도 중단시켰다. 학생들의 방학을 수차례 연장하고, 상점과 음식점 등 집합시설의 영업을 금지했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보면, 코로나19 청정국이라는 북한 측 주장은 사실로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
 
  북한 당국은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이런저런 조치를 취하는 듯하나 유명무실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진단할 의료기구도 없고, 치료할 수 있는 방법과 약품은 물론 국가적으로 지정된 격리시설도 대부분 차 있다. 증상이 나타나는 사람들은 자가격리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북한 내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하다는 얘기가 파다하지만, 공식적으로 북한은 확진자가 ‘0명’이라고 주장한다. 의료시설이 극히 열악하고 약품 등을 갖추지 못해 결국 사회 전체가 붕괴될 수 있어 이런 거짓말을 내놓은 것이다.
 
  최근 평양에서 본국으로 귀환한 외교관들은 “외국인들의 귀국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평양에는 2021년 4월 현재 평양에 남은 외국인은 300명 이하”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평양은 유례없이 엄격한 전면적 제한과 통제로 의약품을 포함한 생필품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를 해결할 방안 역시 전무(全無)한 상태라고 했다.


  뒤로는 백신 확보 추진

북한은 겉으론 코로나19 청정국을 강조하고 있지만, 백신 확보를 위해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비(非)정부기구에 백신 신청서를 내고 유럽 국가 대사관을 통한 백신 확보 방안도 강구 중이라고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코로나19 주간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2월까지 북한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주민 누계는 9373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확진 사례는 없다고 보고해왔다.


  북한에서 코로나19 사망자가 최초 발생한 시기는 2020년 1월 말이다. 중국 방문자가 많은 평양시와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발열과 기침 증세를 보인 주민들이 항생제와 해열제를 투여했지만 증상이 호전되지 않고 사망한 것이다. 사망자 모두 코로나19 관련 증상이 나타나기 직전에 중국을 다녀왔거나, 중국 주민과 접촉한 사실이 있었다.
 
  북한 당국은 이를 묵살하고 이들의 사인(死因)을 코로나19가 아닌 급성 폐렴이라고 감췄다. 그 후 서둘러 장례를 치렀다. 시신을 유가족 동의도 없이 화장 처리하고 유골만 전달하자 내부에서도 석연치 않다는 반응이 나왔다. 북한에서는 일반적으로 매장(埋葬)을 선호한다. 화장(火葬) 비용이 매장 비용보다 훨씬 비싸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평양의 유일한 화장장인 낙랑구역 오봉산 화장장의 경우 화장을 앞둔 시신이 넘쳐나고 있다고 한다.
 
  북한 당국이 코로나19 확진자 ‘제로(0)’를 강조하는 이면에는 북한 주민들의 불만을 잠재우려는 의도뿐 아니라, 방역 조치를 당의 업적으로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런 이유로 코로나19 현황을 사실대로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코로나19 방역 조치, 실제로는 탈북 막기 위한 것

/중국 단둥시 ‘조중우의교(朝中友誼橋)’에서 바라본 ‘압록강대교’ 위로 북한 화물차량이 중국 단둥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곳은 북중 국경의 최전선이다. 사진=뉴시스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지난 3월 초,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제14기 제13차 전원회의에서 ‘수입물자소독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국경을 통해 들어오는 물자를 소독하게 하는 한편, 관련 절차와 질서를 어기면 처벌하도록 한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북한이 코로나19 창궐 이후 봉쇄하던 국경을 일부 열고, 무역 재개를 위한 법 제정이라고 분석했다.
 
  정반대의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북중 국경 전 구간에 2m가 넘는 콘크리트 장벽을 세우고 3300V 고압 전력선 설치를 준비 중이라는 첩보가 입수됐다. 이와 관련해 국경 지역에 자재와 장비, 인원이 투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북중 접경지역인 의주와 룡천에는 2021년 3월부터 약 2개 대대 인원과 건설 장비·자재, 화물차 등이 평양에서 건너와 공사 준비에 투입되고 있다. 비슷한 시기, 자강도에도 건설부대 인원들이 투입돼 콘크리트 장벽 설치 공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용남 駐中 북한대사(앞줄 왼쪽). 사진=뉴시스

 

이런 공사는 명목상으로는 코로나19 유입 방지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 주민의 탈북 방지를 노린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코로나19 이후 강력한 국경 봉쇄가 지속되는 가운데, 생계난에 직면한 군인과 주민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국경에서 탈북 행위가 이어지자 이를 원천 차단하기 위한 공사라는 뜻이다.
 
  북한의 경제 여건상, 장거리 장벽 공사는 엄청난 예산과 물자가 소요되는 사업이다. 따라서 실현될지 의문이다. 고압 전력선 공사 역시 북한 전기 사정으로 봤을 때 원만히 이뤄질지 의구심이 든다.
 
  지난 4월 말까지 북중 교역이 다소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일본 공영 방송 NHK는 4월 중순 북중 접경지역인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단둥(丹東)역에서 북한으로 향하는 것으로 보이는 화물열차를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단둥역에 정차해 있는 화물열차에 한국어로 ‘서포-단둥’이라고 써 있는 모습이 포착됐는데, 서포역은 평양으로 들어가는 국제화물만 취급하는 화물열차 전용역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북한이 향후 중국과의 무역은 물론 경제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해석하는 기류도 있다. ‘무역통’으로 알려진 리룡남이 중국 주재 북한대사로 공식 부임한 것도 이와 관련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북중 국경 봉쇄 완화가 이뤄지더라도, 물자 교환이나 인적 교류엔 유엔 제재로 인하여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안고 있는 ‘북중 국경 딜레마

북중 국경은 각종 교역과 밀무역이 이뤄지는, 물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북한으로서는 ‘생명선’이나 마찬가지다. 북한은 압록강과 두만강의 20여 개 북중 교량시설이나 수로를 이용해 중국으로부터 90% 이상의 물자를 공급받고 있다. 물자뿐 아니라 인적(人的) 협력도 이루어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탈북과 밀수를 막는다는 구실로 생명선 같은 북중 국경의 철조망과 콘크리트 장벽을 이용한 차단 행위는 북한 주민을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드는 자승자박 행위다. 북한이 핵개발로 각종 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북중 국경 폐쇄는 경제적 손실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경제를 위해 봉쇄했던 북중 국경을 열면 코로나19는 물론, 북한 독재체제를 위협할 외래(外來) 문화까지 덩달아 유입될 수밖에 없다.
 
  결국 북한이 안고 있는 북중 국경 딜레마는 이래저래 북한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 공산이 크다.⊙

 

06.11 “날 키운 건 당 아닌 장마당” BTS 춤추는 MZ세대, 北 체제 흔든다

“청년들을 무방비상태로 내버려두면 상상밖의 무서운 일이 벌어질수 있다.”

미·북 ‘하노이 노딜’ 직후인 2019년 4월 백학룡 평안북도 청년동맹 위원장(현 비서)이 노동당 대내 기관지 ‘근로자’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2030세대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위기의식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백학룡은 “중동에서 ‘아랍의 봄’을 통한 정권교체의 비극이 연발한 것은 20대 청년들이 손전화기(휴대전화)를 통해 서방의 인터넷에 접속해 모략선전물을 보고 동조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백학룡의 경고장은 현재 북한을 휩쓸고 있는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 광풍의 전주곡이었다. 이후 북한은 작년 12월 한류 유포자를 사형에 처하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 당 세포비서 대회에서 “청년세대의 사상정신 상태에서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더는 수수방관할 수 없다”며 ‘인간개조론’까지 거론했다. 북한도 이른바 ‘MZ세대’에 대한 공포가 크다는 것이다. MZ세대는 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아우르는 말이다.

 

30대의 김정은이 또래의 MZ세대를 두려워하는 것은 이 세대가 노동당과 수령의 통제를 당연시했던 이전 세대들과는 성장 환경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 성장한 이들 세대의 밥줄은 당의 배급이 아니라 장마당이었고, 500여개의 장마당을 통해 북한 구석구석까지 침투한 ‘남조선 문화’는 이들의 일상을 지배했다. 장마당이 기르고 한류가 삼킨 북한 MZ세대는 외부세계를 동경하고 개인주의에 익숙하다. 김정은 체제를 흔드는 뇌관이 될 수 있는 셈이다.

 

◇”나를 먹여살린 건 장마당”

북한 젊은 세대들에게 노동당은 ‘밥을 주는 것도 아니면서 충성만 강요하는 꼰대’의 이미지로 박제돼 있다. 2017년 입국한 평양 출신 이민영(가명·30대)씨는 “평양에 살아도 배급만으론 먹고 살기 어렵기 때문에 부모님이 장마당에서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과외도 받았다”며 “노동당에 충성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양강도 혜산 출신의 박인국(가명·20대)씨도 “중학교 때부터 장마당과 역전 등지에서 구루마와 자전거로 짐을 날라주고 돈을 벌었다”며 “노동당은 잘 모르고 장마당을 집처럼 알고 살았다”고 말했다. 2019년 입국한 평남 북창 출신의 탈북민 최성국(가명 30대)씨는 “대학에 다니면서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장사를 해서 먹고 살았다”며 “입당까지 한 제대군인 동창들 중에도 장사에 나선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2013년 입국한 평양 출신 김일국(30대)씨는 “요즘 20대 애들은 당 간부말도 잘 안 듣는다”며 “행사에 나오라거나 돈을 내라고 하며 ‘내가 왜’라는 식으로 나와 당 간부들이 눈치를 볼 정도”라고 했다. 2019년 탈북한 양강도 출신의 30대 당 간부 출신 탈북민 A씨는 “요즘은 북한의 청년 간부 후보들이 당 간부보다 돈이 되는 법 일꾼이나 무역 일꾼을 선호해 당국이 골머리를 앓는다”고 했다.

 

◇'너구리눈' 되도록 한류 중독

고강도 단속에도 한류는 북중 국경지대는 물론 ‘혁명의 수도’ 평양에까지 확산돼 이제 북한엔 한국 드라마나 케이팝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지경이 됐다. 한국 젊은이들이 명절이나 휴가·방학 때 ‘미드’(미국 드라마)를 정주행하듯이 북한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한국 드라마를 보며 밤을 지새우는 것은 흔한 일이 됐다. 한국 드라마로 잠을 설쳐 눈가가 쾡 해진 것을 두고 ‘너구리 눈’이란 은어도 통용된다.

 

탈북민 B씨는 “몰래 구한 한국 드라마를 다음날 새벽까지 보고 ‘너구리 눈’이 돼 출근하곤 했다”며 “다음날 조회 때 여기저기서 조는 사람들을 보면 동질감을 느낀다”고 했다. 한류에 심취한 북한 2030세대는 한국 배우·가수의 헤어스타일과 의상을 모방하고, 팬클럽을 만들기도 한다. 이민영씨는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F4(꽃미남 주인공 4명)를 모방한 ‘평양판 F4’가 등장하기도 했다”고 했다.

 

한류 중독이 탈북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실제로 김정은 집권 이후 탈북한 고위층 가운데는 한국 등 외부 문화에 눈을 뜬 10~20대 자녀들을 위해 탈북을 결심한 경우가 많다. 함북 출신의 탈북민 정은주(가명 20대)씨는 “대학에 다니다 한국 드라마에 빠져 먼저 탈북했다”며 “고위층인 부모님까지 설득했다”고 말했다.

 

공산정권 시절 루마니아의 공산당 청년동맹(파이오니어스) 출신인 그레그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은 최근 미국의소리 방송(VOA)에 “북한 청년들의 현 상황은 지도자와 사회주의를 겉으로 찬양하는 척 했지만 속으로는 믿지 않았던 1980년대 초반 공산 동유럽을 연상하게 한다”고 했다.

 

◇BTS 춤추는 북한 군인들 “전쟁나도 싸움 못할 것”

많은 탈북민들은 “과연 지금 전쟁을 하면 북한 인민군이 제대로 싸움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입대 전 장마당을 통해 돈 맛을 깨닫고 한류에 중독된 10~20대 젊은이들이 100만 북한군의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어 사상 무장 상태가 말그대로 엉망이란 것이다.

 

실제 이들은 입대 후에도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끊지 못한다고 한다. 2017년 판문점을 통해 귀순한 북한군 출신 오청성씨는 “군복무 기간에도 USB에 한국 노래를 500곡 정도 넣어서 들었다”고 말했다. 작년엔 백두산 답사에 나섰던 20대 북한 군인들이 오락회(장기자랑)에서 방탄소년단의 ‘피 땀 눈물’ 춤을 선보였다가 문제가 됐다는 북한 전문매체의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북한이 지난 3월 개정한 행정처벌법에는 “군 입대를 피하려는 사람, 이를 위해 건강진단서를 위조한 사람, 탈영자를 숨겨준 사람에 대해 3개월 이상의 노동교양형을 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군대를 가기 않기 위해 온갖 불법과 편법이 판을 치고 있다는 얘기다. 2019년 탈북한 함북 청진 출신의 장혁(30대)씨는 “과거 세대와 달리 요즘 20대는 입대나 입당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방법이 있다고 믿는다”며 “군대에서 구타당하면 바로 도망치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한류에 푹 빠진 2030 잡으려 한국식 말투까지 단속]

한류 통제부서 권한 대폭 확대… 단속된 인원 즉시 처형도 가능

 

작년부터 본격화한 북한 당국의 대대적 한류 소탕 캠페인은 2030세대에 널리 퍼진 ‘괴뢰말 찌꺼기 제거’로 개시됐다. 일본의 북한 전문 매체 아시아프레스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노동당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는 지난해 6월 ‘괴뢰 말투를 몽땅 불살라 버리기 위한 저격전·추격전·소탕전’ 전개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비준(승인)을 받았다. 이 문건은 한국 말투를 쓰는 2030세대를 ‘괴뢰들의 문화에 오염된 쓰레기들’이라고 지칭하며 ‘강한 법적 제재’와 ‘가족에 대한 추방 조치’를 적시했다.

 

당시 북한은 ‘김여정 대남 담화’를 통해 일부 탈북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대대적인 대남 비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 같은 대남 비난 캠페인은 연말 반동문화사상배격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괴뢰 말투’뿐 아니라 한국 영상물 유포자를 사형에 처하고 시청자도 최대 징역 15년형에 처하는 ‘한류 금지법’이었다. 올해 들어 노동신문은 주민들의 말투, 옷차림, 화장법을 지적하는 기사를 잇따라 게재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한류 통제 부서인 ’109상무'를 ’727상무'로 변경하고 권한을 대폭 확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109상무의 경우 검열·단속한 사건을 사법기관에 넘겼지만 727상무는 별도의 구류장을 갖춰 검열·단속된 인원을 최대 60일간 조사할 수 있고 기소권도 부여받았다고 한다. 대북 소식통은 “단속에 걸리면 불량배 딱지를 붙여 추방하거나 교화소에 보내고, 부모들은 해임·출당·철직·추방, 심할 경우 처형하는 등 처벌의 강도가 높아졌다”고 전했다.

 

북한 당국은 지난달 간부들을 대상으로 ‘혁명적인 사상 문화로 비사회주의와 퇴폐적인 사상 문화를 깨끗이 쓸어버리자’는 제목의 내부 교양 동영상을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영상은 한류에 중독돼 한국식 옷차림과 머리 모양을 따라한 젊은이들의 실명·거주지·얼굴을 공개하며 “괴뢰 옷차림을 한 자들을 모조리 잡아 벗겨버리고 신성한 우리 거리에 활개치지 못하도록 강하게 투쟁하고 단속할 것”을 강조했다.

조선일보 김명성 기자

 

 

월간조선 06월 호

■평양의 북송 재일교포들

‘째포’와 ‘겐짱’

⊙ 북한 주민, 재일교포의 富와 생활양식에 위화감 느끼며 그들을 ‘째포’라고 비하
⊙ 재일교포, 북한 주민을 ‘오지의 원주민’이라는 뜻으로 ‘겐짱’이라 비하
⊙ 재일교포 학생들, 학교폭력에 시달리다가 외화와 일본 상품으로 주먹패 매수
⊙ 재일교포 1960년대 말 평양 항의시위… 1972년 검덕광산을 방문한 김일성 앞 시위 벌여

/1959년 12월 14일 일본 니가타항에서 첫 북송선이 출항했다. 사진=《마이니치신문》 제공

  

북한은 전체주의 사회다. 손톱만 한 이견(異見)도 없어야 한다. 김정은이 정하면 인민은 따라야 한다. 그런데 토를 다는 집단이 있다. ‘재일 귀국동포’다. 일본에서는 ‘귀환자(歸還者)’라 부르고 대한민국에서는 ‘북송교포(北送僑胞)’라 부르는 사람들이다.
 
  북한 당국과 인민은 북송교포에게 이질감을 느낀다. 평양으로 배치된 북송교포는 중구역과 모란봉구역에서 산다. 평양에선 부촌(富村)으로 불리는 지역이다. 브랜드 운동화와 깔끔한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100% 북송교포다.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장화를 신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일론 스타킹을 신었거나 일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도 역시 북송교포다. 품질에서 북한산과 압도적인 차이가 나기에, 그냥 지나만 가도 곧바로 티가 난다. 

 

북송교포 친구 집에 놀러 가면 현관부터 외국이다. 일단 집 안이 깨끗하다. 어머니가 친절하고 싹싹하게 맞아주는 건 문화적 충격이다. 무릎을 꿇고 차를 따라주시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당황스럽다. 차와 함께 과자를 내온다. 과자 봉투에 적힌 일본 글씨에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맛에 대한 호기심과 일본에 대한 거부감이다. 먹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다. 다기(茶器)도 북한에선 보기 힘든 고급품이고, 찬장에 놓인 반짝이는 법랑(琺瑯) 그릇도 북한에선 거의 볼 수 없는 물건이다. 낯선 음식과 물건 앞에서 왠지 모르게 불편한 마음이 인다. 


  이해 불가한 존재 ‘째포'

이런 불편한 마음은 일본과 북송교포들에 대한 적개심으로 진화한다. 어쩌면 적개심(敵愾心)은 열등감(劣等感)의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 시간제로 물이 나오고 한 달에 두 번 목욕이 상식인 평양에서 매일 씻는 째포들은 여전히 이해 불가한 존재다. 체취가 없다는 점도 부러움의 대상이다. ‘째포’(북송교포에 대한 비칭) 친구의 부모님이 일본어로 대화하는 내용도 궁금하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대단한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들린다. 개 두 마리를 기르고 철창을 덧댄 창문에도 자격지심(自激之心)이 생긴다. ‘생활조절위원회’(도둑·북한 은어)를 막기 위한 자구책이지만, 왠지 북한 주민을 무시하는 것 같아 얼굴이 뜨겁다. 어쩌면 속마음을 들킨 기분이 들어서인지도 모른다.
 
  공격성은 엉뚱한 곳에서 폭발한다. 카레와 커피까지는 참겠는데, 사케(일본 전통술)부터는 ‘용인선(容忍線) 넘어’다. 벽에 걸린 기모노나 유카타를 보면 여기가 일본인지 북한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그래서 마음속 송곳을 감추고 그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네가 생각하는 조국은 어디냐?”
 
  돌아오는 답에 더 기가 막힌다. ‘수령님 만세’가 아니라, “서울도 조국이고 평양도 조국이다. 한반도 전체가 내 조국이다. 남도 북도 하나다”라고 진지하게 말하기 때문이다. ‘이런 반역자가 있나!’라는 생각에 당장 밥상을 뒤엎고 싶지만, 일단은 참는다. ‘음식과 현금의 힘’ 때문이다. 그 대신에 ‘째포들은 우리 글자도 어린애처럼 쓰고, 글씨가 삐뚤빼뚤해 읽기가 힘들다’며 그들이 없는 곳에서 뒷얘기를 한다.
 
  째포에 대응하는 말은 ‘겐짱’이다. 째포들이 북한 주민을 낮춰서 부르는 은어다. 원주민(原住民)의 ‘원’ 일본식 발음 ‘겐’에 사람을 뜻하는 ‘짱’을 붙인 단어다. ‘원주민’이라는 단어 안에는 물론 ‘오지(奧地)에 살며 문명적으로 뒤처진 사람’이라는 속뜻이 담겨 있다. 어쩌면 째포와 겐짱은 서로를 동물원의 동물 보듯 이질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인데, 째포와 겐짱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만나 어떤 과정을 거쳐 친구가 되는가. 학교다.
 
  북한의 학교는 주먹 서열이 엄격한 사회다. 학생들 사이의 폭력이 난무하고, 다른 학교와의 ‘단체전’이 수시로 열린다. 단순한 패싸움이 아니다. 부상자와 사망자가 속출할 만큼 폭력의 강도(强度)가 세다. 이것이 북한 학생, 특히 남학생의 일상이다. 학생 시절뿐만이 아니다. 북한 남자는 30~40대까지도 ‘주먹’을 휘두르며 산다. 수시로 만나는 일상의 시비와 분쟁을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바로 주먹인 탓이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은 21세기 북한 사회의 진리다. 주먹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할 정도다.
 
  폭력이 일상인 사회에서 째포들은 맹수 앞의 먹잇감이다. ‘맹수’들은 학교 앞에서 째포를 기다렸다가 가방과 옷, 신발을 빼앗는다. 때로는 양말과 속옷까지 빼앗기도 한다. 속옷까지 빼앗긴 째포가 어떻게 귀가하는지는 맹수가 알 바 아니다. 

 
  평촌구역 아파트 붕괴 사고

 ‘맹수’들의 주 서식지는 서성구역, 평촌구역, 사동구역이다. 평양에서 상대적으로 못사는 사람이 거주하는 구역이다.
 
  말이 난 김에 하면, 2014년 5월에 23층 아파트 붕괴사고가 난 곳이 바로 평촌구역이다. 이 사고는 천리마 정신으로 ‘속도전’을 하다가 생긴, 전형적인 북한식 인재(人災)였다. 무리하게 잡은 준공일에 맞춰 콘크리트 양생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불량 시멘트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그마저 모자라던 철근과 시멘트 등 자재를 대량으로 빼돌렸다. 평촌구역 아파트 건설현장 붕괴사고는 이 모든 일이 겹쳐서 일어난 총체적 부실공사의 결정판이었다.
 
  문제는 여론이었다. 시대가 바뀐 탓에 민간에서도 사고 원인에 대한 소문이 돌아다녔다. 북한 당국으로서는 전례(前例) 없는 위기였다. 오죽하면 북한 최초로 간부가 주민과 유가족 등에게 고개 숙여 공개사과를 하고, 사과하는 사진을 신문에 실었겠는가.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사망자가 얼마인지, 사고의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는 오늘까지도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누가 얼마만큼 처벌을 받았는지도 알 수 없다. 물론 공식 발표도 없다. 진상규명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이유가 있다. 김씨 일가가 사고의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평양 외곽 사동구역은 구역 내 송신·송화지구에서 1만 세대 규모의 살림집 건설 착공식을 한다며 2021년 3월 23일 김정은이 직접 찾았던 곳이다. 김정은은 착공식 연설에서 “평양시 5만 세대 살림집 건설은 수도 시민들에게 보다 안정되고 문명한 생활조건을 제공해주기 위하여 우리 당이 크게 벼르고 준비해온 숙원사업이며 철두철미 국가의 재부와 근로대중의 창조적 노동의 결과가 고스란히 근로자들 자신의 복리로 되게 하는 숭고한 사업”이라고 했다.
 
  하지만, 환호하고 감사해야 할 주민들은 정작 불만이 가득하다. 건설 과정에서 노력 동원, 자재 기부 등 무리한 요구에 응해야 하고, 완공된 집이 자신들에게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완공한다고 해봐야, 이런 식으로 군인들이 나서서 지은 집은 뼈대만 있고 알맹이가 없는 ‘무늬만 집’이다. 운이 좋아 새집을 받는다고 해도, 바닥재, 창문, 인테리어 등 공사는 개인이 일일이 다 해야 한다는 뜻이다.


  동업과 배신
  

다시 북송교포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맹수들의 공격을 방어하는 최상의 방법은 이이제이(以夷制夷)다. 그에 상응하는 폭력을 동원한다는 말이다. 같은 학교의 ‘주먹’들에게 보호를 청하는 것이다. 점심 식사비로 부모님이 주는 달러나 엔화가 보호와 친교의 수단이다. 도시락으로 가져오는 ‘앙꼬모찌’나 컵라면도 좋다.
 
  같이 다니는 시간이 늘어나면 정(情)이 생기고 방과 후에는 어울리며 집에도 놀러 가는 사이로 발전한다. 세월이 흐르고 신뢰가 쌓이면 같이 사업을 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있다. 일본에서 보내준 물품들을 판매하는 장사다. 원가의 30배가 남는다는 사카린과 스카프가 있고, 한 개를 팔면 1년 치 생활비가 나온다는 세이코 시계도 있다.
 
  소비자가 북한 주민이라는 점이 동업의 배경이지만, 이것이 함정으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물건 먼저, 돈은 나중에’라는, 북한 특유의 고급품 거래 방식 때문이다. 금액이 커지면 욕심이 커지고, 욕심이 커지면 사고가 나는 법이다. 북송교포 대부분은 그래서 크든 작든 친하게 지내던 북한 사람들에게 사기당한 경험이 있다. 사기 사건은 때론 1990년대 역사유적보존사업소장 일가족 자살사건 등 비극적인 단계로 커지기도 한다. 피해자인 북송교포들이 돈보다 배신감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북송 재일교포 출신 탈북자 가와사키 에이코(왼쪽) 씨는 2015년 12월 14일 일본 도쿄 도심 조총련 본부 앞에서 “동포들을 속여 북한에 보낸 조총련은 사죄하라”는 1인 시위를 벌였다. 사진=조선DB

 

 위 일화는 평양으로 배치된 상류층 북송교포에 해당하는 사례다. 지방으로 배치된 교포의 생활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북송교포의 약 20%는 일본에서 기초수급을 받던 사람들인데, 북한 당국은 이들을 노예나 다름없이 취급했다. ‘어버이 조국’은 그들의 믿음을 철저하게 배신했다. 지방에 배치된 북송교포 이야기는 기회를 보아 다음에 말씀 올리겠다.
 
  해방 후 일본에 남은 교포 인구는 약 60만명. 그중 9만명 넘는 인원이 북송선에 올랐으니, 재일교포는 거의 모두 북한에 직계 가족이 있는 셈이다. 조총련 최상부에 끈이 있는 극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북송교포는 24시간 감시와 차별에 시달렸다. ‘자본주의 물을 먹어본 사람들’은 김씨 일가에겐 그 자체로 위험분자였기 때문이다.
 
  재일교포 대부분이 남쪽 출신이라는 사정도 탄압을 정당화하는 구실이었다. 6·25전쟁 당시 거제도 포로수용소 생활을 하다 북행(北行)을 택한 인민군 포로들조차 ‘자본주의 물’을 먹었다며 잔인하게 짓밟은 사회가 전체주의 북한이다. 하루아침에 일가족이 수용소로 끌려가는 일은 북송교포 사회에선 그래서 희귀한 일이 아니다. 평양 부자 동네에서 오지로 추방되고 출신 성분이 격하되는 것을 ‘자유낙하(自由落下)’라고 한다.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려면 밧줄이 필요한데, 그냥 밧줄은 곤란하고 ‘황금 밧줄’이어야 한다. 그렇다. 북한 당국자들에게 북송교포는 ‘현금을 빨아들이는 인질’일 따름이었다.
 
  김씨 일가가 ‘자본주의 물’을 무서워하는 이유가 있다. ‘돈의 힘’도 문제지만, ‘자유로운 생각’을 하는 사람은 더 큰 문제다. 세뇌(洗腦)를 벗어난 사람은 언제라도 독재를 겨누는 뇌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1960년대 말 평양 항의시위, 1972년 검덕광산을 방문한 김일성 앞 시위 등 전설처럼 전해지는 일화는 북송교포들이었기에 가능한 ‘의견 표출’이었다.
 
  북송교포가 내는 ‘개인적 의견’은 북한 사회에 미묘한 틈을 만든다. 미묘한 틈은 언제라도 더 큰 균열을 만들 수 있다. 때를 만나면 이미 갈라진 틈 사이로 무엇이 얼마만큼 어떻게 분출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글 : 장원재  장원재TV 대표  

 

 

월간조선 06월 호

[단독] 북한 '석탄 대부'로 불리던 최병호 '조선수림무역' 사장 사형

대북 제재와 코로나19로 돈줄 끊긴 김정은, 공작 자금에까지 손대

/사진=유튜브 캡쳐.(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북한의 '석탄 대부'로 불리는 최병호 '조선수림무역' 사장이 최근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은이 최근 외화벌이 중이던 최병호 '조선수림무역' 사장에게 방역법 위반을 뒤집어씌워 교수형에 처했다"며 "표면적 이유가 방역법이지, 실제론 자신에게 직접 자금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북 제재와 코로나19로 사실상 돈줄이 끊겨 '돈주(북한의 현금자산이 많은 부자)'들을 죽여 압류한 재산으로 비자금을 조성하는 김정은이 외화벌이 공신 중 한 명을 자신에게 직접 수익을 상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였다는 것이다. 

 

김정은과 북한의 '자금'난이 얼마나 극심한지를 보여준다. 

 

실제 김정은은 비자금 마련을 위해 소위 쌀밥 먹는 사람들은 모두 잡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돈을 압류하기 위해 누명을 씌워 줄줄이 처형, 숙청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병호'란 이름과 '조선수림무역'란 회사는 낯설다. 국내에 공개된 적이 거의 없다. 최병호란 이름은 처음 나올 정도로 베일에 싸인 인물이고,  '조선수림무역'은 2021년 4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 제재위원회가 발표한 전문가패널 보고서에 딱 한 번 거론됐다. 

 

최병호는 북한에서 '석탄 대부'로 불리는 인물이라고 한다. 석탄 수출 등을 통한 외화벌이에 능통, 북한에 많은 돈을 벌어다 줬다고 한다. 

 

제2의 장수길이라 불리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장수길 부부장은 장성택의 최측근으로 당 행정부의 '외화벌이'를 맡아 대중(對中) 석탄 수출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장성택 처형 한 달 전인 2013년 11월 중순 공개 처형됐다. 

 

장수길의 참혹한 처형 장면을 현장서 목격한 장성택은 공포에 떨었다고 한다. 김정은은 장수길을 고사총으로 쏴 죽였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최병호는 지난 2017년 4~10월 8차례에 걸쳐 수십억 원어치 북한산 석탄과 선철 총 4만여 톤을 국내에 불법 반입한 사건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다만 최병호가 실명을 썼을 가능성이 작고,  지휘하는 입장이라 전면에 나서지 않아 그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을 수 있다. 

 

수차례에 걸쳐 북한산 석탄과 선철 약 70억원 어치를 러시아산으로 속여 국내에 밀반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일당은 2020년 12월 30일 대법원에서 실형을 확정받았다.

 

 '조선수림무역'은 통일전선부(통전부) 산하 외화벌이 회사다. 통전부의 주 임무는 남북 관계 총괄이지만 2008년 부터 김씨 일가 비자금 조달을 위해 돈 버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조선수림무역' 또한 돈 되는 사업은 닥치는 대로 하는 회사로 보인다. 유엔 보고서를 보면  '조선수림무역' 유엔 대북 제재 회피를 위해 중국 저장성에 있는 생태, 환경 관련 업체와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이 합작회사는 압록강 변 신의주에서 돼지농사, 모래, 자갈 굴착 등을 하고 있는데 최병호가 '석탄 대부'인 만큼 석탄과 관련한 사업을 했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북한은 석탄 수출을 제한하는 유엔 대북 제재에도, 예외 조항을 이용해 중국에 석탄을 수출하고 벌어들인 돈으로 무기 개발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경제에서 석탄 수출은 가장 중요한 외화벌이 수단 중 하나다.  

 

대북 소식통은 "최병호는 통전부를 통해 김정은에게 외화를 보냈는데, 김정은은 외화를 자신에게 직접 바치기를 바랐다"며 "김정은이 간첩 공작 자금에까지 손댄 것"이라고 했다.  

 

통전부 산하 회사가 벌어들인 외화는 기본적으로 간첩공작 자금으로 사용되는데, 이 자금을 직접 상납하지 않았다고 최고위급을 처형한 것은 김정은이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는 데만 혈안이 됐다는 얘기다. 

 

이 소식통은 "이달 중 열리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또 다른 고위급의 처형이 결정될 수 있다"고 했다. 

 

대북 전문가는 "지난 1월과 2월에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4개월만인 6월에 열리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그만큼 북한 당국이 올해 민생경제 등 대책을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 희생양이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글=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06.23 이상한 나라는 있어도 특별한 경제는 없다

 

2010년대 중반에 김일성대 경제학부 출신의 북한 외무성 관료를 회의에서 만났다. 30대의 그는 영어 구사가 유창했고 담당 분야의 지식도 풍부했다. 회의 후 시내 관광을 위해 버스를 탔을 때 그의 옆자리에 동석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물었다. “경제학부에서 ‘수요와 공급’에 대해 배웠습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주로 뭘 배웠습니까.” 그가 답했다. “주체사상에 근거한 우리 북조선 경제가 얼마나 특별하며, 얼마나 많은 발전을 이룩했는지 배웠습니다.” 필자에겐 이 말이 경제에 관해 정말 필요한 지식은 전혀 배우지 못했다는 고백처럼 들렸다.    

사회주의 경제학은 이념의 도구
경제 이해와 정책에 도움 못 돼
김정은의 무지가 택한 자력갱생
경제난 키울 뿐, 협상 이외 길 없어

학문에서 남북 간 수준 차이가 가장 큰 분야는 경제학일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경제학은 사회를 분석하는 도구라기보다 이념을 옹호하는 프로파간다에 가깝다. 경제학을 배워도 경제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는 의미다. 통일 이후 동독에선 서독 출신 경제학자 수요가 급증했다. 경제학이란 이름으로 사회주의 이념을 가르치던 동독 대학 교수들을 한꺼번에 내보내고 서독의 경제학자로 대체해야 했기 때문이다. 시장경제로 이행하던 러시아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자본주의로 접어든 후에도 여전히 마르크스 경제학을 가르치던 모스크바국립대의 명성은 떨어졌다. 반면 고등경제대학이나 신경제대학처럼 젊은 러시아 학자나 외국 연구자를 교수로 채용한 신생 대학의 경쟁력은 치솟았다.
 
경제에 대한 무지가 북한을 더 큰 위기로 내몰고 있다. 제재 전 북한경제는 이름만 사회주의지 실상은 무역과 시장에 절대적으로 의존했다. 원부자재, 기계 장비, 부품을 수입해서 공장 가동률을 높였다. 무역으로 외화를 벌고 소비재도 수입하니 시장이 발전했다. 그러면서 무역과 시장이 선순환했다. 이 모든 것이 경제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줄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제재와 코로나 사태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김정은은 과학기술로 자력갱생하겠다며 무역과 시장을 옥죄고 있다. 방역도 한 이유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어떻게 단시간에 발전할 수 있나. 수입 차단으로 망가진 공급망이 어떻게 갑자기 메워지나. 거꾸로 가는 정책 때문에 주민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있다.
 
김정은은 계획경제를 복원해 생산량을 끌어올리려 한다. 이를 위해 올 상반기 동안 세 번이나 전원회의를 했다. 그러나 계획경제는 성긴 그물과 같아서 인간의 재빠른 욕망을 가둘 수 없다. 2월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은 전력과 건설 부문 목표생산량은 터무니없이 낮고, 농업의 생산목표는 크게 부풀려져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는 기업의 지극히 합리적인 행동이다. 발전량과 아파트 건설 물량은 속이기 어려워 목표를 너무 높게 잡으면 달성하기 힘들다. 반면 농업은 생산량을 고의로 부풀리더라도 적발될 가능성이 낮다. 특히 더 많이 생산하라고 다그치면 기업은 양만 채우려 하지 제품의 질에는 관심 쓰지 않는다. 결국 물건을 만들었지만 쓸 만한 제품은 없는 셈이다. 소련에서도 이런 ‘서류로만 존재하는 성장’이 많았다. 지난주 3차 전원회의에서 발표된 내용 중 상반기 공업총생산액이 전년 대비 125%로 증가했다는 수치도 기업과 관료의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한참 부풀려졌을 것이다.
 
김정은은 제재를 뚫고 핵보유국이 되기 위한 핵심으로 자력갱생을 택했다. 특히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의 목표가 완전한 비핵화임을 확인한 그는 어떻게든 경제를 회복시켜 미국이 북한 핵 보유를 현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려 한다. 자력갱생에 사활을 건 셈이다. 그러나 그는 틀렸다. 자력갱생은 경제학 족보에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학문은 축적된 경험을 엄밀히 분석해 무엇은 되고 무엇은 되지 않는지 판별한다. 그 학문이 김정은에게 자해(自害)적인 자력갱생의 헛된 꿈을 버리라고 말한다. 이상한 나라는 있어도 특별한 경제는 없다.
 
북한이 전술적으로 자력갱생을 택했을 수도 있다. 장기간은 버틸 수 없음을 알지만 당분간 버티는 척해서 미국을 기만하려는 발상이다. 그러나 경제를 제대로 배운 한국과 미국의 전문가는 북한의 이 노력이 허풍임을 쉽게 간파한다. 북한의 전술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결국 무지든, 전술이든 벼랑 끝에 서게 될 쪽은 북한이다. 그 지점에 이르면 김정은의 정권 유지도 장담할 수 없다. 더 현명한 길은 학문의 가르침을 따라 벼랑 끝을 딛기 전에 협상에 나오는 것이다.

 

위기의 경고등은 켜졌다. 지난주엔 2013년 이래 처음으로 일부 지역에서 쌀과 옥수수 가격이 두 배 올랐다. 일부 수입 소비재 가격이 10배나 치솟았다는 보도도 나왔다. 반면 달러나 위안화 대비 북한 원화는 오히려 크게 절상되는 혼란이 벌어졌다. 무역과 산업에다 시장마저 흔들리는 조짐이다.
 
자력갱생은 무역과 산업을 망가뜨린다. 주민의 생존 터전인 시장을 파괴한다. 독재정권이라 하더라도 시장을 없애고 사회주의 계획으로 돌아가려면 엄청난 강제력을 동원해야 한다. 김정은에게 과연 그런 힘이 있을까. 그의 무지가 만들어내는 혼란과 위기의 끝은 어디일까.     
중앙일보 김병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장·경제학부 교수

 

06.28 140㎏ 김정은 '살까기 통치'···"수척해져 가슴 아프다"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체중 감량을 공개적으로 알렸다. 

/지난 18일 폐회한 노동당 전원회의에 참석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이전보다 살이 빠진 모습이다. [조선중앙통신]

 

/ 지난 2월 노동당 8기 2차 전원회의에 참석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조선중앙통신

140㎏ 김정은 최근 감량, 북 주민 "가슴 아파"
관영 매체 통해 '수척해진 모습' 대놓고 인정
식량난 해결 나선 최고존엄의 고심 보여주기
평소 과체중, 이번엔 건강 관리 감량 가능성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 25일 김 위원장이 관람한 국무위원회 연주단 녹화 방송을 내보냈는데, 공연을 시청한 북한 주민이 김 위원장의 ‘수척한 모습’을 걱정하는 인터뷰를 담았다. 공연장에 모습을 드러낸 김 위원장을 보고 “경애하는 총비서 동지(김정은)께서 수척하신 모습을 볼 때 인민들은 제일 가슴 아팠다”는 내용이었다.  
 
지난달 한 달여 공개활동을 중단했다 6월 4일 정치국 회의에 등장한 이후 김 위원장의 체중 감량과 관련한 관측이 이어졌다. 특히 지난 15일부터 나흘 동안 진행된 전원회의(8기 3차)에 참석한 김 위원장의 밀착 사진을 본 일부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손목에 착용한 시곗줄 3칸이 줄었다”거나 “얼굴살이 빠져 턱선이 생겼다”는 분석을 내놓곤 했다. 북한이 관영 매체를 통해 “수척해졌다”는 언급을 하면서 공식적으로 그의 감량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정보 당국은 감량 이전 김 위원장의 몸무게를 140㎏ 안팎인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그가 이번에 얼마나 감량했는지는 구체적으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또 김 위원장이 의도적으로 살을 뺐는지, 건강 이상의 신호인지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단, 전원회의 내내 김 위원장이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기 보다는 의도적인 다이어트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그의 감량 배경과 관련해선 건강 관리 차원일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전직 정부 고위 당국자는 “평소 술과 담배, 야식을 즐기는 김 위원장이 과체중으로 인한 성인병을 앓을 가능성이 있다”며 “아직은 젊은 나이여서 견딜수 있지만 심장병과 뇌출혈을 일으킨 할아버지(김일성)와 아버지(김정일)의 가족력을 고려해 주변에서 체중감량을 조언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과 올해 3월, 6월 김 위원장이 같은 손목시계를 착용하고 나온 모습. [조선중앙통신 캡처·nknews.org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당시 함께 걸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정상적인 호흡과 달리 김 위원장은 숨을 헐떡이며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익명을 원한 고위 탈북자는 “김 위원장은 집권 직후 북한 주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할아버지의 풍채를 흉내내려는 차원에서 급격히 살을 찌웠다”며 “집권 10년차를 맞으며 홀로서기에 나설만큼 지도자의 위상을 굳혔고, 건강을 고려해 북한에서 ‘살까기’라고 부르는 다이어트에 나선 것 같다”고 전했다.  
 
최근 북한의 어려워진 식량 사정을 고려해 주민들과 고통을 나눈다는 메시지 발신용이란 지적도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5일 전원회의 개회식에서 “지난해 태풍피해로 알곡생산 계획을 미달해 인민들의 식량 형편이 긴장해지고(어려워지고) 있다”며 식량난을 언급했다. 북한은 김일성 시대때부터 “최고지도자가 불면불휴(不眠不休)하며 인민들을 보살핀다”는 주장을 하곤 했다. 
 
식량 사정이 곤란하다고 밝힌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살까기’를 통해 수척해진 모습은 격무와 인민 생활 향상을 위한 ‘흔적’일 수 있다. TV에 등장한 북한 주민이 “가슴 아팠다”고 언급한 대목이 이를 뒷받침 한다.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는 “북한은 당의 정책이나 지도자를 통한 메시지 전달을 위해 신문과 방송을 활용하곤 한다”며 “노동당 선전선동부에서 사전에 검열하는 관례를 고려하면 이날 방송 역시 김 위원장의 감량을 주민들에게 알리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06.30 北 코로나 터졌나···김정은 대노 "방역 태만, 중대사건 발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부문에서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다며 간부들의 무능과 무책임을 질타했다.
 
조선중앙통신은 3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일부 책임간부들의 직무태만 행위를 엄중히 취급하고 전당적으로 간부 혁명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기 위해 29일 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확대회의를 소집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확대회의를 주재하며 “책임간부들이 세계적 보건 위기에 대비한 국가비상방역전의(…) 당의 중요 결정 집행을 태공함으로써 국가와 인민의 안전에 커다란 위기를 조성하는 중대 사건을 발생시(켰다)”고 비판했다. 이어 “중대과업 관철에 제동을 걸고 방해를 노는 중요 인자는 간부들의 무능과 무책임성”이라며 “현시기 간부들의 고질적인 무책임성과 무능력이야말로 당정책 집행에 인위적인 난관을 조성하고 혁명사업 발전에 저해를 주는 주된 제동기”라고 거듭 비판했다.
 
또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과 정치국 위원, 후보위원을 소환·보선했으며 당 중앙위원회 비서도 소환·선거했다. 다만 구체적인 인사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또 “인덕정치와 포용정책은 결코 간부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근로 인민대중에게 해당하는 정책”이라며 “일하는 흉내만 낼 뿐 진심으로 나라와 인민을 걱정하지 않고 자리 지킴이나 하는 간부들을 감싸줄 권리가 절대로 없다”고 강조, 간부들에 대한 강한 통제와 처벌 원칙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간부들 속에 나타나는 사상적 결점과 온갖 부정적 요소와의 투쟁을 전당적으로 더 드세게 벌일 (것)”이라며 “지금이야말로 경제 문제를 풀기 전에 간부혁명을 일으켜야 할 때”라고도 말했다.  ◎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