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安保20/ 2021.
05.01 천안함·세월호 구조대장 ”특검에 모멸감, 이런 세상 싫어 그간 침묵”
[최보식이 만난 사람] 천안함과 세월호 현장의 증인, 김진황 前 해난구조대장
/천안함 폭침 현장에서의 김진황 전(前) 해군 해난구조대장
세월호 참사 후 7년간 9번째 진상조사를 벌일 ‘세월호 특검’이 임명됐을 때다. 누군가 내 휴대폰으로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저는 천안함과 세월호 현장에서 발로 뛰었습니다. 천안함에서는 55일간, 세월호에서는 84일간 현장에서 온몸으로 부딪쳐가며 살았는데 결국 얻은 것은 그 당시 받았던 스트레스로 인해 심장병이 발병했고, 2017년 7월 아산병원에서 심장을 열어 수술을 받고 다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는 김진황 전(前) 해군 해난구조대장이었다. 해사 40기인 그는 34년간 군 생활의 절반을 특수부대인 해난구조대(SSU)에서 근무했다. 천안함(2010년) 사건 현장에서는 수심이 훨씬 깊었던 선미(船尾) 수색을 맡았고, 세월호(2014년) 현장에서는 해군 책임관으로서 유족들 앞에서 수색 상황을 브리핑하는 임무를 담당했다. 작년 2월 대령으로 전역했다.
통화를 하니 그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정말 이 정부, 말도 안 되는 논리와 이야기로 세상을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국민을 기만하고 있습니다. 군복 입었던 사람의 서글픔이라고 할까요. 제복 입은 사람은 죄가 있어서 말을 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 단지 복잡한 것이 싫어서, 이런 세상이 싫어서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요.”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장을 준 이현주 세월호 특검은 민변 출신에다 대전시 정무부시장를 지낸 친여(親與) 인사이더군요.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습니다. 대체 몇 번째입니까. 현장에 있었던 군인으로서 정말 모멸감을 느낍니다. 군에 치욕을 주는 겁니다. 당시 선체 수색을 직·간접적으로 도와준 민간 업체 관계자나 잠수사들까지 불러가 조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게 나라입니까. 이런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지 못할망정…, 자발적으로 도와주고 나니 마치 흑막이 있는 것처럼 조사받고 매도됐어요. 앞으로 누가 나라를 위해 나서겠습니까.”
-현 정권에서 검찰특수단이 구성돼 이미 1년 넘게 총 201명이나 조사했지요. 올 초 검찰특수단은 여러 제기된 문제에 대해 ‘유족이 실망하겠지만 되지 않는 사건을 억지로 만들 수는 없다’며 무혐의를 발표했습니다. 그걸로 끝날 줄 알았지만 다시 특검이 시작됐군요.
“저쪽에서 VDR(항해기록 저장장치)를 조작했다느니 하는데, 그걸 건졌던 친구가 몇 번 조사받았다고 들었습니다. 머리에 피가 확 치밀어 올랐습니다. 어떻게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 그걸 다 보고 바꿔치기를 합니까. 공상과학 소설도 그렇게 쓸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조사했으면 저쪽 말대로 어느 누군가가 나와서 양심선언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천안함과 세월호 사건 현장 양쪽에 모두 있었다고 했지요?
“군인은 명령에 따라 죽고 삽니다. 해난구조대는 이런 사건·사고 현장에서 작전하는 부대이고, 임무가 주어지면 행하는 게 군인입니다.”
-시간 순으로 천안함 사건부터 얘기합시다. 폭침 당일 무얼 하고 있었지요?
“진해에서 미군과 연합훈련을 하다가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날 밤 출동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현장에서 UDT는 천안함 함수(艦首)를, 제가 지휘하는 SSU 부대는 더 깊은 수심에 위치한 함미(艦尾) 수색 책임을 맡았습니다.”
-그냥 역할 분담입니까, 두 특수부대 간에 기능적 차이가 있는 겁니까?
“평소 두 부대의 훈련이 다릅니다. UDT는 침투 부대여서 잠수도 수심 20m 이내에서 합니다. 구조 전문은 SSU입니다. 천안함 함수는 수심 18m, 함미는 수심 48m 아래에 있었습니다.”
-수심 48m이면 까마득한 거리인데?
“이런 심해에는 바깥과 연결된 호수로 공기를 주입하는 ‘SSDS(표면공기공급방식)’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조류가 너무 센 데다 바닥이 굵은 자갈밭이어서 앵커를 박아 고정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그걸 포기하고 공기통을 메는 스쿠버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쿠버의 한계는 수심 40m입니다. 부하 대원들이 바다 속으로 집어넣고서 다시 나올 때까지 저는 초긴장 상태였습니다. 정말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습니다. 부하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모두 제 책임이었습니다. 나중에 작전이 끝난 뒤 저는 불러가 ‘스쿠버 잠수의 한계 수심은 40m인데 왜 집어넣었느냐’고 감사(監査)를 받았습니다.”
-천안함 수색 과정에서 UDT 한준호 준위가 사망했는데?
“함수 수색을 맡았던 한준호 준위가 숨졌지요. 규정대로 하면 침투 부대인 UDT는 구조작전에 투입돼서는 안 됩니다. 불가피한 상황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당시 3월 날씨가 너무 추웠어요. 바닷속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니 감기 걸린 대원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생존자가 있을지 모른다고 시간에 쫓겨 야간 다이빙까지 해야 했습니다. 현장에서는 군 상부와 여론의 압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인명 구조를 나갔다가 오히려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것만큼 안타까운 장면이 없습니다.
“이대로 계속 가면 우리 대원들에게 불상사가 생길 것 같았습니다. 부하들을 죽여가면서 이 임무를 맡고 싶지 않았습니다. 전대장을 찾아가 대원들의 어려움을 보고하니, ‘너희는 죽기라도 했어. 죽을 때까지 해!’라는 호통이 돌아왔습니다. 전대장도 상부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었을 겁니다. 저는 경례를 하고 돌아서 나왔습니다. 상사급 이상 대원들을 모아놓고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이틀 뒤 천안함 승조원 김태섭 상사의 시신이 발견되자, 실종자 가족들이 ‘위험하니 이제 수색을 중단하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혹시라도 살아있을 걸로 믿었는데 현실을 받아들인 겁니다. 그 뒤 수색을 중단하고 민간 업체가 주도하는 인양작전으로 넘어갔습니다.”
-천안함 루머와 음모론은 끊이질 않았지요. 한 달 전 천안함에 대해서도 재조사 결정을 했다가 번복했지요.
“저는 사람 목숨을 구하는 부대에서 근무해왔지만, 그 따위 음모론을 제기하는 인간이 눈앞에 보이면 정말 죽이고 싶습니다.”
-천안함의 폭침 증거인 북한 어뢰 잔해물을 현장에서 봤습니까?
“UDT를 지휘하는 해사 2년 후배인 권영대 중령이 ‘이상한 물건이 올라왔다’고 보고했습니다. 저는 김정두 제독, 국방부 헌병단 조사관과 함께 현장에 가서 그걸 봤습니다. 저는 합참 근무 시절 2년간 해군 무기체계를 담당했고 김정두 제독은 잠수함 함장을 했기에. 그게 북한 어뢰 잔해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해 국방부와 조선일보가 주는 ‘위국헌신상’을 수상했더군요.
“군인으로서 주어진 임무를 했던 것뿐입니다. 2010년 그해는 유독 해난사고가 많았습니다. 4월에는 해군 링스 헬기가 소청도 인근에 불시착했어요. 천안함 사건 현장에 있다가 출동했습니다. 6월에는 강릉 앞바다에 추락한 공군 F-5 전투기 인양 작전을 지휘했습니다. 11월에는 제주 근해에서 해군고속정이 트롤 어선에 받혀 침몰해 두 명이 숨졌습니다. 해저 117m에 가라앉아 있어서 인양 작전을 하느라 40일 넘게 바다에 있었습니다.”
-그 뒤 스트레스로 심장병이 생겼다고 했나요?
“그해 말 복귀한 뒤 부대원들을 격려하려고 돼지 세 마리를 사서 파티 준비를 지시했어요. 그러고는 부대 뒷산을 오르는데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내려오니 멀쩡했습니다. 그 뒤 그런 증상이 두세 번 일어났습니다. 병원에 가니 ‘원인은 모르겠지만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다’며, 혈관이 막히는 것을 막는 니트로글리세린을 처방해 줬습니다. 그때부터 이 약을 계속 복용하게 됐습니다.”
그의 부대는 2012년 말 북한이 쏜 장사정 미사일의 잔해가 서해안에 떨어졌을 때 그걸 수거해 돌아왔다. 해난구조대장으로서 임무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는 몸 상태가 됐다는 걸 느꼈다. 전근을 자청해 제주방위사령부로 옮겨갔다.
/세월호 구조 현장에서.
“세월호 사건이 터지자 제주도에 있는 제게 연락이 왔습니다. 헬기를 보내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번에는 진도 팽목항 세월호 현장에 있게 된 겁니다.”
-그때는 해난구조대장이 아니었는데, 세월호 현장에서의 역할은?
“해경에는 심해 구조작전을 아는 이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저는 해경청장을 보좌하기 위해 해경함에 탔습니다. 해경과 해군, 민간 잠수사들 간의 임무 조율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해경차장이 유족들에게 브리핑하다가 봉변을 당하자, 내게 그 임무를 맡겼습니다.”
-어린 자녀들을 잃어 슬픔으로 거의 실신상태였던 유족들 앞에 선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요. 당시 기사를 보니까 김 대령의 브리핑은 유족들의 신뢰를 얻은 걸로 나오더군요.
“저는 브리핑에서 거짓말을 안 했습니다. ‘생존자가 있을 수 있다’는 식으로 헛된 기대를 주면 안 되는 겁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바닷속에 들어갈 수 없을 때는 들어갈 수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왜 그런지 안 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당시 몸 상태는?
“어떨 때는 계단을 못 오를 정도로 힘들었고 어지러웠습니다. 약도 다 떨어졌습니다. 독도함에 근무하는 후배에게 ‘니트로글리세린을 타 달라’고 했습니다. 후배가 약을 갖고 와서는 ‘군의관 말로는 이 약을 먹는 사람은 현장에 있어서 안 된다고 합니다’라고 걱정했습니다. 제가 ‘나도 안다. 받은 임무인데 어떻게 하겠나. 버틸 때까지 버텨보겠다’고 말했습니다. 8월 7일까지 현장에 있었습니다.”
-근무 혹사와 심장병과 확실히 인과 관계가 있다고 봅니까?
“세월호 현장에서 돌아온 뒤 서울 아산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습니다. 비후성 심근경색이라고 했습니다. 선천적이면 20대에 발병하는데, 젊은 시절 SSU 훈련을 받아도 끄덕없었습니다. 가족·형제 중 누구도 이런 병이 없습니다. 술 담배도 안 하니, 결국은 극심한 스트레스가 발병 원인이었지 않을까요. 7시간 반에 걸친 심장 수술을 마치고 나왔을 때 집사람이 울고 있었다고 나중에 들었습니다.”
-34년 군 생활을 마치고 나오니 어떤가요?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제가 군에서 중요한 임무를 맡아 할 수 있었던 게 고마웠고, 다른 한편으로 살아서 전역한 것도 고맙게 생각합니다.”
조선일보
05월 03일 김여정 ‘하명 수사’ 접고 對北전단금지법 폐지해야
북한 주민들이 진실과 자유를 접하는 통로인 대북(對北) 전단에 대한 북한 정권의 협박에까지 문재인 정부는 또 맞장구를 치고 있다. 대북전단금지법의 지난 3월 30일 시행 후 처음으로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지난달 25∼29일 진행한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김창룡 경찰청장은 2일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통일부도 “경찰이 전담팀을 구성한 만큼, 개정된 남북관계발전법(대북전단금지법)이 확실히 이행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 김여정이 탈북민 단체의 전단 살포를 “쓰레기들의 준동” 운운하며 “후과에 대한 책임은 통제를 바로 하지 않은 남조선 당국이 지게 될 것”이라고 으른 직후의 문 정부 대응으로, 황급하게 김여정 ‘하명(下命) 수사’에 나선 셈이다. 최대 징역 4년에 처하도록 한 금지법은 지난해 6월 4일 “나는 못된 짓을 하는 놈보다 못 본 척하거나 부추기는 놈이 더 밉더라. 남조선 당국이 저지할 법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한 ‘김여정 하명’에 따른 입법이었다. 국제사회가 한국을 인권침해국으로 낙인찍은 이유다. 미국 연방의회의 초당적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도 지난 14일 청문회를 열어 재개정을 촉구한 배경이다.
정상 정부라면 대북 전단 살포는 수사·처벌이 아니라 보호·지원의 대상이다. 하지만 문 정부는 ‘남북대화 쇼’ 구걸을 위해 끝없이 김정은 정권에 굴종하다 못해, 참혹한 인권 유린 공범이 되기까지 한다. 대북 전단 수사는 접고, 악법 폐지를 문 정권 차원에서 이제라도 서둘러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5월 03일 사드 ‘고의 늑장’ 의혹과 동맹 균열
고성윤 한국군사과학포럼 대표
경북 성주의 사드 배치 갈등으로 한·미 동맹의 정신과 가치가 바탕부터 훼손되고 있어 안보 기반이 위협받기에 이르렀다. 1953년 휴전 후 북한의 남침과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지금까지 북한의 크고 작은 군사도발에 효과적으로 대응해왔으며, 지금은 북한 비핵화 전반에 걸쳐 핵심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미 간 불협화음이 빈번히 발생한다는 점이다.
훈련장이 없어 미군은 전례 없이 실사격 훈련을 하지 못해 대비 태세에 구멍이 난 상태라 한다. 올해 연례적 연합훈련도 전구급 야외기동훈련(FTX)이 생략된 채 컴퓨터 시뮬레이션 위주의 연합 지휘소 모의훈련으로 대체된 바 있다. 오죽하면 훈련 방식에 대해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이 불만을 토로했겠는가. 한·미 동맹 정신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는 야전 지휘관들의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병력 투입 없는 모의훈련이나 반격작전 없는 방어 위주의 훈련만 해서는 동맹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최근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정부가 상식 밖의 행태를 자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황상 국방부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총대를 멘 모양새이긴 하나 군사비밀로 다뤄야 할 내용을 시민단체에 미리 알려주는가 하면 환경영향평가라는 구차한 핑계를 대며 사드 기지의 정상화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드 발전기 등 장비 반입 하루 전 일정과 동선을 공개하는 등 정부가 시민단체 시위를 은근히 부추기거나 내심 사드 배치를 지연시켜 포기시킬 요량은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든다. 장비 반입 당일인 4월 28일 사드 반대 시위대가 기지 앞에 미리 진을 친다는 것이 충분히 예견된 일이어서다. 군용장비 운송용 트럭 40여 대를 가로막아선 시위대와 경찰력의 밀고 당기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동맹국에 어떻게 비쳤을지 창피할 따름이다. 치누크 헬기로 장비를 운송하면 될 일을 굳이 트럭을 사용한 이유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국방부가 미군 측과 사전 협의했다는데 미군으로선 황당했을 법하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할 사드는 우리의 사활적 이익을 보호하고 한·미 연합전력 생존을 담보할 당연한 자위적 조치다. 사드 기지는 중국으로 하여금 북핵 해결에 나서라는 촉구이기도 하다. 그런데 중국은 사드카드를 활용해 한·미 동맹을 흔들고 한국을 한·미·일 협력체에서 빼내겠다는 계산이나 하고 있다. 사실 중국에 사드는 위협이 아니다. 한국을 압박할 수 있는 좋은 공격수단일 따름이다. 사드가 아니더라도 중국의 미사일 움직임을 탐지하거나 요격할 수단을 미국이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중국도 잘 알고 있다.
사드 배치는 중국과 북한 눈치를 볼 사안이 아니다. 국가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냉철하게 봐야 한다. 기지 인근 주민들도 어려운 안보 상황을 이해하고 동참해야 한다. 대한민국 어느 곳, 누구에게도 안보 무임승차는 없다. 사드로 인한 사회 혼란과 민군 갈등은 중국과 김정은이 환영할 일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중국과 북한 위협에 당당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굳건한 한·미 동맹이며 한반도 안보의 첨병은 막강한 한미연합군의 억제력임을 망각해선 안 된다.
문화일보
05.04 北 피살 공무원 ‘직접 챙기겠다’던 분 어디 계십니까
[동서남북] 작년 9월 北에 피살된 공무원, 법적으론 지금도 ‘실종 상태’
어떤 가족은 버려도 되는가 국가가 왜 책임을 회피하나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 걸려 있는 '송혜희 좀 찾아주세요!' 현수막. 실종된 지 22년 됐지만 아버지는 아직도 딸을 찾고 있다. /박돈규 기자
선거가 끝나자 이 현수막이 눈에 밟혔다. 광화문 사거리부터 종각까지 3개나 보였다. “실종된 송혜희 좀 찾아주세요!” 허공에 걸린 이 외침은 “(시장으로, 국회의원으로, 대통령으로) 저를 뽑아주세요!” 따위와는 견줄 수 없을 만큼 절박하다.
가정의 달이 되면 실종자 가족은 더 괴롭다. 딸을 잃어버린 아버지 송길용(68)씨는 22년이 지나도록 송혜희를 찾고 있다. 현수막이 깨끗한 까닭은 주기적으로 점검하며 고쳐 달기 때문이다. 작년 5월에 만난 송씨의 트럭에는 딸 사진(현재 모습 추정)을 실은 전단 뭉치가 수북했다. 그만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묻자 “몸이 허락하는 날까지는 해야죠. 내가 아빠잖아요”라고 했다.
“주변에서 ‘집착을 버리라’고 하지만 이걸 해야 마음이 편해요. 그래야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제일 고마운 게 뭔지 아세요? 전국 어딜 가도 현수막을 함부로 떼지 않아요. 총선, 대선이 있어도 ‘송혜희 좀 찾아주세요’를 피해서 현수막을 겁니다. 그걸 보며 생각해요. 다들 자식 키우는구나. 딸 잃은 부모의 애통한 심정을 헤아려주는구나···.”
인지상정 두 가지를 읽을 수 있다. 딸을 상실한 아버지가 짊어진 ‘책임감’, 그 가족을 향해 우리가 느끼는 ‘마음의 빚’이다. 그런데 국가가 국민을 잃고도 책임을 회피하는 야만적인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9월 서해에서 북한군에게 피살돼 시신이 불태워진 해양수산부 공무원은 법적으론 지금도 ‘실종 상태’다. 그의 딸(9)은 아빠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9월 서해상에서 북한군에게 피살돼 시신이 불태워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씨의 아들이 쓴 편지. 가족은 물론 동료들도 피해자가 월북할 사람이 아니라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내가 직접 챙기겠다”고 답장했지만 아직까지 밝혀진 진실은 없다. /이래진씨 제공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무너져요. 동생이 원양어선을 조사할 때 몇 달씩 집을 비운 적이 있어 ‘해외 출장 중’이라고 했대요. 끔찍하게도 이 정부는 골든타임 때 동생을 구조하기는커녕 월북자로 몰아갔습니다. 이야기를 꾸미려면 기승전결이 필요한데 기승전은 없고 월북이래요. 조용히 덮자고 입을 맞췄는지, 의문을 제기해도 해경이나 통일부나 청와대나 응답이 없습니다. 오죽하면 미국 대통령과 유엔에 진상 조사를 요청하겠습니까?”
실종 공무원의 형 이래진씨는 며칠 전 통화에서 “국가는 나 몰라라 하고 시신도 없어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며 울분을 토해냈다. “작년 10월 고교생인 조카(실종 공무원의 아들)가 보낸 편지에 문재인 대통령이 ‘내가 직접 챙기겠다’고 했지만 6개월이 지나도록 북한 눈치나 보면서 아무것도 규명한 게 없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억해야 하는 국민, 망각해도 되는 국민이 따로 있나? 대통령은 올해 서해수호의 날 기념사에서 “지난 4년간 서해에서 무력 충돌이나 군사적 도발로 다치거나 생명을 잃은 장병이 한 명도 없다”고 말했지만 경계 실패로 북한 해역에서 우리 국민이 사살된 일은 언급하지 않았다. 7년이 지난 세월호 사건은 인양해야 할 진실이 더 있는 것처럼 재조사하고 우려먹으면서, 지난가을 북한이 저지른 만행에는 진상을 밝히려는 노력도 진심 어린 사과도 없다. 김정은이 보냈다는 통지문 한 장으로 퉁칠 모양이다.
지난 재·보궐선거 때 더불어민주당은 ‘사람에 투표해 주십시오’라는 홍보물을 만들었다. 판세가 아무리 불리해도 그렇지 ‘사람 vs 사람 아님’의 갈라치기는 엽기적이었다. 집권 여당이 패했으니 ‘사람도 아닌 것들의 승리’인가?
인권 변호사 출신으로 ‘사람이 먼저다’를 외쳤던 나라님에게 묻고 싶어진다. 측근과 북한에 대해서는 그토록 안타까워하면서, 억울하게 피살된 국민에게는 왜 책임감도 마음의 빚도 느끼지 못하느냐고. 정치적 실익이 없는 인권은 인권이 아니냐고. 어린이날 아빠를 기다리는 아홉 살 소녀에게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서해에서 북한군에게 피살된 공무원의 형 이래진씨가 지난해 11월 열린 제17차 북한자유이주민 인권을 위한 국제의원연맹(IPCNKR) 총회에서 이 사건의 의혹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정부가 동생이 월북했다는 증거를 내놓지도 않은 채 사생활을 폭로하는 2차 가해(인격 살인)를 했다고 그는 말한다. /뉴시스
조선일보 박돈규 기자
05.05 北 핵·탄도미사일에 대한 우려는 이제 美·日만 한다
미 국무부가 3일 미·일 외교장관 회담 결과에 대해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에 관한 우려를 공유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같은 날 열린 한·미 외교장관 회담 결과에선 이 문구가 빠졌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한·미·일 협력”이란 표현만 있었다. 우리 외교부 발표엔 ‘한·미·일 협력’이란 말도 빠졌다. 한국민을 겨냥한 북 핵·미사일 전력은 지금 순간에도 증강되고 있는데 그에 대한 우려는 한국이 아니라 미·일이 했다는 것이다.
지난 4년간 김정은은 핵·탄도미사일 능력을 ‘환골탈태’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발전시켰다. 2019년 ‘비핵화 사기극’이 끝나자 한미 연합군의 요격망을 뚫을 수 있는 신형 탄도미사일 3종 세트를 실험했다. 이스칸데르급 미사일(KN-23)의 경우 하강 단계에서 고도와 궤적을 바꿔 우리 군의 레이더 추적을 두 번이나 피했다. 사거리는 500~600㎞로 제주도까지 타격할 수 있다. 북이 핵을 탑재한 신형 미사일과 방사포를 섞어 쏘면 요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미 핵탄두를 갖고 있고 전술핵 개발까지 공언한 상태다. 그런데도 문 정권은 이런 북의 위협이 마치 없는 듯, 평화가 온 듯 한다.
두 달 전 한미 외교·국방장관 공동 성명에선 ‘비핵화’란 말이 단 한마디도 없었다. “북 핵·탄도미사일 문제가 우선 관심사이고 해결한다”고만 했다. 오히려 미일 외교·국방장관 성명에서 “완전한 북 비핵화”를 명시했다. 5년 전 한미는 핵과 탄도미사일의 완전한 폐기를 촉구하며 “북한 압박”에도 한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북이 수소폭탄까지 성공한 지금은 ‘우려한다’는 말조차 넣지 못한 것이다. 문 정권은 이런 식으로 김정은에게 ‘우리는 미국·일본과 다르게 북한 편에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김정은 쇼'를 한번 더 열어 내년 대선 판을 흔들려는 계산일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5.10 北 정권은 우리의 통일 파트너가 될 수 없다
30년 전 통일 추진 서독 콜 총리
통일 파트너 되자는 동독에
”먼저 민주화부터 하라” 요구
北에 굴종하는 현 정권에 귀감
문재인 정권은 북한 김정은 왕조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한반도 평화와 궁극적 통일로 가는 길이라 믿는다. 표현의 자유도,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도 북한이 싫어하니 잠시 접어두자고 한다. 북한 김여정이 최근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비난하자 철저히 수사해 처벌하겠다며 납작 엎드린 것도 그런 인식에 근거한다.
북한 정권과의 평화에만 집착하는 이 정권의 태도는 30년 전 서독의 통일 접근법과 정반대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동독 정권은 서독에 화폐와 경제 통합을 위한 지원을 요구했다. 당시 서독 총리 헬무트 콜은 이를 거절했다. 동독 정권의 정통성 결여를 지적하면서 “민주화부터 먼저 하라”고 압박했다. 동독 독재자들 눈치 따윈 보지도 않았다. 통일에 소극적이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통일은 동·서독 양쪽 주민의 동의를 받아 민주적으로 추진해야 하는데, 동독 전체주의 독재 정권에는 주민을 대표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콜은 이듬해 3월 자유 총선으로 동독에 들어선 민주 정권을 파트너 삼아 그해 10월 통일을 완성했다.
콜이 이런 원칙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동독 주민들의 확고한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동독인 대상 여론조사에서 “나는 동독인”이란 응답은 30%대에 머문 반면 “나는 독일인”이라는 응답은 60%를 넘었다. 잘사는 서독을 동경해서만은 아니었다. 서독이 베를린 장벽을 넘어오는 동포들을 멸시하거나 배신자로 낙인찍어 추방했다면 “못살아도 동독인으로 남겠다”고 했을 것이다.
서독의 통일 정책은 동독 정권이 아니라 주민들에게 맞춰졌다. 서독 버전의 햇볕 정책이라 할 수 있는 동방 정책도 동독 정권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독인의 인권 보호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추진됐다. 동·서독 정상회담에서 동독 서기장이 인프라 지원과 차관을 요청하면, 베를린 장벽에 설치된 저격용 자동소총 철거라든가 민간 교류 확대 등의 조건을 달아 관철했다.
2차대전 이후 1948년 6월부터 11개월간 지속된 소련의 서(西)베를린 봉쇄 사건도 서방을 향한 동독인의 갈망을 자극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뭉친 서방은 봉쇄를 뚫고 비행기로 생필품을 공수해 서베를린 상공에 뿌렸다. 어린이들에게 과자와 사탕을 보내기 위한 ‘작은 식품 공수 작전’, 크리스마스 선물을 실어 나르는 ‘산타클로스 작전’도 펼쳤다. 이 모든 광경을 동독 주민들이 감탄하며 지켜봤다. 그들은 서쪽 하늘을 새까맣게 덮은 수송기에서 서방의 인권 옹호 메시지를 읽었다. 동·서독 체제 경쟁은 그때 이미 결판난 것이나 다름없다.
대북 전단은 북한 정권과 화해하는 데는 걸림돌이겠지만 북쪽 주민에겐 남녘 동포들이 표현의 자유를 누리며 산다는 사실을 알리는 증거다. 접경지 주민 안전이 우려된다면 비공개 살포를 유도해야지 처벌할 일은 아니다. 김정은 남매와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겐 옛 소련 물리학자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노벨 평화상 수상 연설을 들려주고 싶다. “협력은 평화의 필수 요소다. 그러나 협력은 열린 사회 간의 상호 신뢰에 기반한 것이어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가 이웃의 전체주의 국가에 대해 갖는 두려움 때문에 하는 협력은 굴종일 뿐이다.”
콜 서독 총리가 동독 전체주의 정권을 통일 협상 파트너로 여기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4·27 선언 3주년을 맞아 “북한과 다시 대화할 시간”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다만, 우리의 대화 상대는 전제 왕조가 아니다. 그들과 헛된 협상에 매달릴 게 아니라 북한에 민주적 정권이 들어서도록 지원해야 한다. 한 세대 전 독일 통일 역사가 이미 증명한 사실이다.
조선일보 김태훈 논설위원 논설실 논설위원
05월 12일 부러운 이스라엘 ‘아이언 돔’ 방어와 文정부 反안보
이스라엘이 자국으로 날아오는 로켓포를 ‘아이언 돔’ 체계로 요격하는 사진이 11일 문화일보에 이어 12일 주요 조간신문 1면에 일제히 게재됐다. 미국·일본·영국은 물론 심지어 아랍권 언론들도 그 사진을 보도했다. 국가 안보와 국민 생명 보호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10일 예루살렘을 겨냥해 200여 발의 로켓포를 발사했는데, 90% 이상 요격됐고 인명 피해도 미미하다고 한다. 아이언 돔이 없었다면 수많은 이스라엘 국민이 살상됐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인구 900만 명에 면적은 강원도 크기의 작은 나라다. 일찍이 아이언 돔 개발에 나서 이스라엘 전역을 철통 방어할 수 있게 된 덕분에 하마스 등의 반복되는 도발 속에서도 국민 생명을 보호하면서 경제를 발전시키고 있다. 지난 3월 총선 후 정국 혼미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안보에 있어서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북한과 대치하고, 수도권 전체가 북한 장사정포 공격에 사실상 방어 시스템 없이 노출된 대한민국으로서는 부러운 장면이다.
게다가 북한에 한없이 굴종하며 안보 자해를 일삼는 문재인 대통령과 586 운동권 집권 세력의 반(反) 안보 행태와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더욱 그렇다. 북한이 지난 3월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사거리 600㎞의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밝혀졌다. 장사정포도 끊임없이 개량해 실전 배치하고 있다. 중·단거리 초대형 방사포와 섞어 쏠 경우 대한민국 전역이 사정권에 든다. F-35A 스텔스 전투기가 배치된 청주 비행장과 성주 사드 기지도 파괴된다.
문 정부는 환경 영향평가를 빌미로 사드 정상 가동을 4년째 가로막고, 한·미 훈련마저 컴퓨터 게임 수준으로 형해화했다. 국방부는 한국형 아이언 돔 개발 계획을 발표했지만 제대로 될지 미지수다. 성주 사드 기지를 정상화하고, 아이언 돔을 앞당겨 구축해 방어 공백을 줄여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5월 13일 끝없는 대북 굴종에도 北은 ‘文 사진’ 통째로 잘라냈다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욕설을 퍼붓더니 중요한 사진에서 문 대통령만 통째로 지워버리는 모욕까지 가했다. 북한이 12일 공개한 김정은 ‘대외관계 활동’ 화보집에 문 대통령 모습은 없었다. 2018년 3월부터 2019년 6월까지 여러 정상과의 회동 사진에 설명을 곁들인 이 책자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의 싱가포르·하노이 회담과 판문점 회동 사진 등이 실렸다. 특히, 남·북·미 정상이 함께했던 2019년 6월 판문점 회동 사진을 10장이나 게재했다. 세 정상이 나란히 있는 사진을 실으면서도 문 대통령만 일부러 잘라내 투명인간 취급을 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대외 관계와 대남 관계를 구분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오지만, 북한의 ‘문 대통령 지우기’는 다른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지난해 말 북한에서 발간된 ‘위인과 강국시대’라는 김정은 홍보 책자에도 문 대통령은 없다. 평창올림픽 북 대표단 파견과 남·북·미 판문점 회동을 소개하면서도 문 대통령을 뺐다. 지난해 9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산하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의 김정은 정상 외교 영상에서도 문 대통령은 아예 ‘통편집’됐다.
문 대통령은 2018년 평양 연설 때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닌 “남쪽의 대통령”이라고 낮춰 언급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북한이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해도 침묵하고,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보다 북 심기를 중시하며 대북전단금지법을 옹호하는 굴종적 자세를 보여왔다. 그런데도 북한은 문 대통령을 ‘멍청이’‘미국산 앵무새’라고 조롱했다. 김정은은 이제 문 대통령을 동급으로도 여기지 않는 것 같다. 대북 망상 때문에 대한민국과 국민이 수모를 당한다.
문화일보 사설
05.13 文대통령만 통편집했다…김정은·트럼프 둘만 나온 北화보집
북한에 벌써 세번째 ‘투명인간’ 취급 당하는 문 대통령
▲북한 외국문출판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외교 활동 장면을 모은 화보 '대외관계 발전의 새 시대를 펼치시어'를 12일 공개했다. 화보는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2019년 6월 판문점 회동 장면에 대해 "두 나라 사이에 전례 없는 신뢰를 창조한 놀라운 사변"이라고 설명했다. /외국문출판사 화보 캡처/연합뉴스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 외교 활동을 정리한 화보를 내면서 ‘남북정상회담’ 사진만 빼놓은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을 ‘투명인간’ 취급한 것은 ‘하노이 노딜’ 이후 세 번째다.
▲화보는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18년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을 소개하면서 당시 소식을 전한 싱가포르 신문 스트레이츠타임스 지면도 함께 실었다. /외국문출판사 화보/연합뉴스
북한 외국문출판사는 이날 김정은이 2018년 3월∼2019년 6월 각국 정상과 만나거나 공식 회담을 진행하는 사진을 모은 화보 ‘대외관계 발전의 새 시대를 펼치시어’를 공개했다. 발행 일자를 ’2021년 5월'로 표기한 이번 화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우방국 정상들과의 회담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모습을 담았다.
▲화보는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첫 북미정상회담 모습을 싣고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고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양국이 서로에 대한 이해심을 가지고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약속"해야 한다는 김 위원장의 발언을 소개했다. /외국문출판사 화보/연합뉴스
특히 2018년 6월 싱가포르 1차 미북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조미(북미) 관계의 새 역사를 개척한 세기적 만남”으로 극찬했다. 그러면서 김정은과 트럼프가 악수하는 모습부터 실제 회담 장면, 공동성명 서명 모습, 회담장 전경, 기념 주화·우표, 회담 소식을 전한 현지 신문의 사진까지 실었다.
노딜로 끝난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에 대해서도 ‘역사적인 제2차 조미 수뇌 상봉과 회담’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같은 해 6월 트럼프가 판문점에서 김정은을 만나 군사분계선을 넘는 장면에 대해서도 “역사적인 순간” “놀라운 사변”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화보집에는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 당시 사진이 10장 실렸지만, 함께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화보는 2018년 4월, 5월, 9월에 연이어 개최한 문 대통령과 남북 정상회담 모습도 전혀 싣지 않았다.
/김정은의 외교활동을 소개한 화보/연합뉴스
북한이 김정은의 외교 업적 선전물에서 문 대통령을 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북한은 지난 3월 공개한 김정은 위인전인 ‘위인과 강국시대’에서도 문 대통령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다. 앞서 북한은 2019년 9월 대남 선전 매체를 통해 공개한 김정은의 정상 외교 영상물에서도 문 대통령이 들어간 장면을 통편집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이 문 대통령에게 더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잘못된 중재와 실속 없는 문 대통령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김명성 기자
05월 14일 北의 우리 국민 살해는 흐지부지 文, 대북 전단은 “엄정 대처”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4주년 연설에서 대북 전단에 대해 “엄정한 법 집행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전단을 보내는 우리 국민을 ‘김여정 하명법’에 따라 엄벌하겠다는 것이다. 연설 3시간여 만에 경찰은 해당 탈북민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그러자 대북전단금지법 관련 미 의회 청문회를 열었던 ‘랜토스 인권위’ 의장 스미스 의원이 12일 “추가 청문회를 계획 중”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만든 법은 표현의 자유와 정반대이며 자유로운 정보 흐름을 방해한다”고도 했다. 지금 전단금지법은 체코 같은 옛 공산권도 비판하고 있다.
문 정권은 북 주민에게 진실을 알리려는 전단에 유달리 거부감을 갖고 있다. 김여정이 “(금지)법이라도 만들라”고 하자 정부는 4시간 반 만에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북 주민에게 정보 유입을 원천 봉쇄하는 반(反)민주법을 만들었다. 얼마 전 김여정이 또 화를 내자 정부는 “신속한 수사로 엄정한 처리”를 다짐했다. 전단이 북으로 넘어가지 않았어도 ‘살포 미수’로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지난해 우리 공무원이 북한군에게 피살·소각됐을 때 청와대에서 긴급 안보 회의가 열렸지만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까지 잠자는 대통령을 깨우지 않았다고 한다. 청와대가 군(軍)의 첫 보고를 받은 시각부터 3시간 동안 공무원은 살아 있었다. 세월호 사고 당시 문 대통령이 보인 반응대로라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북에 신변 안전부터 요청했어야 했다. 김정은과 친서를 주고받는 채널과 상선 통신망도 있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국민 목숨을 살리기 위한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정은이 ‘미안’이라고 한마디 하자 바로 반색했다.
살해된 공무원 아들이 문 대통령에게 “아빠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할 때 이 나라는 무얼 하고 있었나”고 절규하는 편지를 보냈다. 대통령은 “직접 챙기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금껏 유족은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다. 총살 관련 정보 공개 요청도 묵살당하고 있다. ‘월북 가족’이란 공격까지 받았다. 미국 대통령에게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달라’고 호소해야 하는 지경이다. 문 대통령이 대북 전단에 관한 ‘엄정한' 태도의 10분의 1이라도 북에 피살된 우리 국민에게 기울였으면 그 유족이 피맺힌 가슴을 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5월 14일 “평시에 땀 흘려야 戰時 피 안 흘린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한미연합사령관 로버트 에이브럼스 대장이 다음 달 퇴역한다. 후임자인 폴 라캐머라 인도·태평양 육군사령관은 미국 상원 인준 중이다. 2018년 11월 취임 후 2년 반 동안 한국 안보를 위해 애쓴 사령관의 노고에 감사한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한국군 한미연합사령관 체제로의 전환에도 우려를 표명했고, 실(實)기동 없는 컴퓨터 게임식 연합훈련 방식도 걱정했다. 며칠 전 고별 행사에서도 “평시에 땀(훈련)을 흘려야 전시(戰時)에 피를 흘리지 않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필자도 군 출신이라 그동안 사령관 발언의 행간을 통해 재임 중 마음고생을 짐작할 수 있었다. 외교적 협상을 통한 북핵 폐기가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침묵해야 했을 것이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의 없는 한·미 연합훈련 취소에도 냉가슴을 앓았을 것이다. ‘파이트 투나이트(Fight Tonight!)’라는 한미연합사의 구호와 실제 사이에서 걱정이 많았을 것이다.
상명하복이 생활화한 군인에게 정치지도자의 불안한 결정은 고뇌의 출발이다. 상관과 국가에 대한 충성 중에서 선택할 것을 강요받기 때문이다. 1977년 ‘5년 내 주한미군 철수’라는 지미 카터 대통령의 결정을 비판했던 존 싱글러브 주한미군 참모장은 워싱턴에 소환돼서도 주장을 바꾸지 않은 후 전역했다. 그가 오래 회자되는 것은 그러한 선택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군인이라면 핵무기를 폐기하긴커녕 급속히 증강하는 북한에 제대로 대비하기 어려운 현 정치적 분위기에 고뇌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에게 묻는다. 아직도 북한의 핵무기 폐기를 믿는가? 지금까지 틀린 것에 책임지고 있는가? 고향으로 돌아가서도 사령관은 오래도록 잠 못 이루고 몸을 뒤척일 것이다.
지난 4월 13일 한·미 양국의 두 연구소는 공동 보고서를 통해 북한은 2020년 기준 67∼116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북한은 지난 1월 8차 당대회에서도 핵무력을 계속 증강하면서 남북통일을 앞당기겠다고 공언했다. 본토 공격을 위협해 미국의 핵우산을 무력화하기 위한 장거리미사일과 잠수함은 물론, 한국 공격용일 수밖에 없는 전술핵무기 개발도 공표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여전히 ‘비핵화’만 외면서 한미연합군에 북핵 대비태세를 강화하라고 요구하지 않고 있다. 일부 여당 국회의원들은 연합훈련 재개까지 반대하고 있다. 한국군 지도부에 묻는다. 북핵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대비태세를 갖추고 있는가? 핵 대비 강화를 건의한 적이라도 있는가? 부여된 권한 안에서 핵 대응력을 강화하고자 노력해 보기라도 했는가?
6·25전쟁 때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한국군 병사의 적극적 전투 의지를 듣고 참전해 한국을 방어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고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국군이 북핵 위협에 제대로 대비하지 않는데, 미군이 왜, 어떻게 우리를 지켜줄까? 우리 정치지도자들이 ‘비핵화’ 함정에 빠져 북핵을 방치하고 연합훈련도 하지 않겠다는데, 왜 미국이 본토에 대한 북한의 핵 공격 위협까지 감수하면서 한국을 방어해줄 것인가?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국민으로서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귀국 후 맥아더 장군과 반대로 느꼈다고 말할 것 같아 불안하다.
문화일보
05.19 北核, 폭정 변호하며 동맹 흔들던 사람들 대선판에 또 어슬렁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왼쪽부터)과 이종석,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등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 북한 옹호 일변도의 안보 정책을 주도해왔다. /조선일보 DB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이 17일 “지금 제일 걱정되는 부분은 미국이 (북한) 인권 문제를 들고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이 경우 북은 핵을 포기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미 국무부가 18일 “미국 외교 정책의 중심에 인권이 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 안보 멘토라는 걸 알고 곧바로 반박한 것이다. 그는 북의 핵 보유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말과 생각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남북 연락사무소 폭파가 도발은 아니다”라고 했고 “내게 있어 최선은 실제로 동맹을 없애는 것” “평화 협정이 체결되면 주한 미군 주둔을 정당화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그래 왔다. 이 사람이 민주당 대선 후보들 자문단에 또 이름을 올렸다.
정세현 평통 부의장도 마찬가지다. 2004년 “김정일 위원장이 ‘북핵’이라는 무모한 선택을 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김정일은 2년 뒤 첫 핵실험을 했다. 2015년 북의 지뢰 도발로 우리 군인이 다리를 잃었는데도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 전환을 촉구하는 역발상의 전략”이라고 했다. 김정은의 김정남 독살은 “권력 속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북이 문 대통령에게 막말을 퍼붓자 “이런 모욕을 당하게 만든 것은 미국”이라고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하더니 다음 대선판을 또 기웃거린다고 한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2006년 “(북한) 스커드 미사일은 동해상에 쏘기 때문에 국가 안보에 직접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미사일이 결국 어디를 위협하겠나. 지금 북은 그 미사일을 개량해 추적과 요격이 어려운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핵 탄두도 탑재할 수 있다. 임동원 전 국정원장도 처음부터 북이 핵 개발을 할 리가 없다고 주장하던 사람이다. 이 둘도 민주당 대선 주자 자문기구에 들어가 있다.
여권의 외교 안보 ‘올드 보이’들은 30년 전엔 ‘북은 핵 개발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했다. 북이 핵으로 폭주하자 ‘미국 때문’이라고 하더니 핵 보유를 헌법에 명시하자 ‘북은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한다. 김씨 왕조 심기를 살피며 북 주민의 인권은 외면한다. 단 한 사람도 반성이나 사과하지 않는다. 그러고 대선 판에 또 어슬렁거리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05.20 핵 전쟁에도 대비한 실질적 대비 전략 짜야
세상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국제질서를 재편하려는 중국의 도전에 미국 등 자유세계가 더 결속하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를 기반으로 대한민국을 복속하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다. 어쩌면 지금의 안보 위기는 1800년대 말 한반도 상황에 못지않다. 당시 조선보다 지금 한국의 경제력이나 군사력은 훨씬 막강하다. 그러나 핵과 미사일, 거대한 군사력을 갖춘 중국과 북한의 야심은 또 다른 차원이다.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미국을 밀어내면 한반도는 중국 영향력에 들어간다. 북한이 2027년쯤 200개의 핵무기에 미국을 직접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용 탄도미사일(SLBM)까지 확보하면 한국을 삼키려 들 것이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무지개를 찾아 헤매고 있다.
아산-랜드연 '2027년 북핵 완성'
미 조야 '북핵 단계적 군축론' 거론
핵전쟁 대비, 연합작전ㆍ훈련 필요
미군 전술핵 안되면 핵무장도 검토
곧 닥쳐올 거대한 위기에 대처할 시간도 별로 없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중국의 눈치만 보고 있다. 서울 상공에 핵무기를 터뜨릴 수도 있는 북한에 대해선 대화에 목을 매고 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북한의 GP(전방초소) 총격 사건을 “사소한 위반”이라고 했다.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쏴도 제때 발표하지 않았다. 외교안보 부처엔 위기감이 있겠지만, 컨트롤 타워인 청와대가 위기를 위기로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해당 부처에서 대처 방안을 적극적으로 내놓을 수도 없다. 정부가 북핵 위기를 국민에게 정확하게 알린 적도 없다. 동맹인 미국이 이를 두고 보지만은 않겠지만, 한국 정부의 태도에 따라 우리에게 불리한 상황이 전개될 소지도 있다.
정부, 위기의 안보 현실 외면
역사는 반복된다. 한반도 운명이 나락으로 떨어졌던 구한말과 지금 무엇이 다른가. 안타깝지만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엄중한 국제 질서와 한반도 안보 현실에 대한 정부의 인식부터 문제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핵과 미사일로 대남적화 통일을 목표로 세웠다. 이를 위해 북한이 핵무기 고도화와 수량을 늘리고 있는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여전히 맹신하고 있는 것 같다. 문 대통령은 지난 21일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바이든이 북한과 대화하고 중국과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이한 상황 판단이다.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에 따라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밀쳐내고, 우리의 생명줄인 해상수송로를 장악하려 한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2019년 12월 “한ㆍ중은 공동운명체”라고 했다. 인류 보편적인 가치와 국제질서를 무시하는 중국 공산당과 자유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이 어찌 공동운명체인가.
김정은의 전략에 한국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놓였다. 지난 9일 미 정보국(DNI)은『2021년 세계 군사위협 평가 보고서』에서 “김정은 정권은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고자 하며, 핵무기를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산정책연구원과 미 랜드연구소가 지난 13일 발표한『북핵 위협,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는 더 적나라하다. 북한이 가진 플루토늄과 4곳의 우라늄 농축시설로부터 2027년쯤 핵무기 151∼242개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중간값이 대략 200개다. 현재 북한의 핵무기 추정치는 67∼116개다. 나아가 2027년이면 북한이 미 전역에 닿는 ICBM과 SLBM도 배치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 북한은 핵추진 잠수함도 건조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핵전력이 완성되는 것이다. 불과 6년 남았다. 한ㆍ미는 북한의 커진 자만심과 핵무기를 감당하기 어렵다. 위기의 전조는 그보다 앞서 시작될 것이다.
북, 핵무기로 한ㆍ미 동맹 와해 노려
실제 북한의 핵 전략은 확대일로다. 북한은 처음엔 미군에 대응하고 중국에 좌지우지되지 않으려 핵 개발을 시작했다. 그러나 핵무기가 많아지고 고도화됨에 따라 목표가 바뀌고 있다는 게 전문가 판단이다. 아산연-랜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1단계) 핵 개발을 통해 ‘1차 핵 벼랑끝 외교’로 국제사회에서 존중받기를 추진했고 ▶(2단계) ‘2차 핵 벼랑끝 외교’로 미국과 평화회담을 하면서 관계 정상화를 시도했다. 결과적으로 하노이 회담(2019년 2월)에서 실패했지만, 북한은 핵능력을 키울 시간을 벌었다.
▶(3단계) 수십 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 북한은 핵무장국을 선언하고, 미국의 한반도 개입을 차단하는 전략을 추진한다. 이 전략이 조만간 본격화하면 한국에 제공하는 미국의 확장억제전략(핵우산)과 한ㆍ미 동맹은 와해 위기에 처한다. 한ㆍ미의 비상한 결단이 필요할 때다.
마지막으로 ▶(4단계) 북한이 200개의 핵무기와 미국을 직접 공격할 ICBM 및 SLBM을 갖추는 시기다. 북한이 지역 (핵)강국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미국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이때쯤 북한은 핵무기를 배경으로 미국과 평화ㆍ군축협정 체결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막강한 핵무기를 배경으로 미국의 제재와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한ㆍ중ㆍ일에 특혜투자를 강요해 경제적 이익을 갈취할 수도 있다. 만약 북한의 도박이 성공한다면 한국은 미국의 도움을 더는 받지 못하고, 북한의 보호령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북한은 한국에 공산당 합법화도 강요할 수도 있다. 섬뜩한 우리의 미래다. 아산정책연구원 최강 부원장은 “랜드 측이 처음엔 이런 시나리오에 부담스러워 했지만, 토의 과정에서 가능성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조야에서 북핵을 인정하고 단계적으로 감축하자는 군축론이 나오는 이유다.
북한은 이런 핵전략 목표 달성을 위해 핵 교리도 발전시켰다.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는 2013년 채택한 법령에서 “적대적 핵보유국(미국)과 야합해 우리 공화국(북한)을 반대하는 침략이나 공격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한 비핵국가들(한국ㆍ일본)에 대해 핵무기로 위협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다시말해 한ㆍ일이 미국과 연합해 북한에 대응하면 북한이 핵무기로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6년에는 북한 외무성이 “결정적인 (핵)선제공격은 북한이 미국의 갑작스런 기습공격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다. 북한이 ICBM 시험발사 등 전략적 도발 때 미국이 북한에 군사행동을 벌일 수 있는데, 그러면 북한은 핵무기로 선제공격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엄포만은 아니다
정부, 북핵ㆍ중국에 적극 전략 짜야
북한이 시도할 수 있는 핵 공격 또는 위협은 다양하다. 북한이 핵무기를 배경으로 백령도 등 서북도서를 강제 점령할 수도 있고, 서울을 위협해 한국의 항복을 받아내려고 할 수도 있다. 북한이 경제와 내부 불안으로 정권이 위험할 땐 국면 전환용으로 전쟁을 모색할 가능성도 있다. 그럴 경우 북한은 미국의 지원군이 한반도에 도착하기 전에 핵무기로 정리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평택 미군기지와 오산ㆍ군산 미 공군기지 등 한국 내 군사시설은 물론, 일본 요코스카 7함대사령부, 이와쿠니 미 공군기지 등 유엔사 후방기지도 타격 대상이다. 7일 이내에 한국 전역을 점령한다는 김정은의 전략이다.(태영호 의원, 2020년 12월) 주일ㆍ주한미군과 미 본토 국민이 북핵에 대규모로 희생되는 상황이면 미ㆍ일은 한국 지원을 주저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물론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가 북한 의도대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김정은 정권에 문제가 생기거나 한ㆍ미ㆍ일이 효과적으로 대처할 경우다. 그러나 현재 우리 정부의 대비수준이라면 북한 전략이 성공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이제라도 정부는 실질적인 핵전략을 짜야 한다. 북한에 대해선 핵전쟁을 전제하고 대비해야 한다. 한ㆍ미 연합작전과 훈련도 핵전쟁 가정이 필수다.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하려면 이젠 한국에 핵무기가 있어야 말이 먹힌다. 미군 전술핵을 활용하든, 한국이 핵무장을 하든 비상대책이 필요하다.
동ㆍ남중국해를 내해로 만들려는 중국에도 국제규범에 맞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 중국의 도전에 대응한 미국 중심의 4개국 협력(QUAD)에 참여 검토는 당연하다. 그래야 미국을 한반도에 적극 끌어들여 북핵을 막을 수 있다. 중국과 북한의 눈치를 볼 때가 아니다. 한국의 생존이 최우선이다.
중앙일보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 선임위원
05월 20일 美 “모하비 사막서 韓美日 훈련” 거론…방미 文 직시하라
미국 백악관에서 21일 개최될 한·미 정상회담 직전에 열린 폴 라캐머러 주한미군사령관 지명자 청문회는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인준청문회였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으로 미국 의회가 한반도 안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자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라캐머러 지명자는 18일 상원 군사위 청문회 답변을 통해 “모의 훈련보다 실제 훈련이 중요하다”고 했다. 여야 의원들이‘한·미·일 군사 협력 필요성’을 제기한 것과 관련해 “한·일과 함께 훈련하는 기회를 모색하겠다”면서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의 국립훈련센터를 훈련 후보지로 꼽았다.
라캐머러 지명자가 미국 내 사막까지 거론한 것은 연합훈련 중단으로 인한 전력 차질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오죽하면 병력과 장비를 미국으로 이동해서라도 훈련해야 한다고 했겠는가. 그는 “한·일 군사협력은 독특한 억지 효과가 있다”고 했다. 한반도 유사시 미군 증파를 위해선 일본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에서도 당연한 판단이다. 키리졸브 등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은 2018년 미·북 회담 후 중단된 상태다. 곧 이임할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은 “평시에 땀을 흘려야 전시에 피를 흘리지 않는다”며 재개를 촉구했지만, 현재는 컴퓨터 게임과 같은 가상 훈련으로 전락한 상태다.
방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6·25전쟁 전사자 추모의 벽 착공식에 참석한다. 한국전 미군 전사자 3만6574명의 명단을 새기는 추모의 벽 착공식이 문 대통령 방문 중 열리는 것은 늦었지만 상징적 의미가 크다. 북한 김일성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피를 흘렸던 70년 전 희생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연합훈련을 정상화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재임중 마지막 방미가 될 이번 회담을 계기로 대북 환상을 벗고 한·미·일 공조 강화가 평화를 지키는 길임을 직시하기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
05.25 북핵 원칙, 한미 훈련, 사드 정상화하고 전단법은 폐기해야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미는 북한 핵과 인권, 중국 문제, 미사일 지침, 경제 협력 등에서 굵직한 합의를 이뤄냈다. 우리 안보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합의인 동시에 지난 4년간 문재인 정부의 탈선으로 엇나갔던 정책들을 바로잡는다는 의미가 크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군 55만명에게 코로나 백신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이는 2018년 싱가포르 회담 이후 사실상 중단됐던 한미 연합훈련을 재개하겠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미군은 그동안 컴퓨터 게임이 아닌 실기동 연합 훈련을 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하지만 정부는 미·북 정상회담과 9·19 군사합의 등을 이유로 훈련을 미루더니 작년부터는 코로나 핑계를 댔다. 군대의 훈련은 어떤 경우에도 외교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북한에 훈련 중단을 양보한 것은 나쁜 선례를 남긴 것이다. 훈련하지 않는 군대는 유사시 패망할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한미 연합 훈련을 재개해야 한다. 앞으로 어떤 경우에도 훈련 자체는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북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한미 정상은 북한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이 북 인권 개선을 명시적으로 밝힌 것은 거의 처음일 것이다. 정부 여당은 그동안 북 인권을 입에 담는 것을 금기시해 왔다.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제안국에서 3년 연속 빠졌다. 급기야 북한에 전단을 날리면 처벌하는 대북전단금지법까지 만들었다. 북한 인권 개선에 가장 앞장서야 할 나라가 인권을 외면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제라도 전단금지법을 폐기하고 북 인권 개선을 위한 실질적 조치를 해나가야 한다.
TV용 깜짝쇼 정상회담으로 북핵이 해결될 거라는 환상은 이제 버려야 한다. 2018년 이후 세 차례에 걸친 미·북 정상회담과 만남,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에도 북핵 문제는 한 치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핵과 미사일 고도화만 됐을 뿐이다. 또 대북 제재를 완화해 주고 북한이 원하는 것들을 들어주면 핵을 포기할 거란 믿음도 버릴 때가 됐다. 김정은은 핵을 포기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김은 핵 때문에 사는 게 아니라 핵 때문에 죽게 돼야 핵을 포기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북 제재 유지를 강조하며 “북 비핵화에 대한 어떤 환상도 없다” “김정은 말만 갖고 판단하지 않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과 정부도 이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이제는 사드도 정식 배치해야 한다. 더 이상 중국이나 극소수 좌파 단체 눈치를 보느라 장비·물자 반입조차 못 하는 어이없는 상황은 끝내야 한다. 중국에 “북이 핵을 없애면 미국 사드도 필요없다”고 말해야 한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보인 자세가 진심인지에 대해 의문이 있다. 싱가포르나 판문점 정상회담을 어떻게든 공동성명에 포함시키려고 지킬 의지도 없이 나머지 문제들을 양보해준 것이란 시각이다. 그런지 아닌지는 머지않아 드러나게 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5월 26일 한·미 정상회담과 전술핵 재배치
이도운 논설위원
韓美회담 ‘세계 질서’ 보여줘
평양·베이징 아닌 워싱턴 中心
국익은 정부보다 기업이 결정
北 전술핵 개발에 文정권 침묵
미군은 벙커버스터 배치 검토
여야 대선 주자 다른 대응 주목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지난 주말 정상회담은 내년 대선을 향해 뛰는 여야 정치인들도 ‘벤치마킹’할 만하다. 이번 회담은 외교와 안보, 정치와 산업이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일목요연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첫째, 세상은 평양이나 베이징(北京)이 아니라 워싱턴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문 대통령은 지난 4년 동안 끊임없이 친북·친중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북한으로부터는 ‘삶은 소대가리’ ‘특등 머저리’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김여정 하명법’을 만들고, ‘하명 인사’를 했다는 비아냥을 들었다. 중국을 높은 봉우리, 한국은 작은 나라라고 칭하면서, 공산당 독재국인 중국의 꿈을 함께하겠다고 했다. ‘사드 3불’은, 동맹 무시는 물론이고 안보 주권 포기라는 비난까지 받았다.
그런데 왜 문 대통령이 북한 인권 상황 개선, 대만 해협, 남중국해, 쿼드 문제를 공동성명에 담으며 태도를 바꿨을까. 남북 정상회담 이벤트를 한 번 더 해볼 욕심에 미국이 원하는 것을 준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미국 협력 없이는 안보는 물론이고 경제도 지탱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경쟁한다지만 군사력도, 외교력도, 금융도, 첨단기술도, 교육도, 문화도 중국은 미국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5년 임기 대통령과 정권이 국익을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헌법이 규정한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체제와 역대 정부와 국민이 합의해온 대외정책 기조를 훼손할 수 없다. 한국의 대외 정책은 한·미 동맹의 기반 위에서 한·미·일 협력을 주축으로 중국·러시아 등과의 관계를 확대해가며 북한 문제도 해결하는 것이다.
둘째, 경제가, 더 정확히는 기업이 국가 이익을 결정한다. 문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고 했다. 크랩 케이크 오찬이나 공동성명의 ‘판문점 선언’ ‘싱가포르 합의’ 문구를 그렇게 본 것 같다. 그러나 미국이 진짜 대접을 했다면, 주인공은 바이든 대통령이 공동 기자회견에서 일으켜 세워 박수를 보낸 한국 기업인들이다. 바이든이 미 국민에게 일자리 창출 성과를 자랑할 수 있게 만든 44조 원의 투자, 그것이 이번 회담을 ‘최고의 성공’으로 이끈 실체다. 바이오·반도체·배터리·5세대(G) 및 6G 통신을 선도하는 한국 기업은 국내에선 박해를, 외국에선 박수를 받는다.
이런 역설이 없다. 지난 4년 동안 이런 기업들 성과는 문 정부 도움이 아니라, 오히려 친노조 반기업 정책, 상법·중대재해법 입법 같은 집요한 발목잡기에 시달리면서도 글로벌 초격차 경쟁을 뚫고 이뤄낸 것이다. 이제 한·미 관계에서 문재인과 바이든의 관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SK바이오사이언스와 노바백스, LG화학과 포드, 삼성반도체와 인텔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BTS에 열광하는 미국인, 테슬라 주식에 투자하는 한국인들이 더 큰 관계를 만들어간다.
이번 정상회담 과정에서 한·미 양국이 다루지 않았거나 공개하지 않은 중요한 안보 이슈가 있다. 주한미군의 전술핵 반입 문제다. 북한이 올해 초 노동당 대회에서 전술핵 개발, 핵 선제공격으로 전략 변경을 내비쳤지만, 문 정권이 심각하게 대응하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미군은 북한의 전략·전술 변화에 대응해 주한미군에 전술핵 재배치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한·미 동맹 우선과 기업 중시에 대해서는 여야 대선 주자 모두 이견이 없겠지만, 전술핵 재배치에는 생각이 엇갈릴 것이다. 특히 여야의 대표 주자에 해당하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다르게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의 외교적 멘토였다가 이 지사의 멘토가 됐다는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벙커버스터로 불리는 B61-12 전술핵의 한반도 배치 가능성을 제기하며 “북한의 전술핵 행보에 미군이 전술핵 재배치나 나토 식 핵 공유로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윤 전 총장은 초등학교 친구이기도 한 김성한 전 외교부 차관과의 토론에서 북 순항 미사일의 핵탄두 탑재가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회의적이라는 말을 듣자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반박했다고 한다. 대응 전략으로서의 전술핵 재배치도 찬성할 가능성이 있다. 내년에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안보 정책 방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문화일보
05.27 이들의 마음속 祖國은 어디일까
▲6·25 국군 포로 김모(90)씨가 24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북한인권단체 물망초 측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 정근식 위원장이 탈북해온 6·25 국군 포로와의 면담에서 ‘거제도 수용소에 있던 중공군 포로의 피해에 관심이 많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아흔 살 국군 포로는 북한·중공군에게 당한 가혹 행위를 규명해달라고 과거사위를 방문했다. 탈북 전까지 수십 년간 노예처럼 학대당하기도 했다. 국군 포로에게 북한·중공군은 떠올리기도 힘든 트라우마일 것이다. 이런 분의 면전에서 어떻게 ‘중공군 포로 피해’를 언급할 수가 있나. 국군 포로는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말한 사람의 인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1953년 유엔군 사령부가 추정한 국군 실종자는 8만2000여 명이다. 그런데 북이 송환한 국군 포로는 8300여 명뿐이다. 북에 억류된 수만 명의 포로들은 광산 등에서 강제 노동으로 죽어갔다. 평생 천민 취급을 받았다. 탈북한 국군 포로 80명 가운데 이제 생존자는 18명에 불과하다. 북에 생존한 국군 포로도 100명 남짓으로 추정된다. 90세 고령이라 정말 시간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을 세 번 만났지만 ‘국군 포로’ 얘기를 꺼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문 대통령이 작년에 임명한 과거사위원장은 국군 포로가 아니라 중공군 포로에 마음이 끌린다고 한다. 이들의 마음속 조국은 대한민국일까. 아닐 것이다.
중공군 포로 2만1000여 명 중 절반이 훨씬 넘는 1만4000여 명이 자유 의지로 대만 송환을 선택했다. 7000여 명만 중국으로 돌아갔다. 당시 우리 측 가혹 행위가 심했다면 미국과 가까운 대만행을 결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대만은 중공군 포로들이 도착한 1월 23일을 ’123 자유일’로 기념하는 등 포로들을 후대했다. 생지옥에 떨어진 국군 포로 처지와 비교할 수 없다.
노무현 정부가 만든 진실·화해위는 국군과 미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는 집요하게 들춰내고 있다. 80% 이상이 국군·미군·경찰을 가해자로 다룬다. 반면 북한군의 잔혹 행위는 거론하려 들지 않는다. 재작년 청와대는 천안함·연평도 유족을 불러놓고 문 대통령과 김정은이 손을 맞잡은 사진 책자를 나눠주기도 했다. 한 참석자는 충격을 받아 음식이 체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현충일에 6·25 남침 공로로 북한 훈장까지 받은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인 것처럼 칭송했다. 문 정부 광복회장은 6·25 영웅 백선엽 장군의 현충원 안장을 가로막기도 했다. 급기야 ‘중공군 피해' 운운하며 국군 포로의 상처에 소금까지 뿌린다. 기가 막힌다.
조선일보 사설
05월 27일 남북 경협·회담 조급증 위험하다
김숙 前 駐유엔 대사
文·바이든 회담 외양은 합격점
北비핵화 전략 본질은 깜깜이
공허한 협상의 악순환 막아야
외교장관의 인식 오류도 심각
北 비핵지대 실체 제대로 알고
망가진 동맹 울타리 수선해야
실패한 정상회담은 없다는 외교의 일반적 명제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지난 5·21 워싱턴 정상회담은 대체로 합격선을 통과했다고 본다. 지난 4년간 약해진 한·미 동맹의 질과 폭을 강화했고 북한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높은 우선순위를 재확인했다. 대만해협의 안정,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북한 인권 개선, 쿼드(Quad) 등 언급은 현 정부의 종래 입장에 비춰볼 때 표변이라 할 만큼 놀랍다. 중국은 내정간섭이며 불장난하지 말라고 반발했지만, 당장 추가적인 긴장 조성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공동성명을 허사로 만들거나 중국의 압박에 변명과 눈치 보기로 일관하지 말고 당당한 모습으로 발표된 내용에 충실을 기하며 약한 고리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정상회담을 북한 비핵화 추진 차원에서 본다면, 우선 지난 4월 완료된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 내용의 윤곽이 이번에 더 구체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전략적 인내와 빅딜 타협 사이의 중간에서, 잘 조율되고 실용적인 어프로치를 전문 협상팀이 보텀업 방식으로 추진하겠다는 방법론이 전부다. 전략 노출 방지 의도인지는 모르나 예측 가능성 저하로 인한 깜깜한 불안감을 수반한다. 미국의 대북특별대표로 임명된 성 김 대사가 분주히 움직이겠지만 북한을 조만간 협상 테이블로 데려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인권을 거론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이행을 확인한 데서 보듯이 미국이 북한의 제재 완화 요구를 성큼 수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불가(佛家)의 얘기대로, 김정은이 백정의 칼을 내려놓고 단번에 부처가 되기를 바랄 수도 없다. 따라서 성 김 대사는 전략적 목표 달성보다 목전의 사소한 진전에만 매달리는 근시안적 협상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자칫 알맹이 없는 과정의 끝없는 연속과 북한의 벼랑 끝 도발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도 있다. 비핵화 용어 사용과 관련, 한국의 ‘한반도 비핵화’와 미국의 ‘북한 비핵화’ 간에도 그동안 입장 차이가 있었으나, 이번 회담으로 적어도 한·미 간에는(미·일 간의 ‘북한 비핵화’ 사용과는 다르게)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로 결론이 났다. 실질 문제가 아닌 분야에서 마찰을 피하려는 미측 고려의 산물로 보인다.
그래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외교장관은 방미 중 미국 PBS 방송 인터뷰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1992년 남북 총리 간에 서명, 발효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중 제1항인 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비·사용 등 8가지 행위를 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하고 북한도 이러한 정의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1992년 당시 북한은 핵 개발의 초기 단계였고, 남쪽에서는 미군의 핵무기가 완전히 철수된 직후였다. 따라서 앞의 3가지, 즉 시험·제조·생산은 북한이 하지 말아야 할 의무사항이었으며, 나머지 5가지, 즉 접수·보유·저장·배비·사용은 우리 측에 의해 이미 완료된 것이다. 양측은 추후 핵통제 공동위원회를 통해 이를 검증한다고 했으나 북한은 이 모든 것을 철저히 위반, 2006년 1차 핵실험 후 무기를 제조·생산해 오늘에 이른바, 지금 상황에서 비핵화 공동선언은 완전히 사문화된 것이다.
1994년 미·북 간 제네바 합의에서든, 2003∼2008년 사이의 6자회담에서든 북한의 비핵화가 주요 의제였다. 따라서 한반도 비핵화의 정의(定義)는 한국에 미국의 핵무기가 접수·배비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 근본적으로 북한이 핵물질, 핵무기 및 핵 계획을 포기하고 이를 객관적·과학적으로 검증하는 것을 말한다. 외교장관은 제발 이 기회에 북한의 비핵지대화 주장이 터무니없음을 정확히 재인식해야 한다.
이제 임기를 11개월 남짓 남겨둔 문재인 정부가 이번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어떻게 정책에 접목해 나갈 것인지가 중요하다. 우선, 망가진 울타리 수선이 시급하며,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당장 재개해야 한다. 과욕은 금물이다. 길지 않은 잔여 임기 내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 노력은 제쳐 둔 채 성과에만 급급해 남북 경제협력과 정상회담 성사에만 골몰하고 한·미 동맹과 한·미·일 3국 공조를 약화시키는 실패한 과거 패턴으로 돌아간다면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는 단숨에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문화일보
05.28 연합 훈련 올해도 안 한다니, 한미 정상회담은 ‘남북 이벤트’용이었나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 연합 훈련에 대해 “코로나로 인해 많은 병력이 대면 훈련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느냐”고 부정적인 뜻을 밝혔다. 궤도 이탈 우려를 낳았던 한미 동맹이 지난주 한미 정상회담으로 정상화 가능성이 열렸다는 전망 속에서 한미 연합훈련이 어떻게 되느냐는 것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마침 바이든 미 대통령은 한국군 55만명이 맞을 백신을 주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이는 한미 연합군이 코로나 걱정 없이 훈련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그런데 한미군이 모두 백신을 맞은 후인 8월에도 훈련을 못한다니 무슨 말인가.
한미 훈련은 2018년 트럼프·김정은의 ‘비핵화 쇼’ 이후 사실상 없어졌다. 김정은의 비핵화 기만극이 드러난 다음엔 코로나가 정부가 든 연합 훈련 중단의 핵심 이유였다. 심지어 정부는 코로나를 이유로 미군 주도의 대잠수함 훈련에도 불참했다. 당시 코로나는 훈련에 참가한 미·일이 더 심각했다.
신임 한미연합사령관이 청문회에서 “실제 훈련이 컴퓨터 모의 훈련보다 훨씬 좋다”고 했다. 전임 연합사령관은 “야외 훈련이 없으면 연합 방위 능력에 차질이 생긴다” “평시에 땀 흘려야 전시에 피 흘리지 않는다”고도 했다. 트럼프 시대와 달리 바이든의 국방부는 “한반도만큼 군사 훈련이 중요한 곳은 없다”고 했다. 정상적 미국은 ‘훈련 없는 군대’를 상상도 못 하는 나라다. 백신 제공을 주저하던 바이든이 한국군 접종용은 주겠다고 약속한 의미도 달리 있지 않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대만 문제, 쿼드 문제, 북한 인권 문제 등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 것을 두고 그 진의에 대한 추측이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 문 대통령의 관심은 김정은과 남북 이벤트 재개밖에 없으며 이를 위해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김정은과 했던 싱가포르와 판문점 선언을 한미 공동성명에 집어넣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북한 인권 문제는 미국의 북한인권특사 임명을 막아 북을 무마할 수 있지만 한미 훈련을 재개하면 남북 이벤트의 꿈은 멀어질 수 있다. 문 대통령이 한미 훈련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은 결국 한미 동맹의 복원과 강화가 그의 진짜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05.28 중국의 서해 점령, 주권국가 한국은 왜 맞서지 않나
▲전북 군산해양경찰서는 4일 어획량 조작을 위해 지워지는 펜을 사용해 조업일지를 작성한 혐의(배타적 경제수역에서의 외국인 어업 등에 대한 주권적 권리 행사에 관한 법률 위반)로 중국어선 1척을 나포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중국 어선에 접근 중인 해경. / 군산해양경찰서
서해는 누구의 바다인가? 대대손손 수천년간 우리 희로애락이 어려 있는 바다다. 그런데 서해 대부분이 중국의 것이 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는 국민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그동안 남중국해에서의 미·중 갈등을 남의 일처럼 생각해왔다. 남중국해와 서해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2013년 중국은 우리 군에게 동경 124도 서쪽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동경 124도선을 한·중의 경계선으로 하면 70% 이상 서해가 중국 관할로 들어간다. 이후 해군 함정이 124도 서쪽으로 이동하면 중국 해군이 달라붙어 자신의 작전 구역이라며 즉시 나가라는 경고를 한다. 국제법에 그런 경우는 있을 수 없다. 자국의 해상 영역임을 주장하기 위해 공해인 124도선 주변에 부표까지 설치한다. 한국군에는 124도선을 넘지 말라 해놓고는, 자신은 이 선을 넘어 백령도 앞바다까지 진출한다. 서해에서 야금야금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소위 서해공정이다.
▲서해 배타적경제수역(EEZ)에 출몰한 불법 중국어선. /중부지방해양경찰청
주권 국가라면 이런 상황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 필리핀은 중국을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제소하여 승소했고, 베트남도 대만도 강력히 맞선다. 대한민국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중국에 대해 정부가 항의했다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얼마 전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미 대통령과 남중국해의 항행 자유를 포함한 국제법 존중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지만, 정작 서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해양 주권을 지키기 위해 우리 군도 남중국해의 미 해군처럼 중국에 맞서 자유 항행 작전을 하고 있을까?
지난 2월 중국 정보함이 백령도에 접근했을 때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보고 경악했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전투함이나 전투기를 보내면 우발적 충돌이 일어날 우려가 있어 한국으로 눈을 돌린 것 같다’는 군 소식통의 분석이었다. 중국의 055급 최신 구축함을 필두로 중국 함대가 대한해협을 넘어 동해에 머물면서 작전을 벌이는 등 연일 중국 함정이 한반도에 출몰하고 있는데, 서해에서의 해군 주 임무는 북한으로부터 NLL를 지키는 것이며 해군 전력으로는 중국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전 해군참모총장 발언도 있었다. 경비정을 간신히 북한 임무에서 빼내 124도선으로 보내면 중국 전투함 여러 척을 만나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설명도 있다. 이는 중국은 수시로 넘나드는데 우리는 가끔 넘는 수준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해군은 124도선에 대해 침묵을 넘어 묵인 단계에 들어간 듯하다. 군은 서해의 해양 주권을 포기할 셈인가?
막강한 중국 해군에 우리 군은 역부족인가? 해군이 자랑하는 세계 최강 세종대왕급 이지스구축함, 동북아 최대 상륙강습함 독도함, 그리고 안창호급 대형 잠수함으로는 중국에 맞설 수 없는가? 해군의 주력 함들은 수심이 얕은 서해에 적합하지 않고 결국 기동 함대로서 한반도 동남부에 모셔져 있다. 해군은 거함주의 대양 해군 병을 고쳐야 한다. 우리 실제 위협은 원양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한반도 주변 1000km 내 미국을 제외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중·일·러의 해군이 존재한다. 그들과 동일한 전력으로는 도저히 해양 주권을 지킬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미 해병대를 배우자. 세계 3위의 군사력이라는 미 해병대가 스스로 전투기·전차·공격헬기 등 중무장을 버리고 다연장미사일 발사 차량을 운용하는 경보병부대로 전환하고 있다.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를 둘러싼 섬들에 배치되어 초정밀 대함미사일을 갖고 중국 해군을 사냥하려 한다. 인천에서 청도 등 중국 해군의 주요 기지가 500km 남짓이다. 육상에서도 손쉽게 중국 거함들을 저지할 수 있다. 그것이 중국 해군의 약점이기도 하다. 청일전쟁 시 중국 거함들은 서해 상에서 일본군의 작고 빠른 함정들에게 전멸당했다. 중국이 124도선 주변을 작전 구역으로 선포하고 서해공정에 나선 이유는 그 해역만이 일정한 수심으로 항공모함이나 전략핵잠수함이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수심이 얕은 지중해와 북극해라는 주변 해역을 고려해 큰 잠수함을 갖고 있지 않다. 212형 디젤잠수함은 수심 17m에서도 운영이 가능하다. 이런 첨단 잠수함을 10척만 서해에 배치한다면 중국 해군을 발해만에 묶어 둘 수 있다. 공군이 보유한 F35 스텔스 전투기에 사정 500km의 초정밀 스텔스 대함미사일을 탑재한다면 어떠한 함정들도 우리 해역에 접근할 수 없을 것이다. 육·해·공군이 통합군으로서 이러한 무기 체계를 갖는다면 큰돈 들이지 않고 항공모함과 핵잠수함 없이도 서해 해양 주권을 지킬 수 있다. 피 같은 세금 낭비 없이 우리는 지역의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고슴도치가 될 수 있다.
●영국 노병들이 겪은 6.25의추억
05.28 “벙커에는 숨진 소대장의 21번째 생일 케이크...시신 곁에서 그 케이크를 먹고”
양말을 뺀 나머지 옷을 벗는 것이 3개월 만에 처음이었다
샤워장에 도착한 우리는 전투화 포함해 속옷까지 다 벗었고
샤워 후에는 DDT 가루가 몸에 뿌려지고 깨끗한 옷을 받았다
/영국군 참전 수기 '후크고지 영웅들'
<후크고지의 영웅들>은6·25참전 영국 노병22명의 수기(手記)다.주요 필자인 케네스 켈드Kenneth Keld)는 현재87세다.
북부 잉글랜드 이스트 요크셔 출신의 케네스 켈드는18세 나이였던1952년4월 징집영장(2년간 의무 복무)을 받았다.그해8월 그가 배치된 부대는3년째 계속 되고 있는6·25참전을 위해 한국으로 들어왔다.수에즈 운하를 거쳐 배편으로 오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다.그해9월 부산항에 닿아 가축 수송용 열차로26시간을 달려 임진강 북단의 듀크 연대 주둔지에 도착했다.
후크 고지는 임진강 북단인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판부리 사미천 좌측 군사분계선을 끼고 위치해있다.후크(hook)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52년10월~1953년 휴전 직전까지 후크 고지에서 중공군과 미군·영연방군 간에4차례 전투가 벌어졌다.이중1953년4월28일3차 전투가 가장 치열했다.영국군 두크 연대는 중공군1개 사단에 맞서50여 시간 동안 포격전과 참호 육박전까지 치르며 고지를 사수했다.
/6.25 참전 UN군 / YUTUBE 캡쳐
이 책의 인상적인대목을 원문 그대로 발췌 소개한다.
<역에 설 때마다 배고픈 아이들이 먹을 것을 구걸하려고 열차를 에워쌌다.그렇게 얻은 음식 부스러기마저도 몸집이 작은 어린아이들은 덩치 큰 아이들에게 그것마저 빼앗기기도 했다.>
<우리는 그 악명 높은,완전히 파괴된 상태의 고지 아래쪽에서 하차했다.나는 어린 시절,독일군에 의한 영국 대공습의 밤을 겪었다.이 고지에 와보니 런던에서의 전쟁 기억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겨울이 정말로 우리에게 다가와 있었다.지금까지도 누군가 나에게 한국에서의 기억에 대해 물으면 나는 가장 먼저 그 혹독한 추위부터 이야기한다.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동이 틀 무렵까지 얼어붙은 눈 위에서 경계를 서고 있노라면 말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그 추위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의아할 정도였다.추위는 중공군 저격수들보다 더 두려운 존재였고,그 때문에 음식도 굉장히 빨리 먹게 되었다.>
<포탄은 몇 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떨어졌다.대규모 공격이 시작될 것을 예상한 우리는 이를 대비하여 밤마다 방어 시설을 수리했다.우리는‘오늘 밤이 그 밤이다’라고 말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 밤’은1953년5월28일,오후7시45분에 실제로 찾아왔다.>
<우리 중대 본부는 산등성이에 위치해 있었고,중공 저격수들은 몇 번 나를 쏘려고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안타깝게도 피클스라고 불리던 한 동료는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즉사하고 말았다.>
/6.25전쟁에 참전한 영국군 포병의 모습. 영국국립문서보관소
<쏟아지는 포격 다음으로는 등에 폭약 가방을 메고 나팔을 불며 기관단총을 쏘아대는 중공군들이 밀려들었다.그들은 몸을 날려 우리의 참호로 들어와서는 자신의 몸뚱이와 우리의 대피호들을 산산조각으로 폭파시켜 버렸다.>
<병력수로5대1비율의 절대 불리한 상황 속에서 중공군과 육박전이 벌어졌다.잠깐 동안이 마치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우리는 참호 속으로 난입한 중공군과 치고받고 때려 쓰러뜨리며 숙소로 쓰던 유개호로 겨우 후퇴해 들어갔다.우리가 중공군의 포위를 뚫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최후까지 방아쇠를 당긴 우리의 두 번째 브렌 경기관총 사수의 희생 덕분이었다.>
<전우 몇 명은 구출되지 못한 채 다른 굴에 갇혀 있었다.그 중에는 소대장도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세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을 빼면 우리와 같은 상황에 있었다.그런데 우리와 다른 점은 불행히도 세 명 중 두 명은 부상을 입었고 소대장은 전사했다는 사실이다.나중에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그날 소대장의 스물한 번째 생일이어서 벙커 안에는 생일 케이크가 있었는데,너무나도 배가 고팠던 나머지 소대장의 시신을 앞에 두고 그 케이크를 먹었다고 한다.>.
<양말을 뺀 나머지 옷을 벗는 것이3개월 만에 처음이었다.샤워장에 도착한 우리는 전투화를 포함해서 속옷까지 다 벗었고,샤워 후에는DDT가루가 몸에 뿌려지고 나서 깨끗한 옷을 받았다.>
<7월27일,마침내 휴전이 체결되었다.그와 동시에 우리가 있는 참호에도 휴전을 알리는 무전이 날아왔고, D와C중대원 모두는 참호 밖으로 기어 나왔다.중공군들도 마찬가지였다.우리와 중공군은 서로에게 소리치며 손을 흔들었다.정말 감격적인 순간이었다.그때 나는‘이 세월을 견디며 살아냈어.앞으로도 나는 살아갈 것이고,죽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한국 땅에서 마지막으로 참석한 열병식은 유엔군묘지에서 열렸다.우리는 최후의 경의를 보내며 전사한 전우들에게 마지막,작별인사를 했다.그 열병식은 말 그대로 눈물의 열병식이었다.누구랄 것도 없이 눈물이 그렁해진 채 이역만리 땅에 묻힌 전우들의 묘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더러는 소리 내어 흐느끼는 병사들도 있었다.>
<의심의 여지없이‘고요한 아침에 나라’에서 복무했던 사람 중99퍼센트는 한국의 자유를 지켜낸 자신들의 업적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60년이나 흐른 뒤에 한국에 다시 와보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내가 떠나왔던,전쟁으로 분단된 국가가 아닌,자신들의 나라에 자신들이 쌓아 올린 업적들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 시민들의 나라 대한민국.절망과 죽음의 시간에 도움을 주었던 모든 국가에 항상 감사함을 표하는 아름다운 나라,대한민국으로 말이다.>
/영국 국방성 앞에 위치한 6.25 전쟁 영국군 참전 기념비
당시 세계2차 대전을 치렀던 영국도 전후 복구로 대단히 힘든 시기였다.남편을 이름도 낯설던 한국의 전쟁터로 보낸 한 젊은 영국인 아내는 이런 글을 남겼다.
‘그때 가족들이 겪은 절망은,남편으로부터의 수입이 끊긴 상태에서 남은 가족을 입히고 먹여야 했다는 데서 시작되었다.지원금을 신청하려면 남은 가족들에게 다른 수입이 있는지 여부를 조사받아야 했는데,그것이 그들을 비참하게 만들었다.그리고 또 하나의 절망은 사랑하는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오랜 기간 모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를 위해 싸워 주셔서 고맙습니다(Thank you for your service!)”.
05.29 “8개월째 초상집… 법적 실종 상태라 장례도 못해”
서해에서 북한군에 피살된 공무원의 형
지난해 9월 22일, 북한군이 서해 최북단 해상(海上)에서 어업지도 활동을 하다 실종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당시 47세)씨를 총으로 쏴 죽이고 시신을 소각했다. 이씨의 고등학생 아들은 그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에게 “아빠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할 때 이 나라는 무얼 하고 있었는지,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묻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고, 문 대통령은 “직접 챙기겠다고 약속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사건 당일 이씨가 북한군에게 발견된 걸 청와대가 알고도 왜 아무 조치를 안 했는지, 시신 소각 후에도 왜 방치했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첩보 자료 등을 토대로 “그가 빚 때문에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정부 입장과 “단순 실족”이라는 유가족들 주장만 맞서 있다.
▲북한군이 서해 최북단 해상에서 실종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당시 47세)씨를 총으로 쏴 죽이고 시신을 소각한 사건이 발생한 지 8개월이 지났다. 이씨의 친형 이래진(55)씨는 지난 26일 경기도 안산 사무실에서 본지와 만나“매일 아침 9시 출근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인터넷에‘해수부 공무원 사건’을 입력하는 것”이라며“잊히는 게 아쉽지만 두렵진 않다”고 말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사건 발생 8개월, 그 사건은 조금씩 잊히고 있지만 유족들에겐 아직 뼈에 사무친 기억이다. 사건 발생 후 동생의 죽음을 규명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던 실종 공무원의 친형 이래진(55)씨는 지금도 매일 아침 9시면 자신의 사무실에 출근해 가장 먼저 인터넷에 ‘해수부 공무원 사건’을 입력한다. 혹여 새로운 소식이 있을까 해서다. 그는 “이슈가 될 때는 일주일에 7~8번씩 정치인들 전화가 왔지만 요즘은 한 달에 1~2번 올까 말까”라며 “잊히는게 아쉽지만 두렵진 않다”고 했다.
경기도 안산에서 ‘매연 저감장치’를 만드는 회사를 혼자 운영하는 그는 5남2녀 중 맏이다. 실종된 동생은 그와 일곱살 터울이다. 그는 “77세 어머니께 효자 노릇을 가장 잘하던 각별한 동생”이라고 했다. 동생의 죽음은 평범한 자영업자였던 그의 인생을 뒤바꿔놨다. 그는 “지난달까지 동생 사건과 내 일상의 비율이 7대 3이었는데, 이제 겨우 6대 4 정도로 맞춰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정부에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북한에는 사건에 대해 제대로 말 한마디 못하면서 남북 평화니 종전(終戰)이니 말하는 걸 보면 울화통이 치밀어요. 세월호나 민주화 운동 진상 규명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니까 열심히 하고, 동생 사건은 과오가 드러날까 봐 은폐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실종된 동생의 8세 딸과 치매에 걸린 77세 노모(老母)는 아직도 실종 사실을 모른다고 했다. “충격받을까 봐 얘기를 안 했다”고 했다. 업무 때문에 먼바다에 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한다.
그는 아직도 정부와 소송 중이다. 지난 1월 서울행정법원에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국방부 등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 소송이다. 작년 10월 국방부에 사건 당시 북한군 감청 녹음·녹화 파일 등 동생 행적이 담긴 자료를 요청했지만 ‘군사 기밀’이라며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평생 비밀 유지’ 서약서까지 쓰겠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동생과 같이 어업지도선을 탔던 동료 9명의 진술 조서, 청와대가 사건 당일 받았던 보고·지시사항도 각각 해양경찰청과 청와대에 청구했지만 답을 얻지 못했다. 작년 11월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도 “유가족이 충분하고 정확한 정보 접근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의견을 냈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재판 기일은 오는 8월로 잡혔다. 유족 측 김기윤 변호사는 “행정소송 절차상 소장을 받고 30일 이내엔 답변서를 제출하게 돼 있는데, 짜기라도 한 듯 세 곳 모두 답변이 없는 상태”라고 했다.
그는 오는 9월 동생의 ‘피살 사건 1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직도 법적으로 ‘실종’ 상태인 동생의 사망 선고를 위해서다. 북한군에 의해 사살·소각되는 모습을 군이 관측했지만, 당사자가 확실하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국내법은 비행기 추락이나 선박 침몰 등 ‘위난(危難)에 의한 실종’의 경우 1년이 지나면 사망을 인정해준다. 이씨는 “8개월째 미제(未濟), 8개월째 실종, 8개월째 월북, 이게 더 이어지다간 감정이 버틸 수 없다”며 “유가족들도 8개월째 상중(喪中)이라 주변 경조사에도 못 가는 상황”이라고 했다.
동생 사망이 인정되면, 정부를 상대로 형사고발도 할 계획이다. 동생의 죽음에 대한 살인방조, 직무유기 혐의라고 했다. 그는 “사건 당시 청와대, 국방부 지휘 라인과 북한 측 당국자까지 고발 대상에 넣을 것”이라며 “동생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고 했다. 또 동생의 명예 회복을 위해 “동생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하고, 국가 차원의 장례를 치러 달라고 요청할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김동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