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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2021-04/ 04.01(목) 정년 70세 - 04.30(금) 아스트라 ‘노쇼’

상림은내고향 2021. 5. 2. 15:10

만물상 2021-04/ 조선일보

04.01(목) 정년 70세

한 상인이 충남 당진시 시골에 쪽파 구근 300포대를 배달해주러 갔다. 혼자 짐 내리기 힘들어 도움을 청하니 마을 청년회 소속 십여 명이 거들어주러 나왔다. 청년회인데 최연소자가 65세, 나머지는 칠순 어르신들이었다고 한다. ‘청년회’에 힘든 일 시킬 수가 없어 혼자 진땀 흘리며 종자 내려주고는 파김치가 되어 돌아왔다는 경험담을 인터넷에 올렸다.

 

 

▶대부분 농촌에서는 60~70대가 궂은일 도맡아 하는 ‘마을 청년’으로 통한다. 청년회 가입 상한선을 65세에서 70세로 높인 마을도 꽤 있다. “우리 할아버지가 경로당에서 막내라고 담배 심부름 하다가 저한테 들키고는 경로당엘 안 가세요.” “집에만 있는 칠순 아버지에게 왜 경로당도 안 가시느냐고 했더니 형들이 청소시켜서 싫다고 하세요” “제가 사는 마을에는 올해 71세가 청년회장 되셨어요.” “90대 어르신이 70대 할아버지한테 ‘꼬마야’라고 부르는 것도 봤어요.” 온갖 사연이 늘어난 수명과 달라진 사회를 보여준다. ‘농업인 정년’에 해당하는 농업인 취업 가능 연한이 작년에 65세에서 70세로 높아졌다.

 

▶올 4월부터 세계 최고령 국가 일본에 ’70세 정년 시대'가 열렸다. 산업사회 이전에는 정년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했다. 1889년 독일의 철혈 재상으로 불리는 비스마르크가 노령연금을 도입했다. 독일인의 평균수명이 40세 안팎이던 시절인데 일 그만두고 노령연금을 수급할 수 있는 나이를 70세로 정했다. 너무 비현실적인 나이여서 1916년 노령연금 수급 연령을 65세로 낮췄다. ’65세 노인' 개념의 시작이다.

 

▶일본 최대의 에어컨 생산 업체 다이킨공업은 ‘고령 근로자 천국’으로 불리는 회사다. 상대적으로 인건비 저렴하고 기술력 있는 고령 근로자를 잘 활용한 덕분에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를 갖추고 경쟁력을 이어간다. 1970년대 오일 쇼크로 판매가 급감하자 공장 근로자 1800명 중 젊은 사원 600명을 영업 파트로 배치했다. 남아 있는 공장 근로자의 평균연령이 높아졌지만 잘 돌아갔다. 1990년대 초반 일찌감치 65세까지 일하는 재고용 제도를 도입했다.

 

▶일본뿐 아니라 각국이 정년을 높이거나 없애는 추세다. 우리나라도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의 은퇴와 함께 팔팔한 ‘청년 노인’들이 쏟아진다. ’60세 정년' ’65세 노인' 기준은 이미 현실과 맞지 않는다. 지금은 청년 일자리가 더 급한 불이지만 ‘정년 70세’가 우리에게도 그리 먼 미래는 아닐 것이다.

강경희 논설위원

 

04.02 ‘거지갑(甲)’ 박주민

박원순 서울시장의 집무실을 찾았다가 엄청난 양의 서류 더미를 본 적이 있다. 어린이 키에 버금갈 정도 서류탑들이 집무실을 채우고 있었다. “일하다 보니 서류철이 계속 높아진다”고 했다. ‘일을 하려면 저렇게 쌓아 놓고는 못 할 텐데’라는 질문을 하려다 참았다. 20대 국회 개원 뒤 민주당 박주민 의원을 처음 봤다. 항상 큰 백팩을 매고 다녔다. “짬 나면 일을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가방 안에 노트북과 서류 뭉치가 가득 들어 있었다. 박 의원의 백팩을 보면서 박 시장의 서류탑이 떠올랐다.

 

 

▶1973년생 서울법대 93학번 박주민 의원은 변호사 시절 세월호 현장 등을 면도 안 한 얼굴, 꾀죄죄한 옷차림으로 쫓아다녔다. ‘세월호 변호사’ ‘거지갑(甲)’ 별명을 얻었다. 국회의원이 돼서도 헝클어진 머리로 본회의장에 엎드려 쪽잠을 잘 때가 있었다. “밤새 법안 만드느라 못 씻었다”고 했다. 백남기 농민 빈소를 지키다 탁자 위에서 자는 모습도 보였다. 방송 연예 프로그램 등에서 ‘국회의원인데 얼굴은 노숙자’ ‘외모 자체가 성실과 워커홀릭’ 등 찬사를 받았다.

 

▶이런 별명이 후원금을 몰아 줬다. 40시간 만에 계좌 한도를 채우기도 했다. 재산은 ‘거지갑' 등급이 아니다. 2020년도 신고 재산이 11억4468만원이다. 아내도 변호사다. 명문 외고 출신이지만 알려지는 걸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 고교 동기는 “후배들이 인사하면 ‘그래서요?’라고 반응했다”고 했다.

 

▶그는 재킷에 주렁주렁 배지를 달고 다녀 ‘박주렁’으로도 불린다. 세월호·여순 사건·제주 4·3 사건·위안부를 상징하는 배지를 달고 다닌다. 박 의원은 “유가족, 피해자분들이 직접 달아주신 것이어서 제 손으로 뗄 수 없다” “꼭 해결하겠다는 각오이자 다짐”이라고 했다. 20대 국회에서 법안을 315건을 발의해 최다 발의 랭킹에 이름을 올렸다. 약자를 위한 법에는 꼭 이름을 올렸다. 그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참 보여주기 정치는 잘한다.”

 

▶박 의원이 작년 7월 임대료를 5% 이상 못 올리게 하는 임대차 3법 통과를 앞두고 자기 소유 아파트 임대료를 9% 인상한 사실이 드러났다. 자기가 발의한 법이다. 법 통과 하루 전 법사위 회의에서 “법 적용을 예상하고 미리 월세를 높이려는 시도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자기가 그렇게 했으니 잘 알 수밖에 없다. 청년정의당 대표가 “거지갑 박주민은 어디 있느냐”고 했다. 내로남불과 위선은 조국씨를 비롯한 586 전유물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이동훈 논설위원

 

04.03 포스텍의 고민

/포스텍

 

정문술빌딩, 양분순빌딩, 박병준홍정희KI빌딩, 김병호김상열IT융합빌딩, 정몽헌우리별연구동… 카이스트 캠퍼스 지도를 보면 이처럼 사람 이름이 들어간 건물이 많다. 학문 연구에 써달라고 이 대학에 수백억원을 기부한 사람들을 기려 건물 이름을 명명한 것이다. 서울대에도 LG경영관, CJ어학관, SK연구동, 관정도서관 같이 기부한 기업이나 기부자 이름이 붙은 건물이 수두룩하다.

 

▶카이스트와 더불어 국내 양대 과학기술대학으로 꼽히는 포스텍(포항공대)에는 30여 동 건물이 있지만 기업이나 기부자 이름이 들어간 건물이 하나도 없다. 포스코라는 대기업이 뒤에 있다는 이유로 대규모 기부를 하는 개인이나 기업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리과학관, 화학관, 제5공학관 등과 같이 건물 이름이 단순하다.

 

 

▶포스텍은 세계 20위권 연구 중심 대학에 진입해 최초의 과학 분야 노벨상을 배출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1986년 개교했다. 초기엔 첨단 시설에 젊고 유능한 교수진을 대거 유치해 기세 좋게 치고 올라갔다. 조선일보·QS 아시아 대학 평가에서 2010년부터 6년 연속 특성화 대학 분야 아시아 1위에 올랐다. 그러나 개교 30년을 넘기면서 활력이 떨어졌다. 한 교수는 “인적 자원이 노화한 데다 어느덧 시설도 낡았는데도 재정 부족으로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아 목요일 오후부터는 불이 켜져 있는 연구실이 손으로 꼽을 정도라고 했다. 포스텍은 2018년 아시아 대학 평가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20위 밖으로 밀려났다.

 

▶이 대학 이사회가 최근 학교를 국립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받고 있다. 포스코 지분 2%와 그 계열사 주식 등 1조원이 넘는 법인 자산을 갖고 있지만 막상 학교 운영에 쓸 수 있는 자금은 다른 대학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주요 이유다. 주식 배당금 등으로 현상 유지는 가능하지만 다가올 미래에 대비해 AI대학원, 바이오센터 같은 대규모 연구 시설을 짓고 우수 연구 인력을 유치하려고 해도 재정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국회에서 지난달 말 특별법까지 통과시켜 전남 나주에 한전공대를 짓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호남 공약이라는 이유 말고는 설립 이유를 알 수 없는 대학이다. 개교 10년까지 무려 1조6000억원이 든다. 포스텍 처럼 우수하고 필요한 대학이 재정 문제로 학교를 내놓는 것까지 논의하고 있는 마당에 황당한 일이다. ‘문재인공대' 만들 돈으로 포스텍 같은 진짜 대학을 지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누구나 할 것이다.

김민철 논설위원

 

04.05(월) 역사에 ‘내로남불’로 남을 文정권

/4.7 재·보궐선거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사전투표를 홍보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당 대표 직무대행은 지난 1일 대국민 성명에서 “내로남불 자세도 혁파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에 다시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지만, 민주당 고위 인사가 자신들이 내로남불 자세를 가진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은 처음 아닐까 싶다.

 

▶사람이 어느 정도 내로남불 자세를 갖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정치인도 예외는 아니어서 내로남불은 상대 당이나 정치인을 비판할 때 쓰는 단골 용어 중 하나였다. 처음 이 말을 쓴 정치인은 박희태 전 국회의장으로 알려져 있다. 1996년 총선 직후 여소야대 상황에서 여당(신한국당)이 야당 의원들을 영입하자 제1 야당(새정치국민회의)이 맹공격했다. 박 의원은 “1995년 국민회의가 (분당 과정에서) 민주당에서 의원 빼 간 것부터 따져보자”며 “내가 바람피우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인가”라고 받아넘겼다.

 

 

▶이후 내로남불이라는 용어가 4반세기 동안 쓰였지만 이 정권에서만큼 많이 쓰인 적은 없었다. 조국 전 법무장관은 과거 발언이 예외 없이 본인과 현 정권을 향해 부메랑으로 돌아와 ‘조로남불’이란 말까지 생겼다. 2019년 국감에서 야당 의원이 “내로남불도 유분수”라고 지적하자 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내가 조국이냐”고 항의할 정도였다. 최근 부동산 사태에선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임대차보호법을 대표발의해 놓고 자기 아파트 임대료는 9% 올린 것이 드러나는 등 연일 내로남불 행태가 드러나고 있다. ‘1일 1내로남불’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한 진보 성향 학자가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는 책을 내면서 문 정권의 내로남불 사례들을 정리하다 너무 많아 그만뒀다고 할 정도였다. 굳이 정리할 필요 없이 포털 사이트에서 내로남불을 치면 다양한 사례들이 넘쳐나고 있다. 내로남불은 이 정권 최고의 유행어이자 이 정권의 트레이드마크나 마찬가지다.

 

▶야당이 최근 선관위에 ‘투표가 내로남불을 이깁니다’ 등 문구를 투표 독려 현수막 등에 사용할 수 있는지 문의한 결과,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선관위는 그 이유로 “선거인이 특정 정당(후보자)을 쉽게 유추할 수 있거나, 반대하는 표현이라서 일반 투표 독려용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한마디로 내로남불이라고 하면 현 정권을 연상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선관위 답변이니 “민주당이 내로남불 정당인 사실을 국가 기관이 공식 인정했다”는 말이 큰 과장은 아닐 듯하다. 이래저래 훗날 역사가들이 이 정권을 내로남불 정권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민철 논설위원

 

04.06 중국·러시아 백신

/(몬테비데오 AFP=연합뉴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의 한 병원에서 루이스 라카예 포우 대통령이 중국 제약사 시노백이 개발한 신종 코로나 백신을 맞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 86.5%, 칠레 56.4%, 바레인 46.9%, 세르비아 37.1%…. 영국 옥스퍼드대 통계 사이트가 집계한 인구 대비 코로나 백신 1회 접종률이다. 전 세계가 백신 부족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의외의 국가들이 높은 접종률을 보이고 있다. 백신 개발국인 미국(48.4%), 영국(54.0%)에 비해도 손색없는 비율이다. 우루과이는 요즘 하루에 총인구의 1.1%에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중국이나 러시아 백신을 과감하게 도입했다는 것이다.

 

▶중국은 우한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한 직후인 지난해 2월부터 빠른 속도로 백신을 개발했다. 러시아도 지난해 8월 세계 최초로 자체 백신을 승인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중국·러시아 과학기술은 코로나 백신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두 나라가 백신을 개발하면서 유효성·안전성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공개하고 검증받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러시아 백신은 지난 2월 국제 의학 전문지 ‘랜싯’에 91.6%의 예방 효과를 보였다는 3상 결과를 발표하긴 했다. 그래도 중·러 백신이 과연 안전하고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은 가시지 않는다. 아르헨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지난 1월과 2월 두 차례 러시아 백신을 맞았음에도 지난 3일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터키는 지난 1월부터 지금까지 인구의 20%에 달하는 1640만명에게 중국 백신을 접종했지만 최근 확진자가 1월에 비해 4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두 나라 백신이 ‘물백신’ 아니냐는 의심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다만 두 나라 백신을 맞고 중대한 이상반응을 보였다는 보도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중국 러시아 백신

▶그럼에도 워낙 백신 공급이 달리자 일부 서구 국가들도 러시아 백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독일은 유럽의약품청(EMA)이 사용 승인을 하면 러시아 백신 접종을 고려할 수 있다고 했고, 오스트리아는 EMA 승인이 나기 전인데도 러시아 백신 100만회분 도입을 협의 중이다.

 

▶국내에도 중국 백신은 몰라도 러시아 백신은 검토해볼만하지 않느냐는 전문가들이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도 얼마 전 “러시아 백신을 포함해 검토는 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상세한 임상 자료 공개와 검증으로 먼저 국민들에게 확실한 믿음을 준 다음에나 가능한 일이다. 백신 접종률이 높은 나라들은 그나마 지도자의 관심과 결단이 있었다. 지난해 여름 알 수 없는 이유로 백신 확보 시기를 놓치고 국민들에게 방역만 다그치는 우리나라 리더십과는 차이가 있다.

김민철 논설위원

 

04.07 ‘의인’ 열전

정치인들은 ‘의인(義人)’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자기편 들어주면 ‘의인’이다. 야당 오세훈 후보가 16년 전 내곡동 땅을 방문한 뒤 생태탕을 먹으러 왔다고 주장한 식당 주인의 아들도 민주당이 ‘의인'이라고 불렀다. 그는 내놓고 정권 방송을 하는 라디오에 나와 16년 전 일을 눈앞에서 보는 듯 말했다. “증거를 공개하겠다”며 기자회견까지 예고하더니 당일 취소했다. 그는 다른 언론엔 “그때는 오 후보를 몰랐다”고 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인데 봤다고 한다. 진짜 의인인지, 가짜인지 아리송하다.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 아들의 병역 기피 의혹을 김대업씨가 제기했다. 김씨는 문서 위조, 협박, 변호사법 위반 등 전과가 수두룩한 병역 브로커 출신이었다. “병적 기록표가 위조됐다” “병역 비리 은폐 대책회의가 있었다”는 주장은 결국 모두 거짓으로 판명됐다. 하지만 대선이 끝난 뒤였다. 완전범죄가 된 사기극이었다. 공영방송은 김대업의 주장을 거의 매일 톱 뉴스로 보도하는 광(狂)적인 방송을 했다. 민주당은 김씨를 “병역 비리 발본색원의 신념을 가진 의인”이라고 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민주당이 한때 의인으로 불렀다. 그가 전 정권 때 국정원 댓글 수사팀장 출신으로 국회에 나와 “선거 사범 사상 유례없는 중대 범죄”라고 했을 때였다. 그런데 그가 문재인 정권 불법을 수사하자 민주당 의원은 “의인화(義人化·의인인 척)한다”고 했다. 이 의원은 대통령의 30년 친구를 울산시장에 당선시키기 위해 선거 공작을 벌인 혐의로 기소돼 있다.

 

▶윤지오씨도 의인 대접을 받았다. 윤씨는 장자연 사건의 유일한 증인을 자처하며 ‘누가 나를 테러하려 한다’고 허무맹랑한 얘기를 했다. 그런데 민주당은 후원 모임까지 만들어 “의로운 싸움을 지켜주겠다”고 했다. 경찰은 윤씨 호텔비를 대줬고, 여성가족부 차관은 후원금을 냈다. 윤씨는 억대 후원금을 모았다가 기부금 전용이 불거지자 캐나다로 가버렸다. 그가 호텔에서 생일 파티한 동영상을 소셜 미디어에 올렸는데도 법무부는 “소재 파악이 안 된다”고 했다.

 

▶의인은 의로운 사람이다. 공익을 위해 비리를 고발하는 사람,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이 ‘진짜 의인’이다. 문재인 정권에선 진짜 의인들은 탄압받는다.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폭로한 김태우 전 수사관은 공무상 비밀 누설로 징역 1년에 집행 유예 2년을 받았다. 정당한 정책 문제를 제기한 사무관은 비난 공격에 시달렸다. 내 편이면 의인이고, 아니면 악인이다.

금원섭 논설위원 논설실 논설위원

 

04.08 백신 수출 제한?

2009년 신종플루 팬데믹 때 유일한 치료제는 타미플루였다. 미국 길리어드가 1996년 개발했고, 스위스 로슈가 특허권을 사들여 독점 생산할 때였다. 국내에도 신종플루가 퍼지는데 타미플루 비축분이 인구의 5% 분량에 불과했다. 불안 여론이 비등해지자 당시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위급하면 특허 정지 조치를 내려 국내에서 복제약을 생산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글로벌 제약사들이 반발해 의약품 공급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우려 등으로 실제로 추진하지는 않았다.

 

 

▶인도는 전 세계 백신의 약 60%를 만드는 ‘세계의 백신공장’이다. 그런 인도가 지난 3월 들어 코로나 확진자 수가 수만명대로 급증하자 “국내 수요가 우선”이라며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수출을 중단했다. 호주는 EU에 지난달 말까지 주기로 한 AZ 백신 310만회분을 달라고 항의하고 있다. 미국도 국방물자생산법까지 동원해 자국에서 생산하는 화이자·모더나 등 백신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우리 국민부터 맞고 보자'는 자국 우선주의가 퍼진 결과들이다.

 

▶우리 정부가 6일 국내에서 생산하는 백신 수출을 제한할 수도 있다는 뜻을 처음 밝혔다.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한 기존 입장을 바꾼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북 안동에 있는 SK바이오사이언스 공장에서 AZ 백신을 위탁 생산하고 있고, 노바백스 백신은 기술 이전 방식으로 생산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AZ 백신의 수출을 제한하는 데 회의적이다. 혈전 등 AZ 백신의 품질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무역 의존도가 70%에 육박하는 나라가 국제 무역질서를 무시하는 조치를 취할 경우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특히 AZ 백신은 위탁생산이라 수출 금지는 명백한 계약 위반이고, AZ가 원료 공급을 차단할 경우 실익도 없을 수 있다. 화이자 등 추가로 들어올 백신이 막힐 가능성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소탐하다 대실할 수 있다는 얘기다.

 

▶노바백스는 사정이 좀 다르다. 계약 내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기술이전 방식이기 때문에 자국에서 우선 사용 조치를 취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노바백스 백신은 임상에서 96.4%의 예방 효과를 보였다. 그래서 정부 검토 발언이 AZ가 아니라 노바백스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문제는 노바백스 백신은 아직 미 식품의약국(FDA) 등의 사용승인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AZ 백신은 득보다 실이 클 것 같고 노바백스 백신을 겨냥한 것이라면 좀 이른 시기에 속내를 드러낸 것 같다. 지난해 백신 계약을 서둘렀으면 벌어지지 않을 수 있는 일들이다.

김민철 논설위원

 

04.09 성추행 피해자들의 4·7 선거

 

“당신 잘못이 아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성추행당한 피해 여성이 지난해 11월 법정에 출두했을 때 재판장이 한 말이다. 일반 범죄와 달리 성폭력은 피해자가 겪은 고통을 가해자 아닌 자기 탓으로 돌리는 특성이 있다. 성폭력 재판을 주로 맡았던 판사가 그런 피해자 심리를 알고서 건넨 위로였다. 박원순 전 시장도 그런 여성들을 돕던 인권 변호사였다. 그러니 이런 박 전 시장에게 성추행당한 피해자의 심정이 어땠겠나.

 

▶박원순·오거돈 두 시장에게 성추행을 당한 두 여성은 지난 1년간 성추행 이상의 심각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성추행 사실을 밝힌 ‘죄’였다. 청와대와 국회, 법원을 장악한 세력에 포위됐다. 박 전 시장 피해자는 사람을 죽게 한 가해자란 적반하장 비난과 저주를 들었다. 입만 열면 여성·소수자·인권을 외치던 이들이 더했다. 여성 의원들이 ‘피해 호소인'이란 해괴한 용어까지 만들어냈다. 박원순·오거돈 성추행 사건은 이런 위선자들의 민낯이 드러나는 계기가 됐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은 너무나 컸다.

 

▶박 전 시장 피해자는 집요한 2차 가해에 시달리다 못해 “내가 죽으면 인정할까?”라며 모든 비밀번호를 어머니에게 알렸다고 한다. 자식한테 그 말을 들은 부모 심정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래도 “네가 죽으면 저 사람들이 네 잘못으로 죽었다고 할 테니 이럴수록 더 씩씩하게 살자”고 다독였다고 한다. 속으론 피눈물을 쏟았을 것 같다. 오거돈 전 시장의 변호인은 민주당 후보 선대위원장이 됐다. 피해자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 전 시장 재판은 별 이유도 없이 선거 뒤로 연기됐다. 피해자는 “얼음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끔찍한 시간”이라고 했다.

 

▶이 피해자들에게 이번 선거는 단순한 정치 행사가 아니었다. 박 전 시장 피해자가 말했던 것처럼 만약 민주당이 승리했다면 이들은 성범죄로 짓밟히고 이어서 민주주의 제도로 다시 짓밟히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사망이다. 오세훈·박형준 두 후보가 선거 승리 후 첫 일성으로 “성폭력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돕겠다”고 하자 피해자들은 마침내 가족과 함께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미국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진 토머스 제퍼슨은 “열광한 자들은 박해자가 되고 선량한 사람은 그 피해자가 된다”고 했다. 선량한 개인을 보호하지 못하는 민주주의는 다수를 앞세운 폭정일 뿐이란 경고다. 두 여성이 자기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된 데서 그래도 우리 민주주의의 희망을 본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마음의 상처도 말끔히 치유하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한다. 딸 가진 아빠의 마음으로 빈다.

김태훈 논설위원

 

04.10 박수받고 물러난 김종인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김종인 당 국민행복위원장에게 SOS 전화를 걸었다. 사퇴 의사를 밝힌 그를 만류하면서 도와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2016년에는 민주당 문재인 대표가 그를 찾아가 비대위원장을 맡아달라고 간청했다. 수락하지 않자 집으로 서너 번 찾아가 거의 무릎을 꿇다시피 했다. 그는 그 두 선거에서 모두 이겼다. 이번 서울·부산시장 선거도 승리했다. 그래서 ‘김종인 매직’이란 말이 생겼다.

 

 

▶그는 전국구(비례대표)로만 5선을 지냈다. 한국 정치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정당도 여러 번 바꿨다. 한때 전두환의 경제 가정교사라는 말도 있었다. 1987년 대선 때는 민정당 사회개발연구소장으로 여론조사 기법을 처음 도입해 4자 대결에서 승리했다. 이후 노태우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 2002년 대선 땐 노무현, 2007년엔 이명박 후보가 자문했다고 한다.

 

▶그에겐 보수·진보의 구분도, 정당에 대한 얽매임도 소용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 진보가 어딨어?” “보수란 말 쓰지 말라”고 한다. 양 진영을 오가면서도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쓰임이 있고 부르면 간다는 것이다. 누가 이길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하면 이기는지 간파했다. 지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세력이나 측근도 키우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독 플레이였다. “몰려 다니는 사자가 아니라 혼자 사는 호랑이”라고 했다. 외톨이지만 그 때문에 곳곳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그는 남을 칭찬하지 않는다. 면전에서 쓴소리도 예사로 한다. 걸핏하면 그만두겠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이것이 ‘김종인식 카리스마’를 만들었다. 두 대통령 구속 수감 사태에 대해 과감히 사과해 청년층 지지의 장애를 없앴다. 그가 당을 맡은 이후 국민의힘 내 막말도 줄었다.

 

▶그의 40년 정치 인생엔 실패도 많았다. 1988년 관악을에 출마해 이해찬 전 대표에게 졌다. 이후 한 번도 지역구 선거나 경선에 나서지 않았다. 1993년엔 동화은행 수뢰 사건으로 구속됐다. 박근혜·문재인을 도왔지만 선거 승리 후 밀려났다. 2017년 대선 땐 출마를 선언했다가 곧바로 접었다. 작년 총선에서도 참패했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도 당연히 대통령 꿈이 있었다. 노태우 정부에서 차기 주자로 검토됐다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마침내 그 꿈을 접은 것 같다. 그는 “여든 살 넘으면 덤으로 사는 것이다. 이제 자연인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은 8일 박수를 받으며 물러났다. 국민의힘이 합리적이고 품위 있는 보수당으로 발전한다면 김종인의 업적으로 남을 것이다.

배성규 논설위원

 

04.12(월) 세계어가 된 내로남불

로마자로 표기한 한국어 중 처음 접한 단어가 불고기(bulgogi)였다. 한국이 내세울 것 없던 시절, 외국인에게 “어떤 한국 음식을 좋아하느냐”고 물어보면 조건반사처럼 돌아오던 단어이기도 했다. 김치(kimchi), 소주(soju), 온돌(ondol) 등도 그런 단어다. 우리 문화를 알파벳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해 딱히 좋거나 싫지 않았다.

 

 

▶반면 재벌(chaebol)은 번역 가능한 단어인데도 한국식 표현을 그대로 썼다. 1972년 처음 외신에 등장했으며 웹스터 사전·옥스퍼드 사전에 표제어로 정식 등재된 어엿한 세계어다. ‘기업 집단’이란 뜻의 conglomerate와는 느낌이 크게 다르다. 뉴욕타임스는 재벌의 특징으로 ‘군대식 독재’와 ‘가족 간 원한’ ‘탐욕’ ‘오만’ 등을 꼽는다.

 

▶세계어가 된 한국어는 ‘세계인의 눈’이란 거울에 비친 한국의 초상이다.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몇 해 전 ‘땅콩 회항’ ‘물컵 투척’ 사건이 터졌을 땐 ‘갑질’(gapjil)이 외신을 탔다. ‘일터에서의 괴롭힘’(workplace harassment)으로 번역하면 갑질의 인격 모독적 뉘앙스가 담기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썼다고 한다. 약자를 함부로 대하는 우리 사회의 치부를 드러낸 단어다. 지난해 BBC는 택배 노동자가 사망한 뉴스를 전하며 이유를 ‘과로사’(kwarosa)라고 했다. ‘꼰대’(kkondae)도 ‘old man’이나 ‘senior citizen’으로 옮기면 ‘어린 사람을 가르치려 드는 나이 먹은 사람’이란 부정적 느낌이 사라진다.

 

▶한류 붐과 K팝은 정반대 기여를 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덕분에 ‘오빠’(oppa)와 ‘강남’(gangnam)은 세계인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른 한국어가 됐다. ‘언니’(unnie)도 덩달아 떴다. 전 세계 K팝 팬들은 BTS·블랙핑크의 노래를 따라 부르려 알파벳으로 한국어 가사를 적어 외운다. ‘돌민정음’이라 한다. 아이돌에 훈민정음을 합성한 신조어다.

 

▶엊그제 뉴욕타임스가 4·7 재보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소식을 전하며 ‘내로남불’을 이유로 꼽았다. ‘double standard(이중 잣대)’로 번역하지 않고 ‘naeronambul’ 그대로 썼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한국 여당의 이중 잣대’란 의미일 것이다. 선관위가 특정 당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사용을 금지했는데, 그 고유성이 세계적 지위를 획득한 셈이다. 코로나 4차 대유행 경고가 나오는데 백신 확보는 더디기만 하다. 이러다 K방역도 ‘백신 없이 국민만 옥죄는’ Kbangyeok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논설실 논설위원

 

04.13 끝까지 ‘혼밥’

/혼밥존 설치한 한 식당.


2018년 12월 문희상 국회의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혼밥 하시느냐”고 물었다. 문 대통령의 ‘혼밥’ 소문이 국회의장 귀에까지 들어간 것이다. 당시 청와대는 비공개 오·만찬이 많다며 ‘혼밥’을 부인했지만 야당 분석은 달랐다. 취임 후 대통령의 식사 회동은 600일간 1800끼니 중 100회에 그쳤다. 6일 중 한 번만 다른 사람과 공개적으로 밥을 먹은 것이다. 그때 ‘대통령 혼밥’이란 제목으로 만물상을 썼다.

 

▶문 전 의장이 며칠 전 본지 인터뷰에서 “(당시) 혼밥 발언 때문인지 그 이후로 (문 대통령이) 한 번도 안 부르시더라”고 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 정무수석,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과 당 대표 등을 지냈다. 친노이고 친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 문 전 의장, 유인태 전 의원을 단골로 불러 ‘밥상 토론’을 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이 편하게 조언을 구할 수 있는 대표적 원로가 문 전 의장일 것이다. 그런 사람마저 2년 3개월이 넘도록 청와대에서 밥 한끼 같이 못 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 지인에 따르면 ‘친구 문재인’은 많은 사람이 모이는 식사 자리를 즐기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 명이 모여도 말을 하지 않고 혼자 술잔을 드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정치인에게 식사는 세상과 소통하고 반대파를 설득하는 자리다. 싫어도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이 대통령의 숙명이다. 국가 지도자는 외국 정상들과도 적극적으로 어울려야 한다. 영국 처칠이 1943년 미국 루스벨트와 회담하고 아내에게 “열흘 동안 우리는 거의 모든 식사를 함께 했소”라는 편지를 썼다. 두 사람 친분은 2차 대전 승리의 밑거름이 됐다.

 

▶2019년 G20 때 문 대통령이 공식 회의 참석을 거의 안 했다는 동영상이 논란이 됐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안 보인 시간에는 모두 양자 회담을 했다”며 “가짜 뉴스”라고 발끈했다. 그런데 참석한 다자(多者) 회의에서도 문 대통령은 활발하게 대화하는 다른 정상들과 달리 혼자 서 있거나 인사 정도만 나누는 모습을 보였다. G20은 국가 정상만 발언권을 얻는 무대다. 그 외교전에서 문 대통령은 ‘혼자'였다. 이런 자리를 싫어하는 때문인지 문 대통령은 외교 행사 뒤엔 더 피곤해한다는 얘기도 있다.

 

▶문 전 의장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임기 1년 남으니까 밥 자리를 안 하려고 하더라”고 했다. 의욕도, 재미도 없어진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더할 것이다. 다음 대통령은 껄끄러운 상대와도 밥 먹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대통령 혼밥’ 기사는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란다.

안용현 논설위원

 

04.14 변이 對 접종의 경주

/(런던 로이터=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 완화 첫날인 12일(현지시간) 수도 런던의 번화가인 소호 거리에서 시민들이 축배를 들며 파티를 즐기고 있다. 영국은 이날부터 코로나19 봉쇄 조처를 완화해 이발관·미장원 등 비필수 영업장이 문을 다시 열었다. 식당과 펍의 실외 영업도 허용됐다.

 

영국이 12일 고위험군과 50대 이상을 대상으로 신종 코로나 백신 1차 접종을 마쳤다. 영국 성인의 58.5%인 3219만명이 한 차례 이상 백신을 맞은 것이다. 2차 접종까지 마친 사람도 765만명에 달했다. 영국의 코로나 사망자는 지난 1월 변이 바이러스가 창궐했을 때 하루 1820명까지 치솟았지만 지난 11일 7명으로 극적 감소를 보였다. 영국 정부는 봉쇄 조치를 완화하고 경제활동 재개를 본격화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영국이 변이 바이러스와 경주에서 승기를 잡은 것”이라고 평했다.

 

▶세계적으로 변이 바이러스와 대량 접종 간의 경주가 진행 중이다. 삶과 죽음, 일상과 속박 사이의 레이스다. 이스라엘에 이어 영국도 승기를 잡았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변이 바이러스에 밀리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인 4차 대유행은 변이 바이러스가 주도하고 있다. 미국은 현재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하루 400만명까지 접종하며 피치를 올리고 있지만 미시간·미네소타주 등 북부에서 뉴욕 변이 등의 세 확산이 만만치 않다.

 

 

▶백신의 효과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감염을 예방하는 효과와 코로나에 걸리더라도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를 줄이는 효과다. 화이자·모더나·아스트라제네카(AZ) 등 기존 백신들은 모두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초기 바이러스에 대항해 만든 것이다. 그런데 변이는 바이러스의 특성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바이러스는 새로운 변이를 일으키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변이 바이러스가 등장하면 감염 예방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변이 바이러스가 퍼지는 속도보다 빨리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 속도 싸움이다.

 

▶일단 확보한 백신은 최대한 빨리 접종해야 한다. 기존 백신이 변이에 대한 감염 예방 효과는 떨어질 수 있지만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를 줄이는 효과는 있다. 미국 코로나 사망자 수도 지난 1월 3000명대에서 최근 800~900명대로 큰 폭 감소했다. 현재 백신을 무용지물로 만들 정도로 심각한 변이가 출현하기 전에 백신 접종을 서둘러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영국·남아공·브라질 등 세 가지 변이가 들어와 있다. 우리는 백신이 태부족해 변이와 경주를 펼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접종률 2.4%로 막 스타트 라인을 떠난 정도다. 지금과 같은 접종 속도로는 언제 변이 바이러스를 따라잡고 역전할지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백신 공급만 충분하면 얼마든지 스퍼트할 수 있는 체력과 능력을 갖고 있는데 안타까울 따름이다.

김민철 논설위원

 

04.15 주폭 방지법

고대 도시국가 스파르타 시민들은 연회장에서 노예에게 만취하도록 술을 줬다. 평소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서가 아니였다. 취하면 얼마나 추해지는지 보고 비웃기 위해서였다. 시민들은 포도주를 물에 희석해 마셨다. 로마에선 음주의 목적을 네 단계로 나눴다. 첫 잔은 갈증을 풀기 위해, 둘째 잔은 영양을 얻기 위해, 셋째 잔은 유쾌해지기 위해 마신다. 넷째 잔은 발광(發狂)하기 위해 마신다. 넉 잔 이상은 마시지 말라는 얘기다.

 

 

▶이 기준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발광하기 위해 마시는 나라다. 소주 기준으로 1인당 연간 15병을 마신다. 마트에서 파는 소주 360㎖ 한 병 가격이 대개 1500원을 넘지 않는다. 단돈 1달러로 만취가 가능한 나라다. 너도나도 부담 없이 술을 마신다. 술 마시는 성인이 600만명을 넘나든다. 다음 날 술 냄새 풍기며 출근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국 속담에 ‘주신(酒神) 바쿠스는 군신(軍神) 마르스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는 말이 있다. 전쟁 나서 죽는 사람보다 술로 인해 죽는 사람이 더 많다는 얘기다.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피해가 연간 10조원에 육박하는 우리나라가 여기에 해당한다. 엽기적 범죄와 성적 일탈 현장에 늘 빈 소주병이 나뒹군다. 대검찰청이 2018년 살인·강도·강간·절도·방화 사범을 조사했더니 술 취해 저지른 범죄가 전체의 34%를 넘었다. 공무집행방해자의 71%가 주폭(酒暴)이라는 조사도 있다.

 

▶2012년 조선일보와 경찰이 손잡고 주폭 퇴치 캠페인을 벌였다. 100일간 관련 사범 300명을 구속했더니 살인 31%, 강도 37%, 강간 6%가 줄었다. 사람들은 세상이 달라졌다고 했다. 서울경찰청장으로 당시 주폭과의 전쟁을 지휘했던 김용판 의원이 ‘주폭 퇴치법’ 발의를 추진하고 있다. 주폭과의 전쟁 이후 술에 취해 저지른 범죄의 형량을 줄여주지 말자는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됐다. 이번 법안은 거기서 더 나아가 술 마시고 범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상습범 가중처벌 조항도 뒀다.

 

▶지금도 술에 취해 행패 부리다가 경찰에 신고된 사람의 76%가 훈방된다. 서구권에선 상상할 수 없는 관대한 처분이다. 미국에선 마개를 딴 술병을 들고 거리를 배회하는 것 자체가 경범죄에 해당한다. 길거리에서 취한 상태로 있으면 수갑을 차고 체포된다. 우리도 술에 너그러운 사회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이번 법안에 국가의 음주 범죄 예방 노력을 의무 조항으로 둔 것도 그런 취지다. 주폭이란 말 자체가 없어지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04.16 ‘리얼돌’ 인문학

/리얼돌 이미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은 피와 살이 있는 여자들이 싫어서 자신이 만든 조각상과 결혼했다. 상아로 아름다운 여성상을 만들어 껴안고 입도 맞췄다. 이름은 갈라테이아. 자위용 인형 리얼돌(real doll)의 원조인 셈이다. 21세기엔 현실이 되고 있다. 영국 미래학자 이안 피어슨은 저서 ‘미래의 섹스’에서 2050년이면 로봇이나 인형과의 성관계가 인간 대 인간의 관계보다 많아진다고 예측했다. 인간과 로봇의 동거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된다고 내다봤다.

 

▶17세기 초 네덜란드 선원들이 항해 중 홀아비 시름을 달래려고 낡은 옷을 여러 개 기워 자위용 인형을 만든 게 리얼돌의 시초다. 1900년대 초 고무인형으로 진화했고 지금은 사람 피부와 질감이 유사한 TPE(Thermo Plastic Elastomer)라는 합성고무로 제작된다. 1996 미국 어비스 크리에이션스가 ‘리얼돌' 상표로 제품을 출시한 뒤 이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다. 인공지능을 장착해 파트너와 감정 교류까지 하는 리얼돌도 이미 등장했다.

 

 

▶피그말리온 신화는 인간이 일찌감치 성적 판타지를 꿈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금도 수많은 소설·만화·영화에서 반복 재생된다. 스필버그 영화 ‘AI’에선 인공지능을 탑재한 남자 매춘 로봇이 “로봇 애인을 경험하면 다시는 인간과의 관계를 원하지 않게 될 거야”라고 여성을 유혹한다. 일본 만화 ‘쿄시로 2030’, 영화 ‘데몰리션 맨’의 주인공 남녀는 특수 고글이나 손길을 느끼는 센서가 부착된 옷을 입고 가상현실(VR) 공간에서 만나 사랑을 나눈다.

 

▶리얼돌 체험방이 학교 주변과 주택가에 침투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1인 가구가 늘고 코로나 여파로 성매매가 어려워진 것이 확산 이유로 꼽힌다. 업소를 폐쇄하라는 청와대 청원이 등장했지만 성매매가 아닌 데다 인형이어서 단속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리얼돌은 전에 없던 윤리적 물음도 던진다. 2017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로봇 성매매 업소를 연 ‘킨키돌스'라는 회사는 ‘돈으로 사람을 사는 성매매를 근절하자’는 구호를 내걸었다니 어리둥절하다. 리얼돌·섹스로봇이 노인·장애인·성소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긍정과, 변태스러운 행태라는 혐오감이 혼재한다.

 

▶편리한 사랑을 꿈꿨던 피그말리온도 결국엔 갈라테이아를 인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신에게 빈다. 신은 소원을 들어주며 갈라테이아 손에 반지를 끼워줬다. 돌이 아닌 육신은 늙어가겠지만 대신 온기가 흐르는 몸과 마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이루라는 축복이었다. 리얼돌은 영원히 이것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김태훈 논설위뤈

 

04.17 보건장관 수난 시대

/그래픽=박상훈

브라질에서는 지난달 신종 코로나 사태 이후 네 번째 보건장관이 임명됐다. 첫 번째, 두 번째 보건장관은 코로나 대응 방식을 놓고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갈등을 빚다 경질됐다. 군 장성 출신인 세 번째 보건장관은 비전문가라 코로나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과 함께 사퇴 압력을 받아왔다. 브라질은 코로나 환자 급증으로 의료 체계가 사실상 무너지는 위기를 여러 차례 맞았다. 백신 부족으로 접종마저 원활하지 않은데 번번이 그 책임을 보건 수장이 지고 경질당한 셈이다.

 

▶코로나 사태가 1년 반 가까이 이어지면서 각국 보건장관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 코로나로 지친 국민들이 보건장관을 비난 표적으로 삼는 일이 많은 데다 정권이 흔들리면 가차 없이 보건장관을 희생양으로 삼는 지도자도 많기 때문이다. 지난 1년 사이 보건장관을 서너 번 바꾼 나라가 수두룩하다. 오스트리아 보건장관처럼 코로나 격무를 견디지 못하고 자진 사퇴하는 경우도 한둘이 아니다.

 

 

▶얼마 전 스페인 EFE통신은 코로나 사태 이후 중남미에서 중도에 물러난 보건장관이 20명이 넘는다고 보도했다. 브라질은 물론 페루와 에콰도르, 볼리비아, 도미니카공화국도 1년 사이 여러 번 보건장관을 교체했다. 전쟁 중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 무색하다.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중남미 고질병인 부패 문제로 물러난 보건장관도 적지 않다. 특히 ‘백신 새치기 접종’으로 물러난 보건장관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국민 몰래 미리 백신을 접종받은 페루 보건장관, 친한 언론인에게 백신을 맞도록 주선한 아르헨티나 보건장관, 어머니가 있는 요양 시설에 백신을 보낸 에콰도르 보건장관이 최근 줄줄이 물러났다.

 

▶동유럽 국가 슬로바키아에서는 마토비치 총리가 코로나 문제로 뭇매를 맞다 결국 지난달 말 사임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코로나 봉쇄 수위를 낮추었다가 확진자가 급증하자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그 와중에 연정 파트너들과 협의 없이 러시아 백신을 주문한 것이 결정타였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코로나 논란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첫 번째 지도자”라고 했다.

 

▶우리나라 전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여름 주요국들이 백신 구매를 서두르는 것을 보면서도 느긋한 자세를 보였다. 지난 연말까지도 “우리는 안정적으로 코로나에 대처해 서둘러 백신을 접종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했다. 지난해 11월엔 국회에서 “오히려 화이자·모더나가 우리에게 빨리 계약하자고 하는 상황”이라고 사실상 국민을 속이기도 했다. 보건 당국자들의 오판과 무능이 백신 부족 사태를 일으켜 국민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김민철 논설위원

 

04.19(월) 백신 관광

 

발칸의 화약고’라 불렸던 세르비아가 요즘 ‘발칸의 백신 허브’가 됐다. 인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 등지에서 백신 맞으러 세르비아의 수도로 모여든다. 화이자, 모더나는 물론 중국 백신, 러시아 백신까지 인구의 2배쯤 되는 백신 물량을 확보해놓고 외국인에게도 무료로 접종하기 때문이다. 세르비아보다 몇 곱절 잘사는 이탈리아에서도 백신 맞으러 가겠다는 문의가 쇄도한다.

 

▶코로나 이전엔 러시아 부자들이 유럽으로 의료 관광을 갔다. 코로나 백신 때문에 처지가 뒤바뀌었다. 유럽 일부 국가는 러시아 정부에 무비자 입국을 허용해달라고 요청했다. ‘월드 비지터’라는 노르웨이 여행사가 러시아행 백신 관광 상품을 내놨다. 3박 4일씩 두 차례 러시아를 방문해 러시아 백신 스푸트니크V를 맞고 돌아오는 단기 상품도 있고, 22박 23일 머물면서 여행 2일 차와 22일 차에 각각 백신 맞고 중간에는 스파와 마사지를 즐기는 장기 상품도 있다. 아예 비자 면제 ‘백신 관광’ 프로그램을 가동하자는 아이디어까지 나왔다.

 

▶14세기 이탈리아 작가 보카치오가 쓴 ‘데카메론’은 흑사병이 유행하자 남녀 10명이 피렌체 외곽 시골 마을로 피신해 하루 하나씩 10일간 100편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형식의 단편소설집이다. 코로나 시대의 ‘데카메론’ 성지는 아랍에미리트(UAE)다. 일본 투자 회사 소프트뱅크 임원, 영국 금융인 등 각국 부자들이 전용기 타고 두바이로 백신 맞으러 갔다. 지난 2월 캐나다 연기금 대표가 해외여행을 자제하라는 방역 수칙을 어기고 두바이로 ‘백신 관광’을 갔다는 사실이 알려져 사임했다.

 

▶‘백신 디바이드(백신 격차)’가 심해지면서 ‘백신 새치기' ‘백신 원정 관광'은 대중의 분노를 샀다. 멕시코의 유명 TV 진행자는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서 백신 맞은 사실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자랑했다가 미국과 멕시코 양국에서 거센 비난을 받았다. 스페인 국왕의 두 누나도 백신 맞으러 두바이 간 사실이 알려져 스페인에서 분노를 샀다. 하지만 몰디브, 미국 알래스카주처럼 아예 백신 접종을 상품화해 남들보다 한발 앞서 관광 산업을 부흥하려는 곳도 있다.

 

▶유럽연합(EU)은 올여름 ‘백신 여권’을 도입해 관광 재개를 구상 중이다. 오늘부터 호주와 뉴질랜드는 자가 격리 없이 자유 여행을 상호 허용하는 트래블 버블(travel bubble)을 시작했다. 백신 접종 순위 100위권 나라에 살다 보니 백신 맞으러 남의 나라 간다는 뉴스가 남의 일 같지 않다.

강경희 논설위원

 

 04.20 ‘김치 프리미엄’ 코인 광풍

세계 최대 금 소비국 인도는 금 밀수 천국이기도 하다. 밀수 금 주 공급처는 중동 두바이다. 두바이에선 금에 세금을 물리지 않는 반면 인도에선 수입 금에 관세, 부가가치세 등 17%가량 세금을 물린다. 두바이에서 금을 밀수하면 17% 차익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금 밀수꾼들도 금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홍콩산 금괴를 밀수해 관세(3%), 부가세(10%)만큼의 차익을 노린다. 국내 유통 금의 70%가량은 밀수를 포함한 무자료 거래라고 한다.

 

 

▶밀수는 일종의 차익(差益) 거래다. 같은 물건을 싼 곳에서 사서 비싼 곳에서 팔아 차익을 얻는 것을 차익 거래라고 한다. 외국 명품을 해외 직구하는 것도 차익 거래로 볼 수 있다. 금융공학 전문가들이 주식에도 차익 거래 개념을 도입해 선·현물 가격 차이를 노리는 프로그램 매매를 만들었다. 미래 주가인 선물가격과 현재 주가인 현물가격 간 가격 차이를 따먹기 위해 선·현물을 번갈아 거래하는 방식이다.

 

▶국내 암호 화폐 시장에서 차익 거래가 성행하고 있다. 한국 비트코인 가격이 미국 비트코인 가격보다 1만달러(한화 1100만원) 이상 비싼 ‘김치 프리미엄’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비트코인을 사서, 한국 거래소에서 팔면 15% 이상의 무위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이론적으론 차익 거래가 많아지면 가격 차가 없어지는데, 암호 화폐 시장은 국가 간 장벽이 높고, 한국의 비트코인 수요가 워낙 강해 김치 프리미엄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비트코인 광풍 여파로 해킹에 대한 안전장치 없이 무제한 발행되는 이른바 잡코인(알트코인) 가격도 덩달아 치솟고 있다. 미국 컴퓨터 엔지니어들이 장난삼아 만든 도지코인의 하루 거래 금액(17조원)이 코스피 총거래액(15조원)을 웃도는 황당한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 국내 암호 화폐 투자자들이 떡상(가격 급등)을 주문하며 외친다는 ‘GAZUA(가즈아!)’ 구호가 영어권 속어 사전(urban dictionary)에 등재돼 ‘To the moon(달까지)’과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소설가 장류진 작가는 최근 발표한 소설 ‘달까지 가자’에서 2030세대의 코인 투자 열풍을 다뤘다. 작가는 “앞으로 전진하는 방향키를 아무리 눌러도 발에 모래주머니를 단 것처럼 무겁게 천천히 나가는” 인생에 지쳐 ‘코인 막차’를 탄다고 진단했다. 소설 속 청년 투자자들은 돈을 벌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 하지만 삶은 소설처럼 풀리지 않는다. 코인 열풍이 청년 세대에게 또 하나의 절망을 안기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다.김홍수 논설위원

 

04.21 갈 길 먼 ‘자율주행차’

 

▲17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해리스 카운티 우들랜즈에서 교통사고를 낸 테슬라 자율주행 자동차가 크게 찌그러진 채 트럭에 실려 이송되고 있다. 이 차량은 주행 중 빠른 속도로 회전하다가 나무를 들이박고 불이 났다. 차량에서는 동승자석에서 1명, 뒤쪽 좌석에서 1명이 각각 숨진 채 발견됐다. 이에 대해 경찰은 "운전석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으로 99% 확신한다"고 밝혔다./로이터 연합뉴스

 

1980년대 초 미국 드라마 ‘전격Z작전’이 인기몰이를 했다. 경찰 출신 주인공이 ‘키트(KITT)’로 불리는 최첨단 자동차를 활용해 악당들을 응징하는 스토리다. 키트는 인공지능을 가진 자율주행차였다. 주인공이 애플워치처럼 생긴 손목시계를 통해 지시하면 알아서 주행해 목적지를 찾아간다. 장애물이 나오면 터보 부스터(고속 점프) 기능을 알아서 쓰기도 한다.

 

▶현실 세계에서 자율주행차 기술은 2000년대 초 미국 국방부가 주최한 자율차 주행 대회(DARPA 챌린지)가 산파역을 했다. 일정 구간 사막 도로를 자율차가 완주하게 하는 대회였다. 명문 공대, 자동차 업체, 스타트업 기업들이 도전에 나섰지만 처음 몇 년간은 결승선에 도착한 차가 한 대도 없었다. 그러다 2007년 스탠퍼드대학 팀이 만든 자율차가 처음으로 결승선에 도착했다.

 

 

▶현재 자율차 기술 선두 주자는 구글과 테슬라다. 둘의 기술 구현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구글 자율차는 차량 주변에 레이저 빔을 초당 수백만 번 쏜 뒤 반사각, 거리를 토대로 입체 지도(HD map)를 만들고, 이를 나침반 삼아 차량이 나아간다. 반면 테슬라는 카메라만으로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이미 판매돼 운행 중인 테슬라 차량들이 보내주는 도로, 환경 데이터를 딥러닝(자동 학습) 기술로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주행하는 방식이다. 현재까지 개발된 자율차 기술 수준은 고속도로같이 교차로 없는 도로에서 차선과 차량 간격을 유지하는 정도다. 제2단계다. 운전자가 운전에 거의 개입하지 않는 3단계나 운전석을 비울 수 있는 4~5단계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머스크는 “테슬라에 탑재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만으로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하며, 2020년까지 완전 자율차를 선보이겠다”고 큰소리쳤지만 허언으로 끝났다. 맞수 기업 웨이모(구글 자회사)의 CEO 존 그래프칙은 얼마 전 갑자기 사임했다. 성과 없이 매년 엄청난 적자를 계속 내는 데 대한 부담감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미국 CNBC 방송은 “자율주행차에 대한 희망이 과장됐다는 걸 보여준 사건”이라고 했다.

 

▶테슬라 차량 매뉴얼에는 “자율주행 모드 사용 시 운전석에 운전자가 앉아 있어야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의 큰소리 탓인지 이 기능을 과신하는 운전자가 많다. 지난 17일 미국에서 운전석을 비운 채 주행하다 나무를 들이받고 화재가 난 차량에 갇힌 남자 2명이 사망했다. 국내에서 운행 중인 테슬라 차량이 1만8000대를 넘어섰다. 언젠가 완전 자율주행차 시대가 오겠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김홍수 논설위원

 

04.22 기모란까지, 문 정권의 통혁당 인맥

1968년 8월 20일 제주 앞바다에 북한 공작선이 출현했다. 북 노동당의 남한 지하조직인 통일혁명당의 당수 김종태·이문규 등을 태우고 가려는 것이었다. 우리 군과 교전 끝에 북 공작원 12명이 사살됐다. 일명 통혁당 사건으로 김종태를 비롯한 주범 5명이 사형을 선고받고 158명이 검거됐다. 김종태는 4차례 북한을 오가며 김일성을 면담하고 거액의 공작금을 받았다. 무장 봉기와 정부 전복을 노리며 신영복·박성준·기세춘 등 학계·문화계 인사와 학생 등을 포섭했다. 통혁당 책임비서였던 신영복, 청년 조직을 이끈 박성준은 각각 무기징역과 15년형을 받았다.

 

 

▶신영복 전 교수는 1988년 사상 전향서를 쓰고 20년 만에 출소했다. 하지만 이후 “난 사상을 바꾼다거나 동지를 배신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대학 강의를 하며 사상서를 출간했다. 자기 고유의 서예체인 ‘신영복체’도 만들었다. 좌파에선 그를 ‘진정한 인문학자’라고 칭송했지만, ‘주체사상 신봉자’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영복을 유달리 좋아했다. 동계올림픽 리셉션에선 펜스 전 미국 부통령과 북한 김영남 위원장을 앞에 두고 “신영복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라고 말했다. 김여정이 청와대를 방문했을 땐 신영복의 ‘통(通)’ 글씨와 한반도 그림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으며 “통(通·소통)으로 통(統·통일)을 이룬다”고 했다. 청와대 비서실엔 신영복이 쓴 ‘춘풍추상(春風秋霜)’ 액자를 돌렸다. 대선 구호를 담은 현수막이나 대통령 시계 뒷면에도 신영복 글씨를 넣었다.

 

▶한명숙 전 총리의 남편인 박성준 전 교수는 신영복의 학교 후배로 함께 복역했다. 한 전 총리는 통혁당 사건 때 박성준의 포섭 대상자로 나온다. 박 전 교수가 문 대통령의 숨은 멘토라는 말도 있다. 문 대통령이 한 전 총리 신원(伸寃)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일 수 있다. 문 정부 초대 법무장관 후보자였던 안경환 전 서울대 교수는 신영복과 동향으로 친분이 깊다.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고민정 의원은 2016년 신영복 영결식에서 문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고 한다.

 

▶그 통혁당 인맥이 다시 화제가 되는 건 기모란(奇牡丹) 청와대 방역기획관 때문이다. 기씨의 아버지가 통혁당 사건으로 복역했던 기세춘씨다. 조선 성리학자 기대승의 후손이라고 한다. 그는 1997년 북한 주체사상과 동양 철학에 대한 ‘주체철학 노트'라는 책도 냈다. ‘백신 급하지 않다'던 기씨가 발탁된 이유가 뭘까. 이 정부 곳곳에 통혁당 인맥의 흔적이 유난히도 짙다.

배성규 논설위원

 

04.23 스푸트니크V 백신

/(모스크바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모스크바 교외의 노보-오가료보 관저에서 화상으로 자국 내 백신 생산 확대와 관련한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23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접종받겠다고 밝혔다.

 

지인이 최근 러시아산 코로나 백신 ‘스푸트니크V’에서 ‘V’가 알파벳 대문자 ‘V’인지, 로마 숫자 ‘Ⅴ’인지 물었다. 국내 기사를 검색해 보면 브이와 5로 해석한 것이 섞여 있다. 스푸트니크V는 구소련이 1957년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를 발사한 것처럼 러시아가 전 세계 백신 개발 레이스에서 승리(Victory)했다고 만든 이름이다. ‘V’에 대한 관심은 이 백신을 무시하다가 최근 부쩍 관심이 늘어난 것을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8월 세계 최초로 코로나 백신을 승인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푸틴 대통령은 “모든 검증 절차를 거쳤다”며 자신의 딸도 이 백신을 맞았다고 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1~2상 결과만으로 승인했고 3상을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게 잊히는 듯했지만 지난 2월 러시아가 국제 의학학술지 ‘랜싯’에 3상 결과 91.6%의 코로나 예방 효과를 보였다고 발표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랜싯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과 함께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학술지다.

 

 

▶논문 게재가 전 세계적인 백신 공급 부족과 맞물리면서 러시아 백신을 쓰는 나라가 늘어났다. 주로 동유럽, 남미, 동남아 국가들이지만 백신 부족에 허덕이는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문재인 대통령이 이 백신 도입 가능성을 점검해 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러시아 백신의 안전성과 효능을 평가할 자료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 평가다. 랜싯 3상 논문도 임상 참여자가 2만명 이하로 적은 데다 참여자 중 대조군이 5000명 이하인 기형적인 구조여서 통계적인 신뢰가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교수). 이미 이 백신을 대량 접종한 나라들의 결과를 보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러시아 등은 접종 결과를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아 믿을 만한 자료를 얻기 어렵다. 이 백신이 아스트라제네카·얀센 백신과 비슷한 아데노바이러스로 만들어서 혈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상당하다.

 

▶지금으로서는 이 백신을 심사 중인 유럽의약청(EMA)이 어떻게 판단하는지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러시아 백신을 도입하는 데 또 하나 조건이 있다. 정부가 먼저 백신 조기 확보 실패와 수급 어려움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고 국민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일이다. “백신 도입이 늦지 않았다”고 강변하고 도입 차질을 우려하면 “가짜 뉴스”라고 윽박지르다 불쑥 러시아 백신을 도입하겠다고 하는 것은 파렴치한 일이다.

김민철 논설위원

 

04.24 뿌리 깊은 ‘K투기’

/게티이미지뱅크·그래픽=김성규

 

1890년대 일본 미곡상들이 인천에 ‘미두 취인소(米豆取引所)’라는 쌀 선물거래소를 만들었다. 10% 보증금만으로 대량 매매가 가능해 ‘대박’을 노리는 투기꾼들이 인천으로 몰려들었다. 하루 거래량이 100만석을 웃돌면서 일본 선물시장을 추월했다. 하지만 조선인 투자자는 대부분 패가망신했다. 일본 선물가격을 기준가격으로 삼았는데,

 

일본 시세를 전보를 통해 미리 알아낸 일본인들이 시장을 농락했다. “논밭은 동양척식회사에 뺏기고, 조선인 돈은 미두(米豆) 바람에 다 날아간다”는 말이 떠돌았다.

 

▶100년 뒤 1996년에 문을 연 주식 선물 시장이 투기판 계보를 이어받는다. ‘압구정 미꾸라지' ‘목포 세발낙지' 별칭을 가진 고수들의 대박 성공담이 화제가 됐다. 2011년엔 하루 선물 거래액이 45조원대로 치솟으며 세계 1등이 됐다. 쪽박 사례가 빈발하며 사회문제가 되자 정부가 거래 보증금 기준을 올리는 등 시장 진입 장벽을 높이는 조치를 취했다.

 

 

▶손실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국 개미들의 고수익 추구 성향은 여전하다. 4월 들어 국내 증시에선 코스피 지수 하락분의 2배 수익이 나도록 설계된 ‘코스피200지수 선물인버스2X’가 개인 순매수 1위 종목을 차지하고 있다. 올 1분기 중 서학 개미들은 미 증시의 대표적 투기 종목인 게임스톱, 이항홀딩스 주식을 각각 52억, 14억달러어치나 거래했다.

 

▶증시가 한동안 주춤거리자 개미들의 주 활동 무대가 가상 화폐 시장으로 옮아갔다. 국내 1위 가상 화폐 거래소의 하루 거래 규모(122억달러)는 미국 1위 거래소의 3배, 일본의 24배에 달한다. 거래 가상 화폐 수(178개)도 미국의 3배, 일본의 35배다. 4대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571개 가상 화폐 중 124개는 한국인이 만든 ‘김치 코인’이다. 가상 화폐 투자자가 511만명에 달하고 2030세대가 45%를 차지한다.

 

▶코인 광풍은 투자 행태에도 스며든 ‘빨리 빨리’ 문화와 기댈 곳을 잃은 2030세대의 슬픈 자화상이 뒤섞인 사회 병리이다. ‘더 큰 바보’를 기대하는, 폭탄 돌리기식 투기는 패가망신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워런 버핏은 투자 원칙으로 “첫째, 돈을 잃지 마라, 둘째, 첫째 원칙을 잊지 마라”고 조언한다. 그의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은 “투자란 철저한 분석으로 원금을 보존하면서 만족할 만한 수익을 얻는 것이며,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모든 행위는 투기”라고 했다. 코인 광풍은 누가 봐도 악성 투기다. 세계 금융사에 ‘K투기’라는 신조어가 등장할까 겁난다.

김홍수 논설위원

 

04.26(월) 여성 징병제

2차 세계대전 때 여성 징병제를 처음 실시한 나라는 영국이었다. 하지만 전투에 투입하지는 않았다. 미국과 독일도 여성을 타자수나 전화교환수 등으로만 활용했다. 처음으로 여성을 전투에 투입한 나라는 소련이었다. 여성으로만 이뤄진 비행연대가 ‘밤의 마녀’로 불리며 독일군에 공포의 대상이 됐다. 인내심과 관찰력이 뛰어나다며 여성을 저격병으로도 대거 투입했다. 독일군 1만명이 이들 손에 저격됐다. 이런 활약에도 불구하고 소련 내에선 ‘그래도 전투와 여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후일담이 적지 않았다.

 

 

▶여성 징병제 대표국 이스라엘도 여성 전투병은 소수다. 전체 병력 35%가 여성이지만 전투병은 5% 정도다. 하지만 여성들 요구로 보직에 남녀 구별이 사라지는 추세라고 한다. 1995년에 한 여성이 전투기 조종사 훈련소에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해 승소했다. 여성에게 비전투 업무만 맡기는 것은 차별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어 2004년엔 혼성 전투부대도 생겼다.

 

▶최근 몇 년 사이 북유럽 국가에 여성 징병제가 앞다퉈 도입됐다. 영토 대비 인구수가 적은 상황에서 러시아 등 안보 위협이 커졌기 때문이다. 2016년 여성 징병제를 도입한 노르웨이는 여성 2명에 남성 4명을 의무적으로 한 내무반에 배치한다. 남녀 병사가 등 돌린 채 옷 갈아입는 내무반 영상이 화제가 됐다. 군인들은 “우리는 전우일 뿐”이라고 했다. 몇 년 뒤 보고서는 우려했던 생활 문란은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선 남성만을 징집 대상으로 규정한 병역법이 헌법에 반한다는 위헌 소송이 10여 차례 있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인정하지 않았다. 여성 신체는 전투에 부적합하고, 여성을 복무시키면 군 시설 마련 등에 큰 비용이 든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성 평등 병역이 옳다는 여성계 인사들도 많다. 민주당 권인숙 의원이 대표자다. ‘남자들의 군부심(군대 갔다 온 자부심)이 보기 싫으니 여성 징집제 도입하자’는 여성 댓글도 인터넷에 적지 않다.

 

▶청와대 게시판에 ‘여성도 남성과 같이 징병하라’는 청원이 올라와 20만명 넘게 동의했다. 비슷한 청원은 문재인 대통령 당선 직후에도 제기됐다. 당시 문 대통령은 “재밌는 이슈”라며 웃어넘겼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 보궐선거에서 드러난 20대 남자들의 이탈 때문이다. 정치권이 앞장선다. 한 민주당 의원은 남녀 모두 100일간 의무 군사훈련을 받게 하자고 했다. 군 가산점제 부활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정치권의 여성 징병제 논의는 ‘강하고 효율적인 국방’보다는 ‘기계적 평등’ ‘남성 표심 잡기’ 측면이 더 크다. 얄팍한 주장일 뿐이다. 북유럽 국가들이 여성 징병제를 도입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성 평등이 아니라 안보 강화였다.

이동훈 논설위원

 

 04.27 조연상

/25일(현지 시각) 93회 오스카상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이 수상소감을 밝히고있다./AFP 연합뉴스

영화 ‘사랑과 영혼’에서 남녀 주인공 패트릭 스웨이지와 데미 무어는 삶과 죽음이 엇갈린 청춘 남녀를 연기해 눈물샘을 자극했다. 영화에서 두 사람 못지않게 기억에 남는 배우가 우피 골드버그다. 이승의 여자와 저승의 남자를 연결하는 영매(靈媒) 연기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위험한 정사’에서 열연한 글렌 클로스는 때론 조연이 주연 못지않게 영화 성패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관객들은 남자 주인공을 맡은 마이클 더글러스보다 유부남에게 병적으로 집착하는 여자를 연기한 클로스를 오래 기억했다.

 

▶메릴 스트리프는 할리우드 최고 명배우이지만 조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주연상 후보로 17번 올라 두 차례 수상했고 조연을 맡아 이 부문 후보로도 4차례 이름을 올렸다. 아카데미 21차례 후보 기록은 그녀가 유일하다. 이 중 1979년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로 조연상을 받았다. ‘카사블랑카’에서 험프리 보가트의 연인으로 열연했던 잉그리드 버그먼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번 받고 우리 나이 예순에 ‘오리엔트 특급살인’으로 조연상을 추가했다.

 

 

▶배우 윤여정이 제9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우리 영화는 1962년 신상옥 감독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처음 아카데미 문을 두드린 이후 반세기 넘도록 수상은커녕 본선도 오르지 못한 변방 신세였다. 그러다가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작품상·감독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고, 이번엔 배우에게 주는 상까지 연거푸 받았다. 한국 영화의 쾌거다.

 

▶윤여정은 미나리로 수십 번 상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틀에 박힌 수상 소감을 거부하며 ‘윤여정 신드롬'을 일으켰다. 빛나는 유머 감각과 촌철살인 명구로 시상식장을 장악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도 “나는 경쟁을 믿지 않는다”는 말로 관객의 허를 찔렀고, 이어 “내가 어릴 때부터 훌륭한 연기를 봤던 글렌 클로스를 이길 수 있겠는가. 저마다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 각자가 승자”라는 참신한 소감으로 큰 박수를 받았다.

 

▶영화 소재가 된 미나리는 메인 요리라기보다는 다른 요리에 곁들였을 때 더욱 빛을 발하는 식재료다. 복어 국물에 넣으면 풍미를 더하고 삼겹살에 곁들이면 누린내를 없애준다. 여름에 자란 미나리보다 겨울 혹한을 견딘 미나리가 맛 좋고 향도 많다. 영화에서 윤여정이 연기한 순자는 미나리를 심으면서 “미나리는 원더풀(Minari is wonderful)”을 반복한다. 평생 조연으로 살아오다 아카데미의 빛이 된 그녀에게도 딱 들어맞는 말이다. 수상을 축하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04.28 배식마저 실패한 軍

/부실 급식

 

1960년 장병 1인당 하루 급식비는 25원이었다. 멀건 국에 김치만 나왔다. 쌀이 부족해 1969년부터 라면을 줬다. 부대 인원만큼 정확하게 배식하지 못하면 뒤의 장병은 굶어야 했다. 그래서 “작전·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있어도 배식에 실패하면 죽음”이란 우스개가 유행했다. 2012년 전방 부대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70년대 군 시절을 회상하며 ‘한우 도망탕’ 얘기를 꺼냈다. 고깃국에 고기가 도망간 듯 없었다는 것이다. 1976년에야 장병 식탁에 세 가지 반찬이 올랐다. ‘1식3찬'이다.

 

▶올해 장병 1인당 급식비가 8790원이다. 단순 계산으로 350배 이상 늘었다. 그런데 요즘 장병은 살 찔까 봐 일부러 적게 먹는 경우도 있다. 이들을 위해 국방부는 칼로리를 낮춘 식단을 개발하고 해군은 샐러드바까지 운영한다. 불고기·닭튀김 같은 반찬은 ‘잔반'으로 남을 때가 많다고 한다. 가축 사료 등으로 쓴다고 하지만 넘치는 군대 잔반 처리에 골머리를 앓는 시대다.

 

 

▶그런데 최근 군 부대의 부실 급식을 고발하는 글과 사진이 잇달아 온라인을 달구고 있다. ‘불고기 당면 볶음’에 불고기가 없고, 돈가스 반찬은 손가락만 하고, 국 없이 밥만 나왔다고 장병들은 분개했다. 생일 케이크라고 받아 보니 1000원짜리 빵에 초 하나 꽂힌 사례도 있었다. 휴가 복귀 전 코로나 방역으로 격리된 일부 장병은 밥과 나물 한 숟갈, 깍두기 두 쪽이 전부인 도시락을 받기도 했다. 부대의 기존 식사만 도시락에 담아줘도 됐는데 그 걸 안 한 것이다.

 

▶국방부 해명을 종합하면 한 마디로 ‘배식 실패’다. 급식 담당자의 부주의 등으로 음식을 적게 받거나 빼먹었다는 것이다. 부실 도시락은 격리자 배식 등을 잘못 계산했다고 한다. 생일 케이크도 수요 공급의 착오였다고 해명했다. 요즘 장병이 배가 고파 부실 급식을 고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 횡령한 것 아니냐는 공정과 정의 문제에 민감한 것이다. 육군 훈련소는 방역을 이유로 신병의 목욕과 화장실 이용까지 통제해 젊은 층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세상에 어떻게 화장실 이용을 막나. 경직된 사고와 책임 회피 일변도가 합쳐져 과도한 대책이 나온 것이다.

 

▶이 정부 들어 군은 적(敵)의 눈치를 본다. 군사력 아니라 대화로 나라를 지킨다는 헛소리까지 했다. 취객과 치매 노인에게도 부대가 뚫렸다. 한·미 훈련은 컴퓨터 키보드로 한다. 하극상 등 군기 문란은 일상이 됐다. 이제는 배식마저 제대로 못 한다. 그 많은 장군들은 이러고도 밥이 넘어갈까.

안용현 논설위원

 

04.29 마스크 벗은 바이든

/(워싱턴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 시각) 백악관 야외에서 신종 코로나 감염증 대응 연설을 마친 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연단을 떠나고 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이날 코로나19 백신 접종자가 붐비지 않는 야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지침을 완화했다.

 

미국 트럼프 시대와 바이든 시대의 큰 차이 중 하나는 마스크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첫 행정명령으로 연방기관 내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 ’100일 마스크 챌린지'에 서명했다. 그는 대선 기간에도 마스크 쓰는 것을 꺼린 트럼프와 달리 내내 마스크를 착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TV 토론에서 “나는 바이든처럼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바이든은 볼 때마다 마스크를 쓰고 있다. 내가 본 것 중 가장 큰 마스크를 쓰고 나타난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그런 바이든 대통령이 27일 마스크를 벗었다. 그는 이날 백악관 잔디밭에서 연설한 다음 평소와 달리 마스크를 쓰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마스크 착용을 완화하는 지침을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CDC는 백신 접종을 마친 사람은 실외 식당이나 붐비지 않는 실외에서는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마스크 벗은 바이든의 모습은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승기를 잡아가는 미국의 상징적인 장면이다.

 

 

▶백신 접종률이 높은 나라들이 속속 ‘탈(脫)마스크’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이스라엘도 백신 접종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 18일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했다. 그럼에도 감염 지표가 좋아지자 다음 달 6일부터 아동·청소년들이 대중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방역 조치를 추가 완화하기로 했다. 영국도 지난 12일 집단 면역에 근접했다고 판단해 식당·술집·상점·체육시설 등에 문을 열도록 하면서 공원 등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이 넘쳐 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화이자는 올해 안에 알약 형태의 코로나 치료제를 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임상시험이 진행 중인데 바이러스가 인체 내 세포에서 자기복제를 하지 못하게 하는 약이다. 코로나 초기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이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도 간편하게 복용할 수 있어서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건 전문가들은 기대하고 있다.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게 하는 또 하나의 약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쯤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좋다는 말을 들을까. 현재 우리는 모든 실내에서, 실외의 경우 2미터 거리 유지가 어렵거나 집회·공연·행사 등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1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정부 말대로 11월 집단 면역에 가까워지더라도 올겨울 초기까지는 마스크를 쓰지 않을 수 없다. 올여름 무더위에도 마스크를 쓰고 다닐 생각을 하니 벌써 숨이 막히는 느낌이다. 지난해에는 그나마 전 세계인이 같이 겪은 일이었지만 올해는 그렇지 않아 더 힘들 것 같다.

김민철 논설위원

 

04.30(금) 아스트라 ‘노쇼’

/경찰·소방 공무원 등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된 26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한 내과에서 의료진이 사회 필수 인력에게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접종을 하고 있다. (사진=동작구 제공) /뉴시스

 

29일 오후 서울 J병원 접종센터에 전화해 보니 말을 다 꺼내기도 전에 “(지금 와도) 예방접종 받을 수 없습니다”고 했다. 담당자는 “제가 오늘 이런 전화만 100통 넘게 받았다. 다른 업무를 할 수 없을 지경”이라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방역 당국이 전날 “접종을 예약했다가 무단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백신 폐기량을 줄이기 위해 현장에서 즉석 등록해 접종받도록 하고 있다”고 밝힌 이후 벌어지는 일이다.

 

▶방역 당국은 28일 브리핑에서 “다른 백신들의 (하반기) 공급이 꽤 늘어날 것이어서 현재 접종하는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올까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백신이 턱없이 부족한데 그나마 대부분이 AZ다. 하지만 혈전증 부작용 우려가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기피 현상이 심상치 않은 것이다. AZ 접종 예약을 취소하거나 예약 후 오지 않는 ‘노쇼(no-show)’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반기에 화이자·모더나 등 상대적으로 부작용이 덜한 백신을 맞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AZ 백신 기피를 부추기고 있다.

 

 

▶방역 당국은 연일 당근을 제시하며 접종을 유도하고 있다. 예방접종을 마친 사람은 다음 달 5일부터 해외에서 귀국하거나 확진자와 밀접 접촉을 했더라도 검사 결과 음성이고 증상이 없으면 자가 격리를 면제받는다. 2주 자가 격리를 하지 않으니 해외여행도 생각해볼 수 있을지 모른다. 또 예방접종을 마친 경우 요양병원이나 시설에서 가족을 면회할 수 있도록 허용할 방침이다.

 

▶여기에다 노쇼 등으로 남는 백신은 현장에서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접종할 수 있게 했다. AZ 백신은 1병을 개봉하면 10~12명에게 접종할 수 있는데 개봉하면 6시간 이내에 사용해야 한다. 현재 백신을 접종하는 위탁의료기관이 2000여개인데 5월 말까지 1만4000여개로 늘릴 예정이다. 각 의료기관에서 1~2명의 예약자만 ‘노쇼’하더라도 산술적으로 1만명 이상에게 맞힐 백신을 폐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걸 현장에 있는 30세 이상 누구나에게나 접종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쪽에서는 백신을 기피하는 현상이, 다른 한쪽에서는 “순서가 아니지만 혹시 모르니 백신 맞으러 가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특히 언제 어떤 백신을 맞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65세 미만에게는 솔깃한 얘기일 수 있다. 일부 병원이나 보건소는 아직 이런 방침을 정확히 몰라 허둥대고 있다. 백신 부족으로 곳곳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김민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