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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칼럼 2026-3/ 03.16 5·18의 헌법전문 수록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 - 03-31 재정 재배치 꼼수로는 성장 못 일군다

상림은내고향 2026. 3. 17. 16:26

■자유 칼럼 2026-3/

03.16  5·18의 헌법전문 수록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도 추진할 것이라고 한다.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수록하는 ‘원포인트 개헌’이다. 여야간 이견이 별로 없어 1987년 체제 이후 39년 만의 헌법 개정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나는 5·18을 헌법전문에 넣는 개헌에 반대한다. 5·18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을 연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적지 않다.

내 경우에는 5·18이라고 하면 새만금 잼버리 난장판과 무안공항 사고가 떠오른다. 둘 다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사건 자체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 후속 처리이다.

무안공항 사고의 경우 179명이 사망한 대형 참사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원인과 실체, 책임자가 모호하다. 무엇보다 기이한 것은 조용하다는 것이다. 세월호 사고의 경우 지금까지 여진이 남아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새만금 잼버리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에서 날아온 청소년들에게 대한민국 이미지를 추락시킨 부정적인 효과를 생각하면 참사라는 표현을 붙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지도 않았고 책임질 사람이 마땅한 책임을 진 것 같지도 않다.

이런 현상이 발생한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결정적인 이유가 이 사건들의 무대가 호남이라는 데 있다고 본다. 다른 지역에서 이런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이렇게 조용히 지나갈 수 있었을까? 불가능했을 것이다. 호남의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이 작용해 이 사건을 덮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무안공항 사고는 심지어 이름까지 ‘제주항공 사고’로 바꾸었다. 이 사건에서 ‘호남’을 지우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설명 불가능한 현상이다.

새만금 잼버리의 귀결도 호남 아니면 이해 불가능하다. 잼버리 파장 이후 새만금 사업 예산을 줄인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 전북의 유명 정치인 J는 ‘봉기’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항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중에 보니 봉기가 아닌 다른 표현으로 바뀌어 있었지만, 나는 ‘봉기’라는 단어를 보면서 ‘제2의 5·18을 일으키겠다는 협박’이라고 생각했다. 5·18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호남이라는 특정 지역의 이기적 요구를 방어하는 무기가 된 것 같다.

김규나 작가 문제도 있다. 김 작가가 SNS에 올린 글이 5·18을 폄훼했다는 이유로 벌금 100만 원의 구약식처분을 받았다. 김 작가의 해당 발언에 대한 동의 여부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작가가 특정 사건에 대한 역사적 해석을 사회 주류와 다르게 했다고 해서 처벌받는 나라가 된 것이 본질이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는 언론과 출판 등 사상의 자유이다. 5·18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투쟁이었다면서 그 5·18을 명분으로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짓밟는다는 게 말이 되나? 5·18의 폄훼를 처벌하는 법적 장치가 마련된 순간부터 5·18의 민주적 의미는 무너졌다고 본다.

나는 그래서 5·18의 헌법전문 게재에 반대한다. 5·18이 호남+좌파 패권을 옹호하고 그 비리를 덮는 무기로 쓰이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5·18이 반(反)대한민국 가치를 전파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적 사건은 의미가 현대적 맥락에서 끊임없이 재평가 재해석될 수밖에 없다. 1980년 당시에는 5·18이 민주항쟁의 성격이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이후 5·18은 좌파가 대한민국을 공격하는 무기로 흑화했다. 이는 5·18 무렵 광주 금남로에서 날뛰는 무리의 행태에서 잘 드러난다.

광주와 호남은 반대한민국 가치의 강력한 기지이다. 공산주의자 정율성은 세금 들여 미화하면서 이승만과 박정희의 경우 사진 하나 공공장소에 걸려있지 않은 것으로 안다. 공산주의자를 미화하고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화의 주역은 외면하는 것을 반대한민국 아니면 뭐라고 불러야 하나?

5·18의 헌법전문 게재는 반대한민국 가치가 헌정의 중심에 자리잡는다는 의미이다. 반대할 수밖에 없다.

자유일보 주동식 정치평론가

 
 

03.17 한국 좌파의 역설(逆說)

민주노총, 참여연대, 전국농민회 제주도연맹, 시민평화포럼 등 좌파 시민사회단체들은 15, 16일 연달아 성명(聲明)을 발표하며 한국군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派兵)을 반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4일 자신의 SNS 트루스 소셜에 "바라건대, 지도부가 완전히 제거된 국가에 의해 호르무즈 해협이 더 이상 위협받지 않도록 (이란 정부의) 인위적 제약의 영향을 받는 중국, 프랑스, 일본, 한국, 영국, 그리고 다른 국가들도 이곳으로 함정을 보낼 것"이라는 글을 올린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글을 사실상의 파병 요구로 해석한 것은 그 나름 합리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파병을 반대할 수도 있다. 좌파 단체들이 파병을 반대하는 이유로 크게 '현재 이란 전쟁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침략(侵略) 전쟁이라는 점',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2가지를 들고 있다. '침략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한다'는 것처럼 아름다운 말도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불과 1, 2개월 전 이란에서 벌어졌던 일들에 대한 한국 좌파들의 태도를 돌이켜 보면, 이들이 말하는 '침략 반대'와 '평화 사랑'의 실체와 관련해 경악(驚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올해 초부터 이란 시민들은 신정 독재(神政獨裁)에 반대하며 민주화를 요구하는 광범위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1980년 권위주의 체제를 비판하며 민주화를 부르짖었던 광주 5·18민주화운동과 데칼코마니처럼 닮았다.

 

정권의 폭압적 진압도 닮은꼴이었다. 이란의 신정 독재 체제는 자국민을 적(敵)으로 간주하고 3만~4만 명 이상을 학살(虐殺)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실질적 희생자가 20만~3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기도 한다. 정확한 사망자와 희생자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이란에 새로운 민주공화국이 수립되지 않는 한 영원한 비밀이 될 수도 있다. 광주 5·18의 공식 사망자는 165명, "공식 사망자의 3배가 넘는 방치된 시신을 본 적 있다"는 증언을 그대로 수용하더라도 이란 독재정권의 만행(蠻行)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실어야 한다며 5·18 정신 계승을 주장해 온 한국 좌파들은 이란 독재 정권의 반인륜적 만행에 철저히 입을 다물고 외면했다. 그 수많은 5·18 관련 단체들조차 비난 성명 한 줄 내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 좌파 단체들은 이란 전쟁이 발발하자 이란 독재 정권을 비호(庇護)하는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 좌파들을 향해 "당신들의 5·18 정신의 실체는 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한국 좌파들이 주장해 온 또 하나가 전시작전권(戰時作戰權) 전환이다. 전작권 환수라는 말은 언어 공작에 가깝다. 1950년 7월 14일 이승만 대통령이 유엔군사령관에게 한국군 지휘권을 이양함으로써 한미연합군 전작권은 애초에 유엔군에 있었기 때문이다. 환수(還收)라는 프레임으로 미국에 빼앗긴 군사 주권을 되찾는 듯한 뉘앙스를 강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어쨌든 좋다. 전작권 전환을 주장하는 논리의 핵심은 '우리의 안보는 우리가 책임진다'는 자주국방(自主國防)의 정신 아닌가. 그렇다면 에너지 안보에 대한 책임 역시 우리 몫을 마땅히 담당해야 한다. 우리 생명줄인 원유의 7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이란 전쟁은 한국 좌파의 위선(僞善)적 가면을 또다시 벗기고 있다.

매일신문 석민 선임논설위원 sukmin@imaeil.com

 

03.17 광화문 감사의 정원과 광주 정율성 거리

지난 2월 20일 민주당 J 의원은 서울시장 선거 유세 과정에서 광화문광장의 ‘감사의 정원’을 "불법 조형물"로 규정하며 철거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국가보훈부와 협의해 추진된 사업으로, 유엔군의 희생을 기리는 공간을 정치적으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라고 반박했다.

여기서 ‘철거’라는 표현은 단순한 설계 변경이나 시설 정비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적 기억을 공공 공간에서 제거하는 상징적 행위다.

‘감사의 정원’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 이후 대한민국을 지원한 유엔군 22개국을 기리는 공간이다. 이 가운데 16개국은 전투병을 파병했고, 6개국은 의료 및 물자 지원을 제공했다. 유엔군의 전사와 사망자는 약 3만7000명, 부상자는 약 10만 명에 이른다. 실종자와 포로를 포함한 전체 피해 규모는 약 15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그러나 6·25전쟁은 북한만의 전쟁이 아니었다. 1950년 10월 중국은 ‘인민의용군’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에 개입했다. 중국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참전 연인원은 240만 명 이상이며, 서방 학계에서는 전투 병력 규모를 약 100만~150만 명, 총 투입 병력을 200만 명 이상으로 추정한다. 이는 한반도 전쟁사에서 단일 국가가 개입한 외국군 가운데 최대 규모였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광주광역시에서 추진된 ‘정율성 기념사업’은 적지 않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정율성은 중국 팔로군에서 활동한 뒤 중국 ‘인민해방군 군가’를 작곡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1976년 사망했다. 또한 북한 인민군 장교로 활동하며 한국전쟁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내에서는 그의 역사적 평가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져 왔다.

다이빙 주한 중국대사는 지난 2월 6일 광주를 방문해 강기정 광주시장을 만난 자리에서 "중국이 항일 유적지를 보존하듯 정율성 흉상도 복원되기를 바란다"라고 요청했다. 그는 5·18 국립묘지를 참배한 뒤 정율성 거리를 방문했다. 이에 2월 11일 38개 시민단체는 기자회견을 열어 "내정 간섭"이라고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문제의 본질은 특정 인물에 대한 기념 여부만이 아니다. 유엔군을 기리는 공간이 철거 대상으로 거론되는 동시에, 남침과 관련된 인물의 기념사업이 추진된다면 사회 전체의 역사 인식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외교는 현실적 이해관계를 고려할 수밖에 없지만, 역사 인식만큼은 사실과 균형에 기반해야 한다.

자유일보  강병호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정교모 공동대표

 

03.18 물가와 싸운다면서 돈을 푼다?

이재명 정부가 추경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전쟁 추경’이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물가와 경기 둔화라는 이중 위기에 대응하겠다는 명분이다.

그러나 지금의 정책 조합을 보면, 이는 대응이 아니라 충돌에 가깝다. 경제정책의 기본 원리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를 넘어선 자기모순이다.

경제정책의 핵심은 균형이다.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금리를 인상하고 통화량을 줄이는 긴축 정책이 필요하다. 반대로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금리를 낮추고 재정을 확대하는 완화 정책이 요구된다. 문제는 이 두 정책이 동시에 작동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물가와 경기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경제의 냉정한 현실이다.

그런데 정부의 선택은 이 원칙을 거스르고 있다. 부동산을 잡겠다며 시장을 압박하는 한편, 재정 지출을 늘리는 추경을 하고 있다. 통화량이 증가하면 자산 가격이 자극되는 것은 경제학의 기본이다. 한쪽에서는 집값을 누르겠다고 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다시 끌어올릴 수 있는 유동성을 공급하는 셈이다. 양립할 수 없는 정책을 동시에 밀어붙이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또다시 꿈꾸고 있는 것이다. 그 나라는 이미 문 정부 때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는가.

이 모순은 이미 시장에서 신호로 나타나고 있다. 원화 가치는 주요국 대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 통화 가치 하락은 단순한 환율 문제가 아니다. 국가 경제에 대한 신뢰의 문제다. 정책의 방향성이 일관되지 않을 때, 시장은 가장 먼저 통화로 반응한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정책의 목적이다. ‘전쟁’이라는 표현까지 동원된 재정 확대는 위기 대응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선거를 앞둔 확장 재정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것이 일부의 시선이다. 특히 부동산시장을 겨냥한 강한 규제와 재정 확대가 동시 추진되는 구조는 정책의 일관성을 더욱 훼손한다. 한쪽에서는 특정 계층을 ‘문제의 원인’으로 규정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재정 지출을 통해 유권자들의 불만을 달래는 방식이다. 이는 경제 정책이 아니라 정치적 계산에 가깝다.

경제는 구호로 움직이지 않는다. 시장은 말이 아니라 행동의 일관성을 본다. 물가를 잡겠다면 긴축을 감수해야 하고, 경기를 살리겠다면 인플레이션을 감내해야 한다. 선택 없이 둘 다 하겠다는 접근은 결국 아무것도 잡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 대가는 환율, 물가, 자산시장의 불안이라는 형태로 국민 모두에게 돌아온다.

지금의 추경은 위기 해결 수단이 아니라 모순을 확대하는 선택에 가깝다. 물가와 싸우겠다고 하면서 돈을 푸는 정책. 이 단순한 모순조차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전쟁’이라는 명분도 설득력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자유일보 이정민 청년기업가

 

03-19 ‘검찰 폐지’ 막판… 그래도 위헌이다

검찰청은 ‘헌법상 기관’ 당연

공소청 검찰총장은 헌법 훼손

하수인 문제는 檢 아닌 권력 탓

 

수사·기소는 연속적 국가 작용

검찰은 경찰권 견제 위해 탄생

시계 거꾸로 돌린 책임 따져야

 

대한민국 헌법을 보면,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영장제도에서 검사만이 영장을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헌법상 국무회의는 행정부 내의 최고 심의기관으로서 권한을 행사하는데, 검찰총장의 임명도 심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헌법 조항들에서는 검찰청의 구성원으로 검찰총장과 검사를 언급한다. 이는 헌법이 검찰청을 전제로 그 구성원의 지위와 신분에 관해 규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헌법은 주권자로서의 국민이 국가권력 창설의 주체라고 말한다. 역사는 국가권력이 집중되면 될수록 필연적으로 독재화하고 부패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우리나라 헌법은 권력분립원칙을 명시하고 있지 않으나, 입법권은 국회,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 사법권은 법원에 분산하여 위임함으로써 간접적·우회적으로 권력분립원칙이 적용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헌법은 국가권력을 배분하면서 국가기관을 명시하는데, 이를 ‘헌법기관’이라고 한다. 그리고 헌법이 국가기관을 명시하지 않고 그 구성원과 권한만 규정하고 있는 경우에는 ‘헌법상 기관’이라고 한다. 헌법에 따르면, 검찰청은 헌법상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헌법기관이나 헌법상 기관은 헌법에 근거를 두고 있어서 이를 법률로 변경하거나 폐지하면 위헌 문제를 발생시킨다.

 

헌법은 검찰총장이란 명칭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는 검찰청이란 헌법상 기관의 장(長)임을 지칭한다. 이 때문에 검찰청 폐지에 관해 위헌 논란이 발생한다. 지난해 국회에서 공소청 신설 법안이 발의되면서 기관 명칭에 따라 공소청장이 기관장으로 규정됐다. 그런데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최근 정부 법안에서는 공소청의 장에 검찰총장이란 명칭을 사용한다. 이는 헌법이 규정한 것을 법률로 다르게 사용함으로써 헌법의 최고 규범성을 훼손하게 된다.

 

검찰개혁은 역대 정권의 과제 또는 숙제처럼 반복됐다. 검찰개혁의 명분에는 항상 따라다니는 문구가 있다. 국가 형사사법에서 검찰은 수사와 기소를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의 수사와 기소 독점을 부정적으로 보는 측에서 나오는 가장 대표적인 구호가 ‘권력의 하수인’이다. 그런데 권력의 중심에는 정치가 있고, 검찰의 중심에는 헌법과 법률이 있을 뿐이다.

 

법의 정치화를 통해 검찰을 권력의 하수인으로 만든 것이 역대 정권이었고, 검찰이 이를 주도한 것은 아니었다. 국가의 형사사법을 담당하는 검찰은 스스로 법을 정치화할 권력이 없다. 이제 검찰을 정치적 도구화한 권력이 개혁을 내세워 그 권한을 빼앗는 것도 모자라 검찰 폐지 입법을 진행한다. 물론 검찰이 없어진다고 형사사법의 권한 자체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검찰개혁은 수사권 조정부터 시작해 검수완박을 거쳐서 검찰청을 폐지함으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됐다. 그렇지만 검찰의 권한을 이어받은 국가기관들 역시 형사사법이 갖는 중요성으로 인해 검찰을 대신해서 개혁이라는 이름의 족쇄를 차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형사사법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은 정치권력이라는 덫에 걸리는 순간 개혁의 대상이 돼 휘둘리게 될 것이다.

 

국가의 형사사법은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형사사법에서 핵심적인 국가작용이 수사와 기소이다. 법원의 형사재판이 있지만, 그 절차는 검찰이 기소해야만 시작된다. 정치권력은 수사와 기소를 검찰이 독점함으로써 폐해가 발생한다지만, 수사·기소는 형사사법 절차에서 연속성을 가진 국가작용이다. 검찰은 경찰의 형사사법권을 견제하기 위해 탄생했다. 그래서 수사권의 경찰 집중과 공소청의 신설은 형사사법에서 역사의 시계추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다.

 

수사가 없으면 기소할 수 없고, 수사는 기소와 재판절차 중에도 계속되고 보완된다. 세계적으로 수사와 기소를 완전히 분리한 국가는 보기 어렵다. 국가에 형사사법권을 위임한 것은 국민의 생명과 권리 및 재산 등을 보호하라는 것이지 권력의 입맛에 맞추라는 게 아니다. 검찰청을 폐지하고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한다고 검찰개혁이 끝나는 건 아니다. 국가기관의 권한 행사에 문제가 있으면 개선을 통해 보완하라는 게 헌법이 요구하는 개혁이다.

문화일보 김상겸 동국대 명예교수·헌법학

 

03-19 공소청·중수청法과 형사사법 자해극

여당·정부·청와대는 검찰청법을 폐지하고 공소청과 중수청(중대범죄수사청)을 신설하는 법안을 곧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한다고 한다. 법안의 내용은 검사의 직무에서 일체의 범죄수사나 수사지휘 직무를 없애고, 부당한 직무를 행하는 사법경찰에 대한 지검장의 수사중지 명령이나 사법경찰 교체임용 요구권도 박탈하며, 그동안 검사가 담당했던 중대범죄 수사는 사법경찰의 일종인 중수청이 전담케 한다는 것이다.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공소청 검사는 사법경찰이나 특별사법경찰이 송치한 사건에 미비점이 있더라도 아무런 보완수사조차 할 수 없고 기소 여부 판단과 그 공소유지만 담당해야 한다. 추후 형사소송법 개정 시 검사의 사법경찰에 대한 보완수사 요구는 할 수 있게 하겠지만, 경찰이 보완수사 요구에 소극적인 경우에는 그 부실 수사를 견제하거나 보완할 방법이 없게 된다.

 

법안은 검사와 사법경찰이 상호 의견이나 요구를 존중하도록 협력 관계 규정을 두고 있지만, 강제력 없는 규정만으로 사법경찰을 견제할 수 있다고 믿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또한, 지역과 유착된 경찰의 ‘봐주기’ 수사나 수사권 남용, 범죄자와 유착된 부패 경찰 등을 같은 경찰기구 내에서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겠는가? 결국, 법안은 경찰권력을 효과적으로 견제해 왔던 검찰의 감독 기능마저 없앰으로써 무소불위의 경찰권력을 탄생시키게 될 것이다.

 

이 법안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함으로써 수사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권익과 인권 보호를 도모하게 된다고 입법 취지를 내세우고 있으나, 이는 무지의 소치이거나 국민을 속이는 말이다.

 

첫째, 수사와 기소를 분리한다는 것은 판사의 심리와 판결을 분리하는 것처럼 비효율적이므로 어느 나라에도 그 입법례가 없다. 미국의 경우에도 사실인정과 법리 판단을 하는 수사란 예심 또는 대배심 법정에서 검사의 주도 아래 이뤄지고 기소 여부 판단도 함께 한다. 경찰은 그 수사를 위한 증거의 확보만 담당할 뿐 조서 작성 등을 하진 못한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가 검찰개혁’이라는 전제가 잘못된 것이다. 검찰의 특수수사가 남용된 적이 적지 않아서 검사의 직접 수사를 제한할 수는 있겠지만, 범죄 규명을 위한 검사의 보완수사권마저 박탈한다는 것은 범죄 피해자에게 무책임한 짓이다. 또한, 기소 사건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야 한다면서 불기소 사건은 수사와 불기소 종결권을 같은 사법경찰이 행사한다는 것도 모순이다.

 

둘째, 집권 정치인인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중수청장이나 중수청 수사관의 임용제청권은 물론 중수청에 대한 지휘감독권까지 주고 있으므로 수사의 정치적 독립성은 오히려 크게 퇴보한다.

 

셋째, 특별사법경찰은 환경·노동·세관 등 다양한 분야의 행정공무원에게 그 전문성을 활용하기 위해 수사권을 주는 것이므로, 수사의 전문성을 보완할 필요가 있어서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아오고 있다. 그런데 그 수사의 적정성을 확보할 방안도 없이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없앤다는 것도 무책임한 일이다.

 

그런데도 이 수치스러운 법안을 강행처리 한다면 국회의원 자신의 이름을 걸도록 하라. 그리고 그로 인한 범죄의 창궐, 수사 지연, 경찰 부패 등 인권침해나 국민 권익 침해에 책임을 져야 한다.

 

문화일보 한석훈 연세대 겸임교수, 전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03-19 한 사람을 위한 사법 변경

큰 것은 크고, 작은 것은 작게 다뤄야
사법 변경 같은 큰일에 입다물면서
그보다 작은 일에 온건한 척하는 건
중도도 실용도 아닌 속임수

민주당 정권 내부의 검찰 보완수사권을 둘러싼 갈등은 자기들이 함께 잘못된 판을 만들어놓고 그 위에서 서로 자기가 더 옳다고 티격태격하는 것이다. 이 갈등은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이재명 대통령의 중도 흉내 내기에 이용되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검찰개혁의 핵심은 검찰 수사관을 없애는 것이다. 검찰 보완수사권 인정은 검찰에 전문 수사 인력을 남겨둔다는 점에서 잘못됐다. 정반대로 검사에게 수사권까지 뺏는다면 그 또한 잘못이다. 검사는 혼자서라도 수사하겠다면 수사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수사 인력이 없다면 수사권은 주로 지휘권을 통해 행사될 수밖에 없다.

검사의 수사지휘권은 수사반장이 형사를 지휘하듯 하는 건 아니다. 검찰이 거대한 수사 인력을 갖고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개혁 대상이 됐다. 다만 수사지휘권은 단순히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영미법계에서는 기소에 대한 책임을 경찰이 지지만 대륙법계에서는 검찰이 진다. 중요한 것은 기소의 책임자로서 수사를 주재할 수밖에 없는 검사와 실제 인력을 갖고 수사하는 수사기관의 상호 견제다. 검찰이 가졌던 막강한 수사권을 경찰이나 다른 수사기관에 넘겨주는 것은 도루묵이거나 개악이다.

 

지금 수사권 조정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는 사법 변경이다. 수사권이야 어찌 되든 기소가 되면 법원으로 넘어와 법원이 최종 판단을 한다. 수사권 조정은 민주당 정권의 주도로 최악의 개악으로 끝나 가지만 그동안의 숱한 논의 덕분에 올바른 방향은 나와 있다. 대법관 12명을 늘리고 재판소원을 도입하는 것은 심도 깊은 논의 없이 졸지에 이뤄진 것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졸지에 이뤄졌다는 사실 자체부터가 틀려먹었다. 대통령이 이런 사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한마디 말도 없이 통과시켜 놓고는 검찰 보완수사권에 대해 그것도 예외적이라는 수식을 달며 온건한 개혁의 추진자인 양 행세하는 건 보기 민망하다.

민주당에서 정신 나간 몇몇이 대통령 재판 중지법을 거론할 때도 상황이 비슷했다. 법원은 대통령에 대한 재판을 중지했고 더 할 생각도 없어 보였는데도 대통령은 재판 중지법을 원하지 않는다는 뉴스가 대통령실로부터 흘러나왔다. 그때 이미 대법관 증원과 재판소원 도입이 민주당에서 거론되기 시작했으니 대통령실이 언급한다면 그 문제를 언급했어야 하나 딴소리를 하며 생색을 낸 것이다.

‘상고법원’을 추진하다가 사법행정권 남용의 올무에 걸린 양승태 대법원도, ‘상고법원’을 탄핵해 놓고는 염치없게 ‘상고허가제’를 대안으로 내놓은 김명수 대법원도 부장판사급 재판연구관까지 대폭 늘려야 하는 대법관 증원은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다. 돈 버는 데나 공직 줄이는 데는 등신이고 돈 쓰는 데나 공직 늘리는 데는 귀신인 민주당도 법관 증원만은 주저해왔다. 그런 민주당이 돌변해 대법관증원법과 재판소원법을 통과시켰다. 대법관 증원을 통해 사법권을 장악하는 건 동유럽과 남미의 민주주의 퇴행 국가에서 흔히 보이는 모습이다. 우리나라는 한 사람을 위해 그러고 있다는 점에서 더 악질적이다.

대법관 증원은 내년부터 시작돼 당장 느껴지는 게 없지만 재판소원은 이미 시작됐다. 재판소원을 제기한다고 해서 다 심리 대상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어떤 재판소원을 심리 대상으로 삼을지 판별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째려봤다고 장관을 탄핵 소추한, 명백한 남용 사건도 몇 개월씩 끈 헌재다. 그런 헌재가 매주 수십 건 수백 건의 재판소원을 처리한다고 한다. 헌재는 감당할 인력과 시간이 없으면서도 재판소원 도입에 찬성했다. 재판소원은 도입할 수도 있겠지만 대법원 독립이 위협받는 지금은 아니다. 아무리 경쟁 관계라고 해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미국 등 대부분 국가들이 3심 중 마지막 한 번은 사회적으로나 법률적으로 중요한 사건만 다룬다. 그래서 상고법원이나 상고허가제가 법원에서 대법원장의 성향을 불문하고 개혁 방향으로 제시됐던 것이다. 사실상 4심제의 도입을 반기는 곳이 헌재 말고도 더 있으니 변호사업계다. 죽어나는 것은 국민이다. 권력자와 부유층은 한 번 더 재판받는 혜택을 누리겠지만 대부분 국민은 판결 확정의 지연과 소송 비용의 증가에 시달려야 한다.

또 대법관 증원과 재판소원 도입은 법원과 헌재의 대폭 확대 없이는 불가능하고 그에 들어가는 막대한 예산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왜 국민이 한 사람 때문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감당해야 하나.

 

동아일보 송평인 칼럼니스트

 

03.20 백신 부작용과 정부의 책임 회피

/지난 2021년 12월 10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모더나 백신으로 시민에게 3차 접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11월 22일, 모더나 백신으로 3차 접종을 받았다. 이튿날부터 왼쪽 가슴에 통증이 시작됐다. 응급실에서 피검사를 해보니 심장 호르몬의 일종인 BNP(뇌나트륨이뇨펩티드) 수치가 정상 범위를 크게 벗어나 있었다. 이후 운동이나 산책으로 심장 박동이 올라가면 가슴이 조여왔다. 정확한 원인을 찾기 위해 6개월간 운동 부하 검사, 심장 초음파, 48시간 심전도 검사, 심장 MRI 등 수많은 검사를 받았다. 의료진은 “백신 말고는 다른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정확한 인과관계와 기전은 밝혀내지 못했다. 의사는 “염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검사에 한계가 있다”고 했다. 피해 보상을 신청했지만 질병관리청은 인과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거부했다. “백신 부작용으로 알려진 이상 반응에 흉통은 없다”는 이유였다. 의사는 ‘백신 때문’이라고 했는데, 정부는 ‘아니다’라고 한 것이다.

 

혼자만 겪은 일이 아니다. 대형 병원에 백신 접종 후 심장 통증을 호소한 이들이 수없이 찾아왔다. 대부분 젊었는데, 명확한 진단을 받은 사람은 극소수였다. 실제로 10만433건이 접수된 백신 피해 보상 신청 중 정부가 인과성을 인정한 것은 24.8%다. 이 비율이 높아 보이는 건 전체 부작용의 96%를 차지하는 경증 인정률이 25.7%이기 때문이다. 중증 인정률은 6.5%, 사망은 1.1%에 불과하다.

 

그런데 ‘인과성이 없다’는 정부 판단이 잘못됐다는 법원 판단이 이어지고 있다. 2021년 6월 백신 접종 후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군청 공무원에 대해 질병관리청은 ‘인과성이 없다’며 피해 보상을 거부했다. 1심 법원은 지난 1월 ‘인과관계 가능성이 있다’며 이를 뒤집었다. 이런 판례가 계속 쌓이고 있다.

 

정부 판단을 뒤집은 법원 판결에는 공통점이 있다.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지 않았더라도 시간적 밀접성이 있고, 백신 때문이라는 추론이 불가능하지 않으면 인과성이 증명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따랐다. 2021년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코로나) 백신이든 안전성을 정부가 약속하고 책임진다”고 말했다. 그런데 막상 탈이 나자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며 고통받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있다.

 

이 글은 피해를 보상받으려는 탄원서가 아니다. 기자보다 더 심한 중증을 겪었거나, 사망한 분이 적지 않다. 의학으로 완벽히 입증할 수 없지만, 코로나 백신이 영향을 미친 이들이 분명 섞여 있을 것이다. 국가가 믿으라고 해서 사회 전체를 위해 백신을 맞은 이들에게 정부가 좀 더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고통과 불신을 방치한다면 앞으로 다른 팬데믹 사태가 닥쳤을 때 국민이 정부의 백신 접종 요청을 순순히 따를까? 신뢰 없는 통제는 무용지물이다. 진정한 방역은 책임 있는 인정과 사과에서 시작된다.

 

▲코로나19 백신피해자 가족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백신피해 관련 국가상대 손해배상 청구 및 질병관리청장 직무유기 형사고소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조선일보 곽래건 기자

 

03.20 우리는 언제부터 이웃의 이름을 모르게 되었을까?

주재환(광주사랑나눔공동체 대표)

아파트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는 생각보다 무겁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닫히는 몇 초 사이, 우리는 종종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각자의 휴대전화 화면으로 시선을 떨군다. 같은 층에 살면서도 이름은커녕 얼굴조차 익숙하지 않은 이웃들이 늘어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웃의 이름을 모르게 되었을까?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동네는 지금보다 훨씬 느슨하면서도 가까운 공간이었다. 저녁이 되면 골목마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섞였고, 부모들은 서로의 집을 자연스럽게 드나들었다. 누가 누구의 엄마인지, 어느 집 아이가 몇 학년인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특별히 친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 한켠이 든든했다. 동네는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라 관계가 살아 있는 생활 공동체였다.

 

지금 우리의 삶은 훨씬 편리해졌다. 택배는 문 앞까지 오고, 음식은 버튼 하나로 도착한다. 필요한 대부분의 일은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해결된다. 편리함은 시간을 아껴주었지만, 동시에 사람을 만날 이유도 조금씩 줄여버렸다. 예전에는 우연히 마주치는 순간들이 관계의 시작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우연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

 

특히, 도시의 아파트 문화는 ‘가까이 살지만 멀리 지내는’ 생활 방식을 익숙하게 만들었다. 사생활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해지면서 서로 말을 거는 일조차 조심스러워졌다. 층간소음 문제나 공동주택 갈등이 뉴스에 오를 때마다 우리는 더 조용히, 더 조심스럽게 살아야 한다고 배운다. 관계를 맺기보다 관계를 피하는 것이 편안해진 사회가 된 셈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이웃을 보면 먼저 인사를 하는 분위기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안녕하세요"라는 말은 자연스럽게 오간다. 하지만 그뿐이다. 인사를 나눈 뒤 우리는 다시 각자의 층에서 내리고,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일상으로 돌아간다. 어색함은 없지만, 그렇다고 관계가 시작되었다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결국 혼자 살아가기 어려운 존재다.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도움이 되는 사람은 멀리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옆집 사람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지역사회에서 작은 사고나 위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웃의 관심과 도움이 큰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평소에는 스쳐 지나가던 사람들이지만, 서로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 하나가 위기의 순간을 다르게 만든다.

 

최근 들어 지역 봉사나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다시 늘어 나고 있다. 거창한 이유라기보다 ‘사람을 좀 만나고 싶어서’ 시작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함께 물건을 나누고, 행사 준비를 하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과정 속에서 낯설던 사람들이 조금씩 이웃이 되어 간다. 관계는 특별한 계기가 아니라 반복되는 작은 만남 속에서 만들어진다.

 

이웃과의 관계는 거창할 필요가 없다.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인사를 건네는 일, 마주쳤을 때 가볍게 안부를 묻는 일, 아이들이 함께 놀 때 잠시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일 정도면 충분하다. 이름을 외우지 못하더라도 얼굴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관계는 시작된다. 서로를 알아본다는 감각은 생각보다 큰 안정감을 준다.

 

물론 모든 사람이 가까운 관계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순간도 많다. 그러나 완전히 단절된 삶은 어느 순간 우리를 예상보다 더 외롭게 만든다. 사회적 연결망이 약해질수록 작은 갈등은 쉽게 오해로 번지고, 이해보다 거리감이 먼저 자리 잡는다. 서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불안이 점점 커지는 것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거창한 공동체가 아니라, 일상의 작은 관심일지도 모른다. 예전처럼 골목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더라도, 지금의 방식에 맞는 새로운 이웃 관계는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지역 모임, 학교와 마을 활동 등 다양한 접점이 이미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문제는 기회가 없어서가 아니라 먼저 한 걸음을 내딛는 사람이 줄어들었다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가끔은 생각해본다. 만약 오늘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건넨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아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작은 인사가 반복된다면, 언젠가는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공동체는 거대한 계획으로 만들어지기보다, 이런 사소한 순간들이 쌓이며 형성되는 것이니까?

 

우리는 여전히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각자의 삶을 이어가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웃의 이름을 다시 알게 되는 일은 거창한 사회 변화가 아니라 서로를 한 번 더 바라보는 일에서 시작될지 모른다.

 

문이 닫히기 전, 잠깐의 여유를 내어 인사를 건네는 일. 그 작은 행동이 잊고 지냈던 공동체의 감각을 다시 불러올지도 모른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웃의 이름을 모르게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다시 서로의 이름을 부르게 되는 순간은 어쩌면 오늘일지도 모른다.

남도일보

 

03.20 백년대계는 선거보다 길다

미래를 내다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 하루조차 어떻게 흘러갈지 어느 누구도 함부로 예단할 수 없다. 철저한 계획과 전략으로 예상치 못한 변수에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먼 앞날까지 미리 내다보고 세우는 중요한 계획을 '백년대계'라고 칭한다. 6·3지방선거를 70여일 남겨 놓은 현재 귓가에 가장 많이 맴도는 단어이기도 하다. 변방과도 다를 바 없던 우리 지역이 강원특별자치도라는 특별한 타이틀을 얻었고, 강원특별법이라는 새로운 발전 방향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다만 아쉽게도 지방선거를 앞둔 여야는 '백년대계'로 평가되는 중대 현안을 정쟁의 도구로 놓고 공방전을 펼치고 있다.

 

여야 도지사 주자들간 표면적인 공방은 '도청 신청사 이전'으로 시작됐다. 핵심 현안으로 고은리 신청사 이전을 추진해 온 국민의힘 도지사 단수 후보 김진태 지사가 오는 30일 착공식을 예고하자 더불어민주당 '전국 1호 공천'을 받은 우상호 예비후보는 '가짜 착공식'으로 규정하며 즉각적인 중단을 요구했다. 여기에 춘천시장 출마를 예고한 주자들까지 합세하면서 신청사를 둘러싼 다양한 질타와 반박이 한동안 신문과 뉴스를 도배했다.

 

강원특별법 제3차 개정안을 향한 '책임론'도 불거졌다. 우상호 후보는 개정안 심사를 앞두고 SNS를 통해 "강원특별법은 여야간 이견이 없는 법안이자 도민의 염원이 담긴 민생 법안"이라며 "국민의힘의 정략적인 거부로 법안 처리가 무산된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국민의힘에 있음을 밝힌다"고 직격했다. 국민의힘 도당은 개정안 소위 통과 이후 논평을 내고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예비후보는 정작 이재명 정부가 강특법 핵심 특례 조항을 반대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며 "직전 정무수석이 정부의 입장 선회를 수수방관한 것에 대해 도민은 엄중히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응수했다.

 

다행히 지난 18일 개정안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그럼에도 19일 본회의 상정까지는 이어지지 못해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는 실정이다. 강원 미래를 이끌어 갈 현안들이 여전히 최종 결실까지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정쟁의 중심에서 본연의 가치를 잃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분명한 점이 있다. 누구도 이들 사안의 중요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도청 이전과 강원특별법 등은 모두 강원의 미래 구조를 바꾸는 전환전이 될 것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점은 갈등의 유무가 아니다. 과연 갈등과 이견을 어떻게 풀어내느냐다. 도청사 이전과 고은리 행정복합타운, 그리고 강원특별법 등을 둘러싼 이견은 충분히 존재할만 하다. 권한 확대의 속도와 범위, 재정과 개별의 균형을 둘러싼 논쟁이 견고한 강원의 미래를 다지기에 충분히 가치를 가졌기 때문이다.

 

다만 백년대계가 ‘중단’과 ‘강행’이라는 틀에 갇히는 순간, 논쟁은 해법이 아니라 소모전이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강원의 미래 행정 중심을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세울 것인가. 이것이 얼마 남지 않은 6·3지방선거를 대하는 후보자들의 마음가짐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다.

 

여야와 지지 정당을 막론하고 모든 도민들이 소망하는 '백년대계'는 선거보다 훨씬 길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강원일보 윤종현 정치부 기자

 

03.20 이란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드론도 미사일도 지뢰도 아닌 지리가 아닌가?

전쟁은 지도 위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 호르무즈가 드러낸 전략의 착오

전쟁은 언제나 총성과 함께 시작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진짜 전쟁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 지도 위에서 이미 결정된다. 이번 중동 사태는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과 싸우고 있다. 그러나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지리와 싸우고 있다.

 

이란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드론도, 미사일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공간이요, 지리적 환경 그 자체다.  38km, 실제 항로는 불과 몇 6km에 지나지 않는 이 좁은 바다는 세계 에너지 흐름의 20%를 통과시키는 목줄이다.

 

이란은 이곳을 완전히 봉쇄할 필요도 없다. 단지 위험하게 만들기만 해도 충분하다. 기뢰 몇 개, 고속정 몇 척, 그리고 간헐적인 공격...그 자체만으로도 세계 시장은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 호르무즈 해협의 지리적

 

이것이 바로 21세기형 전략이다. 파괴가 아니라 위험의 조성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해협을 둘러싼 지형이다. 이란 남부 해안은 단순한 해안선이 아니다. 절벽과 만, 그리고 숨겨진 항구들이 이어지는 천연 요새다. 특히 케슘 섬과 같은 섬에는 동굴과 터널 속에 무기 체계를 숨긴 보이지 않는 기지가 구축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반다르 압바스 인근 해안은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과 불과 몇 마일 거리다. 이 거리에서는 응급 대응 시간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이 해역은 지나는 곳이 아니라 노출되는 곳이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미국의 군사력은 예상보다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항공모함, 구축함, 정밀타격 능력 등등 어느 것 하나 모자람 없이 모두 강력하다. 하지만 좁은 해협에서는 그 힘이 분산될 수밖에 없다. 유조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군함과 24시간 공중 감시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기뢰나 소형 보트가 전체 항로를 마비시킬 수 있다. 이는 강대국의 힘이 공간에 의해 감쇠되는 순간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고전을 떠올리게 된다.

맹자(孟子)”는 일찍이 천시는 지리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만 못하다(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는 명언을 남긴바 있다.

 

그리고 손무는 전쟁의 핵심 요소로 5(五事)를 들었다. 즉 도(, 인화), (, 천시), (, 지리), (, 장수), (, 군령)이다. 이중 하나가 지(). 지형을 이해하지 못한 전략은 필연적으로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번 전쟁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력의 우위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빠른 승리를 기대했고 실제로 그렇게 언급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게 전개되고 있지 않은가?

 

이란은 정면 승부를 피하고, 지형과 해협을 활용한 비대칭 전략을 선택했다. 동시에 지역 동맹국들의 이해관계를 흔들고, 에너지 시장을 압박하며, 전쟁을 국지적 충돌이 아닌 세계적 부담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이는 군사적 승패와 별개로, 전략적 균형을 바꾸는 방식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누가 더 강한가가 아니라, “누가 더 잘 이해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전쟁은 더 이상 단순한 힘의 충돌이 아니다. 그것은 공간, 구조와 지리적 흐름을 둘러싼 해석의 싸움으로 바뀌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세계 최강의 군대 앞에 놓인 가장 큰 장벽은

적이 아니라, 지도 위의 한 줄에 지나지 않은 호르무즈 해협이다.

 

결론적으로 강대국은 무기를 믿는다. 그러나 역사는 언제나 지리를 기억한다.

 

이번 전쟁이 남길 가장 중요하고 분명한 교훈 지도를 읽지 못한 전략은, 결코 전쟁을 끝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경기데일리 ▲ 김성윤 주필, 한국지방자치발전연구원 원장, 정치학 박사

 

03.21 권력자 공소 취소? 이런 게 '법 왜곡죄'

법 왜곡죄 시효는 10년
정권이 두 번 바뀔 시간…
아무리 간 큰 검사라도
정치 지형이 바뀌면
무사하지 못할 일을
감행하긴 힘들 것

▲이재명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 이건태(오른쪽에서 세번째)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11일 이대통령 등에 대한 공소 취소를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 의안과에 제출하고 있다. /뉴스1

 

민주당이 사법 3법에 이어 이재명 대통령 공소 취소까지 들고나온 것은 ‘이른바 사법 개혁’이 대통령 방탄(防彈) 목적임을 대놓고 자백한 것과 다름없다. 사법 체계를 뒤집는 3법을 강행 처리하자 곧바로 공소 취소를 위한 국정조사 절차에 돌입했다. 입법 권력을 총동원해 대통령의 재판 자체를 없던 걸로 만들겠다 한다. ‘개혁’은 핑계에 불과했다는 뜻으로 들린다.

 

민주당은 관련자들을 국정조사장에 세워 ‘조작 수사’임을 증명하겠다고 한다. 대북 송금을 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진술했다가 민주당 측 압박에 번복한 이화영 전 경기부지사, 검찰의 항소 포기로 범죄 수익금 수천억 원을 고스란히 챙기게 된 대장동 일당 등을 불러내 마이크를 물리겠다고 한다. 그렇게 정치 이벤트를 통해 수집한 친정권 인물들의 ‘오염’된 진술을 근거로 공소를 취하시키겠다는 것이다. 법치 국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나 싶다.

 

원하는 건 다 이루고야 마는 민주당은 사법 절차마저 정치에 복속시키겠다며 서슬이 퍼렇다. 그러나 유죄를 무죄로 뒤집는 일이 그렇게 쉬울 리 없다. 사법 판단은 힘 있는 다수가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정치 게임이 아니다. 법안은 다수결로 되지만, 죄가 있고 없고는 객관적 사실과 보편 타당한 법리가 결정하는 정의의 영역에 속한다. 찍어 누르면 통한다고 여긴다면 오산이다.

 

안타깝게도 민주당이 공소 취소 리스트에 올린 사건들은 법원의 판결 흐름이 이 대통령 쪽에 유리하지 않다. 이 대통령 재판은 중단됐지만, 다른 관련자 사건들이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이 대통령과 같은 사안으로 기소된 대장동·위례·대북송금 사건의 공범들 재판에서 법원은 범죄 구조를 인정하는 법리 판단을 속속 내놓고 있다. 일련의 판결 동향이 이 대통령 혐의를 간접적으로, 그러나 일관되게 뒷받침하고 있다.

 

대장동 사건 1심은 김만배·남욱씨 등에게 유죄를 선고하며 ‘성남시 수뇌부’의 책임을 언급했다. 사건을 “유착에 따른 부패 범죄”로 규정하고 “성남시 수뇌부가 주요 결정을 내렸다”고 명시했다. ‘수뇌부’라면 당시 성남시장이던 이 대통령일 수밖에 없다. 위례 사건에서도 1심 판사는 검찰의 공소 설계 오류를 이유로 업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성남시 내부 비밀”이 활용됐다며 불법성을 인정했다. 위례 사업이 “이재명 시장 재선”을 위해 “비밀리에 추진”됐다고도 했다. 대장동·위례 일당과 공모 관계로 별도 기소된 이 대통령의 혐의를 우회적으로 암시한 것이다.

 

백현동 사건의 1·2·3심은 성남시가 불법 특혜를 제공했음을 인정하고 이재명 선거 캠프 출신 로비스트에게 징역형을 내렸다. 판결문엔 알선·로비가 “이재명·정진상 등의 직무에 속한 인허가 사항”을 대상으로 이뤄졌다고 못박았다. 특혜를 알선한 사람이 유죄면, 특혜를 준 사람도 유죄인 것이 상식이다.

 

대북 송금 사건의 1·2·3심 재판부는 쌍방울이 북한에 보낸 230만달러가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의 “방북 사례금”이라고 판정했다. 이 대통령을 위한 ‘제3자 뇌물’ 성격이란 뜻이다. 쌍방울에 송금을 요청한 이화영 전 부지사는 대법원 유죄가 확정됐다. 이 전 부지사의 혐의 구조는 이 대통령과 유사하다. 다른 재판부 판단이긴 하나, 이 대통령 사건에서도 같은 법리가 적용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봐야 한다.

 

공소를 취소시키려면 이런 법원 판례를 뒤집을 결정적 증거를 찾아내야 한다. 그런 것이 있었다면 벌써 나왔을 것이다. 민주당이 큰 건 잡았다는 듯 떠드는 ‘연어 파티 조사’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공소 취소는 다른 진범이 잡히는 경우처럼 유죄 가능성이 0%에 가까울 때나 하는 것이다. 검찰도 마음은 굴뚝같겠지만 방법이 없어 고민스러울 것이다. 아무리 정권의 충견이라도 법원이 관련 판결을 통해 범죄성을 인정하는 사건을 아예 백지화할 만큼 무모하진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 ‘법 왜곡죄’라는 피할 수 없는 함정이 있다. 민주당이 강행 도입한 법 왜곡죄는 검사가 ‘의도적으로 재판에 영향을 미칠 경우’ 10년 이하 징역형에 처하도록 돼 있다. 법원 판례를 역행하는 공소 취소가 정확하게 여기에 해당한다. 설사 수뇌부가 지시한다 해도 처벌을 걱정하는 일선 검사가 따르려 하지 않을 것이다. 판·검사를 압박하려 법 왜곡죄를 밀어붙인 민주당이 자승자박에 빠진 형국이다.

 

어떤 충성파 검사가 두 눈 질끈 감고 공소 취소를 감행할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 법 왜곡죄의 공소 시효는 10년이다. 정권이 두 번 바뀔 시간이다. 공소를 취소해준 검사가 민주당 정권 아래선 무사할지 몰라도 10년 사이 정치 지형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아무리 권력에 잘 보이고 싶어도 10년간 처벌 위험성을 감수할 만큼 배짱 큰 검사가 있을 것 같진 않다. 그럴 리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권력자의 범죄 혐의를 소멸시키려는 집권당의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그건 나라도 아니다.

조선일보 박정훈 논설실장

 

03.22 이란 전쟁, 명분 그리고 북한인권

한국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서방 7개국의 이란 규탄 공동성명에 참여한 것은, 늦었지만 일단 잘한 일이다.

외교부는 20일 밤 동참을 결정하면서, "국제해상교통로(SLOC)의 안전, 항행의 자유, 국제사회 동향, 호르무즈 통항 차질이 우리 에너지 수급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 고려한 결과"라고 밝혔다. 논리는 명확한 편이다. 다만 자신이 없는 듯 눈치 보며 미적거린 태도가 국제사회에 당당해 보이지 않았다.

미국의 이란 전쟁에 대한 언론과 일반의 이해는 아직도 분명치 않은 편이다. 미·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두들겨 팬 전쟁’이라는 프레임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특히 전쟁의 명분 세우기 측면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과정에서의 결핍’(shortcoming in the process)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미 국가대테러센터(NCTC) 조 켄트 센터장이 "양심상 이란 전을 지지할 수 없다"며 사임했는데, 이는 ‘명분 없는 전쟁’이라는 주장이다. 켄트는 "미국이 이란 전쟁을 시작한 것은 이스라엘과 미국 내 이스라엘 영향을 받는 세력의 강력한 로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란 전쟁의 배경을 켄트처럼 믿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 세력인 미국 내 방위산업과 석유자본, 월스트리트의 유대인 그룹의 이해관계를 고려하면 설득력 있게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켄트의 주장이 ‘실체적 진실’이냐의 문제는 별개로 볼 필요가 있다. 국제정치는 기본적으로 국가간 이해관계와 힘(power)의 논리에 따라 생성-변화-발전하게 된다. 현 국제정세의 변화를 추동하는 기축(main shift)은 미·중 패권 경쟁이다. 미국은 중국을 억제해야 하고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개발을 억제해야 하는데, 이번에 트럼프와 이스라엘 네타냐후 사이에, ‘전쟁 방식의 해결’에 쌍방간 싱크로율이 엄청 높았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국제정치는 국내정치보다 훨씬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새로운 변화의 생성 과정에서 대의명분은 중요하다. 트럼프는 "미친 자가 핵을 가지면 나쁜 일이 생긴다"며 ‘이란의 핵 위협 제거와 미국 방어’를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이 대목에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란 하메네이 정권의 자국민 학살 사건을 전쟁의 최대 명분으로 계속 끌고 가지 못한 건 실책으로 보인다.

지난 1월 8일 경부터 하메네이 정권은 실탄을 사용해 반정부 세력을 사살했다. 2월 28일 미·이스라엘에 의한 알리 하메네이 지도부 폭살이 있기까지, 최소 수천 명, 최대 3~4만 명의 대규모 학살이 있었다. 이는 2011년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을 상대로 유엔안보리가 R2P(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를 발동한 집단학살·반인도 범죄 요건에 해당한다.

당시 R2P 참전국은 나토(NATO)국이 미국·영국·프랑스·캐나다·이탈리아·네덜란드 등 12국, 비(非)나토국은 카타르·아랍에미리트·요르단 등 4국이었다. 이 정도라면 국제사회의 명분은 충분하다.

물론 2011년과 지금은 국제정세가 다르다. 리비아 내전 당시 중국(후진타오)·러시아(메드베데프)는 유엔안보리 결의에서 기권을 택했지만, 지금은 시진핑·푸틴의 반대가 거의 확실하다. 유엔안보리 R2P 상정 자체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개전 초기에 자국민 학살과 불법 핵무기 개발을 명분으로 ‘하메네이 정권 축출 국제연합군’ 라인업을 해두는 게 좋았을 것이다. 이 과정을 생략하다보니 미·이스라엘의 일방적 공격, 국제법 위반이라는 앞뒤가 바뀐 주장이 언론과 대중에 더 어필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국제법 위반은 자국민 학살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안전조치협정을 위반한 이란에 귀속되는 것은 분명하다.

국제정치에서는 눈앞에 보이는 현상과 보이지 않는 이면(裏面)의 실체가 동시에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이면을 꿰뚫어보고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높은 수준의 안목이 필요하다.

전쟁과 인권은 서로 부딪치는 길항적(拮抗的) 관계다. 전쟁 상황에서 인권을 내걸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인권이라는 대의명분을 선점하지 않으면, 여론은 적(敵)의 잘못을 응징하는 것이 아니라 맹목적 파괴로 비치게 된다.

현 국제정세에서 중국·러시아·북한의 가장 약한 고리가 인권이다. 중국은 인권 이슈가 등장하면 ‘내정간섭 반대’를 들고 방어에 나설 뿐 상대를 공격하진 못한다. 북한도 마찬가지. 트럼프 행정부의 이란 전쟁을 보면서 대한민국 대북정책의 큰 방향이 왜 ‘인권’이 되어야 하는지 더욱 분명해진다.

/지난 19일 평양 제60훈련기지에서 진행된 탱크부대 협동공격전술연습. /평양중앙통신

자유일보 손광주 자유통일연구소 소장

 

03.23 백범 그리고 BTS

백범(白凡) 김구 선생은 자신이 쓴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서 국가의 비전을 제시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나 군사 강국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대신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역설했다. 문화의 힘만이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타인과 인류에게 진정한 행복을 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김구 선생은 인류가 불행한 근본 원인을 무력이나 경제력의 결핍이 아닌, 인의(仁義)와 자비, 그리고 사랑의 부족에서 찾았다.

 

그는 한국이 외래문화를 모방하는 수준을 넘어,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자 모범이 돼 세계 평화를 실현하는 ‘문화 강국’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우리는 2026년 3월의 어느날 그가 그토록 염원했던 ‘문화 자강(自强)’의 시대가 현실로 다가왔음을 목도했다. 지난 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BTS 컴백공연 ‘BTS THE COMEBACK LIVE | ARIRANG’은 단순한 대중음악 공연을 넘어선 역사적 사건이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완전체로 복귀한 방탄소년단(BTS)은 조선 시대 왕들이 걷던 ‘왕의 길’을 따라 등장하며 현대 한국 문화의 주권이 어디에 있는지를 전 세계에 공표했다. 외신들은 이번 공연을 ‘BTS 2.0’시대의 개막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과거의 상업적 성공을 잇는 것을 넘어, 한국적 정체성과 뿌리를 예술적 핵심 동력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김구 선생의 문화 자강론과 맥을 같이 한다. 특히 성덕대왕 신종의 종소리를 삽입한 신곡 ‘No. 29’와 전통 민요를 재해석한 앨범 구성은 한국의 정신적 유산이 어떻게 현대적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지 증명했다.

 

 

 

김구 선생이 강조한 ‘문화의 힘’은 현재 ‘BTS노믹스(BTSnomics)’라는 실질적인 파급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번 컴백의 경제적 효과는 최소 2.9조 원에서 3조 원 이상으로 추산되며, 이는 글로벌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경제적 영향력에 필적하는 수준이다. 넷플릭스가 창사 이래 최초로 단독 아티스트의 공연을 190여개국에 생중계한 것은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글로벌 미디어 생태계의 표준을 주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입이다.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영향력이 강압적인 무력이나 경제적 지배가 아니라는 점이다. 멕시코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공연 개최를 요청할 만큼, 한국의 문화는 국가 간의 벽을 허무는 소프트파워의 핵심이 되었다. 이는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던 김구 선생의 말처럼, 타국을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가장 평화롭고 강력한 힘의 실체를 보여준다.

 

김구 선생은 최고 문화 건설의 사명이 결국 모두를 ‘성인(聖人)’으로 만드는 데 있다고 봤다. 이는 우리 민족의 건국 이념인 ‘홍익인간’의 실천이자, 증오와 투쟁을 버리고 화합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BTS의 복귀와 그들이 발산하는 메시지는 전 세계 팬덤인 아미(ARMY)를 통해 단순한 열광을 넘어선 성숙한 연대와 위로로 확장되고 있다. 자신들의 불안과 정체성을 솔직하게 공유하며 타인에게 행복을 주는 그들의 행보는 김구 선생이 꿈꿨던 ‘문화의 근원이자 모범이 되는 나라’의 모습과 닮아 있다. 이제 우리는 이 화려한 문화적 성취를 어떻게 인류의 보편적 자산으로 안착시킬지 자문해야 한다. 백범이 꿈꿨던 나라는 찰나의 유행에 일희일비하는 곳이 아닌 우리 안의 정신적 자본을 동력 삼아 세계 평화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나라였다. 2026년 봄, 보랏빛으로 물든 광화문은 80년 전 김구 선생이 꿈꿨던 ‘문화 강국’에 대한 염원이 시공간을 초월해 거대한 ‘문화적 숨결’로 재탄생하는 대관식이었다.

강원일보 오석기 기자

 

03.23 중국산, 표백 닭발뿐이겠나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에서는 ‘세계 소비자의 날’(3월 15일)마다 대형 고발 프로그램인 ‘3·15 완후이’를 통해 충격적인 실태가 공개된다.

이번 방송에서는 쓰촨성과 충칭 지역 닭발 가공업체의 위생 상태가 드러났다. 작업장 내부는 악취가 진동했고, 오수가 고인 바닥 위에 닭발이 무더기로 방치돼 있었다. 심지어 작업자들이 바닥에 떨어진 닭발을 그대로 주워 가공 통에 넣는 장면도 포착됐다. ‘위생’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듯한 현장이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과산화수소에 닭발을 담가 인위적으로 색을 하얗게 만드는 표백 공정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이는 장기간 섭취 시 구강 점막 손상이나 간기능 이상을 유발할 수 있어, 중국 식품 기준에서도 사용이 금지돼 있다.

문제는 폭로 그 이후다. 매년 ‘3·15 완후이’를 통해 식품 위생 실태를 반복 폭로하지만 이후의 흐름은 늘 비슷하다. 일시적인 단속과 보여주기식 처벌에 그칠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같은 일이 되풀이된다. 중국산 식품을 둘러싼 위생 논란이 일회성 사건이 아닌 이유다.

결국 이 프로그램의 본질은 ‘통제된 폭로’에 가깝다. 폭로는 체제가 허용한 범위 안에서만 드러날 뿐, 근본적인 책임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외부에서는 제한된 정보만 접하기 때문에 이를 특이 사례로 오해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반복되고 축적된 구조적 문제의 일부일 뿐이다.

이는 결코 중국만의 일이 아니다. 이런 제품이 국경을 넘어 유통되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값싼 원료와 가공식품 등을 통해 중국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실제로 최근에는 중국산 농산물 1천여 톤이 ‘반려동물 물품’으로 둔갑해 국내에 불법 반입된 사례도 있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위험은 이미 우리의 식탁 위까지 들어와 있을 수 있다.

식탁 위의 신뢰는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정보가 제한된 사회일수록 드러난 사건 하나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자유일보 강여진 자유기고가

 

03.24 "주권은 한 국가의 권리이면서 국제사회의 책임이다"

3.24 국제 진실권의 날

▲전쟁범죄 등 반인권범죄 근절을 위한 국제 사회의 '보호 책임' 국제규범은 강대국의 이해 앞에서 무기력해지기 일쑤였다. 2024년 이스라엘 군 공격에 폐허가 된 팔레스타인 난민캠프. AFP 연합뉴스

 

1990년대 르완다·보스니아 집단학살 사태를 사실상 방관한 유엔은 “주권은 한 국가의 권리인 동시에 국제사회의 책임”이라 새롭게 인식한다. 2005년 유엔 총회가 만장일치로 채택한 ‘보호 책임(R2P, Responsibility to Protect)’이라는 국제 규범이 거기 기반한다. 한 국가가 자국민을 학살이나 전쟁범죄로부터 보호하지 못할 때 국제사회가 개입할 책임을 진다는 것. 적용 대상은 4대 중대범죄 즉 집단학살과 인종청소,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이며 ‘책임’에는 외교적 수단 외에 안전보장이사회 승인하의 군사적 개입까지 포함된다.

 

2010년 유엔 총회가 3월 24일을 ‘인권범죄 및 희생자 존엄을 위한 국제 진실권의 날(줄여서 국제 진실권의 날)’을 제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도기 정의 즉 전쟁, 내전, 독재 등을 겪은 사회가 민주사회로 전환하기 위해 과거의 진실을 규명하고 법적 책임을 묻고 개혁과 화해·신뢰를 완수하는 일련의 과정에 협력해야 한다는 국제적 원칙. 3월 24일은 1980년 엘살바도르의 오스카르 아르눌포 로메로 대주교가 미사 집전 도중 정부 측 암살자에 의해 살해된 날이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2014년 보고서로 북한의 강제수용소와 공개 처형, 고문 등의 실상을 폭로하고 유엔 차원의 제재를 논의한 일, 2021년 쿠데타 이후 미얀마 군부가 자행한 민간인 고문과 학살, 내전 기간 소수 민족 타밀족에 대한 스리랑카 정부의 인종청소 실태 등이 그렇게 밝혀지거나 재조명됐다.

 

하지만 저 원칙 역시 강대국의 이해에 굴절되곤 한다. 러시아(와 이란)가 개입한 시리아 내전의 진실, 대량살상무기(WMD)라는 조작된 정보로 자행된 2003년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전쟁·학살 등이 그 예다. 보호 책임은 또 최근 미국의 이란 침공처럼, 강대국이 전략적 이익을 위해 타국을 제압하고 주권을 침해하는 명분이 되기도 한다.

한국일보 최윤필 기자

 

03.24 선거가 놓치고 있는 질문들

6·3 지방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대구시장 후보만 20여 명이 거론되고, 경북도지사와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출마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이 나서고 있지만, 시민의 시선은 냉정하다. 후보는 늘어나는데 대구경북이 나아지고 있다는 체감은 없기 때문이다. 미디어와 여론의 관심 역시 한쪽으로 쏠려 있다. 누가 출마하는가, 누가 공천을 받는가, 누가 이길 가능성이 높은가. 선거의 과정보다 결과 예측에만 시선이 몰리는 동안, 후보들이 이 지역의 문제를 어떤 방향으로 풀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대구경북이 안고 있는 과제는 무겁다. 대구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은 33년째 전국 꼴찌이고, 지난해에는 특·광역시 중 유일하게 역성장했다. 2025년 대구의 인구 순유출 중 90퍼센트가 20대였고, 경북의 20대 순유출은 전국 최다였다. 행정통합 특별법은 법사위에서 보류된 채 표류 중이다. 여기에 중동 사태로 촉발된 유가 급등과 고환율·고물가의 삼중고가 겹치면서, 지역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체감 경기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 문제들은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고, 한 사람의 힘으로 단번에 풀 수 있는 성격도 아니다.

그동안 이 칼럼을 통해 필자는 지역사회가 함께 논의해야 할 의제를 제시해 왔다. 청년이 떠나는 이유는 일자리의 유무가 아니라 도시 전체의 기능에 있다는 점, 기업 유치 중심의 정책이 반복되는 동안 산업의 다양성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 지방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의 경계가 흐려져 있다는 점, 그리고 행정통합이 청년의 관점을 빠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들은 이번 선거에서 후보들이 반드시 자신의 방향을 밝혀야 할 의제이기도 하다.

물론 선거 과정에서 모든 공약이 완벽한 구체성을 갖추기는 어렵다. 후보마다 경험과 역량이 다르고,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접근 방식은 다를 수 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유권자가 확인해야 할 것은 공약의 세부 항목이 아니라, 그 공약이 가리키는 방향과 우선순위가 이 지역의 현실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가다. 일자리를 이야기한다면, 그것이 어떤 산업 구조 위의 일자리인지. 청년을 이야기한다면, 단기 지원인지 도시 기능의 전환인지. 경제를 이야기한다면, 기업 하나를 유치하는 전략인지 생태계를 설계하는 전략인지. 방향이 다르면 결과도 다르다.

대구경북의 과제는 대부분 하나의 행정 단위 안에서 완결되지 않는다. 청년이 어디에서 살고 어디에서 일할 것인지의 문제는 대구와 경북을 함께 바라볼 때 비로소 답이 보인다. 산업 생태계의 다양성은 광역 차원의 방향 설정과 기초자치단체의 현장 실행이 함께 맞물려야 가능한 과제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는 광역단체장과 광역의원,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모두가 이 지역의 문제에 대해 같은 방향의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초단체장은 주민의 삶에 가장 가까운 행정의 책임자다. 청년이 체감하는 주거와 이동의 비용, 자영업자가 마주하는 경영 환경, 주민이 느끼는 생활의 질은 대부분 기초자치단체 수준에서 결정된다. 광역의원과 기초의원 역시 정책의 방향을 견제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이 모든 자리가 같은 방향을 바라볼 때, 비로소 변화의 가능성이 열린다.

유권자는 이제 묻기 시작해야 한다. 누가 나왔는가가 아니라, 누가 이 지역의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가. 어떤 구호를 내세우는가가 아니라, 그 구호가 현실의 어떤 구조를 바꾸겠다는 것인지. 공약의 양이 아니라, 공약의 방향과 우선순위가 이 지역의 과제와 맞닿아 있는지. 이 질문들이 선거의 중심에 놓일 때, 대구경북의 다음 단계는 비로소 달라질 수 있다.

경북일보 ▲ 김대식 사단법인 점프 이사

 

03.24 ‘얼굴 없는 천사 기념관’ 유감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당사자는 기를 쓰고 숨기려 하는데 전주시는 더 알리지 못해 안달이다. 지난 13일 전주시 노송동 주민센터 인근에서 ‘얼굴 없는 천사 기념관’ 착공식이 열렸다. 지난 2000년부터 매년 찾아오고 있는 얼굴 없는 천사의 숭고한 나눔 정신을 기념하는 공간으로, 지역사회 나눔과 기부문화 확산에 기여하자는 취지다. 지상 2층, 연면적 165.63㎡ 규모로 건립되며 사업비(12억7000만원)는 전주시가 국비와 지방비로 충당한다.

 

그렇다면 지난해까지 26년째 적지 않은 성금을 전달하며 전주를 ‘천사의 도시’로 만든 노송동의 기부천사는 누구일까? 이름도 얼굴도 모른다. 한때 모 언론사에서 천사가 나타나는 연말, 잠복 취재까지 시도했을 정도로 그 얼굴에 세간의 관심이 쏠렸지만, 지금도 얼굴은 없다.

 

그렇게 이름도, 얼굴도 밝히지 않은 채 이어져온 ‘얼굴 없는 천사’의 기부는 전주를 상징하는 가장 따뜻한 이야기가 됐다. 이름이 없기에 더 널리 알려졌고, 얼굴이 없기에 더 많은 사람의 얼굴, 도시의 얼굴이 되었다. 만약 당사자가 처음부터 얼굴을 드러냈거나 언론에 의해 신분이 드러났다면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얼굴 없는 천사’가 아닌 ‘특정 인물의 미담’으로 축소됐을지도 모른다.

 

전주시가 기어코 기념관까지 착공했다. 노송동 주민센터 인근에는 이미 천사의 뜻을 기리기 위한 조형물과 시설이 적지 않다. 전주시가 노송동 주민센터 인근 마을을 ‘천사마을’, 주변 도로를 ‘천사의 거리’로 조성해 일찌감치 기념비를 세웠고, 기부천사 쉼터와 안내판도 설치했다. 또 주민센터 내부에 자그맣게 천사기념관도 이미 마련했다. 천사를 기리는 축제와 영화도 있다. 해마다 마을에서 ‘얼굴 없는 천사 축제’가 열리고, 전주영상위원회에서는 지난 2021년 얼굴 없는 천사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 ‘천사는 바이러스’를 제작하기도 했다. 또 노송동 주민들은 매년 지속되는 천사의 뜻을 기리고 그의 선행을 본받자는 의미에서 10월 4일을 ‘천사의 날’로 지정하고, 불우이웃을 돕는 나눔·봉사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숨겨왔기에 더 빛났던 선행이다. 굳이 별도의 기념관을 건립하면서까지 애써 드러내는 일이 천사의 뜻을 제대로 기리는 길일까? 익명의 선행을 기리는 방식이 꼭 물리적 공간 건립이어야 했을까? 물론 천사의 숭고한 나눔 정신을 기리고 기부문화를 확산하자는 뜻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기념관이라는 또 하나의 거창한 틀이 과연 ‘이름 없는 선행’의 정신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람들이 기억하고 공감할 ‘상징’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상징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기념관 홍수시대, 천사기념관이 자칫 행정의 성과를 드러내기 위한 또 하나의 시설물로 전락하거나, 시간이 흐르면서 관리 부담만 남는 공간이 된다면 어떡할텐가.

전북일보 / 김종표 논설위원

 

03.24 지방선거, 공정한 공천이 생명이다

오는 6월 3일은 제9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일이다. 시장, 도지사, 광역단체장, 기초자치단체장인 시장, 구청장, 군수, 광역시도의원, 기초의원인 시군의원을 뽑는 선거다. 4년마다 치러지는 지방선거에서 보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공천을 하고자 여당과 야당 모두 고민하고 있다.

 

광역시도의원이나 기초의원의 경우, 지역 국회의원이나 원외 당협위원장들의 권한이 크다는 점은 후보군에서 활동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부로 느껴왔고, 지역 주민들도 그 정도는 다 알고 있다고 한다.

 

특히 기초의원은 유권자 수에 따라 선거구별로 2인 선거구와 3인 선거구가 있어서 여당과 제1야당 후보로 공천받으면 곧 당선이라는 공식이 있다. 즉 가번을 받으면 선거운동 없이도 당선이 유력하고, 나번을 받으면 당선 확률을 50% 아래로 본다는 말이다. 그동안 이러한 이유로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잡음이 많았다.

 

지난해 말, 여당 소속 국회의원과 서울시 시의원 간에 공천 대가 1억 원 거래 녹취록이 매스컴을 통해 보도돼 충격을 던졌다. 결국 현역 국회의원과 서울시 시의원 모두 지난 3일 구속됐다. 후보군에 속했던 사람들은 이러한 일이 서울 특정 지역에서만 있었겠나, 다른 지역에서도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는 일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할 것이다. 이에 민주당은 공천 혁신 차원에서 국회의원의 관여를 차단하기 위해 전 당원 투표로 결정하는 처방을 냈다.

 

그런데 전 당원 투표가 완벽한 것도 아니라고 한다. 수 년간 당원으로 당을 지켜온 충성파와 계절에 따라 입당한 당원 간의 차이가 크다는 것인데 이도 맞는 말이다. 사람이 만드는 제도가 완벽할 수는 없는 일. 그래도 여야를 막론하고 당원에게 후보를 결정하는 권한을 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본다.

 

국민의힘은 기초의원에 대하여 가번을 3번 계속해서 주는 것은 안 된다고 하여 다선의원들의 불만이 크다고 한다. 전국에 획일적으로 그러한 방침을 적용한다는 것은 문제가 크다는 것, 기초의원은 그야말로 좁은 지역 동네 선거와 같아 지역 주민이나 당원들이 후보군을 제일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공정한 공천이야말로 서로가 사는 가장 유일한 길이다. 이를 위해 신인 후보에게는 가점을 다선의원에게는 일정 점수를 감하여 균형을 맞추고, 당원과 여론의 비율로 정하여 모두 경선에 참여시키면 불만도 없을뿐더러 국회의원이나 원외 당협위원장도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씨름, 유도, 태권도, 레슬링, 권투 등 일대일로 맞붙는 스포츠 경기에서는 체급(weight class),즉 체중에 따라 등급을 나눈다. 비슷한 체중의 선수끼리 대결하는 게 공정하다는 것이다. 신인에게는 좀 더 높은 가점을, 다선에게는 무게를 좀 더 내리는 감점을 줌으로써 무게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사족을 달면, 지난 2014년 5월 필자가 지방선거 예비 후보였던 때 지역 언론에 기고한 내용 이 있다. 2천여 년 전, 후한 시대 왕소군이라는 궁녀가 궁중 화가에게 뇌물을 주지 않아 얼굴을 못 생기게 그려 ‘춘래불사춘’이라는 글이 나왔고, 조선 시대 때 과거 시험장에 뇌물을 주지 않으면 입장도 못 한다는 한탄의 목소리로부터 ‘무와불입지(無蛙不入地)’(개구리가 없어서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라는 말이 정식 고사성어로 등재되지는 않았지만 전해져 온다. 비슷한 비유로, 황새가 먹고 살 땅을 구하기 위하여 찾아다니다가 두루미의 텃세에 밀려 정성껏 물고기를 잡아다가 두루미에게 뇌물을 바치고서야 살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하지 말고 공정한 공천권을 행사하는 데 한 번쯤은 생각해 주기 바란다.

 

부천시 행정동우회장 김인규

경기매일 정석철 기자

 

03.24 '사법개혁 3법'을 염려함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

 

사법부의 근간을 흔들지도 모르는 사법개혁 3법을 여당이 단독으로 통과시켰고 국회를 통과한 3법 모두 3월 12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보통은 법률의 공포와 시행 사이에 유예 기간이 있지만 이 3법은 부칙에 공포일을 시행일로 정해 바삐 시행됐다. 이 3법에 대한 논란은 이란과 미국·이스라엘 간 전쟁의 장기화와 제1 야당의 6·3 지방선거 공천 내홍(內訌)에 묻혀 슬그머니 지나가는 듯하다.

 

우선 대법관의 수를 대법원장을 포함해 14명에서 26명으로 증원했다. 증원된 12명은 시행 2년 뒤부터 매년 4명씩 증원하므로 빠르면 2030년 3월 13일이 되면 26명을 채우게 된다. 법 개정의 이유 중 하나로 기존 대법관들이 연간 5만6천 건이 넘는 사건을 떠맡는 과중한 부담을 들었는데 일견 일리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현 대통령이 임기 내에 12명을 모두 임명하고, 또 그 사이에 임기가 종료되는 대법관까지 임명하게 되면 26명 중에 과반(過半)을 훌쩍 넘기는 대법관을 임명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대법관의 인적 구성이 특정인 또는 정당에 유리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4년 내에 12명의 대법관이 대통령에 의해 추가로 임명될 수 있으므로 대법관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특정인 또는 정당의 눈치를 볼 수가 있다. 이로 인한 사법부의 정치화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재판 소원 제도도 문제가 있다. 기존의 헌법재판소법 68조 1항에서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는 예외 규정을 삭제함으로써 법원의 재판 결과도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대법원의 확정 판결에 불복할 수 있는 길을 터주어 사실상 4심제를 가능하게 하였다.

 

개정 제안 이유로 재판이 명백히 헌법을 위반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더라도 구제수단이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판사가 헌법이나 법률에 맞지 않는 재판을 할 경우에 대비해 헌법과 관련 법률은 3심제 재판을 정했고 1심과 2심에서는 사실관계를 다투고, 3심에서는 법리관계를 겨룰 기회를 부여했던 것이다.

 

더구나 기존 형사소송법 420조에 대법원 판결 후에라도 피고인에게 유리한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재심을 허락하고 있다. 기존의 제도가 이처럼 잘 짜여있는데도 굳이 대법원 확정 판결에 대하여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제4의 길을 열어 줌으로써 돈이나 권력이 있는 피고인에게 유죄 판결의 확정을 미룰 수 있는 길만 터주는 셈이 아닌지 걱정된다.

 

헌법은 사법부나 헌법재판소를 독립적인 부나 기관으로 정하여 상호 견제를 가능하게 했다. 그런데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다시 헌법소원심판을 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마치 사법부(府)가 헌법재판소(所)의 하위기관인 듯 보이게 한다.

 

신설된 법왜곡죄는 법관, 검사 또는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가 타인에게 위법 또는 부당하게 이익을 주거나 권익을 해할 목적으로 법령을 잘못 적용하여 당사자의 일방을 유리 또는 불리하게 만드는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했다. '법령 잘못 적용'에 고의성이 있었는지, 아닌지를 구분하기 힘들고, '유리 또는 불리'라는 말에 자의적(恣意的) 해석이 가능해 법의 안정성을 해칠까 염려된다.

 

이 법의 제안 이유 중 하나로 법 왜곡 행위를 처벌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를 들고 있다. 국민적 요구를 어디서 어떻게 조사했는지 알 길이 없으며 더구나 기존 형법 123조에 '직권 남용 권리 행사 방해죄'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형법 123조를 두고 굳이 특정 직업군을 겨냥해 법률을 신설하는 것이 만인에게 평등해야 한다는 법 정신에 맞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나아가 이 법 부칙 2조에 이 법 시행 당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에도 적용한다고 밝혀 헌법이 금지하는 '소급 입법 금지 원칙'을 위반할 가능성도 있다. 더구나 헌법 103조에 법관은 헌법과 법률, 그리고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할 것을 정하고 있는데 법왜곡죄가 헌법 103조와 상충(相衝)할 가능성까지 있다.

 

헌법이 규정한 법관의 권리가 소홀히 되고, 개혁 3법이 초래할 결과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흐린 점을 고려해 볼 때 개혁 3법이 과연 필요하고, 절차는 정당했으며, 국민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염려를 떨칠 수가 없다. 나라의 기둥인 사법부가 흔들리는 듯하다.

매일신문

 

03-24 김어준들의 위험한 무책임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된 1998년, 김어준은 인터넷 패러디 신문을 창간하고 스스로 ‘총수’ 자리에 앉았다.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가 깔리고 전국에 PC방이 급증하던 때였다. ‘B급 오락영화 수준을 지향하는 초절정 하이코미디 씨니컬 패러디 황색 싸이비 싸이버 루머 저널’이란 창간 선언문과 조선일보를 그대로 베낀 인터넷 화면은 몇 달 만에 공전의 히트를 쳤다. 이름도 대놓고 조선일보를 패러디한 ‘딴지일보(日報)’였다.

 

엄숙한 정치 언어들이 딴지일보에서 B급 농담과 욕설, 패러디로 뒤범벅돼 다시 쓰였다. 김어준은 ‘김데중’ ‘기명사미’ 같은 검은 정장 차림의 정치인들을 날것 그대로의 언어로 신나게 난도질했다. 엘리트들이 향유하던 정치를 ‘지하 PC방 짜파게티’ 수준으로 끌어내린 것이다. 아이팟이 전성기를 맞자 팟캐스트로 진출해 해적방송 ‘나꼼수’로, 유튜브 전성시대엔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으로 옮겨 승승장구했다. 윤전기도 방송장비도 없이, 시대 흐름을 포착하는 영리함 하나로 만들어낸 전대미문의 성공이다.

 

김어준은 자신을 ‘잡놈’이라 불렀는데, 이 ‘잡놈’ 이미지는 위기의 순간마다 기발한 면죄부로 작동했다. 2012년 여성 비하 논란에도 사과는커녕 “우리가 잡놈이긴 하다”며 성적 농담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냄새가 난다’거나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면서 밑도 끝도 없는 음모론을 펴놓고는, 사실이 아닌 게 드러나도 사과하지 않았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촉발된 ‘이재명 대통령 공소취소 거래설’이 논란이 되자 “왜 우리가 사과해야 하나” “고소·고발이 들어오면 모조리 무고로 걸어 버릴 것”이라고 했다. ‘잡놈’ 김어준은 그래도 된다는 듯이.

문제는 김어준이 대세로 떠오르면서 수많은 ‘김어준들’이 잡놈식 책임 회피를 일상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보수 유튜버들이 부정선거 의혹으로 돈벌이에 나섰는데, 그 원조는 18대 대선 개표 부정 의혹으로 재미를 본 김어준이다. 이들은 선관위 등이 조목조목 반박해도 다루지 않거나, 뒤늦게 ‘아니면 말고’식 태도를 보인다. 30년 가까이 김어준이 쌓아 올린 방식이다.

 

패러디는 약자의 언어다. 김어준 말마따나, 이명박·박근혜 시대는 가능한 모든 추론(어쩌면 음모)을 의도적으로 멈춰선 안 되는 시절이었을지 모른다. ‘언더독(Underdog)’이었던 김어준은 그래서 노골적 편향성과 음모의 자유를 약자의 권리인 양 마음껏 누렸다. 그러나 오늘날 시민들은 김어준을 약자가 아닌 권력으로 본다. 대통령과 정당 대표, 차기 대권의 향방까지 좌지우지하던 ‘밤의 대통령’은 이제 조선일보인가 김어준인가.

 

김어준과, 그를 좇는 ‘김어준들’이 여론과 사회를 진흙탕으로 만들고 있다. 언론의 권리는 누리면서 권력감시, 사실확인, 공정성의 의무는 무시한다. 김어준이 ‘가카’와 검은 정장 정치인들에게 요구했던 최소한의 정의나 도덕이 자신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말인가.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다뤄야 마땅할 뉴스를 다루지 않는 것이 진짜 권력”이라고 했다. 누구의 비판과 의혹도 다루지 않고 무시할 수 있는 진짜 권력, 2026년의 김어준이다.

 

문화일보 김윤희 기자

 

03-24 법과 정의 허물 ‘검찰 기소’ 국정조사

이른바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 계획서가 지난 2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조사 대상은 법원·검찰·경찰·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 외에도 쌍방울 등 민간기업까지 포함돼 있다. 조사 범위는 대장동 사건, 위례신도시 사건,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등으로 대부분 이재명 대통령이 연루돼 있다. 조사 기간은 지방선거가 임박한 5월 8일까지다.

 

현재 6·3 지방선거는 더불어민주당의 압도적 승리로 끝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벌인 일은 아닌 듯하다. 그보다는 이미 이번 선거는 이겼고, 이참에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도 소멸시켜 버리자는 의도인 듯하다. 민주당은 지난 2월 23일 현역 의원 105명의 이름으로 이 대통령 사건 공소 취소와 국정조사 추진을 위한 의원 모임을 출범시켰다.

 

시종일관 민주당의 공격은 검찰을 향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검찰이 가지는 의미를 한 번 생각해 보자. 근대 이전에는 수사기관과 재판기관이 하나인 상태에서 형벌제도가 무지막지한 인권 침해를 일으켰다. 일단 범인으로 지목되면 죄를 인정할 때까지 고문했으니, 자백하고 처형되거나 온몸이 만신창이가 돼 죽거나 어차피 죽는 수밖에 없었다. 시민혁명이 일어나면서 이 폐단을 없애고자 재판기관에서 수사기관을 분리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수사기관인 경찰이 수사권을 남용하게 됐다. 결국, 수사기관을 통제할 기관이 필요했고,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검찰이다.

 

검찰제도의 본고장인 독일에선 검찰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우리나라만 문제가 되는 건 역사적인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검찰은 일제강점기에 처음 만들어졌다. 일제가 우리 민족을 옥죄기 위한 통치기구의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이 검찰의 임무였다. 해방 이후에도 한동안 그 임무에 충실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군사정권 시절 반정부 투쟁의 끝은 대개 경찰이나 국군보안사령부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검찰로 넘겨지는 것이었다. 일제강점기나 군사정권 시절이나 탄압의 마지막 관문을 지키는 사람들이 검사였으니 민주화를 향한 긴 여정을 지켜봤던 사람들의 뇌리엔 검찰이 악역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래도 대학에 다닐 때는 법과 정의를 외치던 인사들이 왜 검찰에만 가면 그렇게 변하는가. 검사 개인이 아무리 정의감에 불탄다 한들 거대한 조직 문화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검찰 전체가 지탄받으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어 나갔다. 정치권과 관련된 사건을 제외하곤 법대로 처리되는 선까지 이르렀다. 문제는,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하면서 시작됐다.

 

진영 논리에 매몰된 사람들의 눈에는 정치적 유불리만 보인다. 우리 편을 수사·기소하는 것은 우리에 대한 공격이다. 반면, 적은 철저하게 파괴해야 한다. 과반 의석을 가지고 못 할 일이 무엇이겠나. 대개의 일반 사건 수사에 차질이 생겨 범죄가 폭증할 것이 걱정이다? 범죄가 만연하든 말든 중요하지 않다. 우리 권력만 유지하면 된다. 국정조사로 공소취소를 끌어낸다면 이는 곧 진행 중인 재판에 관여하는 것이 돼 국정조사법 위반이지만, 집권 다수당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바꾸면서 여차하면 기소도 못 하게 하려 한다.

 

문화일보 김성천 중앙대 명예교수·법학

 

03-24 ‘지속가능 미래’ 걷어차는 삼전 노조

우리 경제의 근간인 반도체 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 반도체의 기술 패권 경쟁이 가속화하면서,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선점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정부까지 나서는 마당에, 삼성전자노동조합은 5월 총파업을 예고했다. 하지만 이 총파업은 정당한 권익 보호의 차원이 아닌, 기술 전환기에 역행하는 비합리적인 집단행동이자 국가 경쟁력을 자해하는 선택으로서 반드시 평가받아야 한다.

 

노동조합의 존재 이유는 정당하다. 그러나 이 정당성은 산업의 지속가능성과 국가 경쟁력이라는 더 큰 틀에서 판단돼야 한다. 삼성전자는 파업에 찬성한 6만 여 명의 소유물이 아닌, 국가 경제와 기술 생태계를 지탱하는 공적 인프라이자 AI 반도체 산업의 핵심축이다. 지금의 총파업은 기업 내부의 성과급 인상 요구가 아닌, 국가 경쟁력을 담보로 한 집단적 압박이자 시대착오적인 행위다.

 

삼성전자는 노사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삼성전자의 주인은 노동자뿐만 아니라 자본을 책임지는 주주들과 그 기술력에 국가 경제를 의탁한 국민 전체이다. 노조 측이 총파업을 선언한 시점은 정기 주주총회가 열린 날로, 주주들에게 정기 배당과 특별 배당을 확정한다고 밝힌 지 불과 3시간 만이다. 주주들이 기업의 성과를 장기적 신뢰로 평가하는 순간, 노동조합은 그 장기적 신뢰를 흔들면서 기업의 가치를 훼손한 셈이다.

 

AI 반도체는 단순한 기술 개발의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시장은 엔비디아, TSMC, 인텔 간의 첨단 기술 경쟁으로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은 전략산업보조금법으로 자국 내 생산 거점을 지원하고, 대만은 정부와 기업 간의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정부까지 위기의식을 가지고 기업과 함께하자며 나섰는데도, 기업의 구성원들인 노조가 총파업으로 답하고 있다. 기술 경쟁이 ‘나노초 단위’로 전개되는 현실에서, 노사 갈등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명백한 퇴보다. 국가 단위의 총력을 통해 기술 패권 경쟁에 도전하는데, 노조는 여전히 과거의 투쟁 구호 속에 머물러 있어 안타깝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과급 몇 퍼센트를 더 받기 위한 투쟁이 아니라, 글로벌 AI 반도체 경쟁 속에서 어떻게 생존할 것인지에 대한 집단적 사고 전환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년여 간의 실적 부진을 딛고, 후발 주자로서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 주도권 회복에 나섰다. 이제 막 다시 달리기 시작한 삼성전자의 발목을 잡는 행위는 노동조합의 권리가 아닌 우리 산업 전체에 대한 방해다. ‘더 좋은 대우’보다 선행돼야 할 것은 ‘지속가능한 미래’이다. ‘지속가능한 미래’는 대립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AI 반도체의 기술 패권을 가능하게 하는 노사 협력의 복원이야말로,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우리 산업 전체의 생존 조건이다.

 

삼성전자노조의 총파업은 국면 전환이 아닌 퇴행적 신호이다. 글로벌 공급망이 격변하고 있는 시기에, 우리의 선택은 총파업이라는 단체행동이 아닌 협력적인 혁신이어야만 한다. AI 반도체 시대의 노사관계는 생산성과 신뢰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사회적 계약으로 재설계돼야만 한다. 삼성전자노조가 진정으로 ‘노동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당장 멈춰야 할 것은 생산 라인이 아니라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다.

 

문화일보 이상근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03.24 하이에크·로크·맹자 관점에서 본 부동산정책

"이번이 마지막 탈출 기회다. 빈말하지 않는다." 2026년 초, 이재명 대통령이 다주택자들을 향해 던진 이 메시지는 단순한 정책 예고를 넘어선 ‘국가적 최후통첩’이었다.

"버티면 더 큰 손해를 보게 할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5월 9일을 매각의 마지노선으로 못 박은 정부의 기세는 서슬 퍼렇다. 국무회의를 통해 부동산 투기를 "공동체를 파괴하는 암적 존재"로 규정하고, 세제를 "핵폭탄급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선언은 우리 사회가 지탱해 온 사유재산권의 원칙에 근본적인 균열을 예고한다.

정책 명분은 단순하다. 보유 부담을 극대화해 매물을 강제로 끌어내고 가격을 하향 안정화해 서민 주거권을 보장하겠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강압적 ‘매각 압박’은 정책 효율성을 넘어선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국가는 특정 목표를 위해 개인의 재산을 어디까지 도구화할 수 있는가? 통치자의 결단이 법치의 예측 가능성을 대체할 때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는가? 시장과 인간, 국가의 관계를 성찰해 온 세 가지 사상의 렌즈로 현 상황을 들여다보자.

먼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 Hayek)의 관점에서 이는 ‘지식의 문제’이자 ‘오만의 증거’다. 하이에크에게 시장은 정부가 변수를 조정해 결과를 도출하는 기계가 아니다. 수많은 개인의 기대, 생애 주기, 지역 정보가 얽혀 만들어진 ‘자생적 질서’다. 이 질서 내에서 가격은 정보를 전달하는 유일한 신호탄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마지막 기회"라며 인위적 퇴로를 지정하는 순간 신호 체계는 마비된다. 사람들은 수급 불균형을 읽는 대신 통치자의 입과 ‘정치적 유통기한’을 읽기 시작한다.

하이에크가 경고한 ‘치명적 자만’은 여기서 드러난다. 복잡계인 시장을 중앙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 설계 실패를 더 강한 압박과 과중한 세금으로 보정하려는 태도다. "잠긴 매물을 질식시키겠다"는 표현은 시장의 자발적 조정 기능을 국가가 대신하겠다는 선전포고다. 정보가 흐르지 않고 명령만 남은 시장은 이미 시장이 아니다. 통치자의 의지가 관철되는 지시 경제의 실험장일 뿐이다.

존 로크(J. Locke)의 기준으로 넘어가면 문제는 더욱 선명한 규범적 위기로 치닫는다. 로크에게 재산권은 국가가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인간이 노동으로 획득한 천부적 권리이며 이를 보호하는 것이 국가 존재의 이유다. 국가는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계약된 존재이지, 재산의 용처를 지정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 아니다. 공동체를 위한 조세 의무는 존재하나, 특정 집단을 암적 존재로 규정하고 징벌적 과세로 자산 처분을 강제하는 것은 재산권에 대한 본질적 침해다.

"정부 정책에 역행해 버틴 사람이 이익을 보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발언은 로크적 국가관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재산권이 신성불가침의 권리가 아니라 정책 목표에 순응할 때만 허용되는 조건부 권리로 전락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선택의 형식은 남았으나 오직 한 방향의 퇴로만 열어두고 나머지를 고통으로 채우는 방식은 권리의 보호가 아니라 권리의 인질화다. 국가가 보호자에서 처벌자로 성격을 변경할 때 시민과 국가 사이의 신뢰 계약은 파기된다.

맹자(孟子)의 시각은 여기에 ‘정치의 도덕적 기반’을 더한다. 맹자는 왕도 정치의 핵심으로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이 없다"(無恒産 無恒心)고 했다. 안정된 생업과 재산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국민에게 도덕적 삶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맹자의 눈에 비친 현재의 대한민국은 ‘항산’을 뒤흔드는 불안의 정치가 지배하는 곳이다. 기한을 정해두고 "빈말하지 않겠다"고 위협하는 통치는 국민을 장기적 삶의 설계자가 아닌, 단기적 생존 전략가로 전락시킨다.

예측 불가능한 세제 변화는 국민의 삶에서 ‘안정’을 지워버린다. 사람들은 노후를 설계하는 대신 당장 발표될 ‘핵폭탄급 수단’을 피하기 위해 분주하다. 맹자는 통치자가 백성의 생업을 위태롭게 하는 것을 ‘그물을 쳐서 백성을 잡는 행위’(罔民)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정치가 주거 안정을 명분 삼아 국민의 삶을 불확실성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다면, 그것은 이미 정치가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배신하는 행위다.

세 관점을 종합하면 현재의 압박 정책은 세 가지 임계점을 넘고 있다. 복잡한 시장 지성을 권력의 의지로 대체하려는 인식의 오류, 재산권을 보호 대상이 아닌 통제 변수로 취급하는 규범의 타락, 장기적 안정 대신 단기적 성과를 위해 국민의 삶을 흔드는 시간 감각의 실종이다.

대통령의 발언은 정치적으로 선명하고 도덕적으로 정의로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방식이 반복될수록 사회 기저에는 위험한 신호가 축적된다. "재산은 국가 필요에 따라 언제든 도구화될 수 있다"는 신호다. 이는 투자와 공급 의지를 꺾는다. 당장은 매물이 쏟아질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공급의 씨가 마르고 시장의 역동성은 거세될 것이다. 정책 비용은 다주택자가 치르는 듯 보이지만, 그 왜곡의 대가는 결국 서민과 미래 세대 전체가 짊어지게 된다.

정치는 강할 수 있으나 그 힘은 개인의 자유와 재산이라는 경계를 지킬 때만 정당성을 얻는다. 보호의 이름으로 권리를 조건화하고 공익의 이름으로 선택을 강요하는 순간, 정치는 스스로의 기반을 잠식하는 괴물이 된다. 통치자의 결단이 법의 안정성을 집어삼킬 때 남는 것은 안정된 주거가 아니라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 아래 신음하는 개인들뿐이다.

시장은 명령에 굴복하는 듯 보이나 결코 잊지 않는다. 그 복수는 시간이 흐른 뒤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가격과 결핍의 형태로 돌아올 것이다.

자유일보 권혁철 자유시장연구소장·경제학 박사


03.24 민주당이 좋아하는 특검, 필요하다

지난 1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전 질병관리청장)은 "방역 책임자로서 부족하고 미흡한 점이 많았다"라며 사과했다. 이 사과는 감사원이 2월 23일 발표한 코로나19 백신 관리 감사 결과에서 촉발된 것이다.

감사원 자료에 따르면 2021년 3월부터 2024년 10월까지 의료기관이 신고한 코로나19 백신 이물질 사례는 총 1285건이며, 이 가운데 실제 이물질이 확인된 사례는 127건이었다. 문제는 이물질 신고가 접수된 백신과 동일 제조 번호(로트)의 백신 약 1420만 회분이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계속 접종됐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2022년 3월 신고된 이물질 사례는 제조사에 전달된 시점이 4월이었는데, 그때는 이미 해당 백신 접종이 모두 끝난 이후였다.

접종 이후 보고된 사망자는 2587명이며, 이상 반응 신고는 약 30만 건 이상에 이른다. 일부 동일 로트 백신의 이상 반응 보고율이 평균보다 높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최근에는 사법 판단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월 29일 서울행정법원은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10일 만에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40대 공무원 유족이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접종과 사망 사이의 시간적 밀접성과 의학적 감정 결과 등을 근거로, 백신이 심근경색 발생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인정했다.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한국의 대응 방식은 논쟁 대상이 될 수 있다. 일본은 2021년 8월 모더나 백신에서 금속 이물질이 발견되자 동일 생산설비에서 제조된 3개 로트, 총 163만 회분에 대해 즉시 접종을 중단하고 폐기했다. 유럽에서도 동일 로트에서 이물질 보고가 발생할 경우 오염 가능성이 의심되면 접종을 중단하는 예방 원칙을 준수했다.

이해충돌 의혹도 제기된 바 있다. 2025년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정 장관의 두 아들이 친인척이 대표로 있는 마스크·진단키트를 공급하는 비상장사 ‘라움플랜’ 주식 약 1억2000만 원 상당을 보유하고 있었고, 남편은 손 소독제 원료 회사 ‘창해 에탄올’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야당은 이를 ‘백신 테러’라고 규정하며 특검과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현재 피해 보상 특별법이 시행 중이지만, 사망 신고 2463건 가운데 인과성이 인정된 사례는 약 1%에 불과하다.

팬데믹 당시 정부는 접종률을 8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국민 안전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했다면 이는 단순한 사과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이런 경우 특검은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민주당이 줄곧 사랑해 온 특검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하다.

자유일보 강병호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정교모 공동대표

 

03.25 사재기

사재기(Hoarding)는 특정 물품이 부족해지거나 가격 상승이 예상될 때, 필요 이상의 물건을 미리 대량으로 사들이는 행위를 말한다. 매점매석(買占賣惜)으로 불리는 투기형 사재기는 시세 차익을 노리고 물건을 창고에 쌓아 두어 인위적으로 가격을 폭등시키는 범죄 행위이다.

 

마케팅·조작형 사재기라는 특이한 유형도 있다. 음원 차트 조작, 베스트셀러 순위 조작 등을 위해 음반·도서를 대량으로 구매하는 행위이다. 실제 수요가 있는 것처럼 소비자와 국민에게 착시 현상(錯視現象)을 일으킨다. 조직적으로 이뤄지며 콘텐츠의 가치보다 '순위'라는 타이틀에 비용을 지불하는 경우이다. 연예인·정치인들에게서 가끔씩 발생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다.

 

생존형 사재기는 패닉 바잉(panic buying)으로 불린다. '공포에 질린 구매'라는 뜻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초창기 마스크·화장지 구매 대란을 생각해 보면 그 뜻이 선명해진다. 전쟁·자연재해 상황에서 라면·생수 등 생필품을 '나만 못 살 수 있다'는 불안감(不安感)이 전염되어 공포(恐怖) 심리가 발동한다.

 

최근 이란 전쟁으로 인해 '쓰레기봉투 사재기'라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실제로 종량제봉투를 판매하는 종량제닷컴은 '최근 국제 정세의 영향으로 종량제봉투 제작부터 수급 및 입고 일정이 원활하지 못합니다'라는 안내문을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일부 마트에서는 1인당 구매(購買) 가능 수량을 제한(制限)하고 직원이 직접 결제 관리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이란 전쟁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원유 수급뿐만 아니라 원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나프타 수급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나프타를 800℃ 이상의 고열로 분해해서 에틸렌·프로필렌·벤젠 등 석유화학 원료를 얻는다. 이것을 가공하면 비닐봉지·페트병·포장재·합성섬유·합성고무·타이어·이차전지용 분리막 및 도전재(導電材) 등 수많은 산업 소재가 만들어진다.

 

문제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나프타 중동 의존도가 원유 못지않게 대단히 높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나프타는 원유와 달리 비축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대체 물량 확보도 쉽지 않다. 쓰레기봉투 패닉 바잉이 산업·경제·생활 대란(大亂)의 전조(前兆)가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매일신문 석민 선임논설위원 sukmin@imaeil.com

 

03.25 이란, 47년 공포의 벽은 무너지는가

나는 지금 이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보면서, 47년 동안 유지되어 온 공포의 벽이 마침내 균열을 넘어 붕괴의 길로 들어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금년 1월, 이란에서는 군과 경찰의 발포로 수만 명에 달하는 희생이 발생하였다.

 

이 수치는 국제적으로 일부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분명한 것은 그 희생의 규모가 결코 작지 않으며, 그만큼 민심의 분노가 폭발 단계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불만이나 일시적인 정치적 불만이 아니라, 47년 동안 억눌려 온 분노가 한꺼번에 분출된 결과이다.

 

과거에는 혁명수비대와 민병대가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뒤바뀌고 있다.

 

이란 국민들이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영상이 곧바로 이란 내 모사드 정보망과 연결되고, 그 정보가 다시 미국과 이스라엘 군에 실시간 전달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그 결과, 과거에 국민을 감시하던 혁명수비대와 민병대가 이제는 오히려 국민들에게 감시당하는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란은 현재 ‘외우내환’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 호르무즈 해협 주변국가 © 박익희 기자

 

국제적으로는 호르무즈 해협 문제 등으로 비난과 압박을 받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압박과 공습에 직면해 있다.

 

동시에 내부에서는 분노한 국민들이 체제에 협조하지 않을 뿐 아니라, 외부와 연결되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는 국가로서는 가장 위험한 단계, 곧 체제의 근간이 흔들리는 국면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유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내부에서 일부 세력이 독일군에 협조하면서 전황에 영향을 미친 사례가 있었다.

 

물론 당시와 지금의 상황이 완전히 동일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내부의 균열과 협조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이 지금 이란에서 다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모든 문제의 핵심은 민심이다. 민심을 잃은 권력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지금 이란은 그 민심을 잃었고, 그 결과 내부와 외부에서 동시에 압박을 받고 있다.

 

이제 이란의 통치기구, 특히 혁명수비대와 정규군, 그리고 민병대는 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성난 민심을 외면한 채 무모한 대외 충돌을 지속하는 것은 국가를 더욱 위기로 몰아넣을 뿐이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민심을 수용하고, 미국과 이스라엘과의 긴장을 완화하며 종전과 평화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현재의 신정체제가 한계에 이르렀음을 인정하고, 인류 보편의 가치인 자유와 책임, 그리고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결단이 필요하다.

 

47년간 유지되어 온 공포의 벽은 더 이상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이미 균열은 시작되었고, 그 균열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제 이란신정체제 붕괴는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2026년 3월 25일

한국문화안보연구원. 김명수(육사31)박사

경기데일리
 
 

03.25  BTS의 김구

어느 신문 1면 전면에 광화문을 배경으로 BTS와 김구의 사진이 나란히 등장했다. 제목은 "당신이 꿈꾼 문화강국 ‘보랏빛 아리랑’으로 광화문에서 피어납니다."

하단에는 <백범일지> 뒤에 붙은 ‘나의 소원’을 옮겨 놓았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BTS는 신곡 ‘에일리언스’(Aliens) 가사에 뜬금없이 ‘김구 선생님’을 끼워 넣었다("Pardon 김구 선생님 tell me how you feel").

중학교 교과서에 ‘나의 소원’이 실렸었다. 선생님이 ‘우리 독립 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했다’는 백범의 문장을 ‘비유법’이라고 설명했다. 되바라진 학생은 별로 동의하지 않았다. 거칠게 살아온 투사에게 독립 정부 문지기가 어색하지 않다고 생각됐다.

이광수 연구자 하타노 세치코는 "(춘원이) 1947년 흥사단의 의뢰를 받아 안창호의 전기를 집필하고 그 밖에도 <백범일지>를 현대문으로 고쳐 쓰는 작업을 했지만, 이들 애국자의 책에 이광수의 이름은 실리지 않았다"고 썼다(<이광수, 일본을 만나다>).

졸지에 일본이 항복했으니, 일제 말기 창씨개명에 앞장서고 총독부 정책에 적극 협력했던 춘원은 난감했을 게다.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 조선 사회에 대한 기여가 예사롭잖았지만, 세상 인심은 거두절미 허물만 기억한다. 경교장을 드나들며 <백범일지>를 고쳐 쓰면서 얼마나 불안했을까?

‘나의 소원’의 문장은 결도 격(格)도 <백범일지>와는 이질적이다. 도진순 주해 1997년판 각주는 ‘<백범일지>와는 달리 매우 다듬어진 글’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전적으로 춘원의 글이려니 여겼다. 돌아가신 홍일식 교수(전 고대 총장)도 ‘춘원의 부인으로부터 그렇게 들었다’고 전하셨단다. 국문학을 전공하셨으니 춘원의 부인 허영숙과도 친분이 있으셨겠지.

그런데, 이 일을 어쩌나? 이재명 대통령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골든글러브 2관왕 소식에 "김구 선생께서 꿈꾸셨던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는 나라’가 어느덧 현실이 되고 있다"고 축하 인사를 보냈다네.

자유일보 홍승기 변호사·前 인하대학교 로스쿨 원장

 

03.26 신규 원전 유치에 하나된 영덕군

27일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한 경북 영덕군의 도전이 시작된다. 영덕군은 무려 86.18%에 달하는 군민들의 지지를 받은 '신규 원전 유치' 신청서를 이날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에 접수한 뒤 울주군과 경쟁을 본격화한다.

 

군은 정부가 계획한 2기 외에 앞으로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더 늘어날 수도 있는 원전에 대한 확장성과 산불로 폐허가 돼버린 땅의 매입 경제성, 인근 울진을 중심으로 수도권으로 이어지는 전력망 등을 앞세워 영덕이 원전 건설의 최적지임을 정부와 한수원에 알릴 예정이다.

 

내부적으로는 주민 설득도 지속할 방침이다. 김광열 군수는 지난 6일 전체 공무원을 대상으로 원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에너지 정책 역량 강화 직무교육' 시간을 가졌고, 이를 토대로 신규 원전 유치와 관련된 읍면 주민설명회와 범군민결의대회도 열었다.

 

영덕군은 주민들의 신규 원전 유치 의지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다음 달 17일쯤 노물리, 석리, 매정리 등에 이르는 지역을 원전 부지로 정해 계획서를 한수원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후 해당 지역에 대한 역학조사를 통해 후보지를 결정하면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부지선정위원회가 최종 건설 예정지를 확정한다. 시기는 6월 말이다.

 

영덕군은 신규 원전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고 할 정도로 행정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앞서 계획됐다가 정권이 바뀌면서 백지화된 원전을 유치한 경험이 있는 김병목 전 군수도 '영덕수소&원전추진연합회'에 합류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여기에 6·3 지방선거 국민의힘 영덕군수 후보들 모두 한결같이 '신규 원전 유치'를 인구 및 재정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킬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보고 지지하고 있다. 신규 원전 유치가 현실화되면 ▷신규 일자리 창출 ▷젊은 세대 유입 ▷산업·생활 인프라 구축 ▷내수 경제 활성화 ▷재정자립도 상승 등이 뒤따라 오기에, 이들이 앞다퉈 유치 활동에 속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행 제도상 신규 원전 건설과 운영이 이뤄지면 해당 지역에 지원되는 법정 지원금만 약 2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이고, 여기에 경제활동까지 더해지면 그 규모는 최소 곱절 이상은 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기대 덕분인지 신규 원전 유치가 영덕군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하고 있다.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치 경쟁도 신규 원전 유치 앞에서는 무색해지는 것을 보며 조금이라도 더 잘살기 위해 애쓰는 지역의 절박함이 느껴진다는 게 주민들의 말이다.

 

'원전만이 살길이다. 떠나는 영덕 군민 원전 건설로 막아보자' 등 신규 원전 유치 응원 현수막이 산불로 생계를 잃은 석리 등 예정부지를 넘어 영덕읍, 강구면 등 지역 전체로 번지고 있다.

 

물론 반대 목소리도 있다. 영덕참여시민연대 등은 고준위폐기물과 같은 원전이 가진 위험성을 경계하며 핵발전 유치 반대를 명확히 하고 있다. 환경 단체들도 청정지역 이미지가 훼손될 것을 걱정하며 반대하고 있다.

 

김광열 영덕군수는 "반대 목소리 역시 의견이 다를 뿐, 지역을 사랑하는 군민들의 진심 어린 걱정으로 보고 정확한 정보 전달을 위한 의사소통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겠다"면서 "인구 감소와 지역 경제 침체라는 구조적인 위기 속에 지난해 발생한 초대형 산불을 보며 영덕의 미래를 새롭게 정립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필요했고, 이것이 신규 원전 유치라는 행동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매일신문 박승혁 기자 psh@imaeil.com

 

03.26 소주 키핑(Keeping) 해주세요

돈 없어 반병 맡기던 80년대

외식물가 폭등에 또 가난해져

'지원금' '물가 대책' 병행돼야

 

1983년 전후해서다. 불이 켜지면 더 환해지는 명소가 있었다. 그때 수원은 남문이 그런 곳이었다. ‘약국 골목’은 그중에도 훤했다. 리어카 포장마차가 늘어서 있었다. 양은냄비 한가득 홍합이 끓고 있었다. 의자는 있지만 서서 먹는 게 편했다. 거기에 술 메뉴로 ‘소주 반병’이 있었다. 주인이 잔 술을 모아 만든 반병이었다. 운 좋은 날에는 ‘3분의 2병’을 받기도 했다. 먹다가 남기면 보관을 해주기도 했다. 이제 와서 보면 ‘소주 키핑’의 원조격이다.

 

2026년 요즘이다. 사십 몇 년이 지났어도 소주가 좋다. 총량을 넘어 많이 마시지는 못한다. 그래도 주말주(酒)는 거르지 않으려 한다. 요즘 들어 그리워지는 말이 있다. ‘소주 보관해 주세요’, ‘소주 반병 주세요’. 그러고 싶다. 식당에서 소주 한 병이 4천~6천원이다. 7천원을 받는 곳도 있다. ‘3천원’은 행사 가격에 가깝다. 추가 주문이 망설여진다. 남기기도 아깝다. 반병만 팔았으면 싶다. 씁쓸하다. 내 마음의 지갑은 없던 그 시절로 돌아갔는가.

 

외식물가가 너무 오른다. 이렇게 가도 괜찮은가. 2026년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있다. 전년 동월 대비 2% 올랐다. 외식물가는 3%를 상회했다. 1월에도 흐름은 비슷하다. 소비자물가가 2% 올랐고, 외식물가는 2.9% 올랐다. 최근 3년간 외식물가 상승률은 4~6%였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2배 정도다. 소비자물가 상승만으로도 서민은 힘들다. 그런데 이보다 2배 이상 뛰는 외식물가다. 가족 외식이 자랑이던 시절, 또 그 시절인가.

 

외식물가 직격탄은 서민을 향한다. 서민 가계를 직접 흔든다. 맞벌이·1인 가구가 급격히 늘어났다. 그들에게 외식은 이제 일상이다. 외식 비용이 시차 없이 청구서로 날아든다. 체감물가가 늘 실제보다 팍팍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실제 외식물가가 폭등해 있다. 가계부가 어떻겠나. 혹시 명품으로 휘감은 부자들이면.... 안 들어도 된다. 돈으로 매긴 VVIP 등급이라면.... 몰라도 된다. 월급으로 사는 직장인 얘기다. 외식물가 무서운 서민 얘기다.

 

지금의 물가는 기원이 명쾌하다. 코로나 팬데믹이었다. 재화(財貨) 없이 통화가 풀렸다. 긴급재난지원금 20조8천억원, 소상공인 지원금 15조4천억원, 각종 고용·복지 지원금까지. 다해서 100조원쯤 됐다. 그게 끝났다. 유동성 축제가 끝나고 물가 고통이 시작됐다. 2021년 기준으로 2024·2025년 전체 물가가 8~10% 올랐다. 그 기간에도 외식물가는 15~20% 상승했다. ‘통계는 2%, 밥값은 5%’. 누군가 말하자 모두가 공감한 푸념이다.

 

앞날이 더 걱정이다. ‘이재명 경제’의 핵심은 현금 지원이다. 기본소득이라는 정책명으로 정리된다. 이미 극단의 평가가 나뉘어 있다. 평균적 삶을 보장한다는 기대와 물가를 상승시킨다는 우려다. 취임 후 다양한 현금이 풀렸다. 단발성, 상시복지, 바우처·지원.... 수십조원으로 추산된다. 물가 반영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런 때 또 준다고 한다. 국민 절반이 받는 거 같다. 정책 논쟁은 생략한다. 외식물가 잡아 달라는 부탁만 남기겠다.

 

전쟁 기름값’이 인상적이다. 전쟁 여파에 기름값이 출렁댔다. 국가가 나섰다. 최고가격제, 매점매석 단속, 행정 개입을 경고했다. 폭등 조짐이 잦아들었다. 잘한 대응이다. 국가가 가격을 안정시켰다. 외식물가에도 역할을 기대한다. 정부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안다. 정책적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체감 성과는 크지 않다. 물가 공포는 여전하다. 지원금을 나눠 온 정부 아닌가. 대국민 장악력이 크다. 그 힘을 여기에 쏟을 때다. 그래도 된다.

 

스무 살엔 돈 없어 키핑했다. 지금은 물가 비싸서 키핑하고 싶다. 소주는 다시 가난해졌다.

경기일보 主筆 김종구

 

03.27 입법권은 우위 권력이 아니다

선출권력 우위론으로 폭주하는 정권
동등한 삼권의 균형 견제가 헌법정신
정상적 민주주의의 회복이 내란척결

지난해 이재명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정권 성패 가를 키워드는 절제’란 칼럼을 썼다. 초유의 당정 일극체제는 어떤 자의적 통치행위에도 일방적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음을 우려했다. 정권의 의지만 있는 무(無)견제 구조는 유사민주주의나 연성독재로 흐를 수 있으므로 권력의 절제를 충심으로 당부했다.

 

새삼 옛글을 소환한 이유는 이때의 당부가 무색할 정도로 우려가 너무도 빨리 현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절제는커녕 권력남용이 도를 넘고 있다. 검찰해체와 사법3법, 조작기소 국정조사 등이 다 그런 것들이다. “상기하자 검찰만행, 상기하자 조희대의 난” 따위의 보복성 구호 속에서 권력의 의도는 그대로 현실이 돼가고 있다.

 

앞으로의 기대도 무망(無望)이다. 집권당대표의 발언에서 근거가 읽힌다. "윤석열 검찰독재 치하에서 자행된 조작기소 범죄행위에 … 가담한 검사들은 모두 감방으로 보내겠다. 빨리 공소 취소하기 바란다"는. 국회가 수사와 재판에 간여하는 게 마땅하다는 인식은 삼권분립에 기반한 헌법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선출권력(입법권)이 임명권력(사법·대통령 제외한 행정권)에 앞선다는 입법권 우위 인식의 단초는 사실 이 대통령이 제공한 것이다. 그는 지난해 취임 100일 회견에서 이런 식의 권력서열론으로 당장 법학계로부터 위헌적이란 반박을 받았다. 이 인식이 토크빌이 민주주의의 최고 위험요소로 지목한 ‘다수의 폭정’의 기반이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포함, 범진보진영이 3분의 2에 달하는 의석을 가져갔으나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총득표율 차이는 겨우 5.5%포인트(50.6:45.1)였다. 더욱이 막판 윤석열이 잇달아 자초한 악재 덕에 뒤집어진 선거 결과였다. 선출권력이라 해도 국민의 대표성을 혼자 전적으로 위임받은 양 할 것도 아니란 뜻이다.

 

잠깐 각론으로 돌자면 검찰개혁은 정치권력 개입차단이 핵심이다. 문제 있다고 아예 검찰 숨통을 끊어놓고는 훨씬 다루기 쉬운 경찰에 권한을 넘기는 건 정치의 수사개입을 더 용이하게 하는 개악이다. 방법은 많았다. 검찰권 왜곡은 크게 대통령의 인사권, 장관의 지휘권, 검찰의 수직적 위계구조에서 비롯된다. 이는 제도적으로 바꿀 수 있고, 정치사건 전담의 독립적 상설특별검사기구 방안도 있다. 사법통제 방안도 유럽 일본 등지에 참고 사례가 널려 있다. 그러나 이런 본질적 개혁방안들에 대해선 고민도 숙의도 없었다. 의도가 너무도 뻔한 국정조사는 논할 가치도 없다.

 

60%를 훨씬 넘는 이 대통령 지지율은 관세전쟁 같은 대외악재에 대한 유연한 대응과 실용적 국내정책들에 힘입은 것이다. 그러나 입법권력을 앞세워 폭주하는 정치쪽은 전혀 아니다. 보통 시험에서는 총점이 합격선을 크게 넘어도 과락(科落)이 있으면 불합격이다.

 

임박한 지방선거야 국민의힘의 자멸적 행태로 더 볼 것도 없지만 문제는 다시 입법권력을 다투게 될 2년 뒤의 총선이다. 정책의 결과는 한시적이되 파행적 입법의 영향은 누적적이다. 뉴이재명에 가담한 중도층 상당수가 더 이상 정책의 효능감에 무뎌지고 끝없는 내란정국의 혁명재판식 분위기에 지치면 상황은 급반전할 수도 있다. 그때 가서 만약 집권당이 절대다수의 위상을 잃어도 입법권 우위 인식을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겠나.

 

집권진영이 신주단지처럼 떠받드는 압도적 의회(입법)권력은 효율적인 국정운영을 돕고, 불필요한 정치싸움을 억제해 국민의 안정된 일상을 만드는 데 써야 할 힘이다. 비민주적이고 위헌성 짙은 보복성 입법에 쓰라고 부여받은 권력이 아니다. 유념키 바란다. 입법권은 우위권력이 아니며, 내란의 반대는 정상 민주주의임을.

 

이준희한국일보 고문

 

03.27 이란 전쟁의 특성과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세계 질서

2월 28일 아침 이란의 37년 된 철권 독재자, 소위 최고 지도자(Supreme Leader)라고 불리는 하메네이는 약 50명에 이르는 이란 정권의 요인들을 18m 깊이 지하 벙커에 소집했다.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란 정권의 머리(수뇌)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그리고 하메네이의 벙커는 중국이 미국의 스텔스 전투기도 탐지하고 요격할 수 있다고 자랑하는 방공 레이더와 요격 미사일로 완전 무장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군과 정보 당국은 이들이 모인다는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 미국과 함께 기습 공격을 감행, 공격하는 순간 하메네이를 비롯한 이란의 수뇌부를 전멸시켰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이란을 뱀이라고 묘사하고 전쟁이 일어나면 뱀의 머리를 가장 먼저 치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하루 정도 지난 후 이란 정부도 하메네이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며칠 후 이란의 현자 88명이 모여서 다음 번 최고 지도자를 선출하기 위한 회의를 개최했다. 역시 이스라엘 공군은 88명이 투표용지를 들고 투표함으로 향하던 순간 그들을 전멸시키는 공중 폭격을 감행했다. 그동안 미국의 전투기들과 미사일은 이란의 군사시설을 맹폭하고 있었다.

 

이번 이란 전쟁은 기왕의 전쟁 및 전략 이론들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전쟁사의 첫 번째 사례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놀랍다. 서양 전쟁 이론가 중 최고임을 자타가 공인하는 프러시아 장군 클라우제비츠는 1831년 간행한 불멸의 저서 「전쟁론」(Vom Krieg)에서 전쟁이란 '적에게 나의 의지를 강요하기 위해 벌이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적의 급소(Center of Gravity)를 제거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클라우제비츠는 적의 급소를 적의 '군사력'이라고 보았다. 클라우제비츠 장군의 이 같은 가르침은 1990년 걸프 전쟁 당시까지 모든 강대국들의 기본적인 군사전략이 되었다.

 

1990~1991년의 걸프 전쟁에서 미국은 이라크의 군사력을 문자 그대로 궤멸시켰다. 당시 미국의 부시(41대) 대통령은 이라크 국민들을 향해 "이라크는 이제 여러분의 것이 되었다"며 후세인을 몰아내고 권력을 장악하라고 독려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공화국 수비대마저 잃어버린 후세인이 이라크 국민들에게 쫓겨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강한 탄압을 지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미국 전략가들은 독재 국가의 급소는 그 나라의 군사력이기보다는 독재자 자신이라고 믿게 되었다. 2003년의 이라크 전쟁에서 부시(43대) 대통령이 후세인을 집요하게 추적해서 체포한 후 군사재판을 거쳐 사형을 집행한 것은 클라우제비츠 전략 이론의 종막이었다. 미국은 독재 국가들과 전쟁할 경우 애꿎은 병사들과 군사력을 궤멸하려고 노력하기보다 독재자와 그 일당을 제거하는 새로운 전략을 수립했다.

 

이번 이란 전쟁이 특이한 이유는 이란이라는 독재 국가의 군사력과 수뇌부를 동시에 표적으로 삼아 공격했다는 사실에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말대로 이란의 항복할 놈도 없앴고 싸울 능력도 없앤 것이다. 전쟁이 시작된 지 4주일이 되어가며 이란의 반격이 거의 무의미한 수준으로 줄어들었으니 트럼프가 애초 계획했던 기간인 4~6주 정도면 전쟁이 끝날 것 같다. 3월 23일 무렵 이란의 미사일 공격은 10시간에 2발 정도로 급격히 줄어들었고, 지난 4주 동안 이스라엘을 향해 발사된 400발의 이란 미사일 중 92%는 공중에서 요격됐다.

 

트럼프는 이란 석유 수출의 90%를 처리하는 하르그섬을 장악, 이란의 경제적인 숨통을 죄었으며,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능력도 사실상 제거했다. 3월 25일 현재 미국은 이란의 군사 표적 9천 곳 이상을 파괴해 버렸다. 이란은 은밀한 통로로 미국과 접촉하고 있으며 미국 특사인 위트코프, 쿠슈너와 협상하는 이란 측 인물은 이슬람 공화국 수비대의 에스마일 카아니(Esmail Qaani) 장군으로 그는 곧 이란 정권을 장악할 것이라 한다. 트럼프는 "이란은 다시는 핵무장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마두로 대통령 당시 부통령이던 인물이 베네수엘라의 정권을 이어받아 미국과 협력하는 방식이 이란에도 적용될 것 같다.

 

최고의 전쟁사 학자인 빅터 핸슨 박사는 이번 이란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칠 국제정치적인 사건이라고 분석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패권 시대가 개막되었듯이 이란 전쟁 이후 다시 미국 패권의 시대가 확립될 것이라는 말이다.

 

매일신문 이춘근 국제정치학자

 

03-30 부동산정책의 본질적 목표

이재명 대통령의 SNS는 효능감 높은 정책 수단으로 간주된다. 부동산 시장 개입 강도는 강력했고, 디테일도 살아있다. “0.1%의 물 샐 틈도 없게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란 주문에선 가용 수단을 총동원해 집값을 잡겠다는 자신감도 보인다. 이 대통령은 바둑 두듯이 판을 정교하게 짜면서 다주택자들을 몰아가고 있다. 강남 집값은 ‘멱살’잡힌 채 끌어내려졌다. 정부 규제가 시장에 인위적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다. 첫수에선 이겼다.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로 이어지진 않는다. 지난달 서울 2분위(하위 20∼40%) 아파트 매매가는 3년 만에 8억 원을 넘었다. 서울에서 가장 저렴한 1분위(하위 20%) 아파트 매매가도 지난 1월 5억 원을 돌파했다. 집값이 튀어오르자 서민부터 주거복지 사각지대로 밀려났다. 대다수 1분위 아파트 주민은 시세 5억 원 이하에 적용되는 디딤돌대출을 받을 수 없다. 2분위 아파트를 대상으로 한 보금자리대출(시세 6억 원 이하)도 마찬가지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60억 원대 강남 아파트가 50억 원대로 떨어져 주택시장이 이성을 되찾았다고 말할 때 외곽지에선 ‘불장’이 펼쳐졌다. 실수요가 몰려들자 중저가 아파트가 신고가를 갈아치우면서 15억 원으로 ‘키 맞추기’에 들어간 것이다.

 

청년세대는 ‘월세 지옥’에 살고 있다. 이들이 뼈저리게 체감하는 건 집값이 아닌 월세다. 서울 핵심지 집값이 꺾인 반면, 월세는 역대 최고치로 치솟았다. 토지거래허가제가 실시되면서 실거주 의무로 전·월세 공급 통로가 막힌 탓이다. 대통령 의도대로 다주택자가 살지 않는 집을 팔고 무주택자가 집을 산다면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매물이 늘어도 지금처럼 매입 자금 대출을 막아두면 무주택자는 집을 살 수 없다. 수급 셈법도 단순하진 않다. 일자리가 많은 수도권엔 인구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서울에선 매년 결혼식을 약 4만 건 올리는데 이는 매매·전월세 신규 수요로 유입된다. 청년 독립으로 인한 가구 분화도 고려 대상이다. 수도권 전체적으로 새집이 더 필요한 이유다.

 

부동산 관련 SNS를 수십 번 올리면서도 이 대통령이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게 있다. ‘공급’이다. 이를 두고 시장에선 이 대통령도 공급엔 자신 없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정부는 1·29 공급대책을 통해 6만 호 규모로 ‘영끌 공급’에 나섰지만, 상당수 물량은 2028년 이후 착공된다. 계획대로 풀릴지도 미지수다. 현 정부 내내 ‘공급 가뭄’에 시달릴 수 있단 얘기다. 빈 땅이 없는 서울에선 재개발·재건축이 유일한 공급 해법이지만 이 역시 정부 정체성과 맞지 않다. 다주택자 매물만으론 수요를 맞추기 힘들다.

 

부동산 정책 목표는 집값 잡기가 아니라 주거 안정이다. 집값을 잡는 데 매몰되면 방향성을 잃기 십상이다. 강남을 압박하는 규제는 외곽지 불장과 월세대란이란 역설을 불러왔다. ‘다주택자와의 전쟁’ 구도가 공급 부족과 규제를 둘러싼 불만을 잠시 잠재울지는 모르겠다. 공급이 빠진 수요 억제는 결국, 주거비를 올린다. 다주택자 237만 명을 잡다가 국민 99%가 다칠 수 있다. 주택정책의 본질적인 가치가 무엇인지 되짚어볼 일이다.

 

문화일보 권도경 기자

 

03.30 여론조사, 민심인가 '설계된 숫자'인가

여론조사 응답 편중…'보통 유권자'는 빠졌다
표본·설계 논란…대표성 흔드는 구조적 한계
민심은 숫자 너머…소신 투표의 중요성

"모르는 번호는 안 받습니다."

 

경북 안동의 한 전통시장 상인은 기자의 질문에 손사래부터 쳤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가 잇따르고 있지만, 정작 '보통 유권자'는 조사에 응답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론조사 전화가 지나치게 빈번하기 때문이다.

 

반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일부 유권자들은 여론조사 전화에 적극적으로 응하는 모습도 확인된다. 이 때문에 지역 정가에서는 "여론조사가 발표될 때마다 실제 민심과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수치상으로는 앞서지만 체감 지지율은 다르다는 의미다.

 

여론조사는 일정 표본을 통해 전체 유권자의 의사를 추정하는 방식이다. 결국 관건은 이 표본이 얼마나 '대표성'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일반적으로 표본 수가 많을수록 오차는 줄어들지만 현실에서는 비용과 시간의 제약으로 제한된 인원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표본이 수백 명 수준에 머무를 경우 특정 연령대나 정치 성향이 과대 표집되면서 결과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에 질문 문항 역시 미묘한 표현 차이에 따라 응답이 달라질 수 있어 결과 왜곡 가능성을 키운다는 설명이다.

 

선거법은 이러한 문제를 막기 위해 일정 기준을 두고 있다. 공직선거법은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할 때 조사기관, 표본 수, 오차범위, 질문 내용 등을 명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설계 자체의 의도성'까지 완전히 차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여론조사 일정이나 전화번호가 사전에 공유되는 사례도 꾸준히 제기된다. 일부 지역에서는 특정 지지층을 중심으로 "이 번호로 전화가 오면 반드시 응답하라"는 메시지가 확산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유선전화 방식 역시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일부 여론조사가 여전히 유선 비중을 포함하는 가운데 이 과정에서 '착신전환' 시스템이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론적으로 한 사람이 여러 대의 전화를 자신에게 연결해 응답할 경우 동일 인물이 여러 표본으로 집계될 가능성이 있다. 조사기관들이 중복 방지 장치를 마련하고는 있지만, 기술적 허점을 완전히 차단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특히 고령층 비중이 높은 지역일수록 유선전화 의존도가 높아 이러한 문제가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여론조사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론조사심의위'를 운영하며 위반 사례에 대해서는 과태료 부과나 공표 금지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사후 규제 중심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사 설계부터 응답 과정까지 전반을 실시간으로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여론조사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표본 설계 과정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조사 원자료 공개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이와 함께 유선전화 비중을 줄이고 중복 응답을 보다 정밀하게 차단할 수 있는 기술적 장치 도입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사전 유출을 막기 위한 처벌 강화 역시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여론조사를 '절대적 지표'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적 인식이 중요하다. 여론조사는 어디까지나 참고 자료일 뿐 실제 민심과는 괴리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유권자 스스로 인식해야 한다. 결국 여론에 휩쓸리기보다 각자의 판단과 소신에 따라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 납득할 수 있는 투표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매일신문 전종훈 기자

 

03-31 재정 재배치 꼼수로는 성장 못 일군다

정부가 2027년도 예산 편성지침을 확정했다. 재량지출 15%, 의무지출 10% 감축이라는 구조조정을 내세우면서도 적극재정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총지출은 오히려 확대해 800조 원에 육박한다. 감축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지출의 방향만 바꾸는 확장재정에 가깝다. 지출을 줄여 재정 여력을 확보하기보다 새로운 지출을 위한 재원 재배치에 가까운 접근이다.

 

정부는 인공지능(AI) 전환과 첨단산업 육성, ‘지방주도성장’ 등을 통해 성장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한다. 방향은 옳다. 문제는, 이를 재정지출 중심으로 달성하려는 접근이다. 성장동력 확충은 재정만으로 이룰 수 없다. 우리 경제에서 실질적인 성장 주체는 기업이며, 특히 대기업이 투자와 혁신을 이끈다. 그런데 노동시장 규제와 기업 활동 제약은 유지되거나 강화되는 반면, 재정으로 이를 보완하겠다는 발상은 정책 방향의 불일치를 보여준다. 시장에서의 투자 유인을 약화시키면서 재정으로 대신하려는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첨단산업 경쟁력 강화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는 재정 투입을 통해 산업 생태계를 키우겠다지만, 경쟁력은 보조금이 아니라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시장 경쟁에서 만들어진다. 규제를 유지 또는 강화한 상태에서 재정만 확대해서는 지속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돈을 더 쓰는 정책과 기업을 제약하는 정책의 동시 추진은 구조적인 모순이다. 재정은 촉진 수단일 순 있지만 경쟁력의 원천이 될 순 없다. 이는 과거 여러 산업정책을 통해서도 거듭 확인된 사실이다.

 

지방주도성장 전략도 재검토해야 한다. 재정을 더 배분한다고 해서 지역 경제가 살아나는 건 아니다. 지방 문제의 핵심은 책임 없는 분권 구조다. 재정의존도가 높은 상태에서 권한과 책임이 불명확해 비효율이 반복된다. 지방주도성장을 위해서는 재정 이전이 아니라 권한과 책임을 함께 맡기는 분권 구조가 전제돼야 한다. 특히, 통합 지방정부에 대한 대규모 재정 지원은 정책 효과보다 정치적 고려가 앞선 것 아니냐는 의문을 낳는다. 책임 구조가 불분명한 상태에서의 단순 광역시도 통합은 책임 주체를 흐릴 가능성이 있다. 재정 지원 아닌 제도 설계가 우선돼야 하는 이유다.

 

안보와 평화의 기반 구축 또한 현실 인식이 부족하다. 미·중 전략 경쟁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한반도 문제를 평화 공존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은 국제질서의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외교·안보 환경에 대한 현실적인 판단 없이 재정지출만 확대하는 것은 정책 효과를 담보하기 어렵다.

 

결국, 이번 예산지침은 방향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구조개혁 없이 재정지출로 성장을 이루겠다는 접근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최근 국가채무는 GDP 대비 증가 속도가 빨라지며 내년에는 약 2.2%P 상승이 예상된다. 예산 증가를 건전성 기준으로 보던 원칙이 약해지고 재정이 정치화하면서 적극재정으로 바뀐 결과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쓰는 재정이 아니라 덜 의존하는 재정이다. 재정이 성장의 중심 수단이 되는 순간 구조개혁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지출의 방향은 물론 규모와 속도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함께 제시되지 않으면, 800조 원의 재정은 성장의 기반이 아니라 부담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문화일보 현진권 자유분권포럼 대표, 전 한국재정학회장

 

자유 칼럼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