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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여담] 문화일보 2026-03/ 03-03(화) AI 디스토피아 - 03-31(화) 유쾌한 거짓말

상림은내고향 2026. 3. 14. 11:44

 

[오후여담] 문화일보 2026-03/

03-03(화) AI 디스토피아

 

이철호 논설고문

 

7000 단어의 짧은 보고서 하나가 세계를 뒤흔들었다. 제임스 반 길런이 세운 미국의 시트리니 리서치가 내놓은 ‘2028년 글로벌 지능 위기’다. ‘오늘 아침 발표된 실업률은 10.2%로 예상보다 0.3%포인트 높았다….’ 2028년 6월의 어느 하루를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숫자와 그래프로 가득한 다른 보고서와 결이 달랐다. 인공지능(AI)이 화이트칼라를 몰아내고, 이로 인해 소득과 소비가 줄어들면, 결국 금융 시스템 붕괴와 경제 위기로 이어진다는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담고 있다. 한마디로 AI를 혁신의 도구가 아니라 파괴자로 그린 것이다. AI 디스럽션(disruption·파괴적 변화) 충격으로 IBM이 13% 폭락하는 등 미 증시가 요동쳤다.

 

곧장 음모론이 퍼졌다. 보고서 필자 중의 한 명이 몇몇 기업에 공매도를 걸어놓은 사실이 드러났다. 차익을 노려 극단적 공포를 조장했다고 사방에서 수군거린다. 또, 실업률이 높아지면 노조가 반발하고 정부도 실업 구제에 나서기 마련이다. 이런 인간과 사회의 대응을 생략한 채 “진공 상태의 시나리오”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미 백악관이 정면 대응에 나선 것도 눈길을 끈다. “흥미로운 공상과학소설(SF)일 뿐 경제의 기본 원칙에 어긋난다.” 피에르 야레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의장 대행은 공식 인터뷰를 통해 “비현실적 소설”이라 못을 박았다. 단지 증시 패닉을 진정시키는 차원을 넘어 사전에 정치적 파장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자칫 ‘2028년 대공황’ 시나리오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실패로 연결되지 않게 미리 선을 그으려는 계산이다.

 

이에 대해 길런은 “역사는 항상 ‘SF’처럼 시작되었다”고 반격에 나섰다. “과거 인터넷, 증기기관, 전기 등 거대한 기술적 변곡점이 처음 닥쳤을 당시에도 똑같이 ‘비현실적 상상’이라고 비난받았다.” 그는 “피할 수 없는 미래를 먼저 보고 경고하는 ‘파수꾼’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맞선다. 오픈AI, 엔비디아 등은 AI가 인간을 도와 유토피아를 가져올 것처럼 낙관적 전망을 쏟아낸다. 반면, 앤스로픽의 ‘클로드 코워크’ 때문에 소프트웨어 업계가 쑥대밭이 되는 디스토피아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누구도 AI의 발전은 막기 어렵다. 다만, 어떻게 AI를 다룰 것이냐를 놓고 인류사적 거대 담론이 불붙기 시작했다.

 

03-04 이그노벨상과 다윈상

 

유병권 논설위원

 

과학계에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이 있다. ‘처음에는 황당하지만, 결과적으로 생각하게 만든 의미 있는 연구’에 주는 상이다. 노벨상(Nobel Prize) 앞에 ‘ignoble(불명예스러운)’을 떠올리게 하는 접두사 ‘Ig’를 붙여 패러디한 상이지만 물리학, 의학, 생물학, 경제학, 평화상 등 분야별로 시상할 정도로 나름 권위를 갖춘 상이다.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안드레 가임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는 ‘자석을 이용해 개구리를 공중에 띄운’ 연구로 2000년 이그노벨상을 받았다. 자기장이 생체 물질에 영향을 준다는 걸 보여준 실험이다. ‘소똥에서 바닐라 향을 추출한’ 야마모토 마유는 2007년 화학상을 받았고, 심리학에서 유명한 ‘더닝-크루거 효과’를 입증한 데이비드 더닝과 저스틴 크루거도 2000년 수상했다.

 

기발하고 엉뚱한 아이디어를 과학적 방법으로 입증하고, 그 결과가 실제 학술지에 게재돼야 후보에 오를 수 있다. 우리와도 인연이 있다. 2023년 박승민 박사가 소변과 대변 사진을 찍어 질병을 진단하는 스마트 변기를 개발해 상을 받았다. 시상식도 남다르다. 매년 9월 미국 하버드대에서 실제 노벨상 수상자가 시상자로 참여하며 수상소감이 24초를 넘으면 “지루하다”는 외침이 나올 정도로 풍자와 유머가 넘친다. 그런데 이 상은 진짜 조롱의 뜻으로 주어지기도 한다. 1996년 태평양에서 핵실험을 한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은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50주년을 기념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수상자로 선정됐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코스피가 6000 이상으로 폭등했다. 미국의 이란 공습으로 주춤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공약한 5000 선을 넘어 7000 선을 향한다. 역대 모든 정부가 참패한 부동산과의 싸움에서도 일단 승기를 잡았다. 코스피 5000이나 서울 집값 잡기를 시도했을 때, 황당 정책으로 치부됐다. 정치에 이그노벨상이 있다면 이 대통령은 수상 자격을 갖춘 셈이다. 하지만 다윈상이 있다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인생 샷을 찍으려 비행기 밖으로 나왔다가 추락사하는 것처럼, 스스로는 합리적이라 생각했지만, 끔찍한 결과로 이어진 사람이나 사건에 주는 상이다. 사법 장악 3법을 강행 처리한 더불어민주당과 윤석열 전 대통령과 절연 못 하는 국민의힘이 유력 후보들이다.

 

03-05 헌재 小이기주의

 

김세동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27일 법원의 재판도 헌법소원을 허용하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대법원과 법조계·학계·시민사회단체 반대에도 강행 처리하면서 헌재가 최고법원 지위에 오르게 됐다. 재판소원제는 대법원 확정판결도 헌재가 뒤집을 수 있어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규정한 헌법 제101조 위반이며 4심제가 돼 국민에 막대한 피해를 가할 것이란 ‘소송 지옥’ ‘희망 고문’ 지적에도 여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특히, 이 과정에서 위헌 심판을 업으로 삼는 헌재가 ‘위헌 입법’을 대놓고 찬성한 조직 이기주의, 소아(小我)가 아쉽다.

 

재판소원 도입이 헌재의 숙원사업이라고 해도, 원론적으로 찬성하는 것과 실제 위헌성이 농후하고 부작용이 심각한 법률이 강행되는 순간에 법조계에서 유일하게 힘을 실어주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재판에 불복하는 헌법소원이 폭증해 헌재 기능 마비를 부를 수 있어 헌재에 꼭 좋은 일이 될지 의문인데도 이에 대한 고민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도 안타깝다. 헌재에 연 2500건 정도 사건이 접수되는데, 재판소원으로 추가되는 재판만 연 1만5000건 예상된다. 헌법재판관을 2배로 늘린다고 해도 쇄도하는 재판소원을 감당 못 하지만, 헌법재판관은 9인으로 구성한다고 헌법에 규정(제111조 제2항)돼 있어 개헌하지 않고선 재판관 증원도 불가능하다.

 

헌재가 정치적인 기관이라는 점도 최고법원 지위 부여를 어렵게 한다.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3명씩 지명하고 국회가 3명을 선출하는 헌법재판관은 정파적으로 ‘나눠 먹는’ 구조다. 현 헌법재판관 구도가 진보·보수·중도 각 4·2·3명 인데, 이재명 대통령 임기 중 대통령 지명과 이 대통령이 임명하는 대법원장 지명 등 재판관 3명을 임명하게 돼 진보 절대우위로 재편된다. 완벽하게 삼권분립이 무너지고 ‘삼권일체’가 이뤄지는 것이다.

 

헌법재판관의 민주적 대표성이 대법관보다 떨어지는 점도 헌재 최고법원성에 걸림돌이 된다. 전원 국회 인사청문회와 동의를 거쳐 임명되는 대법관과 달리 헌법재판관은 국회 몫 3명만 국회 표결로 선출할 뿐 대통령·대법원장 몫 6명은 인사청문회만 마치고 대통령이 임명하면 그만이다. 법조 재직 경력도 대법관은 20년 이상, 헌법재판관은 15년 이상이다.

 

03-06(금) 트럼프식 지명

 

이미숙 논설위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월 2기 출범식 날 플로리다주와 멕시코 사이의 멕시코만(灣)을 아메리카만으로 바꾸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알래스카주의 북미대륙 최고봉인 데날리산을 매킨리산으로 변경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산 명칭을 일방적으로 바꾸는 것은 문제지만, 굳이 따지면 미국 내부적 논란거리다. 그런데 멕시코만을 하루아침에 아메리카만으로 바꾸는 것은 외교적 분란 소지가 크다. 이웃국인 멕시코의 반발이 뻔한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밀어붙였다. AP통신이 멕시코만 표기를 고수하자 취재 제한 조치를 내려 수정헌법 제1조 위반 판결까지 받은 바 있다.

 

더 나아가, 지난해 5월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때 트럼프 대통령은 페르시아만을 아라비아만으로 바꿀 계획을 공개해 논란이 일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사이에 위치한 만의 명칭은 16세기부터 페르시아만(Persian Gulf)으로 불렸다. 그러나 아랍국들이 이란의 옛 이름 대신 아라비아만이란 명칭을 써야 한다고 주장해 갈등이 지속됐다. 지난해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의 핵 협상을 염두에 두고 있어서 계획을 강행하지 않았지만, 이란 수뇌부 참수작전을 결행한 만큼 공격 종료 선언 때 아라비아만으로 개칭할지도 모른다.

 

한국과 일본도 동해-일본해 표기 갈등을 겪고 있다. 미국은 일본해를 공식 명칭으로 쓰고, 국무부나 국방부도 이 기준에 따른다. 심지어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의 기습 폭격으로 2000명 이상의 군인 및 선원이 사망하고, 전함 8척을 포함한 20척의 함선과 300대의 항공기를 잃었음에도 하와이 호놀룰루 진주만 국립기념관은 일본해 표기 상황지도를 쓴다. 진주만은 1776년 독립 이후 미국이 처음으로 공격을 당한 현장이다. 미국의 위대함을 내세우는 트럼프 대통령이 치욕의 역사를 넘어선다는 의미에서 85주년이 되는 오는 12월 일본해 표기 교체 선언을 하면 어떨까? 이미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상원 청문회에서 “중국은 서해, 러시아는 동해에서 한국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한다”고 증언해왔다. 서해·동해를 언급함으로써 한국에 대한 존중을 표한 것인데, 트럼프 대통령이 브런슨 사령관의 표현을 인용하는 형식으로라도 입장 변화를 밝혔으면 좋겠다.

 

03-09(월) 쿠르드족의 비애

 

김충남 논설위원

 

미국과 이란 전쟁에서 쿠르드족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지상군 투입을 주저하는 미국이 쿠르드족을 내세워 이란을 겨냥한 대리전에 나서면서다. 쿠르드족은 인구 3000만∼4000만 명 규모인 이란계 산악 민족이다. 수백 년간 독립 국가를 세우지 못한 채 이란·이라크·튀르키예·시리아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강한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쿠르드족은 중동 분쟁에서 서방의 파트너 역할을 했지만, 이용 가치가 다하면 번번이 버려지는 비운의 역사를 겪어 왔다. 쿠르드 속담에 ‘산 외에는 친구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영국을 도와 오스만튀르크에 대항해 싸웠지만, 쿠르드 국가 건설 약속은 독립한 튀르키예의 반대로 파기됐다. 이란은 1980년대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이라크 내 쿠르드족을 지원했지만, 전쟁 뒤 외면했다. 당시 이라크 정부군의 화학가스 공격으로 18만 명이 학살당했다. 2010년대 시리아 내 쿠르드족은 미국과 손잡고 이슬람국가(IS) 격퇴에 앞장섰으나,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미군이 시리아 북부에서 돌연 철수하면서 튀르키예의 공격을 받았다.

 

미국이 친미 성향 쿠르드족을 동원한 것은 이란의 체제 전복(regime change)이나 미국에 우호적인 지도부 교체를 노리기 때문이다. 쿠르드족 전투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라는 뜻의 쿠르드어 ‘페슈메르가’로 불린다. 전투 경험도 풍부하다. 2022년 이란 내 ‘히잡’ 반정부 시위 때도 핵심이었다. 무장 쿠르드족을 이용해 이란의 전력을 약화시키고 올 초 강한 반정부 시위를 일으켰던 이란 시민들의 재봉기를 유도하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 관계 정상화를 위한 ‘아브라함 협정’을 완성해 중동 질서를 재편하려 한다. 아브라함 협정은 2020년 미국 중재로 이스라엘과 4개 아랍국(UAE·바레인·수단·모로코)이 맺은 협정이다. 이 협정에 이슬람 수니파 지도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물론 친미화된 시아파 주도국 이란을 참여시키겠다는 것이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럴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이전 중동 친미 네트워크를 복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쿠르드족이 이번엔 버림받지 않고 트럼프 구상 실현에 기여할 수 있을까.

 

03-10 조국 ‘거품론’

 

오승훈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이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이 무산된 이후 후폭풍에 몸살을 앓고 있으나, 가장 큰 피해자는 ‘대망론’까지 나왔던 조국 대표일 것이다. 원내 제3당의 존재감을 찾으려다 유탄을 맞은 격이다. 조 대표는 9일 창당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6·3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대해 “정청래 민주당 대표의 합당 제안 뒤 3주가 허비됐다”고 했다. 어설프게 엮인 합당 파동에 당 차원의 선거전략 차질은 물론 개인적 정치 행로에 미친 영향도 적지 않다는 한탄이다. 더구나 끝난 것도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조 대표는 “민주당 내 합당 반대파가 저와 당에 대해 무차별 공격을 가했다. 토지공개념이 빨갱이 정책이라는 색깔론 비방도 있었다”고 비난했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조국당더러 “호남에서 이삭줍기 말고 영남으로 가라”고 직격한 것을 두고도 “모욕과 폄훼를 멈추라”고 응수했다. “이런 부류의 저열한 공격이 또 벌어진다면 연대도 어렵다. 호남에서 최대한 후보를 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이 만만치 않다. 많은 인사를 접촉 중이나 영입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이 사실상 후보 컷오프를 없앤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황운하 의원(세종시장)을 제외하면 광역단체장 후보가 없는 상태다.

 

자신의 출마 문제도 마찬가지다. 조 대표는 “선거에 출마해 복귀하는 건 너무 당연하지 않겠나”라면서 “3월 말, 4월 초 선택할 것”이라고 했다. 선택지로는 경기 평택을, 전북 군산·김제·부안갑이 거론된다. 당내에선 그나마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군산을 꼽는 목소리가 많다. 조 대표의 고향인 부산의 북구갑(전재수 민주당 의원)도 관심이다. 그런데, 이곳을 염두에 두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조 대표는 민주당에 군산 무공천을 매달리고 있는데, 비겁하고 찌질하다”며 “자기 잇속만 챙기는 모습은 정면승부를 바라는 부산의 대찬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고 힐난했다. 조 대표가 복귀한 이후에도 당의 지지율은 2∼4%(한국갤럽)로 지지부진이다. 지난 6일 지도자 선호도에선 9%로 김민석·한동훈(각 4%)에 앞섰으나, 64%가 응답 유보로 큰 의미를 찾기는 힘들다. 지난 총선 때의 ‘조국 바람’이 다시 불 것으로 보는 전망은 거의 없어 보인다. 고민이 커지는 국면이다.

 

03-11 이재명 대 김어준

 

이현종 논설위원

 

김어준 씨가 매일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 ‘겸손은 힘들다’는 동시접속자만 평균 20만∼30만 명에 달하고 하루 조회 수만 100만 회가 넘을 정도로 좌파 진영의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최근 몇 만 명이 빠져나갔지만, 구독자 수는 228만 명에 이른다. 구독자 중 상당수가 더불어민주당 당원일 가능성이 큰데, 매일 김 씨가 한 말이 교과서가 될 정도여서 의원들은 공중파 섭외를 취소하고 김 씨 방송에 나갈 정도로 가장 우선시한다.

 

주간경향 보도에 따르면 민주당 의원 166명 중 지난 1년간 김 씨 유튜브에 출연하지 않은 이는 65명에 불과했다. 민주당 의원 출연 횟수는 663회. 일반 방송에는 거의 나가지 않는 정청래 대표는 이 프로그램 단골 출연자이고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 장관들도 공중파 방송보다 김어준 씨 방송에 먼저 나갈 정도다. 김 씨가 소유한 ‘딴지일보’에는 청와대 출입기자도 있다. 이러니 여권의 여론 형성은 거의 김 씨의 입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요즘 김 씨가 친명 진영으로부터 ‘반명수괴’라는 말을 들으며 고발당하기도 하는 등 수난을 겪고 있다. 발단은 김민석 총리와의 갈등. 김 씨가 진행하는 방송에서 차기 서울시장 후보로 김 총리를 계속 넣자 김 총리 측은 “출마하지 않는다”며 여론조사에서 제외해줄 것을 요청했다. 언론사들도 당사자가 불출마 의사를 밝히면 여론조사에 넣지 않는 것이 관례다. 그런데 김 씨는 “조사기관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요구를 거절했다.

 

지난 5일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싱가포르·필리핀 순방을 나갔을 때 중동 정세에 대한 불안을 언급하며 “대통령 순방 중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국무회의조차 없다”고 했다. 이 대통령 순방 출국길에 정청래 대표와 악수하는 장면을 KTV가 고의로 누락한 게 아니냐고 김 씨가 주장한 것도 논란이 됐다. 그러나 총리실은 매일 대책회의를 하고 국무회의를 열었다고 적극 반박했다.

 

김 씨는 이 대통령이 7일 SNS에 “집권 세력이 됐다고 마음대로 다할 수 없다”면서 여당 내 강경파를 겨냥한 발언을 하자 이 대통령을 향해 “객관 강박” “스스로 레드팀 자행 아니냐”라는 반응을 내놨다. 태양이 두 개가 아닌데 김 씨 발언 수위가 위태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03-12 AI 노출도와 박사의 괴리

 

최현미 논설위원

 

안전한 AI를 표방하는 미국의 생성형 AI 기업 앤스로픽이 이달 초 흥미로운 보고서를 냈다. ‘AI의 노동 시장 영향:새로운 측정 지표와 초기 증거’로 직업별 AI 노출도를 계산했다. 미국 표준직업 약 800개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업무에 AI를 얼마나 쓰는지 추적해 ‘AI 관측 노출도’ 지표를 만들었다. 이는 곧 ‘AI 대체 위험’ 값으로 노출도가 높을수록 AI에 대체될 가능성이 큰 직업이라는 뜻이다.

 

이에 따르면 AI가 업무의 25% 이상 담당하는 직업이 이미 36%에 달하고, 75% 이상을 맡기는 직업은 4%로 나타났다. 노출도 최상위 직업은 컴퓨터 프로그래머(74.5%), 고객 서비스업(70.1%), 데이터 입력원(67.1%)이며, 금융·투자, 마케팅, 사무 행정 등도 상위에 올랐다. 반대로 요리사, 오토바이 정비사, 인명구조원, 바텐더, 설거지 담당 등은 노출이 0이었다. 이번 분석은 텍스트를 다루는 언어모델, 그것도 앤스로픽 모델인 클로드 사용에 한정된 데다 로봇 등 피지컬 AI가 가져올 영향은 포함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보고서는 우리 미래의 한 페이지를 보여준다. AI 노출 상위 25% 직종 종사자는 평균 임금이 나머지보다 47% 높고, 대학원 학위 비율도 네 배에 이른다. 인구 특성상 백인, 여성, 아시아인 비중이 높았다. 고학력·고임금 화이트칼라 직종이 AI에 위협받는 최선두에 있다는 뜻이다. 미국 노동통계국의 2034년 고용 전망에서도 노출도가 높은 직종의 고용 증가율은 낮게 예측됐다. 이와 함께 모든 직종에서 진입 장벽이 높아져 22∼25세 청년 채용 비율은 14%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한국교육개발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박사학위 취득자는 1만9831명으로 1999년 집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며 신규 박사 2만 명 시대를 예고했다. 또, 여성 박사는 역대 최대였다. 청년 일자리와 대학원 진학률은 대체로 반비례한다. 실제로 많은 학생이 교수·연구직 진출 못지않게 취업을 위한 스펙과 전문성을 쌓기 위해 박사과정으로 향한다. 고학력·고소득·여성 비중이 높은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AI 대체 위험이 가장 큰 구간이라는 앤스로픽 보고서와 겹쳐 보면,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가 심각하다. 빠르게 바뀌는 AI 시대에, 냉정한 점검과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

 

03-13 ‘세계의 목구멍’ 호르무즈

 

이철호 논설고문

 

지정학 요충지를 일컫는 ‘세계의 목구멍’은 시대마다 달랐다. 과거에는 제국의 생명줄이던 식량 보급로가 중요했다. 로마는 이집트산 밀을 실어오던 시칠리아 섬 사이의 메시나 해협에 목숨을 걸었다. 중세 시대에는 단연 터키의 보스포루스 해협이었다. 우크라이나산 밀을 지중해로 빼내려면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 중심인 콘스탄티노플, 지금의 이스탄불은 ‘세계의 심장’이라 불렸다. 오스만제국이 1453년 이 해협을 봉쇄하자 유럽은 중국·인도를 향하는 새 항로 개척에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 부산물이 신대륙 발견이다. 아프가니스탄 북동부의 ‘와칸 회랑’도 유서 깊은 실크로드 요충지다. 고구려 출신 당나라의 고선지 장군이 서역을 정벌했을 때나, 현장법사가 불경을 구하러 인도로 갈 때도 이 좁고 긴 회랑을 지났다.

 

근대 이후에는 에너지 항로가 세계의 목구멍이 됐다.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 믈라카 해협이 대표적이다. 가장 위험하고 오래되기로는 호르무즈 해협만 한 곳이 없다. 이란과 아라비아 반도 사이의 이 해협은 10세기부터 인도의 향신료, 중국의 비단, 서양의 보석이 오가는 중심지였다. 여기에 눈독을 들인 포르투갈이 1507년 무력으로 호르무즈 섬을 점령했고, 1622년에는 페르시아 사파비 왕조가 영국 동인도회사의 도움을 받아 포르투갈을 몰아냈다.

 

이 섬의 운명은 1908년 페르시아만 남서부에서 처음 석유가 발견되자 다시 뒤집혔다. 1927년 이라크, 1938년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에서 잇달아 거대 유전이 발견되면서 최고의 요충지로 떠올랐다. 지금도 전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의 20% 이상이 인구 4000여 명의 이 작은 섬 옆을 통과한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수비대는 해안 절벽에 지대함 미사일들을 숨겨 놓았다. 폭 33㎞의 좁은 해협에 기뢰를 부설해 선박의 운항 속도를 늦춘 뒤 적대국 선박만 골라 때리는 전술을 즐겨 구사해 왔다. 이번에도 차기 최고지도자 모즈타바가 “피의 보복”을 선언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에 기뢰를 부설하는 모양이다. 에너지를 인질 삼아 전 세계 전쟁 비용을 올리고 미국을 압박하려는 작전이다. 목구멍이 막히면 세계 경제는 질식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곳을 통과하는 원유와 LNG의 80% 이상은 한국·중국·일본을 향한다. 큰일이다.

 

03-16(월) 美의 ‘파월 독트린’ 이탈

 

이미숙 논설위원

 

2003년 3월 17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TV 연설을 통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48시간 내 이라크를 떠나지 않으면 군사공격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라크 지도부가 거부하자 이틀 후 침공을 개시했다. 그에 앞서 콜린 파월 당시 국무장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참석, 이라크의 대량파괴무기(WMD) 보유 의혹을 폭로했다. 이라크 전쟁 명분 축적용 연설이었는데, 후에 이 정보가 조작된 것임이 드러나면서 파월은 “인생의 가장 큰 오점이 된 연설”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호전적인 네오콘인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부 장관에게 휘둘리면서도 유엔 안보리 회의를 거쳤고, 선전포고한 뒤 의회의 개전 승인도 받아냈다. 전쟁의 합법적 절차는 밟은 셈이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28일 영상 메시지를 통해 “우리의 목표는 이란 정권의 임박한 위협 제거”라며 이란 공습을 개시했다. 이란에 대한 선전포고는 없었고, 공격을 시작한 날은 자신의 사위까지 참여한 이란과의 3차 핵 협상이 끝난 다음 날이다. 이란 측에 따르면 협상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고, 4차 협상 날짜도 정했다고 한다.

 

미국엔 파월 독트린이 있다. 4성 장군 출신 파월 전 장관이 명문화한 것으로, ‘명확한 국가이익과 목표 속에서 국민과 의회의 지지를 확보하고, 외교적 수단이 모두 소진된 뒤 최후 수단으로 압도적 군사력을 동원해 승리한다’는 게 핵심이다. 이란 전쟁은 파월 독트린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뉴욕타임스 인터뷰 때 “나를 멈출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라며 “국제법은 필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뭐든 맘대로 하겠다고 선언한 만큼 파월 독트린 위배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기습공격 방식은 두고두고 논란이 될 것이다. 2007년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부 장관은 이스라엘의 시리아 핵시설 공습 요청을 거부할 때 ‘미국은 구체적 적대 행위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특정 국가를 선제공격하지 않는다’면서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옵션’을 거론한 바 있다. ‘미국은 1941년 진주만을 폭격한 일본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비유인데 요즘 미국은 우리가 알던 그 미국이 아닌 것 같다.

 

03-17 음모론의 與 역습

 

김세동 논설위원

 

‘여권의 상왕’ ‘충정로 대통령’이라 불리는 김어준 씨의 유튜브 방송이 쏘아 올린 ‘이재명 대통령의 공소취소와 검사 보완수사권 거래설’ 파문이 점입가경이다. 친명계 의원들은 ‘안하무인’을 지적하며 김 씨 방송 출연 거부와 법적 조치를 주장하고 있고, 이에 김 씨는 고소·고발 시 맞고소하겠다며 결전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대형 방송사고’ 7일이 지나도록 내놓은 법적 조치는 김 씨를 뺀 장인수 전 MBC 기자 고발뿐이다.

 

“이 대통령 최측근이 고위 검사들 다수에게 연락해 ‘대통령 말이다, 공소취소 하라’고 요구했다. 검찰 입장에서는 거래하자는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한 장 전 기자의 주장은 ‘팩트’로는 많이 달린다. 언제, 어디서가 없고 제보자가 실재한다고 해도 3∼4중 전언(傳言) 구조다. 이런 중대한 얘기를 검찰총장 대행이나 믿을 만한 최고위 인사 1명에게 하지 않고 ‘다수 고위 검사들’에게 했다는 것도 믿기 힘들다.

 

김 씨는 ‘거래설’ 폭로를 사전에 몰랐다며 사과도 거부했는데, 믿기 어려운 주장이지만, 사실이라고 해도 여권의 거대 플랫폼이 된 김 씨가 검증되지 않는 ‘폭탄’을 터트리도록 판을 깔아준 데 책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여권이 ‘재래식’이라고 조롱하는 ‘레거시 미디어’는 복수의 팩트 체크 등 검증과 당사자 반론 취재가 기본이며, 상식과 동떨어진 황당한 주장이 나오면 제지하는 게 정상인데, 김 씨는 의문을 일부 제기했지만, 장 전 기자가 주장을 계속하게 한 뒤 “큰 취재” “특종”이라며 힘을 실어줬다.

 

정치적 고비마다 음모론을 애용해온 여권 내부에서 음모론이 터졌다는 건 역설적이다. 그 당사자가 야권을 겨냥해 수많은 음모론을 던진 김 씨라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광우병 소고기, 천안함 좌초설, 세월호 고의 침몰설, 사드 전자파 참외,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까지 근거 없는 더불어민주당의 괴담과 선동, 음모론 전파 상당 부분에 김 씨가 얽혀 있다. 민주당은 최근에도 조희대 대법원장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 정상명 전 검찰총장, 김건희 지인 등 4인이 윤석열 대통령 파면 직후 회동해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 처리 방안을 논의했다는 등 허무맹랑한 주장을 버젓이 했다. 김 씨를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여권의 자업자득이라고 본다.

 

03-18 AI 선거운동 명암

 

유병권 논설위원

 

6·3 지방선거를 총괄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바빠졌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선거용 사진·영상·음향물 등이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일 전 90일(3월 5일)부터 AI를 이용한 선거운동은 불법이다. 그 전까지는 허위가 아니고 AI 생성물이란 표시를 하면 일부 허용됐지만, 지난 5일부터 일절 금지됐다. 제작, 편집은 물론 유포·상영·게시도 할 수 없다. 후보 아바타(SNS상에서 활동하는 캐릭터나 가상 인물)를 만들어 공약 및 정견 등을 알리는 것도 안된다. 미국·이스라엘 대 이란 전쟁 작전을 주도할 정도로 똑똑한데, AI 선거 활용을 막는 건 지나치다 싶지만, 법이 그렇다고 한다.

 

전국 선관위는 매일 440명 이상을 동원해 AI 선거운동 제작물을 찾아낸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도움을 받을 정도로 기술력과 전문 지식이 필요하다. 후보자를 홍보하는 이미지와 노래에서부터 “미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2026년 지역 발전을 이끌 인물로 선정했다”는 등 황당한 가짜뉴스 동영상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21대 대선 때는 일일이 찾아내 삭제를 요청한 건수가 1만510건에 달했다.

 

개혁신당은 최근 후보자의 선거 전략과 지역 유세를 종합 지원하는 ‘AI 사무장’을 선보였다. 행정안전부 데이터 등을 분석해 유세 일정과 최적의 동선을 후보에게 제공하고, 챗봇(대화형 AI) 형식으로 선거법 상담까지 해준다고 한다. 습득한 데이터를 이용해 스스로 업그레이드하는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이라고 한다.

더불어민주당도 유권자 표심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위해 AI 예측모델을 활용하기로 했다. 국민의힘은 데이터 기반 온라인 공천 시스템을 도입한 데 이어 AI를 이용해 정치신용 평가 모델을 만들었다. 지난달 치러진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AI 활용 정치 의사 결정’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팀 미라이(미래당)’가 창당 한 달 만에 11석을 얻어 제6당으로 원내에 진출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영국과 덴마크 등에선 AI가 후보로 등록한 적도 있다.

 

AI를 잘 이용하면 이길 수 있지만, 잘못 사용하면 출마는커녕 범법자가 된다. AI 선거운동의 합법과 불법 경계선이 애매하지만, AI 활용 능력은 정치 경쟁력이 됐다. 요즘 정치를 보면 AI가 직접 정치하는 시대가 곧 올 것 같기도 하다.

 

03-19 호메이니와 하메네이

 

김충남 논설위원

 

“샤(이란의 왕)에게 죽음을!”

1979년 이란의 친미(親美)·친이스라엘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린 반정부 시위대의 구호다. 이슬람 시아파 종교 지도자이자 투쟁의 구심점이던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망명지에서 시위를 조종했다. 무함마드 레자 샤가 쫓겨나고, 호메이니가 15년 만에 돌아왔다. 이란 국민은 그를 환영하며 독재 타도를 축하했다. 하지만 최고 지도자가 된 호메이니의 통치는 또 다른 이슬람 독재 체제였다. 성직자들로 구성된 혁명수호평의회가 입법·사법·행정권을 장악했다. 언론을 통제하고 대학을 폐쇄했으며, 여성들은 차도르를 착용해야 했다. 왕정의 무력 기반인 정규군을 불신해 혁명수비대를 별도로 만들었다.

 

이라크와 8년 전쟁을 벌였던 호메이니가 1989년 사망하면서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최고 지도자 자리를 승계했다. 호메이니와 하메네이는 이슬람 쿰 신학교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났다. 이슬람 율법에 정통한 성직자가 통치해야 한다는 신정(神政) 체제가 그들의 공감대였다. 하메네이는 이슬람 독재 권력을 공고화했다. 경제 제재로 압박하는 미국에 맞서기 위해 핵 개발에 나섰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전임 정부에서 맺은 이란 핵협정(JCPOA)을 파기하면서 갈등은 더 커졌다. 2022년엔 히잡 착용 반대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지난해 말에는 상인과 대학생 등을 중심으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빈곤과 실업, 물가 폭등으로 이란 전역에 시위가 퍼지면서 “하메네이에게 죽음을!” 구호가 터져 나왔다. 하메네이는 혁명수비대와 산하 바시즈 민병대를 동원해 강경 진압했다. 그런데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격 공습으로 하메네이와 그 일가가 사망했다. 이란 시위대의 외침을 미국이 실현한 것이다.

 

이란 시민 손에 의해 독재가 무너지지 않고 최고 지도자만 제거된 후과는 컸다. 하메네이가 흘린 피가 순교(샤헤드)의 서사가 되면서 이란 지도부는 공습에서 생존한 차남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최고 지도자로 선출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민중 봉기’를 기대했지만, 이란은 모즈타바를 중심으로 미국에 결사항전 태세다. 이번엔 이란 시민들이 ‘모즈타바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칠 수 있을까.

 

03-20(금) ‘김어준 역전승’

 

오승훈 논설위원

 

‘김어준의 역전승!’ 당·정·청 갈등의 극점이었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법안 최종안이 17일 나오자 여권에서 흘러나오는 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더불어민주당 내 강경파를 압박했지만, 결국 그들 뜻대로 됐다. 정청래 대표가 하루 만인 18일 김 씨의 유튜브에 출연해 과정을 브리핑한 게 상징적이다. ‘공소취소 거래설’이 제기돼 친명(친이재명)계가 출연 보이콧 선언까지 했던 곳이다. 정 대표는 개의치 않고 ‘상왕’에게 완승을 보고한 듯한 모양새였다.

 

청와대가 태세를 바꿔 강경파의 요구를 들어준 배경이 거래설에 움찔한 탓인지, 다른 곡절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친명계로선 ‘김어준 음모론’에 당한 셈이 됐다는 사실이다. 명·청대전의 다른 관점, 친명 대 김어준의 겨루기로 보면 지난해 당 대표 선거에 이어 두 번째 패배다. 김 씨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다시 늘고 있다. 그의 음모론 전략은 상대의 추진 동력을 약화·무산시키려 ‘의혹 제기’를 구사하는 것이다. 검증·사실 확인은 중요하지 않다. 의제를 선점해 주도권을 쥐면 끝이다.

 

김 씨는 여세를 몰아 확전 중이다. 19일 방송에선 이 대통령의 특사로 아랍에미리트(UAE)에 다녀온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을 “이 대통령이 육성하는 차기 주자”라고 주장했다. 지난 16일 김민석 총리가 미국을 찾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을 만난 데 대해 “차기 주자군 육성 프로그램의 일환”이라며 다른 잠재 주자군에 대해서도 언급하겠다고 한 바 있다. 차기 구도를 만들고 있다는 의혹 제기다.

 

김 총리는 곧바로 “어처구니없는 공상, 언론은 무협지 공장이 아니다”고 맞받아쳤으나 딴지일보 게시판은 김 총리를 비난하는 글로 와글와글했다. ‘김민석·트럼프 면담 성사 막후엔 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란 기사도 링크됐다. 트럼프의 ‘영적 멘토’로 불리는 폴라 화이트 목사(백악관 신앙 사무국 고문)가 주선했다는 것이다. 정교분리와 모순된 처신을 물고 늘어진다. 유시민 작가는 이 대통령 지지층을 A(가치·코어 지지층), B(이익·권력 탐닉), C(실용·절충)로 나눈 분석도 내놨다. 끝까지 지켜주는 그룹은 A란다. ‘뉴 이재명’과는 다른 ‘올드 이재명’으로 분류돼 공격받는 데 대한 대항 프레임이다. 대치 전선이 더 첨예해지고 있다.

 

03-23(월) 흔들리는 쿠바

 

이미숙 논설위원

 

송혜교·박보검 주연의 드라마 ‘남자친구’(2018)의 촬영지이자,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나라 쿠바가 대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작전을 벌인 뒤 쿠바가 에너지난에 빠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두로 제거 후 베네수엘라의 쿠바 원유 지원을 중단시켰는데 최근 전국적 정전사태 후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쿠바에 대한 이른바 이란식 공격 작전을 준비하는 것도 아닌데 쿠바 공산 독재 체제는 이미 흔들리는 징후가 뚜렷하다. 쿠바는 석유 필요량의 40% 정도만 자체 생산한다. 나머지는 베네수엘라에 의료진을 파견하는 대가로 석유를 받아 충당해왔는데 이것이 끊기자 경제가 붕괴 직전 상태로 빠져드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와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협상에서 쿠바 측에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산당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의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94)가 2018년 자진 사퇴한 뒤 취임한 디아스카넬은 강경파로 분류된다. 베네수엘라에선 군사 작전으로 수뇌부를 제거했던 미국이 쿠바에선 협상을 통한 레짐 체인지를 시도하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공습 때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부터 제거했지만, 이슬람혁명수비대의 반격으로 점점 수렁으로 빠지고 있다. 반면, 쿠바에선 손쉽게 체제 교체에 성공할 듯하다. 제재와 협상을 통한 비군사적 레짐 체인지가 점점 실현 가능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쿠바계 이민자 후손인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쿠바 측과의 협상을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루비오는 라울리토로 알려진 라울 카스트로의 손자와 막후 채널도 가동 중이라고 한다.

 

쿠바는 1959년 혁명 이후 67년간 공산당 독재 체제를 고수하며 반미를 견지해왔다. 트럼프 시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민주화의 길로 들어선다면 헤밍웨이가 좋아했던 모히토를 마시며 드라마 ‘남자친구’에 담겼던 아바나의 아름다운 풍광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빔 벤더스 감독의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1999)에 등장했던 쿠바 뮤지션의 애잔한 음악이 함께 한다면 금상첨화다.

 

03-24 BTS ‘스윔’

 

최현미 논설위원

 

스근하다’라는 단어를 찾아봤다. ‘쉽다’ ‘별거 아니다’라는 뜻이다.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이 새 앨범 ‘아리랑’의 타이틀 곡 ‘스윔(Swim)’을 두고 “평양냉면처럼 담백하고 스근한 매력”이라고 설명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처럼 노래는 스근하지만 반응은 ‘스근’하지 않다.

 

3년 9개월 만의 컴백 앨범은 공개 첫날, 14곡 전곡이 국내외 차트 1∼14위를 석권한 데 이어 ‘스윔’은 여전히 정상을 지키고 있다. 전체적으로 ‘다이너마이트’같이 “성공이 보장된 길 대신 자신의 뿌리와 실험성을 택했다”는 호평이다. 빌보드는 ‘오랜 기다림을 충족시킨 성숙하고 예술적으로 세련된 앨범’, 영국의 가디언은 ‘방탄 특유의 거칠고 반항적 에너지를 다시 불러왔다’고 평가했다. 롤링스톤은 “단순한 K팝 아이돌을 넘어 ‘문화적 아이콘’ 위치를 굳히는 정점에 이른 작품”이라며 5점 만점을 줬다. 실제로 이들은 앨범을 만들면서 “어떤 아티스트로 남고 싶은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고 했다.

 

그 답이 ‘스윔’에 담겨 있다. ‘나쁜 세상/사라져버린 세상, 여전히 난 이 미친 세상 속에서 눈을 뜨네/숨 쉴 수 있는 곳, 이 지도 위엔 어디 있을까… Swim, Swim/그저 뛰어들고 싶어’. 가사를 쓴 RM은 “어떤 파도 속에서도 멈추지 않겠다는 다짐”이라고 했다. 이들은 군복무와 맞물려 2022년 여름, “K팝 시스템은 성장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고 번아웃을 토로하며 각자 자신의 목소리와 정체성을 되찾기 위한 휴식과 솔로 활동을 결정했었다.

 

노래처럼 ‘스윔’은 완벽한 회복이 아니라 아직 힘들지만, 속도를 낮추며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삶의 자세를 노래한다. 멤버들은 “그저 하루하루 첨벙첨벙 살아가는 모두의 노래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청춘의 고통과 성장을 거쳐,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줬던 이들의 노래가 이번엔 번아웃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 여기에 더해 5차례 후보에 올랐던 그래미 본상을 수상해, 답보 상태인 K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기도 기대한다. BTS는 그래미에 조급해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번 앨범이 그래미가 선호하는 ‘아티스트의 성장 서사’라는 점에서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평가다. 스근하게, 스윔, 스윔 하며 그래미까지 헤엄쳐 가기를.

 

03-25 日 닛쇼마루 기적

 

이철호 논설고문

 

1911년 영국 해군 장관이던 윈스턴 처칠의 선택이 석유의 운명을 갈랐다. 웨일스의 안정적인 석탄을 버리고 멀리 페르시아만에서 수입하는 석유를 때는 군함으로 바꾼 것이다. 수병의 25%를 차지했던 화부(火夫)가 줄었고, 최고 속도도 25노트로 4노트 올라갔다. “위험하지만, 그 보상은 해상권 장악”이라던 처칠의 도박이 성공했다. 안정적 석유 공급을 위해 앵글로-페르시안의 지분 51%도 사들였다. 오늘의 BP다.

 

1951년 위기가 닥쳤다. 이란 민족주의자 모사데크가 총리에 올라 당시 영국 소유의 세계 최대 아바단 정유소를 국유화한 것. 영국은 해군을 동원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이란산 석유 불매를 강요했다. 이탈리아 유조선 로즈메리호를 나포해 “우리의 장물”이라며 석유를 압수했다. 선박과 화물을 모두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로 석유 수출이 99% 급감했다. 이란 경제는 붕괴 위기에 몰렸다.

 

당시 일본은 석유에 허덕였다. 패전 이후 미·영·프랑스 석유 메이저인 ‘세븐 시스터스’로부터 전량 수입에 의존했다. 공장은 툭하면 멈춰 섰고, 밤엔 촛불을 켜야 했다. 암시장에서 7배 웃돈을 주고 기름을 구했다. 이때 일본 정유사 에네오스(ENEOS) 창업주인 이데미쓰 사조가 몰래 해상 봉쇄를 뚫고 닛쇼마루호를 아바단에 보냈다. 호르무즈 해협에선 영국 해군 레이더를 피하기 위해 밤에 불을 끈 채 해안선에 바짝 붙은 위험한 항로를 헤쳐 나갔다. 닛쇼마루호가 2만t의 휘발유와 경유를 가득 싣고 뜨거운 환영 속에 가와사키항으로 돌아왔다.

단번에 일본의 석유 가격이 30% 낮아졌다. 영국은 ‘장물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냈지만, 일본 법원은 냉담했다. ‘이란 국유화 절차에 보상 규정이 포함돼 있는 등 국제법상 완전 불법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패소 판결을 내렸다.

 

중립을 지키던 미국은 1953년 이란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비밀공작에 들어갔다. 모사데크 총리를 축출하고 팔레비 국왕을 세우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석유 패권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오는 변곡점이었다. 석유의 역사를 다룬 ‘황금의 샘’에서 대니얼 예긴은 이렇게 썼다. ‘에너지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했다. 지금도 그렇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전 세계가 떨고 있다. 다시 한번 글로벌 패권이 요동칠 모양이다.

 

03-26 與 대표와 盧 사위 ‘틈’

 

김세동 논설위원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대통령님께 보고드린다. 검찰청은 폐지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고 말했다. 오는 10월 2일 검찰청 해체에 따른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 설치법의 20일, 21일 국회 본회의 강행 처리 후속 행사인데, 국가 형사사법체계의 근본을 흔드는 일이 무슨 큰 대의로 추진된 게 아니라 노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한 복수나 원한 갚음이었다는 ‘자백’으로 들려, 집권당 대표로서 부적절한 처신으로 보인다.

 

참배 때 눈물도 훔쳤던 정 대표는 최고위원회의도 열어 “노 대통령의 (검찰개혁의) 뜻을 계속 이어가겠다”며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이 자행한 조작 기소의 진상을 국정조사를 통해 낱낱이 밝히고 진실을 바로잡는 것 또한 우리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연루된 사건 재판의 검찰 공소취소를 압박하기 위한 국회 국정조사를 ‘노무현 뜻’을 이어가는 것으로 오도할 수도 있는 견강부회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검찰의 수사·기소권 독점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 건 맞지만, 아예 없애버리는 것까지 찬성할지는 의문이다. 하물며 헌법에 규정된 기관을 하위 법률로 폐지하는 위헌 논란까지 있음에야…. 정 대표를 비롯한 여당 강경파가 정치적 이익을 위해 검찰을 해체하면서 노무현 정신을 팔고 있다는 노 전 대통령 사위 곽상언 의원의 지적이 맞는 것 같다. 곽 의원은 “사적 욕망을 위해 노무현이라는 상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노무현의 정치를 따르겠다고 하면서 조롱하는 분들이 참 많다”고 질타했다.

 

곽 의원은 정 대표 등이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 무리한 검찰청 폐지를 추진한다고 비판하는데, 그들의 속셈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의원들은 권력으로부터의 사정(司正) 위험을 원천적으로 제거하고자 한 것일 수 있다. 검찰을 없애고 공소청 검사에게 기소권만 남기면 여당 의원들이 범죄로 처벌받기 어려울 것이다. 현재 김병기·전재수 의원 경찰 수사를 보면 실제 그럴 것 같다. 여당 의원들이 중수청법 정부안을 수정하면서 중수청 수사 대상 범죄에서 자신들이 잠재적 피의자인 선거 범죄와 공직자 범죄를 빼는 민망한 일을 벌인 것도 그런 추측에 힘을 싣는다.

 

03-27(금) ‘빽바지’와 ABC론의 밑바닥

 

이현종 논설위원

 

유시민 작가는 좌파 진영 내에서 논쟁적 인물이다. ‘항소이유서’로 운동권에서 유명해졌고, 국회의원에 보건복지부 장관도 지냈으며 대선 후보 반열에도 올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을 자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속했던 정치 집단에서는 분열의 씨앗이 됐고, 거친 독설로 팬도 많지만, 적도 많다.

 

지난 2003년 4월 재보궐선거(경기 고양 덕양갑)에서 당선돼 국회 본회의장에 선서를 하러 왔는데 복장이 파격이었다. 양복 대신 베이지색 면바지에 티셔츠, 재킷을 입고 올라오자 의원들의 항의가 이어졌고, 결국 다음 날 양복을 입고 와서 선서를 했다. 그때 입었던 면바지를 ‘빽바지’로 불렀는데 당시 개혁파(수도권+친노무현계)의 상징이 됐다. 반면, 그해 9월 새천년민주당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갈라서기 직전 당무회의장에 러닝셔츠 차림의 50대 남성이 당 사수를 외치며 들어온 것을 비유해 ‘난닝구’는 당권파(호남+구민주계)를 상징한다.

 

난닝구-빽바지 논쟁은 좌파 내부의 고질적인 논쟁거리가 됐다. 난닝구는 호남과 기득권의 상징으로, 빽바지는 개혁파의 상징으로 이어져 왔다. 정통 민주당 세력들은 유 작가를 ‘분열의 씨앗’이라고 한다. 그의 정치 행적은 늘 논쟁을 불러왔는데, 이번엔 ‘ABC론’을 들고나와 여권 내부의 갈등에 기름을 붓고 있다.

 

유 작가는 지난 18일 한 유튜브에서 여권 지지층을 A(가치 중심), B(이익 중심), C(A와 B의 교집합) 등 세 부류로 구분했다. A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을 좋아하고 이재명 대통령을 지지하는 코어 그룹이다. 반면, B는 ‘뉴 이재명’ 세력처럼 이익과 생존을 위해 친명을 자처하는 그룹으로 분류했다. C는 양쪽 다 속한 기회주의자 그룹. 유 작가는 B 그룹에 대해 “문제가 생기면 제일 먼저 돌을 던질 사람들”이라고 폄하했다.

 

이 발언으로 친명 중 ‘뉴 이재명’파들이 발끈했다. 그러잖아도 정청래-김어준과 뉴 이재명 그룹 간의 ‘공소취소 사주설’로 갈등이 심한데 기름을 부었다는 것이다. 친명 김영진 의원은 “MBTI도 최소한 16개인데 어떻게 세 부류로 단순화하냐”고 비판했다. 내 편은 정의롭고 도덕적이고, 반대편은 기회주의자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다.

 

03-31(화) 유쾌한 거짓말

오승훈 논설위원

 

미국 항공우주국(나사)이 최근 아르테미스 2호가 오는 4월 1일 발사된다고 밝혔다. 달에 착륙한 유인 우주선인 아폴로 17호 이후 54년 만에 달 궤도로 인간을 보내는 첫 유인 탐사다. 4명의 우주 비행사가 탑승해 유인 달 착륙을 위한 시험 비행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2028년엔 유인 달 착륙이 목표다. 중대한 이벤트인데, 시민 반응이 미지근하다.

 

그간 두 차례나 연기돼 신뢰도가 떨어진 탓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날은 만우절이다. “나사, 진심인가요, 아니면 그냥 속이는 건가요?”라고 의문을 품는 반응이 많아 정말 발사될지 그게 더 관심이다. 사실 나사는 만우절 ‘하얀 거짓말’의 단골 소스다. 달 표면에서 스마트폰을 즐길 기술이 개발됐다는 보도, 탐사로봇이 화성에서 생명체를 찾았다는 발표, 명왕성·목성·지구가 일렬로 늘어서면 ‘3초간 지구의 무중력 상태 경험’ 보도 등이 나사발(發) 뉴스로 주목을 한껏 받았다가 모두 만우절 이벤트로 밝혀져 허탈감을 줬던 사례들이다.

 

아르테미스 2호 발사 계획이 진짜 뉴스임에도 가짜뉴스로 의심받는 건 그만큼 허위 정보의 시대라는 반증일 수 있다. 뉴스 신뢰도의 위기를 보여주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생성형 인공지능(AI) 등장 이후 AI 이미지·영상과 실제의 구분이 어려워지는 현실이 더욱 그러하다. 최근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 와중에도 AI는 가짜 영상으로 상대의 기를 꺾는 최고의 심리전 도구로 활용됐다.

 

만우절이 원뜻대로 모두가 어리석어지는 날인 것은 아니다. 허무맹랑하다고 웃고 넘긴 일들이 이따금 현실로 구현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만우절 이벤트로 ‘초자동화에 성공한 결과, 주 3일 근무제를 도입하게 됐습니다’라고 공지했던 기업은 생성형 AI 덕분에 근무시간 단축을 실현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지난 2010년 구글이 소개한 3차원 지도는 몇 년 뒤 ‘구글 어스’로 현실화했다. 홍보 이벤트를 위해 기다리는 기업도 많다. 게임업체는 물론 유통업체들이 기발한 아이디어 경쟁을 벌인다. 지난해 현대차는 도로 위에서 ‘급한 용무’를 해결할 수 있는 가상의 자율주행차를 선보여 관심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범죄 수준의 거짓말만 아니면 된다. 하루쯤 유쾌한 거짓말을 즐겨도 되지 않을까.

 

[오후여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