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餘談 2026-1/ 01.01(목) 우주소년 아톰 - 02.23 마리 앙투아네트 증후군

상림은내고향 2026. 2. 24. 18:23

餘談 2026-1/

01.01(목) 우주소년 아톰

▲한국에서 '우주소년 아톰'으로 방영돼 인기를 끈 일본 TV애니메이션 '철완 아톰' /조선일보 DB

 

 

1963년 1월 1일 화요일 저녁 6시 15분 나는 일본 도쿄의 한 가정집 텔레비전 브라운관 앞에 앉아 있다. 후지TV에서 오늘 만화영화 ‘철완 아톰’이 첫 방송된다.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위주에서 TV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산업 구조의 시작을 알리는 결정적 사건이고,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1966년 12월 31일까지 매주 30분(광고 시간 외 본편 약 24분) 총 193편이 방영될 것이다.

 

만화영화 종주국 미국은 ‘아톰’을 수입해서 1963년 가을부터 NBC TV를 통해 ‘아스트로 보이(Astro Boy)’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는 1970년 7월 TBC(동양방송)에서 ‘우주소년 아톰’을 시작으로, 또 1980년대 후반 KBS와 2000년대 초반 SBS 등에서 리메이크판이 방영된다. 1952년 자신이 만화 잡지 ‘만화소년’에 연재한 ‘철완 아톰’을 아시아 만화영화의 대표작으로 제작한 이가 바로 의사 출신의 만화가, 동양의 월트디즈니 데즈카 오사무이다.

 

그는 군국주의 일제의 세계 침략 전쟁과 그 패배로 인해 맥이 끊어진 일본 만화를 다시 부흥시켰다. 4컷 개그만화, 신문 만평 만화를 벗어나 ‘스토리 만화’를 장르로 확립시키고, 어린이 만화에 ‘비극’을 집어넣은 선구자이기도 하다. 1989년 2월 60세로 숨을 거두기까지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특히 출판사 문예춘추(文藝春秋)의 ‘주간 문춘(週刊文春)’에 연재된 ‘아돌프에게 고한다’는 그의 만년(晩年)의 역작이다. 정통 유력 시사·보도 주간지에 만화가 연재된 것은 일본 최초였다. 그만큼 주제가 진지하고 웅장해 단행본이 만화 코너가 아닌 문학 코너에서 팔렸다.

 

나치 독일의 흥망기를 배경으로 아돌프라는 이름을 가진 세 사람, 즉 아돌프 히틀러, 아돌프 카우프만, 아돌프 카밀의 인생을 통해 이념과 전쟁이 개인의 우정과 양심을 어떻게 파괴하는가를 보여준다. 한국어 번역판이 있다. 참고로, “라라라 과학의 아이~”라는 철학적 반복구가 있는 만화영화 ‘철완 아톰’의 주제곡 가사는 일본의 국민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가 썼다.⊙

 조선일보 이응준 시인·소설가

 

01.05(월) 델타 포스

Kenny Loggins 'Danger Zone'(1986)

 / Kenny Loggins (1986)

 

2026년 1월 3일 새벽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미국이 군사 작전을 개시했고,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부부가 체포됐다. 이번 작전에는 미국 특수작전부대가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미 육군 최정예 부대인 ‘제1특수부대작전분견대-델타(일명 델타 포스)’가 투입됐다는 미국 언론 보도가 나왔다. 델타 포스는 1977년 창설된 이후 고위험 대테러·고가치 표적 작전에 투입돼 온 부대다. 2019년 테러 단체 IS(이슬람 국가)의 수장이었던 알바그다디 제거 작전에 참여한 바 있다.

 

델타 포스는 창설 3년 후인 1980년 이란 미 대사관 인질을 구출하는 작전명 ‘이글 클로(Eagle Claw)’를 수행하는 동안 참담한 실패를 겪었다. 사막의 모래폭풍 속에서 헬기 8대 중 3대가 고장 나고, 헬기와 수송기가 충돌해 8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치욕 이후 델타 포스는 더욱 강하게 단련됐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소말리아, 리비아를 거쳐 이제 베네수엘라까지. 테러와의 전쟁, 마약과의 전쟁 최전선에서 미국이 필요로 할 때마다 나타나는 ‘그림자 전사’들이다.

 

‘확고한 결의’라는 작전명이 붙은 이번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격 작전에서 델타 포스 요원들은 마두로 부부가 안전가옥의 강철 문 안으로 대피하기 직전에 생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전에 치밀하게 작전을 짠 덕분이었다. 미군은 사망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을 정도로 일방적인 승리를 거뒀다.

 

선량한 외모를 지닌 록스타 케니 로긴스의 이 노래는 영화 ‘탑건’의 주제가로 빌보드 차트 2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1986년 영화와 주제가가 쌍끌이 흥행을 주도했다. “엔진 속도를 올리고/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봐/ 한껏 달아오른 녀석은/ 어서 날아오르자고 하지/ 위험 구역으로 말야(Revvin' up your engine/ Listen to her howlin' roar/ Metal under tension/ Beggin' you to touch and go/ Highway to the Danger Zone).” 미군 특수부대가 펼치는 작전은 이제 영화와 현실의 구분을 흔든다.

조선일보 강헌 음악평론가

 

01.07 정치판 가면 거덜날 사주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새해마다 사주를 본다. 재미로 본다. 돈 내고 보지는 않는다. 인터넷으로 본다. 요즘은 인공지능(AI) 사주가 인기다. 용하다고 소문이 났다. 인공지능이 직업을 위협하는 시대다. 나 같은 글쟁이는 위기다. 사주쟁이도 위기일 줄은 몰랐다. 사주쟁이 여러분 사주는 어떤지 궁금하다.

 

꼭 정치수가 나온다. 어머니가 보는 사주에도 정치수가 매년 나온다. 어머니는 매년 말한다. “아들은 장관 할 사주라는데.” 나는 답한다. “집안 거덜 낼 사주라는 뜻이네.” 어머니는 말한다. “거덜 안 내는 정치인도 있던데.” 그런 정치인도 있긴 하겠다. 청문회장에서 코인 거래를 해 한몫 챙긴 양반처럼 말이다.

 

청문회가 문제다. 나는 청문회를 아름답게 통과할 자신이 없다. 기억나는 죄는 없다. 인간의 기억은 믿을 게 못 된다. 이혜훈 장관 후보자는 10년 전 전화 한 통에 발목을 잡혔다. 보좌진에게 “널 죽였으면 좋겠다”고 난리를 친 녹취가 공개됐다. 이혜훈은 기억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스스로 사소하다 생각하는 과거의 행동은 언제나 돌아와 뒤통수를 친다.

 

얼마 전 영화감독 마이크 빈더가 팟캐스트에서 할리우드 뒷담화를 하나 공개했다. 2006년 그는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 각본을 작업하고 있었다. 주연 후보는 벤 애플렉이었다. 스필버그는 거절했다. 벤 애플렉이 파티장에서 스필버그 어린 아들을 수영장에 집어던져 울린 적이 있다는 것이다. 빈더가 “캐스팅이랑 뭔 상관이죠?”라고 물었다. 스필버그는 답했다. “그 친구 너무 차가워.”

 

인품 탁월하기로 유명한 영화감독도 이토록 개인적인 이유로 함께 일할 사람을 판단한다. 한 인간의 경력은 능력만으로 유지되지는 않는다. 과거의 사소한 행동이 쌓이고 쌓여 경력을 빚어 올린다. 혹은 무너뜨린다. 그러니 새해에는 우리 모두 사소하게 친절하자. 참고로 인공지능이 본 내 사주는 “정치수는 있는데 정치판 들어가면 망가질 사주”란다. 그런 소리는 나도 하겠다. 물론 나도 할 것 같은 평범한 소리가 언제나 진실이다.

조선일보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01.15 납북된 최은희·신상옥

1978년 1월 15일 나는 홍콩에 있다. 어제 이곳에서 대한민국 영화배우 최은희가 북한 공작원들에게 납치당했다. 그녀는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무렵까지 엄청난 인기와 위상을 누렸던 ‘스타 여배우’의 원조 격으로서 한국 영화사에서 세 번째 여성 영화감독이자 첫 여배우 출신 영화감독이다.

 

▲김정일은 북한 체제 선전 영화를 더 제대로 만들기 위해 당시 잘 나가던 배우 최은희와 영화감독 신상옥을 납치해 이들에게 영화를 찍게 했다. /폭군이 되는 법

 

남한에 비해 뒤떨어진 북한 영화의 발전을 위해 최은희의 납북을 지시했던 희대의 영화광 김정일은, 아직 마취가 덜 풀린 채로 공작선에서 내리는 최은희를 직접 남포항까지 나가 마중(?)했다. 김정일의 기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으니, 당시 최은희와 이혼 상태였던 거장 신상옥 감독은 실종된 그녀의 행방을 홍콩에서 추적하다가, 그 역시 6개월쯤 뒤인 7월 19일 납북된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이렇게 되어 한국 현대 영화의 선구자 신상옥과 최은희는 남한과 북한 양쪽에서 큰 영화들을 만드는 기록을 남긴다. 이 둘의 북한에서의 재회와 활동, 극적인 탈출 등은 한 편의 영화 그 자체다. 그들이 몰래 녹음한 김정일과 김일성의 육성은, 당시로서는 미국 CIA에게조차 희귀한 정보 자료였다.

 

1986년 3월 13일 영화 제작과 관련해 오스트리아 빈에 있던 신상옥과 최은희는 미국 대사관으로 뛰어들어가 탈출에 성공했다. 후일, 어떻게 탈출이 가능했느냐는 질문에 신상옥의 대답은 인상적이다. “권력과 자금과 온갖 특혜들을 제공하는데 설마 싫어서 떠나겠느냐는 생각을 북한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김정일의 허락 안에서만 가능한 자유였다. 또한 내게도 있고 남에게도 있는 자유라야 진짜 자유지, 나만 누리는 자유는 가짜 자유다. 예술가는 자유가 목숨인 존재인데, 그런 독재 전체주의 사회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신상옥은 북한에서의 8년 중 영화 활동은 3년 정도뿐이었는데, 초반 5년 동안 거듭 탈출을 시도하다가 수용소를 들락거렸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제발 연예인들 북한 데리고 가서 인류 최악의 독재자 옆에서 사진 찍게 하지 마라. 그거 인권 침해, 양심 파괴 범죄다.

 조선일보 이응준 시인·소설가

 

02.01 따뜻했던 ‘케빈 엄마’

할리우드 여배우 캐서린 오하라(71)가 30일 타계했다. 영화 ‘나홀로 집에’(1990)에서 막내아들 케빈을 집에 홀로 둔 채 가족여행 온 것을 알고 혼절하는 연기로 유명하다.

캐서린은 "케빈!"을 외치는 장면을 위해 수십 가지 비명 톤을 시도했고, 넋이 나간 엄마에 어울리는 여러 가발을 돌려 써가며 촬영했다. 아들을 만나러 돌아오는 여정이 더 험난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낸 것도 그녀였다.

감독 크리스 콜럼버스는 "그녀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따뜻한 가족영화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술회했다. 캐서린은 ‘나홀로 집에’ 1, 2편에 케빈 엄마로 출연했다.

캐서린은 현실에서도 마음씨 착한 엄마였다. 코로나 시기 신생아 모자를 뜨개질해 난민기구에 기증했고, 2020년 퀴즈쇼 상금 25만 달러 전액을 노숙인 지원단체에 기증했다. 2024년 캐나다 최대 의료기관 UHN과 파킨슨병 연구기금을 모으기 위한 자선행사에도 참여했다.

2023년 12월 고생을 많이 한 케빈(맥컬리 컬킨)의 늦깎이 ‘할리우드 명예의 전당’ 입성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가 "두 번이나 너를 혼자 두고 온 가짜 엄마가 왔다"며 ‘가짜 아들’을 포옹해 전 세계 팬들을 감동시켰다.

오랜 공백을 깨고 배우로서도 성공했다. 2020년 드라마 ‘시트 크리크’에서 억만장자였다가 망해서 시골 주부로 살아가며 삶의 의미를 깨닫는 모이라 로즈 역으로 사랑받았다. 이 드라마는 단일 드라마로 에미상 주요 7개 부문을 모두 석권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그녀의 사인은 정확하지 않지만, 심장 등 주요 장기들이 반대에 위치하는 내장 역위증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캐서린은 명절에 ‘나홀로 집에’를 보며 자란 필자 세대에게 따뜻한 모성의 상징으로 기억될 것이다.

 

자유일보 양일국 문화평론가·정치학 박사

 

02.03 아프리카에 34년 살아보니,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게 됐다

[유덕종의 아디스 레터]

빈곤하고 부정부패 심한 나라에서 의료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국민을 먹여살릴 공장과 국가 시스템 바로세울 리더십이 더 급해

/일러스트=이철원

아프리카 대륙에 첫발을 내디딘 지 어느덧 34년이 흘렀다.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현지인들부터 미국·영국·독일·러시아 등에서 온 외국인들, 그리고 이역만리에서 분투하는 한국인들까지. 아프리카라는 낯선 땅에서 내 인생에 크고 작은 영향을 준 인연들을 만나는 행운이 있었다.

 

타국에서 지내는 이들에게 가장 직접적 영향을 주는 사람은 대개 외교관이다. 전문의라고 해서 모두 실력이 같지 않듯, 내가 겪어본 외교관 역시 천차만별이었다. 현지인과 교민을 돕기 위해 밤낮없이 발로 뛰는 이가 있는가 하면, 권위라는 외피를 두르고 왕처럼 군림하려는 이도 없지 않았다. 내 인생에 가장 강렬하게 각인된 만남은 30여 년 전,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서 나를 맞이해준 한 외교관이었다.

 

정부파견의로 우간다에 첫 부임하던 토요일이었다. 휴일임에도 그는 공항에 나와서 귀빈실로 입국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당시 우간다는 치안이 극도로 불안해 거리를 걷는 것조차 위험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내가 개인 차량을 마련할 때까지 일터인 ‘물라고 병원’으로 날마다 나를 태워 주었다. 타향에서 만난 친형님 같은 따뜻함. 그런데 그가 건넨 첫마디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닥터 유, 이 먼 곳까지 봉사하러 온 마음은 가상하지만, 고생하지 말고 빨리 짐 싸서 돌아가시오. 이 나라에 정말 필요한 건 의사 한 명이 아니라, 공장을 지어줄 사업가요."

 

당시엔 당혹스러웠지만, 현지를 치열하게 겪어본 선배의 깊은 애정과 고뇌가 담겨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몇 해를 보내며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절감했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의료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근무한 곳은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해 파견된 정부 병원들이었다. 가난한 나라의 국립병원은 참혹했다. 빈국일수록 감염병 수치는 높고 환자는 구름처럼 몰려들지만, 경제력이 없으니 진단도 치료도 불가능했다. 확진을 위해선 방사선 검사와 임상병리 검사가 필수적인데, 여기에는 자본이 투여돼야 한다. 치료도 마찬가지다. 항생제, 인슐린, 수액제 하나하나가 모두 ‘돈’이다.

 

/1992년부터 아프리카에서 34년간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유덕종 /유덕종 제공

1990년대 초반, 나는 병원을 찾는 환자들을 보며 절망했다. 검사도 치료도 안 되는 이곳에 그들은 왜 오는 것일까. 죽을 자리를 찾아오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혈압계조차 귀하고 수액이 없어 환자를 잃어야 했을 때, 의사로서 처절한 무력감을 느꼈다. 능력이 된다면 당장 항생제 공장, 수액 공장이라도 세우고 싶었다. “이 나라에 정말 필요한 건 의사가 아니라 공장을 지어줄 사업가”라던 외교관의 일갈이 귓가에 맴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픈 이들 곁에서 함께 아파하며 최선을 다해 돕는 것뿐이었다.


행복의 기본 전제는 건강이다. 그 건강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토양은 경제력이다. 제대로 된 영양 섭취와 위생적인 환경 없이는 병을 막을 수도, 치료할 수도 없다. 과거 한국을 짓누르던 결핵이 사라진 결정적 계기가 의술 발전보다 경제 성장에 있었다는 점에 대다수 전문가가 동의한다. 시간이 흘러 이곳도 경제 형편이 나아지며 의료 환경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는 축복받은 땅이다.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한국처럼 혹독한 겨울도 없다. 그럼에도 왜 경제적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부정부패가 이유로 지목된다. 개인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부패가 국가 시스템을 갉아먹는 것이다. 이를 돌파하려면 강력하고 청렴한 리더십이 절실하다.


먼 타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내가 가장 존경하게 된 인물은 박정희 대통령이다. “나랏님도 구제 못 한다”던 가난으로부터 국가를 구해낸 그의 리더십이 없었다면, 우리나라가 이만큼 성장할 수 없었고 나 같은 사람이 아프리카에서 의료 봉사를 할 여력조차 없었을 것이다. 지도자라고 다 같은 지도자가 아니다. 첫째, 자신보다 국가를 더 사랑하는 사람. 둘째, 국가 발전의 확고한 비전을 소유한 사람. 셋째, 사리사욕을 버리고 적재적소에 인재를 기용할 줄 아는 사람. 그가 진짜 지도자다.

 

▲1968년 12월 경부고속도로 1단계 구간인 경수고속도로와 경인고속도로 개통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샴페인을 고속도로 바닥에 뿌리고 있다. /국가기록원

 

일부 부패한 정치인들은 내실보다 보여주기식 행정에 집착한다. 34년 전 공항에서 만난 외교관의 조언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의사가 살리는 생명도 소중하지만, 국가 시스템을 바로 세워 수만 명을 먹여 살릴 ‘공장’과 이를 가능하게 할 ‘리더십’이 더 급하다. 아프리카 대륙에도 가난의 사슬을 끊어낼 영웅들이 탄생하기를 소망한다.

☞의사 유덕종(66) 

1992년 ‘정부 파견 의사’ 1기로 선발돼 우간다로 갔다. 계약을 연장하며 아프리카에 남았고 지금은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의료 봉사를 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길러낸 의사만 4000명. 아산상, JW성천상 등을 받았다. 현지에선 아디스아바바를 줄여 아디스라 부르는데 ‘아디스 레터’는 그곳에서 띄우는 편지다.
조선일보 

 

02.03 AI시대 직장 신조어, '커피 배징'은 무슨 뜻일까

인공지능(AI)의 급속한 확산이 직장 문화까지 뒤흔들면서 관련 신조어(newly-coined word)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이 직장 유행어들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일터 환경의 획기적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취업 지원 플랫폼 ‘Kickresume’가 꼽은 첫번째 것은 ‘스팸플리케이션(spamplication)’이다. ‘스팸’과 ‘지원서(application)’의 혼성어로, 취업 준비생이나 이직 희망자가 AI로 생성한 이력서를 스팸 메일 뿌리듯 수백 곳에 보내는 걸 말한다. 그러나 이 같은 ‘이력서 스팸’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지원 회사·직무에 맞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맞춤화하지 않으면 채용 담당자는 성의가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

 

또 다른 신조어로는 ‘워크슬롭(workslop)’이라는 것이 있다. ‘일(work)’과 ‘음식물 찌꺼기(slop)’를 합친 말이다. 직장에서 AI로 생성한 저품질 결과물을 그대로 제출하는 행태를 말한다. 그 결과, 소속 팀의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다시 손봐야 할 일만 늘려 놓는다. AI는 사실과 다른 ‘환각’ 오류를 범하기 때문이다.


‘커피 배징(coffee badging)’도 유행어가 됐다. 출근 도장 찍은 뒤 커피만 얼른 마시고 곧장 귀가해 재택근무하는 걸 말한다. ‘배징(badging)’은 ‘사원증’ ‘신분증’을 뜻하는 ‘badge’를 출근 확인 장치에 갖다 대는 행위를 묘사한 것이다.

 

‘오피스 프로그(office frog)’는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개구리’처럼 직장을 자주 옮기는 사람(job hopper)을 말한다. 경험 넓히는 긍정적 측면도 있으나, 너무 빈번한 이직은 경고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 반대로 한 직장에만 줄곧 머무는 사람은 ‘hug(껴안다)’ 동사를 활용해 ‘job hugger’라고 부른다.

 

그런가 하면 ‘마이크로시프팅(microshifting)’은 근무 시간을 쪼개 일하는 걸 말한다. 9시~5시가 아니라 오전에 4시간, 저녁에 4시간 근무하면서 중간 시간을 다른 일에 활용하는 식이다. 그 시간을 ‘폴리 임플로이먼트’, 즉 동시에 여러 직업을 갖고 추가 수입 올리는데 이용하기도 한다.

 

‘고스트 베케이션(ghost vacationing)’은 유령처럼 무단으로 휴가 가는 걸 말하고, ‘쉿’이라는 단어 ‘hush’가 들어간 ‘허쉬 트립(hush trip)’은 몰래 여행을 가서 원격 근무하는 걸 일컫는 신조어다. 이들은 화상 회의 때 가짜 배경 화면을 깔거나, 가상 사설 네트워크(VPN·virtual private network)를 이용해 자신의 위치를 숨기다가 적발돼 해고당하기도 한다.
조선일보 윤희영 기자

 

02.23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Scorpions, 'Wind of Change'(1990)


1989년 8월의 모스크바는 뜨거웠다. 냉전의 빙하가 녹기 시작하던 그 여름, 레닌 스타디움에서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졌다. 오지 오스본, 본 조비, 스콜피언스 같은 서방의 록 밴드들이 소련의 심장부에 서게 된 것이다.

이름하여 ‘모스크바 평화 음악제’. 당시 공연 기획자 독 맥기는 이 행사를 위해 출연 밴드와 기자들, 심지어 소련 적군 병사들까지 한 유람선에 태워 모스크바강을 유유히 내려갔다. 그 배 위에서 독일의 헤비메탈 밴드 스콜피언스의 보컬 클라우스 마이네는 생각했다. 세상이 정말 바뀌고 있구나. 그 생각이 한 곡의 씨앗이 됐다.

 

이듬해 발표된 ‘Wind of Change’는 순식간에 시대의 노래가 됐다. 빌보드 핫100 4위, 영국 차트 2위, 세계에서 1400만장 이상이 팔려나간 이 곡은 단순한 히트곡이 아니었다. 베를린 장벽 붕괴와 소련 해체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대를 한 편의 휘파람 선율로 포착해 낸, 20세기가 남긴 가장 아름다운 목격자 진술이었다. “모스크바 강을 따라 고리키 공원까지 걷노라/ 변화의 바람을 들으며(I follow the Moskva, down to Gorky Park, listening to the wind of change).”

 

로부터 33년이 흘렀다. 2022년 2월 24일 새벽, 그 모스크바에서 출발한 러시아의 미사일과 탱크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었다. 스콜피언스는 즉각 러시아 공연 일정을 취소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인지 그해 3월 라스베이거스 공연에서 마이네는 이렇게 말했다. “이 노래는 평화를 노래합니다. 오늘 밤, 우리는 더 크게 불러야 합니다.” 그리고 그는 가사를 바꿔 불렀다. “이제 내 마음의 소리를 들어봐/ 우크라이나라고 말하고 있어/ 변화의 바람을 기다리며(Now listen to my heart, it says Ukraine, waiting for the wind to change).” 평화의 노래가 저항의 노래로 다시 태어나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전쟁은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거듭되는 종전회담에도 평화는 아직 오지 않았다.

조선일보 강헌 음악평론가

 

02.23 마리 앙투아네트 증후군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하룻밤 새 머리카락이 하얗게 셌다는 이야기를 한번쯤은 들었을 것이다. 이를 ‘마리 앙투아네트 증후군’이라고 한다. 프랑스 혁명 때 루이 16세의 아내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서 처형되기 전 하룻밤 새 백발이 됐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비슷한 이야기는 문헌에 많이 보인다. 춘추전국 시대 오자서가 목숨을 건 탈출을 앞두고 밤새 뜬 눈으로 지샌 뒤 후 백발이 됐다는 고사가 있다. 천자문을 만들어낸 주흥사는 사형을 면하기 위해 하룻밤 만에 천자문을 만들고는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했다고 한다. 그래서 천자문을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부른다.

영국의 토머스 모어 경은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당하기 전날 하룻밤 동안에 백발이 됐다고 하며, 미국 대통령 후보였던 존 매케인은 베트남전에서 포로로 잡혀 고문을 당한 뒤 급속하게 백발이 됐다고 한다.

모낭에는 머리카락을 만드는 세포와 여기에 색을 더하는 멜라닌 줄기세포가 존재한다. 줄기세포가 색소를 공급한다. 색소의 양은 한정적이라 고갈되면 보충할 수 없다. 사람은 색소 공급원을 오랜 기간 동안 조금씩 이용해 색소 저장분을 단기간에 소모하지 않도록 진화했다. 그 색소를 다 쓰면 백발이 된다. 노화가 백발과 관련돼 있는 이유다.

스트레스는 전신에 영향을 미치고 모발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는 현상에는 의학적인 근거가 있다. 극심한 단기 혹은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투쟁·도피 반응을 일으키는 교감신경 활성화와 함께 노르아드레날린을 분비한다. 분비하는 양은 스트레스 정도와 비례한다.

모낭의 교감신경에서 분비된 노르아드레날린은 탈모를 가속화시키고 색소도 격감시킨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며칠 만에 멜라닌 생성 줄기세포가 모두 소실된다. 이 세포가 사라지면 더 이상 색소를 생성하지 못한다. 손상은 영구적이다.

반면 머리카락이 하룻밤 새 하얗게 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반박도 있다. 극심한 충격으로 인한 탈모로 머리숱이 줄어 희게 보인다는 설명이다. 앙투아네트의 백발 이야기도 멀리서 본 목격자 몇 명이 ‘머리카락이 하얗게 보인다’고 한 일방적인 주장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어찌 됐든 요새 한국 정치 상황을 보면 마리 앙투아네트 증후군이 염려된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흰머리가 부쩍 늘어날까 걱정이다.◎
자유일보 오광조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작가

 

餘談 20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