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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타이드, 사상의 썰물과 밀물1/ (1) 탈진실과 파시즘 - (10) ‘사찰음식’이 던지는 화두

상림은내고향 2026. 2. 6. 20:14

 

■ 월드 타이드, 사상의 썰물과 밀물1/ 문화일보  2025 - 2026

(1) 탈진실과 파시즘

2025.11.12 거짓이 진실 핍박하는 탈진실·가짜 뉴스의 시대… 조작·선동의 파시즘 부활하나

‘개소리’가 돈이 되고 표가 되는 세상

집단 관심 끌 수 있다면 거리낌없이 거짓 유포

기존 언론의 팩트체크는 역부족으로 보여

그래도 ‘끝없는 실패’가 ‘상식 회복’ 향한 출발점

/게티이미지뱅크

 

세상에는 다양한 민족과 역사, 종교와 인종만큼이나 수많은 주의와 이념, 집단행동이 탄생과 소멸을 거듭해왔다. 인간의 기본권과 참정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같은 사상의 흐름은 사고와 가치를 담아 진화했다. 인공지능(AI)의 시대에도 이런 거대한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탈(脫)진실과 페이크, 삼권분립과 국민주권, PC주의 등 최근 세계를 움직이는 사조(思潮)의 실태와 양상을 문화일보 기자들이 추적한다.

 

◇탈진실, 종말적 시대상

국경과 언어, 인종을 초월해 인간의 본질을 써내려간 작가에게 주어지는 상. 노벨문학상이다. 지난해 오랜 시간 집단의 폭력과 인간의 내면을 응시해온 소설가 한강의 호명, 올해 묵시록적 공포의 한가운데에서 예술의 힘을 다시금 확신하게 만든 헝가리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선정. 스웨덴 한림원의 선택은 미학의 판단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먼저 감지했다. 문학이 가진 통찰의 증명이었다.

 

“묵시록적 공포의 한가운데에서 예술의 힘을 다시금 확신하게 하는, 강렬하고도 예언적인 작품 세계.”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올해의 수상자로 헝가리의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를 선정하며 그 이유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묵시록적 공포란 곧 세계의 종말이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수상자 호명 직후 “지금 세상의 상태를 생각하면 너무 슬프다”며 “그것이 나의 깊은 영감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결국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절망감과 슬픔은 그의 작품 전반에 깊이 깃들어 있다.

 

그의 데뷔작 ‘사탄 탱고’(1985년 출간)의 배경은 공산정권 치하 1980년대 헝가리의 집단농장이 해체된 마을이다. ‘종소리’와 ‘쥐 소리’, 심지어 ‘개 짖는 소리’ 등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주민들은 크게 동요한다. 구원의 소리를 기다리지만 들리지 않는다. 총 12개인 ‘사탄 탱고’의 각 장은 40쪽가량의 단 한 문단으로 이뤄져 있다. 끝없는 소문과 추측, 의심들이 문장 부호 없이 쏟아지며 독자는 무엇이 사실이고, 아닌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정보 과잉 속에서 진실이 희석되는 오늘날의 모습 그대로다. ‘저항의 멜랑콜리’(1992년)에 나오는 마을 역시 소문의 광기가 휩쓴다. 소문을 믿는 사람들로 가득한 마을은 쑥대밭이 되고 끝내 파국을 맞는다. 한림원이 꺼내놓은 지금의 시대상인 탈진실과 극단주의, 파멸에 대한 선험적 예측이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는 1954년 헝가리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다 헝가리어와 문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그의 문학적 뿌리는 헝가리 민족주의가 아닌 세계문학의 계보에 있다. 노벨위원회는 그를 “카프카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에 이르는 중부 유럽 전통의 위대한 서사 작가”로 평가했다. ⓒ렌케 실라기

 

◇‘개소리’, 왜 만연하는가

진실을 알아보기 어렵게 만드는 것. 크러스너호르커이 식으로 말하면 ‘정체불명의 소리’이며 한국인들에겐 ‘가짜 뉴스’라는 이름으로 더욱 익숙한 그것은 대체 무엇일까.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한 2016년 올해의 단어는 ‘탈진실’(Post-truth)이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시점을 전후해 각종 음모론이 쏟아지면서 용어의 사용이 크게 확산됐다. 이후 한국에서도 가짜 뉴스에 대한 정의가 새롭게 이뤄진다. 2017년 2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은 가짜뉴스를 “허위 정보를 전달해 경제적·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전략적이고 기만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 규정하며 보도의 포괄적 실수를 의미하는 오보를 오인, 루머, 풍자 등과 구별했다.

 

탈진실은 반진실(anti-truth)과는 다르다. 단순히 거짓을 믿게 만드는 차원을 넘어서는 개념이다. 미국의 철학자 리 매킨타이어는 저서 ‘포스트 트루스’ ‘누가 진실을 전복하려 하는가’ 등에서 “탈진실이란 거짓이 난무하는 상황을 통해 자유로운 진실을 파악하려는 사람들의 사기를 꺾고, 진실 파악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이때 사용되는 가짜 뉴스도 단순 거짓말이 아니다. 해리 G 프랭크퍼트 프린스턴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저서 ‘개소리에 대하여’를 통해 이를 ‘개소리’(bullshit)로 규정한다. 거짓말쟁이는 진실을 감추려 하지만 개소리쟁이는 자신이 진실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 자체를 감추려 한다고 말한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적어도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나, 개소리하는 사람은 그저 사람들의 관심을 수없이 돌릴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세상에 만연하는 것인가. 개소리는 돈이 되고 표가 되며, 권력이 되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왜 개소리가 돈이 되는가’이다. 영국의 정치평론지 ‘프로스펙트’에서 2019년 ‘세계 50대 사상가’ 중 한 사람으로 꼽은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저서 ‘바른 마음’을 통해 그 답을 제시한다. 그는 인간의 사랑이 누구에게나 향할 수 있다는 통념에 반론을 제기한다. “자기가 속한 집단에 대한 편향적 사랑이 인간이 이룩할 수 있는 최대치의 사랑”이라는 주장이다. 즉 ‘군집’을 강화시켜 줄 수 있는 정보는 자연스럽게 진실보다 선호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심리는 언론 산업의 구조 변화와 맞물리며 개소리의 생산을 가속화한다. 정은령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언론이 시민들의 주목을 얻기 위해 소셜 미디어와 무궁무진한 콘텐츠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클릭 수는 이윤 창출의 잣대가 되며, 더 많은 개소리가 더욱 신속히 세상에 나오게 된다”고 설명한다.

 

 ▲조너선 하이트는 ‘도덕성 기반 이론’으로 인간이 도덕 판단을 할 때 최대 여섯 가지 기반(배려·피해, 공정성·속임수, 충성·배신, 권위·전복, 고결함·타락, 자유·억압)에 의존하며, 진보와 보수는 이 기반들을 서로 다른 비중으로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실패의 반복은 상식의 회복 출발점

정치철학자 해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전체주의 통치의 이상적인 신민은 확신에 찬 나치주의자나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사실과 허구, 진실과 거짓을 더 이상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탈진실이 곧 파시즘의 초석인 것이다.

 

이처럼 엄중한 상황에서 끊임없는 진실의 추구가 언론이 짊어져야 할 책임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레거시 미디어 특히 신문산업에 종사하는 기자들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정준희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교수는 “만성적 과로에 시달리는 기자들은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는데 동원하고 투입할 자원은 부족하다”며 “언론사 역시 자본과 권력의 논리에 강하게 종속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절망의 끝은 희망의 시작과 맞닿아 있는 법이다. 크러스너호르커이와 하이트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제시한 길 위에서 만날 수 있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세계는 계속된다’(2013년)를 통해 진실을 찾으려는 시도의 결과가 실패뿐이라 해도, 그 실패를 끝없이 반복하는 방식으로 종말을 무한히 지연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하이트는 더 구체적인 처방을 내놓는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넘쳐나는 가상의 세계에서 서로 다른 생각들을 다시 현실로 소환해, 직접 부딪히며 답을 찾아가자고 제안한다. 알고리즘의 수렁에서 벗어나 언론 스스로 불편한 대화를 시작하는 것. 그것은 결국 크러스너호르커이가 말한 지루한 실패의 반복과 다르지 않다.

 

희망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답이 정해진 미증명 확신을 유통하는 것보다 끝없는 검증을 통해 앞으로 전진해야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상식이 회복돼야 한다. 그 지루한 반복 속으로 용감하게 다시 들어가는 것, 절망의 끝은 언제나 희망의 시작과 맞닿아 있는 법이다.

 

19대 대선때 출범… 가짜뉴스에 맞선 ‘8년의 실험’

■ 서울대학교 팩트체크센터

 

탈진실에 맞서는 하나의 시도가 있었다. 해외에서 ‘가짜 뉴스’가 사회 문제로 대두하자 기사의 진위 여부는 물론 전후 사정, 맥락까지 확인하는 ‘팩트체크 저널리즘’이 부상했고 각 언론사 안팎에서 ‘팩트체커’들이 활동을 이어왔다. 한국에서도 2017년 제19대 대선을 기점으로 팩트체크 저널리즘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으며, 2017년 3월 국내 최초의 팩트체크 플랫폼 ‘SNU팩트체크센터’가 출범했다. 센터는 제휴 언론사들의 팩트체크 기사를 모으고, 인턴십과 시상식, 국제행사를 운영했다. 센터는 지난해 8월 무기한 휴지기에 들어갔다. 8년간의 실험이 마무리 수순을 밟는다는 점은 아쉬우나 팩트체크 저널리즘의 한계 또한 드러났다. 먼저 반박과 정정보도가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는가의 문제다. 레온 페스팅거 등은 저서 ‘예언이 끝났을 때’를 통해 예언이 거짓으로 판명되어도 믿음은 흔들리지 않거나 오히려 가짜 정보가 더 거세게 퍼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장상민 기자 

 

(2) PC주의

11-28 ‘권위 해체·反차별’로 시작해 억압 철폐 투쟁 확산… 과잉 평등·상징 전쟁, 과연 진보인가

메갈리아 사태로 촉발… 2017년 대선 거치며 본격 부상

“권력자의 약자 코스프레… PC개념 위협하는 오·남용”

美, 1990년대 대학내 ‘PC패권’ 부상… 획일성 강요

주류 언론·정치권력 진입하며 ‘새 편견’ 자리매김

/게티이미지뱅크

 

2002년 7월 대선 기간 중 개혁국민정당 수련회에서 빚어진 성폭력 사건은 발생 당시 조직 논리에 밀려 축소·은폐됐다. 당 내부에서 공식 문제로 제기됐을 때 한 남성 간부는 “해일이 일고 있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며 깎아내렸다. 대선이라는 중차대한 정치적 흐름 속에서 내부 성폭력 문제 따위로 시간을 허비하면 되겠느냐는 차별과 독선이 깔려 있었다. 이는 한국 정치사에서 그토록 소수자의 권리와 차별 금지를 옹호해온 진보정당의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민낯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정치 논객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는 2022년 펴낸 저서 ‘정치적 올바름(PC)’에서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좌파 운동권에 ‘페미니즘’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특히 개혁당 사건을 예로 들며 “‘진보적 대의를 위해 성폭력 사건이 조직 밖으로 알려져선 안 된다’는 조직보위론에 의해 철저히 은폐됐다”며 “조직보위론은 2000년대에도 건재했다”고 분석했다. 즉, 21세기 초반까지도 국내에선 PC에 대한 인식 자체가 사실상 부재했던 셈이다.

 

미국에서 촉발된 PC는 차별과 편견을 줄이고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존중을 강조하는 사회적·정치적 태도를 말한다. 여기서 약자에는 여성, 장애인, 빈곤층, 흑인 등이 포함되며 이들에 대한 언어적 차별에 반대해 저항하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PC 운동이 국내에서 움트기 시작한 건 1980~1990년대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PC는 ‘혼혈아=다문화가정 자녀’쯤으로 치환되는 일종의 교정운동 수준이었다.

 

학계에선 한국 사회 전반에 PC가 깊숙이 투영된 시점을 2010년대 중후반부터라고 본다. 2015년 메갈리아 사태를 시작으로 2016년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이 촉매로 작용했고, 2017년 대선을 거치며 본격적으로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 2016년 5월 18일 당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강남역 사건과 관련해 자신의 SNS에 “다음 생엔 부디 같이 남자로 태어나요”라고 써 젠더 갈등에 불을 지폈고, 이듬해 2월 16일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한 뒤 치러진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제19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강 교수는 이른바 ‘K-PC주의’ 발전의 토양이 된 문재인 정부를 ‘약자 코스프레’의 시대로 정의한다. 그는 “권력자의 ‘약자 코스프레’는 PC 개념 자체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PC의 오남용”이라고 강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와 비슷한 시기 PC의 본고장인 미국에선 오히려 이 담론에 대한 염증적 반응들이 새어 나왔다. 워싱턴포스트 기자 케이틀린 깁슨은 미 대선을 앞둔 2016년 1월 ‘PC라는 표현은 어떻게 칭찬에서 모욕으로 변했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PC는 더 이상 대학 내 성·인종·언어 규범을 둘러싼 전문 용어가 아니다”라며 “오늘날에는 조롱의 의미로 쓰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비평했다. 반(反)PC주의를 앞세운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그해 11월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거친 표현을 제외하면, 트럼프의 반PC주의 전략은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반환점인 2018년 예일대가 미국 성인 약 3000명을 상대로 수행한 심층 조사에선 응답자의 80%가 “PC주의는 미국 사회의 문제”라고 답변했다. 주목할 점은 이 비판이 보수층뿐만 아니라 자유·중도·흑인·히스패닉 등 PC와 가장 가까운 계층에서도 강하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PC의 모체는 다원성과 다문화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인종과 정체성, 이민자가 뒤엉킨 미국은 이런 다문화 문제가 태동하기에 가장 비옥한 환경이었고, 지난 한 세기 동안 흥망을 반복하며 여러 차례 다른 세력의 무기로 작동했다. 1930년대 미국 공산당에서 PC는 당원이 특정 사안에 대해 취해야 하는 올바른 입장·언어의 개념으로 사용됐다. 1964년 당시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자동차노조 대회 연설에서 “우리는 정치적으로 맞아서가 아니라 ‘옳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라고 발언한 것을 계기로 PC는 진보적 이상을 뜻하는 의미로 확장됐다. 1980년대에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부흥기를 맞았다. 일부 학생운동 단체들이 PC를 정체성의 상징으로 채택하며 자랑스러운 휘장처럼 쓰기도 했다.

 

미국에서 반PC가 본격적으로 태동한 건 1990년대부터다. 1990년 9월 미국 텍사스대는 커리큘럼 개편을 통해 고전을 배제하고 소수우대정책 등을 주제로 작문 수업을 진행하는 ‘차이에 대한 글쓰기’ 도입을 확정했다. 같은 해 10월 28일 뉴욕타임스는 주말판 1면 ‘PC 패권의 부상’ 제하의 기사에서 “대학 내 PC가 ‘이데올로기적 획일성’을 강요하는 경향으로 변모했다”고 지적하며 텍사스대 사례를 비판적으로 조명했다. 이듬해인 1991년 5월 4일 당시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이 미시간대 졸업식 연설의 대부분을 PC 비난에 할애하면서 이 논쟁적 담론은 급기야 주류 언론과 정치권력의 중심부로 본격 진입했다. “PC는 고귀한 욕망에서 시작됐지만, 결국 오래된 편견을 새로운 편견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PC의 핵심엔 ‘도덕’이 자리한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도덕의 영역이 정치 담론으로 악용될 때 결국 사회 갈등은 증폭됐다. 정치적 쟁점이 도덕의 문제가 될수록 타협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워크(woke·깨어있다는 뜻)’ 문화와 결합한 PC를 두고 또다시 격렬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사회운동·학계 등으로부터 오랜 기간 조정을 거친 미국과 달리 정치권으로 곧바로 흡수된 ‘K-PC’가 떠안은 과도함, 그리고 이에 따른 갈등의 위험성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정치권이 PC를 둘러싼 갈등을 선거 전략에 활용하는 점만 보면 미국과 한국은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미국은 정치권의 결집 전략이 과도해질수록 중도층·언론·시민사회가 강하게 반작용을 일으키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트럼프의 2020년 대선 패배는 이 같은 기제가 작동한 대표적 사례다. 반면 한국 사회에서 PC는 팬덤, 온라인 커뮤니티, 유튜브 세력과 결합해 갈수록 양극단의 지지층만 결집시키는 분노의 도구로 점철되고 있다. 누군가 무심코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한다면 잘못을 지적하고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도를 보완하면 될 일이다. “당신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정치적 낙인과 쐐기 박기는 사라져야 한다.

 

억압적 관용·해악 원칙… 사상에서 운동으로

■ PC주의 철학적 기반

 

PC주의의 사상적 기반은 ‘평등·반차별’이라는 규범적 직관이다. 비판이론, 후기구조주의, 현대 자유주의, 페미니즘 등 여러 사상이 겹겹이 얹힌 토대에 민권운동이 결합한 구조를 갖고 있다.

 

비판이론의 본산인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는 호르크하이머, 마르쿠제와 같은 굵직한 사회철학자들의 은거지였다. 그들은 권력 구조와 이데올로기 비판을 통해 사회적 억압이 어떻게 문화 속에 내재하는지를 분석했다. 마르쿠제의 ‘억압적 관용’(Repressive Tolerance) 개념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기존 지배 담론에 ‘비대칭적 관용’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을 낳았다. 이는 PC주의의 “언어는 권력이며, 불평등한 언어관행은 교정되어야 한다”는 명제로 이어진다.

 

후기 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인 미셸 푸코도 권력은 사회 제도뿐 아니라 언어, 즉 담론에 스며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PC주의 초창기 개념은 공산주의·사회주의 운동의 ‘당 노선에 대한 이념적 올바름’에서 나왔고 이후 신마르크스 운동과 만나면서 계급 이외에도 인종·성별 등 권력관계 전반을 문제 삼는 방향으로 확장됐다는 견해도 있다. PC주의는 존 스튜어트 밀의 ‘해악 원칙’(harm principle)을 차용해 언어적 표현은 타인에게 실질적 해악을 주는 경우 제한될 수 있다고 바라봤다.

 

페미니즘은 PC주의가 치켜든 횃불이었다. 오래전부터 언어가 어떻게 권력과 젠더 불평등을 재생산하는지 연구해 왔던 페미니즘은 직업명에서 성중립 표현 사용을 요구했다. 1960~1970년대 미국 흑인해방운동, 여성운동, LGBTQ 운동은 차별적 언어와 상징과의 싸움이었다. 이는 PC주의가 단순한 사상이 아니라 사회운동으로 자리매김하는 토대로 작용했다.

 

비판자들은 PC주의가 집단 정체성과 평등을 과도하게 중시한 나머지, 개인의 표현의 자유·진리 탐구를 억압하는 규범으로 변질됐다고 지적한다. 이를 ‘좌파적 집단주의 이념’ 혹은 ‘정치화된 도덕 검열’로 규정한다. 캐나다의 심리학자 조던 피터슨 등은 ‘PC에 대하여’(2019)에서 ‘PC주의는 과연 진보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찬반토론을 벌인 바 있다. PC주의를 둘러싸고 이어지고 있는 사회적 진영 간 대립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PC주의가 차용한 이론

비판이론: 권력구조와 이데올로기 분석, 사회적 억압은 문화속에 내재

후기구조주의: 언어적 규범은 정치적 행위, 차별적 언어의 해체 필요

페미니즘: 언어는 권력의 불평등 재생산, 젠더 정체성은 언어로 규정

다문화 자유주의: 소수자 보호를 위한 언어적·제도적 배려 자체가 정의

민권운동: PC주의가 철학적 담론이 아니라 사회운동으로 확립되는 계기⊙

김성훈 기자

 

(3) 삼권분립

12-10 “재판부는 국민을 수호하는 역할”… 사법부가 선출된 권력에 밀리면, 자유는 사라지고 국가는 망한다

권력분립 사상의 초석 놓은 존 로크의 ‘이권 분립’

입법권 우월성 인정했지만 “힘 방치하면 주권침해” 우려

몽테스키외 “권력집중 막고 법의 지배 실현돼야 국가 지속”

美페더럴리스트 페이퍼 “법관의 강한 신분보장 필요”

/게티이미지뱅크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월 11일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권력에 서열이 있다”는 발언으로 삼권분립 논쟁에 불을 붙였다. 야당은 “삼권분립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른 반헌법적 선언”이라며 반발했다. 거대 여당이 대법관 증원과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추진 중인 가운데, 현직 대통령이 국회와 행정부가 사법부보다 우위에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삼권분립 시스템에 대한 엄중한 위협으로 느낀 것이다.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최고 권력은 국민, 그리고 직접 선출 권력, 간접 선출 권력”이라며 서열을 매겼다. 그러면서 “가장 직접적으로 국민 주권을 위임받은 입법부에 국가 시스템을 설계할 권한이 있고, 사법부는 입법부가 설정한 구조 속에서 판단하는 것”이라는 근거를 제시했다. 이후 정부와 여당이 사법개혁 시도를 지속하며 논란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과 행보를 수백 년 전 사상가들은 어떻게 판단할까. 삼권분립은 국가 권력을 입법·행정·사법 세 부분으로 나누고, 각 기관이 독립적으로 기능토록 하자는 민주주의 정치의 근본 원리다. 정치·헌법·철학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 대통령의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사상가들이 국민 주권의 위임 정도와 부여된 권력의 모습에 따라 삼권에도 격차가 있다고 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힘의 차이를 방치하면 권력을 위임받은 권력자들에 의해 국민 주권이 침해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상가들은 권력에 자제 능력은 없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권력 간 상호 견제 시스템이 깨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보고, 약한 권력을 보완하면서 강한 권력을 제어하는 방식으로 더 나은 정치 제도를 발전시켜왔다.

 

이 같은 삼권분립은 아리스토텔레스(BC 384∼BC 322)와 로마 공화정에서 출발, 존 로크(1632∼1704)와 몽테스키외(1689∼1755)를 거쳐 미국 건국 과정에서 제도화되면서 점차 정교해지고 현실적으로 바뀌었다.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의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은 상호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받아들이거나 헌법에 반영하고 있다.

 

초기에는 집중된 권력을 분리하는 것 자체가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국가는 단순히 생존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시민의 덕과 공동선을 실현하는 장치”라고 밝혔다. 이를 전제로 “모든 권력은 집중되면 부패하기 쉽다”며 권력 분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발상이 시대를 따라 내려가며 각국에서 권력 집중을 경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만들어졌다.

 

근대 이후에는 권력이 권력을 감시·견제하도록 하는 시스템이 옳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권력분립 사상의 초석을 놓았다고 평가받는 존 로크도 당시에는 현대적 의미의 삼권분립 대신 ‘입법권·집행권’과 ‘연합권’으로 나뉘는 이권분립을 제시했다. 로크는 ‘통치론’에서 “정부가 존재하는 한, 모든 경우에서 입법권에 우월성(Supreme power)이 있고 최고 권력”이라고 못박기도 했다. 이런 논리라면, 로크는 ‘권력에 서열이 있고 입법권이 최우선’이라는 이 대통령의 발언에 이의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로크 역시 “정부의 권한이 제한되지 않으면 자유가 위협받는다”는 중대한 단서를 달았다. 기본적으로 위임과 시민 동의(consent of the governed)에 기반해야 권력에 정당성이 부여된다고 강조했다.

 

몽테스키외는 현대적 의미의 상호견제 개념을 도입한 ‘삼권분립’을 최초로 제시하며 한 발 더 나아갔다. 입법부·행정부·사법부가 서로 견제하면서 균형을 이뤄야, 그 틀 안에서 시민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될 수 있다고 봤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로마를 포함한 역대 국가들이 멸망한 공통 원인을 분석했는데, 국가는 도덕성이나 지도자의 자질이 아닌 체제를 지탱하는 정신이 부식됐을 때 망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때문에 삼권분립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권력의 집중을 막고, 시민들의 도덕적 기반 위에 세워진 ‘법의 지배’가 실현될 때 국가가 지속될 수 있다고 했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시민이 자유로우려면 한 시민이 다른 시민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하는데, 동일한 인간이나 단체의 손에 입법권과 집행권이 결합돼 있으면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권이 입법권·집행권에서 분리되지 않으면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가 나머지 선출된 권력에 밀리거나 결탁돼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우려했다. 몽테스키외는 “재판권이 입법권에 결합되면 재판관이 곧 입법자이기 때문에 시민의 생명과 자유에 대한 권력 행사가 자의적일 것”이라며 “법률을 제정하는 권력과 공공의 결정을 실행하는 권력, 범죄나 개인들의 분쟁을 심판하는 권력을 모두 행사한다면 (공동체를) 망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몽테스키외에게서 영향을 받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도 사법부에는 더 강한 보호장치가 필요하다고 봤다. 알렉산더 해밀턴(1755∼1804)은 미국 헌법 해석 자료인 ‘페더럴리스트 페이퍼’ 78편 사법부(The Judiciary Department)에서 “권력을 분리해 서로 견제하게 하는 것이 다수의 전횡을 막으면서 정의로운 정책을 실현하는 길”이라면서도 “사법부는 입법부·행정부와 달리 힘(force)도 의지(will)도 없이 오직 판단(judgement) 권한을 갖기 때문에 가장 덜 위험한 권력기관(the least dangerous branch)”이라고 진단했다. 이를 근거로 법관에 대한 강한 신분보장, 법원의 사법심사(Judicial Review) 권한 등 삼권의 한 축을 보강하기 위한 장치들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유에 대해서는 “헌법은 국민이 수여한 것이고 의회는 단지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인일 뿐”이라며 “재판부는 의회가 아닌 국민의 의사와 헌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1805∼1859)은 신생 국가 미국의 체제를 진단한 저서 ‘아메리카의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는 법과 제도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기계적 권력 분립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토크빌은 “선출 권력 중심 민주주의에서는 전횡이 초래된다”며 다수의 횡포에 대해 경고했다. 토크빌은 “시민사회와 언론, 지역사회의 자발적 참여가 있어야 지속가능한 권력 견제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해진 결과, 대리인에게 무한한 권력을 위임하는 ‘민주적 전제정치’의 출현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폴란드, 대법관 조기퇴임·멕시코는 판사 직선제… 잇단 ‘판결 정당성’ 논란

■ 사법부 흔든 나라들

 

대통령과 다수 여당 주도로 사법부에 대한 간섭을 강화하는 내용의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던 국가들이 최근 후폭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들은 민주주의 수준이 낮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폴란드 집권당이었던 ‘법과 정의당(PiS)’은 지난 2018년 대법관의 정년을 낮춰 조기 퇴임시키는 방식으로 법관 물갈이를 시도했다. 명분은 ‘국민의 뜻’과 ‘사법부 부패 척결’이었다. 이듬해에는 정권에 비판적인 판사를 징계할 수 있는 징계위원회까지 대법원에 설치됐다.

 

유럽사법재판소(ECJ)는 다년간의 심리 끝에 “폴란드 정부가 사법 독립 원칙을 침해했다”고 결론 내렸다. 유럽연합(EU)도 법치주의 훼손과 EU법 위반을 이유로 폴란드에 제재를 가했다. 폴란드는 2023년 정권교체 이후 뒤늦은 복구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해에는 EU 집행위원회에 ‘법치주의 회복 계획’을 제출했다. 하지만 사법개혁 이후 임명된 판사와 이들이 내린 판결에 대한 정당성 논쟁이 불거지는 등 내홍이 심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멕시코에서는 지난해 9월 판사 직선제가 의회에서 통과됐다. 그 결과, 대법관을 포함한 연방판사 881명을 뽑는 국민 직접 투표가 지난 6월 시행됐다. 2027년에는 판사 1880명이 추가로 선출된다. 멕시코 정부와 여당은 “민주주의 발전과 국민 참여”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비정부기구인 휴먼 라이츠 워치는 “멕시코 사법부가 행정부 영향력 아래 놓였고 독립성이 훼손됐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헝가리와 베네수엘라도 최근 ‘부패 정화’를 명분으로 정부 기관에 판사 징계권을 부여하거나, 의회 주도로 대법관 수가 대폭 늘어난 국가들이다. 이들은 스웨덴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가 매년 발표하는 ‘V-DEM 자유 민주주의 지수’ 순위가 경제 규모에 비해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 기준 폴란드는 46위, 멕시코 108위, 헝가리 95위, 베네수엘라 168위다. 한국은 41위다.

 

■ 참고

법의 정신

 

프랑스 사상가 몽테스키외가 1748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익명으로 발간한 총 31편의 저서. 삼권분립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현대 민주주의 체계와 전 세계 헌법에 영향을 미친 고전.

페더럴리스트 페이퍼

알렉산더 해밀턴 등 미국 연방주의자 3명이 1787∼1788년 뉴욕시(市) 신문에 필명으로 기고한 85개 논문 모음집. 권력 집중을 막기 위해서는 삼권분립 체제가 필수라는 내용 등이 담겼다.⊙

강한 기자

 

(4) 종교와 AI

12-24 말벗·상담가에서 절대자로… 호모 데우스가 만든 AI ‘AI 데우스’를 꿈꾸다

교황 레오 14세 “AI 군사적 적용이 분쟁비극 악화”

‘힙불교’ 뜨고 AI목사·AI운세 등 2030에 인기

기성종교에 실망한 사람들에 AI가 새 안식처로

삶의 모호함 해소하고 더 나은 앎을 얻으려는 시도

/게티이미지뱅크

 

“지도자들 사이에서 생사에 관한 결정이 점점 더 기계에 ‘위임’됨에 따라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는 모든 문명을 지탱하고 보호해온 휴머니즘의 법적·철학적 원칙에 대한 전례 없는 파괴적인 배신입니다.”

 

제도권 종교의 건재함을 상징하는 존재. 교황이 전쟁에서의 인공지능(AI) 사용을 강하게 비판했다. 레오 14세 교황은 최근 바티칸 세계평화의 날 메시지에서 “기술의 추가적 진보와 AI의 군사적 적용이 무력 분쟁의 비극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AI가 인간의 많은 부분을 대체하는 때, 인문주의를 수호하려는 교황청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무기로서의 AI’를 우려한 발언이 아니다. 핵심은 모든 사회·기술적 선택 기준이 ‘인간 존엄성’과 ‘책임성’이어야 한다는 것. 결정을 기계에 위임하는 것은 ‘문명의 퇴보’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챗GPT 등 생성형 AI에 정보와 지식, 판단을 위탁해버린 현대인을 향한 경고지만, 한편 덧없게도 들린다. 힘과 신뢰를 잃은 제도 종교를 대신해, AI가 새로운 영성의 세계를 활짝 열어젖힌 듯 보여서다. 일과를 AI에 털어놓고 위안받거나, 일과 진로 등을 상담받고 결정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한때 아주 믿을만한 인간에게만, 혹은 신에게만 하던 행위다. 즉, AI는 인간만이 아니라, 이제 신을 대신할 기세다. ‘호모 데우스’(신이 된 인간)의 욕망으로 탄생한 AI가 ‘AI 데우스’(신이 된 AI)를 꿈꾸는 시대다.

 

◇‘AI 예수’에 고해성사하고, 신년운세는 ‘AI 무당’에= 16∼18세기 계몽주의 시대 이후 많은 사상가나 학자들이 ‘종교의 종언’을 예측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유럽 지역 교회들이 거의 빈사 상태인 것을 생각하면, 종교는 이미 끝났다. 그러나, 2025년의 대한민국을 보면, ‘종교의 시대’처럼도 보인다. 불교는 2030 젊은층에게 ‘힙불교’로 지지를 얻고, 절에서 진행하는 남녀 만남 프로그램은 수백, 수천 대 1의 경쟁률을 보인다. 동시에, AI가 등장했다. 대한불교조계종은 ‘AI 스님’을 내놓았다. ‘남편과 자주 다툰다’거나 ‘공부하기 싫다’거나 하는 일상생활 속 고민을 입력하면, 불교 경전을 학습한 AI가 이를 바탕으로 답을 내어준다.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코너 중 하나가 ‘마애부처님AI’라는 챗봇 상담실이다.

 

‘AI 무당’ 등 무속 신앙의 자리는 오래전에 AI가 꿰찼다. 사주 해석과 운세 데이터를 학습한 AI 운세 서비스가 2030 세대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사용자가 정보를 입력하면 운세 풀이 서비스에서부터 성격유형지수(MBTI), 혈액형, 관상까지 분석해 더 정교한 운세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가장 최근엔 챗GPT를 친구처럼, 선생님처럼, 그리고 상담자이자 절대자처럼 여기는 풍조도 생겼다. 이를 종교가 아니라 할 수 있을까. 세상과 인간, 자기 자신에 대한 불안과 의문을 동력 삼아 묻고, 해결책을 구하려는 것이 인간이 종교를 찾는 일차적인 이유다. 그러니, 지금 AI는 신까지는 아니라 해도 인간이 만든 종교의 역할을 충분히 대신한다. 대체될 효용성이 높다. 니체가 기성 종교를 비판하며 그것이 죄책감과 죄의식 등 ‘삶의 짐’을 안겨준다고 했으나, 이 제도 밖 종교는 우리가 가장 갈구했던 자유함과 활기를 제공한다.

 

캐나다의 목회 연구자 브룩시 카베이는 2008년 출간된 ‘예수, 종교를 비판하다’에서 “사람들이 기성 종교에 실망한 채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 모르고 있다”고 진단했는데, 이제 AI가 그들의 ‘갈 곳’이 되어주고 있는 것이다. 책의 원제는 ‘종교의 종언(The End of Religion)’으로, 카베이 역시 제도 종교는 쇠락한다면서도 사람들의 ‘종교적 행위’는 계속된다고 내다봤다. 즉, 교회나 사원이 모두 사라져도 기도와 회개, 용서와 구원, 수행과 수양, 사후세계 소망 등은 절대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 미디어와 종교의 관계를 연구해 온 박진규 서울여대 교수는 “과학이 세상의 이치를 밝혀줄수록, 이성과 합리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진다”면서 “그런 마음이 다양한 ‘종교적 행위’로 발산되는 현상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스타트업이 내놓은 AI 목사 ‘초원’의 월평균 이용자가 15만 명을 넘고, 하루 수천 개의 질문이 올라온다. ‘AI 신당’이 차려지기도 했다. 카이스트 연구팀은 올해 초 AI 점괘를 봐주는 신당을 꾸렸는데, 다수의 참여자가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놓으며 심리적 위안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해외에선 독일 바이에른주 성바울교회에서 챗GPT로 개발된 AI 목사가 설교를 해 화제가 됐다. 수염을 기른 흑인 남성이 대형 스크린에 등장해 “현재에 집중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석 달 만에 중단됐으나 스위스 루체른대의 ‘기계 속의 신’ 프로젝트도 이목을 끌었다. 100개 언어로 소통 가능한 홀로그램 AI 예수에게 고해성사를 하는 실험. ‘신성모독’ 논란을 빚기도 했다. 기독교교육학을 연구하는 신학자 강성욱은 ‘종교와 AI’에서 대중으로서 종교와 AI의 공통점을 주목했다. 그것은 삶의 모호함을 해소하고 싶고, 더 나은 앎을 얻으려는 것이다. 강 연구자는 “여전히 종교는 해결책을 찾기 쉽지 않은 부조리함과 개인이 마주하는 고통 속에서 희망 또는 원망의 대상으로 소환된다”고 했다.

 

◇‘종교의 종언’의 종언? …‘AI 데우스’는 종교를 쇄신할까= AI는 기성 제도권 종교를 어떻게 바꿔나갈까. 강성욱 연구자는 이를 “AI는 종교를 망치러 온 종교의 구원자”라고 갈음했다. 하나는 ‘제도로 자리 잡은 종교의 현재 모습’이고, 하나는 ‘제도화되지 않은 종교’를 말한다. 그의 정리를 다시 풀면 “제도화된 종교를 위협할 것처럼 보이는 (종교를 망치러 온) 인공지능은, 종교를 제도 이전 혹은 제도 이후의 종교로 방향 전환시키는 역할(구원자)을 수행할 것이다”다. 기성 종교가 AI와 같은 새롭고 큰 충격으로 스스로 돌아볼 수 있으며, 또한 그러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현실은 ‘AI 문해력’에 치중하는 모양새다. 방향 전환을 위한 사유는 부족한 듯 보인다. 교계에 따르면, 이미 국내 개신교 목사와 전도사 등 목회자의 70% 이상이 AI를 활용해 설교문을 작성한다. 이에, 류영모 한소망교회 원로 목사가 주축이 된 ‘나부터포럼’은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효율을 위해 사용하지만, 영적 진정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를 제시하겠다는 것. 발 빠른 대처는 돋보이지만, AI 설교를 들어야 하는 ‘인간’에 대한 고민이 빠져 아쉽다. 그만큼 위기감이 크기 때문이리라. 박진규 서울여대 교수는 “AI가 아니라 종교가 지닌 본질적 고민을 더욱 깊게 해야 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인간·인간다움·인간성이 무엇인지를 사유하지 않으면 제도 종교의 미래는 밝지 않다”고 경고했다. 또, “AI를 기반으로 최근 무속이 다시 관심을 끌고 있는 것도 위협으로만 여기지 말고 ‘종교성의 회복’ ‘종교적 행위’의 확산으로 바라보면, 새로운 길이 보일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니체·헤겔 등 주장한 초월적 가치의 붕괴… 인식의 최고 단계, 종교서 철학으로 변화

■ 종교의 종언

 

‘종교의 종언’은 처음 신앙의 소멸이나 종교의 폐기를 뜻하는 급진적 선언이었다. 16∼18세기 계몽주의 이후 이성과 과학이 확산되며 종교는 미신적 세계관으로 간주됐다. 이후,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했는데 이는 신앙의 소멸이 아니라 초월적 가치의 붕괴를 알린 것이다. 헤겔도 ‘종교의 종언’을 고했는데, 이는 종교가 역사적 역할을 다했다는 뜻이다. 인식의 최고 단계가 종교에서 철학으로 넘어갔다는 의미다.

 

시간이 지나며 ‘종교의 종언’은 의미를 확장해, 오늘날 이는 제도·권위·교리 중심 종교의 영향력 약화를 가리킨다. 동시에 인간의 의미 추구와 윤리적 질문은 여전히 남아, 종교적 기능이 철학·심리학·정치 이념·영성 담론 등으로 분산·변형되고 있음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즉, 종교의 죽음이 아니라 형식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 참고

호모 데우스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 이후 내놓은 저작. AI와 유전공학, 종교, 문화 등의 흐름을 통해 미래 사회가 인본주의 이후 어떤 윤리적 선택과 위기를 맞이할지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예수, 종교를 비판하다

예수를 종교에 대한 가혹한 비판자로 해석하는 책. 목사인 저자는 인간 현실의 산물인 종교제도의 폐해를 지적하며, ‘종교를 뒤엎는 영성’에 대해 논한다.⊙

박동미 기자

 

(5) 국제기구 무용론

2026-01-16 무능·무력한 국제기구… 美 ‘힘의 논리’에 무너져 ‘제국의 시계’ 앞당긴다

우크라 침공·북핵 개발·마두로 체포…

유엔, 국제사회 질서유지·갈등해소 역할 못해

국제기구의 본질은 협상·중재·조정

본질’ 되찾기 위한 각국 협력·연대 절실

/게티이미지뱅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군 특수부대를 베네수엘라로 침투시켜 3시간 만에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체포한 것을 두고 ‘국제기구 무용론’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자 전쟁, 북한 핵개발 등 국제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던 유엔 등 국제기구가 미국이 보여준 ‘힘의 논리’ 앞에서 또다시 무능의 민낯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영국, 캐나다, 독일 등 미 동맹국 지도자들까지 “국제법이 준수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으나 실질적 효과를 기대하기엔 어려워 보인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후 각종 분야의 국제기구 설립과 각국 협력을 주도했던 미국이 국제기구를 불신하고 ‘패싱’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협력의 시대’가 완전히 종식되고 ‘제국의 언어’가 부활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국전쟁처럼 명목상으로라도 국제기구 합의가 전제됐던 것에서 벗어나, 명분만 앞세운 강대국의 개입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경우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부정선거로 권력을 잡은 마약수괴 체포’라는 정치적 명분을 ‘주권 존중’이라는 국제법적 정당성보다 우선시했다. 마두로 대통령 체포 나흘 만인 7일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 산하기구 등 국제기구 66곳에서 탈퇴하겠다는 각서에 서명하면서 향후 국제기구가 더욱 무력화할 것이란 전망에도 무게가 실린다.

 

◇‘상위 권력’ 없는 국제기구는 유명무실= 학계의 이론가들은 일찍이 국제기구 무용론을 주장해왔다. 대표적으로 공격적 현실주의 이론을 창시한 미국 시카고대 존 미어샤이머 교수는 그의 저서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미국 외교의 거대한 환상’에서 국제기구가 전쟁을 원하는 국가를 막을 힘이 없다고 지적했다. 강대국 지원에 의존하는 국제기구가 특정 국가에 규칙이나 규범을 강요할 실질적이고 독립적인 힘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국제사회에서 반규범적 행동을 저지른 국가를 처벌할 수 있는 이른바 ‘상위 권력’이 없다고 설명했다. 각 국가 내부에는 경찰 등 국민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통제할 기관이 있지만, 여러 국가가 모인 국제정치는 중앙집권적 권력이 없는 ‘무정부 상태’(Anarchy)라는 것이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다른 국가와 협력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할 때는 강대국들이 국제기구의 룰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규범을 깨는 것이 자국의 생존과 이익에 더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리면 국제기구의 협약쯤은 무시한다고 강조했다.

 

◇협상·중재·조정 등은 국제기구의 존재 이유= 반면, 국제기구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이들이 여전히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데 일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 학자들도 있다. 자유주의 국제정치학자인 로버트 코헤인은 그의 저서 ‘헤게모니 이후’에서 국제사회의 무정부성을 인정하면서도 이 같은 상태에서도 국제기구를 통한 협력이 일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국제기구가 각국에 정보를 제공하고, 상호 간 모니터링을 쉽게 해주고, 협력 비용을 감소시키고, 반복적인 협력을 통한 규칙을 설정해주고, 규범 위반 시 일부 제재 기능을 한다고 설명했다. 또 현실주의와 자유주의의 타협점을 지향하는 영국학파의 헤들리 불 역시 자신의 저서 ‘무정부 사회’에서 국제기구가 국가 간 입장 조율의 장(場) 역할을 한다고 짚었다. 특히 그는 협상, 중재, 조정 등 각국이 전쟁 대신 선택할 수 있는 외교적 해결책들이 국제기구를 통해 이뤄지고 나아가 제도화·규칙화된다고 강조했다.

 

◇우크라·가자 전쟁·북핵 앞에서 무기력= 하지만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하면서 결국 현실주의 국제정치 학자들이 내세운 국제기구 무용론이 현실에서도 증명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실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부터 유엔에서 긴급회의가 수차례 열리고 현재까지 최소 9개의 전쟁 반대 결의안이 채택됐으나 러시아는 4년간 침략을 멈추기는커녕 무력으로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의 대부분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2023년 10월 시작된 가자 전쟁도 최소 6개의 휴전 및 이스라엘 인질 석방 촉구 결의안이 유엔총회에서 채택됐다. 그러나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전투를 지속했고, 그간 양측이 가까스로 맺었던 휴전도 두 차례나 깨졌다.

 

지난 2006년부터 핵무기 실험을 시작한 북한에 대해서는 유엔 안보리 차원의 경고가 여러 차례 있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5개 상임이사국의 만장일치로 이뤄지는 안보리 결의안은 그 무게가 제법 강력한 편이다. 그러나 안보리가 그동안 북핵 규탄 결의안을 최소 9건 채택했음에도 북한의 핵개발을 막지 못하는 등 한계를 드러냈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부터는 러시아가 자국에 군대를 파병한 북한을 노골적으로 감싸면서 안보리 결의안 통과조차도 힘들어졌다.

 

◇美 패싱에 쪼그라드는 국제기구… 中 부상이 가장 큰 우려= 그간 국제기구가 무력하다며 노골적 불만을 내비친 트럼프 대통령마저 국제기구를 패싱하면서 국제기구의 역할은 더 빠르게 약화하고 있다. 공화당 의원들은 유엔 탈퇴 법안까지 발의한 상태다.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유현석 교수는 “미국이 그간 국제기구를 지원하는 역할을 해왔다”면서 “지금은 미국이 그 짐을 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국제기구는) 제 역할을 못 하게 된다. 사실상 거기서 끝”이라고 짚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세계 패권을 노리는 중국이 국제기구를 패싱하고 대만 침공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국의 마두로 대통령 부부 체포 등을 막지 못한 국제기구가 대만 공격에도 제대로 대응할 수 없을 것이라고 중국이 확신을 갖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가 각각 동북아·유럽 전역으로 세력을 확산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라도 국제기구가 제 역할을 다시 찾는 것이 시급하다. 그나마 국가 간 무력 충돌의 마지막 제어선인 협상, 중재, 조정이 국제기구의 틀 안에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미국 우선주의에 몰두하는 미국을 다자주의적 국제질서에 복귀하게 할 유인책도 필요하다. 유 교수는 “지금까지 국제기구가 제 역할을 한 건 미국 등 강대국이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라며 국제기구의 역할과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한 세계 각국의 연대와 협력을 강조했다.

 

이름값 못하는 ‘국제형사재판소’… 푸틴·네타냐후 등 해외영토 활보

■ 유엔 ICC 구속력 논란…

 

유엔 산하에서 법적 구속력과 집행력이 가장 높은 게 국제형사재판소(ICC)다. 하지만 이 기구도 이름값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ICC가 체포영장을 발부한 몇몇 혐의자들은 여전히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하물며 영장 집행은 꿈도 못 꾼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 체포 작전을 ‘로켓 배송’처럼 속전속결로 처리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대조된다. ‘국제기구 무용론’에 오히려 더 힘이 실리는 이유다.

 

대표적으로 ICC는 지난 2023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푸틴 대통령의 지시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한 이후 우크라이나 아동을 납치해 러시아 본토 등으로 불법 이주시키고 있다는 전쟁 범죄 혐의였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자신에게 영장을 발부한 ICC와 국제사회가 보란 듯이 영장 발부 직후 러시아가 강제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찾아 자유롭게 활보했다. 지난 2024년 9월에는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를 방문했다. 몽골은 ICC 가입국이기 때문에 ICC 설립 근거인 ‘로마 조약’에 따라 푸틴 대통령이 영토에 진입한 즉시 협조할 의무가 있으나, 오히려 의장대를 동원해 그의 방문을 성대히 환영했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역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전쟁을 벌이던 이스라엘군이 ‘기근’을 무기화했다는 전쟁 범죄 혐의로 ICC에서 체포영장을 받은 상태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 역시 지난 4월 헝가리를 방문해 환대를 받았고, 헝가리는 네타냐후 총리의 방문을 계기로 ICC 탈퇴를 일방적으로 선언하기도 했다.

 

■ 참고

존 미어샤이머 교수

공격적 현실주의를 내세운 인물로, 국가보다 상위 권력이 없는 무정부 상태의 국제사회는 생존을 위해 끝없이 패권을 추구하며 이 과정에서 국제기구를 통한 협력은 불가능하다고 주장. 대표 저서로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The Tragedy of Great Power Politics)과 ‘미국 외교의 거대한 환상’(The Great Delusion)이 있다.

 

무정부 상태(Anarchy)

개별 국가 내에 정부가 부재한 상태가 아닌, 국가들이 모인 국제사회를 통제할 ‘상위 권력’의 개념이 부재하다는 의미. 유엔 등 각종 국제기구는 각국이 자발적으로 따르는 규범을 만들고 협력하도록 도와줄 수는 있지만, 특정 국가가 국가 간 규범이나 약속을 어길 때 처벌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한계를 지적. 이는 개별 국가 내에서 개인이 범죄를 저지를 때 ‘상위 권력’인 정부 기관이 해당 개인을 제재하고 처벌할 수 있는 것과 대조.⊙

박상훈 기자

 

(6) ‘反이민정서’ 전세계 확산

01-28 1멜팅팟·톨레랑스의 시대는 끝났다

이민자 역사 위에 세워진 미국

경제 불안·정체성 위기감이 혐오 키워

프랑스도 극우 득세에 ‘관용의 가치’ 잃어가

자유민주주의 안에서 옳고 그름 따져야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시에서 연방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의 총격에 의한 사망 사건이 또다시 발생했다. 브라이언 오하라 미니애폴리스 경찰국장은 기자회견에서 재향 군인을 돌보는 간호사인 백인 남성 제프리 프레티(37)가 연방 요원의 총격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프레티의 아버지에 따르면 그는 연방정부의 이민 단속에 반대해 시위에 참가해 왔다. 특히 이번 사건은 17일 전 르네 니콜 굿(여·37)이 ICE 요원의 총에 맞아 숨진 현장에서 약 1.6㎞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벌어졌다.

 

◇ 붕괴하는 멜팅팟과 미국적 가치의 상실= ‘이민자의 나라’ 미국이 포퓰리스트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체제에서 이민자 혐오의 선봉 국가로 변질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1일 트럼프 정부가 메인주에서도 이민자 체포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16일에는 조지아주 이민자 구금시설에서 교통법규 위반으로 체포됐던 멕시코 국적자 헤베르 산체스 도밍게스(34)가 수감 6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트럼프 정부는 1∼2기 동안 멕시코 국경에 대규모 장벽을 건설하고, 다수 이슬람 국가 국민의 입국을 전면 또는 부분적으로 금지하며, 복지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이민자에게 영주권 부여를 거부하는 등 온갖 반이민 정책을 펼쳤다.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은 다양한 인종의 ‘멜팅팟(Melting Pot·용광로)’으로 불려 온 미국 사회의 전통적 가치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동이다.

 

미국은 17∼18세기 식민지 시기부터 이민자들이 들어와 정착한 곳이고, 20세기 초까지 유럽·남미·중국·아프리카 등에서 수백만 명이 들어왔던 나라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은 상원의원 시절인 1958년 저서 ‘이민자의 나라’를 통해 미국이 이민의 역사 위에 세워진 나라임을 강조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은 원주민을 제외하고 ‘순수한 미국인’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민자들이 미국의 경제 성장과 군사력, 과학기술 발전에 실질적으로 공헌했다고 분석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은 “미국이 문을 닫는 순간, 미국은 스스로의 이상을 배신한다”고 역설했다.

 

◇ 톨레랑스를 잃어 가는 프랑스= 프랑스는 과거 이민자의 천국이었고, 소위 ‘톨레랑스(관용)’는 프랑스의 상징적 가치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현재는 이민자에 적대적인 극우파 세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장마리 르펜은 2002년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NF) 소속으로 16.9%를 득표했는데, 딸인 마린 르펜은 2017년 대선에서 1차 21.3%, 결선 33.9%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2022년 대선에서는 국민연합(RN) 후보로 나서 1차에 23.2%, 결선투표에선 무려 41.5%를 얻었다. 심지어 지난해 12월 26일 AFP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여론조사 기관 톨루나·해리스 인터랙티브가 성인 109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조사 결과, 여야 정치지도자를 통틀어 1위가 조르당 바르델라 RN 대표(42%)였다. 중도 성향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현재 프랑스 정부의 정책조차 이민자에 대한 혜택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프랑스는 올해부터 모든 유학생에게 지급하던 주거 보조금을 중단하고, 유럽연합(EU) 출신이 아닌 학생에게 등록금을 대폭 인상하기로 했다.

 

◇ 반이민주의 정치는 왜 확산하는가= 카스 무데 미국 조지아대 교수(국제관계학)가 쓴 ‘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에 따르면, 21세기 세계의 극우 세력은 2001년 9·11 테러와 2008년 금융위기, 유럽으로의 난민 유입이 폭증했던 2015년 ‘난민 위기’로 반사이익을 얻었다. 모든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이 이 영향을 받았고, 우익 포퓰리즘 정당과 정치인들이 주류로 수용될 수 있었다. 게다가 극우 정당들은 이제 대중 정당으로 변신하고 마린 르펜 같은 여성 지도자도 등장하면서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무데 교수는 유권자가 극우 정당에 투표하는 현상에 대해 경제적 불안(박탈감)과 문화적 반발감(정체성에 대한 위협)이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로저 이트웰 영국 배스대 명예교수(비교정치학)와 정치평론가 매슈 굿윈(전 켄트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은 저서 ‘국가 포퓰리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반란’에서 ‘4D 모델’을 제시했다. 4D는 파괴(Destruction), 박탈감(Deprivation), 불신(Distrust)과 탈노선(Dealignment)이다. 대규모 이민과 세계화가 국가 정체성과 문화를 파괴한다는 논리가 포퓰리즘 정서를 강화하고, 경제적·사회적 변화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도 포퓰리즘에 대한 지지를 확대하는 요인이 된다. 이는 기존 주류 정치 엘리트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전통적 정당에 대한 충성도가 약해지면서 급진적 정치 세력에 기회가 된다는 분석이다.

 

◇ 이민자에 대한 혐오, 불관용으로 맞서야 하는가= 칼 포퍼는 유명한 정치철학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관용의 역설’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포퍼는 “우리는 필요하다면 무력을 써서라도 불관용적인 사상을 억누를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며 “불관용을 설파하는 어떤 운동이든 법의 테두리 밖에 있으며, 불관용과 박해를 선동하는 일은 살인, 유괴, 노예거래의 부활처럼 범죄로 여겨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갖는 위험성도 있다. 영국의 언론인 겸 정치평론가 더글러스 머리는 ‘유럽의 죽음’에서 유럽은 정체성 위기를 초래한 이민에 ‘중독’됐다고 진단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대규모 무슬림 이주가 이뤄진 시기에 유대인을 겨냥한 공격이 곳곳에서 증가했다. 반면 무슬림에 대한 심각한 공격은 대부분 (기독교 반이민주의자가 아니라) 다른 무슬림이 저지른 것이었다. 따라서 머리는 이민자에 대한 적절한 규제는 필요하며, 그것을 인종주의나 민족주의와 연결해서는 안 된다고 봤다.

 

반이민주의가 바람직한 사상이 아니란 이유로 탄압해도 된다는 것은 자유주의 이념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머리는 “과거 많은 사회당과 극좌 정당이 주류에 진입하는 것을 용인받고 그 과정에서 견해를 누그러뜨린 것처럼 민족주의 정당들도 과거 범죄 때문에 영원히 비난받는 게 아니라 정치적 토론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게 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이민주의에 비판적인 무데 교수도 “지나친 인권 침해와 과도한 무력 사용은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약화해 지금보다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며 “폭력적인 극우 단체와 개인에 대응할 때도 자유민주주의의 한계 내에서만 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韓 이주배경인구 5%인데… 맹목적 외국인 혐오 여전

■ 한국은 이민후진국

 

이재명 대통령이 용산을 떠나 청와대에서 집무를 시작했던 지난해 12월 29일. 이 대통령의 출근에 맞춰 청와대 인근에서 열린 각종 시위 중에는 베트남 이주노동자 뚜안 씨를 추모하는 집회도 있었다. 대구 성서공단 내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그는 지난해 10월 정부의 미등록 이주민 합동단속을 피하려다 추락해 숨졌다. 뚜안 씨의 아버지가 108배를 했고, 대책위원회 관계자들도 함께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에 3개월 이상 거주한 이주배경인구는 271만5000명으로, 총인구의 5.2%를 차지했다. 이주배경인구란 본인이나 부모 중 한 명 이상이 이주 배경을 가진 사람으로, 이 비율이 5%를 넘으면 다문화 사회로 본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이민 후진국이다. 외국인·이민자에 대한 배척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일부 극우 진영에서는 선거 개입 음모론과 맞물려 중국인뿐 아니라 오래전 한국에 정착한 화교, 중국 동포마저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다. 좌파 진영의 맹목적 반일주의 역시 동전의 다른 면일 뿐이다.

 

정부의 이민정책도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법무부 외국인정책실무위원장을 지낸 김태환 한국이민정책학회 고문(전 회장)의 저서 ‘다문화 사회와 한국 이민정책의 이해’에 따르면 우리나라 이민정책은 ‘이주노동자’와 ‘여성결혼이민자’에만 초점을 맞춘 데다 각자에 대한 정책 목표가 전혀 달랐다. 이주노동자 정책은 저임금 노동자를 수입하되 과도한 유입을 방지하기 위해 계약 기간 이후 영주를 철저히 제한했다. 그 결과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계속되고, 불법체류자 감소에도 실패했다. 반대로 여성결혼이민자에 대해서는 복지 혜택을 주고 사회에 동화시키고자 했다. 이는 한국에 쉽게 들어오기 위한 수단으로 결혼을 이용하는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정책이다. 김 고문은 “정부의 이민정책은 이주노동자나 결혼이민자, 유학생, 탈북민, 난민 등 한국 사회 이민자들을 구분하지 말고 사회 통합을 위한 정책 대상으로 함께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 참고

 

■ 카스 무데 교수

유럽과 북미 포퓰리즘, 극단주의, 이슬람 혐오 등 분야를 주로 다루는 극우 운동 연구의 권위자다. 세계 각국에서 이민자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정당의 영향력이 커져 온 현상을 역사적으로 조명하면서 그 배경에 경제적 박탈감과 문화적 정체성 위협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을 제시했다.

 

 

■ 관용의 역설

철학자 칼 포퍼가 ‘열린 사회와 그 적들’ 1권 7장 주석을 통해 제시한 개념으로, ‘무한한 관용은 관용 자체를 파괴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무제한으로 관용을 베풀면 오히려 불관용 세력이 이를 악용해 사회를 장악할 수 있으므로, 열린 사회를 지키기 위해서는‘불관용을 관용하지 않을 권리’를 주창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성훈기자

 

(7) AI 무한경쟁 시대, 우리는

02-25 韓, 성장 트라우마… AI 희망·공포 공존 ‘新 러다이트’ 고찰을

기술·경제 넘어 주권·정체성으로 격상한 인공지능

선진국만 추격하던 한국엔 공포의 ‘막차티켓’ 같아

적응 못하면 도태?… 문제제기 봉쇄땐 AI에 지배 당해

인간·에너지 등 5개 축 맞물려야 비로소 대전환 가능

/게티이미지뱅크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초과학기술 신문명시대, 눈 깜빡할 새 페이지가 넘어가는 인공지능(AI) 무한경쟁 시대가 열렸습니다.”

 

지난해 6월 4일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사에는 이런 내용이 담겼다. 대통령은 취임사 후반부에서 “AI,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산업에 대한 대대적 투자와 지원을 통해 미래를 주도하는 산업 강국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11월, 국회 시정연설에서는 2026년도 예산안을 “AI 시대를 여는 대한민국의 첫 번째 예산”으로 명명, ‘AI’를 24차례나 언급했다. 또 지난해 9월 제80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선 “‘모두를 위한 AI’의 비전이 국제사회의 뉴노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선언했다. 여유 자본을 남김없이 투자해 반드시 가야만 할 길로 여겨지는 AI. 그 길의 끝에서 ‘세계’ ‘한국’ ‘우리’는 각종 위기의 터널을 기적처럼 빠져나와 웃을 수 있을까.

 

세계적인 환경과학자이자 경제사학자인 바츨라프 스밀은 현대사회를 ‘낮은 출산율, 풍족한 먹거리, 막대한 에너지 소비, 세계화된 경제, 높은 이동성, 실시간 소통’이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태라고 정의한다.

그는 저서 ‘무엇이 대전환을 만들었는가’에서 인구·식량·에너지·경제·환경이라는 다섯 가지 대전환을 따로 떼어 보지 말라고 주문한다. 전환은 한 기술의 등장과 발전으로 완결되지 않았고, 세계는 다섯 축이 서로를 조건으로 삼아 동시에, 느리게, 거칠게 맞물려 움직였을 때에야 비로소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이 같은 시각을 오늘의 현실에 대입하면 질문은 분명해진다. AI로 대표되는 새로운 기술 변화는 수십 년 내에 막대한 화석연료 기반 탄소 배출을 대체하면서, 100억 명에 이르게 될 세계 인구에게 충분한 식량과 에너지를 공급하고, 연간 100조 달러를 웃도는 규모의 생산을 실제로 떠받칠 수 있을 것인가. 스밀이 강조하듯 전환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규모의 문제이기에 특정 영역에서 관찰된 가파른 진보를 문명 전체의 전환으로 착각해선 안 된다. 그 순간, 기대는 허무맹랑한 환상으로 변질된다.

 

또 다른 저서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에서 그가 특이점 담론을 경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AI의 시대’라는 자기 확신 속에서 인류가 맞닥뜨린 위기가 무엇이었는지 건조하게 드러냈다. 문제 해결을 가로막은 결정적 병목은 연산 능력이 아니라 공급망과 병상, 마스크 같은 물질적 기반이었고,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대응은 거리두기와 이동 제한, 백신을 둘러싼 신뢰의 붕괴였다.

 

그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AI는 물론, 기술낙관주의가 얼마나 허구적인 가설 위에 서 있는가 다시금 깨닫게 된다. 환상은 언제나 빠른 결말을 약속하지만, 그 끝은 공허하다. 현재 상황에선 AI가 세계의 구원자라는 주장의 근거는 빈약해 보인다.

 

◇이미 도래한 구조적 위기

“철강, 자동차, 기계, 석유화학 같은 전통적인 제조업들이 우리나라 부가가치의 27∼28%를 차지해 왔죠. 이 산업들이 한국을 선진국 반열에 올려준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AI와 기후 분야 전문가인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소장은 AI 논의에 앞서 한국 경제가 처한 현재의 조건을 먼저 짚었다. 한국은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탄소집약적 산업은 생산성의 한계를 체감하고 있고, 중국과의 본격적인 경쟁 국면에서 압박은 더 커지고 있다. 석유화학 산업의 침체는 이런 한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 같은 긴박함 속에서 AI는 ‘유일한 돌파구’로 여겨진다.

 

◇AI에 대한 희망과 불안, 공포

AI가 한국 사회에서 유독 강한 기대를 받는 이유를 기술문화 연구자인 박승일 캣츠랩 소장은 ‘성장에 대한 트라우마’에서 찾았다. “한국은 한 번도 선진국이었던 적이 없는 추격 국가였습니다. 식민지 경험, 전쟁, 빈곤의 기억이 사회에 응축돼 있습니다.” 그 결과, ‘탈락하면 끝’이라는 정서가 한국 사회 전반에 강하게 작동해 왔다는 것이다.

 

AI는 이런 불안을 흡수하며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연결된다. 박 소장은 “AI는 거부할 수 없는 막차 티켓처럼 인식된다”며 “밥을 먹을까 말까는 선택이 아니듯, AI도 선택이 아닌 문제처럼 다가온다”고 말했다. 반도체 산업의 성공 경험이 AI 담론에 투사되며 AI는 기술이나 경제 문제를 넘어 주권과 정체성의 언어로 격상된다. 이때 AI에 대한 믿음은 희망이면서 동시에 불안이다. 성장에 박차를 가하지 않으면 빈곤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AI를 더욱 절실하게 만든다.

 

◇효율과 비용 뒤에 숨은 것들

하지만 AI를 강조할수록 중요한 비용들은 감춰진다. 김 소장은 “AI 논의 이전에 에너지 정책과 전력 수급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뿐 아니라 냉각을 위한 물, 설치를 위한 토지까지 요구한다. AI 투자를 강조할수록 그에 앞서 전환돼야 할 기반인 에너지 정책과 산업 정책 사이의 모순이 선명해지는 것이다.

 

박 소장은 앞선 스밀의 주장에 효율의 함정을 더해 설명했다. “기술 효율이 높아질수록 소비가 늘어나는 현상, 이게 윌리엄 제번스의 역설입니다. AI도 이 역설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더 세련된 기술일수록 더 많이 쓰이게 되고, 그만큼 기후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여기에 AI 학습과 운영을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인간 노동도 있다. 박 소장은 “데이터 라벨링, 사후 조정, 혐오 필터링 같은 AI 작업들은 값싼 노동에 의존한다”며 “이 과정은 제3세계의 노동 착취, 아동 노동과도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박 소장은 “사용자는 말끔한 결과만 보지만, 그 뒤에 있는 인간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환의 시간, 지금 해야 할 일

그렇다면 남겨진 과제는 무엇일까. 김 소장은 AI를 부정하기보다, 그것을 하나의 날개로 보되 다른 날개를 함께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태양전지, 풍력 터빈, 배터리, 전기차, 히트펌프 같은 녹색 제조 분야에서 상당한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중국을 제외하면 이 정도의 녹색 제조 역량을 가진 나라는 사실상 한국이 거의 유일합니다.” AI와 결합하되, AI만으로는 부족하고, 녹색 전환과 제조 역량이 함께 갈 때 제조업 규모를 유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를 위해 공공의 역할과 사회적 합의, 예측 가능한 정책 환경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박 소장은 마지막으로 사람의 자리를 물었다. “AI는 자본 수익률을 소수 기업에 집중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 결과는 불평등의 심화입니다.” 그가 진정한 의미의 러다이트를 다시 불러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러다이트는 무지한 파괴자가 아니었습니다. 기술 도입의 속도와 방식, 그 사회적 비용에 질문을 던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말로 모든 문제 제기를 봉쇄하는 순간, 기술이 인간 위에 서게 된다는 경고다.

 

분명 한국은 AI라는 심대한 전환 앞에 서 있다. 그것이 한국을, 그리고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지는 아직 열려 있는 문제다. 두 전문가의 진단은 한 지점에서 만난다. 문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에 무엇을 기대하며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가다. 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시간이 지금이다.

 

■ 참고

 

■ 바츨라프 스밀

에너지·환경·식량·인구·경제·공공정책·역사를 넘나들며 50여 년간 연구를 이끌어온 환경과학자이자 경제사학자. 캐나다 매니토바대 환경지리학과 명예교수로, 체코 출생 후 프라하 카를로바대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수학했다. 세계 에너지·환경 정책 자문에 참여했으며, 사실 기반 데이터와 통계로 현대 문명의 구조를 해부하는 저작으로 빌 게이츠가 가장 신뢰하는 사상가로 꼽힌다.

 

■ AI특이점

인공지능(AI)이 인간 지능을 넘어 스스로를 개선하며 기술 발전이 통제하기 어려운 속도로 가속되는 전환점. 경제·노동·정치·안보 질서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다만 실제 AI 발전은 에너지, 연산 자원, 데이터 품질, 제도와 규제 등 현실적 제약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전망된다.

 

■ 김병권 소장은

 

녹색전환연구소 소장. 연세대 화학과 졸업 후 10여 년 동안 디지털 분야에서 일했다. 석사는 경제학, 박사는 사회학을 전공했다. 서울시 혁신센터장과 협치자문관으로 일하며 지역의 혁신과 협치 현장에 참여했다. ‘기후를 위한 경제학’ ‘AI와 기후의 미래’ 등을 집필했다.

 

■ 박승일 소장은

 

독립 연구단체 ‘캣츠랩’ 소장. 서강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신문방송학과 대학원에서 문화연구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 미디어융합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기계, 권력, 사회’와 ‘기술은 우리를 구원하지 않는다’를 펴냈다

장상민 기자

 

(8) AI 생산성으로 창출된 ‘富의 분배’

03-11 ‘AI발 21세기 배당’ 장밋빛 미래… 인간자립 꺾는 디스토피아 지름길

 

샘 올트먼, 저소득층에 월 1000달러씩 지급 실험

수혜자들 근로소득 줄고 저축 안해 빚만 되레 증가

 

분배, 생계 압박서 벗어나 인간의 창의성 키운다?

‘재정적 의존도’ 높이고… 디플레이션 발생 가능성

/게티이미지뱅크

 

2024년 7월 전 세계 테크업계·경제학계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챗GPT 창시자이자 생성형 인공지능(AI) 시대를 열어젖힌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후원한 역대 최대 규모의 ‘보편적 기본소득(UBI·Universal Basic Income)’ 실험 결과가 전격 공개됐다. 비영리 단체 오픈리서치가 미국 일리노이·텍사스주에 거주하는 저소득층 1000명에게 2020년 10월부터 3년간 매달 1000달러를 조건 없이 지급한 이 실험은 단순한 실효성 파악 수준에서 나아가 AI 시대 인간의 생존을 좌우할 ‘검증 모델’로 추앙받았다.

 

결과는 냉혹했다. 가외 소득이 늘어난 만큼 재산이 증가했을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저축이 좀 늘긴 했지만, 부채가 대폭 증가해 순자산은 되레 감소했다. 소비는 주택 매입이나 저축, 교육비와 같이 미래를 위한 투자에 쓰이기보다는 자동차 대출 할부 상환·식료품·월세·교통비 등에 집중됐다. 또 주당 근로시간이 1.3시간 줄어들면서 연간 근로소득도 쪼그라들었다. 특히 지급이 중단된 직후 수혜자들의 경제적 자립 능력은 실험 전과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공돈을 줬더니 저축은 안 하고, 빚을 늘리고, 일까지 덜한 셈이다.

 

올트먼 CEO는 그간 각종 콘퍼런스·인터뷰 등을 통해 “AI가 창출한 천문학적인 부를 시민들에게 재분배해 인간이 생계 압박에서 벗어나 더 창의적인 일에 몰두하게 해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이번 실험 결과는 아이러니하게도 기본소득을 신봉하는 올트먼 CEO가 자신의 사고 오류를 직접 증명한 ‘자충수’가 됐다.

 

올트먼 CEO의 사상적 기반은 18세기 후반 미국 정치인 토머스 페인의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1789년 페인은 당시 지주들의 토지세를 재원 삼아 모든 국민에게 21세가 되면 15파운드를 지급하고, 50세가 된 이들에겐 평생 매년 10파운드를 주자는 혁명적 발상을 내놨다. 이후 기본소득은 많은 사상가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영국 사회경제학자 가이 스탠딩은 저서 ‘기본소득: 일과 삶의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현대 자본주의가 노동 소득이 아닌 자산(지대) 추구형으로 변질했음을 지적하며 ‘공통 자산의 수익 환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거대 테크 기업이 활용하는 데이터·알고리즘은 인류가 수 세기 동안 축적한 ‘공통 자산’이다. 여기서 발생한 막대한 수익은 시민들에게 반드시 되돌아가야 하는 ‘사회적 배당’에 해당하고, 궁극적으로 생계 압박에서 해방된 인간은 보다 창의적인 활동에 전념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일본의 경제학자 이노우에 도모히로는 저서 ‘모두를 위한 분배: AI 시대의 기본소득’을 통해 한층 더 거시적인 위기 상황을 경고하고 있다. 이노우에는 인간의 노동력이 거의 필요 없는 수준의 ‘순수 기계화 경제’가 도래하면 생산성은 폭발하지만, 임금을 받는 소득자가 사라져 시장에서 물건을 살 사람이 없는 자본주의의 내적 붕괴가 일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이 때문에 기본소득은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현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수요 관리 정책’으로 소환됐다.

 

다만 막대한 사재를 들인 올트먼 CEO의 현장 실험을 통해 이 같은 장밋빛 전망이 현실 경제에서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보여 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금 지급이 인간을 더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존재로 만들 것이라는 가설은 빗나갔고, 수혜자를 혁신가로 만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재정적 의존’의 늪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경고가 수치로 입증된 셈이다. 21세기에 이른바 ‘디지털 배당’으로 부활한 240년 전 페인의 구상이 인간의 자립 의지를 꺾는 역효과로 귀결됐다는 지적이다.

 

천문학적인 재원 마련을 위해 흔히 거론되는 방안은 ‘디지털세’와 ‘로봇세’다. AI 학습의 토양이 된 데이터를 ‘공유 자산’으로 간주해 세금을 물리거나,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한 로봇에게 소득세를 징수해 그 과실을 나누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반대하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국경 없는 AI 기반 경제에서 특정 국가가 독자적으로 고율의 징벌적 과세를 도입할 경우, 기업들의 ‘기술 엑소더스’를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오픈리서치의 검증 결과를 소개하면서 “올트먼이 돈을 댄 실험과 달리, 기본소득을 정책으로 집행하려면 적잖은 세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제언했다.

 

물론 오픈리서치의 실험은 AI 기술 발전에 따른 완전한 ‘노동 종말의 시대’를 전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섣불리 미래를 예측하는 데 한계가 있다. 다만 기본소득 담론 찬성론자들과 같이 향후 겨우 먹고살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 누구의 주머니에서 막대한 재원을 확보할지에 대한 고민에만 집중하면 확증 편향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현존하는 인물 중 가장 혁신적인 기업가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AI 발전이 가져올 미래상과 관련해 ‘보편적 고소득(UHI·Universal High Income)’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접근한다. 최근 미국 기업가 피터 디아만디스의 팟캐스트 ‘문샷’에 출연한 그는 ‘(AI 발전이) 세금을 걷어 재분배하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지 않으냐’는 질의에 “그렇다”고 단언했다. AI와 로봇이 생산성을 무한히 끌어올리면 상품·서비스의 한계 비용이 0에 수렴하고, ‘부족이 아닌 풍요가 기본값인 사회’가 가능해진다는 논리다. 그러면서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극도로 낮아지는 디플레이션이 발생해 누구나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머스크 CEO의 주장은 ‘기본소득이 AI 시대의 연착륙을 보장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처럼 기술 낙관주의에 근거한 유토피아적 발상에 대해 현실 가능성이 극히 낮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기본소득이라는 단 하나의 정답지에 매몰된 이들에게 날카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우리는 특이점 안에 들어와 있다. 이 과정은 험난할 거고 나도 정답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긍정적인 면을 보기로 했고, 아이디어는 열려 있다.”

 

AI시대 안전망으로 거론된 기본소득… 학계선 “패배주의적 내러티브” 비판

■ 기본소득 논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런 애스모글루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경제학과 교수는 저서 ‘권력과 진보’에서 기술 혁신의 과실을 나누는 방식에 따라 사회의 운명이 갈린다고 진단했다. 그는 인공지능(AI) 시대에 특히 분배 방식을 깊게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방대한 데이터, 첨단 반도체 등이 필수인 만큼 태생적으로 거대 기업 몇 곳의 독과점으로 수렴되기 쉽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그중 하나로 거론되는 기본소득에 대해선 “패배주의적 내러티브”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소수가 부를 독점할 수 있는 세상에서 권력이 단지 생존을 위해 ‘밥’만 배분하는 것으로는 인간의 존엄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지적이다.

 

AI 시대 안전망으로 거론된 기본소득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글로벌 학계·테크업계 곳곳에서 확산하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기본소득 일변도’를 고집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의 기본사회 구상은 그의 ‘기본소득 스승’으로 알려진 강남훈 기본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의 사상적 기반에 뿌리를 둔 것으로 평가받는다. 강 부위원장의 저서 ‘기본소득의 경제학’ 등에 따르면 기본소득 재원은 ‘공유부 배당’ 논리에 따라 토지 등 공유자원에서 발생한 이익을 토대로 한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세금을 피해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산업 공동화가 심화되면서 인재와 알고리즘, 자본이 동시에 이탈하는 구조적 고립을 맞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참고

보편적 기본소득

 

재산·소득·노동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균등하게 지급하는 최소한의 생활비를 말한다. 인공지능(AI)이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에 실질적인 생존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도입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다만 노동 의욕 저하, 불투명한 재원 마련 방안 등이 정책적 한계로 지적된다.

 

보편적 고소득

AI·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해 창출된 막대한 부를 모든 인류가 누리고 높은 수준의 삶을 향유하는 상태를 말한다. 누구나 풍요로운 자원을 배당받아 경제적 제약 없이 자아를 실현하는 미래 사회 경제 모델로 꼽히지만, 다소 기술 낙관론에 치우친 유토피아적 발상이라는 비판도 있다.

김성훈 기자

 

(9) 트럼피즘

04-08 트럼프만 물러나면 끝? 우방·상호주의·다자주의… 글로벌 패러다임 깨졌다

MAGA 중심 트럼프 2기, ‘파괴적 변곡점’ 직면

민주주의는 관용·미덕 발휘할 때만 지속 가능

이젠 그 미덕을 약점으로 규정하고 자기이익 관철

 

현재의 사태, 트럼프 개인 때문만은 아냐

극단적 양극화 계속되고, 상호관용 무너진 영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지난 1월 워싱턴DC 앞 컨스티튜션 애비뉴에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영원히(MAGA Forever)’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싸우자 싸우자 싸우자(Fight Fight Fight).” 2024년 7월 13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州) 버틀러에서 대선 유세 도중 총격을 당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불끈 쥔 주먹을 치켜들었다. 충격과 공포에 질렸던 지지자들은 “USA(미국), USA, USA”를 연호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뉴욕타임스가 ‘역사에서 잊히지 않을 이미지를 본능적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한 이 장면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기치로 건 트럼프가 또다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는 발판이 됐다.

 

◇“파괴적 변곡점”… 트럼피즘 왜 나타났나 = 로널드 레이건 등 미국 대통령의 과거 피격 사례를 보자. 총격을 당하더라도 유머로 되받거나 상대 세력을 포용하는 메시지를 내는 것이 미덕이다. 속내는 다를지라도, 공공의 리더로서 관용과 포용을 내세우라는 문화적 강요다. 그런데 “싸우자”라니. 트럼프는 구사일생의 순간을 지지층 결집을 위한 무기로 삼았다. 탁월한 정치 감각일까.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일까.

세계 석학들은 둘 다로 봤다. 저명한 학자 8명이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직전인 2024년 12월, 트럼프 당선을 전제로 저서 ‘초예측 트럼프 2.0 새로운 시대’를 공동 발간했다. 이들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이 더 독재적인 나라가 되고, 세계가 혼란스러워지며, 분열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트럼피즘’은 트럼프가 두 차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는 과정과 대통령 취임 전후 생겨난 현상 및 이념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압축되는 보수주의·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내셔널리즘·보호무역주의 등을 포괄하면서 하나의 사조로 떠올랐다. 석학들은 ‘트럼프 2.0’의 핵심 키워드로 ‘불확실성’을 꼽았다. 어려운 말로 포장했지만 어떻게 흘러갈지 정확히 모르겠다는 실토다. 대신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시점에 ‘시대의 파괴적 변곡점’이라고 좌표를 찍었다. 대대적인 변화가 시작됐다는 경고다.

 

그런데 ‘트럼피즘’의 배경이 트럼프만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세계적 석학인 제프리 삭스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라는 생각은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위험한 발상이다. (이미) 깊은 당파 간 대립으로 시장에 불확실성이 커질 우려가 있다”며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든 새로운 지정학적 질서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각자도생의 시대… 민주주의가 무너진 결과 =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포스트 냉전 시대를 ‘인류사에서 가장 진화된 이데올로기인 미국의 자유주의 이념이 공산주의에 최종적으로 승리했다. 역사의 종언이다’라고 정의했을 때, 그 중심에는 월등한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세계 경찰국가를 자임한 미국이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정반대를 가리키며, ‘민주주의(정치)’도 ‘신자유주의(경제)’도 각자 알아서 하자고 한다. 거대 시장과 힘에 기반한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며 리더가 우방 국가도 거침없이 압박하기를 원한다. 트럼프는 정당이든 타국이든 상대 진영을 공존의 대상이 아닌 ‘섬멸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익을 관철하는 모습도 보인다. 대외적 ‘미국 우선주의’와 대내적 ‘편 가르기’ 전략에 상호주의를 기대했던 상대편은 속수무책이다. 궁극적으로는 상호협력이 생존과 국가발전에 유리하다는 글로벌 패러다임 자체를 흔들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이러한 변화의 원인을 분석했다.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다분한 포퓰리스트들이 어떤 조건에서 리더로 선출되는지, 선출된 독재자들이 어떻게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를 자세히 다룬 것이다. 그러면서 “트럼프의 등장으로 전 세계 민주주의가 중대한 도전 과제를 맞았다. 냉전 이후 처음으로 민주주의 수호자 역할을 저버렸다”며 “트럼프 이후 미국이 더욱 뚜렷한 양극화 사회로 접어들고 제도 전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들 역시 원인을 트럼프 개인에게서 찾지는 않았다. 한 정당이 상대 정당을 하나의 경쟁자로 인정하는 ‘상호 관용(mutual toleration)’, 그리고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자제(forbearance)’가 도외시되는 극단적 양극화가 민주주의를 병들게 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흐름은 냉전 이전인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차츰차츰 진행됐지만, 절제하지 않는 포퓰리스트를 리더로 세울 때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모든 것의 무기화, 트럼피즘의 연료 = 영국의 안보 전문가 마크 갈레오티의 저서 ‘모든 것의 무기화(The Weaponisation of Everything)’에 트럼프 현상을 설명할 또 다른 단초가 있다. 18세기 군사 사상가 클라우제비츠는 일찍이 전쟁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목적을 위한 폭력적인 수단(전쟁의 정치화)이므로, 만약 전쟁의 목적이 불분명해지면 정치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쟁의 수단인 적대감을 내부로 가져오게 된다(정치의 전쟁화)고 말했다. 갈레오티는 ‘전쟁 같은 정치’와 ‘정치 같은 전쟁’이 현대사회에서 맞물리기 시작하는 메커니즘에 대해 분석했다. 총칼뿐만 아니라 경제·정보·문화·인프라 등 일상의 모든 요소가 무기로 활용되며, 공급망 기술·가짜 뉴스(허위 정보)·이민자·코로나19 백신 등 문화적·경제적 수단들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동원되는 경향이 짙어진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상대를 굴복시켜야 하는 전쟁과 상대와 공존해야 하는 정치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면 승자독식 구조 역시 자연스럽게 정당화된다. 트럼프 역시 적을 직접 타격하기보다는, 상대의 내부 균열을 조장하거나 상대 국가의 사회 시스템을 장악하는 방식을 통해 우위를 점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치적 라이벌을 타도해야 할 원수처럼 대하고, 생각이 다른 집단을 적으로 취급하면서 극단 대립을 부추긴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미국-이란 전쟁은 결국 라이벌 간 대립이 상호 불신 속에 극단으로 치닫고, 정치와 전쟁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면서 정체를 드러낸 트럼피즘의 최악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인권이나 주권 존중 같은 가면 벗어던져… 경제·軍만 중요한 시대… 약소국엔 재앙

■ 광인 출현? ‘룰’ 변화

 

“오늘 밤 한 문명 전체가 멸망할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8일 ‘2주간 공격 중단’을 전격 선언하기 직전까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이란을 향해 초강경 압박 메시지를 뱉었다. 자신이 정한 시한(미국 현지시간 7일 오후 8시)까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지 않으면 핵심 인프라를 초토화시키겠다고 압박했다. 막말도 서슴지 않는다. “지옥문이 열릴 때까지 48시간 남았다(4월 4일)” “미친놈들아 호르무즈 해협을 당장 개방하라(4월 5일)”며 이란과 치킨게임을 벌이는 사이 글로벌 경제지표와 미국 국내 지지율이 요동쳤다.

 

미국은 지난 2월 28일 선전포고 없이 대이란 전쟁을 개시했다. 게임이론에 따르면 트럼프의 행보는 극단적 치킨게임으로 항복받으려는 전략이나 광인 전략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트럼프라는 독특한 리더십의 출현’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거대 체제의 거시적 변화’로 본다. 손열 동아시아연구원 원장은 공동 저서 ‘트럼프의 귀환, 미국의 미래’에서 “미국이 지구 거버넌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대신 국가주권을 강조하며 물질적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외교 정책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국력이 쇠퇴하고 있는 미국이 공공재 제공이라는 패권적 책무를 감경하면서도 패권적 지위가 주는 특권은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제 체제 변화가 약소국에는 재앙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슬라보예 지젝은 비영리 미디어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게재한 칼럼에서 “인권을 보장하는 복잡한 규칙이 붕괴되고 있다. 순수한 경제적·군사적 힘만이 중요한 잔혹한 신세계”라며 “인권이나 주권 존중과 같은 가면이 벗겨졌다. 작은 나라라면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꼬집었다.

 

■ 참고

트럼피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치 철학과 통치 스타일을 집약한 우파 포퓰리즘 체제를 뜻하는 말. 엘리트 집단에 반대하는 반(反)기득권 정서를 동력으로 삼으며, 소외된 백인 노동자층의 분노를 조직화한 정치·사회적 현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

미국의 국익을 국제 협력이나 타국의 이익보다 우선시하는 정치·외교 원칙. 19세기 고립주의에 뿌리를 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서는 자국민 보호 강화, 보호무역, 이민 통제, 동맹국 방위비 증액 요구 등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강한 기자

 

(10) ‘사찰음식’이 던지는 화두

04-22 공양은 깨달음 향한 수행… ‘오관게’ 절제 속 부처의 지혜를 구하다

얻을 수 있는 최소한의 것으로 허기·갈증 달래며 정진

밥상에 감사·식탐에 성찰… 수행하듯 ‘오관게’ 발우공양

미식 열풍 탄 사찰음식, 중생들 탐착의 대상 전락 경계

과잉소비 속 절밥의 소박함, 가장 강력한 ‘대안 식문화’

▲전 세계적으로 K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한국의 사찰음식이 국내외 미식 열풍과 함께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 2월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린 체험행사에서 참가자들이 식사하는 모습. 불교문화사업단 제공

 

사찰음식이 산사(山寺)의 담장을 넘어 전 세계인의 식탁과 마음을 공략하는 글로벌 문화 아이콘이 됐다. 사찰음식 장인 법송스님은 이달에만 벌써 두 번 유럽 ‘중생’들을 만났다. 독일에선 발우공양의 엄숙한 수행 과정을 체험했고, 스웨덴에선 사찰음식의 ‘절제’가 자신들의 ‘라곰(적당함)’과 맞닿아 있다며 공감했다. 뉴욕타임스는 정관스님을 “세계에서 가장 고귀한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라고 극찬했고, 유럽 MZ 사이에서도 한국의 ‘절밥’이 ‘힙한 비건(채식)’으로 부상했다. 지난해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고,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을 노리는 사찰음식이 전 지구적 식문화의 대안, 글로벌 미식 트렌드의 중심에 선 것이다. 21세기 한국 불교 최고의 ‘상품’이다.

 

‘상품’이라고 하니 다소 불경스럽지만, 아니라고 하기도 어렵다. 사찰음식에 열광하는 현상의 본질과 이면을 들여다볼수록 그렇다. 또한, 그것이 빚어낸 풍경들은 어떠한가. 사찰음식 명장들이 TV 요리경연에 나와 ‘속세의 맛’과 겨룬다. ‘절밥’ 조리법을 담은 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맛집 순회하듯 공양간(사찰의 주방)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 이 품격 있는 ‘K푸드’의 인기가 ‘힙불교’ 열풍에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건강에 좋고 신비로운, 그래서 더 궁금한 그 ‘맛’. 거기서 우린 무얼 탐하고 있나.

 

◇ 수행자의 식단, 식탐을 자극하다= 유명 셰프들과 숨은 고수들이 요리 솜씨를 뽐내는 ‘흑백요리사’ 시즌2에 선재스님이 합류했을 때, 사찰음식은 이미 거대한 미식 열풍에 올라탔다. 앞서 정관스님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로 전 세계에 한국 사찰음식을 알렸는데, 이제 스님이 직접 나선 것이다. 엄격한 미각의 심사위원들이 스님의 비빔밥을 흡입하고 잣국수를 상찬할 때, 사찰음식은 우리의 흥미를 돋우고, 입맛을 다시게 하는 또 하나의 ‘맛있는’ 음식이 됐다. 수행자의 절제된 식단이, 중생의 탐착(貪着) 대상이 된 것. 사찰음식 대가로 알려진 스님들이 유명해지고, 급기야 이들의 실력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프로그램까지 생겼다. 스님이 요리사로, 사찰이 맛집으로 소비되는 형국이다.

 

이 기이한 현상은 최근 불교계 안팎에서 여러 문제의식을 불러일으켰다. 포교라는 명분은, 방편의 세속화와 상업화를 어디까지 용인할 것인가. 공만식 박사를 비롯해 법송스님, 한수진 동국대 교수 등 국내 주요 불교학자들은 ‘불교평론’ 등을 통해 발표한 논문과 글에서 사찰음식의 미식화와 상업화에 대해 우려한다. 이들은 “오늘날 대중이 사찰음식에 열광하는 지점이 ‘수행성’이 아니라 ‘미식적 가치’에 있다”고 분석한다. 사찰음식이 미슐랭 가이드에 오르고, 고급 한식으로 소비되는 현상은 ‘포교의 성공’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불교적 가치가 세속의 미식주의에 굴복한 결과”라는 것이다. 수행의 도구여야 할 음식이 자본주의적 등급제의 대상이 되는 순간, 사찰음식은 세속의 탐욕을 정당화해 주는 사치재로 전락한다는 지적이다.

 

▲진관사의 사찰음식 차림. 불교문화사업단 제공

 

◇ 어떻게 ‘먹고’ 어떻게 ‘살 것’ 인가= 사찰음식 대중화의 함정을 지적한 책 ‘사찰음식은 없다’(인문공간)에서 정산스님은 사찰음식의 철학적 기준을 원효대사가 쓴 ‘발심수행장’에서 발견한다. “배고프면 나무 열매를 먹어 주린 창자를 위로하고/목이 마르면 흐르는 물을 마셔 그 갈증을 식힌다/좋은 음식을 먹고 애지중지 보살피더라도/이 몸은 반드시 무너질 것이며….” 정산스님은 이 대목에서 “수행자가 음식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명징하게 드러난다”면서 “사찰음식의 가장 기본은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소한의 것만으로 허기를 달래고, 얻을 수 있는 것으로 갈증만을 가라앉힌 후, 수행에 정진한다. 즉, 사찰음식에 대한 높은 관심은 ‘어떻게 먹고, 어떻게 살지’에 대한, 현대인들의 근원적 질문으로 치환돼야 한다는 것이다.

 

사찰음식 대가로 미디어의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는 정관스님과 선재스님도 줄곧 이러한 본질을 강조해왔다. 사찰음식은 불교의 수행이자 의식, 그리고 마음과 태도라는 것이다. 정관스님은 자신을 향한 ‘셰프’라는 찬사를 거절하고 “나는 음식을 통해 부처의 법을 전하는 수행자일 뿐”이라고 선을 긋는다. 선재스님도 “사찰음식은 약석(藥石)이다. 입이 아닌 마음으로 먹는 것”이라며 레시피에 매몰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식에 대한 관심이 열풍을 넘어 광풍의 지경이 된 요즘, 과연 대중은 ‘스님의 레시피’가 아닌, ‘부처의 지혜’를 구하고 있을까. 주요 서점 요리 서가에 꽂힌 두 스님의 책들은 의도와 상관없이, 대중의 욕구에 충실하게 만들어졌다.

 

◇ 진정한 대안 식문화… 사라진 ‘과정’을 회복하라= “음식을 취할 때 성찰하는 마음가짐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식사일 뿐, 불교 특유의 ‘공양’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다.”(이혜숙 불교평론 편집위원장) “인류는 우리에게 유용한 음식을 제공하는 자연이 받을 피해를 몰각(沒覺)하고 음식의 맛에만 매료되어서는 자기 통제력을 상실하곤 한다.”(한수진 동국대 교수)

 

불교 학자들은 수행 현장에서의 ‘과정의 생략’을 사찰 음식을 세속의 ‘식도락’으로 변질시킨 원인 중 하나로 꼽는다. 그러면서 ‘과정의 회복’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그 과정은 식재료가 밥상에 오기까지의 ‘수고로움에 대한 감사’, 음식을 대하며 자신의 탐욕을 살피는 ‘성찰’, 음식을 깨달음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수행적 태도’다. 정산스님도 ‘사찰음식은 없다’에서 ‘오관게(五觀偈)’를 외우며 시작하는 스님들의 식사, 즉 ‘발우공양’이 사라진 공양간을 “한식뷔페로 불러도 될 지경”이라 꼬집고, “지금 우리가 말하는 사찰음식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한국불교의 사찰에는 사찰음식이 없다”고까지 비판의 강도를 높인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삼아/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건, 바로 이 ‘오관게’다. 이것이 사찰음식을 미식 열풍에서 건지고, 현대 미식주의의 대항마로서 권위를 회복시켜 줄 것이라는 논지다. 최근 음식 특집을 기획한 ‘불교평론’에서도 오관게를 식사 전 읊는 ‘형식적 문구’가 아니라 사찰음식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최후의 보루로 규정했다. 또한, 오관게의 정신을 회복하는 일에 음식을 대하는 대중과 미디어는 물론, 이를 포교에 활용하는 불교계 모두의 동참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그것이 사찰 음식과 고급 비건 요리를 구분 짓고, 수행 도구의 소비재 전락을 막고, 종교의 상업화에 대한 저항선이 된다는 것. 그때, 사찰음식은 진정한 의미의 ‘대안 식문화’로서 자격을 얻는다. 학자들은 “과잉 생산과 과잉 소비로 몸살을 앓는 현대 문명에서 사찰음식의 절제와 소박함은 가장 강력한 대안적 식문화가 될 수 있다”면서 “사찰음식의 정신이 현대적인 윤리 소비 담론과 결합하면, 지구 환경과 생명을 살리는 미래지향적 문화 운동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제언한다.

706자에 담긴 ‘용맹정진’ 지침서

 

■ 원효대사 발심수행장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617∼686)가 저술한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은 시대를 초월해 수행자가 갖춰야 할 마음가짐을 설파한 불교의 고전이자 수행의 지침서다. 전체 내용이 706자밖에 되지 않는 사언절구의 짧은 글이지만, 원효대사는 이를 통해 수행의 본질이 겉치레나 감각적 즐거움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

 

‘모든 부처님께서 적멸궁을 아름답게 꾸미신 것은/오랜 세월 욕심을 끊고 수행하신 까닭이요/수많은 중생이 불타는 집에서 고통받는 것은/끝없는 세상 동안 탐욕을 버리지 못한 까닭이다/막는 이가 없는데도 천당 가는 사람이 적은 까닭은/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삼독 번뇌에 가득 차/스스로를 재물로 삼기 때문이고….’ 책은 의식주, 특히 먹는 것에 탐욕을 끊어야 하는 당위성을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잠과 게으름은 깨달음의 적이라고 꾸짖는다. ‘망가진 수레는 굴러갈 수 없듯 사람도 늙으면/수행할 수 없으니/누우면 게으름만 생기고 앉아 있어도/어지러운 생각만 일어난다….’ 백미는 시간의 덧없음에 대한 경책이다. 원효는 우리가 “잠깐 사이에 죽음의 문턱에 이르게 된다. 어찌 급하고도 급하지 않겠는가”라며, 지금 이 순간 ‘발심(發心·마음을 냄)’하여 ‘용맹정진(勇猛精進·불교 수행의 가장 치열한 상태)’하라고 독려한다.

 

■ 참고

오관게(五觀偈)

 

음식을 대하는 다섯 가지 성찰을 담은 게송(불교의 가르침을 담은 시)으로, 식재료에 깃든 수고로움을 헤아리며 하심(下心·마음을 내려놓다)을 닦게 한다. 맛의 즐거움을 제어하고, 먹는 행위도 도를 이루기 위한 수행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약석(藥石)

원래 병을 고치는 약과 돌침을 뜻하지만, 사찰에선 수행을 위해 몸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음식을 일컫는다. 음식을 맛이나 배부름을 탐하는 미식이 아니라, 몸이라는 수레를 굴려 깨달음에 이르도록 돕는 약물이자 치료로서 여긴다는 의미다.

박동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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