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한의 전쟁사]역사학자 동아일보 2026
01.27
〈401〉낙원은 멀고도 멀리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발발한 이란의 반(反)정부 시위가 일단 소강 국면에 들어섰다. 이 잠시의 평정이 ‘무력으로 국민을 짓누르니 되더라’라는 오판으로 이어지진 않을지 우려된다.
다음 상황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일시적으로나마 시위대를 억누를 수 있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군이 겉으로는 종교적 이념 안에 있으나, 안으로는 특권을 지닌 집단이라는 것. 집권층 역시 겉은 신앙, 안은 특혜로 단결돼 있다는 것. 국민을 이끌 정치세력이 없고, 국민들 역시 신정정치에 염증을 느끼는 것과 이를 부정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로 느낀다는 점 정도가 되겠다. 이로 인해 미국과 이스라엘도 섣부른 간섭이 오히려 이란 내부의 단결을 촉진하거나 당국에 더 가혹한 탄압의 구실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염려하는 것 같다.
하메네이 체제가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1978년 9월 8일 테헤란에서 팔레비 왕조의 통치에 반발하는 시위대에 군이 발포하면서 왕조는 종말을 맞았다. 이때 사상자는 100명 미만이었다. 이번에는 최소 수천 명이 죽었다.
이번 유혈사태의 후유증은 최소 1.5세대는 지나야 치유될 것이다. 시위를 촉발한 경제 상황은 악화될 일만 남았다. 피를 본 이상 궁지에 몰린 신정정치는 털끝만 한 양보도 하기 힘들 것이다. 조만간 또다시 충돌이 발생할 것이다. 다만 현 이란 지배 체제는 팔레비 때보다는 강력하다. 종교적 신념은 피를 무마시켜 준다. 그렇다고 해도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다. 동시에 어떤 저항이 발생하고 어떤 승리를 거두든 민주주의의 봄이 성큼 다가오지는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은 현재 자기 블록의 구축에 바쁘다. 이들에겐 이란의 장기적인 혼란이 더 나을 것이다. 우리도 역사에서 경험했지만, 독재는 집권 기간보다 몇 배는 더 긴 후유증을 남긴다.⊙
〈402〉‘오와리의 멍청이’

일본 전국시대 철없는 생활로 ‘오와리(현 나고야 일대)의 멍청이’라 불렸던 26세의 다이묘(영주) 오다 노부나가는 1560년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는다. 이웃한 스루가의 다이묘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오다의 영지를 침공한 것이다. 이마가와의 병력은 2만5000명, 오다의 병력은 고작 2000명에 불과했다.
이마가와는 강력한 무사단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 부대를 서쪽 해안길로 북상시키고, 자신은 오케하자마 고갯길로 진출했다. 도쿠가와 쪽에서는 삼각형으로 포진해 오와리 국경을 지키던 3개의 요새를 단숨에 함락했다. 승리를 자신한 이마가와는 오케하자마에서 편안하게 야영을 했다.
그때 갑자기 쏟아진 비를 뚫고 강행군을 한 오다 군대가 이마가와를 덮쳤다. 좁은 고갯길이라 병력의 우위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측근에게 둘러싸여 고개 아래로 도주하던 이마가와는 300m도 채 가지 못하고 살해됐다. 이 승리는 오다를 단숨에 전국시대의 기린아로 둔갑시켰다. 너무나 극적인 전투였기에 오다의 운이 좋아서 승리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오다는 며칠 전 이 현장을 답사했다. 오와리의 멍청이는 잘못된 별명이었다. 그는 시대를 앞선 통찰을 보이며 파격적인 노력을 했다. 그 노력이 평범한 이들에게 이상하게 보였을 뿐이다. 철저한 준비, 효율적인 정보체제, 상대의 예측을 뛰어넘는 기동, 지형 파악…. 오다는 극적인 승리를 위한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그 노력과 준비가 있었기에 기습이 가능했다. 반면 이마가와의 본진이 있던 자리는 현재 사찰이 들어서 있는데, 지형이 많이 변했어도 적을 앞에 두고 절대 야영을 해선 안 되는 자리였다. 이마가와는 상대를 얕보고, 근거 없는 예단을 하며 전술의 기본을 지키지 않았다.
아주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우연한 승리란 없다. 극적인 승리일수록 자격 있는 자가 쟁취한다.⊙
〈403〉여왕과 은빛 갑옷

유럽의 왕비와 공주들이 군복을 입고 군사훈련을 받는 모습이 화제다. 54세의 네덜란드 막시마 왕비는 육군 예비군에 입대했다. 훈련이 끝나면 중령으로 복무한다. 노르웨이의 잉리 알렉산드라 공주도 최근 15개월간의 군 복무를 마쳤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과의 그린란드 갈등으로 유럽에 안보 위기가 대두하고 있다. 군사비 증액과 징병제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전쟁 위기를 왕실의 존재 의의를 강조하는 기회로 삼으려 한다는 시각도 있지만, 그 판단의 기준은 진정성에 달려 있다. 유럽에는 왕족과 귀족이 국방 일선에 서야 한다는 오랜 전통이 있다.
지금은 스캔들로 왕자 칭호를 박탈당했지만, 영국 앤드루 전 왕자도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때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16세기 영국의 전성기를 이끈 엘리자베스 1세는 국가에 위기가 닥쳤을 때 은빛 플레이트 갑옷을 착용하고 국민 앞에 나서곤 했다. 44년의 통치 기간 중 일선에 나간 적은 없지만, 국민들은 시가에서 갑옷 입고 말을 달리는 여왕의 모습에 환호했다.
그것은 비단 인기 관리용 퍼포먼스가 아니었다. 엘리자베스 1세가 즉위했을 때 영국 육군은 민병대 수준이었고 국방 예산은 형편없었다. 영국보다 10배는 부유했던 스페인은 힘을 키우고 있었고, 결국 영국 침공을 계획해 무적함대를 출동시킨다. 엘리자베스 1세는 평생 군사비 증액과 육군 강화에 힘썼다. 만년에 국가 재정이 어려움에 처하긴 했지만, 이런 노력으로 영국은 유럽에 군대를 파견할 수 있을 정도로 군사력을 키웠고 무적함대를 수장시키며 네덜란드에서 대기하던 스페인 육군의 침공 기도를 좌절시켰다.
다만 잠자는 국민을 깨우려는 여왕과 공주들의 노력이 성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엘리자베스 1세는 궁전에서 승리를 맛보았지만, 현재 유럽의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404〉영조와 관우

왕자로 태어난다는 건 극단적인 행복이거나 불행이다. 왕이 되지 못한 왕자는 목숨을 부지하지 못하거나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어렵다. 조선 영조도 연잉군 시절 위태로운 삶을 살았다. 경종이 좀 더 건강했거나 왕자를 봤다면 목숨을 지키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불안을 이기지 못한 연잉군은 관우의 영(靈)을 모시는 관제묘(關帝廟) 중 하나인 동묘를 찾아 점을 치기도 했다. 관제묘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병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세워졌다. 관우는 중국에서 무장들의 우상이고, 출세의 신이며, 상인들의 수호신이었다. 모든 계층에서 추앙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전후 조선에서도 삼국지가 유행하고, 임란 후 상업도 발전하면서 관제묘의 인기가 높아졌다.
연잉군은 더욱이 삼국지의 팬이었다. 왕이 된 뒤 관제묘 근처를 지날 때면 반드시 들러 참배했고, 묘의 상태와 심지어 관우상에 입혀 놓은 의복까지 신경 썼다. 신하들은 영조의 관제묘 참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관우는 장수이니 왕보다 격이 낮다. 영조가 살아 있는 관우를 만난다고 해도 관우가 영조에게 예우해야 하는데, 영조가 관제묘에 하례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영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소설 ‘임진록’에 나오는 설정, 즉 명나라 만력제가 유비의 환생이고 선조는 장비의 환생이며, 관우가 신병을 이끌고 임진란에 참전해 조선군을 도왔다는 이야기까지 사실처럼 인용하며 관우 참배를 정당화했다.
그 노력이 통했는지 이후 왕들의 관제묘 참배나 관우 칭송, 소설과 역사의 혼용이 당연하게 이뤄졌다. 조선시대에 신하들은 왕이 해서는 안 되는 행동, 명분에 어긋나는 행동에는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그런데도 왕이 우기니 버젓이 드라마가 역사가 됐다. 이래서 권력자는 늘 멀리 보고 행동을 삼갈 줄 알아야 한다. ‘강하게 나가니 되더라’는 생각처럼 위험한 착각은 없다.⊙\
〈405〉유럽 자강론

미국의 그린란드 합병론을 계기로 유럽의 주요 강국들이 다 같이 미국을 비난하고 유럽 자강론을 부르짖게 됐다. 심지어 미국이 강대국의 지위를 잃어서 저런 난동을 부린다는 식의 말까지 했다. 독일 총리가 반대하긴 했지만 내부에선 자체 핵무장에 대한 논의가 제기됐다. 일본도 재무장을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다. 세계가 힘의 대결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국제 정치의 작동 원리는 힘이다. 국제 조약은 문서가 아니라 군대를 통해 보장된다.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 상식처럼 통하는 이 명언들은 모두 유럽의 경험을 통해 유럽인의 입에서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반세기 동안 유럽은 이를 잊고 살았다. 아니, 잊었다기보다는 잊은 척했거나 순진한 평화주의를 내세우고 반사이익을 누려 왔다. 2월에 열린 세계 최대 규모 안보포럼 뮌헨안보회의(MSC)는 유럽의 미국 규탄장처럼 됐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이에 대한 반성도 보인다.
지금 유럽은 겉으로는 미국의 배신과 타락을 소리 높여 비판하지만, 진정한 적은 그들 자신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미국 의존을 줄이고, 유럽의 군대와 연합을 실전성 있는 체제로 바꿔야 한다. 군사비 확충, 징병제 재도입 등은 국민의 저항을 이겨내야 한다. 미국은 이를 위한 동네북이 돼주고 있다.
미국의 폭언과 횡포는 유럽 자강론과 재무장의 성공을 위한 계산된 자극일 수도 있다. 그러나 권력은 마약과 같은 속성이 있다. 힘으로 해결하다 보면 힘을 남용하게 되는 것이 역사의 철칙이다. 요즘 미국을 보면 중독 증세도 보이는 듯하다. 유럽도 자강에 성공하면 어찌 될지 모른다. 약하면 피해자가 되고, 강해지면 가해자가 된다.
이것만은 분명하다. 세계는 현실주의가 이상주의를 대체하는 주기에 접어들었다. 19세기 말 조선은 이러한 흐름에 반대로 행동하다가 비극을 맞았다.⊙
〈406〉확전의 끝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자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친미 성향의 주변국을 공격해 세계를 마비시키는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미국 국민들 사이에서도 이 전쟁에 대한 지지는 50%를 밑돈다.
전쟁은 승자에게도 희생이 크다. 전쟁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인 동시에 문제 해결을 포기하고 새로운 문제를 양산해 내는 극악한 정치적 수단이기도 하다. 전 지구적 이해관계가 교차하고 답이 나오지 않는 수천 년간의 복잡한 역사와 사연이 얽혀 있는 중동에서 전쟁은 더욱 그렇다. 하나를 풀면 두 가지 문제가 새로 발생하는 그런 곳이다.
그뿐인가. 세계는 강대국의 횡포를 싫어한다. 시민의식이 성장하고 글로벌화가 촉진되면서 강대국에 대한 반감은 커지고 있다. 강대국의 어떤 행위가 설사 내게 이익이 된다고 하더라도 비판적이 되거나 자조적이 되는 경향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반격이라는 이유로 이란의 무차별 공격이 계속되면 세계는 결국 이란을 등질 것이다. 국가와 개인의 삶을 위협하는 행동에는 절대적인 한계가 있다. 나중에는 미국이 더 강경한 정책을 펴더라도 미국을 비판하던 사람들까지 이에 지지하거나 동참할 수 있다.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처럼 무차별 공세를 퍼부어서는 무기가 곧 바닥날 것이다. 후유증은 더 크다. 장기전에 부담을 느낀 미국이 행여 타협하고 물러선다고 해도 앞으로 중동의 수니파 국가들은 이란에 대해 노골적인 배척, 적대 정책을 펼 수 있는 명분을 얻었다. 실제로 그렇게 할 것이다. 여기에 더 나아가 수니파 주도로 이스라엘과 화해하고 친서방 연대가 구축되면 완전히 새로운 중동 질서가 구축된다. 이에 대한 반발로 테러가 증가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신체제에 더 강한 명분을 줄 것이다. 미국이 전쟁을 포기한다고 해도 결과는 이란의 승리가 아니다.⊙
〈407〉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제1차 세계대전을 상징하는 말이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다. 당연히 전쟁을 끝내지도 못했고, 다음 대전으로 가는 디딤돌만 됐다.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세계의 절반을 정복하고 하나의 제국을 추구하면서 세웠던 목표도 어쩌면 이 말이었을 것이다. 당연히 성공하지 못했다. 그가 죽자 다시 분열을 위한 전쟁이 시작됐다.
하나의 국가, 문화권으로 통일하려는 전쟁이 전쟁을 그치게 할 수도 있다. 우리 역사에서 통일왕국 시대와 중국의 통일왕조, 일본의 도쿠가와막부 시대를 보면 그렇다. 하지만 고구려의 경우처럼 강력한 왕국 형성이 수·당의 침공을 부르기도 하고, 수·당의 경우처럼 통일로 얻은 자신감이 침략 전쟁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무수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아직 전쟁을 끝내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영원히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현실인데, 더 무서운 진리가 있다. 경제 체제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국지전이 더 이상 국지전이 아니게 됐다. 모든 전쟁이 세계 경제와 개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즉, 모든 국지전이 국제전,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21세기 세계가 걱정해야 할 과제는 전쟁의 방지가 아니라 전쟁의 확산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실상은 국제전이 됐으면서도 겉모습은 간신히 확전을 막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미국-이란 전쟁은 국제 전쟁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고 있다. 세계가 비명을 지르며 최후의 단계에서 멈출 것인지, 전쟁의 목적·명분·정의라는 논쟁을 내던지고 세계가 생존을 이유로 이기적이고 극단적인 행동을 선택하게 될지, 치킨게임과 같은 기로에 섰다.
해결책은 없고 확전의 이유만 쌓여간다. 아직은 여기서 멈출 희망이 있다. 그러나 멈춤에 성공한다고 해도 세계는 이제부터 명분은 힘을 잃고 현실이 압도하는 단계로 진입할 것이다.⊙
〈408〉전쟁에 실패하는 원인

전쟁에 실패하는 데는 수백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국가 전략적 관점에서 두드러진 요인으로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애초에 실행 불가능한 전략을 세운 경우다. 둘째, 전략과 전술이 어긋나는 경우다. 전쟁은 시작하면 돌발 변수가 계속 발생한다. 처음에는 깃발을 보며 진행하지만, 눈앞의 당근을 줍다가 딴 길로 들어서고 늪에 빠진다. 셋째,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상대는 보지 않고 내 주장만 내세우는 경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첫 번째 경우다. 미국-이란 전쟁은 미국으로서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듯 진행되고 있다. 이미 넘었다거나 세 요인이 다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데,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평가는 전쟁이 끝난 후에 정확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란은 세 가지 모두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이란에 무슨 전략적 잣대냐, 제3자의 무책임한 지적질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이란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즉 선택지가 극도로 제한된 절체절명의 상태에서 필사적으로 초강대국에 맞서고 있는 점은 사실이다. 인정한다. 그러나 역사는 냉정하게 봐야 한다. 정서적, 도덕적으로 납득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최선의 수단은 아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여지를 남겨둬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런 최악의 상황이 오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냉정하게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제일 심각한 부분은 막연한 정의와 무책임한 감성주의, 그리고 이를 선동하고 그 결과를 즐기는 선동가, 지식인, 매스미디어의 범람이다. 소셜미디어가 집단 감정의 배출구로 쓰이는 것은 그 플랫폼의 본래 기능이다. 하지만 세상이 배설물로 뒤덮여서는 안 된다.⊙
〈409〉전쟁의 명분과 실리

1990년 걸프전이 발발했을 때, 지식인 사회에는 신앙 같은 반미 정서가 강했다. 많은 이들이 제2의 베트남전이 될 것, 미국은 망신을 당하고 국제적 위상이 내려앉을 것이라고 만세를 불렀다. 그분들에게 제2의 베트남전이 될 것이라는 이유와 미국이 몰락하면 어떤 좋은 일이 생기는지 물었다. 대답은 한결같았다. “무슬림의 신앙심은 베트남의 민족 정서보다 강해 정신력으로 미국을 압도한다.” “미국이 없어지면? 세상의 전쟁, 악, 부패, 불합리가 다 없어진다.”
국제사회는 거래 관계다. 그것도 경제적 이익과 힘, 합리와 폭력이 뒤섞여 거래가 횡행하는 곳이다. 친미든 반미든, 우방이든 적이든 국익에 맞춰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분석을 하면 비난을 받거나 분석 자체가 생략되기 일쑤다. 친미냐 반미냐라는 황당한 기준만 있지 세계에 대한 이해도, 전략에 대한 이해도 없다.
이번에 미국이 이란을 침공하자 그때의 발언과 논리가 똑같이 부활한다. 1990년대에 비해서 한국의 경제력과 국제적 위상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세계를 보는 안목과 태도는 변함이 없다.
이번 전쟁이 어떻게 끝나든 미국은 망신도 당하고 힘의 한계도 드러낼 것이다. 하지만 큰 전략, 즉 사우디아라비아와 수니파 국가들,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중동을 운영한다는 큰 그림은 끄떡없다. 그 과정에서 이란은 쉽게 물러서지 않고 미국의 위신에 타격을 주는 굉장한 저항을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지금 상처를 입고 빠진다고 해도 신중동 전략은 더 큰 지지와 추동력을 받을 것이다. 이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미국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이 제일 크다. 일본은 대미 협력 강화와 재무장으로 그 손실을 만회하려 들 것이다. 그럼 우리는 진짜 모르겠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할 것인지.⊙
〈410〉전략적 오류와 전술적 오류

나폴레옹 몰락의 결정적 계기는 러시아 침공이었다. 한마디로 전략과 전술 모두가 오류였다. 그는 유럽 국가들이 진심으로 복종하지 않고, 영국이 저항하는 배경에 러시아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러시아 황제의 항복 또는 굴종적 서약을 받아내 러시아라는 뒷배를 제거하면 유럽 통치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고 봤다.
러시아가 없다면 유럽 국가들이 고분고분해지는 건 맞겠지만, 나폴레옹 제국하에서 하나가 될 수 있었을까. 유럽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연합(EU)을 결성한 건 냉전체제하에서 당시 소련의 위협을 의식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각 나라가 주권을 유지하고 동등한 입장에서 장기적인 유럽 통합을 추진한다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전략적 오류였다. 이 전략적 오류를 야기한 진짜 원인은 전술적 오류였다. 프랑스군만으로는 러시아를 정복할 수 없었다. 나폴레옹군은 사실상 유럽 연합군이었다. 프랑스군처럼 조직했지만 선봉은 폴란드군이 맡았다. 그는 연합군을 프랑스군처럼 운용하며 그들이 자신의 군대처럼 싸워줄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전 유럽을 동원하다 보니 보급과 운송, 후방지원 체제가 무너지며 침공 시한을 넘겼다. 이는 원정을 당장 중지해야 할 사유였지만 강행했다. 전투에서 계속 승리했지만 희생이 컸다. 러시아군의 저력은 그들이 유럽에서 싸울 때와 달랐다. 그럼에도 모스크바를 점령하는 쾌거를 이뤘다. 하지만 이때부터 전략적 오류가 전술적 오류를 야기한다. 러시아 황제의 항복을 확신하고 시간을 낭비하다가 겨울을 맞이했다.
전쟁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전략과 전술은 상호작용하며 수정할 수 있다. 다만 처음부터 실현 불가능한 방법을 믿었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현재 미국과 러시아 두 초강대국이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나폴레옹의 전술적 딜레마에 빠져 있다. 세계가 피를 흘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