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正論直說 2025-08/ 08.01 상식 밖 '대주주' 규정, 정치적 '딱지 붙이기' 그만해야 - 08.30 4년간 국가 채무 487조원 급증, 文정부보다 심한 재정 중독

상림은내고향 2025. 8. 12. 18:45

 

正論直說 2025-08/

08.01 상식 밖 '대주주' 규정, 정치적 '딱지 붙이기' 그만해야

정부가 주식 양도 차익에 세금을 부과하는 ‘대주주’ 기준을 종목당 ’50억원 이상 보유‘에서 ‘10억원 이상’으로 대폭 강화키로 했다. ‘부자 감세’를 없앤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10억원 이상 주식을 가진 사람들은 연말에 ‘대주주’를 피하기 위해 주식을 팔고 있고, 이것이 주가 하락의 원인이 되고 있다.

 

공정거래법은 총 주식의 30% 이상, 금융 관련 법률에서는 5% 이상 보유한 개인·법인을 대주주로 본다. 그런데 유독 세법만 10억원 이상 주식 보유자를 대주주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다. 시가총액 1조원이 넘는 기업에서 10억원이면 지분율이 0.1%도 안 된다. 정부와 민주당 눈에는 0.1%가 ‘대주주’로 보이나. 오죽하면 민주당 내에서도 “서울 아파트 한 채 가격도 안 되는 주식 10억원어치를 가지고 있다고 ‘대주주가 내는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은 비상식적”이란 의견이 나왔겠나.

 

‘10억원 대주주’라는 황당한 이름에는 유래가 있다. 대주주 양도세가 처음 생긴 2000년에는 기준이 100억원이었다. 그때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후 50억원, 25억원 식으로 차츰 낮아지다가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10억원’까지 떨어졌다. 그런데 ‘부자 감세를 없앤다’는 명분을 유지하려 ‘대주주’라는 이름을 그대로 둔 것이다. 25년 전 100억원이면 서울 30평대 아파트 40여 채를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10억원으로 1채도 못 산다.

 

한국 정치의 큰 문제 중 하나가 저급한 ‘딱지 붙이기’다. 신중한 고려가 필요한 사안에 자극적인 이름을 붙여 편 가르기 프레임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민주당 정치인 중엔 이를 전문으로 삼는 사람이 적지 않다.

 

글로벌 추세는 법인세율을 낮춰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여주는 것이다. 민주당은 ‘부자 감세’라며 되레 세율을 올렸다. 기업들이 세금 부담 대신 투자를 해 이익을 많이 내면 세금을 더 내고 주가가 올라 소액주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데 무슨 ‘부자’ 감세인가. 이제 이런 행태는 졸업했으면 한다.

조선일보 사설 

 

08.04 말뫼의 눈물처럼 ‘한강의 눈물’이 저만치 오고 있다

1990년대까지 스웨덴은 복지국가의 모델이었다. 당시 한국 노동계는 신자유주의를 악마로, 북유럽형 사회민주주의를 천사로 생각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착각이었다.

세계 조선업의 왕자였던 스웨덴은 90년대 들어 일본·한국에 밀렸다. 2002년 세계 최대 조선사 스웨덴의 코쿰스가 최남단 항구 도시 말뫼에서 운영하던 골리앗 크레인을 단돈 1달러에 현대중공업에 넘겼다. 코쿰스 크레인이 분해되어 팔려가던 날 말뫼의 노동자들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유럽 언론에 크게 실렸다. 그 유명한 ‘말뫼의 눈물’이다.

세상은 간단치 않다. 한국 노동계가 복지천국으로 착각하던 스웨덴은 90년대에 이미 기울기 시작했다. 사회복지 수준을 조금이라도 높여가면서 계속 유지하려니 세금이 늘었고, 기업들은 과도한 법인세를 피해 네덜란드 등지로 회사를 옮겼다. 말뫼는 20년이 지나 친환경 연구도시로 겨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지금 한국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말뫼의 눈물’이 ‘한강의 눈물’이 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이재명 정부가 시장에 맞서 싸우는 모습이 문재인 때와 똑같다.

이렇게 가면 경제는 또 추락이다. 트럼프의 위협에 미국 제조업 부활시키려 우리 기업들이 옮겨가고, 노란봉투법·상법 개정·법인세 인상으로 기업들이 떠나면, 우리 청년들은 아닌 말로 손가락 빨아야 한다.

주식은 IQ가 높다. 웬만해선 안 속는다. 정부와 쥐약 먹은 기성 언론이 아무리 한미 관세협상이 잘됐다 선전해도, 머리 좋은 주식은 진실을 알고 있으니까 떨어지는 것이다. 주식이 빠져나가면 곧이어 90년대 일본 부동산 거품 붕괴가 재현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부동산 거품은 이미 목 위에까지 차올랐다.

민주당이 노란봉투법과 상법 추가 개정안을 통과시키면 기업들은 90년대 스웨덴처럼 외국으로 빠져 나간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는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 수 있다고 공개 경고했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도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기업들이 한국을 떠날 것이라고 했다.

시장은 원시공동체 물물교환 시대부터 수십만 년간 생존 노하우가 쌓였다. 정부는 절대로 시장을 못 이긴다. ‘한강의 눈물’이 저만치 오고 있다.
자유일보 사설 

 
 

08-05 글로벌 역풍 맞는 증세案, 원점 재검토 당위성 커졌다

정부의 세제 개편안에 대해 글로벌 주요 투자은행(IB)들이 일제히 경고음을 울렸다. 씨티은행은 최근 이번 증세안이 ‘코리아 업(Korea Up)’ 프로그램 취지와 배치된다며 한국 투자에 대한 의견을 ‘비중 확대’에서 ‘중립’으로 낮췄다. 홍콩계 CLSA도 “당근은 없고 채찍만 있는 조치”라고 혹평했다. JP모건 역시 “증시 추가 상승을 이끌 만한 연료가 부족하다”며 부정적 시각을 드러냈고, 골드만삭스도 증세 기조가 투자 심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와 주한유럽상공회의소가 노란봉투법에 공식 반대 입장을 밝힌 데 이어 IB들이 일제히 우려를 표명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세제 개편안이 얼마나 국제적 흐름과 동떨어져 있는지 보여준다. 실제로 어렵사리 반등한 증시에 찬물을 끼얹는 독소조항들이 적지 않다. 20년 보유한 아파트 양도차익 28억 원에 대한 실질세율은 4.2%(약 1억180만 원)에 그치지만, 주식 차익 20억 원에는 무려 5억 원의 세금이 부과된다. 배당소득 분리과세도 예상보다 훨씬 조건이 까다로워졌고, 최고세율도 35%까지 올라갔다. 이런 상황에선 이재명 정부가 내건 ‘부동산에서 증시로의 머니 무브’는 신기루일 따름이다. 정부는 세제 개편으로 내년에 8조2000억 원의 세금이 더 걷힐 것으로 기대하지만, 소탐대실이다. 유안타증권은 116조 원의 시가총액이 날아가 8조1000억 원의 잠재소비여력이 증발했다고 분석했다. 하루 만에 민생회복 소비쿠폰 효과가 사라진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내년에도 재정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세금으로 집값 잡지 않겠다”며 선을 그었다. 이로 인한 세수 펑크를 메우기 위해 기획재정부는 애꿎은 기업과 증시만 때리고 있다. 한국 경제는 정치와 달리 글로벌 시장과 맞닿아 있는 개방경제다.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30%에 이른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어긋나는 정책은 즉각 역풍을 맞는 만큼 신뢰 확보가 중요하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시장 이기는 정치나 정책은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여당은 이런 국내외 목소리에 귀 기울여 세제 개편안을 원점에서 다시 설계해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8.07 민간 방송 사장까지 강제 교체, 자유민주 국가 맞나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방송문화진흥회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 대한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의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이 시작되자 여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김지호 기자

 

민주당이 지난 5일 일방 통과시킨 방송법엔 YTN과 연합뉴스TV의 사장·보도 책임자를 3개월 안에 바꾼다는 내용이 담겼다. YTN과 연합뉴스TV는 공영방송이 아닌 민영방송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법으로 사장을 바꾸겠다고 한다. 위헌적인 발상이다.

 

YTN의 최대 주주는 유진그룹으로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사장을 임명하고 있다. 연합뉴스TV는 연합뉴스가 지분 30%를 가졌지만, 나머지 70%는 을지재단과 화성개발 등 민간 소유다. 두 언론사 모두 상법상 주식회사인데 민주당은 이를 무시하고 사장을 교체하는 조항을 법으로 못 박았다. 사장추천위원회도 노조와 합의해 구성토록 의무화했다. 모두 주주 권리를 보호하는 상법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민주당도 민간방송 사장 강제 교체가 위헌이란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는 것은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가 요구하고, 보도 전문 방송을 독점할 필요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YTN의 경우 이미 지난달 사장이 민주당의 압박에 자진 사퇴했지만, 언론노조는 수뇌부의 대대적인 물갈이를 원하고 있다고 한다. 민주당을 밀어준 언론노조가 청구서를 내민 것이다.

 

민주당은 KBS를 ‘영구 민주당 방송’으로 만든다는 방송법 개정안을 이미 통과시켰다. MBC 관련법도 조만간 처리할 예정이다. 이재명 대통령 집권 2개월 만에 사실상 방송 거의 전부를 장악하는 것이다. 역대 정권들은 모두 언론을 통제하고자 했지만, 민간방송 사장까지 법으로 강제 교체하지는 못했다. 여기가 자유민주 국가가 맞느냐는 의문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 법은 하루빨리 위헌 결정으로 폐기돼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8.07 고리 4호기도 멈췄다… '탈원전 대못'에 3년 새 원전 3기 스톱

고리 2호기 이후 매년 1~2기 정지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수원에 따르면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 원전 4호기가 6일 오후 2시를 기점으로 전력 생산을 멈춘다. 고리 4호기는 발전 용량 95만㎾의 가압 경수로형으로 1985년 11월 첫 발전을 시작했다.사진은 6일 오후 고리원전의 모습./김동환 기자

 

1985년 원자로 가동을 시작한 고리 원전 4호기가 6일 가동을 정지했다. 가동 연한 40년을 채우면서 운영 허가 기간이 끝났기 때문이다. 이로써 40년 연한을 채워 가동 중단된 원전은 2023년 4월 고리 2호기, 지난해 9월 고리 3호기에 이어 고리 4호기까지 3기로 늘었다. 올해 말 40년을 맞는 전남 영광의 한빛 1호기까지 가동을 멈추면 전체 원전 26기 중 15%인 4기가 가동 중단되는 것이다. 고리 2호기는 가동 중단 기간이 2년 4개월에 달하고, 3호기는 10개월을 넘어섰다.

 /그래픽=양진경

 

이 원전들은 가동 연한 이후에도 계속 가동할 수 있게 해달라는 ‘계속 운전’을 신청해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 시절 탈원전의 여파로 신청과 결정이 늦어지며, 재가동 시기를 기약할 수 없는 상태다.

 

최근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와 전기차 확산 등으로 전력 수요가 폭증하면서, 원전 운영국들은 원전 가동 연한을 연장하고, 신규 원전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처럼 멀쩡하게 돌리던 원전을 장기간 멈춰 세우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나라 밖에선 26조원 규모 체코 신규 원전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대미 관세 협상에서 ‘원전 협력’을 카드로 내밀었지만 정작 국내에선 문재인 정부 ‘탈원전’ 5년이 남긴 규제와 인허가 절차에 묶여 가장 효율적인 전력원인 원전을 대규모로 놀리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1~2기씩 멈추는 원전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 따르면,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 4호기 원자로는 지난 5일 오전 4시부터 출력을 서서히 줄여 6일 오후 3시 가동을 정지했다. 국내 다섯째 원전인 고리 4호기는 950㎿(메가와트)급으로, 1985년 8월 7일 운영 허가를 받고 이듬해 4월 29일부터 상업 운전에 착수했다. 만 40년이 지나 운영 허가가 이날 만료된 것이다. 이 원전은 지난 40년간 부산 시민 전체가 13년간 쓸 수 있는 전력(2773억㎾h·킬로와트시)을 생산했는데, 전력 생산이 끊기게 됐다.

 

가동 연한이 끝나 원자로를 끈 채로 계속 운전 승인을 기다리는 원전은 고리 2·3호기를 비롯해 총 3기로 늘게 됐다. 이 추세대로면 1980년대 초·중반 가동에 들어간 원전들이 2030년 이전에만 총 10기, 8450㎿ 규모가 문을 닫는다. 오는 12월엔 한빛 1호기, 내년 9월과 11월엔 각각 한빛 2호기와 월성 2호기, 2027년에는 월성 3호기와 한울 1호기가 가동 연한 만료를 앞두고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탈원전을 내걸었던 문재인 정부가 이 원전들을 폐쇄하기로 방침을 정해 놓고 사실상 재가동을 막았기 때문이다. 수년씩 걸리는 계속 운전 심사 기간을 고려하면, 한수원은 가동 연한 만료를 2~5년 앞두고 안전성 평가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하지만 문 정권하에서 절차는 계속 늦어졌고 고리 2호기의 경우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인 2022년 4월에야 계속 운전 신청이 이뤄졌다. 가동 연한을 겨우 1년 앞둔 시점이었다. 고리 2호기 신청이 늦어지면서 3·4호기도 줄줄이 미뤄진 것이다.

 

재가동 승인권을 가진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올해 안에 결론을 내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원안위 승인이 난다고 해도 설비를 교체하고 시운전까지 마치려면 길게는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릴 수 있어, 재가동은 내년 이후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美·체코엔 원전 카드… 재가동 속도 내야”

전문가들은 AI 확산으로 인한 전력 수요가 폭증하고, 폭염이 해마다 극심해지는 상황에서 원전을 1기라도 더 빨리 가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지난 2월 확정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최대 전력 수요가 올해 106GW에서 2038년 145.6GW까지 13년 새 37%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황에서 가동을 멈추는 원전이 늘어나면, 새울 3·4호기와 신한울 3·4호기 등 신규 대형 원전의 건설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손양훈 인천대 명예교수는 “날씨에 상관없이 365일 24시간 가동할 수 있는 원전이 가장 유리한 에너지원”이라며 “이대로 AI 데이터센터 수요 등이 전기본에서 세운 계획보다 늘게 된다면 전력 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종호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객원교수는 “미국은 서류 요건만 적법하게 갖춰졌다면 인허가 전에도 일단 가동할 수 있게 해준다”며 “우리도 계속 운전 제도를 개선하고 인허가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조재현 기자

 

08.08 멀쩡한 고리 4호기도 중단, 이런 국가 자해 어딨나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수원에 따르면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 원전 4호기가 6일 오후 2시를 기점으로 전력 생산을 멈춘다. 고리 4호기는 발전 용량 95만㎾의 가압 경수로형으로 1985년 11월 첫 발전을 시작했다.사진은 6일 오후 고리원전의 모습./20250806 김동환 기자

 

고리 원전 4호기가 가동을 중단했다. 원전에 문제가 생겨서가 아니라 가동 연한 40년을 채웠다는 것이다. 원전 가동 연한이라는 것은 다른 모든 설비와 마찬가지로 그때쯤 전체적으로 점검해 문제를 찾고 보수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다른 선진국들은 이 과정을 거쳐 원전을 계속 운전하고 있다. 그런데 원전 강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고 있다.

 

40년 연한이 됐다고 가동 중단된 원전은 2023년 4월 고리 2호기, 지난해 9월 고리 3호기에 이어 고리 4호기가 세 번째다. 올해 말엔 전남 영광의 한빛 1호기가 40년을 맞아 가동을 멈출 예정이다. 그럴 경우 전체 원전 26기 중 15%인 4기가 가동을 중단하게 된다. 우리 원전들은 유지·관리를 잘해서 가동을 연장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거의 일치된 의견이다. 멀쩡한 원전을 단순한 행정 절차 때문에 장기간 가동을 중단시키는 사례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이런 비과학적인 국가적 낭비와 자해가 어디 있나.

 

가장 큰 원인은 문재인 정부가 원전 계속 운전 신청을 일부러 늦추는 수법으로 원전 가동을 일단 멈추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고리 2호기부터 재가동 시기를 기약할 수 없는 상태다. 한쪽에서는 폭염으로 전력 수급을 걱정하고 한쪽에서는 가장 효율적인 전력원인 원전을 대규모로 놀리는 이런 불합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최근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와 전기차 확산 등으로 전력 수요가 폭증하면서 원전 운영국들은 원전 가동 연한을 연장하고 있다. 재가동 승인 연한도 10년이 아니라 20년 단위로 하고 있다. 근래 원전 수명을 20년씩 연장해 80년 이상 쓰는 것이 국제적인 표준이 되다시피 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40년 쓰고 없애거나 장기간 사용을 중단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미국·유럽보다 돈이 남아돌아서인가.

 

계속 운전을 승인받는 데 적어도 3년 걸린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미국은 서류 요건만 제대로 갖추면 인허가 전에도 일단 계속 가동할 수 있게 한다. 우리도 제도를 개선하고 인허가에 속도를 내야 한다. 안전성 평가를 위한 법적 절차는 준수하되 그 기간을 단축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조선일보 사설

 

08.08 "신문은 삐라, 방송은 나팔" 원로 언론인의 질타, 공감한다

언론이 나라 망치고 있다

그것도 주류언론이

박근혜-윤석열 탄핵정변에 부역

▲ 원로 언론인들이 회원인《대한언론인회》가 발행하는 인터넷신문《대한언론Knews》에 실린 김성우 전 한국일보 주필의 글을 전재한 뉴데일리 2월26일자 화면 갈무리 ⓒ 뉴데일리

《‘좌편향과 저질화’ 한국 언론은 이 역사적 책임 어떻게 질 것인가》

 

■ 언론의 발광

최근 원로 언론인들이 회원인《대한언론인회》가 발행하는 인터넷신문《대한언론Knews》에 국민의힘의배신 DNA와 기회주의 체질을 통렬히 비판해 눈길을 끈 김성우 전 한국일보 주필(91)은 올해 2월나라를 망치는 것은 언론이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장문(長文)의 글을 공개했다.

 

한국 언론계 원로 중의 원로인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 통과 후 헌법재판소 결정이 임박한 시점에 쓴 이 글에서 요즘 신문들은 삐라였고 방송들은 나팔이었다며 한국 언론의 행태를 강도 높게 질타해 폭넓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김성우 전 주필은 당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야당이 연속적인 특검과 탄핵의 남발로 국정을 마비시키고 있을 때, 그것을 방치하면 정부가 금방 무너질 것이 뻔한데도 언론들은 이에 대해서는 아예 모르는 척 외면했다.

그러면서 야당의 대통령 탄핵 흥행에만 동조하여 탄핵 사유가 될 것도 없는 명품백이나 한 상병의 죽음에만 매달려 연일 떠들어댔다.”

 

12.3 계엄 후의 언론 행태에 대해서는 이렇게 질타했다.

 

“기어이 비상계엄이 터지자 언론들은 이번에는 야당의 주장에 덩달아 무조건《내란》으로 단정하고 광분하기 시작했다.

계엄을 유발한 원인인 야당의 탄핵 남용에는 일언반구도 추궁을 않고, 계엄이 내란인지 아닌지조차 따져 볼 생각은 아예 없이, 그저 계엄만 가지고 흥분했다.”

 

“그러다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었을 때, 그리고 마침내 대통령이 체포되었을 때, 언론들은 마치 대승첩이라도 한 듯이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담합이라도 한 것처럼 목청껏 높이높이 환호성을 질러대며 열광했다.”

 

그는 이런 행태를 언론의 발광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김성우 전 주필은 특히 기존 주류 신문-방송(레거시 미디어)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국민들은 저마다 TV를 화가 나서 못 보겠고, 신문을 분해서 못 보겠다고 한다.

볼만한 신문이 없고, 볼만한 TV가 없다고 한다.

신문도 TV도 없는 편이 국민 건강에도 국가 건강에도 이롭겠다고 한다.

지금 나라를 망치고 있는 것은 언론이다.”

 

▲ 원로 언론인들이 회원인《대한언론인회》가 발행하는 인터넷신문《대한언론Knews》에 실린 김성우 전 한국일보 주필의 글을 전재한 뉴데일리 8월7일자 화면 갈무리 ⓒ 뉴데일리

 

■ 사상 최악의 언론범죄

어디《윤석열 탄핵정변》때만 그랬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기성 탄핵 정변》이 본격화한 2016년부터 지금까지 약 10년간 한국 언론의 행태는 제대로 정신 박힌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을 실망시키고 분노하게 만들었다.

 

이 기간 동안 한국 언론의 두드러진 특징은좌경화와 저질화라는 양대 키워드로 압축할 수 있다.

이념적 정파성에 따라 모든 사안을 판단하고 왜곡도 서슴지 않는 좌익 언론이야 당연히 그 정도가 더 심했다.

하지만, 그동안 정론(正論)을 자부하면서 보수 매체, 혹은 우파 매체로 인식돼온 몇몇 주요 언론매체의 행태도 오십보 백보였다.

 

2016년을 전후해《박근혜 죽이기》과정에서 쏟아져 나온 그 수많은 광기와 선동의 언론기사들이 대부분 악의적 거짓뉴스-가짜뉴스였다는 것을 이제 알 만한 사람은 안다.

 

하지만 대한민국 언론 사상 최악의《언론 범죄》라고 할 수 있는 그 무도한 짓에 적극 가담해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리고 무능하고 반역적인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키는데 결과적으로《부역》한 언론계 종사자들 중에서 자신들이 저지른 명백한 잘못을 고백하고 사과하거나 책임을 진 사람을 찾아보긴 어렵다.

 

나는 지금 묻는다.

 

 미혼의 여성 대통령에게 음습하고 칙칙하고 불결한 성적 이미지를 뒤집어씌워 왜곡된 국민적 분노를 부추기거나, 이상한 약물에 취해 기본적 판단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몰고 간, 그 수많은 기사와 논평 중에 사실로 밝혀진 것이 단 하나라도 있었던가.

 

 충청북도 도청 소재지인 청주시의 전체 인구가 85만 명, 대한민국 육해공 현역 군인을 모두 합쳐도 55만 명인 현실에서 극좌세력인 소위《민중총궐기 투쟁본부》가 주도한 박근혜 퇴진 촉구 서울 도심 촛불시위에 잇달아 100만명이 넘게 참석했다는 좌익세력의 말도 안 되는 일방적 주장 을 좌익 매체는 물론이고, 소위 비(非)좌파 유력 신문들의 1면 톱기사와 메인사설 제목에 버젓이 붙인 제작 태도가 저널리즘의 최소한의 원칙에 비춰봤을 때 과연 제 정신이었던가.

 

▲ 박근혜 탄핵정변에 등장한 야간 횃불시위. 주류언론들은 좌파의 이런 겁박애 주늑이 들었는지 백만시위군중이 광화문 일원을 뒤덮었다고 대문장처럼 대서특필했다. 지금 뒤돌아 보며 일말의 양심이라도 찔리는 언론인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 의문이다. ⓒ 연합뉴스

 

■ 일방적 좌편향 여론몰이

그렇게 강성 좌익세력이 주도한 집회를 극한의 과장을 더해서 치켜세우던 한국 언론이 탄핵에 반대하는 애국시민들의 대규모 집회는 어떻게 보도했던가.

서울 광화문에 좌익 주도 집회보다 훨씬 많은 시민들이 모여서 잇달아 사기성 탄핵의 부당성을 규탄하고, 문재인 정권 출범 후에는 한여름과 한겨울에도 소리높여 좌익정권의 폭정과 실정을 질타했지만, 이를 제대로 보도한 신문과 방송-뉴스통신사는 찾기도 어려웠다.

최소한의 균형감도 상실한 일방적인 좌편향 여론몰이 였다.

《윤석열 탄핵정변》때도 비슷한 양상이 재연됐다.

탄핵정변 초기 좌익이 주도한 집회는 온갖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거의 리얼타임으로 보도됐다.

당연히 집회참석 인원도 부풀려졌다.

 

그러다가 이른바《반미 좌익세력 미국 CIA 신고 사태》로 좌익집회의 기세가 확 꺾이고, 반대로 기존의《대국본 주최 광화문 집회》에 이어, 전한길이라는《대중적 스타》의 깜짝 등장으로 전국적 열풍이 분《세이브코리아 집회》까지 가세하면서 아스팔트에서 우파가 좌파를 압도하자, 과연 어떻게 됐는가.

 

서울을 비롯해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춘천 등 전국 각지에서 엄청난 인파가 몰린 탄핵반대 집회를 생생하게 현장취재해 제대로 보도한 언론사는 자유우파 성향 주요 인터넷매체인《뉴데일리》등 극소수에 불과했다.

 

물론 갈수록 국민관심이 커지고 집회열기가 확산되면서 자사 유튜브 채널을 통한 중계를 하는 종편이나 심지어 공중파도 나왔지만, 솔직히 이는 유튜브 수익을 겨냥한 돈벌이용 중계라는 인상이 짙었다.

나머지 압도적 다수의 매체들은 이 엄청난 열기를 외면하거나 심지어 그 의미를 깎아내리기에 열을 올렸다.

 

라틴어에는《말은 날아가지만 글은 남는다(VERBA VOLANT, GESTAS SCRIBERE)》라는 인상적인 격언이 있다.

새로운 미디어인 유튜브 채널의 중요성이 커진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아무리 시대가 달라졌어도 활자로 남기는 기사는 방송이 하기 어려운 중요한 역할을 여전히 담당한다.

그런 면에서 생각한다면 지난 겨울 탄핵을 반대하는 거대한 국민적 집회의 물결을 제대로 취재해 정리해 역사의 기록으로 남긴 한국 언론사가 극소수에 그쳤다는 점은, 분명히 정상적 언론환경이라고 하기 어렵다.

 

▲ 보무당당 김정숙의 모습. 표정에 자기가 대통령이라는 거들먹거림이 줄줄 흐른다. 왼쪽은 사고뭉치 딸 문다혜의 모습. 주류언론은 왜 이들에게 그렇게 너그러웠을까? ⓒ 뉴데일리

 

■ 문재인엔 비굴, 현 정권엔《이(李)비어천가》

또 하나 중요한 문제를 짚어보자.

박근혜에 대해서는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온갖 거짓말들로 매도해 인격말살의 짓을 서슴지 않던 언론이었지만,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자 명백한 팩트인 문재인-김정숙 부부 의 심각한 문제점들도 지적하는 언론사를 찾기 어려웠다.

 

심지어 일부 방송에서 김정숙 의 이름을 거론한 우파 성향 패널들은 권력의 방송사 압박으로 무더기로 퇴출됐고, 신문 칼럼에서도 문재인-김정숙 이란 이름을 피해가기 급급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정권에 대해서는 있는 것 없는 것 들먹이면서 소리 높여 비난하더니, 첫 고위직 인사부터범죄자 천국-이적(利敵) 행위자 천국 이재명 정권의 위험하고 망국적인 폭주에 대해서는 모르는 척 시치미 떼고, 심지어《이(李)비어천가》수준의 궤변을 쏟아내는 것이 상당수 한국 언론이다.

 

현직 대통령 아들의 결혼식 축의금과 관련된 의혹 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도하지도 못하면서 새로운 권력이 국회 다수의석을 무기로 밀어붙인 소위 3대 특검이 연일 쏟아내는피의사실 공표죄수준의 민망하고 선정적인 주장들을 따끔하게 비판하기는커녕 일방적으로 받아쓰면서 도배를 하고 있다.

 

이게 도대체 정상적인 자유민주국가 언론의 제대로 된 모습 이라고 할 수 있는가.

 

과거 일본에서 국사(國師), 즉《국가의 스승》으로까지 불렸던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는 생전에 시사잡지《문예춘추(文藝春秋)》에 오랫동안 권두 에세이를 썼다.

이 에세이들을 묶어 4권의 문고판으로 출간한 것이《이 나라의 형상(この国のかたち)》이란 제목의 책이다.

 

시바 료타로는 이 책에서 1945년 태평양전쟁 패전을 초래한 중요한 계기로 러일전쟁 승리 이후 잘못 흘러간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꼽으면서 진실을 외면한 선동 언론의 책임도 적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시바 료타로는 질타했다,

 

“선동만 하고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은 신문에도 큰 책임이 있었다.

만약 당시의 신문이 사실을 잘 알면서도 선동만 일삼았다면 이후의 역사에 대해 커다란 범죄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태평양전쟁 과정에서도 일본 언론은《천황 파시즘 체제》의 극우 군부(軍部)에 적극 부역해 전쟁 수행을 위한 노골적 선동에 열을 올려 자국민을 오도했다.

 

결국 일본 국내외에서 수많은 희생자를 낸 처참한 패전 후 당시의 잘못된 보도 행태에 책임이 있는 간부급 언론인들은 무더기로 언론계에서 퇴출됐다.

 

전후(戰後) 일본의 주류 언론계가 회사마다 논조와 성향은 달라도 기사의 정확성을 매우 중시하고 명백한 오보에 엄격한 책임을 묻는 풍토가 정착된 것은 이런 쓰라린 과거의 실패 경험에서 뼈아픈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 정윤회 밀회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기폭제가 된 조선일보의 최보식칼럼. 조선일보는 왜 유독 박근혜-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서만 가혹할까. 노무현-뮨재인-이재명 대통령에 대해 왜 같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을까, 스스로 비(非)좌파를 자처하면서. 그걸 불편부당이라고 말하려 하는 건가. ⓒ 조선일보 지면 갈무리

《박근혜 탄핵정변 과 문재인 정권 탄생》,《윤석열 탄핵정변 과 이재명 정권 탄생》이라는 최근 약 10년간의 격동을 보도한 한국 언론계를 되돌아보면, 한국인들이 흔히 일본 사회의 특징을 비판할 때 인용하는《빨간 신호등도 함께 건너면 무섭지 않다》는 냉소적 지적을 떠올리곤 한다.

 

누구나 한때 판단을 잘못 해서 실수를 저지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이라는 점이 명확해지고 나서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계속 뭉개기만 하면서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면, 다시는 정론을 말할 자격이 없다.

 

더구나《박근혜 죽이기》때 저질러졌던 언론의 잘못된 행태가 뼈를 깎는 반성과 함께 바로잡혀지기는커녕 지금 이 순간《윤석열 죽이기》에서도 비슷한 행태로 반복되고 있는 현실은 더 참담하다.

 

《현명한 사람은 역사에서 배우고 어리석은 사람은 경험에서 배운다》는 말이 있다.

요즘 상당수 한국 언론은《역사에서 배우는》현명한 사람이 아닌 것은 말할 것도 없고《경험에서 배우는》어리석은 사람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좌익 거대여당은 방송법 개악을 비롯해서 언론장악을 위한 제도적 장치 구축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이 글의 도입부에서 소개한 김성우 전 주필의 언론 질타 전문(全文)을 찾아서 다시 읽어본다.

 

정말로 지금 한국의 언론인, 한국의 언론사들은 자기 내면의 양심이라는 거울에 비춰봐서 부끄럽지들 않은가.

뉴데일리 권순활 객원 칼럼니스트 / 권순활TV 대표 /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08.09 사망 땐 면허 취소면 10대 건설사 다 문 닫아야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에 위치한 포스코이앤씨 송도사옥 앞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 /뉴스1

 

정부가 건설 현장 사망 사고를 막기 위해 면허 취소를 포함한 강도 높은 제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건설 현장에서 사망자가 1명만 발생해도 영업 정지를 내리는 방안을 추진한다. 지금은 2명 이상 사망 사고가 발생한 업체만 영업 정지를 내릴 수 있다. 당정은 산업 재해가 세 번 발생한 건설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입법 논의에 착수했다.

 

면허 취소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시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올해 네 번째 사망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에 대해 “사망 사고가 반복되는 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했고, 엿새 뒤 이 회사 근로자가 감전으로 의식불명이 되자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면허 취소는 1994년 성수대교 붕괴로 32명의 사망자를 낸 동아건설산업이 유일할 만큼 초강력 제재다.

 

산업재해로부터 생명을 지키는 것은 우리 사회의 큰 과제다. 소년공 생활을 겪어본 이 대통령에겐 산재 사고가 남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사고 횟수만으로 처벌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지금 타깃이 된 포스코이앤씨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사망자는 5명으로 10대 건설사 중 가장 적었다. 5년간 10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건설사가 4곳이었다.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면허를 취소하면 10대 건설사가 모두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나라와 사회, 경제가 어떻게 되겠나.

 

포스코이앤씨의 고용 인원은 임직원 약 6000명과 도급·파견·용역 등 간접 고용 1만7000여 명을 합쳐 2만3000명을 넘는다. 가족까지 합치면 5만명 이상의 생계가 걸려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광주 재개발 구역 철거 건물 붕괴 사고와 신축 중이던 아파트 외벽 붕괴 사고로 15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현대산업개발에 정부가 면허 취소 대신 영업 정지를 내린 것도 이런 요인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2022년 이후에도 사망 사고가 계속되는 것을 보면 아무리 안전 관리를 강화하더라도 산업재해엔 처벌만으론 안 되는 원인이 있는 듯하다. 정확하게 그 원인과 과실을 분석해 제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짜고짜 면허 취소는 근로자 생계와 협력 업체 줄도산, 소액 주주와 아파트 계약자 피해 등 또 다른 피해를 양산할 수 있다.

조선일보 사설 

 

08.11 마침내 현실로 다가온 석유화학 위기,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국내 5대 기간 산업인 석유화학의 위기가 마침내 현실로 다가왔다. 기업 2만7000여 곳에 고용 인원 43만명, 한국 5대 수출 품목인 석유화학의 대표기업 여천 NCC가 오는 21일까지 3100억원을 갚지 못하면 부도가 유력하다고 한다. 5년 전만 해도 매출 5조원 이상에 1조원 넘는 흑자를 내던 기업이 최근 3년 연속으로 매년 2000억~3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올 3월 이 회사의 주주인 한화와 DL(옛 대림)측이 각각 1000억원씩 추가 출자를 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했다. 회사채 발행이나 대출마저 막힌 상태라고 한다. 이에 DL 측은 추가 출자에 난색을 표하면서 사실상 부도가 초읽기에 들어간 형국이다.

 

한국 석유화학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2018년만 해도 국내 전체 수출의 8.2%(약 500억달러)를 담당하며 세계 4위 생산국에 올랐던 한국 경제의 효자였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중국과 중동 공세에 사면초가에 빠졌다. 여천 NCC뿐만 아니라 롯데케미칼, LG화학이 작년부터 줄줄이 일부 공장의 가동 중단에 돌입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GCG)은 현 상황이 지속되면 국내 석유화학 기업 중 50%가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생산 라인은 멈춰 서고, 투자 계획은 철회되며, 일자리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국내 석유화학은 나프타를 NCC(나프타 분해설비)에 돌려 화학제품의 원료인 에틸렌을 생산하면서 그 차익을 가져가는 구조다. 에틸렌을 기반으로 비닐, 필름, 전자기기, 마스크는 물론 기저귀, 병뚜껑까지 만든다. 그런데 이 사업 구조는 중국과 중동 등의 대규모 증설로 경쟁력을 잃고 있다. 작년 기준 글로벌 에틸렌 생산 능력은 약 2억2900만t, 수요는 1억8800만t이다. 이런 상황에서 원가 개념이 희박한 중국은 물론 중동 기업조차 나프타 없이 에틸렌을 생산하는 기술을 통해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 경제에서 석유화학 산업은 단순히 화학 제품을 만드는 것을 넘어, 자동차, 전자, 건설 등 수많은 전후방 산업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 제조업 전체와 맞물려 있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위기가 국내 핵심 산업조차도 중국 공세 앞에서 구조적 한계로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경제엔 석유화학뿐만 아니라 건설업, 이차전지 등에서도 심각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이런 산업 곳곳의 위기 경고음은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다. 수년 전부터 원인이 무엇인지도 알 사람은 다 아는 위기다. 그런데도 그 위기가 현실이 되는 시점에서도 뾰족한 대책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더욱 걱정스럽다.

조선일보 사설

 

08.12 대출 규제 약발도 한 달, 빨리 공급 대책 나와야

▲10일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단지./뉴스1

 

이재명 정부의 첫 부동산 대책인 ‘6·27 규제’가 나온 지 한 달 반 만에 서울 아파트값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가계 대출도 8월 들어 한 주 만에 2조원 가까이 급증했다. 일평균 기준으로 7월의 두 배가 넘는다. 이 속도라면 8월 증가액은 작년 8월을 빼면 역대 최대치가 될 전망이다.

 

공급 대책 없이 대출만 조인다고 집값이 잡히지 않는다는 건 상식이다. 지금 문제의 핵심은 단기적 공급 부족과 그에 대한 심리적 우려다. 서울 등 수도권의 신규 주택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고, 재개발·재건축은 규제와 공사비 급등에 발이 묶여 있다. 내년의 수도권 전체 입주 물량은 올해의 절반 수준으로 예상된다. 서울의 경우 2027년에는 입주 물량이 더 급감할 전망이다. 이러니 ‘영끌’을 해서라도 집을 사둬야 한다는 불안 심리가 커지는 것이다. 게다가 새 정부가 돈을 풀고 있고, 금리 인하 가능성까지 있는 등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정부의 주택 공급 대책은 자꾸 늦어지고 있다. 당초 8월 중에는 나올 것으로 기대했는데 9월로 연기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가을 이사철을 고려하면 자칫 실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4기 신도시는 없다”며 신도시를 신규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는데 그렇다면 그에 따른 보완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전 정부의 실패’ 등을 탓하며 시간을 낭비할 상황이 아니다. 부동산처럼 해결이 어려운 문제는 뒤로 미룰수록 일이 커진다. 그런데도 ‘불장’으로 번진 부동산 시장을 잠재울 국토부 장관의 인선은 늦어졌다. 규제 대책 발표도 시장 기대보다 늦었다. 이대로 가면 부동산 시장은 다시 ‘폭등-규제-잠시 진정-다시 폭등’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부동산은 실기하면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는다.

조선일보 사설 

 

08.13 10%대로 추락한 시장 점유율… K배터리는 중국에 밀려 늪에 빠졌다

한국 이차전지 산업도 위기

/그래픽=백형선

 

대한민국은 제조업 국가다.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24.2%로 OECD 국가 중에서 아일랜드 다음이다. 세계적인 제조업 국가로 꼽히는 일본(19.2%), 독일(18.5%)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1967년 연두교서를 통해 제시했던 공업입국의 꿈은 달성되었다.

 

그러나 2025년 대한민국 제조업은 중국에 추월당했거나 곧 추월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제조업으로 버티던 지방의 상황은 심각하다. 공급과잉 직격탄을 맞은 여수에 이어 포항과 서산이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될 예정이다. 더 큰 문제는 첨단 제조업에서도 밀리고 있다는 점이다.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세계 시장을 장악할 것으로 기대되던 이차전지 기업들은 대규모 적자와 가동률 저하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 기업들의 전기차용 이차전지 시장점유율은 2025년 상반기 16.4%에 그치면서 작년 대비 5.4%포인트 하락했다. 전기차 수요 정체가 원인이라고 하지만 중국 기업들은 대규모 이익을 보고하고 있다. 중국의 CATL은 올해 상반기에만 5조8662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무엇이 잘못됐을까.

 

/그래픽=백형선

 

대한민국 이차전지 산업은 1990년대 후반 일본 기업이 공급하던 노트북과 휴대전화의 충전지를 대체하기 위해 시작됐다. 이차전지 산업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제조업과 같은 길을 걸었다. 성능은 조금 낮지만 비용은 훨씬 저렴한 제품을 빨리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생산비가 낮은 지역에 대규모 플랜트를 건설했다. 빠른 투자 결정과 집행을 통해 조기 출시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계열사 물량이 있으니 빠른 시장점유율 확보로 이어졌다. 단계적으로 첨단화·고도화를 진행하면서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대한민국 제조업 성장 방정식이었고, 이차전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2003년 정부는 10대 차세대 성장 동력 산업에 이차전지를 포함시키면서 적극 지원에 나섰다. 정권 교체에도 이차전지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변함이 없었다. 2011년 이명박 대통령은 미래 핵심 산업은 전기차이며, 고출력 대용량 이차전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16년을 전후해 테슬라·BMW·GM 등과 대규모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2018년부터 전기차 전환이 본격 시작되면서 시장이 커졌다.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이차전지 시장도 우리 것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몇 년 만에 급성장한 중국 업체들이 이차전지 시장을 장악했다. 가격 경쟁력, 상품의 다양성 및 기술력 등에서 그들이 우리를 압도했다.

 

/그래픽=백형선

 

우리의 가장 큰 실수는 기술 변화 예측에 실패한 것이다. 고성능인 삼원계(NCM) 방식이 시장의 주력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삼원계의 화재 위험은 전고체 전지 개발로 극복할 계획이었지만 순탄치 않았다. 그사이 중국은 인산철(LFP) 이차전지를 개발했다. 저가·저성능이라고 얕잡아보는 사이에 LFP 성능은 급속히 향상됐고, 전기차에 충분히 탑재할 수 있게 됐다. 저렴하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LFP로 중국은 급성장하는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 시장을 장악했다. 이제 중국은 더 저렴하고 화재 위험이 없는 나트륨 배터리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우리는 아직 LFP 개발 및 양산 준비 단계다.

 

연구개발의 비효율도 문제였다. 이차전지 관련 예산이 증가하자 많은 연구 기관이 달려들었고, 연일 세계적 수준의 기술을 개발했다는 보도 자료가 쏟아졌다. 하지만 기업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정부 지원도 중구난방이었다. 5년 단위로 발표되던 미래 기술 선정이 언제부터인가 매년 진행되면서 지원은 분산되고 체계적 관리가 어려워졌다.

 

/그래픽=백형선

 

가장 근본적 문제는 중국을 과소평가했다는 점이다. 중국 기업은 기술 개발이 불가능할 것이라 판단했다. 조잡하지만 그럭저럭 작동되는 제품이 나오면 저성능이라고 무시했다. 일정 수준의 제품을 만들면 싼 가격으로 승부한다고 폄하했다. 중국 업체 점유율이 올라가면 우리는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높은 수익성을 추구한다며 핵심을 피해 갔다. 중국이 동등한 성능과 저렴함을 갖춘 제품을 만들면 내구성과 안정성이 떨어진다고 이야기했다. 상대를 무시하는 사이에 시장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럼에도 우리 기업들은 반격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SK그룹은 적자에 시달리던 이차전지 업체 SK온을 알짜 회사인 SK엔무브와 합병시켜 부담을 덜어줬다. 그룹 차원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8조원에 이르는 자본을 조달할 계획을 밝혀 이차전지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2030년을 목표로 진행되던 전고체 배터리 개발도 더 빨라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도 미국에서 LFP 양산 체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이제 정부와 사회가 역할을 해야 할 차례다. 인력 확보를 위한 효과적인 교육·훈련 시스템을 도입하고 제대로 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시장을 보호하면서 산업을 육성할 정책들을 정교하게 짜야 한다. 우리 제조업 기반은 여전히 세계적이고 충분한 저력을 가지고 있다. 막연한 비관론이 아닌 냉정한 판단과 체계적 지원으로 제조업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때다.

<중국의 2차전지 산업 전략은>

중국의 이차전지 산업은 체계적이며 일관된 산업 정책과 기업의 치열한 경쟁이 결합되면서 경쟁력을 확보했다. 중국 정부는 2009년 십성천량(十城千輛, 도시 10곳에 각각 1000대의 전기자동차를 운행) 시범 사업을 시작했다. 세부 전략을 지방정부들에 일임하자 보급 확대를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졌고 수많은 기업의 난립과 경쟁이 시작됐다. 2012년 6월 에너지 절감 및 신에너지차 산업 발전 계획을 통해 전기차 산업 집중 육성을 발표하면서 중국 전기차 및 이차전지 시장은 본격적으로 급성장했다.

 

/이차전지용 양극재와 음극재 제품 모형. /포스코퓨처엠

 

대한민국을 포함한 해외 이차전지 기업들의 중국 진출이 본격화되던 2015년, 중국 정부는 신에너지 자동차 동력 배터리 업계 규범 조건(新能源汽车动力电池行业规范条件), 일명 화이트 리스트를 발표했다. 일정 조건을 충족한 이차전지를 사용한 전기차에 보조금을 우선 배분하도록 한 화이트 리스트는 기업 난립을 억제하고 질적 성장을 유도하기 위한 요구 조건을 담고 있었다. 품질 성능 기준, 안전성 테스트 및 일정 수준 이상의 생산 규모와 설비를 포함한 현지화 요구는 2019년 폐지됐지만 외국 기업들에 큰 장벽으로 작용했고 중국 기업들이 급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중국 정부는 광물자원의 안정적 공급을 포함한 기반 구축에도 많은 투자를 해 왔으며 이를 통해 연구개발·생산·재활용·장비 소재 등 4가지 영역에서 독립적인 산업 생태계 구축을 완료했다. 중국은 리튬 이외에 흑연·망간·니켈 등 이차전지에 필수적인 광물자원의 채굴 및 정련 분야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어 중국의 이차전지 경쟁력은 앞으로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2차전지 기술 동향은>

이차전지 시장은 크게 전기차와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으로 나뉜다. 시장 규모는 아직 전기차 분야가 68%로 크지만 최근 ESS 분야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태양광발전 용량이 급증하면서 이를 저장할 수 있는 ESS 수요가 최근 미국·호주 등에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ESS는 잦은 충전과 방전을 견뎌야 하며,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으로 운영돼야 한다. 또한 대규모로 설치돼야 하기 때문에 낮은 비용이 중요하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에너지 밀도는 낮지만 저렴한 LFP 방식의 이차전지가 ESS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대량의 전력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짧은 시간 내에 전력 수요가 급변하는 AI 클라우드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ESS가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어 ESS 시장은 지속적으로 확장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전기차 시장은 동남아시아·남미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남미의 경우 2년 전만 해도 신차 판매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율이 2%에 불과했지만 2024년에는 6%를 넘어섰다. 네팔에서는 신차 판매의 76%가 전기차다.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낮은 지역에서는 저렴한 LPF 방식이 선호될 수밖에 없다. BYD 등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브라질·인도네시아·태국·튀르키예에 전기차 공장을 건설하면서 생산 거점을 확대하고 있다. 화석연료를 지지하는 트럼프의 반(反)전기차 정책으로 미국 업체들이 주춤한 틈을 중국 업체들이 공략하고 있다.

조선일보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수석전문위원

 

08.14 빚내서 아무 데나 씨 뿌리면 가을에 수확할 수 있겠나

▲국정기획위원회 진성준 부위원장이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기획위원회 국민보고대회에서 재정지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나라 재정 절약 간담회’에서 “국가 살림을 하다 보니 할 일은 많은데 쓸 돈이 없어 참 고민이 많다”며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대규모 국채를 발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나라 살림을 농사에 비유해 “봄에 뿌릴 씨앗이 없어 밭을 묵힐 생각을 하니 답답하다”며 “지금 씨를 한 됫박 뿌려서 가을에 한 가마를 수확할 수 있다면 당연히 빌려다 씨를 뿌려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경제 발전과 국민 복지 향상을 위해 필요한 분야에는 빚을 내서라도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하지만 무조건 빚부터 내기에 앞서 경제를 활성화해 세수를 늘리고, 불필요한 지출 구조 조정을 통해 씀씀이를 줄이는 것이 우선이다. 설사 빚을 내더라도 우선순위를 철저히 따져 불요불급한 지출은 자제해야 한다. 그런데 이 대통령 발언은 돈을 어디에, 왜 써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 자체가 없다. 무조건 빚부터 내야 한다는 식이다.

 

같은 날, 국정기획위원회는 5년간 공약 이행에 필요한 210조원의 재원 마련 계획을 발표했다. 세제 개편과 세입 기반 개선 등으로 94조원을, 지출 삭감·기금 활용 등으로 116조원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세수를 늘리고 지출을 줄이겠다는 것으로, 위원회 발표 어디에도 빚을 내겠다는 계획은 없다. 5년 나라 살림의 로드맵을 발표하는데 대통령과 국정기획위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낸 것이다. 국민 입장에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민주당 정부의 ‘무원칙 재정’은 처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매년 100조원씩 국가 채무가 늘어날 정도로 재정 확장 정책을 폈다. 문 정부 때 늘어난 국가 채무가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나라 곳간이 비어 국가 채무가 계속 늘어나는데도 “곳간에 작물을 쌓아두기만 하면 썩어버리게 마련”이라고 해서 논란을 불렀다.

 

이재명 정부도 당선 축하금 성격의 전 국민 소비 쿠폰 지급에 13조9000억원을 쓰는 등 선심성 지출을 늘리고 있다. 반면 사업성이 떨어지는 국책 사업을 걸러내는 기준인 예비 타당성 조사 대상은 500억원 이상에서 1000억원 이상으로 완화하는 등 방만한 재정을 견제하는 장치에는 무관심하다. 재정 준칙 제정도 기약이 없다. 이대로 5년이 지나면 재정 중독에 빠졌던 ‘문 정부 시즌 2’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8.17 무엇이 오늘의 대한민국과 북한을 만들었나

대한민국, ‘포용적’ 제도 선택 vs ‘억압적’ 제도 북한

해방 80주년에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어제 오늘 내일

⊙ 내향적·폐쇄적 대륙 국가 소련과 외향적·개방적 해양 국가 미국의 점령이 남북의 운명 갈라
⊙ 북, 레닌-스탈린주의 수용… 잘살아 보려는 생래적 욕구 억눌러
⊙ 남, 1960년대 이후 ‘수출입국’ 정책… 기업가·자본주의 정신 확산
⊙ 남북, 1972~73년부터 국력 역전

▲미 항공우주국(NASA) 인공위성이 찍은 한반도 야경은 대한민국의 흥기와 북한의 쇠퇴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사진=NASA 홈페이지

 

 우리 겨레는 올해 8월 15일에 일제(日帝) 식민 지배로부터의 해방 80년을 맞이했다. 그것은 동시에 남(南)과 북(北)으로의 분단 80년이었다. 우리 식으로 산수(傘壽)에 해당하는 이 시점에서 한 가지 분명하게 드러난 현실은 남과 북 사이의 너무나 뚜렷한 차이이다. 단순화시켜 말해, 남은 비교적 대부분의 국민이 자유로우면서도 잘사는 나라가 되었음에 비해 북은 극소수의 특권층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이억압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나라가 되었다.

1950년대에는 말할 것도 없고 1960 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이러한 대비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남은 독재 정권 아래 빈곤에 허덕이는 나라의 상징과도 같았고, 북은 비록 서구적 의미에서의 자유는 제한되었다고 해도 물질적으로는 남에 비해 여유 있는 나라처럼 비쳤다. 다시 단순화시켜 말해 ‘남농북공(南農北工)’, 곧 남한은 전근대적(前近代的)인 농업국임에 비해 북한은 근대화하는 공업국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어떤 국민에게 남한은 벗어나야 할 나라였다. 미국이라면 제일 좋고, 아니라면 아르헨티나이든 브라질이든 파라과이이든 한국인을 받아 주는 중남미 국가로라도 떠나야 할 나라였다. 정부 스스로 국민의 해외 이주를 도울 뿐만 아니라 활성화하기 위해 해외개발공사를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은 떠나는 나라가 아니라 찾아가 살고 싶은 나라가 되었다. 2024년 11월 14일에 서방 선진 국가들의 회의체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38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은 이입(移入) 증가율이 영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나라가 되었다. 대조적으로 북한은 국제적으로 그 국민이 목숨을 걸고 탈출하려는, 그리고 정권의 손발들이 그들을 잡아들이려고 중국이나 동남아까지 쫓아다니며 온갖 행패를 다 부리는 나라로 각인되었다.

이러한 남과 북 사이의 대비는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쉽게 말해, 똑같은 날 해방과 분단을 맞은 남과 북은 어떠한 배경에서 이렇게 달라진 상황 속에 살게 된 것인가? 이 글은 이 물음에 대답해 보려는 시도이다.

냉전과 분단

1945년 8월 15일에 일제가 연합국을 상대로 항복을 선언해 한민족에게 해방이 찾아왔을 때 그러한 극적인 반전(反轉)이 나타날 것을 예상한 국민은 매우 드물었다. 더구나 분단을 예견한 국민은 없었다. 곧바로 38도선 이북을 소련군이 점령하고 그 이남을 미군이 점령하면서 남과 북의 우리 겨레는 일제로부터의 해방이 무엇인가를 실감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 분단은 연합국의 공식 발표처럼 ‘잠정적’인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3년 뒤 남에서는 대한민국이 수립되었고 북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이 발표되었다. 분단은 ‘잠정적’인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적대적인 ‘국가’ 또는 ‘체제’의 성립이라는 방향으로 굳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일차적 요인은 미국과 소련 사이에 전개되던 냉전(冷戰)이었다. 당시 양극(兩極) 체제를 형성한 채 세계정치를 좌우하던 두 초강대국은 제로섬(zero sum)의 사고(思考)방식과 논리에 얽매여, 다른 문제들에서도 그러했지만 한반도 문제에서 조금만큼의 양보도 허용하지 않았다. 여기에 한반도 내부에서의 이념적 대결 의식이 곁들여져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었다. 당시의 상황은 그랬지만, 돌이켜보면 오늘날 ‘잘사는 나라 한국’ 그리고 ‘못사는 나라 북한’의 원형은 바로 이 3년의 시기에 형성되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 사실을 다음에서 살피기로 한다.

김일성의 등장

북한이 쇠퇴의 길을 걷게 된 단초는 불행히도 소련(그리고 1949년 이후에는 중공)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지정학적(地政學的) 위치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이 북한을 처음부터 바다와 거리가 먼 대륙적이면서 내향적(內向的)·폐쇄적 성격을 갖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련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소비에트 체제를 이식(移植)하는 것을 북한이 받아들임으로써 북한의 불운은 더욱 굳어졌다.

일제가 패망하는 시점에 군사적으로 한반도에 먼저 진입한 쪽은 소련이었다. 소련 극동군 산하 제25군은 1945년 8월 10일에 함경북도 웅기로부터 들어와 8월 26일에 평양 점령을 완전히 끝냈다. 이후 북한에서 간접통치를 한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상 군정(軍政)을 펴면서, 소련군의 뒤를 따라 9월 19일에 입북(入北)한 소련 극동군 대위 출신의 김일성(金日成)을 내세워 10월 10일에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分局)’을 세워 그를 북한의 중심적 지도자로 키우는 한편,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억압하기 시작했다.

 

1945년 12월 하순에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국·소련·영국 등 연합국 외무장관 회의(3상회의)는 “연합국이 코리아에 통일된 임시정부를 세우고 이 정부를 상대로 5년 이내에 신탁통치(信託統治)를 실시하기로 한다”는 합의를 발표했다(회담에 참석하지 못한 중화민국은 문서로 동의했다).

이 발표에 대해 북한에서는 김일성은 물론이고 여타의 세력이 지지했다. 조만식(曺晩植)을 당수로 출범한 기독교적 우익 중심의 조선민주당이 반대했으나 소련 점령군은 그들을 탄압했고, 그들 다수는 자유를 찾아 월남(越南)했다. 이처럼 모스크바 결정에 전반적으로 큰 저항이 없었기에 북에서는 소련의 점령정책 프로그램이 비교적 순탄하게 집행될 수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소련 점령군은 12월 하순에 ‘분국’을 ‘북조선공산당’으로 격상시키면서 김일성을 책임비서로 선출했다. 1946년 2월 8일에는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하는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제 34세의 청년 김일성이 소련 점령군의 비호 아래 당·정(黨政)을 모두 장악하면서 북한 정권의 정점(頂點)에 도달한 것이다. 앞의 것은 곧 훗날 ‘북조선로동당’으로(그리고 1949년 ‘남조선로동당’을 흡수해 ‘조선로동당’으로), 뒤의 것은 ‘북조선인민위원회’로 확대된다.


사회주의적 개혁

이처럼 북한에서 북한을 단위로 하는 단독정권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소련 점령군의 방침과 지시에 발을 맞추며 일련의 사회주의적 ‘개혁’ 조치들이 취해졌다. 거기에는 지주로부터 토지를 무상(無償)으로 빼앗아 농민들에게 돌려준 토지개혁, 노동자들에게 ‘8시간 노동제’를 약속한 노동개혁, 초등학교부터 의무교육을 다짐한 교육개혁, 그리고 남녀평등권의 보장을 포함한 사회개혁 등이 포함되었다.

그것들 가운데 대부분은 사실상 지켜지지 않았다. 토지개혁만 해도 시행 시점에서 김일성은 “이제 토지는 영원히 농민의 것”이라고 큰소리쳤으나, 북한 정권이 1950년대 후반에 ‘농업 협동화’ 또는 ‘농촌 집단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대부분의 농민으로 하여금 자신의 토지를 포기하고 집단농장으로 들어가도록 강제했다. ‘8시간 노동제’의 경우 노동자들을 여러 구호 아래 끊임없이 강제노동에 동원해 의미를 잃었다. 대표적 사례가 1956년 12월 이후 몇 해에 걸쳐 추진한 ‘천리마운동’이다.

훗날에는 그렇게 되었다고 해도, 처음에는 당시 1000만 명 가까운 북한 주민들 가운데 다수가 환영했다. 반면에 ‘부르주아 계급’으로 단죄되면서 토지를 빼앗긴 지주들 그리고 탄압의 대상이 된 기독교인들과 상공업자들은 남한을 선택해, 소련군 점령기에 월남한 북한 주민의 수가 모두 합쳐 약 30만~50만 명 사이에 이르렀다.

이 조치들에서 보듯, 북한 정권은 사유(私有)재산을 철저히 범죄시하면서 상공업을 억압했다. 또한 기독교를 적대 세력으로 간주하여 탄압했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을 ‘제국주의 국가’로 단정하고 소련을 조국처럼 떠받들었다.

법치주의가 붕괴한 북한

▲북한의 몰락은 소련이 스탈린주의 체제를 북한에 이식하면서 시작됐다. 사진은 김일성과 스탈린의 사진을 앞세우고 반미 시위를 벌이는 북한 주민들. 사진=연합뉴스/한국학중앙연구원

 

이러한 조치들의 배경에는 소련판 마르크시즘·레니니즘 또는 스탈린주의의 무조건적 수용이 있었다. 이 관영(官營)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존엄성과 개성에 대한 철저한 무시에서 출발했다. 인간은 소수(少數) 권력자 집단인 공산당(북한의 경우 조선로동당)의 도구일 뿐이었다. 그 이데올로기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아니라 공산당 최고 권력자의 정부, 그리고 그에 의한 정부이면서 그를 위한 정부를 정당화하고 뒷받침했다. 그 이데올로기는 잘살아 보려는 인간의 생래적(生來的) 욕구 자체를 죄악으로 여기고 그러한 욕구에서 출발한 자본주의를 타도의 대상으로 간주했다. 자연히 기업 활동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간단히 말해 스탈린주의는 당이, 그리고 당의 최고 권력자가 곧 국가인 ‘당국가(party-state)’ 이론을 정당화했다. 여기에 법을 부르주아 계급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단정해 법치주의 자체를 부인하고, 그 연장선 위에서 삼권분립 이론을 부르주아 이론으로 몰아세우며 부인했다. 1950년대에 김일성이 우리나라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최고재판소(훗날 중앙재판소로 개칭) 소장이 자기를 찾아오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숙청한 사례, 그리고 서구적 의미에서 법관의 자격이 없는 당의 고위 인사가 최고재판소 소장에 임명된 사례 등은 북한에서 법치주의가 어떻게 무너졌는가를 말해 준다. 그 이후에 법치주의는 더욱 빠르게 붕괴해 사실상 완전히 최고 권력자 1인의 사인(私人) 지배로 귀결된다.


북한에 남은 일제의 유산

▲북한의 국장(國章) 속 수풍댐은 일제가 북한에 남겨 준 유산이다.

 

위에서 보았듯, 북한 정권이 철저히 사기업 활동을 억제함과 동시에 국가권력으로 경제를 장악한 채 운영했지만, 이 시기에는 겉으로 보기에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일제의 풍부한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일제는 조선을 일시적으로 점령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자신의 일부로 삼아 통치하고자 했으며, 그 기반 위에서 만주를 비롯한 중국 대륙으로 진출해 경제적 이득을 최대화하고자 했다. 그러한 목적에서 평야가 많은 남한은 농경지대로 키우고자 한 반면에, 지하자원이 풍부한 북한은 공업지대로 키웠다. 압록강변의 평안북도 수풍을 비롯해 함경도와 평안도의 여러 곳에 수력발전소를 세우고, 함경남도 흥남에 대규모의 질소비료공장을 세운 것이 그 사례들이다.

북한 정권은 이것들을 그대로 활용하며 공업 발전을 과시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일본인 기술자들의 귀국을 막고 그대로 체류하게 하면서 그들의 기술을 활용했다. 북한 정권은 친일파 숙청을 외치면서도 그들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은 조선인 기술자들을 그대로 활용했다.

거기에 더해 소련으로부터의 지원이 있었다. 소련은 처음에는 북한을 착취의 대상으로 삼았으나 점령 후기에는 앞으로 전개될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를 염두에 두고 일정한 수준에서 지원했다.

이렇게 정치적으로는 당과 정부 차원에서 단독정권 수립을 향한 행보를 비교적 순탄하게 진전시키고 일련의 사회주의적 개혁 조치들을 급진적으로 추진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적어도 외견상 성장과 안정을 이루게 되자, 소련군 점령이 끝나 가는 시점에서 김일성은 노골적으로 자만심을 드러냈다. 그는 “이제 북풍(北風)이 남조선을 휩쓸고 있으며 남조선을 해방할 날이 가까웠다”는 취지의 발언을 되풀이하기에 이르렀다.

1948년 9월 9일에 김일성을 ‘내각 수상’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이 선포되자 김일성의 자만 그리고 거기에 기초한 오판(誤判)은 결국 1950년 6월 25일의 전면 남침으로 나타난다.

해양국 미국의 남한 점령

남한이 흥기(興起)의 길을 걷게 된 단초는 북한과 정반대로, 대표적 해양국인 미국의 군사 점령 아래 놓이게 된 사정에서 찾을 수 있다. 대륙국과 달리 해양국은 대체로 개방적이면서 외향적(外向的)인 성격을 가지며 해외로 활발히 진출하는데, 남한은 바로 개방성과 외향성을 내재화(內在化)하기 시작할 수 있었다.

이 개방성과 외향성이 1960년대 이후 두드러지게 발현되면서 한국의 흥기를 견인(牽引)한다.

소련군보다 약 1개월 늦게 남한에 진주한 미군은 곧바로 서울에 군정청을 개설하고 직접 통치했다. 미국의 점령정책은 우선 자유민주주의의 보급이었다. 그러했기에 초기에는 복수(複數)정당제와 정당의 자유를 인정해 ‘조선공산당’과 ‘남조선신민당’ ‘조선인민당’(훗날 ‘근로인민당’으로 개명) 등 좌익 정당들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다. 이것은 물론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기업 활동을 보장하는 조치들로 이어졌다.

신앙과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미국 헌법 제1조의 정신은 미군정의 정책에 그대로 반영되었고, 특히 기독교에 대한 우호적인 정책을 지속적으로 유지했다. 소련 점령군을 피해 월남한 기독교도들이 교세를 확장해 한국을 기독교 국가로 확실하게 성장시킨 것이 바로 이 시기였다. 새삼 강조할 필요 없이, 기독교는 국제적 또는 범(汎)세계적 성격이 강하다. 한국은 미국과의 우호 협력을 증진시키면서 동시에 기독교를 매개로 서방세계로의 진출을 활성화할 수 있었다. 미국으로의 유학이 시작되고, 이것이 점차 확대되면서 한국이 서방의 선진 학문과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좌우합작운동의 무산

앞에서 말한 모스크바 합의는 북한에서와 달리 남한에서 극심한 찬반 대립을 불러일으켰다. 단순화시켜 말해, 이승만(李承晩)과 김구(金九) 및 김규식(金奎植)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 그리고 ‘한국민주당’을 중심으로 하는 우익 세력은 반대하고, 조선공산당과 남조선신민당 및 조선인민당 등을 중심으로 하는 좌익 세력은 찬성했으며, 이로 말미암은 좌·우익 간 투쟁이 격렬해졌다. 이 과정에서 1946년 10월에는 대구를 중심으로 하는 영남에서 미군정의 시책에 반대하는 투쟁(우익의 시각으로는 ‘폭동’, 좌익의 시각으로는 ‘항쟁’)이 전개되면서 좌우의 갈등은 더욱 깊어지고 사실상 내란(內亂) 상태가 조성되었다. 이 시점인 1946년 11월 23일에 남한의 좌익 세력은 자신들의 통합 정당으로 ‘남조선로동당’(약칭 남로당)을 출범시켰다.

코리아에 관한 모스크바 협정은 코리아의 통일된 임시정부를 세우기 위해 미소(美蘇)공동위원회를 개최하도록 규정했다. 이 공동위원회의 성공을 돕기 위해 미군정은 남한의 좌·우익 지도자들에게 ‘좌우합작위원회’를 열도록 권고했고, 이에 따라 여운형(呂運亨)이 이끄는 좌익 지도자들과 김규식이 이끄는 우익 지도자들 사이에 몇 차례 회담이 열렸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다른 한편으로 미소공동위원회가 두 차례 서울에서 열렸으나 역시 합의를 끌어내지 못했다.

미소공동위원회를 통한 ‘코리아의 통일된 임시정부’ 수립이 사실상 불가능해지자 1947년 가을에 미국은 결국 코리아의 독립 문제를 국제연합(유엔)으로 이관했으며, 여기서도 미국과 소련은 대치했다. 그렇지만 당시 유엔에 대해 결정적 영향력을 지닌 미국의 적극적 추진으로 유엔은 코리아임시위원단을 구성할 수 있었고, 이 위원단의 결정으로 1948년 5월 10일에 남한에서의 총선거 실시가 예정되었다.


이승만의 대한민국 건국

▲초대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는 이승만. 대한민국은 이승만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점에서 제주도에서는 총선에 반대하는 남로당 주도의 투쟁이 격화되었다. 김구와 김규식 등도 5·10 총선이 남한에 단독정부를 세우고 결국 남북분단을 고정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논리로 반대하며 북행(北行)을 결정해 평양에서 김일성을 상대로 협상했다. 그 결과는 ‘주한미군 철수, 유엔의 개입 반대’라는 김일성의 일관된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합의문의 채택이었다.

당시 밖으로는 미소 냉전이 격화되면서 소련은 남한에서 반공적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세워지는 것을 반대하고 있었다. 김일성 정권은 거기에 발맞추어 남한 안에서의 정부 수립 운동을 방해하고 있었으며, 안으로는 좌우 투쟁이 심화되면서 좌익 역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는 것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러한 매우 위급한 상황에서, 구한말에 개혁운동의 선봉에 섰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선두에 섰던 이승만은 확고한 자유민주주의 사상 그리고 반공주의 사상을 포지(抱持)한 채, 경우에 따라서는 미군정에 저항하면서까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결국 유엔의 결정대로 5월 10일에 총선거가 실시되고, 그 선거에 따라 구성된 제헌의회가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선출함으로써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 곧 제1공화국이 출범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볼 때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기적 같은 일이었으며, 이승만의 강인한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늘날 대한민국 발전의 원형은 이때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남조선 인민이 공산주의 아래에서의 남북통일을 기대하고 있다’고 망상한 김일성은 1949년 3월에 모스크바로 스탈린을 찾아가 남침을 제의했다. 당시 측근의 한 사람으로 훗날 소련공산당 제1서기 겸 수상이 되는 흐루쇼프는 회고록에서 스탈린-김일성 회담에 관해 언급하며 “김일성은 남조선이 아주 취약한 풍선과 같아 한번 찌르기만 하면 곧바로 터질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남침 계획을 승인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증언했다.


‘세상에 부럼 없어라’

스탈린이 신중을 기하라고 제동을 걸자 김일성은 1950년 1월에 다시 스탈린을 찾아가 똑같은 제의를 되풀이했고, 스탈린은 마침내 승인했다. 곧이어 중공의 마오쩌둥(毛澤東)도 지원을 약속했다. 1950년 6월 25일에 일어나 37개월 계속된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이러한 배경에서 시작되었음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전쟁이 1953년 7월 27일에 ‘현장에서의 정전(停戰)’으로 마무리된 이후 김일성은 1953년 9월과 11월에 소련과 중공을 각각 방문해 원조를 얻어 냈고, 1956년 8월에는 소련 및 공산권을 순방해 심지어 매우 가난한 몽골로부터도 원조를 받았다. 동시에 반대 세력을 철저히 숙청해 1인 독재 체제를 더욱 굳혔다. 중공업 육성 중심의 경제정책을 전개해 외견상 상당한 ‘성장’을 과시했다.

기세가 등등해진 김일성은 1956년 무렵 ‘세상에 부럼 없어라’라는 가요를 보급했다. ‘부럼’은 ‘부러움’이라는 뜻으로, 북한은 ‘세상에 부러워할 것이 없는 나라’가 되었다는 오만하면서도 자기기만적인 주장이다. 그는 계속해서 남을 ‘미제(美帝)의 식민 지배 아래 온 인민이 굶주림과 헐벗음에 시달리는 지옥’으로 대비하면서, 잘사는 북이 못사는 남을 원조하겠다는 제의를 공식적으로 반복했다. 이 일련의 제의를 보면, 북은 자신을 선물을 가득 실은 썰매를 몰아가는 산타클로스로, 그리고 남을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가난한 사람으로 설정하고 있음을 금세 깨닫게 된다.

1960년 4월 혁명으로 한국에서 제1공화국이 무너지자 김일성은 더욱 기고만장해졌다. 제2공화국에서 좌경적(左傾的) 혁신계가 제1공화국 이후 금압(禁壓)한 북한과의 협상을 지지하는 운동을 전개하자, 북한 정권은 적극 지지하면서 남한 내부에서 친북(親北)·친사회주의적 ‘인민 봉기’가 일어나도록 부채질했다.


주체사상

그사이 처음에는 굳게 단결해 있던 소련과 중공의 관계에 균열이 생겨 이른바 중소(中蘇) 분쟁이 전개되고 있었다. 김일성은 ‘주체(主體)’를 부르짖으며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이 ‘주체’는 1965년 4월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방문해 알리아르함 학술원에서 행한 김일성의 연설에서 이론화되었다.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이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한국이 미국에 의존하고 있음에 비해 북한은 주체를 지향한다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착오였다. 김일성이 말한 주체는 민족의, 국가의, 당(黨)의 주체가 아니라 김일성 개인의 주체로, “내가 하는 일에 일절 간섭 말라”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주체’에 대한 반응이 좋다고 판단해, 《로동신문》은 1966년 8월 12일에 ‘자주성을 옹호하자’라는 사설을 발표하면서 “사상에서의 주체, 정치에서의 자주, 경제에서의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自衛) 이것은 우리 당의 일관된 방침”이라고 선언했다. 이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했으나 실제에 있어서 북한이 점점 더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안으로 오므라드는 내향적·폐쇄적 방향으로 국가를 경영하겠다는 선언과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18개월 뒤인 1968년 1월 21일에는 무장공비 31명을 남파해 청와대를 기습하게 하고, 이틀 뒤에는 북방 동해안에서 미 해군 정찰함을 나포했다. 가을에는 남방 동해안으로 대규모의 무장 군인을 침투시켜 게릴라전을 벌였다. 북한의 이러한 호전적(好戰的) 대외(對外) 행태는 한반도에서뿐만 아니라 동북아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켰고,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국가 이미지를 더욱 악화시켰다.


수출立國

▲박정희 대통령은 1965년 이후 거의 매달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주재하고 전시된 수출품들을 살펴보면서 수출을 독려했다. 사진=조선DB

 

1960년까지만 해도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70달러에 못 미쳐, 확실히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최빈국(最貧國)들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6·25전쟁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한국은 자신의 힘으로 국민의 의식주(衣食住)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있었고 정부 예산 자체의 대부분을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고 있었다.

다행히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적 역량으로 1953년 10월 1일에 미국과의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끌어내 대한민국의 안전을 굳건히 함과 동시에 국제사회에 한국은 미국이 지원하는 우방국임을 각인시킬 수 있었다. 다시 말해, 한미동맹은 이후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있는 튼튼한 울타리가 된 것이다. 6·25전쟁은 민족적으로 매우 불행한 참변이었으나, 다른 한편으로 한국인의 외향성을 자극해 미국 또는 서방세계로의 유학과 이주 및 진출을 북돋았다.

1960년 4월의 ‘시민혁명’ 이후, 특히 1961년 5월 16일의 ‘군사정변’ 이후, 한국의 역대 정부들은 ‘수출입국(輸出立國)’의 구호 아래 수출 품목의 확대와 증산에 역점을 둔 관(官) 주도형 경제개발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그 흐름 안에서 1970년대 중반 이후 중화학공업이 육성되면서 산업과 수출 품목의 성격 자체를 선진화시켰다. 그 정책은 자연히 과학과 기술의 진흥과 발전을 동반했다. 동시에 그 정책은 기업의 성장과 발전을 뒷받침했고, 이 과정에서 한국에 기업가 정신 그리고 더 나아가 자본주의 정신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불가피하게 해외 지향적인 그 정책은 한국의 해외 진출 및 국제 교류를 넓혔으며, 국제사회에 깊이 개입하고 국제사회에 의해 깊이 ‘침투된’ 한국을 개방사회로 바꾸어 놓았다. 1960년대에 이뤄진 일본과의 국교(國交) 수립 및 베트남 진출, 1970년대에 이뤄진 중동 진출, 그리고 1980년대 후반과 1990년 초기 사이에 이뤄진 북방권 진출은 그러한 전환에서 촉매제의 역할을 수행했다.


지주-소작인 관계 소멸

한국이 이처럼 상업국가·무역국가로 성장 발전하면서 농업은 과거처럼 주된 산업의 지위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다. 농업이 국민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50년대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게 줄어들었다. 1953년 현재 47.3%였던 것이 2008년 현재 약 2.5%로 격감한 것이다. 농업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 역시 크게 줄어들었다. 자연히 과거의 지주 계급은 힘이 크게 줄어드는 가운데 사실상 와해되었고 소작인 계급 역시 사실상 소멸되었다.

미국의 정치학자 배링턴 무어 2세(Barrington Moore, Jr.)는 지주와 소작인 계급이 존속하는 사회는 결코 근대화된 사회가 아니며, 이 두 계급의 그리고 그들 사이의 봉건(封建) 관계의 소멸 위에 근대국가가 성립하고 민주주의가 진전된다는 명제를 제시했다. 한국이 농업국가로부터 상업국가·무역국가로 확실하게 바뀜에 따라 지주와 소작인 계급 및 그들 사이의 봉건 관계가 소멸함으로써 한국에는 근대국가가 성립될 수 있었고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토대가 마련될 수 있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한국인 특유의 교육열에 바탕을 둔 우수한 인재들의 성취 욕구가 크게 작용했다. 그것들이 모두 종합되면서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독립한 국가들 가운데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달성한 국가’이자 ‘세계 20대 대국 그룹’에 진입했고, 또한 원조를 받던 후진국에서 원조를 주는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그 결과 특히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판단으로는 1972~73년을 고비로 남과 북의 생활 여건이 확연하게 역전되기 시작했다. 서구적 의미의 자유의 문제는 논외로 하고 경제적 지표들만 놓고 볼 때, 남이 북을 앞서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1973년 10월에 일어난 제1차 석유 파동과 1978년 12월 제2차 석유 파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은 헤쳐 나와 경제성장을 계속해, 1978년에 세계은행 기준으로 신흥공업국가 그룹의 일원으로 인정받지만, 북은 거기서 빠진 채 쇠락의 길에 들어섰다.

‘남한의 흥기와 북한의 쇠락’과 관련해, 2024년 노벨경제학상 공동수상자인 대런 애쓰모글루(Daron Acemoglu·다론 아제모을루) MIT 경제학과 교수와 제임스 로빈슨(James A. Robinson)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가 공저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검토하기로 한다. 저자들은 이 책의 제3장에서 ‘동질성이 매우 높은 단일민족’이 1945년 8월에 남과 북으로 나뉜 이후 걸어온 길을 비교했다. 이 비교에 따르면 남한은 세계의 부유한 나라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북한은 세계의 가난한 나라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면 왜 그러한 차이가 발생했는가? 저자들은 그 원인을 남과 북이 각각 채택한 ‘정치적 및 경제적 제도’에서 찾았다.

남의 경우 정치제도가 ‘포용적’이었다. 다원주의(多元主義)의 원리와 사유재산 보장의 제도 아래, 권력이 사회 전반에 분산되어 있고 국민은 직업을 인센티브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하며, 따라서 누구에게나 경제적 기회가 주어져 있고 정부는 국민의 요구에 반응하면서 책임을 지고 있다는 뜻이다. 대조적으로 북은 정치제도가 기본적으로 ‘억압적’인 데다가, 개개인의 인센티브를 허용하지 않으며 소수의 특권층이 자원을 독점하고 자신들만의 이익을 취하는 ‘착취적’인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그 결과 남은 ‘성공한 국가’가 되었고 북은 ‘실패한 국가’가 되었다는 것이 저자들의 관찰이다.


북한 체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 대목에서 우리는 북한 정권의 본질을 다시 생각할 필요를 느낀다. 그사이 한국의 사회과학계뿐만 아니라 세계의 사회과학계에서도 북한을 ▲‘전체주의적 독재체제’론 ▲‘신(新)전체주의체제’론 ▲‘당국가(party-state)’론 ▲‘동원체제’론 ▲‘수령체제’론 또는 ‘수령절대주의’론 ▲‘병영국가’론 ▲‘신정체제(神政體制)’론 또는 ‘사이비종교집단’론 ▲‘폭력적 강압체제’론 ▲‘유격대국가’론 ▲‘극장국가’론 ▲‘봉건체제’론 또는 ‘봉건적 군벌체제’론 ▲‘내재적 접근’론 등의 개념 또는 방법론으로 분석하고 설명하고자 했다. 그것들 가운데 특히 ‘전체주의적 독재체제’론은 지난날 소련과 동유럽 공산 국가들, 그리고 마오쩌둥 당시의 중국을 설명하는 데 유효했고, 김일성의 북한과 김정일의 북한 그리고 오늘날 김정은의 북한을 설명하는 데도 유효하다.

그러면 ‘전체주의적 독재체제’론의 내용은 무엇인가? 원래 히틀러의 나치 독일과 스탈린의 소련을 연구하며 개발한 이 이론은 ▲누구도 그 타당성에 대해 질문하거나 의심할 수 없는 유일한 이데올로기 ▲그 이데올로기의 구현자로서의 단일한 지도자 ▲그 단일한 지도자를 유일한 지도자로 떠받드는 대중적 정당 ▲정치적 반대자는 물론이고 무고한 시민에 대해서도 테러를 일삼는 비밀경찰을 통한 폭력의 독점 ▲매스컴의 독점을 통한 철저한 언론 통제 ▲경제의 완전한 중앙집권적 기획 등을 특성으로 삼고 있다. 연구자들은 이 여섯 가지에 하나를 더 추가했다. 그것은 ‘권력의 사법부 장악을 통해 법과 정의를 권력의 뜻에 맞게 운영하는 특성’이다.

북한 정권은 이 특성들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거기에 더해 특히 김일성 통치의 후반부와 김정일 통치기 전체 그리고 김정은 통치의 경우 ‘전체주의적 독재체제’의 특성에 ‘과도한 대중적 의식(儀式)과 집회에 대한 강제적 참여’와 ‘끊임없는 세뇌교육’이 추가된 ‘신전체주의체제’론 역시 유효하다.


‘신가산제(新家産制) 私人독재 정권’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동상을 참배하는 북한 주민들. 오늘날 북한은 ‘신가산제 사인독재 정권’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의 세습이 이루어져 김정은 정권이 공식적으로 등장하면서, 김정은의 정통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대체로 2012~13년부터 북한 정권 스스로 ‘백두혈통’론을 정립하고 전파했다. 김일성과 김일성의 첫 부인 김정숙이 “백두산 일대를 중심으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했다”고 주장하면서 그들 사이에 ‘백두산 밀영(密營)’에서 태어났다는 김정일이 ‘백두혈통’을 이어받아 후계자가 되었듯, 김정일의 아들 김정은이 ‘백두혈통’을 이어받아 후계자가 되었다고 선전함과 동시에, ‘백두혈통’을 이어받은 사람만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 지도자의 지위에 오를 수 있다는 ‘리론’을 내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 ‘리론’에 기초해, 2013년에 기존의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을 개정하고 세습 체제를 공식화했다.

김일성과 김정숙이 백두산 일대를 중심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는 주장에는 큰 줄거리에서 사실이 포함되었으나, 과장은 물론이고 때로는 거짓마저 포함되었다. 김정일이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났다는 주장은 그 자체가 거짓이지만,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이러한 ‘리론’은 서방세계의 인식론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궤변임은 물론이다. 그 공식적 궤변 자체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민주주의’ 국가도 아니고 ‘인민’의 나라도 아니며 ‘공화국’도 아니라 봉건적이며 세습적인 ‘왕국’임을 말한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국가이론이 스위스의 정치학자 카를 할러가 개발하고 독일의 세계적이면서 세기적(世紀的)인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가 명확하게 정립한 ‘가산제국가(家産制國家·patrimonial state)’론이다. 베버는 군주가 국가를 자신의 세습 재산으로 취급하는 왕국을 염두에 두고 그 개념을 설정했는데, “가산제 국가에서 영토와 인민은 군주의 사유(私有)로, 재정은 군주의 사수입(私收入)으로, 전쟁은 군주의 사사(私事)로 간주되고, 공법(公法)과 사법(私法)의 구별이나 통치권과 소유권의 구별이 없으며, 군주는 이러한 영토에 대한 소유권의 주체로서의 권력자로 간주된다”. 베버의 이 개념을 빌려 김진무 교수는 북한을 ‘봉건왕조 가산제적 독재국가’로 명명했고, 최봉대 교수는 ‘신가산제(新家産制) 사인(私人)독재 정권’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어떠한 개념보다 최 교수의 이 개념이 오늘날의 북한을 설명하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존 로빈슨과 루이제 린저

북한 정권의 본질이 그러한데도 그 본질을 가려 주고 오히려 미화함으로써 외부인의 인식을 오도(誤導)한 저술은 적지 않았다. 그 대표적 사례로 두 가지만 지적하겠다.

첫째, 영국의 세계적인 경제학자 존 로빈슨(Joan Robinson)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1965년에 발표한 논문이다. 마르크시스트 경제학자로 《자본의 축적》 같은 저서로 명성을 얻은 그는 1964년 10월에 북한을 방문하고 귀국한 뒤 발표한 이 논문에서, “북한이 김일성에 대한 긍지를 가진 북한 인민의 집합적인 노력의 결과로 경제적 성취를 이룩했다”고 평가하면서 그것을 ‘기적’이라고 불렀다. 김일성을 “독재자라기보다는 메시아(a messiah rather than a dictator)”라고 극찬했으며, “조만간 남한은 사회주의 아래 흡수통합 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둘째, 서독 작가로 1950년에 출판한 《생(生)의 한가운데》를 통해 국내에 널리 알려진 루이제 린저(Luise Rinser)가 1981년에 출판한 《북한기행기》이다. 그는 자신이 “히틀러의 나치즘에 저항해 투옥되었고 나치 독일의 패전 이후에는 평화주의자로 일관되게 생활했다”고 고백해 독일과 해외에서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1980년 봄에 3주 동안 북한을 방문하고 쓴 이 책도 그래서 좋게 받아들여졌다. 이 책에서 “북한에는 범죄 자체가 없으며 그래서 형무소가 없고 다만 교화소가 있을 뿐인데, 교화소에 들어온 사람은 언제든지 자기가 원할 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취지로 썼다. 이어 “북한에서는 영양과 예방검진의 덕으로 감기와 결핵이 전멸되었고, 장애인이나 불구자가 전혀 없다”는 취지로 썼으며, “북한에는 가난이 없다”고 단언했다.

뭔가 모순되는 루이제 린저의 행적에 의문을 품은 독일의 몇몇 연구자들의 끈질긴 연구 결과로 나치즘에 저항했다는 고백은 거짓으로 드러났고, 오히려 히틀러를 찬양한 사실이 밝혀졌다. 북한에 관한 설명 역시 거의 거짓이었다.


정치 지도자들이 중요

남한의 흥기와 북한의 쇠퇴라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은 자유민주주의의 발전 수준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로 너무나 큰 격차를 보이는 남북한의 경제력이다. 현재 한국의 명목국내총생산(GDP)은 2161조8000억 원인 데 비해 북한의 그것은 36조2000억 원으로 한국의 1.7% 수준이며, 1인당 GDP는 한국은 4700만원이 넘지만 북한은 한국의 30분의 1에 해당하는 150만원 수준이다. 그 소득 격차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무역 총액 격차는 거의 2000 배로 벌어졌다. 역시 2022년 기준으로 한국의 무역 총액은 1조4151억 달러인 데 비해 북한은 7억1000만 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이 격차를 쉬우면서도 극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한밤중에 찍어 2014년 2월 26일에 공개한 한반도 위성사진이다. 밝게 빛나는 훤한 모습의 한국과 깜깜해서 모습을 찾을 수 없는 북한이 뚜렷한 대비를 보이는 것이다. 미국의 테슬라 최고경영자인 일론 머스크는 2023년 12월 31일에 자신의 SNS에 한반도를 밤에 촬영한 위성사진을 ‘낮과 밤의 차이’라는 글과 함께 공유하면서, “한 국가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나눈 뒤 70년 후에 비교해 보자”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낙관해서는 안 된다. 한 국가의 흥기와 쇠락은 그 구성원들, 특히 정부와 정치 지도자들이 국가를 어떻게 경영하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만일 한국이 자만감에 빠져 국가를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고 북한에 대한 정책을 잘못 세워 대응할 경우, 상황에 큰 변화가 올 수 있다. 이 점에서 특히 새 정부의 건전한 정책 수립과 집행이 요청된다.

한국의 경우, 산업화의 진행 과정에서 많은 문제 또는 병폐가 드러났다. 우리나라가 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율 1위라는 공식 통계는 충격적이다. 새 정부는 이러한 병폐의 수술에도 진력해야 할 것이다.⊙

월간조선 08월 호 글 : 김학준 단국대학교 석좌교수

 

08.18 하이닉스 빼면 500대 기업 이익 감소, 기업 옥죌 때가 아니다

▲경제 8단체 부회장들이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회관에서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계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한 뒤 대화하고 있다./대한상의

 

SK하이닉스 착시를 걷어내면 국내 대기업 수익성이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상반기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의 영업이익은 1년 전보다 5.9%(6조5694억원) 증가한 118조5165억원으로 집계됐다. 그런데 SK하이닉스 한 곳의 영업이익 증가 폭이 8조2988억원이나 됐다. 하이닉스를 뺀 다른 기업들의 영업이익은 1년 전보다 1조7294억원(-1.7%) 줄어든 것이다. 하이닉스 덕분에 대기업 수익성이 개선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업들이 골병들어 있는 셈이다.

 

상반기 실적은 트럼프발 관세 전쟁과 중국의 급성장, 미래 먹거리 발굴 실패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기업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뒤처진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1년 전보다 5조6886억원 급감했고, 4월부터 미국 자동차 관세를 맞고 있는 현대차와 기아의 수익성도 나빠졌다.

 

특히 중국과 경쟁에서 밀린 석유화학·이차전지 업체들의 타격이 컸다. 공멸 위기에 몰린 석유화학 업체들은 대부분 수백억 원대 적자를 기록했다. 여천 NCC처럼 적자가 누적돼 부도 위기에 처한 석유화학 기업도 상당수다. 한국 경제를 떠받쳐온 제조업의 총체적 위기다.

 

사실 한국 경제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현상이 아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저출산·고령화와 과도한 기업 규제, 강성 노조, 중국의 추격 등 경보등이 쉴 새 없이 켜졌지만, 역대 어떤 정부도 이런 문제들을 정면 돌파하지 않았다. 그 결과 2000년대 초반 5%였던 잠재성장률은 20년 만에 1%대로 추락했고, 올해는 1% 성장도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기업이 위기에 빠지면 정부가 앞장서 돕는 것이 순리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쇠락한 미국 제조업을 살리기 위해 전 세계에서 욕을 먹어가면서도 관세 전쟁을 주도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취임 이후 “경제의 핵심은 바로 기업”이라며 “(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협조하는 게 정부의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민주당은 노란봉투법과 상법 추가 개정, 법인세 인상 등 기업을 옥죄는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대통령 말과 집권당 행동이 따로 놀고 있는 것이다. 기업이 활기를 띠고 돈을 벌어야 일자리와 세금이 는다. 그래야 정부 여당이 정체성처럼 앞세우는 중산층과 서민을 대변하는 정책도 펼칠 수 있다.

조선일보 사설 

 

08.18 [빌 게이츠 특별 기고] '한강의 기적'에서 세계 문제 해결사로

원조 수혜국서 공여국 된
한국의 혁신 역량을
국제 보건·개발에 쓰자

한국의 특별한 성공담
세계 리더들에 환기하고
더 큰 역할 하길 기대한다

/빌 게이츠 '게이츠 재단' 이사장

 

지난 25년 동안 세계 보건과 개발 분야에서 재단을 이끌며, 국제 개발 투자가 과연 효과가 있느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아왔다. 내가 매우 좋아하는 사례 중 하나는 바로 한국이다.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나라다.

 

1950년대, 전쟁의 폐허에서 막 벗어난 한국을 두고 한 미군 장성은 회복까지 100년이 걸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한국은 그 예측이 완전히 빗나갔음을 입증했다. 빈곤과 기아, 질병에 맞서 싸우기 시작한 한국 국민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가 투자를 이어갔고, 한국이 장기적 건강과 번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제도를 갖추는 데 힘을 보탰다. 불과 수십 년 만에 한국은 세계에서 몹시 가난한 나라 중 하나에서 아주 부유한 나라 중 하나로 성장했다.

 

이번에 내가 한국을 찾는 것은, 한국이 그동안 축적한 인재와 자원, 그리고 혁신 역량을 활용해 다른 나라들이 스스로 발전 경로를 설계하도록 돕고, 동시에 자국의 번영과 건강도 함께 지켜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난 25년 동안 한국에서 일어난 변화와 같은 성과가 세계 곳곳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각국이 힘을 모아 세계 보건과 개발에 투자한 결과, 10억명 이상이 극심한 빈곤에서 벗어났고, 5세 미만 아동 사망률이 절반으로 떨어졌으며, 매년 수백만 생명을 구했다.

 

하지만 지금 이 성과는 위태롭다. 부유한 국가들이 이를 가능하게 한 글로벌 보건·개발 자금에서 수백억 달러를 철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심각하다. 한 세대 만에 처음으로 극빈과 기아가 다시 증가하고 있으며, 올해는 예방 가능한 아동 사망 수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모든 사람은 한국이 누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원하는 삶과 미래를 만들어갈 기회를 가질 자격이 있다. 건강과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데 투자하면, 국경을 넘어 확산될 수 있는 질병 전파를 막고 전 세계인의 안전을 지킬 수 있으며, 상호 연결된 세계 경제 속에서 모두가 이익을 얻는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게이츠재단은 지금까지 1000억달러를 투입했고, 앞으로 2000억달러를 추가 기부해 세계의 가장 심각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발전 궤도로 돌아가려면 전 세계 국가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한국이 국제 보건과 개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2018년 이후 공적개발원조(ODA)를 두 배 이상 늘린 것을 보며 큰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한국이 이 리더십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세 가지를 기대한다.

 

첫째, 생명을 구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입증된 다자간 보건 지원에 투자하길 바란다. 세계백신면역연합(Gavi)과 에이즈·결핵·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세계기금(Global Fund)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 두 기관은 지금까지 무려 8000만명의 생명을 구했지만, 최근 자금 축소로 앞으로 필요한 모든 자원을 확보하지 못하게 됐다. 이를 해결하는 것은 세계가 발전 궤도로 복귀하는 데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이며, 동시에 한국의 보건 혁신이 더 많은 생명을 구하고 삶을 개선할 기회를 넓히는 길이기도 하다.

 

둘째, 한국의 혁신 역량을 글로벌 문제 해결에 적극 활용하길 바란다. 2000년, 게이츠재단은 한국과 함께 국제백신연구소(IVI)를 설립했다. 이후 유바이오로직스, SK바이오사이언스, LG화학 등 한국 기업들이 우리와 손잡고 생명을 구하는 백신을 개발해 왔다. 현재 Gavi가 전 세계에 공급하는 백신의 약 11%를 한국 기업에서 생산하며, 한국은 세계기금 보건 제품 공급국 중 3위다. 혁신 기업을 지원함으로써 한국은 자원과 기술력을 기반으로 세계 발전에 기여하고, 동시에 자국 경제성장에도 이바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이 걸어온 특별한 역사를 통해 다른 세계 지도자들에게 글로벌 보건과 개발 투자의 힘을 상기시켜 주길 바란다. ‘한강의 기적’ 이야기를 전하고, 이를 가능하게 한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것은 한국이 그 기적을 더 널리 확산시키는 길이 될 것이다. 그렇게 더 많은 국가가 한국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말이다.

 

▲2002년 3월 게이츠 재단이 남아프리카 4개국에 기금 15만 달러를 지원했다. 왼쪽부터 빌 게이츠의 아버지인 윌리엄 게이츠,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다.

조선일보 빌 게이츠 게이츠 재단 이사장

 

<영어 원문>

\Over the past twenty-five years that I’ve been leading a foundation that works in global health and development, I’ve gotten a lot of questions about whether investments in international development really work. One of my favorite examples of the progress these investments can drive is your country, South Korea—the first country in history to move from aid recipient to donor.

In the 1950s, as South Korea emerged from war, one American general famously predicted it would take the nation 100 years to recover. But South Korea, of course, proved that prediction wrong. As the Korean people set to tackling poverty, hunger, and disease, countries like mine invested in supporting those efforts and helping build the institutions that set the country on a long-term path to health and prosperity. In a matter of decades, South Korea went from one of the poorest nations on the planet to one of the richest.

I’m visiting South Korea this month because I believe you can harness the talent, resources, and innovative capacity your country has built to help countries chart their own trajectories of progress—and support your country’s own prosperity and health in the process.

Over the past twenty-five years, the kind of progress we have seen in South Korea has started to take root in many places around the world. As countries came together to invest in global health and development, over a billion people escaped extreme poverty, the number of kids dying before their fifth birthdays was cut in half, and millions of lives were saved every year.

But right now, that progress is in jeopardy, as wealthy nations are withdrawing tens and billions of dollars in the global health and development funding that helped fuel it. The consequences of these cutbacks will be devastating. For the first time in a generation, extreme poverty and hunger are on the rise—and this year, the number of preventable child deaths will go up instead of down.

People around the world deserve the same chance that the people of South Korea have had to build the lives and futures they want for themselves. When we invest in getting them the health, education, and opportunities they need, we help stop the spread of diseases that can easily cross borders and threaten people everywhere—and help spur growth that, in an interconnected global economy, benefits us all.

That’s why the Gates Foundation has spent $100 billion—and plans on giving away $200 billion more—to help take on the world’s greatest inequities. But to get back on a path to progress, we will need nations around the world to step up, too.

I have been heartened to see South Korea emerging as an extraordinary leader in global health and development, more than doubling its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since 2018. And as your country takes on this leadership role, I hope you will do three things.

First, invest in the multilateral health assistance that has proven most effective at saving and improving lives—like Gavi, the Vaccine Alliance, and the Global Fund to Fight Aids, Tuberculosis, and Malaria. These two initiatives have saved a stunning 80 million lives—but because of recent funding cutbacks, they won’t have all the resources they need to continue their extraordinary work. Fixing this is one of the most straightforward things we can do to resume the world’s trajectory of progress—and will also help create more opportunities for Korean health innovation to save and improve lives.

That brings me to my second hope, which is that your country will focus on applying South Korea’s own innovation sector to global challenges. In 2000, the Gates Foundation partnered with South Korea to help establish the International Vaccine Institute here—and since then, companies like EuBiologics, SK Bioscience, and LG Chemical have partnered with us to develop lifesaving vaccines. In fact, today, roughly 11% of the vaccines that the Gavi Alliance distributes around the world are made by Korean companies, and South Korea is the 3rd largest provider of health products to the Global Fund as well. By supporting its innovators, South Korea can contribute its resources and its extraordinary technical expertise to driving progress—while helping grow Korea’s economy in the process.

And finally, I hope that South Korea will use your extraordinary history to remind fellow world leaders of the power of global health and development investment. In telling the story of the Miracle on the Han River and helping share knowledge about what made it possible, South Korea can extend that miracle even further—by helping many others to join your ranks.

 

08.19 "4대강 원점 돌려 기후대응? 지붕 없이 비 막겠다는 것"

李정부 환경정책에 사의 표명한
한화진 탄녹위 위원장 인터뷰

▲18일 오후 서울 역삼동 과학기술회관에서 최근 사의를 표명한 한화진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민간 위원장이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이재명 정부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겠다면서 ‘신규 댐 건설 보류’ 같은 정책을 추진하는 건 모순”이라며 비판했다./장련성 기자

 

“(이재명 정부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겠다면서 ‘금강·영산강 보 해체’ ‘신규 댐 건설 보류’ 등과 같은 정책을 추진하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어떻게 인프라 없이 홍수와 가뭄을 막습니까?”

 

한화진(66)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 민간 위원장이 최근 사의를 표했다. 대통령 직속 탄녹위는 국내 탄소 중립 정책을 총괄하는 위원회로, 국무총리와 민간 인사가 공동위원장을 맡는다. 한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 때 환경부 장관을 지낸 다음 작년 11월부터 임기가 2년인 탄녹위 민간 위원장을 맡아왔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자 취임 9개월여 만에 사표를 낸 것이다. 이를 두고 탄녹위 안팎에선 “추구하는 환경 정책의 방향이 다른 새 정부에서 더 이상 탄녹위를 이끄는 것이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는 해석이 나왔다.

 

한 위원장은 18일 본지 인터뷰에서 “기후환경에너지부 신설 등 이재명 정부가 기후변화를 국가 어젠다로 설정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라면서도 “‘4대강 재자연화’ 등 실제 행보는 기후 대응에 역행하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장 하루만 집중호우가 내려도 김포공항 일대가 잠기는 것을 막지 못하는데, 인프라 없이 어떻게 드넓은 하천과 그 유역의 피해를 막겠다는 건지 묻고 싶다”며 “기후변화가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면 결국 그 피해는 국민이 입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한 위원장은 환경부 장관 재임 당시 4대강 지류·지천 정비 사업과 신규 기후 대응 댐 설립 등을 추진했다. 4대강 사업 후 홍수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 본류처럼 지류·지천을 손보고, 기후 대응 댐을 신설해 홍수·가뭄 예방과 함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물 공급 등 미래 산업 물 수요에 대비하겠다는 취지였다. 다음은 한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이재명 정부가 기후변화 이슈에 힘을 주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기후변화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새 정부가 발표한 환경 정책은 ‘금강·영산강 보 해체 취소 결정 원상복귀’ ‘4대강 재자연화’ ‘신규 댐 건설 중단’ 등 원래 있던 인프라를 없애고, 새 인프라도 만들지 않겠다는 것들이다. 인프라 없이 기후 위기 대응을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건가. 지붕 없이 비를 막겠다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진짜 실용주의를 표방한다면 환경 단체가 보 해체를 요구하더라도 ‘가뭄에 도움이 된다’는 지역 주민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길 바란다.”

 

-새 정부가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정책 재편을 예고했다.

“탄소 중립의 ‘목적’과 ‘수단’을 혼동해선 안 된다. 재생에너지도 원전도 ‘탈(脫)탄소 사회’로 향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다만 그 나라 사정에 맞는 에너지원을 고민하는 것은 중요하다. 극단적 여름과 겨울을 나고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에서 기상 여건에 큰 영향을 받는 재생에너지를 전면에 배치하고도 탈이 없을 수 있겠나. 기후변화로 기상 패턴이 깨지고 돌발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기상 상황에 가장 취약한 재생에너지만 내세우는 건 위험하다.”

 

-이대로 가면 ‘원전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많다.

“원전에 강점을 가진 나라가 원전 기술력과 경쟁력이 쇠약해지면 결국 누가 웃겠나. 인공지능(AI) 시장이 커지면서 폭증하는 전력 수요는 또 어떻게 감당할 건가. ‘에너지 안보’를 위해선 SMR(소형 모듈 원자로)을 포함한 원전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재생에너지는 확대하더라도 중국산이 아닌 국산 공급망 목표치를 세워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그래야 재생에너지 확충과 국내 일자리 확대도 연결된다.”

 

-문재인 정부 때 세운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40%‘는 달성 가능할까.

“어렵다.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은 냉정하게 볼 때 현재 기술과 산업 여건에선 지나친 목표였다. 도전적 목표를 세우더라도 우리 이행력에 대한 냉철한 진단이 따라야 한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신뢰도에 큰 타격이 있을 수 있다. 파리협정의 ’전진의 원칙’에 따라 오는 11월 브라질에서 열리는 COP30(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전에는 40%에서 더 강화된 2035 NDC를 내놔야 한다. 녹록지 않다. 다만 중요한 것은 41%든, 50%든 보이는 숫자가 아니다. 홍수·가뭄 등 숱한 기후 재난에서 우리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탈탄소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한화진

국내 대기·기후 분야 전문가다. 1993년 한국환경연구원(KEI)의 전신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창립 멤버로 참여한 뒤 27년간 연구원에서 일하며 스모그 원인 등을 규명했다. 이후 이명박 정부 청와대 환경비서관, 한림대 객원교수 등을 지냈고, 윤석열 정부 첫 환경부 장관을 역임했다. 작년 11월엔 임기 2년의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장에 임명됐다.

조선일보 박상현 기자

 

08.19 이승만 지운 광복 80주년

서울시향이 주최한 ‘광복 80주년 기념 음악회’는 개운치 않았다. 무료 티켓 2000석을 풀자 바로 동이 났다는데 막상 공연장은 듬성듬성 빈자리가 많았다. 무대 뒷벽에 띄운 영상에는 건국 대통령 이승만은 보이지 않고 김구가 주연이었다. 정부 행사라면 잠시 불쾌하고 말겠는데 서울시향 공연이라 맥이 풀렸다.

1949년 8월 15일 제1회 독립기념일의 중앙청 경축식장에는 정면에 크게 ‘대한민국 수립 1주년’이 걸렸다.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법안(法案)의 ‘독립기념일’이 법안 심사과정에서 ‘광복절’로 바뀌었다. 1950년 8월 15일 임시수도 대구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제2회 광복절을 맞이하여’를 읽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용어에 혼선이 생겼고 1948년 8월 15일의 광복절이 1945년 8월 15일의 해방일이 되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을 공격한다. ‘광복은 연합국의 선물’이란 구절이 광복절 기념사에 있었나 보다. 김형석 관장은 김병기 원내대표 덕분에 "‘광복이 연합국의 선물’이라는 헛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이는 자"가 되었다. 함석헌은 ‘해방은 도둑같이 뜻밖에 왔다’고 했다. 남로당 거물 박헌영은 ‘아닌 밤중에 찰시루떡 받는 격으로 해방을 맞았다’고 했다가, ‘위대한 소련군과 미군에 의해 우리나라가 해방됐다’고 소련을 띄웠다.

임시정부 안살림을 도맡았던 정정화 여사의 고백은 절절하다. "임시정부는 당시 국내와의 연결이 사실상 완전히 두절돼 있었으며, 만주나 중국 공산당 지배하의 한인 혁명세력과도 유대관계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더욱 비참한 노릇은 중경의 한인사회조차도 이리 갈리고 저리 찢겨서 이렇다 할 중심세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임정이 국제적으로 인정을 못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장강일기>, 206쪽)

광주 시내 공공도서관의 역사 왜곡(?) 논란 도서 7종이 폐기된다. <엄마가 들려주는 이승만 건국대통령 이야기>,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 전쟁 이야기>는 물론, <반일종족주의>,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 같은 양서(良書)다.

1933년 5월 10일 밤 독일 여러 도시에서는 나치 돌격대원들이 책더미에 휘발유를 붓고 횃불을 갖다 댔다. 독일이 낳은 유대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작품도 재가 됐다. 하이네는 경고했다. "책을 불사른 곳에서는 사람도 태워 죽일 것이다."

자유일보 홍승기 변호사,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 위원장

 

08.20 코레일 사망 '압수 수색하고 장관 책임지라'면 납득 되나

19일 오전 10시 52분쯤 경북 청도군 화양읍 삼신리 청도소싸움 경기장 인근 경부선 철로에서 마산으로 향하던 무궁화 열차가 선로에서 작업하던 근로자 7명을 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과 소방, 코레일 등 관계자들이 사고 현장을 조사하는 가운데 우측으로 열차가 서행하고 있다. /뉴스1

 

19일 경북 청도 경부선 철로에서 작업 중이던 코레일과 하청 근로자 7명이 열차에 치여 2명이 숨지는 산재 사고가 발생했다. 4명 중상, 1명 경상이다. 수해 지역 비탈면 안전 점검을 위해 걷고 있는데 열차가 뒤에서 쳤다고 한다. 이번 사고는 ‘산재와의 전쟁’에 나선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적인 산업 재해를 줄이려면 정말 강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밝힌 지 일주일 만이다. 코레일은 국토교통부 산하다.

 

최근 산재 사망이 발생한 기업은 예외 없이 압수 수색 등 강제 수사 대상이 됐다. 건설 현장 근로자가 사망한 포스코이엔씨와 공장 추락사가 일어난 한솔제지 등은 본사도 압수 수색당했다. 중대재해처벌법으로 현장 책임자뿐 아니라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까지 1년 이상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번 열차 사고는 2명이 숨지고 4명이 중상을 입은 중대 재해에 해당한다. 민간 기업 처벌 잣대라면 코레일 상급 기관인 국토교통부도 압수 수색과 책임자 처벌 대상 아닌가. 민간 기업에서 죽은 경우만 사람이고 공기관에서 죽은 근로자는 다른가.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에 대해 “미필적 고의 살인” “건설 면허 취소” “징벌적 손해 배상” “주가 폭락”을 경고했다. 고용노동부는 건설 현장에서 사망자가 1명만 발생해도 ‘영업 정지’를 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날 2명이 사망한 코레일도 ‘영업 정지’ ‘면허 취소’ 대상이 될 수 있다. 올 상반기 철도 이용객은 7200만명을 넘었고 코레일 직원만 3만명 이상이다. 철도는 국가 기간 산업이다. 산재 사망으로 코레일이 영업을 멈추거나 문을 닫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나.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에 따르면 2020~2024년 공기업·준정부기관에서 발생한 산재 사망자가 155명이다. 코레일에서만 10명이 숨졌다. 코레일처럼 국토부 산하인 도로공사에선 30명,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선 29명이 목숨을 잃었다. 산업자원부 산하 한국전력 33명, 환경부 산하 한국수자원공사도 7명의 사망자를 냈다. 민간 기업 못지 않다.

 

후진적 산재 사고는 반드시 줄여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이 3년 전 시행됐지만 사망 사고가 크게 줄지 않은 것을 보면 처벌만으로는 안 되는 구조적 문제가 있는 듯하다. 작업 현장 고령화, 외국인 노동자 증가 등 실질 문제를 살피지 않고 무조건 압수 수색하고 윗사람 처벌하는 것으로는 이 문제는 해결이 아니라 왜곡되면서 국민 전체에 피해를 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8.26 기업들, 노조·외부 공격에 속수무책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폭주가 시작됐다. 여당 주도로 노란봉투법과 더 센 상법으로 불리는 2차 상법 개정안이 연달아 국회를 통과하면서 한국 기업들이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다. 가뜩이나 미국의 관세 압박으로 수출 난항을 겪고 있는 와중에, 정치권이 도움은 못 줄망정 오히려 기업의 손발을 묶는 법안을 강행 처리한 꼴이다.

이번 상법 개정안은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당은 소액주주 권익 강화, 하청노동자 권리 보호 같은 명분을 세우고 있다.

중요한 점은 외국 투기자본과 행동주의 펀드 같은 외부 세력의 이사회 진입 문턱을 낮춰 기업의 경영권까지 넘겨줄 위험이 커졌다는 것이다. 더욱이 경영권 방어 장치조차 없는 상태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까지 언급하니, 우리 기업들은 외부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노란봉투법도 마찬가지다. 불법 파업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원청 기업을 교섭 대상으로 확대하면 기업은 사실상 무력화된다. 원청인 한 기업이 수백 개의 하청업체 노조의 요구를 직접 떠안아야 하는 구조가 고착화되면 정상적인 경영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이미 현대제철 비정규직 노조와 네이버 산하 6개 자회사 노조 등이 원청과 직접 교섭을 요구하는 집회를 예고했다. 노사 갈등을 해결하기는커녕 파업 만능주의를 제도화해 산업 현장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식의 ‘기업 옥죄기 법안’이 마구잡이로 통과되면 기업들은 새로운 투자와 혁신보다 경영권 방어나 소송 대응 따위에 에너지를 낭비해야 한다. 이는 결국 기업의 성장 동력을 갉아먹고 경영 의지마저 꺾을 것이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대한민국 경제를 견인해 온 우리 기업들 손발을 묶어, 외국 자본들에 갖다 바치는 꼴이다.

이런 경제 악법들을 주도하고 있는 민주당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명분 삼고 있지만, 정작 선진국에서 허용하는 포이즌 필(적대적 인수합병 시도에 대응하기 위한 경영권 방어 전략), 차등의결권 같은 경영권 방어 장치에 대한 고민은 없다. 기업이 합리적 리스크만을 감수하고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제도를 고쳐야지, 더 옥죄는 방향으로 몰고 가는 건 자해행위다.

이재명 정부는 이번 관세 협정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 재계의 총수들을 총동원했다. 이렇게 필요할 때는 기업들을 앞세우고, 정작 기업 성장과 발전은 발목잡는 이런 행동은 반드시 역사의 질타를 받을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철없는 좌파 이념이나 과거의 노동 인식으로 기업을 더 이상 옥죄지 못하도록, 새로 출범하는 국민의힘 지도부가 헌법소원 등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으로 막아내 주길 바란다.

자유일보 김용식 前 국민의힘 당협위원장

 

08.27 쌀값 지탱에 年2조원... 쌀 남아도는데 가격 오르는 역설

적정 재고보다 70만톤 많아도
가격은 1년 사이 21% 급등해
가공용 쌀은 공급 부족해 비싸져
소비자를 고려한 농업정책 필요

▲공공비축 벼 저장창고에서 관계자가 벼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은 쌀이 남아돈다. 지난 1월 말 기준으로 정부 양곡 재고는 151만톤에 이른다. 적정 재고 80만톤을 한참 초과한다. 그런데 쌀 가격은 계속 오른다. 통계청 산지쌀값조사에 따르면 8월 중순 기준으로 20kg당 5만3658원을 기록했다. 1년 전 4만4157원과 비교하면 21.5% 올랐다. 2024년 11월 이후 쌀 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이에 정부는 6월 11일 쌀 가격 안정 방안을 발표했지만 소용없었다. 정부는 8월 11일 정부 양곡 3만톤 대여 방침을 발표했다. 쌀을 받아간 업체는 2026년 3월까지 신곡으로 반납해야 한다. 농민 단체는 쌀 가격이 밥 한 공기당 300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밥 한 공기를 쌀 100g으로 잡으면 20kg당 6만원이다. 현재 가격보다 10% 이상 더 올라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쌀 가격이 상승하는 이유는 쌀이 부족해서다. 2024년 정부는 쌀 가격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쌀을 20만톤 사들여 시장 격리시켰다. 시장 격리는 수요보다 많이 생산된 쌀만 사들이는 것이 원칙이다. 2024년 예상 수요는 352만9000톤이었고 쌀 생산량은 358만5000톤이었다. 5만6000톤만 사들이면 되었지만 20만톤이나 사들여 격리시켰다. 당연히 민간 재고량은 평년보다 부족했고 쌀 가격은 오르게 되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파주·김포·철원 등 경기도 곡창지대의 일반미 재고가 이미 소진된 상태다.

 

/그래픽=김현국

 

여기에 더해 가공용 쌀도 부족해졌다. 용기밥·떡볶이 등 쌀 가공품 수출이 증가하면서 가공용 쌀 수요가 늘어났다. 가공용 쌀은 1~3년 정도 묵은 쌀이다. 대부분의 가공용 쌀은 정부가 가공 업체로부터 신청을 받아 kg당 1100원으로 공급한다. 문제는 이 쌀이 떨어진 것이다. 주문을 받았지만 원료를 구하지 못한 업체들은 비싼 값을 주고 시중에서 유통되는 쌀을 구매하면서 쌀 부족 현상이 심화되었다.

 

쌀은 농업정책의 핵심이지만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면서 막대한 비용만 지출하고 있다. 정부는 쌀 가격을 떠받치기 위해 매년 많은 예산을 쓰고 있다. 2023년 기준으로 매입 및 보관 비용으로 2조2000억원을 사용했다. 묵혀 놨다가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데 따른 손실은 별도다. 쌀 재배 면적을 줄이는 것이 비용 절감의 핵심이라고 판단해 쌀 대신 콩 등 자급률이 낮은 작물을 논에 재배하면 ㎡당 50~500원의 전략작물직불금을 지급하고 있다. 2016년 4422헥타르였던 논콩 재배 면적은 2023년 1만8314헥타르로 4.1배로 확대되었다. 콩 생산 면적이 증가하면서 올해 초 정부의 콩 비축량은 2023년 3만3000톤에서 8만8000톤에 이르렀다. kg당 1400원인 수입 콩에 비해 3배 비싼 국산 콩을 어떻게 할지 처치 곤란이다.

 

밥쌀 소비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쌀 수요를 확대하는 방안은 쌀 가공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저렴한 쌀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야만 가능하다. 가공에 적합한 품질 기준을 만들고 이를 충족하는 쌀을 공급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어느 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가공용 쌀 공급은 불안정하고 가공용 쌀 품질 기준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원료가 비싼 상황에서 관련 시장이 제대로 성장할 수는 없다. 쌀 가공 업체의 95% 이상이 매출 10억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매번 바뀌는 원료로 일정하게 좋은 품질의 물건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농민들은 쌀이 가장 재배하기 편리하고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에 쌀을 포기하지 않는다. 벼농사 기계화율은 99%에 이른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비싼 농지 가격과 일본보다 좁은 경지 면적은 높은 기계화율에도 생산 비용을 낮추지 못한다. 밥쌀은 생산량을 줄이고 고급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공용 쌀은 생산량을 늘려 비용을 낮추는 ‘투 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남은 쌀이 있으면 가공용으로 사용한다는 가내수공업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5일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논에서 열린 조생종 벼 첫 수확 행사에서 농민이 콤바인으로 벼를 베고 있다. /연합뉴스

 

쌀 가격을 둘러싼 갈등은 매년 반복되고 있다. 쌀 가격이 올라야 농민의 삶과 농촌이 좋아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쌀 가격이 높아져도 농민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한계가 명확하다. 농업 선진국에서도 농산물 판매 수입은 농가 수익의 절반을 넘지 못한다. 농민의 경제적 어려움은 농지와 연계된 퇴직연금 등 농민 맞춤형 복지제도로 해결해야 한다. 농업은 시혜와 보호의 대상이 아닌 경쟁력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쌀은 중요한 작물이지만 쌀이 우리 농업의 전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쌀은 생산자만의 것이 아니다. 소비자까지 고려한 보다 폭넓은 쌀과 농업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쌀값 폭등한 일본은 증산으로 돌아서

일본은 쌀 가격 폭등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5kg 기준으로 2000엔 이하를 유지하던 쌀 가격이 2024년부터 상승해 2025년 4월에는 4200엔을 넘어섰다. 최근 3500엔대까지 내려왔지만 여전히 평년 수준보다 높다. 한때 일본농협을 비롯한 특정 세력의 매점매석이 급등 원인으로 지목되었지만 일본 정부가 7만곳에 이르는 쌀 유통 사업자를 전수조사한 결과, 매점매석은 없었다.

 

지난 7월 말 일본 정부는 최종적으로 생산량에 비해 수요가 많았던 것을 쌀 가격 폭등의 원인으로 확정하였다. 인구 감소에 따라 쌀 소비가 계속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2023년과 2024년 연이어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서 공급 부족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수요 증가에는 외국인 관광객 증가, 대지진 우려에 따른 사재기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었다. 2024년 쌀 생산량은 679만톤이었는데 수요가 당초 674만톤보다 훨씬 많은 711만톤에 이르면서 32만톤이 부족했던 것이 쌀 가격 폭등의 핵심이었다. 여기에 더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생산량 추정 방식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수확량 조사 방식을 전면 개편하는 것과 동시에 50년 동안 지속돼 온 쌀 감산 정책을 포기하고 쌀 증산 정책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주목할 점은 쌀 생산량 통계의 한계다.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실제 재배 면적 파악은 우리나라나 일본 모두 표본조사로 이루어진다. 착오가 클 수밖에 없다. 또한 실제 생산량 추정에서도 현실과 통계의 괴리가 있다. 현미를 백미로 만드는 과정에서 쌀겨층이 깎여 나가는 비율을 현백률이라고 하는데 어느 수치를 적용하느냐에 따라 실제 쌀 생산량은 달라진다. 우리나라에서도 2010년 쌀 생산량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통계 산출 기준은 9분도(92.9%)였지만 실제로는 12분도(90.4%)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실제 생산된 쌀은 정부 통계보다 적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후 12분도를 적용해 쌀 생산량을 계산하고 있다.

 

▲서울 대형마트에서 일본인 관광객들이 쌀 코너를 살펴보고 있다. 최근 한국 쌀값이 일본의 반값 수준으로 떨어져 일본인 관광객들이 쌀을 사러 오는 이른바 '한국 쌀 찍턴(turn)족'이 나타나고 있다. /박성원 기자

 

선진국보다 비싼 농지와 좁은 경작 면적이 장애물

대한민국 농업의 가장 큰 약점은 비싼 농지 가격과 좁은 경작 면적이다. 한국정밀농업연구소 남재작 소장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평균 농지 가격은 3.3㎡당 18만8000원이다. 일본(3만2000~8만원), 네덜란드(3만8000원), 영국(1만3000원)보다 훨씬 비싸다. 비싼 농지 가격은 청년 세대의 농업 진입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그래픽=김현국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구당 경작 면적이 증가한다. 농경지 면적은 그대로인데 농가 수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국토 면적이 좁은 덴마크의 경우 1970년 20헥타르에서 2000년대에는 60헥타르로 넓어졌다. 농가가 20만가구에서 3만가구로 70% 이상 감소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도 2000년 1.4헥타르에서 2023년 2.5헥타르로 넓어졌다. 이에 비해 우리는 같은 기간 거의 변함없이 1.5헥타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농가 수는 물론 경작지도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농지가 점점 분할되고 있다는 점이다. 고령의 농민이 사망하면 도시에 있는 자녀들이 농지를 상속받으면서 작은 농지들로 쪼개지는 경향이 있다. 농지 분할은 농업 생산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독일·프랑스·일본 등에서는 일정 규모 이하로의 분할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프랑스는 최소 경영 단위를 설정하고 농지 우선 매입권을 보유한 농촌토지정비공사(SAFER)가 농지 거래를 관리·감독하면서 적절한 규모의 경작 면적이 유지되도록 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농가에 대해서는 단독 상속 원칙을 적용해 경영 규모가 유지되게 한다.
조선일보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수석전문위원

 

08-28 조선업계는 마스가 총력전, 巨與 국회는 新규제법 폭주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가 가속화하고 있다. 한화그룹이 미국 소재 한화필리조선소 증설에 나선 데 이어,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가 27일 전격 합병을 발표하는 등 전방위 총력전에 나섰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군함의 해외 건조 제한법(번스-톨레프슨법)을 우회해 한국에서도 군함을 건조할 수 있게 하는 행정명령까지 추진 중이라고 한다. 방위사업청과 미 해군부가 다음 달 중순 미국에서 첫 실무회의를 갖고 구체적인 방안을 협의할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단일 조선소 기준 세계 수주량 1위인 HD현대중공업이 중형 선박 점유율 세계 1위인 HD현대미포를 흡수 합병하는 것은 미 군함과 전략 상선의 수주에 대비한 전략이다. 현대중공업의 기술을 활용해 현대미포의 독(dock, 선박건조장)에서 미 군함과 유사시 군용으로 쓸 수송 선박을 건조하려는 것이다. 현대미포는 4개 독에서 미 이지스함보다 큰 중형 컨테이너선과 유조선 등을 만들고 있어, 마스가 조선소로 쉽게 전환할 수 있다. 합병 후 통합 HD현대중공업은 올 12월 출범한다. 또, 한화는 필리조선소에 7조 원을 투자해 독 2개와 블록 생산기지 등을 신설키로 했다. 한화는 조선소의 조기 안착을 위해 중형 유조선·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11척의 일감도 발주했다.

 

마스가는 미국 조선업 재건은 물론 K-조선의 도약 기회다. 이 대통령도 귀국 전 필리조선소 방문에서 한미동맹의 새 장을 열 것이라고 크게 기대했다. 조선업체는 기회를 살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반면, 거대 여당이 독주하는 국회는 지원은커녕 새로운 규제 입법 폭주로 앞길을 막는 판이다. HD현대중공업의 1차 협력업체만 2420곳이나 된다. 하청노조의 원청 교섭을 허용한 노란봉투법은 조선업계를 뿌리째 뒤흔들 게 뻔하다. 현대중공업의 흡수합병 결정·합병 비율도 상법 개정으로 투기 세력이 소송 등으로 훼방을 놓고, 한화의 대미 투자 역시 소송과 하청 노조의 투쟁에 발목이 묶일 우려도 크다. 거여의 역주행이 이 대통령의 정상회의 성과를 뭉개는 사태를 막는 게 시급하다.
문화일보 사설

 

08.29 자유기업이 죄인인가?

정권 앞에서 기업은
영원한 乙인가
미국과 견주면 천양지차

이렇게 질책하고 옥죄면
누가 한국에 투자하겠나
기업이 민주주의 보루다

한국의 기업은 피곤하고 서럽다. 지난 15일, 모 대기업 회장이 하품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광화문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의 국민 임명식 자리였다. 그 회장은 미국에서 그날 돌아왔다. 피로를 풀 새도 없이 참석했지만, 하품 하나로 빛이 바랬다. 불경죄로 찍힐까 걱정도 했을 것이다. 하품은 자연스러운 생리 작용이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하품의 의미가 이렇게 엄중하다.

 

윤석열 전 대통령 때는 대기업 총수들이 무리 지어 부산 깡통시장에 갔다. 그러곤 대통령 앞에서 두 손을 얌전히 모으고 떡볶이를 먹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대통령님, 잘 먹겠습니다”라는 인사까지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친절하게 자기가 먹던 젓가락으로 이 회장 등에게 빈대떡 한 쪽씩 얹어 줬다. 이 회장은 어묵 국물까지 맛있게 먹었다. 2030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을 때도 윤 전 대통령은 기업인들에게 폭탄주를 돌렸다. 일부는 술을 이기지 못해 구토까지 했다.

 

최순실씨가 관여한 미르·K스포츠재단에 774억원이나 출연한 기업인들은 국정조사 청문회에 줄줄이 불려 나가 혼쭐이 났다. 이들은 “기업별로 할당을 받은 만큼 낸 것(최태원 SK그룹 회장)”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 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이라고 읍소했다. 대한항공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운 고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은 문재인 정부 때 사전 구속영장이 5번이나 신청되고, 18번 압수 수색을 당하고, 국민연금에 경영권을 빼앗긴 뒤 갑자기 지병이 악화돼 세상을 떴다.

 

미국은 사정이 다르다. 2013년 빌 게이츠 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나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악수했다. 우리 기업인이 그랬으면? 상상이 안 간다. 일론 머스크의 어린 아들은 트럼프 미 대통령 집무실 ‘결단의 책상’에 코딱지까지 묻혔다. 책상은 교체됐지만, 이 ‘특별한 선물’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머스크와 트럼프의 브로맨스는 유명하다. 하지만 머스크는 트럼프의 감세 법안에 대해 “역겹고 혐오스럽다” “트럼프는 탄핵당해 마땅하다”고까지 비판했다. 트럼프는 격노했지만 둘은 휴전했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머스크가 트럼프 앞에서 하품을 참을 이유는 없다.

 

이재명 대통령에 대해서는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시작이 좋았다. “기업이 잘돼야 나라가 잘된다” “정부가 기업에 뭘 해 줄 수 있을까,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했다. 취임사에서는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를 표방했다. 하지만 SPC 근로자가 사망하자, 공장을 찾아가 임원진을 죄인처럼 질책했다. 포스코이앤씨에 대해서는 “미필적 고의(故意)에 의한 살인”이라며 면허 취소까지 검토하라고 초강경 발언을 내뱉었다.

 

한국 산업 안전 수준은 2021년 기준 OECD 38국 중 34위로 열악하다. 각성해야 한다. 그러나 위험이 큰 제조업 비율이 높은 탓도 있다. 제조업은 일자리 만들기 일등 공신이다. 그런데도 기업인을 탐욕스러운 수전노로 취급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정치적 의도가 끼면 사악하다. 정치 앞에 서면 한없이 쪼그라드는 기업을 희생양으로 삼기 때문이다. 포스코이앤씨는 전국 현장 103곳 공사를 중단했다. 그 수만 명의 일자리는 누가 책임지나?

 

더불어민주당은 ‘기업 옥죄기 3법’을 몰아붙이고 있다. 24일에는 소위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청 기업 노조가 원청 기업 상대로 교섭·파업을 할 수 있게 했고, ‘경영상 결정’도 노동쟁의 대상이다.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도 제한했다. 파업이 급증하고, 기업은 결정 장애에 시달릴 게 뻔하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역사적 과업이라고 자찬했다. 하지만 손경식 한국경총 회장은 “누가 한국에 투자하겠나. 결과는 기업 엑소더스”라고 전망했다. 외국 기업 중 13%가 한국을 떠날 계획이라는 조사도 나왔다.

 

기업은 악의 화신인가?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대부업자 샤일록은 ‘돈밖에 모르는 자’로 멸시받고, 남의 침 세례를 받는 게 일상이다. 돈만큼 모든 사람이 사랑하면서 혐오하는 것도 드물다. 기업 악마론을 이론적으로 완성한 게 마르크스다. 그는 자본이란 노동을 빨아먹고 사는 흡혈귀며, 자본 없는 세상이 궁극의 유토피아라고 역설했다. 지식인들이 열광했다. 그래서 자본이 사라진 세상이 어떻게 됐나? 빈곤과 억압, 전체주의만 남았을 뿐이다. 20세기 공산주의 역사가 입증한다. 기업은 단지 물건을 만들고, 돈만 버는 곳이 아니다. 피터 드러커의 말처럼, 기업은 자유 사회의 원천이자, 두꺼운 중산층을 만드는 민주주의의 보루이기도 하다. 기업 없이는 빵도, 자유도 없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그 대표적 사례다.

조선일보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08.30 4년간 국가 채무 487조원 급증, 文정부보다 심한 재정 중독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8일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공용브리핑실에서 2026년도 예산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올해보다 54조7000억원(8.1%) 늘어난 728조원 규모로 편성해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전년 대비 예산 증가 폭이 재정 중독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문재인 정부의 2022년 기록(49조7000억원 증가)을 뛰어넘는 역대 최대치다. 재정 건전성을 중시한 전임 정부와 180도 다른 확장 재정이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어렵게 되살린 (경기) 회복의 불씨를 성장의 불꽃으로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재정이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며 확장 재정 기조를 분명히 했다.

 

가계·기업과 함께 경제의 3주체인 정부가 경제 발전을 위해 필요한 분야에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가계·기업과 마찬가지로 정부도 빚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이번 예산안에서는 재정 건전성을 지키려는 노력을 찾아보기 힘들다. 내년 재정 적자가 GDP(국내총생산)의 4%인 109조원이 된다고 한다. 선진국들이 재정 준칙 기준으로 삼는 GDP 3%를 훌쩍 넘겼다.

 

재정 적자는 나랏빚을 늘려 충당할 수밖에 없다. 내년 국가 채무는 올해보다 113조원 늘어난 1415조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GDP의 50%를 넘게 된다. AI(인공지능) 3강 진입을 위한 투자와 R&D(연구개발) 예산 확대 등 성장 동력 발굴을 위해 꼭 필요한 예산도 있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아동수당 지급 확대와 농어촌기본소득 등 선심성 예산도 수십조 원 편성됐다.

 

더 심각한 문제는 4%대 재정 적자가 내년 한 해에 끝나지 않고 현 정부 임기 내내 지속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국가 채무가 4년간 487조원 급증해 2029년 말에는 GDP의 58%인 1788조9000억원으로 불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연평균 나랏빚 증가 폭(121조7500억원)이 종전 최대였던 문재인 정부(연평균 81조4000억원)의 1.5배에 달한다.

 

국채를 많이 발행하면 국채 가치가 떨어지면서 금리가 오른다. 가계와 기업의 대출 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국가신용등급에도 부정적이다. 유럽의 재정 모범국이었던 프랑스는 최근 몇 년간 4~6%의 재정 적자 지속으로 국가 채무가 급증하면서 신용등급이 떨어졌고,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대외 환경 변화에 취약한 한국 경제로선 재정 건전성이 최후 방어선이나 다름없다. 대통령 임기가 끝난 뒤 나라가 어떤 일을 겪게 될지도 걱정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正論直說 202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