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한 전쟁사] 역사학자 동아일보 2024 - 2025
2024-11-18
〈341〉브레이크 없는 기관차

전쟁론의 저자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솔직하게 풀면 “말로 하다가 안 되니 주먹으로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전쟁 중인 당사자에게 “제발 폭력을 멈추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해결하자”라는 호소는 별 효과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자가 패자의 땅을 초토화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전쟁이 마지막에는 회담을 통한 “평화”와 “협정”이라는 형식으로 종결된다. 전쟁이 대화로 돌아오는 이유는 승자가 목적을 달성했거나 한쪽이 항쟁을 포기했거나, 양쪽 다 지쳐 떨어져서 전쟁을 지속할 여력이 없는 경우이다.
지금 이스라엘의 전쟁은 어느 조건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하마스와 헤즈볼라는 아무리 섬멸해도 그들의 분노와 저항의지는 다시 타오를 것이다. 포용정책도 한계가 있다. 이스라엘의 전력이 너무 압도적이라 양쪽 다 지쳐 떨어지는 순간도 오지 않을 것 같다.
남은 방법은 이스라엘이 목적을 달성하는 경우다. 하마스와 헤즈볼라 지도자들은 거의 다 살해되고, 조직도 큰 피해를 입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이제 만족할 만한 수준이 되지 않았느냐며 종전을 종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제야 자신의 목적을 드러냈다. 인질 구출, 헤즈볼라의 위협 제거가 최종 목표가 아니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국가를 지우고, 요르단 서안 지역을 완전한 이스라엘의 영토로 만들려고 한다. 이건 이스라엘이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고 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실행이 쉽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스라엘은 치밀하게 준비하면서 기회만 노리고 있었던 거다. 삐삐 테러 같은 엄청난 준비, 신속한 암살, 폭주, 이 모든 것이 이제야 설명이 된다. 이 전쟁은 어찌 끝나든 끝이 아니다. 새로운 갈등의 시대로의 출발이다.
〈342〉 멀리 돌아가는 승리
손자병법에 우직지계(迂直之計)라는 말이 있다. 불리한 상황에서 조급하게 승리를 추구하다가는 큰 희생만 내고 패배할 수 있다. 느리고 멀리 우회하는 것처럼 보이는 전술이 실제로는 가장 빠른 길일 수 있다는 말이다.
한니발이 로마를 침공하자, 집정관 파비우스 막시무스는 당시 로마의 병사들로는 실전으로 단련된 한니발의 군대를 이겨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한니발을 고사시키는 전술을 채택했다. 한니발이 이탈리아에서 장기간 주둔하려면 로마에 반감을 가진 도시들로부터 병력과 물자 지원을 얻어야 했다.
파비우스는 동맹시들에 선심을 베풀어, 이들이 한니발의 편에 서는 것을 막는 전략을 제시했다. 그러나 같은 집정관인 플라미니우스는 파비우스의 전술이 비겁하다고 주장했다. 로마 시민들은 플라미니우스를 지지했다. 플라미니우스는 군대를 이끌로 한니발을 토벌하러 나갔다가 트레비아 전투에서 처참하게 패배한다. 플라미니우스도 전사했다.
로마인들은 반성하고 현명한 파비우스에게 전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이 인내도 오래가지 못했다. 한니발의 군대는 약화되고 있었지만, 시민들의 인내는 더 빨리 바닥이 났다. 그러자 새 집정관인 바로가 파비우스의 소극적인 전략을 비난하고 자신은 전쟁을 바로 끝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시민들은 다시 바로에게 환호했다.
바로는 전에 없던 대군을 편성해서 한니발을 치러 나갔다가 칸나이 전투에서 대패한다. 한니발의 승리에 놀란 도시들은 즉시 그의 편에 서기 시작했다. 로마인들은 후회하고 파비우스 전략을 다시 지지했지만, 성급함의 대가는 컸다. 지원 세력을 얻은 한니발은 이후 10년 이상 이탈리아에 머물며 로마를 괴롭혔다.
유혹은 언제나 달콤하다. 전쟁이든 경제든 고통받는 대중이 유혹을 이겨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시민도 현명하고, 지도자도 현명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운이 따르는 나라는 언제나 희귀하다.
〈343〉 ‘세계 최대 전함’의 패착

1941년 12월 16일 세계 최대 전함 야마토가 태어났다. 만재 배수량이 7만2809t인데, 독일 제국 최대 전함 비스마르크가 5만300t이었다. 전함끼리 포격전을 벌이는 해전은 이미 구식이 되었다. 해전의 승부는 항공모함에서 출격하는 함재기가 결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때 일본은 묘한 역발상을 한다. 강력한 전함으로 항모를 일거에 격침시킨다면 어떨까?
야마토 한 척을 건조할 비용이면 항모 두 척을 건조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항모가 있으면 함재기도 제작하고, 조종사도 양성해야 한다. 둘 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당시 일본군은 조종사 양성 과정이 지나치게 까다로웠다.
함재기가 적의 항모에 벌떼같이 달려들어도 항모를 격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난제를 제거하면 거대 전함으로 적의 항모를 침몰시킨다는 생각은 꽤 솔깃하게 다가왔을 것 같다. 그러나 막상 실전에 투입되자 야마토는 미군 항공기를 피해 다니다가 별 활약도 못 하고 미군 항공기에 의해 침몰하고 만다.
물론 일본군은 태평양의 제공권을 자신들이 장악할 수 있다고 믿었다. 제공권 장악이란 전제하에서 괴물 전함의 활약을 구상한 것이었다. 그러나 필리핀 전투 이후로 제공권을 완전히 상실하면서 야마토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제공권이 아니라도 전함의 비효율성은 명확했다. 항모에서 발진한 함재기는 적의 항모부터 모든 종류의 군함을 격침할 수 있었다. 전함은 항모와 전함만 격침 가능하다. 구축함만 돼도 빨라서 전함의 주포로 대항하기는 힘들었다.
그래도 일본군 지휘부는 거대 전함이 지니는 상징성에 매료되었고 최악의 악수를 두고 말았다. 야마토 대신 항모 2척을 건조했더라면 일본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절대로 패할 수 없었고, 적어도 2년간 태평양의 제해권은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344〉 산에 호랑이 없으면 전쟁 안 날까

11월 중순에 이스라엘이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를 공습했다. 이전에도 간간이 공습이 있었지만 11월에 보다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의 자금 조달책 제거, 군사시설 제거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내세웠다. 이게 또 무슨 꿍꿍이가 있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12월부터 갑자기 시리아 반군이 치고 나오기 시작했다.
시리아 내전은 2대 40년간 시리아를 통치하고 있는 아사드 집안의 독재에 대한 저항이지만, 내부는 더 복잡하다. 과거에 반군이 승리할 뻔했지만, 러시아와 이란의 개입으로 아사드 정권이 기사회생했다. 여기에 IS, 튀르키예, 미국, 시리아 내전에 관여하는 국가가 많아 반전을 거듭하다가 2018년에 정부군이 유리한 상황에서 겨우 휴전이 성립했다.
한동안 잊혔던 시리아 내전이 11월부터 급발진하더니 순식간에 반군이 다마스쿠스까지 밀고 들어갔다. 현 상황에서 정부군에는 러시아군이 최후의 희망인데, 잠시 돕다가 손을 떼는 듯하다. 러시아도 러-우 전쟁에 총력을 다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리아를 도울 힘이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을 위협할 것 같던 이란은 벌써 종이호랑이가 됐다.
이스라엘이 시리아까지 치고 나간 이유가 이거였다. 미국이 국제적인 비난을 받으면서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것도 미국 유대인의 압력 때문만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러-우 전쟁에서 대만 위기, 북한의 파병, 가자 전쟁, 후티 반군까지…. 미국이 세계 경찰 노릇을 거의 포기하게 만들 수준의 압박이었다. 시리아 문제는 이제 러시아의 한계를 강요하고 있다.
산에 호랑이가 두 마리 있으면 싸움이 난다고 한다. 호랑이가 없으면 싸움이 그칠까? 늑대가 싸우고, 늑대가 사라지면 토끼가 싸운다. 결론, 전쟁은 이래도 나고 저래도 난다. 전쟁을 막는 절대적인 해법, 묘약은 없다. 옹고집을 버리고 매사에 현명해지는 수밖에 없다.
〈345〉 패자의 비극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 단숨에 무너졌다. 대를 이어온 권력이 이렇게 순식간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솔직히 그보다 더 놀란 건 다음 날이었다. 첫눈에 들어온 건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줄을 선 난민들의 행렬이었다. 오랜 내전으로 시리아를 탈출한 난민이 600만 명이 넘었다. 타국의 도시에서 거지처럼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직접 본 적도 있었던 나로서는 가슴이 찡했다.
그러나 동시에 걱정이 앞선다. 이런 말을 시리아 국민이 들으면 화낼지 모르겠지만 내전이 정말 끝났을까? 독재와 내전이 나쁜 이유는 후유증도 길다는 것이다. 성숙한 민주주의, 평화, 분열의 치유는 한 번에 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제대로 하기도 전에 이스라엘, 미국, 튀르키예의 전투기들이 시리아의 곳곳을 폭격했다. 특히 이스라엘은 정부군이 방치한 시리아 전투기, 항만, 군사 시설들을 맹폭해서 며칠 만에 시리아의 군사 자산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반군은 여러 세력의 연합체이다. 누군가가 이를 확보했다면 순식간에 세력 균형이 무너졌을 것이다. 그러나 맹렬한 공습으로 반군 세력, 혹은 이슬람 극단 세력들이 정부군이 방기한 무기를 인수할 틈도 주지 않았다. 이것이 반군 세력 간의 세력 다툼, 즉 제2의 내전이 확대될지, 침묵할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2024년 12월, 시리아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당분간 이 지역에서 이스라엘이 주도권을 쥘 것 같다는 점이다. 팔레스타인에는 유언, 무언의 압박이 가중될 것이고, 골란고원과 가자지구, 요르단 서안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물리적 지배력은 더 가시화할 것이다. 지금은 눈치를 보지만 1∼2년 내 사우디아라비아와 수니파가 이스라엘과 암묵적인 공존 정책을 시행할 것이다. 세계는 더 냉정해질 것 같다. 맹폭이 가해진 시리아의 일주일은 21세기에도 국제정치가 얼마나 이기적이며 가혹한지, 패자에게 자비란 없다는 사실을 다시 보여주었다.
〈346〉 성탄절과 돌아오지 않는 병사들

우리의 추석처럼 서구인들에게는 크리스마스가 홈 커밍 데이다.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6·25전쟁 때 가장 많이 돌았던 유언비어라면 “이번 성탄절 전에 전쟁이 끝난다”는 얘기였을 것이다. 노르망디 상륙 후 프랑스를 해방시키던 연합군 병사들, 태평양의 정글에서 무더운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던 병사들, 인천상륙작전 후 38선을 넘어 북진하던 유엔군 병사들, 심지어는 모스크바를 향해 러시아 평원을 달려가던 독일군 병사들도 이번 크리스마스엔 집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문처럼 품곤 했었다.
그들 중 많은 병사들이 영원히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돌아온 병사들도 결코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자신이 되었다고들 말한다. 그나마 전후에 안정된 삶을 살고, 여유를 가지고 과거를 돌아보는 참전 병사들은 전쟁을 겪으면서 ‘나는 소년에서 어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말조차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더 많지 않았을까? 전쟁은 생존자에게도 너무나 큰 고통을 안긴다. 그보다 더 힘든 삶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은 유가족이 된 아내와 자녀들이다. 평생 동안 그들은 온전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따뜻한 세모를 맞이했던 가족들도 있었다. 그들을 위로하고 병사의 희생에 진정으로 감사하는 이웃들, 그들을 돌보고, 주기적으로 감사를 표시하고, 행사에 초대하는 지역사회와 국가가 있었다.
가난했던 과거에는 정말 부끄러웠지만, 요즘은 우리 사회의 보훈 정책도 많이 좋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황당한 소식을 듣는다. 연평해전 전사자에게 1계급 특진을 시켜주었는데, 연금은 이전 계급을 기준으로 지급했다고 한다. 유가족이 1년 동안 시위를 해서 간신히 내년부터 시정된다고 한다. 그나마 시정이 돼 다행이지만,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표가 되는 곳에서는 인권과 복지를 그렇게 외치는 사람들이 진정성이란 게 있기는 한 걸까.
2024-12-30
〈347〉 2024년의 포성

2024년은 결국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또 해를 넘긴다. 가자 전쟁은 일방적인 승부로 결론이 났지만, 지치지도 않는지, 이스라엘은 시리아와 예멘까지 치고 있다. 대만 위기는 더하지도 나아지지도 않았고, 중국은 계속 신무기를 선보이고 있다.
러-우 전쟁이나 가자 전쟁이나 2025년까지 넘길 것 같지는 않지만, 깔끔하게 종결될 것 같지도 않다. 1925년을 돌아보면 세계 경제는 축을 잃고 비틀거리고 있었다. 강대국들은 경제블록을 추진하고, 무솔리니와 스탈린은 이미 정권을 잡았고, 히틀러는 정권을 획득하기 직전이었다. 슬슬 발동을 거는 군비 경쟁은 14년 후에 벌어질 세계대전을 향하고 있었다.
100년 전과 지금의 상황이 똑같지는 않지만, 일부는 꽤 유사하다.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인류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내년 한 해면, 아니 5년 10년 뒤라면 우리는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답을 아는 때가 늦으면 늦을수록 우리는 위기에 가까이 다가가 있을 것이다.
인류는 왜 전쟁을 할까? 인간은 누구나 더 나은 삶, 행복한 미래를 원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타인을 학살하고, 문명을 잿더미로 만드는 행위가 옳다고 하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종종 그런 행동을 수긍하곤 한다. 이 믿을 수 없는 변심에 당혹했던 학자들은 미친 독재자, 기근, 치명적인 재난, 광신 등을 이유로 가정해 보곤 했었다.
하지만 굶고 병든 사람들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을까? 막다른 골목, 절망은 범죄의 원인은 될 수 있지만 전쟁의 원인이 되지는 못한다. 대부분의 침략 전쟁은 아주 건강할 때, 힘이 넘치고, 새로운 세상과 부가 눈앞에 있고, 자신들이 그것을 충분히 붙잡을 수 있다고 믿을 때, 타협은 손실이고 욕망이 정의라고 생각할 때 발생했다.
2025년에는 100년 전과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2025-01-06
〈348〉 을사년을 을씨년스럽게 열며

올해는 을사년이다. 작년에 을사사화, 을사보호조약을 언급하며 정치적으로 불길한 일이 생길 것 같다고 하는 괴담이 돌더니 계엄 사건이 터졌다. 올 상반기는 정치적으로 격동의 시간이 펼쳐지게 됐다. 이 결과가 어떻게 되든 정치·경제적 영향은 오래갈 것 같다. 오래간다기보다는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혹은 고통스러운 방향이든 중요한 변화의 축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필 뱀의 해이다 보니 미로 같은 세상과 끝을 알 수 없는 결과가 더욱 상징적이다. 우리는 뱀의 몸통과 같은 구불구불한 질곡을 지나 밝은 세상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 뱀의 입으로 들어가는 중일까?
뱀은 우리 문화에서는 사랑받지 못하는 동물이다. 서구 문명의 절반인 기독교 문명에서도 뱀은 사악한 존재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 헬레니즘 문화에서 뱀은 의외로 존중을 받는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는 신성한 뱀이 새장 안에서 살았다.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상징은 뱀이 감겨 있는 지팡이이다. 구급대의 표식이 된 헤르메스의 지팡이 케리케이온도 두 마리의 뱀이 감고 있다. 아테네 여신상의 발아래 청동뱀이 놓여 있기도 하고, 폼페이 로마 주택의 부엌 벽화에는 빠짐없이 뱀이 그려져 있다.
이중적인 의미도 있다. 뱀의 지혜는 교활함을 뜻한다. 갈라진 혀는 정치인과 사기꾼의 혀를 상징한다. 사람들은 교활함을 미워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려면 교활해야 한다고 말한다. 상대의 교활함은 악이고 우리의 교활함은 능력이다. 갈라진 혀와 내로남불은 이젠 우리 사회에서는 정의가 되었다.
뱀과 을사라는 단어에는 죄가 없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의 생각과 손이 만든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거리에서 한탄하던 상황이 우리 시대에도 펼쳐지고 말았다. 이 좁은 협로를 뱀처럼 뚫고 나가는 2025년이 되길 바란다.
〈349〉 1월에 생각나는 전쟁

1월에 생각나는 전쟁이라고 하면 단연 병자호란이다. 병자호란 개전일은 음력으로는 1636년 12월 8일, 양력으로는 1637년 1월 3일이다. 이 전쟁은 우리에겐 치욕적인 전쟁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전후의 행적을 보면 수치, 설욕 같은 단어는 수백 년간 난무했지만 반성과 제대로 된 개선 조치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심지어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도 없었다. 처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였다고 생각한다. 외국의 침략에 저항하자는 주장이 잘못된 건 아니다. 그러나 적과 아군의 전력을 잘못 판단하고, 국제 정세를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고, 전투 상황에서도 도무지 현실을 보지 않고, 무책임한 원칙론만 주장했던 행동에 대해서는 반성을 해야 했다.
국제 정세에 까막눈이어서 청이 조선을 왜 침공했는지, 이들의 목표와 전략이 뭐였는지도 몰랐다. 청 태종이 직접 왔다고 하자 “여기까지 올 이유가 없다”, “기만 전략”이라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인조가 성문을 열고 항복하러 나가려고 하자, 이것도 “우리를 끌어내서 죽이려는 속임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성벽이 파괴돼 방어력을 상실했다. 마음만 먹으면 군대가 성안으로 진입할 수 있는데 뭐하러 이런 꾀를 쓰겠느냐고 말해도 인정하지 않았다. 좌우간 모든 주장의 허구가 결과로 증명되었는데, 반성도 하지 않고 문제 분석도 하지 않고 고치지도 않았다.
다음 세대는 어땠을까? 다를 바 없었다. 사회 개혁, 국가 개혁 하자는 사람들은 외국과 비교도 해보지 않고 태곳적 사회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실을 외면하니 군대는 더 약해져 갔다. 정치가, 군인들은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으면 나라를 구할 수 있었다고 큰소리만 쳤다.
희한하게 지금도 다르지 않다. 이 정도면 세계사의 미스터리이다.
〈350〉 전설이 주는 교훈

호동 왕자와 낙랑 공주의 이야기는 실화일까? 자명고라는 신비한 물건은 없더라도 적국의 왕자나 장수와 사랑에 빠져 성문을 열어주거나, 경보 장치를 해제했던 실제 사건에 기반해서 이 전설이 만들어진 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상을 즐긴다. 사실이라 믿고 증거를 애타게 찾는 사람도 있다. 우리만 그런 건 아니다. 그런 전설 중 하나가 아서왕의 전설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아서의 무덤을 발굴해서 그가 고대 켈트족 지도자였고, 마법사 멀린은 그의 샤먼이며, 검(劍) 엑스칼리버는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새 강철 제조법으로 제작한 신형 검이었음을 알아낸다 해도 역사에 공헌하는 바는 기대 이하일 수 있다. 그의 왕국은 전설보다는 훨씬 작을 것이고, 그 시대의 고민과 국가 성립 과정은 역사가들에 의해 이미 밝혀져 있다. 물론 역사가 문학이 되는 과정 등 수많은 분야에서 엄청난 감흥과 영감을 주긴 하겠지만 말이다.
반대로 픽션이 분명한 내용임에도 교훈이 되는 내용이 있다. 성배 찾기다. 성배를 찾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환상적인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원탁의 기사들이 성배를 찾아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 과정에서 많은 기사가 죽었고, 아서왕의 왕국도 무너진다.
기독교가 지배하던 시대임에도 성배 찾기라는 숭고한 도전이 파멸의 원인으로 그려지는 자체가 신기하다. 그런데 요즘 세상을 보면 별 어려움 없이 이해가 간다. 단순한 사실에 집착하고, 그것만 해결되면 세상만사가, 아니 내 인생이 달라진다고 믿고 열중하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난다. 그 믿음은 곧 반대파에 대한 증오로 바뀌어 폭력으로까지 이어진다. 지도자들은 이런 현상을 즐기거나 부추기면서 되레 이용할 생각만 하고 있다. 성배에 담긴 포도주가 우리의 피가 될 수도 있다.
〈351〉 50 대 1의 포로 교환

가자 전쟁이 15개월 만에 휴전에 돌입했다. 하마스가 억류한 인질과 이스라엘이 수감 중인 팔레스타인 포로 간에 교환도 진행되고 있다. 현재 합의된 내용은 인질 34명과 포로 2000명이다. 비율로는 50 대 1이 넘는다. 이것이 중동 평화의 아름다운 선례가 된다면 축하할 일이다.
그런데 왠지 불안하다. 2011년 이스라엘 군인 1명과 팔레스타인 포로 1000명을 교환하는 통 큰 교환이 있었다. 이때 석방된 인물이 이번 인질 사태를 주도한 야흐야 신와르였다. 제2의 신와르는 분명 다시 나타날 것이고, 이스라엘 강경파들은 이 교환의 부당성을 무기로 삼을 것이다.
이를 모를 리가 없는 이스라엘 정부가 왜 이런 교환에 동의했을까? 미국의 종전 압력 때문일까? 그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이스라엘도 숫자 비율만큼 손해를 보는 건 아니다. 어차피 하마스는 약해졌다. 석방된 인물들은 하마스의 빈자리를 채우는 새 피이면서 옛 피이다. 생존자들과 귀환자 간에 권력 투쟁이 발생한다.
이번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무서운 정보력과 타깃 제거 능력을 보여줬다. 하마스는 정보 누설에 예민해져 있다. 수감 중에 이스라엘에 포섭된 인물도 있을 것이다. 없다고 해도 그런 의심을 피할 수 없다. 의심이 커지고 내분이 생기면 정보가 새고 전향자가 나온다.
이스라엘로서는 이제 팔레스타인의 통치술을 두고 고민해야 할 단계이다. 팔레스타인 정파 간 내분은 엄청난 호재이다. 아니 이런 내분이 없다면 통치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하마스도 이를 안다. 그렇기 때문에 배신자와 스파이 색출에 더 열중할 것이다. 충성심을 증명하려면 더 극단적이고 더 강경한 행동을 해야 한다. 그럴수록 이스라엘은 강경파를 소탕하고, 온건파를 강경파와 분리시켜 조종하기가 더 쉬워진다. 아니면 이스라엘은 이 포로들을 이용한 하마스 정권 재창출 시나리오를 짜고 있는 건 아닐까.
〈352〉 가자지구를 미국이 다스리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충동적이고 투박해 보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교묘하고 치밀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그의 정책이 다 정교하다는 뜻은 아니다. 트럼프는 막무가내식 행동 뒤에 술수를 감추었다가 딜을 유도하기도 하고, 설마 무슨 속셈이 있겠지라는 기대를 역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니 트럼프의 협박 대상이 되는 나라는 바로 맞대응을 하지 못하고 사태의 추이를 보면서 주도권을 양보하게 된다. 트럼프의 억지에 굴복하는 척 모양새를 갖춰 주기도 한다. 내가 힘이 있으니 기울어진 힘의 차이, 힘이 주는 위협을 100% 이용하겠다는 방식이 신사적인 방법은 아니다. 그러나 트럼프에게 신사가 되라고 충고할 사람도 없고, 그런 말을 해봤자 트럼프는 자기는 신사가 아니라고 받아칠 게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강의 예측은 가능했던 정책도 많다. 하지만 가자지구를 미국이 관리하겠다는 돌출 발언은 속셈을 모르겠다. ‘두 국가 해법’을 포기하고 팔레스타인 주민을 이주시키자는 방안은 이미 이스라엘이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번 가자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저토록 과격하게 행동한 이유도 단순히 테러에 대한 응징이 아니다. 오랫동안 준비하고 기회만 노리던 정책이었다.
그런데 트럼프가 먼저 총대를 메고 나섰다. 아무리 미국 내에서 유대인의 세력이 막강하다고 해도 항간의 오해처럼 유대인이 미국을 좌지우지하지는 않는다. 자칫하면 인종청소 논란까지 벌어질 수 있는 이슈를 트럼프가 선제적으로 들먹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트럼프의 진심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장기적인 공존이 가능할까? 언젠가 두 민족이 화해할 수 있을까? 차마 말을 꺼낼 수가 없어서 모두가 외면하는 질문이다. 트럼프의 노림수가 이것일 수도 있다. “원칙 뒤에 숨지 말고 대안을 내놓아 보라.” 인류의 양심과 지혜가 시험대에 오른 기분이다.
〈353〉 김옥균 암살

1894년 3월 28일 중국 상하이의 미국 조계(租界)지에 있던 동화양행 호텔 2층에서 김옥균이 홍종우가 쏜 권총에 맞아 숨졌다. 김옥균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엇갈리지만, 그는 풍운아라는 명칭이 딱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일본을 지나치게 신뢰했다는 비판이 있지만, 그도 일본을 믿지 않았다. 어쩌면 일본도 그 사실을 눈치챘기에 작은 도움도 주지 않고 이용하려고만 들었던 것 같다. 초조해진 김옥균은 이해에 동학농민전쟁이 발발하자 이 기회를 이용하고 싶어 했는데, 이홍장이 상하이에서 만나고 싶어 한다는 전갈이 왔다. 주변인 모두가 음모라고 의심했다. 심지어 이 일을 주선한 이일직과 홍종우에 대해 박영효와 윤치호를 비롯해서 일본에서 사귀었던 지인들 상당수가 자객 같다고 김옥균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한 일본인은 김옥균이 상하이로 출발했다는 말을 듣고, “아! 김옥균이 죽는구나”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암살 4개월 후인 7월에 갑오개혁이 추진되고, 박영효는 사면을 받아 귀국했다. 김옥균이 지인들의 충고를 따라 상하이로 가지 않았다면 조선으로 귀국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그의 삶은 비극적으로 끝났을 것 같지만, 김옥균으로서는 오랫동안 고대하던 기회가 눈앞에 있었는데 그것을 붙잡지 못했다.
김옥균은 예리하고 두뇌가 비상한 인물이었다. 신념과 자기 확신이 강했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하고 자만심이 너무 강했다. 이것이 치명적인 결점이었다. 김옥균도 홍종우가 자객임을 눈치채고 있었는데, 자신이 감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홍종우는 이를 역이용했다. 이홍장이 그를 부를 리가 없는데, 여기에 넘어간 것도 초조함과 자만심 때문이었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신념이 그를 망친다. 아무리 똑똑해도 그가 아는 세상은 극히 일부이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늘어나고 권력자가 신념에 사로잡히면 나라는 불행해진다.
〈354〉 트럼프의 유럽 패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자신이 당선되면 24시간 내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했다. 그 말을 믿은 사람이 몇이나 됐을까? 하지만 믿고 싶은 사람은 상당히 많았고, 이것이 트럼프의 당선에 도움이 된 건 분명하다.
24시간은 이미 충분히 지났지만, 트럼프가 전쟁을 끝내려는 시도는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우크라이나 패싱’, ‘유럽 패싱’이란 논란을 낳고 있다. 트럼프는 왜 이러는 걸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시각에서 보면 종전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얻은 게 무엇인가를 국민에게 납득시켜야 한다. 트럼프의 유럽 패싱은 푸틴에게 초강대국 미국의 압박을 무시할 수 없다는 명분을 주고, 미국이 유럽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떠나게 해서 ‘나토의 동진’을 좌절시켰다는 선전을 할 수 있게 한다. 트럼프로서는 미국민에게 자기 과시를 확실히 하고 푸틴에게 명분도 주는 일거양득의 수이다.
그런데 종전을 위해서 푸틴에겐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러시아가 힘을 회복하면 다시 우크라이나를 칠 수 있다는 위협이다. 미국이 유럽을 버리면 종전과 무관하게 러시아의 위협은 가공할 힘이 되고, 이 기세가 지속되면 우크라이나에 친러시아 정권이 들어설 수도 있다.
그런데 트럼프가 유럽 패싱을 시도하자 지금껏 소극적이던 유럽이 즉시 평화유지군 파병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군사기지가 되는 건 절대적으로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판단은 분명했지만 국민을 설득하기가 힘들었다. 트럼프의 패싱은 유럽 지도자들에게 국방력과 나토 강화를 추진할 수 있는 명분을 준다.
푸틴에겐 종전의 명분을, 유럽에는 우크라이나의 재건과 러시아의 서진을 저지할 추진력을 준다. 트럼프의 이 교활한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 푸틴에겐 실리가 너무 작고, 유럽엔 고통이 너무 크다. 트럼프의 두 번째 카드는 평화유지군에 미군을 포함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355〉 피 흘리는 3·1절

2025년 3·1절에 대한민국은 이날이 서로 다른 함성을 외치는 시위대로 채워지는 경험을 했다.
3·1절은 고종의 인산날을 계기로 발생했다. 고종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국왕으로서 고종의 리더십, 능력은 유능하지도 올바르지도 않았다. 대한제국 시기에 고종은 분명히 부국강병을 위한 노력을 했으나 그 방법이 한심할 정도로 비현실적이었다.
후발 국가가 국가 주도로 근대화를 추진하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고종은 황실과 국가를 완전히 혼동했다. 고종은 국가의 모든 자원, 세원을 정부 재정이 아닌 왕실 수입으로 전환했다. 모든 근대화 사업도 왕실 직영으로 추진했다.
대한제국 시기에 독립협회는 한국의 자원, 삼림의 개발권을 외국에 넘기는 행위를 비판하고 저항했다. 동시에 황실이 집어삼키는 것도 반대해야 했다. 왕조시대의 왕들이 다 그렇지 않느냐, 다른 나라도 그런 사례가 있다고 반문할 수도 있다. 당연히 그렇고, 고종도 일본과 외국의 사례를 많이 연구했다.
하지만 실제로 고종이 구성한 정부 기구나 국가경영 구조를 보면 도저히 제대로 된 점수를 줄 수가 없다. 무능하고 욕심만 많았다. 역사가가 인물이나 사건을 평가할 때 애로사항이 의도와 실적 간의 배점이다. 의도를 높이 쳐준다고 해도, 현실과 능력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고종의 치세에 국론과 방법은 크게 분열됐다. 그 와중에 고종은 근시안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행동만 했다. 그의 장례일에 국민이 한목소리를 낸 건 이미 국권상실이라는 처참한 결과에 전 국민이 직면해 있기 때문이었다.
올해 3·1절이 분열의 날이 된 이유는 아직 결과는 미래에 있고, 정치는 무능과 극단적 이기심에 끌려가고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마저 부정되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과거 고종은 한 명이었지만 지금은 고종이 너무 많다.⊙
〈356〉비정상의 정상화

작년 9월에는 8월 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올해 2월에는 1월의 강추위와 눈이 몰아쳤다. 3월에도 2월의 추위가 계속되고 있다. 올여름을 겪어 봐야 알겠지만 이상기후가 해를 바꿔 진행되는 것을 보니 앞으로도 우리가 알던 사계절이 한 달씩 뒤로 밀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비정상의 정상화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는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들의 관습과 익숙함이 기준이 되는 경우도 많다. 어떤 경우든 사람들은 비정상을 꺼리고 두려워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식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식은 지극히 재앙적인 현상 혹은 신의 경고라고 생각했다. 로마시대에 반란을 일으켰던 병사들이 일식이 진행되자 갑자기 반란을 중단하고 도주해 버린 사건도 있었고, 전쟁을 중단한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일식이 긍정적인 효과를 주었다고 할 수 있지만 집단적으로 번져가는 불안감은 사람들을 야수로 변화시켜 약자를 탄압하거나 파괴적인 행위로 발전할 가능성을 높였다.
일식, 월식이 천문 현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류는 의외로 아주 고대부터 알았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탈레스는 일식 날짜를 측정해서 예언하기도 했다. 고려, 조선에서도 천문관원이 있어서 일식을 미리 계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부터 정부의 대응은 사람들에게 일식과 월식이 천문 현상이라고 계몽하기보다는 왕이 직접 제사를 지낸다거나 국민들에게 왕의 통치를 반성하는 글을 반포하곤 했다. 자연 현상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합리적 설득으로 대중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없었다는 사정이 더 컸다고 생각한다.
집단적 이기심에서 발화한 집단적 공포, 집단적 확신은 과학과 논리로 설득할 수 없다. 의사는 증세가 아니라 증세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사회 현상도 같다.⊙
〈357〉연평해전 영웅 부인의 외침

제2연평해전의 영웅 고 한상국 상사의 부인인 김한나 씨가 국회 앞에서 외로운 시위를 시작했다. 시위의 목적은 군 가산점 부활이다. 26년 전에 공무원시험과 공기업 채용시험에 적용하는 군 가산점이 남녀 평등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받았다. 바늘구멍 같은 채용시험에 응시하는 여성과 군 미필자로서는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군 가산점 폐지는 더 큰 차별이자 무책임이라는 생각은 왜 하지 못할까.
일단 군 가산점 대상은 남성이 아니라 군 복무자다. 대부분 남성이 혜택을 받는다고 하면 군에서 여성 인력 활용을 늘릴 수도 있었다. 공무원시험에 적용하는 군 가산점도 문제가 있다고 하면 군 경력을 사회적 경력으로 인정해 줄 수 있다. 일괄적인 가산점이 아니라 다양한 특수성을 보장해 주는 방안도 있다. 학교와 기업에서 특성에 따라 자유롭게 군 복무에 대한 보상점을 부여하는 문화도 필요하다.
이런 시도를 하면 또 공정성을 따지고 든다. 우리 사회는 이상한 공정성의 논리에 빠져 있다. 요즘 세계가 그렇긴 하지만 집단, 획일화의 논리로 겉으로 드러나는 작은 차이를 더 크고, 보이지 않는 차별로 바꿔 버린다.
구체적인 방법은 전문적인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가산점 폐지가 불러온 군 경시 풍조이다. 가뜩이나 군 복무를 강제 노예생활로 비유하는 젊은이들이 늘어가는데, 군 가산점 폐지는 이에 가시적인 기여를 했다. 이런저런 보완책을 시행했다고 하지만 가시적인 제도도 있어야 한다. 군 복무를 노예시하는 풍조에 대처하는 당당하고 구체적인 노력도 부족했다.
병사들은 자신을 희생해 국민의 생명과 삶을 보호하고 있다. 사병 월급을 올리고 복지를 개선한다고 해도, 중요한 시기에 국방에 헌신한 시간을 보상할 수는 없다. 또한 모두가 어머니의 아들들이다. 군 복무를 국가가 정당히 보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어떻게 특정 성별의 문제이고, 차별의 문제일까.⊙
〈358〉또 불거지는 대만 침공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또 커지고 있다. 침공설을 지지하는 근거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의 군비가 소진됐다는 사실이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세계의 경찰 역할을 달갑지 않아 한다. 여기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군부 숙청과 장악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중국의 경제 상황은 좋지 않고, 시 주석의 권력 기반은 흔들리고 있다. 이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침공 불가론의 근거는 이렇다. 미국의 이익에서 대만은 우크라이나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일 집중하는 과제가 대중(對中) 정책이다. 관세전쟁은 미 독립전쟁을 비롯해서 수많은 전쟁의 트리거였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의 대만 침공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가 없다. 또 전쟁은 군부의 불만이 커지는 상황에서 흔들리는 시 주석의 권력 기반을 더욱 약화시킬 것이다. 경제도 어렵다. 시 주석이 도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묘하게도 똑같은 상황이 침공설과 침공 불가설 모두의 논거가 되고 있다. 그렇다는 건 중국으로서도 침공이 성공할 가능성이 낮고, 후유증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수많은 전쟁이 오판에서 시작됐다.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에도 전쟁 불가론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이 때문에 전문가의 권위는 지금까지도 추락해 있다. 하지만 전문가란 합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예측할 수밖에 없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쟁으로 원하는 걸 얻을 수 없고, 미국과 유럽도 절대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당시에는 이 판단이 맞았다. 하지만 러시아는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다.
1812년 나폴레옹도, 1941년 히틀러도 러시아 침공을 쉽게 끝낼 수 있다고 오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러시아가 역지사지를 못 해 전쟁이 3년 넘게 이어졌다. 중국은 러시아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을까? 오판은 어떤 경우도 예측이 힘들다.⊙
〈359〉사랑하면 화해할 수 있을까

옛 소련의 반체제 작가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18∼2008)의 회고에 의하면 그의 부친은 학창 시절 레프 톨스토이를 존경했다. 어느 날 힘들게 톨스토이를 만난 부친은 이 대문호에게 물었다. “갈등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랑하시오.” “상대가 나를 미워하고 해치려고 해도요?” 톨스토이의 답은 한결같았다. “사랑하시오.”
솔제니친은 톨스토이의 순진한 사랑 타령을 한심하게 여겼지만, 톨스토이의 절대적 박애주의는 식민지 조선에서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일제가 이에 감동하고 반성할 리가 없었다. 실망한 청년들은 극단으로 달렸다. 독립운동가 김산은 ‘아리랑’에서 의열단원 대부분이 한때 톨스토이주의자였다고 했다.
개인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딱한 사정을 배려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상대의 단점마저도 사랑한다면 칭찬받는 연인이 될 것이다.
그런데 서로 전쟁 중인 국가라면, 한 국가가 상대의 상태와 약점을 알고 충분히 이해한다면, 그리고 그가 강한 쪽이라면 화해와 사랑 대신 공격을 선택할 것이다. 국가 간의 평화는 힘의 균형에 의해 유지된다. 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평화유지군을 파병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서유럽 국가들이 충분한 군비와 억제력이 있었다면 애초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당선되면) 24시간 안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는 트럼프의 장담과 달리 양측 간 합의를 이끌어 내기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화해는커녕 서로 강경한 카드를 꺼내면서 한쪽이 굴복하기를 바라고 있다. 타국의 전쟁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우리 사회도 상호 이해는 고사하고, 힘과 분노의 강을 도하하기 직전이다. 모두가 걱정 중인데, 권력에 중독된 사람들만 모른다.⊙
〈360〉100년 전 딜레마의 반복

1920년대 선진국들은 두 가지 갈등을 겪고 있었다. 첫째는 미국에서 촉발한 경제공황과 그로 인한 블록경제 체제였고, 둘째는 러시아 혁명 이후 유럽 각국에서 촉발된 이념과 계급 갈등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기성 정치와 사회 체제에 대한 심각한 회의와 불만이 확산됐는데, 여기에 이 두 가지가 결합되며 상황은 더 악화됐다. 경제는 어려워지는데 강대국들이 앞장서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자 약소국, 비주류, 가난한 노동자의 불안과 분노는 증폭됐다.
강한 나라의 중산층이라고 해서 불만과 억울함이 없지는 않았다. 더 센 나라의 횡포 앞에는 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정치든, 이념이든, 상식이든 중간과 타협이 사라지고 극단이 힘을 받았다.
영국에서는 자유당이 몰락하고, 보수당과 노동당에 의해 보수와 진보라는 대립 구도가 형성됐다. 유럽에서 중산층이 가장 두껍고 보편적인 교육 수준이 높았던 독일에선 중산층이 나치즘으로 기울고 유대인에게 사회문제를 뒤집어씌우는 반유대주의 회오리가 일었다. 미국은 치명적인 독재로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연방정부와 국가의 권한을 대폭 늘렸다.
100년 뒤인 지금, 한국을 포함해 유사한 현상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 자국 중심주의, 반유대주의를 대신해 이슬람권과 이슬람 난민들에 대한 혐오, 정치적 극단화와 상대 세력에 대한 맹목적인 분노, 블록화…. 1929년 스무트-홀리 관세법으로 대공황을 악화시켰던 미국은 이번엔 자국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관세 정책으로 세계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아무도 과거에서 교훈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역사는 선동과 증오를 위해 사용되고, 맹목적인 불만과 지지가 우리를 유토피아로 안내할 것이라는 황당한 믿음이 횡행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심각한 위기의 시작이라는 사실부터 자각해야 한다.⊙
[임용한의 전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