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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창균 칼럼] 2024.01.11 김건희 특검은 꽝이었다, ‘디올 백’만 아니었다면 - 12.26 홍준표·한동훈·오세훈이 공존하는 보수여야 한다

상림은내고향 2024. 12. 9. 18:29

[김창균 칼럼] 조선일보 논설주간 2024

01.11 김건희 특검은 꽝이었다, ‘디올 백’만 아니었다면

조국 수사한 ‘역적’ 尹 잡으려 文 검찰이 20개월 턴 주가조작
특검 재수사 허탕일 게 뻔한데 명품 백 의혹이 여론 불붙여
방치 땐 정권 치명상 줄 수도… 金여사 해명·사과로 진화해야

 작년 12월 11일 김건희 여사가 윤석열 대통령과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하기 위해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연합뉴스

 

김건희 특검법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대통령 배우자가 공모했는지가 초점이다. 2009년 말 이 회사 주가가 급락하자 권오수 회장이 주식시장 ‘선수’ 이모씨에게 시세를 조종해달라고 부탁했는데 계좌를 맡겼던 김건희씨가 이 사실을 알고 협조했느냐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결혼한 것은 2년 후인 2012년 3월이다. 권력형 범죄일 수는 없다.

 

검찰 수사는 2020년 4월 총선 직전 열린민주당 최강욱 후보가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조국 법무장관을 수사한 ‘괘씸죄’로 정권에 미운털이 박힌 윤석열 검찰총장은 이미 식물 상태였다. 조국 민정수석 밑에서 공직기강 비서관을 지낸 최 후보가 윤 총장 배우자를 표적으로 찍어 응징에 나선 것이다. 문 대통령의 대학 후배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수사를 총괄했고 추미애 법무장관은 윤 총장이 수사 보고도 못 받도록 지휘권을 행사했다.

 

윤 총장이 2021년 3월 사퇴하자 도이치모터스 수사는 기어를 한 단 더 끌어올렸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강력수사부에 수사팀이 다시 차려졌다. 대기업이나 권력층만 수사하는 특수부 정예부대다. 서울 남부지검 증권범죄합수부에서 금융 범죄를 전담하던 ‘여의도 저승사자’들이 합류했다. 대검에서는 회계 분석 요원 4명을 파견받았다. 주가조작 공소시효 10년을 넘겼다는 지적이 나오자 제3자의 2012년 거래와 묶어 시효를 연장하는 강수까지 동원했다. 문 정권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몰아 내려는 전반전, 윤석열 야당 대선 후보를 낙마시키려는 후반전에 결쳐 김건희 여사를 엮어 보려고 총력전을 펼쳤다.

 

결과물은 초라했다. 작년 2월 내려진 1심에서 권오수 회장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주가조작 주범 이씨는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계좌를 빌려줬던 다른 전주들은 무죄였고 김건희씨는 기소조차 못했다. 재판부는 “의도는 있었지만 시세 조종에 실패한 주가조작”이라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처벌 ‘깜’이 안 된다는 뜻이다. 애당초 2013년 경찰이 내사 단계에서 경미하다고 판단해 접었던 사안이다.

 

검찰 드림팀이 2개월만 털면 웬만한 범죄는 윤곽이 드러난다. 문 정권의 20개월에 걸친 ‘김건희 사냥’은 대선을 석 달 앞둔 2021년 12월 허탕으로 마무리됐다. 특검으로 재수사해 본들 결과는 꽝으로 예정돼 있다. 추미애, 박범계 법무장관이 엄선했던 최정예 검찰팀이 함량 미달이었거나 직무 유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 이치를 모를 리 없는 민주당이 도이치 특검을 고집한다. ‘믿거나 말거나’식 동태탕 마타도어로 총선 재미를 보겠다는 계산 때문이다.

 

요즘 총선이 화제로 오르는 자리에서 빠지지 않은 단골 메뉴가 ‘김건희 리스크’다. 그런데 특검 대상인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은 관심 대상이 아니다. 다들 김 여사가 디올 백 받은 얘기만 한다. “더 좋은 명품 백도 많이 가졌을 것 같은데 300만원짜리 백 하나로 남편을 궁지에 빠뜨렸다”고 입방아를 찧는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 60% 이상이 특검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반대했다. 이런 국민적 공감대는 주가조작 의구심이 아니라 디올 백 분노가 만든 것이다. 특검법 대상이 디올 백 진상 규명인 줄 착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민주당이 특검 수사 범위를 주가조작에 한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윤석열 정권 출범 100일을 갓 넘긴 2022년 8월 말, “야(野)의 김건희 특검 협박, 자청해서 백신 빨리 맞아야”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특검이 실제 상황이 되지 않게 하려면 특별감찰관 도입으로 권력 주변에 대한 수상한 접근을 막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김 여사가 정체가 불투명한 목사로부터 백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한 달도 안 된 시점이었다. 그것이 4월 총선을 맞는 윤 정권의 최대 악재인 특검의 빌미가 됐다.

 

백신을 제때 안 챙겨 병마가 침투했다면 치명상이 되지 않도록 해독제라도 맞아야 한다. 문제의 디올 백은 용산 대통령실 선물 창고에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보관돼 있다고 한다. 애초에 뿌리치고 받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겠지만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상태라는 점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보관 시점이 논란이 불거지기 이전인지 이후인지 밝혀 달라고 했지만 대통령실 관계자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어느 쪽이든 김 여사가 솔직히 밝히고 해명 또는 사과를 해야 한다고 본다. 국민이 얼마나 납득하느냐에 따라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을지가 좌우될 수도 있다.⊙

 

01.25 양지 찾는 親尹이 ‘대선 공신’ 김경율을 쳐내겠다니

마포을 출마·명품백 공론화… 與 총선 위해 용기 낸 결단
조국·대장동 의혹 파헤치며 尹 대선 당선에도 큰 기여
대통령 심기만 살핀 집단이 무슨 염치로 問責 운운하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케이터틀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김경율 비대위원과 함께 주먹을 쥐고 있다./뉴스1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충돌에 대해 김경율 비대위원에게 책임을 묻는 분위기다. 한 위원장이 김 위원의 서울 마포을 출마를 기정사실화한 것을 사천(私薦)이라고 문제 삼는 것은 핑계다. 본질은 김 위원이 “명품백 문제를 돌파하지 않으면 총선을 치를 수 없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지적해서 용산을 화나게 만든 것이다.

 

명품백에 대해 친윤들이 녹음기처럼 되뇌는 말이 있다. “본질은 몰카 함정인데 어떻게 피해자가 사과하느냐”는 것이다. 윤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다가 실망했거나 걱정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수두룩하다. 한결같이 “대통령이 왜 질질 끌면서 사태를 키우느냐”고 답답해 한다. 이들에게 친윤표 모범 답변을 전해주면 “아, 그런 이치를 몰랐네요”라고 고개를 끄덕일 것 같은가. ‘사과할 이유가 없다’는 핑계가 잘 통하지 않으니 ‘사과하면 오히려 총선에서 불리해진다’는 논리를 내세우기도 한다. 김건희 여사가 이런 취지의 문자를 친윤에게 돌렸다는 보도도 있었다.

 

정권이 성난 국민에게 사과하면 선거 악재가 된다는 건 수십 년 선거 취재하면서 처음 들어보는 이론이다. 필자가 아는 건 국민에게 사과를 거부한 정권은 예외 없이 선거에서 철퇴를 맞게 된다는 법칙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국민은 사건 자체보다 뭉개는 정권 태도에 더 분노한다. 1999년 옷 로비 사건 때 김대중 대통령은 “마녀사냥”이라고 버티다가 6월 보궐선거에서 DJ 정당이 한 번도 져본 적 없는 인천 강화·계양갑에서 13.1%p 차로 완패했다. 당시 민주당 후보가 송영길 전 대표였다. 장관 부인이 옷 선물을 받았다는 풍문과 대통령 부인이 명품 백을 받는 동영상 장면 어느 쪽이 선거에서 더 파괴력이 클 것 같은가. 김 위원의 마포을 험지 출마도, 명품백 공론화도 국민의힘 총선 선전을 위해 필요한 용기 있는 결단이었다.

 

더구나 윤 대통령과 친윤들은 김 위원에게 지난 대선 과정에 대해 마음의 빚을 느껴야 한다. 2019년 9월 29일 당시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이었던 김 위원은 “조국은 민정수석 자리에서 시원하게 말아 드셨다”면서 그를 감싸는 인사들을 “위선자”라고 부르며 “역겹다, 구역질 난다”고 비판했다. ‘조국 수호’를 위한 빛 샐 틈 없는 진보 좌파 대동단결에 균열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김 위원은 “조국 펀드에서 ‘권력형 범죄’ 냄새가 난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하자”는 요구를 거절 당하자 21년간 몸담았던 참여연대를 떠났다. 이후 김 위원은 조국 펀드에 어른대는 횡령, 배임, 주식 차명 보유 그림자를 들춰내는 폭로를 이어갔고 진중권, 서민 등과 함께 조국 흑서를 펴냈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막바지로 치닫던 2021년 9월 김 위원은 과녁을 ‘조국’에서 ‘이재명’으로 옮겼다. 9월 3일 새벽에 “샹그릴라(이상향)는 세상에 있을까요”라는 소셜 미디어 글을 통해 대장동 개발 특혜 쟁점화에 나섰다. 화천대유라는 민간 주주들이 투자액 1000배의 수익을 챙기는 구조가 이상향에서나 가능할 일이라고 꼬집었다. 경기경제신문 최초 보도 후 잦아들던 이 의혹을 김 위원이 회계사로서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며 다시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 그래서 “위험은 공공이 지고 수익은 특정 개인이 가져가는” 대장동 의혹의 핵심을 국민들에게 각인시켰다.

 

김 위원은 ‘조국 저격’을 통해 윤석열 검찰총장의 조국 수사 정당성을 뒷받침했고, 이재명 후보의 대장동 의혹을 확산시키며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당선에 기여했다. 지난 대선은 윤석열 대통령의 개인기에 의해 90% 이상 승부가 좌우됐지만 그 밖의 공신을 추린다면 김 위원이 다섯 손가락 안에서도 앞쪽으로 꼽혀야 한다. 윤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서초동 자택으로 김 위원을 초청해 저녁을 함께한 것도 이런 고마움이 작용했을 것이다.

 

윤핵관 2세대의 간판인 이철규 의원은 “정권 교체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공천받는 게 어떻게 낙하산이냐”고 했다. 그런 기준이라면 김 위원은 대선 공신 중 공신으로서 공천에서 특급 대우를 받아야 한다. 더구나 당선 보장이 되는 텃밭만 기웃대는 친윤과 달리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마포을에 도전장을 냈다면 용산에서 감사패라도 내려야 한다. 친윤이 김 위원을 여권의 공적인 양 집단 린치를 가하는 것은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윤·한 충돌 직후 급속히 번졌던 지라시는 한동훈·김경율 두 사람을 쳐내자고 선동했다. 그래서 김 여사 지침을 복창하는 친윤끼리 똘똘 뭉쳐 총선을 치르면 100석도 건지기 힘들 것이다. 그랬을 때 윤 대통령 부부에게 어떤 결과가 닥쳐올 것 같은가.

 

02.08 親明 성범죄·보복 운전, ‘최강욱·김의겸 세탁 코스’ 밟나

文 두 참모 허위 문서, 투기로 공천 못 받자 위성 정당 직행
최악 의정 활동으로 망신살… 그래도 문빠들은 열광 지지
부적격 李 측근도 수두룩… 개딸 정당 가서 회생할까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비례대표 방식을 놓고 망설이게 만든 본질은 공천권이었을 것이다. 민주당이 직접 비례대표 후보를 내는 병립형이라면 이 대표가 명단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반면 연동형으로 당 밖에 위성 정당을 만들면 외부 입김이 작용한다. 어떻게든 친명 중심으로 후보를 짜고 싶은 이 대표에겐 불편한 대목이다. 그러나 바로 이 흠이 이 대표의 가려운 데를 긁어줄 수도 있다. 이재명 도장이 찍힌 공천장이라면 차마 이름을 올릴 수 없는 측근을 우회해서 공천할 길이 열린다. 이런 실제 사례를 지난 2020년 총선에서 찾을 수 있다.

 

문재인 청와대의 김의겸 대변인은 채무를 16억원 끼고 서울 흑석동 상가 건물을 25억7000만원에 매입한 ‘재개발 투기’가 드러나 2019년 3월 사퇴했다. 최강욱 공직기강비서관은 조국 전 민정수석 아들의 인턴 확인서를 허위로 발급해 준 혐의로 2020년 1월 기소됐다. 문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참모들이었지만 2020년 4월 총선에서 집권당의 공천장을 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두 사람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노리고 급조한 친문(親文) 성향 열린민주당으로 달려갔다. 남자에게 배당하는 짝수 번호 첫째 2번을 배당받은 최강욱 후보는 당선권 안에 들었고, 둘째인 4번을 받은 김의겸 후보는 1번 김진애 의원이 2021년 3월 서울시장 보선에 출마해 의원직을 승계했다. ‘문재인 키즈’ 최와 김은 총선을 치른 지 1년 8개월 만인 2021년 12월 민주당과 열린민주당이 합당하면서 집권당 의원으로 당당히 복귀했다.

 

이후 두 사람의 활약상은 잘 알려진 대로다. 한동훈 법무장관 청문회에서 최강욱 의원은 ‘한국쓰리엠’ 업체 명의를 한 장관 딸 이름으로 넘겨짚고 추궁하려다, 이(李)모 교수를 한 장관 딸 이모로 착각한 김남국 의원과 더불어 망신살 투 톱으로 꼽혔다. 최 의원은 민주당 화상 회의 중 자위 행위를 뜻하는 “XXX 하냐”고 했다가 여성 당직자들의 항의를 받자 “동전 놀이 짤짤이라고 말했다”고 둘러댔다. 최 의원은 “암컷이 설쳐” 발언으로 결국 당원 자격정지 6개월 징계를 받았다. 최 의원은 조국 아들 허위 인턴 확인서로 작년 9월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 확정판결을 받고 의원직을 상실했고, 채널A 기자가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유시민씨에게 돈 줬다고 하라”고 했다는 허위 사실을 페이스북에 올린 명예훼손 혐의로 지난 1월 17일 2심에서 벌금 1000만원형을 받았다.

 

김의겸 의원은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한동훈 법무장관이 청담동 바에서 김앤장 변호사 30명과 새벽 3시까지 어울리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도 합류했다”고 폭로했다가 허무맹랑한 거짓말로 드러났지만 “그날로 돌아가도 같은 발언을 할 것”이라고 우겼다. 민주당 대변인을 하면서 윤(尹)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난하기 위해 외국 대사의 말을 왜곡해서 전했다가 항의를 받았다. 당 지지층은 이런 김 의원에게 열광하며 후원금 한도액 1억5000만원을 채워 줬다. 김 의원은 오는 4월 총선 때 고향인 전북 군산에서 출마할 예정이다.

 

올해 총선에 도전하려던 친명 예비 후보 중에서도 최강욱, 김의겸처럼 민주당에서 공천받기 어려워진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 대선 때 이재명 후보 대변인을 맡았던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출마 예정지인 경기 성남 송년 행사에서 여성 정치인에게 한 성희롱 발언 때문에, 강위원 이재명 대표 정무특보는 과거 성추행과 2차 가해 전력 때문에 공천 길이 막혔다. 또 다른 정무특보인 정의찬씨는 1997년 ‘이종권씨 고문치사 사건’ 유죄에도 불구하고 ‘공천 적격’ 판정을 받았다가 여론의 질타로 뒤집어졌다. 이경 민주당 상근 부대변인은 보복 운전 혐의 때문에 부적격 판정을 받자 “내가 운전하지 않았다. 대리운전 기사를 찾아냈다”고 주장했지만 근거 자료를 제시하지 못했다.

 

이재명 대표가 아끼는 측근들이고 어떻게든 총선에 출마시켜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해주고 싶을 것이다. 총선 악재가 될까 봐 민주당에서 공천을 줄 수는 없다. 그러나 개딸들이 4년 전 열린민주당 선례를 참고해서 ‘찐명’ 위성 정당을 만들고 이들에게 비례후보 앞 번호를 주면 몇 명은 당선권에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나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시치미를 떼고 있다가 1년쯤 지나서 슬그머니 합당 절차를 밟으면 된다. 최강욱, 김의겸 세탁 코스가 4년 만에 되풀이될 것인지, 이번 총선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02.22 明에게 ‘黨 승리’보다 절박한 ‘親明 불체포 의석’

총선 출마에 대표직 고수
‘非明 횡사’ 공천 파동까지
총선 망치는 선택 이어가
체포 동의안 가결에 충격
‘내 사람’만으로 방탄 결심
선사후당 역주행 통할까

민주당 이철희 전 의원은 21일 라디오 방송에서 “지금 진행되는 민주당 공천이 공천(公薦)이냐. 사천(私薦)이지”라고 했다. “공천은 경쟁력 비교인데 자기편 아니라고 여론조사 대상에서 제외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 “당권을 쥔 쪽이 공천을 줄지 말지 했던 정당은 늘 망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정무수석이었던 이씨는 요즘 총선판을 보는 심정을 묻자 “짜증 만땅(가득)”이라고 했다.

 

제3자 눈에도 “이재명 대표가 도대체 왜 저러지” 하고 궁금해진다. 도무지 선거에서 이기겠다는 선택으로 안 보인다. 여야의 공천 작업이 시작된 후 지지율 그래프를 보면 대다수 국민도 똑같이 느끼고 있다. 이 전 의원은 “지금 민주당의 반전 카드는 이재명 대표의 총선 불출마”라고 했다. 그래야 공천 탈락자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했다.

 

야권에선 진작부터 같은 주문이 나왔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총선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되 그 과실을 내가 취하지 않겠다”며 불출마를 선언한 이후 특히 그랬다. 역시 문 정부 정무수석을 지낸 최재성 전 의원은 “총선 지휘부부터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고, 정봉주 전 의원은 인천 계양을에서 이 대표와 맞붙겠다는 원희룡 전 국토부장관을 “허공에다 헛주먹 휘두른다”고 조롱했다. 다음 대선 재도전에 나설 이 대표가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는 게 목적이겠느냐”라고 했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2년 전 보궐선거 때 민주당이 무조건 당선되는 텃밭을 골라 출마한 인천 계양을에 다시 출마하겠다고 했다.

 

당초 민주당이 어떤 지도 체제로 총선을 치를까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지난 연말 언저리에 이 대표가 2선으로 후퇴하고 비대위 체제가 꾸려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이 대표 체제를 고집하면 비명들에게 피해의식을 자극해 당을 분열시키고 선거에서 중도 확장성이 떨어진다고 우려했다. 문 정부 총리 세 명 중 이 대표의 경계심이 덜한 ‘김부겸 비대위’가 등장한다는 시나리오가 유력했다. 다만 이 대표의 심중을 잘 아는 정청래 최고위원의 판단은 달랐다. “4월 총선 민주당 공천장엔 이재명 대표의 직인이 찍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말대로 됐다.

 

“선거는 더 절박한 쪽이 이긴다”는 게 정설이다. 이 대표도 기자회견에서 “총선 승리가 너무 절박하다”고 했다. “최소한 원내 1당을 차지해야 하고, 목표를 높여 잡으면 151석”이라고 했다. 그렇게 절박하면 희생이나 모험을 해 유권자들을 감동시키려고 발버둥치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대표는 전혀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정반대다.

 

이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는 “국회의원은 현행범이 아닌 한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구금되지 않는다”는 헌법 44조의 불체포 특권이다. 이 대표는 대장동과 백현동 특혜 개발, 쌍방울 대북 불법 송금 및 공직 선거법 위반 등으로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다. 불체포 특권이라는 갑옷을 벗는 순간 언제 감옥으로 끌려갈지 모른다. 국회의원 현직 신분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대선에서 패배하자마자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상식 밖 선택을 했고 이번 총선에도 다시 나서기로 했다.

 

그러나 금배지는 방탄의 필요 조건이지 충분 조건은 못 된다. 검찰이 체포 동의안을 국회에 보냈을 때 부결할 수 있어야 불체포 특권은 완전체가 된다. 총선에서 승리하면 당연히 그렇게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작년 9월 21일 국회에서 이재명 의원 체포 동의안이 가 149표, 부 136표, 기권 6표, 무효 4표로 통과됐다. 민주당에서 최소한 29명이 찬성표를 던졌고, 기권 무효까지 합하면 39명이 딴마음을 품은 것이다. 그래서 이 대표는 정말 절박한 것은 민주당의 총선 승리가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자기를 배반하지 않을 확실한 친명(親明) 만으로 짜인 국회 다수 의석이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공천권을 확실하게 행사하려면 대표 직인을 지켜야 한다. 2선 후퇴 및 비대위 체제를 거부한 이유다. 이 대표 측은 배신자 39명이 누구인지 면밀하게 점검했을 것이다. 민주당 현역 평가 하위 20%라고 통보받은 31명이 대부분 이들과 겹친다고 봐야 한다. 그렇게 해서 이재명 체포 동의안 부결을 담보할 ‘친명(親明) 불체포 의석’ 확보 작전이 진행되고 있다. 당보다 자신의 안전에 우선순위를 둔 선사후당(先私後黨) 역주행의 결말이 궁금해진다.⊙

 

03.07 트럼프를 다시 뽑겠다는 미국이 낯설고 두렵다

개표 조작과 대선 패배 불복
헌정 질서 짓밟았던 트럼프,
4년 만에 복귀 점점 현실화
닉슨, 도청 사건 무관했지만
은폐 축소만으로 ‘탄핵’ 몰려
‘그때 그 미국’ 어디로 갔나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2연승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뉴햄프셔주 내슈아에서 열린 나이트 파티 행사에서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승리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고등학교 시절 월요일마다 운동장에서 조례가 열렸다. 강단 앞 학생이 “기준”을 외치면 그 학생 위치에 맞춰 전교생이 오와 열을 맞췄다. 정글 같은 국제사회 속에서 기준 역할을 해온 나라가 미국이었다. 미국이 정하는 입장이 자유 민주주의 진영 국가들의 표준 답안이었다. 각국 사정에 따라 미세 조정하는 정도였다. 반대 진영 국가들도 미국의 동향에 맞춰 대항 좌표와 수위를 저울질했다.

 

필자가 워싱턴에 부임했던 1994년의 미국은 탈냉전 직후 유일무이한 초강대국이었다. 국제 질서뿐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롤 모델이었다. 한국의 후진적인 정치 문화가 도마 위에 오를 때마다 대비되는 미국 사례를 송고하는 게 워싱턴 특파원의 업무였다. 심지어 성수대교가 붕괴됐을 때도 “이런 대형 참사 때 미국 같은 나라는…” 식의 기사를 주문받았다.

 

30년이 흐른 요즘의 미국은 더 이상 국제사회의 나침반이 아니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을 선택했고, 2024년 그를 다시 맞을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대통령이 임기 내내 하루 평균 15번씩 거짓말을 하는 나라에서 무슨 리더십을 배우겠는가. 코로나 환자에게 소독제를 주사해 보자는 황당한 처방을 하면서 어떻게 국제사회 방역을 지휘하겠나. 나토 동맹국들이 국방비 부담을 안하면 러시아 침략을 부추기겠다는 사람에게 자유 민주주의 수호를 맡길 수는 없다. 그러나 트럼프의 이런 막말엔 이제 이력이 났고 사실 본질적인 문제도 아니다. 미국 국익만 잘 챙기면 되지 무슨 상관이냐는 공화당 지지자들의 반박에 달리 할 말도 없다.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의 마지막 상대로 남은 니키 헤일리는 “트럼프가 후보로 확정되면 지지할 것이냐”는 질문에 확답을 내놓지 않았다. 경선 불복 아니냐는 추궁에 헤일리는 “트럼프가 미국 헌법을 준수할지 믿을 수 없다”고 했다. 트럼프는 그런 의심을 받을 만한 충분한 소지가 있다.

 

4년 전 미 대선 개표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공화당 소속 조지아주 국무장관에게 개표 조작을 주문했다. “재검표를 해라. 나를 찍은 1만1780표를 새로 찾아내라”는 녹취록이 공개됐다. 민주당 바이든 후보에게 1만1779표 차로 패배한 조지아주 선거를 1표 차로 뒤집으라는 뜻이다. 접전지 미시간주와 펜실베이니아주 공화당 간부들에게도 마찬가지 요구를 했다.

 

개표 조작에 실패하고 패배가 확정되자 트럼프는 펜스 부통령에게 “대선 결과를 승인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펜스가 의장을 맡게 될 상·하원 합동 회의에서 대선 승자를 확정짓는 의사봉을 두드리지 않으면 정권을 지킬 수 있다는 황당한 발상이었다. 펜스는 “그럴 권한이 없다”고 거부했다. 트럼프는 마지막 수단으로 열성 지지자들을 선동했고 그 결과 2021년 1월 6일 의사당 난동이 벌어졌다.

 

트럼프는 자신의 대선 패배를 세 단계에 걸쳐 뒤집으려 했다. 명백한 헌정 유린 시도다.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 그런데도 미국은 그런 ‘전과자’를 다시 대통령에 앉히려 하고 있다. 닉슨 대통령이 사임하게 된 단초는 공화당 선거 공작팀이 워터게이트 빌딩의 민주당 본부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 했던 사건이었다. 닉슨이 직접 지시했다는 증거는 없었다. 다만 그 파장을 축소 은폐하는 과정에 개입하면서 점점 수렁에 빠져들었다. 하원이 탄핵을 가결하고 상원의 공화당 의원들도 등을 돌리자 스스로 물러났다. 트럼프가 직접 주도한 개표 부정 및 선거 불복에 비하면 그야말로 경미한 사안이었다. 그런 닉슨을 몰아냈던 50년 전 미국이라면 트럼프는 재기를 꿈도 못 꿨을 것이다.

 

현재 야당인 미국 공화당 1인자인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올 11월 대선이 끝나면 자리를 내놓겠다고 했다. 트럼프 2기가 개막될 때 매코널 원내대표는 그 짝이 될 수 없다는 지지층의 압박 때문이라고 한다. 그가 “대선을 도둑맞았다”는 트럼프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고 의사당 난동에 “트럼프가 실질적으로 도덕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었기 때문이다.

 

현실로 다가오는 트럼프 귀환에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전문가 진단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윤석열·트럼프 조합이 의외로 찰떡궁합일 수 있다는 전망도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선 트럼프를 다시 뽑겠다는 미국 국민의 결심이 낯설고 두렵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헌법을 짓밟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다시 맞아들이는 데 거리낌이 없는 국가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03.21 ‘이재명의 민주당’ 후유증 10년은 간다

22대 국회 民主는 친명 100%
수준 미달 ‘처럼회’ 확대재생산
108 번뇌 뺨치는 소동 벌일 것
‘이재명 이후’ 담당 새 리더는
2028년 총선 묘목에서 길러야
‘李 위한 당 희생’ 여파 장기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0일 오후 인천 서구 정서진중앙시장 인근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겠다.” 2021년 11월 20일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선대위 발족 후 지방 유세에 나서면서 한 말이다. “민주당을 이재명다움으로 변화시키고 혁신하라고 주문했는데 오히려 이재명이 민주당화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면서 “민주당이라는 그릇 속에 갇혀 버린 자신을 반성한다”고 했다.

 

유력 정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면 그 당이 자랑하는 지도자들을 언급하면서 그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겠다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미국의 공화당 대선 후보라면 레이건을, 민주당은 루스벨트를 단골로 내세운다. 우리 민주당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을 당사에 걸어놓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의 70년 역사를 자산이 아닌 부채로 취급했다. 그래서 당을 자기 스타일대로 완전히 뜯어고치겠다는 것이다. 대선에 임하는 절박한 심정을 강조하다 ‘오버’했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그냥 해본 말이 아니었다. 이 대표는 총선 공천으로 “이재명의 민주당”을 확실하게 만들었다. 반명(反明)들을 일찌감치 당 밖으로 몰아내더니 비명(非明)은 물론 이 대표 체제에 순응해 온 친문(親文)들마저 공천 과정에서 날려 버렸다. 빈자리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친명(親明) 신인들이 꽂혔다. 이 대표를 조선 정조에 빗댄 역사학자는 원내대표를 지낸 3선 의원을 경선에서 꺾었고, 이 대표를 이상형으로 꼽은 여성 후보는 행정구역 이름도 제대로 못 댄 지역구에서 단수 공천을 받았다. 이 대표의 자전적 에세이 제목 ‘이재명은 합니다’를 실감케 해줬다.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이번 공천이 민주당 총선 성적표에 어느 정도 부담을 줄지는 불투명하다. 공천 파동으로 한때 민주당 지지율이 급락하며 치명상을 안길 분위기였지만, 용산발 여당 악재들로 되살아난 정권 심판론 때문에 다시 판세가 뒤집힌 상황이다. 그러나 민주당 공천의 진짜 후유증은 ‘총선 이후’에 기다리고 있다.

 

오는 6월 개원하는 22대 국회의 민주당 의석은 순도 100% 친명으로 꾸려지게 된다. 지난 국회에서 한동훈 법무 장관을 상대로 ‘음주 호통’을 치거나 ‘제 발등 찍기 공격’을 남발하며 웃음거리가 된 ‘처럼회’ 수준 의원들이 세 자릿수로 늘어난다고 보면 된다. 이들이 정신 사납게 펼칠 함량 미달 개그를 국민은 4년 동안 지켜봐야 한다. 2004년 총선 때 노무현 탄핵 역풍에 올라타 국회에 입성한 열린우리당 탄돌이 초선 108명은 갖가지 기행으로 당의 골칫거리로 전락하며 ‘108 번뇌’라고 불렸다. 이들 중 4년 후 총선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3분의 1도 안 되는 35명뿐이었다.

 

올 8월 이재명 대표의 2년 임기가 끝나면서 치러질 전당대회에서 새 당대표는 이재명 또는 ‘이재명 아바타’가 당선될 확률이 100%다. 전당대회 표결을 좌우할 현역 의원 및 원외 지구당 위원장들이 모두 이 대표 손바닥 위에 있다. 마찬가지 이유로 2027년 차기 대선의 민주당 후보도 사실상 이재명 대표로 굳어졌다고 봐야 한다.

그 사이에 대장동과 백현동 특혜 및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 그리고 선거법상 허위 발언 및 위증 교사 혐의 등에서 유죄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높지만 ‘피선거권 박탈 확정 판결’이 나오지 않는 한 ‘이재명 결사 옹위 시스템’이 작동한다. 사법 리스크로 너덜너덜해진 이 대표로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상황이 분명해져도 ‘무조건 고’를 외칠 것이다.

 

‘이재명의 민주당’이 남길 후과는 ‘이재명 이후’로까지 어어진다. 지난 전당대회 때 이 대표에게 도전장을 낸 박용진 의원은 경기 규칙이 급조된 불공정 경선을 통해 ‘금배지를 길가다 주운’ 친명 여성에게 밀려났고, 또 다른 잠재적 경쟁자로 꼽힌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경선 기회마저 없이 컷오프됐다. 러시아 독재자 푸틴이 나발니를 감옥에 가둬두는 것만으로도 불안해 제거해 버린 일을 연상시킨다. 2027년 대선을 지나고 나면 ‘이재명 대체재’들의 정치적 유통기한도 끝난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이재명 대표에 대한 충성심만으로 선발된 22대 민주당 국회의원들 가운데 국민 눈높이에 맞는 차기 지도자감이 있을 리 만무하다. 2028년 총선 묘목에서 새로 길러 나가야 한다. 이들의 활약이 국민 눈에 띄려면 몇 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이 대표가 자신의 정치적 활로를 위해 당을 희생시킨 여파가 10년은 간다는 얘기다. 대한민국 양당 체제를 떠받쳐 온 민주당의 흑역사로 기록될 대목이다.

 

04.04 총선 결과에 늘 놀라곤 했다

1%p 차 정확도 대선과 달리 역대 총선은 예측 벗어나
접전 지역 수십 곳 승패 혼미… 남은 1주 새 운명 갈릴 수도
보수층 체념·결집 여부 따라 정권의 남은 3년 형편 좌우

 ▲4·10 총선이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야는 지지층 결집을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기호 1번’을 강조했고(왼쪽 사진), 국민의힘은 손가락으로 V모양을 만들어 ‘기호 2번’ 지지를 호소했다./뉴스1·뉴시스

 

1997년 정치부에 몸담은 이후 대선과 총선을 각각 여섯 번째 지켜봤다. 대선은 예상했던 범위 내에서 결과가 나왔다. 2007년 이명박 후보 당선과 2017년 문재인 후보 당선은 워낙 큰 표차가 나서 누구나 승부를 점칠 수 있었다. 1997년 대선 예측이 제일 어려웠는데 미세하나마 김대중 후보 우세를 점쳤고, 2002년 대선은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로 흐름이 결정됐다가 마지막 날 파기 선언으로 혼선이 있었지만 결국 노 후보 승리로 매듭지어졌다. 2012년 대선은 막판 혼전이었는데 선거 당일 박근혜 후보 강세 지역 투표율이 높은 것에 초점을 맞췄더니 결과도 일치했다. 2022년 대선은 윤석열 후보가 조금 여유 있게 승리할 것으로 봤는데 초박빙 신승이었다.

 

반면 총선은 한 번도 제대로 과녁을 맞혔다는 기억이 없다. 의석수 격차가 예측치보다 훨씬 벌어지거나 좁혀지는 것은 다반사였고 1, 2당 순서를 헛짚기까지 했다. 2000년 총선은 햇볕정책 여당이 사흘 전에 깜짝 발표된 남북 정상회담 덕을 볼 것으로 예상됐으나 한나라당 133석, 민주 115석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광풍 속에 치러진 2004년 총선은 야당 궤멸 분위기였지만 박근혜 대표가 지휘한 한나라당이 121석으로 의외로 선전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 치러진 2008년 총선은 여당 비주류인 친박계 후보가 당 내외에서 54명이나 당선되는 이변을 낳았다.

 

이명박 정부 5년 차 2012 총선은 정권 심판 분위기 속 야당 과반 의석이 점쳐졌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새누리당이 반대로 152석 과반이었다. 2016년 총선은 야당이 문재인 민주당, 안철수 국민의 당으로 분열하면서 여당인 새누리당이 180석을 자신했는데 민주당이 123석으로 새누리당 122석에 앞섰다. 코로나 사태 속에 치러진 2020년 총선은 민주당 우세가 점쳐졌지만 비례정당까지 합해 180석까지 차지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특히 보수 계열 미래통합당이 103석까지 쪼그라든 것은 전례 없는 충격이었다.

 

대선보다 총선 예측에 고전하는 건 여론조사도 마찬가지다. 1997년 대선 때 갤럽은 1%p차 김대중 승리를 예측했는데 실제 결과는 1.6%차였고, 2002년 대선 때 미디어리서치는 노무현 후보 2.3%p 승리를 점쳤는데 실제 결과도 2.33%p차였다. 지난 대선 역시 출구 조사 0.6%p 윤석열 후보 승리였고 실제 결과는 0.73%p차였다. 이처럼 대선 때는 ‘족집게’ 내지 ‘과학이자 예술’이라는 평까지 듣는 출구 조사가 역대 총선에선 한 번도 제대로 맞혔다는 평을 듣지 못했다. 전국을 한 선거구로 하는 대선은 수만 개의 표본이 합산되며 오차를 상쇄하는 반면, 한 표만 이겨도 승리하는 소선거구제를 200개가 넘는 선거구에서 치르는 총선은 사소한 오차로도 수십 석이 왔다 갔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번 총선은 공식 선거운동이 돌입되는 시점에서 이미 야당 강세가 뚜렷할 정도로 우열이 갈리고 있다. 접전 지역으로 예상됐던 선거구에서 발표되는 여론조사마다 민주당 후보가 국민의 힘 후보를 압도하고 있다. 현재까지 쏟아져 나온 선거구별 조사를 종합하면 민주당이 200석까지 넘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당 측도 이런 비관적인 전망을 인정하고 있다. 대통령 국정에 대한 비판이 지지보다 20%p가량 웃도는 정권 심판 여론이 정당 지지를 나타내지 않는 중도층 표심을 야당 후보 쪽으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선거 열세에 몰린 쪽에서 마지막 기대는 곳은 늘 숨어있는 ‘샤이 지지층’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보수 지지층이 여론조사에 응하지 않는 징후가 있는 게 사실이다. 여론조사에서 자신을 보수와 진보라고 밝힌 비율이 실제 유권자 이념 성향 분포와 격차를 보이고 있다. 여론조사 응답을 거부한 보수 유권자가 실제 투표에 참여한다면 예측치보다 여당이 선전할 수 있지만, 여론조사와 마찬가지로 투표 자체도 기권한다면 여당 완패가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이번 총선 결과도 또 한 차례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경우의 수는 두 가지다. 막판 위기감을 느낀 보수층이 최대한 결집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될 수도 있지만, 대통령의 불통(不通)에 성난 유권자가 총궐기해서 여당 100석이 무너지는 비상사태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김건희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해도 재의결로 강제할 수 있고, 입법을 통해 의대 증원 2000명 방침을 무력화할 수도 있다. 그 운명의 갈림길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04.18 108석 참패보다 받아들이는 자세가 문제다

업적 평가 못 받았다는 담화
한동훈 탓 돌리는 패인 분석
192석 야당發 특검 회오리
8석 안전판으로 부결시킨들
차기 정권서 재수사 불가피
무너진 정권 체력 인식해야

 ▲지난 16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어려운 국민을 돕고 민생을 챙기는 것이 정부의 존재 이유"라며 "그런 측면에서 이번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2024.4.16/뉴스1

 

16일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을 전한 인터넷 기사에 댓글이 수천 개 달렸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추진해도 국민들이 변화를 느끼지 못하면”이라는 대목을 대부분 겨냥했다. “좋은 정책을 못 알아보는 국민의 무지를 탓한 것 아니냐”는 요지다. 이런 반응에 놀란 대통령실이 “국민 뜻 못 받들어 죄송”이라는 대통령 비공개 발언을 추가로 내놨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총선 직전 의대 증원 관련 담화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대통령이 ‘2000명 증원’의 타당성을 장시간에 걸쳐 설명한 뒤 “더 좋은 안을 내면 논의하겠다”고 했지만 국민들은 대통령이 2000명을 고수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정책실장이 “2000명 숫자에 매몰되지 않는다”고 보충 설명했지만 헛수고였다. 두 차례 입장 표명 모두 잃은 것이 더 많았다.

 

친윤 의원은 소셜미디어에 “지난 총선에 비해 의석은 103석에서 108석으로 5석 늘어났고, 민주당과의 득표율 차는 8.4%p 차에서 5.4%p 차로 줄어들었다”고 썼다. 선거에서 지기는 했지만 4년 전에 비해 선전했다는 취지다. 탄핵이라는 핵폭탄 맞고 초토화됐던 야당 시절 패배와 대통령 임기 2년도 안 된 시점의 집권당 패배를 단순 비교하며 위안을 얻으려는 ‘정신 승리’에 아연해진다.

 

지난 주말 광화문 태극기 집회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대한 성토장이었다. “한동훈 때문에 총선 쫄딱 망했다”면서 ‘정치 저능아’ ‘정신이 오락가락’이라고 비난했다. 용산 대통령실도 선거 패배 원인을 “한동훈의 공천 실패와 전략 미스”로 꼽고 있다고 한다. 주변에서 주로 듣는 총선 관전평은 디올백 늪에서 허덕이던 여당을 한동훈이 건져내나 싶었더니 이종섭 호주 대사 임명, 황상무 회칼 발언, 대통령 51분 의료 담화로 이어진 3연타석 악재로 도로아미타불이 됐다는 쪽이다. ‘이재명·조국 심판’에 올인한 구호와 한동훈 개인 세일즈에 치중한 방식을 문제 삼을 수는 있다. 그러나 몇몇 친윤 배제 공천을 겨냥한 대통령실 분노는 과녁을 벗어났다. 수도권 접전지에서 대통령과 거리가 먼 후보일수록 경쟁력이 높았다는 사례가 차고 넘친다.

 

이번 총선을 전후한 여당 의석은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윤 대통령과 친윤은 여태까지 해왔던 방식대로 밀고 나가도 별문제 없다고 여기는 분위기다. 이만저만 착각이 아니다. 대통령 취임 때 물려받은 여소야대와 대통령 총선 패배로 자초한 여소야대는 하늘과 땅 차이다.

 

행정부와 국회의 대립을 보는 국민 관점부터 달라진다. 그동안은 새로 선출한 대통령을 예전 국회가 훼방 놓는지를 감시했다면, 앞으로는 새로 구성된 국회를 대통령이 존중하는지를 따져 묻게 된다. 대통령과 집권당 관계도 바뀌게 마련이다. 지난 2년 동안 대통령 친위대들이 당의 군기를 잡고, 다른 의원들은 총선 공천권 눈치를 보며 딴소리를 못 냈다. 총선을 거치며 적잖은 친윤들이 국민들의 심판을 받았다. 어렵사리 살아 돌아온 의원들은 총선 기간 용산발 악재에 가슴 졸였던 원망을 곱씹고 있다. 앞으로 여당 의원들의 우선순위는 대통령 심기가 아니라 차기 정권 재창출이다.

 

192석의 범야권은 거세게 대통령을 뒤흔들 태세다. 채상병 사건을 신호탄으로 각종 특검법 시리즈가 쏟아진다. 핵심 과녁은 김건희 특검법이다. 지난 연말 연초 각 언론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을 반대한다는 응답이 60% 이상이었다. 거부권 지지 응답은 그 절반인 30% 내외였다. 총선 이후 대통령이 특검법을 수용해야 한다는 여론은 보다 강화됐다고 봐야 한다. 이번에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재의결 절차로 이어지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국민 절대다수가 요구하는 특검법을 반대하는 것은 집권당 입장에서 큰 부담이 된다. 만약 집권당 일부가 수용 쪽으로 돌아서면서 재의결을 통과하면 당정 관계는 파탄 상태로 돌입한다. 8석 여유의 안전판이 특검법을 부결시킬 수도 있다. 당연히 민심은 들끓고 다음 대선에서 여야 후보들은 재수사를 약속할 수밖에 없게 된다. 현 정권과 차기 정권, 김 여사는 어느 쪽에서 더 공정한 수사를 받을 수 있을까.

 

자신의 허약해진 몸 상태를 인식 못 하고 헬스장에서 무거운 덤벨을 들어 올리려다 큰 탈이 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선거에서 져 골병이 든 정권에도 마찬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어디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분위기다. 그래서 더 걱정스럽다.

 

05.02 尹·李의 ‘적대적 공생’, 1승 1패로 결승전 돌입

李 사법 리스크로 갈린 대선… 용산발 악재로 野 총선 압승
상대 덕에 승패 나눠 갖더니 영수 회담도 서로에게 보탬
두 사람 마지막 승부 시동… 다음 대선 투표함이 결판 내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국밥집에서 식사하는 사진을 배경 삼은 가상 대화가 총선 직전 인터넷 공간에서 화제가 됐다.

 

국밥집 종업원: 이재명 대표가 계산하고 가셨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어? 재명이가 왜?

국밥집 종업원: 그냥 고맙대요.

 

윤 대통령 덕분에 총선 압승이 예상되는 이 대표가 감사의 뜻으로 국밥 값을 대신 지불했다는 우스갯소리였다. 단톡방에 올라온 이 글에 낄낄대며 공감하는 댓글들이 달렸다.

 

그로부터 불과 한 달 전, 총선판은 야당 비세로 흐르는 분위기였다. 이재명 대표의 비명횡사 공천 때문에 민주당 지지율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친야(親野) 매체에서도 “이재명발 공천 파동, 사법 리스크보다 위험” “민주당의 최대 리스크 된 이재명” 같은 글이 실렸다. 그런데도 민주당 주변에선 “이재명 대표가 선거 승리를 확신한다”는 말이 흘러 나왔다. “총선판이 국정 심판론으로 되돌아가게 돼 있다”는 것이었다.

 

이 무렵 필자도 주변에서 “이대로 가면 여당이 총선에서 이기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럴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답하면서 한 가지 유보 조건을 달았다. “용산 대통령실이 한 달간 숨어 있어야 한다.” 이종섭 호주 대사 임명, 황상무 회칼 테러 발언, 51분 대(對)국민 설교로 비친 대통령 의료 담화 등 용산발 3대 악재가 이어지며 선거판이 다시 뒤집어진 것은 잘 알려진 대로다. 윤 대통령이 자신의 기질을 억누르지 못하고 총선판에 뛰어들 것을 이 대표는 꿰뚫어 본 모양이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에게 국밥 수천 그릇을 대접해도 ‘은혜’를 갚기 힘들 것이다.

 

지난 대선은 유례없이 엎치락뒤치락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사법 리스크가 줄줄이 터지면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크게 앞서 나가는 듯싶었는데 윤 후보의 잇단 실언, 김건희 리스크, 이준석 당대표와 갈등이 연속되며 혼전 양상으로 접어들었다. 0.73%p 차, 초박빙 승부를 놓고 두 후보가 서로 상대 덕을 봤다는 분석이 나왔다. 윤 후보는 상대가 이 후보가 아니었다면 질 뻔했다는 것이고, 이 후보는 윤 후보 덕에 ‘졌지만 잘 싸웠다’는 평을 들으며 후일을 도모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처럼 극단적 대립 관계가 역설적으로 서로 입지에 보탬이 되는 경우를 ‘적대적 공생’이라고 부른다. 2020년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만은 막아야 한다는 미 민주당 지지층의 절박함이 바이든을 당선시켰고, 2024년 노쇠하고 허약한 바이든 대통령의 존재가 트럼프의 재기 발판이 됐다. 박정희와 김일성의 서로를 향한 공포와 적개심이 남과 북의 장기 집권에 도움을 줬다는 분석도 있다.

 

엊그제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영수 회담이 성사된 것도 ‘적대적 공생’의 산물이다. 총선 참패 충격에서 벗어나야 하는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마주 앉는 것만으로도 ‘불통’에 대한 부담을 상당 정도 덜어낼 수 있다. 이 대표 역시 대통령과 찍은 ‘투 샷’ 사진을 통해 사법 리스크 피의자 이미지를 희석하는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급부상한 조국과 차별화하기 위해서도 1대1 영수 회담은 긴요했다. 135분에 걸친 회담은 평행선만 그린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합의문은 없다”고 했고 이 대표는 “답답하고 아쉬웠다”고 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종종 만나기로 했다. 서로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대장동·백현동 특혜 개발, 쌍방울 대북 송금, 선거법 위반 소송 가운데 한 건만 삐끗해도 차기 대선 후보로 나설 수 없다. 설사 지연 전술로 최종 판결을 미룬다 해도 여당의 차기 주자들과 벌일 승부는 경쟁력을 자신할 수 없다. 어떻게든 다음 대선도 윤과 자신의 대결 구도로 치르기 위해 대통령을 무대로 계속 끌어내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에게 표를 던진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윤 개인을 적극 지지했거나 이재명 집권을 막기 위해 윤을 도구로 선택한 경우다. 필자가 아는 윤 대통령 투표층은 압도적으로 후자에 속한다. 이들은 윤 대통령에 대해 실망하다가도 “그래도 이재명 정권을 저지한 게 어디냐”며 위안으로 삼는다. 윤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에게 차기 정권을 넘기게 되면 그 공로마저 사라지는 셈이다. 윤 대통령에게 남은 마지막 정치적 승부처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2022년 대선과 2024년 총선을 거치며 1승 1패를 나눠 가졌다. 두 사람의 결승전이 시작되고 있다. 최종 승패는 차기 대선 투표함에 담겨 있다.

 

05.16 대통령 부부의 구명줄, 후배 검찰이 쥐고 있다

주가조작과 디올 백 수수
권력으로 그냥 덮으려다
국민 의혹과 분노 키워
‘제대로 수사’ 評 나오면
특검 요구 가라앉을 것
정공법만이 정권 지켜

▲이원석 검찰총장이 2024년 5월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애 답한뒤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김지호 기자

 

법조계 사정에 어두운 필자도 윤석열 정권이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 인사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는 얘기를 몇 차례 들었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처리를 둘러싼 입장 차이 때문이라고 했다. 대통령은 김 여사가 아무 혐의가 없는데 수사를 왜 종결시키지 않느냐고 답답해하는 반면, 중앙지검은 김 여사에 대한 소환 조사 절차가 필요하다며 버틴다고 했다. 그래서 송 지검장을 고검장으로 승진시키는 모양새로 내보내고 윤 대통령이 믿을 수 있는 복심을 그 자리에 앉힐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바로 그 시나리오대로 이번 인사가 이뤄졌다.

 

필자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그간의 보도 내용을 점검하면서 김 여사의 무혐의에 무게를 두고 있다. 사실 김 여사가 윤 대통령 배우자가 아니었다면 이 사건은 수사 대상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2009년 말 이 회사 주가가 급락하자 권오수 회장이 주가를 끌어올려 달라고 ‘선수’들에게 부탁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대통령 부부가 결혼하기 전 일이다. 2013년 처음 내사했던 경찰은 ‘물건’이 안 된다며 종결했다. 이 사건이 다시 불거진 것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문재인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며 미운털이 박히면서부터다. 윤 총장과 관련된 각종 의혹을 들춰내 먼지를 터는 과정에서 윤 총장 배우자의 계좌가 주식거래에 동원됐던 사실이 표적이 됐다.

 

문 정부 검찰은 김 여사 혐의 입증을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대기업이나 권력층 수사를 전담해온 특수부 정예부대로 수사팀을 꾸렸고, 주가조작 공소시효 10년을 넘기지 않으려고 다른 거래와 묶어 연장하는 묘수도 동원했다. 그 결과 작년 2월 내려진 1심에서 권 회장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주가조작 주범은 징역 2년을 선고받았고 계좌를 빌려줬던 사람들은 무죄였다. 재판부는 “의도는 있었지만 시세조종에 실패한 주가조작”이라고 판단했다. 당초 경찰도 그래서 사건을 들춰 보다가 덮었을 것이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얼마 전 “전담 수사팀을 만들어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한 디올 백 수수 의혹 역시 심각한 수사 결론이 도출될 것 같지는 않다. 300만원짜리 파우치를 포장째 대통령실 창고로 반납한 일 때문에 대통령 배우자를 감옥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대로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께 걱정 끼친 부분”에 대해 도덕적 지탄을 받을 정도의 사안이다.

 

물론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디올 백 수수가 김 여사의 형사처벌에 이를 문제는 아니라는 필자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법리를 차곡차곡 따져 보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두 사건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을 키운 것도 수사를 해보지도 않고 권력의 힘으로 덮으려는 대통령 태도였다. 이번 총선에서 조국혁신당에 표를 던진 사람들은 조국 대표의 결백을 믿어서가 아니었다. “조국 일가 3명 모두를 탈탈 털어 감옥에 보내겠다면서 대통령 부인은 조사 한 번 없이 면죄부를 주겠다는 것이냐”는 반발 심리가 크게 작용했다.

 

이런 총선 민심에 비춰볼 때 이번 검찰 인사는 정권에 불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대통령이 새로 임명한 민정수석이 인사안을 작성했다는 수사 라인이 김 여사 혐의를 털어주려 한다는 의구심이 현실로 나타나면 거센 후폭풍이 몰아칠 것이다. “광화문 광장을 뒤덮을 촛불이 눈에 어른거린다”는 말들이 들려온다.

 

검찰 수사에 대해 “대통령 부인이라고 저렇게 봐줘도 되느냐”는 평가가 나오면 당장은 대통령 부부 신세가 편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190석 범야권이 성난 민심을 등에 업고 특검을 밀어붙여 올 것은 정해진 이치다. 대통령 거부권과 여당의 혼연일체 방어로 특검을 막아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국민 절대 다수가 지지하는 특검을 거부하면 정권은 넘어간다. 그래서 훨씬 가혹한 조건에서 수사를 받게 된다.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지만 정반대 가정도 해본다. “검찰이 대통령 부인에게 저렇게 심하게 해도 되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면 김 여사는 수모를 겪고 대통령은 분노할 것이다. 그런데도 야당이 또 특검을 들이밀면 국민은 “지나치다”고 받아들인다. 여당의 특검 저지도 순조로울 것이다. 어느 쪽이 대통령과 정권을 진짜로 보호하는 길이겠는가. 대통령 부부의 구명줄은 후배 검찰 손에 쥐여 있는 셈이다.

 

05.30 나라 망치는 '25만원 아편', 차등 지원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되면 하늘서 돈다발
환각 노린 대선 매표 전략
중국 국민 중독시켜 잇속 챙긴
아편전쟁 英 횡포와 닮은꼴
푼돈 바라는 국민 정신 타락
70% 지원도 금단 현상 남겨

 ▲1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유튜버 개그맨 김영민 씨가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에서 추진 중인 ‘전 국민 25만원 지원금’에 반대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민생회복 지원금을 반드시 똑같이 지원하라는 요구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했다. 지난 3월 말 총선 공약으로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 회복 지원금 13조원을 풀자”고 제안한 이후 고집해 온 전 국민 지원에서 차등 지원으로 한발 물러선 것이다.

 

이 대표는 지원금 25만원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총선 유세 과정에서 “1인당 25만원, 가구당 100만원 줘서 동네 장 보게 하면 돈이 돌고 경제가 활성화한다. 무식한 양반들아”라고 했다. “코로나 때 이미 경험하지 않았느냐”며 “가구당 100만원을 지역 화폐로 지급했더니 동네가 갑자기 6개월 동안 활황을 겪었다”고 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2020년 코로나 1차 재난지원금 14조원중 소비에 쓰인 돈은 30%에 불과했다. 문재인 정부 국책 연구소의 분석 결과다. 승수효과가 미미했다는 뜻이다. 이재명 지사시절 경기도는 코로나 지원금을 중앙정부와 별도로 지급해 가구당 120만원이 돌아갔다. 당시 혜택을 받은 경기도 주민은 “동네 고깃집에 한동안 손님이 바글바글했는데 얼마 후 가보니 문을 닫았더라. 지원금 효과가 반짝하고 사라진 것”이라고 했다.

 

더구나 지금은 코로나 지원금이 불가피했던 경기 침체 국면이 아니다. 현금 살포는 온 국민이 고통받고 있는 물가 불안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KDI 출신 윤희숙 전 의원은 “이 대표의 25만원 지원 주장은 경제에 진짜 무식하거나, 무식한 척하면서 다른 잇속을 차리자는 것”이라고 했다. 그 다른 잇속의 정체는 국민의힘 수도권 낙선자들의 넋두리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경기도에 출마했던 후보는 “야당도 25만원 준다는데 여당은 30만원 줘야 하는 것 아니냐, 자기들끼리 해먹느라 국민 줄 돈은 없느냐고 하더라”고 했다. 인천에 나섰던 후보도 “일자리·교육 같은 정책 공약은 25만원 포퓰리즘 앞에서 맥을 못 추는 느낌”이라고 했다.

 

현금 살포에 대한 전체 국민 반응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지난 대선 때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제안한 추가 재난지원금도, 이번 지원금 25만원도 여론조사 결과가 그렇게 나왔다. 그럼에도 ‘공돈’에 혹하는 유권자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 대표는 그들을 겨냥한 현금 살포의 중독 효과를 믿는다. 푼돈이라도 꾸준히 나눠 주면 “이재명이 대통령 되면 공중에서 현금이 뿌려질 것”이라는 환각 집단을 만들 수 있다. 0.73%p 차로 갈리는 대선에서는 중대 변수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뿌려졌다가 증발해 버리는 수십조 원에 나라가 얼마나 멍드는지는 뒷전이다.

 

아편전쟁은 영국이 자국민들에게 가르치지 않는 부끄러운 역사다. 19세기 초·중반 청나라 차(茶) 수입 급증으로 골치를 앓던 영국은 아편 판매로 무역 적자를 벌충하기로 한다. 공세적 마케팅으로 아편 중독 확산에 성공하면서 청나라 전체 수입 물품중 아편이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을 넘어섰다. 당시 아편에 찌든 청나라 국민들의 참상을 고발하는 사진들이 남아 있다.

 

청 황제가 아편 문제를 해결하라고 임명한 흠차대신 린쩌쉬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에게 공개 서한을 보냈다. “영국은 중국과 교역해 얻은 이익의 대가로 중국을 해칠 아편을 강요한다”면서 “하늘이 영국인 가슴에 심어 놓은 양심은 도대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장차 영국 총리가 될 31세의 하원 의원 글래드스턴은 의회에서 아편전쟁 개전이 271 대 262, 9표 차로 가결되자 “영국의 양심의 무게가 고작 262표밖에 안 되느냐”고 탄식했다.

 

이재명 대표가 30년, 40년 후 미래 세대에게 가혹한 부담을 지울 연금 제도 개혁에 나선 데 대해 긍정적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재명 포푤리즘’ 저격수 윤희숙 전 의원조차 “이 대표가 굉장히 프레지덴셜(대통령스럽게)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25만원 지원 대상에 유연성을 보인 것도 이런 이미지 확산을 노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단의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현행 연금 제도와 마찬가지로 ‘후손 삥 뜯기’라는 지적을 받는 ‘25만원 아편’ 살포 자체를 포기해야 옳다.

 

현금 25만원을 전 국민 대신 70%에게 뿌려본들 달라지는 건 낭비되는 세금이 일시적으로 13조원에서 9조원으로 줄어든다는 점뿐이다. 한번 맛들인 눈먼 돈에 대한 갈증은 끊임없는 금단 현상을 부르기 마련이다. 먼 훗날 25만원 아편으로 나라를 황폐화시킨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의 양심을 따져 묻는 역사의 심판은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06.13 "이재명 訪北" 보도에 "이화영 수고했어요" 댓글 달더니

평양 회담 수행단 제외되자 부지사 앞세워 방북 추진
"쌍방울이 비용 처리" 보고 "잘되면 좋겠다" OK 사인
대납 방북 수사받게 되자 "서류 위조" 단독범 덤터기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평화부지사라는 자리를 신설해 이화영씨를 임명한 것은 2018년 7월이었다. 한 달 전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으로 달아오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올라타기 위해서였다. 이화영씨가 2006년 12월 대북 밀사로 북한을 방문, 2007년 10월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의 발판을 놓은 경험을 높이 산 선택이었다.

 

그해 9월 18~20일 평양 남북 정상회담이 예정되자 여권 대선 주자들은 수행단에 들어가려고 안달이 났다. 이재명 지사는 이화영의 ‘친노’ 라인에 기대 청와대에 청탁을 넣었다. 그러나 시·도지사 중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최문순 강원도지사만 포함됐다. 전국 시·도 중 최대 규모이고 접경지를 낀 경기도가 제외된 것이 누가 봐도 이상했다. 언론들은 “청와대의 이재명 패싱으로 보기 충분하다” “문 대통령의 남북 평화 외교를 강력하게 지지해 온 이 지사 입장에선 이런 봉변이 없다”고 평가했다. 2017년 대선 경선 때 이재명 후보의 도발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뒤끝으로 해석됐다.

 

이재명의 대북 프로젝트를 위해 임명된 이 부지사는 난처했다. 평양 회담 다음 달인 10월 두 차례나 북한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두 번째 방북에서 돌아온 다음 날인 10월 25일 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북측 고위급 인사들이 경기도를 방문해 이 지사의 방북을 논의할 것”이라는 게 주제였다.

 

한 달 뒤인 11월 16일 경기도 주최 ‘아태 평화 번영을 위한 국제 대회’에 리종혁 아태위 부위원장 등 북측 대표단 5명이 참석했다. 회의에서 이 지사가 “평양 옥류관 냉면을 아직 못 먹어 봤다”고 하자 리 부위장은 “경기도에 옥류관 분점을 개설하기 위해 북에 먼저 한번 와달라”며 방북을 제안했다. 이 지사는 “육로로 평양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리 부위원장은 “그렇게 하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다른 길을 찾아보자”고 했다.

 

그 다른 길이 ‘헬기 타고 평양까지, 평양에서 벤츠 탑승’이었다. 북측은 헬기와 벤츠 동원 비용으로 쌍방울 김성태 전 회장에게 500만달러를 요구했다가 300만달러로 타협했다. 그 방북 비용 300만달러를 쌍방울에 대납시켰다는 것이 이화영씨가 지난주 9년 6개월 형을 받은 핵심 혐의였다.

 

이씨 유죄판결에 따라 검찰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기소할 것이라는 관측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 이씨 측 변호사 표현처럼 “이씨 유죄판결은 이 대표 유죄를 추정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까지 혐의가 옮아가느냐 마느냐는 이 대표가 이씨의 범죄를 보고받고 승인했는지에 달려 있다.

 

이 대표가 자신의 방북 프로젝트에 큰 관심을 보였다는 점은 이 대표 소셜미디어로 확인된다. 이 부지사가 방북 직후 기자회견을 한 2018년 10월 25일 이 대표는 “북 고위급 내달 경기도 국제 회의 참석, 이재명 방북 논의”라는 경향신문 보도 내용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리면서 “이화영 부지사님,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그보다 한 달 전 “이재명 남북 사업 급물살 타나, 이화영 방북 논의” 기사에도 이 대표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하겠다”는 글을 달았다.

 

그래서 이 대표는 쌍방울 관련 부분만 자기는 전혀 몰랐다고 꼬리를 자르고 있다. 검찰은 작년 이재명 대표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에 “이씨가 이 대표에게 최소 17차례 대북 사업을 보고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2019년 7월 이 대표가 이씨에게 “쌍방울이 지사님의 방북 비용까지 비즈니스적으로 처리할 것”이라는 보고를 받고 “잘 진행해 보면 좋겠다”고 답했다고 영장에 적시했다. 그에 앞서 중국에서 쌍방울과 북한이 대북 사업 합의서를 쓸 때도 이 대표가 전화로 김성태 전 회장과 통화하면서 “김 회장님, 고맙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했다.

 

이 대표는 검찰에서 “이화영이 나도 모르게 도지사 직인이 찍힌 서류를 만들었다”고 했고, 소셜미디어에는 “직인 찍은 기억이 없다. 도지사 하루 결재가 몇 건인지 아느냐”고 발뺌했다. 불과 2년 전 성남시장 때는 “단돈 100만원이 드는 사업도 내 결재 없이는 집행 안 된다”고 자랑했던 것과 대비된다.

 

김정은이 한반도 정세를 쥐락펴락하던 그 무렵, 평양 정상회담 들러리를 퇴짜 맞은 이재명 지사에게 북한행 티켓은 절박했다.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과 코로나 사태라는 이중 장애물이 등장할 때까지 이 대표의 최대 관심사는 방북이었다. 그런 사안을 이 부지사가 이 지사 몰래 단독으로 처리했다는 것은 세상사 이치와 동떨어진 말이다.

 

06.27 역사 박물관에 '괴담과 그 주역들' 코너 어떤가

부동산 떴다방식 괴담 세력
광우병·오염수·사드 옮겨다녀
1, 2년 후 잊힌다 믿는 구석
사드파 튀겨진다 공포 팔아
성주 군민 사기쳤던 7인방
두고두고 괴담 전력 새겨야

 ▲지난 2016년 당시 민주당 의원들이 경북 성주에서 가발을 쓰고 춤을 추며 대중가요를 개사한 ‘사드 괴담송’을 부르고 있다. /페이스북

“외로운 밤이면 밤마다 사드의 전자파는 싫어/강력한 전자파 밑에서 내 몸이 튀겨질 것 같아.”

“사드 반대할 때 나를 불러줘 언제든지 달려갈게/ 낮에도 좋아 밤에도 좋아 무조건 무조건이야.”

 

2016년 8월 3일 ‘사드 반대 성주군민 촛불집회’에서 울려 퍼진 괴담송들이다. 일반 대중 귀에 익은 가요들을 개사했다. 표창원, 손혜원, 김한정, 김현권, 소병훈, 박주민 등 당시 현역 민주당 의원 6명과 다음 국회에 입성하게 되는 김홍걸 예비의원이 탬버린을 치며 열창했다. 구독자 95만명 오마이TV가 촬영한 방송 속에서 민주당 7인방은 청중들의 환호에 감격한 모습이었다. 유원지 야간 무대에서 흥이 오른 중년 취객들을 떠올리게 한다. 공연을 마친 뒤 손 의원은 소셜 미디어에 “성주 군민들을 위해 몸을 던졌다. 사드 반대를 위해 앞으로도 뭐든지 하겠다”고 했고, 표 의원은 “성주 군민들의 절박한 모습에 눈물이 났다”고 했다.

 

사드 반대 운동 성지 역할을 해온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의 농성 천막이 지난주 철거됐다. 8년 전 6000명에 달했던 사드 반대 집회자수는 올 들어 10명 내외로 줄었다고 한다. 사드 전자파에 튀겨진다던 성주 참외는 지난해 매출 6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마을 주민들은 “사드 광풍을 부추기던 외부 사람들은 떠났다”고 했다. “성주와 운명을 함께하겠다”던 민주당 괴담송 7인방도 자취를 감췄다.

 

2016년 7월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은 소셜 미디어에 “사드에 반대하는 여섯 가지 이유”를 열거하면서 “사드 전자파는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고 썼다. 2023년 6월 “사드 전자파가 안전기준 대비 530분의 1에 못 미치며 휴대폰 기지국보다 안전하다”는 환경영향평가가 나오자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안전하다니 다행”이라고 했다. “누가 사드를 위험하다고 했었느냐”는 식의 심드렁한 태도였다.

 

그 무렵 이 대표 관심은 후쿠시마 오염수에 꽂혀 있었다. 당 지도부 회의에서 “일본의 오염수 방류는 핵 테러이자 제2의 태평양 전쟁”이라고 했다. 경찰 추산 7000명이 모인 2023년 8월 26일 서울 광화문 오염수 반대 집회에는 민주노총, 민변, 한국진보연대,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 90여 곳이 참여했다. 2008년 광우병 집회, 2016년 사드 반대 집회를 주도했던 단체들이다. 괴담 부채질 세력 총결집에도 불구하고 오염수 공포 마케팅은 흥행에 실패했다. 노량진 수산시장은 평소보다 되레 매출이 늘었고 백화점과 마트의 수산물 코너도 타격이 없었다.

 

일본이 오염수 방류를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지도부는 목포 횟집에서 회식을 했다. 이 대표는 “참 맛있게 잘 먹었다”는 서명까지 남겼다. “세슘 우럭 너나 먹어” “(해산물을 먹느니) 차라리 X을 먹겠다”고 했던 그 민주당 사람들은 어디 갔나 싶었다. 킹크랩 먹방을 한 유투버에게 “개념없다” “2찍이냐(국민의 힘에 투표했냐)”고 린치를 가했던 개딸들은 “해산물 먹는 게 무슨 문제냐”고 도리어 이 대표를 감쌌다. 그 정치인에 그 지지자라더니 놀라운 태세 전환이다.

 

초등학생들을 데리고 광화문 역사박물관에 가곤 한다. 한국 현대사에 새겨진 장면들을 소재 삼아 놀이 시설들을 꾸민 4층 체험관이 어린 친구들에게 인기다. 시대별로 나라를 뒤흔들었던 괴담 시리즈로 한 코너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상상을 해봤다.

 

미국 쇠고기 먹으면 ‘뇌송송 구멍탁’ 된다는 공포 몰이로 한미 FTA를 무산시키려 했던 광우병 괴담, 전자파가 사람 몸과 성주 참외를 튀겨 낸다는 해괴한 발상으로 북핵 위협에 나라를 무방비로 노출시킬 뻔했던 사드 괴담, 태평양을 거쳐 미국을 향하게 되는 후쿠시마 해류가 우리 바다를 독극물로 만든다는 황당한 오염수 괴담까지… 진보를 깃발로 내건 정치인들이 나라의 존립과 번영을 위협해 왔다는 생생한 교육 현장이 될 법하다. 자신들이 직접 먹방했던 광우병 쇠고기와 오염수 초밥에 대해 독극물인 양 몸서리친 ‘개념 연예인’들의 이중성도 전시 목록으로 손색이 없을 듯하다.

 

괴담팔이 비즈니스는 부동산 사기 떳다방을 닮았다. 순진한 사람들을 야바위로 속여 먹다가 약발이 떨어지면 미련 없이 자리를 뜬다. 그리고 또 다른 괴담 제물을 찾아 나선다. 어차피 1~2년 지나면 잊힌다는 게 믿는 구석이다. 자신의 괴담송 전력이 두고두고 소환될 줄 알았다면 민주당 7인방이 형형색색 비닐 가발을 쓰고 “사드 전자파에 내 몸이 튀겨질 것 같아”를 외칠 수 있었을까.

 

07.11 싱크로율 98% 韓·日 운명 공동체, 尹·韓은 몇% 일치할까

유엔 결의안 표결 완벽 일치
가치관과 안보 위협 공유에 자원 의존 등 여건 같기 때문
러·북·중에 공동 대응 절실
野 탄핵, 核 위협 수준인데 與圈은 치고받고 內戰할 땐가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해 8월 18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DC 인근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강력한 리더십 덕분에….”

지난주 일본에서 2박 3일 동안 열린 ‘한일미래비전 포럼’에서 끊임없이 반복된 관용구였다. 한국에서 김성한 전 안보실장,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 일본에서 야치 쇼타로 전 국가안보국장, 사사에 겐이치로 전 외무사무차관, 기하라 세이지 전 관방장관, 오노데라 이쓰노리 전 방위대신 등 양국의 정치인, 외교관, 기업 관계자, 언론인 등이 참석했다. 양국 정상의 결단이 지난 2년 새 두 나라 관계를 극적으로 개선시켰다는 게 한결같은 평가였다.

 

지난달 발표된 한국일보·요미우리신문 공동 여론조사에서 한·미·일 3국 안보 협력 강화에 대한 찬성 응답이 한국 79.2%, 일본 86%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권이었다면 상상도 못 했을 수치다. 일본에 대해 군사적 위협을 느낀다는 우리 국민 응답은 2015년 61% 최고치보다 절반 이하인 29.7%로 떨어졌다.

 

양국 국민의 태도 변화는 특히 젊은 층에서 두드러졌다. 한국의 20대는 한·미·일 안보 협력 필요성에 대해 92%로 가장 높았고, 일본의 군사적 위협 걱정은 22%로 가장 낮았다. 일본 측 참석자는 “일본 10대 중 38%가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큰딸과 대화가 거의 없는데 BTS 표를 구해달라, 블랙핑크 표를 구해달라, 뉴진스 표를 구해달라고 할 때만 말을 걸어 온다”고 했다.

 

그는 또 “윤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훼손하는 모험까지 감수하며 양국 관계를 여기까지 끌고 왔는데 그 의지를 충분히 일본 국민들에게 전달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일본 산업계 관계자는 “기시다 총리로부터 이제 일본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서 화답해야 하는데 왜 기업들이 이렇게 호응해주지 않느냐는 책망을 들었다”고도 했다.

 

러시아·북한·중국 세 나라가 핵(核)을 움켜쥔 주먹을 휘두르며 주변 국가들을 위협하는 정세가 한·일 두 나라가 협력할 수 있는 분위기를 확산시키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일본 전문가들은 “생각이 같은(like-minded) 나라끼리 뭉쳐서 위협에 맞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과 일본이 생각이 같다고? 대다수 우리 국민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대목이다.

 

국회의원들의 정치적 성향을 구분 짓는 객관적인 기준은 각종 법안에 대한 표결 기록이다. 마찬가지로 각 국가의 정체성은 다양한 국제 이슈가 다뤄지는 유엔 결의안에 대한 표결로 드러난다. 국제 무대에서 대한민국과 가장 가까운 입장을 취해 온 나라는 어디일까. 일본이다. 두 나라의 유엔 결의안 표결이 같았던 경우가 무려 98%다. 몇 년 전 유엔 전문가는 논문을 통해 이 수치를 제시하며 “두 나라의 싱크로율이 놀랍다”고 평가했다.

 

왜 그럴까. 국가의 정책 방향을 결정짓는 지정학적 환경이 완벽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아시아에서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신봉하고 선진국 수준의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는 한국과 일본밖에 없다. 두 나라 모두 한반도 주변 지역의 안정과 평화가 최우선 과제다. 에너지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두 나라 모두 95%에 가깝고, 그래서 교역을 통해서만 생존이 가능하다. 두 나라 사이의 굴곡진 과거사에 가려졌을 뿐 한·일은 완벽한 운명 공동체라는 뜻이다.

 

일본의 경제적 위상은 과거만 못하고, 한국은 부쩍 힘을 키웠지만 아직 독자적으로 국제사회를 움직일 만한 역량에 못 미친다. 그러나 두 나라가 한목소리를 내면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일본 정치인은 “트럼프가 재집권했을 때 아시아 안보 질서를 헝클어트릴까 걱정된다. 한국과 일본이 공동 대응하면 막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귀국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도착하면서 핸드폰을 켜자 국내 뉴스가 최다 조회 순으로 화면에 떠올랐다. 한동훈 국민의힘 전 비대위원장이 ‘명품 백 대(對)국민 사과 용의’를 담은 김건희 여사 문자를 묵살했다는 기사, 국회에서 민주당이 해병대원 특검법을 단독 처리했다는 기사가 차례로 상위권에 배치됐다. 러·북·중 못지않은 위협이 국내에서 윤 대통령을 겨누고 있다.

 

야당이 해병대원 특검법을 거듭 밀어붙이는 건 윤 대통령 탄핵이라는 최종 목적지로 가기 위한 빌드업 과정이다. 정권을 끝장내겠다는 야당의 핵실험이다. 윤 대통령과 한 전 위원장의 정치적 입장이 100% 가깝게 일치하는 운명 공동체라면 당연히 힘을 합쳐 대응해야 한다. 이미 참담한 패배로 끝난 총선 때 과거사로 진흙탕 내전을 벌일 때는 아닌 듯싶다.⊙

 

07.25 "한동훈 때문에 총선 졌다" 변명이 심판받았다

명품 백·대사 임명·의정 갈등
대통령 부부 책임 다 아는데 용산만 '韓 책임론'에 집착
재보선, 총선 이어 전대까지 남 탓 타령 반복하다 혼쭐
민심 회초리에 고개 숙여야

 ▲[고양=뉴시스] 조성봉 기자 =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3일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제4차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당 깃발을 휘날리고 있다. 2024.07.23. suncho21@newsis.com

 

지난 총선 때 여당 선거 사령탑은 한동훈 비대위원장이었다. 그 선거에서 탄핵 저지선을 간신히 넘기는 참패를 했으니 패장으로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래 놓고 석 달 만에 여당 대표가 되겠다고 나선 것은 대선 패배 직후 야당 전당대회에 나선 이재명 대표만큼이나 명분이 없었다.

 

자신이 직접 선수로 나선 한동훈 후보의 퍼포먼스 역시 박수받기는 어려웠다. 기대에 못 미쳤다는 게 솔직한 평가다. 선두 주자를 끌어내리려는 경쟁자들의 네거티브 공세에 같은 수준의 말싸움으로 일일이 맞섰다. 내 답안지에서 1점도 깎이지 않겠다는 앞뒤 꽉 막힌 범생이의 조급증을 보는 듯했다. 특히 선거전 막판 나경원 후보와 주고받은 공소 취소 공방은 큰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공감 능력과 포용력에 대한 의문 부호를 남겼다. 한 후보의 명석함에 매료됐던 사람들도 “성품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찜찜해했다. 그럼에도 여당 대표 선출은 한 후보의 압도적인 과반 득표로 싱겁게 마무리됐다. 여당 지지층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국민의힘 당권 주자 라디오 토론에서 “총선 때로 돌아간다면 어떤 순간을 바꾸고 싶은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자신이 생각하는 총선 패배 핵심 원인을 말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한동훈 후보는 “이종섭 호주대사의 출국”, 원희룡 후보는 “영부인이 사과 못한 것”, 나경원 후보는 “일방적 의사 증원”, 윤상현 후보는 “대통령의 의정 갈등 국민 담화”를 각각 꼽았다. 여당 패배를 부른 3종 종합세트로 지목됐던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의혹,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 의대 정원 2000명 대통령 담화와 정확히 일치했다. 당권 주자들의 전문가적 분석도 일반 국민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용산 대통령실의 생각은 달랐다. 여당 패색이 짙어진 순간부터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선거를 망쳤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의 정책 이슈로 승부했어야 했는데 운동권 심판론이라는 정쟁으로 몰고 간 것이 실착이라고 했다. 총선 백서 설문조사에 “이재명·조국 심판론이 옳았나”라는 조항을 넣으려 했던 것도 총선 패배 책임을 한 위원장에게 돌리려는 친윤 진영 의도로 해석됐다.

 

지난 대선 경선 때 선두를 다투면서 티격태격했던 윤석열 대통령과 홍준표 대구시장은 총선 직후부터 살가운 사이로 변했다. 홍 시장이 “총선 패배는 한동훈 탓”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이 두 사람을 한데 묶어준 촉매 역할을 했다.

 

전당대회 초반을 달군 김건희 여사의 문자 파동 역시 “한동훈 때문에 총선 졌다”는 메시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김 여사가 사과하겠다는 뜻을 거듭 전달했는데도 한 위원장이 묵살했다”, “총선 최대 악재였던 명품 백 의혹을 해소할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는 공격이었다. 한 위원장이 자신을 아끼고 키워준 윤 대통령과 형수에게 무례했다는 이미지 타격도 덤으로 노렸을 것이다. 이 무렵 만났던 용산 쪽 인사는 “한 후보가 치명상을 입었다”, “한동훈 대세론은 무너졌다”고 고무된 표정이었다.

 

결과는 딴판이었다. 여론조사에서 한 후보 독주 태세가 더 공고해졌다. 당시 인터넷 댓글만 봐도 이런 여론 흐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김건희 사과에 왜 한동훈 허락이 필요하냐”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대통령 부부가 사과를 거부해 놓고 한 후보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운다고 국민은 행간을 읽고 있었다.

 

국회의원 3선과 제주지사 재선을 거친 차기 대선 주자, 원내대표를 지낸 서울 지역 5선 의원, 인천에서 내리 5선에 성공한 의원 등 당내 중진 3명이 얻은 득표 합계가 초보 정치인의 절반 수준이었다. ‘총선 패배는 한동훈 탓’이라는 용산 프레임 속에 갇혀 졸전을 벌인 결과다.

 

성난 민심은 권력을 심판한다. 회초리를 맞은 권력이 고개를 숙이면 국민의 분노는 서서히 누그러진다. 반대로 심판받은 권력이 남 탓을 하면서 책임 회피를 하면 더 매서운 채찍질을 부르는 법이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경고를 받고도 정신을 못 차린 결과가 4월 총선 참패였다. 그 총선 민심을 한동훈 탓으로 돌리려는 변명과 핑계가 이번 전당대회 승부를 갈랐다. 대통령실 주문대로 집권당 대표가 선출되면 지난 2년여 국민을 화나게 만든 국정 운영이 그대로 되풀이될 것이라고 걱정한 지지층이 한 대표에게 몰표를 던졌다. 권력의 오만과 잔꾀는 결코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

 

08.08 올림픽 덕에 눈 비비고 다시 보게 된 '뉴 코리안'

실력으로 발언권 쟁취 안세영
"자신 없나" 선배에게 호통치고 대신 나서 5:0 득점한 도경동
패자 품격 감동 준 스무 살 '삐약이'
당차고 쿨하며 때로는 맹랑한 1020세대의 신선 발랄 활약상

 ▲파리올림픽에 출전한 대한민국 선수단 메달리스트 기자회견이 지난 4일(한국시각) 프랑스 파리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렸다. 선수들이 함께 포즈 취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사격 오예진·양지인·반효진·김예지, 유도 허미미·김민종·이준환·김하윤, 펜싱 오상욱·도경동·윤지수·전하영이 참석했다. /정재근 스포츠조선 기자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우리 선수의 올림픽 결승전을 이렇게 마음 편하게 본 적이 없다. 승패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기량 차가 뚜렷했다. 여자 배드민턴 단식 결승전은 일찌감치 개막한 ‘안세영 시대’를 확인받는 자리였다.

 

영광스러운 대관식 현장에서 안 선수는 ‘폭탄 발언’을 했다. 자신의 부상에 안일하게 대처해 온 협회에 실망과 불신을 내비치며 “대표팀과 결별하겠다”고 했다. 언론과의 후속 인터뷰에서 안 선수는 태극 마크를 단 2018년부터 대표팀 운영에 문제를 느꼈다고 했다. “제가 목표를 향해 달려온 원동력은 분노였다”면서 “목소리를 높이고 싶은 게 제 꿈이었다”고 했다. 납득이 안 되는 기성 체제에 항변할 수 있는 발언권을 얻기 위해 실력을 키웠고 금메달을 딴 순간 그 목소리를 터뜨렸다는 뜻이다. ‘튀면 죽는다’를 삶의 지혜 삼아 위계질서에 순응해 온 세대는 꿈도 못 꿔본 일이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축제 현장에서 꼭 그래야 했느냐”는 비판과 “충격을 극대화할 기회를 잘 포착했다”는 응원이 맞서고 있다.

 

올림픽에서 문제 협회만 드러난 건 아니었다. 한국 양궁은 올림픽 금메달 5개를 싹쓸이했다. 양궁은 “전 세계 선수들이 모여서 한국에 금메달 주는 행사” “한국을 마지막에 만나는 팀이 은메달 가져가는 경기”라는 농담까지 나왔다. 이번 대회 3관왕, 역대 금메달 합계 5개인 김우진 선수는 “한국 양궁은 왜 강하냐”는 질문에 “모든 선수가 똑같은 위치에서 출발한다”며 공정한 선발 시스템을 꼽았다. 3년 전 도쿄 올림픽 3관왕 안산 선수마저 선발전에서 밀리면서 출전권을 얻지 못한 이유다.

 

한국 남자 펜싱 사브르 단체전 3연패의 주인공 구본길(35) 선수는 8강전이 끝난 후 라커룸에서 도경동 선수(25)에게 “혼났다”면서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 했다. “왜 자신 없이 플레이를 하느냐. 내가 뒤에 받치고 있으니 마음 놓고 공격하라”고 격려한 것을 돌려서 표현한 것이다. 올림픽 무대에 처음 나온 후보가 열 살 많은 베테랑에게 ‘직언’을 날렸다는 게 신기했다.

 

도 선수는 결승전에서 30대29 한 점 차로 쫓긴 승부처에서 구본길 대체 선수로 나섰다. 이번 대회 첫 출전이었지만 거칠 것 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28초 만에 실점 없이 다섯 점을 연속으로 따냈다. 한국팀에 45대41 승리를 안긴 결정타였다. 도 선수는 시합 후 “질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여자 사브르 단체 준결승에서 세계 랭킹 1위 프랑스를 꺾은 주역도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전하영(23), 최세빈(24) 막내들이었다. 이들은 개인전에서 금, 은메달을 차지한 프랑스 1, 2 검객을 몰아붙이며 점수 차를 벌렸다. 대표팀을 이끌어온 맏언니 윤지수(31)는 경기 막판 전은혜(27) 선수를 자기 자리에 대신 출전시켰다. “앞으로 대표팀을 이끌 후배들이 경험을 쌓는 것이 맞다”고 했다.

 

새내기들이 겁없이 돌진하고 선배들은 ‘라때’ 타령 없이 밀어주는 팀워크, 선수가 선발 시스템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시스템이 파리 무대에서 K스포츠를 떨친 배경이었다. 인맥, 파벌, 과거 명성에 따른 선수 선발로 잡음을 일으킨 일부 구기 종목이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칼’과 ‘활’에 이어 ‘총’에서 금메달을 쓸어 담은 건 2000년대생 여자 3총사였다. 17세 막내 반효진은 “오늘의 운세가 ‘모두가 나를 인정하게 되는 날’이었다”고 했다. 19세 오예진은 “엄마가 지금 울고 있을 거다. 엄마 봤나”라며 환하게 웃었다. 21세 양지인은 마지막 슛오프가 긴장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개최국 프랑스 선수가 더 떨었을 걸요”라고 했다.

 

탁구 신유빈 선수는 단식 3, 4위전에서 일본 선수에게 4대2로 졌다. 한일전은 꼭 이겨야 한다는 쉰내 나는 감각이었다면 분을 못 이기고 씩씩거렸을 것이다. 신 선수는 패배가 확인된 순간 상대방에게 먼저 다가가 축하를 건넸다. 일본 네티즌들은 “응원하고 싶은 선수” “젊은데 멋진 스포츠맨십”이라고 했다. 신 선수는 인터뷰에서 울음을 억누르며 “상대가 모든 면에서 나보다 앞섰다. 그런 실력과 정신력과 체력을 갖추기 위해 얼마나 더 노력했을지 인정한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련하다”고 했다. 스무 살 ‘삐약이’는 너무나 어른스러웠다.

 

당초 기대치와 관심이 낮았던 올림픽이었다. 그러나 1020 젊은이들이 전해오는 경기장 안팎의 활약상이 다시 눈길을 잡아끌었다. 당차고 쿨하고 때로는 맹랑하기까지 한 ‘뉴 코리안’들을 목격한 순간이었다.

 

08.22 수명 다한 운동권 잔당의 '親日 타도' 최후 항전

경제 수탈한다던 매판자본론
'한강 기적' 성과 설명 못 해
文革 찬양한 '전환시대 논리'
2030 反中 정서와 동떨어져
'80년대 反日'로 뭉친 野 1, 2당
출신 다른 광복회와 묘한 공조

 ▲제79주년 광복절인 지난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광복회가 주최한 8.15 광복절 기념식에서 이종찬 광복회장(앞줄 왼쪽) 등 참석자들이 광복절 노래를 부르고 있다.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의 역사관을 둘러싼 갈등이 봉합되지 않으면서 광복회를 비롯한 독립운동단체연합은 이날 자체 광복절 기념식을 열었다. 광복회의 광복절 기념식 불참은 1965년 창립 이후 처음이다. /뉴스1

 

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중학교 3학년 박현채는 빨치산에 투신했다가 2년 만에 하산했다. “민중을 위한 학문을 하라”는 부대장 당부에 따라 서울대에 진학해 경제학을 공부했다. 박씨의 빨치산 체험은 중학교 후배 소설가 조정래의 ‘태백산맥’에서 ‘소년 전사 조원제’ 활약상에 담겼다.

 

1980년 ‘서울의 봄’을 맞은 대학 캠퍼스에선 지하로 숨어들었던 이념 서클들이 일제히 양지로 나왔다. 이곳에서 신입생들은 의식화 세례를 받았다. 선배들이 준비한 주제별 커리큘럼에 따라 세미나가 열렸다. 경제 분야 교재는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이었다. 외국자본에 의존한 외연적 성장을 탈피해서 자기 완결적인 재생산 구조를 갖춰야 한다는 게 핵심 주제였다. 80학번인 필자도 선배들로부터 “박정희식 수출주도형 모델은 외국자본과 외국자본에 빌붙은 재벌 매판자본만 배 불리며 나라 경제를 수탈한다”면서 “민족의 이익을 대변하는 민족자본 중심의 경제구조로 바꿔야 한다”는 세뇌 교육을 주입받았다. 북한 김씨 왕조가 3대째 실험하며 선전해 온 ‘주체경제’와 맥락을 같이한다. 이 이론이 맞았다면 한국 경제는 지난 수십 년간 외자와 매판자본 좋은 일만 시키면서 거덜 났을 것이다.

 

한국 총생산은 1980년 이후 지난해까지 26배 불어나며 전 세계 10위권에 근접하고 있다. 같은 기간 1인당 소득도 64위에서 33위로 뛰어올랐다. 80년대 운동권들이 매판자본이라고 비난하고 혐오했던 재벌 기업들이 한국 경제를 견인한 결과다. 이병철·정주영·구인회·박태준 같은 산업계 거인들의 스토리가 유튜브에서 수십만, 수백만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20·30대들이 주로 본다고 한다. 서울대의 인기 강좌였던 ‘마르크스 경제학’은 20여 년 만에 폐강됐다. 수강생이 너무 적어서다. 80년대 운동권이 신봉했던 경제 이론은 대한민국이 이뤄 낸 기적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리영희저 ‘전환시대의 논리’는 80학번 새내기 대학생들이 세상을 보는 눈을 뒤집어 놓았다. 특히 중공(中共) 빨갱이라고 배워왔던 나라의 ‘진짜 모습’을 이 책을 통해 접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저자는 서문에서 “임금님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지 못했던 냉전시대의 낡은 시각을 타파하라”고 했고, 운동권들은 “현대사와 국제정치의 현실을 보는 시각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일으킨 역작”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리씨가 “인류 최초의 인간 의식 개조 혁명”이라고 추켜올렸던 문화혁명의 참혹한 진상이 뒤늦게 세상에 알려지면서 책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기 시작했다. 저자는 훗날 대담집을 통해 “열악했던 정보 접근 환경 때문에 전체 진실을 알지 못했다”는 자기 합리화를 내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리씨를 끝까지 “시대의 스승”이라고 떠받든 사람들도 있다. 대선에 출마하면서 젊은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으로 ‘전환시대의 논리’를 꼽았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문 전 대통령은 베이징대 연설에서 “중국은 높은 봉우리, 한국은 작은 나라”라고 부르면서 “중국몽이 인류 전체의 꿈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미국의 외교 전문 매체는 56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가장 높은 나라는 한국(81%)이라고 밝혔다. 한국 여론조사 기관 조사에서도 중국에 대한 호감도(23.9%)가 일본(29.0%)보다 낮았다. 우리 젊은 세대들은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으로부터 피해를 당했을 때 ‘중국당했다’는 표현을 쓴다고 한다. 이들이 문 전 대통령이 권하는 ‘전환시대의 논리’를 어떤 눈으로 읽을지 궁금하다.

 

시대착오적 의식화 논리가 수명을 다하면서 수세에 몰린 80년대 운동권 세력이 마지막으로 외치는 구호가 ‘친일(親日) 타도’다. “이승만이 친일 세력 청산을 못한 것이 대한민국 만악(萬惡)의 근원”이라는 ‘해방 전후사의 인식’의 관점을 국회 300석 중 190석을 점한 야권 1·2 정당이 공유하고 있다. “광복절을 친일 부활절로 만든 최악의 매국 정권”이라는 민주당 논평, “윤 대통령은 조선 총독부 10대 총독이자 왕초 밀정”이라는 조국혁신당 대표의 말은 40여 년 전 대학 캠퍼스에 나붙던 대자보의 인식 수준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전두환 군사 정권이 창당한 민정당에서 당직자를 지냈던 21대 광복회장에 이어 민정당 의원 출신 23대 광복회장이 좌파 운동권의 철 지난 반일(反日) 비즈니스와 장단을 맞추고 있는 모습이 묘한 부조화를 느끼게 한다.

 

09.05 일단 지르고 보는 '어퍼컷 국정'의 뒤탈

최민희 임명 거부 나비효과… MBC 지도부 교체 뻐그러져
불쑥 내민 2000명, 200만원… 의료계 및 軍 혼란 불러
눈앞밖에 못 본 즉흥 결정이 敵 만들고 후유증 남겨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오후 경기 수원 팔달구 서호 잔디광장에서 열린 제28회 농업인의 날 기념식에서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2023.11.10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정치적 중립성이 필요한 국가기관의 지도부는 여당 몫, 야당 몫을 나누어 추천받는다. 방송통신위원회도 그중 하나다. 방통위 상임위원 5명 중 대통령이 2명을 지명하고, 나머지는 여당 몫 1명 야당 몫 2명을 국회가 추천한다. 정부 여당에 주도권, 야당에 견제권을 각각 부여하는 숫자 배분이다.

 

이런 취지에 따르면 작년 3월 야당이 방통위원 후보로 추천한 최민희씨를 대통령이 임명 보류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대통령실은 최씨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통신 사업자 이익을 대변하는 자리를 지내 이해 상충 소지가 있다는 점을 결격 사유로 들었다. 목소리 크고 ‘골치 아픈’ 최씨를 배제하고 싶은 게 진짜 속내였을 것이다. 하염없이 임명이 미뤄지자 작년 11월 최씨는 자진 사퇴했다. 대통령 지지층은 환호했다. 윤 대통령의 강공이 먹혀든 게 뿌듯했고 ‘미운 털’ 최씨가 잘려 나간 것이 통쾌했다.

 

민주당은 “눈에는 눈” 보복에 나섰다. 과반 의석을 앞세워 자신들의 야당 몫 2명은 물론, 여당 몫 1명까지 국회 추천을 무산시켰다. 방통위 5인 상임위원 체제는 2인 체제로 쪼그라들었다. 행정법원은 “2인 체제는 하자가 있다”면서 2인 체제가 의결한 방문진 새 이사진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방문진이 인사권을 쥔 MBC 사장 교체가 뻐그러졌다.

 

최씨는 4월 총선에서 당선돼 방통위를 관할하는 국회 과방위원장 자리를 꿰찼다. 그래서 상임위원이 못 된 분풀이를 톡톡히 했다. 오죽 시달렸으면 방통위 직원들이 정신 질환 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언젠가 최씨 대신 방통위원 자리를 채울 야당 인사도 최씨 못지않을 것이다. 대통령 입장에서 야당 몫 방통위원 임명을 잠시 퇴짜 놓는 쾌감을 맛본 대가로 MBC의 야당 나팔수 역할을 연장시키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복지부 장관이 새로 임명될 때마다 “손대지 말라”는 충고를 듣는 금기 사항 중 하나가 의대 정원 문제다. 의사들의 반발이 워낙 거세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400명 증원 방침이 무산되는 것을 목격한 게 불과 4년 전이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가 “2000명 증원”을 발표했을 때 “괜찮을까” 우려했다.

 

2000명이라는 수치가 어떻게 나왔는지 모두 궁금했다. “이런 회의에서, 이런 논의를 거쳐 결론이 났다”는 과정이 밝혀지면 ‘2000명’에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 정부는 설명하지 못했다. 대통령 담화에서 “2035년까지 1만5000명이 부족하다. 의사 배출에 10년이 걸리기 때문에 2025년부터 2000명씩 늘려야 한다”고 밝힌 것이 전부다. 국민들은 “2000명은 대통령 머리에서 나온 수치”라고 믿게 됐다. 의정 갈등은 6개월째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당근도 채찍도 로드맵도 없다. 시간이 해결해 주길 기다릴 뿐.” 사태 초기 윤 정부 측 관계자에게 들은 말이다.

 

초급 장교와 부사관들의 이탈이 군(軍)의 큰 걱정거리다. 지난 한 해 동안 1만명 가깝게 군을 떠났다. 역대 최대 수치다. 초급 장교의 70%를 차지하는 ROTC 지원율은 해마다 급감해 정원의 절반도 못 채운다. 윤 대통령 대선 공약인 “사병 월급 200만원”이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초급 간부는 사병보다 복무 기간이 훨씬 긴데 월급마저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200만원’은 앞뒤 재보지 않고 불쑥 꺼내 든 수치였다. 그런데도 손본다는 얘기는 안 들린다. 누가 감히 대통령 공약에 토를 달겠는가.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어퍼컷 세리머니를 즐겨 했다. 어퍼컷은 온몸의 힘을 모아 상대 턱을 올려 치는 최후의 일격이다. 윤 대통령은 참모들이 결정을 못 하고 좌고우면하면 “그냥 질러”를 외친다고 한다. 결과 걱정은 나중에 하고 일단 밀어붙이라는 뜻이다.

 

대통령이 서 있는 국정 현장은 상대를 향해 KO 펀치를 날리는 복싱 링이 아니다. 수많은 이해 당사자가 모두 “손해 보지 않았다”고 느낄 수 있게 고차방정식을 풀어내야 한다. 국민의 특정 집단을 적으로 몰아 일시적으로 승리하면 그 후과를 치르게 마련이다.

 

심지어 복싱에서도 큰 펀치부터 휘두르며 덤비는 건 초짜들이다. 잽과 스트레이트를 날려가며 상대의 수비 태세를 먼저 흐트러뜨리는 것이 수순이다. 한 방에 때려눕히겠다고 날린 어퍼컷이 허공을 가르면 카운터펀치를 맞고 휘청거리게 된다. 무작정 지르고 본 ‘이종섭 호주 대사 임명’ ‘R&D 예산 대폭 삭감’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등이 어떤 뒤탈이 났는지 국민들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10.03 박정희의 마지막 국군의 날, 그날의 일기장엔

陸·海·空 모든 장비 北에 열세
주한 미군 완전 철수 일방 통보
朴 정권 71년부터 전시체제
79년 "역사상 첫 막강 국군"
재래식 역전하자 北核 새 위협
朴이라면 어떻게 돌파했을까

조선일보 1970년 6월 6일 자 1면 톱 제목은 하루 전 발생한 “해군 방송선 피랍”이었다. 이름이 방송선이지 어선단 보호 임무를 맡은 현역 해군 함정이었다. 그런데도 단 15분 교전만에 우리 승무원 20명 대부분이 사상된 상태에서 납치당했다. 120톤급 우리 함정은 최대 속력 12노트, 40mm 기관포인 반면, 250톤급 북한 함정은 최대 속력 25노트, 75mm 기관포였다. 애초에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여론은 들끓었다. “고기잡이 배도 아니고 어떻게 해군 함정이 끌려가느냐.” 해군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육군의 주력 탱크 M-4는 76mm포, 북한군의 T-54, T-55는 100mm포였다. 미국이 2급 동맹국에 주는 F-5는 북한의 최신예 미그 21의 적수가 아니었다. 6·25 이후 북한은 소련 현역군 수준으로 장비를 제공받은 반면, 이승만의 ‘북진 통일론’에 질린 미국은 2차대전 때 쓰던 퇴역 장비로 한국군을 무장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건군 76주년 국군의 날 시가 행진 세종대왕상 앞 관람 무대에서 지대지 미사일 현무-3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두 달여 뒤 애그뉴 미 부통령이 주한 미군 감군 협의차 방한했다. 김정렴 비서실장 회고록은 박정희 대통령 모습을 이렇게 기록했다. “2주일 동안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회담 준비에 온 힘을 쏟았다. 사색하고 메모하고, 다시 사색하고 메모를 수정했다.” 8월 25일 오전 10시에 시작된 회담은 예정된 2시간을 훌쩍 넘겨 오후 4시에 끝났다. 점심은 커피와 케이크로 대신했고 아무도 화장실에 가지 못했다. 다음 날도 청와대 조찬 형식으로 1시간 30분 동안 추가 회담이 열렸다. 그래서 “7사단 2만명 이상의 감군은 없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나 애그뉴는 한국을 출발한 기내에서 “5년 내 완전 철수가 기본 방침”이라고 전혀 다른 말을 했다. 보고를 받은 박 대통령은 충격 속에 침묵했다.

 

적은 버거웠고, 동맹은 못 미더웠다. 박 정권은 ‘자주국방’을 위한 전시체제로 재편됐다. 방위산업을 총괄하는 오원철 제2 경제수석이 1971년 임명되고, 국방과학연구소(ADD)는 총포, 탄약, 로켓 등 군사 장비별로 개발을 맡는 기구 개편을 했다. 오 전 수석 회고록 5권과 7권에는 ADD 연구원들이 기름 범벅 옷도 못 갈아 입고 밤샘 작업으로 병기를 개발해 나간 기록들이 담겨 있다. 과로와 사고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기도 했다. 1973년부터 국군의 날이 공휴일로 지정된 데는 이런 시대 상황이 작용했다.

 

1977년 6월 23일 창군 이래 최대 규모의 화력 시범 대회가 열렸다. 2000여 명 귀빈이 참석한 가운데 보병·전차·포병·공병 합동 공격이 선보였다. 71년 11월 80mm 박격포부터 77년 5월 한국형 장갑차까지 시기별로 개발된 20여 개 국산 무기가 전시됐다. “이제 미군이 떠나도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는 박 대통령 발언이 신문에 담겼다.

 

1978년 9월 26일 세계에서 7번째로 유도탄(미사일) 시험 발사에 성공한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북한보다 10년 늦게 방위산업에 착수한 한국이 북한을 앞질렀다”고 보도했다. 소련 국방부 기관지 ‘붉은 별’은 “한국의 유도탄 생산은 핵무기 생산의 예고”라는 제목으로 관련 보도를 했다. 70년대 말 극장 영화 상영 직전 대한뉴스에서 군사 장비 화력 시범이 나올 때마다, 고등학생이었던 필자는 “맨날 똑같은 타령”이라고 투덜댔다. 당시 실제 상황을 알고 나니 선배 세대들의 분투에 새삼 숙연해진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박 대통령은 1979년 10월 1일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국군의 날, 여의도 행사장에 동원된 장비 중 80% 이상이 국산이었다. 우리 역사상 이렇게 막강한 국군을 가져본 것은 처음이리라. 공산 침략 도배들과 혈투를 거듭하며 막강한 대군으로 성장했다.” 국가적 소명을 이뤄냈다는 뿌듯한 감회가 느껴진다. 비극적 최후를 맞기 25일 전이다.

 

10·26 대통령 시해에 이어 12·12 군사반란을 거치며 전두환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했다. 제2 경제수석실은 폐지됐다. ADD엔 숙청 바람이 불면서 미사일 개발 요원들이 대거 잘려 나갔다. 전두환 대통령이 “한국형 미사일은 엉터리다. 담당 팀을 해체시키라”고 지시했다(오원철 회고록)고 한다.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정통성 확보를 위해 미국 지지에 몸이 달았던 신군부와 한국의 핵·미사일 개발에 신경이 곤두섰던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고 짐작할 뿐이다.

 

70년대 초 3대1로 열세(영국 전략연구소)였던 남북 간 재래식 군사력은 완전히 역전됐지만, 대한민국 안보는 이제 북의 핵·미사일 도박이라는 새로운 위협을 맞고 있다. 박정희라면 이 사태를 어떻게 돌파하려 했을지 궁금해진다.

 

10.17 녹취록, 디올 백, 카톡 메시지… 다음엔 뭘까 겁난다

과대망상 브로커 明씨에게
"식견 탁월해 의존" 메시지
이렇게 뒤탈 낼지 몰랐나
수상한 인사들과 거듭 접촉
스트레스 끼친 국민에게
미안한 마음 조금도 없나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김건희 여사와 명태균 씨 관련 최재해 감사원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뉴시스

 

김건희 여사는 명태균씨에게 보낸 카톡 메시지에서 “철없이 떠드는 우리 오빠 용서해 주세요” “무식하면 원래 그래요” “오빠가 이해가 안 가더라고요. 지가 뭘 안다고”라고 썼다. 대통령실은 ‘철없는 오빠’는 대통령이 아니고 여사의 친오빠라고 했다.

 

솔직히 이 해명을 신뢰하지 않는다. 전후 맥락상 두 사람의 정무적 판단이 맞선 것 같은데, 명씨처럼 거물 행세하는 사람이 정치 경험이 없는 친오빠와 논쟁을 벌였을 것 같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실 말을 믿는 셈 치고 싶다. 그러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기 때문이다.

 

여사는 카톡에서 “명 선생님에게 완전히 의지하는 상황” “명 선생님의 식견이 가장 탁월하다고 장담합니다”라고 썼다. 명씨에 대한 최상급 평가이자 전적인 신뢰 표시다. 이 문자는 2021년 7월 말 무렵에 쓴 것이다.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국민의 힘에 입당할 것이냐 말 것이냐, 입당한다면 언제냐를 놓고 고민했다. 그 언저리 기사 데이터 베이스를 뒤져봐도 ‘윤석열 캠프’가 클린 히트를 날린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명씨가 도대체 어떤 가르침을 전했길래 여사가 그 식견에 감탄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명씨는 이준석 대표가 휴가로 당사를 비운 날 입당하라고 권했다고 했다. 자신이 윤 대통령 부부 귀를 잡고 있었다는 증거로 제시한 것이다. ‘당대표 패싱 입당’은 윤 전 총장의 ‘통 큰 사나이’ 이미지에 흠집을 낸 옹졸하고 해괴한 선택이었다.

 

명씨는 그동안 언론 인터뷰에서 구름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도사 같은 태도를 취했다. 자신이 대통령 부부를 “앉혀 놓고” “다 잡혀간다(감옥 간다)”고 겁까지 주며 훈계했다고 했다. 윤석열 정권이 자신에게 “공직을 제안하지 않았을 것 같냐”면서 제안한 주체는 “결정권자”라고 했다. 대통령이 직접 자리를 마련해 모시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한 역할을 했다는 취지다. 제갈공명 수준의 공훈을 세운 듯한 공치사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정부가 나를 담을 그릇이 못 돼서” 거절했다고 했다. 정치권을 30년 가까이 취재해 오면서 현역 대통령을 상대로 이렇게 방자한 언동을 하는 경우를 본 기억이 없다.

 

명씨는 서울 서초동 대통령 부부 사저를 들락거린 횟수를 기억 못 한다면서 “대여섯 번이면 가봤다고 얘기할 수 있냐”고 했다. 대선을 전후한 그 빡빡한 일정 속에서 수시로 맞아들였을 정도로 명씨를 평가했다는 뜻이다. “공을 많이 세우셨으니 대통령 부부와 맺은 친분을 밝혀도 된다”는 말을 대통령실 직원에게 전해 들었다고 주장했다. 용산은 이렇다 할 반박을 내놓지 않았다. 이번에 공개된 김 여사 카톡을 보니 명씨가 믿는 구석이 무엇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명씨 같은 ‘훈수꾼’들이 정치판을 어지럽히는 광경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선거 때마다 떴다방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이들은 선거 향방이 자신의 손바닥 위에 있는 양 떠벌린다. 대선 승부를 가른 ‘신의 한 수’에 대해 “내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열 명가량씩 나온다. 명씨는 그중에서도 체급이나 내공이 밑바닥 수준으로 보인다. 진짜 고수들은 명씨처럼 경박하게 입을 놀리지 않는다. 세상사 이치에 눈이 트인 사람이라면 명씨 같은 부류에게 놀아나지도 않는다.

 

여사가 정체도 불투명한 인사들과 엮이면서 문제를 일으켜 정권에 부담을 주고, 국민을 놀라게 한 게 벌써 몇 번째인가. 언론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매체 기자와 6개월에 걸쳐 50차례 통화 녹취록을 남겼는가 하면, 북한에 들락거리는 정체불명 목사에게 디올 백을 건네받았고, 이번엔 과대망상 정치 브로커를 받들어 모시는 카톡 메시지가 나왔다. 하나같이 대통령실 근처에 접근시켜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다. 여사가 이런 인물들을 높이 평가하고 속내를 털어놓고 뒤탈이 날 물증까지 남겼다는 사실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래놓고 ‘오빠’의 철없음과 무식을 개탄한 대목은 역설적이다. 여사가 난사해 놓은 문자와 녹취록이 산재해 있다는 소문이다. 그래서 다음엔 어디서 어떤 폭탄이 터질까 겁이 난다.

 

국민들이 언제까지 여사의 이런 처신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 대통령실이 2류, 3류들에게 농락당한 장면을 목격하면서 구정물을 함께 뒤집어쓴 느낌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어떤 입장인지 궁금해진다. 여전히 여사가 안쓰럽고, 문제 삼는 이들을 탓하고 있나. 국민에겐 조금도 미안한 마음이 안 드나.

 

10.31 이재명에 져주더라도 '연금 시한폭탄' 멈춰야

IMF "연금 놔두면 경제 파탄" 현 제도선 30년 후 기금 고갈
자식·손자 멱살 잡고 싸우며 "86 할배들 먹튀" 원망할 것
與野 모두 개혁 약속한 상태… 정부案 고집하다 실기할 수도

“폭증하는 연금 부채가 한국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 간다. 2050년부터 마이너스 성장이다.” 얼마 전 날아 든 IMF의 경고다. 보건복지부는 “하루 885억원씩 연금 부채가 늘어난다”고 했다. 2007년 노무현 정부가 발표했던 “매일 800억원씩 증가”보다 85억원 불어난 액수다.

 

국민연금은 현행 제도 그대로 가면 2056년에 기금이 모두 소진된다. 2057년부터는 연금 가입자가 소득의 28%(보험료)를 내야 한다. 2075년이 되면 36%로 부담이 더 커진다. 현재 내는 돈 9%의 무려 4배다. 은퇴 후 받는 돈(소득대체율)은 지금과 똑같이 40%인데도 그렇다.

 

왜 이런 불공평한 일이 벌어지나. 연금이 처음 도입될 때 가입 독려를 위해 ‘덜 내고 더 받는’ 구조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1988년 연금 출범 때 사회생활을 시작한 필자 같은 86세대들이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게 된다. 받는 돈이 낸 돈의 두 배라고 한다. 먼저 받는 사람들이 자기 몫 이상 챙기니 나중 받을 사람들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30년 후 기금이 바닥나면 그때부터 연금 가입 대상인 손자 세대들은 “안 내고 안 받겠다”며 거부할 것이다. 합리적인 선택이다. 반면 그때까지 연금을 붓고 은퇴하려는 자식 세대들은 “내가 낸 몫을 달라”고 아우성치게 된다. 그때까지 비교적 풍족한 연금을 받아 쓴 86 세대들은 빚더미에 파묻혀 내전을 벌이는 후손들로부터 “뻔뻔한 할배들”이라는 원망을 듣게 될지 모른다. 그때까지 생존해 있다면 말이다.

‘덜 내고 더 받는’ 구조로 출발한 원죄 때문에 발생하는 이 문제를 바로잡으려면 “더 내고 덜 받는” 개혁을 하는 수밖에 없다. 인기 없는 정책이지만 미래의 재앙을 막으려면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종합상담실. /뉴스1

 

국민연금은 1988년 출범 후 1998년과 2007년, 대략 10년 간격으로 두 차례 개혁을 했다. 2018년에도 담당 부처가 세 번째 개혁안을 마련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퇴짜를 놓았다. 자신의 지지율에 부담이 될까 봐 미래 세대가 맞게 될 고통을 외면했다. 문 대통령 특유의 무책임한 행태 중에서도 최악이었다.

 

정부는 앞장섰지만 좌절된 경우도 있다. 2007년 노무현 정부는 ‘내는 돈’ 9%를 12.9%로 올리는 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했는데 제1, 제2 야당이 반대 및 기권표를 던져서 1표 차로 부결시켰다. 그래서 ‘받는 돈’만 60%에서 40%로 낮추는 후속 방안이 통과됐다. 당초 안이 통과됐다면 현재 연금 상황은 훨씬 개선됐을 것이다.

 

연금 개혁이 성공하려면 집권층과 야당이 손발이 맞아야 한다는 뜻이다. 참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시나리오다. 그런데 놀랍게도 현재 그런 여건이 마련돼 있다.

 

윤석열 정부는 ‘내는 돈’ 13%, ‘받는 돈’ 42%를 기본 뼈대로 하고 인구 변동에 따라 연금 수급액을 자동 조정하는 장치를 추가한 개혁안을 발표해 놓은 상태다. 도망칠 대안 없이 단일안만 내놨는데 용기 있는 태도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지난 5월 21대 국회 막판에 ‘내는 돈’ 13%, ‘받는 돈’ 44%의 개혁안을 제시했다. 야당이 자발적으로 연금 개혁을 제시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재명 저격수’로 알려진 윤희숙 전 의원조차 “이 대표가 갑자기 대통령다워 보인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국민연금 ‘내는 돈’ 9%는 98년 이후 26년 동안 한 번도 올리지 못했다. 국민 반발이 두려워서다. 그런데 여야가 똑같이 13% 인상을 제시했으니 이것만으로 90% 합의가 이뤄진 셈이다. 통과시키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나머지 부분 절충은 곁가지다. 윤 정부 개혁안이 미래 적자를 큰 폭으로 줄일 수 있는 더 좋은 방안이지만 타협이 어렵다면 져주는 척 야당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시간을 끄는 것보다는 낫다. 하루라도 먼저 처리해서 885억원씩 늘어나는 부채 시한폭탄을 멈춰 세우는 것이 최선의 개혁이다.

 

윤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4대 개혁에 박차를 가하라”고 했다지만 현재의 허약한 지지 기반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은 연금 개혁밖에 없다. 그것마저 이번 정기국회가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이 대표 역시 연금 개혁에 보조를 맞춘다면 “저런 책임감이 있었느냐”고 눈을 비비고 이 대표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연금을 이대로 놔두면 86세대들만 혜택을 누리고 그 대가를 후손들이 치르게 된다. 86세대 대표격인 여야의 두 지도자가 손잡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결자해지’ 원칙에도 부합한다.

 

11.14 트럼프의 노벨상 집착, 우리 안보가 제물 될 순 없다

우크라·중동 전쟁 마무리로
노벨상 프로젝트 이미 가동
북핵 사기극 조커로 쓸 수도
분담금·무기 구매로 달래고
일본과 설득 공조 갖춰야
문재인식 자해 응원 걱정

▲<YONHAP PHOTO-5026> 북한 김정은 정상외교 화보에 실린 싱가포르 현지 신문 (서울=연합뉴스) 북한 외국문출판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외교 활동 장면을 모은 화보 '대외관계 발전의 새 시대를 펼치시어'를 12일 공개했다. 화보는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18년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을 소개하면서 당시 소식을 전한 싱가포르 신문 스트레이츠타임스 지면도 함께 실었다. 2021.5.12 [외국문출판사 화보 캡처. 재판매 및 DB금지] nkphoto@yna.co.kr/2021-05-12 14:58:06/ <저작권자 ⓒ 1980-202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미국 대통령들은 보통 첫 임기 4년의 절반쯤이 지났을 때 재선 캠페인에 시동을 건다. 트럼프는 달랐다. 첫 번째 대선을 치른 지 보름 만에 4년 후를 위한 선거 비용을 처음 지출했다. 2017년 1월 20일 취임식 당일 연방선거위원회(FEC)에 재선 캠페인 등록 서류를 제출했다. 임기 시작 열흘가량이 지난 2017년 2월부터 재선을 위한 첫 유세를 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성적이 매겨지는 시험 날짜가 잡히면 그때부터 안달하고 조바심 낸다. 주변에서 어떤 눈으로 보는지 신경도 쓰지 않는다.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는 트럼프에게 다음 대선은 없다. 4년 단임을 새로 시작하는 트럼프는 한편으로는 조기 레임덕, 또 한편으로는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겠다는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트럼프에게는 “내 취임식이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는 식의 구체적인 물증이 필요하다. 그 같은 인정 욕구를 만족시켜 줄 보증 수표는 노벨 평화상이다.

 

여태까지 노벨상을 받은 미국 대통령은 시어도어 루스벨트(1906), 우드로 윌슨(1919), 지미 카터(2002), 버락 오바마(2009)까지 모두 네 명이다. 트럼프도 받는다면 다섯 번째 손가락에 꼽힌다. 대략 50명 가까운 역대 대통령 중 상위 10%에 속한다는 최우등 상장을 손에 쥔다. 트럼프 취향에 딱 들어맞는다.

 

트럼프 1기 때 이미 노벨상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다.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트럼프는 아베 일본 총리와 한 통화에서 “나를 노벨상 후보로 추천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몇 달 후 기자들에게 “아베 총리가 나를 노벨상 후보로 추천했다”면서 일본이 보낸 추천서 사본 5장을 함께 공개했다. 자신의 청탁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는 “노벨상 위원회가 공정하다면 나에게 상을 줘야 한다”면서 “아무 업적도 없는 오바마에게 준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했다. “가짜 언론 매체들이 내가 노벨상 후보로 선정된 사실을 보도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기도 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지는 “트럼프의 노벨상 집착증은 열병(infatuation) 단계”라고 꼬집었다.

 

트럼프 2기에선들 그 지병이 어디로 가겠는가. 트럼프는 이번 대선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24시간 내에 종결시킬 수 있다”고 했다. 이스라엘 총리에게 “미 대통령 취임일인 내년 1월 20일 이전에 전쟁을 끝내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다. 노벨상을 받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을 밟아둔 것이다. 트럼프가 탁월한 중재 능력을 발휘해 ‘2개의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이룩한다면 노벨상을 받을 충분한 자격을 인정받는다.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고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중동 전쟁이 트럼프 뜻대로 흘러간다는 보장은 없다. 그럴 경우 트럼프는 ‘북핵 폐기 눈속임 쇼’라는 조커 카드를 꺼내들지 모른다. 트럼프가 지난 8월 인터뷰에서 “김정은은 절대적인 지도자다. 나는 그와 아주 잘 지냈다”고 한 것은 밑밥 깔아 두기였다.

 

대한민국 안보가 트럼프의 노벨상 평가 점수를 채워주는 제물로 바쳐져서는 안 될 일이다. 트럼프 2기의 외교·안보 라인이 강경파로 꾸려지고, 북·러 군사 밀착 국면인데 트럼프가 설마 그러겠냐고 방심하면 안 된다. 1기 때도 참모진은 안보 전문가들이었고, 트럼프와 김정은이 핵 단추 협박을 주고받던 와중에 싱가포르 탱고 쇼가 성사됐다.

 

전문가들은 두 방향에서 대비를 갖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트럼프는 반드시 자기 몫을 챙긴다. 어차피 줘야 한다면 ‘죽고 사는 문제’는 지키면서 ‘먹고 사는 문제’에서 대가를 지불할 각오를 해야 한다. 방위비 분담이나 무기 구입에서 적정한 액수와 조건을 먼저 제시하는 편이 낫다. 북핵을 인정하는 거래는 결코 평화에 기여하지 못하며, 그래서 노벨상에 도움이 안 된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일도 긴요하다. 우리와 안보적 이해를 공유하면서 우리보다 강한 대미 설득력을 갖춘 일본과 공조 체제를 다져야 한다. 싱가포르, 하노이 미·북 회담 때 트럼프 귀를 붙잡고 최악의 선택을 막는 역할을 한 것도 아베 일본 총리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군 일본과의 협력 분위기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한 가지 걱정거리는 “노벨상은 트럼프가 받고 우리는 평화를 챙기면 된다”며 북핵 사기극에 장단을 맞췄던 문재인 대통령의 국가적 자해극이 되풀이될 가능성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트럼프 대통령이 역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에 기여했던 노력이 계속되길 기대한다”고 한 최근 발언이 못내 찜찜하다.

 

11.28 서초동서 떨어지는 '공짜 감' 기대 접어라

두 번 거푸 예상 어긋난 판결
판사 1명에 흔들리는 정치판
선거법 판결에 與 쇄신 증발
위증 교사 무죄가 藥일 수도
노력 없는 횡재는 불행 예고편
國政 망치고 司法 기대면 안 돼

 ▲25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위증 교사 혐의 1심 재판 무죄 소식이 알려지자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 앞에 모인 시위대 반응은 엇갈렸다. 이 대표 지지자들은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고(왼쪽) “이재명 구속”을 외치던 반이재명 시위대는 조용해졌다. /뉴스1·박상훈 기자

 

오후 2시가 다가왔을 때 각자 예상하는 선고 형량을 주고받았다. 의원직 상실 기준인 벌금형 100만원을 전후해서 양쪽으로 의견이 갈렸다. 필자는 100만원을 살짝 넘기는 액수를 떠올렸다. 2심에서 100만원 안쪽으로 조정할 여지를 떠넘기는 선택을 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삼십 분이 흘렀을 무렵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 징역형이 나왔네. 1년에 집행유예 2년.” “되게 센데.” 대부분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열흘 후 다시 오후 2시. 이번엔 그다지 결과를 궁금해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위증 교사는 비교적 증거가 뚜렷했다. 지난해 이 대표에 대한 영장을 기각했던 판사도 “위증 교사는 혐의가 소명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야당도 위증 교사 쪽을 걱정해 왔다. 선거법에서 엄중한 판결이 나왔으니 징역형은 피하기 어렵고 집행유예가 따라붙느냐 마느냐가 관건이라고 짐작했다. 이번에도 놀라는 탄성이 터졌다. “위증은 유죄인데, 위증 교사는 무죄? 이렇게 될 수 있나?” “증언한 사람만 바보 만들었군.”

 

희한한 체험이었다. 국민적 관심사인데 현장을 볼 수 없었다. 결과가 언제 나올지도 알 수 없었다. 해외에서 벌어지는 국가대표 경기를 위성중계로 볼 수 없던 까마득한 시절, 뉴스 멘트로 최종 스코어만 접하던 기억을 되새김질했다. 스포츠는 대충 짐작했던 결과가 나오는데 판결은 지그재그로 예상을 비켜갔다. 두 판결을 지켜본 누군가가 “정말 종잡을 수 없다. 다이내믹 코리아”라고 했다.

 

제1 야당 대표가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를 판사 한 명이 결정해서 발표했다. 국민은 그걸 귀동냥해서 전해 들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30년 가까이 정치판을 관찰해 오면서 처음 보는 일이다. 공직을 맡은 사람은 유무죄를 가리기 앞서 기소만 돼도 일단 자리를 내려 놓곤 했다. 그걸 국민에 대한 예의로 여겼다. 대통령 하겠다는 꿈을 꾸는 사람은 검사의 수사선상에 오를 일을 하지도 않았다.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우리 정치에서 염치는 실종됐다. 제1 야당 대표는 재판정 네 곳을 들락거리며 다음 대선을 준비하고, 2심까지 실형을 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정치인이 총선 바람을 일으키며 제2 야당을 건설했다. 초현실적인 광경이다.

 

민주당은 용궁에서 간을 털리는 악몽을 꾸다 깨어났다. “대한민국 사법부는 사망했다”고 성토했던 입으로 열흘 만에 “판사님, 감사합니다”를 읊조렸다. 야당 정도 강도는 아니지만 여당도 반대 방향의 감정 기복을 겪었다. 로또 다섯 자리 번호까지 맞아서 대박 김치국부터 마셨는데 마지막 순간 삐끗했다.

 

노력 없이 얻는 횡재는 안 좋은 결말을 예고하는 법이다. 정치도 그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는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야당이 ‘문재인 민주당’과 ‘안철수 국민의당’으로 갈라지자 “어부지리로 180석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방심하며 각종 추태를 선보였다. 그 결과 질 수 없는 선거를 내주면서 내리막길에 접어들었고 끝내 탄핵에 이르렀다.

 

윤석열 정권 사람들은 출범 초부터 ‘이재명 사법 리스크’라는 조커를 손에 쥐고 있다며 여유를 부렸다. “수많은 혐의 중 몇 가지는 유죄를 피할 수 없다. 확정 판결이 늦춰질수록 오히려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재명만 쓰러뜨리면 민주당은 무력화된다, 언제라도 자신들이 원하는 판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윤 정권이 방만한 국정 운영으로 위기를 자초한 데는 이런 계산법도 한몫했다고 본다.

 

불과 얼마 전까지 여권은 바닥을 모르고 곤두박질치면서 엄청난 위기감에 휩싸였다. 국민 눈높이에는 못 미쳤지만 대통령은 대(對)국민 사과의 모양새를 취했고, 여당은 대통령에게 쇄신을 실천하라고 압박했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1심 징역형이 나오면서 여권의 절박함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런 점에서 위증 교사 선고는 여권 입장에서도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권 희망대로 이재명 대표의 두 혐의 모두 중형이 선고됐다면 여론은 “저쪽은 철저하게 심판받는데 왜 대통령 부인은 수사조차 안 받느냐”는 쪽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용산도 여당도 서초동에서 떨어지는 ‘공짜 감’ 기대를 접고 이달 초 국민에게 약속했던 쇄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제왕적 권력을 손에 쥔 집권 세력이 스스로 국민 지지를 얻지 못해서 상대방이 거꾸러지는 것만 기다린다면 그것만큼 한심스러운 일이 없다. “그래도 여(與)가 야(野)보다 낫다”는 말을 들으면 서초동에서 감이 저절로 굴러올 것이다.

 

12.12 尹, 지지층과 黨 부끄럽지 않게 탄핵·수사 임해야

탄핵 통한 진퇴 결심했다면 소신 찬반 투표 하게 도와야
무리한 계엄 지시 따라야 했던 軍 희생양 막는 노력도 필요
책임 회피 않는 당당한 자세가 상처 입힌 지지층에 대한 도리

윤석열 대통령은 5년 임기의 절반을 지내는 동안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꾸준히 허물어 왔다. 취임하자마자 30대 당 대표에 검증되지 않은 혐의를 뒤집어 씌워 축출하며 신세대 보수를 등돌리게 했고, 대선 직전 후보 단일화를 했던 파트너를 ‘정권의 적’으로 몰면서 자신을 당선시킨 선거 연합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지난 4월 총선 때는 민주당의 비명횡사 공천으로 조성된 집권당 다수 의석 전망을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의혹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 ▲의대 정원 2000명 대통령 담화로 이어지는 용산발 3대 악재 종합세트로 뒤엎어 버렸다. 험지 표밭을 4년 동안 갈아오면서 당선권에 들었던 여당 후보 30, 40명의 땀방울을 피눈물로 뒤바꿔 놨다.

 

거듭되는 대통령의 정치적 자해에 국민은 지칠 만큼 지쳤다. 더 이상 나빠질 게 뭐가 있겠냐 싶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그때까지는 전치 2, 3주의 경상에 불과했다. 12월 초 한밤중에 꿈인가 생시인가 눈과 의심을 의심케 하는 대통령의 계엄 포고는 회복 불능의 치명상을 입혔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진퇴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하야보다는 탄핵 쪽을 선택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자신의 계엄 선포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그 믿음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헌재에서 법리적으로 다퉈보겠다는 생각을 당연히 할 것이고 승소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도 청와대는 마지막 순간까지 “5대4 내지 4대5로 기각된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대통령의 직무 정지는 기정사실로 다가오고 있다. 속도 경쟁을 벌이는 국회의 탄핵과 수사기관의 구속 중 빠른 쪽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대통령 입장에선 자신이 임명권을 행사한 수사기관보다는 정치적 동료인 국회의 탄핵 절차를 통하는 편이 그나마 모양새가 나아 보인다.

 

검찰은 김용현 전 국방장관을 ‘내란 중요 임무 종사’ 혐의로 구속했다. 김 전 장관에게 내란을 지시한 ‘수괴’ 혐의를 대통령 몫으로 비워둔 것이다. 공수처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긴급체포 혹은 영장체포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아침 출근길에 청취한 라디오 시사프로는 수사기관이 대통령의 인신을 확보하는 시점이 내주 초가 될 것이라고 점쳤다.

 

11일 오후 현재 탄핵 소추안 표결 찬성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여당 의원은 5명이다. 가결에 필요한 8명에 바짝 다가섰고, 마음속에 결심을 굳힌 인원까지 합하면 이미 탄핵선을 넘었을지 모른다. 지난 주말 1차 표결에서 여당이 본회의장 집단퇴장으로 탄핵을 부결시키면서 “위헌적 계엄을 감싸는 것이냐”는 국민적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다음 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정치인 입장에선 엄청난 부담이다. 찬성표를 던질 경우 “대통령을 배신했다”는 지지층의 반발도 각오해야 한다. 대통령과 친윤 그룹이 “탄핵은 안 된다”고 막아선 가운데 탄핵안이 통과되면 여당은 찬성한 자와 반대한 자로 분열된다. 그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데 또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이번 주말 2차 투표는 의원 각자의 소신대로 찬성과 반대를 표시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한때 당의 어른이었던 대통령의 마지막 배려가 될 것이다.

 

계엄 수사에 뛰어든 검찰, 경찰, 공수처는 ‘대통령 사냥’에 혈안이 돼 있다. 수명 다한 권력의 피냄새를 맡은 들짐승들을 보는 듯하다. 대통령 고교 선배인 김 전 국방장관은 구속을 앞둔 구치소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다른 군 관계자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실현 불가능한 대통령 지시 때문에 희생양이 된 사람들이다. 대통령은 수사 과정에서 자신의 총체적 지휘 책임을 인정하는 가운데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감싸야 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대선을 앞두고 “나같이 깨끗한 사람은 불체포 특권이 필요없다”고 폐지 공약을 발표했었다. 그러나 작년 가을 자신에 대한 체포 영장이 국회에 날아들자 단식 투쟁 끝에 동료 의원들에게 “부결시켜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그 비루한 처신에 대한 실망감이 당내에서 30표 가까운 반란표를 부르며 체포동의안을 통과시키는 배경이 됐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진퇴가 걸린 갈림길에서 “역시 이재명과는 그릇이 달랐다”는 면모를 보여줬으면 한다. 그것이 자신 때문에 상처입은 지지층과 당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12.26 홍준표·한동훈·오세훈이 공존하는 보수여야 한다

"탄핵은 정권 헌납" 반대에
찬성파는 "민심 거역 못 해"
찬·반 사이 갈등하는 쪽도
탄핵보다 분열이 망하는 길
계엄 무리수도 '뺄셈 정치' 탓
보수 한 몸 되는지가 승부처

▲한동훈 오세훈 홍준표/뉴스1.뉴시스

 

2021년 11월 5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서 홍준표 후보는 윤석열 후보에게 6%p 차로 졌다.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10%p 앞섰지만 당원 투표에서 20%p 이상 뒤처진 결과였다. 홍 후보는 패배 원인을 “민심과 거꾸로 간 당심”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에게 표를 호소해야 하는 정당이 국민 정서와 반대로 갈 수 있느냐는 항변처럼 들렸다.

 

그때 자신에게 등을 돌렸던 당심이 못내 아쉬웠던 것일까. 요즘 홍준표 대구시장은 ‘민심과 거꾸로 간 당심’ 지킴이로 나섰다. 갤럽 조사에서 일반 국민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대해 찬성 75%, 반대 21%다. 국민의힘 지지층은 찬성 27%, 반대 66%로 저울추가 반대편에 놓였다. 홍 시장은 바로 이런 국민의힘 당심을 대변한다. 탄핵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을 “레밍(쥐)”이라고 부르며 “당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민심 쪽에 서는 선택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자마자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게엄에 반대한다”고 했다. 곧장 국회로 달려가 계엄 해제에 힘을 보탰다. 민주당보다도 동작이 빨랐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민심 흐름과도 보조를 맞췄다.

 

윤 대통령을 지키자는 골수 지지층에게 한 전 대표는 배신의 아이콘이다. 계엄 사태 이후 20일 넘게 광화문 감리교 빌딩 앞에서 벌어지는 집회에서 ‘살모사 한동훈’ ‘한동훈 밟아’라는 구호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국민의힘 다수파인 친윤 그룹은 이 정서를 업고 한동훈 대표 퇴진을 밀어붙였다. 계엄 반대로 반짝 상승했던 한 전 대표의 지지율은 다시 미미한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당심과 민심 사이에서 갈등했다. 계엄 사태 직후 오 시장은 “탄핵만은 피해야 한다”며 “대통령 2선 후퇴와 거국 내각 구성” 쪽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일주일 만에 “국민의힘이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고 입장을 바꿨다. 대통령이 국회의 계엄령 해제 표결을 막으려 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난 데다 “계엄은 정당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데 따른 태도 변화였다. 오 시장은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탄핵을 찬성할 걸” 하고 후회했다고 한다. 상당수 보수 지지층도 오 시장과 비슷한 심경 변화를 경험했을 것이다.

 

보수 진영에는 홍준표, 한동훈, 오세훈 세 갈래의 정서가 혼재해 있다. 한쪽은 “대통령을 탄핵하면 보수는 궤멸한다”고 했다. “대통령을 내쳐서 대선이 앞당겨지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정권을 헌납하는 꼴”이라는 주장이 그럴듯하게 들렸다. 또 다른 편은 “대통령 탄핵을 막으면 보수는 궤멸한다”는 정반대 주장을 폈다. “국민 75%가 찬성하는 탄핵에 맞서는 정당은 정치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는 논리도 반박이 불가능하다. 이렇게 팽팽하게 맞서니 둘 사이에서 번민하는 보수도 있게 마련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국회의 탄핵 소추는 불가피했다고 믿는 쪽이다. 대한민국 역사를 반 세기 전으로 돌리려 한 대통령에 대한 분노를 정치 셈법으로 헤쳐 나갈 수는 없다. 국민의힘이 더 버텨본 들 한 주일, 혹은 두 주일 차이였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아스팔트 광장 위에서 영하의 추위를 버티며 “탄핵 결사 저지”를 외치는 태극기 세력의 진정성도 존중한다. 탄핵에 대한 찬반 어느 쪽이 보수를 살리고 망치는 길인지 답을 내기는 어렵다. 다만 탄핵 찬반 의견 차이로 보수가 분열하면 망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킨 결정적 원인은 박근혜 탄핵이 아니라, 홍준표(24%) 안철수(21%) 유승민(7%) 세 후보가 반(反)문재인 표심 52%를 분열시킨 데 있었다.

 

따지고 보면 윤석열 대통령의 비극도 내 편을 하나하나 쳐나간 뺄셈 정치에서 비롯됐다. 지지 기반을 스스로 허물었으니 총선 참패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 결과 거대 야당에 무차별 탄핵과 예산 삭감으로 농락당하자 계엄이라는 무리수로 응수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친윤 그룹은 “(탄핵에 반대한) 90명끼리 똘똘 뭉치면 된다”면서 윤석열 몰락 코스를 따라가겠다고 한다. 그 목적지가 어디일지는 국민의힘 24%, 민주당 48% 더블 스코어로 벌어진 여론조사 결과가 예고해 주고 있다.

 

이미 헌법재판소로 넘어간 탄핵을 놓고 보수끼리 네가 옳으니 그르니 삿대질을 해본들 부질없는 일이다. “정권을 헌납할 수 없다”던 상대를 맞아 세 갈래 보수가 하나로 뭉칠 수 있느냐는 마지막 승부처만 남았다.

[김창균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