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上萬事 2024-08/
08.01경쟁률 '294만 대 1', 집 투기라는 한국병

▲최소 수억 원의 시세 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로또 청약'으로 청약 홈페이지 접속이 마비된 가운데 한국부동산원 청약 홈이 원활한 서비스 제공을 위해 지난 29일 청약 접수 중인 단지의 청약 홈 접수 마감 시간을 기존 17시 30분에서 23시까지 연장 운영했다. 또한 청약 접수 단지 중 동탄역 롯데캐슬(무순위) 청약 접수는 청약 접수일을 기존 29일에서 29~30일까지로 변경했다. 사진은 지난 30일 오전 청약 접수 중인 경기 화성시 오산동 동탄역 롯데캐슬 아파트의 모습. 2024.7.30/뉴스1
경기도 동탄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계약 취소된 전용면적 84㎡ 1가구의 무순위 청약에 294만여 명이 신청했다. 역대 최고의 경쟁률이다. 현재 시세보다 10억원 저렴한 2017년 분양가로 공급돼 이른바 ‘로또 아파트’로 불리면서 홈페이지 접속 장애가 빚어지고 청약 마감을 하루 늘리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서울 아파트 시장도 과열 기미가 뚜렷하다. 서초구 반포동의 84㎡ 아파트가 50억원에 중개 거래돼 ‘국민 평형’으로는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토지거래 허가 구역에서 빠진 규제의 허점을 틈타 ‘국민 평형 50억원’이라는 가공할 집값이 등장했다. 올 상반기 거래된 서울 아파트 5채 중 한 채꼴로 매매가가 15억원을 넘었다는 통계도 나왔다. 서울 집값만 놓고 보면 문재인 정부의 ‘미친 집값’이 되돌아온 것 같다.
‘로또 청약’은 집 구매에 관심 없던 사람까지 투기 심리를 부추겨 주택 매수에 뛰어들게 만든다. 분양가 상한제, 무순위 청약제 등 무주택자 주거 안정을 위해 도입한 각종 제도들이 지금은 오히려 투기 심리를 조장하는 장치가 되고 있다. 고무가에 공사비가 급등하는데 현실과 동떨어진 분양가 상한 규제가 신규 공급을 줄이고 이로 인한 공급 부족 우려로 집값이 오르는 악순한이 벌어진다. 동탄의 청약 광풍을 낳은 무순위 청약 제도는 전국 누구나 신청할 수 있는 제도로 느슨하게 운영되는데, 손보지도 않고 내버려두니 로또가 됐다. 그런데도 규제의 허점을 손보고 투기 심리 차단에 총력전을 벌여야 할 국토교통부 장관은 집값 상승세가 “지엽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안이한 인식을 보이고 있다. 전국에서 무주택자 비율이 가장 높은 서울 집값이 공급 부족 우려로 치솟고, 그로 인해 확대되는 자산 격차에 서울의 무주택자도 지방 거주자도 절망하는 현실은 결코 ‘지엽적’ 현상이 아니다. 경쟁률 ‘294만대1′이 상징하는 투기 심리는 정권이 사활을 걸고 잡아야 할 심각한 ‘한국병’이다.
조선일보 사설
08-01 [속보]시청역 참사 운전자 ‘99% 풀액셀’… 시속 107㎞로 행인 들이받아

▲참사현장에 ‘우회전 금지’ 안내판 ‘시청역 역주행 사고’ 발생 한 달을 맞은 1일 사고 현장인 서울 중구 세종대로 18길 일방통행 도로에 ‘우회전 금지’ 안내판이 서 있다. 문호남 기자
■ 경찰, 최종 수사결과 발표
급발진 아닌 운전자 ‘조작미숙’
신발 바닥서도 액셀 문양 나와
16명의 사상자를 낸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 한 달 만인 1일 경찰이 사고 원인을 ‘운전 조작 미숙’으로 결론 내고 운전자 차모(68) 씨를 검찰에 넘겼다. 차 씨는 급발진을 주장했지만, 경찰 조사 결과 차 씨는 사고 당시 제동 페달(브레이크)을 밟지 않았고 오히려 가속 페달(액셀러레이터)을 ‘풀 액셀’ 수준으로 밟아 시속 107㎞로 피해자들을 들이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류재혁(사진) 서울 남대문경찰서장은 이날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 감정 결과, 주변 CCTV와 블랙박스의 영상 자료, 참고인 진술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피의자의 주장과는 달리 운전 조작 미숙으로 확인된다”며 차 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송치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국과수의 사고 차량 감정 결과 기계적 결함은 발견되지 않았고, 사고기록장치(EDR) 기록분석에 따르면 제동 페달은 사고 발생 5.0초 전부터 사고 발생 시(0.0초)까지 작동되지 않았다. CCTV 영상과 목격 차량 블랙박스 영상에서도 주행 중 제동 등이 점등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가속 페달의 변위량은 최대 99%에서 0%까지 차 씨가 밟았다 뗐다를 반복한 것으로 기록됐다. 변위량은 차량의 가속 정도를 퍼센트(%)로 변환해 나타내는 기록으로, 99%는 ‘풀 액셀’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사고 당시 차량의 최고 속력은 시속 107㎞에 이른다. 류 서장은 “피해자와 충돌했을 때가 최고 속도였다”고 설명했다. 사고 당시 차 씨가 오른발에 신고 있던 신발 바닥에도 가속 페달과 일치하는 정형 문양이 발견됐다. 차량은 마지막으로 BMW 차량을 추돌한 뒤에야 차 씨가 제동 페달을 밟으면서 멈춰선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차 씨가 사고 당시 인도로 돌진한 이유에 대해 “보행자 보호용 울타리를 충격하면 속도가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으로 주행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국과수 감정 결과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면서도 “그래도 난 (제동 페달을) 밟았다”고 반응했다고 한다. 경찰은 “차 씨와 피해자 측의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으며, 유족 전원이 차 씨의 처벌을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차 씨는 지난달 1일 오후 9시 26분쯤 제네시스 G80 차량을 몰고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지하주차장에서 나오며 급가속해 일방통행로를 역주행, 9명을 숨지게 하고 7명을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다. 갈비뼈 골절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온 차 씨는 30일 구속됐다.
차 씨가 사고 직후부터 차량이 급발진을 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하면서, 실제 급발진이 있었는지 혹은 운전자가 차량을 잘못 조작했는지를 규명하는 작업이 수사의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차 씨는 세 차례에 걸친 피의자 신문에서 “주차장 출구 약 7~8m 전에 이르러 ‘우두두’ 하는 소리와 함께 브레이크가 딱딱해져 밟히지 않았다”며 차량 결함을 주장해 왔다.
문화일보 조재연·전수한 기자
08-01 ‘장검 살인’ 30대 男, 범행 전 접수된 신고만 7건…은평구 뿐 아니라 종로구서도

▲지난 30일 사건 현장의 모습. 전수한 기자
대기업 퇴사 후 장검 구입, 이후 경찰 신고
장검 들고 놀이터서 아이들에게 “칼싸움 하자”
본인 신고 3건·경찰 신고 2건·주민 신고 2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을 장검으로 살해한 30대 남성 A씨가 범행 전 무려 7번의 경찰 신고를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1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1월 이후 A씨와 관련해 서울 서부경찰서에는 총 7건의 112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 중 도검과 관련한 내용은 없었지만 “행동이 이상하다”는 취지의 내용이 주를 이뤘다.
대기업에 다니던 A씨는 지난해 말 상사와 갈등으로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 시점에 일본도를 구입해 지난 1월 ‘장식용’으로 경찰에 소지 승인을 받았다. A씨가 일본도를 소유한 이후부터 그에 대한 경찰 신고가 시작된 셈이다.
아파트 주민들에 따르면 A씨는 범행 전까지 아파트 내에서 일본도를 가지고 다니며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에게 ‘칼싸움을 하자’고 제안하는 등 이상 행동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이한 점은 신고가 접수된 지역이 다양했다는 것이다. A씨가 거주하는 서울 은평구뿐만 아니라 종로구에서도 그와 관련한 신고가 들어왔다.
신고 내용은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 “시끄럽게 소란 부리며 시비를 건다” 등이었다.
경찰로 접수된 112 신고는 통상 1년간 보관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A씨와 관련해 신고가 7건보다 더 많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찰은 이날 A씨의 마약 투약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압수수색 영장과 함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숨진 40대 남성 피해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전신 다발성 자절창(몸 여러 곳에 칼로 베인 상처가 많음)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가 휘두른 일본도에 찔리고 베인 상처로 사망했다는 뜻이다.
한편 피해자 B씨는 산책 과정에서 A씨와 마주친 적이 있을 뿐, 개인적 친분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잠깐 담배를 피우러 아파트 입구에 나왔다가 변을 당한 B씨는 가구 회사 직원으로 초등학교 3학년과 4세 두 아들을 둔 가장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문화일보 박세영 기자
08.01 대법 “나눔의집, 후원금 돌려줘야”…반환 소송 막판 뒤집었다
위안부 피해자 지원시설인 나눔의집 후원자들에게 후원금을 돌려줘야 한다는 최종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는 1일 위안부 할머니 후원금 반환소송 대책모임(이하 대책모임)이 나눔의집 운영사인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집을 상대로 낸 후원금 반환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위안부 할머니’ 후원 목적과 사용 불일치…취소 사유”

▲지난해 5월 8일 오후 경기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집에서 열린 '2023 어버이날 행사 및 박옥선 어르신 상수연 잔치'에서 이용수, 박옥선, 강일출, 이옥선 어르신들과 나눔의집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대법원은 “나눔의집이 표시하고 후원자가 인식했던 후원 계약의 목적과 후원금의 실제 사용 현황 사이에 착오로 평가할 만한 불일치가 존재한다”며 “후원자가 착오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후원 계약 체결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률 행위 내용 중요 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취소할 수 있다’는 민법 109조에 해당한다는 취지다.
재판부가 말한 착오는 ‘후원의 목적’이다. 나눔의집은 후원금을 받으며 ①위안부 할머니 복지 ②위안부 역사관 건립 ③국제평화인권센터 건립 등 각 목적에 쓰일 계좌를 따로 기재했고 원고는 ①위안부 할머니 복지 계좌에 후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후원금이 특정 건물 건립 용도로 법인에 유보돼 있다”며 “원고의 인식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소송은 2020년 윤미향 전 의원이 이사장을 맡았던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회계 부정 논란으로 시작됐다. 경기 광주에 있는 나눔의집은 정의연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돕는 양대 단체 중 한 곳이다. 정의연 사태 직후 나눔의집 직원들이 국민권익위 등에 나눔의집 운영진 부정 운영 의혹을 제기해 사건이 공론화했다.
사건을 조사한 경기도 민관합동조사단은 2020년 8월 “2015∼2019년 후원금 89억원 중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생활하고 있는 나눔의집으로 보낸 금액은 2억원(2.3%)에 불과했다”며 “법인과 시설의 회계처리와 운영이 분리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국가인권위도 같은 해 10월 “나눔의집에서 다수의 인권침해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런 정황을 바탕으로 대책모임 소속 50여명이 나눔의집과 정의연을 상대로 “할머니들을 위해 사용하지 않을 거면서 후원자를 기망해 후원금을 모집했다”며 9000만원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다만 정의연에 대한 소송은 1심 도중 윤 전 의원의 형사 사건(횡령·배임 혐의) 재판이 별도로 진행 중인 관계로 분리돼 나눔의집 상대 원고만 23명 남았다.
2022년 12월 1심 재판부는 “나눔의집이 후원금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에 사용할 의사가 없었는데도 원고를 기망하거나 착오에 빠뜨려 후원 계약을 체결하도록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후원자가 나눔의집이라는 시설에만 쓰이도록 목적을 한정해서 후원한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나눔의집이 아닌 곳에서 생활하는 위안부 피해자 지원도 사회복지활동 영역에 해당한다”는 차원이다.

▲윤미향 전 의원. 뉴스1
또 재판부는 ‘후원금 89억원 중 2억원(2.3%)만 시설에 지출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나눔의집은 유보된 후원금을 필요한 경우 언제든지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하여 사용할 계획임을 밝혔다”는 점도 짚었다. 지난해 11월 2심 재판부 역시 “1심 판결이 정당하다”며 이를 유지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같은 원심을 뒤집은 최종 판단에 대해 “후원자가 인식한 계약의 목적과 후원금의 실제 사용 현황 사이에 착오로 평가할 만한 정도의 불일치가 존재하는 경우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행위 당시 장래에 대한 인식이 실제 사실과 다르다면 착오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앙일보 김준영 기자
08-02 무노동·무임금 원칙 중요성 일깨운 전삼노 파업 중단
삼성전자 최대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25일 간의 총파업을 1일 끝냈다. 노조 측은 복귀하되 장기전으로 쟁의를 계속하겠다고 한다. 진작에 예고됐던 결말이다. 전삼노는 조합원에 임금을 0.5%포인트 더 올리는 인상안 등 무리한 요구로 파업 동력을 잃어왔던 터다. 지난달 8일 총파업 결의대회 때 6500명(노조 추산)이던 참여 인원이 불과 사흘 뒤 350여 명으로 급감한 것이 이를 보여준다. 더구나 전삼노는 파업 기간 중의 임금 손실 보전 명목으로 200만 원 상당의 현금성 복지 포인트까지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회사 측이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거부해 무산됐다. 옳은 대응이다.
전삼노의 사내 입지가 쪼그라들고 있는 것도 파업 중단의 배경으로 꼽힌다. 삼성전자의 5개 노조 중 한 곳은 파업에 문제를 제기해 전삼노가 대표 노조 지위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사내에서조차 공감을 얻지 못하니 파업을 더 끌고 가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가 올 2분기 깜짝 실적으로 정상을 회복했지만 낙관할 상황이 아니다. 반도체를 담당하는 전영현 부회장이 1일 사내 게시판에 부처 간 소통 부족과 비현실적 계획 남발 등 안이한 사내 문화의 개선을 촉구한 배경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지않아도 경제 6단체와 업종별 단체들이, 파업 근로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사실상 막아 불법 파업을 조장하는 노란봉투법에 강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입법 저지를 호소하는 상황이다. 이번 일은 무노동 무임금 원칙의 중요성을 거듭 일깨운다. 노조의 무리한 투쟁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인식과 관행이 정착돼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8-05 MZ세대 에너지 보여주는 파리올림픽과 대한민국 저력
파리올림픽에서 보여주는 한국 선수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선전’은 메달 숫자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 미래 에너지도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욱 각별하다. 이번 선수단은 대부분 MZ세대(1990년∼2010년생)로 구성됐다. 당초 금메달 5개 정도를 예상했으나 5일 오전 현재 금 10개, 은 7개, 동 7개로 종합 6위에 올라 있으며, 최고 성적을 거둔 2012년 런던올림픽(금메달 13개 종합 순위 5위)도 넘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성세대는 대개 신세대를 불안하게 바라보지만, MZ세대 선수들의 역량과 자세는 글로벌 일류임을 새삼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하다.
한국 선수들이 선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공정 경쟁’이다. 양궁은 국가대표 선발 과정이 올림픽보다 어렵다고 할 정도로 엄정하다. 사격 대표팀은 선발 시스템을 혁신적으로 개선한 결과 신예 선수를 대거 발탁했다. 기득권과 연줄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연습한다. 협회와 기업들은 최첨단 훈련이 가능하도록 후원한다. 후회 없는 경기를 펼친 뒤 결과에 흔쾌히 승복한다.
MZ 선수들은 과정을 즐기고 결과엔 당당했다. 17세 총잡이 반효진은 10m 여자 공기소총 결선에서 “하늘이 준 기회로 생각하고 쐈다”고 했다. 펜싱 사브르 대표 도경동(25)은 금메달을 목에 건 뒤 “제가 어떤 놈인지 보여줘서 기쁘다”고 했다. 여자 탁구 신유빈(20)은 3일 동메달 결정전에서 접전 끝에 졌지만, 경쟁 선수를 안아주며 축하했다. 아쉬운 반칙패로 통한의 은메달에 머문 유도 허미미(22)는 “경기 일부니 어쩔 수 없다”며 환한 표정을 보였다. 기대에 못 미친 수영 대표팀 간판 황선우(21)도 “다시 준비할 힘을 얻었다”며 내일을 기약했다. 이들의 이런 자세야말로 한국 사회의 저력이며 도약을 위한 동력이다.
문화일보 사설
08-05 국민 불안 키우는 전기차 지하주차장 화재, 대책 뭔가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의 여파가 일파만파 양상이다. 전국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대부분 지하에 주차장을 두고 있는데, 막상 화재가 발생하면 속수무책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난 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벤츠 전기차 1대가 폭발해 주변 차량 140여 대가 불타거나 그슬렸고 주민 120여 명이 대피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평일 아침 시간대여서 신속한 대응이 가능했지만, 심야 시간대였다면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이런 불안이 커지면서 전기차의 지하 주차장 진입을 둘러싼 충돌이 발생하고, 충전 구역을 지상으로 옮기자는 요구도 나온다.
뾰쪽한 대책이 없다는 게 더 근원적 문제다. 문제의 전기차는 화재 발생 사흘 전부터 주차돼 있었다고 하는 등 화재 원인조차 불확실해 불안은 더욱 커진다. 23명의 생명을 앗아간 지난 6월 경기 화성의 배터리 제조 공장 화재 사건에서도 보듯, 전기차에 사용되는 리튬이온배터리는 불이 나면 순식간에 온도가 1000도 이상 치솟고, 기존 분말소화기로는 꺼지지도 않는다. 이번 인천 사고 진화에도 8시간 20분이나 걸렸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은 소방차 진입이 어렵고, 이동식 수조 역시 무용지물이다.
장시간 화재에 노출된 아파트는 철근 구조물 자체도 영향을 받는다. 단전·단수 차원을 넘어 정밀한 안전 진단도 필요하다. 정부 당국과 유관 분야 전문가들이 장단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건설사 및 주민들도 지혜를 모아야 한다. 당장은 지하의 전기차 주차장 및 충전소에 감시 센서나 CCTV를 확충하는 등 안전 강화 조치도 필요하다. 근본적으론 화재에 취약한 전기차 배터리의 안전성을 높이고, 금속화재 전용 소화기도 개발해 보급해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8-05 의대 증원 넘어 인재 쏠림 해결할 때다
내년도 의대 증원 불가역 상황
필수·지역의료 회생 기반 마련
개혁 필요에도 의대 쏠림 문제
초중고대학 의대 광풍 휩쓸어
과학기술 인재 부족·유출 심각
국가 인재육성 종합대책 시급
지난 2월 6일 의대 2000명 증원 발표로 시작된 윤석열 정부의 의료 개혁이 반환점을 돌았다. 2025학년도 1500명에 달하는 의대 증원은 ‘불가역’적 상황이 됐다. 1997년 이후 27년 만에 처음으로 증원이 이뤄진 것이다. 의사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역대 어느 정부도 성공하지 못한 의대 증원을 관철한 것만으로도 일단 성공이다. 증원을 통한 의사 공급 확대, 필수·지역 의료 살리기를 위한 필요조건은 구축됐다.
2월 말 의대 증원에 반발해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 1만여 명과 동맹 휴학으로 강의실을 떠난 의대생 1만8000여 명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의대 교수들과 대한의사협회도 여전히 정부에 반기를 들고 있다. 현 단계 의료 개혁을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직 전공의들은 온갖 유화책에도 요지부동이다. 의대생들은 의사 국가고시를 거부했다. 당장 내년도 전문의 배출에 차질이 생기고, 내년에 7000명이 넘는 의대 1학년 수업은 부실 교육 우려가 적지 않다. 수술·외래 감소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상급종합병원들을 중증 치료에 주력하는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바꾸려면 건강보험 재정뿐 아니라 막대한 예산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급격한 의대 증원에 따른 이런 후유증에도 의료 개혁이라는 큰 방향을 되돌릴 수는 없다.
더 큰 문제가 의대 증원과 함께 배태됐다. 인재들이 의대로 쏠리는 ‘망국병’ 증세가 악화하고 있다. ‘초등생 의대반’의 조기 교육 열풍이 넘친다. 이는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강남구에 유입되는 초등생 숫자 1위라는 결과를 낳았다. 의대 지역인재 전형 확대에 따라 충청권 등 지방 유학 바람도 분다. 종로학원은 최근 2024학년도 자연계열 수시모집 내신 합격 점수 1.06등급 이내 125명 전원이 의약학 계열에 진학했다고 발표했다. 의대 쏠림은 기초과학 등 이공계 인력 유출을 부추기고 있다. 대기업이 지원하는 대학 첨단 반도체 학과 등에서는 의대에 중복 합격한 학생들이 이탈했다. 올해 서울대 첨단융합학부, 자연과학대 등 이공계 1학년 학생 248명(1학년 전체의 7.2%)은 반수를 하기 위해 휴학했다. 카이스트 등 이공계 특성화대 신입생들도 의대 진학을 위해 줄줄이 등록을 포기했다. 전방위적인 인재 쏠림으로 불릴 만하다. 환자 목숨을 담보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는 의사들의 행태를 비판하면서도 내 자녀는 의대를 보내겠다는 이중 심리가 만연한 탓이다.
의대 광풍으로 반도체, 인공지능(AI), 2차전지 등 첨단 기술과 기초과학 인재 부족 문제 또한 심각하다. 지난 6월 열린 한 토론회에서 2028년까지 과학기술 분야 신규 인력이 4만7000명 부족할 것이라는 분석 결과도 제시됐다. 대기업 임원들은 첨단 분야 이공계 인력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호소한다. 그나마 있는 인력도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파격적인 연봉 제안에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 올해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여파로 젊은 과학자들의 연구비 신청 탈락이 속출하면서 이공계 인재들의 절망감은 깊어졌다. 이공계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저하, 미래에 대한 불안감, 양질의 일자리 부족으로 이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의사 면허증만 있으면 정년 없이 평생을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비교 우위가 보이는데 이공계 인재들에게 사명 의식을 갖고 연구해 달라고 설득하기도 쉽지 않다.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는 “인재 불균형을 극단적으로 심화시키는 재앙적 사태의 시작”이라고 경고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최근 한 간담회에서 4대(교육·노동·연금·의료) 개혁 중 우리 사회의 경제·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교육 개혁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극심한 경쟁 압력 완화, 사교육비 절감, 창의력을 배양할 교육 시스템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국가 존망과 관련된 미래 경쟁력을 훼손하는, ‘저출생·고령화급’ 쓰나미와 다름없는 인재 불균형 문제를 풀기 위한 교육부의 절실함은 보이지 않는다. 관련 부처들이 종합 대책을 내놓은 적도 없다. 첨단 기술과 과학 인재들에게 최고 대우를 해주는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공계 살리기를 포함한 범국가 인재 육성 정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문화일보
08-05 역대급 습도·최장 열대야… ‘최악폭염 2018년’ 능가
■ ‘질식’ 할 것 같은 무더위
6년전보다 최저기온 0.7도 높고
습도는 6%P·열대야 일수 2일↑
한반도 덮은 고기압 2개 영향권
서울 15일까지 열대야 이어질듯

전국이 연일 폭염과 열대야에 시달리는 가운데 올해는 역대급 더위로 평가받는 2018년과 비교해 최저기온·습도 등이 모두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여름은 전국의 낮 최고기온이 높은 추세였지만, 올해는 높은 최저기온이 밤사이 열대야로 이어지면서 하루 24시간 ‘빈틈없는 더위’가 계속되는 양상이다.
5일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전국 평균 최고기온은 29.9도로, 2018년(31.5도)에 비해 낮았지만, 평균 최저기온(23.3도)과 습도(83%)는 2018년에 비해 0.7도와 6%포인트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여름 장마가 평년보다 이른 7월 11일 종료되며 무더위가 일찍 찾아왔지만 그만큼 습도는 낮았다. 반면 올해는 밤사이 기온이 떨어지지 않고 최저기온이 높게 유지되고 있으며 습도까지 높아 체감온도가 더 높다. 최저기온이 높아 하루 내내 무더위를 느끼고, 습도까지 높아 불쾌지수가 더 상승하는, 짜증 나는 ‘찜통더위’가 하루 종일 이어지는 셈이다.
올해 폭염은 2018년과 비슷한 기압 배치로 시작되며 당시의 무더위와 비교되고 있다. 2018년에도 티베트 고기압과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 상공에 중첩됐고 고온다습한 공기가 남서쪽에서 지속적으로 유입됐다. 두 개의 고기압이 강하게 자리 잡으며 북쪽의 차고 건조한 고기압이 내려올 틈을 막으며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는 양상이 같은 것이다.
기상청은 4일 밤과 이날 오전 사이 서울의 최저기온은 27.5도(오전 6시)로 15일 연속 열대야 현상이 발생했으며, 강릉 지역은 26.5도를 기록하며 열대야 연속 일수 역대 1위(17일)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기상청 중기예보에 따르면 오는 15일까지 서울의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을 유지할 것으로 예보됐는데, 서울 지역 열대야 연속 일수 기록(26일, 2018년)을 넘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2018년 8월 1일 서울 기온이 역대 최고치인 39.6도까지 치솟기도 했지만, 올해는 높은 최저기온이 유지되며 밤사이 기온이 떨어지지 않고 열대야가 이어지는 양상이다. 8월 1일 기준 올해 전국의 평균 열대야 일수는 9.9일로 역대 최고치(기간 기준)이며, 2018년 7.7일에 비해 2.2일 많다.
기상청은 중첩된 기압계 배치가 8월 중순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변수는 남쪽에서 올라올 수 있는 열대저압부(태풍)가 기압계 배치를 흔들어 변화를 주거나 중첩된 고기압 사이 틈으로 북쪽의 찬 공기가 내려오는 것이다. 다만 우진규 기상청 통보관은 “남쪽의 열대저압부와 북쪽의 차고 건조한 고기압 등이 발생하면 기압계가 변하겠지만,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오는 7일까지 수도권과 충청·강원 지역 낮 최고기온은 34∼35도, 남부 지역은 최고 36도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보했다. 특히 경기 남부와 내륙 지역을 중심으로 7일까지 대기 불안정에 따른 돌풍과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최대 40∼60㎜ 정도 내릴 수 있다.
정철순 기자 csjeong1101@munhwa.com
08-05 전기차 화재에 지하 주차장 쑥대밭… 시한폭탄 안은 아파트

▲경찰과 소방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2일 오전 인천 서구 청라동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불이 난 차량을 감식 하고 있다. 전날 오전 6시15분께 해당 아파트 지하 1층에서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나 8시간 20분 만에 진화됐다. 이 화재로 지하주차장에 있던 차량 140여대가 피해를 입었다. 뉴시스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벤츠 전기차 1대가 폭발해 주변에 주차된 차량 140여 대가 불에 탔고 주민 120여 명이 대피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주차장 천장 배관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등 건물도 무사하지 못했다. 그 여파로 4일째 아파트 5개 동 480여 가구의 전기와 수도 공급이 끊기면서 무더위 속에 주민들이 인근 행정복지센터에서 이재민 생활을 하고 있다. 1대의 전기차 화재로 대형 사고나 자연 재난 상황에 버금가는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이번 화재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처럼 폐쇄적인 공간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줬다.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화재 발생 빈도가 높은 것은 아니지만 한 번 불이 붙으면 ‘열폭주’ 현상이 일어나 대형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전기차에 사용되는 리튬이온배터리는 불이 나면 순식간에 온도가 1000도까지 오르고, 산소와 가연성 가스가 배출돼 진화가 어렵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은 층고가 낮고, 차들이 밀집한 비좁은 공간이다. 이번 화재 때도 소방차가 진입할 수 없었고, 불이 난 전기차를 물에 담그는 이동식 수조도 펼칠 수 없어 무용지물이었다. 이 때문에 불을 완전히 끄기까지 8시간이 넘게 걸렸다. 환기가 되지 않는 지하 주차장 특성상 전기차 화재 시 배출되는 가연성 가스 등이 잘 빠져나가지 않는 것도 문제다.
우리나라 도심지 약 70%가 아파트이고 지상 주차장을 없애는 추세다. 언제든지 청라 아파트 사고와 비슷한 지하 주차장 내 전기차 화재가 재발할 수 있다. 자칫 대규모 인명 피해도 우려된다. 하지만 소방당국은 가능하면 지상 주차장에 충전기를 설치하라고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권고를 하고 있을 뿐 지하 주차장 안전 규제는 거의 공백인 상태다. 미국화재예방협회(NFPA) 등 해외에서는 충전 시설을 전기 케이블 등 위험 시설과는 충분한 거리를 두고 설치하도록 했고, 지하 환기 시설과 단열재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등 꼼꼼히 규제하고 있다.
전기차 보급 속도가 빨라지면서 지난해 전기차 화재가 72건으로 2021년(24건)에 비해 3배 늘었다. 전기차 보급에 속도를 내느라 안전은 뒷전이었던 것은 아닌가. 불이 난 전기차에 덮어 산소를 차단하는 질식소화덮개나 이동식 수조 등 전기차에 맞는 화재 진압 장비 보급도 서둘러야 한다.
동아일보 사설
08-06 마약수사청 시급성 보여준 ‘SKY 마약 동아리’ 충격
마약 확산이 임계점을 넘었다는 우려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번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이른바 SKY대학) 학생 등도 포함된 동아리에서 마약을 유통하고 집단 투약하다 적발돼 충격을 더하고 있다. 서울남부지검은 5일 수도권 지역 13개 대학의 300여 명으로 구성된 모임 회원 중 6명을 마약 투약 혐의로 기소하고, 8명에 대해선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 이런 상황은 마약이 우리 사회 일상 곳곳에 침투했음을 새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연세대를 졸업한 뒤 카이스트 대학원에 재학 중인 A 씨는 대마로 시작해 케타민·필로폰 등 점차 중독성 강한 마약을 접하게 하고, 텔레그램과 가상화폐로 마약을 구입해 팔았다고 한다. 회원 중에는 로스쿨이나 의대·약대 준비생도 있으며, 유통 및 투약 수법도 다양하다. 마약 사범을 최대한 엄단함으로써 일벌백계 효과를 노려야 한다. 이번 경우엔 범죄단체 조직죄 적용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검거된 마약류 사범은 2만7611명으로 2022년 대비 50% 급증했다. 문재인 정부 5년을 거치면서 마약이 급속히 퍼졌지만, 검수완박 여파로 검찰의 마약범죄 수사 권한은 위축됐다. 윤석열 정부 들어 간신히 복원됐지만, 역부족이다. 현재 마약 수사는 검찰, 경찰, 관세청 등으로 나뉘어 있다. 정부 조직 신설이 만능은 아니지만, 이젠 미국 마약단속국(DEA) 같은 컨트롤타워를 설치해 단속과 처벌은 물론 예방·교육 등의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게 해야 할 때다. 여야에서 마약수사청 공약도 제시된 바 있다.
문화일보 사설
08-09 올림픽 최다 금메달 쾌거, 21세기형 도전 정신 보여줬다
2024 파리올림픽에서 보여준 대한민국 선수들의 선전은 무더위와 무한 정쟁에 지친 국민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금메달 5개를 목표로 최소 규모 선수단(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이후)을 파견했고, 당초 국민 관심이 시들해 각계에서 관심을 호소했어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9일 오전 현재 벌써 역대 최다 금메달 타이 기록을 세웠다. 8일(파리 현지시간) 태권도의 박태준·김유진 선수가 남자 58㎏급과 여자 57㎏급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한국은 금메달 13개, 은메달 8개, 동메달 7개를 확보했다. 금메달 숫자로는 2008 베이징올림픽과 2012 런던올림픽과 같으며, 은·동메달을 합친 전체 메달 수에서도 1988 서울올림픽 때 33개에 근접하고 있다.
예상을 깬 이런 성적만큼이나 값진 성과는, 21세기를 이끌 신세대 선수들의 자신감과 에너지를 확인한 것이다. 사격 반효진(17), 여자 양궁 남수현(19), 공기권총 오예진(19), 태권도 김유진(24) 등 Z세대 선수들의 활약이 눈부셨다. 특히 남수현은 세계 랭킹 61위, 김유진은 24위, 반효진은 16위로 세계 순위를 거슬러 당찬 도전의 신화를 만들었다. “질 자신이 없었다” “제가 어떤 놈인지 보여줄 수 있어서 기쁘다”라는 펜싱 도경동 선수의 말처럼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감이 넘쳤다. 패배에도 좌절하지 않았다. 신유빈은 탁구 여자단식 동메달 결정전에서 지고도 상대 선수를 안아 주었고, 박태준은 결승 도중 다리를 다친 상대 상태를 살피고 직접 부축하는 매너도 보여줬다. 이와 함께 이번 올림픽에선 엄격한 경쟁 시스템으로 유명한 양궁 대표팀이 모델로 떠오르면서 과정이 공정해야 하고, 그래야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다는 메시지도 남겼다.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은 매번 한국의 변화를 확인하게 해준다. 식민지 및 최빈국에서 오늘의 자유와 번영을 일군 20세기형 ‘할 수 있다’ 정신에 긍정 에너지가 더해져 ‘하면 된다’는 21세기 도전 정신으로 바뀌었다. 파리올림픽은 곧 끝나지만, 이런 정신이 각계로 확산하길 기대한다.
문화일보 사설
08.10 소수 정예로 최상의 성과 거둔 파리 올림픽
축구 등 본선 진출 실패 140명 미니 선수단
당찬 2000년대생 맹활약, 역대급 메달 수확
공정 경쟁+꾸준한 지원 양궁 성공 본받아야
열대야를 잊게 했던 파리 올림픽이 11일 저녁(한국시간 12일 오전 4시) 폐회식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아무도 예상 못 한 반전의 드라마였다. 한국은 여자핸드볼을 제외한 단체 구기 종목에서 모조리 본선 진출에 실패해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최소 규모인 21개 종목 140명으로 선수단을 꾸려야 했다. 으레 내세웠던 ‘10-10(금메달 10개 이상, 종합순위 톱10 진입)’보다 한껏 보수적으로 잡은 ‘금메달 5개, 종합순위 15위’가 이번 대회 목표였다. 엘리트 스포츠 선진국에서 추락할 것이라는 위기론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남자 펜싱 오상욱과 여자 10m 공기권총의 오예진을 시작으로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금메달을 따내며 ‘역대 최고의 성적’을 꿈꾸게 했다. 8일 여자 태권도 57㎏급의 김유진이 13번째 금메달을 안겨 지금까지 역대 최다였던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 대회와 동률을 이뤘다. 남·여 근대 5종, 높이뛰기의 우상혁, 여자 역도 81㎏급, 태권도 등 남은 경기에서 선전한다면 14개 이상의 역대 최다 금메달도 기대하게 됐다. 금·은·동을 합친 전체 메달 수에서도 역대 최다(33개)를 기록했던 88년 서울 대회 능가가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소수 정예가 이룬 최상의 결과다.
밤샘 응원에 나선 국민은 화려한 결과의 외양만큼이나 알찬 내용과 과정에 열광했다. 깜짝 쾌거의 원인으로 성공적인 세대교체, 그래서 올림픽 무대를 밟은 2000년대생 영 코리안들의 맹활약이 꼽힌다. 16세 10개월 18일의 나이로 여자 10m 공기소총에서 한국의 역대 하계 올림픽 100번째 금메달을 따내며 역대 최연소 메달리스트 기록도 갈아치운 반효진, 여자 10m 공기권총에서 정상에 오른 2005년생 오예진 등이 활약한 사격이 대표적이다. ‘어펜저스(어벤저스 펜싱)’로 불리며 세계적 강자로 군림해 온 펜싱 남자 사브르는 도경동(25)·박상원(24)이 ‘고참’ 김정환(41)·김준호(30)의 공백을 메우며 단체전을 3연패했다. 여자 사브르에서는 ‘맏언니’ 윤지수(31)가 국제무대 노출이 적은 후배 전은혜(27)를 준결승전에 대신 나서게 해 결국 역대 최고 성적인 단체전 은메달을 땄다.
영 코리안들은 큰 무대에서도 당찼고 쿨했다. 펜싱 사브르 결승전 중간에 선배 구본길 대신 투입된 도경동은 “질 자신이 없었다”고 했고, 올림픽 도전 ‘삼수’ 만에 꿈을 이룬 남자 양궁 단체전의 이우석(27)은 “결승전 첫 무대에 들어가는데 긴장이 안 되더라”고 했다. 남자 수영 200m 자유형에서 기대를 모았던 황선우(21)는 결선 진출에 실패하고도 “수영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 건 아니다”라며 자신을 다잡았다. 방수현 이후 28년 만에 배드민턴 여자단식에서 우승한 안세영(22)이 기쁨에 취하기보다 “분노가 내 원동력이었다”며 협회에 직격탄을 날린 것도 메달 색깔에 연연하기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의 달라진 세계관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여자 단체전 10연패, 남자 단체전 3연패의 위업을 이룬 한국 양궁은 스포츠뿐만 아니라 경쟁력 저하로 몸살을 앓는 우리 사회 모든 분야가 귀감으로 삼을 만한 모범 사례다. 철저한 공정 경쟁을 통한 선수 선발 원칙, 양궁협회 회장사인 현대차그룹의 40년 후원이 빛을 발한 결과다.
양궁 3관왕 김우진은 “어린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메달 땄다고 젖어있지 마라. 해 뜨면 마른다”고 했다. 스포츠에는 짜릿한 승부만 있는 게 아니다. 고통 끝에 피어난 선수들의 철학도 있다. 젊은 그들에게 배워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08.12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정보, '영업 기밀' 될 수 없다

▲지난 1일 인천 청라동의 아파트 단지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 사고가 발생, 차량 140여대가 불에 타고, 480여 세대의 전기 공급이 끊기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다./뉴스1
잇따른 전기차 화재로 전기차 공포증이 확산되자, 현대차가 ‘소비자 알 권리’를 위해 전기차 전 차종의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했다. 13개 차종 중 1개만 중국 CATL 제품이고, 나머지는 국산 배터리를 장착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아도 곧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반면 지난 1일 인천 청라 아파트 단지에서 전기차 화재 사고를 일으킨 벤츠를 비롯한 수입차들은 ‘영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배터리 제조사 정보 공개가 전기차 화재 예방책이 되는 건 아니지만, ‘소비자 안전’과 ‘알 권리 보장’을 위해 수입차 제조사가 배터리 제조사를 전면 공개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들이 배터리 제조사와 제원, 과거 배터리 화재 통계 등을 알게 되면 화재 사고 대비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정보 공개는 이미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았다. 중국은 2018년부터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유럽은 각각 2026년, 2027년부터 법적으로 배터리 제조사 공개를 의무화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배터리 제조사나 원산지를 숨기는 것은 소비자를 오도하는 불공정 행위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테슬라·메르세데스벤츠·아우디·폴크스바겐 등 대다수 메이저 자동차 기업들은 ‘영업 기밀’이라는 이유로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산 저가(低價) 배터리 장착 사실을 감추고 싶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청라 화재 사고를 낸 벤츠 전기차는 고가 승용차인데도 배터리는 인지도 낮은 중국업체 배터리를 장착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전기차 화재는 2021년 24건, 2022년 43건, 2023년 72건 등 매년 급증하고 있다. 전기차 화재는 진화가 어려워 인천 청라 사고처럼 피해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위험이 있다. 정부는 모든 국내외 자동차 제조사가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한편, 지금까지 발생한 모든 전기차 화재 사고와 관련된 자동차 종류, 탑재된 배터리 제조사도 국민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50만명이 넘는 전기차 소유자들이 자기 전기차의 화재 위험 가능성을 인지할 수 있고 앞으로 전기차를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의 선택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8.12 음식물 쓰레기 버렸을 뿐인데…WP "한국을 봐라, 전 세계에 교훈"

▲경기 양평군에서 한 업체직원이 음식물쓰레기 수거용기를 세척하고 있다. /뉴스1
매년 쏟아져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가 전 지구적 환경 문제로 자리 잡은 가운데,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한국의 음식물 쓰레기 처리 방식이 전 세계에 교훈을 줄 수 있다고 조명했다.
WP는 9일(현지시각) ‘한국은 음식물 쓰레기의 98%를 재활용한다. 전 세계에 어떤 교훈을 줄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 가정과 식당에서 나오는 거의 모든 음식물 쓰레기는 퇴비, 동물 사료, 심지어 에너지로 전환된다”며 “하지만 이 모델은 쉽게 복제할 수 없다”고 했다.
WP는 한국이 음식물 쓰레기 관리를 위한 전국적인 시스템을 갖춘 몇 안 되는 국가라고 했다. 프랑스가 올해부터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화하는 것을 의무화했고, 미국 뉴욕과 같은 일부 도시에서 비슷한 규정을 시행하고 있지만 “한국을 따라가는 곳은 거의 없다”고 했다.
한국은 20여년 전부터 음식물 쓰레기를 땅에 묻는 것을 금지하고 음식물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의 분리배출을 의무화함으로써 98%에 달하는 재활용률을 달성했다고 WP는 소개했다. 이어 “한국의 음식물 쓰레기 분리 정책이 처음 시행되었을 때 대중의 반발에 부딪혔다”며 “하지만 지금은 5000만명의 국민이 음식물 재활용을 일상생활의 일부로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매체는 각 가정이 배출한 음식물 쓰레기의 무게를 측정해 월별 비용을 부과하거나, 종량제 봉투를 구입해 음식물 쓰레기만 따로 버리는 방식을 소개했다. 음식물을 일반 쓰레기에 섞어버리면 벌금이 부과된다고 했다.
다만, 한국 정부가 여전히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도록 설득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쑤시개나 일회용품 등이 섞여 배출돼 가축 사료나 비료의 질이 떨어지는 등 해결해야 할 숙제는 여전히 있다고 짚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바이오가스로 재활용하는 방식은 국토가 넓은 미국 등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쓰레기 매립 비용보다 운송 비용이 더 지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너선 크론스 미국 브랜다이스 대학교 공학과 조교수는 WP에 “음식물 쓰레기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음식물 쓰레기가 덜 나오도록 낭비를 줄이는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이가영 기자
08.13 폭염·AI가 촉발한 100GW 시대, 전력망 확충에 사활 걸렸다

▲경기도 문산읍 송전탑. /뉴스1
연일 이어지는 폭염과 인공지능(AI) 시대 본격화 등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 7일 오후 2∼3시 사이 1시간 평균 전력 실제 총수요 추계가 100.2GW(기가와트)를 기록하는 등 여름철 전력 총수요가 100GW에 달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보통 여름철 전력 수요가 최대를 기록하는 고비는 여름휴가가 끝나고 대형 사업장이 일제히 가동하는 8월 둘째 주다. 아직 전력 예비율을 10% 이상 유지하고 있다지만 낮 최고기온이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일상화되면서 정부도 긴장감을 늦추지 못할 정도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고비를 넘기더라도 앞으로도 전력 수요는 빠른 속도로 늘어날 전망이다.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과 전기차 보급 확대, 탄소 중립 추진에 따른 무탄소 전원 확대 등으로 전력 수요가 대폭 늘어날 분야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기도 평택·화성·용인·이천 등에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할 예정인데 2050년까지 이 클러스터에 추가되는 전력 수요만 해도 현재 수도권 전력 수요의 4분의 1인 10GW에 달한다.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면 무엇보다 전력망 확충이 시급하다. 우리나라는 경북, 강원, 전남 등지에서 생산한 원전·풍력·태양광 등 전력을 주 수요처인 수도권으로 끌어오기 위한 전력망이 턱없이 부족하다. 혈액을 공급할 혈관이 너무나 좁고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2008년 ‘밀양 송전탑 사태’ 이후 환경 단체와 주민의 반대, 지방자치단체의 비협조 등으로 전력망 건설이 난항을 겪고 있다. 동해안 원전·화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에 공급할 동해안-신가평 초고압직류송전(HVDC) 건설 사업, 호남에서 생산한 신재생에너지를 수도권에 보낼 서해안 해저 HVDC 사업 등 계획보다 수년씩 지연된 사업이 한둘이 아니다.
전력망 구축 골든타임을 실기할 경우 자칫 ‘전력 대란’을 부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주민들에게 충분히 보상해 전력망을 신속히 건설하기 위한 ‘전력망 확충 특별법’은 국회 통과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정쟁에 휘말려 폐기된 데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아직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필요한 전력을 제때 공급받지 못하는 재앙을 막으려면 이 법 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조선일보 사설
08.14 막걸리 등급을 허하라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 막걸리들이 진열돼 있다./뉴스1
정부가 내놓은 주세법 개정안을 놓고 전통주업계에서 의견 대립이 팽팽하다. 핵심은 ‘막걸리에 향료와 색소 첨가를 허용한다’는 내용. 첨가물로 인정받지 못했던 향료와 색소를 제조 원료로 인정해 주세 부담을 줄이고, 신제품 개발을 장려한다는 취지다. 그동안은 향료나 색소가 들어가면 막걸리라 부르거나 라벨에 표기할 수 없었고, ‘기타주류’로 분류돼 일반 막걸리보다 8~10배 높은 세금을 내야 했다.
개정안을 환영하는 막걸리 제조사들은 “높은 세율과 막걸리 표기 불가 때문에 다양한 맛과 향의 제품 개발이 제약받아 왔다”고 말한다. 해외 수출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본다. 현재 수출되는 막걸리 절반 이상이 향과 색소를 첨가한 기타주류 막걸리. 지금까지 사용할 수 없었던 막걸리라는 이름을 당당하게 쓸 수 있게 된다면 해외 수출이 날개를 달 거란 주장이다.
주세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막걸리 업체들은 “향료와 색소 첨가가 막걸리의 전통성과 정통성을 해칠 뿐 아니라, 과일 등 지역 농산물 사용을 촉진하기 위한 지역특산주 제조면허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공 첨가물을 사용하면 향과 색이 훨씬 잘 우러나고 제조 원가도 크게 낮출 수 있는데, 누가 굳이 값비싼 지역 농산물을 힘들게 사용하겠느냐는 것이다.
또한 개정안에 반대하는 이들은 “우리가 세계에 알리고픈 한국의 막걸리가 과연 인공적인 향과 색소를 넣은 막걸리냐”고 묻는다. 막걸리가 쌀과 누룩, 물로만 만드는 술이라고 알았던 해외 소비자들이 인공 첨가물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실망과 배신감은 막걸리는 물론 한국 전통주 수출 전반에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대해 주세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이들은 “이미 아스파탐·아세설판칼륨 등 인공 감미료가 첨가되고 있는데, 다른 인공 첨가물만 배제하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되묻는다.
주류업계 전문가들은 “이참에 전통주 등급과 구분을 명확히 하자”고 제안한다. 일본에서는 청주(사케)에 알코올·당류·유기산·아미노산 등 첨가물을 넣으면 ‘합성청주’라고 라벨에 표기한다. 소주(쇼추)의 경우 자국 농산물을 원재료로 발효·증류하면 ‘본격소주’, 주정을 섞은 소주는 ‘혼화소주(混和焼酎)’라고 표기하고 있다. 또 ‘일본 전통주’라는 의미의 ‘니혼슈(日本酒)’라는 항목을 신설했는데, 일본산 쌀을 사용해 일본 내에서 양조한 술만을 니혼슈로 인정하고 보호한다.
우리도 막걸리를 비롯한 전통주를 명확한 기준에 따라 등급을 나눈다면, 소비자 알권리와 선택권을 충족하는 동시에 전통주 고급화와 수출 촉진에 도움이 될 듯하다. 아스파탐·향료·색소를 사용해 맛있고 저렴하게 제조한 대중적인 막걸리를 필요로 하는 소비자도, 전통 재료와 방식을 지켜서 빚기에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는 고급 막걸리를 마시고 싶은 소비자도 있다. 세상은 넓고 소비자 요구와 수요는 다양하다.
조선일보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08.15 대학 기숙사 1인실 확대에 반대한다
요즘 대학생들 대개 '혼삶족'
사회성 결핍 현상 MZ에 만연
다인실 싫다며 기숙사 외면
권익위도 "1인실 늘려라" 권고
기숙사는 숙식 해결만 목적인가
우리 미래 사회 주역들이
자신만의 새장에 갇히기보다
다양한 계층 두루 경험하게
날씨와 상관없이 날짜는 가는 법. 여름방학의 끝자락에서 대학가는 신학기를 맞이할 준비로 바쁘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학생들의 기숙사 입주다. 원래는 타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대학 시설이었으나 요즘에는 같은 지역 안에서도 기숙사를 찾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장거리 통학난이 주된 이유이지만 당사자와 학부모 공히 ‘분가(分家)’를 원하는 세태 탓도 없지 않다.
얼마 전 국민권익위원회는 대학 기숙사 주거 환경 개선 방안을 마련하였다. 이에 따르면 교육부 및 전국 대학교와 지방자치단체에 현재 3인실 이상 기숙사를 1인실 또는 2인실로 바꿔, 1인실 비율을 절반 이상으로 늘리도록 권고할 계획이라고 한다. 어릴 적부터 독방에 익숙한 대학생들의 생활 특성을 반영한 결과라는데, 이와 관련하여 권익위는 작년 9월, 대학생 1,772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하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94.3%가 프라이버시, 편안한 휴식 및 잠자리, 집중력 향상 등을 이유로 1인실을 선호했다. 이에 비해 2022년 현재 전국 대학 기숙사 중 1인실은 전체의 7.7%에 불과한 가운데 2인실이 69.9%, 3인 이상 다인실(多人室)이 22.4%를 차지하고 있다. 눈에 띄는 대목은 기숙사 공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 주변 자취방 월세가 기숙사의 2~3배라는데 학생들은 1인실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숙사를 외면한다고 한다. 한국사학진흥재단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기숙사 입사 경쟁률은 사립대학이 0.8, 국공립은 0.9였다.
다인실 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요즘 학생들의 심정을 모르지 않는다. 여유 있는 학부모라면 비용 부담이 크더라도 자식한테 1인실을 안겨주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대학 입장에서는 수요자 중심의 교육 커뮤니티 조성이라는 명분을 외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을 가르치고 세상을 배우는 과정, 곧 ‘사회화’의 측면에서 이런 식의 접근이 반드시 바람직할까. 더군다나 대학에서 말이다.
요새는 대부분 어린이나 청소년이 외동으로 자란다. 동기간 우애가 낯설 뿐 아니라 살가운 또래 친척도 별로 없다. 소꿉친구라는 말 또한 생소해졌다. 대신 각방(各房)을 쓰고 독상(獨床)을 받으며 TV나 컴퓨터, 스마트폰 등을 벗 삼아 집에서 혼자 큰다. 자가용 등하교와 학원 버스 셔틀이 확산하면서 아이들이 삼삼오오 동네 길을 걸어 다니는 풍경 역시 보기 어렵다. 그 연장선에서 요즘 대학생들은 대개 ‘혼삶족’이다. 태생적으로 디지털 세대인 데다 코로나 시대의 원격 학습을 뉴노멀로 경험한 터라 혼자 강의실로 이동하거나 혼자 식사하는 정도는 하등 이상하지 않다. 학내 구내식당에 다인용 식탁 대신, 합석을 피할 수 있는 바(bar) 형태의 테이블이 많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싫어하고 어려워하는 게 MZ세대의 특징이라, 소통력 감퇴에 따른 사회성 결핍 현상이 전반적으로 만연해 있다. 최근 ‘잡코리아’ 조사에 의하면 신세대 직장인들은 동료들과의 대면 업무 자체로부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사내 ‘친목’을 싫어하는 분위기도 역력하다. 전자 스크린 터치와 무인 기계음의 설치 확대 이후 인간의 육성조차 부담스러워하기도 한다. 지난해 ‘알바천국’ 조사에 따르면 MZ세대의 1/3 이상이 ‘콜 포비아(call phobia·통화 공포증)’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선호한 것은 이메일이나 문자 등 텍스트 소통이었다.
이런 마당에 최근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이른바 ‘공감 학원’이 성업 중이다.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 말문 트기)이나 스몰 토크(small talk·가벼운 얘기), 리액션 등 대화를 시작하고 이어가는 데 필요한 각종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돈 받고 가르치는 곳이다. 하지만 이런 사교육 방식이 얼마나 효과적일까? 워낙 이런 것들은 책이나 수업이 따로 필요 없다. 어릴 때부터 가정이나 이웃, 학교 안팎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말하자면 ‘하다 보면 배우는(learning by doing)’ 것이다.
기숙사는 단순히 숙식만 해결하는 곳이 아니다. 대학이 학점 따는 곳만도 아니다. 그런 만큼 학생들의 ‘권익’을 앞세워 대학 기숙사의 1인실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권익위 판단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미래 사회 주역들이 자신의 새장에 갇혀 살기보다, 다양한 계층, 지역, 인종, 언어, 가치관 등을 두루 경험하게 만드는 것은 대학 및 대학 기숙사의 또 다른 존재 이유다. 그게 우리보다 개인주의가 훨씬 발달한 구미 선진국 대학의 전통이고, 사회 통합을 중시하는 중국 명문 대학들의 교육철학이기도 하다.
조선일보 전상인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
08-15 4045만 명 거래 정보 6년간 고객 동의 없이 中에 넘긴 카카오
카카오페이가 6년 동안 4045만 명의 개인 신용정보 542억 건을 고객 동의 없이 중국 알리페이에 넘겨온 사실이 금융감독원 조사로 드러났다. 전체 고객의 카카오 계정 ID, 휴대전화 번호, 이메일 주소, 카카오페이 가입 및 거래 내역 등을 매일 알리페이에 제공했다. 2018년 4월부터 한 번이라도 카카오페이를 이용했다면 개인정보가 중국에 넘어갔다는 얘기여서 충격적이다.
카카오페이는 자체 해외 결제망이 없어 알리페이와의 제휴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알리페이가 애플 앱스토어 입점을 위해 카카오페이 측에 고객 신용정보를 요청하자 해외 결제를 이용하지 않은 고객까지 포함한 전체 고객의 정보를 알리페이에 제공해 온 것이다. 금감원은 카카오페이 해외 결제 부문에 대한 현장 검사에서 이런 사실을 뒤늦게 적발했다.
카카오페이 측은 신용정보법상 개인신용정보 처리 업무를 위탁해 정보가 이전되는 경우 고객의 동의가 필요 없고, 사용자 식별이 불가능하도록 암호화했기 때문에 위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개인정보보호법상 고객 정보를 국외로 이전할 때는 고객 동의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암호화를 했다지만 일반인이 암호 해독 프로그램으로 쉽게 풀 수 있는 수준이었다는 점도 문제다. 일각에선 알리페이가 카카오페이 주식 32%를 가진 2대 주주인 점이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6년이나 이런 일이 계속되고 있었는데도 수수방관한 금융당국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이번 문제에 대해 신용정보법을 담당하는 부서는 알지 못했고 외환감독국에서 조사하다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금감원과 카카오페이가 신용정보법 등의 해석을 놓고 다툼이 벌어지면서 개인정보보호 관련 법 규정에 모호한 부분과 허점이 많다는 것도 확인됐다.
유출된 고객 개인정보가 오남용될 경우 심각한 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 이번처럼 해외로 넘어가는 경우엔 사실상 추적도 불가능하다. 당국은 철저한 조사를 통해 카카오페이의 위법 여부를 확인하고 잘못이 있으면 책임을 무겁게 물어야 한다. 플랫폼 기업 전반의 개인정보 보호 실태를 조사하고 법적 미비점을 보완하는 등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동아일보 사설
08.16 달라진 ‘대프리카’…도시 숲이 열섬 효과 덜었다

▲지난 8일 낮 12시40분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 내 대구대표도시숲의 온도를 측정했다. 숫자판은 같은 시각 대구 시내 평균 기온(34.9도)보다 5도 낮은 29.9를 가리켰다. 대구=정은혜 기자
한여름 폭염의 대명사로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가진 대구가 달라졌다. 최근 전국적으로 극심한 폭염을 겪는 상황에서도 대구의 낮 최고기온이 다른 도시에 비해 낮아졌기 때문이다. 경기도 여주에서 최고기온 40도를 기록했던 지난 4일 대구의 최고기온은 37.8도로 전국 15위였다. 지난 10년간 기상청 자료를 토대로 도시별 평균 체감온도를 비교하면 광주광역시가 가장 높았고, 대구는 11위에 머물렀다. 대구 시민과 기상 전문가 사이에선 더는 ‘대프리카’가 아니란 말도 나온다.
대구의 한여름 온도가 상대적으로 낮아진 데는 도시 숲 조성 사업이 긴요한 역할을 했다. 대구는 한낮 뜨거운 공기가 잘 빠지지 않는 분지 지형인 데다 도심 속 녹지마저 부족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런 열섬 효과를 줄이려고 대구시와 산림청은 2019년부터 2022년까지 38곳, 48㏊ 규모의 ‘도시바람숲길’ 사업을 벌였다. 도시 바깥쪽 산림의 맑고 시원한 공기를 도심으로 끌어들이는 숲을 조성해 공기 순환을 촉진하고 폭염과 미세먼지를 줄이는 사업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도시 숲을 이용해 바람길을 내면 여름 한낮 평균기온을 3~7도 낮출 수 있다고 한다. 중장기 대책으로 가로수를 늘린 것도 효과를 봤다. 지난해 대구의 가로수는 23만9000여 그루로 1995년의 세 배 수준으로 늘어났다.
대구의 사례는 다른 도시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기후변화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꾸긴 어려워도 도시의 노력에 따라 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여름 폭염을 조금이라도 완화하려면 도심 속 생활공간엔 더 많은 나무를 심을 필요가 있다. 싱가포르 등 외국에서도 도시 숲의 긍정적 효과를 확인하고 대폭 늘려가는 추세다. 국내 주요 도시에서도 숲이 더욱 많아져 열섬 효과도 덜고 시민들에게 아름다운 경관과 휴식 공간을 제공해 가길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
08.19 일자리 안 찾고 "그냥 쉬는" 20·30대 73만명, 사상 최대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김영재
지난 7월에 구직 활동도 하지 않고 ‘그냥 쉬었다’는 청년(15~29세)이 44만3000명으로, 7월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냥 쉰 청년 규모는 2013∼2017년에 20만명대였으나 2018년 30만명을 넘었고 코로나 팬데믹 기간인 2020년에 44만1000명까지 급증했다가 2022년에 30만명대로 내려갔다. 하지만 작년부터 다시 늘어나 7월에는 전년 동월보다 10.4%나 증가했다. 청년층 인구는 줄어드는데 쉬는 청년 숫자가 늘면서 ‘그냥 쉰다’는 청년 비율이 사상 최대가 됐다. 청년 20명 중 1명꼴(5.4%)로는 일도 안 하고, 일자리를 찾지도 않는다.
‘쉬었음’ 청년의 연령대를 30대로 확장하면 73만명이 넘는다. 지난 7월에 ‘그냥 쉬었다’는 30대는 28만8000명으로, 1년 전보다 10.5% 증가했다. 수출 부진으로 위축됐던 제조업 고용이 수출 회복에도 다시 늘어나지 못한 데다 내수 위축이 길어지면서 일자리를 잃거나 폐업한 자영업자들이 고용 시장에서 이탈하고 있는 것이다.
7월에 실업률은 2.5%, 청년 실업률은 5.5% 정도다. 그러나 청년층이 체감하는 실제 실업률은 더 높다. 일자리를 안 찾고 그냥 쉰 청년들은 실업률을 산정하는 모수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쉬었음’ 청년 가운데 일하기를 원했느냐는 질문에 75.6%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일하기를 원한다는 나머지 청년들에게 구직 활동을 안 한 이유를 물었더니 ‘원하는 일자리가 없을 것 같아서’라는 답변이 42.9%로 가장 많았다. 20~30대가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구직을 단념하고 고용 시장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의미다.
노동 시장의 주축이 되어야 할 20·30대 청년층이 ‘그냥 쉬는’ 현상은 이만저만 심각한 게 아니다. 정부는 ‘쉬었음’ 청년에 대한 심층 실태 조사를 거쳐 지난해 11월 노동 시장 유입을 위한 단계별 지원책을 발표했다. 대책을 발표한 지 9개월이나 지났는데 ‘쉬었음’ 청년이 줄어들기는커녕 사상 최대로 늘어났다는 것은 정책이 전혀 효과를 못내고 있다는 뜻이다. 정책을 전면 재점검해서 실효성을 높일 방안을 찾아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8-20 여야 ‘택시 월급제 유예’ 反혁신 입법의 예고된 귀결
20일부터 전국으로 확대될 예정이던 택시기사 월급제가 시행일을 불과 하루 앞두고 2년 유예됐다. 국회가 택시업계 노사의 반대를 뒤늦게 수용한 결과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19일 소위에서 택시운송사업발전법 개정안을 심의해 전국 확대 시행을 2년 유예하면서, 국토교통부에 1년 이내에 택시산업 발전 방안을 보고토록 했다. 유예안은 오는 28일 본회의에서 의결될 예정이다. 그러나 3년 전부터 월급제가 시행 중인 서울은 그대로 유지된다. 탁상 입법이 택시업계와 국민을 혼란에 빠뜨렸다.
택시 월급제는, 택시회사 운전기사가 주 40시간 이상 근무하면 월 200만 원을 넘는 고정 급여를 주는 내용이다. 그러나 경영난을 겪는 택시 회사는 물론, 택시 노조도 사납금제에 비해 실수령액이 줄어든다며 반대한다. 성실한 기사들이 피해를 본다는 지적도 나왔다. 해당 법안은, 2019년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2021년 1월 서울부터 우선 시행 중이지만 월급제 도입 업체는 없다. 적자가 뻔한 탓이다. 정부와 서울시도 위반 업체에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는 ‘유령 법’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민주노총 압력에 법안 수정도 없이 방치했다가 전면 시행일을 맞아 물러선 것이다.
반(反)혁신 입법의 예고된 결말이다. 여야가 2013년 우버 금지부터 2020년 타다 금지법까지 기득권 유지에 급급했지만, 택시산업은 나아진 게 없다. 법인택시와 기사는 계속 줄고 있다. 월급제가 시행되면 굳이 힘들게 일할 이유가 없다. 전체 기사의 59%인 60세 이상 고령자와 파트 타임을 원하는 기사는 오히려 일하기 어려워져, 인력난 가중·야간 택시 대란 등의 우려도 크다. 포퓰리즘 입법이 아니라, 규제 혁신과 구조조정을 통한 돌파구가 필요하다.
문화일보 사설
08.21 난공사 울릉 공항 2년 지연, 비슷한 공법 가덕도 공항은 괜찮나

▲부산 가덕도신공항 조감도. /국토교통부
울릉공항 개항이 공사 지연으로 2026년 상반기 개항이 2년 늦춰졌다. 공사 진척이 예상보다 더딘 것이다. 울릉공항은 가덕도 신공항의 사전 테스트 현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근 산을 깎아 바다를 메워 육해상에 걸쳐 활주로와 여객터미널을 지는 방식에서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공항의 개항 일정이 2년이나 늦춰졌다면 가덕도 신공항 일정도 문제없는지 검토해봐야 한다.
가덕도 신공항은 애초 2035년 개항을 추진했는데 부산 엑스포 유치전 과정에서 2029년 12월로 일정을 무려 5년 이상 앞당겼다. 공사 기간 단축을 위해 공항 전체를 해상에 지으려던 계획을 수정, 산을 깎아 육해상에 걸쳐 짓는 것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지반이 불균등하게 내려앉는 부등 침하 가능성 탓에 계획 검토 단계에서 배제했던 방식을 되살려낸 것이다. 무리한 일정과 난공사에 따른 위험 부담이 너무 커지자 건설사들이 참여를 꺼리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달 말 3차 입찰 공고를 내면서 공사 기간을 7년으로 1년 연장했지만 19일 부지 조성 공사 3차 입찰마저 유찰됐다.
울릉공항은 50인승 소형 항공기 전용 공항으로 활주로 길이가 1200m다. 가덕도 신공항은 3500m 활주로가 2개다. 공사비는 울릉공항의 20배다. 공사 현장의 평균 수심은 각각 울릉이 23미터, 가덕도 20미터로 큰 차이가 없다. 소형 울릉공항을 짓는 데 공사 기간이 7년으로 늘어났는데, 전체 면적이 15배가 넘는 대형 공항을 같은 기간에 짓는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다. 인천공항의 경우 1단계 건설에만 9년이 걸렸다.
부산 엑스포 유치에 실패해 가덕도 신공항을 무리해 조기 완공해야 할 이유도 없어졌다. 그럼에도 정부는 2029년 12월 개항이라는 비현실적인 목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부분 개항한다는 발표도 나왔다. 한쪽은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데 바로 옆에서 토목 공사를 계속한다는 것이다. 건설회사들이 공사를 맡겠다고 나서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정부는 조기 완공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가덕도 신공항의 경제성, 안전성을 확보하는 방안에 대해 다시 논의하기 바란다. 무리하게 공사를 하다 지반 침하 같은 문제라도 생기면 감당할 수가 없다.
조선일보 사설
08-22 폭염 속 ‘전기료 폭탄’ 그래도 포퓰리즘式 접근 안 된다
폭염이 연일 최악 기록을 세우는 가운데, 검침일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7월분 전기요금 고지서가 곧 발송된다. 에어컨 사용이 급증하면서 누진제 최고 구간(7∼8월 450㎾h 초과) 가구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서민과 자영업자들은 ‘전기료 폭탄’을 걱정한다. 8월분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러다 보니 정치권이 앞다퉈 전기료 감면 법안을 내놨고, 여야 대표회담에서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여러 차례 누진제 완화 등의 조치도 취해졌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이미 에너지 취약계층 130만 가구를 대상으로 전기요금 1만5000원 추가 지원 방안을 내놨다. 4인 가구 하계 월평균 요금이 7만6000원 수준인데, 현재 전기요금 복지 할인과 에너지 바우처로 6만 원가량 지원되기 때문에 1만5000원을 지원하면 거의 요금 제로에 가깝다. 195억 원가량의 정부 예산이 필요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기왕에 법안을 내놨던 ‘전 국민 25만 원 지원법’을 거듭 촉구할 예정이다. 폭염이 생존 문제라고 할 수도 있는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은 불가피하다. 다만, 한국전력의 적자가 천문학적 규모인 상황에서 한전 부담을 가중하는 포퓰리즘식(式) 대책은 경계해야 한다. 올 들어 반년 동안 한전과 자회사가 이자 갚는 데 쓴 돈은 2조2841억 원으로 하루에 129억 원 규모다. 상반기 기준 전체 적자는 203조 원에 달한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밀어붙이면서 요금 인상은 억제한 후유증이다.
한전은 재무 상황 악화로 송배전망 투자도 제대로 못 하는 상태다. 전기료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하위 5위일 정도로 싼 편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전기료 인상과 국제 에너지값 하락으로 역마진 구조는 해소됐지만, 한전 적자는 여전하다. 취약층에 대해선 복지 차원에서 지원하면서 적절한 요금 인상을 통해 한전 재정 건전성을 복원하고, 에너지 절약도 유도하는 게 합리적인 해법이다.
문화일보 사설
08.23 에어매트 뛰어내린 2명도 숨져...부천 호텔 화재 7명 사망

▲부천 호텔 객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22일 오후 경기 부천 도심의 한 호텔에서 불이 나 투숙객 7명이 숨지고, 12명이 연기를 마시는 등 부상을 입었다. 소방 당국은 “화재 발생 약 3시간 만인 밤 10시 26분 화재는 진압했으나, 객실 수색이 끝나지 않아 인명 피해는 더 있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39분쯤 부천시 원미구 중동에 있는 9층짜리 호텔의 8층 객실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했다. 소방 관계자는 “호텔 8층 객실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가 처음 접수됐고 이후 화재 신고 22건이 잇따랐다”고 말했다.
이날 화재로 숨진 투숙객 7명은 대부분 호텔 8~9층 사이 계단과 복도 등에서 발견됐다. 사망자는 남성 4명, 여성 3명으로 확인됐다. 연령대는 20대~50대로 모두 내국인이었다.
사망자 중 2명은 소방대원들이 호텔 외부에 설치한 에어매트 위로 뛰어내리다 변을 당했다. 에어매트는 초기 정상적으로 펼쳐져 있었는데, 이들이 뛰어내리는 과정에서 뒤집힌 것으로 파악됐다.
또 다른 투숙객 3명은 중상, 9명은 경상을 입어 인근 병원 6곳으로 이송됐다.
투숙객 서모(40)씨는 “당시 경보음이 울리고 비명 소리가 들려 짐도 못 챙기고 나왔다”며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 않았고 안내하는 사람도 없었다”고 말했다. 스프링클러는 관련법 개정으로 2017년부터 6층 이상 모든 신축 건물에 층마다 설치하도록 의무화 됐으나 이 호텔은 2003년 준공돼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소방 관계자는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연기가 꽉 차 있어서 진화 작업에 시간이 걸렸고, 객실 문이 잠긴 경우가 많아 투숙객 구조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자정 현재 추가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이날 불은 호텔 건물 전체로 번지거나 인근 건물로 옮겨 붙지는 않았으나 삽시간에 매캐한 연기가 퍼져 인명 피해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이 호텔은 철근콘크리트 건물로 지하 2층, 지상 9층 연면적 4225㎡ 규모다. 객실은 64개다. 화재 당시 투숙객 27명이 있었는데, 대부분 7~9층 객실에 몰려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 당국은 소방차 등 70여 대와 소방대원 등 320여 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소방 관계자는 “발화 지점인 8층 810호 객실에 도착했을 때 내부에 투숙객은 없었다”며 “호텔 측은 투숙객이 27명이라고 했는데, 방범카메라를 통해 정확한 숫자를 파악 중”이라고 했다.
한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최근 한밤중 도심 호텔 화재가 잇따르고 있다. 앞서 지난달 16일 0시 10분쯤 서울 송파구 석촌동 호텔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다쳤다. 당시 불로 투숙객 등 31명이 긴급 대피했고 7명이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다. 불은 1시간쯤 뒤 진화됐다.
작년 12월에도 인천 남동구 논현동의 호텔에서 큰불이 나 투숙객 등 42명이 다쳤다. 30대 외국인 남성이 전신 2도 화상을 입었고 20대 남성은 대피 중 골절상을 입었다. 당시 소방 당국은 “호텔 1층과 주차 타워 사이 천장에서 불꽃이 튀었고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고 했다. 불은 호텔 외부로 번져 주차 타워를 전부 태웠다.
윤명오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숙박 업소는 보통 흡연자가 많아 화재 감지 시스템이나 스프링클러를 꺼놓는 경우가 많다”며 “실내 계단을 통해 대피할 수밖에 없는데 한밤중에 연기가 자욱하면 사상자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08.23 한국계 교토국제고, '꿈의 무대' 日 고시엔 정상에 섰다
승부치기서 2대1로 승리, 사상 첫 우승

▲일본 내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교 학생들이 23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 한신 고시엔구장에서 열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 교토국제고교와 간토다이이치고교 결승전에서 연장 10회 승부치기 끝에 2-1로 승리를 거두고 환호하고 있다./뉴스1
재일한국계 교토국제고가 사상 첫 고시엔 정상에 섰다. 교토(京都)국제고는 23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도쿄 간토다이이치(關東弟一)고와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별칭 고시엔) 결승에서 0-0으로 정규 이닝 9회를 마무리하고 연장 승부치기에 돌입했다. 연장 승부치기에서 양팀은 무사 1-2루 상태로 공격을 시작한다.
여기서 10회초 교토국제고가 안타와 볼넷, 희생플라이 등을 묶어 먼저 2점을 냈다. 10회말 간토다이이치고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1점을 만회해 2-1로 추격한 다음, 다시 2사 만루. 여기서 교토국제고 투수 니시무라 잇키는 2스트라이크 1볼에서 절묘한 슬라이더를 포수 미트에 꽂으면서 삼진을 잡아 감격스런 우승 포효를 터뜨렸다. 2대1 승리. 고시엔(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결승이 연장까지 이어진 건 2006년 이후 18년 만. 2018년 도입한 승부치기 제도가 결승에서 치러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교토국제고는 고시엔 본선 1차전에서 7대3으로 이긴 뒤 2차전부터 8강전까지 세 경기 연속 4대0으로 상대를 압도했다. 지난 21일 준결승전에서는 아오모리야마다고교에 2점을 먼저 내주고 끌려가다 3대2 역전승을 거두고 결승에 올라왔다. 결승 대진은 일본 현 수도 도쿄와 옛 수도 교토 소재 학교 간 맞대결로도 색다른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이날 경기가 끝나고 고시엔 구장에는 또다시 교토국제고 한국어 교가가 울려 퍼졌다.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아침 저녁 몸과 덕 닦는 우리의/ 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 더그아웃에서 교가 제창을 마친 교토국제고 선수단은 그라운드로 달려가 우승 감흥을 다시 즐겼고, 외야 부근 3루 관중석을 가득 메운 응원단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23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 한신 고시엔구장에서 열린 일본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고시엔) 결승전 교토국제고와 간토다이이치고 경기. 2-1 승리를 거두고 우승을 차지한 일본 내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 재학생들이 관중석에서 기쁨을 나누고 있다./연합뉴스
교토국제고 고마키 노리츠구(41) 감독은 “(1999년) 야구부가 창단되고 나서 우리에겐 여러 드라마가 있었지만, 오늘 이 대단한 고시엔 구장에서 아이들이 우승한 모습을 보여주게 돼 너무 기쁘다”며 “괴로운 부분도 있었지만 경기를 잘 이겨낸 나카자키, 니시무라 두 투수들에게 특히 감사하다”고 말했다. 야구부 주장 후지모토 하루키는 “지금 이곳에 서 있는 게 꿈만 같다”며 “오늘 우승은 우리끼리 따낸 게 아닌, 지금까지 우리를 응원해준 모든 분들과 다함께 이뤄낸 것”이라고 말했다. 교토 지역 고교가 고시엔(여름) 우승을 한 건 1956년 헤이안고교 이후 처음이다.
박철희 주일 한국대사는 “한일 협력을 상징하는 교토국제학원은 이번 대회 우승으로 한일 양국 국민에게 가슴 깊이 간직될 빛나는 감동을 선물했다”며 “우승을 발판으로 삼아 앞으로도 교토국제학원이 더욱 큰 영광의 역사를 계속해서 만들어 주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교토 히가시야마구에 자리한 교토국제고는 1947년 재일 교포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설립한 교토조선중학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야구부가 명문으로 발돋움하고, 최근 K팝(한국 대중음악) 등 한국 문화에 관심 있는 학생들 지원도 늘어나면서 현재 전교생 160여명 중 90% 가량이 일본인이라고 한다. 학생들은 입학하면 주 3~4시간씩 한국어를 배운다. 한국어로만 진행하는 수업도 꽤 있다. 백승환 교장은 “올 4월 한국어능력시험에 응시한 학생 10여 명이 전원 합격증을 땄다”고 했다.
야구부 창단은 1999년. 2021년 교토 대표로 고시엔에 처음 진출, 4강까지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다. 2022년에도 고시엔 본선에 올랐으나 1회전에서 졌다. 지난해는 고시엔 본선행 티켓을 얻지 못했다. 교토 지역 예선은 73개팀이 출전한다. 1팀만 고시엔에 나갈 수 있다.
한국 프로야구 KIA 구단은 지난 3월 교토국제고 야구부가 낡은 공에 테이프를 감아 재활용하는 등 장비 부족으로 애를 먹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퓨처스캠프(2군)에서 쓰던 공 1000개를 기증하기도 했다.
☞고시엔(甲子園)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에 있는 야구 구장 이름. 개장 연도가 육십갑자상 ‘갑자(甲子)년’인 1924년이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붙였다. 올해가 개장 100주년이다. 매해 3월 ‘선발고교야구대회(마이니치신문 주최)’와 8월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아사히신문 주최)’가 열리는데, 이를 각각 ‘봄 고시엔’과 ‘여름 고시엔’이라고 통칭한다. 32교가 나오는 봄 고시엔에 비해 47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별로 1개교(훗카이도와 도쿄도 2개)씩 49교가 출전하는 여름 고시엔이 더 큰 행사로 꼽힌다. 고시엔은 일본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 홈구장이기도 하다.

▲23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 한신 고시엔구장에서 열린 일본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 결승전 교토국제고와 간토다이이치고 경기. 2-1 승리를 거두고 우승을 차지한 일본 내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 재학생들이 관중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조선일보 김동현 기자
08-26 간호사 파업 예고… 여야 간호법 당장 합의해 통과시키라
간호사 등이 속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총파업을 예고하면서 의료 현장 혼란이 가중될 위기에 처했다. 민주노총 가맹조직인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13∼14일 64개 사업장(병원)에서 일제히 노동쟁의조정 신청을 했고, 15일 간의 조정 기간이 끝나는 29일 오전 7시부터 61개 병원에서 동시 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빅5 병원은 이번 쟁의에 포함되지 않았고, 파업에 돌입해도 응급실·수술실 등 필수 인력은 투입할 계획이라지만, 최근 일부 응급실 파행 등을 고려하면 혼란이 불가피하다.
보건의료노조는 조속한 진료 정상화, 임금 6.4% 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핵심은 간호(사)법 제정으로 보인다. 민생 법안들을 처리할 8월 임시국회 본회의가 28일 예정돼 있는데, 파업 예정일이 29일인 것만 봐도 그렇다. 실제로 여당이 발의한 ‘간호사 등에 관한 법률안’과 야당 의원들이 발의한 3개의 ‘간호법’ 제정안이 전문간호사(PA 간호사) 제도화 등 대동소이하고, 여야의 의견 접근도 상당히 이뤄졌다. 남은 최대 쟁점은 간호조무사 시험 요건에 전문대 간호조무학과 졸업생 출신을 포함시킬 것인지 여부라고 한다. 정부는 의료 공백에 대응해 지난 3월 PA 간호사에게 응급심폐소생, 약물 투입 등 일부 전공의 업무를 맡겼다. 지난 3월 1만165명이었던 PA 간호사는 지난달 1만6000여 명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명확한 법적 근거나 구체적 업무 범위도 정하지 않고 진행하면서 의료 사고 책임에 대한 불안을 호소해왔다. PA 간호사가 현재 의사 ID를 활용해 진료 기록부를 작성·처방하는 사실상 불법 진료 행위를 근절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여야는 이미 간호법을 비쟁점 법안으로 처리키로 합의했으나, 지난 22일 보건복지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보류됐다. 간호사 업무 범위의 법제화 여부, 간호조무사 국가시험 응시 자격 등이 문제다. 이런 쟁점도 합의하지 못한다면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합의된 부분을 먼저 처리하고, 추후 보완하는 식으로라도 당장 입법을 완성하기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
08-26 전기료, 이젠 복지수단 삼아선 안 된다
정치권이 또 전기 요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에너지 취약계층 130만 가구에 전기 요금 추가 지원 방안을 논의하자는 여당 대표의 제안에 야당도 화답한 모양이다. 사실상 전기 요금을 완전히 면제해 주겠다는 분위기다.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정치권의 의도를 탓할 이유는 없지만, 전기 요금의 감면·면제가 능사일 수는 없다.
에너지 기업은 정치권의 무분별한 에너지 복지 수요를 떠안을 여력을 상실했다. 특히, 망국적인 탈원전으로 취약계층만큼 허약해진 한국전력은 상반기 기준으로 총부채가 203조 원으로 늘었고, 올해 들어 이자 상환에만 하루 129억 원을 쓴다. 자칫하면 가장 중요한 국가 기간산업인 전력산업이 통째로 무너져 버릴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다.
한전의 형편이 매우 심각하다. 전력 공급에 꼭 필요한 송배전망이나 신규 발전소 건설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동해안의 석탄화력 8기(7.4GW)가 발전을 중단한 것도 송전선로 부족 때문이었다. 신한울 1·2호기의 완공에 맞춰 2019년까지 완공하기로 했던 8GW 규모의 초고압 직류 송전 방식(HVDC) 송전선로 건설 계획이 틀어져 버린 결과다. 변전소와 송배전망의 노후화에 따른 대규모 정전 사고도 전국에서 잇달아 발생한다.
‘전기 먹는 하마’인 인공지능(AI) 기반의 미래 첨단산업 육성도 어려워진다. 당장 용인의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 계획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원전 10기에 해당하는 10GW가 넘는 전력의 공급을 책임져야 할 한전의 부실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민간 발전사를 총동원하더라도 실제 전력을 공급하는 송배전 시설을 건설·운영하는 일은 한전이 떠맡을 수밖에 없다. 국회가 ‘국가기간전력망확충특별법’을 통과시킨다고 당장 사정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제 ‘값싼’ 전기 요금의 환상에서 확실하게 벗어나야 한다. 의식주의 물가가 선진국보다 55%나 비싼 우리의 전기·가스·수도 등 공공요금은 OECD 평균의 73%밖에 안 되는 현실은 명백한 비정상이다. 물가 관리라는 정책 목표를 핑계로 전기 요금을 지나치게 억눌러온 결과다. 엎친 데 덮친다고 정부가 책임져야 할 취약계층과 농민의 복지를 한전에 떠넘겨 버린 꼼수도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전 지구적 과제인 ‘탄소중립’까지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탈원전으로 왜곡된 ‘산업용’과 ‘가정용’의 왜곡된 요금 체계의 비정상도 서둘러 바로잡아야 한다. 산업용 전기 요금이 가정용보다 싼 것이 불공정한 특혜라는 인식은 심각한 오해다. 전력공급 원가가 가정용보다 낮은 것이 분명하다. 더욱이 기업의 전기 요금은 기업주가 아니라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비싼 산업용 전기 요금은 물가를 끌어올리고,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지나치게 비싼 산업용 전기 요금 때문에 우리나라를 떠나는 기업이 늘어나는 현실도 외면할 수 없다.
당장 전기 요금의 현실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지난 정부의 망국적인 ‘요금 누르기’로 만신창이가 돼 버린 한전의 재무 상태를 하루빨리 정상으로 되돌려놔야 한다. 전기 요금이 복지의 수단이었던 시대는 오래전에 끝났다. 취약계층의 복지는 전기 요금이 아니라 세금으로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다.

문화일보
08-27 의대 증원 “내년엔 보류”, 전공의·의대생 복귀가 대전제
국민의힘 측이 정부에 2026학년도 의대 증원 보류를 제안했으나 대통령실은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여당 움직임은, 의대생 2000명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 집단 이탈 사태가 6개월을 넘기면서 응급실 파행과 의료진 탈진 우려가 커지는 데 따른 고육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칫 의료 현장 불법 이탈에 대한 면죄부가 되거나, 정부의 사실상 백기 항복으로 귀결될 경우, 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신중하고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탈 전공의와 수업을 거부하는 의대생들의 전면 복귀라는 대전제가 충족되지 않으면 법치는 훼손되고, ‘의사 불패’라는 훈장만 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25일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은 3113명(2024학년도)에서 1497명 확대한 정부 결정을 유지하되, 2026학년도 증원은 보류하자’는 방안을 전달했다고 한다. 올해 유급될 의대 1학년 학생과 신입생 4610명을 합하면, 내년엔 의대 1학년이 7500명을 넘겨 실질적 교육이 어려운 만큼 일단 사태를 수습한 뒤 2027학년도 정원을 원점에서 재검토하자는 취지다. 대통령실은 26일 “정부가 결정할 일”이라며 정부 방침에 변화는 없다는 뜻을 밝혔다.
이번 제안은 지난 20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을 만나는 등 대책을 모색해온 한동훈 대표가 내놓은 절충안으로 보인다. 코로나 재확산과 임박한 보건의료노조 파업도 변수다. 2000명 증원 규모와 절차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필수의료 등을 살리기 위해 2035년까지 의사 인력 1만 명을 확충하는 것은 의료개혁 로드맵의 핵심이다. 정부도 증원 규모를 재논의할 수 있다는 열린 입장이다. 정부는 행정처분 철회, 수련 특례 등의 양보를 해왔지만, 이탈 전공의들은 증원 백지화, 즉 정부의 완전 굴복을 요구한다. 어떤 경우든 이런 겁박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문화일보 사설
08.28 '딥페이크 성범죄', 지금 못 잡으면 불길처럼 번질 것

▲그래픽=백형선
최근 서울대와 인하대에서 여학생 얼굴에 음란물을 합성한 딥페이크 영상이 유포된 데 이어 비슷한 종류의 텔레그램 대화방이 잇따라 발견돼 파장이 일고 있다. 피해자 중에는 대학생뿐 아니라 교사, 여군도 있고 중·고교생 등 미성년자도 포함돼 있다. 지난 25일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딥페이크 피해 학교 목록’엔 전국 초·중·고교 400여 곳의 이름이 담겨 있어 충격을 줬다. 그중 실제로 피해를 입은 학교 사례들이 속속 확인되면서 학생은 물론 학부모들 사이에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딥페이크 영상은 보안 수준이 높아 경찰 수사망을 피하기 쉬운 텔레그램을 통해 주로 이뤄진다. 수사가 어렵다 보니 일부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의 신고가 시작되고 교육부가 피해 현황 파악에 나섰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일부 텔레그램 방은 문을 닫았지만 일부는 새로운 방을 만들어가며 범죄를 이어가고 있다. 26일 새로 개설된 한 텔레그램 방 관리자는 “뉴스에 나와도 쫄지 말고 지능(지인 능욕)해라”라고 했다고 한다. 익명성을 무기로 디지털 공간을 성범죄의 온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딥페이크 영상 범죄를 저지르는 10대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올 7월까지 딥페이크 성착취 범죄로 경찰에 입건된 피의자 178명 중 10대가 131명(73.6%)에 달했다. 2021년 51명이었는데 벌써 배 이상 늘어났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이 범죄의 저연령화로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 10대들은 소셜미디어 사용과 사진 공유가 일상이다 보니 이것이 범죄라는 인식도 잘 못한다고 한다. 학교 당국의 교육, 그리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딥페이크 영상이 심각한 범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시켜야 한다. 지금 이런 범죄를 막지 못하면 불길처럼 번져 사회 불안이 커질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 뽑으라”고 지시했고, 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국회 차원의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뒤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고 유포하는 것은 성착취물을 직접 제작하는 것 못지 않게 영혼을 파괴하는 중범죄다. 피해자는 인격적 살해를 당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의 제도는 허점투성이다. 딥페이크 성범죄 영상을 제작해도 실형을 선고받는 경우가 드물고 단순 소지하거나 시청한 경우는 처벌 대상도 아니다. 서둘러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8-28 딥페이크 범죄, 단속·처벌 강화 급하다
최근 텔레그램 창시자인 러시아 출신 CEO 파벨 두로프가 프랑스 당국에 의해 텔레그램 딥페이크 음란물 유포 방조 혐의 등으로 체포됐다. 이를 계기로 딥페이크를 악용한 사회관계망(SNS)에서의 범죄 문제가 관심사로 부상했다.
딥페이크는 적대관계생성신경망(GAN)이라는 기계학습(ML) 기술을 사용하여 기존의 사진이나 영상을 원본과 합성해서 전혀 다른 새로운 이미지의 사진이나 영상을 만들어낸다.
다음 두 가지의 경우에 딥페이크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첫째, 가짜뉴스가 빠르게 확산하는 통로로 악용될 수 있다. 가짜뉴스는 일상생활에서의 단순 거짓말부터 선거나 전쟁 등 국가의 명운을 결정할 수 있는 상황에서 유포되는 경우까지 발생 양태가 다양하다. 전자는 세계적으로 표현의 자유 영역으로 보아 형사처벌하지 않지만, 후자는 처벌 규정의 신설·강화가 논의되고 있다. 예를 들면, 영화감독 조던 필은 딥페이크 기술의 위험성을 알리고자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는 천하에 쓸모없는 놈”이라고 말하는 딥페이크 영상을 제작·공개했다. 만일 현실 정치에서 선거를 목전에 두고 이 같은 동영상이 유포된다면 유권자들의 선택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가짜뉴스의 생성과 확산은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유포자 색출이 불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심각한 현안이다. 단순 거짓말이라는 이유로 표현의 자유로 분류해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는 가짜뉴스와,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불러일으켜 처벌해야 할 악의적 가짜뉴스를 구별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둘째, 범죄와 관련되는 경우다. 예를 들면 텔레그램과 같이 익명성이 보장되는 SNS 프로그램을 활용해 단체 회원방을 개설한 다음 얼굴을 다른 사람으로 바꾼 성적 동영상을 유포하거나 마약을 판매하는 경우처럼 기존 법률이 금지하는 행위를 자행한 경우다.
이 문제는 위 가짜뉴스에 비해 이론상 형사처벌 근거를 갖추기가 어렵지 않다. 예를 들면,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동영상에 특정인의 얼굴을 오버랩시켜 유포한 경우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또, 그러한 영상이나 사진을 영리 목적으로 제작한 때는 7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마약 등을 유통할 목적 또는 다른 범죄를 범할 목적으로 단체 대화방을 개설해 범죄를 저지른 때에도 형법이나 특별 법령에 따라 처벌할 수 있다.
문제는, 경찰력이나 행정력만으로 계속 생성·유포되는 사진·동영상을 걸러내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더욱이 텔레그램 등 해외 SNS 등에는 우리의 행정력이나 수사기관의 관할권도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고 좌시할 수는 없는 만큼 음란 영상물을 제작·유포하는 행위뿐 아니라, 해외의 아동 포르노 사례처럼 소지만 해도 처벌하거나, 암행감찰·위장수사도 일정한 범위에서 허용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해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언제나 그랬듯이, AI와 딥페이크 기술은 인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반면, 범죄에 악용되거나 국가를 뒤흔들 수도 있는 가짜뉴스가 일상화할 위험성도 크다. 범정부 차원에서 신속한 대책 마련과 인식 개선이 절실한 시점이다.

문화일보
08-28 위태위태한 의료 현장, 여·야·의·정 냉철히 지혜 모을 때
전공의 이탈 사태가 6개월을 넘기면서 대형병원과 응급실 등 의료 현장의 피로도가 한계에 달한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난다. 중증 환자가 제때 진료받지 못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등 말 그대로 위태위태한 상황이다. 의대생 증원에 대한 국민 공감대는 여전히 확고하고, 정부도 의료개혁 방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지만, 의료 불안이 확산할 경우 어떤 사태가 빚어질지 예단하기 힘들다. 추석 연휴에 응급실 대란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우려도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그동안 윤석열 정부만 고군분투할 뿐 정치권은 사실상 뒷짐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야는 ‘PA(진료지원) 간호사’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간호법 제정에 전격 합의,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예정이다. 걱정되는 것은 정부와 여당의 갈등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27일 페이스북에 의대생 증원을 2025학년도 입시엔 예정된 대로 시행하되, 2026학년도는 증원을 유예하자는 안을 대통령실에 제안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28일엔 국회 보건복지위 의원들과 간담회도 갖는다. 여당 일각에선 보건복지부 차관 경질 문제도 나온다. 대통령실과 총리실은 현 상황에서의 증원 유예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인데, 윤 대통령은 29일 오전 10시 연금·의료 개혁 등에 대한 국정 브리핑 및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윤 대통령은 “저항이 있더라도 의료개혁을 완수해야 한다”, 한 대표는 “개혁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국민 불안을 줄일 대안이 필요하며, 내년도 의대생 증원 보류가 불가피한 절충안”이란 입장이 확고하다. 이런 갈등 때문에 30일로 예정됐던 윤 대통령의 여당 새 지도부 초청 만찬은 결국 연기됐다. 간호법 제정에 대한 의사단체 반발, 야당의 의료개혁 특위 구성 등 변수도 더 많아졌다.
추석 연휴까지 2주일이 중대 분수령이다. 정부와 의료계는 물론 여야 정치권이 당리당략과 집단 이기주의를 버리고 냉철히 국민을 위한 대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 특히, 여권 자중지란이라는 얘기가 나오지 않도록 윤 대통령과 한 대표 측이 밤을 새워서라도 긴밀히 소통하기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
08-30 [속보] 서울·인천 폭염특보, 38일만에 풀렸다…대전·세종은 42일만
올해 8월 ‘기록적으로 더웠던 달’ 확실시…2018년 최고기록 모두 깨
8월 마지막 날인 31일 오후 5시를 기해 서울과 인천, 대전, 세종을 비롯해 전국 곳곳의 폭염특보가 해제되거나 경보에서 주의보로 단계가 낮아졌다. 더위가 한번에 가시지는 않겠지만, 기온이 점차 평년기온 수준을 되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과 인천(옹진군 제외)은 지난달 24일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뒤 38일만에 특보가 풀렸다.
대전과 세종은 지난달 20일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뒤 42일만 해제됐다.
이로써 전국 183개 기상특보 구역 가운데 아직 폭염특보가 유지되고 있는 곳은 95곳으로 줄었다. 현재 폭염경보가 내려진 곳은 없고, 모두 폭염주의보다.
일요일인 9월 첫날 남부지방의 체감온도가 최고 33도 내외까지 오르겠으나, 이날과 비교하면 체감온도가 1~2도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9월 1일 아침 최저기온은 19~25도, 낮 최고기온은 30~33도겠다.
9월 2일에는 기압골의 영향으로 새벽에서 오후까지 중부지방에 가끔 비도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3일에는 오후 전북서해안과 경북동해안에, 늦은 밤 경남해안에 비가 좀 오겠다.
9월 2일 최저기온과 최고기온 예상치는 19~25도와 26~33도다.
한편, 올해 8월은 ‘기록적으로 더웠던 달’로 남을 것이 확실시된다. 이달 1~30일 전국 평균 기온은 28도로, 기상관측망이 전국에 확충돼 기상기록 기준점인 1973년 이후 같은 기간 전국 평균 기온 중 1위다.
‘21세기 최악의 더위’라고 여겨져 온 지난 2018년(27.2도)보다도 0.8도 높다.
8월의 일최고기온 평균(33.0도)과 일최저기온 평균(24.2도)도 역대 1위다.
올해 들어 이달 30일까지 전국 평균 폭염일(일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인 날)은 23.8일로 1994년(29.6일)에 이어 역대 2위고, 열대야일(밤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인 날)은 20.2일로 역대 1위다.
문화일보 오남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