危機의 韓半島(外交) 2024-07/
07.01 '바이든 이후' 새판 짜기, 한국은 얼마나 대비돼 있나

▲미 대선 TV토론 중 조 바이든 대통령이 말을 더듬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다. /CNN
미국 대선 첫 TV 토론이 바이든 대통령의 완패로 끝났다. CNN 조사에선 “트럼프가 더 잘했다”는 응답이 67%였다. 토론 도중 수차례 말을 더듬거나 쉽게 흥분하고 허공을 멍하게 바라보는 바이든의 모습에 많은 유권자가 실망했다. 민주당 내부와 진보 언론에서조차 후보 교체론이 분출하고 있다. 대선까지 넉 달 정도 남았다.
트럼프는 얼마 전 ‘성 추문 입막음’ 재판에서 유죄 평결을 받고도 지지율에서 앞서왔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트럼프의 재집권에 대비해야 할 필요성이 훨씬 커졌다.
윤석열 정부의 대외 정책은 대부분 바이든 행정부와의 긴밀한 공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문재인·트럼프 시절 크게 훼손된 한미 동맹과 한·미·일 3각 안보 협력을 정상화한 것이 주요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작년 8월엔 정상화된 한일 관계를 바탕으로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선언을 통해 3국 협력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렸다. 동맹을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없었다면 실현되기 어려운 일들이다. 이 말은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대외·안보 정책 기조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한국의 안보나 북한 비핵화에 별 관심이 없다. 동맹을 금전 논리로만 본다. 한미 연합 훈련을 중단·축소하거나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인상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은 나를 좋아한다”고 자랑하는 트럼프는 언제든 김정은과 위험한 거래를 할 수 있다. 주한 미군 철수 문제가 현실화하지 말란 법이 없다.
트럼프는 이번 토론에서 “취임하자마자 러시아와 대화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했다. 빈말이 아닐 것이다. 최근 러시아는 북한과 동맹 관계를 복원하고 군사 기술 이전까지 시사했다. 그런 러시아에 맞서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검토하는 한국으로선 난감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들인 만큼 대비해야 한다. 우선 캠프 데이비드 협정 같은 성과들이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이 되지 않도록 제도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 이와 관련, 현재 미국의 핵무기를 한국 재래식 무기와 통합 운용하는 방안이 논의 중이다. 이것을 작전 계획에 신속히 반영해 북한의 핵 위협에 맞서야 한다. 트럼프의 집권을 우리 안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하겠다는 역발상도 필요하다. 가령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인상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핵 옵션을 요구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바이든 이후’ 안보 새판 짜기에 얼마나 기민하게 대응하느냐가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7-01 확 짙어진 트럼프 대세론… 비상한 각오로 대비해야

지난주 미국 대통령 후보 간 첫 TV토론으로 워싱턴이 혼돈에 빠졌다. 고령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논리적 토론을 버거워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자 민주당 지지층에서부터 후보 교체 요구가 강하게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우세하던 올 초 선거 판세는 최근 박빙으로 바뀌는 흐름이었지만, 트럼프 대세론이 단단해졌다.
더 커진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은 향후 4년간 한미 동맹에도 큰 변화를 예고한다. 그는 집권 1기 때처럼 한미 동맹을 거래와 흥정의 대상으로 볼 것이다. 트럼프 후보는 “왜 한국처럼 부유한 나라를 미국 세금으로 지켜주느냐”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2만8500명인 주한미군의 규모를 더 감축하고, 우리가 부담하는 연간 1조2000억 원 규모의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대폭 인상하도록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확장 억제’로 부르는 핵우산 제공은 계속할 것이지만, 재래식 무기 방어는 한국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새 원칙을 트럼프 캠프는 줄곧 거론해 왔다.
북-미 간 핵 협상이 다시 진행될 수 있다. 2019년 하노이 회담은 김정은이 핵을 일부 포기하는 대가로 완전한 경제 제재 중단을 요구하는 바람에 깨졌다. 요즘 트럼프 캠프의 핵심 참모들은 ‘북한이 핵 폐기가 아닌 동결에만 나서도 제재를 풀어주는’ 식의 협상을 두고 “해볼 만하다”고 말한다. 트럼프발 안보 리스크는 더 커진 것이다.
트럼프가 “임기 첫날 전기차 보조금 폐기 행정명령에 서명하겠다”고 공언한 것도 파장을 짐작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 발언은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부품이 40%가 적은 전기차가 시장을 주도할 경우 일자리 위협을 느끼는 미시간주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것이었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바이든 대통령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맞춰 미국에 막대한 투자를 해온 우리 자동차, 배터리 기업들의 투자전략에 불확실성이 커졌다.
1기 행정부 때 중심을 잡아주던 관록의 참모들은 다수가 그를 떠났다. 그래서 국제사회는 그의 복귀 가능성에 긴장하고 있다. 트럼프 2기가 동맹에 균열을 내고, 북한과 타협하고, 우리 첨단 산업의 기반을 흔드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비상한 각오로 동맹의 가치를 훼손하는 트럼프식 ‘변칙 외교’ 현실화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동아일보 사설
07.01 핵무장과 한·미 동맹, 둘 다 갖는 건 불가능

▲북한은 4월 2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로 600mm 초대형 방사포병 부대들을 국가 핵무기 종합관리체계인 핵방아쇠 체계 안에서 운용하는 훈련을 처음으로 진행했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사진 조선중앙TV 캡처
대한 열망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북한의 한국을 겨냥한 ‘가상 핵반경 전술훈련’, ‘적대적 두 국가론’ 선포에 이은 영토 정복 위협, 일부 미국 인사의 한국 핵무장 용인 발언, 트럼프 대통령 재선 및 한·미 동맹 약화 가능성, 국내 유력 정치인들의 핵무장 요구 등이 핵무장론을 크게 부추겼다. 과연 한국 핵무장이 최선의 안전보장책인가? 필자는 국내 핵무장론이 불확실한 핵무장 이익을 과대평가하는 반면, 실체적인 핵무장 비용과 불이익은 과소평가했다고 본다. 특히 미국의 핵 비확산 정책과 핵 비확산 국제 체제의 실효성을 경시했다.
미국은 핵 비확산 원칙 고수하며
비핵 동맹국에 핵우산 보호 제공
핵무장시 동맹과 핵우산 사라져
첫째, 핵무장론은 핵은 핵으로만 대응할 수 있고, 미국 핵우산은 막상 필요할 때 전개되지 않는 ‘찢어진 핵우산’이므로 핵무장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주장은 한국이 자체 핵무장과 한·미 동맹·핵우산 둘 다 가질 수 없는 현실을 간과했다. 미국은 1970년대부터 일관되게 핵 비확산 원칙을 고수해왔고, 비핵 동맹국에 핵우산의 보호를 받는 대신 핵 옵션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고 또 관철했다. 게다가 한·미 동맹과 핵우산에 대한 불신은 근거 없는 일방적 해석이다. 실제로 한·미 동맹과 핵우산은 지난 70년간 한국의 평화와 번영을 보장하는 훌륭한 실적을 보였다. 반면 한국 핵무장은 어떤 안보 효과가 있을지 불확실하다. 인도·파키스탄의 경우, 상호 핵 억제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빈발했고 핵 사용 위험성도 높았다. 더욱 치열하게 경쟁하는 남북 관계라면 한국의 핵무장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상호억제를 기대하기 어렵다.
둘째, 핵무장론자는 한국이 핵으로 무장하면 강대국이 되어 국제적 위상도 상승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약소국이자, 강대국 사이에 ‘끼인 국가’로 살아온 한국에 솔깃한 말이다. 그런데 핵 비확산 국제 체제가 정착한 현시대에 핵무기는 강대국의 상징이 아니라, 반인도주의, 평화 파괴의 상징으로 통한다. 한국이 핵 개발을 추진하면 선진국, 중견국, 모범적 핵확산방지조약(NPT) 회원국에서 졸지에 국제규범 위반 국가, 불량 국가로 지위가 추락할 것이다.
셋째, 핵무장론자는 합법적으로 NPT를 탈퇴하고, 국내 기술로 단기간에 핵 개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핵무장 한다는 마음을 먹으면 이른 시일 안에, 심지어 1년 내 핵으로 무장할 수 있는 기술 기반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한국이 농축·재처리시설을 건설하고 핵무기 10기 이상에 상당하는 핵분열 물질을 추출하려면 최소한 수년 이상 걸린다고 본다. 또 NPT 10조의 탈퇴조항은 1995년 NPT가 영구 연장된 이후 사실상 사문화되어, 이를 인용하면 문제 국가가 된다. NPT 10조에 따라 유엔 안보리에 NPT 탈퇴를 통보해야 하는데, 안보리가 한국의 NPT 탈퇴를 순순히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강력한 자체 재래식 방위력에 더해 한·미 동맹의 주한미군·핵우산·핵협의그룹을 활용하는 현행 방안이 최선의 대안이다. 김지윤 기자
넷째, 핵무장론자는 최근 미국 인사들의 한국 핵무장 용인 발언과 트럼프 대통령 재선 시 핵무장 허용 가능성에 기대가 크다. 그런데 핵무장 용인 발언의 주체는 모두 전직 관료이며, 책임 있는 정부 인사는 누구도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 더욱이 일부 한국 핵무장 허용 주장은 주한미군 철수론을 전제로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미국 조야에 뿌리 깊은 핵 비확산 원칙을 볼 때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해도 핵무장을 허용할 가능성은 작다.
이런 이유로 한국이 핵으로 무장할 수 없다면 어떤 안보 옵션을 선택해야 하나. 현재로선 강력한 자체 재래식 방위력에 더해 한·미 동맹의 주한미군·핵우산·핵협의그룹을 활용하는 현행 방안이 최선의 대안이다. 나아가 한·미 동맹이 작동하지 않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플랜B를 준비토록 한다. 이때 농축재처리를 통한 핵 잠재력을 갖는 대안이 많이 거론된다. 그런데 ‘핵잠재력을 위한 농축재처리’를 요구하면 미국과 국제사회가 이를 지지할 가능성이 작다. 따라서 우선 산업용 농축재처리를 목표로 정부·국회·원자력계·전문가가 모여서 획득 전략을 수립하고, 역할 분담에 따라 집행할 것을 제안한다.

중앙일보 전봉근 한국핵정책학회장·리셋 코리아 통일분과위원
07.01 북·러 응징은 한·중 결속으로
김정은-푸틴 만남을 시진핑은 어떻게 볼까.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하나는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북·러 밀착이 서방을 교란해 중국에 가해지는 압박을 경감시킬 수 있다는 논리다. 다른 하나는 못마땅하다는 거다. 러시아를 등에 업은 북한의 무모한 도발로 한·미·일 안보협력이 강화되며 ‘동아시아판 나토(NATO)’가 등장할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분석이다.
내 생각엔 시진핑 심사가 편치 않을 것 같다. 우선 푸틴의 행보가 시진핑의 심기를 건드린다. 푸틴은 북한에 이어 베트남을 찾았는데 두 나라 모두 전통적으로 중국의 독점에 가까운 영향력이 미친다고 인식되는 곳이다. 한데 푸틴은 그런 중국의 위아래를 휘젓고 다니며 다른 분야도 아닌 군사 협력을 다졌다. 푸틴은 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나? 러시아 세력권이란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추진했기 때문이 아니든가.

▲김정은-푸틴 만남은 윤석열-시진핑 회동으로 응징하는 게 효과적이다. [연합뉴스]
중·러 사이가 좋다고 하나 중화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시진핑 입장에선 푸틴의 이런 발걸음이 달가울 리 없다. ‘신냉전’을 둘러싼 북·중 인식 차이도 문제다. 북한은 신냉전을 기회로 여긴다. 한·미·일에 대항할 북·중·러 진영을 구축해 생존의 길을 찾으려 한다. 그래서 중국을 신냉전의 편싸움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이다. 하지만 중국은 신냉전을 위기로 본다.
신냉전은 미국이 중국을 서방과 단절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야기하는 것이기에 그런 상황에 빠지는 걸 극구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연히 진영 대결을 부추기는 북한의 행태가 탐탁지 않다. 최근 북·중 관계가 소원한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중국은 국제적 왕따인 북·러와 동급으로 취급될까 저어한다. 자,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북·러 군사동맹 복원에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으로만 맞설 건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중국과의 관계 강화가 현명하다. 사실 북·러 모두 중국의 도움이 절실한데 중국이 화끈하게 도와주지 않는다며 불만이다. 이번 북·러 결속 과시도 중국에 보여주기 위한 측면이 크다. 그렇다면 우리로선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게 북·러에 대한 가장 큰 응징이 될 수 있다. 한·중 관계 회복의 지름길은 정상 만남이다.
시진핑이 내년 가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맞춰 한국에 오길 기다리는 건 너무 늦다.
또 꼭 온다는 보장도 없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순서 따질 것 없이 윤석열 대통령의 방중 추진을 검토할 만하다. 중국도 이에 맞춰 한한령(限韓令) 해제 등 마중물을 부을 필요가 있겠다.
중앙일보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07-02 美·佛·英 집권당 고전과 대응책 옵션
김용호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완패당한 뒤 후보 교체론이 비등하지만 가족회의 끝에 “끝까지” 달리겠다고 한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 혐의와 관련, 연방대법원이 면책특권 적용 여부 심판을 1일 하급심으로 돌려보냄으로써 더욱 힘을 얻었다. 한편, 프랑스 총선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중도연합의 득표율이 3위를 기록, 오는 7일 결선투표에서 국민연합(RN)이 다수 의석을 확보할 경우 ‘극우 총리-중도 우파 대통령’이라는 동거 정부가 탄생하게 된다. 또, 영국의 집권당인 보수당은 오는 4일 총선에서 패배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보수당 지지율이 노동당의 절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들 나라에서 집권 세력이 모두 선거에서 고전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심한 정치적 양극화로 인해 집권 세력이 지지 기반을 확대하기가 매우 어렵다. 과거와 달리 좌·우 양대 진영으로 나뉘어 자기 진영 유권자들의 투표 참가율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그러니 현직보다 네거티브 캠페인에 강한 도전자가 승리할 가능성이 커진다. 온라인 매체가 날로 늘어나면서 집권 세력에 대한 비판과 반대는 정치적 파급 효과가 크다. 미국과 영국 등 여러 나라에서 이민정책 때문에 집권 세력이 곤욕을 치르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 범죄가 늘어나는 것 등을 비롯해 거의 모든 나쁜 것을 불법 이민자에게 덮어씌우는 캠페인이 힘을 얻는다. 사실 여부를 따지지 않는 탈진실(post-truth)의 정치에서 집권당의 정책 홍보는 효과가 미미하다.
실제로 이들 나라에서 정권교체가 일어나면 우리의 안보·경제에 미칠 영향이 매우 크다. 과거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한국에 주한미군 분담금을 4배 넘게 요구하는 바람에 큰 고통을 겪었다. 그런 만큼 미리 대비해야 한다. 특히, 트럼프 리스크를 우선으로 관리해야 한다. 안보 리스크는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 분담금 증액, 미·북 핵협상 등이다. 트럼프 진영에서 주한미군을 대북 억제 아닌 대중(對中) 견제용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것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이 된다면 우리의 안보에 구멍이 생기게 된다.
우선, 트럼프 진영의 진의를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주한미군 분담금 증액에 대비해 다양한 옵션을 개발해야 한다. 또, 우리 정부를 패스하고 미·북 간의 협상이 이뤄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편, 트럼프 집권에 따른 경제 리스크에 대비해서 우리 정부와 기업의 공동 노력이 중요하다. 트럼프 진영은 전기차 구매에 보조금 지급 등을 도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폐지한다고 공언한 상태이므로 이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손 놓고 있다가 당하지 않도록 반도체법의 향방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 기업의 반도체 분야 대미 투자가 막대하고, 반도체법에 따른 미 연방정부의 지원금도 삼성전자만 65억 달러(약 9조 원)나 되므로 순조로운 법 집행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 미리 대비해야 만약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일보
07.03 푸틴은 왜 평양의 해방탑에 헌화했을까
'소련의 조선 해방' 상징하는 해방탑… 북한에 지분 있다는 걸 과시
평양에 공산주의 체제 이식한 소련, 북핵 개발에서는 어머니 역할
폭주하는 북한의 기승전核… '확장 억제' 전략만으로는 이제 어렵다

▲일러스트=이철원
과거에 평양을 방문했을 때 모란봉산 먼발치에서 높이 30m 정도의 탑이 보였다. 꼭대기에는 붉은 오각별이 장식돼 있었다. ‘무슨 기념물이냐’고 북측 안내인에게 물었더니 “해방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서울에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니 ‘2차 대전 말 조선을 해방시킨 소련 군대를 기념하기 위해 1947년 건설됐다’는 기록이 있었다. 오각별은 소련군 엠블럼이다.
해방탑에 새겨진 비문은 이렇다. ‘위대한 쏘련 인민은 일본 제국주의를 쳐부시고 조선 인민을 해방하였다. 조선의 해방을 위하여 흘린 피로 조선 인민과 쏘련 인민의 친선은 더욱 굳게 맺어졌나니.’ 러시아 측은 2차 대전 당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소련군 약 4만7000명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었다고 말한다.
지난달 평양을 찾아간 푸틴은 짧은 당일치기 방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2000년에 방문했을 때처럼 해방탑 앞에 꽃을 놓았다. 모스크바가 북한에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걸 과시하려 한 것이다. 북한에는 평양과 지방에 소련군 참전 및 추모 기념탑이 13개나 있다.
소련은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 직후인 1945년 8월초 대일 선전포고를 하고 중국 동북 지방으로 진군했다. 8월말에는 소련군 부대가 평양에 진주했다. 한반도 분단의 비극이 잉태된 시발점이었다.
평양에는 삽시간에 소련 공산주의 체제가 이식되기 시작했다. 8월 25일 소련군 사령부는 평양철도호텔에 본부를 설치하고 군정을 시작했다. 9월 19일에는 김일성 등 소련군 극동사령부 예하 88특수여단 소속 빨치산 50여 명이 원산에 상륙했다. 10월 14일에는 소련 해방군 환영 대회가 평양 공설 운동장에서 개최됐다. 소련군 장성이 연단에 올라 위대한 김일성 장군을 소개하겠다고 언급했고, 새파란 젊은이 김성주(金成柱)가 김일성의 이름으로 올라왔다. 이후 김성주는 김일성이 됐고,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을 결성했다.
79년 전 평양의 실상을 소개한 이유는 지난달 평양에서 체결한 북·러 군사동맹 조약 체결의 뿌리와 북한 핵무기의 태동을 되짚어 보기 위해서다. 1961년 흐루시쵸프와 김일성이 체결했다가 1996년 폐기된 ‘조소(朝蘇) 동맹 조약’은 이번에 푸틴과 김정은의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떨어지면서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으로 부활했다고 볼 수 있다.
자동 군사 지원 조항이 포함돼 군사 동맹 관계를 형성하면서 평양은 좌(左) 중국, 우(右) 러시아로 한·미·일 대응 틀을 구축했다. 유엔 대북 제재도 겁내지 않는 북한 외교의 만조기(滿潮期)가 형성됐다. 23개 조항으로 구성된 2024년 북러 조약 제10조는 경제와 과학기술 협력의 발전을 추동하는 분야로 ‘우주, 생물, 평화적 원자력, 인공지능, 정보기술 등’을 사례로 예시했다. 주목되는 분야는 우주와 원자력으로 북핵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일본 천황의 군대가 핵무기 두 발로 항복하는 상황을 지켜본 김일성은 6·25전쟁 때 미국의 핵 폭격에 대한 두려움을 가졌다. 그는 휴전 직후인 1954년 인민군 내에 ‘핵무기 방위 부문’을 설치했다. 1956년 물리학자 30여 명을 소련의 두브나핵연구소에 파견한 게 북핵 개발의 효시가 됐다.
북한은 1959년에는 조소(朝蘇) 원자력 협정을 체결했다. 1962년에는 영변에 원자력 연구소를 설립하고,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대에 핵 연구 부문을 창설해 인력 육성에 나섰다. 1965년에는 소련으로부터 IRT-2000 원자로를 도입했다. 그해 김일성은 평양을 방문한 조총련 대표단 접견에서 10년 안에 핵을 보유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요컨대 소련은 북한 핵 개발의 어머니 역할을 했다.
영변에 원자력 연구소를 설치한 지 44년 만인 2006년 북한은 핵실험을 감행했다. 이때부터 2017년까지 북한의 핵실험은 6차례 이어졌다. 북한은 ‘사실상의 핵무기 보유국’이다. 최소 50기에 이르는 핵무기와 투발 수단인 각종 미사일을 보유했다.
3대에 걸친 핵 개발은 할아버지 김일성이 디자인하고 체계를 구축했다. 아버지 김정일은 두 차례 핵실험으로 기반을 닦았다. 손자 김정은 집권 이후 4차례 핵실험으로 실전 배치 수준에 도달했다. 사회주의 정권 70년에 걸친 핵 개발로 북한은 지구상의 9번째 핵클럽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기승전 핵(核)이라는 키워드는 북한 정책에서 최우선 순위다.
1인당 국민소득 1200달러의 국가지만 북한과 러시아는 우주와 원자력 기술 교류와 협력을 강조한다. 우주 기술은 핵을 적국에 배달하는 역할을 한다. 평화적이란 형용사를 붙였지만 북한이 원전을 건설하지 않고 있는 만큼 경량화, 소형화된 핵무기 개발이 핵심이다.
김정은은 2022년 9월 최고인민회의 시정 연설에서 “절대로 먼저 핵 포기란 없으며 그 어떤 협상에서도 맞바꿀 흥정물도 없다”고 했다. 북핵은 김정은 집권 10년을 기점으로 양적 변화의 임계치에 도달하면서 질적 변화를 모색했다. 질적인 정책 변화의 핵심은 ‘핵 선제 사용’이다.
그동안 중·러가 유엔 대북 제재에 협조하면서 북핵과 미사일 개발은 속도가 억제됐다. 북한의 행동을 제지할 수 있었던 중·러의 지도자들은 북한을 자극하지 말라고 미국을 견제하는 방조자가 됐다. 러시아가 북한에 정밀 무기를 제공하는 레드라인을 넘을 경우 우리도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할지 여부는 한반도 안보에서는 부차적인 문제다. 북핵에 대한 한국의 선택이 핵심이다. 지난해 4월 워싱턴 선언에서 합의된 ‘확장 억제’ 전략만으로 폭주하는 북핵을 억지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때마침 워싱턴에서 불어오는 한국의 ‘떠밀린 핵무장론’은 새로운 바람이다. 한반도 핵 균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감성적·정치적 구호보다는 이스라엘식의 차분한 접근이 선행돼야 한다.
조선일보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07.05 무명 하급 관리 中 대사의 오만, 우리가 만들어준 것

▲본국 귀환을 앞둔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4일 조태열 외교부 장관을 만나기 위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뉴스1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가 임기를 마치고 조만간 한국을 떠난다고 한다. 싱 대사는 작년 6월 “중국 패배에 베팅하는 건 오판이며 반드시 후회한다”는 협박성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우리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지만 중국 정부는 무시했다. 그러다 싱 대사의 정년 퇴임 시점에 맞춰 불러들인 것이다.
외국에 파견하는 대사의 수준을 보면 해당국에 대한 중시 여부를 알 수 있다. 한국은 주중 대사를 이른바 ‘4강 대사’로 분류해 대통령 측근이나 장차관급 인사를 파견해 왔다. 반면 중국은 수교 이후 한동안 부국장급 실무자를 한국에 보냈다. 2010년부터 국장급 인사를 대사로 임명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 일본은 물론이고 북한에도 차관급 대사를 보낸다. 더구나 주한 대사는 은퇴 직전인 사람을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주한 중국 대사는 대부분 중국 외교부에서 존재감이 없는 인물들이었다. 싱하이밍은 중국 외교부장이 그의 이름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런 중국 대사가 한국에선 부임과 동시에 VIP 대접을 받는다. 주로 기업인들이 중국 사업에서 중국 대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헛된 생각으로 환대했다. 글로법 대기업 총수들까지 이 하급 관리를 만났다. 국회의장, 여야 대표, 부총리, 장관, 도지사 등 정·관계 고위 인사들까지 수시로 만났다. 작년 6월 싱 대사의 ‘베팅 발언’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자신의 관저로 불러 연설하던 도중 나온 것이다. 한국 사회 전체가 중국 외교부 내에서 존재감도 없는 하급 퇴물 외교관을 거물로 만든 것이다.
특히 싱 대사는 최소한의 절제와 겸손도 없는 사람이었다. 싱하이밍은 지난 대선 때 윤 대통령의 사드 입장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공개 반박문을 내기도 했다. 외국 대사가 주재국 선거에 개입한 것이다. 주재국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만을 쳐다보는 언행을 했다. 배터리 공장 화재 때는 “한국 기업이 뼈아픈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인권을 인정하지 않고 온갖 야만적인 사고가 거의 매일 벌어지는 중국의 공산당원이 한 말이다.
중국이 어떤 대사를 새로 보내는지는 그들이 결정할 일이다. 다만 이런 하급 관리를 우리 사회가 ‘거물’로 만들어 대우해 주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하급 관리라 하더라도 대사는 그 나라를 대표해서 온 사람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에 맞는 대우를 받으려면 중국도 한국 대사를 제대로 대우해야 한다. 주중 한국 대사는 중국에서 거의 투명 인간 취급을 받는다. 중국 외교부 부부장(차관급)도 만나기 힘들다. 한국은 중국과 같은 국가에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나라가 아니다.
조선일보 사설
07.05 2년 묵은 갈등 폭발… 北, 中이 퍼주지 않자 러 끌어들였다
이상한 北中, 왜 이러나
▲2021년 6월 중국 지린성 투먼과 북한 남양 접경 모습. /조선일보 DB
북·중 관계가 심상치 않다. 김정은과 시진핑 주석이 2018년 중국 다롄에서 같이 산책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설치된 ‘발자국 동판’부터 없어졌다. 중국 측이 동판 위로 아스팔트를 깔아 발자국을 없애버렸다. 북·중 정상의 우호 상징물이 제거된 것은 유례가 없다. 코로나가 끝났는데도 북한 노동력의 중국 신규 유입은 중단된 상태다. 지난 1월 대만 총통 선거는 중국의 최대 관심사였다. 중국이 싫어하는 친미·독립 성향의 후보가 당선됐는데도 북한은 중국 입장을 지지하는 성명조차 내지 않았다. 중국과 일본에서 비슷한 시기에 강진이 발생해 모두 큰 피해를 봤다. 정상이라면 북한은 중국에 위로 전문을 보내야 한다. 그러나 김정은은 일본에만 ‘기시다 각하’로 시작하는 전문을 발송했다. 얼마 전엔 북한이 조선중앙TV의 해외 송출 위성을 중국에서 러시아로 바꿔버리기도 했다. 이 같은 공개된 파열음은 북·중 실제 갈등의 빙산 일각일 가능성이 크다. 언제부터, 왜 이러는 것이며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래픽=양인성
◆2년 전부터 이상 징후, 올 들어 표면화
코로나 당시 북·중 교류는 사실상 끊어졌다. 상처는 대외 무역의 96%를 중국에 의존하는 북한이 더 컸다. 김정은은 중국이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에 얽매이지 말고 북한을 도와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중국은 섣불리 북한을 지원하다 미국에 대중 제재의 빌미를 주고 싶지 않았다.
러시아는 달랐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지만 전황이 뜻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당장 포탄이 부족해졌다. 고립된 푸틴이 손 내밀 곳은 북한뿐이었다. 북한은 2022년 말부터 러시아에 무기를 보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대가로 러시아의 정제유가 북한으로 들어갔다. 정제유는 유엔 제재 품목이라 북한이 중국에서도 쉽게 못 구한다. 재작년 북한은 ‘대북 전단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뜨린다’는 억지를 부렸다. 중국은 북한의 비상식적 주장에 호응하지 않았다. 반면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은 ‘북한 말이 맞을 것’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러 관계가 급물살을 탔다.
▲김정은과 푸틴이 지난달 동맹 조약을 맺고 악수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작년 7월 북한의 정전협정 체결 70년 열병식에서 러시아는 푸틴 최측근인 쇼이구 당시 국방부 장관을 보냈다. 러시아가 북한 열병식에 특사를 보낸 건 이례적이다. 10년 전 정전 60년 때도 고위급을 파견하지 않았다. 반면 중국 특사는 리홍중 정치국 위원이었다. 최고지도부인 상무위원(7명)을 보낼 만도 한데 위원(25명)을 보낸 것이다. 김정은은 표시 나게 러시아 특사만 환대했다. 2022년부터 쌓인 북·중 갈등이 표면화한 것이다.
◆대북 제재, 포탄 지원 놓고 북·중 불화
중국은 미국의 일극 체제는 거부하지만 기존 무역 질서는 유지하려 한다. 현재 시스템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러시아 경제는 에너지 수출 위주로 비교적 단순하다. 전쟁 수렁에 빠지면서 체면을 차릴 처지도 아니다. 북한 무기를 얻으려고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약속했던 대북 제재까지 허물고 있다.
시진핑은 2012년 집권 직후부터 김정은을 좋게 보지 않았다. 북핵 폭주가 동북아 균형을 흔든다고 봤다. 북한 도발은 미군을 중국 코앞으로 불러들이는 빌미가 된다. 2014년 중국 지도자 중 처음으로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하며 김정은에게 경고장을 보냈다. 김정은은 2015년 베이징에 모란봉 악단을 보냈지만 중국 최고위급이 관람하지 않자 공연 직전 악단을 소환하며 감정싸움을 벌였다.
▲중국이 시진핑·김정은의 '발자국 동판'을 아스팔트로 삭제한 장면. /KBS
북·중은 불신의 역사가 깊다. 중국은 북한이 촉발한 충돌에 휘말리는 것을 경계한다. 6·25가 대표적이다. 북한의 러시아 포탄 지원은 ‘나비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세계 경제가 요동치거나 북·중·러의 결속 모습이 한·미·일 군사 협력을 강화시키는 것은 중국에 불리하다.
중국은 북한에 ‘러시아와 무기 거래를 자제하라’는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거꾸로 러시아와 군사 동맹까지 부활시켰다. 북·중 동맹보다 포괄적이다. 김정은은 지난 4월 북·중 수교 75년을 맞아 중국 자오러지 상무위원(서열 3위)의 방북을 기다렸다. 2009년 수교 60년 때 원자바오 총리가 공장 건설 등 선물 보따리를 싸 들고 방북했던 기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런데 자오러지는 빈손이었다. 김정은은 푸틴에게 더 기울었고 북·중 관계는 더 틀어졌다. 반면 중국은 텃밭인 동북아에 미국은 물론 러시아가 끼어드는 것도 싫어한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조선일보 DB
◆김정은·푸틴의 모험주의 결합이 가장 위험
북·중 악화와 북·러 밀착이 가져올 가장 큰 위험은 김정은과 푸틴의 모험주의가 결합하는 것이다. 김일성의 모험주의는 6·25를 불렀고, 푸틴의 모험주의는 우크라이나를 전쟁터로 만들었다. 반대 세력이 없는 독재자일수록 오판 가능성이 커진다. 북한 경제는 농경 사회 수준이다. 그런데 핵과 미사일이 있다. 김정은은 푸틴의 식량과 무기 기술만 있으면 모험 기회를 엿볼 수 있다. 푸틴도 김정은의 포탄 지원만 있으면 전쟁을 끌고 나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 대선이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전쟁이 끝나면 푸틴 입장에선 북한의 포탄보다 한국과의 경제 관계가 더 중요할 수 있다.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면 전쟁 상황과 미·북 관계, 미·중 관계 등이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선 김정은이 1950~60년대 김일성처럼 중·러 등거리 외교를 통해 군사·경제적 실리를 챙기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시는 소련이 주요 2국이었고 중·소 관계는 핵전쟁을 준비할 정도로 나빴다. 지금 북한은 중국이 송유관만 잠가도 열흘을 버티기 어렵다. 김정은의 반중 감정싸움은 장기적으로 악수(惡手)가 될 수 있다.
김정은이 푸틴과 합의한 ‘북·러 자동차 다리’ 연결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북·러가 다리를 놓으려는 두만강 하구는 중국이 동해로 빠져나가려는 길이다. 중국 소식통은 “북·러 새 다리가 완공되면 중국 배는 바다로 나가기 어려워진다”며 “중국은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우크라 종전, 美 대선이 변수”
북·중이 삐걱거리고 북·러가 밀착하는 동아시아 정세에 대해 미국 등 서방도 적지 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 국무부 커트 캠벨 부장관은 최근 워싱턴 대담에서 “중국이 러시아와 북한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다소 불안해하고 있다면 맞을 것 같다”며 “중국 측이 우리에게 이런 점을 시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아시아 정책을 총괄한다. 캠벨 부장관은 또 “중국은 (북·러 군사 협력으로) 북한이 동북아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도발적인 조치를 취할까 봐 우려하고 있다”고도 했다. 영국 BBC방송도 “북·러 관계의 급속한 발전에 대해 중국이 불편한 속내를 보여준 징후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달 중국을 방문한 푸틴이 바로 평양으로 가지 않고 러시아로 돌아갔다가 다시 방북한 것은 중국이 푸틴의 베이징·평양 동시 방문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러와 한·미·일이 주요 무역 상대국인 중국은 입장이 다르고, 중국은 성장 둔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북·러와 묶이길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북·러의 군사 동맹급 새 조약이 중국의 골칫거리로 떠올랐다고 했다. 중국 인민대 스인훙 교수는 NYT에 “중국 시각에서 북·러 조약은 한·미·일 협력과 결합해 지역 내 대립과 경쟁, 갈등 위험을 상당히 악화시켰다”며 “지역 내 군사화가 가속하면 중국 이익은 위태로워진다”고 했다. 반면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중은 이해관계가 깊게 얽혀있고 러시아가 북한의 동아줄이 되기 어렵다는 것은 김정은도 알 것”이라며 “미국 대선 등 중장기적 상황에 따라 북·중 관계는 언제든 회복될 수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안용현 기자
07-05 ‘트럼프 리스크’는 북핵 리스크
최원상 한성대 국방과학대학원 겸임교수
‘트럼프 리스크’가 점점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미국 애틀랜타 CNN 방송국에서 있었던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후보 첫 TV 토론 이후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이 커졌다. 또, 미국 연방대법원이 트럼프의 대통령 재임 중 발생한 일들에 대한 형사기소는 면제돼야 한다고 판결함으로써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에 힘이 실렸다.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우리로서는 북핵 위협 대응책을 재검토할 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한국을 안보 무임승차 국가로 간주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관한 협상을 하고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을 통해 국방예산 증가율을 적용, 2025년까지 인상키로 하여 2019년 이후로는 약 1조 원이 넘는 예산이 매년 쓰이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또 한국같이 부유한 나라를 왜 미국이 보호해 줘야 하느냐며 안보 무임승차를 다시 강조해 북핵 위협에 직면한 우리를 더욱 불안케 한다.
한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평양에서 만나 군사적 동맹으로 볼 수 있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북·러 조약)에 서명한 이후 북한의 핵 위협도 더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미 국무부는 워싱턴선언에 따라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핵우산이 적절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워싱턴선언은 지난해 4월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 채택됐다. 이에 따라 강화된 확장억제(핵우산) 실행 방안으로 핵협의그룹(NCG)이 지난해 7월 출범했으며, 지난달 10일 제3차 한·미 NCG 회의 이후 동맹의 핵억제 정책을 강화하기 위한 원칙과 절차를 제공하는 ‘공동지침 문서’의 검토를 완료했다는 공동성명도 발표됐다.
북핵 위협 대응에 관해 우리 정치권은 미국이 한국과 핵무기를 공유하거나 한국에서 철수한 핵무기를 재배치하는 핵의존형(핵우산) 주장과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핵자주론(핵무장) 주장으로 양분돼 있다. 그러나 정부는 핵확산방지조약(NPT) 의무 이행과 한·미의 확장억제 협력을 강화하면 북핵 위협에 대응할 수 있다며 자체 핵무장에 반대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열린 한반도 미래심포지엄 축사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글로벌 복합 위기는 한·미동맹과 지난해 8월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채택된 한·미·일 3국 공동 협력으로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앞서 한덕수 국무총리도 자체 핵무장은 고려할 단계가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
반면, 통일연구원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2024 통일의식조사’에서는 66%의 응답자가 우리의 핵 보유에 찬성했다. 조사 첫해인 2014년에는 50.5%였으니 그간 우리 국민의 국가안보와 핵에 대한 의식 변화를 알 수 있다. 실체적 위협인 북핵에 대해서는 동맹인 미국과의 공조도 중요하지만, 변화한 여론을 살피는 일도 필요하다. 냉전기 미국과 구소련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상호확증파괴’(MAD)로 불리는 핵억지가 작용해 전쟁이 발생하지 않고 핵균형이 유지됐던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북핵 대응책은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외 안보정책 변화를 고려해 그 어느 때보다도 유연하게 추진해야 한다. 우리에게 트럼프 리스크는 곧 북핵 리스크다.

문화일보
07-09 핵 정세 급변…파격적 핵정책 필요하다
박영준 국방대 국가안보문제연구소장
북핵에 초점 맞춘 세 갈래 논의
한미 확장억제·핵무장·핵공유
북중러 급속 핵 증강 고려해야
한미 전략司 협력 실질화하고
우방과의 전방위 核협력 모색
3단계 접근법 적극 검토할 때
최근 국내 안보정책 전문가들 사이에 북한의 증대되는 핵능력에 대응하는 핵무장 논쟁이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이 논쟁의 주장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지난해 4월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구축된 핵협의그룹(NCG)을 통해 양국 간의 확장억제 태세를 최대한 강화하자는 입장이다. 둘째는 미·일 원자력협력협정에 따라 일본에 허용되는 수준의 우라늄 농축 권한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독자적 핵무장을 추진하자는 입장이다. 셋째는 미국의 전술핵을 재반입해 배치하고, 이에 수반되는 비용은 우리도 부담하자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식 핵 공유론이다.
이 같은 논쟁들이 북한의 점증하는 핵능력에 대한 엄중한 위협 인식에서 제기되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만, 기존의 논의는 북한의 핵 위협에만 초점을 맞추고, 국제 핵질서의 구조적인 변화를 함께 고려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2022년 2월부터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러시아는 지난 2010년 4월 미국과 체결한 핵군비통제조약인 뉴스타트(New START)를 오는 2026년 이후에 갱신하지 않을 것임을 표명했고, 이미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에서의 탈퇴를 밝혔다. 현재 400여 기 수준인 중국 핵탄두 전력은 2030년 중반쯤이면 현재 미국과 맞먹는 1500여 기 안팎으로 증강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 경우 앞으로 10년 안에 러시아와 중국의 전략핵 합계 전력은 현재 미국 보유 규모의 2배 이상으로 증강될 것이 예상된다. 이미 전술핵 분야에서 러시아는 미국에 비해 10배 이상의 수적 우위를 보이고 있다. 더욱이 지난 6월 19일, 러시아와 북한 지도자가 서명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이 전쟁 상태 발생 시 양국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상호 군사적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고 명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러 핵 협력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요컨대, 탈냉전기를 전후로 구축된 강대국 간의 핵 균형 질서가 붕괴되고 있고, 그 여파가 우리나라에도 밀려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나라의 핵정책은, 북한의 핵 위협 대응뿐 아니라 러시아와 북한의 핵능력 강화에 따라 글로벌 차원에서 동맹국에 확장억제를 제공하는 미국 주도의 핵태세가 동요하지 않도록 지원하는 방안도 포함해야 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필자는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하는 3단계 핵정책 방안을 제시해 본다.
제1단계로는,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이 합의한 양국 간 NCG를 통해 미국의 핵능력과 우리의 재래식 전력을 결합한 태세가 최적의 북핵 대응 효과를 갖도록 긴밀히 협력하는 것이다. 올 하반기에 창설될 우리의 전략사령부가 미국의 전략사령부와 더불어 핵 기획 및 운용에 있어 밀접한 협력 태세를 구축하는 것이 그 구체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제2단계로는, 우리의 제조업 강점을 살려 미국의 재래식 전력 증강에 힘을 보태야 한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 추진한 355척 함선 증강 계획이 대폭 지체되는 등 재래식 무기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의 조선업을 포함한 방위산업 능력을 살려 미국의 함선 증강이나 155㎜ 포탄 생산 등을 지원해야 한다.
제3단계로는, 미국으로부터 개별적으로 확장억제를 제공받고 있는 일본 및 호주 등과의 상호 협의를 통해 전체주의 국가들의 증강되는 핵능력에 의해 확장억제 공약의 신뢰성이 동요될 수 있다는 우려를 미국에 전하고, 핵억제 태세 강화를 위한 방안을 공동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최근 바이든 행정부 관계자들이 기존 핵태세의 변화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잇달아 내놓는 상황을 잘 활용해야 한다. 예를 들면, 원자력발전소 비중이 큰 한국과 일본 등이 미국과 협력해 핵연료 개발 컨소시엄을 결성하고, 이를 통해 미국조차도 러시아 국영기업 로사톰(Rosatom)에 과도하게 의존해온 핵발전소 연료의 자급도를 높이는 공동 협력을 추진하는 것도 핵태세를 강화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핵뿐만 아니라 강대국 간 핵질서의 동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 민주주의 진영의 핵억제 태세를 강화하려는 파격적인 핵정책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
07-09 [단독]中 “北 노동자 다 나가라”… 러와 밀착 北 ‘돈줄’ 죈다
北의 ‘순차적 귀국’ 요청 거부
中체류 北노동자 10만명 추산
김정은체제 기반 외화벌이 타격

중국이 최근 북한 당국에 “중국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을 전원 귀국시키라”는 사실상 최후통첩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0만 명가량으로 추산되는 중국 내 북한 노동자 대부분의 체류 허가 기한이 조만간 대거 만료되는데, 중국이 이들에 대한 일괄 귀국을 요구하고 나선 것. 우리 정부는 이를 “매우 이례적인 상황”으로 보고 있다.
해외 노동자 파견은 북한 외화벌이의 핵심이자 ‘김정은 체제’ 유지 기반이다. 특히 해외 노동자의 90%가량은 중국에 집중돼 있다. 그런 만큼 이번 중국의 조치는 러시아와 동맹 수준으로 밀착한 북한에 대해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북한 정권의 핵심 자금줄을 옥죄어 김정은 정권 길들이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8일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중국의 이 같은 요구에 중국 내 노동자를 순차적으로 귀국시키고 이를 대체할 신규 노동자를 중국에 다시 파견하는 방안을 요청했다. 하지만 중국은 비자 등이 만료되는 노동자들을 일단 전원 귀국시키되 신규 노동자는 순차적으로 받겠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양측 협상은 현재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이 기존 북한 노동자의 체류 기간 연장을 불허하고 신규 노동자 파견에 필요한 비자 발급 등을 제한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중국에 있는 북한 노동자들이 대규모 귀국하면 북한 외화벌이에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그런 만큼 북한은 이 상황을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해외 노동자 파견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위반이다. 이에 북한은 그동안 노동 비자 외에 유학생·관광비자 등을 활용해 국제사회 눈을 피하는 방식으로 편법으로 노동자를 중국에 파견해왔다. 하지만 북한 노동자 대다수는 조만간 체류 허가 기한이 만료되는 것으로 알려져 북한이 이들을 본국으로 부르지 않으면 대부분 불법 체류자 신세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중 간 노동자 귀국 협상이 결렬되면 중국 당국은 이르면 하반기부터 체류 허가 기한이 만료된 북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불법 취업 단속 등 통제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대북 소식통은 “북-중 당국이 충돌하는 하나의 뇌관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중국은 이 외에도 북한이 중국에 의존하는 무역 분야에서 올해 통제를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수출품에 대한 세관 통제는 물론이고 석탄이나 정제유 등 암묵적으로 용인해오던 해상 밀수까지 단속을 강화했다는 것. 앞서 미 국무부는 지난달 발표한 인신매매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중국에 약 10만 명에 달하는 노동자를 파견하고 있고, 북한이 해외 파견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의 최대 90%를 착취해 연간 수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고 추산한 바 있다.
中, 대북 석탄-정제유 밀수도 보란듯 단속 ‘김정은 길들이기’
러와 밀착 北에 경고 메시지
中, 北 노동자 비자 발급 제한…대북 수출품목 세관 통제도 강화
北, 5월 對中 수입액 8.8% 줄어…정부 “中, 北과 이례적 거리두기”
“북한 노동자를 돌려보내는 문제로 (북-중 간) 대립이 이어지는 건 명백한 양국 균열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정부 소식통은 8일 “중국 당국이 매우 이례적으로 중국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를 전원 귀국시키라고 최근 북한에 요구했다”며 이같이 평가했다. 특히 우리 당국은 중국이 해상을 통해 성행하던 북-중 간 대북 밀수품 운송업 등까지 최근 보란 듯이 단속하는 상황 등도 주시하고 있다. 그동안 웬만큼 마찰이 있어도 건드리지 않던 분야까지 손대며 북한에 경고장을 날리는 조치로 볼 수 있기 때문. 소식통은 “중국이 관성적인 북한 감싸기에서 이례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이라며 “북-러 밀착 수위나 미국 대선의 향배 등을 보면서 중국은 당분간 이런 (거리 두기)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 “中, 대북 수출 품목 세관 통제”
북한은 지난해 8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폐쇄했던 국경을 3년 7개월여 만에 공식적으로 개방했다. 이에 중국에 장기 체류 중인 노동자가 신규 노동자로 대체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신규 노동자에 대한 비자 발급 등에 대해 협조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북한 입장에선 곤란한 상황이 됐다. 노동자 대체에 대한 보장이 없으면 그만큼 벌어들이는 외화가 줄 수밖에 없는 만큼 쉽게 노동자를 소환할 수 없게 된 것. 이런 교착 상황이 지속되면서 중국에 체류 중인 북한 노동자들의 불만은 폭등했다. 앞서 1월에는 중국 지린성 허룽에서 북한 노동자 2000여 명이 임금 체불에 항의해 공장을 점거하고 대규모 시위까지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중국이 최근 북한에 “노동자를 전원 북한으로 귀국시키라”고 요구한 건 북한의 숨통을 확실하게 조이겠다는 상징적인 조치로 풀이된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 입장에선 새 비자 발급 조치 등은 약속하지 않으면서 노동자들을 북한으로 모두 돌려보내겠다는 중국의 요구가 당혹스러울 것”이라며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북한은 중국에 약 10만 명의 노동자를 파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 국무부는 북한이 해외 파견 노동자 임금의 최대 90%를 착취해 연간 수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전원 귀국 조치는 북한의 외화벌이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은 노동자 파견뿐만 아니라 북한이 전적으로 중국에 의존하는 무역 분야에서도 전방위적인 옥죄기에 나섰다. 최근 대북 수출 품목에 대한 세관 통제는 물론이고 밀수 단속까지 강화하고 있는 것. 북한의 대중 무역 의존도는 90%가 넘는다.
중국은 전례와 다르게 대북 수출이 금지된 품목이 포함돼 있는지 확인하는 방식으로 세관 통제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로 인해 해상을 중심으로 성행하던 북-중 간 밀수품 운송업도 중국 당국이 해상 단속을 강화하면서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석탄을 중국에 팔고, 정제유를 북한으로 밀수하는 많은 대북 사업가가 단속 강화로 사업을 축소하거나 중단하는 동향까지 최근 잇따라 우리 당국에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반영하듯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올해 5월 북한의 대중 수입은 1억5038만 달러로 4월 대비 8.8% 하락했다.
● “북-러 밀착하자 외화 옥죄어 北 길들이기 ”
▲北, 러시아로 군사교육 대표단 파견 김금철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총장(오른에서 두 번째)이 8일 북한 평양 순안공항에서 출국 직전 러시아 군 관계자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북한은 이날 김 총장을 단장으로 한 군사교육 대표단을 러시아로 파견했다. 평양=AP 뉴시스
중국이 최근 중국에 있는 노동자 전원을 북한으로 복귀시키라고 평양에 최후통첩을 날리고, 그동안 눈감아준 북-중 밀수 단속까지 강화한 데는 복합적인 의도가 깔린 것으로 우리 당국은 보고 있다.
우선 북-러가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신냉전 수준으로 회귀하는 조약까지 체결하며 급격히 밀착하자 북한을 길들이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북한에 대한 통제권을 다시 확보해 대미 마찰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조만간 러시아란 ‘뒷배’를 믿고 핵실험 등 중국에도 부담스러운 초강경 도발에 나설 것이란 관측까지 나오는 만큼 북한에 강경한 메시지를 전달할 때라고 중국이 판단했다는 것. 정부 소식통은 “중국은 김정은 체제에 당장 타격을 줄 수 있는 것들만 일단 골라 북한의 반응을 떠보고 있는 것”이라며 “향후 북한이 중국의 의도와 달리 더 엇나가면 (중국이) 더 치명적인 조치에 나설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07-10 美 공화 강령, 동맹 강화와 방위비 부담 ‘양날의 칼’이다
미국 민주당이 11월 대선을 앞두고 자중지란에 빠지면서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화당은 오는 15일 위스콘신 전당대회를 앞두고 새로운 정강정책을 채택했다. 트럼프 1기였던 2016년 강령과 비교할 때 경제적 국수주의 강화 기조 속에서 ‘동맹 체계 재구축을 통한 번영·평화’를 명시한 점이 두드러진다. 또 ‘중국으로부터 전략적 독립’‘중국 최혜국대우 철회’ 등 반중(反中) 목표를 분명히 하며 동맹 네트워크 강화도 내걸었다.
특히 안보 분야에서 한국에 양날의 칼이 될 부분이 즐비하다. “힘으로 평화를 되돌리고 군사력과 동맹을 재건하겠다”면서 미군을 가장 현대적이고 강력한 군대로 재건하기 위한 첨단 기술 투자, 방위산업 강화 등을 명시한 부분은 한국과 협력 여지가 크다. ‘동맹국의 투자 의무 이행’을 못 박은 것은 1기 때의 방위비 분담금 5배 증액 주장처럼 갈등의 씨앗이 될 소지가 있다. 핵을 포함한 모든 에너지 생산 증진 강조는 원자력 협력 강화 및 핵 역량 확보 여지를 주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가 역점을 뒀던 전기차 보조금 폐지 방침은 현대차 등에 부담이 된다.
트럼프의 귀환은 불확실성이 커지는 점에서 위기지만 미리미리 대비하면 기회로 바꿀 수 있다. 트럼프의 핵심 참모의 한 사람인 프레드 플라이츠 미국우선주의정책연구소(AFPI) 부소장은 9일 서울 강연에서 “트럼프는 1기 때와 달라진 모습을 보일 것이고 주한미군 철수·감축도 없을 것”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이 지금부터 좋은 관계를 맺기 바란다”고 제안했다. 윤 정부 외교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문화일보 사설
07-10 핵 정세 급변…파격적 핵정책 필요하다
박영준 국방대 국가안보문제연구소장
북핵에 초점 맞춘 세 갈래 논의
한미 확장억제·핵무장·핵공유
북중러 급속 핵 증강 고려해야
한미 전략司 협력 실질화하고
우방과의 전방위 核협력 모색
3단계 접근법 적극 검토할 때
최근 국내 안보정책 전문가들 사이에 북한의 증대되는 핵능력에 대응하는 핵무장 논쟁이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이 논쟁의 주장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지난해 4월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구축된 핵협의그룹(NCG)을 통해 양국 간의 확장억제 태세를 최대한 강화하자는 입장이다. 둘째는 미·일 원자력협력협정에 따라 일본에 허용되는 수준의 우라늄 농축 권한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독자적 핵무장을 추진하자는 입장이다. 셋째는 미국의 전술핵을 재반입해 배치하고, 이에 수반되는 비용은 우리도 부담하자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식 핵 공유론이다.
이 같은 논쟁들이 북한의 점증하는 핵능력에 대한 엄중한 위협 인식에서 제기되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만, 기존의 논의는 북한의 핵 위협에만 초점을 맞추고, 국제 핵질서의 구조적인 변화를 함께 고려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2022년 2월부터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러시아는 지난 2010년 4월 미국과 체결한 핵군비통제조약인 뉴스타트(New START)를 오는 2026년 이후에 갱신하지 않을 것임을 표명했고, 이미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에서의 탈퇴를 밝혔다. 현재 400여 기 수준인 중국 핵탄두 전력은 2030년 중반쯤이면 현재 미국과 맞먹는 1500여 기 안팎으로 증강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 경우 앞으로 10년 안에 러시아와 중국의 전략핵 합계 전력은 현재 미국 보유 규모의 2배 이상으로 증강될 것이 예상된다. 이미 전술핵 분야에서 러시아는 미국에 비해 10배 이상의 수적 우위를 보이고 있다. 더욱이 지난 6월 19일, 러시아와 북한 지도자가 서명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이 전쟁 상태 발생 시 양국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상호 군사적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고 명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러 핵 협력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요컨대, 탈냉전기를 전후로 구축된 강대국 간의 핵 균형 질서가 붕괴되고 있고, 그 여파가 우리나라에도 밀려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나라의 핵정책은, 북한의 핵 위협 대응뿐 아니라 러시아와 북한의 핵능력 강화에 따라 글로벌 차원에서 동맹국에 확장억제를 제공하는 미국 주도의 핵태세가 동요하지 않도록 지원하는 방안도 포함해야 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필자는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하는 3단계 핵정책 방안을 제시해 본다.
제1단계로는,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이 합의한 양국 간 NCG를 통해 미국의 핵능력과 우리의 재래식 전력을 결합한 태세가 최적의 북핵 대응 효과를 갖도록 긴밀히 협력하는 것이다. 올 하반기에 창설될 우리의 전략사령부가 미국의 전략사령부와 더불어 핵 기획 및 운용에 있어 밀접한 협력 태세를 구축하는 것이 그 구체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제2단계로는, 우리의 제조업 강점을 살려 미국의 재래식 전력 증강에 힘을 보태야 한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 추진한 355척 함선 증강 계획이 대폭 지체되는 등 재래식 무기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의 조선업을 포함한 방위산업 능력을 살려 미국의 함선 증강이나 155㎜ 포탄 생산 등을 지원해야 한다.
제3단계로는, 미국으로부터 개별적으로 확장억제를 제공받고 있는 일본 및 호주 등과의 상호 협의를 통해 전체주의 국가들의 증강되는 핵능력에 의해 확장억제 공약의 신뢰성이 동요될 수 있다는 우려를 미국에 전하고, 핵억제 태세 강화를 위한 방안을 공동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최근 바이든 행정부 관계자들이 기존 핵태세의 변화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잇달아 내놓는 상황을 잘 활용해야 한다. 예를 들면, 원자력발전소 비중이 큰 한국과 일본 등이 미국과 협력해 핵연료 개발 컨소시엄을 결성하고, 이를 통해 미국조차도 러시아 국영기업 로사톰(Rosatom)에 과도하게 의존해온 핵발전소 연료의 자급도를 높이는 공동 협력을 추진하는 것도 핵태세를 강화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핵뿐만 아니라 강대국 간 핵질서의 동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 민주주의 진영의 핵억제 태세를 강화하려는 파격적인 핵정책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
07.11 개인 독재로 회귀하는 중·러…무력 사용 리스크도 커져
권위주의 체제 변화와 한반도 주변 정세
“표면보다 뿌리를 보자.”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과 북한의 김정은이 체결한 ‘포괄적 전략동반자 조약’에 대해 우리가 취할 태도다. 두 독재자는 거침없이 내닫는다. 조약에는 북·러 중 한쪽이 무력 침공을 받게 되면 지체 없이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과거 냉전 시대의 기억을 소환한다. 권위주의 국가 간 연대강화의 원인에 대해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외교적 수사와 대응보다 권위주의 내부 체제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변동의 근원은 개인 독재의 강화다. 이것이 세계질서를 더욱 요동치게 하고 있다.
김정은·푸틴, 포괄적 전략동반자 조약…유사시 군사원조 명시
개인 독재 체제의 선제 공격 가능성, 집단 독재 유형보다 높아
북·중·러와 긴장·대립 불가피, 튼튼하고 유능한 안보협력 긴요
우리 국력과 위상도 높아져, 창의적·선제적 외교 전략 펼쳐야

▲퍼스펙티브
러시아와 중국의 내부체제 변화가 가져온 무력도발의 리스크를 경계해야 한다. 일인 독주 체제가 공고화하고 있다. 최고지도자의 독단을 견제할 제도와 규범이 허물어지고 있다. 최고지도자와 지배 연합세력 사이의 권력균형이 깨졌다. 후계자 승계는 불투명하고, 독재자 숭배는 농후해진다.
보스형 독재자는 무력으로 야심 추구
개인 독재의 부활은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을 높이는가. 모든 독재 또는 권위주의 체제가 동일하게 호전적이지는 않다. 권위주의 유형에 따른 전쟁 추구 성향 연구의 권위자인 제시카 위크스 미국 위스콘신대 정치학 교수는 보스형 독재자에 의해 통치되는 개인 독재의 전쟁 리스크를 간파했다. 최고지도자 개인이 주요 정책과 인사를 독점하는 개인 독재는 군사적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이 다른 유형의 독재체제보다 높다는 것이다.
위크스 교수는 1946~1999년에 발생한 전 세계 무력도발 관련 통계 데이터 분석을 통해 독재 유형과 무력 도발의 상관관계를 엄정하게 실증했다. 그 연구결과에 의하면 사담 후세인, 무아마르 카다피, 마오쩌둥, 이오시프 스탈린 등과 같은 보스형 독재자들은 다른 체제 유형의 지도자들에 비해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도 보스형 독재자들은 국내에서 절대 권력을 추구하듯이 국외에서도 거대한 야심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후세인은 범아랍 이슬람제국 건설을 갈망했고, 카다피는 아프리카 통일정부 건설을 천명했다. 독재자 측근 엘리트 세력은 막강한 권력자의 야심을 제약하지 않는다. 위대한 영도자의 전쟁에 대한 오판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힘들다. 또한 정보와 자원을 독점하는 독재자들은 조직적인 엘리트의 도전이나 강력한 민중의 저항을 거의 받지 않는다. 따라서 보스형 독재자는 큰 정치적 비용 없이 무력을 사용하여 야심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한편 민간 엘리트(또는 패권정당)로 구성된 집단적 문민 독재는 민주주의 체제에 비해서도 무력 도발을 더 많이 하지 않는다. 집단적 독재에서는 최고지도자 측근 세력이 경우에 따라 최고지도자를 축출할 능력을 갖춘 잠재적 감시 및 견제 세력이기도 하다. 최고지도자는 무력 도발 실패의 책임과 그에 따른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섣불리 전쟁을 추구하지 못한다. 마오쩌둥 사후의 중국, 스탈린 사후의 옛 소련(현재 러시아), 베트남 등이 대표적인 집단적 문민 독재다.
푸틴·시진핑, 강한 개인적 유대감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을 감행할 줄은 러시아 전문가들도 예상하지 못했다. 또한 시진핑 집권 초기 시진핑 국가주석이 연임 제한 조항을 폐지하고 3연임을 할 것이라고 중국 전문가들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는 과거 집단적 독재 모델 분석에 안주한 방심의 결과이자 불운이다. 오늘날 러시아와 중국은 개인 독재로 회귀하고 있다. 과거에 매여 독재 정치의 변천을 간과해선 안 된다. 만약 옛 제국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야심과 개인 독재가 강화될 경우, 갈등 해결을 위한 중·러의 선제적 무력 사용 가능성은 증대될 수 있다.
북·러 밀착이 중·러 관계 소원(疏遠)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또 다른 방심이다. 중국은 자신이 국제적 불량 국가인 북한·러시아와 같은 진영으로 취급되는 것을 불편해한다. 중국과 소련 간 이념·국경 분쟁의 흑역사도 있다. 자유 진영 국가들이 중·러의 틈새를 벌릴 수 있다는 주장이 점점 잦아진다. 1960년대 이후 미국이 중·소 분열의 틈을 성공적으로 이용한 경험에 바탕을 둔 전략적 시각이다.
그러나 국가 차원의 중·러 갈등 요소는 개인 차원에서 두 보스형 독재자들에 의해 관리될 가능성도 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애국자의 아들로서 비슷한 연배의 시진핑과 푸틴은 강한 개인적 유대감을 표명하고 있다. 그들은 젊은 시절 충격적인 체제 혼란과 붕괴를 목도했고, 반(反)서구 권위주의를 공유하고 있다. 푸틴은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훈련을 통해 능숙한 대인관계 유지·조종의 기술을 습득했다. 시진핑 역시 중국 공산당 통일전선 전술의 달인이었던 아버지 시중쉰으로부터 유사한 기술을 배웠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들은 큰 전략적 목표를 위해 이견과 갈등을 노련하게 조절할 수 있는 수완을 지녔다.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편의에 의한 중·러 파트너십을 유지해 나갈 공산이 크다.
약소국 담론에 갇힐 필요는 없어
우리는 개인 독재의 귀환과 북한과 연계된 중·러 전략적 파트너십에 대해 지나치게 낙심할 필요도 없다. 당장은 미국과 그 아시아·유럽 동맹들의 군사력이 압도적이다. 여러 군사력 지표에서 미국 및 동맹 진영과 북·중·러 진영 간 차이는 상당하다. 단기적으로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적 억제력은 신뢰할 만하다. 게다가 미국의 동맹인 한국의 국력과 위상도 지난 20여 년 사이에 급부상했다. 2023년 호주 로위연구소의 아시아 군사력 지표에 따르면 미국·중국·러시아·인도에 이어 한국은 5위 군사 강국이며 일본은 6위 군사 강국이다. 2024년 글로벌 파이어파워라는 군사력 지표에서도 한국은 세계 5위 국가다.
한국은 군사력뿐만 아니라 경제력·문화력 등 거의 모든 글로벌 지표에서 10위권에 진입한 세계의 중심국이자 강대국 반열에 올라섰다. 한국은 더 이상 2차 세계대전 직후의 가난한 약소국이 아니다. 여전히 약소국 담론에 갇혀 있으면, 창의적이고 선제적인 외교전략을 펼치기가 힘들어진다. 과도한 불안과 낙담에 빠지면 과잉 반응의 리스크도 커진다. 세계적 차원의 미·중 경쟁 속에서 한국은 일방적으로 영향만 받는 대상이 아니라, 그 경쟁의 전개와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힘과 그에 따른 책임을 지니고 있다.
중국의 패권 장악 시도 대비해야
단기적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개인 독재발 전쟁의 가능성이 작을지라도, 중장기적으로 중국의 빠른 군비증강과 패권 장악 시도에 대비해야 한다. 미국 대선의 결과에 따라 미 동맹국들의 안보 책임과 부담은 증대될 수도 있다. 북·중·러에 대한 군사적 균형 유지를 위해 한국·일본·호주·필리핀·인도네시아 등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의 군비 증강 및 협력은 긴요하다. 전략적 균형 및 억지 전략의 실행 과정에서 북·중·러와의 긴장과 대립은 불가피하다. 억지는 힘이 전제 조건이기에 갈등을 배제할 수 없다. 굴종이 아니라 공존을 위해서 억지가 필요하다. 이제는 냉전이 아니라 열전(hot war)의 확산을 우려해야 할 때다. 열전이 필요 없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 튼튼하고 유능한 안보다.
동아시아에서 개인 독재발 무력분쟁을 막기 위해서는 억지 전략과 함께 대화와 소통을 통한 보장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 여기에서 보장 전략이란 만약 개인 독재국들이 무력에 의한 현상변경 정책에서 선회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조건부적인 조치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보장의 측면에서 개인 독재 체제가 지닌 취약성, 즉 외부세력에 의한 내정 간섭과 체제 불안 가능성을 전략적 차원에서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 국가 간 갈등의 평화적 해결이 외부세계가 독재국가 내정에 간섭할 가능성을 더 줄일 수 있음을 독재자에게 설득해야 할지도 모른다.
또한 국제사회는 독재자들과의 직접 대면 회의를 통해 확고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이는 개인 독재체제에서는 최고지도자들이 예스맨들에 의해 둘러싸여 불편한 진실이나 정책 과오를 전달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보의 왜곡은 오판과 재앙적 정책으로 귀결될 리스크를 높일 뿐이다.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정상외교도 중요하다.
개인 독재의 귀환은 한국에 실존적 도전 과제다. 지정학적 격랑이 이는 바다에서 대한민국호가 편안한 항해를 하기는 어렵다. 고요한 바다는 훌륭한 선원을 만들지 못한다. 개항 이후 약 150년 동안의 뼈를 깎는 고투와 도약은 한국인을 끊임없이 단련시켰다. 새로운 위기를 재도약의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단결된 팀 코리아 정신과 묵직한 평정심이 필요하다.
손인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07.11 안보 적색경보 북·러 밀착…한국형 회색지대 전략으로 대응하자
한반도, 더 나아가 인도·태평양의 안보 지각이 흔들리고 있다. 진앙은 지난달 19일 평양이다. 이날 북한과 러시아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맺었다. 핵·미사일 개발과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각각 국제적 왕따(Pariah)로 전락한 북한과 러시아가 손잡은 것이다. 조약엔 군사동맹의 성격을 지니고(4조), 대북 제재를 무력화하며(5, 16조), 러시아의 첨단 군사기술이 북한에 넘겨지는(10조) 등 안보적 우려를 자아낼 소지가 다분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방북에 앞선 지난달 5일 “한·러 관계가 악화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분쟁 지역(우크라이나)에 어떠한 무기 공급도 없어 (한국에)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하더니 2주 후 한국의 뒤통수를 쳤다.
“감사하다”던 러시아의 뒤통수
북·러 조약 군사동맹 발전 가능성
김정은, 신냉전 대결서 이득 노려
레드라인 못 넘게 새 전략 필요

북·러의 이번 조약에선 ‘긴밀한 의사소통’‘협동을 강화’‘적극 협력’ 등 문구가 자주 보인다. 앞으로 북한이 외교와 안보 분야에선 러시아와 한목소리를 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 원장은 “김정은은 선대부터 내려온 북한의 국시(國是) 중 ‘통일’을 져버리더니 이번엔 ‘자주’까지 내치려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한·미·일 대 북·중·러 간 ‘신냉전’ 대결
이번 조약은 강도가 커 여파가 한반도를 벗어났다. 북한을 매개로 중국과 러시아가 엮이는 삼각 연대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다. 한국과 미국, 일본은 최근 안보 협력을 넓히고 있는데, 북한·중국·러시아와 충돌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충돌은 신냉전(New Cold War)의 단면이다. 미국이 이끄는 민주주의 진영과 중국·러시아 중심의 권위주의 진영 간 전 세계적 대립을 신냉전이라 부른다. ‘미국 대 소련’의 구 냉전 때도 그랬지만, 신냉전에선 동북아시아가 가장 뜨거워질 것이다.
이 같은 정세는 김정은이 바랬던 것이었다. 김정은은 2021년 9월 “국제관계 구도가 신냉전으로 변화된 것이 국제정세 변화의 주요 특징”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이듬해 2월 “국제관계 구도가 신냉전 체계로 명백히 전환되고 다극화의 흐름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고 언급한 뒤 같은 해 9월 “조성된 국면을 군력 강화의 더없이 좋은 기회로 삼겠다. 대외관계를 주동적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다짐했다.
김정은에겐 할아버지인 김일성이 1960년대 첨예하게 대립했던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벌여 잇속을 차렸던 것처럼 신냉전에서 한몫을 챙기려 하는 계산이 엿보인다.
이는 김정은의 오산일 수도 있다. 북·중·러 관계는 각자 다른 이익에 따라 잠시 맺어진 ‘정략결혼’과 같다. 북·중·러 연대의 기반은 반미(反美)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결합력이 단단하지 못하다. 언제라도 속셈이 달라지거나 수가 틀리면 금세 대오가 무너질 것이다.
강대국의 세력권과 전쟁의 관계를 다룬 『세 개의 전쟁』 저자인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기본적으로 중국은 북한과 러시아를 대등한 파트너로 보지 않는다. 또 미국과 유럽 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신냉전 대결에 끼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은에겐 신냉전 구도가 일시적으로 유리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론 김정은 정권의 존속과 4대 세습까지 보장해주진 못할 것이다.
러시아의 셈법 바꿔야
그렇다 하더라도 북·러의 밀착은 당장 한국의 안보에 적색경보를 울렸다. 북한이 러시아의 뒷배를 믿고 무력 도발을 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북한은 러시아의 첨단 군사기술을 들여와 낡고 뒤떨어진 무기를 현대화하려 할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정상회담 후 공동언론발표에서 “러시아는 북한과 군사기술 협력을 진전시키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며 “새 협정 내에서 군사 분야에서 협력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북한은 군사용 정찰위성, 극초음속 미사일, 핵추진 잠수함,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핵탄두 소형화 등 관련 기술을 러시아에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기술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을 한·미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더 고도화하는 데 필요하다. 북한이 러시아의 기술적 도움으로 핵·미사일 신무기를 만들어 낸다면 그야말로 한국엔 악몽이다.
우리의 전략적이고 치밀한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살상용 무기 지원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러시아를 움직일 지렛대론 부족하다. 한국이 레드라인(살상용 무기 지원)을 넘더라도 러시아는 꿈쩍도 안 할 것이다. 오히려 북한에 대한 지원을 대놓고 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미 동맹과 한·미·일 안보 협력의 결속을 단단히 하면서 국제 사회에서 우군을 확보하는 노력은 기본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에 유리한 판을 짜야만 한다. 그러려면 ‘한국형 회색지대 전략’을 써보자. 회색지대 전략은 국가가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지 않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안보 목표를 성취하려는 전략적 행위다. 흔히 중국과 러시아가 회색지대 전략에 능하다고 한다.
한국형 회색지대 전략은 레드라인은 넘지 않지만, 그 직전까지 가는 행위로 러시아의 신경을 건드리거나 짜증이 나도록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우크라이나는 유럽 국가로부터 받은 F-16 전투기를 하반기 전투에 투입할 전망이다. 전투기를 운용하려면 정비가 중요하다. 한국이 F-16 부품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수 있다. 또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항공기를 유지·보수하는 실력으론 세계 최고 수준인 공군 정비진이 우크라이나 정비진을 교육하는 방법이 있다.
부품과 정비 기술은 살상용 무기는 아니지만, 우크라이나가 간절히 원하는 것들이다. 우크라이나가 F-16을 활발히 띄우면 러시아는 곤란해진다. 누르면 러시아가 아파할 혈(穴)을 한국이 많이 찾아낸다면 결국엔 러시아가 북한과의 조약에 대한 손익 계산서를 고쳐 쓸 가능성이 크다.
중앙일보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국방선임기자
07.12 中에 묻는다, 탈북민이 난민 아니면 누가 난민인가

▲탈북자 강제 북송 반대 피켓. /뉴스1
중국이 한국 정부의 탈북자 강제 북송 중단 요청을 공식 거부했다. 중국은 최근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경제적 이유로 중국에 불법 입국한 북한 사람들은 난민이 아니다”라며 한국의 권고를 거부한다고 했다. 체코 정부의 탈북민 강제 북송 자제 권고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을 밝혔다. 탈북민 강제 북송을 계속하겠다는 얘기다.
탈북민은 대부분 굶주림을 참지 못해 탈출한 사람들이다. 북송되면 가혹한 구타와 구금을 당하고 심하면 목숨을 잃는다. 이들이 당하는 참상은 필설로 형언할 수가 없다. 전 세계에서 가장 참혹한 현장 중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엔 난민 협약은 ‘박해받을 공포로 인해 이전의 상주국(常住國)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을 ‘난민’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어 “난민을 생명이 위협받을 우려가 있는 곳으로 추방·송환해선 안 된다”고 규정했다. 또 고문 방지 협약에 따르면, 송환할 정당한 사유가 있더라도 고문받을 우려가 있는 곳으로 사람을 추방해서는 안 된다. 중국은 두 협약에 가입했으면서도 탈북자들을 북송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겠다고 노골적으로 밝힌다. 야만국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역대 정부는 중국을 자극하면 탈북민의 한국행에 필요한 협조를 받을 수 없다며 이른바 ‘조용한 외교’를 펴왔다. 작년 10월 중국이 탈북민 500~600명을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끝나자마자 기습 북송하자 국내외에서 비판이 이어졌다. 우리 정부도 올 초 유엔 인권이사회를 시작으로 중국에 탈북민 강제 북송 중단을 공식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국의 야만적 관행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 다시 드러났다.
인권 단체들은 한국 정부가 탈북민들을 지칭할 때 난민(refugee) 대신 탈출자(escapee)란 표현을 고집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중국의 논리를 강화해준다”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 난민이 자국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한다. 중국의 우려를 덜어줄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언제 다시 중국이 탈북민들을 강제 북송할지 모른다. 정교한 외교력이 절실하다.
조선일보 사설
07-12 트럼프 리스크 상쇄할 핵 전략과 결기
송종환 경남대 초빙석좌교수, 前 주파키스탄 대사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워싱턴DC에서 열린 나토(NATO)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11일 정상회담을 갖고 미국 핵무기에 한반도 작전 임무를 부여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이로써 ‘한·미 일체형 확장억제’가 구축됐다고 한다. 그러나 핵·안보 전문가인 미국 미들베리국제연구소 로버트 칼린 연구원과 시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명예교수의 최근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들은 북한이 미사일에 실어 한국과 일본 전역(오키나와 포함) 및 괌에 도달할 수 있는 50∼60개의 핵무기를 보유한 상황에서 확장억제책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은 최면술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기습공격시 반격으로 북 정권을 완전히 붕괴시킬 수 있다는 전략에 집착하는 것은 치명적인 실수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5월 중순과 하순, 미 상원 군사위원회와 외교위원회 공화당 간사들은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이 빠르게 진전되고, 북·중, 북·러 간 협력이 긴밀히 돼 온 정세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이 핵무기를 증강해야 한다면서 “나토처럼 한국을 포함한 인·태 지역에서도 핵공유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보수든 진보든 대한민국 정부와는 대화하지 않고 상황이 오면 핵으로 평정하겠다는 사실상의 선전포고를 해온 터에 북한을 비롯한 미국의 잠재적 적국들이 미 본토와 해외 미군기지를 동시에 공격하는 것을 가상하면 미국의 ‘확장억제’ 전략에 의문을 제기한 이들의 주장이 전혀 틀리지 않는 것 같다.
6·27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첫 번째 TV 토론회 이후 오는 11월 5일 대선에서의 승리가 점쳐지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유주의 질서를 지지해온 자애로운 후원자가 아니라, 방위비 분담 확대, 모든 합동군사훈련 비용 전액 부담 요구 등 거래적이고 이기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후보는 실제로 지난 4월 30일 타임과 인터뷰에서 유사한 요지의 주장을 하면서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지난달 19일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유사시 러시아의 자동 군사개입을 되살린 협정을 맺은 북한 김정은은 트럼프 후보가 재선되면 기존의 핵무기를 인정받으면서 대북 제재 완화 협상에 나설 것이다.
무역에 의존하는 우리나라가 핵무장론을 제기하는 것은 무모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격변하는 정세와 미 상원에서의 나토형 핵공유협정 체결 주장에 비춰 윤 대통령이 지난해 1월 11일 제기한 핵 옵션을 고려할 만하다.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윤 대통령이 지난해 4월 26일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한 다음 날 발표한 워싱턴선언의 확장억제책을 구체화하는 일이다.
정상적인 국민이라면 튼튼한 안보와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을 바랄 것이다. “핵이 없는 나라가 핵 반격 수단이 없으면 1945년 8월 일본처럼 완전히 파괴되거나 무조건 항복이라는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고 한 한스 모겐소 미 시카고대 교수의 경고와 “핵이 없는 나라는 식민지에 불과하다”면서 독자적으로 핵을 개발해 1960년 2월 핵실험을 한 프랑스 샤를 드골 대통령 사례도 경청해야 한다.
1974년 5월 18일 잠재 적국인 인도가 핵실험을 하자 ‘풀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핵무기를 개발하겠다’고 한 줄피가르 알리 부토 총리의 결기와 희생을 감수한 가난한 파키스탄 국민은 오늘날 우리 국민이 본받아야 할 귀감이다.
문화일보
07.12 "北이 핵 공격하면 美도 핵으로 대응" 한미 정상회담서 첫 명문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11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은 11일(현지 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열고 미국 핵무기에 한반도 작전 임무를 부여하는 내용의 공동 성명을 채택했다. 미국 핵 자산을 북핵 대응 용도로 문서에 명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대통령실은 밝혔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작년 4월 워싱턴 선언에 따라 그해 7월 NCG(핵협의그룹)가 출범했고 한미 양국은 핵전략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다”며 “20여 차례의 실무급 협의 등이 있었고, 오늘 오전 국방부 대표들이 NCG 지침에 서명했으며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이를 승인했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공동 성명으로 ‘한·미 일체형 확장억제’가 구축됐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핵전력과 한국의 첨단 재래식 전력이 통합돼 북핵을 억제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우리 군은 이번 공동 성명에 따라 미군과 한반도 핵 운용에 관한 정보 공유, 기획, 연습 훈련 작전을 수행하게 됐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한미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한국에 대한 어떠한 핵 공격도 즉각적, 압도적, 결정적 대응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은 핵을 포함한 모든 범주의 미국 역량으로 뒷받침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모든 범주의 한국 역량이 한미동맹의 연합방위태세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두 정상은 “한미 핵협의그룹 출범 이래의 진전은 양국이 진정한 글로벌 포괄 전략 동맹이며, 어느 때보다 강력한 상호방위 관계를 맺고 있고, 한반도의 평화, 안정 및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공동의 이익을 가지고 있음을 실증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워싱턴=양승식 기자
07.12 美 핵전략자산 평시에도 '한반도 임무'... 사실상 상시 배치
한국과 미국이 동맹 관계를 기존 재래식 전력 중심에서 핵전력 기반으로 격상하면서 미국의 핵 자산에 한반도 임무를 전시는 물론 평시에도 배정해두기로 했다. 사실상 ‘상시 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핵협의그룹(NCG) 공동대표인 조창래 국방부 국방정책실장과 비핀 나랑 미 국방부 우주정책차관보가 11일(현지시각) 미국 국방부에서 한미 한반도 핵억제 핵작전 지침에 서명한 뒤 기념 촬영하고 있다. /국방부
11일(현지시각)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가 서명한 ‘한미 한반도 핵억제 핵작전 지침’(이하 공동지침)은 북한의 핵위협에 미국의 핵자산으로 전·평시, 즉 상시적으로 대응한다는 계획을 공식화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국방부 관계자는 12일 밝혔다. 또 미국 핵전력이 한반도에 상시 배치되는 수준으로 미국 전략자산 전개의 빈도와 강도를 확대하고, 미 전략자산과 연계해 한미 핵·재래식 통합(CNI) 훈련을 시행한다.
국방부에 따르면 수십 쪽 분량으로 알려진 공동지침은 북핵 위협 억제와 유사시 대응을 위해 미국 핵자산에 한반도 임무가 전·평시에 배정될 것임을 확약했다. 다만 국방부는 “전략자산 운용을 공개하는 것은 적에 대한 억제 메시지를 현격히 약화한다”며 “별도로 공개하지 않더라도 상시 배치 수준으로 된다고 보면 될 것”이라며 구체적 전개 여부에 대해서는 모호성을 유지했다.
미국 핵전력 사용은 전적으로 미국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만큼 지금까지는 ‘확장억제 제공’이라는 큰 틀의 약속 아래서 전략자산 전개 등을 미측이 결정하고 임박해서 한국에 통보해주는 식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특정 한반도 상황에서 미국의 어떤 핵 자산을 어떻게 운용한다는 내용을 미리 설정해두고 해당 자산 전개를 한미가 지속 협의해 나갈 계획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관계자는 “기존에는 미국이 시간이 임박해서 (전략자산 전개를) 통보하고 협의해왔는데 이제는 평시부터 24시간 공유하면서 전략자산 전개 필요성을 논의한다는 측면”이라고 설명했다.
한미는 이와 함께 핵·재래식 통합 방안과 핵 협의 절차를 적용한 범정부 및 국방·군사 차원의 도상 훈련을 연례적으로 시행한다. 국방부 관계자는 “북한이 가할 수 있는 다양한 핵 위협 및 사용 시나리오를 고려해서 연합 훈련과 연습의 내용을 가다듬을 것”이라며 “이를 통해 작전계획의 형태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지속 검토하면서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한반도 유사시를 상정한 한미 연합 작전계획에 미국의 핵전력, 한미 핵·재래식 통합까지 반영한 새로운 작전계획이 도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국방부 관계자는 “작계 관련 내용은 큰 로드맵 차원에서 시간을 갖고 봐야 한다”고 했다.
한미는 또 북핵 위기 시 핵 관련 민감한 정보와 핵·재래식 통합에 필요한 정보의 공유를 확대하기로 했다. 한미 정상 간 즉각적인 협의를 보장할 수 있는 절차와 체계를 정립하기로 했으며, 이를 위한 보안 통신 체계를 구축할 방침이다.
국방부는 “기존 미국 확장억제 공약이 북핵 ‘억제’에 중점을 둔 선언적 수준이었다면, 공동지침을 통해 최초로 북핵 ‘대응’까지 포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선밀보 양지호 기자
07.13 美 '한반도 핵 임무' 배정, 한미 작계까지 구체화시켜야

▲윤석열 대통령이 11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DC 월터 E. 워싱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1일 미국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정상회담을 열어 ‘한미 한반도 핵억제 핵작전 지침에 관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이번에 합의한 작전 지침은 수십 쪽 분량으로 미국의 핵과 한국의 재래식 전력을 통합해 대응하는 ‘일체형 확장 억제’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미국 핵무기 운용에 ‘한반도 임무’를 특별히 배정하고 이를 문서로 확인한 것은 처음이라고 정부 관계자들이 밝혔다. 윤 대통령은 “한미 간 일체형 확장 억제 체제가 마련됐다”고 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확장 억제 공약은 핵을 포함한 모든 범주의 미국 역량으로 뒷받침된다”고 말했다.
이번 작전 지침 합의는 고도화하는 북한의 핵 공격에 맞설 미국의 핵우산 운용을 문서화했다는 데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미국은 그동안 핵무기 사용은 자신들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핵우산’ 또는 ‘확장 억제’라는 추상적 약속 수준에 그쳤다. 지금까지 미국은 시간이 임박해 핵 잠수함이나 전략폭격기 같은 자신들의 전략 자산 전개를 통보·협의했지만 이번 작전 지침을 통해 한국과 미국이 상시로 전략 자산 전개를 논의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다음 달 한미 연합 훈련부터 핵무기 사용을 가정한 도상 훈련도 시행된다.
그러나 북한의 침략에 대한 반격과 북의 도발 징후 때 북의 핵심 시설을 선제 타격하는 내용을 담은 한미 연합 작계(작전 계획)에는 아직 핵 운용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번 작전 지침 합의가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제도화가 되려면 작계에 반영돼야 하는데 아직 그런 수준의 합의까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미는 작년에 핵협의그룹(NCG)을 만들어 미국 핵 운용에 대한 협의 수준을 높이는 ‘워싱턴 선언’과 캠프 데이비드 협정 등을 통해 단계적으로 ‘핵우산’ 보장 강화 수준을 높여왔다. 이는 한국과 미국의 정권이 바뀌었기에 가능했다. 이번 공동 지침 역시 미국 대선 이후를 고려해 서둘러 안전장치를 확보했다는 의미도 있다.
한국은 핵 없이 핵무기를 가진 북한, 중국, 러시아와 맞서고 있다. 북·러가 한쪽이 공격당하면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자동군사개입 조항’ 협정에 서명까지 한 상황이다. 미국의 핵우산으로는 억지에 한계가 있게 됐다. 만약 트럼프가 재집권한다면 그동안 한미가 어렵게 이룩한 주요 합의들마저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다. 그때는 우리도 모든 가능성을 열고 자신을 지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7-15 美서 나온 ‘한국 핵잠수함’ 언급, 다각적 검토 나설 때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의 새뮤얼 퍼파로 사령관이 한국의 핵 추진 잠수함 도입 논란과 관련, “믿음이 생긴다면 추후에 추진해 볼 수 있다”고 밝힌 것은 전제 조건이 달렸지만, 의미가 작지 않다. 핵잠수함 필요성은 많은 군사 전문가에 의해 제기됐지만, 미국 측에서 반대 기류가 압도적이었고, 한국 내에서도 북한만을 겨냥한 핵잠수함은 ‘비용 대비 효율’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반론이 여전히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퍼파로 사령관은 지난 11일 하와이에서 한국 취재진과 만나 “북한의 핵 고도화는 모두에게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잠수함 전투 수행의 관점에서 볼 때 동맹으로서 한미 양국이 전력을 통합하고 방어할 수 있는 효과적·효율적 방식을 찾아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이 문제와 관련해 “수용하기 어렵다”고 한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인태사령부는 미국의 지역별 통합전투사령부 중 가장 넓은 지역을 담당하면서 주한미군 및 주일미군도 지휘한다. 인태사령관이 이런 입장을 보인 것은 북·중·러의 핵무기 증강 등으로 인한 인태 지역 정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잠수함 등 북·러의 첨단 군사 기술 공조도 염두에 뒀을 것이다.
핵잠수함 도입과 관련해 비용 대비 군사적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 있지만 퍼파로 사령관의 언급을 계기로 다각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북핵 대응뿐 아니라 수입에너지의 90%가 통과하는 남중국해 안전확보 작전 대비 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호주는 2021년 영국·미국과 오커스협정으로 핵잠수함 도입 및 공동 건조에 합의한 바 있다. 한미 핵잠수함 협력이 가시화하면 미국은 세계 최강 조선 기술력을 보유한 한국과 공조해 잠수함 건조·보수를 발 빠르게 할 수 있다. 한국은 농축 및 재처리 등의 ‘안보 족쇄’를 풀고 잠재적 핵능력을 가질 수 있어 윈윈이 된다.
문화일보 사설
07-15 “트럼프 재선땐 ‘스케줄F’로 반대파 없앨듯… 韓, 북미협상 대비해야”
‘트럼프의 귀환’ 책 펴낸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
美 극한 양극화가 빚은 ‘증오의 정치’… ‘보복 벼르는 전사’로 지지층 결집
통상은 ‘네가 쥐어짜면 나도 쥐어짠다’… 韓 이분법적 세계관 버려야 변화 대응
트럼프에 대한 선입견 걷어낼 필요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이 13일 광화문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조 전 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책이나 자료는 대부분 영어로 돼 있고, 미국 주류 언론과 학계의 관점에서 쓰인 것들”이라며 “한국의 관점에서 냉철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유세 중 암살미수범의 총에 맞아 부상당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대선 판도가 요동치고 있다. 충격적 암살 시도가 조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 리스크와 맞물리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을 높이는 추세다. 한국에도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칠 미국 대선과 트럼프라는 인물에 대해 우리의 관점에서 제대로 들여다보고 분석할 필요성이 커지는 시점이다.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은 지난해부터 트럼프 분석에 빠져 있다. 2016년 그의 대선 출마부터 4년간의 백악관 업무, 최근 유세 연설문에 참모들의 회고록까지 8년간의 자료를 모으고 분석해 ‘트럼프의 귀환’이라는 책을 냈다. 40년 가까이 외교안보 현장을 경험해 온 전직 외교관의 시각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그는 13일과 14일 동아일보와 대면 및 추가 전화 인터뷰에서 “미국이나 트럼프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아직도 코끼리 더듬는 수준”이라며 선입견 없이 심층적으로 이를 들여다볼 필요성을 강조했다.》
―트럼프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왜 트럼프였나.
“처음부터 트럼프에 대한 책을 쓸 생각은 아니었다. 현직에 있을 때 정권에 따른 한국 외교의 변동성이 너무 크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은퇴 이후 글쓰기에 자유롭게 전념할 시간이 생기니까 이걸 풀어보고 싶어졌다. 미국, 중국, 일본의 대외전략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관련 자료들을 보기 시작했고, 다음이 트럼프였다. 그를 다룬 책 이외에도 CNN과 뉴욕타임스, 이코노미스트 같은 외신에 심층 분석 특집기사가 정말 많다. 지난해 말쯤 되니까 이제 ‘구슬을 실에 꿰기만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료가 쌓였다.”
―어떤 자료들이 트럼프를 이해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됐나.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WP) 부편집인이 쓴 3부작 시리즈가 압권이다. 공포(Fear), 분노(Rage), 위험(Peril)을 쭉 읽으면 트럼프의 백악관 4년의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우드워드가 직접 트럼프와 17번의 인터뷰를 하면서 썼다는 점에서 특히 신뢰도가 높다. 존 볼턴(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나 마이클 울프(‘화염과 분노’ 저자), 피터 베이커(뉴욕타임스 기자) 같은 이들의 책도 보았는데 편향이 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속에서 정확한 사실관계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트럼프의 과거 발언들은 백악관 아카이브에서 찾았다.”
―보고서 형식에 익숙한 외무공무원이 책을 쓰는 데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은데.
“2019년 북한대학원대학에서 늦깎이 공부를 했다. 쓴 박사 논문을 단행본으로 낸 적은 있었지만, 단행본으로 내는 글을 쓴 것은 처음이었다. 신문 칼럼을 정기적으로 쓴 적이 있었는데 좋은 훈련이 됐다. 챗GPT 4.0 유료 버전도 활용했다. 방대한 자료들을 짧은 시간에 기가 막히게 찾아내 정리해 내더라(웃음).”
조 전 원장이 300페이지 가까운 책을 쓰는 데 걸린 시간은 4개월. 영어로 된 자료들을 속독했던 외교 현장에서의 경험이 시간을 단축시켰다. 그는 “질문을 잘 뽑아야 좋은 글이 나오더라”라고 했다. 트럼프의 경우 ‘전략적인 건지, 즉흥적인 건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트럼프라는 인물을 대통령 자리까지 밀어올린 미국의 국내정치와 사회, 경제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문제의식도 또 다른 목차를 구성하는 바탕이 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이번 총격 사건으로 지지자들이 결집하면서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11월 대선 표심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트럼프 암살 시도는 극심한 양극화 속에 ‘증오의 정치’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선거판을 보면 2000년 이후 공화당이 늘 승리해온 곳이 20개 주, 민주당이 매번 승리한 지역이 16개 주다. 미국의 호남, 영남 같은 구도여서 선거 결과는 거의 안 바뀐다고 보면 된다. 한 번이라도 결과가 바뀌었던 경합주는 15곳인데, 민심 바로미터인 하원의원 선거 결과를 바탕으로 따져보면 이번 대선에서는 트럼프가 대의원을 단 6명 더 확보해 조 바이든 대통령을 이기는 것으로 나온다. 초박빙이어서 단 한 군데라도 예상을 벗어나면 결과가 바뀌게 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앞줄 가운데)이 13일(현지 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연설 중 총격으로 오른쪽 귀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지지자들에게 주먹을 들어 보이며 “싸우자(Fight)”라고 외치고 있다. 버틀러=AP 뉴시스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1기 때와는 얼마나 큰 변화가 있을까.
“트럼프는 집권 이후 지금까지 반대파를 없애고 공화당을 평정했다. 2기 때는 ‘스케줄 F’를 실행할 것이다. 국정 기조에 반발하는 공무원을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도록 만든 행정명령이다. 대통령의 의지가 연방정부의 끝까지 침투하게 된다는 의미다. 결국 예스맨들에게 둘러싸이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권한을 극대화할 것이다.”
조 전 원장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는 정당 지도자라기보다 사회운동 지도자에 가깝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600만 명의 팔로어를 즉각적으로 움직이는 힘으로 이념적이고 명분에 충실한 열성분자를 결집시킨다는 것이다. “나는 여러분을 대신해 싸우는 여러분의 전사다. 여러분을 배신하고 해를 끼친 자들을 응징하겠다”며 ‘보복’을 벼르고 있다.
트럼프가 ‘어젠다 47(Agenda 47)’과 ‘프로젝트 2025(Project 2025)’를 통해 공개한 정책 구상의 3가지 핵심은 이민자 통제, 제조업 재건, 그리고 미국의 해외 개입 축소다. 중국, 러시아는 물론 한국과 관련된 외교 및 경제통상 정책 등은 이 틀 위에서 짜이게 될 것이라고 조 전 원장은 설명했다.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을 비롯한 한미 동맹 이슈에는 어떤 변화가 올 것으로 보나.
“방위비 분담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소파) 규정의 예외 적용을 위해 만든 ‘특별협정(SMA)’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SOFA에는 우리가 미군부대의 토지와 시설만 제공하도록 돼 있는데 한국이 이보다 많이 부담하라는 요구를 받으니 특별협정을 만들었던 것이다. 여기서 뭔가 더 해주려면 이제는 예외 규정까지 손대야 하는 단계에 와 있다. 트럼프는 1기 때 요구한 50억 달러를 기억하고 있다. 미국의 압박이 커질 경우 정부가 증액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트럼프가 김정은과 재협상에 나서고 한미 연합훈련, 주한미군 등을 협상카드로 쓰게 되면 우리는 주도권을 뺏긴 채 분담금만 뜯기는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그의 캠프에서 활동하는 참모들은 주한미군은 유지될 것이라고 한목소리로 말하고 있는데.
“주한미군 철수는 트럼프가 공개적으로는 물론 내부 회의에서도 여러 차례 꺼냈다. 그때는 게리 콘(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제임스 매티스(전 국방부 장관) 같은 인사들이 때로 훼방까지 놓아 가면서 막아냈다. 하지만 그런 참모들은 이제 다 떠났다. 트럼프는 ‘그때 하려고 했는데 못 했던 것들’을 할 것이다. 한미동맹이 70주년을 맞았다고 이를 당연시하면 안 된다.”
―2기 정부에서 미중 관계는 더 악화될까. 트럼프는 최근 유세에서 ‘시진핑이 잘생겼다’ 같은 말을 하기도 했는데.
“미국이 패권국의 입장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트럼프나 바이든 정부가 똑같다. 다만 바이든이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를 앞세웠다면 트럼프는 지정학적 경쟁의 관점에서 중국을 보고 있다. 경제과학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중국을 더 강하게 견제하려 할 것이다. 트럼프에게 호혜적인 무역협정이란 간단하다. ‘네가 쥐어짜면 나도 너를 쥐어짠다’는 것이다.”
―북-러가 밀착하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재등장이 이 구도를 바꿀 변수가 될 수 있을까.
“트럼프는 우크라 전쟁 협상을 하루 만에 이뤄낼 수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의 북한 포탄 수요는 줄어들 것이고, 더 이상 북-러가 지금처럼 밀착할 이유는 줄어들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재협상에 나서게 되면 북-미 구도가 바뀔 수 있다. 이때 북한의 ‘통미봉남’ 시도가 다시 극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대북 적대감을 유지한 채 미국 일변도의 외교만 해서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트럼프의 2번째 백악관행이 현실화될 경우 한 번의 ‘일탈’이 아닌 지속적 ‘현상’으로서의 변화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란 게 조 전 원장의 진단이다. 그는 1시간 반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새로운 모습의 미국을 상대하려면 한국이 기존의 이분법적 세계관과 흑백논리를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귀환’이 위기가 될지 위협이 될지는 우리한테 달렸다는 말이다.
동아일보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 프로필
07-15 “한반도전쟁 땐 中개입 시간문제… 韓·美동맹, 모든 대응 준비해야”
■ 에이브럼스 前 한미연합사령관
“2010년판 ‘작계 5015’ 대체할
새로운 작계 작성 늦은 감 있어”
캔자스시티 =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

로버트 에이브럼스(사진) 전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은 한반도에서 전쟁 재발 시 중국의 개입은 시간 문제라며 “한·미 동맹은 모든 계획에 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2019년 2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 간 베트남 회담 결렬로 9·19 군사합의는 무효화됐다고 평가했다. 지난 2018∼2021년 주한미군사령관을 지낸 그는 내달 27일 국제포럼 ‘문화미래리포트 2024’의 기조연설자로 참석할 예정이다.
에이브럼스 전 사령관은 지난 6월 25일(현지시간)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인근에서 진행한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개입은 북한의 적대 행위 재개나 한국전쟁 재발 시 ‘과연 개입할까’가 아니라 ‘언제 개입할까’의 문제”라며 “어떻게 중·러의 개입을 최상으로 억제할 수 있을지, 만약 억제에 실패할 경우 어떤 대응이 가장 좋을지 심도 있는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에 의해 파기된 9·19 군사합의에 대해 “추가적인 신뢰구축 수단 역할을 했고 적대행위 재개를 촉발할 수 있는 남북 간의 실수나 오판을 예방하는 추가 안전판 역할을 했다”면서도 “김 위원장과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에 실패한 것이 9·19 합의 종말의 시작으로 사실상 (그때부터) 효력을 잃었다”고 평가했다.
에이브럼스 전 사령관은 한·미가 ‘작전계획(작계) 5015’를 대체할 새로운 작계를 작성 중인 것에 대해 “늦은 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작계 5015는 2010년에 합의된 전략지침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인데 이후 안보환경에 큰 변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에이브럼스 전 사령관은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에는 “강력히 반대한다(Strongly against)”고 밝혔다. 그는 “미국의 어떠한 행정부라도 (한국의) 핵확산금지조약(NPT) 위반을 지지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문화일보
07.16 美 사령관 "韓 원잠, 필요시 추진", 미국 설득 나서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현지시각) 미국 하와이 캠프 H. M. 스미스의 인도·태평양 사령부를 방문, 새뮤얼 퍼파로 미국 인도·태평양 사령관과 함께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대통령실
새뮤얼 퍼파로 미 인도·태평양사령관이 한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 도입에 대해 “군사 작전 분석의 결과 그런(원자력 잠수함 도입) 믿음이 생긴다면 추후에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하와이 미군 기지에서 한국 취재진을 만나 “동맹이자 안보 파트너로 우리(한미)의 전력을 통합하고 방어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한미는) 높은 기술력의 국가들로서 동등한 파트너라는 시각에서 (원잠 보유를) 접근해야 한다”고도 했다. ‘작전 분석’ 등 전제를 달긴 했지만 미군 최고위급 사령관이 한국의 원잠 도입 추진을 직접 언급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우리에게 원잠이 필요한 이유는 북한 때문이다. 북한은 2015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에 성공한 뒤 잠수함에서 핵 탑재가 가능하다는 순항미사일도 쐈다. 북이 바다에서 SLBM을 발사하면 탐지와 방어가 사실상 어렵다. 가장 효율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우리 잠수함이 북한 잠수함 기지를 상시 감시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장시간 물속에서 작전할 수 있어야 한다. 디젤 잠수함은 길어도 10여 일을 넘지 못하지만 원잠은 수개월 수중 작전이 가능하다. 더구나 김정은은 2021년 원잠 개발을 공언했다. 러시아에 포탄을 주는 대가로 원잠 기술 이전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러시아 도움으로 원잠을 보유하게 되면 더 이상 억제하기 힘들어진다. 이렇게 미국을 은밀하게 핵으로 타격할 능력을 갖추면 한국 위기 때 미국의 핵우산도 펴지지 않을 수 있다.
원잠은 엔진이 원자로일 뿐 핵폭탄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런데도 미국은 한국의 원잠 보유를 무조건 반대한다. 지난달 초만 해도 오스틴 미 국방 장관은 한국의 원잠 도입론은 “수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미국은 2021년 영국·호주와 삼각 동맹인 ‘오커스’를 창설하며 호주에 원잠을 판매하기로 했다. 그런데 원잠은 한국이 더 필요하다. 호주와 달리 한국은 미국의 동의만 있으면 자체적으로 원잠을 건조할 수 있다. 최근 미국은 기존 안보 전략들을 재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원자력 추진 잠수함 보유를 위한 미국 설득에 나서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7.16 두 왕따 지도자의 '도원결의'
러·북 동반자 조약 벌써 한 달… 러와 친구로 지낼 생각 버려야
그들이 우크라 전선에서 최대한 국력 소비하게 만들고
우리는 우크라 무기 지원 개시
이후 러 정책 변화에 따라 무기의 종류와 규모 조정해야
NATO와 공동 대응책 미리 마련을
▲김정은과 푸틴이 지난달 동맹 조약을 맺고 악수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러시아와 북한 간에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이 체결된 지 4주가 지났지만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주 워싱턴에서 열린 나토 정상 회의 연설에서 러시아의 대북 군사·경제 지원을 강력히 경고했다.
러·북 전략적 동반자 조약은 침략 전쟁과 불법적 핵·미사일 개발로 세계에서 가장 고립되고 지탄받는 두 왕따 지도자가 이제부터 운명을 같이하겠다는 ‘도원(桃園)의 결의’다. 북한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계기로 러시아에 올인하면서 이미 사실상의 동맹이 되었고, 조약 체결로 이를 공식화한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규탄하고 철군을 요구하는 2022년 3월 2일 유엔총회 결의안에 러시아와 함께 반대표를 던진 유엔 회원국은 4국뿐이었고, 그중에서도 러시아에 포탄과 미사일까지 지원한 나라는 북한밖에 없다.
조약 제4조는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로씨야련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되어있다.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가 북한을 군사적으로 지원할 의무를 규정하면서도 원하지 않는 개입을 피할 근거도 마련해 놓았다. 그럼에도 이 조약은 1996년 폐기된 1961년 구 동맹 조약의 복원을 넘어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불길한 도전을 제기한다.
신 조약이 불길한 첫째 이유는 이를 지배하는 러시아의 대북 부채 의식에 있다. 1961년 동맹 조약은 북한이 소련의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체결된 것이므로 러시아가 북한의 요구를 무시하고 거부해도 그만이었다. 1970년대 중반 소련이 북한의 스커드 미사일 제공 요구를 거부하자 북한이 이집트에서 도입하여 독자 개발에 나서게 된 사연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가장 외롭고 힘들 때 김정은에게 진 신세를 생각하면 이제 김정은이 도움을 청할 때 야박하게 거절하기 어려워졌다.
러시아가 대북 제재를 무력화(無力化)하는 데 앞장서오고, 식량과 에너지 지원을 통해 북한 경제 위기의 해결사 역할을 해온 데는 이런 부채 의식이 작용했을 것이다. 이는 북한이 안심하고 핵 무력 증강과 기술적 고도화를 달성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군사 분야에서도 북한은 첨단 무기와 위성 기술 등의 이전을 당당하게 요구할 권리가 생겼고, 러시아는 이에 최대한 성의를 보여야 하는 의무감을 갖게 되었다. 신 동맹 조약을 일시적 필요에 의한 거래적 차원의 ‘정략결혼’으로 폄하할 수 없는 이유다.
신조약은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도 불길하다. 핵무장한 북한에 동맹 조약으로 안전보장까지 제공하는 것은 북한에는 공격받을 만한 도발을 더 과감하게 해도 된다는 면허증이자 도발에 대한 보험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유사시 한미 동맹의 대북 군사적 옵션을 결정적으로 제약한다. 조약 4조가 북한이 침략받을 경우에만 적용되므로 한국이 북한을 침략할 의도가 없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푸틴의 주장은 본질을 호도하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러·북 동맹은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불확실성과 위험을 높인다는 점에서도 불길하다. 이는 2022년 2월 시진핑·푸틴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중·러 간 ‘제한 없는 파트너십 협정’과 1961년 7월 체결된 중·북 동맹 조약을 보강하는 중·러·북 3각 연대를 완성함으로써 북방 세력의 전략적 입지와 현상 변경 능력을 강화한다. 중국이 러·북과 한통속으로 비치는 것을 꺼리고 동아시아의 진영화를 우려하는 모습만 보고 러·북 밀착에 불만을 가진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미국의 군사적 역량이 러·북 동맹의 위협에 대비하는 데 묶이는 만큼 중국의 대만 침공에 대응할 여력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중국은 전략적 어부지리를 얻게 되었다.
그렇다면 한국은 러·북 동맹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첫째, 한국의 우방이 되기를 포기한 러시아와 계속 친구로 지낼 생각은 버려야 한다.
둘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국력을 최대한 소비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유사시 북한을 지원할 여력이 줄어든다. 러시아의 향후 태도를 보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 무기 지원 여부를 결정할 것이 아니라 일단 무기 지원을 개시한 후 러시아의 정책 변화에 따라 무기의 종류와 규모를 조정하는 것이 순서다.
끝으로, 러시아의 보복에 대비하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공동 대응책을 미리 마련해 두어야 한다. 한국에 대한 보복을 서방권 전체에 대한 보복으로 간주하여 공조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조선일보 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07.18 1950 애치슨 라인, 2025 트럼프 라인
위기 딛고 더 강해진 美 스트롱맨
"한 시대 종언 때 등장하는 인물"
측근 '한국 중시' 발언에 안심말고
방어선 바꿀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에치슨 라인 트럼프 라인.
2017년 11월 방한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첫 행사는 평택 미군 기지 캠프 험프리스 방문이었다. 이곳은 해외 미군기지 중 최대 규모다. 주한미군사령부와 제2보병사단을 비롯, 주한 미군 가족 등 4만 명이 거주하는 초대형 복합기지다.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로부터 약 40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누구라도 이곳을 둘러보면 북한은 물론 중국 견제에 유리한 요충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시 미 행정부 관계자들은 주한 미군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트럼프가 험프리스를 시찰하면 달라질 것으로 기대했다.
결과적으로 오판(誤判)이었다. 주한 미군을 경시하는 그의 생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트럼프 정부의 마지막 국방장관인 마크 에스퍼는 자신의 회고록 ‘성스러운 맹세’에 주한 미군 관련 에피소드를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트럼프가 주한 미군 철수를 자꾸 주장하자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1기 때는 다른 일로 바쁘니) 주한 미군 철수는 두 번째 임기 우선순위로 합시다”라고 하자, 트럼프가 “그렇지, 두 번째 임기”라고 했다는 얘기도 기록돼 있다.
이 때문에 최근 트럼프 재선을 준비하는 미국우선주의정책연구소(AFPI) 관계자들이 방한했을 때 관련 질문이 쏟아졌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기용 가능성이 거론되는 프레드 플라이츠 AFPI 부소장은 “트럼프가 당선되면 주한 미군 철수나 감축은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시진핑 중국 주석의 3연임 독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북한의 계속적인 도발로 상황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장호진 국가안보실장도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트럼프의 자유주의 국제 질서 무시, 주한 미군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엔 일관성이 있어서 그의 참모들 발언을 믿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트럼프가 주한 미군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은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4년 전 ‘플레이보이’와 인터뷰에서 주한 미군이 “부당하게 대우받고 있다”며 왜 한국에 있느냐고 했다. 가장 최근엔 지난 5월 시사주간지 타임 인터뷰에서 “위험한 곳에 (주한) 미군이 있다. 말도 안 된다. 한국은 부유한 나라다. 왜 우리가 누군가를 방어해야 하냐”고 했다. 이런 트럼프에게 방위비를 얼마쯤 인상해준다고 오랜 생각이 바뀔지 의문이다.
주한 미군 존재 의의를 일관되게 폄하하는 트럼프의 발언을 듣다 보면 1950년 한국을 미국의 방어선에서 제외한 애치슨 라인을 떠올리게 된다. 한반도를 김일성의 동족살해(同族殺害) 남침으로 이끈 애치슨 라인의 함의는 간단하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반도를 버려도 일본이 태평양의 방파제처럼 버티고 있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트럼프는 주일 미군의 방위비 분담금이 적다고 불평하면서도 주한 미군에 대해서처럼 철수를 명시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다. 그는 2019년 5월 일본의 나루히토가 등극한 지 한 달도 안 돼 국빈으로 초대돼 일본의 극진한 ‘오모테나시’(환대)를 만끽했다. ‘보물 같은 미일 동맹’이라고 말할 정도로 일본을 신뢰한다. 트럼프는 재집권 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재회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가 주한 미군 철수 또는 감축을 협상 테이블에 던져 놓으며 애치슨 라인과 유사한 ‘트럼프 라인’을 추진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있나.
지난 13일 총탄이 오른쪽 귀를 ‘관통’하는 상황에서도 오른손을 번쩍 치켜들며 “싸우자”는 트럼프를 봤을 때 소름이 돋았다. ‘스트롱 맨’이 사실상 재선될 가능성이 급상승한 순간, 앞으로 어느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헨리 키신저는 “트럼프는 역사상 한 시대가 종언을 고할 때 등장해 그 시대의 가식을 벗겨 내는 인물일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 2기 시대의 대한민국 활로에 대한 대전략(Grand Strategy)을 고민하고 또 고민할 시간이 성큼 다가왔다.
조선일보 이하원 외교담당 에디터
07-18 한미, ‘재래식 동맹’서 ‘핵 동맹’으로… 공동지침 넘어 연합작계로 가야

■한미 ‘일체형 확장억제’
비핵국가 중 양자 차원서 ‘미국과 핵작전 논의’ 첫 사례… 핵우산 ‘신뢰의 위기’ 극복 계기
정권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을 군사 연합작전계획 필요… 운명공동체 인식 바탕 후속조치 절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1일 한·미 ‘일체형 확장억제’ 구축을 핵심 골자로 하는 ‘한·미 한반도 핵억제 핵작전 지침’(이하 ‘한·미 공동지침’)을 승인했다. 윤 대통령은 16일 국무회의에서 “한·미동맹이 명실상부한 핵기반 동맹으로 확고하게 격상됐다”고 밝혔다.
‘일체형 확장억제’는 미국의 핵전력에 초점을 맞추되 여기에 우리의 첨단 재래식 전력을 더해 핵 운용 관련 정보공유·협의·기획·연습 및 훈련·작전 등을 함께하는 것을 말한다. ‘재래식-핵 통합(CNI)’이란 미국의 핵 작전에 한국의 재래식 전력을 지원해 대북 억제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일체형 확장억제
‘일체형’이란 용어는 한국이 미국의 확장억제 구성요소에 일방적으로 의지하는 걸 넘어 첨단 재래식 전력을 제공해 대북 억제에 기여하며 한·미가 함께 확장억제를 구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은 확장억제를 제공할 때 자신의 핵무기 운용 시스템을 비핵 동맹국들과 공유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유사시 미국이 ‘완벽히’ 보호해 줄 것이니 무조건 믿으라는, 일종의 ‘핵 신비주의’를 고집했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의 고도화로 인해 핵 신비주의가 설 땅이 좁아졌다. 마침내 윤석열 정부는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2022년 말부터 미국 바이든 행정부와 본격적 대책을 논의했다. 그 결과 2023년 4월 ‘워싱턴선언’을 계기로 한·미 ‘핵협의그룹(NCG)’이 출범함으로써, 한국도 미국의 핵무기 운용 시스템 속으로 들어가 핵기획과 핵실행을 미국과 함께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한·미 정상이 이번에 승인한 ‘한·미 공동지침’은 지난 1년간 3차례의 NCG 회의를 통해 양측이 합의한 결과물이다. 날로 고도화하는 북핵 위협을 억제하고 유사시 즉각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핵 자산에 처음으로 ‘한반도 임무’가 전·평시에 배정될 것임을 확약한 문서다. 선언적 수준의 ‘억제’를 넘어 북의 핵 사용 시 ‘대응’까지 포함한 조치를 공식 문서로 채택한 데 큰 의미가 있다.
우리 군이 미군과 함께 한반도 핵 운용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전략을 협의하고 기획하며, 연습·훈련·작전을 수행함으로써 실전 대응능력을 갖출 수 있는 토대가 구축된 셈이다. ‘재래식 전력에 바탕을 둔 한·미동맹’이 ‘핵에 기반한 동맹’으로 격상됐다고 할 수 있다.

◇공동지침 승인 이후
특히 한·미 CNI는 비핵국가로서 양자 차원에서 미국과 직접 핵 작전을 논의하는 최초 사례이다. CNI 논의가 시작된 배경은 북한 핵이 미 본토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과연 동맹국 유사시 자신이 가진 핵 자산을 북한에 과감히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뢰의 위기’를 극복하고 동맹국을 안심시키기 위해 미국은 이른바 일체형 확장억제 전략을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첨단 재래식 전력과 미국의 핵 자산을 불가분의 시스템으로 일체화하는 모습을 구현함과 동시에 대북 억제를 넘어 북한의 핵 사용 시 대응계획까지 공유함으로써 우리 국민이 미국의 핵우산에 가지는 의구심을 불식시키려 한 것이다.
이번 지침에 따라 한·미는 올해 을지 자유의 방패(UFS) 훈련 계기에 북한의 핵 공격 시나리오를 적용한 고위급 도상연습(TTX)을 포함한 다양한 연습과 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러한 연습 및 훈련을 통해 북핵 위협 대비 동맹의 태세와 능력을 강화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점들이 우리 국민 눈에 긍정적으로 비치면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도는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 위기를 완전히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한·미 공동지침’ 단계를 넘어 ‘한·미 연합 작전계획’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이번에 유사시 한·미 양국 정상 간 즉각적인 협의를 보장할 수 있는 절차 및 통신보안 체계를 구축하기로 한 것, 북핵 위기 시 한·미 간 핵 관련 민감 정보 공유를 확대하기로 한 것은 물론 진전된 합의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더욱 중요한 것은 북한의 핵 사용 위협 또는 실제 사용 시 한·미 핵작전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를 시나리오에 따라 상세히 규정한 작전계획이다. 아무래도 ‘정치적 문서’는 ‘군사적 작전계획’보다 정권 변화에 취약하다.
◇넘어야 할 장애
그런데 ‘작전계획화’를 위해선 넘어야 할 장애물이 있다. 미국의 핵 자산을 제공하는 사령부는 전략사령부(Strategic Command)이므로 주한미군사령부(USFK)는 핵작전을 지휘할 권한이 없다. 한·미 공동지침을 연합 작전계획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한미연합사령관인 주한미군 사령관에게 핵작전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돼야 한다. 한미연합사령부, 미국 전략사령부, 그리고 올해 말 출범 예정인 한국 전략사령부 간에 적절한 임무 분장이 이뤄져 일체형 확장억제가 제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또 다른 과제는 확장억제 구성요소인 핵우산·재래식 전력·미사일 방어 중에서 핵우산과 재래식 전력의 통합은 합의된 만큼 미사일 방어와 관련된 한·미 간 협력, 더 나아가 한·미·일 협력이 강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미·일이 북한 핵미사일에 대한 방어력(요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3국 정찰자산의 유기적 통합이 필요하다. 지난해 8월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증강된(enhanced)’ 탄도미사일 방어 협력을 추진하기로 한 만큼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한·미·일 미사일 방어 협력을 가속화해야 한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미국에, 단거리는 한국에, 중거리는 일본에 위협이라는 식의 단순 논리는 위험하다. ICBM이 미 본토의 목표지점을 정확히 타격할 수 있게 되면 유사시 한국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 의지가 약화할 수 있다. 북의 단거리탄도미사일 사정권 내에는 우리 국민뿐 아니라 주한미군도 있으므로 한·미 모두에 위협이다. 북의 중거리미사일은 유엔사 후방 기지가 있는 일본을 위협하므로 유사시 미군 증원군의 이동을 어렵게 한다. 이런 점을 인식한다면 3국 미사일 방어 협력은 더욱 긴요해진다.
◇운명공동체에의 믿음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일체형 확장억제를 구현하기 위한 첫 단추가 잘 끼워졌다. 결국 한·미 양국이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게 확장억제의 기본이다. 양국은 인식의 공감대 위에 일체형 확장억제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후속 조치 마련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 용어 설명
‘확장억제’란 미국이 핵을 갖지 않은 동맹국에 대해 제3국이 핵 위협을 가할 때 핵·재래식·미사일 방어 능력 및 진전된 비핵능력을 포함한 모든 범주의 군사력을 동원해 억제력을 제공하는 전략.
‘NCG’는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2023년 4월 ‘워싱턴선언’에 따라 출범한 한·미 ‘핵협의그룹’.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연합 억제 및 대응 태세를 제고하는 메커니즘으로 기능.
■ 세줄 요약
일체형 확장억제 : 한·미가 ‘재래식-핵 통합(CNI)’을 통한 일체형 확장억제 구축을 골자로 하는 공동지침을 채택. CNI는 비핵국가로서 양자 차원에서 미국과 핵 작전을 논의하는 첫 사례. 한·미가 ‘핵 동맹’으로 격상한 것.
공동지침 승인 이후 : 핵우산에 대한 ‘신뢰의 위기’를 완전히 극복하려면 연합 작전계획까지 가야. 동맹의 약속이 정치 변화에 흔들리지 않아야 하기 때문. 양국 전략사령부 간 핵작전 참여를 위한 적절한 임무 분장도 필요.
운명공동체에의 믿음 : 확장억제 구성요소 가운데 핵우산과 재래식 전력 통합이 합의된 만큼 이제 미사일 방어와 관련된 한·미 간, 나아가 한·미·일 간 협력이 과제.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게 확장억제의 기본.
문화일보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07.19 국정원, 文때 종전선언 위해 무리한 對美외교…이게 화근
'수미 테리 기소' 뒤에 무슨 일이…
▲지난 2020년 8월 수미 테리(왼쪽) 연구원이 뉴욕 맨해튼의 고급 그리스 레스토랑에서 고위 외교관으로 나온 국정원 고위 간부 2명과 식사하고 있는 모습. /미 연방검찰
▲그래픽=양인성
대통령실은 18일 수미 테리 미국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미 정부에 신고하지 않고 한국 정부를 위해 일한 혐의로 미 검찰에 의해 기소된 것과 관련해 “문재인 정권을 감찰해야 될 것 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국정원 요원이) 사진 찍히고 한 것이 다 문재인 정권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전문적 외부 활동을 할 수 있는 요원들을 다 쳐내고, 아마추어 같은 사람들로 채우니까 그런 얘기가 나왔던 것 같다”고 했다.
▲그래픽=양인성
실제 미 검찰의 공소장과 당시 상황에 밝은 소식통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2019~2021년 문재인 정부가 ‘종전 선언’을 원하며 무리한 대미 외교를 펼친 것이 이번 사태로 연결된 측면이 있다. 미 검찰은 2019년 1월 서훈 당시 국정원장의 워싱턴 DC 방문 시, 테리 연구원이 국정원 요청으로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 등을 섭외해 ‘비공개 간담회’를 열어준 것을 문제 삼았다.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을 한 달 앞둔 이때 문재인 정부는 종전 선언에 총력전 중이었다. 여기 참석한 전직 미국 고위 정보 당국자는 연방수사국(FBI)에 “이 만남은 매우 비정상적이었다. 싱크탱크에 초청받아 외국 정보기관 수장을 만난 다른 사례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테리가 문 정부 정책에 동의했던 것은 아니다. 2019년 2월 그는 언론 칼럼에서 “종전 선언은 평양과 베이징이 유엔사 해체와 종국적으로 주한 미군 철수를 요구하도록 문을 열어주는 꼴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국정원과의 교류는 계속됐다. 국정원 A 요원은 2019년 11월 그에게 명품 코트와 핸드백을 사줬다. A 요원의 후임인 B 요원도 2021년 4월 명품 핸드백을 사줬다.
이 시기 문 전 대통령의 대학 후배인 재미 교포 C씨를 중심으로 미 의회에 대한 종전 선언 로비도 이뤄졌다. 한국 민주당 의원들과 미 의회를 연결해 준 C씨는 2021년 민주평통 미주부의장이 됐다. 이즈음 한인 사회에서는 “미국 국적자가 한국 기관 소속으로 한·미 정치권의 ‘가교’ 역할을 하면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트럼프 대선 캠프의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한 특검 후 미 법무부가 FARA 수사를 확대할 시기였다.
실제 미국 법무부는 이때 한국 정부에 ‘경고'를 보냈다. 18일 외교 소식통은 “미국 법무부가 2021년 한국 정부의 싱크탱크 지원을 총괄하는 외교부 산하 국제교류재단(KF)에 ‘한국 정부를 위해 활동하려면 외국대리인으로 등록하라'는 권고 서한을 보냈다'고 밝혔다. 테리가 워싱턴의 한 싱크탱크에서 KF의 자금 지원을 받는 ‘KF 한국 국장'직을 맡았을 무렵이다.
당시 KF는 “우리는 독립 기관이며, FARA의 면제를 받는 문화·학술 교류를 하고 있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미 법무부는 “KF 이사장이 ‘공공 외교’와 ‘역내 평화 증진’ 등을 얘기한 것을 알고 있다”며 FARA 적용 대상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KF를 외국대리인으로 등록하지 않았다.
KF가 ‘경고’를 받은 사실은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잘 전달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내 ‘서훈 라인’으로 분류되는 B 요원도 교체되지 않았다. B 요원은 2022년 6월 미 국무장관 주재 비공개 회의가 끝나자마자 참석자인 테리를 외교관 차량에 태운 뒤 메모를 촬영했다. 테리가 몸담은 싱크탱크에는 2022년 5월과 2023년 4월 두 차례 주미 한국 대사관 명의로 기금을 냈다. 외국 정부가 싱크탱크에 기금을 내고 행사 협조 등을 요청하는 것은 워싱턴 DC에서 흔한 ‘외교 활동’이다.
2023년 3월 테리 연구원은 윤석열 정부 외교부 측의 연락과 자료를 받은 뒤, 워싱턴포스트에 ‘한국이 일본과의 화해를 위해 용감한 조치를 취했다’는 칼럼을 썼다. 테리가 “칼럼이 마음에 들었다면 좋겠다”고 문자를 보내자, 외교부 당국자는 “(주미) 대사와 국가안보실장이 매우 행복해한다”고 했다. 2023년 4월 테리는 외교부의 의뢰로 한미 동맹 관련 행사를 주최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당시 테리를 비롯한 워싱턴 주류 학자들의 의견은 원래 한·일 관계 개선에 긍정적이었고, 전문가 기고 의뢰도 통상적 일”이라고 했다.
한편 국무부에서 한반도 정책을 총괄하는 최고위 인사인 정 박 국무부 부차관보가 지난 5일 갑자기 사임한 것과 관련해서도, 이번 수사와 관련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다. 미 검찰 공소장에 테리가 “한국 업무를 담당하는 국무부 고위 당국자와의 친밀한 관계”를 말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그 이력이 박 부차관보와 일치한다.
☞FARA(외국대리인등록법)
’Foreign Agents Registration Act’의 준말. 외국인을 포함해 미국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이 외국 정부·기관·기업 등의 정책 및 이익을 위해 일할 경우 미 법무부에 신고하고 활동도 보고하도록 하는 연방 법이다. 미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활동을 투명하게 파악하겠다는 취지로 1938년 제정됐다.
조선일보 김진명 기자
07.20 폭력적 美 우선 경제, 金 러브콜, 트럼프 리스크 구체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각)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선후보 수락 연설을 한 뒤 주먹을 쥐고 청중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공화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배터리 보조금 축소와 노골적 보호주의 발언 등으로 세계 경제에 충격파를 일으키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을 비판하며 “대만이 우리에게 돈(보험료)을 내야 한다. 미국은 보험회사”라고 했다. 트럼프 발언 직후 대만과 미국, 한국의 반도체 업체 주가가 내리고 있다. 트럼프 발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미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미국에 투자하면 보조금을 주겠다고 했었다. 법도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 기업들이 막대한 투자를 했는데 트럼프는 ‘칩스법’을 바꿔 그 보조금을 삭감할 수 있다고 한다. 보조금 유지 대가로 무리한 투자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는 전기차 의무 정책을 없애고 보조금 축소를 공약했다. 미국 정부의 약속을 믿고 미국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 우리 자동차·배터리 업체엔 큰 악재다. 주가도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트럼프는 모든 수입품에 대한 10% 보편 관세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이럴 경우 대미 수출이 152억달러 감소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또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빌미로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할 수도 있다. 트럼프의 경제정책은 그 본질이 ‘폭력적’이다.
트럼프는 “북한 김정은과 잘 어울렸고 또 잘 지낼 것이다. 김정은도 나를 보고 싶어 할 것”이라고 또다시 김정은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그는 “핵무기를 많이 가진 사람과 잘 지내는 건 좋은 일”이라는 무책임한 말도 했다. 그가 다시 김정은과 정상회담 쇼를 하고, 한미 연합 훈련을 없애는 데 대비해야 한다. 지금 1년에 10억달러 정도인 방위비 분담금을 몇 배인 수십억 달러로 올리라고 할 것이다. 수시로 주한 미군 철수를 위협하면서 실제로 감축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에선 트럼프가 바이든이 한 모든 정책을 뒤집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미 협력을 대폭 강화한 캠프 데이비드 협정도 휴지 조각이 될지 모른다.
만약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 최대한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한국 기업 보조금이 미국 내 투자와 고용 확대 효과가 크고, 첨단 분야 한미 협력이 중국 견제에도 중요하다고 설명해야 한다. 트럼프가 김정은과 위험한 거래를 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우리 주장을 전달해야 한다. 미국의 핵무기와 우리 재래식 무기를 통합 운용하기로 한 합의를 실제 작전 계획에도 빨리 반영해야 한다. 트럼프는 과거 “한·일 자체 핵 보유에 열린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 요구를 들어주면서 우리 핵 능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7.20 '문제는 트럼프가 아니라 한국의 '駝鳥(타조) 정치'다'
한국, 큰 國益 지키고 작은 것 내놓는
'捨小取大 외교 원칙' 굳건히 해야
정치인들, 세계 변화에 귀 닫고
눈 감은 채 모래에 머리 처박으면
큰 후회 남길 것
한국은 세계의 중심도 아니고 변두리도 아니다. 경제만 보면 바로 코앞에 프랑스 영국, 그들 등 너머로 독일과 일본이 보이는 위치에서 트랙을 돈다. 분발하면 한두 순위(順位) 올라설 수도 있다. 세계 주요국 G7 회의 멤버가 되는 것이다. 요즘대로 하면 미끄럼틀을 타고 낙오하게 될 터이지만 말이다.
한국의 안보 외교 위상(位相)은 다르다. 세계 질서 주변부에 묶여 있던 한국은 중진국(中進國)을 거쳐 또 다른 중진국(重鎭國)에 도달했으나 중심의 작은 변화에도 심한 몸살을 앓는 나라가 됐다. 그만큼 사후(事後) 대책이 아니라 사전(事前) 대비가 중요해졌다. 국가 지도층의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국가 생존의 급소(急所)가 됐다.
오래전부터 예고된 것이지만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연설에서 장갑도 끼지 않은 채 그 주먹을 한국을 향해 먼저 날렸다. 그는 ‘핵무기를 많이 가진 사람과 잘 지내는 건 좋은 일이고 나는 그렇게 해서 북한 미사일 발사를 막았다’고 했다. 자기처럼 하지 못한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공격이고, 후보 시절과 대통령 되고 나서는 달라지는 법이지만 노선 자체가 크게 바뀌진 않을 것이다. 주한 미군 주둔비 부담 증액 요구는 곁가지로 보일 만큼 큰 변화가 예상된다.
트럼프 1기 때 자유주의 세계 질서를 옹호하고 동맹 사이 책임과 부담의 균형을 지지하던 정통(正統) 전략가들은 사라졌다. 미국 외교의 궤도 수정을 주장하는 인물들이 그 자리에 대신 들어섰다. 미국보다 동맹 상대국의 부담을 강조한다는 면에선 미국 우선주의(優先主義)이고, 세계 문제에 대한 미국 개입을 줄이려 한다는 면에선 미국 외교의 오랜 전통인 고립주의(孤立主義)의 부활이기도 하다.
‘핵무기 많이 가진 사람과 친하게 지내겠다’는 트럼프의 김정은 떠보기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과 달라질 건 분명하다. 세부(細部) 계획 윤곽도 어느 정도 그려놨다고 봐야 한다. ‘선(先)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 ‘후(後) 한반도 문제’ 순서를 밟을 듯하다.
트럼프의 부통령 러닝메이트 J D 밴스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 문제에 대해 현재 전선(戰線)을 토대로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국경선을 조정하면서 우크라이나를 NATO에 가입시키지 않고 러시아가 주장하는 대로 우크라이나 중립화(中立化)를 받아들이자는 구상을 내놨다. 그 대신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장기 지원을 보장하면 된다는 것이다. 닉슨 대통령의 베트남전 종결 방식을 빼닮았다. 우크라이나로선 국토의 4분의 1을 상실하고 1500만명 가까운 국민이 난민으로 해외를 떠도는 상황에서 미래 희망인 NATO와 EU 가입도 포기해야 한다.
트럼프가 돌아온다면 미국 외교는 ‘예상 가능한 트럼프’와 ‘예상 불가능한 트럼프’의 조합(組合)이 될 것이다. 이런 시대를 맞은 한국은 ‘국가 이익의 우선순위(優先順位)’를 정확하게 정하고 작은 이익은 버리고 큰 이익을 지킨다는 ‘사소취대(捨小取大) 외교’를 확립해야 한다.
한국의 취약점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한국 위상(位相)과 안보 외교적 위상 간 격차가 크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런 한국에 미국 국익의 관점에서 본 ‘사소취대의 원칙’으로 접근할 것이다. 북한 핵과 미사일, 주한 미군의 규모와 역할 변경, 경제 분야에 대한 미국 요구가 한 꾸러미에 담길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트럼프 충격은 한국만이 아니라 우크라이나·NATO와 EU 회원국·대만으로 동시에 퍼져나가고 있다. 유럽도 각국 정상이 모여 방위 문제에서 미국 의존을 줄이는 대책 수립에 바쁘다. 트럼프식 우크라이나 종전(終戰) 방식이 현실화하면 독일·프랑스의 계산은 더 복잡해질 것이다. 대만이 받을 압력도 크다.
한국이 트럼프 시대 도래를 악몽(惡夢)으로만 떠올릴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한정된 국력을 세계에 분산 투입(投入)할 게 아니라 경쟁 상대 중국이 위치한 동북아(東北亞)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대응 전략에 따라 핵 위기가 단계적 핵 재처리 시설 확보에 접근할 기회로 변할 수도 있고, 경제의 중국 의존도를 줄이면서 미국 내 중국 상품 시장을 한국이 가져올 계기로 만들 수도 있다. 일본 중시(重視)의 트럼프를 상대하려면 일본과 관계도 더 높은 차원에서 봐야 한다.
한국이 트럼프 충격 속에 들어있는 ‘기회는 놓치고 위험만 키우고 만다’면 뒷날 ‘바보야, 문제는 트럼프가 아니라 한국 정치였어’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한국 정치가 귀 막고 눈 감은 채 타조처럼 모래에 머리를 처박고 있을 때가 아니다.
조선일보 강천석 기자
07.20 한국 외교, 그리고 각주구검의 우
사람의 사고(思考)는 관성이 있어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동안 익숙해 있던 사고방식을 버리기 싫어한다. 문제는 현실 세계가 계속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런 현실 변화를 사고가 따라잡지 못하면 개인도 나라도 쇠락의 길로 들어선다. 한때 성공을 가져온 전략을 끝없이 고집하다가 역사상 많은 나라들이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그 길을 피하려면 국민, 특히 국가 지도층들의 사고가 항상 열려있어야 한다. 그리고 실천은 치밀하고 기민해야 한다. 험한 국제정치의 파고가 다가오는 지금, 그러한 역량을 갖추는 것이 우리의 국가적 과제다.
무엇보다 먼저 국제정치 현실을 냉철하게 꿰뚫어 보아야 한다. 현재 한국을 둘러싼 국제정치 흐름에는 세 가지 핵심 도전 요인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대결 심화, 북한 위협의 격화다. 이 세 가지는 우리가 지금 6년 전과는 완전히 딴판인 세상에서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크라, 미·중, 북한 문제 등으로
6년 전과 크게 달라진 국제 정치
정치권과 여론 담론은 변화없어
고정 관념 버리고 사고 틀 바꿔야

첫째,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배다. 만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어떤 곡절을 겪든 (예를 들어 트럼프 2기의 출범) 우크라이나 점령지역을 러시아 영토로 병합하며 전쟁을 끝내고, 승리를 외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2차대전 이후 종식된 제국주의 시대가 되돌아옴을 알리는 전주곡이 될 것이다. 그러한 두려움 때문에, 폴란드가 군사비를 두 배로 늘리고,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과 방위조약 체결을 원하고 있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일본은 한국을 35년간 강점했다. 1950년 북한의 남침 시 16개국이 참전해서 한국을 지켜준 것, 한국이 이만큼 경제와 민주주의를 키워올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제국주의 시대가 가고, 영토주권이나 자결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자유주의 국제질서 규범이 강하게 살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런 방패막이가 사라지려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하면 시진핑 중국 주석의 대만 침공,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남 도발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그동안 동맹과 자유주의 진영을 지원하고 리더 역할을 했던 미국이 더 이상 그럴 힘과 의지가 없어졌다고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이 그러할진대, 별 상관도 없는 우크라이나 때문에 대러 수출이 타격받고 러시아와의 균형 외교가 깨졌다고 말하는 것은 사안의 경중을 가리지 못하는 이야기다.
둘째, 미·중 대결의 심화다. 미·중 대결은 지금 우리가 실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2017년에 나온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보고서는 최초로 중국을 수정주의 세력이자 실질적인 주적으로 정의했다. 그것은 1972년 닉슨 대통령의 방중이래 시작되어 온 중국 포용 정책을 45년 만에 폐기 처분한다는 공식 선언인 셈이었다. 2018년 7월에는 34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수입품에 25% 고율 관세를 부과해서 본격적인 무역전쟁이 시작되었다. 2019년에는 중국의 화웨이를 비롯한 68개 계열사에 대한 미국산 부품과 기술 판매를 금지하면서 기술전쟁이 격화되었다.
외교전에서는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와해하고 다극 질서를 만들겠다는 시진핑 주석의 일대일로에, 미국은 인도태평양전략과 인태-나토의 연계로 맞서고 있다. 군사적으로는 대만과 남중국해에서 충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최근 2~3년 사이에 미·중 간의 전쟁 가능성에 관한 책과 논문들이 미국에서 수십 편이 출판되었다. 지금 미국 조야에서는 미국이 시급히 중국을 타깃으로 더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주한미군도 북한 대응 목적을 넘어서서 대중국 군사전략의 틀 안으로 끌어들여 새로운 형태로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2기가 들어서면 주한미군의 숫자, 형태, 역할의 변경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셋째, 위와 같은 상황에서 북한 위협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2019년 이래 김정은 위원장은 대남 적대시 정책과 핵미사일 프로그램 완성 목표에 박차를 가해왔다. 그 결과 한국 국민의 70% 이상이 핵 개발을 원할 정도로 불안해하는 상황이 되어버렸고, 한·미 당국은 이에 대해 확장억제 강화로 대응해 왔다. 김정은 위원장은 선대의 통일전략까지 폐기하고 모든 남북간 연결망을 끊어버렸다. 이러한 남북관계의 변화는 포용과 협력은 뒷전으로 밀리고, 당장 무력 충돌 가능성을 막는데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 와버렸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국제규범이 약화되고, 미·중 대결이 격화되며, 북한 위협이 심각해진 상황에 처한 한국에게 가장 합리적인 전략적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 60여 개의 동맹을 중심으로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이끌어 온 동맹국 미국과 러시아, 북한, 이란과의 권위주의 연대를 이끌고 있는 중국 사이에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는 이른바 ‘균형 외교’일까?
세상은 6년 전과 완전히 달라졌는데 외교에 관한 우리 정치권이나 여론의 담론은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여전히 수십 년 된 고정관념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실이 변하면 사고의 프레임도 바꿔야 최소한 생존, 더 나아가 번영이 가능하다. 그것이 역사의 법칙이다.
흘러가는 강에서 배를 타고 가다가 물속에 칼을 떨어뜨렸는데 뱃전에 칼을 놓친 위치를 표시해 놓고 그 자리에서 칼을 찾으려 했다는, 이른바 각주구검(刻舟求劍)의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중앙일보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전 외교통상부 장관
07.23 바이든 사퇴, 결과 예단 말고 모든 가능성 대비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왼쪽). /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대선을 107일 앞두고 민주당 대선 후보에서 사퇴했다. 그는 “당과 국가를 위해 도전을 포기한다”고 했다. 바이든은 지난달 27일 트럼프와 한 첫 TV 토론에서 인지력 문제를 노출한 이후 하차가 예상돼 왔다. 후보 공식 지명만 남겨둔 현직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접은 것은 미국 역사상 처음이다. 지난 13일 공화당 트럼프 후보가 총격을 당한 지 8일 만에 미 대선 판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바이든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대선 후보로 “공식 지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미 대선 승패를 가르는 경합주 6~7곳에서 해리스가 트럼프와 지지율 격차를 좁히지 못하면 민주당은 다음 달 전당대회에서 대안을 찾으려 할 것이다. 지금 미국은 ‘트럼프 대 반(反)트럼프’ 분열이 극심하다. 미 대선은 막판까지 ‘시계 제로’일 가능성이 있다.
바이든 사퇴는 한국 정부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의 대외 정책은 대부분 바이든 행정부와의 긴밀한 공조를 기반으로 했다. 작년 8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협력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린 데는 한·미 정상 간 신뢰가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바이든 사퇴로 윤석열·바이든 공조가 재개될 가능성 자체가 사라졌다.
트럼프 재선보다는 영향이 적겠지만, 민주당 새 후보도 바이든의 외교·안보·통상 정책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트럼프는 벌써 반도체·배터리 보조금 축소를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다. 보조금을 약속한 바이든이 사퇴하자 우리 반도체·배터리 기업들의 주가가 하락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 경제’가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민주당 새 후보가 이를 어느 정도 수용할 수도 있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했다. 푸틴 손을 들어주겠다는 것이다. 침략이 보란 듯 성공하면 위험한 선례가 될 것이다. 트럼프가 김정은과 새로운 ‘미·북 쇼’를 재개한다면 우리 안보의 불확실성은 더 커진다. 미국 민주당 새 후보 역시 트럼프를 이기기 위해 바이든과는 차별화된 다른 대외 정책을 들고나올 수 있다. 정부는 모든 경우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 국가안보실·외교부·국정원뿐 아니라 경제 부처와 대규모 투자로 미국 내 영향력이 커진 대기업들의 지혜를 모아 대비하기 바란다.
조선일보 사설
07-23 한반도 ‘위협의 균형’ 깨지고 있다
고상두 연세대 명예교수
기존 동맹 이론은 세력균형論
강자에 맞선 약자의 생존전략
北의 힘 아닌 위협 맞선 한미일
북·러 군사협력은 중대한 변화
한·중 협력 강화에 적극 나서고
나토와 정보 협력도 강화해야
한반도 안보 상황은 전통적인 동맹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특징이 있다. 일반적으로 동맹은 약한 국가가 강한 국가의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세력 균형 정책이다. 그러나 남북한의 세력 관계를 보면 한국의 경제력은 북한의 50배에 이르며, 군사력은 첨단화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가난할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고립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북한은 핵과 미사일로 무장했다. 이에 한국은 미국과 굳건한 군사동맹을 맺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과의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북한 새우 한 마리와 한·미·일 고래 세 마리가 대치하는 형국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맹 형성의 역설은 세력균형론이 아닌 위협균형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우리가 동맹을 강화·확대하는 것은, 북한의 힘이 아니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북한의 위협에 시달리는 우리로선 압도적인 방어동맹이 필요한 것이다.
북한의 위협을 구체화하면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불바다 발언이다. 북한은 한국, 주한미군기지, 미국 본토를 불태워 없애 버리겠다고 말한다. 둘째는, 역대 대통령에 대한 인격 모독성 표현이다. “바람난 치마” “삶은 소 대가리” “오물통 같은 골통” 등 욕설을 거리낌 없이 해댄다. 셋째는, 군사적 도발이다. 한국이 햇볕정책을 추진하고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평화 협력을 조성하는 동안 북한은 1999·2002년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해 두 차례의 연평해전을 일으켰다. 보수 정부가 들어선 2010년에는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했다. 핵과 미사일 도발은 갈수록 심해져, 2022년에는 미사일을 79회나 발사했다. 나흘 또는 닷새에 한 번꼴이다. 북한의 위협은 국내외 매체에 보도되면서 전쟁 공포를 유발하는 청중효과를 발휘한다.
최근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협력이 한반도에 형성된 위협의 균형을 깨뜨리고 있다. 북한의 위협이 단순한 레토릭 수준을 넘어서 무모한 전쟁 도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북한은 러시아군을 위해 대량의 포탄을 제공했고, 러시아는 그 대가로 대북 제재를 어기거나 피하면서 북한을 위한 실질적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정찰위성 발사에 실패한 북한을 위해 위성 기술의 제공을 약속했다. 러시아는 북한 노동자의 초청도 재개하고 있다. 그리고 대북 식량 제공과 함께 북한의 풍부한 광물자원 공동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를 막는 동시에, 지난 15년 동안 활동한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을 해체시켰다. 이러한 행동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간접적으로 돕고, 북한의 대남 위협 의도에 실행 능력을 더해주는 일이다.
한국과 러시아는 서로 레드라인을 설정하고 있다. 러시아는 북한에 핵과 미사일 기술을 주면 안 되고,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주면 안 된다고 서로 요구한다. 양국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지 않도록 막을 우리의 예방책이 필요하다.
첫째, 중국 카드의 활용이다. 중국은 북·러 밀착을 불편한 시선으로 본다. 중국은 글로벌 리더를 추구하기 때문에, 국제사회로부터 불량국가 취급을 받는 러시아·북한과 함께 북·중·러 3각 패거리로 취급받는 것을 꺼린다. 그러므로 중국과 함께 북·러 밀착을 견제하면서 한·중 관계 복원의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둘째, 우크라이나 전쟁의 평화적 종식을 위한 중재에 나설 때다. 북·러 밀착은 전쟁의 산물이며, 전쟁이 오래 계속될수록 러시아의 대북 의존도는 높아질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 종식을 공약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재집권할 경우를 대비해 6·25전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의 국제 평화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셋째, 한·미·일 안보 협력을 넘어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의 글로벌 협력이 필요하다. 나토의 유용성은 정보 협력에 있다. 러시아는 백악관의 위성사진 공개에도 불구하고 북한으로부터 포탄을 받은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북·러 간에 무기 거래가 이뤄지는지 유럽과 한반도에서 실시간 감시하고, 광범위한 증거 확보에 나서야 러시아의 행동을 제약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일보
07-24 미중 대립, 한국경제에 위기보단 기회
유회경 경제부장
미국의 중국 경제 때리기 가속
중국 덕분에 90년대 이후 성장
중국 경제 의존도 여전히 높아
칩스법 등으로 중국 추격 차단
체코 원전 수주도 양극체제 덕
서방 한 축으로 경제 도약 추진
반도체·전기차·2차전지 등 첨단 제품을 중심으로 미국의 중국 경제 때리기가 갈수록 심해진다. 중국 때리기의 원조 격인 도널드 트럼프 미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미국의 중국 견제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매개로 러시아·중국·북한·이란 등 독재국가 4곳의 결속력이 강고해지는 한편 유럽연합·영국·일본 등 이른바 서방 진영은 미국에 밀착하는 등 세계는 과거 냉전과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한국은 어떻게 될까. 최근 만난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렇게 말했다. “공식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미국과 중국 간 사이가 멀어진 것이 우리나라 경제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 모른다. 반도체 등 첨단 산업에서 중국의 추격이 워낙 거셌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뒀으면 바로 추월당했을 것이다. 미국이 나서서 다양한 방식으로 중국의 추격을 막아줘 달아날 시간을 번 셈이 됐다.”
1990년대 이후 우리 경제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게 된 요인 중 하나로 중국을 빼놓을 수 없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2022년까지 30년 동안 우리나라는 중국에서 7065억 달러의 무역 흑자를 냈다. 홍콩까지 포함하면 1조3029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 과정에서 동아시아 3국 제조 시스템, 그러니까 일본이 소재·부품을 대고 한국이 이를 바탕으로 중간재를 만들어 넘기면 중국이 완제품으로 조립해 미국 등으로 수출하는 시스템이 확고히 자리 잡기도 했다. 2017년 한한령(限韓令) 이후 중국 진출 기업들이 잇달아 철수하면서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긴 했지만, 대중 의존은 여전하다. 지난해 중국 수출은 1248억 달러로 지역별 1위를 고수했고 올해 상반기 역시 중국은 수출이 급격히 상승한 미국과 함께 주요 수출 지역으로 남아 있다. 최남석 전북대 무역학과 교수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공급망 충격에 취약한 것으로 판단되는 산화텅스텐·망간·마그네슘 등 133개 수입 품목 중 중국산이 127개(95.4%)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제2의 요소수 사태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중국 산업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면서 우리나라와 중국은 수출 현장에서 보완 관계보다는 경합 관계로 만나는 경우가 잦아졌고 기술 격차도 좁혀지고 있다.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중국의 대(對)아세안·멕시코 투자 확대에 따른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와 중국의 100대 수출 품목 중 겹치는 품목은 지난 2018년 32개였지만 2023년에는 40개로 8개 늘었다.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의 2023년 산업기술수준조사에선 미국을 기술수준 100%, 기술격차 0년으로 놨을 때 우리나라는 88.0%(기술격차 0.9년), 중국은 83.0%(기술격차 1.2년)로 거의 차이가 없었다. 과학기술 분야에선 오히려 중국에 역전되는 일도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반도체법(칩스법),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으로 브레이크를 걸어줬고, 우리나라는 훨씬 유리한 지형에서 중국과의 경쟁을 치를 수 있게 됐다. 더욱이 중국이 대놓고 한국 제품을 배척하면서 자신들에게 꼭 필요한 부품이나 중간재를 가져갈 뿐인데 우리만 헛된 꿈에 잠겨 있을 필요도 없다. 현재는 중국과의 협업 혹은 분업이 약화되면서 발생한 손실분을 미국과의 긴밀한 협조 아래 보충해 나가는 형국이라고 보는 게 적절하다.
원자력이나 방위산업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확고해진 양극 체제 정립 이후 혜택을 본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주축이 된 ‘팀 코리아’가 총 사업비 24조 원대 체코 신규 원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쾌거도 일정 부분 이러한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 막판까지 경합했던 프랑스전력공사(EDF)의 경우, 러시아 원전 회사 로사톰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미국은 이에 대해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곤 했다. 이러한 환경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 일부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올 정도다. 우리가 1990년대 이후 화려하게 세계 시장에 나온 중국에 올라타 경제를 키워 왔다면, 이제는 서방 진영의 한 축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고 경제를 제대로 고도화시킬 시점이다. 환경에 잘 적응하며 우리가 할 일에 초점을 맞춘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문화일보
07.25 누가 유엔사 존재를 부정하고 왜곡하나
오는 27일은 1950년 북한의 침략으로 시작된 6·25전쟁의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71주년이 되는 날이다. 1953년 시작된 정전체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대한민국 국민은 유엔사령부(UNC)가 북한의 침략을 격퇴하고 오늘날까지 한반도 안보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무관심하다. 유엔사는 정전 상황 관리를 통해 한반도에서 전쟁을 예방하면서 유사시 기존 17개 유엔 참전국의 전력을 제공해 전쟁 지속 능력을 키워주게 된다.
유엔사는 한반도 안보의 중요 축
북한 동조세력, 유엔사 지위 왜곡
유사시 더 빛날 유엔사 가치·역할
그런데도 이맘때만 되면 정전협정 체결일을 이른바 ‘전승 기념일’로 선전하는 북한 정권에 동조하듯 유엔사 지위를 부정하는 세력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유엔사와 관련된 일부 자료만을 근거로 왜곡된 주장을 늘어놓는다. 예컨대 “유엔사는 유엔의 공식기구가 아니며 미국 주도 통합사령부에 불과하다”(①), “유엔군은 유엔 헌장의 강제 조치가 아닌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불과하다”(②), “1975년 유엔 총회의 해체 결의에 따라 유엔사는 존재 근거가 없다”(③) 등이다.
먼저 ①번 주장을 살펴보자. 유엔군 참전은 1950년 6월 27일 유엔 안보리 결의 83호, 유엔사 창설은 7월 7일 안보리 결의 84호에 의한 것이다. 이후에도 1970년까지 유엔 안보리와 총회, 경제사회이사회(ECOSOC) 등 관련 결의는 90회나 이어졌다.
1950년 7월 31일 안보리 결의 85호에서 “유엔사가 유엔 안보리를 대신해”라고 적시했다. 이후 총회 결의 376호와 경제사회이사회 결의 등을 통해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회(UNCURK)와 함께 유엔사가 유엔의 정치적·군사적 대리 기구임을 거듭 확인했다.
②번 주장도 마찬가지다. 정전협정 체결 직후 유엔 총회 결의 제711호와 제712호를 통해 “유엔군사령관이 서명한 정전협정을 승인하고 한국의 독립과 평화를 위한 유엔의 목적을 재확인”했다. 이어 통합군사령부 보고 접수, 유엔의 집단적 군사 조치의 최초 성공, 유엔 헌장에 입각한 집단안전보장의 효과적 실증을 표명했다. 이는 유엔군 참전이 유엔의 군사적 강제 조치이며, 유엔사는 유엔의 공식 기구임을 명시한 것이다.
미국 주도의 통합사령부 설치를 위임한 이유는 냉전으로 인해 유엔 헌장에 따른 유엔 상비군 구성과 이를 지휘·통제할 안보리 산하 군사참모위원회가 설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전쟁이 발발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북한의 남침 초기 급박한 전장 상황에서 참전 유엔군을 통합 지휘하기 위해 불가피해서다.
다음으로 ③번 주장의 문제를 알려면 당시 국제정세 이해가 필요하다. 2차 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들이 유엔에 대거 가입한 데다 비동맹운동의 영향으로 유엔에서 자유 진영과 공산권의 표가 대등해졌다. 이에 따라 1975년 11월 18일 제30차 유엔 총회에서 유엔사 해체에 관한 자유 진영과 공산권의 결의안(3390 A/B)이 동시에 통과됐다. 이후 당사자들에 의해 정전체제를 대체할 협의가 이행되지 않으면서 유엔사 해체가 보류된 것이지, 유엔사의 법적 지위가 상실된 것은 아니다. 일본 내 7개 유엔사 후방기지 등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유엔사의 법적 지위에 관한 근거는 너무나 많다.
2018년 1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유엔 참전국 외교장관 회담, 2023년 11월 서울에서 개최한 한·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 회의가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도 유엔사의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해 유엔사 적정규모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엔군사령부는 유엔 출범 이래로 유일하게 안보리 결의에 따라 창설되고 참전이 결정됐다. 지금껏 유일하게 유엔군사령부라는 명칭과 유엔기를 사용하고 있다. 1990년 1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맞서 안보리 결의 678호로 무력 사용을 승인했지만, 명칭은 ‘유엔군’이 아닌 그냥 ‘다국적군’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 번영이 유엔의 참전과 유엔사를 기초로 한 한미동맹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유엔사를 부정하는 북한·중국을 차치하고라도 이들의 거짓 주장에 부화뇌동하는 세력들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무슨 이유로 유엔사의 지위와 역할을 부정하는가.

중앙일보 김병기 국방대 석좌교수, 한·유엔사친선협회 전문위원
07-25 ‘동맹=돈’이라는 트럼프
김남석 워싱턴 특파원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를 공식 선출하는 ‘2024 공화당 전당대회(RNC)’ 마지막 날인 18일(현지시간) 오전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국무부 외신기자센터(FPC) 브리핑에서 살풍경한 설전이 벌어졌다. 말다툼의 주인공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국가정보국(DNI) 국장대행을 지낸 리처드 그레넬 전 주독일 대사와 프랑스 대표 일간지인 르몽드 기자였다. 2기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 더 많은 돈을 걷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강하게 만들겠다는 그레넬 전 대사 발언에 르몽드 기자는 “나토는 기업이나 빵집, 식료품점과 다르다. 나토 핵심에는 회원국 간 연대가 있다”고 반문했다. 그러자 그레넬 전 대사는 “전 세계 클럽에 회비 안 내고 시설 이용하고 카페테리아 갈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그건 잘못된 거다. 그냥 비용을 부담하라”고 쏘아붙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하면 국무장관 또는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0순위로 꼽히는 그레넬 전 대사는 이날 회견에서 4차례나 돈을 언급하며 2기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기조 핵심은 동맹·파트너의 정당한 ‘비용 분담’이라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RNC 현장에서 2기 트럼프 행정부 출범 시 한국 등 동맹·파트너의 비용 분담 확대를 대외정책 핵심 기조라고 강조한 공화당 인사는 그레넬 전 대사만이 아니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지명·선출된 J D 밴스 연방 상원의원은 17일 후보 수락연설에서 “미국 납세자들의 관대함을 배신하는 나라의 무임승차는 더는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또 다른 핵심 외교 참모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보좌관은 한미 간에 진행 중인 방위비 협상 관련 질의에 “한국은 매우 부유한 국가가 됐다. 무엇이든 필요한 것을 할 수 있는 돈이 있다”고 밝혔다. 동맹에 대한 비용 압박 기조에 쐐기를 박은 것은 다름 아닌 트럼프 전 대통령이었다. 그는 18일 대선 후보 수락연설에서 동맹들에 대해 “오랫동안 동맹으로 여겨지던 다른 나라에 의해 이용당해 왔다. 다른 나라가 우리 일자리를 빼앗고 국가를 약탈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며 부정적 인식을 감추지 않았다. 특히, 그는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인터뷰에서 “우리(미국)는 보험회사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21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레이스에서 하차하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민주당 후보 등극이 확실시되면서 대선 판도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여전히 가장 당선 가능성이 큰 대선 후보다. 민주주의·인권 등 가치보다 돈을 앞세우는 ‘트럼프식’ 사고·화법으로 철저히 준비할 필요가 있다. 한국 국방비 비중이 나토 방위비 기준을 훌쩍 넘는 국내총생산(GDP)의 2.7∼2.8%에 달하고 지난해 대미 투자로 미국 내 일자리 창출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국가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만약 주한미군 전력·시설을 미 본토로 옮기면 납세자들이 3∼4배를 더 내야 한다. 이를 알리는 것은 미군 해외 배치가 가진 실질적 혜택을 이해시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허버트 맥매스터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을 새겨들어야 하는 이유다.
문화일보
07.26 유엔군사령부 강화가 美 대선 대비책이다
유엔사의 임무는 두 가지
정전 유지와 유사시 전력 제공
둘째 기능 강화가 핵심이다
회원국 국방장관 회의 정례화를
한미동맹과는 또 다른 부가가치
미군 축소·철수할 경우 대비해
실속 없는 주변부 네트워킹보다
'전략 자산' 되도록 조용한 집중을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후보직 사퇴 이후 민주당 후보로 유력시되는 카멀라 해리스 현 부통령이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박빙의 지지율을 보여주고 있다. 선거 구도가 완전히 재편된 만큼, 우리 정부와 기업은 섣불리 선거 결과를 예단하기보다 신중히 접근해야 할 상황이다.
특히 최근 미국 연방 검찰이 한국계 미국인인 대북 전문가가 지난 10년간 ‘한국의 대리인’으로 등록하지 않고 한국 정보기관에 협조하여 ‘외국 대리인 등록법(FARA)’을 위반하고 미국의 안보를 위협한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위축돼, 당분간 미 측 핵심 인사들은 한국 공무원이나 기업인들 만나길 꺼릴 것 같다. 그러니 우리 정부는 별 실속 없는 ‘주변부’ 인적 네트워킹보다, 국익에 보탬이 되는 유엔군사령부(이하 유엔사) 강화 전략에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유엔사 강화는 미 대선 후 한·미동맹이 순항하게 될 때는 ‘촉진제’로, 도전에 직면할 때는 ‘안정제’로 쓰일 수 있다.
현재 유엔사는 6·25 전쟁 당시 전투부대 파병국 16국 중 14국(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튀르키예, 태국, 남아공, 그리스, 벨기에, 콜롬비아)과 의무 병력 지원 6국 중 3국(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 등 총 17개 회원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의무 병력 지원국인 독일이 추가 합류할 예정이다.
유엔사는 한반도 정전 체제 유지와 유사시 전력 제공이라는 두 가지 임무를 갖고 있다. 정전 협정은 유엔군사령관에게 정전 협정 준수 및 이행 책임을 부여하고 있기에, 유엔군사령관 직책을 겸한 한미연합사령관은 북한의 도발로 인한 남북 충돌 시 전면전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남북 모두의 ‘자제’를 촉구하는 듯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반면 유사시 전력 제공이라는 유엔사의 임무는 한·미동맹을 보완하고 지탱해 준다. 정전 협정 체결 당일인 1953년 7월 27일 유엔 참전국 대표들은 워싱턴에 모여 한반도 유사시 유엔안보리 결의 없이도 즉각 개입하기로 약속한 ‘워싱턴 선언’을 발표하였다. 게다가 유엔사는 주일 유엔사 후방 기지 7개소를 활용해 미군과 다국적군의 병력, 장비, 물자 등을 한미연합사에 제공할 수 있다. 유엔사는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연결하고, 한·미·일 안보 협력의 주춧돌 역할을 하며, 회원국들과 다국적 작전을 수행하는 조직이다.
이러한 유엔사의 잠재력을 간파한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인 2014년부터 유엔사를 ‘재활성화’하는 작업을 시작해 트럼프 행정부인 2018년에 완료했다. 유엔사 참모 조직을 보강하고, 회원국 수를 늘리며, 유엔사의 한·미 연합 훈련 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2018년부터 현재까지 유엔사 부사령관에 미국 출신이 아닌 제3국 장성을 연이어 임명해 외연을 확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작년 7월 27일 정전 협정 체결 70주년 기념식에서 “유엔사는 한반도 평화 유지와 유사시 우방국의 군사 지원을 제공하는 플랫폼”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우리는 정치적 의지를 결집하고 국제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유엔사의 ‘전략적 플랫폼’ 기능을 조속히 정립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유엔사 회원국 간 국방장관 회의를 정례화하고, 한국 합참과 유엔사 간 정례협의체를 개설할 수 있다. 유엔사 핵심 참모 직위에 한국군 장성을 포함한 영관급 이상 장교를 보임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유엔사가 위치한 ‘소재국(host country)’ 자격으로 유엔사 회원국 중에서 한반도 유사시에 전력을 제공할 가능성이 큰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영국 등과 안보 협력을 추진하고, 이들과 군사적 목적으로 국내에서 잠시 활동하는 외국 군대의 법적 지위를 정하는 방문국 지위 협정(VFA)을 체결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한미 합의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에로 유엔사 회원국을 확대하는 것이 좋다.
한국은 이렇게 한·미동맹과는 다른 차원의 부가가치를 지닌 유엔사와 단단한 연결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혹시나 미 행정부가 주한 미군을 축소하거나 철수할 경우, 미국이 한국을 비롯한 유엔사 회원국들과의 협조 체제를 축소 또는 폐기하려 한다는 점을 압박해 유엔사 회원국들과 우리의 안보를 지켜낼 수 있다. 내년 1월 말 미국 신행정부 출범까지 시간이 많지 않지만, 우리 정부가 유엔사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전략 자산으로 만드는 작업에 ‘조용히’ 집중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조선일보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前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07-30 유엔은 러시아-우크라 분쟁을 왜 막지 못했을까
미국-영국-프랑스-소련-중국 등… 2차 세계대전 승전국 모여 창설
막강한 권한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러시아 반대로 철군 결의안 무산
군사-인권 등 다방면서 활약하지만, 강대국 입장만 대변한다는 비판도

▲3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 모습. 이날 안보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에 대해 즉각 휴전 및 인질 석방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뉴욕=AP 뉴시스
7월 27일은 ‘유엔군 참전의 날’입니다. 그런데 왜 7월 27일이 참전의 날이 됐을까요? 답은 바로 한국전쟁에 있습니다. 한국전쟁 정전협정은 1953년 7월 27일 체결됐습니다. 그리고 유엔은 참전해 싸운 것을 기념하고자 한국전쟁 정전협정일을 ‘유엔군 참전의 날’로 지정했습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유엔이란 국제기구에 대해 많은 소식을 듣습니다. 군사, 문화, 인권, 국제원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유엔은 어떤 곳일까요? 오늘의 세계지리 이야기는 전무후무한 초국가적 기구 유엔에 관한 내용입니다.
● 유엔 창설과 ‘중국’의 교체
‘United Nations’의 줄임말인 유엔(UN)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난 후 전후 국제사회 질서 확립과 평화 유지를 위해 창설됐습니다. 유엔은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현 러시아), 중국을 중심으로 창설됐습니다. 이 국가들은 지금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핵심적인 사항을 결정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창설 당시 중국은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니었습니다. 현재 대만이라고 불리는 중화민국이었죠. 그런데 1949년 공산당이 본토를 장악하면서 중화민국은 대만으로 쫓겨 가게 됩니다. 그리고 1971년 유엔은 국제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중국은 중화민국이 아닌 중화인민공화국’이라고 인정하게 됩니다. 거대한 영토와 막대한 인구를 보유한 중화인민공화국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중화민국은 유엔에서 사실상 쫓겨나고 현재까지도 유엔에서 공식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힘의 차이로 유엔의 주요 회원국이 바뀌게 된, 냉정한 국제질서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 유엔 핵심 기관인 안보리
유엔의 가장 강력한 권한은 국제사회 분쟁에 대한 개입 권한입니다. 세계에는 주권 국가 200여 곳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중 193개국이 유엔의 정회원국입니다. 따라서 국제사회 분쟁에 대한 유엔의 개입 권한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권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결정하는 핵심 기관이 유엔 안보리입니다.
안보리는 상임이사국 5곳과 비상임이사국 10곳으로 구성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상임이사국은 유엔 창설을 주도한 5개국인데, 이들 중 단 1곳이라도 국제사회 분쟁 개입에 반대하면 통과될 수 없다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전쟁 당시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상임이사국 소련이 유엔의 개입을 반대했다면 유엔군은 한국전쟁에 참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소련은 안보리에서 기권했고, 그 덕분에 유엔군은 한국전쟁에 참전할 수 있었습니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도 유엔 안보리에선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고 즉각 철군을 요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이 상정됐습니다. 그러나 침공 당사자인 러시아의 반대로 해당 결의안은 안보리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한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분쟁을 일으킨 경우 유엔이 이를 제지할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 유엔 산하의 다양한 국제기구
유엔은 산하에 다양한 기구를 두고 활동합니다. 먼저 세계의 여러 분쟁 지역에 파병하는 유엔 평화유지군을 두고 있습니다. 또한 유엔은 인도주의적 지원과 인권 보호를 위한 구호 기구인 유니세프(UNICEF)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문화유산 보존과 자연환경 보호 활동으로 알려진 유네스코(UNESCO) 역시 유엔 산하 기구입니다. 이 밖에도 세계 기아 문제 해결을 위한 세계식량계획(WFP),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한 유엔난민기구(UNHCR), 저개발국에 대한 국제적 원조를 담당하는 유엔개발계획(UNDP) 등도 모두 유엔 산하 기구입니다.
이처럼 유엔은 국제사회에 꼭 필요한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안보리 상임이사국 문제처럼 강대국 입장을 주로 대변하는 기구라는 비판에도 직면해 있습니다. 유엔은 올해로 창설 79년을 맞았습니다. 첨단 기술 등을 둘러싸고 국가 간 경쟁과 갈등이 더 첨예해질 미래에도 유엔의 위상과 역할이 지금처럼 유지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동아일보 안민호 마포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