午後餘談(문화일보) 2024-03/
03-04(월) 엇갈린 이재명의 친구들

이현종 논설위원
초등학교를 제대로 못 마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검정고시를 통해 중앙대 법학과를 입학했고, 1986년 28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당시엔 학생운동이 학원가를 휩쓸 때였는데, 이 대표는 화염병은 만들어 봤지만 정식으로 ‘의식화 교육’은 받지 못했다. 그런데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18기)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의식화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이 대표가 연수원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는 현재 민주당 친명계 좌장인 정성호 의원과 최원식 전 의원, 개혁신당의 문병호 전 의원, 그리고 문무일 전 검찰총장 등이다.
‘5인방’으로 불리던 이들은 서울대 대학원에서 노동법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최 전 의원의 주도 아래 ‘노동법학회’를 만들어 공부도 하고 상담 봉사 활동도 펼쳤다. 특히, 최 전 의원은 이 대표의 체계적인 의식화 교육을 담당했다고 한다. 책을 같이 읽고 일주일에 한 번 만나 토론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1988년 7월 노태우 대통령이 정기승 대법관을 대법원장으로 지명하자 5인방은 정 후보자가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된 대학생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등 반민주적인 판사라는 이유로 반대 운동을 전개한다. 국회 표결을 앞두고 사법연수원생들의 서명을 받아 성명을 발표하는데 이 초안을 이 대표가 작성했다. 최 전 의원은 “당시 이 대표가 워낙 초안을 잘 써 수정할 것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결국, 정 후보자는 국회에서 임명동의가 부결됐다.
문 전 총장은 당시 이 대표의 연수원 성적으로 판사도 될 수 있었지만, 이 대표가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며 지역을 바꾸고 더 나아가 세상을 바꾸는 변화를 일으키겠다”면서 변호사가 됐다고 전했다.
이후 이들 5인방의 진로는 서로 엇갈린다. 문 전 총장을 제외하고 모두 국회로 진출했는데, 특히 친했던 최 전 의원은 2012년 제19대 총선 때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인천 계양을에 출마해 당선됐다. 공교롭게 이번엔 이 대표의 옆 지역구인 계양갑에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 계양을에 출마한 원희룡 후보와 함께 자신을 포위한 형국이다. 최 전 의원은 “범부의 의리가 아니라 국민과 국가, 계양주민과 계양구 이런 관점에서 다르기 때문에 제가 범부의 의리를 따르지 않는다”고 했다. 승부가 더 궁금해진다.⊙
03-05 인터넷은행 메기 효과

이철호 논설고문
하나금융이 손흥민에 이어 가수 임영웅까지 광고 모델로 잡았다. 몸값 1·2위를 싹쓸이하는 공격적 행보다. 더 이상 앉아서 이자 장사만 하다간 MZ세대 고객을 놓치고 비대면 디지털 금융에도 뒤진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터넷은행들의 추격이 두렵다. 2017년 첫 도입 때는 물을 흐린다던 미꾸라지가 금융시장을 뒤흔드는 메기가 된 것이다.
토스뱅크의 선이자 지급 예금은 6개월 만에 4조 원이 몰리며 흥행했고, 환전 수수료 무료 통장도 홈런을 날렸다. 곧바로 신한은행·우리은행·KB국민은행이 무료 환전에 뛰어들었다. “조금 더 나은 은행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은행이 되겠다”던 인터넷은행들이 퍼스트 무버로 올라선 것이다. 시중은행들은 허겁지겁 따라가면서도 게임 체인저 등장에 긴장하는 눈치다.
미국·일본도 ‘네오뱅크(인터넷은행)’ 열풍이 거세다. 미국은 50대 은행 중 네오뱅크가 6곳이고, 일본도 라쿠텐은행·SBI은행이 치열한 30∼40위권 경쟁 중이다. 국제금융센터는 올해 전 세계 네오뱅킹 매출을 42% 늘어난 4조7000억 달러로 전망했다. 실제로 미국 시중은행들의 신규 계좌 비중은 2020년 24%에서 2023년 17%로 줄어든 반면, 네오뱅크들은 36%에서 47%로 늘어났다. 차별화된 비즈니스 모델과 코로나 이후 폭발한 비대면 금융 덕분이다.
국내에도 ‘머니 무브’가 거세다. 최근 시중은행 예금이 17조 원 감소할 동안 인터넷은행 예금은 12조 원 늘어났다. 예대마진을 낮추고 수수료를 내리는 등 참신한 경쟁으로 낡은 시장 규칙을 무너뜨린 결과다. 최근엔 ‘대출 갈아타기’가 태풍의 눈이다. 지난 1월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는 주택담보대출 갈아타기로 1조3000억 원의 실적을 올렸다.
꽃길만 있는 건 아니다. 미국은 2001∼2006년 고금리로 11개의 네오뱅크가 파산했다. 국내 인터넷은행들도 연체율과 수익성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5대 시중은행은 17조 원의 순이익을 올렸으나 인터넷은행은 1043억 원에 그쳤다. 고객 수는 4200만 명으로 늘어났지만, 자영업자 등 중·저신용자 연체율이 가파르게 치솟았다. 메기는 시력이 좋지 않아 수염으로 주변 진동을 감지해 먹이 활동을 한다. 인터넷은행들도 온갖 위험 속에서 대형 메기로 우뚝 설지 두고 볼 일이다.⊙
03-06 한날 법정에 선 부부

김세동 논설위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부부가 형사피고인으로 지난달 26일 나란히 법정에 나가 재판을 받았다. 이 대표는 이날 오후 2시 30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위증교사 의혹 재판에 출석했고, 법인카드 유용과 관련한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그의 부인은 오후 2시에 수원지법의 첫 심리에 나갔다. 이 대표 사법 리스크가 또 다른 측면에서 드러난 것으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자녀 입시 비리 사건으로 부인과 공범으로 재판받은 것을 제외하면 매우 특이한 경우다. 이 대표가 대장동·백현동·성남FC, 위증교사, 선거법 위반 등 7개 사건으로 3개 재판부에서 재판받다 보니 벌어진 흔치 않은 촌극이다.
2002년 KBS PD 검사 사칭 사건에 가담해 유죄가 확정됐던 이 대표는 2018년 경기지사 선거 토론회에서 “누명을 뒤집어썼다”고 했다가 선거법 위반(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되자 당시 김병량 성남시장의 수행비서였던 김모 씨에게 위증을 요구한 혐의를 이날 재판에서 부인했다. 이 대표는 김 씨가 검찰에 제출한 자신과의 통화 녹취록의 증거 능력을 문제 삼았다. 자신이 김 씨에게 ‘사실대로 말해달라’는 말을 여러 번 했는데도, 검찰이 그 부분은 숨기고 불리한 부분만 부각한 것으로, 일종의 짜깁기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대표가 여러 차례 김 씨에게 전화를 걸어 ‘당시 김 성남시장과 KBS가 해당 PD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고 이재명을 주범으로 몰아가자는 합의가 있었다’는 취지의 허위 증언을 요구한 통화 내용과 문자 메시지가 있고, 김 씨가 ‘그런 내용을 저는 잘 모른다’고 하자 이 대표가 ‘얘기를 들었다고 해주면 되지 뭐’라고 하는 등 위증교사 혐의가 명백해 보인다.
김혜경 씨도 이날 재판에서 이 대표가 당내 대선 후보 경선 출마 선언 후인 2021년 8월 민주당 의원 부인들에게 식사를 제공(기부행위)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다. 정청래 최고위원 등 민주당은 ‘10만 원짜리 기소’라며 반발했는데, 사건의 본질을 가리려는 수법이다. 김혜경 씨의 개인사까지 뒷수발한 경기도청 공무원이 도청 업무추진비를 이용해 이 대표 부부의 식사, 과일, 샴푸, 제사 용품, 친인척 명절 선물까지 사면서 2000만 원 정도 횡령한 본안 사건에 연동된 사건이다. 액수도 적지 않지만, 죄질이 상당히 나쁘다.⊙
03-07 선점 시급한 인공위성 궤도

문희수 논설위원
지구 저궤도를 도는 인공위성이 2030년까지 5만 개로 늘어날 전망이라고 한다. 불과 10년 이내에 위성에 가려 밤하늘의 별을 보기가 어려워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수만 개나 되는 저궤도 위성이 태양 빛을 반사하면, 천체 망원경의 관측에도 큰 지장을 줄 것이라며 세계 천문학계는 비상 대책 마련에 고심하는 정도다. 이미 많은 위성을 쏘아 올려 운영하는 미국 스페이스X가 위성에 검은 도료를 코팅해 빛 반사율을 낮춘 다크샛 등을 시험 발사하고 있으니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주요국마다 위성통신에서 앞서기 위해 수천, 수만 개의 위성을 발사할 태세다. 스페이스X는 우주 위성인터넷인 스타링크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1단계 1만2000개, 2단계 3만 개를 발사할 계획이다. 아마존도 3000여 개의 위성을 올릴 예정이다. 미국을 추격하는 중국 역시 1만3000개의 위성을 계획하고 있다. 캐나다·영국 등도 속속 가세하는 추세다.
이런 경쟁에는 한정된 위성 저궤도를 일단 배정받아 확보하려는 가짜 계획도 수두룩하다고 한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궤도 배치 허가를 기다리는 인공위성은 군집 단위로는 300여 개지만, 개별 위성 수로 따지면 무려 100만 개(2022년 12월 기준)나 된다는 보고서까지 나온 정도다. 가장 많은 신청서를 낸 나라는 중국(65개)이고, 2위는 미국(45개)이다.
사재기 같은 위성 궤도 경쟁이 벌어지는 것은 미래산업을 주도하려는 포석과 아울러 군 위성통신망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전략적 의도도 깔려 있다. 실제 스페이스X의 위성통신망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큰 효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투에도 투입 여부를 놓고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에 비하면 한국은 준비가 너무 늦다. 지난해 9월에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30년까지 위성 3개 발사 계획을 발표한 게 고작이다. 이 정도로는 어림없다. 최근 미국은 러시아가 전자기파(EMP)로 인공위성을 공격할 준비를 한다는 관측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오는 5월 우주항공청 출범을 계기로, 북한의 도발을 무력화하기 위해서라도 위성통신을 핵심 전략 사업으로 서둘러야 한다. 더 늦으면 위성을 쏘려 해도 쏠 자리가 없어진다. 위성 궤도부터 빨리 확보해야 한다.⊙
03-08(금) 한국의 러시아 짝사랑

이미숙 논설위원
러시아의 발레와 클래식, 오페라는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높다. 진보 인사들 가운데는 블라디미르 레닌이 주도한 러시아혁명사를 줄줄이 꿰고 있는 이가 꽤 된다. 특정 정치 성향을 떠나 표트르 차이콥스키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을 당한 우크라이나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차이콥스키 곡 연주를 중단해달라”고 했다. 소치동계올림픽 도핑 스캔들 후 러시아올림픽위원회가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을 국가(國歌) 대신 사용한 것을 의식한 조치다. 영국 등에선 따랐지만, 지난해 서울시향을 비롯해 수원시향, 여수심포니 등 여러 교향악단은 차이콥스키 작품을 연주했다.
한국의 이런 기류를 간파한 것인지 주한 러시아 대사들은 시종일관 오만한 태도다. 안드레이 쿨릭 전 대사는 우크라이나 침공 표현을 문제 삼으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명명한 ‘특별군사작전’이란 표현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월 초 부임한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대사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하기도 전에 여러 언론 매체와 인터뷰를 하며 러시아 입장을 설파하고 있다. 외교의 레드라인을 넘어선 행위임에도 외교부는 애써 못 본 척한다.
이러니 유엔의 우크라이나전쟁 규탄결의안에 거듭 찬성표를 던진 나라 가운데 처음으로, ‘푸틴의 발레리나’로 불리는 스베틀라나 자하로바 초청 공연이 다음 달 서울에서 열리는 게 조금도 이상치 않다. 푸틴이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셈이다. 오죽하면 주한 우크라이나대사관이 4일 입장문에서 “러시아의 침략을 정당화하고 우크라이나 국민의 고통을 경시하는 것”이라며 “문화교류의 포용성을 존중하나 범죄정권 및 그 문화계 인사들과의 문화 협력은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겠는가.
푸틴은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체포영장을 발부한 전범(戰犯)이다. 북한 김정은의 핵·미사일 고도화를 지원해 한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푸틴의 지지자로 통합러시아당 당원이기도 한 발레리나의 수십만 원짜리 공연 티켓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이러다간 ‘한국인들이 푸틴에게 집단적으로 가스라이팅 당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지 걱정이다.⊙
03-11(월) 미술관 경비원

오승훈 논설위원
‘이 마을의 주민은 9000명에 달한다. 정확히는 8496명이다. 주민들은 596점의 그림 속에 살고 있다. 아기 천사, 투우장의 관객, 개미 크기의 곤돌라 사공까지. 가장 나이가 많은 주민은 1230년대에 태어난 성모 마리아와 그 품속 아기 예수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메트)의 거장 전시관(2층 유럽회화 1250∼1800)의 풍경을 묘사한 글이다. 그곳에서 그림 속 인간 형상을 하나하나 셀 수 있는 사람은 관장이나 큐레이터가 아니다.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사람”, 경비원이다. 지금은 메트의 투어가이드로 일하는 패트릭 브링리가 쓴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원제 ‘All the Beauty in the World’)만큼 친밀한 미술관 안내서가 있을까. 그는 형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직장을 그만두고 “한동안 고요하게 서 있고 싶어서” 경비원에 지원했다. 매일 8시간 동안 “조용히 선 채 두 눈을 크게 뜨고, 아름다운 작품들과 뒤엉켜 내면의 삶을 자라게 하는” 특권을 누린다.
다른 전시 구역엔 210명의 예수가 사는데, 가장 슬픈 그림으로 베르나르도 다디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꼽았다. 고통의 무게 말고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서란다. 위대한 예술품은 “뻔한 사실을 되새기게 하는, 우리가 직면하는 ‘이것이 현실이다’를 말하려고 한다”는 걸 깨닫는다. 그렇게 10년을 보내는 동안 경비원은 예술품에서 치유 받고 힘을 얻었다. 책 끝엔 본문에서 언급한 그림들을 메트 홈페이지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취득번호 리스트를 실었다. 직접 가보지 않아도 책을 읽으면서 고해상도의 그림을 함께 감상하면 나름 괜찮은 메트 관람이 된다.
지난해 말 국내 번역 출간된 이 책이 줄곧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저자조차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왜 인기가 있는 것이냐”고 물었을 정도다. 미술 전시회도 흥행 대박이 이어지고 있다. 10만 명이 넘게 봤다는 ‘미셸 들라크루아, 파리의 벨 에포크’(31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도 그중 하나다. 지금 메트에선 한국실 개관 25주년 기념 ‘계보(LINEAGES) : 메트의 한국 미술’ 특별전(10월 20일까지)이 열리고 있단다. 그래도 먼저 생각나는 건 메트 앞 핫도그 트럭이다.⊙
03-12 더 커진 ‘피크 차이나’ 경보

문희수 논설위원
계속되는 경기 침체에 중국의 시름이 깊다. 올 1∼2월 수출이 7.1% 늘고 물가가 올랐다는 발표도 힘을 쓰지 못한다. 무엇보다 부동산 침체의 골이 너무 깊은 탓이다. 부동산에 너무 의존했던 중국 경제의 취약성을 새삼 일깨운다. 장기 침체에 대비하라는 경고음이 더욱 커지는 형국이다.
중국의 연례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가 지난 11일 끝났지만, 반전은 없었다. 오히려 지난 5일 발표한 올해 성장률 목표치 발표가 경계론을 확산시켰다. 목표 수치 자체는 ‘5% 안팎’으로 낮지 않지만, 지난해 성장률(5.2%)과 비슷하고, 톈안먼 사태의 여파가 미쳤던 1991년(4.5%) 이후 가장 낮다. 세계가 주목했던 성장률이 이런 정도인 것은 중국이 여기까지가 한계임을 시인한 것이라는 평가다. 이마저도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등의 예상치인 4%대보다도 높아 달성하기 어려운 무리한 목표라는 지적이다.
특히, 핵심인 부동산은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대형 부동산 기업의 리스크를 예방·해결하고 자산·부채를 개선하겠다는 언급뿐이다. 지방정부 부채 문제도 원론에 그쳤다. 부동산 대책 부재에 대한 실망에 상하이 증시와 홍콩 증시는 하락세 내지 약보합세가 이어진다. 중국의 구조조정이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30년 만에 총리의 내외신 기자회견을 중단한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
중국의 5% 성장 목표는 경기 연착륙을 위한 마지노선이라는 분석이다. 이보다 성장을 못 하면 사회·시장 불안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깔려 있다. 시진핑(習近平) 정권의 안정을 위한 방어선인 셈이다. 미국 월가에선 심지어 지난해 5.2% 성장률조차 불신한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중국은 부동산·인프라 투자·수출 등 기존의 성장 동력이 약화해 향후 10년간 둔화할 것이라며 투자 자제를 촉구하고 있다. 부양책이 나와도 구조조정 없이는 단기 약발에 그칠 것이란 비판이 우세하다. 중국 경제가 정점을 지났다는 ‘피크 차이나’ 경보가 더 커졌다. 중국발(發) 훈풍은 올해도 기대하기 어렵다. 반면, 중국의 올 국방비는 7.2% 늘어 처음으로 300조 원을 넘는다. 미국·대만과의 충돌·긴장 등 안보 리스크는 더 확대될 전망이다. 중국을 대체할 성장 전략의 필요성이 더 커졌다.⊙
03-13 스타벅스 불매운동 명암

이철호 논설고문
커피전문점 스타벅스는 중동 분쟁 때마다 불매 운동의 단골 표적이다. 유대인 출신인 하워드 슐츠 창업주가 이스라엘에 자금을 지원한다는 해묵은 논란 때문이다. 발단은 2000년 반유대주의 블로그 시오페디아에서 조작한 슐츠의 ‘가짜 편지’였다. ‘여러분이 스타벅스에서 마시는 라테와 마키아토는 미·이스라엘 동맹에 기여한다. 스타벅스 커피는 미군의 ‘테러와의 전쟁’을 돕는다.’ 회사 측은 “우리는 비정치적이며 절대 이스라엘을 지원하지 않는다”고 해명했지만, 소용없었다. ‘스타벅스 커피 한 잔에 팔레스타인을 쏘는 총알 두 발’이란 흑색선전이 판친다.
지난해 12월 튀르키예의 TV 방송에서 스타벅스 컵을 올려놓았다고 앵커와 보도국장이 해임됐다. “특정 회사를 암시적으로 광고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 위반”이란 것이다. 튀르키예 대통령은 이스라엘 총리를 “가자지구의 도살자”라 비난할 만큼 적대적이다. 스타벅스의 노사 내분도 기름을 부었다. 지난해 10월 가자 전쟁 직후 노조 측이 팔레스타인 지지 성명을 내자 이스라엘이 항의했고, 회사는 노조가 스타벅스 상표를 무단으로 사용하고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소했다. 그 불똥이 사방으로 튀었다. 25년 동안 중동에서 스타벅스를 운영해온 쿠웨이트의 알샤야 그룹은 전체 직원의 20%인 2000여 명을 감원했다. 무슬림이 많은 말레이시아 현지 업체도 “우리는 미국 스타벅스 본사와 전혀 상관없다”고 호소했으나 매출이 38% 줄었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평온했다. 스탠리와 협업한 스타벅스의 핑크색 텀블러는 여전히 오픈 런 중이고, 신상품인 ‘푸른 용 밀크티’는 열흘 만에 100만 잔이 팔렸다. 수년 전엔 보조 여행 가방 ‘서머 레디백’ 17개를 얻으려 음료 300잔을 주문한 뒤 폐기한 엽기적 손님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한류 붐으로 K-팝 아이돌들부터 유탄을 맞고 있다. 그룹 엔하이픈의 제이크와 가수 전소미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거나 텀블러가 노출된 영상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최근엔 르세라핌의 허윤진이 스타벅스 커피 사진 때문에 ‘교육 좀 받고 불매 운동에 동참하라’는 악플 세례에 시달리고 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옛말이 있다. 해외 팬들에게 들볶이는 아이돌을 보면서 한류가 얼마나 글로벌화됐는지 실감한다.⊙
03-14 ‘범죄자 소도’ 조국당

김세동 논설위원
해오던 아름다운 말과 실제 삶이 너무도 달라 내로남불 상징이 되면서 문재인 정권 재창출 실패의 일등공신이 됐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올해 총선을 노리고 비례대표 전문 ‘조국혁신당’을 만들자 지지율이 치솟고, 문 정권 때의 온갖 피고인·피의자·전과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범죄자 소굴이자 현대판 소도(蘇塗)라는 여권의 비판이 과하게 들리지 않는다.
자녀 입시 비리와 유재수 감찰 무마 유죄로 2심에서도 징역 2년을 선고받아 대법원에서도 유죄 선고가 확실시돼 곧 감옥에 갇힐 조국 씨가 울산시장 선거 청와대 개입 사건의 핵심 피고인으로 1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징역 3년을 선고받은 황운하 의원 등을 영입하면서 “윤석열 정권과 싸우다 수사를 받고 기소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 재임 당시 울산경찰청장으로 청와대 하명 수사를 벌인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 황 의원은 “저 또한 검찰권 남용으로 인생이 결딴났다”며 조 씨와 한데 묶어 검찰에 탄압당한 희생양으로 둔갑을 시도했다. 둘 다 문재인 정권에서 수사가 시작된 만큼 윤석열 정권과 싸우다 보복당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법원에서 유죄가 선고된 만큼 차라리 판사 탄압이라고 하든지. 외고 1학년생인 딸의 의학 논문 제1 저자 허위 등록, 서울대 및 로펌 인턴 확인서 조작, 동양대 총장 표창장 조작 등 입시 비리 혐의 대부분이 유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아직도 억울하다고 한다. 틈만 나면 ‘가족 도륙’ ‘무간지옥’ 같은 섬뜩한 용어를 사용하는데, 한 사람 빠짐없이 온 가족을 범죄에 끌어들인 가장의 책임이 가장 크다.
조 대표가 1호 총선 인재로 영입한 신장식 대변인은 음주·무면허 운전으로 벌금형을 받은 전과 4범이다. 법무부 감찰담당관 때 윤석열 찍어내기 감찰로 법무부의 해임 징계를 받았고 공수처 수사를 받는 박은정 전 부장검사,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조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항소심 재판을 받는 차규근 전 법무부 출입국본부장은 ‘검찰 인재’로 영입됐다.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사건에 연루된 문미옥 전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도 합류했다. 곧 영어(囹圄)의 몸이 될 조 씨가 정당을 만든 것도, 범죄자 집합소 정당에 지지자들이 몰려드는 것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03-15(금) ‘현역 의원의 무덤’ 광주

이현종 논설위원
광주 지역 국회의원 8명 중 유일한 재선(1.5선)인 송갑석 의원(서구갑)이 12일 발표된 경선에서 조인철 전 광주시 문화경제부시장에게 패했다. 이로써 광주 지역 현역 8명 중 ‘찐명’ 민형배 의원(광산구을)을 제외하고 7명 전원이 경선에서 탈락하는 이변을 기록했다. 광주는 초선의 무덤이라는 얘기가 나올 만도 하다.
송 의원은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공천에서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박혜자를 누르고 서구갑 선거구에 출마했다. 그러나 당시 국민의당 바람이 불면서 송기석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그런데 송 의원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낙마하면서 2018년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제21대 선거에선 82.18%라는 경이적인 득표율로 당선됐는데 전국 2위를 기록했다. 비록 1.5선이긴 하지만, 광주에서 유일한 재선인 송 의원도 하위 20%를 받아 ‘비명횡사’를 면치 못했다.
광주 북구을 국회의원 선거판은 민주당 소속 현역인 이형석 의원이 이번 경선에서 탈락하면서 제16·17대 김태홍 의원 이후 지난 20년간 ‘초선들의 무덤’이 되고 있다. 전국 광역 선거구 중에서 이렇게 재선 이상 중진이 없는 지역은 광주가 유일하다. 광주 지역 민주당원은 39만여 명(광주광역시 인구 141만 명)인데 이 가운데 월 1000원 이상 당비를 내는 권리당원은 7만7000여 명일 정도로 압도적이다. 당권의 향배에 따라 당원들의 표심도 급격히 변동한다. 이번에 송 의원을 제친 조 전 부시장은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인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후원회장을 맡아 ‘친명 인증’을 받았다.
광주 지역 정치를 잘 아는 한 인사는 이번 경선 결과에 대해 “광기에 가깝다”고 했다. 극렬 이 대표 지지자인 개딸이 경선에 적극 참여함에 따라 ‘위장 탈당’으로 충성심을 보여준 민 의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탈락시켜 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런 행태는 지역 출신 정치인을 키우지 못하고 선거 때마다 1회용으로 쓰다 버리는 우(愚)를 범하는 것이다. 송 의원은 최고위원 때 이 대표 체포동의안 찬반 투표 여부를 밝히라는 압박에 대해 “자기증명을 거부한다. 그것이야말로 양심과 소신에 기반한 제 정치생명을 스스로 끊는 행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03-18(월) 오바마 부통령론

이미숙 논설위원
11·5 미국 대선을 앞두고 조 바이든(81) 대통령의 고령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잇따르고 지지율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비해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후보교체론이 심심찮게 거론된다. 현직 대통령이 출마를 포기하기 전에는 공개적으로 논의하기가 어려운 민감한 문제여서 아직은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지 않으나, 계기만 되면 언제든 불거질 조짐이다. 바이든의 기밀문서 유출 의혹 수사책임자인 로버트 허 연방 특별검사가 지난 2월 보고서에서 바이든을 ‘기억력이 떨어지는(poor in memory) 노인’으로 묘사한 이후 논란이 더 커졌다. 백악관이 월터 리드 병원의 ‘대통령직 수행에 문제가 없다’는 바이든의 건강진단보고서를 공개했음에도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나 그레천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로 대통령 후보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SNS 등에 올라오고 있다. 두 주지사는 민주당 대선 후보군 중에서 지지도가 높은 이들이다. 인기 없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아예 교체하자는 주장까지 나오자 제이미 해리슨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의장은 “플랜 B를 얘기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비판했다. 문제는 이들이 트럼프와 대적해 이기기 어렵다는 점이다. 바이든이 “트럼프를 이겨본 경험은 나뿐”이라며 재선 결심을 굳힌 배경이기도 하다.
상황에 따라 부통령 교체론이 공식화할 수도 있다. 홀먼 젠킨스는 지난해 10월 말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실린 칼럼 ‘바이든의 유일한 살길(Biden’s only salvation)’에서 버락 오바마(62) 전 대통령을 부통령 후보로 세우라고 제언했다. 미국 수정헌법 제22조에는 ‘누구도 3회 이상 대통령직에 선출될 수 없다’는 조항만 있어 오바마의 부통령 출마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통령 유고 사태가 오더라도 선거를 거치지 않고 승계된다. 지난해 말과 달리 경합주에서 바이든 지지도는 트럼프에게 뒤지는 형국이어서 더 절박하다. 문제는, 오바마가 바이든의 러닝메이트를 수락할 것이냐인데 트럼프 재선으로 미국이 러시아 같은 권위주의 체제로 전락하는 것보다 오바마가 나서서 민주주의를 구해야 한다는 소명감으로 설득한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03-19 의원 뀌어주기와 순서효과

오승훈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최근 비례 위성정당에 현역 의원을 파견하기 위해 각각 비례대표 의원에 대한 제명절차를 밟았다. 또다시 연출된 의원 뀌어주기 꼼수다. 총선의 후보·정당 기호는 국회 의석수 등으로 결정된다. 양당은 이번 총선에서 254명을 뽑는 지역구 선거 투표용지(백색)와 마찬가지로 46명을 가리는 비례대표 선거 투표용지(연두색)에서도 첫 번째와 두 번째 칸에 자기 정당 이름이 들어가기를 바란다. 비례대표 선거의 경우, 위성정당을 만들었으니 투표용지에 기호 1·2번은 없다. 더불어민주연합이 3번, 국민의미래는 4번을 차지할 심산이다.
투표용지의 후보 이름과 정당 순서는 유권자의 선택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선거라는 제도가 시행된 이래 많은 학자의 연구 과제였다. 유권자가 사전에 선호하는 정당과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알고 선택을 마친 상태에서 투표장에 간다고 가정하지만, 단순히 투표할 생각으로 기표소에 들어선 유권자에게는 투표용지에 인쇄된 순서가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오하이오주의 1992년 시의원 선거에서 118개의 선거전 가운데 48%가 이름 순서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투표용지 맨 위에 나오는 후보가 아래쪽에 있는 후보보다 2.5%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단다. 박빙 선거에서 2.5%는 당락을 결정할 수 있는 수준이다.
투표용지 앞 순서에 게재된 후보자가 뒤쪽 기호를 받은 후보자보다 이득을 누리게 될 때를 ‘순서효과(order effect)’라고 한다. 처음에 있어서 혜택을 보는 ‘초두효과(primacy effect)’, 마지막에 있어서 득을 보는 ‘최근효과(recency effect)’도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지역구·비례대표 투표용지에서 같은 순서에 인쇄되도록 하는 것도 일종의 순서효과를 겨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정당마다 똑같은 기호와 순서를 사용하는 것이 유권자가 쉽게 식별하는 기표 표식이 된다는 긍정적인 기능이 있다. ‘기호효과(sign effect)’다. 하지만 묻지마식 투표와 일자투표의 원인도 된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따른 정당 난립으로 역대 선거 사상 가장 긴 비례대표 선거 투표용지의 등장이 예견된 상황이다. 지난 총선보다 투표용지 순서가 정당들의 득표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03-20 막말 올림픽

이현종 논설위원
세계 각국의 정치인을 모아 놓고 ‘막말 올림픽’을 연다면 어느 나라가 금·은·동메달을 차지할까. 우선 미국 하원은 ‘품위 규칙’을 통해 상대를 ‘거짓말쟁이’ ‘위선자’라고 부르거나 ‘비겁하게’ ‘적에 부역하는’ 등의 표현을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는 취임 후 첫 ‘총리 질의응답(PMQ)’에서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를 “염소로 소독된 닭(chlorinated chicken)”이라고 불렀다. 존슨 총리는 코빈 대표를 가리키며 “염소로 소독된 닭 한 마리가 내 눈에 보이는데 지금 (의회) 벤치에 앉아 있다”고 말했다. 영국 의회에서는 PMQ 시간에 총리 답변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함을 친 의원도 하루 회의 퇴장 징계를 받을 정도로 엄격하게 적용된다.
아마 우리나라 의원들이 상대방에게 “거짓말쟁이”라고 막말을 했다면 애교 정도로 넘겼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되려면 적어도 ‘바퀴벌레’ ‘수박’ ‘암컷’ ‘GSGG’ ‘불량품’ 정도는 입에 붙어 있어야 막말 좀 한다는 축에 낄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봉주 전 의원은 2017년 7월 4일 팟캐스트 ‘정봉주 TV’에서 “DMZ(비무장지대)에 멋진 거 있잖아요? 발목지뢰. DMZ에 들어가서 경품을 내는 거야. 발목지뢰 밟는 사람들한테 목발 하나씩 주는 거야”라고 하는 바람에 결국 공천 취소됐다. 만약 참전 용사를 우대하는 미국에서 어느 의원이 “아프간에 멋진 거 있잖아요? 발목지뢰. 그거 밟으면 경품으로 목발 하나씩 주는 거야”라는 말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민주당 경기 안산갑에 공천된 양문석 후보의 막말은 정봉주 후보와 더불어 금메달을 다툴 지경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불량품’ ‘가면 쓴 미국인’ ‘한국땅을 밟지 못하도록 공항을 폐쇄해 쫓아내야’라고 했다. 비명계를 향해선 수박, 바퀴벌레 등으로 칭하며 아예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다.
이런 막말은 당내 분위기와 직결돼 있다. ‘개딸’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민주당에선 이들의 입맛에 맞는 얘기를 하지 않으면 바로 보복을 당한다. 조직화된 팬덤이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이들의 눈치만 본다. 이번 공천자들을 보면 찐명들은 살아남고, 이들 중 막말로 명성을 떨친 이들도 있다. 총선이 막말 잘하기 대회도 아닌데 지켜보기 민망하다.⊙
03-21 자동차 구원투수 K-배터리

이철호 논설고문
한국GM은 2014년 이후 8년 연속 적자였다. 2018년 군산공장을 폐쇄하고 2022년엔 인천 부평2공장 문까지 닫았다. 르노코리아도 자산 팔기에 바빴다. 2023년 새로 나온 신차는 없었고 경기도 기흥연구소마저 2000억 원대에 팔려고 한다. 르노의 일본 공장보다 인건비는 15% 높고 노동생산성은 낮았다. 두 회사 모두 언제 철수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미운 오리 새끼였다. 1차 협력업체 등 15만여 명의 종업원은 가슴을 졸였다.
최근 기류가 확 바뀌었다. 2022년 르노코리아 판매량은 전년 대비 27.8% 증가한 16만9641대였다. 특히 수출이 63%인 11만7020대나 됐는데, XM3의 하이브리드 모델이 최고 효자였다. 르노는 지난해 중국에서 철수한 뒤 “부산공장은 아시아 유일의 생산기지”라며 전향적 입장으로 돌아섰다. GM도 부평공장에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PHEV) 생산을 위해 11억6000만 달러(약 1조5000억 원) 투자 의향을 표명했다가 지난 8일 일단 취소했다. 미국 대선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노조 표를 의식해 “자동차 배출가스 제한을 완화하겠다”고 공약했고, 조 바이든 대통령도 전기차 비중 목표를 낮추기로 했다. 서둘러 PHEV를 생산할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요즘 르노 부산공장은 ‘오로라 프로젝트’로 활기가 넘쳐난다. 르노와 중국 지리자동차가 손잡고 2027년까지 1조5000억 원을 쏟아부어 부산공장을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차 생산기지로 만드는 청사진이다. GM도 한국 배터리와 전동화 기술에 눈독을 들이고 있어 다시 PHEV에 투자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원화 환율이 올라 수출 가격 경쟁력도 되살아나고 있다.
전기차는 배터리만 장착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품질의 대명사’인 토요타자동차도 2022년 전기차를 선보였다가 바퀴가 빠지는 망신을 당했다. 전체 전기차를 리콜해야 하는 대형 참사였다. 전기차의 높은 토크를 고려하지 않고 설계했다가 빠른 가속과 정지를 거듭하면서 차축과 바퀴를 고정하는 볼트가 빠져 버린 것이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와는 전혀 다른 차체, 고속화 모터, 고밀도 배터리셀 등의 합작품이다. 새로운 생태계를 갖추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 K-배터리가 죽어가던 한국GM과 르노코리아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03-22(금) ‘우주 최강 멘탈’ 조국

김세동 논설위원
예전 KBS 개그콘서트에 ‘멘탈갑’이란 코너가 있었다. 박성광, 이상훈 등이 어떤 멘붕 사태에도 끄떡 않는 경지를 보여줘 ‘멘갑 형님’ ‘멘탈의 신’으로 불렸던 기억이 난다. ‘멘갑’이 생각난 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조국혁신당을 창당한 데 이어 1호 공약으로 ‘한동훈 특검법’을 발의해 딸의 논문 대필 의혹 사건 등을 규명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내로남불’로 호가 났다지만, 어떻게 조국이 ‘논문 범죄’를 말할 수 있나. 후안무치를 넘어 ‘우주최강 멘탈’이란 세간의 평가가 과하지 않아 보인다.
조 대표가 문제 삼은 한동훈 여당 비상대책위원장 딸의 논문이란 게, 지난 2022년 2월 사회과학 분야 학술 데이터베이스 SSRN(출판 전 논문을 미리 공개하는 사이트)에 등록한 ‘국가 부채가 중요한가(Does National Debt Matter?)’이다. 총 4쪽 분량으로 첫 페이지에 초록, 4쪽에 참고 문헌을 기재한 것으로 논문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고교생이 온라인 첨삭 등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연습용 리포트 수준의 글이고, SSRN은 각종 논문·리포트 등을 누구나 자유롭게 올릴 수 있다고 한다. 조 대표 딸처럼 외국어고 1학년이 단국대 의학 논문 제1저자가 된 것도 아니고, 대학입시에 써먹은 것도 아니었다. 기소를 전제로 한 검찰 수사 대상이 되는 범죄성이 없다.
사정이 이런데도 조 대표는 무슨 엄청난 권력형 특혜 비리가 있는 것처럼 특검법 발의 목적을 ‘검찰 독재 정권 조기 종식과 사법정의 실현을 위해서’라고 밝혔다. 의학 논문 저자 허위 등록, 서울대·로펌 인턴 경력 조작 등 여러 건의 입시비리와 유재수 감찰 무마 등이 유죄가 돼 2심에서까지 징역 2년이 선고된 조 대표가 사법 정의 운운하는 것도 어이가 없다.
특히, 압권은 조국당이 대학입시 등에서 기회균등선발제를 확대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당 강령 4호는 ‘대학입시를 비롯하여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직원 등 각종 선발과정에서 지역별·소득별 기회균등선발제를 확대하고 민간까지 확산시키기 위해 행동한다’고 돼 있다. 조두순이 아동 성폭력 대책을 주장한 격이다. 대학입시의 공정과 정의를 깬 전과를 반성한 것인가? 틈만 나면 ‘멸문지화’ ‘무간지옥’ 등을 떠들어 온 것을 보면 그럴 리가 없다. 하여튼 이해 불가한 인물이다.⊙
03-25(월) 中 저가 전기차 ‘치킨게임’

문희수 논설위원
중국 저가 전기차가 세계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중국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의 가격과 품질을 모두 향상시킨 업그레이드를 바탕으로 ‘승자 독식’을 노리고 대대적인 가격 인하를 밀어붙이고 있다. 특히, 배터리 제조 능력까지 겸비한 비야디(BYD)의 공세는 위협적이다. 지난해 4분기 테슬라를 제치고 1위에 오른 것을 기화로 올 들어 더욱 공격적이다. 소형 전기차 값을 1280만 원(9700달러)까지 낮추며 출혈경쟁을 불사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미 세 차례나 가격을 내린 테슬라조차 힘겨워하는 양상이다. 끝이 안 보이는 치킨게임에 일론 머스크 CEO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는 게 외신들의 보도다.
이미 제2의 테슬라를 꿈꾸던 각국의 유망 스타트업이 잇따라 무너지고 있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등 유명 스타들이 선택해 주목받았던 미국 피스커는 파산 지경이고, 베트남의 국민 전기차로 불리는 빈패스트와 높은 기술력을 가진 리비안 등도 실적 부진으로 주가 폭락, 인력 감축 등으로 궁지에 몰렸다. 심지어 중국 업체들조차 문을 닫고 있다. 지난 2019년 500개가 넘었던 중국 업체는 지난해 100개로 급감했다고 한다. 중국의 한 스타트업 CEO가 “올해는 피바다로 끝날 수 있는 격렬한 경쟁의 시작점”이라고 경고할 정도다.
자동차 시장은 혼돈기다. 고속 성장하던 전기차는 높은 가격과 충전소 부족 등으로 제동이 걸렸다. 영국·미국도 속도 조절이다. 이 틈에 하이브리드차가 뜨고 있다. 그러나 전기차는 케즘(일시적 수요 정체기)일 뿐이다. 2027년부터 대중화가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이 과도기 동안 한국 전기차는 힘을 키워야 한다. 차 가격의 30∼40%인 배터리가 관건이다. 다행히 K-배터리 3사는 중국의 아성인 LFP 배터리도 양산할 예정이다. 특히,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전고체 배터리를 2027년부터 양산한다는 계획이어서 주목된다. 미래가 걸린 전기차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현대차·기아가 전기차·하이브리드차 양면 전략으로 호흡을 조절하면서 체질 강화를 꾀하는 것도 적절한 대응이다. 배터리·완성차 업체 모두 한층 더 분발해야 할 시점이다. 정부도 전력 등 필수 인프라 확충을 서둘러 뒷받침해야 한다. 시간이 별로 없다.⊙
03-26 ‘탈북 대 종북’ 열전 국회

이미숙 논설위원
제22대 국회에서는 19대 국회 이후 처음으로 탈북파와 종북파의 대결이 뜨거울 전망이다. 2012년 총선 때 탈북민 출신 조명철 박사가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당선됐고, 통합진보당도 13석을 얻어 탈북과 종북의 첫 대결 구도가 형성됐지만, 통진당 해산 사태로 인해 정면 대결은 벌어지지 않았다. 총선 직후 통진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 경선 논란이 벌어져 당 주류 정파인 경기동부연합의 종북 노선이 드러나면서 의원직 사퇴 및 정당 해산으로 이어졌다. 20대 국회 때엔 탈북자는 물론, 통진당 계열 인사의 진출이 없었다. 21대 국회에서는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 의원과 탈북자 출신 지성호 의원이 국민의힘 의원으로 활동했다.
4·10 총선을 앞두고 탈북민 출신 박충권(38) 전 현대제철 연구개발본부 책임연구원이 국민의힘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2번을 받아 여의도행을 확정했다. 함경남도 태생인 박 전 연구원은 평양 국방종합대를 졸업한 뒤 2009년 탈북해 서울대에서 재료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현대제철에서 자동차 핵심부품 소재 연구 등을 진행해왔다. 여기에 태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과 구로을에서 맞붙는데, 승리하게 되면 2명의 탈북민 출신 의원이 탄생된다.
민주당은 탈북민을 단 한 번도 지역구나 비례대표 후보로 추천한 적이 없다. 남북 화해와 평화를 주창하면서도 탈북자에 대해선 북한 당국처럼 ‘변절자’ ‘쓰레기’라는 시각으로 냉대한다. 그런 민주당이 총선을 앞두고 통진당 후신 격인 진보당과 선거 연대를 선언하면서 종북파 인사들의 무더기 국회 입성이 현실화한다. 민주당의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은 정혜경·전종덕·손솔 등 진보당 소속 비례대표 후보 3명을 당선권에 배치했다. 민주당이 양보한 울산 북구의 윤종오 후보,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꺾은 부산 연제구의 노정현 후보까지 당선되면 진보당 의원은 5명이 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대한민국을 교전 중인 주적으로 규정하고 핵으로 협박하는데 그런 북한을 맹종하는 인사들이 민주당을 숙주 삼아 대거 국회로 입성하는 것을 눈뜨고 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깨어 있는 유권자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나서야 한다.⊙
03-27 화엄매(梅)

이철호 논설고문
이번 봄에 SNS 친구들이 가장 자주 올려준 사진은 홍매화다. 그중 화엄사 홍매화 사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예로부터 매화는 선비의 절개를 상징했다. 한겨울에 눈을 맞으면서 피는 설중매가 으뜸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하얀 꽃에 꽃받침이 녹색인 ‘청(靑)매화’를 가장 높게 쳤다. 붉은색을 좋아하는 중국은 오래전부터 홍매화를 최고로 쳤는데, 그런 홍매화가 슬그머니 한국에서도 인기를 끄는 것이다.
높이 9m의 ‘구례 화엄매(梅)’는 오래전부터 전국에서 알 만한 사진가들을 불러 모은 명목이었다. 조선 숙종 때 계파 선사가 심은 300년 넘는 수령에다 빼어난 자태, 천년 고찰(古刹)과 어우러진 검붉은 홑꽃잎이 압권이다. 그동안 국가 유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는 순천 선암사 선암매, 강릉 오죽헌 율곡매, 장성 백양사 고불매, 화엄사 들매화 등 4건. 여기에 지난 1월 화엄매가 더해지면서 올해 유난히 화엄매 사진이 많이 퍼졌다.
화엄매는 2020년 화엄사가 사진 콘테스트를 열면서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고양이가 조용히 앉아 있는 풍경 뒤로 멀리서 붉은 꽃이 불타는 사진, 쏟아지는 새벽빛 속에 붉은 꽃잎을 틔우는 모습, 안개가 휘도는 산속에서 붉은 꽃잎이 절반쯤 낙화한 사진 등이 차례로 최우수작에 뽑혔다. 화엄매가 절정인 3월에는 전국에서 가장 핫한 포토존으로 입소문이 났다. 스님들 수행을 위해 산문 개방을 오전 7시∼오후 8시 30분으로 제한하지만, 카메라 삼각대를 펼칠 공간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사찰에 매화나무를 심은 이유는 단지 꽃구경 때문은 아니다. 약이 귀한 시절, 매실은 기력 회복과 소화에 도움이 됐다. 겨울철 동안거를 마친 수도승들에게 매실 장아찌와 매실 발효액은 최고의 사찰 요리였다. 안타까운 점은 이런 명목들이 언제까지 버텨줄지 기약하기 어렵다는 것.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직접 가꾼 수령 600여 년의 율곡매는 나무의 90%가 고사해 천연기념물 해제 위기까지 갔다가 대대적인 뿌리 치료 끝에 간신히 한쪽 줄기가 살아났다. 화엄사 들매화도 기존 4그루 중 3그루가 죽고 1그루만 살아남았다. 이상기후도 심상치 않다. 올해 화엄사는 제4회 사진 콘테스트를 지난 23일 종료하려다가 꽃샘추위로 개화가 늦어져 이달 31일까지로 연장했다.⊙
03-28 이재명의 아르헨 말장난

이현종 논설위원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Don’t cry for me, Argentina)’는 아르헨티나의 전 퍼스트레이디인 에바 페론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다. ‘민중의 성모’라고 불리며 33세에 암으로 사망한 에바는 악녀와 성녀의 두 얼굴을 하고 있다. 노동자와 빈민계급에는 한없이 자비롭고 성스러운 국모였지만, 기득권층엔 냉혹한 악녀로 알려졌다. 그러나 남편인 후안 페론 대통령은 민중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반대자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자행했고, 에바도 사치에 빠졌다. 좌파 포퓰리즘의 대명사인 ‘페론주의’가 아르헨티나의 재정 파탄에 일등 공신이 되면서 에바 신화의 환상은 깨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페론주의 타파를 내걸고 당선된 ‘괴짜 극우파’ 하비에르 밀레이(53) 대통령은 극심한 경제난과 치솟는 빈곤율을 극복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외국 자본 배제, 복지 확대와 임금 인상, 산업의 국유화 등을 내건 페론주의가 남긴 유산을 청산하는 게 쉽지 않다. 정부가 지나치게 시장에 개입하면서 심각한 비효율이 발생했고 국가부채도 지난 4년간 962억 달러(약 125조 원) 넘게 늘었다. 지난해 물가 상승률이 211%다. 우리나라는 이번 달 물가가 3.1% 상승하면서 사과, 대파가 총선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데, 아르헨티나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그런데 요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정권이 이번 선거에서 1당이 되거나 과반수를 차지하면 영원히 아르헨티나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퍼주기의 달인’ 이 대표가 아르헨티나를 자주 언급하자 정치권 인사들도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금융, 국민 1인당 연 100만 원 지급 등 기본 시리즈에 전 국민 지원금 1인당 25만 원 지급 등을 외치는 이 대표야말로 한국판 페론주의자이다. 생리대에 탈모 치료까지 무료로 해 주겠다는 이 대표가 포퓰리즘으로 나라가 망가진 아르헨티나를 언급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대장동 몸통은 윤석열”이라는 주장처럼 역공의 달인이다. 여당이 공격하기에 앞서 미리 역공을 취해 논쟁으로 만들어버리는 탁월한 언변이다. 나중에 문제가 되면 “내가 그렇다고 하니까 진짜 그런 줄 알았느냐”라고 간단히 무시해 버리면 그만이다.⊙
03-29(금) 샤이 보수 vs 샤이 진보

오승훈 논설위원
4·10 총선 사전투표를 딱 1주일 남긴 29일 현재, 정치 평론가들의 판세 분석은 더불어민주당의 1당 예상이 가장 많다. 단독 과반은 물론 범야권의 200석 전망까지 나온다. 국민의힘은 제21대 총선의 103석보다 많은 110∼130석인데, 100석이 안 되는 참패 전망도 적지 않다. ‘공식 선거운동 돌입 전 여론조사가 선거 결과로 이어진다’는 경험칙은 실시간 정보 유통이 이뤄지는 시대에 더는 유효하지 않다. 1주일, 열흘 새 표심은 얼마든지 흔들릴 수 있다. 실언, 돌출 사건, 정국 이슈 향배가 막판 변수로 꼽힌다. 그에 따라 투표율이 출렁인다. 지난 총선 투표율은 66.2%. 이번에도 60%대 중반이라면 야당이, 50%대 중반 언저리라면 여당이 유리하단 관측이 많다. 하지만 지난 대선의 사전투표율이 36.93%로 최고치를 기록했고, 표심도 당일 투표와 사뭇 달랐던 점에선 이 역시 빗나갈 수 있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거론하는 또 다른 변수는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는 ‘샤이(shy) 보수’ ‘샤이 진보’다. 지지하는 후보·정당이 있으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아 여론조사로 표집되지 않는 유권자들이다. 초박빙 선거에서 승패를 가르는 ‘숨은 표심’이다. ‘비호감’ 경쟁 선거일 경우 더 심해진다. 지난 대선 때 ‘샤이 석열’ ‘샤이 재명’이 주목을 받은 것도 그런 까닭이다. 이번 총선도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비슷하다. 보수·중도라고 해도 대통령과 여당에 실망해 이탈하는 표심, 진보 성향이지만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 지지를 유보한 표심이 뚜렷하다. 방황하는 표심들이 흠결로 가득한 조국혁신당으로 모이는 아이러니를 낳고 있다.
샤이층은 여론조사에 응하지 않는 유권자, 조사에 응하더라도 지지 후보·정당을 밝히지 않는 무당층·무응답층에 숨어 있다. 최근 선거 여론조사의 응답률은 대략 자동응답전화(ARS) 방식이 3∼6%, 전화면접 방식은 10∼16% 정도다. 그 표본 중에도 무당층이 10%를 훨씬 넘는다. 산술적으론 80% 이상 유권자의 마음은 모르는 셈이다. 매체나 SNS를 분석하는 빅데이터로도 알지 못하는 게 표심이란다. 마음을 숨기고 주저하다, 결국엔 투표장으로 나오는 유권자가 얼마나 될까. 총동원령 같은 지지층 결집이 이뤄질까. 그게 판세를 바꿀 수 있다.⊙